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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외부 칼럼

22.10.1~31 어설픈 굿판의 정치와 완전 끔찍’ 대한민국 오명 벗는 방법은

by 이성근 2022. 10. 31.

민족주의를 다시 생각한다 김창훈 칼럼니스트 | 프레시안 2022.10.01

신의 이름을 오용하는 이들 김기석 청파교회 목사 경향 : 2022.10.01

지구를 가열한 그들, ‘기후 부채가 쌓여간다 이종규 | 논설위원 한겨레 :2022-10-02

보호와 통제, 구속의 딜레마 류영재 | 대구지방법원 판사 한겨레 :2022-10-02

엄마와 사회주의자 윤석열 이송희일 영화감독 미디어오늘 2022.10.02.

어설픈 굿판의 정치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경향 2022.10.03.

완전 끔찍대한민국 오명 벗는 방법은 한대광 전국사회부장 경향 2022.10.03.

K의 기후 부정의 전주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 경향 2022.10.03.

이탈리아 국민의 도전과 실험 정병기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경향 2022.10.03.

온 국민이 분노하는데, 언론만 때려잡으면? 정유경 | 디지털뉴스부장 한겨레 2022.10.03.

들리는 세계의 분할 통치 박구용 전남대·광주시민자유대학교 경향 2022.10.03.

자주성과 국제성 백학순 김대중학술원장 경향 2022.10.04.

자유 대 기본? 아니, 자유의 기본! 이주희 |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한겨레 2022.10.04.

강대국 사이에 낀 국가의 대통령제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장석준 출판&연구집단 신현재 기획위원 미디어오늘 2022.10.04.

무엇을 위한 -일 정상회담인가 임재성 | 변호사·사회학자 한겨레 2022.10.04.

새로운 종말론 앞 가짜 희망가짜 절망신영전 | 한양대 의대 교수 한겨레 2022.10.04.

미디어와 전문가들의 주택시장 상승론은 어디로? 이태경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 미디어스 2022.10.04

감사원의 폭주를 멈춰라 이중근 논설주간 경향 2022.10.05.

김건희 논문’, 논란 종식을 바란다 정희진 여성학자 경향 2022.10.05.

독일과 중국의 위기, 세계경제의 위기 이일영 한신대 교수 경향 2022.10.05.

위기의 시간, 참담한 대통령 신뢰도 박복영 | 경희대 교수·전 청와대 경제보좌관 한겨레 2022.10.05

청와대의 곡절, 대통령제의 곡절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숭배 애도 적대> 저자 경향 2022.10.06.

어떤 자연도태의 경위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숭배 애도 적대> 저자 경향 2022.10.06.

어떤 자연도태의 경위 이경자 | 소설가 한겨레 2022.10.06.

누가 윤 대통령에게 방울달 수 있을까 최혜정 | 논설위원 한겨레 2022.10.06.

밥은 생명입니다, 하늘입니다 오창은 문학평론가·중앙대 교수 경향 2022.10.07.

폭력의 전염병, 괴롭힘과 감정노동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사단법인 유니온센터 이사장 경향 2022.10.07.

윤석열차는 오늘도 달린다 조홍민 사회에디터 경향 2022.10.07.

브라질 대선, 인류와 지구를 위한 결전 장석준 | 출판&연구집단 산현재 기획위원 한겨레 2022.10.07.

좀비 이론에 기댄 재벌신문의 '부자감세' 보도 탁종열 노동인권저널리즘센터 소장 미디어스 2022.10.07.

"XX 아파트 갑시다박상률 작가 뉴스 클레임 2022.10.09.

소행성 앞에 기후위기 홍진수 정책사회부장 경향 2022.10.10.

대통령의 기분이 태도가 될 때 오찬호 <민낯들: 잊고 또 잃는 사회의 뒷모습> 저자 경향 2022.10.10.

윤석열·한동훈과 나쁜 놈들 손석춘 칼럼니스트철학자 미디어오늘 2022.10.10.

 

조급한 한일 간 군사적 밀월 움직임을 경계해야 최충웅 칼럼니스트 | 프레시안 2022.10.11.

윤 대통령이 자초한 대통령실의 국정 난맥 문상현 기자 시사인 2022.10.11.

인간은 먹은 만큼 배설해야 한다 최재봉 | 책지성팀 선임기자 한겨레 2022.10.11.

그런 것이 한국 정신인가 한승훈 | 종교학자·한국학중앙연구원 한겨레 2022.10.11.

윤석열 대통령의 염치 양권모 편집인 경향 2022.10.11.

아마겟돈의 가능성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경향 2022.10.11.

공무원은 그곳에 살지 않는다 하승우 이후연구소 소장 경향 2022.10.11.

여전히 2018 장하나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 경향 2022.10.11.

비속어와 욕설 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 사회학 교수 경향 2022.10.12.

결핍을 모르는 이들의 결핍 박선화 한신대 교수 경향 2022.10.12.

검찰 무신정권 송기호 변호사 경향 2022.10.12.

노태우가 혀를 찰 윤 대통령 독불장군 외교백기철 ㅣ편집인 한겨레 2022.10.12.

윤석열 정부 인구정책, ‘용감한역주행 송현숙 후마니타스 연구소장·논설위원 경향 2022.10.13.

나쁜 예감 서경식 | 도쿄경제대 명예교수, 번역 한승동(독서인) 한겨레 2022.10.13.

정권의 퇴행과 윤 대통령 리스크 손원제 | 논설위원 한겨레 2022.10.13.

욱일기·인공기 휘날리는 현대판 붕당정치 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 | 프레시안 2022.10.14

안보라는 이름 앞에 무너지는 환경영향평가법 원익선 교무·원광대 평화연구소 경향 2022.10.15.

쇠귀에 경 읽기 김서중 성공회대 미디어콘텐츠융합자율학부 교수 경향 2022.10.17.

윤 대통령은 전환기 리더가 맞나 정제혁 사회부장 경향 2022.10.17.

왜 졌는지도 모르는 사람들 강준만 |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한겨레 2022.10.17.

아마추어 외교에 국가 명운 맡길 수는 없다 박현 | 논설위원 한겨레 2022.10.17.

자본주의가 문제다-어떻게 문제인가 김공회 | 경상국립대 경제학부 교수 한겨레 2022.10.17.

선진국 한국의 책임 박노자 |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한겨레 2022.10.18.

한동훈 스피치에 부쳐 박용현 | 논설위원 한겨레 2022.10.18.

자본주의가 조용히마비되고 있다 이진우 포스텍 명예교수 경향 2022.10.19.

 

윤석열·이재명의 적대적 공생 구혜영 정치에디터 경향 2022.10.21

정당을 무엇으로 특정하는가 최정애 전남대 교수·소설가 경향 2022.10.22.

“5년간 바보 같은 짓을 할 것 같다 윤홍식 |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소셜코리아 운영위원장 한겨레 2022.10.23.

윤석열이 왜 저러지?” 삼중 위기 손석춘 칼럼니스트철학자 미디어오늘 2022.10.24

기업이 불안해하는, ‘경제에 무능한보수 정부 최병천 <좋은 불평등> 저자·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 경향 2022.10.25.

시한폭탄 품은 아파트, 원전 김기범 정책사회부 차장 경향 2022.10.25.

대통령학과 촛불을 다시 생각한다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정치학 경향 2022.10.25.

검사들이 다스리는 대한민국 성한용 | 정치부 선임기자 한겨레 2022.10.25.

21세기 마르크스시진핑이 예고한 3가지 미래 노현웅 | 법조팀장 한겨레 2022.10.25.

시민-시인의 탄생 고영직 문학평론가 경향 2022.10.27.

지지자만 바라보는 캠페인 정당정유진 국제에디터 경향 2022.10.27.

정치를 배회하는 유령, '촛불''태극기' 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 | ㅍ레시안 2022.10.28.

산이 남긴 것 강맑실 | 사계절출판사 대표 한겨레 2022.10.28.

죽음 권하는 사회와 헌법상 생존권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경향 2022.10.28

이태원 참사, 신중한 규명 필요 전주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 경향 2022.10.31.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우석훈 경제학자 경향 2022.10.31.

시진핑과 블라디미르 푸틴의 위험한 공통점 박영환 국제부장 경향 2022.10.31.

핼러윈 대비 질문에 선동딱지 붙인 장관 이상민 김영희 | 논설위원실장 한겨레 2022.10.31.

그 끔찍한 사태를 목격하고도 어떻게 권김현영 | 여성학 연구자 한겨레 2022.10.31.

무사히 늙어갈 수 있을까 김영옥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 상임대표 한국 2022.10.31.

 

민족주의를 다시 생각한다

필자가 근무하던 민족미래연구소는 매달 한번씩 논객들을 초빙해서 강연회를 열었다. 한번은 연사로 초빙된 경제전문가가 필자에게 단체 이름에 '민족'이 들어가 있는지 물었다. 21세기에 민족을 이야기하는 건 너무 고루하지 않냐는 질문까지 했다. 그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나라 지식인들의 일반적인 생각을 가늠할 수 있었다. 지난 2백년간을 뒤흔들었던 개념에는 자본, 이념, 계급, 민족 등이 있다. 민족은 세상을 움직인 핵심 개념이었다. 그럼에도 '민족'은 이제 담론장에서 찾기 힘들어졌다.

 

사람들은 어쩌다 민족주의에 냉담하게 된 것일까? 소비에트가 붕괴한 후, 미국의 단극적 패권이 추구되었다. 이 패권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추구했다. 미국은 각 나라의 문턱이 사라진 평평한 세상을 원했다. 자본은 생산기지와 시장의 확대를 위해 단일한 규칙에 기반한 세상을 원했다. 각 나라, 각지의 특수성은 사라지고 미국이 대변하는 보편성만이 유일한 규칙인양 인정됐다.

 

곳곳의 특수성, 지역성은 점점 사라져갔다. 지역의 특수성을 담보해주던 민족주의도 위태하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많은 지식인들이 민족주의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임지현, 권혁범, 윤해동, 이영훈 등에서 보여지듯 좌우를 가리지 않았다. 결국 21세기 담론장에서 민족주의는 급기야 종적을 감추게 되었다. 탈민족주의 담론이 지식대중들에게 호소력을 가지게 된 데에는 민족주의가 자민족 이기주의라는 직관적 느낌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민족주의는 자민족 이기주의에 불과한 것일까? 이런 인상은 역사상 '민족'이 등장하게 된 배경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나온 판단이다. 민족주의가 집단이기주의라면 민족주의자로 자신을 희생시킨 수많은 사람들의 존재는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민족주의는 도대체 무엇인가?

 

먼저 탈민족주의 담론은 한결같이 민족주의의 부정적 측면을 과장했다는 점을 밝혀두고 싶다. 정치철학자 나종석은 논문 '민족주의와 세계시민주의'(<헤겔연구> 26, 2009)에서 유행하던 탈민족주의에 대해 이렇게 평가한다. "탈민족주의 담론은 민족주의 여러 형태들에 대한 인식을 추구하기 보다는 민족주의의 특정한 형태, 즉 인종적 민족주의나 억압적이고 공격적인 민족주의를 민족주의의 본래 모습으로 간주하는 경향을 보인다." 민족주의는 원래 공격적 본능에 충실하다는 주장은 여러 곳에서 들린다. 역사학자 박지향은 아예 이렇게 단언한다. "민족주의는 본래 배타적이고 폭력적인 이념이다." 사실일까? 정확하게는 민족주의의 특정 측면일뿐이다.

프랑스혁명의 상징처럼 인식되고 있는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1789년 프랑스혁명이 아닌 18307월 혁명을 기념한 작품이다.(외젠 들라크루아 , 루브르 박물관 소장, 캔버스에 유채 260x325, 1830)

 

근대 민족주의는 어떻게 발생했을까? 자본주의가 진행되면서 인민들은 지쳐갔다. 주기적인 불황과 노예노동은 이전 시기에는 없던 현상이었다. 프랑스혁명이 진행된다. 외부 세력의 간섭으로부터 프랑스공화국을 수호하려는 사람들이 '프랑스'를 조국으로 받아들인다. '프랑스' 깃발 아래에서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꿈꾸었다. '프랑스' 민족의 일원으로 인권을 요구했다. 공동체를 파괴하는 자본주의의 힘에 짓눌려 있던 민중들이 일어섰다. 프랑스혁명 시기 봉기한 민중이 이전과 다른 점은 프랑스민족이라는 '호명'을 받았다는 점이다. 이렇게 깨어난 시민들은 이후 인권과 권리에 관한 지평을 확대해 간다. 민족주의가 배타성만을 강조하는 사상이라는 주장은 과장에 불과하다. 프랑스혁명과 미국혁명을 계기로 민족국가는 세계적으로 확산되었다. 민족국가의 내부성원들은 '국민'의 발명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새롭게 확인했다. 어느 마을 누구네 첫째 아들, 어느 가문 둘째 아들에서 '국민'이 되었다. 하버마스는 현대 세계의 민주공화국의 모체는 이런 민족국가이며 이런 민족국가의 기반은 '국민'에 속하는 귀속감이라고 말한다. 즉 국민적 귀속감이 정체성을 만들고 정체성이 민족국가를 형성하고 민주공화국은 이후 현대 민주공화정의 토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민족은 민족성원 즉 국민이라는 정체성을 만들어내었다. 영어로는 민족이든 국민이든 nation으로 동일하다. 그러나 근대에서 종족(ethnic)이 아닌 민족이 역사의 주역이 된 것은 국민이라는 호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종교혁명 이후 신본주의적 에토스가 얇아졌다. 자본주의는 지역을 근간으로 이루어진 소규모공동체를 해체했고 신본주의의 퇴조는 개개인의 정체성을 흔들었다. 인민은 자신을 보호해주는 두가지 울타리를 모두 잃어버렸다. 민중은 자본주의와 자신의 정체성문제로 괴로워했다. 프랑스혁명 이후 민중들은 공화국 프랑스를 조국으로 생각하기 시작한다. 공화국 내부의 다른 구성원에 대해서 동질감, 동포애를 느끼기 시작했다. 국가는 신성하고 우리는 국가의 부름을 받은 존재이며 우린는 같은 공화국의 구성원이다. 이런 믿음이 널리 퍼졌다.

 

정치철학자 이사야 벌린은 '집에 대한 인식'을 강조했다고 나종석은 말한다. 시골 농촌이 상인자본주의가 장악해 들어감에 따라 도시로 밀려난 사람들은 ''이 없었다. 집은 공간이 아니다. 집은 나의 네트워크망의 총체다. 집을 잃어버렸던 민중들은 도시에서 공화국 안에서의 '우리'를 느꼈다. 그래서 하버마스는 민족국가는 국민을 발명해내어 민주공화국으로 전환하는데 촉매제 역할을 했다고 주장한다. 즉 인민간의 끈끈한 유대감이 먼저 있고나서 공화국의 법적 장치가 작동한다는 의미다. 만약 유대감이 없는 불특정 다수에게 좋은 법률을 주면 잘 살수 있을까? 이런 아이디어에 가까운 것이 하버마스의 헌법애국주의이다. 헌법에 충성하려는 사람들을 구성원으로 받아서 민주공화국을 건설하자는 다소 공허한 이야기다. 역사는 정반대를 말하고 있다. 유대감이 있고 나서야 민족국가는 수립되고 이 민족국가는 이후 민주공화국으로 전환되었다.

 

나종석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사회통합은 정치원칙들의 공유보다 훨씬 깊게 들어가는 공동체에 대한 감각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 사회통합은 어디에서 구해질수 있는가? 이에 대한 해답의 하나가 바로 공동의 민족정체성이다." 사회통합은 다른 구성원을 타자로 인식하는 한 성취되기 어렵다. 나와 같다는 일체감과 소속감이 있어야만 수많은 사람이 통합될 수 있다. 공동의 역사, 문화, 언어를 갖고 있기에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그래서 타자가 아닌 우리로 의식하게 된다.

 

지식대중들은 '민족주의'라면 우선 우리만 생각하는 집단이기주의라는 생각을 먼저 떠올린다. 그런데 '친족상도례' 개념에서 보듯 우리가 우선적으로 관심을 두고 애착을 느끼는 대상은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 밖에 없다. 모두를 동등하게 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역사 속에서 묵자의 사해동포주의는 사장되었지만 건강한 가족을 기본 단위로 사회공학을 궁구했던 유가의 가르침은 수천년을 이어져 왔다. 세계시민주의를 문자적 의미로 이해하고 좋은 것이라고 무턱대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세계시민주의가 어떤 구체적 장에서 발화되는지 유념해야 한다. 특정 패권세력에 의해 선동되는 그 세계시민주의는 어떤 사상보다도 위험할 수도 있다. 자유주의가 서구 제국주의 절정기에 주로 전파되었던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나종석은 이렇게 우려한다. "탈민족주의 담론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로 인해 위축되는 민족국가가 사회적 불평등 질서 및 민주주의의 위축과 함께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외면한다. 그리하여 이 담론은 세계시민사회의 미래에 대해 지나치게 낙관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달리 말하자면 세계주의가 새로운 형태의 야만으로 귀결될 가능성에 거의 주목하지 않다는 한계를 보여준다."

 

일반적인 통념과는 다르게 민족국가의 토대인 민족주의는 공동체 구성원의 인권과 권리에 대한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다. 반면에 세계시민적 보편주의는 특정 상황에서 패권세력의 전횡을 합리화하는 이데올로기로 기능했다. 이것이 구체적 역사 속에서 나타난 민족주의와 세계시민주의의 모습이었다. 탈민족주의는 의도적이었든 아니든 외곽에서 신자유주의를 지원하는 담론으로 기능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함께 신자유주의는 종말을 고했다. 이제 탈민족주의도 종말을 고해야할 시간이다.

김창훈 칼럼니스트 | 프레시안 2022.10.01

 

신의 이름을 오용하는 이들

러시아발 위기가 심각하다.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동남지역을 합병하기 위한 주민투표가 진행되었다. 러시아는 주민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고 선언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는 그 투표가 적법하게 진행되지 않았다며 합병 계획을 철회해야 한다고 말한다. 러시아는 그러나 그런 우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만약 그 지역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공격이 있다면 그것을 자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할 것이고, 필요하다면 핵무기도 사용할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지역 전문가들은 그 말이 단순한 위협이 아닐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러시아는 이미 예비군 동원령을 내렸고 전쟁에 나설 의사가 없는 이들은 징집을 피하기 위해 외국으로의 이주를 시작했다.

 

그러던 차에 발트해를 통해 러시아와 독일을 잇는 노르트스트림 가스관이 어떤 인위적인 타격에 의해 훼손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아직 그 공격의 주체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러시아의 사보타주가 아닌가 의심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유럽을 혼란에 빠뜨리기 위해 유럽의 기간시설을 고의로 훼손했다는 것이다. 겨울철을 앞두고 에너지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는 있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 사건은 유럽인들에게 상당한 심리적 타격을 주고 있다. 불길한 예감이 스멀스멀 사람들의 일상을 파고들고 있다.

 

평화를 향한 인류의 꿈이 또다시 위기에 처했다. 유사 이래 갈등과 분쟁이 없는 시기는 없었지만 기후재앙이라는 폭풍이 생태계 전체를 휩쓸고 있는 이때, 또 다른 폭풍이 커가고 있는 형국이다. 퍼펙트스톰이 다가온다. 종교가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가리산지리산 지향을 잃고 방황하는 문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가리키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러시아 정교회 수장인 키릴 총대주교는 설교를 통해 러시아 젊은이들에게 용맹하게 전쟁터로 가서 병역의 의무를 다하라면서 병역 의무를 수행하다 죽는 것은 타인을 위한 희생이기에 천국에서 영광과 영생을 누린다고 말했다. 조국을 위한 희생을 통해 자신들의 죄를 다 씻을 수 있다고도 했다. 그에게 우크라이나 전쟁은 타락한 서방세계와 맞서는 러시아의 신성한 전쟁이고, 신성한 질서를 해치는 적들에 맞서 싸우는 것이야말로 신에 대한 사랑이다.

 

권력욕망에 사로잡힌 정치와 종교가 손을 잡을 때 세상은 위험해진다. 욕망에 신성의 광휘를 덧입히는 것은 모든 제국주의자들의 전략이 아니던가? 고대 로마제국의 첫 번째 황제인 옥타비아누스에게 원로원은 위대한 자라는 뜻의 아우구스티누스라는 호칭을 부여했다. 사람들은 그를 지중해를 내해로 거느린 대제국을 지배하는 자라는 뜻에서 라고 불렀다. ‘위대한 자에서 로 격상되었을 때 로마제국은 또 다른 신화를 만들었다. 옥타비아누스의 어머니 아티아는 인간이지만 아버지는 태양신 아폴로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신의 아들이라는 칭호까지 얻었다. 로마는 신의 국가가 된 셈이다. 권력자가 신성의 광휘를 쓴 세계에서 개인의 존엄은 고려 대상이 되지 못한다. 대의에 종속될 뿐이다. 인간 소외는 그렇게 발생한다.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 형제들>에 나오는 조시마 장로는, 자기는 인류를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가까이 있는 이들을 아끼지 않는 한 귀부인에게 어느 의사가 한 말을 들려준다. 그는 자기가 인류를 사랑하면 할수록 개별적 인간, 다시 말해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사랑은 줄어들더라고 고백했다는 것이다. 관념으로는 인류를 위해 자기의 모든 것을 바칠 수 있을 것 같지만 정작 가까이 있는 이들이 내게 불편함을 안겨주거나 비위에 맞지 않으면 그를 증오하는 것이 인간이다. 도스토옙스키는 개별적 인간을 증오하면 할수록 인류에 대한 보편적 사랑은 한층 불타오르게 되는 역설을 그들의 입을 빌려 전하려 했던 것이다. 진실한 사랑은 노동과 인내를 요구한다.

 

외부 누군가를 적으로 삼고 그들을 제거하는 것이 신성한 의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신이 되려는 욕망에 사로잡힌 이들이다. 자기 욕망을 가리기 위한 수단으로 신의 뜻을 운위하고 신이 자기 편이라고 말하는 이들을 경계해야 한다. 그들은 사람들을 위험으로 내몰면서 자기들은 안전한 자리에 머물곤 한다. 개별자에 대한 진실한 사랑이 없는, 인류에 대한 보편적 사랑은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어둠을 찢고 빛을 낳으려는 이들이 연대할 때 새로운 희망의 싹이 인정의 폐허 속에서 움터 나올 것이다.

김기석 청파교회 목사 경향 : 2022.10.01

 

 

지구를 가열한 그들, ‘기후 부채가 쌓여간다

기후변화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 나라들의 모임인 기후취약국포럼’(CVF)은 지난달 지불 연체(#Payment Overdue)’ 캠페인을 시작하면서, 선진국들을 향해 이제 빚을 갚아야 할 때라고 채근했다. 이 캠페인은 선진국들이 채무 이행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됐다. 이들은 지구 온난화에 책임이 거의 없는 가난한 나라들이 기후변화로 큰 고통을 받고 있으므로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해온 부유한 나라들이 재정 지원을 해줘야 한다고 본다.

 

이들의 빚 독촉이 터무니없는 요구는 아니다. 주요 7개국(G7)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2009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제15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15)에서 개발도상국의 기후위기 대응을 돕기 위해 매년 1000억달러를 지원하기로 합의했으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이번 지불 연체캠페인은 다음달 이집트에서 열리는 제27차 당사국총회(COP27)를 앞두고 국제사회에 다시 한번 약속 이행을 촉구하는 의미가 있다.

 

기후취약국포럼의 회원국은 55개 나라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작은 섬나라, 저지대에 있는 연안국, 아프리카의 최빈국 등 기후위기의 최전선에 놓인 나라들이다. 회원국 인구는 총 14억명으로 세계 인구의 18%에 이르지만, 온실가스 배출량은 전 세계 총량의 5%에 불과하다. 섬나라들은 해수면 상승으로 생존 위기에 직면해 있고, 방글라데시와 같은 저지대 연안국들도 늘 침수 피해에 시달린다. 지난해 11월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회의 기간에 남태평양의 섬나라 투발루의 외무장관이 허벅지까지 차오른 바닷물 속에 들어가 수몰 위험을 호소하는 영상이 공개돼 깊은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들은 극심한 가뭄 탓에 기아에 허덕인다. 히말라야 산맥 등 고산지대에 있는 마을은 빙하가 녹아 발생하는 빙하 홍수에 취약하다.

 

기후취약국포럼은 지난 6월 펴낸 보고서에서 기후변화가 지난 20년 동안 기후취약국들의 부를 20% 감소시켰다고 밝혔다. 가뜩이나 가난한 나라에 기후재난이 덮치니 제대로 대응을 못해 피해가 더 커지고, 그 충격으로 더 가난해지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기후운동가이자 작가인 나오미 클라인은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에서, 온실가스 급증의 원인을 제공한 일이 없음에도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를 가장 많이 입는 나라들은 기후 채권자의 지위를 갖는다고 주장했다. “이 국가들은 기후 관련 재해 대응에 필요한 막대한 비용을 확보하고 청정에너지 경로를 통한 발전을 이루기 위해 금전적·과학기술적 지원을 요구할 자격이 있다.”

 

이들을 기후 채권국으로 인정한다면, 빚을 갚아야 할 채무국이 있어야 한다. 지극히 당연한 귀결이지만, ‘기후 빚쟁이는 일찌감치 산업화에 나서 온실가스를 다량 배출해온 선진국이다. 화석연료에 기대어 고도 성장의 과실을 누리는 동안 지구가 뜨거워졌고, 그로 인해 가난한 나라들에 기후재앙이 닥쳤기 때문이다.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역사적 책임을 따져 보면 좀 더 명확해진다. 전체 온실가스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이산화탄소는 한번 배출되면 200년 이상 대기중에 머문다. 그러니까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기후위기는 산업화 초기부터 뿜어져 나온 이산화탄소가 대기에 차곡차곡 쌓인 결과다. 국제 통계사이트인 아워월드인데이터자료를 보면, 산업화 초기부터 현재까지 이산화탄소 누적 배출량은 미국이 전체의 24.6%를 차지해 압도적으로 많다. 유럽연합(EU)21.7%, 중국이 13.9%, 러시아가 6.8%로 그 뒤를 잇는다. 반면, 아프리카(2.8%)와 남미(2.6%)는 대륙 전체를 합해도 3%가 안 된다.

 

현대 산업문명이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쌓아 올린 성채이므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적다는 것은 곧 저발전과 빈곤을 의미한다. 그런데 가난한 나라들이 선진국이 했던 방식대로 발전을 추구할 경우 기후위기는 가속화할 수밖에 없다. 선진국들이 인류의 탄소예산’(지구 온도 상승폭을 일정 수준 이내로 묶어두기 위해 넘어서는 안 되는 온실가스 배출 허용량)을 대부분 써버렸기 때문이다. ‘기후 부채아이디어는 이런 딜레마 상황에 대한 정의로운 해법이 될 수 있다. 해마다 두세 차례 글로벌 기후 파업을 이끄는 국제 기후운동 네트워크 미래를 위한 금요일이 지난달 기후 파업에서 기후 배상을 전면에 내세운 것도 이런 인식과 무관치 않다.

관건은 선진국들의 책임감 있는 태도다. 과거에는 선진국의 식민 지배로, 지금은 가난과 기후재앙으로 고통을 겪는 기후취약국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다음달 열리는 COP27 회의가 부유한 나라들이 역사적 책임을 깨닫고 부채 의식을 공유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까?

이종규 | 논설위원 한겨레 :2022-10-02

 

 

보호와 통제, 구속의 딜레마

구속은 처벌이 아니다. 당연하다. 유무죄는 재판을 통해 가려지고, 유죄가 확정된 자만 처벌받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사와 재판을 받는 동안 피고인이 구속돼 감옥에 갇힌다 한들, 그것은 죗값이 아니다. ‘나쁜 놈이니 구속돼 마땅하다는 말은 원칙적으로 틀렸다.

 

그렇다면 구속은 왜 하는 걸까. 논리대로라면 재판을 통해 유무죄가 가려지기 전까지 피고인은 무죄로 추정되므로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여야 한다. 피고인이 자유롭게 활보하는 동안 수사기관은 증거를 수집하고 법원은 재판하여 사안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고 가해자에게 마땅한 죗값을 물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모든 일이 이상적으로 해결되지는 않는 법. 피고인이 자유롭게 활보하다 못해 도망가 버리면 수사와 재판은 진행될 수 없다. 피고인이 자유롭게 증거를 없애버리거나 공범과 입을 맞추면 유죄 입증이 불가능해진다. 그래서 구속이 필요하다. 원칙적으로 처벌은 유죄가 확정된 뒤에 이뤄져야 하기에 수사와 재판을 받는 사람을 미리 가둬서는 안 되지만, 그 사람이 도망가거나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있을 때는 예외적으로가둬두잔 의미다.

 

구속은 피고인에 대한 수사와 재판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도록 임시로 취하는 조치지만, 사람을 며칠에서 몇달간 가둬두다 보니 그 효과는 처벌이나 다름없다. 10일만 구속돼도 직장에서 해고될 위험이 높아지고 몇달간 연장되면 사회생활이나 가족관계에 위기가 닥친다. 그래서일까, 구속은 곧 유죄라는 인식이 생겼다. 수사기관은 구속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구속에 대한 심리적 불안감과 생활상 불이익을 약점 삼아 피의자를 압박하거나 범죄자라는 사회적 낙인을 찍어 자백을 유도했다. 법원도 제대로 통제하지 않았다. 한때는 검찰이 청구하는 대로 구속영장을 죄 발부했다. 나쁜 놈은 구속해서 반성시켜야 한단 말이 농반진반 나오기도 했다. 수사 대상이 되면 곧 구속되는 나라에서 수사와 기소를 관장하는 국가는 국민보다 셌다.

 

구속에 대한 사법통제 필요성이 요구되면서 법원 내에서도 반성이 일었다. 구속사유(도주와 증거인멸 우려)가 있는지 실질적으로 판단하기 시작했고, 유죄라도 벌금형에 그칠 사안에서는 구속영장 발부를 절제했다. 구속이 원래 제도 취지대로 꼭 필요할 때에만 예외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인식이 판사들 사이에서 확산했다. 시민은 누구나 수사 대상이 될 수 있고 구속은 형사처벌에 관한 가장 강력한 공권력의 행사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이 방향은 옳다.

 

문제는 기존의 구속제도로 막지 못하는 위험이다. 최근 벌어진 서울지하철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의 예처럼 수사와 재판 기간에 범죄 피해자가 피고인으로부터 심각한 위해를 당하는 일이 반복해서 발생하고 있다. 반복되는 비극을 막기 위해 구속사유에 피해자 위해 우려를 추가하자는 목소리가 높다. 피해자가 보복을 당하거나 더 큰 위해를 입도록 방치하는 것은, 피해자가 당한 범죄에 대한 합당한 책임을 가해자에게 지우는 형사사법의 본질에 반한다. 따라서 피해자를 보호할 방안의 하나로서 구속 제도를 검토해 보자는 데 동의한다.

 

다만, 가장 강한 공권력의 행사인 구속이 통제 대상이란 점은 항상 인식해야 한다. 구속사유에 피해자 위해 우려를 추가하면 지금 문제가 되는 스토킹 범죄나 기타 상습성이 인정되는 범죄 외에도 피해자가 있는 모든 범죄에서 구속이 무분별하게 남용될 위험이 생긴다. 영장 발부 여부를 결정하는 판사로서는 피해자가 재범당할 위험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안이라면 구속영장을 기각하기가 껄끄러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속사유에 피해자 위해 우려를 추가하더라도 구속 남용을 막기 위한 장치는 필수적이다.

 

영장실질심사에서의 조건부 석방제도 도입은 그 대안이 될 수 있다. 구속영장을 발부함과 동시에 실시간 위치추적, 피해자 접근금지 및 보호관찰의 조건을 달아 피고인을 석방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조건을 어기면 즉시 구금된다. 이 제도를 도입하면, 판사는 구속영장 발부 단계에서 구속 또는 불구속밖에 선택지가 없는 상황에 직면하지 않고, 구속이란 강한 공권력 행사를 통제함과 동시에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다양하고 실효적인 방법을 생각해낼 수 있게 된다. 피해자 보호와 공권력 통제, 형사사법에 있어 어느 하나도 포기돼선 안 된다.

류영재 | 대구지방법원 판사 한겨레 :2022-10-02

 

 

엄마와 사회주의자 윤석열

요즘 시골 노모의 목소리에 근심이 짙다. 내년 노인일자리에서 탈락할까봐 조마조마. 정부에서 공공형 일자리를 축소한다고 발표한 탓이다. 올해 팔십줄에 접어든 당신이 먼저 탈락될 거라며 몹시 초조한 기색. 노인들이 서로 나이를 세며 내년에는 못 보겠네 쓴웃음을 짓는다고 한다.

 

돈도 돈이지만, 가장 섭섭한 게 뭐냐면. 되게 심심할 것 같아서 말야.”

이번 추석 때 엄마가 큰이모와 나눈 통화 내용도 그랬다. 군산에서 노인일자리에 참여하는 큰이모도 일자리가 사라질까봐 내심 불안해하고 있었다. 전화로 속사정을 털어놓는 두 노인네의 흐린 목소리를 듣자니 속이 시끄럽다. 전국에서 이렇게 느닷없이 불안에 잠식당한 노인들이 족히 수만은 될 터다.

 

한 달에 30시간, 하루 3시간, 27만 원. 이른바 공공형 노인일자리. 저소득층 노인들의 생계비 보전을 위해 시행된 직접 일자리는 60세 이상 노인들이 환경 미화나 시설물 점검 같은 공공서비스를 제공한다. 우리 노모의 경우, 조끼를 입고 시골 동네와 공원 등지를 돌며 청소를 하거나 잡풀을 제거하고 있다.

 

2020년 통계청의 <노인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참여 인구의 73.9%가 생계비 마련을 위해 노인일자리 사업에 신청서를 냈다. 소득과 자산 기준 선발이어서 형편 어려운 사람들이 태반이다. 또 참여자의 90%70대 이상이고, 이중 2/3이 여성이다. 거기에 대부분이 초등학교 졸업 학력. 말하자면 공익형 일자리 상당수가 가난한 여성 노인들의 생존 일터인 셈이다.

 

한편 노인일자리는 신체적 활력, 치매 예방, 우울증 감소과 같은 복지 시스템으로도 기능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노인일자리에 참여하는 노인은 그렇지 않은 노인에 비해 병원 이용 횟수가 줄고, 우울증도 32.3%에서 7.3%로 대폭 감소한다. 사회적 노동과 공공서비스에 참여하는 것으로 자존감을 회복하는 탓이다. 또 유대감과 새로운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면서 긍정 에너지를 얻기 때문이다.

 

우리 시골 노모가 걱정하는 심심함은 바로 그 유대감의 상실에 따른 두려움의 표현이다. 공공의 돌봄 시스템이 거의 부재한 한국 사회에서 독거 노인들에게 유일하게 일상의 인삿말을 건네는 건 오직 TV 드라마뿐이다. 엄마는 노인일자리로 꽤 많은 말벗을 만났다. 운동도 같이 다니고, 텃밭 채소도 나눈다. 소박한 청소 노동이지만 마을과 공원을 돌보고 있다는 자긍심에 새로 사귄 말벗과의 친목까지, 전에 보지 못한 활력이 돌았다. 판데믹 기간 노인일자리 사업이 중지됐을 때도 적적함을 토로했었다. 그런데 이제 일자리에서 쫓겨나 외로움의 모퉁이에 유폐될 처지가 됐다.

대한은퇴자협회 회원들이 915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통령집무실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2023년 예산에 반영된 공공형 노인일자리 축소 등에 반대하며 늘어나는 노인 인구에 따른 일자리 확대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8월 의결된 2023년 정부 예산안. 직접 일자리 예산 902억 원이 도려내졌다. 공공형 노인 일자리 61천 개가 하루 아침에 사라진다. 대신 민간 기업들에 보조금을 제공하고 시장형 일자리 38천개 를 늘이겠다고 밝혔다. 정부의 변명은 건전재정민간 중심 일자리 창출’. 말은 그럴싸하지만, 결국엔 가난한 노인네들 일자리를 날려 공공지출을 줄이고 민간 시장을 활성화하자는, 죽지도 않고 돌아온 신자유주의의 그 지겨운 돌림 노래다. 공공형 일자리에서 쫓겨난 나이든 여성 노인들이 시장형 일자리에 옮겨갈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대책도 없이 방출되는 것이다.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는 윤석열 정부의 철지난 신자유주의 기조는 가장 먼저 가난한 사람들에게 긴축을 강요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시장에 포함되지 않는 돌봄 노동과 공적 서비스에 대한 지출을 그저 돈 낭비와 도덕적 해이로 단죄한다. 노인일자리의 경우, 외려 더 나은 노동의 퀄리티와 임금 조건, 공동체의 돌봄과 공공 서비스를 강화하는 쪽으로 조타수를 돌리는 것이 사회의 번영 측면에서 현명한 선택지임에도, 이 중요한 가치를 효율성과 시장의 이름으로 일거에 퇴출하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그렇게 공공 지출은 줄이고 시장 확대 명목으로 기업과 부자들의 이익을 보증하는 불평등의 전위부대를 자처한다. 부동산 부유세를 삭감하고 법인세, 소득세, 상속세를 감면하는 것으로 향후 5년간 대기업과 고위 자산가들에게 수십 조 원의 세금을 깎아주는 것은 물론, ‘돌봄과 교육을 민간 주도로 고도화한다며 사회보장 시스템 자체를 민영화하려는 시도가 바로 그것이다. 닥치는 대로 규제를 풀어 마지막 남은 공공성마저 시장의 먹잇감으로 던져놓으려는 것이다.

 

고소득층에 감세 혜택을 주면 민간 기업들이 역동적으로 혁신 성장을 하게 돼 경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이른바 낙수효과’, 이미 전 세계에서 경제적 불평등을 끝없이 심화시킨 양치기 거짓말로 지탄 받고 폐기처분되고 있는 저 낡고 한심한 공염불이 바로 현 정부의 사상적 기초다. 판데믹과 물가 위기를 경유하며 다른 나라들은 떼돈을 번 기업들에 횡재세를 부과하거나 사회적 약자를 돌보자며 공공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는데, 욕 하나는 끝내주게 잘하는 대통령 뒤로 슬그머니 귀환한 올드보이들은 나라 곳간을 활짝 열고 부자들만의 잔치를 여느라 정신이 없다.

 

그 와중에 대통령실은 청와대 영빈관 신축을 위해 900억 원의 예산을 요청하기까지 했다. 시민들 비판으로 금세 취소됐지만, 제 편리와 잇속 챙기는 데만 얼마나 골몰해 있는지를 보여주는 환장의 에피소드. 그 잘난 건물 하나 꾸미겠다고 요청한 900억 원은 공익형 노인일자리 61천 개가 삭제된 비용과 같다. 61천의 그 가난한 노인들의 노동력과 웃음, 바로 삶의 무게 말이다.

 

이 나라는 부자들에게는 사회주의를, 가난한 사람에게는 혹독한 개인주의를 적용한다.”

마르틴 루터 킹의 저 유명한 격언이야말로 신자유주의를 숭앙하는 현 정부의 영혼의 구령일 것이다. 가난하고 늙은 여자들한텐 혹독하게 긴축을 강요하는 대신 부자들에겐 아낌없이 베풀고 나눠주는 그들만의 정겨운 사회주의, 기업들만을 위한 호혜의 정부. 부자들의 사회주의자 윤석열이 그렇게 엄마를 내쫓고 있다.

이송희일 영화감독 미디어오늘 2022.10.02.

 

 

어설픈 굿판의 정치

선무당 굿판 같다. 애초에 이게 이럴 일이었나 싶으니 더욱 그렇다. 칠금령 소리 요란하고 장구재비 엇모리장단이 경쾌한데, 정작 공수를 주는 무당들의 사설이 혼란스럽다. 나라님 비속어 발언이 문제인지, 남의 나라 권력을 망령되이 불러서 문제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굿을 의뢰한 당사자야 무당의 입을 보며 애가 닳겠지만, 구경꾼들은 호기심 반 염려 반으로 이 판이 어떻게 될지 지켜보고 있다.

 

후세는 이 정국을 두고 무엇이라 할지 모르겠다. 우리는 일단 날리면 사태라 부르자. 사태의 기원은 언론보도를 통해 모두가 들었던 문제의 대통령 발언을 특정할 수 없다는 주장에서 시작했다. 발언 내용이 모호하면 발언자에게 물어보면 된다. 대통령은 정작 언론보도가 사실과 다르다고 불평했을 뿐, 내용을 따로 말해주지는 않았다. 다만 대통령실 홍보수석이 다시 한 번 들어봐 주십시오라며 날리면이라고 되어 있습니다라고 해명했는데, 대통령이 이 해명을 지지하는 마음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다.

 

여기까지만 보면 한국 정치판에서 늘 벌어지는 해프닝에 가깝다고 해야겠다. 그러나 사태가 제법 심각한 이유는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해묵은 정치적 수법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일찍이 대통령은 진상이 확실히 밝혀져야 한다며 언론보도를 문제 삼았고, 여당은 문화방송(MBC) 보도책임자를 상대로 대통령 명예훼손을 이유로 형사고발했다. 정치적 발언의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명예훼손 소송을 벌여 경찰과 검사의 수사능력을 활용하는 구태의연한 수법이 다시 나온 것이다.

 

이건으로 형사재판이 열린다 하더라도 결론은 자못 자명하다. 지난 29일 동아일보 김순덕 칼럼을 보면 알 수 있다. 우리 사법부는 공인에 대한 명예훼손을 이유로 언론을 고발한 쪽의 손을 들어 준 적이 거의 없다. 이 고발은 사법적 판단을 받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정치적 논란을 증폭하기 위한 것이다. 수사당국의 힘을 빌려서 언론을 들쑤시고, 수사 중에 별건을 잡아내고, 수사는 물론 재판으로 정치적 논란을 이어가겠다는 순정한 정치적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반사실적으로 생각해 보자. 애초에 이런 정치적으로 동기화된 굿판이 벌어질 게 아니라면 어찌 될 일이었을까. 대통령 발언에 대한 해명을 돕기 위해 명예훼손 형사소송이 필요한 일인가. 언론의 대통령 순방 보도의 경위를 파헤치자고 수사당국이 개입할 일인가. 아니, 이 나라 시민이 귀가 없고 이 나라에 음성 전문가가 없어서 바이든인지 날리면인지 특정하지 못하는가. 대통령 순방의 외교적 성과를 검토하고 임박한 경제외교 위기에 대한 정책적 대응을 고민해도 충분치 않은 시간에 어처구니없는 굿판이 벌어지고 있다.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출판한 이후 각종 비판에 시달렸는데, 특히 진실을 주장하는 정치적 공세에 질린 나머지 1967진실과 정치라는 글을 뉴요커에 기고했다.

 

이 위대한 에세이의 요점을 새기는 자라면 누구나 정치에서 진실을 주장하는 일은 그 자체로 위태하고 또한 위험하다는 것을 안다. 아렌트의 경계가 무색하게도 우리 정치에는 온통 진실 추구요, 진상 규명이요, ‘팩트확인뿐이다. 정치적 진실을 확립한다면서 수사기관을 동원하고, 언론매체를 동원해서 몰아치기 보도를 유도한다. 입빠른 자들은 저마다 진실을 말한다며 열변을 토하는데, 좌파든 우파든 진실을 눈앞에 보고 있다는 그 광신적 표정에 별 차이가 없다.

 

나는 우리 정치가 한 발이라도 앞으로 나가려면 정치적 행동을 둘러싼 진상규명을 이유로 형사고발을 서슴지 않는 바로 그 관행을 바꾸어야 한다고 믿는다. 진실이면 충분하다는 이유로 상대방을 설득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몰아세우려는 그 자세를 반성해야 한다. 누구도 확인하지 못할 진실을 듣기 위해서 칼춤과 작두타기가 난무하는 굿판이라도 벌이겠다는 그 모진 마음을 돌봐야 한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경향 2022.10.03.

 

 

완전 끔찍대한민국 오명 벗는 방법은

tvN ‘윤식당2’ 캡처

 

스페인의 테네리페섬에는 가라치코라는 곳이 있다. 인구 5400여명의 작은 마을이다. 4년 전 이곳에서 tvN<윤식당> 시즌2가 촬영됐다. 마지막화에선 이 마을에 사는 한 가족 손님이 찾아왔다. 이 가족들의 대화는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이들은 한국인들이 임시로 운영하는 식당이라는 사실을 인지한 뒤 한국의 노동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한국이 가장 일 많이 하는 나라인가?” “그리고 다음이.” “멕시코가 두 번째였어.” “말도 안 돼.” “한국이 1등이야.” 그리고 이어진 말은 완전 끔찍해였다.

 

이후 딸은 부모에게 인도에 있었던 내 (한국인) 동료는 여행하면서 안식년을 보내고 있었어. 그리고 돌아가서 세계적인 대기업에 들어가는 거지. 거기서 죽어라 일을 하고라며 자신의 경험담을 얘기했다. 그는 이어 대기업에 들어가서 하루에 12시간 이상씩 일하는 거지, 그것도 평생 동안이라고 했다. 한국의 노동시간을 한마디로 끔찍하다고 표현한 딸은 왜냐하면 난 조금 일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많기를 원하거든. 하루에 내가 가진 시간 중에 10~15시간을 대기업을 위해서 일하는 건 싫어라고 덧붙였다.

 

이 장면이 방송되던 2018년에는 52시간 근무제로 요약되는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노동시간을 어떻게 단축할 것인지가 뜨거운 쟁점이었다. 당시 전국언론노동조합 경향신문지부장을 맡고 있던 필자도 기자직군 조합원들의 노동시간 실태조사부터 했다. 100시간을 넘는 노동이 허다했다. 경향신문 노사는 수개월간의 교섭 끝에 주 52시간제 시행 방안을 만들어 냈다. 이 제도는 4년째 지속되고 있다.

 

2019년에는 언론노조 차원에서 꾸린 조사단에 참가해 유럽의 노동시간 제도가 실제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직접 확인할 기회가 있었다. 프랑스 기자노조(SNJ)와의 면담을 시작으로 독일의 통합서비스노조(Ver. di) 산하 언론인노조, 영국 언론인노동조합(NUJ) BBC지부, 벨기에에 위치한 국제사무직노조연합(NUI)과 벨기에 공영방송 노조위원장 등을 만났다. 각국의 언론정책 담당 공무원들과도 면담했다.

 

법과 제도부터가 다소 충격적이었다. 대부분 주당 노동시간을 35~40시간으로 정해 놓고 있었다.

 

벨기에는 주 35시간 노동제였다. 프랑스에선 대부분의 직장은 주 35시간제이지만 기자들은 주 4시간의 연장근무를 허용하는 단체협약이 체결돼 있었다. 영국은 35~40시간이었고, 독일은 최대 48시간이었다.

 

그러나 기자직 업무의 특성상 비상상황이 발생할 경우 정해진 시간을 초과하는 노동이 실제 벌어지고 있었다. 대신 이에 대한 보상 체계는 상당히 두터웠다.

 

프랑스의 경우 초과 노동시간만큼을 휴가로 보장하는 동시에 초과근무 수당까지 동시에 보장하고 있다. 일반 국민들도 기자들은 일을 많이 하기 때문에 대신 바캉스철에 일반 직장인보다 더 많은 휴가를 사용한다고 인식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초과노동에 대한 노동시간 저축계좌제를 통해 정년까지 사용할 수 있다.

 

마지막 출장지에서 만난 벨기에 공영방송 노조위원장은 양성평등 관점에서 노동시간 문제를 언급했다. 그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35시간제가 시행 중이지만 최근 주 28시간으로 노동시간을 단축하자는 요구가 계속되고 있다면서 노동시간 단축은 일자리 나누기라는 의미 외에도 양성평등의 문제다. 노동시간이 단축되어야 (노동자 부모 모두) 과도한 근무로 인한 육아에 대한 부담이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한국의 노동시간은 2021년 기준으로 연평균 1915시간이나 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에서 뒤에서 4번째 순위다. 여전히 창피한 수준이다. 그런데도 윤석열 정부는 노동시간이 짧아서 경제가 어렵다는 자본의 논리만 앞세우고 있다. 고용노동부 장관까지 나서서 52시간제를 후퇴시키겠다고 공공연히 떠들고 있다.

 

자본주의는 노동자를 탄생시켰다. 자본주의의 역사는 노동자들이 노동시간을 단축시켜 온 지난한 싸움의 과정으로 점철되어 왔다. 노동시간 단축의 의미는 간단하다. 윤식당을 찾았던 스페인 한 가정의 딸이 소박하게 잘 표현해 주고 있다. “왜냐하면 난 조금 일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많기를 원하거든.”

한대광 전국사회부장 경향 2022.10.03.

 

 

K의 기후 부정의

올봄부터 석탄화력발전소 하청노동자들을 만났다. 기후위기에 따른 탈석탄정책에 따라 이미 석탄발전소가 단계적으로 폐쇄되고 있는 중이었다. 보령, 울산, 호남발전소 일부가 폐쇄되면서 그곳에서 일하던 2차 하청노동자 58명 모두 해고됐다.

 

발전소 하청노동자와 몇몇 연구자들이 모여 발전소 폐쇄에 따른 고용위기 실태를 조사하기로 했다. 실태조사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해고된 노동자들을 좀처럼 만날 수가 없었다. 여기저기 수소문 끝에 해고된 노동자 중 일부와 연락이 닿았다. 하지만 무작정 화를 내고 전화를 끊는 노동자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어렵사리 K와 연락이 닿았다.

 

K는 발전소에서 8년간 일했다. 일하는 동안 7번의 업체가 바뀌었다. 1년에 한 번꼴로 재입사를 반복하는 동안 발전소 폐쇄 이야기를 알려준 업체는 없었다. 그러다 발전소 폐쇄 한 달을 앞두고 폐쇄와 해고를 동시에 통보받았다.

 

여수고용노동청이 발전사와 하청업체, 그리고 하청노동자들을 불러 발전소 폐쇄에 따른 고용 대책회의를 열었다. “그 자리에서 여수지역 플랜트 쪽에 우리 하청노동자를 받아 줄 곳이 있는지 알아봤는데 없다는 이야기만 들었어요.” K는 해고된 뒤, 동료와 함께 알음알음으로 지역의 3차 하청업체에 취직했다. 하지만 얼마 전 K의 동료가 일하다 크게 다쳐 병원에 입원한 뒤에 K도 일을 그만두었다. “임금도 너무 적고, 야간 노동도 너무 많이 해요. 일이 너무 힘들어서 더는 못 버티겠어요.”

 

정부는 20217산업구조 변화에 대응한 공정한 노동전환 지원방안을 발표했다. 정부대책에 발전소 하청노동자의 고용보장 방안은 없다. 대신 해고를 전제로 한 재취업교육 지원이 전부다. ‘공정한 전환을 내건 정부대책에서조차 더 큰 피해를 보는 집단은 이미 내정되어 있다. 지난 20년간 발전소 하청노동자는 정부의 민영화와 외주화의 산물이었다. 더 많은 위험, 더 적은 임금, 공기처럼 뼛속 깊이 스며든 차별에 이어 이제 기후 정의를 실현해야 하니 일자리를 내놓으라고 한다. 발전소 하청노동자들의 희생을 예고하는 정부대책은 그 자체로 기후 부정의. 국가정책에 의해 생산되고, 활용되다가 버려지는 삶 그 자체가 기후 부정의. 제대로 된 정보를 알리지 않아 충분히 싸울 수 있는 시간을 빼앗는 그 자체가 기후 부정의.

 

K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야 왜 다른 노동자들이 화를 내며 전화를 끊었는지 알 수 있었다. K처럼 더 낮은 임금과 더 나쁜 노동조건을 감수하며 일하고 있었을까. 새로운 일터에서 일하는 도중에 전화를 받은 노동자들은 모두 정신없이 바빴다. 발전소 폐쇄와 같은 단어들이 나오자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다가 인터뷰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신경질을 냈다. 건성으로 듣다 안 사. 바빠 죽겠구먼하는 노동자도 있었다. K 역시 발전소가 왜 폐쇄되었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K는 여전히 발전소에 다시 취직하고 싶어했다. 지역에 신규발전소가 세워지길 기다리고 있었다. 문재인 정부 때 발전소 하청노동자들은 정규직으로 전환될 거라는 이야기를 듣고 기다렸는데 해고가 먼저 되었다고도 말했다. ‘기후 부정의는 그 부정의함의 당사자들 몰래 진행되고 있었다.

전주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 경향 2022.10.03.

 

 

이탈리아 국민의 도전과 실험

9월 마지막 주, 세계 언론과 정치의 화두는 이탈리아 총선이었다. 유럽의 주요 인물들뿐 아니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민주주의가 기로에 섰다고 우려했다. 지난 25일 이탈리아 총선에서 극우 성향의 이탈리아형제들(FdI)이 압승을 거두고 그 대표인 조르자 멜로니의 총리 취임이 확실시되었기 때문이다

 

논란의 핵심은 멜로니와 이탈리아형제들이 그 접두사가 무엇이든 파시스트라는 점이다. 뉴욕타임스의 한 기사는 멜로니를 보도하며 파시스트파시즘이라는 단어를 28번이나 사용했다고 한다. 실제 멜로니는 무솔리니를 추종하는 네오파시스트 정당인 이탈리아사회운동(MSI)에서 정치를 시작했으며, 이번 총선의 주요 공약들도 종교, 가족, 국가를 강조하고 LGBT와 이민자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그러나 멜로니는 수차례 과거 파시즘과 다르다는 것을 강조했고,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서도 우크라이나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유럽연합과의 관계에서도 유연한 입장을 보이고 있어, 오성운동(M5S)과 동맹(Lega)이 집권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향후 멜로니 내각이 영국처럼 유럽연합을 탈퇴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번 총선의 승패는 포퓰리즘과 우크라이나 전쟁이 좌우했다. 친러 경향을 보인 오성운동과 동맹, 전진이탈리아(FI)의 지지율은 최소 3분의 1에서 절반 넘게 하락한 반면,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정당들은 지지율이 상승했다. 민주당(PD)0.4%포인트로 소폭 상승하는 데 그쳤지만(19.1%), 이탈리아형제들은 26.0%를 얻어 지난 총선 지지율 4.4%6배에 가까운 득표율을 기록했다. 반면 오성운동과 동맹은 집권 후 포퓰리즘 성향이 줄고 기성 정당화함으로써 각각 15.4%8.8%로 떨어졌다(2018년 오성운동 32.7%, 동맹 14.0%). 전진이탈리아도 친러 성향을 보임으로써 8.1%로 떨어졌다(201814.0%). 세 정당 지지자들 중 우크라이나를 지지하거나 포퓰리즘 성향을 지닌 유권자들이 이탈리아형제들로 옮겨간 것이다.

 

멜로니와 이탈리아형제들이 과연 파시스트인가는 다시 한번 짚어볼 문제다. 1995년 이탈리아사회운동이 분열해 온건파가 민족연맹(AN)으로 분리해 나가고 정통파가 삼색횃불사회운동(MSFT)을 창당했을 때 멜로니는 민족연맹에 참가했다. 그리고 2009년 민족연맹 당원들이 전진이탈리아와 통합해 자유국민당(PdL)을 창당했다가 2012년에 다시 탈당해 이탈리아형제들을 창당할 때 파시즘 색채는 더 약해졌다. 현재 이탈리아형제들의 6개 정파는 중도를 포함하고 민족주의, 사회주의, 자유주의라는 다양한 수식어를 단 보수주의 정파들로 이루어져 있을 뿐, 정통 네오파시스트는 배제되었다. 그러므로 멜로니와 이탈리아형제들을 연속성과 단절성을 동시에 가진 접두사 포스트를 붙여 포스트파시스트라고 규정할 수는 있지만 네오파시스트로 보기는 어렵다. 적어도 과거 파시스트의 위험은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유럽과 미국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이탈리아형제들의 민족주의 포퓰리즘과 연정 파트너인 동맹과 전진이탈리아의 친러 성향 때문이다. 민족주의 성향이 유럽연합을 약화할 가능성도 없지 않지만, 무엇보다 포퓰리즘의 강화가 기성 정치 엘리트를 위협한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

 

파시스트 논란을 떠나 우리나라의 상황에 비추어 볼 때 부러운 점도 보인다. 미국과 유럽연합의 영향력을 벗어나고자 하는 민족주의 성향은 이탈리아 보수의 핵심이다. 자국의 독립과 자존을 지키려는 민족주의는 이탈리아뿐 아니라 유럽 대부분에서 보수주의의 본령이다. 그리고 포스트파시스트일지라도 국민을 두려워할 줄 안다. 그런데 최근 윤 대통령의 비속어 논란에서 드러났듯이 한국의 보수는 국민보다 미국을 더 두려워하고 국민의 자존보다 사대적 동맹에 더 가치를 둔다.

