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발’ 안 먹히는 킹달러
땅값 비싼 도쿄에 9㎡ ‘극소원룸’ 인기…도쿄 젊은이들이 몰리는 이유
'윤석열 발언' 비판했다고... 경찰, 교사 소환
떨어지면 수출 울상 급등하면 경제 휘청
스위스는 안락사 천국일까... 존엄한 죽음 위한 '편도 티켓'의 딜레마
파업에 ‘불법’ 딱지 붙이는 법원…30건 중 4건에만 “합법”
박형준 부산시장의 언론 소송이 위험하다
선정적인 언론의 ‘몹쓸’ 성범죄 보도 언제까지 봐야 하나
제국의 위안부' 박유하 세종대 명예교수, 누구의 명예인가
국치일, 부산에 모인 한글단체 "영어상용도시 비판“
Z세대의 스마트폰'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
실적 뺏고, 부당해고… '산피아' 판치는 국립수목원
‘연봉1억’ 귀족노조 오해…노조원은 훨씬 낮아”
고도의 정치행위” 뒤집고 “다수 국가권력의 불법행위” 인정
26년 홀로 버틴 ‘아마존 원주민’ 사망…한 종족이 또 사라졌다
마침내 코로나 정점 구간 지났다”…‘입국 전 코로나검사’ 폐지하나
외신이 본 '한국 대통령' - 정부가 본 '외신 속 대통령', 그 간극
윤 정부 민영화 정책에 민주노총-한국노총 공동투쟁 결의
서방의 '러시아·중국 악마화'가 세계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
비선실세 최외출의 제자들... 그들은 이렇게 교수가 됐다
조국·정경심 부부, 아들 대리시험 정황···카톡 법정서 공개
이런 ‘대통령 특별사면권’이 꼭 존재해야 할까
‘백약무효’ 저출생·인구 유출, 근본적 해법 없나
독일 중산층도 고금리 눈물…현금 부자에 뺏긴 ‘내 집 마련’ 꿈
'김건희 yuji 논문' 조롱한 <동아> 대기자의 '매운맛' 칼럼
김건희 도이치모터스 녹취록 공개... 대통령 거짓말 드러났다
김건희, 주식 매수 직접 승인" 보도에…대통령실 "왜곡보도, 강력한 법적 조치"
시사직격 인생을 베팅하다 2030 투자중독실태 보고서
PD수첩 공무원 비위사건
천안함 -이대로 가는가 진실은?
‘말발’ 안 먹히는 킹달러
환율 1400원대 눈앞…‘구두개입’ 정부의 딜레마
‘말발’ 안 먹히는 킹달러사진 크게보기
대통령·당국 등 “안정 조치”
반나절도 못 가 상승세 유지
미 “금리 인상”에 효과 의문
조작국 될라, 개입도 어려워
정부의 환율시장 ‘구두개입’이 딜레마에 빠졌다. 외환시장 불안정을 그냥 지켜볼 수는 없지만 개입한들 ‘말발’이 먹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의 지난 26일 ‘8분간의 기조강연’ 이후 ‘킹달러’ 현상이 계속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데다 개입의 강도를 높일 경우 자칫 환율조작국 논란에 휩싸일 수도 있다. 시장에서는 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까지 오를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미국 이익만 챙기는 ‘중국 견제’…동참한 윤 정부 ‘후폭풍’
인플레 감축법·반도체법 등
한국 기업들·제품에 족쇄만
유럽·일본 등 동맹국도 피해
반중 세계 패권전략 큰 허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6일(현지시간)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서명함으로써 전기차·배터리 분야에서 한국·일본·유럽 등 동맹국들에 피해를 입힌 것은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 유지’에 협력하려는 국가들에 찬물을 끼얹은 조치다. 통상 문제를 놓고 동맹국들끼리 갈등을 겪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이번 사안은 성격이 다르다. 중국의 패권 도전을 뿌리치기 위해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라는 명분을 내세워 동맹국들의 공조와 단결을 외쳤던 미국이 기꺼이 미국의 전략에 동참하겠다는 뜻을 보인 나라들에 등을 돌린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일은 바이든 행정부의 세계전략과 명백히 배치되는 입법 조치다. ‘동맹국과 공조를 통해 세계 경제·안보 질서를 유지’한다는 미국의 세계전략에 대한 각국의 불신이 커질 수밖에 없다. 특히 한·미 동맹 강화를 대외정책의 최우선 순위로 내세우고 미국에 협력을 아끼지 않았던 윤석열 정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미 동맹에 올인한 결과가 이것이냐’는 국내적 비판이 제기되면서 윤석열 정부도 정치적으로 상당한 타격을 입게 됐다.
■ 미국의 세계전략은 자국우선주의였나
바이든 행정부가 구상하는 세계전략의 핵심은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에 도전하는 중국과 격차를 벌리는 것이다. 미국은 중국과 러시아를 ‘현상 변경 세력’으로 규정하고, 이들에 맞서 규범·규칙에 기반한 국제질서를 회복하려면 동맹국과의 공조가 필수적이라고 주장해왔다.
세계 패권은 한 나라에 힘이 집중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동맹국의 힘을 빌려 패권을 유지한다는 미국의 구상은 역사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새로운 개념이다. 미국이 패권을 유지하는 것이 모든 동맹·우호국에 이익이 될 수 있다는 것이 확실해야만 가능한 전략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와 달리 대중국 견제 동참을 강요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나라에 중국 견제로 얻어지는 이익을 공유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IRA 발효로 미국의 이 같은 약속은 깨졌다. 경제안보를 외치면서 실제로는 미국 이익을 위해 일방적 조치를 취해 바이든 행정부의 세계전략에 대한 불신을 키웠다. 결국 미국의 전략은 거창한 명분으로 포장한 ‘팍스 아메리카나’(미국 주도하의 평화)였음을 각국이 인식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IRA로 인한 파장과 동맹국들의 불만을 조기에 해소하지 못하면 미국의 세계전략에 구멍이 생길 수도 있다.
정부, 안팎서 위험 지적에도
한·미 동맹 앞세워 적극 동참
미 ‘국익 우선’에 뒤늦게 당혹
■ 한·미 동맹 올인 후폭풍
미국의 IRA 전격 발효는 윤석열 정부에도 커다란 시련이다. 윤석열 정부는 미국을 향한 일방적 정책이 위험하다는 지적에도 아랑곳없이 ‘한·미 포괄적 전략동맹 강화’를 내세워 바이든 행정부의 전략을 적극 지지하고 앞장서 동참했다. 정부 출범 열흘 만에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미관계를 안보동맹에서 ‘경제·기술 동맹’ 관계로 확대 발전시키기로 했다.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와 ‘칩4’로 불리는 반도체 공급망협의체에도 참여키로 했다. 현대자동차는 대규모 대미 투자를 약속했고 바이든 대통령은 “실망시키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미국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세계무역기구(WTO) 협정 위반 소지가 다분한 이번 조치를 ‘전광석화처럼’ 해치웠다. IRA에 따르면 전기차의 경우 북미 지역에서 조립된 차량에만 7500달러의 신차 보조금을 지급하기 때문에 전량 한국에서 생산되는 현대·기아차는 보조금을 받지 못해 미국 시장에서 경쟁력을 상실하게 된다. 배터리 소재·부품에서도 북미산이 일정 비율 이상 포함해야 세액 공제를 받을 수 있어 중국 등에 의존하고 있는 국내 기업들의 타격이 불가피하다.
최근 미 의회를 통과한 반도체 지원법안에도 ‘인센티브를 받은 기업은 10년간 중국에 신규투자 금지’의 가드레일 조항이 포함돼 있어 중국 현지에 공장이 있는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불이익이 예상된다. 가치 동맹을 내세운 윤석열 정부는 서슴없이 국익을 선택한 미국의 조치에 당혹감과 위기감을 드러내고 있다. 정부는 국내 비판과 한·미 동맹에 미칠 파장 등을 우려하며 미국을 상대로 비공개적 항의와 전방위 설득에 나서고 있지만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전직 관료 출신 전문가는 “이번 조치는 의회 입법을 통해 이뤄진 것이어서 수정하려면 역시 입법 조치를 거쳐야 한다”면서 “미국의 선의를 전제로 하는 대외정책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땅값 비싼 도쿄에 9㎡ ‘극소원룸’ 인기…도쿄 젊은이들이 몰리는 이유
“넓은 곳보다는 직장과 가까운 곳이 좋아요. 평일에는 집에 있는 시간이 적으니까 집이 굳이 넓을 필요가 없잖아요.”
일본 젊은층에 인기인 ‘극소원룸’ 28일 일본 도쿄 기타신주쿠에 위치한 네일아티스트 고마쓰바라 가나의 9㎡ 극소원룸. 도쿄 김진아 특파원© 제공: 서울신문
일본 도쿄도 신주쿠구에서 네일아트업에 종사하는 고마쓰바라 가나(27)는 28일 기타신주쿠에 있는 자신의 ‘극소원룸’ 내부를 보여주며 이같이 말했다. 1년 10개월째 살고 있다는 전용면적 9㎡에 불과한 그의 집에는 샤워실과 화장실, 싱크대 등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시설이 모두 있었다. 예상 외로 갖출 것은 다 갖춘 원룸에는 2명이 앉을 만한 소파를 뒀는데 이것만으로도 공간은 꽉 찼다. 생활하기에 지나치게 좁은 게 아닌가 싶었지만 3.6m 높이의 천장이 이 문제를 해결해줬다. 일본 건축기준법에 일반 주택의 천장은 2.1m 이상으로 돼 있지만 이 극소원룸의 천장은 기준보다 1.5m 이상이나 됐다. 이 높은 천장을 이용해 전용면적에 포함되지 않은 다락방 같은 공간이 있어 그는 이를 침실로 활용하고 있었다.
일본 도쿄 도심(23구)에 사는 젊은층에 이런 형태의 극소원룸이 주목받고 있다. ‘극소원룸’(QUQURI, 그리스어로 고치)을 만든 부동산회사 ‘스피리타스’(SPILYTUS)의 나카마 게이스케(35) 대표는 “과거 신주쿠에 처음으로 창업하고 살고 있던 도쿄도 하치오지시까지 왕복으로 2시간을 오갔는데 일이 바빠지면서 출퇴근으로 버리는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며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젊은이들이 돈과 시간을 아끼면서도 직장과 가까운 곳에서 편하게 살 수 있는 집의 구조를 고민했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2015년 탄생한 극소원룸은 현재 1500호가 넘는 데다 98%의 입주율을 보이고 있다.특히 나카마 대표는 집의 넓이에 주목했다. 그는 “전용면적이 줄어들수록 월세가 줄어들게 되니 그 부분에 방점을 뒀고 천장의 공간을 활용하는 방법도 생각했다”며 “현관과 거실 사이의 복도 등 불필요한 공간을 최소화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스피리타스는 신주쿠와 메구로, 에비스 등 도쿄 중심가에 직접 땅을 사서 극소원룸을 짓고 일반인들에게 판매한다. 극소원룸을 구입한 일반인은 이를 다른 이들에게 세를 주는 식이다. 여기까지는 한국의 일반 부동산업체와 비슷하다. 하지만 원룸의 크기를 최소화해 일반 1개의 원룸을 2개로 쪼개면서 한정된 땅에 최대한의 집을 지었다. 이렇게 하자 일반 투자자들의 수익도 많아질 수밖에 없고 거주자도 시세보다 저렴한 월세에 만족하면서 서로 윈윈이 되는 게 차이점이다.
공간의 넓이보다 실용성에 중점을 두는 일본 젊은층의 거주 선호도도 극소원룸의 인기에 한몫하고 있다. 소득이 얼마 되지 않는 사회초년생에게는 생활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월세가 고민일 수밖에 없다. 고마쓰바라는 “직장과 가깝고 깨끗한 곳을 고르고 싶었다”며 “보통 이 주변의 월세는 10만~12만엔(약 107만원) 정도인데 시세보다 2~3만엔(약 24만원)가량 저렴한 7만엔(약 68만원)에 거주할 수 있고 보증금과 사례금이 없다는 것도 매력적”이라고 강조했다.극소원룸이 인기를 얻는 또 다른 이유로 잠잠했던 도쿄 집값이 최근 들어 꿈틀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20대라도 영혼까지 끌어모은 돈으로 아파트를 구입하는 게 불문율처럼 여겨지지만 일본은 다르다. 1990년대 초 거품경제 붕괴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부동산 대폭락을 경험한 일본에서는 부동산 투자는 일부 부유층을 제외하고는 다른 세상 이야기였다.
도쿄 기타신주쿠에 위치한 극소원룸 외관 일본 도쿄 기타신주쿠에 위치한 전용면적 9㎡ 극소원룸 외관.도쿄 김진아 특파원© 제공: 서울신문
하지만 코로나19로 재택근무가 늘어나면서 집에 투자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최근 엔화 가치 하락으로 외국인의 도쿄 부동산 투자가 늘어나면서 도쿄의 아파트 가격이 뛰기 시작했다. 일본 부동산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6월) 도쿄 23구의 신축 아파트 1호당 평균 가격은 전년 동기 대비 0.6% 상승한 8091만엔(약 8억원)으로 집계됐다. 상반기로는 2년 만의 상승이자 이 연구소가 가격 조사를 시작한 2008년 이후 2020년(8190만엔)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수준이었다./서울신문
'윤석열 발언' 비판했다고... 경찰, 교사 소환
'윤 선제타격론' 비판 교사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교육청 이어 수사기관까지?
심화국어' 수업시간에 전쟁소설을 가르치다가, 윤석열 대통령의 북한 선제타격론을 비판했던 경기도의 한 자율형사립고(자사고) 교사에 대해 경찰이 수사를 개시했다. 교사의 수업활동에 대해 수사기관이 개입한 것은 근래 들어 이례적인 일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관련 기사: [단독] '윤석열 발언' 비판 교사, 중징계 요구 논란 http://omn.kr/20emh ).
26일 오후 2시, 경기 안산상록경찰서는 안산지역 A자사고 B교사를 소환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 경찰이 수사를 벌이는 죄명은 '공직선거법 위반'이다.
대통령 발언 비판이 선거법 위반?
국민의힘은 지난 5월 26일 언론 공지를 통해 "안산시 소재 고교 국어교사가 선거운동 금지의무를 준수하지 않고, 고3 학생들에게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을 비방·음해한 혐의로 고발했다"고 밝혔었다.
<오마이뉴스>가 살펴본 고발장에 따르면 고발인은 "교육의 정치 중립성은 헌법(제31조4항)과 법률에 의해 보장되므로 사립학교 교원은 정치 중립의무를 준수하여야 하고 선거운동을 해서는 안 된다"면서 "그런데도 B교사는 5월 17일 윤 대통령이 '나치'로 묘사된 PPT 화면을 사용하면서 대통령의 북한 미사일 선제타격 발언을 비난했다", "윤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언급한 '반지성'을 인용해 윤 대통령 등을 반지성주의자들이라고 언급하거나 대통령 등이 '빨갱이 선동'을 일으키고 있다는 등의 발언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로써 B교사는 6월 1일 지방선거와 관련하여 특정 정당에 대해 지지 또는 반대의 의사를 표명함으로써 선거운동을 했다"고 덧붙였다.
안산상록경찰서가 이첩 받은 고발장이 국민의힘이 수사기관에 접수한 고발장과 일치하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해당 고발장 내용에 대해 법조인들과 B교사는 "법률해석도 틀리고, 당시 B교사의 발언 내용도 확대·왜곡돼 있다"고 반박했다.
고발인이 '정치중립 위반' 근거로 든 헌법 제31조4항은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교육문제를 전문으로 다뤄온 박은선 변호사는 "이 헌법 조항은 교원의 정치적 중립의무를 규정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교육의 정치중립성을 보장해줘야 한다'는 내용"이라고 지적했다.
"매카시 비판인데..." 발언 내용도 과장돼
고발인이 주장한 B교사의 발언 내용도 실제와 차이가 있다. 고발인은 "B교사가 '대통령 등이 빨갱이 선동을 일으키고 있다'고 발언했다"고 주장했지만, 대통령이 아닌 미국 상원의원을 비판한 것이었다.
<오마이뉴스>가 당시 수업 녹취록을 직접 살펴본 결과다. 이 녹취록은 경기도교육청에 민원을 제기했던 학생이 녹음한 것이다. B교사의 해당 발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반지성이 뭔지 알아요? 매카시즘이라는 열풍이 불었어요. 미국사회에. 매카시라는 상원의원인가 이 사람이 그야말로 빨갱이 사냥 선풍을 일으켰어요."
또한 고발인은 "지방선거와 관련하여 특정 정당에 대해 반대의 의사를 표명함으로써 선거운동을 했다"고 주장했지만, B교사는 당시 수업에서 특정 정당을 거론하지도, 비판하지도 않은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확인됐다. 다만 B교사는 윤 대통령의 발언과 자녀를 군대에 보내지 않은 기득권층에 대해서 비판 목소리를 냈다.
"윤 대통령을 '나치'로 묘사했다"는 고발인 주장에 대해 B교사는 <오마이뉴스>에 "한 언론사 만평을 PPT 수업자료 한 구석에 실었던 것"이라면서 "실제 수업에서는 이 만평에 대해 언급하지도 않았고, '나치'란 말을 꺼내지도 않았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B교사는 "평화의 중요함을 가르치기 위한 해당 수업자료는 이미 지난 4월 중순경에 모두 만들었고 EBS 교재에 나온 박완서의 <겨울나들이>를 가르치는 시간에 맞춰 뒤늦게 활용한 것이며, 선거에 영향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앞서 경기도교육청 산하 안산교육지원청은 지난 6월 20일 A고에 '성실 의무, 품위 유지의 의무 위반'을 들어 B교사에 대해 '중징계(정직 1월)'를 요구했다. 이에 대해 A고는 지난 7월 26일 교원징계위를 열었고, 지난 8월 18일 '감봉 1개월'이 적힌 징계통보서를 B교사에게 보냈다. / 윤근혁 오마이뉴스
떨어지면 수출 울상 급등하면 경제 휘청
원·달러 환율이 급격히 오르며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서울의 한 은행에서 달러를 정리하는 모습.ⓒ연합뉴스
원·달러 환율(이하 환율)은 떨어져도 걱정이고, 올라도 걱정입니다. 환율이 떨어지면 수출을 하는 기업들이 비명을 지르곤 합니다. 동일한 달러 표시 금액으로 수출을 하더라도 한국 원화로 환전할 때 받을 수 있는 금액이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요즘처럼 환율이 1300원 할 때 외국에서 번 1달러의 가치는 1300원이지만, 환율이 지난해 이맘때처럼 1150원 내외에 머무르는 경우라면 외국에서 같은 1달러의 매출을 올리더라도 기업에 들어오는 돈은 1150원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수입을 많이 하는 기업들은 환율 하락이 반갑습니다. 외국에서 수입할 때 드는 비용을 낮출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수출을 많이 하는 기업에게는 환율 상승이 유리하고, 수입을 많이 하는 기업에게는 환율 하락이 유리합니다.
이렇게 환율의 변화는 양면성이 있지만, 요즘과 같은 환율의 상승(원화 약세)은 득보다 실이 더 크다고 봅니다. 무엇보다도 기축통화인 달러 대비 원화의 구매력이 떨어지다 보니 국외 거래에 들어가는 총량적인 비용이 커지게 됩니다. 외국 여행을 가려 해도 환율이 높아지는 만큼 비용이 더 들게 됩니다. 또한 환율 상승은 외국에서 수입되는 상품의 구매비용, 즉 수입물가를 높여 인플레이션을 심화시키게 됩니다. 요즘처럼 물가 상승이 걱정거리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환율 상승은 달가운 일이 아닙니다.
■ 달러 희소할 때 벌어지는 외환위기
국내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데는 자국통화가 필요하고, 외국과 거래를 할 때는 서로가 기꺼이 수용할 수 있는 통화가 필요합니다. 통상 서로 다른 국가들 간에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는 통화를 기축통화라고 부릅니다. 우리 시대의 기축통화는 단연 미국 달러화입니다.
완전히 폐쇄적인 경제라면 외국통화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현대 경제는 어떤 식으로든 다른 나라와 교역을 하면서 살아야 하고, 특히 한국처럼 무역의존도가 높은 국가는 더욱 그렇습니다. 무역의존도는 국가의 경제규모(GDP)에서 수출입이 차지하는 비중을 의미합니다. 2021년 기준 한국의 무역의존도는 82.1%입니다. 미국이 30.3%, 일본과 중국이 각각 37.9%와 37.4%라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의 무역의존도는 매우 높습니다. 당연히 대외교역에 필요한 달러의 중요성도 다른 나라들보다 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특히 기축통화인 달러의 가치는 위기 때 더 커집니다. 가깝게는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멀게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경험했던 것처럼 큰 위기가 터지면 중앙은행은 금리를 낮추고, 경제에 유동성(돈)을 공급합니다. 이런 중앙은행의 역할을 ‘경제의 최종 대부자(The lender of last resort)’ 기능이라고 부릅니다. 위기가 터지면 경제에 돈을 쏟아부어야 하는데요, 한국은행은 자국통화인 원화를 개념적으론 무한정 공급할 수 있지만, 달러를 만들어낼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한국 경제의 심각한 위기는 대부분 달러가 희소해지는 상황에서 현실화됐습니다. 1997년 외환위기 때는 환율이 2000원대까지 올라갔고,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1600원선까지 치솟은 바 있습니다. 외환위기란 국제 교역에 사용되는 기축통화, 즉 달러가 충분하지 않아서 발생하는 위기를 말합니다. 또한 자국통화를 찍어낼 수 있는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으로 해결할 수 없는 위기이기도 합니다. 앞서 환율은 올라도 걱정이고, 떨어져도 걱정이라고 말씀드렸는데요, 심각한 위기는 환율이 급등하면서 나타난다는 점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 통화스와프는 결정적 무기
최근에도 환율이 상승하면서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통상 큰 위기가 생길 때 환율이 급등하곤 했는데, 1300원 내외에서 움직이고 있는 최근의 환율은 코로나 확산으로 공포가 극대화됐던 2020년 3월의 1290원선보다 높으니 걱정하는 목소리가 충분히 나올 수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환율 안정의 방편으로 한·미 통화스와프가 거론되고 있습니다. 스와프(swap)는 서로 바꾼다는 의미입니다. 한국의 원화와 미국의 달러화를 서로 바꾸는 행위가 한·미 통화스와프입니다. 통화스와프의 주체는 당연히 중앙은행입니다. 원화에 대한 발권력을 가진 한국은행과 달러를 만들어낼 수 있는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통화를 서로 교환하게 됩니다. 시장에서의 거래라는 복잡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중앙은행 간의 공조로 필요한 통화를 구할 수 있는 것이지요.
이런 과정은 ‘스와프’로 표현되지만 실제로는 미국에 의한 일방적인 달러 공여 행위와 다름없습니다. 한국은 달러가 필요하지만, 미국에게 한국 원화가 필요한 것은 아니니까요. 통화스와프는 회계적 요식행위에 불과합니다. 실제로 한·미 통화스와프 협정은 한국에 달러가 절실히 필요할 때 체결된 바 있습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국면에서 외화가 급속도로 유출되며 환율이 1600원대까지 치솟았을 때, 그리고 앞서 언급한 2020년 3월 코로나19 팬데믹 국면에서 환율이 1300원선에 육박했을 때 통화스와프가 체결됐고, 이후 환율은 완연한 하락세로 돌아선 바 있습니다.
통화스와프는 외환시장 안정을 위한 결정적 무기입니다. 외환위기는 원화가 부족해서 생기는 게 아니라 달러가 부족해서 생기는 현상인데, 달러에 대한 배타적 발권력을 가진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달러를 사실상 무상으로 지원해주는 행위가 통화스와프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최근 한국에서 벌어진 통화스와프 논의는 좀 우스꽝스러운 면이 있기도 했습니다. 지난 7월 미국의 재닛 옐런 재무장관이 방한했을 때 한·미 통화스와프를 요청하는 움직임이 있었는데, 번지수가 틀렸다는 생각입니다. 통화스와프는 한국과 미국의 행정부 관료들이 아닌 중앙은행들이 협의해야 할 의제이기 때문입니다.
2021년 한국의 무역의존도는 82.1%로 미국이나 일본, 중국 등에 비해 매우 높다.
ⓒ연합뉴스
■ 기축통화국의 보호무역주의는 반칙
미국처럼 기축통화를 가진 나라는 많은 프리미엄을 누립니다. 일단 기축통화국에서는 외환위기가 발생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경험한 1997~1998년 IMF 환란도 그랬지만, 외환위기는 민간이나 정부가 외국에 지불해야 할 외화가 바닥났을 때 벌어집니다. 기축통화를 가진 나라는 중앙은행이 국제사회에서 통용되는 자국 화폐를 얼마든지 찍어낼 수 있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대외 지급 불능 사태를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습니다.
기축통화국으로서 이점을 누리기 위해 그들이 감내해야 할 책무도 존재합니다. 경상수지 적자가 그것입니다. 기축통화가 되기 위해서는 해당 통화가 자기 나라 밖으로 광범위하게 퍼져야 합니다. 그래야 통상적인 국제 거래에서 쉽게 사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국통화를 어떻게 나라 밖으로 퍼뜨릴 수 있을까요? 가장 쉬운 방법은 경상수지 적자의 감수입니다. 다른 나라로부터 재화나 서비스를 수입하고, 그 대가로 자국통화를 지불하면 자국 화폐가 널리 퍼질 수 있습니다.
경상수지 적자는 바람직한 현상으로 보기 어렵지만 기축통화국은 이를 감내해야 합니다. 미국 예일 대학 교수였던 트리핀은 기축통화국이 숙명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이런 모순적 상황을 지적했는데, 이는 ‘트리핀의 딜레마’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유럽과 아시아 등이 전쟁으로 쑥대밭이 되면서 미국에 수출할 여력이 없었을 때 미국은 무상원조를 통해서라도 달러를 공급했습니다. 유럽 원조인 마셜 플랜, 한국전쟁 직후 한국 원조가 그 사례들입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트럼프 행정부 때 강화됐던 보호무역주의는 반칙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기축통화국으로서 갖는 이점을 누리며 자신의 책무는 방기하는 행위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7월19일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과 한국을 방문한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 (오른쪽 두 번째)이 회의를 마친 후에 만찬장으로 향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 개인 ‘환테크’ 면에서 달러 자산 중요
저는 달러로 표시된 자산을 늘 보유하는 것이 개인의 자산배분 혹은 ‘환테크’ 관점에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원화도 다른 나라들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건실한 통화입니다. 우리나라는 기조적으로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국가이기 때문입니다. 경상수지는 자력으로 달러를 벌어들일 수 있는 능력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달러가 순유출되는 것이 아니라 한국으로 들어오는 구조이기 때문에 원화 가치가 무한정 약세(환율 상승)를 나타내는 경우를 상상하기는 어렵습니다. 특히 한국은 제조업 경쟁력이 강하기 때문에 환율이 상승하면 한국 주력 기업들의 수출이 늘어나면서 후행적으로 환율이 안정되는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 시대의 기축통화인 달러의 권위에 필적할 만한 통화는 없습니다. 기축통화인 달러, 달러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준기축통화로 평가받고 있는 유로화와 엔화 정도를 제외한 모든 통화는 주변부 통화에 불과합니다. 한국 경제에 큰 결함이 없더라도 요즘처럼 미국이 공격적으로 금리를 올리거나, 글로벌 경제에 위기가 발생하면 안전자산인 달러 가치가 치솟곤 합니다. 3~4년에 한 번씩은 요즘과 같은 ‘강달러’ 현상이 주기적으로 반복되기 때문에 자산의 일부는 달러로 보유하는 게 좋다고 봅니다. 미국 주식이나 채권에 투자하는 방법도 있지만, 거주자 외화예금 등을 통해 이자를 받으면서 달러로 예금할 수단도 있습니다.
시사인/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스위스는 안락사 천국일까... 존엄한 죽음 위한 '편도 티켓'의 딜레마
이탈리아 여성, 바젤서 존엄사... '죽을 권리' 질문
동행자, 한국일보 인터뷰서 "죽기 전 확신 차있었다"
스위스서조차 쉽지만은 않아... "합법화 필요 이유"
존엄사를 택한 이탈리아 출신 고(故) 엘레나 알타미라 여사의 생전 모습이 담긴 영상. 루카코스치오니협회 유튜브 캡처
고(故) 엘레나 알타미라 여사의 마지막 편지
"안녕하세요. 이탈리아인 엘레나입니다. 지금 저는 스위스 바젤에 있습니다. 지난해 폐암 진단을 받았어요. 이미 가망이 없는 상태였죠. 두 가지 길이 보였어요. 남은 몇 달 동안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긴' 길, 그리고 스위스에서 존엄사를 통해 선택할 수 있는 '짧은' 길. 저는 후자를 택했어요. 이 영상을 통해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보냅니다. 차오(안녕)."
엘레나씨가 남긴 영상 편지가 이탈리아를 흔들었다. 엘레나씨는 존엄사(안락사)를 위해 스위스 바젤로 향했다. 이달 2일 69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죽음은 누구도 정답을 말할 수 없는 질문을 던졌다. 스위스행은 최선이었을까, 고통스러운 삶도 죽음보다 나은 것 아닌가, 삶을 끝맺을 권리가 개인에게 있나...
한국일보는 스위스의 유력한 존엄사 조력단체인 '디그니타스'와 '엑시트', 그리고 엘레나씨의 마지막 여행에 동행한 이탈리아 활동가 마르코 카파토를 인터뷰했다. '잘 사는 것(웰빙)'과 '잘 죽는 것(웰다잉)'을 다 고민해야 하는 시대임에도 한국에선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자 금단의 영역인 존엄사에 대해 묻기 위해서다.
외국인에게도 열린 존엄사... 경험·인프라 풍부
이탈리아에서는 원칙적으로 존엄사가 불법이다. '기계에 의존해 삶을 유지하는 상태' 같은 특수 사례에만 존엄사가 제한적으로 인정된다.
존엄사를 결심한 엘레나씨가 가장 먼저 떠올린 나라는 스위스였다.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등 존엄사를 합법화한 다른 유럽 국가들도 있지만, 스위스에선 1942년부터 외국인에게 존엄사를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십 년간 타인의 존엄사를 도운 스위스 조력단체들을 외국인도 쉽게 접촉할 수 있다. 스위스의 '존엄사 제도'가 세계에서 가장 선진적인 것은 물론이다.
