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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외부 칼럼

2021.12.1~31 거짓 진보·보수의 정치지형

by 이성근 2022. 1. 2.

대통령 자질론 경향 : 2021.12.01.

기후의 위기, 노동의 위기 매일노동뉴스: 2021.12.01.

대선 지지율보도, 이젠 새롭게 하자 미디어오늘 2021.12.01.

장수풍뎅이연구회는 어디로 갔을까 경향 : 2021.12.02

종부세에 대한 몇 갈래 질문 경향 : 2021.12.02.

불쌍한 집부자와 기업주만 보이는가 한겨레 :2021-12-02

세수 전망, 공개 검증의 필요성 한겨레 :2021-12-02

K-민주주의는 실패했다 한겨레 :2021-12-02

조동연과 김건희, '사생활 검증'의 이중잣대 프레시안 2021.12.06.

이건 아니다. 아닌 것이다 경기신문 2021.12.08

조동연은 피해자에 미달하는가 한겨레 2021.12.09

약이 있어도 치료 못 받는 사람들 경향 : 2021.12.09

시민들이여, 공공의료에 투표하라 경향 : 2021.12.09

아트테크와 주식 투자, 욕망의 상관관계 부산일보 : 2021-12-12

한국 개영국 게의 복지 전북일보 2021-12-13

지방은 식민지인가 경남도민일보 20211213

기레기 대선과 대선 고갱이 미디어오늘 2021.12.13

노동법이 길을 잃으면 노동자도 사라진다 매일노동뉴스 2021.12.15

분대물림교육, 정보공개와 기회균등선발로 상쇄하자 경기신문 2021.12.15.

알고 싶지 않다 경향 : 2021.12.16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경향 : 2021.12.17.

이재명에 대한 오해 경기신문 2021.12.17

농민의 슬픔 경향 : 2021.12.20

세금 깎아주면 표 줄 거라는 민주당의 착각 한겨레 2021.12.20.

신지예와 윤석열, 환상의 콜라보경향 : 2021.12.20.

능력주의 폭정으로 퇴행하는 선거판 경향 : 2021.12.21

국민들이 그렇게 우습게 보이나 경향 : 2021.12.22

너무 늦게 주어진 이석기의 자유 한겨레 : 2021.12.23

거짓 진보·보수의 정치지형을 바꾸자 한겨레 : 2021.12.23

 

역대급 비호감 대선, 도 넘은 충성경쟁 프레시안 2021.12.24.

개와 늑대 그리고 인간 경향 : 2021.12.24

언론의 집단적 독백극복하려면 미디어오늘 2021.12.25.

대통령 선거와 나라 경영의 3모델 경향 : 2021.12.25.

'철피아'의 완벽한 부활문재인정부의 완벽한 실패 프레시안 2021.12.28.

윤 검사의 용기, 윤 후보의 만용 미디어오늘 2021.12.28

포퓰리즘 or 내로남불? 국민 집단지성의 선택이 궁금하다 프레시안 2021.12.29.

국민은 '네거티브'보다 'TV토론' 원한다 내일신문 2021-12-29

공정사회로 가는 길 한겨레 2021.12.30.

 

 

 

대통령 자질론

반세기도 훨씬 넘긴 이야기다. 서독 유학길에 들렀던 도쿄에서 처음 만난 외할머니는 나를 이끌고 절을 찾았다. 먼 외국 땅에서 유학 생활을 시작할 외손자의 안녕과 성공 그리고 금의환향을 빌기 위해서였다. 주지 스님은 장도의 행운을 빈다면서 떠나는 나에게 오마모리라고 불리는 부적을 건넸다. 이 부적은 그 후 몇 년간 내 곁에 있었지만 이사하는 도중에 분실되었다. 이것이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지닌 부적이었다. 학위는 빨리 받았지만, 그 이후 금의환향은 이루지 못했으니 부적의 힘도 그저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일이 뜻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여의(如意)’라는 불교적 믿음에 따라 상서로운 구름 모양을 지닌 여러 가지 장신구도 있다. 주력(呪力)을 빌려 좋은 일을 성취할 수 있고 액()을 물리침으로써 소원을 이룬다는 부적은 특히 도교적인 생활 세계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얼마 전 한 야당 대통령 후보의 손바닥에 임금 왕() 자를 쓴 것이 화젯거리가 된 적이 있다. 무속이나 믿는 사람이 과연 디지털 시대를 이끌 수 있는 자질이 있겠느냐는 논란으로도 이어졌다. 그러나 부적보다는 이른바 관상에 따라 누가 대통령이 될 것인지를 두고 이런저런 매체를 통해 때로는 심심풀이로, 때로는 아주 진지하게 이야기된다. 심지어는 정치학을 전공한 어떤 교수도 어떤 후보자가 용상(龍相)을 지녔기에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했지만 세 번이나 낙선하고 말았다.

 

동아시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수면인신상(獸面人神像)이나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처럼 동물과 사람의 비슷한 모습을 연상해 사람의 성격을 판단하는 오랜 전통이 있다. 서양에서도 작가이자 최초의 사진기술도 개발한 나폴리 출신의 의사 잠바티스타 델라 포르타(1535~1615)가 사람과 동물의 골상을 대비시킨 <인간 인상학>을 남겼다.

 

관상은 과학이다라는 주장이 있다. 사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관상 연구를 어떤 학문적인 체계 안에 담아보려는 시도는 늘 있었다. 중국 송나라 때 나온 <마의상법(麻衣相法)>은 중국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여전히 관상학의 교과서라고 불리고 있다. 서양에서도 목사였던 스위스의 요하나 카스퍼 라바터(1741~1801)가 남긴 <인상학적 단편>은 이성의 승리를 구가하던 계몽기였음에도 괴테나 훔볼트를 비롯한 많은 사상가의 관심과 논의의 대상이 되었다.

 

관상학 또는 인상학이 사이비 학문이라는 비판은 당시에도 있었지만 20세기 초에 들어서면서부터 형태심리학과 접목되면서 점차 부활했다. 최근 들어 특히 인공지능의 개발에 힘입어 얼굴과 성격의 상관관계에 관한 연구도 활발해졌다. 가령 아이스하키 경기에서 심한 반칙을 일삼는 선수는 대부분 광대뼈가 나온 넓은 얼굴을 지녔다거나 동성애자의 얼굴도 얼굴인식 프로그램으로 거의 판독할 수 있다는 연구까지 나와 이를 둘러싼 사이비 학문 논쟁이 불거지기도 했다.

 

또 한국 대학에 얼굴경영학이라는 학과가 있다는 사실을 나는 최근에 알았다. ‘얼굴을 경영하면 성공이 보입니다라는 주제 밑에 얼굴경영, 마음경영, 인재경영을 종합한 교과과정이 어떻게 꾸려졌는지 흥미 있게 뒤져보았다. 이를 읽고 내가 먼저 떠올린 인물은 바로 삼성의 창업자 이병철이었다. 임직원을 채용할 때나 중요한 사업으로 사람을 만들 때 관상가의 조언을 구했다는 이야기를 오래전에 들었기 때문이다.

명나라 영락 황제는 신하를 채용하는 데 당시 상술(相術)의 대가로 알려진 <유장상법(柳莊相法)>의 저자 원충철(袁忠徹·1377~1459)의 조언을 받았다거나 피타고라스 정리로 유명한 피타고라스도 문하생을 받아들일 때 아예 자신이 직접 그들의 관상을 보았다는 이야기가 있듯이 인상경영학의 역사는 꽤 오래되었다.

 

그러나 관상은 사람을 판단하는 데 있어 심상에 못 미친다는 뜻에서 관상불여심상(觀相不如心相)이라는 말이 동시에 있다. 이는 보이지 않는 마음을 읽는다는 경지가 그리 쉽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대통령이 될 사람의 관상에 대한 말은 많이 있어도 심상에 관한 이야기는 정직이나 청렴과 같이 윤리 교과서에 자주 등장하는 덕목에 대한 것이다.

 

경향신문이 창간 75주년을 맞아 벌인 여론조사를 보면 차기 대통령의 자질로서 도덕성을 꼽은 응답자의 비율은 19.8%인데 정책 및 공약은 26.2%, 능력 및 경력은 23.9%, 국민통합 및 소통능력은 21.8%로 나와 있다. 단지 60대 이상에서만 도덕성을 상대적으로 높이 평가하고 있다.

 

심상을 통해 드러날 수 있다고 보는 대통령의 추상적인 자질보다는 우선 한국 사회가 현재 직면하고 있는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의 소유 여부가 더 중요하다고 대다수가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정치와 도덕은 하나여야 한다는 전통적인 도덕주의에 근거한 판단보다는 무서운 속도로 기능이 분화하는 한국 사회를 통합할 수 있는 분명한 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구체적으로 실천에 옮길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대통령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는 정치의 본질은 종교나 도덕에 의해 규정된 선악의 피안에 있다는 마키아벨리적인 관점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선거철만 되면 후보자들은 경쟁적으로 교회와 성당이나 절을 부지런히 찾는다. 종교와 가까우면 그만큼 더 정직하고 도덕적인 정치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고 아직도 믿는 것 같다. 비록 이런 행태가 정치인의 코스프레라 할지라도 유럽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현상이다.

 

현재 한국에서 주요 정당의 당원 수는 더불어민주당이 400만을 넘었고 국민의힘도 300만 선을 넘어섰다. 독일에서는 100년 이상의 전통을 지닌 이른바 국민정당이라는 사민당 그리고 기민당과 기사련을 합친 보수연합의 당원 수가 각각 42만과 54만 명 정도다. 녹색당은 10만이다. 당원 수의 인구비를 고려한다면 한국은 독일의 10배 이상이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정치에 관심을 두고 적극적으로 활동하는데도 당심과 민심이 다르다는 소리가 왜 나오는지에 대해 나는 의아하게 생각한다.

 

정치가 과도하게 도덕이나 감정에 의존하다 보면 우리가 현재 사는 지극히 복합적인 구조와 기능을 지닌 사회를 너무 단순하게 보게 된다. 이의 결과는 근본주의, 아니면 정치혐오라는 극단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사회의 통합이 아니라 오히려 분열을 촉진한다. 오는 대선이 후보자에 대한 비호감 대선이라는 말이 나도는 상황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비록 정치인에게서 성인군자의 심상을 보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정치인의 도덕적 자질에 여전히 문제가 있다고 많은 사람이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탈주술(脫呪術)의 합리적인 세계에서 정치적 행위의 도덕적인 동기와 이의 실제적인 결과 사이에 놓여 있는 거리와 긴장 관계에 특별한 주목을 돌린 막스 베버는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역사의 수레바퀴에 손을 댈 수 있는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이어야만 하는가라는 무거운 질문을 던졌다. 그는 정치에서 이상적인 이념에 대한 확신을 앞세운 심정 윤리와 어떤 행동의 결과를 문제 삼는 책임 윤리를 대비시키면서 이 둘 사이의 상호보완과 균형에서 소명으로서의 정치의 출발점을 찾았다.

 

1차 세계대전에 패망한 독일의 위기 상황에서 그가 특별히 강조한 정치인의 자질은 열정과 책임감 그리고 균형감이었다. 현재 한국적인 정치 상황을 생각하면서 이의 의미를 다시 음미하게 된다. 코로나가 몰고 오는 사회적 갈등의 해결은 물론, 격화되는 미·중 갈등으로 어려워질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면서 기후위기와 같은 지구촌이 당면하고 있는 공동의 과제를 과연 누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는지.

 

정치는 정열과 균형감을 지니고 두꺼운 널빤지를 힘 있게 천천히 뚫는 것이라는 베버의 결론에 동의한다면 주술 수준의 관상과 심상이 열거하는 추상적인 덕목, 아니면 하루가 멀게 널뛰는 듯한 여론조사의 결과에 따라 일희일비(一喜一悲)하는 대통령 자질론은 사라질 것으로 나는 생각한다.

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 사회학 교수 경향 : 2021.12.01.

 

기후의 위기, 노동의 위기

폭염과 혹한, 홍수와 가뭄, 산불, 미세먼지, 감염병이 전 세계를 뒤덮었다. 11월 발표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보고서에 따르면 향후 지구의 평균 기온은 산업혁명 이전에 비해 2.4도나 더 오를 전망이다. ‘타오르는 지구에서 재난은 일상이 됐고, 세계 곳곳의 생태와 시민들의 삶이 고통 어린 신음에 휩싸여 있다.

 

기후변화는 전 지구적 생태와 시민의 삶에 연결된 보편적위기지만 그로 인한 재난의 칼날은 늘 그렇듯 가장 먼저, 가장 깊이 더 불안하고 가난한 이들을 향한다. 계급과 인종·젠더·연령·지역 등의 분별이 교차하는 사회적 관계에 따라서 기후변화가 촉진하는 여러 사회적 재난들은 우리 세계의 차별과 불평등을 강화하고 있다.

 

국제기구, 교토 메커니즘, COP의 실패들

1980년대부터 환경운동가와 연구자 등은 기후변화의 위험을 전망하고 경고해 왔다. 이러한 노력이 1990년대부터 국제기구 단위의 기후변화에 대한 제도적 대응을 이끌어 냈다. 이들 국제기구와 정부 간 협상을 중심으로 한 기후변화 대응은 이른바 교토 메커니즘에 기반을 뒀다. 공동이행, 청정개발체계, 탄소배출권 거래 등 시장원리에 입각해 온실가스 감축을 꾀한다는 북반구 국가들과 기업의 이해, ‘서로 싸우는 형제들의 더 많은 이윤을 위한 그들만의 다툼과 화해가 지난 30년간 기후변화에 관한 국제사회의 제도적 대응을 주도해 왔다. 이들의 의도된실패가 오늘날 전 지구적 기후위기를 가속화하고 있다. ‘공동의, 그러나 차별적인 책임(CBDR, Common but Differentiated Responsibility)’이라는 국제기후협약의 원칙은 무시됐고, ‘차별적인 책임은 북반구 선진국들과 기업들에 부과되는 것이 아니라 남반구 가난한 국가들의 시민들, 어린이들, 전 세계 불안정 노동자들, 이주민들, 여성들, 소수자들에게 전가됐다.

 

기후변화가 아니라 체제의 변화를

이들 서로 싸우는 형제들이윤 경쟁에 더는 지구의 생태와 우리 삶의 문제들을 맡겨 둘 수 없다는 전 세계 시민들의 운동이 2000년대 초반부터 새롭게 성장해 왔다. 2007년 발리에서는 지금 기후정의를! (Climate. Justice Now!)’이라는 이름의 국제적인 연대체가 출발했다. 2010년 볼리비아 코차밤바에서는 기후변화와 대지의 권리에 대한 세계민중회의(Peoples’ World Conference on Climate Change and Mother Earth’s Rights)가 열렸고,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에 저항하는 기후정의(Climate Justice)’ 운동의 지향을 담은 민중협정을 채택했다.

 

20199월 글로벌 기후 파업(Global Climate Strike)에는 150개국에서 수백만 명이 참여했고, 지난 6일에는 27차 유엔 기후변화 협약 당사국 총회(COP26)가 열리는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10만명이 모여 COP26의 무능력과 모순에 항의하고 기후위기에 대한 즉각적이고 실효적인 대응을 요구했다. 코차밤바 민중협정이 명시했던 오늘날 기후정의 운동의 요구는 분명하다. ‘기후변화가 아니라 체제 변화(System Change, Not Climate Change)’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후위기와 노동, 정의로운 전환

오늘날 극단에 이른 기후의 위기와 노동의 위기는 모두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에 뿌리를 내린 열매로, 서로 양분을 더하고 나누면서 자라난다. 기후정의운동과 노동운동은 기후위기가 촉진하는 일할 권리 위협, 노동(기본)권 후퇴, 지속 가능한 일과 삶에 대한 불확실성에서 일하는 모두의, 노동자와 시민들의 존엄을 지켜 내기 위해 자본주의 생산관계에 깊이 관계 맺은 노동자들의 조직된 혹은 조직되지 않은 힘들을 함께 고민하고 연결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기후위기와 노동의 대응전략, 기후정의운동과 노동운동의 교차와 연결성 등에 대한 다양한 논의·실천이 소위 정의로운 전환담론을 통해서 다뤄지고 있다.

 

1970년대 이후 노동자의 일할 권리와 사회의 생태적 가치의 적대적 분별을 극복하려는 시도로 미국 조직 노동운동에서 제시됐던 정의로운 전환개념은, 국제기구 차원의 제도적 기후변화 대응 과정에서 폭넓게 사회화되면서 그 개념에 대한 이해와 활용도 다각화했다. 이제 정의로운 전환은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으로 기업의 ESG경영이 중요하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부터 사회주의 혁명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두가 사용하는 표현이 됐다.

 

무엇을 할 것인가

국제기구를 통해 사회화된 좁은 의미의 전환을 넘어서 폭넓은 전환, 체제의 근본적 구조를 묻고 다투는 소위 변혁적 관점에서 기후정의운동과 노동운동이 맞닿은 정의로운 전환을 설계하고 조직하는 것이 시급하고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의 대응이 다만 전환 시기, 일할 권리의 문제를 다투는 것을 넘어서서 일을 멈출 권리, 일을 멈추고도 생존할 권리, 모든 시민이 계급과 인종·국적·젠더·연령 등의 사회적 분별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 인간과 동물이, 다양한 생태가 공존할 권리에 대한 여러 주체의 다양한 요구를 함께 이해하고 연대를 조직해 노동자와 시민의 존엄이 실현되는 새로운 체제를 향하는 폭넓은 사회운동을 조직하는 일에 초점을 둘 필요가 있다. 이러한 실천들은 노동자와 시민 개인의 현실, 사업장 현실, 지역사회 현실, 국가의 현실에 대응하는 구체성과 고유성을 담보하는 한편, 세계적 차원으로 조직된 자본주의와 기후의 위기, 노동의 위기에 저항하는 국제적 실천과 연결돼야 한다. 홀로 가늠하기 어려운 고민을 두서없이 나열한다. 함께 나누고 다투며 답을 찾아갈 수 있기를.

류민 충청남도노동권익센터 정책기획팀장 매일노동뉴스: 2021.12.01.

 

대선 지지율보도, 이젠 새롭게 하자

지금까지 한국 대선 보도에서 찾아볼 수 없었지만 이번 선거부터라도 새로운 판세 조사를 할 수는 없을까? 선거 때만 되면 늘 봐오던 지지율 조사와 보도가 올해도 여전히 정당이나 후보자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지지하는 후보와 선호하는 정당 조사는 물론이고 후보 간 대결구도를 가상으로 설정해서 누구를 지지하는지를 묻고 있다. 심지어는 누가 될 것 같은지도 질문하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구태의연한 정당·후보 지지율 보도

대선 후보 입장에선 후보 간 지지도 조사는 불가피한 정도가 아니라 선거기간 내내 선거운동 중심에 둘 일이긴 하다. 선거승리 전략을 수립하거나 선거 지지도 추이 변화에 따른 발 빠른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돈이나 노력이 적지 않게 드는 일이지만 적극 덤비지 않을 수 없다.

 

미디어는 어떻게 해야 할까? 언론이 어느 후보나 정당의 선거운동에 나서는 게 아닌 만큼 지지율에 그리 몰두할 이유가 없다. 한국기자협회와 같은 언론인단체나 바른 언론운동을 하는 시민단체, 언론학계도 모두 후보·정당 지지율에 중심을 둔 경마중계식 선거보도를 자제해주기를 오랫동안 권고해왔다. 다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이런 보도가 중심이 되면 정작 선거의 본령인 정책은 유권자의 관심사에서 멀어지기 때문이다.

 

2022년 대선을 앞두고 매일 국민에게 전달되고 있는 지지율 보도의 현실은 어떠한가? 예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곰팡내가 날 정도로 구태의연하다. 후보와 정당 지지율 일색이다. 왜 지지하는지에 대해 묻지 않는 소수문항 설문조사이다 보니 지지율에 대한 추측과 얄팍한 분석이 대부분이다. 유권자들도 어느 후보가 앞서고 있는지를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이 적지 않으니, 얄팍해도 후보와 정당 지지율 보도는 끊이지 않는다. 앞으로도 법이 허용하는 기간까지는 계속될 터이니 걱정이다.

 

현재 후보·정당 지지율 보도를 둘러싼 여론의 움직임을 보면 심각성은 더 크게 와 닿는다. 원내 진입한 정당이 모두 후보를 확정했음에도 정책 대결은 실종 수준이다. 후보들이 정책을 발표하고 있기는 하지만 지지율에 가려지는 경향이 크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1111일 오후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한 뒤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정책이 선거보도의 중심에 들어와야 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내용은 지금 한국 사회를 비판적으로 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흔히 정책이 선거보도의 중심에 있어야 된다면 공약으로 내세우는 몇 가지 시책에 대한 비교와 지지 정도로 인식하기 쉽다. 공항을 어디에 짓겠다느니, 특정 분야 복지비용을 얼마 늘리겠다느니 선거가 되면 자주 봐온 그렇고 그런공약에 대한 지지율 정도로 여기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공약은 종종 정당 간에 하도 닮아 있는 부분이 많아 차별성을 찾기가 쉽지 않았던 경험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패러다임 읽을 두꺼운정책 지지율 필요

이제부터는 지금까지와 다른 두꺼운정책 지지율 조사·보도를 볼 수 있으면 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두꺼운정책 지지율 조사·보도라고 함은 정당이나 후보의 세계관, 국가관, 국민관을 읽을 수 있는 패러다임 지지율 조사를 이르는 말이다. 사실 인류가 살고 있는 지구는 지금 패러다임 전환을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하는 도전에 직면해 있다. 당장 2050년이 한계라는 지구 온난화가 큰 문제로 등장했다. 근대 자본주의 산업사회 발전 패러다임을 그대로 유지한 채 해결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시선을 한국 사회로 돌려보면 지구온난화 같은 지구적 과제가 국내 사정과 동떨어져 있지 않아서 이와 맞물려 있는 문제를 패러다임 교체로 생각해봐야 할 때다. 이런 상황에서 이윤극대화라는 무한질주 사회 패러다임은 그대로 유지해도 좋은가? 한국 사회 지속가능성을 담보해줄까? 심해지는 빈부격차 문제를 사회 전체 파이 극대화로 해결하려는 패러다임이 여전히 유효할까?

 

상대 정치세력에 대한 적대감과 분노가 팽배해 있는 사회라는 점에서도 후보·정당 지지율 중심의 얄팍한 선거보도는 문제다. 패러다임 비교의 틀로 접근해 비교하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사이엔 차이보다는 유사성이 더 많이 보인다. 패러다임 중심으로 지지율 조사·보도를 해야 거대 양당이 아닌 대안 정당의 대안적 목소리가 귀에 들어올 수 있는 구도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지금 같은 후보·정당 지지율 조사에서는 아무리 해도 두 자리 수 지지율을 얻을 수 없는 정당 정책의 경우 패러다임 수준의 정책 지지율 조사보도를 해야 국민에게 확연히 보일 수 있는 대조구도가 만들어질 수 있다. 한국 사회가 이대로 좋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한국 언론은 지금부터라도 패러다임 수준의 두꺼운정책 지지율 조사·보도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 어떻게 할지 막막할 수도 있겠으나 의지만 있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정연구 한림대 미디어스쿨 교수 미디어오늘 2021.12.01.

 

장수풍뎅이연구회는 어디로 갔을까

5년 전, 2016123박근혜 즉각 퇴진의 날에 열린 제6차 촛불시위에는 주최 측 추산 232만명(서울 170만명)이 참가했다. 대한민국 사상 시위 참가자 기록을 또 경신한 것이었다.

 

거리의 사람들은 추운 날씨에도 웃었고, 집회에서 노동시간, 일상의 차별, 최저임금 등을 주제로 발언한 비정규직 청년 노동자, 여학생, 예술가, 주부들의 말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였다. 그들이 반복해서 노래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에서의 국민은 그런 사람들을 의미했다. (요새 종합부동산세 때문에 아우성친다는 그 국민이 아니라) 그렇게 촛불은 계급·세대·젠더의 차이를 잊거나 넘어 박근혜 정권의 퇴출만이 아닌, 근본적 사회개혁이라는 대의에 대동단결하는 것처럼 보였다. 즉 정치인들이 말로만 추구하는 소위 국민통합이라는 게 실제 이뤄진 순간들이었다.

 

촛불은 무지개색 연합군이었다. 그 저변을 받치는 힘은 역시 민주노총·전농·전교조·참여연대 등 진보 시민사회로부터 나왔지만, 2016~2017년 촛불의 강력한 중핵이자 상징은 무명의 시민들과 그 가족, 친구들로 이뤄진 자유로운 개인들의 네트워크였다. 이를테면 가장 먼저 눈길을 끈 장수풍뎅이연구회처럼 웃음, 풍자, 연대 그리고 발랄한 자기표현을 내용으로 한 연합들말이다. 1119일의 4차 촛불집회에서부터 민주묘총, 범야옹연대, 얼룩말연구회, 거시기산악회, 전국아재연합, 트잉여운동연합, 응원봉연대, 일못하는사람 유니온 같은 연합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이런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들은 21세기 한국에 도래한 새로운 여성, 시민, 노동자, 청년들의 주체성과 그들의 아래로부터의 정치가 무엇인지, 높이 쳐든 깃발로 표현해주었다.

