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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시사만평-주간 쟁점

22.8.8~13 재난은 결코 평등하지 않다

by 이성근 2022. 8. 8.

잠금해제 거부한동훈, 결국 아이폰 돌려받았다

언론은 왜 법인세율을 잘못 인용할까

세상이 나빠지는 데 일조하는 세제 개편

이명박박근혜문재인의 균형발전, 모두 틀렸다

생산적 산업자본주의인가, 착취적 금융자본주의인가

재난은 결코 평등하지 않다”···기록적인 폭우가 드러낸 불평등의 민낯

경제전쟁의 핵심은 금융자본의 착취 종식"

잠금해제 거부한동훈, 결국 아이폰 돌려받았다

검찰, 4월 한 장관무혐의 처분 직후 압수물 환부

고발인 항고 전 이례적 결정수사의지 없는 것

 

검찰이 잠금해제에 끝내 실패했던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아이폰을 한 장관에게 돌려준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해당 아이폰은 <채널에이(A)> 기자의 취재원 강요미수사건 핵심 증거물로 꼽혔다. 한 장관 불기소 처분에 대한 고발인 쪽 재항고 사건 결론이 나지 않은 상황이어서 성급하게 돌려줬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장 박혁수)는 지난 4월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이 강요미수 혐의로 고발한 한 장관을 무혐의 처분하면서 수사과정에서 확보한 한 장관의 아이폰을 돌려준 것으로 7일 확인됐다.

 

이 사건은 20203<채널에이> 기자가 한 장관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감옥에 수감 중인 신라젠 대주주 이철 전 벨류인베스트코리아 대표에게 여권 인사 등의 비리 폭로를 강요했다는 내용이다. 그해 8월 검찰은 해당 기자를 강요미수 혐의로 구속기소하는 한편, 한 장관에 대해서도 계속 수사를 진행했다.

 

한 장관의 아이폰은 공모관계를 밝힐 핵심 증거로 꼽혔지만, 한 장관이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으면 수사에 어려움을 겪었다. 수사팀은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없다며 지휘부에 무혐의 처분 의견을 여러 차례 올렸지만, 이성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은 아이폰 잠금해제 뒤 포렌식이 필요하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2년이 지나도록 결론을 내리지 못한 검찰은 결국 윤석열 대통령 당선 뒤인 지난 4월 한 장관을 무혐의 처분했다. 검찰은 현재 기술력으로는 잠금해제 시도가 더는 실효성이 없다고 밝혔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달 26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진행한 부처 업무보고 결과 브리핑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이 사건은 지난해 71심에서 해당 기자에게 무죄가 선고되며 애초 검언유착 의혹 자체가 무리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일기도 했다. 1년이 지난 오는 18일 항소심 첫 재판이 열릴 정도로 여론의 관심이 떨어진 상황이다. 다만 검찰이 고발인 쪽 재항고가 충분히 예상되는 상황에서 핵심 압수물을 돌려준 것을 두고 검찰 사무규칙 위반 가능성이 제기된다. 형사소송법은 필요성이 인정되는 경우 사건 종결 전이라도 압수물을 환부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검찰압수물사무규칙은 불기소 처분 사건 압수물 중 중요한 증거가치가 있는 압수물에 대해선 항고 절차 등이 종료된 뒤 환부하도록 하고 있다. 민언련은 지난 4월 검찰이 한 장관을 무혐의 처분하고 2주 뒤 검찰 판단에 불복해 항고했는데, 검찰은 항고 전에 이미 아이폰을 돌려준 것이다. 검찰이 항고를 기각하자, 민언련은 이에 불복해 지난달 대검찰청에 재항고한 상태다. 형사사건 경험이 많은 한 변호사는 통상 불기소 처분 뒤에 압수물을 돌려주지만, 이 사건 핵심 증거인 한 장관의 휴대전화를 곧장 돌려줬다는 건 추가 수사 의지가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울중앙지검 공보담당관(검사)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압수물을 전달한 것이다. 불기소 처분 뒤 압수물을 돌려주지 않는 건 극히 이례적인 경우라고 했다.

 

한편 20207월 한 장관 아이폰 유심칩 압수수색 과정에서 그를 넘어뜨린 혐의(상해)로 재판에 넘겨졌던 정진웅 당시 부장검는 1심에서 유죄가 선고됐지만, 지난달 항소심에선 무죄가 선고됐다. 검찰은 무죄 판결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했다.

 

관련기사 : 검찰, 한동훈 검사장 무혐의“22개월간 아이폰 못 풀어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37848.html

강재구 기자 j9@hani.co.kr

 

 

언론은 왜 법인세율을 잘못 인용할까

윤석열 정부 경제 정책 수단 중 하나는 법인세 인하다. 사진은 서울 테헤란로의 빌딩숲.시사IN 조남진

‘Y노믹스(윤석열 정부 경제정책)’의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 민간 부문 활성화를 통한 경제성장을 강조한다. 주요한 정책 수단 중 하나는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다(25%22%). 윤석열 대통령은 출근길 취재진에 글로벌 경쟁을 해나가는데 OECD 평균 법인세를 지켜줘야 기업이 경쟁력이 있다라며 법인세 인하 이유를 밝혔다. , OECD 평균보다 낮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법인세 최고세율은 OECD 평균보다 얼마나 높을까? 대부분의 언론에 따르면 OECD 법인세 최고세율 평균은 21.5%, 한국은 25%이다(2020년 기준·국회예산정책처 2020 조세수첩).

 

이는 팩트는 맞지만 진실이 아니다. 법인이 중앙정부에 내는 명목 최고세율만 따진 수치다. 법인은 중앙정부에도 법인세를 내고 지방정부에도 따로 법인세를 낸다. 중앙정부뿐 아니라 지방정부에 납부하는 법인세를 감안해야 경제적 실질에 부합한다. 2021년 기준 우리나라 법인은 중앙정부에 최고 25%, 그리고 지방 법인세 2.5%까지 총 27.5%를 적용받는다.

 

일본과 독일의 중앙정부 납부 법인세 최고세율은 23.2%15.8%로 한국보다 훨씬 낮다. 그러나 지방정부에 내는 법인세까지 합치면 각각 29.7%, 29.9%로 우리보다 더 높다. 미국은 주마다 법인세가 다르지만, 테크 기업이 몰려 있는 캘리포니아주 법인세 최고세율은 무려 8.8%. 연방 법인세(21%)까지 총 29.8%. 이런 상황에서 중앙정부 법인세 최고세율만 비교해서 한국이 미국·독일·일본보다 세율이 높다고 주장한다면 경제적 실질과 멀어지게 된다.

 

이런 오류는 실무적으로 나오기 어렵다. 출처를 보면 거의 국회예산정책처. 그런데 이 자료를 보면 중앙정부 기준 법인세 최고세율비교표 바로 다음 페이지 표가 지방세 포함 기준 법인세 최고세율비교표다. 국회예산정책처 자료를 보면 중앙정부 법인세만 비교하는 것은 반쪽짜리 오류라는 사실을 모를 수가 없다. 왜 많은 언론은 바로 다음 페이지에 나오는 (중앙+지방) 법인세 최고세율이 아닌 중앙정부만을 비교할까? OECD 통계 검색만 해봐도 쉽게 찾을 수 있는데 말이다.

 

나만 다르면 안 된다는 오류의 평범성

첫째, 법인세를 낮춰야 한다는 정파적 주장을 위해 기사의 완성도를 희생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정파적 목적으로 인한 왜곡은 생각보다 많지 않으리라 추측한다. 예를 들어 경향신문OECD 평균 법인세 최고세율을 21.5%라고 공식화하면서도 정부의 법인세 인하 조치는 부정적으로 기술한다.

 

둘째, 기획재정부가 언급한 수치, 또는 타 언론이 다수 인용하는 수치를 공식 통계라고 잘못 판단한 것일 수도 있다. 나는 이 두 번째 이유가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한다. 기재부가 OECD 평균 법인세 최고세율을 중앙정부만의 수치인 21.5%로 언급하면 이것이 공식 숫자라고 착각하게 된다. 기자들은 항상 새로운 기사를 쓰고 싶어 할 것 같지만 의외로 다수 언론이 쓰는 통계 대신 새로운 통계를 쓰는 것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 나만 다르면 안 된다는 기묘한 동료 의식(?)이다. 나는 이를 악의 평범성에 빗대어 오류의 평범성이라고 표현한다.

 

셋째, 국회예산정책처 자료를 직접 보고 판단한 것이 아니라 그냥 다른 언론에 있는 통계자료를 그대로 인용했기 때문이다. 일부 기자들의 나쁜 버릇 중 하나가 타 기사를 재인용할 때 그 사실을 밝히지 않고 원출처만 쓰는 경우다. 특히 기재부·국회예산정책처 등 정부기관 자료는 거의 그렇다.

시사인 이상민(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신체노출 상태로 강남 일대 질주한 남녀, 결국 경찰조사 받는다

서울 강남 일대에서 신체 일부를 노출한 채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한 남녀가 경찰의 조사를 받는다. 홈페이지 캡처

 

서울 강남 일대에서 상의를 벗고 오토바이를 운전한 남성과 비키니를 입고 뒷자리에 탑승한 여성이 경찰의 조사를 받는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서울 강남경찰서는 이 오토바이 운전자와 뒷자리에 있던 여성에게 경범죄 처벌법상 과다노출 혐의 적용 가능성을 검토 중이다.

 

지난달 31일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상의를 노출하고 뒷자리에 비키니 차림만 걸친 여성의 사진이 공유되며 이들의 목격담이 이어졌다. 이들은 비가 오는 가운데도 신체를 노출하고 서울 강남 일대를 질주한 것으로 전해졌다.

 

오토바이를 운전한 남성은 바이크 유튜버이고, 동승했던 여성 또한 인플루언서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남성은 중앙일보에 처벌해봤자 경미한 수준일 것이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내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내면의 자유고 비키니 수영복을 해수욕장에서 입어야만 하는 것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스포츠 경향 이선명 기자

 

ksc****관종 정신병자들~ 어찌됐던 목적은 이뤘네ㅋㅋ

김재훈-강남 지역은 각종 술집과 음식점이 혼재 된 가운데 관종 애들이 판을 치는 동네가 되었다. 그런 동네에 졸부들이 몰려 사는데 아파트 가격이 300억을 넘긴 아파트가 존재 한다.

