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과 어울리기/외부 칼럼

2022.1.1~28 점입가경, 무지와 백래시, 한국사회 시계를 거꾸로 돌리다

by 이성근 2022. 2. 2.

절망의 끝은 희망이다 경향 : 2022.01.01

배부른 자들만 자유를 안다는 비뚤어진 자유론 한겨레 2022.01.01.

박근혜 '팬레터북''역사의 공회전' 프레시안 2022.01.03

민주주의의 성패는 교실에서 갈린다 한겨레 2022.01.04.

윤석열 후보 대통령 자격 있나 한겨레 2022.01.04.

유엔사는 계획이 다 있었구나 경향 : 2022.01.04.

세금을 대하는 대선 후보들의 자세 경향 : 2022.01.04.

시대교체의 정치적 리더십을 기다리며 경향 : 2022.01.04.

MZ세대 대통령 탄생, 지구 반대편에서 2'좌파 붐'이 전개되고 있다 프레시안 2022.01.05.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를 위한 민중경선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프레시안 2022.01.05.

 

중국은 세계유산 가리는 호텔 잘랐는데 국민일보 2022-01-06

한국인의 삶은 정말 윤택해졌을까 한겨레 :2022-01-06

기득권과 결합한 윤석열의 '불안한 동거' 프레시안 2022.01.07.

대통령이라는 말에 새겨진 군주제의 망령 시사인 2022.01.07.

인공지능 시대가 우리에게 던지는 화두 경향 : 2022.01.08

어느 탈북민의 고독사 경향 : 2022.01.08.

기후변화 시대 변화의 힘저항의 힘주간경향 2022.01.10.

정용진 씨가 쏘아올린 작은 '멸공'과 실패한 대선주자의 '' 프레시안 2022.01.10.

엄숙한 반공에서 경박한 멸공으로 2022-01-10

국민을 능멸한 3류 정치의 종착역 중앙일보 2022.01.10.

기후위기로 몸살 앓는 중동 경향 : 2022.01.12

 

20대 남성들의 욕구를 읽어라 주간경향 2022.01.15.

21세기 자본의 정치경제학-피케티와 그 이후 한겨레 :2022-01-13

윤석열이라는 텅 빈 기표경향 : 2022.01.14.

결혼 통계에 나타난 상식의 반전 세계일보 2022-01-16

소리만 요란한 '김건희 7시간 45분 통화아주경제 2022-01-17

의문의 1' 김건희, 이보다 천박한 대선은 없다 2022-01-17

MBC 육성 공개로 드러난 후보자 부인의 부적절한 처신 빅데이터뉴스 : 2022-01-17

기후위기 해결의 열쇳말은 '인권' 인천일보 2022-01-17

하우스푸어시대로 가는 부동산 공약 한겨레 2022-01-17

은행 성과급 잔치가 불편한 이유 한국 : 2022.01.17

더 급진적인 정치가 필요하다 경향 : 2022.01.17.

탄소중립시대의 K-스마트팜 아시아투데이기 2022. 01. 17.

멸공과 박멸의 정치경향 : 2022.01.18

사극 의무화? 국제뉴스 30%?... 까딱하면 빨간줄 오마이뉴스 : 2022.01.18.

갈 길 잃은 진보, 심상정을 응원한다 2022-01-18

'이재명·윤석열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에 대해서 프레시안 2022.01.18.

김건희 녹음파일이 품은 세 개의 불씨경향 : 2022.01.18

김건희는 영악했고 MBC는 무기력했다 한겨레 :2022-01-19

일본이라는 거울에 비친 한국 내일 2022-01-19

기득권층 중부일보 2022.01.19.

점입가경, 일본의 혐한 경향 : 2022.01.20

팬데믹 2, 대학교육의 자화상 경향 : 2022.01.20.

무지와 백래시, 한국사회 시계를 거꾸로 돌리다 시사인 2022.01.20.

소시오패스 사회 경기신문 2022.01.20.

 

이제 정청래 의원은 탈당 안 해도 되겠다 오마이뉴스 22.01.22

민주당, 위기에 빠지다 경향 : 2022.01.22

팬데믹 2, 고통은 낮은 곳으로만 흘렀다 시사인 2022.01.23.

냄비 속 개구리 불교공뉴스 2022.01.23.

정경심 겨눈 창, 김건희의 방패 미디어오늘 2022.01.24.

솔로지옥에 열광한 N포세대 부산일보 : 2022-01-24

어느 환경운동가의 시각에서 본 '전과 4범 이재명 프레임'의 진실 프레시안 2022.01.24.

약탈적 금융을 키우는 허울 좋은 좀비들 헤럴드경제 2022.01.24.

북한은 왜 하루가 멀다 하고 미사일을 쏠까? 한겨레 2022.01.24.

환경보호와 종말론 세계일보 2022.01.24.

탈탄소와 무대응, 무엇이 더 손해일까 이투뉴스 2022.01.24.

언론 운동장은 누구에게 기울었나? 한겨레 :2022-01-24

 

전 헌법재판관 이정미의 종부세 위헌소송이 '비극'인 이유 오마이뉴스 22.01.26

이재명이 처한 신뢰의 위기경향 : 2022.01.26.

이재명 후보님, 580만 분노를 아십니까 오마이뉴스 2022.1.26.

생명의 가치는 똑같다지만 주간경향 2022.1

대선을 멀리서 지켜보며 경향 : 2022.01.26.

인류세(人類世) 문명의 대전환은 가능한가 경인일보 2022-01-26

악의 시대를 읽다 경향 : 2022.01.27.

이 시대 법 감정에 반하는위자료는 대체 얼마인가 시사인 2022.01.28

홀로코스트와 기억의 냉전체제  경향 : 2022.01.29

 

절망의 끝은 희망이다

월드오미터의 통계에 따르면, 연말까지 코로나19 감염자는 약 28000만명, 사망자는 약 540만명, 회복된 사람은 약 25000만명에 이른다.

 

인류는 오미크론 등 변이 바이러스와 여전히 전면전을 치르고 있다. 삶의 현장이 오히려 최전선이 된 이 전쟁에서 인류는 과연 무엇을 깨달았는가. 분명한 것은 우리가 아는 것은 없다는 사실이다. 바이러스가 어떤 형태인지는 알 수 있어도 그들의 철학과 취향, 목표와 영토 확장의 의도가 무엇인지 짐작조차 못한다. 전쟁터의 주도권은 여전히 그들이 쥐고 있다.

 

광활한 우주 속의 한 점 지구호는 조난신호를 보낼 이웃이 있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지구온난화로 모든 생명이 사라져도 지구는 여전히 태양을 중심으로 돌 것이다. 언제나 자기 정화작용을 할 뿐이다. 코로나19 사태나 지구온난화의 교훈은 인간중심주의가 붕괴되었다는 점이다. 모든 존재는 자기만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 숲과 바다와 동물들은 각자 자신들의 세계와 언어가 있다. 인류학자 에두아르도 콘은 <숲은 생각한다>(차은정 옮김)에서 숲속의 생물들이 기호의 차원에서 사고하며 소통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마존의 루나족이 그들과 대화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그린다. 수억년 동안 지구는 공존의 방식을 진화시켜왔다. 그러나 이웃과 고립되어 도시를 건설한 인간들은 자신들 외에는 대화를 단절하고 있다. 지구는 다양한 생명체의 연방제로 진화하고 있으며, 당연히 그들과 연정하며 살아야 한다.

 

바이러스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대화의 채널을 단절시킬 수는 없다. 그들로부터 제휴가 오도록 먼저 인간이 무지하다는 사실을 고백해야 한다.

인류는 이미 오만이라는 병에 전염되어 있다. 그 어떤 존재도 뽐내지 않는다. 인간은 자신만이 잘난 체하며 살고 있다. 꽃이 아름답다고 자랑하는가. 새들이 하늘을 맘껏 날아다닌다고 우쭐대는가. 인간은 홀로 태어나 홀로 죽어감에도 연방의 일원들을 독재자처럼 소유하며 처분한다. 바이러스는 인간제국주의의 무모함을 경고하고 있다. 겸손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인간은 취약해 부서지기 쉬운 존재다. 생로병사의 한계상황에 처해 짧은 삶을 사는 인간은 늘 위태롭다. 우주의 나이를 1년으로 치면, 인류의 역사는 몇십초에 불과하다. 깨달음으로 불생불멸의 영원성을 획득하든, 믿음으로 사후의 천국을 보증하든 이는 유한성을 초월하여 무한으로 가고 싶은 인간 궁극의 희망이다. 존재의 집인 문명도 희망의 산물이다. 정치·경제·학문·예술·종교 등 모든 영역은 자신의 한계를 돌파하고자 하는 인간의 분투다. 생사의 입구·출구도 모르는 삶은 운명 주관자에 대한 저항이다.

그렇다면 절망 또한 희망의 다른 표현이다. 절망의 통곡 속에서 작은 풀뿌리라도 잡는 것은 절망함으로써 희망하기 때문이다. 존 햅타스와 크리스틴 사무엘슨 감독의 다큐 <체념 증후군의 기록>은 폭력을 피해 스웨덴에 망명한 가족들의 아이들이 겪는 특이한 형태의 고통을 보여준다. 절망의 극점인 체념으로 신체의 모든 반응이 멈추는 현상이다. 그럼에도 그들의 따뜻한 체온은 식지 않는다. 몸을 어루만지고 대화를 시도하는 가족들의 사랑으로 아이들은 이 세계로 귀환한다. 같은 증후군과 사랑의 기적을 전 인류 또한 지난 2년 동안 체험하고 있다. 이 거대한 증후군을 돌파하는 힘도 결국 인간에게 있다. 원인을 안다는 것은 치료 방법을 안다는 것이다. 돌부리에 넘어진 자는 돌부리를 짚고 일어서면 된다. 인류는 현실을 직시하고 오류를 수정하며 이웃과 공존의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

피가 도는 존재가 있고, 존재들끼리 살을 맞대는 공동체가 있는 한 희망은 있다. 원효 대사가 세상은 한마음의 변주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처럼, 빅터 프랭클이 아우슈비츠에서 고통의 의미를 찾는 인간 존재를 무한 긍정한 것처럼 절망 너머로 꿈꾸는 희망이 있다. 희망은 희망하는 자의 것이다.

 

따라서 존재 자체가 희망이다. 대지를 딛고 선 인간이 호흡하며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은혜다. 뭇 생명들과 더불어 존재하는 것은 축복이다. 마음 근육을 소진시키는 바이러스도, 먹구름처럼 미래를 덮는 지구온난화도, 누가 덜 나쁜지를 판단하는 대선도 모두 새해에 우리가 두 눈 부릅뜨며 전진해야 할 이유들이다. 절망의 끝에선 희망이 기다리기 때문이

원익선 교무·원광대 평화연구소 경향 : 2022.01.01

 

 

배부른 자들만 자유를 안다는 비뚤어진 자유론

시인이며 프랑스 식민지에서 해방된 후 세네갈의 초대 대통령을 지낸 레오폴 상고르는 인권은 아침식사에서 시작된다고 했다. 단순하게 보면 이 말은 식량권이 보장되면 표현의 자유, 투표권, 사생활 보장 등의 권리도 따라온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 주장은 소위 부른 배 테제’(full belly thesis)라 불리며 한때 많은 사람들에게 의구심 없이 받아들여졌다.

 

식량권은 인권에 있어 중요한 필요조건이다. 하지만 이를 절대적 우선조건으로만 이해할 때 인권을 좁은 개념으로 받아들여 왜곡하기 쉽다. 나는 자주 강의 시간에 이 부른 배 테제라는 화두를 던진 후 이렇게 질문한다. 우선은 끼니 걱정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이 문제가 해결된 후에 우리는 다른 권리를 논할 수 있다는 생각에 동의하십니까? 그러면 압도적으로 다수의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때로는 확신에 차서 단호하게 !’라고 외치는 사람도 있다. 질문을 조금 바꿔 본다. 그러면 우리 배를 불리면 그다음 인권이 차례대로 보장받게 되나요? 혹은 배부른 순서대로 인권을 보장받습니까? 사람들은 이내 혼란스러워한다.

 

실제로 식량권 보장이 저절로 시민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한편 표현의 자유가 노동과 건강의 권리를 보호하면서 공동체의 안전과 경제를 개선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해, 권리의 우선순위가 아니라 권리의 상호작용을 통해 서로가 서로의 권리를 강화한다는 시각이 오늘날 더 인정받는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는 지난 22일 전북대에서 열린 타운홀미팅에서 자유의 본질은 일정 수준의 교육과 기본적인 경제 역량이 있어야만 존재한다고 말했다. “교육과 경제(기반)의 기초를 만들어주는 게 자유의 필수적인 조건이라 했다. 혹자는 극빈층과 못 배운 사람들은 자유 뭔지 몰라라고 뽑힌 언론의 제목만 보면 윤석열의 자유론을 오해할 수 있지만 맥락을 이해하면 사실은 진보의 주장이라는 말까지 한다.

 

이런 주장은 역사적으로 자유를 쟁취해온 투쟁의 주체를 배운 자로 국한시킨다. 교육받고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만이 이 사회를 제대로 이끌 수 있다는 전형적인 엘리트 의식이다. ‘아래로부터역사를 보지 않으면 노예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무학의 노예가 아니라 백인 지도층 남성을 기억하고, 지배층의 부패와 착취에 민란을 일으키는 민중이 아니라 제도권 안에서 개혁을 실행하는 정치인이나 지식인만 보게 된다.

자유는 인권의 중요한 요소다. 오해와 달리 자유에 대한 갈망은 배부름과 비례하지 않는다. 경제학자 아마르티아 센이 <정의의 아이디어>에서 정확하게 말하듯이 경제적 부유함과 본질적 자유는 서로 무관하지 않지만 자주 괴리될 수 있다는 데 주의해야 한다”. 2021년 국제통화기금의 자료에 따르면 1인당 국내총생산 규모로 볼 때 8위인 싱가포르는 (한국은 26) 여전히 언론 자유가 위협받는 곳이다. 경제적 권리가 정치적·문화적 권리를 반드시 보장하지 않는 사례는 세계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물론 경제와 시민의 자유는 상관관계가 있다. 그러나 그것이 자유의 본질은 아니며 경제력이 자유의 절대적인 전제조건이라는 주장이야말로 인권침해적인 위험한 발상이다. 이런 시각이 국가의 성장과 경제발전을 위해 수많은 개인의 자유를 희생시키는 관행을 합리화해왔다. ‘그래도 경제는 살렸다며 독재를 옹호하게 만든다. 이때 경제는 살렸다는 말은 어떤 사람들의 죽음을 사소하게 만든다. 경제 우선주의는 실제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정책이 되기보다는 그들의 자유를 모른척하는 방향으로 가기 쉽다.

 

보수 진영에서 활용하는 자유의 개념은 형식적으로 볼 때 철저히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어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노동자에게 일할 자유를 말하며 주 52시간 근로제를 철폐해야 한다고 했다. 노동자의 시간을 빼앗는 착취를 노동자가 선택할 수 있는 자유로 둔갑시킨다. 윤 후보는 최저임금보다 낮은 조건에서도 일할 의사가 있는사람들을 언급하며 최저임금이 높아서 고용이 안 되는 것처럼 말했다. 물론 사람이 너무 절박하면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뭐라도 할 수밖에 없다. 그 절박함은 낮은 임금과 불안정한 일자리에서만이 아니라 신체를 변형시키고 심지어는 목숨을 위협하는 상황에서도 일을 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이것이 개인의 선택인가. 이것이 일할 의사인가. 저소득 계층을 그렇게밖에 살아갈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면서 마치 개인의 주체적 선택인 양 호도한다. 이런 말들은 선택의 자유가 없는 사람들의 현실을 개인의 선택으로 위장한다. 빈곤 계층이 자유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빈곤 계층에게는 자유를 행사할 선택지가 애초에 주어지지 않는 구조이다. 가난한 이들에게서 자유를 박탈하면서 그들이 자유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왜곡한다.

 

자유에 대한 문제적 인식을 드러낸 윤 후보의 발언은 차별금지법과 엔(n)번방 방지법을 두고 자유를 침해하는법으로 가정한 청년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동문서답 속에서 자유에 대한 인식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누군가는 타인의 인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는 무한대의 자유를 주장하는 한편, 누군가는 가난하다고 해서 자유가 뭔지도 모르는 존재로 취급받는다.

흔히 저소득 계층이 자유의 필요성을 모른다는 관념은 취향이 없다는 편견으로도 이어진다. 87년 노동자 대투쟁 당시 수만명의 노동자를 대상으로 요구 사항을 조사했을 때 두발 자유화요구가 가장 높았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졌다. 임금 인상보다 두발 자유화를 더 갈망한 이 사례는 두고두고 생각할 지점이 많다. ‘모른다없다라는 정의는 누군가의 자유와 취향을 외면하고픈 사람들의 입장이다. 과연 자유를 모르는 사람이 누구인가.

이라영 예술사회학자 한겨레 2022.01.01.

 

 

박근혜 '팬레터북''역사의 공회전'

"저는 감옥을 대학이라고 부르죠. 바깥에 있었으면 결코 가질 수 없었던 생각들을 가지게 되었어요. () 제가 꼼꼼하게 엽서에 글을 쓴 이유는 뭔가 강물같이 흘려보내고 싶지 않아서 였어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으로 유명한 고 신영복 선생이 생전에 한 인터뷰의 한 대목이다. 감옥은 끔찍한 유배의 장소이지만, 때로는 독서와 사색의 공간이 될 수도 있다. 외부와 절연된 유폐된 삶, 차가운 시멘트 바닥이 허용하는 그 빈한한 수분에 기대어 사유와 성찰의 꽃이 피어나기도 한다. 신영복, 디트리히 본회퍼, 안토니오 그람시, 자와할랄 네루, 고 김대중 대통령 등이 남긴 옥중서한집은 그렇게 태어났다. 그 글은 지금도 읽는 이들에게 큰 감동과 울림을 안겨준다.

 

새해 벽두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옥중서간록 <그리움은 아무에게나 생기지 않습니다>를 읽었다. 그가 감옥에 있던 49개월은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다. 그 세월은 염전의 바닷물이 증발하고 나서 소금이 남듯이, 오랜 세월 드리워진 허영과 오욕이 증발하고 사고의 결정체만 남길 수 있는 시간이다. 감옥에 있는 동안 박 전 대통령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한때 한 나라를 이끈 지도자로서 대한민국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그의 반성적 통찰은 무엇일까, 이런 기대를 안고 책장을 펼쳤다.

 

그러나 책의 내용은 애초 생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이것은 인고(忍苦)의 강에서 길어올린 사유의 결과물이 아니었다. 책은 대부분 박 전 대통령을 따르는 정치적 지지자들이 보낸 편지들이다. 옥중서간록 보다는 '팬레터북'이라는 호칭이 더 어울려 보였다. '위문 편지'의 말미에 붙인 박 전 대통령의 짤막한 답장들이 옥중서간록이라는 이름의 영세한 근거인데, 그 분량은 모두 합쳐 50여쪽 정도나 될까 말까다. "진실은 언젠가 밝혀질 것" 등 답신마다 포함된 '후렴구'를 제외하면 책의 질량은 더욱 헐거워진다.

 

이 책은 박 전 대통령이 감옥에 있는 기간 주로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를 짐작하게 해준다. 추종자들이 보내온 편지를 읽으며 위안을 삼고 스스로 기뻐하며 '소일'했던 것 같다. 이 편지들은 "이 세상에서 당신이 가장 아름답다"고 끊임없이 속삭이는 나르시시즘의 거울과 같다. 책의 제목 '그리움은 아무에게나 생각나지 않는다'도 일편단심 박 전 대통령만을 그리워하는 어떤 지지자가 보낸 편지의 한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자신과의 고독한 대화를 통한 사유의 단련을 그에게 기대했던 것은 부질없다.

 

"조그만 회사의 사장이 잘못된 결정을 하면 그 회사가 망하고 식구들이 고통을 받지만 한 나라의 정책이 잘못되면 그에 따른 대가는 온 국민들이 치러야 하겠지요." 오랫동안 잊고 지내던 '유체이탈 화법'이란 말이 다시금 떠올랐다. "올바른 역사교육만이 나라를 분열시키지 않고 국민에게 진실을 찾는 힘을 길러 준다"는 글은 '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로 우리 사회가 겪은 소모적 갈등의 불편한 추억으로 이끌었다. 일본 정부의 무역 보복 조처에 즈음해서는 "국가의 지도자는 국민의 다수가 반대하고 그로 인해 비록 정권을 잃게 된다고 하더라도 나라의 장래를 위해 반드시 해야만 될 일은 해야 한다"고 비장하게 말했다. 2015년 한·일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불가역적 협상'을 그는 여전히 '구국의 결단'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이런 자화자찬성 자기합리화는 그냥 쓴웃음 정도로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언급에 이르러서는 가슴에 칼바람이 스치고 지나갔다. "세월호가 침몰했던 당시의 상황과 관련하여 저에 대한 해괴한 루머와 악의적인 모함들이 있었지만 저는 진실의 힘을 믿었기에 침묵하고 있었습니다. 앞으로 많은 시간이 흐르면 어떤 것이 진실인지 밝혀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해 더 이상 박 전 대통령 탓을 할 마음은 없지만, 그가 할 말이 고작 이 정도란 말인가? 당시 정부와 여당(지금 야당의 전신)이 보였던 끔찍한 무성의와 냉혹함, 희생자 가족들을 향해 가해진 숱한 모욕과 공격, 그리고 무책임으로 일관한 관료주의의 정점에 서 있던 사람이 바로 박 전 대통령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여전히 아무런 회한도 뉘우침도 없다. 오직 깊은 자기연민에 빠져 자신의 억울함과 원통함을 되뇔 뿐이다.

 

박 전 대통령 사면의 명분은 국민 화합이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거니와 책을 읽고 나니 화해와 용서라는 단어가 십 리 밖으로 더욱 멀찍이 달아났다. 화합은 사면이라는 동전을 넣으면 툭 튀어나오는 자판기 물건 같은 게 아니다. 박 전 대통령이 입원해 있는 병원 근처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 화환 행렬은 우리가 아직도 왕정과 공화정, 비근대적 사고와 근대적 사고의 불일치 속에 놓인 사회임을 웅변한다. 같은 모국어를 사용하되 언어가 전혀 다른 사람들이 함께 섞여 살고 있는 게 우리 사회다. 그 아득한 간격을 메우는 일이 화합의 출발점이다. 화합은 요술상자에서 튀어나오는 마법의 선물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상식과 순리, 합리성을 쌓아가는 고통스럽고도 지난한 과정임을 박 전 대통령의 사면은 역설적으로 일깨워준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 복권은 결코 '그 시대'에 대한 사면 복권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 시대에 민주주의와 인권은 뒷걸음쳤고, 공적 시스템은 붕괴했으며, 권력은 소수 측근들의 사유물로 전락했다. '애국애족'이 직업인 사람들이 소리높이 외치는 안보와 경제, 시장논리의 지엄한 목소리에 눌려 부의 쏠림은 가속화했고 사회적 양극화는 더욱 깊어졌다. 분명한 사실은 그 시대의 그릇된 정치이념은 사면될 수도 없고 그 시대의 파행적 정치행태는 복권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는 박 전 대통령의 난파 지점에서 새로 항해를 시작했다. 그 항해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항해의 속도는 느리고 방향은 수시로 헷갈렸다. 이런 틈을 타 또다시 역사의 공회전 소음이 요란하다. 박근혜 시대에 횡행했던 국가 경영 철학이 다시 '새로운 사회 건설'의 가면을 쓰고 울려퍼진다. 그 시대보다 훨씬 더 심한 오만과 독선이 정의와 공정의 깃발로 휘날린다. 구시대 이념의 충실한 계승자들은 몇몇 주연이 바뀐 것 말고는 조연, 연출, 스텝들이 거의 그대로다. 또다시 '선거의 여왕'이라는 용어가 등장하면서, 그의 심기를 살피고, 그의 지지와 호감에 기대어 선거에서 잇속을 챙기려는 눈치도 역력하다. 우리는 다시 쳇바퀴 돌듯 역사 원점회귀의 비극과 마주해야 하는가.

 

박 전 대통령의 사면은 국민 화합도, 통합의 계기도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기억의 수면 밑에 잠겨져 있던 구시대의 어두운 실체를 다시금 상기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그리고 점차 뇌리에서 잊혀져가는 '그때의 다짐'을 되살리는 죽비가 돼야 한다. "역사란 그것이 의미 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만 그 의미를 허용해주는 존재"라는 말을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새해 아침이다.

김종구 (언론인) | 프레시안 2022.01.03

 

 

민주주의의 성패는 교실에서 갈린다

민주주의가 결판나는 곳은 투표장이 아니라 교실이다. 교실은 민주주의의 훈련장이기에 한 나라가 성취한 민주주의의 수준은 교실에서 결정된다. 우리가 위대한 광장 민주주의의 전통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성숙한 민주사회에 이르지 못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교실에서 성숙한 민주주의자를 기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거대한 위기에 처해 있다. ‘불평등은 세계 최고 수준이고, ‘불공정은 공동체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고 있으며, ‘차별은 사회적 약자의 삶을 벼랑으로 내몰고 있다. 이 위기를 극복하려면 먼저 위기의 본질을 파악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위기는 본질적으로 민주주의의 위기다. 최악의 불평등, 불공정, 차별은 바로 한국 민주주의의 결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불평등은 경제 민주화의 부재에 근본 원인이 있고, 불공정은 사회 민주화의 결함에서 기원하며, 차별과 혐오는 문화 민주화의 결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정치 민주화는 어느 정도 이루었지만, 사회, 경제, 문화 민주화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현실이 불공정, 불평등, 차별과 혐오의 사회를 만든 주범인 것이다.

 

민주주의에 하는 파시즘보다 민주주의 에서의 파시즘이 더 위험하다.” 테오도어 아도르노가 1960년대 독일 사회에 팽배한 일상의 파시즘을 비판하며 던진 이 말은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지금 한국에서 민주주의에 반하는 파시즘의 시대는 독재자 전두환과 노태우의 죽음과 함께 최종적으로 끝났다. 그러나 민주주의 속에서의 파시즘은 여전히 살아 있을 뿐만 아니라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경쟁주의, 우열의식, 강자 동일시, 약자 혐오, 동조 습성, 폭력성, 공격성, 흑백논리 등 권위주의적 성격으로 드러나는 일상의 파시즘은 사라지기는커녕 더욱 기세를 떨치고 있다.

 

이처럼 민주주의 속에서의 파시즘이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세를 넓히는 현상은 무엇보다도 잘못된 교육에 근본 원인이 있다. 한국의 교실은 성숙한 민주주의자를 기르는가, 아니면 잠재적 파시스트를 기르는가.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는 대한민국 교육이 기른 전교 1등들이 보인 최근의 행태만 둘러보아도 충분하다. 코로나 이후 사회적으로 요청된 공공병원 확장에 반대하는 시위에 나선 의사들, 양승태 대법원장의 사법농단에 관여한 판사들에게 계속 무죄판결을 내리는 판사들, 피의자로부터 향응을 대접받은 검사들에게 불기소 처분으로 일관하는 검사들 이들이 모두 한국 교육이 키운 최고의 모범생이었다는 사실은 한국 교육이 성숙한 민주주의자가 아니라 오만한 엘리트, 일상적 파시스트를 길러냈음을 증언하는 것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거기엔 세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한국 교육의 영혼인 경쟁 이데올로기가 깊은 의미에서 파시즘의 이데올로기이기 때문이다. 독일의 나치즘을 보라. 그들은 이 세계를 거대한 경쟁이 벌어지는 정글로 보았고, 그 정글에서는 적자생존, 자연도태, 약육강식이라는 다윈의 법칙이 작동하는 것으로 보았으며, 강자가 약자를, 우월한 자가 열등한 자를 지배하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던가. 경쟁 이데올로기에는 이처럼 파시즘의 논리가 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다. 둘째, 학생을 정치적 미숙아로 보기 때문이다. 한때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의 기수였던 (중고등)학생들이 군사독재 정권이 들어선 이후 정치로부터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평가절하되었다. 셋째, 교사들이 정치적 금치산자취급을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교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유일하게 정치적 시민권을 박탈당하고 있다. 생각해보라. 파시즘적 이데올로기 아래에서 정치적 미숙아정치적 금치산자에게 교육을 받는 교실에서 어떻게 성숙한 민주시민이 자라날 수 있겠는가.

 

최근 중요한 정치 법안이 통과되었다. 이제 18살 고등학생도 국회의원이 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우리도 다른 선진국처럼 10대 국회의원을 볼 날이 머지않았다. 이제 선진국시민으로서 분명히 자각해야 한다. 10대는 더 이상 정치적 미숙아가 아니며, 교사는 더 이상 정치적 금치산자가 아니다. 이제 우리 교실도 성숙한 민주주의자를 기르는 묘판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한국 사회에 깊이 뿌리박힌 불공정, 불평등, 차별·혐오의 문제를 풀 수 있다.

교실에서 민주주의자를 길러내지 못하는 나라는 결코 기품 있는 선진국이 될 수 없다. 이제부터 우리 교실에서도 성숙한 민주주의자를 길러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경쟁교육을 지양하고, 민주시민교육을 강화하며, 교사의 정치적 시민권을 복원해야 한다.

김누리 | 중앙대 교수·독문학 한겨레 2022.01.04.

 

윤석열 후보 대통령 자격 있나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지난 912고발 사주의혹을 수사하는 공수처에 대해 기본이 안 돼 있다. 좀 많이 배워야 할 것 같다며 거칠게 비난하고 있다. <KBS> ‘뉴스9’ 화면 캡처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했다.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의 수단이 아니다. 인간 그 자체다. 인간이 언어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가 인간을 지배한다. 신언서판(身言書判)의 두번째가 언어다. 언어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방송인들은 사석에서도 가급적 막말이나 욕설을 하지 않는다. 방송 도중 자신도 모르게 막말이나 욕설이 튀어나올 위험을 막기 위해서다. 정치인도 마찬가지다. 사석에서 말을 함부로 하는 경우는 가끔 있어도 공개 석상에서는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다.

 

윤석열 후보의 막말이 화제다. 경쟁자인 이재명 후보를 확정적 중범죄자라며 같잖다고 했다. 정부 여당을 무식한 삼류 바보들이라고 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를 향해 미친 사람들이라고 했다. “공수처장을 구속 수사해야 한다고도 했다.

 

그동안 윤석열 후보를 대놓고 밀어주던 신문조차 사설에서 놀라운 것은 정치 신인인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거친 말싸움에 앞장서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비판했다. 말의 내용도 문제지만 표정과 태도가 더 심각하다. 화가 잔뜩 난 표정으로 소리를 지르다시피 했다. 대통령에 당선되면 이재명 후보와 김진욱 공수처장을 곧바로 구속이라도 할 기세다.

 

왜 이러는 것일까? 지지율 하락세를 반전시키려고 일부러 그런다는 분석이 있다. 선대위 관계자는 우리 지지층 앞인데 그 정도는 해야 한다고 감쌌다. 대구·경북이라서 의도적으로 강한 모습을 보였다는 의미다. 그런가? 아닌 것 같다. 윤석열 후보의 최근 발언과 태도가 검사 윤석열, 인간 윤석열의 본래 모습에 훨씬 가까운 것 아닐까? 윤석열 후보의 본색이 이제야 드러난 것 아닐까? 윤석열 검사를 오래 취재했던 사회부 기자들은 이런 평가를 내놓았다.

자기가 주도하는 자리에서는 말이 굉장히 많고 거침이 없었다. 동네 형 스타일로 시원시원하고 재미있게 말하는 스타일이었다.”

 

검사치고는 독서량이 많은 편이어서 그런지 구라(이야기를 속되게 이르는 말)가 매우 셌다.”

윤석열 검사의 이런 스타일은 특수부 검사로 오랫동안 일한 경험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검사, 그중에서도 직접 수사를 많이 하는 특수부 검사들은 말이 험하고 태도가 거칠다.

대개는 중범죄자들을 다루면서 생긴 습성이다. 영화에서도 검사의 욕설과 폭력은 검사의 정의감을 돋보이게 하는 장치로 자주 등장한다.

 

윤석열 후보는 얼마 전 박근혜 전 대통령 국정농단 수사를 공직자 신분으로 법 집행을 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맞는 말이다. 윤석열 검사가 잘못한 것은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무죄라고 믿는 사람들은 윤석열 후보를 비난하지만, 윤석열 검사가 가혹하게 수사하지 않았다면 정의가 무너졌을 것이다. 나라가 뒤집혔을 것이다.

윤석열 후보는 지금 무척 억울하고 혼란스러울 것이다. 그는 심지가 곧은 사람이다. 불의로 보이는 집단과의 대결을 불사하는 사람이다.

 

2013년 국정감사장에서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 외압을 폭로하며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고 했던 윤석열 검사, 2017년 적폐청산 수사를 지휘했던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2019년 조국 법무부 장관 수사를 밀어붙였던 윤석열 검찰총장, 약탈 정권을 끝장내고 반드시 정권교체를 하겠다고 기염을 토하는 윤석열 후보는 같은 사람이다. 윤석열은 그냥 윤석열일 뿐이다.

도대체 뭐가 잘못된 것일까? 검사는 기본적으로 흑백론자다. 사람을 유죄와 무죄로 가른다. 정치는 총천연색이다. 절대 선도 없고 절대 악도 없다. 정치인은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고 타협하는 사람이다. 검사가 곧바로 정치하면 안 되는 이유다.

 

윤석열 후보와 같은 파평 윤씨인 윤여준 전 장관이 2011<대통령의 자격>이라는 책을 냈다.

가장 먼저 언급할 것은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인류가 발전시켜온 인문학을 토대로 인간 본성, 특히 자아에 대한 깊은 통찰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하겠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에 대한 믿음과 이를 바탕으로 자아의 완성과 사회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려는 자기 철학을 정립하는 것이다.”

윤석열 후보는 과연 대통령의 자격을 갖췄을까? 갖추지 못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선대위 전면 개편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성한용 | 선임기자 한겨레 2022.01.04.

 

유엔사는 계획이 다 있었구나

유엔군사령부가 자신들의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있다. 유엔사는 지난달 20일 전투복 상의를 입고 헌병 MP’ 완장을 팔에 차고 육군 3사단 백골부대 전방관측소(OP)를 방문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를 향해 정전협정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그러고는 다음날 홈페이지에 이번 사건의 근본 원인을 파악하고 정전협정을 위반하는 행위가 재발하지 않도록 진상 조사를 하겠다는 보도자료를 올렸다.

 

유엔사가 민간인의 비무장지대(DMZ) 내 군복 착용 문제를 한국군에 제기해오긴 했지만, 유독 특정인을 지칭해 정전협정 위반이라고 지적해 논란을 일으킨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그러나 유엔사는 같은 날 육군 6사단 청성부대 전방관측소(청성 OP)를 방문한 박병석 국회의장에 대해서는 정전협정 위반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 이유를 묻는 기자의 질의에 유엔사는 묵묵부답이다. 유엔사가 윤 후보의 DMZ 방문만을 공개적으로 문제 삼은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라는 방증이다. 청성 OP 역시 3사단 OP처럼 유엔사 관할이다.

 

유엔사는 대선 후보의 정전협정 위반을 공개적으로 문제 삼는 방식을 통해 DMZ 관할권 확인 차원을 넘어 그들의 존재감을 한국민들에게 강하게 인식시키는 데 성공했다. DMZ에는 유엔사 허락이 없으면 한국 국방장관과 합참의장은 물론 대통령도 들어갈 수 없다. 일반 국민들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사실이다. 유엔사의 영향력 행사는 한국민 입장에서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이 많다.

 

미국, 유엔사를 다국적군 전환 의혹

미국은 유엔사 임무를 정전협정 관리를 넘어 전반적인 한반도 위기 관리로 확장시키려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미국은 남북관계에서도 속도조절과 개입 수단으로 유엔사를 활용하고 있다. 그만큼 유엔사의 DMZ 관할권 강화로 인해 한국의 주권과 충돌하는 사례는 갈수록 늘고 있다. 일부 학자는 유엔사를 미국의, 미국에 의한, 미국을 위한 고스트 아미’(ghost army)”라고까지 표현하고 있다.

 

유엔사를 통한 미국의 한반도 위기 관리 확장 시도는 단계적으로 하나씩 나아가는 살라미방식이다. 그 시작은 2014년부터 시작한 유엔사 재활성화(강화) 프로그램이다. 미군이 맡았던 유엔사 부사령관도 캐나다와 오스트레일리아, 영국 3성 장군이 돌아가며 맡고 있다. 이를 놓고 미국이 한반도에서 유엔사를 다국적 군사기구로 바꾸려는 시도라는 시각이 있다. 미국이 유엔사 주도로 한반도에 다국적군 사령부를 만들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유엔사의 법적 성격, 전작권 전환이나 종전선언 이후 유엔사 해체 여부 등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미 양국은 한반도 유사시 전력을 제공하는 유엔군사령부 전력제공국의 개념을 놓고도 이견을 보이고 있다.

 

현재 주한 유엔사는 유엔의 활동단체기구도 아니다. 유엔의 지휘나 통제를 받지 않는 조직이다. 참여연대와 민변 등 진보진영 단체들은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정전협정을 대체하게 되므로 정전체제 유지·관리를 담당해 온 유엔사는 당연히 해체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유엔사 해체는 유엔사가 창설될 때와 마찬가지로 유엔 안보리에서 결의안이 통과되거나 미국 정부가 해체 결정을 내려야만 가능하다는 게 국제법적 시각이다. 평화협정이 체결된 후라도 그 내용에 평화협정 준수 감독 및 분쟁 발생 시 사실 조사 등을 유엔사의 새로운 기능 또는 역할에 포함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나아가 미국이 유엔사 체계를 인도·태평양 전략의 일환으로 동북아 평화관리기구로 변환해 존속하려 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한국정부는 일회적인 대응에 급급

미국은 최종 목적지는 드러내지 않은 채 유엔사 활성화를 위해 하나씩 하나씩 살라미식으로 장기 플랜을 실현해 나가고 있다. 이번 야당 대선 후보에 대한 이례적인 정전협정 위반 비판도 유엔사가 치밀하게 검토해 내놓은 전략커뮤니케이션(SC)이다. 문제는 한국군, 나아가 한국 정부의 대응이다. 면밀한 대응은커녕, 유엔사가 특정 조치를 내놓으면 일회적으로 대응하는 데 급급하는 모습이다. 유엔사가 대선 후보의 정전협정 위반을 문제 삼자, 군은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심지어 국방부는 육군에, 육군은 국방부에 사안을 떠넘겼다. 유엔사는 다 계획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경향 : 2022.01.04.

 

세금을 대하는 대선 후보들의 자세

세금은 앞으로 한국사회 최고의 갈등 요인이 될 것이고, 세금을 둘러싼 정치는 전쟁터를 방불케 할 것이다. 유럽에서 이미 수십 년간 경험한 바 있는데, 우리의 갈등 양상은 훨씬 심각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이라 쓰고 세금이라 읽어버렸으니, 가뜩이나 예정된 갈등이었던 세금 전쟁의 판은 더 커졌다. 전선은 둘이다. 단기적으로는 계층, 중장기적으로는 세대. 예를 들어보자.

 

한국은 복지국가가 될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북유럽 같은 고부담·고복지를 주장하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 가장 많이 이야기되는 중부담·중복지 사회가 우리의 목표라고 가정해보자. ‘얼마가 필요할까. 2019년 기준 한국의 GDP 대비 공적사회지출은 12.2%로 예전에 비하면 많이 늘었지만 아직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꼴찌에서 네 번째에 머물고 있다. OECD 평균이 20%이고 가장 많이 쓰는 나라들은 30%까지도 쓰고 있는데, 중부담·중복지를 하려면 평균 수준인 20%는 되어야 할 테고, 지금보다 8%포인트 정도 복지지출이 더 늘어야 한다. GDP 대비 8%면 어마어마한 돈이다. 2021년 우리나라의 GDP18000억달러로 추산되는데, 8%1440억달러(170조원)라는 돈을 추가로 복지에 써야 겨우 중부담·중복지에 도달하는 것이다. 2021년 현재 한국의 인구는 약 5200만명인데, 미성년자 860만 명을 빼면 성인 인구는 4340만명이다. 중부담·중복지를 위해 필요한 추가 비용을 모든 성인이 똑같이 나눠서 낸다면 한 사람당 392만원씩을 더 내야 한다. 이게 가능할까? 물론 불가능할 것이다. 수입이 없는 은퇴자에게도, 80세 넘은 어르신에게도, 학생에게도, 실업자에게도, 중부담·중복지를 해야 하니 해마다 392만원씩 세금을 더 내라고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러면 본격적으로 누가라는 질문이 대두된다. 소득 상위 50%의 사람들이 낸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한 사람당 784만원이 된다. 20214인 가구 기준 중위소득이 월 487만원인데, 두 달 치에 해당하는 소득을 추가 세금으로 걷어가는 건 불가능하다. 이재명 후보가 국토보유세 과세 기준으로 제시했던 상위 10%가 낸다면 한 사람당 3920만원씩이다. 문재인 정부가 종부세 대상으로 삼았던 상위 2%가 낸다면 한 사람당 19600만원씩이다. 그것도 해마다. 30억 자산가도 10년이 못 가 알거지가 될 것이고 그러면 세금 낼 사람은 아예 존재하지 않게 된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문제이지만 아무도 묻지 않는 것은 라는 질문이다. 보통은 소득이나 자산이 더 많은 사람이 더 많은 세금을 내는 누진세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부자이면 왜 남들보다 더 높은 세율을 적용받아야 하는지 설명하고 납득시킬 수 있어야 한다. 누진세는 엄밀히 따지면 헌법상 평등권을 위배하는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인 여러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누진세가 필요하기 때문에 헌법상 평등의 원칙을 완화하는 것이다. 누진세는 당연한 게 아니라는 뜻이다. 당연하지 않은 걸 받아들이게 하려면 사회적 합의와 설득의 과정이 필요하다. 서구의 역사를 보아도 누진세는 당연히 받아들여진 것이 아니라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절실한 사회적 필요 때문에 세금을 내는 당사자들을 설득한 끝에 도입되었다. 전쟁에 목숨을 바치는 국민의 희생에 형편이 나은 사람들은 더 많은 세금으로 기여하기로 한 것이다. 설명도 합의도 없이 부자니까 더 내라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복지지출에서 가장 큰 몫을 차지하는 것은 의료와 연금이다. 한국처럼 빠르게 고령화하는 사회에서 가장 빨리 늘어날 항목들이다. 제대로 된 정치인이라면 우리가 처한 상황과 미래 예측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이해와 합의를 구하고, 모두가 조금씩 더 기여해줄 것을, 그리고 형편이 나은 사람들은 더 많이 기여해줄 것을 호소해야 한다. 우파 포퓰리스트는 이런 사정은 짐짓 모른 체하고 세금을 깎아주겠다고만 말한다. 사회는 각자도생의 아수라에 빠진다. 좌파 포퓰리스트는 부자에게 걷으면 된다고 말한다. 앞서 계산해 보았듯이 부자에게 아무리 많이 걷어도 필요한 돈에는 턱도 없이 부족하고, 민주주의는 무너지고, 나라는 계층 갈등의 전쟁터가 된다. 이렇게 시간만 보내면 고령화는 더욱 진전되고 모든 부담은 미래의 경제활동 인구인 젊은 세대에게 떠넘겨질 것이다. 세금이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문제라는 것, 사회의 지속가능성의 문제라는 것, 사회구성원 간 연대의 문제이고 복지국가의 문제라는 것을 철저히 인식해야 한다. 대선 후보들의 세금을 대하는 자세를 눈여겨봐야 한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경향 : 2022.01.04.

