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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시사만평-주간 쟁점

2022.9.5~

by 이성근 2022. 9. 5.

 

바윗돌을 공깃돌처럼 날렸던 역대급 태풍힌남노는 더 세다

6일 오전 부산 접근 때 최대풍속 기차 탈선할 수준예측

최대풍속 1위 매미, 5위 루사 버금가는 영향 줄 수 있어

2020년 태풍 마이삭이 남부지방을 강타한 3일 오후 부산 민락수변공원에 바위가 굴러와 있다. 태풍 마이삭은 하루 최대풍속 45m/s로 역대 태풍 가운데 네 번째로 강했다. 연합뉴스

 

태풍 힌남노가 현재 추세대로라면 태풍 매미(2003)와 루사(2002) 등 많은 피해를 입힌 태풍에 버금가는 강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태풍의 강도는 일 최대풍속을 기준으로 결정한다. 최대풍속이 인명, 재산 피해와 직접적인 연관성을 갖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태풍의 최대풍속 ‘25m/s 이상 33m/s 미만을 강도 ’, ‘33m/s 이상 44m/s 미만을 강도 ’, ‘44m/s 이상 54m/s 미만을 강도 매우 강’, ‘54m/s 이상'초강력'으로 본다. 기상청은 4일 오전 10시에 발표한 태풍정보에서 태풍 힌남노가 6일 오전 9시 부산 앞바다에 접근할 때 최대풍속 수준을 보일 것으로 예상했다. 태풍 강도 은 기차가 탈선할 정도의 세기이다.

 

한반도 상륙 후 최대풍속이 가장 강하게 기록된 태풍은 매미였다. 거센 강풍을 몰고와 바람의 태풍이라고 알려진 매미는 당시 제주 고산에서 최대풍속 51.1m/s(매우 강)를 기록했고, 전국적으로 130명의 인명피해와 42225억원의 재산 피해를 남겼다. 그 다음 차바(2016), 프라피룬(2000), 마이삭(2020) 차례로 최대풍속이 매우 강이었다. 2002년 기록적인 폭우를 쏟아내 비의 태풍으로 여겨지는 태풍 루사43.7m/s에 해당됐다. 루사는 사망실종자 246명에 재산피해액 51419억원을 남기며 한반도를 할퀴고 갔다.

 

태풍의 강도가 크다고 해서 항상 큰 인명 피해를 남기는 것은 아니다. 태풍의 궤적이 사람이 많이 사는 곳을 지나가는지가 중요하다. 다른 태풍에 비해 태풍 루사와 매미, 사라가 우리 기억에 많이 남는 이유다.

가장 큰 인명 피해를 남긴 태풍은 1959년 태풍 사라로, 당시 숨지거나 실종된 사람이 849명에 이르렀다. 이어 1972년 태풍 베티(550), 19877월 셀마(345)도 많은 사망·실종자를 냈다. 태풍 방재가 개선되면서 피해는 이전보다 줄었지만, 2000년대 들어 태풍 루사’(2002)246명의 사망·실종자를 기록했다. 재산 피해액은 51479억원으로 국내 태풍 피해액 가운데 가장 컸다. 그 다음으로 큰 재산 피해를 낸 것은 태풍 매미(42225억원), 에위니아(18344억원) 순이다.

 

기상청은 태풍 힌남노가 부산에 근접하는 6일 오전 9시 기준으로 풍속 15m/s 이상의 강풍 반경380, 풍속 25m/s 이상의 폭풍 반경150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수도권까지 초속 15m/s의 강풍이 불 것이라는 예보가 나온만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

태풍 관측 이래 최대풍속 10개 태풍 중 9개 태풍이 2000년대 들어서 발생했다. 기후변화는 강한 태풍을 만든다. 해수면 온도가 높아지면서 대기에 더 많은 수증기를 공급하기 때문이다. 202012월 기초과학연구원(IBS)은 슈퍼컴퓨터 알레프를 이용해 미래의 태풍 발생을 시뮬레이션한 결과를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스>를 통해 발표했다. 연구 결과를 보면, 대기 중 이산화탄소가 2배 증가하면 발생한 태풍이 50m/s 이상의 강풍을 동반하는 3등급 이상의 강한 태풍으로 발달할 가능성이 약 50% 이상 높아졌다.

김회철 기상청 대변인은 현재 태풍 힌남노를 볼 때, 과거 태풍 루사와 매미와 버금가는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힌남노, ‘매우 강으로 상륙할 듯우리동네 가까울 때는?

서귀포 6일 새벽 230접근

통영·거제 오전 782030

서울 오전 11280강풍권

기상청은 411호 태풍 힌남노는 밤 9시 현재 대만 타이베이 북동쪽 약 420부근 해상에서 중심기압 935헥토파스칼, 중심부근 최대풍속 초속 49m, 강풍반경 430매우강위력을 유지한 채 시속 12의 속도로 북북동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태풍 힌남노는 30시간 뒤인 6일 오전 3시 제주 서귀포시 동북동쪽 약 70부근 해상을 지나 오전 78시께 경남 남해안으로 상륙할 것으로 예상된다.

 

 

조국 아들 대리시험 증거에 소설 쓴 기레기들믿지 않는 댓글들

조국 전 법무부장관이 부인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와 미국 조지워싱턴대 재학중이던 아들 조원씨 시험을 대신 풀어준 구체적 정황증거가 공개됐다. 이런 가운데 관련 기사에는 해당 기자를 비난하거나 이를 소설로 치부하는 의견이 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 전 장관 측은 아들 조씨가 학교폭력을 당해 케어 필요성이 있어서 대리시험에 응했다는 취지의 엉뚱한 내용으로 해명한 바 있다.

 

지난 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1부 심리로 열린 아들 조씨 입시비리와 대리시험 관련 조 전 장관 부부 재판에선 검찰의 증거조사 내용이 공개됐다. 아들 조씨가 수강 중이던 과목의 온라인 시험 문제를 사진으로 찍어 가족 단체 채팅방에 올리면 조 전 장관과 정 전 교수가 같이 풀어준 것이다.

3일자 채널A 보도화면 갈무리

 

검찰에 따르면 정 전 교수는 20169월 가족 채팅방에서 원이 퀴즈 시작하자고 말한 후 역사학 관련 과목 객관식 시험 문제 답안을 올렸고, 조씨는 만점을 받았다.

 

또 다른 민주화 관련 과목에서도 두 차례 대리시험이 있었다. 조씨는 201610월과 12월 가족 채팅방에서 온라인 시험 일정을 사전에 공유했다. 조씨가 아빠 저 1시에 시험 봐요라고 말하면 조 전 장관은 아빠 준비됐다. 문제 보내주면 나는 아래에서 위로, 너는 위에서 아래로, 당신(정 전 교수)은 마음대로라고 답했다. 정 전 교수도 엄마도 컴퓨터 앞에 앉았다. 준비 완료라고 말한 뒤 중간부터 위로 올라가며 문제를 풀었다.

 

또한 검찰에 따르면 정 전 교수는 조씨가 계속 안 좋은 성적을 받자 이렇게 정신 못차리면 어떡하냐고 꾸중했고 수차례 여러 과목의 과제를 작성했다. 조 전 장관은 힘내세요라며 과제 대필을 독려했고 아들 조씨는 덕분에 B+ 받았다며 감사 표시도 했다. 정 전 교수가 시험 유형이 어렵다고 하면 조 전 장관이 셋이 힘을 합쳐 넘겨야지라고 답했다.

 

검찰은 조지워싱턴대 학문 윤리 규정을 보면 타인의 성과를 자신의 것인양 가져오는 행위 등을 명시하고 거짓 행위를 반복하면 낙제한다한 교수는 이런 방식으로 시험을 본 게 발각되면 0점 처리 했을 것이라고 진술했다. 피고인들의 부정행위는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구체적인 증거가 언론을 통해 알려졌지만 일각에선 해당 내용을 전하는 언론을 공격하는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중앙일보 기사에 달린 댓글 일부

 

중앙일보 2일자 “‘아빠 준비 됐다, 문제 보내조국 부부 아들 대리시험전말란 기사의 네이버 댓글을 보면 자세히 읽어보니 아주 소설을 쓴 냄새가 엄청 난다”, “언론개혁이 절실히 필요한 이유이며 이런 기자들 때문에 기레기 소리 듣는 것”, “언론과 기자들은 벼락을 맞아도 잘했다고 싸다 이런 기사를 보고 그대로 믿는 인간들도 문제가 많다등 해당 매체를 비난하는 내용이 달렸다.

 

한동훈 법무부장관과 비교하는 댓글도 있다. “비열하고 추한 기레기들, 똥후니 딸, 조카들도 압색 100여 차례해서 조국 가족 100분의1만 기사내도 종양(중앙일보)을 신문이라 인정하지등의 댓글도 있다.

 

중앙일보 페이스북 계정에도 해당 기사를 올린 게시글에 중앙일보 기자는 검찰주장이라고만 했지 어떤 수사결과인지 구체적 대화내용이 어디서 밝혀진 것인지 언급이 없다. 그냥 복붙 기사라는 의심을 버릴 수 없다며 기사의 신빙성을 의심하는 댓글도 달렸다. “소설을 써라 윤서방 똘마니들아등 검찰을 비난하는 댓글도 찾을 수 있다.

 

한편 조 전 장관 측은 이에 대해 다소 황당한 답변을 내놓은 바 있다. 조 전 장관 측은 지난해 6월 대리시험 관련 아들 조씨가 2011년 학교폭력을 당했고 이로 인한 후유증을 겪었다학교폭력 피해자의 경우 트라우마에 관심을 갖는 것은 (재판부도) 잘 아실 것이라고 했다. 이어 그런 행위(학교폭력)에 대한 열패감이 평생 가서 여러 케어 필요성이 있었다당시 특수성에서 이뤄졌던 대응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것처럼 일반화됐다고 했다.

미디어오늘 장슬기 기자

 

세계 물가상승률, 튀르키예 1한국이 중위권이라고?

역대 최고 인플레이션 현상이 전세계를 강타하지만 수치나 양상은 나라마다 제각각이다.

미국의 싱크탱크 퓨리서치센터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데이터 등을 바탕으로 집계한 세계 44개국의 인플레이션 수치는 지난 2년 동안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냉탕과 온탕을 번갈아 경험하는 각국의 혼비백산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20221분기(전년 동기 대비) 물가상승률이 가장 높은 나라는 54.8%를 기록한 튀르키예(터키)였다. 2021년부터 고삐 풀린 물가를 잡기 위해 각국이 금리인상을 추진했는데도 나 홀로 저금리를 고집한 결과다. 사실상 독재권력을 휘두르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 이 세계 경제 10위권 진입이라는 외형적 성과를 위해 무모한 경제정책을 펴고 있기 때문이다 .

 

지난 2년 동안 인플레이션율이 가장 높은 나라는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의 연간 물가상승률은 20201분기까지만 해도 0.13%였다. 그러나 20221분기 3.36%2년 전보다 25배 올랐다. 피그스(PIGS)라고 부르는 남유럽 국가인 포르투갈·이탈리아·그리스·스페인이 이스라엘에 이어 지난 2년의 물가상승률이 가장 높은 나라들이라는 점도 눈에 띈다.