영원토록-다들 내맘대로 살고 싶지. 그러나 다른 사람 눈도 중요하기 때문에 최소한은 서로 지켜줘야지.

 

세상이 나빠지는 데 일조하는 세제 개편

가난한 사람들이 정말 부자를 위한 정당을 지지할까. 최근 이른바 계급 배반 투표가 실재하느냐를 둘러싼 논란이 있었다. 사실 계급 배반 투표는 정치학계의 오래된 주제이고, 국내외로 수많은 연구가 존재한다. 이 논의를 생산적으로만 한다면 각 정당도 상당히 얻는 게 있을 것이다. 각 정당이 자신에게 친화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서 왜 지지를 얻었는지 혹은 얻지 못했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727일 서울 종로구 경실련에서 윤석열 정부 세제개편안 평가와 제언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 연합뉴스

 

그런데 계급 배반 투표라는 담론은 사후적 분석이란 분명한 한계가 있다. 선거결과를 두고 왜 유권자가 이런 선택을 했느냐를 분석하는 담론이기 때문이다. 유권자들에게 왜 이런 선택을 했느냐고 묻기에 앞서 정부와 정당들에 먼저 물어야 할 것들이 있다. 왜 이런 정책을 내거나, 내지 않느냐고 말이다. 당신들이 추진하는 정책이 누구에게 유리하고, 누구에게 불리한지, 또한 각각의 정책이 나오기까지 무엇을 문제라고 생각하고, 어떤 것을 괜찮다고 판단하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그래야 유권자의 선택을 분석하는 사후적 분석과 균형을 맞출 수 있다. 이런 시각으로 이번 연재에서 살펴볼 주제는 윤석열 정부가 721일에 발표한 세제(세금제도) 개편안이다.

 

오바마의 세제 개혁안이 실패한 이유 사실 가난한 사람들이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건 그리 놀랄 만한 사실이 아닐 수 있다. 정부나 정당이 정책을 발표하면서, 또는 정치인이나 지식인들이 발표된 정책을 논평하면서 끊임없이 왜곡하기 때문이다. 미국 오바마 정부가 2015년 추진하다 실패했던 ‘529 대학 저축 플랜의 개혁안이 대표적이다. 고소득층에 유리한 세제 혜택을 축소하려던 이 개혁안은 보수인 공화당뿐 아니라 민주당 주류 인사들의 반대로 좌절됐다. 민주당의 당시 하원 원내대표 낸시 펠로시가 직접 오바마 대통령을 설득한 일화가 유명하다. 민주당 인사들은 이 세제 개혁안이 중산층에게 피해가 간다고 주장했다. ‘중산층을 위한 행동으로 둔갑한 고소득층을 위한 반대는 금세 여론의 호응을 얻었다. 결국 오바마는 세제 개혁안을 철회했다. 이 사례를 두고 브루킹스연구소의 연구원 리처드 리브스는 상위 1% 계층이 아닌, 상위 20% 계층이 불평등 심화의 주범이란 주장을 담아 2017<20 vs 80의 사회>라는 책을 펴냈다. 민주당의 주류 인사들조차 상위 20% 계층의 이익에 복무한다는 게 이 책의 지적이었다.

 

윤석열 정부의 기획재정부도 이때의 미국 민주당과 비슷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81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업무보고에 출석해 지난달 발표된 세제 개편안이 부자 감세가 아니고, 오히려 저소득층이 더 큰 수혜를 입는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이번 세제 개편안이 누구에게 유리하고 누구에게 불리한지 하나씩 살펴보자.

 

먼저 소득세는 과세표준 구간을 조정하고, 식대 비과세 한도를 확대했다. 소득세는 소득구간별로 다른 세율이 적용되는데, 이 구간을 조정했다는 의미다. 6%의 세율이 적용되는 소득구간을 기존 연 1200만원 소득 이하에서 1400만원으로, 15%의 세율이 적용되는 구간을 기존 1200~4600만원 이하에서 1400~5000만원 이하로 변경했다. 기획재정부는 이 개정의 이유를 서민·중산층 세 부담 완화라고 보도자료에 적시했다. 정부는 세제 개편안에서 소득세 부문에서만 202335000억원의 세수가 감소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소득 많을수록 더 많은 혜택추경호 부총리가 저소득층이 더 큰 수혜를 입는다고 자신 있게 발언한 근거는 세제 개편안 문답 자료에 나온다. 총급여 3000만원인 소득계층은 이런저런 공제를 제외하면 세금이 부과되는 기준소득과세표준이 평균적으로 1400만원이고, 여기에 부과되는 세금은 30만원에서 22만원으로 기존보다 27%나 줄어든다. 총급여 7800만원인 소득계층은 530만원의 세금을 내다가 476만원을 내게 돼 5.9% 줄어든다고 밝혔다. 감면액의 차이보다는 감소율에 집중해 27%(감면액 8만원)5.9%(감면액 54만원)보다 크다는 주장이다. 이렇게 감세액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만 따지면 저소득층엔 적게 감세해도 효과가 크다는 기적의 논리가 탄생한다.

 

오히려 이번 소득세 개편의 의미는 연 소득 8000만원을 넘겨야만 최대한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데 있다. 이번 개편에서 최대한의 혜택인 52만원의 감면을 누리려면 과세표준이 5000만원 이상이어야 한다. 2020년 종합소득과 근로소득을 합친 자료를 기준으로 과세표준이 5000만원을 넘으려면 연 소득이 7800만원 이상이어야 한다. 매년 계층별 소득금액과 감면액이 조금씩 늘어나기 때문에 올해엔 이 기준이 연 소득 8000만원을 넘길 것이다.

 

다시 말해 소득이 적을수록 적게, 많을수록 많은 혜택을 받는 게 이번 세제 개편의 효과다. 이런 정책을 발표하고서 그 취지를 서민·중산층 세 부담 완화라고 하는 것은 기만적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다. 가난한 유권자에게 왜 부자 정당에 투표했느냐고 묻기 전에 정부에게 왜 부자를 위한 정책을 발표하면서 가난한 사람을 위한 정책이라고 기만하는지를 따져야 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보도자료에 명시된 세제 개편의 취지 역시 소득이 많을수록 더 많은 혜택을 주기 위해로 바뀌어야 한다.

 

식대 비과세 한도를 늘리는 개편도 마찬가지다. 식사 비용을 과세하는 소득에서 제외하는 식대 비과세 한도를 월 10만원에서 월 20만원으로 바꾸는 게 이번 개편의 골자다. 비과세 한도가 늘어날수록 높은 세율을 적용받는 고소득자의 혜택이 커진다. 물론 과세표준 구간과 식대 비과세 한도가 오랫동안 고정돼 있던 것이 사실상의 증세 조치였다는 지적은 의미가 있다. 하지만 이를 조정하는 것에 앞서 고소득일수록 더 큰 혜택을 얻는 비과세·감면 제도를 대거 정비해 세금 제도를 공정하고 단순하게 만드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정책과 딜레마 4편 참조).

대기업·다주택자에 유리한 세제 개편 소득세는 소득이 많을수록 혜택이 비례적으로 많아지는 개편인 반면 법인세와 부동산, 금융자산 등에 부과되는 자산세 개편은 아예 대기업, 다주택자, 금융자산가만 특정해 혜택을 주는 타깃형 감면책이다. 법인세는 최고세율을 25%에서 22%로 인하했다. 윤석열 정부는 전임 문재인 정부가 22%에서 25%로 올린 것을 정상화했다는 취지라고 밝혔지만, 문재인 정부는 법인세율을 인상하는 대신에 통합투자세액공제를 도입해 실효세율을 크게 낮췄다. 게다가 최고세율이 적용되는 기업은 공제를 제외한 이익이 3000억원이 넘어야 하고, 최고세율이 적용되는 구간도 3000억원 이상의 이익에 해당한다. 이 정도 이익을 거두는 기업이 얼마나 될까. 국회 예산정책처가 ‘2022 조세 수첩에 기재한 내용에 따르면 법인세 신고법인 838000개 가운데 80여개뿐이다. 사실상 25%의 세율은 아주 일부의 대기업에만, 또 이들의 이익 가운데 3000억원이 넘는 금액에만 적용된 셈이다.

 

종합부동산세의 경우 전반적으로 세율을 인하하고, 다주택자에게 무겁게 과세하던 제도들을 모두 걷어내는 안이 이번 세제개편안에 담겼다. 다주택 중과(무거운 과세) 제도는 지난해 처음 부과되고서 보수정당뿐 아니라 민주당 내에서도 반대의견이 나왔던 사안이다. 특히 가격이 20억원인 집 한채보다 세채 합쳐 10억원인 집값에 더 무겁게 과세하는 이 제도가 비합리적이고 불공정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문재인 정부가 이런 사실을 모르고 발표한 정책은 아니었다. 201912월 다주택 중과 정책 발표 당시엔 대출규제 등 다른 정책의 효과가 없자, 어쩔 수 없이 동원한 특단의 대책이었다. 3주택자 이상의 경우 세율을 3.6~6.0%까지 적용하는 놀라운 수준의 대책이었지만, 발표 당시에도 그다지 논란이 되지 않았다. 시장에서도 다주택자의 매물이 나오지 않는 기이한 상황이 지속됐다.

 

그러다가 1년이 넘는 유예기간을 지나 2021년에 부과되기 시작하자, 보수언론은 물론 일부 진보적인 지식인들에게조차 회의론이 나오기 시작했고, 정권이 교체되고서 이번에 해당 제도가 폐지됐다. 아마도 매물을 내놓지 않았던 다주택자들은 조용히 그들의 이익에 복무해줄 세력으로 권력 교체를 꾀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주식 양도소득세의 경우 대통령선거 당시에 아예 폐지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지만, 이번엔 과세 대상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기존 주식 종목당 10억원 이상에서 종목당 100억원 이상 주주에게만 과세하겠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상당수의 고액 자산가들은 과세 대상에서 제외됐다. 어쩌면 이번 세제 개편에서 최대의 수혜를 입은 이는 수백억원 이상의 주식 자산을 보유하고서 매년 수억원 이상의 수익을 얻지만, 종목당 100억원 이하의 주식을 보유하던 자산가들과 재벌 가문의 일원들일 것이다. 이들은 이번 세제 개편으로 세금을 한푼도 내지 않게 됐다.