 

이탈리아 국민의 실험과 도전 정신도 눈여겨볼 만하다. 1994년 반세기 기민당의 부패 정치에서 벗어난 이탈리아 국민은 신생 정당 전진이탈리아에 집권 기회를 주었고, 2008년에도 역시 신생 정당 오성운동에 압도적 지지를 보내 새로운 정치 실험을 시도했으며, 올해 총선에서는 이탈리아형제들을 통해 기성 정치에 강력한 경고를 보냈다. 기성 정치에 환멸을 느끼면서도 미워도 다시 한번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새로운 도전 앞에서 망설이는 우리의 모습이 안쓰럽다. 우려 속에 2024년 총선이 다가온다.

정병기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경향 2022.10.03.

 

 

 

온 국민이 분노하는데, 언론만 때려잡으면?

윤석열 정부의 실수를 지적하는 입을 틀어막고 싶다면 엠비시(MBC)뿐만 아니라 유튜브와 포털, 트위터와 같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문을 닫아야 할 판이다. 조문, 외교 참사 논란이 며칠이나 지났다고 이젠 제74회 국군의 날 영상 때문에 에스엔에스가 시끌시끌하다.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이 기념사를 시작하기 전 부대 열중쉬어를 말하지 않았다는 논란때문이다.

 

소리 내 말한 것도 하루하루 휙휙 뒤바뀌는 세상이라 굳이 논란을 붙여봤다. “대통령이 별도로 구령하지 않아도 제병지휘관은 스스로 판단해 구령할 수 있다는 해명(, 국군의날 열중쉬어생략면제라 이해해야?” [영상]/국민일보) 보도도 있었지만, 언론사에 또 진상규명을 요청할지 모르니. 소리 전문가가 화면을 분석해 대통령이 입을 벌렸을 때 이라고 발음하고 있었다고 증언할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병사들의 고충이 크지 않았다면 다행인 일이라 넘겼지만, 누리꾼들 생각은 다른 것 같다. 라이브로 송출된 현장 영상이 퍼지자, 발 빠른 유튜버는 역대 대통령들의 열중쉬어총망라 영상을 편집해 올렸다. 긴 영상을 보기 힘든 현대인들을 위한 짧은 동영상인 쇼츠도 따라붙었다. 조회수가 수익과 연결되는 조회수 경제시대 유튜버들의 대응은, 자본주의 사회답게 기민하기 짝이 없다.

 

그에 비하면 기성 언론 보도는 한발 늦다.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조문 외교때도 그랬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한 ‘48초 회담때도 그랬다. 현장 기자에게 사실을 확인하고, 기사 가치에 대한 내부 판단을 거친다. 그러다 보면 기레기들은 지금까지 보도 안 하고 뭐 하느냐는 성미 급한 조롱이 카카오톡과 에스엔에스를 뒤덮을 때쯤 기사가 나오기 십상이다.

지난 미국 순방에서 바이든 대통령과의 짧은 만남 직후 불거진 비속어 논란은 초반 대통령실의 우왕좌왕 해명이 도리어 의구심과 국민적 관심을 키운 격이 됐다. 한국에서 논란이 불거졌던 22, 엠비시 유튜브 채널의 해당 영상 조회수는 저녁 710분께엔 390만이었다. 김은혜 홍보수석이 나와 윤석열 대통령이 말한 ××는 미 의회가 아닌 우리 국회 야당을 일컫는 것이었다며 다시 들어보라고 한 뒤, 이튿날 아침 조회수는 530만으로 늘었다. 누리꾼들 사이에선 김은혜가 친정 회사 조회수 올려줬다는 조롱 섞인 반응이 나왔다. ‘바이든’ ‘날리믄’ ‘발리믄을 두고 전국민 모국어 듣기평가가 벌어졌다. 여권은 뒤늦게 정언유착프레임을 들고나와 엠비시를 콕 집어 겨냥했지만, 싸늘해진 중도층 민심은 도통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치솟는 물가와 환율, 전쟁 위협을 다룬 뉴스만큼이나 윤 대통령 언행에 관한 뉴스들이 포털 많이 본 기사에 오르는 실정이다.

 

왜 누리꾼들은 대통령 태도에 분노할까? 댓글창의 성난 민심은 실수에서 배우려 하지 않는 윤 대통령의 고집스러운 자세를 지적한다. ‘ 경례 받고 열중쉬어안한 , 장병들 세워둘 참이었나” ’라는 중앙일보 기사엔 이런 댓글이 달렸다 . “참모진이 실수해도 국민에게 사과하는데, 본인이 사고를 쳐 놓고 사과도 안 하는 대통령은 처음이다.”(eltm****, 이하 네이버) “아기가 언제 걷는지도, 아나바다도 모른다. 모르면 배우려고 노력해야 하는데.”(nys0****) 한겨레 기사에도 마찬가지 댓글이 달렸다. “민생·경제·군사·안보 어느 것 하나 공부하고 준비해서 보여주는 모습을 볼 수 없다.”(leei****) “전쟁이나 국가부도 등 위기에 거짓과 왜곡으로 갈팡질팡 대처할 게 뻔해 공포감을 느낀다.”(hope****)

 

언론 탓, 야당 탓, 검찰 탓, 남 탓 좀 그만하십시오. △△사태, 온 국민이 분노한 거는 예외 없는 사실인데 ○○○ 대통령은 뭐라고 했습니까? 언론보고 성찰하라 그랬습니다. () 가짜뉴스 타령하고 그 언론 때려잡겠다고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 △△ 탓을 야당만 했습니까? 대한민국 국민이 다 했습니다.”

국민의힘 엠비시 편파·조작방송 진상규명 태스크포스(TF) 박대출 위원장이 야당 시절 지난 정부에 했던 성토다.

정유경 | 디지털뉴스부장 한겨레 2022.10.03.

 

 

들리는 세계의 분할 통치

보이는 세계들리는 세계가 뒤틀린다. 첫 유엔 연설, 대통령의 말이 들린다. 그의 말소리는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에 부합하듯 위엄이 있다. 어느 순간 불쑥 대통령 부인이 보인다. 지휘하고 응원하고 평가하는 모습이다. 혼란스럽다. 퍼스트 레이디인가, 퍼스트 퍼슨인가?

 

말하는 사람이 퍼스트 퍼슨이다. 언제나 그랬다. 부처, 공자, 예수, 소크라테스는 모두 말하는 사람이다. 이들의 말소리는 로고스(logos). 합리적 이성의 소리다. 철인, 성인 못지않게 정치 지도자의 말도 힘이 세다. 특히 최고 권력자의 말은 자체로 법적 근거를 갖는다. 말이 권위고 권력이다. 그만큼 무겁고 무서운 것이 대통령의 말이다.

 

프랑스 철학자 데리다는 말-중심주의 해체를 시도했다. 그는 말소리보다 그 말이 가능하기 위한 전제에 주목한다. 전제 없는 말의 불가능성을 밝히면서 말소리 주체의 권력을 해체하는 전략이다. 말의 주인은 그 말의 실제 주인이 아니다. 그래도 말하는 사람이 현실 권력자다. 말하는 사람의 배후에 지휘자가 있다손 치더라도 그()는 보이지 않도록 탈-영토화되어 있어야 한다. ‘보이는 세계에 지휘자가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카오스의 문이 열린다.

 

들리는 세계의 말하는 자와 보이는 세계의 지휘자는 한 몸이어야 한다. 두 세계의 주체가 분열되면 나라가 위태롭다. 증후는 나라 밖에서 감지된다. 유엔에서 대통령은 홀로 최고 권력자가 아니다. 말하는 자이면서 들어야 하는 자이다.

 

대통령의 연설문을 몇 번 읽는다. 짧고 쉽다. 그리고 비어 있다. ‘약자복지의 글로벌 버전이란다. 약자복지란 말부터 기이하다. 복지를 약자 혜택으로 이해하는 개념 자체가 부도덕한 거짓이다.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사회복지의 수혜는 빈부 차이와 무관하다. 소득기준으로 상위 30%나 중위 40%가 하위 30%보다 더 큰 복지혜택을 받는 경우가 태반이다. 말은 틀렸지만 ODA(정부개발원조) 예산을 늘린 것은 자랑할 만하다.

 

자유와 연대: 전환기의 해법이 이번 연설의 제목이다. 21번 자유를 말한다. 유엔 역사상 기록이다. 대통령이 생각하는 자유의 참뜻을 가늠할 만한 문장은 하나다. “진정한 자유와 평화는 질병과 기아로부터의 자유, 문맹으로부터의 자유, 에너지와 문화의 결핍으로부터의 자유를 통해 실현될 수 있습니다.” 이 맥락에서 자유는 복지의 다른 이름이다. 앞의 두 자유는 최소복지인 공적 부조에 해당하며, 문화에서 자유는 사회서비스 영역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광활한 지평은 외면하고 오직 최소복지와 중첩되는 매우 협소한 자유를 왜 이토록 자주 많이 언급하는 것일까? <자유 진영의 글로벌 연대>를 통한 신냉전 구축이 대세라고 판단한 것일까?

 

우크라이나 전쟁, ·중 무역갈등, 공급망의 블록화 체계구축을 근거로 신냉전 운운하는 지식인들이 많다. 부분적으로 타당하니 그 부작용을 알고 대비하는 것은 대통령과 정부의 주된 업무다. 그렇다고 이 흐름에 슬며시 올라타서 자신들의 낡은 이데올로기를 선전하는 것은 못난 짓이고 위험한 처사다. 헛발질 안 하려면 조 바이든의 입장부터 확인하고 또 확인해야 한다.

 

바이든은 지난해 첫 유엔 연설에서 분명하게 신냉전이나 경직된 블록화를 추구하지 않는다고 다짐했다. 올해 연설에서도 미·중관계를 거론하며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우리는 냉전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떤 국가에도 미국이나 다른 파트너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요구하지 않습니다.”

 

바이든은 세계를 이끌어갈 나라의 자유에 대해 조금 낯선 말을 한다. “이 나라는 LGBTQ 커뮤니티에 속하는 개인들이 폭력의 표적이 되지 않고 자유롭게 살고 사랑하는 곳, 시민들이 보복의 두려움 없이 지도자들에게 질문하고 비판할 수 있는 곳이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의 민주주의 국가다. 최근에 그랬고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 그런데 세계시민을 호명하는 대통령이 비판은 물론이고 자기가 한 말이 들리는 세계조차 공권력으로 통제하려 든다.

 

같은 장소에서도 보이는 세계는 각자에게 다르다. 시각이 주체성 감각인 까닭이다. 반면 청각은 공동체 감각이다. 같은 장소에 있는 사람들에게 들리는 세계는 대부분 비슷하다. 한 가족, 한 나라에서 들리는 세계는 하나로 중첩된다. 그런데 지금 대통령과 여당은 들리는 세계7 3으로 분할하고 있다. 분할 통치는 자유가 아니라 국민 억압이다.

박구용 전남대·광주시민자유대학교 경향 2022.10.03.

 

 

자주성과 국제성

강대국에서 태어나면 당장 유복하고 누릴 것이 많겠지만, 그렇다고 약소국에서 태어난 이들이 받는 복이 더 적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하기에 따라서는 특별한 복을 받는다. 약소국 사람들과 지도자들은 강대국 세상에서 생존하고 발전하기 위해 궁리하고 노력함으로써 국제정치의 본령을 더 잘 알게 되고 외부세계의 충격에 대처하면서 생존과 번영을 위한 전략적 능력을 더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질서는 기본적으로 강대국 질서이다. 이러한 질서 속에서 약소국의 생존전략의 기본 가치는 자주성이다. 내 땅과 나라, 역사에 대한 확고한 주인의식을 갖고, 자신과 후손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미래 비전과 목표를 명확히 하면서, 현재를 미래를 품은역동적인 현재로 재구성하여 현실의 난관을 극복하면서 미래의 꿈을 실현해 나가는 것이 자주성의 핵심이다. 그러나 자주성만 갖고는 부족하다. 자주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국제성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그에 따른 상생과 평화의 실천이 필요하다. 전 세계가 하나의 지구촌으로 동시에 연결돼 있는 오늘날의 세계에서는 더욱 그렇다. 우리의 선택지는 협력, 경쟁, 대결이지만, 우리와 지구 전체의 안위와 평화를 위해서는 대결보다는 협력, 전쟁보다는 평화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우리는 현재 많은 분야에서 세계 7~10위의 강국이지만, 여전히 분단국이며 전통적 의미의 강대국은 아니다. 이는 우리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북한과 강대국들을 잘 상대해야 한다는 뜻이다. 역사적으로, 우리는 강대국 정치의 충격으로 빈번히 생사의 갈림길에 섰던 민족이다. 그러나 생각을 바꾼다면, 우리는 강대국 사이에 놓인 지정학적, 지경학적 위치 덕분에 오히려 자주성을 중시하면서 전략적 사고 능력을 가진 시민으로 성장하고, 지도자들은 국제정치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력, 문제해결 능력을 가진 전략가로 성장할 수 있는 조건과 기회가 주어져 있다.

 

해방 이후 국제정치를 잘 알고 위기에 맞아 뛰어난 대처를 했던 대통령은 이승만·김대중 대통령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6·25 전쟁의 정전 과정에서 국제정치와 미국정치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바탕으로 자신의 정치적 안위를 무릅쓰고 끈질긴 벼랑 끝 협상을 통해 대한민국을 구했다. 비록 중공군을 한반도에서 철수시키지는 못했지만, 정전협정의 묵인 대가로 미국으로부터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해군의 강화를 포함한 한국군 전력을 20개 사단으로 강화, 10억달러의 경제협력을 받아냈다.

 

한편, 김대중 대통령은 소련 붕괴 후 새로운 국제질서가 들어서기 전의 과도기에 우리가 한반도 운명의 주인이 되어 북한과 화해하고 미국, 중국과 협력하여 한반도 국제정치를 민족화해,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 평화통일의 방향으로 전환시켰다. 김 대통령은 자주성과 국제성을 결합한 바탕 위에서 역사적인 6·15 남북공동선언을 만들어 냄으로써 한국 민족이 최초로 자신의 운명을 자신의 손으로 결정했다는 해외 평가를 받았다.

 

위의 두 대통령의 업적에서 보듯이, 우리 외교의 성패는 현실적으로 북한과 미국에 대한 정책과 외교에 달려 있다.

 

그렇다면, 요새 우리의 상황은 어떠한가? 윤석열 정부를 보면, 우리가 자주성을 갖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주도적으로 북미양국을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라 대응 위주의 피동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 북한에 대해서는 핵전쟁 위협의 상존에도 불구하고 군사적 긴장완화를 위한 노력 없이, 핵전쟁 위협을 높이는 확장억제중심의 한·미연합훈련 강화뿐이고, 미국에 대해서는 나토정상회의에까지 참석하여 공개적으로 중국을 적대국으로 천명하는 등 미국의 세계전략 속에서 진행되고 있는 한·미 동맹 강화뿐이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은 일련의 외교적 실수와 실패, 비속어 사용 등으로 구설에 올라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우리는 외교를 잘해야 먹고사는 나라임을 강조했다.

 

김 대통령은 정상회담 때마다 다음 몇 가지 원칙을 지켰다. 첫째, 상대가 어떤 사람이든지 간에 진정성을 갖고 진실하게 대한다. 둘째, 상대방에게 더 많은 말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그러나 내가 해야 할 말은 결코 빠뜨리지 않고 적절한 시점에서 반드시 말한다. 셋째, 어떤 경우에도 상대방에게 아니요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상대방이 나와 의견이 같으면, 반드시 내 의견과 같다고 말해준다. 넷째, 회담이 성공하면, 그 공을 상대방의 덕으로 돌리고, 혹시라도 회담이 실패한 경우에도 결코 상대방을 비난하지 않는다. 품격 있는 지도자의 전범(典範) 김대중 대통령이 그립다.

백학순 김대중학술원장 경향 2022.10.04.

 

 

자유 대 기본? 아니, 자유의 기본!

대통령의 영국 여왕 참배 취소는, 물론 그런 의도는 아니었겠으나, 대영제국의 총칼 아래 고통받고 아직도 그 후유증을 떨치지 못한 수많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식민지인들을 대신해 그럴 수도 있는 일이었다. 비속어 논란도 간단히 사과했다면 경선 때 욱하며 미국 시민들과 욕설이 포함된 설전을 종종 보여준 조 바이든 대통령도 개의치 않았을 것이다. 아무도 궁금하진 않겠지만, 나는 바이든으로 들었다. 텔레비전 시청 때 자막은 읽지 않는다. 내가 바이든이라 들을 자유를 위해 다른 이들이 뭐라 듣건 관여하지 않겠다. 대통령과 여당도 그래 주길 바란다.

윤석열 대통령이 연설 때마다 자유를 부르짖고, 박빙으로 대선에 패했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기회 될 때마다 기본을 역설해 우리는 이 둘이 대립적인 개념이라 착각할 수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자유의 의미는 노예제라면 족쇄를 깨는 것이겠고, 봉건제라면 재산을 소유할 자유에 기반한 시장경제를 세우는 것이겠다. 그런데, 칼 폴라니에 따르면 자유방임(laissez-faire)이야말로 자생적 진화가 아닌 의도적인 국가 개입의 산물이었다.” 폭력적인 종획운동(Enclosure)법으로 농민을 내쫓아 노동자를 만들어내고, 동시에 단결금지법을 통해 노동자의 조직화를 무력화시켰다. 최근 사례로는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있다. 대기업 증세로 확보한 예산을 기후위기와 국민건강 보호에 사용하는 것이 핵심이지만, 이 법은 노골적인 자국 기업, 자국민 보호법이기도 하다. 실제 미국은 경제 운용과 외교정책에 있어 자유주의와 호혜성 원칙에 충실했던 적이 거의 없다.

 

국가 개입을 최소화하고자 하는 자유 지상주의자도 기본소득을 지지할 수 있다. 가진 자의 소유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어려운 사람을 최소한도로 도울 수 있다는 것이다. 현금 제공이 빈자의 선택의 자유를 확대한다는 것도 이들이 복지보다 기본소득을 선호하는 이유이다. 물론, 밀턴 프리드먼과 같은 극단적인 자유주의자가 옹호하는 부의 소득세로서의 기본소득은 문제가 많다. 서울시 안심소득 실험 1단계 현재 참여자격은 중위소득 50% 이하이면서 재산 32600만원 이하다. 소득은 전혀 없으나 재산이 33천만원인 사람과 재산은 월세보증금 수준의 1천만원밖에 안 되지만 중위소득의 55%를 버는 사람은 배제된다. 과연 이들 중 누가 더 어려운지 판단할 수 있는 절대적인 기준이 있을까? 비정규직과 실업, 플랫폼 노동의 확산으로 월별 소득이 매우 불규칙해지고 있는 상황과 수해나 병원비 지출 등 생각지 못한 재난에 따른 소비까지 고려한다면 일단 모든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고 사후에 모든 소득과 재산에 대해 누진적으로 과세하고 정산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그런 점에서, 대통령과 여당도 고령자의 실질적인 자유를 증진하기 위해 제1야당이 제안하고 있는 기초연금 인상과 65살 이상 전체 지급을 긍정적으로 검토했으면 좋겠다. 빈곤 노인층을 위해서는 생계급여와 기초연금의 중복 수급을 허용해야 한다. 모든 고령자에게 기초연금이 지급된다면 정부가 원하는 연금개혁에 대한 저항도 일부 완화될 수 있을 것이다. 선별 지급을 강조하는 협소한 관점을 가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경제학자의 의견에 우리 국민의 삶을 맞추려 하지 말라. 재원 마련은 이미 큰 자유를 누리고 있는 부자를 위한 감세 포기부터 시작하면 된다.

 

모든 자유의 기본은 생계 안정이다. 생계 안정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경제가 정상화돼야 한다. 기본소득은 경기 위축기에 필수적인 구매력을 확보함으로써 이 두 목적에 모두 도움이 되는 정책이다. 지금은 한가로이 대통령의 지난 해외순방 문제로 논란을 벌일 때가 아니다. 걸프전 승리로 지지율이 90%에 육박했던 부시 대통령의 재선을 경력이 짧고 문제가 많았던 클린턴 후보가 막을 수 있었던 마법 같은 슬로건을 생각할 때이다: “It’s the economy, stupid.”(문제는 경제야, 바보야)

이주희 |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한겨레 2022.10.04.

 

 

강대국 사이에 낀 국가의 대통령제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대통령제 개혁의 방향, 핀란드에서 배운다

한 달 전부터 이 지면을 통해 한국형 대통령제의 문제점을 주로 대한민국의 역사를 재료 삼아 살펴보고 있다. 그런 와중에도 윤석열 대통령은 지지율 추락 기록을 거듭 갱신하며 제6공화국 대통령제의 위신과 신뢰를 한껏 떨어뜨리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 개헌이 필요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나온다.

 

나의 결론 역시 비슷하다. 굳이 말하면, 이원집정부제 쪽에 가깝다. 의회제 정부 요소를 강화해야 한다고 여기면서도, 역사를 통해 확인되는 대한민국 대통령제의 합리적 핵심, 즉 외교와 국방을 맡으며 강대국들 사이에서 생존과 평화, 번영의 좁은 길을 열어가는 대통령직의 의의와 역할이 여전히 크다 보기 때문이다. 이런 판단을 이어가다 보면, 결국 교과서 속 정부 형태들 가운데에는 '이원집정부제'에 닿게 된다.

 

그러나 이런 결론은 너무 건조하거나 상투적으로 느껴진다. 과연 한 민주주의 국가의 권력 구조를 객관식 문제에서 정답 하나 고르듯 선택할 수 있을까? 다들 어렴풋이나마 그럴 수 없다고 느끼고 있다. 그렇기에 매번 정권의 위기가 불거질 때마다 개헌 논의는 빈번히 출몰해도, 한국형 대통령제가 바뀌기는 결국 불가능할 것이라는 여론이나 정서가 그토록 강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대통령제냐, 내각제 혹은 이원집정부제냐는 식의 논의 구도는 변화의 물꼬를 열기보다는 이를 가로막는 역할을 한다. 같은 내용이더라도 다른 접근법과 전개 방식이 필요하다. 대한민국의 역사와 현실을 돌아보며 이 공화국의 독특한 운명에 맞는 정부 구조를 설계해가야 한다. 마찬가지로 외국 사례를 검토할 때에도 '내각제''이원집정부제' 식 범주에만 갇히기보다는 그들이 역사 속에서 자기네 나름의 고뇌와 실험을 펼친 과정에 주목해야 한다.

 

나는 이런 식으로 접근할 경우에 우리에게 가장 훌륭한 참고 사례는 핀란드라고 생각한다. 흔히 이원집정부제의 전형이라 이야기되는 프랑스가 아니다. 핀란드다. 이 나라는 사회복지나 교육 분야만이 아니라 민주공화국의 권력 체계와 관련해서도 우리에게 들려줄 이야기 거리가 많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영국·미국·캐나다 순방을 마치고 지난달 24일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 공군 1호기에서 내리고 있다. 연합뉴스

 

대통령제 개혁의 훌륭한 참고 사례는 프랑스가 아니라 핀란드

사실 프랑스는 이원집정부제라고는 해도 대통령의 권한이 강하다. 2000년에 대통령 임기와 의회 임기를 일치시켜 대통령 선거와 의회 선거가 같은 해에 실시되도록 개헌을 한 뒤에는 더욱 그렇다. 반면에 핀란드는 20세기에는 지금의 프랑스처럼 대통령 권한이 강했다가 1999년에 개헌을 통해 의회제 요소를 전보다 강화했다. 일단 이 점에서 프랑스보다는 핀란드 쪽이 우리에게 더 많은 참고가 된다.

 

그러나 핀란드에 눈길이 가는, 이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대한민국의 운명이 프랑스보다는 핀란드에 훨씬 더 가깝다는 것이다. 다들 알다시피 프랑스는 제국주의 강대국의 하나였다. 그리고 지금도 그 끈질긴 유산 속에 살고 있다. 이런 나라가 의회제 정부 형태가 상식인 유럽에서 유독 사실상의 대통령제를 고집하는 이유는 틀림없이 한국 사회에는 낯선 것들일 것이다.

 

반면에 핀란드는 강대국 사이에 낀 소국이었다. 스웨덴이 북방의 강자이던 시절에는 스웨덴과 러시아가 핀란드 땅에서 각축을 벌였고, 19세기에는 줄곧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다. 누가 봐도 한반도와 대단히 유사한 지정학적 운명이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한반도 쪽이 훨씬 더 가혹하다는 것이다. 동북아시아에는 열강이 넷이나 되지만, 핀란드의 경우는 근대 이후에는 오직 동쪽 강국 러시아가 골칫거리였다.

 

1919년에 러시아에서 독립하면서 처음 제정한 핀란드 헌법의 권력 구조는 대통령제에 가까웠다. 핀란드는 러시아령이던 시절부터 오랫동안 자치의회를 운영했고, 웬만한 유럽 독립국들보다 이른 1907년에 보통선거로 자치의회 선거를 실시한 경험이 있었다. 이렇게 의회 중심 정치가 뿌리를 내렸기에 사실 신생 핀란드공화국이 더 친숙하게 느낄 법한 것은 대통령제가 아니라 의회제 정부였다. 이 점에서 핀란드의 정치 문화는 다른 서유럽 국가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신생 핀란드는 상당히 강력한 권한을 지닌 대통령직을 도입했다. 대통령 선출 방식은 미국을 본받아 선거인단 선출을 통한 간접선거제도를 채택했지만, 대통령에게 의회 해산권 등을 부여했기 때문에 헌법상 대통령 권한은 미국보다도 훨씬 더 강했다. 대통령이 이런 권한을 헌법 문구로만 놔두지 않고 실제로 행사한다면 쉽게 권위주의 내지는 독재 체제로 전락할 위험마저 있었다.

 

하지만 상당수 핀란드 국민은 이런 위험을 알면서도 기꺼이 대통령에게 권한을 몰아주었다. 무엇보다도 신생 공화국의 위태로운 지정학적 운명을 우려한 탓이었다. 핀란드는 독립 과정에서 이미 국내 좌우 내전 그리고 이와 복잡하게 얽힌 러시아 혁명정부와의 전쟁을 동시에 치른 바 있었다. 핀란드인들은 독립국 지위를 인정받은 뒤에도 이런 숙명에서 좀처럼 벗어날 수 없으리라고 정확히 예감했고, 그래서 통상적인 의회제의 내각보다는 더 안정적인 정부 구조를 바랐다. 그 결과가 바로 미국식과 유럽식이 뒤섞인 독특한 헌정 구조였다.

 

이런 헌정 구조가 실제로 반민주적 권위주의 체제의 발판이 될 수 있음은 핀란드와 비슷한 처지에 있던 다른 유럽 신생국들에서 드러났다. 대표적으로, 핀란드처럼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던 폴란드에서는 대통령직이 결국 의회를 압도하는 총통 비슷한 지위로 부상했다. 그러나 핀란드는 달랐다. 이미 오래 전부터 의회 중심 정치에 익숙했던 탓인지 헌법 속의 막강한 대통령 권한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계속 의회 내 정당 분포를 존중하며 주로 연립내각 형태로 구성됐다. 권위주의 통치자가 될 위험이 다분한 전시사령관 출신 대통령까지 등장했음에도 감히 이 전통을 뒤집으려 하지는 않았다. 핀란드에서는 불안하게나마 민주주의의 미묘한 균형이 유지됐다.

 

그러나 반민주주의로 퇴보하는 유혹에 굴하지 않았던 점만큼이나 눈여겨봐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다소 모호한 헌법 규정들이라는 무대 위에서 핀란드인들이 자기네 운명의 유지와 개척에 가장 적합한 형태로 공화국의 실제 구조를 다듬어왔다는 점이다. 그들이 찾아낸 균형점은 대통령이 공화국의 생존과 직결된 외교와 국방을 전담하고 나머지 내정은 의회가 구성한 내각이 도맡는다는 것이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핀란드를 이끈 두 대통령의 재임 기간에 이런 전통이 굳어졌다. 유호 쿠스티 파시비키(1946-1956년 재임)와 우르호 칼레바 케코넨(1956-1982년 재임)이 그들인데, 둘의 재임 기간을 합치면 무려 36년으로 20세기 중반을 꽉 채운다. 이 기간 중에 두 대통령은 소련을 달래고 미국, 서유럽 국가들과 거래하며 중립국가 핀란드의 생존을 보장받았고, 이로써 국내 사회 개혁을 통해 북유럽 복지국가 대열에 합류할 시공간적 여유를 확보했다.

 

사실 참으로 어려운 과제였다. 핀란드는 나치 이념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에 국경 문제를 놓고 소련과 단독전쟁을 벌였고, 그러다 보니 어느덧 파시스트 진영의 동조자로 낙인찍히고 말았다. 전후에 자칫하면 발트해 세 나라들처럼 연합군 진영의 묵인 아래 소련에 편입될 위험까지 있었다. 냉전 시기에 양 진영의 피 말리는 압박 속에서도 이런 비극을 피하고 독립국이자 중립국으로 인정받는다는 난해한 과제를 성공시킨 데는 파시비키와 케코넨, 두 대통령의 공이 컸다.

 

파시키비와 케코넨 모두 이념상으로는 우파에 속한 정치가들이었다. 파시비키는 정통 보수파인 국민연합당 소속이었고, 케코넨은 중도우파 성향의 농민동맹당(이후 중도당으로 개명)에 속했다. 그럼에도 핀란드 대통령으로서 두 사람은 소련이 핀란드에 대해 의심의 눈길을 거두게 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다. 심지어 두 대통령은 핀란드의 두 좌파 세력 중에 좀 더 온건하지만 소련을 적대시하던 사회민주당보다 친소적인 구 공산당 후신들과 더 가깝게 지내기까지 했다. 대외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한 거의 서커스 수준의 국내 좌우합작이었던 셈이다.

 

혹시 해방 직후 한반도에서 좌우합작과 미국-소련 간 협상에 성공하여 통일 정부가 들어섰다면, 이런 모습에 가깝지 않았을까? 김규식이 초대 대통령을 맡고 여운형이 좌우연립정부의 총리가 되었다면 말이다. 우리의 경우는 이것이 대체역사소설의 소재나 될 순전한 공상의 영역이지만, 핀란드인들은 실제로 이러한 20세기를 살았다.

 

의회제 정부와 대통령의 역할 분담이 뚜렷한 핀란드 모델

그렇다고 아름다운 일화만 있었던 것은 물론 아니다. 대통령과 의회의 역할이 헌법을 통해 분명히 나뉘지 않은 상황에서 대통령이 헌법상 권한을 활용해 원내의 정당 간 정치에도 지나치게 개입하곤 했다. 특히 케코넨 대통령 말기에 이런 문제가 심각하게 불거졌다.

 

핀란드인들은 그간의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헌정 구조를 개혁함으로써 이를 극복하려 했다. 1982년에 드디어 케코넨 대통령이 물러나고 그때부터 2012년까지 세 명의 사회민주당 소속 대통령이 잇달아 재임한 시기에 개혁이 추진됐다. 그 결실로 1999년에 헌법이 개정돼 현재의 핀란드공화국 헌정 구조가 등장했다.

 

개헌의 커다란 방향은 의회제 정부 요소를 더욱 강화하는 것이었다. 의회가 국가 운영의 중심임을 분명히 하는 반면에 대통령 권한은 축소했다. 대통령은 총리의 요청이 있을 경우에만 원내 정당들과 협의하여 조기 총선을 선포할 수 있게 함으로써 대통령의 독단적 의회 해산 가능성을 차단했다. 마찬가지로, 의회가 제정한 법률에 대통령이 이견이 있더라도 의회가 다시 심의해 법률을 확정하면 대통령이 무조건 이에 따르도록 했다. 어찌 보면 핀란드 대통령도 이탈리아나 독일 대통령처럼 내각책임제 국가의 형식적 국가원수 지위에 가까워진 것 같다.

 

그러나 여전히 중대한 차이가 있다. 새 헌법은 외교와 국방 분야에서는 (총리가 아니라) 대통령이 최고 책임자임을 명시하고 있다.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국제 관계라는 성난 바다를 헤쳐 나가야 하는 핀란드호의 선장 역할을 대통령이 계속 맡는다. 비록 항상 정부와 협의해야만 한다는 단서를 달지만 말이다. 헌법 개정 전에는 일종의 관행을 통해 대통령과 총리-내각이 분업을 했다면, 이제는 아예 헌법으로 역할 분담을 정해 놓은 것이다.

 

또한 대통령 선출 방식도 바꾸었다. 미국을 본 딴 간접선거제도를 폐지하고, 직접선거로 선출하기 시작했다. 결선투표제도 채택하여 반드시 핀란드 국민 절반 이상이 동의하는 인물이 대통령직을 맡게 했다. 외교, 국방의 총책임자가 대통령이기에 대선에서는 무엇보다도, 후보가 핀란드공화국에 가장 민감하고 중대한 사안인 대외 관계에 대해 어떠한 비전과 능력을 갖췄는지가 주된 판단 근거가 된다.

 

이리하여 오늘날 핀란드는 이원집정부제라 분류되는 국가들 가운데에서도 대통령과 총리-내각 사이의 분업이 가장 뚜렷하고 체계적인 사례가 되었다. 이것은 어려운 지정학적 조건 속에서 독립뿐만 아니라 발전과 번영까지 쟁취한 한 국민의 고단한 역사 여정에서 나온 경험과 지혜의 산물이다. 이제까지의 역사에 대한 성찰과, 이를 바탕으로 미래를 향해 열린 눈이 만들어낸 그들만의 제도적 배합이다.

 

지금 한국 사회가 해야 할 일도 대한민국이라는 민주공화국의 새로운 뼈대로서 이런 제도적 배합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우리의 역사적 경험과 현재 상황, 미래 가능성들에 맞추어 대통령과 국회, 지방정부, 시민사회의 새로운 임무와 배열, 상호 관계와 균형을 찾아내야 한다. 핀란드의 현 모델 자체보다도 이 모델에 도달하기까지 핀란드인들이 걸어온 여정에서 영감과 교훈을 얻으며 우리의 길에 나서야 할 때다.

장석준 출판&연구집단 신현재 기획위원 미디어오늘 2022.10.04.

 

 

무엇을 위한 -일 정상회담인가

윤석열 정부의 외교정책 중 대일본 정책의 최우선 목표는 분명해 보인다. -일 정상회담 개최. 지난달 22일 미국 뉴욕에서 두 나라 정상이 30분 동안 만난 것을 두고 일본 정부는 간담이라며 그 의미를 축소했고, 한국 정부도 약식회담이라고 표현했다. 의제, 합의문, 의전이라는 정상회담의 요건이 충족된 한-일 정상회담은 여전히 열리지 못하고 있다.

 

-일 관계의 오래된 경색은 주지의 사실인데, 한국 정부가 이를 타개하기 위해 정상회담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것이 문제일까. 정상회담이 수단이 아닌 목표 그 자체가 되면서 문제가 시작된다. 정상회담은 양국이 쟁점을 논의하고, 합의를 도출하기 위한 수단이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전 정부와의 차별성과 함께 정권의 성취를 보이기 위해 정상회담 자체에 매달리고 있다. 뉴욕의 괴이한 만남은 주객이 전도된 외교 방향이 낳은 사고 중 하나다.

 

무엇을 주고받을지가 아니라 회담 성사 자체가 지상과제가 된 구도에서 회담을 가로막는 조건들은 장애물일 뿐이다. 필자는 윤석열 정부 외교부가 7월 초부터 개최한 강제동원 문제 관련 민관협의회에 피해자 쪽 대리인 자격으로 몇차례 참석했다. 첫 회의에서 외교부는 속도감을 강조하며 8월 중 성과를 내겠다고 말했다. 고령인 피해자들과 강제집행 절차가 막바지라는 점을 이유로 들었지만 이해되지 않았다. 피해자분들이 고령인 것은 어제오늘 문제가 아니다. 강제집행 절차 역시, 조금만 면밀하게 살펴보면 법원 판단 이후에도 경매절차 등에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됨을 알 수 있다. 연내 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수십년간 이어온 소송과 판결을 신속하게 처리하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민관협의회 종료 이후 나오는 논의를 보면 이 의심이 정확했다. 강제동원 문제는 일본의 강경한 입장으로 풀리지 못하고 있는데, 협의회는 이 문제의 본질에는 조금도 다가서지 못했다. 피해자들의 동의 없이 피해자들의 판결 채권을 소멸시킬 방법에 관한 논의만 남겼을 뿐이다. 이제 청산 대상은 식민지 시기 불법행위가 아니라 피해자가 되었다. 피해자들의 권리행사가 정상회담에 방해되기 때문이다.

 

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서 최고 정치지도자도 객관적 사실과 맞지 않는 이야기를 서슴없이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817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일본이 우려하는 주권 문제의 충돌 없이강제동원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말했다. 귀를 의심했다. 법률가 출신 대통령이 법적 오류가 담긴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주권은 국가의 문제다.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은 일본 기업, 사인에 대한 판결이다. 집행 절차 역시 일본 기업의 한국 영토 내 자산에 대해 이뤄지고 있다. 일본 정부는 당사자가 아니다. 강제동원 사법절차가 일본국 영토를 침해하거나 일본의 사법권을 침해한 사실은 전혀 없고, 그럴 수도 없다. 일본 정부조차 강제동원 문제를 언급해온 지난 수년간 주권을 침해했다는 주장을 한 적이 없는데, 한국 대통령이 이 문제를 주권 문제로 격상시켰다. 정상회담을 위해 최대한의 저자세 입장을 공표하다 실수한 것이라고밖에는 달리 해석하기 어렵다.

 

한덕수 총리는 지난달 28일 아베 전 총리 국장에서 기시다 총리를 만나 2015년 위안부 합의와 관련해 국제법적으로 보면 조금 좀 일반적으로 좀 이해되기가 조금 어려운 그런 일들이 일어난 것은 사실이라고 언급했다. 2015년 위안부 합의는 국제법(조약)이 아니다. 서면 형식이 조약의 최소요건인데, 2015년 위안부 합의는 구두 합의였을 뿐이다. 국무회의 심의나 국회의 동의 등 헌법상 조약체결 절차도 거치지 않았다. 물론, 국가 간 합의가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한국 총리가 일정한 표현을 할 수는 있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국제법 쟁점이 아닌 사안에서 구속력 있는 국제법을 언급하는 것은 틀렸다. 한국 총리가 일본 총리에게 굳이 틀린 이야기까지 하는 이유는 역시 그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함일 것이다.

 

무엇을 위한 한-일 정상회담인가. 역사적·객관적 사실을 희생시키고, 한국의 피해자들까지 청산시키면서 기어코 이뤄내는 정상회담에서 우리가 얻을 것은 무엇인가? 환하게 웃는 두 정상의 사진인가?

임재성 | 변호사·사회학자 한겨레 2022.10.04.

 

새로운 종말론 앞 가짜 희망가짜 절망

“1999, 일곱번째 달에 하늘에서 공포의 대왕이 내려오리라.”

 

중세 천문학자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이다. 이 종말론은 한 시대를 풍미했다. 노스트라다무스나 요한계시록 등에 기댄 과거의 종말론은 온갖 상징으로 가득하기에 사술과 사이비 종교의 거름이 됐던 반면, 현재 새로운 인류의 종말론은 구체적이고 사실적이며 과학적이다. 그중에서도 기후위기 예측이 그렇다. 전세계 이산화탄소 배출에 따른 지구온난화로 지구 기온이 산업화 이전보다 1.5도 상승하면 해수면이 최대 77상승하고, 폭염, 홍수, 기근 등으로 인류 생존이 어려워지는 시간이 이제 69개월(202210월 현재)쯤 남았다는 것이다. 1947년 자정 7분 전으로 시작했던 지구종말 시계는 올해 100초 전으로 줄어들었다.

 

이런 임박한 재앙 앞에서 각종 대중매체, 서적, 인터넷 공간에서는 다양한 재앙 시나리오와 개인, 국가, 국제사회 수준의 수많은 과제를 제시하고 있고 여기서 다시 언급하고 싶지 않다. 아니, 그 반대다.

 

수많은 결론에서 제시하고 있는 1회 채식을 하고, 웬만한 거리는 걷고, 되도록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접는 장바구니 하나쯤 가지고 다니는 조금 불편한 삶을 살자나 한사람이라도대책은 효과가 있을까? 가장 가난한 10억명보다 평균 8000배 많은 탄소를 배출하고 있는 가장 부유한 억만장자 20명이 삶의 방식을 바꾸지 않고 있는데, 민초들의 일주일 한끼 채식이 효과가 있을까? 이산화탄소 배출량 1, 2위인 중국과 미국, 20301인당 배출량 1위가 될 한국이 6~7년 안에 무기를 내려놓고, 마른 소똥을 연료로 사용해야 하는 빈곤국들에 무공해 연료를 제공할 수 있을까?

 

인권학자 조효제는 최근 그의 책 <탄소사회의 종말>에서 기후행동과 정의행동이 함께 가는 새로운 인권담론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인간의 연대심, 정의감, 창의적 적응력에 대한 희망에 기대는 그의 결론은 다소 허무하다. 인류의 질적 변화를 69개월 안에 끌어낼 수 있을까?

 

오히려 이 책의 현실성은 재난이 임박할수록 정치 선동, 메시아적 약속, 음모론, 가짜 뉴스, 여성, 외국인, 소수자 등에 대한 혐오 등이 그럴듯한 설명의 외피를 걸치고 등장하여 소셜미디어를 통해 무차별 확산될거라는 예측이다. 또한 훗날 역사가들은 이 시대에 국내-국제 차원의 집합적 행동 문제에 더하여 신자유주의, 불평등, 탈진실, 무기력, 냉소주의, 포퓰리즘 등이 한꺼번에 엉키면서 기후위기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는 결론을 내릴 공산이 작지 않다는 그의 결론이다. 물론 그때까지 지구상에 역사가들이 살아 있다면 말이다.

 

이쯤에서 독자들은 물을 것이다. 그러면 어쩌란 말이냐? 유감스럽게도 나 역시 그 해답을 알지 못한다. 다만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이 희망이지만, 우리를 죽게 하는 것도 희망, 이른바 가짜 희망이다. “어떻게 되겠지 뭐” “과학기술이 해결할 거야”. 7년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100년 뒤를 이야기하는 것도 모두 가짜 희망이다.

 

봉준호 감독의 2006년 작 <괴물>은 실험실에서 대량의 포름알데히드를 하수구에 버리라는 명령에 마지못해 따르는 연구원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이후 장면은 그런 환경오염이 만들어낸 거대 생물체의 출현이다. 정부와 시민들은 그것을 죽이려 뒤쫓는다. 이 지점에서 진짜 물어야 하는 질문이 있다. “괴물은 누구인가?” ‘거대 생명체인가, 아니면 대량의 독극물을 강에 버린 자인가? ‘거대한 생명체’, 높아진 해수면, 가뭄, 홍수와 기근, 코로나바이러스는 괴물이 아니다. 그것들이 문제라고 하는 이들, 거짓 희망을 유포하는 이들이 범인이다. 10억명보다 8000배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하고 있는 이들의 행동을 중단시키고 그들을 추앙하는 이들을 신속히사회로부터 배제하지 않는 모든 대책은 임박한 재난 앞에서 효과가 없고, 효과가 없는 대책을 반복 주장할 때 우리는 가짜 희망의 배포자와 공범이 된다.

 

가짜 희망가짜 절망에서 나온다. 종말을 100초 남긴 상황에서, 우리가 기후위기에 진실로 절망하고 있다면 지금 이러고 있을 리 없다.

덴마크의 철학자 키르케고르는 진정으로 절망한 자만이 신을 만날 것이다라고 했다. 이른바 절망의 변증법이다. 이것이 그를 신앙인이 아니라 실존주의자라 부르는 이유다. 나는 종말의 해결책으로 제시되는 자본주의의 극복, 연민공동체의 구축도 우리가 가짜 희망을 버리고 진짜로 절망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믿는다.

신영전 | 한양대 의대 교수 한겨레 2022.10.04.

 

 

미디어와 전문가들의 주택시장 상승론은 어디로?

신규주택 공급부족론은 철저히 파산했다

미디어스=이태경 칼럼] 지난해 연말과 올해 초 압도적 다수의 미디어와 자칭타칭 전문가들은 2022년 주택시장이 상승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이들이 주택시장 상승을 전망하면서 내놓은 주된 근거는 신규주택 공급 부족이다. 그러나 주택시장이 대세하락을 본격화한 지금 신규주택 공급이 부족하다는 목소리는 찾을 길이 없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재고 주택시장 공급량, 주택시장 가격 좌우

 

기억을 복기해보면 금방 알 일인데, ‘신규주택 공급부족론이 등장하는 건 늘 주택시장이 상승할 때다.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계속된 주택시장 대세상승기에 날마다 등장했던 신규주택 공급부족론이 대세하락이 본격화되자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처럼 2008~2013년까지 이어진 서울 부동산 시장의 대세하락기에도 신규주택 공급이 부족하다는 얘기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하지만 버블 세븐 위주로 주택가격이 폭등했던 노무현 정부 시기엔 하루가 멀다 하고 신규주택 공급부족론이 미디어를 채웠다

 

재고 주택시장 공급량, 주택시장 가격 좌우

기억을 복기해보면 금방 알 일인데, ‘신규주택 공급부족론이 등장하는 건 늘 주택시장이 상승할 때다.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계속된 주택시장 대세상승기에 날마다 등장했던 신규주택 공급부족론이 대세하락이 본격화되자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처럼 2008~2013년까지 이어진 서울 부동산 시장의 대세하락기에도 신규주택 공급이 부족하다는 얘기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하지만 버블 세븐 위주로 주택가격이 폭등했던 노무현 정부 시기엔 하루가 멀다 하고 신규주택 공급부족론이 미디어를 채웠다.

 

역사적 경험을 통해서 분명히 알 수 있듯 신규주택 공급부족론은 주택가격이 올라가고 투기가 기승을 부릴 때만 등장하는 프레임이다. 이를 간략히 정리하면 '상품가격은 수요공급곡선으로 설명이 가능한데, 주택가격이 폭등한다는 건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하다는 신호이니 정부는 세금이나 대출 관리로 수요를 억제하지 말고 재건축 및 재개발 관련 규제를 전부 풀고 강남 등을 대체할 대체지를 발굴해 신규 주택공급을 획기적으로 늘려야 한다. 그래야 주택가격이 안정된다' 정도가 될 것이다.

통계청이 202111[2020년 주택소유통계]를 발표했다. 조사 결과 총 주택 18,525,844호 중 개인소유주택은 15,968,279호였다. 또한 일반가구 20,927천 가구 중 주택을 소유한 가구는 11,730천 가구(56.1%)였으며, 이중 주택을 1건만 소유한 가구는 8,539천 가구였다. 통계지리서비스SGIS

하지만 신규주택 공급부족론자들의 곡학아세와는 달리 주택시장 가격 형성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건 신규주택 공급량이 아니라 재고주택 시장의 공급량이다. 통계를 살펴보면 이런 사실이 명확해진다. 2020년 기준으로 대한민국 전체 주택 수는 18,525,844호다. 한편 근래 5년간 신규 주택생산량은 연평균 전체 주택 총수의 4% 남짓에 불과하다. 쉽게 말해서 주택시장은 96%의 재고 주택시장과 4%의 신규 주택시장으로 구성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당연히 재고 주택시장의 공급량이 주택시장 가격의 향배를 결정할 수밖에 없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대한민국 전체 주택 수는 18,525,844호인데 이 중 1세대 1주택자 수가 8,539,421호다. 즉 총 주택수 18,525,844호에서 1세대 1주택을 뺀 1천만 호가 다주택자 소유이거나 법인소유라는 것이다. 즉 실거주와 무관하며 재고 주택시장의 54%를 차지하는 다주택자 및 법인소유 물량 중 상당량이 시장에 매물로 나오는 대신 투기적 가수요가 없거나 적다면 시장은 하향안정될 것이고, 다주택자 및 법인이 소유물량을 움켜쥔 채 매물을 내놓지 않는 대신 투기적 가수요가 많다면 시장은 상승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까지 집값 급등 원인으로 공급부족을 꼽은 언론사 헤드라인 한국금융신문, 머니투데이, 한국경제, 에너지경제 보도 헤드라인(-)

 

기준금리 급상승과 함께 사라진 신규주택 공급부족론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주택시장 경착륙은 기존 재고 주택시장의 매물 폭증과 투기적 가수요의 소멸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발생했다. 물론 기존 재고 주택시장에서의 매물 폭증과 투기적 가수요의 소멸을 야기케 한 방아쇠는 한국은행을 포함한 각국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돌진적으로 추진 중인 기준금리 인상이다.

 

재고 주택시장에서의 매물 잠김 현상 및 투기적 가수요의 폭발적 증가를 가능케 한 유동성 홍수 시대가 속절없이 저물고 긴축 시대가 도래하자 재고 주택시장에서는 숨어 있던 매물들이 눈사태처럼 쏟아지고, 영원할 것 같던 투기적 가수요는 아침 햇살에 사라지는 가을 안개처럼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주택시장에서 96%를 차지하는 재고 주택시장의 매물이 쏟아지고, 투기적 가수요가 순식간에 퇴장하자 주택시장은 빠른 속도로 대세하락 중이다. 이제 시장 어디에서도 신규 공급이 부족하다는 소린 찾을 길이 없고 대신 윤석열 정부가 공언한 ‘250만 호 + a’의 주택공급이 계획대로 진행될까 근심하는 목소리만 가득하다. 3%대 기준금리가 유지되면서 신규 공급폭탄까지 더해진다면 주택시장의 대세하락이 더욱 가속화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앞에서 살핀 것처럼 신규주택 공급부족론은 완벽히 난파했다. 그러나 단언컨대 장래 주택시장이 원기를 회복하고 상승 흐름을 본격적으로 타는 국면이 오면 신규주택 공급부족론은 좀비처럼 부활해 미디어를 또 다시 빼꼭히 채울 것이다.

이태경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 미디어스 2022.10.04

 

 

감사원의 폭주를 멈춰라

감사원이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을 놓고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서면 조사하겠다고 나서 논란이 일고 있다. 문 전 대통령과 민주당 측이 반발하자, 감사원은 1993년 노태우, 1998년 김영삼 전 대통령도 감사원 질문서를 받아 답변했노라고 해명했다. 두 사건을 직접 취재한 기자로서 감사원의 터무니없는 궤변과 퇴행이 씁쓸하다

 

당시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조사는 진실을 밝히는 데 핵심적이고도 필수적인 부분이었다. 노태우는 대규모 군수비리인 율곡사업에 연루됐다는 의심을 받았고, 김영삼은 외환위기의 책임 문제가 불거져 있었다. 두 사안 모두 양 대통령이 최종 결정권을 쥐고 있었기에 조사는 피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진상을 밝히라는 시민들의 요구가 거셌다. 그렇다면 이번 감사는? 감사원은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직후부터 전 정권 사람 찍어내기 감사를 하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와 국민권익위원회를 수개월째 털고 있다. 서해 공무원 피살을 놓고도 국방부와 해양경찰청, 국가정보원 등 9개 기관을 샅샅이 뒤졌다. 하지만 시민들은 이 감사의 필요성을 절감하지 못한다. 그리고 서해 공무원 피살의 진상을 밝히는 데 문 전 대통령 조사가 핵심일까. 오히려 문 전 대통령을 딱 겨냥해 놓고 하나씩 절차를 밟아온 감사라는 느낌이 든다. 문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는 시간의 문제였을 뿐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감사원이 본류를 벗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감사원의 기능은 크게 회계감사와 직무감찰로 나뉜다. 회계감사는 나랏돈이 새는지 여부를 중점적으로 들여다보면서 업무의 효율성을 따진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는데, 이 부분에서 자부심과 보람을 느낀다는 감사관이 많다. 반면 직무감찰은 공무원의 비위를 캐는 것이다. 둘의 비중을 따지자면 70%가 회계감사이고, 30%가 직무감찰이다. 선진국 감사원들은 대부분 회계감사 기능만 갖고 있다(우리 감사원도 원래는 회계감사를 하는 심계원으로 출발했다가 1963년 직무감찰기관이었던 감찰위원회와 통합됐다). 그런데 지금 감사원은 회계감사가 아닌 직무감찰에 집중하고 있다. 국정의 효율성을 따져 시스템을 개선하기보다 전 정부 허물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감사원이 진정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다면, 감사의 칼끝은 청와대 이전 과정부터 겨누어야 하지 않을까. 아무리 좋게 보려고 해도, 윤석열 감사원은 국가가 아니라 정권에 복무하고 있다.

 

문 전 대통령에 대한 감사원 조사 방침은 새로운 의심의 지점도 강력히 시사하고 있다. 수사는 그 사람의 행동의 적법성을 따지는 반면, 감사는 그 사람이 직무와 관련한 행위의 적절성을 판단한다. 감사원이 정말 편견 없이 독립적으로 감사를 진행한다면, 수사와 감사는 방점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문제가 될 게 없다. 그런데 감사원이 처음부터 문 전 대통령을 겨냥하고 있었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검찰의 본격 조사에 앞서 사전 정지작업을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나아가 검찰이 보다 편하게 문 전 대통령을 부를 수 있도록 명분을 축적하는 일도 된다. 이런 의심은 감사원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감사원이 검찰의 하청기관으로 전락한 게 아니냐는 강력한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문제는 이런 감사원 파괴행위가 한 사람에서 출발한다는 점이다. 유병호 현 사무총장이다. 유 총장은 문재인 정부 당시 최재형 감사원장(현 국민의힘 의원)의 지시로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조작 의혹 감사를 지휘하던 중 좌천됐다. 그러다 현 정권이 들어선 직후 바로 두 계급을 뛰어넘어 사무처를 지휘하는 총장 자리에 올랐다. 문재인 정권이 임명한 최재해 감사원장을 제치고 감사원을 사실상 주도하고 있다. 감사원 내부 회의에서 간부들에게 잘할 수 있는 사건에 집중하자. 고래·대어를 잡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전 정권의 비리, 그것도 대형 사건을 캐내라고 노골적으로 독려한 것이다. 직무감찰로 잔뼈가 굵은 사람답다. ‘감사원의 한동훈을 자임한 셈이다. 유병호도 차기 총선에서 최재형처럼 여당 공천을 받을 것이란 말이 나온다.

 

윤석열 정부에서 감사원이 우리 헌정사의 한 금기의 선을 넘어서고 있다. 좀처럼 정치적 견해를 드러내지 않는 감사원 직원들 사이에서 이상 조짐이 감지된다. “사무총장을 견제할 수 있는 TF를 구성하자는 의견이 나왔다고 한다. 감사원의 일탈이 더 이상 용납되어선 안 된다. 감사원 사무총장의 국회 청문회는 당연하고 여야 합의 임명 등 보완책도 강구되어야 한다.

이중근 논설주간 경향 2022.10.05.

 

 

김건희 논문’, 논란 종식을 바란다

표절은 맥락이 필요한 문제다. 서로 모르는 사람이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한 사람이 먼저 발표했다면, 타인의 아이디어를 훔친 것일까? 어떤 지식도 사회의 자장 안에서 자유롭지 않다. 페미니즘도 마르크스주의도 시작은 자유주의였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 언어로 연결된 문명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2015, 신경숙의 표절 논란 즈음 나는 관련 글을 썼다가 장정일로부터 비판받은 바 있다(한겨레, 201593일자 인터넷판). 그는 당신()이 쓴 글 중에서 순수한 당신만의 생각이 얼마나 되는가를 질문하면서, “영향과 모방은 물론 패스티시·인용·비유·패러디가 혼재된 문학 자체에 대한 논의 없는 표절 논쟁은 문제라는 것이다.

 

전후 사정을 살펴볼 때 진짜 표절도 없지는 않지만, 그의 주장에 동의한다. 표절 논란은 문맥이 생략된 채, 소동으로 끝나는 퇴행의 반복이 되기 쉽다. 이래저래 쉽지 않는 문제다.

 

글쓰기가 생계이다보니 많은 고민과 사례 속에서 산다. 지식의 제국주의. 내가 열심히 공부해서 글을 썼는데, 알고 보니 영어로 된 책에 이미 나와 있는 내용이다. 한국사회는 영어책을 원서(原書)’라고 부른다. 한국어로 된 책은 원서가 아닌가? 상황이 이러니, 우리는 자기 생각을 하기 전에 영어권 글을 먼저 읽는다. 이것이 비서구 연구자의 이중 노동, 식민 구조다.