조력단체들이 각각 집계하는 데다 죽음이 내밀한 영역이어서 스위스의 외국인 존엄사 공식 통계는 없다. 2020년 스위스에서 집행된 존엄사는 내·외국인을 합해 1,300건 정도로 추산된다. 엑시트와 디그니타스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스위스로의 마지막 여행'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프랑스 배우 알랭 들롱은 지난 3월 "스위스에서 존엄사하고 싶다"고 선언했다. 2018년 당시 호주 최고령 과학자였던 104세 데이비드 구달 교수는 평소 즐겨듣던 베토벤교향곡 9번 '환희의 송가'를 배경으로 스위스에서 영면에 들었다.
'편도 티켓'을 끊고 스위스로 가는 외국인 존엄사 희망자들이 거치는 대략적인 절차는 이렇다. 조력단체와 상담을 통해 존엄사 가능 여부를 확인한 뒤 → 존엄사를 실행할 일정을 잠정 확정한다 → 해당 날짜에 맞춰 스위스에 도착해 조력단체 및 의사와의 추가 면담을 거치고 → 존엄사 일정을 최종적으로 확정한다 → 몇분 안에 죽음에 이르게 하는 약품 '펜토바르비탈'을 처방받은 뒤 → 환자가 '직접' 투약해 사망한다.
스위스 존엄사 조력단체인 EXIT의 독일판 브로셔에는 풍광이 아름다운 얼음산을 배경으로 두 사람이 앉아있는 모습이 실려 있다. EXIT 독일 자료
'천국'이라기엔... '낯선 곳'에서의 '쓸쓸한 죽음'
스위스라는 선택지는 과연 '무결한 최선'일까. 취재 결과, 그렇지는 않았다.
고향 혹은 조국이 아닌 곳에서 세상과 작별해야 하는 것 자체가 고통스럽다고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 엘레나씨도 "내 집에 있는 내 침대에서 남편과 딸의 손을 꼭 잡고 삶을 끝낼 수 있었다면 참 좋았을 텐데... 불행하게도 그게 불가능했다"고 토로했다.
스위스라고 하면 알프스의 아름다운 풍광이 떠오르겠지만, 그곳에서의 죽음마저 낭만적인 것은 아니다. 숨을 거두는 장소는 대체로 스위스 병원 한구석의 작은 침대 위다(스위스인만 병원 아닌 집 등에서 존엄사할 수 있다). 물약을 마시면 2~5분 안에 사망한다고 하는데, 그 전까지 존엄사할 자격이 있는지를 스위스 정부에 계속 증명해야 한다. 삶을 조용히 돌아보는 시간이 여유롭게 허락되지 않는 것이다.
2018년 5월 스위스 바젤에서 촬영된 호주 과학자 데이비드 구달의 생전 모습. 그는 104세의 나이에 존엄사를 택했다고 로이터는 보도했다. 로이터 홈페이지 캡처
또 다른 비극은 사랑하는 사람들 곁에서 눈감을 수 없다는 것이다. 존엄사를 위한 여행을 함께하는 가족들은 스위스 혹은 모국 법에 의해 자살 방조 또는 자살 선동 혐의를 받을 위험에 노출된다.
엘레나씨 역시 가족을 동반하지 못했다. 유럽의회 이탈리아 의원 출신인 존엄사 합법화 활동가 카파토씨에게 동행을 요청한 이유다. 카파토씨는 5년 전 존엄사를 원하는 남성(故 파비아노 안토니아니)과 스위스에 동행했다가 이탈리아에서 기소된 끝에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카파토씨는 엘레나씨의 죽음을 방조한 혐의로 또다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이번엔 징역 12년의 중형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카파토씨가 아니었다면 엘레나씨 가족이 짊어질 뻔했던 부담이다.
카파토씨에게 엘레나씨의 마지막 모습을 들었다. "의사 면담 등 모든 절차를 마치고, 투약하기 직전에 남편이 스위스에 도착했다. 딸은 스위스로 오지 못했다. 이탈리아에서 어머니의 임종을 들어야 했다." 카파토씨는 존엄사 합법화라는 '대의'를 위해 활동하는 자신과 같은 사람이 아니라면, 가족의 존엄사를 지켜보는 건 일반인들이 짊어지기엔 너무 무거운 짐이라고 했다.
이탈리아 출신 고(故) 엘레나 알타미라 여사가 존엄사를 위해 스위스로 향하는 길에 동행한 유럽의회 의원 출신 이탈리아 활동가 마리오 카파토(맨 오른쪽)씨의 모습이 그가 대표로 있는 단체 루카 코스치오니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다. 단체는 카파토씨의 자살방조 등 혐의로 처벌받을 위기에 처한 그의 법적 싸움을 위해 모금을 진행하고 있다. 홈페이지 캡처
비용도 만만치 않다. 영국 사우스포트에 사는 앤드루 형제는 "신경계 퇴행성 질환 인 헌팅턴병을 10년째 앓던 어머니의 존엄사에 1만 파운드를 썼다"고 지난 5월 현지 언론 리버풀 에코에 말했다. 환산하면 약 1,600만 원이다. 한국에서 스위스까지 가려면 더 많은 금액이 들 것이다. 스위스에서 존엄사를 택했다고 알려진 한국인은 지금까지 2명이다.
체류 비용이 더 오를 수도 있다. 최근 스위스는 '외국인이 존엄사를 최종 승인받으려면 2주 동안 2회 이상 현지 의사와 상담을 받아야 한다'는 규정을 신설하려고 하고 있다. '더 오랜 체류'는 '더 많은 비용'을 뜻한다.
디그니타스는 "최초 가입비(200스위스프랑), 동반 자살 승인 비용(4,000스위스프랑), 진찰비(1,000스위스프랑), 도우미 고용·장소대여비(2,500스위스프랑), 장례 비용(2,500스위스프랑), 기타 비용(500스위스프랑) 등을 합해 최소 1만700스위스프랑(1,477만 원)이 필요하다고 홈페이지에서 안내하고 있다.
투약 직전 포기하는 사례도 있다. 스위스 언론 스위스인포는 이런 사연을 소개했다. "어릴 적부터 신경마비를 앓던 일본인 아이나씨는 2021년 존엄사 확정 날짜를 받고 스위스로 날아갔다. 30세였다. 그렇게 소원했던 펜토바르비탈을 손에 쥐었지만, 끝내 마시지 못했다. 결국 다시 일본으로 돌아갔다."
사망 이후에는 스위스 당국의 수사를 받아야 한다. 이른바 '정상적 죽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겹겹의 어려움 탓에 스위스의 조력단체들은 "우리의 쓸모가 없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디그니타스 관계자는 "타국에서 외롭게 삶을 끝내길 바라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라며 "우리의 목표는 '죽음을 위한 관광'이 사라지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리서치가 '조력존엄사 입법화 및 지원'에 대한 여론을 조사한 결과 조력 존엄사 입법화에 찬성한다는 의견은 82%로 나타났다. 반대한다는 응답은 18%였다. 뉴시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삶을 내가 맺을 권리란
'죽을 권리'가 '인권'에 속하는 영역이라는 인식이 커지면서 국제사회의 존엄사 합법화 목소리도 더욱 커지고 있다.
다시 카파토씨의 말. "엘레나씨는 죽음을 앞두고 울지 않았다. 미칠 것 같은 육체적 고통을 더 이상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비행기에선 자신이 얼마나 의미 있는 삶을 살았는지에 대해서 나에게 이야기했다. 특히 '마지막 순간'을 온전히 자신의 통제하에 두는 게 맞는다는 강한 확신을 갖고 있었다."
한국에서도 최근 존엄사 논의에 다시 불이 붙었다.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보건복지부 장관 소속 '존엄사 심사위원회'를 거친 뒤 의사가 존엄사를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조력존엄사법안을 얼마 전 발의했다. '호스피스 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다. 여론도 합법화를 해야 한다는 쪽에 기울어 있다. 한국리서치가 지난달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 82%가 존엄사에 찬성했다.
반론도 만만치는 않다. "의사에게 자살을 위탁하는 것"이라는 비판과, "생명 경시 풍조를 조장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안규백 의원실이 이달 24일 국회에서 주최한 토론회에서도 찬반 대립이 확인됐다. "말기 환자가 수용하기 어려운 고통은 주관적인데 존엄사 허용의 명확한 기준을 마련할 수 있느냐"(김현섭 서울대 철학과 교수), "조력존엄사법이라는 이름으로 의사조력자살을 합법화하는 것은 자살을 포장하는 것"(박은호 천주교 서울대교구 가톨릭생명윤리연구소장) 등 발언이 나왔다.
섣불리 존엄사를 인정하는 것보다 2018년 시행된 연명의료결정법(의학적으로 무의미한 연명 의료를 시행하지 않거나 중단할 수 있도록 사전에 결정해두는 제도)을 제대로 안착시키고, 환자들이 죽음을 생각하지 않도록 지원·보장을 강화하는 게 우선이라는 지적도 있다.
논의가 더 깊어지면, 어디까지 존엄사를 허용해야 하느냐와 같은 문제를 푸는 데도 진통을 겪을 것이다. 존엄사를 허용하는 캐나다에서도 최근 "만성질환 때문에 돈을 벌지 못하고 사회에서 멸시를 받고 있어서 죽기를 원한다"며 신청한 존엄사가 승인되며 논란이 됐다. "결국 존엄사가 사회적 약자의 죽음을 방치하는 제도로 전락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무엇보다 컸다.
스위스에서도 존엄사 논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관련 소송도 잇따른다. 엑시트 관계자는 이렇게 물었다. "가망 없는 가족의 병원비 때문에 나머지 가족들 생계를 유지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할까요? 고령화 사회에서는 더 많은 사례가 나올 텐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또다시 존엄사 합법화 논의를 앞둔 한국에 던지는 질문이었다.
베를린 신은별 특파원 ebshin@hankookilbo.com
파업에 ‘불법’ 딱지 붙이는 법원…30건 중 4건에만 “합법”
③ 노조엔 ‘엄격’ 기업엔 ‘관대’한 법원의 이중잣대
유최안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이 지난 6월24일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조선소에서 건조 중인 대형 선박 안에 설치한 1㎥ 크기의 철제구조물 속에서 농성을 하고 있다.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의 51일간 파업은 임금 인상 타결로 마무리됐지만, 대우조선해양은 파업으로 8000억원의 손해를 입었다며 노조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법원은 그간 이렇게 제기된 소송에서 노동자들에게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 반면, 기업의 주장엔 관대한 경향을 보여왔다. 민주노총 제공사진
손해배상 청구 소송’ 판결문 30건 분석…18건이 기업 승소
복합프린트기 렌털비용 500만원, 정수기·비데·공기청정기 렌털비용 191만원, 소독·방역 비용 82만원, 방호 용역비용 8억7900만원…. CJ대한통운이 올해 초 CJ대한통운 본사를 점거한 택배노조를 상대로 2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내면서 주장한 손해 중 일부다.
CJ대한통운은 모든 손해를 더하면 피해액이 100억원을 웃돌지만 일부만 청구하겠다고 했다. 과로사하지 않게 해달라는 ‘사회적 합의’를 이행하라며 이어간 파업의 대가로 노동자에게 따져물은 20억원짜리 ‘손배 폭탄’에는 ‘렌털비용’부터 ‘훼손된 기업가치’까지 반영됐다.
헌법이 보장한 쟁의행위는 본질적으로 사용자에게 손해를 가할 수밖에 없다. 이에 노동조합법 제3조는 “사용자는 이 법에 의한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로 인한 손해를 입은 경우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에 대해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규정해 쟁의행위를 보호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기업은 법을 우회해 노동자에게 책임을 묻는다. ‘불법파업’ 주장을 앞세워 거액의 손실을 산정한 후 배상을 청구한다.
법원은 기업의 주장대로 노동자에게 책임을 묻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공정해야 할 재판부가 절차를 거쳐 쟁의행위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불법이라니, 가진 자의 법이 아닌가….” 2003년 손배 소송의 부당함을 호소하며 목숨을 끊은 두산중공업 노동자 배달호씨는 유서에 이렇게 적었다. 이 한탄을 2022년 경향신문이 만난 노동자들도 되풀이했다.
1990년 노동자의 쟁의행위에 손배 책임을 처음 인정한 후 법원은 다수 파업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불법’ 딱지를 붙여왔다. 경향신문이 노동자의 쟁의행위에 대해 기업이 제기한 손배 청구 소송 판결문 30건을 분석한 결과 1심에서 60%(18건) 이상이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했다. 노동자가 파업에 따른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법원이 쟁의행위를 정당하다고 보고 원고 패소 판결한 경우는 4건에 그쳤다. 법원은 사용자의 책임에 대해선 대체로 관대하게 판결했다. 그러는 사이 기업들 사이에선 파업을 한 노동자가 평생 벌 수 없는 막대한 액수를 손실로 청구한 뒤 법원 판단을 기다리거나 노조가 무너지기를 기다리는 것이 편리한 방법으로 자리 잡았다. 시민단체 손잡고가 집계한 결과를 보면 2020년 기준 노동자에 대한 누적 손배 청구 금액은 658억원에 달한다.
사측 ‘협상 불응’ 책임 안 묻고
점거행위 불법성만 따져
“노동자가 손해배상해야”
정수기·비데 비용까지 포함
■ ‘합법파업’은 하늘의 별 따기
노동자는 왜 불법파업을 하는가. 노동자가 파업할 권리는 헌법이 보장하지만 합법으로 가는 길은 바늘구멍처럼 좁다. 법원은 노조법 제3조에서 ‘이 법에 의한’에 방점을 둔다. 법에 의한 ‘정당한 쟁의행위’일 때 손배 책임을 면할 수 있다는 것이 판례이다. 주체·목적·절차·수단 중 하나라도 정당하지 못한 파업에는 ‘불법’ 딱지가 붙는다. ‘불법’이 되는 순간 기업은 노동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많은 파업은 ‘목적’부터 불법이 된다. 노동자의 생존권에 직접 영향을 주는 정리해고를 두고 파업을 하면 불법이다. 법원은 2009년 쌍용자동차, 2011년 한진중공업의 대규모 정리해고에 반대하는 파업을 벌인 노동자들에게 각각 33억원, 59억원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민영화, 비정규직, 회사의 잘못된 경영에 대한 파업 역시 불법이다. 임금 인상이나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파업만 합법으로 인정된다.
간접고용이 확산하고 특수고용노동자가 늘어나는 현실에선 ‘단체교섭 주체가 될 수 있는 자’라는 기준이 합법파업으로 가는 길을 막아선다. 하청노동자의 노동조건은 원청의 결정 사항인 경우가 많지만 법원은 형식적 근로계약 관계를 중심으로 쟁의행위의 적법성을 따진다.
법원은 2010년 불법파견 해결을 요구하며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벌인 파업과 관련해 현대차가 제기한 11건의 손배 소송에서 모두 노동자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현대차가 단체교섭 주체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면서도 직접계약 관계가 아니라 원청을 상대로 한 파업은 불법이라는 현대차 주장을 받아들였다. 2007년 기아자동차 하청노동자들이 벌인 파업에 대해서도 똑같이 판단했다.
‘실질적 교섭권’을 고려하지 않는 판결은 노동권 위축으로 이어진다. 법원이 기업의 손배 소송을 부추긴다는 것이다. 원청으로서 교섭을 거부하던 대우조선해양은 하청노조를 상대로 470억원의 손배 소송을 제기했다. CJ대한통운과 하이트진로 역시 위·수탁 계약을 체결한 택배·화물기사들 파업에 손배 소송을 내면서 “계약관계가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원청이 실질적 사용자이자 교섭 대상이라는 판례가 나왔지만 현실에 자리 잡지는 못했다. 대법원은 2010년 현대중공업 판결에서 원청이 하청노동자의 노동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다면서 “사용자 지위를 인정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이후 같은 취지로 확정된 후속 판결이 많지 않다. 고용노동부도 하청노동자와 원청의 교섭은 원칙적으로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 중이다.
2O18년 택배노조가 분류작업을 거부하는 이른바 ‘공짜노동 거부’ 파업을 했을 때 CJ대한통운이 제기한 손배 소송에선 택배기사를 노동자로 인정한 중앙노동위원회 판정이 근거가 돼 파업의 정당성이 인정됐다. 사측 청구를 모두 기각한 판결이 확정됐다. 하지만 CJ대한통운은 사용자성 여부를 따지는 법적 다툼을 이어가며 소송전을 되풀이하고 있다.
법원이 파업을 뭉뚱그려 ‘불법행위’로 규정하는 게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파업 과정에서 일부 발생한 폭력이 파업의 정당성과는 무관할 수 있는데도 법원은 파업 자체를 불법행위로 본다는 것이다. 법원은 파업으로 발생한 손해뿐만 아니라 파업을 하지 않았어도 발생했을 손해까지 배상액에 넣는다.
조경배 순천향대 법학과 교수는 29일 “파업 자체와 파업 중에 일어난 위법한 행위는 구분해야 하고, 그로부터 발생한 손해도 구분해 산정해야 한다”며 “파업은 합법적인 헌법상 권리의 행사이고 권리남용이 있을 경우 위법한 행위가 될 수 있다는 순서로 (손배 책임을) 따져야 하는데 지금 법원 판단은 거꾸로 돼 있다”고 지적했다.
노동자에 30억원 물린 KEC
부당노동행위 유죄 받아도
노조 배상액은 4400만원 그쳐
■ ‘30억’과 ‘5000만원’, 불공평한 책임 가리기
법원이 노동자에게 손배 책임을 물을 때 파업 및 점거에 이르게 된 사정을 제대로 따져보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다. 예컨대 사측이 협상에 응하지 않아 발생하게 된 점거 농성으로 손해가 발생했다면 사측에도 책임이 있는데, 법원은 점거 농성 행위의 불법성만 따져 노동자의 책임을 묻는다는 것이다.
현대차 하청노동자들의 경우 ‘불법파견’이라는 사측의 중대한 책임 사유가 있었음에도 파업의 대가로 거액의 손해 배상액을 떠안았다. 현대차 하청노동자들은 2010년 대법원이 하청노동자 최병승씨의 불법파견을 인정하자 특별교섭을 요구하며 파업에 나섰다. 이들은 나중에 불법파견으로 인정됐다. 그러나 법원은 파업의 목적과 방식에 정당성이 없다며 ‘불법’ 딱지를 붙였다.
법원은 현대차가 교섭거부 등 원인을 제공한 책임을 고려해 노동자 측 배상 책임 비율을 60~70% 수준으로 제한했다. 그러나 “청구액은 피해 일부에 불과하다”는 현대차 주장을 받아들여 청구액 대부분을 인용했다. 총 11건의 손배 청구액은 약 194억원, 법원에서 인정한 배상액(미확정 사건 포함)은 약 189억원으로 집계된다.
송영섭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는 “불법행위로 규정되곤 하는 전면적·배타적 점거일지라도 배경이 된 원인이 사측의 무책임한 태도 때문은 아닌지, 노조가 그전까지 합리적인 방법을 취해왔는지 사안별로 판단을 달리해 책임을 따져야 한다”고 했다.
사측이 부당노동행위로 유죄를 받았는데도 노동자에게 손배 책임을 묻기도 한다. 2010년 공장점거를 이유로 회사로부터 301억원의 손배 소송을 당한 KEC 노동자들은 2016년 ‘30억원 배상’이란 조정안을 받아들였다. 이후 형사재판에서 노조파괴 문건 작성 등 파업 과정에서 사측이 부당노동행위를 한 사실이 드러났고, 사측은 처벌을 받았다. 그러나 손배 조정에 따른 급여 압류는 3년간 그대로 진행됐다.
사측의 부당노동행위에 사측은 얼마나 금전적 책임을 물을까. KEC 노조가 회사와 경영진을 상대로 낸 손배 소송 결과는 법원이 사측의 부당노동행위에 얼마나 관대한지 보여준다. 법원은 KEC 경영진에게 노조와해 책임이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노조에 400만원, 노동자 100여명에게 각각 약 40만원씩 지급하라고 판결하는 데 그쳤다. 3년간 급여를 압류당한 이미옥씨(52)는 “회사의 노조 탄압을 시작으로 파업과 점거까지 이어졌다. 수백명이 퇴사하고 30억원을 갚았지만, 법은 그런 과정은 들여다보지 않는다”며 “노동자에게 묻는 책임은 가혹한 반면 사용자에게 묻는 책임은 관대한 것이 현실”이라고 했다.
기업이 주장하는 손배 액수
법원, 구체적 입증 요구 안 해
■ 손배 청구하는 기업이 믿는 구석
기업이 청구한 손해 배상액에 대해 법원이 꼼꼼한 입증을 요구하지 않는 점 역시 기업의 손배 소송을 부추긴다. 법원은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파업 기간 소요된 각종 고정비와 부대비용을 노조가 물어야 한다는 기업의 주장을 들어주고 있다.
현대차 아산공장에서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2010년 12월9일 파업을 해 55분간 공장이 멈췄다며 현대차는 노조를 상대로 5600만원의 손배 소송을 냈다. 고정비 5000만원이 손해에 포함됐다. 1·2심 법원은 고정비에 대한 손실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대법원은 이를 다시 판단하라며 파기환송했다. 파업이 없었다면 올렸을 매출과 그 기간 동안 지출된 고정비를 모두 쟁의행위 손해로 판단한 1993년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들었다. 고정비에는 차임, 제세공과금, 감가상각비, 보험료 등이 포함됐다. 대우조선해양이 하루 매출 259억원 전부를 손실로 주장하고, CJ대한통운이 정수기 렌털비용부터 본사 건물의 차임까지 손해 산정에 포함시키는 배경이다.
판사 출신인 최우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위법한 쟁의행위 중 지출된 고정비용의 배상에 관한 검토’ 논문에서 “대다수 제조기업이 재고를 보유하는 등 예측하기 곤란한 판매량 저하 위험에 대비하는 점을 감안하면 쟁의행위로 생산량이 떨어지더라도 판매량 저하까지 발생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생산량 저하가 판매량 저하로 이어진다는 개연성을 적용하면) 손배 범위를 기업 측에 유리하도록 지나치게 확장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셈”이라는 것이다.
부풀린 배상액을 법원이 인정하지 않더라도 기업은 제재를 받지 않는다. 기업이 ‘아니면 말고’ 식으로 거액의 손배 소송을 제기하는 배경이다. 반면 노동자는 재판을 거치는 동안 강하게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자동차부품 회사 상신브레이크는 사측이 손배 소송에서 사실상 패소한 사례이지만 노동자들은 길어진 재판으로 피해를 입었다. 회사는 2010년 파업을 이유로 노조 간부 5명을 상대로 10억원의 손배를 냈다. 법원은 사측의 부당노동행위를 인정했고, 파업으로 손해도 없었다고 판단됐다. 다만 파업의 정당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위자료 500만원을 배상하라고 했다. 노동자가 승소한 셈이다. 그러나 2017년 확정 판결 때까지 7년간 노동자들은 4억1000만원 상당을 가압류당했다.
윤지선 손잡고 활동가는 “사측은 재판에서 한 번도 파업에 따른 손해를 입증한 적이 없었으나 주장만으로 재판이 3심까지 갔다”며 “파업으로 인한 손실이 인정되지 않아도 사측은 재판을 끌고 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고 했다./ 경향
박형준 부산시장의 언론 소송이 위험하다
검증과 비판에 재갈을 물리겠다는 의도” 지난해에도 언론사 상대로 5억 민사소송
박형준 부산시장의 ‘15분 도시 부산’ 공약을 비판한 부산MBC 시사 TV프로그램 ‘예산추적 프로젝터 빅벙커’에 편파적인 왜곡보도라며 반론보도 청구 소송을 제기한 부산광역시에 ‘권력 감시를 막으려는 언론탄압’이라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박형준 부산시장이 언론 소송을 반복하며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되는 상황에도, 부산시는 ‘왜곡 방송에 의해 정책 신뢰도가 훼손된 피해자’임을 강조하고 있다.
지난 4월 28일과 5월 5일에 방송된 빅벙커 ‘부산·대구 시장 공약 이행 점검’ 2부작은 출연자들이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임기 막바지의 권영진 전 대구시장과 박형준 부산시장의 기존 공약을 살펴보고 이행 사항을 점검했다. 방송은 박형준 시장의 대표 공약인 ‘15분 도시 부산’에 대해 점검하며 기본 계획이 완성되기도 전에 홍보성 사업에 예산을 집행한 점, 핵심 요소인 생태성보다 토건 위주 사업이 추진되고 있는 점 등을 지적했다.
방송이 나간 후 5월 10일 부산시는 ‘15분 도시 부산’에 대한 출연자 발언 16가지에 대해 정정보도를 요구했다. 언론중재위가 ‘조정 불성립’ 결론을 내리자 6월 29일 부산지방법원에 부산MBC를 상대로 반론보도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박형준 시장이 언론을 상대로 한 소송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3월15일 4·7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박형준 후보 선대위는 자녀입시 비리 의혹을 제기한 김승연 전 홍익대 미대 교수와 강진구 경향신문 기자, 열린공감TV, 경기신문 등 이를 보도한 기자들을 공직선거법상 위반 혐의 등으로 고발하고, 23일 손해배상 5억 원과 지연이자를 청구하는 소장을 부산지법 동부지원에 제기했다.
당시 박 후보와 배우자는 “김 교수 등이 마치 딸 입시를 위해 부정한 청탁을 하고 이런 사실을 덮고자 검찰수사에 외압을 행사한 것처럼 허위사실을 주장함으로써 명예와 인격권을 침해해 정신적 고통을 입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후 박 시장측에서 소를 취하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4월에는 2012년 부산 수영구 국회의원 선거에서 박 시장와 맞붙은 유재중 전 의원에게 성추문이 있었다고 폭로한 여성이 ‘사실 박 후보에게 5000만원을 받고 거짓증언을 했다’고 말한 녹취내용을 국제신문이 보도한 후 민중의소리, 뉴스타파 등에서 관련 기사가 이어지자 국민의힘 부산선대위는 “검증되지 않은 수사 전 가설에 불과한 수사 가상 시나리오를 확인된 공소사실인 것처럼 왜곡보도했다”며 “뉴스타파의 이 기사에 대해 언론중재위 제소는 물론 민형사상 강력한 대응을 바로 할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검증과 비판에 재갈 물리겠다는 명백한 언론탄압”
언론공공성지키기부산연대·전국언론노동조합은 29일 부산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소송을 가리켜 “오류에 대한 정정·반론 보도가 목적이 아니라 박형준 시장의 핵심 공약사업에 대해서는 검증과 비판에 재갈을 물리겠다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명백한 언론탄압”이라고 비판했다.
▲ 8월29일 언론 재갈물리기 나선 부산시장 규탄 및 소송 철회촉구 기자회견 현장. 사진=전국언론노조 제공.
아울러 시청자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비민주적인 행위임을 강조하며 “결과를 떠나 ‘언론 소송’만으로 언론의 감시와 비판을 일체 차단하고 부산시의 주장을 일방 전달하는 스피커 역할을 요구한 나쁜 선례를 남기게 된 것”이라며 “부산시의 ‘비판 봉쇄’ 소송으로 언론의 감시·비판 기능이 위축된다면,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에게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도 29일 성명을 내고 “부산시는 소장에서 이번 소송의 목적을 ‘부산시 정책과 관련하여 부정적인 프레임 형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자 함’이라고 부끄러움 없이 고백하고 있다”며 “언론의 의제 설정 기능을 그들의 입맛에 맞게 재단하겠다는 뻔뻔한 본심과 불순한 의도를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고 비판했다
기자회견 직후 부산시는 반박 입장문을 냈다. 부산시는 “15분 도시 정책은 기후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시민 행복도시를 만들기 위해 지속적으로 추진해나갈 부산시의 주요 정책”이라며 “사실과 다른 방송, 편향되고 왜곡된 방송으로 훼손된 15분도시 정책에 대해 부산시는 바르고 명확한 입장을 전달해 정책의 정당성과 신뢰성을 반드시 회복하겠다”고 했다.
아울러 “이 문제는 사실관계가 틀린 방송을 한 책임이 방송사 측에 있고, 부산시는 중요한 정책의 신뢰도가 왜곡 방송에 의해 훼손된 것을 바로 잡아야 하는 피해자의 입장”이라며 “사과와 방송내용 정정은 피해자가 희망하고 요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방송에서 틀린 사실관계를 바로 잡는 것은 토론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판단하여 (프로그램 출연을) 거부한 것”이라고 했다.
미디어오늘 윤유경 기자
선정적인 언론의 ‘몹쓸’ 성범죄 보도 언제까지 봐야 하나
성범죄 적시하지 않고, ‘속옷·더듬더듬·나쁜 손’ 자극적 표현 수두룩
경기 의정부지법은 8월23일 유사 강간·심신미약자 추행 혐의로 30대 남성 A씨에게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습니다. 성폭력 사건을 전하는 언론의 태도는 신중해야 합니다. 그런데 언론은 이번 사건을 두고 기사 제목에 ‘성추행’으로 적시하는 대신 범죄 상황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는가 하면, 선정적 표현으로 클릭 수를 유도하는 자극적인 보도를 냈습니다.
잘못된 보도는 피해자에게 상처를 남기는 2차 가해이자 인권침해가 됩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성범죄 사건을 보도하는 언론보도 행태와 함께 개선 방향을 살펴봤습니다.
▲ Gettyimagesbank
‘성범죄’ 적시 대신 ‘범죄행위’ 묘사
이번 성추행 사건을 전한 언론 보도는 포털사이트 네이버 검색 결과 총 9건입니다. 모두 8월 23일 보도됐는데요. 뉴시스 <집들이 과정서 만취 친구의 여자친구 추행한 30대 집행유예>(송주현 기자)처럼 제목에 ‘추행’이라고 범죄사실을 명확하게 적시한 기사도 있지만, 호기심을 자극하며 범죄 상황을 묘사한 기사도 많았습니다.
