1. ‘신념 넘치는 무능’…부산 엑스포 유치전, 총체적 난국이었다 1-2"화석연료 대기오염으로 전세계서 연 500만명 사망“ 2. 자연을 (언젠가 약간) 보전하기 3. 역주행하는 윤석열 정부, 기업에 필요한 것은 'RE100'이다 4. “날 잡아잡숴”…인간이 깐 죽음의 길에서 미생물은 춤을 췄다 5. 130여 개국 ‘지속가능농업과 기후행동’ 담은 선언문 서명···COP28 6. 미국도 ‘탈석탄동맹’ 가입…한·일·호주 기후단체들 “우리는요?” 7. 교황 “환경파괴는 범죄…기후변화는 현재의 선택에 달렸다 8. 운하 덮은 ‘검푸른 지붕’ 뭐길래…전기 만들고 물 증발 막고 9. 글로벌 석유회사들, 5년 내 메탄 배출량 80% 감축 약속…“그린워싱” 지적도 10. 한국 “2050년까지 세계 원전용량 3배 확대” 선언 참여
12. 퇴출 시나리오는 없다”…COP28의 의장이 화석연료 옹호자 13. 금융의 화석연료 투자, 세계적 흐름 역행14. 잘나가는 SUV, 승용차보다 탄소 12% 더 뿜어냈다 15. 장인화 부산상의 회장 “상공인 의견 모아 엑스포 재도전 공식화” -시장 출마하냐 16 올겨울 숨쉬기 더 힘들다… 강력한 미세먼지 예고 17. 바다에 가장 많이 버려지는 쓰레기는?
18. 엑스포 유치 실패와 부산의 미래 19. 최상목 “엑스포, 서울-부산 축 균형발전 위해 추진” 20. 큰 나무 21. 고목의 시간·거목의 풍채…제목이 되다 22. "엑스포 유치 실패 했으니 가덕도 신공항 건설 백지화해야"
23. ‘지구 냉방 서약’에 63개국 참여…에어컨 온실가스 감축하려 24. 재생e와 원전의 3배 확대 25. 5744억 원 쏟고 29표...정부와 언론의 사기극, 그냥 둬야 하나 26. 협약 맺을 사공이 많네… 산으로 가는 금정산 국립공원 지정 27. 탄소중립의 전쟁이 아닌, 기후정의로서의 평화 28. 대통령께 드리는 ‘카르텔’의 용법
29. 신공항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가덕도 100년 숲 30. 한국, ‘오늘의 화석상’ 첫 수상 불명예…“화석연료 확대 기여” 31. 시내버스 타면 기부 동참’ 나눔버스…부산 내년 3월까지 운행 32. 지류지천까지 댐 10개 짓자는 환경부, ‘4대강 시즌2’인가 33"윤석열 4대강 역행 죗값 묻겠다"... 금강·낙동강·영산강이 뭉쳤다 34. 이젠 가을에도 외투 안 입을까…올해 역대 세 번째로 더웠다 35. 재벌총수 병풍 삼은 대통령 사진…참 낯익다 했더니 36. 부산 엑스포 유치 ‘희망 고문’이 남긴 숙제
‘신념 넘치는 무능’…부산 엑스포 유치전, 총체적 난국이었다
시점·명분·전략에서 판세 읽기까지 실패…돈 쓰고 실속 없는 ‘윤석열식 세일즈 외교’
지난 11월 29일 부산 해운대구청사 외벽에 걸려 있던 엑스포 응원 현수막이 철거되고 있다. /연합뉴스
막판 역전극을 노렸다. 정부도 박빙이라고 했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2차 결선 투표조차 못 갔다. 정부가 밝힌 판세, 역전 계획 중 맞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지난 11월 2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2030 세계박람회(EXPO·엑스포) 개최지 투표 결과는 일방적이었다. 국제박람회기구(BIE) 회원국 중 165개국이 투표에 참여해 사우디아라비아 119표, 한국 29표, 이탈리아 17표를 나눠가졌다. 이로써 사우디 리야드가 2030년 엑스포 개최지로 최종 결정됐다.
애초에 리야드는 2030 엑스포 개최지로 유력한 후보였다. 사우디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2016년 사우디를 첨단 기술과 민간투자의 중심지로 만들겠다며 ‘비전 2030’을 발표했다. 기존의 석유 의존 경제에서 벗어난 혁신모델을 선보이는데 2030년을 기점으로 삼은 것이다. 같은해 열리는 2030 엑스포는 자연히 사우디의 변화를 세계에 보일 수 있는 최고의 수단으로 인식됐다. 사우디는 빠르게 대세론을 형성했다.
반면, 부산은 달랐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여러 차례 “대한민국이 불리한 여건을 극복하며 잘해왔다”는 식으로 말했다. 이는 주요 사실관계를 함축한다. 역량을 집중해야 할 시점, 명분, 전략 등에서 이미 사우디에 뒤진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윤석열 대통령, 박 시장, 주요 기업 총수들이 발 벗고 뛰며 대역전극을 만든다는 서사를 짰다. 1차 투표에서 리야드가 3분의 2 이상을 득표하지 못하게 막고, 2차 투표에서 이탈리아 로마의 표를 모두 흡수해 역전한다는 전략도 밝혔다. 그 결과, 부산이 로마 표를 모두 흡수해도 리야드가 1차 투표에서 받은 표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오히려 부산과 로마의 격차가 고작 12표 차였다.
LG전자가 프랑스 파리에서 운영한 부산 엑스포 유치 홍보 랩핑(Wrapping) 버스/연합뉴스
국제행사 유치는 성공할 수도, 실패할 수도 있다. 평창 동계올림픽 역시 세 번의 도전 끝에 따냈다. 비난이 새로운 도전을 막아서는 안 된다. 하지만 도전 시점, 판세 이해, 전략 수립 등에서 나타난 총체적 실패까지 ‘아름다운 도전’이라고 할 수는 없다. 덮어놓고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로 이어지는 책임 회피 구조 역시 마찬가지다. 이미 정부와 여당, 일부 시민단체 등에서 ‘값진 성과’를 얻었다는 자평이 나온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BIE 182개 회원국과 접촉하며 우리의 외교적인, 새로운 자산을 얻었다”며 졌잘싸의 근거도 제시했다. 이는 ‘값진 경험’과 ‘무능력’의 경계를 허문다. 그렇다면, 따져봐야 한다. ‘대체 왜 스스로 불리하다고 말한 유치전에 막대한 세금을 쓰며 뛰어들었나’, ‘선거 직전까지 확실히 몇 표를 확보할 수 있는지조차 정말 몰랐나’, ‘182개국과 접촉해 29표를 얻은 것이 외교적 자산인가, 외교적 낭비인가’ 등이다.
■국제행사, 왜 그렇게 간절할까
메가 이벤트(Mega-Event). 크다는 의미의 ‘메가’와 행사를 뜻하는 ‘이벤트’를 합친 말이다. 사람마다 또 시대마다 메가 이벤트를 구성하는 정의는 다르다. 그럼에도 꼭 들어가는 행사가 있다. 이른바 3대 행사라고 부르는 ‘올림픽’, ‘월드컵’ 그리고 ‘엑스포’다. 스포츠로 익숙한 올림픽, 월드컵 외에 엑스포가 포함된 것이 의아할 수 있다. 1993년 ‘꿈돌이’로 유명한 대전 엑스포, 2012년 여수 엑스포가 1988년 서울 올림픽, 2002년 한일 월드컵에 버금갈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은 아직 진정한 의미의 엑스포를 개최한 적이 없다.
엑스포는 여러 단계가 있다. 국제박람회기구가 인정하면 공인, 인정하지 않으면 비공인 엑스포다. 공인 엑스포는 다시 ‘등록 엑스포’와 ‘인정 엑스포’로 구분한다. 단순히 세계박람회라고 하면 이는 유엔에 이름이 등록됐다는 의미의 ‘등록 엑스포’를 지칭한다. 등록, 인정 엑스포 모두 5년 주기로 열리지만 기간에서 차이가 있다. 인정 엑스포는 3개월까지 개최할 수 있는 반면, 등록 엑스포는 최대 6개월까지 열 수 있다. 등록 엑스포는 규모, 파급 효과 등에서 올림픽, 월드컵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지금까지 아시아 대륙에서는 일본, 중국, 아랍에미리트(UAE)만이 등록엑스포를 개최했다. 대전, 여수는 모두 인정 엑스포였다.
한국에서 등록 엑스포가 열린 적이 없는 만큼 유치에 성공하면 기념비적 성과인 것은 맞다. 61조원에 육박한다는 책임지지도 못할 ‘경제 성과’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주목받는 것은 ‘정치적 성과’다. 임기 4년의 광역자치단체장이 메가 이벤트를 유치한다면 당장 대선주자급으로 발돋움할 수 있다. 일단 유치에만 성공하면 온통 장밋빛으로 물들인 예상 효과를 내놓아도 쉽게 태클을 걸 수 없다. 중앙정부 지원을 받아 인프라 개선, 상징물 설치 등의 치적을 쌓기도 쉽다. 정치인이라면 누구라도 탐내지 않을 수가 없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지난 11월 28일(현지시간) 2030년 세계박람회 개최지 선정 투표 결과 부산이 탈락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은 박형준 부산시장 /연합뉴스
실제로 2030 엑스포 개최지가 리야드로 확정된 직후, 부산은 2035 엑스포에 재도전할 뜻을 밝혔다. 박 시장은 “(이번 엑스포 유치전을 통해) 부산은 전 세계로부터 뛰어난 역량과 경쟁력, 풍부한 잠재력과 가능성을 인정받았다”며 “이를 바탕으로 정부, 부산 시민과 충분히 논의해 2035년 세계박람회 유치 도전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판세를 왜 오판했는가’, ‘회원국 상대 교섭은 왜 실패했는가’보다 재도전 의사가 먼저 튀어나왔다.
도전이 나쁘냐고 물을 수 있다. 이 경우 대답은 ‘그렇다’이다. 명분, 목적이 혼동된 도전은 나쁘다. 메가 이벤트에는 두 가지 근원적 문제가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첫 번째는 ‘승자의 저주’다. 올림픽조차 이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당장 일본이 유치한 2025년 오사카-간사이 세계박람회가 자국 내에서 ‘빚덩이’라고 비판받고 있다. 지난 11월 28일 도쿄신문 등 주요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참의원 예산위원회에 ‘세계박람회에 추가 투입해야 할 국비로 837억엔을 예상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세부적으로는 일본관 건설에 360억엔, 참가 개발도상국 지원에 240억엔, 경비비에 199억엔, 홍보에 38억엔 등이다. 이마저도 예상 총비용의 최대치가 아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총비용은 아직 조사하고 있다”며 “가능한 이해하기 쉽게 전체상을 제시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박람회장 건설비는 또 별도다. 국내에는 엑스포 개최국이 부지만 제공하고, 전시관은 참가국이 만드는 것으로 부각돼 있다. 문제는 그 부지로 맨땅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건물을 지어야 한다. 일본처럼 중앙정부, 지자체, 경제계가 분담해 해결할 수 있지만 세금이 들어간다는 사실만큼은 변함이 없다. 엑스포 유치전에 슬로건으로 쓰인 ‘Busan is Ready’(부산은 준비됐다)가 부산이 세금을 더 낼 준비가 돼 있다는 뜻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부산 해운대구에 거주하는 30대 김수지씨는 “부산 시민들이 지지대회까지 한다는 뉴스를 재밌게 봤다”며 “내 주변과 말해보면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사람이 대다수인데 마치 부산이 들끓고 있는 것처럼 나와서 신기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엑스포를 한다고 내 삶이 변하는 것도 아닌데 만약 세금을 더 내야 하면 누가 좋아하겠냐”고 덧붙였다.
두 번째는 메가 이벤트와 국가발전의 상관관계 문제다. 쇠퇴기에 접어든 지역경제에 메가 이벤트가 자극제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실제로 개최가 확정되면 각종 인프라 구축을 중앙정부 지원을 받아 할 수 있다. “(부산은) 저출생과 더불어 청년 인구의 유출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그럴수록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성장동력으로서 엑스포가 절실한 상황이다.” 실제로 박 시장이 언론 인터뷰에서 직접 밝힌 엑스포 유치의 당위성이다. 부산은 가덕도 신공항 개항 시점도 엑스포 전인 2029년으로 목표를 정했다. 원도심인 북항 일대 재개발도 추진 중이다. 유치가 확정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엑스포를 지역개발의 촉매제로 쓰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국가 예산이 한정된 상황에서 이러한 목적의 메가 이벤트 유치가 자원분배을 왜곡할 수 있다는 점이다. 부산 엑스포 준비를 위해 필요한 예산은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부산시가 자체적으로 해결하거나, 그게 어렵다면 미래에서 끌어와야 한다. 이마저 안 되면 기타 지역에 분배될 예산을 돌려와야 한다. 메가 이벤트가 아니면, 지역 발전이 어렵다는 주장 역시 모순이다. 이는 애초에 지자체가 메가 이벤트 없이는 실현 가능성이 없는 발전 계획을 세웠다는 말이 된다. 실제로 2030년에 반드시 유치해야 한다던 엑스포가 2035년도 괜찮다는 식으로 바뀌고 있다. 5년이 더 미뤄지더라도 지역발전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특정 시점까지 지역발전 성과를 내야 하는 건 임기에 쫓기는 정치인들한테나 해당하는 이야기다. 메가 이벤트 유치가 지역 발전 계획의 일환인지, 정치인들의 인생계획에 따른 결과물인지 알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메가 이벤트를 둘러싼 문제는 이렇듯 유치 목적의 차이에서 발생한다. 발전한 국가·지역을 세계에 홍보할 기회로 인식하느냐, 지역 발전의 촉매제로 인식하느냐에 따라 엑스포 유치 이후 평가기준도 달라진다. 자연히 후자에 더욱 많은 예산이 들어간다. 위험도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다. 정부와 박 시장의 발언 등을 종합하면 부산은 전형적인 후자에 속한다.
■남은 건 외교적 자산인가, 외교적 무능인가
총체적 실패로 끝났지만 2030 엑스포 유치전이 남긴 것도 있다. 윤석열 정부 외교 역량의 실체다. 지난 1년 7개월여간 윤 대통령의 외교 행보에는 크게 두 가지 키워드가 있었다. 하나는 이상주의고, 다른 하나는 세일즈다. 미국과 지역 패권국을 제외하고 윤 대통령처럼 자유주의, 국제기구, 국제법을 강조한 지도자도 찾아보기 어렵다. 동시에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을 자임하며 단기간에 유례없이 많은 각국 대표를 만나는 ‘세일즈 외교’를 선보였다. 윤 대통령의 “나를 ‘회담기계’로 생각하라”는 발언과 빡빡한 일정의 정상회담이 불러온 ‘코피투혼’, ‘양자회담 횟수로는 기네스북감’이란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진다. 엑스포 유치전에도 이 기조가 그대로 적용됐다.
지난 9월, 윤 대통령은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총회에 참석했다. 당시 정부는 정책브리핑 등을 통해 윤 대통령이 5일간 47개국 정상을 만나 엑스포 유치 총력전을 펼쳤다고 홍보했다. 구체적으로 윤 대통령이 직접 부산 엑스포 지지를 요청하고, 맞춤형 협력 방안도 논의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11월 23일 시작한 파리 방문은 더욱 획기적이었다. 국제박람회기구 회원국 대표를 모두 만나 지원을 당부했다고 밝혔다. 또 정부는 대통령과 국무총리, 각 부처 장관, 기업인 등이 엑스포 유치를 위해 1989만1579㎞, 지구 495바퀴를 돌았다고 홍보했다.
이중 딱 29개국만 한국에 호응했다. ‘전략적 배분’, ‘이탈표’, ‘역전’, ‘치열한 외교전’. 정부 관계자들이 투표 직전까지 반복한 말들이다. 장성민 대통령 특사 겸 대통령실 미래전략기획관은 “사우디가 얼마나 긴장하고 있는지, 우리에게 오는 사람을 곧바로 낚아채서 밖으로 나간다. 치열한 격전이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박 시장도 “지금으로선 예상 불가”라고 말했다. 정부가 판세를 뒤집기는커녕 읽을 능력조차 없었음을 잘 보여준다.
결과적으로 윤석열식 세일즈 외교는 1국 1표로 돌아가는 국제기구에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단기간 스쳐가듯 만나는 외교의 한계는 뚜렷했다. 이는 유엔 총회, 상임이사국의 입장이 팽팽하게 갈리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도 유사한 결과가 나오리라는 것을 방증한다. 미국·일본 등의 강대국 중심 외교, 편 가르기 외교가 내포한 한계도 실증해 보였다. 특히 공을 들인 미국·일본과의 관계에서조차 실익을 얻지 못했다.
5일 동안 47개국 정상과 만난 것과 달리 윤 대통령은 올해만 기시다 일본 총리와 7번 만났다. 일본은 투표를 코앞에 둔 지난 11월 26일에야 엑스포 유치전에서 한국 지지 의사를 우회적으로 밝혔다. 일본 정부 주요 인사의 명시적 발표도 아닌 언론사 보도로 확인된 ‘지지’였다. 심지어 “사우디를 선택해야 하지만 윤석열 정부의 한일관계 개선 노력을 반영했다”는 평가까지 달렸다. 이는 상호주의 외교를 무시한 행태다. 시간을 5년 전으로 돌려볼 필요가 있다. 일본 오사카가 2025 엑스포 유치 경쟁에 나섰다. 당시 무역분쟁 등으로 한일관계가 최악이었지만 한국 정부는 일본을 공개 지지했다. 미국도 유사하다. 2027 인정 엑스포 유치 당시 한국은 미국을 공개 지지했다. 미국은 2030 엑스포 유치전에서 지지후보지를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반면 1차 투표에서 부산을 지지하지 않을 나라는 늘어났다. 중국이 대표적이다. 중국 외교가 아프리카에서 가진 영향력을 이용할 가능성도 모두 날아가 버렸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1월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2030 엑스포 부산 유치 실패와 관련해 대국민 담화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 대통령식 분류대로라면 사우디는 자유주의 국가도, 규칙을 잘 지키는 나라도 아니다. 정말 국제사회가 진영 논리로 나뉘어 있다면 자유주의 국가는 한국을 지지하거나, 적어도 사우디를 지지하면 안 된다. 현실은 달랐다. 사우디의 압승이었다. 이를 ‘오일머니’ 탓으로 돌린다면 한국 외교의 비전문성만 드러난다. 한국도 표를 얻기 위해 국가 간 협력, 지원책을 제시했다. 결국, 외교전략에 대한 원점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문제는 그럼에도 특별한 변화의 움직임이 감지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11월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모든 것은 전부 저의 부족이라고 생각해 달라”며 “글로벌 중추 외교라는 기조하에 국제사회에 대한 책임 있는 기여는 대한민국의 국격을 위해서도 반드시 철저하게 추진하고 이행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여전히 ‘국제사회에 대한 책임 있는 기여’를 강조하고 있다. 결국 돈만 쓰고,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화석연료 대기오염으로 전세계서 연 500만명 사망“
글로벌 연구팀, 초과사망자·NASA 위성 데이터 등 분석 결과
한 공장에서 연기가 치솟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서혜림 기자 = 화석연료 사용으로 인한 대기오염으로 연간 전 세계적으로 500만 명 이상이 사망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2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독일·키프로스·영국·미국·스페인·독일의 보건 전문가들로 구성된 연구팀이 영국의학저널(BMJ)에 게재한 논문에 따르면, 대기오염으로 인해 발생하는 연간 사망자는 830만 명으로 집계됐다.이 중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산업, 교통수단 등으로 인한 대기오염으로 사망한 사람은 61%를 차지했다. 이는 연구팀이 '국제질병 부담연구'(GBD)의 2019년 데이터를 토대로 한 초과사망자수와 미국우주항공국(NASA) 위성에 기반한 초미세먼지 및 오염도 데이터 등을 분석해 얻은 결과다.
연구팀은 2019년 전 세계적으로 830만 명이 초미세먼지(PM2.5)와 오존으로 인해 사망했으며, 그중 510만 명이 화석연료와 연관된 대기오염 사망자라고 분석했다. 연구진은 "화석연료 감축을 통해 대기오염 물질 배출을 현저히 줄이는 것이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라며 "'탄소중립 2050'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유엔의 청정 재생 에너지 사용 확대 방침에 부합한다"고 밝혔다.
가디언은 "이번 연구에서 나온 사망자 집계치는 이전 연구의 결과치보다 높다"며 "화석 연료 사용이 생명에 미치는 영향이 생각보다 더 클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짚었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가 실외 대기 환경만을 토대로 진행했다는 점이 상대적으로 높은 수치를 얻는 데 영향을 줬을 수 있다고 부연했다.hrseo@yna.co.k
자연을 (언젠가 약간) 보전하기
“이제는 생물다양성 부문 ESG를 대응할 때, 약간의 기부나 사진 찍는 행사 수준으로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한 기업의 ESG 담당자가 제5차 국가 생물다양성 전략 공청회에 패널로 참여해서 강조한 대목이다. 이 담당자는 기업 활동으로 인해서 발생하는 자연자본의 손실에 대해서 구체적인 영향을 측정하고, 영향을 회피하고, 최소화하고, 복원하여 영향을 상쇄하기 위한 방안을 공시해야 한다며, 정량화된 공신력 있는 제도의 시급함을 토로했다. 기업이 이른바 ‘자연자원총량제’를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ESG에 대한 글로벌 투자자들의 요구가 구체적으로 변화되면서 자연자본에 대한 재무정보를 공시하는 제도(TNFD)가 급물살을 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지난해 12월 채택된 쿤밍-몬트리올 글로벌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쿤밍-몬트리올 프레임워크’)의 핵심 방향을 잘 보여준다. 쿤밍-몬트리올 프레임워크는 ‘자연을 보호하자’는 모호한 수준의 좋은 말잔치를 넘어서 구체적인 목표와 방법론을 제시하고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연을 위한 파리협약’이라고 불린다. 각 국가는 이를 이행할 국가 생물다양성 전략 목표를 2024년 당사국총회 전에 수립해야 한다.
하지만 공청회에 발표된 국가 생물다양성 전략에는 구체적인 목표와 정책 수단이 모두 실종되었다. 2030년까지 ‘육상과 해양의 30%를 보호구역으로 지정’하는 핵심 목표는 명시되었지만, ‘훼손지역의 30%를 효과적으로 복원’하는 목표는 ‘우선 복원지역의 30%의 복원에 착수’하는 계획으로 대폭 후퇴했다. 그 외에 생물다양성 보전 부문에서 중요하게 제시된 비료와 살충제, 음식물 쓰레기의 50% 감소는 아예 수치 목표가 사라졌다.
또한 국가 생물다양성 전략에서는 생물다양성 붕괴에 가장 취약한 사회 주체들이 의사결정에 참여하도록 보장하는 부분도 흐릿해졌다. 쿤밍-몬트리올 프레임워크에서는 여성과 소녀, 어린이, 청소년, 장애인 등에 대한 완전하고, 포용적이고, 효과적이며 성평등한 대표성과 참여를 보장하고 환경인권운동가의 완전한 보호를 보장하도록 하고 있다.
기업의 생물다양성 부문 공시 목표 역시 대기업과 다국적 기업, 금융기관의 운영 및 가치 사슬을 강조한 부분이 국내에는 반영되지 않았다. 이미 유럽연합이 2030 생물다양성 전략을 통해서 무역장벽을 예고하고 나선 상황에서 쿤밍-몬트리올 프레임워크에서 대기업 등을 특정하고 나선 것은 오히려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시간을 벌 수 있는 명분이 될 수도 있지만 구체적인 목표를 정하고 대책을 수립하기보다 뭉뚱그리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최소한의 목표도 없이 ‘자연을 (언젠가 약간) 보전한다’는 마음가짐으로는 지금의 생물다양성 위기를 극복하기 어렵다. 최소한의 목표조차 없다면 그저 좋은 말잔치 수준이 되어버린다. 현 생물다양성의 상황이 지구적 위기라는 과학자들의 경고와 달리 한국사회의 위기감은 높지 못하다. 투자자들의 요구가 높아지며 기업들이 먼저 몸이 단 것 같은 모양새가 아이러니하게 느껴질 정도다. 다음달 국무회의에서 제5차 국가생물다양성 전략이 최종 의결된다. 공청회의 우려가 국무회의까지 닿을 수 있을지 우려스럽다./ 신재은 풀씨행동연구소 캠페이너/경향
“날 잡아잡숴”…인간이 깐 죽음의 길에서 미생물은 춤을 췄다
전쟁과 미생물
발진티푸스·참호열…1차 세계대전 때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병원균
지금도 계속되는 어리석은 쌍방폭력은 ‘비극의 문’을 활짝 연다
미생물은 악마 같은 존재·박멸의 대상으로 여겨져왔지만
질병을 일으키는 건 극소수일 뿐, 대다수는 인간 삶의 자양분이다
반감보다 공감의 자세로 반려자이자 조력자를 바라보자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역사 교과서에 기록된바, 19세기 후반 식민지 확보 경쟁에 열을 올리던 유럽 열강은 각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합종연횡했다. 1882년 독일은 프랑스를 고립시키고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그리고 이탈리아와 3국 동맹을 맺었다. 이에 맞서 프랑스와 영국은 1907년 러시아를 끌어들여 3국 협상을 체결하면서 독일의 팽창을 견제했다. 이런 와중에 발칸반도에서는 오스만 제국의 쇠퇴로 여러 민족이 독립하자 러시아는 범슬라브주의를,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범게르만주의를 내세워 세력을 확대하면서 위기감이 고조되었다.