 

그 이후의 과정도 모두 아는 대로다. 촛불집회는 해를 넘겨 20번 더 이어졌지만 박근혜 탄핵을 성취한 후 중지되었고, ‘촛불은 급격히 기성·제도정치의 함정에 빨려들어갔다.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들은 소규모의 조직화나 풍자에 유능했고 꽤 끈질겼으나, 지배체제를 완전히 해체·대체할 힘까지는 없었다. 촛불의 현장을 만들었던 노동·시민단체들도 그런 용기나 조직력은 없었다. 새 공화국을 위한 상상은 부족하지 않았지만, 촛불 혁명에 값할 조직은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다. 사람들은 헤어지기 시작했다. 촛불의 일부는 팬덤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개혁과 낡은 것의 교착상태가 이어진 촛불 이후조국 사태에 이르러 파탄으로 종결되었다. 조국 개인에 대한 찬반에 함몰된 정치가 촛불을 찢어 망가뜨렸다. 서초동은 검찰개혁, 언론개혁의 핵심을 겨눴지만, 대신 새로운 특권층의 반칙과 부패 문제를 시야에서 지우는 큰 한계가 있었다. 광화문은 애초부터 구래의 보수와 탄핵불복 세력의 주도권으로 내로남불과 특권 반대의 민의를 재현할 수 없었다. 팬덤정치와 어용화가 합리적 전략을 압도하고, 감정이 앞장섰기에 많은 이들은 환멸을 느끼고 아예 입을 닫아버렸었다. ‘장수풍뎅이연구회와 여러 연합들의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2016124일 바로 그날, 성남시장 이재명은 세월호 진상규명 차량을 타고 독재세력으로부터 특혜와 국민의 세금으로 살쪄 지금 모든 권력을 독점한 재벌들이 국정농단 사건의 뿌리라 외쳤다. 그는 그런 사이다발언으로 촛불시민들의 박수를 받아 대권후보로 커갔다. 윤석열은 문재인의 판단으로 발탁되어 적폐청산이라는 이 정부 제1호 공약을 검찰권으로 이행했다. 그는 검찰총장 임명 청문회에서 촛불집회에 대해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에 큰 획을 긋는 역사적 사건이라 했다.

 

그러니까 이번 대선은 촛불의 형해 위에서, 또다시 한국식 대의제의 한계 지워진 틀 위에서 치러진다. 문재인 등의 횡령과 일부 지식인(?)들의 망상과는 정반대로, 애초에 촛불이 혁명의 일종이었거나 또는 혹은 살아서 연속혁명이었다면, 문재인 정부는 촛불의 도달점이 아닌 일시적 도구거나 극복 대상일 뿐이어야 했다. 물론 그것은 특권동맹과 수구가 탄핵과 선거로 심판받은 그 길을 더 밀고나가 진행되는 것이었겠다. 2018년까지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지지율은 10%에 불과했다.

 

또 한 번의 세모에 인사를 전하고 싶다. 안녕들 하십니까? 코로나19와 부동산 광풍에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장수풍뎅이, 범야옹, 트잉여, 일못하는사람, 전국아재, 야광봉또 다른 많은 연합분들. 5년 전의 깃발은 마음속에라도 보관하고 계신지요. 언제 우리가 또 만날 수 있겠지요./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 경향 : 2021.12.02

 

종부세에 대한 몇 갈래 질문

종합부동산세 논란이 뜨겁다. 세금 폭탄론은 예상되어온 반응이다. 이에 대해 기재부는 방어에 나섰다. 전 국민의 98%는 과세 대상이 아니다, 올해 고지세액의 88.9%를 다주택자와 법인이 부담한다고 한다. 이에 이런 숫자를 거론하는 데 대한 반박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어쨌든 논란의 프레임은 세금 폭탄이냐 아니냐 하는 데 묶여 있다.

 

세금 폭탄론 공방이 지속되는 가운데, 종부세가 과연 이대로 유지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커지는 중이다. 세금 폭탄론은 밀어두고도 현행 종부세 정책의 타당성을 묻는 몇 갈래 질문들이 있다.

첫째, 현재의 종부세가 보유세를 보편적 규범으로 정착시키는 방향을 취하고 있는가 하는 물음이다. 보유세를 강화하려면 보편적 과세기반을 강화해야 한다. 종부세는 보편적 과세기반을 강화하는가?

21대 국회는 부동산가격 안정을 위한 수단으로 종부세를 대폭 강화했다. 고가·다주택자에게는 최고 6% 세율을 적용하도록 하는 한편, 중저가 주택에는 공시가격을 조정해 재산세를 낮추기로 했다. 그런데 이러한 정치적 프레임은 조세의 정당성을 약화시킨다. 가격 상승에 반응한 조세정책은 가격 하락 시에는 또 다른 정치적 압력으로 이어진다.

보유세를 강화하려면 다른 선진국들처럼 비례세율 쪽으로 전환해가야 한다. 중저가 주택 소유주의 반발을 무마하는 임시방편으로는 과세기반을 넓힐 수 없다. 보유세를 서민과 부자를 대립시키는 정치 프레임에 넣지 말아야 한다.

 

둘째, 종부세를 부과하는 기준의 자의성에 대한 물음이 있다. 종부세는 공정한 세금인가? 세금은 국가가 민간으로부터 강제적으로 금전을 수취하는 것이다. 세금을 지속적으로 거두려면 정당성과 형평성을 분명히 해야 한다. 보유세를 매기는 기준은 공시가격이다. 정부는 공시가격을 산정하는 기준을 낱낱이 공개하지 않고 있다. 현재 공시가격이 시장가격을 반영하는 비율은 정부가 핀셋 방식으로 조정해 왔다.

정부는 민원을 이유로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밝히지 않다가 201912·16 대책을 계기로 고가주택 중심으로 현실화율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이에 따라 소수 주택에는 중과세가 되지만, 주택 전체에 대한 실효세율이 정체·하락할 것이다. 과세기준의 형평성 문제는 더 악화되었다. 그간 정부는 공시가격 현실화를 차등적으로 진행해 왔다. 노무현 정부만이 예외여서 단계적 현실화 목표를 법에 규정했다. 문재인 정부에 들어와서는 다시 차등적인 공시가격 현실화 쪽으로 후퇴했다.

 

셋째, 종부세의 공동체적 지향성에 대한 질문이다. 종부세는 공동체 대안을 파괴하고 있지 않은가? 지금까지 주택공급은 민간기업이 주도하고 있다. 공공의 공급주체로는 LH와 광역 지자체의 공기업이 있다. 여기에 민간과 공공 사이에서 다양한 사회주택 또는 공동체주택에 대한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다.

현재 서울시 사회주택은 오세훈 시장의 문제제기에 따라 위기에 처해 있다. 오세훈 시장은 사회적경제 주체의 영세성을 문제로 삼았고, 사업 운영주체들은 사회주택이 정치적 표적이 되었다고 반발했다. 여기에 종부세는 법인 형태로 공동체주택을 공급하는 실험에 결정적 타격을 입히고 있다. 개인들이 모여 공동주택을 만들고 공동체를 지속하기 위해 법인 소유로 등기를 한 경우 공시가의 6% 이상의 종부세가 부과된다. 종부세 때문에 주택협동조합은 해산하거나 주택을 멸실하는 수밖에 없다. 투기와 관련 없는 영세 임대사업자들도 사지에 몰려 있다.

 

현재의 종부세가 무엇을 지향하는지 잘 알 수가 없다. 지금의 종부세가 얼마나 지속될지도 모르겠다. 대선을 앞두고 윤석열 후보는 종부세 전면 재검토를 내걸었다. 이재명 후보는 국토보유세를 주장한 바 있다. 국토보유세는 토지세인데, 종부세는 건물에도 부과하며 모든 토지에 부과하지도 않는다. 정부와 민주당은 결자해지의 자세로 종부세를 보완하고 대안을 낼 책임이 있다./ 이일영 한신대 경제학 교수 경향 : 2021.12.02.

 

불쌍한 집부자와 기업주만 보이는가

네팔에 쿠마리라는 이름의 살아 있는 여신이 있다. 4~5살에 왕국의 수호 여신으로 부활한 이로 뽑히면, 부모와 떨어져 사원에서 살며 추앙을 받는다. 그러나 초경을 시작하면 신성이 다른 사람에게 옮겨 간 것으로 여겨져 후계자에게 자리를 내주고 사원을 떠나야 한다. 그 뒤의 삶은 대체로 비참하거나, 행복과 적잖은 거리가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의 정치 역정은 쿠마리의 삶을 떠올리게 한다. 당선해 권력을 손에 쥐면 기대를 한 몸에 받다가 정권 말기에 이르면 실망과 배척을 피하지 못했다. 한국갤럽의 대통령 직무수행 긍정률 조사 결과를 보면, 직선제가 실시된 이후 뽑힌 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 대통령 모두 집권 마지막 해 지지율(분기 평균)30%를 밑돌았다. 외환위기를 초래한 김영삼 대통령은 6%로 마감했다. 그나마도 김대중·노무현·이명박 대통령은 20%대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6년 말 4%까지 떨어진 뒤 탄핵으로 임기를 못 채우고 하차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5년차 2분기 긍정률이 39%. 역대 대통령에 비하면 상당히 높은 편이다. 하지만 내년 3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권 교체여론이 여당의 정권 재창출여론을 웃돈다. 1야당인 국민의힘의 윤석열 후보는 그만큼 유리한 지형에 서 있다. 그런 까닭에 윤 후보가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실망을 등에 업는 것을 넘어, 실패하지 않을 정치를 어떻게 구상하는지 더욱 눈여겨보게 된다.

 

지금까지 움직임을 보면 적잖이 아쉽다. ‘좌우를 두루 잘 돌아보는분이 왜 불쌍한 집부자·기업주와만 눈을 맞출까, 하는 생각이 든다. 윤 후보는 전두환이 정치는 잘했다고 말했다가 곤욕을 치렀다. 오래 검사로만 일해 정책을 잘 모르지 않느냐는 지적에 걱정할 것 없다고 대답하는 차원에서 한 말일 것이다. 그렇다고 정책을 말하지 않을 수 없으니, 하나씩 이야기를 꺼내고 있다. 말이 모호해서 진의를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지만, 큰 방향은 손에 잡힌다.

집값 불안은 문재인 정부의 최대 실정으로 꼽힌다. 불만이야 여러 방향에서 나오지만, 가장 고통이 큰 것은 집 없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윤 후보는 집값이 올라 세금 부담이 커진 불쌍한 집부자걱정에만 온통 매달려 있는 것 같다. 집값을 안정시키고 부동산 투기 공화국과 작별하는 복안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부동산 문제는 50년 묵은, 우리나라의 최대 골칫거리다.

 

노동과 노동자를 보는 시각은 아주 옛날을 사는 사람 같다. 윤 후보는 지난 7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이후에 맘껏 쉴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최근 주 52시간제에 매우 부정적인 뜻을 밝혔다. 최저임금제에 대해서도 더 낮은 조건에서 일할 의사가 있는 분들도 일을 못 하게 된다고 말했다.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에 대해 속도 조절 필요성을 넘어, 제도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가 짙게 묻어난다. 중소기업, 소규모 자영업자의 고충을 이해하고 부정적인 측면을 상쇄할 처방들은 늘 고민해야 한다. 그렇지만 국가 지도자라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고 수준의 장시간 노동, 그에 따르는 산업재해에 대한 문제의식이 먼저여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만성적으로 민간소비 증가율이 경제성장률을 밑도는 내수 부진의 나라, 그것은 노동자들의 낮은 소득에서 비롯한다. 빈곤과 격차 확대에 대한 걱정이 아직까지 한마디도 없는 것은 매우 이상한 일 아닌가.

 

윤 후보는 지난 1일 충북 기업인들을 만난 자리에서 상속세 부담으로 중소기업 경영 유지가 어렵다며 상속세 완화 계획도 밝혔다. 우리나라에선 2014년 이른바 가업 상속 공제 대상을 크게 확대하는 쪽으로 세법을 개정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 이지(EG) 회장의 자녀가 상속받을 때 큰 혜택을 입게 한 조처라고 해서 뒷말이 많았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일본처럼 가업을 영위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 의미 없이 상속세를 깎아주는 것에 불과하다. 그걸 또 확대하겠다는데, 내겐 상속제도를 잘 몰라 부모가 진 거액의 빚을 물려받은 이들의 눈물 어린 얼굴이 겹친다.

 

윤 후보에게 정치는 무엇인가? 그저 권력투쟁일 뿐인가? 그렇지 않다면, 우리 시대의 과제와도 정면으로 마주하기 바란다./ 정남구 논설위원 한겨레 :2021-12-02

 

 

세수 전망, 공개 검증의 필요성

세수 전망은 1년 뒤에 세금이 얼마나 걷힐지 예측하는 작업이다. 다음해 예산 편성을 위해서는 수입이 얼마나 되는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세금 외의 수입도 있긴 하지만 세금 예측이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된다. 1년 뒤 가계 수입도 예측하기 어려운데, 국내총생산(GDP)2천조원에 육박하는 국가의 1년 뒤 수입을 전망하는 작업은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작업일 수밖에 없다. 1년 전에 예측한 것이 틀렸으니 잘못되었다고 비판받으면 매우 억울할 것이다.

 

전문가들은 세수 예측을 모형에 기반해서 한다. 모형에는 전망에 유용한 투입변수들이 이용된다. 대표적인 투입변수로는 경제성장률 등을 들 수 있다. 경제가 성장한다는 것은 소득 또는 부가가치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늘어난 소득 규모에 비례해서 세수가 증가할 것은 쉽게 생각할 수 있다. 누진도가 강한 경제에서는 소득이 늘어난 정도보다 세수가 많이 늘어날 수도 있다. 문제는 모형에 들어가는 투입변수의 1년 뒤 예상값을 사용하기 때문에 모형이 정확하다고 해도 세수 전망은 틀릴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전망 작업과 마찬가지로 세수 전망에도 오차가 자연스럽게 존재한다. 예컨대, 세수 전망이 100조원이라고 하면, 100조가 정확하게 걷힌다기보다는 100조를 중심으로 일정 폭 안으로 세수입이 예상된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오차의 폭이 문제인데, 정해진 것은 없으나 5% 내지 10% 정도 안에 떨어지면 양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사실 세수 전망의 오차는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계획했던 것보다 세수가 적게 들어오면 국채를 좀 더 발행하고, 세수가 많이 들어오면 국채를 덜 발행해서 수지를 맞추게 된다. 재정 당국은 세수가 좀 더 들어오는 경우가 적게 들어오는 경우보다는 재정 운용이 좀 더 수월하기 때문에 세수 전망은 보통 보수적으로 하기 마련이다. 세수가 많이 들어와서 여유 있게 살림을 사는 것이, 세수가 적게 들어와서 국채 발행을 더 하는 것보다는 낫다. 재정 당국은 세수를 보수적으로 전망하고 대개의 경우 초과 세수가 되는 것이 보통이다. 혹시 세수가 부족한 경우가 발생하면 국세청은 이른바 발로 뛰는 세수를 추가로 거둬들여 맞추게 된다. 세수가 남으면 이를 세계잉여금이라고 하고, 국가재정법에 따라 처리하게 된다. 지방정부에 정산하여 교부하고, 국채를 갚고, 나머지는 이월해 다음해 살림에 보태게 된다.

 

문제는 여당이 재정 당국을 불신하는 경우에 발생한다. 재정 당국이 고의로 조세 수입을 과소하게 예측하고 이에 따라 지출을 줄이려고 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하고 있는 것 같다. 2017·2018년 모두 세계잉여금이 10조원 이상을 기록한 바 있고, 올해의 초과 세수 규모가 10%를 넘게 되면서 여당의 의심은 확신에 가까워졌다.

 

더 큰 문제는 지난여름에 추경을 할 때 세수 전망을 수정한 바 있는데, 수정 전망에 기초하여 전국민 재난지원금을 못 주겠다고 홍남기 부총리가 버텼다. 2차 추경안에서 대략 31조원의 초과 세수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고, 전국민 재난지원금은 국민 88%에게 지원하는 것으로 또 버텼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러한 전망은 틀렸고, 여기에 19조원의 초과 세수가 더 들어올 것으로 수정하였다. 지난해 본예산 편성 시 예상했던 목표 세수 282.7조원에서 50조 이상이 늘어난 것(333.3조원)이다.

 

이 정도 되면 기획재정부의 세수 전망 능력이 떨어진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사실 전문성이 떨어지는 직업 공무원들이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전망 작업을 한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이기는 하다. 보통은 전문가를 채용하여 전망 작업을 하거나 민간 전문기관에 위탁을 준다. 우리 재정 당국은 그동안 정보를 독점하여 정보가 부족한 민간보다 앞서 나갈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평가해보면 재정 당국의 세입 전망 능력은 한참 부족해 보인다.

방법은 세수 전망 모형을 만들어 검증하고, 전망에 필요한 데이터를 구축하는 것이다. 모형과 자료를 민간 전문가에게 공개해 검증받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다. 주먹구구식 세수 전망에 의존해 재정을 운용하기에는 우리 경제 규모와 재정의 중요성이 크다. 재정 당국의 전향적인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

우석진 |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한겨레 :2021-12-02

 

K-민주주의는 실패했다

케이’(K)를 앞에 붙여 한국을 자랑하는 말들이 유행이다. 그 가운데에는 케이-민주주의도 있다. 얼핏 보면, ‘지나친자랑 같지는 않다. 아시아에서 한국처럼 여러 차례 선거로 정권을 바꾼 나라가 몇이나 되나. 주로 영국 쪽에서 나온 민주주의의 통속적 정의로 피 흘리지 않고 왕의 목을 치는 체제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대한민국 6공화국만큼 이 기준에 부합하는 체제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케이-민주주의라는 말이 나올 만도 하다.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과연 외관만큼 자랑할 거리가 있는가. 케이-민주주의의 실체를 제대로 알려면, 비교 대상이 될 만한 다른 나라 정치를 살펴봐야 한다. 1124일 독일에서는 총선 이후 두달 만에 새 정부 출범이 결정됐다. 1당이 된 사회민주당과 녹색당, 자유민주당이 이른바 신호등연립정부를 구성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주목할 만한 것은 연립정부를 결성하기로 하면서 세 당이 내놓은 정책 협약이다. 사회민주당 주도로 최저임금을 시간당 12유로(16천원)로 올리기로 했고, 녹색당의 목소리가 반영돼 석탄 화력발전을 예정보다 8년 더 이른 2030년에 중단하기로 했다. 또한 선거연령을 16살로 낮추고 이주민이 보다 쉽게 독일 시민권을 인정받게 하겠다는 내용도 있다. 이런 정책을 앞으로 사회민주당 소속 총리, 녹색당 소속 기후위기대응장관, 자유민주당 소속 재무장관이 추진해나겠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꺼내면, 으레 나오는 반론이 있다. 나라마다 독특한 사정이 있으니 정치나 문화를 놓고 우열을 논할 수는 없으며, 다른 나라 사례를 마치 교과서처럼 따라 배울 수는 없다는 것이다. 맞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케이-민주주의를 민주주의의 다른 응용 사례들과 비교하며 다시 돌아봐야 한다. 비교 없이 성찰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한사코 그런 비교를 거부하다 망한 나라가 조선 왕조다.

 

일단 독일 사례를 거울로 삼아 케이-민주주의의 민낯을 살펴보자. 독일에서는 사회민주당에 표를 던진 25.7%, 녹색당과 자유민주당에 각각 투표한 14.8%, 11.5%가 선거를 통해 권력의 주인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고 할 수 있다. 52%가 어떻게든 자신이 지지하는 공약을 차기 정부 정책에 반영시켰다.

 

반면에 한국에서는 도대체 누가 승자인지 알 수 없다. 대통령 당선자를 낸 정당이 아닌 다른 정당들에 표를 던진 이들은 모조리 패배자가 된다. 그렇다고 선거에서 이긴 정당에 투표한 이들이 실제로 승자냐면 그것도 아니다. 19대 대선에서 41.1%가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지만, 문재인 후보의 공약 대부분은 그가 속한 당이 국회에서 3분의 2를 넘보는 의석을 점하고도 실현되지 않았다. 야당들이 열심히 반대해서가 아니었다. 온갖 정치 논리를 들며 여당 스스로 접어 버렸다. 케이-민주주의에서는 양대 정당의 정치 엘리트들을 제외하면, 실은 거의 모두가 패배자다.

 

왜 이런 극심한 차이가 나타나는가? 단지 대통령제냐 내각제냐 하는 문제만은 아니다. 이와 함께, 시민사회를 제도정치에 반영시키는 통로인 정당정치 지형과 선거제도의 문제가 있고, 현대 사회에서 대의정치가 맡아야 할 핵심 역할이 무엇인지에 관한 이해와 합의가 다르다는 문제가 있다. 아무튼 이런 점에서 케이-민주주의와 크게 다른 독일 민주주의는 기후위기 등의 대응에서 성큼 앞서가고 있는 반면 한국 정치는 사회의 위기를 더욱 부추기고만 있다.

 

지금 일단 필요한 것은 케이-민주주의, 6공화국 민주주의가 현대 사회의 변동과 위기 속에서 철저히 실패하고 있음을 인정하는 일이다. 이를 한사코 부인하며 왕의 목을 쳤던”(사실은 이를 가장했던) 흐릿한 기억 속에 머물러 있기에 실패는 더욱 돌이킬 수 없는 형국으로 치닫고 있다. 앉아서 멸망을 기다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에게는 케이-민주주의와는 다른민주주의가 절실히 필요하다.

장석준 | 출판&연구집단 산현재 기획위원 한겨레 :2021-12-02

 

 

조동연과 김건희, '사생활 검증'의 이중잣대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캠프의 공동상임선대위원장으로 영입됐던 조동연 교수가 사퇴했다. 10년 전 이혼과 관련한 사생활 논란이 불거진 뒤 이틀 만이다. "누굴 원망하고 탓하고 싶지는 않다. 아무리 발버둥 치고 소리를 질러도 소용없다는 것도 잘 안다. 열심히 살아온 시간들이 한순간에 더럽혀지고 인생이 송두리째 없어지는 기분이다. 다만 아이들과 가족은 그만 힘들게 해주셨으면 좋겠다." 그가 사퇴에 즈음해 페이스북에 올렸다는 글이다. 단어와 단어 사이에 흐느낌이 배어 있고, 문장과 문장의 행간에 선혈이 흐른다. 숨죽여 터뜨리는 통곡이 정치의 황량한 거리에 빗물이 돼 흘러내린다.

 

한 사람의 눈물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기쁨이다. 민주당의 '영입 1' 인사를 단숨에 저격한 기쁨의 축배 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 '검증'이라는 이름의 무자비한 인격 살해를 한 유튜브와 일부 언론, 이를 부채질한 야당이 축제의 주인공이다. '먹잇감'이 나타나자 곧바로 화살을 쏘아 쓰러뜨린 사냥꾼의 쾌감을 그들은 한껏 만끽한다.

 

이번 사냥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의 운영자는 그 자신이 불륜설, 사문서위조 혐의 등으로 진흙탕에서 허우적댄 사람이다. 도덕성을 자랑할 건덕지도 별로 없는 인물이 남의 사생활을 들추어내 도덕 강의를 펼치는 모습은 비루하고도 그로테스크하다. 유튜브만이 아니라 <TV조선><조선일보> 역시 사냥에 뛰어들어 '황색언론'의 위용을 확실히 보여주었다. 조 교수의 결혼과 이혼에 관한 세세한 내용, 심지어 자녀의 출생 시점 등 '아동 인권'을 침해할 내용마저 시시콜콜히 보도했다. 이 모든 것이 '공인에 대한 검증' '국민의 알권리 충족'이라는 이름 아래서 이뤄졌다.

 

언론의 무책임한 까발림도 문제지만 민주당의 성급한 영입과 검증 실패가 근본 문제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민주당 내부는 물론 진보를 표방하는 단체와 언론에서 터져 나오는 지적이다. "기본적인 검증도 거치지 않고 요직에 발탁한 민주당의 책임이 막대하다"고 질타하며 이번 사안을 "부실한 검증이 빚은 참사"라고 규정한다.

 

선거에 임박해 정당이 이미지 제고용 외부 인사들을 끌어들이는 '이벤트성 영입'은 비판받아야 한다. 게다가 민주당은 야당의 시빗거리가 될만한 내용을 사전에 인지하지 못하고, 공격에 대비한 준비도 전혀 하지 않았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비판에 휩쓸려 가장 중요한 질문이 실종됐다. 과연 조 교수의 '흠결'은 공직을 맡을 수 없는 치명적인 '자격 미달' 사항인가?

 

'부실 검증'이라는 말에는 검증 대상자가 '부적격자'라는 의미가 은연중 내포돼 있다. "과열된 인재 영입 과정에서 생긴 인사 검증 실패"라는 비판에는, 가족 관계에 얽힌 과거사 문제가 있는 사람은 애초 영입하지 말아야 했다는 생각이 서식하고 있다. 실제로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사생활 논란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거짓에 기초한 가정 구성이나 삶의 태도는 성별을 떠나 문제가 있다"고 조 교수를 질타했다. 명색이 '성평등한 민주주의와 여성의 정치참여 확대'를 목표로 내건 단체가 내놓은 성명 구절이다.

 

지금 대다수 국민은 조 교수의 '결혼 과거사'를 접하며 심각한 도덕적 분노를 느끼고 있는가? 이런 사람은 절대 공직을 맡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런 '숭고한 도덕주의'가 우리 사회의 보편적 국민 정서라는 말인가? 아닐 것이다. 대다수 사람은 그런 알량한 도덕주의에 매몰돼 있지 않다고 믿는다. 오히려 '인사 검증 실패' 비판이 본질을 흐리고 초점을 잃게 했다. 부실 검증이라는 질책은 어느 면에서는 당사자에 대한 가혹한 '2차 가해'. 진보를 자처한다면 마땅히 이렇게 외쳐야 한다. "그래서 조 교수가 공직을 맡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라는 말인가?" 민주당이 비판받아야 할 것은 '부실 검증'이 아니라 오히려 논란이 불거진 뒤 보인 '발뺌 대응'이다.

