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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외부 칼럼

2023.12.1~31 선택적 법치와 법치의 배신

by 이성근 2024. 1. 1.

‘1. 지역 소멸의 늪 2. 마음의 서열화, 그 보이지 않는 감옥! 3, 사랑은 두려움을 넘어섭니다 4. 벌거벗은 '윤석열 외교', 세계 정세에 맹렬히 '역주행' 5. 접경이 불안하다 6. ‘은행 팔 비틀기 쇼말고 비즈니스 모델 손봐라 7. TV 나온 그 검사 XX?”노 대통령과 같은 자리요구했던 검사들 8. 신캥거루, 리터루, 중년캥거루 9. 사우디 성공, 축하한다고? 엑스포의 정치학 또는 윤리학 10. 총선판을 맴도는 유령, 살생부의 정치학 11. 주범 숨기고 꼼수 부추기는 새마을운동식 물가 관리 12. 부산엑스포 유치에 낭비한 예산, 그냥 넘어가선 안 된다 13. ‘가짜뉴스로 본 윤석열 정부의 언론통제 14. 민주당, 꼼수 부리려다 '폭망'한다 15. 인권위원, 보수라서 문제가 아니다 16. 진상의 역설 17. 개도국 지원 예산 7천억원 증액과 부산 엑스포 수수께끼 18. 소통 부재와 집단사고 19. 최저임금 제도 망가뜨린 거대 양당의 원투 펀치20. 김건희 여사가 대통령인가 21. 이기주의의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자 '기본소득' 22. 노란봉투법과 누런봉투법 23. .‘우리의 전쟁 24. 무능한 정권과 신뢰 잃은 민주당 25. 여의도 면적아십니까 26. 무엇이 비트코인 가격을 결정하는가 27. 권력의 과시적 소비

28. 노무현의 길? 이재명의 길? 29. 극우파의 슬픈 정념이 몰려온다 30. 서울의 봄'으로 본 제6공화국 연대기, '김건희-이재명' 보위 정치를 분석한다 31. ‘소신공양극단적 선택’ 32. 악몽이 돼버린 김건희 여사의 국빈 방문’ 33. 블랙프라이데이 단상 34. 한국의 대입 배치표’ 35. 감춰진 언론의 진실 36. 김 여사 명품백 의혹 쿨하게수사하라 37. 서울의 봄공감과 유감 38. 정치인·판사 잇속 탓에 글로벌 호구된 한국 소비자 39. 문제는 김건희가 아니다 40. 와이프 빼고 다 바꾸라" 했더니, 정말 부인과 본인만 빼고 다 바꾸는 대통령? 41. 이승만은 파시스트였다. 박정희는? 42. 온 국토가 사실상 서울’ 43. 전두환 노태우 윤석열 한동훈 44. 저출산 위기 극복, '좋은' 돌봄노동으로부터 나온다 45. 외환위기 잊은 검증없는 재벌승계 46. 가장 외로운 시대의 인공지능 47. 도쿠가와 막부 멸망은 오오쿠로부

 

48. 종교계의 크리스마스 메시지가 공허한 이유 49. 타운센드 목사와 자본주의 메기 효과’ 50. 민중가요의 시대는 끝나는가 51. 요소수 하나 못 챙겨놓고 친미반중큰 소리만 52.오래된 보수의 소멸 53. '루쉰' 인용한 한동훈은 한국의 '아큐'를 어떻게 할 것인가? 54. 나쁜 나라'에서 오는 이민자들은 없다 55. 윤석열 김홍일 한동훈, ‘검사 삼형제정권 56. 금융발전과 불평등 57. ‘김건희 특검법궤변으로 정치 시작한 한동훈 58. 김건희 여사는 침묵할 권리가 없다 59. 다시 서울의 봄, '악의 평범성'만큼 위험한 일은 없다 60. 인간의 조건, 국민의 조건 61. 민주당·이재명이 연동형 비례제를 버리면 62. 응원단에서 말리는 시누이, 친윤 매체의 몸부림 63. ‘중대재해처벌법에도 사망자 늘었다는 거짓말 64. “윤 대통령님, 아직도 RE100을 모르시나요?” 65‘김건희 특검대통령의 분노, 한동훈의 굴복

66. 조선학교라는 낙인67. 북한 접촉하면 인생 절단낼 태세윤 정권, ‘검열 부활꿈꾸나

68. 선택적 법치와 법치의 배신 69. 일하는 사람만 바보?

 

지역 소멸의 늪

최근 몇년 사이 지역 소멸은 대중매체를 넘어 학문적인 영역에서도 주요한 이슈로 부상했다. 거칠게 정리하면, 사람들이 더 나은 교육과 직장을 찾아 수도권으로 지속적으로 빠져나가며 지역이 소멸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역에 양질의 대학과 일자리를 만들어 사람들이 유입하도록 만드는 것이 주요한 대안으로 제시된다. 올해 대학을 뒤흔들었던 글로컬 대학 정책도 이러한 논의의 일환이다.

지역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지역 소멸과 관련된 논의를 접할 때마다 마음이 복잡하다. 평소 지역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지역 대학에 자리를 잡으면 더욱 적극적으로 관여할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었다. 하지만 막상 지역 문제의 당사자가 되고 나니 오히려 입을 닫게 되었다.

무엇이 이렇게 만드는지 고민하고 있던 차에 지역 소멸을 주제로 연구하고 있는 동료 교수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일명 스카이대학의 교수이다. 그는 자신이 가르치는 대학원생들을 데리고 지역에 내려가서 그곳 대학원생들과 합동 프로그을 운영하며 현타가 왔다고 한다.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은 불평등, 지구화, 도시 재생 등의 거창한 주제를 고민거리로 꺼내들었는데, 지역 학생들은 자신들의 학과가 당장 내년에 문을 닫을까봐 걱정이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서울의 대학원생들에게 지역 소멸은 추상적인 학문적 연구 문제지만, 지역 대학원생들에게는 생존의 문제이다. 이러한 격차는 몇달 전 참석한 지역 소생 전략 수립을 위한 국제포럼에서도 느껴졌다. 내가 참관한 세션의 패널들은 대부분 해외 학자들과 정책입안자로 채워졌다. 지자체는 거액의 예산을 들여 호텔 숙박비와 교통비를 제공하며 이들을 모셔왔다. 구색 맞추기로 주최 지역의 행정관료가 패널에 끼여 발언을 했다. 다른 패널들 사이에서 거의 유일한 지역 당사자로 최근 지자체의 업적을 강조하는 와중에 수치를 크게 잘못 말해 청중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의 모습은 내부의 인력과 자원이 고갈되어 외부에서 심폐소생술을 해야 하는 지역의 현실을 보여주는 듯했다.

내가 입을 닫게 된 이유는 그럴싸한 주제로 지역을 말하는 외부인에서 지역 문제의 당사자로 위치가 이동하며, 지역 소멸이 생존의 문제로 다가왔기 때문인 듯하다. 모순되게도 지역 당사자의 위치는 오히려 지역 문제에 대해 발언할 수 있는 입지가 좁게 만든다.

전문화된 인력을 생산하는 대표적인 공간인 대학원을 예로 들어보자. 학부에서 대학원으로의 전환은 학교의 서열에 따라 도미노 이동이 이루어져왔다. 국내에서 외국 대학 대학원으로 이동하거나, 지역에서 서울로 이동하며 학력 업그레이드를 꾀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많은 지역 대학원이 문을 닫지 않기 위해 선택하는 방법은 입학 문턱을 낮추고 학위 취득을 더욱 쉽게 만들어 직장인이나 외국 유학생을 유치하는 것이다. 문제는 학생들을 확보하기 위한 이러한 방법이 표면적으로는 생존을 위한 성과 수치를 만드는 전략으로 채택되지만, 장기적으로는 지역 대학원의 교육 수준과 평판을 심각하게 훼손한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공부를 하고자 하는 지역의 우수한 학생들이 서울로 향하게 한다. 올해 학부에서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 가운데 몇명이 학과 대학원 진학을 상담해왔다. 하지만 나는 선뜻 학생들에게 학과 대학원에 들어오라고 권하지 못했다. 오히려 조심스럽게 서울에 있는 대학원이나 유학을 생각해보라고 했다. 반대로 서울 소재 대학원 진학을 원하는 학생은 해당 대학에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조사해 그에 맞춰 추천서를 써주며 적극적으로 도왔다. 지역을 벗어나는 것이 이들의 생존에 더 도움이 될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나는 지역에 남고자 하는 똑똑한 학생들을 서울로 보내는 역할을 한다. 지역 대학은 생존을 위해 바둥거릴수록 늪에 빠져들고 있는 기분이다.

채석진 조선대 신문방송학과 조교수 경향: 2023.12.01.

 

 

마음의 서열화, 그 보이지 않는 감옥!

해마다 대입 수능은 뜨겁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대학진학률이 45%인데 한국은 여전히 70% 수준! 수능 100일 전부터 부모들은 절과 교회를 찾아 합격 기도를 올린다. 자녀의 대학 합격이 인생 성공의 척도! ‘(n)수생이 느는 이유다. 학교도 학교지만 학원은 솔직히, 시험 덕에 산다. 크게 보아, 학교, 학원, 종교는 우리의 불안과 두려움을 먹고 사는 혈맹관계!

흥미롭게도 과거엔 부모가 못 배운 한 때문에 소 팔고 논 팔아 자식 교육에 올인했다면, 오늘날 부모는 대다수 대졸자임에도 여전히 자녀 입시에 목을 맨다. 우리네 행복을 좀먹는 이 기이한 현상의 뿌리는 뭔가?얼핏 봐도, 한국에선 출신 대학 꼬리표가 평생 간다! 누군가 처음 만나면 이름과 사는 곳, 나이와 출신 대학을 묻는다. 노골적으로 묻진 않아도 직간접으로 탐문한다. 사적, 개인적 관계조차 이럴진대, 공적, 조직적 관계에서야 말할 나위 없다. 내가 시민아카데미 같은 데 강의할 때도 이력서를 내야 한다. 학력, 학위, 지위가 시간당 보수 계산의 기준! 이와 관련해 긍지를 느끼는 이보다 상처를 받는 이가 훨씬 많을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갈라진다. 무엇이? 우리의 태도와 현실이! 어째서? 만일 우리가 이 반복되는 구조적 상처의 메커니즘을 더는 아니오!’라며 사회적으로 결단하고 대학 서열화와 직업 서열화 타파에 나선다면 10년이나 20년 뒤엔 서열 구조 대신 수평 구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사회가 있냐고? 있다! 탈차별, 탈권위를 주창한 68혁명 이후의 유럽 사회를 보라! 독일 등 유럽 대학은 이른바 일류대개념이 없다. 직업 간 차별도 미국이나 한국에 비해 덜하다. 농부나 벽돌공, 조립공이나 배관공이 교사나 의사를 한국처럼 부러워하진 않는다. 수평 구조를 만든 사회 덕이다.

그러나 한국이 걸어온 길은? 서열화 타파를 위한 사회적 결단보다는 성공과 출세를 위한 개인적 결단이었다. 인정 욕망 내지 권력 욕망이 핵심! 바로 이 태도가 21세기 오늘날 역시 (아이들 꿈을 북돋기보다) ‘수능에 목을 매는묘한 사회를 낳았다. 그것도 본인이 원하는 전공보다 부모나 사회가 높이 치는 대학을 택한다. 사회적 차원에서의 서열화 타파 운동이 모두의 존엄성을 인정하는 인간화 과정이라면, 개인적 차원의 성공·출세 운동은 기존 서열 구조 안에서 더 빨리, 더 높이 오르려 하기에 서열화 구조와 심리를 강화한다. 바로 이 과정에서 대다수는 마음의 서열화에 의해 스스로 지배당한다.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에 나오듯, 척도(ruler)가 지배자(ruler)로 돌변한다!

대학 입시와 노동시장 장벽 외에 국가 권력도 우리 삶을 공정하게서열화한다. 초등생조차 너거 아부지 머 하시노?’에 관심 가지며 누구 부모가 힘의 우위인지 비교, 경쟁한다. 학교폭력의 배경에 흔히 권력자부모가 도사린 현실이 증거다. 어른들 세계도 마찬가지다. 반듯한 대졸자 또는 일류대 출신이 아니라면 대통령 자격도 없다는, 기상천외한 생각이 마치 보편 상식으로 통하는 게 지금 한국 정치다. 프랜시스 골턴의 신체적, 생물학적 우생학에 견주면, 이는 정치적, 사회학적 우생학이다. 이 우생학이 끝내 인종주의와 홀로코스트를 불렀음을 기억하자.

수시로 보도되는 정당별 여론조사나 인기도 조사 역시 권력 욕망의 산물! 여야를 막론하고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의 덫에 빠지는데, 이 역시 온 사회 구성원의 장기적 생존과 행복보다 단기적 권력 욕망이 만든 것! 예부터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고 해도, 실제 현실은 냉혹한 서열화 체제다. 구조적 서열화보다 무서운 것은 마음의 서열화다. 이 마음의 서열화부터 깨지 않으면 구조적 서열화가 굳어진다.

대학 입시와 취업 시험 외에는 공부와 담을 쌓고 사는 사회, 여기엔 희망이 없다. 그러나 마을·지역마다 눈과 귀를 열고 둘러보시라. 여기저기 열명 내외 모이는 만남들이 있다. 둥글게 둘러앉아 좋은 책을 읽고 열린 대화를 하면, 상처와 두려움은 사라지고 활력과 용기가 솟는다. 비록 소수지만 살아 있음의 기쁨과 작은 희망을 만들어내는 즐거운 활동들! 이 운동들이 비인간적이고 반생명적인 권력 질서에 균열을 낸다. 계란으로 바위에 자국을 내듯, 빗물이 바위를 뚫듯, 나무뿌리가 바위를 깨듯, 그렇게 틈을 만든다. 우리 대다수가 일관되게 이런 자세로 산다면, 서열화 타파도 불가능하지 않다.

이미 오래전, 찰스 다윈은 지구의 수많은 생명의 순위를 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서로 순위를 매기고 자연에도 순위를 매긴다. ‘객관적으로볼 때, 어머니 같은 대자연의 극히 일부에 불과한 인간이 스스로 만물의 영장이라며 우월의식을 강조하며 만물을 사다리(위계)로 본다. 루이 아가시의 자연의 사다리개념이 온 사회로 확장됐다. 이런 시각이 자본주의와 더불어 공동체를 해체하고 서열 체제까지 낳았다. 그리하여, 권력은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고 뇌물은 사다리를 타고 오른다! 이 서열화가 우리에겐 보이지 않는 감옥이다. 상하를 다투는 서열 경쟁은, 실은 성공해도 공허하고, 실패하면 낭패인 게임! 오늘날 우리는 이 감옥에 갇혀 신음한다. 해마다 반복되는 대입 소동은 이 신음 소리의 일부다.

관청이나 학교의 높은 담장을 허물듯, 마음의 서열화와 구조의 서열화를 허물어야 비로소 모두 자유인(!)이 된다. ‘향모를 땋으며의 로빈 월 키머러처럼 보이지 않지만 만물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에너지로 가득한 세계와 친밀한 관계를 회복해, 온갖 가짜 척도를 없애면 새 세상이 열린다! ‘토지의 박경리처럼 모든 생명은 공평하다. 자신에 대한 연민은 생명에 대한 연민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야마오 산세이의 자연, 지구, 우주의 자애로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옛날 인간이 미래다. 기후위기와 전쟁위기가 세상을 옥죄는 지금, ‘나부터생명 감수성을 되찾고 이웃과 더불어모여 앉아 열린 마음으로 세상만사를 논하기 시작하면 어떨지?

강수돌 | 고려대 융합경영학부 명예교수 한겨레 : 2023.12.01.

 

사랑은 두려움을 넘어섭니다

...저들과 내가 믿는 신이 과연 같은가 의심이 되었다. 그 의심은 절망에 가깝다. 내가 믿고 따르는 신앙의 언어가 누군가를 혐오해도 된다는 확신으로 활용될 때 나는 절망한다.

물론 그들은 사랑이라고 말한다.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312012016015

오수경 자유기고가 <드라마의 말들> 저자 경향 : 2023.12.01

 

벌거벗은 '윤석열 외교', 세계 정세에 맹렬히 '역주행'

과연 한국 외교에 희망이 있는가?

윤석열 정부는 과연 세계 정세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가?

 

11929, 부산 엑스포 유치전의 참담한 결과보다 더 놀라온 건 대통령이 "저희가 느꼈던 입장에 대한 예측이 많이 빗나간 것 같다"고 고백한 점이었다. '저희'라는 표현은 이 정부 외교 안보팀을 싸잡아 말한 것 같지만, '저희'에 포함되지 않은 그룹에선 이런 참담한 결과를 예측한 사람들도 많았다. 윤 대통령이 '잘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이유를 물어보면 '외교'라고 한다. 112830, 한국 갤럽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 긍정 평가 이유 1위는 '외교'(42%)였다. 2위는 "열심히 한다"(6%). 이 정부의 '외교'는 정상외교가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마저도 근본적인 의구심의 벽에 부딪혔다.

 

1115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 기간에 만나 미중간 군사 소통 채널을 복구하기로 했다. 대만 문제 등에 대해서는 시각차를 보였지만, 일단 두 정상이 군사 충돌 가능성을 줄였다는 점에서 전 세계는 의미를 부여했다.

 

코로나 이후 시진핑의 중국은 불안하다. 부동산 버블과 경기 침체를 우려한다. 경제 구조조정의 숙제를 안고 있으며, 이 불안을 해소하려면 미국과 오래 척을 져선 안된다. 바이든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재선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우크라이나와 중동, 두 개의 전선 위에서 고군분투 중이다. 중국을 대하는 미국 정가의 생각은 복잡하지만, 바이든 입장에서 중국과의 갈등이라는 불확실성을 그대로 둬선 안된다. 의회와 유권자들에게 '관리가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줘야 한다. 양국 정상은 이런 배경 위에서 최소한의 대화 재개에 합의했다.

 

사전 정세 분석에 실패한 후 미중 관계에 온기가 돌자, 비로소 한국의 대통령도 몸이 달았다. 한중 정상회담을 꽤 공들여 추진했다. 그러나 시진핑에 '패싱' 당했다. 중국은 미국을 방문하며 한국 담당 간부들을 대동하지도 않았다. 어쩌면 시진핑 입장에서 한국은 미국과 관계 관리만 제대로 하면 따로 챙기지 않아도 될 '하위 변수' 정도로 취급된 것일 수 있다. 한국은 어차피 미국을 따르게 돼 있으니까. 누구라도 예측 가능한 일이다. 이게 대미, 대일 외교에 '올인'한 윤석열 외교의 현 주소다.

 

나아가 역주행이다. 미국과 중국이 신냉전의 틈바구니에 훈풍을 불어 넣으려 시도하고 있는데 한국은 북한과 관계에서 '적대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북한이 군사정찰위성을 발사한 것을 이유로 11229.19 남북군사합의 효력을 일부 정지했다. 북한은 곧바로 GP에 병력과 중화기를 배치하기 시작했다. 우발적 군사 충돌 가능성이 높아졌다. 하마스와 이스라엘도 24일 일시적으로 휴전했고, 연장을 위해 협상을 하려고 한다. 최소한 '출구'를 모색해보고자 하는 태도다. 한반도에서 군사 긴장이 고조되는 건 우크라이나 전선과 중동 전선에서 길을 잃고 있는 미국에게는 그다지 좋은 일이 아니다. 그런데 윤석열식 외교는 '적대 정책'에서만 자율성이 불필요하게 발휘된다.

 

9.19 합의 파기라는 중대한 결정으로 내달리고 있는 가운데 국정원장과 핵심 포스트의 간부들이 날라갔다. 아무리 봐도 엉성하고 앞뒤 맞지 않는 일들이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다. 정권 출범 2년도 안된, 대통령의 권력이 시퍼렇게 살아있는데, 국정원에서 (언론에 드러난 것만) 두 번의 인사 파동이 났고, 북한과 대결 구도를 확립하려고 전임 정부에서 만든 '평화 협정'을 파기하고 있는 와중에 세 번째 인사 파동으로 국정원장을 날리는 게 이 정부 외교 안보팀의 실상이다.

 

윤석열 정부처럼 중국과 각을 세워왔던 호주의 행보와 한국의 행보를 비교하면 흥미롭다. 자유당 스콧 모리슨 전 총리가 중국에 코로나19 기원에 관한 조사를 요구하면서 중국의 무역 보복을 부르는 등 미국과 함께 반중 전선의 첨병이 됐던 호주는, 지난해 5월 노동당 정부가 집권하면서 중국과 관계 정상화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갈등이 중국 호주 양국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중국은 이에 호응해 간첩 혐의로 억류한 호주 언론인을 석방했고, 수입 규제를 점차 풀며 분위기를 맞춰 조성했다. 그리고 앤서니 앨바니즈 호주 총리는 지난 1167년만에 중국 베이징을 방문했고, 바이든보다 먼저 시진핑을 만났다. 양국 관계의 앙금은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지만 최소한 경제 분야에선 양국 모두 실리를 챙기고 있다.

 

이런 수준의 외교력을 윤석열 정부에 기대할 수 있을까? 윤석열 정부는 미국이 중국과 관계 개선에 나설 조짐을 보이자 부랴부랴 미국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행동은 없었다. 중국과 경제 분야에서 관계 개선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유승민)가 여권에서 없었던 것도 아니지만, 완전히 무시됐다. 실리가 아니라 '의리'를 중시하는 대통령은 본인이 '적대적'이라 분류한 인사/세력의 목소리는 완전히 배격하는 경향을 보여 왔다. 그리고 국민의힘은 '반중 정서'를 국내 정치에 이용하는 악수를 둬 왔다. 국민의힘 강성 지지자들은 '반중반북'을 구호처럼 사용하고, 지도부는 이걸 즐기며 국내 정치에 이용해 왔다. '중국에서 문재인 혼밥' 따위 밈 수준의 선동을 방관했다.

 

시진핑에게 패싱 당한 윤 대통령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졌다. 올해만 7번째다. 현재 기시다 총리 지지율은 윤 대통령의 그것과 비슷한 수준이다. <니혼게이자이> 신문과 <TV도쿄>가 실시한 여론조사(24~26)에서 기시다 내각의 지지율은 30%였다. 202110월 기시다 체제 출범 후 최저치다. "기시다 내각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률은 62%를 찍었다. 지금 당장 총선이 실시된다 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그런 총리와 한 해에만 7번이나 만날 이유가 무엇인지 또렸하지도 않다. '엑스포 유치' 지지를 끌어냈다고 하는데 본투표 결과는 11929, 처참했다.

 

실수도 잦다. 국빈 방문으로 떠들썩하게 영국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만난 보수당 리시 수낵 총리도 위기의 지도자다. 여론조사에서 그의 호감도는 11% 수준(YouGov 조사)이고 비호감도는 50%를 돌파했다. 영국은 지금 노동당으로 정권 교체가 거의 기정사실화 되는 분위기다. 그런데 대통령실은 22일 공식 홈페이지 내 '사진뉴스'"1122일 윤석열 대통령은 홀본 세인트판크라스 노동당 당수를 접견했습니다"라고 적었다. 이 사실은 유튜버들이 찾아냈는데, 홀본 세인트판크라스는 노동당 당수 키어 스타머의 지역구 이름이다. 지금은 바로잡혔지만,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실수였다. 나토 순방 중에는 영부인이 명품샵에 들른 사실이 현지 언론에 보도된 걸 기억한다.

 

미중 관계에 훈풍이 불고 있는데 한국은 중국으로부터 '패싱'을 당하고, 언제 교체될지 모르는 일본 총리와 7번째 정상회담을 하고, 외교적 성과도 불분명한 '국빈 방문'의 화려함만 대통령실 홈페이지를 장식한다.