발칸반도에서 대립과 충돌이 심해지는 가운데, 1914년 6월28일 보스니아를 방문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 부부가 세르비아 청년에게 암살당하는 이른바 ‘사라예보 사건’이 터졌다. 이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세르비아에 전쟁을 선포하자 러시아는 세르비아 편을 들었고, 독일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지지했다. 이러한 제국주의 국가 간 대립은 결국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인류 대참사로 번지고 말았다.
예기치 못한 복병
세르비아가 최후통첩을 거부하자 오스트리아·헝가리 정부는 1914년 7월28일 오전 11시 정식으로 선전포고를 하고, 오후 1시에 포문을 열었다. 황태자 부부가 참변을 당하고 정확히 한 달 만에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세르비아의 도시를 향한 집중 포격으로 국가 기반시설이 파괴되고 사람들은 거리로 내몰렸다. 세르비아에 거주하는 오스트리아인 가운데 적어도 2만명이 포로로 잡혔다. 군의관을 비롯하여 의료진이 군에 차출된 탓에 민간 의료 체계는 붕괴 수준에 이르렀다. 이런 상황에서 영양실조와 과밀, 비위생적인 환경은 감염병에 신작로를 열어주었다.
발진티푸스에 걸리면 잠복기(1~2주) 이후 두통과 오한, 발열에 근육통 따위가 나타나며 감기와 비슷한 증세를 보인다. 며칠 더 지나면 작고 붉은 발진이 상체에서 시작해 전신으로 퍼지는데, 대부분 2주 정도 앓고 나면 열이 내리고 상태가 빠르게 좋아진다. 그러나 제때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면 맥박 증가, 혈압 저하 등 순환기 장애가 나타나 망상과 혼수에 빠지거나 심지어 심장 기능 장애로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1914년 11월, 난민과 포로들 가운데 ‘발진티푸스’가 처음 발병했고, 그 후 군인들 사이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전쟁 발발 1년 만에 발진티푸스는 15만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 가운데 약 5만명은 세르비아에 감금된 포로였다. 심지어 세르비아의 의사들조차도 세 명에 한 명꼴로 비운을 피하지 못할 정도로 발진티푸스는 사람을 가리지 않고 맹렬히 위세를 떨쳤다.
러시아 전선 상황은 더 심각했다.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이전에 발진티푸스가 러시아에 이미 잠복해 있었던 까닭이다. 전쟁 전 1만명당 1.3명이던 발진티푸스 사망률이 1915년에는 1만명당 23.3명으로 치솟았다. 군대의 이동과 피란민 행렬을 따라 발진티푸스는 빠르게 퍼져나갔다. 1917년, 현대 역사상 가장 큰 발진티푸스 유행이 전쟁과 기근으로 이미 황폐해진 러시아를 휩쓸었다. 1921년까지 지속한 대유행 기간에 러시아인 약 2000만명이 병에 걸렸고, 이 가운데 무려 300만명가량이나 숨졌다.
복병의 정체
발진티푸스를 일으키는 병원균은 1916년에 색출되었다. 브라질 출신 내과 의사 겸 병리학자 리마(Henrique da Rocha Lima)는 이 세균을 처음으로 발견하고, 자신과 함께 연구하다 유명을 달리한 동료 프로와제크(Stanislaus von Prowazek)와 역시 발진티푸스 연구 중 사망한 미국 미생물학자 리케츠(Howard Ricketts)를 기리고자 ‘리케차 프로와제키(Rickettsia prowazekii)’라는 공식 이름(학명)을 붙였다.
발진티푸스는 매개 곤충을 통해 퍼져나간다. ‘이 잡듯’이라는 관용구에 등장하는 이가 문제의 주인공이다. 사람에 기생하는 이에는 머릿니와 몸니, 사면발니 이렇게 세 종류가 있다. 각각 머리카락과 음모에 사는 머릿니와 사면발니와는 다르게 몸니는 인체에 상주하지 않고 피를 빨 때만 잠시 머문다. 바로 이때 발진티푸스를 옮긴다. 발진티푸스균에 감염된 몸니는 흡혈하면서 배설도 하는데, 몸니 분변에 발진티푸스균이 들어 있다. 물린 부위가 가려워 긁으면 상처가 나기 일쑤인데, 이를 통해 발진티푸스균이 침입해 감염을 일으킨다.
발진티푸스균은 마른 변에서도 며칠 동안 살 수 있어 전염성이 상당히 높다. 따라서 발진티푸스를 예방하는 최선책은 이 박멸이다. 1919년에 발표된 한 그림 속 문구 “죽음과 악수하는 발진티푸스 이. 이와 죽음은 친구이자 동지다. 감염된 이를 박멸하라!”가 이런 사실을 생생하게 전해준다. 실제로 선제공격으로 제1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오스트리아 동맹군은 개전 초기 세르비아 진격 대신 자기 진영에서 발진티푸스 징후를 보이는 사람을 격리하고 병영 방역에 온 힘을 다했다. 우선 발진티푸스를 옮기는 이를 없애기 위해 개인위생 기준을 강화하고 병사들의 군장을 소독 가스로 처리했다.
트렌치코트와 또 다른 복병
서부 전선에서는 독일이 빠르게 진격하다 파리 외곽에서 벌어진 ‘마른 전투(Battle of the Marne)’에서 프랑스에 패배하고, 교착 상태에 빠졌다. 이후 양측은 ‘참호(trench)’를 구축하고 장기간 대치하며 공방을 이어갔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기약 없는 참호 생활 그 자체만으로 장병들은 지치고 병들어갔다. 좁은 흙 도랑 안에서 온갖 악천후에 노출되는 상황에서 정상적인 몸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나마 신형 군복 ‘트렌치코트(trench coat)’가 보급되어 참호 속 군인들이 추위를 견디는 데 도움을 주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오늘날 봄가을 멋쟁이 패션으로 자리 잡은 외투의 유래는 이렇게 생존을 위한 것이었다.
잦은 비로 물이 흥건한 참호 안에서 오랫동안 정적으로 지내다 보니 젖은 발에 혈액 순환 장애가 겹쳐 동상과 비슷한 증세가 나타났다. 소위 ‘참호족(trench foot)’이라는 감염병이다. 참호족은 짓무른 상처를 통해 특정 병원균이 아니라 여러 잡균 감염으로 생기는 궤양이다. 제때 치료받지 못하면 발이 썩어서 절단 수술을 받아야 했고 심하면 목숨을 잃었다.
이상하게도 서부 전선에서는 발진티푸스가 발생하지 않았다. 몸니는 만연해 있었지만, 발진티푸스균에 감염된 몸니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감염병이 없었다는 말은 아니다. 발진티푸스와 비슷하면서 증세가 약한 감염병이 새롭게 확인되었고, 이를 ‘참호열(trench fever)’이라고 불렀다. 역시 몸니를 매개체로 삼는 세균 ‘바토넬라 퀸타나(Bartonella quintana)’가 참호 속 군인들을 공격했다.
미생물에 대한 오해
서양판 <손자병법>으로 일컬어지는 <전쟁론>에서 저자 클라우제비츠(Karl von Clausewitz)는 전쟁이란 자신의 의지를 실현하려고 적에게 굴복을 강요하는 폭력 행동이라 정의했다. 여기서 의지 실현과 굴복에 대한 강요는 각각 전쟁의 목적과 목표고, 폭력 행동은 전쟁의 수단이다. 위에서 살펴본 대로 전쟁에서 자행되는 쌍방폭력 과정에서 미생물은 언제나 어부지리를 얻는다.
인간이 전쟁을 벌이면 미생물은 신이 난다. 새로운 서식지 개척, 즉 감염 기회가 많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부상으로 생긴 상처와 제대로 먹지 못하고 스트레스로 저하된 면역 기능은 성을 에워싼 적군에게 성문을 열어주는 격이다. 쉽게 말해, 온갖 미생물에게 ‘날 잡아 잡숴’ 하고 기다리는 일과 같다. 그런데 이런 비극이 지금도 반복되고 있는 참혹한 현실에 안타까움을 넘어 인간으로서 자괴감을 느낀다.
현대 미생물학이 태동할 무렵 터진 제1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의사와 미생물학자들은 이런 엄혹한 현실을 일찍이 직시했다. 그들에게 미생물은 동식물처럼 인간과 함께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인간의 목숨을 호시탐탐 노리는 악마 같은 존재였고 박멸의 대상이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미생물학은 미생물과의 전쟁을 통해 발전해온 학문이다. 이 전쟁은 지금도 진행 중이고, 안타깝지만 인류가 존재하는 한 앞으로도 계속될 수밖에 없다./깅응빈 연세대 미생물학과 교수 /경향
1919년 러시아에서 제작된 포스터에 “죽음과 악수하는 발진티푸스 이. 이와 죽음은 친구이자 동지다. 감염된 이를 박멸하라!”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출처 | 크리에이티브 커먼스
수경재배 농산물에 유기농 인증, 굳이 왜 주려 하는가
딸기 철에 접어들었다. 모든 농사가 힘들지만 딸기는 열세 달 농사라 할 정도로 고되다. 쪼그린 자세로 하는 작업도 많고 매일 따야 해서 과채류는 농민들 근골격을 틀어놓는 대표작물이다. 버스는 저상이 편하지만 농작업은 고상이 훨씬 편하다. 하여 근래에 수경재배를 기본으로 하는 고설재배가 많아지고 있다. 무나 고구마를 잘라 물통에 담아 놓고 이파리가 얼마나 올라오는지 살펴본 경험이 있을 텐데 이것이 수경재배다. 수경재배는 흙 대신 배지에 작물을 꽂은 뒤 물을 공급해 기르는 ‘무토양농법’이다. 다만 취미용 아닌 다음에야 맹물로만 길러 수확을 얻기란 만무하다. 그래서 비료(양분)를 녹인 ‘양액’을 주어 기르는 ‘양액재배’이고 스마트팜도 대체로 양액재배를 택한다.
딸기, 토마토, 파프리카, 화훼 작물에 수경재배가 많고 근래엔 오이, 엽채류도 확산 중이다. 신체 부담이 덜한 것도 장점이지만 연작피해를 줄이려 주로 택한다. 땅에서 특정 작물만 반복적으로 심으면 지력 상실로 연작피해가 난다. 돌려짓기나 섞어짓기를 해야지만 시장성 있는 농산물이 한정되어 쉽지 않다. 이런 이유로 수경재배를 택하는 농가가 늘어가지만 작물을 기르고 남은 양액 찌꺼기, 즉 ‘폐액’이 땅과 하천으로 흘러들어 환경오염을 유발할 위험이 있다. 양액재배를 먼저 시작한 네덜란드는 폐액을 재활용하는 ‘순환식 수경재배’가 의무지만 한국은 폐액을 그대로 흘려보내는 ‘비순환식’이 90% 이상이다. 친환경적인 농업이라 홍보해도 농생태계 전체를 보자면 진정 친환경적인지는 따져봐야 한다.
여전히 ‘토경재배’를 이어가는 농민들이 있다. 수경재배는 투자비용이 높아 부담이 커서 농산물값이 급락하면 큰 손해가 나고 양액이 오염되어 병이 들면 속수무책이다. 게다가 소수 유기농 농민들에게 토경재배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유기농산물은 단순히 농산물에 농약 잔류량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원이 아니다. 유기농은 생물 다양성을 증진하고, 토양의 비옥도를 유지하면서 환경을 건강하게 보전하기 위해 허용물질을 최소한으로 사용하는 농법이라 국내법에 정의하고 있다. 최종 산물인 유기농 딸기만 보는 것이 아니라 흙과 지렁이, 미생물이 공존하는지가 핵심이며 물을 깨끗하게 유지하는지가 유기농을 가르는 핵심 기준이다. 이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유기농업의 정의다. 하나 살충제와 제초제를 치지 않는 농사가 얼마나 고되겠나. 친환경 농가도 점점 줄어들어 전체 농가의 4.96%에 불과하다. 친환경농업은 국가가 기후위기 시대의 대안으로 삼겠다는 의지로 받쳐주어야 겨우 이어갈 수 있건만 그나마 내년 관련 예산도 14%나 줄이겠다 한다. 역대 정부는 농업의 고령화 문제, 기후위기의 대응으로 ‘스마트팜’에 대한 적극적인 육성 기조를 이어왔다. 야당인 윤재갑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스마트농업으로 수경재배한 유기식품 등에 유기 인증을 할 수 있도록 특례를 부여하는 ‘스마트농업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스마트농업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상황까지 벌어졌다.
농업기술 혁신은 매우 중요하다. 나도 청년 농민들에게 토경재배 대신 스마트농업 기술을 익혀 자신의 농업에 적용해 보라 권한다. 허리, 무릎 다 비틀어질 텐데 땅 살리자고 사람을 잡을 수는 없어서다. 수경재배 농산물도 안전한 국내산 농산물이고 절대 미각 아닌 다음에야 토경 딸기냐 수경 딸기냐를 구분하기도 어렵다. 지금도 조건만 갖춘다면 수경재배 농산물에도 무농약인증을 내준다. 그런데 굳이 유기농 인증까지 내주자는 속내가 무엇인가. 이렇게라도 유기농 인증을 억지로 늘려 친환경농업을 진흥하고 있다는 티를 내자는 건가, 설비업자들 배를 불리자는 것인가. 꿋꿋하게 농사짓는 유기농 농민을 허탈하게 만들고 소비자는 무늬만 유기농 딸기를 먹는 일을 굳이 왜 벌이겠다는 것인지 그것이 알고 싶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경향
역주행하는 윤석열 정부, 기업에 필요한 것은 'RE100'이다
'재생에너지'가 산업 경쟁력인 시대, 한화큐셀 희망퇴직 충격
"전기차를 생산할 때 온실가스를 얼마나 배출했나요?"
지난 9월 프랑스 정부가 발표한 전기차 보조금 개정안의 핵심 메시지다. 전기차 생산에서 운송까지 배출한 탄소발자국 점수가 70%, 배터리의 수리 가능성을 고려한 재활용성 점수를 30%로 해서, 80점 만점에 60점 이하면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된다. 전기차의 탄소발자국은 철강, 알루미늄, 배터리, 원자재, 조립에 사용한 에너지, 조립해서 프랑스까지 운송과정에서 배출한 양을 모두 더해서 산출한다.
프랑스의 전기차 보조금 개정안은 제품의 최종 탄소배출량을 기준으로 보조금을 주거나 규제하는 제도가 본격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넷제로 트래커에 따르면 전 세계 151개국와 세계 매출액 기준 상위 1017개 기업이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이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은 각국의 산업과 통상정책의 핵심 아젠다로 자리잡았다. 전기차 보조금 지원 대상에 한국산 전기차는 현대차 코나, 기아 니로 등 연간 5000대가 포함됐다. 연말이면 한국산 전기차가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지 여부도 확정된다.
▲한국-독일-영국-일본 2030 전력믹스 ⓒ이유진
상황이 이러니 기업은 저탄소 철강, 저탄소 배터리 등 탄소배출량을 줄인 자재를 조달하기 위해 나설 수밖에 없다. 운송에서 배출한 온실가스까지 포함하면 당연히 프랑스와 유럽에서 생산한 전기차에 유리한 상황이고, 일종의 탄소보호무역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시도는 더욱 본격화될 전망이다. 유럽연합은 자동차 탄소배출량 규제에 있어서 2025년까지 주행 시 배출량을 포함한 전 수명주기(Life-Cycle) 탄소배출량을 산정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실행할 계획이다
앞으로 점점 더 제품의 탄소발자국을 측정하는 시대가 될 텐데, 거기에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항목이 에너지의 탄소발자국이다. 프랑스 정부가 발표한 에너지의 탄소배출 계수는 독일 0.83, 프랑스 0.58, 미국 1.05, 한국 1.43, 일본 1.46, 중국 1.6 CO2eq/kg이다. 유럽과 미국이 동아시아 국가보다 탄소배출 계수가 낮다. 에너지의 탄소집약도는 모든 제품의 탄소발자국에 영향을 미친다. 게다가 탄소중립은 전세계 1차 에너지의 77%를 차지하는 화석에너지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그 어떤 분야보다 재생에너지 산업이 가장 큰 시장을 형성할 전망이다.
EU 그린 딜, 미국의 IRA, 중국의 쌍탄소 정책 등 탄소중립을 위한 주요국의 정책에서 핵심이 에너지 신산업이다. EU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에너지 안보 대응도 더해져 REPower EU를 통해 2030년 재생에너지 비중을 42.5%로 높이기로 했다. 2021년 기준 유럽에 설치된 태양광과 풍력발전 설비용량인 440GW인데, 이를 2030년까지 1100GW로 늘리는 것이다. 중국은 이미 태양광을 포함한 재생에너지 산업과 설비에 있어서 압도적인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다. 미국 에너지부는 11만5000가구에 가상발전소를 공급하는 선노바에너지에 30억 달러(약 4조원)대출 보증을 승인했다. EU와 미국, 중국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 목표 실현을 성장, 산업, 일자리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고, 이들 국가가 제조업 중심의 산업정책과 보호무역을 대놓고 시연하고 있다. 재생에너지 설비만이 아니라 전력망, 스마트그리드, 가상발전, 섹터커플링 기술까지 재생에너지 기반의 전력시스템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에 따라 2050년까지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산업과 시장으로 성장할 '재생에너지기반 전력시스템 구축'이 가속화되고 경쟁도 치열해질 전망이다. 이 시기에 한국은 무엇을 하고 있나?
윤석열 대통령은 제78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대한민국은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앞당기기 위한 현실적인 대안으로 재생에너지뿐만 아니라, 원전, 수소와 같은 고효율 무탄소에너지를 폭넓게 활용할 것이며", "무탄소에너지 'CF연합(Carbon Free Alliance)'을 결성"을 제안했다. 그런데 CF연합은 '탈원전' 공방으로 갈 것도 없이, RE100에 밀릴 수밖에 없다. RE100은 기업 생산에 필요한 에너지를 100% 재생전기로 사용하겠다는 자발적인 글로벌 캠페인인데, 2014년에 '더 클라이밋 그룹(The Climate Group)' 주도로 시작되었다. 지난 10여 년간 신뢰를 쌓아오면서 기업의 기후위기 대응을 상징하는 목표치가 되면서 현재 우리나라 기업을 포함해 총 424개 기업이 참여하고,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CDP, Carbon Disclosure Project)는 보고서도 발간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아무리 'CF연합'을 제안해도, 이제부터 가입요건, 인증기준을 만들어야 하는 'CF연합'은 'RE100'의 대적 상대가 아니다. 민간이 주도하는 글로벌 캠페인을 정부가 주도하겠다고 나선 관치의 대표적인 글로벌 실패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소장이 지난달 14일 경기 판교 스타트업캠퍼스에서 프레시안과 경기환경에너지진흥원이 주최한 '2023 경기탄소중립포럼'에서 발표하고 있다. ⓒ프레시안
애플의 2030년 공급망 탄소중립 요구나 한국의 자동차 부품 기업이 재생에너지 전력을 조달하지 못해 계약이 취소되는 등의 사례가 발생하면서 기업은 지금 RE100이 급하다. 실제로 대기업을 중심으로 대형 전력구매계약(PPA) 체결 사례가 늘고 있다. PPA는 전기사용자와 발전사업자가 직접 전력구매계약을 체결하는 제도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한전이 제공하는 전기만 활용할 수 있었는데, 지난해 9월 '직접 PPA'제도가 만들어졌다. RE100 대응이 현안으로 부상하면서 현대차 울산공장은 현대건설과 2025년까지 울산공장에 태양광 재생에너지 64㎿ 규모의 PPA 계약을 맺었다. SK그룹은 최근 9개 계열사와 SK E&S가 약 408㎿에 달하는 직접 PPA 거래협정서를 체결했다. 산업용 전기요금이 오를수록 기업이 태양광발전을 직접 건설해서 재생에너지를 조달하거나 PPA를 하는 비중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기업은 급한데 정부는 역주행하고 있다. 정부 정책 영향으로 국내 태양광 시장은 침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2021년 국내 태양광 발전설비 신규 설치량은 4.2기가와트였는데, 2022년 3.0기가와트로 줄었고, 올해는 더 줄어 2.5기가와트에 이를 전망이다. 지난 7월에는 100킬로와트 이하 소형태양광 우대제도도 연장 없이 폐지했다. 2024년 산업통상자원부 예산안에 따르면 전력기금 예산에서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예산은 올해 1조 489억 원에서 내년 6054억 원으로 42%나 줄였다. 한화큐셀은 충북 진천·음성 공장의 생산직 근로자를 대상으로 이날부터 다음달 3일까지 희망퇴직을 받고 있다. 국내 태양광 시장 수요 둔화로 모듈 판매량이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화큐셀은 유럽과 미국 시장에서는 투자와 사업규모를 계속 확장하고 있다. 국내 태양광 산업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더 큰 문제는 한국의 재생에너지 정책이 후퇴하는 사이 세계는 더 속도를 내고 있다는 점이다. 독일은 2045년 탄소중립 목표를 수립했고, 2030년 전력 중 재생에너지 목표를 80%로 설정했다. 영국은 70%이고, 일본은 38%다. 한국의 2030년 전력 중 재생에너지 목표는 21.6+알파인데, 그마저도 현재 정책 수준으로는 불분명하다. 두 나라가 목표를 달성하면 독일은 한국의 4배 정도의 재생가능한 전력을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 2030년에도 석탄 20%, 가스 24%를 유지하는 한국산 제품의 탄소발자국이 국제사회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까?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소장 | 프레시안
130여 개국 ‘지속가능농업과 기후행동’ 담은 선언문 서명···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서
기후 위기에 대한 선진국 책임 인정
분담금 배분 등으로 진통 겪어와
UAE·독일 1억달러 지원 약속
각 국가 선의에 기댄 시스템은 한계
130여 국이 식량과 농업이 기후변화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처하겠다는 내용의 선언문에 서명했다고 BBC가 2일 보도했다. 이들 국가는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열린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 둘째 날인 1일(현지시간) 지속 가능한 농업, 식량 시스템의 회복력, 기후 행동을 담은 선언문에 서명했다.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 의장국인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술탄 아흐메드 알자베르(가운데) 의장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발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130여 국 인구 총합은 57억 명이다. 이들 국가가 식량을 생산·소비할 때 내는 온실가스 배출량은 전체 75% 가량이다. 환경단체 리프 프로젝트(LEAP Project) 통계를 보면, 육식 위주의 식단은 매일 10.24kg의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이번 선언문 서명엔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이 가장 많은 미국, 중국, 유럽연합(EU), 영국도 서명에 참여했다. 환경연구기관 세계자원연구소(WRI) 소속 에드워드 데이비는 “이 선언은 세계의 식량 시스템을 지속 가능하고 회복하는 방향으로 가야 ‘1.5도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강력한 신호를 각국에 보낸다”고 했다. 각국은 2015년 파리기후협정 때 지구 표면 온도 상승 폭을 산업화 전 대비 섭씨 1.5도까지 억제하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선진국들의 무분별한 개발과 화석연료 사용 등이 초래한 기후 변화에 직격탄을 맞은 개발도상국이 금전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개도국들이 기후변화 피해에 대응하는 데 필요한 자금 조달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오랜 요청이 약 30년 만에 결실을 맺었다는 점에서 큰 성과로 꼽힌다. 다만 현재로서는 기금 규모가 크게 부족하고 의무가 아닌 각 국가 선의에 기대야 하는 모금 구조 등은 한계로 지적된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바이에서 개막한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서 ‘기후 손실과 피해 기금’이 공식 출범했다. 1995년 시작된 COP는 지금까지 선진국들이 일으킨 기후 위기 악영향을 주로 개발도상국이 받고 있다는 문제의식 속에 기금 마련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지난해까지 27차례 총회를 거치는 동안 과연 기금은 누가 관리할 것인지, 분담금은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 기금 수혜국 선정 기준은 어떻게 만들 것인지 등을 놓고 갈등을 빚었다. 특히 기후 위기 주범으로 꼽히는 일부 선진국의 반대로 답보 상태를 거듭해왔다.