▲ 8월23일 의정부지법 성추행 선고를 보도한 기사. 표=민주언론시민연합
특히 머니투데이 <남자친구 옆에서 잠들었는데 ‘더듬더듬’… 남친의 친구였다>(황예림 기자)는 범죄 사실을 적시하지 않은 채 ‘더듬더듬’이란 표현을 사용하며 성추행 상황을 노골적으로 묘사했으며, 위키트리 <친구의 여자친구를… 30대 남성, ‘집들이’ 한 후 정말 파렴치한 짓>(김유표 기자)와 서울경제 <술취해 잠들었는데 ‘나쁜손’…남친의 친구였다>(박성규 기자)는 ‘성추행’ 대신 ‘파렴치한 짓’ ‘나쁜 손’이라며 가해 행위를 모호하게 표현했습니다. 세계일보 <만취해 잠든 친구의 여친 옆에 누워 추행한 30대 ‘집행유예’>(김현주 기자) 역시 성추행 상황을 설명하는 불필요한 내용을 제목에 담았습니다.
기사 내용은 더욱 심각합니다. 서로 베껴 쓴 듯 비슷한 내용의 기사들은 성추행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성추행 범죄 사실과 처벌 내용만 보도해도 충분한데 불필요하게 자극적인 상황 설명까지 덧붙인 부적절한 보도입니다.
제목에 ‘속옷, 속바지, 몸매’ 자극적 단어 포함
8월22일부터 보도된 또 다른 선정적인 사건 기사가 있습니다. 바로 연예기획사 대표가 소속 연습생에게 부적절한 사진을 요구했다는 기사인데요. 처음 ‘단독 보도’를 시작한 YTN은 이틀 동안 총 8건에 달하는 가장 많은 보도를 했습니다. YTN <단독-“몸매 확인하게 속옷 사진 보내라”…연예기획사 강요>(8월22일 황윤태 기자)는 ‘연예기획사 대표와 여성 연습생들이 나눈 모바일 메시지’ 영상 자료와 함께 “앞, 뒤, 옆모습을 찍은 전신사진을 요구”하고, “간혹 2주 연속 같은 색깔 속옷 사진을 보내면 지난주 것 아니냐고 따지기도 했”다며 범죄 상황을 소상히 전했습니다. 이후 YTN을 포함한 대부분 언론은 ‘연예기획사 대표의 성범죄 의혹’으로 범죄사실을 명확하고 간단하게 기술해도 되는데, ‘속옷, 속바지, 몸매’ 등 자극적 표현을 제목에 포함해 보도했습니다.
▲ 8월22일부터 23일까지 연예기획사 대표 성범죄 의혹 기사 제목에 ‘자극적 단어’를 넣은 언론사. 표=민주언론시민연합
MBN <매주 ‘속옷사진’ 요구한 기획사 대표… “속바지는 허벅지 가려서 안돼”>(8월22일 최유나 기자)와 위키트리 <소속사가 여자연습생에게 “속바지 벗고 사진 보내라 ㅋㅋ… 앞·뒤·옆 다 볼수 있게”>(8월22일 안준영 기자)는 가해자의 구체적인 문자 내용을 제목에 그대로 적어 선정적으로 보도했습니다. 뉴스인사이드 <연습생에 속옷사진 요구한 연예기획사 대표, “성적인 의도 없었다”>(8월23일 김희선 기자)와 한국경제 <걸그룹 연습생에 속옷사진 요구한 대표 고발… “성적 의도 없었다”>(8월22일 신현보 기자)는 가해자 해명을 제목에 싣고 ‘연습생으로부터 동의를 받았다’거나 ‘체중관리 등은 모델라인 업계에서 교본이 있다’는 주장을 담았습니다. 이처럼 가해 내용과 가해자 주장에 집중해 보도하면 성범죄 행위만 부각될 우려가 있는데요. 피해자를 배려하지 못한 기사 제목은 가해 사실을 선정적이고 자극적으로 보도해 성폭행 피해 사실 자체를 흥밋거리로 인식하게 할 뿐 아니라 2차 피해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 연예기획사 대표 성범죄 의혹을 보도한 기사. 네이버 검색 캡처 화면
‘더듬더듬, 몹쓸 짓, 손버릇 나쁜’… 성범죄에 모호한 표현
한국기자협회와 여성가족부가 2022년 4월 개정한 <성폭력·성희롱 사건보도 공감기준 및 실천요강>은 △가해자의 가해행위를 자세히 또는 선정적이고 자극적으로 묘사하거나 사건의 심각성을 희석하는 보도를 하지 않는다. △충격이나 혐오감을 줄 수 있는 범죄행위를 필요 이상으로 묘사하거나 범죄에 이용될 수 있는 가해자의 범행수법과 과정, 양태 및 수사기관의 수사기법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 △가해행위를 미화하거나 모호하게 표현(‘몹쓸짓’, ‘나쁜 손’, ‘몰카’, ‘성추문’ 등)하여 가해자의 책임이 가볍게 인식되게 하거나 가해행위의 심각성을 희석하는 부적절한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범죄 상황을 구체적으로 전달하거나 범죄 상황을 ‘더듬더듬’ 등으로 묘사하는 등 부적절한 제목을 포함한 보도는 반복되고 있습니다. 중앙일보 <무용 강습중 미성년 제자 몸 더듬더듬… 뮤지컬 배우의 몹쓸짓>(2월3일 장구슬 기자)은 1년 6개월 징역형을 선고받은 미성년자 성폭행 범죄를 ‘더듬더듬’ ‘몹쓸 짓’이라고 에둘러 표현했습니다. 머니투데이 <퇴마 핑계로 ‘더듬더듬’… 손버릇 나쁜 무속인 “동의받았다”>(7월21일 박효주 기자)는 여성 20여 명을 유사강간 또는 강제추행한 범죄를 ‘더듬더듬’ ‘손버릇 나쁜’으로 표현하면서 가해자 해명을 제목에 실었습니다. 아이뉴스24 <후임병 바지 속에 손 넣고… ‘더듬더듬’ 징역 6개월>(1월24일 홍수현 기자)은 강제추행 범죄를 두고 제목엔 ‘바지 속에 손 넣었’고 ‘더듬더듬’이라며 불필요하게 상황을 묘사해 성추행 내용을 언급하며 가해자와 피해자로 보이는 삽화까지 넣었습니다.
▲ 8월1일부터 29일까지 성범죄를 ‘몹쓸 짓’이라고 모호하게 보도한 기사. 표=민주언론시민연합
제목에 ‘몹쓸 짓’이 등장한 기사는 더 많습니다. 네이버 검색 결과 8월 한 달에만 ‘몹쓸 짓’을 제목에 언급한 기사는 총 6건입니다. 디지털타임스 <n번방도 놀란 ‘성착취’ 초교 교사…13세에 몹쓸 짓까지 ‘충격’>(8월14일 김성준 기자)를 제외하고는 ‘성폭력’ ‘성추행’ ‘성착취’라는 명확한 범죄용어 대신 ‘몹쓸 짓’이라며 부적합한 단어로 성범죄를 표현했습니다. 이는 가해행위의 심각성을 약화시키고 인권침해 범죄를 가볍게 인식하게 해 매우 부적절한 보도입니다. 하지만 반복된 지적에도 언론은 문제의식 없이 잘못된 보도관행을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엉망인 성범죄 보도를 봐야 할까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인하대 학생 사망 사건, 언론은 선정적‧성차별적 표현 쓰지 말라>(7월15일), <‘승무원 룩북’ 성상품화 문제라더니…선정적 제목·사진·영상까지>(2021년 12월15일) 등 보고서에서 언론의 잘못된 성범죄 보도관행을 여러 번 지적했습니다. 그러나 언론은 피해자가 있는 성범죄 보도를 자극적이고 선정적으로 보도하며 ‘클릭 수’를 높이는 데만 몰두하고 있습니다.
성폭력 범죄 보도 지침이 왜 있을까요? 신중하고 절제된 보도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세 번의 개정을 거친 성희롱·성폭력 사건 보도 참고 수첩(2014)이 세상에 나온 지 8년이 지났습니다. 언제까지 보도지침을 무시한 채 ‘클릭 수’에 매몰돼 돈벌이만 우선하는 언론 보도를 봐야 하는 걸까요. 피해자의 권리를 우선하고 성범죄를 명확하게 기술하는 보도가 필요합니다.
- 모니터 대상 : 2022년 8월22~24일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의정부지법 형사합의 13부’·‘속옷사진’으로 검색한 관련 기사 전체 / 2022년 1월1일~8월24일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더듬더듬’·‘나쁜 손’·‘몹쓸 짓’·’‘성추행’·‘성폭력’으로 검색한 관련 기사 전체/민주언론시민연합
제국의 위안부' 박유하 세종대 명예교수, 누구의 명예인가
[김종성의 히,스토리] 그의 저서로 피해 본 위안부 피해자의 명예는?
▲ 2017년 10월 27일 박유하 세종대 교수가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 공판을 마친 뒤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저서 <제국의 위안부>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박 교수는 이날 항소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서울고법은 무죄를 선고한 1심을 깨고 벌금 1000만 원을 선고했다. ⓒ 이희훈
정년퇴임을 하게 된 박유하 세종대학교 교수가 명예 문제를 페이스북에서 거론했다. 27일에 쓴 글에서 "정년퇴임을 하긴 하지만, 결국 정년 전에 재판을 끝내지 못해 솔직히 우울하다"라며 "세종대 동료들과 학생, 그리고 졸업생들에게도 미안한 마음, 정년 전에 학교의 명예와 나 자신의 명예를 회복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 나에게 세종대는 명예교수 타이틀을 부여했다"고 한 뒤 이렇게 썼다.
"판결이 나기 전에 나를 믿어준 셈이다. 편견 없이 그런 결정을 내린 세종대에 감사한 마음이다. 사회적 명예는 회복되지 않았지만 최소한 내가 속한 공동체 안에서의 명예는 회복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명예교수로 남게 된 것을 계기로 소속 공동체 내에서의 명예는 회복됐다고 자평하는 박유하 교수의 글은 그의 책 <제국의 위안부>에서 거론된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 문제를 생각나게 할 만하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박유하 교수의 관점은 마크 램지어 하버드대 교수의 관점과 같지 않다. 램지어 교수와 달리 박 교수는 위안부들이 성노예였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인정한다. <제국의 위안부> 제2부에 이렇게 썼다.
"물론 위안부들이 자신의 몸의 주인일 수 없었다는 점에서 대부분의 위안부는 성노예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의 주인이 군대라기보다는 업자였다는 점이다. 사전적인 의미대로 노예란 '자유와 권리를 빼앗기고 타인의 소유의 객체가 되는 자'라고 이해한다면 위안부의 자유와 권리를 구속한 직접적 주인은 포주들이었다."
위안부가 성노예였던 것은 틀림없지만 일본군의 성노예이기보다는 포주의 성노예였다는 식의 서술은 그의 책에 자주 나타나는 접근법이다. 위안부들이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일본제국주의의 책임을 지적하기보다는 다른 데서 직접적 책임을 찾아내는 방식이 그의 책에 자주 나타난다.
박유하의 서술 방식
그런 사례 중 하나로 제1부에 언급된 위안부들의 자아의식을 들 수 있다. 이 대목에서는 "위안부가 될 때, 전쟁터에 도착해서 처음에는 이런 몸이 된 나도 나라를 위해 일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라며 자부심을 밝힌 일본인 위안부의 증언이 소개된다.
그런 다음, "자원한 위안부들은 처음부터 자신의 역할이 군인의 위안-나라를 위해 일하는 것이라는 것도 명확히 인정하고 있었다"라며 "'이런 몸'이 되었다고 자기 자신을 비하해야 할 만큼 사회의 차별적인 시선을 받아온 그녀들에게는 군인을 상대하는 위안부란 처음부터 자신의 앉을 자리를 양지에 내받은 일이기도 했다"고 말한다.
박유하 교수는 위안부들이 긍지를 갖고 일했던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위의 서술(A)을 한 직후에 "그렇다 하더라도 그건 어디까지나 약간의 자존감을 높여주는 일이었을 뿐, 위안이라는 이름의 노동이 대부분의 위안부들에게 성과 신체를 혹사당하는 가혹한 노동이었다는 것은 달라지지 않는다"라고 서술(B)한다.
A와 B가 병렬되는 서술 방식이 자주 나타나기 때문에, 저자가 위안부 문제에 대해 객관적 시각을 유지하려고 애쓴 듯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서술 방식에 휘말리지 말고, 위안부 문제의 본질에 관한 저자의 은은한 메시지에 눈을 고정시킬 필요가 있다. 책 제목에서부터 드러나는 그 메시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대목 중 하나가 제1부에 나온다.
저자는 위안소에서 여성을 만난 어느 일본 군인의 체험담을 소개한다. "끝나고 나서 방을 나오는데, 여자가 누운 채로 '멋지게 죽어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라며 "뒤돌아보니 어둠 속에서 여자가 내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라고 한 뒤 "아마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그렇게 말했겠지요"라고 그 군인은 회고했다.
박 교수는 이 사례에서 위안부 동원의 본질을 찾아내고자 했다. "국가가 일본인을 비롯한 '제국의 위안부'에게 맡긴 가장 중요한 역할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라며 "성적 착취를 당하면서도 죽음을 당한 군인을 '후방의 인간'을 대표하여 전방에서 위안하고 그의 마지막을 지켜보는 역할. 말하자면 위안부에게는 신체적 위안뿐 아니라 정신적 위안까지도 요구되고 있었다"고 한 뒤 이렇게 말한다.
"그녀들이 황국신민서사를 외우고 무슨 날이면 국방부인회의 옷을 갈아입고 기모노 위에 띠를 두르고 참여한 것은 그래서였다. 그것은 국가가 멋대로 부여한 역할이었지만, 그러한 정신적 위안자로서의 역할-자기 존재에 대한 (다소 무리한) 긍지가 그녀들이 처한 가혹한 생활을 견뎌낼 수 있는 힘이 될 수도 있었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일이다."
여기서도 A·B 병렬 구조의 축소판 같은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국가가 멋대로 부여한 역할", "다소 무리한" 같은 표현은 저자가 공정한 시각을 유지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강조되는 메시지는 제국의 위안부, 제국의 일원이라는 사명감을 가져야 위안부 일을 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생각되는 성노예와 거리가 멀었다는 인상을 풍기는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이상한 논리 구조
그는 한국인 위안부들이 일본어 예명을 갖기도 하고 일본군을 간호하기도 하고 허드렛일을 도와주기도 한 것에 대해서도 그런 의미를 부여한다. "조선인 위안부 역시 일본제국의 위안부였던 이상, 기본적인 관계는 같다고 해야 한다"라며 이런 예시를 든다.
"그렇지 않고서는 패전 직후에 위안부들이 부상병을 간호하기도 하고 빨래와 바느질을 하기도 했던 배경을 이해할 수가 없다. 조선인 위안부들이 사유리(작은 백합), 스즈란(방울꽃), 모모코(복사꽃) 같은 일본 이름으로 불렸다는 것도, 식민지인이 위안부가 되는 것이란 '대체 일본인'이 되는 일이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는 위안부가 하는 일은 일본군에게 용기를 주는 일이었다고 말한다. "가족과 고향을 떠나 머나먼 전쟁터에서 내일이면 죽을지도 모르는 군인들을 정신적·신체적으로 위로하고 용기를 북돋아주는 역할"을 그는 "기본적인 역할"로 규정한다. '정신적 위로'를 '신체적 위로'의 앞에 배치하면서 위안부의 기본 역할은 성노예가 되는 게 아니라 일본군을 고무·격려하는 것이었다고 설명한다.
그는 일본 군인과 친해진 위안부들을 소개하는 대목에서 "이런 식의 사랑과 평화가 가능했던 것은 사실이고, 그것은 조선인 위안부와 일본군의 관계가 기본적으로는 동지적 관계였기 때문이었다"고 규정한다.
식민지 출신 위안부와 제국주의 일본군의 관계를 동지적 관계로 규정한 것은 식민지-제국주의의 기본 관계를 왜곡하는 것일 뿐 아니라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에 심대한 상처를 입히는 일이다.
제국주의는 인류 역사에서 발생한 최대의 국가범죄다. 위안부 피해자들을 두고 '동지적 관계' 운운하는 것은 이들을 가해자 쪽에 위치시킬 위험이 있는 일이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에 영향을 줄 만한 서술이라 할 수 있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박유하 교수는 위안부들을 성노예로 착취한 것은 일본군이 아니라 포주였다고 주장했다. 이는 위안소업자와 위안부가 착취관계였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는 위안부와 일본군이 동지적 관계였다고 서술했다. 일본군과 동지적 관계인 위안부들을 포주들이 착취했다는 이상한 논리 구조는 일본군과 포주의 관계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보도록 만든다.
누구의 명예인가
▲ 2014년 7월 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강일출, 이옥선, 유희남, 박옥선 할머니와 나눔의 집 관계자들이 서울 광진구 세종대학교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제국의 위안부' 저자 박유하 교수를 규탄하며 교수직 박탈을 촉구하고 있다. 이날 이들은 "박 교수가 망언과 망발을 일삼으며 일본 아베정권의 대변인을 자청하고 있다"며 박 교수의 파면을 요구했다. ⓒ 유성호
위안부와 일본군을 동지적 관계로 규정하는 대목에서 박 교수는 그런 기억을 은폐한 위안부들의 행위를 거론한다. 한국에 들어오면서 일본군과의 개인적 추억을 "다 내삐렀어"라며 "그거 놔두면 문제될까봐"라는 위안부 피해자의 진술을 소개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문제는 그녀들에게는 소중했을 기억의 흔적들을 그녀들 자신이 '다 내삐렀'다는 점이다. '그거 놔두면 문제될까봐'라는 말은 그런 사실을 은폐하려 한 것이 그녀들 자신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말이기도 하다. 그리고 우리는 해방 이후 내내 그렇게 기억을 소거시키며 살아왔다."
위안부 문제의 진상규명과 관련해 일본군에 유리한 사실을 은폐한 주체가 바로 '그녀들 자신'이었다고 말했다. 그런 기억이 해방 이후로 '소거'됐다고 주장했다. 일본군과 동지적 관계였던 위안부들이 그런 사실을 은폐하고 소거해왔다는 것이다.
조선시대 노비들 중에는 주인과 친밀한 관계를 갖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 주인을 가르친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모습들이 주인과 노비 사이의 지배·피지배 관계의 본질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위안부 피해자들이 내삐렀다는 추억들은 위안부 강제동원과 성착취의 지엽적인 것들에 불과하다. 이 문제의 본질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그런 부수적 기억을 소거한 것에 대해 박유하 교수는 과도한 의미를 부여했던 것이다.
박유하 교수는 위안부 피해자들을 제국주의 군대의 동지로 규정한 데 이어 사실 은폐의 책임자로까지 지목했다. 이는 박유하 교수의 책에서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가 어떻게 다뤄졌는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그런 박유하 교수가 정년퇴임 후에도 명예교수로 일하게 됐다면서 '사회적 명예는 몰라도 소속 공동체에서는 명예가 회복됐다"고 언급했다. 박유하 교수가 꼭 신경 써야 할 명예가 누구의 명예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오마이뉴스
국치일, 부산에 모인 한글단체 "영어상용도시 비판"
100여개 단체 공동성명 이어 항의 기자회견... 부산시는 '계속 추진' 시사
▲ 국치일인 29일 전국 국어단체, 부산의 시민사회단체 등 100여 개 단체가 부산시청을 찾아 영어상용도시 철회를 요구하는 행사를 열고 있다.ⓒ 김보성
"국어기본법 거스르고, 예산낭비·시민불편 부른다"
29일 부산시청 앞에서 한글을 강조하는 행사가 열렸다. 전국의 70여 개 국어 단체, 부산 30여 개 시민단체 등 100여 개 단체가 부산시가 추진하는 영어 정책을 놓고 비판 목소리를 냈다.
112년 전인 1910년 같은 날 우리는 주권을 빼앗긴 채 국권을 잃었다. 국치일 이후 일제는 일본어 상용을 강제하며 조선어 말살 정책을 본격화했다. 이런 역사적 의미를 설명한 참가단체들은 "과거 역사의 악몽이 부산의 영어상용으로 되살아나고 있다"고 강도 높은 비난을 던졌다.
지난 3일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제기한 이대로 한글학회 부설 한말글문화협회 대표도 참가자 중 한 명이었다. 이 대표는 부산시가 영어상용도시를 본격화하자 반대의 뜻을 표시했다. 그는 "부산·경남 출신의 최현배, 김두봉 선생이 주시경 선생을 모시고 쓰러져가는 우리 말과 글을 지키며 국어독립운동을 펼쳤다"라며 "그런데 지금 부산시가 이에 역행하고 있다"라고 성토했다.
정부로부터 한글 발전의 공로로 '문화포장'을 받은 차재경 한글문화단체모두모임 회장 역시 생각이 같았다. 차 회장은 "부산을 비롯해 서울 등 전국의 단체가 여기에 모인 것은 사업 철회를 요구하기 위한 것"이라며 박형준 부산시장, 하윤수 부산교육감의 결단을 압박했다.
한글 관련 관계자들이 부산에 집결한 이유는 박형준 부산시장의 선거 공약이 현실화하면서다. 영어상용도시를 지방선거 공약으로 내놨던 박 시장은 지난 9일 하 교육감과 업무협약을 맺었다. 2030 부산세계박람회를 계기로 영어 사용에 불편함이 없는 도시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의도였다. 그러나 공문서 영어 병기, 시정 홍보 영문서비스 확대, 도로표지판·도로시설물 영문 표기화 등의 내용이 공개되면서 비난이 일었다.
▲ 국치일인 29일 전국 국어단체, 부산의 시민사회단체 등 100여 개 단체가 부산시청을 찾아 영어상용도시 철회를 요구하는 행사를 열고 있다. 부산시를 규탄하고 있는 이대로 한글학회 부설 한말글문화협회 대표.ⓒ 김보성
▲ 29일 전국 국어단체, 부산의 시민사회단체 등 100여 개 단체가 부산시의 영어상용도시 추진을 비판한 가운데, 시청광장에 부산시를 상징하는 영어 구호 설치물이 놓여 있다.ⓒ 김보성
"대한민국 전체의 언어 사용 환경을 어지럽히고 공공기관의 영어 남용을 부채질한다"며 공동성명을 낸 한글 단체들은 내부 논의를 거쳐 규탄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이번에는 부산시청으로 모였다. 시청 앞에서 열린 첫 항의방문이다.
영어상용도시 논란은 한글 단체뿐만 아닌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부산인권포럼, 부산참여연대, 부산흥사단, 부산민중연대 등 부산의 단체도 함께했다. 대표로 발언에 나선 김수우 부산작가회의 회장은 "우리가 물려받은 유산 중 가장 위대한 것이 한글"이라며 "국제화와 영어상용도시는 같은 길이 아니다. 외려 한글을 제대로 가꾸는 게 국제화의 지름길"이라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함께 채택한 성명을 통해서도 요구를 부산시에 전달했다. 이들은 "영어를 강요하는 것으론 세계박람회의 성공을 달성할 수 없다"라며 "이 정책은 부산의 문화정체성을 어지럽히고, 시민을 더 불편하게 만들 것"이라고 꼬집었다.
하지만, 부산시는 "도시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이유로 계속 추진을 시사해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시는 이날 언론과 만나 "영어상용도시는 공용도시와 다르다"라며 "모든 문서와 소통을 영어로 하자는 것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이어 "시민의 관심과 우려를 잘 알고 있다"라며 "의무가 아니라 영어를 많은 시민이 쉽게 쓸 수 있는 환경을 넓히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문체부 제동' 관련 보도에는 "공문서 영어서비스의 경우 투자유치과, 외교통상과 등 시청 내 해외 관련 제한된 부서에 국한 예정으로 이는 국어기본법을 위반한 게 아니라는 답변을 문체부로부터 받았다"라고 해명했다.
시가 신중한 검토를 강조하며 공개한 구체적 계획 수립은 올해 안이다. 그러나 한글 단체는 추가 대응을 예고했다. 김명진 한글문화연대 부대표는 "공문서 병기 등은 제한해 사용하겠다던데 상용도시를 표방한다니 뭔가 앞뒤가 안 맞다"라며 "이대로 강행한다면 관련 조직을 꾸리고, 반대운동을 전국으로 확대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행사를 마치고 추가 논의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관련기사]
-박형준 부산시장 '영어상용도시 추진'에 반발 확산 http://omn.kr/208td
-[단독] '영어상용도시 부산' 만든다? 문체부도 제동 http://omn.kr/2091z
-한글단체 "부산시, 영어상용화도시 추진 중단하라" http://omn.kr/206pe
오마이뉴스 김보성(kimbsv1)
Z세대의 스마트폰'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
책 〈Z의 스마트폰〉은 Z세대가 즐겨 쓰는 앱을 분석했다. 스마트폰을 수족처럼 활용하는 이 세대 특성을 알기 위해서다. 저자 박준영씨는 ‘Z세대는 소비자를 넘어 크리에이터’라고 말한다.
〈그림 1〉 Z세대가 가장 자주 이용하는 앱 지도
스터디 그룹에서 공부하고 온다던 고교생이 실종됐다. 한국계 미국인 아버지는 딸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다가 아이의 SNS에 접속한다. 그곳에서 까맣게 몰랐던 ‘아이의 세계’를 발견하고 딸에 대해 아는 게 너무 없었다는 충격에 빠진다. 2018년 화제였던 〈서치〉라는 영화의 도입부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서치〉 속의 아버지다. 여기저기서 ‘요즘 애들’에 대해 말하지만 그들의 세계를 잘 모른다. 특히 1990년 중반부터 2000년대 초중반에 태어난 ‘Z세대’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1995년생의 경우 초등학교 때 싸이월드를 접하고 중학교 때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를 이용했다.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 원주민’으로 성장한 이들은 이전 세대와 무엇이 어떻게 다를까.
‘유튜브 반모방’이라는 게 있다. 유튜브 댓글창에서 반말로 대화하는 걸 말한다. 의미 없는 영상 하나를 띄워 놓고 댓글로 자신을 소개하며 대화를 나눈다. 초대받은 사람에게만 링크를 보내주고, 대화가 끝나면 방은 사라진다. 그곳에서 무슨 말이 오갔는지 그들 외에는 알 수 없다. 동영상 플랫폼인 유튜브를 그들만의 비밀스러운 커뮤니티로 바꿔버렸다.
유튜브뿐만이 아니다. 이들은 죽어가던 블로그·밴드·트위터를 살려냈다. 사진·영상·텍스트 편집이 가능하고 분량 제한이 없는 블로그는 Z세대에게 일상을 정리하는 ‘디지털 일기장’으로 거듭났다. 2021년 네이버에 새로 생성된 블로그가 전년 대비 7.14% 증가했는데, 이 중 2030의 비중이 무려 70%였다.
밴드는 특정 목적을 가진 소수가 모여 ‘달리기 인증’ ‘책 읽기 인증’ 같은 ‘챌린지’를 하기에 적합하다. 짧은 글로 소통하며 익명성이 보장되는 트위터는 ‘실시간 트렌드’에 대해 마음 놓고 떠들기에 그만이다. 자신들이 응원하는 아티스트의 이름이 1위에 노출되도록 많은 양의 게시물을 올린다(‘실트 총공’). ‘디지털 도구’를 자유자재로 다룰 줄 아는 이들 세대가 윗세대가 외면했던 것을 소환해 디지털 생태계를 바꿔놓은 것이다.
Z세대를 알고 싶은가. 만약 그들의 스마트폰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어떨까? 많은 경우 하루 평균 9시간씩 스마트폰을 붙들고 사는 그들의 세계가 엿보이지 않을까. 실제로 그걸 해낸 사람이 있다. 디지털 마케팅 전문가인 박준영 크로스 IMC 대표다. 그는 Z세대 300명의 스마트폰 화면 캡처 이미지를 수집했다. 여론조사처럼 엄격하게 표본을 추출한 것은 아니지만, 중고교생, 대학생, 사회인 등 Z세대로서 대표성을 띠는 이들의 스마트폰 정보를 균등하게 수집하려 애썼다.
박준영 크로스IMC 대표는 Z세대 300명의 스마트폰을 수집해 앱 사용 양상을 조사했다.ⓒ시사IN 조남진
이후 2년 반 동안 이를 들여다봤다. 이들이 어떤 애플리케이션(앱)을 주로 쓰는지 사용량은 얼마나 되는지 분석했다. Z세대에게 인기 있는 각 앱마다 ‘헤비 유저’를 직접 만나 심층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다. 그 결과 Z세대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앱 80개를 11개 카테고리로 나누고, 대표적인 앱 10개를 분석해 최근 〈Z의 스마트폰〉이라는 책을 펴냈다.
블립, 아이디어스, 디스코드, 채티, 잼페이스, 프립, 젠리, 스냅챗···. 혹시 이런 스마트폰 앱을 사용해본 적이 있는가. 박준영 대표가 꼽은, Z세대가 많이 사용하는 앱 가운데 일부다. 블립은 케이팝 팬의 ‘덕질’을 도와주는 앱, 아이디어스는 ‘작가’들이 만든 핸드메이드 제품 쇼핑몰 앱이다.
관계는 느슨히, 소통은 실시간으로
초등학생이 많이 이용하는 잼페이스는 화장 취향을 분석해 미용 유튜버와 매칭해준다. 채티는 10대가 많이 이용하는 소설 창작 앱인데, 채팅 형식으로 쓰인 소설 작품을 읽을 수 있다. Z세대의 스마트폰에는 이런 앱이 평균 125개 설치돼 있고, 한 달 동안 앱 약 58개를 사용한다. 국내 스마트폰 이용자들이 평균 102개 앱을 설치하고 한 달 동안 39개를 사용하는 것과 비교하면 Z세대의 사용률이 확실히 높다.
프립은 ‘소셜 액티비티’ 플랫폼이다. 등산, 스노클링 같은 야외활동부터 전시, 공연 등 여가생활까지 전문성이 있는 호스트(주관자)의 진행을 따라 함께 즐긴다. 등산이라면 ‘음악 들으며 등산하는 모임’ ‘야간 산행 모임’ ‘한양도성 산책 모임’ 등 즐기는 방식도 다양하다. 프립에서 호스트는 게스트(참가자)가 내는 참가비로 수익을 얻는다. 색다른 프로그램을 계속 기획하는 등 확실한 전문성을 갖춘 호스트가 각광받는다. 요즘 2030 사이에 부는 ‘등린이(등산+어린이)’ 열풍에는 이런 앱의 인기도 한몫했다.