 

글을 여기까지 쓰고 있는데 뜻밖의 뉴스가 전해졌다. 민주당 대선대책위원회 법률지원단 부단장인 양태정 변호사가 발표한 글이다. "조 전 위원장은 20108월경 제3자의 끔찍한 성폭력으로 인해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됐으나, 군 내부의 폐쇄적 분위기 등 때문에 외부에 신고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당시 혼인 관계는 사실상 파탄이 난 상태였고, 차마 뱃속에 있는 생명을 죽일 수는 없다는 종교적 신념으로 홀로 책임을 지고 양육을 하려는 마음으로 출산을 하게 되었다"는 내용이 골자다. 참으로 처참하다.

 

조 교수의 혼외자 문제를 비도덕적으로 몰아가 낙마시킨 '관련자들'은 입이 있으면 뭐라고 말해보라. 그대들이 저지른 패악에 대해 일말의 양심의 가책이라도 느끼고 있는가. '부실 검증'을 지적한 언론 역시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들 언론은 명시적으로 말하지 않았지만 '불륜으로 혼외자를 얻은 인물'이라는 데 동의한 셈이었다. "기본적인 검증도 거치지 않고 요직에 발탁한 데서 비롯된 인사 참사"라는 일갈도 그런 맥락에서 나왔다. 그래서 묻는다. "기본적인 취재도 거치지 않고 '요직 발탁 부적합'으로 몰아간 '부실 보도'야말로 언론의 보도 참사 아닌가?" 총체적 난국이요 비극이다.

 

조동연 교수 사태를 지켜보며 생각의 끈은 자연스럽게 대선 후보 부인 검증 문제로 이어진다. 검증 필요성을 놓고 보면 정당의 대선 캠프 선대위원장과 유력한 '영부인 후보'는 비교할 바가 아니다. '퍼스트레이디'는 단순히 대통령의 부인이라는 의미를 넘어 한 국가를 대표하는 얼굴이다. 공식적으로 청와대 제2부속실 직원들의 보좌를 받는 자리이며, 막대한 국가 예산과 국민의 세금이 들어가는 자리다. 각종 사회 활동과 외교 등 독자적인 '영부인 정치'를 하는 경우도 많다.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 코바나컨텐츠 전시회에 대한 기업들의 '보험성 뇌물 의혹' '개 사과 사진 연출 의혹' 등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부인 김건희씨는 숱한 의혹들에 휩싸여 있다. 내용을 보면 그의 과거사는 '일회성'이 아니라 '출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 줄로 연결된 것으로 보인다. 의혹들 너머에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어둡고 음습한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남편인 윤석열 후보가 직간접으로 연관된 사안들도 많다. 조 교수의 경우에 비교해보면 검증의 필요성은 차고 넘친다.

 

그런데도 김건희씨의 숱한 의혹들에 대한 검증은 언론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후보자 부인을 왜 검증하는가"라는 주장도 더욱 힘을 얻고 있다. 그러면서도 한편에서는 이제 갓 정치권에 진입한 여성에 대한 신상털기가 '공인에 대한 검증' '국민의 알권리 충족'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다. 이런 물구나무선 풍경이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언론의 대선 보도 현실이다.

 

이제 언론들은 김건희씨에 대한 검증 회피를 이런 말로 합리화할지 모른다. "이번에 조동연 교수 사태를 겪으면서 섣불리 검증에 손대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사냥꾼들의 입장에서는 어차피 표적으로 삼았던 먹잇감은 노획했으니 손해 볼 일도 없다. 이래저래 조동연 교수는 끝까지 정치적으로 악용되고, 김건희씨는 더욱 교묘히 검증을 피해 가고 있다.

김종구 언론인 |프레시안 2021.12.06.

 

이건 아니다. 아닌 것이다

이건 아니다.

지난 6일의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에서 쏟아진 말들이 그랬다.

 

이건 아니다.

지긋지긋한, 부패하고 무능한 정권이라니. 누가 그에게 그렇게 왜곡된 연설문을 써서 줬을까. 미완성이긴 해도 한반도 종전을 이끌어 가고 있는데다 코로나19의 절대적 위기 속에서도 세계 8위의 무역 대국을 이루어 낸 정부가 무능하다니. 한치의 부정도 없는, 심지어 아티스트인 아들이 공적 지원을 받는 것조차 시비를 받을 정도로 투명한 대통령이 부패하다니. 그것이야 말로 숱한 차떼기 뇌물의 역사와 국정농단의 과거를 지닌 정당의 후보가 할 말은 아니지 않은가. 스스로가 창피하지 않을까. 아니면 아예 염치라는 인식이 없는 것일까.

 

그러므로 해서 더더욱 이건 아니다.

여성은 군 복무를 하지 않으니 4분의 3만 권리를 행사하되 자식을 2명 낳은 여자는 예외로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인재랍시고 영입하려 했던 당사자들이 스트릿우먼 파이터를 축하 댄스 무대로 장식한다. 한 마디로 헛웃음이 나올 일이다. ‘스우파의 스피릿은 그런 것이 아니다. 공격적일 만큼 당당한 여성상을 시대가 받아들여야 하며 또 받아들일 준비가 돼있음을 스스로 증명하려 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렇게 막 갖다 쓸 일이 아니다.

 

그리하여 이건 더욱더 아니다.

정규직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 30대 자영업자를 핵심 지지자로 갖고 있는 정당이 오징어 게임의 주제곡을 행사용으로 쓸 일은 아닌 것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주창하는 주제의식은 인간에겐 극단화된 계급사회를 바꾸겠다는 선한 의지가 있다는 것이다. 자유주의라는 미혹의 언어를 내세워 사실상 계급사회를 추구하는 정당이 쓰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내용의 드라마이다. 한 마디로 얻다대고인데 대중 추수주의(大衆 追隨主義: 대중적 인기에만 영합하려는 기회주의적 태도)의 전형이라고 밖에 볼 수 없는 일이다. 이런 걸 두고 포퓰리즘이라고 한다.

 

따라서 이건 더욱 아니다.

총괄선대위원장이라고 하는 김종인 씨는 문재인 정부가 쫓아내려 안달했던 강직한 공직자가 공정과 정의의 상징으로 이 자리에 있다고 했는데 윤석열 후보는 만인이 알다시피 스스로가 검찰 정치를 하기 위해 사표를 내고 나온 사람이다. 대통령은 그를 쫓아낸 적이 없으며 오히려 지나치게 절차적 민주성을 지키려다가 오히려 대통령의 권한을 너무 소극적으로 행사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난을 받았다. 게다가 강직이라는 단어는 윤우진 전 용산세무서장 뇌물수수사건 무마 의혹부터 부인의 도이치 모터스 주가 조작사건 의혹까지 온갖 의혹을 받고 있는 사람에 대해서 쓸 말이 아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말을 그렇게 막 갖다 쓰면 안될 일이다. 그것도, 대장동 개발 과정에서 아들을 통해 50억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돈을 챙긴 자가 있던 정당이 할 말은 아닐 것이다. 그 또한 심대하게 염치가 없는 태도이다. 알면서도 정치적 수사를 위해서 그러는 것이라면 심각한 악의가 담겨 있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나이 자신분이 그러면 안될 일이다.

 

또 이래서도 이건 아니다.

상임선대위원장이라는 김병준 씨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향해 국가주의와 대중영합주의가 결합할 때 나라도 민족도 파국 파산 파면했다고 했는데 국가주의란 말은 배운 사람이라면,그것도 교수 출신이라는 사람이라면, 거기에 맞는 인간이나 집단을 향해서 해야 할 말이다. 김병준 씨처럼 기회주의적 작태의 극치를 보이는 사람이 자유주의 철학을 운운하는 것 자체가 가소로운 일일 수 있다.

 

이건 아니다의 일은 그것뿐만이 아니다.

표창장 위조 의혹 때문에 어떤 사람은 무려 징역 4년을 살게 하면서 동시에 온갖 학력, 이력 의혹을 받고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실정법의 잣대를 적용하지 않거나 미루고 있는 것은 공정하지가 않다. 그 사람의 석사 학위를 부여했던 대학이 그 심사과정에 대한 조사를 미루는 것은 실로 눈에 다 보이는 일이다. 시간을 벌자는 것일텐데 그들은, 그 학교는 무엇을 바라고 있는 것인가. 그러면서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는 것인가. 대학사회가 그러면 안되는 것 아니겠는가. 이제는 더 이상 진부할 대로 진부해져서 하고 싶은 말도 아닌데 그건 진실로, 진실로 선택적 정의에 불과한 얘기인 것이다.

 

이거 아니지 않을까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것도 부지기수다.

손바닥에 왕() 자와 같은 특정 문양을 필요할 때마다 주문(呪文)용으로 새기고 다니며 무속인의 고견을 일상에서 함께 하는 사람에게 예수의 축복을 기원해 주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 일이 아닌가. 그 건 정말 아니지 않은가.

 

생각해 보면 이것도 아닌 일이다.

전국 유세 현장에 사전 녹화한 후보의 AI 영상을 틀겠다는 것은 첨단과학의 이기를 오용하는 것이다. 정치인은 실시간 토론과 현장 유세를 통해 대중을 만날 때 그가 하는 언변의 진실성을 가릴 수가 있다. 국가운영의 능력이 자발성에서 나온 것인지의 여부를 판단할 수가 있다. 아바타라니.이건 무슨 오염된 과학인가. 하지만 이런 것들을 다 넘어서서

 

정말로 이건 아닌 것인 일이 있다.

한 여성의 개인사, 가족사를 탈탈 털어서 대중에게 회자시키고 그녀의 아이들까지 사진을 공개하며 조리돌림하는 악마의 유투버들에게 막대한 후원금을 보내는 대중들은 인간들이 아니다. 관음증과 새디즘이 뒤섞인 광기의 파시스트일 뿐이다. 지금이 어느 때라고 주홍글씨인가.

 

이건 아니다. 이래서는 안된다.

사회가 이렇게 가서는 안된다. 미래가 이런 식이어서는 안된다.

2016년 트럼프주의자들이 '힐러리 투 제일(Hillary to jail)' '록 허어 업(Lock her up)'이라고 외쳤던 것처럼 윤석열 지지자들도 문재인을 감옥에 넣겠다는 일념이 강하다고 한다. 증오의 정치를 유포시키고 있다.

 

이건 진실로 아닌 것이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경기신문 2021.12.08

 

조동연은 피해자에 미달하는가

. 사생활 논란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거짓에 기초한 가정 구성이나 삶의 태도’()는 성별을 떠나 문제가 있다.”

 

현실 정치권 안에서 젠더 평등을 실현하고자 하는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가 지난 3일 발표한 입장문의 첫 단락이다. 나는 저 문장 앞에서 몇날 며칠 배회했다. 몇번을 읽고 또 읽었다. 물론 입장문의 취지는 조동연을 비판하는 데 있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을 비판하는 데 있었다. 셋째 단락부터 입장문의 문제의식은 확연해진다.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는 조동연 사태’()의 원인을 조동연 개인이 아닌 민주당에서 찾는다. 흔히 정당은 문지기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사회적 거름망’()으로서 국민에게 검증된 사람과 정책을 선보이고, ‘문제 있는 인물’()과 공약은 정당 밖으로 나갈 수 없도록 차단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선을 앞두고 마음이 급한 민주당이 졸속으로 외부 엘리트들을 영입해(후략)”

그러나 첫 단락의 전제는 여기서도 오롯하다. 조동연은 이 사태의 주역(‘조동연 사태’)이다. 정치권에 발을 들이기 전 마땅히 걸러졌어야 할 자격 미달의 인물이다. 아이가 혼외자인 걸 법률상 배우자에게 감췄는데, 법률적 관계가 청산된 뒤 전 배우자에 의해 뒤늦게 들춰졌다. 저 입장문이 나오기 전 내가 가로세로연구소의 유튜브와 <티브이(TV)조선> 등을 통해 원치 않게 인지한 오래전 사실관계의 전부다. 그걸 두고 사생활 논란을 벌이고 거짓에 기초한 가정 구성이나 삶의 태도라고 문제 삼는 세태야말로 가부장제 사회의 케케묵은 자화상 아닌가.

이것은 여성정치네트워크뿐 아니라 우리 사회 진보 세력이 그 심각성에 동의할뿐더러 줄기차게 맞서 싸워온 문제라고 알고 있다. 돌아보면 나는 수업 진도 못 따라가는 학생처럼, 때로 회의하고 때로 찜부럭 내면서도, 그 문제의식에 견인돼왔다. 그래서 저 입장문 앞에서 배회했는지 모른다. 여성정치네트워크는 내가 모르는 그의 반인륜적 행위라도 알고 있지 않은가 싶을 지경이었다.

 

여성정치네트워크는 이튿날 다시 입장문을 냈다. 조동연 개인을 향한 비판의 맥락은 지워졌다. 말미에는 표현상 달리 읽힐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판단하여, 후속 논평으로 작성하였다고 추신이 붙었다. 가로세로연구소가 실명 비판에 추가됐다. 민주당에 대한 비판은 문제적 인물을 거르지 못한 데서 무책임한 발뺌 정치로 이동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행태라는 거였다. 꼭 그만큼 조동연은 무구해졌고, 그의 피해자성도 선명해졌다. 하지만 조동연 사태와 달리 피해자 조동연은 끝내 주어 위치에 서지 못했다.

 

근래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젠더 폭력 피해자들의 경우 피해자가 주어인 서사가 구성되고는 했다. 서사는 젠더 운동 안에서 활발히 생성·유통돼, 운동의 범주 밖으로 확산했다. 고 변희수 하사가 떠오른다. 누구보다 군을 사랑했고, 반젠더적 군사주의 문화를 초극하고자 하는 노력을 다하다 마침내 희생된 사람. 그렇기에 이라는 기표는 병역거부 운동을 펴는 이들에게도 애도의 장애물이 될 수 없었다. 그들은 애도를 거쳐 비로소 변희수의 이름으로 군의 만행을 규탄할 수 있었다.

 

조동연의 서사는 왜 구성되지 못하는가. 생물학적 사망에 이르지 않아서인가. 자신과 혈육이 인격적 죽임을 당한 걸로는 충분하지 않은가. 변 하사와 달리 엘리트 코스만 걸었고, 그 연장선에서 현실정치 상층부로의 편입을 노려서인가. 별의별 잡생각을 다 하는 내 모습에 문득 도리질 치면서도, 이 미욱한 질문을 붙들 수밖에 없다. 그는 피해자로서 자격 미달인가. 그의 피해자성을 후순위로 부차화한 채 남성주의 기성 정치를 공략할 수는 있는가.

 

조동연이 성폭행 피해 생존자이고, 혼외자의 출생 또한 그 피해와 직접 닿아 있다는 사실이 공개된 뒤로 사회 분위기의 변화가 감지된다. 그러나 여전히 신중한 과묵이 느껴진다. 그사이 성폭행 피해자를 가문의 수치로 여겨 살해하는 어느 나라의 명예살인을 빼닮은 가부장적 가해는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그가 현실정치의 중책을 맡을 자격을 갖췄는지와 그가 당하는 폭력 사이에는 아무런 관련도 없다. 그는 다만 젠더 폭력의 현존하는 피해자다.

 

조동연이 자신의 피해 사실을 밝히는 문제를 두고 가족, 특히 어린 아들과 뜻을 모으는 과정을 거쳤다고 한다. 출생 과정에 대한 가부장적 해석을 초극하고 출생 이후의 현존에 집중하는 그들 모습은 사뭇 큰 울림을 일으킨다. 그들만의 힘은 아니다. 그들은 달걀로 바위 치기나 다름없는 젠더 폭력과의 싸움에 부단히 헌신해온 이들의 어깨 위에 서 있다.

안영춘 ㅣ 논설의원 한겨레 2021.12.09

 

약이 있어도 치료 못 받는 사람들

돈이 없으면, 돈을 마련할 시간이 부족하면 죽어야 하는 게 의료 강국이라는 이 나라의 현실인가요? 정책을 결정하는 윗분들이 킴리아 건강보험 등재를 고민하며 한 달 한 달 평가를 미룰 동안 약이 필요한 아이들은 한 달 한 달 독한 항암제를 들이부으며 죽어가고 있습니다.” 킴리아 치료를 기다리다 끝내 아들을 품에서 떠나보낸 은찬이 엄마가 지난 10월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린 글이다.

 

킴리아’, 근래 기적의 암치료제로 불리는 신약이다. 기존의 항암제와 달리 환자 개인 맞춤 치료제이다. 환자 혈액에서 뽑아낸 면역세포를 환자 암세포를 공격하도록 배양한 후 다시 환자에게 주입한다. 이제 환자 암세포를 인지하는 유전자 정보가 입혀진 면역세포는 마치 유도탄처럼 암세포를 찾아 공격한다. 킴리아는 말기 급성림프구성백혈병 환자의 경우 10명 중 8명이 장기 생존할 만큼 약효가 분명하고 부작용도 적다. 게다가 단 한 번 주사로 암에 대응하는 원샷 치료이니 꿈의 치료제라 불릴 만하다. 킴리아는 한국에서는 생소한 신약이나 이미 30여 나라에서 사용되고 있다. 2017년 미국에서 처음 허가를 받았고, 일본에서는 2019년부터 건강보험이 적용되어 환자 치료에 이용되고 있다. 뒤늦었지만 한국에서도 지난 3월 식품의약처가 킴리아 사용을 허가했다. 가슴 졸이며 이 약을 기다리던 환자들이 마침내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다른 대체약이 없어 오로지 이 약이 절실한 환자 200여명은 아직도 치료받지 못하고 있다. 해당 환자들의 평균 수명이 보통 3~6개월에 불과한데도, 식약처 허가 이후 9개월이 지나도록 건강보험에 등재되지 않은 상태이다. 앞으로 심사평가원 약제급여평가위원회, 건강보험공단과 제약회사(노바티스)의 약가 합의,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의결, 보건복지부 고시 등 거쳐야 할 관문이 많은데 지난주 열린 약제급여평가위원회는 아예 안건으로 다루지도 않았다. 도대체 우리나라 보건의료행정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건가?

 

무척이나 높은 약값 때문이다. 한 번 투약 비용이 무려 46000만원이다. 현재 미국에서 약 5억원, 일본에서 약 3억원이니 국제적으로도 초고가의 신약이다. 최첨단 신약 개발비용을 감안하더라도 제약회사의 지나친 이윤 추구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이다. 이렇게 약값을 두고 정부와 노바티스는 줄다리기만을 벌이고 환자들은 치료받는 날만 기다리다 세상을 떠나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

 

물론 지금도 식약처 허가를 받은 신약으로 치료를 받을 수는 있다. 환자가 전액을 부담하면 말이다. 환자 앞에 놓인 길은 두 가지이다. 46000만원을 마련해 치료를 받는 길과 기약 없는 건강보험 등재를 기다리다 세상을 떠나는 길. 지난 9개월 많은 환자들이 두 번째 길로 내몰렸고 오늘도 환자와 가족들은 두 길 앞에서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기억하실 거다. 20178월 서울성모병원에서 문재인케어를 직접 발표하면서 아픈데도 돈이 없어서 치료를 제대로 못 받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던 일을. 올해 8월 문재인케어 4주년 보고대회에서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는 돈이 없어 치료받지 못하고, 치료비 때문에 가계가 파탄나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정책이라고 자랑까지 하였다. 그런데 알고 계시는가? 효과가 분명한 신약이 있음에도 돈이 없어서 치료받지 못해 생을 마감하는 환자와 가족들의 이야기를. 킴리아뿐만 아니라 다른 신약에서도 건강보험 등재과정이 이리 더디다는 사실을.

 

가슴 없는 행정과 과도이윤 경영이 만든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은찬이 엄마는 이러한 슬픈 일이 더 이상 없어야 한다며 국가인권위원회를 찾아 호소하고 환자단체들은 50여일째 노바티스 회사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건만 지난주 매달 열리는 약제급여평가위원회는 안건으로 상정조차 하지 않았고 노바티스 역시 버티기를 계속할 뿐이다.

 

 

행정과 이윤이 생명을 앞설 수 없다. 정부와 노바티스는 긴급히 건강보험 등재를 위해 협력하라. 더 지체되는 만큼 안타까운 생명이 쓰러지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나아가 이번 기회에 생명을 다투는 신약은 식약처 허가와 동시에 건강보험 급여를 적용하는 생명 직결 신약의 신속등재 제도를 도입하자. 국제적으로 치료효과가 확인되고 국내 의약당국의 허가까지 받은 신약이라면 우선 OECD 회원국들의 평균 조정최저가를 활용한 임시가격으로 급여화해서 치료에 사용하고 이후 약가협상을 진행하여 최종가격과 정산하면 된다. 생명을 존중하는 상식만 잃지 않으면 길은 있다. 제발, 정부와 제약회사는 약값 협상에 환자의 생명을 볼모로 삼지 마라./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 경향 : 2021.12.09

 

시민들이여, 공공의료에 투표하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국내에서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나온 지 2년이 다 돼가는데 왜 아직도 아침마다 시민들이 남은 병상 수를 걱정하고, 병상 몇 %가 찼다는 것이 주요 뉴스가 되어야 하는지를. 또 왜 거대 양당의 대선 후보들은 우리 사회 최대 현안인 코로나 위기 극복과 의료 문제에 대해서는 해법을 제시하지 않는지 말이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정부가 단계적 일상회복(위드 코로나) 시행 이후 지난 한 달간 행정명령을 통해 확보한 중증 병상은 단 27개다. 4주 내에 확보하겠다고 한 준중증 병상도 목표치의 절반만 확보한 상태다. 3조원 가까운 돈이 주로 민간병원의 병상 확보 등 치료대응에 들어갔는데도, 병상 확보에 이렇게 애를 먹고 있으니 복장이 터진다. 300병상 규모 공공병원 20곳을 만들 수 있는 비용이다. 돈은 돈대로 쓰고, 확진자 폭증 속에 병상 대기자도, 그 과정에서 숨지는 환자도 늘어만 가고 있다. 공공병원에 진작 투자했다면 이런 사태까지는 오지 않았을 일이다.

 

코로나 2, 공공의료 확대 요구는 커지고 있지만 코로나 환자 치료 대부분을 담당하는 국내 공공의료의 실상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공공병원 비중은 전체 병원의 5%대이고, 병상 수 기준으로는 10% 정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의 7분의 1 수준이다. 그나마 외진 곳에 있는 곳이 많고 병상 수도 적다. 공공의료가 이처럼 맥을 못 추고 허약하니 민간병원들의 목소리가 커지는 역설적 상황에 봉착한다. 사실 우리나라는 인구 1000명당 병상 수 12.3개로 OECD 국가 중 두번째로 많은 의료 인프라 강국이다. 반면 인구 대비 중환자 병상 비율과 보건 의료인 수는 OECD 평균에 훨씬 못 미친다. 결국 병상 수 등 의료자원은 풍족해 보이지만, 위기 상황에선 쓸모없는 허수 요인이 많다. 중환자 병상도 적고, 흔히 내···(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로 불리는 필수 의료진도 부족하다. 그런데도 정부가 의료진 숫자와 업무 범위조차 조정하기 어렵다. 공공병원 비율과 영향력이 절대적으로 약한 상황에서 민간병원 협조 없인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정부 당국은 의 입장일 수밖에 없는 딱한 상황이다. 코로나라는 국가적 위기 속 한시적으로 민간병원을 국유화한 스페인이나, 공공병상과 의료인력을 대폭 늘린 독일의 대응이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린다.

 

우리나라는 애초에 제대로 된 공공의료서비스를 한번도 경험해본 적이 없다. 의료는 당연히 민간이 맡는 것으로, 공공의료 투자는 그저 비용으로만 간주했다. 막대한 건강보험 혈세가 투입되지만, 민간은 돈이 안 되는 것만 공공이 하라고 떠밀고, 자신들은 비급여 위주의 돈벌이 경쟁에 몰두했다.

 

코로나 2년간 공공의료의 필요성은 강조됐지만, 실제로 달라진 건 거의 없다. 최근 보건의료노조의 단식투쟁 끝에 70개 중진료권 중 13개 지역에 공공병원을 설립하기 위한 사전용역비 26억원, 울산과 광주의 공공병원 신축 설계비 20억원 등 예산만 통과됐을 뿐이다. 생색내기 수준으로, 실제 공공병원 건립으로 이어질지, 언제 건립될지 기약도 없다.

 

암울한 것은 앞으로도 변화 가능성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수도권 곳곳에는 향후 몇 년간 대형 민간병원들이 수천 병상의 분원 설립을 계획하고 있다. 의료 각축전 속에 부동산값도 덩달아 오른다는 기사까지 나온다. 대규모 인구 유입이 예상되는데도 정부는 뒷짐만 지고 있을 뿐, 공공의료서비스에 예산을 들일 생각조차 안 한다. 일각에선 지금처럼 필요할 때만 민간의 시설을 빌리는 것이 효율적이지 않으냐고 한다. 그러나 조승연 인천의료원장(전국지방의료원연합회장)민간병원은 돈이 안 되면 안 움직이니 공공이 필요한 것이라며 태권도 학원, 세콤이 아무리 많아도 치안을 그곳에 맡길 수는 없지 않으냐고 갈파한다.

