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철새 도래지에 둘러싸인 제주 제2 공항 예정지2. 밀렵·로드킬에 희생되는 구렁이···을사년 맞아 1월 멸종위기 야생생물 선정 3. 기후위기를 혁신과 도약의 기회로 4. ESG가 아니라 E‘H’SG였다면 5. 쌀이 남아돈다는 거짓말…윤석열이 저지른 또 다른 실책 6. 입지평가점수 꼴찌한 가덕도신공항, 예타도 면제받은 특별법, 이게 최선인가
7. 옛날엔 비싸서 못 먹는데…갑자기 많아져 '동해안 터줏대감' 된 8. ‘총알 10배 속도’ 우주쓰레기 3만개… 지구궤도 대혼잡
9. 국토부, 제주항공 사고기 조류 충돌 공식 확인… 10. 기후변화로 떠나지 않는 철새들의 텃새화 11. 식물 대통령과 식물 12. 기후정의를 위한 100명의 목소리와 거버넌스 13. 개벽적 전환기의 창조적 재생 위한 생태적 의제 10
14. 윤석열이 일으키려던 전쟁…25개의 '핵지뢰' 아찔 15. 국민이 원치 않는 전쟁 예방 장치가 필요하다 16. 윤석열의 대왕고래 프로젝트, 탄소 빚더미 2416조원 떠넘겨
철새 도래지에 둘러싸인 제주 제2 공항 예정지
최근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원인 가운데 하나로 조류 충돌이 꼽히고 있는데요.제주 제2 공항 예정지 주변에도 철새 도래지가 4곳이 있어, 조류 충돌 위험성이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기자]제주에서 제일 큰 하도 철새 도래지입니다.이곳은 제주 제2 공항 예정지에서 8㎞밖에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제주 제2 공항 예정지 반경 13㎞ 안에는 이런 철새 도래지가 4곳이나 있습니다.멸종위기종 등 6만 마리가량이 사는 것으로 추정되는 철새 도래지들은 항공기 운항 방향에 있습니다.항공기와 조류 충돌 사고 가능성은 공항과 가까운 고도 152m 이하에서는 71%, 이착륙이 시도되는 고도 457m 미만은 83%에 이릅니다.제주 제2 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를 검토한 기관도 조류 충돌 위험이 김포공항과 인천공항보다 최대 5배 가까이 높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습니다.
[권보헌 / 극동대학교 항공안전관리학과 교수 : (제주) 제2 공항도 준비 당시에 조류 충돌에 대해서 많은 우려가 있었습니다. 그 부분은 사전에 준비를 많이 하고 진행을 해야 될 것 같습니다.]앞으로 진행될 환경영향평가는 제주도와 협의해야 하는데, 실효적인 조류 충돌 위험성 해소가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입니다./YTN 고재형입니다.
밀렵·로드킬에 희생되는 구렁이···을사년 맞아 1월 멸종위기 야생생물 선정
잘못된 보신 문화 및 서식처 파괴 등으로 멸종위기 몰려
을사년을 맞아 환경부가 정하는 1월의 멸종위기 야생생물로 선정된 구렁이. 윗입술판과 아랫입술판의 가장자리에 흑색 또는 황갈색의 가는 세로줄무늬가 있다. 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 제공
환경부는 2025년 을사년 '푸른 뱀의 해'를 맞아 1월 '이달의 멸종위기 야생생물'로 멸종위기 야생생물 II급인 구렁이를 선정했다고 지난달 31일 밝혔다.
구렁이는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파충류 중 가장 큰 대형종으로 몸길이는 1~2m 정도다. 등의 색깔은 검은색, 암갈색, 황갈색 등 다양하며 배 부분은 황백색, 회백색이나 흑갈색 반점이 흩어져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구렁이는 산림, 하천, 민가 주변을 비롯해 해안가 및 섬 지역에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로 4월부터 활동을 시작하고 5, 6월까지 짝짓기를 통해 7, 8월까지 약 8~22개의 알을 낳는다. 11월이 되면 땅속, 바위틈 등에서 동면한다. 주요 먹이원은 쥐, 다람쥐와 같은 설치류이나 조류와 양서류까지 잡아먹는다.
1월 멸종위기 야생생물로 선정된 구렁이. 환경부 제공
구렁이가 멸종위기에 몰린 이유는 기존 서식처의 파괴, 찻길 사고(로드킬) 및 그릇된 보신 문화로 인한 밀렵 등이라는 게 환경부 측의 설명이다.
전 세계적으로는 중국 중부와 북부, 러시아에 분포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는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환경부는 구렁이를 2005년 멸종위기 야생동·식물 I급으로 지정한 후 2012년 이후부터 멸종위기 야생생물 II급으로 분류하여 보호하고 있다.
구렁이의 몸길이는 1.1~2m 정도이며, 개체에 따라 색깔이 다양하다. 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 제공
구렁이 등 멸종위기 야생생물 II급을 허가 없이 포획·채취·훼손하거나 죽이는 경우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 원 이상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구렁이 등 멸종위기 야생생물에 대한 정보는 국립생태원 누리집(nie.re.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고은경 동물복지 전문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기후위기를 혁신과 도약의 기회로
국내 한 복합화력발전소 굴뚝에서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는 모습. 연합뉴스
2025년 새해가 밝았지만, 국민은 지난해 12월 초부터 시작된 충격적인 사건들의 여파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이 와중에 대한민국을 둘러싼 국제 정세는 급변하고 있으며 국가의 명운이 달린 중요한 입법과 정책들은 해결되지 못한 채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우리나라 기후변화 대응 성적은 한마디로 처참한 수준이었다. 지난해 11월 제29회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9)에서 발표된 기후변화대응지수(CCPI) 평가에서 우리나라는 67개국 중 63위를 차지하였다. 비산유국 중에서는 최하위라는 변명의 여지조차 없는 성적이었다. 이쯤 되면 앞으로 잘하겠다는 다짐은 큰 의미가 없다. 우리의 기후변화 대응은 도대체 왜 지금껏 제자리걸음일까?
필자는 우리의 기후변화에 대한 안이한 인식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진단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기후변화를 단순히 ‘인류가 해결해야 할 환경 문제’ 차원에서 인식해왔다. 화석연료를 너무 많이 쓰는 바람에 지구가 뜨거워졌고 이를 멈춰야 한다는 식의 논리다. 그래서 기후변화 대응을 지구환경 보호나 미래 세대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 정도로 여겨왔다.
단언컨대 기후변화를 단순히 환경 위기나 자연재해 대응의 관점에서만 바라보는 것은 매우 근시안적인 인식이다. 물론 갈수록 거세지는 자연재해의 위협에 대비하고, 생태계와 생명 다양성을 보전하는 일은 중요한 과제다. 그러나 더욱 주목해야 할 것은 화석연료에서 무탄소 에너지로의 전환이 이제 새로운 글로벌 경제 질서를 좌우할 핵심 변수가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이미 유럽과 미국은 각각 그린딜과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통해 친환경 에너지 산업 육성에 천문학적 투자를 단행하고 있으며,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시행이 본격화하면서 탄소를 많이 쓰는 제품은 수출이 어려워지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은 협력사에 재생에너지 사용을 요구하고 있으며, 이에스지(ESG) 경영은 기업가치의 핵심 평가요소가 되었다. 선진국들이 탄소중립으로 향하는 이 전환 과정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환이 빠를수록 비용은 감소하기에 새로운 성장 동력을 선점할 기회는 커진다. 기후변화 대응은 이제 더 이상 미래 세대를 위한 투자가 아닌, 당면한 국가 경쟁력의 시험대가 되었다.
다행히도 제조업 강국인 우리나라는 에너지전환 시대의 다양한 신산업 분야에서 큰 강점을 가지고 있다. 배터리와 수소 기술에서 세계를 선도하는 기업들, 소형원전 개발의 원천 기술 확보, 우리가 보유한 세계 최고 수준의 전력망과 디지털 인프라는 앞으로 우리가 저탄소 경제로의 전환을 선도해 나갈 강력한 자산이다. 이러한 자산들이 시너지를 낸다면 세계적 흐름에 빠르게 올라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제대로 살려내지 못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이 안타깝다.
혹자는 트럼프의 재집권으로 세계적 기후위기 대응이 퇴보할 것이라 우려하지만, 이미 가격 경쟁력을 확보한 재생에너지를 외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위기를 새로운 기회로 인식하는 발상의 전환이다. 탄소중립으로의 전환은 비용이 아닌 투자이며, 규제가 아닌 혁신의 기회임을 통찰해야 한다. 끝없이 하락하고 있는 태양광 발전단가로 인해 태양광은 이미 세계 에너지 시장의 주류가 되었고, 기후변화 대응 기술은 앞으로 미래 산업의 핵심 경쟁력이 될 것이다.
2025년은 우리나라가 기후변화 대응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정립해야 할 중요한 해다. 올해 수립될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 이행계획 구체화, 탄소배출권 거래제 개편, 에너지 전환 로드맵 등은 미래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전략으로 수립되어야 한다. 당장의 비용 부담에 눈이 가려져 미래의 기회를 놓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김백민 | 부경대 환경대기과학과 교수/ 한겨레
ESG가 아니라 E‘H’SG였다면
돌봄노동자 겸 급여노동자 16년 차를 맞았다. 공백 시기의 프리랜서 이력은 제쳐두고 자격득실확인서에 찍힌 직장만 일곱곳. 까닭은 진부하지만 분명하다. 두 노동자 역할을 동시에 할 만큼 지속가능한 노동환경은 쉽사리 주어지지 않았다.
자녀를 직접 돌볼 수 있는 동네 직장은 처우가 형편없거나 조직문화가 수준 미달이었고, 보수 좋은 직장은 상상 초월 노동 강도에 유연한 근태는 언감생심이었다. 그 15년 새 아이는 나를 필요로 하지 않을 만큼 자라고 말았다.
한겨레는 지난 성탄절, ‘사회공헌 특집’으로 12면짜리 별지를 냈다. ‘상생경영·사회공헌활동만이 이에스지(ESG) 리더로 가는 길이다’란 제목으로 펼쳐진 개별 기업들의 활동 기사에서는 본문에도 심심찮게 ‘이에스지’(환경·사회·지배구조)란 말이 등장했다. 곱게 보면 미담이지만 이에스지와 결합하면 생색이 된다. 이에스지의 근본이 뭔가. 투자자에게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소구하려 만든 규범 아니던가.
국내외 이에스지 지표 중 에스(S·사회)에는 인적자본·근무환경·노동인권·다양성 등이 속하는데 언론도 기업도 마치 사회공헌이 에스의 전부인 양 조명한다. 틀렸다. 에스의 핵심은 위 요소를 포괄하는 에이치아르(HR·인적자원 관리)여야 한다. 기업의 지속가능성은 조직이 얼마만큼 건강한지, 구성원이 얼마나 지속가능한 환경인지와 훨씬 밀접하기 때문이다. ‘이에이치에스지’(EHSG)가 아닌 게 이상할 정도다.
대기업들은 이 핵심을 지속가능경영 보고서 맨 뒤편의 표 몇개로 갈음한다. 일관성도 없다. 어떤 회사는 근속연수를, 어떤 회사는 최저임금 대비 신입 임금을, 또 어떤 회사는 정년퇴직률을 끼워 넣는 식이다. 부족한 지표는 감춰도 된다. 의무가 아니니 취사선택하면 그만이다. 부러 내세운 지표를 평가할 기준조차 모호한 현실은 더 우습다.
지난해 한국회계기준원이 내놓은 ‘지속가능성 공시 기준 공개 초안’ 중 에이치아르 데이터는 ‘정책 목적을 고려한 추가 공시사항’, 즉 선택에 속할 뿐이다. 내용도 근로기준법 충족 등 최소 조건에 그친다.
‘일·생활 균형, 차별 없는 일터, 공정 채용’ 등 고용노동부의 각종 우수기업 시상·인증의 부실한 정량평가도 문제다. 이 중 하나는 자유양식 피피티(PPT) 5장이 제출 요건의 전부다. 글발 좋으면 명패를 거는 셈이다.
평가는 이른바 ‘썰’이 아닌 데이터로 해야 마땅하다. 이미 에이치아르 분야 정보통신기술은 조직과 구성원의 건강을 한눈에 측정할 만큼 발전했다. 부서·직무·직급·성별·연령에 따른 초과근무시간, 자발적 퇴사율, 근속일수, 비정규직 비율, 승진 뒤 경과 기간, 집과 직장의 거리까지 클릭 몇번에 수많은 그래프를 생성한다. 문제는 이 결정적 데이터에 어떠한 기준도 의무도 부여하지 않는 거다. 그러니 출생률은 폭락하고 니트족(구직 단념자)은 급증할 수밖에.