 

나는 아내에 대한 폭력을 소재로 석사 논문을 썼다. 7년간 피해 여성 상담과 함께 많은 참고문헌을 읽었다. 그러다가 영어책을 보니, 내가 한 공부가 1970년대 미국의 래디컬 페미니즘 논의에 다 있었다. 분노, 허탈, 무기력.

 

나의 질적 방법(인터뷰)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내 폭력의 특성상 미국과 한국의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영어가 지식을 대신하는 팍스 아메리카나 시대의 최전선에 대한민국이 있다. 만일 내 논문이 영어 번역이라고 주장하는 이가 있다면?

 

나는 한국사회의 남성성을 식민지 남성성이라고 개념화한 적이 있다. 탈식민주의 이론가 타니 바로의 식민지 근대(colonial modernity)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지만, 의미는 다르다. 식민지 근대는 제국 내부에도 식민지가 있고, 제국주의는 필연적으로 식민주의를 동반한다는 논의다. 하지만 식민지 남성성은 (식민지에 사는 남성의 남성성이 아니라) 남성이 외세와의 관계에서 자신을 약자(여성화, 피해자화)로 규정, 국내나 가정에서의 성차별에 대해서 무관심, 무지하다는 의미다. 나의 식민지 남성성 공부에서 타니 바로의 개념은 유용했다. 하지만 이를 표절이라고 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급변하는 표절 개념

대학의 실적주의가 강화되고 교원들에게 논문 제출 압박이 심해지면서 학교 밖 독자를 상정한 인문학 저널 필자군이 급감했다. 한편 각종 커뮤니티 저널이 논문 등재지로 인정되면서, 논문 투고자와 심사위원의 경계도 흐려졌고 연구자가 많지 않은 조건에서 정치적 성향이 맞는, 아는 사람들의 글이 많이 실리는 상황도 자연스러워졌다. 나도 그런 저널에 심사위원을 한 적이 있다. 나는 대필도 많이 했다. 대가가 없었을 뿐이다. 20여년, 바쁘고 유명한 사회운동가 어른을 대신해 분업 차원에서 썼다. 나의 대필은 사회운동의 일환이었다.

 

세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남의 글 몇 쪽을 출처 없이 썼다? 국내 연구자의 글이나 본인의 석사 논문을 번역해서 외국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남의 글의 프레임이나 아이디어를 그대로 가져와 단어만 바꾸었다? 이제 표절은 이런 게 아니다. 이 정도가 표절이라면 너무 가혹하다. 당대 표절은 노동 강도(?)에 따라 짜깁기, 다운로드, 대필, 파일 전체 가로 채기이다. 이 정도가 되어도, 표절을 문제 제기하는 이들이 매장되는 구조다.

 

국가별, 대학별, 개인별 양상은 다르지만 대학도 여느 사회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부정의가 존재한다. 지위가 낮은 사람에게 번역을 시키고 임금도 지급하지 않고 이름도 올리지 않은 채 최종 점검도 하지 않은 가독성 제로 번역서, 평생 발표한 논문이 다섯 개인데 모두 남편이 편집위원장으로 있는 학회지에 실린 경우, 자신이 훔친 논문의 저자에게 표절을 뒤집어씌우고 해고하는 이들, 특정 대학과 지자체의 결탁. 논문의 질의 다양성은 말할 것도 없다.

 

최근에 읽은 논문의 마지막 문장은 다음과 같다. “20201022, 잠자리에서 ○○○ 할머니는 당신의 침대 위로 나를 올라오라 하시고 꼭 끌어안고 손은 잡으며, ‘이런 인연이 아니라 다른 인연으로 만났으면 더 좋았을 텐데하신다. 하얗고 부드러운 그의 손에서 느껴지는 고통의 순간과 절규, 행복했던 순간과 웃음의 전율이.” 이는 논문 형식에도 맞지 않고, 사실을 오도하기 쉽다. “이렇게 만나지 않았더라면이라고 글쓴이가 직접 썼듯이, 관련학계에서 ○○○ 할머니와 기고자의 관계가 매우 좋지 않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한국의 대학원은 일반대학원, 전문대학원, 특수대학원으로 나뉜다. 대개 일반대학원은 전업 학생이 주간에 2년 혹은 3년 수업(코스 워크)을 이수하고 외국어 시험, 논문 자격 시험, 논문 프로포절 심사, 중간 발표, 1회 이상 국내 학술지 게재, 1~3회의 심사를 거쳐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다. 전문대학원은 의학, 법학, MBA 과정이다. 특수대학원은 교육대학원, 정책대학원, 사회복지대학원 등 원래 목적 자체가 관련 종사자의 재교육이다. 직장인이 많으므로 야간 수업이 많다. 최근에는 김건희씨가 관련된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같은 특수대학원이 증가했다. 석사 논문을 쓰지 않고 학위 취득이 가능하기 때문에 박사 학위 진학용으로 각광받고 있다.

 

학생 신분을 유지하지 않음

2021년 교육부에 따르면 한국의 대학원 총수는 1174개다. 대학마다 여러 개의 대학원을 운영하므로 대학 수보다 훨씬 많다. 이 중 특수대학원이 805개로 가장 큰 비중 (68.6%)을 차지한다.

 

나는 더 이상 김건희씨의 논문이 문제화되지 않기를 바란다. 지금 상황은 정쟁일 뿐이다. 그의 문제는 대학 개혁 차원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그의 학사-석사-박사 과정은 논문이든 출석이든 정상적인 상황이 하나도 없다. 그의 논문은 표절이 아니다. 그냥 학교를 다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문제가 된 “Yuji”는 학위 논문이 아니고 김명신·전승규의 공동명의로 2007년에 <한국디자인포럼>에 실린 글이다. 제목 온라인 운세 콘텐츠의 이용자들의 이용 만족과 불만족에 따른 회원 유지와 탈퇴에 대한 연구의 영문 초록에 그 유명한 “Yuji” 가 나온다. 일단 한국어 제목 자체가 비문(非文)이다. 전문번역가 배동근에 따르면, “온라인 운세 서비스의 콘텐츠의 품질과 회원 증가 사이의 상관성 연구(Research on the Association between the Excellence of Contents of Online Fortune-telling Services and the Growth of Their Membership)” 정도가 가장 근접한 제목이라고 한다.

 

어쨌든 “Yuji”의 책임은 국민대가 아니라 <한국디자인포럼>에 있다. 학교를 다녔다면 지도교수, 동료, 도서관 직원의 체크가 있었을 것이다. 결국 그가 정작 유지하지 못한 것은 그 자신의 대학원생 멤버십이다.

 

2008년 김건희씨가 취득했다는 박사 논문, <아바타를 이용한 운세 콘텐츠 개발 연구: ‘애니타개발과 시장 적용을 중심으로>를 보면 다섯 명의 심사위원이 나온다. 오승환(심사위원장), 전승규, 반영환, 송성재, 오명훈의 서명은 손 글씨인데 서체가 동일하다. 한 사람이 썼다는 얘기다.

 

이런 간단한 문제를 두고 지식인 단체가 찬반에 휩싸이고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상황은 희극도 아니고 난센스다. 여야 간 정치 쟁점화를 멈추고, 논문 비리와 관련한 대학의 전수 조사가 필요할 뿐이다.

 

글로벌 자본주의 시대에 통치의 전제는 우중화다. 자본과 교육부는 공동체의 지식 생산에 고민이 없다. 계급 양극화처럼 지적 양극화가 필요할 뿐이다. 정치 성향을 불문하고 똑똑한이들 몇몇이면 사회는 굴러간다. ‘김건희 박사의 대량 생산은 부자와 대학에만 좋은 일이다. 대학 사회의 최소한의 상식, 이것이 핵심이다.

정희진 여성학자 경향 2022.10.05.

 

 

독일과 중국의 위기, 세계경제의 위기

미국의 금리 인상과 통화 긴축의 파장이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급기야 아시아 지역의 외환위기 가능성이 거론되기도 한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달 25일 중국 위안화와 일본 엔화 가치의 하락 현상을 우려하면서 한국의 원화, 필리핀 페소화, 태국의 바트화 등이 위기에 가장 취약할 것으로 보도했다. 그러나 한국의 경제구조는 필리핀이나 태국과는 다르다. 외환보유액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상수지도 아직 뚜렷하게 적자로 돌아선 것은 아니다. 무역수지가 4월 이후 계속 적자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 불안한 대목이긴 하다. 그렇지만 위기가 1997년처럼 동남아에서 시작하여 한국으로 번질 가능성은 아직은 크지 않은 것 같다. 심각한 것은, 주요 제조업 국가들의 위기가 세계경제 위기로 번지는 상황이다.

 

유럽은 이미 위기 속에 들어가 있다. 위기가 가속화 내지 전면화될 것인지 여부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귀추에 달려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향방에는 러시아는 물론 미국의 입장도 중요하게 작용할 것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직접 침공한 것은 올해 2월이지만, 전쟁 구도는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부터 형성되었다(이혜정 교수). 바이든 행정부는 이전의 트럼프 행정부의 친러 노선을 배격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범위를 과거의 사회주의권이던 중·동부 유럽으로 확장하고자 했다. 우크라이나가 친미·반러 노선을 강화하자 러시아는 지난해 봄부터 우크라이나에 대해 강압외교로 맞섰다가 군사적 침공을 감행하기에 이르렀다.

 

바이든 행정부는 나토를 강화하고 유럽과 아시아 지역 동맹들을 결속하며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를 시도했다. 미국이 주도한 경제 제재에 동참한 국가들은 유럽과 아시아의 동맹국을 중심으로 40여개국이다. 경제 제재의 최종적 효과는 좀 더 지켜봐야 알 수 있겠지만, 분명히 보이는 것은 러시아의 주요 수출품인 에너지, 식량, 비료, 광물 등을 수입하는 나라들의 고통이다.

 

유럽의 산업 경쟁력은 약화될 것이다. 서방 선진국들 중에서는 특히 독일이 가장 큰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독일은 1990년대 이래의 글로벌화 국면에서 과거 사회주의권과 가장 활발하게 네트워크를 발전시켰다. 그런데 유럽이 우크라이나 전쟁의 수렁에 빠져들었다. 유럽의 기관차 역할을 하던 독일도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독일과 이탈리아는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가 높아서 대러 제재로 인한 고통이 크다. 2020년 기준으로 석유·석탄·가스 등 화석에너지를 러시아에 의존하는 정도는 독일 28.3%, 이탈리아 25.1%이다. 프랑스는 9.7%, 영국은 8.7%, 미국은 1.4%에 불과하다. 그런데 전쟁으로 독일~러시아를 잇는 가스관 노르트스트림 사업에 대한 추가 투자가 중단되었다. 기존 가스관에서도 누군가의 공격으로 추정되는 폭발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

 

이제 러시아와 중국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차단하려는 것이 미국의 정책이다. 그러나 미국의 정책이 얼마나 효과를 거둘지는 불확실하다. 미국은 과거 냉전 시기처럼 글로벌 공공재를 공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유럽의 문제라는 성격이 강하지만, 중국을 네트워크에서 분리하는 것은 세계적 범위의 문제다. ·중 갈등은 자유·정의의 이념보다는 미국의 자국 이익 수호 차원에서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경우 자국 내의 구조적 위험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10년대 이후 미·중 갈등이 진행된 것은 중국의 경제발전이 기존의 글로벌 분업구조와 충돌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중국의 경제규모가 커지면서 대외적·대내적 갈등 요인이 커졌다. 중국의 지정학적 고립은 매우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는데, 1990년대 이래의 글로벌화 조건은 인근의 대만, 한국, 일본 등 제조업 모델국가들과 연계될 수 있게 했다. 홍콩이라는 개방 창구를 지닌 것도 중국의 행운이었다. 그러나 중국이 제조업 국가로 발돋움하는 데 기회가 되었던 환경 조건이 사라지면서, 제조업 고도화가 장벽에 부딪히고 있다.

 

당장 중국 정부가 총력을 기울인 반도체 산업의 향방이 불투명하다. 중국의 8월 반도체 생산량은 전년 동기 대비 24.7% 감소했다. 이는 1997년 집계를 시작한 이래 가장 크게 줄어든 것이다. 여기에 건설·부동산 부문의 후퇴는 재정적 대응 능력을 제약하고 있다. 부동산 자산을 담보로 한 지방정부의 인프라 투자가 한계에 직면한 상황이다.

 

미국의 적극적인 보호주의 정책은 제조업 국가들에 충격을 주고 있다. 독일과 중국이 경제적 위기에 빠지면, 세계경제는 크게 흔들릴 것이다.

이일영 한신대 교수 경향 2022.10.05.

 

 

위기의 시간, 참담한 대통령 신뢰도

세계금융시장이 한치 앞을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불안하다. 예상을 뛰어넘는 미국의 공격적 금리인상이 세계를 흔들어놓고 있다.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유럽 상황 역시 살얼음판 같다. 겨울은 닥쳐오는데 가스관이 파괴되고 러시아의 핵 사용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발 한번 삐끗하면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 시간이다. 채권과 주식 가격 그리고 환율의 변동폭이 워낙 크기 때문에, 수십조원을 운용하는 투자자들의 신경이 곤두서 있다. 어느 곳에서 불안 조짐이 보이면 바로 패닉 셀’, 공포 투매에 나설 수 있다.

 

이런 위기 상황을 넘기는 데 특히 중요한 것이 정책 일관성과 정부 신뢰도다. 불확실의 시기에는 사람들의 예상이 중요하고, 정부나 정책에 대한 신뢰가 그 예상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만약 물가와 환율 안정을 위한 정부 대책에 신뢰가 가지 않으면, 사람들은 환율이 계속 상승할 것으로 보고 달러를 더 매입할 것이다. 그러면 환율과 물가는 더 올라가고 악순환은 반복된다. 지난 2주일 동안 영국 보수당 정부가 그 위험을 분명히 보여줬다.

갓 출범한 트러스 정부는 공급측 경제학이라는 철 지난 보수 경제이론에 기대어 약 70조원에 이르는 대규모 감세정책을 발표했다. 고소득층 최고세율 인하, 법인세 인상 보류, 금융소득세 및 부동산 취득세 인하 등을 내세웠다. 이런 감세가 투자와 생산을 촉진하고 결국은 세수도 늘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시장의 평가는 정반대였다. 시장은 대규모 세수 감소와 국채 발행 증가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했다. 투자자들이 영국 국채 매각에 나서면서 국채가격이 급락했고, 파운드화 가치도 37년 내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국제신용평가사는 영국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고, 기축통화국인 영국이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까지 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위기의 시간에 어울리지 않는 정책이 경제를 어떻게 위험에 빠트릴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인플레이션을 진정시키고 세수를 확보해야 하는 시기에 대규모 감세정책을 채택한 것이 잘못이었다. 이례적으로 국제통화기금까지 나서 감세정책이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인플레이션 억제와 반대 방향으로 가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도 주의깊게 지켜보고 있다고 논평했다. 정권지지율은 바닥으로 떨어졌고 결국 정부는 일부 정책을 철회했다.

문제는 지금 윤석열 정부도 영국과 매우 비슷한 감세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법인세 최고세율을 낮추고 고소득자 세금인하 폭을 늘리고 금융소득과 부동산 관련 세금을 대폭 낮추겠다고 한다. 5년간 누적 감세규모는 영국과 비슷한 50조원 규모다. 윤석열 정부가 줄기차게 외치는 자유시장경제도 사실은 영국 보수당이 채택한 공급측 경제학과 같은 것이다. 수십년 전 이미 실패로 판명된 이론이다. 이번 영국 사태를 통해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위기의 시간에 감세는 결코 바람직한 정책이 아니며, 경제를 더욱 위태롭게 만드는 이념적 정책일 뿐이라는 것을. 그런데도 우리 경제가 위기까지 가지 않은 것은 10여년간 길러진 기초체력 덕분이다.

 

-달러 환율은 1300원 안팎에서 순식간에 1440원까지 상승했다. 미국의 급속한 금리인상 때문이라고 하지만, 지난 8월과 9월 두달 사이 원화 가치는 다른 통화에 비해 훨씬 더 큰 폭으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주요국 통화의 가치는 달러 대비 평균 5.9% 하락했는데, 원화는 거의 2배에 가까운 10.4% 하락했다. 에너지가격 충격을 가장 직접적으로 받는 유로 하락률 4.2%보다 훨씬 크고, 심지어 영국 파운드화 하락률보다도 크다. 정부는 이런 환율 상승이 외국인보다는 우리 국민의 외환 매입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다시 말하면 정부의 물가·환율 안정책을 국민이 신뢰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정부 신뢰도에 관한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정부에 대한 국민 신뢰는 대통령에 대한 신뢰에 따라 증폭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통령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면 정부 신뢰도 하락 요인의 효과가 더 커진다는 것이다. 방미 기간 중 대통령의 비속어 사용에 대한 해명은 대통령에 대한 신뢰도를 참담한 수준으로 떨어뜨렸다. 경제를 위해서라도 정직함이 절실히 필요한 시간이다.

박복영 | 경희대 교수·전 청와대 경제보좌관 한겨레 2022.10.05

 

 

청와대의 곡절, 대통령제의 곡절

15년 넘게 출퇴근길에 청와대 앞길을 지나다녔기에 대통령 관저 이전과 청와대 개방에 대해 나름의 소회가 있었는데, 이제야 청와대를 관람했다. 청와대 주변길과 근처 동네는 산 아래 터를 잡은, 오래된 서울 특유의 지세를 보여준다. 도심 한가운데지만 비교적 고즈넉하고 산록과 계곡에 기댄 의외의 장소가 많다. 계절에 따른 숲과 나무의 변화도 잘 느낄 수 있다. 동시에 청와대 근처는 엄혹하고 어두운 현대사의 기억이 깃든 곳들도 많다. 4·19 때 이승만의 부하들이 시민·학생들에게 총을 쏴 100명 넘게 죽고 상하게 만든 곳, 북에서 온 김신조부대와 군경이 교전하여 피 흘린 곳, 그리고 박정희가 부하의 총을 맞고 죽은 궁정동은 흔적만 남았는데도 섬찟했다.

 

그리고 지난 10여년 사이에 청와대 앞길과 주변 동네의 분위기는 정세의 변화에 따라 민감하게 바뀌어왔다. 이명박 시절까지 청와대 앞 도로는 접근하기 어렵고 고압적인 경호 때문에 괜히 긴장되거나 불쾌한 곳이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부터 청와대 근처의 분위기는 빠르게 변했다. 사람들은 좀 더 과감하게 근처에서 1인 시위를 했고, 특히 촛불때 수많은 군중이 광화문에서 모여 청와대 입구까지 행진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를 새삼 외쳤다. 박근혜가 극적인 방법으로 청와대에서 쫓겨난 때의 날들도 생생하다. 청와대 앞길은 문재인 정부 때 24시간 개방됐고, 검문과 통제 방법도 바뀌었다. 분수대 근처는 늘 시민단체와 억울한 사람들이 시위를 하거나 기자회견을 하는 데가 되었다.

 

그런데 올해 봄 어느 날, 갑자기 청와대 앞길을 지키던 무장 경호원들과 경찰관들이 한순간 다 사라졌다. 뭐가 들어 있는지 알 수 없던 많은 초소도 빈 채로 버려졌다. 어떤 무상함을 느낄 틈도 없이 태극기 노인풍의 시민들이 주변을 꽉 메웠다. 그런 상황은 국민에게 돌려준다는 구호와 달리 청와대를 다시 어색하고도 멀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번에 처음 들어가보고 차라리 청와대에 대해 안타까움과 애틋함(?)을 느꼈다. 인왕산을 옆에 놓고 북악산에 안겨 있는 청와대는 독특한 공간이었다. ‘자연과의 조화는 이 공간의 가장 큰 특징 같았다. 청와대 경내에는 계곡에서 흘러온 물이 흐르고 오랜 나무들과 북악산으로 통하는 등산길이 있다. 이에 비하면 본관이나 관저 안의 실내장식이나 가구는 유행이 지난 색으로 일관되게 꾸며진, 세련되다고 하기 힘든 소박한 것들이었다. 같이 관람하던 어떤 이는 안 좋아할 만했겠구먼, 그래서 900억원 들여 영빈관을 짓겠다는 건가라고 농담(?)했다.

 

대통령 집무공간의 표준을 알 수 없고 청와대를 어떤 다른 나라의 국가원수 관저와 비교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청와대가 한국이라는 나라의 정치와 지정학과 또 그에 대한 주권자들의 총체적 상상과 경험이 반영된 공간이란 것은 새삼 깨닫는다.

 

그런 점에 비추어 지금의 청와대 전시(?)와 관람은 뭔가 대단히 부적절하거나 역설적인 것이다. 청와대를 문화재나 역사적 공간으로 다룬다는 느낌을 전혀 주지 않는다. 춘추관 입구의 아주 짧은 설명 외에는, 청와대가 품은 복잡하고 긴 역사는 전체적으로 삭제돼 있다. 해설사가 있지만 부족했고 관람객을 위한 안내도도 부실했다. 한반도와 통영을 훌륭하게 표현한 그림이나, 뭔가 강한 표현주의적 의도가 담긴 듯한 노태우 전 대통령의 초상의 작가 이름도 표시돼 있지 않았다.

 

준비 안 된 개방과 의미가 비어 있는 전시는 오히려 청와대가 지금도 여전히 격한 정치적 논란의 공간임을 보여주기 위한 방법인가? 대신 수개월 만에 청와대는 서울의 주요 관광지가 되었다. 이제는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 동의하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보통의 가족들, 서울구경을 오는 지역의 주민들과 외국인 관광객들도 많이 온다. 지난 연휴에도 미어터졌다. 도떼기시장 같아서 차분한 관람이나 사고는 전혀 불가능했다. 화장실이 부족한 탓인지 아무 데서나 용변을 보는 관람객도 있다고 한다. 지금을 포함해서 청와대의 많은 곡절은 한국 대통령제의 그것과 동일한 것처럼 보인다.

 

새 대통령이 취임한 지 벌써 6개월이 돼 간다. 취임 이후 줄곧 기록적인 낮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는 대통령의 미래는 과연 무엇일까? 마음 좋은 사람들은 아직도 정권 초기라는 것을 고려하여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를 바란다며 조언한다. 누구를 위한 어떤 성공인가. ‘날리면‘Yuji’는 벌써 이 사회의 언어와 문화의 상태에 해악을 끼치고 있다. ‘국민 주권이 행사되는 방법은 다양하다. 청와대의 한국 현대사는 그것을 증명해왔다.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숭배 애도 적대> 저자 경향 2022.10.06.

 

 

어떤 자연도태의 경위

CTMRI 그 밖의 모든 검사 결과로는 특별한 이상이 없었다. 단순한 편두통이라고 진단을 내린 뒤, 의사는 정확한 유발 요인이 알려지지 않은 질환이라고 덧붙였다. 환자는 납득할 수 없었다. 청소년기부터 이따금 칼로 관자놀이를 찌르는 것 같은 두통을 경험했다. 통증 때문에 정신을 잃은 적도 있었다. 언젠가는 두통의 발작 때문에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늘 있었다. 그런데 원인을 알 수 없다니.

 

의사는 직업이나 대인 관계에서 비롯된 스트레스 때문일 수 있다면서, 두통이 특정 상황과 관련되어 생기는지 물었다. 환자는 잠시 망설였다. 사실대로 말하면 미친 사람 취급을 받을 것 같았다. 거짓말을 하면 머리가 아파요.

 

모든 사람이 거짓말을 하죠. 의사는 한숨을 쉬었다. 정직이 늘 최선은 아니에요. 거짓말은 생존 능력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거짓말을 할 때 혈압이 높아지고 맥박이 빨라져요. 환자분처럼 극심한 두통을 호소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정반대의 상황에서 증상이 나타나는 환자가 있었어요. 그분은 거짓말을 들으면 구토를 하는 게 문제였죠.

 

어느 날 환자는 병원 대기실의 TV 앞에서 구역질하는 사람을 보았다. 모니터 속의 홈쇼핑 호스트는 이토록 파격적인 가격에 기적의 주름 제거 크림을 구매할 기회는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강조하고 있었다. 혹시 의사가 언급한 사람이 아닐까? 환자는 구토하는 사람을 부축해서 화장실로 들여보냈다. 그리고 바닥에 흩어져 있는 가방과 책을 챙기다가, 토사물이 묻은 채 펼쳐져 있는 페이지를 보게 되었다.

 

거짓된 말은 그 말이 지칭하는 사물을 모욕하지만, 참말은 그 영혼을 드러낸다. 그들은 영혼이, 자신을 지칭하는 말들 속에 산다고 믿는다. 만일 내가 나의 말을 건네면 나 자신을 건네는 것이다. 언어는 쓰레기통이 아니다.” 1)

 

두 환자는 친밀감을 느끼며 긴 대화를 나누었다. 주로 병의 근원에 대한 것이었다. 임신했을 때 어머니가 직장에서 한창 일이 많을 때였어요. 입덧이 심해서 이런저런 약을 먹었다는데요. 아버지는 고시 공부하면서 각성제와 성욕을 억제하는 한약을 오래 먹었다고 합니다. 어머니와 아버지 말고도 그런 사람들은 많았겠지요. 우리는 고작 두 개의 표본일 뿐인데요. 하지만 지금 여기에서는 당신과 내가 모두잖아요. 두 환자는 새삼 서로를 바라보았다.

 

병 때문에 두 사람은 집 밖으로 나오는 일이 거의 없었다. 이따금 짧은 문장을 주고받을 뿐이었다.

진실에도 오류가 있다고 말한 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내 수첩에는 잘못에 눈감을까 두렵다, 라고 적혀 있다.” 2)

모든 게 정확히 틀렸다 제자리에서.” 3)

너에게는 내가 잘 어울린다 우리는 손을 잡고 어둠을 헤엄치고 빛 속을 걷는다.” 4)

너는 사라지지 않는 밤의 낮이다.” 5)

 

겨울 뒤에 찾아온 봄날의 햇살 때문이었을까. 두 환자는 만나기로 했다. 공원을 산책하고 낡은 벤치에 앉았다. 갑자기 공원 한쪽에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소란스러워졌다. 두 사람은 세상을 등지고 살았으므로, 그 무렵이 선거철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마이크 앞에 선 후보자의 연설이 시끄럽게 울려 퍼졌고, 곧 한 사람이 구토를 시작했다. 나머지 사람이 황급히 자리를 옮기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연설이 고조되면서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격렬한 구토가 이어졌다. 흥건한 토사물 위로 고꾸라진 사람이 파랗게 질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내가 너무 추하죠? 환자는 망설였다. 죽어가는 사람은 오직 두 개의 표본 중 하나였고 모두를 이루는 하나이기도 했다. 아니요. 당신은 아름다워요. 머리가 부서지는 듯한 날카로운 두통이 몰려왔다. 세상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1)<시간의 목소리>,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2)‘이건 우연이 아니다’, 천양희 3)‘단조로운 시’, 진은영 4)‘어울린다’, 진은영 5)‘한 소년이 살았네’, 우은주

부희령 소설가·번역가 경향 2022.10.06.

 

 

가난하게 산다는 결심은 허영이 됐다

코로나가 세계적인 역병이며 치료제가 없고 전염력은 강하다고, 이런 병이 생긴 건 인간의 삶의 방식이 원인이란 분석이 언론에 보도될 때, 사망자가 넘쳐나 미처 관을 준비하지 못하고 구덩이에 파묻던 장면은 뉴욕에서 보내온 것. 존재 자체에 공포감을 느끼던 무렵, 고향인 강원도 양양에서 외삼촌의 부고가 왔다. 그분은 아들이 없다고 평생 자기 운명의 남루를 뒤집어쓰고 사신 외할머니의 양자였다. 이날 되기 전까지 외삼촌 댁에 외조부모님의 제사를 모시러 가끔 들른 적이 있었다. 내가 다닌 유치원과 초등학교와 성당과 성내리 11번지 집이 거의 직사각형 모양으로 가까운 곳이다.

 

2019년 가을, 요즘 젊은이들에겐 살기 불편한 그 집을 마땅한 가격에 샀다. 집이 작아서 따로 은행에 빚지지 않아도 됐다. 절차에 맞춰 돈을 건네고 서류를 정리하는 동안 입안에서 맛있는 사탕 같은 것이 돌돌 구르며 도무지 사라지지 않았다. 한참이나 지나서 그 사탕이 행복감이라는 걸 알았다. 사탕이 알려준 행복감은 딱 하나,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것, 갈 수 있게 됐다는 것, 서울을 떠나서 살 곳이 생겼다는 것. 더군다나 아주 작은 집이라는 것이었다.

이제 그곳에서 길지 않게 남은 생을 보내며 사람으로 태어나서 오로지 할 줄 아는 것, 하나, 아버지의 말에 따르자면 거짓말에 지나지 않는 것, 그 일을 더 하다가 세상과 작별하고 싶었다. 감히 언급하는 것조차 죄송스러운 일이지만 아르헨티나의 메르세데스 소사가 노래한 것처럼 삶에 감사하며세상과 작별하는 희망을 숨긴 채. 그것이 내 부끄러운 허영기임이 분명하지만 버려지지 않는 소망이다.

 

그러려면 내가 살고 싶은 방식으로 살아야 했다. 그 방식을 그럴싸하게 정리하자면, 시골 구석까지 건네지던 구호물자를 더는 받지 않게 되고 돈 세상이 아직 시골까지 밀려오지 않았던 몇년이라고 할 수 있다. 음식을 담아 먹던 그릇을 씻은 물도 돼지 먹이가 되고 마당을 쓸어 나온 쓰레기, 부엌에서 나온 상한 야채, 마당가의 나무 잎사귀들도 두엄 더미에서 해를 지나 이른 봄철 논밭으로 나가던 때의 생활이다. 목욕탕이라는 것이 있는 줄 모르고 여름만 되면 남대천의 다리를 가운데 두고 위아래로 남자와 여자가 갈려서 땀을 씻고 때를 밀던 때. 남대천의 샛강에서 빨래하고 그 위에서 두 손으로 물을 퍼마시던 때. 학교에선 한꺼번에 산에 올라가 소나무의 송충이를 잡고 여름방학 숙제로 퇴비 한관, 혹은 잔디씨 한홉을 모아 가던 때.

 

부자가 뭔지 모르고 가난이 뭔지 모른 채 살았다. 배곯지 않고 헐벗지 않고 눈비 가려주는 집안에서 잠잘 수 있었으니까. 그것으로 충분했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었다. 왜냐면 자연에 죄를 짓지 않아야 해서. 자연을 인간 중심으로 이해해서 개척하고 지배하고 내버리는 태도, 결국 벗어나고 싶은 오늘의 이 현실이어서. 인간 중심의 삶의 방식이 자연을 병들게 해서 병든 자연으로부터 인간이 불행해지는 악순환은 막아야 하니까.

그래서 결심했고 실천하려고 했다. 양양에 돌아가면 자연에 해로운 쓰레기를 만드는 생활은 물론 대기를 병들게 하는 온실가스도 만들지 말기로! 이런 결심이 행복감을 부추겼다. 뚜렷한 사계절과 24절기. 그 안에 닷새마다 변하는 기후들. 이것이 자연의 마음일 테니 거기에 맞춰 살자!

 

실천은 처음에 이랬다. 식탁 없이 신문을 깔고 밥을 먹었다. 자연히 허리를 구부리게 됐다. 아무래도 식탁은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속초의 가구할인점에 가서 식탁을 샀다. 내 양심은 할인이라는 단어에 착 달라붙었다. 식탁을 놓으니 금방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1960년대 초, 엄마가 닳고 닳아 아름다움마저 깃들었던 나무 그릇들을 다 버리고 스테인리스 그릇으로 바꾼 뒤, 내 친구들에게까지 자랑하던 그 기분이 이랬을까? 식탁이 들어온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급한 것이 생겼다. 날이 더워지자 음식은 잘 상했다. 김치는 이내 쉬었다. 밥이고 반찬이고 하루에 한번 하느니 이틀에 한번 정도 해서 시간을 아끼는 편이 낫지 싶었다. 입안에서 오래도록 남아 있던 뿌듯하던 행복감이 주눅 들고 졸아들고 마침내 사라지려는 기미가 느껴졌다. 냉장고는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 하여튼 나는 냉장고를 사려고 가전제품 판매점으로 갔다. 주인에게 양양 사람이다, 다시 살러 왔다 등등 물어보지도 않는 말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고 왜 냉장고를 사려고 하는지 슬픈 목소리로 설명하고 아주 작은 것을 찍었다. 주인은 내 선택을 의아해했다. 김치냉장고가 있느냐, 그게 없다면 냉장고라도 좀 커야 할 텐데 등등.

자연재해, 자연에 죄짓지 않는 것 등을 생각하며 2단짜리 작은 냉장고를 샀다. 집에 냉장고가 들어왔다. 싱크대 앞, 식탁 옆에 냉장고가 놓였다. 기뻤다. 음식을 넣어뒀다. 봄철 한때 설악산 줄기로부터 나오는 여러가지 산나물들을 삶아서 냉동했다. 냉동실이 작아서 몇봉투 넣지 못했다. 후회됐다. 좀 더 큰 것으로 살걸.

 

하숙생이라고 부르며 하숙비를 다달이 꼭꼭 챙겨 받는 딸이, 양양에 오면 심심해서 텔레비전이 꼭 있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나도 아주 싫지는 않았다. 보고 싶은 드라마도, 다큐도 있고 방탄소년단(BTS) 공연도 봐야 했다. 작은 텔레비전을 샀다. 거실 비스름한 좁은 공간 벽에 텔레비전이 붙었다. 좋았다. 아직 빨래는 손으로 했다. 큰 빨랫감은 서울로 실어 가서 해 오거나 딸이 와서 새로 생긴 아파트촌의 빨래방에 가서 해 왔다. 일일이 그렇게 하면서 살 수는 없단 생각이 들었다. 세탁기를 넣기로 했다. 한겨울 지나면 큰 솥에 장작을 넣고 어른들의 무거운 겨울옷과 이불 홑청들을 이고 지고 남대천 샛강에 가서 온종일 빨고 삶고 말려서 집으로 돌아오던 시절은 1960년대에만 있었다. 나는 1964년 초겨울 양양을 떠나 서울로 왔다.

아무래도 세탁기가 있어야겠지? 내 말에, 당근이지 엄마! 하숙생이 망설이지 않고 대꾸했다. 엄마가 제정신이 들어간다고 여겼을지 모른다. 곧 세탁기를 들였다. 용량이 가장 적은 것으로. 그러나 이불 하나 들어갈 것으로. 그러니 가장 적은 것은 아니었다. 편리했다. 식은 음식을 데워 먹을 수 있기에 꼭 필요하다며 후배가 전자레인지를 보내줬다. 집에서 쓰던 토스터도 가져왔다. 선풍기도 두대 샀다. 올여름, 호우와 폭염의 날들이 되풀이되던 어느 밤에 에어컨의 존재를 간절하게 생각해봤다. 창문형 에어컨이 새로 나왔다는데. 다행히도 망설이는 동안 올해의 열대야는 사라졌다.

그러나 남아 있지 못한 것 하나, 나의 거만한 자만심과 허영기 가득한 희망은 북극의 빙하처럼 녹아 없어졌다. 가난하고 싶다고? 자연재해를 불러일으키는 문명의 이기들이 나를 무참하게 비웃는다.

이경자 | 소설가 한겨레 2022.10.06.

 

 

누가 윤 대통령에게 방울달 수 있을까

윤석열 대통령의 비속어 한마디가 이렇게 온 나라를 뒤흔들 거라 예견한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의 진상규명 요구에 따라 개그를 다큐로 받은여권은 이 사태의 본질은 <문화방송>(MBC)의 자막조작 사건이라고 자체 결론을 내렸다. 며칠 사이 휘몰아친 대통령실과 여당의 대응 과정을 복기하다 보면 근원적 질문에 맞닥뜨리게 된다. 왜 참모들은 처음부터 대통령에게 직접 확인하지 못했을까.

 

비속어가 사적 발언이라 문제될 것 없다던 대통령실은 이후 13시간 만에 바이든이 아니라 날리면이라는 주장을 내놨다. 한국의 음성 전문가에게 분석을 의뢰하고 결과를 받느라 시간이 늦어졌다는 것이다. 애초부터 윤 대통령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는데, 그렇다면 제3자에게 의뢰할 것이 아니라 대통령에게 직접 화면을 보여주고, 발언 여부를 재확인하고, 대응책을 논의하는 게 정석이다. 이 과정을 진행하지 못했던 참모들은 윤 대통령의 뒤늦은 격노에 집단 멘붕에 빠졌다고 한다. 이어 대통령 가이드라인에 따라 황급히 수습에 나선 최종 결과가 현재의 언론탄압과 진영 간 대결이다. “바이든은 안 한 게 확실하지만 “××”는 기억나지 않는다는 윤 대통령의 선택적 기억력은 거짓말 논란으로 확산됐지만, 여권 인사들은 자신들의 기억까지 스스로 삭제해가며 대통령 비호에 나서고 있다. 사태를 여기까지 끌고 온 핵심 동력은 대통령의 고집과 분노인데, 문제는 윤 대통령의 일상화된 호통이 참모들을 위축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대통령실 주변에선 윤 대통령의 불같은 성격에 대한 일화들이 전해진다. 윤 대통령이 대통령 집무실에서 보고를 받을 때는 호통 섞인 고성이 집무실 밖까지 울리는 일이 잦다고 한다. 다음 보고 차례를 기다리던 이들은 그 소리에 기가 질려, 아예 보고 시간을 분위기 괜찮은 때로 미루고 되돌아간다. 어느 부처의 장관은 정부 출범 초기 부처 인사와 관련해 대통령에게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가 혼이 나갈 정도로 깨져서지금껏 주눅 들어 있다고 한다. 지난 6월 국무회의에선 윤 대통령이 교육부가 대대적으로 개혁해서 과학기술 인재를 공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는 게 공식 브리핑의 내용인데, 실제 회의에선 반도체 인력 양성에 난색을 표하는 교육부 차관에게 교육부를 없애버리겠다는 취지로 호통을 친 것으로 전해진다.

 

물론 일각에선 대통령 화법에 대한 참모들의 이해가 부족한 게 문제라는 시각도 있다. 캠프에서 일했던 한 인사는 어떤 제안이나 의견을 제시했을 때 윤 대통령이 화를 내면 일단 진정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얘기를 꺼내면 된다. 결국은 대통령이 합리적으로 판단한다고 했다. 또 다른 인사는 대통령이 누군가에 대해 화를 낼 때, 옆에서 그건 아니고요라고 변명해주면 안 된다. 대신 더 크게 화를 내고 흥분하면 대통령이 그것까진 아니고하며 누그러진다고 말했다. 비록 화는 자주 내지만 뒤끝은 없는 호탕한 스타일이라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웬만한 맷집을 갖고 있지 않고서야 대통령의 호통을 들은 이가 직언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 화내는 최고 지도자 앞에서 할 말을 한다는 건 자리를 내놓을 각오를 하는 것인데, 이런 분위기에서 의견을 자유롭게 말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취임 이후 김건희 여사 비선 논란을 비롯해 관저 공사 특혜 수주, 대통령 동선 노출 경위 등 숱한 의혹이 나왔지만 대통령실은 명확한 해명을 내놓지 못했다. 비속어 논란 역시 코미디에서 스릴러로 변모한 데는 이렇게 대응하면 안 된다고 누구도 말하지 못한 탓이 클 것이다. 참모들이 대통령과 소통하지 못하고 직언하지 못하면 대통령은 고립되고 성역화될 수밖에 없다.

 

윤 대통령은 국민 앞에 공개되는 출근길 문답에서도 종종 분노를 참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 태도 논란을 빚었다. 이에 그는 지난 8월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제가 할 일은 국민들의 뜻을 세심하게 살피고 뜻을 잘 살피는 것이라며 분골쇄신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에 확인된 것은 변하지 않은 대통령의 불통과 참모들의 일사불란한 심기경호 모습이다. 대통령의 호통 리더십은 피의자 앞의 검사로서, 또는 검찰총장으로서는 통했을지 모르나, 다른 의견도 포용하고 수용해야 하는 대통령으로선 적절치 않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지난해 대선 경선 당시 윤 대통령을 향해 호통 개그로 성공한 사람은 박명수씨뿐이라고 일갈한 바 있다. 새겨들을 일이다.

최혜정 | 논설위원 한겨레 2022.10.06.

 

 

밥은 생명입니다, 하늘입니다

농사는 생명을 가꾸는 존귀한 일이다. 농민에 대한 존중이 없으면, 더불어 사는 공동체의 가치가 훼손된다. 농사는 생명을 살리는 땅과 더불어 하는 일이다. 먹지 않고 일할 수는 없다. 농업 노동을 가벼이 여기면, 삶의 뿌리가 말라간다. 농민이 없으면, 생명도 없다.

 

193010월의 일이다. 일제강점기 조선은 살인적인 쌀값 하락으로 난리가 났다. 1910년 한일강제병합 이후 쌀값이 최저가격으로 폭락했다. 19301027일자 조선일보는 당시 상황을 크게 보도했다. 현미 한 섬(160) 가격이 5~6년 전에는 36~37원이었다. 193010월에는 1850전까지 떨어졌다. 폭락의 원인은 대풍년이었다. 이전까지는 쌀 수확량이 평균 1300만석이었는데, 1930년에는 19296000석이나 되었다. 조선총독부 농림성은 떨어지는 쌀값 막을 대책이 없다고 포기선언을 했다. 당시의 유일한 대책은 쌀값 운용자금을 1억원가량 늘려, 남는 쌀을 사들이는 것이었다고 한다. 큰 풍년이 축복이어야 했는데, 오히려 재앙이 되었다. 일제강점기 수탈 정책은 일본의 쌀값 안정이 최우선이었고, 조선의 쌀값 안정은 뒷전이었다. 제국주의는 약자에게 훨씬 가혹한 통치체제이다.

 

근대 자본주의는 농사의 가치를 경제적 효용의 측면에서 접근한다. 농산물을 상품화함으로써,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농사를 편입시킨다. 일본의 ()사상가인 우네 유카타(宇根豊)<농본주의를 말한다>(김형수 옮김, 녹색평론사, 2021)에서 자본주의와 농사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에 따르면, 1920년대 후반 즈음부터 일본에서 농업은 식량을 생산한다라는 경제적 가치가 부각되었다고 한다. 그 이전까지 농사는 쌀을 경제적 측면에서 생산이 아니라 천지자연과 마을 공동체를 지키고, 모두의 정신세계를 함께하는 것이었다. 자연을 대하는 태도를 예로 들 수 있다. 에도 시대까지 농민들은 해충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농민들은 자연과 더불어 농사가 이뤄지기에, 자연재해도 인간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근대국가가 성립되면서, 자연의 위협에서 벗어나는 기술이 강조되었다. 과학기술의 힘으로 자연의 제약을 극복할 수 있다고 보면서, ‘해충이라는 말이 농학자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농사를 자본주의의 논리로 접근하자, 자연과 더불어 생명을 살리는 일이 경제적으로 비효율적인 일로 간주되기 시작한 것이다. 1930년 조선에서 대풍년이 들었음에도, 농민들이 고통받았던 것도 농사가 자본주의 경제적 체제에 편입된 것의 영향이 컸다. 식민지 조선은 농사를 대하는 태도를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없었다.

 

202210, 마치 193010월처럼 쌀값 폭락으로 농민들의 마음이 새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다. 지난해 10월에 2054228원 하던 쌀값이, 올해 10월에는 4725원까지 떨어졌다. 1977년 쌀값 통계 작성이 시작된 이후 가장 큰 폭인 24.9% 하락을 기록했다. 정부는 긴급히 1조원을 투입해 쌀 45t을 사들이는 시장격리 조치를 취하겠다고 발표했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쌀값 정상화를 위해 양곡관리법을 개정하겠다고 서두르고 있다.

 

농사의 가치를 경제적 가격 정상화로만 접근하는 것이 온당한 것일까? 한국인은 하루에 공깃밥 한 그릇 반을 소비한다. 이를 돈으로 환산하면, 하루 쌀값이 390원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한 사람이 쌀을 먹는 양도 크게 줄었다. 1971년에는 일인당 134.8의 쌀을 먹었는데, 2001년에는 88.9을 먹었고, 2021년에는 56.9을 먹었다. 이렇다보니, 정부에서는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쌀농사를 줄이고 대신 논에 콩과 같은 밭 작물을 심도록 장려하는 논 타작물 재배 지원 사업을 펼치기도 했다.

 

농사는 생명을 가꾸는 존귀한 일이다. 농민에 대한 존중이 없으면, 더불어 사는 공동체의 가치가 훼손된다. 농사는 생명을 살리는 땅과 더불어 하는 일이다. 먹지 않고 일할 수는 없다. 농업 노동을 가벼이 여기면, 삶의 뿌리가 말라간다. 농민이 없으면, 생명도 없다.

 

193010월의 일이다. 일제강점기 조선은 살인적인 쌀값 하락으로 난리가 났다. 1910년 한일강제병합 이후 쌀값이 최저가격으로 폭락했다. 19301027일자 조선일보는 당시 상황을 크게 보도했다. 현미 한 섬(160) 가격이 5~6년 전에는 36~37원이었다. 193010월에는 1850전까지 떨어졌다. 폭락의 원인은 대풍년이었다. 이전까지는 쌀 수확량이 평균 1300만석이었는데, 1930년에는 19296000석이나 되었다. 조선총독부 농림성은 떨어지는 쌀값 막을 대책이 없다고 포기선언을 했다. 당시의 유일한 대책은 쌀값 운용자금을 1억원가량 늘려, 남는 쌀을 사들이는 것이었다고 한다. 큰 풍년이 축복이어야 했는데, 오히려 재앙이 되었다. 일제강점기 수탈 정책은 일본의 쌀값 안정이 최우선이었고, 조선의 쌀값 안정은 뒷전이었다. 제국주의는 약자에게 훨씬 가혹한 통치체제이다.

 

근대 자본주의는 농사의 가치를 경제적 효용의 측면에서 접근한다. 농산물을 상품화함으로써,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농사를 편입시킨다. 일본의 ()사상가인 우네 유카타(宇根豊)<농본주의를 말한다>(김형수 옮김, 녹색평론사, 2021)에서 자본주의와 농사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에 따르면, 1920년대 후반 즈음부터 일본에서 농업은 식량을 생산한다라는 경제적 가치가 부각되었다고 한다. 그 이전까지 농사는 쌀을 경제적 측면에서 생산이 아니라 천지자연과 마을 공동체를 지키고, 모두의 정신세계를 함께하는 것이었다. 자연을 대하는 태도를 예로 들 수 있다. 에도 시대까지 농민들은 해충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농민들은 자연과 더불어 농사가 이뤄지기에, 자연재해도 인간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근대국가가 성립되면서, 자연의 위협에서 벗어나는 기술이 강조되었다. 과학기술의 힘으로 자연의 제약을 극복할 수 있다고 보면서, ‘해충이라는 말이 농학자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농사를 자본주의의 논리로 접근하자, 자연과 더불어 생명을 살리는 일이 경제적으로 비효율적인 일로 간주되기 시작한 것이다. 1930년 조선에서 대풍년이 들었음에도, 농민들이 고통받았던 것도 농사가 자본주의 경제적 체제에 편입된 것의 영향이 컸다. 식민지 조선은 농사를 대하는 태도를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없었다.

 

202210, 마치 193010월처럼 쌀값 폭락으로 농민들의 마음이 새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다. 지난해 10월에 2054228원 하던 쌀값이, 올해 10월에는 4725원까지 떨어졌다. 1977년 쌀값 통계 작성이 시작된 이후 가장 큰 폭인 24.9% 하락을 기록했다. 정부는 긴급히 1조원을 투입해 쌀 45t을 사들이는 시장격리 조치를 취하겠다고 발표했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쌀값 정상화를 위해 양곡관리법을 개정하겠다고 서두르고 있다.

 

농사의 가치를 경제적 가격 정상화로만 접근하는 것이 온당한 것일까? 한국인은 하루에 공깃밥 한 그릇 반을 소비한다. 이를 돈으로 환산하면, 하루 쌀값이 390원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한 사람이 쌀을 먹는 양도 크게 줄었다. 1971년에는 일인당 134.8의 쌀을 먹었는데, 2001년에는 88.9을 먹었고, 2021년에는 56.9을 먹었다. 이렇다보니, 정부에서는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쌀농사를 줄이고 대신 논에 콩과 같은 밭 작물을 심도록 장려하는 논 타작물 재배 지원 사업을 펼치기도 했다.

 

쌀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에는 생명에 대한 경외심이 깃들어 있다. 쌀값 하락에 대응하는 정책적 접근, 법 개정 등 농촌을 위한 노력은 당연히 다각도로 이뤄져야 한다. 무엇보다 변화하고 있는 한국의 쌀 문화에 대한 깊은 성찰도 필요하다. 농사일은 자연의 질서에 의존하기에, 자본주의 경제체제 바깥에 있다. 시장의 논리에 온전히 내맡길 수 없는, 인간 노동의 근본 영역이기도 하다. 쌀로 생명을 가꾸는 농민을 존귀하게 여기는 것은 스스로의 생명을 존귀하게 대하는 태도와 연결된다.

 

쌀값이 떨어지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김지하의 시 밥은 하늘입니다의 한 구절을 옮겨 본다. “하늘의 별을 함께 보듯이/ 밥은 여럿이 같이 먹는 것/ 밥이 입으로 들어갈 때에/ 하늘을 몸속에 모시는 것.” 밥을 먹을 때는 고개를 숙이게 된다. 밥은 내 몸을 겸허하게 만든다. 한국인에게 쌀은 생명이고, 하늘이다. 생명의 마지막 전선에 아파하고 있을 농민들에게 깊은 위로의 인사를 올린다.

오창은 문학평론가·중앙대 교수 경향 2022.10.07.

 

 

폭력의 전염병, 괴롭힘과 감정노동

코로나19 이전보다 일이 힘들다고 한다. 주위 몇몇 노동자들의 하소연이다. 일터에서 폭언, 폭력, 폭행, 괴롭힘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고객이나 시설 이용자 등 제3자로부터의 부당한 언행은 팬데믹 이전에도 존재했지만 최근 훨씬 심해졌다고 한다. 슬프게도 힘듦과 고통은 다니던 직장을 포기하는 결정을 할 정도다. 감내하지 못하는 불안과 스트레스가 가중되기 때문이다. 우리만이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는 이 상황을 악화시켰다.

 

노동자들의 삶에서 폭력과 괴롭힘은 이미 일상이 되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일부 고객의 공격적인 행동은 이전과 전혀 다르다. 노동자들에게 욕설이나 비하 등의 언어적인 폭력은 물론 의도적으로 기침을 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병원 같은 곳에서는 감정적 피해나 위협 혹은 신체적 공격 등으로 물품 등에 부딪히는 사례들도 있다. 때론 일하는 과정에서 괴로움이 가중된다.

 

매일 적게는 수십명에서 많게는 수백명의 고객을 대하는 일이 쉬운 것만은 아니다. 불행히도 감정노동자들이 모욕을 경험하는 것은 일상이 된 지 오래다. 사실 법률 제정 이후에도 회사에서 발생한 폭력과 괴롭힘은 정확한 수치를 파악하기도 어렵다. 최근 10명 중 3명이 일터에서 괴롭힘을 경험했다는 국정감사 자료가 나온 정도다. 그러나 이 통계조차 빙산의 일각일지 모른다. 고객이나 이용자 혹은 내방객과 같은 제3자에게 위협을 당하고 승강이를 벌인 것은 통계에 잡히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 일터에서의 우월적 지위나 관계 속에서의 괴롭힘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지난 26개월 동안 병원이나 돌봄 현장에서는 정부의 코로나19 대책이 시행될 때마다 자신들은 버림받았다고 느끼고 있다. 다수의 감정노동자들 또한 완고한 고객을 반복적으로 처리해야 하지만 특별한 지원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노동조합이나 단체들은 모든 종류의 폭력으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구체적 조치를 요구한 지 오래다. 이제 더는 미룰 수 없다. 우리 모두 인간중심적인 일터의 해답을 찾아야 한다. 아무리 노동이 상품화된 자본주의 사회라 할지라도 일터에서 권력의 남용이 합법적 행동이 되면 안 된다. 우리 모두 남용된 권력과 맞서야 하고, 함께 행동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의 존엄성은 되찾기 어렵다. ‘모든 사람이 젠더에 기반한 폭력과 괴롭힘을 비롯한 폭력과 괴롭힘으로부터 자유로운 권리를 존중하고, 촉진하고, 실현한다는 국제노동기구(ILO) 190호 협약의 취지를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주위를 둘러보면 다양한 해법을 모색한 사례가 없지는 않다. “폭력과 괴롭힘을 위한 일터는 없다” “매일 모욕을 당하거나 위협을 가하거나 침을 뱉는 것은 주로 서비스 여성노동자들이다와 같은 캠페인을 진행하는 곳도 있다. 물론 안타까운 현실이다. 폭력과 괴롭힘이 급증하는데 폭력의 전염병은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전 세계 어느 곳에서도 불편한 진실과 조우할 수밖에 없는 듯하다.

 

이 때문에 노사정 사회 협약이나 노사 간 산업별 협약을 체결한 몇몇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독일은 노사정 3자가 노동세계에서 정신건강을 위한 공동선언과 10가지 합의사항을 발표(2013)한 바 있다. 프랑스는 괴롭힘과 폭력에 대한 사용자 책임과 노동자 권리 등이 포함된 산별 협약(2010)을 체결했다. 2년마다 평가를 통해 개정하기도 한다.

 

오는 18일은 소위 감정노동자보호법(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시행한 지 4년이 되는 날이다. 모든 사업장에 적용되고 있지만 법 시행의 효과는 아직 더딘 편이다. 노동보호와 안전을 위한 일터 위험 목록을 세부적으로 만들고 구속력을 높여야 한다. 이젠 노동세계의 과도한 감정 사용과 폭력, 공격, 트라우마 등을 야기하는 사건을 막고, 대안적 활동을 해야 할 시점이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사단법인 유니온센터 이사장 경향 2022.10.07.

 

 

윤석열차는 오늘도 달린다

2015년 프랑스에선 신년 벽두부터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논쟁이 뜨겁게 불붙었다. 그해 17일 파리에 있는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사무실에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테러를 저질러 12명이 사망한 사건이 계기였다. 테러는 샤를리 에브도가 이슬람 선지자 무함마드를 부정적으로 묘사한 만평을 게재한 것이 발단이 됐다. 샤를리 에브도는 풍자에 성역을 두지 않고 도발적인 비판을 해온 매체로 잘 알려져 있다. 무함마드를 형상화하는 일체의 행위를 죄악시하는 이슬람의 입장에서 샤를리 에브도의 만평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행위였다.

이후 논란은 프랑스 국경을 넘어 번져나갔다. ‘나는 샤를리다(Je suis charlie)’라는 구호로 대변되는 표현의 자유와, 특정 종교를 모욕하는 자유까지 허용되어선 안 된다는 견해가 갈렸다. 자기들의 입장과 다르다고 만평 작가를 죽이고 언론 매체에 테러를 일으키는 건 야만적 행위라는 비판에 대해 자기가 믿지 않는 타 종교에 대한 선 넘는조롱은 표현의 자유로서 존중받을 수 없다는 의견이 맞섰다.

 

표현의 자유를 어디까지 용인해야 하는가하는 문제는 오래전부터 논란이 돼왔다. 대한민국 헌법 211항은 모든 국민에게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보장한다고 규정해 표현의 자유의 근거를 마련하고 있지만, 같은 조 4항에서는 언론·출판이 타인의 명예나 권리, 공중도덕, 사회윤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며 제한적인 조건을 내세우고 있다. 이 때문에 표현하는 쪽과 이를 받아들이는 쪽의 입장에서 명예나 권리, 권익의 경계를 놓고 다툼이 일곤 한다.

 

물론 표현의 자유라고 해서 모든 게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전쟁이나 학살 등 반인륜적 범죄의 정당화, 인종 차별·혐오와 같이 넘어서는 안 될 선이 있다. 약자에 대한 조롱과 비하 역시 표현의 자유라는 미명하에 숨을 수 없다.

