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플라스틱 협상 부산 타결 무산…"시간 더 필요, 추후 협상 재개" 2. 토대 잃은 문명은 사라진다 3. 이러다가 서울·인천도 영향권... 해수면 상승 어쩌나 4. 금정산 국립공원
5. ‘기후변화 때문에’ 사과 주 생산지, 어떻게 바뀌었나 6. 기후공약평가 재판 후폭풍, 공직선거법 이대로 괜찮나 7. 무해하게 살 수 없다는 죄의식에 대하여 8. 사라지는 마을, 학교…대한민국 '소멸 쇼크' 현장 보고서
9.결국 무산된 부산 플라스틱 합의…‘생산 감축’ 반대한 ‘5적’은 누구? 10. 부산 선언’ 못한 플라스틱회의, 개최국 한국 책임도 크다 11. 언론의 ‘기후 침묵’이 더 문제다 12. 세계 2천여 기후소송 ‘가늠자’…국제재판소, 청문절차 돌입 13. 푸른 잎과 빨간 단풍과 하얀 눈
14. 부산시민공원 내 부산독립운동기념관 설계 공모 당선작 선정 15. 가덕신공항 주거래은행 선정 ‘지역’과 동떨어진 평가 기준 16. 탈원전이야말로 기후운동의 엔진
플라스틱 협상 부산 타결 무산…"시간 더 필요, 추후 협상 재개"
협상委 의장 "일부 문안 합의…소수 쟁점이 완전한 합의 막아"
산유국 입장 고수에 '플라스틱 생산 규제' 등 쟁점 합의 안 돼
1일 부산 벡스코에서 진행 중인 플라스틱 오염 종식 국제협약 제5차 정부 간 협상위원회 전체회의 모습. [AFP=연합뉴스]
플라스틱 오염 종식 국제협약 성안을 위한 협상이 시한인 1일까지 부산에서 타결짓지 못한 채 추후 협상을 재개하기로 했다.이날 오후 9시께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플라스틱 협약 제5차 정부 간 협상위원회 마지막 전체회의에서 협상위를 이끄는 루이스 바야스 발비디에소 의장은 "일부 문안에 대한 합의가 이뤄진 것은 고무적이지만, 소수의 쟁점이 완전한 합의를 이루는 것을 막고 있다는 점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발비디에소 의장은 "쟁점을 효과적으로 해결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밝히면서 "추후 5차 협상위를 재개해 협상을 마무리 짓기로 전반적인 합의가 이뤄졌다"고 언급했다. 또 "부산에서 플라스틱 오염을 종식하기 위한 많은 진전이 이뤄졌다"며 "우리의 일이 완료되기까지 한참 남았기에 공동의 목표를 향해 계속 협력하면서 실용적인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한국 정부 수석대표인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전체회의에서 "플라스틱 오염을 종식하기 위한 법적 구속력 있는 협약을 만든다는 목표를 포기해선 안 된다"며 "우리는 (5차 협상위에서) 합의를 위한 강력한 기반을 구축했으며 이는 모두가 자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조 장관은 "미래세대를 위한 건강한 지구를 만들기 위해 플라스틱 오염이 종식된 세상을 만들자는 우리의 결의를 굳건히 유지하자"고 강조했다.
국제사회는 재작년 3월 플라스틱 오염을 종식하기 위한 법적 구속력 있는 협약을 마련하기로 하고 지금까지 5차례 협상위를 열어 협상을 벌여왔다.
지난달 25일 부산에서 개막한 5차 협상위 첫날 발비디에소 의장이 협상위에 앞서 제시한 3차 제안문을 협상의 기초로 삼기로 예상보다 빠르게 합의되면서 최소 '선언적 협약'이라도 마련될 것이란 기대감이 나왔으나 결국 무산됐다.
'플라스틱 또는 1차 플라스틱 폴리머(화석연료에서 추출한 플라스틱 원료) 생산 규제'와 '유해 플라스틱·화학물질 퇴출', '협약 이행을 위한 재원 마련 방안' 등이 쟁점이었고 이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못했다.
최대 플라스틱 생산국인 중국이 예상보다 전향적 입장을 보인 가운데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 등 산유국이 플라스틱 생산 규제를 극구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협약에 생산 규제 조항을 포함하는 것을 '레드라인'(한계선)으로 규정하고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고 한다. 러시아는 모든 국가가 수용할 수 있는 조항에 집중하자는 논리를 펼친 것으로 전해졌다.
소수 산유국 탓에 협상에 진전이 없자 일각에서는 투표로 정하자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실제로 '협약 체결 후 첫 당사국 총회 때 1차 플라스틱 폴리머 생산을 지속 가능한 수준으로 줄일 전 세계적 목표를 담은 부속서를 채택하자'라는 문구를 넣자는 제안을 지지한 국가가 100여곳에 달했다.
플라스틱은 매년 4억6천만t 이상 생산되며 이 중 절반 이상이 일회용이다. 1950년대부터 생산된 플라스틱을 모두 합치면 90억t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지금껏 생산된 플라스틱의 99%는 화석연료에서 추출한 화학물질로 만들어졌다.폐플라스틱 재활용률은 9%에 그쳐 나머지 91%는 '잘 관리되면' 매립·소각되고 '잘못 관리되면' 자연으로 유출된다.플라스틱이 현대문명을 지탱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다양한 곳에서 사용되기에 플라스틱 협약은 체결 시 유엔기후변화협약처럼 전 인류에게 영향을 주는 환경협약이 될 것이란 기대를 모으고 있다.
연합뉴스
토대 잃은 문명은 사라진다
11월의 난데없는 폭설로 아수라장을 겪은 곳이 많았다. 불안정해진 기후만큼이나 인간세계도 불안정해지고 있다. 그나마 든든하게 기댈 토대가 있다면 이 불안을 안고도 삶을 지속해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큰 불안은 바로 그 토대가 부지불식간에 붕괴되고 있다는 사실에서 온다.
토대(土臺)라는 한자어가 가리키듯 토대의 기본은 ‘토’, 바로 흙이다.전 세계에서 해마다 흙이 240억여t씩 흩어져 사라지고 있다. 전 세계 사람들이 각자 해마다 몇t씩이나 되는 흙을 없애고 있는 셈이다.
개발과 늘어나는 인구를 감당하기 위한 과도한 농업과 같이 흙을 돌보지 않고 침식되게 방치하다 결국 토대를 잃은 문명은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져 갔다. 흙 침식의 문제를 면밀히 들여다본 학자들에 따르면 메소포타미아, 고대 그리스, 고대 로마 등의 유구했던 문명이 하나같이 침식과 토질 고갈로 결국 붕괴되었다. 흙 문제를 알게 된 후에도 당장의 개발과 소비를 위해 흙 돌보기를 외면했던 까닭이다.
지구 표면을 두께 30~90㎝ 정도로 덮고 있는 흙은 새 암석에서 새 흙이 만들어지는 속도와 침식 속도가 균형을 이루는 한 잘 보존되어왔다. 인간이 지구에 등장하기도 전에 여러 미생물들과 풍화작용 등이 손을 보태 그 균형을 이뤄온 것이다. 지렁이는 부엽토 등의 유기물을 흙과 섞은 똥을 만들어 내보내며 유구한 시간 동안 흙이 기름지게 돌봐왔다. 덕분에 비옥해진 땅에서 인간은 농사를 짓고 각자의 문명을 일궈올 수 있었다.
우리는 뉴스 등을 통해 한때 비옥했던 땅이 침식으로 인한 토질 고갈로 황폐해져서 해결할 길 막막해 보이는 빈곤과 분쟁에 시달리며 처참한 삶을 이어가는 얼굴들을 이미 수십년째 보고 있다. 모두 결과적으로 삶의 토대인 흙을 지키지 못해 일어난 일이다.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발전한 과학기술이 마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양 믿고 싶더라도 현실은 인간이 흙을 없애는 문제를 과학기술로 해결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흙, 땅, 식물군 전체는 함께 진화해왔고 이들 사이의 상호 의존성은 흙의 침식과 생성 사이에 이루어지는 균형에 기대 있다. 인류의 생존은 과학기술이 아니라 이 균형에 기대 있는 것이다.
역사가 증명하듯 그 어떤 인간문명도 사람들을 먹여 살리기에 충분한 기름진 땅을 유지하는 만큼만 지속될 수 있다. 인간이 흙을 보호해야 흙이 인간을 지켜줄 수 있다는 뜻이다. 찰스 다윈이 생애 끝에서 낸 책은 어떻게 지렁이가 흙을 만들어내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그는 죽기 직전 해에 이 책을 출간했다. 죽음을 앞둔 이가 남아 있는 생의 에너지를 모두 모아 다급하게 써냈을 만큼 그도 어느새 흙의 중요성을 널리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흙 침식을 흙 생성 속도에 맞추려면 흙을 기계가 아니라 손이 조심스럽게 만져야 한다. 호미를 든 소농들이야말로 흙을 돌보며 농사를 짓는 이들인 셈이다. 여성농부 대다수가 소농이다. 시골의 텃밭을 생각하면 당장 할머니들이 떠오르는 것도 이런 까닭이리라./박이은실 여성학자
이러다가 서울·인천도 영향권... 해수면 상승 어쩌나
국격이 떨어진단 말이 매일 나오는 요즘이다. 민주주의며 언론, 또 경제와 산업이 연일 퇴행을 거듭하며 국민을 한숨짓게 한다. 이 같은 상황에서 모처럼 한국이 세계 1위 상패를 거머쥐었단 소식이 들려왔다. 제29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9)가 열리고 있는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오늘의 화석상' 1위 수상자로 한국이 선정된 것이다.