 

같은 통계에서 한국은 18위로 중위권이다. 20221분기 인플레이션율도 전체 6그룹 가운데 가장 낮은(0.1~2.4%) 중국이나 일본의 바로 위인 5그룹(2.5~5.0%)으로, 세계적으로 보면 높은 편은 아니다. 정부의 적극적인 방역 대책과 국민의 협조로 경제가 받는 타격을 줄였고, 주요 선진국보다 재난지원금을 훨씬 적게 줬으며, 금리인상도 비교적 서둘러 시작하는 등 방어적인 경제 운용을 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만성적인 디플레이션에 시달려온 일본은 드디어 2%대 인플레이션율을 기록하게 됐지만, 웃을 처지는 아니다. 유가를 비롯한 수입물가 상승이 그렇지 않아도 상대적으로가난한 일본 국민의 소비를 더욱 옥죌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1분기 인플레이션율은 조사 대상 44개국 중 13번째로 높았다. 지난 2년간 물가상승률이 거의 4배 올라 한국 다음인 19위였다.

이재성 부편집장 san@hani.co.kr

 

뭘 복원했나?미국 하자는 대로 했으나 돌아온 건 '전기차 보조금 철폐'?

바이든 표 '미국 우선주의', 윤석열 정부 유연한 대외 정책 필요

정부가 미국 내 판매되는 현대기아자동차의 전기차에 보조금 지급을 철폐하는 내용이 담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관련,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을 비롯해 다양한 층위에서 미국 설득에 나서고 있지만 예외 적용을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831(현지 시각) 김성한 실장은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양자회담을 가진 뒤 기자들과 만나 미측이 IRA법의 영향에 대해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차원에서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연합뉴스>가 전했다.

 

김 실장은 "설리번 보좌관이 전기차 보조금 문제가 향후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상세히 들여다보겠다고 했다"고 밝혔다.

 

해당 법령에 따르면 전기차 보조금을 받기 위해 북미지역인 미국캐나다멕시코에서 최종 조립되어야 하고 전기차의 배터리 핵심 광물인 리튬, 흑연 등을 미국이나 미국과 FTA(자유무역협정)를 체결한 국가에서 수출 또는 가공됐거나 북미 지역에서 재활용된 부분이 일정 부분 이상이어야 하며 배터리 부품 중 북미에서 생산된 물품이 일정 부분 이상 들어가야 한다.

 

위 세 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하면 7500달러(한화 약 1000만 원)가 지원되며 하나만 충족할 경우 3750달러 (한화 약 500만 원)가 지원된다. 전기차의 최종 조립 장소도 문제지만 배터리 원료의 원산지는 상당 부분 중국이기 때문에 당장 이같은 요건을 충족시키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정부는 김성한 실장과 별개로 지난 829일에는 안성일 산업통상자원부 신통상질서전략실장, 이미연 외교부 양자경제외교국장, 손웅기 기획재정부 통상현안 대책반장 등으로 구성된 정부 대표단을 꾸려 31일까지 미국에서 행정부와 의회 주요 인사들에게 한국 정부의 요청사항을 전달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정부는 미국 조지아주에 현대자동차 공장이 완공되는 시점인 2025년까지 IRA의 적용을 유예해 달라고 요청한 상태다. 830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출석한 이도훈 외교부 2차관은 유예 요청을 해야 한다는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의 제안에 "정확한 지적"이라며 박진 장관도 이같은 요구를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국 정부의 이같은 요청에 미국이 응할지는 미지수다. 김 실장이 직접 언급했듯 한미 안보실장 회담에서 설리번 보좌관은 "IRA가 한국 입장에서 마이너스보다 플러스가 많은 것 같다"고 말했고, 한미일 3국 안보실장 회담 이후 백악관에서 발표한 보도자료에 IRA 등 경제 문제에 대한 명시적인 언급도 없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IRA를 엄청난 성과로 평가하며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도 예외 적용을 받을 가능성이 높지 않은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1(현지 시각) 마이크론 테크놀로지의 미국 내 신규 반도체 공장 투자 결정과 관련해 성명을 내고 "오늘 발표는 미국을 위한 또 다른 큰 승리"라며 "이번 주에만 경제 계획의 직접적인 결과로 퍼스트 솔라, 도요타, 혼다, 코닝 등이 새 투자와 일자리에 대해 주요 발표를 가졌다. 전기차, 반도체, 광섬유, 기타 핵심 부품을 미국에서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IRA가 미중 간 세력 경쟁 구도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점도 예외를 인정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다. 사실상 중국을 공급망에서 제외하기 위한 법 제정인데 여기서 예외의 폭을 넓히면 법 제정 목적이 상실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미국의 이번 법안은 대외적으로 봤을 때 한국을 비롯해 일본, 유럽연합(EU) 등의 국가들에게 중국 견제에 동참하고 미국에 투자하라는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미 세계가 하나의 경제권으로 묶여 있는 상태에서 중국을 의도적으로 밀어내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 미국이 법에 따른 구상을 현실화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다.

 

특히 배터리 원료 문제의 경우 중국에서 생산되는 핵심 광물을 배제하기 위한 것이 목적인데 이 조건을 맞출 수 있는 기업이 현실적으로 거의 없고, 설사 조건이 충족된다고 해도 적잖은 기간이 걸릴 것이라는 게 정부의 예측이기도 하다.

 

일부에서는 바이든 정부가 겉으로는 서방을 중심으로 한 소위 '가치 동맹'을 중시하는 것처럼 행동했지만, 이번 조치를 통해 실제로는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및 당시 정부와 크게 다르지 않은 행보를 보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 바이든 대통령은 후보 시절 '중산층을 위한 외교'라는 이름으로 국제 정세보다는 국내 지지 기반을 확고하게 하기 위한 외교 정책을 내놨는데, 이는 트럼프 전임 대통령이 강조한 '미국 우선주의'와 기본 방향이 유사한 외교 비전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이후 미국 주도의 중국 견제 경제 협의체인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와 공급망 협의체로 불리는 소위 '4'에 참여하는 등 미국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해왔음에도 한국에 돌아온 답이'전기차 보조금 폐지'였다는 점을 보더라도, '미국 우선주의'가 미국 내에서 정치적 방향과 무관하게 작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한국 정부가 미국이 부르짖는 '가치' 동맹에 무작정 끌려 들어가서는 안된다는 우려가 나온다. 냉혹한 국제질서를 정확히 간파하고 앞으로는 지금까지 해왔던 것 보다 유연한 외교정책을 펼쳐야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프레시안 이재호 기자

 

경찰, '20개 허위 날조 경력' 김건희 수사 결국 '무혐의' 결론

경찰이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전 코바나 대표의 허위경력 기재 의혹 사건을 공소권 없음·무혐의 등으로 처리해 마무리할 예정이다.

 

해당 의혹은 김 전 대표가 지난 20012014년 한림성심대, 서일대, 수원여대, 안양대, 국민대학교 강사, 겸임교원에 지원하며 입상 기록, 프로젝트 참여, 근무 이력, 학력 등을 허위로 해 이력서 및 경력증명서를 제출했다는 것이다.  

 

5<연합뉴스>에 따르면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는 사기와 업무방해, 사문서위조 등으로 고발당한 김 전 대표를 불송치하기로 했다. 업무방해와 사문서위조는 공소시효(7)가 지나 공소권 없음으로, 사기는 무혐의로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민생경제연구소 등 일부 시민단체는 지난해 12"20여 개에 달하는 허위·날조 경력으로 고등교육 기관과 학생들을 속였다"며 김 전 대표를 고발했었다.

 

김 전 대표는 지난해 대선 정국에서 자신의 허위 이력 기재 등과 관련해 "일과 학업을 함께하는 과정에서 제 잘못이 있었다. 잘 보이려 경력을 부풀리고 잘못 적은 것도 있었다"고 말했고, 파문이 커지자 기자회견을 통해 사과를 하기도 했다.

 

앞서 경찰은 지난달 25일 김 전 대표의 허위경력 '거짓 해명 의혹' 관련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혐의 사건도 무혐의로 결론 내린 바 있다.

프레시안 이명선 기자

 

청년은 빚내느라, 노년은 빚 갚느라... 대출에 파묻힌 국민

서울 서초구 서울회생법원 모습. 연합뉴스

 

가계대출 금리가 연일 뜀박질하면서 대출금을 갚느라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차주들이 늘고 있다. 은행에서 빌린 돈을 제때 갚지 못해 신용 불이익을 받는 20대가 늘고 있는가 하면, 은퇴 후 소득은 줄었는데 갚아야 할 대출 잔액은 여전히 많은 노년층도 사정이 빠듯하긴 마찬가지다. 이들이 빚을 갚느라 씀씀이를 줄이거나, 결국 대출이 부실화할 경우 우리 경제위기의 뇌관이 될 것이란 경고가 나오고 있다.

 

질 나빠진 20대 빚

4일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신용정보원에서 제출받은 '금융채무 불이행자 현황' 자료를 보면, 20대 금융채무 불이행자(6월 말 기준)84,300, 이들의 평균 연체 금액(원리금 총액)1,580만 원으로 집계됐다. 대출금을 제때 갚지 못한 10명 중 6(41.8%)은 연체 금액이 500만 원 이하였고, 500~1,000만 원 이하를 연체한 비중이 21.2%로 뒤를 이었다. 비교적 소액이지만 '생계비 부족' 등을 이유로 이마저 갚지 못해 신용상 불이익을 받고 있다는 얘기다.

 

청년층이 진 빚은 그 질도 나빠지고 있었다. 금융감독원과 진 의원에 따르면, 올해 2분기 20대의 은행권 대출은 전 분기 대비 2,536억 원(-0.4%) 줄어든 반면, 저축은행과 상호금융 등을 중심으로 한 2금융권 대출액은 8,374억 원(3.1%) 늘었다.

 

시중은행의 대출금리가 워낙 가파르게 오르면서 빚을 제때 갚지 못한 대출자들이 2금융권 대출로 돌려막기에 나서거나, 한도 부족 등 애초부터 은행권 문턱을 넘지 못하면서 필요 자금을 2금융권에서 빌린 것으로 풀이된다. 통상 2금융권은 은행보다 대출금리가 더 비싸다. 금융권 관계자는 "주식 등 자산시장이 무너지면서 자금난에 빠진 대출자들이 2금융권에서도 돈을 빌렸을 수 있다""대출 건전성이 나빠지고 있다는 뜻"이라고 했다.

 

대출 잔액 여전히 잔뜩 60

60대 이상은 대출 상환의 늪에 빠져 고충을 토로하고 있다. 은퇴 후 소득은 줄었는데 재산은 집에 묶여 있고, 갚아야 할 대출금은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한국금융연구원이 코리아크레딧뷰로(KCB) 자료를 토대로 연령대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구간별 차주 및 대출 잔액을 봤더니, DSR40%대 이상으로 비교적 높은 차주 비중 가운데 60~70대 이상의 경우는 4.3~12.7%였다. 30~50(5.2~12.3%)와 큰 차이가 없었다.

 

이에 반해 이들이 보유한 대출 잔액 비중은 60(DSR 40% 이상)41.8%, 70대 이상이 44%, 30~50(20~30%)보다 높았다. DSR가 높은 차주 가운데서도 60대 이상의 소득 대비 대출잔액이 30~50대보다 훨씬 많다는 의미다. DSR는 연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액의 비율로, 가령 DSR40%라는 건 연소득 5,000만 원일 때 원리금 상환액이 2,000만 원을 넘을 수 없단 뜻이다.

 

보고서를 쓴 권흥진 연구위원은 "60대 이상은 현재 소득뿐 아니라 향후 기대소득이 30~50대 차주 대비 낮기 때문에 상환 부담이 크고, 향후 부실 가능성도 높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진단했다.