 

시대교체의 정치적 리더십을 기다리며

2022년 새해를 맞이한 마음, 복잡하다. 코로나19 폭풍이 3년째다. 올해는 팬데믹이 끝날 건가. 두 달 후 대선은 어떨까. 정권교체냐 아니냐의 구도만 변화 없을 뿐, 리더십과 전략 등 다른 것들은 낯설게 느껴진다. 정치사회학자인 내가 발견한 20대 대선의 특징은 세 가지다.

 

첫째, 유력 대통령 후보들의 개인적 특성이다. 현재 당선이 유력한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는 국회의원 경력이 없다. 이런 두 사람이 주요 정당의 후보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당내 경선 과정에서 이재명 후보는 국무총리를 역임한 이낙연 후보를 이겼고, 윤석열 후보 역시 정치 경력이 풍부한 홍준표 후보에게 승리했다. 이 사실은 국회에 대한 다수 국민의 불신을 증거한다. 정치사회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과 거부가 국회 밖에서 새로운 리더를 찾은 셈이었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두 후보가 갖는 차이점보다 공통점이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지지자들은 왜 국회라는 정치사회 외부의 후보를 선택한 걸까. 두 사람의 정치 스타일은 최근 지구적 경향과 유사하다. 21세기에 들어와 각광받고 있는 정치 리더는 스트롱 맨이다. 스트롱 맨은 대화와 조정의 합리성보다 결단과 추진의 실행력을 중시한다. 그리고 정당 내부의 지지보다는 정당 외부에 놓인 시민사회의 지지에 기반한다.

 

둘째, 최근의 정치적 균열 구조다. 지난 20세기 후반 어느 나라든 정치적 균열의 주축을 이뤄온 것은 계급과 이념이었다. 상황과 국면에 따라 지역과 세대 역시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기득권 엘리트 대 일반 국민이라는 포퓰리즘적 균열이 부상함으로써 지구적 차원에서 포퓰리즘 시대가 열렸다. 20세기 포퓰리즘이 인기영합적 정책으로 특징지어졌다면, 21세기 포퓰리즘은 기득권세력으로부터 소외되고 배신당한 국민 전체를 정치적 주체로 호명하는 데서 특징을 찾을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도 지난 몇 년 동안 누가 기득권세력인가의 토론이 격발돼 왔다. 진보가 보수적 산업화세력을 오래된 기득권세력이라고 본다면, 이제 보수는 진보적 민주화세력, 특히 586세력을 새로운 기득권세력으로 규정한다. 이러한 논리에 기대어 상대방과의 공존을 처음부터 거부하고, 자신의 지지그룹에게만 메시지를 타전하는 정치가 한국적 포퓰리즘의 한 특징을 이루고 있다.

 

셋째, 공론장과 시민사회의 풍경이다. 지구적 차원에서 2010년대 이후 공론장과 시민사회에 결정적 영향을 미쳐온 것은 포스트트루스(탈진실)’의 도래다. 탈진실이란 여론을 형성할 때 객관적 사실보다 주관적 신념에 호소하는 게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현상을 말한다. 탈진실 시대에는 정서와 신념이 진리와 도덕의 자리를 대신한다. 그 결과 공론장과 시민사회에선 정서와 신념으로 무장한 정치적·사회적 집단주의가 한층 강화된다.

 

탈진실은 정체성의 정치와 짝한다. 탈진실의 기반을 이루는 정서와 신념은 정치·문화적 정체성을 구성하고, 나아가 경제적 이익 못지않게 시민들의 사고와 행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념·종교·젠더 등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것들이 훼손되는 현실에 분노하고 저항하는 정체성의 정치가 기성 정치를 대체하고 있는 것은 21세기의 어느 나라든 두드러진 현상이다. 이 정체성의 정치를 고려할 때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정치적 팬덤주의와 견고한 진영정치를 제대로 독해할 수 있다.

 

, 이런 세 가지 특성을 주목하면, 우리는 비로소 이번 대선이 왜 낯설게 느껴지는지에 대한 이유의 하나에 접근할 수 있다. 국면이 변했고, 정치가 변했고, 시대가 변한 것이다. 역사는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지 않다. ‘구조적 조건과 주체적 역량의 변증법, 비록 변증법이 철지난 개념이라 해도, 여전히 역사를 제대로 해석할 수 있는 키워드다. 2020년대 현재, 이 구조적 조건이 크게 변화해 왔다고 봐야 한다.

 

대선에 담긴 세 가지 의미는 권력교체, 세력교체, 시대교체다. 이제 두 달 후면 권력교체의 서막이 열릴 것이다. 세력교체가 이뤄질지 아닐지는 정치의 역동성을 지켜볼 때 끝까지 가봐야 할 것이다. 문제는 시대교체다. 포퓰리즘과 탈진실, 디지털 대전환과 기후위기가 구조적 조건이라면, 이에 대응할 새로운 정치적 리더십이 주체적 역량이다. 내가 낙관주의자이기 때문일까. 남은 2개월, 나는 아직도 시대교체의 주체적 역량, 새로운 정치적 리더십을 기다리고 있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경향 : 2022.01.04.

 

 

MZ세대 대통령 탄생, 지구 반대편에서 2'좌파 붐'이 전개되고 있다

브라질뿐만 아니라 만년 우파 집권국 콜롬비아에서도

작년 1219일 칠레 대통령선거 결선투표에서 정당연합 '존엄을 인준하라' 소속 가브리엘 보리치 후보가 극우파 호세 카스트 후보를 누르고 승리했다. 이로써 칠레에는 피노체트 군부독재의 경제사회적 유산과 타협하던 기존 사회당-기독교민주당 세력보다 더 왼쪽에 선 정부가 들어서게 됐다. 선거로 집권했으나 1973년 쿠데타로 무너진 살바도르 아옌데 인민연합 정부의 맥을 잇는 정부의 출현이며, 2019-2020년 대중항쟁으로 시작된 새 헌법 제정 절차에 날개를 달아주는 칠레 민중의 선택이기도 하다.

 

이는 또한 중남미 대륙 전체를 놓고 봐도 중대한 사건이다. 2000년대에 중남미 각국에서 좌파 세력이 연쇄 집권하면서 '라틴아메리카 좌파 붐' 혹은 '분홍색 물결'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그러나 이 흐름은 2010년대 들어 우파, 그것도 극우파 집권 붐이라는 반격에 자리를 내주는 듯 했다. 특히 2016년에 지역 내 최대국 브라질에서 노동자당(PT) 소속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탄핵을 받아 물러나자 좌파의 패배, 극우파의 승리가 돌이킬 수 없는 대세가 된 듯 보였다.

 

지금 이것이 다시 정반대 추세로 바뀌고 있다. 사회주의운동당(MAS) 소속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이 쿠데타로 쫓겨났던 볼리비아에서는 모랄레스의 후계자 루이스 아크레가 2020년 대선에서 압승을 거두었고, 20년 전에는 정작 좌파 붐에서 비껴 있던 페루에서도 작년에 급진좌파 성향의 페드로 카스티요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 대륙에 다시 한 번 분홍색 물결이 일고 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2000년대보다 더 강력한 것 같다. 그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지역 내 또 다른 대국 멕시코에도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애칭 암로AMLO)이 이끄는 좌파 성향 정부가 들어서 있다. 암로의 멕시코는 좌파 페론주의자들이 다시 집권한 아르헨티나와 함께 미 제국 남쪽에서 제국에 종속된 운명을 거부하는 세력들의 두 기둥 역할을 하고 있다. 게다가 이번 좌파 붐의 또 다른 고리인 칠레에서는 대중운동의 활기로 무장한 신진 좌파가 '분홍색 물결'을 더욱 붉은 색에 가깝게 만들고 있다.

 

이 흐름은 새해에도 계속 거침없이 전진할 수 있을까? 더 나아가, 2000년대 좌파 붐을 오히려 예고편으로 만들어 버릴 대변화의 해일로 성장할 수 있을까? 올해에 대선-총선을 앞둔 두 나라, 브라질과 콜롬비아의 민중에게 그 답이 달려 있다.

 

브라질에서는 102일에 대선이 있다. 연방 대통령뿐만 아니라 연방 하원의원도 뽑고, 주지사, 주의원도 선출한다. 브라질 사회의 지형을 크게 바꾸는 그야말로 ''선거다.

 

한데 대선 결과는 이미 나온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분위기다. 어느 여론조사 결과를 보든 노동자당의 룰라 전 대통령이 대선 주자 가운데에서 압도적인 1위다. 지지율이 자이르 보우소나루 현 대통령의 두 배 이상이다. 그러니 결선투표에서 둘이 맞붙을 경우의 판도도 보나마나다. 브라질과 아시아 어느 나라 축구팀이 겨룰 때처럼 결과가 너무 빤하다.

 

왜 이렇게 됐나? 이미 언론에도 많이 보도된 것처럼,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극우파 보우소나루 정부의 실정이다. 대통령이 "코로나 백신을 맞으면 AIDS에 걸릴 위험이 높아진다"는 가짜 뉴스나 소셜 미디어에 퍼 나르니 코로나 대응이 제대로 될 리 없다. 정부의 무능과 방조로 브라질이 라틴아메리카에서도 팬데믹의 최대 피해국이 되자 사법 당국의 대통령 수사가 시작됐고 의회는 다시금 탄핵 준비에 들어갔으며 시민들은 거리로 나섰다.

 

그러나 이것은 현실의 반쪽만을 설명한다. 보우소나루의 추락은 설명해도 하필 룰라 전 대통령이 그 대안으로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이유까지는 말해주지 못한다. 룰라의 지지율이 고공 행진을 시작한 게 언제부터인지 살펴보면, 답이 나온다. 그것은 한때 비리 혐의로 투옥되기까지 했던 룰라가 작년 봄에 연방 대법원에서 유죄판결 무효 결정을 받으면서였다. 물론 룰라가 선거 출마 자격을 되찾아서 지지율이 오른 것이기도 하지만, 지난 몇 년 동안 룰라에게 쏟아진 비리 의혹이 대부분 근거 없음이 밝혀진 데 대한 대중의 화답이기도 하다.

 

룰라의 투옥도, 호세프의 탄핵도 이렇게 온통 의문투성이인 사건들이다. 노동자당, 공산당(PCdoB), 사회주의자유당(PSOL)만 빼고 상하원 내 모든 정당이 갑자기 거국연합을 결성해 노동자당 장기 집권을 만 14년으로 강제 종료시켜 버렸지만, 여러 모로 무리한 음모였고 더군다나 대안조차 준비되지 못한 파괴 행위였다. 노동자당 정부를 몰아내기는 했지만 막상 기득권 정당 중 어디에도 대선에서 노동자당 후보를 이길 카드가 없었다. 덕분에 군부 쿠데타를 찬양하던 괴짜 극우파 보우소나루가 돌연 유일한 선택지로 부상했고, 그 결과가 지금 브라질의 이 바이러스 참극이다.

 

이런 사정을 놓고 볼 때, 올해 브라질 총선에서 룰라와 노동자당 및 그 연합 세력의 승리는 확정적이다. 억지 탄핵까지 관철시킨 브라질 기득권 세력이니 중간에 또 뭔 짓을 할지 모르지만, 아무튼 현재 분위기는 그렇다.

 

이런 브라질 상황은 중남미의 제2차 좌파 붐에 결정적인 의미를 지닌다. 멕시코, 아르헨티나에 이어 인구 2억의 브라질에도 좌파 정부가 들어선다면, 한때 대반격을 겪었던 분홍색 물결은 오히려 예전보다 더 강하게 부활했음이 한층 분명해질 것이다.

 

그렇다고 룰라 제3기 정부가 과거의 노동자당 정부보다 훨씬 더 급진적일 것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가 퇴조하고 있으니 그럴 가능성도 없지는 않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브라질의 지정학적 위상이다. 2000년대에도 그랬지만, 브라질의 정권이 어떤 색깔인지는 다른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선택에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그때에도 브라질에 룰라 정부가 있었기에 베네수엘라의 실험이 좀 더 오래 버틸 수 있었고 볼리비아에서도 쿠데타 걱정을 덜 수 있었다. 2020년대의 브라질 룰라 정부도 최소한 이 정도 역할을 할 것이다.

 

한데 제2차 좌파 붐이 제1차보다 더 강력해지리라 전망하는 것이 단지 브라질 때문만은 아니다. 또 한 나라가 더 있다. 바로 콜롬비아다.

 

콜롬비아. 1차 좌파 붐 와중에도 중남미 우파의 버팀목으로 남아 있었던 나라. 우리에게는 이미 전설이 된 끔찍한 마약상들을 그린 영화나 TV 드라마로 더 잘 알려진 나라. 최근까지, 아니 사실은 지금도 밀림에서 정부군과 마약 카르텔, 좌파 게릴라, 극우 민병대가 누가 아군이고 적군인지 모를 이전투구를 거듭하는 나라. 노벨문학상까지 받은 작가(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극우 깡패의 협박을 받아 망명을 떠나야 했던 그 나라 말이다. 바로 이 콜롬비아도 313일에 총선을 실시하고 두 달 뒤인 529일에는 대통령을 선출한다.

 

한데 두 선거를 앞둔 콜롬비아의 여론조사 결과들이 심상치 않다. 좌파 정치세력들이 모여 만든 정당연합 '역사적 협약'의 구스타보 페트로 후보가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린다. 페트로는 2018년 대선에서는 결선투표까지 가서 이반 두케 현 대통령과 맞붙었던 인물이다.

 

한편 총선 결과를 예고하는 정당 지지율 조사 결과에서도 '역사적 협약'1위를 기록하고 있다. 게다가 2위 역시 우파가 아니라 녹색당 등이 결성한 중도좌파 성향의 '희망 연합'이다. 마치 칠레처럼, 지금 콜롬비아에서도 몇 세대에 한 번 있을만한 커다란 변화의 열기가 끓어오르고 있는 것이다.

 

콜롬비아 - 칠레처럼 대중투쟁을 기반으로 체제 교체를 향해

콜롬비아 정치는 2000년대 초까지도 보수당과 자유당이라는 전통적 양대 정당이 양분하고 있었다. 저 멀리 한반도에서 한국전쟁이 벌어질 때에 총 들고 내전까지 벌였던 두 당은 1960년대부터는 정권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부패한 정치 체제를 공동 관리했다. 1960년대에 좌파 게릴라 활동이 시작된 것도, 1980년대에 메데인과 칼리, 두 전설적인 마약 카르텔이 부상한 것도 다 이러한 부패한 양당 독점 정치 아래에서였다.

 

그러나 양당 독점 체제는 중남미 다른 나라들에서 좌파 붐이 일던 그 시기에 서서히, 아주 서서히 와해되기 시작했다. 자유당 출신이지만 보수당의 극우 이미지를 빼앗으며 새로운 정당을 창당한 알라보 우리베(2002-2010년 대통령 역임)가 보수당이 차지하던 정치 공간을 차지하면서 양당 독점 구도의 구심력에 변화가 일었다. 자유당과 보수당의 당세는 급격히 위축됐고, 선거 때마다 의회 내 기득권 정파의 합종연횡이 거듭됐다.

 

이런 기성 세력의 자중지란만 변화에 기여한 것은 아니다. 변화를 더욱 앞당기려 한 노력들이 있었다. 원내 소수파이지만 대선에 계속 제3후보를 내 만만치 않은 지지를 받은 정치세력들이 있었다. 좌파 게릴라 중 제2의 세력이었다가 1980년대 말에 합법 정치 활동으로 전환한 '419일 운동'의 후신 격인 '대안민주기둥'(PDA, 이하 대안민주기둥당)이 그런 세력이고, 녹색당도 비슷한 활동을 펼쳤다.

 

페트로 후보도 대안민주기둥당에서 정치적으로 성장한 인물이다. 1960년생인 그는 불과 18살의 나이에 '419일 운동'에 합류해 무장 투쟁을 벌였고, 이 때문에 18개월간 감옥살이도 했다. '419일 운동'이 정부와 평화협정을 맺은 뒤에는 지방의원부터 시작하며 정치 경력을 쌓았고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기도 했다.

 

마침 전통적 양당 정치가 흔들리기 시작한 2000년대 초반에 그는 전국적으로 주목받는 정치가로 부상했다. 2002년에 하원의원에 당선된 그는 옛 게릴라 동지들과 협력해 대안민주기둥당을 창당하는 데 앞장섰고, 언론에서 '최우수 의원'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이름을 더 알린 것은 마약상들과 결탁한 우리베 정부의 부패에 맞선 목숨을 건 폭로전이었다. 콜롬비아에서 '목숨을 건'이라는 말은 결코 허세나 과장이 아니다. 하지만 마약 카르텔의 협박도 페트로의 행보를 막지는 못했다.

 

페트로는 여세를 몰아 2010년 대선 후보를 결정하는 대안민주기둥당 경선에 뛰어들었다. 이때 그는 당 내 주류보다 더 급진적인 민주적 사회주의 노선을 주창하며, 잔존 좌파 게릴라와의 평화 협정을 통한 내전 종식, 조직범죄 근절, 사법부 부패 청산, 토지 개혁 등을 주창했다. 이변을 일으키며 대선 후보로 선출된 그는 본선에서는 9.1%를 득표했다. 이 성과를 발판으로 페트로는 수도 보고타 시장에 당선됐고, 2010년대의 많은 시간을 우파 중앙정부와 대결하며 자신의 개혁 공약을 실현하는 데 보냈다.

 

그 사이에 당적도 바뀌었다. 대안민주기둥당 내 주류의 온건 노선과 빈번히 충돌하던 그는 결국 탈당하여 독자 조직을 결성했다. 2018년 대선에서 이 조직의 이름은 '진보 운동'이었고, 지금은 '인간적인 콜롬비아'이다. 이 조직이 좌파 게릴라 '콜롬비아 혁명군'(FARC)의 후신인 합법 조직 '커먼스', 콜롬비아 공산당, 대안민주기둥당 등의 다른 좌파 정치세력들과 함께 만든 정당연합이 '역사적 협약'이다. 전에는 함께 모이기 거의 불가능했던 세력들이 페트로 후보를 중심으로 모인 것이다.

 

아니, 페트로 덕분만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최근 몇 년 동안 콜롬비아에서 계속된 치열한 대중투쟁이다. 2018년 대선에서 변화의 열망이 확인됐지만 실현은 되지 못한 뒤에 민중은 투표소가 아닌 거리에서 정치적 의사 표현을 계속했다. 칠레에서 대중항쟁이 일어난 것과 같은 때인 2019년 말-2020년 초에 콜롬비아 혁명군과의 협상에 미온적인 두케 정부에 항의하는 전국적 시위가 벌어졌다. 이 운동은 팬데믹으로 잠시 주춤했지만, 20214월에 간접세 인상과 의료 사유화 따위를 포함한 두케 정부의 사회'개혁'안에 맞서며 다시 폭발했다.

 

두 항쟁 모두 폭력 진압 탓에 격렬한 양상을 띠었다. 2019년에도, 2021년에도 수십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런 격랑 속에서 페트로가 속한 정당 '인간적 콜롬비아'는 거리의 민중을 가장 적극적으로 대변하는 입장을 취했다. 현재 페트로 후보의 핵심 공약인 공공의료 확대, 금융 공공성 강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에너지 전환, 토지 개혁 등은 지난 몇 년간 거리에서 시민들이 외친 요구들이다. 대중투쟁의 열기를 바탕으로 기성 정치를 뒤엎으며 새로운 경제사회 체제로 나아가려는 이러한 몸부림은 안데스 산맥 반대쪽 끝에 자리한 나라, 칠레의 최근 모습과 판박이다.

 

우리와 같은 위기의 시간 속에서 같은 과제에 도전하는 그들

이것이 올해에 중대한 선택의 순간들을 맞이한 중남미 대륙 상황이다. 그런데 요즘은 이런 소식을 전하면, 으레 따라붙는 반응이 있다. 라틴아메리카 좌파는 우리의 참고가 될 수 없다는 이야기다. 더 심하게는, 한국보다 못한 나라의 사례를 왜 마치 모범처럼 소개하느냐는 반문도 있다.

 

그러나 이는 '서유견문'의 시간대에 갇힌 사고일 뿐이다. 남의 이야기들에 귀 기울이는 것은 그게 꼭 우리가 따라 배워야 할 전범이어서가 아니다. 배우기로 따지면, 남에게서는 아예 배울 수 있는 게 없을 수도 있고, 반대로 모두가 모두에게 배워야 하는 법일 수도 있다. 오늘날 우리가 다른 나라의 이야기들을 알아야 하는 것은 다만, 이제 지구 위의 모든 이들이 같은 위기의 시간을 살며 같은 과제를 풀어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칠레의 보리치 당선자가 약속한, 그리고 콜롬비아의 페트로 후보가 공약하는 핵심 정책 중 하나는 기후 위기에 맞서 새로운 에너지 체제로 전환하는 것이고, '에너지 전환'이라는 이름 아래 북반구 국가들이 남반구에 강요하는 자원 추출 중심 경제를 극복하는 것이다. 보우소나루 시대의 종말을 열망하는 이들의 최대 악몽은 지금도 목장을 넓히기 위해 불타고 있는 아마존 열대 우림이며, 룰라의 당선이란 그 우림을 그나마 성실히 지켰던 정권의 복귀를 뜻한다. 이것은 브라질만이 아닌 지구의 허파에 관한 이야기다.

 

그렇게 저들의 과제는 곧 우리의 과제다. 우리는 공동의 운명 속에서 함께 좌절하며, 다시 함께 전진한다. 그렇기에 라틴아메리카의 두 번째 분홍색 물결은 '우리'의 이야기다.

장석준 출판&연구집단 산현재 기획위원 |프레시안 2022.01.05.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를 위한 민중경선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대선 정국이 요동치고 있다. 1229~1231일 사이에 중앙선관위에 등록된 8건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1건을 제외하고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지지율이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에 비해 0.9%~12.0% 차이로 앞서고 있다. 국민의힘 안철수 후보는 보수양당에 대한 비호감의 반사이익을 누리면서 최대 9%의 지지율로 보수 3강 구도를 예고하고 있다. 정권교체 여론은 정권유지 여론보다 여전히 7.9%~10.3% 우세하다. 지지후보가 없거나 모른다는 답변은 5.4%~25.9%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정의당 심상정 후보의 지지율은 1.8~4.5%로 과거에 비해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

 

보수양당에 대한 비호감 상승으로 민심은 정권을 바꾸고 싶지만 제3의 보수정당인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를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안철수 후보와 새로운물결의 김동연 후보를 포함하여 제3지대 연대를 제안하며 좌우로 갈지자 행보를 하고 있는 정의당 심상정 후보를 지지하기에도 썩 내키지 않는 것이 현재의 국민여론으로 보인다.

 

불평등 해소와 기후위기 극복이라는 임박한 과제가 놓여있는 사회대전환의 시기에도 한국정치의 보수성은 보수양당을 중심으로 좀처럼 흔들리지 않고 있다. 14대 대선에서 19대 대선까지 정주영, 박찬종, 이인재, 문국현, 안철수 등 제3지대 보수정당에서 새로운 후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지만 보수양당을 대체하거나 넘어서지는 못했다. 보수양당을 안철수와 김동연 등 제3지대 보수후보들로 바꿔봐야 보수대표의 얼굴만 바뀔 뿐 세상은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 일부 국민들은 정당도 인물도 싹 바꾸고 싶은데 기존 정당과 인물에서는 아직 그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지리하고 갈증 나는 대선정국에서 국가혁명당 허경영 후보가 이 따끔 청량제 역할하고 있다. 지난 1215일 한 여론조사에서 허경영 후보는 3.6% 지지율로 심상정과 김동연 후보를 제치고 안철수 후보와 동률까지 이루었다.

 

이렇게 보수일색인 대선 후보들은 국민들에게 어떠한 희망과 비전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현재의 보수정치의 대안을 진보정치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지난 9월부터 민주노총과 5개 진보정당인 정의당, 진보당, 녹색당, 노동당, 사회변혁노동자당이 모여서 ‘2022 대선 공동대응기구를 발족했다. 여기에 지난 12월부터 민중경선운동본부가 합류해서 대선 후보단일화 방안을 논의하였다. 하지만 1229일 경선 방식을 둘러싸고 합의에 실패하고 말았다.

 

민중경선은 노동자민중이 대선 단일후보를 선출해서 보수 일변도의 한국정치 구조를 보수진영과 진보-좌파진영의 정치구도로 바꾸어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를 새롭게 시작해보자는 것이다. 이러한 대의에 대해 어떠한 진보정치세력도 반대할 명분은 없다. 지금은 진보정당이 비록 국민들로부터 관심과 지지가 매우 미흡하지만 상호 분열과 갈등을 극복하면서 단일후보를 선출한다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교두보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회의 결과만 놓고 보면, 정의당이 100% 여론조사를 고집하는 한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를 위한 민중경선 성사는 이루어지기 어려울 것이다. 촛불정국과 맞물린 지난 19대 대선과 달리 정권심판론에 시달리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렇다고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지난 대선처럼 여유롭게 완주하거나, 다가오는 보수3강 구도에서 지지율 상승을 기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이와 같은 상황을 급변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가 진보정당의 민중경선을 통한 대선 단일후보다.

 

오는 17일로 예정된 마지막 후보단일화 논의에서 정의당이 민중경선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진보-좌파진영은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를 위한 또 다른 방식을 찾아나서야 할 것이다. 이재명, 윤석열, 안철수, 심상정을 뛰어넘을 진보-좌파진영의 또 다른 공동의 인물을 세우거나, 한국사회에서 매우 모험적이고 실험적이기는 하지만 사회주의 후보의 도전이 그것이다. 전자는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를 위한 선거인단모집을 통한 진보-좌파진영의 제2 민중경선이 될 것이고, 후자는 민중경선과 제2의 민중경선이 모두 좌절될 경우 사회주의 좌파 진영의 불가피한 선택이 될 것이다.

 

진보-좌파진영과 노동자민중은 자본주의 체제변혁을 통한 사회대전환이라는 시대적 역할을 주도할 새로운 세력과 인물을 함께 모으고 찾는데 조금도 주저함이 없어야 한다. 보수양당은 선거 때마다 이름을 바꾸고 인물을 바꾸면서 자본권력을 유지하며 노동자민중을 고통으로 몰아넣고 자연생태계를 파괴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이제 진보도 좌파도 지나간 것과 지나가고 있는 것들은 미련 없이 모두 과거에 남기고, 새로운 것으로 채워나가야 노동자민중의 시대적 과제에 비해서 조금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그것이 곧 희망이 된다

숲나무(파주촛불주민) | 프레시안 2022.01.05

 

 

중국은 세계유산 가리는 호텔 잘랐는데

조선왕릉은 조선 518년간의 제례 문화는 물론 건축물과 조각, 풍수적 자연관이 녹아 있는 문화유산이다. 죽음의 공간이면서 그 시대의 통치 철학과 사상, 과학과 문화를 아우른 한국 특유의 정신 유산이라는 점이 인정돼 200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지정됐다.

 

그런 조선왕릉이 40여기 왕릉 가운데 하나인 김포 장릉을 절벽처럼 가리는 이른바 김포 장릉 뷰 아파트건설 문제로 세계유산목록에서 해제될 위기에 놓였다. 유네스코는 그 가치가 소실된 경우 망설이지 않고 세계유산목록에서 지운다. 영국의 경우 2004년 세계유산에 등재시킨 리버풀 항구가 지난해 세계유산목록에서 삭제되는 수모를 당했다. 독일의 드레스덴 엘베계곡도 추후 계곡에 다리가 건설되면서 19세기 조성된 건축물과 강변이 조화를 이루는 본래 가치가 훼손되자 2009년 세계유산에서 해제됐다. 한국이 보유한 14점 세계유산 중 하나인 조선왕릉도 이번 사태를 해결하지 못할 경우 그런 수모를 겪을 공산은 커 보인다.

 

이번 사태는 인천 검단신도시에 대광건설, 대광건영(시행사 대광이엔씨), 금성백조(시행사 제이에스글로벌) 3개 건설사가 장릉을 가리는 초고층 아파트를 지으며 시작됐다. 문화재청은 문화재보호법 위반으로 건설사들을 고발했고, 건설사들은 문화재위원회의 중재(개선안)를 최종 거부하며 법적 해결 방식을 택했다. 2심 법원은 가처분 소송에서 건설사의 손을 들어줘 아파트 공사는 진행 중에 있고 문화재청은 즉각 재항고했다.

 

문화재청 자문기구인 문화재위원회는 중재안으로 건설사별로 꼭대기 410개 층을 잘라낼 것을 제안한 바 있다. 시뮬레이션 용역 결과 상층부 해체는 가능한 것으로 판단된다는 답을 얻었다. 세계유산을 보존하기 위해 토건 이익을 양보한 사례가 해외에는 있다. 중국 항저우 시후(西湖)의 경우 2011년 등재 당시 7층 높이의 상그리아 호텔이 경관을 훼손하고 있는 것으로 지적받자 유네스코 권고에 따라 2019년 호텔 상부 2개 층을 철거했다.

 

콘크리트 아파트는 한번 지어도 40년의 연한에 그치지만 세계유산은 인류가 수백년간 쌓아온 결과물이지 않나.” 세계유산 등재를 위해 민간에서 일해 온 이창환 상지대 교수는 중국의 결정을 두고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중국이 해낸 일을 못하고 있다.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지루한 법정 공방을 벌이게 됐다.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3개 건설사가 지은 아파트 3401가구에서 209가구는 줄여야 한다. 법정 다툼은 사태 해결까지 5, 6년은 간다. 그사이 입주를 못하게 될 주민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물론 건설사들의 행태에 문제가 있긴 하다. 건설사들은 사업시행자인 인천도시공사가 2014년 해당 아파트와 관련해 문화재보호법상 현상변경 허가를 받았고 자신들은 이를 승계해 적법하게 아파트를 지었다고 주장한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인천도시공사는 택지에 대해서만 허가를 받았을 뿐 건축에 대해서는 허가를 받지 않았다고 반박한다.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황평우 소장도 국토교통부가 2015인천검단지구 택지개발 지구단위계획을 냈다. 이를 금과옥조로 여기는 건설사들이 장릉의 경관을 가려서는 안 된다는 걸 모른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했다.

 

그런데 이 교수는 국토부와 인천시의 공동 책임론을 주장한다. 전적으로 건설사 잘못으로만 전가하기에는 정책 입안에서부터 문제의 소지가 있었다는 지적이다. 그는 국토부는 장릉이 바라보이는 위치에 검단신도시를 지정했고, 인천시는 공원 등으로 조성해도 좋을 지역을 고층 아파트가 가능한 지역으로 설정했다문화재청과 건설사에만 맡기지 말고 국토부와 지자체도 함께 대안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문화 선진국 도약을 가름하는 시험대에 올랐다. 지혜를 모았으면 한다.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국민일보 2022-01-06

 

 

한국인의 삶은 정말 윤택해졌을까

세계은행 조사 기준으로 2020년 한국의 1인당 명목 국내총생산(GDP)31631달러였다. 1960158달러에서 200배 증가했다. 이 기간 세계 평균치가 457달러에서 1910달러로 약 24배 늘었으니, 한국의 성적은 매우 우수한 편이다. 2020년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은 200111561달러와 비교해도 19년 만에 3배 가까이 급증했다. 집계 기관마다 차이는 있지만,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은 보통 상위 30개 국가 및 지역 안에 들어간다.

 

최근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을 이웃 일본과 비교한 보도도 더러 나온다. 지난해 말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일본경제연구센터 자료를 인용해 일본의 1인당 명목 국내총생산이 2027년엔 한국, 2028년엔 대만보다 적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통화의 실질 구매력을 나타내는 구매력평가 환율로 계산하면, 이미 2020년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43319달러)이 일본(41732달러)보다 많다. 이와 같은 현상을 짚는 보도가 최근 일본에서 간간이 나온 배경에는 1990년대 초 거품경제 붕괴 이후 일본 경제가 장기 침체되고 일본인 소득이 좀처럼 늘지 않는 현상에 대해 내부적으로 분석하는 일이 잦아진 점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1인당 국내총생산은 국민 개개인의 소득 증가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통계다. 국민 소득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국면에서는 생활의 극적인 변화가 눈에 보인다. 2차 대전 후 고도 경제성장기 이후 일본 가정에는 “3종의 신기라고 불렸던 텔레비전, 세탁기, 냉장고가 보급돼 평범한 서민들이 살아가는 일상생활의 풍경이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과거에 대한 향수가 섞여 있겠지만 많은 이들이 고도 경제성장기에는 생활이 이전보다 윤택해졌고 오늘보다 내일의 삶이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고 회상한다. 비슷한 변화는 이후 한국과 대만, 중국에서도 일어났다.

 

통계를 보면 한국인 평균 소득은 최근 10년 사이에도 늘고 있다. 통계청의 월평균 실질 임금소득 변화 추이를 보면 2011년 약 256만원에서 2020301만원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런 숫자의 변화에 감흥을 크게 느끼지는 못한다. 삶이 풍요로워졌다는 느낌이 크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삶의 질과 관련된 다른 지표들을 보면 어두운 측면이 보인다. 통계청이 발표한 한국인의 자살률은 1997년까지 인구 10만명당 15명 이하였으나, 외환위기를 계기로 증가한 뒤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2020년엔 10만명당 25.7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최악이다. 10만명당 20명 이상 자살자가 나온 회원국은 한국을 빼면 리투아니아가 유일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가 남녀 임금의 중간값 격차를 이용해 발표하는 남녀 임금 격차 순위도 한국은 조사 대상 28개국 중 꼴찌다. 파리경제대학교에서 설립한 연구기관인 세계불평등연구소가 지난해 말 낸 세계 불평등 보고서 2022’를 보면 한국 성인의 평균 소득은 서유럽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불평등 정도는 서유럽보다 심하고 미국과 비슷한 수준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연구소는 보고서에서 한국은 1960년대와 90년대 사이에 급속한 산업화 경제발전을 경험했는데, 이 발전에는 경제의 자유화와 규제 완화가 약한 사회적 보호 맥락 속에서 이루어졌다고 지적한다. 1인당 국내총생산의 수치적 증가를 기뻐하기만은 어렵다고 점점 느낀다.

조기원 | 국제뉴스팀장 한겨레 :2022-01-06

 

 

기득권과 결합한 윤석열의 '불안한 동거'

무능한 국민의힘과 선거민주주의의 위기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정치에 발을 들인 건 이미 국민의힘에 입당하기 전이었다. 검찰총장 시절에 조국 사태를 둘러싸고 집권세력이 보인 과도한 진영논리와 대립하면서 세력 대 세력의 대결을 동력으로 하는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셈이 되고 말았다. 문재인 정권을 지지하는 이들은 윤 후보를 비난했고, 정권교체를 바라는 세력은 응원을 보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해 3월 윤 후보가 검찰총장직에서 물러난 이후 정치에 입문하리라는 건 상식에 속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보수야당에 몸을 담지 않고 제3지대에 머물 것이라는 전망도 만만치 않았다.

 

이러한 예상은 빗나갔다. 대권에 도전할 수 있는 현실적 기반의 부재는 결국 적의 적인 국민의힘이라는 보수세력을 택하게 만들었다. 국민의힘 입당 전까지 윤 후보는 보수 이미지와 썩 부합하지 않았다. 그저 강직한 검사요, 법과 원칙의 수호자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6월 대선 출마 선언, 7월 말 국민의힘 입당 이후 그는 기존의 보수 기득권을 가진 정치인들을 빠르게 흡수하기 시작했다. 경선 과정에서는 문재인 정권 심판을 바라는 압도적 당심의 지지에 힘입어 쟁쟁한 정치선배들을 누르고 대선 후보를 거머쥐었다.

 

대선 후보로 선출된 이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압도하는 지지율 여론조사는 단순히 컨벤션 효과를 뛰어넘는 것이었다. 정권심판론과 윤 후보에 대한 기대가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일어난 현상이다.

 

양대 정당의 대선 레이스가 본격화되면서 윤 후보의 말에서 비롯되는 문제들은 단순히 미흡한 언어 구사력과 정무적 판단의 미숙이라고 보기엔 지나치게 잦았고, 인식의 한계와 철학의 빈곤을 드러냈다. '전두환' 관련 발언이나 '120시간' 발언, '자유'에 대한 인식 등은 보편성과 상식을 결여한 발언들이었다. 최근 윤 후보 지지율의 하락은 선거대책위 불화, 가족 리스크 등의 악재가 겹친 것이지만 본질은 후보 개인의 역량이다.

 

반면 이 후보는 빠르게 변신했다. 제기되는 여러 의혹과 비판에 재빠른 사과로 응수했고 문재인 정부와도 과감하게 차별화 전략을 택했다. 부동산 관련 세금 발언에서 혼란을 초래하고 정부 정책과도 엇박자가 났으나 그의 강한 이미지를 희석시키고 중도층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행보를 이어갔다.

 

잦은 사과나 정제되지 않은 정책 발표가 부정 여론을 증가시킬 수 있음에도 그는 부단하게 유연함과 실용의 이미지를 시도했다. 여전히 박스권에 갇힌 지지율이지만 분란이 그칠 날 없는 국민의힘의 자중지란에 힘입어 윤 후보를 오차범위 밖에서 앞서고 있다.

 

윤 후보는 기성정치 문법을 벗어났어야 한다. 그러나 그는 여타 정치인들 못지않게 당의 기득권과 결합했다. 현실정치의 방식을 과감히 벗고 진보보다 더 진보 같은 발언과 인식을 선보였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현대정당은 대체로 좌와 우의 지지를 견인하기 위한 전략을 기본으로 하는 포괄지지정당(catch all party)의 형태를 띤다. 이러한 견지에서는 이 후보는 정석에 입각한 교과서적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후보가 보수로 우클릭하는 전략을 구사하듯이 윤 후보는 과감한 좌클릭 시도를 할 때 중도의 주목을 받을 수 있다.

 

윤 후보는 정치신인이라는 장점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국민의힘 입당 이후 당내 주류와 결합하였고, 이는 스스로의 뇌리에 각인되어 있는 반문 정서를 더욱 자극함으로써 선거 전략을 지나치게 반문과 정권교체론에 의지하는 전략적 한계를 노출했다.

 

급기야 특정 집단에 둘러싸여 있다는 이른바 '윤핵관' 논란과 선대위 갈등은 윤 후보 본인 리스크와 겹치면서 지지율의 급전직하로 나타났다. 이준석 대표의 책임론이 당내에서 비등했지만 결국 갈등과 내홍을 진압하고 당내 화합을 모색할 책임은 후보에게 있다는 사실은 윤 후보 처신의 반경을 좁혔고 결국 선대위 해산과 함께 최대위기를 맞고 있다.

 

가까스로 윤 후보와 이 대표의 갈등이 봉합은 됐으나 불안한 동거다. 이 후보 역시 민주당 선대위 갈등에서 자유롭지 않았으나 이낙연, 정세균 등 경쟁 정치인들과의 결합을 유도해 내고 국민의힘의 갈등 상황과 대조적으로 안정적 팀워크를 이루어냈다.

 

윤 후보의 지지율 하락은 자연스럽게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 이슈 부상과 연계된다. 이에 맞서 민주당은 새로운 물결 김동연 후보와의 연대도 입에 올리고 있다. 이 후보와 윤 후보의 지지율의 추이에 따라 연합정치는 막판에 대선의 최대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이지만 역대급 비호감 선거라는 20대 대선에서 대장동 의혹과 고발사주 의혹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진실 규명을 뒤로 한 채 치러지는 선거, 한국사회의 구조적 문제들을 해소하기 위한 권력구조와 정치체제의 토론이 전무한 선거, 선거 막판에 등장할 가능성이 있는 단일화 논의들이 선거의 의미를 희석시키고 있다.

 

윤 후보가 대안세력으로서의 비전을 보여주지 못하는 사이 정권교체론은 지배적 선거구도로서 의미를 상실해가고 있다. 무능한 제1야당의 혼돈이 가뜩이나 혼란스러운 선거민주주의를 더욱 왜소하게 만들고 있다. 3지대의 의미가 이번에도 단일화 논의로 덮이고, 집권세력의 내로남불도 가려지고 있다.

 

1야당 후보의 역량을 끌어올리지 못한다면 선거 막판에 후보교체론, 단일화 등의 선거공학에 가려 한국사회의 의제가 가려지는 선거민주주의의 위기로 나타날 수 있다. 국민의힘의 정상적 선거궤도로의 복귀가 중요한 이유이다.

최창렬 용인대 교양학부 정치학 교수 | 프레시안 2022.01.07.

 

 

대통령이라는 말에 새겨진 군주제의 망령

백신의 희망으로 시작했던 2021년이 거리두기 강화 조치 속에서 조용히 저물어가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만은 연일 북적이며 뉴스를 쏟아낸다. 쏟아지는 뉴스를 보다 보면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인지 의심하게 하는 표현들을 만나게 된다.

 

최근 국모논쟁이 대표적이다. ‘국모를 꿈꾸는 신분 세탁업자라는 표현에 이어 국모를 뽑는 건 아니다라는 말까지 대통령 선거를 앞둔 정치권에서 국모라는 표현이 난무한다. 대통령 선거가 왕을 뽑는 선거도 아니고 피선거권이 성별에 의해 제한을 받는 것도 아닌데,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대통령의 배우자를 국모라 표현한다.

 

국모 논쟁은 정치권의 뿌리 깊은 군주제 망령과 함께, 정치권의 낮은 성인지 감수성 수준을 그대로 보여준다. 시민들은 성별이 드러나지 않도록 대통령의 배우자’ ‘후보자의 배우자라는 표현을 사용해야 한다는 수준에 이른 지 오래인데, 정치권은 국모 논쟁을 하고 있다. 그럼 결혼한 여성 대통령의 배우자는 국부란 말인가? 왜 부끄러움은 늘 국민 몫이어야 하는가?

 

우리의 대표는 하늘이 아니라 우리가 낸다

정치권에 깊이 서려 있는 군주제의 망령은 이처럼 정치권에서 사용하는 언어를 통해 드러난다. 대통령 선거에 나가는 것을 대권에 도전하다’ ‘대권을 꿈꾸다등으로 표현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대권(大權)’은 말 그대로 왕이 지녔던 큰 권한을 상징한다. 대통령이 되려는 것을 왕권에 도전하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주권자 입장에서는 몹시 불쾌하다.

 

정치인의 입을 통해 나오는 왕조 시대의 경구에서도 군주제의 망령이 서려 있음을 읽을 수 있다. ‘군주민수(君舟民水)’는 최근 정치권에서 자주 인용되고 있는 경구다. 왕을 배에, 백성을 물에 비유한 이 말은, 물은 배를 뜨게도 하지만 뒤집을 수도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순자(荀子)왕제(王制)편에 나오는 말로, 2016년 탄핵 정국 속에서 교수들이 뽑은 올해의 사자성어로 발표됐다.