 

한 고등학생이 그린 한 컷짜리 만화가 우리 사회에 표현의 자유라는 화두를 환기시켰다. 얼마 전 재단법인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주최한 전국학생만화공모전 카툰 부문에서 금상을 수상한 윤석열차라는 제목의 만화가 전시되면서다. 그림에는 윤석열 대통령의 얼굴을 한 기차를 부인 김건희 여사가 기관차에서 조종하는 모습이 담겼고, 그 뒤 열차에 법복을 입고 칼을 든 사람들이 탄 모습이 그려져 있다. 열차 앞 선로에는 질주하는 기차에 사람들이 놀라 달아나는 모습이 묘사됐다. 논란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윤석열차에 금상을 준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 유감을 표하며 엄중히 경고한다고 밝히고 선정 과정 조사에 나서겠다고 하면서 촉발됐다. ‘표현의 자유를 문제 삼아선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오자 문체부는 표현의 자유 문제가 아니라 정치색을 빼지 않고 작품을 공모한 진흥원을 문제 삼은 것이라고 반박했지만 파장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대다수의 시각은 문체부의 대응이 지나친 게 아니냐는 쪽으로 모아진다. 보통 만평으로 부르는 한 컷짜리 만화는 매일 신문에 실리는 데다 대부분 정치와 관련된 소재를 바탕으로 한다는 점, 문체부의 대응이 윤석열 정부가 강조해온 자유의 가치에도 반한다는 점에서다. “문체부가 지극히 주관적인 잣대를 핑계 삼아 헌법의 기본권 중 하나인 표현의 자유를 부정하고 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연상된다는 반발이 문화계 안팎에서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문학이나 그림, 만평 등에서 풍자는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로 쓰인다. 직접적 비판이 아닌, 기지와 해학을 담아 에둘러 표현하는 풍자는 사회의 부조리나 모순, 불합리 등을 신랄하게 꼬집으며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이번에 이슈가 된 윤석열차도 마찬가지다. 윤 대통령을 뒤에서 조종하는 듯한 김 여사와 대통령을 추종하는 검사들이 검찰 요직을 차지한 현 세태를 폭주기관차에 빗대 묘사한 것이다. 문체부 입장에선 아마도 이런 풍자가 불편했던 모양이다. 진흥원을 향한 경고는 구체적 지시 없이도 윗사람이 원하는 바를 헤아려 일을 처리하려는그들만의 심모원려가 작용한 것 같다. 그런데 너무 오버스러워 보인다. 웃자고 한 얘기에 죽자고 덤비는 꼴 아닌가. 요즘 뉴스에 붙는 인터넷 댓글을 한번 보시라. ‘윤석열차보다 더 원색적이고 직설적인 비난이 넘쳐나고 있다. 오죽하면 여당에서까지 너무 나갔다”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드느냐는 지적이 나왔을까.

조홍민 사회에디터 경향 2022.10.07.

 

 

브라질 대선, 인류와 지구를 위한 결전

지난 2일 실시된 브라질 대선은 승자를 가리지 못했다. 두차례 대통령을 역임했던 노동자당 소속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다시우바 후보가 1차 투표에서 승리를 확정하리라는 예측도 있었다. 다양한 좌파, 녹색 정치세력들만이 아니라 중도파 정당들까지 대거 룰라 진영에 합류했기에 이런 예측이 호들갑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룰라는 48.4%를 득표해 간발의 차로 과반에 미치지 못했다.

 

집권 중에 극우 선동만 일삼으며 팬데믹 국면에 실정을 거듭한 자이르 보우소나루 현 대통령은 애초 예상보다 높은 43%의 지지를 얻었다. 부유한 남부 주들의 중산층이 여전히 좌파보다는 극우파를 선택한데다, 동성애 혐오나 낙태 반대에 동조하는 개신교 일부 종파 신자들이 보우소나루에게 표를 몰아준 결과다. 진보적 개헌안이 부결된 한달 전 칠레 국민투표에서도 드러났듯이, 남미 곳곳에서도 극우 포퓰리즘의 반격이 만만치 않은 것이다.

아무튼 브라질은 이달 30일에 대선 결선투표를 해 최종 당선자를 가리게 된다. 산술적으로만 보면, 룰라의 승리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보우소나루의 상승세도 무시할 수 없어 결과를 장담하기 힘들다. 앞으로 몇주 동안, 중남미 전체의 향배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이 대국의 치열한 선거전에 세계인의 눈길이 쏠릴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라틴아메리카 정치에 이렇게 열띤 관심을 보이는 것이 그 자체로 논쟁거리가 되곤 한다. 중남미 좌파 붐에 주목하거나 남미 어느 나라 선거나 사회운동을 상세히 소개하면, 대뜸 거기에서 배울 게 있느냐는 반문이 따른다. 대한민국쯤 되면 북유럽 국가들을 바라보거나 여전히 미국에서 배워야지 왜 남반구 국가들에 시간을 허비하느냐는 투다. 브라질은 그나마 낫다. 화제가 베네수엘라 등으로 튀기라도 하면, 마치 입 밖에 꺼내선 안 될 이야기를 발설한 분위기가 된다.

이는 한국 식자들 특유의 촌스러움을 드러내는 풍토병의 증상일 뿐이다. 세상에 대한 관심이 늘 추격 경쟁에서 앞서가는 자들의 비밀을 파헤치려는 데 한정될 수는 없다. 이른바 모범 사례를 찾아 헤매는 것만이 나라 밖을 향해 귀와 눈을 열어야 할 이유는 아니다. 오히려 그런 태도야말로 오래전 서유견문식 세계관에 머무는 것이다. 우리가 중남미든 아프리카든 세상 곳곳에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는 그들과 그물처럼 엮인 세상 속에 우리가 함께 살고 있다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명확한 진실에 있다. 고마워해야 할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시대 자본주의는 그런 엮임의 강도와 복잡성을 극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지금 브라질 대선 결선이야말로 이런 현실의 한복판에 대두한 일대 사건이다. 여기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이유는 룰라가 당선돼 펼칠 정책이 우리에게 모범 답안이 될 것이기 때문이 아니다. 보우소나루의 선동 내용이 우리에게도 어느덧 익숙해진 혐오의 정치이기 때문만도 아니다. 우리의 운명은 이보다도 훨씬 더 직접적으로 브라질인들의 정치적 결정과 연결돼 있다.

룰라가 집권하던 시절 아마존 열대우림은 오랜 남벌과 난개발에서 한동안 벗어났지만, 보우소나루 정권 아래에서 전례 없는 속도로 파괴됐고 산불도 빈발했다. 파괴 정도가 너무 심해 이제 아마존 우림은 탄소를 흡수하기는커녕 오히려 배출하는 지경이다. 이는 지구 가열을 기후과학자들도 예상 못 할, 걷잡을 수 없는 지경으로 이끌 위험 요소 중 하나다. 4주 뒤 브라질 유권자들이 룰라와 보우소나루 중 어느 쪽을 선택할지에 따라 기후위기의 양상과 속도, 완화 가능성이 크게 달라질 것이다.

그렇기에 브라질 대선 결선은 브라질만의 일일 수 없다. 이제껏 미합중국 대통령선거가 그랬던 것처럼 세계인의 선거다. 인류와 지구의 운명을 건 대회전이다. 다른 무슨 대의 이전에 나와 우리의 생존을 위해 룰라 후보와 지지자들의 승리를 간절히 바라며, 충심으로 응원한다.

장석준 | 출판&연구집단 산현재 기획위원 한겨레 2022.10.07.

 

 

좀비 이론에 기댄 재벌신문의 '부자감세' 보도

지난 5일 기획재정부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윤석열 정부의 법인세 인하·종부세 인하 등 세제개편안을 부자감세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대기업을 부자로 보는 프레임, 그 인식부터 동의하지 않는다면서 경제가 어렵고 기업 활력 제고가 필요한 이때 기업 투자를 확대하고 일자리를 만들어야 하는데, 여러 수단 중 하나가 법인세 인하라고 밝혔다.

 

윤석열 정부의 감세 정책은 영국 트러스 신임 총리의 부자 감세정책과 닮은꼴이다. 영국 트러스 총리는 지난달 231972년 이후 최대 규모인 연간 약 72조 원의 감세안을 발표하고 열흘 만인 3소득세 최고세율 45% 폐지안을 철회했다.

법인세 깎아 줄어든 나라 세금, 월급쟁이들이 메꿨다 (MBC 뉴스데스크 보도화면 갈무리)

 

감세 정책을 철회한 트러스 총리는 4BBC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복지 정책 축소까지 시사했다. “중기적으로 GDP 대비 국가 채무 비율을 어떻게 낮출지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트러스 총리의 감세와 복지 축소 정책은 영국 보수당 내에서도 공개적인 반발을 사고 있다. 트러스 내각의 페니 모몬트 국제통상부 부장관은 인플레이션을 반영해 복지 혜택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트러스 총리의 정치적 미래는 매우 불확실해졌다.

 

영국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한국의 상황과 너무나 흡사하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감세 정책과 국가 재정, 복지 정책의 방향에 대한 합리적 논쟁을 찾기 힘들다.

 

지난 5일 많은 신문이 법인세 인하 땐 장기적으로 경제 규모가 3.4% 성장한다는 김학수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원의 보고서 내용을 집중 보도했다. 김 연구위원은 법인세 세율체계 개편안에 대한 평가와 향후 정책 과제보고서에서 법인세 최고세율을 내리면 투자와 취업자 수가 늘고 경제성장으로 이어진다고 주장했다. 그는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가 부자 감세라는 비판에 대해 정치적으로 제기된 구호에 불과하다면서 법인세 감세가 일부 부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모든 국민을 위한 것이라는 점은 명확하다고 말했다.

 

매일경제와 한국경제는 사설을 통해 김 연구위원의 보고서 내용을 마치 국책연구원인 KDI의 입장인 것처럼 보도하면서 감세정책의 낙수효과는 이미 충분히 증명됐다고 거들고 나섰다. 한국경제는 이명박 정부가 법인세 최고세율을 인하(25%22%)10년 뒤 법인세수가 82% 급증했다는 엉뚱한 주장을 하고 있다.

하지만 법인세 증가는 대기업들이 사상 최대의 영업이익을 거두고 문재인 정부가 법인세 최고 세율을 25%로 환원한 영향이 크다. 경향신문은 KDI 보고서를 가리켜 국감용 방탄보고서또는 정권 코드 맞추기라는 지적도 나온다면서 최근 감세 철회로 돌아선 영국 사례를 감안할 때 세계적인 흐름과도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윤석열 정부의 감세정책을 환영하는 재벌신문들의 더 큰 문제는 아전인수식 보도이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주장은 확인도 하지 않고 기정사실로 받아들여 집중보도하지만, 다른 의견은 철저히 묵살한다.

 

한겨레는 유럽의 경제학술지인 유럽경제리뷰’ 8월호에 실린 논문 법인세 인하가 경제 성장을 촉진하는가를 소개하며 법인세 인하가 경제 성장에 미치는 영향은 평균적으로 ‘0’에 수렴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고 보도했다. 법인세와 성장의 관계는 연구자가 설정한 성장의 측정 기간(장기 또는 단기) 법인세 측정 방법(법정세율 또는 실효세율) 세입과 재정지출을 함께 살피는지 여부 등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한겨레는 이 논문이 평균적으로 보면 법인세 변화가 경제적으로도 통계적으로도 경제성장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가설을 거부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MBC는 지난 5“2008년 이명박 정부가 대기업들의 법인세를 깎아준 이후 국세 수입이 어떻게 달라졌나 봤더니, 법인세가 줄어든 빈자리를 월급쟁이들이 내는 근로소득세가 메꾼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MBC 보도에 따르면 전체 세금에서 법인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823%였는데 2021년에는 20%로 줄었다. 반면에 근로소득세 비중은 20088%였는데 2021년에는 13%로 늘었다.

법인세 깎아 줄어든 나라 세금, 월급쟁이들이 메꿨다 (MBC 뉴스데스크 보도화면 갈무리)

 

MBC기업 수익이 늘어나면 주주 배당금이 늘어나니까 길게 보면 모든 국민을 위한 거라는 새로운 논리도 등장했다KDI가 낸 보고서를 언급했다. 김유찬 홍익대 교수는 MBC와 인터뷰에서 "우리나라 전체 배당 소득의 63%가 상위 1%한테 가요. 결국 법인세를 낮춰준 혜택은 상위 1% 사람한테 귀속된다는 거잖아요라고 KDI 보고서를 반박했다.

 

법인세 인하에 따른 낙수효과가 없다는 주장은 중앙일보 정재홍 국제외교안보에디터의 칼럼에서도 확인된다. 정재홍 기자는 [서소문 포럼] <현실 외면한 정책의 대가> 에서 대처 전 총리의 감세에 따른 경제 성장 효과는 비슷한 시기 높은 세금을 유지했던 독일 등 다른 유럽 국가들과 비교해 차이가 없었다. 레이건 전 대통령의 부자 감세도 기대했던 성장을 이끌지 못하고 재정 적자만 키웠다. 오히려 재정 적자를 줄이기 위해 부자 증세를 했던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시기에 미국 경제는 고속 성장했다대부분의 경제학자는 낙수 이론을 좀비 이론이라고 부른다고 밝혔다. 현실 적합성이 없어 사라져야 할 이론임에도 좀비처럼 아직 살아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OECD2021년 불평등 보고서에서 한국을 가리켜 혼란스런 인식을 가진 나라라고 규정했다. 누구보다 불평등을 심각하게 느끼지만 불평등을 해소할 국가의 역할에 가장 부정적이라는 것이다.

 

사라져야 하지만 좀비처럼 살아남아 국민의 인식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 그것이 지금 한국의 재벌신문들이 아닐까!

탁종열 노동인권저널리즘센터 소장 미디어스 2022.10.07.

 

 

"XX 아파트 갑시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한글날.

 

세계에서 글자가 생긴 이유나 생긴 때를 아는 유일한 문자. 또 국경일로 기리는 유일한 문자. 대한민국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서글프기도 하다. 한글이 자꾸만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것 같기에.

 

문학은 언어가 도구이다. 나는 한글을 도구로 하여 글쓰기를 한다. 그런 한글을, 내 존재의 거의 전부인 한글을(독일 철학자 하이데거 식으로 말하면 언어는 존재의 집인데) 업신여기는 종자들이 많아 좀이 아니라 많이 거시기하다. 나는 한글로 적을 수 있는 한국어로 생각하고 그걸 토해내 글로 쓰는데나만 봐도 인간은 언어로 생각한다는 말에 수긍을 안 할 수 없다.

 

굳이 한글의 우수성을 따지고 싶지는 않지만, 이것만은 말해야겠다. 언어학자들에 따르면 영어 A9 가지로 발음을 한단다. 그래서 우리 또래가 영어를 처음 배울 때엔 국제음성기호를 [ ]안에 써서 외우는 단어장이 필요했다. 근데 한글은 로 적었으면 로만 소리를 내고, ‘로 적었으면 로만, ‘로 적었으면 로만 소리를 낸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한글이 진정한 소리글자이다.

 

그러기에 한글론 자연이 내는 웬만한 소리(8800 개 정도)를 다 적을 수 있단다. 일본어는 300 개 정도, 중국어는 400 개 정도라는데나아가 한글로는 영어 발음의 90% 이상을 적을 수 있는데 영어론 우리말을 적기 쉽지 않단다.

 

용산추모공원보다는 내셔널메모리얼파크가 더 멋지다는 대통령이나 하는 사람의 인식도 그렇고, 어떤 졸개를 장관 자리에 앉히면서 한다는 소리가 영어를 잘 해서라나 어쩐다나 하는 것도 거시기하다. 이러니 부산의 시장이라는 이는 내놓고 영어 상용 도시를 만든다고 떠들겠지.

 

내 자주 다니는 길의 바닥에 어느 날 뜬금없이 렛츠런파크방향 표시가 생겨서 어디를 말하는지 궁금하여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경마장가는 길이어서 쓴웃음.

 

이 추세로 가다 보면 웬만한 말은 모두 영어로 바뀔지도 모르겠다. 이미 공공기관이나 대기업들과 은행들의 명칭은 영어로 많이 바뀌었더라. KT, SH, SK, HJ, KB, NH, MG 하는 식으로. 나아가 각종 단체 이름도 영어 약자가 많고 방송 프로그램 이름도 영어가 대세

 

아파트 이름도 지역명이나 회사명이 아니고 요즘은 요상한 브랜드명을 단다. 그런데 그 브랜드라는 게 거의 영어 아니면 불어다. 그래야 고급스러워 보이고’, ‘값이 올라간단다’. 예전엔 우스갯소리로 시어머니가 찾아오기 힘들게 영어 이름이 달린 곳으로 이사를 했다는데, 요즘은 젊은 사람도 찾아가기 힘들다.

 

얼마 전에 들은 얘기. 젊은 축에 속하는 친정 어머니가 딸네 집에 가려고 택시를 잡았단다. 짐을 가지고 어렵게 택시를 타긴 했는데 딸네 아파트 이름이 얼른 떠오르지 않았다. 간신히 생각해낸 뒤 어디어디 동네에 있는 씨발놈 아파트로 가자고 했단다. 운전기사가 웃으면서 씨빌 빌리지 아파트요 하길래, ‘뭔 놈의 집 이름을 고로코롬 쌍스럽게 지어 붙였는지하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운전기사가 알아들었다는 얘기는 씨발놈 아파트라 말한 이들이 한둘이 아니라는 얘기.

박상률 작가 뉴스 클레임 2022.10.09.

 

 

소행성 앞에 기후위기

지난달 26일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지구에서 1100떨어진 우주로 우주선을 보내 소행성 디모르포스에 충돌시키는 데 성공했다. 충돌 상황은 NASA 홈페이지를 통해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 NASA이중 소행성 경로 변경실험(DART)’이란 이름을 붙인 이번 계획의 목적은 언젠가 지구로 날아들 소행성을 방어할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다. 1998년에 개봉한 미국 영화 <아마겟돈>처럼 소행성이 지구에 충돌하기 전에 소행성의 이동 경로, 즉 궤도를 바꾸는 것이 핵심이다

 

실제로 소행성의 궤도는 바뀔 것으로 보인다. 빌 넬슨 NASA 국장은 충돌 성공 뒤 이번 실험은 지구 방어를 위한 전례 없는 성공이라며 전 인류에게 실질적인 이익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말했다. 24년 전 개봉한 영화 속 이야기가 현실이 되자 많은 사람이 환호했다. 이제 인류는 소행성의 위협으로부터 지구를 지킬 기술을 갖게 됐다.

 

나는 이 뉴스에 심드렁했다. 그 직전에 기후위기 뉴스를 봤기 때문이다. “소행성을 막으면 뭐하나. 이미 지구는 스스로 종말로 가고 있는데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소행성을 막기 위해 밤낮 없이 노력해 온 연구진에게는 미안하지만 이게 현실이다. 기후위기를 막지 못한다면 인류는 소행성이 지구를 강타하기 전에 스스로 무덤을 파고 들어갈 것이다.

 

지난달 13일 세계기상기구(WMO), 유엔환경계획(UNEP), 영국 기상청 등 국제연합(UN) 산하기관과 협력 기관 9개가 합동으로 기후위기 관련 보고서를 발표했다. 제목은 유나이티드 인 사이언스(United in Science) 2022’. WMO는 보고서 내용을 아주 간단하게 설명했다. “우리는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각국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여전히 부족하다. 더 강력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이번 세기 동안 지구 온도는 산업화 이전과 비교해 2.5~2.7도 상승할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딱딱하게 설명하면 작금의 위기가 그다지 와닿지 않는다. 그럴 줄 알고 보고서는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위기를 경고한다. 앞으로 5년 안에 역대 가장 더운 해가 찾아올 수도 있다. 그리고 2050년대에는 16억명이 1년 중 3개월은 평균 기온이 최소 35도인 환경에서 살아갈지도 모른다.

 

기후위기는 이미 우리 눈앞에 펼쳐져 있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마다가스카르, 말라위, 모잠비크, 짐바브웨 등에 매우 강한 사이클론이 덮쳐, 폭우와 광범위한 홍수를 일으켰다. 파키스탄에서는 인공위성에서도 포착될 규모의 홍수가 일어났다. 유럽에는 평년보다 7~12도 높은 폭염이 찾아왔다. 포르투갈에서는 일 최고기온이 47도에 달하기도 했다. 영국의 폭염 가능성은 최소 10배 더 높아졌다.

 

한국도 얼마 전 기후위기의 위협을 실감했다. 지난달 초 경북 포항을 비롯해 남부지방에 집중적으로 피해를 안긴 제11호 태풍 힌남노는 기존에 우리가 알던 태풍이 아니었다. 발생 지점과 강도 등이 앞서 경험했던 태풍과 달랐다. 기후변화로 해수면 온도가 높아지면서 한반도에 영향을 미치는 태풍도 그 행태가 변했다. 힌남노는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태풍의 시작일 수 있다. 지난달 중순에는 제14호 태풍 난마돌이 초강력급 규모까지 발달해 한반도를 위협했다. 기후변화와 라니냐 같은 자연 변동성이 겹친다면 태풍이 더 늦게까지 한반도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앞으로는 ‘10월 태풍을 넘어 11월 태풍이 나올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손을 놓고 종말을 기다릴 수는 없다. 다행히 아직 너무 늦지는 않았다. 지금이라도 행동을 한다면, 되돌릴 수는 없어도 스스로 무덤으로 걸어들어가는 것은 막을 수 있다. 그리고 이런 행동에 동참하는 시민들이 늘고 있다.

 

지난달 24일 열린 기후정의행진에는 주최 측 추산으로 35000여명이 참석했다. 3년 전에 비해 7배로 늘었다. 기후정의행동 조직위는 기후위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더 넓고, 깊어졌으며 위기감도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봤다. 지난달 29일에는 신규 석탄발전소 건설 계획을 정부가 철회할 수 있도록 법을 제정해달라는 국회 청원에 5만명이 동의했다. 마감을 10일 남긴 지난달 20일까지 청원인은 1만명에 불과했지만, 기후정의행진 이후 빠르게 늘어 일주일여 만에 4만명을 더했다. 행동하면 된다.

 

아직 지구에는 희망이 있다. 소행성 다음은 기후위기를 막을 차례다.

홍진수 정책사회부장 경향 2022.10.10.

 

 

대통령의 기분이 태도가 될 때

기분이 태도가 되지 말자는 말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한다. 행동과 표정에 자신의 짜증을 기어코 투사하여 상대를 불편하게 하는 인간을 마주했을 때의 황당함이 있기 때문일 거다. 그래서 자신은 실수하지 않으려는 것이고, 그 방법을 찾는다. 화가 나면 화가 사라질 때까지 무작정 걷는다는 이노이트족의 분노 해소법이 공유되는 것도, 기분 나쁜 상태로는 좋은 인간관계가 불가능해서다. 산책이나 명상이 현대인에게 치유의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다.

 

그래서인지 기분이 태도가 되지 말자는 게 인간이라면 지녀야 할 보편적 덕목처럼 다루어지기도 하는데, 사람의 관계를 결정하는 사회적 위치가 지나치게 간과된 것은 아닌지 걱정이 든다. ‘누가그게 더 가능한지를 따져 묻고, ‘누구냐에 따라어떤 여파가 형성되는지를 묻는다면 특정한 위치의 사람이 자기 기분을 더 신경 써야 함이 분명하다.

 

권력의 크기만큼 기분이 태도가 되었을 때의 파괴력도 커진다. 가부장적 집안을 보자. 자기 기분을 통제하지 못하고 거칠게 행동하는 사람은 주로 누구였던가. 여파는 얼마나 큰가. 누군가의 태도로 가족들은 공포심을 느끼고 그 감정을 수년이 지나서도 떨쳐내지 못한다. 자녀를 소유물로 여기는 집안을 보자. 아이가 자기 기분대로 행동한들 부모는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지을 뿐이지 무서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분을 감추지 못한 아이의 태도에 기분이 나빠서 소리는 커진다.

 

조직에서 직급이 높은 사람의 이상한 태도는 구성원들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지만, 반대의 경우라면 당사자가 행동에 대한 책임을 혹독하게 져야 한다. 연인과 헤어져 슬퍼하는 거야 인지상정이지만, 슬픔이 분노가 되어 감금, 폭행, 살인 등의 단계로 나아가는 게 모든 성별의 특징은 아니다. 누구는 그러지 못하는데 누구는 그럴 수 있는 건 개인의 기질 문제가 아니라 문화적으로 용인되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를 구조적 차별이라고 한다.

 

구조적 차별은 없다면서 여성가족부를 기어코 없애겠다는 대통령을 보자. 언행의 조심을 바라는 참모의 의견에 심기 불편을 드러내는 순간, 대통령의 기분을 제어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찌 모든 연설마다 자유만 반복하겠는가. 연습 한 번만 하면 실수하지 않을 제식을 무려 국군의날 행사에서 까먹겠는가. 일거수일투족이 촬영되는 외교 현장에서 XX”라는 말을 내뱉는 대범함은 늘 기분이 태도였던 일관성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거다. 그 태도의 파급력이 얼마나 컸는지는 국민들이 느낀 피로감이 증명한다.

 

기분이 태도가 되어서 긍정적인 결과가 나타나기도 한다. 예술은 작가의 영감이 재현되는 것인데, 그게 보장될수록 사회에 울림이 크다. 영감이 권력을 향해 사용되면 공동체에는 득이 더 크기에 표현의 자유가 합의되었다. 전국학생만화공모전 금상작 윤석열차도 기분이 태도가 되어도 되는 유일한 방법을 통해서 세상에 등장했다.

 

하지만 그걸 바라보는 권력의 태도가 자기 기분을 감추지 못하면 세상이 엉망이 된다. 예술작품이 정치적이라고 엄중 경고라니, 나라 망신이 따로 없다. 대통령 눈치 보게 되어서 기분이 안 좋았다면 일단 걷기를 바란다. 물론 눈치를 보게끔 한 그분은 걷기에 명상도 곁들였으면 한다.

오찬호 <민낯들: 잊고 또 잃는 사회의 뒷모습> 저자 경향 2022.10.10.

 

 

윤석열·한동훈과 나쁜 놈들

엄중 경고. 윤석열 정부가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 내린 조처다. 전국학생만화공모전 카툰 부문 금상 수상작 윤석열차를 두고 문체부는 정치적 주제를 다룬 작품을 선정해 전시했다며 엄포를 놓았다. 조금만 새겨보아도 생게망게하다. 정치로 호의호식하는 자들이 청소년에게 정치적 풍자를 엄금하는 꼴 아닌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이런 혐오나 증오의 정서가 퍼지는 것에 대해선 반대한다며 자신이 심사위원이었다면 상을 줘서 응원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아무나 심사에 참여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상 받은 학생에게 상처 주는 권력의 나쁜 말이다. 작품에서 칼 든 검사들의 얼굴이 한 법무의 복제처럼 보인다면 과민일까.

 

사실 그림을 새롭게 보면 윤석열한동훈 두 전직 검사의 패기와 이어진다. 장관 후보로 지명되었을 때 한동훈은 검찰 개혁 과제를 묻는 질문에 검찰이라는 것이 몇 백 년을 이어져 온 것이기 때문에 새로 할 게 없다. 법과 상식에 맞게 진영을 가리지 않고 나쁜 놈들을 잘 잡으면 된다고 말했다. 윤석열도 검찰총장 시기에 나쁜 놈들을 들먹이며 어금버금한 말을 했다. 대한민국 검찰의 과거를 잊거나 모르는 경거망동이다.

 

그런데 전직 검사 윤석열한동훈에게 나쁜 놈의 정의는 무엇일까. 모든 나쁜 놈이 범죄자는 아니고 그 역도 성립한다. 범죄학에서 나쁜 놈에 가장 가까운 개념은 사이코패스다. 범죄심리학자 로버트 헤어는 미국 연쇄살인범의 90% 이상이 그렇다고 진단했다. 눈여겨볼 것은 그 다음이다. 헤어는 사이코패스가 교도소나 뒷골목에만 있지 않다고 강조한다. 자신의 야망에 눈 벌건 자들, 그 과정에서 태연히 거짓말을 늘어놓거나 사람들을 멋대로 재단하며 자신을 대단한 존재로 착각하는 자들을 사이코패스로 진단한다. 구체적 직업군으로 정치인, 대기업 임원, 종교지도자, 교수들을 꼽았다. 지능과 언변을 갖춘 그들은 양복 입은 뱀이다.

 

윤 정부가 언론의 본령에서 일탈했다며 몰아치고 있는 MBC는 한 중견기업 회장이 노동인들에게 폭언과 폭력을 일상으로 저지르며 수행비서에게 가족은 물론 내연녀 3명의 사적 심부름을 무시로 시키곤 임금도 제대로 주지 않는 갑질을 했다고 단독보도(103) 했다.

 

윤석열 기차를 그린 고등학생이 작품을 구상한 계기도 흥미롭다. 선거 유세하러 다니던 윤 후보가 무궁화호 열차에서 신발을 벗지 않고 의자에 발을 올린일에서 착안했단다. 당시 칼럼에도 썼지만 민중이 애용하는 열차 좌석에 구둣발을 올리는 짓은 예사롭지 않은 일이다. 그 모습에서 작품을 구상한 10대의 맑은 눈에 박수와 격려를 보낸다. 부디 법무부 장관이나 기득권 언론의 말글 따위에 조금이라도 상처받지 않기를 바란다.

 

조선일보는 그 와중에도 이재명 흡집 내기를 이어갔다. 사설(108)에서 이 대표가 자유로운 표현을 정치적 이유로 가로막으려는 것은 경악스러운 일이라고 한 말을 꼬집었다. “적어도 민주당은 이를 비판할 자격이 없다면서 문재인을 공산주의자로 비방한 사례와 견준다. 묻고 싶다. 설령 민주당은 자격이 없다고 치자. 그렇다면 조선일보는 왜 비판하지 않는가. 스스로 자격이 없음을 알아서인가, ‘이재명 죽이기에 골몰해서인가.

 

나쁜 놈들 잡는 것이 검사라는 두 전직 검사에게 권한다. 대한민국 검찰의 검은 역사를 겸허히 돌아보라. 먼 과거도 아니다. 그들이 검사가 되고자 사시에 몰입할 때 검찰의 모습을 성찰하기 바란다. 검찰청에 나쁜 놈들이 수두룩했다. 그 주제로 얼마든지 토론할 의사도 있다. 정작 잡아 마땅한 나쁜 놈들은 잡지 않고 기획 수사에 머리 쓰는 못된 버릇을 지금의 검찰은 얼마나 벗어났는가. ‘윤석열차는 정곡을 찌르고 있지 않은가. 자문할 일이다. 사람이 쉽게 변하지 않듯이 검찰 조직도 그렇다. 더구나 두 전직검사는 지금 살아있는 권력이다. 그 권력, ‘내로남불로 휘두르지 마라. 엄중 경고한다.

손석춘 칼럼니스트철학자 미디어오늘 2022.10.10.

 

 

조급한 한일 간 군사적 밀월 움직임을 경계해야

한국과 일본 간 군사협력 관계를 강화하기 위한 물살이 어느 때보다 빨라지고 있다. 2017년 일본 요코스카 인근 해상에서 첫 한미일 해상합동훈련이 실시된지 5년만에 북한의 미사일 위협 공동 대처를 빌미로 재개됐다. 하지만 대다수 언론은 이에 관한 의미를 제대로 보도하지 않아 국민들은 그 상황의 심각성을 잘 모르는 채 지나가고 있다.

 

특히, 이번 합동훈련은 일본 군함이 욱일기를 펄럭이며 자국 영토라고 우기는 독도 인근에서 실시되었다는 점에서 나라 안팎으로부터 거센 반발을 사고 있다. 야당은 "일본의 군사 이익을 지켜주는 행위로 극단적 친일행위이자 대일 굴욕외교에 이은 극단적 친일국방"라고 맹비난을 퍼붓었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 사태를 계기로 2017년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의 무효화와 이듬해 대법원의 강제동원 배상 판결로 냉각됐던 한일 관계가 급진전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6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전화 통화를 통해 북한의 잇따른 미사일 무력 도발을 한 목소리로 규탄하고 서로 협력해 엄정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양국 모두 본격적으로 관계 개선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이에 앞서 이틀 전 기시다 총리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한 직후 "한국과 안보 분야 의사소통을 긴밀히 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는 2019년 종료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를 복원할 의지를 강력히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따라서 지소미아의 복원도 초읽기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한일 양국은 이미 몇 건의 군사정보를 주고 받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국내 전문가들도 정보공유를 통해 북핵 및 미사일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지소미아를 복원할 필요성에 대체로 동조하고 있다. 북한이 미사일을 쏠 경우에 우리는 발사 지점을, 일본은 낙탄 지점을 포착하는 데 각각 유리한 장점을 갖고 있어 상호 보완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한미일 대잠전 훈련에 참여한 전력들이 30일 동해 공해상에서 기동훈련을 하고 있다. 사진 앞쪽부터 미국 원자력 추진 잠수함 아나폴리스함, 미국 원자력 추진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함, 한국 구축함 문무대왕함, 일본 해상자위대 신형 준이지스급 구축함 아사히함, 미국 이지스 구축함 벤폴드함, 미국 유도미사일순양함 챈슬러스빌함. 연합뉴스

 

그러나 윤석열 정부의 한일 간 군사적 밀월 움직임에에 대해 크게 우려하는 비판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한반도를 둘러싼 한미일의 전략적 이해관계가 서로 다른데도 북한의 위협만 강조해 일본과의 군사적 협력 문제를 가볍게 접근해서는 안된다는 지적이다. 미국은 북한 핵과 미사일 도발을 고리로 대 중국 억지 전략의 큰 틀에서 한일 간 군사적 밀착을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반대급부로 북중러 등 주변국들의 거센 반발로 큰 낭패를 초래할 가능성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군사정보 교류 협력과 합동 군사훈련은 차원이 다르다. 특히, 과거 침략국인 일본과의 군사훈련은 국민들의 반일정서상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민감한 문제다. 더욱이, 자위대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관점은 심각한 우려를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월 대선 후보 시절 유사시에 일본군 자위대가 한반도에 들어올 수도 있다고 발언해 국민들을 깜짝놀라게 했던 적이 있다. 또 김태효 대통령실 안보실 차장은 교수 시절부터 자위대가 유사시에 우리 한반도에 상륙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주장해 큰 파문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일본은 그동안 미국과 손을 잡고 한반도 위기를 빌미로 대 중국 군사력를 강화하는 한편, 유사 시에 한반도 사태에 개입하겠다는 입장을 노골화하며 신 군사강국 인프라를 단계별로 착착 진행해왔다. 미일상호방위조약(1954), 주변사태관련법 제정(1999), 미일 공동작전계획 수립(2006),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가능하다는 헌법 해석을 인정하다는 내각 결정(2014), 미일방위협력지침(신가이드라인) 확대 개정(2015), 일본 신안보법 개정, 발효(2016) 등이 줄을 이었다.

 

특히, 1978년 소련의 침공에 대비해 처음 만들어진 미일방위협력지침은 일본이 외국군들로부터 공격을 받을 때는 물론 주변국에서 유사 사태가 벌어질 경우를 상정해 미군과 자위대 간 역할 분담을 정한 문서다. 북한과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과 군사대국화하려는 일본의 입장이 맞아떨어진 결과인 이 지침은 1997년과 2015년 두 차례 확대 개정됐다.

 

이 지침에 따르면, 일본 자위대는 한반도에 전쟁이 발발할 경우 언제든지 개입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미군이 한반도에 출동하면 일본이 도로와 항구, 비행장 등 지자체와 민간의 시설과 인력을 동원해 '후방지원'을 맡도록 하고 있다. 나아가 한반도 유사시에 미군 병참을 지원하기 위해 상륙한 자위대를 상대로 북한이 도발하면 일본은 무력 공격을 당했다고 판단하고 전투에 돌입할 수도 있다.

 

한반도에서 전쟁 등 유사시가 되면 한국군 전시 작전권은 미국 인도태평양사령관 지휘를 받는 주한미군 사령관으로 이전된다. 그와 함께 거의 자동적으로 주일미군, 나아가 자위대까지 개입될 수 있다. 이와 관련, 이장희 한국외대 명예교수는 일본 자위대의 한반도 진입에 대해서 한국 정부의 승인 문제 명문화를 지속적으로 미일 양국 정부에 관철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는 미국과 일본은 한미일 3각 군사동맹을 맺자고 제의해왔다"면서 이를 위해서는 악사(ACSA:한일군사물자교환협정)라는 것을 맺어야 한다. 그건 군사물자 및 무기 같은 것을 교환할 수 있는 협정인데, 거기까지 가면 확실한 군사동맹으로 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중국이 대만을 공격한다고 하면 일본은 중국과 센카쿠열도 분쟁으로 대응하게 되는데, 3각 동맹에 따라 우리 군도 출동 하게 된다또 반대로 우리나라에서 상황이 발생하면 일본이 한반도에 진입할 명분이 만들어 진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윤석열 정부는 전임 문재인 정부와 차별화하기 위해 일본과의 관계개선 성과를 가시적으로 보여주겠다는 일념에서 너무 조급하게 무리수를 두어서는 안된다. 한미일 간 군사적 밀월 관계가 급진전될수록 그만큼 북중러를 밀착시키고 우발적 충돌의 가능성도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양 진영 간의 일촉즉발 대결 구도가 고착되면 될수록 한반도의 평화는 더 요원해 질 수밖에 없다는 점은 불을 보듯 뻔하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에 대처하기 위해 상호호혜적 차원에서 한일 관계를 개선하자는 데 무턱대고 반대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일본은 과거사에 관한 추호의 반성 기미는커녕 일본군 위안부 및 강제동원 피해 등 현안에 대해 한국이 해법을 가져오라며 적반하장격으로 고압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 밖에 만성적 대일 무역적자 등에 대한 대책 마련 등 시급한 현안들을 도외시한 채 근시안적인 군사적 밀월에만 혈안이 되어 밀어부친다면 안 그래도 좋지 않은 국민 여론은 더 나빠지고 거센 반발만 초래할 뿐이다.

최충웅 칼럼니스트 | 프레시안 2022.10.11.

 

 

윤 대통령이 자초한 대통령실의 국정 난맥

윤석열 대통령의 영국·미국·캐나다 3개국 순방은 대통령실에도 중요한 시험대였다. 대통령실은 순방 직전 대규모 인적 개편을 단행했다. 내부 재정비를 한 만큼 앞서 인사비서관 배우자 동행뒷말만 남긴 6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순방과 달리 무사고와 실질적 성과로 인적 개편 조치의 효과를 입증해야 했다. 그러나 개편 전과 다르지 않은 문제가 반복됐다.

 

비속어 발언논란 수습 과정에서 대통령실 기능의 문제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논란의 단초는 발언 당사자인 윤석열 대통령이 제공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해명하지 않았다. 논란은 순방과 관련한 모든 소식을 집어삼키며 걷잡을 수 없이 몸집을 불렸다. 대통령실 참모들이 빠르게 수습에 나서야 했다.

 

당초 사적 대화라던 대통령실은,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이 국내에 공개된 지 13시간(김은혜 홍보수석 주장)’ 만에 구체적인 해명을 내놓았다. 복수의 대통령실과 여권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대통령실 참모들은 윤 대통령에게 유감 표명을 제안했다. 일단 표현이 거칠었다는 점에 대해 메시지를 내자는 취지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참모들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바이든이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라며 하지 않은 말이 섞여 있는 만큼 전체를 인정하는 듯 유감 표명을 할 수 없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 발언에 대해서는 기억나지 않는다라고 했다. 대통령실의 사정을 잘 아는 한 여권 관계자는 참모들은 사실상 무조건적인 유감 표명을 제안했다.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사를 강하게 내비치는 대통령이 수용할 만한 다른 정무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면서 시간만 흘렀다. 결국 참모들이 음성 분석 등 나름의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고심 끝에 내놓은 메시지가 날리면’, ‘××(한국) 야당을 뜻한다는 것이었다라고 말했다.

 

발언 당사자와 매끄러운 합의없이 나온 대통령실 메시지는 오래 유지되지 못했다. 대통령실은 ××’야당을 가리킨 것이라는 순방 당시 해명을 귀국 직후 사실관계가 확실치 않다라며 말을 바꿨다. 윤석열 대통령은 926사실과 다른 보도로 동맹이 퇴색되는 것은 국민을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다. 진상이 확실히 밝혀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언론으로 전선을 넓히는 말이었다.

 

참모들은 유감 표명 제안

여권 안팎에선 대통령실이 윤 대통령의 출근길 발언을 통해 대응 방침을 명확히 드러냈다고 해석한다. ‘윤 대통령이 하지 않은 말(바이든)을 자막에 넣어 논란을 키운 보도에는 의도가 있어 보이니 이를 먼저 규명하고 ××’에 대한 논란은 그다음 고려하겠다는 것이다. 비속어 논란을 진실 공방으로 프레임 전환하는 것이, 윤 대통령 귀국 후 첫 출근 전날 대통령실 참모들이 밤새 격론을 벌인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이종배 국민의힘 서울시의원과 보수 성향의 시민단체가 MBC를 경찰에 고발하면서 진상규명의 공은 수사기관으로 넘어갔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유감 표명과 진상규명 투 트랙 전략도 있었다. 가장 정무적인 선택지가 이번에도 고려되지 않았다는 점은 아쉽다라고 말했다.

 

대통령실의 대응 문제는 순방에 앞서 불거진 영빈관 신축논란 과정에서도 불거졌다. 영빈관 신축 비용이 예산안에 편성된 건 인적 개편 전이었지만 총리도 대통령실 수석도 몰랐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논란이 더 커졌다(시사IN785왜 국무총리도 모르게 영빈관 신축을 진행했나기사 참조).

 

비용 편성을 추진한 대통령실은 철회외에 추진 경위와 절차 설명 등 후속 조치를 하지 않았다. 비판이 여전히 가라앉지 않고 있다. 영빈관 논란의 본질이자, 윤석열 정부의 중장기 리스크로 평가되는 대통령실 용산 이전에 따른 전반적인 추가 비용 문제에 대해서도 종합적인 집행 계획을 내놓는 등 논란을 수습할 만한 돌파구를 찾지 못한 상황이다.

 

대통령실을 둘러싼 논란은 계속되고 대응에 대한 비판도 반복된다. 인적 개편 효과가 드러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이를 두고 대통령실 안팎에선 초기 구성 과정과 개편 내용을 뜯어보면 진단이 잘못됐고, 혼선은 예고됐으며, 앞으로도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통령실 관계자들에 따르면, 개편 전 대통령실은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후보 시절 캠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캠프는 윤 대통령의 지지 그룹, 조언 그룹, 실무 그룹 등이 곳곳에 흩어져 조직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현역 국회의원인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핵심 관계자)’들이 전면에 섰지만 윤 대통령을 가까이에서 보좌하고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자리에는 이미 검찰·법조계 인맥, 김건희 여사와 가깝거나 인연이 있는 관계자들이 깊숙이 배치돼 있었다.

 

대선 이후에는 한 그룹이 더 가세했다. 윤 대통령의 능력주의인사 원칙에 따라 전면 배치된 늘공(‘늘 공무원즉 직업 공무원을 뜻함)’들이다. 각 그룹은 제대로 섞이지 못했다. 조직을 규합할 군기 반장 격인 ‘2인자도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다. 파편화된 선거 캠프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검찰 출신들은 대통령의 핵심 측근으로 자리 잡았고, 늘공들은 국정 과제 이행을 앞세워 존재감을 넓혔다. 다만 정치권에서 옮겨온 일부 인사들이 대통령실 참모들도 모르는 내부 정보를 여의도(국회)와 공유하거나, 여권 내부에서 암투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내홍이 불거지며 윤핵관에 부정적 이미지가 덧씌워졌다. 대통령실 인적 개편을 통해 윤핵관 측과 여의도에서 발탁된 비서관급 이하 실무진 등이 방출됐다.

 

대통령실의 한 축으로 평가된 정치권 인사 그룹이 대거 물러났지만 처음부터 제대로 섞이지 못했던 그룹들이 비빔밥이 되는 결과로 이어지진 않고 있다. 조직을 하나로 규합하고 대통령실 내부, 여당과 정부 부처를 잇는 일종의 정무 컨트롤타워가 없는 건 여전해, 비슷한 문제가 반복되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는 게 일부 대통령실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여기에 인적 개편 과정에서 대대적인 감찰과 업무평가가 이뤄졌다. 일부 직원들은 내부 문건 유출과 인사 개입 등 비위 사실이 적발됐지만 다른 일부는 사유도 알지 못한 채 짐을 싸야 했다. 대통령실 각 부서에는 변호사 출신 인사들이 배치됐다. 일부 대통령실 관계자들은 변호사 출신 인사들이 감시 역할을 하는 게 아닌가 해석한다. 한 대통령실 직원은 충성도가 높아지는 것보다는 위축된다. 할 말을 하기보다는 눈치를 보게 된다. 업무 성과에 대한 조바심이 생겼다는 반응도 있다라고 전했다.

 

순방 과정에서 벌어진 비속어 논란과 마찬가지로, 대통령실 인선 문제의 단초 역시 인사권자인 윤 대통령이 제공했다. 인적 개편을 한 차례 단행한 만큼 더 이상 책임을 미룰 곳도 없다. 과거 청와대 근무 경험이 있는 한 여권 관계자는 최근 난맥상 수습과 돌파 과정에서 드러나듯 검찰, 늘공 라인들 중심으로 정국을 주도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정무적인 판단력이 부족하고 내부 소통과 의사결정 구조에 결함이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오는 만큼 문제 진단을 다시 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시사인 2022.10.11.

 

 

인간은 먹은 만큼 배설해야 한다

똥은 중요하다. 인간은 먹어야 사는 것과 마찬가지로 똥과 오줌을 배설해야 살 수 있다. 인풋과 아웃풋이 두루 순조로워야 인간이라는 생명-기계는 활동을 이어 갈 수 있다. 밥이 필요한 만큼 똥도 불가피하다.

 

이번 꼭지 주제를 보고 당황하는 독자도 있을지 모르겠다. 아침 신문에서 웬 지저분한 이야기냐며 눈살을 찌푸리는 이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똥은 중요하다. 인간은 먹어야 사는 것과 마찬가지로 똥과 오줌을 배설해야 살 수 있다. 인풋과 아웃풋이 두루 순조로워야 인간이라는 생명-기계는 활동을 이어 갈 수 있다. 밥이 필요한 만큼 똥도 불가피하다. 소설가 김훈이 산문집 <연필로 쓰기>에 실린 밥과 똥이라는 글로 강조하려던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김훈은 소설에서도 유난하다 싶을 정도로 똥을 자주 묘사했다. 장편 <내 젊은 날의 숲>에서 주인공인 조연주의 어머니는 딸과 통화하면서 따로 지내는 아버지의 병증을 이렇게 전한다.

너네 아버지, 변비가 왔어. 똥이 차돌멩이처럼 굳어져서 간병인이 꼬챙이로 파냈어. 팠더니 쪼가리로 떨어지더래. 새카맣고 딱딱했는데, 거기 밥알이 박혀 있었대. 똥에 물기가 전혀 없는데도 냄새는 칼로 찌르는 것 같대.”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단편 화장에서는 죽을병으로 입원한 오 상무의 아내가 괄약근에 대한 통제력을 잃은 채 똥을 힘없이 몸 밖으로 내보내는 장면이 잔인하게 묘사된다. “항문 괄약근이 열려서, 아내의 똥은 오랫동안 비실비실 흘러나왔다.”

 

사실 한국문학에서 똥에 관한 묘사는 제법 꾸준히 이어져 왔다. 김동인의 단편 ‘K 박사의 연구’(1929)에서 케이(K) 박사는 똥을 식량으로 재활용하기 위한 연구에 몰두한다. “대변 가운데 그냥 남아 있는 자양분은 아무도 돌아보는 사람이 없이 헛되이 썩어버리는데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추출할 수만 있다 하면은 그야말로 식료품 문제에 위협받는 인류의 큰 복음이되리라는 것이 박사의 믿음이다. 박사는 똥에서 추출한 양분으로 음식을 만드는 데 성공하고 시식회까지 열지만, 재료가 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이 먹은 음식을 토해 내는 바람에 연구는 중단되고 만다.

 

6·25전쟁 무렵을 배경 삼은 하근찬의 단편 ’()에서 주인공 덕이네는 부잣집 아들이 면장에게 뇌물을 써 징집에서 빠진 반면, 가난한 제 아들은 속절없이 군에 끌려가자 그에 앙심을 품고 모종의 행동에 돌입한다. 면장실 앞 현관에 똥을 한 무더기 누어 놓는 것이다.

히히히문둥이 자식, 내일 출근하다가 저걸 물컹 밟아야 될 낀데.”

 

복수를 위해 똥을 누는 행위는 최진영의 소설 <내가 되는 꿈>에도 나온다. 주인공인 맹랑한 소녀 태희는 질 나쁜 선생님의 자동차 보닛 위에 똥을 누는 것으로 초등학교 졸업 의식을 대신한다. “내 똥이나 처먹으라고 외치고 싶었다는 태희의 심사는 마지막 장면에서 덕이네가 품는 안쓰러운 소망과 이어진다.

 

남정현에게 필화를 안긴 단편 분지’(糞地)에는 제목과는 달리 실제로 똥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작품 제목은 강대국 미국의 폭력과 모욕에 시달리는 이 땅의 처지를 상징하는 비유적 표현이라 하겠다. 방영웅의 장편 <분례기>의 주인공 분례(糞禮)는 어머니가 뒷간 똥 위에 낳았다고 해서 똥례라는 이름을 얻었는데, 잡초처럼 시달리고 짓밟히는 그의 삶 역시 이름을 닮았다.

 

<분례기>의 주인공이 똥처럼 비천한 사람이라면, 권정생의 단편 동화 강아지똥은 이름 그대로 강아지가 눈 똥을 주인공 삼은 작품이다. 강아지똥은 하느님을 원망하며 자신의 존재 의미를 부정하지만, 저를 거름 삼아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민들레를 만나며 생각을 바꾸게 된다. “내가 거름이 되어 별처럼 고운 꽃이 피어난다면, 온몸을 녹여 네 살이 될게.”

 

김지하 담시 똥바다의 원제는 분씨물어’(糞氏物語). 일본이 자랑하는 고전소설 <겐지 이야기>(源氏物語)에 빗댄 제목에서부터 풍자적 의도가 선명하다. 주인공인 분삼촌대(糞三寸待)는 조상 대대로 조선과 똥 때문에 횡사한 내력을, 평생 참았던 똥을 서울 한복판에 가서 왕창 누는 것으로 설욕하겠다는 분심(憤心? 糞心?)을 품는다. 이순신 장군 동상 위에 오른 그가 싸지르는 똥의 종류와 형용을 묘사하는 대목은 가히 이 작품의 눈대목이라 할 만하다.

 

홍똥, 청똥, 검은똥, 흰똥/ 단똥, 쓴똥, 신똥, 떫은똥, 짠똥, 싱거운똥/ 다된똥, 덜된똥, 반된똥, 반의반된똥, 너무 된똥/ 너무 안된똥,/ 물똥, 술똥, 묽은똥, 성긴똥, 구린똥/ 고린똥,/ 설사똥, 변비똥, 피똥, 똥 같지 않은 똥, 똥 같지 않지만 똥임이 분명한 똥/ 지렁이 섞인 똥, 회충 촌충 십이지장충 섞인 똥, 똑똑 끊어지는 똥, 줄줄 이어지는 똥, 꼬불꼬불 말리는 똥, 확확 퍼져나가는 똥,()”

 

양귀자의 단편 지하 생활자에는 화장실이 없는 연립주택 지하방에 사는 인물이 나온다. 계약할 때 1층에 사는 주인 여자는 언제든 제집 화장실을 사용하라고 했지만, 막상 1층으로 올라가면 문을 열어주지 않고, 주인공은 골목에 주차된 차 뒤에서 볼일을 보고는 한다. “똥 쌀 데가 없으면 처먹질 말아야지!”라는 이웃 주민의 일갈은 밥과 똥의 끊을 수 없는 관계를 날카롭게 포착한다.

 

지금은 영화감독으로 더 유명한 이창동의 중편 녹천에는 똥이 많다는 서울 상계동 아파트촌 건설 당시를 배경으로 삼는다. 가까스로 아파트에 입주한 주인공 준식 앞에 운동권으로 수배 중인 이복동생 민우가 나타나며 소시민적 행복에 균열을 일으킨다. 위기감을 느낀 준식은 술김에 정보과 형사에게 민우의 소재를 알리고, 민우를 체포하러 온 형사들을 피해 어둠 속에 도망가던 그는 아파트 공사장의 똥구덩이에 넘어져 어린애처럼 소리 내어 운다. 소설 마지막 대목이다.

 

이 거대한 오욕의 세상, 이미 모든 순결함과 품위를 잃어버린 이곳에서 나 또한 살아야 하는 것이다. 가자, 하고 그는 어둠 속을 바라보며 자신에게 설득했다. 이 어마어마한 쓰레기의 퇴적층 위, 온갖 오물과 증오와 버려진 꿈들을 발 아래에 두고 저 까마득한 허공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23평짜리의 내 보금자리를 향해.”

 

장정일은 김훈 못지않게 똥에 관심이 많다. 그러나 관심의 방향은 달라서, 그에게 똥은 인간의 위선과 허위를 까발리는 수단으로 구실한다. 경장편 <아담이 눈뜰 때>의 주인공은 나는 개다. 똥을 주워먹는다. 나는 개다. 똥을 주워먹는다라는 독백으로 자기 모멸을 시전한다. 필화를 일으켰던 문제작 <내게 거짓말을 해봐>에 등장하는 인물 제이는 파트너인 와이의 똥을 먹는다. “와이의 똥을 먹으며 제이는 나는 어떻게 이렇게 똥을 잘 먹을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 까닭은 자명하다. 제이 자신이 똥이기 때문이다.” 이 두 소설에서 똥을 먹고 스스로 똥이 되는 자멸의 포즈는 사실은 세계를 향한 야유와 고발이라 해야 할 것이다. 장정일은 오랜만에 내놓은 시집 <눈 속의 구조대>(2019)에서도 마르키 드 사드를 닮은 분변(糞便)의 상상력을 이어 간다.

 

독자의 인내력을 시험하는 듯한 엽기와 도착, 그로테스크를 특징으로 삼는 김언희의 시에도 인간 존재 자체를 똥으로 파악한 작품이 있다.

 

똥처럼 오연하다 홍도야 똥처럼 의미심, 심장하다 똥처럼 난해하다 홍도야 위험한 또옹, 나는 방약무인한 구린내로 나의 있음을 진동시킨다 홍도야 고장난 변기 속의 똥무더기 같은 나의 있음을 홍도야 내 입으로 핥아 치울 수밖에 없는 요망한 요망한 요오망한 있음을 홍도야 똥 묻은 입으로 물고 빨고 핥고 분다 홍도야”(‘홍도야전문)

 

요절한 작가 김소진의 사후에 나온 소설집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의 표제작에서 작가 자신의 가탁이라 할 주인공 민홍은 재개발을 위해 철거 중인 옛 동네를 찾아갔다가 갑자기 변의를 느껴 반쯤 부서진 집의 세로로 절반쯤 깨진 큼직한 항아리” “안으로 엉덩이를 비집고 들어가 벽돌과 깨진 장독 쪼가리를 디디고앉아 똥을 눈다. 미완성 유작 내 마음의 세렌게티에서는 증권사 연수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쓴 한 인물의 유서가 심금을 울린다. 미구에 닥칠 죽음을 작가 자신이 무의식 차원에서라도 인지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을 만큼 이 유서는 절절하다.

 

이제 나는 세상의 똥으로 돌아갑니다. () 똥이 다시 부드러운 흙과 투명한 바람과 서로 몸을 섞고 맑은 공기를 따라 푸성귀도 되고 짐승의 살이 되듯 일평생 똥이 가득 머물다 간 집이었던 내 몸뚱어리는 스스로가 똥이 되려 합니다. 거름이 되려 합니다. 끝내 다시 태어나려는 기억도 잊으려 합니다.”

최재봉 | 책지성팀 선임기자 한겨레 2022.10.11.

 

 

그런 것이 한국 정신인가

현재 <한겨레>에는 이것이 K-정신이다라는 제목의 인터뷰가 연재되고 있다. 세계인이 한류에 열광하고 있는 지금, 그 문화예술의 뿌리가 되는 한국의 정신사상이 무엇인지를 추적해보자는 의도라 한다. 주된 대상자는 종교·인문학 고수들이라 표현된 원로 학자들이다. 그리고 전체 구성의 절반 이상이 진행된 현시점에서 나는 외부 필진으로서, 그리고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이 연재물에 대한 비평을 수행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이 기획 전체가 전제하고 있는 문화에 대한 가정에 동의할 수 없어서이다.