 

지금 한국의 외교는 그 어느때보다 '정상 외교'에 몰입하고 있는 중이다. 대통령의 의지다. 대통령실도 그렇고 지지자들도 '대통령의 외교'를 잘 하는 분야로 추어올린다. 정상외교에 어느 정도 진심이냐면, 지난 9월 유엔총회가 열렸던 뉴욕에서 닷새간 47개국 양자 정상회담을 했다. 왜 정상 외교에 그렇게 집착할까. 국내 정치에서 무능한 이미지를 벗어나고자 하는 몸부림이다. 정상외교는 화려하다. 최소한 '환대'를 깔고 간다. 영국 프랑스를 다녀온 후 20일도 채 되지 않는데 네덜란드로 '국민 방문'을 위해 출국하는 이유일 것이다.

 

정상외교엔 여러 장단점이 있는데, 이번 엑스포 유치 실패 사례는 '장점'이 부각된 좋은 교재가 될 수 있겠다. 외교 실패의 책임 소재가 분명하다는 점이다. 부산 엑스포 유치에 실패한 후 대통령은 "저 역시도 96개국 정상과 150여차례 만났고, 수십개국 정상들과 직접 전화 통화도 했지만, 민관에서 접촉하며 저희가 느꼈던 입장에 대한 예측이 많이 빗나간 것 같다""이 모든 것은 전부 저의 부족"이라고 말했다. 맞다. 모든 게 윤석열 대통령 탓이다. 엑스포 경쟁 상대에 '오일머니''독재국가' 이미지를 씌우고 '결선에 가면 세계의 자유 진영(유럽)이 우리를 선택할 것'이란 낙관적 이분법으로 표계산을 한 걸 보라.

 

윤 대통령이 '잘한다'고 보는 국민 중 42%가 잘한다는 이유로 '외교'를 꼽았는데, 그 상황이 이런 수준이다. 세계 정세에 대한 판단 능력이 떨어지는데, 그 떨어진 판단 능력으로 다시 정상 외교에 나선다. '자기 객관화'가 안되고 어느세 '의전'에 파묻힌다. 악순환이다. 정상 외교를 줄이고, 일선 외교 시스템에 자율성을 부여하는 게 맞다. 내치가 안되니 외치에 몰두하는 것 같은데, 틀렸다. 내치(지지율)가 뒷받되지 않으면 외교도 안된다. 정상외교의 화려함에 도취되고 이념 편향 참모에게 휘둘리면서 자기 객관화에 실패하고 있다. 외교 안보 정책에서 홀로 역주행 중인 윤석열 호를 우린 어떻게 봐야 하는가.

과연 한국 외교에 희망이 있는가? 박세열 기자 | 프레시안 2023.12.02.

 

 

접경이 불안하다

9·19 군사합의는 적극적으로는 완충 공간에서의 신뢰 구축을 의미하지만, 소극적으로는 정전협정의 복원을 의미한다. 정전협정에서 합의한 비무장지대는 말 그대로 전투원, 초소, 화력을 비운 완충 공간이다. 윤석열 정부가 다시 감시초소를 설치하고, 중무장지대로 전환한 것은 9·19 군사합의 파기이면서 동시에 정전협정의 파기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한국과 미국의 견해차다. 미국은 윤석열 정부의 군사모험주의를 적극적으로 지지하지 않는다.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118891.html?_fr=mt5

김연철 | 전 통일부 장관·인제대 교수 | 한겨레 2023.12.03.

 

은행 팔 비틀기 쇼말고 비즈니스 모델 손봐라

...집값 폭등은 다수 국민에게 극심한 고통을 줬다. 오죽했으면 촛불민심으로 집권한 문재인 정부가 5년 만에 정권을 내줬겠는가? 정부와 정치권이 문제를 직시한다면 은행 팔을 비틀어 이익을 찔끔 토하도록 할 게 아니라 이들의 빗나간 사업모델을 손봐야 한다.

은행이 묘한 것은 집값이 오를 때 구매자금을 계속 대줘 판을 키우는 불쏘시개 노릇을 한다는 점이다. 어쩌다 보니 그리된 게 아니라 그게 본업인 점이 문제다.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118873.html

이봉현 | 경제사회연구원장 겸 논설위원 | 한겨레 2023.12.03.

 

 

“TV 나온 그 검사 XX?”노 대통령과 같은 자리요구했던 검사들

한국대통령제 100년 결정적 장면들_13

노 대통령과 검사와의 대화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118172.html

박찬수 l 대기자 | 한겨레 2023.12.03.

 

 

신캥거루, 리터루, 중년캥거루

캥거루족이란 말은 청년실업이 심각했던 1998년 당시 프랑스 시사주간 렉스프레스20대의 80%가 부모에게 얹혀산다는 사실을 보도하면서 유행하기 시작했다. 비단 프랑스뿐 아니라 다른 국가들에서도 비슷한 경향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2005년 미국 시사주간 타임은 이도 저도 아닌 세대라는 의미로 트윅스터’(Twixter)라는 이름을 붙인 뒤 캥거루 청년들의 삶을 집중 조명했다. 한국에서도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캥거루족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국립국어원 우리말샘에 캥거루족은 성인이 되어서도 독립적으로 살아가지 않고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지하는 사람으로 올라 있다.

 

캥거루는 갓 태어난 새끼를 아기 주머니(육아낭)에서 키우는 유대류에 속한다. 태반이 없거나 불완전해서 자궁에서 새끼를 오래 키울 수가 없다. 새끼들은 자궁에서 어미가 핥아 낸 길을 따라 주머니로 이동한 뒤, 6~12개월을 함께 지내다가 독립한다. 캥거루 기대수명이 12~18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아주 어린 시절만 어미 뱃속에서 지낸다.

 

동물과 달리, 인간 캥거루는 어리지 않다. 부모 집에 머무르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캥거루라는 말 앞에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취업을 한 이후에도 부모와 함께 사는 신캥거루족, 독립했다가 다시 부모 집으로 돌아온 리터루족이 대표적이다. 불안정한 일자리가 늘고 주거비 부담이 높아질수록 나이 든 캥거루족은 많아진다. 앞서 일본 사회는 35~44살 중년이 되어서도 부모에게 얹혀사는 이들을 기생 독신’(parasite single)으로 불렀다. 이탈리아에선 70대 엄마가 자신에게 얹혀사는 40대 아들을 내보내달라는 소송을 제기하는 등 법적 분쟁으로 치닫기도 했다.

 

최근 통계청이 낸 우리나라 청년세대 변화(2000~2020)’를 보면, 2020년 기준 부모와 사는 청년(19~34)5321000명에 달한다. 19~24살이 45.7%로 가장 많지만 25~29(35.0%), 30~34(19.4%) 비중도 적지 않다. 청년인구 가운데 캥거루 비중은 2000년만 해도 46.2%에 그쳤지만 2020년에는 55.3%로 높아졌다. 높은 미혼 비중(202081.5%)도 캥거루족 증가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특히 30~34살 미혼 비중은 200018.7%에서 202056.3%로 뛰었다. 정부가 정책 대상으로 가장 눈여겨봐야 할 집단은 구직 활동도 없이 그냥 쉬고 있는 캥거루족일 것이다.

황보연 논설위원 whynot@hani.co.kr | 한겨레 2023.12.03.

 

사우디 성공, 축하한다고? 엑스포의 정치학 또는 윤리학

"모하메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의 '비전 2030'에 금상첨화가 됐다." 1128일 프랑스 파리 국제박람회기구(BIE) 173차 총회에서 사우디 리야드가 부산을 119 29표로 압도하고 2030 세계 엑스포 개최권을 따낸 뒤 로이터 통신의 평가다. 빈 살만 왕세자가 '원유 이후' 사우디의 국가적 명운을 걸고 추진하는 '비전 2030'에 날개를 달아주었다고 평가했다. 동아시아 분단국의 '1호 영업사원'은 부산 갈매기의 날개가 꺾였지만, 사우디에 축하인사를 보내고 개최 준비를 돕겠다고 지난 29일 대국민담화에서 약속했다. 그런데 사우디의 승리는 세계에 어떤 의미를 주는 것일까.

https://www.mindle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6211

김진호 에디터 | 시민언론 민들레 2023.12.03.

 

총선판을 맴도는 유령, 살생부의 정치학

대선이나 총선을 앞두면 여의도에 3~400명에 이르는 이른바 정치 시나리오 작가들이 활동한다고 한다. 이들은 주로 전현직 보좌관이나 정치 컨설팅 업체 관계자, 또는 스스로 정치 책사를 자처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현역 국회의원들의 목줄을 옥죄는 각종 살생부를 생산해낸다. 공천에 목을 매는 정치인들에게 살생부는 그 진위 여부와 관계없이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다.

 

내년 422대 총선을 앞두고도 예외없이 살생부라는 것이 등장했다.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가 당무감사 결과를 발표하자 22%, 46명의 죽고 살 원내외 당협위원장의 명단이 돌고 있다. 수많은 총선을 현장에서 보아온 사람에게 이런 살생부는 놀라울 것도 신선할 것도 없다. 사실과 크게 동떨어졌을 뿐 아니라 어쩌면 불순한 정치적 의도를 갖고 만들어졌을 의심이 들기 때문이다.

 

이번 총선에서도 공천이 가까워질수록 다양한 버전의 살생부가 난무할 것이다. 살생부는 공천개혁, 물갈이, 험지출마론 등의 프레임을 달고 나타난다. 2008년 이후 최근 4번의 총선에서 대체로 물갈이 비율이 높은 쪽이 승리했다. 지난 2020년 총선만 예외였다.

 

2020년 총선 물갈이 비율은 미래통합당은 44%, 민주당은 28%였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힘 컷오프 대상자로 지목된 46명은 공천심사에서 대부분 컷오프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당 지지도보다 낮은 지지율을 가진 현역 의원들은 가시방석이다. 이들의 20% 가량을 추가로 컷오프 시킨다면 대략 지난 총선 때 만큼의 물갈이 비율이 만들어진다. 여의도식 사투리로 공천심사위원회에서 마사지가 가능해지는 영역이다. 그 마사지라는 것이 여야 권력자의 힘을 상징한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 마사지가 잘못 가해지면 마사지를 받는 사람은 물론 마사지를 시술하는 사람도 큰 부상은 물론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 현재 국민의힘에 윤석열 대통령의 힘으로 의원이 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따라서, 내년 총선은 윤 대통령에게 국민의 힘을 '윤석열 당'으로 만들 좋은 기회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 역시 자신에게 반대하는 이른바 비명계를 정리할 절호의 기회다. 마사지의 유혹을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살생부를 만들기는 참 쉽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에게 반대하는 의원들을 골라내 명단에 올리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대 어느 정권, 어느 당 대표 시절에도 비주류는 있었다. 심지어 군사정권 시절에도 같은 당이라 할지라도 권력자에게 모든 의원이 순종하지 않았다. 특히, 이번 총선에서는 험지출마론이라는 유령같은 프레임으로 중진들을 쳐내려는 비현실적인 정치몰이가 가해지고 있다.

 

정치현실을 잘 알지 못하는 혁신위원장이 대통령의 힘을 내세우며 살생부를 공개적으로 거론하고 있다. 당 지도부이거나 중진 또는 대통령과 가까우면 무조건 자기 지역구를 비우라는 이런 얼토당토 않는 물갈이 방식은 본 적 없다. 보지 못한 이유는 성사된 적이 한번도 없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당 대표의 사퇴를 요구한다고 해서, 반대자들에게 수박이라는 구호를 달아 마녀사냥식 살생부도 본 적이 없다. 두 거대정당이 얼마나 양당제의 기득권에 자신감이 있으면 이런 홍위병식 공천을 하려는지 용기가 가상하다.

CBS노컷뉴스 김규완 기자 노컷뉴스 2023-12-04

 

 

주범 숨기고 꼼수 부추기는 새마을운동식 물가 관리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119156.html

정남구 | 논설위원 경향 2023-12-05

 

 

부산엑스포 유치에 낭비한 예산, 그냥 넘어가선 안 된다

https://www.hani.co.kr/arti/opinion/because/1119074.html

이은지광고마케터·프랑스 파리 거주 경향 2023-12-05

 

정치와 연극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뉴스에 등장하는 많은 정치인의 얼굴에서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잘 다듬어지고 선이 아주 뚜렷한 눈썹이다. 처음에는 인터뷰에 등장하기 전에 했던 분장을 깜빡 잊고 지우지 못한 것으로 여겼다. 들어보니 그것이 아니라, 연예인뿐만 아니라 이제는 정치인도 많이 하는 반영구적인 눈썹문신이라는 것이다.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312052025015

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 사회학 교수 경향 2023-12-05

 

 

가짜뉴스로 본 윤석열 정부의 언론통제

가짜뉴스라는 용어는 2016년 미국 대선 기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빈번히 사용하며 유명해졌다. 그는 자신에게 비판적인 기사를 낸다는 이유로 양질의 저널리즘 수행으로 정평이 난 뉴욕타임스, CNN의 보도를 가짜뉴스라 낙인찍고, 심지어는 미국 국민의 적이라고 비난했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필리핀의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대통령 등 많은 권위주의 국가 지도자도 정권에 불리한 언론 보도 억제를 위해 가짜뉴스라는 용어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https://www.khan.co.kr/opinion/contribution/article/202312052025005

이상원 미국 뉴멕시코주립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경향 2023-12-05

 

 

민주당, 꼼수 부리려다 '폭망'한다

병립형 선거제의 유혹

한국정치 볼 만하다. 품격은 내다 버린지 오래고, 조롱과 비아냥이 난무한다. 민주당이 입법독주를 이어가면 대통령은 연이어 거부권을 날리고 국민의힘은 좋다고 박수를 친다. 국민의힘이 법안을 만들면 이번엔 민주당이 걷어찬다. '국정 올스톱'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보는 '극한 대치,' '국회 파행''국민 불행'이다. 국민은 내년 총선에서 양 당을 심판하고 싶다.

 

이건희 회장은 "한국 정치는 4, 행정은 3, 기업은 2"라고 지적한 바 있다. 그게 1995년이다. 지금은 어떠한가. 기업은 '글로벌 1'가 됐다. 정치는 몇 류인가. 국회의원들을 선거가 아닌 제비뽑기로 뽑아도 이보다는 낫지 않을까 의구심이 들 정도다.

 

핵심은 의사 결정 과정: 거대 양당 구조를 탄핵해야

한국정치의 후진성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가 있어왔지만 복잡할 것 없이 하나만 놓고 보자. 우리나라는 경제가 정치보다 훨씬 발달했다. 이 둘을 가르는 핵심은 의사 결정 과정이다.

 

기업은 이사회가 주요 의사를 결정하는데 상법에 따르면 이사가 두 명이면 이사회가 성립할 수 없다. 만약 3인 이사회에서 1인이 그만두면 이사회 권한은 주주총회로 넘어간다. 그런데 지금 한국정치는 '두 이사의 피 터지는 싸움' 때문에 멈춰버린 것이다. 안타깝게도 한국정치엔 '주주총회'가 없다. 두 당 중 한 당이 거부하면 상임위는 열리지 않는다.

 

지금의 극단적 대립과 국회 파행은 국민의 눈은 아랑곳 하지 않고 '적대적 공생'을 즐기고 있는 기득권 거대 양당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2인 이사회'를 용인하며 이 시스템에 의지해온 국민들에겐 엄청난 피해다. 이게 다 비용이다. 맨날 파행인데 월급은 다 받아간다. 국민은 더 힘들어지고.

 

우리 국민은 참 불쌍하다. 두 전임 대통령이 구속되는 충격을 감내해야 했고 문재인, 윤석열 정부에 대한 연이은 실망감도 삼켜야 했다. 그런데 국회의원들마저 자신의 기득권을 내려놓길 거부한다. 야당인 민주당 책임도 매우 크다.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하겠다던 개혁은 모조리 실패했다. 정권 뺏기고 나서야 꼼수탈당까지 감행하며 검수완박 밀어붙인 후부터 국회 파행은 일상이 됐다.

 

지금 국회를 점거하고 있는 두 정치집단의 횡포를 끝내려면 제3당이든 제3지대든 다당제든 저 두 당의 횡포를 멈춰 세워야 한다. 그래야 국회가 정상화된다. 국민의 힘이 고집하는 병립형 비례 선거제는 지역구도 먹고 비례도 먹겠다는 심보 외엔 다른 어떤 선의도 없다. 지금의 극한 대치와 파행을 바로잡을 생각이 1도 없다는 것이다.

 

국민이냐, 권력이냐

민주당 내에서도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병립형 비례제가 맞서고 있다. 이재명 대표는 과거 대선 후보 때, 전당대회 때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연이어 약속했음에도 "멋지게 지면 무슨 소용"이냐며 이를 번복할 명분을 찾는 듯하다. 간단하다. 연동형과 병립형의 대치는 '국회 정상화'파와 '권력을 내 손아귀에'파의 대결이다. 단언컨대 권력만 쫓는 자들의 머릿속에 국민과 민생은 보이지 않는다.

 

지금의 양 당 구조에선 한쪽이 파행을 작심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또 다수 의석이라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경우 그 후과가 너무 크다. 민주당이 검수완박 밀어붙인 이후 국회는 엉망이 돼버렸다. 현재의 300석 구조에서 20석 넘는 3당이 생기거나 소수 정당들이 30석 이상 차지하면 한 당이 과반을 차지하기 어렵다.

 

그렇게 되면 기존 양 당도 연합하고 양보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국회가 돌아간다. 그들이 국민을 우선한다면 당연히 그래야만 한다. 과거 신민주공화당, 자민련, 국민의당 등 3당 또는 4당 체제였을 때 지금보다 입법이 훨씬 순조로웠고 협상과 양보가 있었다. 기존 양 당의 독과점체제가 굳어진 지금 국회 정상화를 위해서는 비례정당의 원내 진입이 필수다.

 

국민은 누구를 심판할까

민주당 일부 의원들은 연동형 비례제로 가면 20~30석을 잃을 것이기 때문에 병립형으로 가야한다고 주장한다. 이 사람들은 '20년 집권,' '50년 집권'을 떠들던 자신들이 왜 국민으로부터 연이어 세 번이나 버림받았는지 아직도 이해를 못하는 자들이다. 국민은 무능한 기득권 집단일 뿐 아니라 스스로 국민과의 약속을 헌신짝 내던지듯 하는 민주당을 심판한 것이다.

 

국민이 180석이라는 어마어마한 권력을 줬더니 개혁에 모조리 실패했을 뿐 아니라 어처구니 없게도 자신이 고용한 칼잡이에게 권력을 빼앗긴 자들이다. 개혁도 꼼수로 하는 집단이다. 그런데 다음 총선에서 또 자신의 손아귀에 권력을 쥐어야겠다고 저러고 있다. 권력 쥐어줬더니 있던 권력도 빼앗겼는데 다음에 또 이기면 없는 살림에 뭘 또 빼앗길지 궁금하지 아니할 수 없다.

 

간단하다. 국민의힘이 위성정당 만들든지 말든지 민주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위성정당 안 만든다는 선언을 해야 한다. 대신 국민에게 "우리가 국회정상화 위해 비례 양보할 테니 지역구를 선택해달라"고 호소하면 된다. 수도권은 2~3% 차이로 결정 나는 지역구가 부지기수다. 또다시 약속을 깨고 꼼수로 정치를 하면 그런 지역구들에서 민주당은 심판 당한다. "원칙 있는 패배를 합시다"던 노무현이 기어이 대통령에 올랐다.

 

민주당은 국민 보고 정치를 했으면 한다. 한동훈 장관, 김건희 여사 꽁무니 쫓아다니지 말고. 그리고 탄핵 떠들 시간에 민생을 살폈으면 한다. 탄핵은 국민이 한다.

정희준 문화연대 집행위원 | 프레시안 2023.12.06.

 

 

인권위원, 보수라서 문제가 아니다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119221.html?_fr=mt2

홍성수숙명여대 법학부 교수 | 한겨레 2023.12.06.

 

진상의 역설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312062043025

이상호 한국국학진흥원 책임연구위원 | 경향 2023.12.06.

 

 

개도국 지원 예산 7천억원 증액과 부산 엑스포 수수께끼

정부는 내년 전체 예산 증가율을 2.8%로 묶었다. 경기 부진에도 불구하고 매우 낮은 증가율이다. 그런데 외교통일 분야 예산은 무려 19% 증가했다. 12개 분야 중 가장 많이 늘었고, 17%가량 줄어든 연구개발(R&D) 예산과 대비된다. 긴축 기조 속에서 외교통일 분야가 왜 이렇게 늘었을까? 통일 분야 예산이 증가했을 리는 없으니 답은 외교에 있다. 외교 분야 예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대외원조(ODA)가 전년 대비 무려 45%, 금액으로는 18천억원가량 늘었다. 예산 편성에서 긴축 기조를 강조한 윤석열 정부가 왜 원조 예산은 이렇듯 사상 유례없이 큰 폭으로 늘렸을까?

 

일반적으로 보수 정부는 원조에 인색하다. 실제 윤석열 정부 120대 국정과제 어디에도 원조 규모 증액에 관한 언급은 없다. 그래서 지난 6월 국무총리실이 내년 원조 규모를 대폭 증액하겠다고 발표했을 때, 이 분야 전문가들 모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 수수께끼는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 후일담을 읽으며 풀렸다. 오일머니를 뿌리며 엑스포 유치에 적극적이었던 사우디아라비아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도 개발도상국들에 원조 제공 약속을 열심히 했다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내년도 원조 예산을 늘릴 수밖에 없었다.

 

대외원조 중에서도 인도적 지원 예산의 대폭 증가가 이런 심증을 뒷받침한다. 일반적으로 원조가 예산에 반영되기 위해서는 2~3년 전부터 준비해 개도국 정부와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 그런데 인도적 지원 예산은 이런 준비 없이 그리고 특정 사업에 구속받지 않고 정부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국무총리실 발표에 따르면, 이 예산이 올해 4천억원에서 내년 11천억원으로 증가한다. 증가액은 7천억원, 증가율은 무려 188%. 보통 전체 원조의 10%에 불과한 인도적 지원이 이렇게 급속하게 늘다니, 지극히 비정상적이다.

 

우리 원조 규모가 한국의 경제 규모나 국제사회 위상에 비춰 볼 때 작은 것은 사실이다. 앞으로 계속 늘려가면서 개도국의 빈곤 탈출과 발전에 기여하고, 또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의 국격과 비가시적 힘, 즉 소프트파워도 높여야 한다. 이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도 엑스포 같은 국제행사 유치를 위해 원조 예산을 사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더구나 경쟁 상대가 사우디아라비아라면 자금 지원으로 표를 얻겠다는 전략은 크게 잘못된 것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중동 산유국들은 이미 20여년 전부터 엄청난 규모의 국부펀드를 이용해 해외 프로스포츠 구단 인수와 월드컵 등 국제행사 유치에 나서 세계를 휘젓고 있다. 우리나라는 그런 오일머니를 가진 것도 아니고, 그 자금을 국가 지도자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왕정 국가도 아니다.

 

정부는 늘 자유와 인권, 인도주의 같은 보편적 가치 실현을 위한 외교를 강조한다. 그런데 국제행사 유치를 위해 상당한 규모의 원조 자금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다른 원조 공여국들이 알면 어떻게 생각할까. 어느 나라나 개도국에 원조할 때 자신들의 이익도 고려한다. 하지만 그 이익은 국제행사 유치나 자기 나라 상품 수출과 같은 직접적 이익이 아니다. 그런 이익과 연계시키면, 원조를 하고도 소프트파워가 오르기는커녕 떨어질 것이다. 장기적 지원 계획과 준비 없는 일회성 지원은 개도국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대외원조 정책에는 개선해야 할 점들이 많다. 규모가 작다는 점은 장기적인 목표를 세우고 그에 따라 꾸준히 늘려가면 된다. 더 큰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우선 대외원조의 전략적 목표가 없고 이를 책임지고 관리하는 정부 부처도 없다. 차관으로 제공되는 자금에는 우리나라 물품 구매에만 사용해야 한다는 꼬리표가 붙어, 개도국들이 오히려 받기를 꺼린다. 반세기 전 원조를 수출 지원 수단으로 이용하던 유산을 세계 10위 무역 대국이 된 지금도 버리지 못해 국제적으로 빈축을 사고 있다.