 

특히 노년 차주의 경우 소비를 크게 줄이거나 갖고 있는 자산을 줄이지 않고선 대출을 상환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권 연구위원은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60대 이상 차주의 소비 여력 감소는 잠재적 빈곤층 전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이는 실물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조아름 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한국 언론이 외면한 '인플레 감축법'의 핵심은 '대기업 증세'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 법인세 인상으로 재원 마련

전 세계가 치솟는 물가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백약이 무효인 걸까. 코로나19 이후 고질병이 되어 버린 공급망 위기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까지 겹쳤다. 생산과 공급이 막히면서 물가 상승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그래서 전세계 모든 정부들이 물가와 전쟁 중이다. 어느 한 나라에서 누구라도 물가를 잡는 사례를 만들 수만 있다면 영웅으로 칭송받을 상황이다. 반대로 이걸 제대로 못 잡으면 아무리 선거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한 정부라도 쫓겨날 판이다.

 

당연히 모든 눈은 미국과 중국으로 쏠렸다. 그래도 쓸 수 있는 정책수단이 다른 나라에 비해 많은 나라 아닌가. 그러던 중 미국이 가장 먼저 움직였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천신만고 끝에 법 하나를 통과시킨 거다. 이름하여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

AP=연합

 

한국 기업에 전기차 보조금 안 주는 법?

그렇다. 사실 이 법은 '인사이드경제'가 처음 소개하는 법이 아니다. 한 달 전인 87일 미국 상원에 이어 812일 하원을 통과해, 바이든 대통령이 816일 법안에 서명함으로써 곧바로 효력이 발생했으니 벌써 발효된 지 20일이 지났다.

 

그 사이 한국 언론사들은 이 법안 내용을 앞다투어 대서특필했다. '미국에서 전기차 생산하지 않는 현대·기아에 세액공제 혜택 없음', '중국 중심의 전기차·배터리 공급망에 타격을 주기 위한 법', '미국 기업에만 유리하게 설계된 미국 중심주의 또다시 발호'.

 

대부분의 언론 기사들은 이런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하지만 이 법의 제목이자 핵심 목표인 '인플레이션 감축'과 관련한 내용은 많이 부족하다. 사실 전기차 보조금과 관련한 내용은 이 법안 전체로 따지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데, 한국 언론만 보면 이 법의 전체가 마치 전기차 관련 내용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

 

지출보다 수입이 3000억 달러(400) 많은 법안

우선 이 법은 지출보다 수입이 2배 가까이 많은 계획을 담고 있다. , 전기차 보조금(세액공제) 등 정부 지출이 핵심이 아니라 그보다 배의 수입을 세금으로 거둘 수 있는 제도를 설계한 법안이라 할 수 있다.

 

본래 바이든 대통령은 당선 직후 무려 3.5조 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재정을 지출하는 미국 재건법(Build Back Better, BBB 법안)을 제출한 바 있다. 그러나 여당인 민주당 내에서 가장 오른쪽 성향으로 분류되는 조 맨친 상원의원의 반대로 2년 동안 상원조차 통과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2년의 세월이 지나간 뒤에는 바이든이 당선되던 경제 상황과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극심한 인플레이션이 시작되자 정부 지출만 늘릴 경우 물가 인상을 부추길 우려가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지출 규모를 엄청나게 줄이는 대신 엄청난 규모의 세입 확대 계획을 중요하게 제시한 것이다.

 

막대한 세금 수입 대부분 대기업에 부과

이 법안이 상원을 통과하고 하원 표결 직전이던 811, 미국 상원 민주당 그룹이 제출한 법안 요약본에 따르면, 향후 10년간 추가되는 수입은 7370억 달러로 10년간 세액공제 등 지출로 나갈 4370억 달러에 비해 무려 3000억 달러가 많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수치 출처 : 미국 상원 민주당 그룹.

 

바로 이 대목이 매우 중요한 부분인데, 위 표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추가 세입 대부분이 최소 법인세율 15% 도입 자사주 매입 1% 과세 처방약 가격정책 개혁 등을 통해 빅 테크와 제약회사 등 대기업에 세금을 부과하는 방식을 통한다는 점이다. 만일 실제로 위 계획대로 집행된다면 미국은 연방 재정적자를 10년간 약 3000억 달러를 감축할 수 있게 된다.

 

세금 아무리 깎아줘도 최소 15% 법인세 내야

미국의 법인세율은 그동안 많이 감소하긴 했지만 여전히 21% 수준에 달한다. 하지만 상당수 대기업들은 다양한 세액 공제와 감면 혜택을 받는다. 그러다보니 법인세를 아예 안 내는 기업도 있고 실효세율이 매우 낮은 수준인 경우가 많다. (알고 보면 한국의 상황도 똑같다.)

 

그런데 이번에 통과된 인플레이션 감축법에는 '지난 3년간 평균 조정 세전 이익 10억 달러를 초과하는 대기업을 대상으로 최저 15%의 세금을 부과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10억 달러라면 현재 환율로 1.3조에 달하는 막대한 이익을 내는 대기업을 상대로, 아무리 공제·감면 혜택을 받더라도 최소 법인세율 15%를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스위스 금융기업인 UBS에 따르면 이런 대기업들 중 실효세율이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기업들이 상당수 있다. 이를테면 미국의 수자원공사라 할 수 있는 '아메리칸 워터 웍스(American Water Works, AWK)', 그리고 미주리주 전력공사 애머런(Ameren, AEE)의 경우 두 기업 모두 최근 3년간 평균 11억 달러의 세전이익을 기록했지만 실효세율은 0.1%에 불과했다.

엄청난 영업이익에도 낮은 실효세율 기록한 미국 대기업들 (수치 출처 : UBS)

테슬라 역시 다양한 조세회피처에 주요 법인을 두고 이익을 몰아주는 기법을 사용하며, 미국 내에서는 영업이익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보고하는 수법으로 미국에서 법인세를 매우 낮게 내고 있다. 포드, 엔비디아, 아마존 등 한국인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기업들도 낮은 실효세율 기업 리스트에 이름이 올랐다.

 

자사주 매입에도 1% 과세

또한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주로 빅 테크 기업이 주가 방어와 주주 환원을 위해 사용하는 '자사주 매입'1%의 세율을 적용해 과세하도록 정하고 있다. 애플·메타·MS를 비롯한 미국의 상당수 빅 테크 기업들은 최근 주가가 하락하자 막대한 영업이익 중 상당 부분의 현금을 자사주 매입에 투입하고 있다.

 

경영권 방어에 큰 어려움이 없는 이들이 자사주를 매입하는 이유는 자사 주가를 부양하기 위해서다. 매입된 자사주는 대부분 소각되기 때문에 시장에 유통되는 주식 수가 줄게 되어 자연스럽게 주가는 올라가기 때문이다.

 

상장기업들이 주주 환원을 위해 주로 사용하는 주주 배당의 경우 배당 이익에 대해 과세가 이뤄진다. 하지만 자사주 매입의 경우 주주들이 실질적인 이익을 누리고 있음에도 과세가 이뤄지지 않아 형평에 맞지 않는다는 문제제기가 있어왔기에 이번 조치는 조세형평성 실현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 뿐 아니라 이번 법안에 따르면 국세청에 800억 달러의 예산을 증액하여 인원과 감사를 대폭 강화하는 조치도 포함되었다. 이를 통해 앞으로 10년간 납세자들이 탈세한 것으로 추정된 2000억 달러 이상을 거둬들일 것으로 보여 예산 증액분을 빼더라도 1240억 달러의 세입을 늘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초보적인 가격통제(약값 통제) 정책수단 도입

이번 법안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 중 하나가 바로 이 대목이다. 고가의 처방약, 그것도 가장 자주 쓰이는 처방약 일부에 대해 정부가 제약회사와 가격을 협상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 조치로 약값을 25% 가량 낮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제약회사가 일방적으로 책정하는 처방약 가격에 대해 어떠한 통제수단도 갖지 못한 미국은 그동안 가장 많은 약값을 부담하는 나라로 악명이 높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이러한 처방약 일부에 대해 정부가 제약회사와 협상을 통해 가격을 인하할 수 있도록 제도화한 것이다.

 

아울러 물가인상율(인플레이션 비율)보다 약값 인상율이 높은 경우 2023년부터 제약회사는 물가인상율을 상회하는 인상분을 환급하도록 하는 내용도 이번 법안에 담겼다. 말 그대로 '인플레이션 감축'을 위한 조치인 것이다.

 

아주 초보적인 수준에서 '약값 통제' 정책수단을 명시한 것인데, 약값 인하가 어떻게 정부 세입(수입)을 늘릴 수 있는 것일까? 그 메커니즘이 작동되는 원리를 비롯해 이 법안이 담고 있는 또다른 내용들은 다음 글에서 이어가도록 한다.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 프레시안

 

   

윤석열 정부, 시민단체 밥줄 끊나···대통령령 시민사회 활성화 규정밀실 폐지 추진

총리실, 각 부처·지자체에 비공개 공문

검토 기한 8입방아 오르자 16일로

회신 없으면 이견 없는 것으로 간주

감사원은 지원 실태 들여다보는 중

장애인 등 소규모 단체 재정 직격탄

정부가 대통령령인 시민사회 활성화와 공익활동 증진에 관한 규정의 폐지 수순에 들어간 것으로 6일 확인됐다. 이 규정은 정부가 시민단체 활성화를 위한 사업을 하는 근거 조항이다. 이 규정 폐지는 시민단체 활동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부정적 시각을 반영한 것으로, 정부의 시민단체 지원 폭이 크게 축소될 것으로 보인다. 감사원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시민단체 지원 실태에 대한 감사에 착수한 터다.

 

국무총리비서실은 지난 1일 각 정부부처와 지자체에 비공개 공문을 보냈다. 공문에는 시민사회 활성화와 공익활동 증진에 관한 규정 폐지령안에 대해 의견을 조회하니 폐지령안에 대한 검토의견을 8일까지 우리 실로 회신해주길 바란다는 내용이 담겼다. 총리비서실은 공문에서 기일까지 회신이 없는 경우엔 이견이 없는 것으로 간주해 처리하겠다고 했다.

 

공문에 별첨된 문서에서 총리비서실은 해당 규정을 폐지하려는 이유에 대해 행정기관 소속 위원회를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시민사회 활성화와 공익활동 증진을 목적으로 설치된 국무총리 소속의 시민사회위원회를 폐지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법제처 심사를 마쳤다는 문구도 있다.

 

해당 규정은 정부가 시민단체를 지원해 활성화한다는 취지로 문재인 정부 때인 20205월 시행됐다. 이 규정 4조에 따르면 관계 중앙행정기관은 시민사회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시민사회 활성화를 위한 시행계획을 수립해 시행해야 한다. 지자체도 조례에 따라 시행계획을 시행할 수 있다. 관계 부처들은 이 규정을 근거로 각종 시민단체 관련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규정이 사라지면 정부 지원금으로 버티는 군소 시민단체들은 상당한 재정적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정혜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대표는 많은 시민단체가 정부 지원사업에 의존해 활동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 폐지령이 통과되면 위축될 수밖에 없다마을 운동이나 장애인의 자립과 자활을 돕는 각 지역 단체 등이 철퇴를 맞을 것이라고 했다.

