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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생태환경 뉴스

2025.1.2~

by 이성근 2025. 1. 3.

1. 기후·무기생산 이유로 투자 배제된 한국 기업 223곳   2. 한국서 버린 옷, 인도서 불타다4700헌 옷의 무덤’  3. 진짜 바다와 만나야 한다  4. 녹아내리는 도시가 던지는 질문  5. 지구를 위한 플랜 A] '벼락부자''벼락거지'를 만드는 가상화폐 규제 완화 정책 대신 필요한 것  6. 부산 다대포에 '기후대응 도시숲' 생긴다 7. 지역에 돈을 흐르게 하라

기후·무기생산 이유로 투자 배제된 한국 기업 223

'금융 배제 추적기', 2024'금융기관 투자 배제' 현황 발표... 전년 대비 50% 이상 증가

금융 배제 추적기'에 따르면, 지난해 가장 많은 금융기관으로부터 투자 배제를 당한 기업 1위는 국내 기업 풍산이, 2위도 국내 기업인 LIG(엘아아지)넥스원이 차지했다. '금융 배제 추적기' 홈페이지 자료

온실가스 대량 배출과 화석연료 투자, 무기 생산을 비롯한 이유로 전 세계 금융기관의 투자가 배제된 한국 기업이 지난 1년 동안 50% 이상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2일 기업에 대한 금융기관의 투자 배제 현황을 집계하는 '금융 배제 추적기(Financial Exclusion Tracker)'에 따르면, 지난해 금융기관으로부터 투자가 배제된 한국 기업의 수는 223(자회사 별도 집계)로 집계됐다. 전년(2023) 145개보다 78개 증가한 수치다.

금융 배제 추적기는 민간 은행의 책임 투자 등을 감시하는 네덜란드의 시민단체 뱅크트랙(BankTrack)과 지구의벗 네덜란드(Milieudefensie)를 비롯한 세계 단체들이 연합해 집계하는 데이터베이스다. 매년 말쯤 현황을 발표하는데, 지난해 분석 결과는 지난달 12(유럽 현지 시각) 발표했다.

금융 배제 추적기에 따르면, 지난해 금융기관들이 전 세계 기업들에 투자를 배제한 이유는 기후(48%) 요인이 가장 많았다. 무기(15%), 담배(13%), 국가 정책(6%), 제품 기반 배제(5%), 인권(4%), 비즈니스 관행(3%), 비공개 동기(3%), 환경(3%)이 뒤를 이었다.

또 국내 기후단체인 기후솔루션이 이 자료를 바탕으로 한국 현황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 기업을 투자 배제 대상으로 삼은 금융기관은 총 103개로, 지난해 대비 21개가 증가했다. 한국 기업들이 배제된 이유는 무기(41.7%), 기후(26.3%), 담배(7.5%), 인권(6.9%), 사업관행(6.7%), 비공개 동기(4.7%), 환경(3.3%) 순이었다.

아울러 지난해 투자가 배제된 한국 기업 223개 중 30개가 넘는 투자기관에서 배제된 회사도 11곳으로, 전년 8개보다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새로 추가된 투재 배제 기업은 포스코홀딩스·한화에어로스페이스·한국서부발전 등이다. 특히 포스코홀딩스의 경우, 이 기업에 투자 배제를 결정한 30개 금융기관 중 11개 금융기관이 기후·환경 요인을 배제의 이유로 들었다.

금융 배제 추적기에 실린 투자 배제 회사 목록 금융배제추적기관련사진보기

풍산과 LIG(엘아아지)넥스원의 경우, 각각 93, 85개 투자기관으로부터 배제되며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투자자들에게 배제된 1, 2위 기업의 불명예를 기록했다. 풍산에 대한 주된 투자 배제 이유는 집속탄 등 비인도적 무기 생산이었다. 투자 배제 명단에 포함된 기업들 중 시가총액 기준 상위 기업으로는 현대차·기아·HD현대중공업·고려아연·포스코홀딩스 등이 있었다.

뱅크트랙의 요안 프리진스(Johan Frijins) 대표는 "금융기관과 투자자들은 신규·기존 고객의 위험성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금융 배제 추적기를 주의 깊게 참고할 것"이라며 "다른 금융기관들이 해당 기업을 배제한 사례는 추가적인 위험 검토를 위한 중요한 신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박현정 기후솔루션 연구원도 "올해 더 많은 한국 기업이 더 많은 글로벌 투자자들에게 배제된 것은 한국 주식시장이 겪고 있는 고질적인 디스카운트 문제와 관련이 없을 수 없다""한국 기업들은 글로벌 투자자들이 중시하는 기후·환경 등을 포함한 지속가능성 이슈들을 보다 면밀히 점검하고 이에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소리의숲'(https://forv.co.kr)최나영 기자 joie@forv.co.kr

 

한국서 버린 옷, 인도서 불타다4700헌 옷의 무덤

탐사기획 헌 옷 추적기: 수거함에 버린 옷의 행방

인도에 간 옷 8벌 중 5헌 옷 수도파니파트에서 신호

의류 재활용 산업 침체로 방치·소각 늘고 도시 오염 심화

20241025일 인도 하리아나주 파니파트시의 도심 바르사트 인근 주차장에서 세계 각국에서 온 옷들이 불타고 있다. 수입된 옷이 팔리지 않거나 재활용 과정에서 필요가 없어지면 소각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옷들 중에는 한국에서 온 옷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조윤상 피디

‘기부든 헐값이든, 저소득층이 많은 나라에서는 헌 옷을 잘 입겠지’라는 생각은 선진국 사람들의 착각이다. 영국의 엘런맥아더재단은 매해 발생하는 세계 의류 쓰레기 약 4700만t(2017년 기준) 중 87%가 쓰레기로 처리된다고 분석했다. 국내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재활용될 거라는 기대로 헌 옷을 죄책감 없이 의류수거함에 넣지만, 실상은 다르다. 국내에서 수거된 헌 옷이 중고 의류 수출업체를 통해 동남아시아·아프리카로 판매되는 건 맞지만, 상당수는 재활용되지 못한 채 소각되거나 매립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 폐의류 발생 및 처리 현황을 가늠해볼 수 있는 제대로 된 통계가 없는 상황에서, 한겨레는 의류수거함에 버려진 옷에 스마트태그와 지피에스(GPS·글로벌포지셔닝시스템) 추적기 153개를 달아 직접 헌 옷의 이동 경로를 추적했다.