 

글로벌 중추 국가를 지향하는 정부가 이번 기회에 이런 문제들을 고쳐나가기를 기대한다. 대외원조가 제자리를 찾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회의 관심이 절실하다. 다른 선진국에서는 원조 정책이 정권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중요한 이슈이기에, 의회에서 치열한 논쟁이 벌어진다. 그런데 우리는 여야 모두 이 문제에 관심이 없다. 한국은 이미 국제외교의 변방에 머무를 수 없는, 그리고 머물러서는 안 되는 나라가 되었다.

박복영경희대 교수·전 청와대 경제보좌관 | 경향 2023.12.07.

 

 

소통 부재와 집단사고

19614J F 케네디 대통령은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정권 붕괴를 위한 작전을 승인했다. 쿠바인 망명자 1500여명을 중심으로 병력을 편성해 쿠바를 침공, 카스트로 정권을 무너뜨린다는 계획이었다. 미 중앙정보국(CIA)은 마이애미 군사기지에서 이들을 훈련시켜 게릴라전에 투입하고 공중지원을 통해 피그스만을 건너 공격하기로 했다. 케네디는 게릴라가 상륙하면 쿠바 내부에서 호응이 있을 것이란 CIA의 보고를 철석같이 믿었다. 결과는 실패였다. 망명자 부대는 해안에 상륙하자마자 곧바로 발견돼 맹렬한 반격을 받고 궤멸됐다. 쿠바 내 호응은 없었다. ‘피그스만 침공은 미국 역사상 가장 처참한 실패 사례 가운데 하나로 기록됐다.

 

당시 케네디의 참모들은 뛰어난 지성과 검증된 능력을 가진 쟁쟁한 인물들이었다. 하버드 비즈니스스쿨의 천재이자 미 공군의 시스템 분석 귀재로 불린 로버트 맥너마라가 국방장관, 록펠러재단 이사장 출신의 딘 러스크가 국무장관이었다. 34세에 하버드대 문리대학장에 올랐던 맥조지 번디는 국가안보회의(NSC)를 지휘했다. 빠른 두뇌회전과 열정으로 뭉친 미국 최고의 엘리트가 케네디를 보좌했지만 이들의 판단은 틀린 것으로 결론났다.

 

여러 명의 똑똑한 사람이 모여 내린 결정은 매우 옳고 현명할 것으로 보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그게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사실이 피그스만 침공과 같이 여러 역사적 사례에서 입증됐다.

 

미국 예일대 심리학자 어빙 재니스는 집단사고’(groupthink)라는 개념을 통해 이를 설명한다. 재니스에 따르면 집단사고는 응집력이 강한 집단의 성원들이 어떤 현실적인 판단을 내릴 때 만장일치를 이루려고 하는 사고의 경향이다. ‘잘될 것이라는 낙관론을 바탕으로 이견 없이 하나의 결론에 이른다는 것이다. 구성원들은 다른 이에게 따돌림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또는 보상에 대한 기대감 때문에 반론을 제기하지 않는다. 만장일치에 도달하려는 이런 사고의 경향은 시간을 절약해주는 효과가 있지만 중요한 결정에서는 아예 잘못된 결론으로 이끌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 1년 반 동안의 행보를 짚어보면 집단사고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지난달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는 대표적 사례다. 두세 표도 아니고 무려 90표 차나 났는데도 투표일 직전까지 근소한 표차로 선전” “2차 투표에서 역전과 희망 섞인 얘기들만 흘러나왔다. 이미 여러 곳에서 부산의 유치가 어려울 것이란 정황이 드러났는데도 드라마틱한뒤집기를 장담했다. 하지만 참패였다. 윤 대통령은 유치 실패 후 예측이 많이 빗나갔다고 인정하면서 대국민 사과를 했다. 참모와 각료들이 이길 것이란 낙관론에 사로잡히는 집단사고에 빠진 나머지 처음부터 잘못된 판세 예측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는 얘기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사우디가 유리하다는 정보가 많았지만 대통령이 워낙 강력하게 밀어붙이다보니 부정적 내용이 차단됐을 가능성도 나온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때도 그랬다. 국민 대다수가 여당의 패배를 예상하고 있었으나 참모들이 낙관론 속에 승리 예상보고를 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윤 대통령이 선거 패배 후 격노했다는 후문은 이를 뒷받침한다.

 

참모들이 집단사고에 빠지는 1차적 책임은 소통부재에 있다.

윤 대통령의 독선과 툭하면 화부터 내는 불같은 성격은 제대로 된 소통을 하기 어렵게 만든다. 다른 의견을 내거나, ‘’(No)라고 할 수 없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이런 상황은 어떤 중요 사안을 결정하는 회의나 논의를 답정너로 몰고 간다. “결론은 이미 정해져 있으니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말라는 얘기다. 쓴소리를 싫어하는 대통령에게 누가 반대 의견을 내놓을 수 있을까.

 

더 큰 문제는 이런 상황이 앞으로도 되풀이될 수 있다는 점이다. 더구나 윤 대통령 주변의 요직은 그의 뿌리나 다름없는 검찰 출신 인사로 다 채워놓았다. 검사들의 엘리트 의식’ ‘선민의식은 집단사고로 치닫기 딱 좋은 여건이다. 엑스포 개최나 보궐선거 정도의 사안이라면 그나마 다행인지도 모른다. 외교와 안보, 중요 경제정책과 같이 국민의 안위와 실생활에 직결되는 문제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참모들이 집단사고에 빠지지 않으려면 대통령이 바뀌어야 한다. 소통을 강조하지만 왜 소통이 안 되는지, 스스로에겐 아무 문제가 없는지 먼저 되돌아봐야 한다./ 조홍민 사회에디터 | 경향 2023.12.07.

 

최저임금 제도 망가뜨린 거대 양당의 원투 펀치

희대의 꼼수, 산입범위의 저임금노동 습격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3120709411463458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 | 프레시안 2023.12.08.

 

 

김건희 여사가 대통령인가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119548.html

강희철 | 논설위원 | 한겨레 2023.12.08.

 

 

대외원조 18천억 통큰 예산’, 부산 엑스포가 남긴 수수께끼

정부는 내년 전체 예산 증가율을 2.8%로 묶었다. 경기 부진에도 불구하고 매우 낮은 증가율이다. 그런데 외교통일 분야 예산은 무려 19% 증가했다. 12개 분야 중 가장 많이 늘었고, 17%가량 줄어든 연구개발(R&D) 예산과 대비된다. 긴축 기조 속에서 외교통일 분야가 왜 이렇게 늘었을까? 통일 분야 예산이 증가했을 리는 없으니 답은 외교에 있다. 외교 분야 예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대외원조(ODA)가 전년 대비 무려 45%, 금액으로는 18천억원가량 늘었다. 예산 편성에서 긴축 기조를 강조한 윤석열 정부가 왜 원조 예산은 이렇듯 사상 유례없이 큰 폭으로 늘렸을까?

 

일반적으로 보수 정부는 원조에 인색하다. 실제 윤석열 정부 120대 국정과제 어디에도 원조 규모 증액에 관한 언급은 없다. 그래서 지난 6월 국무총리실이 내년 원조 규모를 대폭 증액하겠다고 발표했을 때, 이 분야 전문가들 모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 수수께끼는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 후일담을 읽으며 풀렸다. 오일머니를 뿌리며 엑스포 유치에 적극적이었던 사우디아라비아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도 개발도상국들에 원조 제공 약속을 열심히 했다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내년도 원조 예산을 늘릴 수밖에 없었다.

 

대외원조 중에서도 인도적 지원 예산의 대폭 증가가 이런 심증을 뒷받침한다. 일반적으로 원조가 예산에 반영되기 위해서는 2~3년 전부터 준비해 개도국 정부와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 그런데 인도적 지원 예산은 이런 준비 없이 그리고 특정 사업에 구속받지 않고 정부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국무총리실 발표에 따르면, 이 예산이 올해 4천억원에서 내년 11천억원으로 증가한다. 증가액은 7천억원, 증가율은 무려 188%. 보통 전체 원조의 10%에 불과한 인도적 지원이 이렇게 급속하게 늘다니, 지극히 비정상적이다.

 

우리 원조 규모가 한국의 경제 규모나 국제사회 위상에 비춰 볼 때 작은 것은 사실이다. 앞으로 계속 늘려가면서 개도국의 빈곤 탈출과 발전에 기여하고, 또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의 국격과 비가시적 힘, 즉 소프트파워도 높여야 한다. 이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도 엑스포 같은 국제행사 유치를 위해 원조 예산을 사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더구나 경쟁 상대가 사우디아라비아라면 자금 지원으로 표를 얻겠다는 전략은 크게 잘못된 것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중동 산유국들은 이미 20여년 전부터 엄청난 규모의 국부펀드를 이용해 해외 프로스포츠 구단 인수와 월드컵 등 국제행사 유치에 나서 세계를 휘젓고 있다. 우리나라는 그런 오일머니를 가진 것도 아니고, 그 자금을 국가 지도자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왕정 국가도 아니다.

 

정부는 늘 자유와 인권, 인도주의 같은 보편적 가치 실현을 위한 외교를 강조한다. 그런데 국제행사 유치를 위해 상당한 규모의 원조 자금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다른 원조 공여국들이 알면 어떻게 생각할까. 어느 나라나 개도국에 원조할 때 자신들의 이익도 고려한다. 하지만 그 이익은 국제행사 유치나 자기 나라 상품 수출과 같은 직접적 이익이 아니다. 그런 이익과 연계시키면, 원조를 하고도 소프트파워가 오르기는커녕 떨어질 것이다. 장기적 지원 계획과 준비 없는 일회성 지원은 개도국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대외원조 정책에는 개선해야 할 점들이 많다. 규모가 작다는 점은 장기적인 목표를 세우고 그에 따라 꾸준히 늘려가면 된다. 더 큰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우선 대외원조의 전략적 목표가 없고 이를 책임지고 관리하는 정부 부처도 없다. 차관으로 제공되는 자금에는 우리나라 물품 구매에만 사용해야 한다는 꼬리표가 붙어, 개도국들이 오히려 받기를 꺼린다. 반세기 전 원조를 수출 지원 수단으로 이용하던 유산을 세계 10위 무역 대국이 된 지금도 버리지 못해 국제적으로 빈축을 사고 있다.

 

글로벌 중추 국가를 지향하는 정부가 이번 기회에 이런 문제들을 고쳐나가기를 기대한다. 대외원조가 제자리를 찾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회의 관심이 절실하다. 다른 선진국에서는 원조 정책이 정권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중요한 이슈이기에, 의회에서 치열한 논쟁이 벌어진다. 그런데 우리는 여야 모두 이 문제에 관심이 없다. 한국은 이미 국제외교의 변방에 머무를 수 없는, 그리고 머물러서는 안 되는 나라가 되었다.

박복영경희대 교수·전 청와대 경제보좌관 | 한겨레 2023.12.08.

 

김건희 특검법' 발의 엿새만에, 영부인은 천연덕스레 '명품백'을 받고 있었다

5천만의 문법'으로 영부인 명품백 사태를 분석해주길 바라며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3120811121112011

박세열 기자 | 프레시안 2023.12.09.

 

 

 

이기주의의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자 '기본소득'

https://www.mindle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6303

김태형 심리연구소 '함께' 소장 | 시민언론 민들레 2023.12.09.

 

노란봉투법과 누런봉투법

지난 1일 대통령이 결국 거부권을 행사했다.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 제정을 위해 공들인 10년 탑이 무너졌다. 8일 국회 본회의 재투표에서 노란봉투법은 예상대로 방송3’(방송법·방송문화진흥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과 함께 부결됐다.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312102044005

정병기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경향 2023.12.10.

 

.‘우리의 전쟁

도살장이었습니다. 죽은 사람과 죽어가는 사람을 가리지 않고 말발굽으로 마구 짓밟아 버렸습니다. (물을 달라 애원하던 병사는) 이튿날 아침 시체로 발견되었는데 입속에는 흙이 가득했고 꽉 쥔 양손의 손톱들은 땅을 파헤치느라 휘어져 있었습니다.”

앙리 뒤낭이 기록한 1859년 솔페리노 전투 현장의 모습이다. 하지만 인류는 이 비극의 성찰을 통해 부상 군인이나 민간인은 인도적으로 대우해야 한다는 제네바 협약과 국제적십자사라는 조직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2023년 오늘, 인류는 이 소중한 원칙들을 하나하나 파괴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가자에 대한 공격을 재개했다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119819.html

신영전 | 한양대 의대 교수 | 한겨레 2023.12.10.

 

무능한 정권과 신뢰 잃은 민주당

여야가 내년 총선 전략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정치 평론가들은 국정 안정이냐 정권 심판이냐?”를 놓고 그럴듯한 주장을 펼친다. 마치 내년 총선 결과에 따라 국가의 운명과 국민의 삶이 바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선거다. 4개월밖에 남지 않은 선거의 쟁점이 무엇인지 알 수 없어서다.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119818.html

윤홍식 |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소셜코리아 운영위원장 | 한겨레 2023.12.10.

 

여의도 면적아십니까

합천군과 경북 고령군 접경 지역에서 발생한 산불이 나흘간 여의도 면적의 2배가 넘는 숲(675)을 태웠다.’의구심이 들었다. 합천·고령 사람은 여의도 면적 2를 상상할 수 있을까?

https://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4382

김연수 경남도민일보 기자 미디어오늘 2023.12.10

 

 

무엇이 비트코인 가격을 결정하는가

 

지난 6일 오전 서울 서초구 빗썸 고객지원센터 전광판에 비트코인 실시간 거래 가격이 표시되고 있다. 최근 비트코인 상승세는 가팔라지고 있다. 지난 34만달러(5260만원)를 돌파한 데 이어 4일에는 42천달러(5523만원)를 넘나들었다. 연합뉴스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119816.html

김기만 | 코인데스크코리아 부편집장 | 한겨레 2023.12.10.

 

권력의 과시적 소비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119969.html

이주희 |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 한겨레 2023.12.10.

 

노무현의 길? 이재명의 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보고 있으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두 사람은 공통점이 많다. 민주당이라는 민주야당에 뿌리를 둔 자유주의정당의 지도자로, ‘사이다라는 말을 듣는 달변과 시원시원한 언행, ‘진보적정책노선, 그러면서도 현실성을 잃지 않는 정치인이라는 점이 대표적인 공통점이다. 보다 근본적인 공통점이 있다. 둘은 한국 정치, 아니 정치를 넘어 한국 사회의 소수자’, ‘비주류출신이다. 둘 다 꿈의 등용문인 사법시험을 통과해 변호사라는 화려한 직업을 가졌지만, 그 이전은 그리 화려하지 않았다. 둘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너무나 어려운 청소년기를 지내야 했다. 특히 학벌이 지배하는 한국 사회에서 둘은 모두 소외된 비주류였다. 이 대표는 서울에 있는 대학을 나오기는 했지만 소위 스카이류의 명문대는 아니었다. 노 전 대통령은 아예 대학 근처도 못 갔다는 점에서 더욱 입지전적이다. 대학은 말할 것도 없고 신림동 고시학원도 못 가고 토굴에서 고시공부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같은 비주류성은 이후 경력에도 이어진다. 민주당의 주류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은 김근태, 586 같은 학생운동권 지도자들이기에 둘은 정치입문 이후에도 기본적으로 비주류로 남아야 했다. 그런 만큼 둘은 기존 당 조직이나 정치 메커니즘을 넘어 대중에게 직접 호소하는 포퓰리스트적인 정치를 추구했다는 점도 비슷하다.

 

이 같은 점을 빼놓고는 둘은 너무도 다른 것 같다. 노 전 대통령은 인권변호사로 김영삼 전 대통령에 의해 발탁되어 정치에 입문해 청문회 스타로 각광을 받았지만 김영삼이 군사독재세력과 3당 통합을 하자 이에 동참하지 않고 가시밭길을 택했다. 이후 김대중 전 대통령과 같이했지만 김 전 대통령의 사당정치에 반대해 꼬마민주당을 만들어 출마했다가 낙선했고 유인태 등과 고깃집을 해야 했다. 1997년 대선에서 정권교체를 위해 김대중 측으로 돌아가 어렵게 종로 보궐선거에서 당선됐지만 당선되자마자 지역주의를 깬다며 적지의 심장인 부산으로 달려가 출마했다. 결과는 당연히 낙선이었다. 이 같은 자기희생의 태도는 국민들에게 울림을 줬고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그 결과가 예상하지 못한 대통령 당선이다. 작은 것을 버림으로써 큰 것을 얻는 소실대탐의 길’, 죽음으로써 오히려 살아난 사즉생의 길이었다. 사람들은 이를 바보 노무현이라고 말하지만 이는 바보가 아니라 지혜로운 현자의 길이었다.

 

이재명은 노무현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 같다. 대표적인 것이 2022년 대선 패배 직후 있었던 재·보궐선거다. 당시 자신이 살고 있는 분당 지역에서도 선거가 치러짐에도 불구하고 이 대표는 자신의 정치적 파트너인 송영길 전 의원의 선거구인 인천 계양을을 물려받아 출마해 당선됐다. 작은 이익에 눈이 멀어 연고지를 버리고 아무 연고도 없는 곳으로 도주를 한 것으로, 노무현과 정반대로 행동한 것이다. 노무현이 소실대탐의 큰 정치인이라면, 이재명은 눈앞의 작은 이익에 얽매여 큰 것을 잃은 소탐대실의 작은 정치인이라는 것을 잘 보여준 것이다. ‘바보 노무현과는 반대의 의미에서 바보 이재명이다. 이 대표가 이 같은 이미지를 불식시킬 수 있는 진짜 리트머스시험지, 마지막 시험이 눈앞에 있다. 국회의원 선거법 개정이다. 다시 떠오르는 것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그는 대통령이 된 뒤, 어느 날 갑자기 망국적인 지역주의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를 버리고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해야 하며, 한나라당이 이를 수용할 경우 정권의 반을 내주는 연정을 하겠다는 폭탄선언을 했다. 놀란 여당이 극렬 반대하고 야당이 별 호응을 하지 않아 실패했지만 이는 노무현의 큰 정치가 어떠한 것인가를 잘 보여준다.

 

불행히도 지금까지 나오는 이야기는 이 대표가 계양을 출마같이 소탐대실의 길을 갈 것 같다는 안타까운 내용이다. 이 대표와 민주당이 승자독식의 낡은 정치교체를 위해 다당제를 추진하겠다는 지난 대선의 공약을 던져버리고 국민의힘이 원하는 낡은 병렬제로 회귀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선거법 개정에서 이재명과 민주당은 소실대탐사즉생의 큰 정치를 통해 국민에게 감동과 울림을 주고 이를 통해 승리하는 노무현의 길을 갈 것인가? 아니면 작은 이익에 눈이 멀어 원칙과 약속을 헌신짝처럼 차버림으로써 국민들에게 짜증과 실망만 주는 계양을식의 소탐대실’, 살려다 죽는 생즉사의 이재명의 길을 갈 것인가?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정치학 | 경향 2023.12.11.

 

극우파의 슬픈 정념이 몰려온다

전 세계, 특히 유럽과 남미에서 벌어지고 있는 극우파 정당의 약진에 관해 함께 생각해보도록 한다. 이런 일들이 왜 벌어지는지, 앞으로 어떤 세상이 펼쳐지게 될지에 대해 좀 더 긴 역사적 시각에서 그리고 철학적인 관점에서 부족한 생각을 나누어보고자 한다.

 

지난 1119(현지시간) 아르헨티나의 대통령 선거에서 극우파 하비에르 밀레이가 당선되었다. 아르헨티나 하면 떠오르는 두 단어, 즉 페론주의 이후의 좌파 포퓰리즘 정치 그리고 끝도 없이 계속되는 경제위기를 밀레이는 연결시켰다. 현재 경제위기의 모든 책임을 좌파 정권으로 돌리면서, 중앙은행을 폐쇄해버리고 자국 통화인 페소도 폐지하고 대신 미국 달러를 통화로 쓰겠다는 파격적인 정책을 내걸었다. 지난 1122일 네덜란드의 하원 선거에서 헤이르트 빌더르스가 이끄는 극우정당 자유당이 제1당으로 올라섰다. 빌더르스는 이민을 완전히 봉쇄하고,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를 폐쇄하고, 이슬람 경전인 쿠란을 금지 서적으로 만들겠다는 입장을 가진 인물이다.

 

이 두 나라만이 아니다. 지금 유럽은 극우파의 물결이 높게 출렁이고 있고, 조만간 서유럽 대부분 나라의 정치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탈리아는 이미 극우파 정권이 들어선 상태이며, 프랑스에서는 극우파 마린 르펜 후보가 지난해 대통령 선거 결선에서 무려 득표율 41.4%를 기록한 바 있다. 심지어 북유럽의 스웨덴과 핀란드에서도 극우정당이 제2당을 차지하고 있으며, 독일에서도 극우파 독일대안당이 집권여당 사민당 지지율을 제치고 제2당 자리에 올라섰다. 스페인 역시 극우정당이 집권여당의 위치를 넘보고 있는 상황이다.

 

좀 엉뚱하다 싶지만, 지금의 극우파 창궐 사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철학자 스피노자가 말한 슬픈 정념이라는 개념에서 시작해보는 게 좋을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코나투스’, 즉 버티는 힘이라는 게 있다. 그런데 이 힘이 발현되는 방식을 놓고서 스피노자는 사람의 정념을 기쁜 정념슬픈 정념두 가지로 나눠놓았다.

 

먼저 기쁜 정념이란 그 사람이 힘을 더 바깥으로 크게 뻗치게 만드는 감정이다. 예를 들어서 사랑, 희망, 자신감, 헌신, 감사 같은 감정들로서 이런 감정에 빠진 사람들은 자기 존재를 넘어서서 삶을 더 크게 만드는 쪽으로 본인의 힘을 쓰게 된다. 기쁘고 좋으니까. 그런데 반대로 슬픈 정념은 사람을 아프게 만드는 감정들이다. 공포, 질투심, 증오, 죄의식, 수치심 같은 것들이다. 이 경우에는 사람이 갖고 있는 힘이 몽땅 그 고통과 괴로움을 견디는 쪽으로 들어간다. 그래서 이런 감정과 싸우다 보면 자기 존재가 커지기는커녕 갈수록 쪼그라들고 삶은 피폐해져가다, 결국 죽어 없어지기까지 한다고 스피노자는 말한다.

 

2010년대 좌파는 정치경제학 부재

나는 정치 운동도 기쁜 정념으로 움직이는 경우와 슬픈 정념으로 움직이는 경우가 있다고 생각한다. 전자는 제도도 바꾸고 정책도 바꾸어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 창조해나간다는 힘으로 움직이는 운동이지만, 후자는 무엇에 대한 증오와 분노와 공포 혹은 죄의식 같은 것으로 움직이는 운동이다. 전자는 갈수록 사람들도 많이 모이고 세상도 실제로 바뀌면서 개인과 공동체가 다 풍요해지는 쪽으로 이바지하지만, 후자는 갈수록 사람들 사이에 싸움과 반목을 만들고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 쪽으로 나아가게 되어 있다.