만약 금융위원회의 회계기준원처럼 고용노동부에 인사기준원이 있다면 어땠을까. 상장기업의 재무정보처럼 인사정보 공시도 의무라면 어땠을까. 취약계층·경력보유여성·지역인재 고용률이, 평균 노동시간과 연차사용률이, 최고·최저 임금과 표준편차가 의무 공시라면 어땠을까. 백번 양보해 이에스지가 아니라 이에이치에스지여서 에이치아르에도 이(E·환경) 못지않은 무게가 실리고 엄격한 정량지표를 요구하면 어땠을까. 만약 15년 전에 이런 노동환경이 마련됐다면 나는 어땠을까. 둘째가 있었을까. 애정하던 첫 직장에 오래 머물렀을까./ 송지현 |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
쌀이 남아돈다는 거짓말…윤석열이 저지른 또 다른 실책
남태령 연대와 농업정책의 미래
남태령에서 농민과 시민의 연대가 추운 겨울을 녹였다. 트랙터를 몰고 올라온 농민들의 투쟁이 더욱 의미 있었던 이유는 '사회대개혁을 위한 폐정개혁안 12조'라는 이름의 요구안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과거 동학농민운동을 연상시키는 폐정개혁안 12조에는 △내란수괴 윤석열 처벌 △내란동조 국민의힘 해체 △군대·경찰·검찰 민주화 △농산물 공정가격 실현 △경자유전 원칙 △국가 책임 농정 실현 △노동기본권 보장 △대기업 경제력 집중 해소 △이태원 참사 등 진실규명 △여성, 장애인 등 차별 철폐 △선거연령 하향 △종속 외교 청산과 한반도 전쟁 종식 등이 담겨 있었다. 즉 농민들은 농업 정책을 포함해서 사회 전반의 새로운 밑그림을 그리자고 제안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전봉준 투쟁단이 윤석열 대통령 구속 등을 촉구하며 트랙터 상경 시위에 나섰다가 서울 서초구 남태령에서 20시간 이상 대치를 이어간 지난해 12월 22일 서울 서초구 남태령 인근에서 시민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런데 폐정개혁안 12조에 등장하는 국가 책임 농정이라든가 농산물 공정가격 같은 개념을 시민이 접할 기회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우선 경제뉴스에서 농업 관련 보도를 찾아 읽으며 느낀 점을 정리해 본다.
윤석열 정부의 농정
지금까지 한국 정부는 농산물 가격 낮추기에 방점을 찍으면서 농민과 도시민을 갈라치기 하는 방식으로 농업 정책을 집행했다. 특히 윤석열 정부 2년 반 동안 벌어진 일은 상상을 초월했다.
윤석열 정부는 고물가에 대응한다면서 저율할당관세(TRQ)를 늘리고 또 늘렸다. TRQ는 원래 일정 물량까지만 저관세로 수입하고 그 이상의 물량은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제도인데, 애초 취지와 달리 윤석열 정부는 수시로 시행규칙을 개정해 저관세 수입 물량을 늘렸다. TRQ 물량만이 아니라 품목도 늘렸다. 심지어는 국내 농민들의 마늘, 양파 수확을 앞둔 시기에 마늘과 양파의 TRQ 물량을 증량해서 가격을 떨어뜨리기도 했다.
TRQ 증량 정책은 수출업자와 유통업자에게는 이익이 되지만 국내의 농업 기반을 훼손하는 정책이다. 농산물 물가를 근본적으로 잡지도 못한다. 며칠 전 동네 슈퍼마켓에 갔더니 체리 한 팩에 1만900원, 딸기 한 팩에 1만2900원이었다. 2000원 덜 내고 농약이 도포된 체리를 사먹을 것인가? 2000원 더 내고 싱싱해 보이는 국내산 딸기를 사 먹을 것인가? 소비자 입장에서 윤석열 농업정책의 효과는 이런 것이다. 사실 이건 농업정책도 아니다. 기재부가 주도하는 보여주기식 물가 억제 정책이다.
쌀의 경우 매년 40만8700톤을 의무 수입한다. 이렇게 매년 낮은 관세로 수입되는 쌀이 시장을 교란해서 쌀값이 하락한다. 농민들은 40만8700톤이 신성불가침의 숫자가 아니라고 말한다. 정부의 의지에 따라 관련 5개국(미국, 중국, 태국, 베트남, 호주)과 재협상을 해볼 수 있다는 주장이다. 만약 재협상 노력을 해봤는데도 안 된다면 수입쌀의 활용 방안이라도 농민들과 협의하자고 요구한다. 일본의 경우 수입하는 쌀의 70퍼센트 정도를 사료용으로 돌린다. 반면 한국은 수입쌀의 3% 내외만 사료로 사용하고 나머지는 식품 대기업 등에서 가공용으로 쓴다. 지난해에는 대한한돈협회에서도 수입산 옥수수 가격이 크게 올랐으니 수입쌀을 가축 사료로 사용하자고 제안했으나, 정책의 변화는 없었다. 정부는 매년 40만8700톤의 쌀 수입을 기정 사실화한 토대 위에서 정책을 수립하고, 국내의 쌀 재배 면적을 그만큼 줄이려고 한다.
'공급 과잉'이라는 프레임
언론은 TRQ라든가 수입쌀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다. 대신 쌀의 '공급 과잉'이라는 프레임을 사용한다. 양곡관리법과 쌀에 관한 최근의 언론 보도를 보자.
[사설] 쌀 보관에만 연 4500억원 드는데 정부 매입 더 늘리자는 野(24.10.03 한국경제)
쌀 매입·관리에 혈세 3조…농망법 폭주 멈춰세워야 [사설](24.11.28 매일경제)
'쌀 과잉생산' 확 줄인 일본… 비결은 '시장논리'에 맡긴 쌀값'(24.12.10 매일경제)
필리핀 쌀 인플레, 15년 만에 최고치…"가격상한제 무용"(24.02.07 뉴시스)
<매일경제>의 11월 28일자 사설은 양곡관리법을 '농망법'이라 부른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의 표현을 제목에 그대로 넣었다. 사설은 "정부가 과잉 생산된 쌀을 매입·관리하는 데 쓰는 돈만 3조 원이 넘는다"면서 "남는 쌀"을 정부가 매입하기 때문에 농업의 경쟁력 확보가 불가능하다는 논리를 펼쳤다. 그래서 대통령이 양곡관리법에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매일경제>가 보기에는 세상의 모든 것이 수요와 공급이다. 쌀의 공급이 수요보다 많아서 생긴 "남는 쌀"을 정부가 매입한다는 것은 시장 논리에 어긋난다. 그러나 농민의 시각에서는 "남는 쌀"이 아니라 막대한 수입 물량 때문에 "남게 된 쌀"이다. 구조적으로 한국 농업은 벼농사 위주였는데 갑자기 수입쌀이 밀려 들어왔고, 그런 상황에 맞게 농민을 보호해 주는 정책은 수립되지 않았다. 농민들은 쌀 과잉생산의 주범이자 경쟁력 없는 산업의 종사자로 몰렸다.
쌀값은 단순히 수요와 공급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2024년만 해도 폭염과 폭우, 이상고온 피해가 있어서 쌀 수확량이 줄었는데도 쌀값은 하락했다. 통상 7월부터 9월 사이에는 산지 쌀값이 오르는데, 2024년의 경우 8월 초에 17만 원대(80kg 기준)까지 떨어졌다. 통계청 국가포털에 게시된 2024년산 11월 5일자 산지 쌀값은 18만2700원. 2023년 수확기 평균 산지 쌀값 20만2797원보다 낮다. 1만 원으로 비빔밥 한 그릇도 사 먹지 못하게 된 지 오래인데 쌀값은 오히려 내려갔다.
2022년에는 즉석밥의 대표격인 햇반의 가격이 7% 올랐는데, 그해 쌀값은 45년 만에 최대 하락이라고 할 만큼 많이 내려갔다. 햇반의 제조사인 CJ제일제당은 연료인 LNG 가격과 포장재 가격이 올라서 어쩔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럼 농민들은 어떨까? 비료 가격과 면세유 가격 등 모든 생산비가 올랐지만 쌀값에 반영할 길은 없었다. 이거야말로 경제신문들이 외치는 시장 원리에 어긋나는 일이다.
▲지난 5년간의 수확기 산지 쌀값과 농가의 생산비 부담을 지수화한 '농가구입가격지수'(2020년=100)를 나타낸 표. 2022년의 경우 농가구입가격지수는 크게 뛰었지만 쌀값은 폭락했음을 볼 수 있다. ⓒ안진이
<한국경제>는 2024년 10월 3일자 사설에서 쌀 수입을 이야기했다. "쌀 수입을 위해 외국에 지급한 돈은 올 들어 8월까지 2억4000만 달러, 연말까지는 4억 달러에 달할 전망"이라며 "쌀이 부족하면 몰라도 넘쳐나는 상황에서 수입한다고 하니 이런 부조리가 없다"고 지적했다. 부조리하긴 하다. 그런데 쌀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수입한다"는 표현은 부정확하다. 한국의 쌀 자급률은 2022년에만 104.8%를 기록했을 뿐 평년에는 100%에 못 미친다. 국내산 쌀의 일부에 대해 시장격리와 공공비축이라는 수단을 사용하는 이유는 수입 물량이 너무 많아서다.
식량주권과 기후위기
한국의 식량자급률은 2022년 기준 46%밖에 안 된다. 정부와 언론의 시각은 '식량자급률은 낮지만 쌀은 남아돈다'라는 것이다. 하지만 식량주권이라는 개념을 염두에 둔다면 '식량자급률이 그나마 46%인 것은 쌀 덕분이다'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지난 몇 년간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국제 곡물 시장이 불안정한 가운데서도 우리의 식생활이 비교적 온전했던 것은 주곡인 쌀 생산이 안정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수입 물량이 있으니 쌀 생산을 줄여야 하지 않느냐고? 지금도 쌀 생산량은 매년 줄어들고 있으며 정부 정책도 쌀 생산을 줄이는 방향이다. 특히 윤석열 정부는 임기 내내 농민들에게 쌀 생산을 줄일 것을 강요했다. 다수확 품종이라는 이유로 품질 좋은 신동진쌀 재배 면적을 강제로 줄이는 정책을 도입해 농민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가루쌀(분질미) 사업을 시행하는가 하면, 논과 밭의 오랜 구분을 깨뜨리고 논에다 벼 대신 논 콩을 심으라고도 했다. 그리고 올해는 벼 재배면적을 8만ha나 감축한다는 목표를 잡고 모든 벼 재배 농가에 논 면적 10%를 의무 감축하라고 통보했다. 지금은 윤석열이 직무 정지된 상황인 만큼 이런 정책들도 일단 멈춤이 필요하다.
무작정 재배면적을 줄이면 쌀마저도 수입에 의존하게 된다. 또한 우리는 기후변화라는 변수를 고려해야 한다. 이상기후가 세계 곳곳을 강타하면서 주요 곡물 생산량이 감소하는 일은 이미 현실이다. 농식품부는 2027년 쌀 자급률 98%를 목표로 한다면서 목표 재배면적을 68만ha로 잡았지만, 2023년 감사원의 지적에 따르면 이 수치는 미래 기후변화를 고려하지 않고 과거 쌀 생산성만을 토대로 설정한 것이다. 모의실험 결과를 반영할 경우 목표 재배면적은 78만2000ha로 상향해야 한다.('감사보고서: 기후위기 적응 및 대응실태I(물·식량 분야)', 2023.7, 감사원) 2024년의 벼 재배면적은 69만8000ha. 감사원의 지적대로라면 쌀 생산량 줄이기가 아니라 오히려 생산량 지키기에 나서야 한다.
사례 - 일본과 필리핀
2024년 12월 10일자 <매일경제>는 '쌀 과잉생산 확 줄인 일본… 비결은 '시장 논리'에 맡긴 쌀값'이라는 기사를 실었다. "한국보다 앞서 국가적으로 쌀 과잉생산을 해결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인 국가"가 일본이라면서, 1970년 약 1200만 톤의 쌀을 생산하던 일본이 2023년 660만 톤 수준으로 생산량을 대폭 줄인 것을 모범 사례처럼 제시했다. 기사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초기에는 각 농가에 일괄적인 쌀 감산을 강제했고, 2004년부터는 아예 쌀 생산을 '민간 주도'로 전환했다. 쌀 재배 시 지급하는 보조금도 폐지하고 다른 밭작물에 대한 보조금을 늘렸다. 아마도 한국의 고위 공무원들이 일본 정부의 쌀 감산 정책을 베껴온 것 같다.
그런데 <매일경제>가 일본의 정책을 칭찬하던 시점에 일본은 쌀값 폭등으로 난리를 치르고 있었다. 2024년 3월부터 오르기 시작한 일본의 쌀값은 11월 기준으로 전년 대비 63.3퍼센트나 올랐다. 일본 가정에서는 주곡인 쌀을 사재기하기 시작했고, 슈퍼마켓 매대에서 쌀 품귀 현상이 일어났다. 일본의 쌀값이 오른 원인은 쌀의 재배 면적이 감소하고 이상기후로 고온 피해를 입은 지역의 1등급 쌀 비율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그밖에 엔저로 외국인 관광객이 급증하면서 외식산업에서 쌀 소비량이 급증했고, 난카이 트로프 지진에 대비해서 비축용 쌀 수요가 늘었다. 쌀값 폭등으로 일본의 가계가 어려움에 빠지자 최근 이시바 시게루 총리도 쌀 생산 정책 재검토를 약속했다. 쌀 생산량을 늘리고 농민들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는 정책도 다시 언급했다.