신세계인터내셔널.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 소비자 상담실 서울 강남구 청담동

인도 북부 하리아나주 파니파트시 도심 바르사트로드 인근 공터, 청담동에서 4678떨어진 이역만리에서 한글 표시가 선명한 타다 남은 옷가지가 뒹굴고 있었다.

파니파트는 인도 수도 뉴델리에서 북쪽으로 90가량 떨어진 인구 60만명 규모의 산업도시다. 전세계에서 연간 10t의 헌 옷이 수입돼 재활용되는 곳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헌 옷의 수도라 불리는 이곳에서, 한겨레 취재팀은 재활용 의류로 수출됐으나 쓰레기로 변한 한국산 옷의 최후를 목격했다.

한겨레는 20242~8월 헌 옷과 신발·가방에 갤럭시 스마트태그와 인공위성 기반의 지피에스(GPS·글로벌포지셔닝시스템) 추적기 153개를 달아 전국의 의류수거함에 넣었다. 1212일 기준으로 8개 옷이 인도에서 발견됐고, 이 중 5개가 파니파트로 간 것으로 나타났다. 인도로 간 나머지 3개 중 1개도 파니파트를 거쳐 인도 북부 다른 도시로 이동했다. 한국무역협회 통계를 보면, 인도는 2023년 수출 중량 기준으로 한국이 가장 많은 헌 옷을 수출하는 나라(8422t, 전체 수출량 중 27%). 인도로 수출되는 헌 옷 상당수가 파니파트로 향한다는 사실이 추적기로 확인된 셈이다.

인도 하리아나주 파니파트의 바르사트로드 인근 주차장에서 태워진 뒤 잔해만 남은 한국 헌 옷의 상표. ’신체치수’ ’가슴둘레등 한국어가 선명하다. 조윤상 피디

20241025일 오후 530(현지시각) 한겨레가 추적기를 따라 바르사트로드에 들어섰을 때, 아직 햇빛이 남아 있는 시간인데도 하늘은 검은 연기로 뒤덮여 어두컴컴했다. 연기의 진원지는 300남짓 공터 안 구덩이로, 족히 200은 넘어 보이는 옷 더미가 불타고 있었다. 공터는 타다 남은 옷들의 재와 넝마가 된 옷들이 어지러이 널려 있었다. 구덩이에 묻혀서 흙먼지를 뒤집어쓰거나 묻힌 지 오래돼 흙과 함께 바위처럼 단단히 굳은 옷 더미는 거대한 쓰레기산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니까 헌 옷의 수도는 옷들의 무덤이자 장례식장이기도 했다. 공터 구덩이에서 옷 부스러기를 씹어 먹고 있던 8마리 소떼는 기괴한 무덤의 초현실성을 극대화하고 있었다.

이 공터는 공식적으로 쓰레기 매립지나 소각장이 아니었다. 지도상에는 주차장이라고 적혀 있지만, 파니파트 사람들은 이 공터를 덤프야드’(Dumpyard)라고 불렀다. 헌 옷을 수입하는 업자, 헌 옷을 재활용하는 공장들이 남은 옷을 공터에 가져다 놓고 있었다. 재활용 공장이나 가게에서 헌 옷을 받아와 공터에 버리는 일을 하는 트럭 기사 라즈벨(64)이 말했다. “(여기 버려지는 옷들은) 쓰이지 않거나 팔리지 않은 옷들이에요. 대부분 태워요. 시 정부가 옷을 버리는 사람을 찾을 수도 있기 때문에 밤에 몰래 버리고 태워버리는 거죠.” 그는 이 도시에 이런 덤프야드가 17개 정도 있다고 했다.

인도 하리아나주 파니파트 도심 바르사트로드 인근 주차장은 덤프야드로 불린다. 수입된 중고의류 일부는 이곳에서 불법적으로 폐기된다. 20241024일 소들이 버려진 옷을 먹고 있다. 조윤상 피디

한국 옷, 태우거나 다운사이클링

파니파트로 간 한국의 헌 옷 다섯벌은 모두 스웨터였다. 아크릴, , 레이온, 폴리에스터, 나일론 소재다. 소각된다면 탄소와 유해물질이 배출된다. 이 옷들은 대체로 국내 헌 옷 수출업체로 향했다가 선박으로 인천항을 떠나 인도 서부를 지나 북부에 있는 파니파트로 향했다.

한겨레 취재팀은 지난해 89일 서울 송파구 풍납동의 의류수거함에 베이지색 스웨터를 버렸다. 중국 저가 플랫폼에서 구매했고, 이른바 브랜드가 없었다. 스웨터는 한달이 채 되지 않아, 경기도 하남시의 한 창고(수출업체로 추정)로 이동했다. 이후 인천항으로 갔다가 말레이시아 슬랑오르(셀랑고르)주의 클랑항에서 10월 한달가량을 머물렀다. 스웨터는 11월이 되자 인도의 파니파트로 이동했고, 덤프야드와 직선거리로 1도 되지 않는 곳에서 신호를 보내고 있다. 파니파트로 간 또 다른 스웨터들 역시 덤프야드와 3안팎 거리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만약 덤프야드가 아니라 중고시장이나 공장으로 갔더라도, 판매되거나 재활용되지 않을 경우 가장 가까운 매립·소각지인 덤프야드에 버려질 가능성이 크다.

파니파트에는 한국을 포함한 중국, 일본, 미국, 유럽 등지에서 하루 250t 이상의 헌 옷이 수입돼 밀려 들어온다. 이 도시는 역사적으로 인도 내에서 직물 산업으로 유명했는데, 1990년대부터 세계 각국(주로 선진국)의 헌 옷을 수입해 재활용하면서 아시아 최대 섬유 재활용 허브로 부상했다. 이 산업 종사자가 많게는 7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파니파트에 오는 헌 옷은 원칙적으로는 소각이 아니라 재활용이 목적이다. 수입업자 디판슈(24)한국에서 수출된 옷은 인도 서부 구자라트 항구를 통해서 인도에 들어오고, 화물 열차에 실려서 파니파트에 온다두달 내지 석달이 걸린다고 덧붙였다. 디판슈처럼 한국과 교역하는 파니파트의 수입업자가 최소 수백명은 된다.