 

그렇다면 정치 운동이 기쁜 정념의 운동이냐 슬픈 정념의 운동이냐를 가르는 결정적인 계기는 무엇일까? 나는 사회에 대한 과학적 분석에 기반하여 새로운 대안적인 실천 계획이 있느냐 없느냐라고 믿는다. 이게 있다면 그걸 하나하나 실현해나가면서 더 많은 사람과 만나고 하나가 되는 일이 가능하지만, 그게 없으면 모여서 다른 무언가를 욕하고 저주하는 쪽으로 힘을 쓰게 되니까. 지금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극우파 정치는 후자로 슬픈 정념의 운동에서도 가장 나쁜, 하지만 전형적인 예일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흔히 간과하고 있다. 극우파 정치는 진보 좌파 정치의 실패로 나타난 결과이며, 그 연속선에 있다는 점이다. 특히 슬픈 정념의 운동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잠깐 시간을 돌이켜서 2010년대 초로 가본다. 2008년 세계 경제위기가 터진 뒤 좌파에 기회가 오는 듯싶었다. 2011년에는 미국 월스트리트 점령 운동도 있었고, 스페인에서는 분노한 자들운동도 있었다. 또한 세계 경제위기와 함께 대규모 정치 운동이 각국에서 터져나왔고, 그리스와 스페인 등지에서는 시리자나 포데모스와 같은 새로운 유형의 좌파정당들도 나타났으며, 사회민주당이나 노동당과 같은 기존 좌파정당 내에서 정당 혁신 운동이 거세게 일어나기도 했다. 그래서 2010년대 초까지만 해도 정치·경제 주도권과 기회는 진보와 좌파 쪽에 있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이었다. 진보 좌파가 이렇다 할 만한 행동 플랜을 내놓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불평등을 감소시키기 위한 기본소득이라든가 생태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녹색뉴딜 같은 이야기들이 나왔지만, 뾰족한 실천 운동 방침이 제시된 것도 아니었고, 당장 사람들 삶의 고통을 해결해줄 수 있는 유능한 정책이나 제도가 마련된 것도 아니었다. 그저 말만 많고 요란했을 뿐이고, 좀 냉소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그런 이야기로 마이크를 잡은 개인들이 정치가·지식인 등 셀럽이 되고 출세하는 일만 벌어졌을 뿐이다.

 

화풀이로 극우 정치인에 표 던져

진보 좌파는 왜 2010년대에 자신들에게 온 천재일우의 기회를 이렇게 날려버린 것일까?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경제 시스템에 대한 객관적이고 현실적인 분석이 없었기 때문이다. 요컨대 정치경제학이 없었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이나 그린뉴딜 같은 막연한 구호만으로 정책과 제도가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많은 연구와 계획이 필요하고, 이를 사람들에게 자세히 알기 쉽게 설명해서 힘을 모으는 작업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은 사실상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리하여 스피노자가 말한 기쁜 정념이 사그라들게 되자 모여 있던 힘은 슬픈 정념으로 변하게 된다. 2010년대 후반이 되면 진보 좌파 운동은 사회경제적 모순이나 생태위기 문제를 가지고 싸우는 게 아니라 엉뚱하게 백인, 남성, 이성애자 등등에게 싸움을 거는 극단적인 PC주의, 워키즘으로 변질된다. 그래서 이른바 문화 전쟁의 수렁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이러한 슬픈 정념의 운동만을 가지고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 오히려 사회 전체에 깊은 상처만 남기기 십상이다.

 

2023년 지금 극우파 발호의 기초가 되는 중대한 쟁점으로 네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는 이민자 문제, 둘째는 물가 인상과 생활고 문제, 셋째는 기후위기 대응 정책에 대한 반발과 저항, 넷째는 전쟁 등으로 인한 안보 불안이다. 이는 현실을 살아가는 서민 대중에게는 정말로 크고 심각한 문제이지만, 기존 정치권이나 제도에서 풀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무책임하게 극단적인 주장과 요구를 질러대는 극우 정치인이 사람들을 끌어간다는 이야기이다.

 

문제는 이게 슬픈 정념이라는 데 있다. 극우 정치인에게 표를 준 사람들도 마음속으로는 잘 알 것이다. 저 사람들도 기존의 무능하고 부패한 정치인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종자들은 아니라고. 그래서 저기에 표 던져봐야 뾰족하게 뭔가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것도. 그냥 기존 정치, 질서에 대한 부정과 화풀이로 표를 던지는 것에 가깝다.

 

신자유주의 질서가 빈사 지경에 처하여 새로운 정치경제 질서를 만들어가는 일에 착수해야 했던 2010년대를 그냥 말잔치로 날리고, 되레 극단적 PC주의 같은 슬픈 정념만 키운 결과가 이러하다. 그래서 지금 전 지구를 휩쓸고 있는 극우파 정치 바람은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새로운 삶의 질서가 태어나줘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있는 가운데, 세상의 에너지가 또 인류의 에너지가 슬픈 정념으로 변질되고 푹푹 썩고 있는 현상일 뿐이다. 잘 알려진 안토니오 그람시의 말대로 낡은 것은 죽었는데 새로운 것은 태어나지 않고 있는 순간, 그때가 위기인 셈이다.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 | 경향 2023.12.11.

 

'서울의 봄'으로 본 제6공화국 연대기, '김건희-이재명' 보위 정치를 분석한다

새로운 정치 문법을 수립해야 한다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3121117175365868

장석준 출판&연구집단 산현재 기획위원 | 프레시안 2023.12.12.

 

소신공양극단적 선택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312112030001

이영경 문화부 차장 | 경향 2023.12.12.

 

악몽이 돼버린 김건희 여사의 국빈 방문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120228.html?_fr=mt2

박찬수대기자 | 한겨레 2023.12.13.

 

블랙프라이데이 단상

1년 중 가장 큰 폭의 세일 시즌. 미국인들이 1년간 기다렸다가 닫았던 지갑을 열고 펑펑 쓴다는 바로 그날. 일명 블랙 프라이데이(블프)가 우리 일상에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웬만한 건 온라인으로 구매하다 보니 최근에 역대 최초, 최고, 최대” “1년에 단 한 번같은 고 자극 블프 세일문자폭탄을 받았다. 시도 때도 없이 들어오는 광고를 지우며 욕망과 절제에 관한 단상들이 스쳐갔다.

 

나는 미니멀·심플함을 지향하지만 비우고 버리는 것을 잘 못한다. 큰돈을 턱턱 쓰지는 않지만, 자잘한 걸 사는 데는 관대한 편이다. 조건이 되고 갈등이 없는 사람이라면 뭐가 문제겠냐만, 나는 그게 걸리는 사람이다. 물건 쌓이는 것도 싫고, 무엇보다 심플하게 살고자 하는 다짐과 자꾸 부딪치는 것 같아서다. 그런데 때로는 의지보다 강력한 게 물리적 공간이라는 걸 깨닫게 한 경험이 있다.

 

서울 인근 큰 평수의 아파트에 살았던 적이 있는데 그때 인생 최대의 소비를 했던 것 같다. 다시 서울로 오기 위해 아파트 평수를 확 줄이니 강제 정리가 되었다. 웬만한 이삿짐 분량만큼 버린 것 같다. 그런데 살림이 가벼워지니 자연스럽게 생활에 변화가 왔다. ‘조금씩, 그때그때로 소비패턴이 바뀐 거다. 먹거리도 산지 직송·생협 정기 배송으로 바꾸니 냉장고가 한눈에 들어왔다. 조금은 절제하면서도 헐렁함이 주는 안정감이 좋아 이 패턴을 잘 유지하고 싶다. 그런데 블프 같은 강력한 유혹이 나타나면 흔들리기 일쑤다. 이번엔 팬트리 없는 좁은 집의 틈새 공간까지 책임진다는 수납용품에 꽂혀 결제 직전까지 갔다가 중단했다. 자주 쓰지도 않는 물건들을 정리하기 위해 추가로 정리 용품을 살 게 아니라, 더 비워내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아이들 키우고 바쁠 땐 이런 것이 필요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단출해진 중년의 시간에도 오랫동안 몸에 밴 관성 탓에 여전히 그러고 사는 것은 아닌지 반문하게 된다. 밥도 한꺼번에 많이, 무엇이든 쌀 때, 할인할 때 가득 사서 냉동실에 쟁여놓기. 신선할 걸 잔뜩 사서 냉동과 해동을 거쳐 먹는 것도 참 아이러니하다. 각종 소분 용기가 쌓이는 건 덤이고. 환경 실천을 외치면서 집집마다 텀블러가 넘쳐나는 것과 비슷하달까. 잘 소분하는 것이 곧 효율인 것처럼 부추기는 미디어 영향도 크다.

 

안 사는 게 최고 할인슬로건을 내세운 프랑스 환경 에너지청이 만든 반 블랙프라이데이캠페인 영상을 보았다. 찬성과 반대로 시끌시끌했지만, 내 시선을 끈 것은 구매가 유일한 해결책이 아니다라고 한 프랑스 생태 전환부 장관의 소신 발언이었다. 되지도 않을 가십거리로 피로를 주는 우리 정치와 비교하면 소비 욕구 충족이냐, 소비 절제냐의 논쟁은 상대적으로 건강해 보인다.

 

싱싱한 제철 야채를 바구니에 담아 파는 할머니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이 좋아 그 동네 아파트를 단번에 계약했다는 친구 J. 정보의 쓰나미 속에서도 이렇게 중심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 부럽다. 가끔은 귀도 얇고 호기심이 많은 나를 한 번씩 스톱시켜주는 소심함이 고맙기도 하다.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블프 마지막 날, 장바구니에 물건 두 개를 담았다. , 그러고 보면 스마트폰이 제일 문제인 듯!

남경아 <50플러스 세대> 저자 | 경향 2023.12.13.

 

 

한국의 대입 배치표

전 세계에서 대입 배치표가 있는 곳은 한국이 유일할 것이다. X축엔 대학, Y축엔 커트라인. 이 단순한 사각 행렬은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학벌 폐습을 응축해 보여준다.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50만 수험생을 한 줄로 세운다면, 배치표는 197개 대학 13000여 학과를 서열화한다.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312132029005

오창민 논설위원 | 경향 2023.12.13.

 

감춰진 언론의 진실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 ‘대장동 사건에 자주 등장하는 사람이다. 어느 날 대리운전기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가다가 교통사고가 났다. 상대 차량이 8.5t 트럭이었고 고속도로였지만, 누구도 크게 상하지 않은 접촉 사고였다. 다행이다. 그런데 유동규 전 본부장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벌인 사건이라도 되는 듯 엄살을 부렸다.

 

기다렸다는 듯 여당 원내대표는 이재명 대표와 관련한 여러 사건에서 관련자들이 연달아 극단적 선택을 하거나 교통사고를 당하는 일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언론은 소상하게 이런 일을 보도했다.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312142048015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 경향 2023.12.14.

 

 

김 여사 명품백 의혹 쿨하게수사하라

검사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만든 건 검찰총장 시절 보여준 살권수’(살아 있는 권력 수사)였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등 친문 핵심을 겨냥한 수사로 문재인 정권의 내로남불에 분노한 민심을 얻었다.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120410.html?_fr=mt5

이춘재논설위원 | 한겨레 2023.12.14.

 

 

서울의 봄공감과 유감

이 영화에 대해 지금 젊은 세대의 열띤 호응이 있다면 그것은 몰상식이 상식을 무너뜨리는 어처구니없는 사태에 대한 자연스러운 분노와 과거에 그런 일이 있었음을 알게 된 데에 따른 인식상의 충격에서 비롯된 것 이상은 아닐 것이다. 이들의 이른바 분노 인증 릴레이도 젊은 세대 특유의 일종의 놀이문화 맥락에서 이해될 수준이지 지나친 과잉 해석은 우세스러운 일이다.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120403.html?_fr=mt5

김명인 | 인하대 국어교육과 교수·문학평론가 | 한겨레 2023.12.14.

 

 

정치인·판사 잇속 탓에 글로벌 호구된 한국 소비자

아이폰 고작 49만원, 폭스바겐 22000만원 배상

https://www.mindle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6374

김태현 변호사 시민언론 민들레 2023.12.14.

 

문제는 김건희가 아니다

조선·중앙·동아일보 등 보수언론 논객들이 연일 김건희를 외치고 있다. 경쟁적이다. 수위도 높다. ‘사가(私家)’로 가서 근신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조선시대 왕후나 세자빈이 폐서인되면 궁에서 내쫓겨 가던 곳이 사가다. 금기어였던 V1(VIP1·대통령)·V2(VIP2·퍼스트레이디)도 거론한다. 대통령실 참모들을 겨냥해 왜 직언하지 않느냐며 비판하는 글도 줄을 잇는다.

 

일단은 놀라운 변화다.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관여 의혹 등이 제기될 때 굳게 입 닫거나, 미소지니(Misogyny·여성혐오)라며 감싸던 보수언론이 갑자기 왜 이러는 걸까. 짐작할 만하다. 총선 때문이다. ‘여사님, 하고 싶은 거 다 하세요식으로 놔뒀다가는 국민의힘이 질 거 같아서다.

 

모두가 핵심을 피해가고 있다. 핵심은 김 여사도, 참모들도 아니다. 배우자를 방치하고, 직언하는 이에게 격노하는 윤석열 대통령이다. 이른바 명품 백수수 논란이 터진 날이 1127일이다. 이틀 후(1129) 새벽엔 부산 엑스포 유치에 실패했다. ‘졌잘싸도 아닌, 망신에 가까운 참패였다. 윤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즉시 사과했다.

 

말뿐이었다. 윤 대통령은 엑스포 참패에 고개를 숙인 지 2주도 안 지나 네덜란드 방문(이달 11~15)에 나섰다. 김 여사도 동행했다. 의전 절차가 까다로운 국빈방문인 만큼 스케줄·동행 변경이 어려웠을 수 있다. 그렇다면 최소한 김 여사의 단독 일정은 만들지 말았어야 했다.

 

암스테르담 동물보호재단을 찾은 김 여사는 여야가 함께 개 식용 종식을 위해 발의한 특별법이 조속히 국회에서 통과되기를 바란다교시를 내렸다. 대통령실은 이번에도 화보를 방불케 하는 사진들을 홈페이지에 올렸다.

 

김 여사 본인이 자중, 자제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하지만 김 여사에게 그럴 만한 자제력이 부족하다는 건 17개월간 확인된 바다. 2부속실을 부활하든, 특별감찰관을 임명하든, 서초동 아크로비스타 자택으로 보내 근신케 하든, 고양이 목에 방울 달 수 있는 이는 대통령 뿐이다. ‘사빠죄아’(드라마 대사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에서 유래된 유행어)라지만, 대통령의 공사 구분 없는 사랑은 죄가 될 수도 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13일 사퇴했다. 경향신문 보도를 보면, 윤 대통령은 김 대표의 대표직 유지·총선 불출마 선언을 원했으나 김 대표는 대표직을 던지되 불출마 선언은 않겠다는 입장을 전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윤 대통령이 격노한 상태에서 네덜란드 출국길에 올랐다는 보도(한겨레)도 나왔다. 대통령실은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다. 한오섭 정무수석은 그러시기야(격노하시기야) 했겠나라고만 했다.

 

주목되는 대목은 끝없이 이어지는 격노시리즈다. 북한 무인기 격추 실패에도 격노, 채모 해병대 상병 순직 이후에도 격노, 국가정보원 내부 인사 갈등에도 격노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최고지도자, 더욱이 잘 드는 칼검찰을 손에 틀어쥔 최고지도자의 격노는 위험하다. 주변 공직자들을 겁먹게 하고, 복지부동으로 몰아간다.

 

더 우려스러운 건 선택적격노라는 점이다. 윤 대통령은 카카오톡 먹통 사태 당시 카카오에 격노한 것과 달리, 최근 정부 행정전산망 마비 때는 격노하지 않았다. 외려 대통령실에선 예상보다 빠른 시간 내 복구가 이뤄지고 있다며 파장을 축소하려 했다. 윤 대통령은 사태 수습 책임자인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을 데리고 영국에 갔다. 이 장관이 국내를 비운 사이 유사한 사고는 계속됐다.

 

공직자의 직언은 당연한 임무다. 그러나 목 내놓고하라는 건 과도하다. 일자리가 중요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격노보도가 더 이상 나오지 않을 때, 참모들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대통령에게 보고하게 될 것이다. 그래야만 벌거벗은 임금님사태를 막을 수 있다.

 

윤 대통령의 직정적 성품에 비춰 격노를 참는 일이 어렵다면, 최소한 공정하게격노해야 한다. 사기업이나 은행을 향해서도 격노하면서, 자신의 고교 후배(이상민 장관)만은 어떤 사고를 쳐도 감싸안는다면 불공정하고 부조리하다.

김민아 칼럼니스트 | 경향 2023.12.15.

 

 

와이프 빼고 다 바꾸라" 했더니, 정말 부인과 본인만 빼고 다 바꾸는 대통령?

'퍼펙트 스톰' 앞에 선 대통령

대통령이 외통수에 빠졌다. 김기현 대표의 SNS 사퇴는 최악이었다. 그 배경에 대통령의 '격노'가 있었다고 한다.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윤석열 대통령은 김기현 대표가 먼저 불출마를 선언하고, 장제원 의원이 그 뒤를 따르길 바란 모양이다. 김 대표에게는 특히 '당대표는 유지하되, 총선 불출마 선언을 해달라'고 주문했다. 그런데 김 대표가 우물쭈물한 사이 장 의원이 먼저 불출마를 선언하자 지구 반대편에 있던 대통령이 '격노'했다는 게 스토리의 전말이다. '격노'에 대한 화답은 김 대표의 'SNS 대표직 사퇴 통보'였다.

 

모든 게 꼬였다. 김기현 대표는 윤심(尹心)을 오독한 것이 아니라, 윤심에 저항한 것이다. 김 대표가 출마를 할지, 불출마를 할지 아직 결정하지 못한 것 같지만, 이젠 중요하진 않다. 메시지는 발산됐고, 감당은 윤 대통령 몫이 됐다.

 

김 대표가 얼마나 윤 대통령을 곤란하게 만들었는지 보자. 윤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은 '물갈이''물갈이'의 안정적 관리였다. 그 첫번째 스텝이 김 대표와 장 의원의 총선 불출마였다. 원래 인요한 혁신위의 미션이었다. 인요한의 공천관리위원장 요구를 "수고했다"는 말로 단칼에 자른 김 대표에게, 윤 대통령은 '인요한 혁신안의 완성'을 요구한 셈이다. '중진 불출마''신핵관'으로 바꿔치기하기 위해선 김 대표의 '안정적 관리'가 필요했다. 하지만 김 대표는 '퍼펙트 스톰' 앞에서 국민의힘호()의 조타실을 먼저 탈출한다.

 

1년 반 재임한 대통령 임기 중에 당대표가 두 번 날라갔고, 비상대책위원회가 세 번째 들어서게 생겼다. 내년 4월 총선까지 비대위로 가게 될 경우 대통령 취임 23개월 중 11개월동안 비상 운영되는 정당이 집권 여당의 현 주소다. 이준석을 대표직에서 쫓아냈던 바로 그 행태가 1년 여만에 총선을 앞두고 재현됐다. 공교롭게도 '이준석 체제'를 무너뜨렸던 주호영,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은 지금 장제원과 김기현처럼 불출마 압박을 받고 있다. 비정한 정치판이다.

 

대통령이라는 유일 권력이 여당을 이리저리 조합해보고 있는 모양새다. 그런데도 하는 말이 "(비대위원회 구성은) 대통령실이 관여할 문제가 아니다(한오섭 정무수석)"란다. 이건 사실 민주적 외피를 쓴 5공 시대다. 전두환이 노태우를 민정당 대표로 지명하고 임명한 것처럼. 그래도 대통령이 당대표를 날리진 않았다. 박근혜도 유승민 당시 원내대표를 "배신의 정치"로 공격했지만, 실제 그를 원내대표직에서 날린 건 초재선 '친박 돌격대' 몫이었다. 대통령이 여당 대표에게 직접 불출마를 종용하고, 그 여파로 당대표가 사표를 쓴 건 처음 보는 일이다. 내용상으로 대통령의 구상이 완벽히 관철된 것도 아니다. 장제원은 인요한 혁신위를 무력화한 후 스스로 불출마를 선언했고, 김기현은 대통령의 '불출마' 요구를 거부하고 대표직을 던졌다.

 

그런데도 이 일련의 과정들은 대통령을 '제왕적'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대통령이 여당 대표를 쫓아냈다고 믿게 만들었다. 총선을 앞두고 '제왕적 대통령' 프레임을, '권력 견제' 프레임을 오히려 강화키고 있다. 대통령은 힘이 빠지고 있지만, 유권자는 혼란스럽다. 거대 야당에 막힌 대통령은 여전히 당대표를 갈아치울 정도의 무소불위 권력으로 인식된다.

 

비상대책위원회로 쇄신을 한다? 정치인이 피해야 할 일 중 하나는 새로운 시도를 두 번 반복하는 것이다. 새로움은 클리셰가 되고 반복은 진부함이 된다. 23개월 중에 11개월이 비상이면, 비상이 일상이다. '윤심' 비대위원장이 들어서서 '인요한 혁신위'를 계승하자고 중진들에게 칼을 휘두르면, 그걸 유권자들이 '혁신'으로 봐줄까? 비상의 남발이고 혁신의 남용이며 쇄신은 피로해졌다. 김기현 사퇴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이 정도 뿐이다.

 

복합 위기의 동시 진행, 퍼펙트 스톰이다. 하인리히 법칙에 따르면 큰 위기의 이면에는 작고 사소한 것으로 보이는 300여 번의 위기들이 중첩돼 있다. 1991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퍼펙트 스톰>에서 만선의 꿈을 품은 선원들은 허리케인 소식을 듣고도 '작은 허리케인'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배를 타고 어장을 향해 나아간다. 하지만 이 작은 태풍은, 다른 자연 현상들과 맞물리며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여기에 사사로워보이는 사고들이 중첩되며 선원들은 살아남을 수 없는 '완벽한 재앙'에 갇히게 된다. 지금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처한 상황이다. '윤핵관' 이철규 의원이 지난 8월 의원총회에서 "타고 있는 배를 침몰하게 하는 승객은 승선 못 한다"고 말했지만, 그가 타고 있는 배는 지금 '퍼펙트 스톰'을 향해 돌진 중이다 .

박세열 기자 | 프레시안 2023.12.16.

 

이승만은 파시스트였다. 박정희는?

식민지 유산으로서의 박정희와 파시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3121209291992023

문상석 강원대 교수 | 프레시안 2023.12.16.

 

 

온 국토가 사실상 서울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120719.html

김희주 | 양양군도시재생지원센터 사무국장 | 한겨레 2023.12.17.

 

전두환 노태우 윤석열 한동훈

1979년과 19802단계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신군부는 엘리트 집단이었다. 한국전쟁이 터진 뒤 1951년 경남 진해에서 육군사관학교 정규 4년제 1기로 입학했다. 부산에 피난 와 있던 우리나라 일류 학자들에게 배웠다. 임관 뒤에도 미국에 가서 특수전과 심리전 교육을 받았다.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120871.html

성한용정치부 선임기자 | 한겨레 2023.12.18.

 

저출산 위기 극복, '좋은' 돌봄노동으로부터 나온다

좋은돌봄은 어떻게 가능한가?

최근 우리나라의 인구문제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2022년 신생아 수가 25만 명 아래로 줄어들고 합계출산율 0.78을 기록하면서 '인구절벽'이라는 용어가 유행어처럼 번지고 있다.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202217.4%를 차지했고, 2025년에는 20%를 넘어설 전망이다. 우리나라는 이제 초고령사회를 눈앞에 두고 있는 셈이다.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3121813390518766

김종권 정책연구소 이음 책임연구원 | 프레시안 2023.12.18

 

외환위기 잊은 검증없는 재벌승계

재벌이 자식들에게 주식을 상속하는 것과 경영권을 물려주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내 회사의 경영권을 내 자식들에 물려주겠다는데 무슨 간섭이냐는 생각은 총수일가 지분율이 평균 4%도 안되는 현실에서는 설득력이 없다. 승계가 잘못되면 총수집안만 망하는 게 아니라 기업이 무너지고, 외환위기처럼 국가경제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기업의 사회책임을 강조하는 이에스지(ESG) 시대이다.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121066.html?_fr=mt5

곽정수 |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 한겨레 2023.12.19.