국제사회는 지난해 11월 이집트에서 열린 COP27에서 처음으로 큰 틀의 합의를 이뤄냈고 올해 총회에서 결과물을 도출했다. 애초 COP28에서도 총회가 끝나는 오는 12일까지 격론이 펼쳐질 것이란 전망이 나왔지만, 개막일에 깜짝 합의 발표가 나왔다.
COP28 의장국인 UAE의 술탄 아흐메드 알자베르 의장은 “우리는 오늘 역사를 만들었다”며 “이는 전 세계 노력에 긍정적인 추진력을 불어넣는 신호”라고 자평했다. 이어 알자베르 의장은 UAE가 기금에 1억달러(약 1307억2000만원)를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독일도 1억달러 지원을 약속했다.
이외에 영국 5000만달러(653억6000만원), 미국 1750만달러(228억7950만원), 일본 1000만달러(130억7400만원)를 내놓겠다고 밝혔다. 유럽연합(EU) 또한 27개 회원국을 대표해 독일 기부금에 더해 1억4500만달러(1896억1650만원) 추가로 기부하겠다고 강조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금까지 4억2000만달러(5491억5000만원) 이상을 확보하면서 조기에 성공을 거뒀다”고 평가하며 이번 총회에서 개별 국가들의 추가 기부 약속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다.
개발도상국과 시민사회는 일단 환영의 뜻을 밝혔다. 해수면 상승으로 국토 상당 부분이 물에 잠긴 카리브해 섬나라 바베이도스의 아비나시 페르다사우드 기후 특사는 “기후 변화로 인한 손실은 먼 훗날의 위험이 아닌 이미 전 세계 인구 절반이 직면한 현실”이라며 “기후 위기로 수십 년간 이뤄 놓은 발전을 후퇴시키지 않으려면 재건과 재활에 돈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결과”라고 평가했다.
국제환경단체 글로벌시티즌의 프리데리케 로더는 “역사적인 결정”이라면서 “손실·피해·기타 기후 관련 자금에 대한 필요성이 계속 증가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BBC는 “가난한 국가들이 싸움에서 승리했다”고 의미를 부였다.
다만 완전한 제도 정착까지는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나온다. 워싱턴포스트(WP)는 “선진국이 기금에 참여할 의무가 없고 규모에 대한 목표도 명확하지 않다”며 “논란의 여지가 많다”고 꼬집었다. 이어 “개발도상국이 기후 위기와 관련해 부담하는 피해 비용보다 기금이 훨씬 적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WP는 환경 단체들의 연구 자료를 인용해 2030년까지 개발도상국이 치러야 할 피해 규모가 최소 2900억달러(378조6240억원)에서 최대 5800억달러(757조2480억원) 수준이 되리라고 전망했다.
이번 합의를 통해 기금을 모을 주머니만 마련됐을뿐 구체적인 자금 운용 계획은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도 한계로 꼽힌다. 이날 발표된 합의 내용엔 해당 기금을 세계은행(WB)에 4년간 보관할 예정이라는 정도만 담겼다.
미국 워싱턴에 있는 세계 자원 연구소의 프리티 반다리 수석 고문은 UAE 등이 약속한 기부금에 대해 “선진국들이 협상 테이블에 나올 준비가 돼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선의의 자금일 뿐”이라며 “더 넓은 시각으로 봐야한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미국 등 일부 선진국들이 기금과 관련해 ‘협력’일 뿐 ‘보상’은 아니라며 기후변화에 대한 역사적 책임을 여전히 부인하는 것도 아쉬운 대목으로 꼽힌다.
한편 이번 총회에선 2015년 프랑스에서 열린 COP21에서 채택된 ‘파리 협정’에 대한 각국의 이행 여부를 처음으로 점검하는 프로그램이 진행될 예정이다. 파리 협정은 기존 교토의정서를 대체하기 위해 마련됐으며, 지구 온도 상승 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최소 섭씨 2도 이하로 제한하자는 내용이 담겨있다./경향
미국도 ‘탈석탄동맹’ 가입…한·일·호주 기후단체들 “우리는요?”
7개 나라 합류 선언으로 57개국 뭉쳐
OECD 회원국 터키 포함 4개국 미가입
국내 한 복합화력발전소 굴뚝에서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 등 7개 나라가 2일(현지시각) ‘탈석탄동맹’(PPCA) 가입을 선언했다. 석탄설비 용량이 전세계에서 세번째로 많은 미국마저 탈석탄동맹에 합류하자, 한국과 일본·오스트레일리아(호주)의 기후·환경단체들은 이날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 현장에서 ‘우리도 탈석탄동맹에 가입해야 한다’고 자국에 촉구했다.탈석탄동맹은 이날 보도자료를 내어 “미국과 체코, 키프로스, 도미니카공화국, 코소보, 아이슬란드, 노르웨이가 탈석탄동맹에 가입했다”고 밝혔다. 탈석탄동맹은 탄소 배출의 주범으로 꼽히는 석탄화력발전소를 신속히 퇴출하자며, 2017년 영국과 캐나다 주도로 결성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및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은 2030년까지, 나머지 국가들은 2050년까지 석탄 사용을 중단한다’는 목표를 내걸고 있다.
존 케리 미국 대통령 기후특사는 이날 “2035년까지 무탄소 전력 100%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석탄 사용을 단계적으로 줄여야 한다”며 “우리는 탈석탄동맹과 함께 전 세계의 탈석탄화를 가속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미국 등 7개 국가가 새로 합류하며 탈석탄동맹 가입국은 모두 57개로 늘어났다. 여기엔 오이시디 및 유럽연합 회원국(중복된 국가 있어 43개국) 35개국이 포함돼 있다. 오이시디 회원국 중에선 한국과 일본, 호주, 터키 등 4개 나라만 탈석탄동맹에 가입하지 않은 상황이다. 석탄설비 용량이 세번째로 큰 미국이 이날 탈석탄동맹에 가입함에 따라, 이들 국가에도 탈석탄동맹에 합류해야 한다는 압박이 커지고 있다.
한국의 기후솔루션을 비롯해 일본과 오스트레일리아 등 기후환경 단체 소속 활동가들이 2일(현지시각)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 미디어센터 앞에서 자국의 ‘탈석탄동맹’ 가입을 촉구하는 약식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두바이/기민도 기자 key@hani.co.kr
한국과 일본, 호주의 기후·환경 단체 활동가들은 이날 미국의 탈석탄동맹 가입 발표가 나온 지 30분 만에, 당사국총회가 열리고 있는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미디어센터 앞에서 약식 기자회견을 열어 자국의 탈석탄동맹 합류를 촉구했다.
이선우 기후솔루션 국제기후팀장은 “이번 (미국의 탈석탄동맹 합류) 발표는 세계 경제가 화석연료에서 벗어나고 있으며, 석탄에 의존하는 경제는 뒤처질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며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그런데도) 2030년이면 한국은 오이시디 국가 중 세번째로 큰 석탄 발전 용량을 보유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현재 2050년 탈석탄 목표에서 시기를 앞당겨야 한다”고 말했다.
빌 헤어 호주 글로벌 클라이밋 애널리틱스 최고경영자도 “호주는 여전히 매우 석탄 집약적인 국가로, 석탄이 에너지 발전 믹스에서 거의 50%가량을 차지한다”며 “배출량을 줄여야 하는데, 1년이 지난 지금 다시 1%포인트 정도 증가했다”고 우려했다.
일본 ‘키코 네트워크’ 소속 이반 가크 프로그램 코디네이터는 “일본 국내에는 170개가 넘는 석탄발전소가 있지만, 이를 단계적으로 폐지할 일정이나 계획, 로드맵이 없다”며 “대신 일본 정부는 탈탄소화 솔루션으로 석탄·암모니아 혼합연소를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는데, 이는 오히려 석탄발전소의 수명을 훨씬 더 오래 연장하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두바이/기민도 기자 key@hani.co.kr
교황 “환경파괴는 범죄…기후변화는 현재의 선택에 달렸다
COP28에 메시지 보내
“근본적 돌파구 마련 필수적”
프란치스코 교황은 2일(현지시각)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열리고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이 대독한 연설문을 통해 세계 지도자들에게 기후위기를 막기 위한 근본적 돌파구를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사진은 2014년 8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시복식 당시의 모습. 공동취재단
“기후변화는 전 세계적인 사회 문제이자 인간 생명의 존엄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문제입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진심으로 호소합니다. 생명을 선택합시다! 미래를 선택합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2일(현지시각)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캅28)에 참석한 세계 지도자들에게 기후위기를 막기 위한 근본적인 돌파구를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교황청 관영매체 ‘바티칸뉴스’는 이날 교황이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열리고 있는 캅28에서 교황청 국무원장인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이 대독한 연설문을 통해 이렇게 밝혔다고 전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역대 교황 가운데 처음으로 당사국총회에 참석할 계획이었으나, 급성 기관지염에 걸려 주치의가 만류한 탓에 일정을 취소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날 파롤린 추기경이 대독한 연설문을 통해 “시간이 부족”하다며 “우리 모두의 미래가 지금 우리가 선택하는 현재에 달려 있다”고 밝혔다. 그는 “환경 파괴는 하느님에 대한 범죄일 뿐만 아니라 개인적이고 구조적인 범죄이며, 모든 인간, 특히 우리 가운데 가장 취약한 사람들을 크게 위협하고 세대 간 갈등을 촉발하는 범죄”라고 강조했다. 또 “기후 변화는 전 세계적인 사회 문제이자 인간 생명의 존엄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문제”라며 “여러분 모두에게 진심으로 호소한다. 생명을 선택하자! 미래를 선택하자!”고 요청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현재의 환경 위기에서 벗어나는 길은 “부분적인 진로 변경이 아닌 근본적인 돌파구를 마련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며 “이번 캅28이 생태적 전환을 결정적으로 가속할 수 있는 명확하고 가시적인 정치적 의지를 보여주는 전환점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그는 이를 위해 “에너지 효율성 향상, 재생 에너지, 화석 연료 퇴출, 낭비적인 생활방식의 변화 등을 확실히 앞당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부유한 소수와 가난한 대중 사이의 격차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하다”며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책임이 적지만 선진국보다 더 큰 고통을 겪고 있는 가난한 국가들에 대한 부채 탕감을 촉구했다. 그는 “우리가 지구의 외침에 귀를 기울이고, 가난한 사람들의 탄원에 귀를 기울이고, 젊은이들의 희망과 아이들의 꿈에 민감해지길 바란다”며 “우리에게는 그들이 미래를 거부당하지 않도록 해야 할 중대한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간 환경보호와 기후변화 방지에 지대한 관심을 보여 왔다. 2015년에는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기후변화 이슈를 다룬 가톨릭 역사상 최초의 생태 회칙인 ‘찬미받으소서’(Laudato Si)를 반포했고, 올해 10월에는 ‘찬미받으소서’의 후속 조처로 새 권고 ‘하느님을 찬양하여라’(Laudate Deum)를 발표하기도 했다.
교황은 이 권고문에서 지구 온난화가 지구촌이 직면한 큰 도전 중 하나라고 지적하며 인류에게 기후 붕괴를 막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강조한 바 있다./두바이/기민도 기자 key@hani.co.kr
운하 덮은 ‘검푸른 지붕’ 뭐길래…전기 만들고 물 증발 막고
2025년 애리조나주 운하에 ‘전지판 지붕’ 설치
태양광 전기 만들고 운하 수면에 ‘그림자’ 조성
작열하는 햇빛 차단해 물 증발 억제 효과 구현
캘리포니아주에서도 비슷한 프로젝트 추진 중
뜨거운 건조지대를 관통하는 운하 위에 태양광 전지판이 지붕처럼 설치된 상상도. 친환경 전기를 만드는 한편, 운하 수면 위에 그림자를 만들어 물의 증발을 억제할 수 있다. 태양광 기업 솔라 아쿠아그리드 제공
직선으로 시원하게 뻗은 운하 위에 검푸른색을 띤 지붕이 덮여 있다. 모양새는 자동차 주행 소음을 줄이기 위해 도로 상부에 씌우는 방음 터널을 연상케 한다. 겉만 봐서는 이 지붕이 어떤 목적을 지닌 구조물인지 정확히 알기 어렵다.
사실 이 그림은 태양광 전지판 여러 개를 조립해 운하 위에 넓게 덮은 모습을 묘사한 상상도다. 조만간 이와 유사한 형태의 태양광 전지판 지붕이 미국 애리조나주 운하에서 실제 시공되기 시작해 2년 뒤에는 완공될 예정이다.
땅 위가 아닌 이런 곳에 태양광 전지판을 설치하려는 이유가 뭘까. 우선 화석연료를 쓰지 않고 전기를 만들 수 있어서다. 하지만 이것이 유일한 이유라면 굳이 운하 위라는 ‘이상한’ 장소에 태양광 전지판을 시공할 이유는 없다.
주목되는 또 다른 이유는 바로 태양광 전지판을 차광막, 즉 햇빛 가리개로 쓰려는 데 있다. 운하 수면에 그늘을 드리우겠다는 의도다. 운하의 물이 농토에 도착하기도 전에 뜨거운 햇빛에 노출돼 수증기로 날아가 버리는 일을 최대한 방지하려는 것이다. 운하 위 태양광 전지판이 친환경 전기 생산과 수자원 보호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단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길이 305m ‘전지판 지붕’
미국 애리조나 주정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달 미 육군 공병대와 인디언 등이 포함된 주민 공동체는 애리조나주 특정 장소에 태양광 전지판을 시범 설치하는 내용의 협정에 합의했다. 협정의 핵심은 태양광 전지판을 설치하는 장소가 지면 위가 아니라 운하의 수면 위라는 점이다. 태양광 전지판을 운하 위에 지붕처럼 덮기로 한 것이다.
애리조나 주정부는 “태양광 전지판이 시범 설치되는 운하 구간은 총 305m”라고 밝혔다. 태양광 전지판 설치에 투입되는 비용은 674만 달러(88억원)이며, 공사는 2025년 끝날 예정이다.
운하 위를 태양광 전지판으로 덮는 이번 프로젝트가 실현되면 약 1㎿(메가와트)의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 한국으로 따지면 약 500가구의 전력 사용량을 감당할 능력이다. 화석연료 사용으로 인한 이산화탄소 배출 없이 적지 않은 수준의 전기를 만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햇빛 피하는 ‘양산’ 역할
그런데 이산화탄소 배출 없이 전기를 만들고 싶다면 굳이 운하 위에 태양광 전지판을 설치할 필요는 없다. 꼭 운하 위가 아니더라도 지구 어디에서든 태양광 전지판을 깔아 놓으면 친환경적 전기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애리조나 주정부가 운하 위에 태양광 전지판을 덮으려는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태양광 전지판을 차광막, 즉 햇빛 가리개로 쓰기 위해서다. 운하 수면에 그늘을 드리우는 도구로 쓰려는 것이다. 사람이 한여름에 쓰는 양산 같은 기능이다.
이번에 태양광 전지판이 시공될 운하 주변은 사막 등 건조지대다. 햇빛이 작열하면 낮 기온이 40도를 넘는 일이 흔하다.
이 때문에 운하를 흐르는 많은 물이 농토에 공급되기도 전에 공중으로 증발해 버린다. 태양광 전지판을 운하 위에 덮으면 운하 수면에는 어둡고 서늘한 그늘이 드리운다. 자연히 운하에서 증발하는 물도 줄어든다.
실용화 때에는 ‘일석이조’
운하 위에 태양광 전지판을 덮는 일이 소규모 시범 사업을 넘어 대규모 실용화 단계로 넘어가면 중대한 변화가 생길 것으로 보인다.
2021년 미국 캘리포니아대 머세드캠퍼스 연구진이 내놓은 분석을 보면 캘리포니아주 운하 전체인 6400㎞ 구간을 태양광 전지판으로 덮으면 연간 2460억ℓ의 물이 증발돼 공기 중으로 사라지는 일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됐다.
또 해당 태양광 전지판에서 생산되는 전기가 최대 13GW(기가와트)에 이를 것으로 예상됐다. 원자력 발전소 13기에 해당하는 능력이다. 운하 위 태양광 전지판이 전기도 만들고, 수자원도 지키는 일석이조 효과를 낼 수 있다는 뜻이다. 운하에 태양광 전지판을 덮으려는 계획은 실제로 애리조나주 외에 캘리포니아주에서도 추진되고 있다.
애리조나 주정부는 “협약에 따라 미 육군이 태양광 전지판 시공에 나설 것”이라며 “이번 계획은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창의적인 생각의 결과물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경향 이정호 기자
글로벌 석유회사들, 5년 내 메탄 배출량 80% 감축 약속…“그린워싱” 지적도
미국 왓포드시티 인근 유정에서 불길이 타오르는 모습. AP연합뉴스.
글로벌 석유회사들이 2030년까지 유정 및 시추 과정에서 발생하는 메탄 배출량을 80% 이상 줄이기로 합의했다. ‘예상치 못한 성과’라는 평도 있지만, ‘그린워싱’(위장 환경주의)에 그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도 향후 15년간 메탄 배출을 80% 감축하는 내용의 규제안을 내놨다.
제28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 의장국인 아랍에미리트(UAE)는 2일(현지시간) 전 세계 50개 석유 및 가스 회사들이 ‘석유와 가스 탈탄소화 헌장’에 서명했다고 밝혔다.
50개 에너지기업 ‘석유와 가스 탈탄소화 헌장’ 서명
서명에는 세계 최대 석유회사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아람코를 비롯해 아랍에미리트(UAE)의 아부다비 국영석유공사(ADNOC), 미국의 엑슨모빌, 중국의 페트로차이나, 브라질의 페트로브라스 등이 참여했다. 이들 기업은 전 세계 화석 에너지 생산량의 40%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 업체는 2050년까지 석유와 가스 생산 과정에서 총 온실가스 배출량을 0으로 줄이는 ‘넷제로(탄소 중립)’를 달성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를 위해 5년 내로 석유나 가스 시추 과정에서 발생하는 메탄을 소각하지 않고 별도 채집해 처리함으로써 메탄 배출량을 80% 줄이기로 했다. 또 헌장에는 이들 기업이 재생에너지와 저탄소연료 및 배출 저감 기술을 포함한 미래 에너지 시스템에 투자하고, 온실가스 배출 측정 모니터링 및 온실가스 배출 감소에 대한 성과와 진행 상황에 대해 독립적 검증을 강화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워싱턴포스트(WP)는 “급격한 지구 온난화를 억제하는 데 도움이 될 야심 찬 계획”이라며 “COP28의 가장 중요한 결과물 중 하나가 될 예상치 못한 약속”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합의는 글로벌 석유업계가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으로 지목되며, 팬데믹 이후 막대한 이윤을 남기고 있는 석유기업들의 책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진 가운데 나온 것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지난 23일 펴낸 보고서에서 전 세계가 더 심각한 기후변화를 피하기 위해 현재 연간 8000억달러(약 1040조원)에 달하는 석유·가스 분야 투자를 절반으로 줄이고, 석유 등 화석연료 연소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량을 60% 감축해야한다고 주장했다.
IEA는 총 메탄가스 배출의 60%가 석유·가스 회사들에서 나오고 있지만 이들 업체가 전 세계 친환경 에너지 기술 투자에서 부담하는 비용은 1% 수준(180억달러(약 23조4000억원)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석유업계가 지난해 5조 달러의 매출을 올리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데 비하면 미미한 수치라는 것이다.
유전이나 가스전 시추 과정에서 발생하는 메탄의 온실 효과는 이산화탄소의 수십 배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메탄은 석유 및 가스 시추 작업에서 발생하는 무취, 무색의 부산물로 일단 배출되고 나면 이산화탄소보다 86배 더 강력한 온실효과를 부르는 ‘슈퍼 오염물질’로 꼽힌다.
환경보호기금은 2030년까지 메탄 배출량을 절반으로 줄이면 지구 온난화 속도를 25% 이상 늦출 수 있으며, 2100년까지 지구 기온 상승을 0.5도 억제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기후 전문가들은 주요 에너지기업들이 공동으로 탈탄소 공약에 서명한 것은 의미가 있지만, 법적 구속력이 없어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세계자원연구소의 멜라니 로빈슨은 “헌장은 법적 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기후 위기 타개를 위한 수준의 온실가스 저감을 강제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기후변화의 주요 원인인 화석연료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않은 해결책은 그린워싱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나왔다. 미국 비영리단체 국제환경법센터의 캐럴 머펫 소장은 “탄소 기반 석유와 가스를 탈탄소화하는 유일한 방법은 석유·가스 생산을 중단하는 것”이라며, 그렇지 않으면 그린워싱이라고 꼬집었다. 태평양의 섬나라 마셜제도의 티나 스테게 기후특사도 “그런 약속으로 화석연료 생산을 확대하는 국가들을 친환경적인 것처럼 믿게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미 환경보호청, “15년 내 메탄가스 배출 80% 감축”
마이클 리건 미국 환경보호국 청장이 2023년 12월 2일(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COP28 유엔 기후정상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한편 미국도 이날 자체적으로 새로운 메탄 규제안을 발표했다.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마이클 리건 청장이 이날 두바이에서 석유와 가스 산업의 메탄 배출량을 향후 15년 동안 80%까지 줄이는 내용의 환경 규제안을 발표했다고 밝혔다. 석유와 천연가스는 미국의 메탄 배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석유와 천연가스 시추 과정에서 유출되는 다량의 메탄을 모니터링하고, 배출을 최대한 줄이도록 하는 것이 이번 규제의 골자로, 수천개의 미국 내 석유 및 가스 시설에 적용될 예정이다. EPA는 이를 통해 석유와 천연가스 산업을 중심으로 2024년부터 2038년까지 약 5800만t의 메탄 배출량을 감축할 것으로 추정했다.
EPA 관계자는 “이번 조치를 통해 메탄가스 배출을 줄이는 것 외에도 2038년까지 휘발성 유기 화합물 600만t과 벤젠, 톨루엔 등 건강에 해로운 독성 오염물질의 배출도 줄일 것”이라고 기대했다./ 경향 노정연 기자
한국 “2050년까지 세계 원전용량 3배 확대” 선언 참여
COP28서 ‘넷제로 뉴클리어 이니셔티브’에 동참
미국·프랑스·영국·스웨덴 등 22개국 참여했지만
“원전 생산 비용 비싸고 오래 걸려 현실성 부족”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리고 있는 ‘제28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 참석 중인 한국·미국 등 22개국 대표들이 2일 현지에서 2050년까지 세계 원전 설비 용량을 2020년 대비 3배 확대한다는 내용을 담은 ‘넷제로 뉴클리어 이니셔티브’ 지지 선언문에 서명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두바이/연합뉴스
정부가 ‘전 세계 원자력 발전 용량을 2050년까지 2020년 대비 3배 수준으로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국가 간 협력에 동참을 선언했다. 하지만 대형 사고의 위험성을 차치하고서라도 원전을 통한 에너지 생산 비용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추세 등을 고려할 때 원전 확대를 통한 탄소 배출 감축 계획은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일(현지시각) ‘제28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가 열리고 있는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한국과 미국, 프랑스, 영국, 스웨덴 등 전 세계 22개국이 ‘넷제로 뉴클리어 이니셔티브’ 지지 선언문을 채택했다고 밝혔다.
산업부는 이와 관련 강경성 산업부 2차관이 이날 넷제로 뉴클리어 이니셔티브 지지 연설을 통해 한국이 이미 기후위기 해결을 위해 에너지 믹스에서 원전 역할 확대를 추진하고 있음을 강조하며, 한국의 안전한 설계·시공·운영 등 원전 산업 전 주기에 걸친 기술과 경험을 전 세계와 공유할 것임을 밝혔다고 전했다.