수입된 옷은 일부 소매상에 판매되고 남은 옷은 재활용 공장으로 가지만, 재활용 가치가 없는 옷들은 버려진다. 디판슈는 한국의 수출업체로부터 산 옷을 싸게는 5루피(86), 비싼 것들이라도 20루피(344)에 지역 구제 소매상인이나 재활용 공장에 판다고 했다. 보통 80규모의 큰 묶음으로 거래되는데, 한벌당 가격을 매기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헐값에 거래되기 때문에 재활용되지 않는 옷을 버리더라도 수입업자에게는 이윤이 남는다.

재활용 공장에서는 헌 옷이 원자재형태로 돌아가는 과정이 시작된다. 재활용 공장에서는 헌 옷들을 색깔별로 분류한 뒤, 날카로운 기계에 넣어 잘게 쪼갠다. 이후 표백제로 하얗게 만든다. 잘게 잘리고 표백된 옷들은 실을 뽑아내는 공장으로 이동해 원사()가 된다.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원재료보다 낮은 품질의 물건으로 바꾸는 다운사이클링과정이다. 이 작업을 통해 카펫, 커튼, 담요 등이 주로 생산된다.

실제 한국에서 보낸 옷이 다운사이클링 용도로 쓰이는 상황도 포착됐다. 취재팀이 20242월 서울 구로구에 있는 의류수거함에 버린 옷은 경기도 광주시의 한 창고로 옮겨졌다가, 4개월 만인 6월께 파니파트 북서부로 이동했다. 그곳엔 330(100)가 넘는 대형 헌 옷 창고가 있었다. 창고 주인인 가우라브 가르그(36)는 한국 옷을 수입해서 재활용 공장에 넘기는 중간 수입업자였다. “(한국 옷을) 원사로 만드는 공장에 판매하는 거죠. 이 옷들이 다 실을 뽑는 기계로 가는 거예요.”

인도 파니파트 북서부의 한 의류 수입 창고에서 한겨레 취재팀이 한국에서 추적기를 달아 헌 옷 수거함에 넣어 보낸 스웨터를 찾고 있다. 조윤상 피디.

헌 옷의 수도, 오염으로 망가지다

파니파트의 헌 옷 재활용은 1990년대부터 이 도시를 이끄는 산업으로 부상했다. 연간 3억달러(4415억원) 상당의 재활용 제품을 만든다. 하지만 헌 옷 수도로 오랜 기간 기능하며 수질과 대기 오염이 심각해졌다. 우선 공기질이 나빠질 대로 나빠진 상태다. 섬유를 소각로에 넣어 연료로 쓰거나 덤프야드 등에서 불법 소각하며 발생한 오염 탓이다. 파니파트의 202412월 기준 초미세먼지(PM 2.5) 농도는 세계보건기구(WHO)에서 권장하는 24시간 평균 노출 한계인 15/보다 7~10배 이상 높다.

버려진 옷을 활용하는 산업은 주민 건강에도 심각한 영향을 주고 있다. 하리아나주의 2022년 보고서와 지역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마을 주민 사이에 최소 35건의 심장마비가 발생했다. 도시의 섬유산업에서 발생한 대기 오염의 급격한 증가가 원인이다. 대기 중 초미세먼지와 이산화질소, 일산화탄소 농도가 증가할수록 심장마비 등 심혈관 질환 발생 위험을 높이기 때문이다.(2022, 푸단대) 또한 대기·수질 오염으로 지역에서 폐 질환, 호흡기 질환, 피부 질환, 고혈압, 암 등을 앓는 환자도 급증하고 있다. 보고서를 보면, 파니파트의 주요 산업 단지에서 반경 5이내에 있는 주택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가구의 약 93%가 지난 5년 동안 건강 문제를 겪은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41025일 인도 파니파트 도심 바르사트로드 인근 주차장에서 세계 각국에서 온 옷들이 태워지고 있다. 수입된 옷들이 팔리지 않거나 재활용 과정에서 필요가 없어지면 소각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옷들 중에는 한국에서 온 옷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조윤상 피디

결국 헌 옷의 수도 파니파트는 헌 옷으로 인해 망가지고 있다. “패션업은 성장하고 있고, 우리가 쓸 담요를 생산하고, 일자리를 창출하긴 해요. 그런데 그건 우리 건강과 바꾸게 되는 거죠. 사람들이 아파요.” 파니파트 지역 활동가인 우에메 티아기(49)가 말했다.

주 정부는 도시가 오염으로 엉망이 되는 과정을 제어하지 못하고 있다. 공장의 불법 소각과 폐수 방류를 금지하곤 있지만, 단속이 제대로 이뤄지지는 않는다. 덤프야드에서 만난 트럭 기사 라즈벨은 사람들도 소각이 불법이라는 걸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취재팀이 덤프야드를 방문한 3일 동안 한번은 방금 소각이 끝난 흔적을 찾았고, 두번은 소각이 진행되고 있었다.

파니파트에 머무른 4일 내내 매캐한 탄내가 도시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막대한 헌 옷이 도시로 밀려드는 한 멈추기 어려운 불길이다. 우리가 어디선가 재활용된다고 여기고 버린 헌 옷이 그 불길을 키우는 땔감이 되고 있다.

파니파트(인도)/글 박준용 한겨레21 기자 juneyong@hani.co.kr 사진 조윤상 피디 jopd@hani.co.kr

 

한국 헌 옷 표백한 폐수인도 마을과 노동자가 병들다

 

진짜 바다와 만나야 한다

환경재단이 15회째 추진하고 있는 그린보트가 그린워싱(green washing·친환경이라고 홍보하지만 실제로는 환경을 파괴하는 위장환경주의)이라는 논란이 일고 있다. 거대한 오염물질을 내뿜는 크루즈에 그린보트라는 이름이 붙고, 관광사업에 가까운 운항을 환경단체에서 주최한다는 점은 출항을 재고해야 할 중대한 사안으로 보인다. 크루즈에서 진행되는 인문학 강연이 사치와 휴양을 힐링과 휴식으로 둔갑시켜, 인간과 바다의 진짜 만남을 차단하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두 번 위장하는 것이다.