 

정부가 시민단체의 존폐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규정 폐지를 비공개로 일방 강행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정 대표는 시민단체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정부 견제인데 돈줄 문제이기 때문에 비공개로 하고 있는 것이라며 이런 문제일수록 공개 토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2년 넘게 시행 중인 규정의 폐지에 관한 입장을 불과 8일 만에 검토하라고 한 점도 입길에 올랐다. 관계 부처와 지자체가 충분히 검토할 시간도 주지 않고 기한을 넘기면 이견이 없는 것으로 처리하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반발 조짐이 보이자 총리비서실은 전날 검토 기한을 오는 16일까지로 연장해 공문을 다시 보냈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시민단체들에 대한 압박을 지속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대선 때인 지난 3월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언젠가부터 일부 시민단체는 권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라는 본연의 임무를 상실한 채 정치 권력과 유착관계를 형성했다시민단체의 불법 이익을 전액 환수해 고통받는 자영업자와 어려운 약자를 위해 쓰겠다고 했다.

 

이런 기조에서 감사원은 지난달 10일 정부와 지자체의 비영리 민간단체 지원 실태에 대한 실지감사에 착수했다. 일부 시민단체들은 감사원 또는 지자체로부터 자료제출을 요구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총리비서실 관계자는 행정기관 소속 위원회 정비계획에 시민사회위원회도 포함돼 폐지하려는 것이라며 폐지령이 통과되더라도 각 지자체 조례에 따라 사업을 이어갈 수는 있다고 말했다./ 경향

 

김건희 여사 논문은 표절 집합체”···교수단체, “점집 홈피·해피캠퍼스 복붙의심

검건희 여사 논문 표절 의혹 범학계 국민검증단 대국민보고대회가 열린 6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관계자가 논문표절 사례를 발표하고 있는 가운데 논문도용 당사자인 구연상 숙명여대 교수(오른쪽)가 자리에 앉아 있다./박민규 선임기자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국민대 박사학위 논문과 학술지에 게재한 논문 3편이 모두 표절에 해당한다는 교수·학술단체의 주장이 6일 제기됐다. ‘연구부정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국민대의 결론과 정반대의 검증 결과이다.

 

전국 14개 교수·학술단체가 모인 김건희 여사 논문표절 의혹 검증을 위한 범학계 국민검증단(검증단)’은 이날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대국민 보고 및 기자회견을 열고 김 여사가 2007년부터 2008년까지 작성한 논문 4편에서 광범위한 표절 정황이 확인됐다고 발표했다. 검증단은 점집 홈페이지와 사주팔자 블로그 등 상식 밖의 자료를 무단 사용한 정황이 발견됐다심각한 범죄행위라고 주장했다.

 

검증단은 김 여사가 2008년 국민대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아바타를 이용한 운세 콘텐츠 개발 연구논문의 표절 여부에 대해 860문장 가운데 220문장이 출처 표시 없이 그대로 베껴 쓴 상태라며 전체 논문 147쪽 가운데 출처가 제대로 표시된 쪽수는 8쪽에 불과하다고 했다. 구연상 숙명여대 기초교양학부 교수의 논문과 지식거래 사이트의 자료, 사주팔자·생로병사 블로그 글 등을 그대로 복사해 붙여썼다는 것이다.

 

김 여사가 해당 논문에서 특정 회사의 특허권과 사업계획서를 무단 사용한 정황도 확인했다고 했다. 검증단은 정부 지원금으로 개발된 사업계획서의 핵심 내용과 저작권이 (김 여사) 개인의 박사학위 취득이라는 사적 이익을 위해 도용된 것이라며 저작권법 침해와 보조금 관리법 위반이 의심된다고 주장했다.

 

검증단은 김 여사가 2007년 작성한 학술논문 3편에 대해서는 아이디어 표절을 비롯한 내용표절, 문장표절, 단어표절 등이 모두 포함됐다고 했다.

 

논문 제목의 회원 유지‘meber yuji’로 영역한 초록으로 논란이 된 학술논문 온라인 운세 콘텐츠의 이용자들의 이용 만족과 불만족에 따른 회원 유지와 탈퇴에 대한 연구(2007)’에 대해선 논문 총 118개 문장 중 42.4%50개 문장을 신문기사 일부와 타 학위논문 등에서 그대로 복사해 와 붙였다고 했다.

 

애니타를 이용한 Wibro용 콘텐츠 개발에 관한 연구-관상·궁합 아바타 개발을 중심으로(2007)’ 논문의 경우 포털사이트 다음 카페에 있는 글과 관상궁합이라는 이름의 블로그, 특정 회사의 사업제안서를 복사해 붙인 정황이 확인됐다고 했다. ‘온라인 쇼핑몰 소비자들의 구매 시 e-Satisfaction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 대한 연구(2007)’에 대해선 “9개의 학위논문과 2개의 학술지 논문 등을 출처 표시 없이 그대로 복사하는 등 짜깁기해서 작성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김 여사는 이 학술논문에서 김영진씨의 한국외대 석사학위 논문의 분석결과를 그대로 복사해 붙였는데, 이는 연구자의 학문 업적을 탈취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건희 여사 논문표절 의혹 검증을 위한 범학계 국민검증단(검증단)’6일 오전 1030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대국민 보고 및 기자회견을 열고, 김 여사가 박사학위 논문에서 구연상 숙명여대 기초교양학부 교수의 논문을 그대로 베껴쓴 정황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검증단 제공.

 

검증단이 이날 발표한 내용은 지난달 1일 국민대 연구윤리위원회가 발표한 것과 정반대다. 당시 국민대 측은 김 여사 논문 4편의 표절율이 12~17% 정도라며 연구부정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결론내렸다. 이에 대해 검증단 검증위원인 양성렬 한국사립대학교 교수회연합회 이사장은 저희는 김 여사 논문 하나하나를 대조해 분석했다“4개의 논문은 단순 표절을 넘어 위조라고 생각할 정도로 심각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김경한 중부대 교수도 표절 시스템으로 걸러낼 수 없는 부분까지도 검증단에서 재검증해 발생한 차이라고 설명했다.

 

검증단은 숙명여대에서 조사 중인 김 여사의 석사학위 논문도 검증할 수 있다고 했다. 양 이사장은 해당 논문도 1차 검증을 마무리한 상태라며 숙대의 조사 결과가 나오는 것을 보고 추가 검증의 필요성을 논의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국민대 동문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날 검증단의 조사 결과를 근거로 국민대의 해명을 촉구하는 입장문을 냈다. 이들은 “(김 여사 논문 4편과 관련해) 검증 주체가 다른 2개의 검증결과가 세상에 나왔다“(국민대는) 즉각 검증단의 발표를 수용하고, 학위 취소는 물론 지도교수와 이번 사태를 비호하고 방조한 연루자들을 엄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향 강연주 기자

 

 

베트남 영구 추방황당 그 자체를 뉴스로 포장한 유튜브 채널

뉴스룸 배경의 앵커, 자료화면, 기자도 등장해 혼란 가중

동남아 혐오기반이주노동자 측 바라볼 수밖에 없다

명예훼손 어렵고 자율규제 한계, 미디어 리터러시 필요성

 

유튜브발 허위정보가 갈수록 정교해진다. 특히 앵커가 전하는 뉴스 형식으로 민족적 편견을 강화하는 동남아 혐오콘텐츠까지 등장해 우려를 사고 있다. 최고 조회수 108, 구독자 8만 명에 달하는 한 채널의 댓글창은 허위정보를 근거로 각종 혐오 발언을 재생산하고 있다.

유튜브 '뉴스7' 갈무리

 

안녕하십니까. 대한민국을 위한 뉴스7시의 김유나 앵커입니다.”

본인을 앵커라 밝힌 여성이 인천국제공항에서 베트남인들이 무더기로 추방됐다. 외교부가 모든 베트남인을 영구추방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을 전한다. 한 남성이 경찰에 의해 질질 끌려 나가는 장면에 뉴스7시 단독자막이 붙고, 관련 소식을 기자가 전한다는 소개도 이어진다. 그렇게 등장한 최국희 기자는 난 데 없이 한국이 아닌 베트남 현지의 시위 사진을 보여준다. 베트남어로 적힌 자막 역시 공항과 관련 없는 경제 특구 설립 반대(Cực lực phản đối việc thành lập ĐẶC KHU kinh tế)’, 베트남인들이 미개하고 한국문화를 파괴한다는 주장도 이어진다.

 

8분 길이의 영상에는 여러 키워드가 등장하지만 대부분 사실이 아니다. 베트남의 삼성전자 철수, 외교부의 베트남인 영구추방 등은 이뤄지지 않았다. 영상에서 ‘20이라 주장하는 베트남 불법체류자도 6만 명가량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뉴스 형태로 쏟아지는 키워드를 사전 정보 없이 분간하기 어렵다. “외교부가 정말 잘했다” “18일 베트남 가야 하는데 큰일이다등 이를 진짜 뉴스로 받아들인 이들의 댓글도 상당하다.

 

2019년부터 베트남에서 활동 중인 한국인 A씨는 가족들이 이러한 영상들을 보내며 베트남 가도 괜찮은 거냐고 계속 걱정한다. 처음에는 이것이 진짜인지 헷갈려 현지 언론, 외신 기사들을 직접 찾아가며 불안을 해소했다고 말했다.

 

뉴스를 전달하는 김유나 앵커는 인공지능(AI)으로 추정된다. 자세히 보면 음성과 입모양이 맞지 않고 어조의 높낮이가 일정하다. 최병호 고려대 인공지능연구소 교수는 “100% 단정할 수 없지만 TTS 인공지능으로 보인다. 이미 상용화가 됐고, 저렴하게 렌탈도 가능해 허위정보에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새로 창작한 인물일 수도, 기존 인물을 딥페이크 기술로 가공한 것일 수도 있다요즘은 저작권 때문에 새 인물을 그냥 만드는 경우가 많다. 목소리도 변조하면 되기 때문에 저작권에 걸릴 일이 없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형태의 허위정보가 지닌 위험성을 경고한다. 최 교수는 요즘 사람들은 핵심만 보려하는 스팟성으로 미디어를 소비한다. 이것이 AI인지 아닌지 찬찬히 들여다보지 않아 더 쉽게 속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춘식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충분히 정규 방송의 뉴스라 착각할 수 있어 더 위험하다. 특히 기존에 민족적 편견이 강한 경우 확증편향 탓에 더 사실로 믿을 것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기존 신문 편집 형태의 애드버토리얼이 유튜브 허위 정보에도 퍼진 것이라며 그것(애드버토리얼)은 단순 상품 광고에 그치지만 이것은 사회적 편견을 강화하는 혐오 장사로 훨씬 더 나쁘다고 할 수 있다. 피해 범위가 훨씬 더 넓다고 우려했다.

구독자가 8만 명에 달하는 '월드댓글TV'

동남아 관련 콘텐츠들이 혐오를 재생산하는 구조도 문제다. 뉴스7시 채널 콘텐츠의 연관 영상으로는 베트남 환자가 한국 의사를 폭행했다” “인니(인도네시아)가 한국 뒤통수를 쳐 사업계획이 폐지됐다” “이주노동자가 황당한 고임금을 요구했다등 허위·조작 정보가 등장한다. ‘동남아의 실태’, ‘베트남 문화 및 습성등의 재생 목록으로 한 데 묶이는 영상들이다.

 

이 영상들은 다시 커뮤니티, 블로그 등으로 옮겨져 공유되고 이주민 때문에 한국인이 피해를 본다는 편견, 인종차별적 혐오 인식을 확산하고 있다. 조회수가 5일 기준 17만 회에 달하는 한 유튜브 영상은 베트남 공항 관제탑 붕괴로 베트남인 49만 명이 궤멸했다는 내용인데, “통쾌하다는 식의 한국어 댓글이 달리고 있다.

