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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학력·학벌순이에요! 3.1 주간경향
ㆍ명문대 출신자일수록 삶의 만족도 높아… ‘비경제 프리미엄’도 무시 못해
“난 1등 같은 건 싫은데, 난 꿈이 따로 있는데, 난 친구가 필요한데 이 모든 것은 우리 엄마가 싫어하는 것이지. …나에게 항상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이기라고 하는 분, 친구와 사귀지 말라고 슬픈 말만 하시는 분, 그 분이 날 15년 동안 키워준 사랑스런 엄마라니 너무나 모순이다. (중략)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 난 그 성적순위라는 올가미에 들어가 그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살아가는 삶에 경멸을 느낀다.”
1986년 1월 15일 새벽 서울 모 여중 3학년 오모양(당시 15세)은 친구에게 편지 형식의 유서를 남기고 아파트 옥상에서 몸을 던졌다. 전교 1등을 도맡아 했지만 행복하지 않았던 한 중학생의 죽음은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이 사건을 극화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영화가 만들어져 <인디아나 존스>를 누르고 흥행 1위를 기록했다. 1989년 전교조 출범과 참교육 운동의 계기가 됐다. 그러나 학벌은 타파되지 않았고, ‘인서울’, ‘지잡대’ 등 대학의 서열을 나누는 표현은 더 다양해졌다. 오르비스 옵티무스 등 수험생들의 커뮤니티가 자발적으로 생성되기도 했다. 10대들이 30년 전의 10대와 달리 경쟁의 가치를 내면화한 탓일까. 아니면 한국 사회에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는 전제는 출발부터 잘못된 것일까.
2월 17일 서울대에서 열린 2016 경제학 공동학술대회에서 김영철 상명대 금융경제학과 교수는 학술연구논문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학력(학벌)의 비경제적 효과 추정’에서 “명문대학을 나올수록, 학력이 높을수록 삶의 만족도가 높다”고 발표했다. 좋은 대학을 나오면 삶에 대한 전반적인 만족도가 높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성인 9997명을 설문조사한 한국노동패널조사(KLIPS) 7차연도(2004년) 자료를 활용해 분석했다. 이들이 밝힌 삶의 만족도와 학력·출신학교 등의 상관관계를 살폈다. 학력은 입학생 평균성적을 추정해 상위권 대학(10곳), 중·상위권 대학(30곳), 중위권 대학(40곳), 기타 4년제 대학, 전문대, 고졸, 중졸 이하로 나눠 비교했다.
서울 종로구의 한 고등학교 교문에 걸린 서울대 합격자 명단 현수막을 지나가던 학생들이 쳐다보고 있다. / 이상훈 선임기자
‘4년제대 졸업’ 경계로 큰 차이 보여
학력이 높을수록 전반적인 삶에 대해서도, 자신의 직업에 대해서도 만족하는 비율이 높았다. ‘내 생활에 만족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상위권대 졸업자의 경우 54.0%였다. 전체 응답자 평균(31.1%)보다 크게 앞질렀다. 중·상위권대는 46.4%, 중위권대는 42.4%, 기타 4년제 대학은 46.2%를 기록했다. 엇비슷했던 만족도는 ‘4년제대 졸업’을 경계로 계단처럼 뚝뚝 떨어진다. 전문대 출신은 35.1%, 고졸은 28.8%, 중졸 이하는 23.1%였다. ‘일자리에 만족한다’는 비율도 상위권대 출신은 47%로, 평균(23%)의 2배 이상이었다. 고졸의 만족 비율은 19%였다. 2000년대 중반 기준으로 ‘4년제대’라는 선이 행복 절벽이었다.
돈을 잘 버니까 당연히 안정적 생활을 할 수 있고 만족도도 높은 것 아닐까. 명문대 졸업장이 취업에 유리한 결과를 가져오고 ‘임금 프리미엄’의 역할을 한다는 연구는 일찍이 나왔다. <한국교육> 33호에 실린 ‘대학 서열의 경제적 수익 분석’에서는 2000년대 중반 상위권 10개 대학 졸업자들은 100개 대학 졸업자 평균보다 23% 더 많은 임금을 받는다는 분석이 나왔다. 하지만 김영철 교수의 연구 결과는 ‘임금’에 의한 행복 격차가 전부가 아님을 보여준다.
김 교수는 소득과 직업상 지위가 같다고 가정하고 주관적 만족도를 비교했다. 전문대 출신의 만족도를 기준으로 했을 때 상위권대와 중·상위권대 출신의 만족도는 각각 15.5%포인트, 10.6%포인트 높은 반면, 고졸과 중졸 이하는 각각 6.2%포인트, 11.9%포인트 낮았다. 같은 돈을 벌어도 좋은 대학을 나오면 그냥 더 행복하다는 것이다.
학력 혹은 학벌을 통한 행복은 어린 시절부터 ‘비교’와 ‘인정’의 경험과 깊이 관련 있다. 정승기씨(23·가명)는 어릴 적부터 끊임없이 한 살 많은 형과 비교당했다. 형은 반에서 5등 안에 들었다. 형과 같은 초·중·고교를 다닌 탓에 부모님은 물론 교사들도 “네 형은 잘하는데”, “너도 형만큼은 해야지”라는 말이 귀에 따라다녔고 그때마다 불만이 치솟았다. 정씨도 공부를 못하는 편은 아니었다. 중학생 때는 ‘보통’은 됐으며, 국어와 사회는 꽤 잘했다. 신문 읽기를 좋아하고 세상 돌아가는 데 관심이 많은 편이었다. 고교생 때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재미를 붙였다. 학교의 또래 친구들에게 접하기 어려운 뉴스에 대해 마음껏 떠들 수 있는 온라인 친구들을 대거 만난 덕이었다. 온라인 친구와의 유대는 3년을 넘기지 못했다. 수능이 끝나 “다들 좋은 대학을 가고 나는 그렇지 못하니 뒤처진 기분이 들고 창피해서 연락을 끊었다”고 말했다. 함께 위키백과를 편집하거나 대등하게 시사문제에 대해 토론하던 경험으로 ‘너와 나는 동등하다’고 느끼는 것은 더 이상 무리였다.
임금격차는 물론 인간관계 폭도 차이
학력에 따른 임금 격차는 외국에도 존재한다. 한국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인간관계의 폭마저 학력과 연동된다는 점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비교를 보면 ‘믿을 만한 친척이나 지인이 있다’는 응답 비율은 고졸(41.6%)이 대졸(81.8%)의 절반 수준이다. OECD 국가 중 가장 격차가 크다. 인맥의 격차는 한쪽으로는 인맥에 의한 구직, 정보교환, 결혼 등에서 2차 격차를 가져오며, 또 한쪽으로는 사회적으로 사람을 고립시켜 행복감을 떨어뜨린다. 학력에 따른 일자리 문제와 사회적 인정 문제가 맞물려 있다.
정씨는 공익근무를 하면서 대학입시를 준비하고 있다. 그는 “전문대를 들어갔으나 만족하지 못하고 나왔다. 대학졸업장이 없으니 현실적으로 취업을 도무지 할 수가 없다. 친구도 만나기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그는 “함께 공익근무하던 사람이 서울대 출신이라는 걸 뒤늦게 알았는데, 달리 보이더라”며 “학력으로 사람을 재단하는 것이 나에게도 심하게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돼 씁쓸했다”고 말했다.
한국의 50대 이상 세대에게 학력은 ‘평생’ 지속되는 라벨이다. 상고를 졸업하고 서울 강남에서 수억원대 자산을 일군 노모씨(51)는 학부모 모임에 나가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저는 이화여대 나왔는데, 어디 나오셨어요?” 경제적으로 비슷한 처지라고 생각했는데, 학교 질문만 받으면 자신이 ‘못난 사람’이 된 느낌이다. 반면 2010년 진보계열 시민후보로 지방선거에 출마한 적이 있는 한 시민운동가는 “양대 정당에 치여 젊은 유권자들에게 큰 관심을 받지는 못했다. 오히려 광주일고, 서울대 출신이라는 점에 어르신들이 ‘훌륭한 사람이네’라고 반응했다. 진보 시민후보를 기치로 걸었는데 이를 전면화할 수도 없어 난감했다”고 말했다. 공기업에 근무하는 이모씨(41)는 서울대에 가기 위해 3수까지 했다. 그는 “무림에서 실력을 갈고 닦아 이기는 것처럼 한국 사회에서 시험을 잘 치러 통과한다는 것은 자기 실력을 키워 뭔가 해냈다는 판타지 아니겠느냐”며 “그 경험을 10대에 하고 안 하고가 후의 인생에 미치는 영향은 큰 것 같다”고 말했다. 공부를 잘한 사람을 인격자로 대하는 유교문화의 잔재와 시험을 잘 치르는 것을 ‘성취’로 판단하는 근대적 능력주의가 한국인의 삶에 강하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우리는 차별에 찬성한다>의 저자인 사회학자 오찬호 박사는 “한국 사회가 서구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급속한 경제성장 중에서 함께 질적인 성장을 추구하기보다 개별적으로 무언가 성취를 이룬 사람을 절대적인 선으로 규정하는 문화가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학입시 결과에 따라 낙방한 것을 죄악시하고 개개인에게 모멸감을 줄 수 있는 분위기는 여전하다.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지난 12일 서울 도곡동 은광여고 졸업식에서 김승제 이사장(64)은 “올해 서울대와 연세대·고려대·이대·숙대에 간 학생들이 여기서 3분의 1도 안 된다. 작년, 재작년만 해도 숙대 이상을 간 학생들이 50~70%에 달했다”며 “이런 입시 결과가 선생님들 탓이냐. 선생님들이 잘못 가르친 탓이냐”고 언급해 구설에 올랐다. 학교 측은 “학생들을 강하게 격려하고자 하는 취지”였다고 해명했다.
인맥 격차는 정보 격차로, 의욕 격차로
학력이 높은 사람이 갖는 ‘비경제적 프리미엄’도 무시할 수 없다. 대기업에서 인턴을 하고 있는 대학생 김모씨(23)는 공립중학교와 자립형 사립고등학교를 졸업해 중·상위권 대학에 다니고 있다. 그는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군대 친구들이 확실히 분위기가 다 다르다. 압권은 고등학교 친구들이다. 의사만 5명이다. 이 친구들은 취업준비를 하더라도 주변에 롤모델도 많고, 어떤 경로를 밟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반면 중학교 때나 군대 친구들은 ‘로또나 해야 할까’라는 말만 반복한다”고 말했다. ‘인맥’의 격차가 ‘정보’의 격차로, 삶의 노하우나 의욕의 격차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김씨는 ‘중·상위권 대학’에 다닌다는 열등감은 별로 없는 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학 동아리나 다양한 인턴 경험을 통해 자신감을 많이 얻었다. 그렇지만 내가 기본적으로 자립형 사립고를 나와서 상위권 대학에 간 친구들과 대등하다는 의식이 있어서 가능한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씁쓸하게 말했다. “그렇지만 인턴 면접 자리에서 재학증명서 꺼내보라고 했을 때 움찔했어요. 주변에 연대, 고대 막 이러니까. 고등학교 때부터 쟤들은 나보다 우위에 있다. 그런 관념이 깊이 박혀 있잖아요.” 성적이 높은 것 자체가 자신감을 심어주고 ‘스펙’을 배제하더라도 취업 등에서의 유리한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은 것이다.
꾸러기, 따개비, 뚱딴지 등 1980년대 아이들에게 인기 있던 명랑만화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공부를 못했다. 공부는 못하지만 밝고 건강하고 운동을 좋아하며 친구가 많고 행복하게 사는 인물들이었다. 이런 만화 주인공들은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는다.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만화에도 ‘마법 천자문’ 등 한자를 하나하나씩 터득해가는 능력자들이 등장한다. 물론 마법 천자문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없는 사회에서 OECD 국가 중 아동들의 삶의 만족도는 최하위를 기록했다. 학업 스트레스가 큰 원인이었다.
‘행복은 성적순’이라는 결론을 도출해낸 김영철 교수는 “우리 사회의 과도한 고학력(학벌) 추구 성향에 대해 마냥 허세나 낭비로만 치부할 수 없다. 고졸 인력들의 노동시장 내 성공 가능성을 높이고 경직된 대학 간 서열구조에 대한 중장기적 완화 노력이 필요하다. 이는 경쟁적 입시제도에 대한 적극적 개편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김 교수의 연구는 2000년대 중반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현재 서강대 등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오찬호 박사는 “학벌에 따른 행복의 격차와 임금, 취업 문제는 따로 떨어질 수 없다. 지금은 명문대 출신도 취업이 불리해짐으로써 패배의식을 공유한다. 지금 명문대 다니는 학생조차 ‘행복하다’고 말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이 같은 조건에서 일상을 통해 서열과 차별을 받아들이고 있다”고 밝혔다.
음란한 한국? 주간경향
‘[후방주의] 음란한 한국.’ 2월 중순, 인터넷 커뮤니티 ‘오늘의유머’에서 베스트글에 오른 글 제목이다. ‘후방주의’란 뒤에 누군가 눈에 띄는 상황이라면 게시물 클릭에 주의하라는 안내다. 음란한 한국? 글 내용은 검색엔진 구글 이미지 검색에서 특정 단어를 넣었을 때 결과다. 길거리, 여자, 일반인, 합법, 자음 ㄱ. 무엇이 연상되는가. 게시글은 두 검색 결과를 대비하고 있다. 위의 한글 단어와 함께 ‘street’, ‘woman’, ‘ordinary person’, ‘legality’, 그리고 ‘A’. 영어로 ‘street’를 검색했을 때는 평범한 길거리 사진들이 나오지만 ‘길거리’를 검색하면 도촬쯤으로 보이는 길거리 여성들의 뒤태 사진이 나온다.
‘woman’을 검색하면 여성 얼굴 사진이 나오지만 ‘여성’을 검색하면 비키니 차림의 뇌쇄적인 여성들 사진이 쏟아져 나온다. 가장 가관인 것은 ‘ㄱ’. 여전히 반라의 여성 사진들이 가득하다. ㄴ, ㄷ, ㄹ, ㅁ, …ㅎ 다 마찬가지다. 구글의 한국어 콘텐츠 검색 결과가 너무 방치되는 것은 아닐까.
“사실 저희들도 사회학자나 민속학자를 찾아 물어보고 싶습니다. 왜 유독 한글 사용자들이 여성들 사진을 찍고 길거리 태그를 하는지 말이에요.” 구글 홍보팀 고위관계자의 말이다. ‘한국어 사용자들 이용행태의 반영일 뿐’이라는 것이다.
구글 이미지 검색에서 영어로 ‘street’와 한글로 ‘길거리’를 검색해서 나온 결과. / 오늘의유머
구글 검색엔진의 ‘초기 로직’은 이른바 페이지랭크 기술이다. 구글 창업자인 세르게이 브린 등의 아이디어이기도 한데, 문서의 중요도는 그 문서가 많이 링크되어 있는 순으로 올라간다는 원리다. 이에 따라 초기의 구글 검색 결과는 링크가 많이 되어 있는 문서를 우선으로 보여주는 방식으로 나열되었다. 물론 지금은 훨씬 복잡한 규칙이 적용되어 있다. 이것이 알고리즘이다. 구글은 <주간경향>에 보낸 답변에서 “한국어라고 해서 영어권과 다른 알고리즘을 적용하진 않는다”며 “구글의 검색 알고리즘은 200여개의 시그널을 활용하며, 검색품질 업데이트는 연간 500회 넘게 일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그렇다 치자. 그러면 이건 어떻게 봐야 할까. 2월 11일 일베 사이트에는 이런 게시 글이 올라왔다. “아 씨X, 구글이 일베 고화질 로고를 막은 것 같다!” 그동안 교묘하게 일베 관련 기호나 이미지를 삽입해 방송사, 출판사 등을 골탕 먹였던 일베발 고화질 로고가 구글 검색에서 노출되지 않도록 되었다는 것이다. 확인해봤다. 이 코너에서 이전에 다뤘던 맨체스터유나이티드 로고(1135호 언더그라운드.넷 ‘일베 맨유 로고 사건의 전말’ 기사 참조)나 이른바 ‘연베대 로고(연세대 로고에서 ㅇㅅ대신 일베를 상징하는 ㅇㅂ을 사용해 조작한 로고)’ 등 과거 논란이 되었던 ‘일베 고화질 로고’ 대부분이 다 막혔다. 구글 측은 “구글의 입장은 동일하다. 리다이렉션 오류는 해당 사이트의 문제로 보이며 구글은 당연히 막지 않았다”고 답했다. “일베 쪽 사이트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문제”라는 설명이다. 막장사이트 ‘일베’에 무슨 일이 있는 걸까. 그건 머지않아 곧 본격적인 기사로 다룰 것을 약속드린다.
일류병’은 불치의 고질병인가? 주간경향
ㆍ2000년대 들어 벌어진 양극화가 최상위권 대학의 ‘특권’ 오히려 높여
왜 한국의 대학 서열화 타파 노력은 성공하지 못할까.
‘일류병에 숨진 소년’. 1965년 7월 9일자에 실린 <경향신문> 기사 제목이다. 서울 남산국민학교를 졸업하고 경복중학교에 입학하지 못해 학관(학원)을 다니며 재수하던 황모군(당시 14)이 동네 만화가게에서 피를 토하고 숨졌다는 소식을 담았다. 황군은 스트레스를 호소하며 친구로부터 빌린 약을 대량으로 복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학교 무시험 제도가 시행되기 전인 1960년대 신문에는 ‘일류병’에 시달리는 국민학생의 이야기나 입시부정 소식이 단골로 등장했다. 중학교에 이어 고교 평준화 후에도 ‘일류병’이라는 표현은 1990년대까지 계속됐다. 한국 현대사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장면이 ‘일류병’이다.
명문대 출신 프리미엄 이전보다 더 누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라고 외친 끝에 숨진 한 여중생의 절규가 소용없는 것은 아니었다. 1995년 교육개혁 조치로 대학의 정원이 크게 늘어났고, 시민사회에서는 학력타파의 대안으로 ‘서울대 폐지론’과 ‘국·공립대 통합 네트워크’안까지 등장했다. 학력고사는 수능으로, 수능은 등급제로 바뀌었다. 수시모집 위주의 입시구조가 마련됐다. 2017년도 대입전형에서 ‘수시모집’과 ‘학생부 중심 전형’ 비율이 각각 사상 최대인 69.9%와 60.3%로 확대된다. 기업들도 앞다퉈 ‘스펙 없는 채용’을 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서울대 법대를 정점으로 한 피라미드식 서열구조는 이런 노력 끝에 조금씩 바뀌어갔지만 여전히 대학 서열화 자체는 공고하게 남아 있다.
대학거부선언자 3명이 포함된 ‘대학입시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들의 모임’ 회원들이 2014년 수능일에 서울 청계광장에서 대학거부선언 기자회견을 마친 후 가방끈을 자르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오히려 2000년대 들어 상위권 대학의 프리미엄은 더욱 강화됐다. 2011년 한국노동경제학회의 논문집 <노동경제논집>에 실린 고은미씨의 논문 ‘1999∼2008년 한국의 대졸자 간 임금 격차 변화’를 보면, 1999년 최상위 13개 대학 출신 취업자들과 14~50위 대학 졸업자의 임금 격차가 1%였다. 2008년 이 격차는 14.2%로 확대됐다. 최상위 13개 대학 출신들은 51위 이하 대졸자보다는 23.2%, 전문대 졸업자보다는 42%나 더 많은 임금을 받았다. 1999년 최상위 대졸자와 고졸 간 임금 격차는 21.5%였다.
최상위 대학 출신자들이 독점한 직종의 임금이 오르는 사이에 여타 직종의 임금이 정체된 것이 문제였다. 비정규직이 확산되고 중소기업의 여건이 어려워진 것, 최저임금의 인상이 더딘 것 등을 원인으로 볼 수 있다. 문제는 양극화다. 상위권 대학 출신자들 역시 취업문은 좁아졌지만 일단 취업을 하고 나면 1990년대보다 더 많은 프리미엄을 누릴 수 있는 ‘이중구조’가 형성됐다.
재수생들은 상위권에 몰려 있다. 최상위권 학생일수록 대학 간판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김영철 상명대 교수는 ‘노동시장 이중선별구조를 활용한 입시체제 분석’에서 “입시의 변별력이 증가할수록 대학 간 평판의 격차가 증대하며 경쟁적 입시 위주 학습의 수요도 커진다”고 지적했다. ‘쉬운 수능’, ‘수시모집 위주’ 정책 등 상위권 대학 간 입학생들의 격차를 줄일수록 입시경쟁이 완화되고, 기업은 대학 간판을 보고 뽑기보다 선발에 신경 쓰게 된다.
그러나 2000년대 벌어진 대기업-중소기업 간 양극화, 비정규직의 확산 등은 교육계에서의 이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최상위권’ 대학 자체의 특권을 높여 학벌에 따른 격차를 크게 만들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반면 대학진학률은 최근 몇 년간 감소세였다. 2000년대 이후 대졸-비대졸 간 임금 격차의 정점을 찍었던 2009년 대학진학률도 77.8%로 정점을 찍었다. 이후 2010년(75.4%), 2011년(72.5%), 2012년(71.3%), 2013년(70.7%) 4년 연속 감소했다. 2014년에는 70.9%로 살짝 올랐다. 마이스터 고등학교 등 정부의 실업계 교육 강화정책과 맞물린 결과라는 분석과 더불어 대졸 취업시장 역시 얼어붙은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최상위권 대학도 고용한파가 몰아치면서 ‘취업난으로 인한 서열구조의 완화’도 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12월 서울 송파구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2016학년도 대입 종로학원 정시지원전략’ 설명회에서 학생과 학부모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어 입시전략을 듣고 있다. / 정지윤 기자
“한국의 대학 서열화는 능력주의의 결과”
지난달 26일 국회에서는 교육을바꾸는새힘과 국회 혁신교육포럼이 주최한 ‘대학 서열화와 학력사회 극복을 위한 10차 토론회’가 열렸다. 이범 민주정책연구원 부원장은 국·공·사립대 ‘공동선발체제’안을 제시했다. 대학 진학자의 절반가량을 공동선발하고 이후 자신의 전공을 고른다. 그리고 원하는 대학에 지원해 단계별로 일정 비율씩 추첨해 배정한다. 공동선발 대학은 대학, 정부, 국회, 교육계,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투명하고 공정한 심사단이 정한다.
1990년대 서울대 폐지 및 국·공립대 통합 네트워크안과 비슷하지만 ‘사립대’도 포함시킨다는 점이 다르다. 신동하 경기교육연구소 연구실장은 과거 국·공립대 통합 네트워크안에 대해 “서구의 경우 국·공립대 비율이 70%에 달하는 상황에서 평준화를 추진한 반면 한국은 국립대 비율이 30%에 달하는 상황에서 현실적인 동력이 없었다”고 평가했다. 이번 공동선발안을 제안한 이범 부원장은 사립대를 네트워크에 끌어들이기 위해 ‘우수학생 별도 선발권’을 포기한 사립대에 연구비를 지원하는 등 약 4조원의 예산을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럽식 대학 통합체계로 대학 서열화를 극복하려면 심리적인 문제, 나아가 한국 사회의 가치관 문제와 맞닥뜨려야 한다. 사회학자 오찬호 박사도 “대학 서열화는 어느 나라에나 있지만 유독 학교별로 촘촘하게 서열이 매겨진 한국의 대학 서열화는 성과를 미세하게 가르고, 이에 따라 보상해야 한다는 능력주의의 결과”라며 “능력주의는 압축성장을 거친 한국 자본주의의 유일한 합의”라고 밝혔다. 연대, 평등 등의 가치관이 들어설 틈도 없이 숨 가쁘게 성장한 한국 사회에서 ‘성장의 과실은 오로지 능력에 따라 나눈다’는 원칙 이상의 사회를 유지하는 규칙을 찾아내지 못했고, 그 결과 ‘1점’ 차이로 평생을 차별하는 강고한 학벌구조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학벌구조를 깨려면 이 능력주의 가치관을 깨고 사회를 유지하는 다른 틀을 만들어야 한다.
<마음의 연대>를 집필한 심리학자인 이승욱 닛부타의 숲 원장은 “한국에서 대학은 일종의 훈장”이라면서 “심리적 효과로 인한 서열화는 쉽게 누그러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젊은층 사이에서 회의감을 갖고 근본적으로 가치관을 바꾼다면 달라질 가능성은 있다”고 말했다
“조갑제, 방우영, 신지호… 친일파 망령들 그림에 다 넣어버렸지” 2.27 미디어오늘
민중미술가 신학철 화백, ‘나쁜 놈들의 한국 현대사 - 망령들’에 이명박 시절 정부 인사 총출동
이번에도 ‘모내기’는 없었다. 현재 서울 종로구 인사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진행 중인 ‘리얼리즘의 복권’(~2.28) 전시는 민중미술을 주도했던 신학철 작가를 포함한 화가 여덟명의 대표작들을 모은 전시다. 하지만 민중미술과 ‘표현의 자유’의 상징적 작품인 신학철의 ‘모내기’는 볼 수 없었다.
‘모내기’는 한국 민중 미술의 대표적인 작가인 신학철의 1987년 작이다. 신학철은 ‘모내기’에서 이적표현을 했다는 혐의로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되기도 했다. 모내기 원작은 여전히 검찰청 압수물 보관창고에 남아있다.
이후 ‘모내기’는 예술과 표현의 자유가 거론 될때마다 등장하는 상징적 작품이 됐다. 신학철이 민족미술협회 발행의 달력 그림을 보고 다시 그린 ‘모내기’는 소장자가 이번 전시에 내놓지 않았다. 이에 신학철 작가는 “소장자가 시끄러운 게 싫어서 안내놓았다고 한다. 처음에는 내보낼 줄 알았지”라고 아쉬워했다.
▲ 신학철 작가의 모내기(1987). 이 작품으로 인해 신 작가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었고 작품은 압수당했다.
모내기를 출품해 처벌을 받았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면 무엇이 변했느냐고 묻는 말에 신 작가는 “변하다니, 더러 거꾸로 가는데”라고 즉각 답했다. 그는 “퇴행이라기보다는 좀비들이 다시 살아났다는 것이 정확하다”고 말했다. 신 작가는 뉴라이트 세력을 두고 ‘좀비들’이라고 표현했다.
“조갑제, 신지호, 방우영… 친일파 망령들 다 그림에 넣어버렸지”
“걔네들을 난 좀비들이라고 해. 영어는 쓰기 싫어해서 망령들이라고 했어. 왜 망령이냐면 지금 판치고 있는 뉴라이트들은 이전의 죽은 친일파들이야. 이 망령들이 다시 살아난 거야. 고려대학교의 한승조라는 사람이 일제강점기가 한국을 현대화시켰다는 친일파들의 주장을 그대로 들고 나왔어. 그 이후로는 다 똑같이 따라 했어. 조갑제, 안병직, 신지호, 서정갑… 그래서 그림에 다 넣어버렸지.”
신 작가가 말하는 ‘그림’은 2011년 작 ‘한국근현대사-망령’이다. 현재 진행 중인 ‘리얼리즘의 복권’(가나아트센터)에 전시된 신 작가의 작품 가운데 가장 최근작이며, 이전에는 한 번도 공개한 적 없는 작품이다.
‘한국근현대사-망령’은 이명박 정부 시절 인사들과 뉴라이트 인사들을 콜라주 방식으로 그려 넣어 한 마리의 큰 괴물의 형태로 표현했다. 마치 ‘리바이어던’이 떠오르는 괴물 형상이다. 이 꼭대기에는 2009년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에서 분향소를 강제철거하고 영정사진을 절도한 서정갑 국민행동본부 본부장이 있다.
▲ 신학철 작가의 '망령들'(2011).
신학철 작가의 ‘한국 근현대사’ 시리즈 작품은 현대사의 중요한 인물들을 알아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망령들’ 만해도 이명박 전 대통령, 김윤옥 전 영부인, 방우영 전 조선일보 회장, 조갑제 언론인, 안병직 여의도 연구소 이사장, 신지호 자유주의연대 대표, 조용기 목사 등이 등장한다.
‘모내기’보다도 더 위험(?)한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신 작가는 “뭐라고 하라면 하라고 하지 뭐. 내가 거짓말 한 것도 아니고”하고 웃는다.
“방우영 회장의 환갑잔치도 그릴만 하지. 웬만한 재야인사들은 다 등장하잖아. 여당이든 야당이든 다 굽신굽신해. 내가 그 잔치 사진을 보고 얼마나 기가 차던지. 한마디로 이 ‘망령들’이라는 그림은 ‘나쁜 놈들의 한국 현대사’야. 알면서 계속 거짓말하고 거짓말하는 사람한테 굽실거리고.”
이렇게 한국근현대사의 실제 사건과 인물을 다룬 신학철의 ‘한국근현대사’시리즈는 1984년부터 시작돼 현재 50여 점에 이른다. 보통 백 명에 가까운 인물들을 그리고, 아래에서 위로 연대기별로 배치한다. 모인 인물들은 하나의 그로테스크한 형태로 존재한다. 서구적 성향을 풍기는 ‘한국근현대사’와는 다르게 ‘모내기’(1987)는 일명 ‘이발소 그림’ 같은 키치(Kitsch) 풍이다. 하지만 ‘모내기’ 역시 아래에서 위로 이야기하는 기법을 적용했다.
▲ 신학철 작가가 22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가나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린 '리얼리즘의 복권' 전시에서 자신의 그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모내기를 향한 검찰의 질문, “전두환 아들이 보면 뭐라고 하겠습니까?”
‘모내기’는 1987년 ‘그림마당 민’의 ‘통일전’에 처음 전시됐다. 전시 당시에는 ‘모내기’가 아닌 다른 작품들이 압수당하고 훼손됐다. 당시 압수당한 그림은 전정호와 이상호가 그린 ‘백두의 산자락 아래 밝아오는 통일의 새날이여’(1987)라는 작품이다. 레이건 대통령 머리 위에 젊은이가 오줌을 싸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작가들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감옥에 갇혔다.
이에 비하면 당시 ‘모내기’에 대한 반응은 오히려 조용했다. 하지만 2년 후 한 청년단체에서 모내기 그림을 인쇄해 부채로 만들며 문제가 커졌다. 국가보안법 이적성 표현혐의로 신학철 작가는 구속됐다. 놀라운 것은 모내기 위쪽의 산과 마을이 김일성의 생가인 만경대를 나타낸 것이고, 그림 아래쪽의 쓰레기 더미는 남한을 표현했다는 공안당국의 상상력이었다. 신 작가는 이에 “실제로 남한과 북한 이야기를 한 건 아니”라고 그림을 설명했다.
그림 아래쪽의 람보, 사무라이, 게이샤, ET 같은 것을 쓰레기 더미로 표현한 것은 통일에 걸림돌이 되는 저질 외세문화이다. 여기에는 통일이 되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기득권자들, 부자들, 일본 정권과 미국 정권도 포함돼있다. 한 남성이 이를 빗질하며 쓸고 있다. 그림 위쪽의 산은 백두산, 아래쪽 마을은 신 작가의 고향이라고 했다.
신 작가는 “김일성 생가가 아니라 우리 고향에 복사꽃 핀 모습을 그린 거고, 옆에 서있는 사람은 우리 6촌 형님이다”라고 말했다. ‘모내기’에 나오는 신 작가의 6촌 형님은 ‘리얼리즘의 복권’ 전시에서 ‘마지막 농부’라는 작품에 단독으로 등장한다.
결국 신 작가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고, 작품은 압수당했다. 그는 석 달 만에 보석으로 풀려났다. 1999년 11월 대법원은 징역 10개월 형 선고 유예를 내리고 그림 몰수를 판결했다. 2000년 4월 시민단체와 예술인단체가 이 사건을 유엔 인권위원회에 제소했고, 2004년 4월 위원회는 한국 정부에 유죄판결에 대한 보상과 판결 무효 조치, 그림 반환 조처를 하라고 결의했다. 그러나 그림은 아직 신 작가에게 돌아오지 못했다.
