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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 배치 찬성", 당신 동네에 한다면? 물었더니… 2.19 미디어오늘
미디어오늘-에스티아이 정기 여론조사… 대구는 74.0→48.9%, 평택 70.1→50.0%, 군산 60.0→25.1%
한반도 사드 배치 장소로 거론됐던 지역 주민의 배치 찬성 의견이 50%에 못 미친 것으로 나왔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사드 배치에 대한 찬성 여론이 높은 가운데 사드에 직접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배치 후보 지역에서 팽팽한 찬반 결과가 나오면서 공론화 과정을 거치면 지역 갈등으로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평택 지역 설문 통계를 분석해보면 60대 이상 계층 86.8%, 새누리당 지지자 92.4%가 한반드 사드 배치를 압도적으로 찬성했지만 거주 지역 사드가 배치 질문에는 각각 찬성 의견이 64.9%, 65.1%로 나왔다. 보수층인 60대 이상 계층과 새누리당 지지자들도 한반도 사드 배치에 대해선 찬성 의견이 높지만 거주 지역으로 사드가 배치될 경우 반대 의견으로 돌아선 것을 볼 수 있다.
▲ 미디어오늘 정기여론조사 결과
▲ 미디어오늘 정기여론조사 결과
▲ 미디어오늘 정기여론조사 결과
▲ 미디어오늘 정기여론조사 결과
대구 지역 설문 통계를 보더라도 한반도 사드 배치에 대해선 모든 연령층에서 반대보다 찬성 의견이 높은 것으로 나왔지만 거주 지역 사드 배치 질문에는 찬반 의견이 팽팽했고 30대 계층에서 반대(49.5%)가 찬성(44.1%) 의견보다 높은 것으로 나왔다.
▲ 미디어오늘 정기여론조사 결과
박재익 (주)에스티아이 연구원은 이번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 "전국에 생중계된 국정연설에서 대통령이 직접 사드배치의 필요성을 역설했음에도 배치 후보 예상지역의 반대여론이 상당히 높아 사드 배치 지역 선정에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박 연구원은 "사드 배치가 본격화되면 심지어 대구까지도 지역민이 분열되고 양분될 수 있다"면서 "사드 배치 의견에 따라 지지정당 및 후보를 철회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지역민들의 반대 의견을 무시하지 못할 것이고 공론화 배치 과정도 녹록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거주 지역 사드 배치에 대한 반대 의견이 높은 것을 두고 단순히 님비 현상이라고 볼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정부와 여당이 일방적으로 주장했을 뿐 한반도 사드 배치에 대한 공론화 과정이 전무했고, 환경적인 위해 요소 논란 또한 본격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후보 지역만의 반발로만 해석하기는 무리가 따르기 때문이다.
파시즘 언론을 본다 2.19 미디어오늘
[시시비비] 개성공단 중단 결정에 대한 보수신문의 정당화
‘고뇌에 찬 결단’이라고 했다. “(북한 핵 개발을 용인할 수 없다는)결연한 의지를 내보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며 (절박한 상황에서 취한) “비상한 조치”라고도 했다. 지난 10일 전격적인 개성공단 중단 발표에 대한 조선 동아 등 주류 수구 언론들의 평가다. 이런 중차대한 정책의 결정과정이 제대로 이루어졌는지는 전혀 문제 삼지 않는다.
고독한 결단이니 따르자고?
개성공단 중단이 북한에 대한 실효성 있는 제재수단으로 적절한지의 여부를 사전에 공론화한 적은 없었다. 지난 1월 6일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에도 이들 언론은 핵무장까지 거론하면서도 공단의 폐쇄를 주문하지는 않았다. 1월 22일 폐쇄는 고사하고 개성공단의 안정적 운영을 목표로 밝힌 통일부 업무 보고 때에도 별 말이 없었다. 기껏해야 “중국이 대북 제재를 제대로 취하면서 개성공단에 결단을 요구할 경우”(조선 2월 10일 사설)에 대비하자는 정도였다.
그러다 전격적인 중단결정이 발표되자 이들은 개성공단 근로자에게 지불한 임금이 북한 핵개발에 쓰였을 거라는 정부의 근거 없는 추정을 그대로 전하고, 이에 “북한이 신경질적 반응을 보이는 건 그만큼 한국의 조치가 아프고”(중앙 13일 사설), “그만큼 그들에게 (경제적) 타격이 컸기 때문”(동아 12일 사설)이라며 인과도치(因果倒置)와 유사한 비논리를 구사한다. 조선일보는 13일자 보도에서 “정부의 성명은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거의 다 고쳐썼으며... 분노가 담겼다”고 전했다. 이 보도대로 이번 조치는 정부 내에서도 청와대(박대통령)가 거의 독자적으로 주도했으며 그것도 상당히 격앙된 상태에서 밀어붙이다시피 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민주주의 나라에서 중대한 정책 결정이 이래도 되는 걸까?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월16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북한의 4차 핵실험 및 장거리 미사일 발사로 인한 안보위기 등과 관련해 '국정에 관한 국회 연설'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대통령이 고심 끝에 결정을 내렸다면 그 고심을 혼자만 할 게 아니라 국민과 함께 해야 하지는 않은가? 자본주의 국가에서 개성공단 중단처럼 국민의 재산권과 기업의 영업 자유를 일시에 침해하는 결정을 내리려면 최소한 여론 수렴의 절차는 거쳐야 하지 않을까? 고도의 통치행위로서 정말 비상한 조치라면 헌법에 따라 국회의 동의를 받아 비상명령권을 발동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이 나라의 주류언론들은 이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다. 외려 “안보문제는 여론을 살필 필요가 없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 국가지도자가 ‘고독한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단다.(17일 동아 황호택 칼럼) 개성공단 중단 여부가 안보와 직결된 문제인지, 또 얼마나 많은 전문가의 의견을 들었는지는 알 수가 없는데도 말이다.
주사위는 던져졌다고?
일을 저지르고서는 따라오라는 통치 스타일에 대한 문제 제기 같은 건 아예 없다. “(이런저런) 의견이 나오지만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기”(동아 11일 사설) 때문이다. 이제 국론을 결집해야 하고 반대의견은 북한이 노리는 남남갈등에 말려드는 꼴이며, 야당의 비판은 선거에서 재미보려는 북풍 선동(12일 조선 사설)이 된다. 특히 졸지에 망하게 된 “개성공단 입주기업들과 정부의 갈등이 국론분열으로 증폭되면 안된다.”(중앙 13일 사설) 그리하여 우리 정부의 책임을 거론하는 입주기업들에게 “다른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게 아닌가 의심”(조선 13일 사설)하기에 이른다.
▲ 개성공단 폐쇄 관련 조중동 사설. 위쪽부터 동아일보(2월11일), 조선일보(2월12일), 중앙일보(2월13일)
박 대통령에게 결단에 찬 고독한 영웅의 이미지를 투사하려는 시도는 논설위원들의 기명 칼럼에서 압권을 이룬다. 12일자 동아일보의 박제균 위원은 박근혜 대통령을 “역시 고수(高手)”라고 치켜세운 뒤 수천 년 전 루비콘강을 건너 로마 공화정을 끝낸 카이사르에 비유했다. 당시 카이사르군의 이탈자는 단 한 명뿐이었다고 사족을 달았다. 정치의 고수인 그가 통치에 그렇지 못한 점은 아쉽지만 지금은 이를 문제 삼을 때가 아니라고도 했다. 선거에 의해 당선된 지도자가 ‘주사위를 던지면’ 나머지 국민은 모두 따라가야 한다고 여기는 사고방식이 민주사회의 공론장에서 떳떳이 활보하고 있는 게 기막힐 따름이다.
박비어천가를 부르는 호위무사
다음날 이 신문의 다른 칼럼은 ‘용비어천가’를 부르는 데 머무르지 않고 아예 호위무사로 나선다. 수석논설위원이라는 필자는 SNS에서 개성공단 중단을 풍자적으로 비판한 서울대 교수에게 “학자가 페북질에 시간을 쏟는 모습이 한심하다”면서 “박근혜를 희롱하지 말라”고 일갈한다. 그런데 사신(私信)으로도 충분히 소통하면 될 사안을 신문지면에 정색하고 게재한 이유는 뭘까? 글의 허두에 실마리가 있어 보인다. 박근혜는 외환위기 때 눈물을 펑펑 흘리며 거리를 한참 걸었던 애국심이 남다른 사람이라고 했다. 말미는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끌어올린다’는 괴테의 명언을 인용하며 알쏭달쏭하게 마무리했다.
굳이 해석해보자면 박근혜는 눈물이 많은 여성적인 사람인데 왜 희롱하듯 비판하냐는 의미인 듯하다. 그리 보면 이 글은 한 교수에게 읽히게 하려는 것이 분명 아니지 싶다. 마침 최근 해임된 연세대 황상민 교수가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황교수는 2012년 대통령선거 때 박근혜 후보의 여성 대표성을 부정하는 발언으로 논란을 빚은 적이 있다. 그나저나 이 논설위원께서는 전날 박제균 칼럼의 “박근혜 정권의 유일한 남자는 박근혜”라는 대목에 대해서는 어찌 생각하실지 궁금하다, 같은 직장에 있으니 의논해서 독자들께 교통정리라도 좀 해줬으면 좋겠다.
팩트체크! 대통령님 말씀은 ‘거짓말’ 1.25 한겨레21
박근혜 대통령의 1월18일 대국민 담화 실체 분석…‘기대’를 ‘사실’처럼 강변하고 즉석 질의응답도 사전 각본 드러나
“밥 먹고 취재하는 언론들이나 학자들, 뭐하시는 거예요. 아무 근거가 없는 거예요, 대통령 담화문이….”
지난 1월18일 ‘노유진의 정치카페’에서 현직 기자들에 대한 성토가 나왔다. 1월13일 박근혜 대통령이 발표한 대국민 담화에 ‘엉터리 내용’이 담겼는데도, 언론이 아무 검증 없이 ‘받아쓰기식 보도’에 열중한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언론들이 그걸 추적해야 하는데, 그걸(담화문 내용을) 받아적기 바빠. (검증을) 우리가 하잖아”라고 꼬집었다. 유쾌하지 않지만, 틀린 말이 없다. 노유진의 일갈에 <한겨레21>이 ‘팩트체크’로 응답한다.
한국 성장 전략이 G20 중 최고? 노!
박근혜 대통령이 1월13일 대국민 담화 발표 뒤, 기자들과 일문일답을 하던 중 웃음을 터트리고 있다. 한겨레 이정용 기자
먼저, ‘노유진’이 일부 지적한 내용에 대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담화에서 “2014년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토대로 한 우리의 성장 전략을 주요 20개국(G20) 국가들 중 최고로 평가”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런 좋은 평가는 비효율적인 노동시장과 방만한 공공부문을 바로잡으려는 우리의 구조개혁 노력을 세계가 인정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진짜일까? 관련 사실은 2014년 11월16일 오스트레일리아 브리즈번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재무장관회의 뒤, 당시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브리핑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당시 G20은 2018년까지 회원국 전체 국내총생산(GDP)을 2% 이상 늘릴 필요성을 제기하고, 회원국들로부터 구조개혁 방안을 제안받았다. 그 결과, 최 장관은 “IMF와 OECD는 우리나라의 경우 (성장 전략이 제대로 이행된다면) 2018년까지 GDP를 현 추세 대비 4.4%, 금액상으로는 60조원 더 생산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성장 GDP 효과가 회원국 성장 전략 중 가장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고 말했다.
말하자면, 각 국가의 희망만큼 성장 전략이 진행되면, 높은 기대치를 써낸 한국의 성장률이 높을 것이라는 ‘당연한 분석’을 아전인수 격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그나마 ‘GDP 60조원 증가 예상’은 2012년 1377조원이던 GDP가 향후 6년간 해마다 5조원가량밖에 늘지 않는다는 계산이다. 또 2018년까지 G20 회원국의 전체 예상 증가액 2조달러(2401조원)와 견줘도 2.5%에 불과하다.
박 대통령은 또 “최대 69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무려 1474일째 국회에 발목이 잡혀 있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11월에도 “청년 일자리가 최대 69만 개 생긴다”며 이 법의 제정을 촉구한 적이 있다. 이 수치는 지난해 4월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미발표 보고서 ‘서비스업 개혁에 따른 경제적 파급효과’에서 서비스업 법제를 개혁할 경우, 관련 취업자 수가 15만 명(독일)에서 최대 69만 명(미국)까지 늘어날 수 있다는 내용에 근거하고 있다.
청년 일자리 최대 69만 개 창출? 노!
하지만 이 보고서에는 “현재 추진 중인 서비스업 개혁이 이러한 결과를 보장하는 것은 결코 아니며, 우리 서비스업이 미국, 독일, 네덜란드 등 선진국 수준에 근접할 정도로 발전할 경우의 기대효과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쓰여 있다. 69만 개의 일자리 창출은 검증되지 않은 일방적 주장인 셈이다.
오는 3월 시행되는 관광진흥법으로 일자리가 1만5천여 개가 생길 것이란 담화 내용도 비슷한 문제점이 여러 차례 드러난 대목이다. 당정은 이전부터 관광진흥법으로 1만9700여 개 일자리가 생길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이 가운데 1만4천여 개가 건설 쪽에서 한시적으로 생기는 일용직 일자리에 불과한 것으로 지적돼왔다.
이외에도 “국내외 여러 기관들이 비슷하게 올해 한국의 성장률은 3~3.2%로 전망하고 있다”는 것도 ‘희망사항’이다. 국내에서 올해 성장률을 3%대로 전망한 것은 기획재정부(3.1%), KDI(3%), 한국은행(3%), 한국금융연구원(3%) 등 사실상 국책기관들뿐이다. LG·현대·한국경제연구원 등은 나란히 2.5~2.8% 성장을 전망했다. 국외에서는 OECD와 IMF가 각각 3.1%, 3.2% 성장을 전망했지만, 1월10일 국제금융센터 자료를 보면, 골드만삭스, 시티그룹, 도이체방크 등 국제적 투자은행(IB) 6곳의 경제성장률 전망치 평균은 2.6%에 불과했다.
기자회견 뒤 일문일답에서도 대통령의 오류는 이어졌다. 박 대통령은 위안부 피해 할머니와 관련된 질문에서 “피해자들이 공통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세 가지”라며 “첫째는 이것이 일본군이 관여했다는 것, 이걸 확실하게 밝혀달라. 그리고 일본 정부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사죄가 있어야 된다, 그리고 일본 정부의 돈으로 정부가 피해 보상을 해야 된다는 것, 그 3가지로 요약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박 대통령은 “이번 합의는 이 세 가지를 충실하게 반영한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 오히려 같은 위안부 문제로 피해받은 다른 동남아 나라들이 한국 수준으로 풀어달라고 일본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는 2014년 6월2일 ‘제12차 아시아연대회의 일본 정부에 대한 제언’ 등에서 일관되게 일본 정부와 군의 책임 인정, 일본 정부가 피해자들에게 직접 사죄하고 배상할 것, 일본 교과서에 ‘일본군의 성노예’ 사실 기술, 피해자들을 위한 추모 사업 조처 등을 요구해왔다. 박 대통령의 인식과는 차이가 있다.
대통령 담화 뒤 윤미향 정대협 상임대표는 페이스북에 “(대통령이) 너무나 잘못 알고 계십니다. 이미 고노 담화에서 일본군의 관여는 인정된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피해자들이 고노 담화를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은 애매모호한 관여 인정이었습니다. 문제는 일본 정부, 국가의 범죄입니다. 거꾸로 이해하고 계십니다”라고 꼬집었다. 게다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일본 정부와 군이 개입한 성노예는 명백한 전쟁범죄인 만큼, 위안부 피해 ‘배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줄곧 강조해왔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담화에서 이를 합법적인 피해에 대한 ‘보상’이라고 말하는 안이한 인식을 드러냈다.
‘위안부’ 할머니 요구에 충실한 합의? 노!
하일라이트는 따로 있었다. 박 대통령은 일문일답 도중 “또 답을 안 한 게 있나요? 아까 질문을 한꺼번에 여러 개를 하셔가지고. 제가 머리가 좋으니까 그래도 이렇게 기억을 하지, 머리 나쁘면 이거 다 기억을 못해요”라고 말했다. 긴장될 수밖에 없는 대통령 기자회견장에서 재치를 발휘한 것으로 이해될 수도 있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담화가 시작된 1월13일 오전 10시30분 이전에 ‘대통령 담화 질의 순서 및 질문 내용’을 담은 ‘대국민 담화 대본’이 인터넷을 떠돌았다. 기자들과 청와대가 사전에 질문을 약속했다는 말도 돌았다. 그리고 대본 내용은 마치 ‘데자뷔’처럼 대통령 담화 생방송을 통해 생중계됐다.
박 대통령, 구름의 권좌에서 내려오라 217 프레시안
법치가 서야 경제도 산다
박 대통령의 2 · 16 국회 연설은 동시대 한국인이라면 그 전문을 읽을 가치가 있다. 그 안에는 한국인의 일상을 흔들 핵심이 가득 모여 있다.
먼저 한중 관계의 뇌관인 '사드'가 있다. 대통령은 연설에서 주한미군의 사드 배치 '협의' 개시를 직접 확인했다. 보통의 시민이 이 말을 듣게 되면 마치 한국과 미국이 FTA 협상을 하듯이 사드를 배치할지 말지의 문제를 협의하고 있구나 끄덕이기 쉽다.
그러나 주한미군 지위 조약(소파 협정)에서 '협의(consultation)'는 미국이 필요한 시설과 구역을 결정하는 협의이다. 그래서 '대구'니 '평택'이니 '원주'니 하는 배치 지역이 현재 쟁점이 되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은 구름 위의 언어를 사용했다. 한국은 국제 관계의 규칙을 결정하거나 규칙을 아예 바꿀 수 있는 입헌자도 아니고 초법적 존재도 아니다. 이것이 땅의 현실이다. 미국은 1954년의 한미 방위조약을 근거로 사드 배치를 결정할 권리가 미국에 있음을 전제로 한국과 협의하고 있다. 그리고 사드 배치를 잘못하면 한중 관계가 파탄 날 위험에 처한 것이 지금 이 땅의 세계이다. 그러나 대통령은 땅의 말을 하지 않았다.
대통령이 사용한 '북한 정권의 변화'나 '체제 붕괴'라는 언어도 구름의 언어이다. 국제법은 유엔 회원국이 다른 회원국의 체제 문제에 관여하는 것을 금지하였다. 심지어 한미 방위조약 3조조차 '합법적으로 들어갔다고 인정하는 금후의 영토'라고 규정하여, 북한이 당연히 한국의 영토임을 인정하고 있지 않다. 지금의 국제관계에서 한국의 대통령은 북한 정권의 변화나 체제 붕괴를 스스로의 결정과 스스로의 힘으로 추진할 수 없다. 대통령은 지상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또한 "결과적으로 우리가 북한 정권의 핵과 미사일 개발을 사실상 지원하게 되는 이런 상황을 그대로 지속되게 할 수는 없습니다"라는 말은 어떠한가? 유엔 안보리의 결의는 회원국으로 하여금 자기 나라 국민이 북한의 핵무기나 미사일 개발에 이바지할 수 있는 대량 현금을 제공(bulk cash, that could contribute to the DPRK’s nuclear or ballistic missile programmes)하는 것을 금지하도록 했다. (2094호 결의한 11항)
유엔 결의는 결코 낮은 수준의 핵개발 지원은 괜찮고, 고도의 수소 폭탄 개발 지원은 안 된다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의 언어는 국제 관계의 핵심 궤도에 진입할 수 없는, 궤도 밖의 언어이다. 한국은 국제 관계의 규칙을 정하거나 바꿀 초법적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미국과 중국이라는 초법적 존재의 자장에 직접 놓여 있다. 한국의 대통령이 마치 자신이 국제 관계를 규율하고 있는 것처럼 하늘의 세계에서 말할수록, 지상의 국민은 이 두 초법적 존재에 의해 더 많이 휘둘릴 수 있다.