 

먼저 김성철 교수는 화엄사상에서 비롯한 회통(會通)과 화쟁(和諍)정신이 한국 불교, 나아가 한국 문화 일반의 특징이라고 말한다. 한국 불교가 이질적인 교의적 요소들의 조화와 융합을 중시하는 통불교(通佛敎)라는 것은 이 분야 연구의 고전적인 논제 가운데 하나다. 이에 대해서는 반론도 많지만, 일정한 설득력을 가지는 주장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을 현대 대중문화 영역에까지 확장해 영화, 드라마, 케이팝과 같은 종합예술도 우리의 회통하고 종합하는 능력에서 나온 것이라는 견해에는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더구나 서구 예술문화가 퇴폐적인 게 많았지만, 한류는 권선징악적이어서 굉장히 보수적인 이슬람권에서조차 거부감이 없다라는 대목에 이르면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권선징악 서사는 텔레비전 드라마의 전통적인 문법이다. 그러나 <오징어 게임>이나 <기생충>의 메시지는 전형적인 권선징악의 구도에서 일정 부분 벗어나 있었기 때문에 더욱 강렬했던 것이 아닌가.

 

한편 최준식 교수는 무기(巫氣)와 신기(神氣)에서 우러나오는 흥이야말로 한국인의 근본적인 기질이라고 본다. 그리고 흔히 부정적으로 평가되는 한국의 집단주의 문화가 한류에 기여했다고 보는 것도 독특한 관점이다. 가족 중심의 집단주의에 친숙하기에 한국의 아이돌들은 연습생 시절부터 집단의 규율에 잘 따르게 되고, 혹독한 훈련을 견딜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한국인의 기질이 중국, 일본 등 주변 문화와 구분되며, 차이의 원인은 종교문화에 있다고 지적한다. 동북아 3국은 유교와 불교를 공유하지만 중국은 도교(道敎), 일본은 신도(神道), 한국은 무교(巫敎)를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열광적으로 노래하고, 춤추고, 거리응원을 하는 집단적인 망아경은 한국인의 신기에서 나오는 에너지라는 것이다. 그러나 문화에는 민족 간 차이만이 아니라 지역적, 계층적 차이도 있다. 그가 묘사하는 무교는 서울 및 서해안 지역의 강신무를 모델로 하고 있다. 무속인 가운데에는 맹인 판수나 독경을 하는 법사 등 앉은 채로 정적인 의례를 이어나가는 이들도 있다. 한편 중국과 일본의 민속종교에도 광란의 축제는 있다. 그의 비교는 문화의 내적 다양성을 고려하지 않은 피상적인 이미지들로 이루어져 있다.

 

마지막으로 이기동 교수에 의하면 한국 문화는 한풀이 문화이며, 한은 우리가 하나라는 본질인 한마음을 회복해야 풀린다”. 그는 그런 통찰을 한민족의 고대 역사와 철학을 담은” <환단고기>에서 얻었다고 말한다. 학계에서는 <환단고기>를 위서라고 하여 고대사 사료로 인정하지 않지만, 철학자의 시각으로 감정해보면 현대 지구촌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한국인의 위대한 철학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철학적 접근이 문헌에 대한 역사적 비평을 건너뛰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지 않는다. 근래의 정밀한 연구들에 의하면 <환단고기>는 근대 이후 단군계열 종교들에서 활발하게 생산된 역사서 형식의 경전들을 모방하여 1960~70년대 사이에 성립된 것이 명백하다. 거기에 어떤 심오한 철학이 있다면, 그것은 수천년 전 조상들이 아니라 박정희 시대 한국인들의 산물이다.

이 모든 논의에는 한국인의 핏속에 무언가 변하지 않는 본질적 기질이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의 대중문화 분야에서 드러나는 창의성은 그런 고정된 민족정신 개념의 굴레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상상력에서 분출하고 있다. 낭만주의 시대 지식인들이 생각한 바와 달리, 유전자는 (흔히 부계로 상상하는) 머나먼 조상의 특질을 손상 없이 실어 나르는 것이 아니다. 유전은 세대를 거듭할수록 형질의 다양성을 확보하고 변화하는 환경에 최적화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본질주의, 집단주의, 국수주의는 오늘날 퇴화하는 문화적 형질들이다. 그런 것은 한국 정신이 아니다.

한승훈 | 종교학자·한국학중앙연구원 한겨레 2022.10.11.

 

 

윤석열 대통령의 염치

결국 윤석열 대통령의 비속어 논란은 부박(浮薄)하고 무치(無恥)한 대통령의 언행을 각인하는 참사로 길이 남게 됐다. 애초 비속어 발화자인 윤 대통령이 쿨하게 인정하고 사과했으면 비판은 좀 받더라도 넘어갔을 사안이다. 기대는 난망했지만, 대통령 언행의 중함을 벼리고 성찰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더할 나위 없었을 터이다

 

하지만 적반하장, 거꾸로 갔다. 보도된 영상을 통해 비속어가 확인됨에도, ‘××’도 기억나지 않는다는 윤 대통령이 앞장서 거짓과 억지로 잘못을 덮으려 하면서 사태를 키웠다. 외교 현장에서 비속어를 썼다는 사실보다 이후 대처 과정에서 뾰족해진 몰염치한 태도가 더 분노를 불러왔다. 왜 이리 어이없는 대응이 나왔을까.

 

윤석열 대선 캠프 대변인을 지낸 이동훈이 지난 5SNS에 올린 글에 답이 있다. 주석 없이 그대로 옮긴다. <“나 때문에 이긴 거야. 나는 하늘이 내린 사람이야.” 1시간이면 혼자서 59분을 얘기합니다. 깨알지식을 자랑합니다. 다른 사람 조언 듣지 않습니다. 원로들 말에도 나를 가르치려 드냐며 화부터 냅니다. 옛일로부터 배우려 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검사의 단일 유전자가 새겨진 윤 대통령은 고집스럽게 자기 스타일을 고치려 하지 않는다. 이런 성정이라면, 엄연한 영상으로 확인된 비속어조차 부인하며 외려 언론 보도에 화내는 대통령에게 진실을 확인하고 합리적 대응을 건의할 수 있는 간 큰참모가 있었을까 싶다. 건의한들 수용되었을 리도 만무하다. 그러니 윤 대통령이 직접 동맹 훼손” “진상 규명을 외치며 언론 보도를 공격하고 나섰을 것이다.

 

국가 최고지도자가 철학은 없이 단편 지식을 앞세운 독단, 남의 말을 경청하지도 조언을 듣지도 않는 불통, 거기에 하늘이 내린 사람이라는 자뻑에 사로잡혀 있다면 참으로 위험천만하다. 본디 무능하면서 고집 세고, 부지런한(혹은 게으른) 리더가 최악이라고 했다. 조직을 오도하고 구성원을 고단하게 만들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이런 리더십이라면, ‘대통령 리스크로 불리는 윤 대통령의 깊이 없는 정책 인식,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언행, 넉살스러운 태도가 왜 반복되는지 이해가 된다. 지지율 하락에 별로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일축하고, 복합위기에 대해 열심히 하면 된다는 대책 없는 낙관이 어디서 비롯되는지 알 만하다. 철학이 뒷받침되지 않는 깨알지식을 앞세우니 중요한 정책과 인사에 대한 실언과 혼선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식화하면서 피해호소인 시각 탈피하자는 것으로 간단히 정리하는 용감함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김건희 리스크가 해소되지 않는 것도 쓴소리가 통하지 않기 때문일 터이다.

 

사실 비속어 논란 자체보다 그 대응 과정에서 나타난 이 불통과 독단, 집권 세력의 확증편향이 더 무섭다. 개선되지 않으면 앞으로 47개월 동안 국정 운영에서 고비마다 부정적으로 작동할 기제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사회 갈등과 고도의 외교 정책, 경제위기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대통령의 부족을 보완할, 유능하고 통합적인 인물로 대통령실과 내각을 꾸렸다면 불안이 덜할 터인데 그것도 아니다. 외려 특정 인맥과 검찰 식구로 구축된 친위 세력이 대통령을 에워싸고 있으니 집단 사고의 함정에 빠지기 십상이다. 일련의 순방외교에서 드러난 외교팀의 무능이 우울한 징후다. 윤 대통령은 대선 당시 무식한 3류 바보들 데려다 정치해서 경제, 외교, 안보 전부 망쳐 놓았다고 문재인 전 대통령을 비난했다. 지금이야말로 윤 대통령이 거울로 비춰봐야 할 말이다.

 

비속어 논란은 보다 근원적인 문제를 환기시킨다. 일찍이 정치윤리의 핵심으로 꼽았던 염치라는 부끄러움의 기제다. 외교 현장에서 욕설을 내뱉은 대통령으로부터 느끼는 부끄러움보다, 억지로 잘못을 덮으려는 염치 없음이 도드라지기 때문이다. 최소한 민망하고 부끄러운 척이라도 해야 하는데 뭐가 문제냐고 적반하장이다. 국민 다수가 잘못했다고 비판하는 사안에도 매번 무얼 잘못했느냐고 대거리다. 윤 대통령은 숱한 실언과 정책 혼선, 인사 실패에 대해 한 번이라도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한 적이 없다. 부끄러움은 반성과 성찰을 통해 개선의 동력을 마련케 하는 힘이다. 지도자가 떳떳함을 잃고 잘못을 덮기에만 급급하고, 부끄러워해야 할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면 신뢰는 땅에 떨어진다. 염치를 잃은 지도자가 공정과 정의를 암만 외쳐봐야 울림이 있을 리 만무하다.

양권모 편집인 경향 2022.10.11.

 

 

아마겟돈의 가능성

푸틴이 더 이상 수세에 몰릴 경우 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은 현실이다. 아직은 큰 가능성은 아니지만 침공 초기에 비하면 훨씬 커졌다. 도네츠크를 비롯한 우크라이나 4개 지역을 병합하고 투표를 통해 합병 찬성을 받은 것은 언젠가 있을지 모를 핵무기 사용을 위한 사전 포석의 성격을 가진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우크라이나 지원이 러시아에 대한 직접 공격이고 자위권 차원에서 핵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고 강변할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북한의 김정은에게 핵 개발을 지속할 기회와 이유를 동시에 제공했다. 온통 우크라이나에 시선이 쏠린 사이 북한에 대한 감시의 눈길은 느슨해졌고, 복수의 서방 언론은 북한이 러시아에 무기를 팔고 있을 뿐 아니라 5만명 수준의 북한인을 러시아군에 참전시킬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이것이 기회라면 핵 개발을 지속할 이유도 한층 더 분명해졌다. 1994년까지만 해도 우크라이나는 핵탄두 1700개를 보유한 세계 3위의 핵보유국이었다. 소련 붕괴 이후 미국·러시아·영국과 맺은 부다페스트 양해각서에 따라 핵탄두를 모두 러시아에 이전했고, 그 대신 서방이 안보를 책임지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양해각서의 당사자인 러시아가 크름반도를 강제 병합하고 우크라이나를 침공해도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우크라이나가 그냥 핵을 가지고 있었다면? 아마도 러시아는 그리 쉽게 침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원래부터 김정은은 핵 개발을 중도 포기하고 결국은 처참한 죽음을 맞이한 이라크의 후세인과 리비아의 카다피 사례를 깊이 새겨왔다고 알려져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보면서 절대 핵 개발을 포기하지 말아야 할 또 하나의 이유가 생긴 셈이다.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은 며칠 전 아마겟돈을 거론하며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 60년 만에 핵전쟁에 가장 가까이 다가섰다고 말한 바 있다. 백악관은 서둘러 이 발언을 거둬들이고 있지만, 과장되었을망정 아무 근거 없는 발언이었다고 믿는 사람은 별로 없는 듯하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는 일촉즉발이라는 표현으로도 충분치 않은 첨예한 위기였다. 무기를 실은 소련의 배는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150밖에 떨어지지 않은 쿠바 미사일 기지를 향해 오고 있었고,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은 데프콘 2를 발령했는데, 이에 따라 튀르키예에 주둔한 미군 전투기는 파일럿 개인의 판단에 따라 언제든지 출격해 모스크바에 핵폭탄을 터뜨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 당시 미국은 모르고 있었지만 러시아는 쿠바 미사일 기지에 이미 100개 넘는 핵탄두를 배치해놓고 있었기 때문에 케네디나 흐루쇼프가 아닌 누구라도 한 사람만 잘못 판단하면 핵전쟁이 시작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쿠바 미사일 위기를 분석한 <결정의 본질>이라는 책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하버드대학의 그레이엄 앨리슨 교수는 2012년 쿠바 사태 50주년을 맞아 새로 쓴 기고문에서 우리에게 뼈아픈 질문과 충고를 던진다. 질문은 이것이다. “쿠바 미사일 위기는 한 번으로 끝났는데 왜 북핵 위기는 수십 번 되풀이되고 있는가?”

 

그의 답은 한국과 미국이 모두 북한에 대해 채찍은 없이 당근만 주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의 충고는 이것이다. “당근은 채찍과 함께할 때 효과를 발휘한다.” 쿠바 미사일 위기 때 케네디 대통령은 누군가의 실수로 핵전쟁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데프콘 2를 발령했다. 위험이 커져야 위협이 먹혀든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최근 랜드연구소와 아산정책연구원이 함께 발간한 보고서는 북한의 핵위협과 한·미 동맹의 억제능력 사이의 격차가 갈수록 커지고 있는 것을 심각하게 지적했다. 얼마 전 CNN의 분석기사는 심지어 수십 년간 한 번도 진지하게 제기되지 않았던 제2의 남침 가능성조차 거론했다. 북한이 수차례에 걸쳐 ICBM 발사에 성공한 마당에, 당장은 아니라 하더라도 2050년의 미국 대통령이 남한을 지키기 위해 샌프란시스코를 희생하지는 않겠노라고 결정하면 어떻게 되겠느냐는 것이다. 핵위협과 억제력 사이에 더 이상 격차가 벌어지기 전에 북한이 넘어서는 안 될 레드라인을 각인시켜야 한다. 흐루쇼프가 그랬던 것처럼 김정은도 어느 지점에서는 겁을 먹고 물러서게 할 수 있는 채찍 말이다. 그러려면 케네디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 스스로를 더 큰 위험에 노출시키는 결단이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국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논란을 보면 종래에는 아마겟돈을 피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드는 것이 사실이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경향 2022.10.11.

 

 

공무원은 그곳에 살지 않는다

지난달 읍에서 좀 떨어진 면에서 민주주의에 관해 강연을 했다. 같은 군이지만 차로 30분 이상 가야 하는 곳이라 평소에는 왕래가 없던 지역이었다. 그곳에는 교육이주를 한 분들이 마을의 이런저런 일을 도맡으며 활동하고 계셨다. 조금은 심심한 민주주의 이야기를 하고 같이 식사를 했다.

 

행사를 준비한 쪽이 김밥과 샌드위치를 준비했더니 다들 너무 좋아하셨다. 면에는 김밥집이 없고 빵집도 없기 때문이다. 인구가 빠지는 면에는 상권이 형성되지 않아 케이크라도 하나 사려면 읍내로 차를 운전해 나와야 한다. 약국이나 병원이 없는 것은 놀라운 일도 아니다. 배달앱이나 지도로 10분 내에 먹을거리나 편의시설을 찾는 도시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그럼에도 왜 사람들은 그곳에 살까?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도시와는 다른 환경, 다른 분위기에서 쫓기듯 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으리라 짐작한다. 그리고 당연히 이런 선택을 하는 사람들보다 일자리, 교통, 교육 때문에 빠져나가는 사람들의 수가 훨씬 더 많다. 뭔가 엄청난 결단을 내리며 사람들이 이주를 택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이런 소소한 불편함이 지역을 떠나게 만든다.

 

우리가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면 힘을 모아 공통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행정이 중간에서 조율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사실 시장에 맡겨서 상권이 형성되지 않으면 행정이 나서서 복지서비스로 만들면 된다. 마을에서 그런 일을 할 사람들이 자리를 잡도록 공간이나 사업비를 보조하고, 거주가 어렵다면 일정한 간격으로 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도록 체계를 만들면 된다. 아마도 행정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그 지역에 살고 있다면 본인들이 답답해서라도 나설 일이다. 하지만 면에 사는 공무원을 본 적이 거의 없다.

 

복지는 돈 문제일까 의지 문제일까

이렇게 복지를 주장하면 행정은 법을 들고 나와 시설을 운영하려면 사회복지사 자격증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가진 사람들이 매년 점점 더 많이 늘어난다. 2002년부터 2018년까지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교부받은 사람이 1급은 150만명, 2급은 605만명을 넘는다. 자격증이 있다고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 것도 아닌데, 이러다간 마을에서 뭐라도 해보려는 사람들이 죄다 자격증 공부를 해야 할 판이다.

 

행정이 정말 주민들의 복지를 위해 존재한다면 이런 기본적인 문제부터 풀어야 한다. 하지만 지방자치제인데도 공무원들은 중앙정부의 지침이 없으면 움직이려 하지 않고, 때로는 자치를 허용하는 예외조항이 있어도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다. 하고는 싶지만 예산이 없어서 못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렇게 중앙·지방정부의 책임 회피에 피해를 보는 건 주민들이다. 찢어지게 가난한 재정이라 주민들에게 필요한 지원을 하기 어렵다지만, 결산서를 보면 우리 지역의 순수잉여금인 순세계잉여금이 2021년에 262억원을 넘었다. 돈의 문제인가, 의지의 문제인가?

 

그러면서 행정은 주민들과 함께 고민해야 할 정책사업들을 컨설팅회사나 대학에 연구용역을 맡겨 버리고, 주민들에게 갔으면 깨알같이 잘 쓰였을 돈이 이름만 번지르르한 사업비로 지출된다. 행정이 직접 계획을 하는 일은 점점 줄어들어, 작년에 연구용역비로만 20억원이 지출되었다. 중앙정부의 공모사업에 참여하는 계획서도 외부 용역사에 맡기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다. 행정도 주민들의 말을 안 듣는데, 용역사가 주민들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할까? 그리고 지방자치단체의 사업계획을 용역사에 맡길 거라면 대체 군청은 왜 있어야 할까? 이럴 바엔 주민들이 직접 용역업체를 선정하는 것이 더 낫겠다.

 

지방소멸은 그저 명분일 뿐이다

이러면서 행정은 지방소멸이 어쩌고 하며 본인들의 자리 걱정이나 할 것이다. 인구가 줄어도 주민들은 계속 거기 살겠지만 행정체계는 통합되고 줄어들 것이다. 그럼에도 공무원들의 상당수가 인근 도시에 살아 지역 현황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는 건 이젠 공공연한 비밀이다. 농촌에서는 군청이 가장 큰 회사라고 말하는데, 그 직원들이 지역에 살지 않으니 그 회사가 잘될 리가 없다. 지역의 위기는 이주하는 주민들이 아니라 내 일자리만 챙기는 행정에서 비롯된다. 민주주의는 데모스, 즉 거주민들이 결정하는 체제였다. 본인들이 살지 않을 거라면 결정권이라도 내놔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이다.

하승우 이후연구소 소장 경향 2022.10.11.

 

여전히 2018

그는 여전히 교단에 있다. 서울 모 고등학교에서 체육 교사의 탈을 쓰고 있는 성범죄자. 신입 동료 교사에게 운동을 해서 보기 좋다며 팔·가슴·허리 부위를 만지고, “성에 관심이 많아 보인다며 콘돔을 건넨 그가. 학생들에게는 선생님한테 그렇게 속살 보이면 안 된다” “여자가 함부로 허리 돌리는 것 아니다” “손가락 하나면 너희 아무것도 못하게 할 수 있다라며 성희롱을 저지른 그가. 아직도 교사다. 그래서 우리는 2018년을 보내지 못한다. 보낼 수가 없다.

 

서울 양천구 금옥여자고등학교, 2018913일 스쿨미투 발생. 트위터 해시태그는 #금옥여고_미투. 하루 전날 JTBC 뉴스에 선배 교사가 신입 교사를 1년 이상 성추행했고 피해 교사가 학교에 신고했으나 학교 측과 강서양천교육지원청이 무마했다는 내용이 보도됐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결코 좌시하지 않았다. 2018년의 분위기가 그랬다.

 

피해 교사는 2018년 초 징계위원회 소집을 요구했으나 학교는 가해자와 직접 해결하라고 했다. 이렇게 말한 학교장과 책임자 모두 징계받아 마땅하다. 금옥여고는 심지어 공립학교다. 가해 교사 감싸기는 공사립 구분이 없는 한국 교육의 패습이다. 피해자가 교사임에도 이 지경인데, 학생의 경우 과연 학교 안에서 누구의 보호를 받을 수 있을까? 성추행이 멈추지 않자 피해 교사는 재차 처벌을 요구했고, 학교 측은 가해 교사에게 사과문을 읽어라라고 지시했다. 학교 당국의 솜방망이 조치는 2차 가해를 불렀다. 가해 교사는 벌을 받았으니 찾아가도 되겠냐?”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등 반성의 기미조차 없었고, 결국 피해 교사는 서울시교육청에 신고했다.

 

관할 강서양천교육지원청은 810일 금요일에 특별장학을 나갔고, 13일 월요일에 특별장학 보고서가 나왔다. 보나마나 졸속인 보고서에는 가해 교사는 학생 성 관련 과실이 없고 성실하고 동료 교원과도 사이가 좋다고 적혀 있었다. 특히 지원청은 피해 교사와 연락이 닿지 않는다며, 학교 관계자와 가해 교사만 면담하고 특별장학 보고서를 작성했다. “학교의 사건 처리 절차에 문제가 있어 외부 조사를 받고 싶다는 피해 교사의 요구는 묵살되었고, 보고서에 담기지도 않았다. 학생들은 분개했다. 보도 이튿날 금옥여고 곳곳에는 학생들의 지지문이 나붙었다. “성추행범에게 수업을 받을 수 없다! #WITH YOU” “가해자 옹호하는 교장” “진상규명 하라! 가해자를 보호하는 학교가 웬 말이냐?” “우리도 알 권리가 있다” “우리도 본 눈이 있고 들은 귀가 있다. 모른 해줄 때 밝혀라. 학생보다 못한 어른 부끄러운 줄 알아라.” 트위터에는 ‘# 금옥여고_미투가 등장했고 가해 교사의 학생 대상 성희롱 발언들이 폭로되었다.

 

JTBC 보도(2018·9·12)에는 2018911일 서울시교육청이 정식 감사에 착수했다고 되어 있고, 한겨레 보도(2018·10·3)교육청 감사가 진행 중이라는 내용이 있다. 관련 보도는 그게 끝이다. 이후 사건이 어떻게 처리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감사 결과, 징계 내용, 수사기관 고발 여부 등 사안이 어떻게 처리되었는지는 재학생과 학부모조차 알 수 없다.

 

20193월 트위터에는 전국 각지에서 가해 교사들이 교단에 돌아왔다는 내용의 트윗이 올라왔다. 끔찍한 전개다. 정치하는엄마들은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에 스쿨미투 처리현황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했고 예상대로 비공개 답변을 받았다. 2019515일 스승의날에 스쿨미투 처리현황 공개를 위한 행정소송(정보공개거부처분취소의 소)을 제기하여 202012월까지 1·2심 모두 승소했다(조희연 교육감은 기어코 항소했더랬다).

 

승소 판결문을 가지고 다시 정보공개를 청구했지만 교육청들 답변은 형편없었고 약속한 듯 학교명을 비공개했는데, 패소한 서울시교육청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20215월 서울시교육청의 학교명 비공개 처분이 부당하다는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2022429일 또 승소했다. 세 번째 승소 판결문을 들고 다시 정보공개를 청구했지만 아직도 비공개 일색이다. 재판에서 기각된 법리를 버젓이 내놓는다.

 

서울시교육청에서 가장 최근에 받은 자료에 금옥여고 소식이 한 줄이 있다. 가해 교사는 언어적 성희롱으로 가장 가벼운 징계인 견책(훈계 및 6개월 승급·승진 제한) 처분을 받고, 20193월 학교를 옮겨 현재까지 서울 ○○고등학교에 재직 중이라고 한다. 교사 간 사안은 쌍방 합의로 무마된 것일까? 피해 교사는 무사할까? 학교는 아직 안전하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2018년에 당분간 더 머무르기로 했다.

장하나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 경향 2022.10.11.

 

비속어와 욕설

윤석열 대통령의 비속어를 둘러싼 논란으로 한국 사회가 시끄럽다. 비속어나 욕설은 언어를 사용하는 인간사회에 어디나 존재하기 때문에 특별한 경우를 빼놓고는 뉴스거리가 되지 못한다. 어릴 때의 추억이지만 걸핏하면 비속어로 시작하고 비속어로 끝내지 않고서는 말을 시작하지 못하는 욕쟁이가 있었다. 뜻도 모르면서 노트 한 권을 채울 만한 욕설을 주르르 입에도 올렸다.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라 생활전선에 나섰던 이른바 양공주라고도 불렸던 여성과 미군에 관한 비속한 내용이 주였다. 일반적으로 일본어에는 비속어와 욕설이 상대적으로 적고 반대로 러시아어는 이 분야에서 아주 풍부하고 창의적이라고까지 알려졌다. 하지만 그 친구를 생각하면 우리말도 결코 이에 못지않다는 생각이 든다.

엄밀한 의미에서 비속어는 대중적이지만 너무 저속해서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쓰기 힘들다. 비속어는 그러나 내뱉는 사람의 생생한 감정을 곧 전달할 수도 있다. 따라서 남을 모욕하고 저주하는 욕설처럼 금지되거나 처벌까지는 가지 않는다.

 

욕설의 경중에 따라 벌금까지 부과하는 독일의 예를 든다면 한국과 독일 간 욕설 문화의 차이도 느낄 수 있다. 독일에서 가령 자동차의 운전자가 상대방에게 미련한 년이라고 해서 모욕감을 안겼다면 300유로, ‘멍청한 돼지 새끼의 경우는 450유로, ‘칠칠치 못한 놈이라고 했을 때는 1900유로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우리말로 대충 번역된, 이런 정도의 독일어 욕설을 그렇게까지 심하게 다루는 데 대해 많은 사람이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다.

 

또 이번 문제가 되어 언론에 XX’로 처리되어 보도된 비속어가 왜 그렇게까지 문젯거리가 되느냐고 되물을 수도 있다. 그러나 독일어 XX에 가장 가깝다고 여길 수 있는 멍청이’(Idiot)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면 독일에서는 1500유로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

 

문화와 언어에 따라 달리 표현되는 비속어나 욕설의 의미가 똑같지 않지만, 입에 담는 것도 종종 금기시되는 영역을 건드리는 점에서 공통성을 띤다. 특히 용변, 성기와 성행위, 창녀, 병이나 신체장애와 관련된 비속어나 욕설이 그렇다. 또한 동물과 관련된 비속어도 많은데 돼지와 개 또는 원숭이를 들먹이는 비속어가 그런 예다. 일반적으로 불결한 가축으로 여겨지는 돼지는 그렇다손 치더라도 많은 문화권에서 죽음의 세계로 떠나는 인간의 마지막 동반자로까지 여겨지는 개와 연관된 욕설이나 비속어도 뜻밖에 많다 .

 

우리 사회에도 개새끼개자식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 많지만, 중국에도 같은 뜻의 꺼우쯔(狗子)’가 있다. 영미권에도 개자식에 해당하는 암캐의 새끼’(son of a bitch)도 우리에게 비교적 잘 알려진 비속어다. 독일어권에서 지금은 많이 사용되지는 않지만 무뢰한을 뜻하는 비속어 비렁뱅이 개’(Lumpenhund), 유난히 개를 싫어했던 괴테도 남겼다.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이지만 개의 삶은 주인에게 복종하는 한에서 그의 존재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 같은또는 개만도 못한품위 없는 인간에 빗댄 비속어나 욕설로 상대방을 비방하거나 모욕을 준다 .

 

사나운 이빨을 드러내고 서로 위협하는 동물세계와 달리 인간세계는 위협에다 비속어나 욕설까지 더해서 복잡한 갈등의 상황과 구조를 만든다. 바로 이 인간적인, 너무나도 인간적인 이 비속어나 욕설이 화근이 되어 서로 피투성이가 되도록 싸우는 일도 많이 생긴다 .

 

“XX” 땐 독일선 1500유로 벌금

이렇게 복잡한 특성이 있는 비속어와 욕설이기에 이에 관한 언어학, 사회학, 심리학의 연구도 꽤 많이 있다. 특히 욕설이 보여주는 사회적 관계는 일찍부터 욕설의 어원연구와 관련해서 많이 조명되었다. 독일에서는 이미 1839년에 페르디난트 마인하르트의 <독일의 욕설 사전> 또는 <독일인의 욕설>이라는 일종의 욕설 사전이 나왔다. 알파벳 순으로 독일어 욕 뱀장어’(Aal)로 시작, ‘남녀 한 몸’(Zwitter)으로 끝나는 이 사전의 긴 서문에서 저자는 욕설의 유용성을 설파한다 .

 

그의 주장을 따르면 욕설은 우선 발설자를 속 시원하게 만들어 건강에 좋고,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 욕설은 자신의 위신을 높여 적에 대해 적절한 방어 무기가 될 수 있기에 오히려 갈등을 쉽게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할 말이 없으면 사람들은 욕을 한다는 계몽기의 프랑스 사상가 볼테르의 주장과는 정반대다. 욕설은 오로지 자만심이 강한 인간의 어떤 공허함을 메꾸려는 일탈행위가 아니라 도리어 생산적이고 해방적인 기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당시로는 파격적인 주장이었지만 오늘날 이와 비슷한 논거와 주장은 많다. 불경스럽고 따라서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무시하고 일순에 이 경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세속적인 언어의 세계가 바로 욕설이다. 그런데 이를 변호하는 책자가 최근 눈에 많이 띈다. 영국의 과학전문 기자 엠마 반의 <욕설은 당신을 위해서 좋다>(2018)와 미국의 그래픽 디자이너 스티픈 와일디시의 <어떻게 욕을 할 것인가>(2018)도 여기에 속한다 .

 

미국의 영화배우 니컬러스 케이지가 등장해 매 20분씩 영어권에서 자주 사용하는 욕설(fuck, dick, pussy, bitch, damn, shit)에 관해 사전편집자, 어원연구자, 심리학자 등을 동원해서 제작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시리즈 <욕설의 역사>(2021)도 인간의 정신을 해방하는 욕설의 긍정적인 기능을 강조한다.

 

유감스럽게도 내가 지금 지니고 있는 <포켓 영한사전>(이양하·권중휘 공편, 1960년 개정판)에는 위에 말한 영어단어가 아예 빠졌거나 아니면 번역도 정확하지 못하다. 욕설이라 너무나 상스러워 그랬는지, 아니면 당시에는 흔히 사용되는 단어가 아니라서 그랬는지 모르겠다.

 

수습의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져

우리는 어릴 때부터 욕설하지 말라는 부모나 선생의 훈계를 듣고 자랐다. 비속어나 욕설의 긍정적인 기능에 대해 한번 달리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모든 사물은 긍정과 부정이라는 양면성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윤 대통령의 비속어 사용은 왜 이렇게까지 큰 파문을 낳고 있는가 .

 

이와 관련해서 나는 독일 연방의회의 역사에서 아직도 가끔 언급되는 욕설이 낳은 큰 사건을 기억한다. 198410, 당시 30대 중반 녹색당 연방의회의 의원이었던 요스카 피셔는 보수당 기사련(CSU) 출신으로 본회의의 의사진행을 맡았던, 아버지뻘 되는 연방의회 부의장 리하르트 슈티클렌을 향해 결론적으로, 의장님, 당신은 똥XX입니다라고 발언했다. 동물의 배설기관을 빗댄 이 욕설은 의회의 속기록에서 삭제되었고, 피셔는 이틀 동안 본회의에 참석할 수 없게 되는 징계를 받았다. 슈티클렌은 후에 연방의회 의장, 피셔는 사민당과 녹색당의 연정에서 부총리 겸 외상이 되었다.

 

정치인의 비속어나 욕설로 문제가 된 이 두 사건을 보면 발설자가 자기 발언을 스스로 인지하는 정도와 이로 말미암아 생긴 사회적 파장에 대한 책임 문제가 먼저 등장한다. 희곡 <토르콰토 타소> 속에서 괴테는 궁중시인 타소의 입을 빌려 욕설의 화살은 상대에게 상처를 입혔다고 믿는 자에게 다시 돌아온다라고, 말이 칼이 되어 결국 자신을 찌르게 된다고 경고했다.

 

그래서 욕설이나 비속어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고 오해가 생겼다면 발설자 스스로 먼저 사실관계를 밝히고, 곧 사과를 포함한 응분의 조치를 하면 사태는 대개 원만하게 수습된다.

 

그런데 바이든에 대한 언급은 없었고, 미국의회를 겨냥한 비속어 XX’가 아니라 한국 국회의 다수당인 야당을 지목한 발언이라는 해명으로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 한국국회는 비속어의 대상이 되지만 미국의회는 그렇지 않은가라는 비판의 소리가 그래서 나오게 되었다.

 

대선 이후 정치적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지는 상황에서 비속어에 대해 보도를 했던 MBC는 가짜뉴스를 퍼뜨렸다고 겁박당하고, 굳건한 한·미 동맹을 음해하는 불순세력의 음모론까지 등장했다. 그러나 인간은 본디 비속어와 욕설을 입에 달고 사는 정치적 동물이다. 대통령도 예외일 수 없다. 대통령은 비속어나 욕설을 아예 모르는 성인군자처럼 언행을 하라는 요구가 절대 아니다.

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 사회학 교수 경향 2022.10.12.

 

 

결핍을 모르는 이들의 결핍

몸도 마음도 건강하고 늘 에너지 넘치는 오랜 친구가 있다. 연고주의 팽배한 사회에서 별다른 학맥·인맥 없이 오로지 성실성으로 경제적 안정을 이룬 데다, 과도한 욕망이나 허영도 없고 부모님 봉양과 가족 돌봄도 남다르다. 한길로 달리기보다는 샛길과 골목길에 흥미가 많은 나와는 참 다르지만, 달라서 잘 맞고 배울 점도 많은 사람이다.

 

그런 친구가 얼마 전 평소와 다르게 누군가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이야기했다. 즐기는 사교모임에 자주 오는 여성이 있는데, 늘 남들 신세만 지며 먹고 놀다 간다는 것이다. 평소 인색하거나 없는 사람 무시하는 인격이 아니라 처음엔 함께 호응했지만, 듣다보니 궁금한 점이 있었다. 혹시 우울 증세가 없는지 물으니 그런 얘기를 들은 것 같다고 한다. 열심히 나오기는 하지만 그리 즐기는 모습도 아니고 무력해 보일 때가 많다는 것이다. 친구에게 조심스럽게 얘기했다.

 

그 여성이 우울증이라면, 공짜로 얻어먹거나 분에 넘치는 생활을 위해서가 아니라 살고 싶어 나오는 것일 수도 있다고. 누구를 만나 무엇을 해도 전혀 즐겁지 않지만, 그마저 하지 않고 고립되어 있으면 더 나빠질 수도 있다고. 극심한 우울증은 슬퍼하거나 분노할 기력조차 없을 만큼 생의 에너지가 고갈된 상태라 일상적인 삶조차 어려울 수 있다고. 이해하기 힘들고 주위 사람들도 불평하겠지만, 조금 더 신중하게 지켜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다행히 긴 세월 신뢰가 쌓인 관계인 친구는 귀 기울여 들어주었다.

 

정신과 생활이 건강한 사람은 이상적이다. 타인도 자신도 해하지 않고 늘 적절한 균형을 찾는 이들 덕에 세상이 그나마 정상적으로 돌아가니 고마운 존재이기도 하다. 하지만 너무 바르고 올곧게만 살아온 이들은 강자들이 구축한 세계의 질서와 원칙에 취약한 이들이 살아내는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우등생 부모일수록 자녀의 부족함이나 작은 일탈에도 엄격하듯이, 경험의 한계로 인해 자신과 같지 못한 이들에게 상처를 주거나 배타성을 보이게 된다.

 

음지에서 고통받던 수많은 여성들의 미투가 터져나오던 시기. 가해자보다는 피해자의 자기관리 수준과 원인 제공을 비난하는 사람들 중에는, 평소 남성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잘 보호해 온 씩씩한 여성들이나 강한 권력을 가진 노력형 여성이 많았다.

 

일베라고 불리는 집단에 의외로 유복한 집안에서 잘 자란 엘리트들이 많은 이유도 비슷하다. 노력만 하면 성공할 수 있는 삶을 살아온 이들은, 개인의 우수성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후진국가 국민의 비애, 기회에서 배제된 지역민, 빈민들의 분노, 약자와 소수자들의 두려움, 심신이 취약한 이들의 무기력함을 이해하지 못하기에 그저 게으른 무임승차자들로 판단하고 혐오한다.

 

별다른 일탈 없는 학생으로 크게 주눅들거나 소외된 적 없이 살아왔던 나의 성장 환경상, 사회에서 비슷한 권력 경험을 겪어보지 않았다면, 그 속에서 좌절과 우울을 극복할 기회가 없었다면, 그런 나의 경험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을 만큼 극도로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온 이들을 다양한 심리치료와 봉사현장 속에서 만나볼 기회가 없었더라면, 나 역시 타인의 나약함을 질타하고 쉽게 단정짓는 우를 저질렀을지도 모르겠다.

 

<토지>의 저자 박경리 선생은 비애를 모르는 인간은 돼지와 같다고까지 얘기한 적이 있다. “절망과 비탄으로 가득찬 세상을 도외시하고, 다 죽어도 나만 잘사는 세상을 희망으로 바라보는 것은 망상이라고도 했다. 개인과 사회의 성장을 방해하고 왜곡하는 가장 심각한 결핍은, 비애를 경험하지 못했거나 망각한 이들에게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연민의 결핍이다. 나치를 비롯해 역사 속 무수한 약자 배제·조롱 행위는 자신의 우수성, 성실성에 대한 과신과 선민의식에서 시작된다. 그늘 없는 우등생들을 유난히 선망하고 지지하는 사회의 미래가 걱정스러운 이유다.

박선화 한신대 교수 경향 2022.10.12.

 

 

검찰 무신정권

이겼다. 헌법재판소 대법정을 나와 피해자를 부둥켜안고 함께 울었다. 이긴 기쁨이었을까? 헌법재판 6년을 버틴 서러움이었을까? 지난달 29,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가 거대한 국가기구와 싸워 이겼다. 헌법재판소는 박근혜 정부 공정거래위원회가 가습기 살균제 인체 무해표시 광고를 한 SK케미칼과 애경산업을 고발하지 않고 조사 종결한 것이 피해자의 기본권을 침해했다고 선언했다. 한 명의 피해자가 6년을 싸워, 가습기 살균제 생산자 SK와 판매자 애경을 처벌할 수 있는 첫 관문을 열었다. 정부가 인정한 피해 사망자만도 1066명에 이른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다른 비극적 사고들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가족 건강에 좋은 줄로 믿고, 사랑하는 가족의 머리맡에 정성스럽게 가습기 살균제를 넣고 틀어 주었다는 것이다. 소비자의 선택이 매개였다. ‘인체 무해표시 광고가 없었다면 가족의 비극은 없었을 것이다. SK와 애경은 인체에 해가 없는 안전한 제품이라고 표시 광고하여 소비자를 속여 유인한 책임을 져야 한다. 사과하고 배상해야 한다.

 

그러나 근본적 문제는 검찰이다. 검사들이 2012년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서 제대로 수사했다면 피해자들은 여태 서러운 피눈물을 흘리지 않았을 것이다. 검찰은 SK와 애경 제품 피해자들의 줄기찬 수사 요구를 외면했다. 내 눈으로 직접 목격하였다. 내 귀로 직접 들었다. 피해자의 수사 요구는 검찰청 정문 앞에서 가로막혔다. SK와 애경 제품 피해자들은 아예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들이 앓은 천식이나 식도 질환, 그러니까 상부 호흡기 질환은 피해 개념에서부터 배제되었다.

 

2019년에서야 검찰이 재수사하여 SK와 애경을 기소했다. 그러나 1심에서 무죄판결이 났다. 사건의 핵심인 인체 무해표시 광고 행위는 기소되지 않았다. 피해자들이 과연 SK 애경 제품만 사용했는가 하는 가장 기본적인 사실조차 검찰은 법원에 온전히 인정받지 못했다. 너무 늦은 수사의 당연한 결과였다. 2012년에 검찰이 SK와 애경 피해자의 수사 요구를 발로 차버리지 않았다면 최소한의 증거들을 확보했을 것이다. 피해자들에게 사과해야 할 자들의 맨 앞에 검찰이 서야 한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사과해야 한다.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가습기 살균제 참사에서 난 어두운 검찰의 힘을 본다. 그들은 누가 처벌되어야 할지를 결정하는 강력한 힘이다. 그들은 사망자가 1000명이 넘는 사회적 참사조차도 뒤틀고 왜곡시킬 힘이 있다.

 

시민운동가 안성용은 최근 저작 <한국에서의 정치투쟁>에서 검찰 집단이 대통령 자리를 노리고 있다고 경고한다. 그는 검찰이 정보 및 수사권, 기소권을 가진 독자적 권력으로, 한국 사회 지배 카르텔 속에서 자생적 경제력도 확보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내가 안성용의 경고에 주목하는 까닭은 최근 윤석열 기차풍자 만화를 그린 한 고등학생에게 가해진 국가의 억압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하루아침에 선진국 한국의 공무원을 1980년대 전두환 파쇼 정권 시기로 돌려 버린 이 사건은 왜 일어났을까? 그 뒤에는 검찰 출신 대통령, 검찰 출신 법무부 장관, 그리고 법무부 장관 직속 공직자 검증 인사정보관리단이 있다. 고려 무신정권 시기에 최우가 설치한 인사행정기구 정방에 문신들이 끌려다닌 현상이 2022년 선진국 한국의 공무원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다.

 

검찰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당대표를 성남시민프로축구단 광고 사건으로 엮어 기소하려고 시도한다. 무신정권이 교정도감을 만들어 반대세력을 탄압한 역사가 떠오른다. 성남 시민축구단 광고 사건은 이미 무혐의 결정이 났던 사건이다. 달라진 것은 이재명 대표가 대선에서 패했다는 점, 광고를 준 기업 관계자의 진술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삼권분립을 구성원리로 하는 우리 사회에서 실체적 진실은 사법부가 판단할 것이다. 그러나 대기업 계열사를 성남에 유치하고, 성남시민구단을 활성화시켜 성남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것은 성남시민에게 이로운 일이었다. 그리고 정상적으로 집행된 광고를 통해 기업도 이익을 보았다. 과연 여기에 무슨 뇌물성이 있을까?

 

검찰은 자신들이 꿈꾸는 자유와 법치의 세상을 만들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검찰이 만들 수 없다. 시민과 정치가 할 일이다. 지금 검찰이 할 일은 검찰 주도 혁명이 아니다. 사과이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에게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사과해야 한다. 그리고 가습기 살균제 인체 무해표시 SK와 애경이 처벌받도록 해야 한다. 지난 6년간의 헌법재판에서 싸워 이긴 피해자의 절규를 검찰은 또다시 외면해서는 안 된다.

송기호 변호사 경향 2022.10.12.

 

 

노태우가 혀를 찰 윤 대통령 독불장군 외교

며칠 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적들과 대화할 내용도 없고 필요성도 느끼지 않는다고 한 걸 보고 여러 생각이 들었다. 김 위원장이 말한 적은 미국일까 남한일까? 둘 다일 테지만 미국을 더 염두에 뒀을 것이다. 대화 않겠다고 콕 집어 말하니 역설적으로 언젠가는 대화하고 싶다는 걸로 비치기도 한다. ‘운운한 건 국가원수의 말치고는 너무 가볍고 삭막하다.

 

최근 한반도 상황은 2017년 북핵 위기의 데자뷔다. 5년 전엔 김정은과 트럼프가 막말을 주고받는 와중에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발사에 이어 6차 핵실험이 이어졌다. 그해 9월 미국은 B-1B 폭격기 편대를 북한 영공 직전까지 들여보내 북한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2019년 하노이 노딜 이후 지금 상황은 어느 정도 예고된 터다. 변덕스러운 트럼프와 담판이 무산되면서 김정은의 강경 회귀는 불을 보듯 뻔했다. 위기는 되풀이되지만 내용은 악화일로다. 이젠 북한이 한··일을 동시에 겨누겠다고 한다. 더 우려스러운 건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중 대결 격화로 신냉전이 현실화하면서 북··러와 한··일 대결 구도가 뚜렷해지고 있는 점이다.

 

북핵 문제는 현재로선 북한의 시간이다. 1년일지 5년일지 10, 20년일지 알 수 없지만 북한이 핵을 쥐고 흔들어대는 시간이다. 하지만 이 시간도 언젠가 멈춘다. 지금 북한의 나라 꼴을 보라. ·미사일 말고 내세울 게 뭐가 있나. 인민을 제대로 먹여 살리지 못하고 군비로 호들갑을 떠는 나라가 어찌 됐는지는 소련을 보면 알 수 있다. 북한은 귀중한 시간을 허비해선 안 된다.

 

김정은 말대로 당분간 대화는 어려울 것 같다. 북한 최고 지도자가 이 정도 말했으면 대화는 상당 기간 없다고 봐야 한다. 현재로선 상황을 관리하며 기회를 보는 수밖에 없다. 특히 주변 강대국들이 크게 출렁이는 만큼 외교로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지킨다는 비장한 각오를 다져야 한다.

 

윤석열 정부가 북한의 핵놀음에 맞서 한-미 동맹 강화, ··일 연합방위능력 제고로 대처하는 걸 뭐라 하기 어렵다. 지금은 북핵에 대한 모든 옵션을 원점에서 저울질할 때다. 정부가 냉정하고 합리적으로 대처한다면 힘을 실어줘야 한다.

 

다만 현 정부가 군사 대응 이외에 외교적 공간을 열어두고 있는지 의문이다. 이른바 담대한 구상이라는, 아니면 말고 식의 미끼상품만 내놓고 대결로 치닫고 있다. 미국 일변도, 일본과 잘 지내자고 할 뿐 그 이외에 뭐가 있는지 모르겠다. 외교의 근본에 대한 천착, 한반도의 미래에 대한 확고한 비전을 찾기 어렵다. 마치 한 방향으로만 달리는 경주마 같다.

 

야당도 뒷다리만 잡고 있을 때는 아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거대 야당의 사령탑답게 좀 더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일 군사협력 강화에 대한 근원적 문제제기는 중요하지만 사태의 본질은 아니다. 북한이 남한으로 전술핵을 쏘겠다며 전쟁연습을 해대는 상황이다. 북한에 자제할 것을 엄중히 경고하고 다양한 옵션을 검토해야 한다. 평화와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상상력 있는 방안을 진지하게 제시해야 한다.

 

무엇보다 걱정스러운 건 윤 대통령의 독불장군식 태도다. 초당적 외교 기반을 갖춰도 모자랄 판에 대통령은 거꾸로 간다. 이른바 ×× 논란은 뭉개고 외교부 장관 해임안은 한마디로 퉁치더니 외교 참사라는 비판엔 뭘 거양했다고 한다. 이게 나라 밖 대란에 대처하는 대통령의 자세인가.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조선은 일본 침략 없이 스스로 무너졌다는 식민사관을 거침없이 드러냈다. 일본이 가르쳐준 대로 이씨 조선은 비하하고 일본은 떠받드는, 일본과는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보수 주류, 기득권 주류의 시대착오적 인식이다. 초당적 외교에 앞장서야 할 대통령과 비대위원장이 저러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외교에 초당적 대처가 있었냐고 하면 근래에 드물었던 건 사실이다. 굳이 따지자면 노태우와 김대중 시절 정도였다. 노태우 때 세계는 더한 격동의 시대였고, 대통령은 외교를 모르는 군 출신인데다 정국은 여소야대였다. 윤 대통령 처지와 비슷하다. 노태우는 능력 있는 참모들에게 권한을 주어 북방외교를 개척했고,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남북통일 방안을 마련했다.

 

노태우 이후 보수 세력이 무언가 창의적으로 나라 외교를 개척한 걸 본 적이 없다. 김영삼·이명박·박근혜 때 제대로 된 외교가 있었나. 반북 대결주의와 친미 일색뿐이었다. 북핵을 저지하지도 못했다. 윤 대통령에게 외교에 관한 한 노태우한테 배우라고 하면 너무 어려운 주문일까./ 백기철 ㅣ편집인 한겨레 2022.10.12.

 

 

윤석열 정부 인구정책, ‘용감한역주행

윤석열 대통령이 부쩍 자주 인구를 거론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국무회의에서는 인구문제는 미래에 다가올 이슈가 아니라 현재 이슈라며 모든 분야의 정책을 총동원하라고 지시했다. 문제는 내놓는 정책마다 퇴행적이라는 점이다.

 

#1. 여가부 폐지로 인구 늘린다?

정부가 지난 6일 정부조직 개편안을 발표하며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고 보건복지부 내 차관급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를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방점은 인구문제에 찍혔다. 합계출산율 0.75(2분기)까지 내려온 한국의 이례적인 저출생현상은 세계적인 연구 주제다. 한국 출산율을 주제로 한 논문을 연달아 발표한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의 선임연구원 인터뷰가 최근 국내 언론(한국일보 929)에 실렸다. 그는 한국 저출생 위기의 근본 원인은 성차별적 사회구조’”라며 성평등을 이루기 전까지 출산율 반등은 어려울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앞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도 이대로면 3세대 안에 한국 인구는 현재의 6% 밑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트윗을 날렸다. 여가부 폐지로 추세를 바꿀 수 있을까.

 

국제사회 상식은 오히려 성평등 전담기구 강화다. 2020년 기준 세계 160개국에 독립부처 형태의 성평등 전담기구가 있고, 97개국은 장관급이다. 유엔 여성지위위원회는 지난해 각국의 성평등 전담기구 강화를 권고했다. 정부조직 개편안은 여성단체들의 논평대로 여성을 인구정책의 도구로 삼던 과거로의 퇴행이며, 한국 인구문제를 우려하는 세계의 조언과 정확히 반대다.

 

#2. 오세훈 외국인 육아도우미 제안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달 27일 국무회의에서 외국인 육아도우미 제도를 공식 제안한 후 페이스북에도 이를 알렸다. 홍콩과 싱가포르처럼 외국인 도우미를 싼값에 도입하자는 것이다. “한국에서 육아도우미를 고용하려면 월 200~300만원이 드는데 싱가포르의 외국인 가사도우미는 월 38~76만원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도우미를 고용법 적용에서 제외해야 하고, 고용 가정이 건강보험, 병원비, 항공료 등 관리비용 상당액을 부담해야 하는 등 문제점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76만원은 부담이 안 되나’ ‘집이 얼마나 넓어야 입주도우미를 부르나등 댓글에선 위화감도 읽힌다.

 

무엇보다 한국과 출생률 꼴찌 다툼을 하는 홍콩과 싱가포르가 해법의 롤모델이 될 순 없다. 공보육·공교육 시스템 안에서 부모가 자녀를 돌볼 수 있도록 부모와 아이 친화적 사회를 만든 것이 출생률 반등에 성공한 선진국들의 정공법이다. 우린 반대로 내년도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 예산을 19.3% 삭감했다. 명백한 각자도생 육아 강화의 시그널이다.

 

#3. 법무부의 이민청? 통합 흐름 역행

한동훈 법무장관은 지난 5월 취임사에서 이민청 설립 검토를 포함해 이민정책을 수준 높게 추진해 갈 체제를 갖춰 나가자고 밝혔다. 최근 국정감사에선 속도전의 문제가 아니라 정답을 내야 할 문제라면서도 우리도 늦지 않게 백년대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이민청 설립 의지를 나타냈다.

 

인구절벽 우려로 적극적 이민정책을 펴겠다는 것을 문제시할 필요는 없다. 다만 정책 추진 순서가 틀렸다. 현재진행형인 이주노동자들의 반인권적 상황부터 개선해야 한다. 비닐하우스 움막에 재우면서도 주거비는 떼 가고, 산재와 성폭력 위협은 높고, ‘고용허가제족쇄로 불합리한 일을 당해도 사업장 이동이 제한돼 쉽게 불법체류자딱지가 붙는 나라, 가족 동반이 허용 안 돼 생이별하고, 혐오와 차별이 일상화된 분위기에서 사회와 지역경제에 동력이 될 수 있는 우수 인재를 유치하겠다는 한 장관의 말은 어불성설이다. 전문가들은 법무부가 이민청 설립을 주도해선 안 된다고 말한다. 주요국들을 보면 체류 관리에 치중했던 법무부 역할은 사회통합을 강화하는 국제 이민 추세와 역행한다.

 

경향신문은 2019<다시 쓰는 인구론> 신년 기획기사에서 인구문제의 지속 가능한 해법을 짚었다. “아이부터 노인까지 행복한 사람을 찾기 힘들다. 사람값은 싸고, 한 명 한 명의 가치는 기업, 국가 등 집단의 가치보다 한없이 가볍다. 인구가 늘면 사회가 달라질까. 아니다. 오히려 사회가 달라져야 인구가 변화하리라는 것이 자연스러운 추론이다.” 당시 기사의 일부다. 지금은 그때보다 출생률도, 관련 대책들도 나빠지고 있다. 현 정부 정책의 영향이 5년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욱 절망적이다.

송현숙 후마니타스 연구소장·논설위원 경향 2022.10.13.

 

 

나쁜 예감

여름이 갑작스레 끝나고 가을이 왔다. 예년 같지 않은 썰렁한 가을이다. 몸 상태가 좋지 않은 날들이 이어져 하루하루 미루고 있던 중에 칼럼 마감이 눈앞에 다가왔다. 무엇을 써야 할까. 쓰고 싶은 것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의기소침해진 탓인지 좀체 쓸 엄두가 나지 않는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우크라이나에 대해서 더는 쓰고 싶지 않았다. 올해 2,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전에 나는 이상 없는 시대에 온전한 정신으로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다. 거기에서 내가 해야 할 말은 이미 다 했지만, 그 뒤에도 이 난의 칼럼을 쓸 때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언급할 수밖에 없었다. 전투가 계속되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이 전쟁으로 나 자신이 계속 크게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70여년의 인생을 통해 보아온 세계가 이제 확실히 크게 바뀌려 하고 있다. 말할 필요도 없이 더 나쁜 쪽으로.

 

종래의 관점을 크게 바꿀 수밖에 없게 됐다기보다, 이미 알고 있던 것, 예감하고 있던 것이 차례차례 현실화하고 있다. 나는 젊었을 때부터 비관적인 상상으로 치우친 경향이 있어서, 어떤 사람으로부터 당신은 땅에 구멍을 파고 그 안쪽만 들여다보고 있다는 핀잔을 들은 적이 있다. 정말 맞는 말이라고 감탄했다. 그러나 뒤돌아보면 그처럼 비관적인 말을 하면서도 마음 어딘가에서 나의 나쁜 예감이 빗나가기를 어렴풋이 바라는 게 있었다. 그렇게 되기를 바라기 때문에 굳이 나쁜 예감을 얘기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난 몇개월을 뒤돌아보면, 내 예감은 차례차례 현실이 됐다. 현실이 내 비관적 예감을 앞질러 가버릴 때가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장기화되고, 엄청난 희생자, 파괴, 난민을 양산하면서 끝날 전망조차 보이지 않는다. 한 지역의 내전 상태를 훨씬 넘어서 준세계대전이라고나 해야 할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2차 세계대전 뒤의 국제질서를 그럭저럭 떠받쳐온 유엔은 완전히 기능 부전 상태에 빠졌다. 푸틴이 우크라이나 동부 4개 주 합병을 선언하고, 핵무기 사용까지 현실감을 띠게 됐다. 물론 미국이 주도하는 서방 세력은 소련 붕괴 이후, 아니 그 훨씬 전부터 세력권 확대를 꾀해왔다. 소련 붕괴 때의 국제적인 약속에 반하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동방 확대 전략이 러시아에 현실적인 위협이 된다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서방이 무조건 옳은 건 아니다.

 

그러나 나이브하다고 비웃을지도 모르겠으나,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푸틴이 국가주의를 내세우며 4개 주의 러시아 통합을 추진할 것이 아니라 여러 민족들의 평등을 거쳐 불가피한 통합에 이르는것을 목표로 내건 소련 사회주의의 이상을 지키겠다고 선언했다면, 바꿔 말해서 거기에서 서방의 신자유주의 이념을 능가하는 평화, 인권,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인류 보편의 이상의 횃불을 계속 밝혔다면, 세계인들 다수의 지지와 공감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고, 상황이 지금처럼 되진 않았을 것이다. 레닌이 주장했듯이, “대러시아인의 민족주의를 극복하는 것이 사회주의 소련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가야 할 길이었다.

