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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외부 칼럼

2.16~2.27 코로나19와 우리 안의 바이러스들

by 이성근 2020. 3. 1.

재난과 엘리트 패닉 mediatoday 2020.02.16.

페미니즘은 휴머니즘이 아니다경향 2020.02.16.

샌더스와 코르테스, 심상정과 장혜영 경향 2020.02.16.

나는 임미리 교수의 칼럼엔 반대한다 오마이뉴스 20.02.17

봉준호 붐의 역설들 경향 20.02.18

일본의 국민 버리기작전 경향 20.02.19

코로나19와 우리 안의 바이러스들 경향 20.02.21

트로트 열풍 경향 20.02.21

21대 국회를 어찌할 것인가 경향 20.02.21

탄소 순배출량 ‘0’을 위하여 사사인 20.02.21

생명 가치 넘어선 위험의 정치화’. 경향 2020.02.24.

민주당, 왜 그래경향 2020.02.24.

전광훈과 광신도 시사인 2020.02.24.

봉준호, 피케티, 20 80의 균열 한겨레 2020.02.27.

한국 대학, 코로나19 극복의 전쟁터 경향 2020.02.27.



재난과 엘리트 패닉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 뉴올리언스를 강타했다. 카트리나는 비록 자연재난이었지만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태롭게 만든 요인은 따로 있었다.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보도 참사와 공권력 남용이 그것이었다. 뉴올리언스 이재민 6만명 이상이 대피한 슈퍼돔은 말 그대로 고립무원이었다. 전기는 끊겼고 물공급과 환기는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취재 접근조차 힘든 슈퍼돔 내부의 상황을 폭력과 범죄의 현장으로 보도한 언론들이었다. 슈퍼돔만이 아니었다. 폐허가 된 지역에서 약탈, 총격전, 방화, 강간 등이 자행되고 있으며 인종 갈등까지 확산되고 있다고 판단한 주정부와 연방정부는 군 병력까지 투입했다. 허리케인은 자연재난이었으나 무책임한 언론보도와 과도한 공권력 남용은 사회재난을 초래했다.

 

20055월 말, 허리케인 카트리나(Hurricane Katrina)가 미국 남동부를 강타했다. 이 허리케인은 북대서양에서 발생한 허리케인 중 6번째로 강했다. 사진=pixabay

 

재난 상황은 절차와 형식의 완결성을 우선시하는 관료제 조직을 뒤흔든다. 일상에서는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관료제 업무방식은 재난의 우발성과 비예측성으로 인해 잘못된 판단과 행동으로 귀결되기 쉽다. 예컨대 재난이 닥쳤을 때 고위층 관료들은 정확성보다 빠른 보고만을 요구하고 다시 상부 보고를 위한 성과 중심의 조치를 독촉한다. 이런 상황을 가리켜 학자들은 엘리트 패닉’(Elite Panic)이라 부른다. 재난이 닥쳤을 때 공황에 빠지는 이들은 시민이 아니라 정부 관료, 언론사 간부와 같은 엘리트들인 경우가 많다. 이들은 갑작스러운 재난 상황에서 헐리우드 영화에서 본 듯 한 폭동과 아노미 현상을 상상한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상호부조 행동이나 차분한 대응보다 자신들이 우려하는 현상에만 주목하는 관료들이 어떤 파국을 낳았는지 잘 보여준 곳이 바로 2005년 뉴올리언스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에 대한 불안이 여전히 확산되고 있는 지금 우리는 어떤가? 지난 128일 외교부는 중국 우한 교민 수용시설을 천안으로 검토 중이라는 보도자료를 냈다가 30여 분만에 철회하고 다음 날 아산과 진천으로 결정을 번복했다. 문제는 보도자료 배포 전 중앙일보가 오전 11시에 수용시설이 천안으로 결정되었다는 단독보도를 내면서부터였다. 다른 언론사들이 보도자료 배포 전임에도 이 기사를 받아 쓰면서 천안 시민의 반발을 촉발시켰다. 다시 수용시설이 아산과 진천으로 확정되자 해당 지역민의 반발 또한 뉴스가 되었다. 물론 교민 수용시설의 결정이라는 민감한 문제의 보도자료를 번복한 관계 당국도 책임이 있다. 그러나 천안, 아산, 진천 지역민의 반발을 초래한 당사자는 바로 언론이었다. 촉박한 시일에 쫓겨 서두른 관계 당국, 사실 확인과 취재 없이 비공식 경로로 입수한 정보로 단독 경쟁에 나서는 언론 모두 관료제 성격이 강한 대표적인 조직이다.

 

지난 210일 밤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몰에서 방역업체 관계자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 방지를 위한 방역작업을 하고 있다. 롯데자산개발은 이날 롯데몰·롯데피트인 등 총 7개 점포 영업 종료 후 출입분, 에스컬레이터, 매장 등 시설 전체에 대한 방역 작업을 실시했다. 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과 같은 재난은 일상적인 출입처와 특정 사건 중심의 보도와 달리 시민 모두가 당사자가 되는 예외적 상황이다. 이런 경우 질병관리본부를 비롯한 관계 당국과 정부에 대한 언론의 비판은 속보성보다 정확성과 원인 규명이 우선되어야 한다. 언론이 감염증 확산 방지 대책과 시설에 대한 문제를 제기할 때, 그 메시지는 정부를 대상으로 하지만 동시에 개인과 가족의 안위를 걱정하는 불특정 다수의 시민에게 불안을 가중시킬 수 있다. 당연히 지금 재난 상황에서 언론이 감시와 비판는 중요하다. 그러나 단독 경쟁과 받아쓰기 보도, 사실 확인이 없고 원인을 분석하지 못하는 보도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보다 더 빨리 확산된다. 시민 모두가 당사자인 이번 사태에서 언론은 과연 누구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지 자문할 때다. /김동원 한국예술종합학교 방송영상과 강사 mediatoday 2020.02.16.

 

]“페미니즘은 휴머니즘이 아니다

올해 초 <다크룸>이라는 책을 번역, 출간했다. 1980년대 미국에서 펼쳐진 페미니즘에 대한 전방위적인 공격을 다룬 <백래시>로 유명한 수전 팔루디의 2016년 작품이다. 이 책은 팔루디가 30년 가까이 연락을 끊고 살았던 아버지로부터 변화들이라는 제목의 e메일을 받으면서 시작된다. 아버지는 자신의 달라진 모습이 담긴 여러 장의 사진과 함께 최근 태국으로 건너가 성별재지정 수술을 받고 여자가 되었음을 알린다.

 

아버지 스테파니의 커밍아웃을 납득할 수 없었던 팔루디는 그를 만나기 위해 부다페스트로 떠난다. 그리고 그곳에서 팔루디가 대면하게 되는 스테파니의 모습은 2020년 대한민국 온라인을 떠돌아다니는 온갖 트랜스젠더 혐오적인 이미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예컨대 란제리를 입고 앞섶을 여미지 않은 채 집 안을 돌아다니고,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가족에게 여자라는 걸 인정해 달라고 고집을 부리며, 자신에게만 집중해 달라고 떼를 쓰는 모습들.

 

얼핏 보면 기행이나 폭력으로 비칠 행동의 묘사를 번역하면서 나는 전전긍긍했다. 이 책이 한국에 소개되었을 때, 누군가는 이 길고 복잡한 이야기 속에서 그 부분만을 떼어내 입맛에 맞게 편집하여 혐오 선동을 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실제로 그런 일은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팔루디는 다른 태도를 취한다. 그는 눈앞에서 펼쳐지는 장면들을 맥락에서 떼어내 자극적인 이미지로 박제함으로써 아버지를 배척하지 않았다. 그는 그 행동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10년에 걸쳐 아버지와 대화하고, 질문을 던지고, 탐구했다. <다크룸>이라는 6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책은 그렇게 탄생했고, 그 덕분에 독자는 남성성과 여성성의 신화란 단순히 성적 차이로부터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인종과 계급, 신체적 조건 등이 교차하는 자리에서 형성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팔루디가 정성을 들여 복원한 시간 속에서 스테파니는 사회가 트랜스젠더 여성에게 강요하는 전형적인 이미지, 그러니까 여자보다 더 여자 같은 트랜스젠더변태적 복장도착자사이에서 진동하는 그 이분법적인 이미지를 넘어 자신의 이름과 얼굴을 가지게 되었다.

 

한 사회에서 소수자는 맥락을 강탈당하고 그저 이미지로만 소비되거나, 그들의 삶에 벌어졌던 선정적인 사건들 위주로만 서사화된다. ○○녀로 쉽게 낙인찍히곤 했던 한국 여성이 그러했듯이 말이다. 페미니즘은 이런 탈맥락화와 싸워왔다.

 

그런 의미에서 2020년이 절망적이지만은 않다. 배제의 목소리는 크지만, 동시에 그에 맞서는 이야기는 더 많아지고, 저항담론도 확대되고 있어서다. 비트랜스젠더 중심적이던 한국사회는 조금씩 트랜스젠더의 목소리를 들을 준비를 하고 있다.

 

물론 트랜스젠더 혐오 선동에 앞장선 페미니스트(터프)들을 보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들은 심지어 트랜스젠더에 대한 입장이 어떤가를 기준으로 여성 단체와 여성 정치세력 등에 대해 사상 검증을 하고, 그곳을 신뢰해도 되는지 정보를 공유한다. 단체가 터프를 비판하는 성명서를 내면 좌표를 찍어 비난하고, 트랜스 배제적 주장에 명시적 반대를 하지 않으면 힘을 실어준다.

 

그러다보니 터프의 열기와 에너지에서 동력을 얻고자 하는 개인과 단체들이 등장한다. 자성이 필요하다. 여성운동과 여성정치가 혐오의 얼굴로 오는 것은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트랜스 배제를 고집하는 이들의 말처럼 페미니즘은 휴머니즘이 아니다”. 하지만 이 슬로건의 의미가 페미니즘이 사람을 가려 함부로 대해도 괜찮다는 뜻은 아니다. 이는 첫째, 페미니즘이 이 사회에서 누가 보편 인간으로 규정되었는가를 비판적으로 질문함으로써 인간의 조건을 재규정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리고 둘째, 그렇게 배타적인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 다양한 생명과의 공존을 모색해야 함을 뜻한다. 여성운동은 그런 정치를 지향해야 한다

손희정 문화평론가 경향 2020.02.16.