혹시 북한을 찬양해서라기보다, 기득권자들과 정권을 비판했기 때문에 탄압받은 것은 아니냐고 물었다. 신 작가는 “자기들 비판했다고 뭐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 상상력을 총동원해서 북한에 이적했다고 하는 거지”라고 말했다. “레이건 대통령, 전두환, 일본 총리도 다 쓸어버리는 거로 그렸으니까. 당시 검찰이 그러더라고, ‘전두환 아들이 이걸 봤을 때 뭐라고 하겠습니까?’ 이렇게 묻더라고. 저들 비판한 게 나쁜 거니까, 나를 잡아간 거지. 북한 찬양은 명분 아니겠어.”
▲ 신학철 작가의 '부활'(1997). '부활'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군복 안에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의 피해자 권인숙 씨가 그려져있다. 그 위로는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의 박종철 군이 그려져있다.
끝나지 않은 ‘모내기’의 시대
기득권자들을 비판하는 이들에게 ‘종북’ 딱지를 붙여 배제하는 모습은 지금도 여전하다. 예술 영역에서 표현의 자유 수준도 ‘모내기’ 시대와 비슷하다. 최근 이하 작가는 수의 차림의 전두환 전 대통령이 29만 원짜리 수표를 들고 있는 포스터를 연희동에 붙였다는 이유로 대법원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부산국제영화제는 다큐멘터리 영화 ‘다이빙벨’을 상영했다는 이유로 예산이 깎이는 등 위기에 처했다.
“갈수록 심해지겠지. 유인촌이 문화부 장관 할 때부터 이런 방향은 노골화된 거고. 사실 당시에 다 쳐버렸는데, 아직도 감정을 거스른 자잘한 것들이 남아있으니까 모두 다 청소해버리고 싶지 않겠어. 끝물이지만 지금도 그 청소 작업은 진행 중이고.”
최근의 정치 상황에 대한 작품은 언제쯤 나오느냐고 물었다. 신학철 작가는 “이제 다시 작업을 시작하는 단계”라고 말했다. 신 작가는 작년 봄에 떠나보낸 아내의 병시중을 12년 동안 해왔다. 그는 “그동안 그림도 그리지 않고, 그림에 대한 생각도 안 하려고 했는데 생각을 안 할 수는 없더라”며 막걸릿잔을 들었다.
“현재 박근혜 정부의 행태는 비자연적이야. 정부기관, 법, 방송, 미디어 다 자기편으로 만들고 통제하고 있어. 조지오웰이 말한 1984년과 같은 상황이야. 특히 세월호 사건은 정말 너무 잘못했어.” 신 작가의 겉옷 오른쪽 지퍼에는 세월호 리본이 달려있었다.
그는 ‘한국 근현대사’ 시리즈를 이어가고, ‘갑돌이와 갑순이’(1991) 작품 뒷이야기를 마무리하는 계획이 주된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외에도 그는 입체파 성향의 작품을 구상하고 있다.
“현 정권을 보면 자기 마음대로 눈은 아래쪽에, 귀는 뒤쪽에 두고, 신체기관이 여기저기 뒤틀려있는 형상이 떠올라. 피카소가 했던 양식같이 신큐비즘이나 입체파 형식으로 그런 모습을 그려보려고 해.”
[복면 기자단] ‘불패저자’ 혜민 스님 책이 불편하다?! 2,26 한국
각양각색의 관점과 목소리를 지닌 문화부 기자들이 하나의 문화 현상, 콘텐츠를 함께 분석하는 ‘복면(複面) 기자단’ 코너. 다양한 얼굴의 관찰자로 분해 경쾌하고 발랄하게 갑론을박 벌인 내용-이달 출간된 혜민 스님의 신간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의 인기가 서점가를 달구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10월 혜민 스님이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서울인문문화포럼에서 강연하고 있는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혜민 스님 열풍이 거세다. 3일 출간된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이 약 2주 만에 20만부(22일 기준) 가량 팔렸다.
하루 평균 1만권 판매를 웃도는 흥행 기록이 ‘출판의 위기’를 무색하게 한다. 특히 이 책이 출간 10여일 만에 주요 대형서점에서 베스트셀러 1위를 석권하며 50~51주 1위의 ‘미움 받을 용기’의 아성을 무너뜨린 일은 하나의 사건으로 회자된다. 혜민 스님은 이미 전작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2012)로 300만부 판매의 기염을 토한 저자다.
책을 향한 SNS 등의 반응은 환호 일색이다. 하지만 정작 이를 보는 출판계 표정은 복잡미묘하다. 대책 없이 보듬고, 쓰다듬는다며 “아프니까 어쩌라고?!”를 외치고, 어줍은 위로를 거부했던 독자들이 이 힐링북에 다시 보내는 격한 반응에 어리둥절한 기색. 혜민 스님은 이번 책에 그간 자신이 SNS 등에 올려온 명언, 토막글을 골라 담았다. “남들이 다 짜장면 먹겠다고 해도 내가 볶음밥 먹고 싶으면 당당하게 말해도 괜찮아요”, “이왕이면 그 사람과 있을 때 내 모습이 좋게 느껴지는 인연과 더 깊게 교류하세요. 김밥은 라볶이와 함께 먹어야 맛있습니다. 비빔밥과 같이 먹으면 맛없어요”, “힘있고 가진 자 앞에서 비굴해 지지 않는 법은 내가 내 삶에 만족하는 것입니다”, “삶에 역경이 없으면 내가 발전하기 힘듭니다” 등의 내용이다. 한 문학평론가는 전작에 쓰인 스님의 이런 화법을 두고 “이런 말이 계속 나오는 것도 재주”라며 점잖지만 날 선 반응을 보인 바 있다. 독자들의 폭발적 반응과는 대조적인 일각의 편치 않은 표정의 배경은 무엇일까.
복면 기자단’ 코너에 등장하는 여러 얼굴(複面)의 기자들. 왼쪽부터 '하염없이 싸이(PSY)는 뱃살' '낮술 마신 밤의 여왕' '아연한 맨' '뻣뻣한 캣츠걸' '행복하슈렉'.
낮술 마신 밤의 여왕(이하 여왕)=난 힐링이 끝난 줄 알았다. 김난도 교수가 그렇게 난도질 당하지 않았나. 그런데, 세상에나, ‘힐링 오브 더 힐링’이 나왔다.
아연한 맨(이하 맨)=실업난, 주거난 등 다양한 고통에 억눌린 청년들이 “내가 아프든 말든” “아픈 게 왜 당연해야 하냐” 하고 반응할 법했다. 스스로 패배자를 자처하는 청년들을 비롯해 ‘아프니까 청춘’담론에 명확한 반박층이 생겼던 셈이다. 이번 책은 그런 안티가 생길 만한 여지가 없는 편이다. 독자가 청년에 맞춰진 게 아니기 때문에.
하염없이 싸이는 뱃살(이하 싸이)=서점 통계에 따르면 혜민 스님 책 구매층은 여성들이 압도적이고 40대 30대 20대 순으로 많았다.
여왕=‘아프니까 청춘이다’도 처음부터 비판 받았던 것은 아니다. 100만부 넘어가고 하면서(총 290만부 판매) 이게 과연 그럴 만한 책이냐는 의문과 비판들이 나왔다. 초기에 비판적 기사는 거의 본 일이 없다. 청춘의 멘토, 영혼의 위로자로 모두 치켜세울 뿐이었다.
행복하슈렉(이하 슈렉)=삶이멈춰도 괜찮아요. 더 가질 필요 없어요. 인생은 원래 그런 거예요” 하는 위로도 때론 필요하다. 그러다가 위로의 흥행이 극에 달했을 때 회의도 나온다. “우린 계속 아프고 부족하란 말이냐” 하는 식이다. 사실 혜민 스님 책도 위로의 본질은 비슷하다.
맨=그러니까 그런 ‘부질없는 힐링’의 비판층이 확고하게 형성된 뒤에 이 책이 나온 건데도 비판보다는 환호를 받고 있는 상황이 가장 의아한 것이다.
슈렉=정치인, 경제학자, 정치학자가 그런 ‘부질없는 힐링’을 하면 용서가 안 되는데, 종교인의 본래 소명은 현상, 정책 변화를 추구하기보단 대중, 신자들이 자기 마음을 가다듬게 돕는 일이라 그런 것 아닐까. 이런 역할을 비판하기는 어렵다. 종교의 존재 이유 자체를 부정해야 한다. “네가 네 자신을 위해서라도 악한 마음을 버려라, 용서해라, 때리지 말라, 미워하지 마라, 복권 대신 꽃을 사라, 그래야 살 수 있다, 그래야 행복하다” 하는 것이니까. 그런데 이게 좋은 말로는 수행 영성 훈련이지만, 어떤 이들에겐 ‘정신 승리’일 뿐이다.
여왕=그래서 마르크스는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고 하지 않았나. 종교인이라서 비판 받지 않는다면, 종교인이 그걸 왜 무료가 아니라 대중상품으로 만들어 파는 거냐는 비판도 가능하다.
슈렉=전작(‘멈추면 비로소…’)은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얻는 스님의 트위터를 본 출판사에서
먼저 제안해 트위터 글을 엮어냈다고 한다. 당시 편집자가 따로 출판사를 차려 이번 책도 엮었다.
여왕=어찌 보면 스님은 죄가 없다. 김난도 교수도 마찬가지다. 그 힐링서를 과도하게 소비한 우리의 열정, 그 후에 과도하게 난도질한 변덕이 문제다. 김 교수야 선의로 제자들이 너무 힘들어하니까 위로를 한 것이고 처음부터 책을 몇 백 만부씩 팔려고 한 것도 아니었겠지. 스님도 마찬가지고.
뻣뻣한 캣츠걸(이하 캣츠걸)=자기계발서가 잘 팔리는 이유와 같은 맥락이다. 자기계발서도 새로운 지식, 정보, 지혜를 주는 책은 보기 힘들다.
여왕=나는 힐링서와 자기계발서는 좀 다르다고 본다. 한때 ‘아침형 인간’을 읽고 ‘아침형 인간’이 되려 노력했던 적이 있다. 물론 7시에 출근했더니 5시 반에 출근한 부장이 일을 시키는 것을 보고 ‘일찍 일어난 새는 잡혀 먹힌다’는 진리만 깨닫긴 했지만.(웃음)
슈렉=중요한 대목이다. 나의 갈구나 욕망, 불만 같은 게 폭발하려고 할 때, 가끔 어떤 책의 제목이 너무 와 닿으면 그 책을 충동구매 하면서 풀리는 기분이 들지 않나. ‘이 회사에서 나만 제정신이야’라는 표지를 보고 “이건 사야 해!”했던 적이 있다.
맨=‘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도 책 제목을 참 잘 지었다.
여왕=그러니까 결국 출판시장에서 힐링서가 사랑 받는 이유는, 성공하는 사람들의 습관도 따라해 보고, 아침형 인간도 돼 보고, 온갖 발버둥을 다 쳤는데도 우리 모두가 뭐도 안됐으니까 “그냥 있는 그대로의 네가 명품이야” 이런 가르침만 남은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싸이=그러니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이 딱이다, 딱.
여왕=‘완벽하지 않은…’이라는 책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네가 얼마나 못났고 보잘것없고 사람들에게 무시를 받든 너는 소중하다. 너는 명품이다. 네가 너를 아껴라” 하는 가르침이다. 그런데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있나? 어떻게 보면 인간관계를 통해서 가족, 친구와의 관계에서 흡수되고 해소돼야 할 감정들인데 너무나 삶이 각박하다 보니 이게 실제 현실에서 전혀 안 되고, 다들 힐링서를 통해 가상의 교류, 만족을 얻어야만 하는 지경에 왔다는 거다. OECD 회원국 중에 ‘어려울 때 의지할 친구나 친척이 있다’고 답하는 비율이 한국이 꼴찌다. 평균이 88점이면, 한국은 72점 수준이다. 나이 들수록 더 심해져 30~49세부터 ‘도와주고 의지할 사람이 없다’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아진다. 50세 이상은 1위 아일랜드보다 30점 가량 낮다.
캣츠걸=복잡하고 어려운 책보다는 짧은 글 모음집 등을 선호하는 경향은 문해력 지수와도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여왕=2008년 이외수의 ‘하악하악’부터 누구누구의 명언, 어록 등을 묶은 대중서가 베스트셀러 1위에 많이 올랐다. 이 자체를 비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이런 대중서들이 책의 숲으로 들어가는 다양한 입구 중 하나가 돼야 하는데 대부분 독자층이 그 숲의 주변부만 맴돌고 있다는 점이다. 또 다른 입구, 다음엔 옆의 입구, 또 그 옆의 입구 이런 식으로 둘레만 맴돈다. 대중서 자체로 완성도가 높아 훌륭한 쾌감, 가르침을 주는 책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완벽하지 않은…’은 아니었다. “시험이나 면접 보기 전에 항상 기억하세요.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더 많이 알고 있다는 사실을요.” 면접 떨어지면 책임지나? “지금 힘드신 것은 지나가는 구름입니다”, “너무 잘나가면 생각지도 못한 안티들이 나타납니다”라니. 이런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다만 우리가 하면 아무도 안 듣는다. 결국 뻔한 소리를 놓고 생산 주체로서의 자격만을 소비하는 것 아닌가 싶다. 책에 부여된 권위의 아우라, 하버드 출신의 유명 스님 또는 서울대 교수가 하는 말이라는 자격.
맨=중요한 호소 지점이다.
싸이=상표가 비싼 커피 같은 느낌이다. 상표 때문에 사서 마시지만 맛은 그다지 모르겠는. 그런데 사람들이 이 책을 택할 때 어떤 대단한 지혜를 얻겠다는 큰 기대로 택하고 있느냐는 알 수 없다. 서로 편한 사이끼리 선물하기도 좋은 책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슈렉=그런데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처럼 썼지만 뜯어보면 불교철학의 개념을 쉬운 비유로 풀어 썼다고도 볼 수 있다. 모든 것은 변한다(제행무상), 변하는 모든 것은 실체가 없다(제법무아), 모든 것은 관계 속에 존재한다(연기법) 등이 다 불교적 가르침의 본질이다.
여왕=너무 호의적 해석 같다. “힘든 것은 지나간다” 이런 것은 상식적 문장이다.
맨=‘리빙 포인트’ 같은 대목도 많다. “파프리카를 썰면 기분이 좋아져요. 비타민 C가 풍부해요”등등.
싸이=그런데 사람들이 이 책을 집어들 때 어떤 대단하고 엄청난 기대를 하고 볼까. 커피 한잔에 4,000~5,000원 하는 시대에 ‘어? 그래?’하고 사는 게 아니겠나. 팬시 문구 같은 것 아닐까.
여왕=책 매대가 아니라 컬러링북이나 필사책 옆에 둬야 하는?
슈렉=‘너무 당연하다, 아니다’를 떠나서 사람들 모두가 “만사는 마음의 문제”라는 메시지를 갈구하는 상황이 안타깝긴 하다. 정말 절박한 절망의 상황에서 긍정, 행복, 용서를 떠올리는 것 말고는 해결책이 없을 때도 있지만 모두가 늘 순간의 정신수양만 추구하고 산다면, 그 어떤 변화도 연대도 어렵지 않을까.
맨=나 자신과 혹은 타인과의 갈등을 회피해야 하는 것으로, ‘갈등’ 자체를 문제시 하는 이 책의 정서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다.
캣츠걸=그게 더 나가면 논란이 됐던 ‘법륜 스님 처방’이 되는 것 아닌가. 아버지에게 성폭행 당한 여성에게 “지금 중요한 것은 괴로움이 일어난 원인이나 책임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우선 그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해 지는 길을 찾는 일입니다. 오직 감사하다는 기도만 하세요” 했던.
여왕=이 책엔 “잠 잘자고 나면 좋아져요. 토닥토닥” 이런 놀라운 문장도 써 있다.
맨=잠이 안 와요. 불면증이라고요.(웃음)
슈렉=사실 지금 한국사회에서 모든 이들이 그 정도 극한에 왔고, 세상을 바꾸려고 애써봤자 내 마음만 너덜너덜해지니 마지막으로 부여잡을 것은 토닥토닥뿐 아니겠나. 김 교수가 대책 없이 위로한다고 비판 받았지만, 그 대척점에서 “청년이여 분노하세요”를 외치고 있는 장하성 교수도 못지 않은 비판을 받는다. “아니, 노장년세대가 만든 세상을 왜 우리에게 분노해서 바꾸라고 하느냐”는 것이다. 대중들은, 특히 청년들은 위로하는 꼰대, 분노하라는 꼰대 다 피곤한 것이다. 종교인들만이 그런 비판을 피하며 위로가 가능한 지위에 남았다. 이 위로는 스님의 종교적 신념에서 나온 거니 정색하고 비판할 수가 없는 거다.
맨=그럼 이 책이 합(合)이야? 변증법적 지양이야
여왕=어느 네티즌이 댓글에 “지금 한국사회에서 베스트셀러를 쓰고 싶으면 출가를 하라”고 적었더라. 대중이 환호하고 선호하는 것을 비판하는 것은 곧 대중을 향한 모욕이 될 수 있어 사실 하기 불편하다. 언론에서도 ‘비판하려면 쓰지 마라, 아예 언급하지 마라’라는 것이 최근 대세다. 그렇긴 하지만 주요 신제품에 대해서는 언론이 견해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슈렉=이런 종류의 책을 비판하는 게 유니클로에 열광하는 사람들에게 ‘에르메스랑 비교하면 정말 저급이야’ 하는 느낌도 있다.
여왕=그럼 이런 책은 유니클로 급으로 가격이 싸야지. 10년 공력의 콘텐츠나 트위터 모음이나 책값은 왜 똑같나.
싸이=어떤 책이든 인기가 있을 수는 있다. 그런데 출판사들이 하는 얘기는 이런 것이다. 책 만드는 사람들은 진심이든 허세든 누구나 ‘좋은 책을 내놓고 싶다’고 한다. 현실적으로는 가치 측면에서만 훌륭한 책을 만들면 대개 안 팔린다. 예컨대, 세상에 꼭 필요한 경제서를 계속 내고 싶은 출판사가 있다면 우선 많이 팔리는 책을 만들어 돈을 벌어야 한다. 이름 값만 있는 중국 고전 번역서든, 실용서든, 힐링서든. 훌륭하든 아니든 많이 팔린 책이 다시 다른 책을 만드는 데 쓰여서 출판산업 발전을 위해 선순환되면 된다. 그런데 바짝 벌어 계속 유사한 실용서만 양산하거나 돈을 버는 것으로만 족한다면 그건 문제라고 본다.
여왕=주식으로 치면 단타매매다. 출판산업도 선순환이 돼야 하고, 독자들도 같이 커가야 하는데 어려운 문제다. 더 많은 독자들이 책의 숲의 한복판을 향해서 한발 더 내디딜 수 있도록 저자도 출판사도 왜 함께 발전할 수 없는 걸까. 그게 안타깝다. 지난 수년간 대한민국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읽은 책이라는 게 어떤 종교인의 트위터 글 모음이라는 것은 그런 출판산업의 참담한 민낯 아닐까. 다양한 책들이 사랑 받을 수 있는 풍토가 돼야 하는데 단타매매식의 상품이 시장을 잠식하고, 질릴 쯤 되면 또 다른 유사상품이 나오고 깊고 탄탄한 독자층은 영원히 형성되지 않는다. 그러니 훌륭한 저자가 나오기도 어렵다. 이 건강하지 못한 순환구조가 출판의 전부인 것, 그 점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
에잇, 전두환보다도 못한… 226 프레시안
박근혜의 거대한 착각과 치명적 유혹
'도발'이란 말의 뜻은 '남을 집적거려 일이 일어나게 함'입니다. 남한에 대한 북한의 최대 도발은 6.25전쟁이었습니다.
그 다음으로 큰 도발은 아마도 아웅산 테러가 아닐까 합니다. 1983년 10월 9일, 버마(현 미얀마)를 방문 중이던 전두환 대통령을 겨냥해 자행한 폭탄 테러 사건입니다. 당시 서남아·대양주 6개국 공식 순방의 첫 방문국인 버마 아웅산 묘소에서의 폭탄 테러로 대통령은 무사했지만, 공식·비공식 수행원 17명이 사망하고 14명이 부상했습니다. 사망자 중에는 김재익 경제수석, 함병춘 비서실장, 서석준 부총리, 이범석 외무장관 등 장관급 관료가 6명이나 포함됐습니다. 이념과 노선을 떠나 뛰어난 국가경영 능력을 인정받았던 분들입니다.
전두환은 왜 아웅산 테러에 보복하지 않았나?
그런데 이처럼 엄청난 북의 도발에 대해 전두환 대통령은 강력한 보복이나 가혹한 응징에 나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1984년 9월 북한의 수해물자 지원 물품을 받아들였고, 1985년에는 분단 이후 최초로 '남북 이산가족 상봉 및 예술공연단 교환' 행사를 치르기도 했습니다. 1968년 1월 21일, 박정희 대통령을 살해하기 위해 김신조 등 북한 특공대 31명이 청와대 인근까지 진출했던 이른바 '1.21사태'에 대한 보복으로 남한 특수병력을 북한에 침투시켜 파괴공작을 벌였던 것과는 아주 대조적인 대응이었습니다.
출처: 국가기록원
정권 장악을 위해 두 차례 쿠데타(1979년 12월 12일, 1980년 5월 17일)를 벌였고, 그 과정에서 광주 시민 수백 명을 잔인하게 살해해 '살인마'라는 악명까지 들었던 전두환의 이처럼 '통 큰' 대응은 과연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88 서울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서였습니다.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전의 두 올림픽이 반쪽으로 치러진 이후(1979년 말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여파로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에는 소련 등 동구권 국가들만 참가했고 이에 대한 보복으로 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는 미국 등 서방권만 참가) 첫 올림픽이라는 점에서 성공적 개최를 위해서는 한반도 정세 관리가 매우 중요한 과제였습니다. 한반도 평화가 유지돼야 많은 국가들이 참석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전두환 정권은 권력의 정당성 확보를 위해 1981년 총력을 기울여 올림픽 유치를 따냈고, 이후 '서울 올림픽 성공'에 정권의 사활을 걸 정도였습니다. 이 때문에 전두환은 자신의 목숨을 노린 북한의 테러에도 '통 큰' 대응을 했던 것입니다.
▲ 테러 사건 당시 버마 아웅산 국립묘지 헌화 행사에 도열한 수행원들. 색이 바랜 이 한 장의 사진은 당시 연합통신 최금영 기자(중상으로 입원)가 폭발 참사 수초 전에 찍은 것이다. ⓒ연합뉴스
특히 1984년 북한의 수해물자 지원을 받아들인 전두환의 결정은 남한의 아량을 과시하는 동시에 북한 경제에 치명적 타격을 입힌 '신의 한 수'였습니다. 1984년 여름 하루 300mm 이상의 폭우가 내리는 등 남북한 모두가 커다란 홍수 피해를 입었습니다. 당시 남북한 정부는 경쟁적으로 상대방에 대한 수해물자 지원을 제안했습니다. 8월 20일 남의 지원 제의를 북이 거절했고, 9월 8일에는 오히려 북이 남에 대한 지원을 제안했습니다. 이 제안은 김정일의 주도로 이루어졌는데, 자신들이 거부한 만큼 남도 거부할 것으로 예상하고 그저 제스처로 해본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9월 14일 남이 이 제안을 덜컥 받아버렸습니다.
지원 물품은 자그마치 쌀 5만 석, 시멘트 10만 톤, 직물 50만 미터였습니다. 남의 예상치 못한 수락에 북은 당황했습니다. 이미 경제가 기울어가는 마당에 이처럼 방대한 지원 물자를 마련하고 수송하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안기부 요원으로 지원 물자 수령에 참여했던 김은성 전 국가정보원 차장에 따르면 "당황한 김정일은 전 행정기관과 지방 관서에 '수재물자 인도, 인수는 북한 보위부와 남조선 안기부와의 전쟁이다. 이유 여하를 불문코 최단시간 내에 물품을 징발하라'고 전통을 내리고 공문을 보내는 등 난리를 쳤다"고 합니다. 한 북한 전문가는 이때 수해 물자 지원을 위해 북한은 그야말로 '죽을 똥을 쌌고' 이후 경제는 회복 불능의 타격을 입었다고 합니다. 북 수해 물자 수령으로 남은 그야말로 '도랑 치고 가재 잡은' 셈입니다.
(☞바로 가기 : 1984년 北의 '水災(수재)물자 지원' 秘話)
요즘 젊은이들은 잘 모르지만, 또한 1980년대 당시에는 올림픽 개최의 저의에 대한 국내 비판도 적지 않았지만 88 서울 올림픽 개최는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을 비약적으로 향상시킨 결정적 계기였습니다. 1994년 제가 미국에 6주 간 머물렀을 때, '한국은 고유의 문자를 갖고 있느냐'라고 물은 사람도 있었고 '코리아'를 모르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서울'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바로 올림픽 때문이었습니다. '서울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라는 전략 목표를 위해 대북 보복을 포기한 전두환의 대승적 결단이 가져온 성과입니다.
박근혜의 전략 목표는 무엇인가?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직후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대외 정책의 3대 목표로 제시했습니다. 이에 대해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햇볕정책 0.8' 정도는 된다고 긍정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만 3년이 지난 지금, 한반도 정세는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에 몰려 있습니다. 남의 대통령은 '북한 붕괴'를 공개적으로 천명했고, 이에 대해 북은 '선전포고'라고 맞받아쳤으며, 중국의 전문가는 사드 남한 배치는 '3차 대전'을 불러올 것이라고 경고하는 지경입니다. '남과 북은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관계로 공존함'을 선언했던 1991년 남북기본합의 이전, 아니 1972년 7.4공동성명 이전 시대로 돌아갔다는 개탄이 나오고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현재의 안보 위기가 북한의 도발 때문이라고 강변하지만 이에 동의하는 전문가는 거의 없습니다. 남이 불러온 것입니다. 현재의 안보 위기를 도발한 것은 북이 아니라 남, 그리고 미국입니다. 1차적으로는 지난 1,2월 북한의 4차 핵실험 및 장거리 로켓 발사에 대한 개성공단 폐쇄, 그리고 사드 배치 협의가 그것입니다. 미국도 한몫을 했습니다. 1994년 체결 이후 8년간 북의 핵개발을 동결시켰던 제네바합의를 파기한 것은 미국입니다. 미국은 2002년 9월 고이즈미 당시 일본 총리의 평양 방문으로 북일 화해가 가시화되자 그해 10월 제임스 켈리 국무부 차관보를 평양에 파견, 북한의 '우라늄 농축 의혹'을 빌미로 제네바 합의를 파탄 냈습니다. 이로써 8년간의 북핵 동결은 끝장났고 결국 북한은 핵 및 미사일 능력 증강에 일로 매진했습니다. 이 때문에 2006년 10월 북한이 1차 핵실험을 단행했을 때, 전문가들은 북의 핵폭탄을 '부시의 핵폭탄'이라고 명명했습니다. 부시의 대북 강경정책의 산물이란 뜻입니다.
2005년 9월 19일 북핵 폐기 및 북미 평화협정을 규정한 9.19합의가 성사되자 바로 다음 날 북한의 위조 달러 의혹을 근거로 방코델타아시아은행(BDA)에 대한 금융제재에 착수함으로써 이 또한 휴지조각으로 만들었습니다. 2006년 북의 1차 핵실험 이후 부시 행정부는 부랴사랴 북한과 핵합의를 이뤘지만 이 또한 핵 폐기 검증 문제 때문에 무산됐습니다. 그리고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비핵 개방 3000'이라는 선비핵화 정책을 고집하면서 북핵 해결의 길은 막혀 왔습니다. 2002년 제네바합의 파탄 이후 북핵 해결과 남북관계 개선을 별개의 문제로 접근했던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정책을 뒤집은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북한 역시 북핵 문제에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지만 책임의 대부분은 남과 미국에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정부는 현재의 안보 위기가 오로지 북한의 도발 때문이라며 북한에 대한 '끝장 제재'만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최대 교역국 중국과의 대결 자세마저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23일로 예정됐던 주한미군 사드 배치 공동실무단 규약 체결이 돌연 연기되는 등 한국은 이제 '낙동강 오리알' 신세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같은 날 워싱턴에서 열린 미중 외무장관 회담에서 대북 제재와 동시에 비핵화 및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대화를 시작하기로 합의했기 때문입니다. 회담 후 케리 국무 장관은 "(대북) 제재의 목적은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합니다. 미국의 입장이 바뀐 것이죠. '끝장 제재'로 북한 체제를 변화시키겠다는 박근혜 정부와의 목표와는 사뭇 다른 것입니다. 일각에서는 중국과 일본 간에 경제공동체 건설을 위한 물밑 대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립니다.
박근혜 정부가 오로지 북한 붕괴에 일로매진 하는 동안 미국과 중국은 한반도 정세 관리를 위한 협상을 벌이고 있습니다. 중국과 일본은 경제 국익을 위한 물밑 협상을 벌이고 있습니다. 남한 주도의 남북 대치가 극단화되는 가운데 미국, 중국, 일본 등 주변 강대국들은 우리의 머리 위에서, 등 뒤에서 냉철하게 국익 계산을 하며 고도의 전략 게임을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한반도 정세와 관련한 박근혜 정부의 전략 목표는 무엇일까요? 남북의 화해와 협력, 대화와 교류에 의한 공존과 평화 통일인가, 아니면 북한 붕괴에 의한 흡수 통일인가. 아무래도 후자인 것 같습니다. 전자가 목표라면 도저히 현재와 같은 행태가 나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2013년 말, '2015년에는 한반도가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통일될 것'이라는 당시 남재준 국정원장의 발언, 2014년 벽두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대박론' 등은 모두 후자를 가리킵니다.
'한국과 미국은 일체'라는 환상
지금 박근혜 대통령은 거대한 착각과 치명적 유혹에 빠져 있습니다. 미국의 힘을 빌려 중국을 대북 끝장 제재에 동참시킬 수 있다는 거대한 착각, 북한 붕괴에 의한 한반도 통일이 가능하다는 치명적 유혹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지난 주 '프레시안 뷰'에서 지적한 것처럼 미국이 언제나 남한 편일 수는 없습니다. 6.25전쟁 후 20여년만의 대중 전격 화해가 대표적 사례입니다. 1972년 박정희가 김일성과 7.4공동성명에 전격 합의한 것은 미중 화해에 대한 위기대응책이었습니다. 미국은 최근 북한과 진행한 평화협정 논의도 한국과 공유하지 않았습니다.
북한 붕괴는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습니다. 통일 대박은커녕 '전쟁 쪽박', 또는 대규모 난민 유입에 따른 '난민 대란'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문제는 현 정부의 외교안보 관료 중 현재의 안보 위기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거나 실제 상황을 대통령에게 직언하는 외교안보 관료를 찾아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홍용표 통일부 장관은 개성공단 수입금이 북한 핵무기 개발에 전용됐다고 주장했다가 국회에서 그 증거가 없다고 실토했습니다. 그의 실토는 다음 날(16일) 대통령에 의해 묵살됐음에도 그는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상황이 그 지경까지 갔다면 장관직을 사퇴해야 마땅합니다. 현 정부 임기 초 노인연금 문제에 대한 이견으로 사표를 던진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처럼 말입니다. 현 정부에는 대통령 말씀을 받아 적기에만 바쁘고(적자 생존), 어떤 말씀이든 지당하시다는 예스맨으로 가득합니다. 그러니 엄중한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두환 대통령은 재임 당시 김재익 경제수석에게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라며 경제 문제를 전적으로 일임했습니다. 꼭 김재익 수석 덕분은 아니었겠지만(저환율, 저금리, 저유가에 의한 3저 호황이었죠) 어쨌든 5공 시절, 경제만은 괜찮았습니다. 그래서 노무현 정부 후반기부터 국민들 사이에 '살기는 전두환 때가 좋았다'는 말이 널리 퍼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경제, 남북관계, 외교 등을 만기친람하면서 나라를 전례 없는 위기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관료들의 자율성은 일체 허용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무조건 복종만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위기의식은커녕 반성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습니다. 집권 3주년을 맞아 청와대가 내놓은 성명은 자화자찬 일색입니다.