 

네팔 출신의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은 없는 일을 가지고 편향적으로 보도하는 것은 유튜브만의 일은 아니다. 미디어 전반적인 문제라며 특히 온라인성 허위정보는 너무 많아 다 찾을 수도 없다. 실제 이주노동자들의 삶을 알지 못하면서 그대로 믿는 사람들이 계속 생긴다라고 말했다.

 

이한숙 이주와인권연구소 소장은 온라인상 혐오 발언이 강해지면 그 영향으로 실제 혐오가 강해지는 악순환을 겪는다이전에는 중국 관련해서 유튜브 혐오 발언이 무척 심했는데 이젠 동남아로 옮겨간 것 같다고 말했다.

 

문제는 뚜렷한 해결 방안이 없다는 점이다. 최경진 가천대 법학과 교수는 대부분의 허위정보들은 특정인이 지목되지 않고, 대상자의 구체적인 얼굴, 이름 등이 교묘하게 노출되어 있지 않아 명예훼손을 적용하기 어렵다법리적으로는 명예훼손이 아니지만 실질적으로는 동남아 사람들에 대한 집단적 명예훼손이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추가 입법은 예민한 문제다. 표현의 자유 침해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최 교수는 선의의 목적을 가지고 활동하는 창작자들에 피해를 줄 수도 있어 법적 제재가 쉬운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는 무조건 법으로 하자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규제 일변도로 뭐가 고쳐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전했다

현재는 삭제된 '뉴스6' 채널

 

유튜브는 자체 가이드라인을 기준으로 폭력조장, 잘못된 정보 등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콘텐츠에 대해 경고한 뒤 영상 및 계정을 삭제한다. 하지만 계정이 삭제돼도 영상은 쉽게 돌아올 수 있다. 지난달 24일까지 운영되던 뉴스6채널이 3일 후 삭제되고, 29채널7란 이름으로 부활했다. 심 교수는 유튜브와 같은 플랫폼은 대형 스포츠 영상 등 저작권 침해에 대해서는 굉장히 적극적으로 대응한다. 허위정보 문제는 그에 비하면 느슨하게 접근하는 편이라며 아무래도 비즈니스적 동기가 작동한다라고 지적했다.

 

결국 플랫폼사업자에게 강한 사회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최경진 교수는 자율규제가 결국 제1원칙이다. 스스로 느끼고 잘못된 것을 고쳐나가는 것이 제일 바람직하다플랫폼사업자들도 조회수가 많이 나오면 나쁠 게 없으니까 눈감아 주는 것이다. 이런 것에 대해 비난하는 분위기가 마련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가짜와 진짜를 구분하고, 유해한 정보를 거를 수 있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10대부터 꾸준하게 교육해야 한다. 미디어 환경을 이해하고 비판적으로 볼 수 있다면 당연히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그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강조했다.

박재령 기자 미디어오늘

 

 

식량안보, 대통령의 식상한 빈말 되풀이 안 되려면

이대로 가면 식량악당·식량난민으로 전락... 윤 정부가 반드시 해야 할 일

 

지난해부터 상승하기 시작한 국제곡물 및 식품 가격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급등하자 전 세계적으로 식량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810일 새 정부 출범 이후 첫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윤석열정부는 지속적으로 하락해온 식량자급률을 반등시켜 '외부 충격에도 굳건한 식량주권을 확보'하는 첫 정부가 되겠다"고 했다.

 

이에 대통령은 "식량자급률을 50% 이상으로 확보하고 안정적인 국제 공급망을 구축하길 바란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도 식량주권 확보와 식량안보를 위한 농지확보와 농지관리를 공약했다. 그동안 역대 정부마다 해 온 익숙한 '허언(虛言)'이다.

 

식량주권 확보, 역대 정부의 거짓말

식량주권 확보와 식량자급률 향상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국민 생명을 위협하는 식량위기와 식량무기화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말이 아니라 과연 그것을 어떻게 실현(실천)할 것인가이다. 과연 윤석열정부는 식량자급률을 반등시켜 식량주권을 확보하는 첫 정부가 될 수 있을까.

 

과거 정부도 국제곡물 가격이나 식품 가격이 상승하고 해외 공급이 어려워져 식량위기가 고조되면, 식량주권과 식량안보를 위해 해외농업개발을 추진해 안정적인 해외공급망을 확보하고 우량농지를 보전해 식량자급률을 향상시키겠다고 했다. 그러나 식량자급률과 곡물자급률은 바닥을 모르고 추락하고 있으며, 농지가 매년 크게 줄어들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첫째, 정부가 법을 지키지 않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19992월에 제정된 농업·농촌기본법 제6(국민식량의 안정적 공급)"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국민식량의 안정적 공급이 국가의 건전한 발전과 국민의 생활안정을 위하여 필수적인 요소임을 인식하고 이를 위하여 적정한 식량자급수준의 목표를 설정·유지하며 적정한 식량재고량이 확보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했다.

 

이 법을 전면 개정해 계승한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기본법'(200712월 제정)"식량 및 주요 식품의 적정한 자급목표, 그 추진계획"을 포함하여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발전계획'을 수립하도록 하고 있다.

 

227.3%, 식량자급률(사료용 제외한 식용만)50.9%에서 55.4%로 높이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러나 식량자급률은 201054.1%에서 202145.8%, 곡물자급률은 27.6이에 따라 수립된 '2013~2017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발전계획겠다고 했다. 그리고 '2018~2022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발전계획'은 곡물자급률을 201623.8%에서 20%

%에서 20% 이하로 급속히 낮아졌다.

 

한마디로 식량정책의 참사다. 그러나 국민 생명을 위협하는 곡물자급률의 지속적 하락에 대해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기본법'은 법 서비스이고, 식량안보 강화는 '립 서비스'에 지나지 않는다. 아니면 말고 식의 태도로는 식량자급 목표를 결코 달성할 수 없다.

 

법을 밥 먹듯이 어기고 국민을 기만하는 농정관료에게는 엄정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우리가 쌀만이라도 자급할 수 있게 된 것은 쌀 생산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책임을 물어 장관을 경질할 정도의 강한 드라이브가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농민과 농산물, 물가안정의 희생양

둘째, 정부는 언제나 농산물을 물가안정의 희생양으로 삼아 농민의 생산 의욕을 꺾었다. 각종 자유무역협정(FTA)에서 농수축산 부문을 희생했다. 뿐만 아니라 물가가 오르면 농산물가격 잡기에 급급했다. 만만한 게 농민이다. 사실 이번 농식품부의 대통령 보고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진 것은 '하반기 농식품가격 안정'이다.

 

농식품부는 밥상 물가를 잡기 위해 무·배추·사과·배 등 주요품목의 국내 공급을 확대하는 한편, 축산물(돼지고기, 소고기, 닭고기 등)과 양파, 마늘, 감자, 배추 등을 해외에서 신속하게 도입하고, 제분업체에게 수입 밀가루 가격상승분의 70%를 지원하기로 했다. 반면에 쌀값 폭락, 연료비나 사료비, 비료값 등 농자재값의 급등으로 고통받고 있는 농민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어떠한 대책도 없었다.

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한국농촌지도자중앙연합회 등 농민 단체 회원들이 29일 오후 서울역 12번 출구 인근에서 농업 생산비 보전 및 구곡 추가 시장격리, 신곡 선제 시장격리를 촉구하며 궐기 대회를 마친 뒤 삼각지역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 2022.8.29연합뉴스

 

밥상 물가의 상승은

서민의 가계에 직접적으로 부담을 주기 때문에 적절한 대책이 필요한 것은 말할 나위 없다. 그러나 그것이 농산물과 농민의 희생을 통해서 이뤄질 이유는 없다. 농식품은 하루도 먹지 않으면 살 수 없기 때문에 가격상승의 체감 효과가 큰 것은 사실이지만, 농산물가격이 물가나 가계비에 주는 영향은 체감보다는 크지 않다.

 

통계청이 소비자물가지수를 산출할 때 사용하는 대표 품목의 가중치를 보면, 총 소비를 1000이라고 했을 때 농축산물은 83.8에 지나지 않는다. 즉 농축산물 가격이 10% 오르면 소비자물가는 0.83% 오른다. 그리고 가계소비지출 가운데 식료품비 지출의 비율을 나타내는 '엥겔계수'는 최근 조금 높아지기는 했지만 12.85%로 여전히 선진국 수준이다.

 

다시 말해 농산물가격이 조금 상승하더라도 평균적으로 보면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 다만, 체감도가 높고 언론의 과장된 편향적 보도 탓으로 크게 느껴질 따름이다. 쌀값이 전년 대비 20% 이상 폭락해 밥 한 공기 가격이 220원에 지나지 않아 농민들은 큰 고통을 당하고 있지만, 올해 소비자물가상승률은 5%를 넘을 전망이다. 농민을 희생하여 물가를 잡겠다는 것은 옳지 않다.

 

저소득층·취약계층 직접 지원이 더 효과적

평균적으로는 농산물가격 상승이 가계에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 해도, 소득계층별로 그 영향이 매우 다르다. 저소득층과 취약계층일수록 농산물가격 상승에 따른 부담이 매우 큰 반면, 고소득 계층에게는 별 부담이 되지 않는다. 통계청에 따르면 소득 하위 20% 계층은 가처분소득의 41.8%를 식비에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농산물가격이 급격히 상승하는 식량위기 시기에는 정부가 저소득층과 취약계층을 위한 특별한 지원을 할 필요가 있다.

 

지금 정부가 시범적으로 농식품 바우처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그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다. 예산을 대폭 늘려야 하는데 우선 당장은 다음과 같은 '뻘짓거리'를 하지 말아야 한다.

 

최근 정부는 물가안정을 위해 축산물을 0% 할당관세(무관세), 양파·마늘 등에 대해 저율관세할당(TRQ)으로 수입을 늘린다고 한다. 이처럼 무관세 혹은 저율관세로 농축산물이 수입되면 식품기업의 이익은 늘어나지만 농가에 커다란 피해를 입히는 반면 물가안정에 기여하는 바는 크지 않다. 제분업체에게 밀가루 가격상승분을 지원하는 것도 제분업체의 배만 불릴 뿐 실제로 밀가루 가격 안정에 기여하는 바는 적다.

 

그리고 최근 수입농산물 가격이 상승한 것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탓도 있지만, 환율 상승 요인이 크다. 관세 인하 효과는 환율 상승으로 상쇄돼 그 효과가 크지 않고, 환율이 안정돼야 수입농산물 가격도 안정될 것이다.

 

무관세 혹은 저율관세로 농축산물을 수입하는 것은 물가안정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 반면 농민에게 주는 피해는 크다. 정책 마인드를 바꿔야 한다. 무관세와 저율관세로 2000억 원 이상의 재정수입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현행 관세를 유지하면서 그 돈으로 저소득계층이나 취약계층에게 식품 바우처를 지급하는 게 서민 가계 안정에 효과적이다. 마찬가지로 제분업체에 밀가루 가격을 낮추기 위해 546억원의 예산을 사용할 것이 아니라, 그 돈도 저소득층을 위한 식품 바우처에 사용하면 좋다.

 

물가안정을 위해 농민을 희생하는 정책은 하책이다. 무관세와 제분업체 지원 등으로 인한 재정 부담을 늘릴 것이 아니라, 이런 돈들을 합쳐 식품 바우처를 대폭 확대하여 물가상승으로 인해 고통을 받는 서민에게 직접 지원하는 것이 상책이다.

 

농지 파괴 주범, 국가·지자체·대기업

셋째, 정부가 식량생산의 가장 중요한 기반인 농지를 너무 쉽게 파괴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지면적은 19702298000ha에서 19902109000ha, 20101715000ha, 20201565000ha로 급속히 줄어왔다. 50년 동안 733000ha, 전체 경지면적의 30% 이상이 감소했다.