역설적으로 대통령의 연설이 땅을 실제로 뒤틀리게 할 능력을 발휘하는 곳은 이 좁디좁은 땅덩어리뿐이다. 그 힘에 취해 대통령의 언어는 땅의 질서를 마구 어지럽힌다.
대통령은 입법촉구 서명운동을 "국민의 눈물이자, 절규입니다"라고 연설했다. 삼권 분립의 국가에서, 게다가 오바마에게도 없는 법안 제출권까지 가진 최강의 대통령제에서, 국회의 법안 통과를 요구하는 시민 서명에 직접 동참하고 지원한 것도 모자라 아예 직접 국회에서 이러한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법치주의를 모르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개성공단 전면 중단을 불가피한 '긴급 조치'라고 정당화했다. 그러나 국가안전을 내세웠던 박정희 대통령의 긴급 조치 1호는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여 무효로 선언되었다. 개성에 있던 한국민이 무사히 복귀한 것은 긴급 조치의 결과가 아니라 북한이 복귀를 막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 한 개의 개성공단 공장을 폐쇄하는 데에도 '국가안보를 해칠 명백한 우려'가 있는 경우로 제한하고 그것도 사업 승인 취소나 정지 사유를 미리 고지하고 청문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 이것이 한국의 법률이다. 그러나 134개 기업의 모든 사업을 이러한 법적 절차를 밟지 않고 '고도의 정치적 판단'에 따라 취소시켜 버렸다.
나는 묻고 싶다. 만일 이 기업들이 중소기업이 아니라 대기업이었거나 외국 기업이었다면 대통령은 '긴급 조치'를 했을까?
이제 대통령은 구름의 권좌에서 땅으로, 법치로 내려 와야 한다. 그래야 경제가 산다. 밖으로는 초법적 존재인 미국과 중국을 좀 더 촘촘히 연결시키고 묶을 국제법을 끈질지게 고민해야 한다. 안으로는 한국을 동아시아의 법치 매력국가로 만들어야 한다. 살 길은 이 길밖에 없다.
-송기호변호사
“朴대통령 국회 연설 먹혔다...지지율 상승 45.4%” 218 국민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의 2월 3주차 주중조사에서 국회 국정연설을 한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반등했다. 18일 리얼미터의 2월 3주차 주중집계(15~17일)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긍정평가)는 2주차 주간집계(10~12일) 대비 3.2%p(포인트) 오른 45.4%(매우 잘함 16.4%, 잘하는 편 29.0%)로 나타났다.
“14년 만의 개봉인데 하루 상영?” 위안부 영화 ‘귀향’ 응원봇물
위안부 영화 ‘귀향’의 개봉일이 다가오면서 “상영관이 너무 적다”는 의견이 쏟아지고 있다. 하루 만에 상영이 끝나는 곳도 있어 안타깝다는 반응이다.
17일 각종 커뮤니티에선 ‘귀향’의 개봉관과 상영 일정을 공유하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오는 24일 개봉하는 ‘귀향’은 이날 기준 전국 46개의 상영관을 확보했다. 대형 멀티플렉스 중에선 롯데시네마와 메가박스에서 관람할 수 있다.
네티즌들은 상영관이 적을 뿐만 아니라 상영 일정도 너무 짧다고 입을 모았다. 개봉 다음날 상영관 수는 11곳이 줄어든 35곳이다. 대도시가 아닌 지역에선 관람이 어렵다는 점도 아쉬움을 자아냈다. 커뮤니티에는 “하루 상영인 것도 너무한데 심지어 평일에 몰려있다” “예상은 했지만 상영관 수가 참담하다” “전주는 왜 상영관이 없나요” 등의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꼭 관람해 상영관을 늘리자”거나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으면 좋겠다”는 응원도 이어졌다.
‘귀향’은 위안부 피해자 강일출 할머니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다. 상업성과 대중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투자를 받지 못해 7만여명의 후원으로 14년 만의 개봉이 결정됐다. ‘귀향’ 관계자는 이날 뉴시스에 “롯데나 CGV 등에 예매이벤트를 제안하고 답변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상영관 확보에 어떤 외압이 있는지 묻는 관객도 있는데 그렇지는 않다”고 밝혔다.
"개성공단 임금 전용 증거 없다"... 말 뒤집은 정부 215 한국
15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홍용표 통일장관과 한민구 국방장관이 인사하고 있다.오대근기자 inliner@hankookilbo.com
홍용표 통일부 장관이 15일 북한이 개성공단 자금을 핵과 미사일 개발에 전용한 근거 자료가 있다고 한 자신의 최근 발언에 대해 “와전됐다”며 유감을 표시했다. 홍 장관은 개성공단을 개성공단을 전면 중단한 명분의 하나로 근로자 임금이 북한의 대량학살무기(WMD) 개발에 전용된 사실을 내세워 왔다. 하지만 개성공단 조치의 주무 장관인 그가 이를 다시 부인하고 공개 사과하면서 정부 입지는 물론 정책 신뢰도가 흔들리고 있다.
홍 장관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의 개성공단 가동 전면중단 관련 긴급현안보고에서 “개성공단 자금 유입의 증거를 제시하라”는 의원들의 요구에 “자금이 들어간 것처럼 와전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홍 장관은 “(개성공단 자금의 전용)우려가 막연한 얘기가 아님을 강조하기 위해 자료가 있다고 말한 것”이라며 “국회와 국민에게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개성공단 자금이 WMD개발에 쓰인 근거 자료가 없다고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홍 장관은 앞서 14일 한 방송에 출연해 “개성공단으로 유입된 돈의 70%가 당 서기실에 상납되고, 서기실이나 39호실로 들어간 돈은 핵이나 미사일에 쓰이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지난 12일 기자회견에서도 “개성공단 임금 등 현금이 대량살상무기에 사용된다는 우려는 여러 측에서 있고, 여러 가지 관련 자료도 가지고 있다”며 “공개할 수 있는 자료였다면 벌써 공개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홍 장관의 이런 발언은 정부 스스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를 위반한 사실을 자인한 것이라 또 다른 논란을 자초했다.
▲ KBS 메인뉴스 ‘뉴스9’ 12일자 보도 톱뉴스
지난 6일간 4차례 계속된 홍 장관의 말 바꾸기는 정부의 개성공단 가동 중단의 적절성 문제로 번지고 있다. 당장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은 “정부가 개성공단 중단 결정을 무리하게 합리화시키려다 자꾸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며 “정부의 외교 행태가 총체적 파탄에 이르렀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여당의원들도 “홍 장관의 ‘70% 발언’으로 개성공단 중단의 본질이 잘못 비쳐지고 있다”며 유감을 표했다.
홍 장관과 함께 외통위 현안보고에 참석한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미국의 대북제재법에 대해 “금융을 핵심으로 광범위한 제재가 가해질 수 있다”며 “북한을 압박하는데 상당한 효과를 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이날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배치 지역 선정 문제를 두고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대변인과 상반된 발언을 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한 장관은 사드 부지 선정과 관련해 “한국의 기준과 미국의 기준이 따로 있느냐”는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의 질문에 “한미동맹의 기준에 따라 정할 것”이라고 답해 우리의 입장이 충분히 반영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반면 문상균 국방부 대변인은 “사드 배치는 미측의 군사적 효용성을 가장 중요시할 것”이라고 밝혀 부지 결정권이 사실상 미 측에 있음을 인정했다. 한 장관은 “개성공단 폐쇄 이후 후방의 북한 군 병력이 전진배치 되면서 안보 위협이 증가하는 거 아니냐”는 야당 의원들에 질문에 “적의 부대배치 등에 변동사항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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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홍 장관이 사실상 자세한 자료가 없음을 인정한 셈이다. 앞서 김연철 인제대학교 통일학부 교수는 1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통일부가 말하는 정보 출처가 일부 탈북자들의 '카더라' 통신인 것으로 보인다. 좀 어이없다”며 “정확하게 누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그렇다는 것인지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여당 일각에서도 비판 목소리가 나왔다. 정병국 새누리당 의원은 “통일부 장관이 명확한 증거없이 우려를 표명했다고 하면 주무장관으로서 부적절한 발언이며 공개사과를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몇몇 새누리당 의원들은 홍 장관을 편드는 모습을 취했다. 외통위 여당 간사를 맡고 있는 심윤조 새누리당 의원은 “(70% 발언의) 근거를 밝혀라 안 밝혀라 하는 말은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라며 “북한이 어떻게든 쓸 수 있는 외화를 다 사용해서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고 있다는 건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인데 자꾸 밝혀라, 증거를 대라며 논쟁을 몰고 가는 것은 오히려 사태의 본질을 호도하고 본말을 전도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통치자금 상납? 통일부 ‘입’이 된 지상파 미디어오늘 2.15
[비평] 증거도 연관성도 희박한 정부 주장 검증 없이 전달…“편의점에서 산 과자가 마약자금?”
통일부와 홍용표 장관이 개성공단 노동자 임금 70%가 핵무기 개발 등으로 전용됐다고 구체적인 증거도 없이 주장했지만, 지상파 3사는 정부의 주장을 검증 없이 보도하기에 바빴다. KBS는 지난 14일 뉴스9에서 개성공단 임금의 70%가 북한 통치자금을 관리하는 당 서기실과 39호실에 상납 돼 핵 개발 등에 사용되는 걸로 파악됐다는 홍용표 통일부 장관의 주장을 전하며 “지금까지 개성공단에 유입된 현금은 6100억여 원, 정부 발표대로라면 이 중 3~4천억 원 정도가 핵 개발 등 통치자금으로 전용됐을 것”이라고 추정해 보도했다.
하지만 홍 장관은 관련 자료가 정보자료라는 이유로 공개가 어렵다며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않았고 통일부 스스로 그동안 유엔 안보리 제재를 위반해 왔음을 실토한 꼴임에도 KBS는 “정부 고위 당국자가 개성공단 자금의 전용 경로와 규모를 밝힌 건 이번이 처음”이라면서 “이번 공개가 정쟁의 대상이 돼선 안 된다”는 홍 장관의 말을 전하는 데에만 그쳤다.
KBS 뉴스9 리포트 갈무리
MBC 뉴스데스크에선 이날 통일부의 발표가 UN 안보리 결의 2094호 위반을 자인한 것이라는 지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MBC는 “개성공단을 통해 북측에 전해진 돈 가운데 70%가 북한 노동당으로 들어갔고, 이 돈은 핵과 미사일 개발에도 쓰였다고 정부가 공식적으로 밝혔다”며 “지금까지 개성공단을 통해 북한 측에 들어간 돈은 6160억 원. 그동안 4400억 원가량을 북한 당국이 빼돌렸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MBC는 개성공단 임금의 70%가 흘러들어 갔다는 노동당 서기실과 외화벌이를 총괄하는 ‘39호실’에 대해서도 “핵과 미사일 등 무기개발과 당 간부 관리를 위한 사치품 구매 등에 쓰여, 이른바 김정은의 ‘통치자금’으로 불린다”면서도 개성공단 노동자 임금과 핵무기 개발이 얼마나 연관성이 있는지에 대해선 정부의 일방적인 주장만을 검증 없이 보도했다.
MBC 뉴스데스크 리포트 갈무리
SBS 역시 8뉴스에서 “지난 2013년 유엔안보리가 채택한 대북제재 결의 2094호는 북한의 대량살상무기에 사용되는 대규모 현금 이전을 금지하고 있다”면서도 “이 때문에 미 행정부는 그동안 개성공단 가동 중단을 요구해 온 것으로 알려졌고 우리 정부도 이런 요구에 부담을 느껴왔을 거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고만 언급한 채 정부가 그동안 어떤 잘못을 했고, 어떻게 책임을 져야 하는지 묻지 않았다.
그러나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JTBC 뉴스룸과 인터뷰에서 “(우리 정부가)북한의 대량살상무기에 직간접적인 도움을 줬다고 하면 UN 안보리 결의안 위반이고, 우리가 또 위반을 자인하는 해석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중국과 러시아가 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며 “UN 안보리 산하의 대북제재위원회 검증 사항에서 만약에 확인이 된다면 남북한 모두 북한 대량살상무기로 인해서 서로가 제재를 당한 초유의 역사적인 사건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SBS 8뉴스 리포트 갈무리
국제통상 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국제통상위원장)는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홍 장관의 발언이 사실이면 정부가 우리 기업을 ‘UN결의 위반 행위자’로 만들어버린 것”이라며 “UN 안보리에 제출한 보고서도 허위가 되는 것이고, 한국에 대한 국제사회 신뢰가 완전히 깨져 주변국과의 어떠한 공조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관련기사 : “개성공단 임금으로 핵무기 제작? 거짓말이거나 뻔뻔하거나”)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는 15일 페이스북을 통해 “달러가 당으로 흘러갔다는 주장은 외환집중관리제를 이해하지 못한 결과”라며 “외환집중관리제를 채택하는 국가에서 외환소득과 외환지출 사이를 직접적으로 연결할 수 없어 개성공단에서 받은 달러를 핵개발 자금으로 썼다는 증거 자체가 존재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김 교수는 이어 “편의점에서 과자를 사고 돈 냈는데, 편의점 아들이 돈 통에 있는 돈의 일부로 마약을 하다 발각됐다고 가정해 보자. 정부의 조치는 편의점에서 과자를 산 당신보고 마약 자금을 댔다는 혐의로 체포한 것과 같다”고 비판했다.
홍용표·황교안, 박 대통령 연설 ‘판박이’ 발언 218한겨레
홍용표 통일부 장관(오른쪽)과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18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진행된 대정부질문에서 답변을 하기 위해 엇갈려 지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박근혜 대통령이 증거 없이 ‘개성공단 자금의 북한 무기 개발 전용론’을 거듭 제기하자, ‘증거는 없다’고 실토했던 홍용표 통일부 장관은 물론 황교안 국무총리도 ‘개성공단 자금이 (북한) 노동당 지도부로 들어가 핵·미사일 개발에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는 대통령 주장을 똑같이 반복했다.
홍 장관은 18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임금으로서 달러로 지급된 70%가 당 서기실, 39호실로 간 것으로 파악되고, 이는 핵과 미사일, 치적 사업에 사용된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황 총리도 “북한 노동자에게 준 임금이 노동당 지도부로 들어가고 있고 그 자금들이 핵·미사일 개발 등에 사용되고 있는 것은 파악되고 있다”고 말했다. 둘 모두, 박 대통령이 16일 국회 연설에서 사용한 ‘파악된다’는 표현으로 입을 맞춘 것이다. 대통령처럼 총리와 통일부 장관도 ‘증거’는 내놓지 않았다. 황 총리는 “다만 얼마나 되는 돈이 정확하게 들어갔는가 이 부분은 파악이 안 되고 있다”며 ‘확증’이 없음을 실토했다.
이들이 말하는 ‘파악’은 국가정보원 ‘첩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홍 장관은 국회에서 ‘국정원이 확인한 것이냐’는 질문에 “경로까진 말할 수 없다”고 했지만, 이날 통일부 당국자는 “다양한 첩보를 평가하고선 12일과 14일에 (장관이 개성공단 자금의 북한 무기 개발 전용을) 얘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통일부는 북한 관련 첩보나 정보를 직접 생산하는 부서가 아니다. 국정원이 수집하는 ‘첩보’란 확인되지 않은 전언일 뿐이다. 첩보를 근거로 복수의 정보원을 통해 첩보가 사실이라고 판단할 증거를 확보해야 ‘정보’로서 가치를 갖게 된다.
청와대와 정부의 ‘개성공단 무기 개발 전용론’에 대해, 통일부 장관을 지낸 정세현 한반도평화포럼 상임대표는 “미국 재무부가 문제 삼지 않았다는 것은 미국이 개성공단 임금, 금강산 관광비가 인민경제로 들어가고 있음을 확인했다는 뜻이다. 개성공단 돈은 인민경제에 쓰인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2006년 미국 의회조사국 보고서를 보면, 북한은 1998~2001년 4년간 무기 수출 등으로 10억달러를 번 것으로 돼 있다. 정 대표가 “10년에 걸쳐 개성공단에 들어간 5억6000만달러를 군사경제로 돌릴 이유가 없다”고 지적한 이유다.
한편, 황 총리는 이날 박 대통령의 개성공단 전면 중단 결정에 대해 “대통령의 정치적 결단에 따른 것”이라며 “이 행위는 다른 법을 적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17조는 남북 협력사업을 정지할 때 통일부 장관이 관계 행정기관장과의 협의 절차와 청문 절차 등을 거치도록 규정하고 있다. 개성공단 전면 중단은 국회 소집 불가능 등의 요건도 충족되지 않아, 헌법 76조의 긴급재정명령 절차로 볼 수도 없다.
KBS 여론조사 왜곡, 국민 48.9%가 ‘대북 강경대응’? 215 미디어오늘
‘문항 짜깁기’ 통해 강경 대응론이 앞선 것처럼 보도, 실제론 강경vs온건 오차범위 내 접전
KBS가 북한에 대한 강경대응 여론이 높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조사결과를 임의로 짜깁기하는 등 왜곡한 것으로 나타났다. 남북관계가 위기상황이고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그 어느 때보다 공정한 여론조사보도의 중요성이 큰데도, 공영방송인 KBS는 여론이 정부에 유리하도록 호도한 것이다.
KBS는 지난 14일 뉴스9에서 KBS와 연합뉴스 공동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북한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촉발된 남북 긴장과 관련해선 강경 대응해야 한다는 의견이 더 많았다”고 보도했다. 리포트 이름은 “강경대응 48.9% vs 대화 40.1%”로 대화보다는 강경대응을 주문한 여론이 8% 높은 것처럼 보인다.
▲ 지난 14일 KBS '뉴스9' 보도화면 갈무리.
그런데 같은 여론조사를 진행한 연합뉴스의 보도는 KBS와 달랐다. 연합뉴스는 14일 “대북 제재 강경 48.9%…대화 온건 47.8%”기사에서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는 대북 강경론과 대화로 풀어야 한다는 온건론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가장 핵심적인 수치에서부터 차이가 발생하니 기사의 주제 또한 달라졌다.
여론조사 질문지와 두 언론의 보도를 종합하면 여론조사를 왜곡한 쪽은 KBS다. 지난 14일 KBS 리포트 내용을 보면 “북한에 대해 앞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물었다”면서 “'경제 제재 강화가 30.9% 핵시설 제거를 위한 군사적 수단까지 검토하자'가 18%로 강경 대응 입장 48.9%”라고 밝혔다. 즉, ‘경제제재’ ‘군사적 수단 검토’를 ‘강경대응 입장’으로 묶은 것이다. 반면 “대화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40.1%였고, 7.7%는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해야 한다고 답했다”고 보도해 ‘대화를 통한 해결’과 ‘핵보유 인정’은 ‘온건대응 입장’으로 묶지 않고 별개로 봤다.
▲ 같은 여론조사지만 KBS가 문항을 임의로 자깁기한 탓에 KBS뉴스(15일)와 연합뉴스(14일) 보도는 다른 결과로 나타났다.