1970년대 이후 40년 가까이 일등 방송이라는 자부심을 가져왔던 문화방송(MBC)은 2010년 3월 김재철 사장 부임 이후 딱 3년만에서 꼴찌 방송으로 완전히 전락했습니다. 비판적이고 양심적인 기자, PD들 대부분이 쫓겨났고, 시청율은 케이블방송보다도 못하다고 합니다.
25일로 집권 3주년을 박근혜의 대한민국호가 꼭 그 꼴입니다. 경제도, 남북관계도, 대외관계도 절망적 상황입니다. 침몰 직전입니다. 그런데도 현재의 위기 상황을 직시하거나 직언하는 관료도 없습니다. 그러니 이런 말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에잇, 전두환보다도 못한, 미친 정권' -박인규 프레시안 편집인
4차 민중총궐기 2만여명 운집 “박근혜 정권 3년, 투쟁으로 심판하자” 227 민중의 소리
‘기억하라, 분노하라, 심판하라!’ “유일한 방법은 민중 스스로 투쟁뿐”
27일 오후 서울 시청광장에서 열린 4차 민중총궐기 및 범국민대회에서 참가자들이 함께 구호를 외치며 백남기 농민의 쾌유를 기원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박근혜 정권 3년, 이 땅의 민생과 평화를 지킬 방법은 민중 스스로의 투쟁뿐입니다”
27일 오후 서울 중구 시청광장에는 2만여명(주최측 추산‧경찰추산 1만3천여명)이 모여 “박근혜 정권의 반민주, 반민생, 전쟁불사 폭주를 막아내자”고 외쳤다. 올해 처음 열린 민중총궐기 대회 참가자들은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시청 앞 광장을 가득 메웠다. 이날 집회는 박근혜 정권 3년간 벌어졌던 일들을 되짚어보고 이에 대한 분노를 모아내는 자리였다. 노동개악 중단, 세월호 진상규명, 백남기 농민 국가폭력 책임자 처벌, 사드배치 반대 등을 요구하는 각계각층의 정부에 대한 규탄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없으면 만들어 냈던 안기부, 국정원의 흑역사226 민중의 소리
테러방지법으로 당신의 안전이 지켜질 것 같지 않은 이유
흑색 선거운동 나선 방첩 요원들
1992년 14대 총선은 3월 24일 치러졌다. 선거가 코앞에 다가온 3월 21일 새벽 0시 30분. 강남구 개포1동 주공아파트 앞에서 의문의 사내들이 유인물 4백여 장을 아파트 우편함에 넣다가 발각됐다. 이 유인물에는 당시 민주당으로 출마한 홍사덕 후보에 대한 비방글이 적혀 있었다.
“홍사덕은 아직도 축첩관계를 계속하며 수많은 여성을 울리고 있습니다.”
“홍사덕은 첩을 두고서도 사생아는 팽개치고 3명의 처녀와 6명의 유부녀를 농락한 파렴치한 후보입니다.”
이들을 발견한 민주당 선거운동원들은 몸싸움 끝에 지구당사로 연행하여 6시간 반 동안 자술서를 받고 경찰에 넘겼다. 이들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안기부 직원이었다. 그 유명한 이른바 ‘안기부 직원 흑색선전물 살포사건’이다. 체포 당시 이들은 도청기와 무전기, 난수표와 함께 5공 인사와 민자당 의원 중 공천에서 탈락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한 후보 26명과 장관 등 정부부처 인사 11명, 기타 국영기업체장 16명 등 모두 83명의 명단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이 지닌 비밀메모는 이들 4명이 총 12명으로 구성된 팀의 일원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들 중 한 명의 소지품에는 ‘주간정세 분석보고서’도 들어 있었다. 안기부가 작성한 이 문건은 ‘내각제 개헌론의 가능성 대두’, ‘현대그룹의 탄원서 제출 배경과 의미’ 등의 항목에서 정치권의 동향과 예상 흐름이 상세히 묘사되어 있었다.
1992년 당시 민주당 홍사덕 후보를 비방하는 유인물을 몰래 돌리다 적발된 안기부 직원들ⓒ자료사진
사건 발생 직후 안기부는 이들이 안기부 직원인 것은 맞지만 흑색선전물 살포는 안기부와 무관한 일이라고 발뺌했다. 당사자들은 ‘거절할 수 없는 친구의 부탁’으로 한 것이라고 진술했다. 그 ‘친구’가 누구였길래 혼자도 아니고 최소 12명이 짝을 지어 움직였을까? 이 문제를 규명할 책임을 맡은 서울지검 공안1부는 이들의 직속상관 1명만을 조사했고 그 이상의 조사는 하지 않았다. 검찰이 늘어놓은 변명은 이랬다.
“안기부는 필수불가결한 국가기관이므로 더 이상의 해부는 결코 국민들에게 이로울 게 없다.”
1992년 5월 8일, 드디어 첫 공판이 열렸다.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 이 사건에서 검찰이 던진 질문은 공소사실을 확인하는 단 세 가지, 검찰심리에 걸린 시간은 모두 3분이었다. 언론은 ‘번개공판’이라 칭했다. 처음이자 마지막 공판이 된 이날, 검찰의 구형도 한꺼번에 이뤄졌고 결국 이들은 며칠 뒤 모두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블랙코미디는 재판 이후에도 이어졌다. 검찰은 자신의 구형 수준에 맞춰 판결이 내려졌기 때문에 항소하기 어렵다는 이상한 이유를 대다가, 집행유예로 풀려난 안기부 직원들이 ‘억울하다’며 항소 입장을 밝히자 허둥지둥 항소에 나섰다. 물론 항소심의 과정과 결과 역시 1심과 다르지 않았다.
눈여겨볼 부분은 이들의 소속이 안기부 내 ‘대공수사단’이었다는 점이다. 즉, 북한의 공작에 대응하거나 국내로 잠입한 간첩을 수사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총선 직전 한밤중에 야당 후보를 모략하는 유인물을 몰래 살포하다 발각된 것이다. 안기부가 조직적으로 개입한 흔적은 여기 저기 남아 있었다. 안기부 직원들이 흑색 유인물을 돌리다 잡히기 2일 전인 3월 18일, 국민은행 목동지점에는 안기부 계좌가 개설되었으며, 하루 뒤인 19일, 29억 원이 입금되자마자 출금되었다. 체포된 직원들이 가지고 있던 10만원권 수표 6장도 여기서 인출한 돈이었다.
당시 검찰은 수사과정에서 이 계좌를 확인했으면서도 체포된 안기부 직원에게 이 사실을 추궁하지 않았음이 후에 밝혀졌다. 당시 이 사건을 담당한 서울지검 공안1부 검사는 김수민으로, 그가 22년 뒤인 2014년 박근혜 정부에서 국정원 2차장에 임명되었다는 점은 시사적이다. 국정원 2차장은 대북, 대테러, 방첩 등 대공업무를 지휘한다. 그리고 당시 안기부 대공수사국장은 그 유명한 정형근이다.
뒤에 국회의원이 된 정형근은 김대중 정부 들어 당시 사건의 실질적인 지휘자였다는 전직 안기부 직원의 증언이 나와 곤경에 처했고, 그 스스로는 2002년 국정원이 휴대전화를 도청하고 있다는 것을 ‘폭로’하기도 했다. 그리고 정형근의 폭로 사건을 조사하면서 ‘휴대폰 도청은 불가능하다’고 결론 내리고 사건을 종결시킨 사람은 당시 서울지검 공안2부 부장검사였던 현 국무총리 황교안이다. 그러나 그가 사건을 최종 무혐의 처리하자마자 발생한 ‘삼성X파일 사건’에서 휴대전화 도청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부실수사 논란에 휩싸였다. 이 일들은 사슬 퍼런 군사독재 시절에 벌어진 일이 아니다. 이른바 ‘민주화 이후’에 발생한 일이다.
진상 드러나도 솜방망이 처벌... 되풀이 되는 선거개입
흑색선전물 사건으로 안기부는 여론의 호된 질책을 받았지만, 이후에도 ‘버릇’은 고쳐지지 않았다. 바로 같은 해 있는 대선을 앞두고 부산 초원 복집에는 김기춘 전법무부장관과 안기부 지부장을 비롯해 이 지역 시장, 경찰청장, 기무사 지대장, 교육감, 지검장, 부산상공회의소 회장 등이 모여 선거대책을 논의 했다. “우리가 남이가”, “부산 경남 사람들 이번에 김대중이 정주영이 어쩌냐 하면 영도다리에 빠져죽자”, “민간에 지역감정을 불러일으켜야 한다”는 이야기가 고스란히 녹음됐다.
그러나 이 사건 역시 도청을 한 국민당 관계자만 사법처리를 받았다. 당시 이 사건 담당 검사는 박근혜 정부에서 검찰총장을 역임한 김진태고, 담당 부장검사는 박근혜 정부에서 ‘본의 아니게’ 최장수 총리가 된 정홍원이다.
이후에도 유사한 일은 계속됐다. 1996년 4.11 총선을 앞두고 벌어진 북의 판문점 무력시위 사건과 관련, 1997년 <시사저널>은 안기부 특수공작원들이 대북 공작 와중에 접촉한 북한 대남 공작수뇌부와의 대화 녹음 테이프에 대북식량과 물자 지원을 대가로 무력시위를 요청한 내용이 들어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 사건에 대해서도 법원은 총풍 사건의 주범에 대해 “북한에 무력시위를 요청하기로 모의했다고 보이지 않는다”는 판결을 내렸지만, 당사자는 검찰과 법원에서 자신이 무력시위를 요청했다고 일관되게 진술했다.
1997년 12월 대선을 앞두고서도 북풍 사건이 일어났다. 안기부의 사주를 받은 재미교포 윤홍준씨는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가 북한으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취지의 허위사실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 사건 수사는 1998년 3월 21일 검찰 수사 중 권영해 전 안기부장이 화장실에서 자살을 시도하면서 흐름이 크게 바뀌어 증거가 명백한 권 전부장과 사건을 주도한 203실(해외공작실) 소속 직원 5명, 그리고 윤홍준씨만 구속됐다.
당시 203실을 지휘한 안기부 2차장은 사건 당시 대만에 체류 중이었다는 이유로 사법처리 대상에서 제외되었으나, 최근 윤홍준이 기자회견을 한 1997년 12월 11일 국내에 머물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당시 검찰은 안기부 2차장이 “윤 씨의 기자회견 공작을 지시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때 안기부 2차장이 바로 김기춘의 뒤를 이어 박근혜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일하고 있는 이병기다.
테러방지법 조속 처리를 촉구하기 위해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정의철 기자
이런 일련의 사건을 쭉 살펴보면,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간첩과 테러범을 잡는다던 정보요원들이 끊임없이 국내 정치와 선거에 개입했으며, 간혹 어렵게 사건의 진상이 드러나도 책임자는 처벌받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사건 당사자는 물론 솜방망이 처벌을 방조한 이들은 이후에도(특히 현 정부에서!) 승승장구 했다는 사실이다. 일벌백계로 처벌받지 않았으니, 이런 문제가 반복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벌어졌던 국정원의 노골적인 선거개입 역시 핵심 증거가 드러났어도 제대로 된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정보기관과 사법기관의 이런 ‘특수’ 관계의 재현이라 할 만하다. 부족하지만 그래도 처벌 의지를 가졌던 검찰총장마저 ‘찍어내기’에 물러나고 수사 관계자가 줄줄이 좌천된 상황에서 추진되고 있는 테러방지법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낼 것인지를 상상하기란 상당한 인내를 필요로 한다.
공안기관이 비대해지면 벌어질 일들
테러방지법은 이처럼 과거에 대한 성찰과 반성, 국가 범죄 책임자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가운데 추진되고 있다. 공안기관이 비대해질 뿐만 아니라 권한까지 확대될 것이 분명한 테러방지법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 것인가?
우리 역사에서 ‘조작 간첩’ 사건이 급증한 것은 1970년대 중반 이후다. 당시 중앙정보부는 민청학련 사건 이후 ‘지능화’될 뿐만 아니라 양적으로 확대되는 시국사범을 상대하기 위해 법대 출신 대공수사 요원을 1천명이나 늘릴 계획을 세웠지만 결국 천명을 다 뽑지 못하고 7백명 정도 늘려 놨다고 한다. 그러나 문제는 70년대 들어 북의 대남정책이 바뀌면서 남파간첩의 수가 확 줄었다는 점이다. 공안기관은 비대해졌지만 ‘건수’가 줄어든 상황에서 나온 것이 바로 ‘조작 간첩’의 대량생산이었다. 고문과 가혹행위로 만들어진 간첩들은 남은 삶이 엉망진창이 되었지만, 이들을 간첩으로 만든 이들 중 처벌받은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며 대부분은 오히려 탄탄대로를 걸었다.
반성 없는 역사는 반복된다 했는가? 지난 해 최종 판결이 끝난 ‘유우성 간첩조작 사건’에서 증거 조작에 가담한 이인철 전 선양주재 영사는 2007년 국정원에 설치된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에 파견 근무한 전 국정원 직원으로, 대표적인 공안 조작 사건인 인혁당 사건의 조사 담당이었다. 과거의 잘못을 반성한다는 과거사위에서 조작 사건을 조사했던 이가, 다시 간첩 조작에 나선 것이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의 피고인 유우성 씨가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동 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결심공판에 참석하기 위해 법원에 들어서고 있다.ⓒ양지웅 기자
집행유예도 과하다며 검찰도 은근슬쩍 포기한 ‘항소’를 외친 1992년 안기부 흑색선전물 살포 사건의 피고들처럼, ‘적반하장’도 되풀이되고 있다. 국정원이고 뭐고 간에 인간으로서의 자질이 의심되는 민망한 댓글을 여기 저기 뿌리고 다닌 ‘좌익효수’는 지난해 12월 열린 첫 재판에서 사실관계는 모두 인정하지만 “국정원 직원의 특정 정당·특정인 선거운동을 금지하고 위반 시 7년 이하 징역 및 자격정지에 처하도록 한 국정원법 9조2항4호 등은 위헌”이라며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하겠다”고 밝혔다.
명백한 잘못에도 ‘뭐가 잘못이냐’를 외치고, 솜방망이 처벌에도 ‘가혹하다’고 발끈하는 심리상태를 가진 이들에게 막강한 권한이 부여된 테러방지법까지 쥐어준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국회에서 진행되는 필리버스터가 정말 심각한 우려를 가질 수밖에 없는 테러방지법을 ‘방지’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법이 통과되었을 때 벌어질 일들은 예측하기란 어렵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책상을 백번이라도 탁탁 내리치면서 ‘테러방지법 결사반대’를 외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손우정 성공회대 연구교수
후쿠시마에 남겨진 동물들 처절한 사투 중 2.22한국
후쿠시마 원전 사고 4주기를 맞은 지난해 3월, 오염지역 내 가축 살처분 과정에서 한 농가 주인이 현장을 찾아 희생된 소를 추모하고 있다. 피에르 엠마뉴엘 델레트헤 프리랜서 기자 pe deletree@gmail.com
“피난한 날부터 하루도 빠지지 않고 새벽마다 고향집에 왔어요. 개들 밥을 주러 말이죠. 직장 때문에 이제 이사가야 하는데 얘들을 어떻게 해야 하나요.”
지난 12월 후쿠시마현 이다테에서 만난 다카기 마사카츠(57)씨의 사연은 절절했다. 그는 원전사고 4개월 뒤인 2011년7월 소마로 피난했다. 원전인근 주민들은 사고 직후 대피했지만 40㎞나 떨어진 이다테는 방사능 오염이 심각했는데도 피난이 늦었다. “안전하다”는 전문가들의 말만 믿고 있던 주민들은 참담한 심정으로 뒤늦게 마을을 떠났다.
그가 좀처럼 발걸음을 뗄 수 없었던 건 반려견 4마리 때문이었다. 가설주택에서는 키우는 게 금지된 터라, 그날부터 다카기씨는 새벽 4시에 일어나 30분 거리의 고향집에 들러 사료를 주고 출근했다. 벌써 5년째, 하루도 거른 날이 없었다. 그간 3마리가 병으로 죽었고 강아지 한 마리가 태어났다. 이젠 엄마개 코로(14)와 딸 치비(4)가 큰 집을 지키고 있다. 코로는 일본 토종 사냥개인 키슈종으로 본래 공격적 성향이 강했지만 지금은 제집 밖에도 잘 나오지 않을 정도로 겁이 많아졌다. “사람이 없으면 산에서 멧돼지가 내려오고 야생 원숭이들이 지붕을 뛰어다녀요. 얘들이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직장인 일본농협의 후쿠시마 영업점들이 통폐합되면서 그는 이번 봄부터 고리야마 지점으로 전근 발령을 받았다. 차로 한 시간이 넘는 거리다. 지금처럼 새벽에 밥 주고 출근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는 “데려갈까도 생각해봤지만 아무래도 도시에 적응하지 못할 것 같다. 이래저래 답답하고 막막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 자원봉사자가 방사능 오염이 심각해 사람이 살 수 없는 이다테에서 남겨진 개를 데리고 산책하고 있다. 이 개는 산에서 내려오는 야생 멧돼지를 잡기 위해 설치된 덫에 걸려 다리 한 쪽이 절단됐다. 피에르 엠마뉴엘 델레트헤 프리랜서 기자 pe deletree@gmail.com
후쿠시마 반려동물 대부분 초기에 죽어
쓰나미와 원전 참사 앞에서 생명은 무기력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도 그럴진대, 사람에 절대 의존해야 하는 반려동물들은 더 그럴 수밖에 없었다.
후쿠시마에서 고양이를 구조해온 수의사 유이 아키코씨는 처음 이 지역에 왔던 때를 생생히 기억한다. “사람이 떠난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개와 고양이들이 떼로 몰려 들었어요. 먹을 것 좀 달라고, 아니 간절하게 도와 달라는 눈빛이었지요.” 피난민들은 워낙 급하게 떠나느라, 한편으론 곧 집으로 돌아올 것이라 생각에 반려동물들을 무방비 상태로 남겨뒀다. 집에서 키우던 개 고양이는 자생능력이 부족해 굶어 죽거나 야생동물의 습격을 받아 목숨을 잃었다. 유이씨는 “발견 당시 살아있는 동물들도 치명적 질병에 감염돼 있었다”며 “정부는 손을 놨고 민간이 대처하기엔 역부족이었다”고 말했다.
다카기씨 케이스는 예외적이었다. 이다테 지역의 피난이 늦어진 건 사람에겐 불행이었지만, 역설적이게도 동물들에게는 다행이었다. 다른 지역을 교훈 삼아 이다테 주민들은 동물들의 떼죽음을 막을 수 있었다. 사고 직후 방사능 오염 때문에 접근 자체가 금지됐던 원전 인근지역과 달리 이곳은 낮 시간 출입이 가능해 주인들이 주기적으로 동물들을 보살필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 곳 반려동물이 모두 멀쩡했던 건 아니다. 멧돼지 같은 야생동물에 목을 물려 상처가 난 개, 멧돼지를 잡기 위해 놓은 덫에 걸려 다리 하나가 잘려나간 개 등이 심심찮게 보였다.
후쿠시마에서 구조한 고양이를 중성화 수술시키고 새 주인을 찾아주는 지원활동을 하고 있는 가와사키의 한 동물병원. 피에르 엠마뉴엘 델레트헤 프리랜서 기자 pe deletree@gmail.com
가축들은 더 열악했다
“아우슈비츠가 따로 없었어요. 우리 안에 사체들이 널려 있었고, 살아있는 동물들은 들쥐에 뜯긴 몸으로 계속 울어댔죠. 몸이 너무 약해 물을 줘도 마시지 못하고 픽픽 쓰러졌어요. 한 돼지 우리에서는 떼로 나가보려고 발버둥을 쳤는지 사체들이 한쪽에 몰려있더라고요.”
다니 사츠키(35)씨는 원전 사고 한 달 뒤의 참상을 이렇게 묘사했다. 당시 후쿠시마 원전 반경 20㎞ 안에는 소 3,500마리, 돼지 3만 마리, 닭 67만 5,000마리가 방치돼 있었다. 가축의 절반 이상은 굶어 죽은 것으로 추정되며, 우리를 떠나 야생화된 가축들의 개체 수와 그들의 생사는 아무도 모른다. 도쿄의 한 구호단체에서 일하고 있던 그는 후쿠시마 동물들의 상황이 궁금해 직접 현장을 찾았다. “극한 상황에서 큰 피해를 입는 건 언제나 힘없는 약자잖아요. 사람은 피난이라도 갔지만 동물들은 영문도 모른 채 계속해서 피폭을 당한 거죠. 이 점에서 반려동물, 가축, 야생동물 모두 피해자입니다.”
정부는 동물들에 대해 가장 ‘손 쉬운’ 대응을 택했다. 살처분이었다. 일본 정부는 사고 2개월 뒤인 2011년 5월 소에 대한 살처분을 시작, 작년 초까지 약 1,800마리를 방사성 폐기물과 함께 묻었다. 살처분에는 농가의 동의가 필요했지만 어차피 후쿠시마산 육우는 유통이 금지된 터였고, 주민들 또한 장기 피난에 지친 상태여서 달리 선택이 없었다. 오직 오쿠마, 나미에, 도미오카 등 세 마을만이 살처분에 반대했을 뿐이다. 이들 지역 소수의 주인들이 피폭 위험을 무릅쓰고 고향에 남아 지금도 가축들을 키우고 있다.
다니씨는 도저히 그곳을 떠날 수 없었다고 했다. 고민 끝에 회사를 그만두고 전혀 연고도 없는 후쿠시마로 거처를 옮겼다. 처음에는 개인자격으로 봉사를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이 같은 사람들과 연대가 생겼다. 현재는 접근제한구역인 오쿠마에 남겨진 소 7마리의 밥을 매일 챙기고 있다. 오쿠마에서 4시간 거리로 피난간 나이 많은 농부가 그에게 간곡히 청했다고 한다.
다니씨는 교통비 사료비 등 모든 비용을 스스로 책임지고 있다. 기부만으론 턱없이 부족해 학원강사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새벽까지 하고 있다. 심지어 대출까지 받았다.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뭔가”란 질문에 그는 “이건 동물이 죽고 사는 문제만이 아니다.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성찰 과정이다. 사람이 동물들을 우리에 가둔 만큼 책임도 사람이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현재 후쿠시마에 남겨진 소들은 약 500마리로 추산된다. 전문가들은 “남은 소들이 황폐화한 땅의 지력을 회복시켜주고 사방을 덮은 풀들을 먹어 치움으로써 산불을 방지해주고 있다”면서 추가 살처분을 반대하고 있다. 오다카지역 축산농가 12명이 설립한 한 비영리기구는 도호쿠대 연구진 등과 연계, 소 90마리를 대상으로 소의 방사선 영향에 관한 연구조사도 진행하고 있다.
아직은 갈 길 먼 대응체계
‘7월 7일/ 수분이 있는 사료를 주고 물을 갈아줌. 산책 20분 - 키요가와 시모무라 작성’
취재진이 동물보호단체 소라(SORA)의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이다테를 찾았을 때 개들이 매여있는 집에는 이런 노트가 비치되어 있었다. 노트 첫 장에는 그 집 개들의 이름, 색, 나이, 질병내역 등이 상세히 적혀있었다. 자원봉사자 하세가와 준씨는 “봉사자들이 중복해서 사료를 주거나 적절하지 않은 처방을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라며 “2015년부터 시작해서 현재 40곳에 노트가 비치돼 있다”고 설명했다. 참사 5년이 흐르면서 이처럼 동물관련 민간단체들의 대응노력도 차츰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재난동물대책단체 아니스(ANICE)도 원전사고에 대처하는 자체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히라이 히토시 대표는 “13년째 단체를 운영하면서 지진 화산 태풍 등 각종 재난현장에서 조사를 해왔는데 원전 사고는 처음이라 어디서도 가이드라인을 찾아볼 수 없었다”며 “봉사자들이 몰려왔지만 방사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안전상 문제가 우려되는 상황이었다”고 했다. 그는 ▦구조 현장에 40세 이하 여성은 보내지 말 것 ▦적절한 보호장구를 착용할 것 등 사람에 대한 규정부터 ▦오염지역에서 동물을 구조한 뒤에는 먼저 씻기고 방사선 수치를 체크하며 ▦그래도 수치가 높으면 털을 깎는다는 식의 기초적인 동물구호절차도 정했다. 그러나 그는 “동물들의 내부 피폭에 대해서는 누구도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조된 동물들은 보호소로 보내지지만, 그게 해결책은 아니다. 한 동물단체 봉사자는 “민간 보호소의 경우 후원금을 엉뚱한 곳에 쓰고 정작 내부 동물복지에는 눈감는 사례들이 종종 발견된다. 동물들이 늙어가면서 입양될 가능성이 크게 줄어들고 있어 지저분한 우리에서 남은 생을 보내야 하는 처지”라며 안타까워했다.
입양이 성사돼 새 삶의 환경이 마련된다 해도, 반려 동물들은 첫 주인의 흔적을 절대 잊지 못한다. 3.11 참사 현장에서 구조돼 1년 만에 새 주인을 찾은 반려견 모모는 지금도 경트럭 엔진 소리만 들으면 멍멍 짖는다고 한다. 담배를 피우거나 머리를 기른 남성을 유독 따르기도 한다. 옛 주인의 모습과 습관이 깊이 각인된 까닭이다.
후쿠시마 피해자를 사람으로만 국한 짓는 건 부당하다. 어쩌면 가장 큰 피해자는 어쩌면 피해사실조차 모른 채 죽어간 동물들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동물들은 이 순간 그저 사람만을 그리워하고 있다.
“방사능보다 무서운 건 반려동물 버린 사람들의 이기심”
[체르노빌30년 후쿠시마5년 현장리포트] 재일동포 반려동물 지킴이 김연옥씨 인터뷰
한국 가족들의 귀국 재촉에도 결심
“우리 집은 자원봉사 베이스캠프죠”
적어도 재일동포 김연옥(58)씨 집에선 개와 고양이는 천적이 아니다. 후쿠시마 나라하에 있는 그의 집에선 개 두 마리와 고양이 서른 마리가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다. 원전사고 이후 대피한 주민들이 그대로 두고 간 반려동물들로, 김씨는 사고 직후부터 주기적으로 동물들에게 먹이를 주다가 입양을 결심하게 됐다
한국의 가족들과 대사관에선 귀국을 재촉하는 전화가 쉼 없이 걸려왔지만 온 정신은 굶고 있을 고양이들에 쏠려 있었다. 결국 3일째 되던 날 대피소에서 배급 받은 음식들을 들고 집으로 향했다. 그는 “마을 전체 동물들이 겁에 질려 있었다. 누구 할 것 없이 먹을 것을 달라고 애원했고, 외로움에 사무친 큰 개들은 계속 뒤따라왔다. 너무 굶은 경우에는 빵을 씹지도 못하고 고꾸라졌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후 그는 사람들이 먹고 남은 구호식품을 들고 시도 때도 없이 마을을 들락날락했다. 경찰은 마을진입을 막았지만 때론 싸우고 때론 사정하고, 때론 산길로 돌아 들어와서까지 밥을 주고 갔다. 서른 곳에 먹이를 놓아두고 누구든 먹을 수 있도록 했다.
2년뒤 뒤, 낮 시간 방문이 허용되자 그는 아예 이 집에 들어와 살기로 결심했다. 고양이 서른 마리, 개 두 마리와의 기막힌 동거도 이 때부터 시작됐다. “3.11이후 집 안에서 키우던 동물 중에서도 강아지의 피해가 가장 컸어요. 고양이는 야생적응이 빠르지만 개들은 갇힌 채 겁에 질려 나오지 못하거나, 굶어 죽었지요.” 사고 뒤 길에서 만나 입양하게 됐다는 말티즈종 ‘신짱’은 인터뷰 내내 김씨의 품을 떠나지 안았는데 그 또한 한시도 사람과 떨어지지 않으려 하고 혼자 있으면 극도의 불안 증세를 보이는 ‘3.11 후유증’이라고 했다.
지금 그의 집은 후쿠시마 반려동물 지원을 위한 베이스캠프로 통한다. 주말이면 수의사와 자원봉사자들로 항상 북적인다. 인터뷰 당시 그의 집에서 잰 방사선 수치는 0.15μSv/h를 가리켰다. 서울 평균(0.11μSv/h)보다 조금 높은 수준이다. 방사능이 두렵지 않은지 물음에 그의 대답은 단호했다. “방사능 보다 더 무서운 건 가족 같은 반려동물들을 버리고 간 사람들의 이기심 아닐까요.”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2011년 3월 11일 일본 도호쿠 지방 앞바다의 대지진과 쓰나미로 후쿠시마 제 1원자력발전소가 폭발했다. 발전소 침수로 전원과 냉각 시스템이 파손됐고 핵연료 용융과 수소폭발로 이어지면서 다량의 방사성 물질이 누출됐다. 도쿄전력은 방사성 물질 누출량이 체르노빌의 15%이하 수준이라고 주장하지만, 오염수가 지속적으로 새고 있다는 점에서 피해는 더 장기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세슘 방출량을 기준으로 하면 히로시마 원폭의 168개 분에 달한다.
사고 뒤 원전의 반경 20km 이내 주민 16만 명이 대피했고, 여전히 10만 명 이상이 피난 중이다. 지난 5년 동안 자살, 고독사 등으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지만 방사능으로 인한 사망자를 정부가 공식인정한 사례는 없다. 체르노빌 사고와 함께 국제원자력사고등급 최고 단계인 7단계로 기록됐다.
세계 최대의 핵위협 국가, 미국 1.16 프레시안
한국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북한의 4차 핵실험에서 분명히 드러난 한 가지는 '우리는 북한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모든 북한 전문가들이 김정은의 신년사 분석을 통해 '북한이 핵실험 등에 나서지 않을 것 같다'고 전망했지만 이러한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습니다. 지난 65년간 미국의 핵위협에 시달려온 북한의 안보 위기의식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북한도 세계도 모른다
또 하나 드러난 것은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해 우리 정치지도자들의 세계 인식이 지극히 좁거나 잘못돼 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박 대통령이 13일 대국민담화에서 중국에 대해 "어렵고 힘들 때 도와주는 것이 최상의 파트너"라며 의리론을 앞세워 대북 압박 동참을 촉구한 것은 한마디로 무지의 소치입니다. 6.25전쟁 당시 건국 1년이 채 안 된 상황에서 수십만의 병사를 보내 북한을 지켜야 했던 중국의 전략적 이해관계를 모른 때문이지요.
당시 중국은 대만 정벌을 포기해야 했고, 마오쩌둥 주석의 큰 아들이 전사하는 등 막대한 희생을 치렀습니다. 그 정도로 북한은 중국에게 중요한 지역입니다. 북한은 미국과의 대결에서 완충지대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위안부 타결로 한미일의 대중국 군사포위망이 완성된 현 시점에서 중국이 자신의 보호막인 북한을 압박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는 국제정치의 상식입니다. 그런데 우리 정치지도자는 이런 상식조차 모르나 봅니다.
박 대통령은 이번 담화에서 "북핵 실험은 우리 안보에 대한 중대한 도발이자 우리 민족의 생존과 미래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며 동북아 지역은 물론 전 세계의 평화와 안전을 위협하는 용납할 수 없는 도전"이라고 규정했습니다. 얼핏 맞는 말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이는 1945년 히로시마 원폭 투하 이래 미국 핵외교(실상은 핵공갈)의 실상을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핵폭탄을 개발했으며, 이를 실제로 사용한 유일한 국가이고, 이후 지금까지도 핵무기를 세계 패권 유지를 위한 핵심적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미국이야말로 세계 최대의 핵위협 국가인 것입니다.