 

그 후로 정치인들은 이 표현을 자주 언급한다. 그들은 하나같이 배를 띄우는 것도, 뒤엎는 것도 국민임을 명심하고 겸손한 자세로 국민들을 두려워하겠다고 말한다. 그런데 국민이 이라면 정치인은 ’, 즉 군주란 말인가? 겸손한 자세로 국민을 두려워한다는 말이 무색하다.

 

대한민국의 국민은 물이 아니고 배다. 대한민국에서 물은 바로 선거를 통해 선출된 우리의 대표자들이다. 그러니 이 경구를 듣고 두려워해야 하는 사람은 주권자인 국민이지 정치인이 아니다. 선거 때마다 주권자인 국민은 투표권을 잘못 사용하면 대한민국호가 좌초될 수 있음에 두려움을 느끼고 이 경구를 가슴에 새겨야 한다.

 

그 어떤 표현보다 군주제의 망령이 가장 깊게 서려 있는 말은 대통령이다. ‘크게 거느리고 다스린다는 의미를 가진 이 말은 주권자를 통치의 대상으로 만들어버린다. 19세기 말 일본으로부터 조선에 수입된 단어인 만큼 군주제의 세계관이 충실히 담겨 있다. 대통령 선거에 나가는 것을 대권에 도전한다고 표현하며 왕이 되려는 듯 행동하는 것도, 우리가 뽑은 대표가 왕인 양 행동하며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태도를 갖게 하는 것도, 모두 우리의 대표를 대통령이라고 부르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202239일은 우리의 주권을 위임받아 우리를 위한 정책을 실행할 대표자를 선출하는 날이다. 왕은 선출되는 것이 아니니 하늘이 낸다는 말이 맞다. 하늘이 낸다는 말은 우리가 어쩔 수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대표자를 우리가 직접 선출한다. 그러니 우리의 대표는 우리가 내는 것이지 하늘이 내는 것이 아니다. 잘못 내면 대한민국호가 뒤집어질 수 있으며 그건 우리의 책임이다.

신지영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시사인 2022.01.07

 

kbk****언어는 의식을 담는 그릇이다. 우리의 의식 아니 언론의 의식이 아직 그 수준일 뿐이다. 생각의 결과는 말이고. 말의 결론은 행동이다. 그사람의 미래는 그사람의 오늘 행동을 보면 알고 그것을 검증하기 바란다면그사람의 과거를 쫒아 주변을 보면 안다.

오늘의 언론이 과거 전재독재를 욕하면서도 추종하고 닮아서 스스로 전제군주가 되었음을 말한다.

 

최아영 -이런 시각의 글, 새롭네요? ㅎ 저도 언어에 관심이 많은 편이에요. 선거는, 민주주의의 한 부분이지, 전체는 아니죠. ? 뽑았든 못 뽑았든 시민들이 내내 다듬어가야 합니다. 잘못? 선택했다고 해서, 투표한 사람이 100퍼센트 책임져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당선되기 위해 거짓말로 시민을 속였을 수도 있으니까요. 다만, 사기 당한 수준이라면 판을 뒤집어버리는 권한과 책임도 시민에게 있는 것은 맞다고 생각합니다.

 

인공지능 시대가 우리에게 던지는 화두

지난 연말, 세계로봇연맹(IFR)이 발표한 세계 로봇 보고서 2021’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전 세계 로봇 밀집도에서 1위를 차지했다. 로봇 밀집도란 노동자 1만명당 도입한 로봇 대수를 나타내는 지표이다. 우리나라는 2010년 이후 줄곧 1~2위를 오르내릴 정도로 로봇 도입에 적극적이다. 이번 조사 결과만 보더라도 전 세계 평균이 126대인 데 비해 우리나라는 932대라고 하니, 거의 일곱 배가 넘는 수치다. 각종 산업시설에서 로봇을 선호하게 되는 이유는 자명하다. 인간보다는 작업의 정밀도나 작업 속도 면에서 월등한 능력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과 달리 일하다 말고 담배 피우러 나간다든가, 업무시간에 친구와 문자를 하거나, SNS 활동을 하지 않는다. 물론 휴가나 병가 신청도 없다. 최근에는 로봇이 작업하는 생산공장의 보안업무마저도 다른 경비견 로봇이 전담하고 있다. 한마디로 그곳에 더 이상 인간은 없다.

 

그렇다면 우리나라가 로봇 밀집도 세계 1위에 올라섰으니,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는 국가가 되었다고 마냥 뿌듯함을 느껴야 할까. 안타깝게도 이 통계 결과는 명암이 뚜렷하다. 즉 산업현장에서 로봇의 도입 비중이 높아질수록, 그만큼 인간 노동자의 해고 위험은 커진다. 육체노동뿐만이 아니다. 사무직 노동자들의 일자리도 예외는 아니다. 이미 수년 전부터 월스트리트의 골드만삭스를 비롯한 투자자문 회사들은 인간 업무를 인공지능으로 대체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딥 러닝 기술이 탑재된 투자 데이터 분석 인공지능 켄쇼를 들 수 있다. ‘켄쇼라는 이름은 불교 수행자들이 참선 수행을 통해 얻은 첫 깨달음을 뜻하는 견성(見性)’이라는 용어(일본식 발음)를 빌려온 것이다. ‘켄쇼는 마치 수행승들이 마음을 고요히 하고 외부의 자극에 반응하지 않듯이, 오로지 투자분석과 예측에만 집중한다. 그러다보니 인간은 업무수행 능력 면에서 애초에 켄쇼의 상대가 되질 않는다.

 

월스트리트의 투자금융회사들은 2015년 이후부터 자신들을 금융회사가 아닌 IT회사로 규정하고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을 해오고 있다. 디지털 전환의 길로 가겠다는 선언이다. 이처럼 인공지능과 로봇의 등장은 육체노동이든, 정신노동이든 가리지 않고 기존 인간을 대체하고 있다. 이 변화는 우리에게 이전에 하지 않았던 고민과 사유를 가져오게 한다. 우리는 어떤 사유와 성찰로 이 변혁의 시대를 살아낼 수 있을까.

 

과연 어떻게 하면 인공지능 로봇 시대에 를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창의성과 고유성을 가진 대체불가능한 존재로서의 나 말이다. ‘켄쇼처럼 인공지능의 이름을, 깨달음을 상징하는 단어로 지칭하는 세상이다. 수행이나 깨달음마저도 인공지능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일 수도 있다. 어쩌면 가장 본질적인 인간의 내면 영역까지도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있다는 불길한 암시와도 같다. 이대로라면 어설픈 자기계발 노력으로 인공지능 로봇을 따라잡을 순 없을 것이다. 아니 인공지능과 물리적 노력으로 경쟁하겠다는 접근 자체가 망상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만이 던질 수 있는 질문은 무엇일까. 이 지점에서 한 번 생각의 방향을 바꿔보는 건 어떨까. 지금까지 우리가 줄곧 시선을 고정했던 바깥세상의 변화가 아닌 우리 마음을 응시하는 쪽으로 말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서구적 합리성을 내세워 자본주의가 가져다주는 풍요를 소비하기에 급급했다.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앞서고 더 차지하기 위해 타인과의 경쟁에만 몰두해왔다. 성공하기 위해 늘 외부 세계의 변화에만 촉각을 곤두세운다. 인공지능과 로봇 시대라고 다를 바 없다. 하지만 그럴수록 미래에 대한 우리 내면의 불안과 혼란, 두려움은 더해갈 뿐이다.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당장 뭔가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행동하기 전에 잠시라도 마음을 가라앉히고 자신에게 물어보자. 모든 것이 복사와 붙여넣기(copy and paste)’가 가능해진 디지털시대에 그 무엇과도 대체될 수 없는 란 누구인가 하고 말이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불교 승가의 전통 속에서 오래된 질문이기도 하다. 이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비단 수행승들만 품는 의문이 아니다. 인간으로서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면서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자, 이 시대가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화두이기도 하다. 겨울 날씨는 춥고, 거리 두기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차분히 앉아서 밖으로만 향하는 내 마음을 안으로 거두어 보는 건 어떨까.

보일 스님 해인사 승가대학 학장 경향 : 2022.01.08

 

 

어느 탈북민의 고독사

새해 첫날 아침, 습관처럼 우리나라와 독일의 코로나19 상황을 번갈아 검색했다. 주변 국가들이 초유의 오미크론 사태를 맞이하고 있는 요즘, 독일 코로나19 분석 자료를 살피다 보면 2년 동안 거의 변화가 없었던 한 가지 상황을 마주할 수 있다. 거의 모든 지표에서 동쪽과 서쪽이 구분된다는 것이다. 과거 동독이었던 지역은 확진자 수와 백신 접종률, 그 밖의 모든 면에서 과거 서독보다 훨씬 악화한 상황을 꾸준히 보여준다. 동독과 서독, 그 경계가 이미 30년 전에 사라진 것이 무색할 정도로 또렷하다. 이것은 오늘날까지도 독일에서 사회 통합이 시대적 과제인 이유 중 하나다.

 

우리나라의 사회 통합은 상황이 어떨까. 바이러스가 세계 곳곳에 위협적으로 침투했던 지난 2년 동안 우리나라에는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했던 사회적 갈등 문제들이 계속 터져 나왔다. 문제를 해결하고 갈등을 봉합해야 한다는 데는 모두가 합의했다. 그러나 눈앞에 놓인 문제가 시급해 보일수록 뒤로 밀려나는 것들이 있다. 그런 문제들은 우리가 꾸준히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어느새 배제되어 버린다.

 

지난해 탈북민 사망자 106명 중 49명의 사인은 미상이었다. 어째서 미상인지 찾아보고 싶었는데 쉽지 않았다. ‘2020 북한이탈주민 사회통합조사에 따르면 자살 충동을 느낀 탈북민은 전체의 13%에 달했다. 자살률이라면 지독히 악명 높은 대한민국 국민 전체는 같은 지표에서 5.2%를 보였다. 탈북민 자살 충동의 이유로는 신체적·정신적 질환(29%), 경제적 어려움(28.5%), 외로움(16.8%)이 꼽혔다. 그들의 소리 없는 죽음을 우리는 얼마나 이해하려 노력하고 있을까. 자료가 보여주는 그들의 부적응, 좌절, 우울은 이미 그들이 사회에서 암묵적으로 배제되고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드러내는데도 말이다.

 

다시 독일 역사로 돌아가 보자. 물론 서독으로 넘어가려는 동독인들을 막기 위해 장벽이 세워지고 비밀경찰이 활동했지만, 과거 구 서독과 구 동독은 지금까지도 분단국인 우리보다 교류가 많았다. 통일 직후에는 400만명에 달하는 동독인들이 서독으로 이주했다. 자유의 나라, 균등한 일자리 기회가 보장되는 민주주의의 나라. 동독인들은 서독을 그렇게 여겼을 것이다. 서독 역시 동독 시민들을 사회·문화적으로 평등하게 대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서독의 도시들에서, 많은 동독인은 터키·러시아·우크라이나 이주민들과 같은 계층으로 분류되었다. 시장경제에 적응하지 못한 동독 사람들은 스스로 2등 국민으로 지칭하기에 이르렀다. 몇 년 후 소외와 좌절감에 지친 동독인들은 그들의 고향으로 재이주를 시작했다. 저렴한 집값, 사회주의에만 한정되어 있던 분명한 장점들. 그것은 고향에 가야 할 이유였다. 그때부터 통일 독일의 각종 사회지표도 자연스럽게 동독과 서독으로 분리된 채 고착화되었다. 겨우 2년 된 코로나19 지표마저 이런 분리의 역사를 다시 보여준다.

 

두 지역 사이에는 여전히 무너지지 못한 심리적 장벽이 존재한다. 동쪽 도시의 꽤 많은 사람은 통일 후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자신의 정체성이 동독에 있다고 생각한다. 놀랍게도 동독을 경험해본 적이 없는 젊은 세대 역시 그렇다. 난민 유입 문제가 크게 불거졌던 몇 해 전, 동독인들은 난민들이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아가고 있다며 시위에 나섰다. 이렇듯 지난 수십 년 동안 서독과 동독이 통합되는 과정은 진통에 가까웠다.

 

하물며 한국에 대한 완전한 정보 없이 이곳에 들어온 북한 사람들이 겪고 있을 괴로움은 어떨까. 제대로 된 목소리 한번 내보지 못하는 그들의 죽음은 또 어떤가. 2020년까지 북한에서 나와 한국에 온 사람들은 33752명에 달한다. 목숨을 걸고 고향을 탈출해 이곳에 정착하기로 한 사람의 숫자다. 탈북민은 일단 한국에 들어오면 대한민국인의 지위를 얻게 된다. 같은 말을 쓰고 한국식 통합교육을 받고 제도적 지원을 받는다고 해서 사람들의 마음마저 자연스레 대한민국인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들이 궁지에 내몰리지 않도록 하는 건 조금 더 따뜻한 관심이다. 2022년 새해, 조금 더 세심히 주변을 살피고, 곁을 내어주고, 우리가 함께 사는 것을 잊지 않는다면, 탈북민뿐만 아니라 이곳에 터를 잡고 사는 어떤 사람들도, 그리고 우리 자신도, 그러지 않아도 각박한 지금의 세상을 살아내는 것을 극한의 고통으로만 느끼지는 않게 될 것이다. 우리보다 일찍 상황을 겪은 독일의 사례를 살피며 우리는 우리 앞에 닥칠 문제들을 미리 대비할 수도 있다. 모두가 함께 고민하는 한 희망은 있다.

최정애 전남대 교수·소설가 경향 : 2022.01.08.

 

 

기후변화 시대 변화의 힘저항의 힘

미국 캘리포니아 오렌지 카운티는 바로 위에 있는 로스앤젤레스 카운티와 더불어 미국 내 한인이 많이 사는 곳이다. 로스앤젤레스 카운티는 오래전에 발달한 도시인 만큼 낡은 도시의 모습이 곳곳에서 나타난다. 반면 오렌지 카운티는 한때 오렌지족이 오렌지 카운티에서 유래됐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부유하고 세련된 느낌이 나는 곳이다. 그 오렌지 카운티를 대표하는, 어쩌면 가장 미국다운 헌팅턴비치는 한적한 해안 지대가 서부 연안을 따라 가장 길게 펼쳐져 있는 아름다운 곳이다. 길게 뻗은 야자수와 일년 내내 눈부시게 화창한 태양, 드넓게 펼쳐진 백사장과 쉼없이 넘실거리는 태평양의 파도는 남부 캘리포니아 특유의 여유로운 해변 문화를 탄생시키며, 연중 자전거를 타고 해변을 달리거나 비치발리볼을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또한 속칭 서프 시티 유에스에이(Surf City USA)’라 불리며 전 세계 서퍼들이 서핑을 즐기고, 또 그들의 서핑을 보기 위해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굴착장치가 원유를 뽑아내고 있다. / AFP연합뉴스

 

몸살 앓고 있는 헌팅턴비치

그 아름다운 헌팅턴비치가 몸살을 앓고 있다. 202110월 초, 캘리포니아 남부 해안에서 약 3000배럴 이상의 기름이 유출되는 최악의 환경사고가 발생했고, 한때 기름띠는 헌팅턴비치 주변 9에 걸쳤다. 이 기름은 헌팅턴비치에서 약 8떨어진 해상에 있는 석유 굴착장치와 연결된 송유관에서 유출된 것으로, 롱비치 항구에 들어가기 위해 대기 중인 대형 화물선에서 내린 닻이 원인이 됐다는 조사결과가 발표됐다.

 

킴벌리카 헌팅턴비치 시장이 환경 재앙이라고 경악한 것처럼 이 사고로 인한 환경적 피해는 막대했다. 헌팅턴 해변에는 기름으로 뒤덮여 떼죽음을 당한 새와 물고기들이 떠밀려 왔고, 주요 야생동물들이 서식하는 주변 습지의 생태계가 파괴됐다. 기름을 뒤집어쓴 새들과 죽어버린 헌팅턴 해변의 모습은 석유 개발·성장에 몰두하던 미국인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사건으로 각인되고 있다.

 

최첨단 정보통신(IT) 산업이 즐비한 실리콘밸리와 풍요로운 서부해안 비치로 상징되는 캘리포니아에 왜 석유 굴착장치가 있었을까? 캘리포니아는 한때 텍사스와 더불어 원유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주였다. 지금은 비교적 많이 줄어들었지만, 로스앤젤레스 주변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지상에서 석유를 퍼올리는 펌프들을 볼 수 있다. 캘리포니아 근해에도 해상 유전이 많다. 지난해 발생한 기름유출사고의 원인도 엘리(elly)라는 해상 굴착장치와 연결된 송유관에서 시작했다. 생산량이 최고점이었던 1985년 이후 계속 하락하는 추세지만 캘리포니아는 여전히 미국 전체 주 가운데는 7번째로 많은 원유를 생산한다. 동시에 최근 대규모로 셰일가스가 발견돼 잠재 석유자원도 풍부한 지역이다.

 

캘리포니아 사람들은 새로운 유전의 발견을 어떻게 바라볼까? 더 많은 석유자원을 가지게 된 정유·가스업계는 환호하지만, 개발에 따른 환경오염과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려는 환경단체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히 셰일가스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지하 셰일층에 고압의 물을 쏴 암석을 파쇄한 뒤 석유와 가스를 얻는 수압파쇄(fracking) 공법을 이용하는데, 이는 많은 수자원이 필요하고 지하수 오염 같은 환경파괴의 우려가 크다. 캘리포니아는 항상 물 부족 문제로 고통받아왔기 때문에 셰일가스 개발에 반대하는 환경단체의 주장은 이곳 지역뉴스에서 자주 보인다.

 

환경단체들의 주장에 힘입어 올해 20214, 캘리포니아주 뉴섬 주지사는 3년 뒤부터 수압파쇄를 새로 허가하지 않겠다는 과감한발표를 했다. 동시에 석유채굴을 2045년 전에 전부 중단시키겠다고 계획을 밝혔다. 그러나 이것이 주지사의 힘만으로 가능할까? 아직까지 캘리포니아주 경제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정유·가스업계의 막강한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고, 주의회에서 관련 법안이 통과되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친환경을 지지하는 세력과 기존 석유산업의 세력이 충돌하며 줄다리기를 이어가고 있다. 이러다 팽팽했던 줄다리기의 줄이 한쪽으로 쏠리는 기름유출사고가 발생했다.

 

미국은 현존 최대 석유 생산국이자 최대 석유 소비국이다. 동시에 석유는 오랫동안 가장 미국적인 상품이자 산업이었다. 미국에서 석유가 최초로 발견됐고, 석유를 이용한 산업화도 가장 빨리 발전했다. 그랬던 미국이 기후변화 시대로 들어오면서 석유 같은 화석연료 대신 태양광과 풍력 같은 무한하고 친환경적인 에너지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특히 지난해 1031일부터 2주 동안 영국 글래스고에서 진행된 제26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6)에 이곳 북미 언론도 큰 관심을 보였다. 최대 쟁점 사항인 지구 온도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이내로 억제하려는 목표를 논의했지만, 구체적인 실행방안에 대해서는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새로 대두된 그린플레이션

최근 북미에는 친환경을 의미하는 그린(Green)’과 물가상승을 의미하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을 합성해 만든 그린플레이션(Greenflation)’이라는 단어가 자주 보인다. 친환경 에너지 수요가 늘어나면서 이에 필요한 구리, 알루미늄 같은 원자재 가격이 뛰어오르고,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면서 에너지 가격이 인상돼 경제 전반의 물가가 상승하는 인플레이션을 뜻한다. 역설적이게도 전 세계가 탄소중립과 친환경의 가속페달을 밟으면서 화석에너지 가격은 오히려 폭등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풍력과 태양광 같은 친환경 발전량이 필요한 에너지 수요를 지속적으로 충족하지 못한 상태에서 채굴 감소로 화석연료가 품귀현상을 보이자 화석연료의 가격이 급상승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202011월 캐나다 토론토 지역의 휘발유 판매가격은 갤런당 0.99달러였는데, 계속 상승하면서 지난해 11월에는 1.44달러로 1년 만에 45%가 올랐다. 매번 주유소에 갈 때마다 휘발유 가격이 올랐다는 것을 느끼며, 현재 북미에서 진행되는 인플레이션의 주요 원인이 에너지 때문임을 체감한다.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려는 기후변화 시대의 변화의 힘과 화석연료를 마음껏 썼던 익숙한 관성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산업혁명 시대의 저항의 힘이 부딪히면서 주변에 마찰음이 들린다. 그린플레이션이 악화되고 글로벌 인플레이션 우려도 커지면서 역설적으로 친환경 에너지산업은 의문점을 남기기도 한다. 하지만 캘리포니아 기름유출 사고처럼 기후변화 시대의 힘은 거스를 수 없는 방향이라는 건 분명하다. 어떤 속도로 움직여야 할까? 어려운 숙제다.

<정봉석 하이드라텍 연구원> 주간경향 2022.01.10.

 

 

정용진 씨가 쏘아올린 작은 '멸공'과 실패한 대선주자의 ''

'청년 정치'를 주문했더니 '청년 연기'하는 아재가?

신세계 그룹 부회장 정용진 씨가 '멸공 챌린지'를 혼자 벌였을 때는 그냥 해프닝일 줄 알았다. 그런데 야권 유력 대선주자인 윤석열이 '멸공'의 밈으로 걸어들어온 것은 더이상 해프닝이 아니게 됐다.

 

'멸공(滅共)', 전쟁의 언어다. 과거 이념에 따른 체제 갈등이 극심하던 냉전 시기에 한국 뿐 아니라 소위 '자유 진영'에서 자주 외쳤던 말이다. 독재 체재의 한국에서는 국가의 병영화에 따른 상징으로 군에서 뿐 아니라 국민적 정신 무장을 위해 전사회적으로 사용됐다.

 

멸공은 공산주의를 멸()하자는 것이다. '승공(勝共)'과는 조금다르다. '승공'은 공산주의와 체제 경쟁에서 승리하자는 의미가 강한(물론 한국 사회의 맥락에서, 그리고 한국의 군대에선 승공도 멸공과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반면, 멸은 죽이고 없애자는 뜻이다. 멸공은 북한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도 아니다. 멸공은 '공산주의 진영' 전체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정용진 씨가 아무리 시진핑 사진이 담긴 기사 공유를 멈추고, "중국을 향한 게 아니라 윗 동네(북한)"을 향한 말이라고 강변해 봐야 소용 없다. 단어는 발화자가 내뱉는 순간 발화자의 의도를 벗어나 넓은 세상으로 훨훨 날아간다. 일례로 홍콩의 외신은 '멸공''Crush North Korea'로 뜻풀이 하지 않고 'Crush Commies'로 뜻풀이 해서 기사를 썼다. '공산주의자를 처부수자' 정도인데, 스포츠 팬들이 상대팀을 위협하는 데자주 사용되는 'Crush'란 단어보다는, 파괴하고 말살하다는 의미인 'Destroy''멸공'''의 뉘앙스에 더 부합한다.'멸공'이라는 말은 미국에서도 매카시즘을 거치며'자유주의적가치'부합하지않는말이라결론을내렸고,'코미',''등의말은상대의생각을혐오하는말인데다인종차별적요소까지있어널리사용되지도않는다.

 

단어 뜻풀이 게임을 하자는 게 아니다. '공산당이 싫어요' 정도까지는 농담이거나, 표현의 자유를 위한 것으로 해석됐다. 그런데 거기에 정용진 씨가 자신의어릴 적 추억의 단어(?) 쯤으로 생각한'멸공'이란 표현을 썼을 때는, ''의 대상이 될 사람들에게 그것이 어떤 의미로 다가올 지 생각해 봤어야 했다.멸공'의 구호 아래 얼마나 무고한 대한민국 시민들이 간첩으로 몰려 사망했는지까지말하는것은입이아픈일이긴하나,누구도그걸말하지않고넘어가는것도이상한일이기도하다.

 

'그리심각하게받아들이는거야'라고수도있다.'바이트낭비' 칼럼이 될 수도 있겠다. 하긴 정용진 씨야 개인 사업자이고, 자기 사업이 타격을 입든 말든 자신의 소신을 대중 앞에 드러내기 위한 용도였으니까 거기까진 문제없다. 관련 사업 주식 시장이 흔들리든, '오너 리스크'가 어찌됐든 본인 책임이다. 중국 공산당을 멸할지, 조선 공산당을 멸할지, 일본 공산당을 멸할지, 베트남 공산당을 멸할지 알 수 없지만, '나는 어떤 공산당을 죽이고 없앨 것'이라고 말한다 한들 그역시 정용진 씨 개인의 자유니까.

 

그러나 정치권에서 이 단어가 유통되는 것은 이야기가 다르다. 특히 야권의 대선 후보와 유력 정치인들이 앞다퉈 '멸공'을 말하며 마치 '표현의 자유'인 것처럼 포장하고 있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표현의 자유를 빌미로 혐오의 언어를 쏟아내는 미국의 트럼프 지지자들도포장지는 '표현의자유'라고 두른다. 누군가를죽이겠다는말을,그것도'셀렙'이나 '유력자', 공개된공간에서하는것은 표현의 자유일 리 없다. 이를테면 '멸공'은 상대의 존재 자체를인정하지 않는다는 걸 내포한다. 그것은 ''이고 '죽여 없애야' 할 대상이기 때문이다. 내일 한국에 공산당이 생겼을 때, 그들 면전에서 '멸공'을 외친다는 것은, 정용진 씨나 윤석열 후보가 그토록 주장하는 '자유' 안에서 용인되지 못한다. 공산주의자를 멸할 자유는 있지만, 공산주의자도 '' 당하지 않을 자유가 있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죽인다는 것은 민주주의에서 용납되지 못한다.

 

윤석열 후보의 해명도 불성실하다. 그는 단순히 '멸치와 콩을 샀을 뿐'이라는 취지로 해명했는데, 그에게는이미 이런 저런전력들이 있다. '전두환 옹호' 발언을 하고사과한 후에 개에게 사과를 건네는 사진을올려홍역을치른불과얼마되지않았다.최근 대한민국의 '언어의 프로토콜' 세계에서 윤석열 식 '문법''개 사과' 수준이라는 것을 많은 유권자들이 이미 학습했다. 사람들에게 '해석하라'고 메타포를 쥐어 준 후 '멸치와 콩' 운운하는 것은 가벼운 정치인들이나 철부지 사업가들은 할 수 있겠지만 대선 후보가 할 일은 아니다.

 

"'인터넷 밈'에 불과할 뿐인데 왜 과잉반응이냐"는 말도 별로 와 닿지 않는다. '멸공'이라는 말이 인터넷을 달궜던 때가 또 있었다. 201411월 군 입대 비리를 저질렀던 MC몽이라는 가수가 '내가 그리웠니'라는 신곡을 내자, 누리꾼들이 군가인 '멸공의 횃불'을 멜론 실시간 검색어 순위 1위에 올려 놓았던 적이 있다. 그들이 '멸공'을 활용하는 방법은 이런 식이다. 군 입대를 기피한 사람에게 '멸공의 횃불'이라는 군가를 선물한다. 그럴 때 '멸공''공산주의자를 멸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징병제 코리아'를 강조하는 맥락 위에서 제 의미를 찾는다. 병역을 마치지 않으면 멸공이라는 말을 쓸 수 없느냐며 정용진 씨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있던데, '멸공'은 이처럼병역 기피자에 대한 비판의 의미로 사용된 적도 있었다. 군 면제 비판에 '멸공'을 자유자재껏 활용하겠따는데 왜 그들에게는'멸공'을 자유자재껏 사용하지 말라고 하는가. '내가 말한 멸공'만 진짜 '멸공 챌린지'는 아니다.절대 말의 무게를 가볍게 하지 말고, 말의 맥락을 자의적으로 거세하려 들지 말지어다.

 

'멸공 밈' 사건을 계기로, 최근 윤석열후보의'선거전략'의구심이가는 걸 멈출 수 없다.아무래도국민의힘'청년 보좌역'들의요구를필터링하지않고그대로흡수하고있는아닌가하는생각이든다.

 

최근 윤석열 후보는 "한국 청년들이 중국을 싫어한다"고 말했다. 중국을 좋아하는 청년들은 어리둥절해 진다. '어떤 면'의 중국은 좋고 '어떤 면'의 중국은 싫다고 생각하는 청년들도 황당하긴 마찬가지다. 그는 '청년들이 중국의 이러이러한 면을 싫어한다'고 하지 않고, 무작정 중국을 싫어한다고 말한다. '여성가족부 해체' 발언도 마찬가지다. 윤석열 후보 측이 '여성가족부를 쇄신하지'고 하지 않고 '여성가족부를 박살내자'고 한 것도'것의청년목소리를대변한다'이유인같은데맥락이없다. 앞뒤 자르고'한줄 공약'을 내세우는 것은 폭력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미디어의 주목도를 높이기 위해서인 것 같지만, 마치 '즉흥적'이고 '맥락 없는'것이 '미덕'인양 선거 운동을 벌이는 것은 별로 좋은 효과를 내지 못할 것 같다.이것이'2030청년들의스타일'이라는오해가생기지않길바란다.

 

정치인은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에 대해 귀를 열어 놓아야 하고, 자신이 그들의 목소리를 토대로 어떤 미래를 구상하고 있는지 유권자들에게 자세히 설명해야 할 의무가 있다. 59년생 '아재'에게 '청년 정치'를 주문했더니, 청년들과 공감대를 찾는 '장년'의 후보가 아니라, '청년 연기'를 하는 '아재'가 돼 버렸다.

프레시안 박세열 기자 2022.01.10.

 

 

엄숙한 반공에서 경박한 멸공으로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국민의힘에게는 지울 수 없는 '색깔' DNA가 있는 것 같다.

10년 전 새누리당이 당의 상징 색깔을 빨강색으로 바꿀 때만 해도 보수 정당이 이제 더 이상 레드콤플렉스를 정치적으로 활용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보였다.

물론, 이후에도 큰 선거가 있을 때마다 간혹 색깔 공세를 펴기도 했지만 별로 약빨이 없음을 국민의힘도 익히 느꼈을 터.

 

2022년 대선에 '멸공'이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옴)했다

SSG(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이 6일 인스타그램에 숙취해소제 사진과 함께 '끝까지 살아남을테다, 멸공'이라는 해시태그를 올린게 발화점이다. 이틀 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이마트에서 장을 보는 사진을 올리며 멸치와 콩을 해시태그했다. 이어, 나경원 전 원내대표가 장 보는 사진과 함께 "오늘 저녁 이마트에서 멸치, , 자유시간. 그리고 토요야식거리 국물떡볶이까지. 멸공! 자유!"라는 게시물을 올렸다.

 

이후, 국민의힘 김병욱 의원과 김진태 전 의원에 최재형 전 감사원장까지 멸공 챌린지에 동참하며 멸공의 목소리를 힘차게 외쳤다.

'공산주의를 박멸하자'는 멸공은 '공산주의를 반대한다'는 반공 보다 펀치력에서 훨씬 강하다.

 

반공은 냉전시대 군부독재정권이 통치를 합리화하고 강화하기 위해 이념적으로 애용한 정치적 구호다. 반공의 공기는 너무나 엄숙해 수많은 인권이 유린되고 민주주의는 숨을 죽였다.

 

총선과 지방선거, 대통령선거가 있을 때마다 반공은 레드컴플렉스로 진화해 적어도 1997년 대선 때까지는 '전가의 보도'였다.

 

그런데, 반공보다 더 센 멸공이 재벌기업 부회장의 입에서 튀어나오자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소속 정치인들이 쌍수를 들어 찬동하고 있다.

 

재벌기업 오너인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이야 시장자유주의자로서 공산주의를 혐오할 수 있다.

74만 명의 팔로워를 거느린 정 부회장은 진작부터 기업인이자 프로야구 구단주로서 이런 방식의 대중적인 소통 방식을 즐겨왔다.

 

그러나, 정용진 부회장이 스스로를 정치적 인플루언서를 자처하는 것이 아니고 특정 정당이나 대선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한 적도 없다. 정 부회장의 인스타그램은 프로야구 타 구단을 조롱하고 경쟁사인 롯데백화점을 불쑥 방문한 사진처럼 자신의 일상과 생각을 편하게 풀어놓은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 윤석열 후보와 국민의힘 인사들이 마치 정 부회장의 '멸공'이 마치 21세기에 부활한 시대정신인 마냥 멸치와 콩 사진까지 얹어가며 찬양하는 모습은 경박하기 그지 없다. 국민의힘과 윤석열 후보가 '멸공 챌린지'에 나선 것은 2030 세대의 반중국 정서를 자극해 지지율을 반등시키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철지난 이념 상업주의로 등돌린 2030 세대가 다시 돌아올지 의문이다. 정용진 부회장은 공산주의 시장을 포기하고 공산당과 중국, 시진핑, 북한을 마음껏 공격할 수 있다. 국민의힘은 일찍이 노태우 정부 시절 북방정책으로 대한민국 외교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고 박근혜 대통령은 2015년 시진핑 주석과 함께 천안문 망루에 올랐다.

 

집권의 역사가 민주당 보다 길고 정권교체를 주장하는 정당과 대선후보의 외교정책이 그깟 멸치와 콩 사진으로 대변되어서는 안된다.

 

소셜미디어상에 챌린지는 함께 좋은 뜻을 모으자는 선한 캠페인이 취지다. 그런 챌린지를 정치적 선전의 장으로 활용할 전략이라면 보다 공익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내용이면 좋을 것이다.

 

'멸공' 해시태그는 정용진 부회장의 취미나 놀이 정도로 그쳐야 즐겁다. 국민들이 이마트에서 장을 보거나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신다고 모두 멸공을 외치며 방문하지는 않는다. '멸공' 구호가 여전히 매력적인 구호라는 시대착오적 생각에 빠져있다면 국민의힘에게 정권교체라는 신세계는 쉽게 오지 않을 것이다.

CBS노컷뉴스 김규완 기자 2022-01-10

 

 

국민을 능멸한 3류 정치의 종착역

국민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속았다. 그는 탄핵당한 전임자와 마찬가지로 불통이었다. 문재인을 선택함으로써 우리는 거대한 기회비용을 지불했다. 눈이 밝고 유능한 지도자가 5년을 책임졌다면 21세기의 큰 축복을 누렸을 것이다.

 

저 낡은 서가(書架) 한 구석에 꽂혀 있는 철 지난 운동권 서적의 박제된 이론, 생경해진 이념이 구중궁궐 제왕적 대통령의 정신세계를 지배했다. 현실의 엄중함을 망각한 지도자의 자폐적 세계관은 시대와의 불화를 의미한다. 경제력과 기술력, 국방력이 동시에 세계 10위 이내에 들고, K콘텐트가 세계를 흔들어 놓은 선진국임에도 이 나라는 비상하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을 구실로 광장을 봉쇄하지 않았다면 민초들이 청와대를 향해 성난 함성을 토해냈을 것이다.

 

오래 탄압을 받아서였을까. 정권을 잡았지만 여전히 적에게 포위된 요새에 갇혀 있다는 진보의 강박(強迫)은 사라지지 않았다. 화자(話者)가 내 편이 아니면 옳은 얘기에도 귀를 닫았다. 과거 정권 인사는 적폐로 내몰았다. 통합과 협치를 요구한 민심과 사사건건 충돌했다. 탈선한 소득주도 성장과 비현실적인 탈원전, 인간의 소유욕을 죄악시한 부동산 정책은 F학점이다. 북한과의 종전선언에 무리하게 올인했다. 중국에 기울고, 미국·일본과의 관계를 후퇴시킨 외교안보 정책도 실망스럽다. 임기말 알박기 보은 인사까지 했다. 꼭 그래야 했을까.

 

나치당원이었던 기민당 키징거가 나치에 저항했던 사민당 브란트에게 손을 내민 장면을 되돌아본다. 두 사람은 살아온 길도, 생각도 많이 달랐다. 하지만 1966년 독일 최초의 대연정으로 좌우 통합을 이뤘다. 총리와 부총리겸 외무 장관으로 호흡을 맞추면서 민주주의를 새로운 차원으로 성숙시켰다. 통합을 거부한 문재인 정권과는 달랐다.

 

그래서 다수는 정권교체로 민심이 천심(天心)이 되는 시대가 열리기를 열망했다. 그러나 기대했던 야당은 민심을 읽지 못했고,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진보정권의 시대착오를 바로잡는 보수만의 가치를 제시하지 못했다. 분단된 반공국가라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너 빨갱이야?”라는 한마디로 진보를 제압하고 권력을 유지했던 사이비 보수의 타성이 발목을 잡았다. 게으른 무임승차자(free rider)는 한 번쯤 죽었다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없다. ‘포위된 요새론을 경전(經典) 삼아 목숨 걸고 싸우면서 자기 진영의 부조리와 악행에 눈감는 사이비 진보의 결기는 그만큼 강력하다.

 

유럽의 영혼을 움직인 독일 보수 정당의 선구적 변신을 우리는 기대할 수 없는 것일까. 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사회적 시장경제를 제시한 정당은 진보인 사민당이 아니라 보수인 기민당이었다. 초대 총리 아데나워와 경제장관 에르하르트가 결단했다. 자유주의적 시장경제를 기본으로 하되 진보의 핵심 가치인 사회연대와 통합을 접목시켰다. 빈부격차를 완화하기 위한 최소한의 국가개입과 조정을 허용한 것이다. 그러자 진보인 사민당도 노동자 계급의 정당에서 탈피해 사회적 시장경제를 수용했다. 이후 대부분의 유럽국가, 그리고 한국도 받아들였다(김황식 전 총리 독일의 힘, 독일의 총리들1).

 

불임(不妊)의 한국 보수 야당은 정권을 되찾기 위한 궁여지책으로 외부에서 급조된 인물을 찾아냈다. 무능한 집단의 비겁한 결정이었다. 보수가 선택한 윤석열은 어쨌든 조국 일가의 비리를 엄호하는 문재인 정권의 불공정에 맞섰고, 공정이라는 이 시대 최고의 상징자본을 획득한 인물이다. 독일 기민당처럼 중도와 진보의 일부까지도 끌어들여 통합을 선도하려는 시도도 했다.

 

그러나 야당 실세들은 중도와 진보를 파고들어 오세훈·박형준을 서울·부산시장으로 당선시킨 김종인을 내쳤다. 청년세대가 열광하는 당 대표 이준석을 탄핵시키려다 철회했다. 피비린내 나는 내부 권력투쟁의 결과였다. 윤석열은 십상시(十常侍)’에 휘둘리고 있다는 청년보좌역의 비판을 감수해야 했다. 이제 중도 민심을 업은 안철수에게도 쫓기는 정치 초보 윤석열의 개인기에 야당의 운명이 달려 있다.

 

패색이 짙었던 집권당은 필사적인 노력으로 지지율 반등에 성공했다. 이재명은 문재인과 차별화를 시도하고 단 한 사람의 유권자도 포기하지 않겠다포괄정당(catchall party)’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중산층과 보수 유권자를 잡기 위해 부동산 세금 유예와 외교안보 우클릭도 약속했다. 표가 되면 무엇이든 하겠다고 했다가 뒤집기를 반복하고 있다. 포퓰리즘 교과서가 따로 없다. 과연 믿어도 되는 것일까.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정치 거인(巨人)이 사라졌고, 전환기 한국을 살릴 경세가(經世家)는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전근대적인 제왕적 대통령을 모셔야 한다. 이대로 가면 한국은 더 분열하고, 도약 직전에 추락하는 비극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정치인들이 위험한 대권놀이의 유혹에 빠져 통합과 분권, 협치를 실현하는 권력구조 개편을 미룬 무책임의 결과다. 국민을 능멸한 3류 정치의 종착역이 안갯속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하경 주필·부사장 중앙일보 2022.01.10.

 

hall****

이게 주필 양반의 글인가! 5번째 문단 "그래서 다수는- - - - 진보의 결기는 그만큼 강력하다" 이 문장이 왜 거기에 들어 갔을까? 문해력 부족 탓일지 모르겠지만 맥이 끊어져 아연했습니다. 그건 그렇고 독일 정치 흐름을 잘 몰라 과거 독일 정치상황이 한국과 어떻게 연계되는지 알 수 없으나, 당신의 글과 최근 연세대 박 교수의 글을 보면 마치 중앙일보의 사훈이 내각 책임제 달성인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과연 현시국의 문제점이 제도 탓인지 묻고 싶군요. 분권형 권력구조가 명품인지도 알 수 없지만, 명품을 입는다고 사람이 명품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지금 한국 정치인 의식 수준을 본다면, 그 제도는 자칫 정치 모리배들이 카르텔을 결성해 자기들끼리 주고 받는 사악한 제도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입니다. 또 야당의 운명이 윤석열 개인기에 달려 있다는 말보다는 여당의 운명이 이재명 개인기에 달려있다는 표현이 더 적확할 겁니다. 좀 더 생각하고 살면 좋겠습니다.

 

cchs****

이양반 안드레메다 출신인가? 3류정치인이 대한민국을 선진국반열에 올려 논거네. 임기말 국민적 지지율이 40% 가 넘는 데 지지하는 국민들은 다 무식한거냐? 당신은 펜을 잡을 그릇이 못돼. 한심한 양반.

 

 

leew****

선거부정도 마다하지 않는 막가는 종북좌팔들 앞에서.. 독일 기민당 어쩌고 저쩌고를 찾는게 가당치가 않아요! 박식한 분석 이전에 감시하고 걸러내는 기자의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이렇게 두리뭉실해갔고 저 떠불빽 애스키들이 콧방귀나 뀌겠냐?

 

bukm****

참 가관일세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정치적 거인이라고 했군.....언제부터? 빨간색이라고 해댄적은 없었나봐? 명심할 ㄳ은 3류정치를 논하기 전에.....친일부역자들 청산부터 논해라 제발...왜 그건 못하나 봐?

 

go****

1. 20223. 새 봄, 한국은 정직한 이재명 후보를 정직한 대통령으로 뽑아 정직한 나라가 되어 우뚝 섭니다. 2. ! 한국의 새 봄!! 2촛불혁명이여!!! 3. 어둠을 뚫고 가는 정직이 오늘의 한국의 시대정신 입니다.

 

desu**** 2022.01.10 18:00

이상 기득권 수꼴기레기의 멍멍이 소리였습니다 ㅋㅋ 이놈들 말만 들으면 이 나라는 진작에 벌써 망했어야

 

sigm**** 2022.01.10 16:24

이 나라가 오늘날 지리멸렬하게 된 것은 언론의 책임이 크며 그 중에서도 중앙일보의 책임이 가장 크다.

 

heyk**** 2022.01.10 16:06

이 양반 중앙이 3류 언론으로 전락한 건 모르시나 보네.

 

stor**** 2022.01.10 13:54

살아생전 천대했던 김대중도 이제와 거인이라 말하는걸 보면 부끄럼움을 모르는 자를 어찌 이기겠는가 싶다. 내가 부끄럽다 하경아.