이런 플랫폼의 특징은 ‘관계의 느슨함’이다. 호스트와 게스트는 프로그램이 끝나면 미련 없이 헤어진다. 모임 후 뒤풀이가 필수인 기존 동호회와는 다르다. 이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서로의 나이와 직업을 모른다. 배경보다는 같은 관심사를 갖고 ‘함께 잘 놀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한강이나 공원에 소풍을 가서 서로 반말로 대화하는 ‘수평어’ 프로그램은 오픈하자마자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유튜브의 ‘반모방’이 현실세계에서도 이어진 셈이다.
관계에서 느슨함을 추구하는 반면 소통에서는 ‘실시간’ 즉 즉각성을 원한다. Z세대가 친구나 가족과 메신저 대화에서 가장 자주 하는 말이 “지금 어디야?” “뭐 해?”처럼 상대의 위치나 상황을 묻는 질문이다. ‘젠리’는 여기에 특화된 메신저다. 친구를 맺으면 서로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알고, 어떤 친구들이 모여서 노는지 파악할 수 있다. 상대방의 핸드폰 배터리가 얼마나 남았는지까지 알 수 있다.
사생활과 개인정보 보호에 대해서도 민감하다. ‘스냅챗’은 친구의 위치를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메시지를 확인하고 나면 자동으로 내용이 사라지기 때문에 사생활에 민감한 이들이 많이 사용한다. 디스코드는 온라인 게임 이용자들이 많이 쓰는 메신저인데, 게임을 하면서 음성 및 영상 대화까지 가능하다. 이메일 주소만 있으면 인증 절차 없이도 가입이 가능하다. 강력한 익명성 때문에 온라인 범죄의 온상이 되는 것 아니냐는 염려가 있지만 젊은 층에게 큰 인기를 끌어 전 세계 가입자 수가 3억명이 넘는다.
앞선 세대가 배달, 금융, 쇼핑 등 생활에 필수적인 앱을 주로 쓰는 데 비해 Z세대는 OTT 서비스, 게임, SNS 같은 취미와 오락 앱을 자주 쓴다. 그렇다고 이들이 노는 데에만 스마트폰을 쓰는 건 아니다. ‘열품타(열정 품은 타이머)’는 ‘캠 스터디’를 도와주는 앱이다. 캠 스터디는 자신이 공부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중계하는 학습 방식이다. 이 앱을 사용하는 동안 다른 앱의 사용을 완전히 차단해줌으로써 공부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단체방도 개설할 수 있어서 함께 공부하는 이들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림 2〉 국내 디지털 생태계의 변화 과정
Z세대의 스마트폰에는 이런 자기 관리 앱이 많이 설치돼 있다. 팬데믹 이후 집에서 공부하거나 일하는 일상을 맞게 되면서 스마트폰을 자기 관리의 도구로 활용하는 것이다. ‘타임블럭스’ 같은 스케줄 정리 앱이 인기를 끄는 것은 스마트폰이 촉발한 경계 없는 삶에서 스스로를 통제하고 지켜나가려는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앱의 다양성이 말해주듯 ‘Z세대의 트렌드’를 한마디로 규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Z세대 스스로도 그런 일반화를 거부한다. 다만 박준영 대표는 ‘크리에이터의 시대’라는 키워드에 주목한다. 개인이 소비자가 아닌 ‘크리에이터’라는 독립된 경제주체로서 등장했다는 것이다.
앞서 말한 ‘채티’라는 채팅형 소설 읽기 앱을 보자. 2018년 출시된 이 앱은 올해 1월 기준 다운로드 수가 500만 회를 기록했다. 출시 초기에는 기존 웹툰이나 웹소설을 채팅 형식으로 변환한 작품이 주를 이뤘다. 그러다 독자들이 참여하는 장을 열었더니 폭발적인 반응이 나타났다. Z세대 독자들이 스스로 작가가 되었다. 현재 인기 작품의 80% 이상이 이들 Z세대 작가의 소설이다. 가장 인기 있는 작품의 경우 탭 수(이용자들이 작품을 보기 위해 화면을 터치한 횟수)가 10억 회가 넘고, 댓글은 수만 개에 달한다. 좋아하는 작가에게 ‘풍선(후원금)’도 쏠 수 있다.
Z세대 자녀, X세대 부모와 통한다
Z세대에게 스마트폰은 곧 창작 도구다. 학원 버스 안, 집에서 잠들기 전 등 언제 어디서든 작품을 읽고, 쓰고, 댓글을 단다. 이용자의 99%가 스마트폰으로 작품을 올린다. 이렇게 모인 Z세대 작가의 작품이 무려 60만 편에 달한다. 스스로 디지털 세계에서 기회를 만들어내고, 이를 경제적 수익으로 연결시킴으로써 새로운 일을 창조해내고 있는 셈이다. 채티의 최재현 대표는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모든 소비자가 창작자가 될 수 있는 판을 만드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앞선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우리는 왜 Z세대에 대해 알고 싶은가. 이들은 우선 디지털 생태계를 쥐락펴락할 ‘강자’다. 블로그와 트위터 사례처럼 이들의 선택에 따라 디지털의 미래가 달라진다. 또 한 가지. Z는 X와 통한다. Z세대의 부모 상당수가 바로 X세대다. 1990년대 문화산업의 황금기에 20대를 향유한 X세대는 문화생활, 여가, 쇼핑 등에서 자식 세대와 ‘라이프스타일’을 공유하는 경향이 있다. 자식과 함께 ‘덕질’을 즐기는 첫 부모 세대다. X와 Z가 뭉치면 산업 전반에 그 영향력이 막강할 수밖에 없다.
박준영 대표는 Z세대가 스마트폰이란 도구를 잘 활용하도록 돕는 사회화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한다.ⓒ연합뉴스
박준영 대표가 Z를 연구한 계기 역시 직업적인 궁금증이었다. 애플 코리아, 한화그룹, GS SHOP 등 대기업의 브랜드 컨설팅 및 마케팅 일을 해온 그는 소통 방식, 일하는 방식, 소비 패턴 등에서 ‘달라도 너무 다른’ 젊은 세대를 마케팅 차원에서 분석하기 위해 그들의 스마트폰을 들여다봤다.
실제로 〈Z의 스마트폰〉 출간 이후 가장 먼저 반응이 온 쪽은 기업에서 상품 기획을 하는 실무자들, 그리고 젊은 사원과 소통하고 싶은 경영진이었다. 박준영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조직의 최고 결정권자와 Z세대 사이에 직접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는가? 회사의 대외 커뮤니케이션 실무자가 Z세대와 진짜 대화를 하고 있는가? 아니라면 적신호가 켜진 것이다.”
당사자인 Z세대 역시 박준영 대표의 분석에 반응을 보였다. 또래 세대가 스마트폰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스마트폰을 통해 어떤 기회를 발견하고 있는지 궁금해한다. 박준영 대표가 책 출간 이후 ‘디지털 교육’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것도 그 때문이다. ‘스마트폰 중독’ 문제만 놓고 혀를 끌끌 찰 것이 아니라 ‘디지털 원주민’인 이들이 이 도구를 잘 활용하게끔 도와주는 사회화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스마트폰이 우리 사회에 등장한 지 10여 년. 우리는 이제 막 스마트폰에서 ‘Z의 지문’을 발견했다. 시사인 이오성 기자
실적 뺏고, 부당해고… '산피아' 판치는 국립수목원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이하 한수정)은 신생 산림청 산하 공공기관이다. 산림생물자원을 보존·연구하고, 늘어나는 국립수목원을 관리하기 위해 2017년 5월 설립됐다. 현재 한수정이 운영 중인 국립수목원은 국립백두대간수목원과 국립세종수목원 2곳. 2027년 개원 예정인 국립새만금수목원도 한수정 산하기관이다.
한수정은 설립 전부터 그 필요성에 대해 여러 의문이 제기됐다. ‘산림청 산하에 이미 비슷한 업무를 하는 국립수목원이 있는데, 새로 생길 국립수목원들을 관리할 별도의 공공기관을 만드는 것이 옳은가’라는 목소리가 국회에서도 나왔다. 하지만 2016년 12월 정부는 국회를 설득해 한수정 설립 근거법을 통과시켰다.
“현재 시점에서 수목원관리원을 만들어서 분리 운영하는 이 구조보다는 국립수목원이 현재 분명히 있고 그러니까 광릉수목원까지를 포함해서 4개의 수목원을 전체적으로 관리하는 조직으로 가는 게 바람직하지 않은가라는 생각이고요.”
김현권 의원 (2016.11.9, 제346회 국회 농림축산식품법안심사소위원회)
▼ 산림청 산하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한수정)이 운영하고 있는 백두대간수목원.
산림청 출신이란 이유로 연봉 4800만원 더 받아
이렇게 탄생한 한수정은 출범할 때부터 ‘산피아(산림청+마피아)’ 특혜 의혹으로 얼룩졌다. 2017년 5월 한수정은 조직의 조기 안정을 이유로 산림청 직원 11명을 특별 채용했는데, 이들이 한수정에서 온갖 특혜를 누린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이들은 똑같은 일을 하는 비 산림청 출신 직원들보다 연봉이 높았고 승진도 빨랐다.
2019년 8월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르면, 산림청 출신 한수정 직원들은 같은 직급의 직원들에 비해 최대 4,837만원 가량의 연봉을 더 받았다. 5년을 근무해야 1급으로 승진한다는 규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채용되자마자 1급으로 승진하는 특혜도 누렸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한수정을 두고 산림청 퇴직 공무원, 이른바 ‘산피아’의 재취업을 위해 세운 기관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감사원이 작성한 감사결과 처분요구서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다.
“오지근무는 재취업 직원 뿐 아니라 관리원 직원 모두가 겪는 어려움이다. 기관 조기 안정을 위해 재취업 직원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면 직원 모두에게 적용되는 보수규정에 따라 성과급 등으로 이를 보상할 수 있는데도 재취업 직원에게만 보수를 우대하는 내용의 차별적 특례규정을 제정하여서는 안 된다.” 감사원 감사결과 처분 요구서 (2019.8)
‘산피아’들을 위한 연봉 파티는 현재진행형이다. 감사원이 한수정 원장에게 “재취업 직원에 한해 보수와 최저승진 소요연수를 부당하게 우대하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는 특혜 규정을 폐지하는 방안을 강구하라”고 요구했지만, 한수정은 소급적용이 불가능하다는 논리를 내세워 우선 채용된 ‘산피아’들에게 기존 특례규정대로 보수를 주고 있는 것으로 취재 결과 확인됐다.
‘연간 수익 250억 원’ 예상했지만… 현실은 ‘37억 원’
한수정의 수익은 설립 당시 계획에 한참 못 미친다. 2015년 11월 박종호 산림청 산림이용국장은 국회에서 “필요 운영비 500억 원 중 절반은 세금, 절반은 자수익으로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뉴스타파가 지난 5년간 한수정의 수입 및 지출 현황을 살펴본 결과, 한수정의 자체 수익은 크게 낮았다. 수익이 매년 늘고는 있지만 2020년 11억 원, 2021년 37억 원에 불과했다. 올해 예상수익은 48억 원 정도로 추정된다. 반면 올해 한수정에 투입될 정부지원금은 759억여 원이다.
▼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에 나와있는 연간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한수정)의 수입 및 지출 현황.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한수정의 경영평가 결과는 좋지 못했다. 지난해엔 B(양호) 등급을 받아 나아졌지만, 2020년 첫 성적은 D(미흡) 등급이었다. D등급은 기관장에 대해 경고조치가 내려지는 사실상의 최하 등급이다.
그럼 이렇게 계획만큼 수익도 못 내고, 산림청 공무원들의 재취업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오명까지 쓰고 있는 한수정은 지난 5년간 어떻게 운영돼 왔을까. 혹시 드러난 것 외 다른 내부 문제는 없었을까. 뉴스타파는 한 연구프로젝트를 둘러싸고 지난 수년간 한수정 내부에서 벌어진 황당한 사건들을 통해, 한수정의 구조적 문제를 살펴봤다.
▼ 민간 차 연구가 윤 모씨가 육성한 ‘내한성 차나무’
민간인 연구 성과 가로채 정부 연구비 5억 8000만 원 받아 챙겨
2017년 초, 경북 봉화는 종전에 없던 차나무가 만들어졌다는 소식으로 시끌벅적했다. 보통 차나무는 연평균 10도 이상의 따뜻한 지역에서 자라는데, 혹한의 추위에서도 잘 자라는 차나무가 개발된 것이다. ‘내한성 차나무’라고 불리는 이 품종을 만들어낸 사람은 바로 차 연구가인 윤 모 씨. 윤 씨는 이 차나무를 개발하는데 무려 20년을 투자했다.
이 소식이 알려진 뒤 백두대간수목원은 윤 씨를 찾아가 “연구용으로 차나무를 제공해주면 품종등록과 특허 절차를 도와주겠다”고 공동연구를 제안했다. 윤 씨는 “100% 권리를 보장해주겠다”는 백두대간수목원의 약속을 믿고 제안을 받아들였다. 윤 씨와 수목원은 2018년 10월 연구협약서를 체결했다. 그리고 백두대간수목원은 이 연구를 빌미로 임업진흥원으로부터 정부지원금 4억 4000만 원을 포함해 연구비 5억 8,000만 원을 지원받았다.
“윤 씨의 연구소가 개발한 내한성 차나무에 대한 일체의 권리는 연구소에 있다. 백두대간수목원은 연구소의 내한성 차나무의 품종등록과 특허관련 절차를 지원하겠다”
내한성 차나무 연구를 위한 공동연구 협약서 일부(2018.10.16.)
사건이 터진 건 2019년 11월이었다. 윤 씨에게 ‘권리 보장’을 약속했던 백두대간수목원이 윤 씨를 빼고 단독으로 출원권 신청을 한 것이다. 출원권은 품종에 대한 상업적 독점권을 가질 수 있는 권리다. ‘내한성 차나무’를 육성한 건 윤 씨인데 품종 육성에 전혀 기여한 바가 없는 백두대간수목원이 차나무로 인해 발생하는 경제적 이득을 모두 챙기려고 한 어이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연구 실적 다 챙긴 후에야 출원권 ‘원상복구’
이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백두대간수목원 측은 뒤늦게 윤 씨에게 출원권을 돌려줬다. 하지만 출원권을 돌려준 시점은 백두대간수목원이 문제의 차나무와 관련된 연구보고서를 연구비를 준 임업진흥원에 제출한 후였다. 연구 실적과 정부 연구비를 모두 챙긴 이후에야 원 소유자에게 ‘내한성 차나무’ 권리를 돌려주는 꼼수를 부린 것이다. 하지만 백두대간수목원 측은 의혹을 부인했다.
“언론 보도는 사실과 다릅니다. 국립종자원의 안내에 따라 출원권을 신청했던 것인데 종자원에서 절차에 오류가 있다고 통보해주는 바람에 나중에 출원권 변경을 신청했던 겁니다. 출원권 변경이 늦어진 건 정정 과정에서 시간이 걸려서였습니다.”백두대간수목원 측 공식입장 (2021.4)
민간인의 연구 성과를 가로챘다는 의혹은 산림청 감사로 이어졌다. 감사결과 수목원의 잘못은 보다 정확히 드러났다. 산림청은 약 3개월에 걸쳐 사건의 전말을 조사한 뒤, “품종 육성자와 공동연구를 했을 경우에는 출원권을 공동으로 나눠가져야 하는데 백두대간수목원이 이를 지키지 않았다”는 감사결과를 내놨다.
산림청은 백두대간수목원이 문제의 ‘내한성 차나무’를 공동 연구한다며 끌어들인 민간기업이 국가로부터 받은 연구비 중 일부를 엉터리로 집행한 사실도 적발했다. 산림청은 감사결과를 발표하며 해당 민간기업에 “문제가 된 연구비를 반납하라”고 통보했다. 수목원에는 문제를 야기한 직원들을 징계하라고 요구했다.
▼ 2019년 11월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이 단독 명의로 제출한 품종 출원서.
차나무 사업 의혹 파헤쳤던 감사실장 부당해고
이렇게 일단락되는 듯 했던 사건은 한수정이 백두대간수목원 감사 책임자였던 손모 씨를 해고하면서 2라운드로 접어 들었다. 산림청이 감사결과를 내놓고 한 달 뒤 벌어진 일이었다. 손 씨는 백두대간수목원이 ‘내한성 차나무’ 개발자의 연구실적을 실제로 가로챘는지, 협동연구기관인 민간기업이 정부 연구비를 제대로 썼는지를 조사했던 한수정의 감사실장이었다.
한수정이 손 씨를 해고한 이유는 황당하게도 ‘무리하게 감사를 진행해 백두대간수목원에 피해를 끼쳤다’는 것이었다. 공동 연구를 한 민간기업을 조사할 권한이 없는데 세무자료를 열람하고 무단으로 반출한 점 등을 문제삼았다. 독립기구인 징계위가 꾸려지기 전부터 한수정은 ‘손 씨를 해고해도 되는지’ 세금을 들여 법률 자문을 구했다. 공공감사법을 위반했다며 손 씨를 경찰에 고소하는 일까지 벌였다.
이후 손 씨는 언론 등 외부에 부당 해고를 알리는 한편 ‘내한성 차나무’ 사업과 관련된 여러 의혹을 제기했고,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도 신청했다. 그리고 노동위원회는 조사를 거쳐 손 씨 해고가 부당해고에 해당한다고 결론내렸다. 손 씨의 억울함이 확인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한수정은 손 씨를 무리하게 내쫒으려고 했다가 법률 대응 등으로 세금만 낭비한 꼴이 됐다.
뉴스타파는 손 씨에게 연락해 입장을 물었지만, 손 씨는 개인적인 고충을 토로하며 인터뷰를 거절했다. 대신 손 씨의 입장은 손 씨가 노동위원회에 제출한 문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관리원이 공공기관으로서 공익을 위한 운영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위법사항을 은폐하기 위하여 저를 해임한 것 같습니다.” 한수정 감사실장 손 씨 (2021.12, 중앙노동위 제출 서면)
“감사실장이 언론 제보 나서자 괘씸죄로 해고 추진”
그렇다면 한수정과 백두대간수목원은 왜 손 씨를 무리하게 해고하려 했던 것일까. 취재진은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여러 관계자들을 접촉하던 중 백두대간수목원 전현직 직원 2명에게서 의문에 대한 답을 일부나마 들을 수 있었다. 먼저 수목원에서 고위직을 지낸 김기환 씨는 “손 씨가 괘씸죄에 걸린 것 같다”고 말했다.
“지금 우리(한수정)가 산림청에 보고하는 성과 보고서를 보면, 성과가 10개 있다고 치면 그 중에 차나무가 꼭 하나를 차지하고 있거든요. 우리 수목원 연구 과제 중에서 한 10%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는 거예요. 거기다가 손○○ 실장이 손을 대려고 했으니까 기관장으로부터 괘씸죄를 충분히 받을 만했겠죠.” 김기환 전 백두대간수목원 운영지원부장
손 씨가 외부에 이 사건을 제보한 것도 해고 이유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손○○ 실장의 해고가 부당해고로 중노위에서 최종적인 결론이 나고, 한국수목원관리원이 손 씨와 합의하는 과정에서 언론의 제보라든지 부패 신고라든지 이런 걸 다 취하하는 조건을 붙였다고 그랬거든요. 기관을 운영하는 데 (손 씨가) 지장이 된다. 걸림돌이 된다. 이런 것이 제 행정 경험상 (해고에) 작용하지 않았을까.. ”
김기환 전 백두대간수목원 운영지원부장
▼ (왼쪽부터) 김기환 백두대간수목원 전 운영지원부장과 김은아 백두대간수목원 전 대외협력팀장
“‘부정적 보도 막으라’는 산림청 지시 들었다”
수목원에서 언론대응 업무를 담당했던 김은아 씨는 “윗선으로부터 부정적인 보도를 막으라는 취지의 지시를 받은 사실도 있다”고 증언했다.
“이종건 백두대간수목원 원장님이 산림청인가 세종시에 출장을 가셨던 것 같아요. 그 때 전화가 왔었죠. (운영지원부) 부장님한테. 부장님한테 전화를 해서 '지금 산림청 산림보호과에서 난리다. 이거 언론에 나가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하니까 알아서 대응해라’ 그런 전화를 같이 옆에서 듣게 됐죠." 김은아 백두대간수목원 전 대외협력팀장
김 씨는 또 “한수정이 내부 고발에 민감했던 것은 외부의 지적이 공공기관 경영평가에 악영향을 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종건 백두대간수목원장이 회의 중에 경영평가를 의식하는 발언을 자주했다는 것이다. 아래는 2021년 3월 이 원장이 김 씨에게 홍보회의 중 한 발언 내용.
“내가 자꾸 가서 (기자) 만나보라는 이유가 혹시라도 엉뚱한 방향으로 해서 기사화가 되면 경영평가는 완전히 망가진다니까. 내가 걱정하는 게 나중에 기사가 나와서 경영평가가 나쁘게 나왔다고 그러면 모든 비난을 다 대외협력팀이 다 뒤집어 쓸까 봐 그러는거야."이종건 백두대간수목원장 (21.3.24 홍보회의)
▼ (왼쪽부터) 이재선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양묘실장, 이종건 백두대간수목원장, 류광수 한수정 이사장, 윤기택 한수정 경영지원실장
한수정 “차나무 사업과 감사실장 해고에 문제 없었다”
그럼 ‘공공기관의 부정과 비리를 감사한 사람을 해고하고, 언론 통제를 지시했었다’는 백두대간수목원 전현직 직원들의 주장은 과연 사실일까.
뉴스타파는 여러 의혹에 대한 입장을 듣기 위해 한수정과 백두대간수목원 관계자들을 찾아갔다. 취재진과 만난 관계자들은 먼저 산림청 감사 결과에 대한 불만부터 털어놨다. 이재선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양묘실장은 “지역 주민과 잘 해보려고 노력하려던 과정에서 약간의 문제가 생겼던 것뿐이다. 실적을 부풀리기 위해 민간인의 연구성과를 가로채려 했다는 지적은 옳지 못하다”고 말했다.
이종건 백두대간수목원 원장은“백두대간수목원장은 언론보도를 막으라고 지시를 내린 적은 없다”고 주장했다. “부정적인 보도말고, 좋은 기사가 나오도록 적극 대응하라 말한 적은 있지만, 언론대응 직원에게 책임을 전가하거나 보도를 막을 것을 요구했다는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다.
백두대간수목원에 대한 관리 책임을 지고 있는 류광수 한수정 이사장은 “감사실장 해고는 절차상 문제될 게 없다”고 주장했다.
“기관에서 인사위원회를 올릴 때는 독립된 결정을 할 수 있습니다. 산림청에 귀속받지 않고. 손 전 실장이 민간업체에 자료를 요구했다라든지 그 다음에 직무상 감사실장은 직무상의 비밀을 누설하면 안 되는데도 불구하고, 저희 규정에서는 굉장히 중한 거에 해당돼서 인사위원회에서 전체적으로 결정을 해서 해임이라는 결정을 하게 된 겁니다.” 류광수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 이사장
윤기택 한수정 경영지원실장은 “산림청 출신 인사들이 산림청 재직 당시보다 적은 급여를 받게 되는 일이 벌어져 어쩔 수 없이 특례 규정을 만들었다”고 말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른 주장이었다. 감사원 감사결과에 따르면, 한수정에 입사한 산림청 출신 11명의 2018년 보수 총액(8억 3,780만원)은 이들이 계속 산림청 공무원으로 재직할 경우 받을 보수 총액(7억 7,843만원)보다 오히려 5,860만원 많은 수준이었다.
프레시안 이명선
‘연봉1억’ 귀족노조 오해…노조원은 훨씬 낮아”
박홍배 금융노조 위원장 인터뷰
줄어든 인력과 지점 폐점에 따른 직원 ‘이중고’
“사측, 주주이익환원정책 ‘급급’…노동자 모르쇠”
총파업 규모 6만~7만명 예상…고객 불편 불가피
연봉 1억’ 귀족노조는 사실과 다르다. 금융의 공공성을 외면하고 비용절감을 통한 주주이익 극대화만 추구하는 은행 경영진들이야말로 직원 고통과 고객 불편에는 관심이 전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박홍배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 위원장은 29일 서울 중구 다동에 위치한 금융노조 사무실에서 진행한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금융노조가 오는 9월 16일 총파업을 앞두고 있어 논란이 거세다. 이번 파업 예고의 배경은 노사 간 임금 및 단체협약 협상에서 이견이 크기 때문이다. 금융노조는 임금 6.1% 인상을 비롯해 △영업점 폐쇄 중단 △정년연장과 임금피크제 개선 △주 36시간 근무(4.5일제) 도입 등을 요구하고 있다.
박 위원장은 올해 산별중앙교섭에서 34개의 단체협약 개정 요구안을 제시했으나, 사측은 이를 묵살하고 침묵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박 위원장은 “지금까지 30차례 이상 교섭을 했지만, 사용자 측(이하 사측)은 안건에 대한 어떠한 수정안도 논의하지 않고 방관하고 있다”면서 “사측은 최초 물가상승률에도 못 미치는 0.9%의 임금인상률로 시작해 지난달 1.4%를 제시하며 노동자의 희생만을 요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노조가 이번 교섭에서 가장 중요시 여기는 핵심 요구안은 ‘영업점 폐쇄 중단 및 적정인력 유지’다. 사측이 근래 들어 희망퇴직 대상을 확대하고, 신규채용을 중단하는 등 인력을 줄이더니 코로나19 유행이 시작되면서부터 급격하게 점포를 폐쇄하기 시작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사측은 영업점의 폐점이 경영권이며, 적정인력 유지를 위한 자연 감소분에 대한 신규 채용은 현재의 호봉제 임금체계 때문에 어렵다는 주장만 반복한다는 게 노조 측 설명이다.
박 위원장은 “현재 사측은 조합원의 일자리, 즉 생존권 문제를 놓고 비용 절감을 앞세워 기간제 경력직 채용을 논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교섭대표로 나온 은행장들은 기간제로만 임직원을 채웠을 때 은행 경영이 가능하냐는 질문엔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며 사측을 비판했다. 그러면서 그는 “지방이나 구도심의 은행 점포를 수익성이 조금 낮다고 폐쇄하는 경영 행태는 금융소비자에 대한 책임을 외면하는 행태”라고 지적했다.
또 박 위원장은 ‘억대 연봉’, ‘귀족노조’라는 비판에 대해선 억울한 측면이 있다는 입장이다. 박 위원장은 “평균연봉의 근거를 쓴 금융감독원 공시자료 등은 행장과 부행장, 임원, 지점장, 비조합원인 부지점장 등 관리자까지 포함한 임직원 평균 임금을 말하는 것”이라면서 “상반기에만 8억원을 넘게 받는 임원들과 일반 직원들은 한 바구니에 넣고 평균을 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노조가 국책은행 한곳을 조사해본 결과 조합원 기준 임금 평균이 약 7200만원도 안됐다고 덧붙였다. 박 위원장은 “조합원들, 특히 저임금직군 노동자들의 형편과는 거리가 멀다”면서 “가령 직원의 70%가 최저임금을 적용 받고 있는 현금수송노동자들 입장에서는 상실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표현”이라고 토로했다.
그럼에도 다른 직군보다 훨씬 큰 임금 인상 폭을 제시한 금융노조를 바라보는 국민 시선은 싸늘하다. 올해 현재 국내 대기업 임금인상률은 평균 4.4%로 집계됐다. 시중은행 일부 노조원들은 이 같은 사회적 비판을 의식해야 한다는 여론도 있다.
이와 관련 박 위원장은 “저희도 사회적 비판을 충분히 의식하고 있지만, 사측이 노동자들의 임금만 양보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 더 문제”라면서 “주주 배당 상향, 임원 성과급과 스톡그랜트 등에도 불구하고 직원들 임금은 못 올려주겠다는 사측에게 더 큰 책임이 있다”고 답했다. 그는 이어 “줄어든 인력과 인근 지점 폐점에 따른 유입고객으로 직원들은 이중고를 겪고 있는 반면 사측은 직원고통과 고객불편에는 관심이 전혀 없다”면서 “인건비가 줄어들어 사측은 재미를 보고 있으면서 모든 공을 노조로 던져 놓은 형국”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금융노조 조합원은 10만명 규모로, 이번 파업이 현실화하면 금융 소비자의 불편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내달 16일 총파업 규모는 6만~7만명에 이를 것이라는 게 노조 측 추산이다.
박 위원장은 “파업이 벌어지면 전세나 매매 잔금 등 꼭 필요한 업무는 담당 직원과 상의해 날짜를 조정하시고, 안심전환대출 상담도 당일 어려울 수 있음을 꼭 기억해 주시기 바란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그러면서 “지점 문을 닫는다는 것이 고객들과 국민들께 얼마나 죄송한 일인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경영진과 정부가 금융의 공공성을 끝내 외면한다면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투쟁을 펼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단 “노사간 조율의 여지는 여전히 남아 있다”면서 사측이 적극적으로 교섭에 임할 것을 촉구했다. 이는 총파업 이전에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될 가능성도 있음을 시사한 대목이다. 이데일리 정두리 기자]
고도의 정치행위” 뒤집고 “다수 국가권력의 불법행위” 인정
전원합의체, ‘양승태 대법’과 다른 판단 왜
김명수 대법원장(가운데)과 대법관들이 30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긴급조치 9호 피해자에 대한 국가배상 책임’ 관련 전원합의체 선고에 입장해 자리에 앉아 있다. 한수빈 기자 subinhann@kyunghyang.com
2015년 위헌 판단에도 수사·재판 등 과정별 책임 유무 따져
이번엔 “위법한 발령·집행에 관여한 전체 직무 행위가 불법”
공무원 개개인의 불법 입증 없어도 국가배상책임 성립 판단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30일 긴급조치 9호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데는 긴급조치권의 발령과 적용·집행에 관여한 개개인이 아니라 그들 ‘전체’의 직무행위가 위법했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당시 국가 직무행위 자체가 위법적이었기 때문에 긴급조치권을 행사한 박정희 전 대통령과 판사·검사·경찰관·수사관 개인의 책임을 하나하나 따질 것 없이 국가가 피해자들에게 배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정희 정권이 1975년 발령한 긴급조치 9호는 집회·시위, 신문·방송 등으로 유신을 반대하는 행위를 금지했다. 이를 위반한 자에 대해서는 영장 없는 체포와 수사를 허용했다. 유신헌법은 ‘긴급조치는 사법 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규정해 이를 집행하는 공무원들에게 면죄부도 부여했다.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긴급조치 9호를 위헌·무효라고 판단했다. 영장주의와 표현의 자유 등 당시의 유신헌법조차 보장하던 기본권을 침해해 애초부터 무효라고 본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2014년과 2015년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선 청구를 대부분 기각했다. ‘위헌이기는 하지만 국가가 배상할 책임은 없다’는 것이다.