 

참여연대와 좋은공공병원만들기운동본부 등 노동시민단체들이 청와대 앞길에서 공공의료 확충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지난달 기자회견에서 유독 눈에 띈 건, 공공의료에 투표하자는 손팻말이었다. 정부가 시민들을 두려워하도록 행동해야 한다. 질 높은 공공병원을 늘려가고, 민간병원도 공공성을 다하도록 책무를 요구해야 한다. 소진되지 않도록 인력을 보충하고, 시민들에게 낭비 없는 양질의 의료서비스가 전달되도록 의료의 체질 개선을 촉구해야 한다. 행동하지 않는다면 달라질 것도 없다. 책 제목처럼, 우리가 원하는 <다른 의료는 가능하다>. 송현숙 논설위원 경향 : 2021.12.09

 

아트테크와 주식 투자, 욕망의 상관관계

초욕망의 시대다. 유튜브 SNS 광고 드라마 영화 등과 접속하는 순간 우리는 거대한 욕망에 노출된다. 실시간으로 연결된 세계는 욕망을 한껏 증폭시킨다. 멋진 집과 차 등 풍족한 삶을 향한 욕망은 나와 너, 우리를 끊임없이 유혹한다. 욕망은 인간의 기본적인 감정이다. 뭔가를 갈망하는 것은 삶의 원동력이다. 하지만 현재 세상의 욕망 강도는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강하다는 생각이 든다. 욕망 달성을 위한 수단도 한 가지로 고정되었다. 돈이다. 돈을 벌어야만 하고 싶은 것을 모두 하면서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 너무 일반화된 느낌이다.

 

이런 생각은 특히 나이와 반비례해 강해지는 것 같다. 나이에 따른 세대 구분을 개인적으로 선호하지 않지만 흔히 말하는 밀레니얼세대와 Z세대를 보면 어릴 수록 더 예민하고, 더 욕망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돈을 벌기 위해 부동산과 주식, 암호화폐 등 재테크에 관심을 쏟는 MZ세대가 이미 폭증한 상황이다.

 

요즘엔 MZ세대의 재테크 관심 분야가 미술품에 투자하는 아트테크로 확산되고 있다. 기존 아트테크 시장은 폐쇄적이었다. 고가 미술품을 취급하는 갤러리와 전문 화상들이 재력을 갖춘 소수 컬렉터들과만 거래하다보니 그 시장에 대한 정보 자체를 외부에서 알기 어려웠다. , 미술품 거래는 부자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미술품 시장의 풍경이 많이 바뀌었다. MZ세대 컬렉터가 유입되면서 이들을 위한 미술품 거래 시장이 활성화 되고 있다. 갤러리나 경매를 통하지 않더라도 온라인으로 미술품을 구매할 수 있는 미술품 투자 플랫폼이 속속 등장했다. 주머니가 가벼운 MZ세대를 위해 다수가 함께 지분을 나눠 소유하는 공동구매, 또는 초장기 할부판매 등 새로운 거래 방식도 생겨났다. 미술품이 부동산 거래와 달리 취득세와 보유세가 없다는 점도 MZ세대에겐 매력적일 수 있다. 세태를 반영하듯 영화배우 등 유명 연예인의 미술 작품은 인기몰이 중이다. 가격 부담이 적은 팝아트 작품도 MZ세대를 사로잡는다. 비트코인과 아파트의 가격 급등을 보며 학습효과를 경험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일단 사자는 분위기가 강하다.

 

하지만 미술품 시장도 주식시장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다. 치열하게 공부하지 않으면 수익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주식 투자에서 성공하려면 세계 시장 경제와 정치, 사회의 흐름을 읽어야 하는 것은 물론 자기 나름의 주체적 전망도 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원유와 금 가격 등 각종 경제지표 등락을 훤히 꿰야 한다. 자신의 판단 오류를 수정할 조언자 그룹도 있어야 한다. 매 순간이 판단의 연속이며, 이 과정에 오판, 실수를 범하면 씁쓸한 결과를 맞는다. 더욱이 가장 중요한 것은 욕망에 휘둘리지 않는 것이다. 욕망은 우리 눈을 멀게 만들고 조급하게 만든다. 평범한 주식 투자자들이 보유 종목 갈아타기를 반복하며 원금을 까먹다가 결국 보상 심리 때문에 점점 위험한 주식에 투자, ‘쪽박을 차는 것도 이런 이유다.

 

미술품 투자 세계에도 주식 투자처럼 상장폐지라거나 거래 실종 등의 리스크가 상존한다. 한때 인기 있었지만 잊혀진 작가들도 적지 않다. ‘반짝하고 이목을 끌다 사라진 IT나 바이오 기업 주식처럼 말이다. 주식에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끊임없이 공부하고, 자신이 찾아낸 기업을 열정적으로 응원하는 마음을 갖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불쑥불쑥 올라오는 응원 철회 욕망과 싸우며 긴 호흡으로 투자한다. 미술품 투자도 동일하지 않을까. 주관없이 유행에 휩쓸려 산 작품은 처분조차 못할 우려가 크다. 미학적 관점을 길러야 한다. 즐거운 마음으로 기초부터 공부하자. 전시회에도 많이 가자. 고군분투하는 작가를 응원한다는 마음가짐도 잊지 말자.

 

미술 시장에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하다. 우량주라고 할 유명 작가 작품만 선호되기 때문이다. 많은 작가들은 유행에 맞춘 공산품같은 작품만 팔리고, 정말 예술성 높은 작품은 외면받는다고 푸념한다. 또 어떤 작가는 작품이 워낙 안 팔리다보니 호당 가격을 받기는커녕 무게로 환산해 땡처리해야 할 판이라고 자조한다. 그동안 돈을 좇은 사람들이 재테크에 성공한 경우를 잘 보지 못했다. 아트테크 분야는 더 그렇다. 재능있는 작가를 순수하고 열정적으로 후원하며 투자한 사람들만이 오랜 세월이 지나 대박을 선물받았다. 예술의 궁극적인 지향점을 향해 포기하지 않고 작품 활동을 하는 작가에게 힘이 되고 싶다는 선한 생각이 가장 중요한 투자 성공 비결인 셈이다.

 

재테크에 관심을 갖는 것은 분명 권장할 만한 매우 좋은 일이다. 그러나 욕망은 불과 같다. 욕망을 제대로 다루는 법을 익히지 않은 채 계속 욕망하고, 더 욕망한다면 결국 주화입마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천영철 문화부장 부산일보 : 2021-12-12

 

한국 개영국 게의 복지

의견(義犬)의 고장으로 불리는 임실군에 축구하는 반려견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고 한다. 임실군의 SNS 채널인 임실엔 TV’에 등장하는 반려견 레오는 축구공을 몰며 질주하는 모습이 세계적인 축구스타 리오넬 메시를 연상케 해 레오넬 메시라는 별칭까지 얻었다고 한다. 장마철 거리를 헤매던 유기견이었던 레오는 자신을 유기견센터에 맡겼다가 애처로운 생각에 입양한 새 주인을 만나지 못했으면 축구는 고사하고 유기견 생활을 계속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개와 사람은 1600여년 전부터 뗄 수 없는 관계였음이 최근 확인됐다. 국립 가야문화재연구소에 따르면 경남 창녕군의 5~6세기 가야 고분인 교동 63호분에서 무덤 주인과 함께 석곽에 순장된 세 마리의 개 사체가 발견됐다. 연구소는 개들이 돌을 두른 전용 무덤 방에 온전한 모습으로 매장된 점을 볼 때 망자의 애견이나 반려견이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주인과 함께 순장할 정도로 반려견을 아낀 가야시대에도 개고기를 먹는 관습은 공존했었나 보다. 국립민속박물관이 발간하는 한국민속대백과사전에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사람들이 개고기를 먹었다고 소개돼 있다. 13세기 중반(12641268) 건조된 난파선 마도 3호선도 고려시대의 개 식용을 설명하고 있다. 충남 태안군 마도 해저에서 발굴된 이 배에서는 견포(개고기 포)가 발견됐다. 조선시대에는 개장국(보신탕)이 보편적인 음식이었다.

 

삼국시대 이전의 순장 문화는 사라졌지만 개고기를 먹는 문화는 현재까지 남아 있다. 반려인구가 1500만명에 이르고 동물복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대통령이 개 식용 금지를 신중히 검토할 때가 됐다고 언급하는 상황까지 왔다. 지난 9월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이후 정부는 지난달 개 식용 금지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에 착수했다. 내년 4월까지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는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88서울올림픽 개최가 결정된 1981년 시작돼 40년 동안 이어진 개 식용 금지논란 종결의 길은 순탄해 보이지 않는다. 지난 9일 개 식용 문제 논의를 위한 위원회 1차 전체회의가 열렸지만 동물보호단체는 개식용 농장주와 판매유통업계 인사들이 대거 참여해 공정한 논의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며 반발했다.

 

영국에서는 문어·오징어와 바닷가재·게 까지도 동물복지 법안의 보호 대상으로 지정될 예정이라고 한다. 영국 런던 정치경제대학(LSE) 연구팀은 정부의 의뢰로 문어·오징어 등 두족류(다리가 머리에 달려있는 연체동물)와 바닷가재·게 등 십각류(다리가 열 개인 갑각류)의 지각 존재 여부를 연구한 결과 이들 동물이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지각 있는 존재로 판명됐다면서 산 채로 끓는 물에 넣어 삶지 말라고 권고했다.

 

문어와 게에게 까지도 동물복지가 논의되는 세상에서 한국 개는 식용 금지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강인석 논설위원 전북일보 2021-12-13

 

지방은 식민지인가

대선 후보들의 지방 순회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공약을 보면, 정말로 지역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지 매우 의심스럽다. 그냥 지금까지 해왔던 식으로 대규모 인프라 건설 몇 개 하고 추상적인 미래 산업 몇 개 유치하겠다는 수준이다.

 

그런 식으로는 현재의 심각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지방은 거의 모든 분야에서 위기를 겪고 있으며, 서울 및 수도권과의 격차는 천양지차로 벌어졌다. 2019년 지역총소득은 서울과 경기도가 각각 500조 원 수준인 반면, 지방은 가장 높은 경남조차 100조 원 남짓이며 다른 지역은 모두 100조 원 이하이다.

 

자산도 마찬가지로, 한국 상위 10%의 순자산은 83000만 원인데 부채를 뺀 것이므로 지방에선 이 정도가 거의 없다. 반면 서울에서는 대출 별로 없이 아파트 한 채만 가져도 이 정도 된다. 결국 한국 상위 10% 부자 대부분은 서울의 아파트 소유자란 것이다.

 

인력 문제도 심각하다. 지방의 인구 자체가 줄어들고 있거니와, 우수인력은 지방으로 내려오려 하지 않는다. 부울경에 생산현장이 있는 대기업조차 엔지니어 문제로 R&D센터를 수도권으로 옮기고 있다. 반면 대다수 노동자는 최저임금 수준에 머무르고 경력에 따른 숙련이 쌓여도 임금이 늘지 않는다. 이주노동자가 없으면 돌아가지 않는 곳도 많다.

 

소득과 자산, 인력 등 모든 면에서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수준이며 사실상 식민지에 가깝다. 저소득과 각종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제조업이나 농산물, 전력 등 에너지를 서울과 수도권에 공급해주는 역할이 식민지가 아니면 무엇인가?

 

그간의 문제점이 누적된 결과라서 하루이틀에 해결하기도 쉽지 않다. 그런데 바로 그렇기에, 인프라 몇 개 만들고 미래산업 몇 개 유치한다고 될 문제가 아님을 확실히 인식해야 한다. 현재 지방에 있는 분야부터 제대로 살릴 생각을 해야 한다.

 

제조업의 고부가가치화와 숙련형성 체계에 대한 국가적 지원이 필요하다. 공공 및 산학연 협동의 중소기업 공동 R&D센터, 각종 직업훈련 및 재교육 전면 강화와 지방대 살리기, 공공이 직접 담당하는 지역 고용정보망 구축과 중간착취 배제, 특성화고교 및 폴리텍과 연계된 고숙련 기능인 양성 등 할 일은 매우 많다.

 

지역에서 보다 나은 일자리를 찾을 수 있고, 숙련에 따라 더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 제조업과 연계된 산업정책과 노동시장정책이 최우선 과제다.

 

각종 인프라 또한 광역 내부의 연결망을 강화하는 것이 우선이다. 다들 서울과의 연결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광역 내에서 자립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농산물이나 에너지 분야도 지역 내 소비가 우선이고, 서울이나 수도권은 자신들이 누리는 혜택에 대해 정당한 대가를 지급해야 한다. 이게 조금만 길게 보면 그들에게도 좋다. 지방으로 수요가 분산되어야 수도권의 부동산 가격 폭등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간의 지방분권이 지역 내 소수에게만 혜택이 돌아간 것도 사실이다. 지방의 노동자민중에게 실질적인 혜택이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지역에 대한 제대로 된 고민이 필요하다. 현재의 대선 후보들 수준이라면 곤란하다.

이장규 노동사회교육원 이사 경남도민일보 20211213

 

기레기 대선과 대선 고갱이

기레기 홍수다. 여기서 기레기는 기자의 멸칭이 아니다. 본디 뜻처럼 기사 쓰레기를 이른다. 기실 누군가를 쓰레기로 부르는 행태는 옳지 않다. 다만 쓰레기 기사를 곰비임비 써대는 기자까지 두남둘 뜻은 없다.

 

2022년 대선을 앞두고 여느 선거 때보다 쓰레기 기사들이 넘쳐난다. 가히 기레기 대선이라 할 만하다. 확인되지 않은 정보들이 어지럽게 춤춘다. 인터넷 시대라 하릴없다고 볼 일은 아니다. 사실 확인이 기본인 신문들이 쓰레기 기사들을 쏟아내고 있어서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함부로 써대거나 그에 근거해 논리 비약을 서슴지 않는 글들마저 무람없이 대서특필하는 조선일보 인터넷 판을 볼라치면 개탄스럽다. 특정 후보를 조준해 날마다 흠집 기사를 쏟아내야 한다는 강박감마저 느껴진다. 두루 짐작하겠지만 정색하며 묻는다. 누가 일선 기자들에게 그런 강박 관념을 심어주었는가.

 

자극적인 자객들의 글을 받아쓰는 기사 아닌 기사를 버젓이 올리는 젊은 기자들의 기명을 보면 애처로움마저 다가온다. 어쩌다 인터넷 검색이 취재가 되었을까. 어쩌다 인신공격마저 기사가 되었는가. ‘내가 이러려고 기자가 되었나자문해볼 것을 권하고 싶을 정도다. 힘든 준비 끝에 기자가 되어 명색이 언론을 생업으로 삼고 있는 기자들이 스스로 저널리즘을 날마다 파멸시키는 일에 가담하는 꼴이다. 조선일보는 접어두더라도 사주가 품격을 노상 강조하던 중앙일보마저 살천스런 행태에 앞장서고 있다.

 

새삼 명토박아둔다. 사실 확인이 안 된 글은 기사가 아니다. 맥락을 무시하고 거두절미한 인용도 물론 언론이 아니다. 사실에 근거하지 않고 갈겨대는 논평 또한 저널리즘이 아니다.

 

거듭 상식을 짚는다. 언론의 생명력은 사실에 근거한 깊이 있는 진단에 있다. 지금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가, 그 일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동시대인들에게 알려야 한다. 전자는 기사, 후자는 사설과 칼럼의 몫이다. 하지만 지금 언론은 뒤죽박죽이다. 차라리 사설과 칼럼이 없는 방송 뉴스가 깔끔하다. 두 공영방송 KBSMBC가 최근 고 김용균과 관련해 노동현안을 심층 취재해 공론화 하는 모습은 조중동 신방복합체와 사뭇 대조적이다.

 

무릇 선거는 단순히 누군가를 선출하는 행사가 아니다. 한 사회가 풀어야 할 문제들을 공적 의제로 공론장에 올려놓고 충분한 토론을 통해 정책 의제로 삼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중요한 몫이 바로 언론의 의제설정이다. 현재 각 정당의 대선 후보들은 결정됐다. 그렇다면 각 후보들이 어떤 공약으로 어떤 정책을 펴려는지 공론화 할 과제가 저널리즘에 있다. 만일 그 일을 외면하고 특정 후보 흠집잡기에 몰두한다면 언론이라 할 수 없다. 특정 정당이나 특정 후보의 찌라시일 따름이다.

 

더러는 후보들 모두 비호감이라며 마치 심판자인 듯 언구럭 부린다. 두 후보는 물론 심상정, 안철수까지 비호감 여론이 큰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후보 사이에 차이가 없는 것은 전혀 아니다. 가령 이재명과 윤석열의 경제사회 정책은 차이가 크다. 그 차이를 사실에 근거해 부각할 책임이 언론에 있다. 그것은 이재명과 윤석열 가운데 누구를 편들 것인가의 문제가 전혀 아니다. 판단은 온전히 주권자인 독자와 시청자의 몫이다. 언론은 유권자들 판단에 도움이 될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는 것이 본령이다.

 

그렇다면 대선의 핵심 의제, 언론이 주시해야할 대선의 고갱이는 무엇일까. 그 또한 언론이 집중해야 할 대상이다. 언론사마다 편집에 성향 차이는 있게 마련이다. 각 언론이 자신들이 생각하는 2022년 대선의 고갱이는 무엇인지 독자와 시청자들에게 알리고 그 의제에 대해 후보들의 정책을 보도하고 논평해가야 옳다. 그 과정에서 언론 또한 독자와 시청자들의 판단을 받을 수 있다. ‘기레기 홍수로 익사 위기인 언론이 살 길이다.

손석춘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미디어오늘 2021.12.13

 

노동법이 길을 잃으면 노동자도 사라진다

노동법을 단순히 민사법의 특별법으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 그럼 의심스러울 때 노동법의 기본원리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의심스러울 때 민사법 원리로 회귀하게 된다.”

 

대법관이셨던 분의 강연 중 정신이 번쩍 드는 문구였다. 노동사안에 접근할 때에는 노동법의 독자적인 법리가 형성된 경위와 그 의의에 입각해야 할 당위성을 역설하는 동시에, 법률가로서 고유한 노동법리에 따른 판단과 논거 제시의 과업을 충실히 임해야 함에도 그러지 못한 측면에의 자성을 촉구하던 중 나온 말이었다.

 

그간에는 노동관계에 대해 민법이 보충적으로 적용된다는 점을 기화로, 노동법을 어떻게 적용할지 여부가 의심스러울 때 곧장 민법의 영역으로 돌아가야하는 양 민법 개념을 단편적으로 적용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사이 우리 사회에는 불안정한 지위의 노동자뿐 아니라, 노동법의 보호영역에 서는지조차 의심받는 노동자들이 변칙적으로 양산됐다. 그리고 그 지위가 의심스러울 때 노동법적 접근이 아닌 민법상 도급이나 위임의 영역으로 곧장 끌려가 당신은 노동자가 아니다라는 판정을 받기 일쑤다. 노동법이 길을 잃으니 노동자도 사라지는 것이다.

 

더 나아가 노동법이라는 나침반을 적극적으로 왜곡하거나 빼앗는 일도 빈번하다. 마치 나침반의 N극과 S극을 유성펜으로 바꿔 적듯, 명칭이나 형식상 도급이나 위임의 외관을 빌려 근로자가 아니라며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시도부터, 이미 서로 고용관계라 인지하고 이어 온 관계에서까지 다시 보니 모든 면이 딱 들어맞지는 않는 것 같다며 의심스러우니 나침반 대신 줄자를 가져다 대겠다는 식이다.

 

실제로 담당하는 사건 중에는 퇴직금 사전포기 약정꼼수를 들어 수십 년간 근속해 온 노동자의 퇴직금 지급을 거부하다가 법리상 무효라는 점이 확인되자, 자신들이 체계적으로 임금을 지급하지 않은 사정 등을 기화로 돌연 당신은 노동자가 아니니 퇴직금을 지급할 수 없다고 거부해 다투는 사건도 존재한다. 결국 그는 노동자임이 확인될 것이지만, 의심스러울 때 민사법 원리로 회귀할 여지가 주어짐에 따라 당연히 받았어야 할 노동의 대가임에도 공연히 방대한 입증책임의 짐까지 떠안아야만 했다.

 

눈 가리고 아웅은 더욱 심각하다. ‘고용유연화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비정규직과 특수형태근로종사자 양산은 그 지위의 불안정성만큼이나 근로조건을 열악하게 만드는 지름길이었다. 여기에 노동법의 보호영역인지 의심스럽다는 딱지까지 붙고 나면, 노동자로서는 법의 보호를 요청할 수 있을지 가늠조차 하기 어렵다.

 

이처럼 노동법이 길을 헤매는 사이 우리 사회의 불평등은 날이 갈수록 심화됐다. 당장 올해만 해도 세계불평등연구소의 세계불평등보고서 2022’에 의하면 한국은 서유럽만큼 부유하나 빈부격차가 심각한 국가라는 분석을 받았다. 한국은 상위 10%’가 전체 부 중 절반을 넘는 58.5%를 보유하는 동안 하위 50%’는 전체 부의 5.6%만을 보유하는 것에 그쳤는데, 한국 인구가 열 명이라고 가정하면 그중 한 명이 다른 다섯 명의 합보다 52배나 더 독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1990년대와 비교하면 상위 10%’의 몫이 10% 늘고 하위 50%’의 몫은 5%가량 줄어든 수치에 해당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더 이상 노동으로는 삶을 영위할 것이라 기대할 수 없다는 불안감이 공감대를 형성하는 추세다. 청년들은 고용불안이 일상이 된 나머지, 누군가가 고용안정에 이르는 것을 회복, 개선이라 받아들이기보다는 불공정, 질시의 대상으로 받아들이는 현상까지 보인다. 정직하게 사는 건 미련하다고까지 자조하는 풍조가 만연하고, 누군가 따면 누군가는 잃는 제로섬 게임과 같은 코인 등 투기판의 열기가 식을 줄 모르고 연거푸 흥행한다.

 

이처럼 노동법이 길을 잃으면 노동자도 사라지고 노동도 사라진다. 우리 사회에서 노동 자체를 없애고자 하는 취지가 아니라면, 노동법이라는 나침반을 흔들거나 왜곡하려는 시도를 방치해서는 안 될 것이다. 비단 법률가뿐 아니라 우리 사회 모두가 노동사안에 관해 의심스러울 때 단순히 민법으로 회귀하는 것이 아닌, 노동법의 기본원리로 향해야 한다는 점을 되새겨야 하지 않을까 싶다./ 최경아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 경남사무소)매일노동뉴스 2021.12.15

 

 

대물림교육, 정보공개와 기회균등선발로 상쇄하자

최근 내가 접한 통계 중 가장 무서운 통계는 2021년 의대 신입생 2977명 가운데 무려 80.6%가 월 가구소득 920만 원이 넘는 부유층출신이라는 것이었다. 나머지 19.4%도 빈곤한 가정출신은 아닐 테니 세계적으로 유례없을 지독한 부잣집편중이다. 이대로라면 우리나라에서 없는집자식들이 의사되기는 틀렸다. 이미 의사는 부모찬스로 만들어지는 대표적인 특권직업이다. 의대생만이 아니다. 로스쿨학생은 물론 SKY 등 명문대 학생과 예술계 학생도 부유층과 전문직 가정출신이 압도적으로 많다. 드물게 발표되는 관련통계들은 우리사회에서 교육이 계층이동수단에서 신분대물림수단으로 타락했다는 사실을 더할 나위 없이 명징하게 보여준다.

 

만약 매년 명문대별, 인기단과대별로 신입생 학부모집단의 10 분위 소득분포가 지난 10년 동안 집계, 공표되었다면 어땠을까? 나아가서 영재고/과학고/국제고/외고/예고별로 신입생 학부모집단의 10분위 소득분포가 함께 집계, 공표되었다면 어땠을까? 모르긴 해도 교육의 신분대물림 강화효과가 의심의 여지없이 확인되면서 전사회적으로 폭동의 기운이 감돌았을 것이고 예방차원에서라도 정치권이 특단의 대책을 내놓았을 것이다. 치열한 입시경쟁과 사교육비를 유발하는 특권고교는 국제고와 외고, 영재고와 과학고를 가리지 않고 모두 폐지되는 방향으로 정리됐을 것 같다. 명문대학과 인기학과에 대해서도 최소한 30% 이상의 기회균등선발전형을 의무화했을 것 같다. 진실의 문이 열리면 동시에 정의의 문이 열리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부와 소득의 분배 관련통계는 좀처럼 상세하게 작성되거나 공표되지 않는다. 신입생 학부모집단의 소득분포통계도 마찬가지다. 결과적으로 우리나라가 자랑하는 4개의 과학기술원(카이스트, GIST, UNIST, DIST) 학생의 부잣집 편중상태가 어떤지, 이른바 명문대 신입생과 인기학과의 학부모 소득분포는 어떤지를 알지 못한다. 특히 의대(치의대, 한의대, 수의대) , 로스쿨별, 교대별, 예체대(미대, 음대, 체대)별 부잣집 편중상황이 어떤지를 확인할 길이 없다. 불평등과 불공정이 최대의 시대화두로 떠오른 나라에서 관련통계의 결여는 말이 안 된다. 통계의 결여는 곧 입법과 정책의 결여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우선 전국의 모든 학교가 매년도 신입생의 학부모집단에 대해 10 분위 소득분포통계를 작성, 공표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 이처럼 교육관련 분배통계를 만들어내고 그에 비추어 바람직한 정책을 만들어낼 때만 교육이 신분대물림수단으로 타락하지 않을 수 있다. 같은 생각으로 나는 서울교육감시절 서울관내 1300개 학교의 저소득층 학부모비율을 조사해서 교육행정의 매직 넘버로 사용한 바 있다. 어느 사회든지 교육에 대해 거는 첫 번째 기대는 모두(=약자)의 잠재력을 최대한 이끌어내서 계층이동을 촉진할 것이라는 데 있다. 이런 기대를 배반하고 교육이 부모신분의 세습수단으로 전락하면 평등한 세상에서 멀어질 뿐 아니라 소득중하위 가정출신 아이들의 재능이 사장돼 풍요한 세상에서도 멀어진다.