미국은 세계 지배를 위해 어떻게 핵무기를 이용했나
미국의 평화운동가 조셉 거슨 박사는 <제국과 폭탄: 미국은 세계 지배를 위해 어떻게 핵무기를 이용했나>라는 저서에서 '미국의 핵무기는 억지를 위한 것'이라는 미국 정치지도자들의 주장은 한마디로 '사기'라고 주장합니다. 다른 나라의 핵무기 사용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미국의 의지를 타국에 강요하기 위한 핵심 수단이라다는 것입니다. 미국은 1942년 이후 핵무기 개발 단계부터 미래의 적국인 소련 견제를 염두에 두었고, 이후 1946년 이란 주둔 소련군의 철수를 요구하며 핵위협을 가한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수십 차례에 걸쳐 수십 개 나라에 핵위협을 가해 왔습니다. 그중에서도 미국의 핵위협을 가장 많이 받은 나라가 바로 북한입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미국의 핵개발(맨해튼 프로젝트)은 독일 나치의 핵개발에 대한 대응으로 시작됐습니다.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저명한 과학자들이 나치의 세계 지배를 막기 위해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청원한 때문이지요. 1944년 말, 미국은 히틀러가 이미 (1942년) 핵폭탄 개발을 포기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도 핵개발을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미국 군부와 정치지도자들이 딴마음을 먹은 것이죠(이 때문에 훗날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핵개발 청원을 크게 후회했다고 합니다. 그는 3차례나 루즈벨트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핵무기가 세계 지배를 위한 만능의 보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원자탄은 소련을 굴복시키기 위한 것"
미국의 비판적 영화감독 올리버 스톤과 아메리칸대학 역사학 교수인 피터 커즈닉이 함께 쓴 <아무도 말하지 않는 미국 현대사>라는 책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옵니다.
2차 대전 기간 동안 맨해튼 프로젝트의 총책임자인 레슬리 그로브스 장군은 "이 프로젝트 책임자가 되고 나서 러시아가 우리의 적이라는 생각이 퍼뜩 떠오른 것이 절대 아니다. 맨해튼 프로젝트는 바로 그런 토대 위에서 시작됐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1944년 3월 원폭 개발에 참여한 과학자 조셉 로트블랫과의 저녁 식사 자리에서 "이 프로젝트의 주요 목표가 러시아를 굴복시키는 것이라는 건 당신도 당연히 알고 있겠지"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2차 대전이 끝난 직후인 1945년 말 소련에 대한 핵 선제 공격을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일본에 대한 원폭 투하가 태평양전쟁을 일찍 종결시키기 위한, 그리하여 무고한 인명 손실을 줄이기 위한 것이라는 미국 정부의 주장도 거짓말입니다. 이는 무수한 연구에서 드러났습니다. 일례로 미국 전쟁부(국방부의 전신)는 1946년 1월 작성된 보고서에서 "(일본의 항복) 결정에 이르는 토론 과정에서 미국의 원자탄 사용에 관한 언급은 거의 없었다. (…) 일본이 러시아의 참전에 직면하자 항복했으리라는 것은 거의 확실하다"고 밝혔습니다. 태평양 전쟁의 조기 종결과 원자탄은 관련이 없다는 미국 정부의 공식 견해인 셈입니다.
"나가사키 원폭 투하는 명백한 전쟁 범죄"
원폭 투하의 목적은 두 가지였습니다. 핵폭탄의 실제 위력을 시험, 과시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 때문에 사흘 간격으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플루토늄형, 우라늄형 등 각기 다른 형태의 원폭을 투하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 나치 전범에 대한 뉘른베르크 재판에 참여했던 미국의 텔포드 테일러 검사는 "첫 번째 원폭 투하는 그렇다 쳐도 두 번째 원폭 투하는 명백한 전쟁 범죄"라고 비판했습니다(미국의 원폭으로 조선인 4만여 명이 사망했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다른 하나는 소련에 대한 무력 과시를 통해 전후 처리를 미국 마음대로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당초 소련은 대일전 참전 대가로 (독일과 마찬가지로) 일본에 대한 공동 점령을 희망했지만, 미국의 핵폭탄에 겁을 먹은 나머지 한반도 북부를 점령하는 것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미국이 서둘러 원폭투하를 감행한(첫 원폭 실험이 성공한 후 20일만) 것은 동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독점적 지배를 확보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전후 처리 과정에서 미국은 핵무기를 앞세워 소련을 압박했습니다. 예를 들어 1945년 9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외무장관 회담에서 번스 미 국무장관은 몰로토프 소련 외상에게 다음과 같이 쏘아붙였습니다. 번스가 동유럽 문제에 대해 소련을 압박하자 몰로토프는 "미국도 그리스, 일본, 동남아 등에서 마음대로 하지 않느냐"면서 "당신은 코트 주머니에 원자탄을 가지고 다니느냐"고 물었답니다. 그러자 번스는 "당신은 우리 남부 사람들(번스는 사우스캐롤나이나 출신) 기질을 몰라요. 우리는 주머니에 대포를 넣어가지고 다닙니다. 이런 식으로 차일피일 하는 것을 당장 집어치우지 않는다면. (…) 원자탄을 뒷주머니에서 꺼내 바로 당신에게 안겨줄 거요"라고 말했답니다.
이런 식으로 미국의 핵위협을 받은 소련이 핵개발에 나서지 않았다면 그게 이상한 일일 것입니다. 소련과 중국 등은 바로 미국의 핵위협에 대한 자위의 수단으로 핵개발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북한의 경우는 어떨까요?
미 국무부 출신의 비판적 안보전문가 윌리엄 블럼에 따르면 2차 대전 후 미국은 57개 국가의 정부를 전복했거나 전복을 시도했습니다. 이 가운데 핵 보유국은 하나도 없습니다. 리비아의 가다피나 이라크 후세인도 핵무기가 없었죠. 북한은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랜 기간에 걸쳐 미국의 핵공갈과 정권 전복 위협을 받아온 나라입니다.
(☞관련 기사 : on North Korea’s Nuclear Test)
(☞관련 기사 : North Korea: How Many Wake-Up Calls Will It Take?)
세계에서 미국의 핵위협을 가장 많이 받은 나라, 북한
우선 한국전쟁 3년 동안 미국은 북한에 63만5000톤의 재래식 폭탄을 투하했습니다. 이는 태평양 전쟁 4년간 사용된 폭탄보다도 많습니다. 또 치명적 피해를 일으키는 네이팜탄을 3만2000톤이나 투하했습니다. 베트남전쟁 당시 미국의 네이팜탄 사용은 세계적 비판을 받았는데, 그때 사용된 양보다도 많습니다. '잊힌 전쟁(forgotten war)'이라는 말처럼 한국전쟁의 실상이 세계에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폭격 피해자들이었던 북한 주민들은 당연히 그 끔찍함을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수력 댐이나 저수지를 폭파해 수많은 인명을 수장시켰습니다.
당시 북한 폭격을 지휘했던 커티스 르메이 전략공군사령관은 1984년 미 공군역사본부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전쟁 3년 동안 북한 인구의 20%를 없앴다"고 자랑했습니다. 북한 폭격을 지지했던 국무부 관리 딘 러스크는 "북한의 움직이는 모든 것, 땅 위에 서있는 모든 건축물을 파괴했다"고 회고했습니다. 그야말로 북한을 석기시대로 되돌려 놓은 것이죠.그뿐만이 아닙니다.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을 시작으로, 중공군에 밀려 미군이 퇴각하던 12월, 한강 이남에서 전선이 교착됐던 51년 4월, 휴전협상 중이던 53년 등 여러 차례에 걸쳐 미국은 북한에 대해 핵위협을 가했습니다.
리영희 선생에 따르면, 1945~80년 35년 동안 미국이 전 세계에 걸쳐 핵무기를 사용하기로 결정, 구상, 협박, 준비한 일이 26회인데 이 중 한반도가 핵폭탄 사용의 목표로 정해진 것은 5회나 된다고 합니다. 북한은 미국의 핵위협을 가장 많이 받아온 나라인 것입니다.더 중요한 것은 1976년 시작된 팀스피리트 한미 합동 군사훈련입니다. 이 훈련은 북한을 겨냥한 핵공격 및 상륙작전 훈련으로 미 동맹국과의 합동 군사훈련 중 최대, 최상급이며 실제 전쟁을 제외하면 전 세계에서 유일한 핵 합동 군사훈련입니다. 미국이 1976년 한반도에서 팀스피리트를 시작한 이유는 1975년 미국 주도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소련 주도의 바르샤바동맹 35개국이 동서 군사대결 체제의 해체를 약속한 헬싱키선언으로 유럽에서 1개 사단 이상을 동원하는 군사훈련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핵 합동 군사훈련의 무대를 한반도로 옮긴 것이죠.
팀스피리트 훈련에는 미국의 핵항공모함 두 척, 20여 척의 핵장비 함대, B-52 핵폭격기 편대, 평균 20만의 한미 지상 병력이 참여합니다. 가히 세계 최대, 최강의 군사훈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훈련기간이 60-90일이나 됩니다. 팀스피리트 훈련이 시작되는 순간, 북한은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하고 모든 기관들이 국토방위태세에 들어갑니다. 매년 2, 3개월간 북한은 전시체제에 돌입해야 하는 것입니다. 팀스피리트 훈련에 따르는 미국의 핵위협을 북한은 지난 40년간, 1992년 단 한 해를 빼고, 매년 겪어왔습니다(1991년, 다음 해의 팀스피리트 훈련 중단이 결정되면서 남북 기본합의가 타결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듬해 당시 딕 체니 국방 장관이 미 국무부 및 그레그 당시 주한 미 대사와 일체의 상의 없이 훈련 재개를 결정하자 북한은 1993년 3월 NPT 탈퇴를 선언합니다. 이로써 북핵 위기가 본격화된 것이죠). 팀스피리트 훈련에 대해 리영희 선생은 "지구상의 어느 다른 국가에 대해서도 미국이 감행하지 않은, 오로지 북한에 대해서만 계속해온 핵공격 협박"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핵위협을 받고도 핵개발을 시도하지 않는다면 그 나라의 지도자는 제 정신이 아닐 것입니다. 1972년 닉슨이 남한에서 고작 미군 1개 사단을 감축하려 하자 박정희 대통령이 자체 핵개발을 시도했던 전례를 상기해보시기 바랍니다.
'핵무기 없는 세계' 약속을 위반한 오바마
북한의 4차 핵실험 엿새 후인 1월 12일, 미국은 네바다 사막에서 전술핵무기 B61-12 실험을 했습니다. 적국의 지하 핵무기 창고 또는 핵실험장을 정밀 타격할 수 있는 무기입니다. 미국은 또한 300억 달러를 들여 핵탄두 탑재 순항미사일 등 1천개의 신형 핵무기 개발 계획을 밝혔습니다. '핵무기 없는 세계' 약속으로 노벨 평화상을 받은 오바마 대통령의 심각한 약속 위반 행위입니다.
그는 2009년 4월 체코 프라하에서 '핵무기 없는 세계'라는 주제의 연설을 한 대가로 그해 12월 노벨 평화상을 받았습니다. 당시 그는 "미국의 안보전략에서 핵무기의 역할을 줄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2010년 러시아와의 새로운 전략무기감축(New START) 협상에서도 "미국은 새로운 핵탄두를 개발하거나 핵무기의 새로운 군사적 역할, 능력을 추구하지 않겠다"고 재차 약속했습니다. 그랬던 그가 2015년 9월 향후 30년간 1조 달러를 들여 핵무기 현대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여기에는 핵무기를 이용한 패권 유지 외에 다른 동기가 숨어 있습니다. 바로 군산복합체의 이윤 추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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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61-12의 낙하 장면 ⓒnytimes.com
핵무기 생산은 미 군산복합체의 황금 알
2015년 9월 핵무기 현대화 계획이 발표된 직후인 9월 22일 조나선 킹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 등 평화운동가들은 진보매체 <톰디스패치>에 기고한 글 "파멸의 사유화(Privatizing the Apocalypse): 핵무기산업은 어떻게 미 국민의 세금을 착취하는가"라는 글을 통해 핵무기가 미 군산복합체의 엄청난 이윤의 원천이라는 점을 밝혔습니다.
미국에서 핵무기 등 군사무기는 정부가 아닌 민간기업이 생산합니다. 그리고 무기를 정부에 납품하면서 엄청난 이윤을 보장받습니다. 경쟁 입찰이 아니라 생산 비용에 일정 규모의 이윤을 얹어서 정부가 구매하기 때문입니다. 개발, 제작 과정에서 비용이 아무리 늘어나도 정부가 모두 감당합니다. 수억 달러를 들인 개발이 실패해도 모든 개발 비용을 정부가 부담합니다. 당연히 핵무기 개발, 유지, 보수 등은 엄청난 이윤이 남는 사업입니다. 그야말로 '땅 짚고 헤엄치기' 하는 장사가 바로 미국의 군수산업입니다. 특히 핵무기가 그러합니다. 그런 만큼 그 실상은 일반에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록히드 마틴, 보잉, 노스럽 그루먼, 제네럴 다이내믹스 등 미국 핵무기 기업의 목표는 딱 한 가지입니다. 계속해서 핵무기를 생산해내는 것입니다. 그래야 막대한 이윤을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이들은 이란, 북한 등의 핵위협을 엄청나게 과장해서 미 국민들의 안보 불안을 자극합니다. 그래야 핵무기를 계속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죠. 이란은 단 한 차례도 핵무기 실험을 하지 않았고, 북한은 고작 4차례 했을 뿐인데도 엄청난 위협인 양 과장합니다. 미국은 그동안 1000회 이상의 핵실험을 했고, 지금도 임계점 이하의 핵실험을 계속하고 있으며, 포괄적 핵실험금지조약(CTBT)에 가입하지 않았는데도 미국의 책임은 모른 체 합니다.
(☞관련 기사 : Does North Korea Need Nukes to Deter US Aggression?)
미국 핵무기 기업의 장사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미국 정부가 공개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죠. 다만 미 의회예산처(CBO)가 추산한 바에 따르면 2015-2024년 10년간 3480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합니다. 연간 350억 달러(약 42조 원) 쯤 됩니다. 핵무기는 그야말로 미 군산복합체에 ‘황금 알을 낳는 거위’인 셈입니다. 당연히 의회 등에 대해 막강한 로비를 합니다. 한 시민단체의 조사에 따르면 2012년 총선에서 14개 군수기업이 의원에게 뿌린 정치자금이 300만 달러 정도입니다. 2015년에는 718명의 군수산업 로비스트가 6700만 달러의 정치자금을 살포했다는 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인류를 파멸에 이르게 할 수 있는 핵무기를 생산하기 위해, 그리고 이를 통해 돈벌이를 하기 위해 엄청난 돈잔치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핵무기는 21세기 지구 현안 해결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
그렇다면 과연 미국의 핵무기는 지구의 온갖 문제들을 해결할 수단이 될 수 있을까요? 전혀 아닙니다. 지난 2012년 제임스 카트라이트 전 합참 부의장을 위원장으로 한 정부 고위 위원회는 핵무기의 역할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깡패국가, 실패국가, 핵확산, 지역 갈등, 테러리즘, 사이버전쟁, 조직범죄, 지역갈등에 따른 대규모 난민, 전염병, 기후 변화 등 21세기의 주요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미국의) 핵무기가 쓸모가 있다는 주장은 전혀 터무니없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 핵무기는 문제의 해결책이기보다는 그 자체가 문제의 근원이 되고 있다."
(☞관련 기사 : Tomgram: Krushnic and King, The Corporate Nuclear Complex)
결국 미국의 패권 유지와 군산복합체의 이익을 위해 미 국민이 희생되는 것은 물론 인류 전체가 파멸할 수도 있는 미국의 핵무기 생산이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북한의 핵개발은 계속된다. 집단안보만이 해결책"
호주의 핵안보전문가 피터 헤이스 노틸러스연구소 소장은 지난 11일 <글로벌 아시아> 기고문(North Korean Power and Kim Jong Un’s Smaller H-Bomb)을 통해 북한의 4차 핵실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분석했습니다.
'첫째, 이번 핵실험은 군사적이기보다는 심리적 의미가 있다. 북한이 아직 장거리 탄도 미사일 등 미국을 위협할 수 있는 운반수단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외적으로는 북한의 자위력 과시, 대내적으로는 북한 주민들의 사기 앙양에 이용될 것이다.
둘째, 북한 신년사를 분석한 결과 김정은은 앞으로 청년세대들을 새로운 정치 주역으로 내세울 것이며 핵개발과 경제 발전의 병진 노선을 계속할 것이다.
셋째, 북한이 군사적으로 의미 있는 핵운반 수단을 확보하려면 앞으로 5~15년이 걸릴 것이다. 그동안 한국과 미국 등은 동북아 집단 안보를 통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나 오바마 정부가 이런 길에 나설 가능성은 매우 낮다.'
(☞관련 기사 : North Korean Power and Kim Jong Un’s Smaller H-Bomb)
결국 현재의 추세가 계속된다면 최악의 경우 남북은 물론 미중 간 군사 대결이 현실화될지도 모릅니다. 1950년의 한국전쟁은 북한의 선공으로 남북 대결로 시작했지만, 결국 미중 군사 대결로 비화됐고 이 때문에 미중 관계는 20년간 군사 대결 상태에 있어야 했습니다. 베트남전쟁도 사실은 중국의 팽창을 막겠다는 미국의 잘못된 상황 판단에서 30년이나 계속됐습니다. 1972년 미중 화해 이후 30년간 불안하게 지속됐던 동아시아의 평화는 이제 북한 붕괴를 노리는 한미의 압력과 생존을 위해 핵무기 개발에 일로 매진하는 북한의 대결 속에 새로운 전쟁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한국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것입니다.
현재의 위기 상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은 누구나 알듯이 북미 관계 정상화입니다. 이를 위해 앞장 서야 할 나라는 바로 한국입니다. 한국이 나서서 남북 관계를 개선하고 북미 화해를 중재해야 합니다. 그 외에 다른 길은 없습니다. 지금처럼 한국이 미국의 대중 군사 대결 노선을 추종하다가는 한국의 미중 군사 대결의 선봉장으로 떠밀려 한반도는 또 다시 전쟁의 참화에 휘말릴 수도 있습니다. 한국 정치 지도자들의 각성이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때입니다.
박근혜가 초래한 '4차 조선전쟁' 위기 2.19 프레시안
120여 년 외세 의존, 끝나지 않은 한반도의 전쟁
일본의 역사학자 하라 아키라(原朗, 도쿄대학교 명예교수)는 지난해 말 국내에 소개된 <청일·러일전쟁 어떻게 볼 것인가>(김연옥 옮김, 살림 펴냄)에서 청일전쟁(1894~95년)을 제1차 조선전쟁, 러일전쟁(1904~05년)을 제2차 조선전쟁으로 불러야 옳다고 말합니다. 두 전쟁 모두 오로지 조선 침략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청일전쟁 승리로 조선에 대한 중국의 종주권을 빼앗은 일본은 10년 뒤 영국과 미국의 지원 아래 러시아를 격파했습니다. 이로써 동아시아의 지역 맹주로 떠오르며 결국 조선을 병탄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북한의 무력 통일 시도였던 6.25전쟁은 3차 조선전쟁이라 할 수 있습니다. 6.25전쟁은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됐지만 곧 미국과 중국의 전쟁으로 바뀌면서(남한은 1950년 7월, 북한은 1950년 12월에 군 통수권을 각각 미국과 중국에 넘겼음. 또한 소련과 일본은 은밀히 군사 개입) '제한전'이라는 이름의 '미니 3차 대전'으로 확대됐습니다.
6.25전쟁의 최대 피해자는 한민족입니다. 400만 명에 가까운 소중한 목숨이 희생됐습니다. 전체 인구의 10%가 넘습니다. 나아가 남과 북은 지금까지 60년 이상 증오와 적대, 불신과 반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반면 일본은 최대 수혜자였습니다. 전쟁 특수는 2차 세계 대전으로 헐벗었던 일본 경제를 단숨에 회복시켰고(당시 요시다 총리는 6.25전쟁을 '하늘이 주신 기회'라고 감격해 했죠), 이후에도 미국의 군사적 보호 아래, 즉 공짜 안보를 누리면서 평화와 번영을 누렸습니다. 일본 정치학자 나카노 도시오는 전후 일본의 평화와 번영은 남북한의 대치와 전쟁 상태에 의해 유지됐다는 아이러니를 지적합니다.
남북이 싸우는 동안 일본은 평화와 번영 누려
미국과 중국도 나름 이득을 챙겼습니다. 우선 미국에서는 지배 계층의 숙원이었던 대외정책의 군사화(militarization)가 달성됐습니다. 즉 6.25는 군사력이 미국 대외 정책의 핵심 수단으로 자리 잡는 결정적 계기였습니다. 당시 미국의 경제.군사 엘리트들은 소련의 군사적 위협을 이유로 국방비를 일거에 3~4배 증액하려 했습니다(1950년 4월 NSC-68). 명분은 소련의 군사적 위협이었지만 속셈은 군사 수요 창출을 통해 전후 불황에 빠진 미국 경제를 회복시키는 한편, 중립주의 조짐을 보이는 서유럽을 미국의 영향권 아래 묶어두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미 의회와 국민들을 설득하는 것이었습니다. 평화 시에 국방비를 3~4배 늘린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짓이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때마침 6.25가 발발했습니다. 미국 지도자들은 6.25를 소련 주도의 국제공산주의 팽창 시도로 규정하면서 군사대국화의 필요성을 국민들에게 설득시킬 수 있었습니다.
신생 중국도 얻은 게 있습니다. 항일 전쟁 당시 일본군에게 절절 매던 3류 농민군으로 폄하됐던 중국군이 세계 최강 미국 군대를 패배 일보 직전까지 몰고 감으로써 존재감을 한껏 뽐낸 것입니다. 중국은 6.25전쟁 이후 20여 년 간 미국과의 대립 및 국제적 고립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베트남 전쟁 패배의 여파로 1971년 미중이 전격 화해하면서 중국은 국제사회에 화려하게 복귀했고 이후 고속 성장의 안보적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6.25와 베트남 전쟁은 공산 중국의 팽창을 막으려는 미국의 군사적 시도였습니다. 결국 이것이 실패하자 주적인 소련 견제를 위해 중국과 손을 잡은 것이죠).
6.25전쟁의 궁극적 주역은 미국과 중국입니다. 그런데 두 강대국은 전후 20년만에 화해한 반면, 전쟁의 최초 당사자였던 남한과 북한은 지금까지 70년 가까이 준전시 상태에 머물러 있습니다. 더욱이 남북 대치를 바탕으로 일본은 단숨에 부활했고 평화와 번영을 누리고 있습니다. 동족끼리 죽고 죽이는 '민족적 자살극'을 벌이는 동안 주변 강대국들은 나름 이득을 챙겨온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김일성의 무력 통일 시도는 치명적인 역사적 오판으로 비판 받아 마땅합니다.
그런데 지금 박근혜 대통령이 새로운 한반도전쟁의 길로 나아가려 하고 있습니다. 북한 핵실험 및 장거리 로켓 발사에 대한 일련의 대응이 그러합니다. 개성공단 폐쇄, 사드 도입 협의, 그리고 북한 붕괴 발언이 그것입니다. 박 대통령은 16일 국회 연설에서 "이제는 북한을 실질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근본적 해답을 찾아야 하며, 이를 실천하는 용기가 필요한 때"라며 북한 체제 붕괴를 공개적으로 언급했죠.
개성공단 폐쇄는 우리 기업에 치명적 피해를 주는 자해적 조치입니다. 사드 도입은 미중 군사 대결의 최전선에 스스로 뛰어드는 자멸적 행위입니다. 북한 붕괴 공개 발언은 북한 정권에 대한 사실상의 선전포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현 상황을 '박근혜가 초래한 4차 조선전쟁 위기'라고 판단합니다. 적어도 2002년 이후 북한의 핵 및 미사일 능력 증강은 기정사실이 됐는데도 한국은 2008년 이후 이를 막기 위한 의미 있는 외교적 노력을 포기한 채 급기야 대북 적대시정책을 공개적으로 천명했기 때문입니다.
▲ 박근혜 대통령. ⓒ청와대
북한의 안보 위기, 남한보다 훨씬 크다
객관적으로 북한이 남한보다 훨씬 더 큰 안보 위기에 처해 있다는 점은 1월 16일자 <프레시안 뷰>에서 자세히 설명한 바 있습니다. 요약해서 말씀드린다면, 남한은 북한보다 40배나 큰 경제력을 갖고 있고 세계 최강의 핵무력 국가인 미국의 보호를 받고 있으며 과거 적대국이었던 중국, 러시아와도 수교하고 있습니다. 반면 북한은 중국, 러시아의 핵우산 보호를 받지 않고 있고 미국, 일본과 수교를 못한 상태이며 지난 66년간 미국으로부터 가장 많은 핵위협을 받아 왔습니다. 따라서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이 계속되는 한, 북한의 핵개발은 바람직하지는 않으나 불가피한 측면이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의 군사적 피보호국가이며 전작권조차 갖지 못한 남한이 북한에 대해 강압적으로 핵개발 포기를 요구하고 있으니 북한이 코웃음 칠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미국의 위세를 등에 업고 호가호위 하는 형국입니다. 지금 남한이 해야 할 일은 북미 사이의 중재자가 되어 북의 핵개발 포기와 북미 관계 정상화를 맞바꾸도록 하는 것입니다.
(☞관련 기사 : 세계 최대의 핵위협 국가, 미국)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미국이 한국의 전시작전통제권을 갖고 있는 만큼 전쟁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말합니다. 중국과의 전면전을 원치 않는 미국이 상황을 적절히 통제할 것이라는 얘기죠. 그러나 현재 미국은 B-52 전략폭격기, 핵잠수함, F-22 스텔스전투기 등 최강의 전략무기들을 연일 한반도 주변에 출격시키면서 무력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이에 질세라 중국은 '동북지역 군사 배치 강화'를 으름장 놓고 있습니다. 전쟁 위기에 한 발짝 더 다가간 것은 분명합니다.
대통령의 무지와 만용, 외교안보 관료의 무능과 비겁
그 책임의 대부분은 박근혜 정부에 있습니다. 대통령의 무지와 만용, 외교안보 관료들의 무능과 비겁함이 빚어낸 비극입니다. 국제 정세에 대한 초보적 이해조차 없는 '무지', 힘으로 북한을 굴복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만용', 대통령의 무지와 만용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모르는 '무능', 올바른 대북정책을 직언하지 못하는 ‘비겁’의 합작품입니다.
특히 원유철 한나라 원내대표의 '남한 핵무장' 주장은 현 정부여당의 대북, 대외 인식의 천박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한겨레> 이제훈 기자의 다음 비판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관련 기사 : '핵무장=국제 왕따'…집권당 원내대표 '무책임 극치')
'위험천만한 선전포고'
"이번의 도발적 조치는 북남관계의 마지막 명줄을 끊어놓는 파탄 선언이고 력사적인 6.15북남공동선언에 대한 전면 부정이며 조선반도 정세를 대결과 전쟁의 최극단으로 몰아가는 위험천만한 선전포고이다."
"요컨대 박근혜 정부는 "끝장 결의"를 추진한다는 구실 아래 아무런 실익도 없이 너무나 중요한 우리의 자산을 "끝장"내 버렸다. 개성공단 전면 중단을 통해 남북공영의 현실적 실험장을 "끝장"내버렸고, 오직 3면 바다만으로 오늘을 이룬 한국 경제가 새로운 도약을 위해 기회의 창으로 삼은 남북경제공동체와 '북방경제'의 꿈을 "끝장"냈으며, 개성공단 덕분에 지난 10여 년 간 일체의 교전이 멈춘 서부전선의 군사적 안정을 "끝장"냈다.
어렵더라도 남북화해와 민족공영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많은 이들의 꿈 역시 "끝장"에 몰렸다. 더욱이 박근혜 정부는 한-미 동맹 일변도에서 벗어나 중국의 성장에 대응해 균형외교를 추구하겠다고 공언해 놓고, 섣부른 사드 배치 언급으로 균형외교 노력을 "끝장"냈다."
위의 인용문은 지난 11일 개성공단 폐쇄에 대한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의 성명, 아래는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의 15일 <한겨레> 기고의 일부입니다. 약간의 온도 차이는 있지만 현실 인식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고 봅니다. 한마디로 박근혜 정부의 일련의 조치가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에 치명적 위협을 가하고 있다는 것이죠.
(☞관련 기사 : 박근혜 정부가 '끝장'낸 것들)
개성 주민들은 공단 폐쇄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개성공단 폐쇄가 얼마나 모순되고 자해적 조치인가에 대해서는 이미 무수한 비판이 나왔습니다. 한 가지만 덧붙이겠습니다. 2004년 이후 12년간 개성공단에 삶을 의지해온 20만 북한 주민에 대한 것입니다. 하루아침에 공단을 폐쇄하고 그것도 모자라 전기와 상수도까지 끊는 것에 대해 북한 주민들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그동안 북한 정권과 주민을 분리해 북한 주민들의 인권과 자유를 보장하겠다고 떠들어온 남한 정부를 신뢰할까요? 그동안 정부 여당이 주장해온 북한인권법의 진정한 실체는 무엇인가, 20만 개성 주민들은 이번 조치를 통해 온몸으로 느꼈을 것입니다.
사드 도입에 대해서도 이미 많은 비판이 제기됐습니다. 중요한 것은 단 한 번의 공격으로 모든 것이 끝장나는 핵전쟁의 특성상, 핵미사일 방어는 선제 핵 공격의 중요한 근거가 된다는 점입니다. 적의 핵 공격을 막아낼 수 있다면 선제 핵 공격에 따른 대량 피해를 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2002년, 미국 부시 정부가 1972년 체결 이래 30년간 핵전쟁 방지의 최대 주춧돌이었던 탄도미사일방어금지조약(ABM)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것은 바로 미국 핵의 선제공격 가능성을 열어놓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나아가 한국의 사드가 미국의 탄도미사일방어망(BMD)과 결합된다면 중국의 핵무기는 아무 쓸모가 없어집니다. 미국 핵 공격에 대한 중국의 핵 억제력이 무력화되는 것입니다. 중국이 그토록 사드 도입에 반대하는 이유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기사를 참조하십시오.
(☞관련 기사 : Thaad talk: Is North Korea’s ‘missile threat’ really about China?)
사드 도입 강행의 배경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미국 군산복합체의 생존 몸부림입니다. 미국은 2011년 제정된 예산통제법에 따라 2013년 3월부터 10년간 5000억 달러의 국방비를 줄여가고(매년 500억 달러) 있습니다. 이에 따라 미 군수업체의 일감도 줄어들고 있습니다. 일례로 세계 최대의 군수업체인 록히드 마틴의 미사일방어 부문 매출은 2013년 77억 달러에서 2014년 70억 달러, 2015년에는 67.7억 달러로 계속 줄고 있습니다(2015 회계연도의 총 매출은 461억 달러, 미사일방어 부문은 전체의 12%).