 

이상은 배반당하고 버림받았다. 물론 소련 시대의 이상도 한 꺼풀 벗기면 스탈린 체제의 철권통치에 의해 유지됐던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그 철권통치에서 벗어나 자유를 희구했던 대중의 그 희구 자체가 잘못된 것이었다고 하는 것은 잘못이다. 하지만 자유를 희구하는 대중의 에너지로 일어선 소련 체제의 붕괴라는 결과가 곧바로 서방의 신자유주의 세력에 의해 마구 찬탈당한 것도 현실이다. 그리고 스탈린의 철권통치 대신에 비밀경찰 케이지비(KGB) 출신인 푸틴이 철권을 휘두르고 있다. 결국 이상이 사라지고 철권통치가 살아남았다. 푸틴의 주장은 대러시아인의 민족주의바로 그것이다. 전선에는 극동지방의 소수민족 병사들이 투입되고 있다고 한다. 그들에게 어떤 이상을 위해 희생을 감수하라는 것인가?

 

유럽에서도, 또는 동아시아에서도 수십년간 봉인돼온 핵무기가 사용될 때가 올지도 모르겠다. 나의 나쁜 예감은 그때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고하고 있다. 내 인생이 끝나기 전에 나는 핵무기가 사용되는 장면을 목격해야 할지도 모른다. 부디 이 예감이 빗나가기를.

우리에게 부과된 급무는 잃어버린 이상을 재건하는 일이다. 다만 이제까지의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현실 속에서 험난한 투쟁을 거친 새로운 이상. 그것은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갈 길이 멀다.

 

시니시즘(냉소주의)이 개가를 올리며, ‘죽음의 춤을 추고 있다. 이것은 (지금 여기) 일본만의 현상일까? 아무래도 그런 것 같지 않다. 지난번 칼럼에서 나는 우크라이나도 미얀마도 모두 급속하게 진부화’(陳腐化)돼 간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진부화의 폭력에 계속 저항하는 것밖에 없다고 썼다. 거기에 대해 진부화해 가는 것은 당연하다. 사람은 마음을 분노나 비애에 맡긴 채 살아갈 수는 없다. 그렇다면 서경식도 결국 프리모 레비와 같은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지 않을까라고 반응한 사람도 있다.

 

레비의 고향 이탈리아에서도 최근 선거에서 극우파가 약진했다. 다른 유럽 각지에서도, 트럼프 지지자가 횡행하는 미국에서도 사정은 어슷비슷할 것이다. 아우슈비츠의 생지옥에서 생환해 평화를 위한 증언자로서 책임을 스스로 짊어지다가 결국 자살한 자의 존재는 조금도 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 엄숙이나 경건, 겸허라는 감정조차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오히려 분노나 비애에 사로잡힌 자의 자기책임이라고 주장하는 것일까. “이래서는 레비가 자살했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야.” 레비는 이런 사람들에 의해 자살로 내몰렸다고 생각한다. 레비의 증언이 인류 평화를 위한 것이었다면, ‘인류는 이렇게 해서 자멸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서경식도 레비와 같은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이것은 친절한 충고일까. 나 스스로, 나 역시 레비와 같은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다. 그것을 바라지는 않지만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면, 적어도 레비처럼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 가닿는 말을 남기고 싶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근거 없는 분노나 비애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 아니다. 세계의 현실이 끊임없이 분노와 비애를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레비와 같은 길을 가지 마라라고 하려면, 그런 현실을 외면하라고 할 것이 아니라 현실을, 이런 현실의 금방이라도 빠져나갈 것 같은 밑바닥을 조금이라도 떠받치는 노력을 함께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냉소주의자들에게는 이런 말도 가닿지 않을 것이다.

서경식 | 도쿄경제대 명예교수, 번역 한승동(독서인) 한겨레 2022.10.13.

 

 

정권의 퇴행과 윤 대통령 리스크

윤석열 정권 출범 후 상식 파괴가 일상화하고 있다. 조지프 슘페터가 말한 창조적 파괴일 리 만무하다. 우리 사회가 어렵사리 세워온 가치의 기둥들을 무너뜨리는 반달리즘적 파괴로 일관하고 있다. 불과 5개월 만에 국가의 퇴행이 가시화하고 있다.

 

첫째, 자유가 위협받고 있다. ‘윤석열차사태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사건을 겪고도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한 보수정권의 탄압 본색을 드러냈다. <중앙일보> 대기자 출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윤석열차가 전국학생만화공모전 카툰 부문 금상을 받은 것을 두고 만화 공모전이 정치 오염 공모전으로 변색됐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카툰의 <표준국어대사전> 뜻풀이는 주로 정치적인 내용을 풍자적으로 표현하는 한 컷짜리 만화이다. 문화부 장관의 자유로운 어휘력보다 더 우리를 놀라게 한 건 그런 문제에 대통령이 언급할 건 아니다라고 퉁친 윤 대통령의 민낯이다. 블랙리스트 수사를 지휘했고 취임식에서 33, 유엔총회 연설에서 21번 자유를 외친 그 사람이 맞나. “당신이 하는 말에 동의하지 않지만 당신이 말할 권리를 위해서라면 목숨을 걸고 싸워주겠다.” 볼테르의 명언으로 알려졌지만, 실은 후세 작가가 가필한 언명이다. 이 정도 결기쯤 기대했다가 무안해진 사람들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둘째, 권력기관의 사병화다. 검찰은 물론 경찰, 감사원까지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이 허물어지고 있다. 한동훈, 이상민, 유병호를 앞세워 전임 정권과 야당을 향해 칼을 휘두르기 바쁘다.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은 대통령실에 문자를 보내 직보한 사실이 드러났지만, 국감에서마저 유착 의혹에 대해 답변하지 않겠다고 버티거나 추가 연락한 적 없다” “몇번 되지 않는다며 말을 바꿨다. 반면, 김건희 여사 의혹에 대해선 경찰은 잇따라 무혐의 면죄부를 내줬고, 검찰 수사는 지지부진, 지리멸렬이다. 주가조작 사건 공범들 재판에서 김 여사 연루 정황이 잇따라 제시되고 있는데도, 도무지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이데올로기적 탄압과 권력기관의 어용화는 모두 정권의 정당성 기반이 흔들릴 때 들고나오는 통치 수단이다. 국정 비전과 성과로 국민 다수의 마음을 얻는 데 실패한 정권이 꺼내 드는 카드다. 이념적 갈라치기와 상대 진영 공격으로 지지층을 결집하는 전략으로, 정권 초반에 함부로 쓸 초식이 아니다. 20~30%대 국정지지율에 갇힌 현 정권의 처지가 역설적으로 말기적 처방을 강제하는 셈이다. 그러나 자기편만 바라보는 정치공학으로 버티기엔 남은 47개월이 너무 길다. 성과와 소통으로 지지 기반을 넓히는 정공법이 답이다. 물론 소 귀에 경 읽기일 것이다.

 

셋째, 정치 실종의 가속화다. 앞의 두 퇴행이 촉발한 결과적 퇴행이다. 윤 대통령은 야당 대표의 거듭된 민생 영수회담제안을 일축했다. “××욕설 사용에 대한 사과는 거부했다. 오히려 똑같은 내용의 보도를 한 148개 언론사 중 <문화방송>(MBC)만 콕 집어 집중 공격에 나섰다. 야권에 대한 사정 강도도 최고치로 끌어올리고 있다. 국회의 외교부 장관 해임 건의는 묵살하고, 김문수 같은 극우 막말러기용을 이어가고 있다. ‘협치 따윈 난 몰라.

 

진짜 문제는 윤 대통령의 이런 파괴적 행보가 결국 국정 난맥과 민생 불안으로 귀결되고 있다는 것이다. 국제통화기금은 11세계 경제에 폭풍우가 몰아치고 있다퍼펙트 스톰’(초대형 복합위기)이 내년에 현실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블라디미르 푸틴의 핵무기 사용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북한의 전술핵 위협도 가중되고 있다. 경제·안보 복합 위기가 강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대처는 도통 미덥지 못하다. 국가 역량을 총결집해 대응해도 시원찮을 마당에, 국정 최고 지도자가 국민을 편가르기하고 진영 대결을 격화시키는 길로 매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늘 그렇듯 위기는 나라 간에도, 나라 안에서도 불균질하게 덮쳐올 것이다. 유능하고 헌신적인 인솔자가 함께한다면, 폭풍우를 피하진 못해도 함께 이겨낼 수는 있을 것이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행운도 기대해볼 수 있다. 그러나 인솔자가 무능하고 게으른데 편파적이기까지 하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리 공동체의 현존하는 최대 위험 요인은 위기 자체가 아니라 이 점에 있을지 모른다. 인솔자의 방향 상실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

손원제 | 논설위원 한겨레 2022.10.13.

 

 

욱일기·인공기 휘날리는 현대판 붕당정치

친일 프레임에 주사파 타령까지

임진왜란 발발 1년 전인 신묘년(1591) , 일본의 동태를 파악하고자 파견됐던 통신사 황윤길과 김성일이 1년 만에 돌아와서 보고한 내용이 달랐다. 서인 황윤길은 부산에서 급히 장계를 올려 '전쟁이 반드시 일어날 것(以爲必有兵禍. 이위필유병화)'라고 했고, 동인 김성일은 '신은 그런 정황을 보지 못했습니다(臣 不見基有是. 신 불견기유시)‘라고 했다.

 

임진왜란 때 영의정 겸 도체찰사로 전쟁을 지휘했던 유성룡이 김성일에게 '전쟁이 일어나면 어쩌려고 그러느냐'고 물으니, 김성일은 '황윤길의 말이 지나쳐서 조정을 진정시키려고 했다'고 답했다.(징비록. 懲毖錄)

 

당시 집권세력이었던 동인에 속한 김성일이 조정을 두둔하고자 그러한 말을 했다는 해석도 있지만, 동인이 서인인 황윤길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봐야 한다. 결국 일본은 조선을 침략했고 조선은 전무후무한 7년의 참혹한 전란을 겪었다. 어떤 해석이 맞든 분명한 것은 안보에 정치논리가 개입되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총선이나 대선 등 선거가 임박할수록 이념 공세로 지지층 결집을 모색하고 진영 대결로 자신들의 약점을 덮어 상대를 압박하려는 박제화 된 폐습이 사라지지 않는 한 정치가 제 기능을 할 수 없는 것은 자명하다.

 

한국에서 보수와 진보는 산업화 대 민주화, 민주 대 반민주, 독재 대 반독재의 구도와 관련되어 있다. 서구에서 좌우가 경제정책이나 국가 대 시장과의 관계를 기준으로 형성되는 역사적 맥락과 시민혁명 및 산업혁명의 오랜 과정 끝에 형성된 것과 뚜렷이 대비되는 부분이다.

 

한국에서도 세금과 복지정책, 성장과 분배를 둘러싸고 보수당과 진보성향의 정당이 대립하기도 하지만 보수와 진보, 좌우를 나누는 경계에 일제의 식민 지배, 군사정권, 민주화의 과정이라는 정치사회적 배경이 자리하고 있다.

 

이념이 정책 수립의 철학적 토대로 기능하지 않고 지지층 결집에 악용됨으로써 나쁜 정치의 도구로 전락한지 오래다. 진영 정치의 강화와 특정 이슈가 부각될 때 친일, 반미, 친중, 친북 등의 케케묵은 이데올로기를 동원하여 정파의 이해를 충족시키고 진영정치를 강화하는 데 악용해 왔다. 군사정권에 저항하는 민주세력을 억압, 구금하는 기제로서 악용된 국가보안법과 반공 이데올로기는 독재정권을 연장하는 국민 탄압과 정치배제의 수단으로 동원됐다.

 

지금도 '보수집회'에서는 참석자들이 문재인 구속과 북한조차 폐기한 주사파(주체사상파) 타도를 외친다. 박근혜 탄핵 후 '태극기 집회'에서 나왔던 구호가 글자 하나 다르지 않게 등장했다. 굳이 역사인식의 빈곤과 반지성적 태도의 결여를 들을 것도 없다. 법률적으로 사실관계에서도 맞지 않는 철 지난 구호를 반복하는 그들의 천박한 수준이 안쓰럽다.

 

반면 진보 진영 역시 친일 프레임을 다시 꺼내 들었다. 한미일의 해상합동훈련을 '친일 국방'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 진영 프레임에 편승하려는 야당 정치인 역시 비판받아야 한다.

 

친일과 반공, 반일과 친미, 친북과 반북, 친중과 친미. 분별없이 전개되는 위험한 진영 논리가 조금도 누그러지지 않았다. 적대적으로 공생해 온 양대 진영이 전가의 보도로 꺼내 드는 망국의 이데올로기적 대립 구도가 다시 선명해지고 있다.

 

안 봐도 뻔하다. 목적은 알량한 지지층 결집일 것이다. 이들의 비루한 인식구조와 이익 앞에서 자신의 지성조차 헌 신짝처럼 팽개치는 필부의 만용을 여기서 멈춰야 한다. 또 다시 태극기와 촛불이 시대착오적 구호로 상대를 모함하고 공격하는 극단의 대결의 조짐이 보이기 때문이다.

 

'친일 국방'의 듣도 보도 못한 프레임으로 정치적 이익을 도모하려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나 '조선과 일본 사이에 전쟁이 없었다'는 납득할 수 없는 논리를 편 국민의힘 정진적 비대위원장 모두 과도한 프레임 정치에 사로잡혀 있다. '욱일기가 우리 땅에 걸릴지 모른다'는 이 대표와 '인공기가 걸리면 좋겠냐'는 국민의힘 성일종 정책위의장의 말도 적절치 않기는 마찬가지다.

 

안보에 정치논리를 개입했던 430년 전 붕당의 폐해는 현재 그대로 우리 정치를 지배하고 있다. '모든 역사는 현대사다(All history is contemporary)'라는 어느 유명한 역사가의 말처럼 세월이 그렇게 흘러도 우리는 여전이 친일 프레임에, 주사파 타령이다. 언제 깨어있는 대중의 민주주의에 이들이 굴복할건가.

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 | 프레시안 2022.10.14

 

 

안보라는 이름 앞에 무너지는 환경영향평가법

환경영향평가는 헌법’ 35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에 의거하여 환경정책기본법’ 41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계획 및 개발사업이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하게 수립·시행될 수 있도록실시한다. 그러나 성주 사드 부지를 둘러싼 환경영향평가는 이 취지를 짓밟고 불법과 탈법투성이다. 지금 실시하고 있는 일반환경영향평가는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이다. 미군에 공여된 부지는 총 70환경영향평가법시행령에 따라 국방·군사시설사업 시행면적 33이상에 해당하는 전략환경영향평가 대상이다. 실제로는 두 배에 가까운 롯데골프장 전체가 군사시설 지역이라고 보아야 한다.

 

무엇보다 사드를 배치, 가동하는 것 자체가 현행법 위반이다. 환경영향평가는 자연, 생활, 사회·경제 환경 등에 해당함에도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이행된 적이 없다. 주민의 삶을 결정적으로 좌우할 수 있는 거대 사업을 놓고 계획 단계에서 실시해야 할 평가를 무시한 것만도 이미 불법이다. 계획의 적절성과 타당성을 사전 검토해야 할 절차적 민주성과 정당성이 완전 소실되었다. 사법처리 대상이다. 2006년 대법원은 국방군사시설사업실시계획승인처분무효확인건에서 사전 평가를 거치지 않은 관련 사업이 입법 취지를 무너뜨린 것으로 보았다. “환경영향평가 대상지역 안의 주민들의 직접적이고 개별적인 이익을 근본적으로 침해한다며 사업승인을 무효로 판결했다.

 

더욱이 미군 자체가 환경영향평가 대상이다. 효순·미선양 사건에서 보았듯 그들은 한국의 실정법을 초월한 무소불위의 존재다. 엄격한 매뉴얼이 있음에도 외국에서는 적용되지 않는다. 미군은 훈련이나 작전에서 파생된 실수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 훈련에 가장 좋은 환경은 외국이며, 국내에서 봐왔듯이 민간인을 죽여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다.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 침략으로 죽어간 수십만 백성의 죽음도 작전상 생긴 일이므로 사과하지 않는다. 폐유로 황폐화시킨 용산 미군기지에 대해서는 책임의식조차 없다. 세계 각국의 환경영향평가법은 1969년 미국이 처음으로 도입한 국가환경정책법이 모태다. 부끄럽지 않은가.

 

환경영향평가 전부터 사드기지는 필요 없음으로 결론지어졌다. 중국은 북한을 빌미로 자신을 겨냥한 미사일 방어망이라며 극렬하게 반대하고 보복했다. 중국 내 롯데를 비롯한 한국 기업이 막대한 피해를 입은 것에 대해 미국은 사과한 적이 있는가. 미국이 만든 사드 교범에 제시된 것처럼 전방 3.5이내에는 허가받지 않은 사람은 들어갈 수 없음에도 이미 3000명의 김천 주민들이 살고 있다. 노곡리에서는 전자파 피해를 받아 주민들이 암으로 죽어가고 있다. 무슨 검증이 더 필요할까. 소성리는 또 하나의 강정이 되고 있다. 이름도 밝히지 않은 사람이 주민 대표로 들어가 있을 정도니 기가 찰 뿐이다. 강정마을의 참여 주민 94%가 반대했음에도 생물다양성을 파괴하고, 편법과 갈라치기로 주민을 분열시켜 마침내 해군기지를 건설했다. 절차적 하자투성이를 사법기관 또한 승인했다. 주민의 민주적 통제권을 국가가 짓밟고 뭉갰다. 국가기관들은 안보라는 이름으로 초법과 불법을 자행한 공범이다.

 

사드 부지 공여는 강대국의 군사지배를 강화할 뿐이다. 한반도는 힘의 논리로 뒤덮인 역사의 장이다. 친명·친청·친일·친러·친미로 이어진 역사는 분단과 분열로 귀결되었다. 지도자일수록 백성을 하나로 통합, 자주와 자강을 외쳐야 한다. 강대국에 둘러싸인 스위스가 국제사회에서 인정한 영세중립국으로 윤택한 나라가 된 것은 백성의 지혜와 일치단결 때문이다. 힘은 빌릴 수 있다. 그러나 냉혹한 국제사회에서 자신의 이익을 예상하지 않는 거래가 있는가. 미국은 한·미 상호방위조약과 한·미 주둔군지위협정을 통해 유사시 한국 어디든 마음만 먹으면 군사기지로 사용할 수 있다. 대만에 전쟁이 일어나면 베트남전처럼 자신에게 종속된 한국군까지 이용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개입한 전쟁들로 얼마나 많은 국가와 국민들이 고통을 겪었는가.

 

대결은 고통만을 가져온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 부단히 노력한 성과인 남북 간의 조약들만이라도 잘 계승하여 이행한다면 외세 간섭 없이도 통일을 이룰 수 있다. 외국 군대가 주둔하는 한 우리는 진정한 자주독립국이라고 할 수 없다. ‘이 땅에 전쟁무기는 필요 없다는 시민들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고 있는 이 나라의 현실이 더욱 가슴 아프다.

원익선 교무·원광대 평화연구소 경향 2022.10.15.

 

쇠귀에 경 읽기

MBC를 공격하는 국민의힘의 행태가 도를 넘었다. 애초 국정감사 대상이 아니지만 관행적으로 MBC가 비공개 보고를 하는 자리에서 여당은 자리를 박차고 나와 기자회견을 열고 MBC민주당의 프로파간다를 위한 찌라시 보급부대’ ”라고 비난했다. 혹여 국민의힘 열렬 지지자들은 환호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이 거친 표현의 칼날이 결국 여당을 향할 것이라고 한탄하지 않을까.

 

집권 이후 MBC사장 퇴진을 요구하던 여당은 대통령의 비속어 발언 논란 이후 공세를 강화했다. 미디어세상 필자인 이준웅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음성전문가가 해독할 수도 있고, 대통령이 한 발언이 뭔지 스스로 밝히기만 해도 해소될 수 있는 사안인데 진실 규명은 뒤로한 채 MBC 탓만 하며 굿판을 벌이고 있다. 국정감사를 하던 여당 국회의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거친 표현을 한 것은 김건희 여사의 논문 표절 건을 다룬 <PD수첩>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역린을 건드린 것이라 생각했을 수 있다. 하지만 이 건 역시 많은 전문가들이 판단할 영역이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 만든 PD수첩 내용에 동의하지 못하면 또 다른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 반박하면 된다. 그런데 내용은 제쳐두고 대역 표시 등 부수적인 사안으로 시비를 붙을 뿐이다.

 

정부 여당이 전문가를 무시하는 일은 감사원이 2020년 종편 심사 과정을 감사하고 점수 조작 모의 정황이 있다는 이유로 검찰에 넘긴 일에서 이미 목도한 바 있다. 검찰은 일부 심사위원들을 압수 수색까지 감행했다. 심사위원장을 제외한 각계의 추천을 받은 12명의 심사위원이 양심껏 진행한 심사과정을 감사원이 감사한다는 것 자체도 무리다. 특정 언론의 심사 과정이 감사 대상이 될 수 있다면, 설사 부족한 언론사라 하더라도 어느 누가 의연하게 낮은 점수를 줄 수 있을까? 재승인 심사의 무력화, 곧 언론사의 재승인의 영속화. 누구를 위한 감사고, 검찰 수사인가.

 

재승인 심사위원을 추천한 학계를 대표해서 한국언론정보학회와 지역언론학회가 감사와 검찰 수사를 중지하라고 성명을 냈다. 언론학계를 대표하는 학회들은 긴급 세미나를 열고 성토했다. 미디어오늘에 따르면 참여한 토론자들은 견제와 균형이 작용하는 심사위원 구성으로 정치중화적 공정성을 기하는 심사위원회 절차에 행정부의 권력이 직접 작용하는 통로를 만드는 것’ ‘이런 상황에서 대부분의 학자들은 심사위원 참여를 꺼릴 것이고, 도구적 당파적 인사들만 참여할 것’ ‘특정 언론사와 관련된 심사의 문제등 우려를 토해 냈다. 결국 집단 지성이 발휘되던 심사 과정은 이후 정치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여당은 기자회견에서 방송문화진흥회가 MBC사장 해임을 결의하고 경영진 사퇴를 권고할 것을 요구하고, 그렇지 않으면 임명권자인 방송통신위원회가 방문진 이사를 해임해야 하고 그것도 안 되면 방송통신위원장 탄핵소추안을 발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뒤집으면 방송통신위원장을 교체해서 방문진 이사들도 교체하고 이들이 MBC사장을 해임하는 시나리오가 읽히지 않는가? 공영방송 장악! 집권 초부터 독립성을 보장받아야 할 방송통신위원장에게 대통령과 국정철학이 맞지 않으면 사퇴하라고 압박했던 이유가 자명해진다.

 

권태선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은 국정감사 자리에서 민주주의 발전의 밑바탕에는 언론의 기여가 있고, 언론이 부족한 점이 있지만 민주주의가 유지되고 발전하려면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주의와 언론이 맺는 관계의 핵심이다. 우리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공영방송이 침탈되고 민주주의가 역행하는 불행한 현실을 경험했다. 많은 사람들의 우려와 권고가 정부 여당에 쇠귀에 경읽기가 되지 않기 바란다. 민주주의를 위해!

김서중 성공회대 미디어콘텐츠융합자율학부 교수 경향 2022.10.17.

 

 

윤 대통령은 전환기 리더가 맞나

근래 국내외에서 들리는 소식은 전환기의 위기가 본격적인 궤도에 들어섰음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지구 전체가 거대한 화약고가 되어 버린 느낌이다. 전쟁의 포성이 갈수록 커지는 지역이 있는가 하면 일촉즉발의 전운이 감도는 곳이 있다. 백악관이 거둬들이기는 했지만 조 바이든 대통령의 아마겟돈 전쟁발언은 핵전쟁이 공상의 영역이 아니라 실재하는 위험임을 상기시킨다. 크름대교 피폭 후 러시아가 키이우를 보복 공격했다는 한 줄 속보를 접하자 먼저 머리에 스친 것도 설마 전술핵은하는 것이었다. 어느덧 핵공포가 나와 같은 평범한 생활인의 잠재의식에도 깃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불안한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

 

세계의 위기는 한반도 남쪽에 사는 사람의 삶에 곧장 체감된다. 기후 위기는 지난 8월 역대급 폭우로 서울 등지를 강타했고, 우크라이나 전쟁은 기름값과 밥상머리 물가를 밀어올렸다. ·중 갈등은 그사이에 낀 한국, 특히 주력 업종인 자동차·반도체 산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최근 한반도는 무력시위의 살벌한 경연장이 되었다. 북한은 하루가 멀다하고 다종다양한 미사일을 쏘고 전투기를 띄우며 도발하고, ·미 동맹은 항공모함을 한반도 주변에 전개하거나 군사훈련을 하며 대응하고 있다. 양측이 뿜어내는 화약 냄새가 지금처럼 상호 상승작용을 하며 자욱해질 때 우발적인 사건 하나가 성냥불이 돼 전쟁의 참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역사는 보여준다. 얼마 전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군이 대응 발사하다 현무2 낙탄 사고가 발생했다. 민간인이 없는 곳에 떨어졌기에 망정이지 민가에 떨어졌거나 휴전선 이북으로 날아갔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아찔하다.

 

기후위기는 산업혁명 이래 인류가 성장해온 방식의 근본적인 전환을 요구한다. ·중 갈등은 탈냉전 이후 30년 넘게 지속돼 온 미국 주도 세계질서의 해체와 재구성이 배경이다. 그 역학이 냉전의 유물인 분단과 난마처럼 얽혀 있는 것이 지금 한반도의 상황이다. 세계는 수백년 단위, 수십년 단위 전환이 동시에 진행되는 복합 전환기에 성큼 들어섰고, 그 첨예한 복판에 한국이 있다.

 

상투적인 말이지만 전환기는 대처하기에 따라 기회일 수도, 위기일 수도 있다. 그것을 가르는 것은 국가의 대응 역량이고, 그중에서도 공동체 구성원의 힘과 지혜를 모으는 통합적 리더십의 존부 내지 강약 여부이다. 지금 한국은 어떤가. 약체 리더십이라는 면에서 윤석열 정부는 역대급이다. 집권 초기에 대통령 지지율이 이렇게 오래 바닥에 깔린 적이 없다. 지난달 뉴욕에서 있었던 한·일 정상회담, ·미 정상회담을 놓고 우왕좌왕한 데서 보듯 대통령실과 내각의 보좌 실력은 낙제점에 가깝다. 집권여당 역시 의석수로 보건, 능력으로 보건 역대 최약체다. ··대 어느 곳 하나 나라를 책임있게 끌고간다는 믿음을 주지 못한다.

 

특히나 문제인 것은 협치나 통합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 집권세력의 태도이다. 국정운영을 책임진 세력으로서 정치적·사회적 합의의 기반을 넓히려고 부단히 노력해도 부족할 터에 뺄셈 정치, 갈라치기에 여념이 없다. 여당에선 기어이 이준석을 축출한다. 노란봉투법에 공산주의 딱지를 붙이고 문재인은 김일성주의자따위 얘기를 예사로 하는 김문수를 경제사회노동위원장에 임명한다. 사회적 대화에 가장 부적합한 인물을 사회적 대화기구의 수장에 앉히고는 노동 현장을 잘 아는 분이라고 염장을 지른다. 작정하고 엇나가려고 하는 건가 의심이 든다.

 

국정 전반이 기능부전에 빠진 와중에 기세등등한 곳이 검찰과 감사원이다. 세계사적 전환기에 검찰과 감사원 이슈로 날을 새운다는 것 자체가 국정운영이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는 증좌이다. 사정기관을 사병 부리듯 앞세운 통치는 강한 리더십의 표현이 아니라 약한 리더십의 증거이다. 허약한 정치적 내면을 험상궂게 치장하는 정치적 문신술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으로는 전환기에 편재한 불안을 잠재울 수도, 시민의 마음을 얻을 수도 없다. 진영 간 적대와 사회적 갈등을 심화하고, 공권력의 권위만 땅에 떨어뜨릴 뿐이다. 그래서 걱정이다. 윤 대통령의 비속어 파문과 여권의 대응을 보면서 벌거벗은 임금님이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와 같은 우화를 떠올린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우화는 교훈적이고 재미있지만 현실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면 오싹한 호러물이 된다. 지금처럼 국가의 명운이 걸린 전환기에 특히 그렇다.

정제혁 사회부장 경향 2022.10.17.

 

 

왜 졌는지도 모르는 사람들

김대중·노무현 민주정부 10년의 신자유주의적 정책이 불평등을 키웠다.’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을 비판일 게다. 특히 진보진영 내부에서 많이 나온 비판이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10년간 불평등이 증가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이유가 정말 민주정부 10년 때문이고 신자유주의적 정책 때문이란 말인가?

 

민주당 정책통으로 민주연구원 부원장을 지낸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 최병천은 최근 출간한 <좋은 불평등>에서 그건 잘못된 속설이라며 진짜 이유는 중국의 급성장과 한국 대기업의 수출 대박 때문이라고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수출=좋은 것, 불평등=나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수출이 잘되면 불평등이 커지고 수출이 작살나면 불평등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독자들께서 이 책을 직접 읽어보실 걸 권하는 뜻에서 왜 그렇게 되는지 자세한 설명은 건너뛰겠다.

이 책은 이처럼 한국 경제 불평등에 관한 기존의 잘못된 통념 뒤집기를 시도하는데, 신선하거니와 흥미진진하다. ‘통념 뒤집기사례를 하나 더 감상해보자. 일부 보수언론은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좌파적이어서 실패했다고 공격했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실패했다는 진단엔 동의하지 않을 사람들이 있겠지만, 2022년 대선에서 컷오프를 통과한 민주당 경선 후보 6명 가운데 소득주도성장론을 계승하겠다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실패를 인정하는 최병천이 주목하는 건 실패한 원인이다. ‘진짜 하층을 위한 정책이 아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한국 사회의 진짜 하층은 노동조합 조합원 중에 있지 않다진짜 하층은 오히려 대한노인회 회원 중에 압도적으로 많이 몰려 있다고 말한다. 그는 한국의 실제 불평등 구조와 진보세력이 인식하는 계급론의 틀이 부조화를 이루고 있음에도 진보세력은 비노동(노인)을 하나의 계급으로 이해하지 못한 채 진짜 하층과 대면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최병천은 그런 문제의식의 연장선상에서 한국 대기업의 성공 원인을 약탈의 결과로 보는 기존 시각에도 강한 이의를 제기한다. 정경유착과 정권의 특혜, 협력업체에 대한 불공정 거래만으로는 삼성전자를 비롯한 한국 대기업들이 글로벌 차원에서 성공한 것을 설명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는 상층이든 하층이든 상향 이동을 도와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상층이 더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에 반대하는, 강한 자를 누르고 약한 자를 도와주는 억강부약 시각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자는 주장이다.

 

최병천의 이런 일련의 통념 뒤집기에 반론을 펼 사람들이 많을 게다. 아니 많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을 지지했던 사람들은 과연 무엇이 잘못된 건지 알고 싶어하지 않을까? 아니면 소득주도성장은 성공했다는 반론을 듣고 싶어하지 않을까? 그러나 그런 논쟁은 거의 없다. 민주당은 다시 전의를 불태우면서 윤석열 정부에 대한 비판과 공격에만 치중할 뿐 자신들이 과거에 했던 주장엔 아무런 오류가 없었다는 듯 어떤 성찰의 말도 하지 않는다.

 

서로 편을 갈라 싸우는 기존 진영 전쟁모델이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고 하더라도, “상대편이 잘못해서 이기는 것우리가 잘해서 이기는 것사이에서 최소한의 균형은 필요한 게 아닐까? 최병천은 최근 <경향신문>에 기고한 칼럼에서 지난 대선에서 국민들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11망언을 하는지 알고도 그를 뽑았다. 왜 그랬을까? 민주당과 민주당 대선 후보가 더 걱정됐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이어지는 말을 더 들어보자.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더 왼쪽으로가거나, ‘더 많은현찰을 나눠주는 게 아니다. 실제로 지난 대선 시기 민주당이 자체 발표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2030세대의 65%가 기본소득을 반대했다. 현재 민주당과 이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더 신뢰감을 주는정책 행보다.”

 

탁견이다. 평범한 상식으로 여겨져야 마땅하겠건만, 민주당엔 대선에서 왜 졌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탓에 탁견이 되고 말았다. 민주당은 여전히 윤석열 때리기에만 집중할 뿐 더 신뢰감을 주는정책 행보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오히려 공격을 위해 신뢰를 훼손하는 일마저 하는 건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상대편에 대한 증오와 내부의 충성 경쟁이 신뢰를 가볍게 여기도록 만들었을까? 많은 유권자가 염증을 낸 민주당의 내로남불은 바로 신뢰의 문제임을 직시하면 좋겠다.

강준만 |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한겨레 2022.10.17.

 

 

아마추어 외교에 국가 명운 맡길 수는 없다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12국가안보전략을 설명하는 연설에서 주목할 만한 비유를 했다. 현재 상황이 2차 세계대전 직후와 같은 국제질서의 큰 변곡점이라는 것이다. 그는 1947년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전후 국제질서를 정립했던 것처럼 조 바이든 대통령도 새로운 국제질서의 틀을 세울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는 트루먼은 마셜 플랜과 나토를 만들었으며 국제사회에 대한 미국의 관여의 조건을 설정했다고 밝혔다. 설리번이 이날 냉전이나 봉쇄 전략이라는 표현을 쓰지는 않았지만 청중에게 이를 연상시키려는 의도가 분명해 보였다. 1947년은 사실상 냉전이 시작된 해이며, 트루먼이 이때 대소련 봉쇄 전략의 큰 틀을 짰기 때문이다.

 

미국의 국가안보전략은 새 행정부가 대외전략을 천명하는 문서다. 바이든은 이 문서에서 탈냉전의 시대는 분명히 끝났다고 밝혔다. 이는 사실상 신냉전이 시작됐음을 알리는 선언에 다름 아니다. 상대는 중국이다. 문서는 중국은 국제질서를 재편하려는 의도와 그 목적에 다가가기 위한 경제·외교·군사·기술적 힘을 가진 유일한 국가라고 지목했다. 이어 중국과의 경쟁은 모든 지역과 경제, 기술, 외교, 개발, 안보, 글로벌 거버넌스 전 영역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 문서와 설리번의 연설문을 보다 보면, 미국이 75년 전 소련을 상대로 펼쳤던 봉쇄 전략을 지금 중국에 펴려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문서는 외교안보적으론 오커스와 쿼드, 경제적으론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밝혔는데, 이는 트루먼의 나토, 마셜 플랜과 유사하다. 물론 중국과 세계 경제의 상호의존성이 매우 깊은 탓에 봉쇄 전략보다는 중국을 첨단산업의 글로벌 공급망에서 배제하는 기술 디커플링(분리)’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핵심 전장이 유럽에서 아시아로 바뀐 점만 다를 뿐이다

 

특히 이 문서는 앞으로 10년이 중국과의 전략적 경쟁의 조건을 설정할 결정적 시기가 될 것으로 규정했다. 지금 저지하지 않으면 중국의 경제력과 기술 수준이 미국을 추월할 수도 있으리라는 불안과 초조감 때문으로 보인다. 미국이 최근 반도체와 과학법인플레 감축법을 시행하고, 중국에 반도체 제조장비의 수출통제를 대폭 강화한 것은 미국이 본격적으로 행동에 나섰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문제는 우리나라가 미-중 신냉전의 직접적 피해를 본다는 점이다. -중 대결이 첨단기술을 무대로 펼쳐지고 있어 이 산업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 견줘 피해가 클 수밖에 없다. 전기차 차별대우로 이미 현대차가 영향을 받고 있는 데 이어, 반도체 제조장비 수출통제로 삼성전자와 에스케이하이닉스의 중국 사업 차질이 우려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배터리와 바이오산업 등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이런 국제질서의 대전환기에 우리는 과연 제대로 대응할 태세가 돼 있는가. 전기차 문제의 적기 대응에 실패한 데 이어, 반도체 분야에선 ‘1년 유예라는 땜질식 처방만 이뤄졌다. 1년 이후엔 어떻게 될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중장기 사업 전망이 불확실하면 기업은 투자 결정을 할 수가 없다. 그런데도 윤석열 정부 일각에선 ‘1년 유예가 마치 미국이 우리를 배려해준 것처럼 받아들이는데 어이가 없다.

 

현 정부 대외정책의 컨트롤타워는 이미 역량의 한계를 드러냈다. 국가안보실과 외교부 장관은 지난달 순방 외교 때 의전과 일정 조정 등 기본적인 것조차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고 대통령은 실수를 했다. 그런데도 적반하장식으로 잘못을 외부 탓으로 돌리고 언론사 재갈 물리기에 나서고 있다. ‘×× 논란사건에 대한 대응 방식을 보면 마치 안데르센 동화 속 벌거벗은 임금님신하들을 보는 듯하다. 컨트롤타워의 이런 신뢰의 위기를 더 방치할 여유가 우리에겐 없다.

 

무엇보다도 대통령이 실수는 쿨하게인정하고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함으로써 리더십을 되찾아야 한다. 그리고 초당적으로 지혜를 모아 엄혹한 신냉전 시대를 헤쳐나갈 대외전략을 새로 짜야 한다. 외교안보팀의 인적 쇄신은 불가피해 보인다. 내치를 잘못하면 어떻게든 수습할 기회가 있으나 외교는 그렇지 않다. 자칫 발을 잘못 디디면 국가의 운명이 달라지고 그 대가는 국민들이 치른다. 대통령이 외교 초보인 만큼 참모진이 이를 보완해야 한다. 역대 정부 중 최약체로 평가되는 현 외교안보팀에 국가의 명운을 맡길 수는 없다.

박현 | 논설위원 한겨레 2022.10.17.

 

 

자본주의가 문제다-어떻게 문제인가

날로 숨쉬기가 어려워진다. 지구 곳곳에서 보고되고 있는 이상 기상현상들은 기후위기가 가능성이 아니라 현실임을 말해주는 것 같다. 우리는 이 위기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런 문제에 일찌감치 눈을 뜨고 인류에게 경고해온 선각자들이 있다. 그들은 인류의 각성과 윤리적 실천을 강조했던 것 같다. 소비를 줄이자, 폐기물을 재활용하자, 친환경적으로 생산된 상품을 소비하자. 최근 기후정의 운동은 양상이 좀 다르다. 개인보다는 체제 쪽으로 강조점이 옮겨갔다고 해야 할까? 기후위기의 주범은 인간이 아니라 자본이다! 기후변화가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 변화를! 이러한 구호는 지난달 24기후정의행진에서 전국 각지의 거리를 달구기도 했다.

 

많은 이들에게 이런 변화가 고무적으로 다가갔던 것 같다. ‘자본주의가 문제다!’라는 구호 앞에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는 구좌파의 고백도 여럿 들었다. 그렇다고 개인의 윤리적 실천의 의의를 억지로 깎아내릴 필요는 없겠다. 아니, 정반대다. 기후위기가 체제의 문제임이 빠르게 공감대를 얻고 있는 요즘, 개인의 윤리적 실천의 가치도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으니 말이다.

 

어떻게 그렇다는 것인가? 비밀은 돈이다. 최근 개인의 환경친화적 실천에 금전적 보상이 직접 주어지는 사례가 빠르게 늘고 있다. 창원시 사례를 보자. 지금 도시 곳곳엔, 투명 페트병과 빈 캔을 넣으면 자동으로 압착·분리할 뿐만 아니라 해당 재활용품을 가져온 시민에겐 포인트를 적립해주는 기계가 설치돼 있다. 포인트는 일정 수준 쌓이면 현금처럼 쓸 수 있다. 개인 컵(텀블러)을 가져오는 소비자에게 커피값을 할인해주는 커피숍도 최근 부쩍 늘어나고 있다. 종전엔 개인 컵 사용은 그저 극소수 윤리적 소비자의 작은 실천이었을 뿐이다. 그에 대한 금전적 보상도 극소수 의식 있는 점주들이 행했을 뿐이다. 지금은 아니다. 스타벅스 같은 대형 커피전문점도 이 대열에 동참하고 있다.

 

개인의 윤리적 행위에 금전적 보상이 점점 더 많이 주어지는 현재의 사태는 역설적이게도 문제는 자본주의다!’라고 주장하는 기후정의 운동 진영에 까다로운 도전을 제기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본주의가 환경친화적으로 바뀌고 있음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물론 자본이 오늘의 기후위기를 낳은 주범임을 부정하긴 어렵다. 자본주의 들어서 화석연료 사용과 탄소배출이 급증한 게 사실이니 말이다. 그러나 앞으로도 반드시 그럴까?

 

이것이 자본주의가 윤리적으로 변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자본주의는 윤리를 모른다. 여기에선 돈벌이가 지고의 가치다. 그러니 자본이 스스로 탄소배출을 줄이고 환경을 보호하는 데 적극적이라면, 이는 그것이 돈벌이에 도움이 되기 때문일 뿐이다. 왜 기업이 개인 컵을 가져오는 고객에게 커피값을 깎아주겠는가? 그러는 편이 나을 정도로 일회용 종이컵을 쓰거나 매장 컵 세척을 위해 사람을 쓰는 게 비싸지기 때문이다. 더 많은 소비자가 개인 컵을 가져올수록 자본은 돈을 더 번다.

 

그렇다고 해도, 자본 입장에서 전체적으로 비용이 상승한 건 사실이다. 비용상승은 가격에 반영될 것인데, 이는 전반적인 물가상승, 임금상승으로 이어져, 자본에는 또 다른 압박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그런데도 자본이 친환경을 감수한다는 말인가? 단언할 순 없지만,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왜냐하면 자본의 세계에서는 자본-노동 간의 갈등과 분배만큼 자본 간의 경합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비용이 전반적으로 올라가도, 친환경적인 생산구조를 먼저 갖춰 비용우위를 달성한다면, 시장을 모두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보면 친환경적이고 탄소배출을 줄여나가는 자본주의라는 비전도 충분히 현실성을 갖는다고 해야 할 것 같다. 문제는 빈곤, 소수자 억압, 대기업의 횡포 등은 지금보다 거기에서 더 악랄하게 인류를 괴롭힐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런 방향으로 자본주의를 전환하려면 국제사회 합의가 필요하다. 팬데믹을 겪으며 그런 합의의 훈풍이 부는 듯했으나 러시아가 일으킨 전쟁과 경제위기로 분위기가 빠르게 냉각 중이다. 그 바람을 어떻게 다시 일으킬 것인가? 어쩌면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이들의 관심은 거기에 있을 것이다. 그래서다. 정말로 체제를 바꾸고자 하는 사람들은, 그 너머를 보아야 한다.

김공회 | 경상국립대 경제학부 교수 한겨레 2022.10.17.

 

 

선진국 한국의 책임

2020년대 초반 한국은 선진국으로 공인됐다. ‘선진국이라는 말은 부자 나라의 의미도 포함하지만, 단순히 일정 수준 이상의 1인당 국민소득을 자랑하는 부유한 나라라고 해서 바로 선진국이 되지는 않는다. 카타르의 1인당 국민소득(57천달러)은 한국(34천달러)보다 훨씬 많지만, 세계인들은 군주국인 카타르를 선진국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사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등 복잡한 권력교체 과정이 평화적이고 민주적으로 이뤄질 수 있었다는 것은 한국의 명실상부한 선진성을 입증한 가장 결정적인 국면이었다. 한국과 함께 과거의 식민지로서 부자 나라대열에 오른 흔치 않은 경우 중 하나가 싱가포르다. 싱가포르의 1인당 국민소득은 한국보다 거의 2배 가까이 많지만, 싱가포르의 선진성을 신뢰할 수 없는 이유도 카타르와 동일하다. 비록 겉으로는 의회민주주의가 존재하지만, 실질적으로 한번도 권력교체가 이뤄진 적이 없는 나라를 선진국으로 보기는 힘들다.

 

한데 선진국이라고 하는 것은 훈장처럼 자랑할 것만은 아니다. 고통스러운 산업화 과정을 통과하고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통해 민주주의를 쟁취했다면, 이제 국내인뿐만 아니라 외부자에도 일정한 책임을 지게 돼 있다. 예컨대 부자 나라인 싱가포르가 난민을 거의 받아들이지 않고 있고, 또 하나의 부자 나라인 카타르는 지난해 단 197명만 난민으로 수용했다. 하지만 이는 세계시민들에게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니다. 대개 민주주의와 인권의식은 동시에 발전하는 법인데, 민주화되지 않은 사회에 난민 인권까지 책임지는 인권적 감수성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한데 한국은 민주화된 선진사회인 만큼 한국에 대한 기대 수준은 이들 나라와 다르다. 더군다나 한국은 9년 전부터 난민법을 시행하고 있기에, 최근 10여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전쟁으로 인한 세계적인 난민위기 상황에서 한국의 역할을 기대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현실은 기대와 다르다. 부유한 민주주의 국가인 한국에서는 난민 수용을 위한 법적 제도도 정비돼 있고 실업률(2.1%)도 유럽연합(EU)3분의 1에 불과하지만, 난민 수용 실적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2010~2020년 한국의 난민인정률은 1.3%에 불과하다. 폐쇄성으로 악명 높은 일본(0.3%)보다야 좀 높지만, 비민주국가인 러시아(2.7%)보다도 낮다. 참고로, 한국의 보수주의자 사이에서 글로벌 스탠더드의 대명사로 통하는 미국의 같은 기간 난민인정률은 25.4%였고, 캐나다는 46.2%에 달했다. 자유주의 정권인 문재인 정권의 마지막 해인 20212341건의 난민 신청 건수 가운데 심사를 통해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사람은 32명뿐이었다. , 정권의 성격과 관계없이 한국의 정책 결정권자들은 난민 지위 부여에 매우 인색하다.

 

그 인색함의 배경에는 일부 유권자들의 반발에 대한 우려가 있다. 오죽했으면 지난해 아프가니스탄 친서방 정권의 붕괴에 따라 국내에 입국하게 된 사실상의 아프가니스탄 난민 391명에게 난민이 아닌 특별기여자란 명칭을 붙였겠는가? ‘특별기여에 대한 강조는, 일어날지도 모를 일각의 반발을 미연에 방지해야 했음을 의미한다. 특히 국내 특정 종교의 근본주의적 신도들 일부의 이슬람 혐오가 매우 심한 수준이기에, 당시 정권에서는 그 부분을 염두에 두고 그 이름에서부터 특별기여를 강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데 그렇다고 해서 국내에서 어차피 아직 한줌도 안 되는 난민인정자(1246, ‘출입국·외국인정책 통계 월보’ 20227월호)나 인도적 체류자(2465)에 대한 일반인들의 평균적 태도가 적대적인 것도 아니다. 사실 한국에서 난민 수용에 대한 긍정적 반응은 북유럽과 거의 같은 수준이다. 한국리서치 여론 속의 여론팀이 지난해 8월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적극적인 난민 수용 정책에 대한 찬성은 48%지만 반대는 34%에 불과하다. 이에 더해 국내 거주 난민들의 국적 취득에 대한 지지는 75%, 난민 자녀들에게의 교육 기회 제공에 대한 지지는 77%나 된다. 사실, 문제는 일반인보다는 관료와 정치인일 것이다.

 

권위주의 시절에 뿌리를 두는 한국 관료사회의 외국인 관련 정책의 모델은 본래 구미권도 아닌 일본이었다. 예컨대 저임금 외국인 노동자들을 연수라는 미명 아래 들여오고 그 노동자성도 인정하지 않은 채 착취했던 한국의 산업연수생 제도(1991년 도입), 1981년부터 일본에서 시행된 같은 이름의 제도를 이식한 것이었다. 구조적 인권유린과 다수 미등록 노동자의 발생 등 폐단이 드러난 뒤 고용허가제로 갈아탔지만, 그 고용허가제 모델 역시 구미권과 달리 외국인 노동자들의 정주를 막고 있는 싱가포르와 대만이었다.

 

이미 다문화 시대에 접어들었는데도, 한국 관료사회는 여전히 인권보다 사회적 통치의 편리, 행정의 편리를 더 중시해 동화가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 비동포 비전문직 외국인 남성이나 가족들의 수용에 상당히 소극적이다. 이 범주에는 외국인 노동자들과 함께 많은 난민 신청자도 포함된다. 강경 보수 정치인들은 관료들의 이런 태도에 별다른 문제의식을 가질 일이 없고, 민주화 투쟁을 경험한 자유주의 진영 정치인들은 상당수가 아직도 정신적으로 민주화 투쟁이 오로지 국내 독재 타도만을 의미했던 시절에 살고 있다. 그들은 외국 독재자들이 벌이는 전쟁의 결과 발생한 난민의 수용과 지원도 한국 반독재 운동 후계자들의 책임이라는 세계시민 의식을 충분히 갖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 이런 의식을 가지고 선진 민주국가로서 국제사회에 대한 책임의 일부를 짊어질 때가 됐다. 예컨대 지금 러시아의 푸틴 독재정권이 벌인 우크라이나 침공 결과, 700만명 넘는 우크라이나 난민들이 주로 유럽으로 피난 가고 있다. 동시에 명분 없는 침략전쟁에 강제로 동원되지 않기 위해 러시아인 약 80만명이 올해 러시아를 탈출했다. 한국 정부는 폴란드에서 생계위기에 처한 우크라이나 난민을 위해 25억원어치 기부금을 내놓기도 하고 국내에 이미 와 있는 약 3800명의 우크라이나인의 체류 기간을 연장해주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선진국과 달리 고려인 이외 우크라이나 난민은 국내에 수용하지 않고 있다. 이제는 한국의 국제적 위신에 맞는, 훨씬 더 적극적인 지원 정책을 펼쳐 우크라이나 난민과 푸틴의 침략을 거부하는 러시아인을 일부라도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국내 다민족 사회의 발전, 옛 소련 지역과의 관계의 심화 등의 차원에서도 도움이 될 조치일 것이다. 선진국이 된 이상, 한국은 그 지위에 걸맞은 국제적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행동으로 보여줘야 마땅하다.

박노자 |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한겨레 2022.10.18.

 

 

한동훈 스피치에 부쳐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어록을 모은 <한동훈 스피치>라는 책이 출간될 예정이라는 뉴스를 봤다. 한 장관의 언변이 꽤나 인기를 끄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의 말에선 종종 논리적 함정과 억지가 발견되곤 한다. 몇 가지만 짚어보려 한다.

 

할 일 제대로 하는 검찰을 두려워할 사람은 오직 범죄자뿐이다.”

한 장관이 검찰 수사권 축소 법안을 비판하며 한 말이다. 장관 취임사에서도 반복했다. 표면상 흠잡을 데 없다. 하지만 함정이 있다. ‘검찰이 할 일을 제대로 한다는 것을 당연하다는 듯 전제로 삼고 있다.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간첩으로 조작됐던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씨가 무죄를 선고받은 뒤 검찰이 그를 추가로 보복 기소까지 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이례적으로 공소권 남용이라고 명시한 판결을 내렸다. 검찰의 공소권 남용을 인정해 공소를 기각한 첫 대법원 판결이다. 그러나 한 장관은 하급심인 1심에서는 유죄 판결이 났었다는 점 등을 들어 보복 기소한 검사에 대한 징계까지는 필요 없다는 식의 태도를 보였다. 법무부 장관이 대법원 판결을 이렇게 가볍게 취급하는 것부터가 심각한 문제다. 한 장관은 국회 답변에서 이런 말도 했다.

 

그 사건(유우성씨 사건)은 제가 잘 모르는 사건이다.”

(온국민이 아는 사실이라는 지적을 받자) “모른다고 한 것은 제가 직접 (수사)했거나 당했거나 할 정도로 팩트에 대해 확실히 아는 게 아니라는 뜻으로 한 말이다.”

일선에서 자신의 업무만 담당하는 검사라면 모를까, 검찰 사무 전체를 관장하는 법무부 장관이 이렇게 중대한 사건을 자신이 직접 경험하지 않았다고 해서 모른다고 말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공적 사안에 대한 토론을 회피하는 태도이기도 하다.

 

법무부 장관이 범인 조작과 보복 기소라는 중차대한 사건에 이처럼 무관심하거나 관대한 태도를 보인다면 같은 일이 언제 또 벌어질지 모른다는 우려를 해소할 수 없다. 무고한 사람들도 검찰을 두려워해야 하는 세상이 되는 것이다. 하기야 간첩 조작 사건 담당 검사가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에 임명되고, 보복 기소의 지휘 라인에 있던 이가 검찰총장 후보군에 오르는 세상이다.

 

술접대 검사 사건은 또 어떤가. 검사들이 라임 사태와 같은 대형 금융범죄의 핵심인물로부터 호화 향응을 받고, 문제가 불거지자 휴대전화를 일제히 폐기하고, ‘96만원 불기소‘94만원 무죄가 이어지는 것을 보며 국민들은 조롱을 날렸지만, 마음 한켠으로는 사건을 마음껏 주무르는 검찰의 힘에 두려움도 느꼈을 법하다. 역으로, 검찰이 할 일을 제대로 하는 것을 두려워할 사람 중에는 그동안 감싸기혜택을 입어온 제 식구들도 포함되지 않을까 싶다.

 

할 일 제대로 하는 검사들을 방해하기 위해 검찰개혁을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검찰권 제한과 견제에 대한 요구는 검찰이 공정하고 중립적으로 일하지 않는 폐해가 누적된 데서 비롯됐다. 검찰권을 발판 삼아 윤석열 대통령이 집권한 뒤 검찰권의 편향적 행사에 대한 우려는 더욱 커졌다. 한 장관은 이런 논점에는 눈감은 채 할 일 제대로 하는 검찰을 두려워할 사람은 범죄자뿐이라는 엉뚱한 반박을 한 셈이다. 상대방의 논점을 왜곡한 뒤 공격하는 수법인 허수아비 때리기’(Straw Man Fallacy)와 닮았다. 논리학에서 말하는 대표적 오류 중 하나다.

 

김건희 여사 사건에 대해서만 수사지휘를 하라는 것은 너무 정파적인 접근 같다. 그렇게 따지면 이재명 사건에 대해서 이렇게 이렇게 하라고 (수사)지휘해도 되겠나.”

김건희 여사 주가조작 의혹에 대해 법무부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행사하라는 요구를 반박하며 한 말이다. 이 역시 말인즉슨 옳다. 특단의 사정(예를 들어 검찰총장과 이해관계가 있는 사건)이 없는 한, 구체적 사건에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행사하는 것은 검찰의 독립성과 배치된다. 그런데 한 장관은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김 여사 주가조작 의혹 수사와 관련해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을 지휘라인에서 배제시킨 것을 원상회복하는 수사지휘조차 거부하고 있다. 이는 장관이 수사 내용에 개입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수사지휘로, 오히려 검찰의 독립성을 되돌려주는 셈이다. ‘이재명 사건을 이렇게 저렇게 수사하라고 지시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이렇게 내용상 정반대 성격의 수사지휘를 이름이 같다는 표면상 이유로 동일하게 취급하는 것은 논리적 오류인 잘못된 유비’(False Analogy)의 한 사례다.

 

“(검사의 수사개시) 영역을 2대 범죄로 더욱 제한하는 취지의 법 개정이 이루어졌다.”

예시로 규정된 부패범죄, 경제범죄 외에, ‘중요 범죄가 수사개시 범위에 포함된다는 점이 법문언상 명백하다.”

전자는 검찰 수사권을 축소한 법의 위헌성을 주장하며 법무부가 헌법재판소에 낸 입장이고, 후자는 법무부가 이 법에도 불구하고 시행령을 통해 수사 범위를 늘리면서 밝힌 입장이다. 해당 법이 검사의 수사개시 범위를 2대 범죄(부패범죄·경제범죄)제한했다하지 않았다는 상반된 주장을 법무부가 한 입으로 하고 있다.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를 두고 법에 대한 (다른) 해석론이 동시에 존재할 수 없다고 비판했는데, 전문 용어를 모르더라도 누구나 뭔가 잘못됐음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A이면서 동시에 A가 아닐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확립한 고전 논리의 3대 기본원칙 중 하나인 모순율이다. 이를 어기는 주장을 접하면 딱히 반박할 방법도 찾기 힘들다.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다.

 

부천국제만화축제 전국학생만화공모전 금상 수상작 <윤석열차>. 커뮤니티 갈무리

 

최강욱 의원이 저에게 말씀하시는 건 2차 가해라고 생각한다.”

혐오와 풍자의 경계는 늘 모호하다.”