오늘의 화석상은 전 세계 2000여 개 기후환경 운동단체의 연대조직인 기후행동네트워크가 당사국총회가 열리는 기간에 기후협상을 방해한 국가를 선정해 수여하는 상이다. 인류가 지속 가능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기후위기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는 국제적 합의에도 한국이 화석연료를 중심으로 한 발전에 막대한 공적자금을 들이는 게 수상의 이유로 꼽혔다.
그럴 만도 한 게 한국에선 기후위기와 관련한 논의가 여전히 불편에 민감한 진보주의자들의 구호쯤으로만 여겨진다. 일상을 근본적으로 바꾸려는 노력, 특히 산업과 발전의 영역에서 이윤을 축소하고 지속 가능한 체계를 구축하려는 시도를 사실상 않고 있다. 해수면이 올라 영토가 줄거나 가뭄과 홍수, 산불 등으로 타격을 입은 해외 국가들과 달리 한국이 기상이변으로 인한 피해를 크게 받지 않았단 점도 이 같은 무심함에 영향을 미쳤으리라 풀이된다.
▲콘스틸컷CRFF
우리 아이에게 어떤 세상을 물려주려는가
그러나 한국이 기후위기로부터 더는 안전지대일 수 없다는 이야기가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이제껏 볼 수 없었던 긴 여름과 동남아의 스콜을 연상시키는 국지적 호우, 동남아 열대과일이 반도 안에서 자라고 본래 특산품이던 것들을 더는 제대로 재배하기 어려운 현상이 모두 이와 관련이 있다. 지난 10년간 침식돼 바다가 된 연안 국토가 40만 제곱미터에 육박하고,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수년 내 경기도와 인천, 서울까지도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피해 영향권에 들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비영리연구단체 클라이밋 센트럴(Climate Central)이 꾸준히 공개하고 있는 자료를 그린피스가 가공한 분석에 따르면, 2030년에 이르러 한국 국토의 5%가 물에 잠기고 332만 명이 침수로 인한 피해를 본다고 한다. 그런데 과연 한국인 중 얼마쯤이나 이 같은 기후위기의 심각성에 공감하고 있을까.
기후위기로부터 자유로운 이는 없다. 그러나 그 영향에 보다 큰 타격을 받는 이가 있다. 변화된 세상에서 더 긴 시간을 보내야 할 이,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그로 인한 폐해에 고통받게 될 미래세대가 대표적이다.
소년의 시선으로 지구의 위기에 맞서다
<콘>은 2024년 제작된 유지인 감독의 15분짜리 단편영화다. 세이브더칠드런이 주최한 제10회 아동권리영화제 단편영화 경쟁 섹션에 공식 초청된 이 작품은 아동의 시선에서 바라본 기후위기와 이에 무관심한 기성세대의 대응을 보여준다.
주인공은 7살 소년 민우(김진목 분)다. 저를 끔찍이 위하는 아버지(김정국 분)와 어머니(유재희 분) 슬하에서 자라는 소년에게 더 바랄 게 무엇이 있을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란 그렇지 못해 민우에게도 나름의 열망이며 애환이 있다. 제대로 된 열망과 애환의 형태를 갖추었다고 보기는 어렵겠지만 말이다.
민우는 좀처럼 표정변화도 없고 부모의 관심에도 이렇다 할 반응이 없는 아이다. 그런 모습에 부모는 더욱 애가 타는 듯 민우의 관심을 끌려고 애를 쓰는데, 그 또래 아이들처럼 민우도 유달리 좋아하는 프로그램이 꼭 하나 있다. 핑키라고 불리는 극지방 펭귄이다.
어느 날 만화 한 회차가 민우의 관심을 사로잡는다. 핑키는 늘어난 쓰레기로 제 삶이 엉망이 되었다고 말한다. 떠내려온 쓰레기가 핑키나라를 뒤덮어 편히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일주일 동안 쓰레기를 줄여준 친구에게 '아주 특별한 선물'을 보내주겠다 공약하는 핑키, 그날 민우에겐 또 하나 열망이 피어난다.
쓰레기를 줄이려는 소년
그렇게 민우의 쓰레기 줄이기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베란다에 작은 상자 하나를 마련해 거기에 제가 만든 쓰레기를 담는다. 부모님과 먹은 패스트푸드 포장지를 담는 걸 시작으로, 아이들이 먹다 버린 아이스크림컵이며 쓰다 버린 장난감 따위도 담는다. 계속 녹고 있다는 핑키나라에 경각심을 갖고 매일 먹던 음료조차 좀처럼 마시지 않으려 든다. 현대사회에선 무얼 먹고 마시며 하는 것이 죄다 쓰레기를 배출하는 일이 되지 않던가.
민우의 생일에 부모님이 준비한 깜짝파티는 어떤가. 부모님이 들고 온 케이크 상자며 주변을 장식한 온갖 소품들이 민우의 눈엔 하나하나 쓰레기로 비칠 뿐이다. 한숨 쉬는 아이와 당황한 부모, 아이는 쓰레기를 걱정하고 부모는 아이의 행복을 고민하는 기묘한 상황이 현실에선 좀처럼 찾아볼 길 없는 독특하고 속 깊은 아이의 시선으로 흘러간다.
<콘은 아이의 시선에서 바라본 기후위기의 심각성과 그에 무심한 어른들의 모습을 대조적으로 비춘다. 주어진 일주일 동안 쓰레기를 줄이려 노력하는 민우의 과제와 그 시선에 비친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의 부조화가 보는 이로 하여금 제 삶과 사정을 돌아보도록 이끈다.
▲아동권리영화제포스터CRFF
이 아이 앞에 당당할 수 있는가
공원에서 파는 아이스크림을 먹는 걸 즐기는 민우가 컵 쓰레기를 줄이려 콘을 택하는 모습, 그리고 녹아 흐르는 아이스크림에 더러워지는 옷만 바라보는 부모의 시선을 바라본다. 우리는 우리가 더 깨끗하고 깔끔해지기 위해 대체 세상을 얼마나 더럽히고 있나. 우리가 더 편하고 쾌적해지기 위해 얼마나 많은 화석연료를 태우고 쓰레기를 만들어내는가. 그 결과가 수도권 쓰레기 매립장 부지를 찾지 못하는 현실이며, 오늘의 화석상이란 불명예를 얻는 모습이 아닌가.
주순민 세이브더칠드런 선임 매니저는 "작년 CRFF(아동권리영화제) 수상작 <한 숨>이 기후위기로 인한 아동의 피해자성을 드러내어 현실을 고발했다면, <콘>은 환경을 지키려는 어린이의 일상 모습을 통해 어른들이 구축한 작금의 경제 시스템을 꼬집는다"며 "(아이스크림을) 콘에 먹을지 컵에 먹을지 고민하는 어린이의 질문이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얼마나 심각한 질문이었는지 깨닫게 된다"고 설명했다.
한편 기후위기는 아동에게 심각한 권리 침해일 수밖에 없다. 유엔아동기금은 지난 2021년 '기후위기는 아동권리 위기'란 보고서에서 '아동기후위험지수'를 발표해 경각심을 제고했다. 보고서는 전 세계 아동 22억 명 가운데 무려 10억 명이 위험이 극심한 것으로 분석된 지수 상위 33개 국가에 살고 있는 것으로 평가했다. 이들 33개국은 대부분 저개발국가로, 저들이 배출한 적 없는 온실가스로 인한 실제적 폐해를 마주하고 있다. 오늘의 아동, 곧 미래세대가 그 고통을 지게 될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이야기를 아동의 시선에서 풀어낸 <콘>이 이 시대에 더욱 의미를 갖는 건 바로 이 같은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글김성호 평론가
금정산 국립공원
2006년 필요성이 제기된 부산의 진산 금정산 국립공원 지정 추진이 탄력을 받는다. 금정산 사유지 상당 부분을 소유한 범어사가 전향적 입장을 보이면서다. 2014년 금정산 국립공원 지정을 요구하는 시민 서명운동에 이어 시가 2019년 환경부에 공식 건의했다. 이후 범어사를 비롯해 국립공원 예정 구역에 포함되는 부산 기초지자체 6곳 동래·금정·북·연제·사상·부산진구, 경남도와 양산시, 주민 등과 협의 과정에서 이해관계가 엇갈려 진척이 없다가 답보 상태를 벗어나게 됐다. 금정산 면적은 73.6㎢ . 국·공유지는 18%에 불과하고 사유지가 82%며 이 중 8%가 범어사 소유다.
아직은 갈 길이 멀지만 금정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 1967년 1호 지리산 이후 24번째다. 국립공원은 자연공원법 규정대로 ‘우리나라의 자연 생태계나 자연 및 문화경관을 대표할 만한 지역’이다. 금정산은 2021년 환경부 타당성 조사 결과 전국 국립공원 최상위 수준의 문화자원과 수려한 자연환경을 갖춘 것으로 평가됐다. 국립공원 예정지 규모는 69.8㎢로 다른 국립공원보다 작은 편이지만 영암 월출산이나 대전 계룡산보다는 넓다.
가까이 치고 올라온 아파트 단지나 능선을 타고 넘는 송전 철탑이 눈에 거슬리기는 하나 이를 상쇄하고도 남을 만한 아름다움을 품은 곳이 금정산이다. 소나기가 한바탕 쏟아진 뒤 흰 구름을 걸친 주 능선의 화강암 봉우리들, 때죽나무 꽃이 져 하얗게 융단처럼 깔린 등산로, 오월이면 보라색 구름을 인 듯한 범어사 등나무 군락지, 가을 막바지 느리게 찾아온 단풍으로 황홀한 미륵사 가는 숲길…. 어느 하나를 으뜸으로 고르기 쉽지 않다.