크루즈는 나쁘다. 환경을 파괴한다. 그린보트는 더 나쁘다. 환경을 파괴하면서 환경에 좋은 일을 하고 있다고 거짓말한다. 그린보트에서 인문학 강연을 듣는 것은 훨씬 더 나쁘다. 환경을 파괴하고, 이를 친환경이라고 위장하며, 그 위장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합리화까지 하기 때문이다.

현대인에게 필요한 휴식은 단절된 자연과 다시 연결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지쳐 있는 이유는 기계문명이 기속화한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어서다. 24시간 스마트폰을 쥐고 있어야 하고, 승용차가 필수품이며, 인터넷 없이 직업과 일상을 유지할 수 없는 인간과 기계 사이의 연결이 과잉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 관계에서 벗어나 인간과 자연이 다시 만나는 일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진짜 휴식을 가져올 것이다.

그린보트가 나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배에 탄 사람들이 진짜 바다를 보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크루즈는 인간과 자연을 연결해주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단절시킨다. 사람들은 크루즈에서 아름답게 대상화된 가짜 바다와 만난다. 오염물질과 이상고온으로 죽어가는 바닷속 생물들의 참혹한 실상은 배 위에서 보이지 않는다. 호화로운 식사와 실내 오락시설들을 즐기는 동안 바다생태계가 처한 위험한 상황을 실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도시인의 쉼과 휴식이라 위안하는 인문학 강연은 두 번째 그린워싱에 불과하다. 인간이 바다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 도구와 수단으로 자연을 대하는 근대적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우리는 바다와 평화롭게 공존하기 어려울 것이다.

크루즈가 아니라면, 우리는 바다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까?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에서는 바다생물들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시민탐사대를 운영해, 인간의 활동으로 인해 바다가 어떤 피해를 입고 있는지 조사한다. 이 기록을 토대로 배의 운항 경로를 수정

바다와 만나고 싶은가? 지난여름 우리 바다 해수온도는 30도까지 치달았다. 인간이 버린 쓰레기에 몸이 묶여 죽어가고 있는 바다생물들의 현실에는 눈을 돌린 채, 모든 편의시설이 갖추어진 크루즈선 위에서 만나는 바다는 진짜 바다가 아니다. 그린보트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은 힐링과 휴식이 아니라, 지금 당신이 이미 육지에서 누리고 있는 화려한 소비중독적 사회의 또 다른 변주일 뿐이다.

인간은 바다와 만나야 한다. 배를 타고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연과 단절되어 병든 인간이 다시 살기 위해서, 인간과 단절되어 죽어가는 바다가 다시 살기 위해서 진짜 바다와 만나야 한다.

최정화 소설가/경향

 

녹아내리는 도시가 던지는 질문

미국 캘리포니아주 랜초 팔로스 버디스 도로가 파괴된 모습 (AP, 연합뉴스)

지난 93, 개빈 뉴섬 주지사는 캘리포니아주 남부 해안가에 있는 랜초 팔로스 버디스에 비상사태를 선포했습니다. 도시 도로 곳곳이 아이스크림이 녹아 흘러내리듯 무너져 내렸기 때문입니다.

가파른 해안 절벽과 산 능선 위에 세워진 이 도시는 오래 전부터 지반이 서서히 이동했습니다. 다만, 움직이는 속도가 1년에 1인치 그러니까 2.5cm 정도로 느렸기 때문에 도로와 건물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빙하가 녹고 바닷물이 팽창하며 해수면이 상승하자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높은 파도에 절벽이 깎이며 지반이 이전보다 더 빠르게 이동했습니다. 여기에 폭우까지 내리며 약해진 지반이 경사를 따라 미끄럼틀을 타듯이 흘러내렸습니다. 일주일 동안 30cm나 움직였고 이 여파로 도로가 처참하게 뒤틀렸습니다.

결국 주지사는 해안 절벽과 가까운 곳에 사는 주민들에게 대피 명령을 내렸고 화재를 막기 위해 전력과 가스 공급을 차단했습니다. 주민들은 집과 마을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한반도 해안도 무너진다

2023년 해안 침식 등급 (해양수산부)

도시 붕괴는 랜초 팔로스 버디스 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나라 연안의 평균 해수면은 연평균 3mm씩 상승하고 있고, 1989년부터 2022년까지 10.3cm가 상승했고, 해수면 상승하자 해안이 침식되는 속도도 빨라졌습니다. 올해 해양수산부가 발표한 연안침식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360개 해안 가운데 43.3%156곳이 침식 우려(C등급)와 심각(D등급)을 받았습니다. 특히 경북(59.5%)과 강원도(53%), 충남(54.8%)은 조사한 해안 가운데 반 이상이 CD등급을 받았습니다.

거센 파도로 무너진 강릉 영진해변 (연합뉴스)

국립재난안전연구원은 우리나라에서도 해안 침식이 도로나 건물의 붕괴를 유발할 수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해수면 상승에 따른 연안 지역 구조물 붕괴보고서에서 해안 유실, 지하 수위 상승, 액상화 위험 증가, 해양 외력 증가 등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구조물 붕괴가 우려된다고 설명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연안은 주거, 관광, 산업, 물류 등 다양한 개발 행위가 높은 밀도로 진행되고 있어 이런 시설물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런 경고에도 미래 세대의 재난은 충분한 예방 정책 예산을 배정받기가 쉽지 않습니다. 당장 눈앞에서 사람이 죽는 재난이 잇따르고 있는데, 언제 일어날지도 모르는 재난에 많은 돈을 쓸 수 없는 거죠. 보고서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해수면 상승은 연안 지역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지만, 천천히 진행되기 때문에 우선순위에서 밀려 근본적인 대책 수립이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돈은 선택을 강요한다

19979, 영국 런던 서부의 사우스올에서 여객 열차와 화물 열차가 충돌하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여객 열차 기관사가 신호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선로에 들어서며 벌어진 비극이었습니다. 찰나의 사고로 7명이 숨졌고, 139명이 다쳤습니다.

그로부터 2년 뒤 비슷한 사고가 또 일어났습니다. 199910, 런던 래드브로크 그로브에서 열차가 적색 신호를 무시하고 달리다 다른 열차와 충돌한 겁니다. 강하게 충돌한 탓에 인명 피해가 매우 컸는데, 31명이 목숨을 잃었고 400명이 넘는 사람이 다쳤습니다.

