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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외부 칼럼

2022 12.1 ~ 31 법 앞에 평등하다는 헛소리

by 이성근 2022. 12. 31.

석열산성과 명박산성, 그리고 윤석열 매직 경향 2022.12.01.

예술의 힘 한겨레 :2022-12-01

사설] 진실화해위원장에 뉴라이트인사 내정, 당장 철회해야 한겨레 :2022-12-02

주한미군 우주군사령부? MD 전초기지가 되는 한국 프레시안 2022.12.02.

포르노 없는 포르노 사회 프레시안 2022.12.03.

상대평가, 어떻게 물리·경제를 죽였나 경향 2022.12.03.

영원한 트레블린카 한겨레 2022.12.04.

반윤석열, 비이재명에 갇힌 정치 한겨레 2022.12.04

국민과 싸우는 국가 경향 2022.12.05.

파업하자 경향 2022.12.05.

문제의 본질을 외면한 여성 탓경향 2022.12.05.

윤석열 대통령은 왕이 아니다 한겨레 2022.12.05.

배우 윤석열의 감독은 누구인가 미디어오늘 2022.12.05

법대로 하자 경향 2022.12.06.

짐이 헌법이다? 경향 2022.12.06.

전임자 흔적 지우기와 생각하지 않는 관료제 경향 2022.12.06.

무릎을 꿇는 이들 한겨레 2022.12.06.

이재명 사법리스크방탄 민주당경향 2022.12.07

포르투갈과 한국 경향 2022.12.07.

어디서 죽을 것인가 한겨레 2022.12.07.

20년 후 양산시 하나가 사라진다 경남도민 2022.12.07.

충격적인 ‘38%’, 저질 정치 근거지는 양극단 국민 조선일보 2022.12.07.

10·29참사의 재구성서울 완전독점과 지방 소멸 프레시안 2022-12-08

윤석열·한동훈은 강인한 사람일까 한겨레 2022-12-08

법치' 협곡에 빠진 '협치' 정치, 국정운영 변해야 한다 프레시안 2022.12.09.

주가지수가 한국 경제에 대해 말해주는 것들 경향 : 2022.12.09.

 

고금리, 무역 적자, 가계부채회색 코뿔소가 달려오고 있다 한겨레 2022-12-10

단 한 명의 아이도 소외되지 않게 하려했던 교육감, 노옥희 미디어오늘 2022-12-10

당신은 부자인가요?” 미디어오늘 2022-12-10

'석유 부자' 중동 국가, 그들이 탄소중립 시대를 맞는 방법 경향 2022.12.11.

서로를 빼닮은 룰 브레이커’, 윤석열과 이재명 한겨레 2022.12.11.

누가 국가의 품격을 떨어트리는가 경향 2022.12.12

세계 유일 강제노역 업무개시명령제경향 2022.12.12.

축구에 대한 두 시선, 카뮈와 에코그리고 대통령실 만찬을 보며 프레시안 2022.12.12

대통령이 생각하는 '한동훈의 임무'는 무엇일까? 프레시안 2022.12.12.

삼성 여성 사장의 빛과 그림자 한겨레 2022.12.12.

화물연대 파업과 합의의 가치 경향 2022.12.13.

파업에 혐오 덧씌우는 이중 가정경향 2022.12.13.

검찰 정권은 끝내 평화의 장성을 허물려는가 한겨레 2022.12.13.

당신이 아직 살아 있다면 당신은 다 한겨레 2022.12.13.

욕망과 혐오 사이 성형 강국’ 100년의 혼란 한겨레 2022.12.13.

고령화 회색 코뿔소를 바라보기만 할 텐가 경향 : 2022.12.14

은행들 폭리, 두고만 볼 일인가 경향 : 2022.12.14.

포스트의 시대정신과 자유민주주의 경향 : 2022.12.14.

서훈 구속, ‘30년 빈손 외교의 현주소 한겨레 : 2022.12.14.

이게 말이 되냐고요비정상 대한민국 경향 : 2022.12.15.

이태원 참사 유가족 손을 잡으러 가자 경향 : 2022.12.15.

정치적인, 너무나 정치적인 삶 경향 : 2022.12.15.

ESG 대전환, 덫이 아닌 기회로 만들어야 경향 : 2022.12.15.

죽마고우 보은 인사경향 : 2022.12.16.

도마뱀과 바보들의 나라 경향 : 2022.12.17.

프레임이라는 전가의 보도 미디어오늘 2022.12.17.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 한겨레 2022.12.18.

전환기의 국가정보 한겨레 2022.12.18.

약자 복지는 약자를 위한 복지가 아니다 한겨레 2022.12.18.

사설] 다주택자 중과세 후퇴, 또 부동산 투기 부른다 한겨레

윤석열 정부의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프레시안 2022.12.19

이태원 참사두 아버지는 두 시간 내내 울었다 경향 2022.12.19.

리즈 트러스가 반색할 한국의 동지들 한겨레 2022.12.19.

윤 정부의 자유·연대론과 일본의 한반도 선제공격 한겨레 2022.12.19.

윤석열 머슴어디 갔나? 미디어오늘 2022.12.19.

존재 가치가 없는 정부 미디어오늘 2022.12.19.

존재 가치가 없는 정부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2022.12.19.

 

 

좌파 바겐세일 한겨레 2022.12.20.

다수를 실패자로 만드는 교육, 이게 최선입니까 한겨레 2022.12.20.

공무원의 영혼 보호법이 필요한가 경향 2022.12.21.

194212월의 기억 통일뉴스 2022.12.21.

자식 잃은 부모와 목숨 걸고 일하는 노동자를 화나게 하지 마라 한겨레 2022.12.21.

그 여자는 화가 난다 경향 2022.12.22.

한국 엘리트들 공감능력은 왜 낮을까 경향 2022.12.22.

1인당 GDP 4만달러, 그 허망함에 대하여

오창민 논설위원 경향 2022.12.22.

도서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한겨레 2022.12.22

부동산 경기부양 총력전의 후과가 두렵다 경향 2022.12.23.

재벌집 막내아들처럼 경향 2022.12.23.

불황 뉴스클레임 논설위원실

물의 길, 자연의 도 경향 2022.12.24.

양치기 소년의 14'바이든의 전쟁'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2022.12.24.

황당한 통계조작거짓말진짜 사기단은 국힘과 보수언론 한겨레 2022.12.25

미국은 4·3의 진실을 직시해야한겨레 2022.12.25.

적대에 기생하는 대표자들 한겨레 2022.12.25.

가진 자와 강한 자가 더 자유롭다 2022.12.26.

전투냐, 죽음이냐 매일노동뉴스 2022.12.27.

다수를 위한 임금체계 매일노동뉴스 2022.12.27.

광기의 사회대한민국 경향 2022.12.27.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그리고 자유담론 경향 2022.12.27.

법 앞에 평등하다는 헛소리 한겨레 2022.12.27.

노조 회계공시? 대통령의 천박한 노동 인식이 문제다 프레시안 2022.12.27.

윤석열과 무()지성의 시대, 비평의 어려움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2022.12.28

공장 영화, 복붙 정권 그리고 식상한 칼럼 경향 2022.12.29.

검통령정권의 약강 강약본색 한겨레 2022.12.29.

2022년 더 아파하고, 이별하자 광주드림 2022.12.30.

문제는 입시가 아닌 경쟁경향 : 2022.12.31.

 

 

석열산성과 명박산성, 그리고 윤석열 매직

수많은 부정적 사건과 일화가 있었지만, 이명박 정부를 말할 때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 중 하나는 명박산성이다.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20086월 중순 경찰이 시위대의 청와대 행진을 막기 위해 광화문 한복판에 설치했던 컨테이너박스 바리케이드를 일컫는다. 시위대가 오르는 것을 막는다며 컨테이너 표면에 칠한 윤활유는 미끈미끈, 뺀질거리는 이명박 이미지와 썩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어찌됐든 유쾌한 기억은 아니었다.

 

용산 대통령실 청사 1층 로비에 가림막이 세워졌다는 소식에 명박산성을 떠올린 사람이 많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청사 1층 현관에서 기자들과 진행하던 도어스테핑을 중단하면서 취한 조치였다. 가림막으로 인해 로비에서 출입구 쪽 시야가 차단됐고, 기자들은 윤 대통령이나 참모들의 출입을 파악할 수 없게 됐다. 거대한 흉물 명박산성과 가로 6m, 세로 4m의 대통령실 가림막을 물리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민심에 눈감고 귀막은 권력자의 불통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명박산성과 대통령실 가림막은 다를 바 없다. 가림막은 석열산성의 징후다.

 

가림막 하나로 침소봉대하는 게 아니다. 대통령과 국민 사이의 벽은 두 가지 경우에 생긴다. 대통령이 국민을 갈라치기 하거나, 숨길 것이 있을 때인데, 윤 대통령은 둘 다 해당된다. 실제 모두의 대통령을 포기한 윤 대통령이 30% 강경보수층을 겨냥하면서, 70%가 소외되고 있다. 중도층은 틀렸으니, 30%라도 결집시켜 국정 기반으로 삼겠다는 게 여권 전략이라는 말을 여러 곳에서 들었다. 아스팔트 보수를 겨냥한 듯한 대통령 메시지와 잇단 퇴행적 인사는 우연이 아니라는 것이다. 석열산성은 이런 배경에서 등장했다.

 

여권의 이태원 참사 대처가 대표적이다. 정부 대응 실패로 국민 158명이 죽었는데도, 윤 대통령은 사과에 인색하다. 대통령은 참사 발생 1주일 후 공식회의에서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이라 했고, 이는 사실상의 대국민 사과로 포장됐다.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 대통령의 고교·대학 후배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진즉 파면됐어야 함에도 직을 유지하고 있다. 윤핵관은 국민의힘 의총에서 장관 하나 못 지키느냐고 화를 냈다. 대통령실 수석들은 정부 부실 대응을 질타하는 국회에서 웃기고 있네라며 킬킬댔다. 여권 전체가 희생자를 애도하고 참사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70%에 맞서고 있는 것이다. ‘세월호 때처럼 밀리면 안 된다30%의 목소리에 귀기울인 결과다. 이태원 참사를 기점으로, 석열산성의 규모는 명박산성을 넘어섰다.

 

윤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의 지난 25일 금요일 관저 만찬도 석열산성의 증거다. 사진·동영상은 공개되지 않았고, 변변한 브리핑도 없다. 3시간20분 동안 무슨 일이 있었기에 숨기는 것인가. 만찬에 참석한 김종혁 비대위원은 방송에서 넥타이 느슨하게 풀고, 두서없이 다양한 분야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다. 땅콩 놓고 맥주 마셨다고 했다. 과연 맥주만 마셨을까. 어떤 술을 들이켰든 경제·안보위기 상황에서 여권 핵심들이 나눈 대화로는 한가하고, 한심하다. 윤 대통령은 여당 지도부 노고를 치하했다고 한다. 그러나 대통령이 보듬어야 할 대상은 여당이 아니라 경기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이태원 참사로 집단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국민들이다.

 

문재인 정부의 내로남불과 오만을 비판하더니, 그대로 따라 한다. 야권 인사들을 집중 수사하면서, 김건희 여사 연루 의혹이 있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은 뭉개고, 재산 15억원을 축소신고한 김은혜 홍보수석은 봐줬다. 연이은 인사참사를 반성하기는커녕, 전 정권에서 이보다 훌륭한 사람 봤느냐고 큰소리친다. 그러다보니, 세간엔 이명박·박근혜 시대를 돌아보게 될 줄 몰랐다는 어처구니없는 농담이 나온다. 윤석열 정부 6개월을 겪으면서 실패한 전직 대통령들을 재평가하게 됐다는 것이다.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던 일을 가능하게 만들었으니, ‘윤석열 매직이라 할 만하다.

 

석열산성 앞날은 명박산성보다 암울하다. 명박산성은 철거했지만, 석열산성은 더 두껍고 높으며 보이지 않아 없앨 수 없다. 겁 많았던 이명박은 국민이 저항하면 사과하는 시늉이라도 했다. 그러나 평생 군림하는 검찰로 살았던 윤 대통령은 30%만 있다면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나 더 있다. 이명박은 촛불집회 때 청와대 뒷산에서 아침이슬이라도 불렀다. 뚝심의 윤 대통령은 물러설 기미가 없다. 그래도 속은 탈 것이다. 밤마다 다른 이슬만 찾고 있는 것 아닌가.

이용욱 논설위원 경향 2022.12.01

 

 

예술의 힘

조르주 루오, <피에로(프로필)>, 1925~29, 캔버스를 배접한 종이에 유채, 68.5×50.0, 오하라미술관

 

불타오르는 듯한 단풍의 계절이 왔다가 순식간에 지나가버린 느낌이다. 며칠 전 일 때문에 오사카에 머물던 차에, 오카야마까지 가서 구라시키시 오하라미술관을 찾았다. 오사카에서 신칸센으로 1시간 남짓 걸리는 비교적 가까운 거리다. 코로나 재난이 아직 가라앉지 않았으나 꽤 많은 사람으로 붐볐다. 연일 쾌청한 가을 날씨가 이어지고 있었는데, 그날만은 차가운 비가 내렸다. ‘미관지구로 지정돼 역사적인 건조물이나 거리가 그대로 보존된 구라시키시 옛 시가지가 비에 젖어 있는 풍정도 그것대로 나쁘지 않았다. 오하라미술관은 1930년에 개관한 일본 최초 서양미술 전문 사립미술관이다. 내가 처음 이 미술관을 찾은 것은 중학교 수학여행 때였다. 이후 약 60년 동안 몇번이나 이 미술관을 찾았을까.

 

그 뒤로도 인생을 살면서 일본에서도 구미 각지에서도 뭔가 벽에 부딪히거나, 나아갈 길을 잃어버리거나, 살아가는 일에 지쳤을 때는 종종 습관처럼 미술관으로 발길을 옮겼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그 습관이 시작된 것은 그때, 60년 전 이곳에서 만난 루오, 수틴, 모딜리아니, 세간티니, 엘 그레코 등이 그린 많은 서양회화로부터 받은 충격 때문이다. 이번에도 그리운 옛 동무의 모습을 확인하듯 그런 작품들과 재회했다. 더욱 인상 깊었던 작품은 루오의 <피에로>. 루오는 볼 때마다 새로운 발견과 감동을 안겨준다. 옆얼굴 모습 피에로의 사악함을 담은 눈길. 인간성의 어두운 면을 응시하는 루오다운 작품이다. 그 깊은 슬픔.

 

페스트 재난과 함께했던 서양 르네상스 시대와 마찬가지로, 동아시아의 20세기는 죽음의 짙은 그림자로 뒤덮인 시대다. 죽음의 그림자 속에서 르네상스 시대는 유례없는 예술 유산을 우리에게 남겼다. 우리 시대는 어떨까? 파괴 뒤 공허한 잔해들만 남지 않을까?

 

귀로의 기차 안에서 평소에는 보지 않던 객차에 비치된 잡지 <웨지>(202212)를 무심코 폈더니 관심이 가는 기사가 눈에 띄었다. (“이미 서방의 무기 공장’, 한국 방위산업이 잘나가는 이유”) 이 기사에 따르면, 올해 9월 서울에서 대한민국 방위산업전이 열렸는데 한국 국내와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관계자들의 열기가 뜨거웠다고 한다. 올해 7월 러시아의 위협에 직면한 폴란드와 미국·유럽·일본의 최신예 전차에 필적하는 성능을 갖춘 ‘K2’ 전차 980, 세계적 수준의 ‘K9’ 자주포 648문 등 총 25조원어치 무기 구매 계약을 한 것이 그런 성황의 요인이다. 한국은 이미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이후 북유럽 및 발트 3국과 잇따라 무기 수출 계약을 맺었다. 기사는 각국에서 수주가 잇따른 한국 방위산업은 사실상 서방 자유주의 국가 그룹의 무기 공장이 되고 있다주변국에 뒤처져버린 우리 나라(일본)”의 방위산업 진흥을 호소하고 있었다. 기사를 읽고 나자, 이 분야에 내가 너무 무관심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내가 젊었을 때는 죽음의 상인이란 말이 있었고, 전쟁으로 폭리를 취하는 것은 가장 타기해야 할 행위로 비판받았다. 적어도 나는 그런 감각을 소중히 여기며 자랐다. 그런데 어느새 한국이 죽음의 상인나라가 돼 버린 것인가? 아무도 그것을 부끄러워하거나 비판하지 않는가? 한편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병력과 무기가 부족한 러시아에 이 무기를 제공할 것(이미 하고 있나?)이라는 보도도 있다. 민족 전체가 식민지배를 받고 분단까지 됐는데 그 쌍방 당사자들이 지금 진행 중인 세계 규모의 분단과 전쟁에 무기 제공자로서 관여하고 있다. 나중에는 병력 제공자가 될지도 모른다. 이 얼마나 치욕스러운 일인가?

가을비를 맞는 듯한 우울한 생각으로 신문을 펼치니, 거기에는 중국 미술가 아이웨이웨이에 관한 기사가 실려 있었다. (‘박해받은 아버지와 나, 중국을 그린다’, <아사히신문> 20221122) 자전적인 저서 <천년의 환희와 비애>의 일본어판 간행을 앞두고 인터뷰한 내용이었다.

 

그에 관해서는 나는 이전에 몇번인가 글을 썼다. 그 가운데 하나는 그가 감독한 장편 다큐멘터리 작품 <휴먼 플로/대지 표류>(2017년 독일)에 대한 감상이다. 세계 23개국 40곳 난민캠프를 돌며 제작한 거대한 투시도(perspective) 같은 작품이다. 작중에 모습을 드러낸 그 자신은 고대 중국의 신선 같기도, 시골 농부 같기도 하다.

 

그는 뛰어난 현대미술가·건축가이면서 동시에 반골적인 사회운동가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몇번이나 정부의 삼엄한 감시 아래 놓이고 연금당했다. 이제는 중국 국내에 머물 수 없어 독일 등에 거점을 두고 있다. 나는 2017년 요코하마 트리엔날레 국제미술전에서 그의 인스털레이션(설치미술) 작품을 봤다. 주 전시장 벽면 전체에 부착된 무수히 많은 오렌지색 이상한 물체들이 거센 태풍의 비바람에 심하게 나부꼈다. 그 물체들은 난민들이 타고 바다를 건넌(또는 건너가다 실패한) 고무보트였다. 벌써 5년 전 일이다. 그동안 세계는 더 나빠졌으나 아이웨이웨이는 건재했다. 기사 말미에 이런 그의 말이 소개돼 있었다. “예술가는 전쟁을 막을 수 없었고 지금도 막을 수 없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무력하지만, 감정에 호소해 잘못된 사고를 하는 국가에 다른 생각이 있다는 것, 각자의 인생은 의미 있는 아름다운 것이라는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

 

정말 그렇다. 우리는 얼마나 무력한가. 전쟁을 막을 지혜도 힘도 없다. 하지만 동시에 이 절망적인 세계에서 농부가 지칠 줄 모르고 가뭄으로 황폐해진 밭을 가는 것처럼, 늘 양심이나 인간성을 상기시키는 사람들이 계속 존재해 왔다는 것도 상기시킨다. 그것이 예술의 힘이 아닐까. 아이웨이웨이의 작품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 뒤에도 살아남을 소수의 ‘20세기 르네상스유산일지도 모른다.

서경식 | 도쿄경제대 명예교수, 번역 한승동(독서인) 한겨레 :2022-12-01

 

독일이 일본전에서 분노한 이유는 패배 때문이 아니다

11월 특파원 업무를 시작하며 월드컵을 눈앞에 둔 독일 사회 분위기를 유심히 봤다. 월드컵 네차례 우승국인 독일은 4년 전 한국에 2 0으로 패하고 16강행이 좌절됐다. 아무래도 이를 갈고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좀처럼 월드컵 열기를 느끼기 어려웠다. 월드컵 시작 2주 전 칼리드 살만 카타르 월드컵대사가 독일 방송에서 동성애를 정신적 손상이라고 말하며 분위기는 더 가라앉았다. 독일 트위터에선 카타르월드컵 참여를 거부하는 해시태그(#BoycottQatar2022)가 퍼져나갔다. 스포츠 경기장에서는 카타르 이주노동자 사망과 관련한 촛불시위가 열렸다. 일부 펍은 경기 중계를 보이콧했다.

 

호엔하임대 설문조사에 따르면, 독일 시민 절반이 카타르월드컵을 보이콧하는 기업, 정치인을 지지한다. 3분의 2 이상이 총리의 경기 관람이 불필요하다고 여긴다. 독일 최대 성소수자(LGBTIQ+) 인권단체(LSVD)는 정부에 동성애를 법으로 금지하고 어기면 징역 7년형까지 선고될 수 있는 카타르에 여행경보를 내리라고 요구했다. 국제축구연맹(피파)까지 애초 독일 등 7개 대표팀이 착용하기로 한 무지개 완장을 금지하고 어기면 옐로카드를 줄 수 있다고 밝히자, 가라앉은 열기는 분노로 바뀌었다. 무지개 완장은 인종, 피부색, 성 정체성, 문화, 신념, 국적, 젠더, 나이 등 모든 종류의 차별에 반대한다는 뜻이다.

차별 반대는 독일이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다. 독일 대표팀의 퍼포먼스는 무척 실망스럽다. 옐로카드를 받을 각오를 해야 했다.”

 

베를린에 사는 다니엘은 1123일 일본과의 첫 경기 이야기가 나오자 열을 냈다. 일본에 져서 화가 난 게 아니라 대표팀이 비겁했다는 거다. 경기 전 독일 대표팀은 무지개 완장을 금지한 피파에 항의하는 뜻으로 손으로 입을 막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경기장을 찾은 낸시 페저 독일 내무장관은 보란 듯 팔뚝에 무지개 완장을 차고, 잔니 인판티노 피파 회장 옆에 앉았다. 하지만 다니엘은 이란 선수들이 국가를 부르지 않고 침묵한 것을 보라차라리 다른 7개 팀과 연대해 경기를 보이콧했다면 피파도 어쩌지 못했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독일이 차별 반대라는 가치를 얼마나 무겁게 여기는지는 정책에도 나타난다. 독일은 2006년 차별금지법(일반평등법)을 제정하고, 2017년 동성결혼을 합법화했다. 지난해 출범한 신호등 연정은 독일 역사상 처음으로 성소수자 위원회를 만들었고, 1118퀴어 리빙’(퀴어 레벤)이라는 국가행동계획을 발표했다. 이 계획에는 성 정체성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하는 자기결정법’, 반폭력 프로그램 도입 등이 담겼다. 차별에 반대하는 시민 동력을 바탕으로 제도적 장치가 두꺼워지고 있다.

 

독일은 왜 카타르월드컵에 냉소적인가에서 출발한 질문은 한국은 언제쯤?’이란 궁금증으로 번졌다. 2007년 노무현 정부가 차별금지법을 처음 발의한 뒤 15년이 흘렀다. 역대 국회에서 문턱을 넘지 못한 법안은 21대 국회에도 여전히 계류 중이다. 1115일 더불어민주당이 우선 처리 법안에 차별금지법을 넣었다고 한다. 4월 국가인권위원회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 67.2%가 차별금지법 도입 필요성에 동의했다. 한국 시민들도 이젠 준비가 돼 있는 듯하다.

노지원 | 베를린 특파원 한겨레 :2022-12-01

 

사설] 진실화해위원장에 뉴라이트인사 내정, 당장 철회해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의 새 위원장에 뉴라이트활동에 매달려온 김광동 현 상임위원이 내정됐다고 한다. 국가에 의한 인권침해 피해 등 국가폭력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고 피해자의 명예회복 등을 통해 화해를 도모하는 기구의 책임자로 독재자들을 미화하는 등 편협한 극우적 인식을 가진 인물을 굳이 앉히겠다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진실화해위의 존재 이유를 대놓고 부정하는 것이다. 당장 철회해야 마땅하다.

 

김 상임위원은 지난해 2월 국민의힘 추천으로 진실화해위에 들어올 때도 논란을 일으켰다. 그의 이력이 진실화해위의 설립 취지나 활동 목표와 상반됐기 때문이다. 김 상임위원은 2008년에 출간된 뉴라이트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집필에 참여하고, <이승만 깨기이승만에 씌워진 7가지 누명> <박정희 새로 보기오늘에 되살릴 7가지 성공모델> 같은 책을 펴냈다. , 제주 4·3을 공공연히 공산주의 세력에 의한 폭동이라고 주장해왔다.

 

진실화해위의 진실 규명 결정은 연구자 개인의 주장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무겁다. 20034·3특별법에 따른 조사에서 군인·경찰 토벌대에 의한 희생이 78.1%를 차지한다는 진상 규명 결과가 나온 터에, 이조차 부인하는 인물이 민간인 집단 희생이나 인권침해·조작 의혹 등 국가권력이 깊숙이 작용한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혀내기를 기대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오히려 진실을 흐리거나 뒤집어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하지나 않을까 우려된다.

 

이미 1기 진실화해위(2005~2010) 때도 판박이 같은 일이 벌어진 적이 있다. 200912월 이명박 대통령이 임명한 이영조 3대 위원장도 뉴라이트 계열 인사였다. 그는 위원장 자격으로 국제학술대회에 나가 제주 4·3공산주의자가 주도한 폭동으로, 5·18민주화운동을 민중 반란으로 표현해 논란을 일으켰다. ‘동의대 사태를 진실 규명 대상에서 배제해 반발을 사기도 했다. 윤석열 정부도 이런 활약을 기대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2기 진실화해위는 최근 형제복지원, 선감학원, 녹화공작 등에 대한 진실 규명 결정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그러나 18천건이 넘는 진실 규명 신청의 일부에 불과하다. 수많은 피해자가 애타게 진상 규명과 피해 배상을 기다리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부적절한 인물의 위원장 임명을 강행하면 참혹한 국가폭력을 당하고 오랜 시간 외면받아온 피해자들의 인내가 분노로 바뀌게 될 것이다. / 한겨레 :2022-12-02

 

 

주한미군 우주군사령부? MD 전초기지가 되는 한국

미국이 인도-태평양사령부(인태사령부)에 우주군사령부를 창설한데 이어 주한미군에도 우주군구성사령부(component command)를 올해 내 수립할 예정이다.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장거리 미사일을 우주에서도 탐지·추적해 미국 본토에 대한 방어력을 강화하겠다는 취지에서 나온 것이다.

 

이 소식을 접하면서 떠오른 논쟁이 있다. 20179월 당시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제임스 매티스 국방부 장관 사이의 설전이 바로 그것이다. 밥 우드워드의 <공포 : 백악관의 트럼프>에 따르면, 트럼프는 왜 한국한테 10억 달러도 받지 않고 사드(THAAD)를 배치했느냐고 따져 물었다.

 

그러자 매티스는 "미국은 한국을 위해 사드 배치를 하고 있는 게 아니라, 우리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에 한국을 돕고 있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와 관련해 우드워드는 미군이 한국에서 극비로 운영하는 '특별 접근 프로그램(Special Access Programs)' 덕분에 "미국은 북한이 미국을 향해 ICBM 발사하면 7초 이내에 탐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사일방어(MD)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 적의 미사일 발사를 빨리 탐지·추적할수록 요격 확률도 높일 수 있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이 바로 경북 성주 소성리에 배치된 사드 포대이다. 이 포대에 속한 AN/TPY-2 레이더를 전투지휘통제관리(C2BMC)와 연동하면 이 레이더를 미국 주도의 글로벌 MD 체제의 ''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현실적으로 주한미군이 북한의 ICBM을 탐지해 미국 본토 방어용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전략 자산은 성주 레이더가 유일하다. '종말 모드'로 운용 중이라는 성주 레이더의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하면 '전진 배치 모드', 즉 글로벌 MD의 자산으로도 겸용할 수 있다. 주한미군이 우주군사령부 창설 계획을 밝힌 것이 결국 성주 레이더를 업그레이드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은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다.

 

이미 필자는 1113일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채택된 공동성명의 핵심적인 내용은 북한위협론을 구실로 삼아 한미일 MD를 가속화하겠다는 것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이에 더해 주한미군 우주군사령부 창설 계획까지 나오면서 한국이 미국 MD의 전초기지가 되어가고 있다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특히 그 핵심에는 성주 사드가 똬리를 틀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제임스 디킨슨 미국 우주사령관이 "우리는 북한의 모든 유형의 미사일 활동과 관련해 가능한 한 빨리 경고를 줄 수 있는 시스템 조합을 어떻게 통합할지 살펴보고 있다"고 밝힌 것도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해준다.

 

만약 성주 레이더를 MD 작전의 '두뇌'에 해당하는 C2BMC와 연동하면, 이는 미국의 명백한 약속 위반에 해당된다. 주한미군은 20179월 사드 배치 당시 성주 레이더는 오로지 북한 미사일로부터 한국을 방어하는 데에만 이용될 것이라고 밝혔었기 때문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도 있다. 미국은 MD를 확대·강화하면 북한의 핵과 미사일의 효용성이 감소되어 북핵 해결에 기여할 수 있다고 주장했었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나타나고 있다. 미국이 한일과 함께 MD를 강화할수록 북한도 핵과 미사일을 고도화하는 악순환의 확대재생산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도 국내에선 MD 논쟁마저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지금이야말로 진지하게 되물어야할 때이다. 사드 배치 당시 정부와 대다수 언론은 한국의 3분의 2가 북핵 공포로부터 해방되었다는 취지의 주장을 내놓았었다. 그런데 같은 입으로 요즘은 무슨 말을 하고 있는가? 한국전쟁 이래 최악의 안보 위기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묻게 된다. 사드를 비롯한 MD가 대폭 강화되고 있는데, 왜 북핵을 비롯한 안보 불안은 갈수록 커지고 있는가? 혹시 MD가 그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겸 한겨레평화연구소장 | 프레시안 2022.12.02.

 

 

포르노 없는 포르노 사회

몇 년 전, 한국의 먹방이 화제가 되면서 몇몇 해외 언론은 푸드 포르노를 소환하였다. BBC<저녁 식사를 방송하는 한국인들(The Koreans who televise themselves eating dinner)>(2015)은 수 천 명의 시청자 앞에서 단지 먹는 것만으로 돈을 버는 한국의 인터넷 방송을 호기심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며, 이는 일종의 관음증 혹은 푸드 포르노인지 묻는다. CNN<한국의 온라인 트렌드: 아름다운 여성의 식사를 지켜보기(South Korea’s online trend: Playing to watch a pretty girl eat)>(2014) 또한 폭식 먹방가학적 푸드 포르노에 견주었다.

 

두 기사 모두 결론부에서는 1인가구의 증가, 외로움의 확산, 별풍선 등의 디지털 금전수익 모델 및 실시간 온라인 소통같은 한국 특유의 사회, 문화, 기술적 요소로 이야기를 확장하며 새로운 인터넷 문화의 미래를 말한다. 일견 먹방은 포르노에 비교될 정도로 기괴하고 노골적이지만 나름의 한국적 맥락이 자리한다는 이야기겠다.

 

사진=gettyimagesbank

 

해당 기사를 접했을 때 푸드 포르노란 말에 충격을 받았다. 포르노가 신체의 외설적 전시와 이를 통한 잉여 향락의 추구라면 시끄럽게 쩝쩝대며 신체 기관 안으로 분주히 음식을 밀어 넣는 먹방은 포르노와 외형적으로 닮았다. 그러나 이와 같은 유사성에만 관심이 갔던 것은 아니다.

 

문화비평가 존 버거는 그의 저서 <다른 방식으로 보기>에서 서구 회화를 분석하며, “‘벌거벗은 몸은 있는 그대로 스스로를 드러내는 것이지만, ‘누드는 타인에게 보이기 위한 특별한 목적에서 전시되는 것이라 말한다. 자연적인 인체를 모사했다는 누드화가 실은 화가, 후원자, 최종적으로 그림의 소유자 및 감상자를 위해 특별한 목적으로 가공된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보기와 달리, “누드는 의복의 한 형식이었던 셈이다.

 

포르노도 마찬가지다. 포르노가 보여주는 것은 외설적 섹스만이 아니다. 포르노의 직접성, 즉자성, 자극성은 특정한 유형의 섹슈얼리티를 은폐한다. 예컨대 포르노는 가부장적 자본주의 사회에서 전능하고픈 남성의 욕망을 구현한다. 포르노 속에서 남성은 쾌락의 지배자이고, 종착지이며, 파트너에게 완벽한 오르가슴을 제공하는 초인이다. 친밀함과 돌봄에 무감하고 오로지 사정에 주력하는 목적지향성은 언제나 성과 달성을 요구받는 현대 남성성의 굴절된 모습이다.

 

특정 현상을 포르노에 비유하는 일은 그러므로 압도적인 가시성의 폭력과 그 이면에 자리한 매개 논리를 폭로하는 것이다. 문화 비평가 수잔 손탁이 <사진에 관하여>에서 사진 찍는 행위를 유사 강간(a semblance of rape)”으로 칭한 이유도 이와 같았다. 무심하게 현상을 담는 행위처럼 보이지만 사진 찍기는 세계를 소유하고픈 사진사의 욕망을 반영하며, “사진으로 찍어놓아야 할 만큼 그 피사체를 흥미롭게 만들어주는 그 무엇인가(예컨대 남에게는 고통이나 불행이더라도 내게는 흥미로움을 주는 상황)와 공모하는 행위이다. 그러니 김건희 여사가 캄보디아 봉사 활동에서 찍은 그 사진이 빈곤 포르노라는 비판에 직면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의도와 별개로, 사진 속 봉사의 구체성과 관계없이, 비참의 세계를 소유하려는 카메라가 그곳에 자리했으며 수많은 사진 중 그 사진을 세심하게 선별한 과정 자체가 피사체를 흥미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명백한 증거이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포르노의 비유를 불편해하는 모양새다. 한국 사회에서 공식적으로는 포르노가 부재한 탓에 포르노라는 명명 자체가 불쾌하게 들렸던 것 같다. 그런데 이조차도 포르노적이다. 포르노가 없다는 명백성으로 실제 한국 사회가 포르노처럼 굴러간다는 것을 보지 못하니 말이다.

 

따져보면 포르노를 특징짓는 직접성, 즉자성, 자극성이 한국 사회의 품행 원리가 된지 이미 오래이다. 각자도생하고 남보다 더 큰 목소리를 내기 위해 소리 높이며 더 큰 차, 더 우람한 집, 더 많은 돈을 위해 질주하는 모습이 낯설지 않다. 텔레비전을 지배하는 리얼리티 예능, 정치인의 정제되지 않은 언사, 이주 노동자, 여성, 지역, 성소수자 등에 대한 각종 혐오 발화 속에서 한국은 이미 외설적인 포르노 사회였다. 다만 옷을 차려 입고 그 짓을 하고 있다는 차이만 있을 뿐이었다

홍성일 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 프레시안 2022.12.03.

 

 

상대평가, 어떻게 물리·경제를 죽였나

최근 교육시민단체인 사교육 걱정없는 세상에서 상대평가가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하고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나는 이 단체의 접근방식에 동의하진 않지만, 상대평가가 물리나 경제와 같은 과목을 기피 대상으로 만드는 문제점가 있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중년층 이상은 잘 모르겠지만, 수능 성적표에는 원점수가 안 나온다. ··수는 100점 만점, 선택과목은 50점 만점인데 그중에서 몇 점을 맞았는지가 안 적혀 있는 것이다. 2005학년도부터의 일이니 벌써 오래되었다. 그 대신 석차등급, 표준점수, 백분위 등의 세 가지 상대평가 지표가 적힌다. 석차등급은 상위 4%까지 1등급, 11%까지 2등급, 23%까지 3등급. 이런 식으로 9등급까지 매기고, 표준점수는 평균점에 비해 얼마나 높거나 낮은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왜 원점수가 없어졌을까? 당시 선택과목이 대거 도입되었기 때문이다. 교육당국은 어느 과목을 선택했는지에 따라 유불리가 생기지 않도록 상대평가 지표만 제공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그 결과 물리나 경제와 같은 중요한 과목들이 외면당하기 시작했다.

 

나는 예전부터 과학 선택과목들 가운데 물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왔다. 최근에는 이공계가 취업에 유리하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인기가 다시 높아졌는데, 이공계에 물리가 중요하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런데 수능 과학 과목들에서 가장 적게 선택하는 과목이 물리다. 2022학년도 과학탐구 선택자 가운데 물리선택률은 33.1%, 화학38.7%, 생물71.5%, 지구과학72.2%와 비교했을 때 가장 적다(1인당 2과목을 선택하므로 합산하면 100%가 넘는다). 물리또한 화학, 생물, 지구과학보다 선택률이 낮다. 그런데 일본의 대입시험인 센터시험의 선택률을 보면 물리 34.5%, 화학 46.8%, 생물 18.2%, 지구과학 0.5%(2018년 기준) 물리가 두 번째다. 일본 물리가 한국 물리보다 쉬워서도 아니고, 일본인이 유난히 물리를 좋아해서도 아니다.

 

한국 수험생은 왜 물리를 기피할까?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물리를 선택한다는 인식 때문이다. 내가 물리를 선택하면 이들과 상대평가로 제로섬 경쟁을 펴야 하고, 따라서 높은 석차등급이나 표준점수를 받기 어렵겠지? 그러니 물리를 버리는 것이 합리적 선택이다! 똑같은 이유로 사회탐구 과목들 가운데 경제와 세계사가 버려졌다. 2022학년도 사회탐구 선택자 가운데 경제를 선택한 비율은 겨우 3.2%, 세계사는 9.8%로 사회탐구 9과목 가운데 각각 뒤에서 1, 2등을 차지했다. 공부를 잘하거나 덕후인 학생들이 경제나 세계사를 선택하는 것을 보고는 다들 기피한 것이다.

 

최초의 신직업 집행자

이처럼 상대평가는 합리적 과목 선택을 방해하고 교육의 다양성을 저해한다. 이런 문제를 피하기 위해 다른 나라들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 OECD 국가들 대부분이 대입시험제도를 가지고 있는데, 대세는 논술형이고 주요 선진국 중에서는 한국·일본·미국만 객관식 대입시험을 보고 있다(지난해 930일자 칼럼 수능에는 죄가 없다참조). 그런데 논술형이든 객관식이든 다들 절대평가다. 논술형은 대체로 등급제 절대평가이고, 객관식은 대체로 원점수제 절대평가다.

 

일본의 센터시험에서 물리 기피현상이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절대평가(원점수제)이기 때문이다. 미국 SAT의 경우 1년에 7회 치러지며 응시 시기와 횟수가 학생 재량인데, 선택과목의 경우 원점수는 안 나오고 200~800점 사이의 환산점수만 나온다. SAT 환산점수는 응시자 중 상대적 위치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회차별·과목별 난이도 차이를 보정(equating)하기 위한 것이다. 당연히 물리 기피 현상은 나타나지 않는다.

 

상대평가 지표 가운데 표준점수는 정시모집에 활용되는데, 또 하나의 황당한 불합리를 보여준다. 연도별 출제 난이도에 따라 표준점수 최고점이 달라지는 것이다. 2022학년도의 경우 윤리와 사상만점자의 표준점수는 66, ‘동아시아사만점자의 표준점수는 71점으로 5점이나 차이 났다. 선택과목에서 모든 문항을 맞히면 동일한 최고점을 주는 SAT(800)나 센터시험(50)과 전혀 다르다. 최근에는 수능 선택과목이 수학과 국어에도 무분별하게 도입되면서 이러한 과목 간 유불리 문제가 확대되고 있다. 나는 이것이 일종의 위헌적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교육당국이 선택과목을 지정하고 관리하는 과정에서 드러낸 난맥상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고교학점제가 수능과 맞지 않는다는 오해도 교육당국이 자초한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다.

이범 교육평론가·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경향 2022.12.03.

 

 

영원한 트레블린카

비질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도살장 앞에 가서 그곳으로 끌려가는 소, 돼지들을 마주하는 일이다. 딱 두번 참여했을 뿐이지만 상상 속에서 수시로 그날로 붙들려 간다. 그때마다 나는 어떤 질문에 사로잡혔다. 저렇게 큰 동물을 대체 어떻게 죽일까? 작은 고양이와 함께 살게 된 후 그도 역시 자신을 억압하는 존재에게 죽을힘을 다해 저항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므로 고양이가 원치 않는 일, 이를테면 약을 먹이는 일 따위를 하려 해도 협상이든 기만이든 순전한 무력이든 노력과 기술이 필요했다. 저 돼지들도 마찬가지일 텐데, 대체 저 공장 안은 어떻게 설계되었기에 저토록 빠르게 도살이 이루어지는 걸까? 바라만 보기에도 충분치 않은 시간 동안 공장 안에서 누군가는 그 속도로 동물들을 무려 살해하는 것이다.

 

동물들이 이 세계에서 어떻게 죽임을 당하는지 알아갈 때마다 나는 중얼거렸다. “이건 전쟁이잖아?”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전쟁에 대해 특별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를 보면서는 이렇게 읊조렸다. “저건 동물들의 이야기잖아?” 이유 없이 조롱당하고 무력하게 총을 맞고 피 흘리며 죽는 인간들에게서 동물이 겹쳐질 때 나는 이전보다 훨씬 생생하게 전쟁의 무시무시함을 느꼈다. 역시 이상한 일이었다. 이 연상을 이해하고 싶어서 <동물 홀로코스트>를 읽었다. 이렇게 시작하는 책이다. “동물과의 관계에서 모든 사람들은 나치이다. 그 관계는 동물들에게는 영원한 트레블린카(유대인 처형수용소)이다.” 나는 단 하나의 문장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며 책을 읽었다.

 

1865년 미국 시카고에 2300여개의 축사가 연결된 유니언 스톡 야드가 개장했다. 공장식 축산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정육업자들은 증가하는 육식 수요를 충족하고자 컨베이어벨트를 도입했다. 이 새로운 시스템이 동물을 죽이고 해체하는 속도는 놀라웠다. 기념비적 규모의 죽음이 시작되었다. 노동자들의 머리 위로 체인이 쩔꺽거리는 소리와 함께 머리 잘리고 내장 발린 동물들이 끝없이 행렬을 지어 움직였다. 이 효율적 도살에 영감을 받은 사람이 있었다. ‘자동차 왕헨리 포드였다. 젊은 시절 시카고 도살장을 방문했을 때 이 시스템에 영감을 받아 일관식 조립라인을 개발한 그는 대량생산의 시대를 열었다.

 

헨리 포드는 유럽의 도살자들에게 특별한 기여를 했다. 나치가 유대인을 죽이는 데 사용한 일관식 조립라인을 개발했고, 홀로코스트를 불러일으킨 잔악한 반유대주의 운동도 했다. 독일에 영향을 미친 미국의 이 두 가지 현상은 국민의 질을 개량시키려는 폭넓은 문화적 현상의 일부였다. 그것은 바로 우생학. 우생학은 우수한 유전자를 보존하고 열등한 유전자를 제거해야 한다는 사상으로, 최우량종만 번식시키고 나머지는 거세하고 죽이는 동물육종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었다. 우생학의 광풍으로 1930년 미국 주들의 절반 이상이 저능아, 간질 환자, 정신박약자에 대해 강제 불임 수술을 하는 단종법을 통과시켰다.

 

미국의 우생학에 깊은 인상을 받은 독일의 나치는 1939년 치명적 단계로 들어섰다. 정신적·육체적으로 지체되고 병약하여 아리안 민족의 우월성을 더럽히는 독일인들을 조직적으로 살해하는 T-4계획을 단행한 것이다. 그들은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빠르게 죽이는 방법을 토론한 결과 가스실을 고안했다. 19406개의 가스실을 개장했고 1942년까지 27만명이 살해됐다. T-4는 유대인 집단학살의 서장이었다. 미국과 독일은 금세기 대학살에 독특한 기여를 했다. 미국은 도살장을, 나치 독일은 가스실을 제공한 것이다. 수많은 동물이 네 발로 끌려간 길로 두 발의 인간들도 끌려갔다. 아우슈비츠는 실로 거대한 도살장이었다. 다만 돼지를 죽이는 대신 돼지라고 규정된 사람들을 죽였다.

 

나치가 유대인에게 했던 일들은 중단되었다. 하지만 똑같은 일이 더 빠른 속도로 동물에게 계속 자행되고 있다. 우리 모두가 의존하는 현대 기술, 그러니까 축산업이다. 세계대전의 비인간성을 상징하는 대학살이 오늘날 우리 일상을 지탱하는 기본 질서라는 사실을 자각하면, 인류 역사 최악의 범죄인 홀로코스트가 우리의 식탁 아래 거꾸로 매달려 작동되고 있다는 기이한 감각에 휩싸인다. 책을 읽으면서 사실 내가 정말로 궁금했던 건 도살장 내부가 아니라 40여년 동안 이 엄청난 학살을 전혀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내 머릿속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역사는 진보한다고 믿었다. 그 역사에 동물이 포함되지 않았을 때의 이야기다. 나는 이제 더 이상 그렇게 생각하지 않게 됐다.

홍은전 | 작가·인권 동물권 기록활동가 한겨레 2022.12.04

 

 

반윤석열, 비이재명에 갇힌 정치

한국 정치의 기우뚱한 교착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국정 지지율은 지난 730%대로 떨어진 뒤 다섯달째 20~30%대에 묶여 있다. 대선 때 표를 준 국민의 30~40%가 지지를 철회한 뒤 돌아오지 않고 있는 셈이다. 그사이 인사 실패와 이준석 축출, 폭우 속 정시 퇴근, ‘윤석열차만평 탄압, ‘××’ 욕설 논란, <문화방송>(MBC) 기자 전용기 탑승 배제, 이태원 참사 등이 벌어졌다. 윤 대통령은 반성과 사과 없이 전 정권 탓타령을 반복했다. 경제 위기 가중과 잇단 외교 실패로 정권 실력이 들통났고, ‘이상민 장관 지키기로 오만과 무책임의 민낯 또한 드러났다. 낮은 지지율은 그에 대한 국민의 싸늘한 평가를 보여준다.

 

민심의 거부 강도 또한 단단하다. 대부분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에 대한 부정평가는 60%대를 기록하고 있다. 그중에서 잘못한다는 응답은 10~20% 선인데 매우 잘못한다40~50%대다. 지지율의 회복 탄력성이 매우 낮다는 걸 의미한다. 매우 잘못한다는 사람들은 웬만해선 평가를 바꾸지 않는다. 윤 대통령이 신속하게 전면적으로 국정 기조와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면, 콘크리트 거부층으로 굳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눈길을 끄는 건 현 정권을 떠난 민심이 정착할 곳을 찾지 못한 채 떠돌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통령 지지율이 바닥을 치고 있지만, 야당이 누리는 반사이익은 미미하다. 한국갤럽 기준으로 지난 629%였던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은 이후 30%대를 회복하지만, 더 이상 치고 올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12월 첫째 주 조사에선 33%로 국민의힘(35%)보다도 2%포인트 낮았다. 대통령 지지율 추락이 민주당 지지율 상승으로 넘어가는 연결 고리가 거의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각 진영의 고정 지지층이 아닌 중도층, 스윙보터가 민주당에 마음을 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같은 조사에서 중도층의 국정운영 부정 평가 비율은 67%였지만, 민주당 지지율은 31%에 그쳤다. 윤 대통령이 잘못한다고 생각하는 중도층의 절반 이상은 민주당에도 신뢰를 보내지 않은 것이다.

몇가지 이유를 떠올려볼 수 있다. 부동산 등 전임 정권의 정책 실패와 내로남불에 대한 실망과 노여움이 남아 있기 때문일 수 있다. 야당의 비판 또한 대안과 품격을 담고 있지 않다고 느껴서일 수도 있다. 가장 큰 건 이재명 대표 사법 리스크가 발현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검찰은 이 대표의 최측근을 잇달아 구속하고, 이 대표 본인의 정치자금 의혹을 겨냥하고 있다. 이 대표를 둘러싼 의혹이 민주당의 다른 모든 측면을 가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도층은 물론 지지층 일부까지 사법적 진실이 분명해질 때까지 이 대표는 물론 민주당에 대한 지지 여부 결정을 유보할 가능성이 크다. ‘반윤석열, 비이재명의 교착 정세가 당분간 이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교착이 장기화하는 것은 민주당에 가장 나쁜 경우의 수가 될 것이다. 가장 덜 나쁜 건 이 대표의 무혐의가 빨리 확정되는 것이다. 그다음은 이 대표의 혐의가 신속히 빼도 박도 못할 정도로 인정되는 것이다. 냉정하게 말하면, 이조차도 교착이 하염없이 길어지는 것보다는 민주당에 유리하다. 적어도 사태를 수습하고 대안을 찾아 다음 총선에 임할 시간은 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검찰의 수사 상황은 객관적 증거 없이 일부 진술에만 의존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루한 진위 공방이 기소 시점에서 일단락되지 않고 재판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총선까지도 리스크가 정리되지 않을 수 있다. 민주당엔 최악이고, 정권으로선 내심 기대할 법한 시나리오다.

총선이 이제 14개월 뒤다. 뻔한 말 같지만, 중요한 선거다. 윤 정권 반년 만에 우리 사회 가치의 기둥들이 훼손되고 있다. 5년 뒤엔 나라가 어떤 모습일지 두려움마저 든다. 뚜렷한 헌법과 법률 위반이 아닌 한 탄핵이라는 비상 장치는 가동되기 어렵다. 선거를 통한 중간 평가만이 정권의 역주행에 제동을 걸 수 있다. 야당은 총선 승리에 모든 것을 걸 필요가 있다. 그러자면 민심의 유입을 막는 장애물부터 제거해나가야 한다. 당과 대표 리스크를 분리하는 것도 한 방책이다. 이 대표 자신이 어떤 방식이든 고리를 풀어주는 게 최선이다. 민심도 상응하는 평가를 내릴 것이다. 겨울이 오고 있다. 최악에도 대비해야 한다.

손원제 | 논설위원 한겨레 2022.12.04

 

국민과 싸우는 국가

지난달 25일 김진표 국회의장은 나경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과의 면담에서 저출생 문제에 대한 의견을 나누며 별안간 동성애와 동성혼을 언급했다. 이왕이면 동성 부부뿐 아니라 인종과 장애를 막론하고 구성되는 다양한 가족 모델에 재생산권과 이후의 안정적인 생애주기를 보장하겠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인지상정이겠지만, 그럴 리가. 김진표 국회의장은 의원 시절부터 보수 교계에 적극 힘을 실으며 성소수자 혐오 발언을 일삼아온 인사로, 시민사회로부터는 오래전부터 비판받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개신교 등에서 동성애·동성혼 치유회복운동을 포함해 생명존중운동으로 승화해 추진한다고 말한다. 국회의장이나 되는 이가 종교계의 움직임을 대안인 양 취급하는 배경은 차치하고라도, 어떻게 동성애와 동성혼을 치유해서 저출생 문제를 해결한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 동성애에 전파되어 결혼하지 않는 이들이 늘고, 혼인한 부부도 낙태죄가 효력을 잃은 상황에 언제든 임신 중단을 할 수 있으니 출생률이 떨어진다는 논리인가.

 

말인즉 김 의장은 저출생의 책임을 국민에게 돌리는 중이다. 국민이 잘못된 선택을 하고 있으니 교계의 생명존중운동에 미래를 걸어보자는 것이다. 그는 반인권적이라고 공표되어 이미 해외에서 금지되고 있는 전환치료치유로 포장하여 소개하는가 하면, 낙태죄 폐지를 반대해온 이들의 논리에 생명존중의 미사여구를 갖다 붙여 둘을 짝짓는다. 출생률 앞에서 국민은 재생산 도구이자 도덕적 계도가 필요한 대상에 지나지 않게 된다. 다시 말해 그는 문제 해결의 의지는커녕 문제에 접근하는 태도에서부터 국민을 배제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로 동성애가 치유되면 이성 결혼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으로 생각하는가? 생명을 존중하면 출생률이 높아진다고? 출생률을 고민하고 싶거든 적어도 임신과 출산, 양육지원을 확대하고 혼인과 가족구성의 제도적 문턱을 고려하며, 출산 여성의 경력과 안정적인 노동환경을 보장하는 등 국가의 책임을 약속하는 것이 상식적인 접근이다. 하지만 그는 정상 결혼과 출산의 궤도를 벗어난 이들에 대한 프레임 짓기를 반복한다. 무엇이 되었건 애를 낳으라고 강요하지만 출산 이후 국가가 어떤 책임을 질 것인지 일언반구 없기는 여전하다.

 

국회의장의 언사는 같은 시간 노동자에게 임금인상과 인력확충, 노동환경 향상 보장은커녕 약속을 이행하라 요구하며 파업하는 이들을 경제발전에 저해되는 집단으로 프레임 짓는 정부의 태도와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국가는 거듭 국민과 선을 긋는다. 열악한 노동환경과 연이은 인력감축으로 곳곳에 사고가 발생하는데도 국가는 출생률과 경제성장률만 외치며 결혼과 노동을 강요한다. 이쯤 되면 국가는 국민을 귀찮게 여기며 국민의 주권을 혐오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남웅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활동가 경향 2022.12.05.

 

 

파업하자

판사와 검사들은 파업을 결의했다. 법복을 입고 거리로 뛰쳐나와 행진을 하고 시위를 벌였다. 지난해 12월 파리를 비롯한 프랑스 주요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던 법조 파업 이야기다. 판검사들은 법무부 예산 감축에 항의하고 인력 충원을 요구하며 재정경제부 앞에서 항의 시위를 했다. 이들은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쉬지 않고 50건의 재판을 소화하느라 몇 시간을 기다린 사람들의 얘기를 단 7분밖에 들어줄 수 없는현실을 고발하고, 법원이 이 위험천만한 서커스를 멈춰야 한다고 호소했다. 한국에선 보기 힘든 장면이지만 사법부 노동자들과 판검사들이 함께 파업을 벌이는 것은 프랑스에선 드물지 않은 일이다. 때로는 법전을 불태우는 과격한행위도 벌어진다. ‘자영업자인 변호사들도 종종 이 파업에 가세한다.

 

프랑스는 파업하기 좋은 나라다, 그런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저 판검사들의 파업과 지금 한국의 화물노동자들의 파업이 다르지 않음을 말하려는 것이다. 판사들의 파업은 자기 노동 현장의 실태를 고발할 뿐만 아니라 업무의 과로, 과속, 과적이 어떤 사회적 위험을 초래하는지를 시민들에게 알리는 행위다. 수많은 이들의 인생과 운명을 가르는 판결이, 법리를 적용하여 판결문을 찍어내기 급급한 판결공장에서 이뤄질 때 그게 누구의 위험과 직결되는지를 묻는 것이다. 화물파업도 마찬가지다. 특히 공공부문에서 노동자 한 명이 처한 위험은 시민 수천 수만명의 안전과 직결된다. 명명하자면 이것은 사회의 붕괴에 앞서 위험을 알리는 카나리아 파업이고, ‘막을 수 있는 참사를 막기 위한 사이렌 파업이다.

 

1990년대 이후 한국 사회에서는 카나리아 목소리를 주로 노동자들이 담당했다. 공공부문에 대한 신자유주의 공격을 막는 데 가장 앞장서서 싸운 조직도 노동조합이다. 민주노총의 민영화(사유화) 반대투쟁은 시민의 안전과 권리를 수호하는 사회적 스크럼 역할을 했다. 화물연대의 파업구호도 국민에게 안전을! 화물노동자에게 권리를!”이다. 이 구호는 사회권과 시민권, 노동권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오늘날 과로·과적·과속은 화물 노동자뿐만 아니라 대다수 시민들의 삶에 얹혀 있는 불안과 고통의 이유이고 사회적 재난의 원인이며 정치참여를 가로막는 요인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1990년대 이후 노동권 투쟁은 그 자체로 시민의 정치권과 사회권을 사수하는 민주주의의 최전선이었다. 그중에서도 파업권은 노동권의 가장 중요한 요소다. 그 파업권을 분쇄하겠다고 천명하는 정부는 곧 노동권과 시민권을 박살내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시민을 공격하는 정부는 아무리 선출된 권력이라도 더 이상 정당성을 갖지 못한다.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 여당의 인사들은 화물연대 파업에 대해 노골적인 노조혐오 선동을 쏟아내고 있다. 한편으로 이것은 노조는 악이요 파업은 곧 불법이라 여기는 우파의 시대착오적인 인식을 반영한다. 하지만 대통령과 측근들의 무지와 억지의 소산이라고만은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몰라서 그러는 게 아니다. 다른 한편에는 파업권을 두고 절대 양보도 협상도 하지 않겠다는 자본의 결연한 계급적 의지가 있다. 노조의 파업에 따른 기업 손실액을 즉각 돈으로 환산하는(그 계산이 맞는지는 아무도 검증하지 않는다) 우파 경제지의 셈법은 그 의지를 정확히 반영한다(정부와 기업의 노조 파괴 정책이 노동자와 사회에 입힌 손실과 피해는 한 번도 셈해진 적이 없다).

 

영국에서 대처 정부는 신자유주의를 밀어붙이기 위해 제일 먼저 탄광노조를 박살내야 했다. 가장 강력한 노조였기 때문이다. 석탄은 모든 산업을 멈춰 세우는 힘을 가졌다. 석탄이 멈추면 영국이 멈춘다. 20세기 후반부터 본격화한 글로벌 자본주의는 물류가 움직였다. 물류가 멈추면 세계가 멈춘다. 나는 지금 정부·자본·언론 지배동맹이 화물파업을 결사 저지하려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멈춰 세우는 힘을 가진 것은 움직이는 힘을 가졌음을 보여주는 화물파업의 위력이 두렵기 때문이다. 자본과 권력이 힘을 합쳐 이렇게 노동권과 시민권을 필사적으로 억압한다면 노동자 시민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파업하자. 파업 금지에 항의하며 파업하자. 파업을 고립시키려 한다면 동조파업, 지지파업, 연대파업으로 파업을 확산하자. 더 나아가 노조무력화법, 노조파괴법인 노조법 2, 3조 개정을 위해 파업하자. 판사들의 파업은 공공부문에 대한 자본의 공격이 영역을 가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오늘 파업 금지를 용인하는 것은 내일 나의 파업권을 박탈하도록 허락하는 것이다. 함께 파업하자.

채효정 오늘의 교육편집위원장 경향 2022.12.05.

 

 

문제의 본질을 외면한 여성 탓

올해 3분기 합계출산율이 0.79명으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비혼, 비출산을 결심하는 청년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이야기도 언론을 통해 계속 언급되고 있다. 이러한 청년 여성들의 결정이 이기적이라는 비난도 종종 들린다.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어 여성들이 결혼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서 결혼 시장에서 밀려난 청년 남성들의 분노를 정책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 언론을 통해 유포되는 일도 있었다. 미디어에서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것을 행복하게 보여주는 것은 나쁜 프로그램이고 미성년자 시기부터 출산과 육아를 담당하게 된 어머니를 보여주는 것은 바람직하다는 취지의 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 발언까지 나왔다.

 

우리 미디어가 가족을 매우 중요하게 그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주말 드라마에서는 여전히 혈연 중심의 대가족이 등장하고, 아이를 갖는 것을 지상 최대의 목표로 삼는 부부의 모습을 그린다. 극적 구조를 가진 드라마 외에 결혼 생활이나 육아 현장을 보여주는 프로그램도 최근 10년 이상 꾸준히 인기를 끌어왔다. 하지만 이러한 미디어 재현에 변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15년 중반까지도 미디어 속의 성차별 모니터링 지표 중에는 여성을 출산의 도구로 묘사한다라는 항목이 있었다. 부부가 아이를 갖지 못하자 이를 여성의 책임으로 몰아 며느리에게 이혼을 강요하는 시부모의 모습이 그려지는 드라마,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남아 선호 사상을 강조하는 드라마 등이 이 기준으로 비판을 받았다. 그런데 이 지표는 2019년 이후에는 사용되지 않았다. 페미니즘 대중화 이후 우리 사회가 점차로 가족 다양성에 열리고 있고, 개인의 권리에 대한 인식이 늘었기 때문에 미디어에서 출산하지 않는 여성을 비난하는 일이 줄어들고 있다는 현실 진단에서였다.

 

이 지표를 미디어 재현뿐 아니라 정부 정책을 바라보는 도구로 다시 꺼내 들어야 할 상황이 되고 있다.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고 보건복지부 내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를 신설한다는 현 정부의 계획은 여성을 출산의 도구로 보는 과거의 시각을 반복하고 있다. 3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안에서는 여성 폭력이라는 말조차 빼 버려서 비판을 받고 있다. 여성 폭력, 젠더 기반 폭력의 문제를 제기하는 이유는 그것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의 삶, 특히 여성 노동자의 일상을 위협하여 여성이 공적 영역에서 활동하는 것을 막는 구조적 성차별이기 때문이다. 여성을 오로지 가정에 제한하면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역할로만 보기 때문에 이와 같은 구조적 성차별의 문제도 정책 계획에서 삭제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출산과 육아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은 그 맥락을 불문하고 좋은 프로그램이라는 말 역시 이렇게 여성과 출산을 연결하면서 여성의 역할을 출산의 도구로 한정하는 인식에 기반을 둔다. 현재 한국의 상황에서 미성년자가 아이를 키우는 데에는 수많은 어려움이 뒤따르기에, 정부가 이를 지원하는 복지 체계를 갖추는 것은 물론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해당 프로그램의 최근 에피소드들은 윤리적 문제가 있는 미성년자와 성인 간의 관계에서 혼전임신을 한 미성년자 여성을 자극적으로 제시하는 데 그치고 있고, 출연자에 대한 배려 역시 부족하다. 이런 문제에도 불구하고 이 프로그램이 저출생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미디어 시청자를 무비판적인 수동적 소비자로 보는 시각이자 주권자인 여성의 권리와 선택을 무시하는 생각에 기반한다. 저출생 문제는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여성 인력을 활용할 수 있는 사회 구조가 마련되지 않아서이며, 여성의 재생산권이 충분히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진단이 제시된 바 있다. 문제 해결을 위한 방향성이 제시된 상황에서도 이 문제가 여성의 탓이라는 인식을 놓지 못한 결과가 바로 0.79라는 숫자일 것이다.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여성학협동과정 부교수 경향 2022.12.05.

 

 

윤석열 대통령은 왕이 아니다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다. 국회는 국민을 대표하는 기관이다.

대한민국 헌법 3장은 국회, 4장은 정부에 관한 규정이다. 41절이 대통령, 2절이 행정부에 관한 조문이다. 대통령보다 국회가 우선한다.

만들어진 순서도 국회가 먼저였다. 일제에서 해방된 뒤 미군정을 거쳐 1948510일 첫번째 국회의원 총선거가 이루어졌다. 198명의 국회의원이 국민의 대표로 뽑혔다.

 

국회는 전문과 103조로 이뤄진 헌법을 712일 제정해 717일 공포했다. 이 헌법에 따라 720일 국회 본회의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선출됐고, 8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출범했다. 1950530일 총선 결과 이승만 대통령 재선이 어려워졌다. 이승만 대통령은 19527월 부산 정치파동을 일으켜 대통령을 국민이 선거로 뽑도록 헌법을 바꿨다. 발췌 개헌으로 불리는 1차 개헌이다. 195285일 대통령 선거에서 74.61% 득표로 당선됐다.

 

이승만 대통령은 한발 더 나아갔다. 19542차 개헌(사사오입 개헌)으로 종신 집권의 길을 열었다. 19604·19 혁명으로 무너졌다. 1961년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도 거의 비슷한 길을 걸었다. 19633공화국 헌법은 대통령 임기를 4년으로 하고 한차례 중임할 수 있도록 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1969년 개헌으로 3선이 가능하도록 했다. 1972년 개헌으로 종신 집권의 길을 열었다. 197910·26으로 무너졌다.

 

대통령과 왕의 차이가 뭘까? 대통령은 민주공화국을 구성하는 기구다.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과 마찬가지로 국민의 주권을 위임받은 선출직 공직자다. 임기가 있다. 왕은 주권자다. 임기가 없다.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은 왕의 권력을 누렸다. 국회와 여당은 통치 기구였다. 사람들은 국회를 통법부나 거수기라고 불렀다. 야만의 시대였다.

 

국민과 야당의 투쟁으로 국회가 제 위상을 되찾은 것은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과 198813대 총선으로 출현한 여소야대 국회였다. 국가의 원수이자 행정부 수반은 노태우 대통령이었지만, 국회는 민정당, 평민당,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 4당의 견제와 협력으로 운영됐다.

 

대화와 타협에 의한 협력의 정치를 정착시킬 기회였다. 19903당 합당으로 물거품이 됐다. 제왕적 대통령 시대로 되돌아갔다.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은 제왕적 대통령이었다.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대통령은 제왕적 대통령이 아니었지만 대선 전후 총선에서 이겼다. 그래도 야당과 대화하고 타협하고 양보했다.

 

202239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은 제도적으로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복원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국회는 더불어민주당 절대 우위의 여소야대였고, 20244월 총선까지는 지형이 바뀔 가능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도 취임 6일 뒤 국회 시정연설에서 지금 대한민국에는 각자 지향하는 정치적 가치는 다르지만 공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기꺼이 손을 잡았던 처칠과 애틀리의 파트너십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한껏 기대를 높였다.

 

전혀 아니었다. 이번 정기국회는 윤석열 대통령이 편성한 첫번째 예산안과 윤석열 정부의 정부조직법이 걸린 중요한 국회다. 그런데도 윤석열 대통령은 여당 지도부에 야당에 구걸하지 말라고 주문했다는 후문이다.

 

윤석열 사단이 포진한 검찰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 측근들을 줄줄이 구속하고 이재명 대표를 잡아넣으려고 한다. 문재인 정부의 해양경찰청장, 국방부 장관, 국가안보실장을 차례차례 구속했다. 이제 국가정보원장, 비서실장, 문재인 대통령을 잡아넣을 기세다.

망나니 칼춤으로 나라를 다스리겠다는 것일까? 한심하다. 이런 식이라면 5년 뒤 윤석열 정부의 장관들과 대통령실 참모들, 윤석열 대통령은 무사할 수 있을까?

 

사정이 이 지경인데도 이른바 보수 신문과 국민의힘은 대선 불복만 외치고 있다. 답답한 노릇이다. 민주당의 대선 불복이 아니라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의 야당 탄압, 국회 무시, 총선 불복이다.

 

우리는 지난 39일 선거에서 왕을 뽑지 않았다. 민주공화국의 대통령을 뽑았다. 국민을 대표하는 기관은 대통령이 아니라 국회다. 입법과 예산은 국회의 권한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회와 협력해야 한다. 국회 다수 세력인 민주당과 대화해야 한다. 아직 늦지 않았다.

성한용 | 정치부 선임기자 한겨레 2022.12.05.

 

배우 윤석열의 감독은 누구인가

배우 윤석열. 행여 발끈할 일이 아니다. 대선 후보시절 그가 자처한 말이다. 문화방송을 공격하듯 울뚝밸 치밀 일도 아니다. 언론이 권력을 감시하거나 비판할 때 목적은 타도가 아니다. 권력을 쥐면 누구나 지니게 마련인 오만함에 성찰을 촉구하기 위함이다.

 

윤 대통령은 124일 화물연대 파업에 대해 장관들과 대책회의를 열고 “6일 민노총 총파업이 예정돼 있다근로자의 권익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 파업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단언했다. 이어 조직적으로 불법과 폭력을 행사하는 세력과는 어떠한 경우에도 타협하지 않겠다업무개시명령이라는 강제노역을 확대하겠다고 위협했다.