 

ehwn**** 2022.01.10 12:38

반공이없었으면 오늘의 대한민국이 어찌 위아래가 일체심되서 일어나 세계적국가되었는지 싶다 영웅은 시대가난다~해왔다 지난해방후 이승만대통은 해방후이기에 당연였을거지만도 독립투사의시대가만든이승만대통아닌지 박정희정권도 급작시대가불렀다 전두환정부도 현직대통참사로 급작시대가불렀던걸거다 양김은 민주화투쟁시대의영웅으로 대통된거고 그러나노무현대통부터는 시대와정상으로의 국민들선거였다 본다 노무현정부이후부터 대선후보자들은 급작아닌 늘 지지층국민들선도해왔다 김종인은 높히면제갈공명같은 책사아닌가? 내친다는건아니라본다 자기맘에안들어했던거아닌가? 아닌당연한 권력투쟁에서일거고 민주화사회내에도 직장부터도 권력투쟁은있다 공적인정받는거~ 김종인은 선거도우는직책아닌가? 언제던밀릴수도있는거다 독재직아니다 김대중이후 노무현으로 보통사람의세계화됐고 이명박으로 경제세웠고 박근혜로 중극에 최초처럼에 우뚝섰었다 그리보면 윤석열후보는 시대가다시 부른거같다 마치여왕처럼보여준 추미애의독재적권력에나온 그윤석열아닌가

 

beas**** 2022.01.10 12:28

보수와 진보의 기본 이념을 모르는 얼치기 정치가들이 난립하는 이 나라 정치판에서는 독일과 같은 상황은 어림없을 겁니다.

 

tls-**** 2022.01.10 12:02

이준석이 야당공격은 전무하고 내부총질만하고 김종인은 뒤에서 불구경만하고 아무것도 한일이 없는걸 ...권력다툼이라고 읽다니 ㅠㅠ 당신이 곡학아세하는 기자이구나. 기자가 썩으면 자유민주주의는 없다.

 

 

기후위기로 몸살 앓는 중동

202111, ‘세상의 반이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아름다운 도시, 이란의 이스파한에서 수만명이 참가한 시위가 연속적으로 일어났다. 이스파한 도시를 가로지르며 시민들에게 풍요로운 전경을 선사하고, 식수와 농수로 사용되던 자얀데 루드강은 강바닥이 갈라져 있을 정도로 말라있었다. 바로 그 마른 강바닥에 모여 수천명의 시위대가 정부를 향해 분노의 목소리를 쏟아내었다. 대규모 반정부 시위의 이유는 다름 아닌 물 부족사태 때문이었다.

 

20217월 이란 남부 지역인 후제스탄주는 최악의 가뭄을 경험하였다. 몇 주 동안의 물 부족 현상으로 후제스탄 지역의 격렬한 시위가 이어졌다. 이란 보안군은 실탄을 쏘며 시위대를 진압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고 시민들은 분노했다.

아랍 소수민족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후제스탄 지역은 이란 농업생산의 중심지이자, 석유와 가스 매장량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하지만 미흡한 이란 정부의 대응으로 발생한 환경 피해와 홍수의 급증, 그리고 미국의 제재로 무너진 사회경제 구조는 후제스탄 사람들을 거리로 내몰았다. 이란 국민들은 ‘#KhuzestanSOS, #후제스탄에_물이_없다라는 해시태그를 달며 그들의 고통을 함께 아파했다. 한편 이란 정부는 이와 같은 시위 배후에는 이란의 사회적 불안을 일으키는 명백한 음모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란의 국민들에게 지지부진한 핵협상보다는 의 문제가 일상을 위협하는 문제로 대두된 것이다.

 

우리가 주지할 사실은 기후위기로 인한 사회적 혼란과 불안이 이란뿐 아니라 중동과 북아프리카 전체의 안보와 미래를 빠른 속도로 위협하고 있다는 점이다. 20216월 쿠웨이트는 53.2도를 기록했고 오만, 아랍에미리트연합, 사우디아라비아는 모두 50도 이상을 기록했다. 한 달 뒤 이라크의 기온은 51.5도까지 치솟았다. 이렇듯 중동은 기후변화에 가장 취약한 지역이면서도 동시에 기후변화 대책은 미흡하다. 포린폴리시 칼럼에 따르면 중동, 아프리카 지역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지난 30년간 3배 이상 증가하였다. 급격한 기온 상승과 더불어 기본적인 제반 시설과 서비스 부족이 중동, 북아프리카 지역의 기후변화에 더욱 위협 요소로 다가온다.

 

최근 몇 년 동안 가뭄과 물 부족으로 인해 알제리와 수단을 비롯한 이란, 이라크, 레바논 등지에서 시위는 계속되었다. 시리아의 가뭄이 부분적으로 시리아 내전의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시각도 있다. 2021년 여름, 이라크에서는 기록적인 더위가 사람들을 거리로 내몰았다. 이라크 사람들은 도로를 막고 타이어를 태우며 발전소를 에워쌌다. 레바논에서는 경제가 붕괴되면서 정전 사태가 일상이 되고 있다. 이렇듯 10여년 전 이란과 이라크의 광장에서 독재정권 철폐를 외치던 시민들은 이제 물과 전기 부족 등을 이유로 다시 광장으로 달려가고 있다. 아랍의 봄 이후 아직까지 불안한 중동의 국내외 정세, 내전 그리고 코로나19 위기에 이르기까지 중동 지역이 해결해야 할 문제는 복잡하게 얽혀 있다. 어쩌면 중동의 기후 문제는 종교나 이념에 따른 정치적 분쟁보다도 더욱 심각한 사회적 불안과 붕괴를 일으키는 주요한 배경이 될지도 모르겠다.

구기연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 경향 : 2022.01.12

 

 

20대 남성들의 욕구를 읽어라

심리학자들의 저서에 의하면, 설득을 잘하려면 겉으로 내세우는 주장이나 요구사항을 액면 그대로 보지 말고 그 뒤에 숨겨진 욕구(desire)를 파악하라고 한다. 예를 들어, 11년간 타결되지 않던 이스라엘과 이집트 사이의 평화협정 체결 또한 욕구에 집중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시나이반도를 100% 반환하라는 이집트와 일부만 반환하겠다는 이스라엘 사이에서 양적으로 반반 합의를 했던 것일까? 그렇지 않았다. 이집트의 경우, 일부 반환을 수용할 경우 패전으로 상처 입은 국민이 정부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고, 이스라엘의 경우 시나이반도 일부가 완충지대가 되지 않으면 국경에 군사적 긴장이 높아진다는 우려가 있었다. 이러한 우려를 고려해 양국은 반반 합의가 아니라 시나이반도를 100% 반환하되 유엔평화유지군이 상시 주둔해 완충지 역할을 하는 내용의 평화협정을 체결했다. 이렇게 욕구를 파악해 합의하는 데 11년이 걸렸다.

 

최근 특정 대선후보에게 열광하는 20대 남성들을 보면서 20대 남성들의 요구사항에 집중하는 모습을 본다. 20대 남성들이 학력고사 부활이나 사법시험 부활이라는 공약을 선호한다는 등 그들의 요구사항이 무엇인가에 관심이 쏠리는 듯하다.

 

물론 최악의 반응은 20대 남성들이 느끼는 불만은 잘못됐다고 가르치려는 것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면서 그냥 참으라는 것도 마찬가지로 최악이다. 정치인들이 20대 남성들을 가르치려만 하고, 뒤에 숨겨진 욕구를 알려고 하지 않는 모습에 얼마나 절망과 좌절을 느꼈으면, 20대 남성들이 자주 가는 커뮤니티 게시판에 글 올리고, 댓글 달아준다는 이유만으로 우리의 정치인이라고 느끼겠는가. 20대 남성들 또한 우리의 주권자이고, 우리 국민이고, 우리의 정치인과 소통하고 싶은데, 소통할 정치인조차 없다고 느낀다는 반증 아니겠는가. 20대 남성들이 대선 2번이면 30대 남성이 되고, 다시 대선 2번이면 40대 남성이 된다. 정치인들은 20대 남성들도 우리의 미래이고, 우리 정치의 미래라는 점을 모르고 있는가? 정치의 영역에서 20대 남성들의 다양한 욕구가 수용되지 못한다면, 20대 남성들이 퇴행이라는 선택을 하는 것도, 그 결과 우리 모두가 퇴행하는 것도 필연이 될지 모른다. 마치 군국주의로 퇴행하는 일본처럼.

 

반대로 최선의 반응은 20대 남성들의 주장이나 요구사항 뒤에 숨겨진 욕구를 이해하는 것이다. 20대 남성들의 욕구를 파악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다. 가령 필자가 다니는 교회에서만 봐도 대기업 또는 공기업 정규직 등 직장이나 재력을 갖추지 못하면 교회 오빠가 아니라 투명인간이다. 우리 법제도상 양산된 일자리가 투명인간을 만들고 있고, 그것이 20대 남성들에게 극복할 수 없는 좌절감을 주고 있다. 우리 정치는 이에 대한 근본적인 해답을 찾으려 하는가. 이런 부분에 대한 해답이 없기 때문에 그들은 투명인간이 되지 않기 위한 경쟁에서 답을 찾으려 하고, 그나마 그들에게 공정하다고 느껴지는 학력고사, 사법시험 부활이라는 퇴행적 선택이라도 하려는 것이 아닌가? 20대 남성들은 보수가 아니라 퇴행밖에 답이 없다고 느낀다. 이것을 해소하는 것은 정치의 몫이다.

<김윤우 변호사> 주간경향 2022.01.15.

 

 

21세기 자본의 정치경제학-피케티와 그 이후

불평등, 저성장, 기후위기가 맞물린 최악의 악순환 늪에 빠져 있는 것이 오늘 우리 삶의 위태로운 모습이다. 약자를 희생시키며 인간과 인간을 다층적으로 갈라놓은 불평등 상황에 대해 진검승부하는 해법을 내지 못하면 전환의 정치는 공염불이 된다. 소득 불평등도 물론 문제지만 더 주목해야 할 것은 부의 불평등이다.

 

토마 피케티 등 세계 유수의 학자들이 작성한 세계 불평등 보고서 2022’에 따르면 상위 10%의 소득은 전세계 소득의 52%를 차지했는데 하위 50%의 소득은 전체의 8%였다. 하지만 부의 경우, 상위 10% 부자가 전체 부의 76%를 소유한 반면, 하위 50%는 겨우 전체의 2%를 차지했다. 한국은 소득 수준에서는 서유럽만큼 부유해졌으나(한국은 당당한 선진국이다) 불평등 상황은 서유럽보다 한층 열악하다(한국은 부끄러운 후진국이다). 부의 경우 상위 10%가 전체의 58.5%, 하위 50%가 전체의 5.6%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의 경우 상위 10%46.5%, 하위 50%16%를 각각 차지했다. 사회적 안전망을 제대로 구축하지 않은 채 급속히 공적 규제를 완화한 결과 이처럼 불평등이 심화됐다는 것이다.

 

세계 불평등 보고서는 자산 불평등이 소득 불평등보다 한층 더 심각한 문제라는 것, 단지 격차가 아니라 계층 상승 기회가 막힌 불평등 세습이 문제가 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국가들의 소득 수준과 불평등 정도는 별로 상관관계가 없음을 일러준다. 포장을 바꾼 또 다른 성장주의나 낙수효과 전략으로는 오늘의 불평등 극복 과제를 감당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누진세 등 자산 평등화를 위한 획기적 대안이 절실하다는 결론이다. 이러함에도 2022년 대선 국면의 한국에서 시대착오적 극우 선동과 혐오놀이에 빠진 보수 야당 후보는 물론 집권 여당 후보까지 부동산 부자감세 공약을 쏟아내며 뒷걸음질 경쟁이니 탄식이 절로 나온다.

 

불평등이 시대 화두로 부상하면서 치솟는 집값과 주거 불안에 떨며 대중의 살림살이가 고통받는데도, 안전규제 부실로 불안정 노동자들이 줄이어 죽어나가는데도 가진 자들의 큰 목소리, 이들과 손잡은 파당적 계급정치가 상황을 호도한다. 그리고 규제완화와 노동시장 유연화로 혁신성장에 우호적인 환경을 조성해주어야 미래 먹거리를 만들고 국가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거나 불평등, 불공정을 참고 견디면 분배도 개선되기 마련이라거나 심지어 불평등은 능력 또는 기여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라는 등 불평등을 정당화하고 기득권 자본의 지배를 은폐하는 각종 변호론이 무성하다. 이런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장벽을 뚫고 불평등을 글로벌 토론 무대로 올리는 데 피케티의 공은 지대하다.

 

<21세기 자본>에서 피케티는 자본이 어떻게 변신해 과거가 미래를 잡아먹는 불로소득자 지배 불평등 사회가 득세하는지, 일종의 자본운동의 변증법에 대해 말한다. 초창기 자본은 위험감수적이고 기업가적이다. 하지만 축적이 진행되다 모종의 임계점을 지나면 불로소득자로 변질되는 경향을 보인다. 이윤 주도의 기업가적 자본주의에서 노동과 상관없이 자산 소유, 상속 부에서 수익을 챙기는 지대 주도의 세습적 불로소득자 자본주의로 퇴행하고 불평등이 심화된다. 이것이 자본의 본성과 변신을 보는 피케티의 인식이다. 그런데 그는 이 변신동학의 기초에 r(자본수익률)g(경제성장률) 부등식이 깔려 있다고 본다. 그는 rg의 시소게임에 초점을 맞추고 대담하게 rg가 고삐 풀린 자본주의의 기본모순이라고 역설했다.

 

불로소득자는 민주주의의 적이라면서 피케티는 이렇게 말한다. “경제적, 기술적 합리성은 민주적 합리성과 아무 관계가 없다. 사람들은 너무 흔히 후자가 전자로부터 마술처럼 저절로 파생될 거라고 가정해왔다. 하지만 실질적 민주주의와 사회정의를 이루려면 단지 시장이나 의회 및 기타 형식적 민주주의 제도뿐만 아니라 그 자체의 특정한 제도들이 필요하다.”

피케티가 오로지 자산 불평등에만 집중해 오늘의 불평등 문제를 진단한 건 아니다. 심각한 불평등은 불로소득자 사회(rentier society, 국역본에는 자본소득자 사회로 번역), 즉 상속 부가 매우 중요해진 초자산세습 자본주의를 통해 나타나는가 하면, 또 시이오(CEO)를 극도로 우대하는 슈퍼능력주의 사회를 통해 나타나기도 한다. 이와 관련해 뒤메닐과 레비 같은 학자는 신자유주의 체제란 자본 소유자 계급과 관리자 계급의 새로운 타협 위에 민중을 배제하는 체제라고 파악한 바 있다. 여하튼 불평등의 시공간적 정치경제학은 어떤 조건에서 어떤 방식으로 두개의 불평등 논리가 결합되어 작동하는지를 살펴야 한다는 것이 피케티의 논지다. 이는 자산 불평등과 능력 불평등이 어떻게 얽혀 복합적 불평등 체제와 계급 구조, 계급 갈등을 연출하는지 보려 할 때 귀중한 시사점을 준다. 그가 <자본과 이데올로기>라는 후속 저서를 낸 것도 이와 연결된다.

 

피케티 논쟁이 일어났고 새 연구도 진전됐다. 무엇이 문제인가. 피케티가 들고나온 rg 부등식은 매력적이지만 과연 이게 자본주의의 경향 법칙이 될 수 있겠는가. 자본의 변신과 불평등 동학을 설명할 때 자본과 노동이 가진 힘의 불균형 등 사회 세력들의 협상력 차이 및 제도 변화의 중요성에 대한 설명이 빈약한 게 아닌가. 자본과 노동 간 대체탄력성이 1보다 크다고 주장하는데 금시초문이다(서머스). 생산적 자본과 부를 명확히 구분하지 않은 채 뭉뚱그린 총량적 자본 개념은 허술하다(스티글리츠). 피케티에게는 케인스의 세계가 없다. rg 부등식이 성립해도 그게 불평등 심화를 설명하지는 못한다(스톡해머). 크리스토퍼스는 자산 소유와 시장지배에 따른 불로소득 추구를 함께 봐야 한다면서 그 다양한 양태를 파고든다. <21세기 자본>이 사회적 관계와 권력으로서 자본 동학을 연구한 게 아니고 자본권력이 만들어내는 인위적 희소성을 간과한다는 비판은 매우 근본적이다(하비).

 

따가운 비판들 앞에 피케티도 적지 않이 물러선 듯하다. 21세기 자본의 정치경제학은 갈 길이 한참 멀다. 피케티 이후 허구적 불로소득 자본과 생산적 기능 자본의 변증법을 탐구하는 일이 벅찬 공부거리가 됐다. 자본주의 비판의 사상사도 새롭게 돌아봐야 한다. 특히 프루동이 불로소득자의 착취와 생산 자본의 노동착취, 코먼스인 자연(토지, )의 사유화 등 삼중모순을 비판하고 여기에 상호성에 기반한 사회의 집합적 능력을 대치시킨 것은 주목할 만하다. 세계는 혼돈에 빠졌고 할 일은 많다. 무엇보다 자산 불평등과 불로소득 체제에 대안을 내며 모두의 안정된 살림살이, 자연과 공존하는 실체적 거주경제(폴라니) 재생의 길로 가는 데 힘을 모아야 하지 않을까.

이병천 | 강원대 명예교수·지식인선언네트워크 공동대표 한겨레 :2022-01-13

 

 

윤석열이라는 텅 빈 기표

텅 빈 기표를 대선 정국에 인용하게 될 줄은 몰랐다. 누구나 말하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못하는, 어떤 자리에 놓아도 아무 의미 없이 해석되는 바로 그 텅 빈 기표’.

 

이번 대선은 정치라는 텅 빈 기표를 드러냈다. 한 시대는 성공과 실패의 총합으로 만들어진다. 정치는 이 명제가 적나라한 분야이다. 선거가 특히 그렇다. ‘져도 이긴 선거라는 평가가 있듯 반드시 성공의 기억만 각인되지 않는다. 실제 패자가 더 주목받는 경우도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버니 샌더스를 들 수 있다. 비록 낙선했지만 각각 1995년 부산시장·2000년 총선(부산 북강서을)지역주의 균열’, 2016년 미국 민주당 경선을 민주적 사회주의로 뒤흔들었다. 거대한 저류가 어디를 향하는지 정치가 포착했던 시대였다. 2022년은 어떤 성공과 어떤 실패가 빚어낸 시대로 기억될까. 성공은 고사하고 이런 대선은 없었다는 말만 떠다닌다. 거대 정당 후보들이 뭘 하겠다고 약속할수록 불신만 커지는,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다. 시대정신마저 고작 정권교체와 정권재창출이라니.

 

다음으로 보수라는 텅 빈 기표가 확인됐다. 유난히 보수를 주목하게 되는 대선이다. 국민의힘을 보면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 출신이 대선 후보다. 민주당 출신 거물급 정치인이 대선 지도부 역할을 맡았다. 무엇보다 촛불의 성과를 지난 5년간 보수가 어떻게 가로막았는지 평가해야 할 시점이다. 지금 국민의힘과 윤석열 대선 후보가 보내는 신호는 위험하다. 여성가족부 폐지, 멸공 챌린지, 주사파 발언에서 보듯 대선 이후 사회를 반동기로 몰고 가려 한다. 보수의 재구성도 반페미, 종북 이슈를 중심으로 한 우파 재결집에 가깝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의 두 자릿수 지지율은 국민의힘이 극우화로 접어들었음을 알리는 징후다. 김성식 전 의원은 밀린 숙제를 안 한 후과라고 말했다. 실제 국민의힘은 탄핵 이후 혁신이라는 숙제를 덮어둔 채 정권교체라는 급행열차에 그냥 올라탔다. 이런 본질을 외면한 채 윤석열 후보와 이준석 대표의 봉합을 위안 삼는 보수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후보 단일화? 정권교체 여론을 쇄신과 결합하지 않고 진행되는 후보 단일화는 내홍의 가장 극적인 판이 될 게 뻔하다.

 

그다음은, 김종인 전 총괄선대위원장이 처음으로 텅 빈 기표가 된 대선이다. 김종인이란 상품은 선거나 여야 위기 국면에서 상종가였다. 중도를 무기로 가졌기 때문이다. 그의 정치력은 여야 주류의 힘을 빼는 쪽으로 발휘됐다. 2012년 대선에서 새누리당 정강정책에 경제민주화를 넣고 당헌당규에서 보수라는 말을 삭제하려 했고, 2016년 총선에서 이해찬 전 국무총리 등 당 최대주주들을 컷오프했다. 그러나 대선 레이스에서 벌어진 국민의힘 내홍에선 통하지 않았다. 몇몇 요인이 있다. 첫째, 대선 구도가 김종인이란 상품의 효용 가치를 없앴다. 김 전 위원장이 내가 곧 중도라 선언해도 비호감 대선이라 유권자들이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둘째, 김 전 위원장에게 권한을 위임할 리더가 부재했다.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 문재인 대통령 등 그간 김 전 위원장이 선택한 주군들은 리더십은 부족했지만 세력을 대표했다. 이들이 전권을 위임했기 때문에 김 전 위원장이 다소 무리하게 통제해도 지지자들은 용인했다. 그러나 윤석열 후보와 이준석 대표 리더십 정도로는 김 전 위원장에게 권한을 부여하기 어렵다.

 

정치와 보수와 김종인이라는 텅 빈 기표의 총합은 윤석열 후보로 귀결된다. 타협과 조정의 예술, 때론 악마와도 손잡아야 하는 정치를 상명하복이 몸에 밴 검찰 출신이 적응하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윤 후보가 국민의힘 대선 후보까지 오른 것은 양측 특성이 부합하기 때문이다. 극우화가 대표적이다. 극우화를 거칠게 표현하면 힘센놈 따라잡기. 힘이 있는데 누군가를 배려하는 건 골치 아픈 일이다. 극우화 징조인 혐오만 해도 거추장스러운 걸 힘으로 없애는 방법 아닌가. 여가부 해체는 그래서 정책적 텅 빈 기표이고, 앞으로 얼마나 많은 텅 빈 기표가 쏟아질지 모르겠다. 검찰 출신 후보가 극우화하는 보수정당에 주파수를 맞추는 과정. 2022년 대선의 지배적인 기억이 될 것 같다.

 

다만 마키아벨리의 용병론이 국민의힘에 뒤늦은 각성제가 되길 바란다. “어떤 군주가 자신의 국가를 용병의 토대 위에 세운다면 그의 자리는 안정되지도, 안전하지도 못할 것이다.” 반대로 김승립의 시가 윤 후보의 성찰을 돕는다면 다행스러운 일이다. “세상의 쓸쓸한 벽마다 네(주권자) 인생의 무게를 오롯이 견디는 대못으로 박혀 있고자 했다.”

구혜영 정치에디터 경향 : 2022.01.14.

 

 

결혼 통계에 나타난 상식의 반전

결혼에는 남편의 결혼(his marriage) 부인의 결혼(her marriage), 두 가지 현실이 있다.” 미국 사회학자 제시 버나드가 1972년 자신의 역작 가족의 미래를 통해 밝혔던 이 주장은 지금은 상식(常識)이 되었지만, 당시에는 기대 이상의 획기적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다수의 여성들이 결혼했다는 사실 자체에는 만족하지만, 정작 결혼생활 속에서는 그다지 행복하지 않다는 우울한 현실을 발견한 버나드는, 이를 일컬어 행복한 결혼의 역설(paradox)”이라 이름 붙이기도 했다.

 

이후 미국에서는 결혼생활이 시작되면서 눈에 씌었던 콩깍지가 벗겨짐에 따라, 결혼 만족도는 지속적으로 하락한다는 것이 정설로 굳어졌다. 1970년대 이후 이혼율이 급격히 상승 곡선을 그리게 된 것도 결혼생활 만족도 하락을 입증해주는 실례로 인용되곤 했다.

 

한데 20102019년간 결혼 만족도를 주제로 학술지에 발표된 논문 150여 편을 개관한 결과, 결혼을 둘러싼 통념 및 상식에 일부 반전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첫 반전은 통계 분석 기법의 정교화에 힘입어 밝혀낸 바, 부부의 만족도는 결혼생활 내내 하락하기보다는 전반적으로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존 연구에서 결혼생활 만족도가 계속 하락 추세를 보인 이유는, 횡단적(cross-sectional) 분석을 할 경우 조사 시점에서 심각한 불만족을 경험했던 소수의 커플이 과도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으로 입증되었다. 대신 패널 데이터를 활용하여 통시적(longitudinal) 분석을 시도한 결과, 결혼 초부터 불만족도가 높았던 부부 대부분은 결혼 후 평균 4년 이내에 이혼했고, 결혼생활을 유지해온 부부는 만족도 변화의 폭이 크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혼율 통계 분석도 보다 정교해지면서 새로운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197080년대 치솟던 이혼율이 2000년대 들어 감소하다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로 다시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음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단 이혼율 추이를 계층별로 나누어 보면 중류 및 중상류층 커플의 이혼율은 꾸준히 하락 중임이 밝혀졌다. 이혼율 재상승을 주도한 것은 하류층이고, 이들을 중심으로 혼외출산 비율 또한 증가하고 있음이 확인된 것이다.

 

이렇게 미국의 데이터를 곱씹어보는 이유가 있다. 올해도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현안 중 하나는 저출산이 분명할진대, 저출산의 주원인이 바로 결혼율 하락이라는 것이 분명해진 상황에서 효율적인 저출산 정책을 뒷받침할 결혼 관련 통계의 희소함이 그 어느 때보다 아쉽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와중에 지난해 말, 여성가족 패널 데이터를 활용하여 20082020년 기간 중 미혼여성의 결혼 의향 변화를 분석한 꽤 흥미로운 자료를 접했다. 모든 연령대에서 긍정적 결혼 의향을 지닌 여성일수록 실제 결혼율이 현저히 높게 나타난다는 점, 미혼여성의 결혼 의향은 나이가 들면서 점차 부정적으로 변화한다는 점 등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결과였다. 반면 여성의 교육 수준과 직업이 결혼 의향 및 실제 결혼에 미치는 영향이 반대로 나타났다는 점은 의미심장한 결과로 받아들여졌다. 곧 대졸 이상 여성은 결혼 의향도 부정적이고 실제 결혼 확률도 낮았지만, 전문직·관리직 여성은 다른 집단에 비해 결혼 의향도 높았고 실제 결혼율도 높게 나타났던 것이다.

 

이 결과를 보자니, 2017년 발표 즉시 파문을 일으켰던 보건사회연구원의 보고서가 떠오른다. 고스펙 여성일수록 눈이 높아 결혼을 기피함으로써 저출산의 불씨를 제공하니, 여성의 고스펙 기회를 차단해야 한다는 정책 대안을 제시했던 그 보고서 말이다. 미국에서 하류층 부부를 대상으로 커뮤니케이션 교육을 실시함으로써 부부관계의 질을 높여 치솟는 이혼율을 낮추고자 했던 시도는 34년 후 그 효과가 전무하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하니, 이 또한 타산지석으로 삼아도 좋을 것 같다.

 

이제는 사랑을 앞세운 낭만적 결혼보다 실용적 가치를 중시하는 끼리끼리 결혼및 맞벌이가 결혼시장의 상식인 만큼, 청년세대를 위한 양질의 일자리와 고용 안정성 확보, 그리고 주거 불안정 해소야말로 결혼율과 출산율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최선이자 최적의 해결책임을 그 누가 부인할 수 있겠는지.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 사회학 세계일보 2022-01-16

 

 

소리만 요란한 '김건희 7시간 45분 통화

MBC 시사 프로그램 <스트레이트>를 시청한 뒤 든 생각은 대략 다섯 가지다. 첫째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통념을 다시 확인한 것. 둘째 오히려 김건희 리스크를 털고 가는데 MBC가 판을 깔아주지 않았나하는 반전. 셋째 <서울의 소리>도 언론으로 인정해야 하는지와 인정 한다면 취재윤리에 대해 다시 생각할 계기를 제공했다는 것. 넷째 선거판에서 후보 부인의 역할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게 가능한지. 끝으로 MBC는 공영방송으로서 공적 역할에 부합했느냐다. 어쨌든 알권리권언유착을 놓고 비상한 관심을 끌었던 김건희 7시간 45분 통화녹음 공개는 싱거운 쇼로 일단락됐다는 게 냉정한 평가다.

 

MBC가 국민의힘 반발을 무릅쓰고 방송을 할 수 있었던 건 재판부가 김건희 측이 제기한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 중 일부만 인용하면서다. 재판부는 사적 통화 내용을 몰래 녹음한 정치공작이라는 국민의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신 김건희씨는 유력 대선 후보 부인으로서 공적 인물이며 보도 내용 또한 공익적 목적에 부합한다고 결정했다. 나아가 “MBC가 통화녹음을 취득한 과정은 불법이 아니며 통신비밀보호법 대상 또한 아니다고 판결했다. 방송은 정치적 공방이 과열되고 법원 판단이 개입하면서 국민적 관심을 받으며 화제가 됐다. 어떤 내용이 담겼느냐에 따라 휘발성을 예상하는 분위기도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통화녹음 내용은 일상적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 국민의힘 경선 과정에서 상대 후보를 비판해달라는 부탁, 캠프에 들어와 도와주면 경제적 혜택을 주겠다는 제안은 선거에 관계된 이들이라면 누구나 주고받을 수 있는 말이다. 조국의 적은 민주당 내부에 있었다. 적은 항상 안에 있다. 문재인이 윤석열을 대선 후보로 키웠다는 발언도 특정한 정치적 견해라기보다 통상적이다. 더구나 후보 부인이라면 용인되는 수준이다. 오히려 문제가 된다면 부적절한 미투 발언이다. 김건희는 보수는 잘 챙겨주니 안 터진다. 그런데 진보는 제대로 못해 문제를 만든다. 안희정을 불쌍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여성으로서, 나아가 당선되면 영부인이 될 사람으로서 부적절하며 왜곡된 여성관이 아닐 수 없다.

 

통화녹음은 또 김건희를 둘러싼 쥴리의혹과 검사 동거설을 해소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김건희는 계속해서 (쥴리 의혹)보도가 나가면 더 좋다. 사실과 다른데도 오보를 거듭하고 있다. 나는 시끄러운 곳을 싫어해 혼자 있는 걸 즐긴다. 결국 그 기자는 감옥에 가게 될 것이다며 제기된 의혹에 대해 자신감을 보였다. 또 검사 동거설과 관련해선 어떤 부모가 자기 딸을 유부남에게 팔아넘기느냐. 우리 엄마는 돈도 많은데 그럴 이유가 없다며 듣기에 따라 꽤 설득력 있는 해명을 내놓았다. 정리하자면 알권리와 공익적 목적이 제대로 달성됐는지 솔직히 의문이다. 시청률을 높이기 위한 것이었다면 MBC는 그 목적을 충분히 달성했다. 흠집 내기라는 야당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

 

물론 재판부 결정 때문에 보도하지 못한 부분에 공적 관심사가 담겨 있을 수는 있다. MBC는 이날 김건희씨 측에서 반론을 제기해 온다면 반영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추가 보도를 통해 공익적 목적에 부합하는 내용이 알려진다면 다행이겠지만 이날 방송만으로는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이라는 비판은 면하기 어려울 듯싶다. 후보 부인은 철저한 검증 대상이라는 당위를 감안하더라도 한참 못 미쳤다는 건 중론이다. 국민들은 가뜩이나 역대 최대 비호감 대선에서 정치적 혐오감만 더한 건 아닌지 의아해한다. 이제라도 네거티브 선거를 중단하고 어떻게 국가를 이끌어나갈지 정책 선거로 전환을 기대했던 국민들에게 MBC 보도는 실망스러웠다.

 

인터넷 매체 <서울의 소리> 또한 언론으로써 공적 기능에 충실했는지 비판에 직면했다. 취재와 보도 과정에서 공적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비판은 지배적이다. <서울의 소리>는 지난해 7월부터 12월까지 김건희씨와 52차례에 걸쳐 통화했다고 밝혔다. 첫 통화에서 <서울의 소리> 기자는 소속사와 신분을 분명히 밝혔다. 신분을 속이고 취재를 했다는 김건희씨 측 주장은 맞지 않다. 그럼에도 <서울의 소리> 해명은 궁색하다. 녹취 사실을 고지를 하지 않은 채 장기간 녹음한 건 아무리 취재 목적이라 해도 지나쳤다. 무려 52차례, 7시간 45분이다. 이 정도면 취재를 빙자한 스토커이자 정치적 의도를 염두에 둔 보험 성격이 짙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더욱이 지난 6개월 동안 자사 매체를 통해 보도할 수 있었음에도 외면하다 선거에 임박해 MBC에 제공한 건 순수성을 의심받기에 충분하다. 취재 방향도 오락가락했다. <서울의 소리>20197월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청문 당시에는 윤석열 편에서 <뉴스타파>를 공격했다. 그런데 국민의힘 후보가 되자 이번에는 윤석열을 공격하기 위해 부인 김건희씨를 대상으로 삼았다. 스스로 정파성 시비를 자초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14일 방송을 허용한 법원 결정에 대해 공익성을 인정한 판단이라며 반겼다. 그러면서 김건희씨 세계관과 언론관을 검증할 수 있는 핵심 발언 상당수 포함돼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나 알맹이 없는 방송이었다는 비판을 새겨야 한다. 김건희씨가 공적 인물인 건 분명하다. 또 유력 대선 후보 부인이라는 점에서 국가 위상과 이미지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렇다 해도 공적 목적을 빙자해 취재와 보도라는 칼을 함부로 남용하는 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 언론이 기레기라는 오명에서 벗어나는 길은 정파성을 뛰어넘은 균형감에 있다.

 

이번 MBC <스트레이트> 방송은 국민들에게 두 가지 고민을 안겼다. 첫째는 장기간 통화 내용을 녹음해 다른 언론사에 넘긴 취재 행태와, 또 내용 또한 공익적 목적에 못 미쳤다는 점에서 MBC<서울의 소리>가 언론으로서 제 역할에 충실 했는지 근원적인 질문이다. 언론 정상화와 신뢰 향상은 간단치 않은 숙제로 남았다. 다른 하나는 김건희씨가 사회적 감수성은 물론이고 지적, 인문학적 수준에서도 한참 못 미친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한 것이다. 영부인 역할을 어디까지 인정해야 할지 고민이다.

임병식 객원 논설위원 아주경제 2022-01-17

 

 

의문의 1' 김건희, 이보다 천박한 대선은 없다

프로야구 경기에서 어이없는 실책으로 경기를 내줄 경우 우스갯소리로 상대팀은 '승리를 당했다'고 표현한다. 그 상대팀으로서는 '의문의 1'을 올린 것이다.

 

이른바 김건희씨 7시간 통화의 일부 내용이 16일 방송됐다. '태산명동서일필'이다

민주당이 기대한 결정적 한방도 국민의힘이 우려한 치명적 한방도 없었다. 이번 통화내용 공개가 대선 표심에 어떻게 작용할지 알 수 없다. 그러나, 폭로의 밑바닥에 깔린 정치적 관음증과 천박한 승리 지상주의는 한국 헌정사에 오점으로 남을 것이다

 

정책과 비전은 사라지고 대선후보자의 거친 욕설과 배우자의 저질 육성이 대선판을 덮고 있다. 국민의힘은 육성 공개를 막겠다고 가처분 신청을 내고 방송사를 항의방문해 육탄충돌까지 빚었다

 

민주당은 언론장악이라고 응원하며 본방사수까지 외쳤다. 막장도 이런 막장 대선이 없다.

 

미투를 옹호하고 당시 검찰총장이었던 남편의 수사 내용까지 언급하며 보수와 진보를 골고루 희롱하는 김건희씨의 현실인식에 기가 찰 뿐이다. 그럼에도 정치권에서는 김건희씨가 '의문의 1'을 거뒀다는 분위기다.

 

판을 뒤집을 만한 폭로가 없었고 오히려 항간에 떠도는 '줄리 의혹'이나 동거설 등을 해명하는 계기가 됐다는 해석이다. 국민의힘측은 대선후보의 배우자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얘기를 했다며 큰 피해를 우려했다가 오히려 득이 됐다며 안도하는 표정이다. 김근식 전 선대위 비전전략실장은 17CBS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걸크러시"라고 극찬했다.

 

그러나, 경력의 대부분에 허위·위조 의혹을 받는 대선후보의 배우자가 검찰수사는 물론 대선캠프에까지 깊숙이 개입한 근거를 노출한 것은 최순실의 그림자를 드리우기에 충분하다.

문제는, 김씨의 육성 공개가 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욕설공개 압박으로 이어지는 진영정치의 악순환이다.

 

이재명 대선후보의 욕설 공개는 선거법으로 제한돼있지만 그 내용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이 후보의 아픈 가족사에서 비롯된 욕설이 대통령의 자질에까지 연결되는 것은 본인이 정치적으로 감당해야 할 무게다.

 

그러나, 대통령 후보의 욕설이 끝내 방송돼 국민적 감성을 건드려주면 승리할 것이라는 생각은 오판이다. 김건희씨의 육성 공개가 여권에 반드시 통쾌한 1승을 가져다주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다큐멘터리와 역사로 남아야 할 대통령 선거를 예능과 막장드라마로 만들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생각해볼 때다.

 

그 책임의 한 쪽에 언론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은 깊이 자성할 대목이다. 개인의 사적인 통화를 거리낌없이 유통시키는 언론의 행태에 최소한의 자기검열 장치가 시급하다. 언론이 김건희씨와의 50여 차례 통화를 녹음해 보도하는 것이 정당화되려면 그만큼 중대한 공적 사안이어야 한다.

 

그런데, 김씨의 통화 내용과 이재명 후보의 욕설이 과거 BBK 사건이나 국정원 댓글 사건, 최순실 국정농단, 드루킹 사건보다 중대한 공적 사건인지 의문이다. 언론이 국민들에게 김건희 육성 2탄과 이재명 욕설을 강제로 들으라고 지금 위협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상황이다.

 

대선후보와 배우자의 천박한 언어들이 2022년 대선을 지배하고 있다. 후보들의 정책과 비전은 보이지 않는다. 여야는 품격없는 통화의 배설을 통해 '의문의 1'을 주고받으며 일희일비하고 있다. 승리당하는 것이 아니라 승리하는 후보자를 보고 싶다. 국민들에게 '의문의 1' 강요하지 않기를 바란다.

CBS노컷뉴스 김규완 기자 2022-01-17

 

 

MBC 육성 공개로 드러난 후보자 부인의 부적절한 처신

윤석열 대선 후보 부인 김건희씨의 녹취록이 대선 정국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16MBC 탐사보도 스트레이트에서 김건희씨와 서울의소리이모 기자가 지난해 7월부터 52차례에 걸처 7시간여 통화 내용 일부 공개로 파장이 일고 있다.

 

무엇보다 대통령이 되겠다며 정계에 입문한 공인의 배우자로서 상식에 반하는 김씨의 처신에 이 도마 위에 올랐다. 육성 공개로 드러난 거리낄 것 없고 거침없는 언사는 대선 후보 부인의 처사로 적절하지 않다는 평이다. 또한 김씨는 허위이력 대국민 사과 당시 조신한 목소리와 연약해 보이던 태도와 분명 같은 사람인데 너무 달랐다. 진보 보수 가릴 것 없이 대화 속 등장인물을 폄훼하는 등 상식에 반하는 인식과 언사 등은 윤 후보가 만에 하나 대선에 당선이 될 경우, 영부인의 역할을 과연 어떻게 할 수 있을지 깊은 우려를 낳고 있다.

 

게다가 MBC가 방송도 하기 전 권언유착과 정치적 중립 훼손이라는 주장 등 정치공세를 폈던 국민의힘까지 빈축을 사고 있다. 국힘은 MBC 항의 방문과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하는 등 언론을 압박하며 가한 정치공세는 자기모순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MBC‘스트레이트는 국힘 주장과 달리 너무 공정한 진행에 김빠진 방송였다는 비판을 받는 터라 국힘의 주장과 대응 전략은 적절치 못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괜히 소득도 없이 국민적 관심사로 키웠다는 세평이 지배적이다.

 

이외에도 국민의힘의 주장과 사실관계가 다른 부분 등 논란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일예로 김씨 측이 MBC측에 보낸 서면 답변에서 김건희 대표는 윤석열 후보의 정치 행보에 관여하지 않을 뿐 아니라 선거 캠프 일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이는 실제와 배치된다. 김 씨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은 결국 보수 내에서 한 것이다라는 등 정치적 견해는 윤 후보의 정치 여정에 적극 관여로 의심된다. 이 아무개 기자에게 캠프 자리를 알아봐주겠다는 말은 이 기자가 먼저 지금 일을 그만둔다고 해서 도와주겠다는 원론적 수준의 얘기였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 기자에게 일만 잘하면 1억을 주겠다며 캠프에서 같이 일해보자고 김씨가 먼저 제안한 것이 드러나는 등 해명은 사실과 달랐다.

 

오죽하면 경선을 치렀던 홍준표 의원은 홍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다른 편파 언론은 어떻게 관리 했는지 앞으로 나올수도 있겠다고 했다. “김종인씨가 먹을게 있으니 왔다는 말도 충격이고 탄핵을 주도한 보수들은 바보라는 말도 충격이고 돈을 주니 보수들은 미투가 없다는 말도 충격일 뿐만 아니라 미투 없는 세상은 삭막하다는 말도 충격이라고 했을까?

 

물론 김건희 녹취록 녹음파일의 유통 과정이나 취재 윤리 등 문제가 없지는 않아 보인다. 그러나 이를 논하기 전에 김건희 7시간 녹음파일의 김건희 육성은 진보와 보수 인사들을 부정적으로 표현하며 폄훼하는 등 정치 사회적 현상에 반하는 인식 태도는 여야를 넘어 충격을 주고 있다.

 

특히 공적 역할을 해야 하는 대선 후보자 부인으로써 미투와 언론관 등 상식에 반하는 발언 등 정치 사회 문제에 대한 인식 문제가 불거지며 논란은 잦아들지 않는다. 김종인 전 위원장 영입 관련해서 원래 계속 오고 싶어해”, 조국 전장관 사건을 두고는 조국의 적은 민주당”, 미투등 선을 넘는 거침없는 발언은 배우자 역할 넘어 비선 실세혹은 , 김건희 아바타등의 비판이 일 수 있는 대목이다.

 

반면에 일각에서는 김건희씨가 이 기자에게 나는 엄마가 돈도 많은데 왜 쥴리를 했겠냐는 적극 해명에 동거설, 줄리 혐의 일거에 해소했다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김씨가 경력 허위이력은 아니라 했지만, 실제 경력과 완전 불일치 등 모순투성이 해명처럼 이번에도 논리적 모순이 많다. 왜냐하면 줄리 활동 의혹을 받던 20대 시절 김건희 주장과 달리 모친은 재력가가 결코 아니다.

 

김씨 녹취 논란이 비선 실세였던 최순실의 국정농단 데자뷔 논란으로 확대되기 전에 지금이라도 제기된 의혹에 대해 진솔하게 진상을 밝히고 대선 후보 배우자에 걸맞는 자세로 의혹 불식을 기대한다.