응답별로 보면 ‘대화’ 40.1%, ‘경제제재’ 30.9%, ‘군사수단 검토’ 18%, ‘북한 핵보유 인정’ 7.7% 순이다.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고 보도하는 게 정상적인데도 KBS는 별개의 항목을 임의로 합쳐 ‘강경대응’여론이 많은 것처럼 보도한 것이다. 또한, 두 항목을 ‘강경대응’으로 묶었다면 다른 두 항목도 ‘온건대응’으로 묶어 연합뉴스처럼 양측 의견이 팽팽하다고 전달하는 게 합리적이다. 두 문항씩 묶어서 ‘강경대응’과 ‘온건대응’으로 나누면 결과는 48.9%대 47.8%로 오차범위( ±3.1%포인트) 내에서 팽팽해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
15일 KBS 아침뉴스의 보도는 더욱 노골적이다. 그나마 14일 리포트에 나온 그래프는 ‘경제 제재 강화’와 ‘군사적 수단 검토’가 ‘강경대응’이라고 구분하고 있지만, 15일 아침뉴스에 나온 그래프에는 ‘강경대응 48.9%’ ‘대화 40.1%, ’북한 핵보유 인정‘ 7.7%로만 나타났으며 “절반에 달하는 48.9%가 강경대응을 해야 한다고 답했다”고 부연했다. 마치 문항 자체가 3가지였던 것처럼 착시를 일으킨다.
▲ 지난 1월9일 '수소탄 시험 완전 성공 경축 평양시 군민연환대회'가 8일 진행됐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 연합뉴스
앞서 MBC 역시 여론조사 결과를 왜곡해 보도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MBC 뉴스데스크는 지난 8일 “10명 중 7명은 한반도에 사드를 배치해야 한다고 응답해 최근 북한 핵실험과 미사일 도발에 따른 위기감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한 바 있는데, 질문이 사드배치의 필요성을 강조해 왜곡된 결과를 유도했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멀고 먼 ‘월 300만원’…지금은 저축도 결혼도 꿈일 뿐 215경향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일반적인 기준으로 먹고살고, 저축하고, 명절 때 부모님 용돈 드리고, 학자금도 갚아가며, 연애하고 결혼하려면 얼마가 필요할까. 청년들은 ‘월 300만원’을 말했다. 300만원을 도출해낸 계산식은 저마다 달랐지만 한가지 공통점은 있다. ‘그 이하로는 연애든 저축이든 뭔가 하나 이상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청년들이 말하는 ‘월 300’은 하나의 이상향인 동시에 기준이었다. 이 기준을 저버릴 수 없는 청년들은 ‘눈이 높아서’가 아니라 ‘무언가를 포기하지 않기 위해’ 시간을 늦추더라도 대기업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청년들은 왜 ‘월 300’을 말하나
취준생 김수진씨(25·가명)는 지난해 한 중소기업 입사를 포기했다. 입사하면 당초 원했던 해외영업 분야에서 일할 수 있었지만, 연봉이 마음에 걸렸다. 회사는 세후 2000만원(약 월 167만원)을 연봉으로 제시했다. 그간의 공부에 대한 보상과 생활을 꾸려나가기에 불충분하다고 느꼈다. 김씨는 고민 끝에 취업을 늦췄다.
취직 준비를 시작한 지 1년반이 지난 현재 김씨는 대기업과 중견기업 위주로 원서를 넣고 있다. 김씨는 “단순한 의식주 해결이 아닌 저축과 연애 등을 꿈꿔보려면 매달 250만~300만원은 벌어야 될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부모님께 손벌리지 않고 결혼하려면 저축도 더 많이 해야 하고, 직장이 멀어 자취를 하게 되면 월세도 40만~50만원이 나갈 텐데 월 170만원으론 부족하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강사 장모씨(32)는 “너무 열악한 조건으로 일하다 보니 기준이 계속 낮아지고 있다”면서도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려면 300만원 이하로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집을 구할 때 부모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형편이 아니고, 아기가 생기면 봐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직장인 김중기씨(25·가명) 역시 “월급 170만원을 벌었을 땐 통신비, 교통비, 식비, 학자금 상환 등을 제하면 남는 게 없었다”며 “수도권 기준으로 최소 240만원은 돼야 저축, 자취, 생활비 등을 ‘생각이라도’ 해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청년들이 말하는 ‘월 300’은 허무맹랑한 꿈이 아닌 ‘내일을 꿈꾸며 안정적으로 삶을 꾸려나가기’를 가능케 하는 기준에 가까웠다. 이는 통계로 드러난 대졸 구직자의 희망 연봉과도 어느 정도 일치한다. 대한상공회의소(2012년 기준)는 대학생 희망 연봉이 ‘3500만원 이상(34.3%)’과 ‘2500만~3000만원(21.8%)’이었다고 밝혔다. 월급으로 환산하면 대략 250만~300만원 선이다.
‘월 300’과 실제 월급의 간극엔 체념과 포기가 채워진다. 월 평균 200만원을 받는 직장인 김준영씨(29·가명)는 ‘독립적인 진짜 어른의 삶’을 떠나보냈다. 김씨는 “저축 50, 학자금 100, 생활비 50만 합쳐도 기본적으로 200만원이 든다”며 “연애나 취미생활을 하려면 월급이 더 많아야 한다”고 말했다. 300만원과 200만원 사이 100만원만큼이 연애와 결혼, 독립을 들어낸 자리인 셈이다. 직장인 이현아씨(23·가명)는 월 180만원이 목표다. “결혼 및 출산과 집을 포기한 결과”라고 했다.
■‘월 300’과 거리 먼 중소기업
이규형씨(22·가명)는 중소기업 두 군데를 거쳐 최근 대기업에 취직했다. 그는 첫째 직장에서 주야 교대로 일하며 월 170만원을 받았다. 통신비와 교통비, 생활비를 제하면 저축을 하기가 힘들었다. 이씨는 “가족과 함께 살아 월세 지출이 없었기에 버틸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다시 중소기업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 이씨는 “전에는 한달을 꽉 채워 일해야만 170만원을 겨우 받았는데 지금은 기본급만도 150만원에 별도 수당이 있고 분기별로 자기계발비도 55만원씩 나온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은 전체 기업체의 99%, 고용의 약 88%를 차지하고 있지만 청년들의 기대만큼 임금을 주지 못한다. 경총 자료를 보면, 대졸 신입 근로자의 지난해 중소기업 정규직 초임 평균(임금 총액 기준)이 2532만원, 영세기업 정규직은 2055만원이다. 같은 기간 대기업 정규직의 4075만원보다 40~50%가량 낮다. 게다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는 나날이 심화돼, ‘월 300’의 희망을 찾는 청년들이 중소기업에 안착하기 힘든 구조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4년 제조업 분야의 중소기업 월급은 239만원으로 456만원인 대기업의 52% 수준에 그쳤다. 1980년 중소기업 월급이 대기업의 91%로 큰 차이가 나지 않았던 것에 비해 크게 감소한 수치다.
중소 서비스업체에서 일하는 길모씨(24)는 월 140만원가량을 번다. 그는 “대기업에 취직해 3000만~4000만원을 받으면 차도 사고 놀러갈 수도 있겠지만 현재로선 결혼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며 “기회가 온다면 대기업으로 옮길 것”이라고 말했다.
청년이 대기업을 선호하고, 중소기업은 계속해서 상대적으로 열악한 일자리로 남아있는 악순환이 굳어졌다. 2011년 <대졸자의 중소기업 취업이 장기적 노동시장 성과에 미치는 효과> 연구는 단지 첫 직장이 중소기업이란 이유로 이후에도 낮은 임금과 고용 불안정을 겪게 될 확률이 높은 ‘중소기업효과’가 존재함을 밝혔다.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즉 임금 수준이 더 나은 직장으로 상향 이직할 가능성도 낮다. 중소기업에서 첫 직장을 시작한 사람이 대기업으로 옮기는 비율은 대기업이 첫 직장이었을 때의 4분의 1 수준이다. ‘일단 눈을 낮춰 취업하라’는 것은 말도 안된다는 청년들의 항변이 ‘배부른 불만’이 아닌 셈이다. 직장인 김모씨(25)는 “편의점 도시락을 살 때도 반찬수와 가성비를 따지고, 게임 하나를 해도 가이드와 공략을 찾는 세대가 요즘 청년”이라며 “임금 격차가 이렇게 큰데 수년간 일해야 하는 직장을 어떻게 눈 낮춰 갈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중소기업의 항변 “우리도 벼랑 끝에 서 있다”
중소기업 대표들은 “우리도 벼랑 끝에 서 있다”고 말했다. 수익률은 줄고, 업황은 불가측하고, 대기업 입맛에 맞춰야 하는 생산·서비스 비용은 늘고 있다고 했다. 얇은 월급봉투를 주고 싶지 않아도 답이 없다는 뜻이다.
중소 납품업체들의 수익률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 현대차는 10.61%, 기아차는 6.4%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했다. 이 기간 납품업체 영업이익률은 5.8%에 그쳤다. 현대·기아차 계열이 아닌 납품업체는 2.8%로 더 떨어진다. 자동차부품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박지원씨(가명)는 “월별, 분기별로 보면 간신히 운영할 정도의 수익만 난다”며 “한 사람 월급으로 세전 150만원 이상의 인건비를 감당할 수준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상후하박’식 수익 생태계는 전자업계도 마찬가지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상반기 영업이익률은 10.62%를 기록하고, 1차 협력업체는 3.35%였다.
영업이익이 나더라도 임금 상승으로 이어지기 힘들다. 업황의 족쇄 때문이다. 중소 식품회사 ㄱ사는 지난해 메르스 한파 속에서도 영업이익률이 8%였다. 그러나 이순복 사장(가명)은 “지난해 운 좋게 이윤이 남아 연말에 보너스를 줄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불확실하다”고 했다. 그는 “어떤 제품이 히트 치면 대기업이 곧바로 ‘카피 제품’을 만들고 광고를 크게 한다”며 “신제품이 이익을 내기도 전에 대기업에서 카피할 경우 망하지나 않으면 다행”이라고 했다. 성과가 초라할 땐 최저임금조차 겨우 맞춘다.
서비스업은 대기업 요구와 평가에 따라 임금이 달라지기도 한다. 용역회사인 ㄴ사는 직원 80명에게 주는 시간당 임금이 서비스 협력 계약을 맺은 대기업이 부여한 등급에 따라 결정된다. 서비스 수준을 4단계로 상대평가해 1등급과 4등급의 등급별 시급에 두 배 차이나 두기 때문이다.이 회사 부사장은 “일종의 갑질이지만 대기업 서비스료가 매출의 절반을 차지해 어쩔 수 없다”며 “월급 인상은 계획을 세우는 것부터 쉽잖은 구조”라고 말했다.
“지방에서 태어나 사는 것이 죄입니다” 218 경향
“교수님도 볼 때마다 공무원시험 준비하라고 하세요. 여긴 그냥 기회 자체가 없어요.”
호남 지역에서 나고 자란 이희은씨(30·가명)는 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했다. 그의 체감도로는 “과 친구 가운데 최소 60% 이상” 공무원시험을 준비했다. 그는 공공기관 계약직에 여러 차례 원서를 넣었지만 된 적이 없다. 결국 한 대학 연구센터에서 비정규직으로 3년간 일했다. 실수령 급여는 저축을 할 수 없는 120만원이었다
경향신문 ‘부들부들 청년’ 취재팀이 지난해 12월부터 수도권 밖에서 만나본 청년들은 막막함과 좌절감이 깊었다. 처한 현실을 “서울공화국·지방식민지”로 묘사했고, “서울 밖에도 청년들이 있다”고 말했다. 지역 인재가 지방에서 대학을 나와 괜찮은 일자리를 구하는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고 했다. 과거 서울 명문사립대와 경쟁하던 지방 국립대까지 위상이 약화됐다는 것이다. 청년들은 지난해 경북에서 7177명이, 전북에선 6735명이 지방을 떠났다. ‘먹고살려면 수도권으로 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눌려 현재 20~34세 인구의 54%는 수도권에 몰려 있다. 청년들의 ‘인서울’ 러시 속에서 지방은 경제가 황폐화하고 교육·일자리도 위축되는 악순환이 깊어지고 있다.
민소은씨(24·가명)는 지난해 12월부터 고향 전남에서 서울 신림동으로 올라와 노무사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 2평 남짓한 여성 전용 고시텔에서 지내며 월 27만원을 낸다. 식대·학원비까지 포함하면 월 100만원 정도 쓴다. 체류비가 만만치 않지만 시험 준비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다. 민씨는 “논술시험 첨삭이 중요해 서울로 올라왔다. 확실히 현강(현장 강의)을 듣고 수강생들과 정보 공유도 하니까 더 도움이 된다”며 “다니는 학원에는 제주도나 다른 지방에서 온 사람들도 많다”고 말했다.
지난 11일 울산에서 만난 토박이 박용석씨(26)는 취업을 앞두고 ‘정보’에 목말라 있었다. 지방에서는 취업스터디 구하기도 쉽지 않다. 박씨는 “아무리 인터넷이 발달해 있어도 ‘알짜 정보’는 결코 지방까지 오지 않는다. 수도권에 머물며 인맥을 통해 얻는 정보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경향신문 ‘부들부들 청년’ 취재팀은 지난해 12월부터 3개월간 전국 11개 광역시·도에서 102명의 지방 청년을 만났다. 수도권 외 지역에서 나고 자란 청년들의 고민은 수도권보다 더 깊고, 조금은 결이 달랐다. 지방에 기반시설과 일자리가 없어 고향을 등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답답해했고, 수도권에서 태어나지 않았기에 느낀 소외감을 토로하기도 했다. 지방 청년들이 느끼는 결핍이 단순히 ‘일자리’ 문제만은 아니라고 주장하는 청년도 있었다. “서울에서 태어나는 것부터 출발선이 다르다”는 얘기였다.
■“백수도 직업으로 느껴질 정도로 일자리가 없다”
태어나서부터 강릉에서 살아온 홍순우씨(21)는 친구들을 크게 두 부류로 나눴다. 일자리를 찾아 다른 곳으로 떠났거나 강릉에서 알바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홍씨는 “강원도에서는 백수도 직업으로 느껴질 정도”라며 “그만큼 강릉에는 청년들이 취업할 만한 일자리가 부족하다”고 했다. 강원도의 지난해 청년실업률은 12.8%로 전국 광역시·도 중에서 가장 높았다.
대전 토박이인 이동민씨(32·가명)는 대학 졸업과 동시에 학교 취업지원팀의 소개로 대전지역 강소기업에 입사해 지금까지 다니고 있다. 그러나 “나는 기회를 잘 잡은 (운 좋은) 케이스”라고 했다. “대전에 벤처기업이 많지만, 규모가 작아 한 회사에서 고용하는 인원은 1년에 한두 명 정도에 불과한 곳이 대부분이고, ‘공채’(공개채용)가 없어 알음알음 뽑는 소규모 수시채용이 많다”고 말했다.
서울 노량진에서 임용고시를 준비중인 박모씨가 암기카드를 보며 학원으로 걸어가고 있다. / 서성일 기자 centing2kyu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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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출액 상위 100대 기업의 본사 중 86곳은 수도권(서울·경기인천)에 몰려 있다. 강원과 충북·충남, 전남·전북, 대구에는 100대 기업 본사가 한 개도 없다. 한국고용정보원이 발간한 ‘2014년 시·도별 청년고용 현황’을 살펴보면, 전국 청년취업자(387만명) 중 53.9%(208만8000명)가 수도권에서 일자리를 구했다. 지방 일자리의 양뿐만 아니라 질도 문제다. 서울연구원에서 2014년 발간한 ‘서울시 괜찮은 일자리 실태분석과 정책방향’ 보고서를 보면 보수, 고용안정성, 적정 근로시간, 직업의 사회적 평판 등을 반영한 ‘다원적 괜찮은 일자리’ 분포에서 수도권이 60.2%를 차지했다. 청년들이 선호하는 일자리도 수도권에 쏠려 있는 것이다.
대구에서 태어나 대학원을 다니고 있는 이시훈씨(30)는 “대구 하면 ‘섬유’는 이제 옛말이다. 대기업은 모두 수도권으로 빠져나갔고, 임금 수준이 낮은 2·3차 협력업체들만 남아 있다”면서 “심지어 대구에 있는 몇몇 공장은 정규직이었던 생산직 일자리를 알바 노동자에게 넘겼다”고 말했다.
바다 건너 제주에도 일자리는 있다. 다만 일자리의 질이 문제라는 청년들의 의견이 많았다. 제주에서 자라 직장도 다니는 이경준씨(30·가명)는 “저임금 서비스직 일자리는 제주에도 많다”고 했다. 이씨는 “정책적으로 관광업을 장려하면서 단순 서비스업 일자리는 늘었다. 하지만 정작 제주 청년들을 위한 연구·기획이나 마케팅 등 다양한 직종의 일자리 구하기는 여전히 힘들다”고 말했다.
■“부부가 공무원이면 걸어다니는 중소기업”
청년들은 안정적인 일자리를 좇아 공무원시험을 준비한다. 대다수 지방 청년들의 꿈도 ‘공무원’에 맞닿아 있었다. 지방 내 ‘괜찮은 일자리’ 부족은 이런 현상을 더욱 부추긴다.
강원도에서 태어나고 대학까지 졸업한 김혜인씨(24)의 친구들 중 강원도에 남은 부류는 대부분 공무원이다. 김씨는 “지방에 일자리가 없는 상황에서 그나마 지방직 공무원은 지역 출신에게 지원자격이 우선적으로 주어진다. 그래서 공무원을 하는 친구들은 강원도에 많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대구에서 자란 우명진씨(30·가명)는 “대구에서는 부부가 공무원이면 걸어다니는 중소기업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라고 했다. 대구에 그만큼 안정적인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의미에서다. 대구에서 20대를 보낸 김보현씨(23·경북대)도 우씨의 말에 동의했다. 김씨는 “인문계열 전공이라 그런지 주변에 열에 아홉꼴로 공무원시험 준비를 한다”면서 “지방 대학 출신 인문계열 전공자는 소위 ‘인서울’ 대학 출신보다 취업이 더 어렵다. 서울에서 취업을 해도 주거비 등을 감당하지 못할 바에 차라리 공무원시험을 택하는 친구들이 많다”고 말했다.
광주청년위원회 1기 위원장이었던 정슬기씨(28)는 “지방 청년들이 공무원을 더 많이 준비한다는 통계는 물론 없다”면서도 “애초에 지방에 일자리가 없기 때문에 지방 청년들이 공무원시험에 더 목을 매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문화 기반도, 청년들의 안전판도 없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발간한 ‘2015 문예연감’을 보면 2014년 전국에서 이뤄진 예술활동 3만6803건의 68.1%(2만5097건)가 수도권에서 진행됐다. 울산에서 대학을 다니는 장동현씨(25)는 “주말이면 서울에 올라가 각종 문화활동을 즐긴다”면서 “지방에는 문화 인프라도 부족하고 지방 사회와 청년을 문화로 묶어줄 점접이 현재는 없다”고 했다.
‘즐길 문화가 없다’는 생각은 서울에서 지방으로 거주지를 옮겼을 때 더 크게 다가온다. 대기업에 다니는 유승호씨(31·가명)는 지난 3년간 광주에서 근무했다. 유씨는 고교 시절을 광주에서 보낸 뒤 서울에서 대학을 다녔다. 유씨는 “동기 3명과 함께 입사하자마자 예상치 않게 광주에 왔다”고 했다. 부산으로 발령받은 유씨의 동기 2명은 회사를 그만두기도 했다. 광주에 남아 있는 유씨의 친구들은 거의 없었다. 광주에 일자리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유씨는 “3년 내내 무료했다. 일 끝나고 친구를 만나기도, 문화생활을 즐기기도 어려웠다”면서 “일자리가 없어 청년들이 지방을 떠나고, 청년들이 줄어드니까 문화 기반도 생기지 못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말했다.