 

어떤가. 특정 신문의 사설과 어금버금하다. 기실 한두 번이 아니다. 그 신문의 사설이나 칼럼의 논리를 그대로 따라하는 언행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물론, 대통령은 자신이 주체적으로 말했다고 여길 터다. 그는 올해 1월 당시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이 후보가 선대위가 해달라는 대로 연기만 잘하면 선거는 승리할 수 있다고 말했을 때, 그와 결별했다. 하지만 김종인은 억울했다. 그로부터 6개월 전에 윤석열이 캠프에 합류한 인사들과 만난 자리에서 나는 이제 앞으로 배우만 하겠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김종인이 대선 후보는 배우 역할만 해야지, 지금처럼 자신이 감독과 배우 역할을 다하려고 해서는 안 되고 그렇게 되지도 않는다고 지적할 때도 자신은 배우 역할을 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선거를 두 달 남기고 배우론이 다시 나오자 하릴없었다. 윤석열이 김종인의 아바타가 아님을 보여주려면 불가피했다. 그가 차라리 김종인의 아바타가 되었다면 적어도 지금처럼 대한민국이 삼중 위기를 맞지 않을 터다.

 

[관련 칼럼 : 손석춘 칼럼-‘윤석열이 왜 이러지? 삼중 위기’]

 

윤석열과 특정신문은 화물연대를 귀족노조로 몰아가며 월수입을 한껏 부풀리지만 공공운수노조가 공개했듯이 하루 14~15시간 운전하면서도 수입은 300만 원 남짓이다. 시급으로 따지면 최저임금 수준이다. 대체 귀족노조 운운하는 정치 모리배들은 차치하고라도 고위 관료들과 언론인들의 월수입은 얼마인지 묻고 싶다. 다름 아닌 그들이야말로 노동귀족 아닌가. 더구나 화물연대 파업의 일차적 책임은 지난 6월의 합의를 이행하지 않은 정부에 있다. 당시 국토교통부와 화물연대는 안전운임제를 지속하고 적용 범위 확대를 논의키로 합의했다. 보수나 진보를 떠나 생각해보라. 어렵게 이룬 그 합의를 내팽개치면 어떻게 해야 옳은가. 화물연대가 정치파업을 한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 파업을 정치화하고 있지 않은가.

 

무엇보다 권력과 언론이 민주노총과 다른 노동인들을 갈라치기하며 마치 후자의 권익을 옹호하는 듯 언구럭부리는 작태는 도저히 지나칠 수 없는 선동이다. 당장 대우조선 하청노동인들의 파업을 그들이 어떻게 다뤘는지 돌아볼 일이다. 손해배상소송까지 거침없는 그들이 비정규직 운운하며 민주노총을 몰아치는 모습은 얼마나 가증스러운가. 민중을 개돼지로 보지 않는 한 감히 언죽번죽 내세울 수 없는 기만이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조합원들이 1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전국노동자대회를 열고 노조법 2·3조 개정, 화물 안전운임제 확대 등을 촉구하며 행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만여 명의 민중들은 3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이대로는 살 수 없다!’며 전국민중대회를 열었다. ‘민생 파탄을 호소하고 민생개혁입법 쟁취와 이태원 참사 책임 촉구, 민주주의 파괴 중단, 굴욕외교 저지를 외쳤다. 민주노총이 밝혔듯이 오늘 화물연대를 공격하는 윤석열 정권은 내일은 노동시간과 임금체계 개악을 강행할 것이며 다음날은 비정규직의 양산과 차별을 제도화할 것이다. 이미 경제사회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에 친자본 먹물들이 포진했다.

 

배우 윤석열의 감독은 특정신문이 아니다. 그 신문이 독자적인 권력을 지닌 것도 아니다. 광고주인 자본을 내놓고 대변할 뿐이다. 그렇다면 문제의 본질은 분명하다. 윤석열은 지금 본인이 의식하지 못할 뿐 자본의 배우로 으스대고 있다. 듣그럽겠지만 진실이다. 열정을 다해 연기를 펼치는 은막의 배우들에게 혹 결례를 했다면 양해를 구한다.

손석춘 칼럼니스트철학자 미디어오늘 2022.12.05

 

 

 

법대로 하자

헌법 제21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32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사회적·경제적 방법으로 근로자의 고용의 증진과 적정임금의 보장에 노력하여야 하며,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최저임금제를 시행하여야 한다.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다. 33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 제14(업무개시 명령) 국토교통부 장관은 운송사업자나 운수종사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집단으로 화물운송을 거부하여 화물운송에 커다란 지장을 주어 국가경제에 매우 심각한 위기를 초래하거나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으면 그 운송사업자 또는 운수종사자에게 업무개시를 명할 수 있다.

 

왜 공교육은 정치를 가르치지 않는가? 왜 주권자에게 나라를 다스릴 기본 소양을 가르치지 않고, 헌법을 가르치지 않는 것인가? 결사의 자유는 헌법 제21조가 보장한 대한민국 모든 국민의 권리다. 그런데 공정하게 각자도생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결사라면 학을 뗀다. 지난 4일 장동혁 국민의힘 의원(충남 보령·서천)은 화물연대 파업에 대해 국가 경제를 망치는 불법 폭력파업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 강성 귀족노조를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장 의원은 부장판사 시절 전두환씨의 재판 불출석을 허가해 줬던 법조인 출신 국회의원이다. 같은 날 검사 출신인 윤석열 대통령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타인의 자유를 빼앗고 경제 전체를 볼모로 잡고 있다. 법치주의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라고 했다. 법조인한테는 법을 멋대로 해석할 특권이라도 있나?

 

역시 검사 출신인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화물자동차법 제14조에 의거 업무개시 명령을 내린다고 하지만, 과연 화물연대가 정당한 사유없이 파업한 것인가? 헌법 제32조는 국가는 근로자의 고용의 증진과 적정임금의 보장에 노력하여야 하며”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다라고 명시한다. 십수년간 화물 운송료 인상률은 물가 인상률을 밑돌고, 화물노동자들이 12시간이 넘는 장시간 운전과 과적·과속에 시달리며 목숨 걸고 일하는 동안 국가는 무엇을 했나? 화물연대는 2005년부터 안전운임제(표준요율제)를 주장해왔고 2020년부터 3년간 한시적으로 컨테이너·시멘트 단 2개 품목에 한해 부분 도입됐다. 현재 안전운임제를 적용받는 화물차는 26000여대로 전체 화물차의 5.7%에 불과하지만, 도입 이후 장시간 운전·과적 등 화물노동자와 도로 안전을 위협하던 폐단들이 눈에 띄게 줄었다. 일몰제를 폐지하고, 업종을 확대하라는 요구가 왜 정당한 사유가 아닌가?

 

가장 경악스러운 점은 윤석열 정부가 화물연대를 노동조합법에 따른 노조로 보지 않고 파업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2018년 전국학습지노조 재능교육지부는 10년 넘긴 법정 투쟁 끝에 대법원에서 노조법상 근로자의 지위를 인정받았다. 앞서 재능지부는 2007년부터 2013년까지 2000일 넘는 천막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대법원은 학습지 교사들은 재능교육 본사와 고용계약을 체결하지 않아 근로기준법의 적용은 받지 않지만, 노동 3권을 보장받아야 하며 노조할 권리가 있다고 판시했다. 2020년 부산고등법원은 전국대리운전노조의 노조법상 근로자성을 인정했다. 즉 법원은 근로계약에 의하지 않고 노무를 제공하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노동자)들의 노조 설립을 인정한다. 법조인 출신 정치인들이 최근 판례를 무시하고 불법 파업 운운하는 것은 노골적으로 국민을 속이고 여론을 호도하겠다는 수작이다. 파업 과정의 불법 행위는 현행법에 따라 처벌하면 된다. 하지만 화물연대의 파업은 명백한 합법이며, 헌법이 보장한 노동 3권에 의거한 것이다.

 

현재 화물노동자의 90% 이상이 위탁이나 지입 등 계약으로 노무를 제공하는 특고노동자다. 유엔 전문기관인 국제노동기구(ILO)는 윤 정부가 화물연대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업무개시명령을 내린 것이 국제노동기준 위반이며, ILO 사무총장 직권으로 해당 사안에 긴급 개입한다고 밝혔다. ILO경제 핵심 산업에서 장기간 총파업이 진행되어 국민의 생명·건강·안전을 위태롭게 할 수 있는 상황을 초래할 경우를 제외하고 업무복귀명령은 결사의 자유 원칙에 반한다고 판단한다. 멀쩡한 파업을 불법이라 하지 말고, 위법한 자신의 입부터 단속하라. 그리고 거울을 보라. 법치주의를 위협하는 자는 거기 있다.

장하나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 경향 2022.12.06.

 

 

짐이 헌법이다?

헌법은 한 나라의 가치와 규범을 규정한 최고의 법률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헌법을 위정자들이 필요에 따라 헌신짝처럼 짓밟아 왔다. 이 때문에 헌법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미국과 달리 헌법을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실감하지 못한다. 이승만은 재선이 어렵게 되자 1952년 국회의원들을 체포하는 등 부산정치파동이라는 공포정치를 통해 개헌을 했고 2년 뒤에는 헌법이 금지한 3선을 위해 사사오입개헌을 했다. 박정희도 19693선 개헌을 했고 1972년에는 종신집권을 위해 유신개헌을 했다.

 

예외적으로, 최고위정자가 헌법을 수호한다고 나선 것은 두 번 있었다.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 반대, 왜곡 또는 비방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 첫 번째는 197418일 박정희 정권이 발표한 악명 높은 긴급조치 1호로, 유신헌법 수호에 나선 것이다. “나는 현재의 헌법을 수호할 것입니다.” 두 번째는 1987413일 전두환이 발표한 호헌선언이다. 국민들의 직선제 요구에 대해 대통령을 체육관에서 뽑는 체육관헌법을 수호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처럼 한국현대사가 최고위정자에 의한 헌법유린의 역사에 다름 아니지만, 예외적으로 최고위정자가 헌법수호를 외치고 나선 두 사례 역시 반민주헌법을 지키겠다는 독재수호 선언에 다름 아니었다. 다시 말해, 우리 현대사에서 최고위정자에 의한 헌법수호선언은 결코 좋은 것이 아니었다.

 

헌법수호 문제를 꺼낸 이유는 윤석열 대통령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전용기에 MBC를 배제한 것에 대해 MBC가 한·미 정상회담과 관련해 우리 국가안보에 핵심축인 동맹관계를 사실과 다른 가짜뉴스로 이간질하려고 아주 악의적인 그런 행태를 보였다대통령의 헌법수호 책임의 일환으로서 부득이한 조치였다고 해명했다. 이를 듣자 떠오른 것이 바로 헌법수호의 비극적 역사였다. 현 헌법은 여러 문제가 있어 개헌이 필요하지만, 두 차례의 호헌선언 헌법처럼 독재헌법은 아니다. 따라서 두 경우와 달리 수호할 가치가 있다. 언론도 입법, 사법, 행정과 함께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4개의 기둥이며 언론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언론의 책임이 민주주의를 떠받드는 기둥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는 윤 대통령의 주장은 맞다. 나아가 대통령실이 MBC와 관련해 발표한 10개의 반박문 중 상당부분은 필자도 동의하는 부분이다. 예를 들어, MBC가 음성전문가들도 확실하게 단정하지 못하는 대통령 발언을 자신 있게 자막을 달고 맥락의 이해를 돕는다며 추정에 기초해 없는 발언까지 괄호를 쳐서 자막을 단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는 대통령실이 언론중재위원회 제소 등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보도정정을 요구할 일이지 대통령이 직접 나서 제재할 일이 아니다. 대통령이 헌법재판소도 아니고 MBC의 보도가 헌법을 침해하는 것이며, 따라서 MBC를 대통령전용기에 태우지 않는 등 정상적 취재로부터 배제하는 것이 헌법수호를 위해 부득이한 일이라니, 도저히 말이 되지 않는다. 무엇이 헌법을 위협하는 행동인지를 대통령이 제멋대로 판단하겠다는 것인가? 자신이 평생을 검사로 일했으니 무엇이 반헌법행위인지 잘 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위험하기 짝이 없는 발상이다. 게다가 이 문제로 대통령실이 MBC 기자와 설전을 벌이고 도어스테핑을 중단하는가 하면 여권에서는 이번 기회에 MBC를 사영화(privatization, ‘민영화라고 번역하지만 사기업의 사유재산이 된다는 점에서 사영화가 정확한 번역임에도 여론을 긍정적으로 유도하기 위한 의도적 오역이다)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말이 안 나온다. 특히 걱정인 것은 내가 헌법이고 법이라는 발상은 이에 그치지 않고 화물연대파업에 대해 국제협약이 금지한 강제노동강제 등 준법주의를 내세운 국정에 대한 일방적인 강경대응으로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현 헌법은 1973년 긴급조치 당시 유신헌법, 1987년 호헌선언 당시 헌법과 달리, 지킬 가치가 있는 민주헌법이지만 윤 대통령의 헌법수호발언은 무엇이 헌법을 해치는 것인지를 자신이 결정하겠다는 것으로, 내용적으로는 1973년 긴급조치와 1987년 호헌선언과 마찬가지로 독재수호선언에 다름 아니다. 최근 들어 이를 부정하는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지만, 절대왕정시대를 대표하는 프랑스의 루이 14세는 짐이 곧 국가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윤 대통령의 발언은 다음과 같은 생각에 다름 아니다. “짐이 헌법이다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정치학 경향 2022.12.06.

 

 

전임자 흔적 지우기와 생각하지 않는 관료제

윤석열 정부는 임기를 시작하며 다시 도약하는 대한민국, 함께 잘 사는 국민의 나라를 국정운영 비전으로 내세웠는데, 용산 집무실 이전과 전임 정부의 뒤를 캐는 데만 힘을 쏟고 있다. 집권 초반임에도 고정 지지층 30%에 머무는 지지율은 시민들과 공유하는 비전이 없음을 뜻한다.

 

행정 혼란은 누구의 책임인가

안타깝게도 동행·매력 특별시를 내세운 오세훈 서울시장의 행보도 비슷하다. 보궐선거에 당선되어 임기를 먼저 시작했음에도 새로운 비전보다는 전임 시장의 핵심사업들을 없애고 시민단체들을 비난하느라 초반의 에너지를 다 쓰고 있다. 서울시는 오랫동안 운영되어온 마을공동체나 도시혁신과 관련된 사업들을 다른 대안 없이 종료하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해서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관련 센터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갑작스레 직장을 잃었고, 이런저런 사업에 참여하던 주민들은 혼란에 빠졌다.

 

이런 행태가 이전에 없었던 특별한 일은 아니다. 보통 선출직 공직자들이 교체되면 전임자들의 성과는 원점에서 재검토되었고, 전임자들이 열심히 추진했던 사업들은 사라지곤 했다. 새로 부임한 공직자들은 자신의 대표업적이 될 만한 대형사업들을 추진하면서 관련 부서를 만들고 예산을 집중시켰다.

 

문제는 이런 관행이 정치인 개인에게는 좋을지 모르나 시민들에게는 좋지 않다는 점이다. 시민의 안전과 관련된 사업이나 복지의 수준과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사업들이 합리적인 이유 없이 중단되거나 축소되면 시민들은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일궈놓은 좋은 사업들조차 전임자가 선호했다는 이유로 사라진다. 이것이 과연 민주주의인가?

 

더구나 사업을 축소하고 전환하는 과정에서 비합리적인 일들도 속출하고 있다. 최근 대전광역시는 차별금지법을 노골적으로 반대했던 목사가 대표로 있는 단체에 대전시인권센터를 위탁했다. 다른 지역에서도 해당 사업들과 관련이 없거나 경험 없는 단체들이 중간지원조직을 위탁받는 일이 생기고 있다. 시민참여와 관련된 기구나 사업들의 예산이 이유 없이 대폭 축소되었다는 소식도 들린다. 단체장이 바뀔 때마다 이런 소란이 반복되고 있다.

 

선출직 공직자의 욕심과 잘못된 판단을 제어하는 내부장치가 관료제인데, 한국에서는 이마저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제어는커녕 선출직의 문제를 더욱더 확대시키는 것이 한국 관료제의 현실이다. 잘못된 판단을 견제하기는커녕 누가 당선되든 그 사람의 구미에 맞는 정책을 미리 만들어놓고, 관료들이 앞장서서 전임자의 흔적을 지운다.

 

생각하지 않는 관료의 위험성

관료제는 정책의 연속성과 안정성을 보장하고 선출직 공무원의 교체가 가져올 위험을 줄여야 하는데, 외려 위기를 심화하고 있다. 흔히 관료제는 분노도 편견도 없이(sine ira ac studio)’ 움직이며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업무를 합리적이고 효율적이며 공정하게 수행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무고한 시민들이 목숨을 잃었던 세월호 참사에서도, 이태원 참사에서도 내부의 문제를 인정하며 책임지겠다는 관료는 등장하지 않는다. 이래서야 관료제가 시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을까?

 

관료들의 목표가 공공성이 아니라 승진이 될 때, 제도는 쉽게 부패한다. 정부의 정책이 시민의 안전과 복지, 권리 강화보다 특정 정치인의 성과로 향할 때 권력은 위험해진다. 통치의 문제가 드러나면 스스로 판단하고 거부하고 외부로 공론화하는 관료들이 있어야 그 정당성이 인정된다. 반대 경우라면 관료제와 통치의 정당성은 부정될 수밖에 없다.

 

인류 역사에서 권력자의 명령만을 따랐던 관료들은 어떤 길을 걸었을까? 사상가 한나 아렌트가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운영했던 독일의 전쟁범죄자 아이히만에게서 봤던 건 악의 평범성만이 아니었다. 아이히만은 국가의 명령을 받았다는 이유로 상당한 열정과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서 유대인 수백만명을 가스실로 인도했다. 탁월한 계산능력에 비해 그는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못했고 점점 더 타인과 소통하지 못했다.

 

한국에서도 그런 아이히만들이 늘어나고 있다

하승우 이후연구소 소장 경향 2022.12.06.

 

무릎을 꿇는 이들

 

지난 1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용산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유가족 간담회에서 유가족이 무릎을 꿇고 진실규명을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랑하는 아들을 떠나보낸 아버지는 정치인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엎드려 빌었다. 아들이 돌연 세상을 떠난 이유와 국가 기능이 작동하지 않은 이유를 철저히 밝혀달라고. 특히, 여당 지도부인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주호영 원내대표 이름을 부르며 간곡히 호소했다. “진실을 밝혀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그의 울음 위로 기자들의 카메라 셔터 소리가 길게 이어졌다. 지난 1일 국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이날 용산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유가족 간담회에서 이종철씨는 무릎을 꿇고 이번 참사의 철저한 조사를 촉구했다. 그는 지난 1029일 이태원 참사로 아들(이지한씨)을 잃었다. 이씨가 무릎을 꿇고 눈물로 호소할 때, 함께 자리한 참사 희생자 유가족 10여명은 회의장 책상에 얼굴을 묻고 흐느꼈다. 그 울음이 이씨의 비통한 목소리에 포개졌다.

 

이날 간담회는 반쪽 행사였다. 여당인 국민의힘 소속 특위 위원들이 모두 참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당 위원들은 전날 더불어민주당이 발의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건의안에 반발해 간담회 불참을 선언했다. 그런 여당 지도부를 향해 이씨는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간청하며 무릎을 꿇고, 엎드려 빈 것이다.

 

이태원 참사가 일어나기 정확히 8년 전 그날도 다르지 않았다. 20141029,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가족인 이남석씨는 당시 여당 대표였던 김무성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대표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씨는 세월호 특별법이 제정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김 대표에게 호소했다. 약속된 만남이 아니었다. 그날, 시정연설을 하러 국회를 찾은 대통령이라는 사람은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그곳에서 농성 중인 유가족들을 향해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대통령의 의도적인 무시에 이씨는 국회의사당 앞에서 차에 오르는 여당 대표에게 매달린 것이다. 이씨는 당시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김 대표가 참 미웠지만, 내가 힘없는 아빠니까, 자식 죽은 이유도 밝히지 못하는 무능한 아빠니까 무릎을 꿇었던 것이다.”

 

이들 부모를 바라보는 일은 참담하다. 기어이 돌아가 껴안을 자식이 사라진 세상에서, 부모는 무릎을 꿇고 간절히 호소한다. 진상을 밝혀달라고, 책임자를 처벌해달라고. 죽음의 원인을 밝히지 않고서는 자식을 떠나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부모들은 지옥 같은 하루하루를 견뎌왔다. 8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질 수 없는 마음이다.

 

비극은 참사 그 자체에만 있는 게 아니다. 진상을 밝혀내지 못하는 것, 책임자를 단죄하지 못하는 것 역시 비극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세월호 참사를 통해 똑똑히 확인했다. 그리고 이런 비극이 되풀이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국가가 제 기능을 못해 158명이 서울 한복판에서 길을 걷다 숨진 지 한달이 훌쩍 지났다. 행정안전부 장관, 경찰청장 등 정작 무릎을 꿇어야 하는 윗선가운데 누구 하나 책임지는 이 없고, 어렵사리 첫발을 뗀 국정조사도 여야 힘겨루기로 제자리걸음이다. 그러는 사이 에스엔에스(SNS)나 관련 기사 댓글에 오르내리는 피해자와 유가족을 향한 혐오 발언이나 2차 가해, 책임 전가는 늘고 있다. 책임져야 할 사람에게 책임을 묻지 않은 결과다. 세월호 참사 때처럼 시간이 흐를수록 유가족 등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 무도한 자들의 공격은 거세질 게 뻔하다.

 

하지만 또 하나 분명한 사실이 있다. 철저한 조사와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유가족의 마음은 쉽게 꺾이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삶을 충만하게 채워줬던 자녀를 늘 가슴에 품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사실을 세월호 참사 유가족에게서 배웠다. 박요섭씨는 말했다. “지켜주지 못해서 아이한테 한없이 미안해요. 그래서 결코 포기할 수 없어요. 희찬이만 생각하면 어떤 공격도, 아무리 힘 있고 돈 많은 사람도 두렵지 않아요. 수년 동안 버틸 수 있었던 힘이죠. 어떤 싸움도 해낼 자신이 있어요. 하늘에서 보고 있을 테니.”

 

8년 전 그들처럼 사랑하는 가족과 작별할 수 없는 이들의 고요한 투쟁이 시작됐다. 5일 기준, 희생자 87명의 유족이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가족 협의회’(가칭) 준비모임에 참여했다.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은 이제부터다.

김경욱 | 스페셜콘텐츠부장 한겨레 2022.12.06.

 

이재명 사법리스크방탄 민주당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권력은 세다. 국회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의석을 가진 거대 야당의 대표라서만이 아니다. 대선 낙선자로선 역대 최다 득표를 했다. 명분 약한 당대표 경선에 나서 77.77%의 경이로운 득표율로 당선됐다. 최고위원과 주요 당직은 친명계가 완전히 장악했다. 당의 의사결정 과정에 영향력이 큰 강성 팬덤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다. 실로 야당 대표로서 넘사벽의 지배력을 구축했다. 과거 양김(김영삼·김대중)도 야당 총재 시절 이만한 권력을 누린 적이 없다. 독재정권 시절에도 야당에는 견제와 대안 역할을 하는 비주류가 건재했다. 지금 민주당에는 비주류라 할 세력이 없다. 이 대표는 야권의 언터처블 권력이다.

 

이 대표는 취임 때 표방한 유능하고 강한 정당을 이끌 자산을 갖고 있다. 민주당이 의지를 가지면 국회의 권능인 입법과 예산에서 못할 게 없다. 윤석열 정부의 입법을 죄다 막을 수도 있다. 국회 동의가 필요한 대통령 인사도 민주당의 문턱을 넘어야 가능하다. 예산안도 마찬가지다. 작정하면 독자적인 민주당 수정안을 채택할 수도 있다. 거대 야당과의 타협 없인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입법과 예산에서 성과를 낼 방도가 없다.

 

달리 말하면 거대 야당과의 협치와 대화가 필수지만, 윤 대통령은 애초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 1야당을 겨냥한 검찰 수사가 파상적이고, 윤 대통령은 취임 6개월이 지나도록 야당 지도부와 공식 회동한 적이 없다. 작금의 왕성한 관저 식사 정치에도 야당의 자리는 아예 없다. 유신정권 시절 박정희 대통령도 정국을 풀기 위해 야당 대표와 영수회담을 가졌다. 아무리 정치 문외한인들 국정의 핵심인 입법과 예산이야 어찌되든 상관없다는 듯 이리 만용을 부리기 힘들다. 협치를 팽개쳐도 헤쳐나갈 수 있다고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일 터이다.

 

바로 힘센 이재명 민주당의 존재다. 민주당 전체가 이재명 사법 리스크방어에 사활을 걸고 있다. 윤 대통령으로선 야당의 반대와 방탄때문에 국정 성과를 내지 못한다는 구실이 생기는 셈이다. 실상 취임 6개월 동안 윤석열 정부의 법안이 한 건도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 데에는 야당의 반대도 있지만, 정부·여당이 법안 통과를 위해 아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게 더 근인이다. 예산안 심의가 시작되자마자 준예산부터 거론하는 정부·여당이다. 아마도 지금 정부·여당에 필요한 것은 국정 목표를 실현할 입법이나 예산이 아니라, 이를 가로막는 거대 야당의 존재다. 협치의 실패와 국정의 부실, 개혁의 실종을 야당의 반대와 방탄탓으로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검찰과 사정(司正) 외에는 통치 동력이 없는 윤석열 정부로서는 이보다 좋은 핑계가 없다.

 

윤석열 정권이나 검찰의 정치적 목표는 이재명 제거가 아니라 민주당을 방탄 정당으로 만드는 것이다.”(김종민 의원) 검찰발 사정 정국의 정곡을 짚는 말이다.

양권모 편집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권력은 세다. 국회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의석을 가진 거대 야당의 대표라서만이 아니다. 대선 낙선자로선 역대 최다 득표를 했다. 명분 약한 당대표 경선에 나서 77.77%의 경이로운 득표율로 당선됐다. 최고위원과 주요 당직은 친명계가 완전히 장악했다. 당의 의사결정 과정에 영향력이 큰 강성 팬덤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다. 실로 야당 대표로서 넘사벽의 지배력을 구축했다. 과거 양김(김영삼·김대중)도 야당 총재 시절 이만한 권력을 누린 적이 없다. 독재정권 시절에도 야당에는 견제와 대안 역할을 하는 비주류가 건재했다. 지금 민주당에는 비주류라 할 세력이 없다. 이 대표는 야권의 언터처블 권력이다.

 

이 대표는 취임 때 표방한 유능하고 강한 정당을 이끌 자산을 갖고 있다. 민주당이 의지를 가지면 국회의 권능인 입법과 예산에서 못할 게 없다. 윤석열 정부의 입법을 죄다 막을 수도 있다. 국회 동의가 필요한 대통령 인사도 민주당의 문턱을 넘어야 가능하다. 예산안도 마찬가지다. 작정하면 독자적인 민주당 수정안을 채택할 수도 있다. 거대 야당과의 타협 없인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입법과 예산에서 성과를 낼 방도가 없다.

 

달리 말하면 거대 야당과의 협치와 대화가 필수지만, 윤 대통령은 애초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 1야당을 겨냥한 검찰 수사가 파상적이고, 윤 대통령은 취임 6개월이 지나도록 야당 지도부와 공식 회동한 적이 없다. 작금의 왕성한 관저 식사 정치에도 야당의 자리는 아예 없다. 유신정권 시절 박정희 대통령도 정국을 풀기 위해 야당 대표와 영수회담을 가졌다. 아무리 정치 문외한인들 국정의 핵심인 입법과 예산이야 어찌되든 상관없다는 듯 이리 만용을 부리기 힘들다. 협치를 팽개쳐도 헤쳐나갈 수 있다고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일 터이다.

 

바로 힘센 이재명 민주당의 존재다. 민주당 전체가 이재명 사법 리스크방어에 사활을 걸고 있다. 윤 대통령으로선 야당의 반대와 방탄때문에 국정 성과를 내지 못한다는 구실이 생기는 셈이다. 실상 취임 6개월 동안 윤석열 정부의 법안이 한 건도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 데에는 야당의 반대도 있지만, 정부·여당이 법안 통과를 위해 아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게 더 근인이다. 예산안 심의가 시작되자마자 준예산부터 거론하는 정부·여당이다. 아마도 지금 정부·여당에 필요한 것은 국정 목표를 실현할 입법이나 예산이 아니라, 이를 가로막는 거대 야당의 존재다. 협치의 실패와 국정의 부실, 개혁의 실종을 야당의 반대와 방탄탓으로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검찰과 사정(司正) 외에는 통치 동력이 없는 윤석열 정부로서는 이보다 좋은 핑계가 없다.

 

윤석열 정권이나 검찰의 정치적 목표는 이재명 제거가 아니라 민주당을 방탄 정당으로 만드는 것이다.”(김종민 의원) 검찰발 사정 정국의 정곡을 짚는 말이다.

 

이 대표와 민주당이 추진하는 민생 정책과 입법, 정부 견제, 실정 비판, 대통령 주변의 심각한 의혹 제기 등이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유도 방탄프레임 때문이다. 정부·여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숨만 쉬어도방탄용이라고 몰아세운다. 이태원 참사에 대한 정당한 추궁과 국정조사 요구조차 방탄으로 씌운다. 진즉 문책했어야 할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문제도 방탄 논란으로 덧칠되게 만들었다. 참사 정국마저 이재명 사법 리스크에 대한 맞불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을 타개하지 못하면, 민주당에는 만사휴의다.

 

방탄 정당의 굴레를 벗지 못하면, 민주당은 더는 국민의 신뢰를 얻는 데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민주당의 민생 정치와 입법 대안, 정권 견제가 방탄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태원 참사의 엄중함을 모르고,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 기막힌 상황에서 윤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상승하는 믿기지 않는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와 방탄 민주당이 무능하고 뻔뻔한 윤석열 정부를 부조하는 형국이다. 어쩌면 적대적 공존이라고 해야 할 판이다.

 

이 대표는 엊그제 취임 100일을 맞아 기자회견 대신 최고위원회에서 소회를 밝혔다. 아마도 대장동 사건 등 검찰 수사에 대한 답변을 피하기 위해서였을 터이다. 마냥 회피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이 대표 스스로 자신의 사법 리스크와 당을 분리, 전향적인 입장 표명이 있어야 한다. 너무도 불확실한 당대표의 사법 리스크향배에 민주당의 명운을 걸어서는 안 된다.

양권모 편집인 경향 2022.12.07

 

 

포르투갈과 한국

122, 카타르 월드컵에서 한국의 16강 진출을 결정하는 포르투갈과의 경기가 있었다. 실낱같은 기적이 마지막 순간에 이루어져 포르투갈을 2-1로 이겨, 한국은 12년 만에 16강에 올랐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포르투갈 사람인 것도 유별난 인연이고, 8강에 오르는 문턱에서 만났던 브라질도 포르투갈의 옛 식민지였다. 유럽 대륙의 서쪽 끝자락에 있는 포르투갈과 직선거리로 1이상 떨어진 한반도 사이에도 괴테가 말한 어떤 친화력이 있는 것 같다.

 

축구로 맺은 포르투갈과의 인연은 1966년 여름, 영국에서 열렸던 월드컵 대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는 한반도의 남쪽 팀이 아니라 북쪽 팀이었다. 많은 포르투갈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경기였다. 당시 강호 이탈리아를 예선에서 꺾고,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8강에 오른 북한은 포르투갈을 맞아 전반전에 세 골을 연속으로 먼저 넣었으나 연이은 실점으로 3-5로 졌다.

 

한반도의 땅을 최초로 밟은 서양인도 캄보디아에서 중국을 거쳐 일본 나가사키로 가던 배가 풍랑을 만나 1604615, 통영 해안에 표류했던 포르투갈 상인 주앙 멘데스다. 중국, 일본, 그리고 아프리카 선원들과 함께 조선 수군에 체포되어 한양으로 압송된 멘데스 일행은 관리들의 심문을 받고 중국으로 추방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는 제주도에 표류했다가 기록을 남긴 네덜란드인 하멜보다 반세기 전에 조선 땅을 밟았다. 포르투갈이 일본, 중국, 동남아시아와 남인도 사이에 있었던 무역을 지칭했던, 이른바 남만무역(南蠻貿易)’을 주도했던 시기였다.

 

2006년 통영시는 이 사건을 기록한 기념비도 세웠다. 그러나 거의 같은 시기에 큰 민족적인 비극이 발생했다. 임진왜란 때 적게는 2~3만명, 많게는 10만명이 넘는 조선인 포로, 이른바 피로인(被擄人)이 일본에 끌려갔다. 이 가운데 7500명 정도만이 어떠한 방식으로든지 귀환했다. 이들을 본국으로 송환하려는 조선의 공식적인 쇄환(刷還)정책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죽지 않고 살아 돌아온 이들을 맞이한 조국의 반응은 절개를 버렸다는 싸늘한 시선과 함께 온 사회적 냉대였다.

 

포르투갈, 강국 틈새서 생존 부심

가장 불행한 운명을 맞이한 포로들은 일본, 포르투갈, 스페인, 네덜란드와 청나라 상인들에 의해 아득히 먼 땅, 이탈리아와 포르투갈까지 팔려나갔다. 네덜란드 화가 루벤스가 남겼던 소묘의 모델로 알려진 안토니오 꼬레아’(1606)는 그때 이탈리아로 팔려 온 노예였다.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포르투갈로 팔려온 조선인 노예에 대한 기록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흥미로운 사실은 포르투갈에 팔려온 중국인 노예들 가운데 유난히 안토니우라는 이름이 많다. 중국인과 조선인이 확실히 구별되지 않았던 상황이었기에 이들 가운데는 조선에서 끌려온 사람들이 적지 않게 섞여 있지 않았나 하는 추측도 해보게 된다.

 

이번 경기 시작 전 연주된 포르투갈의 국가 아 포르투게자는 애국가와 비교하면 아주 전투적이다. “바다의 영웅/ 고귀한 민족/ 용맹한 불멸의 조국이여/ 오늘 새로이 일어나라/ 빛나는 포르투갈이여/ 기억의 짙은 안갯속에서/ 오 조국이여/ 그대를 승리로 이끌 위대한 선조의 목소리를 느껴라.”

 

그러나 공식적인 이 국가 이상으로 포르투갈 사람들이 사랑하는 제2의 국가가 있다. 1974425, 40년 이상이나 지속한 살라자르의 독재를 무너뜨린 청년장교들이 주도했던 카네이션 혁명의 시작을 알렸던 노래 그란둘라, 빌라 모레나. 주제 아폰수(1929~1987)1964년에 작사와 작곡한 이 노래는 오랫동안 금지되었다.

 

1933년에 집권한 살라자르가 추진했던 광업과 농업의 개발정책에 따라 리스본에서 멀지 않은 남쪽 지방 그란둘라에 광부와 공장노동자, 벼농사에 종사하는 농업노동자들이 이주했다. 그들의 삶은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비참했다.

 

바로 이들의 평등한 사회로 향한 꿈과 투쟁을 그렸던, 도입부가 인상적인 행진곡풍의 투쟁가다. “그란둘라/ 햇볕에 그을린 곳/ 박애의 땅/ 민중이 네 속에서 힘을 가진 도시/ 네 속에서 민중이 힘을 가진 도시/ 그란둘라/ 햇볕에 그을린 곳/ 구석마다 친구/ 모든 얼굴에 평등/ 그란둘라/ 햇볕에 그을린 곳/ 박애의 땅/ () 나이를 알 수 없는 상수리나무 그늘 속에서/ 나는 맹세한다/ 그란둘라/ 네가 원하는 대로/ 그란둘라/ 네가 원하는 대로/ 나이를 알 수 없는 상수리나무 그늘 속에서.”

 

이 노래를 들으면서 나는 1970년대 초부터 애창되었던 아침이슬과 함께 5·18 민주화운동 직후에 나온 님을 위한 행진곡을 떠올리게 된다.

 

특히 님을 위한 행진곡에 대해서 합창이냐 제창이냐는 형식을 두고 정치적인 공방이 오랫동안 지속했다. 언제 이 노래도 그란둘라, 빌라 모레나처럼 모든 사람으로부터 사랑받고 불리는 제2의 애국가가 될 수 있을지.

 

살라자르는 군부 출신이 아니라, 원래 경제학 교수였다. 그러나 군부, 가톨릭 교회, 귀족과 중상층 그리고 왕당파 등의 지지를 기반으로 해서 독일의 나치즘과 이탈리아의 파시즘에 버금가는 에스타두 노부’(새로운 체제)라는 독재체제를 수립했다.

 

파스칼 메르시어(페터 비에리)의 소설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묘사된 것처럼 비밀경찰(PIDE)에 의한 정치적 반대자에 대한 탄압도 무자비했다.

 

유신체제를 떠올리게 하는 이 암울한 40년의 세월에 종지부를 찍은 카네이션 혁명이 끝난 후 근 50, 포르투갈 민주주의의 현주소는 어떤가. 다른 유럽국가와 달리 포르투갈에는 그동안 극우세력이 정치무대에 등장하지 못했다. 최근에 이런 상황에도 변화가 오기 시작했지만, 민주주의가 불안정해졌다는 뜻은 아니다. 정치권의 부정부패와 사법기관의 비효율성에 문제가 있음에도 포르투갈의 민주주의는 지속 가능한 상태에 있다. 특히 언론의 자유는 북유럽권의 몇 나라와 함께 세계 최고의 수준에 있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중 갈등 속 우리에겐 타산지석

내가 사는 동네에는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에서 온 은퇴자들이 많이 산다. 복잡한 유럽의 역사가 남긴 흔적이다. 15~16세기의 대항해시대를 열었던 포르투갈은 최초의 글로벌 제국이었지만 후속 주자였던 이웃 강대국 스페인, 프랑스 그리고 영국과 긴장과 갈등 속에서 항상 살았다. 따라서 이들과의 복잡한 관계를 어떻게 정립하느냐는 왕정이나 공화정을 막론하고 사활적인 문제였다.

 

스페인 왕국으로부터 포르투갈 왕국이 1668년 독립했을 때 영국의 힘을 빌렸다. 나폴레옹의 침공을 받아 1807년 포르투갈 왕이 자국의 식민지 브라질로 망명의 길을 떠났던 때도 마찬가지였다. 1차 세계대전 때 포르투갈은 중립을 선포했으나 자국의 아프리카 식민지를 지키기 위해, 결국 독일과 대치했던 영국 편에 섰고, 적지 않은 희생도 치렀다.

 

2차 세계대전 때의 상황도 비슷하다. 살라자르도 개전 초 중립을 선포했지만, 미국에 대서양에 있는 포르투갈령 아조렌 섬의 군기지 사용을 허락했다. 그러나 뒤로는 무기생산에 필요한 텅스텐을 독일에도 제공했다.

 

리스본은 당시 연합국과 독일 간의 치열한 첩보전이 벌어진 무대였고, 나치를 피해 미국을 비롯한 제3국으로 망명의 길을 찾았던 사람들에게는 희망의 땅이었다.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의 소설 <리스본의 밤>이나 험프리 보가드와 잉그리드 버그먼이 주연한 영화 <카사블랑카>에도 리스본에 관한 이야기가 그래서 많이 나온다.

 

강대국 틈새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취할 수밖에 없었던 포르투갈의 이중적인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갈수록 심화하는 미·중 간의 갈등구조 속에서 한국의 좌표를 스스로 정립하기 위한 노력에 하나의 본보기라는 생각도 든다.

 

이번 한국과 포르투갈의 경기를 보면서 90분 안에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뜻으로 자주 언급되는 축구공은 둥글다는 말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와 함께 한때 세계를 경략했던 포르투갈이 어떻게 역사와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축구공이 둥근 것처럼 우리가 사는 둥근 지구 위에는 영원한 중심, 불멸의 제국이 있을 수 없다는 사실도 확인하게 된다.

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 사회학 교수 경향 2022.12.07.

 

 

어디서 죽을 것인가 .

올해 첫 칼럼을 쓰면서 죽음과 가까워지자고 결심했으니 마지막 칼럼도 죽음 이야기로 마무리해보려고 한다. 어디서 죽을 것인가.

 

글 쓰는 영국 의사 헨리 마시의 <참 괜찮은 죽음>에는 어머니의 마지막에 관한 기록이 나온다. 20년 전 치료받았던 유방암이 간으로 전이돼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가 죽음을 맞기로 결정한 곳은 40년을 지내온 아름답고 포근한 침실이었다. 벽난로 선반에는 어머니가 수집해온 작은 장식품들이 놓여있고, 크고 높다란 창문으로는 주일마다 다녔던 교회와 나무들이 내려다보이는 방. 아침저녁으로 작가 본인과 간호사인 누이가 어머니를 보살피며 간호하면서 죽음을 준비했다. 그렇게 몇주일동안 가족과 시간을 보내며 맑은 정신으로 죽음의 과정을 걸은 어머니는 마지막에 모국어인 독일어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멋진 삶이었어. 우리는 할 일을 다했어.”

 

와우.... 참 괜찮은 죽음을 맞기는 이미 글렀군. 우리집 침실 창문에서 보이는 거라곤 아파트 앞동 뷰뿐인 데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의사나 간호사가 돼 내 마지막을 보살피기를 기대하기보다는 내가 수능시험을 준비해 의사가 돼 임종 직전 모르핀 투여 조절을 스스로 하는 게 더 현실적이겠어.

 

나이가 들어 병원이나 시설에서 죽고 싶지 않다는 건 많은 이들의 소망이다. 병원에 며칠만 입원해도 앞동 뷰, 옹벽 뷰라도 내 집만 한 데가 없다는 걸 절감하는데, 생의 마지막을 무표정하고 냉랭한 시설에서 맞는다고 생각하면 간이역 대합실에서 맞는 죽음처럼 쓸쓸하게 느껴진다.

 

2017년 통계자료(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노인 3명 중 한명이 요양병원, 요양원에서 생을 마감한다고 했으니 지금은 더 늘었을 것이다. 2018년 노인이 사망 전 10년 동안 입원한 일수가 요양병원 평균 460, 요양원 904일에 달했는데 이 역시 해마다 늘고 있다니 변화가 없다면 내가 팔순을 넘겼을 때는 노인 대부분이 요양원에서 한 십년 살다가 죽는 게 당연해질지 모르겠다.

 

그러나 내 집에서 내가 죽겠다는 소망은 말처럼 단순하지 않다. 시설 입소는 대부분 자식들이 내린 결정인데, 그 자식들이 후레자식이라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엄마가 시설로 옮겨져 돌아가시기까지 과정을 쓴 권혁란의 <엄마의 죽음은 처음이니까>를 보면, 부모를 시설에 보내기까지의 고뇌가 잘 드러나 있다. “(바쁜 자식들 탓에) 매일매일 혼자 방에 갇혀 있는 노인들이나 그 노인들을 두고 자기 삶을 사는 자식들이나 누굴 탓할 게 아니었다. 누가 학대할 마음으로 부모를 붙잡아 두겠는가. 어느 부모가 자식을 괴롭히려고 숨쉬고 움직이겠는가. 한 공간에 다른 존재 둘이 갇혀 살다 보면 둘 다 나쁜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특히 병으로 더 많은 돌봄이 필요한 엄마를 가족이 보살핀다면 누군가의 희생을 전제로 한다. 앞서 어머니의 참 괜찮은 죽음을 쓴 헨리 마시처럼 2주짜리 희생이면 참 괜찮은 헌신이겠지만 1, 2년 이어지다 보면 그 누군가의 삶은 크게 망가질 수밖에 없다. 스무살 딸에게 내가 아프거나 치매 걸리면 안간다고 우겨도 요양원으로 보내라고 당부하는 작가와 마찬가지로 나는 내 자식에게 그런 희생을 요구하고 싶지 않다.

 

선택지는 정녕 이 둘밖에 없는 걸까? 가족 등골 뽑거나, 시설에 들어가거나. 가족 등골 뽑는 건 극강의 이기적인 외동을 양산한 우리 세대에는 선택지도 아니니 결론은 하나인 건가. <집에서 혼자 죽기를 권하다>의 우에노 치즈코는 노인간병보험(개호보험)을 보완 개선하면 가능하다고 말한다. 2000년 개호보험 제도를 도입한 일본보다는 늦었지만 우리도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있고 지난해 시작된 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에는 살던 곳에서 나이들기라는 개념이 도입됐다. 이참에 방문진료와 돌봄, 주치의 제도 등이 퍼졌으면 좋겠지만 2차 베이비붐 세대(1968~1974년생)는 국가재정 등골브레이커라는 낙인이 이미 찍혀 있으니 우리집 안방의 앞동 뷰를 언제까지 감상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년과 죽음이 효용을 다한 폐기물 처리과정이 아니라면 어디서 살다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새로운 상상, 새로운 선택지가 필요하다. 우리 모두가 노인에 한발짝 더 다가가는 내년에는 치매에 걸리느니 안락사로 죽겠어라거나 가족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좋은 죽음수준을 넘어서는, 죽음에 관한 깊고 다양하고 솔직한 이야기들이 더 많이 이뤄지길 바란다.

김은형 | 문화부 기자 한겨레 2022.12.07.

 

 

20년 후 양산시 하나가 사라진다

2040년 경남 인구가 2020년 대비 317000명 줄어들 것이라는 추정치가 나왔다. 경남도가 최근 통계청 시군구추계프로그램을 활용해 발표한 수치다. 100만 도시 창원은 87만 명으로 쪼그라들고, 인구가 계속 늘 것만 같던 김해도 6만 명 줄어든다고 한다. 양산, 산청, 의령 3곳 외에는 모두 인구가 지금보다 줄어든다는 암울한 전망이다.

 

고령화는 더 심각하다. 경남 중위연령(총인구를 연령순으로 나열할 때 정중앙에 있는 사람의 연령)202045.1세에서 204058.6세로 올라간다. 경남도 나이가 40대 중반에서 50대 후반이 된다는 얘기다. 시군은 더 심각하다. 합천 69.9, 산청 69.3, 의령 69.8세로 3개 시군의 나이는 70대에 근접한다. 경남 유소년인구(014)와 생산연령인구(1564)18개 시군 모두에서 줄어든다.

 

<경남도민일보>가 지난해 2001년부터 2021년까지 20년간 인구 추이를 분석한 결과보다 감소치가 크다. 당시 분석에서는 2001년 대비 2021년 인구가 219338명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종전 20년보다 향후 20년 인구 감소치가 10만 명이나 더 많다. 지역소멸이 그만큼 가속화될 것이라는 점을 방증하는 셈이다. 거제시(23만 명) 하나가 사라졌고, 양산시(35만 명) 하나가 더 사라진다고 생각하면, 섬뜩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역소멸대응기금이나 고향사랑기부제는 중요하지만, 그 정도로 해결할 수 없을 지경까지 온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윤석열 정부는 수도권 규제완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부울경특별연합도 무산 수순이다. 경제동맹이든, 행정통합이든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정부든, 경남도든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 대비는 잘 하고 있는가.

민왕기 자치행정1부기자 경남도민 2022.12.07.

 

 

충격적인 ‘38%’, 저질 정치 근거지는 양극단 국민

요즘 민주당은 너무 이상해서 몇 분에게 왜 그러느냐고 물어보았다. 이재명 대표에 대한 수사가 끝날 때까지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이 첫 번째 대답이었다. 국회에서 정부 법안은 다 막고 민주당 법안은 밀어붙이는 것이 이 대표를 수사하는 윤석열 정권에 대한 유일한 압박 카드이고 이를 풀려면 양측이 이 대표 수사 문제를 타협해야 한다고 했다.

 

두 번째 답은 지지층이 이렇게 하기를 원한다는 것이었다. 사실 첫 번째 답과 두 번째 답은 같은 것이다. 민주당은 이 대표에 대한 묻지 마 방탄이 지지층에게 환영받지 못하면 당장 그만둘 것이다. 민주당 지지층 전부가 이 대표 지지는 아니지만 윤 대통령에 대한 반감만은 공통적으로 크다. 문제의 핵심은 지지층이란 뜻이다. 그러니 앞으로 상당 기간 민주당의 무조건 반대와 입법 폭주가 이어질 것이다.

 

2022년이 끝나가는 지금 가장 기억에 남는 정치 사건이 하나 있다. 물론 윤 대통령 당선이 가장 큰 사건이지만, 자꾸 떠올라 이게 뭐지하게 되는 다른 일이 있다. 대선 직전이었다. 두 개의 여론조사가 거의 동시에 나왔다. 질문도 거의 같았다. 하나는 대장동 특혜 의혹의 몸통이 누구냐이고, 다른 하나는 대장동 특혜 의혹이 이재명 게이트냐, 윤석열 게이트냐였다. 당연히 이재명이라고 답한 사람이 많았다. 놀라운 것은 37.9%37.3%대장동 의혹의 몸통이 윤석열이고 대장동은 윤석열 게이트라고 답했다는 사실이다. 호남에선 이 비율이 50%를 넘었다.

 

당시 이재명 후보는 과거 윤석열 검사가 어느 저축은행 관련자 수사를 하지 않아 대장동 의혹의 씨앗이 됐다면서 윤석열 게이트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2011년 대장동 일당보다 먼저 대장동 땅 작업을 한 업자가 있었다. 이 업자가 동원한 돈 상당액이 이 저축은행 대출이었다. 저축은행 부실 사태를 수사하게 된 윤 검사가 박영수 전 특검의 부탁을 받고 이 대출을 중개한 사람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수사와 대장동 특혜 사건은 관련이 있을 수가 없다. 대장동 땅 작업을 했던 이 업자는 나중에 자금 문제로 대장동 사업권을 남욱씨 등 대장동 일당에게 넘겼다. 사업권을 확보한 대장동 일당이 2014년 이재명 성남시장과 연결되면서부터 대장동 특혜 사건이 시작된 것이다. 땅 작업을 한 최초 업자는 당연히 이 특혜 사건과 상관이 없다. 일각에선 윤 검사와 법조 기자단 간사였던 김만배씨의 친분도 문제 삼는다. 이 역시 대장동 일당에게 천문학적 특혜를 안겨준 사업 구조를 허가한 사람이 이재명 시장이라는 본질과는 상관없는 문제다.

 

생업에 바쁜 대중이 이 뉴스들을 다 따라가며 파악할 수는 없다. 하지만 대장동 사건이 윤석열 게이트라는 주장이 억지라는 것은 상식으로도 알 수 있다. 윤석열이 없었어도 대장동 사건은 벌어졌다. 이재명이 없었으면 대장동 사건은 벌어지지 않았다.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38% 가까운 국민이 대장동 사건은 윤석열이 몸통이고 윤석열 게이트라고 했다. 아무리 편싸움을 하는 대선 와중이고 이 대표 지지자들이 답하기 곤란한 질문이었다고 해도 잘 모른다는 답을 놔두고 윤이 몸통이라고 답했다. 이 대표에게 죄가 없다는 주장은 할 수 있다. 그게 아니라 윤이 몸통이란 것은 흑과 백을 뒤집는 것으로 정치 호불호와 차원이 다르다. 20세 이상 38%1640만명이다. 놀라움을 넘어서 충격이었다.

 

천안함 괴담, 사드 전자파 괴담, 세월호 잠수함 충돌 괴담, 각종 민영화 괴담 등 상식 밖의 괴담이 힘을 발휘하는 바탕에 이 ‘38%’가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민주당 의원들도 이 괴담들을 진실로 믿는다기보다는 ‘38%’를 의식하고 그들에게 영합하는 측면이 있다고 본다.

 

우리 사회에는 이 ‘38%’의 정반대 편에도 상당한 규모의 사람들이 있다. 이들의 주장도 상식 밖이거나 도를 넘는 경우가 많다. 국민의힘도 이들 눈치를 보고 있다. 민주화 이후 대세가 된 저질화 정치의 뒤에는 이렇게 사실(事實)과 합리보다 내 편과 감정을 앞세우는 양극단의 국민이 있다. 이들이 양식(良識)이라곤 없는 저질 정치인들의 근거지다.

 

이 양극단 거대 대중의 등장은 편 갈라 패싸움하는 대통령제의 필연적 결과이기도 하다. 대통령제 미국도 비슷한 홍역을 앓고 있다. 지난달 상하원 선거 공화당 출마자 절반 이상이 바이든이 당선된 지난 대선을 믿지 않는다고 답했다. 미국 민주주의를 스스로 부정하는 답이지만 트럼프 지지자들에게 영합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우리 사회 양쪽에 이토록 거대한 규모의 비이성적 대중이 버티고 있는 이상 합리적인 민주 정치는 발을 붙이기 어렵다. 정당과 의원들만 탓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패싸움을 조장하는 제도부터 바꿔나가야 한다. 그런 점에서 여야 일부 의원들의 국회의원 소선거구제 폐지 주장을 정치권이 그냥 흘려보내지 말았으면 한다.

양상훈 주필 조선일보 2022.12.07.

 

 

10·29참사의 재구성서울 완전독점과 지방 소멸

참사 대기·잠재 도시 서울

지난 여름 부산에서 차를 몰고 서울을 향하는데 네비게이션이 처음 보는 길로 안내한다. 경치는 좋고 길은 뻥뻥 뚫린다. 네비게이션을 보니 동탄·봉담고속도로란다. 화성시 봉담읍과 지금 동탄신도시라 부르는 옛 동탄면을 연결하는 고속도로다. 그러니까 일개 읍과 얼마 전까지 면이었던 동네 사이에 고속도로가 생긴 것이다.

 

수도권 제1순환고속도로에 이어 제2순환선이 생기면서 수도권은 서울을 중심으로 종으로, 횡으로, 원으로 연결되는데 무수한 읍··동이 국도도 아니고 고속도로로 연결된다. 예를 들면 화성시 송산동과 마도면, 광주시 곤지암읍, 남양주시 화도읍, 포천시 소흘읍. 수도권을 제외한 우리나라 모든 지역은 시·군 수준이 아니면 고속도로를 가질 수 없지만 수도권은 읍··동도 고속도로를 가질 수 있다. 놀랍다. 수도권은 대한민국이 아닌가? 아니, 지방이 대한민국이 아닌 것이다.

 

서울이 작동하는 방식

서울역, 명동, 광화문, 강남역, 양재역에는 무수한 빨강, 초록 버스들이 쉴 새 없이 사람을 실어 나른다. 북으로는 파주, 의정부, 서로는 일산, 김포, 동으로는 구리, 하남, 남으로는 분당, 수지, 수원, 용인, 동탄, 평택까지 무수한 노선이 심장이 피를 뿜어내듯 사람들을 퍼나른다. 출퇴근 시간, 그 수많은 버스들이 경부선을 오가며 쉴 새 없이 줄지어 달리는 풍경은 한 마디로 장관이다.

 

정부는 계속해서 서울 인근에 신도시를 만들었다.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경제적으로 밀려난 이들이 서울 밖으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다. 과거 '이부망천(이혼하면 부천, 망하면 인천)'이란 말이 유행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서울을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뻗어나간다. 강남 살다 한 번 망하니 수원, 두 번 망하니 동탄이었다는 이도 있다.

 

그렇지만 서울이라는 유기체가 계속 유지되기 위해서는 인력이 필요하다. 잠은 서울 밖에서 재우더라도 일은 서울에서 시켜야 한다. 그래서 신도시 교통대책에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문제는 그래서 신도시는 베드타운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신도시 주민들은 결국 서울에서 일하기 위해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처럼 피곤에 절은 몸을 이끌고 시골길을 걷는 고난의 행군을 감내해야 한다.

 

공포스러운 밀집이 일상이 된 서울

정말 문제는 이들이 잠에서 깨어 다시 서울로 몰릴 때이다. 참사 당일 이태원에 몰린 인파가 이미 심상치 않았고 수많은 신고가 있었으나 정부는 가장 기본인 이태원역 무정치 통과 조치부터 취하지 않아 결국 사고가 터졌다. 그런데 지하철역 밀집 인파는 이미 오래 전부터 위험수위였다. 서울 지하철9호선은 '공중부양'으로 유명하다. 사방으로부터의 압박에 양팔이 묶이고 이미 숨쉬기도 힘든, 도저히 더는 탈 수 없다고 느끼는 순간, 아무도 내리지 않는 동작역에서 무려 10여명이 밀고 들어온다. 이게 가능한 게 서울이다.

 

출퇴근시간 1호선 서울역은 거대한 개미굴을 보는 듯하다. 이미 오래전 2호선 홍대역에서는 잠시 공포감을 경험하기도 했다. 주말 저녁 홍대역에서 내려 밖으로 나가려 계단을 오르는데 '인파의 물결' 수준을 넘어 사람들이 한 덩어리 떡이 되어 밀려 올라가듯 했다. 순간 나는 ' 저 위 한 사람이 넘어지면?'이라는 공포스러운 호기심이 스쳐지나갔다.

 

문제는 이거다. 서울사람들은 이러한 공포스러운 밀집에 익숙해져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9호선 동작역에 정차한 지하철 문이 열렸지만 아무도 내리지 않아 승객들이 콘크리트벽처럼 서있음에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십여 명이나 밀고 들어오는 저 놀라운 담대함이 이미 서울인들에게는 일상적 삶의 방식이 되어버린 것이다. 서울은 이미 참사 대기 도시였던 것이다.

 

경제의 수도권 집중, 문화의 서울 집중

사실 경제 측면에서만 보면 서울이나 경기, 인천이나 별 차이가 없다. 우리나라 시가총액 10대 기업의 본사와 공장이 수도권 곳곳에 분포해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인천에 본사와 공장이 있고 최근 경기도 외곽인 화성, 오산, 평택, 안성에도 대기업 공장과 연구소가 즐비하게 들어서고 있다. 이들 지역은 베드타운이 아니라 이른바 정주 여건이 갖춰진 곳이다. 즉 그 지역에 눌러 살 수 있도록 주거와 직장과 학교와 소비 등 가족에게 필요한 기본적 삶의 조건이 갖춰진 곳이다.

 

모든 지자체가 갈망하는 정주여건이 갖춰졌음에도 발생하는 문제는 바로 문화가 없다는 것이다. 여가시간에 즐길거리와 나이트라이프가 없다. 신도시마다 호수공원과 산책로가 있지만, 또 동네마다 삼겹살집과 치킨집이 있지만, 요즘 사람들의 취향, 특히 젊은 층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킬 리 만무하다. 미술관도 없고, 박물관도 없고, DDP, 코엑스도 없고, 익선동, 성수동 같은 '힙플'도 없다. 결국 공연·전시, 쇼핑, 나이트라이프, 축제를 즐기기 위해 또다시 서울로 먼 길을 나설 수밖에 없다.

 

이미 특정 지역 밀집이 포화상태를 넘어 폭발할 것 같은 위험수준인 상태에서 축제 등의 문화적 매개가 더해지면 터질 수밖에 없는 게 서울의 현실이다. 서 있다가 목숨을 잃는 일이 수원이나 고양에서 가능할 리 없다. 이번 월드컵 거리응원도 전적으로 서울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문화다.

 

최대 희생자는 수도권 거주자

사람들이 놓치고 있는 게 있다. 20대 희생자, 특히 여성 희생자가 많았다고들 했다. 10·29참사 희생자 158명 중 수도권 거주자는 110명으로 70%이고, 수도권에 거주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외국인 희생자 26명을 포함하면 136명으로 86%를 넘어선다. 여성 희생자가 65%, 20대 희생자가 67%. 결국 10·29참사 최대 희생자는 수도권 사람들이다.

 

이쯤 되면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제까진 지방 소멸을 이야기했다. 2의 도시라는 부산의 또다른 이름이 '노인과 바다'. 대학 진학 때 1차 역외 이주가 발생하고 졸업 후 취직 때 2차 이주로 인해 젊은 인구가 수도권으로 지속적으로 빠져 나가는 것은 비단 부산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방은 이미 오래 전 소멸의 길에 들어섰는데 그 결과 서울은 미어터지더니 끝내 사고가 났다. 이제는 서울인구의 안전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또 프레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서울 부동산이 비싸서 경기도로 밀려났는데 신도시 아파트값이 폭등했다더라 식의 저렴한 이야기를 떠들어댈 게 아니라 그 멀리 이사를 갔음에도 아등바등 서울에 매달려 살아야 하는 구조와 이유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출퇴근에 네 시간, 다섯 시간을 허비해야 하는 나라가 또 어디에 있을까. 최근 서울로 출퇴근하는 경기도민들을 한 방 먹이는 일이 있었다. 경기도 내 좌석버스들의 입석금지 조치. 출퇴근 시간이어도 만석이면 무정차 통과다. 나도 겪어봤다. 한 대, 두 대, 나를 못 본 척 지나가는 버스를 바라보는 심정은? 무시당하는 기분.

 

서울의 독점과 수도권 착취 어디까지?

서울의 자원독점은 끝이 없다. 자본 뿐 아니라 질 좋은 노동력도 독점한다. IT와 미디어산업 인력은 상암동, 강남, 판교에 몰려 있다. 스타트업도 서울이다. 9월 기준 신규 벤처투자액 61%를 서울 홀로 차지했다. 문화도, 예술도, 공연·전시, 나이트라이프, '힙플' 거의 모두 독점하고 있다. 교육은 말 할 것도 없다.

 

최근 내가 유의 깊게 지켜본 분야는 언론과 유튜브의 결합이다. 개인 또는 민간 유튜브방송은 서울의 완전 독점체제다. 특히 라디오방송들은 유튜브와 결합하면서 새로운 전성시대를 맞고 있다. 재미있는 변화는 과거 시사 프로그램의 경우 진행자 혼자 스튜디오에 앉아 미리 섭외된 게스트와 전화로 인터뷰하는 방식이었는데 지금은 전화 인터뷰가 사라지고 모든 게스트들이 잔뜩 멋을 내고 직접 출연한다. 마치 텔레비전처럼 촬영하고 나름 인기인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게스트가 직접 출연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서울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처럼 광주의 교수가, 부산의 시민단체 활동가가, 대전의 중소기업 대표가 라디오에 나와 전화인터뷰하는 일은 사라졌다. 모든 분야에서 수도권 제외한 지역은 이제 씨가 말랐다. 서울의 완전 독점이다.

 

10·29참사의 이유는 밀집된 군중을 분산시키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밀집의 결과는 압사다. 국토균형발전 뿐 아니라 서울시 거주자의 안전을 위해서도, 또 서울에서 일하고 자주 서울을 찾는 경기도민의 안전을 위해서도 인구를 분산시켜야 하고 따라서 당연히 자원을 분산시켜야 한다. 베드타운 만들어 잠자리만 분산시킬 게 아니라 일자리도 분산시키고 문화도 함께 분산시켜야 한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는 교육도 분산시켜야 한다.

 

분산과 균형 고민해야

비록 구상 수준에서 끝났지만 이러한 문제를 예상하고 박정희가 수도 이전을 계획했었다. "군대를 동원해서라도 수도 이전을 막고 싶다"던 이명박과는 차원이 다른 지도자다. 세월이 흘러 노무현이 행정수도를 이전하고 권역별로 혁신도시를 추진했다. 공공기관들을 분산 배치해 지역의 기업, 대학, 연구소와 협력하고 수준 높은 주거·문화·교육 등의 정주 여건을 갖춘 미래도시 프로젝트였다. 미래를 고민한 통찰력의 지도자다.

 

노무현의 국토균형발전은 대한민국의 영원한 숙제다. 지금도 저항이 많다. 그러나 우리가 목도하는 것은 서울의 완전독점과 수도권 착취, 그리고 지방소멸이다. 그 과정에서 10·29참사가 벌어졌다. 심상치 않다.

 

그러고 보니 오는 19일은 노무현이 제16대 대통령에 당선된 지 딱 20년 되는 날이다.

정희준 준 전 동아대 교수 | 프레시안 2022-12-08

 

윤석열·한동훈은 강인한 사람일까

한국의 풍경 : 대통령실은 6일 대통령 관저 이전에 무속인 천공이 관여했다는 의혹을 <티비에스>(TBS) 라디오 방송에서 제기한 김종대 전 정의당 의원과 진행자 김어준씨를 고발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같은 날 청담동 술자리 의혹을 제기한 김의겸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유튜브 매체 시민언론 더탐사’(더탐사)를 고소하고 10억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다. 7일에는 한 장관이 자신의 주거를 침입했다며 더탐사를 고발한 사건과 관련해 경찰이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한 장관은 지난 9월 자신의 차량을 미행한 더탐사기자를 스토킹 혐의로 고소하기도 했다.

 

미국의 풍경 : 메릭 갈런드 법무부 장관은 지난 10월 언론에 대한 소환, 압수수색, 그밖의 강제적인 민형사상 조처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규정을 발표했다. 갈런드 장관은 지난해 연방 검사들에게 뉴스 미디어를 상대로 법적 강제조처를 사용하지 말도록 지침을 내렸는데, 이번에 이를 공식 법제화한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의 이런 조처는 전임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자신에 비판적인 언론을 국민의 적으로 적대시하던 국정 방향을 정상화하는 발걸음이다. 바이든 대통령도 지난 1월 보수성향 매체인 <폭스뉴스> 기자의 도발적 질문에 혼잣말로 욕을 했다가 사과한 일도 있었다. 하지만 개인감정과 국가 정책은 달라야 하는 법이다. 갈런드 장관은 이번 발표에서 독립적인 언론은 우리의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데 필수불가결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규정은 연방 검사들과 언론 관계자들의 협업으로 다듬어졌는데, 이 과정에 참여한 언론자유를 위한 기자위원회사무총장은 언론 기관의 권리를 보호하는 데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반겼다.

 

이와 별개로, 미국 법무부는 2014년부터 해마다 언론 종사자를 상대로 이뤄진 조사, 체포, 기소 등 법적 조처 내역을 담아 연례보고서를 내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 때 연방 검찰이 <폭스뉴스> 기자의 전자우편을 압수수색하려다 비판을 받자 수사가 중단되고 법무부 장관이 사과한 일이 있는데, 이후 언론에 대한 수사 현황을 투명하게 공개하라는 요구가 일었기 때문이다. 보고서에는 사건의 개요와 함께 법무부 지휘라인의 누가 해당 조처를 승인했는지도 자세히 기록돼 있다. 연례보고서를 보면, 트럼프 행정부 때 증가했던 언론 보도 관련 수사는 바이든 행정부 들어 사라졌다.

 

물론 언론 보도와 무관한 일반 범죄 수사는 여전히 이뤄진다. 최근 연례보고서에는 내부자 거래, 돈세탁, 아동학대 등 18건이 포함돼 있다. 이 가운데 스토킹 혐의에 대한 수사 사례도 눈에 띈다. 한 뉴스 미디어 종사자가 스파이웨어를 몰래 심거나 소셜미디어 계정을 해킹하는 등의 방법으로 여러 명의 인물을 괴롭힌 혐의를 받았다. 법무부는 뉴스 보도와는 무관한 행위라고 판단하고 그의 전자우편에 대한 압수수색을 승인했다.