 

 

보수들의 봉숭아학당

최근 윤석열 정권의 위기는 좋지 않은 경제, 부산 엑스포 참패, 김건희 리스크 등이 겹친 것이지만 보다 본질적으로는 한국 보수의 밑천이 드러나고 있다. 윤 대통령은 보수를 자처하지만 자신의 확고한 철학이 없는 백지상태이다. 그런데 주변 참모·국민의힘·보수지식인들은 대통령님, 저요! 저요!”하면서 대통령에게 각자 준비한 개인기를 들이밀기 바쁘다.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312192019005/?nv=stand&utm_source=naver&utm_medium=portal_news&utm_content=231219&utm_campaign=newsstand_opinion_list2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 | 경향 2023.12.19.

 

가장 외로운 시대의 인공지능

벌써 몇년 된 일이다. 일본에서 고장난 로봇 강아지 아이보(aibo)를 위한 합동 장례식이 열렸다. 대화형 로봇 팔로(Palro)가 추도사를 하고, 스님이 경전을 암송했다. 고령화와 저출생, 관계의 단절로 인해, 일본 사람들이 점차 사회로부터 고립됐고, 아이보를 친구나 가족처럼 여기는 대안적 관계가 만들어졌다는 분석이 나왔다. 비슷한 시기 일본에서 로봇 스님도 등장했다.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312192019015

송경호 연세대 정치학과 BK21교육연구단 박사후연구원 | 경향 2023.12.19.

 

도쿠가와 막부 멸망은 오오쿠로부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312201446001

박훈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 | 경향 2023.12.20.

 

 

종교계의 크리스마스 메시지가 공허한 이유

고뇌없고 실천없는 메신저들의 말잔치

어둠 속을 헤매는 백성이 큰 빛을 볼 것입니다. 캄캄한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빛이 비쳐올 것입니다.”(이사야 9,1)

군사정권 시절 성탄절에 울려퍼지던 구약성서의 이 말씀은 교회 성당 다니지 않던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위로하고 감동을 주었다. 올해 성탄절에도 같은 성서 말씀이 낭독될 것이다. 그런데, 어쩌다 우리가 어둠 속을 헤매는 백성이 되었을까. 어느새 우리는 캄캄한 땅에 사는 사람들이 되었을까. 누구 탓일까

https://www.mindle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6458

김근수 해방신학연구소장 | 시민언론민들레 2023.12.21.

 

 

타운센드 목사와 자본주의 메기 효과

굶주림 공포되살린 윤석열표 예산과 노동탄압

https://www.mindle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6477

강수돌 고려대 명예교수, 전 마을이장 | 시민언론민들레 2023.12.21.

 

민중가요의 시대는 끝나는가

최근 싱어송라이터 하림씨가 진행하는 프로젝트 우사일(우리는 모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일을 합니다)’을 보면 생각이 많아진다. 민중가수가 아닌 뮤지션이 이렇게 의미 있는 일을 계속하는 건 무척 반가운 일이고, 고마운 일이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일하다 죽는데도 정치권에서 중대기업처벌법 전면 적용을 유예하려는 분위기에서 음악으로 목소리를 내는 일은 아무리 많아도 부족하다.

 

그런데 왜 이 역할을 민중가요 진영에서 하지 못할까. 지금도 민중가요 진영의 여러 음악인들이 다양한 현장을 오가며 연대하고 노래하는데, 왜 그들의 활동은 하림의 작업만큼 주목받지 못할까.

https://vop.co.kr/A00001644431.html

서정민갑 대중음악 의견가 민중의소리 2023-12-21

 

요소수 하나 못 챙겨놓고 친미반중큰 소리만

2년 만에 다시 요소수가 주요 뉴스로 떠올랐다. 중국이 요소 수출 통제에 들어간 사실이 지난달 말 알려지면서다. 비료의 주원료인 요소 가격이 오르는 조짐이 보이자, 중국이 내년 농사에 대비해 올 9월부터 요소 비축에 들어갔다. 2년 전에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중국의 요소 수출 통제에 민감하게 반응한 나라는 사실상 한국이 유일했다.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121452.html?_fr=mt5

최현준 | 베이징 특파원 | 한겨레 2023.12.22.

 

 

오래된 보수의 소멸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에 지명되었다. 일명 김건희 특검법에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파다하다. 2023년 연말, 나는 우리나라 오래된 보수의 시끄럽지만 에피소드 같은 소멸을 지켜보는 중이다.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121446.html

서복경 | 더가능연구소 대표 | 한겨레 2023.12.22.

 

'루쉰' 인용한 한동훈은 한국의 '아큐'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한동훈, 새로운 길과 만들어진 길 사이에서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 후 나온 메시지였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018일 참모들과 회의에서 한 이 말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마치 선거 패배 결과에 순응하겠다는 말처럼 들리지만, 대통령이 사용한 '', '무조건'이라는 수식어는 사실 독선의 수사다.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는 것이 내 생각이니 거기에 토를 달지 말라는 의미다.

 

"선수는 전광판을 보지 않는다", "지지율 1%가 되도 상관없다"는 윤 대통령식 '마이 웨이'"국민"을 주어로 해 자신을 위한 아포리즘으로 재탄생했다. 참모들은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는 명제를 받아들여야만 한다. 대통령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므로. 그래서 이 명제는 대통령의 '변화의 조짐'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대통령은 변하지 않으리라는 걸 보여주는 말이 된다.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는 말은 검사 특유의 '자기 확신'에 다름 아니다.

 

혁명을 꿈꿨던 중국의 무정부주의자이자, 좌파 운동에 동조했던 작가 루쉰은 격동하는 중국 근대사 속에서 파란만장한 삶을 보냈던 인물이다. 그가 가장 혐오한 것은 '아큐'로 대변되는 중국인의 공허한 대국 기질과 변화를 거부하는 무기력함을 정당화하는 중국인들의 태도였다. 새 사상과 과학을 앞세운 서구 열강의 침략 위기가 다가오고 있지만, 결코 본인의 무능함과 오만함,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정신승리법'을 터득해 자신을 스스로 납득시키길 반복하는 것, 그 행태를 탈피하길 바라면서 쓴 루쉰의 대표작이 <아큐정전>이다.

 

지금 한국의 상황이 그렇다. 일본이 '물 반 컵'을 채우길 원하는 외교를 하면서 '한미일 공조'를 위한 고독한 결단으로 포장한다든지, 잼버리 세계대회를 파행으로 이끌어놓고, 급조한 K팝 콘서트를 무리하게 열어 전세계에 한국 문화의 우수성을 알렸다고 자찬한다. 세계는 RE100'재생에너지' 사용이 대세인데, 재생에너지 정책을 전임 정부의 '적폐'로 규정한 대통령은 뜬금없이 CF연합(무탄소연합)을 천명하고 냉소를 자초했다. 최근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서 한국이 홍보한 CF연합 외신 인용 건수는 겨우 세 건이다. 기후 위기 대응에서 세계의 흐름을 거스르면서도 왠지 모를 당당함에 가득 차 있는 '아큐'.

 

부산 엑스포 유치전에서 11929의 참담한 결과를 받아들고 즉각 사과하더니(아큐 식으로 하면 "오른 손을 들어 힘껏 자기 뺨을 두 차례 연거푸 때렸다. 얼얼하게 아팠다. 그제서야 그는 마음이 평안해지기 시작했다. 마치 때린 것은 자신이고, 얻어맞은 것은 또 다른 자신 같았기 때문이다. 잠시 후 그는 자기가 남을 때린 것 같이-비록 아직도 얼얼하지만-몹시 만족하여 의기양양해 드러누었다."-아큐정전) 태연하게 부산을 방문해 재벌 총수들과 떡볶이 '먹방'을 한다. 시장 상인이 "엑스포 준비하시느라 고생 많이 하셨죠"라고 묻자 "엑스포 전시장 세울 자리에 외국 투자 기업들 많이 들어오게 해서 부산도 발전시킬테니까 걱정하지 마시라"고 답한다. 재계는 "한국의 위상을 알리고 글로벌 네트워크를 강화한 측면에서 부산엑스포 유치전이 값진 자산으로 남았다"'정신 승리'를 한다.

 

외교 정책 실패는 물론이고, 정부 내 '정보 유통'의 적나라한 문제점이 드러났는데 국가안보실장은 국정원장으로 영전하고, 국정상황실장은 정무수석으로, 대변인은 홍보수석으로 줄줄이 승진했다. 장관 임명 3개월 만에 산업통상자원부장관을 차출해 총선에 내보내고, 국민권익위원장을 빼돌려 방송통신위원장에 돌려막기 한 것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장관 후보자들을 봐도 그렇다. 외교 실패 책임을 져야 할 외교부 차관(오영주)을 갑자기 전문성과 무관한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에 발탁한다. 또다른 장관 후보자는 "홍범도의 행적이 우리나라 정체성(면에서) 여러 논란을 야기한다"(강정애 국가보훈부장관 후보자)며 대통령의 '이념 전쟁'을 계승한다.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는 대통령은 그간 해 온 자신의 행동이 국민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이라고 여기는 것 같다.

 

하이라이트는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의 상황이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 이후 대통령이 한 일은 당을 차근차근 장악하는 것이었다. 윤핵관을 검핵관으로 대체하는 일이다. 인요한 혁신위를 띄워 '윤핵관'2선 후퇴를 종용하더니, 김기현 대표를 사실상 찍어냈다. 그 자리에 자신의 대학 후배이자 직장 부하였던 한동훈 법무부장관을 당 대표(비상대책위원장)로 올렸다. 대통령 "직할 체제(홍준표 대구시장)"의 완성이다. 1년 전인 올해 초 윤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을 대체한 <조선일보> 단독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한동훈) 당대표는 너무 이르잖은가(웃음). 한 장관과 업무 문제로 통화할 때 '당대표에 출마할 생각이 있는 거냐' 물었더니 그냥 웃더라." 1년 만에 '한동훈 당대표'는 현실화됐다.

 

정치적 비전을 보여준 적 없는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의 미래는 아직 가늠하기 어렵다. 시중의 말처럼 이순신이 될수도, 원균이 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은 출사표를 던지며 김건희 특검법은 '악법'이고, 김건희 명품백 수수 의혹은 '몰카 공작'이라고 규정했다. 한동훈은 검사다. 검사 입장에서 악법과 공작을 두고 타협 가능성을 타전한다는 건 논리적 모순이다. '방탄 당대표' 자락을 이미 깔고 움직였다.

 

검사는 흑백의 논리로 세상을 본다. 무죄, 아니면 유죄다. 하지만 정치는 흑백 논리가 통하지 않는 영역이다. 나쁜 짓임을 알면서도 해야 할 때가 있고, 좋은 일임을 알면서 하지 말아야 할 때가 있다. 1년 전 한동훈 당대표 차출설이 나왔을 때 <대통령의 자격>을 쓴 윤여준 전 장관이 "정치하지 말라"고 충고한 이유다. 그는 한동훈 비대위원장에 대해 "다른 쪽으로 갔으면 크게 성장하고 나라에도 기여할 수 있는 좋은 인물 하나가 정치권에 들어와서 망가지는 건 하지 말라""정치에 소질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이제부터 사람을 자르고(물갈이), 등용하는 일(공천)에 착수해야 한다. 하지만 대통령 직할 체제가 구축된 상황에서 누구를 자르고, 누구를 그 자리에 앉힐지 결정하는 건 한동훈이 아니라 대통령이라고 사람들은 믿을 것이다. 대통령이 직접 당의 차기 대권 주자 구도에 깊숙히 개입한 모양새가 된 것도 주목할 만한다. 누가 봐도 한동훈은 '대통령이 책봉한 차기 주자'로 대선을 3년 넘게 남긴 상황에서 이른 '대관식'을 마쳤다. 유승민, 홍준표 등 다른 주자들 입장에선 '불공정'한 일이지만, 역으로 '의 남자'의 빈틈을 노릴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

 

갈 길 먼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루쉰의 단편소설 <고향>에 나오는 유명한 글귀를 인용했다.

"세상의 모든 길은 처음엔 다 길이 아니었다. 많은 사람이 같이하면 길이 되는 것이다."

이 소설은 루쉰의 자전적 스토리를 바탕으로 한다. 폐허가 된 고향 마을을 완전히 떠나며 '변화의 바람'이 부는 바깥세상으로 나아가는 루쉰의 심경이다. 구습을 타파하지 못하는 고향을 안타까워하지만, 새로운 길을 나서는 주인공은 '희망' 앞에 문득 두려움을 느낀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건넨 말이 이것이다.

 

루쉰은 낡은 걸 타파하고 그 자리에 새로움을 채우길 바랐다. 그런데 루쉰이 극복하고자 하는 그 모든 모순들이 윤석열 정부 곳곳에 박혀 있다. 그 정점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있다. 아큐의 '정신승리법'을 폐기하고 대통령을 변화로 이끌어야 하는 게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만들어야 할 ''이 될 것인데, 궁금하다. 그는 새로운 길을 만들 수 있을까? 아니면 이미 만들어진 실패의 길을 '새로운 길'이라 착각하며 정신승리를 하게 될 것인가?

박세열 기자 | 프레시안 2023.12.23.

 

 

'나쁜 나라'에서 오는 이민자들은 없다

출신 국가 고르겠다는 비윤리적·비효율적 발상

얼마 전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은 국민의힘 정책의총에서의 연설을 통해 출입국이민청 신설을 예고했다. 나 또한 이민자로서 이민 문제에 관심이 매우 많다. 대한민국 이민 시스템은 시대 흐름에 뒤떨어지고 문제가 많다는 것을 모두 다 인정하지만 개선하려는 시도는 소홀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한동훈 전 장관이 시스템을 손보겠다고 했을 때 기대 반 우려 반인 마음으로 그의 연설을 경청했지만 실망을 금치 못했다.

https://www.mindle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6502

벨랴코프 일리야 수원대 인문사회대 교수 | 시민언론 민들레 2023.12.24.

 

 

윤석열 김홍일 한동훈, ‘검사 삼형제정권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이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내정됐다. 이로써 검사 삼형제 정권이 완성됐다. 3형제의 맏형은 김홍일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 둘째는 윤석열 대통령, 막내는 한 전 장관이다. 검찰 재직 시절 윤 대통령은 네 살 위 김 후보자를 으로, 한 전 장관은 열세 살 위 윤 대통령을 석열이 형으로 불렀다고 한다.‘호형호제하던 사람들끼리 대통령·집권여당 대표·방송통신 총수를 나눠 갖게 된 것이다. 1993년 문민정부 출범 이후 이런 사례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검사 삼형제는 민주공화국이 지켜온 상식과 관행을 파괴하고 있다.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312251520001

김민아 칼럼니스트 | 경향 2023.12.25.

 

 

금융발전과 불평등

가계부채 수준이 매우 높은 한국에서도 소득분배 악화와 부채 증가 그리고 금융발전 사이의 관계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서울 시내 한 시중 은행 지점 앞에 대출 상품 관련 안내문이 붙어 있다. 강윤중 기자

 

얼마 전 윤석열 대통령은 은행들이 갑질을 많이 한다며 이런 독과점 행태를 정부가 그냥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했다. 금융위원장도 금융권의 역대급 이자 수입 증대가 국민의 부담 증대를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올해 들어 3분기까지 국내 은행들의 이자수익이 44조원을 넘어 역대 최대를 기록한 반면 많은 자영업자는 이자 부담으로 고통이 커졌다. 금융권을 향한 비판이 거세지자 일부 정치인들은 손쉬운 이자 장사로 막대한 이윤을 번 은행들에 대해 횡재세를 부과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은행들은 최근 높은 금리를 내는 자영업자들에게 1억원 대출에 최대 150만원의 이자를 환급해 주겠다는 상생금융 방안을 검토 중이다.

 

현대 경제에서 금융은 여유자금을 모아 자금이 필요한 이들에게 순환시키는 경제의 혈관 역할을 한다. 자본의 효율적 배분을 통해 투자와 성장을 촉진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셈이다. 여러 연구는 금융의 발전이 경제성장을 촉진한다고 강조해왔다. 그럼에도 최근 각국에서 불평등이 심화되고 저소득층의 어려움이 커지면서 은행들의 높은 수익과 임금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20225대 은행 임직원의 평균 연봉이 11000만원을 넘었다. 이는 대략 근로소득 상위 4~5%에 달하는 수준이다.

 

경제학계도 이제 금융과 불평등 사이의 관계를 활발하게 연구하고 있다. 몇몇 이론적인 연구는 금융 부문이 발전하면 자본의 배분을 더욱 효율적으로 만들고 과거에는 자금을 빌리기 어려웠던 가난한 이들이 대출을 받을 수 있게 돼 불평등이 개선된다고 주장한다. 반면 다른 연구는 금융이 불평등에 미치는 효과가 금융발전의 수준에 따라 다를 것이라고 말한다. 금융의 발전단계가 낮을 때는 소수의 부자만이 혜택을 누려 불평등이 악화될 수 있지만, 금융발전이 심화되면 가난한 이들도 금융의 혜택을 누려 불평등이 개선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소득수준과 불평등 사이에 비선형적인 관계가 있다고 보고한 쿠즈네츠 곡선과 유사한 주장이다.

 

다른 연구는 그러나 금융의 발전과 함께 이미 금융시장을 장악한 부자들이나 대기업들의 기득권이 강화되고 은행들도 이들과의 관계를 심화시켜 불평등이 악화될 수 있다고 보고한다. 특히 금융규제 완화는 금융발전을 촉진할 수 있지만, 금융산업의 위험을 높여 금융위기가 오면 신용경색과 투자 감소, 산출 하락 등과 더불어 노동자들에게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한 금융 부문이 과도하게 팽창하면 지대추구와 함께 금융업자들의 소득이 크게 증가해 상위소득 집중도와 불평등이 높아질 수 있다.

 

진보적인 경제학자들은 1980년대 이후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 금융산업의 부가가치나 이윤이 차지하는 비중 등으로 측정되는 금융화가 진전되었다고 보고한다. 이를 배경으로 금융 부문 종사자의 소득이 높아진 반면 기업의 투자나 노동자들의 임금은 정체됐다. 단기적인 수익을 추구하는 금융자본가들의 이해와 권력의 강화가 성장의 정체와 소득분배의 악화를 낳았다는 것이다. 최근의 한 실증연구는 민간신용으로 측정되는 금융발전의 정도가 GDP의 약 100%를 넘을 정도로 과도하게 금융이 발전하면 경제성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를 제시한다.

 

금융발전과 소득불평등 사이의 관계에 관한 실증연구도 급속히 발전되고 있다. 과거의 연구는 불평등에 미치는 여러 변수를 통제한 후에 금융발전이 소득불평등을 감소시킨다고 보고했지만, 최근 연구들은 금융발전과 소득불평등 사이에 비선형적 관계가 있다고 보고한다. 필자는 최근 국가 간 실증분석을 통해 금융발전 변수가 지니계수나 상위소득 집중도로 측정되는 소득불평등과 U자의 관계를 맺고 있음을 발견했다. GDP 대비 민간신용 비율이 낮은 금융발전의 초기에는 소득불평등이 줄어들지만 이후에는 불평등이 커졌다. 특히 소득불평등이 개선되다가 악화되기 시작하는 변곡점의 금융발전 정도가 상당히 낮았다. 이는 현재 모든 선진국과 상당수의 개도국에서 금융이 발전할수록 소득불평등이 악화된다는 점을 시사한다. OECD의 다른 연구도 금융발전이 고소득층의 신용 확대와 금융 부문 종사자의 임금프리미엄 확대 등을 통해 그 이득이 고소득층에 집중돼 불평등을 악화시킨다고 보고한다.

 

특히 한국의 경우 금융발전의 지표인 민간신용이 가계부채와 관련이 큰데 그 상당 부분이 부동산 구입과 관련이 있다. 주로 고소득층이 이러한 부채의 규모가 더 크기 때문에 민간신용과 가계부채의 증가는 집값 상승을 부추기고 부자들의 자산가치와 소득을 더 증가시켜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 실제로 한국은행의 최근 연구는 주택과 같은 비금융자산의 구입을 위한 신규 가계부채나 가계부채 잔액 증가가 소득불평등을 심화시킨다는 분석 결과를 제시한다.

 

필자는 또 다른 연구에서 금리와 비교한 은행의 자본수익률로 측정된 은행 부문의 초과이윤이 상위소득 집중도나 지니계수로 측정된 소득불평등을 악화시킨다는 결과를 얻었다. 이는 금융화가 발전되고 지대추구가 심화돼 경제의 다른 부문에 비해 금융 부문의 수익이 높아질수록 경제 전체의 소득분배가 나빠짐을 뜻한다. 특히 은행 산업의 독과점 정도를 보여주는 산업집중도가 소득불평등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점에 주목할 만하다.

 

한편 가계부채는 민간신용의 중요한 부분으로 금융발전과 동전의 양면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에는 소득불평등 자체가 가계부채와 금융 부문의 문제를 심화시켰다는 연구 결과도 제시됐다. 2000년대 초 미국에서는 저소득층이 소득의 정체에도 불구하고 소비를 계속 확대하기 위해 부채를 늘려 소득불평등 심화가 가계부채의 증가를 낳았다고 한다. 특히 하위 90% 계층의 부채 확대는 소득이 크게 높아진 상위 1% 부자들의 과잉저축에 의해 조달됐지만, 금융 시스템을 취약하고 불안정하게 만들어 결국 글로벌 금융위기로 이어졌다.

 

이러한 연구들은 금융발전과 소득불평등이 서로 복잡하게 상호작용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현재 가계부채 수준이 매우 높은 한국에서도 소득분배 악화와 부채 증가 그리고 금융발전 사이의 관계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세계은행의 세계금융발전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2021년 한국의 GDP 대비 민간신용비율은 약 172%를 기록해 금융발전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이는 성장과 소득분배에도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불평등 개선을 위해 필요한 것은 일시적인 은행 때리기를 넘어 금융 부문을 적절히 관리하기 위한 노력이다. 주택담보대출 규제 등을 통해 과도한 금융발전과 부채증가를 억제하고 은행 부문의 경쟁을 촉진하며 금융 부문의 과도한 보상을 줄여야 한다.

이강국 일본 리쓰메이칸대학 경제학부 교수 | 주간경향 2023.12.25.

 

김건희 특검법궤변으로 정치 시작한 한동훈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6일 취임하면서 김건희 특검법을 악법이라고 비난했다. 일주일 전 했던 허튼소리 그대로였다.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121868.html?_fr=mt2

박용현 | 논설위원 | 한겨레 2023.12.26

 

 

김건희 여사는 침묵할 권리가 없다

김건희 여사가 윤석열 대통령 후보 시절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하면서 남편이 대통령이 되는 경우라도 아내의 역할만 하겠다고 울먹이며 했던 말은 온데간데없고 그 어떤 영부인보다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김여사 주변에 보통의 상상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여러 논란이 생기고 논란이 해소되기도 전에 새로운 논란이 기존 논란을 덮는 형국이다. 윤 대통령의 제2부속실 폐지 공약은 배우자의 활동을 최소화하려는 취지로 해석했다. 착각이었다. 2부속실은 배우자의 활동을 자유롭게 하려고 없앤 게 아닌가 싶다.

 

국민들이 김여사의 논란에 뜨악한 지점은 다양할 것이다. 누군가에겐 김 여사가 설립한 코바나컨텐츠 관련 업체가 관저 공사 계약을 따낸 문제, 누군가에겐 김여사가 고가의 장신구를 지인에게 빌린 일, 누군가에겐 김여사 수사를 담당한 경찰관이 취임식에 초청된 사안일 수 있다. 또 다른 누군가에겐 회원 유지를 ‘member yuji’로 표기한 영어 논문, 누군가에겐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연루 의혹일 것이다.