도시철도가 운행되는 대도시 산 가운데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지 않은 몇 안 되는 산 중 하나가 부산 금정산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대전과 충남에 걸친 계룡산이 일찌감치 1968년 지정됐고, 1983년 서울·경기의 북한산에 이어 2012년 광주·전남 무등산과 2023년 대구·경북 팔공산이 지정됐다. 이들 대도시 산이 도시 경계부에 있는 것과 달리 금정산은 도시의 중심부까지 자리한 산이기에 더욱 큰 생태 가치를 지닌다.
전국 23개 국립공원은 유형에 따라 산악형(18개), 해상·해안형(4개), 사적형(1개) 공원으로 관리·운영된다. 금정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된다면 도심형 국립공원이라는 새로운 유형의 탄생을 알리게 된다. 시민으로서는 집을 나서면 눈앞에 국립공원이 있는 ‘국세권’의 자부심을 느끼게 되리라 기대한다.
이진규 국제 편집국 부국장
‘기후변화 때문에’ 사과 주 생산지, 어떻게 바뀌었나
사과 다축 재배가 진행 중인 사과밭. 충남도 제공
기후변화 영향으로 사과 주 생산지가 북상하면서 강원도 내 사과 재배면적이 최근 10여년간 약 7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최대 사과 생산지인 경북지역의 사과 재배 농가 수는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2일 농협중앙회가 발간한 ‘사과 주산지와 품종 변화 분석’ 보고서를 보면, 강원도 내 사과 재배면적은 2010년 216ha(헥타르·1㏊는 1만㎡)에서 지난해 1679ha로 677% 증가했다.
반면 기존의 주요 산지인 경북지역의 사과 재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특히 농가 수는 2010년 2만3198호에서 지난해 1만8164호로 22% 줄었다.
다만 경북은 여전히 국내 최대 사과 산지로, 사과 생산량(지난해 기준 약 24만5000t)과 농가 수, 재배면적(2만46ha)에서 모두 전체의 50% 이상을 차지한다. 지난해 농협 기준으로 사과 출하량을 보면, 경북 영주·청송·안동·봉화, 경남 거창 등 5개 지역의 출하량이 국내 전체의 48%를 차지했다.
사과 품종의 변화도 눈에 띈다. 품종별로 보면 후지, 미얀마, 홍로, 아오리(쓰가루), 미시마 등 5개 품종이 지난해 농협 출하량과 도매시장 거래량에서 각각 93%, 92%를 차지했다. 이 중 전통 품종인 후지의 점유율은 감소세지만, 후지의 개량 품종인 미얀마 거래는 늘고 있다.
농협중앙회 관계자는 “만생종(10월 하순 이후 출하)인 미얀마는 후지의 우성인자만 고루 담고 있는 품종으로, 당도가 높고 육질이 치밀해 소비자 선호도가 높다”며 “미얀마의 시장 점유율 상승이 기후변화 영향 때문인지는 추가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노란색의 중생종 사과인 시나노골드 등 기존 5대 품종 안에 들지는 않지만 기후 변화와 농업 환경 변화에 따라 새롭게 주목받는 신품종 거래량도 늘고 있다고 농협중앙회는 설명했다.
농협중앙회와 농촌진흥청 등에 따르면 사과는 연평균 기온 8~11도(생육기 평균기온 15~18도)의 서늘한 기온에서 잘 자란다. 우리나라 과일 재배 농가의 16.8%를 차지하고 재배면적도 가장 넓은 작목이다.
1981년부터 2010년 사이엔 전국 어디에서나 사과를 재배했지만, 2030년대에는 강원과 충북 등 일부 지역에서만 재배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속적인 아열대 기후화로 인해 2070년대엔 강원도 일부 지역에서만 사과 재배가 가능할 것이란 전망마저 나오고 있다. 이에 농림축산식품부도 정선, 양구, 홍천, 영월, 평창 등 강원 5대 사과 산지 재배면적을 지난해 931㏊에서 2030년 2000㏊로 확대할 계획이다.
농협중앙회 관계자는 “기후변화로 인해 사과 생산지 변화가 가속화되고 있다”며 “사과 재배 농가를 대상으로 품종 개발과 작물 전환 등 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경향
기후공약평가 재판 후폭풍, 공직선거법 이대로 괜찮나
선관위도 시대 변화에 문제 인식... 개정 의견 국회가 묵살
▲창원기후위기비상행동이 4월 8일 창원시의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창원지역 총선 후보 기후 공약 평가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경남도민일보
현행 공직선거법을 두고 시대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국민 알권리와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한다는 것이다. '선거 출마자 서열화 금지' 조항이 대표적으로 거론된다.
경남지역 환경단체 활동가들은 올해 4월 치러진 22대 총선을 앞두고 등급(우수·보통·미흡·낙제)을 매겨 창원지역 국회의원 선거 출마자 기후공약을 발표했다가 재판에 넘겨졌다. 법정에 선 이는 변기수·이상용 창원기후행동 공동대표, 박종권 경남기후위기비상행동 공동대표다. 이들 혐의는 공직선거법 위반. 이 조항은 후보자를 상대로 점수나 순위 같은 등급을 정하는 서열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위반하면 2년 이하 징역 또는 400만 원 이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세 사람은 반발하며 "이왕 재판받는 거 국민에게 상식적 판단을 받아보겠다"며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관련 사안은 법리 논쟁이므로 국민참여재판은 맞지 않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피고인들은 즉시 항고, 고등법원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박종권 경남기후위기비상행동 공동대표는 "1등부터 10등까지 줄줄이 등수를 매기는 게 서열화지, 그룹으로 나눠 등급을 매기는 것은 서열화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공약을 비교 평가해 발표하는 것에 대해 세 차례나 선관위에 질의했다"며 "선관위도 처음에는 '등수를 매겨 발표하는 게 서열화'라며 '우수 후보' '낙제 후보' 등 그룹으로 나눠 알리는 것은 괜찮다고 했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다 기자회견 직전 '등급을 매기는 것도 안 된다'고 알려와서 선관위 사람들도 확실한 해석이 없구나' 싶었다"며 "선거법 서열화 조항은 과거부터 논란이 있었으니 이참에 다시 문제를 공론화해 국민에게 알릴 수 있는 기회라고 여겨 발표를 강행했다"고 밝혔다.
변기수 창원기후행동 공동대표는 "우열을 가리면 안 된다는 조항을 들면 시민단체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개인을 비방하는 건 문제가 되겠지만 그게 아니라 공익적 발표였다"며 "이 부분을 재판부에 집중적으로 이야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당사자뿐 아니라 도내 시민단체 역시 같은 문제 의식을 나타내고 있다. 서열화 금지를 독소 조항으로 보고 당장 삭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경희 일본군위안부할머니와함께하는마창진시민모임 상임대표는 "유권자 알권리를 제한하고 시민단체 활동을 위축시키는 사법 횡포가 아닐 수 없다"며 "선거 때 유권자들이 후보를 자세히 알아야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는 건데 시민운동이 지금보다 더 활발하게 일어나도록 사법부가 돕기는커녕 작정하고 위축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국회가 나서 서열화 금지 조항을 아예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서열화 금지에 문제 의식을 두고 있다. 정책·공약 비교평가 서열화를 허용하자는 공직선거법 개정의견을 2013·2016·2021·2023년에 각각 국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국회가 이를 거부해 법률개정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홍채욱 변호사는 "과도하게 국민 기본권을 침해·제한하는 것은 문제"라며 "위헌법률심판을 신청한 상황이다. 받아들여지면 헌법재판소가 위법 여부를 가리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경남도민일보 최석환(domin)
무해하게 살 수 없다는 죄의식에 대하여
ⓒ최산호
언젠가 동해 바닷가에서 김을 뜯는 해녀를 보았다. 그이는 찬물에 고무장화 발을 담그며 바위에 붙은 김을 양은 주전자 뚜껑으로 긁어냈다. 같이 지켜보던 한 사내가 내게 설명했다.
“김도 광합성한다는 거 모르셨죠? 다 살자고 기를 씁니다.”
〈채식주의자〉는 광합성에 대한 이야기다. 무해하고 유익한 광합성을 할 수 없는, 그리하여 고통받는 좌절에 관한 소설이다. 이 소설을 전에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그 착각의 이유는 작가의 말에 나온다.
“10년 전의 이른 봄, ‘내 여자의 열매’라는 단편소설을 썼다. 한 여자가 아파트 베란다에서 식물이 되고, 함께 살던 남자가 그녀를 화분에 심는 이야기였다…(2007년 초판 작가의 말을 2022년 판에 다시 실음).” 그 소설을 읽을 때 나는 아주 몰입했다.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식물이 되는, 화분에 심어져 살아가는 이야기에 어떤 이질감을 느낄 수 없었다. 카프카의 주인공에 우리가 놀라지 않은 것처럼. 작가 한강의 솜씨에 매료된다는 건 그런 점도 있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고정관념을 흔들면서 하고 싶은 얘기를 꺼내는 방식. 그게 좋은 이야기의 힘일 것이다.
집에 화분이 딱 하나 있다. 15년 전 개업 선물로 누가 주었던 화분. 버리지 못하고 집 구석에 두었다. 죽지 않고 녀석은 살아남았다. 꼭 머리꼭지에 커다란 잎 하나만 남겨두고, 아래 마디의 잎은 다 떨군다. 양분이 없으니 스스로 말라가며 잎을 포기하는 것일까. 영혜의 거식까지는 아니지만 슬프고 고독한 어느 남방 출신 고무나무(같은 녀석). 고고해 보이지만 초라한 싸구려 화분. 주인에게 이름도 얻지 못한 무명의 목본 한 꼬챙이. 길을 걷다가 화분 영양제라는 것을 사서 묻어주어 보았다. 녀석은 고개를 바짝 세우고, 여전히 방 한구석에 잎 하나로만 있다. 광합성을 한다. 마르고 윤기 없는 몸으로 그리 살아 있다.