 

전자는 <채널에이(A)> 사건과 관련해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최강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회에서 자신에게 질의를 하는 게 부당하다며 한 장관이 항의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다. 자신이 그 사건의 피해자라는 이유에서다.(최 의원은 최근 1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다.) 후자는 풍자만화 <윤석열차>에 대한 한 장관의 언급이다. 한 장관은 ‘2차 가해’ ‘혐오와 같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언어를 법무부 장관과 대통령이라는 사회적 최강자를 옹호하는 데 동원하고 있다.

 

검사장이나 법무부 장관 같은 고위 공직자가 명예훼손을 당했다고 해서 스스로 피해자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민망한 일이다. 공직자에 대한 감시와 비판 과정에서 명예훼손 논란이 일어날 수는 있으나 이는 민주사회에서 고위 공직자가 감수하며 대처해야 할 몫이다. 그 자신이 권력자의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사회구조적 차별 속에 이뤄지는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도입된 ‘2차 가해개념을 권력자가 끌어다 쓰는 것은 가당치 않다.

 

<윤석열차>도 마찬가지다. 유엔의 정의를 보면, ‘혐오 표현은 특정 인종·종교·성 등의 정체성에 기반해 개인이나 집단을 공격하거나 경멸·차별하는 표현이다. 또한 이는 개인이나 사적인 집단을 대상으로 할 때 문제 되는 것이지, 국가권력이나 공직자를 향한 비판에는 아예 적용되지 않는다. <윤석열차>에 이런 의미의 혐오가 배어 있거나 이를 부추기는 요소는 전혀 들어있지 않다. 정치권력을 비판하는 풍자일 뿐이다. 혐오라는 말이 끼어들 여지조차 없다. 여기에 혐오라는 단어를 들먹이는 것 자체가 맥락에 맞지 않을뿐더러, 정당한 정치권력 비판을 매도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두 사례 모두 약자의 방패를 빼앗아 강자의 갑옷에 덧대는 꼴이다.

 

법을 다루는 법무부 장관의 말은 특히나 논리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한다. 나라를 대표하는 대통령의 언어가 저속해서는 안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권력의 최고점에 있는 이들의 격에 맞지 않는 말들로 세상이 혼란스러워지는 게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다.

박용현 | 논설위원 한겨레 2022.10.18.

 

 

자본주의가 조용히마비되고 있다

우리 문 앞에서 서성인다고 여겨졌던 무시무시한 손님이 어느새 조용히 들어와 우리 안방을 차지하고 있다. 이 손님의 정체를 모르면 유령이고, 정체는 알지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면 위험이다. 자본주의를 철저하게 해부하고 비판한 마르크스는 이 손님을 공산주의라는 유령으로 묘사한다. 공산주의에 기반한 중국마저 국가 자본주의를 도입한 마당에 누구도 공산주의라는 유령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정작 우리가 두려워하는 이 손님은 바로 자본주의의 위기. 자본주의가 한계에 도달했다는 징후는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21세기의 시대적 문제로 불리는 극단적인 사회 불평등기후 변화는 현재의 자본주의 시스템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는 두려움이 만연하고 있다

 

잘못된 것은 분명한데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를 모를 때 위기는 위험이 된다. 자본주의의 위기는 결코 방 안의 코끼리가 아니다. ‘방 안의 코끼리란 누구나 알고 있으면서도 그 누구도 먼저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는 커다란 문제를 비유하는 표현이지 않은가? 그런데 자본주의의 위기는 오늘날 누구나 입에 올리는 매우 보편적인 문제다. 자본주의 문제를 얘기하면 진보주의자로 여겨졌던 시절은 이미 오래전에 끝났다. 자유시장을 믿는 보수주의자도 자본주의가 교착 상태에 빠졌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자본주의에 대한 부정적 시각에 귀를 기울인다. 자본주의가 사회에 미치는 파괴적인 영향을 막고 끊임없는 성장을 추구한다. 그들이 여전히 보수적인 것은 자본주의의 지속적인 자기 쇄신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문제는 위험하지 않다. 자본주의의 한계에 대한 문제의식은 동시에 해결책을 모색하기 때문이다. 조용히 찾아오는 위기가 더 위험하다. ‘방 안의 코끼리라는 표현은 러시아의 시인 이반 크릴로프의 한 우화에서 유래하는데, 이 우화는 박물관에 가서 온갖 작은 것들을 알아차리지만 코끼리는 알아차리지 못하는 한 호기심 많은 남자에 관한 이야기이다. 오늘날 우리는 이 우화를 거꾸로 읽어야 한다. 자본주의의 위기는 누구나 다 아는 코끼리의 형태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일상적이고 당연해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사소한 현상의 형식으로 서서히 그리고 조용히퍼지는 것은 아닐까? 굳이 동물의 비유를 들자면, 벼룩시장이라는 용어가 암시하듯 자본주의 시장에 거래되는 상품에는 이 체제를 감염시킬 벼룩이 포함된 것은 아닐까?

 

조용한 퇴직문제 훨씬 더 심각

이제 자본주의 체제를 안에서 무너뜨리는 벼룩을 자세히 관찰해보자. 요즈음 자본주의를 선도하는 선진국에서는 어디에서나 조용한 퇴직’(Quiet quitting)이 급속도로 확산하고 있다. 조용한 퇴직은 실제로 직장을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직장에서 주어진 일만 하고 초과 근무는 거부하는 태도를 말한다. 겉으로는 수동적으로 일을 하지만 임금만큼만 일하겠다는 조용한 퇴직은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사보타주이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인 20212월에서 20222월 사이에 5700만명의 미국인이 직장을 그만둔 대퇴직현상은 그동안 조용히 일어나던 반노동정서를 강화하였다.

 

사람들이 애써 일을 하지 않는다면, 자본주의 체제가 유지될 수 있을까? 노동과 그것이 창출하는 자본은 자본주의의 토대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필요한 만큼만 일하거나 전혀 일하지 않으려 한다. 많은 사람이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스스로 철수하고 있다. 설령 일을 그만두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내가 원하는 것보다 더 많이 해야 한다는 생각을 포기한다. 기성세대는 개인 생활보다 업무를 중시하고 열정적으로 일하는 것을 높이 평가하는 허슬 문화에 젖어 있었지만, MZ세대는 일이 곧 인생이라는 사고방식에 반기를 들고 조용한 퇴직을 선택한다.

 

이러한 정서가 오늘날 반노동’(anti-work) 운동으로 표출되고 있다. 갑질, 직장 내 괴롭힘, 열악한 근로환경 등 부정적 노동조건을 고발하는 포럼으로 시작한 이 운동은 이제 자본주의의 뿌리인 노동을 겨냥한다. 젊은 미국인들은 나는 노동을 꿈꾸지 않는다고 선언한다.

 

독일의 경우 전국 2명 중 1명꼴로 아르바이트로 전환하고, 56%는 심지어 재정적으로 여유가 있으면 즉시 직장을 그만둘 것이라고 말한다. 재정적으로 독립하여 조기에 퇴직하겠다는 파이어족의 태도도 다르지 않다.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반노동 추세는 확인된다. 그들은 덜 일하고, 덜 저축한다. 놀라운 것은 이러한 추세가 중국에서도 발견된다는 점이다. 20214월에 시작한 중국의 사회적 저항 운동인 탕핑’()을 직역하면 드러눕기인데, 이는 초과 노동의 사회적 압박에 대한 거부이다. 탕핑 운동은 이제 바이란을 동반한다고 한다. ‘썩어가게 놔두다라는 뜻의 이 용어는 악화하는 상황을 되돌리려고 하기보다 담담히 받아들이는 태도를 표현한다. 이미 오래전에 일본에서는 사토리세대가 등장하였다. 여러 유흥거리는 물론 돈과 명예욕, 출세 등에도 관심을 아예 끊은 채로 득도한 것처럼 최소한의 욕망만을 가지고 살아가는 일본의 젊은 세대를 가리키는 이 낱말은 깨닫다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자발적으로 철수하는 이 세대는 도대체 무엇을 깨달은 것일까? 왜 그들은 일하지 않으려는 것일까? ‘조용한 퇴직을 단순히 MZ세대의 라이프스타일로 치부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여전히 삶의 심각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젊은 세대의 일시적인 허튼소리로 흘려버리는 것은 더욱 옳지 않다. ‘조용한 퇴직이 함축하고 있는 문제는 훨씬 더 깊고 심각하다. 그것은 경제적 조건이 바뀌었다는 것을 말해줄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의 체제가 조용히 마비되고 있다는 증거이다.

 

자유경쟁의 불평등 없애는 게 답

미국 반노동 운동 포럼의 모토는 조용히 다가오는 자본주의 위기의 실체를 드러낸다. “부자만이 아닌 모두를 위한 실업.” 실업은 자본주의의 어쩔 수 없는 부작용으로 여겨지지만, 사실 실업을 생산하는 것은 자본주의의 성공이다. 우리는 이상한 시대에 살고 있다. 자본주의가 발전하여 생산성이 증대하면 일자리가 늘어나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거꾸로 일자리는 줄어들고 일자리가 있는 사람들의 업무 강도는 더욱 높아진다. 일하는 사람들은 번아웃에 시달릴 정도로 과로하고, 일없는 사람들은 점점 더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 조용히 퇴출된다.

 

더욱 이상한 것은 자본주의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는 부자들은 일하지 않는실업 상태이고, 나머지 다수는 일이 없는실업 상태라는 점이다. 젊은 세대들은 이런 상황에서 과연 형편없는 일자리에 계속 매여 살아야 하는지 묻기 시작한 것이다. 조부모는 차고에 자동차 세 대를 가지고, 부모는 적어도 집 한 채를 가졌는데, 평생 아무리 노력해도 자기 집은커녕 변변한 차 한 대 살 여유조차 없다면 왜 일해야 하고 과로해야 하는가? 자본주의 시스템이 나를 위해 해주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 젊은이들이 이 시스템을 외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제까지 자본주의 체제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만든 동기가 조용히 그리고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자본주의의 핵심은 능력주의이다. 능력이 있고 노력만 하면 그에 따른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자본주의의 약속이 거짓으로 드러나고 있다. 우리는 현존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할 때 평등이라는 사회주의 이상을 조롱하지 않았는가? 경쟁이 없는 독점 구조, 주로 출생에 기반한 재산 분배, 성장과 발전을 포기한 긴축 체제, 쇠퇴하는 경제적 역동성이 사회주의의 특징으로 묘사되었다. 우리는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모든 것을 평등하게 취급하는 강제된 평등이 사회를 마비시킨다는 것을 경험했다. 그런데 자유경쟁을 통해 고착화된 불평등도 사회를 마비시킨다.

 

자본주의가 능력주의의 약속을 지킬 수 없다면, 누가 자발적으로 이 체제에 참여하겠는가? ‘조용한 퇴직은 자본주의 체제가 조용히 마비되고 있다는 증거이다. 이제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농담은 그만두자. 오늘날 사회의 상위 1%는 한국 전체 자산의 25.4%를 소유하고 있고, 독일에서는 35% 그리고 미국에서는 이미 40%에 이르렀다. 이러한 불평등을 우습게 여기는 분위기에서 일과 삶을 진지하게 생각하라는 조언은 냉소적이고 폭력적이다. 자본주의를 마비시키는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조용한 퇴직은 우리 사회를 근본적으로 뒤흔들어 놓을지도 모른다. 위기는 이렇게 조용히 다가오는데, 우리 사회는 미친 정쟁으로 시끄럽다

이진우 포스텍 명예교수 경향 2022.10.19.

 

 

 

윤석열·이재명의 적대적 공생

정치 스스로 사라진 게 아니라 국민들이 정치를 버린 수준까지 이르렀다. 정치가 있다면 단 하나,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적대적 공생뿐이다. 윤 대통령 리스크가 이 대표를, 이 대표의 리스크가 윤 대통령을 살리는, 역설의 정치다.

 

윤석열 리스크의 핵심은 고립이다. 윤 대통령에게 여당은 자기 세력이 아니다. 신화가 있는 정치인도, 가치의 리더도 아니다. 이런 처지라면 핵심세력을 확장하려는 노력이 상식적이다. 그마저도 어렵다면 관료를 조직화했던 역대 대통령의 경로라도 따라야 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집권 6개월여 만에 권력기관 1급 관료 상당수를 인사조치했다. 정권 초 권력기관에 파견된 1급 관료들은 각 부처 인재들이다. 이들이 짐을 싸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윤 대통령은 윤핵관 틀에 갇혔고, 이들과 거리를 둔 뒤엔 검찰 울타리로 들어갔다. 심지어 극우 성향의 김문수 전 경기지사를 경제사회노동위원장에 임명했고, 직접 주사파라는 말을 꺼내며 극한 고립을 택했다. 낮은 지지율은 고립 리스크의 냉혹한 결과이다.

 

이재명 리스크의 핵심은 불신이다. 주변 평가는 자기 생존밖에 모른다가 지배적이다. 사법 리스크는 불신의 최정점이다. 대표가 되려면 사적 문제는 털었어야 했고, 대표가 된 뒤엔 의혹에 휩싸인 최측근 인사들을 당직에 기용하지 않아야 했다. 그러나 이 대표는 그러지 않았다. 정책에서도 정통 민주당의 정신이 느껴지지 않고 정치적으로도 대의가 분명하지 않다. 느닷없는 친일론이 대표적이다. 이 대표가 실용과 민생을 강조할수록 정체성 회의론만 확장됐다. 이 대표는 당 최대주주를 20년 만에 교체했지만 민주당을 새로운 세력으로 만들지 못했다. 이 대표의 불신리스크가 해소되지 못한 탓이다.

 

고립과 불신은 독자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리스크다. 두 사람이 적대적 공생 관계임을 드러낸다. 적을 품어야 나도 살 수 있는 것이 적대적 공생의 본질이다. 약점을 장점으로 바꿀 수 있는 정치력도 그제서야 생긴다. 두 사람은 국정과 의회의 책임자들이다. 일단 만나서 머리를 맞대야 한다. 여야 민생기획단 같은 기구를 꾸리겠다는 약속이라도 좋다. 최근 유럽 극우정권과 사민당 세력도 연정을 모색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보수당 당수 처칠과 노동당 당수 애틀리는 전시내각을 꾸렸다. 윤 대통령은 지난 516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초당적 협력을 강조하며 처칠과 애틀리의 공조를 거론했다.

 

두 사람 만남을 촉구하며 글을 마감할 무렵 검찰이 민주당사 압수수색을 시도한다는 속보가 떴다. 이 대표 측근인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의 정치자금법 위반 물증을 잡기 위해서였다. 1979YH무역 노동자 진압을 위한 공권력의 신민당사 침탈 이래 야당 당사 압수수색은 처음이다. 압수수색 시도는 대검 국정감사 전날 이뤄졌다. 국정감사를 앞두고 압수수색을 시도한 것은 아무리 성역 없는 수사를 강조해도 검찰에 정치를 갖다 바치는일이다. 김 부원장은 임명 일주일밖에 안 돼 사무실 책상도 없었다고 한다. 검찰은 대장동·위례신도시 개발 특혜 대가성 자금이 지난해 이재명 대선 후보 캠프로 흘러들어갔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이 대표는 1위 후보였고, 펀드 공모 3일 만에 선거자금을 채울 정도로 돈이 부족하지 않았다고 한다.

 

최근 여권 내부에서 정치 복원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었다. 야당 당사 압수수색 시도는 정반대 기류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무능 프레임을 부패 프레임으로 덮으려는 것, 검찰 수사로 인위적 정계개편을 꾀하려는 것. 어떤 경우든 사정 정국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검찰 칼날이 날카로울수록 윤 대통령도 곤혹스러워진다. 국정을 잘 운영했다면 사정에 대한 민심 호응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윤 대통령 지지율은 20~30%대를 맴돈다. 뭘 할 수 있겠는가. 여권 내 구심력도 탄탄하지 않은 마당에 야당을 적대시하며 새로운 정치질서를 만드는 일, 쉽지 않다. 지금처럼 전 정권과 제1야당을 동시 겨냥할 경우 야당 전체가 뭉칠 것이고 그 과정에서 친문재인·친이재명계가 타협할 가능성도 있다. 검찰의 칼이 정권 중반을 넘어서면 어디로 향할지 모른다는 사실, 윤 대통령이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이대로는 공멸이다. 폐허가 된 정치에선 누구도 승자가 될 수 없다. 언제까지 비호감 대선 연장전을 치를 텐가. 일단 만나기부터 하시라. 만나야 서로 이해도 하고, 이해가 쌓이면 적대적 공생도 서사가 된다. 그래야 덜 미워하고 덜 싸울 수 있다.

구혜영 정치에디터 경향 2022.10.21

 

 

정당을 무엇으로 특정하는가

몇해 전 몇몇 유럽 국가에서 시작된 극우 돌풍이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 같은 국가에서 극우 세력이 두각을 나타내긴 했지만 집권은 또 다른 문제였다. 독일에서는 독일을 위한 대안의 지지율이 녹색당 돌풍에 꺾였고 프랑스에서도 박빙이었지만 마린 르펜을 누르고 에마뉘엘 마크롱이 연임했다.

 

그럼에도 유럽 내에서 극우 정당은 점차 그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이탈리아의 형제들을 창당한 조르자 멜로나가 이달 말 취임해 이탈리아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될 예정이다. 9월 중순 치러진 스웨덴 총선에서는 스웨덴민주당이 득표율 20%를 넘기며 제2당에 올랐다. 우파연합 연정에는 스웨덴민주당이 제외되었지만, 우파 부상의 여파로 마그달레나 안드레손 총리가 사임 의사를 밝히는 등 파급은 상당했다. 프랑스에서는 마린 르펜이 이끄는 국민연합이 우파의 다른 어떤 정당들보다 자주 이슈를 몰고 다닌다.

 

여기까지는 최근 일어난 일들을 정리한 것으로, 유럽에서 극우의 궤를 함께하는 정당들이 활동 반경을 넓히고 있다는 것이 요지이다. 강단에서 정당과 관련한 강의를 하다보면 정당 이념과 스펙트럼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기 마련이다. 새로운 관점으로 정당을 소개하고 싶지만 그런 일은 잘 생기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강의자가 긴 시간 동안 그렇게 학습을 받아온 탓이다. 나 역시 좌우 스펙트럼에 의거해 정당들을 분류하고 정당들에 하나하나 성격을 매겨가며 설명을 한다. 그렇게 수업을 마치고 나면 이상한 종류의 회의감이 밀려든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런 이분법에 빠져 있어야 할까, 하는 마음 때문이다.

 

좌파우파라는 단어는 프랑스 혁명기에 소집된 국민 의회에서 유래했다. 이 회의에서 중앙 의장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왕당파가, 왼쪽에 공화파가 자리했다. 이후에도 온건 개혁 세력이 오른쪽에, 급진 개혁세력이 왼쪽에 착석한 것이 지금의 우파, 좌파에 이르렀다. 18세기 개념을 21세기를 사는 우리가 쓰는 셈이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당시의 좌파와 우파는 각각 분파되고 가지를 치는 방식으로 새로운 줄기를 만들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당의 정체성을 판단함에 있어 는 여전히 가장 우선적인 준거로 사용된다.

 

앞서 언급한 유럽의 극우 정당 역시 그렇게 고안된 스펙트럼 어딘가에 자리한다고 사람들은 믿는다. 그렇다면 편을 가르고 서로 잣대를 들이대는 일 역시 이 스펙트럼에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리일까. 더불어 스펙트럼이란 어디까지나 기존 시각과 질서를 답습한 게으른 분류 구도가 아닐까. 나는 수업을 하고 나오면서 그런 생각을 떠나보내지 못하곤 하는 것이다.

 

독일 총선이 있었던 작년 가을, 독일에는 녹색당 바람이 한참 불었다. 10, 20대 청년들이 나와 전국적 규모의 환경 운동에 가담했고, 그 덕에 녹색당 지지율도 대폭 상승했다. 총선에서 실제 지지율은 다소 낮았지만 선거를 치르는 동안 녹색당의 힘은 세졌다. 녹색당의 대표였던 아날레나 베어보크는 새로 꾸린 정부에서 외무부 장관으로 취임했다.

 

사실 녹색당이 주장하는 바를 잘 곱씹어보면 좌나 우, 둘 중 어느 쪽에도 포함되기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이념이 아니라 특정 테마를 정강으로 채택한 정당이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독일에서 환경운동을 시작한 사람들은 환경보호와 애향운동을 하던 시민들이었다. 민속과 풍습을 지키자고 하는 보수주의에 가까웠던 것이다. 그러니 녹색당이 좌나 우 어딘가에 포함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보고 들은 스펙트럼의 정치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하나의 방증이 아닐까.

 

작년 독일 총선에서 환경 보호 거리 시위를 지켜보며, 나는 어쩌면 이제 드디어 새로운 구도의 정치가 시작될지 모른다는 일종의 희망을 갖고 있었다. 그들이 들고 나온 팻말에 쓰인 환경 보호에 대한 열망과 거대 정당들의 지지율 하락이 내게는 그런 신호로 느껴졌다. 기존 질서를 벗어날 새로운 길 앞에 서 있는 세대가 막 거리로 나온 지금, 기성세대도 함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도 불러일으켰다. 어쩌면 나는 그런 기대를 계속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새로운 정치를 한다는 것은 새로운 세상을 연다는 것, 그것은 기존의 질서에서 한발 더 나아가 새로운 단계로 접근한다는 것이 아닐까. 그것이 우리를 우물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으로 진입하게 돕는 새로운 방법은 아닐까. 나는 오늘도 그런 생각을 하며, 독일의 정당 이름이 가득 쓰인 칠판을 깨끗하게 닦아내는 방법으로 강의를 마친다.

최정애 전남대 교수·소설가 경향 2022.10.22.

 

 

“5년간 바보 같은 짓을 할 것 같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6월 한 원자력발전 설비업체를 방문해 지난 “5년간 바보 같은 짓을 했다라고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거칠게 비난했다. 윤 대통령의 이런 비난은 두달 남짓 지난 830일 전체 발전량에서 원전 비중은 높이고, 재생에너지는 낮추는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실무안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보름 뒤, 915일 삼성전자는 2050년까지 국내 사업장에서 사용하는 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전환하겠다는 아르이(RE)100 선언을 한다. 변화하는 국제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하지만 국내 재생에너지 공급 상황은 삼성전자가 이야기한 것처럼, 매우 열악하다. 2020년 기준으로 삼성전자 한 기업이 사용한 전력량이 국내에서 생산한 재생에너지 발전량의 절반에 가까울 정도로 발전량이 형편없었다.

 

누가 바보 같은 짓을한 것일까? 그런데 윤석열 정부의 바보 같은 짓이 여기서 그치지 않을 것 같다. 윤석열 정부 집권 이래 한반도는 그 어느 때보다 무력 충돌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북한은 연일 미사일을 발사하고 공공연히 핵을 사용할 수 있다고 위협하고 있다. 마이클 멀린 전 미국 합참의장은 이런 상황이 북·미가 전쟁 직전까지 갔던 2017년보다 더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그런데도 집권 여당의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은 미친개에게는 몽둥이라는 거친 언사를 쏟아내며, 북한이 핵실험을 하면 “9·19 남북 군사합의는 물론,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도 파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불난 집에 부채질하듯, 국민의힘의 당권 주자들도 독자 핵무장을 해야 한다”, “전술핵을 한반도에 재배치해야 한다는 주장을 쏟아냈다. 급기야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대사가 전술핵을 재배치하는 것은 무책임하고 위험하다며 집권 여당을 비판하는 이례적인 일까지 벌어졌다.

 

경제는 어떤가. 인플레이션이 환율 폭등, 수출 감소 등 경제 위기로 이어지고 있다. 더욱이 미국 조 바이든 정부가 인플레이션 감축법과 같은 미국에 유리한 산업정책을 노골적으로 추진하면서, 한국 산업의 미래가 불투명해지고 있다. 영국의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현 시기를 제2차 대전 이후 케인스주의의 부상과 1980년대 신자유주의의 부상과 비견되는 새로운 체제로의 전환기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각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체제 전환에 대응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상황이 이렇게 급박하게 흘러가는데 윤석열 정부가 어떤 대안을 준비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부자 감세가 그 대안인가. 부자 감세를 하면, 투자가 늘어 경제가 성장하고 일자리도 늘어나는 낙수효과가 정말 실현될 수 있나. 영국 사례를 보면, 감세 정책은 대안이 될 수 없는 것 같다. 최단명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사임한 리즈 트러스 총리는 물러나기 전 재무장관을 해임하고 감세 정책을 철회하면서, 국민에게 감세 정책이 잘못이었다고 사과했다. 반면 추경호 기획재정부 장관은 한국은 영국과 다르다고 한다. 부자 감세가 성장과 분배를 선순환시키는 신묘한 계책이 있는 것 같다.

 

윤석열 정부에서 민생을 지키는 공적 복지의 역할도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 “약자 복지라는 제한적 접근으로는 평범한 국민의 삶을 안전하게 지키기 어려울 것 같아서다. 더욱이 저소득 노인을 위한 공공형 일자리 61천개를 줄이고, 치매 돌봄 예산 등을 삭감하는 것을 보면, 이 정부의 약자 복지라는 것이 약자를 위한 복지는 아닌 것 같다.

 

가장 바보 같은 짓은 여소야대 상황에서 협치를 통해 위기 대응을 주도해야 할 대통령이 도리어 정치를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이 문재인은 김일성주의자, 총살감이라는 망언을 쏟아내자, 대통령은 그런 경사노위 위원장을 노동 현장을 잘 아는 분이라고 화답했다. 여당 당협위원장들과 한 식사 자리에서는 종북 주사파와는 협치가 불가능하다라는 속을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했다. 감사원은 표적 감사라는 의심을 받고 검찰은 민주당사를 압수수색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나라와 민생의 안위가 풍전등화와 같은 시기에 윤석열식 정치가 위기를 증폭시키고 있는 것이다.

 

“5년간 바보 같은 짓을 할 것 같다. 5년 후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가 되어 있을까? 우리가 여기까지 올라서는데 100년이 넘게 걸렸다. 하지만 무너지는 것은 5년도 걸리지 않을 것 같다. 잠을 잘 수가 없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윤홍식 |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소셜코리아 운영위원장 한겨레 2022.10.23.

 

 

윤석열이 왜 저러지?” 삼중 위기

아주 의아해한단다. “윤석열이 왜 저러지?” 그와 개인적으로 술을 적어도 50회 넘게 마신 사람들의 목소리다. 국회 사무총장을 지낸 유인태가 CBS 라디오에 출연해 전한 그 말이 갈수록 실감난다. 딱히 그의 술친구가 아니었어도 국정원 댓글사건을 수사한 검사 윤석열은 상식적이고 정의감도 있어 보인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보라. 미국에서 자기가 한 말을 놓고 진상 규명이 먼저라는 기막힌 주장을 버젓이 했던 그는 국힘당 원외당협위원장들을 만나 돌연 종북 주사파는 협치의 대상이 아니다고 말했다. 논란이 되자 대통령실은 대한민국을 전복하려는 세력과는 타협할 수 없다는 의미란다.

 

뜬금없는 해명이다. 지금 대한민국이 주사파에 전복될 상황인가? 어이없게도 그 말은 문재인 전 대통령은 확실하게 김일성주의자라고 발언한 경제사회노동위원장 김문수의 자진사퇴와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사과를 민주당이 촉구한 상황에서 나왔다. 자진사퇴도 대통령 사과도 없이 외려 도끼눈 홉뜬 셈이다.

 

김문수는 심지어 문재인을 총살감이라고 부르댄 자다. 문재인이 김일성주의자라는 김문수의 발언에 윤석열이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는다면, 도리어 힘을 실어준다면 정말이지 앞으로 5년 대한민국이 어떻게 될지 심히 우려스럽다. 5개월 만에 이미 서로 맞물린 삼중 위기를 맞고 있기에 더 그렇다. 그 위기는 주사파에서 온 게 결코 아니다.

 

첫째, 민주주의 위기다. 어느새 우리는 정부의 장관급이 전임 대통령을 김일성주의자로 단정 짓는 매카시즘 세상에 살고 있다. 상식으로 짚어보자. 김일성주의자가 이 나라를 최근 5년 동안 책임졌다는 말인가? 파시스트적 궤변을 늘어놓거나 두남두고 민주당과 공존할 수 있는가. 0.7% 차이로 집권한 대통령이 상대 후보와 그 당을 대하는 태도는 살천스러움을 넘어 적대적이다. 윤석열과 김문수의 발언에 힘을 받은 태극기부대는 성조기까지 흔들며 거리로 나서 문재인 구속, 이재명 구속, 주사파 척결을 외쳐댄다. 문재인의 내로남불을 비판하며 유명세를 탄 윤석열 자신은 지금 검찰의 내로남불 수사를 즐기는 듯하다.

 

둘째, 민생 위기다. 가장 중요한 민생은 말 그대로 생사의 문제다. 아침에 건강하게 출근한 가족이 일터에서 숱하게 숨져가고 있는데도 노사정 대화를 끌어갈 책무를 맡은 김문수는 중대재해법에 독소조항이 많고 문제가 많다고 언죽번죽 주장했다. 하청 노동인들을 옥죄는 대기업의 손해배상소송을 막으려는 노란봉투법에도 붉은 색깔을 서슴지 않고 칠한다. 경총 회장을 만나선 소유권을 침해하면 공산주의가 되는 것이라고 에헴 한다. 후보 윤석열이 약속한 최고의 적재적소 인재가 단세포적 확증편향을 지닌 자란 말인가. 노동인들만이 아니다. 자영업인과 주거복지 단체들도 스스로를 지켜야 할 상황이다. 1019재벌부자감세 저지와 민생·복지 예산 확충 위한 긴급행동(긴급행동)’ 결성도 그 맥락이다. 양곡관리법은 농민에 도움 안 된다는 윤석열의 단언도 농민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셋째, 남북관계와 안보 위기다. 남북문제와 북미핵문제를 대화로 풀어보려는 시도를 종북주사파로 몰고 있다. 참으로 철딱서니 없잖은가. 남과 북, 미국 사이에 대화가 아니라면 대체 어떻게 해결할 셈인가. 일본 자위대와 동해에서 군사훈련으로 풀 깜냥인가? 문재인은 김일성주의자이고 총살감이라고 부르댄 자가 정부의 각료급이고 대통령이 그를 두남두는 모습을 평양은 어떻게 바라볼까. 과연 대화에 나서고 싶을까. 더구나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내놓고 한쪽에 밀착한 외교를 줄창칠 때 안보 위기는 물론 경제 위기도 무장 커질 수밖에 없다.

 

윤석열이 왜 저러지?” 묻는 사람은 아직 희망을 지녔다는 뜻이다. 20275월초까지 집권할 이 정부가 민주주의, 민생경제, 국가안보의 삼중 위기를 어디까지 증폭시킬지 냉철히 짚어보라. 그렇다. 그의 술친구도 언론도 더는 의아해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손석춘 칼럼니스트철학자 미디어오늘 2022.10.24

 

기업이 불안해하는, ‘경제에 무능한보수 정부

한국갤럽은 격주로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을 발표한다. 세부 항목에서는 긍정 평가와 부정 평가 이유를 묻는다. 흥미로운 점은 민생 살피지 않음/무능/잘못의 부정 평가 합계가 3배 가까이 늘어났다. 62주차 한국갤럽 조사에서는 민생 살피지 않음/무능/잘못의 부정 평가 합계가 10%였다. 103주차 조사에서는 28%로 늘어났다. 즉 윤석열 정부를 경제에 무능한보수 정부라고 생각하는 국민 비율이 약 3배 늘어났다.

 

윤석열 정부는 510일 임기를 시작했다. 아직 6개월이 되지 않았다. 5개월여간 무슨 일이 있었기에, 국민은 윤석열 정부를 경제에 무능한보수 정부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지난 5개월간, 기억나는 것들을 복기해보자.

 

첫째,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둘러싼 부실 대응이다. ‘바이든, 날리면~’ 발언으로 국제적 논란이 됐던 그 사건이다. 미국의 IRA로 인해 한국의 현대차와 기아는 큰 불이익을 받게 됐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대만을 방문한 이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윤석열 대통령은 펠로시 하원의장을 만났어야 했다. IRA와 관련해서 한국 측 입장을 전달했어야 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 기업인들 입장에서는 정부 차원의 대응이 특히 중요한데, 참으로 우려스러운 일이다.

 

둘째, 한덕수 총리와 최상목 경제수석의 매우 거친 탈중국발언 역시 기업인들의 불안감을 키웠다. 최상목 경제수석은 지난 6월 나토 회의에 참석하며 중국을 통한 수출 호황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고 발언했다. 이후 한덕수 총리는 중국 경제는 거의 꼬라박는 수준이라고 했다.

 

한국의 전체 수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율은 약 23%. 홍콩은 약 8%. 중국은 여전히 대한민국 전체 수출의 약 3분의 1을 차지한다. 미국의 중국 견제로 인해 대중국 디커플링(탈동조화) 가능성이 존재하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 과정은 매우 길고, 매우 점진적으로 진행될 것이다. 최 경제수석과 한 총리의 발언은 중국 기업과 거래하는 기업인들의 불안감을 키웠다. 오죽하면,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이 좋든 싫든 중국은 여전히 큰 시장이라고 발언했을까. 정부의 중요 정책결정권자들은 경제 주체를 불안하게 하는 발언을 최대한 자제해야 한다.

 

셋째, 최근 김진태 강원도지사로 인한 레고랜드발() 채권시장 불안도 경제에 무능한 보수의 대표적인 사례다. 국민의힘 소속의 김 지사는 당선된 이후, 전임 최문순 지사의 정책을 부정하기 위해, 강원도 산하의 강원중도개발공사 채권에 대한 지급보증 약속을 거부했다. 결국 지난 6일 강원중도개발공사는 기업회생 절차를 밟게 됐다. 김 지사가 지급보증을 거부한 928일경부터 채권 금리는 급등하기 시작했다. 지방정부가 지급보증을 약속한 지방정부 발행 채권은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금리가 낮은 편이다. 그런데 채권시장 주체들은 지급불능이 되는 사태를 접하며 패닉에 빠졌다. 지방정부가 발행한 채권시장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번지며, 채권시장 전체가 위기에 빠지게 됐다. 금리는 오르고, 채권의 매각률은 현저히 낮아졌다. 오죽하면, 유승민 전 의원이 강원도지사의 말 한마디에 채권시장이 마비되고 금융시장에 공포가 덮쳤다고 비판했을까. 채권시장을 혼란에 빠뜨리면서까지, 전임 도지사의 업적을 부정하려다 발생한 경제적 참사다.

 

다음달 10일이 되면, 윤석열 정부의 취임 6개월이 된다. 미국은 금리 인상을 통해 강달러를 만들고, 전 세계 자금을 빨아들이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인플레이션이지만, 올 하반기를 지나면 디플레이션이 올 것이라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지배적이다. ‘경제에 무능한보수는 국민 모두에게 불행이다. 윤석열 정부의 각성과 분발을 촉구한다.

최병천 <좋은 불평등> 저자·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 경향 2022.10.25.

 

 

시한폭탄 품은 아파트, 원전

시한폭탄과 크고 작은 부비트랩이 곳곳에 설치된 공장.’

20146월 해체 작업이 진행되던 일본 후쿠이현 후겐원전 내부를 돌아보면서 든 느낌이었다. 2008년부터 해체를 시작한 이 원전의 내부는 배관, 펌프 등이 얽히고설킨 채 문을 닫은 공장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당시 원전 내부를 보며 시한폭탄과 부비트랩 같은 단어들을 떠올린 까닭은 원전이 운영과 해체 과정에서 반드시 문제가 될 수밖에 없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즉 핵연료봉이라는 위험요소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높은 위험성으로 세계 대부분 국가가 처분시설을 어디에 만들지조차 정하지 못하고 있는 핵연료봉이 시한폭탄이라면, 다소 위험성은 떨어질지 몰라도 형태와 구조가 제각각인 탓에 다양한 해체기술이 필요한 중저준위 폐기물은 언제 어디서 위험한 상황을 만들지 모르는 부비트랩을 연상케 했다. 중저준위 폐기물은 폐필터나 폐수지, 폐농축액 등 핵연료봉보다는 오염 정도가 낮은 폐기물을 말한다.

 

8년여가 지난 현재 돌아본 시한폭탄과 부비트랩이 가득한 공장은 반만 맞고, 반은 틀린 비유였다. 핵연료봉이 시한폭탄 같은 성격을 지녔다는 점은 달라진 바가 없다. 틀린 부분은 중저준위 폐기물 역시 비슷한 상태라는 점과 그 위험성이 좁은 공간에서 제한적인 살상력을 발휘하는 부비트랩에 비유할 정도로 약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수력원자력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드러난 원전 폐기물 실태는 흔히 비유되는 화장실 없는 아파트가 안이한 표현이라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이동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수원에서 제출받은 보고서를 보면 국내 원전들에는 제대로 처리되지 못한 채, 경주 방사성폐기물처분장으로 가지 못하고 임시저장 중인 중저준위 폐기물이 다량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빛원전과 한울원전은 이미 저장시설의 포화율이 100%를 넘어섰는데 고리 1호기를 포함한 노후 원전들의 해체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될 경우 상황은 더 악화될 수도 있다.

 

특히 한수원 보고서에 따르면 중저준위 폐기물을 더 저장할 공간이 없으면 원전 가동을 중단해야 하기 때문에 중저준위 폐기물 역시 원전의 안전한 이용에 큰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하지만 경향신문 보도 전까지 이 같은 사실이 알려져 있지 않았던 탓에 원자력발전을 녹색분류체계에 포함시키려는 환경부의 시도에서 중저준위 폐기물 실태에 대한 고려는 이뤄지지 못했다.

 

게다가 한수원은 국감에서 이 의원이 질의한 이 같은 우려에 대해 원전별 해체 추진 일정에 따라 해체폐기물 처리시설 확보를 준비 중이며 폐기물 처분을 위해 처리기술 개발 및 인프라 확보를 진행 중이라고 답했다. 원전을 운영하기 시작한 지 50여년이나 지났지만 고준위 폐기물은커녕 중저준위 폐기물조차 처리할 장소와 기술을 갖추지 못했음을 자인한 것이다.

 

원전은 화장실이 없을 뿐 아니라 시한폭탄까지 품은 아파트라는 점이 드러났다. 그럼에도 원전을 무리하게 친환경으로 규정하고, 노후 원전을 계속 가동하려는 정부의 근시안적 태도가 지극히 우려스럽다.

김기범 정책사회부 차장 경향 2022.10.25.

 

 

대통령학과 촛불을 다시 생각한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 지금처럼 아마겟돈 위기에 직면한 적이 없다.” 바이든 미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핵을 사용해 인류가 핵전쟁으로 멸망할 가능성에 대해 경고한 바 있다. 한반도와 동북아에도 북한의 핵무장과 연이은 미사일 실험, 이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강경반응으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이를 바라보며 문득 떠오른 것이 1960~1970년대 미국에서 부상한 대통령학이다. 대통령학의 등장은 두 가지 때문이다. 냉전, 그리고 쿠바 미사일 위기로 상징되는 핵경쟁·핵전쟁 시대를 맞아 미국 대통령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해졌다. 나아가 대통령을 평가할 때 올바른 정책을 만들 수 있는 지적 능력과 리더십에 주목하던 흐름에 변화가 생겼다. 미국 대통령이란 자리가 지구를 파멸로 이끌 핵무기 사용 여부를 불안정한 정보에 기초해 짧은 시간 내에 결정해야 하기에, 그동안 주목하지 않았던 대통령의 성격과 정서적 안정성, 성장과정 등에 주목하게 된 것이다.

 

대통령학의 선구자인 제임스 바버는 대통령을 활동성을 기준으로 적극적이냐 소극적이냐, 성격을 기준으로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에 따라 적극적·긍정적’ ‘적극적·부정적’ ‘소극적·긍정적’ ‘소극적·부정적이라는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케네디처럼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대통령이다. 문제는 최악의 대통령이다. 최악의 유형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대통령이 아니다. 부정적이어도 소극적이면, 최소한 큰 사고는 치지 않는다. 문제는 닉슨처럼 부정적이면서 적극적인 대통령이다. 사실 대통령, 아니 어느 분야건 가장 위험한 지도자는 부지런하고 용감하고 헌신적이면서 삐뚤어지거나’ ‘무식한지도자, 잘못된 확신에 차 있는 적극적인 지도자다. 나는 최순실 사건이 터져 나오며 촛불이 시작되기 직전, 박근혜 말기를 바라보며 이 지면에 쓴 대통령의 정치학’(20161013)을 통해 바버의 네 유형을 소개하며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6년 만에 다시 대통령학이 떠오른 것은 우크라이나 사태 탓이기도 하지만 진짜 이유는 윤석열 대통령 때문이다. 임기를 시작한 지 몇 달에 불과하지만, 보면 볼수록 그가, 바버가 우려한 부정적이면서 적극적인 대통령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주목할 것은 대선캠프 대변인을 맡았던 이동훈 전 조선일보 논설위원의 관찰이다. 윤 대통령은 “1시간이면 혼자서 59분을 얘기한다. 원로들 말에도 나를 가르치려 드느냐며 화부터 낸다고 증언했다. 정치에 입문하기 시작할 때 벌써 이러했으니, 대통령까지 된 지금은 어떠할지 뻔하다. 많은 정보를 접하면 자신감이 붙은 임기 2, 3년차 대통령들이 하는 행태를 정치입문 때부터 보여줬다는 이야기니, 앞으로 어떨지 상상하기가 겁이 난다. 특히 자신과 입장이 다른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의 행보에 대해 내부 총질이라고 비판하고 바른 소리에 버럭 화부터 내며 박근혜 십상시 이상으로 비위 맞추기에 열심인 윤핵관들로 둘러싸여 있으니, 직언으로 윤 대통령을 바로잡을 가능성도 희박하다.

 

진짜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때처럼 촛불을 드는 것이 해답이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일부에서는 친민주당 인사들이 중심이 되어 윤석열 퇴진 국민선언서명운동을 벌이는 등 벌써부터 촛불을 들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과연 지금까지 윤 대통령의 행보가 최후 수단인 퇴진촛불을 들어야 할 정도로 심각하게 잘못된 것인가라는 문제와는 별개로, 일부 친민주당 열렬세력을 제외하곤 국민 다수는 2의 촛불항쟁에 대해 회의적이다. 국민들이 영웅적으로 투쟁해 탄핵까지 이끌어낸 역사적인 촛불항쟁이 더불어민주당의 촛불성과 독식과 내로남불 등 실정으로 어떻게 철저하게 배신당했는가를 모두 생생하게 체험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국민들은 촛불 무용론’ ‘촛불 허무주의에 빠져 있다. 사실 많은 국민들은 윤 대통령이 잘못하면 할수록, 윤 대통령보다도 추미애 등의 헛발질로 일개 검사를 한순간에 대통령으로 만들어주고 5년 전 탄핵당했던 국민의힘에 정권을 내준 민주당에 더 화가 날 뿐이다. 촛불도 대안이 아니고, 마땅한 해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남은 긴 임기를 생각하니, 답답하기만 하다. 어떻게 해서든, 윤 대통령을 부정적이 아니라 긍정적인 스타일로 바꿔야 한다. 못 그럴 바엔, 소극적으로라도 만들어 큰 사고라도 못 치게 해야 한다. 누가 무소의 뿔에 브레이크를 달 것인가?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정치학 경향 2022.10.25.

 

 

검사들이 다스리는 대한민국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독재 시절 검찰의 위상은 초라했다. 경찰, 중앙정보부, 보안사보다 힘이 없었다. 정권 내부의 법률 서비스 기관 비슷했다. 정권이 저지른 불법을 합법으로 포장해주는 역할도 했다.

 

1987년 시민혁명으로 6공화국이 들어서자 검찰에 기회가 왔다. 노태우 대통령은 대구·경북 출신 검사들을 발탁했다. 정해창 비서실장, 서동권 안기부장이 탄생했다. 검찰은 1989년 공안정국, 1990년 범죄와의 전쟁을 거치며 다른 권력 기관들을 밀어내고 앞으로 나섰다. 강력부를 신설해 마약과 조직폭력을 직접 수사했다. 민생 침해 사범을 척결한다는 명분으로 경찰이나 행정부 영역까지 침범했다. 검사실에 물가안정 저해 사범 신고센터를 뒀다. 자녀 안심하고 학교 보내기 운동을 벌였다.

 

무리한 수사로 물의를 빚기도 했다. 공업용 우지를 식품에 사용했다는 이유로 라면 회사 사장들을 무더기로 구속했다가 망신을 당했다. 김영삼 정부 때부터는 지난 정권을 때려잡는 데 앞장섰다.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을 구속했다. 외환위기를 초래한 정책 당국자들을 수사했다. ‘정권의 시녀’, ‘정권의 사냥개라는 비난을 들으며 궂은일을 마다치 않았다.

 

그러나 이때부터 검찰은 정치권력과 힘겨루기를 시작했다. 대통령의 아들들을 구속했다. “정권은 유한하고 검찰은 무한하다는 건배사가 나왔다. 노무현 대통령과 맞짱을 떴다.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 때는 다시 정권의 사냥개로 돌아간 것 같았다. 아니었다.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을 잡아넣은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아니었다. 검찰이었다.

 

1987년 이후 벌어진 권력 쟁투에서 최후의 승자는 여당도 아니고 야당도 아니었다. 검찰이었다. 괴물로 자란 검찰이 정권을 집어삼켰다. 윤석열 대통령의 존재 자체가 그 증거다. 윤석열 정부의 검찰이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을 수사해 서욱 전 국방부 장관, 김홍희 전 해양경찰청장을 구속했다. 수사의 칼날은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 문재인 전 대통령으로 향할 것이다. 북한 어민 북송 사건 수사도 세게 밀어붙일 것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측근들에 대한 수사는 조금 더 지켜봐야 실체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돈이 오간 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이재명 대표가 받은 대선자금인지는 불분명하다. 대선자금이라면 이재명 대표가 책임져야 한다.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과 북한 어민 북송 사건 수사는 과거 공안부 검사들이 하던 수사다. 이재명 대표와 측근들에 대한 수사는 과거 특수부 검사들이 하던 수사다. 공안과 특수는 오래전부터 정치 검찰의 두 축이었다. 그래서일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검사들이 다스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윤석열 검사, 한동훈 검사, 윤석열 사단 검사들이 통치자들이다.

 

이런 구조에서는 검찰이 무엇을 해도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 야당 수사는 야당 탄압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여당 수사는 물타기나 정계개편을 위한 정지 작업이라고 의심받을 것이다. 김건희 여사나 대통령실 참모들 수사는 제대로 할 리가 없다. 칼을 쥔 사람이 자기를 베는 것은 불가능하다. 검찰 통치 현상은 계속될 것이다.

 

한가지 이상한 게 있다. 형사처벌이 필요하면 불구속 기소로 충분하다. 고위 공직자들을 지금 검찰의 직권남용 법리로 구속하면 모든 정부 모든 고위 공직자들이 다 구속 대상이다. 윤석열 정부 장관들은 물론이고 재임 기간에 공소시효가 정지된 윤석열 대통령도 피해 갈 수 없다. 그런데도 검찰은 계속 밀어붙인다. 왜 그럴까?

 

본능인 것 같다. 사냥개의 본능은 사냥감의 목줄을 물어 숨통을 끊는 것이다. 사람들 사이에 풀어놓으면 위험하다. 목줄과 입마개로 통제해야 한다. 지금 검찰은 누가 통제하는 것일까? 아무도 안 하는 것 같다. 결국 윤석열 대통령이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치인이다. 사정이 아니라 국정의 최종 책임자다. 국정은 법률과 예산으로 하는 것이다. 법률과 예산은 국회의 권한이다. 25일 국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내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한다. 지난 5월 임시국회 추가경정예산안 시정연설에서는 법률안, 예산안뿐 아니라 국정의 주요 사안에 관해 의회 지도자와 의원 여러분과 긴밀하게 논의하겠다고 했다. 거짓말이었다.

 

이번에는 뭐라고 할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검사 윤석열이 아니라 정치인 윤석열, 대통령 윤석열이다.

성한용 | 정치부 선임기자 한겨레 2022.10.25.

 

 

21세기 마르크스시진핑이 예고한 3가지 미래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1세기 황제로 등극했다. 중국 차기 최고지도부 상무위원 7명 모두가 시 주석에 충성하는 심복들로 채워졌다. 중국공산당 내에서 시 주석의 결정에 비판적 의견을 내놓을 수 있는 인물들은 모두 밀려났다. 시 주석의 종신집권을 견제할 제도와 세력도 사라졌다.

 

시진핑 주석의 결정에 따라 일사불란 움직이게 될 중국은 어떤 길로 향하게 될까. 시 주석은 지난 16일 중국공산당 20차 당대회 업무보고 연설에서 중국이 가야 할 새 방향을 공개했는데, ‘중국식 현대화와 마르크스주의, 안보 불안을 3개의 열쇳말로 꼽을 수 있다.

시 주석은 중국식 현대화를 실현하겠다며 중국공산당이 이끄는 사회주의 현대화이며, 자국 상황에 맞는 중국특색에 기초한다고 정의했다. 중국의 거대한 인구 규모에 맞게, 공동부유, 전과정 민주주의, 인류운명공동체 등을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중국의 한 외교 소식통은 중국은 기존에 서구가 제시한 민주와 인권, 자유의 기준을 따르지 않을 것이고, (북한, 러시아 등) 중국과 제도가 맞는 국가들을 모아 중국 중심의 진영을 만들고, 중국식 발전 모델을 외부에 확산시키겠다는 뜻이 담겼다고 설명했다.

중국 통치이념과 전략을 만들어온 이데올로그인 왕후닝이 시진핑 3연임에 맞춰 내놓은 것으로 알려진 이 개념은 중국이 미국 주도 국제질서에 본격적으로 대항하겠다는 도전장으로 볼 수 있다.

 

중국을 이끌 이념으로 마르크스주의 중국화, 시대화가 강조되었다. 최근 중국공산당 문서에서 시 주석을 위대한 마르크스주의 정치가, 사상가, 전략가로 호칭하는 것과 연결되어 있다. ‘21세기 마르크스인 시 주석은 마오쩌둥을 뛰어넘는 위대한 지도자라는 함의가 담겨 있다.

한편으로, 중국이 빅테이터와 인공지능을 통해 사회주의를 실현해 빈부격차를 줄이고 공동부유를 실현하겠다는 공약으로도 볼 수 있다. 20세기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실패는 정부가 현실을 제대로 파악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인데, 이제 중국공산당은 첨단기술을 이용해 개개인의 경제·금융 정보를 빠짐 없이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사회주의를 실현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현실에서는 국유기업 중심의 국가자본주의의 강화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시진핑 주석은 5년 전 19차 당대회에서 54번 언급했던 안보를 이번에는 91번이나 언급했다. 그만큼 안보 불안이 크기도 하고, 불안을 강조할 정치적 필요도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중국 견제 공세가 강할 뿐 아니라 특히 미국과 동맹들이 러시아에 대해 예상보다 강력한 제재를 하는 것을 보면서 중국의 불안감이 커졌다. 한편으로 이 불안한 상황에서 시진핑 주석을 중심으로 완전히 단결해야만 미국을 넘어서 승리할 수 있고 대만 통일도 완수할 수 있다는 주장이 시진핑 주석의 장기집권을 떠받치는 핵심 공약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중국 외교 소식통은 지금 중국인 대부분은 대만 통일은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고, 시진핑 주석은 마오쩌둥도 넘어서는 위대한 지도자로 남고 싶어하기 때문에, 대만 통일을 반드시 추진할 것이라고 했다. 시 주석이 당대회에서 무력통일 방안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은 홍콩(시위 강경진압과 국가보안법) 사태 이후 대만을 설득할 일국양제 통일 가능성은 사라졌고, 사실상 무력통일 방안만 남았기 때문이라고 그는 말했다.

시 주석이 당분간은 제재에 대비한 첨단기술, 식량, 에너지의 자급자족을 최대한 추진할 것이고, 이 준비가 끝나고 외부환경이 중국에 유리하다고 판단될 때 대만 통일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중국의 이런 원대한 계획들이 외부환경에 대한 냉철한 판단보다는 내부의 정치적 불안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를 실현하려는 과정에서 무리수가 거듭될 수 있다. 2010년 이후 중국 성장률이 둔화되고 불평등은 위태로울 정도로 악화되자, 중국공산당 지도부는 아래로부터 시민들의 변화 요구가 분출하고 여기에 외부 세력이 개입해 공산당 권력이 무너질 수 있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이 문제의 해결사로 나선 시진핑 주석의 권력 집중과 공포정치, 첨단기술 감시와 애국주의 선동이 중국을 외부 세계와의 투쟁의 길로 이끌고 왔다.

 

한중수교 이후 30년간 한국이 익숙하게 여겼던 그 중국은 이제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한중관계의 두 기둥이었던 긴밀한 경제관계와 북핵 해결을 위한 협력이란 전제도 크게 흔들리고 있다. 미국발 디커플링뿐 아니라, 첨단기술 자립을 강조하는 중국발 디커플링도 빨라지면서 거대한 격랑이 닥쳐오고 있다. ‘--진영화를 시도하는 중국은 북한이 7차 핵실험을 해도 유엔 안보리 추가 제재에 동의할 가능성이 낮다. 한편으로, 중국이 외교 고립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국, 독일 등과의 관계를 중시하고 있으므로, 정부는 위기를 막고 협력을 유지할 외교의 공간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무엇보다 중국의 변화를 정확하게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중국이 하루아침에 지금의 상황이 된 것이 아니다. 노동운동가들, 위구르인들, 홍콩인들의 고통이 커지는 것은 중국의 내정이니 눈을 감자고 하는 동안 중국은 이렇게 변했다. 이제 눈을 크게 떠야 할 때다.

박민희 논설위원 한겨레 2022.10.25.

 

검찰은 엄격한 법의 잣대를 자신에게도 적용하는가

법조출입 기자로서 수사·재판 결과를 함부로 예단하는 것만큼 무망한 짓은 없지만, 가끔 예상과 전혀 다른 결과에 놀랄 때가 있다. 얼마 전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서해 사건)으로 서욱 전 국방부 장관의 구속영장이 발부된 것이 대표적이다. 명예를 생명처럼 여기는 군 장성 출신 전 정권 장관이 도주 우려등을 이유로 구속되는 일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서 전 장관은 20209월 당시 군사정보통합처리체계(밈스·MIMS)에 기록된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대준씨 피살 사건 관련 보고서 60건을 삭제하라고 지시한 혐의를 받는다. 또 이씨의 월북 가능성이 크다는 취지로 합동참모본부 보고서를 쓰도록 했다는 혐의도 받고 있다.

 

민주주의의 보루라는 사법부 판단을 두고 정당성 여부를 따지기는 쉽지 않다. 법치주의의 원칙이 우리 사회 작동 원리라면, 그저 거쳐가야 할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남은 검찰 수사와 이어질 재판 과정에서 적용된 혐의 입증 정도와 유무죄를 가리면 족할 일이다. 다만 정교하고 세밀한 법논리의 잣대로 전 정권의 통일·외교·안보영역까지 마구 헤집는 것이 바람직한지는 좀 더 생각해볼 문제다.

 

이씨가 실종된 당시 우리 정보당국은 단편적인 정보들을 통해 관할권 밖인 북방한계선(NLL) 이북 해역에서 벌어진 사태를 파악하느라 혼란을 겪었을 것이다. 그 과정에 벌어진 오류를 일일이 따져 단죄하는 일이 바람직한지 의문이다. 존재 자체가 기밀인 에스아이(SI·특별취급정보) 첩보의 전파·공유를 막기 위해 내부망에서 삭제한 행위가 직권남용이라는 설명에는, 검찰 출신 법조인 가운데도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들이 많다.

 

절제된 검찰권 행사가 이뤄지고 있는지도 살펴야 한다. 서 전 장관과 함께 구속된 김홍희 전 해양경찰청장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검찰은 해경 관계자만 30명 넘게 조사했다고 한다. 월북 판단이 이뤄진 지시 경로와 책임 소재를 주로 따졌을 텐데, 이들이 다시 한 기관에서 유기적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 있을까. 합참 보고서 조작 의혹을 받는 서 전 장관이 구속된 이상, 그의 지시로 조작을 실행한 군 장교들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도 이어질 공산이 크다. 수사팀 주변에서는 애초부터 군검찰은 왜 안 움직이느냐는 볼멘소리가 많았다고 한다. 북한의 군사도발 수위가 날로 높아지는 가운데, 안보자산을 너무 소홀히 여긴 것은 아닌지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이원석 검찰총장은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검찰은 4·3사건과 권위주의 정권 시대 국민을 간첩으로 몰아 처벌한 것 등에 대해 재심으로 바로잡고 있다. 서해 사건의 경우 공무원이었던 이대준씨가 월북한 것으로 됐다. 월북이라면 북한으로 경계를 넘어가는 순간 국가보안법의 탈출죄에 해당된다. 간첩죄에 해당될지도 모른다.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지켜주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 그렇게 단정적으로 (월북이라 판단) 하는 것은 유족들이나 우리 국민에게 굉장히 큰 상처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권위주의 시대 용공 조작에 빗대어, 서해 사건 역시 중대한 국가폭력이라고 강조한 셈이다.