 

민주사회가 감내할 수 있는 명문대 부모찬스 혹은 신분세습의 폭은 크지 않다. 공부 잘하는 유전인자는 부모나 지역을 가리지 않고 똑같이 뿌려진다. 그렇기 때문에 강남아이들, 전문직집안아이들, 부잣집아이들이 SKY 신입생의 대종을 이룬다면 교육의 세습효과가 평등효과보다 크다는 뜻이다. 이런 현상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대입에서 부모의 경제력을 중요하게 고려하는 기회균등선발전형의 확대 및 의무화가 불가피하다. ‘이대남의 반대가 예상되더라도 소득하위 60%에 의과대와 로스쿨, 명문대 신입생의 최소한 30%를 보장하되 하위 30%에도 10% 이상을 보장해야 한다. 기회균등선발전형을 과감하게 의무화하지 않는 이상 명문대는 부유층의 신분대물림 수단이 될 전망이다.

곽노현 ()징검다리교육공동체 이사장, 전 서울시교육감 경기신문 2021.12.15.

 

알고 싶지 않다

예전 칼럼에서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All lives matter)는 말에 대해 잠깐 쓴 적이 있다.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라는 구호에 맞선 백인들의 주장인데, 맥락을 모르면 보편타당함을 위장한 이런 말에 걸려들기 십상이다. 비슷한 예로 이퀄리즘(equalism)이 있다. 성 평등을 뜻하는 이 말이 페미니즘에 대한 반발로 나왔다는 것을 모르면 오독하기 쉽다. 여성 권리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거기에 대고 이퀄리즘이라니, 단 두 개뿐인 성에서 결국 누구의 권리를 얘기하겠다는 건가? 평등을 가장한 이런 주장들은 마치 우월적 지위의 대형마트가 동네슈퍼에 대해 시장에서의 공정 경쟁을 보장하라고 외치는 것과 하나도 다를 바 없어 보인다.

 

평등이나 공정이라는 말의 함정을 새삼 지적하려고 이런 예를 드는 것은 아니다. 오용되고 맥락이 삭제된 언어들로 인해 진실과 거짓의 경계가 흐릿해지고, 우리 모두가 점차 판단력의 둔화, 사고의 미궁에 빠져들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다. 많은 이들이 걱정하는 문해력의 저하는 정말로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이런 언어들이 우리의 일상에 범람하게 된 탓 아닌가 싶다.

 

문해력이 저하된 이유를 분석하는 글은 많다. 나름대로 정리하면 이러하다. 첫째, 문해력의 저하는 당연히 지적 능력이 저하된 결과이다. 문제는 정보와 지식이 오히려 과잉인 시대에 왜 지적 능력이 쇠퇴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몇 년 전 나는 대학의 한 학기 시간강의를 맡았다가, 학생 한 명이 교수님은 왜 PPT를 안 해주세요?” 하고 항의하는 바람에 당황했던 경험이 있다. ‘교육서비스라는 말처럼 교육이 공급자와 소비자의 거래관계가 되었음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돈을 내고 상품을 구매하려는 학생소비자의 당연한 요구에 미치지 못하는 공급자였던 것이다. 온라인 강의나 유튜브나 프레젠테이션 화면 몇 장으로 구매가 끝나는 지식은 다른 문제를 푸는 데는 쓸 수가 없다. 자신의 지식을 스스로 생산해보지 못한 소비자에게 지적 능력의 하향평준화는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둘째, 지적 능력의 저하에도 불구하고 문해력 저하는 가치관과 태도에서 기인하는 바 크다는 것이다. 스스로 지적이라 믿는 이들이 학력과 무관하게 오히려 문해력의 난조를 드러내는 것을 보면 그러하다. 한마디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여기에도 함정이 있다. 사람들은 이렇게 형성한 태도를 주체적이고 자율적으로 고민하고 판단한 결과라 여기겠지만, 사실은 미디어와 정보기술이 가리키는 대로 따른 결과일 수 있다. 정보과잉 속의 정보결핍, 가짜뉴스 범람, 반지성주의는 기술 환경에서 유래하는 바가 크다. 우리는 플랫폼에서, 이용자 리뷰에서, 남초/여초 사이트에서 의견을 소비하고 강화한다. 기술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 가리키는 대로 우리는 만들어지고 있는지 모른다.

 

한자의 믿을 신()사람()의 말()’을 뜻한다는 축자적 풀이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람의 말은 곧 믿을 수 있는 것이고 믿음이라는 전제 때문에 말로 기능한다. 따라서 문해력 저하는 언어의 공통 기반을 잃었다는 뜻이고, 의사소통에 기초한 공동체의 존립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서로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사회는 더 이상 공동체로 존속하기 어렵다. 그러나 순서가 바뀌었다. 혹시 문해력 저하는 원인이 아니라 결과 아닐까. 흩어진 언어가 공동체를 와해시키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현실이 언어의 분열로 나타난 것 아닐까. 신자유주의적 각자도생의 논리에 오래도록 물든 결과 서로에 대한 서로의 불신과 혐오가 만연하게 되었고, 선정주의 언론과 정치가 그것을 부채질하여 이익을 챙기는 상황에서, 화를 내고 있는 우리는 모두 이런 현실이 만들어낸 결과들 아닐까.

안희곤 사월의책 대표 경향 : 2021.12.16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1991년에 유학을 간 미국에서 일본이 곧 미국을 추월할 것이고 일본식 경영을 본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만연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이 이미 시작한 때였는데도 1970~1980년대 일본의 경제적 성공에 매몰되어 곧 드러날 문제를 제대로 인식조

 

임기 6개월을 남기고 열린 국민과의 대화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나라가 모든 면에서 세계 10대 강국이 되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거의 성공 경험과 현재 보이는 것만 보고 미래의 문제를 도외시한다면, 우리도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답습하거나 더 심각한 상황으로 내몰릴 수 있다.

 

가격 경쟁력과 생산공정 혁신 중심의 한국 제조업이 한계에 도달하고 있음은 2011년 이후로 다양한 지수들에서 확인되고 있다. 한국 경제를 견인했던 제조업의 성장률은 경제성장률과 유사해졌고, 제조업 매출 증가율과 수익성도 하락 추세이다. OECD 자료에 따르면, 수출증가율도 2000~2011년 기간에 비해 2011~2017년 기간에 급격히 감소했는데, OECD 평균 수출증가율이 4% 초에서 4% 미만으로 조금 감소한 것에 비해 한국의 증가율은 11% 이상에서 2% 중반으로 급감했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촉발된 탄소중립과 디지털 전환의 가속화는 한국 제조업을 뿌리째 흔드는 위기 요인이다. 정부가 10월에 발표한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상향안‘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안에 따르면, 2018년 기준으로 전체 탄소 배출량의 38% 정도를 차지하는 산업부문의 배출량을 2030년까지 14.5%를 감축하고 2050년까지 추가로 66%를 더 감축해 산업부문 배출량의 80% 정도를 감축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주력 산업인 반도체·석유화학·자동차·철강 등은 모두 에너지 소비가 많은 업종으로, 전체 산업의 50% 이상을 차지한다. 그런데 산업부문의 감축 계획은 이런 고탄소배출 중화학공업을 유지한 채 생산과정에서 탄소배출을 없애는 획기적인 기술혁신이 2030년과 2050년 사이에 일어날 거라는 희망 섞은 기대에 기초하고 있다. 만약에 그런 혁신이 기대하는 수준이나 기간 내에 일어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아무런 답이 없을 뿐 아니라, 그런 기술혁신이 발생할 때 과연 국내 공장들이 경쟁력을 담보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예를 들어, 탄소배출이 가장 많은 철강산업은 2040년경에 탄소계 공정을 수소환원제철로 100% 대체하고, 철스크랩 전기로 조강을 확대하여 배출량의 95%를 감축한다는 계획이다. 그런데 수소환원제철이 가능해진다고 하더라도, 국내 철강소가 입지 측면에서 경쟁력을 유지하지 못할 개연성이 높다. 수소를 저렴하게 충분히 생산할 수 있는 호주 같은 곳에 철강소가 생기면 국내 철강소들은 하루아침에 문을 닫을 수도 있다. 중화학공업 중심 산업 구조를 그린 산업 중심으로 전환하는 산업전환을 포기한다면, 국내 제조업의 기반이 무너질 수도 있다.

 

탄소중립과 디지털 전환은 산업전환뿐 아니라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는 경제구조로의 개혁과 사회안전망 확충 및 전업에 대한 교육과 지원의 확대를 필요로 한다. 고용노동부는 2030년 친환경차가 신차 판매량의 30%60만대가 되면, 자동차 엔진과 변속기 등 부품기업 4185개와 관련 종사자 108000명에 대한 사업재편이 불가피하고, 정비업소 약 36000개와 종사자 96000여명의 고용유지에도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의 탄소중립과 디지털 전환 대책은 탄소중립 기술개발 지원, 스마트 공장 지원, 친환경차 전환 지원 등에만 머물고 있으며, 탄소중립과 디지털 전환에 대한 단계적 실행 계획이나 이에 따른 재정추계와 복지 및 고용 대책에는 손을 놓고 있다. 이른바 정의로운 전환은 추상적 구호에 불과한 것이다.

현 정부만 그런 것도 아니다. 주요 대선 후보들 역시 탄소중립과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차기 정부의 대책을 종합적·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지 않다. 선거공학적 계산으로 전시성 청년 영입과 당장에 혜택을 주는 선심성 공약만 난무하고 있다.

 

30년 후에 지금의 청년들이 맞닥뜨릴 미래는 차기 정부가 탄소중립과 정의로운 전환을 위해 무엇을 하는가에 달려 있다. 만약 차기 정부가 차일피일한다면 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릴 수 있다. 진정으로 청년과 미래를 생각하는 정치인이라면 어렵지만 회피할 수 없는 이 문제에 응답해야 한다. 또 그것이 진정으로 청년의 마음을 잡는 방법일 것이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경향 : 2021.12.17.

 

이재명에 대한 오해

1.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데는 무엇이 필요할까. 논리적 호감만으로는 부족하다. 영혼의 말굽쇠를 떨리게 하는 무엇, 그렇게 함께 울고 웃게 만드는 공감의 파토스가 더 중요하다.

 

냉정하다, 과하게 성과 지향적이다. 이재명 후보에 대한 그런 평가가 많다. 맞는 면이 있다고 본다. 반드시 나쁜 것만도 아니란 생각이 든다. 유권자가 국가 최고 지도자에게 위임한 권한을 속 시원하게 행사하는 모습. 그렇게 쾌도난마 막힌 속 뚫어주는 정치를 본 기억이 얼마나 까마득한가. 그러니 오히려 국민들이 바라는 측면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진짜로 이재명은 차가운 사람인가. 나도 그런 인상이 있었다. 하지만 올봄 유세 때부터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하는 입장에서 그가 저잣거리에서 유권자들 만나는 모습을 유심히 봤다. 무작위로 나누는 즉석 대화를 들었다. 그런 상황에서는 아무리 연습을 해도 솔직한 평소 태도가 드러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조금 놀랐다. 청문회장이나 기자회견장과는 달랐다. 마음과 눈이 서로 마주치는 현장에서 그의 대화는 논리적 접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스스로를 활짝 여는 정서적 커뮤니케이션이 발달한 사람이었다. 평소의 이미지 너머에 다른 무엇이 있었던 게다. 이 남자는 의외로 눈물이 많고 섬세한 사람이란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가장 결정적 변화는 인간 이재명이란 책을 완독하고 나서였다. 특히 그의 소년공 시절과 사춘기 시절을 읽으면서 여러 번 책장을 덮고 감정을 추슬러야 했다.

 

온종일 남의 밭에서 품 파는 엄마를 돕다가 빠진 초등학교 때 미화작업. 그 때문에 못된 선생에게 뺨을 스물일곱 대나 맞은 어린 재명. 진학은 언감생심, 초등 졸업 후 바로 공장에 다녀야 할 정도로 지독했던 가난. 사방이 밀폐된 시계공장 도금실에서 독한 화공약품 때문에 마침내 한쪽 코의 후각을 잃었다. 그 대목들을 읽으면서 왜 그리 마음이 아팠을까. 그것은 내가 온몸으로 통과한 가난 또한 이재명의 그것만큼은 아니지만 혹독했기 때문일 게다. 찌르는 듯한 감정전이를 느꼈던 게다.

 

대학까지 다녀봤으나 현실 앞에 허물어진 후 성남 상대원시장 청소부가 된 이재명의 아버지. 가족이 살 집 한 칸 장만하겠다는 목표로 그렇게 구두쇠가 된 사람. 열세 살 어린 자식을 공장으로 내몬 이야기 위에 누군가 모습이 겹쳐졌기 때문이다.

 

평생을 무골호인으로 살았으나 가족에게는 무능했던 나의 아버지 말이다. 출발 당일 날 아침에야 겨우 돈을 빌려 수학여행에 따라나선 초등 6학년의 봄. 등록금 내지 못해 학교를 결석하고, 옥상 장독대 위에서 망연히 바라보던 고등학교 시절 눈 시린 가을 하늘이 떠오른 것이다.

2.

인간은 누구나 자기가 통과한 인생 앞에 정직해진다. 128일 이재명은 태안화력발전소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숨을 거둔 김용균 씨의 3주기 추모사진전을 찾았다. 고인의 어머니를 만나고 수원 건설현장에서 추락사한 김태규 씨 누나를 만났다.

 

누나가 이렇게 울먹였다. “제발 사람 살릴 수 있는 법으로 만들도록 꼭 함께 해주세요. 약속해주세요”. 이재명은 그 손을 꼭 잡으며 그럼요. 제 몸에 박혀있지 않습니까라고 답을 했다. 소년공 시절 프레스기에 낀 왼쪽 팔의 영구장애를 말하는 것이었으리라.

 

나는 그의 말이 노동 현장에서 자식과 남편과 아비를 잃거나 다친 이 땅의 모든 가족에게 던지는 약속으로 들렸다. 그것이 육체든 지식이든 제 가진 전부를 팔아야만 가족을 먹일 수 있는, 이 땅의 모든 블루칼라와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에게 보내는 소년공 출신의 서늘한 맹세로 들렸다.

 

유홍준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아는 만큼 보인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풍경만이 아니라 사람도 그렇다. 그러므로 나는 인간 이재명이 좀 더 널리 읽혔으면 좋겠다. 천지를 왕왕대는 기득권 언론의 흑색선전이 왜곡시킨 이재명의 인간적 진면목이 드러났으면 한다.

 

나 스스로가 책을 읽으면서 그들이 설치한 악질적 올무를 벗어났기 때문이다. 사람의 있는 그대로 본모습을 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주당 120시간의 가혹 노동을 감히 입에 담고, 없이 사는 이는 부정식품도 먹을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꼴통 기득권자. 공사현장의 참혹한 죽음을 노동자 자신의 부주의 탓으로 몰아가며 중대재해처벌법을 반대하는 인물. 끝내는 사람다운 삶의 마지막 보루인 52시간 노동제와 최저임금제 철폐까지 내세우는 전직 정치검찰 출신이 차기 대통령을 다투는 세상이다.

 

바로 이재명이 홀로 몸을 던져 그 장벽을 돌파해 나왔다.

강자와 약자가 공정한 룰 아래 평화롭게 공존하는 나라. 자선이나 요행이 아니라 제도를 통해 출발선에서 뒤처진 이들에게 기회를 주는 공동체. 재산과 성별과 취향의 차별을 부수고 사람이면 누구나 참 사람다운 대접을 받는 곳.

 

그런 세상이 오기를 희망하는 분이라면 이 책을 꼭 읽었으면 한다. 그렇게 얻은 뭉근한 감동으로 주위 분들께 책을 빌려주시기 바란다. 손때 묻은 책이 돌고 돌아 이 나라 구석구석까지 닿는 날, 이재명은 새로운 날개를 달게 될 것이다. 선동도 왜곡도 아닌 본질 그대로 100퍼센트 이재명의 모습으로 유권자 앞에 설 것이다.

대선이 3개월 남았다. 함께 얻은 단단한 희망으로 그날, 세상을 바꾸자.

김동규 동명대 교수 경기신문 2021.12.17

 

 

농민의 슬픔

올봄 집 앞 작은 땅에 풀 뽑고 돌을 골라 손바닥만 한 채마밭을 하나 만들었다. 책모임 동무들하고는 토종텃밭 일구는 공동농사도 벌였다. 귀촌해서 1000평 땅에 과수 농사도 했는데 이 정도야 싶었지만 여러 작물을 서로 다른 속도와 방식으로 돌봐야 하는 텃밭 농사는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규모가 작아도 세심하고 꾸준한 관리가 요구되는 일이었다. 동네 할머니들의 텃밭은 종합 예술 정원인데, 우리들의 텃밭은 뭔가 엉성했다. 고수의 춤사위가 고난도 동작을 가뿐하고 수월한 몸짓으로 펼쳐보이듯이 농사도 그런 일이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연륜과 숙련이 몸의 감각으로 쌓여야 기술의 적용을 넘어 예술의 경지에 이르는 일.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농사는 예술성도 전문성도 인정받지 못한다.

 

얼마 전 농업 정책 전문가들의 대담을 보다가 크게 모욕감을 느낀 적이 있다. 기후위기는 곧 식량위기임을 강조하며 그들은 농업의 중요성을 이렇게 말했다. “농업은 국민에게 안정적으로 식량을 공급할 의무가 있지 않습니까?” 농민이 중요하다 강조하는데 나는 왜 모욕감을 느꼈을까? 저 문장이 다른 표현들로 재생되었기 때문이다. ‘여성은 국가에 안정적으로 인구를 재생산할 의무가 있습니다. 노동자는 기업에 안정적으로 노동력을 제공할 의무가 있습니다..’ 의무만 있고 권리는 없는 자들을 호명하는 목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중요한 존재라는 말은 그 존재를 누가 어떻게 불러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당신은 중요한 사람이야, 지금 너무나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거야라는 말은 강자가 약자를 항의도 못하게 굴복시킬 때 사용하는 대표적인 가스라이팅이 아니던가.

 

지금 농민은 기후위기 시대 식량 생산을 담당하는 중요한 존재고, 재생에너지 전환에도 막중한 책임을 가지며, 동시에 전환에 따른 부수적 피해도 감당해내야 하는 중요한 존재다. 그런 중요한 존재임에도 농민들은 요즘같이 우울하고 답답한 적은 없다고 말한다. 재생에너지 전환에 반대하는 게 아니라 무분별한 농지 잠식과 농촌 난개발에 문제를 제기하는데 재생에너지 혐오론자로 불리며 전환의 걸림돌로 취급받는다. 에너지 전환이 가진 자들의 돈벌이 잔치가 되지 않도록 정의로운 전환을 말하는데 자꾸 주민 반발 입지갈등으로 문제를 축소하며 보상으로 해결하려 한다. ‘우리는 도시의 식량공급자가 아니다’ ‘농촌은 에너지 공급원이 아니다라는 농민들의 구호는 농촌을 더 이상 식민화하지 말라는 외침이지만 지역갈등, 주민 이기주의로 쉽게 매도당한다. 전환의 주체가 되고 싶지만 늘 구제대상 원조대상으로 취급된다.

 

기후위기로 인해 발생하는 직접적인 위기보다 그런 시선들이 농촌과 농민의 삶을 더욱 위태롭게 한다. 최근에는 메탄 발생이 많다는 이유로 벼농사가 석탄 발전소만큼이나 해로운 온실가스배출 산업으로 지목되면서 많은 벼농사 농민들이 난감해하고 있다. 그 메탄 발생량이 어떤 조건과 방법에서 측정되었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싶지만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자신도 잘 모르는 논물 얕게 대기나 중간에 논물 빼기 같은 방법을 대안이라고 내놓지만 그건 이미 일부는 해왔던 방식이기도 하고, 그에 수반되는 노동시간과 강도의 증가 등 다른 문제들은 다시 농민들 각자가 해결해야 한다. 생물다양성을 보존하는 논의 생태적 가치를 강조하던 시민들은 이제 지구를 지키기 위해주식을 밀과 보리로 바꾸자는 이야기를 한다. 식량위기가 기후위기 시대에 닥쳐올 가장 큰 위험이라고 경고하면서도 그 위험조차 도시 소비자들의 공급 문제와 식품 기업의 원재료 조달과 원가 문제로만 다뤄진다. 기업 손실액은 재빠르게 계산되고 지원책도 가장 먼저 나오지만 농민에게 닥친 위험에 대해선 제대로 된 조사도, 통계도, 대책도, 준비도 없다.

얼마 전 녹색당 정책대회에서 김정열 비아캄페시나 동남동아시아 국제조정위원은 농민의 슬픔에 대해 들려주었다. 지금 농민에게 가장 힘든 것은 생산량이나 소득 감소 이전에 농민에 대한 국가, 사회, 시민들의 외면이라고. 위기의 농민 옆에 아무도 있어주지 않는다는 것이 더 무서운 일이다.

 

대선을 앞두고 유력 후보들은 표심을 잡기 위한 온갖 선심성 공약과 정책들을 경쟁적으로 쏟아내지만 농민을 위한 후보는 어디에도 없다. 지금 농민에게 기후위기는 재난이고 기후위기 대응은 더 재난이다. 기후위기 시대의 농민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앞으로 어떤 위험이 더 닥쳐올 것이며, 어떻게 헤쳐 나갈 수 있을까? 매일 밥 먹고 사는 우리, 한번만 같이 생각해보자. 채효정오늘의 교육편집위원장 경향 : 2021.12.20

 

세금 깎아주면 표 줄 거라는 민주당의 착각

이재명 후보와 더불어민주당이 대선을 앞두고 부동산 세금 깎아주기에 올인하는 듯한 모습이다.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에 이어 재산세 동결까지 검토하고 했다. 부동산 세금의 양 축인 보유세와 양도세 체계를 모두 흔들고 있는 것이다.

 

이재명 후보가 18일 페이스북에 어려움에 처한 민생 경제를 고려해 공시가격 제도를 전면 재검토하겠다우선 재산세나 건강보험료는 올해 수준으로 유지하도록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민주당과 정부에 요청하자, 민주당이 20일 정부와 당정협의를 열어 재산세 동결 카드를 내놨다. 내년도 공시가격은 예정대로 발표하되 재산세를 부과할 때 올해 공시가격을 적용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기로 했다. 올해 집값 상승분은 내년 재산세 부과에서 제외하겠다는 것이다. 집값이 급등했는데도 세금을 올리지 않겠다는 것은 유례없는 조처다. 보유세 제도의 근간을 허무는 일이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발표한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에서 시세의 70% 수준(아파트 등 공동주택 기준)인 공시가격을 2030년까지 10년 동안 단계적으로 90%까지 높이기로 했다.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 같은 보유세 부과의 기준이 되는 공시가격이 시가보다 크게 낮은 탓에 부동산 투기를 부추기고 조세 형평성을 해친다는 이유에서다.

 

내년 재산세 산정에 올해 공시가격을 적용하면 중산·서민층뿐 아니라 고가·다주택 보유자의 재산세와 종부세도 동결된다. 오히려 고가·다주택 보유자일수록 더 많은 혜택을 받는다. 중산·서민층이 아니라 집부자들을 위한 대책인 셈이다. 앞서 민주당은 국민의힘과 합심해 종부세 과세 기준을 공시가격 9억원(시가 13억원)에서 11억원(16억원)으로 올리는 종부세법 개정안을 지난 831일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고가 주택 보유자 상당수가 종부세를 면제·감면받았다.