 

정치의 역주행을 멈추려면 이번 세제 개편의 진정한 문제는 단순히 고소득자, 대기업, 자산가, 다주택자들이 이익을 얻는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정치가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들을 외면하는 것을 넘어 오히려 문제가 악화되는 데에 일조하고 있다는 게 진정한 문제다. 한국의 자살률과 출생률은 각각 세계 최대와 최저 수준을 차지한 지 오래됐다. 자살과 출생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낮은 수준의 복지와 강도 높은 경쟁 압박 등이 문제라는 점을 부인할 이는 거의 없다. 소득불평등도 악화 일로를 걷다가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의 영향으로 일부 완화됐지만, 같은 시기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인해 피케티 지수 등으로 표현되는 자산불평등은 사상 최악의 수준에 이르렀다. 이게 명실상부한 선진국으로 도약했다는 한국의 현실이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은 결국 안전망 강화다. 한국의 복지 지출 수준은 빠르게 늘고 있으나, 여전히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 현저히 부족한 편이다. 가장 최근의 국제비교 통계인 2019년 기준으로 한국의 공공사회복지지출 규모는 GDP 대비 12.2%OECD 회원국 평균인 20.0%에 현저히 미치지 못한다. 앞으로는 적극적으로 복지를 확충하지 않아도 고령층의 연금과 의료비 등의 폭증으로 복지 지출이 크게 늘어날 예정이다. 재정을 통한 선제적 대응은 해본 적이 없는데다 이젠 재정을 동원하기도 쉽지 않은 구조적 악순환을 목전에 두고 있는 셈이다.

 

이런 문제를 개선하려면 누진적 보편증세를 통한 안전망 강화가 기반이 돼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핀셋 증세만 하다 끝났고, 윤석열 정부에선 본격적으로 역진적 특혜 감세가 시작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정부에 물어야 한다. 도대체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이런 정책을 펴느냐고 말이다.

<윤형중 정책연구가>/주간경향

 

이명박박근혜문재인의 균형발전, 모두 틀렸다"

[마강래의 부동산 이야기] 국토균형개발 정책의 문제점

부동산. 누구에게나 '불공정'을 연상시키는단어가 되어버렸다. 무주택자는 천정부지로 오른 집값에 박탈감을 느끼고, 유주택자는 남들보다 싼 아파트에 사는 것에 박탈감을 느끼는 시대다. 모두가 불행한 시대가 된 셈이다.

 

역대 정부는 보수진보를 떠나 모두 '집값 안정화'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결과는 처참한 수준이다. 집값은 IMF 외환위기, 금융위기 등 외부의 강한 타격을 받을 때를 제외하고 지난 40여 년 동안 우상향을 이어왔다. 이런 도식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견고해지고 있다.

 

<프레시안>은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와 진행하는 새 연재 <마강래의 부동산 이야기>를 통해 이러한 현상이 왜 생겨나는지, 어떤 대안이 있는지 등을 살펴보고자 한다. 부동산과 관련한 주제를 두고 <프레시안>이 질문하고 마 교수가 답하는 방식이다.

 

마 교수는 도시계획과 도시재생, 도시행정을 주제로 균형 있는 국토 발전을 위한 다양한 방법들을 모색해온 현장 중심 연구자다. 대표저서로 <지방도시 살생부>(개마고원 펴냄), <부동산, 누구에게나 공평한 불행>(메디치미디어), <지방분권이 지방을 망친다>(개마고원 펴냄) 등이 있다. 편집자.

 

(바로가기 : 마강래의부동산이야기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2080810320834397 )

 

헌법 제1202"국토와 자원은 국가의 보호를 받으며, 국가는 그 균형 있는 개발과 이용을 위해 필요한 계획을 수립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역대 정부가 정권의 성격이나 이념에 상관없이 국토균형발전에 높은 정책적 우선순위를 두어 온 이유다.

 

결과는 어땠을까. 수도권 쏠림 현상이 점점 더 심각해지면서 그에 따른 '지방 소멸'도 속도를 더욱 높이고 있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지방도시는 이제 먼 미래가 아닌 불과 5~6년 뒤에 도래할 현실이 됐다.

 

수도권으로 몰리는 청년들로 지방에서의 청년 인구는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고 지역GRDP도 수도권과의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왜 이러한 수도권 쏠림 현상은 가속화하고 있을까.

 

자본과 인력의 집중을 지향하는 '시장' 분산과 균형을 진행한 '정부'의 정책적 노력을 이겼다는 게 지방 소멸, 그리고 수도권 쏠림을 설명하는 일반적인 견해다.

 

이는 역으로 이전 정부에서 펼친 국토균형발전 정책의 효율성이 상당히 떨어졌다는 방증도 된다. 또한 국토균형발전 정책은 단기간 해결을 목표로 펼치기 보다는 장기적 비전과 전략을 세우고 우선순위에 따라 단계적으로 접근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렇다면 균형발전을 위해서는 무엇을 가장 염두에 두고 진행해야 하는가. 마강래 교수는 '네 가지'를 염두에 두고 국토균형발전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제까지의 정책들은 이 4가지를 고민하지 않고 주먹구구식으로 진행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가 지금의 심각한 국토불균형을 초래했다고 마 교수는 이야기했다.

 

마 교수와의 인터뷰를 두 회에 나눠 싣는다.

 

(바로가기 : [마강래의 부동산 이야기] 국토균형개발 정책의 문제점 "가장 강력한 균형발전 정책은 박정희가 진행했다")

저출생이 가져오는 사회적 비용, 아무도 연구하지 않고 있다"

 

프레시안 : (지난 회 인터뷰에서는) 균형발전 정책이 효과가 없었던 네 가지 이유 중 첫 번째 이유를 설명했다. 나머지 세 가지 이유도 궁금하다.

마강래 : 지금까지 균형발전 정책이 힘이 없었던 두 번째는 '지방의 위기가 국가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도권 쏠림 현상이 가속화되면 우리 사회가 어떤 비용을 지불해야 되는지 관련해서 학계도, 정부도 연구한 바가 없다. 조만간 닥칠 국가적 위기상황에 대한 경각심이 크지 않은 듯하다.

 

프레시안 : 사실 정치인 대다수가 수도권에 살고 있지 않은가. 자연히 지방 문제는 논외의 대상이 된 듯하다. 그래도 자신들이 살고 있는 수도권의 과밀화 문제에는 관심을 두고 여러 정책을 펼쳤다. 집값 문제는 심각하기 때문이다.

마강래 : 맞다. 노태우 정부 때 1기 신도시, 노무현 정부 때 2기 신도시, 문재인 정부 때 3기 신도시를 만들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집권 시기가 '집값 폭등기'라는 점이다. 집값이 폭등할 때마다 신도시 정책이 나왔다.

 

프레시안 : 서울로 인구가 유입되면서 밀도가 지속해서 높아지다 보니 집값이 폭등했다.

마강래 : 그렇게 오른 집값을 잡기 위해서 했던 정책(신도시 건설 등)이 결론적으로는 서울을 뚱뚱하고 강하게 만들었다. 신도시 대부분이 경기도에 있지만 광역교통이 잘 연계돼 있어 기능적으로는 서울로 볼 수 있다. 수도권은 서울의 뚱뚱한 버전이다.

 

프레시안 : 지금의 수도권은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된 듯하다.

마강래 : 10년 전부터 수도권의 흡인력이 더욱 세졌다. 인구와 일자리를 빨아들이고 있다. 부산·울산, 대구, 광주 등의 지방 광역시에서도 청년 100명 중 1~2명 정도가 매해 빠져나가고 있다. 이 추세가 계속된다면 향후 20년 후에는 지방 광역시도 버티기 힘들다. 지방이 위기에 처했다고 많은 이들이 걱정하고 있지만, 앞으로 20년 후에 당면할 우리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지 않고 있다.

 

프레시안 : 수도권에서 사는 청년세대가 과밀화의 가장 큰 피해자인 듯하다.

마강래 : 수도권 젊은이들 대부분은 높은 집값을 감당할 여력이 없다. 문제는 이들이 원하는 일자리 대부분이 수도권에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 떠나지도 못하고 버티는 것이다. 치솟는 집값에 청년들은 결혼과 출산을 망설이고 있다. 우리나라 서울의 합계출산율은 0.63명으로 전국평균(0.81)에 비해서도 한참 낮지 않은가. 왜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저출생이 가져오는 사회경제적 비용이 어떻게 되는지 연구를 해야 한다. 멀리할 필요도 없다. 20년만 시뮬레이션하면 된다. 지금이라도 현 정부에서 수도권 독식의 사회경제적 비용을 추산하는 것을 시작해야 한다.

 

"역대 정부의 균형발전, 모두가 달랐다"

프레시안 : 세 번째 이야기를 해보자.

마강래 : 균형발전이 어려웠던 세 번째 이유는 역대 정권마다 '균형발전에 대한 큰 그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서로 다른 국토균형발전 정책을 펼쳤다. '균형'이라는 똑같은 단어를 두고 서로 다른 생각을 하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프레시안 : 실제 사례를 가지고 이야기해보면 좋을 듯하다.

마강래 : 우선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를 비교해보겠다. 노무현 정부의 경우 10개의 혁신도시를 만들 때 '·(광역시와 도)'를 기준으로 했다. 이명박 정부는 전국을 국토를 더 큰 단위로 묶어 '5+2 광역경제권' 정책을 내놓았다. 노무현 정부는 '·도 단위', 이명박 정부는 '초광역 단위'를 균형발전의 공간단위로 본 셈이다.

 

프레시안 : 이명박 정부에서는 좀 더 큰 공간적 단위를 구상했던 듯하다.

마강래 : 사실 광역을 묶어 지역정책을 펴는 건 노무현 정부 말기에 구상한 것이다. 그것을 이명박 정부가 약간 수정해서 '5+2 광역경제권' 구상을 내놓았다. 그러고 보면, 광역권 구상은 노무현 정부 때 만들어진 것이라 볼 수 있다.