전북에서 자란 김주혜씨(30·가명)는 청년들의 안전판이나 어깨동무가 되어줄 시민사회가 필요하다고 했다. 서울에는 최근 5년 사이 청년유니온·알바노조 등 청년들의 권익을 보호해주는 단체들이 여럿 생겼다. 김씨는 “수도권 외 지역에는 현재 청년들의 대변인이 되어줄 수 있는 단체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말했다.
■벌어지는 ‘서울 공화국’과 ‘지방 식민지’
구가연씨(22·가명)는 지난달 고향인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와 문화콘텐츠 기업에서 인턴을 하고 있다. 월 60만원을 받고 30만원은 방세로 낸다. 구씨는 “서울에는 그래도 부산보다 기회가 있다”고 했다. 구씨는 “부산에는 인턴으로 경험을 쌓을 곳도 마땅치 않다”며 “서울의 집세 부담이 만만치는 않다”고 했다. 지방을 떠나 서울로 ‘이주 난민’이 되면서 치러야 할 비용이 점점 늘고 있다는 의미다.
‘부들부들 청년’ 취재팀이 만난 지방 청년들은 ‘지방 식민지’ ‘서울 공화국’ 현상을 몸소 겪었다. 지방 청년들은 “제주도에는 대기업이 취업설명회도 거의 오지 않는다”거나 “서울에서 면접만 50번을 봤다. 고속철도(KTX) 대신 버스를 탔는데도 교통비만 200만원이 넘었다”고 푸념했다. “인턴에 합격한 뒤 집 구할 시간도 주지 않고 바로 출근하라고 했다”거나 “대외활동을 해도 지원자격이 수도권으로 한정된 경우가 많았다”는 하소연도 있었다.
부산에서 지방 청년들의 목소리를 담은 계간지 ‘지잡’을 만드는 김영준씨(25·부산대)는 “수도권 밖에서 산다는 이유만으로 꿈의 가짓수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다양한 경험의 기회는 대부분 수도권에 있다. 그나마 돈이 있으면 서울과 지방을 오갈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청년들은 그마저도 어렵다”고 말했다.
뻔뻔한 ‘외제차 폭주족’ 214 경향
광복절을 하루 앞둔 지난해 8월14일 밤 11시. 서울~춘천 고속도로의 경기 남양주 톨게이트 앞에 외제차 6대가 모였다. 벤츠, 인피니티, 폭스바겐 골프, 미니쿠퍼 컨트리맨과 BMW 2대였다. 운전자들은 ‘맛집’으로 알려진 강원 춘천의 한 식당을 목적지로 정했다. 거의 동시에 운전석에 앉자마자 차량은 엔진에 불을 뿜었다.
이들은 제한속도 100㎞인 서울~춘천 고속도로에서 200㎞를 넘나들며 과속 ‘곡예 운전’을 했다. 차로 변경이 금지된 터널 안에서 지그재그로 왔다 갔다 하고, 차로를 갑자기 변경하며 끼어드는 ‘칼치기’도 반복했다. 한밤의 고속도로에서 자신들만의 ‘광란의 질주’에 빠져든 것이다. 김모씨(40)는 오후 11시54분쯤 경기 가평 송산터널 앞에서 외제차 6대가 위협적으로 굉음을 내며 추월하자 경찰에 신고했다.
난폭운전은 결국 그날 자정쯤 사고로 막을 내렸다. 송산터널 안에서 회사원 이모씨(33)가 몰던 BMW 승용차가 폭주족 김모씨(30)의 벤츠를 뒤에서 들이받았다. 그 충격으로 김씨의 벤츠는 앞서 가던 토익 강사 강모씨(32·여)의 인피니티 승용차를 추돌했다. 블랙박스 확인 결과 사고는 터널 안에서 차량 정체 상황이 발생한 것을 모르고 과속하던 이씨가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그대로 앞차를 들이받으면서 일어났다.
모두 30대 초·중반인 이들은 외제차 동호회 회원들로, 지인 등의 소개로 카카오톡 단체방을 만든 뒤 ‘번개 모임’ 형식으로 함께 폭주에 나선 것으로 밝혀졌다. 직업은 웨딩업체 대표, 정보기술(IT)업체 회사원, 학원강사, 고소득 자영업자 등이었다.
경찰은 처음엔 단순 교통사고로 사건을 처리했다. 사고를 낸 3명이 자동차경주를 하다 추돌하게 되면 보험금이 지급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사고 경위를 속였기 때문이다. 이들은 서로 모르는 사람과 우발적으로 사고가 났다고 주장해 각각 보험사에서 수리비·치료비 등 명목으로 총 7800여만원을 받아 챙겼다. 그러나 운전자들이 블랙박스 영상 제출을 거부하자 자동차경주를 의심한 보험사의 제보로 경찰이 수사를 시작했고 결국 전모가 밝혀졌다. 사고 전 휴대전화로 서로 연락을 주고받은 사실 등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들은 경찰 조사에서 난폭운전을 한 점은 인정했지만 자동차경주를 한 사실은 끝까지 부인했다.
경찰은 자유로나 서울외곽순환도로의 폭주 단속이 강화되자 서울~춘천 고속도로를 달리는 폭주족들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 송파경찰서는 난폭운전을 한 혐의(도로교통법 위반)로 이들 폭주족 6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14일 밝혔다. 경찰은 3중 추돌사고를 낸 뒤 일반사고인 것처럼 꾸며 보험금을 타낸 이씨 등 3명에게는 사기 혐의도 추가로 적용했다
"경제 성장해봐야 재벌 총수 가족만 더 부자 된다" 215 한겨레
임금이 좀처럼 안 오르는 것도, 비정규직이 많아진 것도, 중소기업이 어려운 것도, 굴욕적 갑을관계가 많아진 것도, 창업이 어려운 것도, 나라 경제에 성장 동력이 안 보이는 것도 다 "재벌 대기업 때문", 아니 "재벌 총수 가족들 때문"이라고 한다면?
철없는 젊은이나 불만세력의 비약으로 들릴 것이다. 그렇지만 일일이 통계로 근거를 대면서 이렇게 주장하는 전문가가 있다. 장하성(63) 고려대학교 경영대학 교수다.
희망제작소가 창립 10주년을 맞아 허핑턴포스트코리아와 공동 진행하는 '시대정신을 묻는다' 인터뷰를 위해 지난 1월 27일 고려대 경영대에서 장 교수를 만났다. 그는 책 '한국 자본주의'(2014), '왜 분노해야 하는가'(2015)를 연달아 펴내면서 한국 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불평등'이며 그 원인이 '분배의 실패'라고 계속해서 지적해 왔다. 그런 만큼 인터뷰의 방향은 어느 정도 예견됐다.
이원재 희망제작소장의 진행으로 두 시간 넘게 이어진 인터뷰는, 그럼에도 예상과는 조금 달랐다. 제기된 문제의 원인이 선명하게 하나로 수렴됐기 때문이다. 바로 재벌 대기업에 의한 경제적 집중, 총수 일가의 기형적 지배구조를 견제하지 못 한 것이다. 이것이 한국의 불평등과 갈등을 야기한 핵심 원인이라는 것이다
원인이 명확하기에 해법도 명확했다. 그런데도 그 동안 개선 노력이 변변치 않았던 것은 "기득권이 불평등의 문제를 '이념의 문제'로 보고 개입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기득권'에는 보수와 진보가 다 포함된다.
재산 아닌 임금 격차가 '흙수저' 원인
"젊은 세대들은 피부로 느끼고 있습니다. 국가가 발전해도 내 삶은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을요. 2012년 대선에서 '경제민주화'가 떠올랐을 때, 학자들도 개념을 설명 못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국민들은 어렴풋이나마 알았습니다. '삼성‧현대만 부자 될 게 아니라 함께 잘 살자'는 뜻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런데도 기득권들은 아직도 좌냐 우냐, 진보냐 보수냐 하는, 이념 기준으로 사회를 읽으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원인을 찾지 못하지요."
불평등 중에서도 핵심은 '임금 불평등'이라는 게 장 교수가 강조하는 지점이다. 요즘 유행하는 '금수저‧흙수저'론은 부모의 자산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는 것이지만, 장 교수는 "한국의 소득 불평등은 재산 격차가 아니라 임금 격차 때문"이라고 했다.
재산이 많더라도 이자나 임대료, 배당 등으로 버는 돈은 가계소득의 1%도 안 되고, 나머지는 임금소득에서 온다는 것이다. 심지어 상위 10% 고소득층도 재산 소득 비중은 1%가 안 된다. 물론 상위 1% 또는 0.1% 초고소득층의 경우는 재산 수익도 많지만, 국민 대다수를 놓고 봤을 때 임금이 소득의 대부분이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즉, 임금 불평등만 아니어도 '흙수저'라고 절망할 정도의 불평등은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2000년 이후 14년 동안 우리 경제는 74%(누적)나 성장했는데, 실질임금은 그 절반 정도인 39%밖에 늘지 않았습니다. 세계금융위기가 닥친 2007년 이후에도 우리 경제는 25%(누적) 성장했는데 실질임금은 고작 5% 늘었어요. 본래 경제 성장을 바라는 건 국민들의 삶이 나아지리라는 기대 때문이 아닙니까? 그 목적이 상실돼 버린 상황입니다." 여기서부터 이야기는 중간에 끊기 어려울 만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임금 불평등의 원인은 기업이 번 이익 중에서 '임금'을 통해 노동자들에게 돌아가는 몫이 적기 때문인데, 그 첫째 이유는 재벌 대기업, 즉 매출 순위로 상위 100위에 드는 재벌 대기업들과 중소기업들 간의 격차에 있다.
"사람들이 잊고 있는데, 대기업과 중소기업 임금 차이가 늘 심했던 것은 아닙니다. 1980년대에는 중소기업 임금이 대기업의 90% 수준이었고, 특히 1980년에는 97%로 거의 똑같았습니다. 1990년대에도 75~80%대를 유지했어요. 지금은 업종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50~60%대입니다. 같은 일을 해도 중소기업에 다니면 대기업 직원의 절반 남짓밖에 못 버는 것입니다."
하청 직원은 같은 일 해도 '4분의 1' 임금
재벌 100대기업은 전체 고용의 4%밖에 담당하지 않는데도 우리나라 기업들이 내는 전체 이익 총량에서 60%를 가져간다. 중소기업은 고용의 71%를 담당하지만 이익은 35%밖에 가져가지 못 한다.
대기업의 절대적인 산업 장악력 때문에 하청 관계 중소기업의 몫은 더 적다. 현대자동차를 보면, 1차 하청기업 평균임금은 현대자동차 임금의 60% 수준이다. 2차는 36%, 3차는 24%로 내려간다. 3차 하청기업 월급은 현대자동차 직원 대비 4분의 1도 안 되는 것이다.
두 번째로 비정규직 문제도 작용한다. 정부 통계로만 봐도 노동자 셋 중 한 명이, 청년 세대는 셋 중 두 명이 첫 직장을 비정규직으로 시작한다. 비정규직 임금은 정규직의 절반 정도(2015년 기준 54.4%)에 불과하다. 국민연금‧건강보험 등 사회보험 가입률이 30%대로, 정규직의 3분의 2에 불과한 것도 문제다. 물론 가장 큰 문제는 삶 전체를 불안하게 만드는 '고용불안'이다.
장 교수는 "비정규직이라는 단어는 1990년대까지는 존재하지 않았고, 지금도 OECD에서는 우리가 쓰는 것과 같은 비정규직 개념을 사용하는 나라가 없다"면서 "대기업이 직접 하던 부문을 외주화, 외부화 한 데다 원천‧하청의 종속관계까지 작용하면서 불평등한 일자리가 만들어졌고 계속 확산되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삼성이 바이오 운운한 지 벌써 20년째"
미국 대선에서도 버니 샌더스 민주당 경선 후보가 소득 격차와 분배의 문제를 강력하게 제기하듯이 불평등은 전 세계적인 문제다. 장 교수는 "어느 나라나 불평등이 커졌지만 우리나라는 그 속도가 가장 빠르다"고 했다. 특히 최근 들어 급격히 빨라졌다.
"우리나라는 고도성장을 하던 1980년대~1990년대까지도 불평등이 악화되지 않았거나 심지어 완화된 거의 유일한 나라였습니다. 외환위기 이후로 급격히 심해져서, 지금은 상위 10%와 하위 10%의 임금 격차 비율이 OECD 회원국 중 3~4번째로 높습니다."
이렇게 되는 동안 반발이 크지 않았던 것은, '기업이 잘 돼야 나라가 잘 된다', '경제가 살아야 나도 잘 산다'는 인식 때문이다. 장 교수는 "그래서 국민이 이만큼 분배를 참아준 동안, 불평등이 심해진 그 17~18년 동안 재벌 대기업은 성장 동력을 찾아냈느냐?"고 물었다.
지난해 말 인천 송도 바이오 의약품 생산 공장 기공식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바이오로 세계 1위에 도약하겠다"고 선언한 일을 놓고 장 교수는 "삼성이 '신수종사업', '미래 먹거리'라면서 바이오 운운한 것은 김영삼 대통령 때부터의 일"이라면서 "20년 동안 성장 동력을 못 찾았는데도 계속 믿고 기다려야 하느냐?"고 꼬집었다.
"성장 동력 찾는 것과 분배는 특히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오히려 분배를 해야 성장을 하지요. 국내 소비 없이 성장 못 한다는 것은 기본입니다. 중국도 향후 경제 5개년 계획의 핵심이 '내수를 통한 성장'이고 소득 증대와 분배를 국가적 과제로 삼고 있는데 우리는 뭘 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렇다고 대기업이 분배를 안 하는 대신 투자를 더 많이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장 교수는 "기업 투자비중이 늘지 않는 것은 한국은행 국민소득계정 상에 명확하게 나타나 있다"면서 "최근에는 설비투자까지 크게 줄었다"고 했다.
'총수 일가 장악력 유지'가 불평등의 원인
그럼 기업의 이익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언뜻 생각하면 '자본가'에게 돌아갈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그게 바로 한국 경제의 미스테리"라면서 "기업이 번 이익은 공급자, 노동자, 자본가 중 어디론가 가야 정상인데 한국에서는 어디로도 가지 않고 기업 내부에 쌓여 있다"고 했다.
개인저축률이 4%인데 반해 기업저축률은 18%에 달하고, 사내유보율(이익 대비 기업 내부에 남긴 금액 비율)은 1990년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해왔다. 제조업의 경우 1990년 83.3%였던 것이 2013년에는 93.7%에 달했다. 장 교수는 "기업만 점점 더 부자가 되는 나라"라고 했다.
궁금증이 생긴다. 기업이란 결국 사람들의 모임인데, 기업이 많은 돈을 지닌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누구에게 이익이 되는 것일까? 그 답이 가리키는 바가 이날 인터뷰가 향한 곳이었다. 즉, "재벌 총수 일가"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는 각각 1999년, 2000년 이후로 주식발행을 단 한 차례도 한 적이 없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에 가서도 좋은 조건으로 돈을 조달할 수 있는 기업인데도요. 그런 글로벌 기업이 되라고 지금까지 지원해 준 것이죠. 그런데 실제로는 투자를 받지도 않고, 대출을 받지도 않습니다. 돈 쓸 데가 있으면 사업해서 번 돈(이익)을 가지고 씁니다. 그러다 보니 임금으로, 중소기업에게로 분배할 돈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증자 등으로 자본조달을 하면 총수 일가의 지분 비율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재벌 그룹들이 기형적인 지배구조를 통해 5%가 채 안 되는 총수 일가 지분으로 전체를 좌지우지 하는 상황이라 자본조달을 꺼린다는 것이다.
재벌 그룹을 견제 못 한 폐해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장 교수는 "경제 전체의 성장 동력을 도리어 막고 있는 것이 재벌 대기업들"이라고 했다. 전 산업 부문에 문어발식으로 계열사를 둔 재벌 그룹들 때문에 '글로벌 1위 기업'이 나올 수 없는 구조가 됐다고.
"IT 부문 중에서 가장 부가가치 높은 게 시스템통합서비스(SI)라는데, 30대 재벌 중에서 22개가 SI 계열사를 두고 있습니다. 30대 기업 중 20개가 물류‧운송기업을, 10대 재벌 중 7개가 광고회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각각 자기 그룹 일감으로 사업하는 기업들이죠. 그런데 어떻게 세계 경쟁에서 앞서 나가는 글로벌 기업이 나오겠습니까? 재벌그룹마다 휴대전화 만드는 계열사를 가졌다면 삼성전자가 세계적인 기업이 될 수 없었던 것과 같은 이치지요. 재벌들의 내부거래가 한국 경제에 엄청난 걸림돌인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국민 망할 지경이면 국가 개입해야"
이렇게 원인이 분명하기 때문에 해법도 단순하다. 정부가 개입해서 국민들에게 분배가 더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다. "외환위기 때 150조를 들여서 기업을 구제한 것처럼, 이제 국민이 망할 지경이니 국가가 개입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했다.
구체적 방법은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고. 그 중에서 장 교수가 "현 정부에서도 시도했고 미국도 하고 있는, 조금도 이상할 것 없는 정책"이라고 한 방법은 기업 내부유보금에 세금을 매기는 것이다. 혹은 하도급 업체 직원 임금 몫으로 돌아가는 지출에 대해 세금 혜택을 주는 방법도 있다. 이런 방법들은 "정부가 복지 정책 등으로 재분배하는 것보다 불평등을 교정하는 효과가 훨씬 크기 때문에 과감하게 시행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현 정부는 상위 1% 근로소득자, 즉 대기업 직원 연봉을 깎아서 임금격차를 줄이자는 방향을 취하고 있다. 장 교수는 "만일 그렇게 깎은 몫이 비정규직 또는 중소기업 노동자에게 돌아가는 장치가 마련된다면 찬성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런 장치 없이 고소득자를 누르기만 하면 알아서 저소득자에게로 가는 것이 아니다"라는 설명이다.
또 다른 방법은 비정규직 고용 요건을 '사람' 기준이 아니라 '직무' 기준으로 바꾸는 것이다. 노동자 개인을 놓고 '2년 이상 고용할 것인가'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2년 이상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직무라면 그 자리에 정규직을 고용해야 하도록 법을 개정하자는 것.
"2년이 너무 짧으면 5년이라도 좋습니다. 혹은 비정규직보호법이 생긴 2007년 이후 지금까지 8년여 동안 계속해서 비정규직을 채용한 자리만이라도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해 보세요. 현재 비정규직 중 최소 절반은 정규직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만 돼도 지금까지 '헬조선'이라 하던 사람들이 당장에 '헤븐(Heaven) 대한민국'을 외칠 겁니다."
장 교수는 "요즘 소위 '스카이'(서울대‧고려대‧연세대)를 나와도 좋은 직장에 못 간다는데, 좋은 직장이 왜 없어졌겠느냐?"면서 "대기업‧중소기업 임금격차, 비정규직 채용 관행만 없어져도 사방의 일자리가 다 좋은 일자리가 된다"고도 덧붙였다..