 

이재명 후보와 민주당이 진정으로 민생이 어려운중산·서민층을 위한다면, 무차별적 재산세 동결이 아니라 중저가 1주택 보유자에 국한해 재산세 상한선이나 세율 조정 등을 통해 세금 부담을 덜어주는 게 옳다. 실제로 정부는 지난해 공시가격 6억원(시가 9억원) 이하 1주택자에 대한 재산세율을 2023년까지 한시적으로 인하했고, 올해는 공시가격 6~9억원 주택에도 재산세율 특례를 적용했다. 전국 공통주택의 92.1%가 혜택을 봤다. 공시가격과 연동된 건강보험료, 기초연금, 장애인연금 등도 조정계수 같은 완충장치를 마련하면 중산·서민층은 부담이 늘지 않는다.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는 재산세 동결과는 성격이 다르다. 하지만 실효성이 의문시되고 정책 혼선을 부를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우려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는 조세 형평성에 어긋나지만, 다주택 보유자들이 살지 않는 집을 파는 것은 공급 확대와 효과가 같아 집값 안정에 도움이 되는 건 맞는다. 이재명 후보는 지난 12“1년 정도 한시적으로 유예하는 아이디어를 제가 내서 당과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가 지난해 ‘7·10 대책때 다주택자 양도세율을 최대 6575%로 높이면서 올해 61일 법 시행 전까지 11개월의 유예기간을 줬는데도 매물 유도 효과는 미미했다. 10%포인트의 중과세를 유예해도 세율이 55~65%로 증여세 최고세율 50%보다 높아, 다주택자들이 매각 대신 증여나 임대사업자 등록 등 다른 방법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다주택자들의 매물을 끌어내는 정책 효과를 거두려면 중과세 유예 정도가 아니라 양도세율을 증여세율 이하로 낮출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타이밍을 놓쳤다. 다주택자들이 대선 이후를 바라보며 이미 버티기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재명 후보와 민주당의 부동산 세금 깎아주기는 조세 정의에 역행할 뿐 아니라 실효성도 의문시된다. 게다가 보유세와 양도세 실효세율을 높여야 한다던 이 후보의 이전 주장과도 배치된다. 그런데도 앞뒤 가리지 않고 세금 깎아주기에 나서는 것은 박빙의 결과가 예상되는 이번 대선에서, 특히 고가주택이 많은 서울 유권자들의 표를 얻기 위한 계산일 게다. 그러나 세금을 깎아준다고 해서 마음을 돌릴 고가주택 보유자들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민주당에 대한 집부자들의 적대감은 민주당이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대선을 앞두고 꼼수를 쓰는 거고 대선에서 이기면 다시 올릴 거 아니냐는 비아냥이 벌써부터 나온다. 반면 고가주택 보유자 가운데 민주당을 지지하는 사람은 세금과 무관하게 투표를 할 것이라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게다가 부동산 세금 깎아주기는 민주당이 국민의힘을 따라갈 수 없다. 윤석열 후보는 이미 보유세와 양도세 세율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종부세와 관련해선 지난 1114일 페이스북에서 내년 이맘때면 종부세 폭탄걱정 없게 하겠다고 했다. 사실상 종부세 폐지를 약속한 것이다.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는 유예가 아니라 아예 폐지를 주장한다. 집부자들을 상대로는 민주당이 파고들 틈이 없는 것이다. 득표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되레 기존 지지층에게 실망과 박탈감만 안겨주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최근 집값 급등세가 진정세를 보이고 있다. 각종 통계 지표에서 확인되고 있다. 16일 한국부동산원의 주간 아파트값 동향을 보면, 지난주 서울 아파트값 상승률이 0.07%에 그쳤다. 0.1% 이하로 내려간 것은 지난 5월 둘째주 이후 7개월 만이다. 다행이 아닐 수 없다. 100 미만이면 집을 사겠다는 매수자보다 팔겠다는 매도인이 많다는 것을 뜻하는 매매수급지수도 지난달 중순(1115) 서울 아파트를 시작으로, 지난달 말에는 수도권 아파트, 이달 중순(13일 기준)엔 지방이 100 아래로 떨어졌다. 전세도 매물이 쌓이면서 수도권 일부와 세종, 대구 등에서 전세값이 하락세로 돌아섰다. 집값이 너무 많이 올랐다는 인식 확산, 투기 억제를 위한 보유세 강화, 대출 규제, 금리 인상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다.

다만 속단하기는 이르다. 아직은 관망세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이런 상황에서 세금 깎아주기는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줘 집값에 다시 불을 붙일 수 있다. 만약 집값이 또 들썩인다면 이재명 후보와 민주당에 치명적인 악재가 될 것이다.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우를 범하지 말기 바란다.

 

이재명 후보와 민주당이 지금 해야 할 일은 집값 진정세를 확실히 다져 집값이 내려가도록 하는 것이다. 또 집값 폭등으로 악화된 자산 불평등을 해소하는 일도 시급하다. 부동산 불로소득을 환수해 취약계층의 주거 안정 재원으로 활용하고, 질 좋고 저렴한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획기적으로 늘려 세입자들의 주거 불안도 덜어줘야 한다. 이런 공약들을 정교하게 만들어 국민들에게 믿음을 주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와의 차별성도 여기서 찾아야 한다. 대선이 이제 80일도 안 남았다. “서민과 중산층의 이해를 대변한다고 표방하는 정당이 집부자들의 세금을 깎아주는 데 시간을 허비하는 건 스스로 정체성을 부정하는 일이다.

안재승 논설위원실장jsahn@hani.co.kr 한겨레 2021.12.20.

 

신지예와 윤석열, 환상의 콜라보

여성 정치인 신지예(31)20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캠프에 합류했다. 후보 직속기구인 새시대준비위원회 수석부위원장을 맡았다. 신지예는 2018년 서울시장 선거에 녹색당 후보로 출마해 정의당을 제치고 4위를 차지한 바 있다. 선거 슬로건은 페미니스트 서울시장이었다. 올해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도 무소속(팀서울) 후보로 나섰다.

 

영입인사 환영식에서 신지예는 윤 후보가 여성폭력을 해결하고,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좌우를 넘어 전진하는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고 말했다.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선 현 정권의 부동산 정책과 조국 사태, 박원순·안희정·오거돈 사건을 비판하며 윤 후보와 함께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길에 서기로 했다고 밝혔다.

 

신지예와 국민의힘의 결합은 이질적이다. 신지예는 지난 6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당선되자 여성혐오와 차별적 언동을 행하는 인물이 제1야당 대표가 되는 건 달가운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7월 국민의힘 대선 주자들이 여성가족부 폐지공약을 내걸자 규탄 기자회견을 당사 앞에서 열었다. 10월엔 기고문에서 양아치와 조폭 중 대통령을 뽑아야 하나?”라고 했다. 지난달에도 트위터에 국힘(국민의힘)은 페미니스트들의 대안이 될 수 없죠라는 글을 올렸다.

 

신지예의 돌연한 선택은 상징자본의 사유화라 부를 만하다. 여성·청년·페미니스트 정치인이라는 상징자본은 혼자 쌓아올린 성취가 아니다. 오랜 시간 지지자들과 함께 이뤄낸 것이다. 예컨대, 4·7 서울시장 보선 당시 신지예를 찍은 18039명은 지금 신지예의 선택에 동의할까?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거나 형해화하고, n번방 방지법을 검열법으로 몰아붙이며, 성폭력처벌법에 무고 조항을 만들겠다는 정당의 집권을 기대할까?

 

정치인의 선택은 그 자신만의 것이 아니다. 자신의 성취에 힘을 보탠 지지자들에게 설명할 근거와 맥락이 있어야 한다. 페이스북 글에 따르면 그가 국민의힘으로 간 이유는 문재인 정권에 실망했으니 이번엔 윤석열의 약속을 믿어보겠다는 것뿐이다. 윤석열의 약속이란? 구체적으로 드러난 바 없다.

 

청년도 권력의지를 품을 수 있다. 아니 품어야 한다. 다만 가치와 신념, 노선과 정체성이라는 땅에 단단히 발을 디디고 있어야 한다. 권력 자체만을 목표로 삼으면 길을 잃고 표류하게 된다. 스스로도 설명하기 힘든 선택은 불쏘시개로 이용되기 십상이다. 1주일간 계속된 김건희씨의 허위 경력 의혹을 덮는 데 신지예는 이미 일조하고 있다. 신지예의 돌출행동이 꾸준히 신념을 지키며 활동해온 청년 정치인, 특히 여성청년 정치인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두렵다.

 

윤석열은 서로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같은 정당 안에 있으면서 결론을 도출해야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정당이 된다고 점잖게 말했다. 진짜 속내는 김한길 새시대준비위 위원장이 내비쳤다. “ ‘이대남(20대 남성)’은 윤 후보를 지지하는 분들이 많은 편이지만, 젊은 여성층은 아직 특정 후보 지지를 결정 못한 분들이 제일 많다.”

 

실제 지난 3일 공개된 리얼미터·오마이뉴스 여론조사를 보면, 20대 여성 중 부동층은 23.7%로 전 성별·세대 중 가장 높았다. 윤석열로서는 이준석으로 이대남지지를 확보했으니, 이제 신지예로 이대녀를 노려보겠다는 심산일 터다. 그러나 정치는 ‘1+1=2’ 식의 산수가 아니다. 20대 여성은 신지예가 표방한 가치에 동의했을 뿐, 팬이나 추종자가 아니다. 신지예를 영입하며 국민의힘과 윤석열은 어떤 변화의 신호를 보내고 있는가. 외려 이준석은 벌써부터 신지예 길들이기에 나선 터다. “(두 사람의 의견이) 만약 충돌한다면 당대표 의견이 우선한다. 만약 지금까지 하던 말을 지속하기 위해 들어온 거라면 강한 비판을 받을 것이다.”(MBC 인터뷰)

 

신지예가 국민의힘에 합류한 날, 칠레에선 35세 좌파 정치인 가브리엘 보리치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보리치는 2011년 교육개혁을 요구하는 학생시위를 이끈 지도자로 이후 정치에 뛰어들었다. 그의 당선은 2019년 칠레를 뒤흔든 사회 불평등 항의시위의 연장선에 있다. 분노한 시민은 피노체트 군부정권 당시 제정된 헌법을 폐기하는 성과를 이끌어냈다. 변화의 열망은 칠레 역사상 최연소 대통령 탄생으로 이어졌다. 변화란 이런 것이다. 일관된 가치를, 대중과 함께, 꾸준하고 성실하게 추구할 때만 일어나는 희귀한사건이다. 상징자본만 믿고 단기필마로 돌진한다고 벽이 무너지진 않는다

김민아 논설실장 경향 : 2021.12.20.

 

능력주의 폭정으로 퇴행하는 선거판

퇴계선생’ ‘율곡선생이란 명칭에서 보듯이 선생은 구한말까지도 학문이 깊은 이에게 붙는 최고 경칭이었다. 그러나 서양 학위제도가 도입되면서 학사-석사-박사라는 일종의 계급이 생겼다. 우리만큼 표절 학위가 많은 나라도 없을 텐데, 위험 부담을 안고도 박사 학위를 따 두면 그 이상 보상이 따르기 때문이다.

 

런던대 골드스미스 칼리지 제임스 커런 교수는 세계적 석학이고 박사 제자가 전 세계에서 활약하고 있지만 막상 그는 케임브리지대 학사 학위밖에 없다. ‘박사같은 보다 실력이 있으면 통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지도교수 입학 면접 때 나이도 많은데 왜 학위를 따려고 하느냐는 질문에 한국에서는 학위가 없으면 발언권이 적다고 실토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부끄럽다.

 

국민의힘이 청년 대표라며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영입했다가 내친 노재승씨는 검정고시 출신 대통령 후보를 비정상인처럼 매도했다. 전여옥 한나라당 대변인은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을 겨냥해 다음 대통령은 학력 콤플렉스가 없는, 대학 나온 사람이 적절하다고 말했는데, 이 발언 이래 학벌주의를 부추기는 최악의 발언이다.

 

노씨는 또 이승만 전 대통령을 대한민국 1호 박사라고 부추기며 김구는 국밥 좀 늦게 나왔다고 사람 죽인 인간이라고 비하했다. 그의 발언이 극단적이긴 하지만, 독립운동에 훨씬 공이 큰 김구보다 이승만을 추앙하는 수구세력이 두꺼운 데는 학벌주의도 크게 작용했다고 본다. 김구는 서당 출신이지만 이승만은 프린스턴대 출신이다. 이승만 자신도 국민이 이 박사로 부르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서울대 법대 출신 윤석열 후보의 선대위원장으로는 김종인 박사와 하버드 출신 이준석이 임명됐는데, 이들도 학벌에 의해 능력이 부풀려졌다고 생각한다. 김종인 위원장은 독일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땄지만 독일의 경제정책과는 거리가 먼 정책을 추구해왔다. 독일 기업들은 노동조합을 경영 동반자로 삼아 회계 투명성을 높이고 노조도 기업이 어려울 때는 고통을 분담하지만, 김종인은 노조의 경영 참여에 반대했다. 언론은 경제민주화론자라고 보도하는데, 그는 독재정권과 재벌경제체제 유지에 기여한 바 크다. 금융실명제와 부동산 중과세에도 반대했다.

 

이준석 위원장은 어떤가? 그는 미국이 정글의 법칙, 약육강식의 원리를 자연의 섭리로 본다며 미국식 자유의 가치를 사회 전반에 받아들이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과 더불어 세계에서 신자유주의를 가장 과도하게 받아들여 양극화가 극심해진 나라에서 그런 인식을 하고 있다. ‘억강부약은커녕 재벌과 기득권층에 유리한 정책을 펴겠다는 사람이 따릉이와 킥보드 타면서 청년 대표 이미지를 심는다. 보수를 자처하는 정당의 대표 자리를 30대에 꿰찬 그는 능력주의 화신이다.

 

이번 대선이 능력주의자가 총출동하는 선거판이 된 것은 한국 정치에 심각한 퇴행을 가져올 공산이 크다. 유력 대선 후보들이 사시 출신이고 특히 윤석열 선대위에는 검사 출신만도 15명이 포진했다. 과거 군사정권이 검찰을 이용했다면 이젠 검찰 스스로 검찰공화국을 만들려 한다. 검찰은 체제 수호의 수단이지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조직이다.

 

오랜 진통 끝에 조금씩 정착돼 가던 주 52시간 노동제, 최저임금 인상, 중대재해처벌법, 종부세, 남북군사합의 등도 중단되거나 완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재명 후보도 정도는 심하지 않지만 양도소득세와 공시지가제 등을 완화하겠다는 발언을 하고 있다. 전 정부가 한 일을 되돌리려고만 한다면 우리 사회는 제자리걸음만 무한반복할 뿐 더 나은 세상은 신기루가 되고 만다.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 할 시대정신 대신 시대착오가 횡행한다. <오징어 게임>이 한국에서 생겨난 것은 무한경쟁과 승자독식 논리에 거부감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집권하면 영입인사의 지식과 비전을 활용해야 하는데 측근들 말고는 대개 토사구팽되는 게 한국 정치사이다. 유럽에서는 중·고등학생 때부터 정치교육을 받아 10대 중반에 정당에 가입하고 풀뿌리 자치단체를 거쳐 정치인으로 성장해 간다. 우리나라는 정치인 양성 시스템이 거의 작동하지 않는다. 각 분야에서 스스로 커온 전문가를 영입한 뒤 선거 후 차버리는 행태가 반복된다면 그 자체로 엄청난 사회적 낭비다. 대선용 위장 영입쇼에 유권자가 현혹돼서는 안 된다. /이봉수 언론인 경향 : 2021.12.21

 

국민들이 그렇게 우습게 보이나

이렇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201612월 박근혜-최순실의 국정농단이 발생하고 나서, 많은 국민들이 거의 매주 탄핵촉구 촛불시위에 나설 때 외친 말은 이게 나라냐였다. 매서운 칼바람을 맞아가며 탄핵촛불시위에 동참한 많은 국민들은 당리당략을 뛰어넘었고, 이념과 정파를 떠나 국민들은 최소한의 염치를 알았다. 그랬기에 일부 수구세력들의 극렬한 저항을 뚫고 대한민국은 불가능해 보이던 탄핵의 강을 건널 수 있었다. 부족주의 진영논리를 극복한 결과다.

 

정확히 5년이 지난 지금, 코로나192년째 전 세계를 할퀴고 있는 와중에 우리는 새로운 대통령 선거를 목전에 두고 있다, 그런데 이 대선경쟁에 선 양강후보들 그리고 그 지지자들에게는 최소한의 염치도 없어 보인다. ‘공정이라는 말의 의미는 오염된 지 오래다. 두 후보에 대한 본인, 가족, 주변인사들의 비리의혹과 도덕성 시비가 연일 터지는데도 양쪽은 내로남불이다. 자신의 비리와 의혹을 물타기 하기 위한 목적으로 상대방에 대한 기획된 비리의혹도 다반사이다. 묘서동처(猫鼠同處)라 했던가? 편향된 평론가들과 지식인인 체하는 이데올로그들도 서로서로 한편이 되어 후안무치의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다. 역대 최악의 비호감 대선을 넘어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혐오감을 극한까지 밀어붙여 보려는 기세들이다. 예측건대 이번 대선의 투표율은 역대 최저가 될 가능성이 높고 당선자도 역대 최저의 득표율로 당선될 가능성이 높다. 어느 쪽이 당선되더라도 그 후유증이 만만치 않을 것 같다.

 

통상의 기준을 적용한다면 여태까지 터진 의혹, 비리, 언행만으로도 두 후보는 대통령은커녕 조그마한 공공기관의 장도 못할 사람들이다. 국민들의 평균적 눈높이에도 맞지 않는 사람들이 대한민국의 국가원수가 되겠다고 한다. 저잣거리의 많은 국민들은 이들이 통상의 청문회과정을 거친다면 진작에 사퇴했거나 지명철회되었을 후보들로 보고 있다. 대통령이 잘못하면 탄핵이라도 하면 되지만 후보들은 탄핵할 수도 없으니 답답할 뿐이다. 형의 부인에게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하고 아들의 성매매 의혹까지 불거진 사람이 여성표를 구걸하는가 하면, 부인과 장모의 비리 의혹이 연일 터지는 사람이 공정과 상식을 말하고 있다. 대통령은 수만명의 공직자와 공공기관의 장들에 대한 인사권을 행사하는데 차제에 그들에게 유사한 비리의혹이 제기되면 어떻게 하려는지 모르겠다.

 

이들의 사과를 보면 진정성이 전혀 묻어나지 않는다. 입가에 미소를 띠면서 사과하는 후보가 있는가 하면, 사과하면서 기자와 국민들을 훈계하는 후보도 있다. 어차피 우리 지지자들은 나를 지지하는 것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을 것이라는 오만함이 구석구석 묻어난다. 경선과정에서도 여러 번 드러났지만 국민들과 지지자들을 진심과 논리로 설득하는 대신 교묘한 말장난으로 위기를 빠져나간다.

 

여당의 이재명은 조삼모사와 말 뒤집기를 여러 번 했다. ‘범주형 기본소득이라는 말장난으로, ‘전 국민에게 무차별적으로 나누어주는게 핵심인 기본소득을 특정계층을 대상으로 한현금수당으로 치환하였다. 불로소득을 근절하겠다고 하면서 다주택자를 대상으로 과도한종부세를 경감시키고 양도소득세 중과도 추가로 유예해주겠다고 한다. 이는 먹튀를 공개적으로 인정해 주겠다는 말이다. 똘똘한 한 채로의 쏠림을 막기 위해 다주택자와 일주택자를 구분하지 말자는 주장은 이미 재정개혁특위 시절부터 제기되었던 내용이었다. 당시 이에 반대하면서 다주택자=투기꾼이라는 억지 공식을 적용하여 밀어붙였던 인사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캠프 내에 부지기수인 그들은 지금은 손바닥 뒤집듯 말을 바꾸고 있다. 이재명의 변신은 서울과 수도권에서 불리한 유주택자들의 민심을 만회해보겠다는 꼼수에 불과하다. 부동산 가격급등에 청년들의 빚은 급증하고 있는데 이들에게는 선거공학만 눈에 보인다.

 

야권의 윤석열캠프는 합리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를 아우르는 경제정책을 하겠다고 공언하고 있지만 주변을 보면 정치적 복권을 노리는 박근혜키즈들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부유세의 성격을 갖는 종부세를 순자산세로 바꾸겠다고 하면서 세율조정은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총부채에 대한 규제는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에 설명은 전혀 없다. 약자와의 동행을 얘기하지만 반노동·반인권적 발언은 계속 나오고 있다.

후보들은 국민들이 그렇게 우습게 보이나? 이들이 꿈꾸는 세상은 어떤 세상인가? 중남미를 괴롭혀온 포퓰리즘의 망령들이 대한민국에 어른거린다.

이우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경향 : 2021.12.22

 

너무 늦게 주어진 이석기의 자유

19881220전사 시인김남주가 광주교도소를 나왔다. ‘남조선 혁명의 군자금을 마련하겠다며 1979년 봄 동료 전사 셋과 재벌 집 담장을 넘었다가 체포된 지 9년여 만이었다. 같은 날 시국·공안사범 281명을 대상으로 이뤄진 특별사면·석방·감형 조치에는 김남주 등 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남민전) 사건 관련자 12명이 포함됐다.

 

남민전은 1976년 이재문·신향식 등이 베트남 통일에 자극받아 결성한 자생 혁명조직이었다. 공안당국은 이들을 남한 최초의 무장 도시게릴라 조직이라고 발표했다. 예비군 훈련장에서 총기와 실탄을 절취하고 자금 조달을 위해 떼강도짓도 불사했던 그들의 모험주의 급진 노선은 운동 진영 전체에 큰 충격을 안겼다. 이런 남민전을 노태우 정부가 국민 화합을 위한 인도적 특별 조치차원에서 관련자 전원을 풀어준 것이다. 야당과 사회운동 세력의 계속된 도전으로 통치 기반 자체가 불안정했던 노태우 정권엔 적잖은 용기가 필요한 결단이었다.

 

20139월 통합진보당 국회의원 이석기가 내란음모 혐의로 체포됐다. 그해 3월에 있었던 북한의 정전협정 무효화 선언을 전쟁 개시의 징후로 오판하고 5월 중순 섹트 활동가들을 소집해 유사시 각자 위치에서 할 수 있는 후방 교란 방안을 생각해보라 주문한 게 범죄 행위의 요체였다. 김남주의 남민전에 견준다면 말 그대로 극단주의 종말론 추종집단의 부흥집회 수준이었다.

 

2012년 당 비례대표 경선에서 1위를 해 현실 정치권에 발을 들인 그는 무척 독특한 느낌의 정치인이었다. 19대 국회 등원 초반 그를 만나본 몇 안 되는 기자들은 “1980년대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온 사람 같았다고 했다. 구사하는 어휘와 말투, 사고방식 등에서 2000년대 대중정치의 문법과는 거리가 먼 언더 조직리더의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냈던 것이다.

 

201421심 법원은 그에게 내란음모와 내란선동 혐의를 적용해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같은 해 82심 재판부는 음모혐의는 기각하고 선동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만 인정해 징역 9년으로 감형했다. 이러한 2심 결과는 이듬해 1월 대법원에서 최종 확정됐다. 재판 과정에서 지하 혁명조직 아르오’(RO) 결성 혐의 등 무리한 기소 내용이 바로잡히고 내란음모 혐의에 무죄가 선고됐지만, 유죄 판결을 받은 내란선동 혐의와 9년이라는 무거운 형량은 처음부터 논란거리였다. ‘구체적인 음모나 조직 없이도 청중들이 내란에 해당하는 범행을 결심하도록 유발할 위험이 있다며 유죄를 확정한 대법원의 판단 근거 자체가 자의적인데다, 내란선동 혐의에 9년의 실형을 선고한 선례 역시 찾아보기 힘들었던 탓이다.

 

형이 확정돼 수감생활을 하는 동안, 이석기를 감옥에 넣은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되고 촛불 정신의 구현자를 자임한 문재인 정권이 출범했다. 종교계와 인권단체를 중심으로 그의 석방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본격화했다. 국제앰네스티도 가세했다. 미국 국무부 인권보고서는 2015년 그의 구속수감을 자의적 구금으로 규정했다. 하지만 그는 문재인 정부 임기 동안 단행된 수차례의 특별사면에 한번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가 이석기의 석방을 요구하는 나라 안팎 목소리에 침묵으로 대응하는 동안, 그는 형기의 80% 이상을 복역해 가석방 조건을 채웠다. 그사이 이석기는 시대착오적 정치 컬트의 상징을 넘어, 인식과 감각의 세계에서 추방해도 마땅한 두렵고 혐오스러운 존재로 악마화되고 말았다. 합의된 게임 규칙을 위반한 정치적 소수파의 존재가, 공안기관·보수언론의 상징조작과 집권세력의 외면 속에 도덕적 연민과 공감의 영역에서마저 배제된 결과였다.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특별사면이 임박했다고 쓰고 나니, 얼마 안 있어 이석기 24일 오전 10시 가석방을 알리는 속보가 인터넷에 뜬다. 그 허약하고 탈 많던 노태우 정권도 형기를 60%밖에 못 채운 남민전 전사 김남주를 취임 첫해 특사에서 풀어줬다. 상황을 바꿀 충분한 힘을 갖고 있음에도, 다수의 혐오 대상을 편든다는 비난이 두려워 누군가에 대한 물리적 배제를 방치하는 것, 이것을 혐오가 아닌 무엇으로 불러야 할지 나는 알지 못한다. 이석기 가석방, 늦었지만 잘한 결정이다. 이세영 | 논설위원 한겨레 : 2021.12.23

 

거짓 진보·보수의 정치지형을 바꾸자

사회적 차별은 오직 공익을 바탕에 둘 때만 가능하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직후에 나온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 12항이다. 널리 알려진 11모든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나 평등한 권리를 누리며 살아간다에 비해 덜 알려진 편이다. 토마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의 서문 첫마디에 이 2항을 인용하면서 시작했다. 이 조항을 공익이 전제되지 않는 사회적 차별은 용납되지 않는다로 바꿔 쓰면, 차별금지법을 통과시키지 않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차별 없는 세상이나 공익 추구에 별 관심이 없는 정당임을 알 수 있다. 광신적 편견이나 몰상식, 반지성주의가 공익의 탈을 쓰고 있지 않다면 말이다. 정의당과 극소수 민주당 의원이 나서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사이에 차이가 없는 건 아니다. 국민의힘이 반대 의사를 분명히 밝힌다면, 민주당은 나중에나 두루뭉술하게, 그리고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로 귀결된다. 사회적 합의라는 말이 언뜻 들으면 그럴듯하다. 그러나 차별금지법처럼 법 제정과 관련된 사안에서 사회적 합의란 곧 국민의힘과의 합의를 뜻한다. 국민의힘이 입법권의 마지노선을 장악하고 있는 셈인데, 180석으로 출발한 민주당이 지금까지 이 마지노선을 넘었던 경우는 공수처법 재개정 등 몇 안 된다. 중대재해처벌법을 비롯해, 노동권이나 민생 관련 법안에서 이 선을 넘었던 적은 거의 없다. 공수처법처럼 두 당 사이 권력투쟁에 영향을 미칠 사안에서는 적극적으로 다투지만, 노동이나 민생문제에는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것이다. 그들 중에 가난한 서민이, 자식들 중에 산업재해 위험이 있는 비정규직이 있었어도 그랬을까?