 

샌더스와 코르테스, 심상정과 장혜영

버니 샌더스 46대 미국 대통령 당선.

 

 

비록 뉴햄프셔에서 간신히 득표수 1위를 했지만 나는 아직은 샌더스가 민주당 후보가 될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21세기는 누가 강렬한 에너지와 팬덤을 가지고 있는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과거 확장세는 약했지만 열정적 지지세가 강했던 트럼프도 예상을 깨고 공화당 후보가 되었다. 비록 앞으로 기업주의 국가를 꿈꾸는 블룸버그 전 시장과의 혈투 등 변수가 너무 많지만 을의 위치에 있는 이들은 샌더스의 든든한 기반이다.

 

 

[정동칼럼]샌더스와 코르테스, 심상정과 장혜영.

만약 샌더스가 민주당 후보가 된다면 미국 역사상 가장 흥미로운 진보 포퓰리즘 대 우파 포퓰리즘의 혈투가 될 것이다. 과거 뉴딜 진보주의 시대를 만들었던 루스벨트는 원래 블룸버그의 기업주의 제국 DNA에 더 가까웠다. 만약 샌더스가 대통령이 된다면 뉴딜 시대에 일부 주 차원에서만 영향력이 있었던 사회민주주의가 행정부에서 전면 시도되는 역사적 의미를 가진다. 1912년 공화주의적 사회주의자 후보였던 유진 뎁스, 1984년 사회민주주의자 후보였던 제시 잭슨의 오래된 꿈이 2020년 현실화되는 셈이다. 샌더스는 아직도 호주머니에 유진 뎁스의 열쇠고리를 지니고 다닌다.

 

 

미국 진보 진영에 더 희망적인 사실은 현재만이 아니라 그 이후도 잡을 가능성이 생겼다는 점이다. 바로 민주당의 미래를 상징하는 샛별인 알렉산드리아 코르테스 뉴욕 하원의원이다. 샌더스가 탄핵 심판으로 상원에서 발이 묶인 동안 그녀의 유세가 없었다면 샌더스는 지금보다 더 어려웠을 것이다. 아직 거칠고 유연성이 떨어지지만 그녀는 폭풍 성장 중이다. 샌더스 이후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그녀가 바통을 이어받는다면 과거 뉴딜 시대보다 더 진보적인 뉴딜 2.0을 시도해 볼 수도 있다.

 

나는 샌더스의 록 콘서트보다 더 뜨거운 유세장에서 자꾸만 백기완과 노회찬이 떠올라 눈물이 났다. 군사독재 치하의 엄혹한 시절, 텔레비전에서 백기완 민중의당 후보의 사자후가 터져 나올 때 난 그날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리고 한국에서 최초로 합법적인 노동자 정당 추진위원회가 출범했을 때 청주교도소에서 노회찬의 상기된 얼굴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평소 지나칠 정도로 감정을 절제하는 그답지 않게 그날 노회찬은 첫사랑에 빠진 소년처럼 들떠 있었다. 당시 백기완과 노회찬에 가슴 뛰던 나의 심장은 촛불과 문재인 현상에 온도가 데워지다가 최근 다시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하지만 샌더스와 코르테스를 보면서 다시 심장이 두근거린다. 내 머릿속에는 질문들이 스쳐 간다.

한국의 심상정은 샌더스가 될 수 있을까? 수십 년간 등대처럼 우직하게 한자리를 지켜온 샌더스의 시간이 드디어 온 것처럼 노회찬과 함께 자리를 지켜온 심상정의 시간이 올 수 있을까? 다보스의 주류 엘리트들조차도 이야기하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거버넌스)와 기후 비상 위기 대응을 촛불의 나라인 우리가 못할 이유란 무엇인가? 공존과 동등성, 그리고 인간존엄이 시대정신이라는 걸 <기생충>BTS가 걸출한 예술로 표현했다면 심상정을 비롯한 범진보 진영의 리더들은 담대한 정치로 증명해야 한다.

 

한국의 다큐 영화감독 장혜영은 코르테스가 될 수 있을까? 나는 코르테스와 장혜영의 열렬한 팬이다. 그들의 연설문은 그저 듣기 좋은 말이 아니라 치열한 진리 안에서의 삶으로 뒷받침된 꿈틀거리는 언어다. 그들은 비록 하버드 대학 로스쿨을 나오지는 않았지만 어느 변호사보다 더 명료하게 사회의 위선과 문제를 드러낸다. 코르테스의 의회 청문회 영상과 장혜영의 세상을 바꾸는 시간강연은 로스쿨 교재로 적당하다. 퇴조해가는 미국과 달리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약자들의 희생을 대가로 편하게 살아가길 거부한 장혜영과 범진보 진영의 넥스트 도전자들은 우리에게 상승하는 미래가 가능할 수도 있다는 걸 보여준다. 이들은 BTS<봄날>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의 정치적 재현이다. 기존 리더들이 현재의 시간을 열어가고 이들이 미래의 시간으로 함께 떠나야 한다.

물론 샌더스와 코르테스, 심상정과 장혜영과 같은 이들 앞에는 거대한 장벽이 기다리고 있다. 난 며칠 전 종영된 <스토브리그>의 마지막 회 결말이 좀 아쉽다. 드라마는 코리안 시리즈 우승을 누가 할지를 결론 내지 않고 시청자의 몫으로 남기며 애를 태운다. 정의로운 원칙에 입각해도 승리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은 그 구단주의 꿈은 과연 실현되었을까? 그의 새로운 도전은 무엇일까? 너무 궁금해서 작가님에게 <스토브리그 시즌 2> 집필 청원운동이라도 하고 싶다. 하지만 난 안다. 시즌 2는 우리가 먼저 열어야 한다는 것을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 경향 2020.02.16.

 

나는 임미리 교수의 칼럼엔 반대한다

민주당 고발은 헛발질이다... 그러나 누가 죽을 쒔고, 개는 누구인가

<경향신문>에 실렸던 임미리 교수의 칼럼 '민주당만 빼고'를 고발했던 더불어민주당의 행태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과거 정권에서 여론에 재갈을 물리려던 것과 무엇이 다르냐는 항의도 맞다. 민주당은 해서는 안 될 일을 했다. 아무리 콕 짚어 '민주당만 빼'자고 했다고 해도 말이다.

 

하지만 임미리 교수의 칼럼은 동의하기 어렵다. 3년 전 겨울, 광화문광장에 섰던 수많은 외침을 '개 죽 쑤는 행위'쯤으로 치부해버린 글을 읽으면서 모욕감마저 든다. 죽을 쑨 사람들은 누구고, 죽을 받아먹은 개는 또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지, 글에 감춰진 적의가 섬뜩하기까지 하다.

 

칼럼에서 임미리 교수는 '죽 쒀서 개 줄까' 염려가 현실이 된 증거로 재벌개혁 좌초와 노동여건 악화를 들었다. 지난 대선과 문재인 정부의 임기 초반의 약속이었던 재벌개혁이 빛바랬다는 지적은 일리 있다. 최저임금 1만 원 공약을 스스로 포기한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의 일천함도 당연히 비판받아 마땅한 대상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이명박·박근혜 정권 때보다 더 싸우기 힘들다'는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의 인터뷰 한마디를 빌려와서 '(그래서) 민주당만 빼고'라고 주장을 합리화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누가 죽을 쒔고, 개는 누구인가

임미리 교수가 인용한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의 인터뷰는 지난 111<경향신문>에 실렸다. 대담 형식의 기사에서 질문자인 기자가 '문재인 정부와 싸우는 게 더 힘들 것 같습니다'라는 질문에 한 전 위원장은 "(문재인 정부가) 왜 자신이 가진 힘을 온전하게 쓰지 않는지 도저히 모르겠어요, 문재인 정부와 싸우는 게 훨씬 더 힘들어요"라고 대답했다.

 

한 전 위원장은 "노동철학이 빈곤하다"는 말로 문재인 정부 대한 실망을 표출했지만, '이명박·박근혜 정권보다 더 나쁜 노동 정책을 펴고 있다'는 주장은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이 정권이 이런 상황을 아프게 받아들이고 지금이라도 제발 궤도를 수정했으면 좋겠어요"라는 한 전 위원장의 당부가 인터뷰 요지였다.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 사진은 지난 131일 오후 고 김용균 노동자 문제 해결 촉구 오체투지 행진을 하고 있는 모습. 김종훈


재벌개혁이 힘을 잃고 노동정책이 뒷걸음질 치는 건 문재인 정부와 여당인 민주당의 친재벌성향이 가장 큰 원인이다. 하지만 재벌개혁과 최저임금 인상을 막고자 국회를 박차고 나가 단식과 거리투쟁을 이어갔던 보수 야당도 당연히 규탄해야 한다. 또 기껏 정치권력 하나 바꿔놓고 '대통령이 이제 다 알아서 하겠지' 하는 무관심과 '최저임금 인상 때문에 나라 망하게 생겼다'라는 무지함도 재벌개혁·노동정책을 멈춰 세운 또 다른 요인이기도 했다.

 

이런 통찰이나 언급이 없이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이 이명박·박근혜 때보다 못하다, 그래서 이번 총선에서는 '민주당 빼고'라고 말하는 건, '민주당보다 차라리 적폐세력 부활이 낫다'라는 궤변으로 호도될 수 있는 위험한 논리다.

 

'최악을 피하기 위해 차악의 선택'을 했다는 주장도 문제가 있다. 당선 가능성이 낮은 진보·개혁적 후보에게 투표해서 최악의 후보가 어부지리로 당선되게 하는 것보다 진보·개혁성이 조금 떨어지더라도 당선가능성에 무게를 두자는 주장, 선거 때면 한번쯤 나오는 주장이긴 하다.

 

그러나 모든 유권자가 이런 주장에 흔쾌히 동의한 건 아니다. 지난 대선에서 진보 후보를 마음에 두고도 홍준표 후보 당선을 막기 위해 문재인 후보를 선택한 유권자가 없지는 않겠지만, 이 때문에 문재인 후보가 당선됐다고 볼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최악을 피하기 위한 차악의 선택' 때문에 국민이 정치인에게 농락당하고 있다는 주장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한 졸렬한 문장이다. 또 문재인 후보에게 한 표가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했던 유권자 입장에서 보면 차악의 선택 주장은 모욕적인 비난이 아닐 수 없다.