고기 한 점이 달리 보이는 날
우리는 고기 권하는 시대에 산다. 오랜만에 친구가 전화해서 샐러드 한 그릇 하자고는 않는다, 대개는. 부장님도 다음 주에 고기나 굽지, 하신다. 고기는 기름지고 밀도가 가득한 조직이며 잠시도 내버려두지 않고 불조절하면서 적절한 굽기를 고심해야 하는 존재다. 심지어 구울 때 불이 붙으며, 영혜의 아버지처럼 억지로 먹일 때 폭력성이 더 또렷해지는 원색의 유기물이다. 도축의 비명소리에서 원만한 감칠맛까지 한 점에 다 깃들어 있다.
한때 고기를 구우면서 고기는 먹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식당 부엌에서 나는 하루 저녁에 50인분쯤의 한우 등심이나 안심 스테이크를 구웠다. 세심하게, ‘미디엄 레어와 레어 사이’로 나온 주문도 처리했다. ‘이븐하게’ 굽는 건 당연한 요리사의 의무이고. 요리사는 파는 음식을 먹어보면서 이해한다. 반지하 단칸방에 살면서 5성급 호텔 주방에 일하는 다수의 요리사들은, 자기 본래의 계급에선 평생 먹을 일이 없는 고기(송아지 등심이거나 3개월짜리 어린 양의 새끼손가락만 한 갈비쪽 같은)를 굽고 때때로 맛본다. 맛본 것이 팔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맛보기 위해 입에 넣은 고기를 우물거리고 최선을 다해 씹어서 그 요리를 맛볼 손님의 처지가 되려고 했다. 그러자면 달콤한 육즙이 충분히 우러나오게 오래 씹게 되는데 그렇게 짓이긴 소시지처럼 된 살점은 입 밖으로 뱉어내도 육즙이 혀의 돌기와 입안 점막 구석구석에 오래 여운을 남겼다. 맛있다는 느낌과 채식주의의 결벽 사이에서 나는 늘 흔들렸다. 고기는 그처럼 무서운 놈이다. 배교나 배신을 하고도 남을. 어쩌다 고깃집에 회식하러 가면 된장찌개에 밥을 말아 안주 삼았다. 고깃집 찌개에는 틀림없이 고깃국물이 들어가지만 나는 애써 모른 척했다.
영혜는 자꾸 꿈 얘기를 한다. 꿈이란 것이 본디 사실이 아니며 명료하지 않은 상징이거니와 답할 수 없는 답을 말하기에 적절하다. 이 원고를 쓰려고 준비하며 나도 꿈을 꾸었다. 원고에 관한 꿈은 대개 악몽이다. 어딘가에 채식주의자 식당을 차렸다. 첫 손님으로 소와 돼지들이 들어와 앉는 게 아닌가. 두부를 주었더니 걷어차고, 고기를 내놓으라고 소리친다. 황급히 주방에 들어가서 냉장고를 열었다. 쇠고리에 그 손님들이 걸려 있었다. 목은 죄다 달아나고 없어진 채로.
〈채식주의자〉는 쉬이 읽힌다. 시간상으론 그렇다. 목에 무엇이 걸리고 불편해지면 오래 걸린다. 내가 갖고 있는 책은 가방에 실려 오랫동안 출퇴근하느라 책 등에 흠집이 났다. 다 읽어서 속시원하지 않고, 가물 없는 죄의식이 묵은 담요처럼 나를 누른다. 당신도 그럴 것 같다. 중편 셋이 연작이 되어 장편이 되는데 사이사이 작가의 곤란과 애씀이 배어 있다. 선선히 길을 열고 시작하는 소설이 두 번째 편으로 가서 판을 다 뒤집고 세 번째 편은 차라리 책장을 덮고 싶어졌다. 촘촘한 취재가 빛난 장이기도 해서, 역시 힘센 소설은 목격과 상상의 결합물이라는 걸 확인시켜준다.
서양에는 돈도 권력도 있는, 어쩌면 퀘이커 교도 같은 순정파 도살자들이 있다. 남의 손을 빌려 짐승 고기를 먹는 대신, 날을 잡아 직접 칼을 든다. 속은 모르겠으나 그건 쾌락 우선의 사냥과는 다른 결이라 한다. 희생물을 내 손으로 잡아서 그 고단함과 고통을 겪고, 감사를 나누는 일이라 한다. 구약 성경에 나와 있듯이, 아니 인류 역사 이전인 선사에 희생양을 잡던 거룩함을 체험하는 것일지도.
그런 일의 장점은 닭 목 하나 비틀 때도 큰 결심이 필요하듯 번다하고 힘든 도살의 과정을 가능하면 피하고 싶은 인간의 심리가 작동된다는 점이다. 덜 잡고 덜 먹는 게 맞다면. 오늘 우리 입에 들어온 모든 고기, 아니 식물까지도 모든 생물은 누군가의 대리로 가능한 결과다. 고기 한 점이 달리 보이는 날이 되기를. 레퀴엠은 안녕.
박찬일 (셰프) 시사인
사라지는 마을, 학교…대한민국 '소멸 쇼크' 현장 보고서
최근 5년 폐교 수 강원 최다…서울·경기 25곳 등 수도권도 심각
강원 명파분교의 마지막 졸업생, 지역 소멸 가속화
30년 만에 찾아온 아기, 마을의 마지막 희망 될까
강원도 최북단에 위치한 대진초등학교 명파분교의 전교생은 1명이다. 김시우(13)군이 마지막 학생으로 남아 학교를 지키고 있다.지난 6년 동안 이 학교를 지킨 유일한 학생인 김 군은, 3년 전부터 그나마 남아있던 서너명의 학생들이 모두 시내권으로 전학을 가면서 홀로 학교에서 공부하고 급식을 먹으며 지낸다. 김 군을 끝으로 내년 1월 명파분교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김 군은 "1학년 때는 누나와 형들이 있었지만 5학년 때부터 혼자돼 외롭고 힘들었다"며 "하지만 지금은 이 학교가 저만의 특별한 추억으로 남게 됐다"고 말했다.
"졸업 후 학교가 폐교되어도 이 학교가 잊히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게 김 군의 바람이다.
박지혜 담임교사도 김 군과 함께 명파분교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있다.
2년 반 동안 학생과 교사 둘만의 교실을 꾸려온 박 교사는 "묵묵히 2년을 보낸 마지막 졸업생은 이 학교의 역사를 지킨 주인공이다"라며 "처음에는 친구 없는 학교생활로 미안했지만 시간이 흐를 수록 익숙해져 더욱 단단한 사이가 됐다"고 말했다.
마을 주민들은 명파분교의 폐교는 단순히 학교가 문을 닫는 게 아니라 마을 쇠락의 상징이라고 입을 모았다.주민 김모(84) 씨는 "옛날엔 금강산 관광객들이 넘쳐났고 줄지어 들어온 차들이 꽉 들어찼다"면서 "젊은 사람들도 이 동네 들어와서 장사도 하고, 돈 벌 맛이 났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지금은 빈집이 넘쳐나고 어린애 울음소리를 못 들은지 오래"라고 김씨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40년전 이 동네로 이사 온 이모(72)씨도 "젊은 사람이 없으니 다 노인들이고 사십대가 가장 젊어 적막하다, 나 죽을 때까지는 이 마을이 없어지지 않겠냐"며 쓴 웃음을 지었다.문을 닫는 학교의 이야기가 과연 지역만의 문제일까? 도심으로까지 번진 폐교의 불씨는 이미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정성국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5년간(2020~2024년) 시도별 초·중등 폐교 현황'에 따르면 전국에서 137개 학교가 문을 닫았다. 초등학교 101곳, 중학교 30곳, 고등학교 6곳으로 초등학교 비율이 70%을 넘었다. 문 닫은 학교의 81.8%(112곳)가 비수도권에 있는 학교로 강원이 22곳으로 가장 많고 경북도 20곳이었다. 수도권도 서울 6곳, 경기 17곳, 인천 2곳 등 25개교(18.2%)가 폐교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출생·사망 통계'와 '2023년 12월 인구동향'을 보면 지난해 출생아 수는 23만명으로 전년(24만9200명)보다 7.7% 줄었다. 합계출산율도 2008년부터 지속적으로 감소하기 시작했으며 2023년에는 0.72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에 반해 통계청의 '2024 고령자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고령 인구는 993만8천명으로 전체의 19.2%를 차지했다. 내년이면 인구 5명 중 1명이 고령인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전망이다.
조영태 서울대 교수(서울대 인구정책연구센터장)는 "인구 정책은 중장기적 과제이면서 종합적이고 장기적인 판단이 필요했는데, 그동안은 '이거 하나면 돼'라는 식으로 특정 영역에만 집착했다"고 꼬집었다.
조 교수는 이어 "특히 지역 불균형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정책은 사실상 전무했다"며 "우리나라의 초저출산이 발생하게 된 근본적 원인은 궁극적으로 서울, 수도권으로의 집중이고 여성의 일자리가 수도권에 너무 집중된 현실도 한 원인"이라고 진단했다./강원CBS 진유정 기자
결국 무산된 부산 플라스틱 합의…‘생산 감축’ 반대한 ‘5적’은 누구?