세계원자력협회(WNA)가 주도한 이번 넷제로 뉴클리어 이니셔티브는 기후위기 해결을 위해 원전을 청정에너지로 인정하고, 2050년까지 전 세계 원전 용량을 2020년 대비 3배로 확대하기 위한 국가 간 협력을 한다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한국 등 22개 참여 국가들은 세계원자력협회와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협의체(IPCC), 국제에너지기구(IEA) 등의 분석 결과를 근거로, 2050년까지 탄소 순 배출량을 0으로 줄이는 ‘넷제로’(탄소중립)를 달성하기 위해선 원자력 발전량이 현재보다 2~3배가량 늘어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존 케리 미국 기후변화 특사는 이날 선언식에서 “원자력이 다른 모든 에너지원에 대한 포괄적 대안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지만, 과학은 핵 없이는 2050년 넷제로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원전이 탈탄소를 위한 해법으로 다시금 주목받게 된 것은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등의 여파로 전세계적 에너지 안보 위기가 고조된 데 따른 것이다. 특히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대형 사고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며 국제 사회에 탈원전 바람이 거세게 불어닥친 데다, 방사성 폐기물 처리 문제와 값비싼 건설 비용 등을 이유로 그간 주요 선진국에서도 신규 건설이 주춤했다.
전문가들은 원자력 발전소 건설 기간과 비용 증가 추세가 지속되고 있어 선언에서 제시한 대로 2050년까지 발전량을 3배 늘리는 것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특히 한국의 경우, 2020년 현재 23.25GW(기가와트)인 원전 설비량을 2050년까지 3배로 늘리기 위해선 지난해 말부터 가동에 들어간 ‘신한울 1호기’와 같은 1.4GW급 원전을 해마다 1개 이상씩 늘려야 한다.
기후환경단체 ‘오일 체인지 인터내셔널’의 데이비드 통 연구원은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이번 선언은 원자력 에너지가 너무 비싸고 (건설이) 너무 느리다는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지적했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두바이/기민도 기자 key@hani.co.kr
만화로 보는 후쿠시마 핵오염수 해양투기의 위험성 - 오마이뉴스 (ohmynews.com)
퇴출 시나리오는 없다”…COP28의 의장이 화석연료 옹호자
“감축·축소가 아닌 퇴출 필요”유엔 총장 발언에 ‘정면 반박’
탄소 포집·저장·활용 등 펼쳐 순배출량 줄이자는 산유국들
세계기후연구프로그램 등 “석유 유지 땐 ‘1.5도’ 불가능”
기후위기 대책을 논의하는 국제회의의 의장을 ‘산유국’에 맡겨도 될까. 회의 개최 전부터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기는 꼴’이라는 우려가 나왔는데 그대로 현실이 됐다. 영국 일간매체 가디언은 지난 3일(현지시간) 유엔 기후변화협약 제28차 당사국 총회(COP28)의 술탄 자비르 의장(사진)이 “1.5도 목표를 지키기 위해 화석연료를 퇴출해야 한다는 과학이나 시나리오는 없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가디언은 자비르 의장이 지난달 21일 한 온라인 행사에서 전임 유엔 기후변화특사인 메리 로빈슨의 질의 과정에서 이같이 답하는 영상도 함께 공개했다.
앞서 지난 1일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바이에서 열린 COP28에 참석한 각국 대표단에 “과학은 명확하다. 지구온난화를 1.5도 이내로 제한하려면 화석연료를 태우는 것을 궁극적으로 멈춰야 한다”며 “감축하거나 축소하는 게 아니라 퇴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보도 시점으로만 보면 자비르 의장이 구테흐스 사무총장의 말을 정면으로 반박한 셈이다. 자비르 의장은 UAE 산업첨단기술부 장관이면서 국영 석유회사인 아드녹의 최고경영자(CEO)이기도 하다.
해당 영상에서 자비르 의장은 “화석연료 감축은 피할 수 없지만 실용적으로 생각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어 로빈슨에게 “세계를 동굴 속에서 살던 때로 돌려놓고 싶지 않으면, 사회경제적으로 지속할 수 있는 개발을 하면서 화석연료를 퇴출할 수 있는 로드맵을 내놓으라”고 말했다. 또 “세계는 에너지원이 계속 필요하다”며 “(UAE는) 석유와 가스의 탄소 집약도가 가장 낮은 곳”이라고 주장했다.
로빈슨은 “당신의 회사가 미래의 화석연료에 더 많은 투자를 하고 있지 않나”라고 묻자 자비르 의장은 “당신이 편향된 미디어를 보고 있고, 그 정보는 틀렸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27일에는 UAE가 기후정상회의에 앞서 외국 정부들에 자국 석유·가스 기업을 홍보하고 거래를 제안할 계획을 드러내는 문서를 영국 BBC가 입수해 보도했다. 유엔 기후변화협약 사무국은 당시 기자회견을 열어 “COP 의장의 기본 원칙은 공정성”이라며 “건전하고 독립적이고 공정한 판단에 따라 이기심, 선호 또는 특혜 없이 행동해야 한다”고 밝혔다.
UAE 등 산유국들은 ‘화석연료 퇴출’보다는 탄소 포집·활용·저장(CCUS) 등을 통해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줄이자고 주장한다.
세계 19개국 과학자들의 네트워크인 ‘미래의 지구’와 국제과학평의회·세계기상기구의 후원으로 설립된 세계기후연구프로그램 등 연구진은 자비르 의장의 발언이 보도된 3일 ‘기후과학의 10가지 새로운 통찰 2023/2024’ 보고서를 내고 ‘화석연료의 신속한, 단계적 폐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연구를 보면 화석연료의 생산 기준, 소비 기준 양쪽으로 봐도 기존 인프라의 수명 동안 예상되는 온실가스 배출량은 1.5도 목표(달성 확률 50%)를 이루기 위해 배출할 수 있는 ‘탄소예산’을 이미 넘어섰다. 기존의 ‘석유 추출시설’을 유지하면 1.5도 목표를 지키기 어렵다는 의미다. 여기에 천연가스, 석탄 시설까지 합치면 ‘2도 목표’ 탄소예산에 가까워진다.
연구진은 보고서에서 “파리협정의 목표 범위를 유지하려면 신속하고 관리된 화석연료의 단계적 폐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고소득 국가가 전환을 주도하고 저소득 국가를 지원해야 한다”며 “사회경제적 영향을 최소화하며 정의로운 전환을 추구해야 한다”고도 밝혔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6차 종합보고서에도 “화석연료 인프라에 추가 설치 없이도 1.5도 목표를 위해 남은 탄소예산을 초과한다”고 명시돼 있고 국제에너지기구(IEA)도 지난 9월 발표한 ‘넷제로 로드맵’에서 “새로운 장기 원유, 가스 생산 프로젝트는 필요치 않다. 새 탄광, 광산 확장, 새 석탄발전소도 필요하지 않다”고 했다.
저명한 기후과학자인 장파스칼 판이페르셀(전 IPCC 부의장)과 마이클 E 만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 교수 등은 이날 자비르 의장에게 보낸 서한에서 “기후시스템의 측면에서 본다면 2050년까지 화석연료 퇴출에 합의하는 것을 인류가 반드시 이뤄내야 하고, 숲 파괴도 멈춰야 하는 게 ‘저지선’”이라며 “2050년까지 매우 적은 비중의 화석연료가 쓰일 수는 있으나, 100% 포집·저장돼야 한다”고 주장했다.경향 강한들 기자
금융의 화석연료 투자, 세계적 흐름 역행
탈석탄 선언 국민연금, 오히려 석탄화력발전에 막대한 투자
녹색연합 회원들이 지난해 3월 18일 서울 강남구 포스코센터 앞에서 포스코 석탄발전 중단을 요구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김창길 기자
“석탄산업은 환경문제뿐 아니라 에너지 안보와도 관련된 사안으로, 국내외 환경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신중하게 추진될 필요가 있다.”
지난 11월 27일 국민연금공단의 ‘석탄산업 투자 제한’ 계획을 묻는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 질의에 공단 관리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가 한 답변이다. 에너지 수입에 의존하는 현실과 시장의 변동성, 비용 등 때문에 화석연료 투자를 중단하기가 어렵다는 의미다.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석탄의 채굴과 발전산업 투자를 제한·중단하겠다는 국민연금의 ‘탈(脫)석탄 선언’을 무색게 하는 내용이다. 국민연금은 2021년 5월 “탄소중립 사회 전환에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하겠다”면서 탈석탄 선언과 함께 향후 석탄 채굴과 발전 산업에 대한 투자를 제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탄소중립 사회 선도하겠다” 선언
하지만 국민연금의 탈석탄 선언 이후에도 바뀐 것은 없었다. 지금까지 구체적인 탈석탄 정책이나 실행 방안은 나오지 않고 있다. 오히려 국내 석탄화력발전에 직·간접적으로 막대한 자본을 투자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남인순 의원은 지난 10월 20일 보건복지위원회 국감에서 “국민연금의 석탄 관련 기업 투자액이 2021년 12조6500억원에서 올해 13조원으로 늘어났다”고 했다. 국민연금은 자산순위 글로벌 10번째 국부펀드이면서 국내 주식시장 6%, 국내 채권시장 10%를 차지할 정도로 국내외 자본시장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소장은 “(탈석탄을 신중하게 추진하겠다는) 국민연금 입장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과 금융의 탄소 배출 관련 규제를 강화하는 세계적 흐름을 신경쓰지 않겠다는 의미여서 충격적이다. 세계적인 연기금들이 기후위기 대응에 적극 나서는 이유는 그렇게 하지 않았을 때 더 큰 비용을 치러야 하기 때문인데, 국민연금은 이를 역행하고 있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고 했다.
화석연료 직·간접적 투자로 발생하는 피해에서도 국민연금은 자유롭지 못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국내 기후단체 기후솔루션이 지난 6월 핀란드 에너지·청정대기연구센터(CREA)와 함께 작성한 ‘국민연금 석탄 투자로 인한 대기오염 및 건강피해 분석’ 보고서를 보면 2021~2022년 국내 석탄화력발전소에서 배출한 대기오염물질에 노출돼 사망한 사람은 1968명인 것으로 추산된다. 사망 외에 천식에 걸린 어린이가 589명, 미숙아 출산 285건, 천식 관련 응급실 진료 건수 560건 등도 있다. 이중 국민연금의 석탄화력발전 투자 비중으로 계산한 사망자 수는 전체의 11.2%인 220명이다. 같은 기준에서 새로 천식에 걸린 어린이는 67명, 미숙아 출산은 32건, 천식 관련 응급실 진료는 약 63건이었다.마찬가지로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공적 금융이 온실가스 배출을 늘리고 좌초자산이 될 위험이 있는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건조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기후솔루션의 11월 28일 ‘LNG 운반선, 가스 확장의 최전선 뒤 숨겨진 산업’ 보고서를 보면, 공적 금융기관이 LNG 운반선에 지원한 공적 금융은 지난 한 해만 약 17조9000억원이다. 2014년부터 올해까지 근 10년간으로 넓혀보면, LNG 운반선 사업에 약 55조9000억원이 투입됐다. 지원 금액 순으로 보면 수출입은행(31조8000원)이 가장 많았고, 한국산업은행(12조8000억원), 무역보험공사(6조9000억원), 한국자산관리공사(3조9000억원) 등이다.
좌초자산 우려가 큰 이유는 LNG 수요 전망이 어둡기 때문이다. 미국의 에너지경제·재무분석연구소(IEEFA)는 올해 2월 보고서에서 “LNG 가격의 지속적 상승, 유럽의 가스 소비 감소, 에너지 전환 등의 이유로 인해 향후 몇 년간의 글로벌 LNG 수요 전망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했다.
탈석탄을 선언한 민간금융의 화석연료 투자도 지속되고 있다. 기후솔루션 등은 강원 삼척에 석탄화력발전소를 짓는 삼척블루파워의 회사채 인수와 판매를 지속하는 6개 증권사(NH·미래에셋·신한·KB·키움·한국투자)에 대해 ESG 경영 흐름과 맞지 않으며, (국내 금융사들의) 탈석탄 선언이 ‘그린워싱’(가짜 친환경)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2020년 8월 26일 서울 종로구 누하동 환경운동연합 마당에서 열린 ‘기후 비상사태! 석탄발전 퇴출을 촉구하는 환경운동연합 1000인 선언’에 참여한 환경운동연합 회원이 공적금융의 석탄발전 투자 금지를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이준헌 기자
탈석탄 선언에도 화석연료 금융 늘어
공적 금융기관의 탈석탄 움직임은 2018년 본격화됐다. 사학연금과 공무원연금이 같은해 10월 탈석탄을 선언하고 재생에너지 투자를 약속했다. 이들은 “석탄발전은 기후 변화와 미세먼지의 주요 요인이기 때문에 향후 국내외 석탄발전소 건설을 위한 프로젝트 파이낸싱과 관련 회사채 등을 통한 금융 투자와 지원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이런 분위기는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1년 10월 ‘신규 해외 석탄발전 공적 금융지원 가이드라인’ 제작으로 이어졌다. 모든 공공기관에 배포된 가이드라인은 새로 시작하는 해외 석탄발전 사업과 설비에 대한 공적 금융지원(공적 개발원조·수출금융·투자 등)을 중단하고, 석탄발전 설비 유지·보수 등에 대해선 국제적 합의를 적용한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민간 금융기관의 탈석탄 선언도 이어져 지난해 6월 말 기준 탈석탄 금융을 선언한 국내 공적·민간 금융기관은 모두 104곳으로 늘었다.
하지만 선언과는 반대로 화석연료 자산 규모는 되레 늘었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과 양이원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6월 발표한 <2022 화석연료금융 백서>를 보면, 국내 금융기관의 석탄, 석유,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금융(대출·채권·주식투자) 자산은 지난해 6월 말 기준 118조5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 10년여간(2012~2022년 6월) 국내 금융기관의 재생에너지 누적 투자금(37조2000억원)의 3배다.
천연가스와 석유의 금융 부문이 분리돼 있지 않은 국민연금(16조8000억원)을 제외했을 때, 국내 금융기관의 화석연료금융 자산은 총 101조7000억원이다. 이중 공적 금융기관이 보유한 화석연료금융 자산은 61조8000억원(산업은행 보유 한국전력 지분 약 20조원 포함)으로 민간 금융기관의 화석연료금융 자산(39조9000억원)보다 많았다. 민간 금융기관의 경우 손해보험이 9조7000억원, 생명보험 15조원, 은행 13조9000억원, 증권사 1조3000억원 등이다.
국제사회는 화석연료의 단계적 폐지와 재생에너지 설비 확대 등 기후행동을 강화하고 있다. 화석연료 프로젝트에 금융지원을 지속하는 국가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박도 커지고 있다. 기후솔루션이 11월 20일 미국 기후환경단체 ‘오일 체인지 인터내셔널’ 발표를 인용한 내용을 보면, 주요 20개국(G20) 국가 중 2019~2021년 연평균 기준 해외 화석연료 개발 프로젝트 공적 금융 투자액이 가장 많은 국가는 일본으로 나타났다. 규모별로 일본 약 12조130억원, 한국 약 8조3820억원, 중국 약 7조7920억원, 캐나다 약 6조860억원, 미국 약 4조2440억원 등의 순이다. 한국과 일본은 2021년 11월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합의한 글래스고 선언에도 동참하지 않았다. 선언은 화석연료에 대한 국제 공적 금융 지원을 중단하고 청정에너지 전환 지원을 최우선 순위로 두겠다는 내용으로, 30개 이상의 국가가 서약했다. 기후솔루션, 지구의 벗 재팬 등 전 세계 61개 환경·시민단체들은 11월 17일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에게 해외 화석연료 프로젝트에 대한 공적 금융 지원 중단을 촉구하는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현대모비스가 울산전동화공장 주차장에 설치한 태양광 발전설비 /현대모비스 제공
정부의 탈석탄 의지가 중요
윤석열 정부 들어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비중 축소와 관련 산업 위축이 금융권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유진 소장은 “국내적으로 탄소중립이나 온실가스 감축 등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정부 정책 시그널이 약해지면서, 금융사들도 기후위기 대응을 단순한 구호 수준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특히 공적과 민간 금융 모두 투자 대비 단기적인 수익에 집착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는데, 최근 국내 경기가 더 어려워지면서 이런 운영 기조가 심화될까봐 우려된다”고 말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 1월 확정한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을 보면, 2030년 전체 발전량 중 원전이 32.4%, LNG 22.9%, 신재생에너지 21.6%, 석탄 19.7%, 수소·암모니아 2.1%, 기타 1.3% 순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2021년 10월 확정한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상향안과 비교해 원전은 8.5%포인트 상향되고, 신재생에너지는 8.6%포인트 쪼그라들었다.
국내 태양광 산업은 위기를 겪고 있다. 미국 태양광 모듈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할 정도로 품질과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한화솔루션 큐셀부문(한화큐셀)은 오는 12월 17일부로 충북 음성공장 가동을 전면 중단키로 하고, 최근 생산직 노동자 1800명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고동현 기후솔루션 금융팀장은 “화석연료 금융 규제가 강화되면서 친환경 재생에너지 금융 투자가 늘고 있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다. 국내 금융기관들도 이를 비껴갈 수 없다. 물론 개별 금융기관이 에너지 안보 문제 등과 같은 대형 이슈에 맞서 화석연료 투자를 중단하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 정부 의지가 중요한 이유다. 정부가 화석연료 투자 축소라는 정책 방향을 제시하면 공적 금융과 민간금융도 그런 분위기를 이어받아 탈석탄과 재생에너지 지원을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향 안광호 기자
잘나가는 SUV, 승용차보다 탄소 12% 더 뿜어냈다
식지 않는 인기 뒤엔 불편한 진실
제네시스 GV70. 현대차 제공
대기업 직장인이자 초등학생 두 자녀의 아빠인 고아무개(40)씨는 최근 중형 스포츠실용차(SUV) 제네시스 지브이(GV)70을 구입했다. 이전 차는 소형 스포츠실용차 티볼리였다. 고씨는 “스포츠실용차가 층고가 낮은 세단보다 운전할 때 시야 확보가 편하다. 영원히 스포츠실용차만 타려고 한다”며 “아이들을 태우고 다닐 일도 많은데, 스포츠실용차가 세단보다 더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주변에 아이들과 캠핑 다니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은 무조건 스포츠실용차만 산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스포츠실용차 인기는 꾸준히 높게 이어지고 있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는 일본 자동차산업 정보 조사업체 ‘마크라인즈’의 자료를 토대로 “도요타, 폴크스바겐, 현대자동차·기아, 스텔란티스, 제너럴모터스(GM) 등 5개 완성차 업체(이하 5개사)의 스포츠실용차 판매량 합계는 2013년 573만대에서 지난해에는 1399만대로 144.3% 증가했다”고 밝혔다.
세계적으로 내연기관차 전체 판매량은 줄어드는 데 비해, 내연기관 스포츠실용차 판매는 느는 상황이다. 5개사의 내연기관차 판매량은 2013년 3826만대에서 지난해에는 3203만대로 16.3% 감소했다. 반면 내연기관 스포츠실용차 판매량은 2017년 572만대에서 지난해 1318만대로 2배 넘게 늘었다. 현대차·기아의 경우, 2017년 이후 내연기관차 판매량은 11% 이상 줄었지만, 내연기관 스포츠실용차 판매는 54.6% 증가했다.
스포츠실용차 인기 뒤에는 불편한 진실도 숨어 있다. 그린피스가 세계 자동차 판매량 기준 상위 5개 완성차 회사의 스포츠실용차 판매 추이, 주행 중 오염물질 배출량과 이들 회사가 판매한 공해 무배출차(Zero Emission Vehicle)의 이산화탄소 저감 효과 등을 종합 분석해 11월 29일 내놓은 ‘거대한 자동차, 더 큰 위기’ 보고서를 보면, 2013~2022년 판매된 내연기관 스포츠실용차는 승용차보다 연평균 12% 더 많은 4.6톤의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그린피스는 “자동차 평균 수명(10년), 주행거리(20만㎞)를 전제로 이들 제조사의 내연기관 스포츠실용차와 일반 승용차의 주행 중 오염물질 배출량을 비교했다”고 설명했다.
도요타, 폴크스바겐, 현대차·기아 등 3개 완성차 회사의 지난해 스포츠실용차 판매로 인한 이산화탄소 배출량만도 2억9800만톤에 이르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국제에너지기구(IEA) 조사 결과 기준으로 프랑스의 한해 이산화탄소 배출량(2억8200만톤)과 맞먹는 양이다. 자동차 업체들은 이에 대해 “소비자들의 선호가 뚜렷하고, 내연기관차가 하이브리드차와 전기차로 변화·이동해가는 과정에 있고, 스포츠실용차 역시 경유차에서 휘발유차로 전환 중”이라고 항변한다.
스포츠실용차는 과거에는 경유차가 대부분이었다. 경유차가 휘발유차보다 연비가 좋았고, 세단보다 무거운데다 짐 싣기에도 좋아 야외 활동에 적합했다. 특히 도로 사정이 좋지 않은 곳을 잘 달리기 위해서는 배기량 대비 순간적으로 낼 수 있는 힘(토크)이 커야 했다. 하지만 2015년 ‘디젤게이트’로 불리는 폴크스바겐의 배기가스 조작사건 등을 거치며, 경유차가 미세먼지와 오염물질을 많이 배출하는 차량이라는 인식이 확산됐고, 그에 따라 에너지 전환 흐름에 맞춰 새로운 연료로 대체되는 흐름이다.
그린피스도 보고서에서 “5개 제조사의 무배출차(ZEV) 판매량 중 스포츠실용차 비율 역시 2018년 17.8%에서 지난해 62.8%로 크게 올랐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스포츠실용차는 차를 만드는 과정에서도 탄소를 더 배출한다. 국제에너지기구의 철강 관련 2021년 보고서를 보면, 철강 1톤을 생산할 때마다 1.4톤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되는데, 스포츠실용차는 승용차보다 철강을 20% 더 많이 사용한다. 결국 넓은 실내 공간을 얻는 대신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하는 셈이다.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SUV가 뿜는 온실가스, 한국 전체 배출량의 1.5배
https://www.hani.co.kr/arti/science/future/1084629.html
장인화 부산상의 회장 “상공인 의견 모아 엑스포 재도전 공식화”
도시 브랜드 알려져 재도전 가치
유치 과정 담은 백서 발간해 활용
장인화 부산상공회의소 회장이 4일 오후 상의 회장실에서 엑스포 관련 기자간담회를 갖고 있다. 이재찬 기자 chan@
부산 상공계가 세계박람회(월드엑스포) 재도전 의사를 밝히며 부산엑스포 유치 열망을 이어가기로 했다. 프랑스 파리에서 최근 귀국한 장인화 부산상공회의소 회장은 4일 기자간담회에서 이 같은 재도전 의사를 밝혔다. 장 회장을 비롯한 부산 상의 일행은 투표 전날 프랑스 파리에 도착해 박형준 부산시장과 함께 막판 득표 독려에 나선 바 있다. 이 과정에서 ‘부산’이라는 도시 브랜드의 가치가 상승했고, 부산 기업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었다는 사실을 확인한 장 회장은 “유치 과정에서 대기업 총수들은 물론 해외 유수 인사들이 부산을 찾아 부산이라는 도시를 세심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를 얻은 것이 큰 수확”이라고 밝혔다.
이에 장 회장은 부산상의를 중심으로 재도전 의사를 밝혔다. 회장단 회의를 거쳐 조만간 재도전을 공식화할 예정이다. 장 회장은 “상공인들의 의견을 종합해 시에도 이 같은 의견을 공식적으로 전달할 계획”이라며 “평창도 세 번 도전 끝에 유치에 성공했듯이 이번 유치전을 통해 부산의 역량이 널리 알려진 만큼 재도전 가치가 있다”고 밝혔다.
재도전을 위해 부산 상공계의 포괄적인 향후 계획도 밝혔다. 부산상의는 우선 엑스포 유치 과정에서 펼친 상공계의 다양한 활동과 성과를 분석한 백서를 발간하기로 했다. 엑스포 유치를 위한 지역 상공계와 시민사회의 활동을 위주로 해 정부 차원의 백서와 차별화하는 한편 재도전을 위한 자료로 적극 활용하겠다는 전략이다. 지난 2년간 200억 원에 가까운 모금 후원은 물론 국내외에서 다양한 행사를 마련해 부산을 알리면서 확인된 부산의 역량과 결집력을 집대성하겠다는 포부다.