잇따른 사고로 영국에선 ATP(Automatic Train Protection)라는 열차 보호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열차가 신호를 무시하고 선로에 진입하는 것을 막고, 열차의 속도도 자동으로 조절하는 시스템입니다.

문제는 돈이었습니다. ATP 시스템을 영국의 전체 선로에 깔라면 천문학적인 돈이 필요했습니다. 사고가 일어날 확률이 높았다면 영국 정부나 철도 회사는 예산이 많이 필요하더라도 ATP를 도입했을 겁니다. 하지만 열차 충돌 사고 발생 확률과 이로 인해 인명피해가 발생할 확률은 낮았고, 이런 낮은 확률의 사고를 막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긴 어려웠습니다. ATP 설치로 생명을 한 명 구하는 데 1,400만 파운드, 260억 원이 필요한 것으로 계산됐고 전면 도입은 무산됐습니다.

그 대신 TPWS(Train Protection & Warning System)가 도입됐습니다. ATP보다는 속도 조절이나 열차 간격 조절 성능이 떨어졌지만, 적어도 신호를 무시하고 달리는 일은 막을 수 있었습니다. 설치 비용이 ATP보다 훨씬 적었기 때문에 비용 대비 얻을 수 있는 편익이 타당한 수준이라고 계산됐습니다.이 선택은 현실적이고 타당한 결정이었다는 평가와 미봉책에 그쳤다는 평가로 갈렸습니다.

재난이 던지는 질문

재난 정책을 세울 때는 늘 딜레마가 따라옵니다.단 한 건의 인명피해를 막을 수 있다면 자원을 아낌없이 투자해야 하나? 한정된 예산을 효율적으로 쓰려면 냉정하게 평가하고 선택해야 하나?

재난이 미래에 일어날 확률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당장 돈을 투자하는 게 맞나? 시간이 지나 재난 발생 가능성이 충분히 입증되면 그때 자원을 투입하면 될까?

모두 어려운 질문이지만, 우리는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최선의 답을 찾기 위해 고민해야 합니다. 답하기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에, 당장 느껴지지 않는 문제이기 때문에 고민을 미룬다면 결정적인 순간에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재난은 어느 순간이 되면 우리에게 선택을 강요합니다. 그 순간, 우리는 대답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합니다.강세현 기자 / accent@mbn.co.kr

 

지구를 위한 플랜 A] '벼락부자''벼락거지'를 만드는 가상화폐 규제 완화 정책 대신 필요한 것

"우리에게는 Planet B(2의 지구)가 없기에, Plan B(플랜 B)또한 없다." 기후위기와 관련된 유명한 표어 중 하나입니다. 끊임없이 생산하고 끊임없이 성장할 것을 강요하는 사회 속에서 우리는 어떤 플랜 A를 선택해야 할까요?

비트코인을 처음 산 날, 삽시간에 6만 원을 벌었다. 그건 하루 종일 내가 편의점 알바를 해서 버는 돈보다 많은 돈이었다. 20대 초반에 비트코인을 처음 접하고 벼락부자가 되는 일이 아주 가까워진 것 같았다. 그날부터 매일 틈만 날 때면 비트코인 거래소에 들어갔다.

비트코인은 주식과 달리 24시간 장이 열려있었다. 그래서 새벽에도 알람을 맞추어두고 일어나 비트코인 시세를 확인했다. 비트코인과 관련된 인터넷 커뮤니티의 게시글도 많이 읽었다. 등락은 있었지만, 비트코인 가격 그래프가 우상향하고 있었기에 돈을 벌 것을 의심치 않았다. 알바비로 받은 돈을 모조리 가상화폐를 사는 데 쓴 것도 그 이유였다. 그러자마자 대폭락의 장이 시작되었다.

비트코인이 폭락하기 시작할 때도 편의점에 있었다. 나의 시급보다 빨리 떨어지는 비트코인을 팔기 위해 부지런히 손가락을 움직였으나, 내 손가락을 움직이는 속도보다 비트코인 가격이 더 빨리 떨어지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손님들이 편의점에 몰렸다. 마포구청 코앞, 엄청나게 바쁜 편의점에서 일했던 탓이다. 벼락처럼 가격이 떨어지는 비트코인을 보다가, 물품 바코드를 찍다가, 결국 벼락처럼 손해를 보게 되었다.

그 시기, 나만 손해를 본 건 아니었다. 가상화폐 관련 커뮤니티에는 누군가 죽음을 암시하는 글을 올렸고, 누군가 집안의 가재도구를 부수고, 많은 사람들이 화를 냈다. 이런 일은 비트코인 시세가 급변할 때마다 이어졌다.

그 사이 나의 지인은 발 빠르게 가상화폐 채굴장을 만들었다. 지인의 손에 끌려간 곳에는 처참한 몰골을 한 채굴장이 있었다. 그는 나에게 가상화폐 채굴, 그러니까 가상화폐를 생산하는 행위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가상화폐 채굴을 위해 그는 수많은 컴퓨터 구비하고 그 컴퓨터에서 나온 열을 식혀야 했다. 그러기 위해 그는 벽지와 장판을 뜯고, 벽에 구멍을 냈다. 콘크리트가 그대로 노출된 벽과 바닥, 그 속을 채우는 수많은 컴퓨터, 벽에 뚫린 수많은 구멍과 귀를 어지럽게 만드는 환풍기 소리, 겨울임에도 뜨거운 실내까지. 그곳은 정말 다른 세상 같았다.

그 공간은 그가 생활을 유지하던 집의 일부였다. 그가 사랑했던 공간을 돈을 위해 모조리 뜯고, 구멍 내고, 훼손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나는 그때 가상화폐 채굴이 여러모로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있어야 하는 일이라는 이야기가 사실임을 깨달았다. 단지 전기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욕망이 가상화폐를 뜨겁게 만들고 있었다.