이에 대해 록히드 마틴은 사드 판매와 패트리엇 미사일 공급 부진을 그 이유로 꼽았다고 합니다. 한편 한국 국방부는 지난해 12월 F-16 계열 KF-16 전투기 134대의 성능개량 사업(1조8000억 원)을 당초 계약 상대인 영국 BAE 시스템에서 록히드 마틴으로 변경했다고 밝혔습니다. 지난해 한국이 세계 최대의 미제 무기 구매국이(9조원 가량) 된 비결이 여기에 있습니다. 이에 대해 군사평론가 김종대 정의당 국방개혁단장은 "한국의 (미제) 무기는 이제 미국 (무기) 개발 사업의 연명을 좌우하는 중환자실의 산소호흡기로 그 의미가 변경된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미국 군부와 정보기관이 북한의 군사 위협을 그토록 강조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관련 기사 : 록히드마틴만 웃었다)
우크라이나와 한반도, 유라시아 통합 막는 쐐기 역할
미국 군산복합체의 경제적 이윤 동기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러시아와 유럽, 중국과 동아시아 등 유라시아 대륙의 경제통합을 가로 막아 미국의 기존 패권을 유지하려는 지정학적 목표도 있습니다. 미국은 최근 내년 국방예산 편성에서 유럽지역 국방비를 전년 대비 4배로(34억 달러) 크게 증액했습니다. 폴란드 등 러시아에 이웃한 동유럽 국가들에 러시아를 겨냥한 무기들을 배치한다는 계획입니다. 이에 대해 러시아의 메드베데프 총리는 지난 13일 뮌헨 안보회의에서 '세계가 신냉전의 시대에 접어들었다'며 강력 반발했습니다. 그는 "러시아가 나토나 유럽, 미국과 같은 서방 국가에 가장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가끔 우리가 2016년에 살고 있는지, 아니면 (쿠바 미사일 위기가 있었던) 1962년에 살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미국은 2014년 크림반도의 러시아 합병이 무력에 의한 강압적 조치라고 비난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크림반도 주민들의 자발적 주민투표에 의한 결정이기 때문입니다. 실상은 미국의 배후 조종으로 우크라이나의 극우 세력이 이른바 '민주혁명'을 일으켜 동서 내전이 벌어졌고, 미국은 우크라이나 내전을 빌미로 러시아와 유럽의 화해를 가로막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유럽에서는 우크라이나, 동아시아에서는 남북 대치를 빌미로 유라시아 대륙의 교류 및 통합을 가로막겠다는 것이 미국의 전략적 목표입니다.
이런 판국에 한국이 지난해 말 전격적인 위안부 합의를 시작으로 개성공단 폐쇄, 사드 배치 협의, 대통령의 북한 붕괴 발언까지 나왔으니 미국으로서는 그야말로 '얼씨구나' 했을 것입니다. 2차 대전 이후 그토록 소망해 왔던 미-일-한 군사 동맹이 완결되는 결정적 기회가 왔기 때문입니다.
남북 대립의 결과는 한민족의 자멸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은 17일 '한반도 비핵화와 북미 평화협정을 동시 추진하자'고 공식 제안했습니다. 남북의 강 대 강 대결로 한반도 안정이 위협받는 것을 더 이상 좌시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한국도 당연히 협상으로 자세를 바꿔야 합니다. 협상 이외에 북핵 문제를 해결할 현실적 방도가 없기 때문입니다. 전쟁도 북한 붕괴도 현실적 가능성이 없는 대책입니다.
(☞관련 기사 : 왕이 "한반도 평화협정 전환 추진하자")
물론 대북 제재는 필요합니다. 그러나 협상이 전제되지 않는 제재는 무의미합니다. 이제는 휴지조각이 됐지만 1994년 제네바 합의의 주역인 갈루치 전 국무차관보는 "북한이 핵을 포기할 의사가 없을 수 있다는 점에서 군사적 준비 태세도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제재도 협상 과정의 일부가 돼야 하며, 북한의 도발 행위는 협상과 양립할 수 없다는 점을 북한에 이해시켜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지난 1월 21일 조지워싱턴 대학교에서 열린 '북한의 핵 프로그램'이라는 학술회의에서도 4차 핵실험을 협상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국이 북한의 (제4차) 핵실험을 활용해 북한이 협상장으로 돌아오도록 해야 한다 북한의 핵개발은 지속되고 있으며, 악화하고 있다. 그럴수록 이에 대한 미국의 전략도 바뀌어야 한다."
(☞관련 기사 : 북한 고립? 중국-러시아까지 적으로 만들 텐가)
물론 박근혜 정부의 태도 변화 가능성은 극히 낮습니다. 그래서 한 가지만 지적하고자 합니다. 1차 조선전쟁인 청일전쟁은 어떻게 일어났는가? 무능하고 부패한 조선 정권이 동학 농민을 진압하기 위해 청나라 군대를 불러들였기 때문입니다. 이를 빌미로 일본 군대가 한반도에 진입했고 이땅에서 벌어진 청일 간 전쟁으로 동학 농민 30만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조선은 식민지의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내부의 분열이 외세의 개입을 불러왔고 엄청난 희생만 치른 채 국권을 잃은 것입니다. 북한이 일으킨 6.25전쟁은 더 큰 인명 손실을 불러왔습니다.
지금 박근혜 정권은 미국이라는 외세를 등에 업고 동족상잔의 비극을 불러올 수도 있는 무모한 대북 강압 정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남북의 분열과 대립은 민족사적 비극을 초래할 뿐입니다. 한반도 평화의 요체는 남과 북의 화해입니다. 남과 북이 화해해야 미국도 중국도 화해할 수 있습니다. 남과 북이 대결하면 미국과 중국도 대결할 것이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민족이 뒤집어쓰게 됩니다.
지금 한반도는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과연 박근혜 정권은 위기 상황을 알고는 있는 것일까요?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못한다면 엄청난 재앙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주한미군이 철수했어도 북한이 핵무기를 만들었을까 2.22 미디어오늘
10년 전 리영희 선생이 예견했던 북핵 위기 “미국의 세계 패권 체제, 핵·미사일은 북한의 유일한 선택”
“우리 남한 국민은 너나 할 것 없이 사무삼과(四無三過)에 빠져 있다. 핵에 대해서 무지하고 무관심하고 무감각하고 무민족적이다. 핵에 대해서 인간 이성을 과신하고 기계의 정밀성을 과신하고 군사력을 과신한다.”
돌아가신 리영희 선생이 1988년에 썼던 글 가운데 일부다. 리 선생은 “무지란 핵 기술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자기 땅에 남의 핵 무기가 들어와 있으면 안전하다고 착각하는 무식함”이라고 비판하곤 했다.
‘우상 파괴자’를 자처했던 리 선생이 돌아가신지 5년이 지났지만 리 선생의 글은 여전히 한국 사회에 큰 울림을 준다. 최영묵 성공회대 교수는 최근 출간된 ‘비판과 정명’에서 “리 선생은 평생 우상 타파를 위해 싸워왔다”면서 “리 선생이 생각하는 우상은 체제와 구조였고 그 체제의 작용으로 인한 우리의 생각 없는 상태이기도 했다”고 평가했다. “리 선생의 글은 이 생각 없음을 생각하게 하기 위한 고투였다”는 분석이다.
리 선생이 살아있다면 북한의 계속되는 핵 실험과 위협적인 로켓 발사, 미국의 사드 배치 논의와 한반도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 일본 등의 복잡한 이해관계의 충돌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리 선생은 생전에 쓴 글에서 한반도 핵·미사일 위기의 구조적·역사적 요인을 살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원인 제공자가 미국이기 때문에 해결도 미국의 손에 달려 있을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리 선생의 분석과 비판은 지금도 유효할 뿐만 아니라 절실하다.
리 선생은 “북핵 문제가 아니라 미국의 핵 협상 약속 파기 문제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의 핵 개발은 남한의 핵 문제와 무관하지 않고 미국의 북한에 대한 핵 공격 시도와 직접 관련이 있다는 이야기다. 리 선생에 따르면 1945년부터 1980년까지 미국 군부가 핵 폭탄 사용을 결정했거나 구상, 협박 또는 준비한 일이 26회나 있었다. 이 가운데 한반도가 목표가 됐던 게 5회나 된다.
고 리영희 선생이 2008년 6월 전남대에서 김대중학술상 수상 뒤 가진 특강에서 열변을 토하고 있다. ⓒ 연합뉴스
북한의 핵 무장의 원인을 미국에서 찾는 이유는 크게 네 가지다. 첫째, 미국과 일본은 중국과 러시아가 남한과 국교를 수립한 것에 상응하는 북한과의 호혜적 조치를 거부해 왔다. 둘째, 미국의 핵 무기가 남한에서 철수됐다고 밝힌 건 최근의 일이다. 셋째, 세계 최대 규모의 팀 스피릿 훈련은 북한 입장에서 대북한 핵 공격 연습으로 비쳤다. 넷째, 남한의 핵 능력이 북한보다 월등하며 미국은 핵 에너지 기술과 시설을 남한에 강제적으로 판매·지원해 왔다.
리 선생은 “휴전 협정을 평화 협정으로 바꾸고 미군이 철수했다면 북한이 구태여 핵 무장에 나설 이유가 없었다”고 지적한다. “미국과 일본이 북한을 승인하고 적대관계를 선린관계 내지 일반적 국가관계로 해소·발전시킬 수 있었을 텐데 북방 3국(북중러) 군사 동맹체의 일방적 해체와 그로 말미암은 핵 우산의 상실, 미국의 남북한 교차 승인 거부, 대북한 전쟁 위협 속에서 북한이 선택할 수 있는 건 핵과 미사일 밖에 없었다”는 분석이다.
리 선생은 “미국 정부는 미국의 세계 패권 질서 구조의 종속적 지위를 거부하는 국가와 정부, 국민, 지도자에 대해 그들의 핵 시설을 직접 행동으로 공격하거나 대리자로 하여금 파괴적인 공격을 하게 한 반면, 친미주의적 국가에 대해서는 조약 위반을 묵인하는 태도를 취해 왔다”면서 “북한은 국제 사찰의 조건으로 미국이 남한에 배치한 핵 무기 전면 철수와 한반도의 비핵지대화, 북한에 대한 핵 무기 불사용 공약 등을 시종일관 요구했다”고 강조했다.
미국 군부가 북한에 대해 PTSD(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다고 분석한 대목도 흥미롭다. 한국 전쟁은 미국 역사상 미국 군대가 치를 전쟁 중에 처음으로 비긴 전쟁이었다. 판문점 정전회담에서 40년 이상 미국 대표들은 수모를 겪었다. 리 선생은 “미국 고위 장성들의 필수 코스로 한국 근무 기간에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일”이라며 “개인적인 모욕감이 이후 북한에 대한 광적 보복 심리로 나타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분석했다.
리 선생은 “미국 군부의 관심은 북핵 제거가 아니라 북한 정권을 붕괴시키는 데 있다”면서 “단독 패권 체제 속에서 북한이라는 거추장스러운 세력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북한은 관계 개선을 원하지만 미국은 북한과의 평화 공존을 원하지 않는다”는 분석이다. 리 선생은 “북한의 지도자 집단을 예측불허의 광인 집단으로 단정·경멸하는 미국 군부와 한국인의 일반적인 인식 착오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북한을 커다란 위협으로 간주해 왔다. 북한이 미사일을 개발할 경우 일본과 한국이 미국의 핵 및 미사일 보호 체제에서 이탈할 가능성이 있고 한국에 대한 미국의 영구적인 군사적 또는 정치적 지배권의 붕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군사예산의 증대를 위해 무기·장비의 소모와 전쟁 분위기 조성을 부추긴 측면도 있다. 미국 군부 강경파는 제네바 합의를 파기할 수 있는 구실을 찾았다. 합의 파기의 책임이 북한과 미국 양쪽에 있다는 이야기다.
미국은 핵 보유국에 대해 적용하는 핵 선제 공격권을 북한에 적용해 왔다. 미국은 45개국과 군사협정을 맺고 이들에 대한 보호 의무로 최종적으로 이들의 가상 적국에 핵 무기 사용을 포함하고 있다. 핵 무기 사용 원칙은 일반적으로 핵 무기 대 핵 무기지만 북한에는 이런 원칙이 적용되지 않았다. 북한에 핵 무기가 없었던 상황에서도 재래식 무기에 맞서 핵 무기 선제 공격을 준비한 건 미국의 횡포와 오만의 표시였다는 게 리 선생의 분석이다.
최근 한반도 상황은 리 선생이 분석하고 예견했던 그대로다. 미국은 애초에 한반도 평화에 큰 관심이 없고 사드 배치는 북한의 로켓 발사와 무관하다. 미국의 관심은 남북 대치 상황을 이용해 남한과 일본을 미국의 우산 아래 동맹으로 묶고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는 것이다. 북한의 책임도 크지만 이 모든 건 미국이 의도한 시나리오에 따른 것이다. 리 선생이 살아있다면 백척간두에 놓인 한반도의 위기 상황에 통탄하지 않았을까.
리 선생이 평생 싸워왔던 우상 가운데 가장 강고한 것은 북한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에서 비롯한 반공 이데올로기였다. 김정은이 전쟁광이라서 핵 실험을 하고 로켓을 쏘는 게 아니라 체제 붕괴의 공포에서 비롯한 몸부림이라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근본적으로 남과 북의 대결 구도를 해소하지 않는 이상 한반도에 평화는 없다는 게 리 선생의 통찰이었다. 남한이 미국의 우산 아래 숨어 전선을 확대하는 게 결코 해법이 될 수 없다는 이야기다.
다시 ‘전환 시대의 논리’와 ‘분단을 넘어서’, ‘핵 위기의 구조와 한반도’, ‘휴전선 남북에는 천사도 악마도 없다’를 다시 찾아 읽는 건 지금은 당연한 상식이 된 리 선생의 통찰이 아직 “권력의 상식이 되지 않고 있는 현실” 때문이다. 사드 배치와 개성공단 폐쇄, 대화를 단절하고 북한을 고립시키는 박근혜 정부의 벼랑 끝 외교안보 행보는 역사의 퇴행일 뿐만 아니라 한반도를 재앙으로 몰아넣을 위험천만한 도박이다.
묻지마 입학금…“신분 취득 대가”라는 대학 2.22 경향
ㆍ최근 3년 인상폭 수업료의 6배…10만~100만원 천차만별
ㆍ교육부 자료 근거 삼아 맘대로 산정…정부가 방조하는 꼴
오는 29일 서울지역 모 사립대학에 입학하는 김모씨(19·경남 창원). 최근 등록금 고지서를 받아보고 깜짝 놀랐다. 내야 할 돈이 460만원이란 거금인 데다 이 중 입학금이 100만원을 넘었다. 김씨는 다른 대학에 진학하는 친구들과 등록금 이야기를 나누면서 또 한 번 놀랐다. 대학마다 입학금이 천차만별이었다. 김씨처럼 100만원 안팎을 내야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10만원대만 요구하는 대학들도 있었다. 김씨는 “왜 나만 100만원대를 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대학 새학기가 다가오면서 신입생들에게 별도로 부과되는 입학금이 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 100만원이 넘는 대학이 있는가 하면 한 푼도 받지 않는 곳도 있다. 입학금 산정 기준이 법률에 명시돼 있지 않아 대학당국이 자의적으로 입학금 액수를 정하기 때문이다.
청년단체인 청년참여연대는 22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입학금 관련 정보공개 청구 결과를 발표했다. 청년참여연대가 전국 4년제 대학 중 입학금 상위 32곳과 하위 2곳의 입학금 산정 기준 등을 파악한 결과 대부분의 대학들은 입학금을 산정하는 기준이 없거나 그 사용처가 불분명한 것으로 드러났다.
앞서 청년참여연대는 34개 대학에 지난해 입학금 산정과 관련된 기초자료를 포함해 신입생 입학사무 지출 내역, 지난 5년간 입학금 수익·지출 총액 등의 정보공개를 요청했다. 건국대, 고려대, 덕성여대, 인천가톨릭대, 청주교대, 한세대 등 6개 대학은 한 건의 정보도 공개하지 않았다. 일부 자료를 공개한 28개 대학 중 26개 대학은 입학금 산정의 기준이 되는 별도 자료를 갖고 있지 않았다.
서강대, 홍익대, 중앙대 등 일부 대학은 법률이나 지침이 아닌 교육부가 제작한 ‘질의회신 사례집’의 내용을 입학금 산정 근거로 삼았다. 홍익대는 이 사례집 중 ‘입학의 자격을 얻기 위해 내는 비용 또는 학교의 구성원이 되는 수수료’라는 부분을 근거로 입학금을 “신분 취득에 따라오는 포괄적인 이익에 상응하는 대가”라고 청년참여연대에 답변했다.
입학금 지출내역 관리도 부실했다. 28개 대학 중 20곳이 입학금 지출내역을 따로 관리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이들 대학은 “입학금을 입학사무뿐 아니라 ‘교직원 인건비, 학생복리비, 시설비, 장학금 등 학교운영 전반’에 사용하고 있다”는 취지로 답변했다.
이 같은 대학의 자의적인 입학금 산정과 지출은 근본적으로 애매모호한 법 조항 때문이다. 현행 고등교육법 제11조 1항에는 ‘학교의 설립자·경영자는 수업료와 그 밖의 납부금을 받을 수 있다’고 나온다. 대학들은 ‘그 밖의 납부금’에 입학금이 해당한다며 자의적으로 금액을 산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대학정보공시센터 ‘대학알리미’ 자료를 보면 국내 4년제 사립대의 최근 3년간 입학금 인상폭이 수업료보다 6배 올랐다. 2012~2015년 사이 수업료는 0.24%포인트 인상됐지만 입학금은 1.42%포인트 증가했다.
착한 일베’라는 아이들의 착각 225 시사인
일베 문제를 한때 유행으로 취급하면 한없이 사소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청소년들에게는 어떤 지식도 사소할 수 없다.
“선생님, 얘 일베해요!” 시작부터 수업받기 싫은 기색을 보이던 아이가 기어이 강수를 던졌다. 아이들은 소란을 피울 생각에 들떠 있었다. 앞다퉈 서로를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 유저로 가리켰다.
아이들은 ‘일베 드립’을 싫어할 것으로 보이는 선생들만 골렸다. 주로 남학생반 수업에 들어간 여선생들이었다. 한 선생은 “수업 중에 애들이 자꾸 ‘오뎅’ 얘기하고, ‘노무노무’ 그러는데 뭔지 나중에 알았잖아요”라며 기가 막혀 했다. 다른 선생은 “일베는 나쁜 거야”라고 한마디 했다가 “샘, 전교조예요?”라는 항의를 들었다. 간혹 같은 일베 유저로서 아이들과 함께 ‘민주화’ 드립을 쳤다는 어떤 선생의 일화도 전설처럼 들려왔다. 일베하는 아이들이 의외로 모범생이고 공부도 잘하는 친구들이더라는 소문도 따라왔다.
일베 ‘헤비 유저’로 지목당한 아이도 그랬다. 수업 태도 좋은 우등생이고 어른에게 순종적인 아이였다. 아이가 제 발로 교무실로 찾아와 “선생님, 제가 일베한다고 해서 충격받으셨어요?” 하고 물었다. “나는 잘 몰라. 그거 재미있어?” “배울 게 많아요. 교과서에서 안 가르쳐주는 것도 많이 알려주고요.” “그렇구나, 그런데 사람들은 왜 나쁘다고 할까?” “이상한 사람들이 없는 건 아닌데요, 공부 잘하고 착한데 일베하는 애들도 많아요. 그런 애들은 착하게 일베하니까 괜찮은 거 아니에요?” “착하게 일베 하는 게 뭐야?” “역사 같은 것도 배우고, 정치 같은 거, 너무 심한 거는 안 보고….” 모르던 지식을 배우고 있으니 일베가 해가 되지 않는다는 해명이었다. 또래들은 모르고 어른들도 가르치지 않는 역사를 배운다는 걸 특별하게 여기는 듯했다.
한 아이의 특이 사례가 아니다. 경기도교육연구원에서 발간한 보고서 ‘중·고등학생의 맹목적 극단주의 성향에 대한 연구-일베 현상을 중심으로’에 따르면 성적이 ‘상’인 학생이 ‘일베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다’고 답한 비율은 20.9%에 달한다. 이에 비해 성적이 ‘하’인 경우 같은 항목에 답한 학생이 8.9%에 불과하다. 성적 높은 아이들이 인정 욕구가 높은 경우도 많으니 자신만이 알고 있는 지식이 많을수록 특별하다고 느낄 법도 하다.
일베는 자극적인 소재로 몰입력을 높이는 것은 물론 그럴싸한 출처를 붙여 아이들에게 지식을 전달하고 설명해왔다. 아이가 부지런을 떨며 출처의 편향성을 지적해내고, 다양한 관점의 역사를 배우면 좋겠지만, 수험 생활에 치여 머리 식히려 하는 일에 그 정도의 정성을 기울일 리는 없다.
ⓒ박해성 그림
“일베를 하는 아이들이 아는 것도 많아 보이고, 학교에서 당당하게 말도 잘하니까” 멋져 보인다고 조심스럽게 털어놓는 아이들도 있었다. 일베하는 아이를 ‘저렇게 똑똑하니 일베도 할 수 있다’며 특별하게 보기도 한다. “일베하는 애가 샘을 말발로 발라버렸다”라면서 무용담을 전하기도 했다.
일베가 우등생의 상징이라고?
또래와 다른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아 으스대고 싶은 마음을 어찌 이해하지 못할까. ‘어른들이 나쁘게 생각하는 것을 알지만 해보면 나쁘지 않은 것’의 목록에서 만년 1등이던 ‘흡연’ 항목에 ‘일베’도 나란히 이름을 올린 것 같았다. 다만 흡연이 일진으로 가는 길, 즉 탈선의 상징이라면 일베는 우등생의 상징 정도가 될 터였다. 이들이 공동체가 걸어온 발자취를 존중하지 않는 지식을 갖는 것은 걱정스러운 일이다.
고등학교의 정규 교육과정에는 역사 교육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역사 교과서가 근현대사에 적은 양을 할애하고 있는 실정을 생각하면 암담해진다. 게다가 “이미 다 아는 것”을 다시 배운다고 할 때 아이들이 보이는 거부감, 그리고 일베보다 재미있지도 않고 자극적이지도 않은 서사에 아이들의 흥미를 붙잡는 것 등이 또 다른 문제다.
일베 문제를 아이들의 한때의 유행이려니 하며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취급하면 한없이 사소한 문제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지식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는 청소년들에게는 어떤 지식도 사소할 수 없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박 대통령, 야당 필리버스터에 "기가 막힌 현상" 2.24 중알
박근혜 대통령은 24일 테러방지법의 국회 통과를 저지하기 위해 야당이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을 이어가고 있는 것과 관련, “이것은 정말 그 어떤 나라에서도 있을 수 없는 기가 막힌 현상들”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주재한 제8차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사회가 불안하고 어디서 테러가 터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경제가 발전을 할 수 있겠냐. 그렇기 때문에 이게 따로따로의 일이 아니라 다 경제살리기와 연결이 되는 일”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대통령은 이어 “여러가지 (테러 관련) 신호가 지금 우리나라에 오고 있는데 그것을 가로막아서 어떻게 하겠다는 얘기냐”며 “많은 국민이 희생을 하고 나서 통과를 시키겠다는 얘기인지…”라고 야당을 비판했다.
▲ 더불어민주당 은수미 의원이 24일 테러방지법 직권 상정에 반대하며 필리버스터 세 번째 주자로 나서 발언하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대통령은 이날 노동개혁 법안 처리 지연과 관련해서도 “19대 국회가 끝나기 전에 적어도 국민에게 할 수 있는 도리는 다하고 끝을 맺어야 되지 않겠느냐”며 “국회가 다 막아놓고 어떻게 국민한테 또 지지를 호소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 또 “국민에게 얼마든지 희망을 줄 수 있는 일들을 안 하고, 우리를 지지해달라고 해서, 국민이 지지해서 뭐를 할 겁니까”라며 “똑같은 국회의 형태를 바라본다는 것은 국민들로선 똑같은 좌절감밖에 가질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국민에게 표를 달라, 지지해달라 할 적에는 그만큼 국민을 위해 최선을 다해놓고 우리가 또 국회에 들어가 이렇게 이렇게 국민을 위해 일을 하겠습니다는 약속 아니겠습니까”라고도 했다. 박 대통령은 “어렵게 노사정 대타협을 통해 마련된 노동개혁 4법이 국회에서 논의조차 제대로 되지 않은 채 발이 묶여 있다”며 ”이제 사실상 19대 국회의 마지막 문을 열었는데 더이상 미룰 시간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노동개혁 4법은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하나의 패키지로 엮여져 있는 법안으로 자동차가 4개의 바퀴가 있어야 굴러가는 것처럼 함께 가야만 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뻔히 어떻게 하면 일자리를 더 늘려서 우리 청년들과 중장년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가 하는 방법을 알면서도 법에 가로 막혀서 그것을 하지 못한다는 것, 이것은 정말 자다가도 몇 번씩 깰 그런 통탄스러운 일”이라고도 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국회를 비판하며 주먹으로 책상을 여러 번 내리치기도 했다.
박 대통령 “자다가도 통탄할 일” 책상 10여차례 내리쳐 2.24 한겨레
박근혜 대통령이 24일 오전 청와대 충무실에서 열린 제8차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테러방지법 뭐길래 ?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테러방지법)’ 제정안은 15년 전 최초로 법안이 제출된 국가정보원 숙원사업입니다. 대테러 활동에서 국정원의 정보수집 권한을 대폭 확대하고, 범정부 차원의 테러 대응기구를 설치한다는 게 골자입니다. 핵심 쟁점은 정보수집권을 어느 기관에 주느냐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안전처를 주장했지만, 새누리당은 국정원을 고수했습니다. 201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댓글 작성’에 더 힘을 쏟았던 바로 그 국정원 말입니다.
▶국정원에 영장 없이 계좌 등 정보수집권…‘사찰 합법화’ 우려
역대급 ‘필리버스터’ 은수미 의원, 발언 내용도 ‘역대급’ 2.24 경향
직권상정된 테러방지법 저지를 위해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세 번째 토론자로 나선 더불어민주당 은수미의원이 10시간 넘게 토론을 이어가고 있다. 국내 필리버스터 최장 기록은 지난 1969년 8월 신민당 박한상의원이 3선 개헌에 반대하면서 세운 10시간 15분이었지만 은수미의원이 10시간 18분으로 기록을 갱신했다. |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국회 본회의에 직권상정된 ‘테러방지법’ 표결을 막기위해 24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10시간 18분동안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방해)를 진행한 은수미 더민주 의원. 은수미 의원은 왜 테러방지법을 막으려할까요. 은 의원의 이날 발언을 모았습니다.
“폭력과 분쟁 테러는 가난과 좌절에서 비롯된 공포와 불신 절망을 먹고 자란다”
“전세계가 테러문제 때문에 상당히 앓고 있습니다. 그럼 테러는 왜 발생하는 걸까요. 그냥 폭력적인 사람들이 늘어나는 걸까요. 종교적인 갈등 때문일까요. 여기에 대해서 아프리카 3개국을 순방 중인 교황은 2015.11.25 케냐 나이로비에서 연설을 했습니다. 그래서 폭력과 테러와 같은 평화와 번영의 적에 맞서 싸워야 한다. 그에 대해서 우리가 겪고 있는 경험을 보면 폭력과 분쟁 테러는 가난과 좌절에서 비롯된 공포와 불신 절망을 먹고 자란다. 교황께서는 ‘많은 사회가 인종 종교 경제적 이념적 분열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모든 선한 의지를 가진 자에게는 화해와 평화 용서와 치유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소명이 있다고 전제한 뒤 건강한 민주적 질서를 세우고 화합과 통화 타인에 대한 존중과 관용을 하는 과정에서 공공의 선을 추구하는 것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발언 중인 은수미 의원.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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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세요”
“저는 사실 박근혜 대통령이나 새누리당에게 화해와 평화, 용서와 치유를 위한 노력을 함께하라고 부탁하고 싶진 않습니다. 오히려 제가 부탁하고 싶은 것은 의견이 좀 다른 사람들이 이 사회에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존재를 존중하고 소통을 하고 논의를 하는 것이 정말 사람다운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위법한 직권상정을 통해서 국민의 모든 헌법적인 가치는 다 침해할 소지가 있는 법을 통과시키는 그건 의견이 다른 사람, 상당수의 국민을 같은 눈높이에서 보지 않는 겁니다. 같은 사회 구성원으로 보지 않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오히려 박근혜 대통령께 다른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냥 인정해라, 인정하십시오. 이게 맞다고 봅니다. 오히려 그렇게 존중,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존중하는 분들에게는 또한 교황의 말씀이 맞는 것 같습니다. 모든 선한 의지를 가진 자에게는 화해와 평화, 용서와 치유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소명이 있습니다. 정치인도 예외는 아니라고 합니다”
직권상정된 테러방지법 저지를 위해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세 번째 토론자로 나선 더불어민주당 은수미의원이 10시간 넘게 토론을 이어가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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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대리인이라면 절벽에 서 있는 사람들도 많은데 어떻게 하면 그분들을 응원하고 그 절벽으로부터 한발이라도 뒤로 물러나게 할까를 생각해야 한다”
“여러분도 느끼시겠지만 참 말이 중요하거든요. 지금 필리버스터도 말을 하고 있는건데. 말이 형식인거 같긴 하지만 그 사람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저는 좋은 말, 따뜻한 말이 좋아요. 사랑하다 평화롭다, 통일을 한다, 해소시킨다, 완화한다, 평등하게 바꾼다, 혹은 희망이 있다, 절망은 이제 끝냈다, 약간의 희망이라도 낙관, 기대, 꿈, 열정, 굉장히 좋은 말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정치를 둘러싼 곳에서 국회에서도 많이 그렇지만 좋은 말은 거의 없어요. 제가 많이 듣는 말이 ‘피를 토하다’ ‘진돗개의 모가지를 물다’ 이런 말을 많이 들어요. ‘단호하게’ ‘끝장’ 혹은 ‘절대’ ‘빨갱이’ 심지어는 저는 모 새누리당 의원께서 ‘그럴려면 월북해라’ 라는 얘기를 하는 것도 들었습니다. 저한테 한 얘기는 아니에요. 모의원이 발언을 하는데. 대정부 질의를 하고 있는데 서서 그런 말씀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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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리더와 지도자들은 시민들의 행복과 안위와 평화를 추구했고 그런 사람들이 역사적으로 남는다”
“저는 정치가 국민의 대리인, 정치인이 국민의 대리인이라면 국민도 힘든데 사실은 요즘 정말 절벽에 서 있는 사람들도 많은데 어떻게 하면 그분들을 응원하고 그 절벽으로부터 한발이라도 뒤로 물러나게 할까를 생각해야되는데 그 정치인들이 ‘피를 토하고’ ‘모가지를 물고’ ‘절대 안되고’ 임금을 삭감하고 테러방지법, 테러 방지법 직권상정하고 이런 말들만 하면 사실은 절벽으로 떨어지라는 얘기입니다. 국민들에게. 저는 왜 그렇게 박대통령과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그렇게 격렬하게. 정말 ‘피를 토한다’는 표현만을 쓰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성경이나 불경만을 보아도 좋은 얘기가 굉장히 많습니다. 물론 어렵죠. 용서하고 화해하고 길을 열고. 무척 끈질기고 포기하지 않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오히려 싸우는 것보다 더 큰 용기는 정말 끈질기게 평화를 추구하는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것 때문에 목숨을 걸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수많은 전쟁의 폐허 속에서 사람은 끊임없이 그리고 훌륭한 리더와 지도자들은 시민들의 행복과 안위와 평화를 추구했고 그런 사람들이 역사적으로 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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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장애인, 상대적으로 약한 여성들. 어르신들, 아이들. 그런 분들 중 어느 누구라도 자신의 자유와 인권이 훼손되지 않도록 하는 게 제가 서 있는 이유”
“그런데 한국의 대통령 께서는 그렇게 격렬한 말을 사용하면서 국회를 재촉하고 불법적으로 직권상정을 할까 라는 생각을 참 요즘 많이 합니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이왕이면 좋은 말을 좀 더 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이거는 저에게도 하는 얘깁니다. 저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제가 여기 서 있는 이유는 약자들 때문입니다. 비정규직, 장애인, 상대적으로 약한 여성들. 어르신들, 아이들. 이런 사람들이 사실은 강압적인 행위에 가장 약합니다. 그런 분들 중에 어느 누구라도 자신의 자유와 인권이 훼손되지 않도록 그게 제가 서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가끔 저도 얼굴을 붉힐 때는 있습니다. 하지만 가급적이면 대통령과 같은 격한 말, 과격한 반응을 하지는 않으려고 노력을 합니다”
직권상정된 테러방지법 저지를 위해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세 번째 토론자로 나선 더불어민주당 은수미의원이 10시간 넘는 토론을 마치고 동료 의원들의 위안을 받으며 국회 본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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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방안전이라는게 도대체 뭐냐’라고 했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불평등을 없애는 것”
“저는 애국이 뭔가, 이런 얘기를 참 많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국가유공자 가족입니다. 전쟁얘기를 별로 한 적은 없으나 애국이 뭐고 가짜 애국이 뭐고 진짜 애국이 뭔가, 그리고 나는 애국자인가. 이런 얘기들이 스스럼없이 가끔식 오가는 그런 집이었습니다. 그런데 돌아가신 아버님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저한테 ‘수미야 너는 애국자다’ 이런 얘기를 하셨던 이유는 이런 거였던거 같아요. 군인이 전선에서 나라를 지킬 때 후방이 불안해지면 지킬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후방안전이라는게 도대체 뭐냐, 라고 했을 때 가장 중요한게 불평등이었고. ‘누군가 아침마다 일어나서 도대체 내가 먹고 살 걱정을 안하고. 청년이면 청년답게 꿈을 품을 수 있는 그러한 사회면 후방이 안정돼있으니 내 자식 내 부인 내 누이 내 친구 다 잘 지낼거라고 믿고 헌신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불평등을 없애고 민주화를 하려는 사람도 애국자고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전선을 지키는 사람도 애국자고 그런것 같다’라는 말씀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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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는 빈곤, 불평등, 가난, 불만, 복지 부재 등 테러 행위가 나타날 수 밖에 없는 원인에 대한 조치가 이뤄져야 막을 수 있다”
“그런데 제가 그런 말씀 연장선에서 아까도 교황님도 말씀하셨고 유엔도 그렇게 얘기하고 인권위도 얘기하듯이 테러리스트를 방지, 테러를 방지한다는 것은 테러행위를 처벌하고 그것에 대응하는 것 뿐만이 아니라 그런 테러행위가 나타날 수 밖에 없는 원인, 예를 들어서 빈곤, 불평등, 가난, 불만, 복지부재, 이런 조치가 같이 이루어질 때에만 한 나라, 혹은 지구촌이 평온하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1944년 필라델피아 선언은 ‘노동은 상품이 아니며 한 곳이 빈곤하면 전체가 빈곤해지고 한 명의 아이는 우리 모두의 아이이다’ 라는 취지의 선언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1948년 그것이 파리, 인권위 조약으로까지 확대가 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한 조약들이 맺어진 그러면서 복지국가가 만들어진 동기는 사실은 최대의 테러행위인 전쟁 때문이었던 겁니다.