 

2010~2020년에 매년 여의도 면적의 약 60배에 달하는 경지가 줄어든 것이다. 경지면적이 줄어든 가장 커다란 이유는 농지가 다른 용도로 전용됐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농지면적은 1975년의 224ha에서 2018년에 1596000ha644000ha가 감소했는데, 같은 기간 농지전용 면적은 총 466286ha72%를 차지한다.

 

전용되는 농지는 농업생산 기반정비가 잘 돼 있거나 교통이 편리해 농사짓기 좋은 땅이지만 전용하기도 좋다. 농지전용이 쉽게 이뤄지는 이유는 현행 농지제도 때문이다. 농지법 281항은 "·도지사는 농지를 효율적으로 이용하고 보전하기 위하여 농업진흥지역을 지정한다"고 돼 있는데, 이 조항이 농지보전이 아니라 실제로는 농지전용을 쉽게 허용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농지 가운데 농업진흥지역으로 지정된 면적은 전체 농지의 절반이 되지 않는다.

 

전체 농지의 절반 이상이 농업진흥지역 밖의 농지로 분류돼 쉽게 전용대상으로 노출된다. 심지어 농업진흥지역 내의 농지조차 매년 전체 농지전용 면적의 20%를 차지하는 20003000ha가 전용되고 있다.

 

26일 오전 전남 보성군 득량면에서 보리 수확이 끝나고, 논에 벼농사를 위해 물을 채워 넣으면서 농촌의 풍경이 바뀌고 있다. 2022.5.26.연합뉴스

 

농지전용(파괴)의 주범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대기업이다. 농지가 도로, 철도, 공항, 산업단지, 신도시, 혁신도시, 주택단지 등 다양한 명목으로 파괴되고 있다. 이에 편승해서 농지투기가 기승을 부린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의해 건설된 산업단지가 전국에 1246개에 달한다.

 

이들 가운데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 곳이 얼마나 되는지 의문이지만, 산업단지는 임야뿐 아니라 농지를 파괴하여 식량안보를 위협하고 환경문제를 야기하고 산업폐기물 처리 등으로 전국 곳곳에서 주민들과 심각한 갈등을 야기하고 있다. 심지어 농업진흥지역 농지전용의 70% 이상이 공용·공공용·공익시설이란 사실에서 보듯이 국가가 농지전용에 앞장서고 있다. 최근에는 국가의 재생에너지 계획에 의한 태양광 사업으로 농지전용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식량자급률 반등 위한 정부의 과제

윤석열정부는 과연 '식량자급률을 반등시킨 첫 정부'가 될 수 있을까.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지만 정부가 그런 의지가 정말 있다면 적어도 다음 몇 가지 점은 반드시 실천해야 할 것이다.

 

첫째, 법을 지켜야 한다.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발전계획'에 명시돼 있는 식량자급률(곡물자급률) 목표치를 반드시 달성해야 한다. 만약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경우에는 그 책임을 엄히 물어야 한다.

 

둘째, 식량자급률 향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에 필요한 농지면적을 정하고 그것을 지켜내야 한다. 지금처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대기업이 앞장서서 농지를 파괴(전용)한다면 식량자급률은 지속적으로 낮아질 수밖에 없다.

 

셋째, 물가안정을 위해 언제나 농민을 희생하는 하책은 사용하면 안 된다. 그런 나라는 없다. 농산물가격은 농가경제와 소비자 가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에, 농산물가격을 안정하는 것은 국가의 중요한 역할의 하나다. 그렇지만 그것이 농가의 희생을 전제로 해서는 안 된다.

 

넷째, 국가는 모든 대책에서 저소득층과 취약계층의 문제해결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 재난과 위기는 모두에게 평등하지 않다. 기후변화와 식량위기는 누구에게는 돈벌이의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지만, 그 피해는 오롯이 아무런 죄도 없는 가난한 사람과 가난한 지역의 몫이다.

 

'식량악당'·'식량난민'으로 전락 막아야

거듭되는 그리고 앞으로 더욱 심각해질 식량위기와 식량무기화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우리 국민이 '식량악당'이나 '식량난민'이 돼서는 안 된다. 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은 "'기후악당' 된 대한민국한국인 식량난민 될 가능성 높다"고 했다.

 

환경운동가들은 이산화탄소 배출량 세계 7, 대기질 OECD 36개국 중 35~36, 기후변화대응지수 61개국 가운데 58위 등을 근거로 우리나라를 기후와 환경을 해치는 '기후악당(climate villain)'으로 부른다.

 

2020년에 옥스팜과 스톡홀름환경연구소가 낸 보고서에 따르면, 1990년부터 2015년까지 상위 10%의 부유층이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의 절반 이상을 배출했고, 상위 1%는 하위 50%보다 두 배 이상을 배출했다. 우리가 배출한 탄소로 인한 기후변화가 탄소배출이 가장 적은 아프리카에 가장 커다란 타격을 준다는 의미에서 우리는 '악당'의 일원임이 틀림없다.

 

마찬가지로 기후변화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당장 심각한 식량위기를 가져오고 있지 않지만, 아프리카 등 제3세계에 많은 식량난민을 낳고 있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식량생산 잠재력이 상당히 있음에도 국내 생산보다 식량의 대부분을 해외에서 수입함으로 인해 가난한 제3세계의 식량사정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는 '식량악당'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기후변화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식량위기가 확산되면 곡물자급률이 20%에 지나지 않는 우리나라가 가장 커다란 타격을 입을 것이고, 많은 국민은 '식량난민'으로 전락할 것이다.

 

기후위기와 식량위기가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의 삶 자체를 위협하고 있음에도 일반 국민들은 매우 무감각하다. 국제기구와 전문가들이 지속적으로 위기 신호를 발신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심지어 '위기'를 되풀이해 듣다보면 '위기'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기보다 오히려 익숙해져 '위기'에 무뎌지기조차 한다. 일상에 매몰돼 하루하루 삶이 바쁜 대중들을 탓할 수 없다. 그래서 정치가 있고 정부가 있는 것이다. 정부에 대한 고언이 '쇠귀에 경 읽기'가 되지 않길 바란다./ 박진도 충남대 명예교수, 지역재단 상임고문 오마이뉴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855997 식량위기라는데 왜 밀가루는 오르고 쌀은 폭락하나

 

 

우리는 고르바초프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해외 시각] 중국의 반면교사가 된 고르바초프의 개혁과 좌절

냉전 종식과 핵 전쟁을 막는 군축에 결정적 역할을 한 옛 소비에트 연방(소련)의 마지막 대통령 미하일 고르바초프가세상을떠났다. 그는 19853월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된 뒤1990년 최초의 대통령으로 선출되고 199112월 퇴임하기까지 69개월간 2차 세계대전 이후 수십 년 간 핵 전쟁 위협을 포함해 극한 대립으로 치닫던 냉전 상황을 근본적으로 뒤바꾸는 데 역할을 했다. 그러나그의정치이력에대한평가는어떨까. 한국 언론은 주로 그를 '개혁가'이지만 실패한 정치인으로 묘사했다.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프랑스 소설가 발자크의 위대함에 대해 "귀족이자 왕당파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속한 계급의 몰락을 예견하면서 근대 시민 사회의 도래를 불가피하게 받아들인 점"을 들었다. 이를 두고 '리얼리즘 문학의 승리'라 했다. '신체제' 소련의 문학적 전위에 섰던 이 '리얼리즘론', 결국 1980년대 '구체제'로 전락해버린 소련의 말로와 고르바초프의 운명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자신이 속한 체제의 몰락을 감수하면서 '새로운 시대'를 열어간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고르바초프를어떻게평가해야할까. '세계화 반대' 활동가인 월든 벨로 전 필리핀 국립대 사회학과 교수가지난5<카운터펀치>기고한글을번역해소개한다.글의제목은 "Gorbachev Rode the Tiger and Ended Up Inside It" (호랑이 등에 탔다가 잡아먹힌 고르바초프).편집자

미하일 고르바초프(1931~2022)19918월 군사 쿠데타 이후 시골 집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내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발언하던 모습. AFP=연합뉴스

 

지난 830일 타계한 고르바초프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우선 고르바초프는 사회주의 개혁의 시동을 걸었으나 그 과정을 통제하지 못함으로써 소련 사회주의 자체의 몰락을 초래했다. 이후 그의 후계자 옐친과 서방, 그리고 IMF는 아무런 제약 없이 러시아에 (약탈적) 자본주의를 이식했다.

 

극단적 민영화를 통해 기존 국가사회주의의 모든 제도들을 없애버린 자본주의 이식 과정(충격요법)은 대단히 파괴적이었다. 이렇게 태어난 러시아 자본주의는 당초 IMF의 이데올로그들이나 러시아 추종자들이 기대했던 자유시장 자본주의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막대한 국유자산을 극소수의 공산당 간부와 그 측근들이 독점한 해적 자본주의(pirate capitalism)였다.

 

1991년 소련 해체 이후 자본주의 이행에 따른 육체적, 정신적 고통이 어찌나 컸던지 러시아 국민들은 새 지도자로 등극한 KGB 출신 푸틴을 야만적 자본주의로부터의 구세주로 받들었다. 서방이 강요한 충격요법의 경제적 고난과 자유민주주의의 혼란에 질려버린 러시아 국민들은 지난 20년에 걸친 푸틴의 권위주의 및 패거리 자본주의적 통치가 그래도 옐친 시절보다는 낫다며 견뎌내고 있다.

 

중국 사람들은 고르바초프의 교훈을 다음 세 가지로 요약한다. 첫째 절대 서방을 믿지 마라, 둘째 경제를 개혁하고 민간기업을 장려하되 국가의 주도적 역할을 견지하라, 셋째 정치 과정에 대한 공산당의 통제를 확고히 하라.

 

이러한 세 가지 결론들에 대해 한두 가지 이의를 제기할 수는 있겠으나 그것이 이뤄낸 결과를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것은 중국을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끌어올렸으며, 중국 내 빈곤계층을 5% 이하로 줄였고, 정치체제 또한 안정돼 있고 (적어도) 국내에서는 광범위하게 정당성을 인정받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환경 문제와 민주적 정치 참여의 부재 등 중국도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중국 사람들은 아마도 다음과 같은 반응을 보일 것이다. “그래, 우리에게도 많은 문제들이 있지. 그렇다고 우리가 미국식 체제를 따라야 할까? 절대 아니지.”

 

현재 미국의 공공기반시설과 경제 전반은 너무도 낙후돼 있어 철도 시설 비교만으로도 중국식 사회체제의 우수성을 설득시킬 수 있다. 중국의 고속철도는 베이징-상하이 1300킬로미터를 4.5시간 만에 주파하는 반면 미국의 암트랙(Amtrak)은 워싱턴D.C.-보스턴 830킬로미터를 달리는 데 7시간이나 걸린다(미국에는 고속철도가 단 1킬로미터도 없다!).

 

다시 고르바초프로 돌아와, 우리는 그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확실히 서방 엘리트들에게 그는 영웅이었고, 또 지금도 그렇게 기억되고 있다. 자본주의의 주요 경쟁 체제를 제거하는 데 일조했기 때문이다. 진보파들은 소련체제에 개혁이 필요했다고 말하겠지만, 결국 고르바초프는 개혁에 실패했고 푸틴의 권위주의적, 패거리 자본주의적 통치를 초래했다. 따라서 중국인들은 그런 식으로(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동시 추진) 경제와 정치 체제를 운영해서는 안 된다는 점, 즉 반면교사로서 고르바초프의 중요성을 말할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평가는 무엇인가?