이 같은 결론이 나온 이유는 각 과정별로 불법행위의 성립 여부를 판단했기 때문이다.
2015년 대법원은 “긴급조치 제9호가 사후적으로 법원에서 위헌·무효로 선언되었더라도,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행사는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행위로서 원칙적으로 국민 전체에 대한 관계에서 정치적 책임을 질 뿐 국민 개개인의 권리에 대응하여 법적 의무를 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긴급조치 9호가 기본권을 침해하는 일련의 과정 중 대통령의 발령 행위 부분을 따로 떼어내 민사상 손해배상의 대상인 불법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2014년 대법원은 대통령이 발령한 긴급조치에 근거해 체포·수사·재판한 수사관들과 법관들의 행위도 국가배상의 대상인 ‘공무원의 고의·과실에 의한 불법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들이 수사·재판하던 때는 긴급조치가 위헌·무효로 결정나기 전이었고 당시 유신헌법은 ‘긴급조치는 사법 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규정했기 때문에 자신들의 행위가 위법하다고 인식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또 ‘범죄의 증명이 없어 무죄 선고가 난 경우’ 이미 복역한 형에 대해 국가배상을 요구할 수 있지만 ‘긴급조치 위반으로 유죄 선고가 난 뒤 재심에서 무죄가 된 경우’에는 국가배상을 요구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고문으로 얻은 허위 자백만을 증거로 유죄를 선고한 경우에만 ‘범죄의 증명이 없을 고도의 개연성’을 인정해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그러나 이날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7년 전처럼 각 과정 또는 담당 공무원별로 책임 여부를 따질 경우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모순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대통령의) 긴급조치 9호의 발령 행위 자체만으로는 개별 국민에게 구체적인 손해가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고, 적용·집행 과정에서 개별 공무원의 위법한 직무집행을 구체적으로 특정하거나 고의·과실을 증명하는 것 또한 쉽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개별 공무원의 구체적인 직무집행행위를 특정하고 그에 대한 고의 또는 과실을 개별적·구체적으로 엄격히 요구한다면 일련의 국가 작용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경우에 오히려 국가배상 책임이 인정되기 어려워지는 불합리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고 했다.
대법원은 대통령의 긴급조치 발령과 그에 따른 수사·재판 과정 전체를 하나의 덩어리로 봐야 한다고 했다. 긴급조치 9호를 발령한 대통령과 긴급조치 9호에 따라 수사·재판을 한 개개인이 불법행위를 고의 또는 과실로 저지른 것인지를 따질 필요 없이 당시 국가 작용에 참여한 사람들을 ‘전체’로 묶어 직무 집행에 문제가 있었는지 보면 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긴급조치로 인한 기본권 침해는) 위법한 발령 행위와 긴급조치의 형식적 합법성에 기대 이를 적용·집행하는 다수 공무원의 행위가 전체적으로 모여 이루어졌다”며 “광범위한 다수 공무원이 관여한 일련의 국가 작용에 의한 기본권 침해에 대해서 국가배상 책임의 성립이 문제되는 경우에는 전체적으로 보아 객관적 주의의무 위반이 인정되면 충분하다”고 밝혔다.
경향 박용필 기자
26년 홀로 버틴 ‘아마존 원주민’ 사망…한 종족이 또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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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고립 원주민 종족 마지막 구성원 사망
26년 간 홀로 생활 ‘구덩이의 남자’
사체 위에는 앵무새 깃털…죽음 알고 대비
브라질에서 외부 접촉을 끊고 홀로 살아온 종족의 마지막 구성원인 ’구덩이의 남자’가 숨진 것이 발견됐다. 지난 2018년 원주민청에 의해 촬영된 모습이다. 브라질 원주민청 제공
브라질에서 외부와 접촉을 않던 원주민 종족의 마지막 구성원이 숨졌다.
<비비시>(BBC) 등은 29일 지난 26년 간 외부 세계와 완전히 고립된 채 혼자 살아온 원주민이 최근 숨졌음을 지난 23일 이 지역을 순찰 중이던 브라질 원주민청 공무원이 발견했다고 보도했다. 주검은 밀짚 오두막 옆 해먹 위에서 마코 앵무새 깃털에 덮인 채 발견됐다. 원주민이 자신의 죽음을 미리 예견하고 덮어 놓은 것으로 보인다. 숨진 것은 발견되기 40~50일 전으로 관찰되며, 침입의 흔적이나 외상이 없어 자연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으나 60살 정도였던 것으로 보인다.
원주민 전문가인 마르셀로 도스 산토스는 현지 언론에 구덩이의 남자 사체 위에 놓인 깃털과 관련해 “그는 죽음을 대비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브라질 당국은 정확한 사망 경위를 밝히기 위해 부검을 결정했다.
브라질과 볼리비아의 접경 지대인 혼도니아주 타나루 원주민 지역에서 살던 종족의 일원인 그는 다른 동료들이 외지인들에 의해 사망한 뒤 혼자 살아왔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그는 구덩이를 여러개 파고 살아와 ’구덩이의 남자’로 불렸다.
그는 자신이 살던 영역에 여러 개의 구덩이를 파고 그 위에 밀집 오두막을 짓고 살아왔다. 이 구덩이는 동물 사냥이나 은신용으로 추정되나, 그의 종족이 종교적 의미를 부여했을 수 있다고 원주민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그의 종족 동료 대부분은 1970년대 땅을 개간해 확장하려는 개발업자나 목축업자들에 의해 살해됐다. 남아있던 6명도 1995년에 불법 광산업자들의 공격으로 숨져 그만 남게 됐다. 브라질의 원주민청은 다음해인 1996년에 그가 홀로 생존한 것을 알고 안전을 추적해왔다.
그는 외부와의 접촉을 피해왔기 때문에 속한 종족과 사용하는 언어는 파악되지 않았다. 원주민청은 2018년에 그를 정글에서 조우해 짧은 영상 기록을 남겼다. 당시 그는 도끼와 같은 도구를 가지고 나무를 자르고 있었다.
구덩이의 남자는 약 50여개의 밀짚 오두막을 남겼다. 안에는 약 3m 깊이의 구덩이가 파여있다. 구덩이 중 일부에는 밑에 날카로운 나무 창날이 박혀있다. 이를 통해 야생돼지 등을 사냥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옥수수와 파파야를 경작하기도 했다.
브라질 헌법에 따라서, 원주민들은 자신들의 전통적인 땅에 대한 권리를 갖는다. 구덩이의 남자가 살아온 타나루 원주민 영역은 지난 1998년부터 접근이 제한돼 왔다. 하지만, 이 지역을 개간하려는 지주와 농부들은 약 8070㏊ 면적에 달하는 이 지역에 대한 접근 금지에 반발하며, 원주민들을 위협해왔다.
타나루 원주민 영역에 대한 보호와 접근 금지는 매해 갱신되어 왔다. 이번 죽음을 계기로 보호 조처를 영구화하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브라질에는 약 240개의 원주민 종족이 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마침내 코로나 정점 구간 지났다”…‘입국 전 코로나검사’ 폐지하나
30일 중앙방역대책본부 브리핑
위중증 최대 850명까지 증가 전망
재감염 7.64%…1주 새 약 1%p 상승
내일 ‘입국 전 코로나검사’ 폐지 여부 발표
30일 오전 시민들이 서울 마포구 보건소 선별진료소에서 코로나19 검사를 위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7월 시작된 ‘코로나19 재유행’이 정점을 지나 감소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위중증·사망자는 신규 확진자와 2~3주 시차를 두고 늘어나는 만큼, 9월까지 증가세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30일 임숙영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 상황총괄단장은 이날 방대본 정례브리핑에서 “감염재생산지수가 9주 만에 1 미만으로 하락했다”며 “대부분의 모델링 전문가들이 8월 셋째 주(14∼19일)에 정점 구간을 지난 것으로 판단하고 있어 유행은 서서히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감염재생산지수는 1명의 확진자가 몇 명을 감염시키는 지를 보여준다. 8월 넷째 주(21일~27일) 감염재생산지수는 0.98로, 6월 넷째 주(0.91) 이후 9주 만에 1 이하로 내려왔다. 8월 넷째 주 주간 확진자 수는 76만9552명으로, 1주 전과 견줘 13.5%(12만3541명) 감소했다. 이날 0시 신규 확진자 수는 11만5638명이다.
위중증환자·사망자는 당분간 정체하거나 증가할 전망이다. 방대본은 이달 말에서 9월 초까지 하루 최대 580~850명의 위중증 환자와 하루 평균 60~70명의 사망자가 발생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실제 확진자 증가로 8월 넷째 주 위중증 환자와 사망자는 1주 전과 견줘 각각 28.9%, 25.4% 늘었다.
주간 확진자 가운데 ‘재감염(2회 감염) 추정사례’는 7%를 넘어섰다. 8월 셋째 주(14∼20일) 재감염 추정사례는 약 7.6%로, 전주(6.7%)와 견줘 약 0.99%포인트 상승했다. 주간 확진자 가운데 코로나19 재감염 사례 비중은 7월 둘째 주 3.7%에서 꾸준히 늘어 8월 셋째 주 7.6%까지 증가했다. 21일 0시 기준 전체 재감염자 30만37명 가운데 2회 재감염자의 40.7%, 3회 재감염자의 30.6%가 만 17살 이하였다.
한편, 방역 당국은 ‘입국 전 코로나19 검사’ 폐지 여부와 ‘동절기 코로나19 접종 계획 기본 방향’ 등을 31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보고한 뒤 발표할 예정이다.
권지담 기자 gonji@hani.co.kr
외신이 본 '한국 대통령' - 정부가 본 '외신 속 대통령', 그 간극
[언론비평] 8월 한 달, 국내 독자들의 눈길을 끈 보도 살펴보니... 부정 평가가 많았다
'미국 유력 언론이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에 주목하고 있다'는 취지의 기사가 최근 국내 다수 매체를 통해 보도됐다. 하지만 해당 언론에 실린 것은 기사가 아닌 외부 기고문이었다. 기고자는 어느 한국계 미국인 교수였는데, 그는 올해만 5차례 오마이뉴스에 윤석열 정부를 비판하는 글을 올린 이른바 '시민 기자'였다. - 7월 31일 <조선일보> 기사 <'오마이 시민기자'의 윤비판 블로그글, 국내서 '외신'으로 둔갑한 사연> 중
<조선일보>가 이렇게 발끈한 기사는 최승환 일리노이주립대 정치학과 교수가 지난 7월 24일 미국 외교안보 전문매체인 <내셔널인터레스트(The National Interest)>에 기고한 "바이든은 한국의 인기 없는 대통령을 자신으로부터 구할 수 있을까"라는 제목의 칼럼이었다.
앞서 다수 매체는 최 교수의 칼럼을 인용해 '외신이 주목한 윤 대통령 지지율 하락'과 같은 논조의 기사를 내보냈다. 이를 두고 <조선일보> 및 <월간조선> <뉴데일리> 등은 최 교수를 시민기자로 깎아내리며 <내셔널인터레스트> 보도의 신뢰성 역시 깎아 내린 것이다.
이에 대해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지난 5일 <조선일보가 '윤석열 지지율 하락' 외신 트집 잡은 이유>라는 신문 모니터를 통해 <조선일보>의 주장이 "기사 신뢰도를 떨어뜨리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최 교수 본인도 <오마이뉴스>에 반박문을 게재해 "어떻게 해서 <조선일보>가 <내셔널인터레스트>에 쓴 기고를 외신으로 보도하는 것은 문제가 없고, 다른 언론매체들에서 똑같은 방식으로 보도하는 것은 외신이 될 수가 없다는 뜻인지요?"라고 되물었다.
필자가 지난 공방을 소개한 이유가 있다. 최근 외신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박한 평가를 쏟아내고 있다. 영미권뿐만 아니라 유럽까지 그런 시각이 확대된 모양새다. 그러자 앞서 소개한 것처럼 애써 외신의 평가를 평가절하하거나 무시하려는 움직임지 감지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외신 보도가 그러한 평가절하나 국민들 눈 가리기로 일관할 성질을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의 취임 100일을 전후로 한 8월 한 달 눈여겨 볼 만한 외신 보도를 먼저 보자.
펠로시 패싱보도 독일 일간지 비판까지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지난 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김진표 국회의장과의 회담에서 발언하고 있다.
(펠로시 미 하원의장가) 한국 지도자를 만나지 못한 건 매우 우려됩니다. 실수였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을 달래려는 계획이었다면 성공하지 못할 겁니다. 미국을 모욕한 것이라고 봅니다. 한국이 공동의 가치를 수호하지 않는다는 신호를 세계에 보냈습니다. 그런 가치는 동맹과 서방을 규정하는 것인데도 말이죠."
지난 6일 '미국의소리'(VOA)가 마련한 특집 대담에 출연한 미첼 리스 전 미국 국무부 정책기획실장(백악관 국가안보회의 특별보좌관)의 목소리는 강경했다. 함께 출연한 마크 피츠패트릭 전 국무부 비확산 담당 부차관보 역시 "모욕적이었다"며 미첼 전 정책기획실장의 주장을 거들고 나섰다. 이들의 주장이 얼마나 강경했는지는 '미국의소리' 한국어 유튜브를 통해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당시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이 미중 간의 대립을 격화시켰고, 그 결과 강경 우파로 분류되는 두 패널이 "한미동맹"과 "모욕" 운운하며 격분한 것도 납득이 갈 만 하다. 그러나 그러한 우려는 이들 강경 우파 관료들 뿐만이 아니었다. <워싱턴포스트> <블룸버그> <디플로맷> <폭스뉴스> <USA투데이> 등 여러 미국 매체와 함께 <파이낸셜타임즈> <가디언> 등 영국 매체도 '펠로시 패싱'을 상세히 보도했다.
그리고 윤 대통령이 취임 100일 넘기고 외신을 포함한 기념 기자회견을 마쳤다. 그러자 윤 대통령을 향한 조롱 섞인 보도까지 등장했다. 25일(영국 현지시각) 영국 경제 매체 <이코노미스트>는 마치 술이라도 취한 듯한 남성의 일러스트와 함께 윤 대통령에 관한 장문의 칼럼을 게재했다(관련 기사 : 영국 '이코노미스트'에 실린 칼럼 : "윤 대통령, 기본부터 배워라").
이 칼럼은 상세한 분량에 걸쳐 윤 대통령의 정치적 미숙함과 반정치적 성향, 검찰로서의 경력 등을 상세히 언급했다. 모두 국내에서 논란이 됐거나 비판에 직면했던 사안들이다. 일국의 대통령을 향한 비판치고는 수위가 매우 높았다.
<이코노미스트>에 실린 칼럼은 말미에 "끝으로 가장 중요한 조언"이라며 "이전 모든 것을 받아들여라. (정치적인) 규칙을 깨기 전에 규칙부터 배우라"고도 충고했다. 자국민들이 보기에 일견 모욕적일 수도 있는 수위다.
같은 날 독일 뮌헨에서 발간되는 일간지 <쥐트도이체차이퉁(Süddeutsche Zeitung)>도 '새 대통령이 빠진 깊은 수렁(The new one's in the deep)'이라는 기사에서 서민의 눈높이와 거리가 먼 윤 대통령의 행보를 비판했다.
일본과 한국에서 주로 활동하며 해당 기사를 쓴 독일인 기자는 "윤석열은 모든 국민을 위한 대통령이 되고 싶어 한다"면서도 "하지만 전직 검사 출신인 그는 반대하는 의견을 크게 의심하고, 일반 서민의 현실과도 동떨어져 있다. 무엇보다 다툼과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고 평했다. 이 칼럼은 스위스 일간지 데어분트(Der Bund)에도 <자기 조국을 이해하지 못하는 대통령>이란 제목으로도 실렸다.
▲ 25일(영국 현지시각) <이코노미스트>엔 "한국 대통령은 기본부터 배울 필요가 있다"는 제목의 칼럼이 실렸다. 칼럼엔 신발을 양손에 들고 넥타이는 허벅지에 매고 있는 한 남성의 일러스트가 함께 실렸다.ⓒ The Economist
정부의 외신 보도 평가는 달랐다
그리고, 8월 30일 홍콩 영자지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도 비판 대열에 동참했다. 윤 대통령 취임 100일을 맞은 한국의 풍경을 스케치하면서 이 신문은 "곤경에 처한 한국의 윤 대통령이 실패한 공약들과 여러 스캔들로 인해 안티페미니스트들에게조차 버림 받았다"고 보도했다.
대선후보 시절 윤 대통령을 지지했던 많은 젊은 남성 지지자들이 윤석열 정부가 '주택시장 안정' '군인 월급 200만원 인상'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 등을 이행하지 않자 지지를 철회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신문은 그러면서 8월초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 속 18~29세 지지율(긍정 22%, 부정 64%)을 소개하기도 했다.
또 이 매체는 "윤석열 정부에 환멸을 느낀 젊은이들로부터 대중의 지지가 약해지는 가운데 8월 17일 취임 100일을 맞았다"고 평했다. 이어 "윤 대통령은 집권하는 동안 구체적인 비전이 없는 것 같다"며 "그의 리더십 문제와 지지자들이 제기한 문제 해결 능력 부족이 지지율 하락을 악화시킨 것 같다"는 정주신 한국정치학회 이사의 촌평을 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가 바라보는 외신의 평가는 많이 다른 것 같다. 지난 8월 25일 대한민국 정책브리핑은 <외신이 본 윤석열 대통령 취임 100일> 자료를 통해 <경제 및 안보 분야> <한일 관계> <남북 관계 '담대한 구상'> 등 세 분야의 외신 보도를 소개했다. 취임 100일 기자회견 당시 윤 대통령이 모두 발언을 통해 보여줬던 자화자찬에 가까웠다.
"윤 대통령은 한미 동맹의 범위를 안보 영역을 넘어 지정학적 소용돌이에 빠진 경제 영역까지 확대하고 있다." - 미국 포린폴리시 22.08.18
"이미 한국은 세계 4대 무기 이전 공급국이라는 야망을 달성하는 단계다. 폴란드와 사상 최대 규모의 무기 거래에 서명했다" - 미국 CNN, 22.08.17
"윤석열 정부는 일본의 이해를 얻으면서 징용공 피해자도 보상받는 '양정면 작전'을 모색하고 있다." - 일본 마이니치 22.08.18
"한국이 일본에 올리브 가지(화해의 제스처)를 건넸다" - 미국 블룸버그 22.08.15
"윤 대통령은 일본을 '함께 힘을 합쳐 나가야 할 이웃 나라'라며 경제, 안전보장, 사회, 문화에 걸친 폭넓은 협조를 당부해 역사문제에 대해 일본에 불만을 표시하고 행동을 강요한 역대 정권으로부터의 변화를 각인시켰다." - 일본 닛케이 22.08.16
"윤 대통령은 북한이 비핵화에 '확고한 의지'를 보인다면 북핵 프로그램이 종료되기 전이라도 원조가 시작될 수 있다고 북한 정권에 기회를 제안했다." - 미국 블룸버그 22.08.22
"북한과의 대화는 정치적 쇼가 돼선 안 되며 평화 정착에 유익해야 한다고 강조했고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중단할 경우 단계적 지원 제공 의향을 거듭 밝혔다." - 영국 로이터 22.08.17
일반 국민들이 이목을 끈 외신보도와는 상당한 거리감이 있다. 이에 대해 노무현·문재인 청와대에 몸 담았던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9일 tbs라디오에 출연해 최근 쏟아지는 부정적인 외신 보도와 현 대통령실의 외신 대응을 이렇게 평가했다. 그는 연거푸 "너무 속상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관리의 영역을 떠난 것 아닐까요? 저도 야당 의원이긴 합니다만 대단히 속이 상하더라고요(...). (이코노미스트 칼럼 중) 가장 가슴 아픈 부분은 여전히 대통령이 정치가 아닌 검사에 머물러 있다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우리 국내에서도 비판이 나오는 지점인데 반박이나 정정 보도 여부는 용산 대통령실에서 판단할 몫이라고 생각을 하고요. 외신도 오해하는 게 있으면 오해를 적극적으로 좀 풀고, 대응하고 관리하고 당연히 하는데, 너무 이건 속상합니다."
오마이뉴스 하성태(woodyh)
윤 정부 민영화 정책에 민주노총-한국노총 공동투쟁 결의
윤석열 민영화 정책에 맞서 민주노총-한국노총 공동투쟁 결의 ⓒ 유성호
민주노총 소속 공공운수노조, 보건의료노조와 한국노총 소속 공공노련, 공공연맹, 금융노조 대표자와 간부들이 30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양대노총 공공부문 노동조합 공동대책위원회 결의대회'를 열고 윤석열 정부의 공공기관 구조조정 및 민영화 정책을 저지하기 위해 공동투쟁을 결의했다.
이날 이들은 "윤석열 정부는 취임 전부터 반노동, 친재벌 정책을 표방하더니 7월 29일 '공공기관 민영화 가이드라인'과 이번 달 공공기관 관리체계 개편방안을 통해 더욱 노골적으로 공공기관 죽이기와 친재벌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며 "윤석열 정부의 공공기관 민영화 정책, 공공성 파괴 정책, 반노동 정책에 맞서 싸울 것"이라고 의지를 표명했다.
또한 이들은 "윤석열 정부는 대국민 서비스를 위해 열심히 일해온 죄밖에 없는 우리 공공노동자들을 방만 경영이라는 프레임으로 마치 부정 이익을 편취한 집단인 것처럼 모욕했고, 인원 감축으로 노동조건을 퇴보시켰다"며 " 공공노동자들을 탄압하려는 획책에 우리는 더 이상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마이뉴스
서방의 '러시아·중국 악마화'가 세계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
[해외 시각] 유럽 및 세계의 안보는 오직 외교로 달성 가능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6개월이 지났지만, 외교적 해법은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세계 인구의 4.2%, 세계 GDP의 16%를 차지할 뿐인 미국이 "세계 패권을 유지하겠다"는 위험하고 헛된, 심지어 시대에 뒤떨어진 생각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다음 글은 컬럼비아대 교수이자 유엔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 소장인 제프리 삭스(JEFFREY D. SACHS)가 '서방의 위험한 러시아와 중국의 인식(The West's Dangerously Simple-Minded Narrative About Russia and China)'라는 제목으로 비영리 미국 소재 뉴스 웹사이트 <커먼 드림스>에 올린 글이다. 편집자
현재 세계가 핵전쟁의 재앙에 다가가고 있는 원인의 상당 부분은 서방의 정치지도자들이 세계적 갈등 심화의 원인들에 대해 솔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서방의 지도자와 언론들은 서방은 정당한 반면, 러시아와 중국은 오로지 세계에 엄청난 해악을 끼치려는 악마(evil)라는 담론을 지속적으로 퍼뜨리고 있다. 이는 한편으로 지극히 화급한 외교적 해법을 무시하면서 서방의 대중여론을 조작하려는 시도일 뿐이다.
서방 측 담론의 핵심은 (2017년 12월 트럼프 행정부가 작성한) 미국의 국가안보전략에 잘 요약돼 있다. 미국의 세계 인식의 핵심은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의 안보와 번영을 해치려 시도하는" 확실한 적대국가라는 것이다. 미국 전략가들에 따르면 중국과 러시아는 "세계 경제의 자유와 공정을 해치고, 자신의 군사력을 증강하며, 엄격한 정보 통제를 통해 시민사회를 억압하고 독재정부의 영향력을 확대하려고 작정한 국가들"이다.
그러나 미국은 1980년 이후 무려 15차례 이상 해외에서 불필요한 전쟁을(wars of choice : 아프간, 이라크, 리비아, 세르비아, 시리아, 예멘 등) 벌인 국가인 반면, 중국은 한 번도 전쟁을 벌이지 않았고, 러시아는 단 한 차례 해외 전쟁을(시리아) 벌였을 뿐이다. 또한 미국은 85개 나라에 군사기지를 갖고 있는 데 비해 중국은 세 나라, 러시아는 한 나라(시리아)에만 해외 군사기지를 보유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우리 시대의 최대 과제는 이들 독재국가들과의 대결이라는 주장을 끊임없이 되풀이하고 있다. "오늘날의 지구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자신들의 억압적 정책들을 정당화하면서 오로지 자신만의 국가 이익을 추구하고 자국의 영향력을 확대하려 하는" 중국과 러시아를 저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의 안보전략은 어느 한 행정부의 작품이 아니다. 국민들의 감시와 통제를 벗어나 자율적으로, 그리고 비밀리에 작동하는 (군산복합체 등) 미국의 안보세력이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낸 것이다.
러시아와 중국에 대한 과도한 공포 조성은 사실의 조작을 통해 서방의 시민들에게 주입되고 있다. 20여 년 전 아들 부시 대통령은 미국에 대한 최대 위협은 이슬람근본주의라고 국민들을 설득했다. 하지만 그는 이슬람근본주의 세력을 만들어낸 것은 바로 미국의 CIA와 사우디아라비아, 파키스탄 등이며 미국 등의 자금과 군사 지원을 받은 이슬람 무장세력이 미국을 대신해 아프간과 시리아, 리비아 등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은 밝히지 않았다.
서방 언론에 의해 일방적 침략으로 매도된 1979년 12월 소련의 아프간 침공은 또 어떠한가.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우리는 소련의 침공이 실상은 CIA의 비밀공작에 의해 촉발됐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 않았는가! 이러한 정보조작은 시리아 내전에서도 일어났다. 서방 언론들은 2015년 이후 시리아 아사드 정권에 대한 푸틴의 군사지원을 매섭게 비난했으나, 이미 2011년부터 미국이 아사드 정권 제거를 위해 이슬람 무장세력을 동원했다는 사실은 일체 함구했다. 아사드 제거를 노린 CIA의 비밀공작(단풍나무작전 : Timber Sycamore)은 푸틴의 군사지원보다 무려 4년이나 앞섰는데도 말이다.
한편 최근에는 펠로시 하원의장이 중국의 강력한 경고를 무시하고 무모하게도 대만 방문을 강행했다. 이에 대해 G7의 외무장관들은 펠로시의 도발을 비판하기는커녕 중국의 "과도한 대응"을 비난하기에 급급했다.
우크라이나전쟁에 대한 서방 측 담론은 러시아 제국을 재건하려는 푸틴의 도발되지 않은 공격(unprovoked attack)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냉전 종식 당시 서방은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에게 나토의 동진 금지를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네 차례에 걸쳐 나토를 확대했다는 것이 역사적 진실이다. 1999년 폴란드, 체코, 헝가리를 시작으로 2004년 발트 3국 등 7개 국가가 가입했고, 2008년에는 우크라이나와 조지아의 가입이 약속됐으며, 올해 6월 마드리드 나토 정상회담에는 중국 봉쇄를 겨냥해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 4개국이 옵서버 자격으로 참가했다.
또한 서방 언론들은 2014년 2월 이른바 마이단 쿠데타를 통한 우크라이나의 친러파 대통령 야누코비치의 제거에서 미국의 주도적 역할, 이후 프랑스와 독일이 민스크2 협정을 중재했으면서도 우크라이나에 협정의 이행을 요구하지 않았다는 사실, 그리고 트럼프와 바이든 행정부가 우크라이나에 막대한 무기 지원과 군사 훈련을 제공하면서 전쟁을 부추겼다는 점, 나토 동진과 관련한 푸틴의 거듭된 협상 요구를 미국이 일방적으로 거부했다는 사실 등은 전혀 보도하지 않았다.
물론 나토는 자신들의 행위가 순전히 방어적인 것이며 푸틴이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푸틴은 아프간과 시리아 등에서의 CIA 비밀공작, 1999년 (사회주의 형제국) 세르비아에 대한 78일간의 무차별 공습, 2011년 나토에 의한 리비아 가다피 정권 제거, 20년에 걸친 나토의 아프간 점령, 푸틴의 제거를 요구한 지난 3월 바이든의 "말실수"(물론 전혀 말실수가 아니다), 그리고 러시아의 돌이킬 수 없는 약화가 미국의 우크라이나전쟁 목표라는 오스틴 국방장관의 발언 등에 대해 전혀 걱정하지 말라는 얘기다.
이러한 미국의 시도들의 목표는 서방 국가들과의 군사동맹을 통해 중국과 러시아를 봉쇄, 또는 패퇴시킴으로써 미국의 세계 패권을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위험하고, 헛된 꿈이며, 시대에 뒤떨어진 생각이다. 현재 미국은 세계 인구의 4.2%, 세계 GDP의 16%를 차지할 뿐이다. G7의 GDP를 다 합쳐봐야 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공)보다도 적다. G7의 인구는 세계 인구의 6%에 불과한 반면 BRICS는 41%나 된다.
현재 세계의 지배 국가가 되겠다는 헛된 꿈을 꾸고 있는 국가는 단 한 나라, 미국뿐이다. 이제 미국은 안보의 진정한 원천이 무엇인지를 깨달아야만 한다. 안보의 진정한 원천은 패권 유지라는 헛된 꿈이 아니라 국가 내부의 사회적 융합과 세계 다른 나라들과의 책임 있는 협력이다. 이러한 깨달음으로 기존 외교정책을 수정했을 때, 비로소 미국과 그 동맹국들은 중국 및 러시아와의 전쟁을 피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현재 지구촌에 닥친 환경, 에너지, 식량, 사회적 위기 등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인류 사회가 극단적 위기에 처한 현재, 유럽의 지도자들이 유럽 안보의 진정한 바탕을 추구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미국의 패권 유지가 아니라 모든 유럽 국가들의 정당한 안보 이익을 보장하는 유럽의 새로운 안보질서를 만들어내야 한다. 물론 여기에는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나토의 흑해 진출에 강력 반대하는) 러시아의 안보 이익도 고려되어야만 한다. 유럽은 나토의 확대 중단, 그리고 민스크2협정의 성실한 이행이 참혹한 우크라이나전쟁을 중단할 수 있는 길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현 단계에서는 군사적 대결 심화가 아니라 외교만이 유럽과 세계의 안보를 보장할 수 있는 확실한 길이다.