 

프레시안 : 박근혜 정부 때는 어땠나.

마강래 : 박근혜 정부 집권과 동시에 '5+2 광역경제권' 정책은 완전히 없어졌다. 공간 단위가 너무 넓어 주민들이 체감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행복생활권'이라는 개념을 들고 나왔다. 예를 들어 어떤 지역에 종합병원이 없을 경우, 이웃한 시·군이 협력해서 병원을 함께 쓰자는 일종의 지역 정책이다. 균형발전의 공간단위는 이렇게 정부에 따라, '광역시와 도 단위(·)'에서, '광역지자체를 합친 것(광역경제권)'으로, 그리고 다시 '기초지자체를 합친 것(행복생활권)'으로 바뀌었다.

 

프레시안 : 문재인 정부는 어땠나.

마강래 : 문재인 정부는 도시재생 뉴딜사업을 벌였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점은 도시재생 사업은 226곳의 기초지자체, 그러니까 '시군구 단위'를 기준으로 했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의 균형발전 공간단위는 기초지자체였다고 본다.

 

프레시안 : 왜 정부마다 이렇게 균형발전의 공간단위가 다르다고 생각하나.

마강래 : 균형발전 정책은 '공간과 또 다른 공간과 균형'을 통해 전 국토에 균형을 잡는 것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균형발전 정책은 쇠퇴하는 곳을 치유하는 것으로 생각해왔다. 쇠퇴하는 곳에서 도시재생사업을 한다든가, 마을 만들기 사업을 한다든가, 재개발 사업을 하는 것은 국토 균형발전 정책이 아니다. 이건 그냥 지역에 인프라를 조성해 주민들의 삶을 질을 높이는 '지역 정책'이다. 이런 지역정책은 지방뿐만 아니라 서울에서도 꾸준히 해나가야 하는 것이다.

 

이 점은 분명히 하고 싶다. 균형발전을 하려면 균형을 이루는 대상이 분명해야 한다. 국토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려면, 어느 곳과 어느 곳이 균형을 이뤄야 할지를 따져봐야 한다. 이제는 전 국토를 놓고 균형발전에 대한 구체화된 그림을 그려야 한다. 이런 그림이 없으면 어떨 때는 초광역 단위가, 또 어떨 때는 시·도 단위나 시··구 단위가 등장하게 된다.

 

또 하나의 문제는 '균형'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사람마다 다르게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떤 사람은 균형이라는 단어를 '지금의 상태가 지속되는 안정적 상태'로 정의한다. 경제학자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균형(equilibrium)의 개념이다.

 

"균형발전의 큰 그림이 없다"

프레시안 : 경제학적 균형 개념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 달라.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균형'과는 조금 다른듯하다.

마강래 : 경제학자들은 완전경쟁시장에서 정해진 시장가격을 '균형가격'이라 부른다. 이는 자원의 최적배분을 가능하게 하는 가격으로 '효율성'이 극대화된 개념이다. 경제학자들은 100명 중 한 명이 80%를 차지하고 나머지가 20%를 자잘하게 나누어 가져도 균형에 이를 수 있다고 본다. 이런 관점에서는 수도권 독식도 효율성이 극대화된 균형 상태로 정의될 수 있다. 반면에 어떤 이들은 균등(evenness)한 상태를 균형으로 생각한다. 이는 '형평성'이 극대화된 개념으로, 100명이 있다면 모두가 1%씩 나누어 가져야 한다. 226개의 기초지자체를 균형의 공간 단위로 생각한다면, 1/226로 나누어 가져야 바람직한 세상이 된다.

 

물론, 균형의 개념을 이렇게 극단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균형의 개념은 양극단의 중간쯤에서 효율성에 좀 더 치우치거나, 형평성에 조금 더 치우쳐 있을 것이다.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은, 효율성과 형평성은 서로 상충되는 개념이고, 하나를 강조하면 다른 하나에 소홀한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프레시안 : 그런 시각이라면 균형이라는 단어를 바라보는 시각도 매우 다를 수밖에 없다. 역대 정부도 '균형'이라는 단어에 접근하는 시각이 서로 달랐던 듯하다.

마강래 : 우리가 균형 발전을 한다고 하면, 균형의 의미는 무엇이고, 균형 발전에서 우리가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봐야 한다. 그래야 균형발전의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다.

 

프레시안 : 그렇다면 균형발전의 큰 그림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마강래 : 방금 이야기했듯이, 균형발전을 위해서는 균형을 이루는 대상이 명확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바로 잡으려 하는가. 바로 수도권 독식현상이다. 그럼 수도권이란 공간 하나는 명확해졌다. 그다음엔 이 수도권과 균형을 이룰 공간을 구체화해야 한다.

 

'수도권 대 지방'으로 균형발전을 얘기하는 순간, 우리는 구체적 대안을 마련하기 힘들어진다. 수도권은 하나의 생활권이지만, 지방은 여러 이질적인 생활권이 흩어져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럼 '수도권 대 대구', '수도권 대 광주'는 어떤가. 균형을 얘기할 만한 공간적 스케일이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균형발전 정책은 '초광역 단위'에 초점이 맞춰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도권과 대응할 수 있는 공간은 '부산·울산·경남', '대구·경북', '광주·전남' 등의 거대 권역이어야 한다. 이런 권역 내에 거점도시를 몇 개 키우고 이들을 연결하는 교통망을 확실히 구축해야 한다. 이런 광역적 그림을 갖고, 자립적인 공간적 그릇을 만드는 게 균형발전 정책이다.

 

물론 공간적 그릇을 만드는 건 뚜렷한 목적을 가져야 한다. '현 시대에 청년들이 선호하는 일자리 창출'이 그것이다. 일자리가 없다면, 그래서 청년들이 머무르지 못하는 곳이 되면, 지역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프레시안 : 메가시티는 말하는 것인가.

마강래: 그렇다.

부울경 메가시티 구상. 경상남도

 

"'직주락' 간 융복합을 꾀해야 한다"

프레시안 : 메가시티에 대한 반론도 나오고 있다. 광역시와 도가 합쳐져서 '산술적으로' 인구수만 늘인다고 지역이 발전하는 건 아니라는 비판을 많이 들었다.

마강래 : 반론을 제기하는 분들이 메가시티를 행정구역을 통합하는 것이나 특별지자체를 만드는 것쯤으로 생각한다. 메가시티는 그런 게 아닌, 초광역협력 사업을 통해, (Work), (Live), 즐거움(Play)이 한데 모이도록 만들어진 '공간적 그릇'을 말한다. 연세대 모종린 교수는 이걸 직주락(Work, Live, Play) 근접의 생활권 도시라 부르고 있다. 수도권은 광역교통망이 너무 잘 되어 있어 각 거점에 직주락 센터가 곳곳에 만들어졌다. 서울에서 마용성이 떴던 이유도 직주락의 통합을 통해서이다.

 

지방에서도 거대 광역단위를 1~2시간의 생활권으로 묶어내야 한다. 광역적 공간단위에서 거점체계를 만들고, 거점들을 연계해서 '직주락의 밀도'를 높이고 '직주락 간 융복합'을 꾀해야 한다. 하지만 지방의 현실은 어떤가. A지자체에 철도나 도로가 들어가면, 옆에 있는 B지자체 주민이 들고 일어난다. B지자체 단체장은 표심을 잃을까 전전긍긍한다. 상황이 이러하니 예부터 뿌리를 함께했던 지자체들 간에 반목과 갈등이 만연해 있다.

 

프레시안 : 지방엔 지자체 간 갈등으로 협력이 어려운 듯하다.

기초지자체 단위에서 똑같은 시설을 앞 다퉈 짓고 있고, 정부의 지원 사업을 따내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경쟁이 아닌 싸움 수준이다. 종류도 다양하다. 선수촌 유치, 음식물 쓰레기 배출, 기차역 명칭, 급식비 분담, 소각장 설치, 통합신공항을 두고 다툰다. 충주와 청주, 음성과 진천, 증평과 괴산, 천안과 아산, 안동과 예천, 구미와 김천, 영덕과 울진, 의성과 군위, 전주와 완주, 목포와 무안 등등, 지자체 간 갈등은 바람 잘 날이 없다. 수도권으로 청년인구가 계속 빠져나가는 상황에서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중앙정부의 지원은 갈등과 잡음을 최대한 적게 하는 쪽으로 변해왔다. 정부는 재원을 226개의 기초자치단체에 되도록 공평하게 나눠주려 한다. 매해 10조가 투입되는 도시재생뉴딜사업도 1년에 100곳씩 선정해나가니 효과가 크지 못했다. 10년 간 매해 1조가 투입되는 지방방소멸대응기금도 기초지자체 단위에 자잘하게 나누어 나간다. 지방으로의 지원은 '자잘했고', '분절적'이었다. 효과가 없으니, 지방을 두고 '아무리 투자해도 소용이 없다'는 비관론이 퍼지고 있다.

 

프레시안 : 또 다른 반론으로는, 광역단위 개발을 진행하면 현존하는 농어촌의 쇠퇴가 더욱 가속화된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마강래 : 지방의 경우 농촌이 먼저 쇠퇴한 후, 중소도시, 대도시 순으로 인구가 감소하고 있다. 정부가 아무리 많은 투자를 한다 해도 자잘하게 나누면 효과를 볼 수 없다. 재원이 한정적인 상황에선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KTX를 전국에 다 깔 수는 없지 않나. 경제특구를 마을마다 설치할 수는 없지 않나. 성장의 불씨가 남아있는 거점에 힘을 모아야 한다.

 

다만 우리는 거점에서 나오는 이익을 주변 지역, 즉 농어촌 등과 어떻게 나눠야 하는지 논의해야 한다. 도시와 농촌은 상보적 관계다. 도시가 있기에 농촌이 있고, 농촌이 있기에 도시가 존재할 수 있다. 거점은 주변 지역의 인구와 일자리를 흡수하며 성장한다. 특정 지역의 발전은 그 지역 스스로만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니다. 주변 지역의 에너지를 모았기 때문이다. 수도권이 발전한 건 비수도권의 에너지를 모았기 때문이다. 거점은 이렇게 주변 지역에 빚을 지고 있다. 그렇기에 거점은 주변 지역과 연대의 책임을 져야하는 도덕적 의무가 있다.