나는 고르바초프가 레이건 및 서방과의 협상에서 지나치게 순진했다고 생각한다. 서방은 소련의 개혁이 아니라 붕괴에 관심이 있었다. 그러나 소련 체제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는 자신의 개혁이, 소련 공산당이 지배해온 거대하고 복잡한 체제에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오리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다시 말해 고르바초프는 자신이 호랑이 등에 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나는 그의 일부 정책들에 동의할 수 없지만 과감한 개혁을 시도했다는 점은 존중한다. 호랑이에게 잡아먹힐 수도 있다는 점을 잘 알면서도 호랑이 등에 타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을 나는 늘 존경해 왔다. 고르바초프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박인규 편집인(=정리·번역) 프레시안

 

쓰러질 준비가 되어 있던 세월호, 그리고 국가의 부재

지난 92일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가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세월호 참사에 관한 종합보고서를 정식 발간했다. 같은 날 국회에서는 사참위 세월호 종합보고서의 주요 내용을 정리하고 지난 8년 동안의 세월호 진상조사 과정을 평가하는 토론회가 열렸다. 416안전사회연구소(소장 장훈, 단원고 고 장준형 군 아버지)와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실이 기획한 이날 토론회의 발표자와 토론자들은, 사참위 자문위원으로 참여했던 장훈 소장으로부터 종합보고서 중간본을 사전에 전달받아 토론회를 준비했다. 국가 차원의 최종적인 세월호 조사보고서 내용을 처음 공개적으로 평가한 이날 토론회의 핵심 내용을 정리했다.

'세월호 최종보고서 무엇을 담았는가' 토론회 자료집 :

https://www.documentcloud.org/documents/22275751-seweolho-jinsangjosa-8nyeon-pyeongga-toronhoe-jaryojib

 

세월호 진상조사 8년 평가 토론회 (92, 국회도서관)

 

세월호 쓰러뜨린 건 취약한 복원성”... “보고서 모호한 외력 서술은 문제

첫 주제는 세월호 침몰 원인에 대한 조사 결과였다. 사참위 종합보고서는 조사 결과들을 검토하고 대한조선학회 자문 결과와 마린 모형시험 보고서 등을 종합할 때, 사참위 조사 결과가 외력 충돌 외의 다른 가능성을 배제할 정도에 이르지 못했으며 외력이 침몰 원인인지 확인되지 않았다는 최종 결론에 이르렀다고 서술했다.

 

관련 발표를 담당한 정준모 인하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는 먼저 사참위가 세월호 침몰 원인으로 외력을 지목하고 집중적으로 조사한 것이 과학과 공학에서 가설을 채택하거나 기각하는 일반론을 따르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세월호 침몰 원인에 대해 좌초, 수중물체 충돌, 복원성 부족이라는 3가지 가설 설정이 가능했다면, 그 뒤에는 가장 가능성이 낮은 가설을 배제하고 기각하는 방식으로 추론과 조사가 진행되어야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선체 인양 이후 배 밑바닥에 찢김 흔적이 없었다는 사실로 좌초설은 즉각 기각됐다. 마찬가지로 잠수함 충돌 가설도 어렵지 않게 배제될 수 있었다는 게 정 교수 설명이다. 수심이 낮고 조류가 빠른 사고 해역은 가장 작은 209급 잠수함조차 운항을 피하는 곳이라는 점, 세월호와 충돌했다면 잠수함 선체가 크게 파손되고 조종 성능을 잃어 대형 사고가 발생했거나 대규모 수리가 불가피했지만 국내외에 어떠한 관련 보고도 없었다는 점, 사참위 조사국이 최종 채택한 잠수함 추돌 시나리오의 경우, 세월호보다 빠른 20노트로 잠항할 경우 209급 잠수함의 배터리는 2시간만에 방전되게 된다는 점 등에 근거할 때 잠수함 충돌 가설은 애초부터 기각되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참위 조사국이 잠수함 충돌의 흔적일 수 있다고 본 세월호 좌현 핀안정기과 외편의 손상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정 교수는, 해당 변형과 손상이 발생한 시점은 시계열로 볼 때 침몰 이전, 운항 중, 해저면 착저 당시, 인양 과정, 직립 과정 가운데 하나일 수밖에 없는데, 사참위는 이 가운데 가장 가능성이 높은 인양 과정에서의 손상 가능성에 대한 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운항 중 수중물체 충돌에 집중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정 교수는, 세월호의 침몰을 야기한 핵심 원인은 취약한 복원성이라고 단언했다. 무리한 증개축으로 무게중심이 높아졌고 일상적으로 화물을 과적하고 고박을 부실하게 했으며 관행적으로 평형수를 빼고 운항한 사실은 이미 검경 수사 등으로 통해 확인된 사실이며, 모두가 세월호의 복원성을 악화시킨 요소들이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세월호는 언제는 쓰러질 수 있는 상태로 운항하던 배였다는 의미다. 정 교수는 세월호 모형시험을 주관한 네덜란드 해양연구소 마린도 세월호의 전복은 취약한 복원성, 큰 타각, 화물 이동의 조합으로 설명된다고 결론 내렸으며, 이는 대한조선학회의 입장과 100% 일치한다고 밝혔다. 이어 사고 지점에서 세월호의 타를 급격히 돌아가게 만든 트리거(Trigger)는 조타수의 과도한 조타 혹은 조타장치 고장 가운데 하나인데, AIS 항적을 볼 때 후자의 가능성이 더 높다고 설명했다.

 

이 발표에 대한 지정토론을 통해선, 결국 사참위 종합보고서가 내용상으로는 잠수함 충돌 가설을 기각하는 구성을 취했으면서도 최종 결론에서는 확인되지 않았다는 모호한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침몰 원인에 대한 사회적 논란의 여지를 남기고 말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또한 사참위 전원위원회가 조타장치 솔레노이드 밸브 고착이 급선회와 무관하다는 조사결과보고서를 외부 검증 없이 채택함으로써 오히려 선체조사위원회 내인설 종합보고서보다도 후퇴한 조사 결론으로 귀결됐다며, 차후 대한조선학회 등이 이에 관한 추가 검증에 나서줄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국가의 부재있어야 할 자리에 없었고, 해야할 일을 하지 않았다

사참위 종합보고서는 참사 당일 승객 구조 실패에 대한 조사 결과를 서술하면서 그날, 그곳에 국가는 없었다라고 마무리하고 있다. 토론회 두 번째 발표자로 나선 이정일 변호사는 국가의 부재가 의미하는 바를 설명했다.

 

이 변호사는 먼저, 승객 구조 실패의 원인을 놓고 우리 사회가 구조하지 못했다구조하지 않았다로 나뉘어 가치 판단의 공방을 벌여온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둘 사이의 차이는 의도성에 있는데, 이는 사법적 책임과 처벌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기준은 선원법이라는 법률에 명시된 승객 구호의 의무를 내팽개치고 도주했던 선원들의 행태에 대해서는 명확히 적용되는 반면, 해경 구조세력과 지휘부, 청와대 등이 보인 모습에 대해선 평가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기존의 각종 수사들과 금번 사참위 조사를 통해 드러난 사실관계들을 종합할 때 당시 승객 구조 상황에서 해경과 청와대 등 포괄적 의미로서의 국가가 존재의 본원적 의미인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음을 사참위 종합보고서는 분명하게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만약 2014416일 대통령은 위기에 빠져 있는 국민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자신이 콘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을 알고 국가위기관리센터에 들어왔다면, 각급 구조본부와 구조세력이 침몰 중인 배 안의 승객을 구하기 위해선 퇴선을 유도해야 한다는 점을 알고 적절한 조치를 했다면 아마도 그날 세월호에 탄 승객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을 것이지만 그런 일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가 국가의 부재라고 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와 관련해 해경 구조 실패 관련 조사를 담당했던 이준태 사참위 진상규명국 조사관이 토론자로 나섰다. 이 조사관은 방대한 자료 검토와 관계자 진술 조사 등을 거친 결과 구조 실패에 있어 의도성은 없었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의 구조 실패는 침몰 중인 선박에서 선원 지시에 따라 대기 중인 승객들에게 명시적인 퇴선 명령을 내릴 판단이 필요했던 급박한 상황 교신기록을 통해 확인되는 해경 구조세력의 안일함 평소 대형 여객선 침몰에 대비한 구조 훈련의 부재 유사 사고에 대한 대응 경험의 부재로 설명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조사관은, 국가조사기구는 형사처벌을 목적으로 하는 사법기관과 달리 참사의 구조적 원인을 설명해야 하며, 따라서 구조하지 않았는가혹은 못했는가라는 이분법적 판단을 넘어 해경이라는 조직의 시스템적 문제를 포괄하는 설명을 내놔야 했지만 이를 최종 보고서에 온전히 담지 못했다고 스스로의 한계를 고백했다. 그러면서 이는 사참위 내부에서 해경에 면죄부를 줄 수 있다는 식의 사법적 관점이 강하게 작용한 결과였음을 아울러 지적했다.

 

안전사회 위한 제도 개선안 이행돼야 진상규명 완료되는 것

세 번째 주제 발표를 맡은 장훈 416안전사회연구소장은 금번 사참위 종합보고서가 무려 8년 만에 국가 차원에서 세월호 참사에 관해 최종 정리한 소중한 결과물이라는 점을 우선 강조했다. 그러면서 참사로부터 얻어야 할 교훈과 이를 토대로 더 안전한 사회로 나가기 위해 사참위가 권고한 80개 제도개선안들의 개요를 설명하고 그 의미를 평가했다.

 

장 소장은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의 세상은 분명히 달라져야 한다는 참사 초기 우리 공동체의 열망이 실현되기 위해선 사참위의 권고안들이 모두 충실히 이행되어야 한다며 사참위법에 따른 국회의 관련 책무에 대해 강조했다. 사참위법 제48조는, 국회는 사참위 권고에 대한 국가의 이행 상황을 점검하고 미진하다고 판단하는 경우 공무원 징계 요구 등 국가에 적극적으로 개선을 요구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장 소장은 사참위 활동은 종료됐지만 진상규명은 끝나지 않았다면서, 사참위 권고안들이 빠짐없이 이행돼 안전사회가 건설되어야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은 목표를 이루게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그때가 되어야 비로소 유가족들도 미뤄뒀던 애도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토론에 나선 서승택 사참위 안전사회국 조사관은, 내항여객선 안전관리 체계 개선 방안과 독립적인 해양재난 조사기구 설립 필요성 등 사참위가 제시한 해양사고 예방 및 조사 체계 개선안들을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그러나 사참위 진상규명국의 침몰 원인 조사가 난항을 겪은 끝에 명확한 결과물을 내놓지 못한 탓에 이와 연동되는 법·제도적 개선안을 유기적으로 제시할 수 없었던 점을 스스로의 한계로 지적했다.

 

비틀대며 걸어온 진상조사 8, 공동의 비극 함께 극복하려는 노력 시작한 것

특조위는 사회적 재난과 참사에 대한 최초의 국가조사기구로 출범했지만 재난의 구조적 원인 설명과 함께 참사 초기 국민적 신뢰를 잃은 검찰 수사를 대체하는 책임자 처벌의 요구를 함께 떠안아야 했다. 이러면서 실제로 17명의 조사위원 중 15명이 법률가로 구성되었고, 이는 과학기술적 전문성이 필요한 침몰 원인 조사에 대한 어려움을 낳았다. 또한 스스로 조사 과제를 선정하지 않고 피해자들의 신청사건에만 의존함에 따라 조사관들의 행정력을 낭비하고, 중요하지만 대중적 관심도가 낮은 쟁점은 조사 과제에서 누락되는 결과를 빚었으며, 나아가 앵커침몰설 등 비합리적인 의혹들도 독립적 과제로 선정돼 이후 조사들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만들기도 했다고 박 전 조사관은 지적했다.