박인규 편집인(=정리·번역) / 프레시안
비선실세 최외출의 제자들... 그들은 이렇게 교수가 됐다
"용서 안 해. 전부 감방에 다 보낼 거예요. 괘씸한 xx들. 가차 없이 쫓아낼 거예요. 내가 기다리고 있어요. 조금만 있으면 검찰 처분이 나오고..."
최외출 영남대학교 총장은 뉴스타파가 최근 입수한 녹음 파일에서 이같이 말했다.
최외출 총장이 복수를 다짐하는 듯한 발언을 한 시점은 지난 2020년 9월 25일. 업무상 배임과 사기 등의 혐의로 고발됐다가 대구지검으로부터 혐의 없음 처분을 통보 받기 4개월 전이다. 최외출 총장은 지난해 1월 무혐의 처분을 받았고, 한 달 뒤 영남대 제 16대 총장에 취임했다.
마침내 갈라선 영남대 비선 실세와 막후 조력자
3시간 분량의 녹음 파일에는 최외출 총장과 최 총장이 '학장님'으로 높여 부르는 김광수 영남대 명예교수와의 대화가 담겼다. 지난 40여년 간 제자와 은사, 영남대의 비선실세와 막후 조력자로서 협력했던 두 사람은 영남학원 이사 선임 문제를 놓고 사이가 벌어졌다.
지난 2020년 9월 25일 녹음된 최외출 영남대 총장(당시 교수)과 김광수 명예교수와의 대화에서 발췌.
최외출 총장이 김광수 명예교수를 영남학원 이사로 선임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자, 김광수 명예교수는 최 총장과 관련된 채용 비리 의혹을 제기했다. 가장 먼저 거론된 사람은 최 총장의 고등학교 1년 후배인 이재모 영남대 새마을국제개발학과 교수다.
이재모 교수는 2007년 임용될 당시 영남대에서 뒷말이 무성했다는 후문이 있다. 대구카톨릭대학에서 정년을 보장 받은 이재모 교수가 정년이 보장되지 않는 데다 재임용 및 승진 기회도 제한된 비정년 트랙에 응모했다 떨어졌는데 불과 6개월 뒤 훨씬 경쟁이 치열한 정년 트랙에 도전해 성공했기 때문이다.
최외출 총장은 이재모 교수의 임용 과정을 이렇게 설명했다.
정확한 것은 이거예요. (이재모 교수가) 비정년 계열에 서류를 냈는데 떨어졌어요. 6개월 뒤 정년 계열을 뽑았어요.야(이재모 교수)가 업적이 돼서 들어왔는데 심사를 했어요. 내가 심사위원회에 들어갔어요. 이재모가 나한테서 2등을 받았어요.우동기(당시 영남대 총장)하고 사이가 나쁠 때예요. 그래서 내가 학장님한테 그랬잖아요. 내가 우동기하고 사이도 나쁘고, 야(이재모 교수)가 나한테 인정받았다, 내게 1등 받으면 인마(우동기 당시 영남대 총장)가 안 시켜줄 거다. 그러니까 학장님이 "이재모하고 YWCA 인가 누군가가 우 총장하고 잘 안다 카더라" 그래 가지고 학장님이 거기다 부탁했을 거예요. 학장님이 우동기를 잘 아는 사람 거기에서 (인사청탁을)했어요. 내가 1등을 줬으면 우동기는 떨어뜨릴 거다. 그래서 내가 야(이재모 교수)를 1점 차이로 2등 줬어요. -지난 2020년 9월 25일 녹음된 최외출 영남대 총장(당시 교수)과 김광수 명예교수와의 대화에서 발췌.
최외출 총장의 발언을 정리하면, 당시 심사위원으로서 이재모 교수 임용을 돕기 위해 일부러 1점 차의 2등을 줬고, 우동기 당시 영남대 총장과 사이가 나빠 이재모 교수가 임용에서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김광수 명예교수에게 전달했다. 이에 김광수 명예교수는 YWCA 관계자를 통해 우동기 당시 영남대 총장에게 인사 청탁을 했다는 것이다.
최외출 총장 제자들의 논문 표절
김광수 명예교수는 최외출 총장이 오래 전부터 영남대 학사 운영을 농단했다며 올해 초 '영남대학교 이대로는 안 된다'는 제목의 책자를 발간했다. 책자에는 최외출 총장의 제자인 이양수 영남대 새마을국제개발학과 교수의 논문 표절 의혹이 담겨있다. 이양수 교수가 밀양대 행정학과 교수로 재직하던 2004년 8월 한 학술지에 게재한 논문이 이미숙 영남대 휴먼서비스학과 교수가 2003년 12월에 쓴 석사학위 논문을 표절했다는 주장이다. 이미숙 교수는 이양수 교수의 아내다.
그러나 이양수 교수는 논문 표절 의혹은 허위라고 주장하면서 김광수 명예교수에게 내용증명을 보내 관련 문서를 모두 파기할 것을 요구했다.
뉴스타파는 이양수 교수가 학회에 투고한 '대구지역 NGO의 정책과정별 참여에 관한 연구'와 이미숙 교수의 석사 학위 논문 '지방정부 정책에 대한 NGO의 역할 분석'을 입수해 비교했다. 제목과 저자만 다를 뿐 이양수 교수의 논문은 아내의 석사 학위 논문을 오려 붙여 만든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총 15페이지로 구성된 이양수 교수의 논문은 서론 일부와 본문 중 4개 문단, 결론의 9개 문단 중 1개를 제외하고 이미숙 교수의 석사 학위 논문을 똑같이 베꼈다.
이양수 교수가 지난 2004년 한 학회에 투고한 논문(사진 오른쪽)의 결론이 이미숙 영남대 교수의 석사학위 논문(사진 왼쪽)의 결론 부분을 가위로 오려 붙인 듯 일치했다.
뉴스타파는 이양수 교수가 논문을 표절하면서 저지른 어처구니 없는 실수도 발견했다. 이미숙 교수는 석사 학위 논문에서 '정책과정과 NGO의 역할'을 설명하면서 동의대 석사학위 논문과 주성수 한양대 교수의 논문을 인용했고, 각각 18번과 19번의 각주를 달았다. 그런데 이양수 교수는 각주 18번과 연결된 동의대 석사학위 논문 내용을 인용하면서 마치 주성수 교수의 논문 내용을 옮겨 적은 것처럼 잘못 표기했다.
이양수 교수는 뉴스타파와의 전화 통화에서 "연구 윤리적인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못해 논문을 자진 철회했다"며 "표절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학회인만큼 표절이라는 말은 조심해야 한다"며 표절 사실을 부인했다. 이양수 교수는 또 2007년 6월 30일 학회에 논문 게재 취소 요청을 했으나 당시 학회가 연구 윤리 제정 후 재심의 하기로 결정했고, 2012년 8월 논문 게재 취소를 다시 신청해 같은 해 11월 논문 게재가 최종 취소됐다고 주장했다.
뉴스타파는 해당 학회에 이양수 교수의 주장이 사실인지 질의했지만, 학회 측은 관련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이양수 교수는 논문을 자진 철회했다고 주장하지만 공교롭게도 이 교수가 논문 게재 취소 요청을 한 2007년과 2012년은 최외출 총장 제자들의 논문 표절 의혹이 제기된 시기와 일치한다.
2007년 이양수 교수는 영남대 교원 모집에 응모했다가 임용 심사 과정에서 아내의 논문을 표절한 사실이 드러나 고배를 마셨다. 당시 이성근 전 영남대 교수가 문제를 제기했다. 이성근 교수는 2011년 7월 대구경북연구원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듬해 이양수 교수는 논문 표절 전력에도 불구하고 영남대 교수로 임용됐다.
이양수 교수가 재차 논문 게재 취소를 신청하기 한 달 전인 2012년 7월 대구경북연구원에 재직했던 최외출 총장의 또다른 제자인 이동수 산림복지연구개발센터장이 돌연 사표를 냈다. 이동수 센터장의 박사학위 논문이 계명대의 석사학위 논문을 표절한 사실이 뒤늦게 들통났기 때문이다. 이동수 센터장의 박사 학위 논문 지도 교수는 최외출 총장이다. 최외출 총장과 경쟁 관계였고, 이양수 교수 임용을 반대했던 이성근 전 영남대 교수가 대구경북연구원장에 취임한 뒤 이동수 센터장의 논문 표절 문제가 처음 공론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동수 센터장은 뉴스타파와의 전화 통화에서 "그때 너무 힘들고 해서 1년 정도 쉬었다. 그게 전부다"며 개인적인 사유로 사직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김광수 명예교수는 "이동수 센터장의 지도교수인 최외출 총장이 자신한테 불똥이 떨어질까 두려워 사표를 내도록 강요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최외출 총장은 사퇴압력 의혹을 부인하면서 학교 홍보 담당자를 통해 "이동수 센터장이 졸업한 후 표절이라는 소문이 있어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관련 규정과 절차에 따라 처리했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그러나 논문을 표절한 제자를 길러낸 것에 대한 도의적인 사과는 없었다. 오히려 심사 과정에서 아무도 표절 사실을 발견하지 못했다며 당시 박사학위 심사 위원들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비선 실세의 제자들, 박근혜 정부 때 대거 교수 임용
비선실세였던 최외출 총장의 제자들은 박근혜 정부 당시 영남대에 무더기로 임용됐다. 이양수 교수의 아내 이미숙 교수는 2014년 3월 영남대 박정희새마을대학원 교수에 임용됐다. 부부가 같은 대학에서 교수로 임용되는 일은 흔치 않다. 게다가 영남대 교원 임용 지침에는 대학공채전문위원회가 채용 예정 인원의 2배수를 면접 심사 대상으로 추천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이미숙 교수는 단독 후보로 추천돼 면접을 통과했다. 영남대는 당시 38개 분야 중 7개 분야에서 단독 후보가 면접을 봤고, 이중 6개 분야 6명이 최종 합격했다며 특혜 의혹을 부인했다. 이에 대해 당시 면접을 진행했던 한 심사위원은 "법대와 의대 등 특수성이 있는 학과를 제외하고, 일반 단과대에서 면접 후보자를 단 1명만 추천하는 것은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반박했다.
뉴스타파는 의대와 법대를 제외한 타 학과에서 임용 후보자를 1명만 추천한 사례가 있었는지 물었지만, 영남대는 답변을 거부했다.
박사 학위 따고 한 달만에 교수로 임용되기도
이미숙 교수와 같은 해 임용된 김정수 영남대 군사학과 교수 역시 최외출 총장의 제자다. 최 총장과 같은 고향 출신인 김정수 교수는 2014년 2월 박사 학위를 취득한 지 한 달 만에 교수로 임용됐다.
육군사관학교 출신인 김정수 교수의 박사 학위 논문은 '학군장교(ROTC)의 리더십 향상을 위한 교육프로그램 개선방안'이다. 새마을운동 전도사인 최 총장의 연구 분야와 전혀 관련 없는 학문 분야지만, 최 총장이 지도교수를 맡았다.
새마을운동 전도사인 최외출 영남대 총장은 교수 시절 자신의 연구 분야와 동 떨어진 학군장교 리더십 관련 박사 학위 논문의 지도 교수를 맡았다. 해당 논문은 2014년 통과됐고, 한 달 뒤 논문의 저자는 영남대 교수로 임용됐다.
최외출 총장의 또 다른 제자인 안지민 교수는 2015년 영남이공대 기계학과 교수로 임용됐다. 당시 영남이공대는 '새마을정신과 리더십'이라는 교양 과목을 신설해 학생들에게 수업을 듣게 했다. 주로 안지민 교수가 수업을 담당했다. 그런데 안지민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 주제는 '장래 수요를 기반으로 한 노인주거단지 개발'이다. 새마을정신과 리더십이라는 강의 주제와는 동떨어져 보인다. 안지민 교수는 변호사를 통해 "학교의 교원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해 임용된 것이며, 교원 임용과 최외출 총장을 연결하는 것은 잘못된 견해"라는 입장을 전해왔다.
하지만 영남이공대 김진규 교수회장은 안지민 교수의 임용이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영어라든지, 국어라든지, 수학이라든지 정말 필요한 부분의 교수 충원은 없었다"며 "당시 교양과목이 계속 없어지는 추세에서 안지민 교수를 충원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과연 최외출 총장이 박근혜를 등에 업고 영남대의 비선실세로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았다면 그의 제자들이 정년제 교수 임용의 좁은 문을 통과했을지 의문이다.
뉴스타파 황일송
조국·정경심 부부, 아들 대리시험 정황···카톡 법정서 공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2019년 부인인 정경심 교수의 접견을 마치고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부부가 아들 조원 씨의 대학 온라인 시험을 대신 풀어준 정황이 담긴 카카오톡 채팅방 기록이 법정에서 공개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1부(재판장 마성영)이 2일 진행한 조 전 장관과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의 공판에서 검찰은 조 전 장관 부부와 아들 조원씨 간의 카카오톡 대화 기록을 공개했다.
해당 기록에 따르면 채팅방에서 당시 미국에 있던 조원씨가 시험 시간을 알리며 ‘한국 기준 화요일에 시간 되세요?’라고 묻자 조 전 장관은 ‘대기하고 있으마’, 정 전 교수는 ‘나도’라고 답했다. 이후 예정된 시험 시간이 다가오자 정 전 교수는 ‘엄마 컴(컴퓨터) 앞에 앉았다, 준비 완료’라고 메시지를 보냈고, 조 전 장관 역시 ‘준비하고 있다, 이멜(e메일) 보내라’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이어 조씨가 3분간 10문제를 전송하자 부부는 ‘받았다 다같이 풀자’고 했고, 각각 문제를 풀어 답을 보내줬고, 조원씨는 이 답을 차례로 입력했다고 검찰은 밝혔다.
검찰은 “가족끼리 정답이 뭔지 서로 갑론을박을 벌이는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며 “이 퀴즈 시험에서 조원은 90점이라는 고득점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조 전 장관과 정 전 교수가 2016년 11월과 12월 한 차례씩 조씨의 미국 조지워싱턴대 온라인 시험을 대신 풀어줬다고 보고 업무방해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다. 조씨는 부모의 도움으로 시험을 치른 과목에서 A학점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정 전 교수는 이날도 건강 문제를 호소했다. 앞서 딸 입시비리 혐의로 징역 4년의 실형이 확정돼 복역 중인 정 전교수는 건강상 이유로 형집행정지를 신청했으나 검찰에서 기각돼 수감 상태로 재판을 받고 있다./경향
이런 ‘대통령 특별사면권’이 꼭 존재해야 할까
시민 정서 무관 ‘그들만의 리그’서 거래 대상으로 전락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 8월 1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재벌 총수 사면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이번 사면심사위원회는 2018년 동계올림픽의 평창 유치라는 국가적 중대사를 앞두고 국익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해 이건희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에 대한 특별사면 상신의 적정성 여부를 심사해주십사 하는 취지에서 열리게 됐다.”(이귀남 법무부 장관)
“국제 경쟁이라는 축구장에 나가서 뛰는 우리나라 몇 개 대기업들은 우리가 좀 미워도 속상해도 세계무대에 나가 싸워 이길 수 있도록 다리 묶은 것을 풀어주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다. 삼성이라는 주전멤버 발에 뭘 채워놓고 뛰라는 것은 적절치 않은 것 같다.”(유창종 사면심사위원)
“법의 형평성도 있고, 사회정의 문제도 있고, 더군다나 얼마 안 됐는데 전례가 있다 한들 일반 정서로 쉽게 용납이 안 된다. 좀 아쉽고 개운하지는 않지만 찬성하겠다.”(권영건 사면심사위원)
“이건희 개인이 아니고 IOC 위원을 사면한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국민수 대검 기획조정부장)
“재벌 중 정몽구 회장은 사회봉사명령이 붙어 있어 집행했으나, 이건희 회장은 그것도 안 붙었더라. 법원에서 많이 봐준 것 같은데, 법무부에서 또 봐주는 것으로 생각이 들지만 찬성하겠다.”(주철현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장)
2009년 12월 24일 법무부 장관 회의실에서 열린 사면심사위원회 회의록을 요약·정리한 내용이다. 심사 안건은 형이 확정된 지 4개월밖에 안 된 이건희 삼성 회장에 대한 특별사면이었다. 9명의 사면심사위원 중 오영근 위원만 “신중 검토 의견”을 제시했고, 나머지 위원들은 찬성 의견을 밝혔다. 전직 대통령 이명박씨는 닷새 뒤인 12월 29일 이 회장에 대한 ‘1인 특사’를 단행했다. 단독 사면은 1990년 KAL기 폭파 혐의로 기소돼 사형을 선고받은 김현희씨가 특별사면된 이후 19년 만이었다.
오·남용되는 특별사면
이건희 회장에 대한 ‘원포인트 사면’은 범죄행위라는 점이 9년 뒤인 2018년 뒤늦게 밝혀졌다. 그해 10월 이건희 회장 사면을 기대하면서 이명박씨에게 자동차 부품업체 ‘다스’의 미국 소송비용을 지원했다는 이학수 전 삼성그룹 부회장의 진술이 법정에서 공개됐다. 이 전 부회장은 자수서에서 “삼성이 이명박 전 대통령의 소송비용을 대신 지급하면 여러가지로 회사에 도움이 되지 않겠나 기대했던 게 사실”이라며 “이건희 회장 사면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2020년 삼성이 이명박씨에게 소송비 대납 형식으로 뇌물을 줬다는 사실을 확정했다.
삼성과 이명박씨의 사면 거래는 대통령 특별사면권의 오·남용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었다. 문제는 특별사면권 오·남용이 반복되지 않도록 통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여전히 없다는 점이다. 이건희 회장의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윤석열 대통령이 올해 취임 뒤 처음으로 단행한 광복절 특사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대를 이어 특별사면권의 ‘혜택’을 본 셈이다. 이 부회장 복권 사유는 ‘경제 살리기’였다. 재벌의 투자·고용 등을 기대하는 정권이 재벌 총수에게 면죄부를 줄 때마다 약방의 감초처럼 활용하는 명분이다.
윤석열 정부는 정치인, 공직자는 이번 광복절 특사 대상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국정 지지율이 급격히 떨어진 것이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사적 이익을 위해 특별사면권을 악용한 이명박씨 사면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부터 이명박씨 사면 필요성을 언급해왔기 때문이다. 야권 일각에선 이명박씨와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를 동시에 사면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일반 시민의 정서와 무관하게 ‘그들만의 리그’에서 거래 대상으로 전락해버린 대통령 특별사면권이 과연 존재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헌법 제79조 제1항은 “대통령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사면·감형 또는 복권을 명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2020년 결정문에서 사면제도의 연원을 이렇게 설명했다. “사면제도는 역사적으로 절대군주인 국왕의 은사권(恩赦權)에서 유래했으며, 대부분의 근대국가에서도 유지돼왔고, 대통령제 국가에서는 미국을 효시로 대통령에게 사면권이 부여돼 있다. 사면권은 전통적으로 국가원수에게 부여된 고유한 은사권이며, 국가원수가 이를 시혜적으로 행사한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법 이념과 다른 이념과의 갈등을 조정하고, 법의 이념인 정의와 합목적성을 조화시키기 위한 제도로도 파악되고 있다.”
사면은 일반사면과 특별사면으로 나뉜다. 일반사면은 범죄의 종류를 지정해 이 종류에 해당하는 모든 범죄인의 형 선고 효과를 소멸시키거나 형의 선고를 받지 않은 자에 대해 공소권을 소멸시키는 행위를 말한다. 일반사면은 특별사면과 달리 국회 동의를 얻어야 한다. 특별사면은 형이 확정된 특정인에 대해 그 형의 집행을 면제하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30일 서울 청계광장 인근에서 열린 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 반대 시민발언대 행사에 참가한 시민이 사면 반대 구호가 적힌 촛불을 들고 있다. 권도현 기자
통제 장치 없는 사면권
법무부는 지난 8월 25일 주간경향에 보낸 서면 답변에서 “현재 확인 가능한 자료에 따르면, 일반사면(복권)은 1948년 사면법 제정 이후 1995년까지 총 10회 시행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1995년 이후 지금까지 일반사면은 한 번도 실시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에 반해 특별사면(특별감형·특별복권 포함)은 100차례 넘게 이뤄졌다. 대통령이 국회 동의를 받아야 하는 일반사면보다 외부 통제 없이 행정부 내부 절차로 진행할 수 있는 특별사면을 선택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현행 법령은 특별사면권 행사의 절차적 측면만 규정하고 있을 뿐 대상, 기준, 한계 등 실체적 요건과 제한에 관한 아무런 규정이 없다. 대통령이 일정한 절차만 거치면 어떤 사면이든 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
특별사면권에 대한 유일한 제어장치는 2007년 사면법 개정에 따라 법무부 장관 소속으로 설치된 사면심사위원회다. 사면심사위는 위원장 1명(법무부 장관)을 포함한 9명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법무부 장관은 공무원이 아닌 위원을 4명 이상 위촉해야 한다.
문제는 사면심사위의 심사결과가 대통령을 구속하지 않기 때문에 실질적 견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사면심사위 회의록도 5년이 지나야 공개된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는 “2015년부터 사면심사위 회의록은 어떤 위원들이 어떤 발언을 했는지 구체적인 속기 내용이 담겨 있지 않고, 주요 발언 내용을 요약한 형태”라고 지적했다.
외부위원 인적 구성도 주로 변호사, 로스쿨 교수 등 법률 전문가 위주다. 2012년 4월부터 2년간 사면심사위원을 지낸 김혜순 계명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사면을 판단할 때 중요한 건 법이 아니라 사회·경제·정치적 고려다. 그렇다면 법률 전문가뿐 아니라 사회 각 분야의 의견을 대표할 수 있는 위원들이 심사위에 대거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해외 주요 국가들은 사면권 남용을 막기 위해 특별사면권 행사의 제한과 한계를 명확히 정하고 있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2015년 발표한 ‘특별사면권의 남용 문제와 개선방안’ 보고서에서 “미국의 일부 주에서는 살인 등 중범죄, 탄핵에 대해서는 사면권을 행사할 수 없도록 정해 사면권 행사 대상에 제한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국내에서도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부적절한 특별사면이 단행될 때마다 사면권 오·남용 통제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됐지만, 사면법의 근본적 손질로까지 이어지진 못했다. 법무법인 이공의 김선휴 변호사는 “정부·여당은 집권기에 특별사면권을 거래 수단이나 무기로 삼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야당은 자신들이 정치인으로서 사면의 혜택을 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인지 사면법의 근본적 개정이 잘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학계와 시민사회단체는 그간 다양한 특별사면권 통제 장치를 제안해왔다. 대통령은 특별사면 단행 시 대법원의 의견을 반드시 청취하도록 하는 방안이 대표적이다. 이석민 전 헌법재판연구원 책임연구관이 2019년 발표한 ‘사면권의 한계에 대한 헌법적 검토’를 보면, 프랑스나 스웨덴 등의 입법례는 사법부 의견을 구하도록 하고 있다. 또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주 대법원 권고를 사면 요건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독일은 해당 사건을 담당했던 법원의 의견을 청취하도록 하고 있다. 국회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특별사면을 철회시키는 제도를 도입하자는 의견도 있다. 일정기간 이상의 형 집행이 경과되지 않은 사람, 사면을 이미 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 헌정질서파괴·부패·테러 등 특정 범죄를 저지른 사람 등은 특별사면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도 있다.
특별사면권 삭제 주장도
우여곡절 끝에 특별사면권을 제한하는 입법이 이뤄진다 해도 사면권 오·남용을 근본적으로 막기는 어렵기 때문에 사면법에서 특별사면을 아예 삭제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재윤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017년 발표한 논문 ‘정치적 특별사면과 사법정의’에서 “사면법에서 특별감형, 특별복권만을 남겨둔 채 특별사면을 삭제함으로써 대통령이 특별사면을 원천적으로 행사할 수 없게 하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사회통합을 꾀하거나 사법절차에서 발생하는 오류를 교정하는 도구가 오·남용 가능성과 부작용이 큰 특별사면이어야 할 필요가 없다는 취지다. 이세주 가톨릭대 법학과 교수도 2016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사면권에 대한 비판적 고찰’에서 “무제한적인 권한 남용 우려가 크고, 헌법의 주요 기본원리를 침해하는 대통령의 특별사면권은 폐지하는 게 옳다”고 밝혔다.
영화 <밀양>에서 신애(전도연 분)는 아들 유괴범을 용서해주기로 마음먹고 교도소를 찾는다. 범인은 평화로운 얼굴로 “주님의 용서와 사랑 속에 마음의 평화를 누리고 있다”고 말한다. 정작 피해자는 용서한 적이 없는데 가해자가 하나님의 이름을 빌려 스스로를 용서한 것이다. 특별사면권 행사가 시민들은 용서한 적이 없는 정치인, 재벌 총수 등을 대통령이 자의적으로 용서해주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이제 던져볼 때가 됐다.
김지환 기자 baldkim@kyunghyang.com
‘백약무효’ 저출생·인구 유출, 근본적 해법 없나
ㆍ2015년 기점 청년층 수도권 유입급증·지방소멸 가속화
올해 초 겨울휴가 때 아들과 선산이 있는 전남 고흥군 대서면을 방문했다. 기자가 태어난 곳은 대도시지만 고흥은 선친의 고향이기도 하고, 아직도 많은 친인척이 거주하는 집성촌이다. 명절 연휴가 아닌 평일 대낮에 방문한 시골. 마을 길엔 고즈넉하다는 표현조차 민망할 정도로 아무도 없었다. 사람이 아예 안 사는 것은 아니다. 집 밖으로 나오지 않을 뿐. 이제 80세를 넘긴 큰어머니는 방안에서 누운 채 조카 부자를 맞이했다. 농사일은커녕 화장실을 가기 힘겨울 정도로 거동이 불편하다고 했다. 그나마 오가는 사람은 군청에서 나와 가가호호 돌아다니며 노인들의 안부를 묻는 사회복지사가 유일하다. 마을에 젊은이는 물론이고 장년층도 없었다. 마을 전체가 거대한 노인병동인 셈이다.
지난해 전남 영광군 합계출산율은 1.87을 기록해 3년 연속 1위를 달성했다. / 영광군 제공
현재의 인구감소 추세라면 2040년 일본 지자체의 절반인 896개가 소멸한다는 내용을 담은 일명 ‘마스다 보고서’가 나온 게 2014년이다. 보고서에서 사용한 기법(20세에서 39세의 가임기 여성을 65세 이상으로 나눈 값)을 적용해 한국의 ‘지방소멸위험지수’(0.5 미만이면 위험지역)를 밝힌 연구가 나온 것은 2년 뒤. 터무니없는 소리처럼 들리지만, 지방소멸은 이제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똑바로 직시하기 어려운’ 터부 같은 것이 돼버렸다. 마스다 보고서로부터 치면 8년, 위험지수 개발로부터 6년이다. 그동안 한국의 사정은 어떻게 됐을까.
지방소멸의 핵심동인은 저출생과 젊은층의 유출이다.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젊은층은 지방을 떠나 수도권과 같은 대도시로 유입되는데, 지방소멸 초기 단계에서는 역설적으로 대도시권으로 인구가 몰리는 일극집중현상이 나타난다. 젊은층이 대도시에 몰렸다고 대도시 저출산 문제가 극복되는 것은 아니다. 높은 주거비용 등으로 1인 가구가 늘어날 뿐이다.
지방소멸 보고서 그 후 6년
8월 24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1년 출생통계를 보면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81명. 출생통계 작성을 시작한 1970년 이래 최저치다. 출생아 수는 시도단위로 보면 광주광역시(8.7%)와 세종특별시(2.9%)를 제외한 모든 시도에서 감소했고, 합계출산율 역시 광주와 대전을 제외한 15개 시도 모두 전년 대비 감소하는 결과를 보였다. 통계청이 내놓은 자료를 보면 눈에 띄는 대목이 있다. 경북 의성군의 경우 지방소멸 위험지수 자료에서는 전남 고흥군, 경북 청송군 등과 함께 지방소멸위험도에서 항상 선두를 달리는 곳으로 지목됐다. 그런데 통계청의 2021년 합계출산율 자료에서 의성군은 합계출산율 1.38을 기록해 출산율이 높은 상위 10개 시군구 리스트에서 8위에 올랐다. 지난해 순위는 더 높았다. 합계출산율 1.76으로 전남 영광군(2.54), 전남 해남군(1.89)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지방소멸 위험지자체라는 불명예를 떨치기 위한 자치단체 노력의 결실일까.
통계청의 이 데이터에서 영광군은 지난해에 비해 합계출산율은 감소(1.87)했지만, 여전히 1위를 기록했다. 뉴스를 찾아보면 ‘전남 영광군이 3년 동안 합계출산율 1위를 한 비결’과 같은 기사가 넘친다. 조직 개편을 통한 인구일자리정책실 신설(2019년), 출산용품 구입비, 신생아 지원비, 난임부부 시술비 본임부담금 지원 등 출산장려정책 등과 함께 양육비(첫째 500만원, 둘째 1200만원, 셋째 3000만원 지원) 등을 꼽는다. 정말 영광군의 상황은 개선되고 있을까. 인근 광주광역시의 상대적으로 높은 집값 부담 때문에 젊은 부부들의 전략적 선택이 만들어낸 일종의 착시는 아닐까. “…차로 광주 광산구까지 30분 정도 걸리긴 한다. 영광에 거주하면서 광주로 출퇴근하는 젊은 부부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아무래도 주택 사정이 광주 서구나 그런 쪽보다는 영광이 더 좋으니까.” 8월 30일 통화한 김성균 영광군 인구일자리정책실장의 말이다.