루이스 바야스 발디비에소 의장(오른쪽)이 지난 1일 부산에서 열린 플라스틱 오염에 관한 정부간협상위원회 제5차 회의 본회의 시작에 앞서 잉거 안데르센 유엔환경계획(UNEP) 집행이사와 대화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국제 플라스틱 협약을 만들기 위한 유엔 정부간협상위원회 5차 회의(INC-5)가 끝내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무산됐다. 산유국들의 거센 반대와 석유화학업계의 로비, 주최국인 한국을 비롯해 플라스틱 세계 1·2위 생산국인 중국과 미국의 모호한 태도가 낳은 결과란 지적이 나온다.
전 지구적 플라스틱 오염을 종식한다는 목적으로 2022년 3월 시작한 국제 플라스틱 협약 회의는 애초 다섯 차례로 계획했으며, 마지막 회의인 이번 부산 회의에서 협약을 성안한다는 계획이었다.
마지막 회의라, 핵심 쟁점인 1차 폴리머(플라스틱의 원료) 생산 감축 여부를 둘러싼 대결 구도가 그 어느 때보다 명확히 드러났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 쿠웨이트, 이란 등의 산유국들은 회의 내내 반대와 방해를 일삼아 결국 합의에 이르지 못한 주된 원인을 제공했다. 통상 국제회의의 의사결정은 만장일치를 추구하기 때문에, ‘생산 감축’을 지지한 나라가 100여개로 전체 참여국의 절반을 넘겼는데도 이들의 반대를 넘어서지 못한 것이다.
산유국들은 ‘생산이 아니라 오염이 문제’이며, ‘해결책은 기술에 있다’는 태도를 보였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는 1차 폴리머 생산 규제 조항을 일종의 ‘마지노선’으로 정해 절대 수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프랑스 대표는 가디언에 사우디아라비아가 속한 그룹이 “계속 회의를 방해하고 있다”고 했고, 르완대 대표는 “소수의 국가들이 진정한 변화를 이끌어내는데 필요한 조치를 지지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협상을 지켜본 그린피스 관계자는 한겨레에 산유국들이 “이미 합의가 다 된 부분에 문제제기를 하고, 각국 의견을 절충해 만든 의장의 새로운 제안서가 아닌 이전의 초안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는 등 끊임없이 회의를 지연시켰다”고 전했다.
이번 회의엔 또 플라스틱 산업계 로비스트가 유럽연합이나 개최국인 한국 대표단 수보다도 많아, 회의 전반에 이들의 입김이 작용했을 것이란 지적이 나왔다. 국제환경법센터(CIEL) 분석을 보면, 이번 회의엔 220명의 화석연료·석유화학 업계 로비스트가 참석했는데, 이는 지난 4월 캐나다에서 열린 4차 회의의 196명보다 12%나 늘어난 것이다. 이는 유럽연합(191명)이나 한국(140명)보다 많은 규모로, 태평양 소규모 섬 개발도상국(PSID)의 대표 89명을 압도했다.
회의 개최국인 우리나라 정부는 소극적인 구실로 비판을 받았다. 우리나라는 ‘강력한 협약을 지지하는 우호국연합’(HAC)에 속해있으면서도 지난 회의 때 플라스틱의 생산 감축을 촉구한 ‘부산으로 가는 다리’ 선언에 참여하지 않았고, 이번 회의 때에도 파나마가 주도해 100여개국이 참여한 ‘생산 감축 지지’ 성명에 참여하지 않았다. 회의 초반 지지부진한 협상을 타개하기 위해 개최국으로서 중재안을 제시하기도 했지만 그리 주목 받지 못했다. 생산감축 등 규제에 대한 기준과 지침을 마련하되 관련 정책은 당사국들이 자율적으로 하자는 것을 뼈대로 삼은, 타협적인 제안이었다. 우리 정부는 또 개최국으로서 충분한 회의 공간을 확보하지 못해 환경단체 등 참관인들이 회의장에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을 만드는 등 진행상의 문제를 노출하기도 했다.
세계 플라스틱 사용량 추이(왼쪽)와 플라스틱 수명주기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 비중.
협상 초반 유화적 태도를 보였던 중국도 정작 회의 기간 중엔 별다른 구실을 하지 않았다. 각각 세계 1위, 3위의 1차 폴리머 생산국인 중국과 인도는 ‘1차 폴리머 생산 관리’ 내용이 담긴 안으로 회의를 시작하는 데 동의했지만, 끝내 생산 감축에 소극적 태도를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인도 일간 힌두스탄타임스는 “인도와 중국을 포함한 일부 개발도상국들이 1차 폴리머 생산을 억제하는데 반대하며 폐기물 관리에 집중하고자 했다”며 “폴리머 생산을 규제하는 어떤 조치도 지원할 수 없다. 이는 더 큰 개발 권리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는 인도 대표단의 전체회의 발언을 소개했다. 이란 대표 역시 “플라스틱 오염이란 이름으로 개도국에 대한 처벌적 접근을 해선 안 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세계 2위의 1차 폴리머 생산국인 미국 역시 시종일관 모호한 태도였다. 회의에 앞서 바이든 행정부는 “플라스틱 오염을 줄이는 더 광범위한 목표를 지지하지만, 의무적 생산 제한에는 반대한다”고 밝혔다. 그런데 워싱턴포스트는 익명을 요구한 한 아프리카 정부 대표의 말을 인용해 “트럼프가 백악관으로 복귀하면 워싱턴(미국 정부)이 플라스틱 협약에 더 적대적이 될 것을 미국 대표단이 우려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해마다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플라스틱은 4억5천만톤가량으로 이중 3억5천만톤이 폐기물로 배출된다. 폐기물은 9%만 재활용될 뿐 91%는 소각되거나 매립장으로 보내져 환경을 오염시킨다. 유엔환경계획은 플라스틱에 사용되는 1만6천종이 넘는 화학물질 중 4분의 1이 인류의 건강과 안전에 위협이 되는 물질로 본다. 플라스틱의 원료인 1차 폴리머의 주요 5대 생산국은 중국, 미국, 인도, 한국, 사우디아라비아다.
부산 회의가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종료된 뒤인 2일, 파나마 수석대표인 후안 카를로스 몬테레이 고메스는 “우리는 여기서 (생산 감축을 포함하지 않는) ‘약한 조약’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앞으로도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며, 이번 회담이 “도덕적으로 실패했다. 역사가 우리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부산 선언’ 못한 플라스틱회의, 개최국 한국 책임도 크다
1일 부산에서 폐막한 유엔 국제 플라스틱 협약 5차 정부간 협상위원회 회의에서 각국 대표들이 발언하고 있다. 단상에 ‘플라스틱을 줄여야 생명이 살아난다’는 표어가 걸려 있다. AP 연합뉴스
부산에서 열린 유엔 국제 플라스틱 협약 정부 간 협상회의에서 플라스틱 감축을 위한 합의문 도출이 무산됐다. 의장인 에콰도르 외교관 루이스 바야스 발디비에소는 1일 “일부 문안 합의가 이뤄진 것은 고무적이지만 소수의 쟁점이 완전한 합의를 이루는 것을 막고 있다”며 합의 실패를 선언했다. 이로써 2022년 유엔 환경총회 결정에 따라 2024년 말까지 플라스틱 오염 대응 국제협약을 만들려고 한 국제사회의 노력은 결실을 맺지 못했다. 178개국이 3년 가까이 이어온 회의에서 인류와 지구 생태계를 위협하는 플라스틱 문제에 대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니 실망스럽다.
이견이 좁혀지지 않은 쟁점은 플라스틱 원료물질인 폴리머 생산 규제였다. 플라스틱 오염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생산 단계부터 감축해야 한다는 소비국들과 폐기물 관리를 잘하면 된다는 생산국들이 맞선 결과였다. 노르웨이 같은 유럽 국가들은 물론 르완다처럼 폐기물로 고통받는 100여개 국가가 생산 감축을 주장했다. 반대한 나라는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 같은 산유국들이 많았지만, 플라스틱 1위 생산국이자 산유국인 미국의 지지 유보가 결정적이었다. 결국 화석연료 산업계의 뜻대로 된 것이다.
이번 마지막 ‘정부간협상위’ 개최국인 한국이 소극적 태도를 취한 것도 유감스럽다. 한국은 생산자 책임 재활용제도에 대해 적극 발언하기는 했지만, 플라스틱 생산 감축, 유해화학물질 퇴출, 협약 이행을 위한 별도 재정 마련 등 핵심 현안은 지지하지 않았다. 화석연료 산업계의 관점에서 접근한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경제안보점검회의에서 기후변화 대응에 부정적인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만큼 한국 석유화학 업계가 되살아날 것이라고 기대를 표한 게 단적이다.
전 세계에서 매년 생산된 플라스틱 4억5000만t 중 3억5000만t이 버려지는데 재활용률은 9%에 그친다. 25% 정도가 강과 바다에 투기되고 나머지도 대부분 매립·소각되며 독성 오염원, 온실가스가 된다. 현 추세대로라면 2060년엔 플라스틱 생산량은 지금의 3배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편리함에 도취돼 대량소비에 무감각해진 소비자도 각성해야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소비를 조장하는 대량생산 체제를 제어하는 것과 함께 가야 한다. 이번에 합의가 무산됐다고 포기할 수는 없다. 이대로라면 공멸밖에 없기 때문이다./경향 사설
언론의 ‘기후 침묵’이 더 문제다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제29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9)가 지난주 막을 내렸다. ‘기후총회’란 위상에 걸맞지 않게 성과는 초라했다. 새로운 기후재원 조성이 핵심 의제였는데, 선진국들이 꽁무니를 빼면서 ‘반쪽 합의’에 그쳤기 때문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전세계적으로 기후위기 대응 동력이 약화해온 상황이니 어느 정도 예고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다시 한번 무기력을 드러낸 현 기후체제의 한계 못지않게 실망스러웠던 건 국내 언론의 ‘과소 보도’다. COP29 회의 기간 내내 국내 언론의 주요 지면에선 총회 소식을 전하는 기사를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총회 현장에 취재 인력을 보낸 언론사가 한겨레와 세계일보 단 두곳에 불과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국내 언론의 ‘기후 침묵’은 작년, 재작년 총회 때와 견줘도 더욱 심해진 것 같다.