이 역시 현 정부와 재계가 주장하는 것과는 반대 방향의 해법이다. 미래 경쟁력을 위해 '고용유연성'이 필요하다면서 정규직을 줄이고 시간선택제‧파견직 등을 확대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장 교수는 "그야말로 헛소리"라고 일축했다.
"미래 산업 형태가 바뀌면 자연히 고용 구조도 바뀌어 갈 것인데, 그 때를 대비해서 지금부터 임시로 일하자는 그런 황당한 주장이 어디 있습니까?"
장 교수는 "이미 한국은 고용유연성이 높은 나라"라고 강조했다. 평균 근속 연수는 OECD 회원국 중 가장 짧은 5년 반이고, 근속 연수가 3년 미만인 노동자 비율이 전체의 절반이 넘는다. 1년 미만으로 근무하는 노동자 비율도 33%나 된다면서 "세 명 중 한 명이 매년 구직활동을 한다는 뜻"이라고 했다.
"다음 세대 위해 기득권이 침묵 깨야"
지금까지 불평등 개선을 위한 그런 노력이 이뤄지지 못 한 것은 "기득권층의 침묵" 때문이었다고 장 교수는 지적했다. "보수는 박정희 시대에, 진보는 (6월 항쟁과 노동자 대투쟁이 있었던) 1987년에 머물러 있기 때문인데 이제라도 '기업이 잘 돼야 국민이 잘 된다'는 생각에서 깨어나서 현실을 제대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10년 전에는 20대를 '88만원 세대'라고 했고, 지금은 20대를 '포기세대', '잉여세대'라고 하는데, 이대로 가면 다음 세대는 '유령인간'이 됩니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지경에 이르는 것이죠. 그때는 사회적 갈등 정도가 아니라 사회적 혼란이 극심해지게 됩니다. 부모들이 진정으로 자녀들을 위한다면, 각자 희생하고 애쓰는 것 못지않게 왜곡된 경제구조를 바꾸기 위해서도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인터뷰 내내 신기했던 것은, 각종 통계 수치가 즉석에서 제시된다는 것이었다. 거의 모든 논거마다 통계가 뒷받침되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그만큼 장 교수가 최근 집중적으로 말하고 집필한 주제라는 것, 그만큼 중요하고 더는 미룰 수 없는 문제라는 점을 알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장 교수가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회를 만들어 소액주주운동을 시작한 1996년 이후로 20년,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장하성 펀드'를 내놓았던 2006년 이후 10년이 지났다. 그 동안 계속해서 이와 같은 이야기를 해온 셈이다. 책 '왜 분노해야 하는가'에 청년층에게 주는 강한 메시지를 담은 일, 정치인들에게 직접 훈수를 두거나 대중 강연을 해온 것 등도 모두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20년 넘도록 같은 이야기를, 점점 더 힘줘서 해야 하는 현실이 씁쓸할 만도 하다. 그렇지만 장교수는 "젊은이들이 '저 사람은 왜 자꾸 우리보고 분노하라는 거야?' 하는 반응이더라" 하고 웃으면서도 지친 기색은 내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변화, 혹은 그 징조에 대한 기대가 엿보였다. 그 답은 인터뷰 중 여러 차례 강조한 "젊은 세대들이 이미 자각하고 있다"는 말에 들어있을 것이다. -희망제작소‧허핑턴포스트코리아 공동기획
부산시가 부산국제영화제를 망가뜨리려는 이유 217 한겨레
홍형숙 감독의 다큐 ‘부산국제영화제, Be Independent For Freedom!’ 갈무리
부산시가 9년 동안 부산국제영화제(BIFF)를 이끈 이용관 집행위원장을 사실상 해촉하기로 결정하면서 영화인들이 반발하고 있는 가운데, ‘이용관 해촉 사태’를 요약한 짧은 영상이 누리꾼들에게 공유되고 있다. 재독 철학자 송두율 교수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 <경계도시>를 연출한 홍형숙 감독은 16일 유튜브에 ‘부산국제영화제, Be Independent For Freedom!’이라는 제목의 3분44초짜리 영상(▶바로 가기 )을 실었다.
영상은 서병수 부산시장이 2004년 10월 19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을 선언하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79개국 314편의 영화가 상영됐던 당시 영화제에서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다이빙벨> 상영도 예정돼 있었다. 서병수 부산시장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다이빙벨>을 상영 안 했으면 좋겠다. 정치적 중립을 훼손할 수 있는 작품을 상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에 영화인들은 반발했다. 봉준호 감독은 “시정 첫 해라 시장님이 영화제 운영에 대해 잘 몰라서 벌어진 실수라고 본다. 특정 영화를 빼라는 것은 30년 된 명가 식당의 육수에서 어떤 재료를 빼달라는 것”이라고 말했고, 칸 영화제 집행위원장인 티에리 프레모는 “칸 영화제는 영화 <화씨 9/11>을 선정했다. 영화는 매우 정치적이었다. 이는 영화제가 정치적이었던 게 아니라 마이클 무어가 정치적이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용관 집행위원장 역시 “영화제의 상영작 선정은 프로그래머들의 고유한 권한”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결국 <다이빙벨>은 1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될 수 있었다. 하지만 부산시와 감사원은 영화제가 끝나고 한 달 뒤 부산국제영화제에 대한 감사에 착수했고, 이용관 집행위원장에게 사퇴를 압박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후 부산국제영화제에 대한 지원금은 2014년 14억6000만원에서 2015년 8억원으로 반토막났다. 부산시는 이용관 집행위원장과 다른 2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임권택 감독은 이에 대해 “열성으로 키워낸 부산국제영화제인데 부산시에서 영화제 죽이는 일을 하고 있다. 잘못된 일이 생긴다면 나라의 수치이고 부산의 수치이며 영화인들의 수치”라고 말했다. 평론가 토니 레인즈도 “나는 작금의 사태를 믿을 수 없다. 부산시가 부산국제영화제를 작정하고 망가뜨리려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미 최강전투기 F-22 뜬 날…중 언론 “동북지역 군비 증강해야”217 한겨레
미국의 전략무기인 스텔기 전투기
F-22 ‘랩터’가 17일 경기 평택 오산 미 공군기지 활주로에 착륙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sbs 8시 뉴스 스크랩
무기 각축장 내몰리는 한반도
미국이 17일 최첨단 스텔스 전투기 F-22 ‘랩터’를 한반도에 출격시키는 등 전략 자산을 활용해 연일 강력한 무력시위를 이어가고, 주한미군 사드 배치 움직임에 강력 반발해온 중국은 관영매체 등을 통해 동북 접경지역 군사력 증강과 한반도의 전쟁 발발 가능성까지 언급하면서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이 극도로 고조되고 있다.
한반도 상공 비행하는 美 B-52 폭격기 / 사진=국방부 공동취재단
B-2 스텔스 폭격기/ 사진=연합뉴스
로널드 레이건호 / 사진=AFPBBNews
미국이 자랑하는 세계 최강의 전투기 F-22 ‘랩터’ 4대가 이날 한반도에 출격했다. 주한미군은 이날 자료를 내어 “미국 전략무기인 F-22 랩터 전투기 4대가 한·미 동맹의 전력을 보여주려고 경기 오산 인근에서 저공비행을 했다”고 밝혔다. 미군은 앞서 지난달 전술핵무기를 탑재할 수 있는 장거리 전략폭격기 B-52를 보냈다. 13~15일엔 핵추진 잠수함 노스캐롤라이나호가 동해안에서 한국 해군과 연합연습을 하고 부산항에 입항해 언론에 공개됐다. 미군은 다음달 7일부터 4월30일까지 이어질 키리졸브·독수리 한·미 연합훈련에 핵추진 항공모함을 포함해 “역대 최대 규모의 최첨단 전력”을 참가시킨다는 계획이다. 핵추진 항모 존 스테니스호와 스텔스 상륙함 뉴올리언스호, 연대급 부대가 유사시 한 달 넘게 전투할 수 있는 군수지원체계를 갖추고 해상에 대기하는 ‘해상사전배치전단’(MPSS) 등이 출동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군의 적극적인 대북 무력시위에는 4차 핵실험 이후 북한의 추가적인 군사행동 가능성을 사전에 경고·봉쇄하겠다는 의지 표현 이상의 의미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유사시 언제든 핵심 전략무기를 한반도에 출격시킬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줌으로써, 최근 한국에서 불거진 핵무장 여론 달래기용의 성격을 담고 있는 것이다. 대한 방위공약의 확고한 이행 의지를 과시해 미국이 제공하는 핵우산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미국, 최근 한반도에 동원한 전략무기와 중국의 탄도미사일 실험
이들 F-22 4대는 이날 낮 12시께 일본 오키나와 가데나 공군기지에서 출격해 2시간 남짓 비행해 오산 공군기지에 착륙했다. F-22는 착륙에 앞서 한국 공군의 F-15K 4대, 주한미군 F-16 4대와 함께 저공비행을 하며 위용을 자랑했다. 이날 한국에 온 F-22 4대 중 2대는 오키나와로 되돌아가고 나머지 2대는 당분간 한국에 남아 작전을 수행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테런스 오쇼너시 주한 미 제7공군 사령관은 “F-22 랩터는 세계 최강의 제공권을 갖춘 전투기”라며 “미국은 철통같은 공약으로 한국을 방어하고 있다”고 말했다.
F-22는 뛰어난 스텔스 기능으로 레이더망을 피해 적진 깊숙이 침투해 목표물을 정밀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레이더에 잡히는 항공기는 ‘레이더반사면적’(RCS)으로 표시된다. F-22의 반사면적은 0.0001㎡로 알려져 있다. 레이더 스코프에 작은 곤충과 비슷하게 나타나는 수준으로 사실상 레이더 탐지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여기에 공대공 임무를 위해 ‘암람 미사일’(AIM-120)과 ‘사이드와인더 미사일’(AIM-9)을 장착하고 있으며, 지상 목표물을 타격할 정밀유도폭탄 1000파운드급(453.5㎏) GBU-32 2발, 소형 정밀유도폭탄 GBU-39 8발 등도 탑재한다. 최대속도 마하 2.0 이상으로 최대 항속거리가 2977㎞에 이른다. 군당국자는 “스텔스 기능과 정밀 타격무기로 유사시 적 후방에 숨어 있는 핵시설이나 지휘시설을 한순간에 무력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핵에는 핵으로” 보수 언론의 위험한 불장난 217 믿어오늘
[비평] 개성공단 가동 중단 결정 맞춰 ‘긴장감 고조→정부발표 일방 전달→비판여론 차단’…홍용표 장관 ‘자충수’에 보수언론도 갈팡질팡?
지난 10일 박근혜정부의 개성공단 가동 전면 중단에 11일자 조간은 “남북관계의 완전한 단절”(경향신문), “평화를 유지할 최소한의 안전판마저 제거”(한겨레)란 비판이 제기됐다. 반면 “마지막 비군사적 대북 압박조치”(조선일보), “김정은의 폭주를 막기 위해선 강 대 강 대결도 불사한다는 박 대통령의 승부사 기질이 나타난 것”(동아일보)란 우호적 평가도 나왔다. 그렇게 ‘북풍몰이’는 시작됐다.
북풍의 첫 번째 바람은 ‘긴장감 고조’였다. 예컨대 채널A는 11일 메인뉴스에서 <기습도발 대비 군 초긴장> 리포트를 내고 “군은 최악을 가정해 인질 구출작전까지 준비했다”며 “개성 송악산과 개풍군 일대 인민군 6사단과 62포병여단의 대공망을 무력화시키고 특수작전 헬기로 특전사를 투입해 (개성공단거주) 국민을 구출”하는 ‘인질구출작전’이 임박한 것처럼 보도했다.
전술핵을 주장하는 내용도 지면 곳곳에서 드러났다. 동아일보는 16일 지면에서 “‘조건부 한시적 전술핵 재배치론’이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대북 핵 옵션”이라 강조했다. 조선일보는 “핵을 비핵화(非核化) 재래 무기 체제로 맞서겠다는 것은 군사적으로 100대0의 격차를 감수하겠다는 말과 같다”(1월28일자 사설)며 일찌감치 군불을 떼 놓은 상황이었다. 이 같은 긴장감 고조는 박근혜정부의 개성공단 중단 조치를 합리화하는 효과를 낳는다.
▲ 동아일보 2월16일자 1면 머리기사.
두 번째 바람은 ‘정부발표 일방 전달’이었다. KBS ‘뉴스9’은 12일 <“개성공단 현금 대량살상무기에 사용”>, <“무기개발 돈줄 차단… ‘공단’ 중단 불가피”> 등의 리포트를 내보내며 정부 입장을 대변하는 데 그쳤다. 2016총선보도감시연대는 JTBC를 제외하곤 정부입장을 기계적으로 전하는 보도태도가 지상파와 종편에서 유사하게 나타났다고 밝혔다.
홍용표 통일부 장관은 14일 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개성공단 임금의 70%가 핵·미사일 개발과 사치품 구입비용을 관리하는 북한 노동당 서기실 또는 39호실로 흘러갔다”고 말한 뒤 “관련 자료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KBS는 14일자 ‘뉴스9’에서 논란이 가득한 해당 발언을 전하며 “정부 고위 당국자가 개성공단 자금의 전용 경로와 규모를 밝힌 건 이번이 처음”이라면서 “이번 공개가 정쟁의 대상이 돼선 안 된다”는 홍 장관의 말을 전하는 데 그쳤다.
“홍 장관의 발언이 사실이면 정부가 우리 기업을 ‘UN 결의 위반 행위자’로 만들어버린 것”(국제통상 전문가 송기호 변호사)이었으나 KBS는 ‘따옴표(쿼터) 저널리즘’에 머물렀다. 보수신문도 “그동안 의혹 수준에 머물던 개성공단 달러의 핵·미사일 개발 자금 전용이 기정사실화 됐다”(국민일보 2월15일자)는 프레임으로 홍 장관이 자신의 발언을 취소할 때까지 그의 주장을 재생산하는데 그쳤다.
북풍의 세 번째 바람은 ‘비판여론 차단’이었다. 지난 2013년 2월부터 6개월간 북한에 의해 개성공단이 폐쇄됐을 때 입주 기업이 입은 피해는 7000억 원 이상으로 추산됐다. 박근혜정부의 개성공단 중단 선언을 ‘셀프 경제 제재’(녹색당 10일 논평)로 보는 배경이다. 정기섭 개성공단기업협회장은 이번 조치를 두고 “맹목적인 보수 쪽 사람들의 표심을 잡기 위해 급작스럽게 비합리적 조치를 했다는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조선일보는 12일자 사설에서 “북한의 잇따른 핵·미사일 도발을 막기 위해 정부가 어쩔 수 없이 내린 고육지책을 총선용 술책인 것처럼 몰아붙인 것”이라며 “아무리 답답한 심정이라 할지라도 기업인이 내놓기엔 부적절한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조선일보는 ‘총선용 북풍몰이’ 의혹을 제기한 더불어민주당을 향해 “북이 우리 기업과 국민의 재산을 뺏고 추방하는데도 북을 비판하기보다는 남남 갈등을 유발하는 선동을 하고 있다”며 “급박한 안보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소아병적 처신”이라고 비난을 쏟아냈다.
이처럼 ‘긴장감 고조’+‘정부발표 일방 전달’+‘비판여론 차단’이 더해지며 박근혜정부의 벼랑 끝 대북정책은 용기 있는 결단으로 포장되고 있다.
▲ 2월14일 KBS '일요진단'에 홍용표 통일부 장관이 출연한 모습.
그러나 보수언론도 정부 측 해명이 빚은 잇단 ‘자충수’를 방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대표적인 게 홍용표 장관 발언이었다.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는 15일 “(개성공단) 달러가 당으로 흘러갔다는 주장은 외환집중관리제를 이해하지 못한 결과”라며 “외환집중관리제를 채택하는 국가에서 외환소득과 외환지출 사이를 직접적으로 연결할 수 없어 개성공단에서 받은 달러를 핵개발 자금으로 썼다는 증거가 존재할 수 없다”고 밝혔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JTBC와 인터뷰에서 “(우리 정부가)북한의 대량살상무기에 직간접적인 도움을 줬다고 하면 UN 안보리 결의안 위반”이라고 우려하기도 했다. 결국 논란이 커지자 홍용표 통일부 장관은 자신의 발언에 근거가 없다고 해명했다.
이를 두고 동아일보는 16일 지면에서 “애초부터 ‘자료가 있다’는 홍 장관의 말 자체가 경솔했다. 북한 노동당 서기실이나 39호실을 압수수색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자료라고 해야 증언에 의존한 정황증거였을 가능성이 크다”며 “어떤 경위라 해도 정부의 개성공단 가동 중단 조치가 정교한 전략 없이 이뤄졌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고 보도했다. 주성하 동아일보 북한전문기자(1998년 탈북)는 블로그를 통해 “개성공단 달러가 핵미사일 개발에 들어갈지, 평양시 건설에 들어갈지 그건 아는 사람이 없다. 통일부에서 70% 핵미사일 개발에 전용된다고 했는데, 그런 소리 함부로 하면 안 된다”고 촌평했다.
이에 한겨레는 16일 “청와대의 일방적 결정으로 (개성공단) 전면 중단이 정해진 뒤, 이를 정당화할 설명을 주무부처인 통일부가 떠맡느라 ‘무리수’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런 가운데 어처구니없는 단독보도도 이어졌다. 조선일보는 15일 “노무현 정부 시절 개성공단에 미국 달러로 유입된 현금의 상당 부분이 북한 노동당에 상납된 사실을 당시 정부도 상세하게 파악하고 있었음을 시사하는 공문서가 존재했던 사실이 확인됐다”고 단독 보도했다. 그러나 조선일보가 공개한 것은 개성공단 노동자들의 임금이 북한 당국으로 전달된다는 내용과 관련된 문서일 뿐, 그것이 핵이나 미사일 개발에 쓰였다는 근거는 아니었다. 총선을 앞두고 불어온 북풍에 부채질하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생각만큼 손발이 맞지 않는 모양새다.
북풍이 정부여당에 유리할지도 아직은 단정하기 이르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은 “2010년 지방선거 때 천안함 사건과 5.24조치가 있었다. 국가와 환율의 불안정이 터지며 여당이 전통적인 북풍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지적하며 “북한 관련 사안이 한국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줘서 국가나 환율·외국인 투자 등을 약화시키는 것이 실제 국민들의 폐해와 손실이 커질 경우 유권자들의 평가가 다른 각도에서 이뤄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보수언론이 ‘부재칠’에 신중해야 하는 이유다.
"북 노동자, 자기 월급 철저히 따져 개성공단이 핵개발 출처? 난센스"217 오마이뉴스
개성공단 임금 핵개발 전용 의혹 이미 2006년에 해소된 논란
개성공단에서 북측 여성노동자들이 남녀 속옷을 만들고 있다(2007년 3월 29일). ⓒ오마이뉴스
박근혜 대통령이 16일 국회 연설에서 홍용표 통일부 장관에 이어 개성공단 노동자들의 임금이 북한의 핵개발에 사용됐다는 취지의 주장을 다시 펼쳤다. 홍 장관이 전날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확증은 없다, 진의가 잘못 알려져 오해와 논란을 불러 국민 여러분께 송구하다"라고 사과했지만 박 대통령이 재차 주장하면서 논란이 재점화 됐다.