동족, 그러니까 1,2차 세계대전이 다른 때에 전쟁과 달랐던 것은 그 전후 전쟁에 대해서 인간은 자기가 죽이는 상대를 야만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쨌든 그렇게 죽이는게 편했는데 1,2차 세계대전은 문명인이 문명인에게 가한 최대의 대규모 살육행위입니다. 저는 그때를 겪었던 사람들이 도대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잘 모르겠고 동시에 한국에서 한국전쟁과 베트남 참전을 다 겪은 어르신들이 어떻게 버텨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런 대규모 전쟁의 근원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그 중에는 경제적 불평등, 복지 부재, 혹은 기업의 지나친 탐욕이 굉장히 심각하다라는 것을 인류는 알았던 겁니다. 그래서 1944년 필라델피아 선언도 했고 1948년 프랑스 인권 선언도 했고 그리고 복지국가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최근 분쟁이 심화된 것이 저는 개인적으로 복지국가의 후퇴와 관련있다고 생각합니다”
DJ, 샌더스 기록 깬 은수미, 10시간 끝 눈물 2.24 프레시안
새누리 김용남, 고성·삿대질에 한때 본회의장 소란
"우리는 아무리 약해도 강합니다."
10시간 넘게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 진행 방해를 위한 무제한 토론)를 이어갔던 더불어민주당 은수미 의원은 연설 말미에서 끝내 눈물을 흘렸다. 고 김대중 대통령의 연설을 인용하며 은 의원은 "두렵지만 나서야 하기에 나서는 것입니다. 그것이 참된 용기입니다"라며 울먹였다. 은 의원이 비틀거리며 단상에서 내려오자, 동료 의원들 사이에서는 박수가 터져나왔다.
24일 테러방지법 직권 상정에 반대하는 필리버스터의 세 번째 주자로 나선 은 의원은 이날 새벽 2시 30분부터 12시 48분까지 무려 10시간 18분가량 밤샘 연설을 했다. 전날 더민주 김광진 의원의 필리버스터 최장 기록(5시간 30분)을 깬 데다, '부자 감세'를 막기 위해 8시간 37분 동안 연설한 미국의 버니 샌더스 상원 의원의 대기록도 깼다. 1969년 3선 개헌에 반대한 박한상 신민당 의원의 10시간 15분 기록도 넘어섰다.
은 의원은 "테러방지법이 '전 국민 감시법', '국정원 강화법'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 역사가 '막걸리 보안법'의 암흑 시대로 돌아가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국정원에 영장 없는 통신 감청권과 계좌 추적권 등 초법적인 권한을 부여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의 댓글들을 읽은 뒤에는, 그동안 무죄 판결이 난 각종 간첩 조작 사건과 국정원의 고문 사건 목록들을 읊기도 했다.
은 의원 자신도 국정원 고문 피해자이기도 하다. 1992년 노태우 정부가 '남한사회주의노동자연맹(사노맹)'을 '반국가 단체'로 규정하면서, 사노맹 정책실장이었던 그는 안기부(현 국정원)로부터 고문을 당하고 징역 6년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감옥에서 출소한 뒤에도 은 의원은 각종 고문 후유증에 시달려 왔다.
“언론의 무관심, 재벌 구조 말고 혼외자식 터뜨렸어야 하나” 224미디어오늘
[인터뷰] 더불어민주당 은수미 의원… “노동 악법 막는 것보다 중요한 건 공정한 세상 만드는 것”
근로기준법 개정안, 법인세법 개정안,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 노동인권교육 활성화법, 유해화학물질관리법 개정안, 저소득층 취업지원법,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안…. 은수미 더불어민주당 의원(52)이 19대 국회에서 대표 발의했던 법안의 일부다. 은 의원은 남양유업 갑질 논란 이후 을지로위원회(을을 지키는 길 위원회)를 주도했으며, 삼성전자·현대차·쌍용차 등 노동자들의 투쟁현장에 늘 함께했다. 그녀는 ‘비정규직 수호천사’로 불렸다.
4.13총선을 앞둔 은 의원은 지금 30년 된 2층짜리 황색 빌라와 좁은 비탈길로 가득한 성남시 중원구를 누비고 있다. 중원구 상대원1동 주민이 된지는 어느덧 14개월째다. 성남은 1970년대 가난한 민중들이 강제이주로 만든 도시다. 1990년대 좌파운동권의 상징에서 2000년대 노동전문가, 2010년대 국회의원으로 활약한 은수미 의원이 성남으로 간 까닭은 무엇일까. 18일 오후 성남시 중원구 선거사무소에서 은수미 의원을 만났다.
▲ 20대 총선거에서 성남시 중원구에 출마한 은수미 국회의원. ⓒ은수미 의원실
“강제이주로 탄생한 민중의 도시 성남, 은수미 정치의 출발”
은 의원은 “성남이 은수미 정치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이고 있었다. 요즘은 사람들과 악수할 때마다 기를 받는다고 했다. 비례대표 초선 의원인 그녀는 성남에서 재선을 노리고 있다. 그는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판결 이전부터 성남 중원구를 지역구로 낙점했다. 지난해 성남시 중원구 재보궐 선거에 출마했으나 당내 경선에서 탈락했다. 14개월 전 가장 자주 들었던 말은 “왜 왔냐”는 질문이었다.
“제가 겪은 많은 도시는 몇 평, 몇 호 같은 숫자로 기억되지만 중원에는 옛날 골목이 있고, 사람들의 이야기가 살아있다. 성남 주민들은 자신들의 주거지를 놔두고 성남으로 왔고, 서울의 개발붐에 기여했다. 국가를 위해 기여한 숨은 공로자들이 아무런 대가를 받지 못했다. 이들이 당당한 시민으로 살아가는 것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한다. 중원은 내 정책과 꿈과 맞닿는 도시다. 중원 시민들을 대한민국의 표준 시민으로 만들고 싶다.”
그녀는 요즘 고민은 “사람의 이야기가 살아있는 골목을 어떻게 인간적인 방식으로 바꿔낼까”다. 현대 중원구 상대원2동과 금광동1지구는 재개발이 결정됐다. 은 의원은 “불가피한 경우는 재개발해야하지만, 재개발을 원하지 않는 주민들이 많다. 재정착률이 10%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그녀는 “개발이익을 얻을 수 없고, 개발이익을 얻어 본 적 없는 사람들이 만든 도시는 어떻게 발전해야하는가, 진지한 고민을 하게 된다”며 도시재생을 언급했다.
“성남의 복지시설은 상당히 확충됐고 중원구를 비롯한 본시가지에 대한 지원도 이뤄지고 있다. 4만 명의 노동자가 일하고 있는 성남 하이테크벨리에선 이제 재생사업을 시작한다. 전통시장 재생, 골목 재생, 산업단지 재생이 이뤄져야 할 시점이다. 도시를 바꾸는 건 오랜 시간이 걸리는 문제다. 강남이나 분당처럼 부수고 올려 세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곳은 강남처럼 재개발 싹쓸이를 원하는 사람이 없다. 지금도 제조업이 살아있는 곳이다.”
그녀가 성남시민에게 자주 듣는 말은 “너무 힘들다”, 그리고 “선거 이후 나 몰라라하지 말라” 이 두 마디다. “성호시장 분들이 그랬다. 성호시장 바꾸겠다고 말한 것만 30년이 넘었다고. 당장 뭘 바꾸겠다는 건 믿지 않는다며 시작만 해달라고 하시더라.” 은 의원은 강제이주로 성남에 정착한 시민들이 재개발에 의한 강제 이주를 두려워하고, 학부모들은 교육에 대한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 “상대원1동 우리 집에서 아직 녹물이 나온다”며 주거환경 개선도 강조했다.
▲ 은수미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악법을 막는 게 일의 전부가 아니다”
은수미 의원이 재선에 도전하는 이유는 명확했다. “큰 정치인이 되어 정치적 힘을 갖고 싶다. 세상을 바꾸고 싶어서다.” 은 의원은 “19대에선 정책적 전문성을 발휘했다고 생각한다. 세상을 바꾸려면 세력을 형성해야 하는데 그건 못했다. 정치를 반만 했다”고 자평했다. 그녀는 “정부의 노동악법은 저지할 수 있다. 하지만 악법을 막는 것보다 중요한 건 불평등을 없애고 공정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막는 게 일의 전부가 아니다. 허물어져 가는 집에서 사람이 죽는 건 막을 수 있다. 중요한 건 새로운 집을 지어주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19대 국회에선 ‘새 집’을 지어주지 못해 힘들었던 순간이 많았다. “삼성전자서비스 사장을 불러서 국정감사를 하고 있었는데 질의가 끝나고 삼성전자서비스 하청기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문자를 받았다. 그 때는 정말 막막했다.” 그녀는 그 때 “의정활동이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는 걸까 자문하게 됐다”고 말했다. 쌍용차 대량해고 사태도 마찬가지였다. 인도 마힌드라까지 가보고, 보좌진이 말려도 쌍용차 질의를 밀어붙였지만 이제 간신히 몇 명 복직했다. “쌍용차 조합원 몇 명이 고맙다고 했지만 항상 미안한 마음”이라고 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에는 의원직을 던지고 싶었다고 했다. 무력감 때문이었다. “세월호 사건을 거치면서 폐렴에 걸렸다. 그 당시 단식을 했다. 단식이라도 안 했다면 (심리적)탈출구가 있었을까 싶다.” 그녀의 결론은 “의원 그만 둘 자신 있으면 정치를 하자는 결심”이었다. “경험적 두려움, 경험적 공포는 살갗 밑에 쌓인다. 세월호도 그렇다. 아이가 죽은 경험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나도 고문 경험, 무력한 경험…이런 것들이 살갗 밑에 쌓였다. 힘들고 두렵지만 용기를 내야 한다. 매일 아침마다 ‘두려워하지 마, 너보다 훨씬 고통 받는 사람들이 있어’라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그녀가 요즘 미친 듯이 지역구를 누비는 이유다.
▲ 2013년 12월 국회청소노동자 직접고용촉구 기자회견 당시 은수미 의원(맨 오른쪽).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세상이 나를 크게 써줬으면 좋겠다”
은수미 의원은 군인의 딸로 남부럽지 않게 자라 서울대 사회학과에 입학한 엘리트였다. 그러나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구로공단 봉제공장에서 1년6개월 간 ‘봉희’라는 이름으로 살았다. 봉희의 삶은 오늘날 정치인 은수미의 자양분이 됐다. 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 사건으로 수감된 강릉교도소에선 구더기가 나오는 변기 옆에서 밥을 먹고 살았다. 구로공단에서, 강릉교도소에서, 은수미는 노동자와 제소자를 대표해 임금인상·노동환경 개선·하루 한 번 목욕 등을 인권개선을 요구했다. “내가 아픔을 이겨내는 방식은 그분들을 대신해 행동하는 것뿐이다. 사람이 아픈 게 싫다. 주변사람이 행복해야 나도 행복하다”는 이유가 용기의 원천이었다. 그녀가 “세상이 나를 크게 써줬으면 좋겠다”고 말한 배경도 여기 있다.
20대 국회에서도 그녀의 관심사는 ‘노동’이다. 우선 노동조합과 노동자를 압박하는 손해배상소송과 가압류를 금지하는 ‘노란봉투법’ 입법과 재벌개혁 일환으로 최고경영자(CEO)등 고위임원에 대한 최고임금제 도입을 시급한 과제로 보고 있다. 은 의원은 “경영자들은 지금 수십억씩 연봉으로 가져가고 있는데 최저임금과 중위소득자 임금이 높아지면 경영자 임금도 높아지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0대 국회에선 법인세법 개정안과 실직자·구직자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 확충도 은 의원의 주요 과제다. 법인세법 개정안은 대기업 사내유보금을 투자로 돌려, 일자리와 근로자 임금을 늘리게 하겠다는 취지로 기업이 사내유보금을 통해 자산운용을 할 경우 이를 기업 활동 소득과 분리해 38%의 높은 세율을 물리는 법안이다. 해고나 실직으로 고통 받을 때 사회적 안전망을 확충하는 법안도 중요하다. 은 의원은 “청년구직자들이 제대로 된 일자리 경력이 없어도 6개월간 월 40만~50만 원을 받으며 직업훈련을 할 수 있게끔 도와줘야 한다. 청년들에게 우선 실시한 뒤 자영업자 등 전 국민에게 확대해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당장 주류 언론부터 노동 이슈를 외면하거나 ‘쉬운 해고’를 ‘청년일자리 창출’로 왜곡하고 있다. 은 의원은 19대 국회를 거치며 주류 언론에 대한 기대를 일찌감치 접은 눈치였다.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가 없었으면 나는 정치 못했다. SNS에서는 나에 대한 언급량이 높다고 하는데 주요 언론에선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재벌문제와 노동문제를 주로 언급한 탓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녀는 하나의 사례를 들려줬다. “과거 한 대기업의 유해물질 문제를 폭로했는데 진보성향 신문에서도 이 내용이 사회면으로 작게 실린 적이 있다. 내가 너무 힘이 없는 탓이라 생각하고 재선이 되고 볼 일이라 생각하고 있다.(웃음)” 그녀는 “선배들은 언론을 통해 유명해지려면 재벌구조를 건드리지 말고 재벌의 혼외자식 같은 큰 거 한방을 터뜨리라고 조언 하더라”고 말하며 웃었다.
월 24만4000원…사교육비, 박근혜 정부 3년째 늘어 226 경향
ㆍ초·중·고생 2007년 이후 최고치…미참여 빼면 월 35만5000원
ㆍ교육부 “방과후 선행 제한 완화” 시민단체 “사교육 감소 못 시켜”
현 정부 출범 이후 사교육비가 3년 연속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인당 사교육비는 월평균 24만4000원으로 2007년 사교육비 조사 이후 최고치를 다시 경신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사교육비 경감을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지난 정부에서 줄여놓은 사교육비를 현 정부에서 다시 조금씩 올리고 있는 것이다.
교육부는 26일 통계청과 함께 지난해 전국 초·중·고 1244개교의 학부모 4만3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2015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결과 1인당 월평균 명목 사교육비는 24만4000원으로 2014년(24만2000원)보다 1.0%(2000원) 늘었다. 1인당 사교육비는 2007년 22만2000원에서 2008년 23만3000원, 2009년 24만2000원까지 늘다가 2010년과 2011년 24만원으로 낮아졌고, 2012년 23만6000원으로 다시 낮아지는 등 3년간 감소 추세를 보였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출범 후인 2013년 다시 23만9000원으로 오르기 시작해 연속 3년간 증가세를 나타내고 있다.
조사 대상 중 사교육 참여율은 68.8%로 나타났다. 사교육 참여자만 다시 분석해 보면 월평균 사교육비는 35만5000원까지 치솟는다. 초등학교는 28만6000원, 중학교는 39만6000원, 고등학교는 47만원으로 고등학교의 경우 무려 2배(23만4000원)의 차이가 난다. 지난해 사교육비 총규모는 17조8000억원으로 전년보다 4000억원(2.2%)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초·중·고 학생수가 전년보다 3.1%(19만7000명) 감소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눈에 띄는 점은 초등학교 영어 사교육비가 7.3%(6000원) 줄어든 점이다. 교육부는 2018년부터 수능 영어가 절대평가로 전환되는 것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추정했다. 방과후학교 참여율은 57.2%로 2.1%포인트 떨어졌다. 교육부는 “공교육정상화법 시행으로 방과후학교에서 선행학습이 금지되면서 일반 교과 수요가 방과후학교에서 사교육으로 옮겨갔기 때문”이라며 “방과후학교의 선행학습 제한을 완화하는 내용의 공교육정상화법 개정안이 조속히 국회를 통과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잘못된 진단”이라며 “방과후 선행 프로그램은 사교육 핵심 대책도 아닐 뿐 아니라 사교육 감소 효과도 미미하다”고 비판했다. 안상진 사교육걱정 부소장은 “교육부는 자유학기제 고입 전형 반영,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수능체제 개편 등 사교육에 직접 영향을 주는 부분에 대해서 어떤 정책 수단으로 사교육을 억제시킬지 먼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교육당국은 사교육 참여자만으로 보다 정확한 통계를 내 면밀하게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고 밝혔다.
초등 국정교과서에 ‘위안부’ 용어 빠졌다 224한국
계엄군 용어·사진도 삭제
올해부터 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이 배울 사회과 교과서 '최종본'에 '위안부'라는 단어와 사진이 삭제된 것으로 드러났다. 24일 오후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한 학부모가 초등학교 6학년 사회 교과서를 살펴보고 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신학기부터 쓰이는 초등학교 사회 국정교과서에 ‘위안부’ 용어와 관련 사진, 군사정권에 비판적 내용이 삭제된 것으로 확인됐다.
협박하는 조중동, "테러 한 번 당해 볼 건가" 2.24 미디어오늘
정의화 국회의장이 ‘국가비상상태’라는 이유로 테러방지법을 직권으로 상정할 방침을 밝힌 가운데 야당이 이에 ‘필리버스터’로 맞섰다. 김광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3일 오후 7시 경부터 토론에 나서 5시간30분 동안 토론을 진행했다. 테러방지법이 국정원에게 ‘내국인 정치사찰’을 가능케 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는 한편, 보수지들은 필리버스터 때문에 법안 처리가 막혔다며 테러방지법 필요성을 강조하는 태도를 보였다.
23일 여야가 최종합의한 20대 국회의원 총선거 선거구 획정에 언론은 “말뿐인 정치개혁이었다”고 평가했다. 비례대표제 확대, 선거 연령 하향 조정, 투표시간 연장 등 선거제도 개선안이 모두 무산됐기 때문이다. “현역 의원들이 최대 수혜자이고 ‘깜깜이’ 선거로 선거운동 기회를 잃어 버린 예비후보들이 피해자”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국내 안보·핵 전문가 10명 가운데 6명이 핵무장론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일보는 일반 국민보다 전문가집단이 핵무장론에 보다 신중하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24일 아침 주요 종합일간지의 1면 머리기사 제목이다.
경향신문 <‘선거개혁’ 말뿐…지역구만 늘렸다>
국민일보 <野 ‘필리버스터’에 갇힌 테러방지법>
동아일보 <[단독]中 ‘北에 공군 항공유 수출금지’ 제재 동의>
서울신문 <수도권 선거구 10석 늘어 ‘최대 승부처’>
세계일보 <테러방지법 난항… 야 '시간 끌기' 방어>
조선일보 <中國대사, 한국에 공개 협박>
중앙일보 <필리버스터에 막힌 테러방지법>
한겨레 <‘준전시’라며 테러방지법 강행…필리버스터로 맞선 야당>
한국일보 <52년만의 필리버스터... 여야 극한 대치>
테러방지법 ‘내국인 정치 사찰’ 우려를 불식시키기 역부족
정의화 국회의장이 23일 대테러방지법안에 대한 심사기일을 오후 1시30분으로 직권상정하자 더민주는 재적 의원 3분의 1 이상의 서명을 받아 필리버스터를 요구했고 정 의장은 받아들였다. 필리버스터는 국회 내 다수의 독주를 막기 위한 합법적으로 의사진행 방해로 장시간 연설, 계속된 의사진행발언 등을 통해 법통과를 막는 수단이다.
▲ 한겨레 24일자 1면
테러방지법은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 제정안으로, 15년 전 최초로 법안이 제출된 바 있다. 테러위험인물에 대한 출입국·금융거래·통신이용 등 정보수집권을 국정원에 부여하거나 내국인 감청권을 확대하는 것이 본 법안의 골자다. 야당은 이에 반발하여 필리버스터를 동원해 법안 본회의 상정을 막고 있는 것이다.
테러방지법 필요성을 둘러싼 언론사들의 판단은 상이했다. 경향신문, 한겨레 등 일부 언론은 테러방지법이 국정원에게 지나치게 많은 권한을 준다는 데 우려를 표하며 법 통과에 대한 반대 입장을 내비쳤다.
법안은 범정부 차원 대테러센터를 국정원이 아닌 ‘국무총리’ 산하로 했고 여기에 인권보호관을 두고, 권한 남용 시 가중처벌하는 규정을 달았다. 하지만 언론은 정보기관이 권한을 남용했던 지난 전적을 보건대 “‘내국인 정치 사찰’ 우려를 불식시키기 역부족”이라고 평가했다.
경향은 “‘테러위험인물’ 규정이 모호하고 정보수집 권한도 지나치게 넓다”고 지적했다. 법안에 따르면 국정원은 사상·신념, 노동조합·정당의 가입·탈퇴, 건강, 성생활 등에 관한 정보까지 수집할 수 있고 이를 위해 거쳐야 할 절차나 제한 규정은 따로 없다.
한겨레는 “국정원은 그동안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라 대공·방첩 수사를 이유로 해마다 수천건에 이르는 감청을 해왔다”며 “보안을 앞세운 국정원을 상대로 실질적인 감독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한겨레는 “국회 정보위의 국정원 감독 기능도 실효성이 없는 상황에서 단 1명의 인권보호관은 유명무실화할 가능성이 크다”고도 비판했다. 정의화 국회의장이 거론한 ‘국가비상상태’라는 명분에 대해서도 경향은 “비상사태도 아닐뿐더러 그로 인해 정치권의 법안 협의가 불가능한 상황도 아니”라 지적했다.
‘통과돼야 할’ 테러방지법이 필리버스터에 ‘갇혔다’
보수지를 중심으로 한 일부 언론은 테러방지법 통과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필리버스터로 인해 법안이 상정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국민일보는 “야당이 표결을 저지하기 위해 무제한 토론, 이른바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에 나서면서 테러방지법은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 중앙일보 24일자 사설
중앙일보는 ‘테러방지법 직권상정 불가피했다’ 라는 사설을 통해 “지난해 파리 테러에서 보듯 세계적으로 연결되고 기술적으로 첨단화하며 잔혹성이 더해가는 사악한 집단의 조직적 테러를 과거와 같은 방법으로 대처할 수 없게 된 것도 사실”이라면서 “테러방지법안은 테러용의자에 대한 정보수집권을 국가정보원에 부여하는 것과 함께 국민의 기본권 침해 방지를 위해 대테러인권보호관을 두는 등의 제동장치도 마련하고 있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국가 권력이 국정원을 정치적으로 이용할 것이기에 자기들이 영원히 집권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지나친 과장”이라고 지적했다.
나아가 중앙은 필리버스터를 가능케하는 국회선진화법에 대해 “여야 합의 없는 안건의 처리를 극도로 어렵게 하고 있어 19대 국회를 무능·무력한 식물국회로 만든 주범으로 지적돼 왔다”고 평가했다.
조선일보도 ‘野, 테러 한번 당해보고서야 테러방지법 통과시킬 건가’란 제목의 사설에서 “국제 제재에 몰린 북한은 언제든 공항·항만 등 우리 주요 시설물과 고위 탈북자 등 주요 인사에 대해 테러를 가할 수 있다”며 “야당은 테러 공격으로 국민이 피해를 본 후에야 테러방지법을 처리하자고 할 것인가”가 지적했다.
헌재 강조한 표 등가성·비례성 전혀 반영 안 돼… 동아, “의원 수 더 줄었어야 해”
여야가 합의한 선거법에 따라 20대 총선 지역구 의석은 현재보다 7석 많은 253석, 비례대표 의석은 47석을 결정됐다. 광역시·도별로 경기도 의석이 지금보다 8석 늘어나고 서울·인천·대전·충남이 1석씩 증가하는 등 수도권과 충청권에서 총 12석이 늘어나게 된다. 경북은 2석이 줄고, 강원·전남·전북이 1석씩 감소하게 된다. 부산·대구·광주·울산·충북·경남·제주·세종은 현행 의석수를 유지한다.
▲ 경향신문 24일자 1면
이는 지난 헌법재판소가 2014년 10월 “국회의원 선거구의 인구편차가 ‘2 대 1’을 넘지 않아야 한다”며 기존 선거구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시작됐고 총선이 50일을 남긴 시점에 이르러서야 선거법이 통과된 것이다.
헌재가 강조한 표의 등가성은 전혀 보완되지 않았다는 것이 공통된 지적이다. 경향신문은 “양당은 소선거구제에서 발생하는 사표와 낮은 비례성에 대한 보완책을 제시하기는커녕 지역구 의석을 늘리며 비례대표 의석을 축소했다”고 지적했다.
국회에 선거법 개정을 맡긴 것에 대해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겼다'는 평가도 제기됐다. 특히 중앙일보는 ‘새누리·더민주 3.5석씩 늘어…미리 짠 듯 득실 나눴다’는 기사에서 “새누리와 더민주가 각각 한 명씩 현역 의원인 곳이 3개로 늘면 0.5석으로 계산했다”고 지적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결국 여야 다수당 현역 의원들이 최대 수혜자이고 ‘깜깜이’ 선거로 선거운동 기회를 잃어 버린 예비후보들이 피해자”라며 “현행처럼 의원들이 게임의 룰을 만드는 상황에선 나눠 먹기식 선거구 획정이 반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 중앙일보 24일자 5면
선거구 획정이 늦어진 데 대한 책임 추궁도 보였다. 한겨레는 “막판 공전 주범은 청와대”라며 “청와대가 노동관계법과 테러방지법 등 여야 쟁점법안 처리를 선거구 획정안 처리와 연계하면서 상황이 꼬이기 시작했다”며 “여야 대치가 길어지면서 선거구 획정안 입법시한인 12월31일을 넘겼고, 기존 선거구가 모두 무효화되는 초유의 상황이 2개월 가까이 지속됐다”고 밝혔다. 한겨레는 이 피해는 “출마를 준비해온 정치 신인과 유권자들이 고스란히 떠안게 됐다”고 지적했다.
동아일보는 상이한 평가를 내렸다. 동아는 다른 언론과 마찬가지로 ‘기득권 정치’라 비판하면서도 오히려 비례대표 규모가 줄어줄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사설 ‘총선 D-50 여야 기득권 수호로 끝낸 선거구획정’에서 동아는 “역대 최악이라는 비판을 받는 19대 국회가 정원을 줄여도 시원찮을 판에 299명으로 환원키로 한 당초 약속마저 어긴 것은 후안무치”라 비판했다.
세계일보 단독 설문조사, “안보 전문가 10명 중 6명 핵무장론 반대”
세계일보는 23일 국내 외교안보·핵 전문가 50명을 대상으로 핵무장론(독자 핵개발+전술핵 재배치)에 대해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64%(32명)가 핵무장론에 반대했다고 밝혔다. 찬성한다는 응답은 34%(17명)였고,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어서 의견을 밝힐 수 없다는 답변이 1명이었다.
▲ 세계일보 24일자 8면
이는 지난 14일 연합뉴스·KBS가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와 비교할 때 전문가집단이 일반 국민에 비해 신중한 입장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난 14일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52.5%가 핵무장에 찬성했고, 핵 대응 자제 주문은 41.4%에 그쳤다.
전 외교통상부 장관인 송민순 북한대학원대 총장은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독자 핵개발은 추진하면서 북한에 핵을 포기하라고 할 수 없고, 동북아에서 핵무장 경쟁이 가속화하면 북한의 핵 위협보다 더 위험해진다”고 반대 입장을 밝혔다.
독자 핵 개발에 반대한 전문가들은 △한·미동맹 와해 △일본·대만의 핵무장을 야기하는 핵 도미노 △NPT 탈퇴에 따른 국제제재 △사실상 북한 비핵화 목표 포기 등을 반대 이유로 들었다.
세계일보는 핵무장론에 반대한 32명 중 11명은 핵옵션(Nuclear Option)에는 찬성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핵 옵션은 플루토늄 재처리와 우라늄 농축과 같은 기술 확보 후 핵 공격 위험에 직면했을 경우 핵으로 대응할 여지를 남긴다는 정책이고 이를 확보했을 경우 핵무기 개발 결단을 내린 시점에서 18개월∼2년 안팎의 기간에 핵무기 개발이 가능할 수 있다. 노태우정부 시절 핵옵션을 갖자는 평화적 핵주권론을 주장했다가 국방연구원에서 강제해직됐다는 김태우 동국대 행정대학원 석좌교수는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현재는 핵무장을 안 해도 국가 위기 상황에서는 가장 빠르게 핵무장을 할 조건을 모두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중동, 노무현 때는 “빅브라더 국정원” 비판 2.26 미디어오늘
[비평] ‘국내사찰’ 우려하며 "자유민주주의 맞나" 비판도… 국정원 권한확대 반대하다 정권 바뀌니 돌변
테러방지법을 반대하는 야당의 필리버스터가 이어지고 있다. 보수신문은 새누리당 못지않게 테러방지법 통과에 총력을 기울이는 모양새다. 이들 신문은 과거 민주당 정부때도 테러방지법이나 통신비밀보호법 개정 시도가 있었다는 점을 근거로 이용하고 있다. 맞는 말이지만 정작 당시 보수신문의 보도는 지금과 달랐다. 조선일보로 조선일보를 반박할 수 있을 정도였다.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이 테러방지법 입법에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국정원에 감청 등 정보수집 권한을 확대하게 되면 국내용으로 악용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과거 국정원이 권한을 악용한 사례는 셀 수 없이 많기 때문에 국정원을 믿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보수신문들의 태도는 강경하다. 조선일보는 24일 사설에서 “테러 한번 당해보고서야 테러방지법 통과시킬 건가”라며 으름장까지 놓았다.