환경을 삼키는 가상화폐

미국 텍사스의 비트코인 채굴 현장. 사진은 텍사스 록데일에 위치한 Bitdeer 시설의 항공 사진이다. Bitdeer은 대표적인 비트코인 채굴 기업이다.Greenpeace

가상자산에 대한 우호적 입장을 가진 트럼트 대통령 당선 이후 비트코인 1개의 가격은 한화로 1억 원을 훌쩍 넘고, 한때 약 15000만 원 넘게 치솟았다. 그러나 최근 미국의 금리 인하 속도 조절이 예상되며 비트코인 가격이 하락세를 보이기도 했다. 가상자산은 주식 등 기존의 재테크 방식과 달리 특히 가격 변동성을 예측하기 어렵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으나, 오히려 그 지점으로 인해 적은 시드머니로도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벼락부자의 길처럼 여겨졌다.

환경적인 관점에서, 현재의 가상화폐 채굴 과정은 좋지 못하다. 가상화폐는 보통 고성능 컴퓨터로 복잡한 수학 연산을 풀어내는 사람에게 보상으로 주어진다. 이를 위해 전문 채굴기와 높은 사양의 컴퓨터, 그래픽카드가 동원되고 막대한 전기가 소비된다. 채굴을 위한 전기 사용의 급증은 전력망 자체를 위협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미국에선 대규모 암호화폐 채굴 사업장의 전기 사용량 보고를 의무화하기로 결정했다.

2024년 비트코인 정책 연구소(BPI)의 분석에 따르면, 2023년 미국에서 비트코인 채굴로 사용된 전기는 약 121테라와트시(TWh), 핀란드 한 나라의 연간 전기 사용량(85 TWh)보다 높았다. 그린피스는 이러한 현실을 지적하며 'Change the Code, Not the Climate' 캠페인을 통해 비트코인 채굴을 작업 증명(PoW) 방식이 아닌 에너지가 덜 소요되는 방식으로 전환할 것을 촉구하거나, 채굴을 지원하는 기업을 비판하는 캠페인을 지속해 왔다.

아무리 재생에너지로 만든 전기가 많아진다고 해도, 에너지 수요가 끊임없이 증가하는 세상에서는 기후위기를 막을 수 없다. 밑 빠진 독에 물을 좀 더 부어본다고 독에 물을 채울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지구를 유지하기 위해 에너지 수요를 점점 줄여나가는 것은 필수이다. 무한한 팽창보다는 적정한 양의 생활이 뒷받침되어야 우리는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다. 세계적으로 가상화폐가 끼치는 환경 문제에 대한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가상화폐는 한 가지의 투자 수단으로 인정받고, 누군가는 이 판에서 돈을 번다. 가상화폐 채굴이 미치는 환경적 영향을 아직도 사소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우리나라의 상황은 좀 더 복잡하다. 가상화폐 투자가 젊은 세대의 이익과 연관되어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젊은 세대의 사정을 고려해 보아야 한다.

벼락부자와 벼락거지의 경계선

금융 대기업의 비트코인 투자로 인한 기후 영향을 조명하기 위해 그린피스가 미국에서 진행한 액션. 2022년 기준 전 세계 비트코인 채굴에 사용된 전력의 62%는 화석연료에서 나왔다.Demian Neufeld/Greenpeace

가상화폐 투자는 분명히 젊은 세대의 상대적 박탈감과 연결되어 있다. 부동산 투기로 돈을 벌고, 근로소득만으로 미래를 설계할 수 있었던 과거의 시대가 유효하지 않은 탓이다. 그 대신 개미처럼 일해도 개미만큼밖에 벌 수 없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젊은 세대의 일부는 가상화폐 투자를 불확실한 미래의 마지막 동아줄처럼 여기게 되었다.

비트코인 신고가 달성이라는 뉴스 이후, 정치권에서도 가상자산 과세를 다시 논의하기 시작했다. 원래라면 20251월에 가상자산 과세가 진행되어야 하지만, 지난해 12월 이를 유예하는 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가상자산 과세 유예가 결정되기 전까지 정치권에서는 가상자산 과세 유예와 과세 완화의 안을 두고 진통을 겪었다. 과세 자체를 미루느냐, 아니면 과세의 대상이 되는 집단 크기를 줄일 것이냐의 차이가 있는 안이었지만, 두 안 모두 젊은 세대의 현실을 근거로 주장을 전개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었다. 젊은 세대의 박탈감과 가상화폐에 대한 열망을 정치권도 무시할 수 없었던 탓이다.

그러나 나는 가상화폐 때문에 누군가 죽고, 누군가 가재도구를 부수고, 누군가 사랑했던 공간을 스스로 폐허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안다.

비트코인을 사지 않아 돈을 못 번 사람들이 갑자기 부자가 된 자신과 타인을 비교하며 자조적으로 쓰는 '벼락거지'라는 말까지 생겼다. 그런데 젊은 세대는 부자가 되고 싶어서 가상화폐를 사기도 하지만, 불안해서 가상 화폐를 사기도 한다. 근로소득으로는 영원히 먹고 살 수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 평생을 벌어도 집 한 채 살 수 없는 현실, 말라가는 국민연금과 대책 없는 노후를 생각할 때면 누구라도 불안할 수밖에 없다. 이건 도저히 가상화폐 세금 완화나 유예로 해결할 수 없다.

불안이 아니라 지속 가능성에 투자하자

그린피스 벨기에에서 진행한 퍼포먼스. '최후의 만찬'을 패러디하며 EU가 향후 5년 동안 청년과 미래 세대의 권리와 이익을 보호하는 것을 정치적 우선사항으로 삼을 것을 촉구했다.Greenpeace

젊은 세대는 기후위기 시대에 가장 오래 살아남아야 하는 세대가 되었다. 이들은 부모보다 가난한 최초의 세대이기도 하다. 불안이 가깝고 평범함이 먼 시대일 때, 불확실한 것으로 사람들은 빨려 들어간다. 불확실한 것은 대게 현실의 문제를 심화시킨다. 그렇게 되면 먼 미래를 상상할 힘은 더욱 줄어든다. 현실을 지적하지 않은 채 가상화폐 과세 유예 혹은 완화가 젊은 세대를 위한 정책으로 제안되는 것이 다소 아쉽다.

지구가 우리 모두가 사는 집이라면, 불확실한 꿈을 위해 멋대로 훼손하고, 뜯고, 구멍을 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 정치가 해야 하는 역할이 있다. 긴 미래를 상상하기 어려운 시대에 정치가 해야 할 역할은 긴 미래를 상상할 힘을 사회 구성원에게 쥐여주는 일이어야 한다.