국내 언론계에서 기후위기 보도는 가성비 떨어지는 아이템으로 여겨진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긴 하다. 우선 기후변화는 장기간에 걸쳐 서서히 이뤄진다. 미래에 우리에게 다가올 운명을 다루는 ‘가능성의 영역’이기도 하다.(기후 과학자들은 어떤 조건일 경우 몇 년 안에 몇 퍼센트의 확률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식으로 기후위기를 예측한다.) 이러니 ‘발등에 떨어진 불’이 아니라 ‘강 건너 불’로 취급되기 쉽다.
여러 문제가 얽힌 기후위기 이슈를 온전히 이해해서 정확하게 대중에게 전달하려면 과학 지식도 필요하다. 당연히 기삿거리를 찾기도 기사를 쓰기도 어렵다. ‘새로운 게 뭐냐’를 따지는 ‘정통’ 언론 문법으로는, 기사 가치를 후하게 쳐주기 어렵다. 기후 측면에선 중요한 사안도 ‘기사가 안 되는’ 일이 흔하다.
더욱이 한국은 따끈따끈한 정치·사회 이슈가 넘치는 나라다. ‘다이내믹 코리아’ 아닌가. 특히 여의도와 용산은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새로운 기삿거리를 쏟아낸다. 대중의 반응도 즉각적이다. 그러니 복잡하기만 하고 주목도 받지 못하는 기후 이슈에 자원을 투입하는 것은 남는 장사가 아니다. 국외에서 열리는 기후총회에 취재 인력을 보낼 유인이 생길 리가 없다.
그런데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든다. 독자들이 기후위기에 관심이 없다는 통념은 정말 맞는 걸까? 혹시 기후위기 이슈를 외면하려는 핑계는 아닐까? 2년 전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시민 2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기후위기 및 기후위기 보도에 대한 인식 조사’ 결과는 자못 흥미롭다.
시민들은 일반 시사 이슈(87.1%)보다 기후변화 이슈(89.7%)에 관심이 더 많았다. 전체의 76.6%가 기후변화 관련 뉴스나 정보에 주목하고 있다고 답했으며, 기후변화 보도에 만족하지 않는다는 비율이 60.6%나 됐다. 기후변화 보도를 거의 보지 않는다고 답한 응답자들에게 그 이유를 물었더니 절반 이상(51.8%)이 ‘기후변화 보도가 눈에 띄지 않아서’를 꼽았다. 전체의 60.6%가 기후변화 관련 보도량이 부족하다고 답했다. 문제는 독자의 무관심이 아니라 언론의 ‘과소 보도’라는 얘기다.
더욱 놀라운 것은 시민들의 수용성이다. 기후변화 관련 정보를 접한 뒤 관심도와 행동에 변화가 생겼다는 응답자가 전체의 54.1%나 됐다. 이들 가운데 76.2%는 ‘일상적인 습관을 개선하게 됐다’고 답했다. 언론이 기후변화에 대해 적극적으로 보도하면 시민의 인식과 행동에 변화를 불러올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조사 결과는 언론의 본령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중요한 사안인데도 외면을 받는다면 그건 독자를 탓할 일이 아니다.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를 쉽고 친절하게 전달해 ‘읽히는 아이템’으로 만드는 것은 언론의 책무다. 기후위기처럼 인류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언론은 기후위기를 어떻게 보도해야 할까. 기후위기·미디어 전문가들은 시민의 일상 차원에서 기후위기를 재구성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와 이웃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문제로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언론재단의 인식 조사에서도 시민들은 가장 필요한 보도로 ‘기후변화에 개인이 일상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실천방안을 다룬 기사’ ‘기후변화 문제를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쉽고 친절하게 설명하는 기사’ 등을 꼽았다.
기후 전문 국제언론단체인 ‘커버링 클라이밋 나우’가 지난해 2월 발표한 ‘기후저널리즘 가이드라인’은 ‘독자를 파악하라’는 조언으로 시작한다. 독자가 공감할 수 있는 기사를 쓰려면 독자가 기후변화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언론이 귀담아들어야 할 말이다.
이종규 | 저널리즘책무실장 jklee@hani.co.kr
세계 2천여 기후소송 ‘가늠자’…국제재판소, 청문절차 돌입
11일간 98개국 참여 ‘사상 최대’
세계 기후 소송 법적 근거로 영향
지난 2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국제사법재판소(ICJ)에서 나와프 살람 재판장(오른쪽 넷째)이 발언하고 있다. 헤이그/AP 연합뉴스
전세계 98개국이 참여하는,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기후 재판’이 시작됐다. 결과가 나오면 전세계에서 진행 중인 2천여건의 기후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국제사법재판소(ICJ)는 지난 2일(현지시각) 기후변화와 관련해 각국이 어떤 법적 책임을 지는지 따지는 공개 청문 절차에 들어갔다. 오는 13일까지 진행되는 청문회엔 국제사법재판소 역사상 가장 많은 98개 나라와 12개 국제기관이 출석해 의견을 밝힌다. 재판은 지난해 3월 기후변화 대처에 대한 각국의 의무를 판단해달라는 태평양 도서국 바누아투의 요청을 유엔이 승인해 이뤄졌다. 첫날 바누아투를 비롯해 남아프리카공화국, 알바니아, 독일, 사우디아라비아 등의 대표단이 발언했고, 한국도 둘째 날인 3일 오후 발언한다. 나라들뿐 아니라 석유수출국기구(OPEC), 세계보건기구(WHO), 국제자연보전연맹(IUCN) 등 국제기구·단체들도 참여한다.
첫 발언자로 나선 바누아투의 기후변화·환경 특사 랠프 레겐바누는 “국내법에 따른 구제책만으론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 법정에 서게 됐다”고 강조했다. 섬나라 연합기구 ‘멜라네시아 스피어헤드 그룹’(MSG)을 대표하기도 한 그는 “온실가스 배출의 대부분은 소수의 나라들이 발생시킨 것인데도, 정작 큰 피해를 겪는 건 나의 조국을 포함한 나라들”이라며 “오늘날 우리는 우리 탓이 아닌 위기의 최전선에 서 있다”고 호소했다.
이 청문회는 2019년 피지의 대학생들과 솔로몬제도 학생단체 ‘기후변화에 맞서 싸우는 태평양 섬 학생들’(PISFCC)이 벌여온 캠페인에서 시작됐다. 해수면 상승의 직접 피해를 받는 바누아투 정부가 이 제안을 받아 국제사법재판소에 판단을 구했고, 지난해 3월 유엔의 77차 총회에서 관련 결의안이 표결 없이 통과됐다. 당시 미국은 ‘기후변화 대응에 효과가 있는 것은 국제사법체제가 아닌 외교’라며 결의안을 지지하지 않았다.
지난 2일(현지시각) 네덜란드 헤이그의 국제사법재판소(ICJ) 앞에서 기후운동가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헤이그/EPA 연합뉴스
청문회 첫날 발언한 나라들 사이에선 의견이 갈렸다. 바누아투와 저개발국가들은 유엔 기후변화협약의 틀을 넘는 배상과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 주장했지만, 독일과 사우디아라비아 등은 법적 책임을 협약의 틀 내로 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른 참여국처럼 한국 역시 지난 3월 서면 의견서를 냈는데, 환경부는 “‘선진국들의 법적 책임이 성립한다고 보긴 어렵다’는 내용”이 담겼다고 한겨레에 밝혔다. 국제사법재판소는 기후변화와 국제법에 관한 군소도서국가위원회(COSIS), 국제자연보전연맹 등으로부터도 의견서를 받았고, 지난달 26일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협의체(IPCC) 보고서 저자들과도 만나 관련 설명을 들었다.
청문 절차가 끝난 뒤 국제사법재판소는 ‘권고적 의견’을 내놓게 된다. “온실가스의 인위적 배출로부터 기후변화와 다른 환경 분야를 보호하기 위해 각 나라가 국제법에 따라 해야 할 의무가 무엇인지”가 유엔 최고 사법기구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다. 앞서 국제해양법재판소, 유럽인권재판소 등 주요 국제법원들도 올해 잇따라 기후소송 청구인 쪽 손을 들어준 바 있다. 국제사법재판소의 판단은 권고에 그치지만, 세계적으로 2천건 넘게 이뤄지고 있는 기후소송의 근거로 작용할 수 있다. 각국의 기후변화 대응 정책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최창민 플랜1.5 변호사는 “국제사법재판소의 ‘권고적 의견’은 판결 못지않은 엄격성과 정밀성을 가지고 만들어지는 ‘국제법에 관한 권위 있는 성명’으로 인정받는다. 판결에 비하여 그 무게나 권위가 덜하지 않다”고 말했다.
박기용 김규남 기자 xeno@hani.co.kr
푸른 잎과 빨간 단풍과 하얀 눈
2024년은 기후변화를 일상에서 하지만 매우 극적으로 체험했던 해로 기억될 것 같다. 서울의 경우 7월21일부터 8월23일까지 34일 연속으로 열대야 현상이 나타나 근대적 기상관측을 시작한 이래 최장 열대야 기록을 경신했다. 9월에는 추석인데 35도를 넘나드는 폭염을 겪었다. 11월에도 낮 기온 20도를 넘기는 날이 꽤 있었고 한국의 전통 아닌 전통인 ‘수능 추위’마저 사라졌다.