김정순 전 간행물윤리위원장(언론학박사) 빅데이터뉴스 : 2022-01-17

 

 

기후위기 해결의 열쇳말은 '인권'

1월 세계경제포럼(WEF)'글로벌 위기 보고서 2022'에서 인류에게 가장 심각한 10대 위기를 발표한다. 그중 1위가 기후위기대응 실패다. 기후위기 대응을 잘못하면 국가, 산업, 공동체가 심각한 위기에 처한다는 경고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기후위기 해법이 주로 재생에너지와 원전 문제로 집중되면서 정작 관심을 기울여야 할 현안을 놓치고 있다. 그것은 기후위기가 만든 인권문제다. 우리나라도 탄소중립, 탄소국경세로 인해 석탄발전소, 철강 등 고탄소 산업이 전환 위기에 처해 있다. 여기서 일해온 노동자들과 가족들의 미래도 위기다. 지금처럼 정부와 기업이 주도하는 태양광, 풍력, 원전이 이들을 구원해 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기후위기와 인권은 무슨 관계가 있을까?

21세기를 뒤흔든 시리아 전쟁 이야기다. 시리아는 인류가 최초로 농경과 목축을 시작한 풍요의 땅이다. 그런데 시리아에 2006년부터 2014년까지 이어진 최악의 가뭄으로 식량의 2/3가 사라지고, 가축의 85%가 굶어 죽는 사태가 발생했다.

 

당시 시리아 정부는 시민들에게 식량과 물, 연료 보조금 지급을 중단했다. 이때 이슬람국가(IS)라 불리는 무장단체가 주민들에게 식량을 배급하고 지지를 얻으면서 급속도로 세력을 키운다.

 

유엔난민기구에 따르면 2011년 이후 시리아를 떠난 난민이 500만 명이다. 하지만 2018년 전쟁이 소강되고 지금까지 시리아로 돌아간 사람은 9만여 명에 불과하다. 전쟁난민은 전쟁이 끝나면 돌아갈 집이 있다. 그러나 가뭄으로 삶의 터전이 파괴된 시리아 난민들은 돌아갈 터전이 없기 때문이다.

 

몽골에서도 대규모 기후난민이 발생했다. 몽골은 최근 60년 동안 기온이 2.24올랐다. 지구상에서 가장 온도가 높게 오른 나라가 몽골이다. 2014년 몽골 정부는 한반도의 7배가 넘는 몽골 국토의 80%가 사막화되었다고 발표했다. 가뭄과 한파로 가축들이 떼죽음을 당하면서 60만 명의 유목민들은 기후난민이 되어 도시로 떠났다. 떠나지 못한 여성과 어린이, 장애인, 노인들은 사막화된 땅에서 고된 삶을 이어가야 했다. 기후위기가 인권의 문제인 이유다.

 

기후위기는 인권에 기반한 접근을 할 때 그 해법을 찾을 수 있다. 피해 당사자인 시민들이 직접 문제해결에 참여해서 해법을 찾자는 것이다.

 

세계은행은 21세기 초 10년 넘게 기후와 빈곤 현장에 학교와 병원, 태양광발전소를 지어주었다. 이것이 밀레니엄 프로젝트다. 그러나 20136월 김용 세계은행 총재는 영국 '톰슨로이터재단'의 발표에서 세계은행의 성과가 없었다고 회고했다. 현지 주민들의 의존도만 높아졌을 뿐, 주민들 스스로 단단한 삶의 기반을 만드는 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후위기 현장, 몽골 바양노르 군() 주민들은 다른 길을 걸었다. 2007년부터 바양노르 40여 가구의 기후난민들이 모래땅 30만 평에 숲을 조성했다. 여기에 숲을 만들어 농사와 과일나무 재배를 결정한 것은 주민들이었다. 주민들이 협동조합을 구성해서 중요한 일들을 직접 결정하고 경제적으로 자립하는 길을 만들어 갔다. 그 결과 유엔은 2014년 바양노르 사례에 환경최고상을 수여했고, 기후피해를 입은 나라들에 대응 모델로 권고했다.

 

시민공동체를 주축으로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움직임은 선진국에도 있다. 2019년 미국 뉴욕주는 그린뉴딜 예산의 40%를 기후피해 시민공동체에 배정하는 법을 만들었다. 202111, 뉴욕주 인구의 절반이 넘는 950만 명이 뉴욕주 그린뉴딜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시민공동체가 결정하면, 그린뉴딜 예산을 지원받아 지붕에 태양광을 설치한다. 여기서 생산된 전기는 시민의 것이 된다.

 

이처럼 지금껏 기술 중심의 우리나라 탄소중립과 그린뉴딜을 열어가는 열쇳말도 인권이 되어야한다. 결국 시민의 지지가 정책 성공의 요체이기 때문이다.

오기출 푸른아시아 상임이사 인천일보 2022-01-17

 

 

하우스푸어시대로 가는 부동산 공약

지금은 치솟은 집값 때문에 괴로운 무주택자들이 스스로 벼락거지라고 한탄하지만 10여년 전에는 하우스푸어라는 말이 뉴스거리였다. ‘집 가진 빈민이라는 뜻인데, 요즘 유행어처럼 영혼까지 끌어모아집을 산 뒤 대출 갚느라 허덕이는 이들을 말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집값이 떨어지고 아파트 미분양도 속출하자, 팔려고 해도 팔리지 않는 집에서 고통받는 이들이 대거 늘었다. ‘통장에 잠깐 들어왔다 은행으로 직행하는 월급때문에 이들의 삶의 질은 바닥을 쳤다.

 

여야 대선 주자들이 부동산 민심을 잡으려 온갖 공약을 쏟아내는 요즘, 또 한번 하우스푸어 시대의 먹장구름이 밀려오는 듯하다. 거대 양당 후보가 하나같이 주택공급을 크게 늘리고, 대출 규제와 세금은 낮춰 빚 얻어 집 사기를 돕겠다고 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문재인 정부에서 주택공급이 부족해 집값이 올랐으니 공급을 늘려 가격을 잡겠다고 한다. 그러나 국토교통부 통계를 보면 2017~2020년 연평균 주택공급량(다가구 구분, 준공 기준)은 수도권 30, 전국 61만 가구로 2011~2016년의 각 22, 53만 가구보다 많다.

 

김용창(서울대), 정준호(강원대) 교수와 이강훈(참여연대) 변호사 등 전문가들은 코로나19 대응 과정의 초저금리와 느슨한 대출 등 금융이 더 중요한 변수였다고 말한다. 부동산 시장에 몰린 자금이 집값을 띄우자, 앞으로 더 오를 것이란 기대 혹은 불안감에 대출을 받아 뛰어드는 이들이 늘면서 가격이 급등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앞으로 미국의 금리 인상과 함께 국내 대출이자도 본격적으로 오를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영끌로 집을 산 사람들은 늘어난 이자를 감당할 수 있을까. 금리 부담 때문에 주택수요가 줄고 공급 관성에 따라 물량은 쏟아질 때 미분양 사태를 막을 수 있을까. 가계부채가 심각한 상황에서 집값은 떨어지고 원리금 부도가 이어지면 금융위기가 발생하진 않을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원래 국토보유세를 걷어 기본소득을 주겠다는 구상으로 주목받았다. ‘토지이익배당금제로 개명한 이 정책은 부동산을 많이 가진 이에게 높은 세금을 물려 투기수요를 줄이고 복지를 늘리자는 것이라, 집값 안정과 불평등 개선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비판이 일자 이 후보는 이를 뒷주머니에 넣은 채 공급 확대 공약을 들고 표심에 구애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을 쉽게 해주겠다, 그린벨트도 풀겠다, 주택 250만호를 짓겠다 등이 대표적이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공급 확대와 함께 세금 줄여주기에 힘을 싣고 있다. 종합부동산세와 재산세 통합 등으로 보유세를 줄이고, 양도소득세와 취득세도 낮추겠다고 한다. 청년과 신혼부부는 주택담보대출비율(LTV)80%로 높이는 등 대출 규제도 완화하겠다고 밝혔다.

 

경제학자 아티프 미안과 아미르 수피는 <빚으로 지은 집>에서 주택대출 등으로 가계부채가 지나치게 늘면 빚 갚느라 소비할 돈이 부족해져 총수요 감소와 생산 위축, 실업 등 소비 주도 불황을 낳는다고 분석했다. 또 부채에 의존하는 성장은 금리 상승기에 경제위기로 이어질 수 있는데, 피해는 능력 이상의 빚을 진서민에게 더 가혹하다고 강조했다. 두 후보가 귀 기울여야 할 경고다.

 

서울 등 수도권의 재개발·재건축을 쉽게 해주고, 용적률을 높여 초고층 아파트를 짓고, 그린벨트도 풀어 주택을 대량 공급하겠다는 두 후보의 정책은 시대적 과제와도 충돌한다. 기후위기 시대에 30년도 안 된 아파트들을 갈아엎고 전력 소모가 어마어마한 초고층빌딩을 올리는 게 옳은가. 숲을 늘려야 할 시기에 그린벨트를 없애고 콘크리트 건물을 지어도 되나. 지역소멸을 걱정하는 시대에 수도권 신도시를 더 만들어도 괜찮은가. 저출생 시대에 주택 250만호 신축은 합당한가. 후보들은 이보다 반지하·옥탑방·고시원 등의 취약계층에게 인간다운 주거를 보장하는 일, 무주택 가구에 고품질의 장기공공임대주택을 충분히 제공하는 일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보유세 부담을 점진적으로 높이고, 대출은 갚을 수 있는 수준으로 관리해서 집이 투기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기후위기, 지역소멸, 저출생 대응에 실패하고 하우스푸어 시대를 연 대통령은 정말 보지 않았으면 한다.

제정임 |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장 한겨레 2022-01-17

 

 

은행 성과급 잔치가 불편한 이유

열심히 일해 좋은 성과를 낸 직장인이 보너스를 받는 건 부럽고 축하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최근 나도는 은행권의 성과급 잔치소식을 새삼 접하는 마음은 축하나 부러움보다는 불편함에 가깝다.

 

우리은행은 최근 임단협을 통해 기본급 200%의 경영성과급에 기본급 100%+100만 원의 사기진작금까지 합쳐 300%가 넘는 보너스를 지급하기로 했다. 기본급 130%였던 전년도 성과급보다 두 배 넘게 늘어난 규모다. 지난해 통상임금 200%+150만 원을 지급한 KB국민은행도 이번엔 통상임금 300%를 지급한다. 지난해 말 기본급 250%’를 이미 지급한 신한은행은 오는 3~4월 우리사주 주식으로 추가 50%를 더 지급한다. 하나은행도 기본급 300%가 성과급으로 책정됐다.

 

은행들의 성과급 잔치는 사상 최대 규모 수준의 이자이익을 낸 지난해 실적 덕분이다. 지난해 주요 은행그룹의 이자이익은 3분기까지 KB 82,554억 원, 신한 66,621억 원, 하나 49,941억 원, 우리 5890억 원, NH농협 63,134억 원을 각각 기록했다. 전년 같은 기간보다 각각 15.6%, 10.2%, 15.3%, 14.9%, 5.9%씩 증가한 수치다. 4분기 역시 금리 인상 영향으로 순이자마진(NIM)이 추가 개선돼 5대 시중은행 실적은 연간으로도 사상 최대 수준을 갈아치울 것으로 분석된다.

 

은행의 호황, 특히 이자이익은 주로 가계대출 급증 덕이다. 국내 금융권 가계대출은 코로나19가 발생한 2020년부터 지난해 3분기까지 7분기 동안 약 220조 원 증가했다. 그 결과 20191월 약 1,540조 원이었던 금융권 가계부채 총액은 지난해 3분기 현재 약 1,845조 원에 이르렀다. 해당 기간 가계대출 증가액 220조 원 중 약 78%172조 원이 은행권 대출액 증가분이다. 그러니 이자이익은 수직 상승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문제는 가계부채가 급증한 경과, 곧 가계가 은행 등으로부터 막대한 빚을 더 끌어다 쓴 저간의 사정이다. 지난 2년간 가계대출 증가는 국민적 고통과 위기의 결과이기도 했다. 집값이 폭등하자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두려고 나선 영끌’, 불황에 주식으로라도 한 탕 해보려던 영끌이 숱했다. 더 딱한 건 코로나19로 장사를 망치는 바람에 가게 임대료 내고, 애초에 빌려 썼던 원금·이자 갚느라 또 빚을 내야 했던 수십, 수백만 자영업자들이 피눈물 흘리며 일으킨 영끌도 막대했다는 사실이다.

 

정부가 대출을 억제하자 은행들의 이자장사는 한술 더 떴다. 대출 억제한다며 가산금리 등을 올려 대출이자를 더 비싸게 받았다. 지난해 8월부터 시작된 금리 인상도 은행들로서는 이자장사 하기가 더 좋아진 셈이 됐다. 결국 서민들의 고통과 눈물이 은행의 역대급 호황으로 이어진 셈이다.

 

반복되는 시비에 은행들로선 왜 나만 갖고 그래식의 불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민간이 경영해도 금융시스템은 공공재다. 금융감독원이 존재하고, 외환위기 때 은행들을 살리기 위해 천문학적인 공적자금이 투입된 이유도 거기에 있다. 따라서 은행은 사회 위기를 틈타 폭리를 취해서도 안 되고, 정부 역시 그걸 방치해선 안 된다.

 

하지만 정부는 이번에도 허울뿐인 시장 논리를 내세워 위기를 틈탄 은행들의 지나친 이자장사를 2년이나 방관했고, 은행들은 고리영업을 감행했다. 그러니 은행들은 역대급 수익을 자랑하며 잔치 벌이고 샴페인 터뜨릴 때가 아니다. 공공재로서 금융 본연의 소명을 되새긴다면, 정부든 은행이든 금리 상승에 직면한 고객 부담을 덜어주는 쪽으로 수익의 공적 환원에 더 성의를 보이는 게 정의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한국 : 2022.01.17

 

 

더 급진적인 정치가 필요하다

마을에서 스피커로 방송하는 소리가 들렸다. 금일 오전 우리 마을 ○○○ 어머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장례식은 어디고, 발인은 언제며, 상주는 누구, 누굽니다. 함께 애도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대략 그런 내용이었다. 나는 알지 못하는 분이지만, 그 순간은 잠시 손을 모으게 되었다. 할머니는 행복한 분인지도 모른다. 애도의 의례가 남아있는 곳에서 돌아가셨으니. 장례의식은 당신의 삶과 죽음이 공동체 안에서 기억될 것이라는 약속이다. 이 약속의 힘은 남은 이들에게 더 큰 결속감과 안도감을 준다. 하지만 이런 부고는 거의 사라졌고, 내가 본 것도 어쩌면 농촌공동체의 소멸과 함께 사라지게 될 마지막 장면일지도 모른다.

 

그다음 날 신문에서 홀로 죽는 청년들에 대한 기사를 봤다. 코로나19 이후 청년 고독사가 증가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한창 관계를 확장하고 자원과 경력을 쌓아가야 할 시기에 사회 진입이 봉쇄되면서 동시에 관계 형성이 차단되는 것은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의존할 가족이 없거나 다른 사회적 자본이 부족한 청년일수록 장기 고립 상황은 더 위험하다. 아동, 노인, 장애인 등 행정의 관리 시스템에 들어있는 이들과 달리 그냥 청년은 독립적인 성인 주체로 규정되어 죽음 이후에도 발견될 때까지 시간이 더 많이 걸린다고 한다. 홀로 태어나는 사람 없듯이 홀로 죽을 수도 없는 것인데, 고독사와 무연고사는 공동체의 와해와 체제의 붕괴를 동시에 드러낸다.

 

그다음 날에는 멕시코의 국경도시 티후아나에서 300구의 시신을 녹이고 체포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책에서 읽었다. 그는 그것이 자기의 일이자 평범한 직업이었다고 표현한다. 끔찍한 살인마 이야기 같지만 진짜 살인마는 따로 있다. 범죄산업이 유일한 경제활동을 생산하는 곳에선 범죄기업이 제공하는 일자리가 가난한 사람들의 유일한 생계수단이다. 전통적인 공동체적 상호부조도, 국가적 복지체제도 와해된 곳에서 마피아 조직이 공공복지와 사회안전망을 제공한다. 상상도 할 수 없는 끔찍한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고어 자본주의>라는 이 책의 저자는 티후아나가 전 세계와 연결된 도시이며 후기 자본주의의 글로컬(glocal)’한 구조적 현실이라고 말한다. 산에 용해되는 시신과 과로와 산재에 날마다 용해되는 몸들이 무엇이 다른가. 주당 600달러의 보수를 받고 고용된 처리 담당자가 화학적 용해로 죽음을 보이지 않게만드는 일에 종사한다면 선진 국가에선 법률가, 지식인, 전문가들이 거대 기업에 고용되어 범죄와 살인을 합법적으로 은폐한다. 그게 그들의 일이고 직업이다. 범죄로 벌어들인 돈은 금융시장에서 합법적으로 세탁되고 투자로 몸집을 불린다. 범죄자금이 가장 선호하는 투자영역은 부동산, 여가, 오락, 서비스 산업이다.

 

그다음 날에는 진보정당 대선 후보 단일화가 무산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렇게 엉망인 대선은 없다는 분노와 탄식이 가득하고 그 어느 때보다도 대안정치 세력에 대한 갈망이 높지만 진보정치는 좀처럼 대안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다른 이야기 같지만 위의 이야기들은 모두 이어진다. 티후아나는 돈만 되면 무슨 일도 가리지 않는 자본의 힘이 어떤 규제도 받지 않는 상태에서 절대 권력을 행사하는 금권과두지배가 극단화된 곳이다. 청년들은 이 범죄적 세계의 일원이 되어야만 인정과 연대, 관계와 소통, 직업과 배경을 비로소 얻을 수 있다. 그런 세계에서 범죄로 밥벌이를 하지 않으려는 사람들, 먹고살려면 어쩔 수 없다는 목구멍의 명령에 굴복할 수 없는 사람들은 스스로 죽는다. 존엄을 지키려는 마지막 수단으로. 우리는 그런 사회로 가지 않으려고 정치를 한다.

 

20세기에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을 통해 만들어낸 진보의 영역들은, 분명 그런 자본주의의 폭력을 막는 제동력의 역할을 했다. ‘세계화금융화라고 부르는 금융마피아의 세계적 지배는 민주주의라는 제동장치를 파괴함으로써만 지배력을 확장할 수 있었다. 20세기에 우리가 진보라고 불렀던 것에는 분명 근본적인 성찰과 반성이 필요하지만 자본과 국가의 폭력에 의해 와해되고 파기되어선 안 될 것이다. 티후아나는 자본의 야수성과 사회의 폭력성 간의 긴밀한 상관관계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지금 간절히 다른 정치를 갈망하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도 보여준다. 각자 알아서 살아남으라는 국가에서, ‘곁에 아무도 없는 사람들, 사이비 종교집단에 낚아 채이고 서로를 잡아먹으라는 시장의 명령에 포획당하고 있을 때, 진보정치는 어디에 있어야 할까. 타협주의적 진보운동과 진보정치를 넘어 더 급진적인 사회운동과 좌파정치가 필요한 때다.

채효정 오늘의 교육편집위원장 경향 : 2022.01.17.

 

 

탄소중립시대의 K-스마트팜

토마토 1개를 재배하기 위해서 배출되는 온실가스량이 무려 167 리터이다. 이는 토마토를 수확해서 운반하고 저장하는 유통물류비는 제외한 것이니 소비자에게 도착하기까지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이보다 훨씬 웃도는 양일 것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예시를 들어보도록 하자.

성인 1명이 한달동안 수도 사용으로 인해 발생되는 온실가스량은 2.27 kgCO2eq, 한달동안 쓰레기 배출로 발생되는 온실가스량은 2.84 kgCO2eq인 것을 감안하면 토마토 1개를 수확하기 위해서는 그대가 3일 동안 사용하는 수돗물 또는 3일 동안 버리는 쓰레기에 버금가는 온실가스를 배출한다는 의미이다. 성인 1명이 지하철을 이용할 경우 1km 26 gCO2eq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니 토마토 1개를 먹으면 강북에서 강남으로 출근한 것과 진배없다. 토마토 1개가 배출하는 온실가스량은 여러분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충격적이다.

 

광합성을 통해 이산화탄소를 소비하는 농산물인데 왜 이토록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한다는 말인가? 오히려 온실가스를 줄이는데 기여를 하는게 농산물 아니었던가?

 

이유는 작물 생육환경을 맞추기 위해 소비되는 난방비가 문제인 것이다.

등유 보일러를 사용하는 1ha (3,000) 온실 스마트팜에서 연간 사용되는 기름은 26만 리터에 이르고, 700톤의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있다. 가히 화석연료 중독이라 할 만하다. 심각한 기후위기를 겪고 있는 지금, 인류의 먹거리를 확보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미래농업을 위해서는 반드시 화석원료에서 벗어나 농업의 에너지 대전환이 필요하다.

 

화석원료를 대체할 수 있는 에너지 전환을 위한 방안 가운데 주목할 만한 것은 발전소 온배수와 산업단지의 폐수, 생활하수 등 다양한 미활용 수자원이 존재하는 국내에서 이를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미활용 열원은 해수를 쓰는 발전공기업에서만 발생하는 게 아니다. 사용하는 물의 종류만 다를 뿐 대형공장을 비롯한 산업단지는 물론 도시 하수처리장 등에서도 대규모로 나오기 때문이다.

 

현재 6개 발전공기업의 온배수 배출량만 열량으로 환산해도 9634Gcal. 이 열량을 도시가스로 생산하려면 60조원가량이 소요된다. 이를 감안하며 6개 발전공기업에서 버려지는 9Gcal의 온배수 열에너지만 따져도 국가적으로 얼마나 엄청난 에너지낭비가 발생하고 있는지를 쉽게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제철소를 비롯 산업단지와 도시에서 발생되는 하수처리장, 심지어 댐용수, 하천수 등 우리 주변에서 활용되지 못하는 열원은 무궁무진하다. 이를 활용할 수만 있다면 농산물 생산에 투입되는 어마어마한 화석원료를 대체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최근에는 온실가스배출권 거래제에 따라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은 중공업 제조업계에서 위기감을 호소하고 있다. 한 대형 철강제조사는 이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자사의 철강 생산시설에서 배출되는 폐열을 활용한 스마트팜 사업을 구상 중이다. 이를 통해 자체적으로 온실가스 배출권을 확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농업의 탄소중립 에너지 전환에 기여하고 국내 시설농가들과의 상생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미활용 열원을 활용한 스마트팜 사업에 대한 기술적 검토가 여러 기관에서 이미 상당히 진행되고 있으니 농업분야의 에너지전환이라는 큰 흐름은 시작되었다고 볼수 있다.

 

대규모 수열원 확보가 가능한 지역을 중심으로 획기적인 에너지저감형 스마트팜 단지를 조성하게 된다면 온실가스 저감 효과뿐 만 아니라 우수한 가격경쟁력을 바탕으로 그간 한국농업의 숙원이었던 국산 농산물의 해외수출 확대에도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농업분야의 에너지 전환,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연암대학교 스마트원예학과 겸임교수 이인규 아시아투데이기 2022. 01. 17.

 

 

멸공과 박멸의 정치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이제는 찾는 사람이 거의 없지만, 평창 이승복기념관에 크게 쓰여 있는 문구다. 1968년 북한 무장부대가 내려와 가족을 인질로 잡았을 때 그가 했다는 말이다. 몇 년 전 진보적 언론들이 이 말은 보수언론의 조작이라고 주장하면서 실제 그 말을 했느냐가 논쟁이 됐다. 법원은 그 말을 한 것으로 판결했다. 그러나 이군이 정말 그 말을 했다면 더 문제다. 우리의 반공교육이 어느 정도였으면, 공산주의가 뭔지도 모를 9살 초등학생이, 그것도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같은 강남 금수저가 아니라 가난한 산골 화전민의 아들이, 죽음의 공포하에서도 북한군에게 이같이 말했느냐는 것이다.

 

역사의 박물관으로 사라진 줄 알았던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멸공이 이를 SNS에 연이어 게재한 정 부회장 덕분에 다시 뜨거운 쟁점이 되고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멸공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것이다. 정확히 이야기해, 나는 공산당이 싫다고 생각하는 것과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 그리고 멸공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다르다. 공산당이 싫다고 생각하는 것은 개인적 취향의 문제이다. 특히 그와 같은 금수저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공산당이 싫다고 말하는 것도 가뜩이나 우리 사회에 팽배한 반공주의를 부추긴다는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표현의 자유가 있으니 뭐라고 할 수 없다. 다만 그 같은 대기업 책임자가 그런 말로 불매운동을 유발해 기업의 주가를 떨어트리는 것은 주주로부터 소송을 당할 우려가 있다.

 

문제는 멸공이다. 이를 듣는 순간, 나는 그동안 발전한 한국 정치와 민주주의가 멸공 구호 속에 살아야 했던 1960~70년대로 돌아가는가 싶어 모골이 송연해졌다. 아니 이는 단순히 과거로 회귀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우리 시대의 대세가 되어버린 증오의 정치를 넘어, 싫은 것은 박멸해야 한다는 박멸의 정치를 선동하는 위험한 일이다. 쉽게 말해, 내가 정용진과 신세계가 싫다고 생각하는 것과, 정용진과 신세계가 싫다고 글을 쓰는 것, 한발 더 나아가 정용진과 신세계를 박멸하자멸정용진’, ‘멸신세계를 공개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주목할 것은 정 부회장이 지키고 싶은 자유민주주의와 정치적 민주주의가, 정 부회장과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반공주의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특히 멸공 같은 박멸주의가 아니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자기가 싫어하는 사상, 자신이 틀린다고 생각하는 사상을 박멸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사상도 허용하는 것이다. 오히려 사상의 시장에서 소비자들이 선택하도록 맡기는 것이다. 그 같은 이유로 세계적인 정치학자들이 공동집필한 민주주의의 교과서는 특정 정치사상이나 정당을 금지하는 것은 정치적 민주주의가 아니라 제한적 민주주의에 불과하다고 규정했다. 또 보수적이지만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민주주의 연구기관인 미국의 프리덤하우스가 촛불 이후인 문재인 정부의 민주주의까지도 시민적 권리의 경우 1단계가 아니라 2단계로 평가했다. 국가보안법이 공산주의를 금지하는 등 시민적 권리를 제한하고 있다는 것이다. 선진국들은 공산당을 합법화해 허용하고 있다. 자신들에 비해 비교가 되지 않는 세계적 강국인 중국과 대치하고 있는 대만까지도 공산당을 합법화한 지 오래이다. 특히 중국사업이 망했다고 멸공을 외치며 중국 비판기사를 올린 것은 기업인으로 부적절하다. 정 부회장은 문제가 커지자 미사일 등 북한 리스크로 기업 활동에 문제가 있다며 멸공은 내겐 현실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공산주의보다는 봉건왕조에 가까운 북한 때문에 멸공을 외치는 것은 문제가 많고, 한국과 세계의 많은 기업인이 멸공을 외치지는 않는다. 북한 리스크 때문에 멸공을 외친다는 그 때문에 신세계 종업원들과 주주들은 정용진 리스크에 고통받고 있다.

 

우려스러운 것은 이번 소동이 한 관종 기업인의 개인적 일탈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대세가 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증오의 정치를 넘어서, 한쪽에서는 태극기부대와 국민의힘을 박멸하자는, 다른 쪽에서는 위선의 집합체이자 친북세력586정치인들과 친문세력을 박멸하자는 박멸의 정치가 꿈틀대고 있다. 이 점에서 이번 논쟁에 여야가 개입해 지지세력을 선동하는 것은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다양성이고, 멸공과 박멸의 정치는 민주주의의 적이다. 아무리 싫더라도 이제 누구를 박멸할 수 없다. 박멸은 바퀴벌레면 족하다.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정치학 경향 : 2022.01.18

 

 

사극 의무화? 국제뉴스 30%?... 까딱하면 빨간줄

[대선 이슈 칼럼] 2020년 대법 판단을 돌아본다... 방송편성권 외부개입은 방송법 42항 위반

지난 12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다섯 번째 '59초 공약짤' 영상을 공개했다. 해당 영상에는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와 원희룡 국민의힘 선거대책본부 정책본부장이 등장해 '공영방송 정상화'를 주제로 사극 의무 제작 영상 아카이브 오픈소스 공개 메인뉴스 중 국제뉴스 30% 이상 편성 등을 언급했다. 이 영상은 17일 기준 13만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그런데, 내용이 담긴 영상을 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이것이 현행법상 합당한 언급일까.

 

KBS 노조 "오만함을 넘어 공영방송에 대한 철학의 부재" 비판

먼저 당사자 중에 하나인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아래 KBS본부)가 즉각 입장을 냈다. KBS본부는 12"윤석열 짤, '편성 침해'가 공영방송 정상화?"이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하며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KBS본부는 "이 짧은 동영상에 담긴 내용을 보면 국민의 힘이 도대체 공영방송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심각한 우려가 들지 않을 수 없다"면서 "방송법 제1조는 방송의 자유와 독립을, 4조는 방송 편성의 자유와 독립을 보장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이 주장하는 '대하드라마 의무편성'이나 '국제뉴스 30% 편성' 등은 방송법에 따라 편성 침해의 논란이 큰 얘기들이다"라며 우려를 표했다.

 

이어 "편성권 침해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이라면 오만함을 넘어 공영방송에 대한 철학의 부재이자 공영방송 독립을 염원하는 국민정서에 대한 부정"이라며 "특수통 검사로 형사법이 주전공이었으니 이번 기회에 방송법을 제대로 공부해보시라"고 윤석열 후보를 향해 일침을 가했다.

 

대법원도 방송편성권 주체는 방송사업자라는데... 정부가 개입을 한다?

2016630일 오후 서울 중구 언론노조 사무실에서 '청와대의 세월호 보도 통제 증거 공개 언론단체 기자회견'이 자유언론실천재단, 동아투위, 언론개혁시민연대, 민주언론시민연합, 언론노조 주최로 열렸다. 기자회견에서 세월호 참사 직후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이 KBS 김시곤 보도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보도내용에 항의하고, 편집에 개입하는 내용의 육성 녹음파일이 공개되었다.

청와대의 세월호 보도통제 폭로 2016630일 오후 서울 중구 언론노조 사무실에서 "청와대의 세월호 보도 통제 증거 공개 언론단체 기자회견"이 자유언론실천재단, 동아투위, 언론개혁시민연대, 민주언론시민연합, 언론노조 주최로 열렸다. 기자회견에서 세월호 참사 직후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이 KBS 김시곤 보도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보도내용에 항의하고, 편집에 개입하는 내용의 육성 녹음파일이 공개되었다.권우성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 2020116일 대법원은 세월호 참사 당시 KBS의 보도와 편성에 개입해 방송법을 위반했다는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에 대해 벌금 1000만 원 형을 확정했다. 이는 1987년 방송법 제정 이후 '방송편성에 간섭함으로써 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내려진 첫 유죄 확정 판결이기도 하다. 판결 이후 이 전 수석은 관련 법조항 자체가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냈지만, 헌법재판소는 2021831일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해당 법률을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이 전 수석은 20144KBS가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해경을 비판하는 보도를 하자 김시곤 당시 KBS 보도국장에게 전화해 해경 비판 보도를 중단하거나 바꿔줄 것을 요구했다. 이에 20165월 전국언론노동조합은 이 전 수석을 방송편성에 간섭한 혐의로 검찰에 고발해 재판에 넘겨졌다

 

이 전 수석이 위반한 방송법 조항은 제42항이다. "누구든지 방송 편성에 관하여 이 법 또는 다른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어떠한 규제나 간섭도 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대법원은 해당 조항이 방송 자유의 핵심적 요소인 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을 보장하기 위해 방송사업자 외부에 있는 자가 방송편성에 관한 자유롭고 독립적인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행위 일체를 금지하는 취지라고 해석했다.

 

이 전 수석 측은 재판에서 보도국장은 방송편성책임자가 아니므로 그에게 전화한 것은 방송편성에 대한 개입이 아니라고 반론을 폈다. 하지만 대법원은 '형식적인 편성책임자는 편성본부장이지만 보도국장은 보도물을 선정하고 그 내용을 구체화하는 뉴스편성에 관한 직접적인 결정권이 있으므로 편성권을 행사하는 주체'라고 해석했다. 즉 편성권을 행사하는 주체는 방송편성책임자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방송편성에 관계된 방송사업자 및 그 소속원을 모두 포함한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 대번원의 판단이다.

 

대법원의 이같은 판단에 따르면 윤석열 선대본의 '59초공약짤' 역시 역시 방송법 위반으로 해석될 수 있다. 사극 의무화든 국제뉴스의 비중 상승이든 편성권은 오롯이 방송사업자 및 그 소속원이 결정해야 할 사안이기 때문이다. 이들을 제외한 외부인이 개입하는 일체의 행위는 이 전 수석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방송법 제42항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

 

방송편성권의 주체가 누구인지 대법원의 해석이 명백한 상황에서 대놓고 '의무화' '30%' 등의 표현을 언급했다는 점에서 국민의힘의 '공영방송 정상화' 공약은 논란을 피하기 힘들어 보인다.

박성우(ahtclsth) 오마이뉴스 : 2022.01.18.

 

 

갈 길 잃은 진보, 심상정을 응원한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가 칩거 한 지 닷새 만에 돌아왔다. 선거 운동이 한창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는 중요한 시기에 대선 후보가 선거운동을 돌연 중단한 것은 그만큼 정의당이 처한 상황이 심각한 위기라는 증거다.

 

심상정 후보의 최근 지지율은 2%대를 오르내리고 있다. 15%를 넘나드는 안철수 후보는 물론 허경영 후보보다 못한 지지율을 기록한 것은 충격적이다. 심상정 후보는 17일 대선 후보로 복귀하면서 "아무리 고되고 어렵더라도 끝가지 포기하지 않겠다"고 심경을 밝혔다.

 

진보당의 위기는 심 후보가 스스로 진단한 것처럼 자초한 측면이 없지 않다. 제도권 정치에 발을 들이면서 고질적인 노선싸움을 벌인 끝에 전당대회에서 싸움판을 벌이는 추태를 연출했다.

 

그렇게 갈라선 진보 진영은 다른 한 축인 통합진보당의 이석기 전 대표가 내란선동으로 구속되고,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당이 해산되는 사태를 맞기도 했다. 이 판결의 정당성 여부를 떠나 진보 정당이 제도권 안에서 어떻게 정치를 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또 한 가지 중요한 대목은 집권 여당인 민주당의 이중적 태도가 정의당의 정체성을 크게 훼손했다는 점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정권을 잡은 정권초기 민주당은 정의당과 정책 연대를 통해 여러 가지 개혁 작업을 추진했다.

 

정의당은 '2중대'라는 비난을 감수하며 민주당과 강력한 정책 공조를 유지했다. 민주당은 공수처법 통과를 위해,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조건으로 내걸며 정의당의 도움을 요청했다. 결국 공수처법은 통과됐지만, 민주당은 '꼼수'라며 비난한 위성정당을 만들어 정의당 의석을 사실상 빼앗아 오는 배신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민주당의 위성정당 설립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본 것은 정의당이었다. 진보 세력의 확장과 국회의 다양성 확보를 위해 민주당과 협력했던 정의당으로서는 뒤통수를 맞은 셈이다. 심상정 후보 역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추진하면서 이른 바 '조국사태'와 관련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지 않은 것이 가장 뼈아픈 오판이었다고 밝혔다.

 

심상정과 노회찬으로 대표되는 정의당의 인물난 역시 지지율 하락에 큰 몫을 했다. 정의당이 내세울 인물이 없다는 점은 치명적인 약점이다. 21대 총선에서 국회에 새로 입성한 류호정 의원을 비롯한 새로 선출된 정의당 의원들은 신선한 바람을 불러 오기는 했지만, 과거 노회찬이나 심상정처럼 내세울만한 뚜렷한 의정 성과나 활동이 눈에 띠지 않는다.

 

이는 6석에 불과한 소수 정당이 지닌 한계이기도 하지만 의원 개개인의 역량의 문제이기도 하다. 정의당에서 심상정과 노회찬의 뒤를 이을 인물을 배양해 내지 못했다는 반증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 소수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정당이 국회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정의당은 소중하다. 욕설과 쥴리, 무속인과 대장동 지금 대선에서 가장 큰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말들이다. 아무런 대안도 제시하지 않고 그저 구경만 하고 있던 안철수 후보의 지지율이 오르는 것은 이번 대선이 최악이 아닌 차악, 그것도 아니면 차차악을 뽑을 수 밖에 없는 척박하고 한심한 상황이라는 점을 반영한다.

 

소수정당으로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의 전략이 결국 정의당을 위기로 몰아넣었다면, 이제 갈 길이 어디인지 방향을 찾아야 할 시기다. "비호감 대선인데 심상정도 비호감이었다."는 심 후보의 자성은 뼈아프지만 반가운 고백이다. 정책과 비전은 간 데 없고 천박하고 치졸한 비난만 오가는 대선판에서 정의당은 선명한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노회찬 전 의원의 6411번 버스는 여전히 같은 시간에 같은 승객들을 태우고 불평등하고 기울어진 현장으로 달리고 있다. 무너진 아파트 현장에서는 아직도 6명의 근로자를 찾지 못하고 있고, 생산 현장 곳곳에는 여전히 수많은 '김용균'이 존재하고 있다.

 

넘어야 할 산이 높고 크지만 정의당이 존재해 야 할 이유는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갈 길을 찾아 다시 나서는 심상정을 응원한다.

CBS노컷뉴스 문영기 논설위원 2022-01-18

 

 

'이재명·윤석열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에 대해서

'반대의 정치'라는 감옥에서 벗어나자

어느 시대나 공론장을 주도하는 그 시대만의 전형적 지식인이 있다. 내가 어렸을 적인 1980년대만 해도 주로 신문이나 잡지에 논설을 쓰는 이들이 그런 역할을 했던 것 같다. 그러다 1987년 민주화 이후에는 TV 심야토론에 자주 나오는 논객들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이런 분위기는 2000년대까지도 계속됐는데, 2010년대로 넘어오면서 다시 시대가 크게 한 번 바뀐 느낌이다. 공중파 TV에도 간혹 나오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종합편성 채널과 라디오, 여러 온라인 플랫폼을 넘나들며 더욱 이름을 알리는 정치평론가 내지는 칼럼니스트들이 공론장을 종횡무진하고 있다. 어쩌면 지금 한국 사회에서 A. 그람시가 말한 '유기적 지식인'에 가장 가까운 실천을 하는 것은 여의도 정객이나 정당 관료가 아니라 이들 정치평론가일 것이다.

 

그만큼 제도정치 공간과 대중을 잇는 데 정치평론가들의 역할이 크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정치평론가 세계에서도 압도적 다수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라는 양대 진영의 유기적 지식인들이라는 사실이다. 양당 독점 정치가 지배하는 한국 사회이니 그 세력 관계가 냉정히 반영된 것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런 양대 진영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며 사람들의 눈길을 현재 한국 정치의 근시안적 지평 너머로 이끌려 하는 정치평론가들이 있다. 대체로 진보정당 활동 경험이 있는 젊은 칼럼니스트들인데,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라는 다소 긴 제목을 단 신간(이데아, 2022)의 저자 김민하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이번 대선을 넘어 오늘날의 민주주의 자체를 진단하는 책

출간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는 대선 일정에 맞춰 낸 책이겠거니 짐작했다. 대선 투표일을 불과 한 달 반 정도 앞두고 있고, '투표'라는 말이 들어간 책 제목 역시 이런 연상을 하기 쉽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오해였다. 저자가 소셜 미디어에 올린 글을 보면, 원래 원고를 출판사에 넘긴 시점은 작년 중반쯤이다. 대선 시기에 책을 내는 게 이롭겠다는 출판사의 전략이 반영됐을 수는 있겠지만, 애초에 대선에 직접 개입하거나 반짝 흥행을 하려고 쓰지는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책을 펼쳐 목차를 훑는 순간, 더욱 확실해졌다. 첫 장의 제목은 '진보 또는 보수'이고 부제가 ''백서' vs '흑서''이니, 지금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를 내세우며 맞붙는 양대 진영을 놓고 이야기를 시작하기는 한다. 이 장을 비롯한 앞부분 네 장이 계속 이 양대 진영의 행태와 내면을 분석한다. 여기에서 곧바로 대선 이야기로 넘어간다면, 평소에도 양당 독점 정치를 비판해온 저자가 대선에 맞춰 양대 진영 '모두 까기'를 단행본으로까지 냈구나 하며 넘길 수도 있을 것이다.

 

한데 제5장부터 이 책의 논의는 예상치 못한 곳으로 확장된다. '진보와 퇴행의 변주'라는 제목을 단 제5장은 미국 정치를 다루며, '한쪽으로 쏠리는 진자운동'이라는 표제의 제6장 주제는 일본 정치다. 실제 읽어보니 무려 독립혁명 무렵부터의 미국 정치를 분석하고, 1990년대에 버블 붕괴와 더불어 전개된 정치 '개혁' 국면 이후의 일본 정치를 상세히 짚는다. 이 두 장을 거친 뒤에 저자는 '엘리트주의 대 포퓰리즘'이라는 요즘 전 세계 정치의 뜨거운 쟁점을 향해 내닫는다.

 

여기까지 읽고야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라는 제목이 실은 책 내용을 정직하게 잘 드러내고 있음을 깨달았다. 이 책은 단지 영화 <아수라> '안남시장'을 연상시키는 분이 싫어 국민의힘 후보를 찍겠다거나 제2'최순실'들의 조종을 받는 것 같은 분은 절대 당선되면 안 되니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찍겠다는 2022년 벽두 대한민국 상황을 풍자하는 책이 아니다. 이 책은 그런 상황을 낳은 오늘날의 민주주의 자체, 대한민국만이 아니라 지구 위 모든 나라의 미래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는 그 민주주의를 심층 분석한다.

 

저자 김민하는 책의 앞부분에서 조국 '백서' 진영과 조국 '흑서' 진영으로 나뉘어 벌인 싸움, '반일''반공'이라는 낡은 과거를 되살려 반복되는 그 싸움 그리고 이런 출구 없는 다툼 속에서 나타나는 팬덤정치나 '공정' 논란 같은 병적 징후를 하나하나 짚는다. 서로 물고 뜯는 양쪽이 얼마나 자기 논리조차 배반하며 어이없는 싸움을 이어가는지 냉철히 따지기에, 아직도 어느 한 편에 동질감을 느끼는 이들이라면 분명 핏발을 세울 테고, 둘 모두에 거리를 두는 나 같은 이가 보기에도 한국 사회가 답답하게만 느껴진다.

 

이런 식의 접근이라면 대개 한국 사회의 낙후성이나 경로 이탈을 질책한 뒤에 '정상'적 민주주의의 사례나 전형을 제시하고 마치 제2의 문명개화 같은 각성과 전환을 촉구하며 끝맺게 마련이다. 그러나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는 정확히 이런 접근법에 도전하는, 이와는 대립되기까지 하는 쪽으로 독자의 눈길을 이끈다.