불온한 서생의 시각으로 거칠게 구분하면, 국민의힘은 하면 안 될 일을 주로 하는 정당이고, 민주당은 해야 할 일을 거의 하지 않는 정당이다. 국민의힘보다 민주당이 낫다. 국정농단, 사법농단, 블랙리스트, 불법사찰, 4대강, 자원외교 등 하면 안 될 일을 주로 하는 정당보다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정당이 나은 건 당연한 이치니까. 설령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차별금지법 제정, 국가보안법 폐지, 손해배상 가압류 폐지, 국제노동기구 요구 수준 노동법 개정,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 불로소득 환수법 제정, 분양원가 공개, 교육개혁 등 공약도 그 대부분을 지키지 않지만 말이다. ? 그래도 되니까!

 

극우적 수구·보수 양당 체제는 구조적으로 민주주의 성숙, 정치 발전에 걸림돌로 작용하는 두가지 문제가 있다. 하나는 위성정당 사례에서 보듯이, “할 일을 제대로 하는 정당의 진출을 가로막는 데 두 당이 이해관계를 같이한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국민의힘보다 조금 낫기만 하면 되므로 민주당의 정치노선의 기준점이 그 당이 된다는 점이다. 대선을 앞두고 혼탁하다는 말로 부족한, 타락상의 극을 달리고 있는 정치 행태들도 국민의힘의 정치 행태로 수렴되고 있는 징표다. 최근 민주당 대선 후보의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세 한시 유예, 주택 공시가격 현실화 전면 재검토 발언 등은 정책 노선에서도 국민의힘에 밀착하고 있는 징표다.

 

이 수렴 현상은 집권 전략상 당연한 일일 수 있다. 현실 사회주의권이 무너지자 유럽의 좌파정당들은 모두 우경화로 치달았다. 영국 노동당의 3의 길’, 프랑스 사회당의 사회적 자유주의’, 독일 사민당의 신중도가 각기 그들이 우경화하면서 내놓은 이념들이다. 왼쪽에서 끌어당기는 동력이 사라진 상황에서 정치노선을 중도 쪽으로 옮길수록 표밭이 커지기 때문이다. 보수우파 정당 역시 표밭을 키우려고 왼쪽으로 좌경화하여 중도 수렴 현상이 일어났다(우리는 오른쪽으로 수렴된다는 점에서 그들과 다르다). 유럽의 좌파정당들이 집권에 성공하기도 했지만 대가를 치러야 했다. 하층 노동자들과 서민계층이 극우 정치세력의 표밭이 되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프랑스 하층 노동자들의 1당은 진보좌파정당이 아닌 극우정당으로 굳어진 지 오래다.

 

유럽의 좌파정당들이 득표를 위해 하층 노동자들과 서민들을 방기한 것과 달리, 한국의 하층 노동자와 서민들은 처음부터 정치사회적으로 배제된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들의 이해를 대변할 진보좌파정당이 없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이 잠깐 자리한 뒤, 민주당에 ‘2중대가 있었을 뿐 그 왼쪽은 무주공산인 채였다. 민주당의 국민의힘 밀착에 대한 일차적 책임은 민주당 왼쪽을 무주공산으로 남긴 진보좌파 정치세력에 있다. 다만 분명히 해둘 게 있다. 극우적 수구세력인 국민의힘이 보수의 자리를, 자유주의 보수세력인 민주당이 진보의 자리를 차지하여 무주공산까지 자기들 놀이터가 되게 했다는 점이다. 심지어 <조선일보> 따위가 문재인 정권을 좌파정권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우리가 왜 진보냐? 좌파냐?”라고 응수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분단체제 아래 극도로 우경화된 한국의 정치지형을 마치 진보·보수, ·우가 균형을 이루고 있는 듯 호도하는 것이다.

 

어느 날 눈을 떠보니 선진국이 되었던데, 어느 나라 보수가 위에 적시한 일들을 서슴없이 저지르고, 어느 나라 진보좌파가 위에 적시한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가. 최근 토마 피케티가 주관하는 세계불평등연구소가 발간한 <세계불평등보고서 2022>에 따르면, 한국의 상위 10%의 평균 소득이 하위 50% 평균의 14배로 프랑스(7)의 두 배였고, 상위 10%의 평균 부의 크기는 하위 50%52배였다. 국민 절반인 하위 50%의 평균 부(소득이 아니다!)2천여만원인 게 우리 현실인데, 민생을 빙자하여 부동산 감세를 추진하는 게 진보인가?

 

세금폭탄론이 관철되는 것 또한 거짓된 진보·보수 정치지형의 산물이다. 역시 최근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2020년 국민부담률을 보면, 한국은 28%(조세 20.2%, 사회보장분담금 7.8%)38개국 중 밑에서 9위를 차지했다(오이시디 평균 33.5%). 우리가 세금폭탄이라면 덴마크(46.5%)나 프랑스(45.4%)는 세금핵폭탄이다. 우리에게 국방비 부담이 크다는 점을 고려하자. 소득(분배)과 재분배 정책에서 하위 50%, 즉 절반의 국민은 민주공화국 바깥에 존재한다. 어떻게 아닐 수 있겠는가, 세계 으뜸의 자살률, 세계 으뜸의 노인 빈곤율, 세계 으뜸의 산재 사망률, 그리고 세계 꼴찌의 출생률거기에 세계 으뜸을 다투는 기후 악당국.

 

5개 진보좌파정당(노동당·녹색당·사회변혁노동자당·정의당·진보당)과 민주노총이 대선 후보 단일화에 합의했다고 한다. 과거에 연연하지 말고 태어날 아이들을 생각하자. 기후·생태·노동의 위기 속에, 갈수록 심화되는 불평등 구조 밑바닥에 던져질 아이들을. 그리하여 칠레 인민한테서 배우며, 무엇보다 구동존이를!

홍세화 | 장발장은행장·‘소박한 자유인대표 한겨레 : 2021.12.23

 

 

역대급 비호감 대선, 도 넘은 충성경쟁

대선이 민주주의를 무너뜨리고 있다

'우리가 놓치는 민주주의 위기 신호'라는 부제가 붙은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저자들은 극우파와 미국의 트럼프를 지지하지 않는 공화당 인사를 예로 들고 있다.

 

2016년 오스트리아 보수 진영이 극우파 급진주의자 노르베르트 호퍼의 당선을 막기 위해 녹색당 후보를 지지하기로 한 사례도 들고 있다. 또한 2017년 프랑스 보수 진영 후보 피용(Fillon)은 극우파 후보 마린 르펜(Marine Le Pen)이 권력을 잡지 못하도록 막기 위해 중도좌파 후보인 마크롱(Macron)을 지지하도록 당원들을 설득했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일부 공화당 인사는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로 민주당의 힐러리 후보를 지지했다. "이들은 오스트리아와 프랑스 보수 진영 정치인들처럼 당의 이해관계 보다 민주주의를 지켜내야 한다는 의지를 더욱 중요하게 생각했다."(<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한국정치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에 대한 선대위는 물론 양대 정당 소속 정치인들의 맹목적인 후보 비호와 두둔은 편가르기와 패거리 정치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러한 행태는 정당이 문지기(gatekeeper)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과 연관되어 있다.

 

정당의 여러 기능 중 공직자 추천, 즉 공천은 가장 중요한 기능 중 하나이다. 대통령 후보 선출 역시 마찬가지다. 정당이 대통령 후보를 선출할 때는 최소한 두 가지 사안에서 균형을 맞춰야 한다.

 

첫째, 민주주의의 관리자로서 유권자의 뜻을 가장 잘 대변하는 후보자를 선출해야 한다. 둘째, 필터링 기능을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 즉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거나 위협이 되는 인물을 걸러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 두 가지 기능은 상충할 수 있다. 이른바 당심과 민심 사이의 조화의 문제이기도 하다. 상충을 완벽하게 벗어날 방법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균형을 잡는 일로 귀착될 수밖에 없다.

 

새삼 대선 후보 선출을 언급하는 이유는 대선이 역대급 비호감이라는 일치된 비판에 직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두 후보의 가족 리스크가 불거져 나온 상태에서 무모할 정도로 자신의 진영 후보에 대해 호위무사의 행태를 띠고 있는 양상은 대선 자체를 혐오스럽게 몰고 간다. 충성경쟁이 상식이 감내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면 이미 정치는 구태와 퇴행으로 얼룩질 수밖에 없다.

 

더불어민주당의 권인숙 의원은 이재명 후보 아들의 의혹을 두고, "안타깝지만 평범하다"고 했고, 국민의힘의 김재원 최고위원은 윤석열 후보 부인의 허위이력 기재 의혹에 대해 "제목을 근사하게 쓴 것뿐"이라고 밝혔다.

 

이들이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평균적 상식을 지니지 못한 문제적 인물일 것이고, 후보에게 돋보임으로써 자신의 정치이해를 위해 그러한 망발을 알면서도 했다면 퇴출되어야 마땅하다. 이러한 관계자들이 정치를 나락으로 빠뜨리고, 민주주의를 오염시키기 때문이다. 비단 이들만이 아니다. 한국정치에서 이러한 문제는 새삼스러운 문제가 아니지만 양대 거대정당의 선대위에 속한 인물들의 후보 비호는 도를 넘고 있다.

 

도식적이고 거시적인 차원에서는 양대 진영정치가 적대와 증오를 강화한다는 진부한 진단을 할 수 있지만 미시적 차원에서는 정치인의 저급한 수준이 더 큰 문제일 수 있다. 80일 남은 대선에서 갑자기 정치인들의 태도가 변하리라 기대하는 것은 난망한 일이지만 언론에서라도 이러한 문제들을 지적해 나가야 한다. 평론을 한다는 인사들이 정당에 소속된 인물들과 똑 같은 강도로 특정 후보를 의식해서 발언하는 구태도 진영정치와 위선의 정치를 부추기는 요소다.

 

민주주의 체제의 최소한의 내용으로서는 기본적 자유의 보장, 경쟁적 정당의 존재, 보통선거에 입각한 정기적 선거 등이다. 그러나 절차적 민주주의의 확보로 민주주의가 공고화됐다고 받아들이는 데에는 함정이 있다. 바로 경쟁적 정당이 아닌 적대적 정당들의 존재이고, 이러한 문화를 강화하는 요인들이다. 궁극적으로 절차적 민주주의조차 훼손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비록 한국정당체제가 미국과 프랑스, 오스트리아의 정당과 다른 배경과 구조적 요인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정치인 각자의 자각이라도 있다면 상황은 나아질 수 있을 것이다. 이 역시 유권자와 언론의 감시와 견제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지만 선거의 목적과 수단이 도치된 선거문화에서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최창렬 용인대 교양학부 정치학 교수 | 프레시안 2021.12.24.

 

개와 늑대 그리고 인간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어머니에게 꾸중을 듣고 가출을 감행한 적이 있었다. 열 살 남짓한 무렵이었다. 해가 진 뒤라 집 밖으로 나갈 용기는 없었다. 마당 한 귀퉁이에 있던 개집 뒤에 숨었다. 기대와는 달리 밤이 깊도록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다. 오직 하나, 갈색 발발이가 꼬리를 흔들며 내내 옆에 앉아 있었다. 개를 묶지 않아도 되던 시절이라 밥때가 아니면 늘 동네를 싸돌아다니는 녀석이었다. 그날 나는 비릿한 개 냄새만큼 짙은 연결의 힘을 발발이에게 느꼈다. 사람들이 흔히 호의나 우정이라고 표현하는 감정보다 더 끈끈한 무엇이었다.

 

개는 자신을 사람으로 여길까, 사람이 아니라고 여길까.’ 그날 이후 개를 볼 때마다 떠올리는 궁금증이다. 개와 같은 조상에서 갈라져 나왔다는 늑대는 무리의 유대감이 매우 강하다고 한다. 개가 자신을 사람으로 여기는지 아닌지는 영원히 알 수 없겠지만, 목줄을 쥐고 있는 주인과 자신이 같은 무리에 속한다고 믿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장룽의 소설 <늑대 토템> 속 한족 청년은 새끼 늑대를 데려와 길들이려 애쓴다. 날고기를 주면서 새끼 늑대를 돌본다. 한편으로는 사람을 해치지 못하게 날카로운 송곳니 끝을 잘라버리기도 한다. 그리고 생존의 무기를 잃은 새끼 늑대가 초원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에 마음 아파한다.

 

청년은 이전에도 마음 아파한 적이 있다. 늑대에게 떼죽음을 당한 가젤들을 보았을 때이다. 아무 잘못도 없는 가젤의 죽음을 슬퍼하는 청년에게 몽골인 노인은 설명한다. “초원에서는 풀이 가장 큰 생명체이고, 나머지는 모두 작은 생명체에 불과해. 작은 생명체는 큰 생명체에게 의지해야만 살아갈 수 있다. 늑대와 사람조차 작은 생명체에 속하지. 너는 가젤이 가련하다고 하지만 풀은 가련하지 않으냐? 가젤 무리가 필사적으로 풀을 뜯어 먹는 것은 살생이 아니냐?”

 

새끼 늑대는 초원에서 들려오는 다른 늑대들의 울음소리에 본능이 깨어난다. 쇠사슬에 묶인 채 몸부림치다가 죽는다. 늑대는 개가 아니니까. 석기시대부터 사람과 함께 살아온 개는 곡식을 소화할 수 있고 목줄을 견디도록 진화했다. 수렵과 목축의 시대에 협업자이던 위치도 변했다. 이제는 사람들에게 끈끈한 감정의 충족을 제공한다. 개의 몸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형태로 개량되었고, 그로 인한 질병에 시달리기도 한다.

 

생존의 현장에서 어떤 동물은 사람과 협업했고 어떤 동물은 경쟁했다. 인간이라는 종이 소총을 사용하여 먹이 사슬의 꼭대기로 올라서기 전에는, 협업자도 경쟁자도 생태계의 균형을 이루는 존재로 존중받았다. 기술문명의 등장 이후 협업자는 인간의 식용으로 사육되거나 반려가 되었다. 경쟁자는 절멸의 길로 갔다. 이즈음 동물권이라는 단어가 보일 때마다 인권이라는 개념이 세상에 등장하게 된 역사적 배경을 떠올린다. 피착취자로서 노예, 여성, 동물의 삶이 거쳐온 역사에는 비슷한 장면이 많다.

 

 

돌이켜 보면 인간은 거의 모든 장애물을 제거할 길을 마련했다. 생태계와 기후 위기 또한 그럭저럭 다룰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위기를 초래한 인간 욕망의 무한함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을까?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부희령 작가 경향 : 2021.12.24

 

 

언론의 집단적 독백극복하려면

집단적 독백이란 게 있다. 유아에게서 발견되는 특징인데, 말 그대로 각자 자기 얘기만 내뱉을 뿐 대화가 성립하지 않는 상황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6살이야라는 한 아이 말에 아이들은 나는 엄마가 정말 좋아라는 식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말로 응대한다.

 

이런 현상은 유아의 사고가 타인의 관점을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대화를 타인과 함께 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그저 자기 마음을 해소하는 용도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런 유아기적 특징은 성인에게서 나타나기도 한다. 불특정 다수가 모인 단톡방이라든지 인터넷 게시글과 댓글에서도 이런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발달심리학 용어를 꺼낸 이유는, 이 용어가 지금 우리 언론 모습을 잘 설명하는 단어이기도 해서다. 집단적 독백의 가장 큰 특징이 자신의 정신구조를 반복해 사용하려는 경향인데, 이는 우리 언론이 가장 잘하는 것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우리 언론의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는 정파성같은 것 말이다. 정치 환경이 어떻든, 실제 사실 정보가 어떻든, 언론은 맥락 정보를 무시하고 그들 자신의 정치적 성향과 프레임에 맞춰 보도를 쏟아낸다.

 

물론 이념적 지향을 가지는 것까지는 문제가 아닐 수 있다. 다만 그 이념적 지향에 맞춰 팩트를 취사선택하고, 별 것 없는 말을 크게 부풀리고, 때론 잘못된 정보까지 전달하는 건 문제다. 절대 바뀌지 않을 프레임과 자기 완결적인 이념에 기반한 보도는 현실 정보를 무시하고, 프레임과 맞지 않은 진실은 외면하게 할 가능성이 크다. 우리 사회에서 대화와 타협할 가능성을 차단하는 건 또 다른 부작용이다. 사회 여론을 형성하는 집단인 언론이 집단적 독백을 반복하면 우리 사회도 집단적 독백에 빠지기에 십상이다.

 

집단적 독백의 또 다른 특징이 있다. 바로 타인의 관점에 무감하고 청자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이 역시 우리 언론의 오랜 특징이기도 하다. 그간 우리 언론에 독자는 고려 대상이 아녔다. 신문 지면과 방송에 정보를 죽 늘어놓기만 해도 알아서 찾아와 정보를 소비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던 탓이었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사람들은 굳이 언론사 홈페이지를 통하지 않고도 포털과 유튜브, 소셜미디어를 통해 정보를 접할 수 있게 됐다. 뉴스레터 뉴닉과 같이 독자와 대화하는 듯한 쉬운 뉴스가 널리 읽히는가 하면, 독자 취향과 관심 전문 분야를 고려한 매체들이 크게 늘었다. 독자를 생각하지 않고 쏟아낸 정보는 앞으로 점점 더 외면받을 테다.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다. 대선 보도가 쏟아지는 이때 집단적 독백이란 언론의 유아적 퇴행이 더 두드러질 수 있다. 언론은 독자와 청자를 생각지 않고 자신의 정신 구조를 그대로 답습한 보도를 쏟아낼 수 있다. 사회구성원의 정치 피로도를 생각지 않고, 자신이 편드는 정당의 의견을 그대로 전하거나 네거티브 공방에 뛰어드는 보도 말이다. 대선과 관련한 유튜브 등의 허위 정보를 어뷰징으로 전달하는 것 또한 독자를 조금만 생각했다면 절대 나올 수 없는 기사 유형이지만, 실제로 그러한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기도 하다.

 

여러 이해관계를 반영하고 사회의 타협과 성숙한 판단을 끌어내는 게 언론 역할이건만 아직 우리 언론은 유아기의 발달 단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성숙한 판단이 요구되는 민주주의의 꽃, 대통령 선거가 코앞이다. 이 정치의 계절에 핵심적 역할을 해야 할 우리 언론이 성숙한 대화의 장을 이끌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할 수 있게 되길 간절히 바라본다.

김수지 월간 신문과방송 기자 미디어오늘 2021.12.25.

 

대통령 선거와 나라 경영의 3모델

모델 A : 국가 발전을 위해 국민은 희생을 한다. 한편으론 공산주의에 맞서며 다른 한편으론 경제성장을 위해 헌신한다. ‘싸우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싸우자란 구호를 내면화한다. ‘산업전사형이다. 이런 인간을 만들고자 초··고는 물론 대학에서조차 군사 훈련을 하고 시장 경쟁력 제고와 국가·민족에의 충성을 가르친다. 유독 법과 질서가 강조된다. 영화 <국제시장>에 나오는 애국가나 국기에 대한 경례가 이 모델을 상징한다.

 

모델 B : 국가는 국민의 복리 향상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공산주의도 문제고 파쇼주의 역시 문제다. 자본주의 에서 노동3권을 보장하고 사회보장제를 실시함으로써 국민들이 위험한생각을 갖지 않게 한다. ‘요람부터 무덤까지국민복리 증진이 통치 이념이 된다. 학교에선 민주시민교육도 실시한다. ‘복지국가형이다. 영화 <다음 침공은 어디?>에 나오는 유럽 각국의 복지체제가 이런 모습이다.

 

모델 C : 국가나 시장보다 민초의 삶이 우선이다. 마을공동체 중심으로 정치경제, 사회문화, 교육종교 등이 구성된다. 자본주의도 공산주의도 아닌 3의 길이다. 국가건 시장이건 삶을 불행하게 하면 무용지물! 권력이나 자본이 아니라 민초가 공동체의 을 정한다. 참된 자유, 평등, 우애, 평화, 연대의 가치를 중시하되, 개인과 공동체가 함께 간다. 지역공동체나 협동조합에서 잘 구현된다. 다큐 영화 <춤추는 숲>이나 <내일>은 공동체의 새 가능성을 연다.

 

물론, 이 모델들은 나름 장단점이 있다. 사회발전 단계별로 여러 유형도 가능하다. 사회운동 역시 현재의 모순과 문제를 부단히 해결하는 과정을 중시하니까. 이 맥락에서 오늘의 우리는 대선을 앞두고 어떤 모순과 문제를 느끼나? 객관적으로 우리는 학벌 경쟁과 노동 억압, 집값 폭등 외에 초미세먼지와 코로나19 재난을 겪는다. 게다가 지구는 뜨거워지고 기후위기와 방사능 재앙의 가능성도 있다. 재벌과 부자들은 돈 잔치로 웃지만, 대다수 시민들과 영세 중소기업, 자영업자들은 날마다 불안과 좌절이다. 현실 정치는 저질 코미디와 발목잡기로 관객 모독까지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대선 이후 어떤 모델을 택할 것인가? 모델 A를 그리워하는 자도 있지만, 이미 시대착오적이다. 노동소외 및 빈익빈 부익부의 양극화만 부추긴다. 지배질서가 흔들리면 쿠데타 위험도 생긴다. 모델 B는 겉보기에 멋지나 불행히도 자본주의의 토대가 갈수록 무너지기에 소망과 달리 그 현실성은 낮다. 게다가 복지국가 모델을 지탱하던 신식민지 수탈이나 자연생태계 약탈도 극한에 왔다. 영화 <, 다니엘 블레이크><오베라는 남자>는 복지국가주의의 한계를 꼬집는다. 고로 나는 모델 C에 주목한다. 국가 단위보다는 작은 마을이나 지역, 공동체 단위로 얼마든 실현 가능하다. 현실 사례도 많다. 여수의 어느 섬에서는 부녀회에서 마을식당을 운영하며 관광객들에겐 적정가격을 받되, 마을 사람들에게 삼시 세끼 무료급식을 한다. 경기 연천의 한 마을에서는 청년들이 마을기업을 운영, 노인들에게 마을연금을 준다. 생태적 자급자치 공동체! 따지고보면, 국가나 시장이 미약하던 때, 마을이 복지요 삶의 토대였다.

 

옛날타령만 하자는 게 아니다. 미래로 가야 한다. 다만, 세월의 흐름 속에서 우리가 얻는 대신 잃어버린 게 뭔지 성찰하며 가자. 오늘날 우리는 물질적 수준 증대, 기술혁신 가속화, 온갖 편리함을 누리는 대신 친밀한 인간관계, 정겨운 공동체, 조화로운 생태계를 잃어왔다. 행복감보다 불안감이 큰 배경이다.

 

그래서다. 차기 대선에서 우리의 선택은? 내게는 크게 세 기준이 있다. ‘··이다. 첫째, 정직한 이를 선택한다. 거짓말을 않고 말과 행동이 일치해야 한다. 그래야 믿음이 간다. 둘째, 동학의 철학(‘사람이 곧 하늘’)을 섬기면 좋겠다. 여러 토론회에서 정책, 비전, 소신을 잘 밝혀야 한다. 셋째, 진정성 있는 이가 좋다. 타자의 고통에 공감하고, 돈이나 표보다 사회정의를 추구하면서도 겸손해야 참 일꾼이다. 물론, 그렇게 뽑힌 대통령은 나라 경영을 할 때 모델 B와 모델 C 사이에서 오로지 민초의 삶과 행복만 생각하면 좋겠다. 민주공화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으니! 다만, 민초가 각성(공부)하고 연대(소통)해야 한다. 분노·증오보다 열정·협동, 두려움보다 즐거움이 답이다. 그래서 외친다. 민초의, 민초에 의한, 민초를 위한 공동체 민주주의가 건강한 대안이다!

강수돌 고려대 명예교수·세종환경연합 난개발방지특위 위원장 경향 : 2021.12.25.

 

'철피아'의 완벽한 부활문재인정부의 완벽한 실패

관료들에 장악당한 문재인 정부

문재인 정부 출범 때 진보(?)정권 20년 집권설이 돌았다. 아무리 못해도 박근혜 정권보다 나을 것 아니냐는 자신감이 깔려 있는 말이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종착역을 향해가는 지금 승객들은 지쳐있다. 새 열차로 갈아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마땅히 탈 것도 없다. 불쌍한 대한민국이다. 희망을 안고 광장에서 촛불을 들었던 사람들은 자괴감만 느끼고 있다. 정부 출범식 때 울려퍼졌던 공정, 평등, 정의는 빛이 바랬다. 서민들의 삶은 추락했다.

 

정부가 지향했던 가치가 무엇이었든 간에 정치는 무릇 시민들의 삶을 책임지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임무다. 위대한 비전과 멋진 구호, 잘 짜인 행사 연출은 아주 잠깐만 시민들의 관심을 끌 뿐이다. 화려한 구호와 선전 문구가 삶과 동떨어져 있다는 사실은 군사분계선을 맞대고 있는 아주 가까운 정부의 현실에서도 알 수 있다.