 

내가 뜨악한 지점은 지난 8월 중앙경찰학교 졸업식이었다. 졸업식에 참석한 김여사는 여성 졸업생 대표에게 가슴표장을 달아줬다. 모든 공무원의 최종 임명권자는 대통령이지 대통령의 배우자가 아니다. 행사 직전 중앙경찰학교에서 배포한 보도자료에 대통령은 졸업생 대표에게 직접 가슴표장을 부착해줌으로써라는 대목이 나온다. 이 자료대로라면 김여사의 가슴표장 수여는 원래 식순에 없던 게 갑자기 들어간 셈이다. ‘서울의소리기자와 통화에서 내가 정권 잡으면”, 명품백 수수 과정에서 내가 남북문제를 해결할 것과 같은 김여사의 표현에서 대통령의 권력을 김여사 자신의 권력으로 착각하고 있지 않나 하는 우려가 든다. 그런 이유로 정치권 안팎에서 대통령 부부가 애정 이상의 것을 공유하고 있고 주도권은 김여사에게 있는 것 같다는 말들이 회자하고 있다.

 

돌아보면 알아차릴 기회는 많았다. 첫 번째 기회는 대통령 후보 배우자로서 허위 학력 의혹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했을 때다. 사과문 내용이 낯설었다. 그동안 접해온 정치인과 그 가족들의 사과문과 전혀 달랐다. 사과문은 자상한 남편에 대한 자랑과 신변잡사로 일관했다. 선거캠프에서 문안에 손도 못 댄 게 분명해 보였다. 두 번째는 용산 대통령 집무실에서 찍은 사진이 김여사 팬클럽 건희사랑을 통해 공개됐을 때다. 대통령실에선 해당 사진을 외부에 제공한 주체는 여사님일 것 같다고 했다. 세 번째는 봉하마을 방문 때다. 당시 전직 코바나컨텐츠 임원이 동행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됐다. 대통령실은 그가 김여사와 가까운 사이고 고향도 그쪽과 비슷해서라고 설명했다. 김여사를 둘러싼 논란은 규모를 키워 반복한다는 특징이 있다. 이후 출입기자들에게도 공개하지 않은 대통령의 대구 서문시장 방문일정이 김여사 팬클럽에 미리 흘러나갔다. 나토 방문에선 김여사의 오랜 지인이자 이원모 인사비서관의 부인인 신아무개씨가 민간인 신분으로 동행해 대통령 전용기를 타고 귀국한 사실이 드러났다.

논란이 다른 논란으로 덮인다는 점도 흥미롭다. 논문은 관저 공사로, 관저 공사는 장신구로, 장신구는 취임식 초청으로, 이들 논란은 양평고속도로 노선 변경 논란으로 일거에 덮였다. 양평고속도로는 다시 명품백 수수 논란으로 덮이고 있다.

 

가장 중요한 특징은 해명 없음이다. 대통령실은 사고가 터지면 확인해 보겠다고 하지만 그때뿐이다.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야당 의원들이 김여사 의혹을 파고들자 김대기 비서실장은 우리 여사가 뭘 잘못했는지 먼저 말씀해달라고 맞받았다. 비서실 수장이 이 정도면 다른 참모들은 우리 여사에 대해 입도 뻥긋 못할 게 분명하다. 그러니 우리 김여사가 직접 말씀하셔야 한다. 코바나컨텐츠 관련 업체가 입찰공고 3시간 만에 수주에 성공하는데 관여하지 않았는지, 수천만원대 장신구를 어떤 지인에게서 무슨 조건으로 빌렸는지, 취임식에 본인을 수사한 경찰관을 초청한 까닭은 뭔지, 양평고속도로 노선 변경 논란에 어떤 입장인지 국민 앞에 설명해야 한다.

 

하지만 주가 조작 의혹과 명품백 수수 논란은 다르다. 국민에게 설명할 게 아니라 검찰 조사를 받을 일이다. 특히 명품백 수수 문제는 김영란법이 본질이 아니다. 대화 내용 가운데 금융위원회 인사 개입과 남북관계에 대한 언급에서 드러난 대통령 배우자의 권력 개입이 본질이다. 이건 수사가 필요한 사안이고, 수사에 필요한 물증이 나왔다. 김여사는 침묵할 권리가 없다. 대한민국은 김건희의 나라가 아니다.

문상배60·서울시 강남구 | 한겨레 2023.12.26.

 

다시 서울의 봄, '악의 평범성'만큼 위험한 일은 없다

여전한 권력 사유화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이다!" 영화 <서울의 봄>에서 보안사령관 전두광은 그렇게 거침없이 외쳤다. 야만적 힘의 논리를 이보다 극명하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 야만의 힘은 12.12 군사반란을 혁명으로 둔갑시켰고, 가담자들은 이후 모든 권력과 이권을 독식하며 줄기차게 나눠먹는다. '우리가 남이가' 식 독식과 배제로도 부족해 5.18 광주를 무자비하게 진압하며 증오의 씨앗까지 뿌렸다.

 

진짜 서울의 봄을 이긴 또 다시 그들만의 봄

인간은 자신의 삶, 자기세상을 끝없이 개선해가려는 욕망을 가진 존재다. 그런 욕망이 세상을 진보케 한다. 가까이는 87년의 6월항쟁, 2017년 대통령 탄핵의 역사가 그랬다. 권력자들이 나라를 팔아넘기다시피 한 암울했던 일제 강점기에조차 그런 욕망의 씨앗은 싹트고 있었듯이 진짜 서울의 봄을 되찾기까지 인내로써 저항했던 시민들이 있었다.

 

그러나 눈앞의 사적 이익에만 몰두하는 욕망들이 득세할 때 역사는 또 얼마나 후퇴했던가. 임진왜란, 일제강점, 군부독재의 쓰라린 역사가 그랬다. 사회시스템은 중심을 잃고 권력의 사유화는 기승을 부린다. 소수에 집중되는 권력의 독점은 비단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정치, 경제, 노동, 문화 등 사회 전반으로 확대되며 결국은 우리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교육, 육아환경까지 위협한다.

 

책임과 의무를 권위로 잘못 이해하면 그 의무는 권력이 되고 독점의 대상이 된다. 그 동안 양당의 정치권력 나눠먹기에서 적당히 눈치봐가며 변신을 거듭해왔던 검찰이 권력의 중심무대로까지 등장하는 기이한 일까지 벌어졌다. 후진 국가에서나 있을법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농단 악몽이 채 가시지도 않았다. 그동안 형식적이나마 중립을 위장해왔던 그 사법, 준사법 권력이 이제 그 형식조차 아예 내팽개치고 권력쟁투의 전면에 나선 모양새다. 이제 정치권에서 역량과 실력 경쟁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다. 상대를 제압해 나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영화 속 전두광식 약육강식이 극성을 부릴 뿐이다.

 

이처럼 권력의 사유화가 극성을 부리는 동안 노동·민생 현장에서는 신음소리조차 잦아들고 있다. 대통령은 국회에서 발의한 간호법, 양곡관리법에 이어 노란봉투법, 방송3법까지 민생현안들을 보란 듯 줄줄이 거부권을 행사하고 있다, 특히 노란봉투법의 거부는 법률가로서 자기모순적인 행위다. 노조법상 교섭의무를 질 사용자 범위를 규정한 노조법 2조는 대법원 판례 법리를 입법화한 것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직접 지명했던 신임 조희대 대법원장조차도 후보 청문회에서 '노동자가 실질적 권한을 가진 진짜 사용자와 교섭할 수 있도록 사용자 범위를 넓힌 개념'이라면서 위헌적 요소가 없고 그런 법리가 이미 확립돼 있는 만큼 지지한다고 분명히 말한 그 조항이다. 이렇듯 뻔한 진실조차 권력의 손에서 무시되는 민생현장은 무기력하기만 하다.

 

곳곳에 드리워진 약육강식의 생태계

산업현장에서 하루하루 쓰러져가는 목숨들 숫자가 부동의 세계 1위를 고수하고 있지만 좀처럼 산재공화국 오명에서 벗어날 기미가 없다. 하루가 멀다 하고 잔인하게 죽어나가는 젊은 생명들의 안타까운 뉴스에도 담담하다. 상식적인 사회라면 당장 응급처치와 함께 즉각적인 방지 대책이 나와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대책도 없이 그저 50인 미만 사업장의 중대재해처벌법의 유예의 뜻을 밝히고 있을 뿐이다. 권력층 인사들의 자녀나 가족이 그렇게 죽어나가도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여유를 부렸을까? 누가 그들에게 그런 권력을 부여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사람 목숨을 담보한 의사들의 극단적 이기주의 행태도 이미 용인의 수준을 넘었다. 적나라하게 드러난 간호인력 노동의 착취 행태와 구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 최하위권의 의사 인력으로 의료체계를 움직이는 나라, 그로 인해 현재 시민이 겪고 있는 고통은 물론이고 향후 의료체계에 보다 심각한 문제가 예상됨에도 그들은 하늘이 준 권력이라도 가진 듯이 행동한다. 눈앞에서 사람을 죽이지 않았으니 살인이 아닌가. 누가 그들에게 그런 권력을 부여했는가. 어째서 감히 자신들은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먹고사는 문제와 직접 연결된 산업생태계는 또 어떤가. 최근 카카오 등 IT 기반의 기업들이 벌이는 온갖 불공정, 착취 행태는 열거하기도 쉽지 않다. 독점화한 거대 플랫폼들이 택시, 배달, 골목상권까지 곳곳을 누비며 약자들 생태계를 집어삼키는 야만의 힘을 보노라면 성공하면 혁명이라는 말이 진리처럼 느껴진다. 이렇게 되기까지 정부는, 공정거래위원회는 도대체 무엇을 한 것일까. 수많은 궁색한 변명들이 무심하게 어른거린다.

 

배달, 숙박, 금융, 택시 등 플랫폼 기업들이 기형적으로 급성장하게 된 것은 IT 기업을 육성하겠다면서 치밀한 준비도, 생각도 없었던 정부의 무능과 잘못된 정책 방향이 맞물려 있다. 바로 공유경제 이슈로 시끌벅적했던 문재인 정부로 거슬러간다. 당시 가상·증강현실, AI, 생명공학 등 정보기술을 기반으로 한 4차 산업혁명의 세계적인 바람이 일었고 정부는 막연한 불안감에 쫒기 듯 공유경제를 강행했다. 실은 공유경제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었다. 결국 택시노동자 3명이 연달아 분신자살하는 불행한 사태로 이어졌다.

 

새로운 기술 환경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정부가 체계적인 준비도 없이 대표적 IT 기업인 카카오에 의지해 그들이 내세운 공유경제에 힘을 실어 그대로 밀어붙였던 것이다. 그런 취약한 기반의 생태계로 어떻게 기술혁신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지금도 이해할 수 없다. 세계적인 ICT 기업들의 미래형 기술 발전 양상과도 전혀 동떨어져 성장해버린 지금의 문어발식 카카오의 시작지점은 그렇게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삶의 터전이 무너져가고 있던 택시종사자들의 희생만 강요당하고 새로운 생태계로 이행해갈 정부의 지원정책은 전무했다. 상생자금을 출연하도록 유도하는 일도, 충분한 논의의 시간과 과정도 완전히 차단됐다. 이것이 약육강식의 생태계가 아니고 무엇인가. 당시에 섬세한 정책조정과 논의가 충분히 진행됐더라면 플랫폼 경제가 이지경이 되었을까? 의욕만 앞섰던 정책결과에 대해 반성하는 이도 없고 그런 무책임한 정부 행정은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

 

이런 약육강식 생태계가 어린 학생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는 이미 시시각각 단골 뉴스가 되어버린 지도층 자녀들의 학교폭력, 입시비리를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악랄하다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는 그 부모들의 문제 해결 방식이다. 자신의 자녀를 악마로 키워낼 생각인지 묻고 싶을 정도다. 누군가의 능력을 방해하고 가로채는 교육은 교육이 아니다.

 

우리의 교육현장은 이미 권력 나눠먹기를 훈련하는 훈련장과도 같다. 친구를 이기지 않으면 내가 죽는 구조다. 성공하면 혁명이 될 수 있다는 바로 그 논리다. 그렇게 길러진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사회로 나오면 진정한 실력경쟁이 가능할까? 질투와 권모술수로 상대를 눌러 이기는 방식이 더 익숙할 수밖에 없다. 모든 문제의 방향과 중심에 정작 있어야할 인간은 없고 권력을 향한 욕망들만 넘쳐나고 있다. 왜 이지경이 되었을까? 눈 뜨면 볼 수밖에 없는 정치권과 정부 행태가 그런 욕망들의 근원지다. 이런 행태에 대항할 마땅한 대항권력을 갖지 못한 우리사회의 무기력한 어른들이 그렇게 만들었다.

 

이런 사회에서 어떻게 지속성을 기대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는 이미 지속가능성에 제동이 걸린 사회다. 집단자살 사회라는 수식어로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지속가능성의 생태적 기반이 출생과 육아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50년 후의 인구가 현재의 3분의 2로 급감할 것임을 예측하면서 해법은 베이비시터. 주택문제 등 눈앞의 단편적 대책에 머물러 있다. 출산·육아 정책은 일하는 부모들과 연결된 문제다. 다음 세대의 생명력까지 소진시키고 있는 지금의 노동 방식을 어떻게 재배치해 육아의 질을 개선해갈 것인지가 문제의 핵심인 것이다.

 

육아기 이후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의 환경도 중요한 문제다. 즉 아이를 키운다는 의미는 한 인간이 살아갈 전체 생애를 고민하게 하는 중대한 일이다. 그런데 이런 약탈적 사회 생태계는 눈감은 채 또 다시 값싼 이주 노동자들의 열정페이로, 청년들 주택대출과 같은 얄팍한 시각으로 문제를 대하고 있다. 누가 이런 세상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겠는가.

 

또 다른 약탈현장인 전관예우와 이해충돌 권력들, 수요자 중심조직으로 거듭나야

그렇다면 이런 약육강식이 점점 더 강화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검찰, 법원 등 국가조직들에서 벌어지는 전관예우에 있다. 어이없게도 이행해야할 의무가 권력으로 둔갑해버린 기현상의 시작지점이다. LH공사에서 드러났던 전관문제, 이해충돌 등 공공기관들의 해묵은 탈법적 관행들도 충격적이다. 공고한 카르텔을 포기할 생각조차 없는 그들이 금속노조의 고용세습 관행을 비판하는 것을 보면 그 몰염치함에 그저 할 말을 잊는다.

 

이해충돌 방지의무를 무력화하는 카르텔 악습과 자기 밥그릇 챙기는 모든 관행과 법령을 새롭게 뜯어고치지 않으면 건전한 경쟁 생태계는 살아날 수 없다. 국민의 세금이 기반인 모든 조직들은 말 그대로 대국민 행정서비스조직이지 그들끼리 잘 해먹으라고 부여해준 권력조직이 아니다. 검찰, 법원, 의료, 교육, 노동 등 모든 조직의 운영원리가 국민이 주체가 되는 철저한 수요자 중심의 기능으로 거듭나야 한다.

 

온갖 후진적 특혜를 감싸 안고 있는 국회는 어떤가. 이미 국민의 대표기관이라 할 수도 없는 집단이 되어버렸다. 총선을 앞둔 지금 밀실에서 또 다시 국민이 전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선거제 개악을 모의하고 있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선거제도를 악용해 자기 당에 유리한 쪽으로 수 싸움이나 벌이는 퇴행적 행태에 이젠 신물이 날 지경이다.

 

사유능력을 상실한 사회에 미래는 없다

지금의 우리사회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은 이런 권력집단들을 지켜보는 관객이 아니라 주체들이다. 그리고 방치했던 모든 것들을 꼼꼼히 되짚어보는 주체들의 사유이다. 사유하지 않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들로 정치가 굴러가도록 내버려두는 것처럼 위험한 일은 없다.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나치 독일의 친위대이자 홀로코스트 실무책임자였던 아돌프 아이히만의 공개재판을 지켜보면서, 자신이 자행한 엄청난 악행에 대해 죄의식은커녕 상부의 지시와 명령을 따랐을 뿐이며 당시 법을 성실히 이행한 것이라고 담담하게 말하는 한 인간의 모습에서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 개념을 발견한다. 우리사회를 둘러싼 모든 제도, 관행, 법령 등에 대해 비판적으로 사고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행동할 때의 그 무의식적 행위들에서 수많은 아이히만들이 탄생한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은 규율사회의 착취방식을 지나 스스로 효율적 성과를 내리도록 자신을 착취하고 있는 이 시대의 위험성을 말했다. 약육강식 강화의 도구가 될 수 있는 정보기술의 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중요한 지점이다. '관계'가 아닌 '연결'로 대체된 지금의 디지털 사회에서 우리의 무의식적 행위들 뒤에 ITC 기업들의 알고리즘이 작용한다는 것을 종종 잊는다. 기술과 번영을 둘러싼 천년의 역사에서 기술 권력에 대항할 길항권력이 없을 때 인간이 얼마나 처참해졌는지도 방대한 역사적 사실로써 보여주고 있다(권력과 진보, 대런 아세모글루와 사이먼 존슨, 김승진역). 그 길항권력을 만들어갈 첫걸음이 바로 사유의 확장이다.

 

최고 권력자들이 어떤 거짓말을 하든 그저 보호하기 급급한 수많은 아이히만들, 규정된 법체계를 무시하면서까지 권력자의 상명하복을 강요했던 채상병 사건, 이태원 참사, 세계 잼버리대회, LH 순살아파트 사건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진정 무엇을 사유하며 살고 있는 것일까. 우리가 생각하는 악행들은 특별한 의도에서 벌어질 때보다 일상에서 사유가 정지될 때 더 많이 일어난다.

 

영화가 끝나고 자막이 흐르는 내내 나도 그들도 넋 높고 화면만 바라보았다. 비록 영화 한편의 시간이었지만 우리는 모처럼 스스로에게 사유할 시간을 허락했다. 불과 몇 십 년 전 역사였고 지금도 틈만 나면 고개를 드는 한국사회의 야만적 정치권력의 행태. 잠시 상념에 젖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김진희 노무법인 벽성 대표 | 프레시안 2023.12.26.

 

 

인간의 조건, 국민의 조건

이 글은 사회학자 오찬호의 글 여자도 군대 갔다면, 달라졌을까”(경향신문, 20231218일자)에 대한 부연이다. 나는 그의 글을 금태섭 전 의원과 류호정 의원의 신당 추진 과정에서 나온 여성 징병제 vs 남성 돌봄제(?)”에 대한 문제 제기로 읽었다.

 

정책 영역뿐 아니라 국가를 위해 남성은 군대에 가고 여성은 출산한다는 통념은 막강하다. 일상에서도 마치 자연의 이치인 양 회자되고, 징병제 문제가 나올 때마다 되풀이되는 이야기다. 물론 이는 어불성설이다. 실현되어야 할 바람직한 일도 아니다. 일단, 돌봄과 병역은 어느 성별이 수행하는가를 떠나, 자명한 인간사가 아니다. 두 가지 모두 인간이 만든 이데올로기다. 특히 징병제는 일시적이고 특수한 제도이다.

 

용어 사용부터 징병제에 대한 사회적 차원의 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대국가의 구성 요소 중 군대는 독자적 자위력을 가진 독립국가의 상징으로 간주된다. 대표적인 모병 방식으로 징병제와 지원병제(혹은 용병)가 있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는 모병(募兵), 징병(徵兵), 지원병(志願兵) 용어를 혼재해서 사용한다. 그만큼 구체적인 논의가 부족하다는 얘기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유일한 남성 징병제 국가이다. 남성성의 표준에 맞는 모든남성이 특정 연령대에 특정 기간 의무 복무해야 한다. 징병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 ‘con/script’는 글자 그대로, 종이 하나로 국가권력이 개인을 동원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한편 대한민국 남자라면 피할 수 없다는 통념과 달리 특혜, 비리, 기피, 거부도 일반적 현상이다. 모든 남성이 군대를 가는 것도 아니고 똑같은 방식으로 복무하는 것도 아니다. 물론 이 4가지 안 가는 방식의 의미는 다르다. 남성들 사이에도 안 갈 수 있는 자원, 안 가겠다는 신념 등에서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이것이다. 남성 징병제를 둘러싼 한국 사회의 문제 제기가 군인의 인권, 군축 혹은 군대 없는 사회에 대한 상상력까지는 아니더라도 현재보다 뭔가 나은 방식이 아니라 매번 약자끼리 싸우는 방식으로 논란이 된다는 점이다. 남성 문화의 심리는 이중적이다. 자신을 군대에 보내는 국가와 안 가도 되는 계급에 저항하기보다, ‘못 가는 사람(장애인, 여성, 성소수자)’을 비하하고 혐오한다. 이는 출구 없는 전략이다. 게다가 실제로는 ()국민의 입대를 반기지 않으면서 여자도 군대 가라고 주장한다.

 

군 복무와 돌봄은 대칭적이지 않아

여성의 출산을 포함한 돌봄 노동과 남성의 병역의무를 동등한 가치로 보는 것은 생물학적 본질주의라는 점에서 더욱 문제적이다. 두 가지 모두 인간이 만들고 선택한 제도다. 그러나 일부 여성들조차 남성이 군대 가는 대신 여성은 애를 낳는다고 주장했고, 최근에는 저출산으로 인해 이러한 대응이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 남성 사회는 요즘은 여자들이 애를 안 낳고 있지 않냐며 분노한다.

 

남성 군대-여성 출산은 성별 분업 이데올로기일 뿐 상호 대칭적 인간 활동이 아니다. 금태섭 새로운선택 공동대표는 신당의 주요 정책으로 젠더 문제를 제시하면서 지금 젠더 갈등은 정말 위험 수위에 달했다젊은 분들이 성별로 나뉘어 싸우면 나라 장래가 어떻겠느냐고 말했다. 금 대표의 말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젠더를 주요 사회적 모순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반가운 일이지만, 젠더가 주로 젊은 분들끼리의 싸움이라는 발언은 성차별을 젠더 갈등으로 오해한 결과다.

 

지금 일부 20대에서 나타나는 젠더 갈등은 한국 사회의 성차별과 계급차별을 은폐하는 착시 현상이다. 장년, 노년층에서는 젠더 갈등이 없는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남성도 힘들다? 그렇다면 여성은 자본주의에서 살기 편한가. 당대 젠더 갈등은 여성이 피억압자인 성차별 사회에서, 20대 남성을 대상으로 한 징병제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문제는 국가가 제도화하고 곪을 대로 곪은 남성 징병제 자체다. 남성 문화는 성차별을 젠더 갈등으로 둔갑시키는 데 성공했다.

 

주지하다시피 남한의 징병제는 인류 역사 전체로 볼 때 짧은 시기 특정한 지역에서 행해지고 있는 매우 이례적인 인간 활동이다. 1953년 한국전쟁 와중에 제정되어 특정 로컬에서 70년 동안 실시된 특수한 제도다. 현역병의 복무 기간의 조정 사안을 다루고 있는 병역법 제19조의 역사는, 시대나 분야에 따라 복무 시간이 18개월에서 40개월까지 다양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20대 성별 갈등의 대안으로 제시된 남성의 돌봄 노동 참여, 여성 대상 징병제는 실현 가능성이 전혀 없을뿐더러 군사(軍事)와 보살핌 노동을 동등한 가치로 본다는 측면에서 매우 문제적이다. 현실적으로 두 가지 모두 필요한 일이라 할지라도, ‘군사주의보살핌의 윤리는 대립하는 가치다. 또한 징병제처럼 남성의 가사 노동을 국가가 강제할 수 있을까. 여성의 성역할 활동처럼, 평생 동안 돌봄 노동에 종사할 남성이 얼마나 될까.

 

누구나 저절로 국민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귀화나 국적 획득이라는 말이 왜 있겠는가. 국민은 성취, 획득되는 지위이다. 국가는 언제든지 배제와 포함의 잣대를 마음대로 휘둘러 국민의 범위를 조정할 수 있다. 그중 하나가 군 복무다. 헌법 제2조는 , “대한민국의 국민이 되는 요건은 법률로 정한다(작은 따옴표는 필자)”. 이처럼 국민은 법률로 정해지는 범주다. 39항을 보자.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방의 의무를 진다”. 남녀 모두 국방의 의무를 지지만, 남성은 병역이라는 직접적인방식으로, 여성은 후방에서 간접적으로국방 의무를 담당한다는 의미다.