 

"강력한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

프레시안 : 마지막 네 번째는 무엇인가.

 

마강래 : 균형발전이 어려웠던 마지막 이유는 강력한 '컨트롤타워'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가장 시급한 건, 광역경제권에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산업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를 위한 첫 번째 작업은 교통망, 그러니까 뼈대를 제대로 세우는 작업이다. 초광역 단위를 12시간 생활권으로 만들기 위한 교통망을 제대로 깔아야 한다. 그리고 교통망의 거점에 기업을 유치하고, 이들이 공공기관, 대학 등과 협업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런 초광역 단위의 강력한 산업생태계가 영남권에도 있어야 하고, 충청권, 호남권에도 있어야 한다. 그럴 경우, 또다시 지역 간 경쟁이 있을 수밖에 없다. 또한 광역단위 내 도시 간 이견이 생길수도 있다. 이를 조율하기 위한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다.

 

프레시안 : 노무현 정부 때 설립된 국가균형발전위원회가 있지 않았나.

마강래 : 자문기구로 실질적 권한이 많지 않다. 위원회에서 제시된 의견도 법적 구속력이 없다. 예산을 요구할 권한도, 예산을 집행할 권한도 없다. 그러니 컨트롤타워로서의 한계가 있었다.

프레시안 : 그간 중앙 공무원들의 부서이기주의(총론찬성, 각론반대), 지자체의 지역이기주의가 지역균형발전 정책 효과와 집행을 가로막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종합하는 컨트롤 타워의 부재가 정책 진행을 어렵게 한 듯하다.

 

마강래 : 균형발전 컨트롤타워로 지방시대위원회가 곧 출범한다고 한다. 균형발전위원회와 자치분권위원회가 통합된 조직이란 것 이외에 알려진 사실이 없다. 두 위원회를 합치는 큰 방향은 맞다고 본다. '균형발전''자치분권'은 서로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처럼 지자체간 격차가 큰 상황에서는 분권이 불균형을 심화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이 둘을 함께 다루면서 조율하는 조직이 필요하다.

 

앞서 얘기했듯이 균형발전을 위해 가장 중요한 건 청년들이 선호하는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일자리를 중심으로 '직주락 생활권'을 구축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산업자원부 뿐만 아니라, 국토교통부, 행정안전부, 중소벤처기업부, 교육부, 보건복지부 등의 지원도 필요하다. 컨트롤타워가 제대로 된 역할을 하려면 여러 중앙정부 부처를 조율한 만큼 강력한 조직이어야 한다.

균형발전 컨트롤타워를 공정거래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 금융위원회와 같이 행정위원회로 격상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래야 정부의 여러 부처들을 조율하며 산업생태계를 만들기 위한 지방을 노력을 지원할 수 있지 않겠는가. 자꾸 박정희 대통령 이야기를 하는데, 박 대통령은 중화학공업 육성을 천명한 뒤, 제일 먼저 했던 게 중화학공업추진위원회를 만드는 거였다. 경제기획원, 재무부, 문교부, 상공부, 건설부 모두를 조율하는 강력한 위원회였다. 덕택에 지방에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일자리를 창출하는 거점도시를 육성할 수 있었다.

프레시안 : 지금까지 균형발전을 위해 필요한 네 가지를 이야기했다. 이중 한 가지라도 빠져서는 안 될 듯하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이제라도 이 네 가지를 고려한 뒤, 지역균형 발전을 위한 정책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오랜 시간 감사하다.

프레시안 허환주 기자

 

 

생산적 산업자본주의인가, 착취적 금융자본주의인가

마이클 허드슨의 '문명의 운명'

다음 글은 미국 경제학자 마이크 허드슨(미주리대 명예 교수)의 새 책 <문명의 운명 : 금융자본주의, 산업자본주의 또는 사회주의>에 관한 팟캐스트 멀티폴라리스타와의 인터뷰로, 4회에 걸쳐 연재한다. 원문은 허드슨 교수의 홈페이지(michael-hudson.com) 512일 자에 '세습적 전사계급의 책임을 묻는다(Calling to Account the Hereditary Warrior Class)'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편집자.

조지프 케플러는 만화 <의회의 보스들>(1899)를 통해 19세기 말 대자본가들이 이미 미국 의회를 소유하고 있다고 풍자했다. google.com

 

벤자민 노튼 : 멀티폴라리스타 팟캐스트는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경제학자인 마이클 허드슨 교수와 함께 미국이 러시아에 대해 벌이는 경제전쟁과 러시아/중국과 미국/유럽 간 경제적 디커플링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디커플링은 지난 수년간 허드슨 교수가 강조해온 주제로,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미국 등 서방이 러시아에 부과한 경제제재에 의해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우리는 또한 미국 달러 패권의 쇠락에 대해서도 토론할 것이다. 미국이 지배하는 국제통화기금(IMF)조차도 최근 보고서에서 각국 외환준비금에서 달러의 비율이 감소하고 있다고 밝혔다. 물론 달러 패권이 하루아침에 몰락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IMF도 인정한 것처럼 서방의 러시아 제재가 달러 패권의 쇠락에 일조하는 것은 사실이다.

 

현재 러시아는 중국과의 무역을 중국 위앤화로 결제하고 있으며, 인도와는 인도 루피화로 결제한다. (중국은 2008년 이후 대외 무역에서 달러화 결제를 줄여가고 있으며 현재 위앤화 비중이 45%인 반면 달러화 비율은 14%에 불과하다) 또한 러시아는 유럽에 대해 러시아의 석유와 천연가스를 구매하려면 루블화로 결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우선 이번에 출간된 새 책 <문명의 운명 : 금융자본주의, 산업자본주의 또는 사회주의(The Destiny of Civilization : Finance Capitalism, Industrial Capitalism or Socialism)>에 대해 얘기했으면 한다. 이 책의 내용은 인터뷰 서두에 내가 말한 러시아와의 경제 전쟁이나 경제 재재, 디커플링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책을 미리 읽어본 결과 매우 중요한 내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허드슨 교수는 이 책에서 금융자본주의, 산업자본주의, 그리고 사회주의라는 서로 다른 경제모델이 역사적으로, 그리고 국제적으로 근본적 균열을 일으킨 데 대해 논하고 있다. 특히 미 제국은 (1980년대 이후) 세계에 신자유주의를 강제한 근원적 힘이며, 금융자본주의의 한 형태로서, 비생산적(nonproductive) 체제라는 점을 강조했다. 금융자본이 지대(rent)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생산적 제조업을 파괴하는 것이 미국 금융자본주의의 특징이라는 것이다.

 

즉 미국의 금융자본주의는, 고전파 경제학자들이 자본주의란 생산적 시스템이라고 주장한 것과는 달리, (인간생활에 도움이 되는 재화와 용역을) 생산하기보다는 기본적으로 파괴와 부채에 기반을 둔 (약탈적) 경제체제라는 것이다. 나아가 미국의 대외정책은 바로 이러한 금융자본주의의 확대를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식 금융자본주의 모델을 세계에 적용함으로써 미국의 경제력을 확장하는 것이 미국 대외정책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이 책을 쓰게 된 배경은 무엇인지, 즉 금융자본주의, 산업자본주의, 사회주의 간의 투쟁에 관해 좀 더 설명해줄 수 있나?

 

마이클 허드슨 : 이 책은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10회 연속 강연을 묶은 것이다. 나는 베이징대학에서 2년간 경제학을 강의했고, 우한과 홍콩의 대학에서도 가르쳤다. 이 강연은 매번 65천 명 정도의 꽤 많은 사람들이 수강했다. 강연의 목적은 중국인들에게 서방 경제 발전의 역사에 대한 나의 전반적 의견을 들려주는 것이었다.

 

오늘날의 금융자본주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19세기 당시 유럽의 산업자본주의란 어떤 것인가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 지금은 잊혔거나 과소평가되고 있지만, 산업자본주의는 원래 혁명적 현상이었다. 산업자본주의가 이루고자 했던 바는-18세기 후반 프랑스 중농주의자에서 아담 스미스, 존 스튜어트 밀, 칼 마르크스, 그리고 19세기 후반의 사회주의자에 이르기까지-고전적 가치 이론과 지대 이론을 철저히 구분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자본가가 이윤 창출을 위해 노동자를 고용했을 때, 정당한 소득(earned)은 무엇이며 불로소득(unearned)은 무엇인가를 밝히는 것이다. 불로소득을 취하는 계층은 지주계급이다. 이들은 중세 시대 유럽의 왕국들을 정복했던 봉건 귀족, 즉 세습적 전사 계급(hereditary warrior class)이다. 이들 전사 계급의 착취에 대해 영국의 산업자본가들은 저들 때문에 우리는 세계의 공장이 될 수 없다, 저들이 지대를 착취하는 한 우리 제품은 해외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가 없다(지대 때문에 생산비가 올라 제품 가격이 올라가므로) 불평했다. 다시 말해 실제 자본 형성과 관련이 없는 고금리의 약탈적 금융이 존재하는 한, 산업자본은 발전할 수 없는 것이다.

 

19세기의 자본주의를 혁명적으로 만들었던 것은 영국의 산업자본가들과 산업 옹호자들, 심지어 은행가들조차도 영국의 상원과 유럽대륙의 상층 귀족 등 지주 계급을 타파하기 위해 민주적 개혁을 추진했다는 점에 있다. 민주적 개혁을 완수할 수 있다면, 그리하여 시민들에게 투표권을 부여할 수 있다면 그들은 지주 계급에 대항하여 투표할 것이고 그리하면 경제는 더욱 효율적이 될 것이다. 지주계급이나 약탈적 금융계급에 빼앗기는 몫이 크게 줄어들어 자본주의 생산품은 실제 생산비(와 이윤)만을 반영하게 될 것이며, 그리하여 국제경쟁력을 갖게 될 것이다.