장 회장은 “중남미, 아프리카, 유럽 등 많은 나라들이 부산의 IT 등의 사업에 관심을 보였다. 이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하면서 부산을 또다시 각인시키는 기회를 마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윤여진 기자 onlypen@busan.com
올겨울 숨쉬기 더 힘들다… 강력한 미세먼지 예고
초미세먼지 높을 확률 50% 예상
부산시, 계절관리제로 매연 단속
부산 황령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동구 일원 도심이 희뿌연 모습. 부산일보DB
온난화와 기후변화 영향으로 올겨울 초미세먼지(PM 2.5) 농도가 지난해보다 더 강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4일 한국환경공단 대기환경정보실시간공개시스템 ‘에어코리아’ 초미세먼지 주간예보에 따르면 부산의 경우 12월 들어 처음으로 오는 6일 초미세먼지 농도가 ‘높음’일 것으로 예상된다. 반짝 추위가 끝나자마자 미세먼지 농도가 다시 높아지는 형국이다. 초미세먼지는 크기가 작아 폐포에 바로 침투할 수 있고, 염증 반응, 천식, 호흡기, 심혈관계 질환까지 유발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올겨울 초미세먼지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국립환경과학원이 최근 국회에 제출한 ‘초미세먼지 3개월 전망 시범 결과’에 따르면 올겨울 초미세먼지 농도가 지난해보다 높을 확률은 50%에 달한다. 지난해와 초미세먼지 농도가 비슷할 확률은 30%, 지난해보다 낮을 확률은 20%로 분석됐다.
또 기상청은 올겨울 날씨가 지난해와 비교해 대체로 온화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기습 한파와 미세먼지 발생이 반복될 것으로 내다봤다. 올겨울 한반도 미세먼지 사정은 열대 동태평양 수온이 평년에 비해 높아지는 엘니뇨 현상의 영향이 크다.
미세먼지 농도는 계절적 요인이 큰 만큼 부산을 비롯한 전국 7개 시에서 내년 3월까지 미세먼지 계절관리제를 시행한다. 부산시는 경유 사용 노후 차량 등 5등급 차량 중 매연 저감장치를 부착하지 않은 차량을 단속하고, 조기 폐차나 저감장치 부착을 권유한다.
부산시 탄소중립정책과 황해련 과장은 “지난해 첫 단속 결과 총 9229건에 과태료를 부과했다”며 “온난화로 인한 미세먼지는 당장 통제할 수 없지만 노후 차량 미세먼지 배출은 줄일 수 있는 만큼 시민 협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영미 기자 mia3@busan.com
바다에 가장 많이 버려지는 쓰레기는?
환경재단이 해양쓰레기 15t을 분석해 가장 많은 해양 쓰레기 종류를 발표했다. 환경재단 제공
환경재단이 ‘바다쓰담’ 캠페인을 통해 수거한 해양쓰레기 15t을 분석한 성상조사(특정 지역에서 발견되는 쓰레기 종류, 양, 분포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환경재단과 글로벌 코카-콜라 재단이 함께 진행하는 ‘바다쓰담’은 해양쓰레기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고 다양한 해양보호 활동을 지원하는 캠페인으로, 지난 5월부터 10월까지 전국 각지에서 총 1662명의 시민이 참여해 해양쓰레기 15t(총 4만6436개)을 수거한 바 있다.
이번 성상조사 결과는 지난달 30일 열린 ‘2023 바다쓰담’ 활동결과 보고회 ‘바다작당’에서 발표한 내용이다.
■가장 많은 쓰레기는 플라스틱과 유리 음료수병
경기, 충청, 전라, 경상, 강원 등 전국에서 수거한 쓰레기를 육상 기인(육지에서 발생한 폐기물이 바다로 흘러든 쓰레기)과 해상 기인(선박, 어업 등 인간 활동으로 해양에서 발생한 쓰레기)으로 구분한 결과, 육상·해상 모두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쓰레기는 플라스틱(1만6403개)과 스티로폼(7684개)이었다.
분류별 쓰레기 내역은 다음과 같다. 육상 기인 해양쓰레기(총 2만5651개)는 플라스틱 (HDPE, PVC, PET, 파편 등)(8381개), 유리 음료수병·식기류(3188개), 스티로폼 음식용기(2650개), 담배꽁초(2368개) 순으로 가장 많았다. 해양쓰레기 66% 이상이 육상에서 기인하며 대부분 빗물에 휩쓸려 바다로 떠내려오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결과다.
해상 기인 해양쓰레기(총 2만376개)는 플라스틱(HDPE, PVC, PET, 파편 등)(8022개), 스티로폼 부표(5034개), 통발·그물·밧줄 등 어구(2660개), 낚시용품(2204개) 순서로 많았다.
■낚시로 인한 해양쓰레기 증가
가장 눈에 띄는 결과는 낚시용품으로, 최근 낚시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낚시찌나 낚싯대 등 관련 해양쓰레기가 부쩍 증가하고 있다. 낚시용품은 바다 오염은 물론 해양생물을 위협한다는 점에서 각별한 인식 변화가 필요한 해양쓰레기다. 낚싯바늘과 폐그물 등 관련 쓰레기로 피해를 보는 생물이 500종에 이르고 그중 15%는 멸종위기종이다.
바다에 가장 많이 버려지는 쓰레기는?
12개 단체와 함께 성상조사를 진행한 정인철 사무국장(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은 “이번 조사 과정에서 폐어구 문제가 특히 심각하다는 걸 느꼈다. 어구 대부분이 플라스틱 또는 나일론이라 썩지 않고 바닷속에 남는데, 이게 덫이 되면서 해양생물을 위협한다. 또한 선박사고 등 인간의 생명도 위협해 고충이 크다”고 폐어구 해양쓰레기의 심각성을 전했다. 3년째 참여 중인 ‘바다쓰담’ 캠페인에 대해선 “다수의 해양생물을 위협하는 침적쓰레기 제거를 통해 바다환경을 개선하고 생물다양성을 높이는 의미있는 활동”이라고 참여 소감을 밝혔다.
캠페인을 담당한 환경재단 관계자는 “해양환경은 우리의 소중한 자산인 만큼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바다쓰담’ 캠페인은 개인 참여는 물론 지역사회와 단체가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해 함께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활동”이라고 말하며 “단순히 쓰레기를 줍는 것을 넘어 지속적인 모니터링 활동에 힘쓰고, 수거된 쓰레기의 재순환 방안 마련에 더욱 목소리를 내겠다”고 밝혔다.
환경재단은 2002년 설립한 최초의 환경 전문 공익재단으로, 지속가능한 지구를 위해 정부∙기업∙시민사회와 함께하는 실천공동체다. ‘그린리더가 세상을 바꿉니다’라는 슬로건 아래 그린리더를 육성하고 연대해 글로벌 환경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자세한 사항은 환경재단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 참가자들이 ‘석유는 흙 속에, 석탄은 탄광 속에, 가스는 땅 속에 그대로 두라’는 글이 적힌 펼침막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두바이/AFP 연합뉴스
엑스포 유치 실패와 부산의 미래
부산이 2030세계박람회 유치에 실패했다. 유치 실패 당일,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통해 신속히 사과했다. 부산시민이 받은 충격을 고려한 듯하다. 유치 결과 발표 당일, 필자는 부산의 한 생방송에 출연했다. 출연 전 판세를 알아보니 백중세라고 했다. 그래서 엑스포 유치는 부산을 획기적으로 바꿀 기회로, 2차 결선 투표도 가능하다며 희망적인 얘기를 했다. 지면을 빌려 사과드린다.
도시계획 전문가로서 ‘과도한 이벤트주의를 경계하라’고 내내 배웠다. 계획가의 무능은 종종 메가 이벤트에 의지한다. 제대로 된 기반 시설이 부족한 도시는 이를 이벤트를 통해 해결하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지방은 수도권에 밀려 국가의 투자 순위에서 항상 뒤로 밀렸다. 최근까지도 광역철도 예산의 90% 이상이 수도권에 사용되었다. 많은 인재와 기업은 혁신이 어려운 조건을 지닌 지방을 떠났다.
급기야 이젠 지역 대학들도 우수 인재 확보에 비상이 걸렸고, 일부 대학은 신입생 모집도 어려운 지경이다. 얼마 전 한국관광공사 부사장의 ‘부산 촌 동네’ 발언과 수도권의 ‘메가 서울’ 논의까지 이러한 모든 상황이 우리를 절실하게 만들었다. 우리 부산도 메가 이벤트에 의지해 부족한 기반 시설을 일거에 건설하길 바랐다.
엑스포 유치 실패 이후 중앙정부는 부산의 가덕신공항, 북항 재개발 등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를 약속했다. 물론 이의 이행 여부를 계속 챙겨야 하지만, 우리도 부산의 미래를 메가 이벤트에만 의지할 순 없다. 도시의 비전과 전략을 만들어 차근차근 내실을 다져야 한다.
먼저 어떠한 도시를 전략적으로 벤치마킹할 것인지 살펴야 한다. 얼마 전 싱가포르국립대학(NUS)을 방문했다. 싱가포르는 현재 아시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국가로 번영을 구가하고 있다. 면적은 740㎢로 부산과 거의 비슷하다. 인구는 약 560만 명으로 1965년 말레이시아로부터 독립할 당시엔 160만 명이었으나, 전 세계로부터 인재가 몰리면서 인구가 급성장하고 있다. 30여 년 전 대한민국과 함께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불렸지만, 이제는 세계 최고 수준의 1인당 GDP 8만 7000달러를 자랑한다. 대략 부산의 세 배 수준이다. 싱가포르 번영의 원인은 항상 도시학자들에게 연구 대상이다.
싱가포르는 이미 30여 년 전부터 도시계획 측면에서 임대주택 정책과 도심 교통관리 등으로 유명했다. 독립 당시 싱가포르 정부가 도시의 토지 대부분을 매입해 주택의 50% 이상을 사회주택으로 제공하였다. 또한 자동차 소유를 엄격히 규제해 도심으로 들어오려면 특별 허가를 받은 번호판을 사야만 했다. 물론 지금도 임대비용 증가라는 문제가 있지만, 인근 홍콩보다는 덜 심각하다. 하지만 이러한 강력한 정책만으로 현재의 번영을 설명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필자가 주목하는 건 최근 도시 경쟁력을 위해 교육 혁신을 고려한 도시계획이다.
특별히 주목되는 건 세계의 인재가 싱가포르로 급격히 몰려오고 있다는 점이다. 얼마 전 발표된 한 세계 대학 순위에 따르면 싱가포르국립대는 8위, 난양공대도 20위권에 들었다. 싱가포르에는 MIT, 예일대, 스위스공과대 등 최상위 세계 명문대학들이 싱가포르대학과 연계해 연구소를 개설하고 있다. 싱가포르국립대 주변에는 이미 해외 연구자들이 2만 명 이상 포진하고 있다. 이런 연구시설 단지를 유치·관리하기 위해 싱가포르 정부는 ‘White 존(용적률을 유지한 채 용도는 자유롭게 하는 지역)’ 등 용도 지역을 과감히 혁신하고 있다.
대학은 이제 전통적인 인재 양성에만 머물지 않고 지역의 성장 동력이 될 만한 첨단산업의 싱크탱크 역할을 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가 있다. 지자체·산업·대학(지산학)을 연계한 지역 혁신전략은 이미 미국에서 널리 알려진 바 있다. 스탠포드대 중심의 실리콘밸리 지역, MIT중심의 보스톤 지역, 텍사스오스틴대 중심의 실리콘 힐 지역 등이 지산학의 모범 사례다. 싱가포르 역시 지산학의 모범 사례로 손색이 없다. 지역대학, 혁신산업이 선순환하는 모델을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
도시철도 인근으로 곳곳에 대학이 위치한 부산은 인재육성 기반의 도시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이때 부산은 지역을 떠난 인재의 관점에서 선진 도시를 비교해 내실 있는 발전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 정부는 부산을 국가균형발전의 중심축으로 계속 유지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부산이 혁신을 멈춘다면 경쟁력은 더 떨어져 수도권과의 격차는 심화하고, 국가경쟁력도 후퇴할 것이다. 부산의 미래를 위해 지방 교육을 중심으로 한 연구중심 지식산업 육성이 필요하다. 특히 대학을 중심으로 혁신을 지역에 접목하고 주변으로 확산해 나가야 한다./부산대 도시공학과 교수/ 부산일보
최상목 “엑스포, 서울-부산 축 균형발전 위해 추진”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는 5일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와 관련해 “(대통령은) 엑스포가 목적은 아니고 서울 부산 축으로 하는 균형발전이 필요하다는 확신이 있었고 그런 수단으로 엑스포였는데 그런 과정에서 결과는 안타깝게 됐다”고 말했다.
4일 신임 경제부총리로 지명된 최 후보자는 이날 서울 서민금융진흥원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그는 현 정부가 연구개발(R&D) 예산을 삭감한데 대해 “우리나라 과학기술이 지금까지는 추격형으로 성장했다. 그런 부분은 일차적으로 성공했다고 자평한다”며 “이제 성장형을 선도형으로 바꿔야 한다. 그 중에서 가장 크게 바뀌어야 하는 게 과학기술 정책”이라고 말했다.
최 후보자는 “R&D는 정부가 하는 것이 있고 민간이 하는 것이 있다. 정부가 30조, 민간이 70조원”이라며 “정부 R&D는 재정으로 지원해주는 것이 있고 세제 지원해주는 게 7조~8조원 되는 것 같다. 전체 합치면 37조~38조원이 재정지원인데 그 규모가 GDP 대비로 보면 세계 2위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런데 추격형 뒷받침하는 R&D 아니냐는 반성을 지금쯤 해봐야 하지 않나”며 “정부가 직접 R&D 지원하는 것은 민간이 할 수 없는 것, 기초기술 원천기술 첨단기술쪽 등”이라고 말했다. 최 후보자는 “소규모로 나눠주는 R&D 많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소통부족이 있었다. 그러다보니 연구원들이 ‘내 고용 불안해지는 것 아니냐’는 말이 있었다”며 “예산편성 과정에서 보완하기로 했고, 좋은 방향으로 구조개혁이 이뤄지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최 후보자는 “국내에서 보면 대통령이 한가하게 순방 다니느냐 얘기할 수 있겠지만 실제 해외에 나가보면 전쟁터다. 나도 깜짝 놀랐다. 내가 차관할 때와는 다르다”고 말했다.
이날 최 후보자는 경제의 키워드로 ‘구조개혁을 통한 역동적인 경제’를 들었다. 그는 “경제의 역동성이 있어야 순환이 이뤄지고 지속 가능한 성장이 가능해진다며 “역동 경제가 되려면 과학기술·첨단기술 발전과 구조개혁이 필요하다. 아울러 개인의 사회적 이동, 계층 간 이동에서 역동성이 갖춰져야만 양질의 일자리가 창출된다”고 말했다.
대통령실 경제수석 시절 ‘대중국 시장 다변화해야 한다’는 취지의 언급과 관련해 최 후보자는 “당시 탈중국 선언을 했다고 하기에 깜짝 놀랐다. 글로벌 교역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는 원론적 언급”이라고 말했다.
최 후보자는 ‘금융당국의 공매도 금지가 자본시장 선진화 방향과 모순되고 예측 가능성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에는 “죄송하다. (오해가 없도록) 잘 설명하겠다.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고 저희도 고민한 것”이라며 “제가 자본시장·외환업무 오래 해서 잘 안다. 앞으로는 그런 오해 없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김덕준 기자 casiopea@busan.com
큰 나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극중 등장한 창원의 팽나무.
덕수궁 옆 정동길에는 큰 회화나무가 있다. 560살 노거수(老巨樹)에 시간이 켜켜이 쌓여 높이가 17m, 둘레가 5m나 된다. 조선초 세조가 태어나기 이전에 뿌리를 내린 나무는 줄곧 한자리에서 임진왜란과 아관파천, 한일합병과 한국전쟁을 견뎌냈다. 곁을 지날 때면, 먼저 나무와 함께했고 먼저 세상을 뜬 많은 사람들을 생각하게 된다. 봄이면 어김없이 부활하는 큰 나무 앞에 찰나적이고도 왜소한 인간은 겸허해진다.
한민족은 나무 숭배의 전통이 깊었다. ‘당나무’로 불리는 마을 어귀 큰 나무를 숭배하는 수목신앙은 가장 오래되고 광범위한 토속신앙이다. 단군설화는 천제의 아들 환웅이 태백산 신단수로 내려오면서 시작된다. 큰 나무 앞에서 느끼는 외경심은 인류의 보편적 정서다. 붓다는 보리수 아래에서 득도해 불교를 창시했다. 유럽 성당 기둥의 나무 문양은 나무를 숭배한 토속신앙을 흡수한 것이라고 한다.
노거수는 생태적으로도 중요하다. 일부 생태계에서는 날짐승·들짐승의 30%가 큰 나무를 집으로 삼는다. 사람들도 나무를 중심으로 모인다. 정자나무는 마을의 공동 사랑방으로 공동체의 구심점과 해를 가리는 그늘 역할을 해왔다. 마을잔치 때면 큰 나무 아래가 떠들썩했다.
오래된 나무는 급감 중이다. 제주도의 수령 100년 이상 ‘어미나무’는 한 세기 만에 90% 가까이 난개발로 사라졌다. 인간이 외경심을 잃은 나무는 도로 건설과 재개발의 장애물일 뿐이었다. 일부만 천연기념물과 보호수로 지정돼 있지만 예산 부족으로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는 나무가 허다하다고 한다.
지자체들이 노거수에 주목하는 움직임은 그래서 반갑다. 경남 사천·경기도를 비롯한 여러 곳이 실태조사 보고서를 냈거나 준비 중이고, 전남 영암군은 지난가을 800살 느티나무 아래에서 음악회를 열어 사람들을 다시 모았다. 생태관광 자원으로서 오래된 팽나무·느티나무·소나무 등이 재발견되고 있는 것이다. 교감신경을 진정시켜 스트레스를 감소시키는 나무의 효과는 이미 알려진 바다. 초 단위로 빠르게 움직이는 세상이다. 그 속에서 지친 현대인들의 무의식이 아득한 시간을 품은 큰 나무를 통해 마음의 균형을 되찾으려 하는 건 아닐까./최민영 논설위원/ 경향
고목의 시간·거목의 풍채…제목이 되다
오래된 나무에서 새 콘텐츠 발굴하는 지자체들
전남 영암군 서호면 엄길마을의 느티나무 아래에서 지난 10월18일 들녁음악회가 열렸다. 영암군 제공
아름드리나무 아래 음악회
쌍둥이 은행나무의 700년 등
이야기 만들어 문화상품으로
생태관광 자원으로 활용도
느티나무 한 그루가 황금빛으로 일렁이는 너른 들판을 품었다. 국립공원 월출산 자락인 전남 영암군 서호면 엄길마을의 느티나무는 수령 800년이 넘는다. 높이 23m, 가슴 높이 둘레는 8.4m에 이른다. 두 갈래로 자란 나무의 가지와 잎이 달린 ‘수관’은 지름이 20m나 된다.
마을 당산나무로 주민들을 지켜왔던 이 느티나무 아래에서는 지난 10월18일 ‘들녘 음악회’가 열렸다. 큰 나무가 드리운 그늘에서 200여명 관객이 황금 들판과 월출산을 배경으로 특별한 음악회를 즐겼다.
영암군의 들녘 음악회는 지역의 숨은 자원이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는 평가를 받았다. 들녘 음악회를 기획한 천동선 영암문화관광재단 프로듀서는 5일 “나무와 들녘, 월출산이 더해진 무대는 어디에도 없다”면서 “숨겨진 자원을 활용해 훌륭한 행사를 치러낼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전남 신안군의 굴참나무. 신안군 제공
전남 나주시 금성관의 700년 된 쌍둥이 은행나무. 나주시 제공
전남 지자체들이 지역의 ‘오래된 나무’들에 주목하고 있다. 수백년 동안 지역을 지키며 주민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돼왔던 나무의 이야기를 새로운 문화 콘텐츠로 개발하고 있다.
나주시는 지역 보호수와 노거수, 천연기념수목 등 나무에 얽힌 이야기를 발굴하고 있다. 시는 ‘나주시 보호수 등 조사연구 용역’을 통해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조선시대 주요 도시였던 나주는 전국적으로 보호수가 가장 많은 곳이다. 4105그루의 전남 지역 보호수 가운데 891그루가 나주에 있다.
금성관 뒤편 700년 쌍둥이 은행나무, 나주 목사내아 벼락 맞은 팽나무, 나주읍성 내 이로당 400년 된 명품 해송, 왕곡면 송죽리 동백나무, 공산면 상방리 호랑가시, 다도면 토종 배나무, 불회사 연리지 등이 유명하다.
시는 대대로 기록이나 구전으로 전해오는 나무에 얽힌 전설, 민담, 설화 등을 발굴해 특색 있는 관광·문화 콘텐츠로 개발할 방침이다. 읍면동에 있는 보호수를 데이터화하고 대표 수목을 선정해 테마지도와 이야기책, 전자책 등으로 제작할 계획이다.
윤병태 나주시장은 “나주의 보호수는 주민들의 숨결과 애환, 유구한 역사가 담겨 있어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중요한 문화 콘텐츠”라며 “나무들이 갖고 있는 역사적 가치를 발굴하고 특색 있는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섬으로 이뤄진 신안군도 섬마다 특징을 지닌 오래된 나무에 대한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군은 조사를 바탕으로 최근 ‘신안군 보호수 분포 실태조사 보고서’를 발간했다. 신안에는 117그루 보호수가 있다.
그동안 보호수와 관련한 체계적인 생태자료가 없었다. 방치된 나무들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군은 정밀조사를 통해 효과적인 관리 방안 마련에 나섰다. 이번 조사로 신안 지역 각 섬에 분포해 있는 보호수의 개수와 위치 등이 모두 파악됐다.
보호수로 지정된 수종은 팽나무·느티나무·소나무·곰솔 등 11종류에 달했다. 이 중 팽나무가 전체 보호수의 82%인 96그루로 가장 많았으며, 소나무(6그루), 느티나무(5그루) 순이었다. 팽나무는 열악한 환경에서도 잘 자란다.
신안군은 보호수 실태조사 결과를 각종 홍보자료로 제작한다는 계획이다. 박우량 신안군수는 “신안 보호수 가치를 자료화해 특색 있는 생태관광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강현석 기자
"엑스포 유치 실패 했으니 가덕도 신공항 건설 백지화해야"
경남기후위기비상행동 성명... "혈세낭비에 경제성 없다" 등 지적
"엑스포 유치 실패, 돈 잔치는 끝났다. 가덕신공항 건설 백지화하라."
경남기후위기비상행동이 6일 낸 성명서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그동안 가덕신공항 건설의 명분으로 '2030 부산엑스포'를 내세워졌으나 실패로 끝났기에 새 공항이 필요 없다는 지적이다. 윤석열 정부는 2030 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전에서 박빙을 예상했으나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119표 대 부산 29표'란 처참한 성적표로 참패했다. 정부는 엑스포 유치를 위해 혈세 5744억 원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언급한 경남기후위기비상행동은 "엑스포 유치를 위해 가덕도신공항 건설이 빠르게 추진되어야 한다던 주장은 이제 엑스포 불발과 상관없이 차질없이 진행할 것이라는 몽니로 바뀌었다"고 주장했다.
앞서 국토교통부와 부산시는 엑스포가 열리는 2030년 전인 2029년 가덕도신공항 개항이 가능하다며, 패스트트랙을 적용한 턴키 방식으로 진행하면 사전타당성 검토에서 도출된 2035년 6월 시점보다 6년 앞당길 수 있다고 했다.
단체는 "정부는 국민 세금 5744억 원을 쓰면서 혈세 낭비에 맛을 들였는지 경제성이 없다는 전문가 소견에도 가덕도신공항 건설 사업비 15조 4000억 원, 부산형 광역급행철도 건설에 6조 원을 사용하며 무소불위로 진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여기에 가덕신공항건설공단까지 포함하면 가덕도신공항 건설에 따른 연계 총 투자비용은 20조 원를 훨씬 웃돈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해시도 가덕도 신공항 건설과 연계해 동북아물류플랫폼 사업으로 김해의 대표 자연환경인 논 420만 평을 없앨 계획을 하고 있다. 모두가 가덕도신공항 건설 하나만 바라보며 온갖 토목건설계획을 내던지고 있다"고 지탄했다.