한때 쌀 수출국이었다가 쌀 농사를 포기했던 필리핀의 사례도 있다. 필리핀은 1년에 4모작이 가능한 조건을 바탕으로 아시아 농업혁명을 주도했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국제 쌀값이 1톤당 200달러(장립종 기준)로 안정세를 보이자 필리핀 정부는 '부족한 식량은 수입하면 된다'는 기조를 채택했다. 농지는 골프장·휴양시설·공장 등으로 바뀌었고 농민들은 도시로 떠나거나 관광가이드로 나섰다. 국제 비교우위론에 따라 필리핀은 쌀 수입국이 되었다.
그런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국제 곡물 가격과 석유 가격이 불안정해지면서 2023년 쌀값이 치솟았다. 인도 같은 나라들은 자국산 쌀 수출을 규제하고 나섰다. 쌀값이 급등하자 필리핀 정부는 쌀 가격 상한제를 실시했다. 하지만 세계 시장에서 쌀값은 높게 유지되었고, 2024년 필리핀에서는 물가 전반이 안정되었는데도 쌀값만 급등하는 '쌀 인플레이션'이 나타났다. 2024년 1월 필리핀의 쌀값은 전년 동월 대비 22.6% 올랐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은 쌀과 옥수수 등의 식량 생산을 늘리기 위해 모든 조치를 다하겠다고 밝혔다. 필리핀도 일본도, 쌀농사 포기의 결말은 행복하지 않았다.
세계 각국은 기후변화와 식량 위기에 대비해 농업을 지키는 방향으로 정책을 만들어 가고 있다. 그럼 우리는? 농업을 시장에 맡길 것인가, 아니면 전략산업으로 대우할 것인가? 농민과 시민이 남태령에서 만났던 것처럼 이후에도 농업정책의 방향을 함께 토의해 나간다면 좋은 해답을 찾을 것이라 생각한다.
안진이 더삶 대표 | 프레시안
입지평가점수 꼴찌한 가덕도신공항, 예타도 면제받은 특별법, 이게 최선인가
[가덕도신공항 추진을 둘러싼 불편한 진실] ⑮ 민주주의 파괴의 화신, 가덕도신공항 특별법
지난 11월 5일, 전국의 시민들은 부산시청과 세종시 국토부 청사 앞에 연이어 모여 가덕도신공항 건설사업 백지화 촉구 전국시민행동을 펼쳤다. 4년이 넘도록 계속된 목소리다. 이날은 특별히 집회 말미에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 장관과의 면담 계획도 넣었다. 하지만 그는 두문불출했다. 대신 가덕도신공항 사업 추진단 팀장이 국토부 로비 접견실에서 우리를 맞았다.
그에게 우리는 조속한 시일 내로 국토부 장관과의 면담을 잡아달라 요구했다. 그는 확답을 피했다. 그러니 그에게만이라도 따져 물을 필요가 있었다. 우리는 쏟아내다시피 물었다.
가덕도신공항을 5년 만에 짓는다는 게 말이 됩니까. 역사상 유례없는, 대규모 실험에 가까운 일입니다. 너무 위험합니다. 전략환경영향평가도 단 몇 개월 만에 끝냈고 이에 대한 자료도 제대로 공개하지 않았어요. 무엇보다 국토부 스스로가 가덕도신공항 사업에 대한 7대 불가론을 내놓은 바 있죠. 2021년, 국회 국토교통위 소속 의원들에게 제출한 ‘가덕도신공항 보고서’에서 이 사업이 ‘안정성·시공성·운영성·환경성·경제성·접근성·항공수요’ 이 모든 면에서 치명적인 문제를 갖는다는 사실을 조목조목 밝힌 거예요. 그런데도 사업은 가덕도신공항 특별법(가덕도신공항 건설을 위한 특별법)에 의해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받았습니다. 십수 조원의 국비가 드는 사업 중에 예타 면제를 받은 사업은 지금껏 없었어요. 이것이 다가 아닙니다. 경쟁 입찰로 공사를 진행해도 모자랄 부지조성공사를, 공사 기한을 맞춰야 한다는 이유로 수의계약을 통해 감행하려 해요. 이게 도대체 말이 됩니까. 설명이라도 들어보고 싶습니다.
그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고 한참을 침묵했다. 그러다 천천히 입을 뗐다.어쩌겠어요. 가덕도신공항 특별법이 있는데. 다 가덕도신공항 특별법에 따라 진행하는 건데요.
우리는 일제히 조용해졌다. 서로를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모두 무너지는 마음이 되어, 속으로 물었을 것이다. 가덕도신공항 특별법이란 무엇인가. 이 모든 절차적 부정의와 기만적 행정, 합리적 파괴의 든든한 지붕이 되어주는 동시에, 모든 이들을 일제히 입 다물게 만드는 위력. 가덕도신공항 특별법이란 대체 무엇인가.
2021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때는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목전에 둔 시기였다. 국회 최대 의석을 가진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하고, 여야가 합심하여 가덕도신공항 특별법이 통과되었다. 보궐선거와 이듬해 대선에서 부산·울산·경남(부울경) 유권자의 득표를 겨냥한 결정이었다. 당시 김해신공항 사업이 추진되고 있었고, 여기에 이미 많은 예산이 쓰인 차였다. 그걸 뒤엎고 벼락처럼 가덕도신공항 특별법이 내리꽂힌 것이다. 2011년과 2016년 두 차례나 입지평가점수에서 꼴찌를 한 가덕도신공항이 하루아침에 1등 자리에 우뚝 섰다. 비유하자면 입시 부정이자 낙하산 인사이며 사기 계약이다.
▲ 2021년 2월 26일, 본회의를 열어 가덕도신공항 특별법을 의결한 국회. 법안은 찬성 181표, 반대 33표, 기권 15표로 가결되었다. 법안을 발의한 지 92일, 법안을 심사한 지 23일 만의 의결이었다. ⓒ연합뉴스
알다시피 가덕도신공항 사업은 백 프로 세금으로 진행되는 국책사업이다. 그러므로 가덕도신공항 특별법이란 이 나라에 사는 모든 이들을 향해, 정치권이 법 자체를 기만과 폭력의 도구로 휘두른 하나의 사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짐작하겠지만 특별법이 발의하고 통과되는 동안 시민공청회, 주민 간담회, 혹은 이와 비슷한 형식의 자리는 단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대단위 토건 개발이 지역을 잘 살게 할 것이라는 국민적 환상을 정치권이 포퓰리즘 정치에 황급히 이용하는 과정만 있었을 뿐이다. 논의는 밀실에서 시작하고 밀실에서 끝났다. 이에 대해 우리가 더 깊이 들여다보고 해석할 여지는 없다. 답은 이미 펼쳐져 있다. 이는 민주주의에 대한 모독이며, 민주주의 파괴다.
윤석열 씨의 비상계엄 선포가 특히 나쁜 이유는, 그것이 세기에 걸친 싸움과 희생으로 시민들이 힘겹게 일궈낸 민주주의에 대한 파괴였기 때문이다. 윤석열 한 사람의 명령으로, 다시금 수많은 이들의 목소리와 질문과 자유를 빼앗으려 했기 때문이다. 제왕적 위력 아래에서 모든 입들이 틀어 막고 다양한 질문과 합의의 과정을 무력화하려 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민주주의 파괴다.
가덕도신공항 특별법 역시 이와 유사하다. 숱한 모순과 부정의로 점철된 가덕도신공항 사업에 대한 질문을 했을 때 사업 추진단 팀장이 내놓았던 대답을 다시 보자. "어쩌겠어요. 가덕도신공항 특별법이 있는데. 다 가덕도신공항 특별법에 따라 진행하는 건데요." 가덕도신공항 특별법은 이처럼 제왕적 위력의 역할을 담당한다. 그 아래에서 모든 입들이 틀어 막히고 다양한 질문과 합의의 과정은 무력화되기 십상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가덕도신공항 특별법이라는 위력 자체에 대해 질문해야 하고, 질문하려 한다. 가덕도신공항반대시민행동은 지난 3월, 1028명의 시민과 함께 가덕도신공항 건설사업 기본계획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특별법이라는 위력에 기대어 기본계획 보고서 용역이 채 완료되기도 전에 기본계획을 고시한 데 대해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변호인단은 이 소송의 승소 가능성을 아주 낮게 점치고 있지만 괜찮다. 이 다음 단계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소송이 마무리되는 즉시 가덕도신공항 특별법이 위헌이라는 것을 밝히기 위해 헌법재판소로 갈 것이다.
▲ 2024년 3월, 행정법원 앞 가덕도신공항 기본계획 취소 국민소송 기자회견. ⓒ가덕도신공항반대시민행동
끝으로, 가덕도신공항 특별법에 대한 저항과 싸움이 또 있었음을 밝혀둔다. 2021년 3월 15일, 멸종반란의 활동가 6인이 민주당사로 가서 가덕도신공항 특별법 통과에 항의하는 불복종 행동을 벌였다. 민주당사 캐노피에 올라 구호를 외치고, 민주당사의 출입문을 쇠사슬로 봉쇄하려 했다. 이들은 즉시 경찰에 연행되었고, 검찰 기소로 법원의 약식 판결을 통해 총 2000만원의 벌금형을 받았다. 그러나 활동가들은 벌금을 거부하고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 그렇게 지난해 6월까지 3년여 동안 재판을 이어갔다. 그 3년은 단지 재판을 이어나가기만 한 시간이 아니었다. 졸속적, 기만적, 폭압적으로 진행되는 가덕도신공항 사업을 비판하고 이에 대한 근거가 되는 가덕도신공항 특별법이라는 위력과 폭력에 대해 널리 알려나가는 시간이었다.
민주당사로 간 6인 중 한 명이었던 김차랑 활동가는 재판에 대한 소회를 말하는 글에서 "데모하는 게 벌 받으면, 데모하게 만든 사람들은 무슨 벌을 받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렇다. 데모하게 만든 사람들이야말로 어떻게든 벌 받아야 한다. 활동가들을 불복종 행동으로 이끌었고, 시민들을 비바람과 혹한과 폭염 속에도 거리의 농성장에서 싸우게 만들었으며, 우리를 기나긴 법정 투쟁의 시간 속으로 내몬 이들은 반드시 벌 받아야 한다. 무엇보다 민주주의 파괴의 화신이라 할 수 있는 가덕도신공항 특별법 자체에 대한 심판이 이뤄져야 하며, 특별법을 통과시킨 이들 또한 반드시 단죄받아야 할 것이다.
희음 가덕도신공항반대시민행동 집행위원 | 프레시안
옛날엔 비싸서 못 먹는데…갑자기 많아져 '동해안 터줏대감' 된
겨울철 하면 떠오르는 생선으로 방어를 빼놓을 수 없다. 방어는 날씨가 추워질수록 살이 오르고 지방이 풍부해져 겨울철에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생선이다.
과거에는 우리나라 주변 바다에서 잘 잡히지 않아 가격이 비쌌다. 이 때문에 방어는 대중적으로 접하기 어려운 생선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최근 동해안에서 국민 생선으로 불리던 명태의 씨가 마르고 대표 어종인 오징어도 어획량이 크게 줄어 가격이 올랐다. 반면 난류성 어종인 방어는 동해안 터줏대감으로 새로이 자리를 잡았다.
국립수산과학원의 '2024 수산 분야 기후변화 영향' 보고서에서 한국 연근해 평균 수온은 56년간 1.44도 올라 전 지구 평균의 2배에 이르는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 특히 동해에서는 수온이 1.9도 올랐다. 이는 서해가 1.27도, 남해가 1.15도 오른 것과 비교해 상승 폭이 컸다.
이로 인해 가장 큰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어종이 방어다. 강원특별자치도 글로벌본부의 어획 동향을 살펴보면 2017년까지만 해도 방어는 어획량이 적어 집계조차 되지 않는 소수 어종이었다. 그러다 어획량이 점차 늘면서 이제는 동해안의 터줏대감이 됐다.
특히 2022년과 2023년에는 어획량이 각각 6137톤, 4787톤을 기록해 방어가 2년 연속 동해안 어획량 1위를 기록했다. 이에 대해 수산 당국은 이상 기온에 따른 수온 상승으로 강원 앞바다(동해안)가 방어가 서식하기 좋은 환경으로 바뀐 영향이라고 분석했다.
‘총알 10배 속도’ 우주쓰레기 3만개… 지구궤도 대혼잡
미국 하버드·스미스소니언 천체물리학센터 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에서 우주로 로켓을 발사한 횟수는 145회였다. 2017년(29회)의 5배로 늘었다. 특히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가 작년 우주 로켓을 134회 발사해 단일 기업으로는 압도적 1위였다. 올해는 제프 베이조스의 아마존도 위성 발사 경쟁에 뛰어든다.