합계출산율 3년 연속 1위 영광의 속사정
광주에서 영광의 신축아파트단지까지 통근버스가 운영되는 경우가 많은데 교통체증이 없으니 그런 목적으로 거주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고 했다. 합계출산율로 3년째 전국 1위 지자체라는 타이틀을 유지하고 있지만, 지방소멸 위험은 영광군을 비껴가지 않는다. “합계출산율은 둘째를 낳는 여성도 포함하는데 아무래도 애를 낳을 수 있는 젊은 여성이 와야 한다. 인구는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김 팀장에 따르면 영광의 합계출산율이 대폭 올라간 것은 지원금 수준을 대폭 인상하면서부터. 예컨대 둘째를 낳으면 500만원 지원하던 것을 1200만원으로 올린 시점과 합계출산율이 2를 넘긴 시점이 일치한다. 고민은 출산장려금을 지급하지만, 그 가족이 영광에 남지 않는 경우가 꽤 된다는 것. 아이가 어릴 때 지원을 받고 초등학교 진학할 무렵이면 인근 광주광역시 등으로 이사하는 사례가 상당수에 이른다. 김 팀장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둘째를 낳으면 1200만원을 월별로 36개월을 지원한다. 쪼개면 매달 40만~50만원 선이다. 재원은 한정적인데 자녀가 초등학교 들어갈 때까지 지원금을 줄 수는 없는 노릇 아니냐.”
“최근에는 영광이었지만 과거에는 전남 해남이 항상 1위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정성호 강원대 사회학과 교수의 말이다. 지난해 순위에서 해남은 2위를 기록했다. “해남도 똑같은 딜레마를 겪었다. 애 한명 낳으면 얼마 식으로, 엄청나게 인센티브를 줬다. 그렇다고 해남의 절대인구가 늘었냐면 절대로 늘지 않았다. 아이가 일정한 나이가 되면 교육목적이 됐든, 뭐가 됐든 빠져나간다. 500만원, 1000만원 출산장려금만 받고 빠져나간다.” 정 교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정치권과 지자체들도 문제가 있다고 덧붙였다. “정치인들은 영광이 출산율이 높은 게 보조금을 많이 줘 높다고 받아들인다. 전 정권 총리도 ‘다 해남같이 하면 되지 않겠냐’고 말했다. 돈을 많이 주면 해결된다? 천만의 말씀이다. 정치가나 자치단체장은 항상 경쟁을 원한다. 순위에 따라 차등지원하고 싶어한다. 나라 전체로 보면 제로섬이다. 나는 초기부터 돈으로 직접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은 지양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렇다면 어떤 해법이? 정 교수는 “저출산·지방소멸과 관련한 한 우리나라는 대안이나 대책이 없다”고 단언했다. “저출산 문제는 우리나라 사회경제적 문제를 다 포괄한다. 해결책이 없다. 점차 악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분위기를 형성할 수밖에 없다. 대안이 뭐냐. ‘살 만한 나라, 애를 경쟁으로 내몰지 않는 나라, 교육제도 혁신’이 답이다. 다른 데서 찾으려니까 돈만 쓴다. 지방소멸도 마찬가지다. 서울집중이 더욱 심해진다. 젊은이들이 점점 더 서울로 올라가지 않는가.”
수도권 인구이동 데이터를 살펴보면 특이한 대목이 있다. 2000년대 들어 수도권 인구유입은 완만한 감소세를 보이다가 2016년 이후 증가하고 있다. 특이한 것은 이중 20대의 움직임이다. 20대의 수도권 유입추이를 보면 2015년에 바닥을 찍었다가 이후 매해 급증하고 있다. 성별 추이도 특이한데 2015년 20대 남성의 경우 유입과 유출이 거의 동률을 이뤄 바닥에 수렴하는 반면, 여성의 수도권 유입은 남성보다 살짝 높은 정도였다. 그러다 매해 격차를 벌리며 압도적으로 20대 여성의 수도권 유입이 늘어나고 있다(그래프 참조). 2015년 전후가 수도권 인구 유입에 ‘터닝포인트’가 된 것은 여러 지표에서 확인된다.
2015년 청년층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전문가들이 내놓는 대체적인 ‘가설’에 따르면 이 시점을 전후로 한국의 산업구조 변동에 따른 일자리 변화가 일어났다. “제조업이 로컬서비스 영역 서너개를 창출한다는 ‘취업유발계수’는 이미 여러 연구에서 확인된 이야기다. 반대로 제조업 영역에서 괜찮은 일자리가 하나 없어질 때 부수적인 서비스 일자리는 더 많이 사라진다. 2010년대 중반 이후 새로운 일자리가 수도권에 더 많이 만들어지는데 일자리 양극화 현상과 연동된다. 데이터를 보면 경향적으로 확인되는 것은 사회서비스 일자리와 저임금 숙련 일자리가 한축이라면 다른 한축은 디지털 인재를 필요로 하는 양질의 일자리다. 양쪽 모두 남성노동력을 별로 필요로 하지 않는다.” 고용정보원 이상호 연구위원의 말이다. 대도시 서비스 영역의 저숙련 일자리나 사회서비스 직종, 고학력 인력 모두 여성이 더 많이 진출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라는 설명이다. “종합해서 말하자면 지역 청년 남성은 그나마 줄어드는 제조업 일자리라도 비빌 언덕이 있는데 여성은 그나마 힘들어지게 됐다. 한편 지방에서 서비스 영역에는 더더욱 괜찮은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그런 기회가 상대적으로 더 많은 수도권으로 가는 것이다. 살던 지방에 비해 수도권에 기회의 격차가 더 많다고 느끼니 여성들이 상대적으로 더 많이 유출되는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연구위원은 마스다 보고서의 방법을 원용해 지역소멸위험지수를 만들어낸 장본인이다. 지방소멸이나 인구절벽을 주제로 한 대부분의 연구나 보고서는 이 연구위원이 만들어낸 데이터를 원용하고 있다. 지수를 발표한 지 6년이 지났지만, 상황은 개선되긴커녕 악화일로다. 지난 3월 그가 새로 계산해 내놓은 최신데이터에 따르면 소멸위험지역(지수가 0.5 미만)은 113개로 전국 228개 시군구의 절반(49.6%)에 달했다. 2005년 33곳에 불과했던 소멸위험지역이 10년 후인 2015년 80곳이 됐고, 2020년엔 처음으로 세 자릿수를 돌파해 102곳이 됐다. 그리고 불과 2년이 지난 2022년에 9개가 더 늘어 과반에 달했다. 불과 지난 2년 사이 소멸위험지수는 급증했다. 소멸위험지수가 0.2 미만인 소멸 고위험지역은 올해 3월에 45개로 집계됐는데 2년 전인 2020년 대비 23곳이나 급증했다.
“이제 회복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 연구위원은 이미 지방소멸 경향을 뒤집을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인구나 재정, 경제성장률 모두 예측을 통해 추계를 낸다. 인구변동과정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 출산력과 지역 간 이동인데 국가 수준에서 중요한 데이터는 출생율이다. 2019년 장래인구추계를 냈을 때 기준치가 0.94를 적용해 만든 전망이다. 고용정보원 일자리 전망도 다른 데이터가 아니라 0.94를 기준으로 냈다. 지금은 변곡점을 지나 그 아래로 감소하는데 아무도 그런 모형을 쓴 적이 없으니 다른 전망치도 모두 틀릴 수밖에 없다. 의아한 점은 정책적으로 위기의식이 숫자로 반영된 것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지방소멸 문제는 정말 백약이 무효일까. 이원재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는 청년층의 수도권 집중 추세에 대해 “개인들 각자에게 어떤 인생을 살고 싶으냐고 물었을 때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고 직장을 갖고 싶다는 목표를 밝히는 것이 잘못은 아니다”라면서도 “청년 문제가 심각한 것처럼 정년 후 노후가 불안한 현재의 장년이 겪게 될 노인빈곤도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보수·진보를 떠나 정치권이 전체 세대를 아울러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안정을 줄 수 있는 비전 제시를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과거의 영광 어디로…쪼그라든 내 고향 군산
올해 3월 기준 전국 113개 시군구가 소멸위험 단계에 진입한 것으로 파악됐다(이상호 한국고용정보원 일자리사업평가센터장·2022). 228개 시군구 중 절반이 소멸위기에 처했다는 얘기다.
지난 8월 30일 전북 군산 구도심인 영동거리. 인적이 드문 가운데 점포 곳곳에 임대·매매 광고가 붙었다. / 이효상 기자
20여년 전 떠나온 기자의 고향도 예외는 아니다. 인구 30만명을 바라보던 중소 산업도시 전북 군산은 2015년 이래 인구가 지속 감소해 지난 7월 기준 26만3700명까지 내려앉았다. 20~39세 인구는 감소세가 지속되는 반면, 65세 이상 인구는 꾸준히 늘고 있다. 도시의 평균 연령은 2015년 40.7세에서 2021년 44.5세로 증가했다.
가족들과 고향을 찾는 추석 명절은 지방소멸의 현실을 느끼게 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해가 다르게 메말라가는 고향 풍경 그 자체가 한국 지방소멸의 심각성을 대변한다. 각자의 고향은 지금 얼마나 빠르게 소멸해가고 있을까. 각 지역의 특징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지방’을 꿰뚫는 공통점이 있다. 지방 인구를 빨아들이는 비대한 수도권은 지역의 ‘저출산·고령화’를 한층 심화시키고 있다. 산업의 수도권 쏠림 현상은 다시 지방의 인력을 유출하는 원인이 된다.
지난 8월 29일부터 3일간 고향 군산을 찾았다. 군산에서 서울로 주소를 옮긴 지 약 20년 만에 고향 구석구석을 둘러봤다. 학창시절 자주 다니던 도심 거리에는 운영 중인 점포보다 빈 점포가 더 많았고, 산업단지 원룸촌에는 두 집에 한 집꼴로 임대·매매 광고가 붙어 있었다. 사흘 내내 내린 비 때문인지 도시는 더 어둡고 무거워 보였다.
군산에 찾아온 위기 “학교 다닐 때만 해도 군산이 인구 30만명은 금방 넘어설 줄 알았다.”(30대 구직자)
“1990년대만 해도 버스 한대 팔면 서울에 집을 한채 샀다. 지금은 어림도 없다.”(60대 시내버스업체 관계자)
“1980년대만 해도 군산에 한전 전북지사가 있었고, 전주에는 지점이 있었다. 공장이 많아서 수요도 많았으니까.”(60대 한전 퇴직자)
“1900년대 초반부터 군산은 시였다. 그때 전국에서 두 손에 꼽을 만큼 빨리 시가 됐다.”(50대 자영업자)
얼마나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할까. 군산은 과거의 영광을 곱씹는 도시가 됐다. 대공장이 떠나고 인구는 매년 감소하는 도시의 회한이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일자리 상황이 좋고 시내에 돈이 돌던 산업도시였다. 그러던 군산은 올해 처음으로 ‘소멸위험지역’에 이름을 올렸다. 이상호 고용정보원 일자리사업평가센터장은 2016년부터 한국의 지방소멸위험 정도를 측정하고 있는데, 올해 3월 기준 군산의 소멸위험지수는 0.494로 소멸위험지역에 포함됐다. 20~39세 여성 인구가 65세 이상 인구의 절반 미만이라는 얘기로, 공동체가 인구학적으로 쇠퇴하는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의미한다.
군산 경제를 지탱했던 한국지엠 군산공장이 2018년 5월 공식 폐쇄됐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군산의 위기는 복합적이다. 대부분의 지방이 겪는 ‘저출생·고령화’가 한축이라면, 핵심 산업의 유출이 또 다른 축이다. 인구가 왜 감소했는지를 군산 사람 10명에게 물으면, 10명 모두 같은 답을 내놓는다. 한국지엠과 현대중공업의 폐쇄다. 2017년 조선업 경기 악화에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가 폐쇄했고, 이듬해는 군산 경제를 떠받치던 한국지엠 군산공장이 문을 닫았다. 한때는 군산 수출의 64.4%(한국무역협회 수출입 통계·2012년)를 차지하던 조선산업과 자동차산업의 핵심 기업들이 문을 닫으면서 군산에 사는 사람 모두가 그 여진을 체감했다.
먼저 양질의 제조업 일자리가 줄었다. 2015년 하반기 3만100명이었던 군산의 광업·제조업 취업자 수는 2020년 하반기 2만100명까지 줄었다. 5년 사이 제조업 종사자 3명 중 1명이 일자리를 잃은 셈이다. 단순히 기업 2곳이 문을 닫은 것이 아니라 이들 원청사를 중심으로 군산 산업단지에 함께 자리를 잡았던 협력업체도 떠났기에 타격이 더 컸다.
군산 경제의 심장인 산단의 비극은 군산 시내 곳곳으로 퍼졌다. 산단으로부터 15㎞ 떨어진 군산 시외버스터미널 인근에서 애견호텔을 운영하던 A씨의 사업도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았다. “공장에 다니면서 혼자 사는 사람들이 외로워서 그런지는 몰라도 개를 많이 키웠다. 출근 전에 맡기고 퇴근 후에 찾아가고 했다. 다들 돈을 잘 썼다. 어떤 사람은 1년에 개를 두 번 찾아오면서 쭉 맡기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다 공장이 문을 닫았다. 손님 중에 한명은 개를 데려가면서 거제도로 간다고 했다.” 손님의 감소, 치열해진 경쟁 등으로 인해 그는 2018년 가게 문을 닫았다. 군산의 도소매·음식숙박업 취업자는 2015년 하반기 2만5900명에서 올해 상반기 2만2900명으로 줄었다.
산단 정상궤도 올라서고 있다는데… 한국지엠 군산공장이 문을 닫고 4년, 군산 경제는 얼마나 회복됐을까. 산단이 있는 군산 오식도동으로 향했다. 오식도동 초입의 편의점에서 만난 중년 남성 2명이 군산 상황을 가늠할 수 있는 힌트를 줬다. 이들은 외지에서 온 기계장비 철거업체 관계자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공장 장비 철거하려고 왔다. 전국을 돌면서 철거하는데 군산도 공장 철거 수요가 많은 곳 중 하나다. 일이 이래서 그런지 한국 제조업이 쇠퇴하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군산만 그런 게 아니고 주물·주조 쪽은 중국에 치여서 거의 끝장났다고 봐야 한다. 오늘 일하는 곳도 공장을 아예 뜯는 곳은 아닌데 기계 철거하고 중국산 장비를 놓는다.”
지난 8월 30일 찾은 산단 옆 원룸촌은 오전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적막만이 감돌았다. 오식도동 원룸촌은 산단으로 일하러 온 외지 노동자들의 숙소 역할을 했다. 특히 외지인을 많이 고용했던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가 폐쇄한 이후 이들 원룸 대다수는 빠르게 빈집이 됐다. 한때 공실률이 70~80%까지 치솟았다. 여전히 원룸촌은 사람의 손길이 거의 닿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원룸촌 안쪽 골목은 보도블록을 비집고 나온 잡초가 무릎까지 올라와 바짓단을 뒤챘다.
이 지역에서 원룸을 운영 중인 B씨는 “비어 있다는 이유로 코로나19가 한창일 때 해외에서 입국한 사람들을 여기 원룸에서 2주간 격리하기도 했다”며 “5억원은 가던 원룸 매매가가 반토막이 났다. 하도 사람이 없으니까 너도나도 출혈경쟁을 벌이면서 30만~40만원은 하던 월세가 20만원대까지 내려가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전보다는 상황이 낫다”고 했다. 현재 B씨의 건물에는 11개의 방이 있는데 이중 8개를 세줬다. 코로나19가 한창일 때 입국이 끊겼던 이주노동자들이 돌아왔고, 정상 가동되는 공장도 늘고 있기 때문이다.
두 기업의 잇따른 폐쇄로 공실이 크게 늘었던 산단도 점차 정상궤도에 올라서는 모양새다. 오식도에서 공장 부지 전문 공인중개사사무소를 운영하는 김정운씨는 “현대중공업 철수하고 심할 때는 한 번에 (공장 부지) 20건이 경매로 나올 정도였다. 못 버티고 무너지는 업체들이 많았는데 체감으로 봤을 때 산업단지 공실률이 한 30%는 됐다”며 “그때에 비하면 공장들이 많이 들어왔다. 이제 완전히 바닥을 찍고 서서히 회복되는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한국산업단지공단의 국가산업단지 산업동향 통계를 보면, 군산 1·2산단의 입주기업 수는 2018년 12월 기준으로 각각 197개, 528개에서 올해 6월 기준으로 214개, 575개로 늘었다.
다만 이 흐름을 군산의 시민들은 아직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일단 새로 만들어지는 일자리들이 질적으로 과거 대공장의 일자리를 대체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한국지엠 군산공장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2018년 해고된 이정렬씨는 현재 아파트 주택관리회사에서 일한다. 해고 이후로만 세 번째 직장이다. 이씨는 “공장들이 들어와도 채용 인원이 예전 같지 않다. 제일 걸리는 것은 임금 문제다. 중소기업들이 대부분이라 최저임금이 최고임금이 됐다”며 “군산이 인구 30만명 도시가 될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대기업이 들어온다고 해도 한국지엠이나 현대중공업처럼 기업이 어려우면 제일 먼저 철수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산단 인근 소룡동의 노무사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C씨는 “일자리는 있지만 사람이 없다. 일이 힘들어 내국인은 피하고 대체로 외국인만 일한다. 돈 많이 벌려면 60시간 이상씩 일해야 하는데 버티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실제 올해 상반기 군산의 광업·제조업 취업자 수는 2만1300명으로 2020년의 저점에서 크게 회복하지 못했다.
인구 유출에 활력 잃은 도시 사람들은 끊임없이 떠나고 있다. 한국지엠 비정규직 해고자 장현철씨는 “비정규직 불법파견 인정을 위해 128명의 동료와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데, 80명 정도만 군산에 남아 있고 나머지 분들은 군산을 벗어나 있다”며 “마땅한 일자리를 찾아 다른 지역으로 떠나는 것”이라고 했다.
군산시청 인근에서 운영하던 카페를 폐업한 D씨(37)는 이달 중순이면 취업을 위해 충남 소도시로 떠난다. 한때 그의 카페는 아르바이트생을 8명까지 썼지만 폐업 전 1년은 직원 없이 홀로 일했다. 그는 일주일에 하루도 거르지 않고 오전 10시부터 밤 11시까지 카페를 지켰다. 군산의 경제 악화, 코로나19의 여파 등이 영향을 미쳤다. 젊은 노동인구의 감소세는 명확하다. 군산의 20~39세 인구는 2015년 7만3204명에서 지난해 6만3329명으로 1만명 감소했다. 같은 기간 65세 이상 인구는 3만9874명에서 5만1459명으로 1만명 이상 늘었다.
지난 2월 24일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에서 열린 군산조선소 재가동 협약식에 참석한 문재인 전 대통령(왼쪽에서 네 번째)이 협약식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청와대 사진기자단
그만큼 도시는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군산의 구도심인 영동부터 구 역전 종합시장까지 이어지는 중앙로에는 빈 점포가 적잖이 늘어서 있었다. 학창시절 옷가게가 빼곡했던 영동의 골목은 운영 중인 옷가게가 손에 꼽을 만큼 적었다. 지난 8월 30일 오후 이모씨(54)는 영동에 있는 간판이 없는 가게에서 넷플릭스를 시청하고 있었다. 가게 쇼윈도에 걸린 여성용 무스탕 3벌이 이곳이 과거 옷가게였음을 말해줬다. 이씨는 “보세(상표 없는 옷) 옷가게를 했는데 지금은 접고 개인 사무실로 쓰고 있다”며 “젊은 사람이 아예 없다. 돈벌이가 안 돼 정말 힘들었다”고 했다. 이씨는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60만원으로 내놓은 맞은편 점포를 가리키며 “저러면 10년 동안 안 나간다”고 했다. 옷가게를 고쳐 공방으로 사용하는 또 다른 점주는 “사람이 하도 안 와 조용하니까 공방하기 딱 좋다. 싸기도 하고”라고 말했다.
인구가 줄어드는 도시는 지난 20~30년간 수차례 도심을 바꿨다. 구도심에서 나운동으로, 나운동에서 수송동으로, 최근에는 조촌동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가는 추세라고 한다. 수도권의 부동산 대출 규제 영향으로 외지인들이 땅을 사고 있다고도 했다. 지난 7월 군산의 아파트 매매가격지수는 2021년 6월의 매매가격을 100으로 봤을 때 113.2로 지속 상승 중이다.
젊은층의 이탈은 저출생 현상을 심화시킨다. 영유아 보육시설부터 경고음을 울리고 있다. 전명자씨(65)는 군산 삼학동에서 30년 넘게 어린이집을 운영 중이다. 삼학동은 도농복합도시인 군산의 도시지역 중 소멸위험지수가 0.19로 가장 높은 지역이다. 전씨는 “새로 짓는 아파트로 젊은 인구들이 떠나면서 노인들만, 기존 원주민만 남았다. 어린이집이 정원 99명으로 늘 대기자가 있었는데 작년에 70명대 되고, 올해는 60명대 됐다”며 “원아가 줄면서 재작년만 해도 군산 내에 238개 있던 어린이집이 올해 158개로 줄었다. 아이 울음소리가 나야 도시가 시끌벅적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초등학교 수는 큰 변화없이 유지되고 있지만 학생 수는 급감하고 있다. 전체 58개 초등학교 중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전교생 수가 150명이 되지 않는 학교가 32개로 절반을 넘는다.
지난 8월 31일 군산의 구도심인 영화동 거리. 한 노인이 수선가게 앞에서 발 길을 멈췄다. / 이효상 기자
희망과 우려의 공존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재가동이나 전기차를 생산하는 군산형 일자리에 기대를 거는 이들도 있었다. 조선업 수주 호황이 이어지면서 현대중공업은 내년부터 군산조선소의 문을 다시 열기로 했다. 2019년 군산 노·사·민·정이 상생협약을 체결한 군산형 일자리는 지난해 참여 기업들의 생산 공장을 준공하고 가동에 들어갔다. 하지만 우려도 크다. 재가동되는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는 연간 10만t 규모의 선박용 블록을 건조할 계획이다. 과거보다 생산 규모가 크게 줄었고, 완성된 배를 건조하는 것이 아니다 보니 블록을 만들어 옮겨야 하는 물류비도 따로 발생한다. 이 비용 일부는 군산시가 부담하기로 했다. 군산형 일자리 역시 생산이 지연되거나, 참여 기업이 검찰 수사를 받는 등의 악재가 이어지고 있다.
온승조 군산상공회의소 부장은 “대규모로 인력을 채용했던 제조업이 붕괴한 후에 상생일자리나 현대중공업 재가동 등으로 회복하려고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어떤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인구 유출 현상은 미미하게나마 계속되고 있다”며 “새만금 경제자유구역에 신재생에너지 산업을 유치하고 있지만, 장치 산업이다 보니 일자리 창출 효과는 크지 않은 상황”이라고 했다. 이훤 군산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집행위원장도 “현대중공업을 다시 오픈하면서 기회가 생길지 모르겠지만 기존 산업의 공백을 타개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군산|이효상 기자hslee@kyunghyang.com
독일 중산층도 고금리 눈물…현금 부자에 뺏긴 ‘내 집 마련’ 꿈
주택담보대출의 덫 ② 부유층의 부동산 사재기
독일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에서 바라본 프랑크푸르트 시내 스카이라인. REUTERS
부동산 포털 이모벨트(Immowelt)가 제시한 수치는 금리인상이 주택담보대출 상환에 얼마나 큰 부담을 주는지 잘 보여준다. 독일 뮌헨에서 76만6천유로(약 10억원)의 80㎡ 주택을 대출로 매입해 매년 매매가의 2%를 상환한다면, 지난 1월에 원리금으로 상환한 금액은 약 2050유로(약 270만원)였다. 당시 10년 만기 대출상품의 금리는 1.38%에 불과했다.
현재 해당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3.05%에 이른다. 매달 원리금 상환액은 연초 대비 1천유로 이상 늘어났다. 전문가들은 함부르크나 프랑크푸르트에 집을 산 사람들의 매달 평균 추가 부담이 700유로 정도 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금리가 오를수록, 대출 만기까지 상환해야 하는 총원리금도 함께 늘어난다. 이렇게 추가 부담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이미 수많은 대출자가 재정 여력의 한도 내에서 최대치로 원리금을 상환 중이라 재정적 여유는 조금도 없다.
원리금 매달 1579유로→2000유로 훌쩍…“더는 감당 못해”
마누엘 다비트(34)도 이런 사례에 해당한다. 그의 재정 상황은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 나을 바가 거의 없다. 소비자보호센터에서 일하고 연봉은 괜찮은 편이다. 그의 아내는 초등학교 수습교사다. 다만 다비트는 운이 좋아 부모로부터 뒤셀도르프의 땅을 미리 상속받았다.
2022년 5월 햇살이 화사한 어느 날, 다비트는 부모에게 상속받은 뒤셀도르프 남서부의 땅을 둘러보고 있다. 그는 아내와 자신의 ‘드림하우스’를 <슈피겔> 취재진에게 보여줬다. 길고 좁은 120㎡ 크기의 부지에 2가구 주택은 충분히 지을 수 있어 보인다. 뒤쪽에 부모님의 닭장과 화단을 옮겨놓을 자리까지 나올 것 같다.
“더 좋은 곳을 찾기란 힘들다.” 다비트는 테이블 위에 완성된 설계도를 펼쳐 보였다. 목제 주택 공사비로 약 50만유로가 들 예정이다. 젊은 부부는 대출받아 공사비를 충당했다.
1월만 해도 매달 상환해야 하는 원리금이 얼마 되지 않았다. 부부는 매달 원리금 1579유로를 상환하는 데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부모님의 테라스는 철거했고 땅 일부는 평평하게 다졌다. 부부는 설계 비용으로 약 2만유로를 냈다. 하지만 아직도 건축허가를 받지 못해 매달 금리인상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두 자녀를 둔 부부가 이제 매달 갚아야 하는 원리금은 2천유로를 훌쩍 넘는다. “매달 원리금을 상환하려면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고는 어렵다.” 대출원리금을 상환하느라 미래를 대비한 저축은 꿈도 꾸지 못한다.
다비트는 늘어나는 이자 부담으로 집 짓는 것이 “재정적으로 더는 감당할 수 없을 상황”까지 갈까봐 우려한다. 부부는 부모에게 부지를 상속받았는데도 그 땅에 여전히 자기 집을 올리지 못한다. “한마디로 미칠 노릇”이다.
내 집 마련이 다비트 부부에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라면, 상속받을 부지조차 없는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겠는가?
옛 동독 지역인 베를린 빌헴슈트라세의 한 아파트. 금리가 오르면서 빚내어 집을 구매한 사람이 갚아야 하는 총원리금도 함께 늘었다. REUTERS
집값은 연일 최고치…베를린 주민 싹쓸이 탓
빌크 므로스는 공무원이며, 지자체 포츠담미텔마르크의 전문가위원회 위원장이다. 그는 이날 오전 화가 복받치면서 자신도 모르게 욕을 내뱉었다. 군 행정 건물 9층의 한 사무실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중이었다. 그는 지난 몇 년간 포츠담미텔마르크에서 이뤄진 전체 주택 및 부동산 매매거래를 정리한 부동산시장 보고서를 설명하고 있다.
독일 브란덴부르크 남서부에 있는 포츠담미텔마르크군(郡)은 북동쪽으로 베를린시와 바트벨치히에 인접해 있다. 면적 2600㎢에 인구는 21만8천 명이다. 포츠담미텔마르크군은 독일 군 단위에서 면적이 제일 넓고 전입인구도 늘어나는 곳 중 하나다.
“부동산시장은 모든 분야에서 상승세를 타고 있다.”, “2021년 10억유로 이상 주택과 부동산 거래량이 무려 40% 이상 늘어났다.”, “부동산 거래량과 거래액, 그리고 거래면적 모두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부동산시장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이 중 기뻐해야 할 대목은 전혀 없다. ‘비싼’ 몸이던 포츠담미텔마르크군은 어느새 ‘아주 비싼’ 몸이 됐다. 2021년 브란덴부르크주 팜파, 베르더, 슈빌로브제, 미헨도르프 혹은 슈탄스도르프의 단독주택 평균 매매가는 100만유로(약 13억원)에 육박했다.
베를린 주민이 베를린 주변 지역 이외에도 ‘수도권 지역’을 앞다퉈 차지하고 있다. 빌크 므로스는 현재 포츠담미텔마르크군에서 “가장 순수한 형태의 자본주의를 보고 있다”고 했다. 지역주민을 시장에서 몰아내는 탐욕자본주의 말이다. 므로스는 어느 순간 “포츠담미텔마르크군에는 내 집 마련에 100만유로를 조달할 수 있는 사람만 남을 것”이라고 자조적으로 말했다.
이는 생각보다 더 빨리 현실로 닥칠 수 있다. 하노버 인근 모델하우스 상담사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도 크게 다르지 않다. 몇 주 전 어느 일요일, 화창한 날씨에도 모델하우스를 찾은 이는 78명에 불과했다. 예전에 방문객 수는 두 배 수준이었다. 상담사들은 방문객 없이 파리만 날리는 모델하우스 사무실에서 지루한 듯 커피를 마시고 있다.
한 상담사에 따르면 연초 이후 모델하우스 비즈니스는 상당히 위축돼 절반 수준으로 급감했다고 한다. 상담사는 금리인상의 여파가 “피부로 와닿는다”고 호소했다. “여기 모델하우스 비즈니스는 한마디로 죽은 것 같다.”
인근에서 슈바벤하우스 건설사의 모델하우스도 파리를 날리기는 마찬가지다. 그래도 슈바벤하우스의 에르하르트 퀴네 영업이사는 앞의 상담사처럼 아주 비관적이지는 않다. 중산층은 현재 부동산 거래를 자제할 뿐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대신 새로운 고객층이 생겨날 것이라고 한다. 세 번째, 네 번째로 집 매매를 계획하는 중장년층이 새로운 부동산시장 고객층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실거주용이 아닌 재테크 수단으로 집을 사려 한다. “대출을 끼지 않고 100% 현찰로 집을 매입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어디에 써야 할지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자금이 넘쳐난다”고 했다.
퀴네는 까다로운 고객층에게 ‘실렉션(Selection) 245’라는 조립식 건축물을 선사하려 한다. 슈바벤하우스가 선보이는 조립식 건축물에는 전용면적 245㎡에 친환경 루프톱(옥상), 운동공간, 최첨단 사무공간, 최신 스마트홈 기술이 집약돼 있다. 간이 차고와 아웃도어 주방도 당연히 포함됐다. 전체 설비를 포함한 집값은 100만유로는 족히 된다.