 

임미리 교수는 민주당 고발과 취하 후 언론과 소셜미디어에 본인의 이력이 오르내리자 14일 자신의 이력을 공개했다. 특정 정치인의 싱크탱크 출신이기 때문에 정치적 목적이 있었다는 것으로 판단했다는 민주당의 고발 이유에 항의하는 액션으로 보인다.

 

그의 이력을 칼럼 내용과 결부시키는 건 옳지 않다. 과거 한나라당에서 활동했다고 해서, 안철수 캠프의 싱크탱크 출신이라고 해서, 민주당을 비판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 정치지향적이라고 욕할 바도 못된다.

 

그러나 한나라당 소속 서울시의원 출마, 손학규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캠프, 창조한국당 홍보부단장, 안철수 캠프 싱크탱크를 오간 행위는 본인에게는 치열한 삶이였는지 모르지만, 자랑할 건 못된다. 국회의원이 이렇게 당적을 옮겼으면 '정치 철새'라는 손가락질 받기 알맞다. 또 한나라당 소속으로 서울시의원 출마한 것에 대해 선거비용을 대준다기에 출마했다거나, 2013년 당시 안철수 무소속 의원 싱크탱크 '정책네트워크 내일'에 실행위원으로 이름을 올린 걸 두고 '아는 사람 부탁, 캠프에는 나가지 않았다'라는 해명도 무책임하다는 비난이 따를 수밖에 없다.

 

'# 나도 고발하라''#나도 고발해버릴까' 사이에서

 

무거운 분위기의 민주당 확대간부회의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와 박주민 최고위원이 지난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생각에 잠겨 있는 모습연합뉴스

 

임미리 교수가 <경향신문>에 연재한 여러 편의 칼럼에는 부당한 노동현실과 불평등에 대한 통찰, 그리고 이를 해결하지 못하는 정치에 대한 분노가 곳곳에서 드러난다. 더러는 무릎을 칠 정도의 혜안이 담긴 글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게 '문재인 때문이다'라는 획일적 글 마무리는 안타깝다. '조국 장관이 공정을 해쳤고, 이를 방치한 문재인 정권은 나쁘다'는 주장은 수없이 반복되지만 '검찰의 권력 지키기가 도를 넘었다, 보수 정치 세력과 언론도 나쁘다'는 사실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그래서 그의 칼럼에서는 검찰을 감싼 보수정당보다 민주당이 나쁘게 읽힌다. 다가올 총선에서 빼야 할 정당은 적폐 부활을 공공연하게 떠벌리는 보수정당이나 일인사당을 추구하는 정당이 아니라, 집권여당인 민주당이라는 맥락이다. 칼럼 '민주당만 빼고'는 그의 인식에서는 당연한 귀결인 셈이다.

 

임미리 교수에 대한 민주당의 고발이 있자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김경율 전 참여연대 집행위원장, <88만원 세대> 공동저자인 박권일 사회평론가는 '#나도 고발하라'며 잇달아 반발 대열에 동참했다. 이 행위 자체를 왈가불가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이들의 '#나도 고발하라' 저항을 진보진영 전체의 목소리인 것처럼 추켜세우는 건 옳지 않아 보인다.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과 맞물린 조국 전 법무부장관 일가 수사, 이를 두고 '반문재인' 목소리를 내야만 옳은 진보라는 등식도 동의하기 어렵다. 진중권 전 교수도, 김경률 집행위원장도 진보 전체를 대변하지는 않는다. 임미리 교수의 '민주당만 빼고'라는 칼럼에 고발로 맞대응한 민주당의 처사는 어처구니없지만, 반문재인 목소리를 내던 인사들이 '민주당을 찍자말자'는 주장에 덩달아 열을 올리는 것은 이 논란에 편승해 그간 자신들의 주장을 합리화는 얄팍한 시도라고 생각한다.

 

칼럼 '민주당만 빼고'에서 임미리 교수는 촛불혁명을 '개 죽 쑤는 행위'쯤으로 표현했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에게 표를 던진 사람들을 '최악을 피하기 위해 차악의 선택', 정치 발전의 천덕꾸러기 정도로 치부했다. 임미리 교수는 자신을 고발한 민주당을 두고 본인과 국민에게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임미리 교수도 국민들에게 사과해야 한다. 유권자의 선택을 '개 죽 쑤는 행위'로 조롱한 임 교수. '#나도 고발하라'며 임미리 교수의 편에 섰던 인사들의 반대편에서 '#나도 고발해 버릴까' 하는 억한 심정마저 드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는 건, 법의 정의가 검찰과 사법부를 통해 올바로 구현된다는 보장도 없거니와, 고발이라는 행위를 통하지 않고서도 칼럼에 대한 옳고 그름의 판단은 모든 국민이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 졸문을 왈가불가해 되레 글의 무게를 실어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안호덕 오마이뉴스 20.02.17

 

봉준호 붐의 역설들

이번에 봉준호 감독이 남긴 여러 어록중 가장 흥미로웠던 건 LA비평가협회 감독상을 받은 뒤 말한 수상 소감이었다. 그것은 아카데미 4관왕과 봉준호붐이 가진 여러 역설 중 하나를 선명히 표현해줬다. 그는 자기 예술의 원천에 대해, 소년 시절 AFKN(미군방송)에서 야하고, 폭력적인할리우드 영화를 보며 몸속에 영화적 세포를 만들었는데 영어를 몰라 멋대로 이야기를 상상했던 그게 어른이 돼서 보니브라이언 드 팔마, 존 카펜터, 마틴 스코세이지 같은 대가들의 작품이었다고 말했다. 20~30대에겐 낯설 AFKN은 대한민국 안방극장의 황금 채널(2)을 노골적으로 차지한, 냉전문화와 미국의 신식민지적 지배의 상징이었다. 미군방송을 보며 자란 시네마키드가 이룬 아카데미 4관왕은 현대 한국(문화)과 미국(문화)의 관계를 압축하고, ‘한국적인 것의 역설도 유감없이 나타낸다.

 

과연 봉준호의 영화 세포들엔 한국적인 것의 지층이 축적돼 있다. 그는 식민지 모더니즘의 대표격이었다가 자진 월북한 소설가 박태원의 외손이며, 1980년대 말 학생운동에 참여해 구속된 적이 있다. 그런 청년 봉준호를 1990년대 한국영화아카데미와 충무로가 기린아로 양육했다. 처음부터 그는 날카로운 비판의 시선을 풍자와 유머로 감쌌다. 그를 유명하게 만든 <살인의 추억> <괴물>도 엄청난 매력과 규모를 가진 봉준호 리얼리즘’(송강호) 서사였다. 이를 잘(?) 이해한 박근혜 정권은 좌파봉준호를 블랙리스트에 등재해줬다.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일면 무척 게으르고, 일면 역설적 탄성이 들려오는 일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으나 기실 한국적인 것은 이미 미국적이고 또 주변으로서 세계적이었던 것이다. 이 수상과 (자한당조차 숟가락 걸치는) 붐에서 가장 한국적인 것은 한국인들이 이토록 기뻐한다는 사실 자체겠다. 물론 이는 제국의 인정에 갈급했던 찢어지게 가난한 식민지 의식과는 결이 좀 다른 듯하다. 이 성취는 한국영화사뿐 아니라 현대문화사에 온 특이점일까?

 

이로써 한국문화는 이전과는 좀 다른 방식으로, 대단히 역설적으로, 재벌 CJ와 함께, 또 그 힘으로, 미국 중심 문화체제에 더 깊숙이 연루·개입된다. 이 사건은 (월드컵 4강처럼) 한국인의 자기인식 - 문화적 눈높이와 위치 감각을 한번 더 재조정할 것이다. 그리고 한류의 흐름에도 강하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사건을 보며 이정동 교수(대통령 경제과학특보)의 책 <축적의 시간>(2015)을 떠올렸다. 각 분야의 서울대 공대 교수들을 인터뷰해 쓴 것으로, 산업계뿐 아니라 대통령도 읽고 소위 오피니언 리더들에게 영향을 끼쳐 국가-이데올로기-서사 재구성의 중요한 소재가 됐다. 그 서사는, 한국의 눈부신 경제성장을 가능케 한 추격형 발전은 이제 끝났고, 앞선 미국·일본·유럽의 선진국과 엄청난 속도로 쫓아오는 중국 사이에 끼여 저성장·저혁신 위기를 맞게 됐다는 줄거리다. ‘개념설계역량이란 게 있어야 진정한 선진국인데 추격형 발전국가인 한국엔 그게 없다. 그래서 위기를 돌파하고 혁신하려면 서구 선진국과 같은 오랜 경험과 암묵지 축적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계속 발전구호를 초조히 외치면서도 한편 오랜 축적만이 그것을 가능케 한다는 당착이 책을 감싸고 있다. 그래서 의아하지만, 변해온 세계체제 속에서의 대한민국의 좌표와 위치 감각을 새로 표현해줬기 때문에 책은 인기를 끌 수 있었다.

 

<기생충>의 아카데미 4관왕 또한 이 사회가 축적한 또 다른 것의 결과다. <축적의 시간> 식이라면 영미나 일본처럼 앞으로도 더 세계인에게 잘 팔릴 콘텐츠의 원천 기술을 갖기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식으로 귀결되겠지만 문화예술의 축적과 탁발성은 그와 다를 것이다.

 

봉준호 같은 세계적 거장이 또 나올까? 사람을 기생충처럼 만들고 저 깊은 지하로 수직계급화하는 극심한 불평등이 당장 해소될 전망이 없어 보이니 일면 낙관적(?)이다. 높은 예술은 비판정신과 고통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분명 어딘가에 제2, 3의 청년 봉준호가 자라고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사회학과를 다니며 학생운동 덕분에 만든 원초적 개념설계역량같은 게 고갈되고, 예술과 문학 같은 데 투신하려는 청년들이 사라지고, 의대와 공무원 지망생만 양산하는 사회라면 비관적이다.