가덕도 생태와 관련해, 이들은 "기후위기시대는 정부와 국회의원들에게는 하나의 의미 없는 단어일 뿐"이라며 "그들에게는 보전가치가 높은 생태자연도 1등급, 해양생태도 1등급의 가덕도 자연환경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유구한 세월 동안 해식작용으로 형성된 아름다운 국수봉 주변이 눈에 띄지 않으며 숭어, 고등어, 대구, 멸치 등의 풍부한 어족자원도 어디론가 이동하면 그만이다. 수달, 상괭이 등 멸종위기종의 이름도 무색하다"라고 성토했다.
경남기후위기비상행동은 "자연환경, 생태, 문화의 중요성은 건설카르텔이 발톱을 드러내기 전까지만 중요하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우리가 직면한 기후위기는 극악무도한 개발계획이 쌓이고 쌓여서 돌아온 부메랑이다"라고 일갈했다.이들은 "국토부와 부산시, 국회의원들은 혈세낭비에 경제성 없는 위험천만한 가덕도신공항 건설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가덕도신공항은 여객터미널 등 제반시설을 육지에 건설하고 활주로는 바다에 건설하는 매립식 방식으로 추진되고 있으며, 지난 9월 사업설명회(3차)를 열었던 국토교통부는 이번 달 안으로 사업의 기본계획을 확정·고시하고, 2024년 말에 착공해 2029년 12월에 개항할 계획이다.윤성효(cjnews)오마이뉴스
외신 "엑스포 유치 실패, 윤 정부의 '뒤죽박죽' 외교 보여줬다"
<디플로매트> "미국과 일본에만 집중하며 고립 자초한 윤석열 정부 외교 결과"
2030년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는 윤석열 정부의 외교와 전략이 모두 뒤죽박죽이었다는 것을 보여준 결과였다는 평가가 나왔다. 4일(이하 현지시각) 외교 전문매체 <디플로매트>는 부산 엑스포 유치에 실패에 한국 국민이 화가 난 이유는 "부산이 크게 패한 것 보다 이번 결과가 윤석열 정부의 자만심과 잘못된 확신의 결과로 벌어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매체는 "사실 (부산의) 패배는 그리 놀라운 건 아니었다. 한국 경제 규모가 사우디아라비아보다는 크지만 실제 원하는 것을 달성하기 위한 실질적 힘과 의지를 가진 것은 후자(사우디)였다"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리야드가 (다음 엑스포 개최지로) 선택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뉴스나 언론 매체의 기사 등도 리야드가 유리하다고 봤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매체는 "그러나 한국 정부와 언론만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한국인들이 이걸 믿었다"며 "집단적 편견, 확증편향에 빠져 있었다"고 진단했다. 매체는 "(사우디 리야드 119표, 부산 29표) 이렇게 큰 표차를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라며 "윤석열 정부가 접근 방식을 정리할 때다. 세계 엑스포 유치 투표는 한국의 외교, 전략, 정보가 모두 뒤죽박죽이었다는 점을 드러냈다"고 혹평했다.
매체는 "윤석열 대통령에 따르면 그는 부산 엑스포 유치를 위해 96개국(의 지도자)을 만났고 정부는 4억 달러가 넘는 예산을 부산 유치 홍보를 위해 집행했다. 외교부 전체는 부산 홍보에 집중했고, 장관과 관리들은 세계를 돌아다녔다. 영부인은 부산 엑스포 상품을 직접 디자인하고 제작하여 정상회담에 착용했다"면서도 "그러나 이러한 엑스포 외교는 완전히 빗나갔다"고 분석했다.
매체는 윤 대통령이 '글로벌 중추 외교'를 목표로 하고 있으나 "그의 외교적 관심은 약간의 유명인사와 만남 및 무기 거래를 제외하고 대부분 미국과 일본에 집중되어 있다"며 정부의 외교 방향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전문가들은 오래전부터 그의 외교가 포용적이지 않고 오히려 고립을 자초하고 있다고 설명해 왔다"고 평가했다.
중국과 관계 문제도 실패의 주요 요인으로 꼽혔다. 매체는 "윤 대통령과 중국 간 충돌은 중국이 점점 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지역인 아프리카 지역을 소외시켰다"며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중국은 아프리카와 라틴 아메리카의 일부 국가들에게 부산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도록 강요했다"고 전했다.
매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엑스포 유치 실패를 통해 윤 대통령이 외교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며 "윤 대통령 외교는 구체적인 청사진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한국과 중국이 적대적이지 않고 개발도상국들이 그들이 가진 것을 잃을 두려움 없이 (양쪽을)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비전을 제시했어야 했다"고 보도했다.
다른 나라를 끌어들이기 위한 한국의 전략에 문제가 있었다는 분석도 나왔다. 매체는 "한국 관리들은 그들의 전략을 '물고기를 나눠주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말했다"며 "그들의 제안은 구체적으로 실재하는 것이 아니었고 기후변화, 어업, 식량 안보, 그리고 재생 에너지와 같은 분야에서의 기술 협력 약속과 같은 이념적인 것이었다"고 전했다.
반면 사우디아라비아는 지지를 받을 만한 구체적인 제안들이 있었다. 매체는 "사우디는 수출품에 수십억 달러를 지원하고 아프리카 국가들을 위한 개발 계획을 제안했다. 또 250억 달러 상당의 투자와 함께 아프리카 대륙의 부채 탕감과 분쟁 해결책을 제시했다"며 "경제적 혼란과 테러가 만연한 시기에 사우디의 계획은 거절하기 힘들다. 한국 정부의 연설은 좋았지만 사우디의 제안에 비하면 저렴하다"고 평가했다.
정부가 선거 당시 마지막 발표에서 상영한 영상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11년 전인 2012년 발표된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배경음악으로 깔리면서 케이팝 가수를 비롯한 연예인들이 주로 등장하는 영상이었는데, 부산이나 엑스포와 연결고리를 찾기가 어렵다는 지적이었다.
매체는 "강남은 서울의 부촌으로 분위기와 건축 모두에서 부산과 전혀 관련이 없다"며 "정부는 일본과 가깝고 활기찬 휴가지인 부산의 독특한 매력과 분위기를 강조하는데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매체는 "윤 대통령과 여당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은 다행이다. 아무리 총선용이라고 해도 잠재적으로 그들의 통치 방식이 어느 정도 바뀌었다는 신호"라면서도 "그럼에도 정부 내 많은 사람들은 이전 정부가 일찍부터 부산 유치에 전념하지 않았다고 비판하는데, 이렇게 외부적 요인에 대해 말하는 것은 옳지도 않고 너무 늦었다"고 일갈했다.
매체는 "부산의 실패를 표를 매수한 사우디의 '오일 머니'와 사우디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의 철권통치 때문이라고 보기도 한다"며 "이는 외교적 결례다. 이제 정부는 낡은 습관을 버리고 윤 대통령의 남은 임기에 대비해야 할 때"라고 꼬집었다.
프레시안 이재호 기자
‘지구 냉방 서약’에 63개국 참여…에어컨 온실가스 감축하려
한 건물 외부에 설치돼 있는 에어컨실외기. 유엔환경계획(UNEP)은 2050년까지 전 세계 냉방 부문 온실가스 배출을 60% 이상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는 ‘지구 냉방 서약’을 추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에어컨, 냉장고 같은 냉방장치 가동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을 2050년까지 60% 이상 줄이자는 ‘지구 냉방 서약’에 63개 나라가 참여했다고 유엔환경계획(UNEP·유넵)이 5일(현지시각) 밝혔다. 유넵은 각국 정부 뿐 아니라 도시, 기업, 시민사회 단체 등 다양한 주체들이 참여해 냉방장치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자는 ‘냉방 연합’을 주도하고 있다.
유넵이 이날 ‘제28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가 열리는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발표한 ‘지구 냉각 워치’ 보고서에 따르면 지구 온난화가 가속화하고 있는 가운데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는 약 12억명이 냉방 서비스에 제대로 접근하지 못해 고통을 겪고 있다. 또 저온 유통망 부족으로 백신에 접근하지 못해 죽는 사람도 15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럼에도 냉방장치에서 쓰는 전력은 지구 전체 전력 소비의 20%를 차지하고 있고, 2050년에는 지금의 2배 이상 증가할 것이란 전망이다. 게다가 냉방장치에 이산화탄소보다 지구온난화지수(GWP)가 최대 1만배 이상 높은 수소불화탄소(HFC) 등이 냉매로 사용되며 누출되고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유넵은 보고서에서 이대로 가면 냉각용 전력소비 증가와 냉매가스 누출 등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량이 2050년이면 44억~61억t(이산화탄소로 환산한 수치)에 도달해, 세계 배출량의 10%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유넵과 함께 이번 당사국총회 주최국인 아랍에미리트가 적극 추진하고 있는 지구 냉방 서약은 새로운 냉방장치의 효율을 높이면서 지속가능한 냉방을 확대해 2050년까지 냉방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을 지금의 68% 수준까지 줄이는 것을 목표로 내걸고 있다. 냉방 서약이 실제 이행되면 2050년까지 약 38억t의 온실가스 배출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유넵은 내다봤다.
잉거 안데르센 유넵 사무총장은 이날 보고서 발표에 참석해 “우리는 기후변화에 대한 적응을 포함해 지구상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발전과 품위 있는 삶을 살 기회를 제공하면서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며 “지속가능한 냉방이 이런 것을 충족하게 한다”고 말했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재생e와 원전의 3배 확대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8)가 두바이에서 열리고 있다. 90여개 의제가 다뤄지는데, 핵심은 ‘파리협정 이행점검(GST)’, ‘재생에너지(재생e) 확대’, ‘피해와 손실기금’에 관한 건이다. 먼저 온실가스 배출, 세계 9위인 우리나라의 이행점검 결과는 기대할 게 별로 없다. 기후변화 대응, 에너지 전환 등에 관한 국제적 평가에서 우리나라는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기후행동네트워크’의 에너지 전환 평가에서 우리나라는 재생e 목표를 줄인 유일한 국가다.
그래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참여국 118개국이 서약한 2030년까지 재생e의 발전량을 3배, 효율을 2배 올리기로 한 협정문이 총회에서 채택될지 여부다. 우리 정부도 서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우리나라는 미국, 영국 등 22개국이 2050년까지 세계 원전의 발전량을 3배 늘리기로 한 뉴클리어 이니셔티브에도 동참하기로 했다고 한다. 현 정부는 재생e로만 탄소중립이 어렵다고 보고 기술중립 측면에서 무탄소 원전 활용을 우선 정책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이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쫓는 정부 입장이 이율배반적이다. 올 1월 확정된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정부는 2030년 재생e의 비중을 30.2%에서 21.4%로 낮추고 원전 비중을 23.4%에서 32.4%로 올렸다. 이에 따라 재생e 관련 예산(2024년)은 40% 이상 줄고(원전 예산 15배 증가), 신규 재생e 설치량(2023년 2.7GW 예상)도 최고점(2020년 5.5GW) 대비 반토막이다. 이는 에너지 투자의 80%가 재생e로 집중되고, 재생e가 신규 발전설비 용량의 80% 이상을 차지하는(원전 1%) 세계적 추세와는 확연히 다르다.
이런 상황에서 재생e 3배 확대에 함께하기로 한 것은 반갑지 않을 수 없다. 3배로 늘리기 위해서는 재생e 정격용량을 2023년 32.8GW에서 2030년 98.4GW로 높여야 한다. 매년 약 9.4GW의 시설용량을 늘려야 하는데, 이는 현재 연간 설치량의 3.5배에 해당한다. 화석연료 중심의 전력시장 구조개편, 안정적 공급을 위한 전력망 확충, 수요관리를 위한 인프라 구축 등 막대한 투자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친원전 기조의 정책하에서 재생e를 위해 제도와 재원의 배분을 이 정도로 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면 ‘재생e 3배 약속’은 그린 워싱(green washing)용이 될 수 있다.
한편 원전의 시설용량을 3배 늘리는 것은 현재 25기 원전을 75기로 늘리는 것이 된다. 원전 발전량이 3배로 늘어나면 전체 발전량의 90% 이상이 원전으로 채워질 것이니 재생e 3배 확대는 불필요한 이중 투자로 전락할 것이다. 원전의 무탄소를 신봉하는 입장에서는 원전이 재생e의 대체재가 된다고 보니 투자를 더욱 꺼릴 것이다. 그러나 세계 평균(전체 발전량에서 9.8%)의 3배 규모인, 지금의 원전을 3배로 늘리는 것은 천문학적 투자비, 방사능 폐기물의 기하급수적 증가, 엄청난 위험비용 등을 감안하면 비현실적이다.
재생e와 원전 사이엔 제로섬 관계가 있다. 원전이 재생e보다 싸지만 모듈 가격 하락, 기술 발전, 규모의 경제 실현 등으로 재생e의 패리티 그리드(parity grid)가 임박하다는 게 중론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25년 시점에서 원자력의 균등화발전단가(LCOE)가 수명연장을 통한 장기운영을 제외하면 태양광이나 육상풍력과 비슷하거나 높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국책연구기관도 2028년 전후로 일부 재생e의 가격이 원전보다 싸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은 적이 있다. 따라서 2030년경까지는 원전이 쌀지 모르지만 이후엔 고비용의 에너지가 되어, 그에 대한 의존도가 클수록 국민경제의 부담은 더 커진다./ 조명래 단국대 석좌교수·18대 환경부 장관/ 경향
5744억 원 쏟고 29표...정부와 언론의 사기극, 그냥 둬야 하나
한국 언론의 부산 엑스포 보도, 일제 시대 '대본영 발표'가 떠오른다
일본에 '대본영 발표'와 '발표 저널리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대본영은 일본제국이 침략 전쟁을 지휘하기 위해 설치한 군 총사령부입니다. 대본영은 태평양전쟁 시작부터 끝까지 모두 846차례 발표를 했습니다. 초반 승전 때는 사실 중심으로 발표했지만, 점차 전황이 불리해지면서 뻥튀기 조작 발표를 일삼기 시작했습니다.
'대본영 발표' 베끼며 태평양전쟁에 부역한 일본 언론
한 예로, 대본영은 1944년 10월의 대만 항공전 때 일본군이 미군 항공모함 19척을 격침했다고 공표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론 항모 4척에 작은 피해를 준 데 그쳤습니다. 태평양전쟁 전 기간에 손실된 미 항모가 모두 11척이었으니, 당시 대본영의 정보 조작이 얼마나 심했는지 알 만합니다. 그런데도 일본 언론은 이런 대본영의 왜곡·조작 발표를 의심도 확인도 하지 않고 그대로 전하는 데 급급했습니다. 심지어 왜곡·조작인지 알면서도 국익을 위해, 회사 이익을 위해 대본영 발표를 대서특필했습니다.
일본에서 발표 저널리즘이라는 용어를 처음 쓴, 하라 도시오 전 <교도통신> 사장은 발표 저널리즘의 폐해가 가장 크게 나타났던 사례로, 대본영 발표를 그대로 보도해 일본 국민을 전쟁으로 내몬 일을 꼽은 바 있습니다. 이런 보도가 결과적으로 전쟁을 돕는 꼴이 됐다는 점에서 당시 일본 기자들은 비(B), 시(C)급 전범에 해당할 정도라고 비판했습니다.
대본영 발표식 보도와 다름없는 한국의 부산 엑스포 보도
▲ '"49대 51까지 쫓아왔다"… 2차 투표서 사우디에 역전 노려'라는 제목의 <조선일보> 2023년 11월 24일자 보도와 '"49대51까지 따라왔다"… 결선서 대역전극 'BUSAN is Ready''라는 제목의 <매일경제> 2023년 11월 21일자 보도ⓒ 조선일보, 매일경제
일본에서는 지금도 실제 상황과 다른 정부나 기관, 기업 등의 거짓 발표를 '대본영 발표'라고 부릅니다. 상황이 나쁘거나 나빠지고 있는데도 좋다거나 좋아지고 있다고 호도하는 걸 가리키는 관용어로 굳어진 것이죠. '발표 저널리즘'이란 용어에는 대본영 발표를 그대로 답습한 일본 저널리즘에 대한 반성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언론계에서 대본영 발표와 발표 저널리즘이라는 두 용어를 함께 쓰는 경우가 많은데, 정부 발표를 확인 없이 함부로 쓰면 '큰코다친다'라는 걸 경계하기 위한 것입니다.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에 '119 대 29'로 참패한 '2030 부산 엑스포' 유치전을 취재했던 우리나라 언론의 보도 아니 보도가 아니라 '홍보'를 보면서, 대본영 발표라는 단어가 문뜩 떠올랐습니다. 표결 전에 우리나라 주요 언론이 전한 엉터리 보도가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의 대본영 발표 보도와 다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니, 오히려 대본영 발표식 보도보다 훨씬 더 못했습니다. 엑스포 참사에 부역한 죄가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본영은 거짓이지만 공식 발표라도 했고, 당시 일본 언론은 그걸 그대로 받아썼습니다. 하지만 이번 부산 엑스포 기사는 공식 발표도 아닌 정부 또는 재계 관계자의 거짓 정보를 충실하게 옮기는 데 급급했습니다. 정부의 거짓을 신뢰만 했지,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검증하지도 않았습니다. 일본 언론들은 대본영 발표를 베껴 쓴 가짜뉴스에 관해 전후에 대대적으로 반성이라도 했지만, 우리 언론들은 엑스포 가짜뉴스 남발 뒤 반성의 낌새도 보이지 않습니다.
'한국 최고의 신문'이라고 자화자찬하는 <조선일보>는 투표 며칠 전 "49 대 51까지 쫓아왔다...2차 투표서 사우디에 역전 노려"라고 대서특필(11월 24일 자)하더니 참패로 드러나자, 정부의 정보력 부족과 소통 부재를 탓하며 책임을 은근슬쩍 다른 데로 떠넘겼습니다. 조선일보뿐 아니라 대다수 주요 신문과 방송은 참패 뒤에도 '석패',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 운운하며 반성 없는 후안무치의 태도를 보였습니다.
최대 피해자는 국민, 최고 수혜자는 한덕수 총리?
▲ 2030세계박람회 부산 유치 실패 장성민 대통령실 미래전략기획관,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 한덕수 국무총리, 박형준 부산시장,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28일 오후(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173차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에서 2030세계박람회 개최지 발표 상황을 지켜보며 탈락에 아쉬워하고 있다.ⓒ 사진제공 총리실
정부가 부산 엑스포 유치를 위해 쓴 예산은, 지난해 2516억 원, 올해 3228억 원 모두 5744억 원입니다. 이 많은 돈을 퍼부으며 고작 29표를 얻었으니 한 표당 198억 원을 쓴 셈입니다. 이마저 국비만 계산한 것입니다. 부산시에서 쓴 지방비와 기업들이 쓴 돈까지 합치면 푯값은 더욱더 상승할 겁니다.
엑스포 유치가 참패로 끝나면서 바로 사과를 했다고 해서 윤 대통령이 엑스포 참사의 최대 피해자라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는 모양인데, 실은 국민이 최대 피해자입니다. 민생고에 허덕이며 낸 혈세가 아무런 효과도 거두지 못하고 낭비됐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최대 수혜자는 누구일까요. 관가에서는 대표적으로 엑스포를 기화로 나랏돈을 펑펑 쓰며 그동안 못 다녔던 세계 곳곳을 여행한 한덕수 총리와 엑스포 유치 활동을 총괄 지휘하며 호가호위했던 장성민 대통령실 미래전략관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부산 엑스포 지지를 호소한답시고 여간해서 가기 어려운 몰타와 안도라를 방문했던 한동훈 법무부 장관도 예외가 아닙니다.
윤 대통령이 잦은 해외 순방을 하며 세금을 낭비하고 있다는 거센 비난을 받지만, 한덕수 총리도 그보다 더하면 더 했지 못하지 않은 여행을 했음이 확인됐습니다. 총리실 누리집을 보면, 한 총리는 지난해 취임 이후 1년 6개월 동안 13차례 해외 순방에 나섰습니다. 지난해 5번, 올해 8번입니다.
그중에서 엑스포 유치를 명분으로 나간 것만 10차례이고, 올해 10월 이후만 4차례 2주에 1번꼴로 나갔습니다. 프랑스는 무려 5번이나 방문했습니다. 참고로, 문재인 정권 때 총리를 역임한 이낙연(2017~20년 1월) 총리는 12회, 정세균 총리(2020년 1월~21년 4월) 1회, 김부겸 총리(2021년 5월~22년 5월) 1회 해외 순방을 했습니다.
정부·국회는 유치 활동 실패 책임 묻고, 언론은 오보 반성해야
정부와 언론이 이인삼각으로 벌인 사기극의 실태가 표결로 확인되면서 전 국민이 충격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국민의 혈세를 펑펑 쓰며 누가 어디서 어떤 장난을 했는지는 아직 구체적으로 밝혀진 게 거의 없습니다. 한 총리를 비롯한 정부 각료들이 세계 곳곳을 누빈 것이 엑스포 유치를 위한 고난의 행군이었는지 엑스포 유치를 빙자한 여행 놀음이었는지 여전히 구름 속에 가려 있습니다.
지금 많은 사람이 매우 궁금해합니다. 왜 그토록 많은 돈을 퍼붓고도 겨우 29표밖에 얻지 못했는지, 이런 참사를 낳은 원인과 책임자는 누구인지, 대통령이 사과했는데도 물러나겠다고 나서는 부하는 왜 아무도 없는지, 언론은 누구 말을 듣고 금세 들통날 가짜뉴스로 도배했는지 등등 말입니다. 심지어 4일 이뤄진 개각에선 외교부에서 엑스포 유치 활동을 책임졌던 오영주 2차관이 문책은커녕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으로 발탁되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정치권과 언론은, 국민의 준엄한 물음에 응답할 책임이 있습니다. 정부가 스스로 참사의 실태를 밝히는 게 최선이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국회가 국정조사라도 해서 엑스포 참사의 실상을 낱낱이 파헤치고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언론도 이런 엄청난 오보가 나온 원인을 철저하게 검증하고 반성해야 합니다. 그래야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재발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언론도 부산 엑스포 패전의 비(B), 시(C)급 전범 정도 죄를 범했다는 비난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습니다.
오태규(ohtak)/ 오마이뉴스
협약 맺을 사공이 많네… 산으로 가는 금정산 국립공원 지정
부산시가 추진 중인 금정산 국립공원 지정을 위한 전략환경영향평가 용역이 1년 만에 중단된 것으로 확인됐다. 금정산을 맞댄 양산시 등 경남지역 지자체와 국립공원 지정을 위한 업무협약부터 진행하라는 환경부의 제안에 따른 것이지만 해당 지역 지자체가 난색을 보이면서 금정산 국립공원 지정 사업이 표류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제기된다.
금정산 전경. 국제신문DB
6일 시에 따르면 지난해 8월 착수한 금정산 국립공원의 전략환경영향평가 용역이 1년 만에 중단됐다. 시는 지난 8월부터 오는 10일까지 용역 진행을 중단하려 했지만 이마저도 연장할 계획인 것으로 확인됐다. 시가 전략환경영향평가 시작 단계인 평가 준비서를 환경부에 제출했는데, 환경부가 원활한 국립공원 지정을 위해 금정산 인근 주민의 동의 등을 담은 인근 지자체와의 업무협약을 시에 제안한 것이 용역 중단의 이유라고 시는 설명했다.
환경부 산하 국립공원공단은 국립공원 지정 절차에 따라 주민설명회와 공청회를 진행해야 한다. 하지만 공단은 금정산의 국립공원화에 반대하는 주민 여론 등을 감안해 시가 금정구와 북구, 동래구, 부산진구, 연제구, 사상구 등 8개 지자체는 물론 경남도·양산시까지 금정산 국립공원 지정에 상호 협력하는 내용의 업무협약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이같이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에 따르면 금정산이 걸쳐 있는 경남도, 양산시, 부산 금정·북·동래·부산진·연제·사상구 등 8개 지자체와의 업무협약을 맺어야 한다. 공단 관계자는 “금정산이 부산뿐만 아니라 경남도, 양산시 등에 걸쳐 있다. 주민 동의 등을 담은 지자체 사이의 업무협약이 있으면 주민설명회와 공청회 등 남은 지정 절차에 탄력이 붙을 것”이라며 “대구 팔공산도 대구시와 인근 기초단체 간 협조 절차가 있었기에 국립공원 지정이 순조롭고 빨리 진행됐다”고 말했다.