테러방지법이 국회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지난해에도 이들 신문은 일관된 논조를 보였다. 지난해 11월19일 동아일보는 “법적 뒷받침이 없어 테러 위험인물에 대해 계좌추적이나 통신감청도 할 수 없다”며 감청의 필요성을 시사했다. 조선일보는 지난해 12월3일 미국 연방 법무부 검사장을 인터뷰하며 기사 제목을 “테러 예방 위해선 휴대폰·이메일 감청 필요”로 뽑았다. 조선은 11월20일 “테러무방비, 한국” 연재기사에서 “허약한 정보수집 능력”을 지적하며 “해외 정부와 정보기관 시각에서 봤을 때 우리나라는 정보를 공유할 수준도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 2008년 9월6일 조선일보 사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초기 때만 해도 이들 신문의 논조는 달랐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직후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이 논의 되자 2008년 9월6일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국정원은 그간 스스로 도청, 감청과 관련해 얼마나 국민의 신뢰를 잃는 일을 해왔는지부터 되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한 뒤 “국정원이 남용방지장치를 마련할 테니 휴대전화 감청을 하게 해 달라고 하는 것이 순수하게 보일리 없다”며 국정원을 의심했다. 물론, 이명박 정부 초기에 나온 사설이지만 그 내용은 민주정부 국정원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뤘다.
이 사설에서 조선은 노무현 정부 때 논의됐던 테러방지법에 대해 “테러예방과 대응을 명분으로 민간인 사찰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를 불렀다”고 지적했다. 현재 더불어민주당과 같은 견해다. 물론, 노무현 정부의 테러방지법과 현재 직권상정된 테러방지법은 다소 차이가 있어 동등하게 비교할 수 없다고 볼 수도 있다. 실효성 논란이 제기되는 대테러인권보호관 1명을 임명하는 제도를 마련한 걸 두고 ‘우려를 불식시킬만한 조치’로 봤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사설에서 조선은 “국민의 도청공포가 여전한 상황에서 국정원의 감청은 철저히 제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냥 제한하는 것도 아니고, ‘철저한 제한’을 주문한 것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국정원은 여러차례 도마에 올랐다. 그 때마다 이들 신문은 국정원에 대한 강도높은 비판을 하며 국민들의 사생활 침해를 우려했다. 지금과는 상반된 태도다.
노무현 정부 때 국정원이 국내기관의 전산자료를 활용한 사실이 알려지자 동아일보는 2007년 7월18일 사설에서 “빅브라더가 따로 없다. 국정원이 사회 곳곳에 이렇게 광범위하게 감시망을 구축하고 있는 줄 몰랐다”면서 “마음만 먹으면 국민의 사생활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나라를 과연 자유민주국가라고 할 수 있을까”라고 우려했다.
▲ 2007년 7월17일 조선일보 기사.
2007년 6월26일 조선데스크는 “권력과 국정원이 도청의 추억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볼 수 있는가? 또 권력과 정보기관이 다시는 도청의 추억을 떠올리지 못할 정도로 통제장치는 꼼꼼히 완비된 것인가. 휴대전화 감청은 이런 의구심들에 대한 확답과 그 확답에 대한 신뢰가 전제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당시에도 통신비밀보호법에 대한 조선데스크의 평가는 이랬다. “통신비밀보호법은 통신비밀 침해를 정당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통신비밀을 보호하자고 만든 법이다.”
앞서 2007년 6월25일 중앙일보는 “휴대전화 감청, 오남용 차단이 먼저”사설에서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국가기관의 도청을 완전 봉쇄하기는 여전히 불가능해 보인다”고 밝히며 “감청의 오남용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기술적 세부지침을 먼저 만들어 반드시 포함시켜야 한다”고 썼다. 당시만 해도 이들 신문은 국정원의 권한확대를 우려하며 휴대전화 감청 권한을 줘선 안 된다는 입장을 드러낸 것이다.
▲ 2001년 3월26일 조선일보 사설.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 국정원 도·감청 논란이 불거졌을 때마다 가장 강력하게 국정원을 비판한 쪽은 조선일보다. 조선은 2005년 11월 7일 사설에서 “대통령의 승인만으로 감청을 허용하는 제도가 남발되면 감청의 합법성과 투명성은 설 자리를 잃는다. 말로만 도청이 없다고 할 게 아니라 국민들이 믿을 수 있는 증거를 제시하라는 것”이라고 밝혔다. 2001년 3월26일 조선은 “국정원이 국가안보는 젖혀두고 권력의 하수인 노릇을 할 때 국민적 저항은 물론 우리 역사는 또 한번 후퇴한다는 사실을 명심하기를 거듭바란다”고 경고까지 했다.
그 사이 국정원이 개혁되지 않았는데 보수신문의 입장은 변한 것이다. 당시 테러위협이 지금보다 덜하지도 않았다. 김대중 정부 때는 9.11테러 이후 국제적인 테러위협이 부각되던 시기였다. 노무현 정부 때는 이라크 파병에 따른 김선일씨 피랍사건 등이 벌어졌고, 테러단체가 한국을 테러 대상국으로 지목할 정도였다. 정상적인 언론이라면 “테러한번 당해봐야”라고 으름장을 놓는 대신 그때와 마찬가지로 국정원을 ‘빅브라더’로 지칭하고 ‘국내사찰’을 우려하고, ‘국민적 저항’을 이야기해야 한다.
혼자라 외롭다 함께는 두렵다 226 경향
ㆍ섬이 되는 사람들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애들이 저를 좋아하지 않아요. 사는 거 재미없어요. 할 수 있다면 그냥 죽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초등학교 4학년생인 홍지연양(10·가명)은 외톨이다. 학교에서 거의 말을 하지 않는다. 명확하게 말하면 왕따는 아니다. 다만 말을 걸어주는 친구도 없고, 친구에게 먼저 다가가지도 못한다. 홍양은 “그냥 애들이 내가 뚱뚱해서 싫어하나보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외톨이 신세는 매일 두세 곳씩 다니는 학원에서도 마찬가지다. 집에 돌아와도 혼자 숙제를 하거나 TV를 보거나 온라인 게임을 한다. 엄마는 늘 저녁 8시가 넘어야 집에 돌아왔다.
홍양은 영·유아 시절 맞벌이하는 부모 대신 할머니 손에서 컸다. 유치원에 입학한 6살 때부터 부모와 함께 살았지만 엄마·아빠는 늘 바빴다. 어쩌다 투정을 부려도 늦게 퇴근해 피곤한 엄마는 듣는 둥 마는 둥했다. 그래서 ‘나는 누구에게도 사랑받을 수 없는 아이인가보다’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 홍양의 꿈은 “친구들과 신나게 뛰어노는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친구가 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며 답답해 했다.
대기업 입사 7년차 대리인 박석준씨(33·가명)는 “문득문득 외롭다”고 토로했다. 학창 시절의 친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다들 바쁘다 보니 만날 시간도 없고, 어쩌다 만나더라도 돌아서면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그가 외로움을 느끼는 이유는 따로 있다. 삭막한 조직 내 인간관계 때문이다. 박씨는 “입사 동기가 300명 정도였는데 1년도 안돼 그만둔 친구들이 꽤 있다”며 “업무강도가 센 것도 있지만 그보다 조직 내 인간관계에 신물을 느껴 회사를 옮긴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부서원이 몇 날 며칠을 밤새워 만든 보고서를 팀장이 자기 성과로 가로채는 일이 다반사였다. 팀장은 회의를 거쳐 결정한 사항이 경영진 뜻과 다를 때는 순식간에 입장을 바꾼 후 책임을 실무진에게 덮어씌웠다. 그는 “입사 전까지만 해도 직장생활을 서로 챙겨주는 끈끈한 동료애 관계로 상상했는데 현실은 서로 밟고 올라서야 하는 경쟁자일 뿐이었다”고 말했다. 해서 “옆자리 동료도 믿지 못한다”고 했다. 믿고 한 말이 왜곡돼 새어나가는 것을 숱하게 봐온 터라, 술자리에서나 사적 대화를 나눌 때엔 항상 입조심을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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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외롭다.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조사한 ‘2015년 삶의 질 지수(Better Life Index 2015)’를 보면 한국인은 문제가 있을 때 도움을 요청할 친구나 친척, 이웃이 있느냐는 문항에서 조사대상국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있다”고 답한 사람은 72%에 불과했다. OECD 회원국 평균(88%)에 한참 뒤졌다. 더 큰 문제는 사회관계망의 질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2013년에는 80% 수준이었는데 불과 2년 사이에 8%포인트나 하락했다.
통계청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한국의 사회동향 2015’에서도 ‘외로운 한국인’의 모습은 확연히 드러난다. 한국인(15세 이상) 중 56.8%가 여가 시간을 혼자 보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7년 44.1%이던 것이 7년 만에 12%포인트 이상 증가한 셈이다. 반면 같은 기간 친구와 여가를 보내는 비율은 34.5%에서 8.3%로 떨어졌다. 무려 26.2%포인트나 줄어든 것이다. 특히 15~19세는 73.3%, 20대는 71.1%가 여가 시간을 혼자 보내는 것으로 조사됐다. 친구와 여가 시간을 보내는 30대는 6.4%, 40대 5.9%, 50대 6.0%에 불과했다.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의 소멸은 도시화와 압축된 산업화, 핵가족화, 개인주의화, 인터넷의 일상화 등 사회구조 및 생활상의 변화가 주요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김석호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오늘날 한국사회처럼 경쟁을 부추기는 각박한 사회분위기 속에서는 생존을 위해 저마다 할 일이 너무 많기 때문에 마음을 터놓고 대화할 상대가 적어지고 관계가 도구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며 “이 같은 사회 관계망의 붕괴는 결국 개인의 삶의 질과 사회통합을 위협한다”고 말했다.
심리학자인 최해연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바쁜 부모 밑에서 학교와 학원을 쳇바퀴 돌 듯 오가는 바쁜 아이들이 사회성을 배울 기회를 차단당한 채 성인이 되는 것의 위험성을 알릴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람 사이의 관계는 ‘눈맞춤’에서부터 형성된다고 설명한다. 엄마의 눈빛과 표정을 통해 아이는 소통과 조절을 배우고 정체성을 갖게 되며, 친구와 놀면서 관계의 기술을 익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모와 안정적인 교감을 나눌 시간이 적고 친구와 뛰어놀 기회도 갖지 못한 채 TV나 온라인 게임 등에만 아이가 노출되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최 교수는 “심리학적 용어로 어린 시절 안정애착이 아닌 불안정애착이 형성된 아이가 성인이 되면 타인과의 관계에서 과도한 집착 등 극단적 행동을 보일 가능성도 높다”고 지적했다.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외둥이가 많은 것도 친구 사귀기의 어려움을 가중시킨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래나 형제의 숫자가 많을수록 경험하는 관계의 양상은 기하급수적으로 폭증한다”며 “형제와 동네 또래가 많았던 과거엔 사회성 교육을 별도로 안 해도 성장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습득한 반면 외둥이가 많고 일상생활에서 상호작용할 대상이 별로 없는 요즘은 친구관계가 점점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한국사회는 1998년 IMF 외환위기 때 조직도, 동료도 언제든 등을 돌릴 수 있다는 집단적 체험을 했다. 그 트라우마는 강렬했다. 이어진 만성적인 청년실업과 고용불안은 사람들을 무한경쟁으로 내몰았다. 그 결과 젊은층의 친구에 대한 인식은 과거세대와는 결이 크게 달라지는 양상을 보인다. 실제로 최근 한국인의 사회정신건강 분석을 위해 각계각층 40~50대와 20~30대 남녀 34명을 선별한 후 집단면접한 유명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중년세대와 젊은 세대가 갖는 친구의 느낌은 확연히 달랐다”고 말했다. 중년세대 남성들에게 오래된 친구는 곁에만 있어도 좋은 존재인 반면 젊은 남성에게 친구는 만나면 즐겁지만 헤어지면 허무한 존재이고, 젊은 여성에게는 비교하게 만드는 경쟁관계의 존재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20~30대 남성의 경우 친구가 내 짐을 덜어주지 못하고, 우리 사회는 어차피 ‘각자도생’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 같은 결과가 나온 것으로 분석됐다. 젊을수록 ‘흙수저’ 등 타인과의 비교에서 오는 열등감도 컸다. 또 20~30대 여성의 경우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고, 외롭다거나 혼자라는 단어도 많이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인테리어 회사에서 근무하는 송영희씨(30·가명)의 경우만 봐도 친구관계 인식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알 수 있다. 송씨는 인스타그램 친구만 200명이 넘고 이 중 오프라인에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도 20명 수준이라고 했다. “속마음을 나눌 친구가 있느냐”고 묻자 “글쎄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대학 때는 스펙 쌓느라 친구들과 밥 먹는 시간이 아까웠고, 졸업 후에는 마음에 드는 회사로 옮기기 위해 더 많은 자격증을 따느라 지금의 남편 외엔 친구를 만날 틈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찾은 돌파구가 SNS다. 인스타그램에 예쁜 인테리어 소품으로 실내공간에 변화를 준 사진을 올린 뒤 칭찬과 부러움이 섞인 댓글들이 달리면 뿌듯함을 느낀다. 하지만 질투심과 우울감도 함께 생긴다. 멋진 집, 해외여행, 수입자동차…. SNS상에서는 다른 사람들은 다 잘사는 것 같고 행복해 보이기 때문이다. 송씨는 “나 역시 SNS를 많이 하기는 하지만, 다른 사람의 소비나 생활에 대한 정보를 끊임없이 공유하면서 어쩔 수 없이 비교하게 되고 예민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학가에선 요즘 ‘혼밥족(혼자 밥 먹는 사람)’도 늘고 ‘아싸족(자발적 아웃사이더)’이라는 말도 유행한다. 아싸족은 학과 동기나 선후배와 어울리지 않고 동아리 활동도 하지 않고 수업도 혼자 듣고 밥도 혼자 먹는 학생들을 말한다. 개인주의 확산이 외로운 이들을 양산한다는 지적도 있지만 그릇된 집단주의가 역설적으로 인간관계를 망가뜨린다는 주장도 있다. 김홍중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개인주의 자체가 원인이라면 서구 유럽이나 일본의 개인주의가 황폐한 인간관계로 귀결돼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며 “한국은 그동안 ‘우리가 남이가’ 식의 집단주의가 팽배하고 그로 인한 피로감도 컸던 만큼 이런 측면의 인간관계, 친구관계의 경우엔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고립된 사람들이 늘어나는 인간관계 붕괴는 개인 삶의 질뿐만 아니라 집단이나 공동체에도 문제를 일으킨다. 구혜란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연구교수는 “한국사회가 겪고 있는 우울, OECD 최고 수준의 자살률, 범죄율의 증가는 물론이고 사회적 연대가 약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최근 전국을 충격에 몰아넣은 자녀학대 사건들의 가해 부모 상당수는 이웃, 친지 등과의 관계가 단절된 채 사회적으로 고립된 생활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동성친구든, 연인이든 마음을 나눌 친구의 존재는 건강하고 행복한 삶의 핵심이다. 이는 그동안의 여러 연구결과가 뒷받침한다. 2005년 호주 플린더스 대학 연구진은 ‘경제·사회요인과 생존율 관계’ 조사를 위해 70세 이상 노인 1447명을 10년간 추적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그 결론이 매우 흥미롭다. 친구를 많이 둔 노인이 장수하는 경향을 보인 반면 가족과 잘 지내는 것은 장수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친구관계가 돈독한 집단의 노인은 가족과 관계가 좋은 노인보다 사망 위험이 22% 정도 낮았다. 연구진은 “친구가 흡연, 음주, 식사 같은 행동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어려울 때 극복하도록 도와줌으로써 수명을 늘리는 효과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행복학자인 서은국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왜 인간이 서로를 필요로 하는지를 진화론적 관점에서 설명했다. 그는 “세상에 포식자들이 있는 한, 모든 동물의 생존 확률은 다른 개체와 함께 있을 때 높아진다”며 “호모사피엔스라는 동물의 진화 과정에서 집단으로부터의 소외나 고립은 곧 죽음을 뜻했다”고 말했다. 현대인은 맹수나 배고픔의 위협으로부터는 비교적 자유로워졌지만 고립되지 않고 살아남아 후손을 남긴 조상들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만큼 ‘사회성’은 생사를 좌우하는 고유의 특성이라는 것이다. 서 교수는 “연구결과에 의하면 행복한 사람들은 많은 시간을 다른 사람들과 보내고 자신의 자원을 사람과 관련된 것에 많이 쓴다”며 “친구가 무조건 많은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몇 명의 ‘진짜 친구’가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출구는 없을까. 이재열 교수는 “삶은 경쟁만으론 안되고, 많은 경우 협동이 필요하다”며 “타인과 일상생활을 공유하면서 다양한 상호작용을 경험할 수 있는 기숙학교가 사회성과 인성 교육에 매우 좋은 효과를 보이고 있는 만큼 정책적으로 이런 기회를 늘리는 것이 한 가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혼자’ ‘외로움’ 이제는 트렌드다? 3.1 주간경향
ㆍ한국 사회도 ‘극복해야 할 과제’가 아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할 현상’으로
‘혼밥생활자의 책장’. 얼마 전 문을 연 팟캐스트 이름이다. 팟캐스트를 만든 김다은씨는 자취생활을 오래 한 ‘혼밥족’이다. 김씨가 팟캐스트를 만든 건 단순했다. “주말에 텔레비전을 보면서 혼자 밥을 먹고 있는데, 시끌벅적하고 화려하고 번잡한 텔레비전 속 이야기가 잘 와 닿지 않았다. ‘내 감정과 참 다르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나 같은 사람이 꽤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만들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김씨는 ‘혼자’라는 말이 갖는 긍정적 기능에 주목했다. ‘관계맺기’가 스펙이 된 한국 사회에서 관계에 대한 집착이 만든 병폐들이 많았다. 김씨는 “혼자 있는 사람이 갖는 소수성 그 자체가 하나의 정체성으로 긍정적 기능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혼자 있다고 하면 사람들은 불쌍하게 여기거나, 외로워서 어떡하냐, 사회성이 없는 거 아니냐는 식으로 생각을 한다. 그러나 나는 내 안에 고독함을 잘 다스리고 혼자 있는 시간을 잘 감당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혼자 있는 시간을 통해 자기 자신과 관계를 잘 맺어야 타인과도 관계를 잘 맺을 수 있다. 자기를 아는 건 혼자 있을 때다. 팟캐스트는 책이라는 소재와 함께 혼자 사는 사람의 삶의 이야기를 소박하게 해보자는 취지에서 시작했다.”
일본의 한 1인 전용 식당 / 경향신문 자료사진
인기 끄는 ‘혼자’를 키워드로 한 책들
‘혼자’는 집단주의와 가족주의가 강한 한국 사회에서 부정적인 단어로 여겨졌다. ‘혼자’는 개인의 흠결로, ‘고립’과 ‘단절’을 연상시키고 ‘가족해체’ ‘고독사’ 등의 사회문제와 연결됐다.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에서 김정운 교수는 한국 사회를 ‘고독 저항 사회’로 정의한다. “한국의 고령화 속도 또한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고독은 아직 낯선 단어다. 고독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우리 문화에서 고독은 실패한 인생의 특징일 따름이다. 그래서 아직 건강할 때 그렇게들 죽어라고 남의 경조사에 쫓아다니는 거다. 내 경조사에 외로워 보이면 절대 안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토록 바쁜 이유는 고독을 인정하지 않는 ‘고독 저항 사회’인 까닭이다.” 그러나 한국보다 고령화사회를 먼저 시작한 일본은 ‘외로움’의 긍정적인 가치를 일찌감치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자리잡았다. 2015년 일본에서 화제가 됐던 책은 <103세가 돼서 알게 된 것-인생은 혼자라도 괜찮아>다. 평생 독신으로 살아온 미술가 시노다 도코가 인생을 살아가는 법과 즐기는 법을 전하는 책이다.
최근 한국 사회의 가구 변화 추세와 문화의 흐름은 한국 사회도 ‘혼자’를 더 이상 ‘극복해야 할 과제’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할 현상’이 됐다는 것을 보여준다. 2월 17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간한 ‘가족 변화에 따른 결혼·출산형태 변화와 정책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1인가구 수는 30년 사이 8배 가까이 늘어났다. 1985년 66만1000가구였던 1인가구는 2015년 현재 506만1000가구로 증가했다. 고령화가 가속화된 20년 후인 2035년에는 1인가구가 2세대 가구를 육박할 것으로 예상했다. 1인가구의 증가와 함께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술을 마시는 ‘혼밥’과 ‘혼술’도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자리잡았다. ‘혼자’를 키워드로 한 출판물들도 꾸준히 인기를 얻으며 독자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혼자 있는 시간의 힘>(사이토 다카시), <고독이 필요한 시간>(모리 히로시), <나와 잘 지내는 연습>(김영아),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김정운) 등은 모두 ‘혼자’를 키워드로 한 책들이다. 이들 책들은 ‘혼자’라는 존재기반과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긍정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역설한다.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에서 김정운 교수의 말이다. “외로움은 그저 견디는 겁니다. 외로워야 성찰이 가능합니다. 고독에 익숙해져야 타인과의 진정한 상호작용이 가능합니다. ‘나 자신과의 대화인 성찰’과 ‘타인과의 상호작용’이 가지는 심리학적 구조가 같기 때문입니다. 외로움에 익숙해야 외롭지 않게 되는 겁니다. 외로움의 역설입니다.” 고령화 사회, 1인가구가 증가함에 따라 ‘외로움’은 개인이 선용해야 할 하나의 능력이라는 이야기이다.
모든 계층 사람들이 즐기기에는 아직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를 쓴 노명우 아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외로움은 인간의 실존적 조건이라고 말했다. 그런 만큼 한국 사회에서도 외로움의 속성을 탐색하고 들여다보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한국 사회는 외로움을 인간의 실존적 본질이나 속성에 있다고 보지 않고 예외적 상황, 일탈적 상황이므로 없애야 하는 것으로 보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 외로움을 인간의 실질적 속성으로 본다면 그 속성이 무엇인가에 대해 탐색하는 게 필요하다. ‘나는 외롭지 않아, 외로울 수 없어’라는 식으로 외로움을 억압하고 옆으로 치워버리는 게 아니라 자기를 인식하는 탐색과정의 하나로 외로움이 자리잡아야 한다.” 자신을 탐색할 수 있다는 점에서 외로움은 결핍이 아니라 능력이다.
그러나 노명우 교수는 자신을 탐색할 수 있는 외로움이라는 능력이 모든 계층에 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의 책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는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은 경제적 조건에 따라 결정지어진다고 말한다. “‘어쩌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고 가정해 보자. 독립을 부르짖기가 가능할까? …경제활동인구로 데뷔하고 생존경쟁에 휘말리는 순간 ‘어쩌다’ 가난한 집에 태어난 사람은 간과 쓸개를 집에 두고 다녀야 한다. 고용에, 생존에 목매여 있는 한 독립이 가능할까? …가난한 사람은 혼자일 수 있는 능력을 계발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혼자일 수 있기 위해 집단으로부터 잠시나마 스스로 물러날 수 있는 결심을 할 수 있는 계층의 하한선은 중산층이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에게 치타델레(몽테뉴가 만든 절대적인 자신만의 거처)와 같은 상황은 권능을 계발하는 기회이지만, 경제적 하층에게 치타데렐와 같은 상황은 삶의 위기를 의미한다.”
그렇다 보니 한국 사회를 가로지르는 트렌드가 된 ‘혼자’ ‘외로움’이라는 담론은 경제적 상층의 담론에 그치기 쉽다고 지적한다. 노명우 교수는 “결국 ‘외로움’도 ‘자기결정’이나 ‘외로움을 통한 생산성’을 강조하게 되면 자기계발과 비슷해지는 문제에 빠진다. 외로움을 통해서 자기 생산성을 높인다는 것은 사실 경제적 취약계층에게는 배부른 소리다. 잠깐 그 외로움 담론에 공감하며 가슴 뛰어 하다가도 실제로 나는 실현할 수 없는, 결국은 나랑은 상관없는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외로움이 갖는 힘’에 주목하는 시선들이 많아지지만 외로움이 우리 사회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가능성으로 자리잡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도 최종적으로 해야 할 문제다.” 집단주의가 강한 한국 사회에서 ‘외로움’의 가치가 새롭게 주목되는 현상은 긍정적이지만, 그것이 특정 계층만 향유하는 가치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데 고민이 있다
“김종인도 낙선대상” 2016년 총선 유권자 운동 얼마나 파괴력 발휘할까 227 경향
월 1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2016 총선시민네트워크 발족 기자회견’ 참석자들이 ‘기억, 심판, 약속’이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서성일 기자
뒤늦은 총선시민네트워크 발족… ‘시민참여’ 통로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도
“시대는 변하는데 정치는 변하지 않고 후퇴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2월 17일 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 2016년 총선시민네트워크(이하 총선네트워크)가 발족했다. 이날 발족식 참가자는 ‘기억’, ‘약속’, ‘심판’이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치켜올리는 퍼포먼스를 했다. 부문별 대표들이 발족 선언문을 낭독했다. 1000여개의 시민사회단체가 모였다. 한국사교과서 국정화 저지 네트워크, 경제민주화와 먹고사는 문제 해결을 위한 ‘을’들의 총선연대, 보육연석회의, 총선청년네트워크 등 35개 의제별 및 지역별 연대기구도 함께했다. 민주노총은 총선네트워크의 참관단체로 머물렀지만 한국노총은 시민사회의 총선연대 운동체에 처음으로 참여했다. 안진걸 총선시민네트워크 공동운영위원장은 다음과 같이 의의를 밝혔다. “요즘 같은 분위기에서 1000여개 단체가 참여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한국노총이 들어온 것도 처음이다.” 4월 13일 총선. 채 50여일도 남지 않았다. 총선 시민유권자 운동은 유의미한 성과를 거둘 수 있을까.
2012년, 기자는 그해 총선을 앞두고 이번과 같이 결성된 ‘2012 총선유권자 네트워크’ 발족과 전망 기사를 썼다. 이해 발족식은 2월 9일 열렸다. 2012년 총선은 4월 11일에 치러졌다. 올해는 2012년보다 이틀 후(4월 13일)에 총선이 치러진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올해 유권자운동은 출발부터 많이 늦었다. 특히 4년 전의 경우 발족식에서는 18대 국회에서 예산안 날치기에 참여한 정치인 143명의 명단을 낙천 대상으로 발표했지만 올해는 그러지 않았다.
당시 일정을 보면 2월 14일 4대강 찬동인사 명단 30명, 17일 한·미 FTA 참여 정치인 160명. 20일 언론분야에서 종편방송 만드는 데 앞장선 정치인 10적(敵)을 발표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이들 명단은 당시 총선연대가 개설한 홈페이지(rememberthem.kr)에 게재됐다. 각 부문별 요구에서 중복된 인사들을 중심으로 ‘4관왕’, ‘5관왕’으로 뽑인 인사를 집중 낙선 대상으로 선정한다는 전략이었다. 선거를 일주일 앞둔 4월 4일 발표된 집중 낙선 대상 후보 10인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김석기, 김종훈, 민병주, 서장은, 이재오, 정병국, 하태경, 허준영, 황우여, 홍일표. 새누리당이 9명이었고, 친여 성향의 무소속이 1명이었다. 이 가운데 낙선된 인사는 무소속으로 경북 경주에서 출마했던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 및 새누리당 후보로 서울시 노원병에 출마했던 허준영 전 경찰청장, 서울시 동작갑에 출마했던 서장은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 등이었다.
“그래도 10명 중 3명이 낙선을 했으면 약 33.3%가 낙선한 셈이니 전혀 성과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이재근 총선시민네트워크 공동사무처장의 말이다.
늦기는 했지만 올해도 비슷한 형태로 진행된다. 2월 23일 청년네트워크가 발족하면서 공천 부적격자 20명의 명단을 발표했고, 이날 환경연합은 원전 확대나 핵무장을 주장하거나 4대강 사업 옹호 및 국토 난개발 조장 등 반환경 정책 추진 17인 명단을 발표했다. 총선시민네트워크는 여기에 테러방지법을 발의한 22명의 국회의원을 우선적으로 ‘집중 낙천 대상’으로 발표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총선네트워크에 참여하는 한 핵심 인사는 “국정화 네트워크가 제출한 명단 초안의 경우 상당수가 새누리당 지도부에 쏠려 있는데, 현실적으로 그 사람들이 공천에서 배제될 가능성도 낮고, 실제로 수도권보다는 경북과 경남에 쏠려 있어 실효성이 의심된다”며 “그럼에도 네트워크의 정체성 측면에서 그 사람들을 선정하지 않을 수도 없고, 그 사람들을 배제한다면 정책적으로 옳지 않아 내부적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지도부뿐 아니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과거 2004년 총선시민연대 당시 비리·부패 전력으로 ‘비례대표 부적격 후보자’로 선정된 적이 있다. 아직 유권자위원회가 꾸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김종인 대표를 ‘집중 낙천 대상자 명단’에 포함시킬 것인가를 두고 내부적으로 격론이 벌어지고 있다. 또 다른 핵심 관계자는 “전교조 법외노조화, 국정 파탄, 국정교과서 추진 책임이 있는 여권의 황우여나 김진태와 함께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한 ‘한·미 FTA 전도사’ 김현종 전 통상교섭본부장의 경우 최근 ‘개성공단 폐쇄 가능’ 발언으로 낙천 리스트에 우선 게재될 야권 인사로 이견이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김 대표의 경우 과거 부적격으로 확정되었던 인사가 지금 거론되는 것처럼 비례 공천을 받는다면 당연히 포함해야 한다는 입장과 집중 낙천 대상자에는 과거지사보다 현안 관련자에 집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고 말했다. 어쨌든 이번에는 낙천·낙선 대상 명단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까.
2월 24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2016년 총선시민네트워크 등 단체가 국가기관 선거 개입 시민감시 캠페인단 출범 기자회견을 열었다. / 정용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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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4일, 서울 광화문 세월호 광장. 기자회견이 열렸다. 국가기관 선거 개입 시민감시 캠페인단 출범 기자회견이다. 기자회견이지만 이날 행사는 기자들로부터 질의응답도 없이 40분 만에 끝났다. 유심히 살펴봤다. 3월 2일에는 청와대, 국정원, 국방부 보훈처, 행자부 등에 선거 개입 금지 요구서를 발송하고, 3월 21일부터 31일까지는 민방위 교육장 전국 캠페인, 4월 1일부터 8일까지는 사건 현장 순례 인증캠페인을 시작한다고 하지만 캠페인에 구체적으로 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안내는 없다. 진행상황을 볼 수 있는 총선네트워크의 공식 홈페이지나 SNS, 연락처에 대한 소개도 없다. 기자회견문을 보면 일반시민이 소통할 수 있는 창구는 딱 하나, 총선네트워크의 공식 이메일 주소(ask2016change@gmail.com)만 공개되어 있을 뿐이다. 결국 네트워크 실무자들만의 퍼포먼스로만 캠페인을 치르겠다는 것일까.
“그날 기자회견이 관성적으로 준비된 면은 있다. 야권이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으로 분열되어 있고, 또 정의당·녹색당·노동당 등 진보정당도 각자 목소리를 낼 뿐 연대에 대한 생각은 없는 최악의 선거다. 비록 늦었지만 그래도 뭐라도 하자고 1000여개가 넘는 시민단체가 모인 충정을 이해해 달라.” 안진걸 운영위원장의 말이다. 안 위원장이 이번 유권자 운동에서 과거와 가장 차별화되는 아이템으로 꼽은 것은 ‘3분 정치’ 모바일 앱이다. ‘3분 정치’는 약 3분이면 자신이 거주하는 동네에서 출마하는 후보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으로, 이름은 ‘3분 카레’와 같은 즉석식품에서 착안했다고 덧붙였다. 이 애플리케이션은 3월 10일 전후로 공개할 예정이다. 여기서 다시 의문. 과거 2012년 총선 때 총선네트워크가 만든 ‘리멤버뎀’과 같은 유권자 정치인 검증사이트는 왜 활용하지 않는 걸까. ‘리멤버뎀’은 시민정치마당이라는 사이트에 연계되어 작동되고 있는 중이다. 관련해 전후사정과 연관되어 있는 한 시민사회단체 인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2008년 촛불시위를 전후로 사실 기존의 단체 및 조직과 다른 새로운 흐름, 결이 만들어졌다. 온라인을 기반으로 하는 네티즌들의 자발적 참여라든가, 팟캐스트나 인터넷 커뮤니티, 생활협동조합 등의 새로운 흐름을 기존의 시민사회단체는 포용하지 못하는 것 같다.” 서로 다른 지향의 사람들과 ‘제휴’하는 것에 대해 결국 ‘시민사회적 정체성’을 고집하다 보니, 결과나 성과를 축적하지 못하고 매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비판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2016년 총선 유권자 대응이 늦어지게 된 것에는 야권 상황도 무관하지 않다. 한 축으로는 ‘야권정당 연대로 1대 1 구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시민사회 원로 중심의 ‘다시민주주의포럼’ 중심의 총선 대응논리와 종전 유권자운동의 관계설정을 놓고 벌어진 내부 입장 차이도 올해 총선네트워크 대응이 늦어진 요인이기도 하다. 일단 2월 17일 발족한 ‘2016 총선시민네트워크’는 다시민주주의포럼과 앞서 온라인 네티즌 운동 개인과 단체들 역시 다 망라되어 있지만, 아직까지 시너지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관성’을 벗어난 결기를 2016년 총선시민네트워크는 보여줄 수 있을까. 판단하기에는 아직 50일에 가까운 시간이 남아 있다.