 

지금 한국만이 아니라 모두가 이 '반대의 정치'의 세계 안에 갇혀 있다! 미국도, 일본도, 심지어는 18세기 계몽주의자들의 밀랍인형 전시장처럼 오해 받는 유럽조차 그러하다. 모든 나라의 대다수 대중이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를 현실에서 가능한 유일한 민주주의로 여기며, 간판은 각각 '보수''진보'이되 실은 지구자본주의를 지탱한다는 점에서 다를 것도 없는 두 세력의 한 쪽에 서서 '반대의 정치'에 생을 허비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쇠퇴 이후에도 세상에 구원은커녕 탈출의 희망조차 보이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민하의 책은 이렇게 사태의 핵심을 향해 직진한다. 헬조선은 헬지구의 일부일 뿐이며, 우리에게는 서방정토도, 도망갈 '소도(蘇塗)'도 없다. 민주주의가 오직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인 세상에서 지옥의 바깥은 없다.

 

오늘날 '부르주아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반대의 정치

현실의 민주주의가 허울만 민주주의일 뿐이라는 목소리는 오래 전부터 있었다. 모든 시민이 평등하게 정치에 참여한다지만 실제로는 자본을 소유한 계급과 나머지 대중의 권한이 하늘과 땅 차이라는 게 이러한 비판의 대표적인 논리였다. 이런 시각에서 현실에 도전하고 이를 넘어서려는 이들이 현존 민주주의에 붙인 이름이 '부르주아 민주주의'.

 

오늘날도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두 세력이 독점하는 정치를 비판하는 이들 가운데에서, 그 중에서도 이념 스펙트럼상 왼쪽에 있는 이들 사이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말이 '부르주아 민주주의'. 재벌 이재용과 청와대, 재벌 정용진과 여의도 정치가 장단을 맞추는 꼴을 보노라면, 이 말이 21세기 한국에도 딱 맞는 규정이겠다 싶다. 그러나 너무나 명백한 외관 탓에 그 복잡한 작동 메커니즘을 무지의 베일 속에 방치해서는 안 된다. 이 민주주의는 도대체 어떻게 하여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되고 있는가?

 

'부르주아 민주주의'라는 말로 현실을 비판한 가장 저명한 이론가들이 남긴 분석은 대개 의회 기구의 한계, 관료 기구의 가공할 위험성 등등을 맴돈다. 지금까지 빛을 발하는 통찰이며, 하나도 버릴 것은 없다. 그러나 부족하다. 대의제가 문제이고 비선출직 관료 권력의 위험이 명백하다면, 이런 문제를 환기시키는 것만으로도 벌써 몇 번은 혁명이 있어야 했다. 그러나 몇 세대에 걸쳐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지속되는 미국이나 서유럽에서는 정치가 오히려 더 퇴보한다는 소식은 있어도 혁명의 횃불이 타오르기 시작했다는 목격담은 없다.

 

'부르주아 민주주의' 비판론에 구멍이 있는 것이다.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비판하면서도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다. 의회가 무력하고 관료 권력이 비민주적이라 해봐야 그것은 대중도 이미 다 아는 사실의 나열일 뿐이다. 문제는 그런 진실을 다 알아챈 대중의 대체적인 반응조차 기존 질서의 유지에 이롭게 조율하고 고착시키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또 다른 얼굴이다. 이는 자신을 넘어서려는 대중의 열망 그리고 그 좌절에 뒤따르는 실망과 냉소까지 허울뿐인 '보수 대 진보', 엘리트주의 대 포퓰리즘의 진자운동 안에 가둬둘 줄 안다.

 

고전 이론가들에게는 이런 분석이 없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이들은 대체로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보통선거제도라는 그 최소한의 전제를 도입하기 훨씬 전이나 아니면 이제 막 도입하던 때의 인물들이다. 그들은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여명 혹은 유년기만을 봤을 뿐이다. 그 완성형 혹은 노숙해진 형태는 눈치도 못 챘다. 그런 형태의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마주하는 운명은 그들이 아니라 21세기를 사는 지금 우리의 몫으로 떨어졌다.

 

김민하의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는 바로 이 '노숙해진'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대한 비판의 빈 부분을 메꾼다. 저자가 채워 넣은 중요한 조각은 '반대의 정치'라는 닫힌 세계이자 그런 세계를 유지하는 저마다의 장치들, 기예들이다. 한국의 양당 독점 정치도, 일본의 자민당 독점 정치도, 엘리트주의와 포퓰리즘 사이에서 끊임없이 동요하는 요즘 미국-유럽 정치도 이 '반대의 정치'가 각각의 국민적 지형 안에서 전개되는 양태들이다. 이를 직시하지 않고서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바깥을 내다보고 이를 향해 나아갈 수는 없다.

 

"'반대의 정치'는 일상을 지배한다. 진보에 대한 반대로서 보수를 자칭한 정권이 실패하면 진보로 진자가 쏠리고, 보수에 대한 반대를 내세우며 진보를 자칭한 정권이 실패하면 진자는 다시 반대 방향, 즉 보수로 되돌아온다. 진자 운동은 거듭되지만 축이 움직이는 방향은 그대로다. 세상이 변하지는 않는 것이다. 그렇기에 '현재 진보'의 반대로서 '진짜 진보', '현재 보수'의 반대로서 '진짜 보수'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함께 커진다. 그래서 이른바 '대깨문''태극기 부대'가 한쪽 극단을 차지한 채로 중도와 합리를 지향하는 정치와 적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이 모든 것들이 '반대의 정치'라는 하나의 같은 맥락 안에 있다."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 247)

 

말하자면 광화문 태극기부대와 서초동 촛불이 반분하는 세상은 대한민국 제6공화국만의 특이한 '민속적' 풍경이 결코 아니며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넘어서지 못한 온 세상이 마침내 도달한, 도달할 수밖에 없는 최후의 장면이다. 또한 이재명이 대통령인 미래에서든, 윤석열이 대통령인 미래에서든 우리가 반드시 다시 마주할 장면이기도 하다.

 

21세기의 혁명이란, '다른' 민주주의를 요구하기 시작하는 것

그럼 대안은? 저자가 마지막 장 '체제에 어떻게 도전할 것인가'에서 제시하는 방향은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와는 '다른' 민주주의를 상상하고 이를 요구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것은 누군가에게 모든 것을 위임하고 실망을 반복하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대중이 무대에 난입하는 민주주의이며, 몇 년마다 열리는 투표소에 갇힌 민주주의가 아니라 고공작업이 벌어지고 고압전류가 흐르며 고속차량이 지나가는 모든 작업장에서 작동할 줄 아는 민주주의다.

 

그런 민주주의가 가능하냐고? 그런 게 과연 있을 수 있냐고? 누구든 이렇게 반문할 정도이니, 어느 누구든 이게 정말 가능하다고 믿기 시작한다면 그게 얼마나 커다란 변화이겠는가? 그러는 바로 그 순간이 멀지 않은 미래의 어떤 혁명의 첫 번째 발화점일 것이다. 김민하는 결국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는 듯 책의 마지막에서 이 전망을 주저 없이 꺼내든다.

 

될수록 많은 이들이 너무 거창한 듯 하지만 실은 유일하게 현실적인 이 전망과 마주하게 되길 바란다. 대한민국 제6공화국 정치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몸부림이 몇몇 헌법 문구 변경 정도로 하찮은 대접을 받지 않으려면, 이재명이든 윤석열이든 누군가를 몰아내기 위한, 단지 그것만을 위한 촛불시위라는 소극에 동원되지 않으려면, 그래야만 한다. 이 겨울의 칼바람 속에서 김혜경 씨나 김건희 씨의 속보를 확인하느라 휴대전화에 눈길이 붙잡혀 있다가도 "이게 대체 무슨 짓이냐" 싶은 모든 이들에게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와의 만남을 적극 추천하는 이유다.

장석준 출판&연구집단 산현재 기획위원 |프레시안 2022.01.18.

 

 

김건희 녹음파일이 품은 세 개의 불씨

7시간이 넘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부인 김건희씨가 유튜브 서울의소리기자와 5개월간 나눈 대화록이 16일 까졌다. 윤 후보의 정치 입문 직후 시작된 쉰두 토막의 통화란다. 법원에서 조건부 방송 승인이 떨어진 14일부터의 카운트다운만 사흘째, 김씨의 육성은 MBC 공중파를 탔다. 지난해 7쥴리시비, 10개 사과’, 12경력 허위·조작을 잇는 네번째 김건희 파문이다.

 

10분 남짓 목소리가 전해진 방송에서, 김씨는 유튜브 기자에게 국정원처럼 몰래 정보업을 해달라일 잘하면 뭐 1억도 줄 수 있지라고 했다. “여기서 지시하면 다 캠프를 조직하니까라면서. 김씨는 미투(Me Too)는 돈을 안 챙겨주니 터지는 것이라며 안희정(전 충남지사)이 불쌍하더만. 나랑 우리 아저씨(윤 후보)는 안희정 편이라고 했다. 논란 될 말이 많이 빠진 변죽이라고 봤을까. MBC에 녹음파일을 줬던 서울의소리는 하루 뒤 “(김씨가) 조국과 정경심이 좀 가만히 있었으면 우리가 구속시키려 하지 않았다고 했고, “내가 정권 잡으면 거긴 무사하지 못할 거야. 경찰이 알아서 입건해요. 그게 무서운 거지라는 말도 있었다고 했다. 방송된 편집본이나 유튜브가 풀어내는 무편집본에서, 한 달 전 처는 정치를 극도로 싫어한다던 윤 후보 말은 식언이 되어버렸다.

 

17.2%. 시청률은 치솟았지만, 밋밋했던 방송은 동네북이 됐다. 국민의힘은 먹을 것 없는 잔치라며 취재윤리를 문제 삼았다. 서울의소리는 괜히 MBC에 녹음파일을 줬나 싶다며 국민의 알권리가 우선이라고 맞섰다. 대화록을 알리고 막으려는 대치는 이제 송사로 접어들었다. 무엇이 문제일까. 김씨의 육성은 어떤 불씨를 품고 있는 것일까.

 

# 과거·실수가 아닌 미래’ = 김씨의 허위 경력은 대선 후보 배우자로서의 자격을 묻고, 진상을 따져야 하되, 얼룩진 과거일 수 있다. 전두환 찬양을 희화화하며 반려견에게 준 사과 사진은 실수일 수 있다. 그러나 녹음파일 속에서 공식 직함도 없는 그가 선거캠프를 조직한다 하고, “내가 정권을 잡으면” “조국 구속을 우리가라고 말하는 것은 결이 다르다. 수사와 선거와 국사에 개입해온 비선 실세는 미래의 문제일 수 있다.

 

# 퍼스트레이디의 역주행 = “무슨 강간한 것도 아니고지금 와서.” 김씨의 미투 폄훼에 안 전 지사 수행비서였던 김지은씨는 “2차 가해를 멈춰달라고 했다. 평등한 여권(女權)을 대표할 퍼스트레이디의 성인지 감수성이라고 하기엔 민망하다. 윤 후보는 다음 계획은 내놓지 않고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했다. 남녀를 갈라치는 선거전과 윤 후보 부부가 던진 미투 발언은 맥이 다르지 않다.

 

# 성역과 무속 프렌들리’ = 김씨 얘기만 터지면, 국민의힘 선대위 인사는 멘붕이 된다고 했다. 후보 부부에게 진위를 파악하기 어려워서다. 손바닥 왕()자와 개 사과의 첫 대응이 우왕좌왕한 캠프는 녹음파일에서도 그랬다. 1997년 이회창 후보가 아들의 병역비리가 터졌을 때 공매를 더 맞은 이유도 그것이었다. 김씨는 나는 영적이라 도사들과 얘기하는 걸 좋아한다고 했고, 그 말은 윤 후보 캠프에서 활동한 법사 얘기로 번졌다. 김씨가 유튜브 기자에게 공격하라고 한 홍준표는 페이스북에 “39일까지 오불관언(吾不關焉)하겠다며 뼈 있는 말을 썼다 지웠다. “최순실 사태처럼 흘러갈까 걱정스럽다.”

 

역대 11명의 대통령 부인이 있었다. 내조형(프란체스카·공덕귀·홍기·김옥숙·손명순·권양숙), 활동적 내조형(육영수·이순자·김윤옥·김정숙), 활동참여형(이희호)으로 나뉜다. 윤 후보는 집권하면 영부인 호칭과 제2부속실을 없앤다 했고, 김씨는 아내 역할만 하겠다고 했다. 1969년 제2부속실이 생기기 전의 프란체스카 여사와 닮은꼴이다. 반대로 캠프·선거·정치·인물·권력 얘기에 거침없는 녹음파일대로면, 김씨는 '여장부형' '베겟머리 정치형' 퍼스트레이디가 더 가까울 수 있다.

 

대선이 삼국지로 재편됐다. 표밭엔 후입선출(後入先出) 원칙이 있다. 왔다갔다 하는 들토끼를 품고, 집토끼를 다져야 이긴다는 뜻이다. ‘지지율 40% 안착을 고지 삼은 이재명도, ‘선두 탈환이 절대 목표인 윤석열도, ‘20% 교두보를 찍고픈 안철수도 눈돌릴 여유는 없다. 곧 설이다. 목소리 커지면 피하는 게 상책이나, 꽤 많은 밥상·술상에선 정치로 얘기꽃이 필 게다. 후보의 리더십·공약·능력·매력이 견줘질 게다. 이래서 좋고, 저래서 싫고. 저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꼽는 설상의 화두는 다섯이다. 대장동, 김건희, ‘철수정치’, 삼프로TV, 20대의 선택이 아닐까./이기수 논설위원 경향 : 2022.01.18

 

김건희는 영악했고 MBC는 무기력했다

<문화방송>(MBC)의 김건희씨 ‘7시간 통화녹취록 방송 이후, 200명에 불과하던 김건희씨 팬카페 회원 수가 1만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방송 전에 국민의힘이 법원에 방송 중지 가처분신청을 내고 문화방송 앞에서 항의시위를 벌였던 걸 생각하면, 뜻밖의 상황 전개인 것처럼 보인다. 국민의힘에선 이참에 김건희씨가 공개 활동에 나서는 게 좋겠다는 말까지 나온다고 한다.

그럴 수 있다. 정치에서 유불리란 팽팽한 줄을 타는 팽이와 같아서, 어느 쪽으로 기울어질지 속단하기 어렵다. 2012년 대선 후보 토론 때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가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거세게 몰아붙여 많은 이에게 통쾌함을 안겼지만, 결과적으론 박 후보 지지자들을 더욱 결집하는 쪽으로 작용한 게 단적인 예다. 그러나 한가지 꼭 짚어야 할 건 있다. 후보 부인의 사적 통화까지 방송에 내보내야 하는가에 대해선 각자 생각이 다를지 몰라도, 적어도 발언을 보도한다면 국민이 내용을 정확히 판단할 수 있게 충분한 취재를 덧붙였어야 한다는 점이다. 의도한 건 아니었겠지만, 결과적으로 국민 알권리보다 법원 가이드라인을 앞세운 것 같은 모양새가 돼버렸다.

 

단적인 게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관련 대목이다. 문화방송은 김건희씨가 조국 수사를 그렇게 크게 펼칠 게 아닌데 너무 조국 수사를 많이 공격을 했지, 검찰을. 그래서 검찰하고 이렇게 싸움이 된 거지. 빨리 끝내야 된다는데 계속 키워가지고 사실은 조국의 적은 민주당이야라는 발언을 했다고 보도했다. 그런데 정작 가장 중요한 대목은 빠져 있다. 나중에 <서울의 소리>가 공개한 녹취 파일을 들어보면 김건희씨는 가만 있었으면 조국 전 장관이나 정경심 교수가 구속 안 되고 넘어갈 수 있었거든. 그렇게 하려고 했는데 너무 키웠지라는 발언을 했지만, 문화방송 보도에선 찾아볼 수 없다. 조국 수사를 지휘했던 검찰총장 부인이 애초엔 조 전 장관 부부를 구속시킬 생각이 없었지만, 저쪽에서 너무 반발하니까 구속시켰다는 취지로 발언했다면, 과연 그것을 김건희씨 개인 의견이라고 볼 수 있을까.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의 생각을 그대로 반영한 건 아닌지, 그렇다면 윤 후보는 명백히 검찰권을 자의적으로 행사한 건 아닌지 따지고, 당시의 상황과 사실관계를 짚었어야 했다.

 

가장 의아스러운 건 바로 이 지점이다. 아무리 녹취 파일이 제보받은 것이라 해도 발언 내용이 사실인지, 그 발언이 지칭하는 내용 또는 맥락은 정확하게 무엇인지 추가 취재해서 독자에게 전달해야 할 책임은 해당 언론에 있다. 그러나 문화방송 보도에선 통화 외에 자체적으로 보완 취재한 내용을 찾기 어렵다. 조국 전 장관 부부를 애초엔 구속시킬 생각이 없었는데 구속시켰다면, 그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혀야 할 이는 김건희씨가 아니라 당시 검찰총장이던 윤석열 후보가 아닌가.

 

김건희씨 팬카페를 들썩이게 만든 당당하고 솔직한 해명은 과연 진실에 부합하는지도 검증하고 따져볼 필요가 있었지만 미흡했다. 여러 의혹을 해명하는 김건희씨의 목소리를 들으면, 김씨는 <서울의 소리>가 언제든 보도할 수 있으리란 점을 인식하고 발언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때론 기자를 회유하고 때론 농반진반으로 겁박하는 모습은, 물론 사적 통화였기에 그랬겠지만, 자신감에 가득 차서 영리하게 기자를 상대한다는 인상을 준다.

 

언론이 획득한 정보 또는 제보의 내용이 사실인지 자체 취재를 통해 검증하고, 국민에게 알려야 할지 여부를 독자적으로 결정하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이다. 설령 보도에 따른 정치적 논란이나 법적 책임이 따르더라도, 그 결정권을 온전히 법원의 손에 맡기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역사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어디까지 허용할지 그 경계선을 끊임없이 확장해온 배경엔 공익을 앞세운 언론 보도가 큰 역할을 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법원 결정에 따라 통화 내용 일부가 보도 내용에서 제외됐습니다. 시청자의 양해를 바랍니다라는 자막과 함께 사라진 내용 중에는 정말 국민이 알아야 할 내용은 없다고 누가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김건희씨의 사적 통화가 공개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면, 또는 선거에 불필요한 영향을 줄 것이라고 우려한다면 공개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선거 시기에 언론 보도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법원 결정도 선거 유불리도 아니라 오직 유권자의 정확한 판단에 도움이 되는가 하는 국민의 알권리이다.

박찬수 대기자 한겨레 :2022-01-19

 

 

일본이라는 거울에 비친 한국

일본이 한국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최근 주목을 끄는 것은 "일본은 20년 후 경제규모에서 한국에 추월당한다"는 보도다. 일본의 석학 노구치 유키오 교수의 칼럼이다. 그는 "1990년대 후반 경제위기 대응에서 한국에 뒤진 것이 발단"이라고 진단했다. 한국은 대학교육의 내실을 기하고 영어교육을 혁신해 경쟁력을 높인 것이 주효했다고 보았다. 반면에 일본인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다양한 통계와 지표를 근거로 한국이 이미 일본을 앞질렀다고 주장한다. 일본이라는 거울에 비친 한국은 어떤 모습일까?

 

먼저 평균임금을 꼽았다. 2020년 기준으로 일본이 38515달러, 한국은 41960달러로 일본을 제쳤다(OECD). 다음은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의 국가경쟁력 순위도 한국 23, 일본 31위다. 유엔의 전자정부 순위에서도 한국은 2, 일본은 14위다. 기업 경쟁력을 상징하는 주식 시가총액도 마찬가지다. 세계 100대 기업 중 한국은 삼성전자가 14위다. 일본 최대 기업 도요타는 36위다. 시가총액 규모도 삼성전자가 2배 이상 많다. 국제화 평가 기준의 하나인 영어 능력은 한국이 아시아 11위다. 일본은 27위로 하위권이다. 이 추세라면 20년 후 한국의 GDP8894달러, 일본은 41143달러에 그친다는 것이다.

 

일본의 가장 큰 실책은 1990년대 디지털화의 기회를 놓친 것이다. IT혁명의 도화선이 된 인터넷 보급과 일본 경제의 성장률이 꺾인 시점이 같다. 한국은 1990년대 후반 김대중정부에서 전국을 초고속 광케이블 통신망으로 연결했다. 20년 후인 20195G(5세대) 이동통신을 상용화했다.

 

일본은 아직도 열차 탑승객의 승차권을 일일이 검표한다. 회사원은 문서에 도장을 찍기 위해 출근한다. 디지털화의 지연은 생산성을 추락시켰다. 여기에 고령화 저출산까지 겹쳐 취업인구 비율까지 떨어졌다.

 

정치 실패가 일본경제 침체로 이어져

또 하나는 국제환경의 변화다. 사회주의 국가의 개혁개방과 산업화다. 일본 경제에 큰 타격은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과 급속한 산업화다. 중국이 제조업 강국 일본의 지위를 대체했다. 한국은 '북방외교''세계화'로 대응했다. 미국은 산업구조를 금융 등 고도 서비스산업 중심으로 개편했다. 일본 제조업은 중국에 밀리고 고기술 분야는 한국에 추월당하는 처지다. '기술의 일본'에 자만해 도취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 니혼게이자이 일본경제연구센터의 일본 경제 침체 분석도 일치한다.

 

필자는 일본 경제의 침체 이유로 정치의 실패를 꼽는다. 그 대표 사례가 '아베노믹스'. 엔저() 정책을 기본으로 한 금융완화, 돈풀기에 집중했다. 엔화가치 하락으로 수출 경쟁력을 유지했다. 일본 기업의 이익은 늘었지만 노동자들의 임금 향상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국민 1인당 GDP가 낮아질 수밖에 없다. 기업들이 기술개발은 소홀히 하고 정치와 유착해 안주했다. 일본의 파벌정치는 계파 간의 담합으로 권력 독점체제를 유지하는 구조다. 관료사회도 예속되었다. '줄서기'(縱的) 의사결정 풍조가 만연한다. 정치의 상명하복, 종적 의사결정이 경제 실패의 한 원인이 된 셈이다.

 

최근 일본에서 '한국은 변했다, 일본은 어쩔 것인가'라는 책이 주목을 끌고있다. '한국이 죽어도 일본을 못 따라잡는 18가지 이유'로 화제를 모았던 모모세 다다시가 썼다. 그는 한국의 반일감정이 줄고 일본에 관심을 갖는 젊은이들이 늘고있다고 했다. 이 분위기를 잘살려 경제적으로 한일이 협력해 국제분업체제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식의 대전환이다. '일본은 한국에 추월당할 것인가'의 저자 히라타 신이치로도 "지금은 양국이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나 협력해 아시아 전체의 번영을 추구해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일본 지식인들이 공공연하게 한국과의 협력에 목소리를 내고 있다. 과거와는 다른 변화다.

 

기술력 초격차만이 유일한 생존전략

한국과 일본, 오랜 경쟁관계다. 한국의 중장년층은 일본에 피해의식을 갖고 있다. 반대로 일본의 그 세대는 과거 식민지였다는 생각을 갖고 있을 법하다. 물론 양국 MZ세대의 인식은 전혀 다르다. 공통적인 변화는 한국이 일본을 앞질렀으며, 앞으로 더 많은 분야에서 일본을 추월할 것이라는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물론 그 배경은 일본인에 경각심을 일깨우려는 목적이 크다.

 

한국경제, 그들 예측대로 일본을 추월하고 계속 성장할 수 있을까? 관건은 국제관계와 경쟁력이다. 미중 경쟁이 진영간의 대립으로 진행되고 있다. 수출주도형 한국 경제에 대외불안정은 큰 부담이다. IT, 디지털 정보기술을 기반으로 더 고도화해야 한다. 기술력의 초격차만이 유일한 생존전략이다. 일본이 예측한 한국의 추월은 20년 후다. 그 절반 10년도 우리에게는 너무 길다.

 

1997"한국이 샴페인을 너무 빨리 터뜨렸다"는 외환위기의 수모를 잊지 말자. 동시에 일본의 창에 비친 '한국과 함께'가 진심이라면 미래로 눈을 돌리는 것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김명전 칼럼니스트 내일 2022-01-19

 

 

기득권층

기득권(旣得權)이란 이미 얻은 권리라는 뜻으로 사회적으로 볼 때 불법적이지 않게 차지한 것으로 이미 인정되고 있거나 설령 불법적이라 하더라도 암묵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권리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기득권층의 경계를 구분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중세 유럽에서는 귀족, 성직자, 법조인, 학자 등이었지만 현대에 와서는 법조인, 국회의원, 고위 공무원, 대기업 임원, 금융권 자본가, CEO, 의사, 약사, 교수, 학자, 전문직 등이 기득권층의 범주에 속한다고 합니다.

 

자유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누구나 능력이 있으면 기득권층으로 진입할 수 있습니다. 세습적 기득권층은 엘리트의 기득권 진입을 못마땅해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그들은 새로 진입하는 기득권층을 경멸하든가 배제하거나 따돌림을 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거주지의 기득권을 내세워 특정지역의 주민들은 비싼 땅값, 비싼 집값이 기득권이 돼 타 지역 사람들에 대한 경계심을 갖기도 합니다. 심지어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도 기득권층의 지배논리가 작용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기득권층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천민 자본주의의 속물 근성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권력을 소유한 이들은 국부 창출에 기여하며 기업 경영을 하지만 이면에는 기업의 발전을 이유로 종사자들과 소비자들에게 어려움을 주는 기득권층이 되기도 합니다.

 

경제가 발전하고 대중문화예술과 스포츠 권력자들이 생기면서 대중을 지배하고 팬덤을 거느리며 우상 같은 존재가 되면서 카르텔을 형성해서 기득권층 성곽 안에 들어가 있기도 합니다.

 

반면, 개인의 과학, 기술, 경영, 경제 분야에서 탁월한 능력과 업적이 있는 사람이 소위 헤드헌팅(Head hunting) 대상자가 돼 어느 날 남들이 우러러보는 자리에 앉게 되며 기득권층이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노동부에서는 1997년 헤드헌팅 직종을 정하기도 했습니다.

기관장, 최고 경영자, 생산부서 관리자, 기타부서 고위 관리자, 수학자, 물리학자, 통계학자, 화학자, 생명과학 전문가, 보건 전문가, 사업전문가, 법률전문가, 사회과학자, 작가와 창작 공연예술가 등이 공인된 헤드헌팅 대상자입니다.

 

정부는 브레인 풀 제도(Brain pool system)를 운영해 해외 고급 과학 두뇌 우수 교수 또는 연구인력을 유치하고 있습니다. 2001년까지 첨단 과학 분야에서의 학자들이 국내에 들어와 각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새로운 기득권층의 탄생이라고 하겠습니다. 또 사회와 나라에 크게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득권층이 언론 방송 종사자라고 하겠습니다.

 

세계적으로 영향력이 막강한 방송언론의 기득권층은 정부 책임자들을 무력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들은 무관(無冠)의 제왕이라고 하고 입법, 사법, 행정의 3부 다음 제4부라고도 합니다. 방송언론 권력을 가진 이들이 어느 편에 서서 그들의 필봉을 휘두르냐에 따라 여론이 좌우되고 국정과 국민의 의식이 달라지게도 합니다.

 

정치를 하는 지배세력의 영향력은 국민과 국가에 중대한 영향력을 끼칩니다. 그들이 가진 권력은 법으로 보장돼있어 다른 기득권층과 달리 정치 권력을 잡으면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기도 합니다.

 

반면 이들은 정당을 중심으로 생활을 하기 때문에 반대당을 약화시켜야 생존할 수 있는 위기의식 속에서 있습니다. ‘가우스의 이론(Gauss’s theorem)’에 따르면 두 개의 격리된 공간에 모든 조건을 동일하게 하고 A방에는 서로 다른 종의 쥐를, B방에는 같은 종의 쥐를 넣어 길렀는데 A방의 쥐들은 서로 사이좋게 지냈는데 B방의 종들은 힘센 쥐가 약한 쥐를 공격해 죽였다고 합니다.

 

정치라는 카테고리 안에 들어가면 가우스의 이론이 적용됩니다. 정치 기득권층은 정의, 불의에 관계없이 무자비하게 타도하고 탐욕을 민심으로 포장해서 기득권을 공고히 합니다.

 

정치의 목표인 오직 국민만을 위하고, 국민들이 평화롭고 질 높은 삶을 누리며 행복에 이르게 하는 사명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국민들이 정치인들을 걱정하며 각자도생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기득권층, 그들이 누구를 위해 어떻게 사느냐가 나라와 국민이 행복하냐 불행하냐로 판가름이 됩니다./ 유화웅 시인, 수필가 중부일보 2022.01.19.

 

 

점입가경, 일본의 혐한

일본의 혐한 풍조가 점입가경이다. 혐한이 하나의 풍조가 된 지 오래지만, 한국 때리기가 장사가 되자 명색이 언론이라는 매체들까지 노골적으로 혐한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우리 귀에도 익숙한 어느 종합잡지는 한국에 대해 격분과 배신이라는 표현을 썼고, 또 다른 주간지는 분노를 억제하지 못하는 것이 한국인의 병리라는 내용의 기사까지 내보냈다.

 

이런 상황에 대해 일본의 대표적 언론 아사히신문이 지난 16일자에 혐한과 미디어, 반감 부추기는 풍조를 우려한다는 제목의 사설을 게재하며, 혐한 보도에 맹공을 퍼부었다. 아사히는 한국인을 싸잡아 병리운운한 것은 민족차별이라며, 판매 촉진이나 시청률을 목적으로 이런 보도를 하는 것이 언론이라는 공기(公器)가 할 일인가라고 비판했다. 이 신문은 앞서 10일에도 재일한국인의 피해, 증오범죄를 용서하지 말자는 사설을 실었다. 재일한국인들의 집단거주지에 대한 방화, 민단 건물 시설의 파손 등을 규탄하며 철저한 수사와 처벌을 촉구했다.

 

요즘 상황을 보면, 오랫동안 한국에 대한 여론을 주도하며 일본의 양식을 대변하던 아사히신문이 고립되는 모양새다. 그만큼 많은 일본인들이 혐한에 휩쓸려 들어가거나, 무관심한 채로 있다는 얘기다. 최근 기막힌 얘기를 들었다. 나는 몇 해 전부터 팀을 만들어 도쿠가와(에도) 시대에 관한 명저들을 번역하는 작업을 해왔다. 현대 일본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도쿠가와 사회에 대한 우리 사회의 지식은 너무 부족하다. 그 가장 큰 이유는 교양시민들이 이 시대에 접근할 수 있는 한글 책이 턱없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심지어 대학에서 일본사 수업에 쓸 교재조차 마땅치 않은 지경이다. 다행히 취지를 이해하고 지원을 자청한 독지가도 만나 의욕적으로 출발했다. <에도시대란 무엇인가> <에도성(江戶城)> <에도시대를 생각한다> 등 학술적 교양서이면서도 일본에서 많은 독자를 확보해 왔고, 우리 독자들에게도 일독을 권할 만한 책들을 선정하여 애써 번역을 마무리지었다. 물론 이런 책 출판에 선뜻 나서는 국내 출판사가 거의 없어 애를 먹었다. 그러나 다행히 빈서재라는 신생 출판사가 출혈을 각오하고 출판 결정을 내려주었다. 우리 독서시장에도 이제 도쿠가와 시대 명저 시리즈정도의 책들도 나오겠구나! 뿌듯했다.

 

그런데 청천벽력! 일본 출판사들이 한결같이 저작권 교섭에 난색을 표하거나 아예 회답을 안 하는 것이었다. 어떤 유명 출판사는 이미 고인이 된 저자의 부인이 한국 출판에 부정적이라는 이유를 댔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 사정을 물었더니 갑갑한 얘기를 들려줬다. 그 부인이 한글로 번역될 경우 天皇을 천황이라고 번역하는가, 일왕이라고 번역하는가 묻더라는 것이다. 그러고는 천황으로 번역할 경우 한국에서 큰 문제가 생겨 남편의 명예에 누가 될까 걱정된다고 했단다. 한국의 미디어에서는 일왕이란 말을 쓰지만, 그간 학계의 일본사 번역에서 天皇을 일왕으로 번역한 일은 거의 없었다(호칭 문제는 2021513일자 본 칼럼 천황인가, 일왕인가참조). 이 부인에게 한국은 북한쯤 되는 나라인 것이다. 내게는 일본의 혐한 분위기를 상징하는 사건처럼 느껴졌다.

 

이 말도 안 되는 유가족의 오해를 설득하고 일을 진행시켜야 할 출판사는 이 부인의 말을 전하며 더 이상의 교섭을 회피하려 했고, 다른 출판사들도 교섭 메일에 회신조차 제대로 주지 않았다. 정치·외교적인 문제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학술서를 이웃 나라의 믿을 만한 연구자들이 번역하겠다는데(‘번역해주겠다는데!’가 솔직한 심정), 이에 냉담한 일본의 유명 출판사들을 나는 지금도 납득할 수 없다. 부디 혐한이나 한·일관계 뭐 이런 게 아니라, 차라리 시장성이 없다든가 하는 다른 장삿속때문이길 진심으로 바란다. 우리는 정말 이러지 말자

박훈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 경향 : 2022.01.20

 

 

팬데믹 2, 대학교육의 자화상

코로나19 팬데믹이 여전히 진행 중이다. 학교는 2020학년도 1학기부터 무려 4개 학기를 코로나19와 함께 보냈다. 연말연시 급증한 코로나19 앞에서 방학으로 한숨 돌렸지만, 이제 신학년도 수업을 준비할 때다. 그동안 대학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지난 2년 대학교육을 돌아본다.

 

장면1. 통상 30~50명 정도가 참여하던 대학의 학내 교수법 특강에 100명 넘는 교수들이 대거 참여하는 초유의 현상이 나타났다. 교육보다는 상대적으로 연구나 산학협력 과제에 무게가 실려 있는 대학 교수들에게 교수법의 중요성이 제대로 실감된 것이다. 팬데믹 이전과 다르게 실시간 온라인으로 이루어지는 특강 방식에 접근성이 높아진 장점이 있지만, 수업 운영이라는 당면 과제, 즉 비대면 교육을 어떻게든 운영해야 하는 문제 상황에 놓인 교수자의 절박함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장면2. 코로나19 상황에 따라 이제 대면 수업으로 전환할까요?”라고 물으면 아니오라는 답이 되돌아왔다. 비대면에서 대면으로 조심스럽게 전환하고자 하면, 어김없이 비대면을 원하는 학생들을 만났다. 팬데믹 2년차, 기본적으로 대면 수업을 지향하지만 개별 수업의 운영에 있어서는 교수와 학생이 협의하여 적절하게 운영하도록 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여 그대로 비대면 수업을 지속하거나, 대면으로 수업하면서 재택 참여 학생을 위해 실시간으로 수업 장면을 송출하는 선진적인 하이브리드 교육 방식을 의도치 않게 연출하는 경우도 생겼다.

 

초중등학교와 비교하면 대학에서 비대면 교육의 비중은 월등히 높았다. 대학생들은 학기 중 학교에 간 날보다 가지 않은 날이 더 많았다. 코로나19 상황이 좀처럼 끝이 보이지 않으니 비대면 상황에 적응해야만 했다. 대학의 교수자들은 기본적으로 연구 전문가이며, 최근에는 현장의 실무 전문가가 증가하는 추세다. 이들에게 교육에 대한 전문적인 학습기회가 많지 않았던 것은 당연하다. 대면 교육은 학생으로서의 경험이라도 있지만 비대면 교육은 교육 전문가에게도 생소한 것이었다. 온라인 수업과 블렌디드 러닝, 최근 부상하는 메타버스에 이르기까지 교육의 방법에 대한 집중적인 학습과 적용이 대학을 강타했다.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대학의 교육기능과 역할에 대한 자각과 이해가 생긴 것이다. 동영상 제공과 실시간 온라인 수업을 통해 대학 수업이 어느 정도는 정상 궤도에 올랐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활발한 상호작용과 팀 학습, 학습의 과정과 결과에 대한 피드백 등 적극적인 의미의 교육은 아직 숙제다.

 

대면을 이기는 비대면 교육은 없다. 그러나 대면 수업을 하고자 하면 학생들의 저항에 직면했다. 학습권과 안전권 사이에서 결정은 쉽지 않다. 출석도 못하고 질 낮은 온라인 수업을 한다고 대학 등록금 반환을 주장했던 학생들은 어디로 갔는가. 가장 큰 이유는 안전이지만, 대학생들은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학습과 생활 방식에 점차 적응되었다. 수업에 대한 투입을 줄이면 개인적인 우선순위에 에너지를 집중할 수 있다. 학내 기숙사에 머물러도 강의실 출석보다 컴퓨터를 통한 수업 참여가 더 빈번한 것이 현실이다.

 

주체적으로 학습을 관리하고 진로를 개척하는 능력이 있는 대학생에게 비대면 교육 방식은 효과적이고 능률적일 수 있다. 대학에서 대면과 비대면 교육 방식 모두를 활용할 수 있는 자산이 생겼다는 것 또한 수확이다. 그러나 강의실이 너무 오래 비워졌다. 장기화된 비대면 중심 교육에서 학습의 결손은 분명 존재할 것이며, 만남의 기회가 축소되고 대면 학과 행사와 MT가 불가능한 대학에서 관계와 문화는 초기화되었다

 

완전히 새로운 경로에 진입한 대학의 학습과 문화를 새롭게 만들어 나갈 방법은 무엇인가. 개인주의 속성이 강한 대학에서 더욱 고립화된 교수자는 수업을 개별적으로 책임지는 수준에서 나아가, 연대와 협력을 통해 방향을 함께 모색하고 실천할 필요가 있다. 대학 차원에서는 학생들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청취하고, 시대적 상황과 요구에 적합한 대학 교육과 운영의 새로운 프레임을 만들어야 한다.

 

지금까지 대학을 둘러싼 논의들은 대학평가, 재정지원, 산학연계, 지방대학 위기 등 제도와 담론에 집중되었다. 정시모집 등록이 진행되면 대학정원 미달 문제가 다시 불거질 것이다.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한가롭게 교육 타령이냐고 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살아남아야 할 대학은 기본에 충실한 교육기관이어야 한다. 지난 2년 대학교육 경험에 대한 성찰은 교육기관으로서의 대학 역할 수행을 위한 귀중한 토대가 되어야 할 것이다.

박수정 충남대 교육학과 교수 경향 : 2022.01.20.

 

 

무지와 백래시, 한국사회 시계를 거꾸로 돌리다

정치적 의제 앞에서 무지는 순진무구가 아니라 폭력이다. ‘공정을 볼모로 앞세워 무지와 백래시가 결탁해 만들어낸 폭력은 우리 사회에 실재하는 불평등, 차별, 혐오를 덮어버린다.

지난해 616일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가 경기 수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한 행사에 참석해 혁신과 공정으로 새로운 미래라는 문구를 펼쳐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조금 더 발전하면 학생들이 휴대폰으로 앱을 깔면 어느 기업이 지금 어떤 종류의 사람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실시간 정보로 얻을 수 있을 때가아마 여기 1, 2학년 학생이 졸업하기 전에 생길 것 같아요.”

 

얼마 전 윤석열 후보의 발언이 화제가 됐다. 대학 신입생들이 졸업할 때쯤에는 구인구직 앱을 활용해 실시간으로 취업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미래 예측덕분이었다.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고민되는 수준의 발언이어서 많은 이들이 실소를 금치 못했다. 논란이 일자 국민의힘 선대위는 당시 윤 후보가 지칭한 것은 미래앱이었다며 급히 수습에 나섰다. 물론 IT 기술과 관련한 윤 후보의 실언은 처음이 아니다. 그는 차기 정부는 그냥 디지털 정부가 아니라 디지털 플랫폼 정부’”라며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공무원의 역할이 자기가 뭘 판단해서 의사결정하는 게 아니라 시스템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의 문제가 되기 때문에, 30대 장관이 한 명이 아니고 이런 시스템 관리를 가장 잘할 사람들이 행정부처를 맡지 않겠나.” 이어서 그는 그럼 30대 장관이 한두 명이 아니라 많이 나올 것이라고 장담했다. 장관이 시스템 관리자인가? 그리고 시스템 관리는 30대가 잘할까? 윤 후보가 말하는 디지털 플랫폼 정부란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불분명하다. 토론이 필요하다.

 

많은 이들이 대선 후보들의 발언과 행보에 실망하거나, 혼란스러워하거나, 혹은 해명을 원하며 답답해하고 있다. 사람들의 흔한 반응 중 하나는 어떻게 저렇게 모를 수 있느냐이다. 알면서도 잡아떼는 것인지, 아니면 설명을 들어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인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래서인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대선후보들의 무지의 차이를 비교하는 밈(meme)이 최근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그 밈에 따르면, 이재명 후보는 아는데 모르는 척함으로 설명되고, 윤석열 후보는 진짜 모름으로 요약된다. 그런데 모르는 것 그 자체로 문제인 것은 아니다. 진짜 해악은 무지와 백래시(backlash)가 결탁해 한국 사회의 시계를 거꾸로 되돌리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1222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전북대학교에서 학생들과 타운홀 미팅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선택적 무지와 전략적 무지

무지란 무엇일까? 앎에 대한 학문을 에피스테몰로지(epistemology), 즉 인식론이라고 한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지식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유지되는가에 대한 학문이다. 반대로 무지가 어떻게 형성되고 유지되는지에 대한 학문도 있다. 애그노톨로지(agnotology)인데, 한국어로는 무지학이라고 옮겨도 좋을 듯하다. 무지에 대한 관심은 최근 크게 증가하여 관련 연구도 급격히 늘어나는 추세다. 음모론과 가짜뉴스가 판치는 시대에 사람들은 왜 무지한가에 대한 연구가 활발한 것은 당연하다. 백신을 믿지 않고 접종을 거부하는 사람들, 개표 결과는 조작이고 트럼프가 다시 집권해야 한다고 믿는 미국인들, 그리고 기후위기는 거대한 사기극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어떤 이들은 정말로 알려고 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정보를 조작하고 거짓 이론을 생산·유포한다.

 

애그노톨로지라는 용어의 창시자인 로버트 프록터는 무지를 크게 세 종류로 구분했다. 첫째, 원초적 무지는 문자 그대로 순수하게 알지 못하는 상태, 즉 지식을 습득하지 못한 상황을 뜻한다. 사전적 의미의 무지에 가장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사례는 윤석열 후보가 실제로 디지털 기술에 대한 지식을 충분히 익히지 못했음을 보여주므로 원초적 무지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종류의 무지는 사실 그 자체로 해롭다거나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모르면 배우면 되고, 모든 사람이 전문가일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무지는 마치 해소해야 할 문제인 것처럼 생각되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니어서 오히려 그런 도움의 손길조차 그저 일방적인 개입일 수 있다. 물론 직업적으로 알아야 하는 영역을 모르고 있다면 그것은 다른 얘기다.

 

둘째, 선택적 무지는 특정 영역에 대해 선택적으로 무지의 상태가 유지되는 것을 뜻하는데, 다른 표현으로는 수동적으로 형성되는 무지라고도 한다. 우리는 어떤 자극에 선택적으로 반응하는가? 반대로 우리는 어떤 신호를 무시하는가? 사람들은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모른 척할 수 있고, 혹은 겉으로 드러난 의도가 없더라도 굳이 배우려 하지 않거나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수 있다. 특히 지배 규범이나 정상 이데올로기바깥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 경우가 그렇다. 예컨대, 약자들의 삶과 언어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애써 그들의 고통에 눈길을 주지 않는다. 양당의 대선후보 역시 사안에 따라 민감하거나 기득권의 반발을 살 수 있다고 간주되는 영역은 의도적으로 회피한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차별금지법에 대한 두 후보의 태도다. 분명히 각종 여론조사를 통해 차별금지법 제정을 지지하는 국민들이 압도적 다수라는 사실이 반복적으로 발표되었지만, 두 후보는 여전히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며 뚜렷한 통계조차 외면하고 있다. 이 같은 태도는 특정 영역을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선택적 무지라고 볼 수 있다.