나는 가상화폐 과세 유예가 환경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한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보다 더 우려하는 것은 가상자산에 열광하는 젊은 세대들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 가상자산에만 몰두하는 정책들이다. 더 나은 기후 정책을 고민하는 일, 젊은 세대 박탈감의 기저를 고려하는 일, 돈 없는 내일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돈 걱정 없는 내일을 만드는 일 등 다른 방식으로 더 건강하게 문제를 풀어내는 방법은 많다. 복지 예산을 확충하고, 예산 배정 자체를 사회 구성원의 행복과 기후위기 대응을 기조로 잡아볼 수도 있다.

가상화폐는 하나의 투자 수단을 넘어 젊은 세대의 불안정한 처지와 시스템의 오류를 보여주는 거울이 되었다. 이 순간, 우리가 질문해야 할 것은 "얼마나 잃을 것인가" 혹은 "얼마나 얻을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로 시작되는 질문이다.

전자가 숫자로 표현되는 객관식의 응답을 요한다면, 후자는 길게 작성해야 하는 서술형의 답변을 요하는 질문이다. 그 답변으로부터 '벼락부자' 혹은 '벼락거지' 바깥의 지속 가능한 세상이라는 정답을 얻을 수 있길 바란다. 불안이 아니라 지속 가능성에 투자하자.

그린피스 신민주 캠페이너(gshin02)

 

부산 다대포에 '기후대응 도시숲' 생긴다

해변공원 녹지 확충, 편의시설 도입

21억 원 예산 투입, 6월 준공 목표

기장군·강서구 등 시내 6곳 조성 중

부산 사하구 다대포 해변공원 일원에 조성되는 다대포 기후대응 도시숲조감도. 사하구청 제공

부산 다대포 해수욕장 일원에 대규모 친환경 도시숲이 조성돼 지역 주민의 관심이 쏠린다. 기존 해변공원의 녹지를 확충하고, 다양한 주민 편의시설을 도입해 인근 주민은 물론 관광객의 발걸음도 끌 것으로 전망된다.

부산 사하구청은 사하구 다대포 해변공원 일원에 2.2ha(6700) 규모 '다대포 기후대응 도시숲'(이하 다대포 도시숲) 조성사업에 지난달 착공했다고 2일 밝혔다.

다대포 도시숲은 기존 다대포 해변공원, 고우니생태길을 테마 공원화하는 동시에 볼거리와 체험 콘텐츠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조성된다. 구체적으로 기존 다대포 해수욕장 서편 갈대군락지가 있는 고우니생태길 일대를 노을숲으로 꾸린다. 사구식물 등 수종 보강을 통해 생태탐방로, 생태 교육 장소의 역할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해변공원 중앙부 바다숲은 훼손된 산책로를 복구하는 등 보행동선을 정비해 보폭을 기존 4m에서 6m로 넓힌다. 동선을 따라 숲속산책길, 휴게쉼터, 베드를 설치해 피크닉이 가능한 도심 속 휴식공간으로 조성한다. 낙조분수 인근 다대숲에는 350m에 이르는 원형 황톳길, 세족장과 함께 5개 테마정원을 조성한다.

이를 위해 팽나무 등 28종의 나무 23200그루와 맥문동 등 15종의 지피식물 195000여 본이 식재될 예정이다. 사업비는 약 213000만 원 규모다. 올해 6월 준공을 목표로 추진한다.

기후대응 도시숲은 도심 내 울창한 숲을 조성해 산업단지 등에서 발생한 미세먼지를 차단하고, 대기 중 온실가스를 흡수하는 탄소흡수원을 조성해 기후변화에 대응하자는 취지로 도입됐다. 폭염과 도시 열섬 완화, 소음 감소, 도시 생태계 보전 여러 긍정적 효과로 전국 지방자치단체가 활발하게 조성 중이다.

다대포 역시 다양한 나무와 식물이 어우러진 도시숲이 조성되면 인근 신평·장림 산단 미세먼지를 차단하는 효과를 누릴 것으로 보인다.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1ha의 도시숲은 연간 평균 6.9t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도시숲 주변 일정 공간의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 농도는 시가지에 비해 각각 25.6%, 40.9%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시민 누구나 계절에 따라 다양한 식생과 꽃을 비롯해 삼림욕을 즐길 수 있을 전망이다. 지역 주민들은 생활 환경 개선과 휴식 공간 마련에 대한 기대감으로 큰 관심을 보인다. 사하구 다대포동에 거주하는 60대 최 모 씨는 맨발 걷기 열풍으로 다대포를 찾는 사람이 늘며 분위기가 좋아졌다숲길이 더욱 무성해지고 황톳길까지 깔린다니 주민으로서 반가운 소식이라고 말했다.

구는 다대포를 찾는 관광객도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사하구 산림녹지과 관계자는 숲과 어우러진 바다 등 천혜의 자연과 함께 건강 흙길에 대한 요구도 높다도시숲이 시민들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사하구는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도시숲 조성에 반영하고, 향후 유지 관리에도 주민들의 참여를 독려한다는 계획이다. 이갑준 사하구청장은 도시숲 조성으로 다대포의 생태 환경이 한층 더 업그레이드 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올여름에는 사하구 주민, 부산 시민을 넘어 더 많은 사람들이 다대포의 매력을 체험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편, 부산시를 비롯한 지자체는 다대포 해변공원을 포함해 해운대구 동해남부선 주요 철도역, 강서구 화전 일반산업단지, 기장군 좌천역 폐선부지 등 부산 시내 6곳에 150억 원을 들여 기후대응 도시숲을 조성 중이다. 이를 통해 총 15ha(45500) 규모의 도시숲을 마련해 도시 환경 개선과 기후변화 대응에 나서고 있다.

손희문 기자 moonsla@busan.com

지역에 돈을 흐르게 하라

돈이 선하게 쓰이는 세상을 꿈꾸며

지역은 곤궁하다. 수도권은 진공청소기처럼 사람과 돈을 빨아들인다. 경제를 움직이는 데 필요한 자원 대부분은 서울과 수도권에 몰려있다.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고민하던 청년들도 심각한 자원 부족 문제를 견디지 못하고 서울로, 서울로 향한다. 돈과 사람이 있어야 뭐라도 할 것인데, 있는 자원마저 빠져나가는 현실은 악순환의 연속이다.