 

프랑스혁명에서 1차 대전에 이르는 장기 19세기동안(1789-1914) 이러한 혁명적 가치 이론은 토지 지대와 독점에 따른 지대, 그리고 금융 소득 등을 모두 불로소득(unearned)으로 치부하고 이것들을 경제체제에서 없애버리려 했다. 그리고 이러한 시도가 성공한다면 산업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의 이행이 가능할 것처럼 보였다. 산업자본가들은 국민들의 생활 보장을 위한 정부의 공공재 제공을 선호했다. 예컨대 정부가 국민들에게 건강보험을 제공하지 않는다면, 국민 각자가 그 비용을 부담해야 하며 (고용자가 그 비용을 보조할 경우) 고용자의 생산 원가를 상승시키고, 이에 따라 산업 경쟁력이 약화된다. 지금 미국의 상황이 그러하다.

 

19세기에는 영국의 보수 정치인 벤자민 디스레일리 총리 같은 인물도 (정부가) 모든 국민에게 건강보험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독일의 보수 정치인 비스마르크는 모든 국민에게 연금 혜택을 제공했다. 만일 노동자가 스스로 노후 보장을 위한 연금을 저축해야 한다면, 독일 산업이 생산하는 재화와 용역을 구매할 소비자의 구매력이 부족해진다는 이유에서였다. 따라서 연금은 국가가 제공해야 했다.

 

이러한 사회주의로의 지향은 19세기 내내 국민들의 생활수준을 향상시켰을 뿐만 아니라 지주나 은행가 등 지대 추구 세력으로부터 경제를 해방시켰다. 고전파 경제학자에게 자유시장이란 지주와 은행가, 그리고 독점 추구 세력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지대 추구 세력은 반격을 시도했다. 2차 대전 이후, 위에 말한 자유시장에 관한 고전적 이론을 대체하기 위한 반()고전파 경제이론의 형성이 지속됐다. 그 결과 이제 어떤 계급, 어떤 방식이든 자신이 번 것은 모두 정당한 소득으로 간주됐다. 예컨대 골드만삭스의 임원이 남들보다 훨씬 많은 급여를 받는다면, 이는 그가 남들보다 그만큼 생산적이기 때문이라는 정당화가 완성된 것이다.

 

이에 따라 고전파 경제학의 자유시장 이론은 부정되었으며, 금융자본주의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대해서는 일체 말하지 않는 쓰레기 경제학(junk economics)이 활개 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실제 경제 현실에 드러나듯 금융자본주의의 사업 방식은 너무도 약탈적이어서 산업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공장이나 생산설비, 또는 연구 개발 등에 투자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금융자본주의의 전략과 목표가 아니다. 금융공학에 의해 단기적으로 최대한의 이윤을 뽑아내는 것이 목표다. 금융자본주의가 약탈적이 되어갈수록 공공 부문에 대한 이념적 공격이 강화된다. 예컨대 하이에크는 <예종에의 길>에서 정부가 국가 건강보험을 제공하는 것은 노예로 이르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금융자본주의에 의한 부채야말로 노예로 이르는 길이 아닐까.

 

이제 정부는 (비효율과 부패, 무능 등) 온갖 경멸의 대상이 됐다. 이는 초기 산업자본주의의 혁명적 추동력에 대한 반동세력의 반혁명이 이뤄낸 성과다.

 

물론 오늘날의 미국 대기업도 은행이나 헤지펀드와 마찬가지로 우익적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미국의 제조업이 금융 부문에 포획됐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제조업 기업의 최고경영자들이 회사의 주가를 얼마나 올렸느냐에 따라, 스톡옵션의 형태로 받는 급여의 규모가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경영자들은 투자를 늘린다든가, 노동자를 더 고용한다든가, 또는 생산성을 높이거나 판매량을 늘려서 주가를 올리는 것이 아니다. 어떤 수단으로든 긁어모은 자금으로 자사 주식을 사들이는 방식으로 주가를 올린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치권에 대한 자금 제공을 통해 금융부문의 우위를 확고히 한다. 막강한 연준 이사장에 대한 임명권을 민주당과 공화당 등 정치세력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연준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이른바 양적 완화라는 명목으로) 7-9조 달러를 풀어 이들 대기업이 자사 주식과 채권 등을 매입하도록 해 주가와 부동산 가격을 대폭 올린 반면 미국의 제조업 경쟁력은 약화시켰다. 한마디로 금융자본주의는 미국을 탈산업화시켰고, 중서부를 러스트벨트로 전락시킨 것이다.

 

물론 대안은 있다. 신자유주의적 금융자본주의를 거부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가장 성공적인 경제는 중국 경제이며, 내가 새 책에서 중국을 자세히 다룬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중국은 19세기 미국과 독일, 영국과 프랑스가 했던 것과 똑같은 경제정책을 취하고 있다. 국민 생활 유지에 필요한 기본적 제도와 시설, 예컨대 주택, 그리고 무엇보다도 금융과 은행을 공공의 통제 하에, 즉 공공재로 취급하는 것이다.

 

중국은 금융부문이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 독자적으로 활동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며, 중앙은행(Bank of China)이 신용창조 역할을 떠맡는다(서방에서 신용창조는 주로 민간은행이 담당한다). 중국 중앙은행은, 인민들에게 가장 저렴하게 주택을 공급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산업을 어떻게 육성할 것인가, 효율적 교육제도를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 국민건강을 보장할 방안은 무엇인가 등의 기준에 따라 대출을 결정한다.

 

사실 중앙계획은 효율적인 사회체제의 한 방식이다. 정부 관료가 모든 것을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소련의 스탈린식 계획경제가 아니라, 정부의 체계적 계획과 민간의 자발성이 결합된 중국의 혼합경제를 말하는 것이다.

 

확실히 중요한 것은 부채 상환이나 높은 지대 지불 등으로 경제에 과중한 부담을 지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즉 고전파 경제학자들이 정당하지 않은 소득(unearned income), 착취적 소득(predatory income)이라고 불렀던 것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것들을 경제에서 몰아내기는커녕 경제의 주인이 되게 만들었다. 미국의 은행과 월가, 영국 런던의 금융 중심지인 시티, 그리고 파리 주식거래소 등이 세계 자본주의 경제의 중앙계획 담당자가 된 것이다. 하지만 금융에 의한 경제계획이란 한마디로 단기성과주의다. 즉 먹튀, 먹고 튀는 것이다. 그 결과 오늘날 세계의 실물경제는 피폐화됐다.

박인규 편집인(=번역·정리) .프레시안

재난은 결코 평등하지 않다”···기록적인 폭우가 드러낸 불평등의 민낯

서울에 폭우가 쏟아진 지난 8일 밤 서울지하철 7호선 이수역이 흘러내린 빗물로 침수되자 청소노동자들이 배수작업을 하고 있다. 서성일 기자

 

현장 노동자 모두 열차 재운행만 생각했을 거예요.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도 생각했죠. 그래도 사람이니까, 이 쏟아지는 폭우를 뚫고 출근하는데 무섭더라고요.”

 

지난 8일부터 중부지방에 퍼부은 기록적인 폭우는 수년째 지하철 청소 업무를 하는 A씨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재해였다. A씨는 폭우로 폐쇄됐던 서울 9호선 동작역의 청소 작업에 투입됐다. A씨는 10일 기자와 만나 플랫폼 곳곳이 모래나 진흙으로 빼곡했다. 모래를 하나하나 퍼 올린 뒤에 전부 닦아내야 했는데, 승강기나 에스컬레이터가 중단된 상황에 이 작업을 하는게 정말 고됐다고 말했다.

 

7호선 이수역 청소노동자 B씨도 상황은 같았다. 이수역은 8일 폭우로 빗물이 들어차 천장이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B씨는 이날 “(지난 8)지하철 계단 등에서 물이 막 폭포수처럼 내려오는 게 보이더라. 물길을 막고는 싶었지만 쓸려 내려갈 것만 같았다그런데도 그때는 위험한 줄도 모르고 일했다. 나중에 돌이켜보니까 침수지역 곳곳에 전기 설비가 참 많았다고 했다. 자칫 감전 사고로 번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B씨는 연일 강행군으로 일하다보니, 언니들(청소노동자) 얼굴이 다들 붓고, 온몸에 파스를 붙이고 있다고 했다.

 

기록적인 폭우가 휩쓸고 간 자리엔 흙과 쓰레기만 남은 것이 아니다. 한국사회 재난 불평등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침수로 인한 피해도, 이를 복구하기 위해 부담해야 할 짐도 결코 평등하지 않았다. 이번 재난상황에서도 마지막까지 지하철역을 지킨 건 평균 연령 60대의 청소노동자들이었다. 이찬배 민주여성노조 위원장은 재난상황에서 노동자들은 생명의 위협까지 느끼며 일한다모든 현장 업무를 노동자들에게 떠넘길 게 아니라, 정부가 재난에 대응할 수 있는 체계적인 대응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했다.

 

각자도생식복구작업에 진땀을 흘리는 곳은 또 있다. 이날 오전 서울 동작구 남성사계시장에서는 구청 직원들과 군인들이 수습작업에 구슬땀을 흘렸다. 그러나 상인들은 공무 인력이 늦어도 한참 늦었다고 했다. 상인들은 인력을 직접 고용하거나 가족 등 지인을 총동원해 전날부터 수습에 나섰다는 것이다. 오전 1020분쯤 수해 피해를 입은 상인 중 필요한 곳에는 인력을 더 보내주겠다는 안내방송이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한 상인은 이제 보내주면 뭐 하냐. 우리가 사람 고용해서 다 치웠는데라며 볼멘소리를 했다.

 

코로나19로 생계에 어려움을 겪은 상인들은 침수로 폐허가 된 가게를 바라보며 망연자실했다. 남성사계시장 골목에서 4년째 노래방을 운영하는 김광현씨(56)다 끝났다는 말을 반복했다. 적자를 메우려고 살던 아파트까지 팔아 유지한 노래방이었다. 건물 지하 1층에 있는 가게 내부에는 이날 오전까지도 성인 남성 발목을 넘길 정도의 물이 차 있었다. 김씨는 코로나19 때 장사를 하지도 못하다 이제야 좀 영업을 하려니 물벼락을 맞은 것이라며 이제는 정말 답이 안 나온다. 어제부터 잠도 못 자고, 먹지도 못하고 있다. 기계가 모두 망가져 복구비용이 15000만원이 들어간다고 하는데 장사는 더 못한다고 본다고 했다. 상인들은 재난지역으로 선포되지 않는 이상 보상금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기록적인 폭우·폭염의 근본 원인으로 기후위기가 지목된다. 이번 폭우는 기후위기와 기후재난의 피해가 취약계층에 집중된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반지하 거주자 등 주거약자를 중심으로 큰 피해가 발생한 이번 폭우처럼 폭염도 사회적 약자를 먼저 덮친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이 발간한 ‘2020 폭염영향보고서를 보면 2018년 기준 고소득층(건강보험료 상위 20%)의 온열질환 발병률은 1만명당 7.4명인 반면 저소득층에 해당하는 의료급여수급자는 21.2명이 온열질환을 앓았다. 3배에 이르는 수치다.