이처럼 민간 우주 시대가 열리며 로켓 발사가 일상화되자, 우주가 점점 혼잡해지고 있다. 하늘 위로 수많은 위성을 앞다퉈 쏘아 올리면서 우주 쓰레기 문제가 현실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위성으로 가득 차는 지구궤도
이미 미국 로켓 발사장은 포화 상태다. 5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국에서 로켓 발사는 플로리다와 캘리포니아의 발사장 3곳에서 주로 담당하고 있다. WSJ는 “로켓 발사장에 교통 체증이 발생하고 있다”며 “기업과 기관에서 더 많은 임무를 예약함에 따라 점점 더 혼잡해질 것”이라고 했다. 그동안 거의 사용하지 않았던 다른 발사장을 활용하려는 움직임도 일어나고 있다. 예컨대 알래스카주 코디액섬에 있는 발사장은 연간 발사 횟수가 최대 3건에 불과했는데, 최근 수요가 몰리면서 연간 최대 25회 발사할 수 있도록 정부 허가를 추진 중이다.
위성 발사는 스페이스X를 세운 머스크가 주도하고 있다. 머스크는 저궤도에 위성망을 깔아 지구 전역에 인터넷을 제공하려 한다. 2019년 스타링크 위성을 처음으로 쏘아올린 뒤 현재까지 위성 6700기를 배치했다. 지금은 100국의 400만여 명에게 우주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최종적으로 위성을 4만2000기까지 늘리는 것이 목표다.
그래픽=이진영
여기에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최고경영자도 가세했다. 아마존은 스타링크에 대항해 위성 사업 ‘프로젝트 카이퍼’ 서비스를 계획하고 있다. 위성 3000기 이상을 배치해 인터넷을 서비스하는 것이 목표다. 올해 초부터 위성을 발사해 연말쯤 서비스를 출시할 계획이다.
◇총알 10배 속도의 우주 파편
수많은 위성이 지구 궤도에 배치되면서 우주 쓰레기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유럽우주국(ESA)에 따르면 현재 지구 궤도에는 크기 10㎝ 이상의 우주 쓰레기가 약 2만9000개에 달한다. 우주 쓰레기는 속도가 총알보다 10배 빠른 초속 약 7.5㎞에 달해 부딪히면 치명적이다. CNN은 “최고의 센서를 사용하더라도 아주 작은 우주 쓰레기를 추적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했다. 실제 지난해 11월 국제우주정거장(ISS)은 날아오는 우주 쓰레기 조각을 피하기 위해 회피 기동을 시행했다.
특히 과학자들은 ‘케슬러 신드롬’을 우려하고 있다. 케슬러 신드롬은 1978년 NASA(미 항공우주국) 과학자 도널드 케슬러가 주장한 우주 재난 시나리오로, 우주 파편이 위성 등 우주 물체에 부딪쳐 더 많은 파편을 만드는 연쇄 폭발을 뜻한다. ESA에 따르면 1957년 우주비행이 시작된 이래 폭발과 충돌을 초래하는 비정상적인 사건이 650건 이상 발생했다. 예컨대 러시아는 2021년 자국 위성을 공격하는 무기 시험을 해 1500개 이상의 파편이 생겨났다. 수명을 다한 위성이나 로켓 파편 등이 우주를 떠돌며 다른 위성을 위협하는 일이 점점 더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실제 연쇄 충돌로 인공위성이 모두 파괴되는 상황이 벌어지면, GPS(위성 항법 시스템)나 통신, 인터넷 등 위성에 기반을 둔 인프라를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심지어 우주 파편으로 인류가 지구에 갇히게 되면서 달을 비롯해 태양계 행성 탐사도 중단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케슬러 신드롬
우주 쓰레기에 맞아 파괴된 위성의 잔해가 다시 다른 위성을 파괴하는 연쇄 폭발을 말한다. 1978년 NASA의 과학자 도널드 케슬러가 주장한 우주 재난 시나리오다. 최근 지구 저궤도에 수많은 위성이 발사되면서 우주 쓰레기의 양이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조선
국토부, 제주항공 사고기 조류 충돌 확인…'콘크리트 둔덕' 논란엔 "규정 준수"
"규정상 문제 없지만 안정성 확보 위한 개선 방안 마련할 것“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열흘째인 7일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에서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 관계자와 경찰특공대원이 사고 현장을 살피고 있다. ⓒ연합뉴스
국토교통부가 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 참사기의 조류 충돌(버드스트라이크) 사실을 처음으로 공식 확인했다. 다만 참사의 또다른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콘크리트 둔덕'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승열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 사고조사단장은 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버드스트라이크가 발생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며 "엔진에 들어간 흙을 파내는 과정에서 깃털 일부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 단장은 "한쪽 엔진은 (조류 충돌로) 확실하게 보이는데, 양쪽 엔진에서 같이 일어났는지, 다른 엔진에서 덜 심하게 일어났는지는 (조사 결과를) 봐야 한다"면서 "다만 (조류 충돌이) 심하게 일어났다고 해서 엔진이 바로 꺼지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깃털은 국내 전문가뿐 아니라 미국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도 분석할 예정이다. 이 단장은 NTSB에 이송한 비행자료기록장치(FDR) 분석 작업을 두고 "자료 인출은 3일, 기본 데이터 확인은 하루 이틀 정도 걸린다"며 "음성기록장치(CVR), CCTV와 시간을 맞춰 분석하는 데까진 몇 개월 정도 걸릴 수 있다"고 했다.
한편, 국토부는 무안국제공항이 규정을 위반해 과도하게 단단한 둔덕을 설치했다는 논란에 대해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구조물이 부러지기 쉽게 만들어야 하는 종단안전구역의 범위는 '방위각 제공시설(로컬라이저) 앞단까지'이며 그에 따라 로컬라이저의 기반시설인 '콘크리트 둔덕'은 문제가 없다는 해석이다.
국토부는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와 미국항공청(FAA) 규정을 근거로 "방위각 시설 앞까지 종단안전구역을 최대한 확보하라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국토부는 종단안전구역 밖으로 보더라도 공항안전운영기준에 따라 로컬라이저 둔덕이 부러지기 쉽게 만들었어야 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해당 기준은) 2010년부터 적용된 만큼 건설 당시 적용되지 않는 상황이었다"고 해명했다.
다만 "국내외 규정의 위배 여부와 관계없이 최대한 안전성이 확보되는 방향으로 검토됐어야 했다는 점은 미흡했다"며 개선방안을 마련하고 다른 공항의 둔덕도 안전성을 확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주종완 국토부 항공정책실장은 주 실장은 "(전국 공항의) 전수조사를 곧 착수할 것"이라며 "민관 전문가분들이 참여해서 공항 전국공항의 시설물들을 일제히 조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상혁 기자 | 프레시안
기후변화로 떠나지 않는 철새들의 텃새화
새들의 이동은 특정한 시기에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긴 거리를 여행하는 자연의 현상이다. 새들은 따뜻한 날씨, 더 나은 먹이, 이상적인 번식지를 찾기 위해 이동을 하며, 다양한 서식지 사이를 이동함으로써 유전적 다양성을 보장하고 자연의 건강한 균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러나 이러한 철새들의 자연적인 이동은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로 점점 텃새화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이동 경로와 행동에 중대한 영향을 받는다.
관련 기사를 검색하면 “따뜻해진 겨울, 떠나지 않는 여름 철새” “지구온난화로 인한 철새의 양식장 피해” “열대지방 새들이 우리나라로” “텃새화되는 철새들, 농가와 어민들에게 큰 피해” “따뜻해진 한반도 ‘철새 지도’ 새로 그리기”와 같은 여러 기사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로 인한 철새의 이동 경로 변화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부담을 증가시킨다. 일부 연구에 따르면 이동 경로의 변화는 철새의 서식지가 겹치게 하거나 경쟁종과의 갈등을 심화시켜 생태계의 균형을 깨뜨릴 위험을 높일 수 있다. 이로 인해 다양한 생물종이 영향을 받을 뿐만 아니라 생태계 건강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더욱이 기후변화는 철새뿐만 아니라 전체 생태계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변화시킨다. 예를 들어 북극의 얼음이 녹는 현상은 북극의 철새 서식지에 큰 영향을 미치며, 얼음 덮인 지역에서 번식하는 철새는 서식지 감소와 먹이 부족 문제에 직면한다.
며칠 전, 안타깝게도 179명의 목숨을 앗아간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의 원인 중 하나가 철새 도래지 근처의 조류 충돌(버드 스트라이크)이라는 뉴스들이 보도되었다. 철새 도래지와 공항의 입지 선정 및 경제성과 관련된 여러 논란을 떠나, 기후변화로 인한 철새의 텃새화가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고도 볼 수 있다. 텃새화된 철새는 계속해서 그 서식지에서 번식하고 살아남으려 하며, 그에 따라 개체 수가 증가한다. 이로 인해 일부 지역에서는 철새와의 충돌 사고 위험이 커진다. 특히 공항 주변은 활주로와 이착륙 경로에 가까워 항공기와 철새의 충돌이 자주 발생할 수 있으며, 이러한 충돌은 항공기와 승객의 안전에 큰 위협이 된다.
항공기와 조류의 충돌 사고는 이전부터 항공사 운영의 중요한 문제로 인식되며, 매년 수백건의 사고가 발생한다.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로 철새가 텃새화되면서 공항 주변 생태계가 변화하고, 이는 조류 충돌을 더욱 빈번하게 일으킨다. 특히 이착륙 과정에서의 충돌은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공항 주변 철새의 이동 경로를 이해하고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조류 통제 프로그램을 시행하여 항공기 운항의 위험을 줄이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들을 모색해야 한다. 또한 조류 충돌 관련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여 충돌 사고의 발생 원인과 패턴을 규명하고, 이를 바탕으로 보다 효과적인 정책과 대책을 마련해나가야 할 것이다.
작은 나비의 날갯짓이 토네이도로 이어질 수 있다는 나비효과,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가 가져온 나비효과가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어떤 더 큰 결과로 이어질지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김준범 프랑스 트루아공대 환경정보기술학과 교수/ 경향
식물 대통령과 식물
언제부턴가 ‘식물 국회’ ‘식물 정부’ ‘식물 대통령’이라는 말이 일상용어가 되었다. 인터넷 국어사전은 식물 국회를 ‘움직임이 없고 제 기능을 못하는 국회’라고 정의했다. 그렇다면 식물 대통령은 ‘움직임이 없고 제 기능을 못하는 대통령’이란 뜻이다. 안타깝게도 식물을 바라보는 우리 관점이 이 용례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외국에는 이런 용어가 없는데, 급기야 외신에서 퍼 나르기 시작했다. 식물 국회든 식물 대통령이든 그 속에 숨은 뜻은 의당 부정적이니, 식물에 빚진 나로서는 못마땅한 용어다.
푸성귀 따위로 식물을 인식하면 곤란하다. 지구상의 만물을 살리는 중추 역할을 하는 것이 식물이다. 세계적 식물학자 스테파노 만쿠소처럼 8개의 헌법 조항까지 만들며 ‘식물의 권리장전’을 주장하지는 못할망정, 우리는 식물을 정치판에 끌어들여 무기력한 존재로 만들었다. 게다가 식물이란 단어를 앞에 붙여 전부 ‘제 기능을 못한다’라는 의미로 해석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제 기능을 못하는 식물은 어디에도 없으니 이 표현 또한 사리에 맞지 않는다. 다른 생물에 빌붙어 사는 인간과 달리 식물은 독립적으로 살아간다. 평생 한곳에 뿌리박고 인의(仁義)를 실천하는 생물이 바로 식물이다. 이리저리 정당을 옮겨 다니며, 개인 영달을 꿈꾸는 정치인보다 훨씬 지조 있는 존재다. 어쩌다 우리 사회가 식물 사회보다 못한 사회가 된 것일까?
지금에 비하면 옛사람들은 식물을 품격 있게 대했다. 조선 후기에 <화암수록>을 쓴 유박은 식물을 예스러운 벗, 맑은 벗, 우아한 벗 등으로 칭하고 친구로 삼았다. 그는 식물을 사람처럼 품계를 나누기도 했다. 퇴계 이황은 또 어떤가. 호형호제하며 지냈던 매화에 물을 주라는 것이 그의 유언이었다. 변변치 못한 사람보다 매화를 더 사랑했다. 또한 조선 후기 정치가 목만중은 ‘사람을 판단하는 일이나 꽃을 평가하는 것이 같은 일’이라 하여, 꽃의 품격(花品)과 사람의 품격(人品)을 같은 격으로 보았다.
한편, 중국 송나라 사상가 소옹(邵雍)은 식물을 판단하는 기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뿌리와 줄기를 보고 꽃의 귀하고 천함을 알아보는 자가 으뜸이고, 가지와 잎을 보고 아는 자는 그다음이며, 꽃송이를 보고서야 아는 자는 아랫길(下秩)이다.”
아뿔싸! 식물 대통령을 뽑은 우리는 꽃송이만 보고 뿌리와 줄기를 알아보지 못한 아랫길이었단 말인가? 식물들이 우리에게 말한다. ‘너희들이나 잘하세요!’