매년 국토 균형발전 사업에 천문학적인 돈이 투입되고 있지만, 수도권과 지방의 불균형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선거철이 되면 모든 후보자가 지방분권 확대, 지방재정 확충, 자치 강화를 외치지만 현실은 거꾸로 움직이고 있다. 이른바 중앙에 의한 지역의 식민화(植民化), 인구감소에 따른 지방소멸 현상은 현재 진행형이다. 불가역적인 현상처럼 보인다.

부의 역외 유출도 심하다. 아래 그림은 광역자치단체(17)별 지역총생산(GRDP)과 지역총소득(GRI)의 차이를 나타낸 것이다. 오른쪽이 순유입, 왼쪽이 순유출 금액이다. 순유입은 생산(P)보다 소득(I)이 높은 상태, 순유출은 생산(P)보다 소득(I)이 낮은 상태를 의미한다. 지역주민들이 생산한 부(=가치) 전체가 소득으로 전환되면 총생산과 총소득이 같아져(GRDP=GRI) 유입/유출이 발생하지 않는다.

총생산보다 총소득이 크다는 것(GRDP<GRI)은 지역의 부가 '밖에서' 유입되었음을, 반대로 총소득이 총생산보다 적다는 것(GRDP>GRI)은 지역의 부가 '밖으로' 유출되었음을 뜻한다. 그림에 나타난 것처럼, 9개 광역(제주, 전북, 경기, 세종, 대전, 광주, 인천, 대구, 서울)은 순유입이, 8개 광역(경남, 경북, 전남, 충남, 충북, 강원, 울산)은 순유출이 발생한 것으로 확인된다.

▲광역별 지역총생산(GRDP) vs 지역총소득(GRI) 차이 (단위: 조 원)2022년 지역소득 통계 (2024.10 / 통계청) ⓒ

일국 내에서 지역 간 부의 이동은 경제주체 간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에 따른 것이고, 이는 합리적인 자원 배분이 이루어지는 과정이므로 역외 유출을 부정적으로만 해석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산업 기반이 취약한 지역에서 큰돈(=가치)이 구조적으로 유출되는 경우는 다르다. 지역 자금이 대거 빠져나가 투자와 생산의 연결고리가 끊어지게 되면 지역경제에 타격이 크기 때문이다.

부의 이전 경로(channel)는 다양하지만, 크게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는 다른 곳에 본사를 두고 있는 기업이 활동 지역에서 벌어들인 돈을 이전하는 경우, 둘째는 지역에 거주하는 이들이 다른 지역에 투자하거나 지역 금융회사가 지역 밖으로 대출하는 경우, 끝으로 재정 활동이나 자금 거래가 생략된 실물 기반의 이전이 발생하는 경우다.

① 산업 활동 : 지역에 진출한 기업의 잉여(剩餘) 이전
② 금융 활동 : 외부 투자(지역주민), 외부 대출(금융회사)
③ 기타 활동 : 중앙/지방정부 간 세입/세출 및 실물 이전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많은 지역에서 외부 기업/투자 유치와 같은 접근법을 선호한다. 하지만 이는 ①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한다. 지역 경제가 활기를 띠려면 지역 자원이 지역 안에서 순환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 특히 ②지역 금융을 통해 '돈의 흐름'을 바꾸는 노력이 따라주어야 한다.

지방은행이 제 역할을 하면 되지 않을까.
현재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지방은행(5개)은 모두 상업은행이다. 영업권역만 다를 뿐, 시중은행과 마찬가지로 '수익'을 좇는 은행이다. 최근에는 가장 안정적인 수입원인 지방정부 금고도 시중은행에 자리를 빼앗기고 있고, 인터넷전문은행이 잇달아 설립되면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지방은행이 지역을 위해 일하게 하려면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대표적인 방법이 '지방 공공은행'을 만드는 것이다. 지방정부가 소유하는 은행을 만들어 '비영리' 방식으로 운영하면 된다. 공공은행이 만들어져 시/도 금고를 맡아 운용하면 안정적인 수입을 창출할 수 있고, 이윤이 목적이 아니므로 금융 공백을 줄일 수 있고, 지역경제 활성화에 이바지할 수 있다.

지방정부가 소유한 공공은행이 만들어지면 재정 자립도가 높아져 중앙정부의 재정 부담이 줄어든다. 지역화폐가 유통되면 자원의 외부 유출을 막는 '방파제' 역할을 함으로써 자원의 순환을 돕는다. 민관이 협력해 공동기금을 조성하거나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을 구축해 혁신기업을 지원하면 지역이 안고 있는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지역에 돈을 흐르게 하면 된다.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의 김종훈 본부장은 "지역 금융이 활성화되려면 공공과 민간의 자금이 유입될 수 있는 제도와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지역에 돈이 투자될 수 있는 가치와 명분, 돈을 담을 그릇, 자금을 운용할 전문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여러 지역 단위에서 모델을 만들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으나, 모범사례라 부를만한 곳은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미국 계좌 이동운동 협회 누리집amiba.net ⓒ 문진수
2008년 금융위기가 터지고 월가 점령 시위(Occupy Wall-Street)가 한참일 때, 미국인들은 경제를 망가뜨린 주범인 투자은행, 상업은행에서 돈을 빼내 '착한' 금융회사로 계좌를 옮기자는 운동(Move Your Money)을 전개했다. 주류금융의 약탈적 금융에 화가 난 미국인들이 새로운 금융 창구로 지목한 곳이 공동체 은행, 지역 신협 등 지방에 뿌리를 둔 회사/기관들이었다.

은행, 화폐, 기금. 주식, 채권, 시민투자 플랫폼에 이르기까지 지역/지방을 살릴 금융 수단은 현존한다. 금융을 사유화한 자들이 만들어 놓은 경로 때문에 새 길을 찾지 못하고 있을 따름이다. 지방에 뿌리를 내리고 지역민을 위해 봉사하는 '진짜배기' 금융 생태계는 언제쯤 만들어질 수 있을까. 삶의 뿌리인 마을과 터전을 살리려는 시민들이 늘어나 금융에 눈을 뜨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세상이 펼쳐질 것이다.
 

문진수(mountain)  사회적금융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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