부산의 지자체는 금정산 국립공원 지정에 대체로 동의하고 있지만 경남도와 양산시는 이에 소극적인 입장을 보인다. 양산시 관계자는 “지역 주민은 그린벨트 상수원보호구역 등으로 묶인 지역에서 산까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 삼중 규제라고 생각할 것이다. 환경부나 부산시가 국립공원 지정에 따라 양산시에 어떤 지원을 줄 수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국립공원 지정을 위해 주민을 설득할 동력도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시는 경남도와 양산시의 동참을 이끌어 내는 데 총력을 다하겠다는 입장이다. 시 관계자는 “금정산 국립공원 지정에 반대하는 주민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전답 등 농사를 짓는 땅을 구획 경계에서 제외하는 등의 조처를 하려 한다. 아울러 국립공원 지정에 따른 효과를 널리 설명하는 홍보활동도 강화해 이른 시일 내 경남도와 양산시가 함께 하는 업무협약을 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김진룡 기자 jryongk@kookje.co.kr
탄소중립의 전쟁이 아닌, 기후정의로서의 평화
이제 전기비, 난방비를 걱정해야 하는 계절이 왔다. 지난 2월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되자 한국에서는 ‘난방비 사태’가 일어났다. 전쟁 직후 NATO 국가들이 러시아를 압박하기 시작하자 러시아는 유럽에 천연가스공급을 중단하고 석탄과 원유 등의 수출을 감축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럽 에너지 가격의 인상이 전세계 에너지 위기에 영향을 미쳤고 동시에 물가 인상과 경제위기의 요인이 되었다. 게다가 미국과 유럽은 기존의 인플레이션감축법과 탄소국경조정제도 등을 차곡차곡 체계화 해갔다. 이러한 제도는 에너지 전환을 경제 전략과 연결하여 전략으로 기후위기 대응이 곧 산업의 경제적 이해가 되도록 하는 새로운 시장질서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와 함께 독일과 같은 국가는 2045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기존보다 더 강화된 목표를 세우고 추진하여 올해 재생에너지 비중이 50%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1) 이러한 변화들은 화석연료를 대체할 수 있는 전력화 된 열에너지를 다양한 규모로 공급할 수 있는 히트펌프, 수소 에너지의 산업적 이용, 에너지 효율을 높이기 위한 설비 전환에 대한 대대적 관심과 노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재생에너지는 값비싼 에너지가 아니게 되었다.
독일은 이미 태양광 그리드 패리티를 지나왔고, 미국, 중국을 비롯한 세계의 재생에너지 관련 산업이 활성화되고 있다. 전세계 태양광 수요가 늘면서, 2023년 태양광 설치 전망치는 원자력 발전소 350여개 규모인 340~360GW로 상향조정 되었다.2) 풍력, 태양광의 수요 급증과 함께 베터리 산업 등이 에너지 위기와 전쟁 속에서 호황을 맞고 있다.
그리고 여기 또 다른 호황이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지난 2022년 2월 이후 장기화하면서 전세계의 군사분야 예산이 증가했고 무기 산업이 활황이다. 한국은 이 호황의 대표적인 수혜국이다. 지난 2022년을 기준으로 한국은 173억 달러의 방산 수출을 수주하여 역대 최고 무기 수출의 기록을 세웠다.3) 이러한 속도라면 한국은 방산 분야에서 전세계 9위 수준에서 2027년 세계 시장 점유율 5%를 넘겨 미국, 러시아, 프랑스에 이은 세계 4대 방산 수출국 진입 목표를 곧 달성하리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 호황을 불러오는 군사적 긴장은, 우크라이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비롯해 남과 북 여기에서도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방위산업의 호황은 한편으로는 철강, 조선, 자동차 등 전통적인 제조업에 기반하여 지역경제를 견인해온 도시들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인식되고 있다. 탄소중립, 기후위기 대응이 곧 세계시장의 새로운 규범이 되면서 에너지 전환이 늦어진 전통적 제조업에 기반한 지역의 산업경쟁력이 떨어졌다. 점점 기존 산업의 좌초 가능성이 커졌고 지역경제는 침체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성장세의 방위산업은 지역 중소도시들의 새로운 생존전략으로 등장한다. 대표적인 자동차 및 조선 관련 산업도시였던 창원은 외신에도 많이 보도될 정도로 한국의 비중 있는 방산산업 단지가 되었으며, 전자 산업도시였던 구미는 K-방산 신산업 클러스터 구축 계획을 발표했다. 방위사업청이 올해 대전에 이전하면서, 대전 및 충남지역은 방사청을 중심으로 관련 후방산업들이 지역경제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기대를 내비친다. 전라북도도 지난 3월,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방위산업을 육성계획을 제시하였다. 경기도 역시 방위산업 관련 산업단지에 대한 논의를 하고 있다. ‘산업으로서 무기’가 적어도 한국에서는 지역경제의 활성화 전략, 침체한 제조업을 대신할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이해 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서울국제항공우주 및 방위산업전시회(ADEX) 2023'에서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부스를 관람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2023.10.17 ⓒ뉴스1
전기화된 무기의 탄소중립
2022년 SGR(Scientists for Global Responsibility)와 CEOBS(Conflict and Environment Observatory)는 전 세계 군사활동으로 인한 탄소배출량을 산출하여 발표했다. 전쟁을 하나의 국가로 본다면,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5.5%를 차지하는 중국, 미국, 인도 다음으로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나라가 되지만 이미 잘 알려진 것처럼 군사활동의 온실가스 배출 정보를 의무적으로 공개하고 이를 관리하기 위한 국제적 규범은 현재로서는 없다. 1997년 교토의정서에서 군사부문 배출량을 집계에서 제외했고 2015년 파리협정에서 이를 자발적 선택사항으로 두었기 때문이다. 매년 기후변화당사국총회에서 환경 및 평화운동가들 전문가들은 군사활동의 온실가스 배출 정보를 공개하도록 하기 위한 요구와 활동을 하고 있으나, 올해 두바이에서 열리는 COP28에서 군사활동을 기후변화협약의 규범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기후위기에 전쟁이 얼마나 많은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비판에 대응이 없지는 않다. 지난해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기후변화당사국총회(COP27)에서는 처음으로 NATO의 사무총장이 기후위기와 안보에 관한 사항을 논의하기도 하였으며, NATO는 군사활동의 기후영향을 평가하기 위한 방법론을 제한적이나 제시하기는 했다.4) 한국의 대표적인 무기기업인 한화에어로스는 2050 탄소중립을 선언하였다.
첨단산업화되어 가는 무기산업에서 무기 생산과 사용이 재생에너지를 기반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예측은 불가능한 전망이 아니다. 전력화된 무기로서 드론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그 효율성과 진가가 발휘되고 있다. 전투기에서 조종사를 빼내고, 화석연료로 사용하지 않고 미사일을 적군에 투하할 수 있다. 2030년이 되기 전에 재생에너지가 세계 에너지원의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방위산업에서 전세계 다섯손가락 안의 규모에 드는 독일의 경우 태양광 매년 50~75GW 규모, 풍력이 25~35GW 규모의 성장세를 바탕으로 한국보다 앞서 탄소중립 무기를 만들어낼지도 모른다. 무기의 전력화, 그린수소의 이용, 전기저장장치는 방산회사의 탄소중립 전략으로 이미 제시되고 있다. 자동차 및 전자기기와 철강기업이 그러하듯이 말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국민연금이 2023년 상반기 한화시스템, 풍산과 같은 대표적인 방산기업과 우크라이나 재건계획 수주 가능성이 있는 관련 건설기업에 투자를 늘렸다.5) 국민연금은 지난 2021년 5월 기후변화에 대응한다며 ‘탈석탄 선언’을 하고, 기금 운용의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국내의 무기로 도시를 폐허로 만드는 확산탄 회사와, 이를 복원하고 도시 인프라를 재건하는 기업에 동시에 투자를 하고 있다. 전쟁의 피해와 재건의 부담은 우크라이나 주민들에게 남겨지고 투자수익은 국민연금과 무기를 만드는 기업, 한국의 국민들에게로 돌아오는 구조이다. 그리고 전쟁에서 파괴의 과정과 복원의 과정은 그대로 기후위기에 영향을 미치는 탄소배출의 경로이기도 하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측정할 때는 기업의 생산활동 과정에서뿐 아니라, 자회사, 기업의 제품에 원료와 부품을 제공하는 공급망 안에서의 기업들 그리고 자원과 상품의 이동, 판매, 소비와 폐기의 과정을 포괄한다. 이를 Scope 3이라고 부르는데, 온실가스 배출량을 측정하고 다루는 기준을 제시하는 GHG Protocol은 이 Scope3을 상품 생산과정인 ‘업스트림’과 소비와 폐기 전반을 아우르는 ‘다운스트림’으로 구분하여 총 15가지의 온실가스 배출 범주를 제시한다. 이를 통해 ‘제품의 생애주기’ 전반의 기후 영향을 파악하도록 한다.
그러나 전쟁은 무기와 군사시설이라는 ‘상품’을 매개로 해도 그 양상이 다르다. 이에 CEOBS는 군사 충돌의 온실가스 배출에서 Scope 3뿐만 아니라 ‘Scope3+’를 제시했다. 정전 70년이 지난 한국에서는 아직도 한국전쟁 당시에 매립된 지뢰 피해자가 생긴다. 베트남 전쟁의 고엽제 피해는 세대를 걸쳐 이어지고 있다. 전쟁은 군사시설과 무기만으로 치러지지 않는다. 파괴와 살상, 폭력을 더 해야 한다.
전쟁이 변형시키는 자연의 복원, 폐기물의 처리, 도시의 복원, 건강과 보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 파괴와 폭력을 경험하고 이를 복원하기 위해 애쓰는 모든 과정에서 온실가스가 배출된다.
군사활동 온실가스 배출 범주 제안 ⓒCEOBS https:
기후정의로서의 평화
그러므로 전쟁과 군사활동을 기후위기의 시대, 지금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다층적인 논의로 이어져야 한다. 어떻게 하면 군사활동을 기후변화당사국협약의 규범하에 둘 수 있을 것인가와 같은 기본적 논의부터, 탄소중립 무기를 생산하는 기업을 무엇으로 감시할지에 대한 주제까지 확대해야 한다. 이것은 평화와 환경을 생각하는 이들이 전통적인 이슈인 안보와 외교는 물론, 기후위기가 안보와 세계시장에 미치는 상호영향을 어떻게 관리할지를 고민하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기후위기는 세계의 시장을 바꾸고, 기업을 조정하며 안보를 바꾸고 또한 전쟁의 원인과 무기의 종류와 작동 방식을 바꿔낼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후위기의 관점에서 군축과 군사활동의 부정적 측면과 문제를 논의하게 된다면, 또 한편으로는 기후정의적 관점에서 평화에 대한 이야기가 필요하다. 무기산업의 경제적 기회를 대체하거나 상쇄하기 위한 제도적 방법과 조치는 지역과 국가, 국제적 차원에서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인가. 기후위기 취약지역이 군사적 분쟁에 휘말리지 않도록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전쟁으로 파괴된 국가와 시민사회의 기후위기 대응 역량을 어떻게 복원할 것인가. 이러한 논의가 평화의 관점에서 논의되어야 하며 동시에 기후 정의의 측면에서 다뤄져야 한다.
필자주
2)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2023), 2023년 상반기 태양광산업 동향(2023.07.25)
3)심순형 (2023), 세계 4대 방산수출국 도약의 경제적 효과와 과제(산업연구원 2023. 7. 10)
4) https://www.nato.int/cps/en/natohq/news_217212.htm
5) https://www.sedaily.com/NewsView/29S0IUOS7R
녹색전환연구소 배보람 지역전환팀장 민중의소리
대통령께 드리는 ‘카르텔’의 용법
윤석열 대통령은 ‘카르텔’이라는 말을 참 좋아한다. 지난달엔 산재보험 재정 부실화를 지적하면서 ‘근로복지공단-병원-가짜 환자’로 이루어진 ‘산재 카르텔’을 입에 올렸다. 하지만 2021년 기준으로 일하다 다치거나 병을 얻어도 산재 신청을 하지 못한 건수가 전체의 66.6%를 넘는다. 아무래도 산재 카르텔이란 말이 어색한 이유다.
게다가 카르텔이 되려면 ‘가짜 환자’라는 이익집단의 실체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이익집단은 없다. 오히려 그 자리에 산재 위험에 노출된 노동자가 위치하게 될 뿐이다. 결국 ‘산재 카르텔’이란 말은 노동자에게 낙인을 찍고 산재보험의 역할 자체를 부정하는 효과로 이어진다.
윤 대통령은 종종 상대를 적폐로 몰아 정당성을 박탈하고 엄벌을 요하는 범죄자로 만드는 정치적 수사로 ‘카르텔’이란 말을 사용한다. 단어의 개념을 멋대로 사용하는 ‘지도자’에 대해 생각하던 중 제대로 된 용법을 보여주는 교본을 만났다. KBS <시사기획 창>이 방영한 ‘녹색 카르텔’이다.
방송은 최근 들어 빈번해지고 대형화된 산불에 주목한다. 기후 위기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산불이 심각해지는 상황이라 한국 역시 그런가 보다 했는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잘 들여다보면 한국의 산불 피해 복구 및 산림 관리 시스템에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그렇게 해서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게 바로 ‘산피아’라는 별명을 가진 산림청과 수의계약(경쟁이나 입찰 없이 상대편을 임의로 선택해 체결하는 계약)이라는 ‘운영의 묘’다. 산불 피해지역에 산림 복구를 위한 예산이 편성되면, 이 돈이 수의계약을 통해 산림청 산하 산림조합중앙회 소속 업체들로 쭉 흡수된다.
지난 5년간 각 지방 산림청 및 국유림 관리소가 산불 복구, 임도 등 산림사업과 관련해 수의계약 건수는 총 2만4000여건, 1조5000억 규모였다. 이 중 산림조합이 가져간 돈은 60%가 넘는 9220억원. 이때 산림조합이 수주한 사업은 5000건이고, 그 외 1만8000건 정도는 민간 업체로 갔다. 뭔가 계산이 맞지 않는다.
방송에서 인터뷰에 응한 한 산림기술업자는 이런 사업에서 돈을 가지고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사람들은 산림청 직원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밑에 수족이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덧붙인다. “계급이 나뉘어 있어요. 위에 산림청, 그다음에 도, 그다음에 시, 산림조합, 그 밑에 법인들.” 이게 바로 녹색 카르텔이다.
이에 대해 산림청 관계자는 노하우가 중요해 검증된 업체에 맡기는 거라 강조하지만, 실상은 ‘산불이 돈이 되는 시스템’이 계속될 뿐이다. 산불 이후 산림 복구를 이유로 멀쩡한 활엽수까지 ‘싹쓸이 벌목’해 큰 이익을 남겨도 아무 관리가 안 되고, 그 자리에 산불에 취약한 침엽수를 심는 일이 반복된다. 게다가 산림청이 관할하는 임도건설이 대규모 산사태로 이어진다는 문제 제기도 계속되고 있다.
키를 쥔 건 산림청 고위 공무원들이다. 이들은 퇴직하면 산림조합을 비롯해서 산지보전협회, 등산·트레킹지원센터, 산불방지기술협회 등 10여개의 산림청 산하 특수법인 기관장으로 옮겨간다. 그러니까 산림조합이 산림청 예산을 수의계약으로 긁어모으는 동안, 그 외 산하 기관 간부 자리는 산림청 직원들의 퇴직 보험이 되는 셈이다. 방송은 산림청이 2004년부터 2020년까지, 거의 1년에 하나씩 산하 기관을 세워왔다고 지적한다.
이상하게도 윤석열 대통령이 ‘산재 카르텔’을 입에 올린 직후 관련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영 관련 기사가 보이지 않는다. ‘산피아’가 새로운 뉴스가 아니기 때문인가? 그렇다면 더 시끄럽게 떠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격노하셔야 할 카르텔이 여기에 있는데, 왜 잠잠하신지 역시 궁금하다.
손희정 문화평론가/경향
정부와 국회의 카르텔이 만들어내는 ‘기후재난’
2023년, 기후재난이 일상 속으로 들어왔다. 핵심은 산사태이나, 이 재난을 ‘기후재난’ 으로 볼 것인가는 분명 깊이 따져볼 일이다. 산림청은 올해 7월26일까지 발생한 산사태 890건 중 임도발 산사태가 316건으로 35.5%라 했고, 나머지 64.5%가 다른 곳에서 발생했기에 모든 임도가 문제라는 식의 접근은 부적절하다 주장했다. 얼마나 어이없는 주장인가? 임도는 산림면적의 0.1% 남짓을 차지한다. 그런데, 이 0.1%에서 발생한 산사태가 35.5%나 된다. 나머지 99.9%에서 발생한 산사태와 비교하여 무려 350배 이상이나 많이 발생했다는 의미이다. 그런데도 임도는 문제가 없다는 주장을 한 것이다.
실제 올해 인명피해를 일으킨 산사태 중에서 임도가 산사태 시발점으로 판단되는 곳이 다수 존재한다. 그러나 산림청은 모든 산사태의 원인을 ‘폭우와 연약지반’이라 제시한 바 있다. 정밀조사를 한 것도 아니다. 정밀조사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아니고, 어떻게 임도와는 관계가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지가 의아할 뿐이다. 조사는 전임 산림청장이 협회장으로 재취업한 산림청 산하 특수법인이 진행했다. 산림청장이 산하기관에 재취업한 것 자체가 공정성의 심각한 훼손이다. 추후 행정안전부가 제시한 초기조사 보고서에는 산림청과는 반대로 임도에 의한 영향이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기에 더욱 의심스럽다.
더 중요한 문제는 이후에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이다. 산림청은 모든 산사태 위치정보를 확인한 후에야 알 수 있는 정보를 언론에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국정감사에서 산사태 위치정보를 제출하라는 한 의원에게 자료가 없다고 답변했다. 자료가 없는데 어떻게 316건이 임도에서 발생했는지 확인했을까? 없다는 정보는 이후 엉뚱한 곳에서 나타났다. 국정감사장에서 여당의 한 의원이 경북 예천의 모든 산사태 위치정보를 공개한 것이다. 자료는 임도문제를 제기한 참고인 주장을 부정하기 위한 용도로 쓰였다. 여당 의원은 산사태 주관기관인 산림청에도 없는 자료를 어떻게 확보했을까?
자체적으로 산사태 위치를 조사했다는 결론인데, 가능하지 않은 추론이다. 산림청이 산사태 위치정보자료를 구축했음에도 ‘자료 없음’으로 답변한 것이라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산림청은 임도예산을 대폭 증액해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로, 오랫동안 다른 나라의 임도밀도와 비교해 왔는데, 이 비교가 왜곡임이 밝혀졌다.
오스트리아의 ‘200㏊ 이상 산림을 소유한 대기업의 도로밀도’를 오스트리아 임도밀도라 왜곡한 것이다. 산림청은 사유도로나 공공도로가 포함되지 않는다는 설명자료(10월18일자)까지 배포했으나, 정작 오스트리아 정부 홈페이지에는 임도가 사유도로와 마을도로, 공공도로(국도나 지방도)로 구성됨이 명시돼 있다. 일본도 마찬가지로 공공도로와 농로까지 포함한다. 이런데도 아직 이 왜곡 정보는 산림청 홈페이지에 버젓이 게시되어 있다. 의도적 왜곡자료를 바탕으로 산림청은 임도의 확대를 주장했고 2024년 임도예산을 20% 가까이 대폭 증대시켰다. 밀도 비교의 왜곡과 산사태 조사의 부실에 많은 국민이 예산 문제를 제기하자 이번에는 한 야당 의원이 나섰다. 예산심사 중 임도예산 확대를 산림청보다 더 강력하게 주장하며 원안을 관철시킨 것이다.
객관적 사실을 제시해야 할 정부와 이를 검증한 후 예산의 적정성을 판단해야 할 국회의원 모두 제 할 일을 망각한 채, 자기 부처, 자기 지역구 예산증액만을 위해 온 힘을 쏟은 것이다. 이 과정에서 여야는 똘똘 뭉쳤다. 산림청은 왜곡된 자료를, 의원들은 팩트체크 결과조차 무시했다.
미국이 이미 20여년 전부터 매년 임도를 수천킬로미터씩 폐쇄하고 복원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국민에게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산사태는 기후재난으로 포장되지만 사실은 이런 짬짜미 예산으로 증가한다. 카르텔에 의한 예산 확대는 고스란히 재앙으로 돌아온다. 홍석환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경향
신공항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가덕도 100년 숲
"생물 다양성 금정산 수준…환경영향평가 조사보다 생물종 다양“
부산 가덕도신공항 건설로 사라질 위기에 놓인 가덕도 국수봉 100년 숲의 가치를 조명하는 토론회가 열렸다. 7일 오후 부산그린트러스트와 파타고니아 공동 주최로 '가덕 동백군락지와 백 년 숲의 존재를 묻다' 토론회가 열렸다.
부산대학교 조경학과 홍석환 교수가 '가덕도 100년 숲의 가치'에 대해서 발제하고 이어 이성근 부산그린트러스트 상임이사가 '벼랑 끝에 선 가덕 100년 숲 터줏대감 나무의 실태와 보전방안'을 주제로 발표했다.
신공항 예정지인 가덕도는 일제강점기 군사지역으로 지정돼 민간인 출입이 적어 100년 넘게 자연 그대로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국내에서 보기 드문 바닷가 숲으로 손꼽힌다. 지난해 환경부와 문화재청이 후원하는 훼손될 위기에 처한 자연유산을 선정하는 내셔널트러스트 '이곳만은 지키자'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다.
부산그린트러스트는 파타고니아 후원을 받아 가덕도 신공항 예정 부지 생물다양성을 조사했다. 조사에 따르면 가덕도 100년 숲은 동백나무와 후박나무 등이 자생하는 상록난대림과 굴참나무·느티나무 군락, 졸참나무·고로쇠나무 군락 등으로 이루어진 낙엽활엽수림으로 구성돼 있다.
연대봉에서 바라본 가덕도 [촬영 손형주]
신공항 예정지를 중심으로 조사한 식물상은 105과 439종이다. 한국 특산종은 15종, 기회 위기 지표종은 16종, 환경부 보호종은 3종으로 조사됐다.
가덕신공항 환경영향평가 당시에는 84과 238종으로 조사됐는데 이번 조사에서는 훨씬 다양한 생물이 확인된 것이다. 특히 연대봉 남사면 끝 200봉 계곡부와 국수봉 남산봉 사이 계곡부에서 멸종위기종 2급 대홍란도 발견됐다.
생물다양성은 국립공원 지정이 추진되는 금정산에 버금가는 수준이라고 부산그린트러스트는 설명했다. 부산그린트러스트 등 환경단체는 신공항 건설 공사로 가덕도에 100년 넘게 뿌리 내린 거목이 뽑히고 동백군락지가 훼손되는 것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이성근 부슨그린트러스트 상임이사는 "후계목 보전을 위한 종자 채취, 노거수에 이름을 달아주는 행사 등을 통해 가덕도 100년 숲을 지키려 노력하고 있지만 보존 방안의 뚜렷한 답은 찾기 힘든 상황"이라며 "개발 논리에 가려진 가덕도 100년 숲의 가치가 재조명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handbrother@yna.co.kr
한국, ‘오늘의 화석상’ 첫 수상 불명예…“화석연료 확대 기여”
6일(현지시각)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서 한국이 ‘오늘의 화석상’을 수상한 후 소감을 말하고 있다. 기후솔루션 제공
한국이 이른바 ‘기후악당’ 국가에 수여되는 ‘오늘의 화석상’ 수상의 불명예를 안았다.
세계 기후환경단체들의 연대체인 기후행동네트워크는 6일(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서 한국과 노르웨이, 캐나다 앨버타주를 ‘오늘의 화석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기후행동네트워크는 1999년부터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가 열릴 때마다 기후대응에 역행하는 나라들을 선정해 이 상을 수여하고 있다. 수상자로 한국이 선정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기후행동네트워크는 가스 확대를 위한 한국의 ‘헌신’을 수상의 이유로 꼽았다. 구체적으로는 한국의 가스전 참여와 조선업 지원, 기후손실 복구에 대한 무관심이 선정 배경으로 지목됐다.
기후행동네트워크는 “한국은 호주 북부 해안에서 수십억 달러 규모의 탄소 폭탄을 터뜨리기를 원한다”며 “한국과 일본이 자금을 조달한 바로사 가스 프로젝트는 티위 제도 연안에서 바다를 오염시키고 원주민들을 무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바로사 가스전은 한국 에스케이이앤에스(SK E&S)와 호주 에너지기업 산토스, 일본 발전회사 제라 등이 지분을 나눠 투자한 곳이다.