 

최소한 국토교통분야에서 만큼은 문재인 정부는 실패했다. 전지구적 기후 위기에 대응하고 남북평화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철도개혁이 반드시 필요했다. 실세 정치인으로 불린 김현미 장관이 문재인 정부 초대 국토부장관으로 임명됐다. 이때만 해도 김현미 장관은 개혁 적임자로 평가받으며 실타래 같이 얽힌 철도 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해 낼 것 같았다. 그러나 부동산 늪에 허우적대다가 빠져나오지 못했다. 치솟는 집값에 벼락 거지 신세로 내몰리는 서민들의 분노만 높아져갔다.

 

바짝 엎드려 있던 관료들은 서서히 기지개를 펴더니 철도 개혁으로 이어진 길을 막아버렸다. 어느새 장관은 관료들의 대변자가 되어있었다. 무능한 장관들이 관료에 의지하는 전철을 그대로 밟았다. 관료들은 무난하게 문재인 정부가 개혁을 시도조차 하지 못하게 했다. 이제는 제법 노하우가 쌓여 어떤 정부가 들어서도 청와대와 집권당을 조련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갖는 듯하다. 엘리트 주의에 빠진 채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벌이는 향연이 대한민국 관료 또는 관료주의의 실체이다

 

문재인정부 내내 국토부와 그 산하기관 주요 자리는 철도 민영화와 경쟁체제를 기획하고 주도했던 자들이 차지했다. 더구나 정권 말기 한국철도의 양대 기관 중 하나인 국가철도공단이사장에 김한영 전 국토부 교통정책실장이 임명된 것은 관료들의 완전한 승리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김한영 교통정책실장시절은 철도쪼개기를 통한 민영화와 경쟁체제 도입 정책이 급물살을 타던 때였다. 김한영 철도공단 이사장은 취임 후 바로 미래전략연구원이란 기구를 만들더니 양근률 씨를 원장으로 영입했다. 양근률 원장은 20여년 전 철도청 민영화 전담 팀장을 맡았고 이후 기획예산처에서 철도민영화 및 중기재정계획 수립과제를 수행했다.

 

철도개혁이 무산되자 자신감을 얻은 어제의 용사들이 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국가철도공단은 "국가교통체계 재정립" 방안을 마련한다며 연구용역을 하겠다고 나섰는데 용역비가 무려 60억이다. 연구착수보고서에 명시된 내용들을 보면 준국가기관인 국가철도공단이 수행해야 할 수준을 넘어선다. 만약 이 용역이 실행된다면 한국철도 정책의 기초는 국토부가 아니라 국가철도공단이 수립하고 이에 근거해 철도정책이 집행되는 모양이 된다.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꼴이다. 한국철도를 이루는 두 축이 한국철도공사와 국가철도공단이다. 연구용역은 국가철도공단이 철도의 거의 모든 것을 책임지겠다고 나서는 것이다. 가뜩이나 삐걱대던 두 기관은 국가철도공단의 비대해진 축으로 만들어진 불균형으로 미래로의 전진을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다.

 

국토부가 주관하는 가장 중요한 연구 중의 하나가 '철도산업발전기본법'에 의거해 5년마다 수행하는 철도산업발전기본계획 수립 연구 용역이고 현재 진행중이다. 이 연구의 용역비가 25000만 원에 불과하다. 국가철도공단의 60억 원짜리 연구용역 이야기가 나오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영화 <오션스11>이다. 왕년의 전설적 도둑들 11명이 힘을 모아 크게 한 탕 하고 뜨는 내용이다. 미래는 철도를 중심으로 한 교통체계라는 것을 철도민영화와 경쟁체제를 신앙처럼 떠 받드는 이들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시대가 됐다. 장밋빛 전망과 실현해야 할 과제를 멋진 그래프와 도표들로 적당히 채우고 붙여넣기 신공을 통해 한 달에 25000만 원을 나눠 가질 수 있는 설계는 얼마나 그럴 듯한가.

 

연구용역은 교통학회이름으로 입찰됐다. 물론 학회 이름을 빌린 것으로 실제로는 설계자의 개별 네트워크로 연결된 연구진이 결합 됐다. 용역을 주관하는 국가철도공단의 미래전략연구원장은 앞서 밝혔듯이 민영화 전도사였다. 책임연구원은 서선덕 명예 교수로 '명예' 자가 붙은 만큼 현직에서 물러나 있다. 높은 자리를 주는 대가로 편안하게 통제하고 싶은 것은 전면에 나서기를 꺼리는 설계자들의 공통점이다. 서 명예교수는 2006, 철도 파업을 비난하는 언론기고를 통해 철도공사가 추진하고 있는 구조개혁으로도 경쟁력 개선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면 민영화나 여객·화물의 분리를 포함한 복수 운영주체의 허용 등과 같은 과감한 정책실험이 뒤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선덕 명예교수의 과감한 정책실험은 현재 주식회사 수서고속철도(SR)로 진행중이다. 한편 서 교수는 브라질 고속철도 사업단장으로 국제수주전에 뛰어들었다가 비현실적 사업비 논란 속에 해임된 경력도 있다.

 

부책임 연구원은 교통연구원에서 은퇴한 이재훈 박사이다. 이재훈 연구원은 교통연구원 재직시절 수서발 고속철도 민영화 논리를 생성 제공한 사람으로 KBS뉴스에 출연해 수서발 고속철도를 민영화하면 지하철 9호선처럼 효율적인 회사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후 9호선은 일방적 요금 인상을 시도하고 지옥철의 오명에 시달리다 다국적 투자사 매쿼리, 운영사 베올리아가 철수하는 논란의 과정을 거쳐 재구조화 되었다.

 

연구를 주도하는 사람들은 철도 경쟁체제 또는 민영화를 신봉했던 시니어 그룹 학자들이다. 연구와 자문에 참여한 이들 중에는 대학교수라는 타이틀만 빼면 철도에 대한 이해도도 떨어지고 변변한 연구 실적 조차 눈에 띄지 않는 사람도 보인다. 국가철도공단과의 우호적 관계 외에는 참여의 이유나 필요성을 찾을 수 없다. 이런 저간의 현실을 모르고 연구 주제에 공감해 참여한 교수들도 있을 것이다. 안타까운 피해자 들이다. 연구자의 노력은 설계자의 성과로 둔갑되기 십상이다. 이제 60억짜리 '기관 파워 과시형 연구용역'이라는 새로운 장르가 탄생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국가적 필요성이 있다며 연구용역이 추진되는데 이상한 점 투성이다. 그럼에도 이 같은 대담한 기획이 거침없이 진행되는 것을 보면 추진하는 집단의 배포도 대단한 것 같다. 정부는 개혁 동력을 잃었고 주관부처 국토부가 책임을 방기하고 있는 사이 선수들이 미소를 짓는다. 올드보이들이 화려하게 귀환하고 공익이란 간판 아래 진열된 것은 사욕이다. 이런 사태에 기꺼이 몸을 싣는 사람들을 부르는 말이 있다. 멋진 그 이름, '철피아!'

박흥수 사회공공연구원 철도정책객원연구위원 | 프레시안 2021.12.28.

 

윤 검사의 용기, 윤 후보의 만용

용기는 미덕이다. 검사 윤석열은 용기가 있었다.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 수사에서 도드라졌다. 그 용기로 촛불혁명이 일어난 뒤 서울중앙지검장이 되고 검찰총장에 올랐다. 그 사이에 이명박과 박근혜는 구속됐다. ‘살아있는 권력도 수사하라는 대통령의 말을 대쪽으로 새겼다.

 

올 초만 하더라도 검찰총장이던 그가 야당대통령후보가 된 마법은 당시 법무장관의 쇠고집과 대통령의 이중적 태도에서 찾을 수 있다. 더러 불편하겠지만 진실이다. ‘검사 윤석열로서는 현 정권에 혐오감을 느꼈을 법하다.

 

실제로 최근 그는 이 정권을 교체해야 되겠고 민주당에는 들어갈 수가 없기 때문에 부득이 국민의힘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그 발언을 한 곳이 광주라는 사실도 유의할 대목이다. 민주당을 어쩔 수 없이 지지하는 민중이 적잖다는 사실을 의식했음직하다. 하지만 정치의식 뛰어난 광주 민중과 윤석열은 결정적 차이가 있다. 작금의 민주당에 실망했다고 수구적 정당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문제는 더 심각하다. 검사 윤석열의 용기와 달리 대선후보 윤석열의 언행은 그가 부득이 선택했다는 말이 무색할 만큼 이명박박근혜의 정당과 빼닮았기 때문이다.

 

윤석열은 문재인정부의 가장 큰 잘못은 편 가르기 정치라고 강조했다. 정치에 발 디딜 때 그가 만난 누군가로부터 새겨들은 듯하다. 편 가르기에 가장 앞세워 든 사례가 잘사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이다. “이렇게 국민을 쭉쭉 찢어가며 자기 편리할 대로 활용했다는 게 가장 큰 잘못이고 죄라고 말했다. 이어 이건 나라가 아니다. 망하는 지름길이라고 부르댔다.

 

하지만 어떤가.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가장 큰 사회적 문제인 상황에서 잘사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의 정책적 구분이 어떻게 인가. 오히려 구분하는 정책을 제대로 구현 못해 집권 5년 동안 서울 강남에 거주하는 상위층들의 재산만 무장 늘려놓지 않았던가. 대통령에서 퇴임한 뒤 사회복지를 대폭 확장하지 못한 잘못을 여한으로 토로했던 노무현의 길을 문재인도 밟아간 셈이다.

 

더구나 1980년대 민주화 운동에서 수입된 이념을 들먹이는 윤석열의 언행에선 공안검사의 추억마저 아른거린다. 그렇게 따지면 그가 앵무새처럼 내세우는 자유민주주의또한 수입된 이념이다. 그는 일부 강단철학 교수와 사회과학 교수들처럼 자유민주주의가 정치 이념으로 뿌리내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민중이 기득권세력과 싸우며 피를 흘렸는지 모르고 있다. 수구적 정당과 조중동 신방복합체, 그 언론에서 한껏 띄워주고 있는 석학나는 대체 그들이 어떤 논문, 어떤 책으로 석학이 되었는지 정말 궁금하다이 종종 주장하는 자유민주주의는 온전한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다. 케케묵은 냉전이데올로기에 지나지 않는다.

 

기실 검사 아닌 후보 윤석열의 용감한 발언은 하나둘이 아니다. 그는 상대 후보 이재명을 대장동 게이트의 몸통으로 수없이 단정한다. 내가 모르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는 걸까? 검찰 내부에도 윤석열에게 정보를 건넬 검사들이 적잖을 텐데 조금이라도 사실을 알고 있으면 공개할 일이다.

 

검찰이 야당에 자료를 보내 고발을 사주했다는 주장이 의혹이듯이, ‘대장동 게이트의 몸통이라는 주장 또한 의혹일 뿐이다. 실체적 진실을 모르는데 단정하는 언행은 이미 홍준표도 꼬집었듯이 내로남불아닌가. 실제로 조국 부부에게 들이댄 그의 칼날은 자신의 가족에겐 더없이 무디다. 김건희의 이력서 내용이 허위는 아니라고 계속 부르대는 행태는 얼마나 용감한가.

 

그는 검사 윤석열에서 전설로 남아야 했다. 지금 그에겐 용기가 보이지 않는다.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발언, 무지한 인식을 무람없이 드러내는 언행은 만용이다. 검사 윤석열의 용기는 가상하나, 후보 윤석열의 만용은 가관이다. 만용은 악덕이다.

손석춘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미디어오늘 2021.12.28

 

포퓰리즘 or 내로남불? 국민 집단지성의 선택이 궁금하다

역사적 뿌리를 기반으로 경기변동 이론을 양분해 보면, 크게 고전학파와 케인즈 학파로 구분할 수 있다. 고전학파의 경우, 경제의 각 주체들이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국부의 극대화라는 결과를 시현할 수 있고, 이로 인해 정부는 규제 등을 통해 시장에 인위적으로 개입해서는 안 되며, 작은 정부와 균형재정을 추구해야 함은 물론, 공급 스스로 수요를 창출한다고 설명한다. 반면 케인즈 학파의 견해에 의하면, 총수요 하락은 물가 하락을 야기하고, 명목임금 변화의 경직성은 실질임금의 상승과 실업률 상승으로 이어져, 결국 총산출의 감소로 이어진다. , 이는 국민소득의 결정에서 총수요가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의미이며, 따라서 정부가 직접 재화와 서비스를 구매하여 총수요를 진작시켜야 한다고 본다. 이론의 핵심을 보다 간단히 말하자면, 고전학파는 경제에서 차지하는 공급측면을 강조하는 것과 달리, 케인즈 학파는 수요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최근 20년을 돌이켜보면 한국 부동산 가격은 공교롭게도 '노무현 정부''문재인 정부'에서 크게 올랐고, 진보정권은 계속해서 '집값 상승'이라는 과제와 맞닥뜨렸다. 부동산 가격 상승은 사실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바, 경기변동에 대한 대외적인 여건이나 거시적인 상황이 크게 작용한다. 예컨대, 노무현 정부 시기에는 미국 부동산을 중심으로 전 세계의 투자자금이 부동산으로 집중되어졌으며, 문재인 정부에서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비롯된 초유의 저금리와 과잉 유동성이 부동산 상승세를 급격히 견인했다. 이들 시기의 부동산 붐은 결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었음은 주지의 사실이고, '그 어느 나라도' 부동산 상승의 쓰나미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가 특별히 비난받는 이유는 어쩌면 대출규제를 통한 '수요' 억제에만 과도하게 집착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케인즈 학파, 그리고 그들의 유산을 이어받은 뉴 케인즈 학파가 주장하는 수요창출의 중요성은 한 국가의 경제를 논함에 있어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이 때문에 보수와 진보정권을 막론하고 국내 경기부양을 위한 대규모 SOC사업, 일명 토건사업이 행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정부의 입장에서 토건사업은 손쉽게 일자리를 양산하고, 늘어난 고용은 일정 수준 소득을 증가시키며, 소득 증가는 소비증대와 수요창출로 이어짐으로써 경제성장률을 높인다. 비록 정권의 토건사업으로 국민들의 뇌리에 가장 두드러지게 박혀있는 것은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이지만, 사실 노무현 정부도, 박근혜 정부도, 그리고 문재인 정부도 수많은 토건사업을 진행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일회성 토건사업이 국가 경쟁력을 근본적으로 향상시키는 근원이 될 수 없다는데 있다.

 

한편 정권을 재창출하겠다는 이재명 민주당 후보는 아예 국민들의 주머니에 몇십만 원을 공짜로 넣어줌으로써 시장 내 수요 진작을 도모하겠다고 한다. 2021년 중앙정부의 재정수입이 483조 원인 대한민국에서 국민 개개인에게 월 50만 원을 주기 위해서는 312 조원이 필요하다는 걸 고려하면, 이 공약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 짐작된다. 설령 금액을 현저히 낮춰 시행을 강행하더라도 임기 중에만 무리하게 지속될 가능성이 높으며, 기본소득은 어쩌면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빈곤층과 사회적 약자의 희생을 전제로 할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정책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런데 그와 경쟁하는 후보는 더 가관이다. 대선 후보의 장모는 실형을 선고받았고, 이번 주 배우자 김건희 씨의 이름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보다 더 많이 인구에 회자되었다. 이에 조국 전 장관은 지난 28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많이 바라지 않으니,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본인과 똑같이만 처리하라"는 말을 남겼다는 얘기도 들린다. 윤석열 후보가 생각하는 '공정과 상식'의 실체가 무엇인지? 과연 우리 국민들은 '포퓰리즘'에 표를 줄지, '내로남불'에 투표할지 집단지성의 선택이 자못 궁금하다.

박병일 한국외대 교수 | 프레시안 2021.12.29.

 

 

국민은 '네거티브'보다 'TV토론' 원한다

예측불허. 다수 정치전문가들은 이번 대선을 이렇게 얘기한다. 지난 10월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는 '0'의 경기도지사인 이재명씨가 이낙연 전 국무총리를 꺾었다. 1야당인 국민의힘의 경우 115, 역시 '0'인 전 검찰총장 윤석열씨가 후보 대열에 합류했다. 여의도 경험이 전혀 없는 '0'의 결전이다.

 

이뿐 아니다. 윤 전 총장이 후보가 된 이후 줄곧 이재명 후보를 10%p 안팎으로 앞섰다. 이에 윤 후보의 당선이 당연시됐다. 정권교체 바람이 거셌기 때문이다. 그러나 윤 후보의 실언이 잇따랐다. 이와 더불어 윤 후보의 부인 의혹과 장모의 비리 등이 폭로되면서 상황이 변했다. 지난주 일부조사에서는 이재명 후보가 오차 범위 밖으로 앞섰다. 한국경제신문 등 다수의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두 후보가 접전을 벌였다. 대선을 불과 두달여 남겨둔 시점에서 누가 당선될 것이라고 예상하기 힘든 상황이다. 민심이 시시각각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윤 후보의 지지율이 하락한 때문인가. 26일 윤 후보 부인 김건희씨가 나섰다. "모든 것이 제 잘못이고 불찰이다." 김씨가 대국민 사과를 한 것이다. 그러나 다수 국민은 진지한 사과라고 보지 않는 것 같다. 국민의 동정심에 호소하는 내용이 많았다. 기자 질문도 받지 않았다. 결국 윤 후보 지지율이 하락하자 어쩔 수 없이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윤 후보의 경우 '공정' 이미지로 제1야당 후보가 됐다. 그러나 본인은 물론 부인과 장모 등의 각종 의혹으로 '공정'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비춰지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김씨의 사과에도 윤 후보 지지율에는 큰 변동이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정책검증 위한 TV토론은 자주 벌여야

D-70. 대선을 불과 두달여 남겼는데도 정책과 토론은 잘 보이지 않는다. 윤 후보 부인과 이 후보 아들의 각종 의혹이 보도되면서 네거티브 선거전이 계속된다. 물론 이 후보와 윤 후보 측에서는 겉으로는 이제 네거티브 경쟁을 그만하자고 한다. 정책대결을 하자고 말한다. 그러나 두 후보의 언행은 국민 눈높이에 크게 미달한다. 코로나19 등 국가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의심하는 국민이 늘어난다. 두 후보에 비호감이 훨씬 많다는 조사가 계속 나온다.

 

이 후보의 경우 정권교체 여론이 우세한 탓인지 문재인정부와의 차별화를 내세운다. 하지만 대장동 비리 의혹의 두 주역이 연이어 극단적 선택을 하면서 다시 궁지에 몰렸다는 것이 야당 분석이다. 그는 그들을 잘 모른다고 말했다. 하지만 해외여행 중 찍은 사진이 나오면서 다수 국민은 이 후보 발언에 의문을 제기한다. '대장동 특검'을 빨리 해야 하는 이유다. 물론 '고발사주 특검'도 피할 일이 아니다.

 

이 후보는 또 문재인정부와 차별화를 시도하며 자신의 정책을 수시로 바꾼다. 유연함을 과시하는 듯하다. 그러나 다수 국민은 포퓰리즘이 아니냐면서 그의 진실성에 의문 부호를 찍는다. 게다가 아들의 도박과 성매매 의혹도 이 후보에게 상처를 주었다.

 

하지만 현재 시점에서는 이 후보보다 윤 후보가 더 위기다. 부인과 장모의 각종 비리와 거짓말 의혹뿐 아니다. 이준석 당 대표가 선대위 직을 사임하는 등 내분상황이다. "가난한 사람은 자유를 모른다"고 말하는 등 본인의 실언이 잇따른다. 게다가 자신이 앞장서 구속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사면됐다. 그가 '친박'을 껴안으려 하면서 '중도'를 잃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앞으로 두달여 뒤면 대선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은 2년째 국민들을 힘들게 했다. 물론 두 후보에 대한 검증은 해야 한다. 그러나 이제는 네거티브에만 주력할 것이 아니다. 정책검증을 해야 하고 이를 위해 후보간 TV토론도 자주 벌여야 한다.

 

연이은 말 실수 때문인가. 윤 후보는 최근 '후보간 토론 무용론'을 제기했다. 유권자인 국민이 후보의 진면목을 알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 중의 하나가 후보간 TV토론이라는 것이 선거 전문가의 일반적 견해다. 'TV토론'을 거부하는 것은 자신의 실력 부족을 시인하는 것이다. 윤 후보는 선관위 주최 3회 토론 이외에도 언론사 등의 후보간 토론에 응해야 한다.

 

두 후보가 들어야 할 화이부동·구존동이

정권교체인가 정권재창출인가. 20대 대선은 역대 어느 대선보다도 예측이 어렵다. 그러나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서도 '능력''도덕성'을 함께 갖춘 후보가 대통령이 돼야 한다.

 

화이부동(和而不同, 남과 화목하게 지내나 자기 중심과 원칙을 잃지 않음)과 구존동이(求存同異,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서로의 같은 점을 인정하는 것). 전자는 논어에 나오는 구절이다. 후자는 중국 전 총리 저우언라이의 발언이다. 두 후보에게 주고 싶은 구절이다.

 

물론 대선은 큰 경쟁이다. 이에 자질과 도덕성을 검증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이제 네거티브는 부()로 해야 한다. 이제 정책과 비전 경쟁을 치열하게 벌였으면 한다. 포용과 통합의 리더십을 기대한다.

정세용 내일신문 전 주필 2021-12-29

 

공정사회로 가는 길

한국 사회를 달구는 핫이슈 중 하나는 공정이다. 선거철만 되면 등장하는 단골 메뉴이기도 하다. 대선 후보마다 입만 열면 공정사회를 만들겠다고 공언한다. 그만큼 한국 사회가 공정과 거리가 멀다는 반증이다. 사람들은 그 소리에 식상해 있다. 그러나 이 이슈를 또 꺼내 들어 고민해야 하는 이유는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공정이란 무엇인가? 공의(righteousness)와 정의(justice)가 합해진 단어다. 나는 학기 초에 대학생들에게 공정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 어떤 개념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지 물어본다. 대다수의 학생이 경쟁에서의 공평함이라고 답한다. 출발선이 같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한국 학생들이 미래의 일자리 문제를 두고 무한경쟁 시대에 내몰리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반면, 서구 청년들은 정의로운 재판이라고 답한다. 죄지은 자를 벌주되, 재판에서 억울한 자가 없도록 하는 것이 공정의 첫걸음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법조인에 대한 한국 사회의 불신은 심각하다. 일제강점기부터 독립운동가를 잡아 처형하고, 친일 세력의 배를 불리던 악습을 단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촛불정부가 들어설 때 내걸었던, ‘적폐청산 검찰개혁의 구호가 처음엔 먹혀들었다. 그러나 이번 정부에서도 불공정 관련 사건들이 터지면서 젊은이들은 이제 희망을 접은 듯하다. 청년들에게 검찰개혁은 남의 일이지만, 일자리 문제의 불평등은 눈앞의 일인 것이다.

 

공정의 의미가 위의 두가지밖에 없을까? 둘 중에 하나를 취해야 하는 양자택일의 문제인가? 아니다. 공평한 경쟁도 중요하고 정의로운 재판도 중요하지만, 사회 전체를 아우르는 합리적 분배와 사람들에게 신뢰를 주는 투명한 과정이 있어야 진정한 공정사회를 만들 수 있다. 우리는 공정사회를 원하기 전에 공정을 제대로 알고 가르칠 필요가 있다.

 

공정의 한 단면을 잘 가르치고 있는 성경의 예화가 있다. 어떤 포도원 주인이 일꾼을 구하기 위해 노무시장에 새벽같이 나가서 일당을 약속하고 사람들을 포도원에 들여보내 일을 시켰다. 일꾼이 부족하자 그는 수시로 시장에 나가 일꾼들을 더 고용했다. 그런데 오후 다섯시가 되어서도 여전히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들을 보고 당신들은 왜 하루 종일 여기서 놀고 있소?”라고 질문하니, “아무도 우리를 써주는 사람이 없어서 그렇습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포도원 주인은 이를 불쌍히 여겨 그들에게도 일을 준다. 일당을 지급할 때, 해 질 무렵에 들어온 사람에게도 똑같은 일당이 지급되는 것을 본 일찍 들어와 더 많은 일을 한 일꾼들이 화를 낸다. 그러나 포도원 주인은 이들에게도 너희와 똑같은 일당을 주는 것이 내 뜻이다라고 답하며, “내가 선한 일을 베푸는데 어째서 너희가 나를 악하게 보느냐고 반문한다.

 

사회에는 일자리를 구하지만 아무도 써주지 않는 사회적 약자들(장애인과 노인, 난민, 청년 미취업자 등)이 존재한다. 그들을 무한경쟁 속에 밀어 넣어 돌보지 않는다면 그것 또한 공정하지 않은 것이다. 복지사회로 가는 것이 곧 공정사회로 가는 길임을 알고 가르쳐야 한다. 유대인들은 포도원 주인의 정신, 즉 공정의 가치를 어려서부터 가르친다.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돌보라고 명하는 유대인의 공의, ‘체다카라는 단어는 헌금함이라는 뜻도 함께 가지고 있다. 그래서 부자들이 기부를 가장 많이 하는 민족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가르침은 불교의 자비와 보시의 정신과도 상통할 것이다.

 

대한민국은 이미 선진국에 진입했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공정의 이슈에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모두가 공정을 말하고 공정을 원하지만, 정작 공정이 무엇인지를 바로 알고 가르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가 공정해지기를 바라는 것은 공염불에 불과할 것이다. 내년 대선을 위해 뛰고 있는 대선 후보들에게 공개적으로 질문하고 싶다. 여러분들이 말하는 공정의 의미가 무엇인가? 정말 대한민국이 공정해지기를 원한다면, 먼저 공정을 공정케 하라. 새해에는 공정을 바로 가르치고 행하는 차기 대통령이 등장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정진호 | 한동대 교수(창의융합교육원) 한겨레 2021.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