 

미국이라면 한동훈 장관이 고소한 스토킹 사건에 대한 강제수사나 기소를 법무부가 승인할지 궁금하다. ‘더탐사쪽은 한 장관의 동선을 파악하는 취재의 일환이었다고 주장한다. 스토킹처벌법의 정의를 보더라도, 스토킹은 정당한 이유 없이따라다니는 등의 행위로 상대방에게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언론의 취재 행위가 정당한 이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언론의 자유는 심각하게 위축될 것이다. 한 장관이 출퇴근길에 언론사 차량 때문에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느꼈다는 것도 납득되지 않는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역주행하기는 했지만, 공직자를 감시·비판할 자유를 최대치로 보장하는 게 미국의 오랜 전통이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공직자에 대한 명예훼손을 이유로 한 형사처벌은 물론 손해배상도 사실상 어렵게 만든 획기적인 판결(‘뉴욕타임스 대 설리번’·1964)에서 공직자를 이렇게 표현했다. “가혹한 기후에서도 번창할 수 있는 불굴의 용기와 인내를 가진 강인한 사람.” 국민으로부터 막대한 권한을 위임받아 국민의 삶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공직자는 당연히 일거수일투족에 감시와 비판을 받아야 하고 그 과정에서 설혹 허위이거나 과장된 비난을 받더라도 감내하며 대처해야 한다는 뜻이다. 처벌의 위협으로 감시와 비판이 위축될 가능성만 생겨도 민주주의가 숨 쉴 수 없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 대 설리번판결문을 쓴 루이스 브랜다이스 대법관은 이런 말을 남겼다. “질서는 처벌의 공포를 통해서만 달성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악마의 대변자에 대응하는 법은 선의 대변자들을 내세우는 것이다. 공적인 토론에서 발휘되는 이성의 힘을 믿고, 법으로 침묵을 강요하는 일은 피해야 한다.”

 

의혹 제기가 터무니없는 것이라면 손쉽게 반박할 수 있다. 대통령실은 통신 기록 등을 바탕으로 무속인 천공이 대통령 관저 후보지를 방문한 사실이 없음을 입증할 계획이라고 한다. 청담동 술자리 의혹도 객관적으로 반박할 방법은 여럿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진실은 드러날 테고, 의혹 제기가 무책임했다면 정치적·사회적 대가를 치르게 된다. 이렇게 공론의 장에서 의혹에 맞서는 게 공직자에게 요구되는 불굴의 용기와 인내.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과 한 장관은 의혹 제기에 걸핏하면 고소·고발로 맞선다. 심지어 윤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국무회의에서 더탐사를 겨냥해 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 어떤 고통이 따르는지 보여줘야 한다는 섬찟한 말까지 했다. 물론 정당한 사유 없이 주거를 침입한 것은 적절한 취재 방식이 아니다. 미국의 새 규정도 이런 행위까지 보호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한 장관의 아파트 현관 앞에 찾아간 더탐사의 행위가 국무회의에서 대통령까지 나서 강경 발언을 쏟아낼 정도로 중대한 범죄인가. 과거에도 그런 사례가 있었지만 지금처럼 과잉 반응이 나오지는 않았다. 미국 시민단체와 법률가들 사이에선 보도와 무관한 범법행위에 대한 수사도 정부가 공격적 언론인에게 보복하는 수단으로 사용돼선 안 된다며 철저한 감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또한 귀 기울일 대목이다.

 

무엇보다 한 유튜브 매체를 상대로 잇따라 법적 대응을 하는 법무부 장관이나 처절한 응징을 주문하는 대통령은 강인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 자신이 인사권을 쥔 검찰로 하여금 그 사건들을 처리하도록 만드는 행태는 오히려 권력의 방패 뒤로 숨는 비겁함이 도드라질 뿐이다.

 

검찰에 언론의 자유를 중시하도록 지침을 내리는 미국 법무부 장관과 대통령, 외려 언론을 고소·고발하는 데 앞장서는 법무부 장관과 대통령. 이것이 윤 대통령이 그토록 강조하는 자유의 나라 미국과 우리의 대조적 풍경이다.

박용현 ㅣ논설위원 한겨레 2022-12-08

 

 

법치' 협곡에 빠진 '협치' 정치, 국정운영 변해야 한다

'정치''법치'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가장 뚜렷한 변화는 여의도 정치에 대한 적대의 정도가 높아졌다는 점과 '법치' 중심의 국정 운영이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이는 윤 대통령과 현 정부의 국정운영 방식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협치'라는 단어는 아예 자취를 감췄고 여소야대 분점정부의 단점만 고스란히 노출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여야의 대치국면이 최소한 14개월여 남은 차기 총선까지는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국정 이슈가 발생했을 때 이를 대하는 '정치'의 태도는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이태원 참사 발생 후 여권이 보인 태도는 이전 정부들과 사뭇 다르다. 국가적 대참사가 발생했을 때 지난 정부들은 소관 부처의 장관을 해임하고 책임을 물었다. 이는 민주주의의 원리인 대표성과 책임성, 반응성의 차원에서 봐도 당연한 조치이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수사와 국정조사 이후 책임의 유무와 법적 책임을 따져보고 문책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철저하게 법률적 잣대에 의존하는 정치 행태를 보이고 있다. '정치''법치'는 불가분의 관계이지만 정치는 법치에 의존해서만 작동될 수 없다. 정치 영역과 사법적 영역이 엄연히 다른 이유이다.

 

더불어민주당 역시 이재명 대표에게 조여 오는 수사를 야당 탄압과 정치 보복의 프레임으로 맞서면서 정당이 온전히 당 대표의 사법문제에 '올인' 하는 인상을 줌으로써 여당과 대통령의 저조한 지지율이 야당 지지로 연결되지 않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대통령과 여야의 지지율이 30%대에서 고착화되고 양대 정당의 지지율 하락이 상대 정당의 지지로 연결되지 않는 현상은 중도층과 무당층의 정치 불신과 외면 때문이다. 한국 정당체제가 일상적으로 적대적 체제를 유지해 왔지만 강도와 기간에서 역대급인 것은 20대 대선에서 보인 대치구도가 그대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여야 모두 자신들의 권력과 정치적 이해관계를 탐닉한 결과이지만 언제까지 이러한 적대적 체제가 유지될 수는 없다. 총선 공천을 의식한 의원들이 당 지도부의 행보에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운 상황이 온건파의 목소리를 협소하게 만들고 여야 강경파의 목소리만 높이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다수결의 정치에서 합의의 정치로 가는 것이 정치 발전에 부합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다수결의 정치는 승자독식의 정치에 어울린다. 원론적으로 대통령제와 소선거구제, 단수대표제 등의 제도가 승자독식을 강화하는 제도들이다. 합의제 정치는 흔히 내각제와 친화적이라고 하지만 정치가 갈등과 이해의 충돌을 조정해서 제3의 대안과 합의를 모색하는 작업이라고 할 때 굳이 권력구조와 연관시켜 생각할 필요도 없다.

 

여야의 이견이 두드러지고 투쟁과 대립의 정도가 강할수록 합의제 정치가 설 공간은 없다.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 모두 중도성향의 유권자보다 자신들을 지지하는 열렬 지지층을 의식하는 정치가 지배적일 때 이성적 공론의 장은 열리기 어렵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당의 최대 계파라는 '국민공감'이 출범했다. 공부모임이라고는 하지만 친윤(친윤석열)계 의원들이 주도했고, 집권당 전당대회에서 친윤계가 구심점 역할을 하게 된다면 당과 정부, 대통령실의 수평적 거버넌스보다 여당이 대통령실에 종속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수 있다. 박근혜·문재인 정부 때도 여당이 집권당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율적이지 못했던 결과는 굳이 설명이 필요없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회복 기미를 보이고 있지만 여야의 대치가 풀릴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지지율은 상승과 하락, 반등을 반복하면서 큰 추세를 형성한다. 약간의 지지율 상승이 현 정부의 국정운영 방식에 대한 시민들의 동의라고 과대해석해선 안 된다.

 

현재의 여야관계에서 합의제 정치의 단초를 찾을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의 여야 정치의 작동방식이 지속된다면 여야 갈등은 그 자체로 끝나지 않고, 정치체제의 변혁으로 연결될 수 있다. 정치체제의 변화가 단순한 이합집산의 차원이 아닐 수 있다는 의미이다.

 

다수 의석을 가지고 있는 야당이 의회권력을 가지고 있는 세력다운 모습을 보여야 함은 말할 것도 없지만, 국정과 정치적 자원을 장악하고 있는 대통령실과 여당이 합의제 정치를 위한 최소한의 제도개혁과 국정운영 방식의 변화를 추동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정치''법치'의 협소한 공간을 벗어나 본령을 찾을 수 있다.

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 프레시안 2022.12.09.

 

 

주가지수가 한국 경제에 대해 말해주는 것들

지난 10여년 동안 한국 증시는 장기 횡보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상 초유의 저금리라는 유동성 모르핀을 맞았던 2020년 장세가 예외였을 뿐, 주식시장은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의 박스권으로 회귀하고 있는 듯하다

 

127일 코스피(KOSPI·한국종합주가지수)2393포인트로 거래를 마쳤는데, 10년 전인 2012127일 마감 종가는 1957포인트였다. 10년 동안 코스피는 22.3% 오르는 데 그쳤다.

 

한국 증시는 과거 세 차례의 장기 강세장을 경험했는데, 세 시기 모두 강력한 경제 성장 엔진이 존재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1차 강세장은 1972~1978년에 나타났는데 당시 주가 상승의 동력은 중동 건설붐에 따른 오일머니 유입이었다. 2차 강세장은 1985~1988년의 3저 호황을 등에 업고 현실화됐다. 3차 강세장은 중국 특수를 누리면서 나타났다. 2004~2007년 코스피는 134%(연평균 23.6%) 상승했다.

 

최근 10여년 코스피의 정체는 한국 경제의 활력 저하와 맞물려 있다. 구체적으로는 중국 특수의 약화 때문이다. ‘중국 경제 자체의 성장 둔화 인건비 상승과 세계의 공장으로서의 중국 위상 약화 시진핑 집권 이후 사회주의 이념으로의 경도 중국 기업의 성장과 한·중 경쟁 격화 지정학적 이슈의 부각과 중국의 보복 ·중 갈등과 글로벌 밸류체인의 폭력적 재편 2022년 한국의 대중 무역수지 적자 반전등은 지난 10년간 한국의 대중국 특수가 약해지는 일련의 과정이었다.

 

특히 한국의 대중국 무역수지가 적자로 반전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한국은 내수가 이끄는 성장은 거의 불가능한 경제 구조가 돼 버려 수출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형국인데, 중국으로의 수출이 한국 수출의 명운을 좌우해왔기 때문이다.

 

지난 10년 동안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은 연평균 2.7% 성장했는데, GDP 하위 항목들 중 민간소비가 1.9%, 설비투자 2.7%, 건설투자 2.0%, 순수출 3.0%, 정부지출이 4.0% 증가했다. 설비투자는 성장률에 수렴하는 정도로 이뤄졌고, 순수출과 정부지출이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고, 민간소비와 건설투자는 성장률을 끌어내렸다.

 

내수는 민간소비와 설비투자, 건설투자, 정부지출 등으로 구성돼 있다. 내수 항목들 중 가장 규모가 큰 부문은 민간소비인데, 한국의 민간소비는 만성적 정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명목 GDP 규모를 넘어선 가계부채와 가계자산 대부분이 부동산에 묶여 있다는 점이 현실적 한계로 작용하고 있다. 과도한 가계부채에 따른 원리금 상환 부담은 민간소비를 잠식하고 있고, 주택 구입에 사용된 자금은 집 값이 오르더라도 매몰자금에 가깝다. 미국처럼 주택가격 상승에 따른 담보가치 상승을 대출에 활용하는 문화에서는 주택가격 상승이 소비를 증가시키는 자산효과가 존재하지만, 한국에는 그저 부동산에 묶인 자금으로 존재할 따름이다. 특히 상당 기간 동안 높은 금리가 유지될 가능성이 높은 현 상황에서는 향후 민간소비의 둔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투자가 부진하다는 통념과는 달리 설비투자는 GDP 성장률에 수렴하는 정도로는 이뤄져 왔다. 또한 GDP에 잡히지 않는 해외투자까지 고려하면 한국 기업들이 돈만 쌓아두고 투자하지 않는다는 비판은 온당치 않다. 다만 설비투자가 한국의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수준까지 늘어나기는 힘들 것이다.

 

글로벌 밸류체인 재편과 경제 블록화 과정에서 미국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요구받고 있기 때문이다. 건설투자 역시 경제적 자원의 일회적 소모가 아닌 장기적으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영역이 이 땅에 남아 있는지 의문이다.

 

결국은 수출과 정부 재정지출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실제로 2000년대 대부분의 기간 동안 한국 경제와 주식시장의 향방은 수출 경기에 연동되는 양상이었고, 성장 둔화 국면에서는 재정지출이 급격한 하강을 방어하는 역할을 해왔다. 박근혜 정부 후반부인 2015년부터 재정의 성장 기여도가 빠르게 상승해 왔다. 다만 재정건전성과 시장의 자율을 강조하는 보수 정권의 출범으로 재정의 역할은 향후 약해질 개연성이 높다. 결국 수출 경기가 한국의 경기와 주식시장의 향방을 결정짓는 변수가 될 수밖에 없다.

 

과거 경기 침체 직후 한국 경제가 회복되는 패턴은 예외 없는’ V자형 급반등이었고, 수출이 이런 과정을 이끌었다. 특히 경기 침체 국면에서 가속화됐던 원화 약세는 이후 한국의 수출을 비약적으로 늘리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 ·달러 환율이 2000원에 육박했던 외환위기 직후와 1600원대에 올라섰던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한국 경제는 수출 호조를 배경으로 빠른 회복세를 나타낸 바 있었다.

 

이번에는 수출의 V자형 회복이 힘들 것으로 보인다. 과거의 위기 국면보다 환율 조건이 우호적이지 않다는 점이 첫 번째 이유이다.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국면에서는 달러 대비 한국 원화의 절하 강도가 유독 강했다. 외환위기는 한국 고유의 리스크였고, 글로벌 금융위기 국면에서는 외화 유동성 관리 실수로 한국 시중은행들의 외화 수급 상황이 급격히 악화되면서 원·달러 환율이 큰 폭으로 상승했다. 그렇지만 올해 경험했던 원·달러 환율 상승은 원화 약세라기보다는 주요국 통화에 대한 광범위한 달러 강세에 가까웠다. 특히 일본 엔화가 한국 원화보다 달러 대비 더 약했다. 10~11월 한국의 수출 증가율은 전년 동기 대비 마이너스로 반전되고 있지만, 일본은 20%가 넘는 수출 증가율을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은 수출 회복의 경로가 과거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대중 무역수지 악화는 두 번째 걱정거리이다. 한국의 대외교역에서 중국이 미친 역할은 지대했다. 2000~2021년 한국의 무역수지 흑자 규모는 7900억달러에 달했는데, 이 중 대중 무역수지 흑자가 7100억달러였다. 대중 무역수지는 지난 510억달러 적자를 시작으로 최근 7개월 중 6개월이 적자이다. 대중 무역수지 적자는 한·중 수교 직후였던 19948월 이후 처음 나타나는 현상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중국의 경제 봉쇄가 이뤄지고 있는 비정상적 상황이기는 하지만 지난 수년간 대중 무역수지 흑자 규모가 계속 축소되다가 적자로 반전됐다는 점에서 대중 교역에 구조적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고 봐야 할 듯하다. 주가지수의 장기 정체는 한국 수출의 더딘 회복과 이에 따른 경제의 구조적 저성장을 미리 보여주는 신호일 수 있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경향 : 2022.12.09.

 

고금리, 무역 적자, 가계부채회색 코뿔소가 달려오고 있다

고물가 상황이 좀처럼 풀리지 않으면서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20226월 이후 11월까지 네 차례 연속 자이언트스텝(각각 0.75%포인트)을 밟았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도 기준금리를 급격히 인상(202251.75% 103.0%)했다.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으로 글로벌 경제가 경기침체에 빠질 우려가 커지고 있다. 코로나19 대유행 극복을 위한 완화적 재정·통화 정책의 영향으로 차입을 통한 레버리지 투자가 확대되고, 자산가격의 거품이 커지는 등 과도한 금융 불균형이 초래할 상황을 충분히 예측하지 못했던 것처럼, 미 연준을 중심으로 한 세계 주요국의 가파른 금리인상과 이에 따른 부정적 영향을 온전히 예측하긴 어려운 국면이다.

 

일반적으로 금리상승은 이자수지 악화, 주택가격 하락 등을 통해 소비를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한국은행은 기준금리가 1%포인트 상승할 경우 이자수지는 연간 3~8조원 줄고 소비는 0.1%포인트 정도 위축되는 것으로 추정했다. 한편 기준금리가 1%포인트 상승하면 주택가격은 20220.4~1.9%, 20232.3~7.5% 각각 하락하면서 소비위축으로 이어지리라고 예측했다. 한국은행은 5%를 상회하는 높은 물가가 오름세를 지속할 경우 정책 우선순위를 물가안정에 둬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202210월 사상 두 번째로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을 단행한 이후 이자 부담 증가, 부동산 가격 하락 등 국민의 고통이 가중됨에도 고물가로 인한 더 큰 손실을 막기 위해 금리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전했다.

 

2022년 하반기에 기준금리를 빠르게 인상하면서 그 여파로 소비회복세가 꺾이고 투자와 생산이 위축되는 가운데 무역수지 적자가 이어지는 등 경기가 급속히 냉각되는 상황이다. 최근 거래량이 급감하면서 빠르게 위축되는 부동산시장은 바닥을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다. 암호화폐나 주식시장도 조정폭이 깊어져 자칫 부채로 투자에 뛰어든 경제주체가 도미노처럼 연쇄반응을 일으키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이와 더불어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와 팬데믹(감염병 대유행)으로 인한 공급망 차질 지속 등에 따른 미국과 유럽의 경기둔화 가능성, 중국의 봉쇄 조치에 따른 성장세 회복 지연 등 대내외 경제 여건이 급속히 나빠지면서 향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더욱 불투명해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의 20223분기 GDP 속보치에 따르면, 우리나라 실질GDP는 전기 대비 0.3%(전년 동기 대비 3.1%) 성장하는 데 그쳤다. 1분기 0.6%, 2분기 0.7%보다 크게 낮아졌다. 민간소비(1.9%)는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에 따른 대외활동 증가 등으로 음식·숙박 관련 서비스와 승용차 등 내구재를 중심으로 개선됐다. 건설투자(0.4%)나 설비투자(5.0%)도 전분기에 이어 증가했다. 하지만 순수출의 성장기여도(-1.8%)가 전분기(-1.0%)에 이어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수출은 반도체 등이 줄어들면서 1% 증가하는 데 그쳤으나, 수입은 원유·기계·장비 등을 중심으로 큰 폭(5.8%)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20228, GDP 성장률이 20214.1%에서 20222.6%, 20232.1%로 낮아지리라고 전망했다. 2022년 들어 GDP 성장률이 낮아지는 추세지만 3분기까지의 성장률 실적이 기존 전망치를 크게 벗어나지 않아 2022년 예상 성장률(2.6%) 달성이 무난하리라고 본다.

 

회색 코뿔소’(Gray Rhino)라는 표현이 있다. 덩치가 커서 멀리서도 보이지만 경계를 늦추면 갑자기 달려와 위기를 초래하는 것처럼, 위험 발생 가능성을 충분히 인지하면서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큰 위험에 처하는 상황을 말한다.

 

필자는 지난 1년간 우리 경제의 회색 코뿔소라 생각되는 몇몇 이슈를 제시했다. 가계부채가 GDP 대비 100%를 상회하는 등 위험수위에 다다랐다는 점을 지적했고, 코로나19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실시한 완화적 재정·통화 정책의 부정적 영향으로 금융 불균형이 누적된 점도 언급했다. 2020년 기준 취업자 수 대비 24.4%에 이르는 500만 명 이상의 자영업자는 고령화 등 인구구조 변화로 점차 축소되고,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와 출산율 저하 등 인구구조의 급속한 변화는 경제를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한편 중국의 늘어난 기업부채가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고 중국의 기술경쟁력 확충과 반한(反韓) 감정 등이 대중 무역 축소로 이어질 수 있음을 지적했다. 달러화 강세와 주요국의 ()환율전쟁’(Reverse Currency War)의 위험성도 언급했다.

 

단기적으로 한국은행의 가파른 기준금리 인상은 한계기업이나 영세자영업자, 다중채무자나 취약차주 등의 부담을 가중할 것이다. 가계의 자산 보유 비중이 부동산에 쏠린 점도 우려스럽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갭투자와 영끌투자가 성행했던 점도 주의할 필요가 있다. 전국 아파트 매매 건수는 201955만 건 수준이었으나 2020년엔 93만 건, 2021년엔 67만 건으로 대폭 늘어났다. 20~30대 청년층의 전국 아파트 매매 비중은 201928%에서 202131%로 늘어났고, 특히 서울과 경기권은 30%에서 37%로 상승했다.

 

미 연준을 비롯한 세계 주요국의 가파른 기준금리 인상 소용돌이 속에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 경제블록화, 달러화 강세 등 대외 요인은 물론 늘어난 가계·기업 부채, 핵심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확보, 인구구조 변화 등 산적한 현안을 슬기롭게 헤쳐나가 우리 경제가 재도약할 수 있기를 바란다.

김용 금융전문가 한겨레 2022-12-10

 

 

단 한 명의 아이도 소외되지 않게 하려했던 교육감, 노옥희

얼마 전 좋은 교육자이자 교육행정가였던 사람이 우리 곁을 떠났다. 난민(아프간 특별기여자) 어린이들의 손을 잡고 첫 등교길을 함께 걸었던 교육감, 전국 17개 광역자치단체 중 최초이자 현재까지도 유일한 공교육에 포괄적성교육을 도입하고 실행한 교육감, 울산광역시 교육감 노옥희 선생이다.

 

지역주민들이 난민에 대한 부정확한 정보로 인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자신이 먼저 난민들의 곁으로 갔다. 가르치려 들지 않았고, 먼저 몸으로 보여주었다. 포괄적성교육에 대한 부정확하고 부족한 정보, 성소수자에 대한 낙인과 편견으로 인해 성교육, 성평등교육에 대한 큰 오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자신이 운영하고 책임지는 울산교육에서부터 그 오해를 풀어보고자 노력했다.

 

노옥희 선생은 교사로 일하던 당시, 한 학생이 일을 하다 다치는 산재 사고를 당하고도 치료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는 상황을 목격하며 노동자의 현실에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고 회고한 바 있다.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사회적 문제를 외면하지도 않았다. 그 학생을 도울 수 있는 개인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동시에, 구조적인 문제를 함께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노동문제와 교육현실에 대한 관심과 실천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창립에 함께한 활동과 울산광역시 최초의 진보교육감 당선과 재선까지 이어졌다.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 울산교육”, 노옥희 교육감이 이끌었던 울산광역시 교육청의 비전이었다. 그는 성적으로 줄 세우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했다. “공교육의 기본 책무는 아이들이 태어난 환경이나 부모의 경제력 또는 시험 성적 때문에 단 한 명도 소외당하거나 낙오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라고 했다. 난민 어린이들의 첫 등교길에 함께 걸었던 모습도 포괄적성교육을 도입한 정책도 이러한 명확한 가치와 철학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초중고 12년을 오로지 대입을 위한 수단으로만 여기는 입시 중심의 공교육에선 난민과 함께할 필요도 없고,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성교육을 할 필요도 없다. 난민, 이주민, 장애인, 성소수자, 여성 그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있더라도 어느 누구도 소외, 배제, 차별을 경험하지 않는 교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탐구할 수 있고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들과 안전하게 나눌 수 있고 서로를 존중하며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연습할 수 있는 곳이 교실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진보교육감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과연 무엇이 진보인가 고민하게 만드는 이들이 많다. 교육감뿐만 아니라 국회의원과 언론인을 포함해서 인권활동가, 마을활동가들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진보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80년대 민주화운동이나 노동운동을 했다는 과거의 경력을 제외하곤 무엇이 진보라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많다. 문제를 구조적으로 바라보는 관점도 없고 권력에 대한 이해도 없다. 자신이 해오던 일과 경력 그리고 자신의 작은 세상 속에서 가지는 기득권을 지키는데 여념이 없다. 가끔은 진보라고 불리는 세력에서 희망이 보이지 않아 세상이 정말 깜깜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321일 오전 울산시 동구 현대중공업 옛 사택 앞에서 노옥희 울산시교육감이 동구에 정착한 아프가니스탄인 특별기여자 자녀들의 첫 등교를 환영하는 팻말을 들고 학생들과 인사하고 있다. 이날 특별기여자의 자녀인 유치원생 16, 초등학생 28, 중학생 19, 고등학생 22명 등 85명은 첫 등교를 했다. 연합뉴스

 

어느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공교육이 변해야 한다는 믿음을 삶으로 살았던 노옥희 선생이 지난 8일 심장마비로 갑작스레 별세했다. 탁한 세상에 한 줄기 빛처럼 느껴지던 이의 죽음은 언제나 황망하게 다가온다. 발자취를 따르고 싶은 인물을 찾기 어려운 세상이지만, 감사하게도 노옥희 선생은 닮고 싶은 사람이었다.

 

노옥희 선생처럼 늘 약자 곁에 있는 사람이면서, 사회를 변화시킴으로써 약자의 삶을 변화시키는 사람이 많았으면 한다. 소수자의 곁에 선다는 것은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 당신이 차별을 당하게 될 때 누군가가 당신의 곁을 지켜주는 사회를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도 당신도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그런 삶을 살기 위해 교육감이 될 필요도,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이 돼야 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 각자의 삶에서 그렇게 살면 된다. 그렇게 서로에게 작은 롤모델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 공교육에서 인권이나 노동권, 성평등과 같은 가치가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인권교육, 노동교육, 성평등교육처럼 자기 자신을 탐구하고 다른 사람을 존중하며 사회를 구조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민이 많아질 때 이 사회는 모든 존재가 존엄하고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되지만, 이 나라는 빠른 속도로 거꾸로 가고 있다. 지금은 어려운 시기인 동시에 단 한 명도 소외되지 않는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는 때다. 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각자 자신의 방법대로 약자의 곁을 지키며 함께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기를 요청드린다.

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미디어오늘 2022-12-10

 

 

당신은 부자인가요?”

당신은 부자인가요?”라는 질문을 총자산 100억 원인 사람에게 했다고 한다. 놀랍게도 거의 1/4에 달하는 사람이 나는 부자가 아닙니다고 답했다고 한다. 총자산이 50억 원~100억 원 사이에 있는 사람에게 같은 질문을 하면, 무려 절반(44%)에 가까운 사람이 부자라고 인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50억 원이라는 돈은 매년 1억 원씩 저축해도 50년이 걸리는 돈이다. 주변에 억대 연봉 근로소득자는 간혹 있지만, 억대 연봉을 50년 가까이 유지하는 사람은 없다. 특히, 밥은 먹고 살아야 한다. 내가 자산이 50억 원이 있으면 나는 스스로 부자라고 인식하고 부자의 삶을 즐길 것 같다. 밥값도 내가 내고, 지금보다 기부액도 올리고 세금도 충분히 낼 의사가 있다. 그런데 100억 원 넘는 자산을 보유하고서도 자신은 부자가 아니라고 겸손(?)하게 답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이 놀랍다. 자산이 100억 원이 넘지만, 부자의 행복을 만끽하지 못하는 이들을 보면 조금 측은(?)한 생각이 들 정도다.

 

혹시 연봉 6410만 원 넘으세요? 평균 이상입니다라는 머니투데이 기사를 보자. 기사는 기준 가구의 평균 소득은 6414만 원이라는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를 전한다. 이 제목을 보면 연봉 6400만 원을 받는 근로소득자는 평균을 깎아 먹는다고 낙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를 보면 6410만 원 중, 700만 원은 이전소득이며, 430만 원은 재산소득이다. 시장소득은 6000만 원에도 못미친다. 국민연금, 아동수당, 실업급여 등 공적이전소득이 평균 600만 원, 용돈 등의 사적이전소득이 평균 100만 원 포함된 총소득이다. 경제활동을 혼자하는 2인 가구 소득자의 연봉이 5000만 원만 넘어도 평균은 넘는다.

 

임경은 통계청 복지통계과장이 121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2022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특히 6410만 원은 개인소득 개념이 아니라 가구소득 개념이다. 3인가구 가구소득 평균은 8043만 원, 2인가구 가구소득 평균은 5191만 원, 1인가구 가구소득 평균은 2691만 원이다. 2인가구에서 내가 3000만 원, 배우자가 2200만 원을 번다면 평균 이상이다. 내 연봉이 6410만 원이 안 된다고 내 연봉이 평균 이하라고 생각하면 틀린 얘기다.

 

중산층은 어떻게 정의될까? 우리나라 통계청은 OECD 기준에 맞춰서 중위소득의 50%에서 150%를 중산층이라고 정의한다. 즉 우리나라 2인가구 중위소득은 4075만 원이다.

 

가구수에 따른 중위소득

 

결국, 내가 2인가구라면 나와 나의 배우자의 연소득 합이 2038만 원 이하면 빈곤층, 2038만 원보다 많으면 중산층, 6113만 원보다 많으면 상류층이 된다. 결국, OECD와 통계청 기준에 따르면 2인가구 합산 연봉이 6113만 원이면, 평균 이하 소득자가 아니라 상류층(!)이다. 2인가구 합산 연봉이 6000만 원 정도면 당당하게 우리는 OECD 기준 상류층이야라고 생각하자. 연봉이 6000만 원이 조금 못 미쳐도 공적이전소득까지 더한 총소득은 상류층 기준을 넘게 된다(참고로 2인가구 공적이전소득 평균은 865만 원이다).

 

6000만 원 정도로 상류층이라고 말하기 조금 부끄러우면, OECD 기준 말고 미국 센서스국 기준인 중위소득 200%를 활용해보자. 2인 가구 중위소득의 200%는 연 8150만 원이다. 배우자와의 합산 연소득이 8000만 원에 육박하면 공적이전소득까지 합쳐 미국 센서스국 기준 상류층이다. 보수적으로 상류층을 따져도 2인가구 시장 소득이 연 8000만 원에 육박하면 상류층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한국경제신문이 발표한 “2022년 중산층의 삶과 금융실태조사를 보면, 중산층의 월 평균소득은 686만 원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686만 원 이하는 스스로 중산층조차 아닌 빈곤층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686만 원은 연 시장소득 8232만 원이다. 685만 원을 버는 2인가구는 국제적 기준으로는 상류층이다. 그러나 스스로는 중산층에도 미치지 못하는 빈곤층이라고 평가한다는 뜻이다. 결국, 2022년 전국민의 약 절반은 스스로 빈곤층이라고 평가한다. 자신이 상류층이라고 생각하는 국민은 1%에 불과하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해야 하는 상류층조차 스스로 빈곤층이라고 생각하니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실현될 리가 없다.

 

어떤 네티즌은 우리나라 저출생 문제가 심각한 이유를 평균 올려치기라고 한탄했다. OECD기준 상류층인 고소득자도 자신을 빈곤층이라고 생각한면,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여유가 없을수도 있겠다. 물론, “중산층은 빠듯한 게 아니라 빠듯할 때까지 주택대출+교육비를 늘려서 실제로 빠듯하다는 어떤 네티즌 말도 일리가 있다. 그래도 통계청의 가계복지조사 통계의 의미를 잘못 해석해서 전하는 언론에도 평균 올려치기의 책임의 일부는 있지 않을까?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미디어오늘 2022-12-10

 

'석유 부자' 중동 국가, 그들이 탄소중립 시대를 맞는 방법

코로나19 대유행으로 3년간 가지 못했던 국외 출장을 지난달 다녀왔다. 연구자 단체인 전기전자공학자협회(IEEE)에 속한 학회 가운데 가장 오래된 파워 앤드 에너지 소사이어티(PES)’에서 주관하는 아시아·태평양 중심의 모임이었다.

 

그곳에는 사우디, 이란 등 중동에서 온 참가자들이 다수 있었는데, 에너지 전환 시대에 중동의 산유국들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다. 때마침 카타르 월드컵이 시작하는 주간과 겹쳐 있었기에 축구 이야기를 시작으로 다가가서 자국의 에너지 상황이나 대응 방향 등을 들을 수 있었다.

 

월드컵 경기가 진행되고 있는 카타르는 아라비아 반도와 이란 사이에 있는 페르시아만에 위치한다.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아랍에미리트(UAE), 이란, 쿠웨이트 등 주요 산유국들 역시 페르시아만 주변에 밀집해 있다.

 

수평 시추와 수압 파쇄 기술로 이룬 셰일혁명을 통해 최대 산유국이 된 미국에 이어 사우디아라비아는 세계 2위의 석유 생산국이다. 그런 사우디아라비아는 세계에서 원유를 가장 많이 수출한다. 이웃한 이라크, 아랍에미리트, 이란 등도 생산량 기준 10위권 이내에 들어가는 산유국이다.

 

석유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높은 중동의 산유국들은 전 세계적인 탄소중립 정책에 따라 원유 수요가 감소하고 있는 에너지 전환 시대를 맞아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원유 생산에 치우쳤던 구조를 정유와 석유화학 등으로 확장하는 투자를 지속적으로 늘리고 있다.

 

지난해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서 발간한 자료에 따르면 산유국들은 석유 산업 가치사슬 가운데 석유를 찾고 개발하는 상류 부문외에 정유공장에서 석유를 정제해 휘발유 등을 만드는 하류 부문으로의 다각화로 부가가치를 높이고 있다. 자국민의 고용을 늘리고 국제유가 변동에 취약한 경제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다. 원유부터 석유화학 부문까지의 수직 계열화를 통해 거래 비용을 절감하고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탄소 발생이 석유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천연가스 개발을 계속 확대하고 있다. 발전 부문에서 석유 소비를 천연가스로 대체하거나 천연가스 수입을 줄이고 자급자족하기 위해서다.

 

중동 국가들은 석유를 대체할 수 있는 에너지원으로 수소에 대한 개발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탄소배출을 최소화한 공정으로 만든 블루수소생산과 수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공정 중 탄소를 전혀 배출하지 않는 그린수소생산과 관련 산업 육성을 위해 자국 기업들을 중심으로 다수의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페르시아만 지역은 여름에 태양이 가장 높이 뜬 시점인 남중때 고도가 90도에 이른다. 천정(天頂)을 북회귀선이 지나고 있어 햇볕이 강하다. 이는 재생에너지인 태양광 발전에 아주 좋은 환경이다. 학회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던 이란 출신 참석자에 따르면 고원지대를 이용한 풍력 발전도 생산성이 꽤 높다고 한다.

 

풍부한 자원과 유리한 지형을 바탕으로 탄소중립 시대에 에너지 전략을 새롭게 짜고 있는 중동 지역 몇몇 나라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 한편으로는 부러웠다. 한국에게 주어지지 않은 선택 가능 영역과 전략적인 조합이 에너지 전환 시대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한 조건이 될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한국에 적합한 에너지 전략은 과연 어떠한 모습일까. 관련된 산업계와 연구계 등이 계속해서 함께 고민해 나간다면 딱 들어맞는 그림을 그려나갈 수 있을 것이다.

손성호 한국전기연구원 책임연구원 경향 2022.12.11.

 

 

서로를 빼닮은 룰 브레이커’, 윤석열과 이재명

정치의 세계에는 늘 맞수 혹은 정적이 있다. 우리 정치사에 김영삼과 김대중이 있다면, 영국에선 디즈레일리와 글래드스턴을 꼽는다. 나라와 시대, 신념과 족적은 달라도 대립과 경쟁을 통해 정치와 사회의 생산적 발전을 이끈 사람들로 평가받는다.

 

지금 우리 정치를 규정하는 사람은 윤석열과 이재명이다. 둘은 대립하는 양 진영의 수장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들이 보여주는 언행은 기이할 정도로 서로를 빼닮았다.

 

이재명 대표는 얼마 전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건너뛰었다. 민주당에서 7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그 당은 해마다 수백억 국민 세금을 보조금으로 받아 쓴다. 무엇보다 국회 절대다수 의석(169·전체 의석의 56%)을 차지한 지배 정당이다. 국민을 대신한 언론의 질문을 받는 건 의무나 마찬가지다. 회견을 거른 이유라는 사법 리스크는 그가 답해야 할 질문 중 하나에 불과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하긴 했다. 그러나 60분이 채 안 되는 회견 시간의 37%를 혼자서 말하는 데 썼다. 질문 시간과 기회는 무성의하게 짧았고, 성긴 답변은 종종 질문 취지와 어긋났다. 일방적인 국정 보고대회 같다는 평이 많았다. 취임 6개월 회견은 건너뛰었다. 취임 뒤 대표적 치적으로 자랑삼던 출근길 약식 회견’(도어스테핑)은 어느 날 돌연 중단했다.

 

둘 다 사과할 줄 모른다. 잘못의 인정은 책임 정치의 중요한 덕목이지만, 가볍게 무시한다. 대통령은 나라가 시끌시끌했던 비속어 논란 때 사과의 말 대신 성을 냈다. 이태원 참사 이후에도 고개 숙이지 않았다. 후보 시절 전두환 옹호성 발언이 논란이 되자 반려견 입에 사과를 대신 물려 내보내기도 했으니, 일관성 하나는 뚜렷하다. 인사 잘못으로 낙마한 장관과 후보자가 줄을 이어도 자신은 무관한 것처럼 행동했다.

 

정부가 국민들에게 충분한 이해를 구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노력이 부족했습니다.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대통령으로서 국민 여러분께서 겪으신 고통에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은 사과해야 할 때 회피하지 않았다.

 

이 대표 스스로 분신 같다던 사람 둘이 대장동 개발비리로 잇따라 구속기소됐다. 억대 금품을 받았다는 혐의다. 대선자금 얘기도 나왔다. 국민은 의아해하고, 그 당 사람들은 힘들어한다. 하지만 흔한 유감 표명조차 하지 않고 있다. 사실 여부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들을 수 있는 말은 합리적 설명이 아니라 소설’, ‘조작’, ‘야당 파괴같은, 맥락을 소거한 매도의 언어뿐이다.

 

제가 감독·관리해야 하는 범위 안에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의 잘못에 대해서는 제가 책임져야 합니다. 이 사람들이 조달하고 사용한 대선자금은 저의 손발로서 한 것입니다. 법적인 처벌은 그들이 받되 정치적 비난은 저에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이 대표가 존경한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은 측근들이 구속기소되자 현직 대통령인데도 머리를 조아렸다.

 

법조인인 윤석열과 이재명은 각자의 세계에서 제왕 노릇을 하다 의회 경험이 없거나 짧은 채로 지금의 권좌에 올랐다. 검찰총장이 검사들의 왕이라면 도지사는 해당 지역 황제나 다름없다. 몸에 밴 통보, 결행, 지배 대신 타협, 양보, 공존을 익힐 기회가 이들에겐 없었다. 그래서 둘 다 군림하려 들 뿐 정치는 하지 않는다.

 

불통과 무례는 두 사람이 공유하는 특징의 일부일 뿐이다. 자신의 생각을 과신하고, 자기 판단대로 밀어붙인다. 비판과 반대의 목소리는 배척 대상이다. 소수 극렬 지지층만 의식하고, 다수 국민의 공감과 통합엔 무관심하다. 막스 베버의 언어를 빌리면, ‘책임윤리는 외면한 채 각자의 신념윤리만 극단적으로 추구하는 것이다. 아는 사람, 써본 사람만 중용한다. ‘민생은 정치적 구호로 동원할 뿐 정책으로 추진할 의지가 없고, 그러니 성과도 없다. 그러면서 상대방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까지 똑같다. 33% 지지도와 31% 호감도(한국갤럽, 지난 9일치)는 우연한 결과가 아니다.

 

민주화 이후 이토록 격렬한 적대적 공생은 처음 본다. 저차원의 정치공학으로는 서로가 서로의 인 셈이다. 그러나 그사이 우리 사회가 바람직한 정치의 요소, 좋은 지도자의 덕목으로 당연시하던 규범과 문법들이 하나둘 파괴되고 있다. 거창하게 민주주의를 찾을 것도 없이, 국민을 대하는 예의와 염치부터가 사라졌다.

강희철 | 논설위원 한겨레 2022.12.11.

 

누가 국가의 품격을 떨어트리는가

윤석열 정부 들어 부쩍 자주 언급되는 단어가 있다. 국격이다. “이번 국격 훼손은 국제적 망신을 넘어 국익 훼손까지 이어질 수 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국제노동기구(ILO)의 화물연대 파업 개입을 두고 한 말이다. “국격이 무너진 일주일.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께 사과하기 바랍니다.” 지난 9월 윤 대통령이 해외 순방을 마치고 귀국하기 직전에 나온 더불어민주당의 논평이다. 대통령실이 언급한 사례도 있다. 윤 대통령이 월드컵 대표팀 환영 만찬을 여는 등 묵혀뒀던 청와대를 잇달아 사용한 후 대통령실은 국격에 맞는 행사에는 청와대를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국가의 품격을 평가함에 있어 내부의 왈가왈부보다는 외부의 시선이 더 중요하다. 정략적 편들기나 비판보다는 한 발 떨어진 국제사회의 평가가 더 객관적이다. 윤 대통령도 7개월 전 취임사에서 국제사회에서 존경받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최근 나오는 국제 비정부기구(NGO)의 평가를 보면 한국은 존경받는 나라인지 의심스럽다. 오히려 노동권, 언론자유, 기후대응 등 품격 있는 사회가 갖춰야 할 핵심 덕목에서 후퇴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안전운임제 연장을 요구하며 파업에 나섰던 화물연대 노동자들은 정부의 압박에 결국 빈손으로 물러났다. 정부는 이제 파업 피해에 대한 청구서를 노동자들에게 내밀 태세다. 정부는 법과 원칙의 승리라고 자평하지만 외부의 시선은 다르다. ILO는 화물연대에 대한 정부의 업무개시명령과 관련해 사무총장 명의 서한을 보내 긴급 개입했다. 결사의 자유를 언급하며 노동기본권 침해 우려를 제기한 것이다. 한국은 ILO 기본협약 비준국이어서 해당 협약은 국내법과 동일한 효과를 갖는다. 하지만 정부는 ILO의 개입을 의견조회치부하며 무시했다. “떼법” “조폭등의 표현은 현 정부의 반노동 성향을 보여준다. “손발 노동은 아프리카에서나 하는 것이란 윤 대통령의 후진적 노동관이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이에 발맞춰 교육부는 교과서에서 노동자라는 표현을 아예 지워버리는 교육과정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프랑스 파리에 본부가 있는 국경없는기자회(RSF)는 현 정부의 MBC를 상대로 한 차별적 조치에 대해 우려를 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RSF는 정부의 MBC에 대한 언어적 공세와 전용기 탑승 불허 등 차별적 조치가 국민의 알권리를 위협하고 언론인에 대한 괴롭힘을 조장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RSF 관계자는 국가 정상이라고 해서 어느 언론이 자신의 활동을 보도할지, 어떻게 보도할지, 무엇을 물어볼지를 정해서는 안 된다며 윤 대통령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세계 146개국 187개 매체의 언론인 60만여명이 가입한 국제기자연맹(IFJ)도 대통령과 정부의 비판적 보도에 근거한 언론 배제를 규탄했다. ‘XX’ 발언이 논란이 된 지난 9핫 마이크사건만으로도 윤 대통령은 이미 국제적 망신을 당했다. 그런데 대통령실은 이를 해명하면서 바이든이 아니라 날리면이라고 말했다는 대안적 사실을 제시하며 놀림거리가 됐다. 그것도 모자라 MBC 취재진의 대통령 전용기 탑승을 거부하는 뒤끝까지 보이며 또다시 비판을 자초했다.

 

기후 민폐국이란 평가는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는 RE100 캠페인을 주관하는 클라이밋그룹은 지난달 대표 명의로 윤 대통령에게 한국 정부의 재생에너지 축소 정책을 강력히 항의하는 서한을 보냈다. 이 밖에 정부의 여성가족부 폐지 방침에 대해서도 국제 시민단체들은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국내 461개 인권시민사회단체 대표단은 지난달 유엔 제4차 국가별 인권상황 정기 검토를 앞두고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프리세션에 참석해 이태원 참사에 대한 정부의 책임 있는 조치를 요구하고, 현 정부 출범 이후 인권 정책이 후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몇 년 전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는 미국의 품격을 내동댕이쳤다는 비판을 받았다. 국제적 합의를 무시하고, 비판적 언론은 가짜뉴스라고 배척하고, 여성·환경·노동 정책은 후퇴시켰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에 대한 초기 평가도 그와 비슷한 듯하다. 국격이란 단어가 비판적 의미로 자주 등장하는 것은 그 방증이다. 국민 입장에서 정부 행태가 자랑스럽기보다는 부끄러울 때가 더 많다는 의미다. K, K드라마, K푸드만큼 K정치, K대통령도 국가 품격 제고에 기여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장애물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박영환 국제부장 경향 2022.12.12

 

세계 유일 강제노역 업무개시명령제

직장 일이 힘든 것에 비해 급여가 적어 보람을 느끼지 못한다면 한두 번 무단결근의 유혹을 느꼈을 것이다. 월급을 받으면서 이에 상응하는 일을 하지 않으면 직장에서 그에 따른 징계를 받으면 된다. 그런데 무단결근을 했다고 형사처벌을 받는다면? 더욱이 고용관계도 아니라서 어차피 출근할 의무도, 출근으로 변제할 대가(월급)도 없는 관계였다면? 국가에 의한 강제노역 아닐까.

 

이런 일이 지난주에 벌어졌다. 화물연대의 파업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은 업무개시명령을 내렸고 형사고발이 시작되면서 화물차주들은 정부의 강경한 대응에 밀려 다시 운송을 시작하게 되었다. 보수·진보 언론들은 차량유지비, 기름값을 빼고 월 500만원을 벌고 있는가, 200만원을 벌고 있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그건 핵심이 아니다. 500만원을 벌고 있어도 일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형사처벌 위협을 받는 것은 제도 자체가 문제이다.

 

업무개시명령은 한국에만 있는 제도는 아니다. 미국도 1926년 철도노조법에 의해 철도와 항공 분야에서는 대통령이 긴급위원회를 구성하여 노사분규 중재안을 제출하면 총 60일 동안 노조는 파업을 중단해야만 한다. 실제로 이 제도를 통해 지난 129일 미국 내 화물운송의 30%를 책임지는 철도노조의 파업 계획이 122일 의회의 결의안에 의해 무산되었다. 노르웨이는 산업분야 전반에서 정부가 노사분쟁을 중재하는 위원회를 발동시킴으로써 파업을 중단시킬 수 있다. 지난 7월에도 노르웨이 정부는 물가상승률보다 임금상승률이 낮다면서 파업을 계획했던 석유노조의 파업을 이렇게 막았다. 프랑스와 영국 역시 정부가 대체인력을 모집하여 최소서비스 수준이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두고 있다. 마침 영국은 올해 9월 관련 하위법령이 마련되어 철도노조의 파업에 적용될 계획이 발표되자 노조들이 위헌법률심사를 제기하였다. 프랑스도 10월에 주유소 노조의 파업에 대해 최소서비스 수준 유지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외국제도들은 우리나라와 달리 업무를 거부한 개별노동자를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삼지 않으며 심지어 노조도 형사처벌 대상이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 제도가 유독 강제노역이란 비판을 받는 이유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납세, 병역도 아닌 어떤 일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형사처벌을 하는 나라는 없다. 특히 영국과 프랑스는 업무개시명령이라기보다 대체인력투입제도로서 파업하는 노동자들에게 법적 불이익을 주는 제도가 아니다.

 

또 우리나라는 근로계약상 의무를 지고 있지 않은 소위 사업자에게까지 적용하도록 되어 있어 더욱 부당하다. 일해야 하는 의무를 방기한 사람들로 몰아가며 강공대응을 하고 있다. 사과값이 떨어져서 사과농사를 안 짓는 농부들도 처벌할 기세다. 물론 사업자들의 집단거래거절은 독점규제법상 부당한 공동행위로서 규제가 되어야 하지만 우리나라 화물노동자들은 화주들의 요구로 지입차주로 활동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감안하여 근로자성을 인정해달라고 해왔고 대법원도 2013, 2018, 2021년 판결에서 이를 인정했고 올해에도 비슷한 고법판결이 나왔지만 정부는 계속 이를 외면해왔다. 정부가 적어도 근로자성이라도 인정해준 후에야 외국의 업무개시명령을 벤치마킹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의사처럼 국가가 신규면허자 숫자통제를 통해 일정한 독점이윤을 보장해주고 있는 분야에 대한 업무개시명령제도와 화물운전자들에 대한 이번 명령은 경쟁정책상으로도 평가를 달리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의사 숫자가 적어 필수의료서비스들이 부족한 상황이다. 2020년 한의사를 포함한 임상 의사 수는 인구 1000명당 2.5명으로 OECD 국가 중(평균 3.7)에서 두번째로 적지만 PPP 기준 연간 임금소득은 봉직의 195463.2달러, 개원의 303007.3달러로 모두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화물운전자를 사업자로 봐도 시장의 집중도에서 매우 큰 차이를 보이며 위에서 설명했듯 우리나라 사법부에서도 인정하고 있는 화물운전자들의 근로자성 역시 큰 차이점이다.

 

우리나라는 노동자 파업, 즉 집단적 노무제공거부를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죄로 처벌하여 강제노역죄비판을 받아왔다. 유럽의 산업화 시기 노동운동 억제를 위해 만든 단결금지법을 세계에서 유일무이하게 아직까지 유지하고 있다. 노조법을 어겼다면 노조법상의 불이익을 주면 될 텐데, 일 안 한다고 형사처벌까지 가하니 문제이다. 이제 정부 스스로 사업자라고 보는 화물운전자들에게까지 강제노역을 시키고 있다. 산업은 결국 질 좋은 노동으로 이루어진다. 이 정부가 중요시하는 경제가 과연 강제노역으로 발전할 수 있을까?

박경신 고려대 교수·오픈넷 이사 경향 2022.12.12.

 

축구에 대한 두 시선, 카뮈와 에코그리고 대통령실 만찬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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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알베르 카뮈는 수상 소식이 발표되고 일주일 뒤 프랑스 텔레비전과 인터뷰를 했다. 그런데 인터뷰 장소가 특이했다. 방송사 스튜디오가 아니라 파리의 '파르크 데 프랭스' 축구 경기장이었다. 35천여명의 관중이 운집한 가운데 '라싱 클뢰브 드 파리' 팀과 모로코 팀의 경기가 열린 날, 카뮈는 관람석에 앉아 경기를 관전하면서 인터뷰를 했다. 경기 도중 파리팀 골키퍼가 실책을 저질러 실점하자 "너무 몰아붙이지 말라"며 골키퍼를 두둔하기도 했다. 이 인터뷰 장면은 희귀 필름으로 남아 지금도 유튜브에서 시청할 수 있다.

 

프랑스령 알제리에서 태어난 카뮈는 어릴 때 이 지역의 '라싱 위니베르시테르 알제'(RUA) 클럽 주니어팀의 골키퍼로 활약했다. 카뮈는 가난한 집안 출신이었다. 골키퍼를 맡은 것도 신발이 가장 잘 닳지 않는 포스트가 골키퍼였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카뮈 할머니는 축구 때문에 비싼 신발이 빨리 헤진다고 끊임없이 그를 꾸짖었다. 카뮈는 17살 때 갑작스럽게 폐결핵에 걸려 축구를 중단했으나 축구 사랑은 평생 지속됐다. 파리에 살면서 '라싱 클뢰브 드 파리' 팬이 된 것도 순전히 파란색과 흰색의 유니폼 색상이 자신이 어릴 때 뛰었던 RUA와 같았기 때문이다.

 

알베르 카뮈가 노벨문학상 수상 발표 뒤 일주일 뒤 파리의 파르크 데 프랭스축구 스타디움에서 언론 인터뷰를 하고 있다. 유튜브 영상 갈무리

 

카뮈의 작품 속에는 축구 이야기가 많이 녹아들어 있다. 미완성 자전적 소설 <최초의 인간>에는 주인공 자크 코르므리가 학교 쉬는 시간에 숨을 헐떡이며 축구를 하고 난 뒤 "구두 밑창에 박은 징들이 닳았으리라는 생각에 불안하게 살펴보았다"는 대목이 나온다. 축구 때문에 구두가 닳는다고 할머니한테 야단맞던 어린 시절 카뮈의 모습이다. 소설 <전락>에서 주인공 장-바티스트 클라망스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진실로 충실하고 열정적이었던 때는 스포츠를 할 때와 군대에서 재미삼아 상연했던 연극에 출연했을 때뿐이었습니다. 이 두 가지에는 놀이 규칙이 있었는데, 진지하지 않은 것을 진지한 것으로 여기고 즐긴다는 것이었지요. () 경기장과 극장은 내가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세상에서 유일한 장소들입니다." 실제로 카뮈는 자동차 사고로 숨지기 1년 전인 1959년 한 인터뷰에서 "극장과 축구 경기장이 나의 진정한 두 대학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카뮈가 쓴 작품들. 자전적 소설인 <최초의 인간>을 비롯해 <전락> <페스트> 등 많은 작품 속에 축구 이야기가 녹아들어 있다.

 

"도덕과 의무에 대해 내가 아는 모든 것은 축구에서 배웠다." 카뮈가 남긴 유명한 말이다. 1956RUA 동문회보에서 선수 시절을 회상해달라는 주문을 받고 기고한 글에 나오는 대목이다. 이 글은 카뮈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뒤 주간지 <프랑스 풋볼>에도 그대로 실렸다. 당시 카뮈는 프랑스 지성계에서 점점 외톨이가 되고 있었다. 나치 반대 운동 때 '한 팀'을 이뤘던 좌파 지식인들과는 소비에트 및 알제리 독립전쟁에 대한 입장 차이로 사이가 점점 멀어졌다. 장 폴 사르트르와도 결별했다. 그래서 축구에 대한 카뮈의 말에는 파리 생활에 대한 환멸이 담겨 있는 듯하다. 카뮈는 언젠가 이런 말을 했다. "(골키퍼를 하면서) 공은 항상 내가 예상한 방향에서 오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다. 그것은 뒷날 아무도 공정하게 풀레이하지 않는 프랑스 본토에서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카뮈는 축구 경기의 단순한 도덕성이 지식인들의 이념적 사상적 논쟁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담배 연기 자욱한 파리의 카페보다 땀투성이 축구 경기장이 더 정직한 윤리적 공간이라고 여겼다. 카뮈가 말한 "도덕과 의무"는 자신이 보기에 프랑스 지성계에는 없는 축구의 미덕, 즉 서로 믿고 의지하는 진한 동료애, 정직하게 최선을 다하는 페어플레이 정신을 지칭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도덕과 의무에 대해 내가 아는 모든 것은 축구에서 배웠다"는 카뮈의 말은 1956RUA 동문회보에서 선수 시절을 회상해달라는 주문을 받고 기고한 글에 나온다. 이 글은 카뮈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뒤 주간지 <프랑스 풋볼>에도 그대로 실렸다.

 

영국의 논픽션 작가 M. M. 오웬은 <카뮈는 축구의 부조리를 통해 어떻게 위안을 얻었는가>라는 글을 통해 '부조리' '반항' 등 카뮈 사상의 핵심 단어를 사용해 그의 축구 사랑을 분석했다. 카뮈의 대표적 저서 <시지프 신화>에서처럼, 축구는 카뮈에게 "신을 부정하고 바위를 끌어올리는 일"이었다. 경기 시작 휘슬이 울리면 선수들은 그라운드에 내던져진 시지프와 같은 존재가 된다. 어찌 보면, 90분간 목숨을 걸고 미친 듯이 공을 쫓아 달리는 것, 공을 네트 안에 넣는 숫자를 그 어떤 가치보다 우위에 두는 것 자체가 '우스꽝스러운'(부조리한) 일일 지도 모른다. 축구는 부조리한 삶의 축소판이다. 경기장은 그 자체로 부조리한 공간이다. 공은 언제나 의도와 달리 원치 않는 방향으로 튀어버린다. 특히 골문을 지키는 파수꾼인 골키퍼는 가장 외로운 존재다. 선수들은 경기 시간 내내 커다란 바위를 가파른 언덕 위로 끌어올려야 한다. 한번 경기에서 이긴다고 해도 계속 이길 수는 없다. 바위를 다시 언덕 위로 굴려야 한다. "카뮈는 몸으로 하는 이 육신의 드라마에서 삶의 충만함과, 모든 비애와, 모든 구원의 은총을 목격했다. 카뮈는 절망이나 망상에 굴복하지 않고 세상과 정면으로 마주하기를 원했다. 그는 축구의 그 즐거운 비합리성을 즐겼다"고 오웬은 짚었다.

 

소설가 김훈은 유명 사진작가 그룹 매그넘의 축구 사진들에 글을 붙여 <공치는 아이들>이란 책을 펴냈고, '공차기의 행복' 등 축구에 대한 적지 않은 글을 남겼다. 그의 글을 읽다 보면 문득문득 카뮈가 겹쳐져 다가온다. "공을 차는 아이들은 땅속에서 솟아오르는 풀싹처럼 어여쁘다. 공을 쫓는 아이들의 동작에서, 생명으로 태어난 것들의 기쁨의 언어가 터져나오고 있다." "뜬 공을 향해 몸을 날릴 때, 그리고 다시 땅에 내려와 닿을 때, 나는 내 몸의 한계와 속박에서 자유로웠다. 속박과 그 속박을 벗어나려는 꿈이 이 아름다운 동작을 빚어낸다. () 공은 억압할 수 없는 생명의 충동으로 높이 솟아올랐다."

 

그중에서도 2006년 그리스 크레타 공항 대합실에서 월드컵 경기 텔레비전 중계를 지켜보고 쓴 글은 카뮈, 그리고 시지프의 모습과 선연히 겹쳐진다. "공을 놓친 골키퍼가 홀로 땅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의 육신이 내뿜는 한 가닥의 맹렬한 적막이 관중의 함성을 뚫고 치솟는 듯했다. 그는 외로워 보였지만, 비참하지는 않았다. 그의 패배와 그의 추락에는 치욕이 스며들어 있지 않았다. 그의 적막은 외로움이라기보다는 순결이었다. () 그는 쓰러졌던 두 다리로 쓰러졌던 자리를 딛고 다시 일어섰다. 실패한 골키퍼는 뒤로 돌아섰다. 돌아선 그의 어깨는 정직하고도 단순했다. 혼자서 감당하는 자의 빛나는 어깨였다."

 

소설가 김훈이 세계적 사진작가 그룹인 '매그넘'의 축구 사진들에 글을 붙여 펴낸 <공치는 아이들> 생각의나무

 

카뮈는 자신의 고향 알제리를 닮은 남프랑스 루르마랭 지방을 사랑해서 노벨상에서 받은 상금으로 그곳에 집을 한 채 구했다. 일요일마다 들판 가장자리에서 지역 클럽의 아이들이 훈련하거나 이웃 마을 팀과 경기를 하는 것을 지켜보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19601월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숨진 자동차 안에는 그가 쓰고 있던 자전적 소설 <최초의 인간>의 미완성 원고가 있었다. 카뮈는 사고가 난 뒤 이틀 뒤 루르마랭에 있는 공동묘지에 안장됐다. 장례 행렬의 선두에는 아내 프랑신, 형 뤼시엥, 오랜 친구인 시인 르네 샤르가 섰다. 그리고 지역 축구 선수들이 그의 관을 운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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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명한 기호학자이자, 소설가, 문화비평가인 움베르토 에코는 '축구 비판론자'. '월드컵과 그 화려한 잔치' '스포츠 잡담' 등의 글을 통해 축구에 대한 냉소적인 많은 어록을 남겼다. "내가 축구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축구가 나를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익살스러운 말도 했다.

 

움베르토 에코

 

"많은 독자들은 내가 축구라는 고상한 스포츠를 악의를 갖고 논의하는 것을 보고, 축구가 전혀 나를 사랑한 적이 없기 때문에 내가 축구를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냐는 통속적 의혹을 품을 것이다. 내가 아주 어린 시절부터 공을 차면 곧바로 자살골로 이어지거나, 아니면 기껏해야 상대편에게 패스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경기장 밖 울타리나 담장 너머로 공을 날려 보내 지하실이나 개울에 빠뜨리는 바람에 함께 놀던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시합에서 쫓겨나는, 그런 아이에 속했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어떤 의혹도 이보다 더 분명하게 사실일 수는 없을 것이다." 이 글을 보면 어쨌든 에코는 카뮈와는 달리 어려서부터 축구에 소질이 없었던 것이 분명하다.

 

에코가 남긴 여러 글을 토대로 피터 페리클레스 트리포나스라는, 이름을 외우기도 상당히 어려운 학자가 <움베르토 에코와 축구>라는 책을 썼다. 에코에게 축구라는 기호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문화 속에서 축구가 충족시키는 것은 무엇이며, 축구의 현실적이고 상상적인 폭력의 근원은 무엇인가 등을 에코가 어떻게 기호학적으로 분석했는지를 설명하는 책이다.

 

축구에 대한 에코의 말을 접하며 약간 유의해야 할 대목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첫째, 에코는 축구에 대해서도 특유의 풍자와 과장이 넘치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그것은 현실을 패러디하고, 그 불합리성을 폭로하며, 망치로 때리는 듯한 충격 효과로 핵심을 찌르기 때문"이라고 트리포나스는 해석했다. 또다른 하나는, 한국과는 많이 다른 이탈리아 등 유럽 축구의 분위기다. 축구광팬들이 매주 빠짐없이 축구 경기장을 찾아 열광적으로 응원하고, 때때로 축구장 난동사태까지 벌어지는 그곳 분위기를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에코는 '축구 이야기를 하지 않는 방법'이란 글에서 "나는 축구를 싫어하지 않는다. 다만 축구팬들을 싫어할 뿐이다"고 말을 꺼낸 뒤 "내가 축구광들을 좋아하지 않는 까닭은 그들이 이상한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축구에 열광하지 않는 까닭을 이해하지 못하며, 누구를 만나든 그 사람을 자기네들과 똑같은 축구광으로 간주하고 한사코 축구 얘기를 늘어놓는다"고 꼬집는다. 그리고 축구광 택시기사와 오간 '의사 불통의 대화'를 소개한다. (이 글은 에코의 에세이집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에 실려 있다.)

 

축구에 대한 움베르토 에코의 글들이 실려 있는 책들.

 

에코는 축구팬 이야기를 하지만 사실은 축구만이 아니라 다양성을 부정하는 세력 전반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택시기사)는 축구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 그 자체를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거기에 있다. 그는 도대체가 다양성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사람이다." 트리포나스는 에코의 이 글이 "극단적 애국심, 인종 차별, 외국인 혐오증 등"과도 관련있는 것이라고 짚었다.

 

축구에 대한 에코의 말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축구팬을 '관음증 환자'에 비유한 대목이다. '자기 자신은 섹스를 하지 않으면서 대리만족을 위해 다른 사람들이 하는 섹스를 구경하기 위해 매주 일요일마다 암스테르담(사창가)에 가는 사람이 있다면 과연 정상이라 할 수 있는가.' 그런 사람을 관음증 환자라고 부르는 것처럼, 자기 신체로 직접 놀이(운동)는 하지 않으면서 스포츠 관람에만 정신이 팔린 사람 역시 관음증 환자라는 이야기다. 에코는 프로이트 이론을 이용해 축구를 억압된 욕망의 정신병리 현상으로 파악했다. 에코의 이런 주장에는 많은 반론이 나올 수 있다. 다만 관음화된 스포츠는 구경꾼을 '스포츠 잡담가'로 타락시키고 결국 사회적 위험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경고는 귀담아들을 만하다.

 

"재무부 장관이 하는 일을 판단하는 대신 당신은 코치가 하는 일에 대해 논의한다. 의회 기록을 검토하는 대신 당신은 운동 선수의 기록을 검토한다."

 

"어떤 장관이 외국 권력과 수상한 협정을 체결했는지 추궁하는 대신 결승전 등의 중요한 게임이 선수들의 실력에 의해 결정되는지 아니면 다른 외교적 수완에 의해 결정되는지를 더 질문한다."

 

에코에 따르면 공적인 영역의 정치적 담화는 "지도자가 무엇을 했어야 하는지, 실제로 무엇을 했는지, 우리는 그가 무엇을 하기를 바라는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스포츠 잡담이 정치적 말하기의 대용품"이 돼버렸고, 심지어 "그 자체가 정치적 말하기"가 됐다는 것이 에코의 진단이다.

 

에코는 축구를 로마 검투사들이 벌였던 '원형경기장 놀이'에 빗대 축구가 전쟁 뒤 벌어진 축제와 방탕, 강탈에 역사적 뿌리를 두고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기록으로 남아 있는 최초의 축구 경기는 서기 217, 지금의 영국 더비 지방에서 로마군에 대한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열린 축제의 일환이었다고 트리포나스는 설명한다. 에코는 이런 원형경기장 놀이가 역사적으로 지배자들에 이용돼 왔음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원형경기장 놀이의 유용성에 대한 로마 황제들의 날카로운 관찰을 거쳐, 아르헨티나를 포함한 독재정권들이 항상 대규모 시합을 교묘하게 이용한 사실"이다.

 

에코가 '월드컵과 그 화려한 잔치'를 쓴 것은 1978년 월드컵대회가 열렸을 때다. 당시 이탈리아에는 '붉은 여단'의 테러 공포가 극심하던 때였다. 그해 붉은 여단은 이탈리아 기독교민주당 소속의 전임 총리 알도 모로를 납치해 살해하는 사건을 저질렀다. 에코는 월드컵이 "테러에 대한 공포와 긴장의 고조로부터 하나의 일시적인 위안"이 됐다고 말한다. 월드컵이라는 화려한 잔치가 짧은 기분 전환을 제공하며, 안전에 대한 공포로부터 잠시 벗어나도록 국민을 진정시키는 효과는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것이 스포츠의 본질적 효능임을 에코는 인정한다. 하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위안은 됐을지언정 현실적인 안전 위협의 제거와는 무관했다.

 

1978년 월드컵대회가 열릴 무렵에 '붉은 여단'은 이탈리아 기독교민주당 소속의 전임 총리 알도 모로를 납치해 살해하는 사건을 저질렀다.

 

트리포나스는 '스포츠와 현실의 착각'의 문제를 보다 상세히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월드컵이 지니는 사회적 문화적 영향력은 바로 한 국가가 최소한 4년 동안 자신과 국민을 세계 최강자로 공언하고 과시할 수 있는 기회라는 데 있다. 공을 몇 번이나 골에 넣을 수 있는가 따위의 문제를 한 국가가 다른 국가에 비해 절대적으로 우월하다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로 여긴다. 월드컵 결과를 둘러싼 감정적인 열띤 논쟁, 그리고 대중의 "허풍떨 권리"가 만연하면서 "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만들어낸 착각"이 현실로 보인다. 스포츠 잡담가들은 축구 경기 결과를 '국력'과 연관 짓고, 그런 이야기를 공적인 화제로 여긴다. 그러는 사이 현실의 부조리는 암처럼 커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포츠는 서구 문화 전반에 스며들어 있으며, 스포츠와 인간·사회 관계를 저지하려는 시도는 서구 시민사회와 민주주의의 윤리적 개념을 무너뜨리려는 것과 유사하다는 것이 에코의 진단이다. 그래서 에코는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다. "정치적 토론에는 관심을 덜 기울이고 원형경기장 놀이의 사회학에 더 많이 몰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축구 경기가 벌어지는 일요일에 혁명이 일어나는 것이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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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월드컵대회에 출전한 한국 선수들이 16강 진출 성공의 좋은 성적을 거두고 귀국했다. 8강전에서 세계 최강 브라질을 만난 것은 손흥민 선수의 말대로 "불운한 일"이었을 수 있다. 하지만 카뮈의 생각을 빌어 말하자면 축구 경기 자체가 '부조리' 아닌가. 가나와의 2차전 때 납득하기 어려운 심판의 판정 등 축구 경기는 부조리의 연속이다. '영원한 우승 후보' 브라질이 뜻밖에도 크로아티아와 승부차기에서 패배해 8강전에서 탈락한 것도 브라질 눈에서 보면 부조리일 것이다. 이 부조리가 축구의 본질이고 묘미다.