지난주 일부 지역에 첫눈이 내렸다. 상당히 강렬했다. 서울 지역에는 1907년 기상관측을 시작한 이래 117년 만에 11월 기준으로 가장 많은 눈이 쌓인 것으로 기록되었다. 폭설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불편을 겪었고 사고도 많았지만, 그 와중에 눈 덮인 풍경은 잠시 시름을 잊게 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아직 나무에 남아 있는 푸른 잎과 단풍이 든 잎이 중첩되고 그 위에 소복하게 눈이 쌓인 장면이다. 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 같은 그 장면이 신기하면서도 앞으로 우리가 계속하여 겪을 기후변화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기후위기는 단순히 지구의 기온이 올라가는 것만 의미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지구 온난화’라는 용어로 이 현상을 지칭했지만 지금은 ‘기후변화’라는 말이 통용되는 이유다. 기후변화는 평균 기온의 상승, 폭염과 혹한, 해수면 상승과 해류의 변동, 기존의 수준과 빈도를 뛰어넘어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허리케인 같은 자연현상의 발생, 농작물 생태의 변경 등을 복합적으로 야기한다. 며칠 전 한 장의 사진 안에서 푸른 잎과 빨간 단풍과 하얀 눈을 동시에 보았던 것처럼 기후변화의 영향을 매우 짧은 시간 사이에 다층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는 말이다.
최근에 나온 미국의 기후 전문 저널리스트 제프 구델의 책 <폭염 살인>은 기후변화가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을 생생히 보여줘 좋은 평가를 받았다. 기후변화는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작용하지 않는다. 에어컨이 없는 곳에서 살고 일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폭염은 훨씬 가혹하다. 이 사실은 여러 연구에서 지적되었고 이 책 역시 그 얘기를 빼놓지 않는다.
하지만 제프 구델은 그 너머 전망으로 나아간다. 앞으로 40년 후에는 지난 6000년 동안 인류 문명 탄생의 토대를 이루었던 상대적으로 온화한 기후조건의 밖으로 밀려날 인구가 10억명에서 30억명에 달한다는 것이다. 여태까지 폭염은 힘없는 사람들부터 도태시키는 약육강식 현장이었지만 이런 상황도 머지않아 변한다는 분석이다. 폭염이 더욱 강력해지면 이전에는 그렇지 않았던 사람까지 인류 대부분이 평등하게 폭염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한국은 11월19일 제29차 유엔기후변화협약 총회 기간 중에 150개 나라 2000개 이상의 기후환경단체의 연대조직인 기후행동네트워크로부터 ‘오늘의 화석상’ 1위라는 불명예를 얻었다. 한국은 공적금융을 신규 화석연료 사업에 지원하는 규모에서 세계 최상위권이고, 지난 6월 OECD 수출신용협약 정례회의에서 화석연료에 대한 공적금융 지원을 금지하는 안에 반대한 2개 국가 중의 하나였다.
미국의 경우 기후변화 대응에 미온적인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과는 별개로 올해 추가되는 발전 용량의 약 58%가 태양광 발전이다. 중국은 태양광 및 풍력 발전 설비 건설에서 압도적 세계 1위이며 2030년을 목표로 했던 탄소 배출 정점을 그보다 몇년 빨리 달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 정부는 이를 따라잡을 대책이 있는지 의문이다.
우리의 체험, 과학적 연구, 선도 국가의 동향 모두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가리킴에도 기후변화 부정론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신기하다. 나름의 근거를 내세운 논리, 경제적 혹은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들이미는 주장, 기후위기 관련 연구자나 단체에 대한 반발, 단순한 음모론까지 스펙트럼도 다양하다. 하지만 핵심은 기후위기 부정론은 지금까지의 과학적 발견에 반한다는 점이다. 기후위기를 부정하고 그 예측과 대응이 과장되었다고 하려면 과학적 분석과 데이터를 제시하고 검증을 통과하면 되는데, 그런 경우는 보지 못한 것 같다.
기후재앙의 임계치라고 하는 1.5도를 넘어설 때 파국이 오면 차라리 나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임계점을 넘어도 사람들은 어떻게든 살아가야 한다. 그때 우리가 겪을 현상은 단순한 폭염이나 혹한이 아니라 푸른 잎과 빨간 단풍 위에 쌓인 하얀 눈처럼 이질적이고 다층적일 것이다. 적극적으로 대응해도 모자랄 판에, 힘을 보탤 것이 아니면 기후위기 부정론은 혼자만의 공상으로 남겨두고, 문제 해결을 위해 애쓰는 이들에게 초치는 일은 하지 않았으면 싶다.
유정훈 변호사/경향
부산시민공원 내 부산독립운동기념관 설계 공모 당선작 선정
부산시민공원 내 조성하는 ‘부산독립운동기념관’ 공모에서 ㈜해안종합건축사사무소의 설계안이 당선작으로 선정됐다.
부산독립운동기념관 조성사업 설계공모 당선작. 부산시 제공
부산시는 부산독립운동기념관 조성을 위한 설계 공모 당선작으로 해안종합건축사사무소 설계안을 선정했다고 4일 밝혔다. 당선작은 1층에 부산 지역 독립운동역사의 기념비적 공간을 담고, 2층을 공원 속 일상을 즐기는 휴식 공간을 제공하는 등 공간구성과 구조를 과감하게 재구성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시는 부산시민공원 내 ‘시민사랑채’ 건물을 리모델링해 부산독립운동기념관을 조성할 계획이다. 내년에 본격적인 기본·실시설계용역을 마무리한 뒤 시비 97억 원을 들여 착공, 2026년 준공을 목표로 추진한다. 시는 부산독립운동사 가치를 널리 알리고 독립운동 정신을 계승하는 기념·추모·전시·교육·체험 공간 등으로 구성한다.
박형준 시장은 “2025년 광복 80주년을 맞아 부산독립운동기념관이 부산의 역사적인 정체성을 담은 의미있는 상징 공간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가덕신공항 주거래은행 선정 ‘지역’과 동떨어진 평가 기준
가덕신공항 건설 예산 13조 원을 관리하는 가덕신공항 주거래은행 선정 절차가 시작됐다. 지역 역대 최대 규모 SOC 사업인 만큼 건설 과정에서 지역 경제 활성화가 기대되지만, 첫 단추인 주거래은행 선정부터 ‘지역’이 빠졌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5일 가덕도신공항건설공단은 나라장터 입찰 공고를 통해 ‘가덕도신공항건설공단 주거래은행 사업자 선정’을 공고했다. 공고에 따르면 각 은행은 오는 12일부터 16일까지 입찰 서류를 제출하고 공단은 18일 평가 제안서 심사를 통해 최종 은행을 선정한다. 주거래은행에 선정되는 은행은 내년 1월 1일부터 2027년 1월 1일까지 3년간 주거래은행을 맡는다. 추가 2회 연장을 통해 5년간 주거래은행으로 역할을 할 수 있다.
주거래은행은 가덕신공항 건설 총 사업비 13조 5000억 원을 관리한다. 내년 예산 8649억 원과 공단의 운영비 등 자금 전반도 집행한다. 앞서 지역에서 올해 치렀던 부산시금고 입찰과는 달리 은행의 출연금이 별도로 없다. 지역에 공공기관이 많지 않은 만큼 은행권에서는 ‘대어급’ 주거래은행 사업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공고와 함께 공고된 평가 기준은 지역과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공단이 공고한 평가표를 살펴보면 총점 100점 중 지역 관련 항목은 ‘사회적 가치 및 상생 협력’이 유일하다. 세부 내용을 보면 향후 이주 주민 대상 보상 관련 지원 방안, 지역 상생 결제 시스템 구축 방안 등이다. 항목 모두가 미래 계획이어서 평가 변별력이 떨어진다.
부산 지역 타 공공기관에서 평가 항목으로 볼 수 있는 사회 공헌·기여 내역이나 지역 기업과의 거래 내역 등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나마 있는 사회적 가치 및 상생 협력 배점도 6점으로 자금관리 방안(10점), 통합시스템 구축(10점) 등에 비해 현저히 낮다. 3점이 배정된 업무 수행 실적 관련 항목에서는 주거래은행 운영 실적을 광역자치단체,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른 공공기관으로 제한했다. 지역 은행 입장에서는 사실상 실적을 제출하기 어려운 항목이다.
이 같은 평가 기준 속에 지역 은행이나 부산 지역에 기여도를 높여온 은행들이 입찰에 불리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공항 건설 관련 향후 각종 입찰에서도 이 같은 구조가 반복될 가능성은 매우 높아 다양한 산업군에서 낙수 효과를 기대하는 지역 업체들이 들러리를 설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역의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기존 공단들의 주거래은행 선정 평가표에서 많은 부분을 준용한 것으로 보인다”며 “지역이 사활을 거는 가덕신공항인 만큼 지역 활동 실적 등에 배점이 클 것으로 예상했는데 너무 적어 오히려 당황했다”고 말했다. 가덕도신공항건설공단 관계자는 “지역 은행·시중은행 유불리를 떠나 공단의 자금을 가장 잘 관리할 수 있는 은행을 선정하기 위해 선정 기준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김준용 기자 jundragon@busan.com
탈원전이야말로 기후운동의 엔진
RE100이 리드하는 햇빛연금시대를 앞당기려면
"원전르네상스는 몽상의 세계"
최근 원전부문에서 주목되는 언론보도가 있었다. 그것은 마이클 슈나이더라는 독일 출신의 국제에너지정책 전문가가 내한하여 인터뷰한 내용(한겨레 2024-11-25)이다.