지난해 1110일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도보행진단이 국회의사당을 향해 걷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마지막 무지의 형태는 전략적 무지, 적극적으로 형성하는 무지. 사람들의 의심, 정보의 부족이나 불확실성, 또는 허위 정보를 이용해서 무지 혹은 거짓을 적극적으로 구성·조작·유지하는 것이다. 백신 음모론이 이와 같은 전략적 기획의 대표적인 사례다. 백신 음모론은 전 세계적으로 꽤 많은 사람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지만, 모든 경우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전략적 무지를 생산하기 위해 거리낌 없이 뛰어든다. 국민의힘은 ‘N번방 방지법을 막겠다면서 귀여운 고양이, 사랑하는 가족의 동영상도 검열의 대상이 된다면, 그런 나라가 어떻게 자유의 나라일 수 있겠냐는 주장을 폈다. ‘고양이 사진을 게재할 수 없다는 이 주장은 당연히 사실이 아니다. 그뿐만 아니라 국민의힘은 외국 서비스는 모두 ‘N번방 방지법적용 대상이 아니어서 법안의 실효성이 아예 없는 것처럼 주장했다. 또한 사적인 대화방까지 정보통신 기관이 직접 들여다보는 것처럼 허위 정보를 흘리며 절대다수의 선량한 시민들에게 검열의 공포를 안겨주는법은 용납할 수 없다고 반발하기도 했다. 이처럼 다양한 채널을 통해 부정확한 정보를 유통하고 서로의 거짓 주장을 확대 재생산하면서 사람들의 무지를 굳혀가는 것이 바로 전략적 무지다.

 

선택적 무지와 전략적 무지는 백래시(backlash)가 꺼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공급되는 산소와 같다. 이 둘은 독자적으로 기능하기보다는 함께 시너지를 내는 경우가 많으며, 현실 부정과 백래시의 논거를 계속해서 조달해준다. 따라서 우리가 정치인들의 무지(그것이 어떤 종류의 무지이든)를 단순히 웃고 넘길 일만은 아니다. 우리 사회에 실재하는 차별과 불평등을 외면하고 은폐하는 정책을 수립하고, 또한 시대착오적이고 반동적인 공약을 내세우는 것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는 약자와 소수자의 삶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든다. 특히 최근에는 공정의 이름으로 다양한 재분배 정책을 철회하려 하거나 여성에 대한 백래시를 정당화하는 흐름이 더욱 강화되고 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반복적으로 소수자 배려 조치를 불공정과 연결시켜왔다. “1985년생 여성이 변호사가 되는 시대에 여성들이 무슨 차별을 받고 있느냐묻고, “국민의힘 최고위원 선거에서 여성 의원 3명이 자력으로 당선된 것을 보니 할당제는 필요없다라고 말한다. 이 같은 단 하나의 사례로 대다수 여성 정치인들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설명할 수 있을까? 21대 국회의원 중 여성 의원의 비율은 19%. 국제의회연맹(IPU)이 지난해 11월 낸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여성 의원 비율은 회원국 중 121위에 해당한다. 대한민국 바로 위에 과테말라와 조지아가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도 여성 비율 19%는 대한민국 헌정 역사상 최고 기록이다. 마찬가지로 여성 변호사의 수가 최근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주요 법무법인의 여성 변호사 비율은 겨우 24.5%일 뿐 아니라, 파트너 변호사 중 여성 비율은 9.6%, 심지어 임원 변호사 중 여성 비율은 5%에 불과하다(202011, 대한변호사협회 양성평등센터가 발표한 설문조사).

 

이런 현실에 대해 무지한 채로 젠더 정책을 세우는 것은 옳은 일일까? 무조건 무한 경쟁을 하도록 하는 것이 공정일까? 정책과 법안을 만드는 사람은 특별한 성공 사례가 아니라 평범한 대다수의 사람들을 위한 답을 찾아야 한다. 성차별이 없다고 주장하기에 앞서 자세한 정보를 충분히 찾아볼 수도 있을 것이고, 다른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볼 수 있겠지만,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이들은 선택적 무지를 택한다. 그리고 반대 논리를 적극적으로 만들어내며 전략적 무지에 기여한다. 여성과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폭력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선택적 무지, 그리고 누구든 공정하게 경쟁하면 성공할 수 있다며 능력주의 논리를 설파하는 전략적 무지는 한국 사회의 백래시에서 핵심축을 이루고 있다.

지난해 1021일 김재연 진보당 대선후보가 무고죄 처벌 강화에 반대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시사IN 신선영

 

그들의 공정은 누구의 공정인가

심지어 윤석열 후보는 성폭력특별법에 무고 조항을 신설하고 처벌 수위를 높이겠다는 공약을 발표하면서, 이를 공정한 양성평등이자 공정한 법 집행으로 지칭했다. 게다가 성폭력 무고죄는 청년 공약이다. 장예찬 청년특보는 무고죄 처벌 강화는 양성평등 공약으로서 당사자인 청년들의 목소리를 반영해 사회의 공정을 추구한다라고 덧붙이기까지 했다. 억울하게 당하는 남성들이 많다는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의 주장을 적극 수용한 것이다. 그러나 성폭력 무고가 얼마나 드문 일인지, 또한 무고죄가 어떻게 성폭력 피해자의 목소리를 덮어버리는지에 대해서는 이미 수많은 자료가 쌓여 있다. 가해자들이 무고를 방어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이에 따라 오히려 성폭력 피해자들은 피해 사실을 입증하지 못할까 두려워 법적 절차를 포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이것은 존재하지 않는 현실이다. 오랜 시간 쌓여온 데이터와 연구는 선택적으로 무시한 채, 별다른 근거도 없이 한층 강력한 무고죄가 공정한 평등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과연 정의로운가? 여기서 누구의 삶과 요청이 선택적으로 삭제되는가?

 

정치적 의제 앞에서 무지는 순진무구가 아니라 폭력이다. 약자와 소수자의 삶에 실제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공정을 볼모로 앞세워, 무지와 백래시가 결탁해 만들어낸 폭력은 우리 사회에 실재하는 불평등, 차별, 그리고 혐오를 덮어버리고 있다. 백래시는 우리가 평등하고 정의로운 사회로 나아가는 것을 어렵고 복잡하게 만든다. 백래시의 저자인 수전 팔루디가 오래전에 말했듯, 백래시가 조직적 운동이 아니라고 해서 파괴력이 더 약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산발적으로 출몰하는 탓에 더 대항하기 어려울 수 있다. 요즘 우리가 목도하는 여성과 소수자를 향한 백래시는 공정의 얼굴을 하고 있어 더욱 그렇다.

 

거대 양당의 두 대선후보는 공정과 정의를 주요 가치로 앞세우고 있다. 그들의 공정은 누구의 공정인가? 그들은 약자와 소수자를 포함해 모든 국민을 포용하는 국가적 비전을 제시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아니면 특정 집단의 요구를 우선시하고 있는가? 보고 싶은 곳에만 시선을 두지 않는, 자신의 경험 바깥에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는, 그래서 자신의 무지와 한계를 꾸준히 극복해나가는 정치인들을 더 많이 볼 수 있는 2022년이 되기를 소망한다./ 김정희원 (애리조나 주립대학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시사인 2022.01.20.

 

 

소시오패스 사회

택배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고 있는 이즈음 동네 식당에서 밥 먹다 중년 남성 몇이서 욕하는 것을 들었다. 그중 한 사람이 택배 노동자들의 고된 노동을 동정하자 어떤 이가 "누가 그 일을 시켰어? 자기들이 하고 싶어서 한 일이니 죽든 살든 해내야지!" 하고 쏘아붙였다. 그 말에 나머지 사람들은 토를 달지 않았다.

 

얼마 전에는 동네 버스 정거장에서 희한한 장면을 목격했다. 젊은 친구 A는 동년배로 보이는 B의 짐을 들어 버스에 올려주었는데 배려받은 그가 나머지 짐마저 들어 올려달라고 요구하는 것이었다. 자리에 앉은 A는 당황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나머지 짐 하나를 들고 버스에 올라탄 BA에게 도와줄 바에는 끝까지 도와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나무랐다. 급기야 A가 모르는 사람에게 선의를 베푼 제가 잘못입니다, 하고 사과하는 촌극이 빚어졌다.

 

이런 반사회적 인격 장애 사례는 과연 일반화할 수 없는 특별한 것일까? 그럴 것이다. 하지만 포털 뉴스에 달린 댓글을 보면 생각은 달라진다. 지금 당장 방역 당국의 소상공인 영업 제한에 관한 뉴스에 어떤 댓글이 주를 이루는지 들여다보자.

 

"자영업자들에게 왜 돈을 주냐? 세금이 아깝다.", "이 기회에 저것들 망해야 한다. 자영업자들이 너무 많아서 탈이다.", "모두 힘든데 저것들만 돈 주는 건 공정에 위배된다. 왜 나는 돈 안주냐?" "저것들 돈 많이 벌어놨으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영업 제한은 불가피하나 소상공인들의 피해가 크니 정부는 합당한 손실 보상을 해야 한다, 다만 거기에 속하지 않는 피해자들도 있으니 보다 세심한 보상 기준이 마련됐으면 좋겠다" 등과 같은 댓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들과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을뿐더러 공존해야 할 피해자들을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뜨리고 말겠다는 집단 댓글을 보면 등골이 오싹해진다. 이는 반사회적 인격 장애자, 소시오패스가 아주 가까운 곳에, 일상 속 우리 주변에 많다는 증거가 아닐 수 없다.

 

실제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그저 양심이 없을 뿐입니다등 두 권의 상담 임상 사례 책을 통해 소시오패스의 심각성을 알린 미국 하버드대 의대 정신과 교수이자 심리학자인 마사 스타우트에 따르면 소시오패스는 인구 25명 당 1명 꼴이다. 소시오패스가 범죄자로 노출되는 경우도 20% 정도여서 밖으로 드러나는 예도 드물다. 일터나 가정 등 삶의 현장에서 멀쩡한 얼굴로 선량한 사람들의 삶을 일상적으로 망가뜨리고 있는 것이다.

 

함께 일하지 않으면 삶 자체가 영위되지 않았던 농촌 공동체 사회가 붕괴되고 무한 경쟁 시대인 현대 사회로 이행하면서 소시오패스가 더욱 발현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게다가 대면이 금지된 코로나 환경은 필연적으로 개인이 고립돼 소시오패스 사회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심리 영화 '나를 찾아줘'에서 보여주고 있다시피 소시오패스는 양심이 전혀 없는 인간이다. 양심을 인간관계에서 형성되는 감정적 의무감이라고 할 때 필수 요소는 타자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타자를 대할 수 없는 불우한 시대에 놓여있다.

 

불행한 시기는 언제나 역설적으로 인간의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시대이기도 하다. 양심과 연민의 정과 연대. 소시오패스 사회라는 어둠 속에서 이 가치는 과연 얼마나 반짝이고 있을까?

이건행 작가·전 언론인 경기신문 2022.01.20.

 

 

이제 정청래 의원은 탈당 안 해도 되겠다

문화재관람료 받지 말라는 게 불교왜곡? 목적 불분명한 전국승려대회

1.21 승려대회가 끝났다. 그 많은 스님들은 방역수칙까지 어겨가며 조계사에 모였는데 조계종은 무엇을 얻었을까? 구구한 말들이 있었지만 결의문을 보면 승려대회 대중은 다음과 같이 천명한다.

 

- 문재인 대통령은 종교편향 불교왜곡 사태에 대해 사과하라!

- 정부와 여당은 종교편향과 불교왜곡을 방지하기 위해 차별금지법 제정을 포함한 근본적 대책을 수립하라 !

- 정부와 여당은 전통문화유산의 온전한 보존과 계승을 위한 특단의 대책을 수립하라 !

 

먼저 불교왜곡이란 어불성설이다. 누가 부처님 가르침을 왜곡했다는 말인가? 등산객에게 문화재관람료 받지 말라는 게 불교왜곡인가?

 

총무원장이 말한 '2000만 불자'도 허풍이다. 정부의 통계자료에 의하면 700만 불자도 후한 계산이다. 정확하지 않은 말들, 사실이 아닌 말을 나열하며 분노를 유발하게 하는 것을 '선동'이라고 한다.

 

위 세 가지 결의문을 요약하면 문재인 대통령의 사과와 차별금지법 제정, 문화재관련법 개정이다. 종단에서 그토록 주장해온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의원의 탈당과 제명은 없다. 이와 같은 요구가 언제까지 관철되지 않으면 범불교도 대회를 개최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도 없었다.

 

추운 겨울에 그 많은 사람이 모여 이렇게 '천명한다' 정도에서 끝나는 승려대회를 굳이 했어야 했을까? 이런 정도면 승려대회를 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요구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승려대회를 마치고 사찰로 돌아가는 스님들의 가슴은 허탈했을 것 같다.

 

각 사찰에 수 천 개의 현수막을 보내서 요구하던 '정청래는 탈당하라', '정청래를 제명하라'는 말을 왜 누구도 못했을까? 조계사에서 정청래 의원이 36명의 의원들과 함께 108배를 하고 사과를 했기에 용서해 준 걸까? 승려대회장에 찾아온 정청래 의원을 다시 돌려 보낸 것을 보면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승가가 병들면 사회가 병든단 사실 보여준 승려대회

16일 문재인 대통령이 보낸 비서실장이 총무원을 찾아왔을 때 총무원장은 우리의 요구를 만족시킬 대답을 가져오지 않았다고 돌려보냈다. 그러면서 정청래 의원 탈당과 제명을 요구했다. 그런데 총무원장이 요구한 정 의원의 탈당과 제명 요구를 정작 승려대회에서는 누구도 꺼내지 않았다.

 

그들도 알기 때문이다. 정청래 의원의 탈당과 제명은 승려대회를 하기 위한 핑계였지 그것이 말도 안 되는 요구였다는 것을... 이번 승려대회는 대회를 한다고 발표했기에 개최한 것 뿐, 반드시 성취해야 할 목표가 결의문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만약 몇 개월 남지 않은 문재인 대통령이 사과를 안 하면, 이번 대선후보들도 제정할 뜻이 없어 보이는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지 않으면, 선거철이라 바빠서 문화재법 개정안이 발의 되지 않으면, 조계종은 다음단계로 어떤 행동을 취할까? 다시 2월에 범불교대회가 가능하기는 할까? 돌이켜 보건데 국회의원 36명이 조계사에서 108배하고 참회문을 읽었을 때 승려대회를 취소하면서 위와 같은 세 가지 요구를 했으면 더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칼은 칼집에서 빼들기 전이 더 무서운 법이다. 왜 국민들의 걱정을 비난과 염려를 온 몸으로 받으며 승려대회를 해야 했을까? 대선을 앞두고 특정정당과 특정후보를 압박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 아니면 이해되기 어렵다. 불교계 내부적으로는 종권을 장악한 자의 위력을 보여주어 진정한 주인이 누구인지 드러내고자 하였을 것이다. 승가가 병들면 사회가 병든다는 사실을 이번 승려대회가 잘 보여주고 있다. 승가를 건강하게 하는 것이 사회를 건강하게 하는 것임을 다시 확인한다.

 

확실한 것은 정청래 의원은 탈당을 하지 않아도 되겠다. 민주당은 정청래 의원을 제명하지 않아도 되겠다. 벌써 불교방송은 승려대회를 "화합과 공존의 가치를 일깨운 여법한 승려대회", "성숙한 집회의 격을 보여준 승려대회"라고 극찬하고 있다. 다른 교계 언론들도 칭찬 릴레이를 이어갈 것이다. 어떤 짓을 벌이더라도 이렇게 포장을 잘 해 주니 하는 일마다 대 성공이다.

 

이제 코로나 시국의 승려대회를 관전한 국민의 냉정한 평가만 남았다. 299명 이하로 제한된 방역수칙을 어겼으니 벌금 낼 일도 남았다.

허정 스님(news) 오마이뉴스 22.01.22

 

 

민주당, 위기에 빠지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여성가족부 폐지를 들고나오자 이대남(20대 남성)이 열광적으로 반응했고, 이를 계기로 윤 후보 전체 지지율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지지율을 추월하고 있다. 왜 여가부는 이대남의 타깃이 되었을까?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여기고 여성을 불공정하게우대하는 정책·담론·교육이 여가부에서 비롯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가부가 취약 가정·청소년에 대한 지원 등 선한 기능을 하고 있다는 해명은 핀트가 어긋난 것이다. 이대남의 요구는 잠재적 가해자론에 대한 사과와 재발방지, 그리고 여성 우대 정책을 폐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이렇게 할 수 있을까? 매우 어렵다. 민주당에는 사회운동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정치에 뛰어든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물론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정치를 활용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사회운동의 가치와 국가정치의 가치가 상충할 때, 섣불리 사회운동의 가치를 우선시하는 것은 위험하다. 예를 들어 성폭력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이른바 유죄 추정의 원리를 적용하면, ‘법 앞의 평등이라는 근대 민주주의의 핵심 원리가 흔들린다. 윤석열 선대본부는 이를 포착하여 무고죄 처벌 강화를 내놓았다. 이것이 영리한대응인 이유는, 이대남의 젠더 정체성이 시장주의라는 이념과 커플링된 것이 이 지점이기 때문이다. 나는 지난해 78일자 칼럼 이대남은 왜 시장주의자가 됐을까에서 이 과정을 설명하며 대안을 제시한 바 있다.

 

사회운동의 가치를 국가정치에 활용하는 데는 또 다른 난관이 있다. ‘비판은 타당한데 목표는 모호한 경우가 많은 것이다. 예를 들어 남녀 간 임금격차를 보자. 한국은 31.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압도적 최고다(평균은 12.5%). 이를 줄이려면 여성이 고소득 분야로 더 많이 진출하도록 유도하고, 출산·육아 지원을 강화하며, 고강도·장시간 노동을 대가로 고임금을 받는 이른바 그리디 워크(greedy work)를 줄여야 한다. 그런데 이 세 가지에 모두 동의한다 할지라도 임금격차를 ‘0’으로 만드는 것이 타당한 목표인지는 의문이다. 만일 그렇다면 남성이 여성보다 3.1% 적게 받는 룩셈부르크의 경우 이러한 정책들을 역행시켜야 한다는 역설에 도달한다.

 

비판은 타당한데 목표는 모호한것은 진보운동의 고전적 문제다. 카를 마르크스부터 그랬다. 그는 노동자가 외관상 동등한 계약주체로서 자본가와 근로계약을 맺지만(형식적 평등), 이 계약의 이면에는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깔려 있음을 지적했다(실질적 불평등). 그렇다면 실질적 평등은 어떤 상태인가? 기업을 노동자들이 소유하는 것인가, 아니면 국가가 소유하는 것인가? 시장경제인가, 계획경제인가? 마르크스의 어느 저작을 봐도 무엇이 실질적 평등인지 답이 없다. 이러한 사정은 페미니즘도 마찬가지다. 양성평등이 어떤 상태인지 구체적으로말하는 사람이 드물다. 주디스 버틀러쯤 되면 아예 양성평등이라는 개념 자체를 해체한다. 물론 목표가 불명확해도 가치를 방향타 삼아 나아가는 것이 운동가로서는 미덕일 것이다. 하지만 정책과 예산을 결정해야 하는 정치인으로선 결격사유다.

 

가장 해선 안 될 일이 청년수당으로 돈을 나눠주겠다고 하는 것이다. 기본소득에 대한 반대율이 가장 높은 것이 바로 20대이다. 나는 15년 넘게 주요 커뮤니티들을 관찰해 왔는데, 요새 청년 남초(男超) 커뮤니티들의 여론주도세력은 저출생에 의한 미래의 극단적 인구 구조를 공포스러워한다. 이들은 육아휴직에 대해 매우 관대하고(출생률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므로),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정책을 용서하지 못한다(가뜩이나 낮은 출생률을 박살냈다면서). 기본소득이나 보편복지 확대는 극혐의 대상이다. 그럴 여력이 있으면 고령화로 인해 장차 증가할 조세 부담률을 조금이라도 낮춰주는 데 써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민주당은 국가정치의 가치보다 사회운동의 가치를 앞세우고, 정치인이면서도 운동가인 양 행동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에토스의 위기). 무엇보다 사상적 지표이던 평등이나 복지가 뿌리째 불신받고 있다(로고스의 위기). 대선 전에 새로운 면모를 보이는 것이 가능할까? ‘민주당은 어렵겠지만 이재명은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는 기본적으로 실용주의자이기 때문이다. 그가 상대 후보를 앞섰던 시기는 유튜브 채널 삼프로TV’에 출연해 실용주의자로서의 면모를 과시했을 때였다./ 이범 교육평론가·<문재인 이후의 교육> 저자 경향 : 2022.01.22

 

 

팬데믹 2, 고통은 낮은 곳으로만 흘렀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팬데믹 2년 동안 코로나19로 인한 고통은 낮은 곳으로만 흘러들었다. 우리 기찻길옆작은학교가 있는 인천의 만석동, 그리고 화수·화평동이 그런 곳이다.

 

지난해 2월 갑자기 닫혔던 공부방 문은 3월 말에야 열렸다. 두어 달 만에 다시 만난 아이들의 몸과 마음이 위태로웠다. 당장 치료가 필요한 아이를 데리고 공부방이 있는 지역의 청소년 상담센터에 갔다. 공부방 아이들의 상황을 들은 상담센터에서 업무협약을 제안했다. 그 덕분에 아이들이 때맞춰 상담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팬데믹은 질병, 알코올 의존, 장애가 있는 가정을 더 궁지로 몰았다. 취약계층의 아동을 지원하는 드림스타트의 아동통합사례관리사 선생님들과 협력한 덕분에 위기에 처한 아이들을 도울 수 있었다.

 

공교육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아이들 곁에서

코로나19로 생긴 낯선 상황에서도 아이들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34년 동안 한자리에 있으며 이어온 생명줄’, 지역 네트워크 덕분이다. 작년에는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가난한 이웃을 만나온 이들의 연대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 순간이 많았다. 공부방 아이들이 겪는 어려움은 보호자들이 처한 현실에서 비롯된다. 가난한 지역일수록 신체적·정서적 장애를 가진 이들이 많고 직업도 불안정하다. 예를 들어 이주 배경을 둔 보호자는 지역의 커뮤니티에서 소외되어 있을 뿐 아니라 가정 안에서조차 고립되어 있다.

 

그들에게는 공부방이 세상과 연결되는 유일한 문이다. 위기 상황이 오면 우선 공부방에서 긴급 지원을 한 뒤 공부방 청년들이 일하는 다문화가족센터 및 교육청 위(Wee)센터와 연결해 적절한 제도적 지원을 받게 도왔다. 먹고사는 일만으로도 벅찬 보호자들은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에 대해 잘 모른다. 그래서 자녀들에게 제공되는 돌봄·교육 지원·경제적 지원을 놓치는 일이 많다. 보호자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전달하고 제도적 지원을 받게끔 돕는 일도 공부방의 일이 된다.

 

오래전부터 기찻길옆공부방은 왜 대안학교로 전환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2001년 강화로 귀농하며 기찻길옆작은학교로 이름을 변경하자 드디어 대안학교로 바꾸었느냐고 묻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공부방을 유지하며 공교육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아이들과 이웃의 곁을 지킨다. 사회에서 부여받은 지위는커녕 경제적 지원도 없이 선생님이 아닌 이모·삼촌이란 이름으로 아이들 곁에 남아 있는 까닭은, 공부방이 있는 그곳이 약한 이들이 흘러와 고이는 곳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34년 동안 한자리에서 사람과 사람, 골목과 골목을 이으며 살아왔다. 불평등과 고립이 깊어진 지난 2년 동안에도 우리를 지켜준 것은 서로의 곁을 지키는 노력과 서로의 연결망이었다.

 

공부방은 목소리가 작은 친구의 말이 모두에게 전달되도록 다 같이 자기 목소리를 낮춰주는 곳이고, 때로는 그 친구의 목소리가 더 크게 멀리 들리도록 다 같이 크게 외쳐주는 곳이다. 우리의 목표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인재나 미래의 꿈나무가 아니다. 그저 지금 여기서 충분히 사랑하고 서로를 지키는 것이다.

 

지난 연말 아직 신입생 모집 공고도 내지 않았는데 초등학교 신입생 셋이 공부방 문을 두드렸다. 그 가운데 둘이 이주 배경을 가지고 있다. 한 아이는 중도 입국 아동이다. 신입생 덕분에 공부방이 있는 그 자리가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2022년에도 우리가 있을 자리는 이곳이다. 이곳에서 만나는 아이들이 희망이다.

김중미 (작가·기찻길옆작은학교 상근자) 시사인 2022.01.23.

 

 

냄비 속 개구리

온수자와(溫水煮蛙) 라는 말이 있고, 삶은 개구리 증후군 (Boiled frog Syndrome) 이라는 말도 있다. 개구리를 뜨거운 물에 넣으면 즉각 뛰쳐나오지만, 찬 물 속에 넣고 천천히 데우면, 위험을 감지하지 못한 채 서서히 죽는데,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위기상황을 알아 차리지 못하고, 소극적으로 안주하다가 그냥 죽거나 멸명하는 어리석음을 빗댄 말이다.

 

실제로, 프랑스에는 '그르뉘에(Grenouille)' 라고 하는 개구리 요리가 있는데, 이 요리를 할 때에도 개구리가 들어있는 물을 천천히 가열하면, 개구리는 크게 요동치지 않고 얌전한 상태로 있다가 요리가 된다고 한다

 

이런 현상을 빗대어 '냄비 속 개구리 이론' 또는 '삶은 개구리 이론' 이 등장한다.

미국 일리노이 공과대학 연구원을 역임한 무라야마 노보루(村山 昇) 의 작품 '피카소와 삶은 개구리' 라는 책에서도 직장인을 4가지 부류로 구분하고 있는데, 그중에서 변화에 소극적이고 현실에 안주하다가 한순간 퇴출되는 직장인을 '삶은 개구리형' 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지금 현 인류가 봉착하고 있는 가장 큰 위협요인은 바로 '기후 위기' 이다. 최근들어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기후재앙이 발생 하고 있다.

 

2010년 러시아 폭염 - 55,000명 사망

2013~2014년 호주 폭염 - 생산성 손실 60억 달러

2015년 남아프리카 가뭄 - 농업생산량 15% 감소

2017년 아프리카 가뭄 - 실향민 80만명 발생

2017년 허리케인 하비 - 경제적 손실 1,250억 달러

2019년 유럽 폭염 - 프랑스에서만 1,500명 사망

<출처 : 대한민국 탄소중립 2050, KEI, 2021>

 

이밖에도, 수많은 자연재해와 기상이변들이 우리 주변에서 계속 위험신호를 보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깊이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 6차 보고서가 밝힌 것처럼, 2021~2040년 사이에 지구 평균온도가 1.5°C에 도달하고, 2100년에는 3.3~5.7°C 까지 상승할 것이라고 하는데,

 

1.5°C를 넘을 경우, '극한 고온발생 빈도'가 산업화 이전 대비 8.6배 증가하고, 4°C 이상 상승하면 무려 39.2배나 증가한다. 인간이 생존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이러한 기후위기를 맞아 과연 우리는 '냄비 속 개구리' 처럼 안일하게 현실에 안주하고, 소극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성해 봐야 한다.

 

맹자에 '생우우환 사우안락(生于憂患 死于安樂)' 이라는 말이 있다. 기후위기에 처한 지금의 상황을 근심하고 걱정하며 '더 늦기 전에' 적극적으로 해결방안을 모색하면 살 수 있는데,

 

편리하고 풍요로운 안락함에 빠져 이 위기상황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지붕이 샌다면 비가 오기 전에 수리해야 하고, 목 마르기 전에 샘을 파야한다. 비 올 때 지붕을 수리하려고 하거나, 목 마를때 샘을 파는 것은 이미 늦은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제는 냄비 속에서 따뜻한 온천욕을 즐길 것이 아니라, 냄비 속에서 뛰쳐나와 빨리 불을 꺼야 한다.

 

시간이 별로 없다.

더 늦기 전에...

김연준 자문위원 불교공뉴스 2022.01.23.

 

 

정경심 겨눈 창, 김건희의 방패

대선 정국에 무속 논란은 뜬금없다. 하지만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윤석열 후보의 배우자가 서울의소리기자와 나눈 대화가 속속 공개되었다. 홍준표유승민도 굿을 했다는 김건희 말에 당사자들이 발끈했기 때문이 아니다. 한겨레 논설위원의 비선언급(120)에 이어 경향신문은 김건희 무속중독 논란의 핵심을 비선권력이라고 보도(122)했다. 현재까지 보도만으로도 윤석열 부부와 점쟁이의 접촉은 일반의 예상을 뛰어넘는다.

 

여기서 점쟁이는 김건희의 표현이다. 언론 보도처럼 무속을 싸잡아 폄훼할 일은 아니다. 한국 전통종교로서 무교 고유의 가치가 있다. 다만 기독교와 불교에도 본디 가르침과 동떨어진 신앙 형태가 있듯이, 무교에도 해원상생의 큰 무당이 있는 반면 점쟁이도 있다. 점쟁이가 대한민국 대통령의 판단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준다면 국정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조동 신방복합체는 모르쇠를 놓거나 체면치레 보도에 그치고 있다. 심지어 김건희 팬 카페를 부각해 연일 보도한 언론이 있다. 언죽번죽 대한민국 최고언론을 자처하는 조선일보다. 우리가 지켜보았듯이 조선일보가 정경심을 겨누어 검증한 보도들은 날이 새파랗게 서 있었다. 물론, 언론의 권력 감시는 필요하고 끈질긴 취재도 나름 평가할 수 있다.

 

문제는 정경심에 가장 날 선 보도와 감정적 논평을 쏟아냈던 언론의 잣대다. 조선일보가 정경심에 겨눈 창은 생게망게하게도 김건희의 방패가 되었다. 그런데 어떤가. 감시해야 할 남편의 권력은 오히려 후자가 더 크지 않은가. 법무장관 후보자와 대통령 후보자의 배우자다.

 

문화방송이 녹취록을 방송한 바로 다음날이다. 조선일보 사설은 본질은 사라지고 말초적 논란이 판치는 이상한선거판이 되고 있다고 개탄했다. 유체이탈, 내로남불이다. 정책을 중심에 두라는 권고에 귀 막고 특정 후보를 조준한 말초적 보도를 누가 가장 쏟아냈는가는 굳이 물어볼 필요가 없을 터다. 더욱이 김건희 녹취록이 말초적일까. 가정이지만 이재명 후보의 배우자 녹취록이었어도 그렇게 표현했을지 스스로 자문해보길 권한다.

 

이미 재판부도 밝혔듯이 대통령 배우자는 대통령의 직무 수행에 직간접적으로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지위에 있다.” 추가로 밝혀진 녹취록에선 남편에 대한 그녀의 영향력이 강하다고 판단할 수 있는 발언들이 듬뿍 담겨있다. 정경심을 겨눈 그 창이라면 조선일보가 비분강개해서 마구 휘두르며 대서특필할 사안들이 김건희엔 넘친다. 몇 가지만 추려보자.

 

첫째, 언론 자유를 뒤흔들 인식이다. “내가 정권을 잡음 거긴, 거기는 완전히 무사하지 못할 거야. 아마라든가 권력이라는 게, 우리가 안 시켜도 알아서 경찰들이 알아서 입건해요. 그게 무서운 거지라는 발언은 살천스럽다. 경찰에 대한 모욕이다. 더구나 알아서 입건할 경찰에 대한 문제의식은 보이지 않는다.

 

둘째, ‘미투에 대한 언급이다. ‘피해 호소인이라는 말 한마디로 여성운동가들을 싸잡아 틈날 때마다 매도해온 언론이 김건희의 주장에 모르쇠를 놓는다. ‘연애와 돈을 연결 짓는 말들은 미투 여성에 대한 가해이자 여성 일반에 대한 모욕 아닌가.

 

셋째, 윤석열 후보의 거짓말 의혹또한 대서특필 감이다. 윤 후보는 틈날 때마다 제 아내는 정치에 관심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녹취록이 전하는 상황은 누가보아도 아니다. 그 뿐이 아니다. 윤 후보는 자신이 비호한 김건희 겸임교수 의혹에 대해 공채였다는 증거와 보도가 나왔음에도 진실을 밝히려는 적극적 언행이 없다. 거짓말 의혹에 빠른 해명을 촉구한다.

 

고사에서 다 뚫는 창과 다 막는 방패를 동시에 판매하는 행태가 모순의 기원이다. 그 본질은 사기. ‘불편부당을 내걸며 가장 정파적인 매체를 알게 모르게 다수 언론이 따라간다. 유권자의 알 권리에 충실한 언론은 소수다. 딴은 정경심 겨눈 창과 김건희의 방패는 조선일보만 두고 할 말은 아니다. 윤석열 자신도 그러지 않은가.

손석춘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미디어오늘 2022.01.24.

 

 

솔로지옥에 열광한 N포세대

2030세대는 N포세대라고도 불린다. 처음에는 삼포세대라고 했다. 연애, 결혼, 출산 3가지를 포기한 세대를 일컬었다. 그러다가 집, 경력, 인간관계, 희망, 건강, 외모까지 점점 포기할 거리가 늘어나더니 결국은 셀 수 없이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하는 N포세대가 되었다. 그중 연애가 가장 먼저 포기하는 것으로 꼽힌다는 게 씁쓸하다. 신경림 시인이 노래한 가난하다고 사랑을 모르겠는가라는 반문처럼 삶이 아무리 치열하고 고단하다고 사랑을 모르겠는가.

 

요즘 짝짓기 예능이 전성기를 맞았다. 비록 나의 연애는 포기했지만 남의 연애는 훔쳐보고 싶은 심리를 정확히 찌른 듯하다. 특히 또래 사이에선 최근 넷플릭스가 방영한 솔로지옥의 인기가 뜨거웠다. 기존의 커플매칭 프로그램과 차별화되는 솔로지옥의 인기 비결은 아마도 ‘21세기 MZ세대의 사랑법과 판타지를 제대로 보여 주고 충족시켜 주었기 때문이라고 추측해 본다.

 

솔로지옥은 소위 화끈함(Hot)’을 무기로 한 개방적인 구성과 분위기가 돋보였다. 세대와 사람에 따라서 선정적 혹은 노골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이러한 개방성은 몸매를 과감하게 노출하면서 이성에게 드러내 놓고 섹스어필이 가능하도록 연출한 장면들로 한국의 유교 정서를 시원하게 날려 버렸다.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와 견주어 자유로워진 성 개방 풍조에 익숙하고 성 문화를 터부시 하지 않는다. 성생활을 자연스럽고 건강한 일상적인 문화로 받아들인다. 연애의 즐거움 중 하나로서 솔로지옥이 숨기지 않고 드러낸 성적 유혹의 밀고 당기기가 현실 연애 당사자인 2030세대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온 지점이다.

 

또한 솔로지옥에 출연한 여성들은 진취적으로 자신의 짝을 찾아가는 자주적인 여성상을 제시함으로써 기성 짝짓기 프로그램들이 내재했던 조신하고 얌전한 여성 이미지의 보수성을 거부했다. ‘솔로지옥이 낳은 스타 프리지아가 최고의 예시가 될 것이다. 대중이 프리지아라는 인물에 환호했던 이유는 그동안 억눌려 왔던 여성의 자기표현 욕구, 즉 프리지아의 대담하고 솔직한 표현력에 대한 대리만족감과 실제 청춘들의 연애 과정을 편견 없이 담아낸, 그러니까 때론 여성이 연애를 이끌고 능숙하게 주도하는, 이런 요소들의 적극적인 발현으로 보인다. 사랑을 쟁취하는 데 있어 주체적인 당당함은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에게도 유효한 마음가짐이라고 2030세대는 공유한다.

 

위와 같은 참신함과 별개로 솔로지옥마지막 회는 조금 실망스러웠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솔로지옥역시 낡은 연애관을 완전히 탈피하지 못했다는 한계를 보았다. 마지막 회는 최종 커플을 결정하는 내용이었고 출연자들은 각자가 마음속에 품은 이성을 최종 선택하면 되었다. 그러나 맹점은 남성 출연자가 먼저 여성 출연자를 선택하고 이후 여성 출연자가 자신을 선택한 남성 중 한 명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한 규칙에 있었다. 여성이 호감을 표현했는데 남성이 거절하면 민망할 수 있으니 남성에게 먼저 선택권을 주어서 여성 출연자를 배려하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여성은 남성이 먼저 표현해 주어야만 자신의 마음을 밝힐 수 있는 수동적인 역할에만 머물러야 하는 걸까. 남성 출연자로부터 아무에게도 선택받지 못한 두 여성 출연자는 결국 자신의 마음을 고백할 기회가 없었다. 설령 남성의 선택을 받은 여성일지라도 본인을 선택한 남성 이외에 다른 상대를 선택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프로그램의 파격적이고 유쾌한 이미지가 아쉽게도 금이 가는 순간이었다.

 

지난 13일 데이터 분석 업체인 앱애니가 발표한 2022 모바일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소비자가 가장 많이 지출한 앱 7위에 소개팅 앱 위피가 꼽혔다고 한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데이팅 앱 틴더가 틱톡과 유튜브 다음으로 소비자 지출액 순위 3위에 랭크됐다. 코로나 시대에 어디서 누구를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 막막하고 답답한 현실을 방증하는 지표다.

 

연애를 포기당한 N포세대가 이제는 연애를 상실당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사람들은 연애가 주는 기쁨과 설렘이 청춘의 특권이라고 말하지만 학업과 스펙, 취업에 치이고 최근엔 젠더 갈등이 폭발한 젊은 세대에겐 호사스러운 조언처럼 들릴 뿐이다. 그럼에도 소셜매칭 서비스의 가파른 성장세는 새로운 관계에 목마른 우리 세대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 준다. 개인적으로 연애는 행복의 가치를 넘어서 내가 이전까지 마주하지 못했던 다양한 인간형을 이해하고 공부하는 단연 최고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타인을 포용하고 나와 다른 생각과 기준, 차이에 관대해지는 법을 가장 잘 가르쳐 준 것이 연애였다. 코로나가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관계 실종 시대에도 부디 연애를 포기하지는 말자. 어쩌면 짝짓기 예능프로그램들을 챙겨 보며 죽어 가는 연애세포를 되살리는 것도 좋은 대안이 될 것 같다.

정소희 공모 칼럼니스트 부산일보 : 2022-01-24

 

 

어느 환경운동가의 시각에서 본 '전과 4범 이재명 프레임'의 진실

윤석열 국힘당 후보가 전과4범 이재명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전과자 공화국이 될 것이라고 험한 프레임을 씌웠다. 홍준표 의원도 전과 4범이 대통령이 된 적은 없었다며 김건희씨 경력 위조 문제와 서로 상쇄하자란 발언까지 한 바 있다. 과연 그럴까? 이재명의 전과들은 사익을 위해 위조한 김건희 씨와는 반대로 가난한 이들이 이용하는 시립의료원을 건립하기 위해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면서 받게 된 벌금과 처벌로 사실은 스스로 택한 결과이다. 윤석열 후보의 '중범죄자' 프레임은 네거티브 선거 전략에 불과하다.

 

이재명 후보와의 첫 만남은 2002, 7살 딸과 한창 환경노래운동에 나설 때였다. 이재명 후보가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던 당시 성남시립병원설립추진위 공동대표를 맡았다. 갑자기 성남시내 두 개의 종합병원이 적자로 폐원하면서 응급실 걱정이 된 성남시민들이 주민발의를 통해 18,500여 명의 서명을 받아 '성남시 시립의료원 조례'를 만들어 시의회에 상정했다. 당연히 통과될 것으로 생각했으나 당시 상임위는 심의 자체를 보류했고, 본회의는 날치기 폐회를 해버렸다. 의회 방청석에 대기하고 있던 시민들은 이에 분노해 항의하면서 충돌이 생겨 그 과정에서 50여 명 구속, 12명이 입건된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당시 추진위의 공동대표 이재명 변호사는 '특수공무집행방해'라는 죄목으로 경찰의 수배를 받아야 했다. 그 후 이재명 변호사가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살던 성남시 공장지대에 '의료협동조합'을 만든다며 발대식에 우리 환경노래가수 부녀를 초대했다. 오프닝 공연이 시작되자 이재명 변호사는 얼마나 좋았는지 무대 위로 뛰어 올라와 기타 치며 딸과 함께 노래하는 우리 부녀 옆에서 덩실덩실 막춤을 추었다. 어린애처럼 순수한 표정과 춤을 잊지 못하고 있다.

 

이재명 변호사가 시장이 되자 성남시에서는 시승격 30주년 기념 환경음악회의 기획을 부탁했다. 난 성남시민 들이 모두 참여하는 축제로 만들기 위해 성남사랑·자연사랑 노래가사를 공모하라고 제안했다. 성남시민 수 백 명이 응모해 심사한 결과 '성남의 아침'이 대상을 받았는데 당시 분당중앙공원에서 개인과 합창 등 10여 개 팀이 참가한 성남 환경음악 경연대회를 열었고 난 심사위원으로 자격으로 참석했다. 이 지사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회안전망 구축과 환경문제 등 사회정의에 특별한 애정을 보인 당시 몇 안 되는 양심적 지식인 단체장 중 한 사람이었다. 이후에도 난 매년 열린 성남 맹산 반디불이 축제에 초등생 딸 인아와 함께 참여해 성남시의 자연사랑 환경운동을 꾸준히 도왔다.

 

이재명 후보는 집안이 너무 가난해 초등학교 졸업 후 공장에서 일을 해야 했다. 성남시립병원건립운동은 사고로 팔을 잃을 뻔한 이변호사가 자신과 같은 처지의 가난하고 아픈 서민들을 돕기 위해 시작했던 일이다. 검정고시로 대학에 들어간 이재명이 고시에 합격하자 변호사 개업을 하면서 봉사활동인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다가 이일을 계기로 정치에 뛰어들었고 성남시장이 되었다. 결국 그는 성남시립병원을 다시 추진해 재개원 운동을 시작한 지 18년만인 2019년에야 공공의료복지의 큰 뜻을 이루게 되었고 202012월에는 코로나19 거점전담병원으로 지정됐다.