 

선조위는 특조위와 비교할 때 침몰 원인 조사라는 업무 범위가 명확했고 조사 쟁점을 잘 파악하고 있는 전문가로 구성됐으며 8개의 직권사건을 체계적으로 선정하는 등 상대적으로 순조롭게 출발했다. 그럼에도 최종적으로 합의된 결론을 내지 못하고 내인설과 열린안(사실상 잠수함 충돌설)이라는 두 개의 보고서를 발간했다. 박 전 조사관은 무엇보다 비극의 시작인 세월호의 급선회 유발 이유에 대해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를 놓고 벌어진 일종의 담론 경쟁이 이런 결과를 가져왔다고 지적했다. 선조위 내부에선 내인설이 지배적 판단이었음에도 책임의 인격화측면에서는 잠수함 충돌이라는 시나리오가 더욱 호소력이 강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외부 시민단체가 조사위원들을 해양적폐 세력진상규명 세력으로 나눠 규정한 데 따른 진영론적 인식 등도 영향을 미쳤다. 결국 선체를 직접 조사해 얻어낸 많은 성과들에도 불구하고 선조위의 두 개의 보고서는 사회적으로는 아무 것도 밝혀지지 않았다는 인상만을 강화하게 됐다는 평가도 나왔다.

 

박 전 조사관은, 사참위는 특조위와 유사하게 법률가 중심으로 조사위원이 구성됨으로써 역시 침몰 원인에 대한 과학적 조사와 판단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또 진상규명국과 안전사회국의 분리로 소통이 어려웠고, 참사의 구조적 원인을 촘촘히 확인하기보다 특조위와 선조위의 유산인 외력설 입증에 과도한 인력과 예산을 집중시켜 구조 실패 등 중요 쟁점에 대한 조사에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점 등도 문제였다고 강조했다

 

박 전 조사관은 이같은 비판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한 3개 조사기구의 활동들이 전혀 의미 없던 것은 아니라고 평가했다. 법원 판결이 모든 진실을 반영하는 것처럼 여겨지는 한국 사회의 현실에서 재난조사위원회를 만든 것은 법적 처벌과는 다른 사회적인 권위를 만들어내기 위한 중요한 시도였으며, 우리 사회가 공동의 비극을 함께 극복하는 전통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박 전 조사관은 3개의 조사기구 활동을 통해 세월호 참사를 설명할 사실관계들은 분명히 많이 늘어났고, 다만 그것이 대중적으로 수용될 만큼 정리가 되지 않은 단계로 판단한다면서, 사참위의 종합보고서를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가 아니라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의 관점으로 읽을 때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들을 통해 참사의 서사를 사회적으로 구성하고 공동체의 기억으로 만들 수 있으며, 그래야 진정한 애도도 가능해지고 안전사회를 위한 권고들도 힘을 얻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외력설 주장시민단체들의 항의 소동일부 국회의원 공동주최 등 철회

한편 이날 토론회에 앞서 외력설을 지지하는 416연대 일부 회원들이 국회 앞에서 토론회 개최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이 토론회가 외력설 관점의 참여자를 배제시킨 채 세월호 침몰을 내인설에 따른 안전사고로 규정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주장했다. 기자회견 이후엔 토론회 현장에도 참석해 패널들을 대상으로 외력설이 타당하다는 취지의 질문 공세를 이어갔다.

9.2 국회 토론회 항의 4.16시민동포 기자회견 (92, 국회 정문 앞)

 

이들은 토론회 사나흘 전부터 토론회 공동주최자로 이름을 올린 여러 국회의원실에 집중적인 항의 전화 공세도 펼쳤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토론회 직전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공동주최 명단에서 스스로 빠졌고 민주당 박주민 의원실은 유투브 채널 박주민TV’를 통해 토론회를 생중계하려던 계획을 자진 철회하기도 했다.

 

토론회 사회를 맡은 정은주 한겨레 콘텐츠총괄부국장은 이 토론회는 8년 만에야 나온 세월호 참사 보고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첫 번째 자리였다. 오늘을 시작으로 모든 분들이 사참위 종합보고서를 꼼꼼히 읽고 더 많은 이해를 바탕으로 더 깊은 논의와 평가를 계속해 나갈 수 있게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사참위의 세월호 참사 종합보고서

 

사참위는 지난 91일 종합보고서 출판을 완료하고 토론회가 열리고 있던 92일 오전부터 유관기관 및 단체와 전국 국공립도서관 등에 배송을 시작했다. 또 홈페이지 공지사항 게시판에 종합보고서 PDF 파일을 올려 누구나 받아 읽을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910일 이후부터는 사참위 활동 종료와 함께 홈페이지도 닫히게 됨에 따라 종합보고서와 그 근거가 된 조사결과보고서, 용역보고서 등이 모두 게시된 별도의 웹페이지(https://socialdisasterscommission.co.kr)가 운영될 방침이다.

뉴스타파 김성수

성평등, 지금 속도라면 300년 걸린다유엔의 경고

유엔 지속가능목표 보고서나와

팬데믹·기후변화로 성평등 악화

소말리아 남부 딘수르의 난민캠프에서 한 여성이 아이를 위해 요리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과 기후변화가 성평등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여성인권을 위한 추가적인 노력 없이는 완전한 성평등을 달성하는 데에 300년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유엔(UN)7(현지시각) 발간한 지속가능 발전 목표 보고서에서 지금의 변화 속도라면 법적인 제한과 차별을 없애는 데 286년이 걸릴 것이라고 밝혔다. 성평등은 유엔이 제시한 17개의 지속가능 발전 목표 중 하나다. 2015년 열린 유엔총회에서는 이 목표들을 2030년까지 달성하겠다고 결의했다.

 

유엔은 여성들에 대한 폭력이 여전히 흔하게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11분마다 1명의 여성이 가족 안에서 살해당하고, 지난해 1549살 여성 가운데 12.5%는 친밀한 관계의 사람으로부터 성적·신체적 폭력을 경험했다.

 

불평등을 부채질한 것은 팬데믹과 기후위기다. 유엔은 이번 보고서는 팬데믹과 폭력적인 충돌, 기후변화 같은 전 세계적인 문제가 여성의 건강과 권리에 대한 반발로 이어지면서 성별 격차가 더욱 악화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유엔에 따르면 여성 4명 중 1명은 팬데믹 이후로 가정 내에서 더 자주 갈등을 경험한다고 응답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발생한 식량 위기도 우려를 더한다. 보고서는 올해 말까지 전 세계에서 38300만명의 여성이 극심한 빈곤에 처할 것으로 봤다. 유엔은 세계 전역에서 더 많은 이들이 음식, , 적당한 주거시설 같은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특히 지금 추세라면 남아프리카 여성들의 타격이 클 것으로 전망했다.

7(현지시각) 아프가니스탄 칸다하르에서 히잡으로 얼굴을 가린 여학생들이 학교에 출석하고 있다. 탈레반은 지난해 아프간 지역을 점령한 후 여성 교육을 제한했지만, 최근 일부 지역에서 등교가 재개된 것으로 전해졌다. 칸다하르/EPA 연합뉴스

 

여성의 사회 참여가 평등해지는 데에도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유엔은 예측했다. 일터에서 여성이 고위직에서 남성과 동등하게 대표성을 갖게 될 때까지는 140, 국회에서는 40년이 필요할 것으로 봤다.

 

다만 이러한 예측은 전 세계가 평등을 위한 추가적인 노력을 하지 않았을 때를 가정하고 있다. 유엔은 성평등을 앞당기기 위해선 여성 교육 등 투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소녀들이 교육을 받을 권리는 여성 폭력 감소, 빈곤 감소 등 모든 것에 필수적이라며 최근 수십 년 동안 소녀들의 교육에서 진전이 있었지만 가난한 가정이나 시골 지역에선 여전히 상황이 바뀌지 않았다고 했다.

조해영 기자 hycho@hani.co.kr

 

 

사상 최대 영업이익 정유 4, 올 상반기 깎아준전기요금만 2823

원가보다 낮은 전기요금에 한전 적자 눈덩이

정유사들 가격인하 등 고유가 고통 분담 외면

이장섭 산업용 전기요금 획기적 개선 필요

올 상반기 사상 최대인 12조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한 정유 4사가 같은 기간 2823억원의 전기요금 감면 혜택을 본 것으로 나타났다. 전기 공급 주체인 한국전력공사는 이 기간 14조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해 전기요금 인상의 요인이 됐다. 고유가로 역대급 이익을 올린 대기업들에 주어진 요금 감면 혜택이 결국 가정용 전기 이용자들의 부담으로 전가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이장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8일 한국전력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SK에너지·현대오일뱅크·GS칼텍스·에쓰오일 등 정유 4사가 지난해부터 올 상반기까지 전기요금 감면 혜택으로 본 이익은 3740억원가량으로 파악됐다. 시기별로는 지난해 1~12913억여원, 올해 1~62823억여원의 수혜를 입었다.

 

올 상반기 전기요금 혜택을 기업별로 보면 SK에너지 7083400만원, 현대오일뱅크 4896000만원, GS칼텍스 6834000만원, 에쓰오일은 9419700만원이다. 혜택 금액은 한전의 전력구매 단가에서 정유사들에 판매한 단가를 뺀 차액에 정유 4사를 상대로 한 판매량을 곱해서 계산했다.

 

한전이 올해 정유사들에 판매한 전력단가(/kWh)SK에너지 97.18, 현대오일뱅크 98.62, GS칼텍스 101.18, 에쓰오일 97.19원이다. 한전이 올 상반기 발전사로부터 사들인 전력단가가 kWh146.2원인 점을 감안하면 정유 4사는 전기요금을 도매가보다 45~49원 더 싸게 사들인 셈이다.

 

지난해 정유 4사의 전기요금 혜택은 총 9127200만원이다. 기업별로는 SK에너지 2384100만원, 현대오일뱅크 1446100만원, GS칼텍스 1658800만원, 에쓰오일 3638200만원이다.

 

정유사들에 대한 전기요금 감면 혜택은 올 상반기에만 14300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한전의 적자 폭을 키워 가정용 요금 인상 요인으로 작용했다.

 

정유 4사의 올 상반기 영업이익 합계는 123203억원에 이른다. SK에너지가 39783억원으로 가장 많았으며, GS칼텍스 32133억원, 에쓰오일 3539억원, 현대오일뱅크 2748억원 순이었다.

 

더불어민주당 민생우선실천단은 지난달 1일 국회에서 정유 4, 대한석유협회와 고유가 국민 고통 분담을 위한 정유업계 간담회를 열었다. 민주당은 자발적으로 고통 분담을 해볼 필요가 있지 않느냐고 제안했지만, 정유사들은 검토해보겠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반복했다. 2008년 금융위기 때 정유사들은 영업이익 일부를 기금으로 조성하기도 했는데 아직까지 이 같은 가시적인 움직임은 없는 상태다.

 

이장섭 의원은 원가 이하 전기 요금으로 정유 4사는 영업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었지만, 그 비용은 한전의 영업적자에 고스란히 반영된 상황이라며 산업용 전기요금에 대한 획기적 개편이 필요하고, 기업들도 하루 빨리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경향 박하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