 

하여 봉하이브<기생충> 붐엔 감당 안되는 더 큰 아이러니가 있다. 처음 개봉 때 호오·찬반이 엇갈렸던 <기생충>의 충격적이고 불편한계급적대 서사는 어떻게 수용 가능한 풍자·유머, 그리고 한국적인 것으로 전환됐는가? 부자들은 느낀다는 빈자들의 냄새와 그런 부자를 도륙하고 싶은 빈자의 살의는 어떻게 할까? 이 세계적인, 세계에 시전된 불평등과 적대를 해결하러 나설 때가 아닌가. /천정환 민교협 회원·성균관대 교수 경향 20.02.18

 

일본의 국민 버리기작전

일본인들은 미즈기와(水際·물가) 대책으로 불리는 일본 정부의 대응방침에 안심했을 것이다. 해안을 경계로 방어선을 쳐 코로나19의 상륙을 막겠다는 쇄국(鎖國)작전은 섬나라에 익숙한 발상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예전부터 이런 식으로 나라의 안전을 지키고 평화를 누려왔다. 그러나 이런 대처법은 세계가 하나로 연결되면서 예측불허의 리스크가 커지는 글로벌 시대엔 잘 먹히지 않는다. 더구나 경직된 거버넌스(통치구조)와 결합할 경우 기능부전에 빠지기 십상이다. 요코하마항에 정박 중인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에 대한 미즈기와 작전은 일본형 시스템의 난맥상을 여실히 드러냈다.

 

프린세스호에 대해 2주간 봉쇄조치를 내렸을 때 아베 신조 정부는 이 배가 거대한 바이러스 배양접시가 될 가능성에 주목하지 않았다. 탑승자 3700명을 모두 하선시켜 전수조사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지만 아베 총리를 본부장으로 하는 대책본부의 매뉴얼에는 빠졌다. 그렇게 한번 대책의 틀이 짜이다 보니 밀폐된 선내에서 감염이 급속히 번졌는데도 대응은 더뎠다. 초기 실패를 인정하고 싶지 않다 보니 대책의 틀을 바꾸지 않는 선에서 찔끔거리다 화를 키운 것이다. 일본 정부가 애초부터 나쁜 마음을 품었을 리는 없다고 해도, 결과적으로 사람의 안전은 물가 저편에서 실종됐다. 크루즈선 환자는 일본 내 감염자 통계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얄팍한 생각도 일을 그르치게 했다. 아베 총리의 최대 관심사는 도쿄 올림픽이 영향받지 않도록 일본 내 감염자 수를 억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크루즈선 사태는 나라가 1000명이 넘는 자국민의 안전을 팽개치는 기민(棄民)’사태로 확대됐다. 급기야 각국 정부가 비행기를 띄워 자국민 구출에 나서고, 올림픽을 5개월 앞둔 일본은 방역 후진국이란 오명을 뒤집어쓰게 됐다.

 

그간 일본의 미즈기와 대책은 반드시 기민을 동반하곤 했다. 경제의 거품이 꺼진 뒤 2000년대 빈곤층이 급증하자 일본 정부는 생활보호 신청자가 급증하지 않도록 신청 단계에서 막았다. 노모의 치매를 돌보느라 파견사원 일을 그만둔 54세 남성이 생활보호를 받기 위해 20057~8월 세차례나 교토시 복지사무소를 찾아갔으나 핀잔만 받았다. 막다른 처지에 몰린 남성이 노모를 살해하고 자살을 시도하는 비극을 불렀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1년도 채 안돼 일본 정부는 피폭 우려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을 귀환시키기 시작했다. 안전을 위해 후쿠시마현 전체를 방사선관리구역으로 지정하고 무인지대로 만들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은 묵살됐다. 거슬러 올라가면 1950년대 미나마타병 사태 때도 일본 정부는 줄곧 기업편을 들다가 10년이 지나서야 공장폐수가 원인임을 인정했다. 위기 때마다 정부는 방어선을 치고, 약자들을 그 너머에 내다 버렸던 것이다.

 

전후 경제성장 시대에 만들어진 일본형 시스템과 매뉴얼은 정밀함에선 세계적 수준이었을지 몰라도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감수성은 빈약했다. 1990년대 이후 글로벌 시대의 다양한 위험과 도전들을 감당하기에도 역부족이었다. 호황기의 풍요함에 가려진 시스템의 결함이 헤이세이(1989~2019) 30년간 표면화되면서 일본은 내리막길로 치달았다. 물론 전환의 기회가 없지는 않았다. 1980년대 말 여성 대표 도이 다카코가 국민적 인기를 얻었을 당시 사회당이 노동조합에 의존하던 체질에서 벗어나 젠더와 지역, 세대 등으로 영역을 넓혔더라면 일본 정치는 달라졌을지 모른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탈원전의 열망을 지렛대로, 일본을 안전·여성·생태의 가치를 중시하는 나라로 바꿔나갈 기회도 있었다. 이런 찬스들을 놓치면서 일본은 민주주의와 인권의 감수성을 키우지 못한 채 열화(劣化)’해갔다.

 

이번 사태에서 가장 눈에 띈 것은 일본 내 여론조사에서 70%가 승객들을 하선시키지 말라고 응답했다는 점이다. 이번 사태를 승객의 자기책임으로 돌리는 풍조는 일본 정부의 기민적 태도가 사람들에 내면화됐음을 보여준다. 이렇게 일본은 예전 우리가 알던 선진국에서 위험사회로 퇴행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초기 한국 정부의 대응은 비교적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6년 전 벌어진 세월호 참사가 그랬듯 미즈기와기민은 한국에서도 언제든 벌어질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는 여전히 하루 2~3명꼴로 사람이 산재로 죽어가며, 외국인과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 이어지고 있다. 일본 크루즈선 사태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는 이유다.

서의동 논설위원 경향 20.02.19

 

코로나19와 우리 안의 바이러스들

인간은 큰 것을 짓거나 부술 수는 있지만 미세한 바이러스조차 감당할 수 없는 약한 존재임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사명감 투철한 의학은 인간의 몸을 지키기 위한 전투에서 많은 성과를 냈다. 늘 그렇듯 지금의 사태 또한 인간 자신이 재촉했다. 스스로 바이러스의 숙주가 되길 자청했다. 인간을 조종하는 탐욕바이러스에 의해서다. 코로나19처럼 탐욕바이러스에 효과적인 백신은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다. 실천 없는 처방만 난무한다.

 

코로나19와 탐욕바이러스는 닮은 점과 다른 점이 있다. 닮은 점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코로나19는 전자현미경이라야 볼 수 있다. 육안으로는 볼 수 없다. 탐욕바이러스 또한 저지른 일의 흔적을 보고 나서야 알 수 있다. 기획단계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안티오이디푸스>에서 욕망의 대명사인 자본주의를 통해 기관 없는 몸이라고 한다. 이 양자는 증식만이 있다. 코로나19는 생물과 무생물의 중간체로 대사작용과 같은 생물학적 기능이 없다. 증식이 있을 뿐이다. 탐욕바이러스 또한 문명이라는 실체는 있는데 예측, 상상, 경쟁 등을 통해 무한히 확산된다.

 

다른 점은 코로나19는 원래 동물의 몸에 기생하고 있었으며, 탐욕은 지구를 거덜 내고 있는 인간의 몸에 기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후자의 경우 최근 수많은 상을 휩쓸고 있는 영화 <기생충>에서 보듯이 인간사회를 계층화하는 데에 한몫하고 있다. 다를 것 없는, 같은 인간인데도 서로를 무시하고 배타적으로 대한다. 주거환경도 다르다. 욕망바이러스는 자신의 숙주가 사회적 신분이 상승될수록 다른 인간을 지배하게 한다. 그 진영에 들지 못한 인간에게는 자신을 어떻게 증강시킬 것인가 절치부심하게 한다.

 

사실 코로나19가 인간보다는 앞서 존재했다. 진화의 관점에서 본다면 인간은 후손에 해당한다. 오랫동안 서로 미지의 존재였으므로 적절한 거리를 두고 공존해야 함에도 탐욕바이러스는 코로나19를 인간의 몸에 불러 들였다. 새로운 숙주는 새 세상이나 다름이 없다. 인간과 문명의 이기를 통해 미개척의 영토로 진격하고 있다. 욕망바이러스의 아성인 도시는 해방공간이나 다름없다. 애석하게도 저항력 없는 수많은 사람이 쓰러지고 있다.

 

다행히 인간의 마음에는 백신을 만들어내는 번뜩이는 이성바이러스도 있다. 과학성과를 공유하며 삶의 환경을 부단히 개선해온 바이러스다. 머지않아 코로나19에 대한 백신을 만들어낼 것이다. 공진화하는 변종이 생기더라도 집단지성으로 대응할 수 있다. 허약한 인간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서로 도와가며 척박한 환경을 극복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참에 욕망의 맹목적인 요구대로 자연을 갈취했던 도구적 이성은 반성과 함께 새로운 길을 물색해야 하리라.

 

나아가 욕망 대신에 지구의 모든 생명체가 공존하며 상생하는 생태바이러스를 키워야 한다. 욕망바이러스가 창궐하는 현대문명은 한계에 이르렀다. 그 이유는 인간이 지구의 정복자라는 착시현상에 있다. 지구는 수백만 종의 생명체가 함께 사는 유일한 낙원이다. 누가 독점할 수는 없다. 코로나19는 그 오만에 대한 항거다. 이 뒤에도 수많은 바이러스와 세균들이 인간을 숙주로 둔 욕망에 도전할 것이다. 모리오카 마사히로는 <무통문명>에서 우주와 소통하는 인간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인간가축화에 매몰된 신체의 욕망에서 벗어날 것을 주문한다. 중용과 조화를 통한 문명의 질적 전환을 가져올 때가 되었다.

인간은 또 공감바이러스를 가지고 있다. 이웃나라에서 수천명이 유명을 달리하는 이때, 우리는 애도해야 한다. 이들은 인류의 잘못을 자신의 목숨으로 대신한 대리고(代理苦)를 짊어진 자들이다. 가슴을 열고 이 영혼들이 고통 없는 천국으로 가도록 기원해야 하리라. 그리고 마스크 속으로 잠적한 말은 잊어버리고 침묵해야 한다. 단절된 일상, 낯설고 때로는 고통스러운 풍경이 우리 인간에게 어떤 의미를 던져주고 있는지 깊이 생각해야 한다.