 

군대는 합법적인 폭력 장치이다. 이 글에서 군대의 존재 의미를 다룰 여력은 없지만, 군대는 특수한 상황을 상정한 제도다. 군대의 목적은 외부의 적이 있다는 가정 아래, 국민을 보호하는 데 있다고 간주된다.

 

병역법은 국민이 되는 요건을 법률로 정하는 대표적 장치다. 국민을 보호하는 자와 보호받는 자로 나누고, 보호자는 보호받는 대상을 선별할 권력을 갖는다. 우리는 전쟁은 물론이고 일상의 수많은 사건·사고에서 국가가 국민을 선별하는 과정을 매일 목도한다. 양산되는 산업재해 노동자에 대한 조치나 이태원 참사에 대한 국가의 태도가 대표적이다. 국민이 차별받아서는 안 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누가 국민인가라는 규정이다.

 

남성 징병제는 국민의 조건에 관한 제도지만, 돌봄 노동은 생물학적 차원과 사회적 차원 모두에서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 필수적인 조건이다. 문명 이래 주로 여성이 이 노동을 해왔기 때문에 그 내용을 남성보다 잘 알고 있고, 여성주의자들은 돌봄을 인간의 조건으로 보편화하자고 제안한다.

 

돌봄은 성별을 초월한 삶의 조건

그래서 나는 군 복무와 돌봄 노동을 성별과 연결하는 모든 시도에 반대한다. 가부장제 사회의 변화 없이 여성의 사회진출을 추구하는 자유주의 페미니즘은 여성이 군인이 되는 것을 지지할 수 있다. 문제는 여성은 군대를 비롯한 공적 영역에 참여하고 있는데, 남성은 사적 영역의 노동에 종사하지 않는 불평등, 즉 여성의 이중 노동이다. 돌봄 노동 없이 인간은 하루도 살아갈 수 없고 사회는 돌아가지 않는다. 타인의 노동에 의존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독립은 관념이다. 독립의 반대는 의존이 아니라 관계성, 상호 보살핌이다. 경영자는 노동자에게 의존하고, 깨끗한 집은 청소하는 사람의 노동에 달려 있고, 정치인은 국민의 지지에 의존한다.

정희진 월간 오디오매거진 <정희진의 공부> 편집장 | 경향 2023.12.26.

 

 

민주당·이재명이 연동형 비례제를 버리면

199010월 제1야당 대표인 김대중은 집권 민자당에 지방자치제 전면 시행을 요구하며 단식에 들어갔다. 지자제를 실시하기에는 이르다는 이른바 시기상조론을 앞세워 관성적으로 반대하는 여권을 향해 최후의 결전에 들어갔다. 시민들이 당장 해내라고 요구한 것도 아니었지만, DJ는 평생의 지론을 실현할 때가 되었다고 보고 정치적 명운을 걸었다. 여소야대를 뒤집는 3당 합당으로 몸집을 불린 여당은 처음엔 호의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언젠가는 실시해야 할, 풀뿌리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꼭 필요한 제도라는 시민의 공감대를 외면할 수 없었기에 여권은 협상에 나섰다. 김영삼 민자당 대표가 단식 나흘째에 DJ를 방문한 게 시작이었다. 그 결과, 5·16 쿠데타로 중단됐던 지방자치제가 30년 만에 부활한다. 다시 30년이 흐른 지금 지자제는 우리 정치의 근간으로 정착했다. 지방자치가 없었던들 이재명 대표가 성남시장에서 일약 정치인으로 입신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지자제 도입을 떠올린 것은 연동형 비례제를 둘러싼 논란 때문이다. ‘위성정당 꼼수로 이 제도를 망가뜨린 여당은 지금도 반대하고 있다. 더 화가 나는 것은 민주당의 퇴행이다. 홍익표 원내대표는 나흘 전 소속 의원 절반 이상이 병립형을 지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공개리에 밝혔다. 연동형을 지키려는 마음이 있으면 할 수 없는 발언이다. 하긴 이재명 대표가 한 달 전 멋지게 지면 무슨 소용이냐며 병립형으로 후퇴할 수도 있음을 시사했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지금처럼 거대 양당이 의석을 점유하고 끝없이 대결하는 구조를 개선하려면 연동형 비례제가 유용하다.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 병폐를 보완하면서 정당이 얻은 표만큼 의석을 가져가도록 하는 합리적 제도이다. 소수자의 목소리까지 깨알같이 반영하니 정치의 다양성을 높이기도 한다. 최근 YTN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시민들의 연동형에 대한 지지도 확인된다. 현행을 유지하자는 의견이 43%, 병립형으로 돌아가자는 응답이 37%로 나왔다. 국민의힘 지지자들의 49%가 현행을 고수하자고 한 반면, 병립형 회귀 의견은 33%였다. 적어도 이 제도의 개혁성만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는 말이다. 이런 제도를 버리고 과거로 되돌아가자니 말이 안 된다.

 

민주당의 일부 구성원과 지지자들은 연동형 비례제를 망가뜨린 것은 국민의힘인데 왜 민주당만 비판하느냐고 항변한다. 이는 자신들이 누려온 지지와 상황을 오독하는 행위이다. 시민들이 민주당을 비판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민주당이 이 제도가 개혁적이라며 도입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반면 국민의힘은 반대 입장을 바꾼 적이 없다. 반개혁적이기는 하지만 처음부터 기대도 없는 정당에 목소리를 높일 이유가 없다. 그리고 민주당은 개혁세력임을 자임하며 표를 얻어왔다. 민주당이 누리는 위상은 그 결과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개혁 조치를 후퇴시켜놓고도 비판을 하지 말라고? 자가당착에 후안무치가 지나치다. 일찍이 보지 못한 행태이다.

 

민주당이 연동형을 포기할 경우 감내해야 할 타격은 가늠하기 어렵다. 지난 대선 때 연동형을 반드시 지키겠다고 약속한 이 대표는 더 그렇다. 민주당이 하는 양을 보면, 당장은 김건희 특검법으로 여당과 싸우다 추후에 시간이 없다며 병립형으로 여당과 합의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그때 시민들은 과연 부득이하게 연동형을 지키지 못했다고 이해해줄까? 시간은 민주당 편이 아니다.

 

DJ가 주도한 지방자치는 관권 선거를 종식시켰고, 훗날 그 자신의 집권으로 이어졌다. DJ였다면 지금 같은 상황에서 연동형 비례제를 버릴까? 평생 소수당을 이끌며 조심스럽게 정치를 했던 그로서는 결코 민주와 개혁이라는 대의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 진정한 지도자는 대중의 눈치만 보지 않는다. 설득하고 이끌어나간다. 많은 지식인과 시민들이 DJ에게 비판적 지지를 보낸 이유이다. 어떤 지도자도 권력의 탄압을 받은 것만으로 시민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

 

여권의 폭주에도 민주당 지지율이 좀처럼 오르지 않는다. 한동훈 비대위를 앞세운 여당은 혁신 조치들을 내놓을 것이다. 민주당은 무엇을 내세울 것인가. 민생 보호에 유능하지도 않은 민주당이 스스로 약속한 개혁적 정치제도까지 거부해놓고 어떻게 시민을 설득할지 의문이 든다. 민주당은 연동형을 지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민주당과 헤어질 결심을 결행할 유권자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34년 언론인 생활을 마감하는 마지막 칼럼으로 충언한다.

이중근 논설고문 | 경향 2023.12.26.

 

응원단에서 말리는 시누이, 친윤 매체의 몸부림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시집살이 심하게 하는 며느리가 시어머니한테 심하게 구박 받을 때, 시누이가 말리는 척하면서 시어머니 편을 들 때 쓰는 말입니다.

 

속담에 그치는 일이 아닙니다. 직장생활을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와 비슷한 일을 한 번쯤은 겪어봤을 겁니다. 예를 들어, 한 직원이 상사한테 시킨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라면서 이해하기 어려운 꾸지람을 듣는 중입니다. 마침 옆을 지나가던 촉새 같은 선배가 불쑥 끼어들어 꾸중하는 상사를 뒤로 밀쳐내며 직원에게 내가 뭐라고 그랬어, 진작부터 일 처리 좀 꼼꼼하게 하라고 그랬지라고 설레발을 놓습니다. 직원은 상사에게 변변한 항변도 못 한 채 졸지에 무능한 사람 취급을 받으며 상황이 끝납니다. 이때 정신이 제대로 박힌 직원이라면, 선배의 절묘한 개입으로 상사의 꾸중을 모면해 다행이라고 절대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질책을 피하게 해주는 척하면서 자신을 무능력자로 만든 촉새 선배에 대한 적개심이 활활 타오를 겁니다.

 

최근 위기에 빠진 윤 정권을 배경으로, ‘때리는 시어머니, 말리는 시누이속담을 방불케 하는 일이 무대극처럼 벌어지고 있습니다. 국민을 며느리, 윤석열 정권을 시어머니, 친윤 매체를 시누이라고 생각하고 상황을 짚어봅시다.

 

이재명 죽이기언론 죽이기가 전부인 내정(內政)

올해 윤 정권이 국내에서 한 일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요. 검찰 정권답게 검찰 친위대를 총동원해 이재명 죽이기에 몰두한 것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1년 반 이상 그의 주변을 이잡듯이 뒤지며 탈탈 털었지만, 끝내 그를 옥에 보내는 데 실패했습니다. 그래도 12·12 군사 쿠데타를 주도했던 하나회를 빼다 박은 듯한 검찰 하나회는 아직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그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검찰 하나회두목의 의중이 그렇기 때문이겠죠. 윤 대통령이 집권 뒤 국정 운영의 가장 중요한 상대인 제1야당 대표를 피의자라면서 사람 취급하지 않고 있는 것이, 바로 검찰 하나회에 그를 계속 물어뜯으라는 개 피리 소리같은 신호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같은 피의자 신분인데도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중요 행사 때마다 옆에 명품 장식품이라도 되는 양 매번 끼고 다니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예를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듭니다.

 

이재명 죽이기못지않은 악행은 언론 죽이기입니다. 윤 정권은 박민의 <한국방송> 체제에서 일어나고 있는 작태에서 알 수 있듯이 공영방송을 친윤 방송’ ‘땡윤 방송으로 재편하는 작업과 함께, <뉴스타파>를 필두로 한 비판 언론의 입을 틀어막는 데 혈안이 돼 있습니다. 이명박 정권 때 악명을 떨쳤던 언론탄압 및 언론조작 기술자 이동관을 방통위원장에 앉혔다가 여의치 않자 다음 타자로 윤 대통령의 검사 시절 형님김홍일을 바로 투입한 데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언론을 꼭 장악하고 말겠다는 흑심을 읽을 수 있습니다. 여우로 안 되니 호랑이를 내보내서라도 언론 장악을 해내고 말겠다는 오기와 겁박이 아니고서야, 방송의 ’, 통신의 도 모르는 문외한을 내리꽂을 리가 없습니다.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와 미일 추종외교의 후폭풍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도 샌다는 말이 있듯이, 윤 정권은 외정(外政)에서도 죽을 쑤고 있습니다. 윤 대통령이 올 1년 동안 역대 최대 경비(578억원)를 쓰면서 역대 최다(13차례)로 해외를 쏘다녔는데도 불구하고 그렇습니다. 한마디로, 빈 수레가 더욱 요란했던 그들만의 화려한 해외 나들이에 불과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외정의 실패에서 단연 첫손가락에 꼽히는 사건은 ‘2030 부산 엑스포유치전의 참패입니다. 무려 5744억 원을 처들이면서 겨우 29표를 얻는 데 그친 비용 대비 효과의 처절함은 둘째 친다고 해도, 투표 결과 발표 직전까지 119표를 얻은 사우디아라비아에 역전승을 거둘지도 모른다는 환상 아래 축하연과 축하공연까지 준비했다는 정신 승리법의 사고는, ‘설명 불가라고 설명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도 우리나라를 제외한 거의 모든 나라가 사우디의 압승을 예견한 상태였는데도 말입니다. 정보 수집력과 판단력이 이토록 고장난 윤 정권의 외교·안보 담당자들에게 과연 이 나라의 안위에 대한 책임을 맡겨도 될 것인지 심히 의문을 품게 합니다.

 

그래도 윤 정권은 8월 미국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담과 공동성명을 최대의 외교 치적으로 꼽을 겁니다. 한미일 3각 동맹의 강화로 이전보다 북한에 대한 억지력을 높인 것은 사실이지만, 이 회담 이후 중국과 냉랭한 관계가 이어지고 북한과 러시아가 급속하게 밀월관계에 들어가며 한반도 긴장이 더욱 고조되고 있습니다. 이런 반작용을 보면, 이 회담은 한국의 일방적 희생으로 미국과 일본에만 좋은 일 시켜준 외교적 사건으로 보는 게 타당합니다. 삼각동맹을 위해 회담 전에 한국은 역사 문제에서 일본에 굴욕적으로 머리를 조아렸고, 회담 후에는 부산 엑스포 참사에서처럼 다극화하는 국제질서 속에서 고립되는 쓴맛을 보고 있습니다.

 

·외정에서 윤 정권의 복합적인 실패가 수치로 나타난 것이, 윤 대통령에 대한 ‘30%대 지지- 60%대 반대의 고착 현상입니다. 구체적인 사건은 최근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선택한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체제입니다. 윤 정권이 국민의 생활과 복지, 안위는 안중에도 없이 권력의 단맛을 즐기다가 내년 총선에서 참패할지 모른다는 위기의식 속에서 꺼내든 최후 수단이 윤 대통령의 아바타한동훈 당겨쓰기인 셈입니다.

 

친윤 매체들의 속 보이는 윤석열 비판-한동훈 찬양

이렇듯 시어머니윤 대통령이 며느리국민을 핍박하다가 궁지에 몰려 있는 차에, 갑자기 시누이친윤 매체들이 등장해 시어머니 돕기 맹활약을 벌이고 있는 상황, 이것이 지금 우리 눈앞에 펼쳐지는 희극입니다. 그동안 내정과 외정에서 윤석열 정권이 하는 일에 기득권 동맹의 일원으로 이인삼각이 되어 아낌없이 응원해 온 조··동을 비롯한 친윤 매체들이 갑자기 윤 대통령 부부를 비판하는 시늉을 하면서 한동훈 띄우기에 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친윤 매체들이 그때그때 언론 본연의 감시견 노릇을 충실하게 했다면 부산 엑스포 참패도, 한동훈 비대위 출범도 없었을 터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일조한 실정의 결과로 내년 총선에서 윤 정권의 참패 가능성이 커지고 그들도 함께 죽게 생겼으니 짖는 척이라고 해야겠다고, 아니 지지 않도록 훈수를 둬야겠다고 작정하고 나선 것입니다.

 

김건희 씨가 명품 가방을 받았다는 기사는 함정 취재’, ‘유튜브 기사라고 폄훼하면서 거들떠보지도 않더니 비난 여론이 비등하자 뒤늦게 김 씨를 사저로 유폐시켜야 한다는 둥 쓴소리를 하는 걸 보니, 친윤 매체들이 급하긴 급했던 모양입니다. 비아냥과 깐죽거림을 입에 달고 사는 한동훈 씨를 감히 이순신·강감찬 장군에 빗대는, 저들의 혹세무민성 찬사를 그대로 옮기며 국민을 현혹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고 있습니다. 윤 대통령의 최측근 노릇을 충실하게 해온 그를, 윤 대통령이 초래한 위기에서 나라를 구할 영웅이라도 될 것처럼 추어주고 있습니다. 그가 비대위원장이 되면 용산과 국민의힘 사이의 수직적 관계가 갑자기 수평적 관계로 변하고, 젊은이를 위한 밝은 미래가 금세 열릴 것처럼 분칠하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하지만 며느리는 그 속내를 너무도 잘 압니다. 시누이가 시어머니를 말리는 척하지만, 실은 그가 시어머니보다 더욱 악랄하게 자신을 괴롭히는 악질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친윤 매체가 지금 위기에 빠진 윤석열-김건희-한동훈 이익공동체를 구하기 위해 하고 싶지도 않은 몸부림을 치고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오태규 언론인. 전 한겨레 논설실장 | 시민언론 민들레 2023.12.26.

 

 

중대재해처벌법에도 사망자 늘었다는 거짓말

일하다가 죽지 않을 권리를 위해 20221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중대재해처벌법. 그 중대재해처벌법을 둘러싼 또 한번의 큰 싸움이 진행 중이다. 이 법은 상시근로자 50인 미만(건설업은 공사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 2년간 적용이 유예되었다. 그 유예 종료시점인 20241월이 다가오면서 유예를 더 연장해야 한다사망자 대다수가 발생하는 곳이 50인 미만 사업장인데, 더는 연장해선 안 된다사이 논쟁이 치열하다.

 

이 글은 이 논쟁에서 실증적 논거를 하나 제시하고자 한다. 중대재해법과 관련해 우리 사회에 팽배한 오해를 바로잡고자 한다. ‘중대재해법에도 불구하고 사망자가 늘었다라는 오해다. 사실이 아니다. 보수 언론을 중심으로 퍼진 이 허위사실은 중대재해법 무용론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중대재해법 이후 사망자는 분명히 줄어들었다.

 

첫번째 오해의 줄기는 2023119일 발표된 고용노동부 통계다. 중대재해법 시행 1년이 지난 시점의 통계였기에 많은 주목을 받았다. 당시 통계에 따르면 재해조사 대상 사망자는 전체적으로는 2021683명보다 중대재해법이 시행된 2022644명으로 39(5.7%) 감소했지만 법이 유예 없이 시행된 상시근로자 50인 이상 사업장(건설업은 공사대금 50억원 이상)에 한정하면 8명 증가했다. 8명 증가가 사망자 증가론의 시작이었고,

조선일보는 최근 사설에서도 이 통계를 인용하며 중대재해법이 예방 효과를 갖지 못했다 주장했다.

 

시행 1년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 전체 사망자 39명 감소였음에도, 50인 이상 사업장에서 사망자 8명 증가만을 근거로 법 시행에도 불구하고 증가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한지 의문이지만, 8명 증가 자체도 사실이 아니었다. 노동부는 지난 1월 통계를 발표하며 보도자료 말미에 이번 통계는 잠정 통계이고 ‘202312월 말 통계를 확정하겠다 기재했다. 그 확정 통계가 지난 20일 고용노동부 누리집에 등록되었다. 그 어떠한 보도자료도 없이.

 

20231220일 고용부 확정 통계에 따르면 2022년 재해조사 대상 사망자 중 50인 이상 사업장 사망자는 247명이다. 지난 1월 발표한 잠정 통계 256명에서 9명 줄어들었고, 2021년과 비교해서도 1명 줄었다. 결국 8명 증가가 아니라 1명 감소다.

 

두번째 오해의 줄기는 분명한 통계가 잘 알려지지 않고, 왜곡되고 있다는 점이다. 앞서 문제가 된 통계는 2021~2022년치이고, 중대재해법 시행 2년차인 2023년 통계도 당연히 쌓이고 있다. 노동부 발표 20231~3분기 재해조사 대상 사망자는 2022년 같은 기간 대비 51(10%) 줄어든 459명이고, 50인 이상 사업장에서도 10명이 감소했다. 법 시행 1년차, 2년차 모두 전년보다 일하다 죽는 사람이 줄어들었다.

 

공식 통계에도 보도는 영 엉뚱하다. 법 시행 이후 산업재해 피해자와 사망자 모두 늘었다와 같은 중앙일보 사설이 대표적이다. 어떻게든 논란으로 만들어보려는 시도도 계속된다. 공식 통계에도 불구하고, 작업장 신고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사망사고 속보를 별도로 계산해서 단독까지 달며 ‘2년간 사망사고 더 늘었다라고 보도하는가 하면(매일경제), 50인 이상 사업장의 전체적인 사망자 감소에도 불구하고 굳이 건설업만을 특정해 사망자 증가라 부각하기도 한다(문화일보)

 

세번째 오해의 줄기는 안타까운 무지다. 중대재해법을 폐지하고 싶고, 적용 유예도 연장하고 싶은 이들이 별다른 지식 없이 2천명 단위 산업재해 사망자 전체 통계를 근거로 중대재해법은 무용했어! 사망자 증가하잖아!’라고 외치는 모습이 국회에서, 언론에서 빈번하게 확인된다. 2022년 통계청은 사업주의 안전보건 조치 의무를 위반한 사고사망 파악을 위해 재해조사 대상 사망사고 발생현황통계항목을 신설했다. 앞서 다룬 모든 논쟁에서 등장한 사망자 수치가 그 재해조사 대상 사망사고 발생현황숫자다. 중대재해법 논의를 하면서 예방조치를 기대하기 어려운 재해까지 합해진 기존 통계를 언급하는 것은 무용하고, 왜곡이다.

 

사람의 목숨이 달린 정책이다. 그 어떤 정책보다 사실에 근거해야 한다. 중대재해법이 시행된 지 110개월이 지났는데 법 적용 사업장에서 오히려 산업재해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한다”(서울경제)는 허위사실이다.

임재성변호사·사회학자 | 한겨레 2023.12.27.

 

윤 대통령님, 아직도 RE100을 모르시나요?”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031일 국회에서 내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했다. 국정의 운영 방향과 우선순위가 담긴 정부 예산안을 대통령이 직접 설명하는 자리였으나 기후’ ‘탄소중립이란 용어는 한마디도 없었다.

 

윤석열 정부의 환경 무시 정책은 곧바로 체감할 수 있었다. 불과 일주일 후인 117, 환경부는 플라스틱 빨대 금지 정책을 180도 바꿨다. 같은 달 24일부터 플라스틱 빨대를 쓰면 최대 300만원의 과태료를 물릴 예정이었다. 이미 4년 전부터 예고한 정책이었고 지난해부터 시행하려던 단속을 1년 미룬 터였다. 환경부는 그러나 시행을 2주 앞두고 단속을 또 미루겠다고 말을 바꿨다. 더불어 비닐봉지 사용에 따른 과태료를 부과하지 않기로 하고 종이컵은 규제품목에서 아예 제외시켰다. 환경단체는 물론 업체들이 크게 반발했지만 정부 어느 부처의 책임자도 올해가 며칠 남지 않은 지금까지 묵묵부답이다. 오히려 시민들이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 자발적으로 플라스틱 빨대를 쓰지 않겠다는 시민운동을 벌이고 있다.

 

한국환경회의는 기자회견문에서 우리나라에서 1년간 사용되는 종이컵은 248억개, 비닐봉지는 255억개, 플라스틱 빨대는 106억개다. 겨우 몇초, 길어야 몇시간 쓰이고 버려진다. 엄청난 양의 일회용품을 위해 자원이 낭비되고 폐기물 처리에 많은 에너지와 비용이 투입되고, 제대로 수거되지 못한 일회용품은 자연환경을 파괴하고 생태계를 훼손해 인간의 건강까지 위협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국제사회는 플라스틱 오염 종식을 위한 국제협약을 논의하고 있고, 해외 각국은 일회용품 퇴출에 힘쓰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일회용품 관리 방안은 얼마나 형편없고 후퇴한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환경부는 카페나 식당에서 종이컵 사용을 금지하는 건 전 세계에서 한국뿐이라며 한국의 규제가 과하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프랑스와 독일은 올해 1월부터 식당에서 일회용 종이컵 사용을 금지했다. 독일은 배달음식도 다회용기를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기후위기는 일회용품 사용 억제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 세계 경제의 흐름에 발맞추는 국가 경쟁력의 문제이기도 하다. 중국 쓰촨성 고지대에 설치된 세계 최대 규모의 태양광·수력 발전소는 원전 155기에 맞먹는 155기가와트의 청정에너지를 생산하고 있다. 미국도 캘리포니아 14만가구에 전력을 공급하는 태양광 단지를 건설 중이다. 산유국들조차 재생에너지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세계적인 기업들도 재생에너지로 만든 전력만 100% 쓰자는 RE100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애플이 2018년부터 모든 사무실, 데이터센터 등에 100% 재생에너지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례일 뿐이다. 애플을 비롯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BMW 400개가 넘는 글로벌 기업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 기업은 납품업체에도 100% 재생에너지를 쓸 것을 요구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중요한 축인 금융권도 이미 ESG 투자, 녹색채권, 기후금융 등 녹색금융으로 불리는 투자에 뛰어든 지 오래다. 화석연료에 기반한 경제시스템을 대체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재원과 투자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한국은 어떤가. ‘재생에너지 정책 후퇴’ ‘국제 자본시장 흐름에 역행이라는 진단 말고는 달리 평가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 같은 퇴행의 원인은 무엇일까. 한참을 궁리해보다 한 가지 장면이 떠올랐다.