이선 한국전통문화대 명예교수/ 경향
기후정의를 위한 100명의 목소리와 거버넌스
충남도 노동전환 지원 활성화 집담회 후기
▲기후위기비상행동 활동가들이 16일 서울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기후 위기를 유발하는 석유·가스 시추계획을 중단할 것을 정부에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8개의 테이블에 앉은 사람만 100명이 넘었다. 행사 진행 인력을 제외하고 말이다. 지난 11월19일, 온양제일호텔에는 성별도, 나이도, 소속 기관도, 입장도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다. 탄소중립 및 디지털 산업으로의 전환에 따른 노동전환지원 활성화 방안에 대한 연구 내용을 듣고, 궁금한 점을 묻고, 생각을 말하면서 공통의 의견을 만들기 위해 3시간여를 함께 했다. 이날 집담회 행사는 충청남도 노동전환지원센터가 주관하였다. 충남에서는 보령과 태안 등 기초자치단체별로 기후정의단체와 시민단체 등이 주관하는 정의로운 전환 집담회가 몇 차례 진행되었는데, 충남도가 노동전환 지원을 주제로 집담회를 주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광역지자체 주도 노동전환 집담회: 폐쇄 임박 발전소 노동자부터 고등학생까지
충남도가 이 집담회를 기획한 것은 탄소중립 및 디지털 산업으로의 전환 과정에서 필요한 노동전환 지원 방안과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역할을 모색하기 위함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충남도는 석탄화력발전, 자동차부품, 철강, 석유화학, 디스플레이, 반도체 등의 산업이 소재하고 있어 탄소중립 및 디지털 산업으로의 전환에 따른 노동전환 필요성과 이에 따른 지원 대책 마련이 시급하게 요구되는 지역이다. 정부의 온실가스감축계획(NDC)과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라 석탄화력발전소 59기 중 28기가 2025~2036년에 순차적으로 폐지될 예정인데, 그 28기 중 14기가 충남도 관내에 있다. 충남도는 또한 전국의 자동차부품 제조업체(8644개소) 중 11.5%(998개소)가 밀집한 지역으로, 종사자 수로 따지면 17.4%(전국 24만7000명 중 4만3000명)에 이른다. 당진 현대제철을 필두로 한 철강업, 대산 석유화학단지에 소재한 다수의 석유화학업체까지 포함하면 충남도 내 어느 한 곳 탄소중립과 디지털 전환에 따른 대책 모색이 시급하지 않은 곳이 없다.
집담회 참석자 면면은 다양하였다. 당장 일자리 상실 위기에 처한, 또는 직무 전환이 필요한 노동자들과 이들이 가입한 노동조합 관계자들에서부터 기업체 담당자, 광역 및 기초 지자체의 일자리·기후대응·지역경제·사회적경제 담당자, 노동부 지역고용노동청 관계자, 노동권익센터 및 비정규직지원센터와 같은 지역 내 노동단체 활동가, 산업정책 및 노동정책 전문가, 그리고 공업고나 마이스터고 학생들과 관내 고등학교 교사들이 참석하였다. 탄소중립 및 디지털 전환에 따라 산업과 노동정책만이 아니라 사회안전망, 지역경제, 마을공동체, 세대 간 통합, 직업교육훈련정책 등 다방면에 걸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점을 반증했다. 참석자들은 충남도 내 석탄화력발전소 폐쇄에 따른 영향 분석과 자동차산업의 현황과 전망, 충남 노동전환지원센터의 역할과 운영 방안 등 3개 주제에 대한 발표를 듣고 8개 분과로 나뉘어 토론을 진행하였다. 분과는 석탄화력발전(3개), 자동차(2개), 제철철강·석유화학·운수산업(각 1개)으로 구성되었다.
발전소 폐지지역 지원 특별법 제정·고용안정 지원 방안 구체화 요구
각 분과 논의에서는 다양한 질문이 나왔다. △석탄화력발전소 폐지 이후 발전산업 재구조화 전망은 무엇인가? 공공 신재생에너지 산업으로의 전환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가? △노동전환 협의체 구성시 원청과 하청의 특성을 어떻게 잘 반영할 수 있는가? △전환 교육은 어떤 프로그램으로, 어떻게 진행되는가? 교육 이후 재취업 시 현재 임금과 노동조건 수준을 보장하는 수평 이동은 가능한가? △발전소 부두에서 일하는 석탄하역노동자들의 물량 감소에 따른 임금 하락에 대한 대책이 있는가? △정의로운 전환 기금은 어떻게 결정하고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 등이다. 다양한 의견도 쏟아졌다. 정의로운 전환 개념과 의미, 노동전환지원 센터의 역할 등에 대한 교육과 홍보를 강화할 것, 실태조사를 더욱 세세하고 구체적으로, 또한 지속적으로 실시할 것, 불가피한 실직과 전직 시에도 고용을 보장한다는 원칙을 분명히 할 것 등이다.
질문과 토론을 이어가면서 참석자들은 정부를 상대로 노동전환 지원을 위해 시급히 해야 할 일도 제안하였다. 국회와 중앙정부에 대해서는 이미 몇 개의 법 개정안이 발의되어 있는 ‘석탄화력발전소 폐지 지역 지원 특별법’을 조속히 제정할 것과 산업전환에 따른 고용안정 지원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할 것을 요구하였다. 충남도에 대해서는 석탄화력발전소 단계적 폐지와 내연기관차 축소에 따른 대체산업(신재생에너지사업 등) 발굴과 녹색일자리 창출, 정의로운 전환 기금의 확대 운영을 주문했다. 노동전환지원센터에는 노동전환 지원산업 수요조사와 지원사업의 활성화, 지역 이해관계자 참여에 기반한 정부 대책 수립을 위한 공론장 마련 등을 요구하였다.
ⓒ이정희
날줄과 씨줄이 교차하는 지역 거버넌스의 가능성
이날 집담회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목소리를 한데 모았다는 것과 함께 지역 수준에서의 거버넌스를 통한 기후위기 대응 방안 모색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기후위기 대응과 관련한 지방정부 거버넌스는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눠 볼 수 있다. 탄소중립기본법에 근거한 2050지방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고용정책기본법에 근거한 지역고용심의회, 지방정부가 자체 제정한 조례 등에 기반한 위원회 등이다.
우선, 탄소중립기본법에서는 지방자치단체의 탄소중립 사회로의 이행과 녹색성장 추진을 위한 주요 정책 및 계획과 그 시행에 관한 사항을 심의·의결하기 위하여 중앙정부는 물론 지방자치단체별로 2050 지방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를 둘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시·도지사는 10년을 계획기간으로 하는 시·도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을 5년마다 수립·시행하여야 하고, 이 시·도 계획 수립 및 변경은 이 지방위원회 심의를 거쳐야 한다. 둘째, 고용정책기본법에서는 중앙정부 수준의 고용정책심의회와 함께 광역 시·도에 지역고용심의회를 두어 지역 내 고용에 관한 주요 사항을 심의토록 하고 있다. 시·도 지사는 이 지역고용심의회 심의를 거쳐 지역 주민의 고용촉진과 고용안정 등에 관한 지역고용정책기본계획을 수립·시행하여야 한다. 지역고용심의회는 별도로 구성할 수도 있지만 노사관계발전법에 따른 지역 단위 노사민정협의체가 구성되어 있는 경우 이를 지역고용심의회로 볼 수 있다. 셋째, 앞선 2개의 유형과 관계없이 지방정부가 자체 제정한 조례 등에 기반한 위원회도 있다.
충남도에는 탄소중립, 정의로운 전환, 노동전환 지원 등을 주 기능으로 하는 5개의 위원회가 설치되어 있는데, 충남도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는 첫 번째 유형, 충남도 노사민정협의회는 두 번째 유형에 각각 해당한다. 충남도 노사민정협의회는 산하에 노동전환지원특위를 설치하였다. 이날 집담회를 주관한 노동전환지원센터는 산업구조 전환에 따른 노동전환 지원 및 이·전직 지원에 필요한 사업을 수행하는 기구인데, 노동전환지원위원회 설치 근거인 조례에 기반하고 있다.
필자는 지난 기고글("정의로운 산업전환을 위한 산업·업종별 거버넌스가 필요하다")에서 중앙과 지방정부 간 중층적 구조에서 ‘사회적 협의’와 ‘단체교섭’이 함께 이뤄지는 거버넌스의 필요성에 대해 말하였다. 충남의 사례는 사회적 협의가 날줄(중앙과 지역)과 씨줄(지역 내 이해관계자들)이 상호교차하며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옷감을 만들어 내는 구조를 갖추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날 집담회는 이 구조가 법률과 조례상의 조문으로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었을 뿐 아니라 (정부나 기업의 결정에) 영향을 받는 모든 사람들이 그 결정이 이뤄지는 과정에 참여하여야 한다는 민주주의 원리를 구현하고자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거버넌스의 다른 한 축은 단체교섭은 여전히 기업 수준에 머물러 있는데, 현재 직면한 전환 의제는 특정 기업 내 노력만으로는 풀 수 없는 과제인 만큼 발전5사와 자회사 및 협력사가 함께 하는, 또한 완성차와 협력사가 함께 하는 업종 수준에서의 단체교섭 구조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함께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프레시안
개벽적 전환기의 창조적 재생 위한 생태적 의제 10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던 급변사태
세계보건기구(WHO)는 2020년 1월 31일 코로나 팬데믹 비상사태를 선포했고, 2023년 5월 5일 해제할 때까지 만 3년 4개월간 전세계인들은 전대미문의 경험을 했다. 세계적으로 약 7억 명의 확진자가 발생했고 700만 명 이상의 사망자가 집계되었던 이 기간 동안 국경이 폐쇄되고 이동은 극도로 제한되었다. 모두 마스크를 쓰고 다녀야 했으며 언택트(비대면)가 강조되고 재택근무를 해야 했다. 까마득한 일로 가물가물 해졌을지 모르지만 불과 2년 전의 일이다. 당시 한국은 이 코로나 대응에 세계적인 모범이 되어 K-방역으로 극찬을 받았던 국가였다.
이 코로나 원인도 바로 기후위기와 연계돼 있었으며, 이후 기후문제에 대한 전세계적인 관심이 급격히 고조되고 그에 대한 대응 요구는 더욱 강렬해졌다. 유엔 기후변동협약 등이 목표로 삼고 있는 1.5℃ 이내로 기온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기준으로 40%를 줄여야 한다는 NDC(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을 위해 매진해야 한다. 이를 위한 국제사회의 압박과 그레타 툰베리로 상징되는 청소년을 비롯한 국제 시민사회의 행동은 변화를 이끄는 강력한 동력이었다.
조류 인플루엔자 A H5N1 바이러스 입자(파란색)의 컬러 투과 전자 현미경 사진. 보건 전문가들은 미국에서 소들 사이에 퍼지고 사람들을 감염시키면서 돌연변이 징후를 보이고 있는 조류 독감이 초래할 잠재적인 팬데믹 위협에 대해 경각심을 고조해 왔다. 2024.11.22.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와 국립알레르기감염병연구소 연합뉴스
새들이 인도 뭄바이에서 일몰 무렵 스모그에 휩싸인 건설 현장에서 크레인 주위를 날고 있다. 뭄바이는 지하철 프로젝트, 건물 건설, 교량, 도로 유지 관리, 차량 교통을 포함한 진행 중인 건설 작업과 기후 변화로 인해 심각한 대기 오염을 겪고 있으며, 중앙 오염 통제 위원회(CPCB)에 따르면 대기 질 지수(AQI)가 '나쁨' 범주에 속한다. 2025.1.1. EPA 연합뉴스
그리고 비상계엄 친위쿠데타
코로나가 끝나기 1년 전인 2022년 3월 9일, 20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윤석열 정권은 2년 6개월 뒤인 지난해 12월 3일 자신의 통치권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회와 국민들은 불과 2시간만에 계엄 해제를 결의했고, 14일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가결시켰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전광석화처럼 일어난 사건이었다. 비상계엄을 주도했던 김용현 국방부장관은 불과 3개월 전인 지난해 9월 청문회에서 계엄설을 거짓선동이라고 강력하게 부인했으며, 심지어 “어떤 국민이 이를 용납하겠냐. 나라도 안 따를 것 같다”고 딴청을 부린 사람이었다.