슈바벤하우스 건설사는 슈바르츠발트 지역에 최근 투명한 유리 통창으로 된 엘리베이터를 탑재한 단독주택을 지었다. 과거엔 “미쳤다”는 소리도 들었는데 “이런 단독주택이 요즘에는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간다”고 퀴네는 말했다. 다만 이런 단독주택의 주고객층은 과거처럼 젊은층이 아니라 부유한 고령층이라고 한다. 독일에서 부유한 고령층이 점점 늘고 있다. 그래서 단기적으로는 비즈니스를 걱정하지 않는다고 퀴네는 말했다. 2021년 한 해에만 슈바벤하우스의 매출은 47% 늘었다고 한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중앙은행 분데스방크 전경. 금리인상은 주택담보대출 상환에 큰 부담을 주고 있다. REUTERS
상속 외엔 답 없어…부동산 문제 ‘사회적 폭발물’ 떠올라
막스플랑크사회연구소의 옌스 베케르트 연구소장은 이 흐름을 ‘정치적 돌출점’(Political Salience)이라는 사회학적 개념으로 설명한다. ‘정치적 돌출점’은 논쟁이 되는 주제가 드러나는 것을 의미한다. 주택문제는 이제 ‘사회적 폭발물’이 되어 상위 중산층도 더는 예외가 아니다.
공정성 문제는 여러 측면에서 제기된다. 근면성실하게 일해도 자기 집을 장만할 수 없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 인플레이션으로 자산 가치가 하락한 사람들이 있는 반면, 부유층과 초부유층이 최근 더 부유해진 것은 대체 왜일까? 그리고 상속 외에 부유해질 통로를 찾지 못하는 젊은층에게는 대체 뭐라고 말해야 하나? 그럼에도 열심히 일해서 자기 집을 마련하라고 해야 할까? 하하하!
헤닝 야우어니히 Henning Jauernig <슈피겔> 기자
ⓒ Der Spiegel 2022년 제25호
번역 김태영 위원
'김건희 yuji 논문' 조롱한 <동아> 대기자의 '매운맛' 칼럼
[언론비평] 김순덕 기자의 태도 변화... 윤 대통령 위기를 대하는 보수언론의 시각
"윤석열 정부를 나는 '해방의 정부'라 부르고 싶다. 그 깊은 뜻을 모르고 지지율이 20~30%대로 추락한 걸 보면 참으로 안타깝다. 그러나 절망은 이르다. 역사가 기억할 것이다. 예스, 위 캔 두 잇. Hal su it da."
'할 수 있다'를 소리나는 대로 영문 표기한 마지막 문장이 압권이다. "예스, 위 캔 두 잇"이라는 문장과 호응도 걸작이다. 이 문단만 보면 이게 무슨 소린지 어리둥절할 수 있으리라. 지난 주 소셜 미디어 등을 강타한 김소민 자유기고가의 <한겨레> 칼럼의 결미는 실로 강렬했다.
<한겨레>도 이를 감지했을까. 최초 <롤모델 김건희>라는 다소 건조무미한 제목은 얼마 후 <롤모델 김건희…Hal su it da, 나도 박사가 될 수 있다!>로 변경됐다. 해당 칼럼에 영감을 받아 이른바 '오마주'를 했다는 <오마이뉴스> 기사마저 화제를 모았다(관련 기사 : 김건희를 롤모델 삼았더니.. 경찰이 메일을 보냈다 http://omn.kr/20gt2 ).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는 우리 시대의 롤모델이다"란 첫문장에 이어 '전 국민 박사 시대'를 선포한 아래 서두부터 끝까지. 김소민 자유기고가의 칼럼은 전체가 김건희 여사의 'yuji' 논문과 국민대의 김 여사 논문 표절 의혹 조사 결과, 윤 대통령의 통치 행위에 대한 역설적이고 처절한 풍자이자 위트 넘치는 블랙 유머라 할 수 있다.
인터넷 상에서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킨 가운데 일부 매체는 기사를 통해 그 칼럼을 직접 인용했다. 윤 대통령과 김 여사에 대한 비판만 아니었다면 보수진보를 넘어 여러 언론이 언급하며 한층 더 회자되고도 남을 칼럼이었다. 그런데 9월 1일 <동아일보>가 해당 칼럼에서 영감을 받은 듯한 제목의 칼럼을 실었다. 김순덕 대기자의 '차라리 대통령이 여당 Chong Jae(총재) 겸임하시라'라는 칼럼이었다.
<동아일보> 칼럼에서 돌출된 'yuji' 논문 패러디
▲ 9월 1일 <동아일보> A30면(오피니언)에 실린 김순덕 대기자의 "차라리 대통령이 여당 Chong Jae(총재) 겸임하시라" 칼럼.ⓒ 동아일보 PDF
"(일련의 국민의힘 내분 사태와 같은) 이런 편법 탈법 꼼수에 '국민'의 '힘'이 언급된다는 것이 국민에 대한 모독이다. 이보다 간단한 방법을 알려주고 싶다. 당헌 7조 대통령의 당직 겸임 금지 조항에서 '금지'만 빼면 된다. '대통령에 당선된 당원은 그 임기 동안 당 총재직을 겸한다'로 바꾸는 거다.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논문 표기법에 따라 Chong Jae직이라 해도 누가 감히 문제 삼지 못한다."
"Chong Jae직"이란 표기가 눈에 콕 박힌다. 김 여사의 'yuji' 논문을 비꼰 것이지만 'Hal su it da'가 연상될 수밖에 없다. 보수언론을 대표하는 <동아일보>의, 그것도 대기자가 패러디에 동참한 것이다. '김순덕의 도발' 시리즈로 유명하고 지난해 '장지연 언론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김순덕 대기자는 누구인가.
"태평성대 시절이면 또 모른다. 코로나19에다 백신 부족사태 때문에 국민은 옴짝달싹도 못 해 스트레스가 하늘을 찌른다. 믿고 싶진 않지만 김정숙 여사한테 벨베데레궁 국빈 만찬 같은 마지막 선물을 안겨주기 위해 기획한 건 아닌지, 몹시 궁금했다." - 2021년 6월 <동아일보>, [김순덕의 도발] 文이 오스트리아를 방문한 진짜 이유 중
김 대기자는 지난해 G7 정상회담 직후 문재인 대통령 부부가 오스트리와와 스페인을 '국빈 방문'한 것을 두고 '김 여사를 위한 마지막 선물이 아니냐고' 궁금해했다. 그러면서 당시 문 전 대통령이 과거 오스트리아의 "좌우를 포괄한 성공적인 연립정부 구성"을 언급할 걸 빌미로 문 전 대통령이 '남북 연방제 개헌'을 구상하는 것 아니냐는 '소설'을 쓴 바 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김 대기자는 문재인 정부 내내 '중국몽'을 강조하며 문 전 대통령의 이념을 문제 삼았다. 반면 윤 대통령은 검찰 총장과 대선 후보 시절 '처칠 리더십'에 비유하며 윤 대통령에 대한 애정 표현은 물론 그 애정에서 우러나는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았다.
"대통령의 애처증은 병"이라거나 "사시 9수 윤석열, 대선도 9수할 참인가"란 도발적인 제목의 칼럼이 딱 그랬다. 윤 대통령을 향해 애정과 애증 사이에 걸친 칼럼들을 다수 발표해왔다. 아울러 국민의힘 대표직을 꿰찬 이준석 전 대표의 '공정'을 향해선 무한한 신뢰를 보내기도 했다.
김 대기자의 1일자 칼럼이 눈길을 끄는 것은 비단 김건희 여사에 대한 조롱이 담겨서가 아니다. 윤 대통령을 향한 김 대기자의 태도 변화가 확연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해당 칼럼에서 김 대기자는 역대 대통령들이 여당 총재직을 내려놓기까지 과정 및 대통령의 당권 장악의 나쁜 선례들을 나열한 뒤 "이 모든 걸 모를 리 없는 윤 대통령이 당 총재가 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이후 내놓은 윤 대통령 평가는 혹독했다.
<동아일보> 대기자의 태도 변화... 징후적이다
첫째는 정직성이다. 윤 대통령은 한사코 당무에 개입하지 않는다지만 국민은 안다. '내부 총질이나 하는 당 대표'라는 휴대전화 문자까지 노출됐으면 100일 기자회견 때 솔직한 유감 표명을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대통령은 "다른 정치인의 발언을 챙길 기회가 없었다"며 피해 갔다. 그러고도 여당 연찬회에 대통령으로선 처음으로 참석했다. 이런 식이면 앞으로도 당무 개입은 무수히 벌어질 것이고, 대통령은 부인할 게 틀림없다.
둘째, 사람 보는 눈을 의심케 한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문자 답변에서 "대통령님의 뜻을 받들겠다"고 했다. 원내대표는 의원들의 뜻을 모으는 사람이지 윗분의 뜻을 받드는 내시가 아니다. 그러면서도 내 사람 밀어 넣기, 지역구 챙기기에 끔찍한 '윤핵관'은 위험하다. 국가정보원장을 지낸 박지원은 "재벌은 핏줄이 원수요, 대통령은 측근이 원수"라고 했다. 윤 대통령 곁에 이런 윤핵관이 얼마나 많을지 걱정스럽다.
셋째, 법치도 흔들릴 것이다. 윤 대통령은 검찰총장 시절이던 2020년 12월 25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냈던 징계처분효력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인 서울행정법원에 대해 "사법부의 현명한 판단에 감사한다"고 했다. 이번 이준석의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인 재판부는 윤석열 정부의 재판부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은 재판부 존중은커녕 "우리 당 의원들이 중지를 모아 내린 결론을 존중하는 것이 맞다"고 했다.
다소 길지만 핵심 내용을 인용한 건 다 이유가 있어서다. 윤 대통령의 교언영색과 같은 거짓말과 '윤핵관'의 전횡,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의 '법치주의 무시'를 요목조목 비판하고 있어서다. <한겨레> 칼럼이 '순한 맛'이었다면 김 대기자의 칼럼은 '매운 맛' '독한 맛'이라 할 수 있었다.
김 대기자의 칼럼은 충분히 징후적이다. 얼마 전 화제를 모았던 <중앙일보> 이하경 주필·부사장의 '어둠 속 반지하 계단에서 미끄러진 대통령'이란 '윤비어천가'급 칼럼과 정확히 대척점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다(관련 기사 : "윤 대통령이 반지하 안에..." 중앙일보 주필의 역대급 '윤비어천가').
윤 대통령의 지지율 폭락 이후 보수 언론의 쓴소리가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던 것이 사실이다. 김 대기자도 지난 한 달 간 "윤 대통령은 '실패할 자유' 없다"라거나 "대통령은 국민의 뜻을 모른다" "위기의식 없는 대통령의 '건희사랑' 문제"와 같은 쓴소리를 쏟아내왔다.
국민의힘의 내분 사태가 격화되는 가운데 나온 김 대기자의 1일 칼럼은 끝이 안 보이는 이 파국을 사실상 윤 대통령이 진두지휘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과 이에 대한 '보수의 분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문재인 정부를 향해 갖가지 독설을 내뱉었던 <동아일보> 대기자의 이러한 적극적인 태도 변화야말로 윤 대통령의 위기는 물론 보수신문의 시각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충분히 징후적이다.
하성태(woodyh) 오마이뉴스
김건희 도이치모터스 녹취록 공개... 대통령 거짓말 드러났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의 재판 과정에서 김건희 여사와 증권사 담당 직원 사이의 통화 녹취록이 공개됐다. 녹취록에 따르면 김건희 여사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1차 작전’ 시기에 직접 도이치모터스 주식을 매수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 이 시기 도이치모터스 주식을 매수한 것은 김건희 여사가 아니라 계좌를 맡았던 ‘주가조작 선수’ 이 모 씨였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 씨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의 주범격으로 기소돼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김건희 여사가 ‘1차 작전’ 이후에도 이 씨에게 자신의 다른 계좌에서 주문을 낼 수 있는 권리를 줬다는 사실도 녹취록을 통해 드러났다. 김건희 여사가 이 씨와 ‘절연’했다고 윤석열 대통령이 말한 시기였다.
김건희 여사가 직접 도이치모터스 매수했다
지난 5월 27일, 서울 중앙지법 서관 417호 법정에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공판이 열렸다. 이날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1차 작전’의 주범 이 씨에 대한 변호인 측 반대신문이 있었다. 이 씨는 뉴스타파의 최초 보도를 통해 알려진 것처럼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1차 작전 시기였던 2010년 1월부터 5월 사이 김건희 씨의 신한금융투자 계좌를 건네받아 관리했던 인물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 이 씨와 김건희 여사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해명했다.
이 양반이 골드만삭스 출신이라고 해서 어? 이 양반한테 위탁관리를 좀 맡기면 괜찮을 것이다, 우리 그런 거 많이 하지 않습니까? 골드만삭스 출신이라고 하는 게 실력이 있어서.. 그런데 한 네 달 정도 맡겼는데 손실이 났고요, 그 도이치모터스만 한 것이 아니고 10여가지 주식을 전부 했는데 손실을 봐서 저희 집사람은 거기서 안되겠다 해서 돈을 빼고 그 사람하고는 절연을 했습니다.국민의힘 경선 토론회 (2021.10.15)
이 발언의 전체적인 취지는 ‘김건희 여사는 이 씨에게 계좌의 위탁 관리를 맡겼을 뿐인데 이 씨가 김건희 여사의 허락없이 임의로 도이치모터스 주식을 거래했다’는 것이다. 즉, 도이치모터스라는 특정 종목의 주식 매수를 선택한 것은 이 씨이지 김건희 여사가 아니며 따라서 김건희 여사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과 무관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재판에서 공개된 녹취록은 윤석열 대통령의 이런 해명과 완전히 어긋난다. 녹취록에 따르면 김건희 여사가 직접 증권사 직원과 통화해 도이치모터스 주식을 매수 주문했기 때문이다.
지난 5월 27일 공판에서 도이치모터스 권오수 회장의 변호인이 공개한 김건희 여사와 신한투자증권 담당 직원 사이의 2010년 1월 12일자 통화 녹취록은 다음과 같다. 변호인은 이 녹취록을 화면에 띄어놓고 읽으며 질의했다.
2010년 1월 12일의 도이치모터스 거래는 김건희 여사가 전화 주문을 통해 직접 했다는 것을 앞에서 밝혔다. 다음 날인 2010년 1월 13일부터는 ‘주가조작 선수’ 이 씨가 김건희 여사의 계좌로 거래를 했다. 그런데 이날도 증권사 직원은 김건희 여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의 내용으로 보면, 이 씨의 전화 주문을 받은 뒤 그 내용을 김건희 여사에게 알려주면서 최종 확인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1월 13일 역시 전화 주문 자체는 거래를 위임받은 이 씨가 했지만 그것을 최종적으로 승인한 것은 김건희 여사였던 것이다. 이날 김건희 여사 계좌가 사들인 도이치모터스 주식은 10만 주, 2억 5천만 원 가량이다.
이렇게 재판 과정에서 나온 녹취록 내용을 볼 때, 김건희 여사의 신한금융투자 계좌로 도이치모터스 주식을 사들인 총 7일간의 거래 가운데 이틀, 즉 2010년 1월 12일과 13일 거래는 김건희 여사가 직접 했거나 최종 승인을 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렇다면 나머지 닷새 동안의 거래, 즉 1월 25일부터 29일까지의 거래 역시 주가조작 선수 이 씨가 단독으로 했다기 보다 김건희 여사가 최종 승인 등의 형태로 개입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미 검찰이 확보했을 것으로 보이지만 공개하지 않은 나머지 닷새 동안의 통화 내역이 공개된다면 진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김건희 “나도 도이치모터스 주식 사야겠다”
김건희 여사가 도이치모터스 주식을 직접 매수하거나, 거래를 사실상 승인했다는 사실은 주가조작 선수 이 씨의 다른 법정 증언과도 맞아 떨어진다. 4월 22일과 5월 27일 법정에서 진술한 바에 따르면, 이 씨는 2010년 1월 초 권오수 회장의 소개로 김건희 씨를 만났다. 뉴스타파가 입수해 보도한 경찰 내사보고서 내용과 일치하는 대목이다. 주목할 점은 당시 이 씨가 김건희 여사를 만나기 한달 전인 2009년 12월부터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작전을 시작한 상황이었다는 점이다.
도이치모터스 주식은 워낙 거래 물량이 적어서 조금만 사도 가격이 쉽게 올랐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어느 기관투자가가 도이치모터스 주식을 대량 매도하는 바람에 생각보다 주식이 안 올랐습니다. 그래서 권오수 회장에게 도이치모터스 주식을 더 살 수 있는 사람을 소개해달라고 했습니다. 그 결과 김건희 여사를 포함, 3명의 도이치모터스 기존 주주를 소개받았습니다.-주가조작 선수 이 씨의 법정 진술을 발췌, 정리한 내용 중
즉, 이 씨는 애초부터 김건희 여사를 ‘도이치모터스 주식을 살 수 있는 사람’으로 소개받은 것이다.
권오수 회장이 전화를 해서 학동 사거리로 나갔는데 그 자리에 김건희가 있었습니다. 전에 한 두번 본 적이 있어 따로 소개를 받지는 않았습니다. 권오수는 그 자리에서 “회사가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김건희는 그 얘기를 듣더니 “그렇게 회사가 좋아지면 회사 주식을 사야 되는 것이 아니냐”, “신한투자증권에 돈이 10억 원 정도 있는데 그걸로 주식을 사봐야겠다”라면서 저한테 주문을 내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신한투자증권 담당자에게 전화를 하여 "이00씨가 주문을 내면 받아주라”는 취지로 말했습니다.-주가조작 선수 이 씨의 법정 진술을 발췌, 정리한 내용 중
요약해보자. 애초부터 이 씨는 ‘도이치모터스 주식을 사줄 사람’으로 김건희 여사를 만났다. 김건희 여사는 ‘이런 저런 주식을 알아서 거래해 수익을 내달라’는 것이 아니라 ‘도이치모터스 주식을 거래하라’면서 이 씨에게 계좌를 맡겼다. 그리고 김건희 여사 본인도 직접 도이치모터스 주식을 매수했고 이 씨가 대신 거래를 할 때도 그것을 최종 승인했다.
“이 씨가 주식을 잘 한다는 말을 듣고 수익을 내달라는 취지로 김건희 여사가 계좌를 맡긴 것이고 도이치모터스 주식도 이 씨가 알아서 산 것”이라는 취지의 윤석열 대통령 발언은 어떻게 보더라도, 법정에서 드러난 김건희 여사의 녹취록 및 증언과는 완전히 배치된다.
검찰의 딜레마
김건희 여사와 증권사 직원 사이의 통화 녹취록을 통해 2010년 1월 12일 김건희 여사가 도이치모터스 주식 매수 주문을 전화로 직접 낸 것이 확인됐다. 그런데 검찰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피고인들의 공소장에 첨부한 ‘범죄일람표’를 보면 문제의 1월 12일자 거래가 다수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어 공소장범죄일람표 1의 첫 줄을 보면 김건희 여사는 10시 41분 27초에 도이치모터스 주식 1,000주를 2,385원에 사겠다는 매수 주문을 냈는데, 3분 뒤인 10시 44분 32초 주가조작범 이 모 씨가 관리하던 다른 계좌에서 정확히 1,000주를 2,385원에 팔겠다는 매도 주문이 나와 거래가 체결됐다. 이 거래를 검찰은 통정매매라고 봤다.
공소장 범죄일람표2의 100번 항목을 보면, 2010년 1월 12일 오후 1시 50분 7초에 김건희 여사의 계좌에서 도이치모터스 주식 1,999주를 2,500원에 매수했는데, 검찰은 이를 ‘물량소진주문’으로 봤다. 같은 날 오후 2시 9분 김건희 여사의 계좌는 3천주를 매수했는데, 검찰은 이를 ‘고가매수’로 보고 범죄 일람표2의 105번에 적시했다. 오후 2시 50분 54초에 주문해 장 종료 동시 호가로 이루어진 5천주 매수 거래는 ‘종가관여 주문’으로 보고 114번으로 순번을 매겨두었다. 이런 식으로 검찰은 2010년 1월 12일 김건희 여사 계좌의 거래 내역 가운데 51건을 공소장 범죄일람표에 포함시켰다.
김건희 여사가 2010년 1월 12일 직접 도이치모터스 주식 매수 주문을 냈다는 사실과 김건희 여사 계좌의 같은 날 거래 내역을 검찰이 공소장 범죄 일람표에 포함시켰다는 두 가지 사실을 합쳐보면 결국 이런 결론에 이르게 된다. “검찰이 범죄로 보고 있는 시세조종성 주문 가운데 51건은 김건희 여사가 직접 주문을 냈다.”
1월 13일 거래도 마찬가지다. 검찰은 김건희 여사 계좌로 이루어진 1월 13일 거래 가운데 31건을 물량소진, 고가매수 등의 시세조종성 주문으로 보고 범죄일람표에 포함시켰다. 이 시세조종성 주문을 증권사 직원에게 직접 낸 사람은 주가조작 선수 이 씨지만 그것에 대해 해당 증권사 담당 직원의 보고를 받고 최종 승인을 해준 사람은 다름 아닌 김건희 여사다.
이것이 검찰의 딜레마다. 검찰 입장에서는 현직 대통령의 아내를 주가조작의 공범으로 기소하는 것과 스스로 작성한 범죄 일람표의 내용을 부인하는 것, 두 가지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그런데 검찰은 대선 과정이었던 지난 2월 24일, 뉴스타파의 관련 보도에 대한 윤석열 캠프의 문제 제기에 “공소장에는 오류가 없다”는 입장을 이미 밝혔다. 따라서 검찰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한 가지 뿐이다.
그러나 범죄 개입의 명백한 증거와 현직 대통령의 부인을 기소하는 정치적 부담 사이에서 검찰은 손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2월 3일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한 검찰은, 보도자료 맨 끝에 “국민적 의혹이 있는 주요 인물 등의 본건 가담 여부에 대하여는 계속 수사 진행 중임”이라고 적어 놓았다. 그리고 9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검찰은 김건희 여사를 소환 조사하지도 못한채 기소 여부를 두고 어떤 결론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주가조작범과 절연했다”는 대통령 말도 거짓말
다시 윤석열 대통령의 후보 시절 발언으로 돌아가보자.
“한 네 달 정도 맡겼는데 손실이 났고요, 그 도이치모터스만 한 것이 아니고 10여가지 주식을 전부 했는데 손실을 봐서 저희 집사람은 거기서 안되겠다 해서 돈을 빼고 그 사람하고는 절연을 했습니다.”-국민의힘 경선 토론회 (2021.10.15.)
실제로 윤석열 캠프가 공개한 계좌 내역에 따르면, 김건희 여사는 2010년 5월 20일 이후 신한금융투자 계좌에 있던 도이치모터스 주식을 DB증권 계좌로 옮겼다. 여기까지 보면 정말 이 씨와 ‘절연’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법정에서 공개된 김건희 여사의 또 다른 녹취록에 따르면, 이 시기 이 씨와 절연을 했다던 김건희 여사가 여전히 DB증권 계좌에 대한 매매 권한을 이 씨에게 주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뉴스타파가 확보한 법정 진술을 보면 4월 22일 법정에서 검사는 이 씨를 심문하면서 김건희 여사와 DB 증권 직원 사이의 2010년 6월 16일자 통화 녹취록 내용을 공개했다. 검사가 공개한 녹취록에서 김건희 여사는 DB 증권 직원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기에서 이00 씨는 윤석열 대통령이 언급한 바로 그 선수 이 씨다. 이 씨는 김건희 여사의 신한금융투자 계좌를 2010년 1월부터 5월 20일까지 관리하면서 도이치모터스 주식 16억 원 어치를 사들였다. 그런데 이 통화가 이루어진 6월 16일은 그로부터 거의 한 달 뒤다.
윤석열 대통령의 해명에 따르면 김건희 여사와 이 씨는 5월 20일에 ‘절연’을 했는데, 실제는 이 씨가 여전히 김건희 여사 계좌의 주문 권한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김건희 여사가 이 씨에게 주문 권한을 준 계좌는 애초 이 씨에게 맡겼던 신한금융투자 계좌가 아닌, DB증권 계좌다. 이미 자신에게 손해를 끼친 사람과 ‘절연’을 하기 위해 주식을 다른 계좌로 옮겼는데 왜 다시 그 사람에게 바뀐 계좌 주문 권한을 줬을까. 윤석열 대통령의 말이 사실이라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다만 검찰은 재판에서 주가조작범 이 씨가 DB증권 계좌로 주문을 낸 적은 없다고 밝혔다. ‘권한’은 있었지만 그 권한을 행사한 적은 없다는 뜻이다.
짚어야 할 점이 두 가지 더 있다.
우선, “저하고 이00 씨 제외하고는 거래를 못하게 하세요”라는 김건희 여사의 발언은, 김건희 여사와 이 씨 외에도 해당 DB증권 계좌에 주문을 낼 수 있는 제3의 인물이 존재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 인물이 누구인지, 그리고 주가조작 세력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 등은 아직 알려진 바가 없다.
둘째로, 앞서 공개한 통화 녹취록에서 증권사 직원이 김건희 여사를 ‘이사님’이라고 부르고 있다는 점이다. 김건희 여사를 코바나콘텐츠의 대표로 인지하고 있었다면 증권사 직원은 ‘대표님’이라는 직함을 사용했을 것이다. 지난 2월 25일 헤럴드경제는 김건희 여사가 도이치모터스의 제품 및 디자인전략팀 이사라고 기재된 서울대 인문대 최고지도자 인문학 과정 원우수첩을 보도한 바 있다. 김건희 여사가 도이치모터스 이사로 재직중이면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에 가담했다면 내부자에 의한 미공개정보이용 주식 거래 혐의가 추가될 수 있다.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지금까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사실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은 선거과정에서 허위사실을 말했다. 공직선거법 위반 소지가 크다. 공직선거법의 공소 시효는 선거 뒤 6개월이 되는 시점인 2022년 9월 9일까지다. 다만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는 헌법 84조에 따라 수사나 기소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지난 2월부터 시작된 도이치모터스 재판은 현재까지 23차례 진행 중이다. 뉴스타파는 위에서 밝힌 김건희 여사의 녹취록 외에도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재판 과정에서 나온 새로운 사실들을 순차적으로 보도할 예정이다.
뉴스타파 심인보
김건희, 주식 매수 직접 승인" 보도에…대통령실 "왜곡보도, 강력한 법적 조치"
뉴스타파, 법정 녹취록 입수·공개…민주당 "검찰이 또 무혐의 처분할지 지켜보겠다"
윤석열 대통령 배우자인 김건희 전 코바나컨텐츠 대표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1차 작전' 시기 직접 도이치모터스 주식 매수를 승인하는 듯한 정황을 담은 녹취록이 언론에 공개됐다. 대선 시기 윤 대통령은 김 전 대표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에 대해 '브로커 이모 씨에게 주식 일임매매를 맡겼고 이 씨가 임의로 도이치모터스 주식을 거래했다'고 주장해 왔다.
탐사보도 전문매체 <뉴스타파>는 2일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공판에서 공개된 녹취록을 보도했다. 이 녹취록은 지난 5월 27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재판 당시 이 회사 권오수 회장 측 변호인이 공개한 것이라고 매체는 밝혔다.
보도에 따르면, 김 전 대표는 자신의 계좌로 처음 도이치모터스 주식을 산 2010년 1월 12일 증권사 직원과 도이치모터스 주식과 관련해 아래와 같은 대화를 나눴다.
김건희 : 여보세요
증권사 직원 : 네 이사님, 저 OOO입니다. 지금 2375원이고요. 아래 위로 1000주씩 걸려있고 지금 시가가 2350원, 고가가 2385원 저가가 2310원 그 사이에 있습니다. 조금씩 사볼까요?
김건희 : 네 그러시죠.
증권사 직원 : 네 그러면 2400원까지 급하게 하지는 않고 조금 조금씩 사고 중간에 문자를 보낼게요.
하루 뒤인 2010년 1월 13일에도 김 전 대표는 증권사 직원과 아래와 같은 대화를 나눴다.
증권사 직원 : 네 이사님, 저 OOO입니다.
김건희 : 네네
증권사 직원 : 오늘도 도이치모터스 살게요. 2500원까지.
김건희 : 아! 전화 왔어요?
증권사 직원 : 왔어요.
김건희 : 사라고 하던가요? 그럼 좀 사세요.
증권사 직원 : 그럼 어제처럼 천천히 사겠습니다.
<뉴스타파>는 이 두 녹취를 근거로 김 전 대표 계좌에서 이뤄진 도이치모터스 주식 거래를 최종 승인한 것은 김 전 대표 본인이라며 대선 기간 윤석열 캠프가 김 전 대표의 도이치모터스 주식 거래는 '주가조작 선수' 이 씨가 주문한 것이라고 해명한 것과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이에 즉각 반박 입장을 냈다. 대통령실은 "일부 매체가 도이치모터스 관련 녹취록을 왜곡 해석한 후 '대통령이 거짓말을 했다'는 식으로 날조, 허위 보도를 한 데 대해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며 "그동안 일관되게 2010년 1월부터 2010년 5월까지 이모 씨에게 '일임 매매'를 맡긴 사실을 밝혀왔고 이는 '명백한 진실'"이라고 반박했다.
대통령실은 "위 녹취록은 이 씨에게 '일임 매매'를 맡긴 사실을 입증하는 증거임에도 일부 매체는 '주식 매매 절차'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왜곡 보도했다"며 "이 씨가 일임을 받아 매매 결정을 하고 증권사 직원에게 주문을 하더라도 증권사 직원은 계좌 명의인과 직접 통화해 그 내용을 확인하고 녹취를 남기는 게 의무"라고 설명했다.
대통령실은 "이런 대화는 주식 매매 절차상 지극히 정상적인 것으로, 종전의 설명이 진실임을 뒷받침하는데도 마치 거짓 해명을 한 것처럼 왜곡 보도한 데 대해 강력한 법적 조치를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야당에서는 공세에 나섰다. 박성준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이날 오후 서면브리핑에서 "(대통령 영부인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과 관련해 직접 시세 조종을 위해 주식을 매수했고 주가 조작범의 거래를 직접 승인한 사실이 드러났다"며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을 직접 했다는 증거가 나왔는데도 검찰이 또다시 무혐의 처분으로 넘길지 지켜보겠다"고 했다.
뉴스타파 최용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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