 

이제 한국 축구는 또다시 무거운 바위를 끌고 산 위로 올라가야 한다. 그것은 이번 대회에서 우리보다 더 높은 산까지 오른 8, 4강은 물론이고, 앞으로 산의 최종정상에 오를 우승팀도 똑같다. 바위는 산에서 굴러떨어지고 다시 정상을 향해 바위를 끌고 힘겹게 올라가야 한다. 부조리는 우리가 굴하지 않음으로써 의미를 지닌다. '부조리의 처형'에 순응하지 않고 '자기의 운명보다 우위'에 서고자 하는 내면의 힘을 찾아내는 것, 그것이 인간이고 축구다. 그것은 단순한 고행이 아니라 '행복한 시지프'의 모습이다.

 

한국 선수들의 월드컵 선전을 두고 많은 이들이 "위로와 희망"을 말한다. 극심한 경기침체, 이태원 참사 등으로 우울증에 빠진 국민에게 희망과 감동,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생의 의지를 불러일으켰다고 칭송한다. 이런 말에 어느 정도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스포츠 잡담''정치적 담화'의 그 아득한 거리를 다시 생각한다. 축구 경기 결과를 '국운'과 연관 짓고, 그런 이야기를 정치적 말하기의 '대리담론'으로 삼는 사이 현실의 부조리는 암처럼 커간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해에 열린 2014년 월드컵대회가 끝난 뒤 이 땅에서 벌어진 그 참혹한 상황을 뒤돌아보라.

 

윤석열 대통령도 선수단 만찬에서 "국민에 대한 위로와 희망"을 이야기했다. 과연 대통령이 생각하는 위로와 희망은 무엇일까. 진정 국민에게 위로와 희망을 줘야 할 사람은 축구 선수단이 아니라 자기 자신임을 모르는 것일까. 월드컵 열풍에 편승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면서 "로마 황제들로부터 시작해 독재정권 지도자들에 이르기까지 역사적으로 끊이지 않은 원형경기장 놀이의 교묘한 활용"이라는 에코의 지적이 새삼 다가온다.

 

브라질 대표팀 감독은 4강 진출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대표팀 감독에서 물러날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감독으로서의 '도덕과 의무감'의 발로일 것이다. 현실의 세계에서 '감독의 실책'으로 156명이 목숨을 잃는 것은 단순히 축구 경기의 승부차기 실패와는 비교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이 땅의 감독과 코치들은 그 누구도 자리에서 물러나려 하지 않는다. 카뮈는 "도덕과 의무를 축구에서 배웠다"고 말했는데, 그 감독과 코치들은 어려서 축구를 해보지 않은 탓인가.

 

월드컵 대표팀 주장인 손흥민 선수는 이번 대회에서 캡틴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경기 전반의 흐름을 꿰뚫는 넓은 시야, 팀을 위한 헌신과 책임, 자신보다도 팀과 동료를 먼저 생각하고 때로는 조연 역할도 마다하지 않는 겸허함, '월드클래스'의 카리스마와 묵직한 중량감 등등. 그런 손 선수가 청와대 영빈관 만찬에서 윤 대통령에게 대한민국을 잘 이끌어달라며 '주장 완장'을 채워줬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주장 완장을 넘겨받은 사람은 '캡틴의 능력과 품격'이 무엇인지에 대해 제대로 생각이나 해보고 있을까.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움베르토 에코가 쓴 에세이집 제목이다. 그런데 '웃으면서 화를 내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이 세상에 '권력형 바보들'과 그들의 바보짓이 갑자기 늘어났다. 이탈리아 축구광팬 택시기사의 경우처럼 의사소통 불능의 상황도 이어진다. 개인적 수양 부족 탓인지 몰라도 그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를 낼 수 없는 요즘이다.

 

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축구 국가대표팀 환영 만찬에서 주장 손흥민 선수가 2022 카타르 월드컵 기간 착용했던 주장 완장을 윤석열 대통령에게 채워주고 있다. 연합뉴스

김종구 (언론인) | 프레시안 2022.12.12

 

 

대통령이 생각하는 '한동훈의 임무'는 무엇일까?

한동훈 법무장관과 민주당의 운명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3일 현재 거론되는 당권 주자들에 대해 "다들 성에 차지 않는다"며 차기 당대표의 조건으로 수도권과 MZ세대에 어필할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언론은 그 인물로 한동훈 법무부장관을 지목했다.

 

7일 한 장관은 당대표 차출설에 대해 "중요한 할 일이 많아 장관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분명히, 단호하게 말씀드린다"며 선을 그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도 한 언론과의 통화에서 "법무부 장관이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무슨 당 대표 차출이냐'는 게 대통령의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일단 한동훈 차출설이 일단락되는 듯하다. 그러나 당대표 선출이 두 달여 앞으로 다가온 지금 예측은 금물이다. 유승민은 절대 안 되고, 안철수는 믿을 수 없고, 그 외 주자들도 다들 성에 차지 않으면 결국 한동훈을 등판시켜야 할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그런데 궁금해진다. 한 장관이 수행할 '중요한 할 일'이 과연 무엇일까.

 

안철수의 '민주당 궤멸' 발언, 누구 생각일까

지난 8일 안철수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을 궤멸시키겠다"고 했다. 이례적인 강경발언이다. 최근 그는 "윤석열 정부 성공에 가장 절박한 사람"이 자신이라면서 자신이 당대표가 되어 총선에서 압승해 "반드시 민주당을 궤멸시키겠다"는 것이다. 자신이 한때 몸담고 당대표까지 했던 정당에 대해 이러한 막말 수준의 다짐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그는 윤석열 정부의 '인수위원장,' '연대보증인'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친윤'을 자처하고 있다. 대통령의 마음을 사기 위해 애 쓰는 모습이 역력하다. 그의 발언은 사실상 윤 대통령을 향한 것이고, '당신이 바라는 것을 내가 해내겠다'는 다짐이자 약속이다. 그렇다면 '민주당을 궤멸시키겠다'는 발언은 왜 나왔을까? 대통령이 원하는 것이기 바로 그것이기 때문 아닐까.

 

7일 한 장관은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관련해 문재인 전 대통령이 수사선상에 오를 가능성에 대해 "검찰에서 투명하고 공정하게 수사할 것"이라면서 "헌법과 법률을 초월하는 의미의 통치 행위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대통령의 통치행위는 인정하지 않고 법리로만 따지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아울러 그는 "대북송금 특검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었던 문 전 대통령이 "그때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관여한 것이 드러난다면 유감스럽지만 책임을 지셔야 한다는 말씀도 하셨던 걸로 기억한다"며 과거 문 전 대통령의 발언까지 소환했다. 직전 대통령 수사에 대한 명분도 이미 확보했음을 언론 앞에서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다.

 

한 장관의 발언, 윤 대통령의 생각 아닌가

"인사권을 쥐고 있는 정치권력이 사법 업무를 하는 사람들에 대해 그냥 보복한 것이에요. 권력자가 인사권을 이런 식으로 한다면 거의 범죄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과거의 어떤 정권도 이런 짓을 못 했습니다, 겁이 나서. 근데 여기는 겁이 없어요. 보통은 겁나서 못합니다. 안 그렇습니까? 대통령 임기 5년이 뭐가 대단하다고. 너무 겁이 없어요, 하는 거 보면."

 

지난 대선 때 윤석열 후보는 한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에 대한 불만을 거친 언어로 거침없이 드러냈다. 그의 발언에 따르면 임기 5년 짜리 대통령이 겁도 없이 감히 검찰을 건드린 짓은 검찰에 대한 보복이자 범죄라는 것이다. 정치를 검찰의 아래에 두고 가소롭게 여기는 듯한 태도마저 엿보인다.

 

지금의 검찰은 노무현을 수사했고 이명박과 박근혜를 감옥에 보낸 장본인이다. 사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그리 좋은 직업이 아니다. 이승만은 하야했고, 장면은 실각 후 감옥에 갔고, 박정희는 부하에게 살해됐고, 최규하는 하야 당했고, 전두환과 노태우는 함께 감옥에 갔다. 김영삼은 김대중이 대통령이 된 덕에 무사했고 김대중은 박지원 전 국정원장이 대신 감옥에 가면서 전직 대통령이 무사한 전례가 만들어지나 했는데 다시 노무현이 수사 받다가 유명을 달리했고 이명박과 박근혜는 중형을 선고 받고 감옥에 갔다.

 

퇴임하고 무사한 대통령 찾기가 어려운 것이 한국의 정치사다. 검찰이 전직 대통령 수사하고 감옥 보내는 것이 관례화되다시피 했다. 결국 지금 문재인 전 대통령을 향한 검찰의 칼날이 조여드는 반복되는 상황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문재인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다 걸겠다. 그쪽은 무엇을 걸 것인가!

 

민주당의 씨를 말리려는 것인가

지금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풍전등화에 처했다. 1야당 대표를 그렇게 쉽게 제거할 수 있겠냐는 의견도 있지만 부담으로 치면 전직 대통령 보다 훨씬 쉬운 게 야당 대표다. 이 대표의 말처럼 검찰의 연출력이 조금 뒤떨어지는 면도 없지 않다.

 

그러나 무수한 대통령들을 결국 감옥에 보낸 집념의 검찰이다. 한 번 물면 놓지 않는다. 게다가 이 대표에 대해 수사 중인 혐의도 한두 건이 아니다. 어떻게든 기소할 것이다. 그러면 최근 들어 구속영장을 남발하는 법원이 구속을 실현하고 유별나게 민주당 계열 대권주자들에게만 논란의 유죄판결을 해온 사법부가 실형을 선고할 가능성도 있다. 멀리는 이광재, 한명숙이, 가까이는 김경수가 그렇게 사라졌다.

 

문재인 정부가 시도했던 검찰개혁이 결국 실패했고 윤석열 정부 검찰은 무소불위의 권력이 됐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이 무능의 대가를 처절하게 치러야 할 상황에 처했다. 박지원 전 원장의 표현처럼 검찰이 이재명 대표는 비리로, 문재인 전 대통령은 종북으로 제거할 모양새다. 사실은 민주당의 씨를 말리려는 것이다.

 

집이 불타오르는데 개울에서 가재 잡는 사람들

최근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외치며 대표직에서 물러나라는 이들이 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다. 이해는 한다. 굴러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고 당대표까지 되니 못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이재명은 역대 민주당 대선 후보 최다 득표자이고 당원 77.77%의 지지로 당대표가 된 역대 최고 득표자이다. 20년 집권을 떠들다가 정권도 빼앗기고 당권마저 이재명에게 간 것은 기존 민주당의 무능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 자신이 잘 알 것이다. 5년 짜리 대통령이라는 점을. 이런 상태로 임기 중반을 넘어서면 잠이 오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민주당이 20년 동안 일어서지 못하게 해야 자신의 안전이 보장된다. 그러려면 지금 민주당을 철저하게 궤멸시켜야 한다. 당연히 문재인과 이재명을 제거해야 하고 민주당을 국민들에게 비리집단, 종북집단으로 각인시켜야 한다.

 

그런데 민주당은 자기 집이 불타오르는데 개울에서 가재 잡는 격이다. 이재명이 물러나야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착각이다. 왕따가 다른 학교로 전학 가면 왕따가 없어지는 게 아니라 곧 새로 생기듯, 이재명이 물러나더라도 새로운 당대표는 곧 윤석열 검찰의 표적이 될 것이다. 윤석열 정부 아래 야당 대표를 할 정도로 겁 없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정확하게 이해하자. 그리고 지금 민주당이 불안하고 어수선한 원인은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가 아니라 윤석열 대통령이다. 한동훈 장관은 그 대리인이고 그의 수족은 특수부 검사들이다. 과거 중수부 칼잡이들이 노무현에게 덤벼들었고 결국 우리는 그 끝을 보았다. 야당은 지금 정세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정확히 판단해야 한다.

정희준 전 동아대 교수 | 프레시안 2022.12.12.

 

 

삼성 여성 사장의 빛과 그림자

대학을 나와 1993년 들어간 회사에서 힘들게 임원을 달았던 한 친구가 최근 퇴임을 통보받았다. 발표가 나던 날, 그는 재빨리 자리를 정리하고 소속사 대부분 사무실과 오래 일한 본사까지 일일이 돌며 인사를 나눴다고 했다. ‘잘리는임원들은 죄지은 듯 조용히 사라지거나 아예 회사에 안 나오는 게 당연시되는 연말 대기업의 인사철 풍경에선 튀는행동이었을 것이다. “더 못 올라간 데 대해 할 말 많지. 하지만 함께 일한 남성후배들이 임원 된 것도 뿌듯하고 29년간 나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해. 도망치듯 회사와 이별하고 싶지 않았어.” 많은 말이 생략돼 있지만 그 마음을 알 것 같았다.

 

1990년대 초반은 대졸 여성들이 처음 대기업에 본격 진출한 시기였다. 1988년 남녀고용평등법 첫 시행과 대학의 여성 재학생 30% 돌파가 큰 배경이었다. 92년 비서전문직, 93년 여성전문직 공채로 한국 대기업에 실질적인 여성공채시대를 연 삼성은 96년 여성 직원들의 이야기를 묶어 <여자가 힘든 건가요, 내가 힘든 건가요>를 펴내기도 했다. 고 이건희 회장이 10여년 전 여성 임원들에게 사장이 나와야 한다고 격려했다는 건 잘 알려진 얘기다. 세월이 흘러 마침내삼성에서 첫 여성 사장 승진 소식이 나왔다. 일부 언론은 각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사설도 썼다. 아이티업체 여성 시이오는 이미 몇년 된 현상이지만, 올 연말 4대 그룹 가운데 현대차를 제외한 삼성·에스케이·엘지에서 여성 사장과 시이오들이 동시에 나온 것은 분명 특기할 일이다.

 

그런데 하나 더 특기할 건 이정애 엘지생활건강 대표이사를 제외하곤 모두 외부 출신이라는 점이다. 몇년 전부터 두드러진 여성 임원들 약진에선 기술직 공채거나 해외 유학 경력에 외국계 마케팅 회사에서 능력을 키운 인물이라는 패턴이 주요하게 반복되고 있다. 요즘 같은 능력주의와 대이직 시대에 첫 직장을 따지는 건 고리타분할 뿐더러 차별일 게다. 하지만 한국의 대기업이 외국계 기업처럼 지난 30년간 여성 인재들을 키워왔고 지금 키우고 있느냐는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2010년 삼성의 여성 직원 책에 실렸던 16명을 확인했을 때 남아있는 이는 임원이 된 단 한명이었다. 한 대기업 여성 임원은 우리끼리 독거노인 아니면 생계형이라는 자조적인 농담도 한다. 남편이 잘 버는 여성들에겐 왜 자리 차지하냐는 시선이 있는데 싱글이거나 남편이 못 벌면 그래 너도 우리와 마찬가지지같은 시선이 있으니까라고 말했다. 대기업의 임원이 절로 크는 자리는 아니다. 한 여성 부장은 해외 주재원을 보내는데 남편은 같이 가지 않는다니 회사에서 집안에 무슨 문제가 있냐. 그렇게까지 무리할 필요 없다며 해당 후보를 주저앉혔던 이야기를 들려줬다.

 

기업분석기관 리더스인덱스의 박주근 대표의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102%를 돌파한 여성 임원 비중이 20221분기 6.3%가 됐다. 그런데 남·녀 직원 대비 남·녀 임원 비중은 남성이 5배가 높다. 임원 직무는 기술과 마케팅이 엇비슷하고 특히 재무는 압도적으로 남성이 많다. (500대 기업 10884명 조사) 단적으로 외국계기업은 한국 여성 시에프오가 대부분인데 우리 대기업엔 하나도 없다. 총수일가를 중심으로 한 폐쇄적인 지배구조를 가진 대기업들이 측근 중심의 운영방식으로 작동하는데 여성은 그 이너서클에 끼지 못하는 것이다.” 여성 인재가 자라지 않는 것 자체가 후진적인 한국 대기업의 구조와 연관이 있다는 말인 셈이다.

 

2년 전 국회에서 극적으로 통과된 개정 자본시장법이 올 8월 시행되며, 2조 이상 자산을 가진 상장기업 이사회에 여성이사 최소 1명이 의무화됐다. 이에 힘입어 30대 그룹 219개 기업의 여성 사외이사는 지난해 3분기 대비 올해 3분기 46%(38)가 늘어났다. 반면 여성 사내이사는 제자리다. 게다가 전문성과 독립성에 기반해 경영을 감시해야 할 사외이사 제도의 애초 취지와 달리 한국에선 정권과의 네트워크를 보충하는 의미가 더 크다. 관료, 법조계 출신이 많은 이유다. 리더스인덱스 조사에 따르면, 여성 검사장 출신 세명이 모두 복수의 사외이사를 맡는 등 개정 법 이후에도 출신이나 역할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한다.

 

여성임원들이 늘고 있지만 승진 비율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리더스인덱스 제공

 

여성 임원 스스로 여성이란 점이 부각될까 걱정하고 네트워크 형성을 피하는 분위기 또한 적잖다. 엘리트 의식 탓도 있겠지만, 여성이 상징적인 토큰에 머무는 구조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현상이기도 하다. 유럽연합 의회가 10년의 논쟁 끝에 지난달 27개 회원국 기업에 2026년까지 여성 이사를 40%(비상임 경우)이상 두도록 의무화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자유경쟁시장의 천국인 미국조차 나스닥 상장기업의 이사회 다양성 규정이 도입되며 올 8월부터 기업들의 다양성 공표가 잇따르고 있다. 2025~2026년까지 3500여개 상장기업이 최소 여성 1명과 소수인종 또는 성소수자 1명을 이사로 두도록 했는데 유럽과 달리 처벌규정은 없다.

 

여성 할당제가 기업 수익에 도움이 되느냐는 서구 역시 논란의 대상이다. 유럽연합은 이번에 보고서를 내며 여성 리더십이 더 윤리적이거나 뛰어나다는 주장 또한 젠더 고정관념을 강화할 수 있는 잘못된 질문이라며, 다만 여성 관리자 증가가 팩트 중심의 집중적인 논의 구조를 가져오고 상호작용을 증대시킨다는 연구결과는 많다고 밝혔다.

 

사실 우리는 이를 제대로 검증해볼 기회조차 없지 않았나. 대부분 국가가 공기업이 지배구조에선 앞서가는 법인데 민간기업에도 여성이사 1명 이상이 의무화된 마당에 공기업에 이런 규정이 없다는 한국의 현실 또한 한심한 일이다. 한술 더 떠 윤석열 정부는 부처 평가 기준에서 여성 관리자 확대 성과 등을 제외하기까지 했다.

 

여성 사장이라는 빛나는 별이 한두명의 성공사례에 그치지 않으려면 양적으로, 질적으로 달라져야 한다. 동시에 여성들이 기업에서 살아남고 올라가는 방식도, 떠나는 방식도 다르길 기대한다. 성별이 달라서가 아니라, 인식과 판단과 행동이 다른 이들이 늘어날 때 폐쇄적인 한국 기업문화에도 균열을 낼 것이다. 이제 여성 임원 2라운드다.

dora@hani.co.kr

김영희 논설위원실장 한겨레 2022.12.12.

 

화물연대 파업과 합의의 가치

노사는 우리에게 중재를 요청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당사자끼리 합의가 안 돼서 일단 우리에게 중재를 요청했다면, 그때부터는 철저히 규칙을 따라야 합니다. 파업이나 직장폐쇄는 즉시 멈춰야 합니다. 조금이라도 규칙을 따르지 않으면 최대한의 제재를 가합니다.” 몇 년 전 유럽의 사회적 대화 실태를 연구하기 위해 방문했던 스웨덴 국립중재위원회에서 들은 말이다. 스톡홀름 감라스탄 남쪽 허름한 건물 안 사무실에서 커트 에릭손 국립중재위 법률부장은 엄청난 얘기들을 아무렇지 않게 쏟아냈다. 세계 최고로 노동권이 존중받는 나라에서 노조를 이렇게 엄격하게 대한다니 약간은 의외였다.

 

그 대신 우리는 결과로 보답합니다. 노조가 임금 인상을 자제하면 인플레이션을 확실하게 잡아서 설사 명목임금이 깎이더라도 실질임금이 오른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그가 보여준 그래프는 1990년 이래 25년간 명목임금은 정체되거나 삭감되는 해가 많았지만 실질임금은 지속적으로 상승해서 유럽 최고 수준에 도달해 있음을 한눈에 보여주었다. 실제로 스웨덴 국립중재위에 주어진 임무는 세 가지이다. 첫째, 노사갈등의 중재. 둘째, 원활한 임금 결정. 셋째, 임금 관련 통계의 제공. 단순히 중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임금 자료에 근거해서 중재의 결과가 노사에 모두 이익이 된다는 점을 꾸준히 입증해 나가는 것이다.

 

내가 스웨덴 국립중재위를 방문한 이듬해인 2016, 스웨덴 제2의 도시이자 최대 항구인 예테보리에서 항만 파업이 발생했다. 파업의 내용은 이번 한국의 화물연대 파업을 거의 빼닮았다. 스웨덴이나 한국이나 세계 최고 수준의 무역의존도를 가진 나라들이고, 이런 나라에서 물류를 멈추는 것은 국가 경제 전체에 엄청난 파급력을 가진다. 파업을 주도한 항만노동자조합은 기존에 운송노동자조합이 전국 단위의 단체협약을 맺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별도의 단체협약권을 달라며 비타협적으로 투쟁했다. 국가의 개입을 최대한 배제한 상태에서 전국 단위의 경총과 노총이 단체협약을 맺는 스웨덴 모델에서 사실상의 예외를 인정해달라는 요구로서, 살트셰바덴 협약 이후 70년 이상 산업평화를 유지해온 스웨덴에서는 매우 예외적인 사례였다.

 

일바 요한손 고용부 장관은 예테보리 사태가 산업평화의 모범 사례인 스웨덴 모델을 위협하고 있으며, 노사는 더 이상 문제 해결 능력이 없다면서 파업권을 제한할 수 있도록 법률을 개정하겠다고 선언했다. 다른 나라도 아닌 스웨덴 정부가 파업권을 제한하겠다는 건 충격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진짜 반전은 얼마 후 일어났다. 정부가 미처 개정안을 마련하기도 전에 스웨덴 경총과 대표 노총 세 곳이 노동자의 파업권을 제한하는 합의문을 발표한 것이다. 이들은 사태의 책임이 전적으로 파업을 주도한 항만노동자조합에 있음을 분명히 하고, 노동자 파업권을 스스로 제한하는 이례적 합의문에 서명했다. 스웨덴 정부는 이 합의문을 인정하고 독자적인 법 개정 시도를 중단했다. 노총과 경총, 그리고 정부가 모두 동의한 최고의 가치는 오랫동안 모두에게 이익을 가져다준 스웨덴 모델을 위태롭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번 화물연대 파업을 통해 한국은 무엇을 얻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화물연대는 얻은 것 없이 백기투항해야 했고, 정부·여당이 제시했던 안전운임제 3년 연장조차 얻어내지 못할 위기에 처했다. 일몰제 폐지와 안전운임제 적용범위 확대를 담은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며 파업에 군불을 땠던 민주당은 사태가 불리해지자 재빨리 3년 연장안을 통과시켜버렸다. 시효 만료에 따른 안전운임제 완전 폐지를 막아냈다는 명분과 노동계를 같은 편으로 묶어두면서 정부·여당의 협상력을 희석하는 실리를 모두 챙겼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피해는 고스란히 화물연대가 떠안았다. 정부·여당은 일몰 시한이 다가오도록 별 관심이 없다가 파업이 시작되자 뒤늦게 강경 대응했지만, 장기적인 산업평화에는 오히려 긴장이 더 높아지게 되었다. 당장의 행동이 친노동처럼 보이느냐 반노동처럼 보이느냐가 문제가 아니다. 합의를 하면 그것이 실제로 모두에게 이익이 되도록 관리하고 장기적으로 증명해야 할 책임이 정부·여당에 있다. 합의의 가치라는 스웨덴 모델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파업권을 제한하는 데 동의한 스웨덴 노총처럼, 모두를 위해 지켜야 할 노동시장에서의 공통의 가치를 도출해야 할 책임이 노사정과 여야 모두에게 있다. 화물연대 파업의 최종 결론은 이제부터 무엇을 하느냐에 달렸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경향 2022.12.13.

 

파업에 혐오 덧씌우는 이중 가정

1888년 영국 동부의 브라이언트 앤드 메이 성냥공장에 근무하는 여성 및 소녀 노동자 1000여명은 최초의 대규모 여성 노동자 파업을 단행했다. 하루 14시간 이상의 노동과 저임금 및 벌금제도도 문제였지만, 가장 큰 계기는 성냥제조에 사용된 백린의 치명적 부작용 때문이었다. 백린은 턱이 괴사되는 인중독성 괴사(phossy jaw) 등 인체에 축적되어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는 유해 물질이었다. 최근 개봉된 <에놀라 홈즈2> 영화가 바로 이 파업의 발단이 된 백린의 비밀을 파헤치는 내용이다. 영화에서는 질병에 걸린 여성은 장티푸스에 걸렸다고 비난하며 내쫓았고, 백린의 문제를 제기한 여성노동자는 신변의 위협까지 받는다. 이런 상황에서 공장의 노동자가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 일을 중단하고 거리로 나서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1888년 영국 성냥공장의 현실과 한국은 얼마나 차이가 있는 것일까. 지난 1125일 급식노동자 920명이 동참한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자 파업이 있었다. 이것은 요리 매연에 의한 높은 폐암 발생률이 도화선이 되었다. 20214월에 12년 동안 학교 급식실에서 근무하다 폐암으로 사망한 조리실무사가 산업재해 인정을 받았다. 그해 말 전국 학교 급식종사자 건강진단이 이루어졌고, 그 결과 급식종사자 18545명 중 무려 187명이나 폐암이 의심되거나 매우 의심된다는 진단을 받았다. 이것은 일반인과 비교해 무려 ‘35나 높은 수치였다. 이로써 요리 매연의 해로움이 밝혀졌지만, 고용노동부의 가이드라인만 나왔을 뿐 1년이 넘게 실질적인 개선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급식노동자의 파업 동참은 생존이 걸린 문제였다.

 

11월에는 급식노동자를 포함해 여러 파업이 동시에 단행됐다. 23일 건강보험 고객센터 노동자가, 24일 화물연대 소속 노동자가, 25일 급식노동자를 포함한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자가 일을 멈추고 거리로 나섰다. 이를 두고 생떼 같은 줄파업이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특히 여당 측 정치권은 대국민 갑질” “불법투쟁이라 연이어 비판했고, 화물연대의 파업은 명분도 없이 국민을 볼모로 하는 불법적, 폭력적 행동으로 규정되었다. “민폐노총” “기획파업” “반노동등 온갖 부정적 이미지들이 경쟁하듯 쏟아졌다. 미디어에서도 몸자보와 띠를 두른 파업 노동자들이 무력시위를 하는 듯 비춰지는 모습들이 주로 사용되었다. 그렇게 파업 노동자들에게 법 위에 군림하고, ‘국민경제가 수조원 손실에 이를지라도 안하무인이라는 무질서, 무법자의 이미지가 덧씌워졌다.

 

하지만 이러한 혐오스러운 이미지들의 반복 속에 끝없이 반복되는 산업재해의 피해자들은 빠르게 삭제되고 잊혀져 간다. 끼임사고로 사망하고, 유해물질로 사망하고, 과로로 사망하는 노동자들의 이미지들은 왜 그토록 휘발성이 강한 것일까. 현재 시점 한국 사회에서 파업 이미지가 덧씌워진 노동자의 얼굴은 마치 과거 반공교육 때 등장했던 뿔 달린 괴물이 겹쳐진다. 미국 정신과 의사이자 사회학자인 조너선 메츨은 1960·1970년대 미국에서 흑인 남성이 쉽게 분노하는 기질을 가진 것으로 묘사되면서 조현병 환자의 공공연한 모델로 선정되었다고 말한다. 각종 조현병 약물 광고 속 흑인 남성의 얼굴은 이성을 잃은 짐승처럼 울부짖는 모습이었다. 메츨은 이것을 저항의 정신병(protest psychosis)’이라 불렀다.

 

, 인종차별에 저항하는 흑인의 목소리가 정신병 환자의 비이성적인 외침과 떼쓰기 정도로 치부된 셈이었다. 의학 저널, 언론, 광고, 정치 등 모든 영역에서 당시 흑인의 이미지는 약으로 통제하지 않는다면 충분히 정신병자처럼(실제로 정신병자가 아니라 밝혀진다고 해도) 사회에 악영향을 끼쳤을 수 있다고 믿어지게끔 만들어졌다. 그들의 있었을지 모르는 미래의 위협은 그렇게 미국 사회의 현실에 영원한 실질적 위협으로 사실처럼 받아들여지게 된 셈이다.

 

캐나다 출신 정치 철학자 브라이언 마수미는 이처럼 했었을 것이다. 할 수 있었을 것이다의 논리로 특정 세력의 위협을 실제로 만드는 것을 이중 가정에 따른 위협이라 부른다. 오늘날 한국 노동자의 잇단 파업에 각종 혐오 이미지가 덧씌워지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한국도 이중 가정의 사회로 접어든 것이 아닌가 우려된다. 이제는 지금처럼 파업 노동자를 억제하지 않았다면 국민을 볼모로 국가 경제를 파탄시킬 수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을 사실처럼 믿는 사회가 된 것은 아닐까.

김관욱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경향 2022.12.13.

 

 

검찰 정권은 끝내 평화의 장성을 허물려는가

조선 선조 때 태어나 인조반정 직후 처형된 박엽(1570~1623)은 살벌한 명·청 교체기에 평안도에서만 10여년 장기 근무하는 등 북방 전문가로 특이한 이력을 쌓은 인물이다. 광해군 정권 때 의주부윤과 평안도관찰사 등으로 재직하며 여러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한명기 명지대 교수는 저서 <최명길 평전>에서 박엽에 대해 사람됨이 사납고 엄격하여 재직 시에 사람 죽이기를 풀 베듯 했광해군에게 항상 뇌물을 바쳐 신임을 얻었다는 당대인들의 평가를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도 한 교수가 책의 적잖은 분량으로 이 인물의 운명을 소개한 것은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서 나라를 구해낸 최명길(1586~1647)이 남긴 평가 때문이다.

16234월 반정에 성공한 뒤 최명길은 원훈 김류에게 편지를 보내 광해군 사람인 박엽의 구명을 요청했다. “제가 생각건대 장차 우리나라에 닥칠 병란으로는 북쪽 오랑캐가 가장 걱정스럽습니다. 천기를 살피면 이처럼 장수의 지략을 지닌 사람을 살려야 합니다.” “대감께서 만약 이 사람을 죽인다면 그것은 대감의 손으로 우리나라의 장성(長城)을 허무는 것이니 만일 북쪽 오랑캐가 달려 내려온다면 누가 그것을 막겠습니까. 반드시 후회하실 날이 있을 것입니다.”

 

박엽은 16199월 평안도관찰사가 되어 인조반정 직후 처형되기까지 36개월을 재직했다. 그가 관찰사직을 맡은 것은 강홍립의 13천 조선군이 사르후 전투에서 후금에 궤멸된 직후였다. 나라가 휘청거린 위기에서 박엽은 사실상 조선의 대후금 외교의 전권을 쥐고 큰 탈 없이 서북방 변경의 안정을 유지했다. 이를 지켜본 최명길이 박엽이 지닌 후금과의 교섭 능력과, 첩자와 재물을 활용해 구축·유지해온 외교통로 등을 아깝게 생각한 것이다.

 

당대 정권의 판단은 달랐다. 김류는 박엽이 광해군에게 충성을 다한 인물이므로 후환을 없애야 한다고 봤다. 그가 처형되자 원한을 품었던 이들이 관을 부수고 주검을 꺼내 토막 냈다.

시간이 흘러 최명길의 우려가 현실화됐다. 병자호란이 발생한 1636년 최명길은 재차 편지를 보내 낙담한 심경을 토로했다. “박엽이 살아 있었더라면, 정묘호란도 없었을 것이고 오늘의 이런 우환도 없었을 것입니다.”

 

윤석열-한동훈의 검찰 정권이 9일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구속 기소했다. 공무원 이대준씨가 북한군에 피살된 사실이 알려질 경우 남북 화해협력을 강조하던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한 비판이 커질 것을 우려해 이 사태를 자진 월북으로 정리하고 보도자료 등을 만들어 돌렸다는 이유다.

 

문득, 2018427일 판문점의 광경이 눈에 그려진다.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꿈꿨던 판문점 선언이 타결되는 순간 서훈 당시 국가정보원장은 복잡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안경을 벗고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쳤다. 라종일 가천대 석좌교수는 책 <하노이의 길>(2022)에서 그가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별 직책 없이 아내와 함께 서울 청계천 변에서 작은 와플 가게를 운영했다고 썼다. 검찰 말이 다 맞다 해도 서 전 실장이 그로 인해 무엇을 얻었는지 알 수 없다. 형사 처벌이 아닌 정치적 비판으로 족하지 않은가.

 

외교·안보 분야에 대한 통치행위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캄캄한 망망대해에서 국가의 침로를 정하는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각각의 정부가 절박한 상황과 한정된 정보 속에서 고심 끝에 판단하고, 이를 한반도 평화를 위한 정책 추진에 도움 되는 쪽으로 해석했다고 처벌하면 역대 정부 담당자들의 반 이상은 쇠고랑을 차야 한다. 외교 행위의 절반 이상은 안타깝게도 벌어진 현상과 내려진 결정을 자국에 유리하게 해석해 설명하는 분식이라 할 수 있다.

박근혜 정부의 위안부 합의에 대한 전임 정권의 과도한 대응(합의를 주도한 이병기 전 청와대 비서실장도 큰 고초를 겪었다)으로 한-일 관계는 파탄 났고, 그 후과가 아직 우리 발목을 잡고 있다. 서 전 실장의 처벌은 남북 관계와 한-중 관계 등에 몇배나 더 큰 파장을 몰고 올 것이다. ‘하노이 파국이후 우린 길을 잃었고, 이를 만회하려던 이 앞에 엉뚱한 망나니가 칼춤을 추고 있다. 서 전 실장에게 잘못이 있다면 역사가 평가할 것이다. 검찰 정권은 겸손해야 한다. /길윤형 | 국제부장 한겨레 2022.12.13.

 

 

당신이 아직 살아 있다면 당신은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은 틀렸다. 지금 이 시간 연약한 존재들을 가장 잔혹하게 죽이고, 파괴하고 있는 것은 모두 살아 있는 이들이다. 인간이 지구라는 행성 파괴의 주범인 인류세’, 강자가 약자를 도륙하는 것을 능력이라 부르는 우생세라는 반동의 시대엔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죄가 된다.

 

당신이 아직 살아 있다면 당신은 . 늙지도 못하고 죽는 이들이 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다이아몬드를 생산하는 시에라리온은 평균 수명이 40살에 미치지 못하고, 우리와 같은 유전자를 가진 북한 주민의 평균 수명은 73살로 우리보다 11년이나 짧다. 멀고 가까운 곳에서 아이들이 배고파 일찍 죽어가는데, 당신이 40살을 넘었거나 73살보다 오래 산다면 당신은 .

지난 2월 멕시코 신문기자 안토니오 데라크루스(47)는 집을 나서다 총에 맞아 죽었다. 매년 100명 내외의 기자들이 권력에 의해 살해·실종된다. 당신이 불의한 정권으로부터 위협받지 않는 기자라면, 하물며 대통령 파이팅!”을 외친다면 당신은 .

 

기독교 탄압이 극에 달하던 시절, 병사들은 신도 색출을 위해 잡혀온 이들에게 성화를 밟게 했다. 거부한 이들은 죽고 성화를 밟은 자는 살아남았다. “밟아라, 나는 너희에게 밟히기 위해 존재하느니라했던 성화 속 인간 예수도 죽었다. 하지만 지금 화려한 교회당 안을 가득 메우고 있는 것은 고급 자가용차 뒷좌석에서 내린 죽지 않은 자의 쩌렁쩌렁한 목소리다.

 

예수회 사제들은 이탈리아 철학자인 조르다노 브루노가 지금은 사실이 된 지동설을 주장했다는 이유로 그의 턱에 쇠로 된 재갈을 물리고, 쇠꼬챙이로 혀와 입천장을 뚫은 뒤 발가벗겨 화형에 처했다. 1000년간 신성불가침으로 여기던 갈레노스의 의학 저술에서 적어도 200개 이상의 잘못을 찾아낸 근대의학의 아버지 베살리우스의 책은 수없이 불살라졌다. 부패한 정권이 자신들에게 불리한 책들을 모아 불태울 때, 그 책 목록에 자기 책이 없는 것을 알고는, 권력자에게 나를 태워라는 편지를 쓰는 학자를 이제 대학 안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박노자의 말처럼, 위험하지 않은 학문은 이미 죽은 학문이다. 이른바 잘나가는 교수들의 상당수가 정부, 영리 기업, 심지어 방산 기업에서 연구비를 받는다. 국방기술진흥연구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무기 수출 순위 세계 8, 성장률 1위 국가가 되었다. 전세계 무기 수출 점유율 39.0%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1위 국가 처럼, 이제 우리나라도 전쟁이 없으면 부추기기라도 해야 경제가 잘 돌아가는 국가가 되었다. 그 전쟁무기 기술자를 키워내는 곳이 다름 아닌 대학이라는 것이 무섭다. 죽은 이들의 피 묻은 돈이 거액의 연구비로 전환되고 이 연구비로 급료를 받는 젊은 연구원들은 이 시간에도 교수 대신 유명 학술지에 논문을 쓰느라 밤을 새운다. 부패한 권력에 위협을 가하지 않는 대필 논문과 거액의 연구비 수주로 학계와 학교로부터 칭송받으며 살아가는 교수라면 당신은 .

 

지난달 30일 대법원은 쌍용차 노조 30억원 배상 청구 소송을 파기하고 서울고법으로 환송했다. 늦게나마 다행이지만 이미 30명의 해고자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삼성 계열사에서 일하다 죽은 직업병 환자가 118명을 넘어섰지만, 가해자들은 아주 건강하게살아 있다. 하루 2~3명의 노동자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전세계 산재사망률 부동의 1위를 오랫동안 지키고 있는 나라에서 가해자들은 중대재해처벌법을 없애달라 비싼 양주잔을 돌리고, 정치가들은 이들과 어깨동무를 한 채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고 있다. 기억하라! 이들은 모두 살아 있는 자들이다.

 

태권도 사범을 꿈꾸던 경빈이, 슈퍼스타가 되어 효도하겠다던 예진이와 250여명의 어린 친구들, 그리고 2년 반 기다린 취업 문자를 받았던 상은이, 배우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퇴근 뒤에도 연습실에서 무용 연습을 하던 지연이, 하루 12시간씩 아르바이트를 하며 유학을 꿈꿨던 가영이 등 158명 젊은이들의 꿈은 깊은 바다에 가라앉고 이태원에서 멈추어 섰지만 책임자들은 아직도 당당히 살아 있다. 내가 죽고 네가 산다면, 산 자들이 죽고 죽은 너희들이 산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좋아지지 않았을까?

날지 못하는 돼지는 그저 돼지일 뿐이다.” 국민을 보호하지 못하고, 노동자를 적으로 돌리며, 자신의 정권 안위와 공천권만을 좇는 정치인들은 살아 있는 일 뿐이다.

 

10여년 전 방문한 광주 5·18 추모관 벽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힌 메모지가 붙어 있었다. “나는 520일날 도망갔습니다. 미안합니다(전남대 77학번 ○○○).” 난세에는 도망가는 게 사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을 미워하지도 않는 살아남은 자는 그저 일 뿐이다.

 

좋은 벗들의 부고가 늘 먼저 온다. 그래서 영화 <붉은 돼지>의 주인공은 좋은 놈들은 모두 죽고, 인간은 중년이 지나면 가 된다고 읊조렸나 보다.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은 틀렸다. 지금 이 시간 연약한 존재들을 가장 잔혹하게 죽이고, 파괴하고 있는 것은 모두 살아 있는 이들이다. 인간이 지구라는 행성 파괴의 주범인 인류세’, 강자가 약자를 도륙하는 것을 능력이라 부르는 우생세라는 반동의 시대엔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죄가 된다. 아직도 살아 있는 나와 당신은 .

신영전 | 한양대 의대 교수 한겨레 2022.12.13.

 

 

욕망과 혐오 사이 성형 강국’ 100년의 혼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익스플레인: 세계를 해설하다> 성형 수술 편(2021) 화면 갈무리.

 

100년 전 한반도는 근대적 몸이 되고 싶은 열망이 폭발하는 곳이었다. 당시 바다 건너 미국에선 두 가지 역사적 사건이 있었다. 19218월 뉴욕에서 성형외과 단체가 처음 만들어졌고 한 달 뒤엔 제1회 미스 아메리카 선발대회가 열렸다. 미국 역사학자 엘리자베스 하이켄은 <비너스의 유혹>에서 겉으로 무관해 보이는 이 두 사건이 성형의 역사를 조망할 관점을 제시한다고 말했다. ‘성형은 태생부터 의료적일 뿐만 아니라 문화적 현상이라는 것이다.

 

1920년대 조선인들은 성형 수술을 정형 수술이라고 일컬었다. 당시 성형 담론은 전문가들이 신문에서 황당한 상담을 해주는 정도에 그쳤다. 성형 수술을 받고 싶다는 20곰보여성의 질문에는 다짜고짜 “(수술로도) 곱게 할 수 없습니다같은 냉정한 답이 붙었다. 다만 외과 수술법을 소개하는 것만큼은 언론도 열정적이었다. 미용 성형은 근대적인 몸이 되는 가장 흥미롭고 과학적인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한반도에 미용 성형 수술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930년대 초중반 이후로 추정된다. 처음 쌍꺼풀 수술을 한 조선인은 최초의 근대 미용사였던 오엽주(1902~1987). 일본에서 배우로도 활약한 그는 당대의 셀러브리티였고 서구인처럼 치장하고 몸을 변형하는 일에 적극적이었다. 쌍꺼풀 수술은 1930년 전후 일본에서 받았는데, 꽤 정교하게 잘 되어서 서울의 유명 안과인 공안과에서 그를 초청하여 수술 경험담을 청취할 정도였다. 오엽주의 미용실엔 배우 복혜숙·문예봉, 신문기자이자 조선 최초 여성 개원의였던 허영숙, 작가 모윤숙·전숙희, 소설가 심훈 등도 단골로 드나들었다. 근대적 신체 만들기에 관심이 컸던 모던 보이와 모던 걸들 사이에서도 오엽주의 쌍꺼풀 수술은 단연 화제였으리라. 훗날 120여 명의 미스코리아를 배출한 서울 명동 마샬미용실하종순 회장이 처음 미용 기술을 익힌 곳도 오엽주의 미용실이었다. 서구의 미적 기준을 중시하는 미인 대회가 미용 성형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을 볼 때, 두 사람의 인연이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익스플레인: 세계를 해설하다> 성형 수술 편(2021) 화면 갈무리.

 

1930년대 이미 조선엔 코를 높이는 융비술, 각선미를 만드는 종아리 근육퇴축술, 가슴 성형 등도 꽤 알려졌다. 모두 외모를 백인종처럼 바꾸는 수술이었다. 식민지 모던 보이들의 백인 선망은 지금까지도 유명하다. 특히 소설가 이광수는 유리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곤 우쭐해 하다가도 백인이 지나가면 고개를 떨어뜨리며 황인종 특유의 외모를 저주하다시피 했다. (그는 오엽주 미용실의 단골, 허영숙의 남편이었다) 김동인의 첫사랑은 금발의 영국계 소녀메리였다. 1920년대 우생론, 민족개조론과 연결된 인종 개량 캠페인엔 식민지 근대 남성 지식인 다수가 참여했고 좌우 성향도 가리지 않았다. 이들의 활동은 동양인의 신체를 낙후된 것으로, 서양인의 신체를 이데아로 삼은 근대 한국의 미적 기준이 탄생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여성들 또한 서구인의 특징을 자기 몸에 적극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런 여성들은 허영녀’, ‘사치녀라고 손가락질을 받았다. 한국전쟁 이후 미용 성형이 대중화했지만 수술을 받는 여성을 향한 거부감은 점점 더 커졌다. 1960~70년대 한국은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이 내핍을 강조하는 상황이었다. 정권의 뜻을 헤아린 언론은 여대생의 정형 붐”, “30분에 1만원을 잡아먹는 젖높이기 손님이라며 허영녀들을 비판하고, 예뻐지려고 목숨까지 바치는 여성들이 있다며 순교 정신이라 비꼬기도 했다. 시골 부녀까지 성형 수술을 한다며 한국병이라 비난하는 목소리도 높았지만, 물결을 거스를 순 없었다. 198012월 컬러텔레비전이 보급되고 개원의들이 명동, 압구정동에 병원을 열면서 연예-성형산업은 함께 팽창했다.

 

소비자본주의 시대가 활짝 열린 1990년대는 나의 몸이 곧 나의 자아가 되는 시대였다. 미인대회와 성형 산업의 전성시대였고 여성의 성 상품화도 극에 달했다. 미디어는 주부들도 멋쟁이 신세대 미시가 되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동시에 성형 미인은 비난의 대상이기도 했다. 1996년 한 남성 댄스 그룹이 발표한 성형 미인가사를 보면, 직설적인 조롱으로 가득하다. “고친 얼굴인 줄 알고 난 이쁘단 인사치레를 했었는데/ 지가 정말 예뻐 그러는 줄 알고 더 이쁜 척을 하려 하지/ 어이없게.” 가사 속 남성은 성형을 신종 전염병이라 일컫고 똑같은 얼굴의 성형 미인들이 결혼한 뒤 2세를 낳으면 모두가 놀란다며 비웃는다.

 

2010년대에 이르러 한국 여성의 성형은 세계적 관심을 받게 된다. 2013년 미국의 소셜 뉴스 사이트 레딧게시판에 미스코리아 후보 20명의 사진이 올라왔다. 미국 인터넷 매체 <허핑턴 포스트>, 영국 황색 저널 <데일리 메일> 등은 한국의 성형 광풍이 여성들의 얼굴을 똑같이 만들어버렸다고 떠들썩하게 보도했다. (사실은 특정 지역의 후보들이었고, 착시일 뿐 같은 얼굴도 아니었지만 한국 언론은 나라 망신이라고 기사 제목을 달았다.) ‘페미니스트 철학자로 알려진 마사 누스바움 시카고대 석좌교수는 한국이 세계의 성형 수술 중심지라며 한국인들이 서양인의 미적 이상에 맞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익스플레인: 세계를 해설하다> 성형 수술 편(2021)성형 수술이 통과의례가 된 나라가 있고 이 나라 20대 여성의 3분의 1이 성형 수술을 받는다고 전한다. 한국을 가리킨다.

 

하지만 성형 강국 한국자연 미인사랑은 지대하다. 만화가 마인드시(C)2014년 발표한 웹툰 <강남 언니>, <강남미인도>에는 성형 수술한 여성들이 서로의 똑같은 얼굴을 보면서 짐짓 자기가 더 낫다는 우월감을 느끼고, ‘자연 미인앞에서는 열등감을 토로하는 상황 등이 우스꽝스럽게 그려진다. 작가는 여성 혐오가 아니라 성형 산업을 비판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자연 미인 > 성형 미인 > 못생긴 여자라는 식으로 여성을 위계화했다는 비판도 쉽게 누그러지지 않았다.

 

분명한 건, ‘성형 미인이란 딱지가 붙은 여성들이 나라 안팎으로 과도하게 대상화, 희화화 되었다는 점이다. 2008년부터 3년간 서울 강남의 한 성형외과에서 일하며 현장을 참여 관찰한 과학기술학자 임소연은 성형 미인에 대한 뿌리 깊은 대상화를 비판한다. 그는 최근작 <나는 어떻게 성형미인이 되었나>에서 오늘날 한국 여성들이 성형하려는 이유가, 백인 여성을 닮으려고 하는 인종주의 이데올로기에 포섭된 탓이 아니라 그저 예쁜 한국 여성이 되고 싶어한 것일 뿐이라고 설명한다. 여성의 몸 변형에 대한 한국의 남성 지식인들이나 서구 지식인들의 비평적 관심은 연구자의 눈으로 볼 때도 왠지 불편한 것이었다. 임소연은 성형 미인에 대한 그들의 대상화가 성형 수술을 한 당사자들의 목소리와는 결코 연결되지 않는다고 밝힌다. 지식 권력을 쥔 그들의 시선은 어쩌면 지적으로 우아하게 포장한 모멸과 천대라고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럼에도 한국에서 미용 성형 수술이 흔한 것만은 사실이다. 국제미용성형수술협회(ISAPS)2011년 조사를 보면, 한국은 인구 1000명당 성형 수술을 받은 횟수가 약 13.5건으로 세계 1위다. 그러나 이 통계는 성형외과 전문의만을 대상으로 해서 실제론 훨씬 더 많은 성형수술이 이뤄진다고 보아야 맞는다. <성형>을 쓴 여성학자 태희원은 한국 사회에서 성형은 이미 일상화되고 정상화되었다고 말한다. ‘신자유주의 한국에서 이제 미용 성형은 죽을 때까지 이뤄지는 중단없는 자기 개조 프로젝트의 하나일 뿐이라는 것이다.

 

최근 한 성형외과 의사의 유튜브를 보았다. 그는 미용 성형 수술이 삶을 바꾸는 데 부차적인 수단일 뿐이며, 먼저 자신의 마음을 돌보라고 조언했다. 수술로 아름다워지고 싶다는 독자에게 마음의 미를 취하라고 답변하던 100년 전 전문가의 말이 떠올랐다. 짧게는 수십 년, 길게는 100년간 성형 미인에 대한 비난과 자연 미인을 찬양하는 극단적 담론 사이에 모든 이의 몸이 혼란스럽게 놓여 있었다. ‘성형 미인을 조롱하는 이들조차 자기 몸에 대한 평가가 어느 순간 삶의 성적표처럼 돌아올 수 있다는 점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성형 수술을 하든 하지 않든, 우리는 모두 몸 변형의 가능성을 열어 놓고 산다.

 

강남 성형외과 광고판. <한겨레> 자료사진

 

*참고자료 : 1964111일치 <경향신문>, 196673일치 <조선일보>, 1968312일치 <동아일보>, 1979323일치 <동아일보>, <예쁜 여자 만들기>·<육체의 탄생>(이영아 지음), <지혜롭게 나이 든다는 것>(마사 누스바움·솔 레브모어 지음, 안진이 옮김)

이유진 | 토요판 선임기자 한겨레 2022.12.13.

 

고령화 회색 코뿔소를 바라보기만 할 텐가

가깝게 지내던 선배들이 정년을 맞아 회사를 떠나고 있다. 필자가 다니는 회사는 주민등록상 만 60세가 되는 달의 마지막 날이 정년퇴직일이어서 매달 퇴직자가 나온다. “30년 넘게 다닌 직장에서 해방됐으니 축하한다는 인사를 건네지만 씁쓸하다. 변변한 소일거리조차 없는 백면서생 같은 이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물려받은 재산이 넉넉하거나 꼼꼼하게 노후 대비를 한 일부는 다를 것이다. 곧 내 차례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별다른 대비는 하지 않으니, 필자도 백면서생류가 분명하다. 커다란 덩치의 회색 코뿔소가 달려오는 걸 그저 보고만 있는 것 같다.

 

통계청이 최근 내놓은 ‘2021년 생명표를 보면 60세 한국인은 남자 23.5, 여자 28.4년 등 평균 26년을 더 산다고 한다. 보통 직장인이라면 30년 남짓 일하고 퇴직하는데, 퇴직 전 일한 기간만큼 더 산다는 뜻이다. 197060세인 사람의 기대여명은 15.9년이었다. 50여년 사이에 기대여명이 10년가량 늘었다.

 

과거에는 60대가 되면 노인 취급을 받았지만, 지금은 청년 못지않은 체력과 열정을 지닌 60대가 적지 않다. 하지만 이는 착각일 가능성이 크다. 본인이 아무리 젊다고 자신하더라도, 남들이 늙었다고 하면 노인이 될 수밖에 없다. 회사에 갓 입사했을 때를 떠올려보자. 돋보기안경을 쓰고 신문에 머리를 파묻고 있던 50대 고참 부장급 이상은 더 이상 뜀박질을 할 수 없을 것 같은 노친네였다. 과거의 정년은 55세 안팎이어서 지금처럼 임금피크제에 걸린 50대 후반도 없었다.

 

오래 사는 게 축복만은 아니다. 건강해야 하고 적당한 소득과 일거리가 있어야 한다. 병에 시달리고 가난한데 오래 살기만 한다면 노인에게는 재앙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해 발표한 노인 소득 빈곤보고서를 보면 37개 회원국의 65세 이상 노인 13.1%가 중위소득의 절반 이하인 소득빈곤층이었다. 선진국이라는 한국은 43.4%로 노인 빈곤율이 가장 높았다. 특히 75세 이상 노인은 55.1%가 빈곤 상태였다. OECD 회원국 가운데 75세 이상 노인 절반 이상이 빈곤 상태인 나라는 한국이 유일했다.

 

국민의 노후를 책임진 국민연금은 언제 고갈될지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국회 예산정책처의 최근 분석을 보면 2021년 결산 기준 국민연금은 2043년 적자로 전환하고, 2057년이면 적립금이 소진된다고 한다. 현행 국민연금 체계를 유지한다면 올해 만 30세인 1992년생은 2057년 연금 수령 자격이 생겨도 국민연금을 한 푼도 받을 수 없다는 뜻이다.

 

 

국민연금이 고갈되는 것은 저출생으로 15~64세 생산가능인구가 줄어 연금 납부할 시민은 줄어드는데, 고령화로 연금 받는 노인은 늘어나기 때문이다. 가임 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추정되는 합계출산율은 지난 3분기 0.79명까지 떨어져 세계 최저 수준이다. 생산가능인구 100명이 부양해야 할 65세 이상 노인 수는 올해 기준 24.6명이다. 2060년이면 91.1명까지 늘어난다. 일하는 사람 1명이 노인 1명을 먹여 살려야 하는 것이다.

 

정부가 본격적으로 공적연금 개혁 논의를 시작한 것은 다행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연금이 고갈되는 사태를 막아 지속 가능성을 확보해야 한다. 보험료율을 높이고, 연금 수급 개시연령을 늦추는 등 다양한 방안을 강구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다양한 이해당사자의 갈등이 예상되는 만큼 이들의 의견을 듣고 조정하는 절차가 중요하다.

 

65세인 노인 기준은 1981년 제정된 노인복지법에 명시된 후 40년 넘게 변치 않고 있다. 70세로 상향해야 한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허다하고, 일부 학자들은 기대수명-15를 노인 기준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늘어난 평균수명을 반영하지 못하는 노인복지법과 국민연금법 등 노인의 법적 기준 변경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노인 기준을 70세 이상으로 바꾸면 올해 고령인구 비율은 17.5%에서 11.5%로 떨어진다. 노인 인구 비중이 14% 이상인 고령사회가 아니라 한 단계 아래 7~14% 미만 고령화사회로 분류되는 것이다. 20% 이상 초고령사회 진입도 2025년에서 2033년으로 늦춰진다.

 

노인이 더 오랜 기간 일하고 세금을 내도록 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 청년 일자리를 빼앗는 게 아니라 지식과 경험이 중요한 방향으로 산업구조를 재편해야 할 것이다. 정년 연장과 노인 고용 확대 등 사회 시스템을 바꿔야 가능한 일이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지만 세계에서 노인이 가장 가난한 나라라는 오명에서는 벗어나야 하지 않겠나.

안호기 사회경제연구원장 경향 : 2022.12.14

 

 

은행들 폭리, 두고만 볼 일인가

이달 초 발표된 2022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는 양극화의 현실을 드러낸다. 지니계수나 5분위 배율(상위 20%의 소득이 하위 20% 소득의 몇 배인지 나타내는 지표)2021년 들어 시장소득 외에 처분가능소득 기준으로도 악화됐다. 지난 몇 년간 처분가능소득의 분배는 조세나 사회보험 등의 공적이전에 힘입어 다소나마 개선되는 추세였다. 그러나 작년부터는 그런 흐름조차 유지되기 어려워졌다. 불평등을 낳는 시장의 힘이 통제되지 않고 강해지기만 하는 탓이다.

 

양극화는 취약계층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통계청 가계동향조사 결과에서도 올해 3분기 가구 실질소득(물가변동의 영향이 제거된 소득)은 특히 소득 하위 20%에서 감소폭이 두드러졌다. 하위 20% 가구의 약 60%는 소비에 쓸 돈을 벌지 못해 매월 적자를 면치 못한다. 결국 적자는 빚으로 쌓인다. 그러다보니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고에는 빚이 큰 역할을 한다. 매체에 따르면 수원 세 모녀가 8월에, 그리고 신촌 모녀가 지난달에 유명을 달리했던 한 가지 배경에도 갚을 수 없는 빚이 있었다.

 

그런데 이들의 반대편에서 돈을 빌려주는 은행은 독과점적인 시장 지위를 보장받는 덕분에 대개 막대한 이득을 누린다. 은행들은 이를테면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자금조달비용이 오르면 그것을 대출 금리 인상으로 충분히 전가시키며 예대마진을 늘려 왔다. 서민 차주에게 금리 변동 위험을 떠넘겨온 셈이다. 은행의 다른 투자에서 입은 손실을 벌충하고 지주회사 내 다른 금융 계열사의 부진한 영업성과를 보완하는 수단으로 예대마진을 이용해 왔음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은행들은 올해도 3분기까지 합산 이익 423000억원의 96%를 이자이익만으로 어렵지 않게 벌어들일 수 있었다. 이는 북미와 유럽 은행들의 이자이익 비중이 60%선인 것과 대조된다. 국내 은행의 이자이익 비중은 코로나19 이전에 비해서도 커졌다. 공동체가 고통을 겪는 경제위기가 은행들한테는 이자놀이 기회였던 셈이다. 물론 은행들의 폭리에는 만기 일시 상환 방식의 변동 금리 대출을 중심으로 차주의 소득보다 부동산 담보가치를 우선시해온 그간의 약탈적 대출 관행도 일정 정도 기여했을 법하다.

 

다만 은행들의 폭리가 독과점기업으로서 책정해온 대출 금리의 수준과 관련된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저명한 경제학자 루이지 파지네티에 따르면 이자율은 임금 상승률을 넘어서지 않아야 공정하다. 꿔준 돈보다 돌려받는 돈으로 더 많은 양의 노동시간을 구매할 수 있으면 공정하지 않다는 뜻이다. 가령 시간당 임금이 1만원이고 임금 상승률이 0%라고 하자. 이제 이자율이 50%라면 오늘 1만원을 빌려준 대가로 1년 후 15000원을 돌려받게 된다. 그런데 이는 오늘의 노동시간 한 시간을 차주한테 주면서 내일의 노동시간 한 시간 30분을 받으려는 것이므로 공정하지 않다.

 

그런 논리라면 최근 은행 대출 금리는 공정할 리 없다. 고용노동부 사업체노동력 조사 결과 상용근로자 5인 이상 사업체 기준으로 2020년 이후 임금 상승률이 3%를 소폭 하회하는 정도여서 대출 금리를 밑도는 탓이다. 더욱이 진보진영의 대출 금리 인하 운동을 촉발시킨 전북은행은 20227월부터 4개월간 정책서민금융을 제외한 가계 예대금리차가 평균 5.6%로 비교 대상 타행보다 약 4%포인트 높다. 차주 집단의 신용점수 차이를 고려해도 금리차가 여전히 타행보다 2%포인트 이상 높다는 분석이 설명력 있다. 전북은행이든 아니든 은행들이 시장 지배력에 기초해 공정하지 않은 초과이윤을 벌어들이고 있다는 문제제기가 가능한 대목이다.

 

기실 은행에 독과점적 지위를 허락한 은행업 면허는 공동체가 부여한 것이다. 은행은 진입장벽과 금융안전망에 의해 제도적으로 보호된다. 따라서 공동체를 위해 복무할 책임도 부여되는 편이 옳다. 특별히 지금은 은행들이 상환 유예, 이자 감면 등 차주별 채무조정에 나서도록 금융당국이 개입해야 하는 시점이다. 고리대금업이 아닌 바에야 초과이윤은 제한해야 맞다. 최고금리나 예대금리차에 대한 규제도, 은행 횡재세도 그래서 필요하다.

 

유럽에서는 헝가리가 은행에 대한 횡재세 부과를 이미 지난 5월에 공식화했다. 스페인도 비용 차감 전 이자수익에 대해 4.8% 횡재세율을 적용하기로 7월에 결정했다. 체코는 11월 결정으로 내년 은행 초과이윤에 60% 횡재세를 부과할 방침이다. 우리도 더 늦기 전에 양극화 완화를 위한 적극적인 대책이 있어야 한다. 은행 초과이윤의 환수와 취약계층에의 재분배가 그 일부가 될 수 있을까. 은행들의 폭리, 더는 두고만 볼 일 아니다.

나원준 경북대 경제학 교수 경향 : 2022.12.14.

 

 

포스트의 시대정신과 자유민주주의

먼 훗날 21세기의 시대정신을 꼽으라면 우리는 어떤 사건을 제일 먼저 떠올릴까? 우리의 삶과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꿔놓은 역사적인 사건은 어떤 것일까? 한 해를 보내면서 습관적으로 던지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여러 가지이겠지만, 나는 주저하지 않고 코로나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목할 것이다. 3년에 걸쳐 우리를 괴롭히고 이제는 끝날 조짐을 보이고 있는 코로나19 팬데믹과 여전히 어떻게 끝날지 오리무중인 우크라이나 전쟁이 우리에게 익숙한 기존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코로나19 ‘이후우리의 삶은 어떻게 변화하고,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세계의 질서는 어떻게 바뀔 것인가? 우리는 이후라는 뜻의 라틴어 낱말 포스트’(post)를 접두사로 사용하여 수많은 미래사회의 모습을 미리 그려본다.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산업사회처럼 이제는 포스트코로나 사회를 말하고,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의 세계 질서를 논한다. 포스트가 어떤 단어 앞에 붙어 새로운 단어가 되게 하는 말이기는 하지만, ‘포스트라는 접두사 뒤에 붙는 낱말이 훨씬 더 중요해 보인다. 포스트로 그려지는 미래사회의 모습을 예견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극복해야 할 현재 시대의 핵심을 포착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대정신이라는 독일어 개념 차이트가이스트(Zeitgeist)’를 정립한 독일의 관념론 철학자 헤겔은 어떤 사상도 그 시대의 자식이기 때문에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없다고 강조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그리고 여기의 시대를 포착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이다. 그렇다면 코로나19로 대변되는 시대의 특성은 무엇인가? 거리 두기, 지역봉쇄, 마스크 착용과 같은 방역 조치들이 초래한 불편과 불안은 전염병이 끝나면 함께 사라질 것이다. 이러한 표면적 현상을 시대정신이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코로나19는 우리가 이제까지 당연하고 자명하게 여겼던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건드릴 뿐만 아니라 전염병이 끝난 뒤에도 계속해서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에 시대정신과 연관이 있는 것이다.

 

자유와 안전 공존할 조건 고민해야

우크라이나 전쟁도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은 이제 우크라이나 전쟁이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에서 발생한 하나의 지역 전쟁이 아니라 설령 제3차 세계대전으로 확산하지는 않더라도 세계의 지정학적 질서를 근본적으로 바꿔놓고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우리의 삶을 제한하는 코로나19 전염병이 빨리 끝나기를 바라듯이 에너지 위기, 곡물 가격 폭등, 인플레이션을 초래하여 우리의 삶을 불편하게 만드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빨리 해결되기를 바란다. 이후, 즉 포스트 세계에 대한 희망 속에는 이처럼 현재의 고통에서 가능한 한 빨리 벗어나려는 갈망이 들어 있다. 그러나 우리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표출된 시대정신을 포착하려면, 우리의 시대와 세계 질서가 전쟁이 끝난 뒤에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를 정확하게 판단해야 한다. 그 중심에는 자유민주주의가 있다.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위협하는 것은 바로 자유민주적 가치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 거론되는 수많은 포스트는 자유민주주의 이후의 사회를 가리킨다.

 

코로나19 전염병은 우리를 서로 대립적인 것처럼 보이는 두 가치를 대체 가능한 대안으로 간주하도록 강요했다. ‘자유안전’.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은 안전을 그 어떤 가치보다 우위에 놓는 전체주의적 접근방식을 대변하였다면, 서구의 자유주의적 접근방식은 시민의 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방역 조치를 모색하였다. 처음에는 안전을 절대화한 중국적 접근방식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훨씬 더 합리적인 조치처럼 보였다. 집단주의가 내면화된 사람들은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기만 하면 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고 억압하더라도 용인할 수 있다는 태도까지 보였다. 심지어 아시아의 몇몇 국가에서는 방역에서 우리가 서구보다 훨씬 더 잘한다는 보건 민족주의까지 나타났다.

 

그런데 중국은 강압적인 봉쇄정책에 대한 시위가 점점 더 늘어나자 급기야 제로 코로나 정책을 폐기하기에 이르렀다. 앞으로는 요양원, 학교, 유치원 및 병원에 대한 접근을 제외하고 더 이상 의무적인 공개 PCR 테스트와 의무적인 녹색 건강 코드가 없을 것이라고 한다. 항공 및 기차 여행 전에 PCR 검사를 수행해야 하는 의무도 폐지되고, 일부 도시에서는 당국이 이미 사람들에게 아무런 증상이 없으면 검사를 받지 말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의 눈을 끄는 것은 이미 많은 상점 진열대에 걸려 있는 모든 사람은 자신의 건강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라는 표지판이다. 코로나 바이러스와의 싸움은 이제 국가에서 개인에게로 넘어간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지속 가능이 과제

중국당국이 제로 코로나를 포기하고 위드 코로나180도 전환한 이유는 무엇인가? 보건 상황이 갑자기 호전된 것인가? 시진핑이 당 대회에서 자신의 전능함을 확고히 하고 유일한 권력자로 등극하면서 중국에 제로 코로나 정책이 계속될 것이라고 맹세하지 않았는가? 무류의 지도자로 보였던 시진핑이 하룻밤 사이에 변덕스러워 보이는 이유는 간단하다. 중국 전역에서 들불처럼 번지는 코로나 봉쇄 반대 시위가 정권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안전을 빌미로 자신의 권력을 절대화하려는 시진핑에 반대하여 자유를 억압당한 시민들이 들고 일어선 것이다. 안전만 절대화하면 국민의 생명과 자유는커녕 궁극적으로는 안전마저 잃게 된다는 것이 코로나19가 보여준 역설이다.