윤석열을 중심으로한 친위 쿠데타 세력들은 오랫동안 모의를 해온 것이 드러났다. 북한의 공격을 유도하기 위해 무인기를 보내고, 백령도와 연평도에서 자주포와 다연장로켓 천무를 400발이나 넘게 쏘았으며, 오물 풍선에 대해 원점타격을 명령하는 등 노골적으로 교전을 유도하여 북한의 침공을 유발하고, 이를 이용하여 계엄의 당위성을 위장하려고 했다는 사실은 너무도 큰 충격이었다. 이제까지 북한이 전쟁광이며, 남한 평화의 가장 큰 위협 세력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오히려 남한 정권이 전쟁을 촉발하려 했다니, 참으로 상상하기 어려운 놀랍고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계엄과 탄핵정국을 둘러싸고 지금 쿠데타 세력과 탄핵을 반대하는 태극기 부대를 한편으로 하고, 윤석열 구속과 탄핵을 촉구하는 국민들을 또 한편으로 하여 내전이라는 말까지 들을 정도의 싸움이 서울 여의도와 광화문, 한남동, 그리고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최근 탄핵국면의 시위는 과거 촛불운동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른바 응원봉으로 상징되는 20~30대 젊은이들의 대거 참여, 그리고 그들의 참여방식은 과거와는 전혀 달랐다. 기발한 구호가 담긴 깃발들이 등장하고 아이돌그룹의 노래가 민중가요를 대체했으며, 시위가 마치 춤판이라고 할 정도로 축제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시위장 주변 빵집과 카페에는 선결제를 통한 격려가 쏟아지고, 남태령과 한남동에는 몸녹이는 버스가 등장했다. 김밥과 떡볶기를 무료로 제공하는 포차까지 등장하는 감동적인 탄핵 촉구시위 지원과 응원 방식은 새로운 시위 문화로 정착되고 있다.
지금 대통령이 내란 혐의로 체포돼 구속되고 탄핵이 인용될 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극우세력들은 이 상황을 뒤집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이미 2025년 벽두의 여론조사에서는 70%가 탄핵을 인용하고 파면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이런 분위기가 압도적인 상황에서 윤석열이 권좌에 복귀할 것이라는 상상은 끔찍한 일이다. 윤석열 정권의 2년 반 동안 생태, 기후, 환경에 대한 의미있는 고려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었다. 오히려 설악산 케이블카 건설처럼 온갖 개발공약을 내세웠고, 재생에너지를 피하고 원전을 극찬, 확대하며 대왕고래 프로젝트로 상징되는 석유채굴에 열을 올렸던 퇴행적 기간이었다.
격변기에 의미있는 전환의 씨앗 장착되도록
최근 5-6년간은 코로나를 거쳐 탄핵정국에 이르기까지 상상도 예측도 할 수 없는 사건과 사태의 연속이었고, 가히 격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정치 사회 문화적인 요동을 체험하고 있다. 이 과정은 분명 혼란과 혼돈의 시기다. 그러나 모든 새로운 질서는 바로 혼돈을 관통하면서 만들어진다. 이러한 불확실성, 예측 불가능한 시기에 우리의 미래를 그냥 우연적인 사건과 자연적 변화에 맡길 것이 아니라, 의미있는 전환 의제를 장착시켜 바람직한 녹색(초록)문명으로의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개벽적 전환의 시기를 관통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10가지 의제를 서술해 보고자 한다.
인도네시아 발리 리조트 섬의 케동아난 바둥 리젠시 해변에 두껍게 쌓인 플라스틱 폐기물과 기타 쓰레기 위에 서 있는 한 남자. 2025.1. 3. AFP 연합뉴스
1) GNP는 틀렸다. 성장을 벗어나 성숙의 돌봄사회로 : 풍요로운 생산과 소비를 추구하는 GNP(국민총생산) 또는 GDP(국내총생산) 중심의 발전지향이 명백히 오늘의 위기를 부른 원인이다. 무한성장주의는 곧 무한채굴주의다. 그러나 행성적 한계는 자원을 무한히 채굴할 수도 없고, 무한정 소비를 감내할 정도의 오염을 정화해낼 수도 없다. 모든 나라가 미국이나 유럽, 우리나라와 같은 소비사회가 되는 것은 인류의 절멸을 초래할 끔찍한 일이다. 이제까지의 생산력 중심의 발전방식을 폐절(廢絶)하고 지탱 가능한 발전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국민들에게 더 이상 성장사회가 아니라 성숙사회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충분히 공유하게 하고, 대안적 발전 지표를 제시해 설득해야 한다. 현재 부탄의 GNH(국민총행복)이나 GPI(참진보지수), HDI(인간개발지수)등이 그것이다.
진정한 번영은 경제적 부를 추구하는 ‘성장사회’가 아니라 ‘성숙사회’로, 또한 사람들끼리의 관계의 질을 고도화해 서로가 서로를 돕고 돌보는 ‘돌봄사회’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자기 돌봄, 서로 돌봄 등 다양한 돌봄의 문화를 함양해 산업성장사회를 ‘돌봄사회 공동체’로 바꿔야 한다.
2) 화석연료는 이제 그만, 재생에너지 사회로 : 수십만 년 동안 인류는 나무나 물 등의 ‘지상자원’을 사용했다. 주기적으로 복구되는 지속성 있는 자원이었다. 그러나 산업사회 이후 땅속의 ‘지하자원’을 캐내어 쓰기 시작한 인류는, 석탄, 석유, 천연가스나 우라늄 등의 채굴자원을 통해, 과거 인간의 근육에 의존한 자연개조 수준을 넘어서 기계장치를 작동하여 인간의 수십 배 수천 배의 힘으로 자연을 이용하고 개조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 지구라는 행성적 한계로 지하자원은 무한하지 않다. 곧 고갈되는 자원이다. 따라서 엄청난 자연개조 능력은 오늘의 화를 자초했다. 이제 자연에 가한 폭력은 자연이 스스로 복원하고 정화하는 수준을 훨씬 넘어섰다. 이러한 각성을 토대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인류는 ‘자연은 미래세대의 것, 우리가 잠시 빌어쓰는 것’임을 천명했다. 이 말이 단순한 레토릭이 아니라면 우리는 미래세대가 써야 할 자원은 남겨둬야 하며, 매장자원을 더 이상 채굴하지 않아야 한다. 원자력 발전소 한계수명이 40년인데, 에너지 공급을 위해 10만 년 넘게 후손들에게 방사능의 위험을 전가할 원자력 발전은 더더욱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원전은 순차적으로 폐기하는 것이 윤리적이며 정의로운 일이다.
지상자원과 지하자원이 아니면 결국 대안은 ‘천상지원’이다. 바람과 햇빛이다. 태양이라는 항성이 존재하는 한 영원한 에너지원이다. 다른 나라에서 수입할 필요도 없이 현재 모든 지역에서 당장 원료를 채굴(?)할 수 있는 재생에너지원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태양광 발전이나 풍력발전은 지역 에너지 공급방식으로 지역의 에너지 자립과 분권화된 사회를 촉진하는 데에도 적절한 에너지라는 사실이다.
3) 토건개발은 중단하고, 재생과 보존중심 사회로 : 한국사회가 1960년대 이후 압축성장 과정에서 많은 도로와 항만 기타 사회간접시설과 주택을 공급하고, 온갖 편의시설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토건산업은 급격하게 확장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토건자본들은 이제 자신들을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도로, 공항, 항만, 아파트 등을 건설하려 하고 그것을 위해 다양한 개발논리를 만들어 과잉개발 상황을 만들었다. 새만금 개발, 4대강 사업, 가덕도와 제주도, 흑산도 등의 공항 건설, 그리고 설악산 지리산 등 도처의 케이블카, 산악열차 설치로 산림을 파괴하고 전 국토를 유린했고 또 하려 한다. 이러한 개발중심의 사회가 환경파괴를 초래했고, 그것이 기후위기의 원인이다. 이제 토건중심 사회는 포기해야 한다. 국토를 파헤치고 건설하고 개발하는 사회가 아니라 더욱 잘 보존하기 위한 개발, 재생과 순환을 위한 건설, 피해를 최소화하고 자연의 복원력을 넘어서지 않는 범위 내에서의 개발로 사회적 방향을 시급히 전환해야 한다.
4) 중앙 해체, 지역으로 분산된 분권화 사회로 : 생태적 전환사회는 탈중심의 사회, 분권화한 자치의 사회다. 한국사회는 유례없을 정도로 과도하게 중앙화 도시화됐다. 그러나 반대로 지방은 소멸을 걱정할 정도로 공동화하고 있다. 이러한 중앙집중화를 해체하고 분산해야 한다. 인구가 분산되어야 에너지, 주거, 식량 먹거리, 교육, 폐기물 처리 등이 해결될 수 있다. 그래서 지방에 권한과 예산을 과감하게 이양하는 실질적인 지방자치가 필요하다. 나아가 수계(水界)를 중심으로 행정구역을 개편해 생물지역주의에 근거한 자연과 사회의 순환적 주민자치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마을단위의 자치와 독립적인 예산 권한까지 갖고 주민들이 참여하는 직접민주주의를 토대로 한 공화국을 만들어야 한다.
자연 암초를 재생하고 지구 온난화의 영향을 줄이기 위해 산호 농장을 건설하는 베네수엘라 산토도밍고 섬.. 2024.11.26. 로이터 연합뉴스
5) 미래세대와 자연의 권리를 존중하는 생태민주주의사회로 : 오늘날 정치인들은 4-5년의 선거기간만 책임질 뿐이다. 단기적인 이해와 이익을 중심으로 하는 시스템이다. 그러나 이제 장기적이고 미래세대까지 고려하는 의사결정을 제도 속에 장착할 방법을 구상해야 한다. 나아가 인간 외의 비인간 존재의 처지까지 배려할 시스템을 창조해 내야 한다. 오늘날의 정치현실에서 미래세대와 자연권까지 인정할 민주주의를 고려할 여지가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2008년에 에콰도르는 헌법(제71조)에 “자연 또는 파차마마(Pachamama, 대지의 여신)는 존재하고, 재생산하며, 생명주기를 유지할 권리가 있다”고 규정했고 ‘모든 시민이 자연의 권리를 대신해 법적 소송을 제기할 수 있음’을 인정했다. 또 2009년 볼리비아는 헌법 개정을 통해 ‘자연의 권리’를 인정했고, 2010년에는 ‘자연의 권리에 관한 법’을 제정했다. 인도는 2017년에 갠지스 강과 야무나 강에 법인격을 부여했고, 뉴질랜드도 같은 해에 황가누이 강에 법인격을 부여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이후 개헌할 경우 반드시 ‘자연의 권리’와 ‘자연의 법인격 ’등을 헌법에 명기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일정한 규모 이상의 자연을 이용하거나 개발할 경우 반드시 지역주민과 시민단체 등이 참여하여 비인간 존재와 미래세대의 입장을 반영한 숙의, 생태민주주의의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6) 경쟁사회에서 협력하는 공유, 공생사회로 : 우리의 교육은 협력보다는 경쟁에서 이기는 법을, 인성교육보다 시험 잘 보는 것을 가르치는 교육이다. 취지와 목적에서 벗어난 자사고와 특목고, 사교육으로 점철된 청소년들의 심리적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래서 한국은 청소년들의 자살률이 노인자살률과 함께 높다. 서울대를 정점으로 한 대학의 위계가 사회와 신분의 위계를 만들고, 인문적 인성과 기초과학보다 인맥과 학맥, 스펙을 쌓는 일에 몰두하게 만든다. 돈 많이 버는 의대와 법대로 사람이 몰리는 현실은 승자독식 사회, 이익과 이기주의에 근거한 각자도생 사회, 성장주의 사회가 창조해 낸 결과다. 이제 경쟁보다 협력과 협동을 중심으로 서로 공생하는 살림의 사회로 전환해야 한다.
공기와 물, 대지 등은 모두 공유재(Commons)이다. 누구의 소유가 아니라 인간과 동물 식물들이 함께 공유하여 쓰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이 만든 것도 아닌 땅을 사고 팔면서 엄청난 돈을 번다. 자연적인 것뿐만 아니라 인간과 사회가 오랜 시간 공동으로 만들어온 것도 공유재다. 이러한 공유재는 소수가 사유해서는 안 되며, 위해를 받아도 안 된다. 공유재로 이익을 취했다면 그것은 공동으로 나눠야 한다. 이런 공유재를 넓혀 나가야 한다. 그래서 협력과 공유가 넘치는 사회로 가야 한다.
7) 특혜와 차별없는 평등, 존중·모심의 사회로 : 인류의 역사는 오랜 계급차별에 항거하는 투쟁을 통해 평등한 사회로 발전해 왔다. 성폭력과 성차별이 없어져야 한다. 더욱이 LGBTQ 등 성소수자나 장애자에 대한 혐오나 차별도 사라져야 한다. 전태일로 상징되는 가난하고 약한 노동자들의 비인간적 억압과 차별에 대항하면서 노동운동이 발전해 왔지만, 오늘날의 전태일은 농촌과 노동현장에서 한국인이 하기 싫어하는 위험한 모든 일을 하면서도 천대받고 차별받는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차별과 혐오가 사라지고 재력과 지위, 취향과 용모와 관계없이 모두가 오롯이 인간으로서 대접받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차별은 평등만으로 구현되지 않는다. 오히려 평등을 넘어 서로 존중하고 공경하는 가치 속에 평등이 완성된다. 나아가 인간만이 아니라 인간 이외의 뭇 생명과 비인간 존재까지로도 존중과 평등이 확대되어야 한다. 동물들도 제 명대로 살 권리가 있고 식물과 돌맹이도 자연 속에 서로 연결되어 의존하는 동등한 행위자로서 존중받아야 한다. 모셔야 할 성스러운 존재로 고려되어야 한다.