 

지난해 23일 열린 20대 대통령 후보들의 첫 TV토론이다.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RE100에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는 상대 후보의 질문에 그게 뭐죠?”라며 되물었다. 후보 시절이나 대통령 재임 중이나 기후위기’ ‘환경에 대한 인식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평가를 내리게 되는 장면이다.

 

한겨울이 시작된 지난 6일 밤 부산 일부 지역에 직경 5크기의 우박이 쏟아졌다. 강원 삼척시 원덕면에는 지난 10일부터 이틀 동안 234의 폭우가 쏟아졌다. 한겨울에 장마철 수준의 비가 내린 것이다.

 

기상청은 지난 11·12일 강원도 일대에 호우주의보와 대설주의보를 동시에 냈다. 25년 전인 1999년 이후 처음 있는 기상이변이다. 겨울철 반팔 패션이 등장하고 바다에선 이상고온으로 오징어가 사라지고, 농촌에선 해충이 창궐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에게 다시 질문을 던지고 싶다. “이젠 RE100을 아시나요?”

한대광 사회에디터 | 경향 2023.12.28.

 

김건희 특검대통령의 분노, 한동훈의 굴복

윤석열 대통령이 총선 후 김건희 특검주장에 대해 격노했다는 보도(뉴스1)가 지난 25일 있었다. “한동훈 전 장관이 독소조항과 시점을 제하면 (특검법을) 받을 수 있다는 취지의 기사가 유력 보수지에까지 나왔다. 그에 대해 (윤 대통령이) 대로한 것으로 안다는 여권 관계자의 말을 인용했다.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122152.html?_fr=mt5

손원제논설위원 | 한겨레 2023.12.29.

 

조선학교라는 낙인

 

일본 정부의 조선고급학교 고교 무상화 배제에 항의하는 조선학교 학생들이 15일 도쿄 지요다구 문부과학성 앞에서 500번째 금요행동에 나서고 있다. 학생들은 20135월부터 10년 넘게 매주 이곳에 모여 전대미문의 부당한 민족차별을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고 외쳤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dandy@hani.co.kr

 

16년 전 30대 초반의 재일동포를 취재할 일이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전라도가 고향인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 간부였다. ··고교를 조선학교에서 다녔고, 졸업 뒤 조선대학에 들어갔다. 조금의 의심도 없이 조선인으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대학 생활 중 영어 공부에 푹 빠지면서 인생이 크게 달라졌다. 제대로 공부하고 싶은 마음에 아버지 몰래 조선대학을 그만두고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강행했다. 자신의 부모가 일본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잘 알기 때문에 항상 죄송한 마음이라고 했다. 그녀는 통역 일을 하다가 한국 남자와 결혼했다. ‘조선인이라는 정체성이 삶의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다는 그녀는 아주 복잡하고 이상한 감정이지만 늘 삶을 깊이 있게 돌아보며 산다고 말했다.

 

그녀를 취재하면서 재일동포의 복잡한 상황을 조금은 알 수 있었다. 16년 전 그녀처럼 지금의 재일동포 중에는 이미 세계지도에서 사라진 조선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국적은 제각각이지만 조선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그렇다. 남과 북으로 갈라지기 전 조선의 말과 문화를 지키기 위해 그들은 80년 가까이 고통을 감수하며 싸우고 있다.

 

조선학교의 시작부터 그랬다. 19458월 해방 뒤 일본에 남게 된 60만명의 동포는 자식들이 조선인으로 살아갈 수 있게 교육기관을 만들었다. 하지만 1948년 일본 정부와 연합군사령부가 일본 전역에 500개 이상 설립된 조선학교 폐쇄를 명령했고, 동포들의 강한 저항에도 대다수가 사라지게 됐다. 1957년 북한에서 교육원조비와 장학금 지원이 시작되면서 조선학교는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이때부터 북한의 영향력이 강해졌다.

 

지난 15일 오후 일본 도쿄 지요다구 문부과학성 앞에선 조선학교 무상화 배제에 반대하는 500번째 금요행동이 있었다. 일본 정부는 20104월 고등학교 수업료를 국가가 부담하는 고교 무상화 정책을 시작하면서 조선학교만 쏙 뺐다. 총련을 통해 북한과 관계를 맺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정부 차원에서 조선학교를 차별해도 괜찮다는 사회적 낙인을 찍은 셈이다. 조선학교·조선대학 학생들, 학부모, 일본 시민들이 매주 금요일 항의 집회를 하는 금요행동이 벌써 10년째다. 이날 만난 아이들은 하나같이 분노한다고 말했다. 더 많이 행복해야 할 아이들 마음속에 차별·배제·분노의 감정이 가득 차 있었다. 북한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따라 조선학교에 대한 접근이 다를 수 있지만, 그것이 차별의 이유는 될 수 없다. 유엔에서도 이미 일본 정부를 향해 차별을 시정하라고 수차례 권고한 바 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다름을 인정하면서 더불어 사는 사회가 실현된다면 일본은 재일조선인뿐 아니라, 일본인들에게도 살기 좋은 사회가 될 것입니다. 이 호소는 한국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자 하는 한국 독자들에게도 그대로 유효할 것입니다.”

지난 18일 황망하게 세상을 떠난 재일조선인 2서경식 일본 도쿄경제대학 명예교수가 자신의 책 역사의 증인, 재일조선인에서 호소한 내용이다. 책이 나온 지 11년이 지났지만, ·일 모두 별반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김소연 | 도쿄 특파원 | 한겨레 2023.12.29.

 

북한 접촉하면 인생 절단낼 태세윤 정권, ‘검열 부활꿈꾸나

자유를 외치며 등장한 윤석열 정부 2년차에 김수영의 시를 다시 읽는다. 검열과 반공 이데올로기에 압사당할 것 같은 좌절감을 토로한 김수영의 시가 지금-여기에서 커다란 공명을 만들어 내서다. 특히 다시금 되뇌게 되는 김수영 시는 김일성 만세. 1960년에 작성된 이 시는 권력의 검열과 통제에 맞서 언론과 사상의 자유를 강조한다. 자유를 탐닉했던 김수영에게 규율에 저항하는 것은 실존의 문제이자 역사적 사명이었다. 하지만 4·19 혁명이 지나고 1년여 만에 5·16 군사쿠데타가 일어나자 김수영은 엄청난 검열에 시달리게 된다. 그즈음에 쓴 시가 바로 김일성 만세인데, 검열에 숨죽이지 않기로 한 결기를 드러내는 작품이기도 하다.

“‘김일성 만세’/ 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정치의 자유라고 장면이란/ 관리가 우겨대니// 나는 잠이 깰 수밖에”(‘김수영전집’, 2018)

잘 알려져 있듯 포로수용소를 거치면서 전쟁을 몸소 경험한 김수영이 결코 김일성을 칭송했을 리 만무하다. 그가 김일성 만세를 시의 제목으로 내세운 것은 그것이 당시 남한에서 극단의 금기였기 때문이었다. 결코 해서는 안 되는 말과 생각을 말함으로써 남한에서 금지된 것이 무엇이며, 그것이 얼마나 허약한 것인지를 고발하는 것이다. 작가라면 무엇이든지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던 김수영은 끊임없이 시와 산문을 썼지만 그의 불온한글은 서슬 퍼런 검열에 먹잇감이 되곤 했다. 자신의 글이 통째로 삭제당하기도 했고, ‘김일성 만세의 경우에는 2008년에 미발표 유고 중 일부로 발굴되기 전까지 잠꼬대혹은 ○○○○○로 언급되기도 했다. 다행스러운 것은 군부 독재 세력의 검열이 시인을 좌절에 빠뜨렸음에도 그는 더욱 치열하게 글을 쓰는 것으로 저항의 길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이다.

 

자유 신봉 정권 검열의 진화

60년대 김수영을 고통에 몰아넣었던 사상 검열은 60여년이 지난 현재 법과 자본을 장착한 다양한 장치로 확장되어 더욱 촘촘하게 작동한다. 지난 한 해 동안 윤석열 정부는 자유가 중요하다고 하면서 자신과 정치적 의견이 다른 이들을 종북’, ‘친북’, ‘빨갱이로 몰아세우는 데 열심이었다. ‘진짜가짜라는 이분법적 프레임을 활용하여 사회 곳곳에 피아를 구분하는 사고방식을 확산시켰으며, 분단과 북한을 적극 활용하여 내부의 을 생산해 냈다. 철 지난 반공 이데올로기를 귀환시키고, 해체되었던 사회적 금기가 하나둘씩 복원되었다. 박정희 시대에 반공과 풍기문란이라는 두 가지 잣대가 사회를 규율하는 결정적 메커니즘이었다는 것을 기억해보면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이 마약 및 범죄 사범에 대한 엄벌주의를 강조한 것이나, 이태원 참사의 희생자를 향한 유흥에 빠진 젊은 세대라는 프레임의 등장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특히 다시금 등장한 반공 통치는 남북교류협력에 나섰던 시민단체를 시작으로 평화와 통일에 관심이 있는 평범한 시민까지 옥죄고 있다. 남북교류협력 사업 관련 시민단체에 대한 전방위적 감사와 통일부의 남북교류협력 관련 인력과 예산 축소 등은 단순히 돈줄을 막는 것에 머물지 않고 남북교류협력 사업 자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확산시켰다.

 

더 나아가 통일부는 북한 사람들과 하는 모든 민간 접촉을 규율하고 범죄화하기까지 한다. 예컨대 지난 11월 통일부는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 몽당연필대표, 재일조선인과 조선학교 차별에 관한 다큐멘터리 작업을 해온 김지운·조은성 감독에게 조총련(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계 재일조선인과 접촉한 사유를 질의하는 공문을 발송하기까지 했다. 오랫동안 조선학교의 차별 문제 해결에 힘써온 시민단체 몽당연필이나 사회적 문제에 목소리를 높여온 다큐멘터리 감독들에게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중 제9조의2(남북한 주민접촉)를 들이밀며 처벌이 가능하다고 천명한 것이다. 이는 단순히 처벌의 문제가 아니라 남북 민간의 접촉 자체를 국가의 입맛대로 통제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실로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올해 하반기(7~11)에 북한 주민 사전 접촉 신고 처리 결과를 보면 전체 39건 중에 수리된 것은 6건에 불과한 것도 정부의 입장을 확인할 수 있는 지점이다.

 

북한 접촉하면 인생 절단 낼 태세

통일부의 경고장은 이미 위축될 대로 위축된 남북교류협력 관련 시민사회의 공간을 압사하기에 충분한 것이며, 학술·종교·문화예술계 전반의 행동반경을 좁히는 효과를 만들어 낼 것이 분명하다. 남북 상호교류와 협력을 촉진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남북교류협력법이 이렇게 작동할진대, 여전히 서슬 퍼렇게 살아 있는 국가보안법이 향후 어떤 식으로 그 위세를 떨칠지 예측하기란 어렵지 않다. 지금처럼 대통령의 지지율이 바닥에 떨어졌을 때는 말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1960년대 김수영이 싸운 검열과는 차원이 다른 방식의 검열 체계가 작동한다는 데 있다. 표면적으로는 법률에 입각한 정의로운 법 집행으로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과태료 징수, 검찰의 기소와 압수수색, 고소와 고발 등을 통해 사람들을 경제적으로 압박하고 일상 자체를 위협한다. 정의로운 시민들의 후원금으로 근근이 살림살이를 꾸려가는 시민단체나 풍요롭지 않은 삶을 마다하지 않고 영화 작업에 매진하는 예술가들에게 법적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은 단순히 활동의 위축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 그 자체가 송두리째 흔들린다는 의미다. 혹여 사안이 중요해서든, 아니면 정치적 노림수 때문이든 검찰이 나서 기소라도 하게 되면 힘없는 개인이나 시민단체는 산산조각이 난다. 이미 윤석열 대통령이 언급했듯 아무리 대법원에 가서 무죄판결이 나더라도 몇년 동안 검찰 조사와 재판을 거치게 되면 결국 인생이 절단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에 의한 규율의 마지막 노림수는 무엇일까? 통일부는 시민사회의 비판이 쇄도할 것을 알면서도 남북 민간 접촉의 엄격한 통제를 천명한 이유가 무엇일까? 아마도 정부는 남북 접촉의 법적 문제와 수많은 곤란을 사람들에게 인식시키려는 듯하다. 모두에게 스스로 알아서 민간 접촉을 삼가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종북으로 몰리기 싫으면 북한하고는 교류와 협력을 말하지도, 상상하지도 말라고 주문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법을 활용한 새로운 검열의 목표다.

 

물리적 힘을 동원한 검열은 김수영 시인의 주체성을 말살할 수 없었지만, 법을 통해 삶과 일상을 위협하는 방식은 주체가 자신을 검열하게 한다는 측면에서 더욱 폭력적이다. 그만큼 자기 검열은 주체 스스로 무릎 꿇게 함으로써 자기 비하로 귀결되기에 한없이 위험하기까지 하다. 김수영이 검열을 수많은 천재의 출현을 매장하는 하늘과 땅 사이만 한 죄”(‘반시론’)로 규정했다면, 2023년 한국 사회를 장악한 새로운 방식의 검열은 자유롭게 사유하며 말하는 주체의 몰락을 목적으로 한다.

김성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 한겨레 2023.12.30.

 

선택적 법치와 법치의 배신

함박눈이 펑펑 내려 묵은때를 씻고 새해가 밝았는데 대한민국의 법치는 안녕한가? 법치란 모름지기 공정하고 정의로워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딴판이다. 권력자의 자의적인, 선택적 법치가 도를 넘고 있다. 국민의 공복이어야 할 검찰이 권력자를 위한 방탄으로 추락했다. 다시 헌법을 생각하게 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주권은 국민에 있다(헌법1). 주권은 대통령 1인이나 어떤 정치적·경제적 특수계급에 있지 않다. 또한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며 성별·종교·사회적 신분에 의해 삶의 모든 영역에서 차별을 받지 않는다(11). 헌법은 누구는 법치의 대상이 되고 다른 누구는 법치 위에 군림하는 식의 선택적 법치가 아니라 예외 없는 법 앞의 평등을 천명하고 있다. 이는 권리 보호는 물론 죄에 상응하는 처별 측면에서도 평등하고 공정해야 함을 함축한다. 무엇보다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는 사회보장·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가 있다(34).

 

이처럼 헌법은 민주공화국의 법치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잘 풀이하고 있다. 그럼에도 법치의 의미를 놓고 논란이 많다. 법치의 의미는 복합적이며 그것들은 서로 보완재가 될 수도 있고 갈등을 낳을 수도 있다. 법학자 김도균에 따르면 법치를 둘러싼 논점은 왜 법의 지배인가, 어떤 법의 지배인가, 법의 어떤 지배인가의 세 가지로 정리된다.

 

은 법치란 법의 지배로서 권력자와 강자에 의한 자의적 지배로부터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는 이념이라는 것이다. 인치는 물론 법을 지배수단으로 이용하는 권력자의 통치(법에 의한 지배)와 법의 지배를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는 법이 지향하는 가치와 실질적 내용을 묻는다. 이는 법률의 실체적 내용이 기본권 보장의 헌법 이념에 부합해야 한다는 입헌적 법치주의 원칙을 뜻한다. 은 법의 지배와 민주주의 간의 긴장관계를 묻는다. 법치란 사법부의 통치가 아니다. 공적 사안에 대한 민주적 토의와 조정이 제자리를 잡아야 하고 정치의 사법화 현상을 막아야 한다. 문제는 위의 세 가지 어디서나 법치가 비정상이 되고 선택적 법치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법의 지배란 정의로워야 하며 최고권력자를 포함해 고위공직자 범죄에 대해선 더욱 철저히 적용되어야 한다. 그래야 공적 신뢰, 공공선에 대한 시민적 헌신도 살아날 수 있다.

 

선택적 법치를 잘 보여주는 것은 재벌과 부자의 특권적 자유는 엄청 존중하는 반면 약자의 삶의 권리는 억압하고 노동의 존엄은 가볍게 무시하는 권력의 의지일 것이다. 삼성의 이재용은 희대의 국정농단 사건으로 그룹총수직을 부당세습하고 국정농단 최대수혜자가 되었다. 그럼에도 형기도 채우지 않은 채 특혜 가석방으로 풀려났고 특별사면되어 삼성전자 회장직에 복귀했다. 한편 파업노동자에 대한 회사 쪽 손해배상청구권을 제한하기 위한 노란봉투법에 대해 재계는 경영활동을 위축시킨다며 기를 쓰고 반대하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촉구했다. 노조 때려잡기에 열심인 대통령은 거부권 행사로 화답했다. 뿐만 아니라 중대재해처벌법도 개악될 판이다. 50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3년 유예 끝에 새해 1월부터 적용될 예정이었는데 2년 더 유예한다는 것이다. ‘천민적 선진국의 풍경이다.

 

대통령 부인의 주가조작 관여 의혹을 둘러싼 그간의 경과는 선택적 법치의 또 다른 생생한 사례를 보여준다. 국회에서 김건희 특검법이 통과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작년 21심 선고가 나왔는데 도이치모터스 권오수 전 회장 등의 주가조작 거래 시기에 김건희 여사 소유계좌에서 주식거래가 여러 차례 확인되었다. 최소 세 개의 김건희 명의 계좌가 주가조작에 활용됐다. 재판부는 주가조작 범행을 1차 시기와 2차 시기로 구분하고 1차 거래는 공소시효 10년이 지나 처벌할 수 없다고 보았지만 2차 거래는 대부분 유죄라고 적었다. 유죄로 판단한 김건희 여사 명의 2차 거래에서 통정·가장매매가 48, 현실거래가 1건이다. 이런데도 김건희 여사에 대해서는 한 차례 서면조사가 전부였고 1심 선고 이후에도 검찰은 아무런 조사도, 불기소 처분도 하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김 여사는 명품가방을 받은 의혹으로 시민단체에 고발을 당한 처지다. 고발대상에는 신고의무를 위반한 대통령도 포함된다.

 

김건희 특검법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한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된 한동훈은 특검법이 총선용 악법이라고 억지를 부린다. 공권력의 사유화가 따로 없다. 새해에 이 땅의 법치는 안녕할까?

이병천 강원대 명예교수·지식인선언네트워크 공동대표 | 경향 2023.12.31.

 

일하는 사람만 바보?

2024년 시행되는 두 건의 비과세가 있다. 주식을 50억원 미만 보유한 투자자는 주식 양도차익에 대해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다. 결혼과 출산을 하는 자녀는 부모로부터 15000만원까지 증여를 받더라도 세금을 내지 않는다. 양가 합치면 3억원까지 세금 0이 된다.

 

모든 감세가 그렇듯 나름 합리적인 이유는 있다. 지난해까지 주식 보유자 양도세 부과기준은 ‘10억원 이상이었다. 이를 50억원 이상으로 올린 데 대해 정부는 “10억원 이상 주식 보유자들이 양도세를 피하기 위해 연말에 주식을 내다 팔아 변동성이 심했다고 설명한다. 기존 5000만원이던 자녀 증여세 공제한도를 결혼과 출산을 조건으로 15000만원으로 상향조정한 데 대해서는 “5000만원은 자녀들이 전세도 못 얻는 금액이라고 주장한다.

 

두 감세의 공통배경에는 주식 10억원을 가진 게 뭐가 부자냐’ ‘5000만원 증여는 너무 작다는 인식이 존재한다.

 

정부는 대주주 요건 완화로 증시 변동성이 줄어들고 큰손 투자자들이 더 적극적으로 국내 증시에 투자할 것이라고 설명한다. 또 신혼부부 증여세 완화는 혼인을 촉진시켜 결국 저출생 문제 해결에 기여할 것이라고 한다. 물론 정부는 이 같은 기대를 계량화해 제시하지는 못했다.

 

정부의 막연한 기대 이면에 간과한 부정적 외부효과가 있다. 금융소득과 이전소득에 대해 우대를 해준 만큼 노동소득의 가치는 또 떨어졌다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감세정책은 주로 자산과 자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종부세 감세는 고액자산가에게 수천만원의 세금 부담을 줄여줬다. 법인세 감세는 대기업이 자금을 더 유보할 수 있도록 도왔다. 소득의 본질은 노동소득이다. 성실하게 살며 따박따박 저축하면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다는 기대가 있어야 흔쾌히 일할 수 있다. 그 노동 아래 생산과 소비가 이뤄진다. 하지만 그 소득에 붙는 세금은 그대로다.

 

최근 분양한 둔촌주공 분양가는 전용 5910억원이다. 국민평형이라는 84131000만원이다. 평범한 월급생활자라면 엄두가 안 나는 액수로 영끌 대출을 하거나 복권이라도 당첨돼야 마련할 수 있는 돈이다. 국토교통부의 ‘2022년 주거실태조사결과를 보면 2022년 기준으로 서울에서 집을 사려면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15.2년을 모아야 가능하다. 1년 전보다 1년이 더 늘어났다.

 

아무리 일해도 티끌 모아 티끌이 반복되는 상황에서는 일하기 싫어지는 게 인지상정이다. 노동의욕을 상실한 경제주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다. 일하지 않고 일할 의지도 없는 니트족이 되거나 현재를 즐길 뿐인 욜로족으로 남는 것이다. 투자로는 코인, 소비로는 오마카세에 청년세대가 열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왜 중소기업에 들어가서라도 일을 하지 않느냐고 아무리 질타해본들 이들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정부가 겨냥하는 다음 감세는 상속증여세다. 결혼·출산 증여세 완화를 상속증여세 전면 개편의 징검다리로 보는 시각도 있다. 사실 상속과 증여만큼 노골적인 아빠찬스는 없다. 부모로부터 증여받은 돈으로 집을 구해 결혼생활을 시작하는 청년과 그렇지 못한 청년 사이에는 시작부터 자산의 차가 벌어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차는 더욱 커져 중장년에 이르면 그 격차는 회복하지 못할 정도에 이를 수도 있다. 노동으로는 절대 해결할 수 없는 격차다.

 

자본소득도 추가 감세가 예상된다. 대주주 양도세 완화를 볼 때 2025년 시행 예정인 금융투자소득세도 정상적으로 시행될 것이라 자신하기 어렵다.

소득세율은 몇년째 고정됐는지 모를 정도로 감세의 기억이 없다. 인플레이션으로 소득이 증가하자 소득세도 덩달아 늘고 있다. 정부가 과표구간을 일부 완화해줬다지만 큰 차이는 없다. 물가 상승으로 월급이 올라도 살 수 있는 것은 더 적어졌는데 내야 할 세금은 많아지니 생활은 더 쪼들린다. 특히 소득세 부담이 중산층에 집중된다는 것도 문제다. 중산층이 자산을 모을 기회를 박탈하기 때문이다.

 

투자의 대가 워런 버핏은 비서의 근로소득세 부담이 자신의 금융소득세 부담보다 크다며 자본소득에 대한 증세를 요구했다. 그 같은 버핏세까지 기대하지는 않더라도 기왕 있는 자산세와 자본소득세를 깎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일하는 사람만 바보인가.

박병률 경제부장 경향 : 2023.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