 

외부 상황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변경한 중국의 코로나19 정책은 국민의 생명과 정권의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할 것이다. 중국이 폭력적인 폐쇄정책을 쓴 이유는 사실 간단하였다. 예방 접종을 받은 시민, 특히 60세 이상과 80세 이상의 사람들이 너무 적고, 중국의 의료시스템은 전염병의 대량 발생에 준비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중국당국은 이러한 현실을 외면하고 오히려 봉쇄정책을 서구에 대한 체제의 우위로 선전하였다. 상황이 전혀 개선되지 않았음에도 위드 코로나로 정책을 전환했다는 것은 그만큼 거리의 저항이 심각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중국은 포스트코로나 사회의 문제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것은 자유안전이 결코 대체될 수 있는 가치가 아니라는 점이다. 백신 접종률이 여전히 낮고 의료체계가 개선되지 않은 상태에서 봉쇄를 풀면, 중국 인구의 90%가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사망자 수가 급속히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중국식 안전제일주의가 결국 안전을 지키지 못한 셈이다. 이에 반해 서구는 마스크를 벗고 서서히 일상을 되찾고 있다. 어떤 체제가 기아, 전쟁, 전염병과 같은 재앙에 대처하는 데 더 합리적인 방식인가가 이미 드러난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는 결코 안전을 배제하지 않는다. 오히려 시민의 자유를 보장함으로써 더 안전해질 수 있는 길을 모색한다. 안전의 이름으로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는 오히려 안전의 토대를 망가뜨리기 때문이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그의 최근 저서 <자유주의와 그 불만>에서 자유주의의 큰 장점은 자유와 평등, 개인주의 및 공동체와 같이 신성하지만 종종 모순되는 일련의 가치의 공존을 허용하는 정치적 조건을 만드는 능력이라고 강조한다. 이처럼 포스트코로나 사회는 자유와 안전이 공존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중국에서는 사람들이 국가의 폭력에 대해 저항한다면, 유라시아 대륙 서쪽의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 국가의 주권과 국민의 생명을 위해 싸우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비교적 오랜 기간 지속된 평화 패러다임의 종말을 말해준다. 미국의 시사잡지 타임이 2022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우크라이나 정신은 무엇인가? 블라디미르 푸틴이 제국주의적 야심에서 전쟁을 일으켰다면, 젤렌스키는 전쟁의 의미를 바꿔놓았다.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면, 우리의 자유는 죽게 된다는 헤겔의 말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자유는 자유를 지킬 수 있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것이다. 코로나19와의 전쟁이 종식되는 것처럼 우크라이나 전쟁도 끝날 것이다. 포스트의 시대정신은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우리에게 남겨놓은 과제에 의해 규정될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를 어떻게 지속 가능하게 만들 것인가?

이진우 포스텍 명예교수 경향 : 2022.12.14.

 

 

서훈 구속, ‘30년 빈손 외교의 현주소

지난주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의 구속 기소는 충격적이었다. 두명의 전 정부 인사들이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으로 구속된 뒤 적부심에서 석방됐는데도 서 전 실장 영장이 발부되고 적부를 물을 틈도 주지 않고 검찰이 전격 기소했다. 고도의 외교안보 행위가 몇몇 검사와 영장 전담 판사들의 손에서 재단되는 창피한 일이 반복되고 있다.

 

섣불리 단정하긴 어렵지만 영장 등을 통해 드러난 서 전 실장 혐의를 보면 이게 법의 잣대를 들이댈 일인지 의문이다. 희생된 이아무개씨가 월북인지 아닌지, 정부가 피살 사실을 조직적으로 은폐했는지 여부는 당시 대북 첩보, 남북 간 채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외교안보적 정무 판단에 속한다. 무 자르듯 법으로 따질 일이 아니다.

 

서 전 실장 구속이 단순히 서훈 개인에 대한 단죄일까? 검찰은 서 전 실장이 은폐를 주도했다며 개인 비리 식으로 몰아가지만 대북 관련 일이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 판단을 주도할 순 있지만 혼자서 다 할 수는 없다. 결국 서훈 구속은 문재인 정권 대북정책에 대한 단죄인 셈이다.

서훈 구속은 우리 외교를 우리 스스로 짓밟는 짓이다. 남북 대화에 관한 한 최고의 전문가, ·일 우방들도 신뢰한다는 북한통을 정권이 바뀌었다고 짓밟는 나라가 또 있는가.

문재인 정부 역시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을 구속한 만큼 서 전 실장 구속에 불만을 터뜨리는 건 일종의 내로남불이라는 주장이 일각에 있다.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리다. 김 전 장관은 대북 문제가 아닌 댓글 부대와 관련해 국내 정치 관여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다만 그가 박근혜 정부에서 북한이 가장 경계하는 군사 전문가라는 평을 들었던 만큼 그의 구속 역시 외교안보 자산의 손실로 볼 수 있다.

 

정권이 바뀌면 손바닥 뒤집듯 청와대 안보실장, 국가정보원장, 국방부 장관 등을 마구 잡아넣으려 달려드는 나라 꼴이야말로 지난 30여년 우리 외교 실패의 현주소다. 서훈 구속은 ‘30년 빈손 외교의 상징적 사건이다.

 

지난 30년 남들은 통일하고 평화를 찾는데 우리는 여전히 분단의 고통과 전쟁의 위협 속에서 허송세월했다. 우리 스스로 발등을 찍고 서로의 뒷다리를 잡아온 탓이다. 북한의 광적인 핵 벼랑끝전술, 미국의 변덕과 고집 탓도 크지만 우리 내부 역량이 턱없이 부족했다.

독일은 우리와 다른 길을 걸으며 통일이라는 대업을 이뤄냈다. 독일 통일의 교훈은 1989년 동서독 통일을 전후한 때가 아니라 냉전 직후부터 꾸준히 89년이라는 운명적 시간을 준비했다는 데 있다.

 

독일 통일의 기반은 굳이 말하자면 --합 외교. 콘라트 아데나워의 이른바 힘의 정책’, 즉 서방 중심, 동독 불인정, 경제 재건은 나라의 기본 역량을 튼튼히 쌓았다. 빌리 브란트의 동방정책은 친서방 기조를 무너뜨리지 않으면서 평화체제를 토대로 소련·동독·동유럽과 화해하고 교류했다. 브란트 이후 기민당도 명분뿐인 즉각 통일 노선을 사실상 포기하고 평화공존을 이어갔다. 사민당과 기민당이 빠른 통일을 포기하고 공존을 모색한 것이 역설적으로 통일의 기반이 됐다.

 

지금 세계의 풍향은 크게 변하고 있다. -중 대결과 우크라이나 전쟁, 북핵의 완성 등으로 동북아와 세계 질서가 흔들리고 있다. 세계 정세의 대전환기인데 우리는 뭘 하고 있나.

이제는 30년 실패한 외교를 리셋해야 한다. 대체로 보수 정권이 외교정책 전환에서 좀 더 자유롭다고 하는데, 윤석열 정부에도 일말의 기대가 없지 않았다. 미국도 닉슨 때 큰 변화가 있었고 우리도 노태우 시절 외교의 큰 줄기가 바뀌었다. 또 지난 30년 보수, 진보 정부의 누적된 잘못을 극복할 때도 됐다.

 

그런데 서해 공무원 사건을 두고 통일부 장관이 앞장서서 진상을 밝히고 처벌해야 한다고 하는 데서부터 고개가 갸우뚱거려졌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미, 대일 일변도 외교가 가시화됐고, 마치 대북 평화공존 정책이 친북인 양 마녀사냥식 몰이가 이어졌다. 참으로 한심하고 걱정스럽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도 북한, 중국, 일본과의 외교에서 흘러간 레퍼토리를 붙잡고 있는 것 아닌가. 중국은 크게 변했고 북한은 대놓고 핵으로 남녘 동포를 겨누고 있다. 일본을 언제까지 경원시만 할 순 없다. 외교의 판이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는 만큼 버릴 건 버리고 채택할 건 새로 채택해야 한다.

 

독일이 그랬듯 우리도 이승만과 박정희, 김대중과 노무현의 외교를 정--합으로 이어 계승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외교도 새 길을 열 수 있다. 최소한 정권이 바뀌었다고 전 정권 외교안보 인사들을 마구잡이로 단죄하려 드는 아마추어 행태에선 벗어나야 한다.

백기철 ㅣ편집인 한겨레 : 2022.12.14.

 

 

 

이게 말이 되냐고요비정상 대한민국

2022년이 보름 남짓 남았다. 각종 결산의 시기, 한 해를 결산하는 기사들도 쏟아져 나온다. 역대급이라는 숫자 뒤, 팍팍한 현실이 그려지는 뉴스들이 적지 않다. 하나하나가 수백만 가구, 수천만 시민의 한숨과 눈물, 불안을 담고 있을 폭탄들인데, 건조한 몇 줄로 무감각하게 소비된다.

 

올해는 자산 상위 20% 가구(165457만원)와 하위 20% 가구(2584만원) 간 자산 격차가 64배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3분기 가구당 월평균 실질소득은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대로 줄어든 가운데, 양극화가 뚜렷했다. 하위 20%의 소득 감소율이 상위 20%보다 3배 이상 커 가난한 사람이 더 가난해졌다. 소득 하위 20% 중 적자 가구 비중이 57.7%에 달했고, 이들은 월평균 343000원씩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29세 이하 가구주의 평균 부채는 5014만원으로 1년 새 41.2% 폭증했다(2022년 가계금융복지조사, 3분기 가계동향조사). ‘부자감세로 세수는 대폭 줄고, 내년 24조원의 재정지출 삭감안으로 각종 복지가 줄어들면 빈부 격차는 더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불평등은 시민들이 생각하는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다. 그런데 심각하다고만 생각할 뿐 불평등이 어디에서 비롯했고, 어떻게 유지되며, 재생산·확대되는지 잘 모른다. 경향신문 후마니타스연구소와 지식인선언네트워크는 공동기획으로 우리 사회 불평등의 실체를 분야별로 깊이 들여다보는 송년 연속강좌를 진행 중이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점은 주요국과의 국제 비교 그래프에서 달라도 너무 다른, 우리의 좌표였다. 우리만 수치가 뚝 떨어져 있거나, 추세선과 반대쪽을 향하거나, 혹은 추세선에서 완전히 이탈하고 있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전체 땅값이 몇 배인지 계산한 ‘GDP 대비 지가배율에서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압도적 1위다. 비교 대상이 된 OECD 15개국 대부분이 3 미만이었지만, 한국은 20194.6, 20205.0을 기록했다. GDP 대비 정부지출은 OECD 국가 중 조세회피처로 꼽히는 아일랜드를 포함해 끝에서 3번째다. 정부지출 내용 면에서도 공공사회복지 지출은 GDP10.8%, OECD 평균(19.8%)의 절반인 압도적 꼴찌인 반면, 기업 지원·SOC 지출 등 경제활동 지원은 14.1%로 주요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러니 조세와 복지 지출의 재분배 효과가 9.6%OECD 평균(26.2%)3분의 1 남짓에 불과한 게 당연하다. 정부가 불평등 완화에 손을 놓고 있는 셈이다. 부동산 불평등 문제를 강의했던 전강수 교수(대구가톨릭대 경제금융부동산학과)는 강의 내내 혀를 찼다. “아니 이게 말이 되냐고요. 이 격차에 대해 아무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잖아요를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른다.

 

가장 기가 막힌 건 세계 각국에선 어떻게든 불평등을 줄이려 애쓰는데, 우리는 아예 바꿀 수 없다는 체념 속에 불평등이 가속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신자유주의 체제의 첨병 노릇을 해온 국제통화기금(IMF)마저 불평등의 심화가 경제성장도 멈추게 한다며 경고하는 판국에 말이다.

 

2022년이 보름 남짓 남았다. 각종 결산의 시기, 한 해를 결산하는 기사들도 쏟아져 나온다. 역대급이라는 숫자 뒤, 팍팍한 현실이 그려지는 뉴스들이 적지 않다. 하나하나가 수백만 가구, 수천만 시민의 한숨과 눈물, 불안을 담고 있을 폭탄들인데, 건조한 몇 줄로 무감각하게 소비된다.

 

올해는 자산 상위 20% 가구(165457만원)와 하위 20% 가구(2584만원) 간 자산 격차가 64배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3분기 가구당 월평균 실질소득은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대로 줄어든 가운데, 양극화가 뚜렷했다. 하위 20%의 소득 감소율이 상위 20%보다 3배 이상 커 가난한 사람이 더 가난해졌다. 소득 하위 20% 중 적자 가구 비중이 57.7%에 달했고, 이들은 월평균 343000원씩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29세 이하 가구주의 평균 부채는 5014만원으로 1년 새 41.2% 폭증했다(2022년 가계금융복지조사, 3분기 가계동향조사). ‘부자감세로 세수는 대폭 줄고, 내년 24조원의 재정지출 삭감안으로 각종 복지가 줄어들면 빈부 격차는 더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불평등은 시민들이 생각하는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다. 그런데 심각하다고만 생각할 뿐 불평등이 어디에서 비롯했고, 어떻게 유지되며, 재생산·확대되는지 잘 모른다. 경향신문 후마니타스연구소와 지식인선언네트워크는 공동기획으로 우리 사회 불평등의 실체를 분야별로 깊이 들여다보는 송년 연속강좌를 진행 중이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점은 주요국과의 국제 비교 그래프에서 달라도 너무 다른, 우리의 좌표였다. 우리만 수치가 뚝 떨어져 있거나, 추세선과 반대쪽을 향하거나, 혹은 추세선에서 완전히 이탈하고 있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전체 땅값이 몇 배인지 계산한 ‘GDP 대비 지가배율에서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압도적 1위다. 비교 대상이 된 OECD 15개국 대부분이 3 미만이었지만, 한국은 20194.6, 20205.0을 기록했다. GDP 대비 정부지출은 OECD 국가 중 조세회피처로 꼽히는 아일랜드를 포함해 끝에서 3번째다. 정부지출 내용 면에서도 공공사회복지 지출은 GDP10.8%, OECD 평균(19.8%)의 절반인 압도적 꼴찌인 반면, 기업 지원·SOC 지출 등 경제활동 지원은 14.1%로 주요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러니 조세와 복지 지출의 재분배 효과가 9.6%OECD 평균(26.2%)3분의 1 남짓에 불과한 게 당연하다. 정부가 불평등 완화에 손을 놓고 있는 셈이다. 부동산 불평등 문제를 강의했던 전강수 교수(대구가톨릭대 경제금융부동산학과)는 강의 내내 혀를 찼다. “아니 이게 말이 되냐고요. 이 격차에 대해 아무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잖아요를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른다.

 

가장 기가 막힌 건 세계 각국에선 어떻게든 불평등을 줄이려 애쓰는데, 우리는 아예 바꿀 수 없다는 체념 속에 불평등이 가속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신자유주의 체제의 첨병 노릇을 해온 국제통화기금(IMF)마저 불평등의 심화가 경제성장도 멈추게 한다며 경고하는 판국에 말이다.

 

콜로라도 Z71 시그니처X

수저계급사회와 불평등 이데올로기를 강의한 조돈문 노회찬재단 이사장(가톨릭대 명예교수)은 지배계급이 불평등 구조를 재생산하기 위해 사용하는 3가지 명제를 소개했다. ‘불평등은 없다고 은폐하거나 불평등이 있다고 하더라도, 불평등은 정당하다고 정당화하거나 불평등이 바람직스럽지 않다고 하더라도, 대안적 평등사회는 실현 불가능하다고 대안을 부정하는 것이다. 한국 시민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불평등 해소는 늦지도, 불가능하지도 않다. 한국 사회가 비정상 수준의 불평등으로 가파르게 치달은 건 비교적 최근 일이다. 사실 한국은 1960년 무렵만 해도 토지분배 평등도가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였다. 제대로 알아야 비판도 하고 대안을 논의할 수 있다. “우리 사회가 이상하다는 인식부터 공유하고, 고장을 알리는 경보음에 반응해야 한다.

 

한국이 개발도상국이던 시절, 힘센 사람들은 늘 선진국이 될 때까지만 참으라고 말했다. 아직 형편이 어렵다며 대신 미래의 넉넉한 분배를 약속했다. 선진국이 된 지도 여러 해가 지난 지금, 힘센 사람들의 말이 바뀌었다. 더 이상 미래를 약속하지 않는다. (중략) 힘센 사람들의 시혜로는 평등한 세상이 오지 않는다. 보통 사람들이 뜻과 힘을 모으는 수밖에 없다.”(조형근 <키워드로 읽는 불평등 사회>)

송현숙 후마니타스 연구소장·논설위원 경향 : 2022.12.15.

 

 

이태원 참사 유가족 손을 잡으러 가자

재난 보도를 비롯한 재난 수습 지침서는 재난으로 해체된 공동체 회복과정에서 원인 규명책임 추궁을 잘 구별해서 다루어야 하고, 책임 추궁이 원인 규명에 앞서지 말아야 한다고 깨우친다. 책임 추궁이 선행할 경우, ‘회피 전략이 횡행하여 원인 규명을 어렵게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원인 규명과 책임 추궁 두 가지를 분리한다는 것은 쉽지 않고, 책임 있는 자들의 의도적 회피가 원인 규명을 어렵게 하는 상황에서는 오히려 책임 추궁을 단호하게 앞세워야 할 때도 있다.

 

이상민 장관의 경우가 그렇다. 그가 이태원 참사에 정치적 도의적 책임을 지고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장관으로서 이런 충격적 참사가 발생했는데도 아무 일 없다는 것처럼 버티고 있는 모습은 정말 이해할 수 없다. 심각한 것은, 이상민 장관이 자리를 지키고 있으면 진상 규명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된다는 점이다. 이 장관 자신이 앞장서 회피 전략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처음부터 방어막을 치는 데에만 신경을 썼다. 재난 피해자의 고통에 대한 공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고 오로지 법적 무죄 증명을 마련하는 데만 골몰하였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이 장관의 파면을 요구하는 것은 그런 점에서 당연하다.

 

경찰 지휘부도 이 장관과 마찬가지로 책임 회피 혐의를 받고 있다. 서울경찰청장은 경찰 특수 수사본부에 의해 피의자로 입건되어 있으나 대기발령, 직위 해제와 같은 인사조처는 없다. 경찰청은 특별감찰팀이 이태원 참사 관련 내부 감찰을 진행 중이라 하는데 이 팀이 자신들을 지휘, 감독하는 경찰청장에 대해 제대로 감찰할 것인지에 대해서 하나같이 의심의 눈총을 보내고 있다. ‘회피 전략이 작동할 수 있는 구조를 그대로 둔 상황에서 원인 규명이 제대로 될 것이라 믿는 이는 별로 없다.

 

회피 전략의 정점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있다. 그는 재난 피해자와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사과도 하지 않았으며 책임을 물어야 할 이 장관을 감싸기만 했고 수사 선행원칙만 되풀이했다. 이러한 대통령의 태도가 10·29 이태원 참사 수습의 기조다.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에 합의했던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강경파 윤핵관들에 의해 조리돌림을 당했던 일도, 더불어민주당이 이 장관 해임 건의안을 통과시켰다는 이유로 국민의힘이 국정조사를 거부하려 하는 것도 그런 대통령의 기조가 반영된 게 분명하다. 윤핵관 가운데 한 사람은 국정조사는 애초 합의해서 안 될 사안이었다라고 하여 유가족의 가슴을 후벼팠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에 대해 내뱉은 저주에 가까운 막말 역시 이 참사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전략에서 나왔다. 또 다른 윤핵관은 유가족협의회와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출범에 대해 색깔론을 비롯한 온갖 혐오의 언술을 동원하여 재난 피해자의 호소와 자발적 결사를 매도하였다. 그가 쓴 혐오와 배제의 표현은 말을 옮기기조차 민망할 정도다.

 

10·29 이태원 참사에 대한 책임 회피 전략의 꼭대기에 있는 대통령과 그가 이끄는 국가권력과 맞서면서 희생자 유가족들은 자신들의 아픔을 호소하고 있다. 자기 몸조차 추스르기 힘든 상황에서 회피 전략에 대항해서 안쓰럽게 외치고 있다. 권력의 엄청난 비대칭 상황에서 재난 피해자의 권리를 확인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들이 하려는 것은 큰 것이 아니다. 억울한 죽음의 원인 규명, 2차 가해 저지, 재발 방지를 위한 행동 등이다. 그리고 정부에 대해서는 국정조사, 성역 없는 수사, 책임자 처벌, 유가족 소통 공간, 희생자 추모 공간 마련 등을 요구하고 있다. 마땅한 바람이며 권리다.

 

그런데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은 힘이 없다. 그들이 맞서고 있는 상대는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어마어마한 권력의 덩어리다. 재난 피해자에 대한 시민사회의 지지와 응원이 절실한 이유다.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이들을 돕는 일을 정쟁이라 매도하면서 실제로는 자신들이 재난의 정쟁화에 불을 지르고 있다. 거대한 권력체가 책임 회피 전략으로 원인 규명을 늦추거나 왜곡시키고 재난 피해자들을 고립시키려고 한다.

 

재난 피해자에 대한 사회적 연대가 간절하다. 이분들의 소망은 궁극적으로 가족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분들은 함께 아파하고 함께 기억하고 함께 치유하고 함께 안전한 세상을 만들어가자는 연대의 목소리를 기다리고 있다. 막강 권력의 회피 전략과 맞서 있는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의 손을 잡으러 가자.

김태일 장안대 총장 경향 : 2022.12.15.

 

 

정치적인, 너무나 정치적인 삶

나도 정치병 환자인가?’ 가까운 지인들이 가끔 정치 과몰입을 지적할 때면 솔직히 이런 생각이 드는 게 사실이다. SNS나 칼럼 등의 글에서 감정이 들끓는 정치적 발언을 여과 없이 쏟아내는 경우가 많아서일 텐데, 그럴 때마다 나는 살아가는 일이 다 정치인데 어찌 정치에 무관심할 수 있겠느냐며 대충 화살을 피하곤 한다. 속으로는 이 신나고 흥분되는 일을 어찌 멈추라는 거냐고 중얼거리지만.

 

그렇다. 비록 말이 전부이긴 하지만 정치에 관여하는 데서 희열과 보람(?)을 느끼는 나 같은 부류의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정치를 피곤하다고 말하고 짜증스러운 정치놀음으로부터 일상을 방해받고 싶지 않다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두 부류에는 공통점도 있는데, 양쪽 다 정치를 눈앞에서 벌어지는 시끄럽고 뜨끈뜨끈한 현실 정치의 의미로 쓴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삶이 곧 정치라고 할 때의 정치는 그보다 훨씬 크고 넓은 무언가를 뜻할 텐데 말이다. 이런 차원에서 볼 때는 정치 과몰입층이든 무관심층이든 몰정치적인 것은 다르지 않으리라. 진영으로 갈려 상대에 대한 비판과 권력의 향방에만 골몰한 정치가 오히려 우리를 몰정치적으로 만들고 있는 셈이다.

 

공자는 <논어>에서 정치가 무엇인지 묻는 한 권력자의 물음에 정치란 바르게 하는 것이다”(政者正也)라고 명쾌하게 정의한 바 있다. 정치는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과 실천의 문제이지 힘과 이익의 다툼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의 정치는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옳은 것(또는 이해의 공평한 배분)이라는 본래 목적을 잊고 그저 권력이라는 수단에 매몰된 것처럼 보인다. 진영의 논리가 앞서는 정치는 옳고 그름의 문제를 모두 대결의 논리로 빨아들인다. 가령 현 정부의 반민주, 반헌법적 통치를 비판하면 바로 상대 진영의 주장으로 치부되는 경우가 그러하다. 정치가 이렇게 진영 선택의 문제가 되고 권력 교체에 불과한 문제가 된 것은, 결국 협소하고 졸렬하기 이를 데 없는 이 나라의 양당제 정치 때문일 것이다. 선거가 곧 정치가 되었고, 우리는 더 이상 선택과 상상의 여지를 가질 수 없게 되었다. 우리에게는 정치 과몰입도 몰정치도 아닌, 마음 놓고 지지할 정치가 필요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정치적 동물(zoon politikon)이라 정의했는데, 여기서 정치적이란 말은 정확하게는 폴리스라는 공동체 안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뜻이었다. 그는 인간의 활동을 이론적 활동(테오리아), 윤리적 실천(프락시스), 제작 활동(포이에시스)으로 나누면서 생존을 위한 활동을 넘어서는 공동체적 활동 곧 프락시스를 더 가치 있는 것으로 보았다. 이런 생각을 일부 이어받은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에서 인간 활동을 생존을 위한 노동(labor), 외부 세계에서 의미를 캐내는 작업(work), 개인을 넘어 공동체적 관계를 실현하는 행위(action)로 나누면서, 근대에 들어와 행위의 공적 영역이 생존과 노동의 사적 영역에 잡아먹혔다고 지적한다. 공적 영역이 한국의 현실 정치에서 권력의 사유화로 증발해버리고, 시민들은 그들대로 개인의 사적 안녕이라는 몰정치적 태도에 빠진 것이 그러하다.

 

하지만 공적인 정의 또는 이해의 공평한 배분이라는 이상은 또한 현실 정치를 통과하지 않으면 달리 실현할 방법이 없다는 데 우리의 어려움이 있다. 현실 정치를 방기하면 정치의 이상은 더욱 멀어진다. 예컨대 내가 사는 고양시에서는 부동산 포퓰리즘을 흔들어댄 후보가 시장에 당선된 결과 돌봄센터, 지역아동센터, 도시재생, 취약계층 지원, 문화예술 지원 예산이 모조리 깎이거나 전액 삭감되고 있는 중이다. 사적 영역에 붙들린 유권자들의 정치적 관심이 공적인 영역에서 고스란히 죄과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피곤하지만 정치를 놓을 수 없는 것이 시민의 삶이다. 아무리 싫어도 우리는 정치와 무관할 수 없다.

안희곤 사월의책 대표 경향 : 2022.12.15.

 

 

ESG 대전환, 덫이 아닌 기회로 만들어야

세계화는 덫인가, 새로운 기회인가?’ 세계화의 흐름이 거세지던 2000년대 초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이 저서 <렉서스와 올리브나무>를 통해 던진 질문이다. 세계화의 흐름은 피할 수 없고, 세계화의 법칙에 맞추지 못하는 나라는 덫에 걸리게 된다는 게 프리드먼의 주장이었다.

 

냉전 이후 세계화는 인류의 가장 뜨거운 화두였다. 소련 해체로 냉전체제는 붕괴하고, 신자유주의에 기반한 세계화가 이를 대체하는 글로벌 질서로 등장했다. 좋든 싫든 국가와 기업은 세계화를 받아들여야 했다. 세계화는 승패를 가르는 새로운 게임의 규칙이 되었고, 세계의 부를 배분하는 유일한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영원할 것 같던 세계화에도 어느덧 종말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기후변화와 팬데믹, 디지털 전환, 패권 변동 등으로 기존과 같은 방식으로는 더는 살아갈 수 없게 된 탓이다. 그렇다면 세계화 다음의 질서는 무엇일까. 환경·사회·지배구조(ESG)로 재편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실제 세계화는 ESG로 재편 중이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은 20201월 연례편지를 통해 향후 투자 결정 과정에서 지속 가능성과 기후변화 대응을 핵심 목표로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계에 달한 자본주의를 구해내려면 물질 중심의 성장을 벗어나 환경과 인권, 다양성 등의 가치를 기업의 재무적 요소로 끌어안아야 한다는 게 ESG의 핵심이다.

 

세계화의 질서가 ESG로 대체되며 또 한 번의 대전환이 일어나고 있다. 이제 우리의 질문은 달라져야 한다. ‘ESG는 덫인가, 새로운 기회인가?’ 비상한 각오로 새로운 시대를 준비한 기업에는 기회지만, 소극적으로 변화에 뒤따르면 리스크가 될 것이라는 데 이견은 없다.

 

특히 2023년은 ESG가 덫인지, 기회인지 구분하는 분기점이다. 수년 전부터 논의됐던 ESG 가이드라인이 일정 합의를 거쳐 명확한 지표로 제시되기 때문이다. 실제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ESG 공시 기준 최종안 발표 초읽기에 들어갔고, 유럽연합(EU)은 이미 기업지속가능성보고지침(CSRD)을 최종 승인했다. 이는 내년부터 ESG가 제도적 차원의 영향력을 갖게 됨을 의미한다. 무엇보다 스코프3(Scope3)와 기후 관련 시나리오 분석 적용 여부에서 기업의 성패가 갈릴 것으로 예상된다. 스코프3는 탄소배출 측정 범위에 협력업체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시나리오 분석은 기후변화로 인한 가뭄과 홍수 등이 해당 기업에 얼마나 피해를 줄 것인지, 탄소중립과 제도 변화로 어떤 영향을 받을지 미래의 리스크까지 평가해서 공시하는 것을 말한다.

 

대한민국은 다량의 탄소를 배출하는 제조업 중심의 수출산업 구조를 가졌다. ESG 공시 기준을 충족하려면 남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특히 기업 혼자만 잘해서는 안 된다. 공생을 위한 산업생태계 형성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협력업체와 마주하고 대응방안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 더 나아가 당장의 이윤이 아닌 인권과 안전, 환경 등 지속 가능한 가치를 경영에 내재화하기 위한 고통도 감내해야 한다. 당장은 ESG로의 전환이 비용이겠지만, 멀게 보면 미래를 위한 투자다. 지금 이 순간이 ESG를 덫이 아닌 기회로 만들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일지 모른다.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력과 흔들리지 않는 혁신으로 ESG로의 전환을 서둘러야 한다.

 

백범 김구 선생은 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가 아니라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꿈꿨다. 우리는 압축성장을 이루며 선진국의 반열까지 오를 수 있었다. 그러나 아름다운 나라라고 자부하기에는 부족함이 크다. ESG는 경제와 행복의 거리를 좁히고, 성장과 환경의 모순을 줄이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ESG로의 전환이 대한민국을 가장 아름다운 나라로 이끄는 물길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남덕현 한국수자원공사 언론 홍보부장·()한국ESG협회 이사 경향 : 2022.12.15.

 

 

죽마고우 보은 인사

이철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윤석열 대통령의 ‘55년 죽마고우. 이종찬 전 국가정보원장 아들인 이 교수는 1967년 서울 대광초 1학년 때 윤 대통령을 만났고 서울대 법대까지 같이 다녔다. 검사가 된 윤 대통령과 달리 학계로 진출했고, 지난 대선에서는 윤석열 캠프 싱크탱크인 미래비전위원회 간사를 맡았다. 윤 대통령의 정치 입문과 전문가 접촉, 대선 승리를 옆에서 도운 핵심 인사였다.

 

이 교수는 윤석열 정부에서 공직을 일절 맡지 않았다. ‘윤핵관으로 승승장구한, 또 다른 죽마고우 권성동 전 국민의힘 원내대표와는 딴판이다. 이 교수의 행보는 문재인 전 대통령 당선의 일등공신인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과 이호철 전 민정수석비서관을 연상시킨다. 양 전 원장은 공직을 고사하다 민주연구원장을 맡아 2020년 총선 승리를 이끈 뒤 다시 야인으로 돌아갔다. 이 전 비서관은 자연인으로 남겠다는 말을 실천에 옮겼다.

 

그런 이 교수가 입길에 오르고 있다. 부인 탓이다. 윤 대통령이 16일 사의를 표명한 백경란 질병관리청장 후임에 지영미 한국파스퇴르연구소장을 내정했다. 이해충돌 논란을 빚은 백 청장의 사임은 만시지탄이나, 그 후임이 대통령 죽마고우의 배우자라니 말문이 막힌다. 서울대 의대를 나온 지 내정자는 20여년간 국내외 주요 보건·연구기관에서 활동한 국제적인 감염병 전문가라고 한다. 대통령 친구의 부인이라 해서 공직을 맡지 못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자질과 능력을 따지기에 앞서 윤 대통령의 인사 논란에 죽마고우 보은 인사라는 꼬리표가 더해진 것은 몹시 씁쓸하다. 윤 대통령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대표적인 학연(충암고·서울법대)과 한동훈 법무장관이 축이 된 검찰 편중 인사로 줄곧 도마에 올랐다. 지 소장 내정은 윤 대통령의 좁은 인재풀의 반복일 뿐이다.

 

 

 

이 교수는 윤 대통령이 당선된 후 “20275, 퇴임 후 청와대를 나온 뒤 다시 만나자이게 마지막 연락이 될 것이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고 한다. 공사를 구분하고, 공직 진출에도 선을 그은 것이다. 이 교수에게 묻고 싶다. ‘5년 뒤 만나자고 한 약속은 빈말이었나. 배우자의 등 뒤에 숨는 것만큼 비겁한 일은 없다.

조찬제 논설위원 경향 : 2022.12.16.

 

 

도마뱀과 바보들의 나라

바보냐, 적당히 중간만 해라.” 살면서 자주 듣는 얘기다. 겉으로는 책임감과 성실함을 입에 담지만 앞뒤가 달라야 한다. 너무 못하지도 잘하지도 않아야, 가늘고 길게 살아남을 수 있다. 성실해서 돋보이면 결국 모난 돌이 정 맞기 때문이다. 모난 돌은 그래서 바보라 불린다. 자기 일에 책임을 다하고 타인을 위해 애쓰는 건 어리석은 짓이고 적당히 중간만 하는 게 현명한 법이다.

 

성실하면 손해 보는 세상이니까, 세금 한 푼이라도 덜 내는 게 술자리 무용담이 된다. 군대에서 고참들은 불침번 설 때 최선을 다해 임무를 내팽개치고 잠을 잔다. 그런 세상이니까, 진도VTS 관제사들은 근무 중에 자거나 자리를 비워 세월호 사고 사실을 늦게 인지했고, 서울경찰청 112상황실 상황관리관도 자리를 비워 이태원 참사 대응을 지연시켰다.

 

성실한 사람들이 멸종위기에 놓이면 도마뱀이 번성한다. 도마뱀들은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보다 적당히 돋보이지 않게 처신하면서 주위 환경에 자신을 맞추고 눈치 보며 줄을 선다. 그야말로 최적화된 생존방식이다. 성실함과 책임감은 생존에 필요한 덕목이 아니다. 도마뱀 꼬리는 다시 자라므로 언제든 버려질 수 있다. 라인을 잘 타 버림받지 않으면서, 자를 꼬리가 있는 도마뱀으로 출세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다르게 말하면, 배가 침몰할 때 책임을 내던지고 꼬리를 자르며 가장 먼저 배를 탈출할 권한을 가진 선장이 되어야 한다.

 

세월호 참사 당시 검찰과 경찰은 재빨리 수사에 돌입했고 꼬리들만 검거한 채 권력을 지닌 윗선을 내버려 두었다. 검경도 도마뱀이라 대대적인 꼬리 자르기를 연출하며 윗선에 어필했던 셈이다. 정부 인사와 관료들 역시 윗선의 의지로 자리를 보전한 도마뱀이었다. 이번 이태원 참사에서도 도마뱀들은 윗선으로 책임이 추궁되는 걸 막고 적당히 꼬리만 자르려 한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 된다면, 그것은 도마뱀의 삶을 사는 게 현명하다는, 도마뱀을 더욱 번성하게 만드는 사회적 메시지가 될 것이다.

 

정부가 경계한 것은 배후가 있다고 의심되는 인파였다. 1029일 경찰 기동대가 각 집회현장으로 투입됐지만 이태원에는 마약 수사 인력만 배치됐다. ‘주최가 없는 축제였기 때문이다. 주최의 다른 말은 배후. 정권의 입장에서 배후가 동원한 집회는 위험한 인파였지만, 이태원 핼러윈은 그저 모였다 흩어질 현상이었다. 주민 동원으로 이뤄지는 관변 축제의 나라에서 민간의 시민들이 주도하는 축제는 드물다. 그 드문 사례인 이태원 핼러윈은 단지 마약과 관련해 치안유지의 대상일 뿐 정권의 안전과는 무관했다. 배후 없이 동원되지 않은 시민들은 안전은커녕 그 어떤 관심의 대상도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1029일 밤, 도마뱀의 나라에 사는 바보들이 있었다. 말단 경찰관은 한 명이라도 더 살리고자 절규하며 인파를 통제하려 했고, 시민들은 생판 모르는 타인을 위해 절박하게 심폐소생술을 했다. 무섭고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어떤 계산 없이 타인을 위해 달려나갔다. 국가가 자리를 비운 칠흑 같은 어둠 속에 그들이 작은 별처럼 빛을 비추고 있었다. 앞으로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도 그 별빛이 알려주고 있다.

최성용 청년연구자 경향 : 2022.12.17.

 

 

프레임이라는 전가의 보도

미국의 부동산 세금’(Estate Tax)200만 달러 이상의 상속자에게 부과되었다. 아들 부시 행정부(2001~2009)는 이를 사망세’(Death Tax)로 명명해 부정적 낙인을 찍고 대중을 현혹시켜 부자 감세를 관철시켰다.

 

석유기업, 자동차 회사 등의 책임 주체가 연상되는 지구 온난화는 자연의 변덕처럼 느껴지는 기후 변화로 대체되었다. 영화 <바이스>(애덤 메케이 감독, 2018)는 홍보 전문가 프랭크 런츠가 이 작업들에서 주요한 역할을 담당했다고 지목하는데, 개인적으로 그의 이름이 낯설지 않았다. 2008년 미국 연수중이던 박건식 PD(MBC 공영미디어국장)지구 온난화와 북극의 눈물칼럼(PD 저널)을 기억했기 때문이다. 프랭크 런츠를 수면 위로 올린 뉴욕타임스 기사를 인용하며 박건식 PD용어 싸움속에서 북극의 황폐화가 시시각각 가속화되고 있다고 개탄한다.

 

조지 레이코프의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는 이때의 용어 싸움을 프레임 이론으로 정리했다. 초판은 부시 행정부 시절이었던 2004년에 나왔다. 레이코프는 머리말에서 당시 공화당은 쟁점의 프레임을 짜는 데 민주당보다 훨씬 앞서 있었다. 2004년을 열면서 나와 동료들은 프레임의 작동 방식에 대한 이해를 넓힘으로써 민주당이 이 흐름을 뒤집을 수 있기를 바랐다고 서술한다.

 

그의 프레임 이론은 거칠게 말해, 진보와 보수는 각기 서로 다른 의미 프레임을 가지며 개인 또한 진보와 보수 양 쪽의 가치를 무의식의 수준에서 내면화했기 때문에 어떻게 프레임을 활성화하는가에 따라 대중 설득 효과가 달라진다고 파악한다. 뇌과학, 인지심리학, 언어학에 기반하여 사망세, 기후변화뿐만 아니라 결혼, 자유, 임신중단, 복지 등 여러 사회적 쟁점의 의미 프레임를 대조하는 레이코프의 작업은 꽤나 신선했다.

 

손석희 교수가 호스트였던 EBS<다큐프라임> ‘킹메이커’ 3부작(2012)은 프레임 이론을 대중적으로 한국의 시청자에게 알렸다. 레이코프의 인터뷰를 가져오고 정치 홍보의 명암을 부각시켰다.

 

JTBC로 자리를 옮긴 뒤 손석희는 한국판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2015)에 추천사를 썼다. 프레임은 그의 앵커 브리핑에서 자주 등장하는 용어 중 하나였다. 방송인 김어준도 프레임 개념을 유행시킨 인물이다. 교통방송의 <김어준의 뉴스공장>(2016~)을 진행하며 보수 언론이나 정치인의 언술등을 비평하는 가운데 그들의 기만적 프레임이 자주 거론되었다. 이후 프레임은 공식적 진술의 저의를 의심하는 일상적 비평 용어가 되었다.

 

당장 이 글을 쓰는 오늘 기준, 인터넷 포탈에서 프레임으로 뉴스를 검색하면 상단의 세 기사가 화물연대 파업으로 프레임 강화’(뉴스1), ‘초부자 감세 프레임은 무식의 소치’(머니투데이), ‘(), 검찰 공화국 프레임 씌울 것’(YTN)이다. 여야, 진보와 보수 상관없이 공작·조작· 협잡의 프레임이 상례화되었다.

 

얼핏, 프레임 개념을 통해 언론 비평의 새 지평이 열린 것 같다. 그러나 상황이 마냥 긍정적으로만 보이지는 않는다. 프레임 이론을 접했을 때 가졌던 의문은 모두가 동등하게 프레임을 확산시킬 수 있는가였다. 레이코프는 누가 더 프레임을 잘 재구성하는가에 따라 대중 설득 결과가 공정하게 달리 나타날 것으로 보지만 특정 프레임을 보다 반복적으로, 널리, 강렬하게 실어 나를 수 있는 이들은 대체로 기득권이다.

 

더불어 어떤 기득권은 특정 프레임을 우세하게 전할 수 있는 행정력과 강제력을 지닌다. 예컨대 이태원 참사 관련 대통령 주재 중대본 회의에서 압사희생자라는 말을 기피하도록 설계하고, 이를 언론 보도 자료로 유포하며, 국가의 애도 기간 강제에 따라 모든 축제와 공연을 삭제한 그 곳에서 프레임이라는 중립적 분석틀은 제 자리를 찾기 힘들다. 프레임 비평은 모두가 프레임을 짠다고 말하지만 정작 그 무대가 기울어졌음을 말하는 데에는 인색하다.

 

귀족 노조와 귀족 검사가, 민영화와 사유화가, 자유와 평등이 동등하게 이야기될 수 있을 때 프레임 분석은 의미가 있다. 그렇지 못할 경우 상대방을 프레임이라 비난하는 언술은 현실의 불균등한 권력관계를 은폐하는 또 다른 프레임에 불과하다.

홍성일 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 미디어오늘 2022.12.17.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

독일 정부가 정부 전복 음모를 꾸민 극우 집단 구성원 25명을 검거했다. 한명은 옛 독일 귀족 가문 출신으로, 이들은 그를 독일 지도자로 세우려 했다. 미국 공화당은 중간선거를 통해 하원을 접수하게 됐다. 공화당은 아직도 2020년 대선을 도둑맞았다고 주장하는 도널드 트럼프의 지지자들이 장악하고 있다. 페루에서는 친위 쿠데타를 시도한 대통령이 투옥됐다. 그 지지자들의 시위로 나라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이런 일들은 세계적으로 민주주의가 직면한 도전들 중 단지 세개의 사례일 뿐이다. 프리덤하우스가 2월에 펴낸 세계의 자유 보고서독재정치의 세계적 확산이라는 불길한 제목을 달았다. 보고서는 지난 25년간 민주주의가 최근처럼 나쁜 상황에 놓인 적이 없었다고 결론지었다.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은 세계적으로 자유가 16년 연속으로 축소된 것의 결과다. 지난해 25개국에서 자유가 신장된 반면 퇴보한 곳은 60개국이다.

 

한국은 활기찬 시민사회를 지닌 민주국가다. 2022년 프리덤하우스 보고서에서 지난해처럼 100점 만점에 83점을 받았다. 이런 평가를 따르자면, 지난 5년간 점수가 별로 바뀌지 않았으므로 민주주의가 퇴보한 것은 아니다. 많은 나라들이 한국보다 점수가 높은데, 일부 명단을 보면 놀랄지도 모르겠다. 우루과이 97, 일본 96, 사이프러스 93, 팔라우 92, 벨리즈 87, 몽골은 84점을 받았다. 몇년간 한국의 점수를 낮춘 것은 부패, 소수자 권리에 대한 존중 결여, 친북이라고 간주되는 견해에 대한 국가 안보차원의 제재 등이다.

 

박근혜 정부의 스캔들은 이런 결함들을 강조해줬지만 2017년 그의 탄핵은 한국 민주주의의 자정 능력을 입증했다. 한국인들의 자국 민주주의에 대한 만족도가 2019년에 견줘 2021년에 더 커졌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나왔다.

 

그런데 왜 일부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쇠퇴를 말하기 시작했을까? 퓨리서치센터의 19개국 여론조사에서 한국은 정파적 갈등에 대한 우려가 가장 컸다. 윤석열 대통령이 1%포인트 미만의 득표율 차이로 승리한 대선에 대해 독설이 가득한 분위기를 보면 이는 놀라운 게 아닐지도 모른다.

 

민주주의에 대한 한국의 우려는 세계적 흐름도 반영한다. 세계화는 경제적 불평등을 확대했고, 한국은 산업화한 국가들 중 소득 격차가 두번째로 크다. 한국 유권자들은 이런 변화를 이끈 정당들에 대해 불만이 커졌다. 기술 발전은 이런 불만족을 표출할 수 있는 소셜미디어를 만들어냈다. 음모론이 어디에나 퍼지고 있다.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음모론은 아직도 돌아다니고, 최근에는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음모론도 번졌다.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는 다른 특유한 요인들도 반영한다. 한국 정당들은 보통 특정한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조직되고, 이념적 플랫폼 같은 것을 표방하지는 않는다. 논쟁적 정치 환경에서는 개딸이대남같은 부족이 출현해 정치적 타협이 어려워진다. 성이나 나이처럼 기존에 존재하는 구분이 이런 부족을 보강한다.

 

한국은 페루나 미국을 흔드는 것 같은 위기에 직면하지는 않았다. 군사 쿠데타 위험도 없다. 그러나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는 걱정스럽다. 한국에는 1970년대에 독일 중도좌파와 중도우파가 동방정책을 함께 수용한 것처럼 광범위한 지지를 얻을 수 있는 대북 정책이 필요하다. 화석연료에서 벗어난 미래를 위한 기후정책을 펴야 한다. 만연한 불평등 해소 정책도 필요하다.

 

이런 시급한 과제들을 지닌 한국은 잘 작동하는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어떻게 그것을 이루느냐를 두고 이견이 크다는 점이 문제다. 물론 이게 민주주의의 양면이다. 민주주의는 사람들에게 지도자를 선택할 수 있는 목소리와 함께 불만을 표출할 수 있는 목소리도 부여한다. 민주주의의 성공 비결은 일부 사람들이 아니라 전체를 위한 자유와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정치 리더십과 폭넓은 지지를 받는 정책을 찾아내는 데 있다.

존 페퍼 | 미국 외교정책포커스 소장 한겨레 2022.12.18.

 

 

전환기의 국가정보

구체제는 붕괴하고 있지만, 새로운 세계는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전환의 시대.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안갯속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오스트레일리아 노동당 정부가 미-중 관계에서 추구하는 균형 지점이나, 인도 모디 정부가 추구하는 전략적 자율성은 흔들리는 정세에서 유연성을 발휘하는 것이다. 이념은 딱딱하지만, 실용은 유연하다. 균형은 중간이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며, 환경 변화를 예측할 때 가능하다. 그래서 정보력이 국가의 생존을 좌우한다.

 

명나라에서 청나라로 한반도 질서가 변화할 때, 광해군 외교를 높이 평가하는 이유가 있다. 바로 정보의 중요성이다. 광해군은 임진왜란을 몸으로 겪으며 변방의 사정을 알았고, 언제나 정보 수집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전쟁이 벌어져도 사신이 항상 왕래해야 한다는 광해군의 입장은 유화가 아니다. 교류를 적의 동향을 파악하는 가장 확실한 수단으로 생각했다. 신하들이 명에 대한 사대를 주장할 때, 광해군이 후금에 대한 기미, 즉 어르고 달래는 대책을 선택한 이유는 이념의 차이가 아니다. 정세 평가의 차이이고, 분석 능력의 차이였다.

 

언제나 과거의 정보 실패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 정보 실패는 전쟁의 늪으로 인도하거나, 국력의 손실로 나타나고, 국제적 영향력의 상실로 이어진다. 미국의 케네디 정부가 쿠바 미사일 위기에 슬기롭게 대응한 것은 피그만 침공작전이라는 직전의 정보 실패에서 교훈을 찾았기 때문이다.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의 정보 역량은 발전했다. 그러나 기술정보가 진화해도, 정보 실패가 발생한다. 대부분의 정보 실패는 두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권위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비밀주의다. 권위적 결정은 편견을 가진 지도자가 합리적인 반론을 봉쇄할 때 일어난다. 권위적인 분위기에서 정보는 지도자가 선호하는 방향으로 쏠린다. 실무자들은 실패의 징후를 알아도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침묵한다.

 

비밀주의 역시 문제다. 정보는 인체에서 피와 같다. 피가 돌지 않으면 동맥경화가 나타나듯이, 비밀주의와 칸막이는 언제나 전체 조직의 역량을 감소시킨다. 미국의 정보기관 개혁의 사례처럼, 다양한 정보기관들 사이의 역할 분담과 정보 통합의 효율성을 제도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정부 내부, 정부와 의회, 정부와 시민사회 사이에 정보가 공유되어야 민주적인 정책 결정이 가능하다.

 

건강한 정보 생태계는 국가의 신뢰 자산을 키운다. 몇년 전 김정은 사망설이라는 정보전염병(인포데믹)이 어떻게 발생해서, 유통되고, 증폭되는지를 지켜본 적이 있다. 외교 안보 분야의 정보 판단에서 정부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탈진실의 시대와 정보전염병의 시대일수록 정부는 신속하고 정확하게 사실관계를 확인해줄 필요가 있다. 정치권은 무책임하고, 언론은 자극적인데, 정부조차 소극적이면 언제든지 소모적인 가짜뉴스가 번질 수 있다. 외교 안보 분야에서 정부의 정보 판단을 신뢰해야 하고, 동시에 정부 역시 국민의 합리적 의심을 해소해줄 의무가 있다.

 

올바른 분석을 위해서는 언제나 결론을 열어두어야 한다. 수많은 첩보를 거르고, 부족한 정보의 체계를 잡고, 예측 능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열린 토론의 과정이 필요하다. 정보기관 내부에서 동시에 여러 부처의 정보 부서 사이에서 칸막이를 열고 정보를 공유하고 서로 소통해야 한다. 북한이 7차 핵실험을 언제 할지를 예측할 때, 핵실험 장소인 풍계리에서의 준비 정황을 위성 정보로 파악하는 것이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사진 자체가 앞으로 벌어질 일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언제 핵실험을 할지는 북한의 군사기술의 수요, 국내 정치의 필요, 외교적 수요를 종합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불확실하고, 통제할 수 없는 변수가 너무 많다. 당연히 정확한 시기를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분석의 과정을 통해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대비할 필요가 있다.

 

현재 정보기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중요한 전환기에 국가정보기관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치적인 전환의 진통은 매우 우려할 만하다. 정치가 개입하면 정보는 오염된다. 정치적인 이유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잔혹한 복수극을 반복하고, 전임 정부에서 고위직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정무직도 아닌 행정직을 전부 잘라낸다면, 과연 국가의 정보 역량은 괜찮을까? 권위적인 조직문화는 분석 과정을 닫고, 정보의 편향으로 이끌고, 결국 정보 실패로 이어질 것이다. 정보가 살아야 국가도 산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김연철 | 전 통일부 장관·인제대 교수 한겨레 2022.12.18.

 

 

약자 복지는 약자를 위한 복지가 아니다

인터넷을 이 잡듯 뒤졌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보아도 지난 915일 안상훈 사회수석이 발표한 윤석열 정부의 복지정책 방향을 담은 공식 자료를 찾지 못했다. 간신히 구한 것이라곤 안 수석 발언을 녹취한 것이 전부였다. 세계 10위권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에서, 그것도 두고두고 지속 가능할 한국형 복지국가의 기틀을다지기 위한 윤석열 정부의 복지정책 방향을 발표하면서 보도자료조차 없다니. 당황스러웠다.

 

그래, 그럴 수도 있다. 팬데믹을 거치면서 민생 문제가 얼마나 위급했으면, 발표문 한장 준비 못 하고 사회수석이 급하게 구두로 일국의 복지정책 방향을 발표했을까. 그 마음을 헤아려보고 싶다. 하지만 사회수석이 구두로 발표한 윤석열 정부의 복지정책 방향은 부정확한 논거와 현실 인식이 넘쳤고 약자를 위한 복지정책도 아니었다.

 

몇가지만 간단히 짚어보자. 먼저 안 수석의 말처럼, 정말 정치 과잉과 포퓰리즘으로 득표에 유리한 현금복지제도가 무차별적으로 확산했나? 내 기억이 틀리지 않는다면, 민주화 이후 우리가 도입한 소득보장정책은 국민연금, 고용보험과 같은 사회보험,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아동수당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대부분이 도입한 정책과 기초연금과 같이 심각한 노인빈곤을 완화하기 위해 제도화한 소득보장정책들이다.

 

국민이 직면한 사회적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도입한 이런 필수적 정책을 무차별적인 현금복지제도라고 비난한다면 윤석열 정부가 민생에 눈감고 복지국가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물론 지방자치단체의 논쟁적인 현금 지원 제도가 있을 수 있지만, 이를 근거로 필수적인 소득보장정책을 포퓰리즘에 의한 무차별적 현금복지제도라고 비난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현실은 안 수석 주장과 정반대다. 오이시디 최신 자료를 보면 그의 주장과 달리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소득보장 지출 비율은 4.3%로 사회서비스 지출 비율 6.2%보다 낮다. 이런 한국의 소득보장 지출 비율은 오이시디 회원국 평균인 11.5%3분의 1에 불과하다.

사실이 이런데도 그는 현금복지제도가 무차별적으로 확대되었기 때문에국가가 만성적인 재정적자와 과도한 국가 부채에 시달리고 국가 경제가 전체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검증되지 않은 주장을 하고 있다. 그 근거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부채 문제 또한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 한국의 정부 부채는 지디피 대비 60% 수준으로 오이시디 평균인 95%보다 낮다. 반면 글로벌 부채 모니터링보고서를 보면 20221분기 한국의 가계 부채 비율은 104.3%36개국 중 가장 높았다. 국가 부채보다 가계 부채가 더 심각한 문제라는 것이다.

 

사회수석이 윤석열 정부가 지향하는 모범 사례로 언급한 약자 중심, 서비스 복지 중심어떤 나라도 현실 세계에는 존재할 수 없는 복지국가라는 점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서비스 중심의 복지국가라면 북유럽과 영미권 국가가 있다. 안 수석이 언급한 모델이 북유럽을 가리키는 것이라면, 그 복지국가는 중산층에 기초한 복지가 약자를 포괄하는 보편적 복지국가이지, 약자를 위한 복지가 중심인 국가가 아니다.

 

그 사례가 영미권 국가를 지칭한다면, 그 국가들은 상대적으로 약자를 중심으로 공적 복지가 제도화되어 있지만, 급여 수준은 낮고 시장의 역할이 커 불평등과 빈곤이 고착화되어 있다. 보편적 복지 없이 약자에게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는 복지국가는 없다. 현실 세계에서 세금은 주로 중산층이 내는데 취약계층만 두터운 복지를 누리는 복지국가를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안 수석이 그런 신묘한 계책을 갖고 있다면 듣고 싶다. 나는 그런 복지 정치를 알지 못한다.

 

안 수석이 자유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라고 강조했던 연대도 약자복지로는 만들어질 수 없다. 연대는 중산층과 빈자가 사회적 위험에 함께 대응할 때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좋은 복지국가는 모두를 위한 보편적 복지와 취약계층을 위한 선별적 복지 둘 다 필요하다. 보편적 아동수당을 도입해도 취약계층 아동을 위한 추가적 지원이 필요한 이유다.

 

이게 다 약자 잘되라고 하는 정책이야라고 말하지 말자. 윤석열 정부가 진정으로 약자를 위한 복지를 두텁게 하고 싶다면, 약자만 선별하는 것이 아니라 약자와 중산층이 함께 누리는 복지를 실현해야 한다. 그게 진짜 약자복지다.

윤홍식 |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소셜코리아 운영위원장 한겨레 2022.12.18.

 

 

사설] 다주택자 중과세 후퇴, 또 부동산 투기 부른다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제1차 국정과제점검회의가 열린 지난 15일 오후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에서 한 상인이 중계방송으로 회의를 시청하고 있다. ‘다주택자에 세금 완화, 결국 세입자에게 득 될 것이라고 쓰인 자막이 보인다. 연합뉴스

 

주택 투기의 불쏘시개 역할을 해온 다주택자들에 대한 중과세 조처들이 사실상 폐지 수순을 밟고 있다. 현 정부 출범 초기에 양도소득세 중과가 한시 배제된 데 이어, 종합부동산세와 취득세 중과도 사실상 무력화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내년 금리인상이 마무리되면 다주택자들이 또다시 사재기에 나서 주택시장을 투기장으로 만들 것이 뻔한 만큼 세제 완화에 신중해야 한다.

 

정부가 취득세 중과를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다주택자의 집 사는 문턱을 낮춰 부동산 가격을 떠받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현행 지방세법은 조정대상지역 기준 1가구 2주택과 3주택 이상에 각각 취득가격의 8%·12%를 취득세로 부과하고 있다. 이를 20207·10대책 이전으로 되돌리면 3주택까지는 1~3%로 내려간다. 앞서 정부는 종부세 중과를 대폭 완화하는 내용의 종부세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으며, 여야가 어느 정도 합의를 본 것으로 알려진다. 세가지 중과세를 없애면 다주택자들이 주택 취득·보유·양도 등 전 과정에서 별 제약을 받지 않게 된다.

 

이런 움직임에는 윤석열 대통령의 왜곡된 인식도 한몫하는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지난 15일 국정과제점검회의에서 다주택자에 대한 중과세가 거의 고스란히 경제적 약자인 임차인에게 전가되는 것이 시장의 법칙이라며 다주택자에 대한 과세를 경감해 시장에서 열악한 지위에 있는 임차인들이 저가에 임차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드리려 한다고 말했다. 일견 그럴듯해 보이지만 다주택자 감세가 서민을 위한 것이라는 궤변성 발언이다. 다주택자에게 중과세를 하면 전월세 급등기에는 세입자에게 일부 전가하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으나, 지금처럼 전월세 가격 하락기에는 전가하기가 어렵다. 세입자를 구하려면 가격을 더 낮춰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일부 현상을 대통령이 시장의 법칙이라고 말한 것도 부적절하다. 다주택자들의 도덕적 해이현상을 마치 당연한 것처럼 말해 이런 행위를 부추길 수 있다.

 

다주택자의 주택 투기는 우리 사회에 많은 부작용을 야기하고 있다. 주택가격을 폭등시켜 집 없는 서민들의 주거 마련을 어렵게 할 뿐만 아니라 이들의 막대한 불로소득은 국민들의 근로 의욕마저 상실케 한다. 또한 이렇게 취득한 주택을 자녀에게 물려줌으로써 청년 세대의 자산 불평등마저 초래한다. 불과 1년도 지나지 않은 주택 투기 광풍의 후유증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한겨레

 

윤석열 정부의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국가 권력이 목소리를 지우려 하는 건 그만큼 위협이 된다는 것"

현대의 국가 권력은 전체 부르주아지의 공동 사업을 관장하는 위원회에 불과하다."

 

일찍이 마르크스가 서술한 내용이 마치 현재의 한국 정부를 묘사한 듯하다. 화물노동자들의 안전운임제 요구를 업무개시명령으로 대응하는 모습. 노동조합을 악마화하는 모습. 장시간 노동을 추진하는 모습. 납세자들의 부담 운운하면서 공공임대 예산에 반대하는 모습. 법인세는 어떻게든 3% 인하해야 한다고 떼쓰는 모습. 투기세력, 재벌기업 배만 불리는 공공자산 매각을 서두르는 모습. 이것이 기득권의 공동 사업을 관장하는 위원회가 아니면 무엇인가.

 

언제나 경제 권력의 이익에 복무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국가 기구는 경제 권력에 편향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 국가 권력의 엘리트들이 경제 권력과 긴밀히 연결돼 있고, 또 경제 권력은 여러 자원을 통해 국가 운영에 영향을 미친다. 국가 권력으로서도 '경제 성장'이 통치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만큼 자본에 의존할 만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사람들의 눈치를 보기 마련인데, 이번 정부는 그러한 모습도 없이 노골적이다.

 

'자유''법과 원칙'이라는 프레임으로 합리화하려 하지만, 정부가 말하는 자유는 누구의 어떤 자유인가.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것들을 보건대, 소수의 자본가가 최소한의 사회적 책임으로부터도 벗어나, 다른 사람들을 착취하거나 비용을 사회로 전가하면서 자신의 이윤을 극대화 할 자유를 말하는 것이 아닌가 의심스럽다. 그 결과 다수의 사람들이 실질적으로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는 자유는 상당히 제약될 수밖에 없다.

 

정부가 말하는 법과 원칙은 혼란스럽다. 처음에는 화물노동자를 자영업자라 주장하며 파업을 문제시 하더니, 나중에는 그런 자영업자들에게 노동을 강제하는 업무개시명령을 내렸다. 노동자들과는 전혀 대화에 나서지 않던 대통령은 경제 단체장들과는 비공개 면담을 가지면서, 중대재해법에 결함이 많다며 기업이 최대한 피해 입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헌법에 명시된 노동 3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지 못하는 노조법은 꼭 지켜야 할 법이고, 기업에 피해가 갈 수 있는 중대재해법은 결함이 많아 수정이 필요한 법인가?

 

법과 원칙은 당연히 완벽한 것도, 변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사회적 합의에 따라 수정될 수 있고, 맥락에 따라 철저하게 지켜지는 것이 중요할 수도, 타협이 중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차별을 합리화하는 데 이용되는 것은 곤란하다. 권력과 자원을 가진 개인과 집단에는 너그럽고, 그렇지 않은 이들에는 무관용으로 대응하는 것처럼 말이다.

 

노동조합 혐오 조장을 통해 보수층의 결집을 이뤄내면서 대통령 국정수행 긍정평가가 늘었다. 국가 경제나 산업을 위한다면서, 실제로는 소수 기득권의 이익을 위해 사람들의 삶을 더욱 위태롭게 만드는 조치들이 더 심해질까 걱정이다. 많은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야당이 별다른 역할을 못() 하고 있으니 답답하다. 권리 주체들의 목소리를 사회에서 지우려 하고, 언론을 통제하려는 정부의 행태가 더욱 암담하다.

 

하지만 기억할 것이 있다. 권리 주체들의 목소리를 억누를수록 그 반발은 더 강력해진다는 것. 국가 권력이 그토록 사람들의 목소리를 지우려 하는 것은 그것이 그만큼 위협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가 이태원 참사의 제대로 된 진상규명, 사과와 책임은 뒤로하고, 유가족들이 모이지 못하게 방해했지만, 결국 유가족협의회는 출범했다. 정부가 2차 가해를 방조하고, 몇몇 정치인은 직접 2차 가해를 하면서, 유가족을 비롯한 시민들은 더욱 분노하고 강력하게 정치적 책임을 묻게 되었다.

 

화물연대가 파업을 시작할 무렵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안전운임제'는 이제 많은 시민들의 지지를 받게 되었다. 정부가 노조와 대화하지 않고 온갖 수단을 동원해 압박하는 것을 보며, 노동자들은 더 강력하게 뭉쳤다. 결국 화물연대가 주장을 관철하지 못하고 파업을 그만두었지만, 그 파업 기간은 노동자와 이들을 지지하는 시민들의 연대를 확인하고, 끈끈하게 다지는 시간들이었다. 당장은 그 힘과 에너지가 보이지 않고, 삶은 점점 더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지만, 반전의 기회는 온다. 꺾이지 않는 마음은 사람들의 권리와 삶을 지켜내기 위해 연대하는 우리에게도 중요하다.

시민건강연구소 | 프레시안 2022.12.19

 

 

이태원 참사두 아버지는 두 시간 내내 울었다

최정주씨(53)20년 넘게 드라마 음악감독으로 일해왔다. 평범하지만 행복했다. 딸 최유진씨(2000년생)는 큰 기쁨이었다. 당차고, 똑똑하고, 자기 길을 알아서 가는 아이였다. 아빠를 따라 음악을 시작한 것도 내심 반가웠다. 유진씨는 제주도에서 중·고교 과정을 마친 뒤 미국 뉴욕대 퍼포먼스 스터디스과정에 들어갔다. 공연예술의 모든 것을 배우는 학과다. 입학하고 얼마 안 돼 코로나19 사태가 터졌다. 서울에 머물며 온라인 수업을 들었다. 한계를 느꼈다. 휴학하고 작·편곡을 공부했다. 이태원역 인근에 원룸 겸 작업실도 얻었다. 지난 8월엔 자작곡을 노래해 음원을 냈다. 제목은 <Love me right>. ‘날 제대로 사랑해보라는 뜻이다.

 

바이러스의 기세가 수그러들자 유진씨는 2023년 뉴욕대에 복학할 계획을 세웠다. 그전에 두 곡 정도 더 음원을 내고 싶었다. 지난 1026, 딸은 한남동 본가에 들렀다. 저녁을 먹으며 두 번째 음원이 곧 나온다고 신나했다. 제목은 <Off course>, ‘항로 이탈’. 유진씨는 자작곡이 어느 정도 완성되면 한번 들어봐줘라며 오곤 했다. 그러면 아빠는 애 많이 썼다며 격려해줬다. 그날도 다르지 않았다. 큰길까지 바래다주고 손을 흔들었다. 그것이 딸의 마지막 모습일 줄은 몰랐다.

 

사흘 후인 1029일 밤 1155. 최정주씨 휴대전화에 문자메시지가 떴다. ‘[서울특별시청] 용산구 이태원 해밀턴호텔 앞 긴급사고로 교통통제 중.’ 딸에게 카카오톡을 보냈다. ‘1’은 사라지지 않았다. 전화를 걸었다. 연결되지 않았다. 딸의 작업실로 달려갔다. 비어 있었다. 유진씨 어머니가 딸 친구들을 수소문했다. 유진씨가 밤 950분쯤 친구 A씨를 만나러 나간 사실을 확인했다.

 

1030일 새벽 2. 순천향대병원 앞에서 만난 A씨는 죄송하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둘은 밤 10시 이태원역 인근에서 만났는데 인파에 놀라 10분 만에 자리를 떴다. 그러다 잡고 있던 손을 놓쳤다. 정신을 잃은 A씨가 깨어나보니 1040분이었다. 1050분쯤 유진씨 발신으로 전화가 걸려왔으나, 10초 정도 아무런 말도 없다가 끊겼다고 했다.

 

새벽 239. 최정주씨 전화가 울렸다. “경찰입니다. 최유진양 보호자인가요?” 다급히 딸의 상태를 물었다. “안타깝게도.”

 

그날이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 “하루 두세 번은 왈칵 눈물이 나요.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아이가 떠오르고.” 어느 날 KBS에서 유족 인터뷰를 접했다. 배우 이지한씨 아버지 이종철씨였다. 인터뷰한 기자에게 e메일을 보냈다. “아이를 잃은 아빠인데 연락처 좀 알 수 있을까요.” 이종철씨를 행주산성 근처 카페에서 만났다. 두 아버지는 한쪽 구석에서 두 시간 내내 껴안고 울었다.

 

아이들이 잘못되지 않을 수도 있었음을 알려주는 정황들이 드러나고 있잖아요. 그런데 누구도 제대로 된 사과나 책임지는 모습이 없어요. 예방도 못하더니, 일이 일어난 후에도 사고에 대한 대응이나 분향소 문제 등이 상식적이지 않아요. 국무총리는 기자회견 하며 농담을 하고, 행정안전부 장관은 폼나게운운하고. 또 다른 가해였습니다.”

 

최유진씨가 다닌 학교들의 반응은 달랐다. 고인이 졸업한 ‘NLCS제주에선 연례 아트페스티벌 때 최유진의 날을 정해 추모하고, 음악실 한 곳을 최유진의 방으로 명명하기로 했다. 고인이 다녔던 뉴욕대에서도 학교 인근 워싱턴스퀘어파크에서 추모행사를 열고, 유진씨가 과제로 낸 에세이를 대학 건물에 전시하기로 했다고 한다.

 

참사 49일째인 지난 16일 유가족협의회가 주관해 치른 시민 추모제의 주제는 우리를 기억해주세요였다. 유족들이 공개에 동의한 희생자들의 이름과 사진이 담긴 추모 영상이 상영됐다.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어요. 이름도 사진도 없는 분향소라니요. 처음부터 국가가 제대로 위로해줬다면 이렇게 안 했겠죠. 왜 유족들이 나서 목청껏 외쳐야만 그 소리가 들리는지 이해 못하겠어요. 10대 생존자가 악성 댓글로 상처받고 유명을 달리했잖아요. 살아 있는 아이조차 돌보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15년 지기 유진이를 잃은 A에게도 자책하지 말라고 다시 한번 말해주고 싶습니다.”

 

최정주씨의 삶은 ‘1029일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유족들은 지금 우리 정부와 사회가 보이는 모습이 잘못됐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아직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어요. 바로잡아야 하고, 바로잡을 겁니다.”