한국, ‘오늘의 화석상’ 첫 수상 불명예…“화석연료 확대 기여”
이들은 또 COP28에서 한국 정부가 운영하고 있는 한국관이 블루수소에 대한 새로운 양해각서(MOU) 체결을 촉진하는 등 화석연료 산업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며 “이는 호주와 아시아 전역에서 더 많은 가스 추출과 혼소발전, 화석 가스의 수명을 연장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후행동네트워크는 한국이 조선업에 440억 달러(약 58조원)의 공적자금을 제공함으로써 전 세계 LNG(액화천연가스) 운반선 용량을 3배로 늘리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등 화석연료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고도 기후 손실과 피해를 해결하는데 전혀 기여하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날 함께 수상한 노르웨이와 캐나다 앨버타주는 각각 심해채굴과 주지사의 화석연료 로비스트 경력으로 수상의 불명예를 안았다. 앞서 일본과 뉴질랜드, 미국도 화석상을 수상한 바 있다. 경향 노정연 기자
시내버스 타면 기부 동참’ 나눔버스…부산 내년 3월까지 운행
수익금 일부를 어린이재단에 기부하는 초록우산 나눔버스 3대가 부산에서 내년 3월까지 한시적으로 운행하고 있다.
부산시는 7일부터 내년 3월 31일까지 ‘초록우산 나눔버스’ 1대를 추가해 운행한다고 밝혔다. 초록우산 나눔버스는 지난 10월부터 부산시가 전국 최초로 시행한 어린이 대중교통요금 무료화 등 아동친화정책에 따른 사업이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이 부산버스운송조합·부산시와 협업해 추진하는 사회공헌활동 사업이다. 당시 부산시와 버스운송조합은 초록우산 나눔버스 2대((10번, 129-1번)를 투입했으며, 이번에 1대를 추가했다.
이번에 추가된 나눔버스는 부산 시내버스 167번(동남여객) 1대로, 초록우산 이미지로 외관을 붙여 4개월간 운행될 예정이다.특히 신규 나눔버스는 크리스마스를 맞아 연말까지 버스 내외부에 산타 이미지도 함께 붙여 운행되며, 이와 연계한 기부문화 이벤트도 진행한다. 기부문화 이벤트는 산타 이미지가 붙여진 버스 사진을 촬영 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태그 또는 전송하면 내년 초 추첨을 통해 참여자 100명에게 초록우산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올해 연말까지 발생한 초록우산 나눔버스 3대의 버스 운송수입금의 10%와 업계의 자율기부금을 합해 1500만 원을 내년 초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 전달할 예정이다.
전달된 기부금은 재단의 주력사업인 무연고 아동, 아동양육시설 거주 중인 보호아동 또는 자립준비청년 자립지원사업에 사용될 예정이다.
지류지천까지 댐 10개 짓자는 환경부, ‘4대강 시즌2’인가
윤석열 정부가 국가 주도 댐 건설을 공식화했다. 극한호우에 대응할 치수책이자 물그릇을 키우는 이수책으로 필요하다는 것이다. 가뭄을 해결하고 수해를 예방하겠다며 수십조원의 혈세를 낭비한 4대강사업의 후유증이 여전한데, 이번엔 ‘4대강 시즌2’를 시작할 모양이다. 부적절하다.
환경부는 7일 ‘치수 패러다임 전환 대책’에서 내년 10개의 신규 댐 건설 또는 리모델링을 본격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2018년 문재인 정부의 ‘국가 주도 대규모 댐 건설 중단’ 선언을 5년 만에 뒤집은 것이다. 환경부는 또 기존 지방하천 일부를 국가하천에 포함시켜 중앙정부가 정비하면서 환경영향평가를 간소화하겠다는 방침도 내놨다. 하천 생태계를 파괴하는 퇴적토 준설도 다시 본격화하겠다고 한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화학물질 규제 완화,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 설치 허가를 비롯해 부처의 본분을 잊은 채 개발주의에 동조해온 환경부가 또다시 환경을 등졌다. 2020년 국토교통부와 분점했던 물관리일원화를 할당받더니, 이제 보니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긴 격이 됐다.
댐 건설은 큰 갈등을 수반한다. 강 흐름이 끊어지며 생태계가 교란되고, 부영양화로 인해 ‘녹조라떼’ 같은 수질오염이 발생한다. 주민들은 잦은 안개로 인한 농업소득 감소와 호흡기 질환 피해를 호소한다. 그럼에도 정부가 댐 신규 건설을 굳힌 징후는 이미 뚜렷했다. 지난 8월 감사원은 2031년부터 전국 생활·농업·공업용수가 6억여t 부족해질 것이라며 운을 띄웠다. 지난해 태풍 힌남노 때 포항의 냉천이 범람한 이유가 상류댐이 없어서라는 주장도 나왔다. 하지만 과거처럼 물을 대규모 구조물 안에 가두는 치수책으로는 21세기형 집중호우를 버텨내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차라리 물에 길을 제대로 내어주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 지역갈등도 문제다. 일례로 지리산 덕산댐이 건설되면 낙동강 오염이 심한 부산 지역은 새 식수원을 얻지만, 진주를 비롯한 서부 경남 주민들은 피해를 입게 될 것으로 우려된다.
정부는 댐 건설을 가급적 서두르겠다고 한다. 여러 당사자들의 삶과 생태계가 걸린 문제인 만큼 민주적인 의견 수렴절차를 반드시 준수해야 한다. 더불어 이번 정부 들어 잇따라 발생한 치수 실패가 댐이 없어서라는 잘못된 진단부터 되짚어보길 바란다. 이명박 정부의 4대강사업 악몽을 반복하는 데 지출하기엔 지금 정부 재정도 쪼들리는 게 냉정한 현실 아닌가 / 경향 사설
"윤석열 4대강 역행 죗값 묻겠다"... 금강·낙동강·영산강이 뭉쳤다
금강, 낙동강, 영산강 유역에서 활동해 온 87개의 시민사회단체들이 4대강 재자연성 회복에 역행해 온 윤석열 정부에 맞서기 위해 '보철거를위한금강낙동강영산강시민행동'(이하 시민행동)을 발족했다. 이들은 7일 세종시 환경부 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세종보 담수 계획 철회와 낙동강 녹조대책 등을 촉구했고, 4대강 보가 철거될 때까지 연대투쟁을 전개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 ‘보철거를위한금강낙동강영산강시민행동’은 7일 환경부 청사 앞에서 윤석열 정부를 비판하며 퍼포먼스를 벌였다.ⓒ 김병기
"3대 강이 뭉친 까닭... 강 죽이는 윤석열 정부 향한 선전포고"
첫 발언자로 나선 문성호 대전충남녹색연합 상임대표는 "강이 썩어 악취가 진동하면서 생명들이 죽든지 말든지, 맹독성의 녹조로 국민 생명에 위협이 되든지 말든지, 4대강 보가 홍수에 위험이 되든지 말든지, 재벌과 기업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크고 작은 댐 건설하고 하천을 준설하겠다는 환경부는 '미친부'라는 생각이 든다"고 성토했다.
문 대표는 이어 "우리가 오늘 시민행동을 발족하는 까닭은 위대한 강을 팔아서 자신들의 호주머니를 채우려는 윤석열 정부에 맞서 반드시 보를 철거하여 생명의 강으로 만들 것이라는 선전포고"라면서 "국가물관리기본계획을 제멋대로 주물러 강을 죽음으로 내몬 자들에게는 끝까지 그 죗값을 묻겠다는 엄중한 경고를 하려고 이 자리에 왔다"고 밝혔다.
임희자 낙동강네트워크 공동집행위원장은 "낙동강의 상황은 처참하다"면서 다음과 같이 목소리를 높였다. "강물에서 청산가리 6600배의 독성을 가진 마이크로시스틴이 검출됐다. 이것이 2015년 일이었다. 환경부에 조사를 요구했지만 하지 않았다. 그리고 2021년에 낙동강 쌀을 조사했다. 쌀에서 청산가리 6600배가 되는 마이크로시스틴이 검출됐다. 또 올해 낙동강의 공기를 조사했다. 낙동강으로부터 3.7㎞ 떨어져 있는 아파트 거실에서 조사를 했는데 마이크로시스틴이 검출됐다. 자, 낙동강에서 안전한 곳이 있나?"
"낙동강 녹조 방조하는 환경부는 범죄집단"
▲ 금강, 낙동강, 영산강 유역에서 활동해 온 시민사회단체들이 ‘보철거를위한금강낙동강영산강시민행동’을 발족했다.ⓒ 김병기
이 집행위원장은 "강물에서 검출되고 수돗물에서 검출되고 농산물에서 검출되고 하물며 주민들이 일상 생활하는 아파트에서 검출되고 있다"면서 "이런 낙동강 녹조를 방조하는 환경부는 범죄 집단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 집단의 수괴인 환경부장관을 끌어내리고, 윤석열 정부를 끝장내야 한다"고 성토했다.
이어 마이크를 잡은 김도형 영산강살리기네트워크 사무총장은 "역사에 부끄러운 무능한 정권, 생각도 없는 정권, 미래를 보지 못하는 정권과 환경부에 있는 하수인들은 부끄러워해야 한다"면서 "3개 강 유역민이 만든 시민행동이 윤석열 정부 끝장내는 초석을 만들어가겠다"고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문은 박종순 청주충북환경운동연합 정책국장이 대독했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2021년 1월 18일 확정된 금강-영산강 보 처리방안과 관련 "윤석열 정부는 취임 이후 1년이 넘도록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고 직무를 유기하다가, 2023년 7월 감사원 결과발표 하루 만에 보 처리방안 재심의를 요청하고, 2기 국가물관리위원회는 15일 만에 보 처리방안을 취소를 의결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특히 "부산, 대구, 김해, 창원 등 영남 도시의 수돗물에서는 녹조가 검출되었고, 낙동강 인근에서 수확한 농산물에서도 녹조가 검출되었으며 공기 중 확산도 확인되면서 주민들의 건강이 위협받고 있다"면서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이에 대한 아무런 조사나 대책 없이, 문제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따라서 이들은 "금강·낙동강·영산강 87개 시민·환경·종교·민중 단체는, 국민을 무시하고 안하무인으로 정책을 뒤집으며 폭거를 휘두르는 윤석열 정권을 규탄하고, 역행하는 물 정책을 바로잡으려 한다"면서 "윤석열 대통령은 이념 운운하면서 국민 갈라치기를 중단하고, 강을 살리고 국민을 살리는 물 정책을 세우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낙동강 녹조독소 '거짓 해명' 규탄 기자회견도 열려
'보철거를위한금강낙동강영산강시민행동' 발족 기자회견에 이어, 낙동강네트워크는 낙동강 공기 중의 녹조 독소가 검출되지 않았다고 '거짓 해명'한 환경부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난 11월 23일 환경부는 낙동강네트워크와 환경운동연합이 발표한 낙동강 공기중 녹조독소 검출에 대하여 국립환경과학원이 2022년과 2023년 9월에 녹조독소를 조사하였으나 검출되지 않았다는 설명자료를 발표한 바 있다.
▲ 7일 낙동강네트워크는 낙동강 공기 중의 녹조 독소가 검출되지 않았다고 ‘거짓 해명’한 환경부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병기
하지만 이수진 의원실이 제출받은 자료와 MBC 취재결과 정부는 2023년 9월 에어로졸 조사를 하지도 않고 검출되지 않았다는 보도자료를 낸 것으로 확인됐다.
이 문제가 논란이 되자 환경부는 "보도자료 문장을 축약하다 보니 해당 사실을 간과했다"고 밝혔지만, 이들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낙동강 유역 주민들의 생명과 건강에 직결된 문제를 환경부가 어떻게 이렇게 뻔뻔스럽게 거짓말을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성토했다.
이들은 또 이날 발표한 기자회견문을 통해 "환경부는 2023년 낙동강 녹조독소 조사를 하지 않은 채, 검출되지 않았다는 문서를 배포한 것은 공문서 위조이며 언론과 국민을 철저히 기만한 행위"라며 수사기관의 수사 착수와 책임자 처벌을 촉구했다./오마이뉴스. 김병기
이젠 가을에도 외투 안 입을까…올해 역대 세 번째로 더웠다
기상청, 기후분석 결과 발표
올 가을 평균 15.1도…평년보다 1.0도 높아
높아진 해수면 온도 역시 지적
이젠 한국의 계절이 ‘봄·여름·가을·겨울’이 아닌 ‘여름·겨울’로만 구부될 수도 있게 됐다. 올 가을 평균기온이 역대 세 번째로 더웠던 것으로 조사됐다.
7일 기상청은 ‘2023년 가을철(9~11월) 기후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기상청 분석에 따르면 올 가을철 전국 평균기온은 15.1도로 평년(14.1±0.3도)보다 1.0도 높았다. 1975년 15.4도, 2019년 15.2도에 이은 기상 관측 이래 세 번째로 더웠다.
특히 지난 9월 전국 평균기온은 평년보다 2.1도나 높은 22.6도로 역대 1위를 기록했다. 기상청은 “9월 상순에는 우리나라, 중국, 일본을 따라 동서로 고기압이 발달했고, 맑은 날이 이어지며 햇볕이 강하게 내리쬘 때가 많았기 때문”이라 분석했다. 이어 “같은 달 중·하순엔 동중국해상으로 확장한 북태평양고기압 가장자리를 따라 따뜻한 남서풍이 불어 기온이 매우 높았으며, 10월은 유라시아 대륙의 기온이 전체적으로 높았다”고 덧붙였다.
기상청은 이어진 분석에서 높아진 해수면 온도 현상도 지적했다.
올해 우리나라 해역 해수면온도는 21.6도로 최근 10년(2014~2023년) 중 가장 높았다. 10년 간의 평균 수온보다 0.8도 높은 수치다.
유희동 기상청장은 “초가을 기온이 역대 1위를 기록하고 늦가을에는 기온변동이 매우 커 ‘기후변화를 실감한 가을철’이었다”며 “앞으로 이상기후에 대해 국민들이 사전에 대비할 수 있도록 유용한 기후정보를 시의적절하게 제공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최승훈 인턴기자 onlinenews1@kmib.co.kr
재벌총수 병풍 삼은 대통령 사진…참 낯익다 했더니
주요 신문들은 7일 자 1면 또는 경제면에 비슷한 사진을 크게 다뤘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일 부산 중구 깡통시장을 방문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비롯한 기업 총수들과 함께 떡볶이를 먹고 있는 모습이다. 사진에는 이 회장 외에도 최재원 SK 수석부회장과 구광모 LG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 정기선 HD현대 부회장 등 다른 대기업 총수들 모습도 보인다. 사진엔 없지만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류진 한국경제인협회(전 전경련) 회장 등이 이번 윤 대통령 부산행에 동행했다.
이 장면은 묘한 기시감을 들게 만든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탄핵당하기 직전인 2016년 3월 10일 대구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방문한 적이 있다. 이때도 이재용 회장은 박 전 대통령과 동행하며 여러 장의 사진을 남겼다. 그 후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했던 윤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과 이 회장 관계를 ‘정경유착’으로 규정했다. 정권과 자본 권력의 부도덕하고 부적절한 밀착이라며 유죄를 선고했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지금 비슷한 장면들이 다시 연출되고 있다. 한 가지 다른 점은 박 전 대통령 자리에 윤 대통령이 있다는 것이다. 특별검사 시절 정경유착을 단죄했던 윤 대통령이 툭하면 재벌 총수들을 동원하는 모습은 박근혜 정부 시절을 떠올리게 만든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기업인들과 만나지 않았느냐는 항변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윤석열 정부와 달리 재벌 친화적인 정책을 펼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이 엑스포 유치 실패로 좌절감에 빠진 부산 시민을 위로한다는 명분으로 대기업 총수들까지 동원한 것은 보수언론조차 도를 넘었다고 지적한다. 중앙일보는 7일 자 사설에서 “윤 대통령 취임 후 크게 늘어난 해외 순방마다 주요 대기업 회장과 최고경영자(CEO)들을 줄 세워 수행시키는 것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며 “지난달 윤 대통령의 런던·파리 순방에 다녀온 기업인들 상당수가 다음 주 윤 대통령의 네덜란드 국빈 방문의 경제사절단에 다시 이름을 올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일만 생기면 기업인들부터 동원하는 이런 정부의 행태는 ‘자유’라는 정책 기조와 맞지 않을뿐더러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 상황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질타했다.
재계에서도 적절하지 않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엑스포 유치 실패를 사과하고 부산 민심을 달래는 자리에 이재용 회장을 비롯한 재벌기업 총수를 꼭 동원했어야만 했냐는 것이다. 윤 대통령과 엑스포 관련 부서 장관, 국민의힘 당직자 정도만 참석해도 될 일을 연말연시를 맞아 일정이 많은 기업인들은 차출한 것은 지나쳤다는 지적이다. 정경유착 사건을 수사를 했던 윤 대통령의 퇴행적 행태에 안타까움을 표시하는 재계 관계자도 한둘이 아니다.
윤 대통령의 부산행이 내년 총선을 겨냥한 ‘정치적 행보’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민간 기업인을 들러리로 세운 것은 부적절하다. 엑스포 유치 실패로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에 대한 부산 민심은 크게 흔들리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부산 지역에서 윤 대통령 국정 운영을 긍정 평가하는 비율이 떨어졌다.
윤석열 정부는 입으론 자유시장 경제와 기업의 자율성을 강조하고 있으면서 시대착오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다. 대통령이 해외 순방을 갈 때마다 대규모 경제사절단을 꾸리는 것부터가 1970년대 정부 주도의 경제개발 시대로 회귀한 듯한 인상을 준다. 세계시장에서 한국 기업의 인지도가 낮았던 과거에는 정부와 기업이 힘을 합쳐 경제를 이끌어가는 게 정당화됐다. 그러나 지금은 세계시장에서 한국 기업의 인지도와 위상이 높다. 대통령이 해외에 나갈 때 총수를 대동하는 게 기업에 별로 도움이 안 된다. 오히려 쓰지 않아도 돈을 정부 정책과 외교에 투입하는 일이 더 많다.
이번 부산 엑스포 유치전만 해도 그렇다. 민간 유치위원장이었던 최태원 회장의 SK그룹을 비롯해 기업들은 엄청난 돈과 시간을 쏟아부었다. 정부와 보수언론들은 유치전을 펼치는 과정에서 우리 기업의 인지도를 높이는 성과를 얻었다고 애써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비용 대비 효과 측면에서 설득력이 약하다. 현금을 주고 신용도가 매우 낮은 어음을 받은 셈이기 때문이다.
지난 8월 잼버리 참사 때도 마찬가지였다. 정부는 준비 부족과 부실 관리로 사고를 치고 실추된 국격을 수습하기 위해 기업에 손을 내밀었다. 보수언론은 미래 고객인 세계 청소년들에게 좋은 인식을 심어줄 기회 운운하며 민간의 ‘자발적’ 지원을 호도했다. 그러나 정부의 갑작스러운 요청에 많은 기업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고 예상하지 못했던 비용을 쓸 수밖에 없었다. 당시 재계에서는 "정부가 아쉬울 때마다 민관협력을 들먹인다"는 볼멘 소리가 나왔다.
재벌 총수들이 대통령 ‘호출’을 거부하지 못하는 이유는 정부 규제와 지원 정책이 기업 수익성을 좌우하는 결정적 요인이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친기업 성향의 윤석열 정부와 재벌이 부적절한 방식으로 협력하는 상황은 언제든지 벌어질 수 있다. 윤 대통령과 재벌 총수들이 부산의 한 재래시장에서 떡볶이를 먹고 있는 모습과 7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회장이 대구 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함께 웃고 있는 사진은 '구시대 유물'로 알고 있던 정경유착의 추억을 다시 떠오르게 만든다./시민언론 민들레 /장박원 에디터
부산 엑스포 유치 ‘희망 고문’이 남긴 숙제
대한민국 부산 29 :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119. 2030년 세계 박람회(엑스포) 유치전 득표 결과다. 후발주자로서 불리한 입장이었지만 막판 추격을 통해 거의 따라잡았고, 결선투표를 통해 역전도 가능하다는 정부 관계자의 전망은 희망 고문이었고, 대국민 사기극으로 끝났다. 이처럼 참담한 외교 성적표는 건국 이래 처음이지 않을까 싶다. 대통령이 뻔질나게 해외로 나도는 것을 보면서 ‘그래, 관여하지 않고 차라리 가만히 있는 게 나을 국내 통치는 각 부처 장관들에게 맡기고 밖으로 나가서 외교라도 잘하면 되지 않겠나?’ 위안을 삼았는데 받아 온 성적표란 게 이 꼴이다.
대체 역전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전망은 누구의 판단인가? 역대급 외교 참사라 할 이번 세계박람회 유치 성적표는 국제사회 무대에서 대한민국 국격을 떨어뜨렸으며 대통령의 권위와 체면도 덩달아 추락했다. 한껏 부풀려진 기대감에 밤을 세워 응원전을 펼치며 유치 소식을 기다렸던 부산시민들의 허탈감은 누가 무엇으로 위로해 줄 것인가? 과연 우리나라 외교라인은 이처럼 쪽팔리는 결과를 전혀 예측하지 못했을까? 전혀 예측을 못했다면 무능의 극치를 보인 외교라인과 대통령 보좌진에게 책임을 묻는 경질인사를 단행해야 한다. 국민이 직접 선거로 뽑은 대통령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으므로.
그런데 더 염려되는 것은 엑스포 유치 추진단이나 외교라인에서 유치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을 전혀 몰랐을 가능성보다는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으면서도 대통령의 질책이 두려워서 누구도 직보를 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점이다. 저잣거리에 회자되는 대통령의 술버릇과 자신의 생각과 다른 보고를 하면 불같이 화를 낸다는 소문을 다 믿을 수는 없으나 여러 정황을 보면 전혀 근거 없는 소문도 아닐 터. 이번 엑스포 유치 실패 참사를 보면 미루어 짐작되는 일이다. 하의상달이 되지 않고 검사조직처럼 상명하복만 통용되는 국정의 난맥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이런 일을 임기가 끝날 때까지 겪어야 하다니!
세계박람회 유치 실패는 국민적 합의를 모아 잘하려고 도전했다가 아깝게 실패한 것이 아니다. 인기없는 정권이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국제행사 유치를 통해 바닥권을 기고있는 지지도를 한 방에 만회해 보려는 정치적 목적이 추가되면서 대통령이 엑스포 유치를 위한 세일즈 외교에 나섰고, 언론이 나서서 기대감을 한껏 부풀렸다. 만약 그들의 바람대로 엑스포 유치에 성공했다면 10.26 이후 정권을 찬탈한 신군부가 88올림픽을 유치했을 때처럼 반짝 인기를 누리면서 국민의 눈과 귀를 쏠리게 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대통령과 부산시장의 정치적 목적이 강했던 부산엑스포 유치 실패는 사필귀정이라 생각된다.
가덕도 신공항 중단해야
한편으로, 부산엑스포 유치는 가덕도신공항을 건설하려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였고 명분이었다. 따라서 부산엑스포 유치에 실패를 했으니 가덕도 신공항의 효용은 반감되었으므로 중단해야 맞다. 하지만 엑스포 유치에 실패한 정권은 성난 부산 민심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가덕도 신공항을 더 밀어붙일 것으로 보인다. 눈앞에 굴러왔던 큰 먹잇감을 지키려는 토건 마피아들은 총력을 다해 가덕도 신공항을 예정대로 추진하도록 정치권과 언론을 향한 로비를 할 것이다. 그러니 ‘죽어나는 것은 조조 군사’라는 말처럼 민생은 더욱 피폐하고 대규모 자연환경 파괴는 시간문제다.
이 정권이 집권한 이후 기후 위기 대응은 후퇴하며 그린밸트 해제를 봇물 터지듯 추진한다. 원전 강국을 내세우며 지진에 취약한 노후 원전 수명연장을 추진한다. 정치개혁이 아니라 거대 양당의 적대적 공생관계를 고착시키는 개악으로 가고 있다. 새해 예산안을 보면 중앙정부 예산이든 울산시 예산이든 복지예산은 대폭 삭감하고, 위정자의 치적으로 내세우려는 건축물 예산은 아낌없이 편성했다. 낙하산 인사로 언론을 장악하고, 재정이 어려운 지방언론은 축제예산으로 순응하게 만들며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도 않는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 국민을 희망 고문하면서 국민의 복지와 안전은 뒷전인 이 정권을 어찌해야 하나?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에 애석해하기보다 참담한 정치 현실을 직시하고 내년 총선에서 준엄한 심판으로 중간평가를 내려야 한다./이상범 울산 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시민기자/ 울산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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