지난 8일 밤 내린 폭우로 발달장애인 등 일가족 3명이 집안에 고립돼 사망한 서울 관악구 신림동 다세대주택의 반지하층이 9일 물에 잠겨 있다. 박하얀 기자

 

서울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 주택 일가족 참사 이면엔 발달장애인 언니와 어린 자녀를 돌보는 하청 노동자의 삶이 있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서비스연맹이 공개한 부고에 따르면, 이 사고로 숨진 홍모씨는 면세점 협력업체 소속 현장 판매직 노동자이다. 연맹은 홍씨는 노동자가 존중받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던 훌륭한 활동가였다고 추모했다.

 

이영경 에너지정의행동 사무국장은 이번 폭우는 기후위기가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주는 동시에 그에 따른 피해가 모두에게 동일하지 않다는 사실을 극명히 드러냈다기후재난이 거듭될수록 취약계층의 피해는 커질 것이다. 기후위기 이면에 숨겨진 불평등 문제를 직시해야만 실효성 있는 정책이 나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조희원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 간사는 국가재정이란 결국 취약계층에 대한 사회안전망 확보를 위해 필요한 것인데, 정부는 재정건전성을 이유로 국가지원을 계속해서 축소하고 있다재난으로부터 사회적 약자를 지켜주지 못한다면 국가의 존재 이유를 되물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경제전쟁의 핵심은 금융자본의 착취 종식"

[해외 시각] 마이클 허드슨의 '문명의 운명'

벤자민 노튼 : 전적으로 동의한다. 새 책 <문명의 운명>에서 당신은 이른바 '자유시장'의 의미에 대해 매우 중요한 지적을 했다. "원래 (19세기) 고전파 경제학에서 자유시장이란 '경제적 지대로부터 자유롭다'는 의미였다. 그런데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자유시장을 '지대 추구세력을 자유롭게 풀어준다' 즉 지대 추구세력이 마음껏 지대를 착취하고 세계를 지배하도록 한다는 의미로 바꾸어 버렸다"고 지적했다. 또한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고전파 정치경제학과는 반대로 지대 추구 세력에 대한 감세 혜택, 민영화, 금융화, 탈규제 등을 적극 장려한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이는 워싱턴 컨센서스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당신은 "미국의 대외정책은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지대 추구 프로그램을 전 세계로 확대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이 책에는 '자유무역 제국주의'라는 흥미로운 제목의 내용이 있던데, '자유무역 제국주의'란 무엇이며 미국의 대외정책과는 어떤 관련이 있는지 설명해 줄 수 있는가?

 

마이클 허드슨 : 이제까지 노벨 경제학상은 기본적으로 쓰레기 경제학에게 주어졌다. 그리고 아마도 폴 새뮤얼슨이야말로 20세기 최악의 쓰레기 경제학자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는 우리가 자유무역을 전면 실시한다면, 즉 관세를 매기지 않고 정부가 산업 보호에 나서지 않는다면 모든 사람이 경제적으로 평등해진다, 또는 최소한 노동과 자본의 관계가 보다 공평해진다는 사실을 수학적으로 입증했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내놓았다. 물론 실제 현실은 이와 정반대다.

 

'자유무역 제국주의'란 말은 19세기 말, 무역이론을 연구하던 영국의 한 역사학자가 만들어낸 말이다. 핵심은 영국이 세계적으로 자유무역 체제를 완성한다면 다른 나라의 산업화를 저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제조업에서 앞선 영국이 흑인 노예 노동에 의존하는 미국 남부의 면화를 수입하는 대신 영국의 공산품을 미국에 수출하는 것이다. 얼핏 보면 이러한 자유무역이 영국과 미국 모두에 득이 되는 것 같지만, 실제로 득을 보는 것은 미국 남부의 대농장주와 영국의 제조업자일 뿐, 미국의 산업화는 지체될 수밖에 없다.

 

사실 미국은 남북 전쟁(1861~65) 때까지 이러한 노선을 따랐다. 하지만 북부 공업지대에 기반을 둔 공화당은 1853년부터 미국의 산업화를 적극 추진했다. 남북 전쟁은 흑인 노예 해방을 위한 것인 동시에 미국의 독자적 산업화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 공화당은 초기 단계의 국내 제조업 보호를 위해 보호무역을 추진했다. 해외(영국) 공산품에 대해 고율의 보호관세를 부과한 것이다. 국내 제조업을 육성하지 않는다면 미국은, 농업 중심의 남부가 원하는 것처럼, 농산물과 원자재만을 생산하는 2류 국가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미국에서 자유무역이냐, 보호무역이냐를 둘러싼 논쟁은 나폴레옹 전쟁이 끝난 1815년부터 남북 전쟁 때까지 지속됐고, 최종적으로 보호무역주의가 승리했다. 미국과 독일은 국내 유치산업 보호를 위한 보호무역을 통해 제조업을 육성했고 이를 통해 강력한 산업경제를 구축했다. 몇 년 전 나는 박사학위 논문을 바탕으로 <미국의 보호무역에 의한 비상(America's Protectionist Takeoff)>란 책을 펴냈다.

 

영국은 '다른 나라들도 우리처럼 자유무역을 택하면 부유해질 것'이란 감언이설로 외국의 국내 산업 보호 및 발전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진실은, 어떤 나라가 선진국과 맞먹을 정도의 산업 능력과 노동 및 농업 생산성을 이루지 못한 채 자유무역을 채택할 경우 빈곤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자유무역이란 다른 나라들이 정부 자금을 투여해 자국의 농업과 산업을 육성하고, 생산성과 교육 수준을 높이며, 노동자들의 생산성을 높여 임금을 상승시키려는 노력을 저지하기 위한 술책이다.

 

(19세기) 미국의 보호무역주의자들은 저임금 노동이 아니라 높은 숙련도의 고임금 경제를 지향했다. 노동자들이 잘 먹고 충분한 휴식을 취할수록 질 좋은 제품을 생산해내 국제 경쟁에서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의 선도적 보호무역주의 경제학자였던 에라스무스 페샤인 스미스는 일본에 가서 일본이 영국 자유무역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스스로 산업화를 이룰 수 있도록 도왔다. 미국의 다른 경제학자들은 물론이고 외국의 경제학자들도 자국 산업 육성을 위해서는 보호무역이 올바른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독일의 프리드리히 리스트는 보호무역을 통해 독일 산업 발전에 기여했다. 또한 페샤인 스미스의 책 <정치경제학 교범(The Manual of Political Economy)>은 일본,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등에서 번역됐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유럽 사람들은 자유무역이 경제를 양극화 시킨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랬던 것이 1차 대전 이후, 특히 2차 대전 이후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정통경제학이란 학문이 사실상 프로파갠다로 전락한 것이다.

 

폴 새뮤얼슨과 같은 이른바 정통 경제학자들이 다른 나라들에 대해 정부는 나쁜 것이다, 경제에 관한 모든 것을 부자, 또는 금융가에 맡기면 된다고 선동한 것이다. 이른바 트리클다운 경제학이다. 부자들에게 돈을 맡기고,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하기만 하면 모두가 번영을 누릴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역사적 진실은, 미국이 1차 대전 이후 세계 최강의 경제를 갖게 된 것은 정부가 시장에 개입했기 때문이다. 1차 대전이 끝날 무렵 미국은 세계의 산업을 지배하게 된다. 이때부터 미국은 ', 보호무역으로 미국의 산업 능력이 다른 모든 나라들을 앞질렀으니 이제 외국에 대해 자유무역을 요구하면 되겠네'라고 생각했다. 특히 미국의 농업은 1930년대 이후 정부의 보호를 가장 많이 받은 경제 부문이다.

 

2차 대전 이후 미국은 세계은행과 IMF를 통해 자국 농산물과 공산품의 대외 진출을 추진하는 한편 다른 나라들의 경제를 궁핍화 시켰다. 특히 세계은행의 주된 활동 목표는 외국 정부가 자국의 식량 생산에 투자하는 것을 막는 데 있다. 세계은행은 중남미와 아프리카 등에 대한 자금 지원을 하면서 이들 나라의 농업을 (미국이 생산하지 않는) 열대 수출 작물만을 재배하는 플랜테이션(單作) 농업으로 변모시켰다. 밀과 같은 식량 작물의 생산은 금지시켰는데, 이는 식량만큼은 미국에 의존하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미국이 자유무역을 통해 이루려는 목표는 세계은행과 IMF를 동원해 외국 경제의 대미 의존을 심화시키는 것이다. 그리하여 미국은 중남미의 독재정권을 지원하면서 이들 과두지배 세력이 대미 의존적 자유무역을 지지하도록 하는 한편 어떤 종류의 경제적 자급자족도 달성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그 이유는 최근 러시아나 다른 나라들에 대한 경제 제재에서 드러난 것처럼 이들 외국이 미국의 정책을 추종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다. 만일 어떤 나라가 미국을 따르지 않는다면 식량 공급 중단이라는 제재를 발동하는 것이다. 결국 외국 정부가 자국민을 먹여 살리려면 미국을 따르라는 것이다.

 

미국은 공산혁명 직후의 중국에 대해 이러한 제재 정책을 시도했다. 다행스럽게도 캐나다가 중국에 대한 곡물 수출을 허용함으로써 중국은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건국 초기 수십년간 공산 중국이 캐나다에 매우 우호적이었던 것은 이런 사정 때문이었다.

 

따라서 자유무역이란 정부의 역할을 전면 부정하는 것이며 사회주의와는 더욱더 거리가 멀다. 이는 본질적으로 월가(금융세력)가 경제의 중앙계획을 담당함을 의미한다. 즉 외국 정부에 대해 미국 투자가와 대기업들이 해당 국가의 자원과 산림과 농업을 자유롭게 구매, 처분, 활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며, 나아가 해당 국가의 경제적 잉여를 미국에 갖다 바치라는 얘기인 것이다.