지난 14일 최정주씨와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썼습니다.

김민아 논설실장 경향 2022.12.19.

 

 

리즈 트러스가 반색할 한국의 동지들

영국 역사상 최단임 총리로 기록된 리즈 트러스는 지난 9월 취임 당시만 해도 2의 마거릿 대처를 꿈꿨다고 한다. ‘철의 여인으로 불린 대처 전 총리는 감세, 규제 완화, 민영화, 노조 무력화 등의 정책으로 신자유주의 시대를 연 인물이다. 기업에 최대의 자유를 주면 경제가 빨리 성장해 모두가 잘살게 된다고 주장했다. 트러스 전 총리는 대처의 처방을 좇아 대규모 감세를 핵심으로 하는 미니 예산안을 발표했다가 거센 역풍을 맞았다. 코로나19 팬데믹과 물가 상승 등으로 서민의 삶이 피폐하고 불평등은 더 심해지는데, ‘부자 세금 깎아주기는 너무 눈치가 없는 정책이었다. 결국 정부 빚이 늘 것으로 본 금융시장의 동요로 그는 재임 49일 만에 물러났다.

 

후임 리시 수낵 총리는 세금을 더 걷어 민생 지원을 확대하는 쪽으로 재빨리 태세를 전환했다.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대처와 손발 맞춰 신자유주의 정책을 밀어붙였던 미국도 지금은 완전 딴판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대기업이 조세 회피처를 이용해 법인세를 떼먹지 못하도록 최저세율을 법제화하는 등 대규모 부자 증세와 서민을 위한 복지 확충에 나섰다. 유럽연합(EU) 회원국들도 에너지 기업에 횡재세를 부과하는 등 증세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하지만 트러스는 외롭지 않다. 방탄소년단(BTS)<오징어 게임>의 나라 한국에서, 세계적 흐름과 상관없이 자신에게 동조하는 정부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는 연간 3000억원 이상 이익을 낸 초거대기업의 법인세를 깎아주고, 주식·채권으로 한 해 5000만원 이상 번 개인의 금융투자소득세를 유예하는 등 부자 감세안을 줄줄이 내놓았다. 여기에는 주택과 땅을 많이 가진 이들의 종합부동산세를 줄여주고, 기업을 물려받을 때 상속세를 덜 내도록 하는 안도 포함됐다. 이렇게 세금을 줄이면 정부가 쓸 수 있는 돈도 줄어드니, 빚을 내지 않으려면 재정 지출을 조여야 한다. 정부는 공공임대주택과 지역거점병원, 노인 일자리, 청년 지원, 초등 돌봄교실 등 주로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돌아갈 복지예산을 깎겠다고 한다. 안 그래도 심각한 빈부 격차가 더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정부의 감세 명분도 트러스와 판박이다. 대기업과 부유층의 세금을 줄여주면 투자가 늘고, 투자가 늘면 일자리도 많아지니 저소득층을 포함한 모두에게 이익이라는 것이다. 물이 아래로 떨어진다는 뜻에서 낙수효과로 알려진 주장이다. 얼핏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현실에선 거의 일어나지 않는 일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같은 논리로 수십조원 규모의 감세를 단행했지만, 기업들은 내부 유보금을 더 쌓았을 뿐 투자를 늘리지 않았다. 대기업이 투자를 안 하는 건 수익 전망이 뚜렷한 사업을 못 찾아서지, 꼭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는 걸 알 사람은 안다.

 

바이든 대통령은 낙수효과는 작동한 적이 없다우리는 저소득층과 중산층을 중심으로 경제를 재건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가 말하는 저소득층·중산층 중심 경제는 물이 바닥에서 솟구치는 분수효과로 설명할 수 있다. 저소득층·중산층의 소득이 늘면 소비가 살아나고, 소비 증가가 투자 확대를 이끌어 경기를 살린다는 것이다. 소득이 낮을수록 추가로 번 돈을 곧장 지출하는 한계소비성향이 높기 때문에 복지 확대, 임금 인상 등으로 이들의 실질소득을 늘려주는 것이 경제 활성화의 지름길이라는 얘기다. 우리 정부는 이런 바이든의 정책과 거꾸로 가고 있다.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학(UC 버클리) 이매뉴얼 사에즈 교수 등은 저서 <그들은 왜 나보다 덜 내는가>에서 한 나라의 불평등 수준은 세금의 영향을 받으며, 세금 제도를 좌우하는 것은 민주주의라고 말했다. ‘어떤 민주주의냐에 따라 누구에게 얼마나 세금을 매기느냐가 달라지며 이에 따라 불평등이 커지거나 줄어든다는 뜻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 자산을 가진 이와 못 가진 이의 격차가 더욱 커졌는데도 부자 감세가 추진되는 것은 우리 민주주의가 고장 났다는 신호처럼 보인다. 의원내각제인 영국은 재빨리 총리를 바꿔 잘못된 노선을 수정했는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제라도 방향을 틀기 위해 국회 과반을 차지한 야당의 분발, 정부 여당의 각성, 시민사회의 적극적 개입이 필요하지 않을까.

제정임 |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장 한겨레 2022.12.19.

 

 

윤 정부의 자유·연대론과 일본의 한반도 선제공격

중국의 부상,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미국은 국제질서를 민주주의 대 전제주의 대결로 규정한다. 국제 정세는 그런 이분법 질서대로 흐르고 있나?

 

미국에 공식 동맹 이상이던 사우디아라비아를 보자. 사우디는 냉전 때 수교조차 하지 않았던 원수 소련의 후신 러시아를 오펙플러스에 초대해 국제유가 결정에서 공조한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한 대러시아 제재에 불참했다. 지난 7~9(현지시각)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사우디 방문과 걸프 지역 국가들과의 정상회담으로, 사우디는 미··러 사이에서 등거리외교를 선보이고 있다. 나토 동맹국인 터키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 입장을 중재하기도 한다. 심지어 이스라엘도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대러 제재에 동참하지 않는다. 멕시코, 브라질 등 전통적인 친서방 국가도 마찬가지다.

 

중동에서는 바레인·이집트·쿠웨이트·카타르·아랍에미리트가 중·러가 주도하는 상하이협력기구’(SCO)의 대화 파트너이거나 참여를 고려 중이다. 상하이협력기구가 서방의 나토에 상응한다면,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는 주요 7개국(G7)에 상응한다. 이 브릭스에도 사우디·이집트·터키가 가입 의사를 비치며, 대화하고 있다.

최근 미들파워 국가(중견국)들의 대외정책은 냉전 때인 1955년 반둥회의에서 결성된 비동맹 노선과는 차이를 보인다. 당시 중국과 인도가 주도한 비동맹 노선은 비미비소’(미국도 아니고 소련도 아니다)였다면, 중견국들은 비동맹보다는 다연대노선을 추구한다. ··러 모두에 발을 걸치려 한다.

 

미국 내에도 중견국이 다연대 노선을 선택한 데 대한 자책이 있다. 트럼프 전 행정부의 안보보좌관 허버트 맥매스터는 미국이 기존 동맹과 자동적인 연대를 상정하는 것은 전략적 나르시시즘이라고 일갈했다. 이런 전략적 나르시시즘은 사우디가 지난 10월 미국의 석유 증산 요구를 일축하고, 200만배럴을 감산한 데서도 드러난다.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오펙플러스가 러시아와 연대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극언했다. 미국은 사우디가 전통적으로 유가 결정 때 미국의 영향력에 저항했던 것을 눈감은 것이다. 2015년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동맹국의 불참을 촉구했지만, 영국·독일·오스트레일리아(호주한국 등 대부분의 동맹들이 참가한 데서도 미국의 전략적 나르시시즘이 드러난다.

미국도 다연대 노선을 추구하는 중견국들에 맞춤형 접근으로 선회한다. 전통적인 집단안보기구나 양자동맹에 머물지 않고, ···호의 쿼드’,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의 수교인 아브라함 협정’, 인도·이스라엘·아랍에미리트·미국의 이른바 ‘I2U2 그룹등을 추진한다. 지난 714일 첫 공동성명이 나온 I2U2 그룹은 역내 경제협력 강화를 천명했는데, 미국은 서아시아판 쿼드로 발전을 추구한다. 아브라함 협정으로 이스라엘과 수니파 아랍 국가들의 연대를 구축하고는, I2U2를 매개로 인도-아브라함 동맹으로 발전시켜나가려는 것이다. 중국을 봉쇄하려는 인도·태평양 전략의 큰 틀 아래 그 핵심인 쿼드에 인도-아브라함 동맹을 중첩·연동하는 전략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민주주의 대 전제주의대결이라는 측면도 있겠지만, 기존의 패권국이나 강대국 질서의 약화도 시험한다. 중동과 서남아 국가들이나 중견국들이 미국의 자장에 얽매이지 않으려 하고, 미국이 이들 국가에 맞춤형 연대 전략을 꾀하는 것이 그 두가지 조류를 보여준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국제질서 재형성의 주요 동력으로 중견국들의 능동주의를 부각한다. 남아공, 인도, 사우디, 터키, 이스라엘, 그리고 한국 등이 이런 어색한 동반자 부류라고 <파이낸셜 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인 이반 크라스테프는 지적했다. 이런 중견국들이 공유하는 것은 열강 대결에서 메뉴판이 아니라 협상 테이블에 오르겠다는 결의라고 그는 지적했다.

 

윤석열 정부는 과연 메뉴판이 아니라 테이블에 동참하려는 결의인가? 윤 정부는 자유와 연대를 미국식 어법으로 반복하는 대외정책을 천명하고 있다. 동북아에 있는 한국이 지정학적 조건이 다른 중동이나 서남아 국가들과 같은 대외정책을 천명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부활한 열강들의 지정학적 대결을 다른 중견국들이 기회로 대응하는데, 한국은 특정 열강에 더욱 줄을 서야 한다는 위기로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일본은 사실상 예방적 선제공격인 적기지 공격이라는 반격 능력의 한반도 적용은 자신들이 판단할 문제라고 공식화했다. 우리의 헌법상 주권 지역인 한반도를 일본이 선제공격 지역으로 설정하는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윤 정부가 자유와 연대를 어떤 정부보다도 떠들었기에 더욱 그렇다

정의길 | 국제부 선임기자 한겨레 2022.12.19.

 

윤석열 머슴어디 갔나?

머슴. 더러 오해하지만 노비나 하인이 아니다. 부농이나 지주에 고용되어 일을 해 주고 품삯을 받는 사내를 이른다. 1980년대까지 전체 농업 노동 가운데 0.6%를 차지했다. 노동인들의 권리 의식이 보편화하면서 시나브로 사라졌다.

 

참 흥미롭게도 머슴은 정가에서 부활했다. 민주화 이후 선거에 나서며 머슴을 자처하는 후보들이 나타났다. 가장 강렬하게 머슴을 자임한 후보가 윤석열이다. 37일 안산에서 모든 선출직·임명직 공직자가 국민을 주인으로 모시는 머슴이 되는 게 민주주의라며 심판해달라고 호소했다. “자나 깨나 어떻게 하면 주인인 국민에게 이로울까이 생각을 하고 살아야한다며 문재인을 겨냥해 오로지 국민만 생각하는 머슴이 맞나라고 훌닦았다. 국힘당은 선거일 아침에 착실한 머슴 뽑아 국민이 주인되는 날이라며 투표를 독려했다.

 

그래서다. 나는 앞으로 그를 머슴으로 종종 쓰고자한다. 오해 없기 바란다. 그의 뜻을 존중하고 자칫 잃기 쉬운 초심을 상기해주고 싶어서다. 노동권 의식도 없기에 안성맞춤이다.

 

국민이 그를 머슴으로 고용하자 언행이 싹 달라졌다. 주인을 섬기는 머슴의 자세가 도통 보이지 않는다. 국민 159명이 거리에서 긴급 구조를 호소하며 압사했는데도 담당 장관조차 문책하지 않는다. 1216일 참사 현장에서 유가족의 오열과 통곡 속에 49재가 열린 시각에 우리의 머슴은 ·윈터 페스티벌개막식에 참석했다. 이해 못할 일만은 아니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상품 판촉행사다. 다만 법인세를 비롯해 대기업 중심의 경제정책을 펴고 있기에 선뜻 수긍하기는 어렵다. 더구나 방짜유기 술잔을 사들이고 딱한 농담도 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이 찍은 머슴 부부는 행복을 만끽하는 표정이다. ‘크리스마스 트리 점등단추를 누르고 행사 내내 함박웃음이다. 같은 날 서초동 아파트 주민들에게 떡을 돌리기도 했다. 그 시각에 49재가 열리는 사실을 보고 받았다면 내놓고 벌인 어깃장이다. 사실과 전혀 다른 말로 유가족의 분노를 일으킨 행안부 장관의 어깨를 토닥토닥한 어깃장의 연장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수입농산물을 연말 대통령 선물로 돌려 농민들을 격분케 했다. 노동운동엔 박근혜 못지않게 적대적이다. 그 살천스런 행태를 보며 똑같이 머슴론을 편 다른 나라 정치인이 떠올랐다. 탄자니아의 초대 대통령 니에레레다. 그는 우리가 섬겨야 하는 주인은 민중이고 반드시 그래야한다머슴은 자신이 섬기는 주인의 권리보다 우월한 권리를 가질 수 없다. 머슴은 더 많은 의무를 지니고 있지만 더 많은 특권과 권리를 갖고 있지는 않다고 했다(연설문집 인간과 개발참고). 니에레레는 자신이 열정적으로 추구한 정책이 한계를 드러내자 미련 없이 물러났다. ‘나는 물러난다응아투카공직이나 지도적 위치에 있는 사람이 자발적으로 물러나다를 뜻하는 동사이자 상징어가 되었다. 바로 그래서다. 사심 없이 물러난 니에레레는 그 뒤 내내 민중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

딱히 견줄 대상은 아니로되 보라. 국민의 머슴을 격하게 자처한 윤석열은 어깃장에 그치지 않는다. 최근 국무회의에서 자유민주주의를 깨려는 세력은 끊임없이 거짓말을 반복해 선동함으로써 대중을 속아 넘어가게 하거나 그것이 통하지 않으면 폭력을 동원해 겁을 주려 한다이런 세력과는 절대 타협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머슴의 언어로 너무 거칠지 않은가. 대체 지금 대한민국에서 자유민주주의를 깨려는 세력이 누구인가. 머슴이 어깃장 놓으며 주인의 사상까지 의심하는 꼴 아닌가. 이참에 냉철히 짚자. 누가 끊임없이 거짓말을 반복해 선동함으로써 대중을 속아 넘어가게하는가. 누가 겁을 주고 있는가. 그의 말처럼 그런 세력과 절대 타협해선 안 된다면 주권자인 우리는 무엇을 해야 옳은가. 하여, 머슴 윤석열에게 권한다. 지금 바로 거울을 보라. 자신의 변한 얼굴을 마주하며 조용히 자문해보라. 국민을 섬기는 머슴이 보이는가.

손석춘 칼럼니스트철학자 미디어오늘 2022.12.19.

 

 

존재 가치가 없는 정부

3월 대선 이후 9개월이 마치 49개월을 보낸 느낌이다. (나는 최배근 TV’에서 처음부터 예상했지만) 일반인들에게는 무엇을 상상했든 그 상상 이상일 것이다. 내 예상의 근거는 시대 과제에 대한 이해와 능력 등이 전혀 담겨 있지 않은 대통령의 철학이다. 이 정권은 무지와 무능, 무책임, 탐욕, 그리고 뻔뻔함 등에서 이명박근혜 정권을 뛰어넘는다. 국민소득과 전체 가구소득의 감소, 물가 폭등, 수출과 무역수지 위기, 부동산시장 경착륙 진행, 신용위기, 가계와 기업의 부실 심화 등에서 보듯이 경제는 수직 낙하 중이다.

 

이 중에서 문재인 정권에 떠넘길 수 있는 것은 가계부채 및 그와 관련된 부동산시장 거품 정도이다. 그러나 부동산시장 거품 붕괴의 관리는 윤석열 정권의 몫이다. 전임 정부에서 위기의 싹을 키웠다고 해도 그 위기가 어떻게 진행되느냐는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정권은 대외환경의 탓도 들고 있다. 그러나 대외환경 악화에 따른 위기를 관리하고, 나아가 기회로 만드는 것도 정부의 몫이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전지구적 감염병 위기 상황에서 문재인 정권은 최상의 관리 능력을 보여준 바 있고, 수출에서 급반등을 만들어내는 등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도 했다. 그런데 윤석열 정권은 지난 칼럼에서 지적했듯이 위기를 오히려 조장하고 있다.

 

이러한 정권의 속성으로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위기는 한국 경제를 폐허로 만들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지금까지 그랬듯이, 폐허가 되는 동안 정부는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대다수 서민은 자신을 스스로 지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경험은 모두가 아는 정보이기에 추가로 올 수 있는 진짜(?) 위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일정한 자산을 갖고 있다고 자신을 부르주아로 착각(?)하시는 분들에게 참고가 될 것이다.

 

달러 권력의 남용과 2023년 위기

 

위기는 기본적으로 내부 취약성의 산물이지만, 대외적 요인은 내부 취약성을 위기로 발전시키는 방아쇠 역할을 하곤 한다. 주지하듯이 국제금융환경 흐름은 달러가 결정한다. 지금 우리 앞에 다가오는 대외환경의 먹구름은 미국의 위기와 그에 대한 대응의 산물이다. 15년 전의 금융위기부터 최근의 코로나 팬데믹 위기까지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나라가 미국이었다. 미국의 심장에서 일어난 금융위기의 피해는 차치하더라도 코로나 팬데믹에서 세계 인구의 약 4%인 미국의 코로나 사망자는 전체 사망자의 약 17%를 차지할 정도로 주요 선진국 중 희생자가 가장 많았다.

 

일부 사람에게 그 피해가 크지 않게 보였다면 그것은 한마디로 달러의 덕택이었다. 금융위기 직전부터 2021년 말까지 연준이 추가로 인쇄한 달러는 약 7.9조 달러에 달한다. 연준이 발행한 달러는 금융위기 직전에 8700억 달러 정도였으나 2021년 말에는 열 배가 넘는 8.8조 달러 규모로 증가하였다. 이 절대 규모가 잘 와닿지 않을 것이다. 미국 경제규모 대비로 보면 1996년부터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하기 직전인 2008년 여름까지 연준이 발행한 달러 규모는 미국 GDP 대비 5.5%에서 5.9%로 큰 변화가 없었다. 물론 경기침체가 있었던 2002년에는 6.5%까지 상승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금융위기 이후 양적 완화가 진행되었던 2014년까지 GDP 대비 25%를 넘어서고,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2021년에는 38%를 돌파하였다. 아베노믹스를 시작하기 직전 일본은행의 엔화 발행 규모가 GDP 대비 32%가 채 되지 않았었다.

 

연준이 발행한 달러의 가장 많은 양이 미국 정부가 발행한 미국채 매입에 투입되었다. 즉 금융위기부터 코로나 팬더믹까지 위기를 수습하는 데 정부가 투입한 자금 마련을 지원하기 위해 달러를 찍어냈다는 것이다. (2차 대전부터 월남전까지 그랬듯이) 위기 상황에서 자금 마련은 부유층에 대한 증세도 있지만 손쉬운 차입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달러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한국 등 다른 나라가 그랬다면 화폐 가치와 국채 가격은 폭락을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10월 기준 시장에서 거래되는 미국채는 발행액 기준 236000억 달러가 넘는다. 그런데 시장가격 기준으로는 215000억 달러가 조금 넘는다. 발행 당시 가치보다 21000억 달러 정도 낮게 형성되고 있다. 미국채 가격이 발행가치보다 낮아진 것은 연준이 금리 인상을 시작한 올해 3월부터였다. 19854월 이래 시장가치는 발행가치를 항상 추월해왔다. 202210월에 미국채 시장가치는 발행가치의 91% 수준까지 하락했는데 이는 19817~9월에 기록한 89%~90% 수준 다음으로 많이 떨어진 것이다. 10월 영국채 중심의 국채 파동의 배경이다. (재정 압박 상황에서) 대규모 감세를 발표하며 리즈 트러스를 최단기 영국 총리로 만든 국채 가격 폭락(=수익률 폭등) 사태가 그것이다. 국채 매도 급증 국채 가격 폭락 국채 담보가치 하락과 증거금 보충 국채 매도 국채 유동성 하락의 악순환 고리가 형성하자 (긴축 상황에도 불구하고) 영국 중앙은행이 국채 매입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당시 미국채 시장도 긴장이 고조되었다. 국채 투자자들이 미국 재무부가 국채 매입에 나서 달라고 요청할 정도였다. 문제는 최근의 현상이 80년대 초 이전의 그것과는 다른 원인에서 비롯한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선 뒤에서 다시 언급할 것이다.

 

어쨌든 국채 가격이 하락했다는 것은 국채 수익률의 상승과 같은 말이다. 올해 미국채 10년물 수익률은 크게 세 차례 급등 국면이 있었다. 첫 번째는 34~56일 사이로 140bp(1bp=0.01%)가 상승했고, 같은 기간에 나스닥 지수는 8.8%가 하락했다. 두 번째로 527~614일 사이 74bp(56~ 614일 사이 33bp) 상승이 있었고, 이 기간에 나스닥은 10.7% 하락했다. 세 번째로는 81~1024일 사이로 164bp(614일 고점 대비로는 76bp)가 올랐고, 나스닥은 11.5%가 하락했다. 같은 기간 한국채 10년물 수익률과 주가 변동폭도 유사한 흐름을 보였다. 세 국면에 한국채 10년물 수익률은 각각 79bp 상승, 49bp 상승, 156bp 상승이 있었고, 코스닥은 5.6%, 19.4%, 18.9% 하락을 기록했다. 올해는 20세기 이후 채권 수익률과 주가 수익률의 동시 하락을 겪은 3개년(1931, 1969, 2022) 중 하나였다. 특히 올해는 채권 수익률 하락이 가장 컸던 해였다.

 

미국채는 달러와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자산으로 취급되었다. 그런데 올해는 수익률 하락이 가장 큰 자산 중 하나가 된 것이다. (인플레가 꺾이면서 연준의 금리 인상 기조에도 변화가 예상되면서) 10월 하순 이후 미국채 수익률은 빠르게 하락하며 11월 이후에는 연준금리와 역전을 나타냈고, 그에 따라 위험자산 가격도 안정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향후 경기침체와 그에 따른 금리 인하로의 추세 전환을 전제로 하는) 미국채 수익률의 하락, 즉 미국채 매수 흐름이 지속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미국 역시 영국보다 재정 부실이 심각하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세수 확보 없이 지출이 과도해지며 미국채 공급과잉이 구조화되었다는 점이다. 현재 미국채는 미국 국내 은행이 40% 안팎, 연준이 26%, 그리고 일본 5.2%, 중국 4.0% 등 해외에서 31% 정도를 보유하고 있다. 자본 규모에 제약받는 은행의 국채 보유는 포화상태이고, 연준은 6월부터 양적 긴축을 진행 중이고, 미국채의 주요 매수자였던 일본은 올해 환율 방어를 위해 국채 매각 압력을 받아 왔다. 기본적으로 미국채의 핵심 보유자들이 국채 매수를 늘리기 어려운 구조이다. 올해 하반기부터 미국채의 유동성 부족이 국제금융시장에 화두로 부상한 배경이다.

 

문제는 국채 수익률이 급등, 즉 미국채 가격이 급락할 경우 미국채의 담보가치 하락과 증거금 충당에 필요한 미국채의 추가 매도, 그리고 유동성 부족에 따른 미국채 가격의 폭락 및 위험자산 가치의 붕괴라는 대혼란을 맞이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2008~2023년까지 캐나다 중앙은행과 영국 중앙은행의 총재를 역임했던 마크 카니(Mark Carney)가 지난 119일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인플레로 미국채 10년물 수익률이 높게 지속될 경우 (언제일지 예측하기 어렵지만) 갑작스러운 유동성과 담보가치 부족 상황으로 점프하면서 매우 빠르게 꼬리 리스크(a very fast tail risk)’가 전개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한 배경이다. 종 모양을 갖는 확률밀도함수 곡선의 양쪽 끝(꼬리)의 확률값은 거의 0에 가깝고, 이를 비유해 일어날 확률이 매우 낮지만 발생할 경우 대규모 자산가치 손실로 이어지는 위험을 꼬리 리스크로 지칭하고 있다. 최고의 안전자산으로 취급해 온 미국채의 유동성 부족 문제는 기본적으로 달러의 힘을 믿고 국채를 과도하게 발행한 미국 정부의 오판에서 비롯된 것이다.

 

거꾸로 가는 윤석열 정부

지난 글에서 말했듯이 윤석열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과 탐욕으로 자금시장의 신용위기는 계속 진행 중이다. 10월 하순 이후 대외적인 금융환경의 완화에도 불구하고 자금시장은 시중은행 및 한국은행의 지원으로 연명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악화일로의 부동산시장, 고금리와 경기침체에 따른 기업의 자금난이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한 은행의 자금조달 압박은 증가할 수밖에 없고, 한국은행 역시 물가안정에 방해가 되기에 시중은행 및 금융회사에 대한 자금 지원을 지속하기도 어렵다.

 

이에 금융위원회는 127일 은행 등 금융회사들의 유동성 공급 능력 확대를 위해 (거래 규모를 파악하기 어려운) 장외파생상품 매매 과정에서 담보로 받은 국채를 담보로 활용하여 자금을 조달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1217일 기준 올해 국채 거래 규모는 1947조 원으로 민간채(=은행채+금융채+회사채+ABS) 거래 규모 1561조 원보다 385조 원이나 많다. 따라서 (앞에서 설명한 대로) 국채 가격이 하락할 경우 담보 증거금 보충과 국채 가격 추가 하락 등의 악순환 고리가 만들어질 뿐 아니라 담보 고리를 확장함으로써 연쇄적인 부정적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영국 국채 파동의 시발점이었던 리즈 트러스 정부의 감세 계획이 발표된 921일 이후 국제금융 환경이 악화하며 미국채 10년물 수익률은 73bp가 급등했지만, 한국채 10년물 수익률은 더 커다란 85bp나 올랐다. 금융시장 상황이 나빠질 때 한국채 타격이 더 심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금융당국이 이러한 문제를 모르지는 않을 텐데 국채의 재담보 활성화로 자금조달 여건을 해결하려는 자세는 지금까지 보여준 윤석열 정부의 또 다른 땜질식 대책이다. 문제는 이러한 방식이 더 큰 위기를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가 위기를 관리하기보다 위기를 조장하는 상황에서 국민 개개인은 자신의 살 길을 스스로 찾을 수밖에 없게 된다. 위기 상황에서 도움이 되기는커녕 국민을 사지로 내모는 정부는 존재 가치가 없다.

최배근 건국대 교수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2022.12.19.

 

 

좌파 바겐세일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좌파 척결 의지를 선명하게 내걸었다. 문재인 정부를 “80년대 좌파 사회혁명 이념으로 무장된 운동권들의 정권이라고 규정하고 공산당 좌파 혁명이론에 빠져 있는 이 소수에게 대한민국의 정치와 미래를 맡겨서 되겠냐고 호통쳤다. 지금도 이 기조에는 변함이 없다. 최근 화물연대 파업 후속 조치에 관해 언급하면서 자유민주주의를 깨려는 세력과는 절대 타협해선 안 된다고 재차 강조했다. 파업하는 노동자들이나 공영방송 개혁을 주장하는 언론인들도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반국가 혁명세력으로 규정한다. 대화와 타협의 상대가 아니라 배제와 타도의 대상이다.

 

너무 나갔다. 하나씩 짚어보자. 첫째, 한국의 좌파는 공산주의자와 동의어가 아니다. 사상의 다양성을 보장하는 민주주의 헌법 아래에서 어떤 사상을 가진다는 것만으로 배제와 척결의 대상이 되는 게 타당한지는 논외로 치자. 2022년 한국의 진보세력 가운데 공산주의를 내면화하고 옹호하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시민운동에 몸담고 있는 나로서는 지금껏 그런 이를 본 적이 없다.

 

둘째, 모든 좌파가 친민주당은 아니다. 진짜 좌파라면 민주당에 대해 우호적일 수만은 없다. “층수, 용적률, 안전진단을 대폭 완화해 인허가가 신속하게 나게 하고 사업 기간도 대폭 줄이겠다고 재개발 규제 완화 정책을 당론으로 내세우는 게 좌파정당인가? 부자 감세에 대항해 서민 감세를 하겠다고 하지만 결과적으로 효과도 미미한 저소득자 세금 감면을 끼워 넣는 대신 대규모 감세안을 수용하는 게 좌파정당인가? 주식 투자로 연 5천만원 이상 번 이들에게 소득세를 부과하자는 금융투자소득세 시행을 2년 유예하자는, 정부 여당과 똑같은 주장을 하는 게 좌파정당인가? ‘증세를 통한 복지재원 확보는 프랑스혁명 이론가인 토머스 페인 이후 좌파의 핵심 키워드다. 민주당은 왼쪽이라기엔 너무 위쪽에 있다.

 

셋째, 좌파는 척결 대상이 아니다. 좌파와 우파는 프랑스혁명 이후 정치적 진보와 보수를 상징하는 용어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창문의 왼쪽만 없애는 게 가능한가? 좌우가 없는 창문은 존재하지 않는다. 열린 문 없이 모두가 동색인 사회, 우린 그것을 폐쇄된 전체주의라고 부른다.

 

상식적으로 따져보면 너무나 간단한 이야기인데, 개나 소나 좌파라고 몰아붙이니, 진품은 없고 짝퉁만 즐비한 좌파 바겐세일현장을 보는 것 같다. 박근혜 정부 때 한창 유행하던 종북좌파 마녀사냥이 별 재미를 못 보고 끝난 줄 알았는데, 여전히 좌파 타령이 권력자들에게 애용되는 건 다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이다.

 

우선 대통령과 국민의힘 쪽 손익계산서를 보자. 좌파 바겐세일을 통해 이들이 얻는 이득은 짭짤하다. 모든 좌파는 불살라 없애야 하는 악령, 존중하거나 보호할 가치가 없는 반국가세력이기 때문에, 좌파 척결 의지를 불태우면 자동으로 정의의 수호자가 된다. ‘대한민국의 자유와 정의를 지킨다는 신성불가침의 망토를 걸침으로써, 갈등세력과 대화를 거부하고 독주해도, 불손한 세력을 깡그리 무시해도 거리낌이 없다. 불통의 독불장군을 독야청청한 선지자로 만드는 둔갑술의 여의봉이다.

 

더불어민주당도 좌파 바겐세일의 수혜자라고 할 수 있다. 좌파라고 낙인찍히는 걸 억울해하긴 해도 스스로 좌파라고 선언하진 않는다. 그래도 자동으로 진보의 사령탑 행세를 할 수 있다. 윤석열 정부를 비판하려면 민주당 우산 아래로 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치권엔 두개의 옵션밖에 없기 때문에 민주당 룰을 따르라고 한다. 당대표의 용퇴를 주장하거나 기득권 586 교체를 주장하는 건 역린을 건드리는 배신으로 간주한다.

 

절대권력을 위해 당헌을 뜯어고치는 양당엔 진정한 보수나 진보가 설 자리가 없다. 포장지만 그럴듯한 양당의 좌우파 코스프레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건 국민이다. 재건축할 강남 아파트도 없고 주식 투자로 5천만원 이상 벌지 못하고 소득세·종부세 감면으로 혜택을 볼 아무것도 없는 보통 사람들.

 

초원을 달리는 야생마의 시야는 350도라고 한다. 그래서 레인 안에서만 달리라고 경주마에게 눈가리개를 씌운다. 좌우의 간격은 종잇장 차이다. 정작 중요한 건 레인 밖에 있다. 평균 자산 315천만원, 50대 남성이 주를 이루는 국회의원들 눈엔 보이지 않는 레인 밖 사각지대, 기울어진 운동장이든 비뚤어진 운동장이든 아예 운동장 안에 진입조차 못 한 투명인간들의 삶은 거기에 있다. 그러니 제발 국민의힘은 보수를, 민주당은 진보를 함부로 참칭하지 마라. 눈가리개를 거부하는 국민의 열린 시야를 두려워할 줄 알아라.

이진순 | 재단법인 와글 이사장 한겨레 2022.12.20.

 

 

다수를 실패자로 만드는 교육, 이게 최선입니까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을 하다 보면 대학 이름이 큼지막하게 새겨진 점퍼(일명 과잠’)를 입은 학생들이 종종 눈에 들어온다. 중학생들도 줄줄 암송한다는 대학 서열 피라미드에서 중간 이상은 되는 대학들이 많았던 것 같다. 아이 둘 키우는 아빠의 오지랖일까? 그 점퍼를 볼 때면 간혹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혹시 지하철 같은 칸에 이름 없는대학 재학생은 없을까? ‘자랑스럽게내보인 자기 학교보다 대학 피라미드상 서열이 높은 학교 학생이 타면 움츠러들지 않을까?

 

과잠을 단지 패션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서열주의가 투영된 구별 짓기문화의 하나로 해석하는 게 더 현실에 부합할 듯하다. 끊임없이 줄을 세우고 구별을 짓는 사회에선 우월감보다는 좌절감을 느끼는 이들이 훨씬 많을 수밖에 없다. 아래로 갈수록 더 넓어지는 게 피라미드의 속성이다.

 

물론 학생들의 인정 욕구가 전혀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치열한 경쟁을 뚫은 이들에게만 그 점퍼를 입을 자격이 주어지니, ‘, 이 대학 다녀요라고 뽐내고 싶은 마음이 왜 없겠는가. 간판을 얻으려고 얼마나 고생했을까 생각하면 안쓰러운 마음마저 든다. 어쩌면 그들은 어릴 때부터 경쟁을 내면화하도록 강요해온 사회시스템의 피해자일지도 모른다. 요즘 젊은 세대의 앙상한 능력주의와 공정성에 대한 강박을 나무라는 목소리가 많지만, 그것 또한 경쟁 중독 사회의 슬픈 자화상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대학 서열을 매기는 데 있어서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은 압도적인 권위를 자랑한다. 대입 시즌이 끝나면 그해 입시 결과(일명 입결’)를 놓고 입시 사이트 등에서 우리가 높네’, ‘어느 대학이 어디를 앞섰네하며 한바탕 학벌 배틀이 벌어지곤 하는데, ‘입결의 핵심 지표가 수능 점수다. ‘대학 서열 놀이를 일삼는 이들을 일컫는 학벌 훌리건이란 말이 나온 지도 꽤 됐다.

수능이 이처럼 줄 세우기 신공을 발휘할 수 있는 건 상대평가이기 때문이다. 전국 학생들을 1등부터 꼴등까지 줄을 세울 수 있으니 이만한 잣대가 없다. 상대평가 체제에선 모든 구성원이 똑같이 노력을 하더라도 촘촘하게 등수가 매겨진다. 모두가 끝 모를 경쟁에 내몰리지만, 결국엔 극히 일부를 뺀 대다수를 패자로 만드는 고약한 시스템이다.

 

올해 수능을 꼭 일주일 앞둔 지난달 10대입 상대평가는 위헌이라는 헌법소원이 제기됐다. 수능과 고교 내신의 상대평가가 살인적인 경쟁을 유발해 헌법이 보장한 행복추구권과 건강권, 교육권 등을 침해한다는 취지다. 교육운동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주도한 이 헌법소원에는 변호사 96명이 위헌 선언문을 통해 지지 의사를 밝혔다. “누군가를 짓밟고 거둔 승리에 대한 강요, 1%를 변별하기 위한 평가는 그 목적이 정당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기파괴적이고 비교육적이며 반인간적이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상대평가 체제에서 승자가 된 변호사들이 100명 가까이 지지 선언을 했다는 것이 놀랍다.

 

보수 진영에서는 여전히 더 많은 경쟁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한국은 경쟁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지나쳐서 숱한 병폐를 낳는 나라다. 김희삼 광주과학기술원 교수가 2017년 한국, 중국, 일본, 미국 등 4개국 대학생들에게 자기 나라의 고등학교가 어떤 이미지에 가장 가깝다고 생각하는지 조사한 결과를 보면, 한국 대학생의 81%사활을 건 전장이라고 답했다. 중국(42%), 미국(40%), 일본(13.8%)과 견줘 압도적으로 높다. 이런 학교에서 약자에 대한 배려나 공감, 연대와 같은 공동체적 심성을 기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조너선 거슈니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는 <주간동아>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입시 경쟁을 냉전 시대의 끝없는 군비 경쟁에 빗대기도 했다.

 

우리는 상대평가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만, 선진국에 속한 나라들 가운데 입시에서 상대평가를 하는 나라는 찾아보기 어렵다. 일정한 자격을 갖추면 대학에 입학할 기회를 주는 것이 글로벌 스탠다드에 더 가깝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나라들의 국가 경쟁력이 한국보다 떨어진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상대평가는 오로지 선발 기제로서만 유용할 뿐, ‘배움을 통한 성장이라는 교육의 본령과는 거리가 멀다. 촘촘한 입시 변별을 위해 불가피하다는 논리가 강고하지만,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격일 뿐이다. 물론 고교 내신을 절대평가로 바꾸려면 반드시 제거해야 할 걸림돌이 있다. ‘학교 다양화라는 미명 아래 층층이 서열화한 고교 체제다. 특목고와 자사고 등을 유지한 채 절대평가를 도입할 경우, 그 학교들의 입시 특권만 강화시킬 게 불보듯 뻔하다. 고교 진학 단계에서부터 입시 경쟁이 더 격화하는 부작용이 따를 수밖에 없다.

 

경쟁을 숙명으로 여기는 한국 사회에서, 보수적인 헌재가 상대평가를 위헌이라고 선언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러나 소송 과정에서 너 죽고 나 살자식 경쟁을 부추기는 상대평가의 폐해를 공론화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결코 작지 않다. 너무 익숙해진 탓에 문제점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는 상황에선 더 나은 대안을 고민할 필요성도 못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교육심리학자 알피 콘은 <경쟁에 반대한다>에서 경쟁의 본질은 한 사람의 성공을 위해선 다른 이들은 실패해야 하는 상호배타적인목표 달성 방식에 있다고 짚었다. 올해 입시가 끝나면 또 얼마나 많은 실패자들이 좌절을 겪게 될지 알 수 없다. 입학도 하기 전에 반수를 결심하는 이들도 많으리라. 옆에서 지켜보는 부모에게도 여간 고역이 아닐 것이다. 이렇게 모두를 불행하게 하는 시스템을 금과옥조처럼 떠받들어야 할 이유가 도대체 뭔가.

이종규 | 논설위원 한겨레 2022.12.20.

 

공무원의 영혼 보호법이 필요한가

간단한 불복종, 예컨대 단순히 관습에 무릎꿇기를 거부하는 것도 하나의 의무이다.” 영국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의 말이다. 그는 반대자와 이단자를 옹호하며, “희생물에 일제히 달려드는 떼거리에 대한 증오를 표명했다. 그러나 세상은 밀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진 않았다. 20세기의 세상은 오히려 정반대의 방향으로 치닫기도 했다. 절대적 복종을 요구하면서 획일화를 찬양한 파시즘 체제의 등장은 인간이 군집행동을 하는 동물과 크게 다를 게 없으며, 훨씬 더 잔인한 동물이기도 하다는 걸 웅변해 주었다.

 

이탈리아의 독재자 무솔리니는 복종의 이유를 설명할 때 너는 복종해야 하기 때문에 복종해야 한다고 말했으며, 독재 치하에서 살던 이탈리아인들은 무솔리니는 항상 옳다는 말을 들으며 살아야 했다. 그 결과는 알고 있는 바와 같다.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벌어진 파시즘 광기의 비극에 대해 영국의 과학자이자 작가인 C P 스노는 인간의 길고 어두운 역사를 돌이켜 보면, 반란이라는 이름보다 복종이라는 이름으로 저질러진 끔찍한 죄악이 훨씬 더 많음을 알 수 있다고 했다.

 

프랑스 작가 조르주 베르나노스도 비슷한 말을 했다. 그는 만약 인류의 파괴 기술이 점점 더 발달해서 언젠가 인류가 이 지구상에서 사라진다면, 그 멸종의 원인은 인간의 잔인성 때문이 아니다. 그 잔혹함이 일으킨 분노, 그리고 그 분노가 가져올 보복 때문은 더욱 아니다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것은 일반 대중의 온순함과 책임감의 결여, 그리고 모든 부당한 명령에 대한 비굴한 순종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보아온 끔찍한 일들, 또 앞으로 일어날 더욱 전율할 만한 사건의 원인은, 이 세상 여러 곳에서 반항적이고 길들여지지 않은 사람의 수가 늘어나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온순하고 순종적인 사람의 수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데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엉뚱하게도 영국 작가 필립 쇼트의 마오쩌둥 전기를 읽다가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누구나 다 알 법한 뻔한 이야기이지만, 정치적 거물의 경험담이라는 점에서 새롭게 다가오는 힘이 있다. “내가 공개적으로 반항하면 아버지가 누그러졌지만, 내가 약하고 복종하는 태도를 보이면 아버지는 나를 더 때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마오쩌둥은 13살 때 이런 일이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어느 날 아버지가 손님을 여러 명 집으로 초대했다. 그날 나는 손님들이 보는 앞에서 아버지와 말다툼을 벌였다. 아버지는 사람들 앞에서 내가 게으르고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욕을 했다. 나는 엄청나게 화가 났다. 나는 아버지에게 욕을 하고는 집 밖으로 나와버렸다.”

 

서해 공무원 피살은 복종의 독배

이후 어떤 일이 벌어졌던가? “아버지는 나를 따라오면서 욕을 퍼붓고 어서 집에 들어오라고 명령했다. 나는 연못가에 이르러서 더 가까이 오면 연못에 뛰어들겠다고 아버지를 위협했다. 아버지는 잘못을 사죄하고 복종의 의미로 땅에 머리를 대고 절하라고 말했다. 나는 아버지가 날 때리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한쪽 무릎만 꿇고 절을 하겠다고 대답했다.”

 

웃음을 자아내게 만드는 맹랑한 도발이었지만, 아버지의 폭력을 억제하는 큰 효과를 보았다고 하니 마오쩌둥의 슬기로움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그렇게 아버지의 강압적인 복종 요구에 당당히 저항했던 소년이 성인이 되어 권력을 쥐자 중국 인민의 복종을 위해 문화대혁명이라는 희대의 폭력극을 벌인 걸 어찌 이해해야 할까? 자신처럼 공개적으로 반항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그랬던 걸까? 참으로 안타까운 비극이라 아니 할 수 없겠다.

 

그럼에도 폭력을 줄이는 데엔 약하고 복종하는 태도보다는 공개적 저항이 훨씬 낫다는 그의 말은 옳거니와 사회 전반에 걸쳐 적용할 수 있는 원칙으로도 손색이 없다. 특히 공무원과 정권의 관계에서 필요한 원칙일 게다. 불법을 저지르는 정권이 공무원에게 부당한 명령을 내릴 때에 공무원은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가? 오늘날 한국에서 그렇다고 답할 사람은 없을 게다. 하지만 그건 이론일 뿐 현실은 결코 녹록지 않다.

 

20178월 대통령 문재인은 취임 후 처음으로 부처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공직자는 정권에 충성하는 사람이 아니다라며 공직자는 국민과 함께 깨어 있는 존재가 돼야지, 그저 정권의 뜻에 맞추는 영혼 없는 공무원이 돼선 안 될 것이다라고 했다. 아름다운 말이었지만, 이는 영혼 없는 말이었다는 게 곧 드러나고 야 만다.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 사태 덕분에 집권한 문재인 정권은 처음엔 공무원의 영혼 문제와 관련해 야심만만했다. “공무원은 직무를 수행할 때 소속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하여야 한다고 돼 있는 국가공무원법 57조를 직무상 명령이 위법한 경우 복종을 거부해야 한다로 개정하려 했다.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의결까지 받은 인사혁신처의 개정안은 상관의 명령이 명백히 위법한 경우 이의를 제기하거나 따르지 않을 수 있으며 이로 인하여 어떠한 인사상 불이익도 받지 않는다는 문구를 57조에 추가했다.

 

그러나 문 정권은 이상에만 치우쳐 현실 감각이 박약한 정권이었으며, 이 개정안 역시 그런 한계로 인해 곧 사라지고 말았다. 명령이 위법한지를 누가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위법의 경계선상에 놓여 전문가들조차 의견의 일치를 보기 어려운 명령이라면 약자의 위치에 있는 공무원이 무슨 수로 이의를 제기하거나 따르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명령에 따르지 않음으로써 받게 될 인사상 불이익이 시차를 두고 우회적으로 교묘하게 이루어진다면 피해자는 무슨 수로 피해 회복을 꾀할 수 있단 말인가?

 

정치인부터 영혼 회복하는 게 순리

개정안은 아마도 이런 의문들에 답하는 게 쉽지 않아서 사라졌겠지만, 동시에 정권의 입장에서도 공무원의 무조건 복종이 가져다 줄 수 있는 이익을 포기할 수 없다는 정략적 사고의 유혹을 뿌리치기 어려웠을 것이다. 물론 현시점에서 돌이켜 보자면 그 유혹에 굴복한 것이 독약이 되었다는 게 점점 분명해지고 있지만 말이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도 바로 그런 경우가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이 사건이 일어났을 때 당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었던 김종인은 이번 만행은 북한군이 비무장 상태의 우리 국민을 총살하고 시신을 끔찍하게 화형시킨 패륜적 무력도발이라며 행여나 문재인 정부가 느닷없이 북한의 전통문과 진정성 없는 면피성 사과로 이번 사태를 덮으려 한다면 정권의 무덤을 스스로 파는 자해행위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23개월 후에 벌어질 일을 내다본 김종인의 선견지명이 놀랍다. 물론 앞으로 더 두고봐야 하겠지만,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서훈의 구속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충격적이다. 관련 공무원들이 부당하거나 미심쩍은 명령을 거부했더라면 그게 바로 문 정권을 살리는 길이었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런 거부는 극소수 영웅에게나 가능한 것이지 보통의 공무원에겐 기대하기 어렵다는 걸 말이다.

 

그게 우리의 현실이요, 문화임을 인정하는 게 좋겠다. 이걸 인정하고 들어가야 올바른 해법을 모색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사실 복종보다 무서운 건 순응이다. 형식적인 권위의 명령에 따르는 것이 복종이라면, 순응은 집단 내의 분위기만으로도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순응은 반복되면 체질로 굳어져 무조건적이고 자발적으로 작동한다. 순응을 할수록 요구하는 순응의 강도는 높아지게 돼 있다. 앞서 언급한 마오쩌둥의 도발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거야 부자(父子) 관계에서나 가능한 게 아니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맞다. 조직에서 그런 위험 감수를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불복종의 위험을 분산시키는 연대의 방안을 설계하고 이걸 공론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윤석열 정권이 정정당당하게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을 대하고 있다면, 우선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공무원의 영혼에 대한 깊은 관심이다. 법적 보장도 좋겠지만 동시에 문화를 바꾸는 시도를 해야 한다. 정권 내에서 복종과 순응을 요구하면 안 된다. 그건 자기모순이다. 여당이 전당대회를 앞둔 상황에서 경선 룰을 바꾸고 그걸 곧장 적용하겠다는 건 더더욱 안 된다. 역지사지(易地思之)를 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정치인들부터 영혼을 회복해야 공무원들에게 영혼을 돌려주는 일도 가능할 것이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경향 2022.12.21.

 

 

194212월의 기억

이즈음이면 생각나는 일이 있다. 1942년의 기억이다. 당시는 일제가 조선민족말살정책을 완성하기 위하여 혈안이 되었던 때다. 그리고 그 마지막 시도가 우리 정체성의 근본인 말··얼을 없애는 작업이었다.

 

그 해 101, 일제는 조선어학회 회관을 급습하여 이극로와 최현배를 비롯한 11명의 한글학자들을 체포하였다. 이른바 조선어학회사건의 시작이다. 이후 총 29명이 구속되었다. 우리 정체성의 한 축인 언어가 뭉개지던 경험이다.

 

연이어 일제는 한민족의 정신마저 뽑아내려는 만행을 자행한다. 대종교의 임오교변(壬午敎變)이 그것이다. 임오교변이란 1942(임오년)1226(음력 1119), 만주 영안현 동경성에서 자행된 희대의 종교탄압이다. 일제가 우리 말··얼의 중심이었던 대종교를 말살하기 위하여, 교주 윤세복(尹世復)을 비롯한 대종교 핵심 간부 20여명을 국내외에서 동시에 검거하여 박해를 가한 사건이다.

 

한 민족의 정체성의 핵심은 언어와 정신이다. 역으로 이 두 요소가 붕괴된다는 것은 민족이 사라진다는 것과 동일한 의미다. 이런 점에서 일제강점기 조선어학회의 한글 보급 운동과 단군을 중심으로 한 대종교의 항일투쟁은 말과 혼을 지키려는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조선어학회사건과 임오교변은 별개의 사건이 아니다. 만주에서 대종교를 이끌던 윤세복(尹世復)과 국내 조선어학회의 핵심이었던 이극로(李克魯) 간에 주고받은 단군성가널리 펴는 말이 두 사건의 빌미가 된 것만 보아도 확인된다. 국내 조선어학회사건과 대종교의 임오교변을 같은 대종교사건으로 이해하려는 것도 이러한 배경에 근거를 둔다.

 

일제는 대종교를 종교로만 보지 않았다. 박멸해야 할 한민족의 정체성이자 항일투쟁집단으로 규정하였다. 일제가 1910년 병탄 직후부터 대종교를 없애버리려 한 이유다. 1915년에는 종교통제령을 발포하여 국내의 대종교를 아예 불법화시켰다. 대종교가 만주 망명을 택한 결정적 배경이 된다.

 

만주에서도 항일투쟁의 본산 역할을 하며 19209월에 청산리독립전쟁의 주역으로 나선 집단이 대종교다. 이에 일제의 대대적 학살이 자행되었다. 이른바 경신년대토벌(庚申年大討伐)이다. 대종교 내부의 기록에서는 기만명(幾萬名)의 교도가 희생되었고 수십 곳의 교당이 파괴되었다 한다.

 

일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만주에서의 대종교 말살을 도모해 갔다. 1925년 만주군벌(滿洲軍閥)을 겁박하여 맺은 미쓰야협정(三矢協定)이 그 단초다. 이 협정을 근거로 1926년 대종교만주포교금지령이 발포되었다. 부득이 대종교는 북만주 밀산현(密山縣)의 깊은 곳으로 은둔하게 된다. 그곳에서 와신상담하며 보낸 시간이 8년이다.

 

그 오랜 침묵을 깨고자 한 인물이 교주 윤세복(尹世復)이다. 그는 일제와 건곤일척의 정면 승부를 택했다. 1934년 대종교총본사를 다시 동경성으로 옮기고 합법적인 대종교 활동을 전개하려 한 것이다. 일제는 이를 기회로 대종교에 대한 감시와 조사를 집요하게 시도해갔다. 심지어는 교인을 가장한 밀정까지 교단 내에 잠입시켰다. 그리고 교계의 동향과 교내 간부들의 언행 하나하나를 정탐하였다.

 

이러한 상황의 끝에서 벌어진 사건이 임오교변이다. 대종교를 한민족 정체성의 근원이자 항일단체로 규정한 일제는, 19421226일을 기해 교주 윤세복을 비롯한 대종교지도자 25명을 국내외에서 일시에 검거하였다.

 

당시 투옥된 간부 중 백산(白山) 안희제(安熙濟)를 비롯한 10명이 고문으로 죽임을 당했다. 대종교에서는 이들을 임오십현(壬午十賢)이라 칭한다. 그리고 교주 윤세복의 무기형을 비롯하여 일부 지도자들은 15년에서 7년까지의 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일제의 항복과 함께 출옥하였다.

 

임오교변은 대종교의 남아있던 미력(微力)마저 무너뜨린 사건이다. 이 사건 이후 대종교의 인적 자원은 물론 국내외의 모든 거점이 붕괴되었다. 신간교적(新刊敎籍) 2만여 권, 구존서적(舊存書籍) 3천여 권, 천진(天眞, 단군영정)과 인신(印信), 그리고 각종 도서 및 주요 서물(書物) 6백여 종 등을 모두 빼앗긴 사태도 이 때 겪은 변고였다.

 

대종교의 존립 구조를 무너뜨린 일제는 과거의 흔적마저도 철저히 지워버렸다. 대종교가 해방을 맞아서도 침체일로로 치닫게 된 근본적 이유다. 더욱이 남북분단은 대종교지도자들을 갈라놓았고, 한국전쟁은 그마저도 모두 도태시켰다.

 

올해는 임오교변이 일어난 지 꼭 80년이 되는 해다. 그러나 기억하는 이 얼마나 될까. 현상적 풍요 속에 허우적거리며 사는 모습이 우리의 일상사 아닌가. 임오교변은 이목(耳目)으로도 듣보지 못한 생소한 사건의 조각일 뿐, 그것에 대한 의미 있는 인식은 대다수 사람들에게 망각된 지 오래다.

 

뒤죽박죽된 세상에서 기억과 망각을 구분하며 사는 것은 쉽지 않다. 쓸 데 없는 기억은 풍선에 바람 넣듯 채워 살면서도, 망각해선 안 될 일은 그저 핫바지 방귀 새 듯 날려버리는 것이 요즘의 세태다.

 

그러나 잊어야 할 일과 잊지 말아야 할 일의 형량(衡量), 사고하는 인간의 선천적 책무다. 우리 항일투쟁의 근거지가 붕괴되던 날, 우리 정체성의 뿌리가 뽑혀지던 날, 그 날 그 사건이 임오교변이다. 80년 전인 19421226일의 기억이다.

김동환 국학연구소 연구위원 : 통일뉴스 2022.12.21.

 

자식 잃은 부모와 목숨 걸고 일하는 노동자를 화나게 하지 마라

지난 16일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을 기리는 49재가 열렸다. 희생자들은 온전히 위로받고 극락으로 갔을까? 누가 그럴 수 있겠는가. 나라면 그럴 수 있겠는가.

 

희생자들은 지금 구천을 떠돌고 있다. 억울함과 한이 손톱만큼도 풀리지 않은 탓이다. 남겨진 유가족들은 또 어떤가. 삶보다 죽음이 더 가까운 그들은, 날벼락 같은 혈육의 죽음 앞에서 살아도 산 것이 아닌 삶을 겨우겨우 이어가고 있을 뿐이다. 그들은 피 토하는 심정으로 진상을 밝혀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20221029일 그 밤, 서울 한복판에서 전쟁이나 천재지변이 일어난 것도 아니었다. 어느 해나 있었던 축제가 열렸을 뿐이다. 그 거리에서 158명이 일시에 목숨을 잃었다.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 기이한 소식은, 다시 들어도 믿을 수가 없다.

 

그 억울한 죽음들 앞에서 어떤 위로가 소용이 있겠는가? 나는 1974222, 통영 앞바다에서 해군훈련병 159명이 목숨을 잃은 해군예인선(YTL) 침몰 사건 당시 동생을 잃었다.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가슴이 면도칼로 베는 것같이 저릿하다. 그래서 세월호를 떠올리면 가슴이 애리고, 이태원을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진다. 허니 정부는 더는 자식 잃은 부모를 화나게 하지 마라! 온 세상의 분노와 마주하게 될 것이니.

 

그날 그 자리에 국민의 안전을 지켜야 할 국가는 있었던가? 희생자 158명은 지켜줄 나라 없는 백성이 되고 말았다. 국가의 무관심과 무책임 속에서 죽어갔다. 잘못을 따진 뒤에 책임을 묻자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 앞에서 정부의 무능, 무책임은 범죄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한 가정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차라리 한 사람을 버려야 하고, 한 마을을 지키기 위해서는 차라리 한 가정을 버려야 하고, 한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는 차라리 한 마을을 버려야 한다. 그러나 한 사람의 목숨을 보호하고 지키기 위해서는 차라리 나라의 재물이라도 버려야 한다.”

 

지난여름, 폭우로 서울이 물에 잠기고 수많은 국민이 목숨을 잃었다. 장대비로 저지대에 물이 차오르고 있는데도 아무 일 없는 양 퇴근했던 자가 대통령이란다. 그때 알아보았어야 했다. , 이 사람은 인면일 뿐 수심을 가졌구나! 이 자를 믿고 살아서는 목숨을 송두리째 잃을 수 있구나!

 

올해에만 철도노동자 4명이 숨졌다. 115, 화물을 운송하는 오봉역에서 청년 노동자가 선로 위에서 목숨을 잃었다. 중대재해인 만큼 철저히 원인을 찾아 재발방지책을 마련하는 데 4개월 이상 걸리지만, 정부가 나서서 아무런 재발방지책도 없이 19일 만에 작업을 재개시켰다.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보다 시멘트 수급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화물연대 파업도 그렇다. 이 나라 국민치고 덩치 큰 화물차가 쌩쌩 달릴 때 위험하지 않다고 생각한 이는 없을 것이다. 14시간씩 운전하며 졸음운전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안전운임제? 함께 먹고 살자고, 안전하게 살자고 목소리를 냈을 뿐이다. 정부가 한 약속을 지켜달라고 했을 뿐이다. 그게 귀족이라고 떠드는 정부와 언론들, 부러워하는 당신네들이나 졸음을 참으며 하루 14시간 죽을 둥 살 둥 일해 보라.

 

이태원 참사? 안전운임제? 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관심이 없다. 사람답게 사는 삶, 저녁이 있는 삶? 그런 것에도 관심이 없다. 이제 우리는 믿을 것도, 기대할 것도 없다. 우리가 두 팔 걷어붙이고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선진국이니 문화강국이니 했던 나라를 반년 만에 지옥 같은 나라로 만든 자를 반품 처리 하는 것뿐이다.

명진 | 평화의길 이사장 한겨레 2022.12.21.

 

 

그 여자는 화가 난다

초록색 가방을 멘 여자가 자신이 양부에게 학대와 성폭행을 당했던 공간을 소개한다. 여자의 말투는 무뚝뚝하고 행동엔 거침이 없다. 여자는 학대와 성폭행을 방관했던 양모를 만나 자신의 입양 서류를 요구한다. 여자는 분노에 휘둘리지 않고 차분하게 말하며, 무엇도 두렵지 않은 사람처럼 꼿꼿하게 걷는다. 여자가 마지막으로 간 곳은 자신의 입양승낙서에 법정대리인으로서 서명한 이들의 집 앞이다. “왜 나를 입양 보냈나요? 그것도 소아성애자에게? 우리 부모님은 나를 버린 적이 없는데!” 여자가 한 질문의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의 생존을 위협한 이들 중 누구도 그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다. 삶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수천 수만 번 담금질한 여자는 끝내 평정심을 잃고 자신을 위해 절규한다.

 

KBS <시사직격> ‘3000달러의 삶 해외입양 잔혹사13세의 나이에 프랑스로 입양된 김유리씨의 뒤를 따라 걸으며 소위 우편배송아기라 불렸던 한국 대리입양 제도의 피해 사례들과 만난다. 1950년대 전쟁고아 문제를 해결하려시작된 해외입양은 1980년대가 되어 정부가 용인하는 민간외교사업으로 성격이 전환되었다. 유리씨가 프랑스로 간 1984년은 입양 아동의 해외 수출이 정점을 찍은 해로 당시 아동 한 명의 입양 수수료는 3000달러, 직장인의 연봉과 맞먹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2012년 입양특례법 개정 전까지 시행된 대리입양은 양부모가 적격성 심사를 거치지 않고도 서류만으로 간단히 입양을 가능케 하는 제도로, 아동을 상품으로 취급하던 기관들은 이를 이용해 수출에 가속도를 붙일 수 있었다. 절차를 무시하고 토큰처럼 작성된 서류들은 기관의 임시 보호 아동들까지 입양 대상자로 분류해 친부모의 동의 없이 해외로 입양을 보냈다. 자신의 입양 기록을 보다가 생부와 생모의 이름이 적혀 있을 자리에 무명이 표기된 것을 발견한 김유리씨도 바로 이 경우에 해당된다. 그는 자신의 입양과정을 학대와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된 아동 인신매매라 표현하며 제도로 희생된 아이들이 받은 생존 위협에 국가와 사회의 책임을 호소한다.

 

지난 7월 한국어로 번역 출간된 <그 여자는 화가 난다>는 덴마크로 입양된 시인 마야 리 랑그바드가 국가 간 입양 당사자로 체험한 삶의 모든 순간이 여자는 ~ 화가 난다는 분노의 형식으로 쓰여진 한 권의 시다. 한국에 들어와 국가 간 입양인 모임에서 활동했던 시인은 남자로 태어나지 않은 자신과 딸이었기 때문에 입양을 보낸 부모에게 가지는 개인적인 분노를 국가 간 입양을 주도한 기관과 이를 용인한 사회, 해외입양을 행운이라 쉽게 말하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로 확산시킨다. 시인은 미혼모에게서 태어난 아이들 중 대다수가 입양된다는 사실에 화를 내고, 그런 미혼모들에게 충분한 지원을 하지 않는 고국에 화를 내고, 성장과정에서 모국의 언어와 문화를 상실하고도 스스로에게 슬퍼할 기회를 주지 않았던 자기 자신에게 화를 내다 결국 자신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사실에 화를 낸다.

 

낮은 출생률로 인해 2075년엔 한국의 경제규모가 필리핀보다 작아진다는 뉴스를 본다. ‘경제라는 단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이 댓글에 득실거린다. ‘성평등 수준이 낮을수록 출생률이 높아진다는 말을 내뱉고, 모두를 위해 여성의 후퇴가 당연한 것인데 페미니즘이 이를 거스르고 있다는 주장도 서슴없이 한다. 이런 반응들을 보니 여자를 통제하기에 출생률은 참 좋은 구실인 것 같다. 성비 불균형이 최악을 기록한 해에 태어난 나는 유리씨의 얼굴과 마야의 시를 떠올리다 의아함이 든다. 출생률을 이렇게 만든 당사자들은 고결한 모성을 훼손한 여자들뒤에 숨어서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았는데, 세상은 여자에게 반성을 하라 하고, 사과를 받아내려 한다. 도대체 왜? 나는 영문을 몰라서 화가 난다.

복길 자유기고가·<아무튼 예능> 저자 경향 2022.12.22.

 

 

한국 엘리트들 공감능력은 왜 낮을까

똑똑한 아이들은 타인의 처지를 이해하는 공감능력도 뛰어날까? 그 답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내가 만나는 대한민국 1%의 학생들 가운데 공감능력이 결여된 학생들을 자주 본다. 어쩌면 공감능력 부족은 한국의 엘리트 집단이 가지고 있는 공통 문제일지 모른다.

 

윤석열 정부 관료들의 공감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은 이제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이태원 참사, 화물연대 파업, MBC 사태 등에 대응하는 방식에 국민들은 공감력이 떨어져도 너무 떨어진다고 말한다. 공감능력이 부족하면 당연히 소통과 협치 능력도 제한되며, 그래서 들이댈 수 있는 무기가 바로 법과 원칙이다. 이 과정에서 대화 단절과 투쟁이 뒤를 잇는다. 대화와 이해가 필요한 사람들, 특히 자신의 노동을 갈아 넣어야 겨우 기본적인 생활이 유지되는 사회적 약자층에 대해서조차 공감과 연대 대신에 법과 원칙이 작동한다.

 

공감능력이 발달하지 못한 사람을 국가의 지도자로 선출하는 것은 그 자체가 매우 위험하고도 잘못된 선택이다. 공감능력은 함께 살아가는 능력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전 대통령 버락 오바마는 이렇게 말했다. “공감한다는 것은 다른 누군가의 처지가 되어 보는 것이다. 우리와 다른 사람의 눈으로, 배고픈 아이의 눈으로, 해고된 철강노동자의 눈으로, 기숙사를 청소하는 이민노동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일이다.”

 

권력 엘리트들이 처음부터 공감능력 결핍이라는 DNA를 가지고 태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태생적 사이코패스가 아니라면 누구나 공감능력을 학습할 수 있다. 다만 양육과 성장, 교육과 경험 속에서 타자를 이해해야 할 필요성 혹은 상황에 노출되지 않도록 관리되었을 뿐이다. 청년 전기까지 이어지는 십수년의 과잉 경쟁 속에서 아이들은 학교성적을 올리는 데 공감능력이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부모들은 아이들을 사회적 관계로부터 고립시켜 공부에 집중하도록 한다. 이 과정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학생들이 입시에 성공하고 엘리트 계층의 반열에 들어선다. 결국, 한국 엘리트들의 공감능력 부족은 과잉경쟁이라는 시대상황이 만들어낸 창조물이다. 그러한 학습경험의 결핍은 그대로 공감능력의 결핍을 낳는다.

 

2021‘OECD 사회정서역량 조사결과 보고서는 사회정서와 학업성취도 사이의 흥미로운 관계를 보여준다. 우선, 개인의 정서를 통제하고 관리하는 능력들(예컨대 호기심, 자제력, 자기통제 등)은 학업성취도에 유의미한 긍정적 효과를 보이는 반면, 남들과 함께 살아가는 데 필요한 능력들(예컨대 공감능력, 협동성, 친교성 등)은 학업성취도와 거의 상관이 없거나 혹은 오히려 부정적 상관관계를 보였다. 이런 경향은 10세 아동보다 15세 아동에서 두드러졌다. 물론 확증된 결론은 아니지만, 이 조사가 말해주는 것은, 좋은 성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함께 사는 능력(공감-친교-협동)의 성장을 억제해야 한다는 것이며, 입시생을 둔 부모들은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유네스코가 강조해왔던 함께 살아가는 능력을 학습하는 일(to learn to live together)’은 모든 학교교육과 평생학습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함께 사는 능력은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가장 중요하게 학습되어야 할 역량이다. 어릴 때 그나마 가지고 있던 사회적 연대와 공감, 공존의 능력을 갈수록 퇴화시켜가는 학교체제와 방식에 대한 대대적인 수술이 필요하다.

 

공감 학습은 정서와 인지, 상황과 맥락을 넘나드는 범경계적 학습을 필요로 한다. 공감이란 단순히 타인의 감정을 동일하게 느끼는 것뿐만 아니라 그들이 처한 상황과 관점을 이해할 수 있는 지적 해석이 동반되는 과정이다. 전자를 정서적 공감능력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인지적 공감능력이라고 한다. 공감학습을 위해서는 마음과 머리가 모두 필요하다.

 

현재의 대학입시가 인지능력, 예컨대 비판력, 해석력, 분석력 등을 측정하는 데 치중해 있는 반면, 공감적 사회성이 높은 학생들을 선발할 수 있는 방법은 크게 제한되어 있다. 입시에서 공감능력을 재는 가장 좋은 방법은 면접을 하는 것이다. 공감과 소통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공감을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소통의 기술도 필요하다. 면접을 통해 주어진 상황을 어떻게 직관적으로 파악하고 공감하고 대처하려는지 대화해볼 수 있다. 대화를 해보면 수리적·법칙적 원리에만 매달리는 방식의 사유와 상대를 이해하고 공감하며 함께 느낄 수 있는 방식의 사유의 차이를 구별할 수 있다. 곧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공유된 마음을 선물받기를 기대해본다.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경향 2022.12.22.

 

 

1인당 GDP 4만달러, 그 허망함에 대하여

올해 당신 가족의 소득은 얼마인가. 당신이 맞벌이든 외벌이든 18200만원을 벌어야 4인 가구 기준으로 평균에 해당한다. 지난해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약 35000달러. ·달러 환율 1300원을 적용하면 4550만원이다. 당신 가족은 배우자와 자녀까지 4명이므로 이 금액에 곱하기 4’를 해야 하고, 그렇게 산출된 금액이 18200만원이다. 그런데 4인 가구 소득이 18200만원이면 우리 사회에선 고소득층 아닌가. 통계청의 ‘2022년 가계금융복지조사소득 10분위 현황을 보면 지난해 소득 상위 10% 4인 가구의 연 소득이 19042만원이다.