세계원자력협회가 지난 8월 기준 집계한 전 세계 ‘제안된’ 원전은 344기에 이른다. ‘가동 중’인 원전의 78%다. 국내 보수언론과 정부·여당은 이를 두고 ‘원전 회귀’, ‘원전 르네상스’라 하지만 슈나이더는 "제안과 계획이 전기를 만들진 않는다"며 이를 일축했다. 슈나이더는 "원전산업계가 오랫동안 과장된 전망을 해왔다"며 "2000년이 되면 5300기의 원자로가 지어질 것"이라는 1974년의 국제원자력기구 예측을 소개했다. 하지만 "명확한 현실은 지난 20년 동안 새로 가동된 원전보다 폐쇄 원전이 훨씬 많았다는 것"이다."
현재 원전 시공국은 5개국뿐인데, 모두 문제가 있다. 그는 “프랑스는 지난 17년간 자국 내에서 단 한 기의 원전을 매우 힘들게 짓고 있고, 영국에서 또 2기의 원전을 짓고 있지만, 공기가 심각하게 늘어나고 비용도 늘고 있다. 또 원전이 가장 많은 미국은 자국 내에서 원전을 짓지 않는다. 인허가를 요청한 발전사도 없다”고 말한다.
그는 특히 한국이 유럽에 원전을 수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그야말로 환상”이라고 말했다. 국경이 붙어 있는 유럽연합의 규제 틀은 아랍에미리트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그는 ‘원전 르네상스’라는 말 자체가 허상이라면서 “르네상스라면 원전이 여기저기 많이 지어져야 할 텐데 아니라는 것”이다.
“원전은 제안과 계획이 난무하지만, 실체가 없습니다. 이걸 르네상스라고 할 수 있나요? 레토릭(말)의 르네상스일 뿐, 그야말로 환상이자 ‘라라랜드’(영화 비유), ‘하얀 코끼리’(미국식 표현으로 애물단지), 앨리스의 ‘이상한 나라’(소설 비유) 같은 거죠.”
슈나이더는, 기후위기는 그야말로 비상사태이고 빠른 대응이 필요한데 원전은 한 기를 짓는 데에만 15~20년이 걸린다고 지적한다. “가장 비싸고 가장 더딘” 수단이어서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없다는 것이다.
“많은 국가가 이걸 알기에 원전이 아닌 다른 곳에 투자하는 겁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도 올 초 하이브리드 방식, 즉 태양광과 에너지저장장치를 결합한 형태가 어떤 에너지보다 경쟁력을 가질 것이라고 했어요. 한국 정부가 요청하면 저희 분석을 발표할 용의가 있습니다. 원전은 더는 유효한 에너지가 아닙니다.”
그렇다. ‘태양광 하이브리드’가 정답이다. 그가 얘기하는 바에 필자가 추가한다면, 원전은 기후위기를 조장하는 중대한 열오염원이라는 점이다. 바다의 탄소저장능력을 현저히 위축시킨다. 뿐만 아니다. 최근 ‘플래닛 아쿠아’라는 저서를 낸 제러미 리프킨은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직시하고 있다.
“원자력은 터빈을 돌리고 물을 이용해 냉각합니다. 전체 전기의 68%를 원자력으로 제공하는 프랑스는 최근 기온이 높아져 냉각수를 사용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고 발전소가 멈췄습니다. 비용이 훨씬 낮은 재생 에너지 대신 오래된 기술을 쓰는 한국이 안타깝습니다. 특히 기후위기를 직격탄으로 맞고 있는 상황에서요.”
사실이 이런데도 몇몇 언론들은 근거없는 원전찬양으로 세상을 어지럽히는 ‘희망고문’을 되풀이하고 있다.
신안군청 태양광 발전시설 @신안군청
신안군청 태양광 발전시설 @신안군청
태양광의 비전과 가능성
우리는 태양광이 어떤 상황에 있는 것일까? 몇년 전 어느 과학기자의 추산에 의하면 국내 건물들의 지붕 면적은 전 국토 면적의 1.05%에 달하는데(강양구, 2018) 이 정도 면적에 태양광을 깔면, 연간 전기생산량의 1/3 정도를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붕 등의 면적을 3%쯤으로 늘릴 수 있다면, 태양광으로 전기생산총량을 충당하는 것 아닌가? 독일의 비결이 바로 이것이다.
설치비야 무진장 싸졌고 원료도 공짜이지만 문제는 생산의 간헐성이다. 낮시간에 집중생산되는 전기를 저장하는 기술이 문제다. ESS기술이 아직 완벽하지 않은 가운데 주목받는 기술은 바로 V2G(Vehicle to Grid, 자동자→전력망) 기술이다. 낮에는 전기차에 저장해두었다가, 저녁에는 그 전기차가 집집마다 전력을 공급해주는 충전송전기술이다.
일거양득의 획기적 기술이다. 다행히 이 분야는 세계에서 한국의 현대자동차가 가장 앞선다. 독일과 네덜란드의 도시들과 공동으로 실험 중이다. 올가을부터는 제주도에서 시범사업을 착수한다고 한다. 기술적 여건은 무르익은 것이다.
태양광 연금 혹은 기본소득
현실을 직시해보자. RE100시대에 살아 남으려면 방법이 달리 없다. 기업들이 제 살길 찾으러 이 땅을 떠나기 전에 획기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 원전만 추종하는 현 정권이 오늘 당장 물러가고 다음 정권이 내일 시작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에너지전환으로 오른 전기요금을 연금으로 나눠주는 수밖에. 에너지전환이 잘 진행될수록 연금도 많아지는 장치다. 강남훈 교수는 말한다.
“생존을 위해 먼저 전기값을 선진국 수준으로 올리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이때 화석연료로 만든 전기값이 오른 부분은 탄소세로 연금을 만들고, 재생에너지는 정책으로 이익이 생기니, 지금 이득을 챙겨가고 있는 외국자본의 자리를 정부가 대신하면 막대한 재원을 확보할 수 있다.”
이 돈으로 서민에게 연금을 주면 오른 에너지비용뿐 아니라 생존비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 이때의 연금은 기본소득이나 마찬가지다. 이미 전남 신안군이 멋지게 실행하고 있다. 현재 군민 28%에게 햇빛연금을 1인당 연간 40만~240만 원을 지급하고 있는데 2030년에는 전체 군민에게 월50만~100만 원을 지급할 수 있다고 한다.
전력계통에서도 태양광과 원전은 트레이드오프 관계에 있다. 날로 대세가 되고 있는 태양광 앞에 원전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 기후위기 시대에 둘 중 하나가 죽을 수밖에 없다. 원전은 국제사회에서 사망선고가 이미 오래전에 내려졌다. 윤석열 정권이 그 진흥법을 만들겠다고 애써봤자 별수 없다. 시장은 헛수를 용인하지 않는다.
기후위기를 돌파하고 수출경제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이제 여건과 기술, 둘 모두 성숙해 있다. 탈원전이야말로 기후운동의 엔진이다. 이 연금(기본소득)으로 국민 모두가 참여할 동기가 생긴다면 기후악당에서 기후천사로 단숨에 올라설 수 있다. 이런 정도의 혁신이야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가 밥 먹듯 해오던 것 아닌가.
원전마피아가 뿌린 돈에 오염된 ‘자칭 언론’이 ‘원전찬양’을 외쳐봤자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다. 하루살이 같은 현정권만 현혹될 뿐이다. 우리는 응징해야 한다. 그런 언론에 눈먼 광고를 주는 기업과도 손절해야 한다. 행동만이 혁신의 시기를 앞당길 수 있다./ 이원영 국토미래연구소장, 전 수원대 교수
민락해변공원, 바다·꽃 만나 이색 명소로
전국적으로 인기 높은 부산 광안리해수욕장에 시골에서나 볼 수 있는 청보리밭이 펼쳐졌다. 3년 전부터 계절마다 새로운 꽃과 식물을 만날 수 있는 이곳은 관광지 속 숨은 명소로 떠올랐다.
5일 수영구청에 따르면 ‘사계절이 꽃피는 광안리해변조성’ 사업은 2021년 강성태 구청장 제안으로부터 시작됐다. 민락해변공원 1800㎡ 땅에 계절을 대표하는 꽃을 심는다. 여름에는 해바라기, 가을에는 국화꽃, 겨울에는 청보리를 심는다.
이 사업은 2021년 가을 코로나19로 사회 분위기가 위축되자 주민과 관광객을 위로하기 위해 기획됐다. 바다와 사계절 꽃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주민 휴식공간을 만들자는 것이 취지였다. 이번에 선보인 청보리밭의 경우 지난달 25일 조성됐고, 내년 5월 11일까지 운영된다.
출발은 주민 휴식공간이었지만, 지금은 광안리해수욕장을 찾은 관광객이 반드시 들러야 하는 명소가 됐다. 광안대교와 꽃밭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이라고 입소문을 탔다. SNS에선 ‘광안리해수욕장 해바라기 축제’ ‘광안리해수욕장 국화꽃 축제’ 등 시민들이 먼저 축제란 이름을 붙여 이곳을 홍보할 정도다.
주민 의견도 적극 반영하고 있다. 구청은 2022년 겨울부터 청보리를 심기 시작했다. 주민들이 청보리를 수확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해 그 다음 해 광안리어방축제에서 어린이들이 해당 청보리를 직접 탈곡할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이 생겼다.
수영구청 일자리경제과 관계자는 “다만, 관상용 품종이기에 수확한 청보리를 먹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수영구청은 향후에도 꽃밭 콘텐츠에 대해 고민하고 개선하겠다는 입장이다. 올해 수영구청은 민락해변공원 하부에 100㎡ 크기의 꽃밭을 추가로 확장한 바 있다.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