8) 하나되는 통일 넘어 다양성 속 평화공존으로 : 남과 북은 그 동안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한 관계’였지만, 최근 북쪽에서는 남쪽을 통일해야 할 하나의 나라라고 했던 기존 정책을 폐기하고 “부질없는 동족의식과 통일이라는 비현실적인 인식을 깨끗이 털어버릴 것”을 선언했다. 최근 탄핵정국에서 남한 정부가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북한을 무력도발로 자극하며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이제까지 통일은 사실상 어느 한 체제로 흡수통일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체제유지가 목적인 권력자에게 통일은 자기 체제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됐다. 그래서 이제 하나되는 통일보다 오히려 두 체제 간의 평화적 관계를 중심으로 하면서 실질적인 교류를 통해 분단을 의미없는 것으로 만들어 국경을 무력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9) 식량자급과 농업을 근본으로 한 자립사회로 : 식량자급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과거 코로나 시기에 베트남과 러시아의 식량수출 동결 선언은 수입국들에게 심대한 위협이었다. 그래서 식량은 무기다. 주권국가라면 식량은 다른나라의 간섭없이 안정적으로 국민들에게 충분히 공급할 수 있는 자립사회가 되어야 한다. 이것은 국가의 자립성과 안정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은 46%이지만 가축사료까지 포함하면 곡물자급률은 19.5%밖에 되지 않는다. 주요국 중에 최하위이다. 식량의 자급을 위해서는 농사지을 농지가 보존되어야 하며, 농민들이 안정적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농촌 공동체가 잘 만들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귀농이 장려되고, 농민들에게 매월 40만-60만 원 정도의 농민 기본소득이 제공되어야 한다. 그래야 농촌인구도 늘어나고 농민이 안정적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된다. 도시텃밭 등을 권장하여 도시인들도 농사를 짓도록 해야 한다. 농업은 산업이 아니라 생명을 키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10) 기본소득, 기본주거 중심 사회가 미래 : 자동화, 정보화, AI의 발달 등으로 산업은 생산력을 높여 가지만 고용은 줄어들고 있다. 임금노동으로 살 수 없다. 대안은 기본소득이다. 작지만 배당금이 매월 정기적으로 지급된다면 삶의 안정성은 대단히 높아지고, 삶의 질은 높아진다. 전국민적으로 동시 적용이 어렵다면 우선 농민들에게 먼저 시행하거나, 청년들에게 먼저 시행한 뒤 서서히 전국민적으로 확대해 나가는 것도 좋다.
또한 주거문제의 안정성도 대단히 중요하다. 그래서 기본주거다. 한국인들은 평균적으로 버는 돈의 22%를 주택매입이나 월세 내는데 쓴다. 이런 주거문제 부담으로 그만큼 삶의 질이 열악해진다. 따라서 3채 이상의 주택을 갖지 못하게 하고, 빈 주택들을 매수하여 공동임대주택으로 공급하는 등 기본거주권을 보장하는 획기적인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
2024년 12월 14일 멕시코 게레로주 아카풀코의 해변 리조트에서 한 사람이 거북이를 풀어주고 있다. 멕시코 남부 게레로주에서 열린 국내 및 해외 관광객을 위한 축제로 인해 멕시코 태평양에서 멸종 위기에 처한 거북이 750마리가 풀려났다. 2024.12.14. EPA 연합뉴스
2024년 12월 14일 파나마 시티에서 남쪽으로 약 100km 떨어진 푼타 차메 해변에 풀려난 후 바다로 접근하는 켐프 리들리 바다 거북이(Lepidochelys kempii), 로라 거북이라고도 불린다. 2024.12.14. AFP 연합뉴스
혼돈 속의 창조적 질서를 기대하며
위의 몇 가지는 이미 정책적으로 오랫동안 논의해 온 것이고, 몇몇은 이념적 추상성이 높아 사회적 합의를 얻기가 쉽지 않아 정책화하기 까다로운 면이 있을 것이다. 기후위기 해결은 과정적 목표일 뿐 궁극의 목표가 아니다. 탄소만 줄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총체적이고 개벽적인 사회전환을 이뤄야 할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코로나와 최근의 정치과정은 가히 예측할 수 없었던 사건들이 현실로 나타났다. 하나같이 불가능하고 현실화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일들이다. 그래서 오히려 불가능한 것일지라도 상상하고 생각하면 현실화되는 창조적 질서가 혼돈의 시기에 나타날 것이라 기대해 본다.
유정길 불교환경연대 녹색불교연구소소장/시민언론 민들레
윤석열이 일으키려던 전쟁…25개의 '핵지뢰' 아찔
위태로운 벼랑길을 걷고 있는 인류
위태롭기 짝이 없다. 최근 벌어진 항공사고의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윤석열이 행한 외환의 작위가 충격적이다. 북한을 향해서 원점타격이라니, 이는 고의로 전쟁을 일으키는 행위다. 이를 보면서 필자는 곧바로 원전이라는 핵지뢰밭을 떠올렸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자포리자 원전에 대한 드론 공격이 2024년에만 4차례나 있었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새해에도 드론 공격이 있었다는 뉴스를 접하고 있다. 우리의 25개 원전 어디건 전시에는 드론 정도의 폭격수단만으로도 아비규환의 현장이 될 수 있다. 한 군데만 터져도 국토가 절단나고 국가로서의 존망도 위협받는다. 우리는 지금 위태로운 벼랑에 있는 것이다.
더욱 근본적인 위협은 핵폐기물이다. 70년이 지나도록 어느 한 나라도 해결책이 없다. 해결할 수 있는 이론조차 없어서 대부분 핵발전소 부지 내에 임시저장을 하는 수밖에 없다. 제대로 된 안전시설 없이는 그 자체로 핵지뢰밭이다. 게다가 저장조에 핵연료를 저장하는 동안에 냉각수가 폐열을 식혀야 한다. 식히지 않으면 과열로 폭발하기 때문이다.
가동중 원자로의 냉각수뿐 아니라 저장조 냉각수를 이용하는 중에 누설 시 삼중수소 배출 문제도 크다. 핵폐수를 배출하고 있는 일본 정부가 핑계를 대는 것이, 바로 가동 중 일정 수준의 방사능 유출이 어느 원전에서나 벌어지고 있기 때문 아닌가. 물론 일본의 후쿠시마 핵폐수 투기는 본질이 다르다. 핵기지국가로 가는 로카쇼의 재처리공정 가동을 위한 사전 면죄부 역할을 주문받고 있는 것이다. 핵무기 생산을 위한 사용후핵연료 재처리시설이 있는 미국 핸포드(Hanford), 영국 셀라필드(Sellafield), 프랑스 라아그(La Hague)는 치명적 방사능의 배출지의 대명사다. 핵폭탄을 대량으로 생산해온 러시아와 중국도 내륙 어딘가가 심각한 방사능으로 곪아 있다. 남을 해치기 전에 자신부터 골병 드는 일이 바로 핵이다.
이런 핵폭탄 제조를 주도한 세력은 오랫동안 우라늄광산을 독점해온 국제금융자본이다. 맨해튼 프로젝트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탄의 개발을 독려하기도 했던 국제금융자본이 핵발전소마저 연료를 독점하고 있다. 핵연료봉 사업은 말 그대로 노다지다. 전세계 400여 개 핵발전소에 단지 몇 개 기업이 독점적으로 공급해오고 있으니 말이다. 핵발전소가 핵무기원료 생산의 기지가 되는 이치를 알고서도 국제금융자본은 이를 적극적으로 조장해온 혐의가 큰 것이다. 미국도 러시아도 예외가 아니다. 어떻게 보면 국가적 단위로 그 하수인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고, 지구촌 전체가 돈벌이의 볼모로 잡혀 있는 듯하다. 후손들에게 치명적 피해를 줄 유산을 물려주면서도 침묵으로 스스로를 기만하고 있는 것이 인류다.
핵발전소도 주권재민의 대상
거기에 더하여 이젠 자연재해로 인한 위험요소가 너무 많다. 세 차례의 대형사고만이 아니다. 기후위기로 인한 위험요인도 커졌다. 유럽의 하천변 원전이 걸핏하면 냉각수용 강물의 수온 상승으로 가동이 중단되는가 하면, 빈번해진 산불도 위협 요인이다. 3년 전 울진 원전 근처의 산불은 송전선로를 불태울 뻔했다. 원전가동을 위한 전기가 끊기면, 원전은 폭발의 위험에 노출된다. 뿐만 아니라 잦은 지진 외에도 쓰나미에 의한 침수 시 단전이 되면 마찬가지로 폭발 위험이 있다. 이와 같은 기후위기까지 가중되어 우리의 현실은 핵지뢰를 머리에 이고 사는 셈이다.
기후위기에 대처하는 에너지전환도, 원전에 의한 열오염과 탄소저장능력의 저감을 감안하면 하루빨리 해야 할 일이지만, 이는 시간에 관련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시간과 관련없이 우리가 해야 할 중대한 임무가 있다. 원전이 가동을 중단할 때까지 그리고 가동중단 후에까지 안전을 확보하는 일이다.
그 엄중한 일을 원전대국인 프랑스는 어떻게 만전을 기하고 있을까. 라아그 지역의 치명적인 방사능오염의 문제를 안고 있긴 하지만 프랑스는 서로 다른 주권기관인 행정부와 의회가 각자 위험을 예방하는 감시를 하고 있다. 행정부와 의회가 별개의 감시기관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권력의 출발점이 다른 기관이 교차감시를 하고 있으면, 원전현장은 안전관리를 부실하게 할 수가 없다. 우리처럼 부품납품의 부정이라든가, 공정상의 미비점이라든가 하는 운영상의 문제점은 낱낱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원래 핵발전소는 국민전체의 동의를 받아서 짓고 운영하는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이치에 맞다. 독일뿐 아니라 지금 세계 유수의 민주국가에서 스위스와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덴마크, 벨기에, 대만 등 많은 나라가 그러한 길로 나아가고 있다. 그것이 주권재민의 길이다.
원전의 작은 사고도 경제에 직결된다
원전의 사고는 경제에 직결된다. 몇 년 전 중국 광동지역의 타이산원전에서 핵연료 파손으로 원자로 내부의 방사능 준위가 과다하게 높아지는 문제가 발생했다. 원자로 내부구조물의 과다한 진동 문제로 그 설계가 문제 되자 책임이 있는 프랑스는 돌연 긴장하였다. 방사능이 누출되면 중국경제의 심장부인 광동 일대의 경제가 망가진다. 대형 사고가 아닌 방사능 누출만으로도 엄청난 타격을 입는 것이다. 그러자 중국 정부는 원인 규명을 위해 2021년 7월 즉시 정지하였고 결국 재가동까지 1년이나 걸렸다.
2020년에는 일본 자동차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세관에서 방사선량이 과다 검출되어 유라시아로의 통관이 거절되는 일이 발생했다. 후쿠시마 방사능이 얼마나 심하길래 자동차까지 오염되었나? 수만 가지 부품 어디에서 방사능이 나올지 알 수 없고 원천적인 대응이 어렵다. 우리의 동남해안에 몰려 있는 원전 어디에서라도 사고가 나면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자동차, 조선, 철강 모두 위기에 처한다. 반세기 동안 쌓아 올린 경제도 큰 타격을 입는다. 좁은 국토와 민족은 어찌 되겠는가?
완공을 앞두고 오스트리아 국민이 1978년 투표로 좌절시킨 츠벤텐도르프 원전 @이원영
교차감시의 장치를 강구하여 사고예방의 확률을 높여야
팔이 안으로 굽는 식의 안전관리라면 신뢰하기 힘들다. 어느 한 쪽의 감독이 아니라 교차감시가 될 때 안전의 확률이 올라가는 것. 프랑스만 그런가. 아니다. 미국은 행정부에 속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원자력규제위원회의 운영에 의회권력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 인사뿐 아니라 재정에까지 관여하므로 행정부로부터 독립적으로 이루어지면서도 교차적 감시의 기능도 작동하는 것이다. 일본은 어떤가. 일본의 원전은 매년 정기점검 후 재가동을 하게 되는데 이때 지역의 도지사(현의 지사)가 동의를 해주어야 재가동이 가능하다. 지방정부의 감시가 실질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어서 교차감시가 되고 있는 것이다.
독일은 원전에 폐쇄되기 전까지 운영의 모든 단계에서 독립적 전문가그룹의 교차감시가 이루어지는 시스템이 가동되어 왔다. 이런 류의 교차감시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야 고질적인 관료화를 벗어나 위험을 예방하는 전문성을 강화하는 흐름까지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행정부 내에 속하는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가 행정부인 산자부 산하의 한수원을 감시한다. 팔이 안으로 굽을 수밖에 없다. 핵발전소와 관련되는 온갖 비리의 원인이 여기에 있다. 앞으로 출범시킬 제7공화국에 바란다. 프랑스처럼 국회 내에 감시기구를 별도로 두든지, 독일처럼 독립적 전문가그룹에 의한 감시체제를 구축하든지, 지방정부의 감시권한을 강화하든지, 아니면 원안위의 지위를 미국처럼 국회가 그 인사와 재정에 실질적으로 관장하든지 하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이는 선택이 아니라 의무다.