 

GDP의 허점이 여기에 있다. 국민소득으로 흔히 혼용되는 1인당 GDP에는 사회의 불평등과 양극화가 감춰져 있다. GDP는 한 국가의 영토 안에서 생산된 최종 생산물의 시장가치 합계다. 사회의 재화와 부가 어떻게 분배되고 있는지 보여주지 못한다. 통계를 하나 더 보자. 중위소득은 1등부터 꼴지까지 한 줄로 세웠을 때 정확히 가운데 등수의 소득이다. 올해 4인 가구 중위소득은 6145만원이다. 4인 가구 소득의 평균값(18200만원)과 중간값(6145만원) 격차가 3배 가까이 나는 것은 경제성장의 결실이 공평하게 분배되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다.

 

정부와 여당이 윤석열 대통령 임기 마지막 해인 2027년에 국민소득 4만달러달성을 목표로 내년도 경제정책방향을 운용하기로 했다.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당정은 내년도 경제정책의 중점인 위기 극복 방안과 위기 이후 재도약 비전을 통해 윤석열 정부의 마지막 해인 2027년에는 우리 국민의 1인당 GDP 4만달러에 이르러야겠다는 생각을 공유했다고 말했다. 언제부턴가 한국 경제의 목표는 1인당 GDP 4만달러다.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씨는 자신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7%대 경제성장률을 달성하고, 국민소득은 4만달러가 될 것이며, 세계 7위의 경제 부국이라는 전대미문의 경제 성공 신화를 쓸 것이라고 했다. 20141월 박근혜 정부도 ‘474’(잠재성장률 4%, 고용률 70%, 1인당 GDP 4만달러) 비전을 제시했다.

 

1인당 GDP가 지난해 이미 35000달러에 이르렀으니 경기가 급반등하면 윤석열 정부 임기 내 4만달러 달성이 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경제가 성장해도 분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국민 삶은 지금과 별반 달라지지 않는다. GDP의 자체 한계도 있다. 한 국가의 경제성장을 측정하고 분석하는 데 GDP가 요긴하지만 GDP를 맹신해서는 안 된다. 전쟁이나 참사가 발생하면 역설적으로 GDP는 증가한다. 아이들을 돌보고 집 안 청소를 하며 저녁 식사를 차리는 등의 가사노동은 그 엄청난 가치에도 불구하고 GDP에 반영되지 않는다. 시장에서 김치를 사 먹으면 GDP가 올라가지만 고향의 부모님이 보내주시는 김치를 택배로 받으면 GDP는 변화가 없거나 떨어진다. 마당에서 채소를 가꾸고 닭을 기르는 사람이 늘어도 GDP는 낮아지고, 금연하는 사람이 늘어도 GDP는 떨어진다. 자원고갈이나 환경오염, 기후위기 등도 GDP로는 알 수 없다. 삼림을 훼손해 목재를 생산하면 GDP에 포함되지만 벌목으로 인한 생태계 파괴 비용은 고려되지 않는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아마르티아 센 같은 학자는 국가 발전을 평가할 때 GDP가 아닌 국민의 자유 신장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이 더 나은 삶을 살려면 정치적 자유, 민권, 경제적 자유, 사회적 기회(의료·교육·복지), 투명성 보장, 안전 보장 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진정한 국가 발전은 GDP의 증가가 아니라 국민의 역량과 자유가 확대되고, 그로 인해 국민의 만족도와 행복이 커져야 한다는 의미이다.

 

GDP 증가를 무조건적으로 반기던 시대는 지났다. 윤석열 정부가 1인당 GDP 4만달러 달성을 이유로 국민에게 과로와 희생, 인내를 강요하지 않았으면 한다. 지금 수준의 경제 규모로도 5000만 국민이 집 걱정, 병원비 걱정, 먹거리 걱정 안 하고 살 수 있다. 사회의 평화는 어떤 시민도 다른 사람을 돈으로 사서 일방적으로 부릴 수 있을 만큼 부유하지도, 자기 자신을 팔아야 먹고살 수 있을 만큼 가난하지도 않은 때 이뤄진다. 윤석열 정부도 경제성장을 매우 중시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키워진 파이를 어떻게 나눌지 구체적인 방법도 함께 제시해야 한다. 임기 내에 중위소득을 얼마로 높이겠다든지, 소득분배의 불균형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를 얼마로 낮추겠다는 등의 목표가 없으면 1인당 GDP 4만달러는 허망한 숫자놀음에 불과하다.

오창민 논설위원 경향 2022.12.22.

 

 

도서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대학 시절 도서관에서 내 자리는 늘 창가였다. 출입문 쪽으로 등을 돌리고 도서관에서 대출한 두꺼운 전공 서적들을 칸막이 삼아 오른쪽에 쌓아두면, 왼쪽은 창 쪽으로 트인 나만의 오롯한 공간이 생겼다. 창은 남학생 기숙사로 이어지는 샛길로 나 있었다. 오가는 사람들의 사분대는 발소리가 책 읽는 걸 방해하는 일은 거의 없었지만 예외는 있었다. 뒤꿈치를 살짝 끄는 듯한 신발 소리가 들리면 집중력은 깨지고 가슴이 뛰었다. 책을 빌릴 때 대출카드에서 신발 소리의 주인공 이름을 발견하기라도 하면 반가움에 마음까지 떨리곤 했다.

 

지금은 대부분의 도서관이 폐가식에서 개가식으로 변했다. 신분이 확인되면 카드발급기에서 대출카드가 지급된다. 무선주파수인식(RFID) 리더기라는 인식기에 빌릴 책들을 쌓고 그 위에 대출카드를 올리기만 하면 모든 내용이 컴퓨터에 동시에 저장된다. 반납할 때도 마찬가지다. 무인대출반납기까지 등장했다. 서울시의 경우, 시민카드 앱을 이용하면 각 도서관의 대출회원증을 앱카드로 받을 수 있다. 책을 빌린 사람들의 각기 다른 필체가 빌린 순서대로 세월 따라 고스란히 남아 있던 종이 대출카드는 이제 낭만적 유물이 되어버렸다.

 

학창 시절 학교도서관은 책 대출 기능보다는 공간 대여 기능이 훨씬 컸다. 1990년까지 전국에 119곳에 불과했던 공공도서관 역시 일반열람실에서 공부하려는 학생들로 아침부터 장사진을 이뤘다. 이제는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도서관 수가 늘었다. 2000년을 전후로 각 지방자치단체를 대표하는 대형 도서관과 소규모 도서관 건립 계획이 속속 발표되면서 2022년 현재 1213개 공공도서관이 운영 중이다. 2000년대에 접어들어 도서관 건립을 위한 시민운동까지 활발해지면서 작은도서관도 2021년 말 기준 사립과 공립을 합해 6448곳이 운영되고 있다. 도서관의 역할 또한 독서실과 책 대출 기능에서 벗어났다. 책과 연관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웹툰용 태블릿, 유튜버를 위한 1인 미디어실 등 최신 트렌드를 반영한 시설들을 갖춘 메이커스페이스의 역할까지 해내고 있다. 도서관 수를 넘어 이제는 도서관을 어떻게 운영하느냐가 핵심 과제가 되었다.

 

코로나 직전까지 우리나라 도서관 이용객 통계를 보면 중대형 공공도서관보다 작은도서관 이용률이 증가하고 있었다고 한다. 집에서 가깝다는 게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것뿐일까.

 

작은도서관은 말 그대로 작다. 면적 10평 이상, 좌석 수 6석 이상, 자료 1천권 이상이면 작은도서관의 자격을 부여받는다. 주로 동사무소나 교회, 공원, 복지관 등의 한쪽에 자리 잡고 있다. 작기에 사랑방처럼 책을 중심으로 한 사람들의 네트워크가 활발하다. 작은도서관은 책과 더불어 사람 중심으로 변하고 있다. 조용하고 정적인가 하면 시끄럽고 왁자지껄한 곳이 작은도서관이다. 사람 사이 벽을 허물고 가족 밖 진정한 공동체를 만들어나가는 곳, 도서관의 주인인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지역공동체를 일구어가는 곳이 작은도서관이다.

 

이 모든 순기능은 사서나 관장이 있을 때 더욱 큰 시너지를 낼 수 있다. 하지만 지자체는 예산을 절감한다는 명목으로 사서를 두지 않거나 두더라도 삼분의 일 가까이가 비정규직이다. 순회 사서나 자원봉사자가 작은도서관을 서너개씩 맡아 이삼일에 한번 방문해 책을 관리하기도 한다. 이 경우 책 대출 기능만 겨우 이어갈 수 있을 뿐,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도서관 기능은 기대하기 어렵다.

 

얼마 전 서울 마포구 한 복지관에 자리한 작은도서관을 방문했을 때 마침 자원활동가 한분이 장애인 이용자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고 있었다. 아카바 수에키치의 <수호의 하얀말>이었다. 내용을 알아듣는 이용자는 이용자대로 질문에 씩씩하게 대답했고, 내용을 몰라도 읽어주는 이의 억양만으로 감정을 느끼며 울기도 웃기도 하는 이용자도 있었다. 자원활동가는 최근 결성된 마포구립 작은도서관을 지키는 사람들4인 공동대표 중 한분이었다. 11월 초, 마포구청이 위탁 심사까지 통과한 기존 위탁법인과 계약을 해지하면서 기존 담당 사서의 고용까지 해지하려고 하자 결성된 모임이었다. ‘국공립 작은도서관은 사서 1명 이상을 둘 것이라는 도서관법 시행령(128일부터 시행)에도 반하는 정책이었다.

 

주민들은 작은도서관들이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바로 도서관을 지키는 주민 모임을 결성했고 그러한 방침의 부당성에 항의했다. 그 결과 9개 작은도서관 중 8개는 기존 위탁처와 재계약해 3년 동안 현행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도서관은 주민이 낸 세금으로 운영된다. 주민이 진정으로 원하는 곳에 예산을 제대로 쓰고 있는지 살피고 감시하는 건 주민의 주권이자 권리가 아닐까.

 

사서와 관장이 없거나 순회 사서에게 여러개의 작은도서관 관리를 맡길 경우, 도서관의 앞날은 불을 보듯 뻔하다. 도서관법 시행령에도 불구하고 지자체 곳곳에서 이런 움직임은 여전히 감지되고 있다. 사서가 없는 작은도서관이라 하더라도 자원봉사자와 활동가들의 열정과 헌신으로 지역 밀착형 도서관의 역할을 잘해내고 있는 곳도 물론 있다. 하지만 이분들의 열정과 헌신에만 기댈 경우 도서관의 동력과 에너지는 오래갈 수 없다. 도서관을 새로 만드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공립이건 사립이건 지금 있는 작은도서관의 인건비와 예산과 시설을 늘리는 일이다. 실제로 몇몇 지자체는 도서관 예산을 늘리고 작은도서관들을 활성화해 주민들의 큰 호응을 얻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동네의 사회적 가치도 한껏 높이고 있다. 이사 갈 때 인구 10만명당 도서관 수를 따지는 학부모들도 늘고 있다. 뭐든 돈으로 계산하고 허황된 잣대를 들이대면서 엉뚱한 값을 매기는 행정가들의 눈에 이런 무형의 사회적 가치는 결코 보이지 않으리라.

 

<도서관은 살아 있다>의 저자는 세상에서 가장 인간적인 도서관으로 미국 시애틀 중앙도서관을 꼽는다. 이 도서관은 노숙인은 물론 어린이, 노인, 이민자, 소수인종, 실업자, 저소득층, 정보소외 계층, 성소수자 등 공동체 구성원 모두를 섬기고 돌보는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이는 1998모두를 위한 도서관이란 기치를 내건 시민투표를 통해 가능한 일이었다고 한다. 도서관의 역할과 운영이 이용자인 시민들을 위해 시민들과 더불어 어떻게 진화해야 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공공도서관은 차별과 빈부격차와 편견으로 가득 찬 이 사회에서 평등과 공공성과 국민의 주권을 담보하고 있는 최후의 보루 같은 곳이다. 남미 작가 보르헤스는 도서관에서 얻는 즐거움이 얼마나 크고 평화로웠으면 낙원은 도서관처럼 생겼을 거라 상상했겠는가.

강맑실 | 사계절출판사 대표 한겨레 2022.12.22

 

 

부동산 경기부양 총력전의 후과가 두렵다

1139채 빌라왕은마아파트 영끌’. 최근 두 건의 소식을 접하며 상식을 벗어난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했을지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 40대 빌라왕은 갭투자로 엄청난 규모의 빌라를 사들였지만 세입자 수백명에게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해 경찰 수사를 받던 중 숨진 채 발견됐다. 배후 세력이 있었는지 모르겠으나 주거 약자들에게 피해를 준 이런 행태를 정부는 왜 제어하지 못했을까.

 

은마 영끌은 경매시장에 나온 서울 강남 은마아파트 매물이 24억원 대출을 동원한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 물건으로 파악됐다는 내용이다. 매입 시점은 지난해 9월로 대부업체에서 20억원 넘게 빌렸다고 한다. 2000만원의 이자를 감당하려 하면서까지 매입자가 노렸던 건 일확천금 불로소득이 아니었을까.

 

앞으로 다른 충격적 소식들이 어디선가 또 불쑥 튀어나올지 모르겠다. 정부의 정책은 그럴 가능성을 더 높이는 쪽으로 가고 있다.

 

지난 21일 정부가 내놓은 내년 경제정책방향을 보면 부동산 경기부양이 중요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수요 억제책을 상당 부분 해제하는 내용이 담겼다. 4주택 이상 다주택자 취득세율은 12%에서 6%로 낮아지고, 양도세 중과 배제는 연장해 내년에 근본적 개편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주택자 규제 패러다임 전환을 통한 거래주체로서의 역할 강화를 언급했다.

 

20207월 문재인 정부 시절 등록임대 대상에서 제외됐던 아파트도 10년 장기 매입임대, 85이하 아파트에 한해 등록을 재개하기로 했다. 지난 정부에서 등록임대제도는 부동산 가격 폭등에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으며 대표적 실책으로 꼽혀왔다.

 

지난여름 반지하 수해 현장을 찾아 사회적 약자에게 고통이 되지 않도록 주거정책을 챙기겠다고 했던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5일 국정과제점검회의에서 공공임대 확충은 재정과 납세자에게 부담을 주며 경기위축 요인이 된다고 말했다. 과거 선분양을 통해 모은 자금으로 아파트를 지어 막대한 이윤을 남긴 건설사들에는 희소식일지 모르겠다. 이쯤 되면 정부는 집값 안정을 위해 필수적인 수요 억제와 공급 확대, 두 정책 사이의 균형을 포기해버린 것 같은 느낌마저 준다.

 

20145월 박근혜 정부의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빚내서 집 사라정책을 밀어붙인 것이 문재인 정부 초반 부동산 가격 폭등의 바탕이 됐다. 부동산의 경기조절 기능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관료들의 습성이 한국에서 부동산 불패 신화를 낳았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보유세 강화를 포기한 정부가 앞으로 투기 광풍의 씨앗을 심는 건 아닌지 불안하기만 하다. 집값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심리임을 감안하면 부동산시장은 조금만 틈이 보여도 언제든 요동칠 수 있다.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 초저금리 정책으로 대거 풀렸던 유동성이 회수되면서 부동산시장이 하락 국면에 접어든 것은 사실이나 비정상적 흐름이 복원되는 과정이라면 인위적으로 막을 일은 아니다. KB국민은행이 공개하는 ‘KB아파트 담보대출 PIR(가구소득 대비 가격 비율)’을 보면 올 3분기 기준 서울의 PIR14.5배에 달했다. 가구소득은 5701만원, 아파트 가격은 82875억원이었다. KB국민은행에서 아파트 담보대출을 받은 사람들은 천차만별이겠지만 중간 기준으로 소득 대비 14.5배 가격의 주택을 구입했다는 뜻이다. 전문가들은 거품 추산 방법 중 하나로 PIR지표를 보는데 10배를 넘으면 과도하게 상승한 것으로 판단한다. 적정 수준은 5배를 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3분기 기준 경기와 인천의 PIR도 각각 10.3, 9.1배에 달했다.

 

정부의 눈은 주택시장 약자인 세입자, 실수요자, 무주택자의 주거안정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투기를 막고 불로소득을 환수하며 임차인 권리를 강화하는 쪽으로 가는 게 사회정의에 부합한다. 거품이 낀 주택가격의 하향 조정은 외면해선 안 되는 목표다. 역대 정부는 보유세 강화를 강하게, 일관되게 추진하지 못했고 이것이 부동산 공화국을 만든 주요 원인 중 하나다. 불로소득을 얻는 구조와 풍토를 개혁하지 않는다면 미래세대 역시 불로소득의 환상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에서 연일 폭등하는 집값으로 좌절감에 빠진 무주택자들이 부동산 블루를 호소했다. 이대로 가면 윤석열 정부에서도 별반 달라지지 않을 거 같다. 부동산시장 연착륙 명분 뒤에 숨어 있는 집값 띄우기의 결말은 과거 사례가 보여주고 있다.

오관철 경제에디터 경향 2022.12.23.

 

 

재벌집 막내아들처럼

요즘은 <재벌집 막내아들> 보는 재미로 산다. 이런 드라마가 왜 16부작으로 끝나야 하는지 아쉽다. 이 추운 겨울을 그럭저럭 지날 수 있도록 2, 3편을 이어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난여름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덕에 더위를 잠시나마 식힐 수 있었던 것처럼.

 

교육과 연구만으로도 하루 24시간이 벅차야 할 교수의 직분을 망각하고 통속적인 판타지 드라마에 놀아나는 게 꼴불견일 수도 있다. 그러나 파독간호사 출신 노은님 화가의 통찰처럼 살아남는다고 전쟁터 병사처럼 싸울 필요는 없지 않은가. 무엇보다 하루 24시간을 오로지 일에만 쏟아내는 건 바로 인간의 존엄과 행복추구권에 반하는 게 아닌가. 거대한 컨베이어 벨트에 배치되어 주어진 일만을 수행해야 한다면 그게 기계지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이미 20세기 초에 불세출의 대가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가 산업사회의 비인간성을 통렬하게 풍자한 바 있지 않은가.

 

기껏 드라마 보기를 합리화하기 위해 너무 나갔나. 아니다. 개발국가 시대의 재벌가를 배경으로 한 이 드라마는 한국 사회의 당면 과제를 압축적으로 조명해 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자본이 노동은 물론 가족 관계까지 장악한 현실에서 정작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를 묻고 또 물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마련해 주고 있다. 바로 인간의 존엄과 행복이다.

 

예컨대 저출생 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대한민국이 10여년간 100조원이 넘게 쏟아붓고도 인구절벽을 맞이하고 있는 근본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인간의 존엄과 행복은 오로지 일과 그 대가인 돈에만 있는 것처럼 강요하는 사회제도와 사회문화는 아닌가. 인구절벽을 해소하는 대책마저도 일과 돈에만 지나치게 의존하고 정작 본질이어야 할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족의 가치는 뒷전이다 보니 백약이 무효인 것은 아닌가.

 

보통 우리나라에서 사회제도와 사회정책을 설계할 때 선택지로 제시되곤 하는 미국모델과 유럽모델이 사실은 공통의 기반으로 삼고 있는 근본가치가 있다. 바로 가족이다. 개인적 자유주의의 대명사인 미국이나 상대적으로 사회적 자유주의의 경향이 강한 유럽 모두 개인의 자유 못지않게 가족이 사회의 기반이라는 가치에 있어 일치하는 문화와 제도를 구축하고 있다. 공공영역은 말할 것도 없고 민간영역에서도 임신, 출산과 양육 등 가족의 형성에 필요한 기본적 과제는 사회 전체가 책임져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다.

 

사실 우리나라도 국가와 사회의 기본규범인 헌법은 이러한 근본가치 중심의 공동체를 선언하고 있다. 국가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에 터 잡은,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인권을 확인하고 보장하기 위해 존재한다(10).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지며, 여자의 복지와 권익의 향상, 노인과 청소년의 복지향상 등 인간의 존엄을 중심으로 사회가 돌아가도록 노력할 숭고한 의무를 국가에 부과하고 있다(34).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하고 모성의 보호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일 책무 또한 국가의 몫이다(36). 균등한 교육을 받을 권리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근로조건을 구성한 근로의 권리 또한 국민의 기본권이다(31조와 제32).

 

그러나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은 재벌가의 기업경영이나 승계를 둘러싼 골육상쟁뿐만 아니라, 오너 리스크를 관리하는 특별사원인 전생의 아들과 파업 노동자의 멍에로 삶의 바닥에서 허우적거리는 아버지의 삶이, 모두 전쟁터와 같음을 극적으로 대비시키고 있다. 비록 도식적이긴 하지만 이미 최장 노동시간 국가 그룹에 속한 오명에도 불구하고 노동시간 연장과 노동적폐의 청산에 몰두하는 대통령이 이 전쟁터에서 누구 편인지를 깨닫게 해주는 훌륭한 교육보조재로서의 역할을 이 드라마가 톡톡히 하고 있다.

 

1980년대로 회귀하여 21세기 초반에 이른 현재까지 전개되는 이 드라마의 시간 프레임은 <모던 타임즈> 못지않게 우리의 미래를 비추는 반면교사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엉뚱한 상상을 한다. 미래의 막내아들이 재벌가가 아닌 대통령가에 환생한다면 신들린 듯 이성민 배우가 쏟아내는 재벌총수의 일갈이 어떻게 각색될지 궁금하다. “머슴을 키워가 등 따습고 배부르게 만들면 왜 안 되는 줄 아나? 지가 주인인 줄 안다.” 명색이 민주공화국에서 마치 왕이나 된 듯 헌법이 공화적 책무를 부여한 야당, 언론, 노조를 때려잡는 장면에 열연을 펼칠 대통령 역으로는 어떤 배우가 적격일지도 흥미로운 포인트일 수 있다. <재벌집 막내아들>도 곧 끝나고 이래저래 뒤숭숭한데 신통하다는 도사에게 한번 물어볼까?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경향 2022.12.23.

 

 

불황

안 오른 품목이 없다. 하다못해 겨울철 인기 간식인 붕어빵까지 값이 올랐다. 지출은 더더욱 많아지는데, 지갑은 갈수록 얇아진다고 아우성이다. 4050세대는 노후준비를, 2030세대는 당장의 현실을 걱정하고 또 걱정한다. 불필요한 지출에 여가시간, 친구들과의 만남까지 줄이지만, 통장의 숫자는 늘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취업준비생들은 더 암울하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 ‘3고 위기로 인해 취업 문턱이 예년보다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에 붙잡고 있던 희망줄을 놓기 일보 직전이다.

 

여기에 내년 경제 전망마저 암울하다. 고금리, 고물가가 새해에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도 서민들을 괴롭히는 고통이 내년까지 이어진다는 말이다. 한국은행 총재의 입에서는 경기 침체라는 말까지 나왔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20일 기자간담회에서 경기와 관련해 내년 상반기 경기가 많이 어려울 것으로 예측한 만큼, 침체로 가느냐 안 가느냐 하는 경계선에 있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앞으로 물가 흐름을 보면 소비자물가는 당분간 5% 내외의 상승률을 이어가겠지만 국내외 경기 하방압력이 커지면서 오름세가 점차 둔화돼 내년에는 상고하저의 흐름을 나타내면서 점차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둔화 속도와 관련해선 향후 국내외 성장 및 유가 흐름 등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다라고 했다.

 

 

한은은 금리인상 기조를 이어갈 것임을 시사한 상태다. 여기에 지난달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제시한 최종금리 3.5%가 확정된 것이 아님을 재확인했다. 이 총재는 최종 기준금리 3.5% 전망은 11월 당시의 경제 데이터를 바탕으로 시장과 소통하기 위해 밝혔던 것이라며 이는 정책에 대한 약속이 아니며 경제 상황의 전제가 바뀌면 최종 기준금리 수준도 바뀔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경기가 침체로 가느냐 아니냐는 경계선에 있다고 하지만, 서민들의 입장에선 이미 침체 직격탄을 맞고 있다. 기업들도 긴축 경영에 나섰고, 금리 상승기를 맞아 역대 최대 실적을 내는 은행권조차 희망퇴직을 진행 중이다. 찬바람이 부는 고용시장에 막막하다이외엔 다른 말이 안 나오는 상황이다. 사방이 암흑천지인 가운데 내년 살림을 어떻게 꾸려나갈지 막막하기만 할 뿐이다.

 

믿고 기댈 건 정부 정책이다. 경기가 후퇴하고 물가가 오르게 되면 크게 힘듦을 겪는 사람들은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이다. 정부는 가능한 모든 수산을 써서 경제가 더는 침체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한다. 내년 상반기 경기 침체 어려움을 어떻게 넘어갈지 경제 정책을 점검해야 한다.

뉴스클레임 논설위원실

 

 

물의 길, 자연의 도

기대와 설렘을 안고 <아바타 2: 물의 길>을 보러 극장에 갔다. 상영관 입구에서 받은 3D 안경을 끼고 자리에 앉으면서부터 192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영화는 흥미진진하고 탁월했다. 주인공 제이크·네이티리 가족과 함께, 높은 산과 깊은 바다를 짜릿한 속도로 날아다녔고 다양한 감정을 대리 경험했다. 실사와 그래픽을 혼합한 촬영기술도 그렇지만, 서사 역시 동원할 수 있는 클리셰를 충실하게도 모았다. 식민지배, 인종갈등, 혼혈, 이민, 차남의 방황, 출생의 비밀, 구원자로서의 여성까지 온갖 서사가 망라돼 있었다. “세상에서 믿을 건 우리 가족뿐이라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만 빼면 투철한 정치적 올바름으로 무장했다.

 

영화 이야기를 꺼낸 건, 부제인 물의 길(The Way of Water)’에 주목하고 싶어서이다. ‘way’로 번역됐지만, 식민자의 복수를 피해 산에서 바다로 이주한 주인공 가족이 헤엄치는 물길이 아니라 물의 도()에 가깝다. 바다에서 살려면 바다의 이치를 따라야 한다는 뜻이다.

 

영화에서 백인 남성 식민자들이 인간의 친구이자 인간보다 지능이 높은 어족인 툴쿤을 사냥하는 과정은 불법 고래잡이와 비슷한데, 사냥꾼들은 첨단 도구와 무기로 무장했음에도 결국 처참하게 죽는다. 성난 자연을 피해갈 길은 없다. 전투 과정에서 배가 뒤집혀 격실에 갇혔던 주인공 가족이 살아난 방법 역시 자연을 따르는 것이다. 바다는 우리 생명의 근원임을 믿고, 작은 물살이들이 인도하는 길을 따라 비로소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자연의 도를 따르는 것이 우리가 직면한 기후생태위기의 근원적 해결책이라는 메시지를 영화는 전달한다. 그런데 자연의 도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전통사회에서는 종교가 도를 추구했고 현대에는 과학이 도를 밝히고자 한다. 신과 진리는 세계를 알고자 하는 목표에 부여된 다른 이름이다. 과학이 조건을 설정하고 실험을 거쳐 밝혀낸 사실은 분명 진리이지만, 진리의 전부가 아니라 다른 진리가 나타나면 부분적 진리는 더 큰 진리에 통합된다는 것이 현대과학의 깨달음이다. 따라서 우리가 되찾아야 하는 것은 비과학적 태도가 아니라, 과학적이면서도 자연에 대해 겸손하고 조심스레 접근하는 태도이다.

 

기후위기에 압도돼 생물다양성의 위기는 상대적으로 작아 보인다. ‘꿀벌 실종사건이 종종 보도되지만 실종된 것은 꿀벌만이 아니다. 인간으로 인한 제6의 멸종이 예고돼 있다. 생태계의 균형이 깨진 상태에서 최고 포식자이면서 최대 개체 수인 인간사회가 유지되는 것은 화석연료 덕분이라고 한다.

 

어둠의전설 25주년 파티

요즘 동물권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지만, 많은 부분 인간의 관점을 투사한다. 과도한 펫문화가 그렇다. 가수 이효리가 나오는 <캐나다 체크인>이란 프로그램은 해외 입양아의 자리에 해외 입양견을 넣었다. 우리 동네의 개 미용실에는 다양한 커트 스타일과 함께 개 스파도 갖췄다.

 

캣맘에게 길양이는 지극한 연민의 대상이지만, 고양이는 유희로 새를 사냥하며 이는 유리창 충돌과 함께 새의 주요 멸종 원인이다.

 

요컨대 인간의 개입에는 한계가 있다. 자연은 자연에 맡겨야 한다. 자연의 도는 영겁의 시간에 걸쳐 형성되었고, 다시 영겁의 세월 동안 복구될 것이다. 사회생물학의 창시자 에드워드 윌슨은 지구에 인간만 가득한 지금을 고독한 시대라 불렀고, 인간이 지구의 절반만 사용하는 반구제를 제안했다. 절반은 아니지만,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제15차 유엔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총회(128~20)2030년까지 전 세계 육지와 바다의 30%를 보호하자는 획기적 결정을 내렸다. 우리는 탄소중립과 마찬가지로 이 문제도 크게 불리한 형편(육지 17.3%, 바다 2.46%)이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그냥 놓아두는 것, 지켜보는 것, 믿고 기다리는 것은 우리에게 가장 힘든 일인지도 모른다. 빈 시간과 빈 공간을 허락하지 않는 마음가짐은 현대성의 가장 큰 폐해이다. 무엇이든 통제하고 실현할 수 있다는 강박관념 같은 것이다.

 

멀리 갈 것 없이 나 자신도 계획, 속도, 효율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삶을 살아왔다. 돌봄과 연대의 요청에 취약하다. 지난해 이맘때를 돌아보니, 때때로 현실을 잊은 채 내용 없는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기는 어린아이처럼 명랑하게 살 것을 다짐했다. 올해는 조바심을 버리고 느리게 살기를 생각해본다. 생명을 살리는 깊고 고른 호흡처럼, 천천히 가되 멈추지 않는 걸음으로 를 찾아가는 새해를 맞고 싶다.

한윤정 전환연구자 경향 2022.12.24.

 

 

양치기 소년의 14'바이든의 전쟁'

"러시아와 미국 사이에는 최고위급에서 논의할 밀린 의제가 많다. 생산적인 회담이 되길 바란다."(푸틴)

 

"상호 이해가 일치되는 부분에서 우리는 협력할 것이다. 일치하지 않는 부분에선 예측가능하고 합리적인 길을 찾을 것이다. ·러는 두 개의 강대국이다."(바이든)

 

2021616일 저녁 제네바. 조 바이든 행정부 취임 뒤 처음으로 성사된 제네바 미·러 정상회담 모두 발언이다. 대표적으로 이해가 일치한 의제는 핵무기 감축과 핵전쟁 위협 감소를 통한 전략적 안정이었다. 두 정상은 이부분에 대한 합의만 담은 짤막한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다른 모든 의제에서는 서로 입장이 달랐지만 그 다름을 인정한(agree to disagree) 회담이었다. 두 정상은 "회담이 좋았고, 긍정적이었고, 생산적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우크라이나의 돈바스 지방의 소요는 의견이 갈린 수많은 의제의 하나였다. 하지만 미·러 정상은 어떤 갈등도 노출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8개월 뒤 우크라이나 전쟁이 벌어졌다. ·러 사이에는 그동안 어떤 일이 일었고, 그 과정에서 바이든은 어떤 결정을 내렸던 것일까.

 

제네바 이후 8개월, 차분히 준비된 전쟁

어떤 전쟁이건 단순한 이유 때문에 발발하지 않는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수많은 원인 중 두 가지만 꼽자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동진에 따른 안보적 위협과 우크라이나 정부의 직·간접적인 개입으로 벌어진 돈바스 및 크림반도에서의 소요였다.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정부가 20213월 발표한 신군사전략은 러시아 치하 크림반도와 돈바스 지방에서 테러리스트 지하조직을 조직하고, 서방 군대의 지원과 국제사회의 지원을 토대로 러시아와의 지정학적 전쟁이 가능함을 시사했다. 우크라이나가 핵무기 개발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게 블라디미르 푸틴(70) 대통령의 진단이었다. 더 큰 위협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로부터 왔다. 러시아는 지난해 12월 중순 나토를 상대로 2가지를 요구했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영원히 거부하는 문서상 보장과 나토가 동유럽 회원국들에 배치한 다국적 전력을 철수시킬 것을 요구했다. 일종의 최후통첩이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지난 21일 개전 이후 처음으로 워싱턴을 방문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백악관에서 맞이하고 있다. 2022.12.21 로이터연합뉴스

나토는 1990년 독일 통일 이후 중·동유럽 14개국을 새로 회원국으로 받아들이면서 표방했던 '오픈 도어(open door) 정책'을 고수하며 이를 거부했다. 러시아가 다른 나라의 나토 가입에 관여할 권한이 없다는 논리였다. 푸틴의 눈에 우크라이나는 이미 나토의 훈련기지로 변했다. 2021년에만 23000명의 군인과 수천개의 중화기가 동원된 훈련을 했고, 2022년엔 10여개의 합훈이 예정돼 있었다. 보리스폴과 이바노프란코프스크, 오뎃사에는 군용비행장이, 크림반도 인근 오차키우항에는 미국 해병작전센터가 설치됐다.

 

"푸딩 맛을 알려면 푸딩을 먹어봐야 한다"

바이든 대통령(80)은 제네바 정상회담 회견에서 "중요한 것은 다음 단계"라고 거듭 강조했다. "푸딩 맛을 알려면 먹어보는 수밖에 없다"는 미국 속담을 인용, 3개월이나 6개월 뒤쯤 러시아와의 협력 정도를 점검해 더 나아갈 것인가 결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제네바 이후 '다음 단계'는 미·러가 각각 전쟁을 준비하는 기간이었다. 러시아군은 지난해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3~4월과 10월부터 올해 2월 침공까지 대규모 군사훈련을 벌였다. 바이든의 전쟁 준비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경제적 지원과 더불어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의 두 갈래였다.

 

2021312500만 달러 상당의 무기를 지원한 것을 비롯해 연말까지 4억 달러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했다. 개전 뒤에는 지난 5월 의회를 통과한 '우크라이나 민주주의, 무기대여법'에따라 총 400억 달러의 지원안에 서명했다. 7월부터는 총 55000만 달러 상당의 HIMARS(다연장로켓시스템)를 제공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오랫동안 준비한 회심의 '푸딩'은 러시아 경제제재안이었다.

 

윌리 아더예모 미국 재무부 부장관이 지난 16'미국의 새로운 제재 전략'이라는 제목의 포린 어페어스 기고문은 상세한 내용을 전한다. 우선 러시아가 2014년 크림반도 병합 뒤 축적해놓은 총 6300억 달러의 국부펀드와 중앙은행 자산을 동결하고, 러시아 중앙은행을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서 퇴출시켰다. 눈여겨봐야 할 점은 미국 재무부의 대러 제재안 완성 시점이다. 미국이 주요 7개국(G7), 유럽연합(EU), 호주·싱가포르·한국·대만 등 이른바 '비슷한 생각의 나라(LMN)'들과 협의를 거쳐 제재의 틀을 완성한 것은 지난해 10. 미국 정보당국이 러시아의 침공을 예측하기 1달 전이었다.

 

그 사이 바이든은 '양치기 소년' 역할을 했다. 수차례 러시아의 침공이 임박했다고 경고하고 날짜(216)를 찍어서 경고하기도 했다. 바이든이 푸틴에 덫을 놓았다는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제재는 단기와 장기 효과를 노리고 설계됐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투입할 재원을 말리는 동시에 반도체와 트랜지스터, 소프트웨어 등 첨단기술 접근을 차단함으로써 러시아 군산복합체의 무기 기술과 전력투사 능력의 감퇴를 노렸다. 주요 서방기업들은 러시아를 떠났다.

 

더 무서운 것은 러시아 경제에 남길 장기적 타격이다. 아더예모 부장관은 러시아 경제가 전쟁 전보다 30~50% 축소될 것으로 내다봤다. 제재는 에너지를 중심으로 각국 경제가 입을 피해를 최소화하는 동시에 러시아에 가할 고통을 최대화했다. 러시아산 원유를 배럴당 60달러 밑으로 거래케한 게 대표적이다. 전쟁 전 100달러였다가 지난 여름 160달러로 올랐던 유가를 대폭 낮춘 것이다. 콘스탄틴 소닌 시카고대 교수는 "러시아 경제가 1991년 소련 붕괴 당시의 '백지상태'로 돌아갈 것"이라면서 "길고 고통스러운 재건 과정이 불가피하다(포린 어페어스)"고 내다봤다.

 

14, 바이든의 새 '전쟁 모델'

러시아 군사기술의 발전을 막고, 무기·자금 지원으로 전선에서 실패를 유도하며, 국가경제의 허리를 끊어놓는 방식을 조합한 바이든의 새로운 전쟁 모델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는 탈 냉전 뒤 역대 미 행정부가 취해온 바 해당지역 국가들이 자신들의 예산으로 균형을 잡으라는 '역외균형전략'에서 진화한 모델이다. 모두가 러시아군의 실패를 말하지만, 불과 1년 전만해도 더 큰 군사적 실패의 주인공은 미국이었다. 지난해 4월 아프가니스탄에서 굴욕적으로 철수하기까지 20년 동안 12400억 달러의 예산을 흙먼지 속에 날려버렸다.

 

바이든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14조의 효과를 보고 있다. 러시아 동부를 지정학적 분쟁에 휩싸이게 했고, 러시아의 군사력과 경제력을 약화시켜 미국에 대적할 수 없는 국가로 만드는 과정을 시작했다. 전쟁 전까지 각각 제갈길을 가던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 동맹국을 하나로 묶었다. 여기에 돈도 벌고 있다. 개전 이후 세계경제가 침체위협으로 몸집이 줄어드는 동안 주요국 통화대비 달러화 가치는 12%나 올랐다. 엔화 대비 20%, 유로화 대비 11%, 원화 대비 10%가 올랐다. 동맹과 우방의 곳간을 털어 국부를 늘린 것이다. 여기에 8580억 달러로 사상 최대 규모의 내년도 국방예산까지 거머쥐었다. 첨단무기 개발에만 1600억 달러를 투입할 계획이다.

 

12월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 현황. 검은색 실선이 러시아가 20141차 침공 뒤 점령한 지역이고 살색 공간이 이번 침공 뒤 점령지이다. 크림반도를 제외하면 우크라이나 남동부 4개주의 일부에 해당한다. 하늘색 은 우크라이나군이 탈환한 지역으로 오른쪽은 동부 하르키우주이고, 아랫쪽은 헤르손시를 비롯한 남부 헤르손주 일원이다. 미국 전쟁학연구소(ISW)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군의 내년 초 대공세로 전선이 바뀔 가능성이 남아 있다. 하지만 바이든은 이미 더 큰 전쟁에서 이기고 있다. 이쯤되면 '승자의 저주'를 걱정해야 할 상황이다. 미국 내에서 러시아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붙이면 나토와 러시아의 확전과 핵전쟁의 위험을 높인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냉전의 설계자였던 조지 케넌과 헨리 키신저는 물론, 미국 패권을 절대시해온 존 미어샤이어와 스티븐 월트 등 현실주의 정치학자들까지 나서 바이든의 위험한 전쟁에 일제히 경고음을 내고 있다.

 

바이든의 우크라이나 모델은 시진핑의 중국에 던지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미구에 재현될 대만해협 위기를 대비하기 위해 중국 공산당이 또다른 전쟁에 착수한 까닭이다.

김진호 에디터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2022.12.24.

 

 

황당한 통계조작거짓말진짜 사기단은 국힘과 보수언론

공식통계는 민주사회의 정보시스템에 필수 요소를 제공함으로써 정부와 경제, 국민에게 봉사한다.” 2014년 유엔 총회에서 결의된 공식통계 기본원칙의 첫번째 내용이다. 우리나라 통계청도 국가통계의 기본원칙으로 신뢰성과 중립성을 최우선으로 강조한다. 최근 감사원의 통계조작 의혹 조사를 가볍게 볼 수 없는 이유다.

 

문재인 정부는 정책실패를 감추기 위해 소득·고용·주택의 국가통계를 조작했다는 의심을 받는다. 그중에도 소득주도성장(소주성) 정책과 관련한 통계청 가계동향조사가 논란의 핵심이다. 보수언론은 연일 국기 문란’ ‘대국민 사기극이라며 대서특필한다. 국민의힘도 최근 열흘 동안 공식 보도자료와 논평만 10건 이상 쏟아냈다. 반면 조작 의심을 받는 인사들은 터무니없다며 펄쩍 뛴다. 과연 누가 진실을 말하고, 누가 거짓을 말하는 걸까?

 

“20181분기 (가계동향조사에서) 하위 20% 소득이 큰 폭으로 감소했다. (중략) 통계청장이 경질된 이후 통계청은 표본가구 수를 확대하는 등 조사방식을 바꿨다.” <중앙일보>가 지난 21일 쓴 국기 문란 국정 통계조작 의혹, 철저히 규명하라사설의 핵심 부분이다. 통계청이 하위 20% 소득이 8% 줄어들고, 소득분배지표인 5분위 배율(최상위 20%의 소득을 최하위 20% 소득으로 나눈 값)이 악화됐다고 발표한 것은 객관적 사실이다. 하지만 문 정부가 그 때문에 통계청장을 교체하고, 조사방식을 바꿨다는 것은 객관적 사실과 배치된다. 조사방식 개편 방침이 확정된 것은 조사결과가 발표되기 6개월 이전인 2017년 말이기 때문이다.

가계동향조사의 문제점이 지적된 것은 오래된 일이다. 소득 파악의 정확성이 떨어지고 분배지표가 분기별로 들쭉날쭉해 통계의 안정성이 떨어졌다. 박근혜 정부는 2018년부터 지출부문 조사만 남기고, 소득부문 조사는 없애기로 했다. 하지만 2017년 말 국회 논의 과정에서 방향이 급선회했다. 신속한 소득동향 파악을 위해 분기별 소득통계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우세하면서 소득부문 조사를 계속 유지하는 대신 조사방식을 개선하기로 했다. 이미 20181분기 조사 때도 표본가구 수를 5500개에서 8천개로 확대하고, 모집단도 2010년 인구총조사에서 2015년 인구총조사 기반으로 교체하는 등 일부 개편이 이뤄졌다.

 

<조선일보>21일치 의혹 기사에서 문재인 정부 초기 악화됐던 소득분배지표가 통계청장이 경질된 뒤 개선된 것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조작이 있었느냐는 것이다. (중략) 20191분기 5분위 배율이 5.8배로 20181분기(5.95)보다 낮아졌다고 보도했다. <동아일보>, <한국경제> 등도 사설에서 비슷한 의혹을 제기했다. 이 역시 객관적 사실과 배치되는 황당한 주장이다.

 

통계청은 청장 경질 이전인 2018년 초부터 조사방식 개편작업을 진행했다. 하지만 새 방식을 적용한 조사결과는 2년 가까운 준비 과정을 거친 뒤 20201분기부터 발표됐다. 보수언론이 조작 증거로 제시한 20191분기 5분위 배율은 통계의 연속성을 고려해 20181분기와 동일한 방식으로 산출된 것이다. 처음부터 조사방식 개편을 통한 통계조작은 불가능했다.

 

당시 통계청은 조사방식 개편 과정을 수차례 보도·참고자료를 통해 소상히 밝혔다. 국힘과 보수언론이 이를 한번이라도 제대로 읽었다면 엉터리 조작 의혹은 제기하지 못했을 것이다. 국힘과 보수언론이 이런 사실을 모르고 의혹을 제기했다면, 책임 있는 여당과 언론을 자처할 자격이 없다. 만약 알고서도 거짓을 말했다면, 그것이야말로 국민 기만과 국기 문란이다.

 

통계 조사·작성에는 수많은 공무원이 참여한다. 또 개편 작업은 면밀한 과학적 검토를 해서, 최종적으로 통계법에 따라 국가통계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친다. 국힘에서 주도적으로 의혹을 제기하는 유경준 의원은 통계청장 출신이다. 누구보다 이런 사정을 잘 안다고 봐야 한다. 국힘과 보수언론의 황당한 통계조작 의혹 제기를 단순한 실수나 무지의 소치로 보기 힘든 이유다.

 

국힘과 보수언론은 의혹 제기에서 환상의 호흡을 보여준다. 보수언론이 조작 의혹을 보도하면, 국힘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를 기정사실화하며 국민을 속인 빅 브러더 정권등의 현란한 표현을 동원해서 정치공세를 편다. 그러면 다시 보수언론이 사설이나 칼럼으로 이를 뒷받침한다. ·언 유착을 통해 근거도 없이 통계조작 의혹을 부풀려 국민의 눈을 속인다는 합리적 의심을 갖기에 충분하다.

 

문재인 전 정부에 아쉬움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20182월 언론에 “20174분기 조사결과 하위 20%의 소득이 10.1%나 크게 증가하는 등 소득분배가 개선됐다고 적극 홍보했다. 통계 신뢰성이 떨어져 개편을 준비 중이었다는 점에서 경솔했다. 이는 석달 뒤 문재인 정부에 덫으로 작용했다. 그해 520181분기 분배지표가 반대로 악화된 것으로 나오자 보수언론은 일제히 최저임금을 무리하게 올린 데 따른 고용참사’, ‘분배참사라며 맹공을 퍼부었다.

 

국책연구소의 분석 결과 통계청이 표본가구 수를 대폭 늘리는 과정에서 신규 표본 비중이 크게 커지고, 빈곤층이 많은 노인가구와 1인가구의 비율이 대폭 높아져서, 통계적으로 2017년과 2018년을 직접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는 게 드러났다. 통계청이 처음 발표할 때부터 조사방식 변화와 해석상의 유의점을 세심하게 설명했다면 불필요한 혼선을 피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크다.

통계청이 뒤늦게 “2017년과 2018년 통계수치를 직접 비교하는 것은 표본가구 구성의 변화 때문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해명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소주성(최저임금 인상)’ 식으로 문재인 정부의 소주성 정책을 공격하는 데 혈안이 됐던 보수언론에는 좋은 먹잇감이 됐다. 국민의 눈에도 문 정부가 조사결과가 좋으면 홍보하고, 나쁘면 조사방식을 문제삼는다는 오해를 살 수 있었다.

 

경제성장의 과실이 위에서 밑으로 흐르는 낙수효과가 실종된 상황에서 중장기적으로 최저임금 인상은 옳은 정책이다. 하지만 문 정부는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 (취약계층의) 고용과 소득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충분히 감안하지 못했다. 정책 방향은 옳았으나 집행 과정이 미흡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국힘과 보수언론이 통계조작이라는 허구적 프레임을 씌워 마녀사냥식 여론몰이를 하는 것은 어떤 이유라도 정당화될 수 없다. 그들이 주장하는 고용통계 조작 의혹에도 비슷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국힘과 보수언론의 말처럼 정확하고 객관적인 통계 산출은 국가 정책수립의 근간이다. 기업과 가계가 합리적 선택을 하는 데도 기초가 된다. 통계가 왜곡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가와 국민에게로 귀결된다. 불순한 정치적 목적으로 근거도 없이 통계 불신을 조장하는 것은 너무나 위험한 불장난이다. 정진석 국힘 비상대책위원장은 국가통계 조작은 국정농단을 넘어 국정 사기극에 가깝다면서 문 전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했다. 국민에게 사과해야 할 진짜 사기단은 국힘과 보수언론이다.

곽정수 ㅣ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한겨레 2022.12.25

 

 

미국은 4·3의 진실을 직시해야

제주의 비극 4·3사건은 오랫동안 강요된 침묵의 대상이었다. 19473·1절 행사 강제진압과 194843일 소요사태를 거쳐 1954921일 종료될 때까지 제주 양민 3만여명이 경찰, 토벌대, 서북청년단에 의해 무참히 희생당했다. 그러나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기 4·3사건은 공산주의자들의 폭동으로 낙인찍혔고 희생자 유족들은 연좌제라는 족쇄에 묶여 절망 속에서 살아가야 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에야 비로소 사건이 공론화돼 김대중 정부 이래 과거사 진실규명 작업이 진행됐고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 화해도 이뤄졌다. 국회는 4·3특별법을 개정해 희생자 보상 문제도 마무리했다. 전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진실과 화해의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제주도민들에게는 미결의 과제가 있다. 바로 미국의 역할과 책임을 규명하고 그에 따른 상응 조치를 요구하는 일이다. 지난 8일 미국 워싱턴의 초당적 싱크탱크인 우드로윌슨센터는 수미 테리 아시아국장 주도로 제주 4·3사건: 인권과 동맹이라는 주제의 심포지엄을 개최해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뤘다. 워싱턴 싱크탱크의 일반적 관행을 고려하면 매우 이례적인 기획이었다. 성숙해진 한-미 동맹에 대한 자신감이 아니고서는 설명하기 어려운 일이다.

 

심포지엄에서는 4·3사건 피해자 유족 대표들과 제주4·3평화재단 관계자들이 사건의 비극에 관해 생생히 증언했다. 오랜 기간 이 분야에 천착해온 <한겨레> 허호준 기자는 미국 정부 사료를 기초로, 당시 미군정이 한국군과 경찰에 대해 작전관할권을 행사하고 있었고 제주도민을 상대로 한 초토화 작전을 용인했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른바 미국 책임론'에 대한 설득력 있는 근거 제시였다.

 

주목할 것은 미국 쪽 인사들의 반응이다. 4·3 문제를 미국에서 최초로 제기했던 존 메릴 전 국무부 정보조사국 동북아국장은 4·3사건에 대한 미국의 관여가 객관적 사실이며 이에 대한 미국 쪽의 입장 표명이 있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중도 성향의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도 고통스럽지만 4·3의 진실을 직시할 때가 됐다고 지적하면서 이 문제를 계속 제기해나갈 것을 권했다. 보수 성향으로 알려진 이성윤 미국 터프츠대 교수 또한 민주주의, 평화, 자유, 정의라는 가치를 공유하는 한-미 동맹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4·3의 비극에 대해 미 정부가 유감을 표명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다만 그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미묘한 차이가 있었다. 프랭크 자누지 맨스필드재단 이사장은 4·3사건에 대한 미국 대통령의 명시적 사과를 요구하기보다는 제주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개최하고 이를 계기로 미국 대통령이 4·3평화공원을 방문해 추모하는 형식이 더 바람직할 것이라는 견해를 폈다. 더불어 미 의회를 상대로 적극적인 공공외교를 전개하고 미국 시민들을 대상으로 교육 홍보와 미 언론을 통한 공론화 작업 등 점진적인 접근을 전개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한국 일각의 우려와 달리, 4·3사건에 얽힌 미국의 책임 문제를 되짚고 미국 쪽의 사과를 통해 과거사를 극복하는 결단이 한-미 동맹 강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음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특히 미국 쪽 인사들이 정책 노선과 상관없이 광범위한 동의를 표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물론 이런 견해가 미 정부의 공식적인 태도 변화로 당장 이어지기는 어렵겠지만, 성숙한 동맹의 책임 있는 면모를 보여주는 인식 전환의 토대는 마련된 셈이다.

 

심포지엄에서 참석자들은 4·3 같은 비극적인 사건이 재발해서는 안 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이는 한-미 동맹의 미래에도 깊은 함의를 담고 있다. 본래 동맹이란 현실주의의 처방이다. 공동의 적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군사협력체가 동맹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맹의 일차적 목적은 세력 균형을 통해 전략적 안정을 꾀하고, 동시에 공동의 거부 또는 응징 억지력을 행사해 실질적인 또는 잠재적인 적국의 군사 모험주의를 막는 데 있다. 전쟁 발발을 억제하고, 억제가 실패하더라도 승리를 담보하는 것이 동맹의 목적이다. 냉전 구도가 형성되던 시기, 제주도민들의 항쟁을 공산주의자 폭동으로 인식하고 비인도적 진압을 용인한 것 또한 이러한 논리의 연장선이었다고 할 수 있다.

 

언뜻 모순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미 동맹은 이제 평화를 위한 동맹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안보를 위해 전쟁에 대비하는 동맹을 넘어 외교를 통해 무고한 생명의 희생을 예방하고 평화를 만드는 동맹, 그것이야말로 한·미의 가장 보편적인 공유 가치에 부합하는 동맹의 미래가 아닐까. 이는 4·3의 가슴 아픈 교훈이기도 하다.

문정인 | 세종연구소 이사장 한겨레 2022.12.25.

 

적대에 기생하는 대표자들

정치적인 행동이나 동기의 원인으로 여겨지는 특정한 정치적 구별이란 적과 동지의 구별이다.”

나치의 법철학자 카를 슈미트가 내린 정치적인 것의 정의다. 그러면 적이란 누구일까? 슈미트는 적이란 바로 타인, 이방인이며, 그 본질은 특히 강한 의미에서 낯설고 이질적인 존재라는 것으로 족하다고 말한다. 슈미트는 이런 규정이 추상적이거나 은유적인 것이 아니라 구체적이며 실존적인 것이라 강조한다.

 

그렇다면 슈미트는 왜 이렇게 의 존재를 강조한 것일까? 그 이유는 낯설고 이질적인 타인의 존재야말로 국가가 결속을 강화하는 데 그 무엇보다 유용하기 때문이다. 분열하는 국가에서 가장 효과적인 해결책은 외부에 도사리고 있는 이다. 식민지 경험과 분단 모순에 고통받고 있는 우리의 경우, 일본과 북한이 그런 존재다. 외부의 적은 내부의 우리를 서로가 얼마나 진심으로 아끼는지와 아무 관계 없이 친구로 만드는 역할을 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정치적인 것의 본질은 적대라는 슈미트의 규정은 그리 문제로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현실을 잘 반영한 것이란 생각도 든다. 문제는 정치적 적대가 국가 내부에서도 계속 발생한다는 데 있다. 슈미트가 스스로 밝히듯 이 내부의 대립에서 약화하고 기생적이거나 희화화된 존재로까지 타락한 정치의 형태들이 나온다.” 실존의 문제로서 적대결국엔 누가 살아남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슈미트는 적의 존재가 사적이 아니라 언제나 공적이며, 도덕적으로 악할 당위도, 미학적으로 추할 이유도, 경제적으로 해로울 필요도 없다고 말하지만, 정치적인 것이 실존적으로 누가 살아남느냐의 문제라면 현실에서 적은 대개 악하고, 추하며, 해로운 존재일 뿐만 아니라 사적인 원한의 대상으로 취급되기 십상이다. 적대의 정치에서 정치보복이 반복되는 이유다.

 

현재 우리 정치에서 심히 우려스러운 것은 적대의 정치가 일상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식민지 경험과 분단 모순을 동시에 끌어안고 있는 우리의 경우 친일종북프레임에 갇혀 적대적 관계가 지속해서 재생산되고 있으며, 특정 지역을 비하하는 지역주의에까지 스며들었다. 최근에는 젠더 및 세대 갈등까지 공정성을 명분으로 가세하며 더욱 적대가 심화하고 있다. 게다가 논쟁, 갈등, 혐오를 조장할수록 클릭수가 높아지는 디지털 미디어 환경이 이런 적대를 더욱 부추기는 실정이다.

 

무엇보다 심각한 점은 기득권 정치가 이런 적대를 자신의 권력을 다지는 기반으로 활용하길 주저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대통령이 노동자의 파업을 두고 북핵 위협과 마찬가지라는 발언을 주저하지 않는다. 상황이 이러니 국토교통부 장관이 건설노조를 두고 경제에 기생하는 독이라며 서슴지 않고 적대하는 일이 대수롭지 않다. 국가의 경제를 지탱하는 축인 노동악하고’ ‘추하며’ ‘해로운적이 된 셈이다. 이제 말을 듣지 않는 노동은 반드시 제거하겠다는 공개적 선언이 의기양양하게 울려 퍼지고 있다.

 

존 롤스는 슈미트가 내세운 적대 정치에 명확히 반대한 정치철학자였다. 롤스에게 슈미트의 규정은, ‘내부의 적대외부의 적대를 불러들여 무마하는 것에 불과했다. 만약 이런 시도가 실패로 돌아간다면, 슈미트가 인정하듯 내부의 적대가 때로 내전에까지 이르게 된다. 이런 사례는 멀리 있지 않다. 2020년 미국 대선 뒤 트럼프와 그 지지자들이 대선 결과에 불복하며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시위대가 의회에 난입하는 사건이 있었다. 누구도 미국에서 일어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이후 <워싱턴 포스트>를 비롯해 미국에서 내전을 경고하는 언론 기사들이 지금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롤스는 자유롭고 민주적인 사회라면 이익과 가치가 다양할 수밖에 없고, 이런 이유로 극단적 분열이 내재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그렇다면 어떻게 분열이 적대로 이어지는 것을 피하며 갈등을 해결할 수 있을까? 롤스는 적대를 피하며 동료 시민을 설득하는 일을 시민다움의 의무라 부르며, 이 임무를 일반 시민이 아닌 정치 엘리트들에게 부여한다. 모두 알고 있듯, 대표자의 임무가 적대의 조장이 아니라 갈등의 조정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자유롭고 민주적인 사회에서 일반 시민의 결정적 임무는 적대에 기생하는 대표자들을 단호히 거부하는 일이 될 것이다.

관련기사

김만권 | 경희대 학술연구교수·정치철학자 한겨레 2022.12.25.

 

 

가진 자와 강한 자가 더 자유롭다

지난 22일 교육부가 발표한 ‘2022 개정 교육과정에 결국 자유 민주주의용어가 명시됐다. “교육과정심의회는 자문기구이기 때문에 표결 의무가 없으며, 과거 심의회에서도 표결을 진행한 전례가 없다면서 표결조차 거부한 결정이었다. 하지만 117일 반대 수정안이 제출되었고 122일 찬반 표결이 진행된 바 있다. 게다가 이 표결에 참여한 14명의 심의위원 가운데 13명이 자유를 추가하는 표기 방식에 반대했다.

 

수년 전 역사 교과서 논쟁에서 제기되었던 보수 진영의 논리와 윤석열 대통령의 자유 사랑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1987년 제정된 현행 헌법이 자유 민주적 기본 질서를 언급하고 있으므로 역사 교과서에도 자유라는 표현을 넣어야 한다는 것이 이른바 자유 민주주의자들의 주장이었다. 윤 대통령도 자유 민주주의 수호를 언급하면서 정계에 진출했다.

 

정치·경제적으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한 지금 1987년 헌법은 더 이상 적실성이 없어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이 헌법에 규정된 자유 민주적 기본 질서의 의미만 되새겨 보더라도 자유 민주주의자들의 논리는 문제가 적지 않다. 헌법 전문은 조국의 민주 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 민주적 기본 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라고 명시되어 있다. 이때 자유 민주주의는 기본 이념이 아니라 기본 질서일 뿐이다. 자유 민주주의라는 질서를 통해 완수해야 할 사명은 민주 개혁과 평화 통일이며,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할 목표의 하나는 모든 영역에서의 각인의 기회 균등이다. 물론 사회 복지 측면에서 볼 때 기회의 평등결과의 평등으로 보완되어야 할 것이며, 이것 또한 87년 헌법의 개정 이유 중 하나다.

 

이처럼 현행 헌법에서도 자유 민주적 기본 질서는 독재나 전체주의에 반대되는 정치 체제 혹은 정치 질서를 지칭하는 말이다. 이 정치 질서를 통해 모든 분야에서 각인이 행복을 추구할 균등한 기회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귀결되는 조항이 바로 제1장 총강의 제11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라는 규정이다. 대한민국은 자유 민주 공화국이 아니라 민주 공화국인 것이다.

 

민주주의(democracy)의 어원이 인민(demos)과 지배(kratos)의 합성어라는 것은 상식이다. 신분 사회가 아닌 현대 사회에서 이것은 인민의 자치를 의미한다. 그리고 인민의 자치누구도 지배하지 않고 아무도 지배받지 않는조건에서 가능하다. 다시 말해 모든 사람 혹은 각인이 지배받지 않을 자유로운 상태어떠한 개인도 지배할 특권을 갖지 않는 평등한 상태를 전제한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각인의 평등한 자유혹은 자유로운 각인의 평등이다. 민주주의에 이미 각인의 자유와 평등이 포함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굳이 자유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은 평등을 경시하는 것이며, 거꾸로 평등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은 자유를 경시하는 결과가 된다. 심지어 극단적 자유주의자들은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설정해 민주주의라는 정치 질서를 자유 보장의 수단이라고까지 주장한다.

 

극과 극은 통한다고 했다. 자유를 희생해 평등을 추구하는 북한 같은 경우는 인민 민주주의를 외친다. 실상은 평등을 새로운 권력 수단으로 사용한다.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에 빗대어 표현하자면, ‘모든 인민은 평등하다. 관료와 당원은 더 평등하다라고 할 수 있다. 굳이 자유를 강조하는 사람들도 자유를 권력의 수단으로 이용한다. ‘모든 국민은 자유롭다. 가진 자와 강한 자는 더 자유롭다.’

 

2020년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은 신임 검사 신고식에서 자유 민주주의는 평등을 무시하고 자유만 중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민주주의라는 허울을 쓰고 있는 독재와 전체주의를 배격하는 진짜 민주주의를 말하는 것입니다라고 주장했다. 적어도 이때는 민주주의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2021년 대선 출마 선언에서는 민주주의는 자유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규정했고, 올해 1213일 국무회의에서는 자유를 제거하려는 사람들, 거짓 선동과 협박을 일삼는 세력과는 함께할 수 없습니다라고 선언했다.

 

백년대계 교육과정에 자유 민주주의가 표결 절차 없이 강행된 이유를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표결도 무시하고 최고 권력자의 의도를 반영하는 것이 과연 자유 민주적 기본 질서에 부합하는 것인가. 비민주적 수단을 통해서라도 가진 자와 강한 자의 자유를 지키려 한다고 보면 비논리적인 판단인가.

정병기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2022.12.26.

 

 

전투냐, 죽음이냐

26년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성별 임금격차 1위인 나라에서 더 이상의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운운했을 때 눈 밝은 사람들은 이미 알아챘으리라. 무슨 특대형 부조리라도 찾아낸 양, 대선 유세 기간 툭하면 최저임금을 200만원으로 잡으면 150만원, 170만원 받고 일하겠다는 사람은 일을 못 해야 합니까?”라고 외쳤을 때 말이다. 조금 둔한 사람들도 알아챘을 것이다. “52시간이 아니라 일주일에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이후에 마음껏 쉴 수 있어야 한다고 했을 때면, 제아무리 확증 편향에 빠졌던 사람일지라도 노동자들이 맞닥뜨릴 재앙을 부정할 수 없었을 것이다.

 

뚜껑을 열어 보니 역시나 상상 이상이다. 윤석열 정부는 화물연대 노동자들의 2차 파업을 깨뜨리며 자신감이 충천한 모양이다. 저들 딴에는 드디어 성공 방정식을 찾아낸 걸까? 대중의 노조 혐오 정서를 십분 활용해 파업에 나선 노조를 무조건 귀족노조로 매도한다. 화물노동자들이 전체 노동자 평균 시급(19806)에 못 미치는 시급(13천원)을 받으며 하루 12시간 일한다는 진짜 사정은 중요치 않다. 오로지 보수 지지층을 결집시키면 그만이다. 이로써 정권 지지율이 오르면 자본가 양당의 하나인 더불어민주당은 동요할 수밖에 없고, 정국 주도권은 우리가 쥐게 된다!

 

여세를 몰아 어처구니없는 노동개악이 시도된다. 연장근로 한도 단위를 1주에서 월·분기·반기·연 단위로 개편해 주 80시간이 넘는 노동시간을 합법화하겠단다. 19세기 영국 자본가들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 공장법은 너무 가혹했다며 억울함을 토로할 판이다. 영국 자본가들이 공장법 확대 시행을 반대했던 핵심 논리는 산업과 업무 특성상 노동시간의 유연화가 불가피하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검사 시절 조직폭력배를 일망타진하던 기백으로 노조 부패는 3대 부패라며 기염을 토한다. 국가가 법적 근거도 없이 노동자들의 자주적 결사체인 노조의 재정·회계를 들여다보겠다고? 입만 열면 법과 원칙을 들먹이더니만, 노동 3권은 본질적으로 국가공권력에 대해 근로자의 단결권 방어를 일차적인 목표로 하는 자유권적 기본권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헌법재판소 1998. 2. 27. 선고 94헌바13·26, 95헌바44 병합)은 똥 친 막대기 취급이다. 그렇게 노조 재정이 궁금하면 맘에 드는 노조에 직접 가입해 조합원으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유감없이 만끽하면 될 일을!

 

윤석열 정부의 최근 행보는 역설적으로 오늘날 자본주의가 맞닥뜨린 위기가 얼마나 깊고 넓은지를 드러낸다. 단일한 국제질서 속에서, 자본은 몸집을 불리고, 노동조합은 적당히 투쟁하면 때맞춰 임금이 오르던 좋은 시절의 자본주의는 끝났다. 물론 망해 가는 자본주의에서도 마지막까지 자본과 어깨동무를 하고 떡고물을 나눠 먹는 노동자 집단이 존재하겠지만 그 규모는 훨씬 줄어들고 사회적 고립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미 노동조합 바깥의 노동자들, 불안정·여성 노동자들에게 자본주의란 장밋빛 내일을 꿈꿀 수 없는 체제다. 부모 세대보다 자식 세대가 못 사는 게 당연해진 시대 아닌가.

 

마르크스가 예견한 장기적 이윤율 저하 경향이 실제로 관철된 현재,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천문학적인 양적완화로 위기를 유예했던 자본주의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고 있다. 모두가 심대한 경제위기를 예고한다. 물론 자본에게도 활로는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예고하듯이, 제국주의 강대국 사이 패권 전쟁이 위기 해소의 한 방편이 될 것이다. 더 일반적으로는 세계 노동자계급이 오랜 투쟁으로 쟁취한 노동권을 분쇄하고 착취도를 강화하는 길이 있다. 이윤생산 체제인 자본주의의 생명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오직 야만으로 회귀하는 선택지만 남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윤석열 정부의 최근 행보를 일국적인 특수한 현상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인물난에 시달리던 자본가 양 당 중 하나가 술 좋아하는 검사 아재 하나를 아마추어 대통령으로 옹립해서 벌어진 사달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차별과 혐오, 분할과 배제의 논리로 무장한 극우 정치 강화는 전 세계적 현상이다. 미 국회의사당 난입 사태를 일으켰던 미국의 트럼프를 필두로, 브라질·프랑스·스웨덴 등에서 극우가 득세하더니 지난 10월 이탈리아에서는 무솔리니 이후 100년 만에 극우 총리가 탄생했다. 이주민이, 여성이, 성소수자가 이들의 희생양이다. 한국에서는 조직노동자 운동이 희생자 명단에 추가됐을 뿐이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제 조직노동자 운동 앞에는 두 가지 갈림길이 놓여 있다. 전체 노동자를 대변하며 자본에 맞서 결연히 싸울 것이냐, 아니면 굴복해 야만으로 회귀할 것이냐 하는 길이다. “사회의 모든 전반적 개조의 전야에는 사회과학 최후의 말은 항상 다음과 같을 것이다. 전투냐 죽음이냐 : 피에 얼룩진 투쟁이냐 멸망이냐. 문제는 그렇게 엄정하게 제기된다.”(마르크스가 <철학의 빈곤>에서 인용한 소설 내용)

 

어느 거대 산별노조의 선출직 지역본부장 한 명은 활동비를 받던 임기가 끝나자 노조에 퇴직금을 요구했단다. 노조에서 이를 거절하자 퇴직금 지급 청구소송을 마다하지 않았다고. 이런 한가한 관료들이 아니라 투쟁의 정신으로 무장한 진짜배기 노동자 투사가 절실히 필요한 시대다. 노동자들에게는 분명히 세상을 바로잡을 거대한 잠재력이 있다. 누가 뭐래도 노동이 없으면 법과 원칙을 들먹일 세상도 없는 법이니까!