원익선 원광대 정역원 교무 경향 20.02.21

 

트로트 열풍

니가 기쁠 때 내가 슬플 때, 누구나 부르는 노래(중략), 사랑도 있고 이별도 있고 눈물도 있네(중략), 울고웃는 인생사 연극같은 세상사, 세상사 모두가 네박자 쿵짝.” 가수 송대관씨가 부른 ‘4박자. 노랫말에는 트로트(Trot)의 맛, 색깔, 리듬, 의미가 오롯이 담겨 있다. 트로트는 20세기 초 영미권 사교댄스 연주리듬 폭스 트로트가 바탕이 됐다. 일본가요 엔카의 영향을 받았지만 조선 민요의 리듬·정서를 담고, 강약의 박자를 섞고, ‘꺾기 창법이 보태지면서 한국 전통가요로 정착됐다. ‘엔카의 변형’ ‘친일논란도 있지만 때로는 서슬 퍼런 강점기 일본에 맞서 민족정서를 담아낸 저항의 시였고, 지친 서민의 삶을 보듬어준 응원가였다

 

가요사 첫 트로트로 알려진 황성옛터가 열여덟 가수 이애리수에 의해 처음 불린 1928년 서울의 단성사는 눈물바다가 됐다. 나라 잃은 설움에 관객들이 복받쳐 울었던 것이다. ‘목포의 눈물’ ‘나그네 설움등은 피지배 민족의 설움을 담아낸 노래들이다. 해방 이후 1980년대까지 정통·엘레지·블루스 등 다양한 장르로 영역을 넓혀온 트로트는 그러나 발라드·댄스·힙합·랩 등에 가려 가요계 비주류로 밀려났다. 이후 한국의 대중음악은 ‘BTS’ ‘빅뱅’ ‘소녀시대등 아이돌그룹을 중심으로 한 ‘K-의 무대였다.

 

트로트 열풍이 거세다. 그제 방영된 TV조선 <미스터 트롯>은 시청률 30.4%를 기록했다. 그간 <무한도전> <12> 등 국민예능프로그램만이 기록했던 수치다. 음원사이트 지니뮤직 분석결과, 최근 1년 새 200 차트에 진입한 트로트는 5.8배 늘었고, 스트리밍 이용도 74%나 증가했다. 한국갤럽이 발표한 ‘2019년을 빛낸 가수에 송가인, 장윤정, 홍진영, 김연자씨 등 트로트 가수 4명이 포함됐다. <미스터 트롯> <나는 트로트 가수다> 등 방송 프로그램이 기폭제였다. ‘K-에 가려 소외됐던 중·장년, 노년 세대의 정서를 공략한 것이 주효했다. <미스 트롯>이 배출한 송가인씨, ‘유산슬로 변신한 국민MC 유재석씨가 청년세대와 10대들까지 자극하면서, 트로트는 단숨에 모든 연령층이 좋아하는 국민가요가 됐다. 트로트가 정치 부재’ ‘힘든 경제’ ‘코로나 공포로 가슴이 휑해진 국민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고 있는 요즘이다.

김종훈 논설위원 경향 20.02.21

 

21대 국회를 어찌할 것인가

아직 구성되지도 않은 21대 국회를 걱정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지금까지 각 정당의 추세를 선거일까지의 기간에 투사해 볼 때, 21대 국회는 벌써 대단히 퇴행적인 국회가 될 것이 거의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의 향후 4년은 그러한 국회를 업고 가기에는 몹시 지쳐있고 또 매우 시급한 과제들을 너무나 많이 안고 있다. 그래서 심각한 질문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하잘것없는 권력 싸움에 골몰할 저 300명을 어떻게 안고 가야 할 것인가?”

 

의회 민주주의가 그 몇백년의 시련 속에서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지금과 같은 위기의 시절마다 그러한 기능을 하는 의회가 나타나 주었기 때문이다. 19세기 초 영국은 나폴레옹 전쟁 이후 급변한 국제 정세와 정신없이 진행되는 국내의 산업혁명 그리고 여기서 비롯된 격심한 사회 갈등의 위기에 처한 바 있다. 1832년의 의회 개혁으로 나타난 개혁 의회는 이러한 시대적 도전에 맞서 구빈법 철폐를 위시한 실로 과감한 입법 조치를 통하여 영국을 산업혁명과 세계화에 최적화된 나라로 바꾸어 내게 된다. 2차 대전을 전후해 새롭게 나타난 주요 산업국가들의 의회 또한 자본과 노동이라는 두 세력의 존재를 인정한 위에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걸친 과감한 개혁을 통하여 전후 산업민주주의를 건설할 수 있었다.

 

지금의 대한민국 또한 임박한 기후 및 생태 위기, 기술과 산업의 급격한 변화, 지정학적 조건의 변화, 인구학적 변화, 심각한 불평등과 실업 등 근본적이고 심각한 위기 몇 개를 함께 안고 있다. 이런 변화들은 알량한 행정 명령이나 조례 따위로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것들이 아니며, 일관되고도 통일된 미래 사회의 상을 품으면서 그에 기반한 분명한 철학과 방향을 제시하는 굵직한 법안들을 마련하고 이에 대해 국민 다수의 동의와 지지를 얻어야만 그나마 씨름이라도 해 볼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런데 우리의 국회는 과연 이런 일을 할 수 있을까? 여기에서 옛날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정부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못 됩니다. 정부 자체가 문제입니다.” 지난 10년간의 경험을 보면, 과감하고도 신속한 입법을 통한 우리 사회 전반의 업데이트는커녕, 모든 법안을 정쟁과 게으름으로 막아버리고 이를 통해 사회 전체를 마비시키고 고통을 가하는 것이 지난 국회의 모습이었다.

 

21대 총선을 두 달 정도 앞둔 지금 더 퇴행하는 모습이 보인다. 각 당의 대표 공약이랍시고 나오는 것들은 미래를 위한 사회 개조는커녕 타깃으로 정한 유권자들에게 아부하려는 의도가 분명한 한심하고 낯부끄러운 것들이다. 각 당이 새로이 영입했다는 인재들은 그저 그렇고 뻔한 내러티브를 하나씩 둘렀을 뿐 기실 기회를 노려온 정치낭인들이 대다수이다. 가장 절망스러운 것은, 선거 쟁점이라며 들려오는 소식들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기는 했지만 이는 간판만 내걸었을 뿐 실질적인 정당 활동은 별로 내실있게 할 생각이 없으면서 비례 의석만 노리는 알박기 정당- ‘진보 정당들도 예외가 아니다 - 의 먹잇감으로 전락했을 뿐이다. 이 와중에 집권 여당은 국민들 대다수가 진저리를 치고 있는 해묵은 이야기들을 꺼내 들고 이번 총선을 치르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에 화답하여 주요 야당들은 또한 진저리가 나는 대여 공세로 내용을 채우고 있다. 이 와중에 당선되는 자들 중 우리 사회의 미래를 품고 있는 이들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설령 10명이 넘는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과연 나머지 290명을 움직여서 21대 국회를 개혁 의회로 만드는 일이 가능할까?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부터 준비를 해야 한다. 21대 국회가 퇴행적 정쟁으로 날을 지새우면서 해결책은커녕 가장 심한 문제가 된다면,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이들을 업고서 앞으로 나가야 할까? 먼저 민간에서 아래로부터 만들어지는 정책 플랫폼을 만드는 작업이 중요하다. 정당과 국회가 사회 비전을 제시하는 기능을 포기한다면, 우리 스스로가 오픈소스의 방식으로라도 장기적 사회 비전과 거기에 합당한 지금 시급한 정책 및 제도 개선의 내용들을 만들어 낼 필요가 있다. 둘째, 각종 비정부 비영리 단체들은 입법 청원이나 로비 같은 것에 매이지 말고 이렇게 마련된 내용을 가지고 독자적 내용과 행동으로 국회를 압박 아니 포위해 들어가야 한다. 총선에서 찍을 사람과 정당이 없다고 한탄하는 이들은 선거 이후의 이러한 활동에 뜻을 모을 일이다. 물론 다가오는 선거에서 모두 최대한 지혜롭게 투표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한심한 국회가 생겨난다 해서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말자. 이제부터 우리는 저 골칫덩이 국회를 떠메고 새로운 사회로 전진해야 하는 새로운 도전을 안게 되었다.

홍기빈 칼폴라니 사회경제연구소 소장 경향 20.02.21

 

 

탄소 순배출량 ‘0’을 위하여

2050 저탄소사회 비전 포럼이 ‘2050 장기 저탄소 발전전략(LEDS)’을 발표했다. 유엔이 권고한 목표에는 이르지 못하지만 지금까지와는 질적으로 다른 보고서이다.

 

252050 저탄소사회 비전 포럼이 ‘2050 장기 저탄소 발전전략(LEDS)’을 발표했다. 정부는 올해 말까지 같은 이름의 계획을 유엔 기후변화협약에 제출해야 한다. 지구의 평균온도 상승률을 2이하로, 나아가서 1.5이하로 억제하기 위해 참가국들이 각기 스스로 결정한 감축 목표(NDC)를 제출해야 한다. LEDSNDC 설정을 위한 중장기 비전이다. 그러니까 환경부가 공개한 이 보고서는 파리협정의 약속과 검증(pledge and review)’ 절차를 밟기 위한 첫 번째 단계로 민간의 의견을 종합한 것이다.

 

보고서는 2050년 배출 목표로 다섯 가지 시나리오를 제출했다. 2017년 약 7t의 온실가스 배출을 기준으로 삼아 1안은 약 75%(17890t 배출, 석탄발전 비중 4%), 2안은 69%, 361%, 450%, 540%를 감축하는 안이다. 현재 제출되어 있는 한국 정부의 감축 계획이 지구의 온도를 3에서 4올릴 정도로 매우 불충분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일취월장했다. 하지만 가장 강력한 1안도 유엔이 권고한 2050넷제로(탄소 순배출량=총배출량-탄소 흡수량=0)’ 또는 탄소 중립에 이르지 못한다.

 

LEDS는 문재인 정부의 전환 전략이 되어야 한다

이 보고서는 기술혁신을 핵심으로 발전, 건축, 교통 등 분야에서 일어나야 할 전환의 내용을 담았다는 점에서 그동안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이나 정책기획위원회의 2050 전략이 기후위기를 거의 완전히 외면한 데 비하면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였다.