이원영 전 수원대 교수, 원전위험공익정보센터 운영위원/시민언론 민들레
국민이 원치 않는 전쟁 예방 장치가 필요하다
12·3 내란 사태 와중에 한국군이 북한의 공격을 유도했다는 의혹이 여러 건 불거졌습니다. 윤석열 씨의 필요에 따라, 비상계엄 명분으로 활용하려고 군 당국이 남북한 국지적 충돌을 시도했다는 건데요. 북한이 오물풍선을 날릴 때 풍선을 띄운 북측 지역의 원점을 타격하라고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지시했다거나, 평양에 무인기를 침투시켰다거나 하는 설들을 국회 국방위원들이 제보를 토대로 제기했죠. 구속된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은 수첩에 ‘북방한계선(NLL)에서 북 공격 유도’라고 적어놓았음을 경찰이 확인하고 수사 중입니다.
‘설’만이 아닙니다. 공개된 현장도 있습니다. 해병대 부대는 지난해 11월27일 백령도에서 K9 자주포 200여발을 해상으로 사격하는 훈련을 했습니다. 서해 남북 접경 수역은 육지의 군사분계선과 달리 남북한 사이에 합의된 경계가 없죠. 해상으로 사격하면 왜 우리 수역으로 포를 쏘냐라고 반발하며 남북한이 다투기 쉽습니다. 2010년 북한군이 연평도를 포격할 때도 한국군의 해상 사격훈련을 빌미로 삼았습니다. 문재인 정부 때는 충돌을 피하려고 해병대가 장비를 육지 훈련장으로 옮겨 놓고 훈련하기도 했죠. 11월27일 해병대 해상 사격은 아슬아슬했습니다.
지난해 10~11월에는 북한이 러시아를 지원해 우크라이나 전선에 병력을 파견하는 뉴스가 떠올랐습니다. 윤석열 씨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에 대표단을 보내 브리핑을 시키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통화했습니다. 한국도 우크라이나에 살상용 무기를 제공하고 군사 요원을 파견하겠다고 부산하게 움직였습니다. 지금 돌아보니 이것도 우크라이나 전선으로부터 전쟁 비슷한 기운을 한반도로 끌어 들여오려던 속내 아니었나 싶습니다
지난해 12월26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앞에서 '평화와 연대를 위한 접경지역 주민·종교·시민사회 연석회의', '윤석열 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관계자들이 윤석열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여인형 국군방첩사령관,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을 외환죄 혐의로 고발하기에 앞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과거에도 북한 변수를 정치에 이용하려고 한 사례들이 있었습니다. 북한 바람을 일으킨다는 뜻으로 ‘북풍 사건’이라고 불렀죠. 1997년 대선 때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지지율을 끌어올리려고 저지른 ‘총풍 사건’이 특히 유명한데요. 당시 청와대 행정관과 국가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 전신) 공작원들이 북한 인사를 만나 판문점에서 무력 시위를 해달라고 요청한 혐의로 체포됐죠. 당시 실무 가담자만 처벌했고 배후 인물은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수사 당국이 12·3 내란 사태를 수사하고 있는데요. 우리 군을 북한 공격을 유도하는 데 써먹으려고 했는지도 수사 대상 가운데 하나입니다. 수사 당국은 북한 공격 유도설이 사실이라면 관련자한테 외환 유치죄를 적용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내란죄가 우리나라 내부에서 헌법기관을 정지시키려 한 죄라고 하면, 외환 유치죄는 외국으로부터 전쟁을 불러오는 죄입니다. 내란죄보다 훨씬 무겁고 나쁘죠.
아무쪼록 철저하게 수사해 진상을 규명하면 좋겠습니다. 외환 유치죄를 확인한다면 강하게 처벌해 교훈을 남겨야 합니다. 외환 유치죄가 없었음을 수사 당국이 확인한다면 해당하는 군부대가 국민 신뢰를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되겠지요.
전쟁은 너무나 중요하고 위험한 문제입니다. 전쟁에 질 때는 말할 것도 없고 전쟁에 이기더라도 국민 대다수가 엄청난 피해를 입죠.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국가는 국민 의사를 결집해 전쟁을 결심해야 합니다. 그러나 특정 정치인이나 소수 몇 사람이 자기 이익 위주로 판단해, 국민이 원치 않는 전쟁을 유발하면 곤란하죠. 이런 일이 없도록 안전장치를 둬야 합니다.
윤석열이 지난해 10월1일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건군 76주년 국군의날 기념식에서 김용현 국방부 장관과 함께 열병차량을 타고 국군 부대를 사열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에서는 헌법에 따라 의회가 전쟁을 선포하고, 군사 예산을 승인하며, 전쟁에 필요한 법률을 제정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약에 전쟁을 하려면 의회 결정을 통해 시작해야 합니다. 대통령은 미군 최고 사령관으로서 군사 작전을 수행할 권한을 가집니다. 전쟁 결정 권한은 의회가 행사하고, 전쟁을 수행하는 권한은 대통령이 행사하도록 견제와 균형 체제를 만들었죠.
의회와 대통령이 전쟁 권한을 둘러싸고 갈등을 벌이기도 합니다. 2011년에 테러리스트가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건물을 공격해 수많은 사람이 숨진 9·11 테러 사건이 일어났죠. 이 사건 이후 미국 의회는 대통령에게 테러와의 전쟁을 위한 군사 작전을 승인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Authorization for Use of Military Force’, 영어 약자로 AUMF라고 부릅니다. 이 법안은 대통령한테 군사 작전을 수행할 광범위한 권한을 부여했죠.
그 뒤 여러 대통령이 이 법률을 근거로 삼아, 다양한 군사 작전을 수행했는데요. 오바마 대통령은 중동 지역 무장세력인 ISIS를 상대로 한 군사 작전을 확대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20년에 이란의 군 고위 인사인 카셈 솔레이마니를 공습으로 죽였죠. 이때도 의회 사전 승인 없이 이 법률을 근거로 활용했습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길어지자 미국 의회는 전쟁 종료를 요구했지만, 대통령이 반대해서 오랫동안 갈등이 벌어졌습니다. 요즘 미국 의회는 대통령의 전쟁 권한을 제한하는 법률을 만들려고 계속 노력하고 있습니다.
미국 의회가 국방 운영을 통제하는 장치가 또 있습니다. 바로 국방수권법입니다. 영어로 ‘National Defense Authorization Act’, NDAA라고 부르는데요. 미국 국방부와 연방 정부의 국방 관련 예산과 정책을 규정하기 위해 매년 만드는 법입니다.
이 법은 미국 국방정책의 방향을 설정하고 군사 예산, 군인 급여, 군사 작전, 동맹과 외교적 군사 협력, 국방 연구 개발에 관한 사항을 세세하게 규정합니다. 예를 들면 2021년 국방수권법에서는 주한 미군 병력으로 2만8500명을 유지하라고 명시했습니다. 세계 여러 지역의 미군 기지 숫자와 규모, 군사력 사용 원칙 등을 이 법에 규정하고 있습니다.
국방수권법을 보면 군사력을 행정부 마음대로 사용하지 않도록, 군사력 사용 원칙을 의회와 합의하도록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국군조직법을 보면, ‘국군의 조직과 편성의 대강은 법률에 의한다’라고 규정했습니다. 법률은 국회가 만듭니다. 국군 운영에 관한 사항도 국회가 세밀하게 관여해야 맞죠.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국방 예산만 해도 미국처럼 사용 방향을 세밀하게 정하지 않습니다. 포괄적으로 항목별 금액을 책정한 수준으로 행정부가 예산을 편성하고 국회가 심의해 통과시킵니다.
남북한 사이 우발적 충돌을 막는 안전장치인 9·19 군사 합의를 윤석열 정부가 효력 정지시켰습니다. 윤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들은 남북한 군사 직통 전화도 유지하지 못했습니다. 안보 업무의 목적이 뭔가요? 평화를 유지하는 거죠. 안보 업무의 목적인 평화 관리 장치를 유지하는 데 윤석열 정부는 실패했습니다. 그러던 끝에 불법 비상계엄을 실시했고 그 배경으로 갖가지 북풍 의혹이 불거졌습니다.
미국 제도에 비춰보면 9·19 군사 합의, 군사 직통 전화 유지 등은 국방수권법에 포함할 사항입니다. 행정부가 알아서 할 일이 아니고, 국회가 관여하고 국회 합의가 필요한 영역입니다.
전쟁은 중요하고 위험한 문제입니다. 특정 정치인과 소수 몇 사람이 잘못 판단해 나라 전체를 위험에 빠트리지 않도록, 외국은 안전장치를 둡니다. 우리도 12·3 계엄, 내란 사태를 계기로 군사력을 더욱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개선책을 찾으면 좋겠습니다.
박창식 전 국방홍보원장/시민언론 민들레
윤석열의 대왕고래 프로젝트, 탄소 빚더미 2416조원 떠넘겨
동해 심해 유전 1차공 탐사 시추를 담당할 시추선 ‘웨스트 카펠라’가 지난 9일 부산항에 정박해 있다. 한국석유공사 제공
윤석열 정부의 동해 심해 가스전 탐사 개발 사업 ‘대왕고래 프로젝트’가 최대 2416조원의 탄소 비용을 발생시킬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탐사에만 수천억원이 들고, 탄소중립으로 가스 수요는 갈수록 줄어들 것이 명백해 여러모로 경제적이지 못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기후환경단체 기후솔루션은 8일 대왕고래 프로젝트를 분석한 이슈 브리핑 보고서를 발간했다. 보고서를 보면 기후솔루션은 정부에서 발표한 자원 추정량 140억배럴을 모두 채굴할 경우 30년간 총 58억2750만t의 온실가스가 배출될 것으로 추산했다. 현재 한국의 연간 배출량의 8배가 넘는 수치다. 조달·공급망, 제품 이용 단계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스코프3)를 제외하고 직간접 배출량만 따져도 47억7750만t이다.
온실가스 배출은 막대한 사회적 비용으로 이어진다. 중앙은행 기후리스크 연구협의체(NGFS)가 제시한 기준으로 탄소 비용을 계산해보면,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한다고 가정했을 때 2416조원의 비용이 발생한다. ‘평균온도 2도 제한 목표’ 달성 시나리오엔 1040조원, NDC(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시나리오엔 213조원이 발생한다.
‘마지막 석탄화력발전소’ 삼척블루파워 2호기, 새해부터 상업운전 강행
국내 마지막 석탄화력발전소 삼척블루파워 2호기가 새해부터 상업운전을 시작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상업운전을 개시한 1호기가 송전망 부족으로 사실상 멈춰 있는 데다 기후위기를 가속한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지만 사업을 강행하는 것이다. 31일 취재 결과 삼척블루파워는 오는 1월1일부터 삼척블루파워 2호기의 상업운전을 시작한다. 2025년부터 전력거래소...
https://www.khan.co.kr/article/202412310700001
기후솔루션은 대왕고래 프로젝트가 제2의 삼척 블루파워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삼척 블루파워는 한국에 마지막으로 신규 건설된 석탄 화력발전소다. 지난해 상업운전을 시작했으나 전력망 공급 부족으로 사실상 멈춰 서 있다. 전 세계 석유·가스 수요가 줄어들면서 가동률은 더욱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대왕고래 사업도 세계적인 석유·가스 수요감소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채굴해도 팔 곳이 없기 때문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NDC 강화와 에너지 전환 가속화로 석유와 천연가스 소비는 각각 2050년까지 2023년 대비 최대 77%, 79%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 화석연료 수요 전망도 마찬가지다. 현 정부가 수립한 11차 전력기본수급계획안을 기준으로 보더라도 한국의 가스 수요는 2038년까지 2022년 대비 52% 줄어든다.
기후솔루션 이슈 브리핑 보고서 갈무리.
글로벌 금융사들은 이미 신규 석유·가스 사업에서 손을 떼고 있다. 세계 50대 은행 중 26개 은행과 상위 50개 손해보험사 중 13개 보험사는 신규 석유·가스 사업에 대한 투자와 보험을 제한하고 있다. 2000년 이후 좌초된 가스·송유관 사업만 72개에 달한다.
기후솔루션은 대왕고래 사업으로 지진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지난해 행정안전부 연구에 따르면 동남권에만 활성 단층이 14개 존재하는데, 시추지역으로 선정한 부지가 지진이 일어났던 포항시 남구에서 40㎞밖에 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영국 더럼 대학 교수진 연구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발생한 인공지진 728건 중 유가스전에서 발생한 지진은 107건이다.
오동재 기후솔루션 가스팀 팀장은 “석유가스전 개발은 높은 비용과 기후환경 리스크, 글로벌 에너지 전환 추세와의 괴리로 경제성과 지속 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다“며 “석유가스 개발이 곧 에너지 안보라는 낡은 인식으로 저무는 시장에 베팅하느라 미래를 놓칠 수 있다“고 말했다./경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