김요한 공인노무사(노무법인 노동을잇다 부설 노동해방역사연구소)매일노동뉴스 2022.12.27.

 

 

다수를 위한 임금체계

1. 윤석열 정부의 노동개혁 추진 방향이 발표됐다. 이달 12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정부에 입법적·행정적 조치에 조속히 착수해줄 것을 권고하는 형식이었다. 권고문 내용은 지난 6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했던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향에 따라서 작성한 것이 분명하다고 여길 정도였다. 노동부가 노동법 등 노동 관련 전문가들로 구성했다는 연구회는 정권이 추진하고자 하는 방향에 부합하게 연구해서 권고문으로 노동정책에 관한 개혁 과제들을 밝혀 놓았다. 사실 권고문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도, 나는 어떤 내용을 권고했을지 짐작이 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서 했던 공약과 취임 이후 해 왔던 말들, 그가 임명한 노동부 장관이 해 왔던 일들을 통해서 어떠한 것들을 노동개혁이라는 말로 추진할지 파악이 됐다. 연구회를 조직한 것도 그 일환이었다. 그러니 이번에 연구회의 권고문도 뻔했다. 권력이 조직한 어용연구단체에서 내놓는 방안은 그러했다. 이 나라에서 노동부가 조직한 노동정책 연구단체에서 내놓았던 연구 결과는 그러했으니 말이다. 이번 권고문에서 개혁과제로 우선적으로 추진을 권고하고 있는 것은, 근로시간과 임금체계에 관해서다. 이 중 커다란 논란이 되고 있는 근로시간에 관해서는 지난 칼럼에서 살폈다. 이번에는 임금체계를 보자. 권고문에서 연구회는 “‘지금 이대로는 안 된다는 위기의식과 근본적인 혁신이 필요하다는 절박함으로, 노동시장의 주체로서 노사 모두가 개혁 과정에 적극 동참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니 과연 우리 노동자들이 적극 동참할 만한 임금체계 개혁인지 살펴봐야겠다.

 

2. 권고문에서 개혁해야 할 임금체계는 연공형 임금체계다. “우리나라의 많은 기업들은 해가 바뀌면 자동으로 임금이 올라가는 호봉제를 주요 임금결정 방식으로 활용하는데, “100명 이상 사업체의 약 55.5%, 300명 이상 60.1%, 1천명 이상 70.3%이러한 임금체계를 갖고 있다고 연구회는 밝혔다. 이로 인해서 임금의 하방경직성을 확대해 기업의 신규채용 기회를 제약하고, “중고령 근로자들의 고용유지를 위해서도 부정적이며, 남녀 간 임금격차를 초래하는 원인이며, “규모가 크고 노동조합이 있는 기업과 금융 및 공공부문에서 특히 활용도가 높지만 대부분의 중소기업에는 임금체계가 존재하지 않으며 종사자 다수에게 최저임금이 적용된다고 연구회는 강조했다. 연구회는 연공의 안정적 누적이 가능한 계층에게 배타적으로 유리해서 유노조 대기업 사업장에 종사하는 정규직 남성의 임금이 높은 반면 연공을 유지하기 어려운 계층 즉, 비정규직·중소기업·여성 등의 경우에는 그렇지 못하고, “MZ세대에게도 불공정하며, “중고령 근로자들의 고용불안을 초래하는 원인이 된다며, “평생직장 개념이 점차 소멸하는 환경에서 대기업·중소기업, 정규직·비정규직, 남성·여성, 중장년·청년 구분 없이 모든 국민이 상생하는 노동시장 구축을 위해 근속연수를 기준으로 하는연공형 임금체계는 개혁할 대상이라고 말했다. 한 마디로, 연공형 임금체계는 시대에 뒤떨어진 불공정한 임금제도라는 것이다.

 

연구회가 위와 같이 연공형 임금체계의 문제에 관해서 말하고 있는 것들을 곰곰이 읽어 보자. 임금제도로서 이러한 연공형 체계를 적용받는 노동자들이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보다 안정적이고 높은 수준으로 임금을 보장받고 있다. 권고문에서 연구회는 이렇게 전제하고 있다. 노조 있는 대기업 사업장 노동자들이 이러한 연공형 임금체계를 적용받아 안정적이고 높은 수준의 임금을 지급받고 있다는 것이고, 그렇지 않은 노동자들은 연공형 임금체계를 적용받고 있지 않아 불안정적이고 낮은 수준의 임금을 지급받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노조 없는 대기업 사업장 노동자들과 노조 있는 중소기업 사업장 노동자들의 경우는 어떠한지는 말이 없다. 따라서 노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인지, 아니면 사업장 규모 때문에 그렇다는 것인지 분명하게 말하고 있지 않다. 그저 노조 있는 대기업 사업장 노동자의 연공형 임금체계가 문제라고 말하고 있는 게 전부다. 그래서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노조가 임금·단체협상을 통해서 보다 우월한 임금제도를 확보한 것이 문제라는 것인지, 경영상태가 나은 사업장이라서 보다 많은 수준으로 지급했던 것이 문제라는 것인지 나는 모르겠다.

 

연공형 임금체계가 그 노동자에게 보다 안정적이고 높은 수준으로 임금 수준을 보장한다고 해서 나쁘다할 수 없다. 아니 노동자에게는 좋다할 수 있다. 사실 이렇게 연공형 임금체계를 적용받는 노동자에게 좋은 것이기에, 연구회는 그렇지 않은 노동자로 중소기업·비정규직·여성·저연령 노동자를 내세워 비판하는 것이겠다. 분명히 하자. 연공형 임금체계가 노동자에게 나쁘다는 것인가. 권고문에서는 위와 같이 연공형 임금체계를 적용받게 되면 그 노동자는 보다 안정적이고 높은 수준의 임금을 보장받게 된다고 전제하고 있으니 당신은 나쁘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연공형 임금체계가 문제가 아니다. 연공형 임금체계를 적용받지 못하는 노동자의 임금이 문제인 것이다. 이에 대해서 연구회는 연공형 임금체계가 원인이라며 개혁할 대상이라고, 즉 없애야 한다고 윤석열 정부에 권고했다. 중소기업·비정규직·여성·저연령 노동자가 안정적이고 높은 수준의 임금을 지급받는 연공형 임금체계를 적용받아야 한다고 권고하지 않고, 노조 있는 대기업 노동자에게 안정적이고 높은 수준의 임금을 보장하는 임금제도를 없애야 한다고 권고한 것이니 당신들은 노동자의 열악한 처우는 다른 노동자가 우월한 처우를 보장받고 있는 탓이라고 보는 것인가.

 

임금은 노동자의 권리다. 근로계약관계에서 노동자는 사용자에게 노무를 제공한 대가로 임금을 지급받는다. 근로계약상 임금은 사용자와 협상과 교섭, 심지어 투쟁해서 확보하는 노동자의 권리인 것이지 다른 노동자의 것을 빼앗아 확보하는 권리는 아니다. 그런데 권고문에서 연구회는 다른 노동자의 몫이 크다고 말하면서 그걸 탓하며 그렇게 커다랗게 정하는 제도가 잘못이라고 개혁해야 할 대상이라고 말하고 있으니, 노동자 권리 향상을 위한 노사관계의 기본적인 인식도 갖고 있지 못하는 것인가. 높은 수준의 권리가 보장된 노동자들과 그렇지 못한 노동자들이 존재하는 나라에서 노동개혁의 과제는 높은 수준을 보장받는 노동자들의 권리를 삭감하는 데 있지 않다. 그렇지 못한 노동자들의 권리를 높이는 데 있어야 하고, 이는 사용자를 상대로 해야 하는 것이지, 그 사용자로부터 보다 우월한 권리를 보장받고 있는 다른 노동자를 상대로 해야 하는 것일 순 없다. 물론 하나의 노동조합 내에서 조합원들 사이에, 사용자를 상대로 해서 보다 많은 조합원들이 높은 수준의 권리를 확보할 방법을 찾는 차원에서 임금체계에 관한 요구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하후상박 등 논의가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노동자 권리 향상을 위한 노동정책을 마련해야 할 연구단체와 정부가 그러한 논의를 쫓을 수는 없는 일이다.

 

3. 연구회는 위와 같이 연공형 임금체계가 문제라고 하고 있으니, 권고문에서는 이를 개선하는 것들을 임금체계 개혁과제로 밝히고 있다. , 연공형 임금체계를 직무·성과 중심의 공정한 임금체계로 개편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임금체계 개편을 위한 취업규칙 변경 동의 주체의 명확화, ‘임금체계 컨설팅·인사관리 담당인력 지원·구축·평가등의 중소기업 임금체계 구축 지원, 이중구조 개선을 위한 새로운 사회적 대화 모델(: 조선업 상생협의체)을 확산, ‘상생임금위원회를 설치 및 운영, 직무 중심의 인사관리를 위한 통합형 임금정보시스템구축 등을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들도 연공형 임금체계를 직무·성과 중심의 임금체계로 개편하기 위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권고문에서 연구회는 개인의 직무·능력과 연계되지 않는 임금체계는 근로자의 직무몰입과 업무성과 향상, 인적자원개발을 위한 동기를 유인하기 어렵다면서 모든 국민이 상생하는 노동시장 구축을 위해 근속연수를 기준으로 하는 인사·임금 관리체계는 혁신이 불가피하다고 그 취지를 말했다. 하지만 이는 직무·성과 임금체계를 통해서 성과주의를 강조해서 노동자의 노동강도 강화 및 업무성과 향상 등을 도모하겠다고 임금체계 개편에 관한 윤석열 정권의 노동개혁 방향을 밝힌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권고문을 읽고 보니 전혀 새롭지 않다. 20년 전에도, 10년 전에도, 5년 전에도 나왔던 노동개혁 방안이니 말이다. 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도, 심지어 노동존중 사회 실현을 약속했던 문재인 정권에서도 연공형 임금제도가 문제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직무·성과주의 임금제도를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논의하거나 추진했으니 말이다. 노동개혁은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를 위한 개혁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사용자를 위한 것을 노동개혁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이번 권고문의 내용을 읽어 보면 사용자를 위해서 노동시장을 개혁하는 것이지, 노동자를 위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진정으로 중소기업·비정규직·여성·고령자·청년 노동자의 임금권리를 보장하고자 한다면, 그들이 보다 안정적이고, 높은 수준의 임금을 보장받도록 하는 개혁 과제가 나와야 했다. 하지만 직무·성과주의로 연공형 임금제도를 개편하는 것 말고 아무것도 없다. 이 나라에서 직무·성과주의 임금제도는 오랜 기간 이 나라에서 사용자 자본이 주창해 왔던 것이다. 연공급제로 고령의 장기근속 노동자의 임금 수준이 높아지는 것이 부담스러운 사용자들이 노동시장 구조개혁의 과제로 내세워 왔던 것이다. 한마디로 인건비 부담을 덜겠다는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연구회가 권고문에서 대기업·중소기업, 정규직·비정규직, 남성·여성, 중장년·청년 구분 없이모두를 위한 것이라고 강조하더라도, 그것은 노동자 모두를 위한 것이 아니다. 사용자들을 위한 것일 뿐이다. 임금체계 개혁과제는 노동자를 위한 개혁일 수 없다.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매일노동뉴스 2022.12.27.

 

광기의 사회대한민국

요즈음의 한국 사회를 규정하라면 뭐라고 해야 할까? 나는 단연코 반지성의 사회’ ‘증오의 사회라고 부르고 싶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 지성적 논의, 합리적 논쟁이 사라져 버렸다. 대신한 것은 누구 편, 어느 진영이냐는 편 가르기와 진영논리다. 비극적이지만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힘은 더 이상 지성이 아니라 진영논리에 의한 증오다.” 내가 10년 전 이 지면에 썼던 반지성·증오사회’(201363)의 일부이다. 이 글은 이제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반지성과 증오가 약화되어 이를 벗어났기 때문인가? 아니다. 반지성과 증오가 광기의 수준에 이른 광기의 사회에 달했기 때문이다. ‘광기의 사회’, 2022년 말 우리 모습이다.

 

아무리 윤석열 대통령이 잘못하고 있고 밉다 하더라도, 세상이 미치지 않고서야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성직자가 대통령 전용기가 추락하기를 빌며 국민들이 이 염원에 함께하기를 호소할 수 있단 말인가? 다른 성직자의 경우 대통령 전용기에 탄 많은 무고한 생명들을 고려해 전용기에서 윤 대통령 부부만 추락하는 것을 비는 인도주의배려를 보여줬다. 충격적인 것은 누리꾼들의 문제제기에 대해 그가 보인 반응이다. 그는 비판에 반사로 답했다. 한마디로, 자기성찰이란 찾아볼 수 없는 확신범으로, ‘반사에서 하늘이 내려준 사명감에 충만해 화형에 처할 이단과 마녀를 쫓던 중세 종교심판관들의 잘못된 정의감과 광기를 본다. 더 무서운 것은 일반 지지자들도 정치인 등이 조금만 자기성찰을 요구하거나 자기들과 다른 입장을 보이면 좌표찍기와 문자폭탄이라는 광기에 가까운 사이버테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냉전적 보수진영도 매한가지다. 한 예가 문재인 전 대통령이 김일성주의자로 총살감이라는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의 발언이다. 수많은 국민들의 지지로 당선되어 5년간 대한민국을 이끌었고 세계 정상들을 만나 우리나라를 대표해온 문 전 대통령이 총살감인 김일성주의자라고 주장한다면, 정상적인 상태라고 할 수 없다. 충격적인 것은 문 전 대통령이 김일성주의자라고 주장하는 이유이다. 문 전 대통령이 가장 존경하는 한국의 사상가는 신영복이라고 공개적으로 말했기 때문에 김일성주의자라는 것이다. 물론 고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가 1960년대 북한으로부터 직접 지령을 받은 통일혁명당(통혁당)과 연루되어 사형선고를 받았고 젊은 시절 사회주의자혁명을 꿈꾼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신영복은 통혁당 주범들과 다른 조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을 북한을 다녀왔다는 등 황당한 혐의를 씌워 엮은 것일 뿐, 통혁당원도, 김일성주의자도 아니었다. 게다가 전향각서를 썼을 뿐 아니라 오랜 감옥 생활에서 깊은 사색을 거쳐 휴머니스트로 우리 앞에 나타난 신영복을 존경하는 것이 총살감인 김일성주의자라니, 매카시즘의 광기와 비슷하다. 그뿐 아니다. 국정감사장에서까지도 문 전 대통령이 김일성주의자라는 생각에 변화가 없다는 그를 다른 자리도 아니고 노동문제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하는 경제사회노동위원장 임명을 강행한 것은 윤석열 정부가 미쳐 돌아가고 있다는 이야기에 다름 아니다. 이태원 참사도, 젊은 자녀 등을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유가족들에게 나라 구하다 죽었냐, 자식팔이 장사한다는 소리 나온다는 등 악담이나 퍼부으니 정상이 아니다.

 

특히 우려되는 것은 정치권, 나아가 성직자, 지식인 같은 사회지도층들이 이 같은 광기를 제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양극화와 증오와 광기의 정치에 앞장서고 있다는 점이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고 상업주의와 선정주의가 지배하는 SNS와 유튜브, 팬덤정치의 시대에 이 같은 광기에 편승하는 것이 자기 진영의 지지를 얻고 진영의 결속에 도움을 주며 상업적으로도 성공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사회지도층만은 달라야 한다. 더 늦기 전에, 사회지도층이라도 스스로를 돌아보고 적대진영에 대해서도 무조건의 증오 대신에 합리적인 논쟁과 절제를 실천하는 한편 이 같은 것들을 우리 사회에, 특히 자기 진영에 주문해야 한다. 내로남불을 벗어나 상대방에 대한 비판의 100분의 1이라도 자기성찰에 쓰라고 설득해야 한다. 갈등은 사회발전을 위해 필요하지만, 지금 같은 저질의, 선정적, 파괴적 갈등, 그것도 큰 차이도 없는 세력 간의 지엽적 문제들을 둘러싼 사생결단식 갈등은 백해무익하다. 새해에는 누군가 광기의 질주, ‘총만 들지 않은 사실상의 내전에 제동을 걸어줘야 한다.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정치학 경향 2022.12.27.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그리고 자유담론

벌써 25년여 전으로 기억된다. 김대중 대통령의 자택 앞 당선 일성이 바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론이었다. 우리 정치학도들로서는 왠지 수업 시간에 다루던 이론을 현실에서 직면한 느낌이어서 감탄과 의아함이 교차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당시 외환위기를 맞이한 한국은 민주주의를 희생해서라도 경제를 회생시키는 것이 필요하다는 관성에 난감해하고 있을 때였다. 지금도 박정희 모델을 찬양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으니 당시에는 어떠했겠는지 생각해보면 그 분위기를 쉽게 짐작할 만하다. 일부 엘리트들은 잘살기 위해서는 민주주의라는 사치품쯤은 후일 찾아도 된다는 생각에 젖어 있었고, 냉전기 정치학자들이 근대화론즉 민주주의가 경제발전에 자동적으로 따라오는 전리품이라고 설명한 맥락도 모른 채 오로지 선경제론을 주장하는 아류 이론들도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발전국가모델의 모범국 중의 하나인 대한민국호는 글로벌 충격에 대처할 준비가 충분하지 않았고, 아시아 최강의 제조업 기지를 구축해가고 있던 한국이었지만 몰려오는 외환위기 앞에 구제금융 신청이라는 굴욕적 사태에 직면했다. 외환위기의 책임을 지고 스스로 물러나도 시원찮을 집권당은 얼굴만 갈아 끼운 선거 운동으로도 재집권 운동의 기세를 올렸다.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해서 민주주의는 잠깐 미뤄도 되는 것이고 노동 운동과 같은 민중 진영의 요구는 반경제적이라는 주장이 다시 세를 얻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외환위기 당시의 집권당이 외환위기 극복의 주역으로 나서겠다는 뜻이었지만 지지 세력은 급속히 재결집하였다. 결과는 김대중 후보가 보수 후보와의 연대를 통해 가까스로 당선될 지경이었다. 39만표 차이. 그 격렬했던 선거전은 사실상 경제발전과 민주주의 실현의 우선순위를 둘러싼 전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성싶다.

 

물론 분단 한국이 북한이라는 성질 사나운 라이벌을 앞에 두고 있는 한, 안보 비용 문제를 둘러싼 대안들이 후순위 어젠다가 될 수 없다. 민주주의와 경제발전 문제만을 의제화하기에는 대북 안보나 한·미 동맹에 대한 해법을 둘러싼 다양한 정책 조합에 대한 논란을 외면하기 어렵다. 이와 관련해 냉전기 한국은 미국에 대한 동맹 편승을 통해 안보 비용 문제를 해결하는 손쉬운 경로를 걸어왔고, 그 대가로 한국의 민주주의는 북한을 주적으로 하는 고색창연한 자유로 채색되어 왔다. 김대중 대통령과 같은 민주주의자가 정치 인생 내내 빨갱이라는 낙인을 벗기 위해 어렵게 투쟁해 온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다. 백낙청 선생과 같은 분이 한국의 발전국가가 남북의 기득권 세력이 이해관계로 얽혀 공생·대치하고 있는 대쌍동학을 해결할 의사도 능력도 없다고 비판하는 분단체제론을 제기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1998년 김대중 정부의 집권 이후 분단 안보(평화) 문제에 대한 포괄적 해결 방식이 곧 민주주의를 열어가는 대안이요, 민주주의를 지키는 가운데 경제 시스템의 왜곡과 주름을 풀어갈 때 경제개혁 또한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라는 김대중식 해법이 굳게 자리한 것은 냉전기 역사에 비추어보면 획기적인 대사변이었다. 단언컨대 그 이후 여나 야를 막론하고 포괄적 안보(평화)와 민주주의, 경제발전의 31체라는 복합 해법을 부인하는 대안은 없다.

 

현 대통령의 자유론도 그 점에서 큰 차이는 없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대통령께서 자유를 강조할 때마다 1980년대 헌법 해설서를 읽는 느낌이 되살아나는 건 왜일까? 지난 40년 사이 자유의 의미는 진화해 국가로부터의 자유인 해방의 제례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대통령께서 예의 그 강렬한 눈빛으로 자유를 설파할 때 알 수 없는 공포와 불안을 느끼게 되는 건 왜일까? 대통령께서 남북관계를 언급할 때, 당신의 언론관을 드러낼 때, 그리고 경기 침체를 논할 때, 한결같이 애국주의 국가관과 위기론이 떠오르며, 그 위기 극복과정이 국가의 자유와 소외 계층의 아우성으로 점철될 것 같은 느낌은 기우이길 바란다.

 

자유가 대통령 스스로 내건 모토라면 공정은 유권자가 대통령 후보자에게 붙인 구호이다. 자유가 땅에서 발을 떼고도 유효할 수 있는 구호라면 공정은 흙수저 민생을 동전의 양면으로 하는 분배의 철학이다. 자유의 주창자이신 대통령이지만 민생이 무엇을 원하는지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이다. 끝으로 복권 없는 사면이라는 이상한 카드로 한 정치인의 자유를 흠집 내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소망도 덧붙인다.

이정철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경향 2022.12.27.

 

 

법 앞에 평등하다는 헛소리

이명박씨가 사면됐다. 사법부가 확정한 이명박씨 범죄사실 중 하나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지위에서 100억원이 넘는 뇌물을 받았다는 것이다. 파렴치범이자 세계적 망신이다. 대한민국은 공무원의 뇌물죄를 엄하게 처벌하고 있다. 특정범죄가중처벌법에 따라 1억원 이상 뇌물은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공무원이 100억원을 훨씬 넘는 뇌물을 받고 징역 17년을 선고받았는데, 2년 살고 끝나는 경우는 없다. 전직 대통령 말고는.

 

대통령실과 여권은 국민통합을 이야기한다. 사면 때마다 늘 나오는 명분이고, 늘 납득하기 어렵다. 뇌물 받아 자기 배 불린 고위공직자 죄를 면해주는 것이 누구와 누구의 통합에 도움이 되나? 죄인에 대한 법원의 유죄 판결이 사회를 분열시킨단 말인가? 국민의 선택을 받은 대표자는 특별하다는 주장도 있다. 주장 자체도 설득력이 없지만, 이번 사면에는 선출직이 아닌 원세훈, 남재준 전 국가정보원장 등도 포함됐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사면권이란 그 권력을 행사하는 정치권에 속했거나 가까운 사람들이 향유하는 특권일 뿐이다. 정치권에 강력한 로비를 할 수 있는 경제계 인사 역시 그 특권을 알뜰하게 나눈다.

 

이명박 사면에 야권이 비판하는 듯 보이지만, 사면만큼 정치권이 한목소리인 사안도 많지 않다.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정권까지 그 어떤 정권도 사면권 행사를 자제하거나 공정한 기준을 세우지 않았다. “‘국민대화합’, ‘경제 살리기등 그럴싸한 명분으로 비리를 저지른 정치인·기업인들에 대한 사면·복권”, “대통령의 측근이나 정권창출의 공신을 슬쩍 집어넣고, 야당 정치인도 적당히 끼워넣음으로써 물타기를 하는 것”. 노무현 정부 말인 2007년 한 신문의 사설이다. 오늘치 사설이래도 손색없다.

 

사면권은 대통령의 신성불가침 권한처럼 여겨지지만 그렇지 않다. 헌법 제791항은 대통령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사면·감형 또는 복권을 명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 법률로써 사면의 원칙과 한계를 정할 수 있다. 그러나 법률을 만드는 정치권이 자신들이 누리는 특권을 스스로 제한했을 리 만무하다. 사면법은 1948년 정부조직법 다음으로 만들어진 대한민국 제2호 법률이다. 그 이후 2007년에서야 첫번째 개정이 이뤄졌다. 헌정사상 가장 오랜 시간 개정되지 않은 법률이 사면법이다. 그만큼 가장 통제받지 않은 권한이 대통령의 사면권이었다.

 

이제는 한 단계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대선 때마다 후보들은 사면권 행사 자제를 공약한다. 사면권 통제가 필요하다는 여론도 충분하다. 여소야대 국면에서 야권이 사면권을 남용하는 현 대통령을 견제하겠다는 명분을 가지고 과감한 제도 개선을 기대할 수도 있는 국면이다.

사면법 개정 방안에 관해 여러 논의가 있다. 뇌물죄 등 특정 범죄는 사면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법, 사면 절차에서 사법부나 피해자의 의견을 듣는 방법 등이다. 필자는 두가지 방향을 특별히 주장하고자 한다.

 

첫번째는 사면 대상을 최저 형기 경과자로 제한하는 것이다. 형기의 반, 최소한 3분의 1은 복역해야 사면 대상에 포함될 수 있어야 한다. 사면은 사법부가 내린 결정의 효력을 행정부가 일방적으로 변경하는 것이다. 당연히 권력분립의 원칙, 법 앞의 평등 원칙과 대립한다. 이 헌법적 긴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안은 일정한 처벌을 보장하는 것이다. 사면을 성문헌법에 최초로 규정한 미국의 경우 형기가 종료한 이들을 사면 대상으로 하는 문화가 정착됐다.

 

두번째는 2007년 도입된 사면심사위원회의 실질화다. 사면심사위원회를 법무부 산하가 아닌 독립적 위원회로 격상하고, 절반 이상이 대법원·국회 추천 등 외부위원들로 구성된 위원회의 의결을 거친 이들만 사면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 헌법은 일반사면은 국회 동의를 요건으로 뒀지만, 특별사면은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않았다. 바로 이 공백을 이용해 수십만명, 수백만명 규모 특별사면이 남용돼왔다. 일반사면을 국회가 통제하듯이 특별사면 역시 독립기구를 통해 제한돼야 한다.

 

한때 군주의 대권으로 명명되던 사면권의 축소, 제한은 세계적 추세다. 위 두가지 원칙이 입법된다면 사면권 행사는 자연스럽게 엄격한 기준 아래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이는 헌정사의 중요한 발전이 될 것이다.

임재성 | 변호사·사회학자 한겨레 2022.12.27.

 

 

노조 회계공시? 대통령의 천박한 노동 인식이 문제다

노동문제 '무식' 드러낸 대통령

노동문제(Labour Questions)에 대한 지식 수준을 확인할 수 있는 질문이 있다. "노사관계에서 노는 무엇이고 사는 무엇이냐"는 질문이다. 노사관계에 무식한 사람들은 노는 노동자요 사는 회사(기업)라 답한다. 노사관계를 '노동자와 회사' 혹은 '노동조합과 회사'가 맺는 관계로 보는 것이다.

 

하지만 노사관계에서 사는 회사나 기업을 뜻하는 '모일 '가 아니다. 노동자를 사용하는 사람, 즉 사용자를 뜻하는 '부릴 使'. 따라서 노사관계는 '노동자와 사용자'의 관계 혹은 '노동조합과 사용자단체'의 관계를 뜻한다.

 

노사관계에서 사는 '사용자'

'사람 대 사람'의 관계가 노사관계다. '사람 대 회사'의 관계가 아닌 것이다. 가족관계가 사람과 사람의 관계지 사람과 집의 관계가 아닌 것과 같다. 살아 있는 사람과 죽은 사물인 회사가 관계를 맺을 순 없다. 이는 가족관계가 사람과 건물()과의 관계라고 하는 것만큼이나 난센스다.

 

노사가 대립적인 관계라고 할 때 이는 노동자/노조가 회사와 대립한다는 말이 아니라 노동자/노조와 사용자가 대립한다는 말이다. 노동자와 사용자의 대립은 불가피하다. 권리와 이익에서 충돌하기 때문이다. 노동자 권리가 강화되는 걸 원하는 사용자는 어디에도 없다. 노동자 권리 확대는 사용자 권리 축소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노동자 이익이 개선되는 걸 원하는 사용자도 없다. 권리에서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사용자 이익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많은 이론가들이 노동자와 사용자의 권리와 이익이 같다는 이론을 만들려 애썼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환상이 현실을 대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노사관계를 노자관계라 부르기도 한다. 노동자와 자본가의 관계라는 말 속에 사람과 사람의 관계로서 노사관계의 본질이 더욱 또렷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의 결합체인 회사

현대 자본주의 경제에서 회사는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이 결합된 공적 조직의 성격을 띤다. 기업 내부로는 소유자·주주·경영자·관리자·노동자 등이 있고, 기업 외부로는 소비자·하청업체·지역사회·정부 등이 있다. 안팎의 다양한 이해당사자들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제 기능을 못할 경우 기업은 문제에 봉착하고 위기를 겪게 된다.

 

복잡다기한 현대 경제에서 자본주의 초창기처럼 회사를 일인독재나 세습왕조 방식으로 운영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이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 걸맞은 권리와 책임을 지고서 기업 경영에 관여하고 개입할 때, 그 기업은 이윤 추구라는 속물적 욕망을 넘어 이해당사자 모두의 자아 실현과 사회발전 기여라는 공익적 가치 실현에 좀더 다가갈 수 있다.

 

노사관계라는 말의 포인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개념은 사용자가 세습군주가 지배하는 왕국 같은 회사의 주인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는 노동자가 회사의 신민이나 노예가 아니라는 말과 같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노동자와 사용자는 회사라는 기관의 동등한 구성원이다. 따라서 민주 사회라면 법제도적으로 사용자, 즉 자본가가 노동자에 대해 독재적 지위를 갖거나 배타적 권력을 행사할 수 없다.

 

물론 자본주의는 기업 재산에 대한 자본을 소유한 사람의 배타적인 소유권이 법·제도와 관행으로, 다른 말로 하면 공적 폭력과 사적 폭력을 통해 보증되고 관철되는 체제다. 하지만 수세기에 걸쳐 자본주의의 자본가 독재적 본질에 저항한 노동자들의 투쟁 덕분에 사회적 시장경제나 사회민주주의를 포함해 다양한 변종의 자본주의를 현대 경제에서 목도해 왔다.

 

노사관계의 '물신화' 시도

노사관계를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아닌 사람과 사물의 관계로 대치하려는 시도는 역사가 오래된 이데올로기 공세다. 죽은 대상인 사물에 살아 있는 사람처럼 생명력을 불어놓으려는 시도를 부정적인 표현으로 물신화(物神化)라고 한다.

 

문제의 당사자는 사물 뒤로 숨고, 죽은 대상인 사물이 인격의 탈을 쓰고 살아 있는 생물체처럼 연기를 한다. 이 경우 노사관계 문제의 본질을 사람에게서 찾지 않고 회사라는 무생물에서 찾음으로써 문제 해결의 단초를 벗어나게 된다.

 

회사가 문제인 것은 회사라는 현대 경제의 조직체가 나쁜 의지나 욕망을 갖고 있어서가 아니다. 무생물은 의지나 욕망을 갖지 못한다. 죽은 사물이기 때문이다. 회사가 문제인 것은 회사를 지배하고 통제하는 사람, 즉 자본가나 사용자가 이윤 극대화라는 나쁜 의지와 부당한 욕망을 갖고 노동자를 학대하기 때문이다.

 

이윤 극대화를 위해 자본가는 사업장 안팎에서 폭력·착취·차별을 극대화할 욕구를 느낀다. 자본주의 체제가 강요하는 경쟁에서 자유로운 자본가는 없다. 국가 권력을 등에 업고 공장 안에서 독재를 휘둘러 온 자본가의 권리와 이익에 도전하고 맞서 이를 축소해온 역사가 노동조합운동의 역사다.

 

대통령의 천박한 노동문제 인식

크리스마스 다음날 열린 용산대통령실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인 '다트'처럼 노동조합 회계공시시스템을 구축하는 방안을 검토하라"라고 지시했다는 언론 기사를 읽었다.

 

회사 재정과 노조 재정을 비교 가능한 것으로 이해하는 천박함의 배경에는 노사관계를 '노동자와 기업의 관계' 혹은 '노동조합과 기업의 관계'로 오해하는 무식이 자리잡고 있다. 노사관계에서 기업은 중립적 기관이자 일종의 행위 공간에 불과하다. 따라서 노동자단체로서 노동조합과 비교 가능한 존재는 기업이 아니라 사용자단체인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나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또한 노동조합은 헌법이 보장한 '결사의 자유'를 누리는 결사체이기도 하다. 이 경우 노동조합은 대한변호사협회나 대한의사협회 같은 직업적 결사체나, 아니면 전국적으로 그 수가 5만개가 넘어 치킨집이나 노래방보다 많다는 기독교단체 같은 종교적 결사체와 그 비교가 가능하다.

 

전경련과 경총을 위한 회계공시시스템은?

따라서 윤석열 대통령이 사회경제적으로 노동자라는 직업을 가진 자들의 결사체인 노동조합(trade union)을 위한 회계공시시스템을 구축하려 한다면 비교 수준이 전혀 다른 기업의 '다트'를 예로 들어선 안 된다. 오히려 대한변호사협회, 대한의사협회, 한국공인회계사회, 대한예수교장로회, 대한불교조계종,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같은 법제도적 수준이 같고 비교 가능한 결사체를 예로 들어야 한다.

 

헌법이 보장한 '결사의 자유(the freedom of association)'에서 노동조합과 동일한 위치를 갖는 직업단체와 종교단체를 대상으로 하는 회계공시시스템을 윤석열 정권이 구축한다면 노동조합도 그 시스템에 포함시키는 데 개인적으로 반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그 많고 많은 직능단체와 이익단체들 가운데 노동조합만 딱 찍어 회계공시시스템을 만들라는 지시는 단순히 불공정을 넘어 파시즘적 발상에 다름 아니다. 민주적 선거를 통해 1933130일 합법적으로 권력을 잡은 히틀러의 나치당 정권이 가장 먼저 한 일이 노동조합에 대한 이념적 공격이었음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윤효원 아시아노사관계 컨설턴트 프레시안 2022.12.27.

 

 

윤석열과 무()지성의 시대, 비평의 어려움

세계는 코로나19 대유행, 기후변화, 교역질서와 공급망의 재편, 식량에너지 부족, 무력분쟁 등 글로벌 난제에 직면했다. 개별 국가는 초저성장, 실업, 양극화로 인해 공동체의 위기를 겪고 있다. 문제를 해결해야 할 정치는 민주주의 위기 때문에 잘 작동하지 않는다. 반지성주의가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렸다. 합리주의와 지성주의는 과학과 진실을 전제로 이견을 조정하고 타협한다. 그러나 반지성주의는 집단적 갈등으로 진실을 왜곡하고 각자 믿고 싶은 사실만 선택하며 다수의 힘으로 이견을 억압한다. 국내외의 위기와 난제를 해결하려면 무엇보다 보편적 가치인 자유를 정확하게 인식 공유해야 한다.”

 

누구 말인 것 같은가. 윤석열 대통령이다. 의례적 인사말 바로 다음에 했으니 취임사의 총론으로 볼 수 있다. 대통령이 한 말 그대로는 아니다. 취임사는 문장이 너무 어수선해서 대통령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분명하지 못했다. 이 대목은 정도가 특히 심해서 어쩔 수 없이 잠깐 빨간 펜을 썼다. 발언 취지는 털끝 하나 바꾸지 않았다. 의심이 든다면 취임사 원문과 비교해 보시라. 대통령이 이 글을 읽을 리 만무하지만, 만약 읽는다면 연설문 작성 담당 실무자들에게 일독을 권하리라 믿는다. 오해는 마시라. 그러라고 빨간 펜을 쓰지는 않았다. 시민들이 대통령의 정신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려고 썼다. 대통령이 우리를 이해하지 않으니, 우리라도 대통령을 이해해야 하지 않겠는가.

 

윤석열 정부, 평가는 이르다

윤석열 정부 첫해 평가 토론 또는 대담에 나오라는 초대를 여러 곳에서 받았지만 모두 사양했다. 평가를 하기 어렵고 또 하고 싶지도 않아서다. 아직 반년밖에 되지 않아서 데이터를 근거로 결과를 평가할 수 없다. 굳이 하려면 포부와 계획을 밝힌 말과 글, 정치적 행정적 행태를 보고 평가해야 하는데 윤석열 대통령은 말과 글이 큰 의미가 없는 사람이다. 결국 남는 것은 행태밖에 없다. 그런 전제를 두고 윤석열 정부의 말과 글과 행태를 살펴보겠다.

 

대통령 취임사는 오늘의 대한민국에서 가장 중요한 텍스트다. 취임식 시점 대통령의 내면을 명확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대통령의 정치철학을 보여주는 총론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반지성주의를 비판하고 자유를 강조한 것을 두고, 논리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든가 의미가 분명하지 않다든가 하는 여러 비판이 나왔다. 그런데 나는 달리 생각한다. 대통령이 그렇게 옳은 말을 한 경우는 취임식 후에 한 번도 없었다. 대통령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대통령의 말까지 무조건 나쁘게 보진 말자. 적어도 취임사의 총론만큼은 흠잡을 데 없이 옳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 내 설명을 들으면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첫째, 대통령은 해결해야 할 현실의 과제를 정확하게 진단했다. ‘코로나19 대유행, 기후변화, 교역질서와 공급망의 재편, 식량에너지 부족, 무력분쟁 등이 중요한 글로벌 난제라는 데 누가 동의하지 않겠는가. ‘초저성장, 실업, 양극화로 개별 국민국가들이 내부 위기에 빠졌다는 인식 역시 보태거나 뺄 것이 없을 만큼 적확하다. 그 정도는 누구나 다 안다고? 맞다. 누구나 안다. 그래서 중요하다는 것이다. 누구나 아는 것을 대통령이 모른다면 나라가 어찌 되겠는가. 취임사는 대통령을 가리켜 몰상식하다고 하는 일각의 비난이 꼭 옳지는 않다는 것을 입증했다. 우리나라의 미래, 결코 어둡지 않다.

 

둘째, 대통령은 문제 해결이 어려운 이유도 정확하게 꿰뚫고 있다. 글로벌 난제 해결은 국제정치의 과제다. 개별 국가의 문제는 그 나라 정치의 몫이다. 그런데 국제질서를 주도하는 국가는 대부분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운영한다. 중국만 예외다. 우크라이나를 침략해 국제경제를 혼돈에 빠뜨린 러시아도 다수 국민이 마음먹으면 합법적 평화적으로 정권을 교체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민주주의 국가로 보는 게 맞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해야 글로벌 난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인식은 전적으로 타당하다. 우리나라의 내부 과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반지성주의

셋째, 대통령은 정치가 무능한 원인을 정확하게 진단했다. 명의(名醫)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민주주의는 지성주의와 합리주의를 요청한다. ‘과학과 진실을 전제로 이견을 조정하고 타협하면 민주주의는 효율적이고 유능한 정치를 실현한다. 그러나 반지성주의는 집단적 갈등으로 진실을 왜곡하고 각자 믿고 싶은 사실만 선택하며 다수의 힘으로 이견을 억압한다. 반지성주의가 대세를 이루면 민주주의는 무너지고 정치는 무능해진다. 전적으로 옳은 말 아닌가.

 

넷째, 대통령은 올바른 처방을 제시했다. 반지성주의라는 사회적 질병을 퇴치하려면 자유의 가치를 정확하게 인식 공유해야 한다는 처방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처방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문장을 지나칠 정도로 압축한 탓에 그 심오한 의미가 제대로 전해지지 않아서 그런 것이다. 대통령의 생각은 이런 것이었을 것이라 나는 추측한다.

 

인간은 완전한 진리를 알 수 없다. 우리가 진리에 가깝게 가려면 자유를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 권력 가진 자와 사회 구성원 다수가 옳지 않다고 판단하는 의견도 진리일 가능성이 있으므로 자유롭게 말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모든 개인과 집단은 자신의 요구를 두려움 없이 표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을 대변하는 여러 정치세력은 상대를 존중하면서 의견을 경청하고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절충해서 합의를 거두려고 노력해야 한다. 다수결로 하는 의사결정은 소수파를 충분히 존중하는 것을 전제로 할 때 완전한 정당성을 얻는다. 모두가 이렇게 자유라는 보편적 가치를 이해하고 자유를 실천하면 반지성주의는 발을 붙이지 못한다.”

 

가치와 이상에 대한 경멸

이 정도 설명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느끼는 독자를 위해 대통령 취임사의 반지성주의 항목에 더 상세한 각주를 붙인다. 반지성주의라는 말이 언제 처음 생겼는지는 불확실하지만 언제 어디서 널리 쓰이기 시작했는지는 분명하게 알려져 있다. 1950년대 미국이다. 미국 컬럼비아 대학 역사학 교수 리처드 호프스태터(Richard Hofstadter)가 그 사실을 책으로 정리했다. 1963년 논픽션 부문 퓰리처상을 받은 미국의 반지성주의(Anti-intellectualism in American Life)’. 1우리시대의 반지성주의에서 호프스태터는 이렇게 말했다.

 

“1950년대를 거치면서 전에는 들을 기회가 거의 없었던 반지성주의라는 말이 미국 사회에서 자기비난과 상호매도를 의미하는 일상어가 되었다. 미국에서 비판적 지성이 처참할 정도로 경시되고 있다는 우려를 일깨운 것은 무엇보다도 매카시즘이었다. 매카시가 끊임없이 비난을 퍼부은 대상은 지식인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매카시는 큰 사냥감을 노렸다. 늘 지식인을 표적으로 삼았고 지식인을 사냥할 때 추종자들은 특히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반지성주의를 간단하게 정의하기는 어렵다. 반지성주의는 단일한 관념이 아니라 많은 접점을 가진 다양한 태도와 관념의 복합체다. 내가 반지성적이라고 하는 태도나 사고에 공통적인 감정은 정신적 삶과 그것을 대표한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와 의심이며, 또한 그러한 삶의 가치를 얕보는 경향이다.”

 

반지성주의는 이념이 아니다. 감정과 태도의 복합체다. 반지성주의를 어떤 말로 정의(定義)하든 반드시 포함하는 요소가 있다. 고귀한 가치나 이상을 추구하는 삶의 태도를 의심하고 경멸하고 혐오하는 감정, 비판적 지성을 배척하는 태도다. 반지성주의가 국가권력과 결합하면 극악한 전체주의로 나아간다. 히틀러, 스탈린, 마오쩌둥, 폴 포트 같은 독재자는 예외 없이 지식인을 박해하고 학살했다.

 

우리나라도 그랬다. 박정희전두환의 군사정권은 주로 지식인을 구금하고 고문하고 죽였다. 심지어 미국도 그런 시대가 있었다. 매카시 상원의원이 종이쪽지를 흔들며 미국 정부와 의회에서 암약하는 소련 스파이 명단이 여기 있다고 아무 근거 없는 주장을 한 데서 시작한 반공주의 광풍은 여러 해 동안 미국의 지식인 사회를 목 조르고 이성적 토론을 중단시켰다. 공직사회부터 대학과 영화계까지 사회 모든 영역에서 빨갱이 사냥을 벌여 공포감을 조성했다. 야당과 국회와 언론과 시민사회가 대항한 덕분에 매카시즘 광풍이 오래 지속하지는 않았지만 그 시기 미국 사회는 헌법의 가치를 스스로 파괴했다.

 

무지성(無知性)의 시대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사 총론은 두고두고 음미할 가치가 있다. 단지 옳은 주장이라서가 아니다. 호프스태터의 표현을 차용하면, 윤석열 대통령은 다른 사람을 민주주의 파괴자로 매도하려고 반지성주의라는 말을 썼는데 결과는 자기비난으로 귀착했다. 그는 진영을 갈라 진실을 왜곡한다.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사실이라 믿는다. 권력의 힘으로 이견을 억압한다. 보편적 가치인 자유를 짓밟는다. 반지성주의를 비판한 취임사의 문장은 윤석열 정부가 집권 첫 해에 저지른 민주주의 파괴 행위에 바로 적용할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앞으로 보여줄 정치 행정의 무능함에 대한 예언이기도 하다.

 

내가 근거 없는 말을 하는 게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집권당은 정적인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제거하려고 국가의 강제 권력인 검찰권을 무기한 무제한 동원하고 있다. ‘바이든이라는 말을 들은 대로 보도했다는 이유로 공영방송을 내놓고 위협한다. ‘날리면이었다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설명해야 할 텐테 대통령은 말하지 않는다. 대통령의 가족은 법정에서 뚜렷한 범죄 혐의가 드러나도 수사하지 않는다. 160여 명의 무고한 시민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는 대참사가 빚어졌는데도 사과를 거부하고 희생자의 이름을 감추었다. 치솟는 유가로 인한 생계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화물노동자들의 요구를 경청조차 하지 않고 국가의 안전을 위협하는 적대세력으로 취급했다. 대통령이 특정 법무법인 변호사들과 새벽 술자리를 가졌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사실로 부재증명을 하지 않고 고소 고발과 압수 수색으로 보도한 언론인을 위협한다. 윤석열 정부의 2023년 예산안이 초저성장, 실업, 양극화등 취임사에서 열거한 문제 해결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전혀 알 길이 없다.

 

민주주의에는 말이 중요하다. 고대 아테네에서 원시적 형태의 민주주의가 생겨났을 때부터 그러했다. 대통령은 말과 글로 비전과 계획을 밝히고 야당의 협조와 국민의 지지를 구한다. 이루려는 목표, 현재의 상황,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정책 수단, 예상 효과와 부작용, 부작용을 줄이고 효과를 키우는 데 필요한 보완책, 비용의 분담 등을 말하는 데서 모든 일을 시작하는 게 정상이다. 그러면 비평가는 분석한다. 현실 진단이 타당한지, 설정한 목표가 적절한지, 정책 수단은 합리적인지, 비용과 고통의 분담은 적정한지를 따진다. 일단 말과 글을 보고 비평하며 정책의 결과가 나오면 데이터를 근거로 다시 평가한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은 말이 아무 의미가 없다. 취임사에서 자신의 입으로 매섭게 비판했었던 바로 그 행동을 한다. 알고 그러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알면서 그렇게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모르고 그러는 것이다. 모르면 말과 행동이 상충할 수 있다. 그것 말고는 해석할 길이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반지성주의자가 아니다. ‘무지성’, 그냥 모를 뿐이다. 대통령의 말과 행동을 야무지게 비판하는 언론인이 드문 것은 그 때문이다. 4월까지는 악플러처럼 대통령과 정부를 물어뜯었던 기자들의 비판정신이 510일 갑자기 사라졌을 리는 없지 않겠는가. 반지성주의는 비평하기 쉬워도 무지성은 비평하기 어렵다. 네 번째 칼럼인데, 이번엔 참 쓰기 힘들었다.

유시민 작가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2022.12.28.

 

 

공장 영화, 복붙 정권 그리고 식상한 칼럼

공장 영화라는 말이 있다. 전개와 결말이 비슷비슷한 할리우드 장르영화 등을 일컫는다. 고유의 색깔이나 주제의식이 없으니 자극적 내용과 물량공세로 뒤덮인다. 이런 영화들은 두번 세번 보면 질리게 마련이다. 윤석열 대통령을 보면서 공장 영화 감독이 떠올랐다. 운 좋게 입봉은 했지만, 경험도 역량도 부족하다. 사람이라도 잘 써야 하는데, 이명박 정부 실패의 책임이 있는 인사들로 주변을 채웠다. 집권 후엔 박근혜 정부 과오들을 복붙(복사·붙여넣기)하며 국정영화를 만들고 있다. ‘하늘이 낸 사람을 자처하지만 흥행 실패의 공식을 따라 하고, 뭐가 문제인지도 모르는 듯하다.

 

이 발상은 국민의힘 윤핵관들에게 빚졌다. 윤핵관들의 무소불위 행태가 친박들의 호가호위를 연상케 했고, 윤석열 정부가 박근혜 정부를 닮아간다는 데 생각이 미친 것이다. 윤 대통령 지시를 받은 윤핵관들이 비판여론을 무시하고 당원투표 100%’ 당헌 개정을 밀어붙인 게 대표적이다. 민심에서 앞서나 윤 대통령이 싫어하는 유승민 전 의원을 배제하기 위해서란다. 화 잘 낸다는 윤 감독이 고함치자, 윤핵관 스태프가 실행하기 급급한 꼴이다. 박근혜 청와대가 2016년 총선 공천에 적극 개입하고, 당시 대표였던 김무성 전 의원을 무력화한 장면이 오버랩됐다.

 

당직도 없는 윤핵관장제원 의원은 2선 후퇴 선언을 잊은 듯 전당대회 큰손으로 등장했다. 장 의원이 SNS 등에서 던지는 말들은 또 다른 윤핵관 정진석 비대위원장의 공식 석상 발언보다 더 크게 울려 퍼진다. 목소리와 덩치는 비례한다는데, 거구의 정 위원장 목소리를 압살할 만큼 장 의원 목청이 좋은 것은 아닐 터다. 대통령과의 친밀도가 권력으로 여겨지다보니, 이런 비정상적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윤핵관들을 동원해 내부총질하는이준석 전 대표를 몰아낸 행태는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가 배신의 정치라며 당시 원내대표인 유 전 의원을 쫓아낸 것과 닮았다. 공교롭게도 유 전 의원은 친박에게도, 윤핵관들에게도 찍혔다. 역사는 돌고 도는 것이라지만, 그로선 얄궂은 운명을 탓할 법도 하다. 유 전 의원 처지는 합리적 보수를 받아들이지 않고, 탄핵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여당의 한심함을 보여주는 증거일지 모른다.

 

재난에 대한 책임회피도 두 정권은 닮았다. 이태원 참사로 158명이 죽었지만, 윤 대통령은 사과하지 않았고,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여권은 맘대로 애도기간을 정하고 침묵을 강요하더니, 맘대로 추모를 끝내려 한다. 몇몇 윤핵관들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유가족들의 정치적 의도를 의심한다는 망언을 했다. 세월호는 교통사고이며, 유족들이 떼를 써 국정에 방해가 된다고 했던 박근혜 정부 인사들이 떠오른다.

 

여권 관계자들은 박근혜 정부가 세월호의 덫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을 반면교사 삼아, 윤석열 정부는 강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49일 추모제에 불참하고 중소기업 관련 행사를 찾아 술잔을 사고 농담까지 건넨 것을 보면 윤 대통령 생각도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그러나 세월호가 박근혜 정부 몰락의 단초가 된 것은 책임을 뒤집어써서가 아니다. 책임을 피하려 했기 때문이다. 이태원과 세월호를 연결짓지 않으려 했던 사람들도 세월호 때처럼 당하지 않겠다는 여권의 악다구니를 보면서 오히려 세월호를 떠올리고 집권세력의 자격 없음을 실감하게 됐다. 이런 걸 자승자박이라고 한다.

 

비선, 권력사유화 논란도 그대로다. 박근혜 정부 최순실이 대통령 연설문 작성, 내각·청와대 인사에 개입한 사실 등이 밝혀지면서 국민들은 아연실색했다. 윤석열 정부에선 김건희 여사와 인연 있는 특정 업체가 수의계약으로 관저공사를 수주했다는 의혹 등이 제기됐다. 후배, 친구 부인 등을 거리낌 없이 장관 등 고위공직자로 임명하는 대통령 인사 스타일도 권력사유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두 정권이 닮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창의력도 공감능력도 없는 감독, 감독 눈치나 살피는 스태프가 존재하는 한 뻔한 영화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잠시 지지율 올랐다고 기세등등할 때가 아니다. 실패한 정권에서도 지지율 반등은 있었으나, 그것이 교만과 오판을 강화하는 독이 됐다. 관객과 교감하지 못한 영화가 망하듯 경청, 소통 없이 성공할 수 있는 정권은 없다. 그나저나, 식상한 영화를 평가하다보니 식상한 칼럼이 된 듯하다. 명필이 붓 가리냐는 말도 있지만, 영화의 질이 너무 낮았다. 독자들의 양해를 구한다.

이용욱 논설위원 경향 2022.12.29.

 

 

검통령정권의 약강 강약본색

현 정권의 약강 강약본색이 만개하고 있다. 약자에겐 강하고 강자에겐 약한 모습이다. 애초 큰소리치던 공정과 상식은 물 건너간 지 꽤 됐다. 최소한의 균형감조차 망실한 듯하다.

연말 특별사면은 온갖 거물급 적폐인사들에 대한 은혜로운 죄 사함의 잔치판이었다. ‘통합과 화합을 내걸었지만, 살판난 건 온통 여권 비리 사범들이다. 뇌물·횡령 등 개인 비리로 징역 17년이 확정됐던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잔여 형기 146개월과 미납 벌금 82억원을 면제받는 횡재를 누렸다. 원세훈·배득식·김태효 등 이 전 대통령 측근들도 대거 사면·감형·복권됐다. 박근혜 정권 국정농단 관련자는 김기춘·최경환·조윤선·우병우에 안봉근·이재만·정호성 문고리 3인방까지 싹 다 사면·복권됐다. 민간인 최서원씨만 빼고 공직에 있던 범죄자들은 모두 죄 사함을 받았다. 최씨만 홀로 남겨놓기 미안했는지 형집행정지로 풀어준 것도 기막힐 노릇이다. 야권에선 잔형을 5개월 남긴 김경수 정도를 끼워 넣었다. 본인은 사면 불원서까지 냈지만, 강제로 들러리를 세웠다. 정작 사면이 절실할 생계형 민생 사범 사면은 전체 1373명 중 8명에 그쳤다. 이게 통합이고 화합이라면, 이제 똥파리도 새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자기 진영의 일등칸 탑승자들에겐 아낌없는 성은을 내리면서, 꼬리칸 국민들은 아예 열차 밖으로 내쫓을 기세다. 화물연대에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며 파업을 강경 진압하더니, 애초 자신들이 내걸었던 안전운임제 3년 연장 방안도 백지화했다. 노동자들이 내는 조합비로 운영되는 노조 재정을 감시하겠다며 뜬금없이 노조에 부패 세력딱지를 붙이더니 국고보조금을 핑계 삼아 시민단체 회계마저 손보겠다고 나섰다. 반대 진영에 부정적 이미지를 덧씌워 정권에 대한 국민적 저항의 정당성을 무너뜨리겠다는 심보다. 폭주 기관차에 혼비백산한 시민들이 뿔뿔이 쫓기는 만평 윤석열차의 풍자를 실사 다큐로 구현하고 있다.

 

편가르기와 갈라치기는 진영 내부라고 봐주지 않는다. 집권여당은 18년 동안 유지해온 민심 대 당심 ‘3 7’ 반영 룰까지 문자 그대로 하루아침에 갈아치우며 비윤축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주류와 비주류가 건강한 긴장 관계를 이루며 공존할 때 정당의 생명력도 강해진다. 이 단순한 사실을 무시한 채 당내 경쟁 세력의 씨를 말리겠다는 의도다. 그렇게 원조든 신입이든 윤심만 떠받드는 윤핵관들로 당을 장악하면 정권 기반이 단단해질 것이라는 계산이라면, 착각이고 오산이다. 민심과 유리된 윤핵관 도당 정치로의 퇴행은 정권의 말로를 재촉할 뿐이다. 박근혜 정권 진박 감별이 남긴 교훈이다.

 

약강 강약야누스의 민낯은 검찰 활용법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야권 수사엔 서울중앙지검과 수원지검 8개 부서가 달라붙어 전임 정권의 정책 결정부터 야당 대표의 선거법 위반 의혹까지 샅샅이 캐고 있다. 반면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공범 의혹엔 아예 손을 놓고 있다. 최근엔 이 사건을 담당한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마저 야권 수사에 투입했다.

 

그사이에도 김 여사 개입 정황은 더 뚜렷해지고 있다. 지난 2일 재판에선 김 여사가 핵심 공범들과의 연락 구조 안에서 직접 8만주 통정거래를 실행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아이러니하게도 검사가 증인 신문 도중 밝힌 내용이다. 지난 48일 재판에선 검사가 주가조작 공범 사무실 압수수색 과정에서 나온 김건희 파일을 공개했다. 김 여사 명의 증권계좌의 인출액과 잔액 등을 자세히 기록한 엑셀 파일이다. 검찰의 조직적 침묵에 맞서 개별 검사들이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지르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뭐가 됐든 이 정도의 극과 극 수사 행태는 민주화 이후론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는 개다. 정권이 물라면 물고, 물지 말라면 안 문다는 한 검사의 자조적 발언이 나왔던 게 1995년이다. 그 시절에도 야권 수사가 8이면, 여권 수사에도 2 정도는 할애하는 식으로 최소한의 기계적 균형은 맞추려고 했다. 대통령 부인의 의혹에 눈감고 귀 막은 검찰의 행태는 지금이야말로 정권과 검찰이 혼연일체가 된 검통령의 치하임을 말해준다.

 

평형수를 제대로 채우지 않으면 선박은 복원력을 잃는다. 젠가 게임을 할 때도 서너개만 한쪽을 집중해 빼면 무너지기 마련이다. 정권도 검찰도 균형을 잃으면 언제고 무너지는 건 순식간일 것이다.

손원제 | 논설위원 한겨레 2022.12.29.

 

 

2022년 더 아파하고, 이별하자

2022년이 저문다. 다사다난, 올해도 어김없는 단어다, 무엇보다 가슴 아픈 건 참사로 기록될 인재다. 지난 10월 말 이태원에서 수많은 젊은이들이 죽거나 다쳤다. 사망 158·부상 197.

 

 하늘이 무너진 것도 땅이 꺼진 것도 아닌데, 건물이 무너진 것도 불이난 것도 아닌데, 그냥 길을 가다가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일방통행 조치만 있었어도, 안전요원을 배치만 했어도, 인파의 흐름을 모니터링만 했어도 일어나지 않을 사고였다. 막을 수 있었던 일을 막지 못한 대형 참사, 인재였다.” (정청래 의원 페이스북)

 

 참사는 우리 고장 광주에서도 있었다. 올 새해 1월에 벌어진 화정동 아이파크 붕괴 사고. 준공 직전의 대형 콘크리트 빌딩 벽체가 허물어지는 어이없는 현장에서 6명이 목숨을 잃었다.

 

 2022년 대한민국사()는 이와 같은 비극으로 기록되고, 기억될 것이다. 마지막 달력 한 장을 남겨둔 심정이 어느 해보다 허망하고 쓸쓸하다.

 

 비극으로 기록되고 기억될 한 해

 새정부 출범(510) 등 국가적으로 대전환의 기운은 넘쳤다. 개혁과 변화, 새로운 길에 대한 갈망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7개월여가 지난 현재, 실망과 좌절이 더 크다.

 

 잦은 말 실수로 최고 리더십은 신뢰를 잃었고, 외교·국방 등 현안에선 국격 추락이 지적된다. ‘내치라고 다른가. 자기(진영) 사람만 골라쓰는 편협한 인사, 개혁으로 포장한 노동 탄압, 부자·기업을 우선시한 세제 개편과 건강보험 보장성 약화로 힘 없는 서민들의 한숨만 커지고 있다.

 

 내년 대내외적으로 최악의 경제 상황이 전망되지만, 국정 능력을 의심받는 현 정부 수준에서 극복 가능할지 두렵기조차 하다.

 

 지역에서도 변화와 우려가 상존한다.

 6월 지방선거를 거쳐 7월 출범한 민선8기 광주광역시 집행부와 의회간 대립각은 견제·감시를 통한 위민행정기대를 키웠지만, 극한 대결 결과 내년도 예산 대규모 삭감으로 귀결돼 지역 현안 차질을 우려하기에 이른다,

 

 국민으로, 또 시민으로 사는 게 녹록지 않았던 한 해여서, 보내는 심정 또한 간단치 않다.

 내일부터는 슬퍼지겠지. 오늘이 아니고 내일부터는. 매일같이 어려운 일이 닥쳐와도 나는 이렇게 말하리. 내일부터는 슬퍼지겠지. 오늘이 아니라 내일부터는.’ 실화 소설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속 집단 수용소에 갇힌 유태인 소녀가 남겼다는 글이다. 내일이라고 더 나을 것 같지 않은 이가 '오늘을 사는 법'을 배워야 할까.

 

 단두대에 오르는 죽음의 길, 토마스 모어가 사형 집행관에게 남긴 위트는 한발 더 나아간다. ‘여보게 올라가는 걸 도와주게. 내려오는 걸 도와달라고는 않겠네.’ 소멸 앞에서도 이토록 당당할 수 있음이니, 새로운 해를 맞는다면 얼마나 큰 축복일까.

 

 쿨하게 보내자고는 하지 말자 내일 다시 태양이 떠오를 것을 의심하지 않듯이, 오늘 저무는 저 빛이 소멸하지 않음도 안다. 365일 매일이 고통은 아니었을 테니 일생 누리는 행복의 총합은 같다는 믿음으로 한해살이를 위안 삼을 수 있다. 그러나, ‘쿨하게 보내자고는 하지 말자.

 

 지금의 나는 꽃을 보아도 예쁘지 않고 나무를 보아도 싱그럽지 않다. 좁은 골목에서 흥겹게 흘러나오는 큰 음악 소리에 나도 모르게 커다란 눈물이 흐르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은 도로로 두 팔을 벌려 눈을 감고 걸어 들어가면 잊혀질까 계획도 세워본다. 용산 대통령을 지키느라 이태원에 정부는 없었다.”(이태원 참사 피해자 어머니 )

 

 2022년에 각인된 절규와 한이 이토록 절절한데, 어찌 잊자고 할 수 있겠는가.

 

 <구름에 달처럼은 가지말라 청춘이여/ 돌아보라 사람아/ 없었으면 더욱 좋았을 기억의 비늘들이/ 타다 남은 편지처럼 날린대서/ 미친 사랑의 증거가 저리 남았대서/ 그대를 향해 뿜었던 분수 같은 열정이/ 피딱지처럼 엉켜서 / 상처로 기억되는 그런 사랑일지라도/ 낫지 않고 싶어라/ 이대로 한 열흘만이라도 더 앓고 싶어라> (복효근 목련후기부분)

 

 구름에 달 처럼은 가지 말라는 당부가 청춘사랑으로만 향하는 메시지겠는가?

 수많은 생명이 허무하게 스러진 참사의 한 해, 그 고통을 잊는 송년이 아니길.

 그러니 더 아파하자. 그리고 이별하자. 아듀 2022!

 채정희 (편집국장) : 광주드림 2022.12.30.

 

 

문제는 입시가 아닌 경쟁

이주호 교육부 장관이 최근 여러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수능 폐지론자라거나 수능은 없어져야 마땅하다는 등의 발언을 하여 화제가 되었다. 얼핏 보면 전교조의 수능 폐지수능 자격고사화’, 김누리 교수의 대학입시 폐지주장과 비슷해 보인다. 수능을 싫어하기로는 진보와 보수가 따로 없는 것일까? 하지만 그의 인터뷰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중요한 개념이 하나 누락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바로 경쟁이다.

 

한국의 교육경쟁은 왜 이렇게 치열한가? 고졸·대졸 임금격차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면 오해다. 한국의 대졸자 임금은 고졸자 임금보다 평균 40% 높은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격차인 59%보다 오히려 작은 편이다. 대학이 평준화된 독일이 60%, 프랑스가 57%, 핀란드가 47%로 한국보다 격차가 크다(OECD, Education at a Glance, 2022). ‘대학을 가지 않아도 좋은 일자리를 구할 수 있어야 입시지옥이 해소된다는 식의 주장은 터무니없는 얘기다.

 

고졸·대졸 임금격차보다 더 의미심장한 수치는 상위대학·하위대학 졸업자 간 임금격차이다. 한국의 4년제 대학을 5개 그룹으로 분류하면, 최상위 그룹 졸업자는 최하위 그룹 졸업자에 비해 취업 시 14.5% 높은 임금을 받고, 이 격차는 점차 벌어져 40~44세가 되면 46.5%가 된다. 고졸·대졸 임금격차 못지않은 차이가 출신대학 서열에 의해 나타나는 것이다(이지영·고영선, ‘대학서열과 생애임금격차’, 2019).

 

이렇게 보면 상위대학에 진학하기 위한 경쟁은 상당한 합리적 이유를 가진다. ‘보상의 격차가 큰 만큼 경쟁의 강도가 높은 것이다. 1등에 100만원, 2등에 90만원, 3등에 80만원을 주는 시합과 1등에 100만원, 2등에 50만원, 3등에 20만원을 주는 시합을 비교해 보자. 당연히 후자가 더 치열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대입경쟁의 승자에게 주어지는 것은 단순한 금전적 보상이 아니다. 더욱 좋은 교육을 받게 해서 더욱 높은 능력을 갖춰주는 것에 가깝다. 1·2·3등에 단순히 상금을 나눠주는 것이라기보다 1등은 태릉선수촌에 입촌시키고 2등은 구립훈련장에, 3등은 동네체육관에 등록시키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대학별 재정투입의 격차이다. 서울대는 학생 1인당 연간 5300만원을 투입하고, 연세대는 3600만원, 성균관대는 2700만원, 중앙대는 1600만원을 투입한다(학생 1인당 교육비, 2022년 공시자료). 약간의 성적 차이로 인해 1년에 5300만원짜리 훈련을 받을 기회와 1600만원짜리 훈련을 받을 기회가 갈리는 것이다. 이러한 메커니즘으로 인해 대학에 입학할 때 나타났던 능력 차이는 대학을 졸업할 때 더욱 증폭되며, 이후 임금격차로 이어진다. 이는 블라인드 채용이 일으킬 수 있는 변화의 폭이 그리 크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

 

교육의 질을 돈으로 환산하는 나의 셈법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대학 서열이 재정이 아니라 명성(후광 효과), 인맥(동문 네트워크), 지역(서울 선호) 등에 의한 것이라고 믿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강력한 반례가 존재한다. 1980년대 설립된 포항공대와 1990년대 설립된 한국예술종합학교다. 이들은 당시 신생 학교여서 명성도, 인맥도 미미했고 포항공대의 경우 비수도권에 자리 잡았다. 하지만 충분한 재정 투입에 힘입은 질 높은 교육을 인정받아 곧바로 최상위급 서열에 등극했다. 이러한 사례에 착안하면 서울대 10개 만들기와 같은 아이디어도 허황된 것이 아니다.

 

2017~2019년에 벌어진 대입 대논쟁의 교훈은 무엇인가? 당시 학종파가 수능파(정시파)에 밀린 이유는 경쟁때문이다. 자기장이 강력할수록 자성체가 큰 힘을 받듯이, 엄청난 대학 간 격차로 인해 형성된 강력한 경쟁의 장()이 교육적 가치를 앞세워 도입된 정성평가 요소 및 비교과 영역을 즉시 타락시킨 것이다. 아울러 철인 5종 경기를 하던 아이들은 철인 10종 경기를 하게 되었다. ‘반칙부담’, 이것이 대중의 분노를 폭발시켰다. 그런데 교육계는 이를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고 계층상승 욕망, 학벌주의, 시험 이데올로기, 능력주의 등을 탓했다.

 

이런 면에서 당시 논쟁의 구도는 진보 대 보수가 아니라 엘리트 대 대중이었다. 진보 엘리트인 김상곤 전 장관은 경쟁의 메커니즘을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경쟁을 완화해야 한다는 의식은 있었다. 그런데 보수 엘리트인 이주호 장관은 여러 인터뷰에서 경쟁을 아예 거론하지 않는다. 특히 그의 대학정책은 격차를 더욱 키울 것 같아 우려스럽다.

이범 교육평론가·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경향 : 2022.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