 

GM(General Motors)1955년형 쉐보레 벨 에어(Chevrolet Bel Air) 광고. google.com

 

벤자민 노튼 : 이번 새 책에는 지금까지 말한 내용을 한마디로 압축해서 보여주는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제네럴 모터스의 전 CEO이고 아이젠하워 행정부에서 국방 장관을 역임한 찰스 윌슨이란 인물이 "제네럴 모터스에 좋은 것은 미국에도 좋은 것"이라고 말했다는데, 이 말은 나중에 "월가에 좋은 것은 미국에도 좋다"라는 말로 발전했다.

 

허드슨 교수께서는 "이런 생각이 미국의 복음주의적 대외정책과 결합돼 '미국에 좋은 것은 세계에도 좋다'로 발전했고, 이는 다시 삼단논법에 따라 '월가에 좋은 것은 세계에도 좋다'는 논리로 비약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논법을 현재의 신냉전에 적용해 요약한다면 미국에 좋은 것은 세계에 좋은 것이고, 월가에 좋은 것은 미국에 좋은 것이므로 '월가에 좋은 것은 세계에 좋은 것'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어떻게 해서 금융자본주의가 산업자본주의에 대해 우위를 확보했는지를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미국의 사례가 중요하다. 미국의 정책결정자들은 금융화된 미국 경제를 세계 전체에 강요하려 하기 때문이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신냉전은 지대 추구에 바탕을 둔 (미국의) 금융자본주의를 전 세계에 확산시키기 위한 시도이다."

 

이러한 분석은 매우 중요하다. 신냉전이 무엇이며,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말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경제적 차원에서 이를 분석하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보통 신냉전을 미국과 유럽, 그리고 중국과 러시아 간의 지정학적 대결이라는 정치적 차원에서 해석한다.

 

예컨대 브레진스키는 1997년 저작 <거대한 체스판(The Grand Chessboard)>에서 탈냉전 이후 미국의 최대 과제는 유라시아에서 미국에 필적할 전략적 경쟁자의 부상을 저지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는데, 그의 분석은 지정학에 초점을 맞췄을 뿐 경제적 분석은 부차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허드슨 교수의 분석이 더 중요하고 더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지정학적 대결의 바탕에는 경제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현재 벌어지는 대결은 서로 다른 경제체제 간의 경제적 대결이다. 그렇다면 신냉전의 미래를 어떻게 전망하나?

 

마이클 허드슨 : 우선 세계가 두 개의 (경제) 진영으로 갈라지고 있다. 미국의 러시아에 대한 전쟁은 중국, 인도에 대한 전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 같은 나라들도 공격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세계를 미국 투자가의 통제 하에 두려고 한다. 미국 신자유주의 정책의 목표는 199112월 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에 대해 감행했던 충격요법을 다른 나라들에도 적용하는 것이다. 각국 경제의 모든 공적 영역, 즉 국가 소유였던 석유기업과 니켈 광산, 전력산업 등을 부유한 과두지배세력(올리가르히)에게 몰아준 다음, 이를 다시 서방의 투자가들에게 매각하도록 해 공공경제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하는 것이다.

 

예컨대 지난 2003년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가 유코스 오일 주식을 미국의 스탠다드 오일에 팔려 했던 것처럼(그의 시도는 푸틴에 의해 저지됐다). 다시 말해 각국의 소수 금권세력에게 모든 국가 재산과 자연자원과 국영기업들을 몰아준 다음, 이를 미국 투자가들에게 헐값에 매각하도록 하는 것이다.

 

(옐친 집권기였던) 1994년에서 1998년까지 러시아 주식시장은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시장이었다. 그것은 거대한 약탈극이었다. (이러한 경제적 약탈은 1998년 러시아 외환위기로 종말을 맞았으나) 미국은 여전히 전 세계에 대해 그러한 경제적 약탈을 꿈꾸고 있다.

 

(2000년 푸틴 집권 이후) 약탈은 중단됐다. 러시아인들은 이렇게 말했다. '미국이 강요한 신자유주의 정책의 결과, 우리는 엄청난 희생을 치렀다. 2차 대전 때 나치와의 전쟁에서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더 이상 이 짓을 하고 싶지 않다. 우리는 러시아의 인구와 산업과 자원을 러시아 국민을 위해 쓰고 싶다. 더 이상 미국 투자가들에게 희생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러시아의 변심에 미국은 분노했다. 그 분노가 지난 2월 이후 러시아에 대한 나토의 전쟁으로 표출된 것이다. 미국 정부, 국무부 관리들은 이렇게 말해 왔다. '우리는 러시아를 네 개의 나라로 조각낼 것이다. 시베리아, 서부 러시아, 남부 러시아 또는 중앙아시아, 그리고 북부 러시아로. 러시아 분할이 완성되고 중국과 러시아를 갈라놓은 다음 중국을 손볼 것이다. 우리의 용병인 ISIS와 알카에다를 무슬림지역인 위구르지역에 보내 색깔혁명을 촉발시킬 것이다. 그리하여 중국도 북부와 남부, 중부로 세 조각 낼 것이다. 러시아와 중국을 해체시킨다면 미국의 지배가 훨씬 쉬워질 것이다. 우리는 이들 지역으로(중국, 러시아, 인도, 인도네시아, 이란 등) 진출해 자원과 산업과 노동력과 정부를 접수해서 그들이 일궈놓은 부를 가져올 것이다. 탈산업화된 미국에서는 더 이상 부를 창출하지 않으므로 우리에겐 이 방법밖에 없다.'

 

결론적으로 지금 세계는 두 개의 (경제) 진영으로 갈라지고 있다. 그것은 미국과 유럽의 위성국가들, 그리고 다른 한 편의 비백인 국가들의 분절만이 아니다. 본질적으로 서방의 금융자본주의 대 나머지 세계 간의 대결이다. 미국, 유럽 등 서방을 제외한 세계의 대다수 인민들은 사회주의를 추구함으로써 스스로를 보호하려 한다. 산업자본주의가 진정 진보적이었던 19세기 산업자본주의의 이상을 실현하려 한다.

 

이것이야말로 진보의 핵심이다. 그리고 이번 책(<문명의 운명>)의 핵심 주제이다. 이것은 또한 혁명적이다. 봉건주의의 잔재로부터, 세습 지주의 유산으로부터 경제를 해방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오늘날의 금융계급은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지주계급이 아니다. 그러나 지주계급은 아직도 대출이자의 형태로 지대(rent)의 대부분을 금융계급에 지불한다. 오늘날의 주택 소유자나 상가 건물 소유주는 부동산을 사기 위해 은행에서 돈을 빌려야 하기 때문이다(서방 은행 대출의 80%가 부동산 관련).

 

오늘날 미국의 주택 소유자들은 자신의 소득 중 40%를 주택 구입을 위한 원금 및 이자 지불에 사용한다. 민영화된 건강보험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전체 GDP18%가 소요된다. 또한 미국 국민은 학자금 융자를 비롯해 온갖 빚에 몰려 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국민 생활의 대부분이 공적 영역에 의해 유지되는 것과 달리) 미국에서는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삶의 유지가 전적으로 개인 책임이며 이를 위해 엄청나게 많은 비용이 필요하다. 이러한 생활 유지 비용의 상승으로 미국 노동력, 나아가 미국 제조업은 경쟁력을 상실했다.

 

한마디로 미국 경제는 경쟁력을 상실했다. 금융적 약탈에 의한 경제의 자살이 진행되고 있을 뿐이다. 이는 로마제국의 멸망을 초래했던 것과 같은 현상이다. 말기의 로마제국에서는 약탈적 과두지배세력이 비판세력을 제거하면서 권력을 유지했는데, 이는 미국이 중남미 등 남반구(Global South) 국가들에 대해 군사개입을 자행한 것과 매우 유사한 행태이다.

 

이제 세계가 두 쪽으로 갈라지면서 역사가 반복되고 있다. 이러한 (세계경제의) 분절은 1970년대까지는 일어날 수가 없었다. 1955년 인도네시아 반둥회의를 통해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국가들이 비동맹운동을 시작하면서 미 제국주의의 지배로부터 벗어나려 했으나 1970년대까지는 제3세계의 경제적 자립을 지탱할 수 있는 임계점(critical mass)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이제, 역사상 처음으로 그 임계점에 도달했다. 중국, 이란, 러시아, 인도와 기타 국가들이 힘을 합치면서 경제적 자립의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이들 나라들은 미국과의 경제 관계가 없어도 스스로 자립할 수 있게 됐다. 즉 자신의 운명을 자신의 힘으로 개척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 비서방 국가들은, 기본적으로 미 국방부의 하수인일 뿐인 IMF 체제를 벗어나 자신들만의 통화체제를 건설할 수 있게 됐다. 비서방 국가들은 또한, 미 국방부와 딥스테이트의 하수인인 세계은행 체제를 벗어나 제3세계 국가들에게 경제 인프라 건설을 위한 자금을 지원할 수 있게 됐다.

 

현재의 미국 경제는, 기본적으로 군산복합체와 월가 금융경제(금융, 보험, 부동산)의 결합체로 로마제국의 그것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 즉 스스로는 어떠한 부도 창조해내지 못하면서 무력에 의해 다른 나라들이 일궈놓은 부를 약탈할 뿐이다.

 

반면 중국을 비롯한 비서방 국가들은 자신만의 산업 기반과 함께 원자재, 그리고 스스로를 먹여 살릴 수 있는 농업과 기술력을 갖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스스로의 길을 가고 있다.

 

지난 2월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은 아마 앞으로 20, 어쩌면 30, 40년간 지속될지도 모른다. 세계는 갈라지고 있다. 이는 아름다운 광경이라고 할 수는 없다. 미국과 유럽의 위성국가들은 그들이 막을 수 없는 세계의 불가피한 분열을 저지하기 위해 헛된 노력을 하고 있을 뿐이다. 19세기 유럽의 지주계급이 산업자본주의의 발전을 막을 수 없었듯이 미국/유럽의 무력 개입은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프레시안 박인규 편집인(=정리·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