박 대통령은 연설에서 "개성공단 가동을 전면 중단한 것도 북한 핵과 미사일 능력 고도화를 막기 위해 북한으로의 외화유입을 차단해야 한다는 엄중한 상황 인식에 따른 것"이라며 "우리가 지급한 달러 대부분이 북한 주민들의 생활 향상에 쓰이지 않고 핵과 미사일 개발을 책임지고 있는 노동당 지도부에 전달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앞서 홍 장관의 발언과 맥락을 같이 한다. 홍 장관은 지난 12일 기자회견에서 개성공단에 투입된 자금이 북한 핵과 장거리 미사일 개발에 사용됐다는 의혹과 관련해 "여러 관련 자료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료를 공개할 수 있느냐'라는 질문에 "공개할 수 있는 자료였다면 벌써 공개했을 것"이라며 "필요한 범위 내에서 나중에 검토, 조치하겠다"라고 답했다.
홍 장관은 지난 14일 KBS 시사프로그램에 출연해서도 같은 취지의 말을 반복했지만, 국회 외통위 전체회의에 출석해서는 "증거 자료를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와전된 부분이 있다"라며 스스로 발언을 뒤집었다. 그는 "근거 자료를 공개하기 힘들다고 한 적은 없고 증거가 아니라 우려를 뒷받침할 만한 것을 염두에 두고 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박 대통령의 연설은 이 같은 주무 장관의 발언을 다시 단 하루 만에 뒤집은 것이다. 애초 "개성공단에 투입된 자금이 핵개발에 사용됐다"는 것에서 "핵 개발을 책임지는 노동당 지도부에 전달됐다"고 달리 표현했지만, 전달하려는 취지는 같았다.
이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안을 위반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안보리는 지난 2013년 '회원국에 핵이나 미사일 개발에 기여할 가능성이 있는 다액의 현금을 포함한 금융자산의 이동이나 금융서비스 제공 금지를 의무화 한다'는 내용의 결의안을 채택했다. 박 대통령과 홍 장관의 주장 대로라면 정부는 그동안 북한의 핵개발에 기여하는 자금을 제공한 것이다.
2006년 개성 사업자가 증언한 개성공단 임금 체계
▲ 홍용표 "와전됐다"... 이해찬 "무능하면 그만둬라" 외교통일위원회는 15일 오후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홍용표 통일부 장관 등으로부터 개성공단 전면 중단 관련 긴급 현안보고를 받았다. ⓒ 정교진
이 같은 주장은 이미 지난 국회 외통위에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 과정에서 신빙성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우리 기업이 북한의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총국)에 노동자들의 임금을 주면 총국은 이를 민족경제협력연합회(민경련)에 준다. 민경련은 여기에서 사회보장비(보험료), (사회)문화시책비를 떼고, 월급의 70% 정도를 교환권 형태의 '물표'로 노동자들에게 준다"라고 말했다.
개성공단 노동자 임금의 70%가 당 서기실 및 39호실에 상납되고, 그 돈이 핵이나 미사일개발, 김정은 치적사업, 사치품 구입에 쓰인다는 정부 주장과는 완전히 대치된다. 정부가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 할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 반면, 이 의원의 주장은 실제 북한에서 노동자들에게 생필품을 판매하고 있는 사업자의 증언으로 뒷받침 된다.
지난 2006년 <한겨레>는 호주에서 무역회사인 '로바나무역'을 운영하는 송용등 회장의 말을 빌려 개성공단 노동자들의 임금 지급 형태를 보도했다. <한겨레>에 따르면 송 회장은 2005년 1월 정식으로 개성시 산하의 송악산무역회사와 51대 49의 비율로 합영회사인 '고려상업합영회사'를 세웠다. 이곳이 북한 노동자들이 생필품을 구입하는 마트(PX)에 물건을 납품하는 업체다.
당시 송 회장의 증언을 정리한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개성공단 노동자의 임금이 100달러인 경우 우리 기업은 15%에 해당하는 사회보험료 15달러를 포함해 총 115달러를 북한 총국에 지급한다. 국내 기업들이 노동자들의 산재보험비의 일부를 부담하는 것과 같은 개념이다. 북한이 2003년 9월 공표한 '개성공업지구 노동규정'에도 명시돼 있으며 15% 비율은 남북이 협상해 정한 것이다.
이어 북측은 사회보험료를 징수하고 남은 임금 100달러에서 사회문화시책비로 30%를 거둔다. 사회문화시책비는 개성공단의 교육 및 의료, 사회간접자본시설 등 공공서비스를 구축하기 위한 비용으로 알려졌다. 결과적으로 북한의 개성공단 노동자들이 받는 임금은 70달러가 된다. 북한은 이 가운데 대부분을 '물표'로 지급하고 5%가량은 북한 원화로 지급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과정에서 북한의 노동자들이 결국 달러를 거의 받지 못했다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북한 당국에 들어간 달러는 고려상업합영회사가 생필품을 수입하는데 들어간다. 2006년 3월 고려상업합영회사가 수입한 생필품의 총액은 23만3400달러이고, 같은 시기 개성공단 노동자들의 실질 임금은 26만4000달러이다. 크게 차이가 나지 않고, 원화로 지급한 5%를 감안하면 거의 비슷하다.
고려합영회사는 이 돈을 인출해 중국·말레이시아 등으로부터 쌀·설탕가루·밀가루·맛내기(조미료) 등의 주요 품목을 비롯해 120여 품목을 사들여, 개성 시내 개성백화점 및 보급소 10여 곳에서 근로자들에게 물품을 배급하고 있다는 게 송 회장의 주장이다.
당시에도 개성공단 노동자들의 임금 지금 방법에 대한 문제가 제기됐지만 이러한 보도가 나오자 논란은 수그러들었다. 통일부도 송 회장과 면담을 통해 이 같은 임금 지급 체계를 공식적으로 파악했다. 결과적으로 세금에 해당하는 일부 금액을 북한 당국이 가져가고 대부분은 노동자들에게 지급되는 체계다(관련기사 :"개성공단 임금, 대부분 생필품으로 지급")
"30%도 중앙당 아닌 개성시인민위원회가 가져간다"
개성공단내 패밀리마트에서 북측 여직원 김은심씨(22세)씨가 검정 치마저고리를 입고 근무하고 있다(2007년 3월 28일). ⓒ 오마이뉴스 권우성
이러한 형태의 임금지급 체제는 최근까지도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08년부터 2011년까지 개성공단관리위원회 기업지원부장을 맡았던 김진향 박사는 17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2006년보다는 간소화됐지만, 현재 임금지급 체계도 큰 틀에서 변화가 없다"라며 "지금은 총국 내에 경영국이라는 곳에서 임금을 지급한다, 사회문화시책기금으로 걷는 30%도 중앙당으로 가는 게 아니라 개성시인민위원회가 가져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모든 회사에는 통계원이 있고, 그 통계원이 노동자들의 근무일수, 잔업, 특근 상황을 일일이 파악해 게시를 하면 노동자들이 확인하고 잘못된 게 있으면 바로 잡아 직접 사인을 한다"라며 "자기 월급이 얼마가 나오는지 다 안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개성공단은 북한의 외화벌이 사업 대상이 아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고 말했다.
김연철 인제대학교 통일학부 교수도 지난 15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개성공단 근로자가 받는 현물임금은 상풍권으로 받고, 전용상점에서 식량, 식료품, 생활 용품을 산다"라며 "이 물건 중에는 북한 국내에서 조달하는 것도 있고, 외국에서 사오는 것도 있다. 일부 식량은 중국에서 구입한 것이 확인됐다, 전용상점의 운영실태에 대해서는 통일부가 실태조사를 한 적이 있다"라고 밝혔다.
또 임금이 노동자들에게 직접 지급되지 않는 이유와 관련해 "(북한의) 외환집중관리제를 이해하지 못한 결과"라며 "예를 들어 1970년대 중동에 건설노동자로 간 우리 노동자들은 임금을 달러로 받고, 국내에 송금하면 그것이 한국은행으로 간다. 그러면 한국은행에서는 공식환율로 환전해서 개별노동자 통장에 입금"시키는 것과 같은 사례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외환집중관리제와 고정환율제는 한국을 비롯한 개발도상국들이 일정 시간 모두 채택한 제도"라며 "외환집중관리제를 채택하는 국가에서 외환 소득과 외환 지출 사이를 직접적으로 연결할 수 없다. 개성공단에서 받은 달러를 핵개발 자금으로 썼다는 증거 자체가 존재할 수 없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핵 개발 전용' 주장하는 2002년 탈북자
이와 반대로 정부의 주장을 뒷받침 하는 증언은 일부 탈북자 단체를 통해 나오고 있다. 김태산 전 조선체코합작회사 사장은 15일 국회에서 열린 '개성공단 관련 탈북민단체 긴급 세미나'에서 개성공단 근로자들의 노임 명목으로 준 돈은 거의 모두 북한 김정은 정권의 통치자금 또는 대량 살상 무기로 변화해 남한 사람들의 위협으로 되돌아온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결론적으로 개성공단은 북한 국민을 살려주는 곳이 아니라 5만4000여 명의 북한 노동자들의 노예노동 현장"이라며 "북한의 개성공단 관리부서가 그 어디든 그 부서는 오직 중앙당의 지시만을 받으며 개성공단에서 벌어들인 돈 역시 김정은 개인금고로 들어간다"고 말했다. 개성공단 임금과 관련한 정부의 태도와 일치하는 주장이다. 그러나 김씨는 지난 2002년 탈북했고, 개성공단은 그로부터 3년 뒤 본격적으로 가동됐다는 점에서 그의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 김씨는 앞서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에 북한군이 투입됐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한 인물이다.
정부 투자활성화 대책]무상 건강관리 서비스까지 ‘상품화’…사실상 ‘의료민영화’ 217 경향
“헬스케어 새로운 영역 창출”…기존 의료법과 충돌 논란도
ㆍ개인 건강정보 사업자에 전송, 의료기업 마케팅 활용 우려
1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9차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웃으며 참석자들을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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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투자활성화 대책의 하나로 내놓은 ‘건강관리서비스업 활성화’ 방안은 현재 보건소나 체육시설 등에서 사실상 무상 제공되는 건강관리 프로그램을 앞으로 기업이 상품으로 만들어 판매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구상을 담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와 보건의료단체들은 “건강보험제도 안에서 이뤄져 온 건강관리 영역을 민영화하겠다는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정부는 17일 박근혜 대통령이 주재한 제9차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올해 3분기 건강관리서비스 가이드라인을 제정해 헬스케어 분야에서 새로운 서비스 영역을 창출하겠다고 밝혔다. 건강관리서비스에 포함될 수 있는 비의료 행위 유형과 사례를 제시해 기업이 의료법 위반 가능성에 대한 우려 없이 사업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의료법은 무면허 의료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건강관리서비스를 ‘건강을 유지·증진하고 질병을 예방할 목적으로 생활습관 개선과 올바른 건강관리를 유도하는 적극적·예방적 서비스’라고 정의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건강한 사람이 스마트폰 앱 등을 이용해 식이·영양·운동 등 생활습관을 관리하는 것까지 의료행위라고 하기는 어렵지 않으냐”고 말했다.
그러나 복지부가 밝힌 건강관리서비스 범위 예시를 보면 ‘의료기관의 진단·처방을 토대로 한 사후관리’, 즉 처방에 따라 의약품을 복용하거나 식사·운동을 하도록 지도하는 일도 포함돼 있다. 이 영역은 현재 정부가 동네의원의 만성질환자를 대상으로 시범사업 중인 원격의료에서도 시행되는 내용이다. 의료행위의 연장선상에 있는 서비스인 셈이다.
또 건강관리서비스는 생활습관 정보를 사업자에게 전송해 모니터링을 받는 식으로 이뤄진다. 기업이 금연·절주 등에 관한 상담을 실시한 뒤 이와 관련된 용품을 판매할 수도 있다. 기업이 개인의 생활습관과 건강 데이터를 구축하고, 이를 건강용품 판매나 다른 사업의 마케팅 등에 활용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국장은 “건강관리는 정부가 건강보험제도 내에서 보건소나 동네의원을 통해 공적으로 활성화시켜야 하는 영역”이라며 “정부 방안은 진단·처방·수술 등 핵심 의료서비스를 제외한 나머지 영역을 민간에 떼어주겠다는 것으로, 의료민영화나 다름 없다”고 밝혔다.
정부 투자활성화 대책]일반인 주택 민박업 합법화로 ‘공유경제’ 육성
ㆍ230㎡ 미만 연 120일 허용
ㆍ서울 양재·우면 특구지정
ㆍ‘기업 R&D 집적단지’ 조성
정부는 일반인이 거주 주택을 관광객 등에게 빌려주는 민박업을 합법화하기로 했다. ‘공유경제’를 서비스신산업으로 육성하기로 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공유민박업’을 신설해 연면적 230㎡(69.5평) 미만의 단독·다가구, 아파트, 연립·다세대주택에 사는 도시 지역(전용주거지역 제외) 주민들이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집을 빌려주고 숙박비를 받는 숙박공유를 연간 120일 이내에서 허용키로 했다. 최근 중국인 관광객 등에게 개인주택을 1~2일 빌려주고 숙박비를 받는 사람이 늘고 있고 ‘에어비엔비(AirBnB)’ 등 숙박 공유 서비스도 등장했지만 현행은 불법이다.
기존 도시민박업은 이용자를 외국인으로 한정하지만 공유민박업은 내국인도 이용할 수 있다. 다만 업무용 시설인 오피스텔은 공유민박업 대상에서 제외된다.
공유민박업은 부산·강원·제주 규제프리존에 시범사업 형태로 도입된다. 서비스 수준이나 영업 가능일수 등은 자율적으로 관리하지만 영업일수를 넘기는 등 준수사항 위반에 대해서는 과태료 부과 등 제재 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차량공유(카셰어링) 사업도 보완된다. 차량공유업체는 앞으로는 면허정보 시스템을 조회해 이용자의 구체적인 면허 정보를 알 수 있게 된다. 카셰어링을 확대하기 위해 시범도시를 지정해 공영주차장 제공 등 각종 혜택을 주기로 했다.
정부는 각종 규제 등으로 발이 묶인 사업 추진을 지원하겠다는 ‘현장대기 프로젝트’로 서울 양재·우면 일대 100만평을 지역특구로 지정해 ‘기업 R&D 집적단지’를 조성하고, 경기 고양시에 튜닝·정비·문화·상업시설이 복합된 자동차서비스단지 조성을 위해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 규제를 완화하기로 했다.
미군이 오면 소녀는 땅속에 숨어야 했다218 국민
해방 이후 당시 경기도 고양군 원당면에 살던 열대여섯 살 소녀 강옥준은 수시로 땅속에 들어가 빼빼 마른 몸을 웅크리고 숨죽였다. 부모가 딸을 지키려고 집에서 어느 정도 떨어진 야산에 파놓은 굴이었다. 마을에서 5리(약 2㎞)쯤 떨어진 서삼릉에 미군이 주둔했는데 시도 때도 없이 들이닥쳐서는 여자들을 잡아갔다. 숨바꼭질 술래라도 되는 양 집집마다 뒤져 여자를 찾았다. 쪼그만 것도 여자라면 끌고 가서는 강간하고, 방생하듯 돌려보냈다.
미군 오는 날
미군이 온다는 말이 들리면 부모는 황급히 딸을 굴로 데려가 숨기고 입구를 풀로 덮었다. 저녁에 한 번 어머니가 와서는 그 풀을 들추고 밥과 김치를 넣어줬다. 미군은 대개 낮에 왔지만 밤에도 와서 뒤질 때가 있어서 굴에 한 번 숨으면 늦게까지 있었다.
같은 마을에 살던 10촌 여동생도 다른 곳에 숨었지만 들통 나 끌려갔다. 강옥준보다 나이가 어렸는데도 미국인들은 기어이 잡아가서 그 몹쓸 짓을 했다. 사람들은 그런 일을 당하고도 살아있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자기가 잘못해서, 재수가 없어서 그런 걸로 여겼다. 항의는커녕 말리지도 못했고 복수는 꿈도 꾸지 못했다. 총을 멘 미군들이 전쟁포로 끌고 가듯 여자를 앞세우고 데려가면 다들 겁에 질려 아무 말도 못했다.
굴속은 다리만 겨우 뻗을 정도였다. 강옥준의 키가 1m40이나 됐을까. 찍소리라도 나면 들킬까 봐 혼잣말도 하지 못했다. 요강 하나만 끼고 앉아 부모가 데리러 올 때까지 어둠 속에서 꼼짝도 못하고 기다릴 뿐이었다. 하염없는 갑갑함보다 ‘잡혀가면 죽는다’는 공포가 더 컸다. 저 어린 나이에 죽음을 실감하게 되는 시대는 정상이 아닐 것이다. 그 시절엔 누구나 죽음의 무게를 느꼈다.
땅속으로 숨지 않아도 된 게 언제인지 기억하지 못한다. “한창 그 짓을 하다가 어느 날 그냥 끝났다”고 83세 강옥준 할머니는 말했다. 17일 서울 마포구 양원초등학교에서 만난 그는 60~70년 된 일들을 비교적 선명하게 기억했다.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도 지친 기색을 보이지 않아서 대화가 한 시간을 넘긴지 몰랐다.
그 나쁜 한국놈
할머니가 더 어렸던 일제 강점기에 여자들은 일본으로 끌려갔다. 이제 와서 일본군 위안부를 자발적 참여자라고 말하는 자들도 있는데 목격자로서 당시를 기억하는 할머니는 “속아서 가지 누가 그런 줄 알고도 자발적으로 가느냐”고 코웃음을 쳤다. 강제로든 거짓말로든 사람을 그렇게 해외로 데려가는 건 당시 일본 형법으로도 범죄 행위였다.
물정모르는 여자들을 그렇게 군수품 나르듯 실어간 게 같은 민족이라는 한국인이었다. 가난한 시대가 아니었다면 천금을 준대도 가지 않았을 것이다. 어린 강옥준이 살던 그 시절엔 툭하면 쌀이 떨어져서 들판에 이제 막 돋아난 쑥들을 뜯어다 멀겋게 죽을 쒀 마셨다. 그마저도 충분히 먹지 못해 허기를 달고 살았다.
아버지는 커다란 장독 3개에 쌀을 채워 마당에 묻고 끼니때마다 꺼내 먹게 했다. 당시 마을에선 밥할 때마다 쌀을 한 숟갈씩 모아놨다가 세금처럼 내야 했는데 어머니가 그걸 잊은 적이 있다. 일본인을 대신해 쌀을 징수하러 온 남자는 어머니가 땅속에서 쌀을 퍼내는 것을 보고는 당국에 일러바쳤다. 결국 다 뺏겨서 식구가 굶어죽을 뻔했다. 퇴비로나 쓰는 콩 찌꺼기 따위라도 먹지 않았다면 연명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땐 그런 한국인이 많았다. 일본에 잘 보여서 뭐 하나 해보려던 사람들. 나라 팔아먹은 이완용만 나쁜 놈이 아니었다.
계집애가 무슨
할머니는 11남매 중 여덟 째였는데 살아 있는 형제는 시집·장가를 가고 나머지는 다 병으로 죽어서 외동딸이나 다름없이 자랐다. 자신이 태어나기 전에 죽어서 얼굴도 못 본 형제가 태반이었다. 그땐 조금이라도 중한 병에 걸리면 누구나 앓다 죽었다. 집이 가난하기도 했지만 마을에 병원도 없었다. 기껏해야 침놓는 데가 있을 뿐인데 죽어가는 사람을 그 침으로 살릴 수는 없었다.