 

그런데 검찰은 앞서 2014년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씨를 간첩으로 몰기 위해 증거를 조작한 국가정보원 대공수사팀 요원들에게 국가보안법의 무고·날조 혐의 대신 형량이 낮은 형법 조항을 적용한 바 있다. 조작된 증거를 활용해 유씨의 간첩 혐의를 입증하려 한 이시원 전 검사 등은 징계를 받는 선에서 사건이 마무리됐다. 이 전 검사는 지금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으로 일하고 있다. ‘간첩조작 사건이 벌어진 뒤 유우성씨의 묵은 혐의(외국환거래법 위반)를 끄집어내 보복 기소했다가 공소권 남용판결까지 받았던 이두봉 전 대전고검장은 윤석열 정부 첫 검찰총장 후보군으로 추천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따져보고 싶은 점이다. 검찰은 그런 엄격한 법의 잣대를 자신에게 적용하고 있다 자신할 수 있는가.

노현웅 | 법조팀장 한겨레 2022.10.25.

 

 

시민-시인의 탄생

지옥이란 경이(驚異)를 잃어버린 우리에게 익숙한 모든 것. 경이로움이 내 안에서 죽었을 때, 권력(욕망)이 태어났다.” 아일랜드 시인 브렌던 케널리가 한 이 말을 요즘 자주 생각한다.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 등 소위 3() 시대를 맞아 도무지 재미있는 일이라곤 하나도 없는 세상에서 그래도 나날의 삶에서 재미를 추구하고 사는 게 나 같은 보통 시민들이 바라는 소박한 염원이기 때문이다.

 

시민들이 바라는 사는 재미란 특별한 것이 아니다. 소소하고 사소한 것들이다. 친구와 시시껄렁한 대화를 나누고, 연인과 아름다운 추억을 쌓아가고, 가까운 벗들과 불금이면 우정의 술잔을 나누는 것 같은 사소한 행위들이다. 얼마 전 내가 사는 동네에서 시인 박준과 가수 김필의 공연 <가 된 노래, 김필을 만나다>(양천문화회관)직관한 것은 소소한 행복이었다. 야구팬이라면 포스트시즌을 맞이한 야구 경기를 관람하는 재미 또한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사소한 일상은 나와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이라는 커뮤니티가 안전하고 안심할 수 있는 세상이라는 점을 우리가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을 때 배가된다. 내가 지금 누리는 이 작은 행복과 기쁨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는 일은 누구도 바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삶터와 대한민국이라는 커뮤니티가 재미있는 문화사회가 되어야 한다. 백범 김구 선생이 말한 높은 문화의 힘이란 결코 먼 이상이 아니다. 그러려면 지역 곳곳에서 크고 작은 축제들이 자주 열려야 한다. 축제는 나와 당신을 하나로 묶어주는 중요한 의례(ritual)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앙정부·지방정부 교체 이후 일부 축제들이 대폭 축소되는가 하면, 진행되는 축제마저 파행을 겪는 현상은 무엇을 말하는가. 3고 시대를 맞아 문화예산은 1순위로 삭감되었다. 하지만 이른바 K컬처는 하루아침에 나오지 않았다. 우리 삶에 축적된 문화의 힘에서 나왔다.

 

일상에서 경이로움을 발견할 줄 아는 감각을 회복해야 한다. 그래야 인생을 사는 맛이 난다. 그러려면 어릴 때 잘 놀 줄 알아야 한다. 제대로 놀 줄 몰랐던 아이가 어른이 되어 재미없는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 아닌가 의심하게 된다. 고실업 시대에 소리 없는 외로움이 갈수록 확산되고, 기후위기 시대에도 불구하고 나 죽은 뒤에 홍수가 나든 말든이라는 극단적인 이기심이 지배하는 사회는 진짜 노답이다. 인도 사상가 사티시 쿠마르의 말처럼 그대가 있어 내가 있다라는 감각을 회복해야 한다. 그런 힘은 문화와 예술에서 찾을 수 있다.

 

최근 수원 시민 113명이 시민-시인이 되어 시집을 펴냈다. 수원문화도시센터가 10월 인문주간을 맞아 시민-시인들의 시집 <나풀거리는 찬란한 것들>을 출간한 것이다. 어느 중학생이 쓴 내 주변엔 맛있는 팝콘 천진데// 그런데/ 왜 나는 항상 탄 옥수수일까”(‘사랑’)라고 쓴 연애시를 읽고 한참을 웃었다. 누군가를 웃게 하는 행위야말로 사람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이 가을, 당신은 누군가를 웃음 짓게 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나풀거리는 일상에서 찬란한 것들을 발견할 줄 아는 경이로움의 감각을 우리 모두 회복하자. 우리는 모두 시인(예술가)으로 태어난다.

고영직 문학평론가 경향 2022.10.27.

 

 

지지자만 바라보는 캠페인 정당

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보수 정치.’

영국 보수당은 전 세계 보수 정당들의 롤모델이었다. 국내에서도 20186·13 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이 대패하자 ‘300살 영국 보수당의 비결을 배우라는 분석기사까지 나올 정도였다. 보수당은 그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2019년 열린 영국 총선에서도 대승을 거두며 승승장구했다.

 

그런 보수당이 전 세계의 근심거리가 될 줄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지난 9월 취임한 리즈 트러스 전 총리는 경제 전문가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글로벌 경제 상황에 역행하는 섣부른 감세안을 발표했다. 그 여파는 영국을 넘어 세계 금융시장을 최악의 혼돈에 빠뜨렸다. 파운드화는 곤두박질쳤고, 영국은 시장의 신뢰를 잃었다. 취임 6주 만에 떠밀리듯 사퇴한 트러스는 보수당 내에서조차 양상추보다 수명이 짧은 총리라는 조롱거리가 됐다.

 

그러나 현재 영국과 보수당이 처한 이 모든 굴욕적인 상황들이 과연 이게 다 트러스 때문이란 한마디로 정리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트러스는 보수당 위기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일 뿐이다. 보수당은 선거에는 능하지만 정부 운영에는 취약한 시스템을 가진, ‘캠페인 정당으로 전락하고 있다. 도대체 애초에 대규모 감세안이라는 비상식적인 공약을 내건 트러스가 어떻게 총리가 될 수 있었던 것일까.

 

보수당은 1997년 토니 블레어가 이끌던 노동당에 패해 18년 만에 정권을 뺏기자 이전까지 의원들 간 투표로 정해왔던 당대표 선출 방식을 바꿨다. 당비를 내는 권리당원들에게 최종 후보 두 명 중 한 명을 선택할 수 있는 결정권을 준 것이다. 당에 대한 충성도와 결집력을 높이기 위한 일종의 쇄신책이었다. 당원들의 정치 참여를 높이기 위함이니 긍정적인 측면도 있었다.

 

이 같은 방식은 보수당이 야당일 때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집권당이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영국은 집권당 대표가 곧 총리가 되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2016년 브렉시트 이후 영국은 불과 6년 만에 총리가 4번이나 바뀌었다. 이 중 보수당 대표로서 총선을 치르고 총리가 된 사람은 아무도 없다. 테리사 메이, 보리스 존슨, 트러스, 그 뒤를 잇게 된 리시 수낵까지 모두 전임 총리의 중도 사퇴로 보수당 내부 경선에 의해 당대표가 된 후 자동적으로 총리가 된 사람들이다(다만 존슨은 20197월 총리가 되고 나서 그해 12월 조기 총선을 실시한 후 재집권했다).

 

그나마 메이는 결선에 함께 오른 상대 후보가 메이의 성공을 바란다며 지지 선언을 해준 덕분에 결선을 치르지 않고 단독 후보로 총리가 될 수 있었다. 선출직 의원들에 의해 간선제로 뽑힌 총리는 대의제의 명분에 그래도 최소한은 부합한다. 문제는 존슨과 트러스처럼 20만명도 안 되는 보수당 권리당원들의 결선투표로 총리가 결정되는 경우다.

 

보수당 권리당원들의 면면은 영국 국민 평균과 크게 동떨어져 있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보수당원들의 44%65세 이상이다. 97%는 백인이며, 대부분 잉글랜드 남부 지역에 거주하는 남성들이다. 또 보수당원들은 다른 정당의 당원들보다 영국의 여행보험사인 사가를 이용하는 비율이 최소 2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풍족한 여생을 즐기고 있는 중산층 은퇴자들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이들이 바로 트러스를 총리로 뽑은 사람들이다. 이들의 표심을 얻기 위해 트러스뿐 아니라 보수당 경선 당시 후보로 나선 의원들은 모두 경쟁적으로 감세 공약을 내걸었다. 감세가 인플레이션을 해소할 수 있다는 경쟁 후보들의 주장을 동화 같은 얘기라고 유일하게 비판했던 수낵조차 보수당원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낮게 나오자 막판 결선투표를 앞두고는 한때 감세로 돌아선 바 있다.

 

이렇게 한 줌의 보수당 권리당원들에 의해 선출된 트러스에게는 막강한 권력이 주어졌다. 영국의 총리는 국회 인사청문회 같은 견제장치 없이 마음대로 장관을 임명할 수 있다. 트러스는 감세 정책을 밀어붙이기 위해 실력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자신의 정치적 동맹인 쿼지 콰텡을 재무장관 자리에 앉혔다. 콰텡 역시 영국 역사상 최단기 재무장관이라는 오명을 얻고 경질됐다.

 

트러스 사퇴 이후 감세안 후폭풍을 수습하기 위해 구원투수로 나선 수낵 총리와 제러미 헌트 재무장관이 각각 트러스·존슨과 당대표 결선투표에서 맞붙었다가 당원들의 선택을 받지 못해 패배했던 사람들이라는 것은 참 공교롭다. 결국 현재 영국과 보수당이 처한 위기는 지지자만 쳐다보고 가는 정권이 어떤 헛발질까지 하게 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적나라한 사례다. 300살 영국 보수당에서 지금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이다

정유진 국제에디터 경향 2022.10.27.

 

정치를 배회하는 유령, '촛불''태극기'

극단의 정치가 대한민국을 압살하고 있다

'촛불''태극기'. 한국정치의 극단적 진영정치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단어다. 2002년 중학생들이 미군 장갑차에 깔려 죽은 이후 미군에 항의하는 국민의 외침이 촛불로 나타났고, 2008년 미국산 쇠고기 파동으로 촛불은 국민대중이 권력에 저항하는 운동의 에너지로 자리 잡았다. 촛불은 2016년 가을부터 2017년 초 박근혜 탄핵 과정에서 국민주권주의의 강력하고도 실질적인 기표로 작동했다.

 

2019'조국 사태' 때 조국을 지지하고 검찰개혁을 주장하는 이들이 촛불을 들고 나왔지만 이전의 촛불들과 달리 진영을 배경에 드리우기 시작했고, 이의 대척에 위치한 또 다른 진영과의 충돌이 시작됐다. 촛불은 여전히 진영에 속한 지지자들을 응집하는 강력한 매개체였지만 이미 과거의 촛불이 아니었다. 조국 일가의 혐의와는 무관하게 조국을 비호하는 반지성이 촛불로 미화된 면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태극기는 박근혜 탄핵 과정에서 이를 반대하는 진영의 대표적 상징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태극기 부대'로 불리는 이들은 민주화 세력에 운동권, 주사파, 좌파 등의 이념적 굴레를 씌우고 매도함으로써 자신들 진영 단일대오의 동력으로 타 진영을 압살하고자 과격한 구호들을 동원했다.

 

촛불과 태극기는 2019년에 분화했다. 조국은 싫지만 당시 현직 대통령인 문재인을 구속하라는 구호에는 동의할 수 없는 세력, 박근혜를 석방하라는 주장에 동참할 수 없는 이들은 조국을 강력히 규탄하는 마음에 태극기 집회에 동참해도 태극기 본류와는 결을 달리하는 세력이다. 검찰개혁이란 명분으로 조국을 옹호하는 자들을 비난하는 태극기 집회를 '비판적'으로 지지한 것이다.

 

촛불 역시 마찬가지다. 박근혜 탄핵에 찬성해 2016년 촛불 집회에 동참했으나, 조국을 수호하자는 촛불에는 뜻을 같이 할 수 없는 사람들은 2019년 서초동 촛불에 동참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촛불과 태극기는 뒤틀리고 왜곡된 진보와 보수의 한국적 상황을 극적으로 표현하는 매개로 자리잡았다. 정치는 이를 지지층 결집과 상대를 압도하려는 동력의 원천으로 차용한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진보를 표방한 이들은 더불어민주당 일부 의원들과 함께 윤석열 퇴진과 탄핵을 촛불이라는 이름으로 의제화하기 시작했다. 윤석열 정부가 지난 정권에 대한 수사를 다양한 영역에서 진행하면서 파열음은 거세지고 여야의 충돌은 한 치의 접점도 없이 강대강 구도로 치닫고 있다.

 

특히 민주당 이재명 대표 수사를 둘러싸고 촛불과 태극기는 격렬하게 충돌하기 시작했다. 언론 표현에 의하면 보수 진보의 '맞불' 집회다. 그러나 이는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이들은 보수와 진보로 위장한 극단세력일 뿐이다. 문재인을 구속 수사하라는 이른바 '보수' 집회나 윤석열 퇴진과 탄핵을 외치는 '진보' 집회에서 지성과 성찰, 객관을 보려는 진정성을 발견할 수 없다.

 

산업화와 민주화 과정에서 생성된 반공 이데올로기, 좌파 운동권, 종북 주사파, 수구 꼴통 등의 색깔론은 상대를 낙인찍으려는 음습한 정치공학을 전제한다. 군사문화와 권위주의 정치가 사라진 지금도 이들은 여전히 한국정치를 규정하고 있는 지배적 변수들이다.

 

우리 주변을 유령처럼 배회하는 퇴행적 프레임을 없애지 않는 한 우리정치는 한 발자국도 전진할 수 없다. 이의 책임은 전적으로 정치에 있다. 정치가 제 기능을 완전히 상실한 상황에서 19세기적 이념의 틀을 깨기 위한 어떠한 협상도 절충도 없는 여야의 행태는 이미 정치를 스스로 포기한 정상배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들에게는 눈앞의 공천, 상대를 압살하려는 조선 중기 이후의 살육의 정치를 떠올리게 하는 음모만이 존재할 뿐이다.

 

극단이 충돌함으로써 진실을 규명하고자 하는 노력은 실종됐다. 검찰수사는 현 정권이 지난 정권을 보복하기 위한 사정의 도구로만 매도되고, 검찰수사의 공정성을 논리와 보편의 잣대로 따져보려는 노력은 찾아볼 수 없다. 촛불은 맹목적으로 이재명의 정당성과 윤석열 탄핵을 주장하고, 태극기는 서슴없이 좌파를 종북 주사파로 공격한다. 여야는 이에 편승해 지지층 결집과 프레임 전환이라는 진부한 전략만 구사하기 바쁘다. 정치가 존재하지 않는 반정치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 | ㅍ레시안 2022.10.28.

 

 

산이 남긴 것

이른 봄에 떠났던 기러기들이 우리 마을 지산리에 다시 돌아왔다. 들녘은 추수가 끝나가고, 마을 정미소들은 바빠졌다. 긴 여정에 지쳐 강화해협인 염하강 갯벌에서 몸을 푼 기러기들은 추수가 끝난 들녘을 찾아 날아올 터이다. 아침저녁 차가워진 바람결에 이파리를 흔들며 기러기들을 홀로 맞이했을 나무들은 이제 몸을 키우는 동작을 멈추었다. 봄여름에 일찌감치 만들어놓은 잎눈과 꽃눈을 꽁꽁 감싼 채 새봄을 기다릴 것이다. 제 몫의 일을 마친 이파리들은 자신을 떨굴 준비를 서두른다, 찬란하게. 그 찬란함은 북쪽의 어느 높은 산 깊은 골짝으로부터 시작해 산등성이 숲들을 타고 남쪽 끝까지 불 일듯 번져갈 것이다

 

나에게는 아버지의 산이 있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언니 오빠들을 데리고 주말이면 오르곤 했다는 산. 철이 든 뒤에는 주말마다 아버지의 뒤를 따라 내가 올랐던 산. 골골이 아버지의 음성과 웃음과 손짓이 남아 있는 산. 오르막길 숲 바람 속에 아버지의 거친 호흡과 희열과 땀내음이 배어 있는 산. 식민지 시대에 태어나 기나긴 독재로 점철된 정권 뒤에 찾아온 민주주의를 잠시 맛보고 간 아버지의 역사가 돌부리마다 새겨져 있는 산.

 

주말 오후가 되면 아버지와 나는 시내버스에 몸을 실었다. 주어진 시간에 맞는 코스 출발지에 내려 무등산을 올랐다. 바람재나 세인봉, 아주 가끔은 장불재까지 오르거나 토끼재로 해서 동학사터 샛길을 걷곤 했다. 1187m라는 높이에 걸맞게 너른 품을 가진 무등산은 어느 길로 올라도 친절했다. 높고 큰 산이지만 가파르지 않고 푸근했다. 어쩌다 맘먹어야 오를 수 있는 산이 아니었다. 시내까지 내리뻗은 산등성이 때문에 동네 뒷산처럼 언제든 다가갈 수 있는 산이었다. 방학 때면 중봉이나 장불재를 거쳐 주상절리인 입석을 지나 서석대까지 올랐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서석대부터 인왕봉과 지왕봉, 그리고 정상 천왕봉까지는 오를 수 없었다. 출입이 금지됐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나에게 무등산 정상은 서석대였다. 천왕봉까지 오를 수 없다는 걸 한번도 억울해하거나 안타까워해 본 적이 없다. ‘?’라는 의문도 가져보지 않은 채 당연하게 여겼다. 무등산 정상에는 언제나 군부대가 있어야 했다. 군부대가 없는 천왕봉은 나에게 상상할 수 없는 풍경이었다.

 

1961, 광주시 소유인 무등산 정상부 부지를 공군이 무상으로 사용하면서 군부대 주둔을 위한 공사를 시작했다. 공사가 끝나자 1966년부터 방공포대가 주둔했다. 언제라도 자유롭게 오를 수 있는 천왕봉을 오를 수 없게 되었을 때 아버지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나처럼 당연한 것으로 여길 수는 없었을 터이다. 가을이면 억새 물결이 넘실대고 겨울이면 상고대 은세계가 펼쳐지던 정상이 부서지고 무너져 내리는 광경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버지가 그렇게 좋아하던 지왕봉 주상절리를 볼 수 없게 되었을 때, 분단 상황에서는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을까.

 

천왕봉 출입이 금지된 이후 연말이나 새해가 되면 언니 오빠들까지 동원되어 부대에 건넬 위문품을 배낭 가득 넣고 산을 올랐다. 위문품은 당시에는 비쌌던 설탕이거나 겨울양말이거나 간식거리 등이었다. 아버지가 부대장과 미리 전화로 이야기를 나눈 뒤 허가를 받고 준비한 것이었다. 군인 안내를 받아 세찬 겨울바람을 맞으며 민간인 출입금지 구역에 들어서면 아버지는 호흡을 고르며 천천히 걸었다. 지왕봉 주상절리 앞에 이르면 한참을 서서 육각형의 단호하고 꼿꼿한 바위들을 묵묵히 올려다보았다. 한없이 푸근해 보이기만 한 무등산이 신념처럼 단단하고 한결같은 묵묵함을 지니고 있다는 걸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 구름 한점 없는 새파란 겨울 하늘은 쨍하고 깨질 듯 맑았다. 혹독한 추위와 칼바람에 바들바들 떨다가도 나는 눈앞에 펼쳐진 상고대에 넋을 잃었다. 도착한 부대 안은 따스한 온기로 가득했다. 난로 위 주전자에서는 물이 끓고 있었다. 위문품을 전달한 아버지는 부대장과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고, 어색한 분위기가 싫었던 나는 창가에 서서 얼음 옷을 입은 창밖의 빛나는 나무들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정상 출입이 통제되던 무등산이 출입통제 61년 만에, 방공포대가 주둔한 지 56년 만에 전면 개방을 서두르고 있다. 군부대 이전지만 확정되면 속도를 낼 수 있다고 한다. 반세기 훌쩍 넘는 세월 동안 군부대를 둘러싸고 있던 면도날 철조망도 걷힐 것이다. 제 땅에서 뽑혔던 나무와 꽃과 풀들의 씨도 고향을 찾아 날아들 것이다. 양평 용문산이나 대구 팔공산처럼 정상에 부대가 그대로 주둔하면서 출입이 개방되는 것과는 성격이 다르다. 방공포대의 이전을 전제한 개방이라는 점에서 무등산 정상 개방의 의미는 크다. 군의 안보 시스템이 첨단화·다각화되어 방공포대가 꼭 산 정상에 있을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스물두개 국립공원 가운데 정상에 군부대를 이고 있는 곳은 무등산뿐이었기에, 산 정상의 생태까지 복원한다고 하니 참으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에는 산봉우리에 군사기지나 군 통신시설이 들어선 산들이 참으로 많다. 강화도 고려산과 별립산, 파주 고령산, 감악산, 파평산, 의정부 천보산, 양평 용문산, 포천 국사봉, 연천 야월산, 군포 수리산, 수원 백운산, 인천 계양산 등과 동해안과 멀지 않은 태백 함백산과 영양 일월산 등을 비롯해, 과천 청계산, 춘천 대룡산, 대전 식장산, 대구 팔공산, 부산 해운대 장산 등 도시의 산들도 군사기지를 머리에 이고 있다. 어떤 산들은 정상 출입이 개방된 곳도 있고 어떤 산은 아직도 군 기지와 통신시설 등 보안시설 보호로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전방과 그 부근 산처럼 절대적으로 군대가 주둔해야만 하는 산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곳을 제외한 후방이라면 무등산이 방공포대 이전의 신호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남북 분단 아래서 우리는 국가안보를 이유로 권리와 자유를 알게 모르게 제약당하며 살고 있다. 도시의 산들에 방공포대가 들어선 196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철조망 설치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철조망은 군사분계선 인접 지역이 아닌 한강 하구를 비롯해 전국 해안과 강까지 뻗어 나갔다. 고양시와 김포시는 주민과 관광객의 접근을 가로막고 국토 경관만 훼손한다는 이유로 군과 협의를 거쳐 한강 하구 철조망을 단계적으로 제거해나가고 있다. 분단 상황이라는 이유만으로 반세기 넘게 당연하게 여겼던 시설들을 이제는 하나씩 뜯어내야 한다. 그것들이 제거된 땅을 걸으며 자유를 만끽하고 평화를 꿈꿀 수 있기를 바란다. 무등산 정상의 방공포대 이전과 한강 하구 등의 철조망 제거에서 나는 그 작은 씨가 꿈틀대며 움트는 걸 본다.

강맑실 | 사계절출판사 대표 한겨레 2022.10.28.

 

 

죽음 권하는 사회와 헌법상 생존권

또 안타까운 부고가 연이어 날아들었다. 대표적 제빵회사의 공장에서 근로자가 작업 중에 목숨을 잃는 일이 발생했다. 빵 만드는 곳에서 일하다가 참변을 당할 수 있으리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운용하지 않고 영리만을 추구하는 비인간적 기업경영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한편 모범적 탈북사례로 소개되기도 했던 여성이 오래전에 고독사한 채 발견되었다. 아직 정확한 사인규명이 필요하지만 목숨을 걸었던 탈북이 이런 죽음을 예견하고 이루어지지는 않았을 터이다. 만일 송파나 수원의 세 모녀 사례와 같이 생활고에 따른 죽음이라면 그동안 생사의 사각지대에 내몰린 동료시민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한 논의들이 얼마나 허망한 탁상공론에 지나지 않는지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가 될 것이다.

 

성공적으로 민주화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을 달성한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에서도 이처럼 안타까운 죽음이 우리 주변 너무 가까이에서 빈발하고 있다는 현실의 냉혹함을 일깨워주는 사례는 재해사나 생계곤란사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은 국가이다. 자살률은 인간의 존엄에 대한 사회적 위기를 추론할 수 있는 주요한 지표이다. 우리의 인구 10만명당 자살자 수는 2019년 기준 25.4명에 이르며, 이는 OECD 평균인 11.5명의 2배를 넘고, 다음 순위로 자살자 수가 15.4명인 헝가리와의 격차도 상당하다. 우리의 자살률이 2000년대 들어 가파르게 상승하였고 2000년에 비해 약 2배 증가한 수치라는 것은 이러한 추세가 현재진행형임을 시사한다.

 

감염병으로 인한 민생고는 물론 최근 전 세계적으로 악화된 경제상황의 여파가 사회적 취약계층에 더욱 강하게 미칠 것을 감안하면 죽음 권하는 사회의 불편한 실상에 대한 성찰이 시급히 요청된다.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헌법의 제일 첫머리 제1조 제1항에 선언된 이 명제는 민주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노랫말로 불릴 정도로 대중화되었다. 그러나 정작 민주공화국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나 이해는 얼마나 충분한가? 죽음 권하는 사회의 실상으로는 민주공화국임을 자부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헌법적 이해가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민주공화국은 흔히 군주국과 구별되어 국민이 주권을 가지는 정치체제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 주권의 소재만으로 민주공화국을 이해하는 건 명목상이나마 주권을 인민에게 부여하는 인민공화국과의 구별도 모호하게 되는 한계를 지닌다. 결국 민주공화국은 전통적 의미 이상의 현대적 의미를 가진 것으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

 

사실 우리 헌법은 제헌헌법 이래로 민주공화국의 현대적 의미를 충실히 구현하고 있다. 바로 민주복지국가의 이념이다. 민주공화국이 민주복지국가가 되려면 명목상으로만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고 선언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주권이란 국가의사를 최종적으로 확정하는 권위를 가지는 권력인 만큼 필요할 때만 말끝마다 국민을 들먹일 것이기만 할 것이 아니라 국민이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충분한 참여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제도와 문화를 만들어 내어야 한다.

 

국민의 참여권 보장이라는 민주공화국의 현대적 의의, 즉 민주복지국가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혼자만의 힘으로는 참여권을 향유하기가 쉽지 않은 사회적 약자들의 삶을 박애와 연대정신에 따라 보듬어 주어야 한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이러한 사회적 연대의 책임은 국가나 사회가 사회적 약자를 불쌍히 여겨서 베푸는 단순한 도덕적 시혜가 아니라 민주공화국이기 위해 국가가 실질적으로 이행해야 할 기본책무라는 점이다.

 

민주공화국이라면 주권자 국민이 온전히 그 헌법적 지위를 누릴 수 있도록 기본적 생존권을 위한 사회보장과 복지를 보장해 주어야 할 적극적 책무를 가지며, 주권자 국민은 그러한 국가의 책무의 적극적 이행을 당당히 요구할 수 있는 헌법적 권리를 가진다.

 

민주공화국은 국민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실현하기 위한 공동체이며, 우리 헌법은 인간의 존엄에 부합하는 근로조건에 맞게 근로할 권리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와 같은 다양한 생존권을 명문의 기본적 인권으로 보장하는 것으로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을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있다. 헌법상 생존권을 충실히 보장하는 입법과 실천에 매진하여 죽음 권하는 사회의 오명을 하루빨리 떨쳐 버릴 수 있는 그날을 고대해 본다.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경향 2022.10.28

 

이태원 참사, 신중한 규명 필요

우리 사회는 세월호 참사 이후 8년 만에 또다시 수많은 때 이른 죽음들을 목격하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망자의 숫자는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59, 146, 151. 이태원 참사 소식이 전해지면서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먼저 떠올랐고, 그 뒤를 이어 유가족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세월호 참사, 대구지하철 참사, 산재 유가족들의 얼굴들. 대구지하철 참사 유가족들은 세월호 참사 소식을 들으며 오래전 자신이 겪은 참사의 고통이 생생하게 되살아나 숨을 쉴 수가 없었다고 했다

 

기이하게도 끔찍한 재난일수록 피해자들에 대한 악의적인 말들이 튀어나온다. 놀러갔다가 죽었다는 말이 무심코 던져지는 사회에서는 일하다 죽었다는 말도 무겁게 다뤄지지 않는다. 생존자는 살아 돌아왔다는 이유로 죄인이 되기도 하고, 구조 과정에서 발생한 피해 역시 종종 무시된다. 세월호 참사 이후 만들어진 재난참사 피해자권리 매뉴얼에는 세월호 피해자들, 유가족들이 사회의 무심한 말들을 겪어낸 상처들이 곳곳에 배어 있다. “사회는 각자가 처한 고통을 충분히 듣고 헤아리기보다, 자의적으로 고통의 크기를 재단하고 재난 피해자의 자격을 묻는다.” 피해자들에 대한 권리는 신속한 사고 수습 과정에서 종종 누락된다.

 

안타까운 사고지만, 누구의 잘못이나 책임도 아니라고 섣부르게 판단하지 말자. 우연히 넘어져 압사되었을 뿐이라고 사고를 납작하게 말하지 말자. 언론은 무책임한 세월호 참사 당시의 보도 행태와는 다른 정확하고 신중한 태도로 사고 원인과 구조 과정, 그리고 수습 과정의 문제를 깊이 있게 다뤄야 한다.

 

2016년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은 영국의 힐즈버러 참사 유가족들을 만났다. ‘힐즈버러 축구장 압사 사건1989415일 발생했다. 영국 축구협회컵 준결승전이 힐즈버러 축구장에서 열린 날 96명이 사망하고 766명이 부상을 입었다. 경찰은 신속하게술 취한 리버풀 팬 폭도 5000명이 경기장에 난입해 벌어진 사고라고 규정했다. 사고가 발생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사고조사보고서가 이례적으로 신속하게나왔다. 유족들은 자신의 아이들을 술 취한 폭도로 규정한 조사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망자의 40%38명은 10대였다. 그로부터 희생자들의 폭도 누명을 벗기는 데 27년이라는 긴 투쟁이 시작되었다. ‘독립조사위원회가 구성되어 재조사가 이뤄졌다. 사고 원인은 뒤집어졌다. 당시 축구장에 있던 경찰이 몰려드는 관중을 통제하지 않고 모든 출입구를 개방해 한꺼번에 대규모 인원이 들어오면서 압사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이태원 참사만큼은 신속한 사고 수습에 피해자의 권리가 뒤로 밀려나지 않아야 한다. 정확하고 신중한 진상규명의 결과가 유가족과 시민들에게 공개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피해자들이 직접 사고 조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유가족들의 눈물과 슬픔을 담보로, 희생에 희생을 덧대어 진상규명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나서서 재난참사에 대한 책임 있는 조사와 조치를 해야 한다. ‘세월호 이후의 참사다. 이번만큼은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너무나 많은 고통과 책임을 짊어지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전주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 경향 2022.10.31.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치킨 500개를 까야 한다. 난 죽었다.” 이틀 후에 남자친구와 부산에 놀러가기로 되어 있던 어느 20대 여성이 너무 힘들다고 남긴 메시지를 읽고 나서 나는 가슴이 너무 아팠다. 올해 돌아가신 아버님에게는 죄송한 얘기지만, 아버님의 장례식장에서도 나는 이렇게 가슴이 아프지 않았다. 상주로서 행정적 일들을 처리하는 데 정신이 없어서, 감정이 생길 겨를이 없었다. 그렇지만 빵을 만들다가 사망한 어느 여성의 얘기는 경제학자로 살아온 나의 감정선에 들어왔다. 이게 뭐란 말인가? 그 사망 현장에서 다음날도 빵을 만들었다는 사실도 놀랐고, 빵 만들다가 죽은 노동자에게 빵을 가져다준 어처구니없을 정도의 무신경함에도 놀랐다. ‘어이 상실이 아니라 예의 상실이다.

 

나는 우리 집 초등학교 두 어린이에게 어떤 누나가 빵을 만들다가 반죽기에 끼여 죽었다는 설명을 했고, 문제가 풀리기 전까지 포켓몬빵을 사줄 수 없는 이유와 파리바게뜨에 못 가는 얘기를 해주었다. 어린이들도 쉽게 동의했다. 그들에게 특별한 사교육을 시키는 것도 아니고, 내가 엄청난 권력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그들이 커서 어른이 되면 일터에서 꼬박 일해야 하는 노동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작업장 재해와 과로로부터 이 아이들을 내가 평생 지켜줄 수 있는 게 아니다. 이 죽음은 내 자녀의 미래 일이기도 하다.

 

그날 간만에 제빵기를 꺼내 식빵을 구웠다. 당분간 어린이들 간식으로 빵을 구울 생각이다. 그러면서 식빵 믹스를 보니까, 이건 또 CJ 제품이다. 여기도 독점, 저기도 독점, 대기업이 한국 경제를 가지고 논다는 생각을 지우기가 어려웠다. 자본주의가 원래 이런 것인가, 독점이라서 이런 것인가, 그 질문을 잠시 해봤다.

 

검사시대, 동반성장은 옛이야기

1914년 콜로라도 연료철강회사가 운영하는 광산에서 사택에서 쫓겨난 광산 노동자들이 가족과 함께 농성을 시작했다. 민병대와 주방위군이 이들에게 기관총 등 총기를 난사해 11명의 어린이가 죽었다. 사태가 격렬해지면서 결국 66명이 사망하게 되었고, 이것이 러들로 학살이다. 회사는 세계 최대의 석유 독점회사인 스탠더드 석유회사를 가지고 있던 록펠러 소유였다. 세계적으로 록펠러에게 맹비난이 쏟아졌다. 이 사건 이후 록펠러는 경영에서 손을 떼고, 록펠러 재단을 통한 공익 사업으로 전환한다. 자본주의가 야만스럽고도 잔인하던 시기였다. 스탠더드 석유회사를 비롯해 AT&T와 마이크로소프트 등 법원으로부터 독점 판결을 받고 회사를 분리한 사례가 이어진다.

 

‘SPC 사건은 우리나라 경제계 전반에 걸친 안전의식 부재와 독점자본에 대한 제어 실패라는 두 가지가 동시에 작용하는 사건이다. 일하다 죽는 건 그만하자는 얘기가 지난 몇 년 동안 있었지만, 지하철과 석탄발전소 그리고 이제는 빵공장까지, 영역을 가리지 않고 계속해서 사망한다. 20192020, 20202062명 그리고 2021년에는 2080명이다. 2018년에 2000명을 넘어선 이후로 계속 그 수준에 머물고 있다. 너무 많이 죽는다.

 

라면이나 우유를 비롯해 그간 비정규직 처우나 품질 문제 등으로 계속해서 소비자 운동이 있었고, 경쟁이 어느 정도 형성된 분야에서는 나름 효과가 있었다. 그렇지만 빵의 경우에는 워낙 독점이 심해서, 사실 별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2014년에 나온 와타나베 이타루의 <시골 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를 재밌게 읽었다. 우리는 동네 빵집들이 너무 버티기가 힘들어서, 자본론 같은 것을 구울 시골 빵집 같은 것은 존재하기 어렵다. 아무리 호텔에서 날고 기던 제빵사라도 동네에서 대기업의 할인 포인트를 이겨내기가 어렵다고 한다. 도대체 SPC 빵이 얼마나 맛있길래 전국 대부분의 빵집이 초토화되었는가? 빵을 너무 많이 먹어 쌀 소비가 줄었다. 이젠 농업 안보의 근간을 법제화해야 할 정도로 우리는 밥 대신 빵을 먹었는데, 그 결과가 너무 참담하다. 정운찬 총리 시절에는 한국 보수들이 동반성장같은 얘기도 했는데, 검사들의 시대에는 그것도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얘기가 되었다.

 

한국 자본주의는 예의 못 갖춰

‘SPC 특별법을 생각해보자. 빵 같은 소비재에서는 특정 업체가 예를 들면 3분의 1의 시장 점유율을 넘을 수 없도록 할 수는 없을까? 그 비율을 넘어서면 계열사나 회사의 일부를 미국 법원이 하는 것처럼 강제매각하도록 하면 된다. 지역별로도 특정 브랜드가 일정 비율을 넘어설 수 없게 정하면, 결국 동네 빵집과 프랜차이즈 빵집에서 균형을 찾을 수 있게 된다. 뒤늦은 일이지만, 겨우 빵 하나 먹으면서 사람이 죽어 나가고, 그걸 대통령이 그 정도는 해줘야”, 이렇게 베푸는 시혜성 조치로 얘기하는 야만의 역사가 계속될 수는 없다. 한국 자본주의, 너무 급하게 달려오느라 최소한의 인간에 대한 예의를 못 갖추고 덜렁 21세기로 왔다. 지금의 불매운동이 빵 만들면서 목숨 걱정해야 하는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극복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우석훈 경제학자 경향 2022.10.31.

 

 

시진핑과 블라디미르 푸틴의 위험한 공통점

한국에서 신임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전직 대통령이 경호원에 의해 강제로 끌려나가는 장면이 TV로 생중계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중국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난다. 시진핑 국가주석의 3연임을 확정한 공산당 대회 폐막식에서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이 경호원에 이끌려 돌발 퇴장했다. 일어나지 않으려는 후진타오와 완력으로 그를 일으키려는 경호원, 경호원에게 무언가 지시를 내린 후 무표정하게 앞만 바라보는 시진핑과 모른 척 외면하는 당 간부들. 그리고 후진타오의 퇴장 장면은 언론과 소셜미디어에서 모두 삭제됐고 관련 언급도 완전히 차단됐다. 중국 내 사회적 파장도 전혀 없다. 시진핑 집권 3기 중국의 현실을 보여준 상징적 장면이다.

 

시진핑의, 시진핑에 의한, 시진핑을 위한 중국을 보는 세계의 시선은 점점 더 불안해지고 있다. 세계의 골칫거리가 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길을 시진핑이 따라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다. 두 사람에게는 위험한 공통점이 있다.

 

누구도 그들을 제어할 수 없다. 시진핑은 개헌으로 3연임 제한을 폐지하고 영구집권의 길을 텄다. 최고지도부에서 자신과 다른 계파 인사들을 모두 퇴출하고 그 자리에 측근들을 채워 넣었다. 전통적 집단지도체제는 이제 유명무실해졌다. 임기도, 후계자도, 계파도, 원로도 없는 1인 천하 시대를 열었다. 사실상 21세기 중국의 황제라 할 수 있다. 이제 중국 공산당 지도부에서 그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한때 북한이 중국식 개혁·개방 체제를 채택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는데 오히려 중국이 유사 북한 체제로 가고 있는 꼴이다. 푸틴 역시 2000년 대선에서 제2대 러시아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지금까지 장기집권 중이다. 그도 개헌을 통해 3연임 금지를 무력화시켰다. 형식적으로는 2036년까지 집권할 수 있지만 사실상 종신집권이나 다름없다. 푸틴이 2018년 네 번째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국제사회는 차르의 부활을 우려했다. 그리고 몇 년 후 그는 본래 영토를 되찾겠다며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모두 제국을 열망한다. 천년 이상 세계의 중심이었던 중국이 서구와 일본의 침략으로 수모를 겪은 굴욕의 역사를 와신상담한 시진핑은 다시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 되는 중국몽을 꿈꾼다. 그는 2012년 최고지도자가 된 직후 누구나 이상과 목표가 있으며 꿈을 갖고 있다면서 나는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는 것이 가장 위대한 꿈이라고 생각한다며 중국몽을 처음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그리고 지난 7월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 행사에서 누구라도 중국을 속이고 압박한다면 만리장성에 부딪혀 머리가 깨지고 피를 흘릴 것이라며 중화 패권을 세계에 선언했다. 푸틴은 제2 유라시아 제국을 꿈꾼다. 러시아 혁명 성공 이후 70여년을 지속한 소비에트연방 시절은 유럽과 아시아에 걸친 제국의 시절이었다. 푸틴은 소련 붕괴 이후 허약해진 러시아를 서방이 무시한다는 불만을 지속해서 제기해왔다. 2005년 의회 연설에서는 소련 붕괴는 20세기 최악의 지정학적 재앙이라며 유라시아 제국 부활 의지를 드러냈다. 크름반도 병합에 이은 우크라이나 침공은 푸틴 머릿속에 있는 큰 그림의 시작에 불과할 수 있다.

 

그들은 현상변경을 추구한다. 중화사상이나 유라시아주의 모두 서방의 가치와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질서를 거부한다. 민족주의와 버무려진 제국 부활의 꿈은 2차 세계대전 이후 형성된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뒤집기 위한 끊임없는 시도를 추동한다. 구 제국 영토를 되찾겠다는 실지회복주의(이레덴티즘)는 그 일환이다.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처럼 시진핑에게 대만 통일은 역사적 임무이자 중국몽 실현을 위한 필수 과제다.

 

결정적인 차이도 있다. 푸틴의 생각과 달리 러시아는 이미 초강대국의 힘을 잃었다. 호기롭게 쳐들어갔지만 8개월 넘도록 고전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은 역설적으로 그런 사실을 증명하는 계기가 됐다. 21세기 러시아 제국의 차르가 되려는 푸틴의 야망이 세계에 급성 위험을 초래했지만 혼란은 결국 수습될 것이다. 하지만 현존 국제질서를 바꿀 의지와 능력을 모두 가진 유일한 국가로 평가되는 중국은 러시아와 다르다. 세계를 중화질서로 재편하고 황제가 되려는 시진핑의 야망이 초래할 혼란은 예측불허다. 특히 한국 입장에선 앞마당이 전장으로 바뀌고, 최대 동맹국이 전쟁에 휘말릴 수도 있다. 푸틴의 임박한 위협보다 시진핑의 아직은 보이지 않는 위협이 더 심각하다.

박영환 국제부장 경향 2022.10.31.

 

 

핼러윈 대비 질문에 선동딱지 붙인 장관 이상민

이게 저 골목 금요일 밤 10시 반 사진이에요. 너무 사람이 많아 찍어뒀어요. 거기로 이어지는 세계음식거리에선 외국인 친구들과 릴랙스’ ‘캄 다운을 외치고, 앞에서 쓰러지는 사람들을 받쳐주기도 했어요. 이런 상황이 전날 공동운영 시시티브이에 다 찍혔을 텐데. 모니터링은 했을 거 아니에요.”

 

지난 30일 오후 이태원 참사 골목 주변에서 만난 탠이라는 한국 남성은 휴대폰 사진을 보여주다 끝내 눈물을 보였다. “내 딸 또래인 10·20대들이 신기한 듯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다녔어요. 골목에 노란 완장 찬 몇명만 있었어도 분명히 달랐을 겁니다.”

폴리스라인이 쳐져 골목은 텅 비었지만 그날의 기억을 지울 순 없다. 너비 3m가 겨우 넘는 이곳에서 청춘들이 압사했다. 해밀톤호텔 오른편으로 돌아가니 인근 상인이 주변 사람들과 말하는 게 들려왔다. “외국 기자들이 이런 인파면 통로를 일방통행으로 해야 한다 충고하더라고. 홍콩 같은 곳은 다 그런다고.”

 

우리는 아직 답을 듣지 못했다. 코로나 이전인 2017년엔 20만명까지 몰렸고 3년 만의 노마스크 행사였는데 인파를 분산시킬 방안은 왜 강구하지 않았는지, 압사 사고라 접근도 힘든 상황인데 통제방송이 가능한 헬기라도 띄우는 방법은 없었는지. 한 경찰이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올린 게시판 글처럼 그들 또한 눈앞에서 벌어진 비극에 대처할 수 없는 상황이 참담했을 것이다. 그래서 더 집요하고 절박하게 물어야 한다. 무엇이 문제였는가를.

 

그런데 경찰과 소방 인력, 지방자치단체를 총괄하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찰·소방력 배치 부족이 참사 원인은 아니다라며 예상 인원보다 사람이 많았던 건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소요와 시위로 인력이 분산됐다고도 했다. 앞뒤가 모순되는 말일뿐더러 설사 그렇더라도, 보수나 진보 집회에 13만명 넘는 인파가 한밤까지 몰리진 않았을 것이다. 그날 이태원 일대엔 137명 경찰인력이 배치됐다. 그것도 안전 대비 인력이 아니라 마약·성범죄 같은 사건 대비 인력이었다. 대통령부터 당정, 경찰청장까지 잇달아 마약과의 전쟁강조가 이어진 직후였다. 그렇다면 안전을 지키지 못해 죄송하다며 부족한 게 있었는지 살피겠다정도라도 말하는 게 상식이다.

 

안전을 최우선으로 놓으면 행정의 시야가 달라진다. 일본의 경우 핼러윈데이 같은 민간행사 날도 대규모 인파가 몰리면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경찰의 유도차와 디제이 폴리스를 배치한다. 2013년 일본이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한 날, 도쿄 시부야에서 유머 섞인 말투로 골목 질서를 유지한 남성 경찰이 인터넷에서 디제이 폴리스라 불린 뒤 제도로 정착했다. “여러분은 열두번째 일본 국가대표니 팀워크를 보여주세요” “무서운 표정의 경찰도 속으론 기뻐하고 있어요. 그러니 말 좀 들어주세요같은, 강압적이지 않은 단속이 젊은이들 사이에 큰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일본은 올해도 시부야에 350명 경찰을 배치했고, 자치구는 조례에 의거해 노상 음주를 금지시키고 상점들에 핼러윈 당일 주류 판매 자제를 권고하며 공무원과 민간경비원 100명을 동원해 질서유지에 나섰다. 범법자를 잡는 게 아니라 모두가 행사를 안전하게 즐기도록 하는 게 목적일 때 가능한 발상이다. 일본 또한 큰 압사 사고 등을 겪으며 바꿔나간 것이다.

 

일부 시민들이 현장에서 몰상식한 모습을 보였지만, 많은 시민이 자발적으로 심폐소생술에 나서고 인근 상인들이 구조인력을 도와 길을 헤쳐갔다. 세월호 때도 그랬듯이 이런 시민의식이 참담함에 빠진 사회를 위로한다. 하지만 사랑하는 가족과 지인을 잃은 이들과 집단 트라우마에 빠진 국민들을 위로해야 할 가장 큰 책임은 국가에 있다. 주최가 없는 행사라 보상이나 책임추궁 가능 여부를 두고 이런저런 견해가 나오지만, 어떤 재난이나 참사라도 상정하고 대비했어야 할 위치의 장관이 어쩔 수 없었다는 태도를 보이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다.

 

이태원은 오랜 세월 이방인의 땅이었다. 한때 주한미군을 위한 기지촌이 있던 그곳이 1990년대 이후엔 각국 음식점들이 들어서며 새로운 문화공간이 됐다. 식민지를 거치고 전쟁을 겪은 한국이 글로벌 선진국이 된 지금을 상징하듯, 이태원은 문화의 용광로가 됐다. 그곳에서 벌어진 비극이 말하는 바는 분명하다. 한국이 돈이 없거나 기술이 없는 나라인가, 안전을 최우선으로 놓는 인식과 실천의 의지가 없을 뿐이라고. 하지만 행안부 장관의 인식이 이 정도라면 민간 행사라 어쩔 수 없다같은 식의 주술에서 우리 사회는 또다시 벗어날 수 없다. 그는 31일 자신의 발언이 섣부른 예측이나 선동성 정치적 주장을 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라고 말했다. 왜 대비할 수 없었느냐는 상식적인 물음에 선동이라는 딱지를 붙이려는 이 장관의 인식이 내겐 더 위험해 보인다.

김영희 | 논설위원실장 한겨레 2022.10.31.

 

 

그 끔찍한 사태를 목격하고도 어떻게

지난 29일 밤 핼러윈 축제에 몰린 인파로 압사 사고가 발생한 서울 용산구 이태원 사고 현장에 30일 오전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시민이 두고 간 조화가 놓여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이태원에서 대형 인명 사고가 발생했다. 참사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이태원동 호텔 옆 38평 정도 되는 좁고 경사진 골목길에 사람들이 밀도 높게 서 있다가 앞으로 쏠리듯 밀리면서 생겼다는데 이게 우발적 참사인지, 행정력의 미비로 인한 인재인지는 아직 정확하게 밝혀진 바 없다. 이 죽음이 정말 불가피했을까. 당혹스러운 심정으로 뉴스를,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 공유되는 소식을 읽었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을 때 책임을 물을 곳이 불분명하면(혹은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책임을 부인하면), 사람들은 만만한 희생양을 찾아 책임을 떠넘기려고 한다. 이번에 희생양으로 가장 먼저 선택된 것은 핼러윈 데이의 무국적성과 상업화된 기념일 문화였다. 한국 문화의 정통성은 혼종성 그 자체에 있는데도 말이다. 두번째 과녁은 사건 당일 현장에 있었던 이들에게 겨누어졌다. 응급구조대원이 심폐소생술을 하는 동안 참가자 일부가 응급차 옆에서 춤을 추고 있는 짧은 동영상이 특히 사람들의 분노를 샀다. 이태원에 있던 사람 중 일부는 사건 발생 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홍대 클럽으로 가서 놀았다는 고발(?)도 이어졌다. 이것은 모두 인간성 상실의 증거로 간주됐다.

 

쪼이는 어제오늘 홍대 클럽에 있었다. 상황을 알고도 그랬다. 새벽 4시가 넘자 이태원에서 홍대 클럽으로 넘어온 사람도 있었다. “신나는 노래가 나오고 춤추고 있어서 개념 없어 보이죠? 그 끔찍한 사태를 목격하고도 어떻게 또 클럽으로 가나, 이상하죠? 제가 대화 나눈 사람은 트라우마에 절어 있었어요.” 쪼이는 혼자 집으로 가고 혼자 잠드는 게 생각만 해도 끔찍해서 아침 9시까지 클럽에 있다가 왔다고 했다. “아마 이태원에서 넘어온 그 사람도 그랬을 거예요. 많은 이들이 생각하는 무개념’, ‘미친놈들도 물론 있겠지만, 이런 상황을 소화하는 단계와 방식이 다 다르다는 걸 사람들이 많이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쪼이의 이런 해석이 우리를 인간으로 다시 묶어준다.

 

압사 당시 상황을 상상해본다. 사방에 있는 사람은 나를 구해주기도 하지만 나를 죽일 수도 있다. 주디스 버틀러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는 타자가 입히는 상해로부터 우리 자신을 구해내고자 하지만, 만약 상해를 막는 데 정말 성공하면 필연적으로 비인간적이게 된다. ‘자기보존의 원칙이 인간의 본질이라면 문제는 간단하다. 우선 내가 살고 보면 된다. 그러고 난 다음에 무엇을 하건 개인의 자유다. 하지만 정작 이렇게 행동하면 사람들은 자기보존의 원칙을 따라 행동한 사람에게 인간도 아니다라고 비난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인간다운 행동인가. 타자와 나 사이에서 동요하는 것 그 자체다. 그 동요가 우리를 인간으로 만든다. 재난 상황을 브리핑하는 소방관의 떨리는 손 같은 것 말이다.

 

시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위치에 있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더 많은 행정력을 투입해도 소용이 없었을 것이라며, 참사 당일 서울 곳곳에서 일어난 시위로 병력이 분산됐다고 언급했다. 기어이 시민들에게 책임을 돌린 것이다. 이렇게 책임 회피하며 시민을 분열시키는데,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국가애도기간에는 5일간 조기를 게양하고 공무원과 공공기관 근무자들이 근조 리본을 단다고 한다. 이에 맞춰 핼러윈 행사는 대부분 취소됐다. 편의점과 커피전문점에서는 핼러윈 관련 프로모션 상품들을 매대에서 치우고, 놀이공원에서는 핼러윈과 연계된 퍼레이드를 하지 않기로 했다. 콘서트와 팬클럽을 위한 연예기획사 프로그램들도 중단됐다. 묻고 싶다. 이것이 정말 애도인가? 처벌이나 회피가 아니고?

 

황정은은 1996년 연세대, 2009년 용산, 2014년 세월호를 기억하는 연작소설집 <디디의 우산>에서 이런 문장을 썼다. “내가 그것을 트라우마로 생각할 수 있었던 것도 시간이 많이 흐른 뒤였어. 우리는 그 장소에서의 경험 자체를 별로 말하지 않았지. 고통스러운 기억이었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모두 같은 걸 겪었으니 다 안다고 생각했으니까.”

 

우리는 이 사태를 가까이에서 겪은 이들의 하루가 어땠는지, 그날의 신남이 시간에 따라 어떻게 달라졌는지, 그 온도 차이와 예측 불가능했던 비극이 어떤 자국을 남겼는지 아직 아무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 애도는 거기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그곳에 있고자 했던 욕망 자체를 과녁으로 삼는 한 우리는 아무것도 애도할 수 없다.

권김현영 | 여성학 연구자 한겨레 2022.10.31.

 

 

무사히 늙어갈 수 있을까

종일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트라우마가 걱정되니 영상 보도나 뉴스를 반복해서 보지 말라는 경고도 있었지만, 이 시간까지 뉴스 보기를 멈추지 못하고 있다. 너무나 어이없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되는 일이 실제로 생겨버려서다. 어떻게든 이해하고 싶어서다. 참담하다는 말도 비통하다는 말도 너무나 부족하다. 어떤 위로나 애도의 말도 적합하지 않다고 느낀다. 믿을 만한 단체가 낸 성명서에 가까스로 기대어, 고인과 유가족과 고인을 아끼고 사랑한 이들의 슬픔에 깊이 고개 숙일 뿐이다.

 

이태원 참사가 난 날은 우리 지역의 1인 가구 여성 청년들과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라는 제목으로 북토크를 하고 온 날이다. 잠들기 전까지 북토크 때 나눴던 이야기를 되새김질하고 있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참사 소식을 들은 거다. 믿을 수가 없어 뉴스를 보고 또 보았다. 북토크에 함께 자리했던 이들의 얼굴이 떠올랐고,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정말, 무사히 할머니가 되는 게 이토록 어려운 일이란 말인가. 살해당하고, 일하다 기계에 끼어 죽고, 해방의 시간을 맛보겠다고 나선 곳에서 질식해 죽는다. 엄밀한 의미에서 완전히 자연스러운 죽음은 없다고 해도 이렇게 억울한 죽음이 만연하다니, 도대체 우리 사회는 어떤 해명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인가.

 

어떤 할머니가 되고 싶으신가요, 미리 제시된 질문에 그들은 다양하고 신선한 답변을 들려주었다. 좋아하는 걸 끊임없이 배우는 할머니, 안 괴팍하고 친절한 할머니, 술짱 친구짱 할머니, 멋대로 살지만 그럭저럭 호감인 할머니, 바다 수영을 잘하는 할머니, 솔직하고 용감한 할머니, 배우고 성장하는 호기심 많은 할머니, 잘 돌봄 받고 돌보는 할머니, 좋아하는 일에 대해 다양한 세대와 소통하는 할머니, 웃길 수 있는 할머니, 친구랑 옆집 살며 고양이 키우는 할머니, 가난해도 떳떳하고 행복한 할머니, 소설 쓰는 할머니, 록페 즐기는 할머니, 여전히 처음 해 보는 것들에 도전하는 할머니, 혼카페를 즐기는 할머니이태원 참사 소식을 듣고 새삼 이 답변 하나하나를 다시 들여다본다. 희생된 사람들도 이렇게 자기만의 미래를 꿈꾸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치 내게 속삭이듯 들려준 적이 있는 것처럼, 그들이 품었을 그 미래 하나하나가 아프도록 소중하다. 오롯이 기억하고 싶다. 무엇보다 올바르게 기억하는 방법을 제대로 찾아내야 할 것이다. 우선은 말이 가능하지 않은 상황에서 말 아닌 말을 주장하는 이들의 그 말 아닌 말을 채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그전과 비교했을 때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였던 것은 아니고, 그래서 그것을 통상과 달리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또 어제 잘 아시다시피 서울 시내 곳곳에서 여러 가지 소요와 시위가 있었기 때문에"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긴급회의 결과 브리핑에서 행안부 이상민 장관이 한 말이다. "잘 아시다시피"라니. 그가 아는 사실과 국민이 아는 사실의 내용이 다르다는 것 외에도, 154명의 원통한 죽음을 앞에 두고 행안부 장관이 하는 말이 이게 다라니! 상시적 재난의 사회에 살고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이 사회에서 무사히 늙어가기란 점점 더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의 문제가 되고 있다. 무사히 늙어가고 싶은 사람들의 말이 되는 말과 행동이 귀하다.

김영옥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 상임대표 한국 2022.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