조대엽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역사적으로 나라가 힘든 고비를 겪어왔지만 5.18이나 6.10에서 보듯 결국 명운을 구하고 미래를 열어온 것은 시민이었는데 우리 시민사회를 보면 성장은 더디게 이뤄진 반면 너무 빨리 쇠퇴한 측면이 있다”라며 “결국 참여하고 행동하는 시민, 선거혁명을 스스로 이뤄낼 수 있는 시민이 지금 필요하다”고 말했다. 총선 국면을 맞아 다시 시민들의 정치적 귀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핵무장 주장은 무엇을 노리나3.1 주간경향 1165호
ㆍ보수언론 중심 강경론자 발언 분출… “폐연료봉 재처리 기술 용인 원해”
한반도 안보 지형이 혼돈으로 빠져들고 있다. 수년 전만 해도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듯한 소리로 들린 미국 전술핵의 한반도 재배치 주장이 힘을 받고 있다. 그동안은 북한의 위협에도 미국 ‘핵우산’ 아래 안도해 왔으나, 이제 우리 스스로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절박함도 여과없이 표출된다. 이들이 노리는 건 사실 내뱉은 말(핵무장)과는 좀 다른 걸 알아차릴 필요가 있다.
좌우 이념 지형을 막론하고 이 땅의 ‘자주파’를 위해 핵능력부터 진단해 보자. 핵무기는 대개 1년 남짓 걸려 1조원만 들이면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전문가인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의 설명을 들으면 괜스레 움츠린 어깨가 펴진다. “한·미 원자력협정 문제를 일단 비켜두고 보면, 우리도 빠르면 6개월에서 12개월에 개발하고 18개월 정도면 양산이 가능하다. 예산은 1조원 정도 든다.” 원자력 발전 등으로 쌓은 기술력으로 마음만 먹으면 핵무기 개발은 식은 죽 먹기라는 얘기다. 서 교수는 “바닷물에서 중수소 1g을 걸러내는 기술은 학교 실험실에서 누구나 10원 정도만 들이면 된다”고 했다. “북한처럼 우라늄 농축이나 플루토늄 재처리는 ‘찌질한’ 옛날 얘기다. 그런 거 없이 바로 증폭핵분열탄이나 수소탄까지 갈 수도 있는 기술 수준에 있다”는 서 교수의 목소리에서는 설움·애국심·자신감 같은 게 묻어났다.
문제는 핵물질 확보다. 핵무장론자들에게는 안타깝게도 북한에 널렸다는 천연우라늄이 남한에서는 안 나온다. 대신 월성의 중수로 원전 4기에서 제법 많은 양의 플루토늄을 얻을 수 있다. 미국 핵군축통인 찰스 퍼거슨 미국과학자협회(FAS) 회장은 지난해 4월 비공개로 전문가들에게 돌린 보고서에서 한국이 4개의 가압중수로에서 매년 416개의 핵폭탄을 만들 수 있는 준무기급 플루토늄 2500㎏을 생산할 수 있다고 지적한 것으로 전해졌다.
춘천기독교연합회가 1월 24일 북핵을 규탄하며 핵무장을 요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기술로는 1년에, 1조원이면 핵폭탄 가능
실제로 1998년과 2003년 국내에서 플루토늄을 재처리하고 우라늄 농축을 시도했다가 미국에게 걸려 발칵 뒤집힌 일이 있었다. 원자력연구소는 앞서 1982년에도 극미량인 수㎎의 플루토늄을 추출한 적이 있다고 2004년 과학기술부가 밝힌 적도 있다. ‘미국이 하면 연애, 우리가 하면 불륜이냐’는 불만이 학자들 사이에 끓어 올랐다.
익명을 요구한 국책 연구원 전문가도 “핵물질 확보, 고폭 실험, 미사일이나 항공기에 탑재하는 3단계가 필요하다”며 “사용후 연료봉 재처리 시설을 짓는 데 1년도 안 걸린다. 북한처럼 핵폭발 실험 대신 시뮬레이션을 이용하고 일반 폭약을 넣어 고폭장치를 터뜨리는 실험도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이미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강경론자들이 전직 총리들까지 동원해 군불을 마구 땐다. 새누리당 원내대표나 정책위의장 같은 중역들이 거침없는 발언을 쏟아냈다.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2월 15일 “비가 올 때마다 옆집(미국)에서 우산을 빌려 쓸 수는 없다. 우리 스스로도 ‘우비’를 튼튼하게 갖춰 입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것도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다. 너무 나간다 싶었던지 김무성 당대표는 “당론이 될 수 없고 개인 생각”이라고 슬쩍 찬물을 끼얹었다. 역시 ‘당나라당’ 같다고? 그보다는 ‘짜고 치는 고스톱’ 같다는 해석이 더 어울릴 듯하다.
또 정몽준 전 새누리당 대표 등이 주장해온 미국 전술핵의 남한 내 재배치 요구도 커졌다. 단 ‘전술핵’은 이미 미·소 군축은 물론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때 철수한 뒤 실효성이 떨어진 무기라는 시각이 있다. 사거리가 짧은 전술핵 대신 잠수함 등 다양한 투발수단이 발달해 ‘전략핵’으로 단계가 바뀐 상황이다. 미군이 오키나와나 괌에 전략핵 미사일을 배치하고 있고 항공모함 등에도 있다. 남한의 전술핵과 오키나와 전략핵 발사 시간차도 몇 분에 불과하다. 반면 핵 전문가인 김태우 동국대 석좌교수(전 통일연구원장)는 “남한에 배치했을 때 북한이 갖는 ‘인지’ 효과가 크다”고 반박했다.
특히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처럼 대북 강경파가 아닌 온건 대화파 일각에서도 핵무장론이나 전술핵 재배치 필요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건 예사롭지 않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핵무장은 어렵지만, 전술핵 재배치는 북핵 포기를 위한 협상용으로 한시적·제한적으로 고려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사실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하기도 어렵거니와, 그쪽으로 갈 때 사회가 치를 대가가 너무 크다는 건 보수들도 잘 안다. 오히려 양식 있는 보수파나 전문가의 주장은 ‘NPT 체제 안에서 미국에 폐연료봉 재처리 기술을 허락받겠다’는 쪽에 무게가 쏠린다. 김 교수는 “지금 나오는 핵무장론은 사실 핵무기를 만들자는 게 아니라, NPT 체제 안에서 용인된 재처리 기술 등을 우리도 갖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균렬 서울대 원자력핵공학과 교수도 “내일 당장 핵무장을 하자는 게 아니다. 박근혜 정부 차원이 아니라 이 참에 공론화해보자는 거다. 따져보지도 않고 큰형님(미국)에게 겁먹는 건 전근대적 사대주의 아니냐”고 말했다. ‘큰형님’이 들으면 펄쩍 뛸 소리들이 남한 사회를 강타하는 중이다.
충격 감당할 수 있나, 답답해도 대화가 답?
특히 원 원내대표 발언 이튿날인 16일 나온 김정훈 정책위의장의 발언은 의미심장하다. 김 의장은 “한·미 당국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협의를 할 때 핵 재처리에 대한 논의도 함께 해주기를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사드 배치의 대가가 폐연료봉 재처리 같은 것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급진적 핵무장론은 비판하지만 묘하게 맥은 닿아 있다. 그는 사견임을 전제로 “핵무장론은 급진적이고, 전술핵도 결국 미국 자산에 의존하는 것”이라며 “핵개발 능력을 갖추는 건 한 대안으로 면밀히 검토할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북한 비핵화와 대화를 위한 억제방안으로서 ‘플랜B’를 신중히 검토할 단계라는 얘기다. 또 핵무장론은 2014년에만 78억 달러(약 9조1299억원)어치 무기를 수입했는데, 이 부담을 덜어주는 측면도 강조한다.
핵무장을 한다면 절차상으로는 NPT 탈퇴를 전제로 한다. 보수 일각에선 북한 핵개발로 이미 ‘한반도 비핵화 선언(1991년)’은 폐기된 상태라고 주장한다. NPT 제10조 1항은 조약 회원국에게 비상사태 시 조약 탈퇴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 정성장 실장은 “핵무장을 해도 미국이 한·미동맹을 파기할 수도 없고, 안보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적극적이다.
반면 전통적인 대화파들은 터무니없는 소리라며 일축했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우라늄 원료를 수입하고, 원전 기술의 원천이 대부분 미국인데 경제제재를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 발전량에서 원자력이 석탄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38%를 차지한다. 김종대 정의당 국방개혁기획단장도 “대미 압박용 안보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일 뿐 실현 가능성이 없다”고 반박했다. 나아가 “색깔론으로 4월 총선에서 표를 모으겠다는 계산이 깔렸다”고 비판했다. 다만 여권과 보수층을 중심으로 나오는 핵무장론, 전술핵 재배치론은 단지 총선용 차원을 넘어선 것으로 관측된다.
나아가 핵개발론은 대미관계를 놓고 사상논쟁까지 부를 기세다.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는 “그럼 반미국가가 돼야 하는데 보수가 받아들일 수 있느냐. 논의할 가치도 없다”며 “박정희 시절도 그랬고, 핵개발론은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니다. 어디든 극우자주파가 있다”고 지적했다.
자신은 “대화론자이지만 대화지상주의자는 아니다”라는 정성장 실장은 “안보와 대화를 병행한 ‘중도적 핵무장론’으로 보수와는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정 실장은 “미·중 패권경쟁 단계에 균형외교를 모색해야 한다”며 “진보는 지나치게 평화에 대한 환상이 있다. 모든 걸 대화와 협상으로 풀려는 사고는 위험하다”고 말했다.
정부·여당은 대화나 교류가 달러 퍼주기와 시간벌기로 끝났다고 종지부를 찍고 전면 봉쇄로 돌아섰지만 교류·협력, 대화의 실효성이 더 높다는 목소리도 많다. 정욱식 대표는 “북핵은 체제보장 문제와 직결돼 있기 때문에 협상으로 풀기 전에는 폐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김연철 교수는 “대화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 다른 건 결과가 뻔하다. 전쟁할 수도 없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 김종대 단장은 “해법은 평화협정이 들어간 ‘9·19 북·미 공동성명’대로 하면 된다. 그 이상 잘 만들 순 없다”고 강조했다.
강남 40대를 정의하다 ①정치] 우린 보수도 진보도 아니다 224 중앙
2016년 40대 초중반을 일컬어 ‘영포티‘(Young Forty)라고 부른다. 1990년대 그들은 ‘X세대’로 불렸다. 그전 세대의 가치관과 삶의 방식을 거부하고 자신들만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이들을 과거 기성세대는 이해하지 못했다. 과거의 잣대로는 그들을 파악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알 수 없는 세대’, X세대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현재, 그들은 이 사회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2014년 기준 40대는 851만 명으로 전체 연령대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한다. 선거권을 가진 가장 강력한 정치적 세력이자 탄탄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경제활동인구의 중심이 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트렌드를 주도하는 강남의 40대는 영포티의 삶을 대표한다. 이들이 이끄는 한국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20여 년 전 X세대가 ‘영포티’로
지금 한국 움직이는 파워 세대
88서울올림픽을 치르며 한국은 해외로 향한 문을 활짝 열었다.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로 빗장이 풀리면서 외국 문물이 쏟아졌다. 럭키스트라이크·말보로 같은 수입산 담배도 이때부터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PC통신 천리안·하이텔·나우누리 등을 통해 전국에 있는 사람들과 실시간으로 의사소통할 수 있게 됐고, 이는 온라인을 통한 다양한 동호회 활동으로 이어졌다. PC통신은 인터넷으로, 인터넷은 모바일로 정보기술(IT)의 발전과 함께 빠르게 변화했다.정치적으로는 민주화 운동이 활발하던 80~90년대를 거쳤다. 경제적으로도 격변기였다. 고도성장기의 수혜자이면서 동시에 97년 외환위기가 불러온 사회경제적 혼란과 이후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경기침체를 경험했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1970~74년에 태어난 영포티들은 빠른 시대 변화를 스펀지처럼 흡수하며 성장해왔다. 그 과정에서 기성세대의 가치관과 삶의 방식 대신 자신들만의 방식을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한때 X세대로 불렸던 현재의 젊은 40대는 과거의 40대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치적으로 이데올로기 대신 합리성과 실용성을 우선적으로 따진다. 무조건 안 쓰고 모아 자신보다 자녀에게 투자하던 과거 40대와는 다르다. 자신의 행복과 만족을 위해 과감하게 투자하고 즐길 줄 안다.대중문화의 황금기였던 90년대를 살아온 이들은 일보다 문화적 감수성과 낭만을 중요하게 여긴다. 중년이면 이래야 한다는 생각은 이들에게 없다. 더 많은 것에 도전하고 누릴 줄 안다. 배낭여행과 해외연수 1세대로서 스스로 해외여행을 즐기고, 자녀들에게도 해외 문화를 경험하게 해주려고 노력한다. 『라이프 트렌드 2016』의 저자 김용섭 ‘날카로운상상연구소’ 소장은 “강남 40대는 해외여행 자유화 등 시대 변화의 흐름을 가장 먼저 흡수할 수 있었으며, 그렇게 흡수한 선진 문물을 한국 사회에 널리 전파시키는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재테크의 형태도 달라졌다. 부동산 투자는 과거처럼 고수익을 보장하는 황금알 낳는 거위가 아니다. 부동산에 집중됐던 재테크는 다양한 방식으로 분화하고 있다.
한편 이들은 대한민국 역사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세대이기도 하다. 일부에선 이들은 ‘한국 역사상 가장 행복한 세대’라고도 부른다. 전쟁과 가난을 겪은 부모 세대나, 저성장 시대를 맞아 취업·결혼·출산을 포기한 ‘삼포세대’인 20대와 구분된다.
집단보다 개인을 우선하는 흐름이 이들로부터 시작됐고, 나이나 서열보다 공통의 관심사를 갖고 있는 사람들과의 소통을 중시하는 것이 이들 영포티의 특징이다. 최근 20~30대 젊은층의 문화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세대이기도 하다. 김 소장은 “과거의 집단적인 회식 문화가 이 세대에 들어 깨지기 시작했다”며 “이를 위계질서의 연장 선상으로 느끼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또 “정치적으로는 현재의 20대보다 다양한 정치적 경제적 변화를 겪으며 자랐기 때문에 사회적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설명했다.
커버스토리 강남 40대를 정의하다 ①정치
우린 보수도 진보도 아니다, 상식이 지켜지길 바랄 뿐
▲지금의 40대는 80~90년대 민주화 운동을 경험했으며 이후 외환위기, 여야 정권 교체, 촛불 시위 등을 겪으며 사회적 이슈에 관심이 높다. 해외 경험을 바탕으로 국내 안팎의 복지·인권 등의 문제에도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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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자 절반 가까이 지지하는 정당 없어
“무조건 1번밖에 모르는 부모님과 달라”
이념 프레임보다 기부·봉사에 더 관심
강남=보수 공식 어울리지 않는 세대
설문 결과 ‘강남=보수’라는 공식은 적어도 강남의 40대에겐 어울리지 않았다. 정치 성향을 묻는 질문에 전체 40대 응답자의 38.7%가 보수를, 35.5%가 진보라고 답해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지지하는 정당을 묻는 질문엔 절반에 가까운 46.2%가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고 답했다.
전통적으로 여당을 지지해온 부모 세대와는 상당히 달랐다. 직장인 김모(42·대치동)씨는 “무조건 1번밖에 모르는 부모님 때문에 본가에 갈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는다. 카카오톡으로 여당 지지 관련 메시지를 자주 보내시는데 보는 것만으로도 피곤하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야당을 지지하는 건 아니다. 사업을 하는 김모(41·방배동)씨는 “정당별 정체성이 불분명하다. 여당뿐 아니라 야당 모두 제 역할을 하지 못해 정당이 선거의 기준이 될 수 없다”고 했다.
같은 40대여도 초·중반과 후반은 차이가 있었다. 47~49세 40대 후반은 보수를 선택한 사람이 60.8%로 전체 평균 38.7%보다 20%포인트 이상 높게 나타났다. 지지하는 정당도 새누리당이 47.8%로 가장 높았다. 이는 평균 27.9%보다 20% 가까이 높은 수치다. 40대 초·중반의 강남 영포티가 기존 세대와는 다른 정치적 성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정치나 사회적 이슈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김용섭 소장은 영포티의 성장 배경에서 그 이유를 찾았다. 어린 시절 군사정권부터 80년대 민주화 운동을 보고 자랐고, 20~30대에는 외환위기, 정권 교체, 촛불 시위 등 정치적 과도기를 겪었다. 이러한 경험 때문에 사회적 이슈에 관심이 높고 민감하게 반응한다. 보수·진보라는 흑백 논리로 정치를 바라보는 대신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대안에 관심을 갖는다. 김 소장은 “영포티는 보수냐 진보냐는 프레임에 덜 갇혀있다. 대신 합리·실용에 초점을 맞춘다. 쓸모없는 이념 논쟁으로 편을 가르는 대신 합리적 상식이 지켜지기를 바라며 선진국에서 보편적으로 수용되는 수준의 민주화와 사회 복지 시스템을 잘 갖춰 줄 것 같은 정치집단이나 지도자에게 표를 준다”고 설명했다.
강남좌파도 같은 논리로 이해할 수 있다. 진보적인 의식을 가지고 있으면서 고소득층인 사람들을 지칭하는 강남좌파는 때론 ‘가진 자의 위선’이나 ‘허위의식’이라고 비판받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은 사회 양극화 방지나 인권, 평등 개념 등 보편적인 가치에 관심을 보인다. 이들의 이런 관심과 사회적인 움직임은 사회를 바꾸는 힘이 된다. 전문직에 종사하는 윤모(41·반포동)씨는 “대학에서 인권 동아리에서도 활동한 이후 꾸준히 사회적 약자나 유기 동물 등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간혹 강남 사람들이 자신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보는 시선이 있는데 우리 또래는 다르다. 주변에는 기부나 봉사 등으로 사회에 도움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달라진 40대로 인해 사회가 긍정적으로 변화할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김 소장은 “정치권은 그동안 선거는 정책을 놓고 싸우지 않았다. 그러나 앞으로 선거는 달라질 수 있다. 영포티는 선거에서 얼마나 구체적인 정책을 이야기하느냐를 민감하게 바라보기 때문이다. 이러한 성향의 영포티가 늘고 위 50대 아래 20~30대에 영향을 준다면 앞으로 정치도 달라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강남 40대를 정의하다 ②경제] 우린 부동산도 주식도 믿지 않는다
확실한 투자처 없어 저축·보험 선호
매년 10명 중 8명 해외여행, 취미 즐겨
10년 이내 은퇴 예상…과반수가 무계획
▲과거 재테크 1순위는 부동산이었다. 아파트 분양 현장엔 밤을 새며 기다리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최근 영포티는 자신에게 투자한다. 1년에 한두 번 해외 여행을 떠나고 꾸준히 자신을 관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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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 증식 관심 덜해…28% “저축한다”
40대는 과거보다 재테크에 대한 관심이 덜하다. 설문 결과 현재 재테크를 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62%가 그렇다, 38%가 아니라고 답했다. 한 달 평균 205만원 정도의 비용을 재테크에 투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겉으로 보기엔 재테크 하는 사람이 많아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재테크 방법으로 저축이 27.6%, 보험이 21.1%에 이르기 때문이다. 과거 재테크의 목적인 재산 증식의 관점에서 본다면 저축·보험은 재테크의 수단에 해당하지 않는다. 현금을 집에 쌓아두는 대신 은행에 묶어두거나 위험을 대비해 보험을 준비하는 정도다.
재테크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응답자들은 “경기가 불안정하기 때문이다”고 답했다. 주부 이모(44·압구정동)씨는 “요즘처럼 변동성이 큰 시기에 제일 좋은 방법은 재테크를 하지 않는 것이다. 적어도 잃지는 않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강남 40대의 부모 세대는 부동산으로 재산을 늘리는 게 가능했다. 강남 개발이 이뤄지면서 하룻밤 자고 나면 집값이 두 배로 뛴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 40대에게는 그만한 투자 대상이 없다. 사업가 양모(44·도곡동)씨는 “주식은 계좌를 확인하는 게 무서울 정도다. 요즘은 확실한 재테크 방법이 없는 것 같다. 간혹 주변에서 돈 맡기면 꽤 많은 수익을 낼 수 있다며 투자를 권하는데 믿음이 가지 않는다. 당장 돈이 급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확실한 수단이 보일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라고 했다.
부모 세대의 대표적인 재테크 수단이었던 집에 대한 생각을 달리하는 40대도 조금씩 늘고 있다. 설문조사 결과 현재 거주하는 집의 경우 자가와 전세·월세 비율이 각각 50대 50으로 나타났다. 전세·월세 거주자 중 38.9%는 ‘집을 구매할 계획이 없다’고 답했다. 집을 살 수 있지만 살 생각이 없다고 답한 사람도 꽤 있었다. 직장인 이모(39·반포동)씨는 “대출이 조금 필요하긴 하지만 집을 살 수 없는 형편은 아니다. 대출이 결국 빚인 데다 지금 산다고 부모님 세대처럼 크게 오를 것도 아니지 않나. 차라리 여윳돈을 가지고 있는 게 마음 편하다”고 말했다.
다만 강남의 특성상 전세·월세 거주자의 경우 자녀 교육을 위해 성남·고양시 등에 있는 집을 임대하고 전세나 월세를 얻어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
투자의 대상도 바뀌었다. 부모 세대는 소비가 아닌 저축이 미덕이었기 때문에 자신을 위해 돈 쓰는 걸 바람직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러나 풍요의 시대를 살았던 현재 강남 40대는 번 돈을 자신을 위해 투자한다. 주부 지모(43·역삼동)씨는 “아이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나도 중요하기 때문에 매주 세 번 이상은 반드시 필라테스를 한다. 남편도 마찬가지다. 둘 다 자신을 관리할수록 삶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지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실제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응답자의 78.5%가 취미가 있다고 답했다. 여행·골프·승마·프라모델·레고·운동·사진촬영·카레이싱·수상스포츠·스노보드·요리·맛집탐방 등 취향에 따라 종류도 다양했다. 특히 해외여행을 즐기는 사람이 많았다. 응답자의 약 80%가 1년에 한 번 이상 해외여행을 한다고 답했다. 직장인 윤모(45·청담동)씨는 “1년에 한두 번은 꼭 해외에 나간다. 아이들이 어릴 땐 가까운 중국이나 일본을 주로 갔다면 중학생이 되면서 유럽이나 미국 등을 찾고 있다.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고 싶어서 찾게 된다”고 말했다.
“은퇴 후엔 여유롭게 여행 다니고 싶어”
은퇴는 강남 40대뿐 아니라 한국에 사는 40대의 가장 큰 고민이다. 평생직장 개념이 있었고 자식들이 노후를 책임졌던 부모 세대와 달리 지금의 40대는 자신의 노후를 준비해야 한다. 특히 40대 대부분은 10년 이내에 자신이 은퇴할 것으로 보고 있다.
강남 40대도 마찬가지다. 설문 응답자의 43%가 10년 내 은퇴할 것으로 보고 있었다. 외환위기 이후 이어진 경기침체로 정년을 보장받지 못하는 시대가 됐고 결국 누구도 고용 불안정에서 벗어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은퇴 후 매월 필요한 예상 금액은 200만~300만원 사이가 33%, 300만~400만원 27.5%로 가장 많았다.
그러나 막상 은퇴 준비를 하고 있다고 답한 사람은 4분의 1에 불과했다. 은퇴 후 계획을 묻는 질문에 창업이나 돈을 버는 것보다는 여행이나 취미 생활에 중심을 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절반에 가까운 48%가 은퇴 후 계획으로 여행을 꼽았다. 직장인 임모(43·서초동)씨는 “20대부터 공부하고 일하느라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에 은퇴 후에는 남편과 함께 여유로운 인생을 살고 싶다. 그래서 한 달에 500만원씩 저축을 하고 있다. 회사에 묶여있어 길게 여행을 다니기 어려웠던 만큼 은퇴 후에는 여유롭게 여행을 다니고 싶다”고 말했다.
은퇴 후를 구체적으로 준비하는 사람도 있다. 사업가 양모(41·반포동)씨는 은퇴까지 남은 시간을 20년 정도로 여유 있게 보지만 은퇴 후도 준비 중이다. 나이가 들어도 할 수 있는 부동산 경매를 배우고 있다. 주부로서의 경험을 살리려는 사람들도 있다. 주부 우모(43·압구정동)씨는 “평소 일본에 자주 가는데 일본의 요리 트렌드를 눈여겨보고 있다. 남편 은퇴 후엔 내가 일본 요리 관련 사업을 해보려고 생각 중이다”고 말했다.
강남 40대를 정의하다 ③문화]
우린 아저씨·아줌마 아니다, 여전히 트렌드의 중심
기혼자 8% 자녀 없고 미혼도 12%
응팔, 토토가 등 콘텐트 생산·소비 좌우
“부모님 세대와 외모·생각 모두 달라”
▲90년대 X세대로 새로운 문화를 이끌었던 영포티는 여전히 트렌드에 민감하다. 이들이 산업의 중심인 40대가 되면서 자신의 경험을 대상으로 콘텐트를 만들고 이는 다시 40대뿐 아니라 전 연령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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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관계만큼 중요한 동호회 관계
40대는 가족 관계 못지않게 사회적 관계를 중요하게 여긴다. 회사·집·동창 등 소속 집단에 국한됐던 관계의 폭은 PC 통신을 비롯해 IT 수단의 발전에 따라 전국, 나아가 전 세계로 확대됐다. 이들은 공통의 관심사를 중심으로 친구를 만들어 간다. 기존 세대보다 친구의 폭이 훨씬 넓다. 과거 명절에 상사나 가족 친지들에게 인사하러 다녔다면 영포티는 그 시간에 취미가 같은 사람들과 영화를 보러 가거나 여행을 한다.
이는 가족관에도 영향을 줬다. 결혼이나 출산을 필수로 여겼던 과거와 달리 두 가지 모두 선택 가능한 것으로 본다. 결혼도 출산도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늘어난 세대다. 전체 40대 대상 설문에서 11.9%가 미혼이었는데 모두 46세 이하 영포티에 속했다. 이 중 27.3%만이 결혼 계획이 있다고 답했다. 나머지는 결혼 계획이 없거나, 모르겠다고 했다.
자녀관도 변화했다. 기혼자 중 8.3%는 자녀가 없었고, 그 절반은 자녀 출산 계획이 없었다. 대학원에 재학 중인 김모(43·반포동)씨는 “공부를 하고 있어서 자녀 양육에 시간을 들일 여력이 없다”고 말했다.
이렇게 달라진 가족관은 타인과의 관계를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진 것에서 한 가지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전통적으로 한국은 가족을 사회를 구성하는 주요 집단으로 여겼다. 그러나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사회 연계 지원 부분’에서 한국인들의 삶의 질은 34개 회원국 가운데 27위로 최하위 수준을 기록했다. 특히 사회 연계 지원 부문에선 꼴찌였다. 사회 연계 지원은 어려울 때 의지할 친구나 친척이 있는지를 알아보는 것인데 한국의 사회 연계 지원 점수는 72.37로 평균인 88.02 보다 크게 낮았다. 김용섭 소장은 “전통적으로 가족을 중요하게 여겨온 한국인이 정작 순수한 도움이 필요한 순간 의지할 사람이 없다는 건 결국 ‘가족=외롭지 않다’는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자녀에게 투자하는 자녀 1인당 교육비는 100만~200만원 사이가 58.8%로 가장 많았다. ‘2015 강남구 사회조사’에서도 고등학생 1인당 교육비는 130만원, 중학생 88만8000원, 초등학생 57만8000원의 사교육비를 지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교육 중심지인 대치동의 경우 고등학생 1인당 사교육 평균 지출이 257만4000원을 기록했다.
해외 경험을 가진 강남의 40대는 한 달 100만원이 넘는 영어유치원에 아이를 등록하고, 초등학교 땐 영어권으로 캠프를 보낸다. 대학 시절 미국에서 유학한 주부 김모(40)씨는 “영어는 이제 필수다. 아이가 초등학생 때부터 방학 때 캐나다로 영어캠프를 보냈다. 유학이 필수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영어에 익숙하게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대중문화의 황금기를 누린 X세대
압구정역과 강남역은 90년대 20대 대학생들의 놀이터였다. 좀 논다는 대학생들은 인기 카페가 모여 있던 압구정동과 청담동을 1주일에 서너 번씩 찾았다. 테이블 위에 놓인 전화기로 친구에게 삐삐를 치고, 과일과 시리얼, 아이스크림을 켜켜이 쌓아올린 파르페와 톡 쏘는 맛의 수입 음료 ‘닥터 페퍼’를 즐겨 먹었다.
김건모·신승훈·서태지와아이들 등이 최고의 인기 가수였고, 강남행 12번 좌석버스는 트렌디한 젊은이들로 가득했다. 패션잡지 속 모델이나 TV 속 연예인들을 따라 흉내 내는 이들도 많았다.
지금의 40대는 과거 40대의 아저씨·아줌마의 이미지를 거부한다. 직장인 김진형(43·청담동)씨는 “부모님이 40대였을 때와 지금 우리는 외모나 생각 모두 다르다”고 말했다. 실제로 어느 세대보다 트렌드에 민감했던 게 X세대며, 그 중심에 강남 영포티가 있었다. 직장인 이영훈(41)씨는 “나이가 들어도 꾸준히 트렌드에 관심이 많다. 디지털 기술이 발달하면서 한국뿐 아니라 외국 트렌드를 접하는 게 더 쉬워졌는데 나이 들었다고 최신 트렌드를 멀리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90년대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지고 있다. MBC무한도전 ‘토요일토요일은가수다’를 통해 90년대 활동했던 가수들이 다시 무대에 올랐고, tvN의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는 90년대 유행했던 음악과 시대 상황을 보여주며 사람들을 추억에 잠기게 했다.
90년대는 한국 역사상 가장 대중문화가 발전했던 황금기였다. 인기 가수의 앨범은 200만 장씩 팔렸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90년대는 대중문화의 르네상스였다.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공존하던 시대다. 당시 가요톱10을 보면 댄스·발라드·아이돌이 함께 순위에 올랐다”고 말했다. 예술을 넘어 산업적인 체계도 잡혔다. 기획사에서 준비한 가수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며 H.O.T나 S.E.S가 아이돌 세대를 열었다.
90년대 대중문화는 최근 재조명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90년대 문화의 중심에 있던 20대가 지금 산업의 중심인 40대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콘텐트를 만드는 사람도, 콘텐트를 소비하는 사람도 모두 40대라는 얘기다. 특히 90년대 X세대로 새로운 대중문화를 만들어 냈던 영포티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콘텐트를 만들어 내고 있으며, 이 콘텐트는 40대뿐 아니라 10대 등 전 세대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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