해방 전엔 일본인이 하는 간이학교를 다녔다. 일본어를 가르쳤는데 동그란 딱지 10장을 나눠주고는 한국말을 하면 하나씩 뺏어갔다. 10장을 모두 뺏기면 화장실 청소를 해야 했다. 일본이 한국말의 씨를 말려서 그 세대 한국인을 일본인으로 만들려던 때였다.
그 학교를 한 1년쯤 다녔을 때 해방이 돼 버렸다. 이후 국민학교를 갔는데 아버지가 “기집애(계집애)가 공부는 해 뭐 하느냐”며 책을 전부 아궁이에 넣어버렸다. 그러다가 여자도 한글은 배워야 한대서 야학을 다녔다. 그때 배운 것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다면 누렇게 익은 벼를 어찌 대하리’ ‘돼지 놓고 똬리 놓고 이응자도 모른다면 말갛게 고인 물을 어이 대하리’ 이런 식으로 배워서 한글을 깨쳤다.
방공호에 묻은 조카
열일곱 살에 전쟁이 나서 피란을 떠났다. 강옥준은 서울 아현동 오빠 집에 있다가 부모가 있는 원당으로 나섰고 부모는 그 반대로 오면서 서로 엇갈렸다. 부모 잃은 피란민이 된 강옥준은 먼 친척들 틈에서 밥을 얻어먹었다. 오빠의 딸은 한겨울 피란길에 홍역에 걸려 죽었다. 그 어린 것을 천에다 둘둘 말아 어느 방공호에 놓고 왔다. 눈이 와서 쌓이고 땅은 얼어붙어서 어디다 묻을 수도 없었다. 살려면 죽음으로부터 서둘러 도망쳐야 했다. 내려갈수록 포격이 심해져서 수원까지 갔다가 서울로 돌아왔다. 그리 멀리도 가지 못했던 것이다. 부모는 아현동 오빠 집에 와 있었다. 이들 가족은 수색동 벌판에서 채소를 뜯어다 죽을 쒀 먹었다. 거기 살던 사람들이 심어놓고 피란을 가버려서 먹는 사람이 임자였다.
진남포에서 온 남자
평안남도 진남포에서 세 남자가 남쪽으로 넘어왔다. 공산주의 국가가 되면 잡혀 죽는다고 해서 나라가 갈리기 전에 내려왔다. 셋 중 둘은 형제였다. 이들은 서울 남대문에서 제2국민병(국민방위병)을 뽑는다는 글을 보고 찾아갔는데 형제가 아닌 남자만 합격했다. 그는 거기서 제주로 가서 군사 훈련을 받고 소위 계급으로 전방에 배치됐다.
장교에게는 연락병이 하나씩 붙었다. 진남포 출신 소위의 연락병은 계모 등쌀을 못 이기고 도망쳐 나온 10대였다. 소위는 그에게 “너희 엄마는 너 나온 거 좋아하겠지만 아빠는 너 하난데 잃어버려서 얼마나 걱정이 되겠느냐. 그러니까 편지라도 하라”고 했다. 집으로 써 보낸 편지를 받고 연락병의 아버지가 달려왔다. 그는 소위에게 제대하면 자기 집으로 오라고 했다. 이북 출신인 소위는 이남에서 갈 데가 없는 처지였다.
소위는 제대 후 연락병 집에 들어가 큰아들이 됐다. 그 아버지가 된 사람, 그러니까 연락병 아버지가 강옥준 둘째오빠와 친구 사이였다. 두 사람의 중매로, 갓 스물을 넘긴 강옥준은 진남포 남자와 결혼했다.
처자식 버릴까 봐
남편이 바람을 피워서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다. 그 얘기를 하자며 끝도 없다. 술 좋아하는 남편은 술집여자를 사귀다 아예 집으로 데려왔다. 그러나 바가지를 긁었다가는 그 여자랑 도망 가버릴 것 같아서 아무 말도 안 했다. 애들하고 나만 버리지 마라, 그런 마음이었다. 그랬더니 아주 여자를 집에 들여 버렸다.
그는 원래 좋아하던 남자가 있었다. 그 남자와 결혼하겠다고 하자 부모는 “이년아 무슨 고생을 못해 그 가난한 집에 맏며느리로 가느냐”며 결사반대했다. 그러고는 30리 밖으로 시집을 보내버렸다. 거기 가서 금방 남매를 낳기는 했는데 언제나 마음은 옛 남자에게 가 있었다. 결국 집을 나와 서울로 왔고, 술집을 전전하다 강옥준의 남편을 만났다.
그 여자와 한 2년을 살았다. 언니동생처럼 지냈더니 “세상에 저렇게 착한 마누라가 어디 있느냐”고 사람들이 칭찬을 늘어놨다. 여자는 사람들이 자기 칭찬은 안 한다며 “이렇게 욕만 먹고 살 바에는 안 살겠다”고 했다. 하루는 고춧가루, 깨소금 등이 따로 따로 든 병을 다 때려 부수고는 자기가 가져온 이불 하나만 갖고 집을 나가려고 했다. 그렇게 가버리면 남편이 의심할 게 빤했다. 강옥준은 그 여자를 도로 주저앉혀 한참을 더 함께 살았다. 나중엔 기어이 도망을 쳤는데 남편은 또 다른 여자를 데려왔다.
70년 만의 등교
남편은 나이가 들면서 달라졌지만 그에게 도무지 깊은 정이 안 들었다. 한쪽에 깊은 사랑을 준 적이 남자였다. 할머니는 진작부터 4남매에게 정을 붙이고 살았다. 남편 때문에 하도 속을 끓여선지 언젠가 심장판막증이 생겨서 지금은 평생 약을 먹어야 한다. 여섯 살 많았던 남편은 대장암 수술을 잘해놓고도 술을 끊지 못해 76세에 세상을 떠났다. 원당에 4층짜리 단독주택을 아내 명의로 남겨놓고서.
강옥준 할머니는 5년 전 여든이 다 된 나이에 다시 학교를 찾았다. 노인들 모아놓고 약 파는 곳에서 서울 마포구 양원초등학교를 알게 됐다. 거기서 만난 노인이 이런 곳이 있다며 소개했다. 그 말에 혼자 한번 가본 날이 마침 입학 마지막 날이었다. 그날 등록하고 정식으로 학생이 됐다. 야학 이후 거의 70년 만이었다. 야학으로 배운 한글 덕에 1학년부터 3학년까지 밤낮 우등생을 했다. 하나씩 알아가는 게 그리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4학년 때는 아파서 3개월간 학교를 쉬었는데 사는 재미가 없을 정도였다. 구구단을 외고 간단한 영어를 읽을 수 있게 됐다. 한자 7급 자격증을 땄다. 이제는 5년 과정을 모두 마치고 오는 23일 졸업을 한다. 이제는 여자를 잡아가는 미국인이나 일본인도, 일상을 산산조각 내는 전쟁도, 책을 아궁이에 넣는 아버지도, 바람기로 속 썩이는 남편도, 그 오랜 가난도 없다. “어리고 젊을 적엔 힘들고 무서운 세상에서 고생만 진탕 했는데 이 시간은 아주 행복해요. 지금처럼 좋은 때가 없어요.” 이런 시절은 왜 더 일찍 찾아오지 않았던 것일까.
혐오’는 어떻게 일상화되었나 223주간경향
2000년대 이후 보수·뉴라이트·기독교 우파 등이 ‘종북’을 키워드로 결집
“아직까지 세월호냐.” 설 연휴에 한 뉴스 보도에 달린 포털 댓글이다. ‘그날 이후 두 번째 맞는 설, 세월호 유가족들이 광화문에서 합동차례를 했다’는 보도다. 이 기사에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댓글은 다음과 같다. “참 나, 그렇게 따지면 천안함은 6주기이고 연평해전은 14주기다. 그런 것은 안 쓰냐 기자놈아.”
“자기 자식이 죽었어도 이런 댓글을 달까”라는 사람도 있었지만 댓글들의 주장은 거침이 없다. “돈 벌어먹기 좋은 단어 ‘세월호’”, “감성팔이 징징대는 기사”, “유가족들이 8억은 너무 적다고 생각하는 모양” 등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자리 잡았던 서울시청 옆 금세기빌딩 앞. 서명운동이 진행 중이다. 서명운동 책상 옆에는 이렇게 적힌 플래카드가 내걸려 있다. “박원순 시장님, 저희 어린 자녀들을 보호해주세요!! 서울광장 동성애 축제를 학부모들은 반대합니다.” 구호 밑에는 거의 전라(全裸)의 남성사진이 붙어 있고, 위로는 빨간색으로 X 표시가 되어 있다. 서명운동 주최는 ‘차세대바로세우기 학부모연합’이라는 단체다.
지난해 6월 9일 서울광장에서 샬롬선교회, 전국학부모연합, 건강사회를 위한 국민연대 등 동성애에 반대하는 단체 회원들이 동성애 반대 집회를 열고 있다. / 이석우 기자
유족충·똥꼬충 등 막 나가는 발언들
세월호 유족들이 8억원을 받았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지난해 4월 2일 주요 언론들은 ‘세월호 배·보상 학생 1인당 8억2000만원’이라는 타이틀을 내걸었다. 유족들이 참여하지 않은 일방적인 배·보상 기준에다 국민성금(3억원)에 여행자보험금(1억원)을 더해 발표한 액수다. 당시 “배·보상액이 부풀려졌다”는 지적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언론에서 총지급액을 말해달라는 요구가 많아 취합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유족들은 “배상금이 아니라 진상규명부터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반발했다. 지난해 9월 30일 마감한 배·보상 신청에 희생자 111명의 유족과 20명의 생존자는 접수하지 않았다. 일베를 비롯해 뉴스댓글 등에서 세월호 유족들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세월호 유가족들을 ‘유족충’ 등의 비하어로 공공연하게 지칭하고 있다.
‘차세대바로세우기 학부모연합’의 서명운동도 마찬가지다. 서울광장에서 퀴어문화축제 폐막식이 열린 것은 지난해 6월 28일이었다. ‘시민들의 통행과 차량 소통에 지속적인 불편을 줄 우려’를 이유로 경찰로부터 ‘옥외집회 금지 통고’를 받았던 퍼레이드는 우여곡절 끝에 열렸다. 행사에 반대하는 기독교단체들은 이들에 앞서 집회신고를 내는 한편 행사가 열렸던 장소 인근에서 맞불집회를 열었지만, 큰 충돌 없이 행사는 마무리됐다.
퀴어문화축제는 매년 6월 말 진행된다. 행사가 끝났는데도 서명운동을 계속하는 것은 앞으로는 이런 행사는 금지되어야 한다는 뜻일까. 당시 <주간경향> 취재에서 맞불집회를 기획한 ‘탈동성애인권연대’의 이요나 목사(서울 갈보리채플교회)는 “자기들끼리 옥내에서 벗고 놀거나 하는 것에 대해 뭐라 할 생각은 없다”며 “거리에서 벌거벗고 하는 쇼는 미풍양속을 해치는 것이고 비윤리적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동성애 문제를 인권문제로 다뤄선 안 된다. 동성애를 인권으로 다루면 수간(獸姦)도 인정해달라고 할 수 있고, 소아성애자도 자신들은 소수자라고 주장할 수 있다. 동성애는 불륜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사회적 약자라고 주장하는데, 무슨 약자가 세계적인 대회를 여느냐. 장애는 타고나는 것이지만 동성애는 죄다. 죄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인권이다.”
세월호 유족들에게 ‘유족충’이라는 비하어가 붙었다면 성적 소수자들에 대해 비난하는 대표적인 단어는 ‘똥꼬충’이다. 검색엔진 구글에서 ‘유족충’과 ‘똥꼬충’을 검색하면 각각 9만7500개, 36만4000개의 검색 결과가 나온다.
동성애 반대단체들에 맞서 한국여성민우회 활동가들이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이석우 기자
약자·소수자 보호 책임 회피하는 정부
문제는 이런 혐오표현이 공론장이나 공적인 영역에서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실력저지’는 실제 입법현장에서도 이뤄지고 있다. 벌써 4년째 표류하고 있는 ‘차별금지법’이 대표적이다. 2007년 이후 유엔여성차별철폐·인종차별철폐·사회권규약·아동권리위원회 등이 지속적으로 한국에 차별금지 법제 마련을 권고해 왔다. 그리고 2012년 10월, 유엔인권이사회가 대한민국에 대한 2차 국가별 정례 인권검토 심의에서 차별금지법 제정 권고를 냈다.
국회에서 차별금지법에 대한 논의는 17대 때부터 있었지만 번번이 좌절돼 왔다. 19대 국회에서도 3개의 포괄적 차별금지법안이 추진되었으나 이들 중 2개 법안은 2013년 4월 24일 철회되었다. 현재까지 상정·계류 중인 법안은 2012년 11월 통합진보당 김재연 의원 등 10여명이 발의한 법안이지만 현재까지 소관위 심사 상태에 머무르고 있어 19대 회기 만료에 따라 자동폐기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1월 28일 서울대. “이 토론회는 불가피하게 짜증나는 내용이 기다리고 있다.” 김형완 인권정책연구소장의 말이다. 그가 ‘불가피하게 짜증나는 내용’이라고 일컬은 것은 바로 ‘혐오표현’이다. ‘혐오표현의 실태와 대책’이라는 주제로 열린 토론회는 서울대 인권센터와 혐오표현연구모임이 주최한 행사였다.
김 소장은 “혐오의 배후에 있는 권력관계나 차별구조를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세월호 유족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어버이연합 사람들이 동원되었다고 말할 때 이른바 배후가 있어 돈을 줘서 반대급부로 동원되었다는 협의의 개념이 아니라 이념적으로 스스로 옳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을 말한다. 성적소수자들에 대한 일부 개신교의 혐오 선동은 기독교의 신앙원리에서 비롯한다기보다 기득권화된 교회의 권력욕망, 세속교회 권력의 차별구조가 자리잡고 있다고 본다.” 김 소장은 최근 한국 사회에서 혐오발언이 ‘증오선동’으로까지 나아가고 있는 데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보호라는 사명을 방기하고 있는 국가의 책임이 크다고 지적한다. “사회적 약자, 소수자의 권리를 보장할 것인가를 두고 벌어지는 사회적 싸움을 마치 기득권을 둘러싼 이해자들 사이의 싸움처럼 보고 마치 자신들이 중재자나 중립자연하면서 숨는다는 것이다. 유엔에서 특별히 성소수자를 사회적 약자로 분명히 규정하라며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했는데도 법무부가 ‘사회적 합의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나설 수 없다’고 답하는 것은 유엔인권이사회의 권고 맥락을 이해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현상적으로는 국가가 사안에 대해 중립자인 체하지만, 실상은 기득권층의 적극적 보호막 역할을 한다는 것이 김 소장의 주장이다.
“문제의 핵심엔 그런 ‘혐오표현’을 정치적으로 용인하는 최근의 정치·사회적 분위기가 있다.” 나영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GP네트워크 팀장의 말이다. 과거에는 혐오의 대상이 이상하거나 미개하다고 여겼다면 2000년대 이후에 나타난 혐오표현의 양상은 “다른 사람의 안전을 위협하고 소수자 지위를 이용해 특권화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상은 종북, 전라도인, 장애인, 이주민, 여성과 성적소수자다. 그렇다면 그 주체는 누구일까. 나 팀장은 “보수우익과 뉴라이트, 개신교 우파, 일베가 각각 다른 맥락을 가지면서도 특정한 정치성향과 인식을 공유하면서 혐오를 선동해 왔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들의 혐오선동 논리를 관통하는 키워드가 ‘사회 혼란을 조장하는 ‘종북’으로 모아진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그는 말한다.
지난 1월 28일 서울대 인권법센터·혐오표현연구모임이 주최한 ‘혐오표현의 실태와 대책’ 토론회. / 정용인 기자
혐오발언 규제와 표현의 자유 상충 문제
지난해 퀴어퍼레이드·서울시민인권헌장 반대운동에 등장한 ‘종북게이’라는 표현이 단적인 사례다. “동성애자와 좌파가 연합한 종북세력이 ‘교회파괴-가정해체-사회분열-국가전복’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주장이 바로 이런 혐오지형을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나 팀장은 “지금의 혐오에서 제일 우려스러운 것은 대상에 대한 혐오를 넘어서 소수자가 의당 가져야 할 권리 자체가 혐오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이라며 “더 큰 문제는 그런 혐오를 권력이 보장해주고, 그런 기득권 방어를 위한 여러 혐오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대선과정에서 새누리당 정치인이 건전한 커뮤니티 사이트라며 일베를 옹호한 것과 신은미·황선씨의 통일콘서트에 대한 테러를 안중근 열사 등에 비유하며 치켜세우는 일각의 흐름이 대표적이라는 지적이다.
사실 혐오발언이나 증오선동에 대한 국내 연구는 아직 척박한 단계다.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으로 나온 재특회의 ‘혐오발언’에 대해 ‘헤이트스피치’로 개념 규정을 하며 다양한 모임과 토론회, 단행본 발행 등의 작업을 통해 관련 대응논리와 이론을 개발하고 실태조사 연구가 진행되어온 일본과 비교해봐도 국내 연구는 많지 않다. 서울대 인권법센터와 함께 토론회를 주최하며 혐오표현연구모임을 주도했던 문경란 전 서울시 인권위원장은 “서울인권헌장이 좌절된 이후 성소수자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에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혐오문제에 대처하기 위한 운동이 필요하다는 인식으로 연구모임을 제안하게 됐다”며 “의외로 관련 선행연구나 실태조사 같은 것이 별로 존재하지 않았고, 국제인권규범의 적용 맥락에 대해서도 논의된 것이 별로 없어서 현재까지의 상황 및 실태를 정리하는 토론회를 열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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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적인 예가 혐오발언을 어느 선에서 규제해야 하는가의 문제다. 당장 표현의 자유라는 민주주의 원칙과 상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숙명여대 법학부 홍성수 교수는 “혐오표현에 대한 일정한 국가 개입은 필요하지만 여전히 ‘사상의 자유시장’에 의한 해결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입장을 포기해서는 안된다”며 “형사처벌로 혐오표현을 규제하는 것보다는 예컨대 인권위원회와 같은 차별 시정기구가 주도하는 해결책이 더 나은 방법이며, 아울러 국가나 시민사회의 역할도 금지하는 방식보다는 혐오표현의 피해자에 대한 지지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희망을 만드는 법’의 류민희 변호사는 “혐오표현과 표현의 자유를 제로섬으로 볼 것이 아니라 평등권이 만나는 장이 될 필요가 있다”며 “혐오표현 대응에 있어서도 시민사회 중심의 대응, 예컨대 미국 남부빈곤법률센터가 매년 백인 인종우월주의 선동단체들을 일정한 기준에 의해 선정, 헤이트맵(hate map), 헤이트워치(hate watch)와 같은 사이트를 운영하는데, 그런 식의 활동도 검토해볼 만하다”고 덧붙였다.
우리의 자화상, 문제는 마음이야! 223주간경향
많은 중산층들이 ‘내 이웃과의 비교’ 속에서 자기 자신을 평가한다. 한국인의 낮은 자기의식은 자기 자신에 대한 불만을 키우게 된다. 한국에서 계층갈등은 심리적 문제라는 지적이 있다. ‘한국인의 마음’을 들여다봤다.
장면#1“우리나라 사람들을 상중하로 나눈다면 전 중하쯤은 될 겁니다.”