연합뉴스

 

하지만 이 보고서에는 교토의정서 이래 각국의 약속과 계획이 계속 실패한 이유를 다루지 않았다. 기후위기가 글로벌 공공재 게임, 또는 126개국 70억명이 참여하는 ‘n명 죄수의 딜레마 게임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는 처음부터 논의 주제에 오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똑같은 이유로 파리협정의 앞날도 그리 밝지 않다. 각국은 세계 전체가 감축해야 할 총배출량에서 되도록 적은 비중을 차지하려고 경쟁할 것이다. 일부 유럽 국가를 제외한 모든 나라가 5안을 채택할 강력한 유인을 지니고 있으며(미국 상원이 교토의정서를 비준하지 않은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그 약속마저 지키지 않는다 해도 적절하게 응징할 방법도 없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은 세계 공통의 탄소 가격을 설정하는 것이고(이 보고서 42쪽에도 나오듯이 2020년 이산화탄소 t40~80달러, 205050~100달러가 제시되고 있다), 모든 나라의 합의를 끌어내기가 어렵다면 주요국 몇 나라가 탄소동맹(클럽)을 맺어 먼저 202050달러를 선언하고 장차 역외국에 탄소관세도 부과하는 것이다. 공통의 탄소 가격은 우리가 부담을 갖는 만큼 다른 나라에도 부담이므로 모든 나라가 줄이기 경쟁을 하지는 않는다. 만일 이들 나라가 탄소기금을 만들 수 있다면 후진국에 전환 보조금을 주어 참가국을 늘릴 수 있을 것이다.

 

각국은 이 가격에 맞춰 국내 탄소세를 매길 수 있다(이 보고서는 배출권 거래제도의 획기적 전환을 제시하고 있다). 국내에서 생산된 1차 에너지원과 수입 에너지원에 탄소 함유량에 따라 세금을 매기면 탄소를 포함한 상품이나 서비스의 가격도 차례로 올라갈 것이다. 기술혁신과 에너지 전환, 산업 전환의 비용이나 속도에 비춰서 넷제로가 일어날 때까지 탄소 가격은 올라간다. 물론 탄소세 수입(2020년 탄소세를 50달러로 한다면 현재의 에너지 관련 세를 제외한 추가 20달러분에 대한 세수 약 14조원이 증가한다)은 이 전환에 따라 피해를 많이 보는 국내의 하위 계층과 탄소집약적 산업의 구조조정에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죄수의 딜레마를 해결하는 방법은 남이 하면 나도 한다는 협동을 유도하는 것이고, 공통의 탄소 가격은 모두에게 협동의 유인을 제공하는 제도이다. 물론 그레타 툰베리의 연설, 한겨레기후악당 대한민국을 기고한 초등학생 김아진양의 글을 보며 반성하고 생태시민의 규범과 행동양식을 확립하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여태까지와는 질적으로 다른 이번 보고서가 이런 전략적 핵심을 반영해서 실제로 정부의 전환 전략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정태인 (독립연구자·경제학) 사사인 20.02.21

 

생명 가치 넘어선 위험의 정치화’.

여러 시행착오 끝에 위험의 정치화는 하나의 논리로 모아지고 있고, 이번에는 상당히 성공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 논리는 이런 것이다. “진즉에 중국인 입국금지를 했어야 했는데, 북한이나 러시아조차도 시행하는 대책을 한국 정부는 안 하고 있다가 일을 키우는 무능을 드러냈다. 그 이유는 3월로 예정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이 취소될까봐 두렵고, 그러면 시 주석의 도움을 얻어 꽉 막힌 대북관계의 실마리를 뚫어 총선에 승리하려는 전략이 망가지기 때문이다라는 것이다.

 

나는 청와대가 당연히 이런 고려를 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 말고도 수없이 많은 다른 고려사항이 있었을 것이다. 세상 모든 일을 기---굴욕외교, ---종북으로 몰고 가는 기적의 논리는 어이없지만, 사람들이 패닉하기 시작했고 선거가 코앞인 점을 감안하면 이번에는 먹혀들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내키지 않는 예측이지만, 정부·여당은 과학의 논리와 정치의 논리를 구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위험의 정치화라는 전략 앞에 물러설 수밖에 없더라도 몇 가지는 기록해두고 싶다. 나중에라도 돌아보고 성찰할 수 있어야 문명국가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첫째, 북한이나 러시아 등이 중국인 입국금지를 하는 이유는 그 나라들의 정부가 우리 정부보다 유능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가진 의료수준과 인프라를 고려할 때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중국인 입국금지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국인 입국금지를 하고 있는 40여개국 중 미국, 일본 등 4~5개국만 선진국일 뿐 나머지는 북한, 러시아, 베트남, 파푸아뉴기니, 피지, 몰디브, 팔라우, 카자흐스탄, 모리셔스, 가봉 같은 나라들이다. 트럼프의 미국은 멕시코 이민자들을 강간범이라 부르며 국경장벽을 세우기도 했는데 무역전쟁 상대국인 중국을 향해 입국금지를 망설일 이유가 없다. 일본은 입국금지를 해놓고도 특유의 정보비공개 비밀주의로 인해 낭패를 보고 있다. 반면 한국처럼 아직 중국인 입국을 금지하지 않고 있는 나라는 벨기에, 영국, 캐나다, 핀란드,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스페인 등이다. 앞으로 코로나19 사태가 더 심각해지면 이들도 중국인 입국금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오늘까지 선진국의 선택이 무엇인지는 분명하다.

 

둘째, 지금까지 알려진 대량 확산은 중국인이 아니라 한국인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메르스 사태 때 바이러스의 대량 확산은 삼성서울병원과 평택성모병원 두 곳에서 주로 이루어졌다. 이번에는 신천지 대구교회와 청도대남병원이 그런 역할을 했다. 지금 집중해야 할 것은 신천지 대구교회 관련자들을 최대한 빨리 찾아내 지역사회로부터 격리하는 일이다. 확진자 수가 놀라운 속도로 늘어나고 있지만 신천지 관련자들을 제외하고 보면 아직까지 폭증 추세는 아니다. 이들을 찾기만 하면 아직 기회의 창은 완전히 닫히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런 시기에 위험의 정치화에 몰두하는 이들은 수천명을 모아 정치집회를 열고 한때 야당의 대선후보로 거론되던 사람은 거기에 숟가락을 얹고 있다. 정권에 대한 맹목적 증오가 생명의 가치를 넘어서고 있다.

이 대대적인 선전전에서 정부가 이기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지역사회 감염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네트워크 전파의 특성상 패닉은 늘어나고 선전은 더 잘 먹힐 것이기 때문이다. 의사결정의 환경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경향 2020.02.24.

 

민주당, 왜 그래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초선·서울 강북을)은 지역 민심이 싸늘해진 것을 실감하고 있다고 했다. 길에서 만나는 시민들, 특히 중도층들의 태도와 말투가 크게 달라졌다는 것이다. 어떻게 달라졌을까.

 

종전에는 민주당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박용진이 열심히 하니까 찍어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요즘에는 박용진은 열심히 하지만 민주당이 마음에 안 들어서 못 찍겠다고 한다. 이건 어마어마한 변화다.”

 

민심의 변화는 여론조사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한국갤럽 조사결과 여당 승리론은 지난달 52%에서 39%로 줄었다. 반대로 야당 승리론37%에서 50%로 높아졌다. 여당을 향해 있던 중도층이 야당으로 돌아선 때문이다.

 

불과 한 달 만이다. 올 초만 해도 민주당은 예산안과 선거법, 검찰개혁 법안을 처리하면서 자신감이 충만했다. 인재영입과 공약 발표 등에서도 한 발짝 앞서 나갔다. 거칠 게 없던 민주당의 발목을 잡은 악재는 여러 가지이지만 대표적으로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 당 밖에선 추미애 법무장관의 무리한 엄호, 당내에선 임미리 교수 칼럼 고발과 서울 강서갑 공천에서 보여준 조국 대리전이다.

 

추 장관의 공소장 비공개수사·기소 분리 방안은 옳고 그름을 떠나 시기가 적절치 않았다. 검찰이 청와대 전·현직 인사 13명을 기소한 공소장은 검사의 주관과 예단이 가득 찬 정치선언문과 다를 바 없었다. 법관에게 선입견을 주어서는 안된다는 공소장 일본(一本)주의에도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었다. 그건 차라리 시민들이 정치검찰의 민낯을 볼 수 있도록 공개하는 게 나았을 수 있다. 추 장관은 그걸 숨김으로써 더 많은 정치적 오해를 불렀고, 더 많이 잃었다.

 

임 교수 칼럼, 서울 강서갑 공천을 관류하는 공통점은 민주당의 오만과 독선이다. 임 교수 고발에서 민주당은 교수의 작은 핀잔도 듣기 싫어하는 찌질이 정당으로 비쳤다. 강서갑 공천에서는 조국에 비판적이었던 초선 의원(금태섭)의 소수의견도 수용하지 못하는 불통 정당의 이미지를 보여주었다. 대통령은 조국을 놓아주자고 했지만, 되레 민주당은 잊힌 조국을 다시 소환했다. 중도층은 이런 모습을 보고 민주당=오만이라는 심증을 확증으로 굳힌 것이다.

 

선거에서 승리하려면 중도층이 확장되어야 한다. 하지만 민주당은 핵심 지지층만 바라보며 판단하고 행동해왔다. 열혈 지지층은 꼭 필요한 자산이지만, 때론 부담이 될 수 있다. “팬덤을 기반으로 한 정치는 오로지 사람에게만 주목한다. 무슨 이야길 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이야기했느냐를 따진다. 그 사람이 내 편을 들면 동지고, 아니면 무조건 적이다라고 유성엽 의원은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말했다. 민주당은 내 편을 들지 않으면 적으로 간주했다. 그 결과 중도층을 놓쳤다.

 

총선은 50일 남았다. 역대 여론조사와 실제 선거 결과를 비교하면 총선은 대통령 지지율을 보고 전망하는 게 정확하다. 4년 전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은 총선 직전 36%로 떨어졌다. 새누리당 지역구 득표율 38%와 거의 똑같다. 엊그제 갤럽조사에서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은 45%였다. 수도권의 경우 지역구에서 40% 이상 득표하면 당선권이다. 아직은 해볼 만한 지지율이다.

 

정치권은 앞으로 몇 번의 출렁임이 있을 거라고 보고 있다. 선거가 가까워질수록 양당 대결 구도는 짙어질 것이다. 역대 정권의 임기 중반에 치러지는 총선은 정권 심판론이 대세였다. 보수야당은 상승세다. 미래통합당은 난제였던 물갈이 작업을 착착 진행하고 안정권에 접어든 모습이다. 당 안팎에선 김형오 매직이란 말까지 나온다. 1당을 기대해볼 만하다는 얘기가 공공연하다.

민주당은 빨간불이 켜졌다. 여당은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 좋든 나쁘든 모든 게 집권당의 책임이라고 생각하고 겸손해야 했지만, 시민들의 눈엔 그렇게 비치지 않았다. 인적 쇄신도, 공천 흥행에도 성공하지 못했다. 한 달 동안 득점 없이 있는 점수마저 까먹으며 허송세월했다. 4년 전 새누리당이 그러다 폭망했다. 남은 시간 동안 호재는 없고 경제·코로나 등 악재만 있는 상황이다. 이대로라면 현재의 지지율을 지키기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비례민주당아이디어는 그런 절박함에서 나온 자살골이다. 절망이 기교를 낳고, 그 기교 때문에 또 절망한다는 말 그대로다. 시민들은 민주당, 왜 그래라고 묻고 있는데, 민주당은 하늘만 쳐다보고 있다. 거북이 등에서 털을 뜯고 있다. 박래용 논설위원 경향 2020.02.24.

 

전광훈과 광신도



광신도(狂信徒)는 이성을 잃고 특정 대상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사람을 말한다. 애초 종교적 개념이었으나 지금은 이념, 개인, 집단 등으로 대상이 확장돼 사용된다. 자기 자신을 망칠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고 사회에 해악을 입히는 경우가 많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가 1천여개 영어 단어의 어원을 다룬 책 <교양영어사전>을 보면, 광신도(fanatic)10가지 특징이 나온다. 영국 심리학자 맥스웰 테일러의 <광신도들>(The Fanatics)에서 인용한 것이다.

광신도는 다른 모든 일을 배제한 채 하나에만 집중하고, 세상을 오직 자신의 관점에서만 보며, 정상적 수준의 사회적 압력에 무감각해 사회적 표준에서 많이 벗어나고, 어떤 일을 하거나 하지 말아야 하는지 기본적인 분별력이 없으며, 모순에 대해 무한한 관용을 가지고 있고, 자신이 하는 일의 적합성에 추호의 의심도 없으며, 흑백 이분법을 사랑하고, 변화를 한사코 거부하며, 다른 사람의 삶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광신을 유지시킬 수 있는 하위 문화에 탐닉한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21일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광화문광장과 서울광장 등에서의 집회를 당분간 금지했다. 지방자치단체장은 감염병 예방을 위해 여러 사람이 모이는 집회를 제한하거나 금지해야 한다는 감염병 예방법에 근거한 조처인데, 전광훈 목사가 이끄는 문재인 하야 범국민투쟁본부는 이를 무시하고 22일과 23일 이틀 연속 광화문광장 집회를 강행했다. 8천여명의 참석자가 대부분 마스크를 착용했다지만 다닥다닥 이어놓은 의자에 바짝 붙어 앉았는데도 전 목사는 야외에선 전혀 감염이 안 된다는 통계가 나왔다고 억지를 부렸다. 이런 예배에 참여하면 걸렸던 병도 낫는다는 둥 우리는 병 걸려 죽어도 괜찮아, 하늘나라가 확보된 사람이다라는 둥 황당무계한 주장을 했고 참석자들은 그때마다 아멘을 연호했다. 또 다른 목사가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우한 폐렴은 떠나갈지어다라고 외치자 참석자들이 환호했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서울시는 24일 전광훈 목사 등 관계자 10명을 고발했고 종로경찰서가 수사에 착수했다. 서울시는 채증 자료를 분석해 집회 참석자들도 추가 고발할 방침이다. 하지만 전 목사는 이번 주말과 3·1절 집회에 최대한 많이 참석하라며 총동원령을 내렸다. 아무래도 온전한 정신이 아닌 것 같다. 안재승 논설위원 jsahn@hani.co.kr

관련 기사 : 박원순 시장, ‘금지 경고에도 집회 연 전광훈 목사 고발

관련 기사 : 이 와중에 밀어붙인 태극기 집회 코로나19 야외에선 안전궤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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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에 독 타는 어떤 정당

핑크빛이 익숙했다. 김영화 기자가 쓴 가수 송가인 팬카페 어게인이 떠올랐다. 핑크색 점퍼와 모자는 어게인의 상징이다(시사IN645·646송가인은 5060의 구원자이어라기사 참조). 그 핑크색을 미래통합당이 상징색으로 삼았다. 따지고 보면 미래통합당은 어게인 새누리당이다. 박근혜 탄핵 전 세력이 3년 만에 다시 모였다. 이합집산은 흔한 풍경이다. 그럴 수 있다.

연합뉴스

 

이번에는 짚고 넘어가야 할 지점이 있다. 미래통합당과 미래한국당, ‘1+1 세트로 헤쳐 모였다. 조선일보는 미래한국당을 미래통합당의 비례대표 전문 위성정당이라는 긴 수식어로 정의한다. 모든 기사에 이 수식어를 붙인다. 미래통합당 황교안 대표가 스스로 밝혔듯 미래한국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핵심으로 한 개정 선거법용 급조 정당이다. 앞으로 이 위성정당은 교도소 담장 위를 걸어야 할 운명이다. 후보 선정까지 합법의 형식은 갖추겠지만 미래통합당과 텔레파시 교감을 해야 한다. 불법과 합법은 종이 한 장 차이다.

 

비례정당 급조 이야기가 나왔을 때 시사IN우물에 독 타기라고 지적한 바 있다. 실제로 미래통합당이 우물에 독을 타자 민주당은 미래한국당 창당 이후 곧바로 선거법 위반 등 혐의로 한선교 대표와 조훈현 사무총장을 고발했다. 우물에 독 타기는 분명 잘못됐다. 그렇다고 검찰개혁을 표방한 민주당이 사안마다 고발을 일삼는 건 개혁 대상인 검찰에 판관의 권력을 부여하는 것이다. ‘정치의 사법화는 자제해야 한다.

한 가지 더 바란다면 민주당이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 대신 다수파 정치를 추구하면 좋겠다. 천관율 기자가 이번 호에 정체성 정치를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Scene별로 설명해주었다. 정체성 정치는 미국 민주당이 소수파로 몰락한 이유로 자주 거론되기도 한다.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이철희 의원은 최근 펴낸 책에서 정체성 정치 대신 다수파 정치를 설파한다. “다수를 형성해 세상을 실제로 바꾸는 힘을 쓰는 다수파 정치가 아니라, 지향하는 바를 드러내고 그것을 위반하면 나라 망할 듯이 외치는 정체성 정치에 빠져 있다(정치가 내 삶을 바꿀 수 있을까, 2020).” 최근 조국 내전으로 비화되는 공천 과정을 보면 민주당의 정체성 정치가 엿보인다.

 

정치는 운동(movement)이나 쇼가 아니다. ‘4+1 연합 정치는 세상을 바꾸어내는 다수파 정치의 힘을 확인시켜주었다. 연합 정치 덕분에 논의된 지 20여 년 만에 공수처가 법제화되었다. 정체성 정치로는 불가능한 제도 개혁이었다. 유권자의 힘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코로나19 사태에 지역감정 발언을 일삼는 정치인, 민주주의 제도를 형해화시키는 정치인에 대한 심판권이 유권자 손에 있다. 우리의 한 표가 내 삶과 세상을 바꿀 수 있다.

고제규 편집국장 시사인 2020.02.24.

 

봉준호, 피케티, 20 80의 균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에 이어 아카데미 4관왕까지 차지했으니 봉준호의 <기생충>은 한국 영화사를 넘어 세계 영화사에서 한 획을 긋는 기념비적 명작이 됐다. 그런데 <기생충>은 왜 명작일까? 진작 <기생충>이 이토록 엄청난 작품임을 알아챈 사람은 얼마나 될까? 이 영화는 어떤 대목에서 세계인에게 보편적 공감을 불러일으켰을까?

 

나는 아카데미상 수상 이전에 가족과 함께 <기생충>을 봤는데 클라이맥스 부분에 와서 기택(송강호)이 갑자기 박 사장(이선균)을 공격하는 장면을 보고서야 아, 이 영화가 심상찮은 물건이구나라는 느낌이 왔다. 그럼에도 대단한 명작이라는 생각에까지는 미치지 못했다. 심지어 계급 불평등과 삶의 불안 문제를 다루면서도 전형적인 갑(예컨대 재벌 2~3)과 을(예컨대 비정규직)의 문제는 비켜 간 영화라는 딱한 생각마저 했다. 아카데미상 수상 이후 격의 없는 벗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겨우 <기생충>의 진가를 알아채게 됐다. <기생충>은 우리 시대 계급 불평등 문제가 훨씬 복잡함을 보여주고 있으며 사회경제적 균열 양상과 삶의 실상에 더 다가가고 있다는 생각이다.

 

<기생충>에서 갑인 박 사장은 재벌 2~3세가 아니라 아이티(IT)기업 대표(CEO). 갑을 이렇게 설정함으로써 자산 축적과 계급 문제에 능력주의 문제라든가 시장의 시대 무한경쟁의 요소들이 들어온다. 다혜(박 사장 딸)의 과외, 기우(기택네 장남)가 명문대 지망 4수생이라는 사실 등에서도 교육, 학벌의 문제가 끼여 있다. <기생충>1 99의 균열이 아니라 계급과 능력주의가 결탁해 불평등을 고착화시키는 ‘20 80의 균열을 그리고 있다 하겠다.

 

을이라 해서 같은 을이 아니다. 반지하에서 가족 성원 모두 백수로 사는 기택네와 남편이 박 사장 지하 방공호에 사는 문광·근세 부부는 모두 기생충같은 밑바닥 인생이다. 하지만 결코 같은 불우이웃이 아니다. 서로 아픔을 공유하지 않고 각자도생을 추구함은 물론 적대적이기까지 하다. 또 근세는 박 사장을 엄청 존경한다. 이는 을들의 연대정치 길이 험난함을 함축한다. 정치적 갈등 차원으로 올 경우 20 80 균열론조차 현실과 거리가 멀다.