정년퇴임을 두 달 앞둔 공무원 강기영씨(60·가명)는 “당신은 중산층인가?”라는 질문에 손사래를 치며 이렇게 답했다. 강씨는 수도권의 105.6㎡(32평) 크기의 아파트에 아내와 두 자녀와 함께 산다. 아내가 일을 하고 있는 부부의 월 소득은 500만원. 아파트도 온 가족이 20년째 살고 있는 자가소유다. 두 자녀 다 대학을 졸업했다. 큰딸은 중소기업에 취업을 했고, 둘째딸은 취업준비 중이다. 이쯤되면 충분히 중산층이라고 느낄 만한데, 강씨가 스스로를 ‘중하’ 계급으로 분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강씨는 자신이 늘 어렵게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강원도의 가난한 시골마을에서 자라 군복무를 마치고 상경해 단칸 월세방에서 시작했다. 결혼 후 10년 무주택 생활 끝에 꿈의 신도시 신규분양 아파트에서 그리던 내집 마련을 했지만 대출을 낀 이사였다. 자녀들이 자라면서 더 큰 평수의 아파트로 이사하고, 사교육비와 대학등록금을 대기 시작하면서 빚은 2억8000만원까지 늘었다. 아내가 간병인으로 일하며 다시 10년을 빚 갚으며 살았다. 빚을 거의 갚았다고 생각하니 은퇴다. 공직생활 내내 강원도 출신이라 승진에서 불이익을 받았다고 생각한다니 이 점도 아쉽다. 취미로 나가는 등산모임에서 “빌딩 있다”며 가끔씩 회원들에게 밥을 사는 사람이 몹시 부럽다.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가 지난해 12월 30∼50대 중산층 112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해 펴낸 ‘2016 대한민국 중산층 보고서’를 보면 중산층 10명 중 8명은 자신을 중산층이 아니라고 답했다. 전체 응답자 가운데 79.1%는 자신이 빈곤층이라고 답했다. 100세시대연구소의 조사대상자 월평균 소득은 374만원 수준이었고 순자산은 2억3000만원이었다. 통계청이 제시한 2014년 중위소득 기준은 월 187만8000원이었다. 강씨에게는 ‘항상 어렵게 살았다’와 ‘남보다 못하다’는 한과 울분이 있다.
2014년 소치올림픽에서 김연아를 누르고 금메달을 땄다는 이유로 소트니코바는 국내에서 부정적 여론이 형성됐다. 포털사이트 카페에서는 1년 이상이 지나도 소트니코바를 조롱하는 게시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 AP연합뉴스
장면#2“고등학교 때 더 열심히 했으니 좋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당연하다구요?”
비수도권 지역에서 4년제 대학을 나오고 계약직 사무원으로 일하는 한모씨(30)는 직장에서 정규직 사원들이 이 말을 할 때 가장 가슴에 멍이 든다고 말한다. 즐거웠고 추억도 많았던 자신의 10대 시절이 통째로 게으르고 무능했던 것으로 낙인 찍히는 기분이기 때문이다. 지금 자신의 모습은 벌을 받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차별대우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면서도 ‘내가 더 열심해 했어야 했나’ 생각하면 비참해진다. 공부를 매우 잘하지 못한 10대 시절의 벌을 30대까지 받는다면 대체 언제까지 지속돼야 공정한가. 이번 설 명절에도 친척들을 방문하지 않았다. 친척들도 비슷한 뉘앙스를 풍기며 대하는 것 같고 사촌형제 등이 대부분 대기업에 다니거나 공무원으로 취업을 잘 해서 위축된다고 했다. 안 보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 한씨에게 출신 대학의 꼬리표와 비정규직이라는 것은 월급이 적고 계약기간이 짧아서 오는 불안함 이상의 고통을 준다. 10대 시절 자체를 부정당하는 것이다.
장면#3 2014년 열린 소치 동계올림픽 여자 피겨스케이팅 싱글 부문에서 러시아의 소트니코바 선수가 김연아 선수를 꺾고 금메달을 차지했다. 소트니코바가 개최국의 이점으로 김연아가 받았어야 할 금메달을 강탈해갔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포털은 ‘국민이 준 금메달’을 내걸었다. 김연아 선수가 “금메달에 미련 없다”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2016년 현재에도 피겨스케이팅 커뮤니티나 소트니코바 관련 기사에는 욕설과 악플이 올라온다. 반면 러시아 국적으로 메달을 딴 안현수 선수에게는 환호가 쏟아졌다. 김연아와 안현수 모두 ‘차별’과 ‘반칙’으로 좌절하고 마는 개인으로 감정이입한 탓이다. 김연아는 국가의 힘이 약해서, 안현수는 국가의 가진 자들이 비열해서 피해를 봤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다음 화면 캡처
급여 차이는 ‘인정투쟁’으로 번져
세 가지 장면 모두 울분이 개입돼 있다. 이 울분은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 강씨와 한씨의 사례를 보면 한국에서 계층문제란 ‘소득’만이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마음’의 문제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 교수와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등이 참여해 지난해 말 국민대통합위원회가 공개한 ‘한국 사회의 계층갈등과 해소방안 연구보고서’에서도 한국의 계층갈등은 심리적 문제라고 지적한다. 단순히 월급이나 소득의 많고 적음을 떠나 ‘약자에 대한 무시’라는 자괴감과 강자로부터 인정받으려는 ‘인정투쟁’의 면모를 갖고 있어 더욱 격렬한 양상을 보인다는 것이다. 정규직·비정규직 여부나 출신 대학이 단순히 직장에서 급여 차이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게으르고 무능한 사람’, ‘벌 받는 사람’, ‘차별당해 마땅한 사람’이라는 낙인으로까지 이어지고 직장에서 ‘침묵’을 강요당한다.
국민대통합위 관계자는 “결국은 ‘마음의 습속’을 바꾸는 작업이 중요하다”며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과 사회정의에 대한 인식은 교육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 학교 교육과정 속에 민주적 시민교육을 정착시키고 다양한 문화프로그램과 연계해 공공의 시민문화를 활성화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강씨의 경우처럼 많은 중산층들이 ‘내 이웃과의 비교’ 속에서 자기 자신을 평가한다. 한국인의 핵심 심리코드인 ‘출세지향적’ 문화와도 맞닿아 있다.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인의 평등주의 그 마음의 습관>에서 이를 지적한다. 조선왕조는 신분제 사회였다. 과거에 합격해 ‘입신양명’하는 것은 오로지 양반만의 특권이었다. 특히 유교적 가치관에서 과거에 합격해 관료가 되는 것은 가문의 영광이자 궁극의 효로 여겨졌다. 일제로 인해 조선왕조는 무너지면서 신분제도 함께 무너졌는데, ‘입신양명’을 대체할 다른 다양한 가치관은 충분히 성장하지 못했다. 평등이 개개인을 동등한 존재로 존중한다는 개념이라는 것도 뿌리내리지 못했지만, 평민에게 제한됐던 ‘출세길’은 그나마 열렸다. 그 결과 ‘모두가 양반되기’, ‘모두가 과거 합격하기’ 경쟁이 벌어진 것이다. 획일적 목표를 향해 다같이 경쟁하고 뒤처져서는 안 되는 한국식 평등주의가 열렸다. 이것은 2000년대 교육경쟁과 부동산 투기열풍 등과도 연결된다는 것이 송 교수의 지적이다. 출세 욕망은 선거에서도 발휘돼 ‘국민 성공시대’(이명박 전 대통령), ‘내 꿈이 이뤄지는 나라’(박근혜 대통령) 등 개인의 입신 욕구를 겨냥한 대선 슬로건이 선거에서 성공을 거뒀다.
국민의 심리 겨낭한 총선 ‘공포 마케팅’
한편으로는 일제강점기 강한 나라를 건설하지 못하고 망하는 아픔도 맛봤다. 김태호 한양대 비교역사문제연구소 교수는 “‘영웅’을 숭배하고, 특히 ‘시련을 당한 영웅’에 감정이입하는 경향이 한국인들에게 있다”고 말했다. 일제강점기 ‘타자’에 의해 꿈이 좌절됐다는 경험과 분노가 스포츠와 드라마 등을 통해 반복 재현되는 것이다. 좌절과 울분이라는 한국인의 심리DNA는 개인의 일상사에서도, 정치권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미래가 누군가에 의해 좌절됐다는 분노는 쉽게 ‘적’을 만들어내고 에너지를 적을 향해 쏟는 경향으로도 나타난다. 정치권에서는 이번 총선을 두 달 앞두고 ‘심판론’을 내걸었다. 정부·여당은 국회 심판론과 야당 심판론을 내걸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13일 신년 대국민 담화부터 “국민이 나서달라”며 ‘국회 심판론’을 지피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낡은 경제세력 교체’와 ‘정부 심판’을 강조했다. 국민의당은 거대 기득권 양당 심판론을 내걸었다. 보육대란,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 등 여권 실책에 날을 세우는 한편 입법 대치 정국에선 더민주도 비판한다. 정부·여당의 국회 심판론은 ‘공포 마케팅’이다. 경제가 좋아지지 않으면 결국 서민들만 힘들어질 것이라는 심리를 겨냥한다.
책을 통해 본 한국인의 모습
한국인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은 한국인의 과거, 현재, 미래를 들여다보는 일이다. ‘한국인’과 관련한 네 가지 책을 소개한다.
최정운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쓴 <한국인의 탄생>(미지북스)은 100년 전 탄생한 ‘강한 한국인’을 다룬다. 오늘날까지 경쟁의 무대에 용감하게 뛰어들고 지칠 줄 모르는 한국인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묻는 책이다. 정치학자의 눈으로 <홍길동전>, <임꺽정>, <유정> 등 근현대 소설을 분석해, 통념과 달리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조상들은 나약하고 게으르지 않았다고 말한다. 오히려 나라를 되찾기 위해 누구보다도 강해지려고 노력해 현재의 한국인이 탄생했다고 말한다. 외환위기 이후 적극적으로 경쟁의 논리를 받아들이는 한국인의 모습이 영미식 신자유주의에서 기원한 것이 아니라 근현대사를 통해 단련된 생존논리라는 것을 여러 소설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체화한 강함을 숭배하는 한국인의 기질 역시 이때 탄생했으며, 오늘날에는 극복해야 할 과제라고 말한다.
<한국인은 미쳤다>(북하우스)와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21 북스+북하우스)에서는 외국인의 시선으로 본 한국인의 극과 극의 모습을 대조해볼 수 있다.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은 엠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경희대 국제대학 교수가 썼다. 사랑방문화, 풍수지리 등 한국인이 지나쳐가는 문화에서 한국의 가능성을 찬미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휴가지에서 읽고 추천하여 널리 화제가 됐다. 2003년부터 LG전자 프랑스법인을 이끈 에리크 쉬르데즈의 <한국인은 미쳤다>는 군대식 직장문화와 대기업 초과노동이 ‘글로벌 스탠더드’에서 보면 얼마나 경악스러운 일인지 서술한다. 직원들의 야근이 프랑스에서는 회사에 대한 충성과 헌신이 아니라 동료의 삶을 파괴하는 것으로 간주된다는 점이 단적인 예다. 두 책은 외국인의 시선으로 익숙한 것을 다르게 보도록 하는 효과가 있다. 다소 한국의 한쪽만 본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가 쓴 <어쩌다 한국인>(중앙북스)은 현재 한국인의 심리상태를 ‘사춘기’에 비유한다. 불만족스럽고 외부의 시선에 민감하며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시기라는 의미다. 주체성, 가족확장성, 관계주의, 심정주의, 복합유연성, 불확실성 회피 등 6가지 문화심리학 키워드를 통해 한국인의 심리를 분석한다. “내가 쏜다”는 말을 공개적으로 하거나, “저희 나라”라는 낮춤 화법, 도덕적으로 완전무결한 정치인에 대한 선망, 인센티브에 대한 부정적 자세 등 한국인의 일상문화의 원인이 어떤 심리에서 기인하는지 파헤친다. 책은 ‘행복한 지옥’이었던 한국 사회가 ‘지루한 천국’ 대신 ‘지루한 지옥’이라는 정체기에 들어섰다고 말한다. 한국인의 심리적 특성이 고도성장기 발전을 이끈 원동력인 동시에, 현재로서는 한국 사회를 불행하게 만드는 요소가 됐다며 다양성의 가치가 보장받는 사회로 넘어가기 위해 우리가 정확히 어떤 모습인지 성찰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선거철 오니 또... 그린벨트가 무너진다 219 한국
GB는 선거용? 아껴 해제해야 한다…역대정권 GB해제 선거 때마다 이용
D4002030\Desktop\역대정권 그린벨트 정책과 선거일정.jpg/2016-02-18(한국일보)
15년간 여의도면적 530배 사라진 그린벨트…해제이유는?
“당선 위해서라면 그린벨트를 개발해야 한다”
국책사업 위해서라면 ‘도시허파’ 필요없다?
지난 16일 경기 과천시 주암동 231번지 과천화훼단지. 92만㎡ 부지에 190여동의 비닐하우스가 빼곡히 들어선 단지 곳곳에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기업형임대주택 공급촉진지구로 지정돼 허가 없는 건축이 불가능하다’는 내용이다. 화훼단지는 과천지역에 남은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중 대규모 사업을 펼칠 수 있는 마지막 부지로 꼽혀왔던 곳. 지난 달 14일 정부는 이 일대를 기업형임대주택(뉴스테이) 공급촉진지구로 지정하면서 이 비닐하우스는 모두 철거되고 2020년까지 5,200가구가 들어설 예정이다. 당초 시는 이곳을 화훼종합센터 등 화훼농가를 위한 시설로 조성할 계획이었지만 정부의 일방적인 발표에 수포로 돌아갔다. 정길수 과천화훼집하장 운영위원회장은 “지난 26년간 화훼농가들이 일궈놓은 삶의 터전을 정부가 파헤치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총선을 앞두고 정부가 또다시 그린벨트를 마구 풀어헤치고 있다. 임대주택을 지을 때도, 새로운 단지를 조성할 때도, 전략산업을 육성할 때도 어김없이 그린벨트 해제가 포함된다. 역대 정부에서도 그린벨트는 늘 지역 주민들에게 던져줄 선거용 선물로 활용돼왔다. 그린벨트가 침범 불가능한 성역일 수는 없지만, 선거 때만 되면 법까지 바꿔가며 마구 풀어주며 사회 전체가 향유해야 할 공공재를 사유화하는 행태가 되풀이된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연일 쏟아지는 그린벨트 해제 정책
18일 기획재정부, 국토교통부 등 관련 부처에 따르면 최근 정부가 쏟아내는 각종 경기 활성화 대책에 그린벨트 해제가 빠지지 않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올 1월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내놓은 뉴스테이 사업 계획. 그린벨트 내 추진하는 사업만 6건(경기 과천 주암ㆍ의왕 초평, 부산 기장, 인천 계양ㆍ남동ㆍ연수)으로, 해제 면적이 181만2,000㎡에 달한다. 14개 시ㆍ도에서 드론, 바이오헬스, 스마트기기 등의 전략산업을 육성키 위한 ‘규제 프리존’ 역시 그린벨트 부지를 활용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17일 내놓은 투자활성화 대책에도 어김없이 그린벨트 해제가 담겼다. 경기 고양시에 지지부진하던 자동차서비스복합단지 조성에 속도를 내기 위해 그린벨트 해제를 통해 추진 가능한 사업에 자동차서비스복합단지를 포함하도록 법을 바꿔주기로 한 것이다. 또 스포츠시설을 확충한다는 명목으로 그린벨트 건축 연면적 기준을 대폭 완화해주기로도 했다
이 뿐 아니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부터 집중적으로 그린벨트 해제를 기반으로 한 굵직한 정책을 내놓고 있다. 60만㎡의 그린벨트를 풀어 주택지구 등으로 개발하는 수서역세권 사업(2015년 7월 발표)이나 도로ㆍ철도로 쪼개진 1만㎡ 이상 그린벨트 해제(2015년 12월) 등이 이어졌다. 작년 5월엔 소규모(30만㎡ 이하) 그린벨트 해제권한을 지방자치단체에 이양하기도 했다. 4월 총선용 카드라는 해석에 무게가 실리는 것은 당연하다.
그린벨트 해제 사유/2016-02-18(한국일보)
역대정권에서도 그린벨트는 선거용 선물
그린벨트를 선거철에 손쉽게 이용했던 건 역대정권도 마찬가지였다. 그린벨트 해제나 그린벨트를 이용한 사업 발표는 늘 각종 선거를 앞두고 집중됐다. ‘그린벨트=군사정권 시대의 상징’이라고 슬로건을 내건 김대중 정부에서 그린벨트 제도 개선 방안을 내놓은 것도 16대 국회의원 선거를 9개월 앞둔 1999년7월이었고, ‘국민임대 20만가구 건설’ ‘국민임대 연내 1만가구 건설’ ‘택지공급 확대’ 등 본격적으로 그린벨트를 통해 개발하겠다고 공개한 시점도 1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시점이었다. 대선이 있던 2002년 1월에는 ‘수도권 광역도시계획안’과 ‘주택시장동향 점검 및 대응방안’, ‘청주권 그린벨트 해제안’ 등 그린벨트 해제를 기반으로 한 정책을 한 달 동안 잇따라 쏟아냈다.
노무현 정부도 2003년 9월 ‘서민 중산층 주거안정지원 대책’을 통해 2012년까지 국민임대 100만가구를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17대 총선을 정확히 반년 앞둔 시점이었다. 이렇게 김대중ㆍ노무현 정부에서 국민임대주택 건설에 활용된 그린벨트가 62.4㎢에 달한다
이명박 정부는 한발 더 나갔다. 그린벨트를 중심으로 주요 대선공약이 수립됐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게 보금자리 주택이다. 도심지 그린벨트를 해제해 값 싼 아파트를 공급하자는 취지였다. 실제 서울 강남ㆍ서초 등이 주변시세의 절반도 안 되는 42~49% 수준에 분양돼 ‘로또복권’으로 통했을 만큼 표심 끌기에 충분했다. 대선 이듬해인 2008년 치러진 18대 총선에는 유력 후보들이 너도나도 그린벨트를 풀어 물류도시, 산업단지, 운하 등으로 개발하겠다고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90% 이상이 개발 목적으로 해제
이렇게 전체 그린벨트 면적(5,397㎢) 중 지난해까지 해제된 면적은 28.4%인 1,536㎢. 1999년부터 풀리기 시작했으니 17년간 여의도 면적(2.9㎢)의 530배가 그린벨트에서 해제된 것이다. 물론 개발 수요는 늘어나는데 땅덩어리는 좁은 현실에서 그린벨트의 점진적 해제는 불가피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렇게 선거용으로 활용되다 보니 보전가치는 뒷전에 한참 밀린 채 난개발을 부추기는 측면이 다분하다. 해제 사유 별로 분석을 해보면 이중 90% 이상(90.7%)이 국책사업이나 지역 중소도시 개발, 지역 현안사업 등 개발 목적인 것으로 확인된다. 반면 주민들의 불편 해소 등을 위한 해제는 8.2%에 그쳤다.
앞선 정부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그린벨트 해제에 인색한 것처럼 보였던 박근혜 정부가 최근 들어 그린벨트 해제 정책을 한꺼번에 쏟아내면서 비판의 목소리도 커져간다. “보존해야 할 그린벨트라도 개발계획이 잡히면 무조건 해제한다”는 삽질공화국의 모습이 재연되고 있다는 것이다. 조명래 단국대 도시지역계획학과 교수는 “훼손되거나 존재 이유를 상실한 그린벨트 해제는 필요하지만, 선심성 사업 때문에 야금야금 그린벨트가 희생 당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그린벨트는 후대에게 남겨줄 소중한 유산인 만큼 이런 난개발식 개발정책 대신 대대적인 종합관리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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