 

나는 우리 시대 계급·계층 문제의 복잡성, 불안과 두려움을 탁월하게 그려내 세계인의 공감을 부른 <기생충>의 예술 세계가 불평등 연구의 스타 피케티가 보여주는 현실의 불평등 세계와 소통의 접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 피케티의 새 책, <자본과 이데올로기>로 넘어가 보자. 이 책은 이론 틀이 새롭게 업그레이드되었을뿐더러 주류 경제학 틀에서 벗어났다. ‘불평등 체제라는 새 개념이 제시된다. 이는 주어진 사회의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불평등을 정당화하고 구조화하기 위한 일련의 담론과 제도적 배열로 정의된다. 정치적 구조뿐만 아니라 이데올로기를 매우 중시하는데 모든 역사적 불평등 체제에는 이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가 있으며 상응하는 정의론이 있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책 제목이 <자본과 이데올로기>인 이유다. 피케티식 불평등 체제 개념화는 불평등을 자연화하는 이데올로기를 겨냥한다. 그리고 이 불평등 체제는 정치체제와 재산 체제, 교육 체제, 조세 체제 그리고 그들 간 상호관계를 포괄한다. 사실 불평등 체제 개념은 조절이론가 부아예가 먼저 제시했으며 부아예와 비교해 피케티 개념은 약점도 보인다. 소유권을 권리묶음으로 보는지도 분명치 않다. 하지만 문제의 근본적 지점을 잘 포착하고 있는 듯하다.

 

피케티는 근대사회를 소유지상주의 사회로 파악한다. 이는 사적 소유권과 그 자본화 권리를 신성시하는 사회다. 당연히 이 사회 아래 빚어지는 불평등도 정당화된다. 피케티는 그것의 역사적 궤적, 즉 출현, 위기, 사회민주적 타협, 그리고 오늘의 초자본주의=신소유지상주의사회의 도래를 분석한다. 하지만 <자본과 이데올로기>의 백미는 정치적 갈등의 성격 전환과 그 함의 분석이 아닐까 싶다.

 

피케티는 교육적 균열선의 역전을 집중해 보여준다. 전후 고전적정당 체제에서 좌파정당은 노동자의 이해를 대변했고, 계급을 가르는 부와 소득과 교육 위계의 세 축에서 약자들의 정당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좌파정당은 약자 정당적 성격이 매우 약화되고 고학력 정당의 성격으로 변화됐다. 이른바 브라만 좌파(BL)의 출현이다. 브라만 좌파의 경쟁자는 고소득자와 자산 부자를 대변하는 상인 우파(MR). ‘BLMR’의 이중엘리트체제는 분명히 지지기반에 차이가 있다. 하지만 기존 불평등 체제를 유지하는 보수주의를 공유한다. 피케티는 나라에 따라 이중엘리트체제에 다양성이 있다고 말한다.

 

‘BLMR’의 이중엘리트체제는 불안정하며 분화를 보인다. 브라만 좌파는 더 친시장적 분파와 더 재분배 지향적이고 불평등의 도전에 응답하려는 분파로 분열되고 있다. 상인 우파 또한 친시장적 중도우파와 더 급진적인 반이민-민족정체성 지향 우파로 분열되는 경향이다. 다른 한편 정치혐오 현상이 심화될 수도 있다. 이는 지배엘리트에 유리할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 선거 정당성, 정치체제의 정당성을 훼손하며 나아가 권위주의 통치를 낳거나 과격한 혁명을 부를지도 모른다.

 

정치 균열 구조의 거대한 전환에 대한 피케티의 진단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냉전반공분단체제 이래 다중 적폐가 낳은 한국 정치의 예외주의적인, 보수적 성격 때문에 전환이 지체되고 있을 뿐이다. 한국 불평등의 현실은 사실 <기생충>의 세계보다 훨씬 후지다. 한국 정치에는 사민주의의 브라만화는 없었다. 우리는 평등 없는 자유주의의 브라만화와 브라만 중도파(또는 강남중도파)에 대해 말해야 한다. 조국 사태는 이를 압축해서 보여준 분기점의 의미를 가질 것이다.

 

오늘날 한국의 브라만 중도파의 지향은 닫힌 불평등 능력주의만이 아니다. 이 정파는 국정농단 주범과의 밀월 행각에서 보듯 불공정한 수저세습주의와 기꺼이 동거한다. 또 주거권 보장은 밀어내고 불로소득 자산계급의 이해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세심하게 노력하고 배려한다. <세습 중산층 사회>를 쓴 조귀동은 한국의 정당 구도를 60대 건물주의 정당 대 50대 부장님의 정당으로 비유했지만, 이 비유조차 둘의 보수적 공유 지점은 빼놓은 듯하다. 내일의 한국에서 누가 일자리·주거·교육 문제의 해결사가 될 수 있을까. 수년 내 대규모 탈민주당 유권자 집단이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조귀동의 진단이다. 샌더스가 부상하고 있는 미국과는 딴판이다. 물론 당장 4월 총선이 문제다.

코로나19 재난 국면에서 우리 사회의 근원적 회복력이 시험받고 있다. ‘재난 극복 뉴딜같은 위기 극복책이 나오면 좋으련만. 유레카!

이병천 강원대 명예교수·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이사장 한겨레 2020.02.27.

 

한국 대학, 코로나19 극복의 전쟁터

한때 잡힐 것 같던 코로나19 감염병이 219일경부터 빠르게 확산되더니 열흘 만에 매우 긴장된 상황에 이르렀다. 전문가들은 방역당국이 감염 경로 추적에 성공적인 편이어서 앞으로 몇 주 동안 최선을 다하고 운도 따라준다면 확산세를 꺾을 수 있다고 본다. 한 예방의학자는 방송에서 확진자가 급증하는 것은 방역당국이 그만큼 잘 찾아내고 있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지나친 공포는 금물이며,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파악되지 않은 감염원에서 다발적이고 광범위한 전파가 일어나는 걷잡을 수 없는 사태도 여전히 우려하고 있다. 환자가 초기 증상을 스스로 느끼기 힘든 시점에도 감염력이 높다고 하니 늘어나는 발병국가들에서 입국할지 모르는 감염자 외에도 지금 대규모로 입국하고 있는 중국 출신 유학생이 큰 걱정거리이다.

 

중국 출신 유학생은 전국에 7만명이 넘는다. 이들 중에 상당수가 스스로 휴학을 택해 입국을 포기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수만명의 학생이 한꺼번에 입국하여 기숙사나 학교 인근의 숙소에서 14일간 격리 생활을 하며 이상 여부를 가린 후에 정상적으로 학업에 임하게 돕는 것은 이만저만 큰일이 아니다. 이미 여러 대학이 공항에 전세버스를 보내 유학생을 별도로 학교까지 이동시키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수많은 유학생을 돌볼 인력, 예산, 지원체계 확보는 재정 압박에 시달리는 한국 대학으로서는 숨 가쁜 일이다. 고향에 다녀온 대구·경북 지역 출신 학생들도 보살펴야 한다. 2주 개강 연기로 충분할지도 걱정이며, 다수의 확진자 발생에 대한 민첩한 대응책이 사전 준비되어야 한다.

 

중국, 베트남 등의 유학생들을 정성껏 배려함으로써 코로나19의 확산을 막고 유학생에게 자신이 존중받는다는 믿음을 준다면 그것은 국제사회에서 두고두고 대한민국의 자산이 될 성과이다. 따라서 중앙정부와 교육부, 지방자치단체, 대학이 합심하여 위기에 대처해야 한다. 현대문명이 자초한 신종 질병을 이겨내는 일인 동시에, 우리의 포용력과 국격을 대외적으로 입증할 기회이다. 사회적으로 가장 취약한 계층이 가장 고통받고 주로 희생당하는 쓰라린 현실을 극복하는 노력과 무관하지 않다.

 

코로나19 대처 능력은 그 나라의 민주주의 수준과 밀접하다. 새 감염병 발견을 처음 알린 의사인 고() 리원량의 경고에 중국 당국이 귀를 기울였다면 지금 세계는 훨씬 평안했을 것이다. 중국 정부는 우한의 실태를 비판적으로 보도하던 기자들마저 재갈을 물렸다. 권위주의적 경향이 날로 심해지는 시진핑체제가 시험에 들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또 다른 이웃나라 일본의 실상도 마찬가지다. 2020년 도쿄 올림픽의 정치적 활용에 골몰하며 후쿠시마의 계속되는 후유증도 덮고 코로나19 사태도 애써 무시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대뜸 동양인 등교금지 조처를 내렸던 로마의 유명한 음악학교의 무감각이 유럽에서 확진자가 유독 많은 이탈리아 상황과 무관해 보이지 않고, 이란은 환자 규모 축소 의혹을 부정하는 기자회견을 하던 주무부서 차관이 연신 기침을 하다가 다음날 확진자가 되는 해프닝을 벌였다. 민주주의가 망가진 후진국이라 할 트럼프의 미국도 확산세가 빨라질 위험성이 있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때 박근혜 정부의 기만적인 대응이 떠오른다. 20156월 대책 발표 현장에서 당시 부총리는 보건복지부 장관이 누군가에게 전달받아 훑어본 후 넘긴 쪽지를 그대로 읽었다. 언론 카메라에 잡힌 메모에는 환자가 경유한 병원은 감염 우려가 없다고 말하라는 청와대의 요청이 적혀 있었다. 당시 청와대가 과학적 근거 없이 환자가 경유한 병원이 안전하다고 우긴 일이었지만, 바로 다음날 해당되는 병원 네 곳에서 확진자가 나왔다.

지금 코로나19 극복의 최전선에 선 한국 대학에 대한 전방위적 지원이 절실하다. 그런데 주무부처인 교육부는 이미 반발이 심했던 2021 대학기본역량진단평가의 틀을 공청회를 열기 힘든 상황임에도 일방적으로 확정하는 모양새이며, 논란 많은 정시 확대 정책을 위한 당근으로 700억원을 책정했다. 또 작년 초 국민권익위원회가 죄 없는 대학 구성원에게 피해가 없도록 경영진의 비리가 밝혀진 사립대에 기계적으로 불이익이나 제재를 가하는 매뉴얼을 연말까지 개선하도록 권고했지만, 교육부는 모르쇠로 버티며 대학 정상화를 위해 분투하는 대학인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대학 민주주의를 튼튼하게 하지 못하면 방역망에도 구멍이 뚫린다.

김명환 서울대 영문학과 교수 경향 2020.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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