 

그러나 홍준표 의원은 2012년 말 경남지사로 취임하자 곧 의료민영화에 앞장서 100년 이상 가난한 이들의 건강버팀목이 되어주었던 진주의료원을 강제 폐쇄시켰다. 처음엔 누적적자 탓을 하다 재정구조가 좋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강성노조 탓으로 돌렸다. 그러나 사실은 의료재벌을 살찌우기 위한 박근혜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공공병원 민영화에 앞장선 강제폐쇄였던 것이다. 전 세계적 의료대란과 경기침체를 물고 온 코로나 사태가 터지자, 경남도는 홍준표 의원이 강제 폐쇄했던 진주의료원을 대신할 서부경남시립병원설립에 착수했다. 이로써 몇 백 억의 세금만 낭비한 꼴이 되었다. 전 세계가 극찬하고 있는 K방역의 성공은 각시군 의료원과 보건소의 공공의료 서비스가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이재명 후보의 전과들을 들여다보니 가난한 이들의 건강과 인권을 지키기 위한 성남시민들과의 시민운동 과정에서 생긴 사고로 사익추구와는 너무나 거리가 먼, 공동선을 추구하다가 받게 된것이었다.

 

한 사람이 걸어온 길을 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와 미래를 내다볼 수 있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본 사람만이 그 고통을 안다. 한 인간이 겪어내기에는 가혹했던 고난과 역경들이었다. 묻고 싶다. 대선 후보들 중 누가 이재명처럼 시민들을 위해 자신의 온 몸을 던져 보았는가?

이기영 초록교육연대 공동대표, 호서대 명예교수 | 프레시안 2022.01.24.

 

 

약탈적 금융을 키우는 허울 좋은 좀비들

불균형의 시대다. 가계와 기업의 빚이 전체 경제규모의 2.2(한국은행 금융안정보고서)에 달한다는 통계는 빚에 의지해 집을 사고, 주식을 하고, 사업을 연명하는 금융불균형시대의 자화상이다.

 

금융불균형의 기저엔 복잡한 심리가 씨줄과 날줄처럼 엮여 있다. 나만 뒤처지고 있다는 불안감, 인생역전에 대한 기대감, 현재를 어떻게라도 살아가야 한다는 절박함, 레버리지를 통해 대박을 터뜨렸다는 주변의 성공신화 등이 복잡하게 얽혀 들어간다. 3분위 소득자가 17.6년간 꼬박 한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서울에서 집 한 채를 장만할 수 있다는 기막힌 현실과 1~2%대의 낮은 시장금리는 이런 복잡한 심리에 가속도를 붙였다. 미친 집값에 곁들인 술안주로 대박주, IPO(기업공개), 가상자산이 단골메뉴로 등장한 것도 금융불균형 시대의 단면이다. 사실상 빚으로 쌓은 자산이다. 게다가 빚의 급속한 증가는 시세거품을 조장한다. 악순환이다.

 

물가는 어떤가. 지난해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연 2.5%1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밥상물가는 5.9% 올랐다. 주거비용과 배달수수료까지 고려하면 실제 체감물가는 더 높을 수밖에 없다. 수요와 공급불균형에 노동인력의 불균형이라는 구조적 문제까지 겹쳤다. 여기에 3589조원에 달하는 역대 최대의 통화량도 물가상승을 부채질하고 있다. 사실상 인플레이션의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는 얘기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5개월여 사이에 0.75%포인트 올리고, 이것도 모자라 현재 1.25%의 기준금리를 1.75%까지 올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처럼 보인다. 정부가 레버리지에 의한 부동산투기를 잡는다며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등 강도 높은 가계부채 규제를 들고 나온 것도 연장선상에 있다.

 

하지만 질서 있는 정상화라는 청구서에 이곳 저곳에서 걱정이 앞서고 있다. 7억원의 대출을 받아 부동산 막차(?)에 탑승했다는 한 지인은 쌓이는 이자부담에 결국 빌라 전세를 심각하게 고민한다. 3억원의 전세자금을 대출받은 또 다른 지인은 2%대였던 금리가 4%대로 뛰어오르자 계산기만 두드린다.

 

질서 있는 정상화라는 대의명분 앞에 서민의 삶은 점점 더 팍팍해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는 금융불균형의 기저에 얽혀 있던 미래를 위한 도박의 역습이기도 하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정부는 7차례의 추경을 통해 130조원에 달하는 돈을 풀었다. 정부의 잇따른 추경은 국채금리 상승을 불러오는 부메랑이 되고 있다. 무분별한 돈의 살포는 대출금리의 상승의 연결고리가 되고, 물가상승에 기름을 붙는 방아쇠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불균형을 정상화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하지만, 서민들이 감내해야 할 고통은 커지기만 한다. 이래저래 날카로운 칼날 위에 서 있는 서민의 고통을 살피지 못하면 약탈적 금융이라는 유령은 다시금 고개를 들것이다. ‘으로 선거를 사겠다는 고리타분한 선거판, ‘금융불균형밑바닥에 깔린 복잡한 심리를 외면한 일방통행식 정책, 실수요자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금융은 결국 금융의 제1원칙인 신뢰를 갉아먹는 좀비다.

한석희 금융부장 헤럴드경제 2022.01.24.

 

 

북한은 왜 하루가 멀다 하고 미사일을 쏠까?

북한이 올해 들어 하루가 멀다 하고 미사일을 시험 발사하고 있다. 5일과 11일 극초음속 미사일을 시작으로 14일에는 철로 위 열차에서 북한판 이스칸데르’(KN-23), 17일에는 단거리 전술미사일을 시험 발사했다.

도대체 북한은 왜 이러는 것일까?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우리로부터 주목을 받기 위해 미사일 시험 발사를 지속하는 것이라며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 국무장관이었던 힐러리 클린턴이 즐겨 썼던 표현이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전략적 인내였다. 대화와 관련해 북한에 까다로운 조건을 제시하면서 북-미 대화의 문턱을 높였다. 그래서 북한이 미국을 대화 테이블로 불러내기 위해 미사일 발사로 관심을 끌려 했다는 진단은 일리가 있었다. 반면 조 바이든 행정부는 전략적 인내와의 결별을 선언하면서 북한에 조건 없는 대화를 줄곧 제안하고 있다. “언제 어디서든 모든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대화의 문이 열려 있다고 강조한다. 북한의 미사일 시험 발사를 미국의 관심 끌기로 규정한 블링컨이 번지수를 잘못 짚고 있다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다.

 

한편 정부·여당 안팎에선 북한의 연이은 미사일 시험 발사가 39일 대선에 미치는 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 우려를 표한 이유 가운데 하나로 대선을 앞둔 시기라는 점을 들었다.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는 남측의 정치 지형에 영향을 주고 있고, 특정 진영에 도움이 되는 것이 분명하다는 점을 분명히 지적한다며 규탄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것도 이상하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안보 위기가 고조되면 도움을 받는 쪽은 국민의힘의 윤석열 후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북한은 남측의 보수적이고 대북 강경 성향의 대선 후보를 돕고자 미사일을 계속 시험 발사하는 것일까? 고개를 끄덕일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미국의 관심을 끌자는 것도 아니고 남한 대선에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것도 아니라면 북한의 의도는 무엇일까? 북한이 작년부터 부쩍 강조해온 두 가지 표현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군사력 균형전쟁 억제력이 바로 그것이다. , 군사적 적대관계에 있는 한··일을 상대로 최대한 군사력 균형을 맞춰 전쟁을 억제하겠다는 것이 북한의 근본적인 의도이자 목표라는 것이다.

 

이건 지피지기를 해보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일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에만 주목하지만, -미 동맹과 미-일 동맹의 군사력은 북한을 압도한다. 최근 한국과 일본의 자체적인 군사력도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2017년 세계 12위로 평가받았던 한국의 군사력은 최근 세계 6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특히 킬체인-한국형 미사일방어체제-대량응징보복으로 구성된 3축 체계가 매우 강해졌다. 전수방위 원칙을 내세워 공격용 무기 도입을 자제했던 일본도 적기지 공격론을 기정사실화하는 등 달라지고 있다.

 

이에 맞서 북한은 핵과 미사일에 선택과 집중을 하면서 신형 미사일 보유를 통해 군사력 균형과 전쟁 억제력을 유지하려고 한다. 북한이 최근 선보이고 있는 미사일의 특성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극초음속 미사일은 한··일의 미사일방어체제(MD)를 무력화하고자 하는 의도를, 잠수함이나 열차에서 쏘는 미사일은 발사 플랫폼을 다양화해 2차 공격 능력을 확보하겠다는 뜻을 품고 있다.

 

그럼 북한의 폭주를 막을 방법은 무엇일까? 대북 제재 강화나 선제타격론으론 막을 수 없다. 종전선언이나 대북 지원 의사 표명도 역부족이다. 그럼 뭐가 있을까? 그건 한··일이 북한의 무기고 못지않게 자신들의 무기고에 쌓여가는 첨단무기들도 바라볼 줄 아는 지혜에 있다.

정욱식 한겨레평화연구소장 한겨레 2022.01.24.

 

 

환경보호와 종말론

남북 간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던 초등 시절, 핵전쟁에 관심이 많았다. 핵전쟁이 일어나면 인류가 망할 것이며, 원숭이들이 지배할 수도 있다는 선생님 말씀을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공룡시대, 혹성탈출 등등 폐허가 된 지구를 배경으로 한 할리우드 영화도 기억난다. 특히 인구폭탄이 현실화되면서 식량이 고갈되고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게 될지도 모른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다. 우리는 쉬는 시간에 수군거렸고 섬약한 내 짝꿍 여자아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그 시절 유행하던 종말론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다. 종말론은 나아가 사이비 신앙과 연결되어 사회문제로 비화되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런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1980, 90년대를 거치면서 그 같은 주장들이 지나친 과장이거나 많은 부분 새빨간 거짓말이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전문가들은 1960, 70년대에 등장한 이 같은 주장을 초기 종말론으로 정의한다. 초기 종말론은 말 그대로 인류에게 어젠다를 던지는 수준의 종말론에 그쳤다. 과학문명이 발달하면서 실체 확인이 가능했기 때문에 오래가지 못했다. 또 사회경제적인 파급효과도 미미했다. 당연히 초기 종말론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초기종말론이 사라지자 최근 들어 새로운 디스토피아적인 종말론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화석연료 사용으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로 지구온난화가 일어나고 궁극적으로 기후 대재앙이 올 것이라는 공포스러운 주장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같은 주장은 대부분 이산화탄소나 방사선 등 눈에 보이지 않아 실체가 없거나 북극곰 등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오브제를 이용하고 있다. 보통 사람들은 그러한 주장의 진실을 제대로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은 일부의 시각일 뿐 과학계의 컨센서스는 아니다. 나아가 세계적인 과학자들은 지구온난화가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기후 대재앙설은 지나친 과장이라고 비판한다.

 

실제로 2021년 미국의 백악관 기후 보고서는 기후위기라는 용어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 위기란 긴급한 조치가 요구되는 비상사태를 의미한다. 하지만 기후는 수십·수백년에 걸친 날씨의 주요 특징에 관련된 길고 느린 변화를 말하기 때문에 과학적으로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보고서는 또 지난 200년 동안 지구온난화는 대기 이산화탄소 농도와 무관하게 느리게 진행되어 왔고, 오히려 이 기간 인류 수명과 생활 수준은 급격히 향상되었다고 밝혔다. 그동안의 화석연료 사용이 사회경제적 발전에 크게 기여했음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지난 100년간 가뭄, 홍수, 태풍 등과 같은 기후재난으로 인한 피해가 크게 줄었고, 특히 인적 피해는 급격히 감소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산화탄소를 지구 생태계에 독약쯤으로 보는 것은 지나치다는 것이다.

 

탄소세가 대선 정국에서도 새로운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저탄소 사회로 가는 유일한 방법이라며 탄소세 도입 의지를 밝혔다. 기업으로부터 탄소세를 걷어 기본소득 재원으로 쓰겠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말을 아끼고 있다. 더 큰 문제는 현 문재인정권이 이 같은 기후위기론을 임기 내내 조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탄소중립을 위해 산과 바다, 논밭과 호수까지 태양광과 풍력발전으로 덮고 있다. 게다가 밖에 나가서는 한국 원전 기술이 세계 최고라고 엄지를 치켜올리면서 정작 국내에서는 탈원전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부끄럽기 그지없는 이율배반적인 행동이다. 스스로 에너지 빈곤 국가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이다.

 

세계적인 환경단체 그린피스 창립자인 패트릭 무어 박사는 최근 펴낸 그의 저서 종말론적 환경주의에서 지금의 기후위기론은 보이지 않는 가짜 재앙에 불과하며, 이로 인해 경제와 환경이 함께 침몰하고 있다고 개탄한다. 그는 특히 한국을 가장 심각한 피해를 자초하는 나라 중 하나로 지목하며, 급격한 탈원전과 탄소중립 정책 도입의 무모함을 경고했다.

 

기후변화와 환경보호는 인류가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이고 계속 감시해야 할 사안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지나치게 과장해 탄소중립, 탈원전, 수소경제에 몰입하면서 스스로 에너지 빈곤국가로 만드는 잘못을 범하지 말아야겠다. 끝을 모르는 코로나로 우울하게 시작한 2022, 생물멸종, 플라스틱 쓰레기 등 지나치게 과장된 종말론 때문에 한 해 시작이 더 답답하고 암울하다.

김동률 서강대 교수 매체경영학 세계일보 2022.01.24.

문제가 너무 많은 칼럼이다. 그야말로 혹세무민다

 

 

탈탄소와 무대응, 무엇이 더 손해일까

작년 한해는 정말이지 우리 산업계를 뒤흔들 만한 국내외 기후 규제 돌풍이 부는 한해였다. 탄소중립 기본법이 통과되면서 2050년까지 탄소중립 달성이 법제화되었고,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40% 감축을 하겠다는 목표가 국제사회에 공표되었다. 유럽의 탄소국경조정(CBAM: 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 도입 발표, 미국 민주당의 탄소국경세 발의, 금감원의 기후 리스크 관리 지침 발간 등 정말 산업계가 화들짝 놀랄 만한 상황이 내리 벌어졌다.

 

주요 대기업은 탄소중립 선언을 서둘러 마친 상황이다. 저마다 2050년에는 탄소중립을 할 거라 발표한 후 광고나 기사 등을 통해 얼마나 친환경 기업인지 보여주느라 바쁘다. ‘출퇴근 탄소배출량까지 감축한다’, ‘블루수소를 통해 탄소중립사회를 주도한다등의 그럴듯한 말로 포장되어 있지만 실제로 찬찬히 뜯어보면 투자자와 소비자를 현혹할 만한 얕은 행보와 그린워싱이 난무하다. 출퇴근 탄소배출량은 기업 생산공정 상의 배출량에 비하면 굉장히 미미한 수준으로, 이를 감축한다고 나서는 것은 기업의 몸통은 가만히 두고 개인 근로자들을 닦달하는 전형적인 보여주기 식 액션이다. 블루수소는 탄소포집기술이 상용화되어 있지 않은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이야기로, 지금 블루수소를 이야기하는 정부와 기업들은 사실상 LNG를 개질한 그레이수소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인데 에너지 변환 손실과 배출량을 따져보았을 때 그레이수소는 LNG보다 더 나쁜 선택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그레이수소가 깨끗한 에너지원으로 둔갑하고 있다는 사실이 당혹스럽기 그지없다.

 

이렇게 요란스럽게 탄소중립을 외치는 와중에도, 실제로 변화가 있어야 할 공정 전환은 너무 느리거나 매우 미온적이다. 철강업계는 수소환원철 이전의 중간단계로 전기로와 직접환원철 공정 도입이 시급하나 제대로 논의되지 않고 있다. 석유화학업계는 나프타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재활용 혹은 바이오 플라스틱 생산이 시급한데, 국내는 제대로 상용화된 곳조차 없다. 반도체업계는 K-반도체 벨트 조성 등 생산량을 확장하겠다는 말만 무성하고 그와 덩달아 급증할 전력 소비로 인한 간접배출과 불화가스 배출에 대해 아무 대안도 내놓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도 많은 기업들은 성급한 탄소중립으로의 이행은 막대한 비용을 초래하고 기업의 경쟁력을 깎아 먹을 것이라 아우성치고 있다. 정부가 기업에게 빚이라도 진 것 마냥 막대한 비용에 대한 지원만 앵무새처럼 주장하고 있다.

 

탈탄소에는 막대한 비용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사단법인 넥스트에서 2050 탄소중립을 위해 필요한 산업계의 전환비용을 추산한 결과, 2022~2050년까지 연평균 7.7조원의 설비투자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언뜻 보면 막대한 숫자다. 그런데 2019년 실제 우리나라 산업별 유형자산 투자액을 살펴보면 반도체·디스플레이업종은 33.7조원, 정유·석유화학은 18.7조원, 철강업종은 5조원 등, 광업 및 제조업 전체 투자는 100조원에 달한다. 7.7조원은 늘 하던 투자액의 8%에 불과한 수준이다. 기업 경쟁력에 직격탄이 될 기후 위기 대응에 평소 지출의 8%를 할애하는 것이 그렇게 아까운 이유는 무엇일까 궁금해진다.

 

무대응으로 일관한다면 경쟁력 방어가 되는 것일까? 국내외 정부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일제히 상향하고 내연기관차, 석유계 플라스틱 등 다배출 상품 시장은 점차 축소되고 있다. 2030년에 100달러를 찍을 것이라 예상되던 탄소가격은 이미 EU에서는 90달러에 달했다. 사단법인 넥스트에서 추산한 대로라면 철강업계는 상승하는 탄소 가격과 탄소국경조정세로 인해 2030년 영업이익률이 현 수준 대비 24%p 하락하며 반도체 업종은 RE100 참여를 거부함에 따라 2030년 매출의 15% 이상이 감소한다. 금융 쪽 기후 리스크, 수출경쟁력 하락으로 인한 점유율 축소, 투자자들 사이의 평판 등 정량화할 수 없는 영향도까지 다 합쳐보자. 정말 무대응이 덜 손해인 걸까?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상황을 빗대어 냄비 안의 개구리라고 말을 많이 한다. 지난 6년간 우리나라는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는 3번 상향됐고, 이마저도 국제사회에서는 상향을 촉구하고 있다. 세계의 굴뚝이라 여겨지던 중국도 탄소중립을 선언했고, 일회용 플라스틱 생산 금지, 철강 생산량 축소, 내연기관차의 빠른 퇴출 등 선진국보다 더 급진적이고 강력한 탄소중립 정책을 시작하였다. 정말 이 상황이 과연 냄비 속 물의 온도가 서서히 올라가는 상황인가? 물이 곧 끓어 넘치기 직전인데 산업계는 변화를 마냥 눈 가리고 거부하고만 있는 것 같다.

 

10, 20년을 내다보는 기업의 결정은 기업의 명운을 좌지우지하곤 했다. 지금은 정말 아닌 것 같아도, 정말 손해인 것 같아도, 10, 20년을 내다보는 의사결정자라면 탈탄소는 사실상 기업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필요조건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고은 사단법인 넥스트 CSO(기후전문가) 이투뉴스 2022.01.24.

 

 

언론 운동장은 누구에게 기울었나?

기울어진 언론 운동장이란 말이 있다. 진보와 보수, 또는 여야 정당 중 어느 한쪽이 여론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는 언론 시장에서 자신들이 불리하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 쓰는 말이다. 나도 한때 이 말을 많이 썼다. 진보정권이 들어섰다 해도 시장은 보수언론이 압도적 우위를 보이는 기울어진 운동장이기 때문에 진보정권이 성공하기 어렵다는 취지로 썼다. 종이 신문을 구독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시절이다.

 

하지만 디지털 미디어가 신문을 압도하고 소멸의 위기로 내몰기 시작한 시점부터는 이 말을 쓸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럼에도 이 말은 여전히 쓰이고 있다. “언론 보도에서 우리 편이 부당하게 당하고 있다는 걸 강조함으로써 그 어떤 정치적 이익을 얻으려는 정략적 용법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대선 후보 이재명은 언론 환경이 매우 나빠서 우린 잘못한 게 없어도 잘못한 게 있을 수 있다는 소문으로 도배가 된다고 주장했고, 국민의힘 대선 후보 윤석열 쪽은 언론 환경이 (윤 후보에게) 너무 적대적이라고 주장했다. 어느 쪽 말을 믿어야 할까? 둘 다 믿을 필요 없다. 인터넷·소셜미디어·유튜브 등 뉴미디어가 기성 언론을 압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여론 형성 권력은 언론에서 소비자들에게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언론 운동장의 기울기는 어느 쪽 지지자들이 미디어 소비와 참여를 더 활발하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이재명이 지지자들에게 우리가 언론사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한 것도 바로 그 점을 간파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저들의 잘못을 카톡으로, 텔레그램으로, 댓글로, 커뮤니티에서 열심히 (쓰자)”고 했다.

 

그렇긴 하지만 의제 설정에서 기성 언론의 영향력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므로 언론의 속성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 윤석열 쪽은 왜 언론이 그들이 보기에 더 중요한 대장동 의혹 사건은 놔두고 김건희 문제만 집중 보도하느냐고 했는데, 이런 항변은 타당한가? 타당하지 않다. 적어도 언론의 시장논리로만 보면 그렇다.

 

언론사마다 특정 후보를 선호하는 정파성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그건 사설이나 칼럼을 통해서만 드러날 뿐이며, 영향력도 매우 약해졌다. 뉴스에도 정파성이 스며들긴 하지만, 뉴스 의제엔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보는 세상이 아닌가. 뉴스는 소비자들의 흥미성이나 호기심 충족을 기준으로 선택된다. 사회적 중요성도 그 기준에 부합할 때에 제대로 된 대접을 받는다.

 

김건희 관련 이야기는 흥미성·호기심에서 단연 최고의 예능 뉴스였다. 게다가 취재 비용도 낮고 어려움도 없는 저비용 고효율기사였다. 반면 대장동은 이미 3개월 묵은 사건인데다 문재인 정권의 수사기관들이 사실상 태업을 한다는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언론이 독자적으로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기엔 역부족이었다. ‘고비용 저효율기사이기에 적극적으로 나서려는 언론사도 드물었다.

 

김건희 뉴스의 폭증은 윤석열의 자업자득이었다. 김건희는 왜 자꾸 기자들과 통화를 해서 자신에게 부정적인 기사를 양산해냈을까? 자신이 언론 상대를 잘할 수 있다고 착각한 걸까? 왜 윤석열은 그런 김건희를 말리지 못했을까? 왜 김건희의 허위 경력 의혹 제기에 대한 윤석열의 초기 대응은 그 자체로 주요 뉴스가 될 만큼 어리석고 오만했을까?

 

끊임없는 무속 논란도 윤석열 자신이 만들어낸 것이지 언론이 만든 게 아니잖은가. 윤석열의 실언들도 마찬가지다. 어떤 정치인이 아무리 모순된 발언을 자주 한다 해도 수개월 또는 수십일의 시차를 두고 하면, 이런 모순 실언은 언론의 보도 그물망에 잘 걸리지 않는다. 언론은 수십일만 지나면 과거를 까맣게 잊고 오직 현재의 발언에만 집착해 문제를 삼는 체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윤석열은 공개석상에서 사랑방 잡담회에서나 쓸 법한 화법으로 말을 해대는 바람에 즉각 수많은 실언 논란에 휩싸였다. 취지를 무시하고 말꼬투리나 잡는 언론이 원망스러운가? 그 전에 자신이 서 있는 자리가 잡담회가 아니라는 걸 깨닫는 게 우선이다.

이재명과 윤석열 가운데 언론은 각자 내심 누구를 더 편들긴 하겠지만 뉴스 생산에선 그걸 드러내기 어렵다. 뉴스 가치는 세월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다. 소비자의 클릭 하나로 승부를 보는 오늘날엔 흥미성과 호기심 충족이 절대적인 제1의 뉴스 가치로 등극했다. ‘녹음파일 공방전이 벌어지면서 이재명 욕설이 다시 주목받는 걸 보라. 어느 신문은 사생활 폭로 대선에 국민은 짜증 난다고 개탄했지만, 이는 디지털 혁명이 증폭시킨 풍경이기도 하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한겨레 :2022-01-24

 

 

전 헌법재판관 이정미의 종부세 위헌소송이 '비극'인 이유

사회지도층들의 '지대추구' 정당화 시도를 비판한다

정말 바람 잘 날 없는 종합부동산세(종부세). 최근 법무법인 로고스에서 종부세 위헌 소송을 청구하기 위해 소송인단을 모집한다고 밝혔다. 종부세 위헌 소송대리인단에는 2008년 종부세 세대별 합산과세 위헌 결정(2006헌바 112)을 내린 주심 재판관 민형기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과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을 선고한 이정미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참여한다. 헌법재판소 전 헌법재판관들이 종부세 위헌소송을 주도하다보니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다.

 

로고스는 현행 종부세 위헌성으로 다주택자, 법인에 대한 과도한 세율 적용으로 인한 조세 평등 원칙 위반 재산세와 양도소득세의 부담을 넘어 과도한 종부세까지 3중의 조세부담으로 인한 재산권 침해 '일시적 2주택'에 대한 규정이 없고 무조건 2주택으로 과세함으로 인한 조세 평등 원칙, 재산권 침해 세목, 세율에 관한 조세법률주의의 실질적 위배를 꼽고 있다. 쉽게 말해 다주택자법인1주택자 모두에게 종부세가 너무 과하다는 뜻이다.

 

이정미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은 조선닷컴과의 통화에서 "로펌 내부에서도, 주변에서도 종부세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이 많았다. 서로 대화하다가 자연스레 공감대가 형성돼서 시작하게 됐다"라고 말했는데, 이와 동일한 맥락이다.

 

그들이 사는 세상

종부세로 인한 고통의 체감은 각자 다를 수 있지만 이로 인해 고생하는 사람이 많다는 말이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종부세는 시가 16억 원(공시가격 11억 원) 이상 주택 보유자에게 부과되며 종부세 대상 주택 비중은 전체 주택의 1.9%이다. 1세대 1주택자는 장기보유 및 고령자 특별공제로 최대 80%까지 감면을 받는다. 1세대 1주택자 인원의 72.5%는 시가 25억 원(공시가격 17억원) 이하자로 평균세액은 약 50만원이다. 시가 20~30억 주택에 사는 사람들이 50만 원, 100만 원으로 고통받는다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하다.

 

법무법인 로고스와 이정미 전 권한대행은 대체 어떤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기에 '종부세로 고생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인지 의아하다. 그들 주변에는 죄다 종부세 대상인 고가아파트 2채 이상씩 가지고 있는 분들만 있는 것인지. 종부세로 고통받는다는 그들이 사는 세상과 종부세라도 한 번 내볼 수 있는 집에 살았으면 좋겠다는 다수 대중들이 사는 세상의 간극은 멀기만 하다.

 

종부세의 정당성

2022 대선대응 청년행동() 소속 회원들이 지난해 8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추진하는 종합부동산세(종부세) 개정을 규탄하며 법안 처리를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유성호

 

종부세는 대한민국 전체 주택의 2% 남짓에만 부과된다. 주택을 구성하고 있는 건물과 토지에 부과되지만 시간이 가면서 낡아가는 건물의 가치보다는 사회가 발전하고 경제가 성장할수록 상승하는 토지의 가치에 부과되는 세금이다. 종부세 대상이 되는 주택이 위치한 곳들을 보면 교통의 요지, 우수한 교육환경, 밀집한 상업문화시설 등 정부와 사회가 자원을 집중적으로 투자한 곳이다.

 

그렇기에 종부세가 재산권을 침해한다는 말은 어폐가 있다. 재산권이란 개인의 노력에 대한 결과물을 보장하는 취지이지, 사회 전체가 함께 만들어낸 노력의 결과물을 개인에게 보장해주기 위해 만든 권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두 축인 시장경제와 재산권은 개인이 노력하여 만들어낸 결과물을 최대한 보장하고 그 결과물을 자유롭게 사고팔 수 있도록 하여 사회 전체의 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함이다.

 

사회발전과 경제성장에 전혀 기여하지 않으면서 사회가 함께 만들어낸 노력의 결과물을 개인이 가져가는 행위를 '지대추구'라고 한다. 시장경제와 사유재산을 옹호하며 근대 자본주의의 이론적 기반을 제공했던 '경제학의 아버지' 아담 스미스로부터 수많은 경제학자들이 '지대추구'를 비판했던 이유는 시장경제와 사유재산의 보장을 통해 이루려고 했던 사회발전과 경제성장의 동력을 훼손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는 난망한 노블레스 오블리주

문재인정부의 종부세는 '지대추구'를 원천 차단하는 토지보유세에 비하면 여러 가지 흠들이 있지만 새로운 토지보유세가 나오기 전까지 우리 사회의 지대추구 경향을 막는 유의미한 조세다. 투기와 무관한 종중 및 사회적경제 법인들에 대한 중과 등 과도한 면들이 있지만 보유세 강화라는 축을 유지하며 문제들을 보완하고 있다. 이와 달리 법무법인 로고스의 종부세 위헌소송은 2008년 종부세 헌재 소송과 마찬가지로 종부세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시도이다. 대한민국 전체의 발전을 고민해야 할 사회지도층들이 나서서 다시 한번 종부세를 무력화시키려는 시도를 보면서 암담함을 느낀다.

 

우리 사회의 비극은 사회지도층들이 '지대추구'로 얻는 이익이 마치 자신의 노력으로 얻은 것인 양 떳떳함을 느끼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사회 전체의 노력의 결과물을 마치 자신의 노력으로 성취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상 엘리트들의 도덕적 의무인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기대하기 어렵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제는 나의 성공과 성취가 개인의 노력이 아닌 사회가 나를 키워주었기 때문이라는 인식 속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인데, 사회의 노력 결과물까지도 떳떳하게 자신의 것으로 주장하는 사고구조 속에서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난망하다.

 

법무법인 '로고스'의 종부세 위헌소송은, 사회 전체가 함께 만들어낸 토지가치 상승분을 마치 자신이 노력하여 만든 양 떳떳하게 주장하는 그들만을 위한 세상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헌법에 토지공개념 조항이 명확히 들어가야 함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는 사건이다.

이성영(daybreaker81) 오마이뉴스 22.01.26

 

 

이재명이 처한 신뢰의 위기

엊그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맨바닥 큰절 사과를 했다. “부족함에 대해 사죄드린다며 반성의 언어가 절절하다. 지지율 급변에 위기감이 그만큼 크다는 것이다.

빼닮은 장면이 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선대위 신년하례식(1)에서 저부터 바꾸겠다며 큰절을 올렸다. 지지율이 급락, 대놓고 후보교체론까지 거론되는 상황에서 나온 큰절 사과다. 불과 20여일 새, 사과의 큰절 주인공이 윤석열에서 이재명으로 바뀌었다.

 

그간 뭔 일이 있었을까. 우선 생활밀착형 작은 공약을 기치로 내건 소확행공약심쿵 약속의 경쟁이 치열했다. 지금까지 이 후보는 52개의 소확행 공약을, 윤 후보는 20개의 심쿵 약속을 내놨다. 임플란트 건강보험 적용 확대·장년수당·면접 비용 지원, 부모 급여·소득공제 확대·가상자산 과세 유예 등이다. 이름만 가리고 보면 누구 공약인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무차별적이다. 공약을 관통하는 시대정신이나 가치는 찾을 길 없는 오로지 표만을 겨냥한 즉자적 공약인 탓이다. 지지율이 낮은 계층과 세대의 이익을 목표 삼은 매표성 공약에 우위를 따질 것도 못 된다. 재미(?)를 본 건 탈모약 건보 적용’(이재명)병사 급여 200만원’(윤석열) 정도뿐이다. 간신히 당 내홍을 수습한 윤 후보도 뒤늦게 공약 경쟁을 벌였으나 여성가족부 폐지일곱 줄 공약과 멸콩챌린지만 선명하다. 위험천만한 인식을 고스란히 드러낸 김건희씨 ‘7시간 통화녹취록이 공개됐고, 무속 의혹이 구체적 실체를 띠고 점화됐다. 충분히 치명적 리스크다.

 

정상적으로 득실점을 따진다면 이 후보가 타격을 받을 이유는 찾기 어렵다. 한데 박스권에 묶여 있는 이 후보의 지지율은 하락 조짐이고, 윤 후보는 반등하면서 재역전 흐름이다. ‘발광체 이재명은 발광 효과를 내지 못한 반면, ‘반사체 윤석열은 당 내홍 수습과 여성가족부 폐지로 상징되는 반여성주의 캠페인으로 소위 이대남의 지지를 회복한 결과다. 위험천만한 인식을 고스란히 드러낸 김건희씨 7시간 통화 녹취록과 심각한 무속 연루 의혹은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민주당으로서는 최순실보다 더 할 수 있는 김건희씨 녹취록이 윤석열에 플러스가 되는 황당”(노웅래 의원)한 상황에 직면했다. 기득권 내로남불의 덫에 걸린, 신뢰의 위기에 빠진 민주당과 이 후보가 대척에 있기 때문이다. 반문재인 깃발 외에 경륜, 자질, 비전, 정책 역량 등을 변변히 갖추지 못한 윤 후보와의 경쟁에서 이 후보가 허덕이는 것은 두꺼운 정권교체 여론 때문이기도 하지만 신뢰의 위기에 봉착했기 때문이다.

 

취약 세대와 계층을 겨냥한 매표 성격이 태반인 소확행 공약부터 표가 되면 뭐든 할 수 있다는 이 후보의 이미지를 두껍게 했다. ‘탈모치료 건보 적용이 이 후보의 대표상품이 되는 건 무안한 일이다. 기본소득, 국토보유세, 전 국민 재난지원금 등 이재명 브랜드정책을 놓고 오락가락한 것도 마찬가지다. 원칙 없는 실용주의는 기회주의로 비치기 십상이다. 이 후보의 부동산 문제 대응이 대표적이다. 이 후보가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실패를 반성하면서 대안으로 내놓은 게 폭탄공급과 규제 완화, 감세 등이다. 주택공급과 감세, 규제 완화는 기본적으로 보수의 영역이다. 여기서 경쟁은 아무리 정책 역량이 빈약한 윤 후보라도 이길 수가 없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죄다 뒤집는 공약을 쏟아냈지만, 서울의 여론 지형은 요지부동이다. 이 후보의 급변한 부동산 정책이 신뢰를 주지 못한다는 방증이다.

 

두꺼운 정권교체 여론을 상대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와 소확행 공약으로 넘을 수는 없다. 반성과 성찰의 기조를 유지하면서 원칙 있는 실용주의로 민주당후보다움을 되살려내야 한다. 송영길 대표의 불출마 선언 등 민주당의 인적 쇄신은 그 기폭제가 될 수 있다. 불평등, 일자리, 노동, 주거 복지, 저출산과 노후, 공정, 청년들의 불안한 미래 등 문재인 정부의 실패 지점에서 반성과 혁신을 보여주고 이재명의 개혁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 남북 문제와 외교 정도를 빼고는 문재인 정부와 다르게하겠다는 것, 이 후보의 비전도 거기 어간에 머물러 있다. 문재인 정부와 다르게를 놓고 경쟁하면 윤 후보를 당할 수 없다. 이재명 대통령의 미래가 윤석열 대통령의 미래와 어떻게 다르고, 얼마나 더 나은지를 보여주지 못한다면, 이 후보의 이번 큰절 사과와 눈물 호소는 쓰디쓴 추억으로만 남을 것이다.

양권모 편집인 경향 : 2022.01.26.

 

 

이재명 후보님, 580만 분노를 아십니까

잔기술 노동공약 말고, 영세사업장 노동자 보호 큰그림 나와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어린 나이에 산재를 당했다. 생계 문제로 고향에서 성남으로 이사한 뒤 공장에서 일하다 프레스에 팔이 찍힌 것이다. 다른 가족들은 청소노동자로, 간병인으로, 우리 사회 여느 장삼이사들처럼 생계를 꾸렸다고 한다. 자신의 아픈 경험 때문인지 몰라도 이 후보는 먹고사는 문제로 고단한 노동자들의 삶에 대한 공감능력이 뛰어나 보인다.

 

실제 경기도지사로 재직 시절 그는 취약 노동계층의 근로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정책에 힘을 쏟았다. 경기도청에 '노동국'이라는 부서를 만들어 비정규직 등 취약 노동계층을 위한 정책을 기획했다. 뿐만 아니라 노동권익센터를 세워 경기도민들이 일터에서 임금체불이나 부당해고를 당하면 상담과 법률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왔다.

 

코로나19 확산과 기술 발전으로 택배기사나 대리운전기사처럼 장시간 노동에 이동이 잦은 플랫폼 노동자가 증가하자 이들의 휴식권을 보장하기 위해 이동노동자 쉼터를 만들었다. 안전을 위협받는 배달라이더의 산재보험료도 지원했다.

 

'억강부약'이라는 그의 노동철학에 기반해 시행된 일련의 정책 경험들은 윤석열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의 '120시간 노동' 발언같은 노동 관련 망언과 뚜렷하게 대비되며 더 돋보였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서 그의 노동정책의 큰 그림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이재명 후보는 비정규직 차별에 대한 해결책으로 공정수당의 지급과, 경제적 위기 상황에 놓인 생계곤란 노동자나 자영업자들처럼 일하는 이들에게 건강보험으로 유급병휴가를 주는 상병수당을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공약으로 신선하긴 했지만,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제한적으로 지급되는 '공정수당'이나 정부 예산으로 지원되는 '상병휴가' 만으로는 비정규직이나 중소영세 사업장의 취약노동자들에 대한 고용안정이나 차별을 근본적으로 해소하긴 어렵다.

 

대선을 40여 일 앞둔 지금 이재명 후보는 본격적으로 약 80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비정규직 노동자와 약 580만 명이 넘는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에 대한 고용안정이나 차별 해소를 위한 큰 그림을 내놔야 한다.

 

그런데 후보가 방송토론이나 시민사회단체의 노동 현안과 관련된 정책질의에서 밝힌 입장을 살펴보니 걱정이 앞선다.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한 논쟁을 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차별 해소의 핵심 과제인 비정규직 사용사유 제한이나,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근로기준법 차별 문제가 대표적이다.

 

이재명 후보는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즉각적 근로기준법 차별 철폐에 선을 그었다. 앞서 참여연대를 비롯해 전국 95개 노동시민사회단체가 공동으로 구성한 '불평등 끝장 2022대선 대선유권자네트워크(불평등끝장넷)'는 주요정당 대선후보들에게 취약노동자의 고용안정과 차별 해소를 위해 5인 미만 사업장에 근로기준법과 중대재해처벌법 차별 적용을 폐지할 의향이 있는지 물었다. 이 후보 측은 명확한 동의 없이 '사회적 합의와 지원 대책을 통해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 근기법을 단계적으로 확대하겠다'고 답했다.

 

현재 5인 미만 사업장에 일하는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의 주요 조항을 적용받지 못한다. 연장이나 야간근로, 휴일근로를 해도 1.5배를 가산해 초과수당을 받을 수 없다. 연차휴가도 못 받는다.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해도 하소연 할 곳은 없다. 직장에서 부당해고를 당해도 구제신청조차 할 수 없다.

 

5인 미만 사업장 비정규노동자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은?

분명 노동자인데, 노동자를 보호하는 근로기준법에서, 그것도 핵심 조항이 적용 제외된다. 영세사업장의 열악한 현실을 고려하고, 국가의 근로감독 능력의 한계를 아울러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는 불가피하게 5인 미만 사업장에 근로기준법 일부 조항 적용 제외가 합당하다고 판정하면서도, 근로기준법의 확대 적용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과정에서 발생한 점진적 제도개선으로 인한 부득이한 것이라는 전제를 달았다.

 

이는 국가가 지속적 노력을 기울여 근로기준법을 5인 미만 사업장에도 확대적용하고 제도를 개선하라는 말이다. 그런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보수·진보 정부 할 것 없이 부당해고 구제신청과 초과근로가산, 연장근로한도 위반 등 주요 근로기준법 조항 적용은 계속 미뤄졌다.

 

이재명 후보는 5인 미만 사업장에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명확한 동의 의사를 표시하지 않았다. 지난해 국회에서 통과된 노동자 산업안전을 위한 중대재해처벌법은 5인 미만 사업장엔 적용되지 않는다. 580만이 넘는 노동자가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고 산재사고의 30% 가까이가 5인 미만 사업장에 일어나는데도 말이다.

 

이재명 후보가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근로기준법이나 중대재해처벌법 전면 적용을 주저하는 것은 5인 미만 사업장이 주를 이루는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의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어려운 경제적 상황을 감안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소영세 사업주의 부담을 이유로 계속해서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에 대한 근로기준법 적용을 미루는 것은 영세사업주의 부담을 노동자에게 지게 해 정의롭지 못한 결과를 낳는다.

 

꼭 묻고 싶다. 왜 영세사업주의 부담을 모두 노동자가 감내해야 하는가. 5명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라고 해서 초과노동에 대한 가치가 5명 이상 사업장 노동자의 그것과 다르게 취급받을 이유가 어디에 있나.

 

비정규직 해결에 있어서는 문재인 대통령의 미이행 비정규직 공약보다 못하다는 평가도 나왔다. 참여연대는 "비정규 노동자의 고용 안정과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한 실행 과제에 대부분 찬성했으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의 민간 대기업 확대에 소극적 태도를 보여 이행 의지가 의심"된다 비판했다.

 

민간기업의 비정규직 사용을 제한하고 이들의 차별을 해소하는 강력한 법적 규제가 없이 공공입찰에 인센티브를 주는 정도로 민간에 비정규직 차별해소를 위한 공정수당 등이 확대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은 너무 순진하다. 법적 규제가 없다면 민간기업은 계속해서 비정규직을 남발할 것이다. 그게 '싸게 먹히기' 때문이다.

 

표가 떨어질까봐 두려운가? 분노와 냉소는 두렵지 않은가?

이재명 후보는 이번 대선을 계기로 장시간 동안 저임금으로 노동자를 갈아 넣어 유지하는 우리 사회의 경제시스템에 대한 근본적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장시간 저임금으로 가장 고통받는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근로기준법과 중대재해처벌법 전면 적용과 비정규직 노동자 사용을 제한해 '같은 일을 하면 같은 임금을 받는다'는 원칙을 세워야 한다.

 

정책 추진 과정에서는 분명 논쟁이 있을 것이다. 코로나 확산으로 가뜩이나 어려워진 자영업자나 영세사업주들의 불만으로 표가 떨어질까봐 두려운가? 온갖 차별에도 묵묵하게 사업주와 고객의 비위를 맞추며 고단한 생계를 꾸려온 영세사업장 580만 명 노동자들의 분노와 냉소는 두렵지 않은가? 영세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은 법제도 시행과정에서 보호하고 지원하되 그마저도 배제됐던 5인 미만 사업장의 비정규 취약 노동자들을 이제라도 보듬어야 한다.

 

작은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라고 해서 부당해고와 직장 갑질을 무조건 감내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초과노동에 대한 보상, 휴식권, 노동인권 보호는 가장 기초적 권리로 사업장 규모와 무관하게 모든 노동자에게 보장돼야 한다. 그래야 노동존중 사회가 가능하다.

경기도지사 이재명과 대선후보 이재명

이동철(leeseyha00) 오마이뉴스 2022.1.26.

 

 

생명의 가치는 똑같다지만

20144월 세월호가 침몰했다. 국가적 재난 앞에 눈물을 흘리지 않은 사람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일반인 승객 희생자도 있었지만, 피워보지도 못하고 목숨을 잃은 어린 학생들이 국민의 마음을 더 침통하게 했다. 세월호가 침몰하고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방송으로 의사이자 경제학자인 김현철 교수가 한 교회에서 강연하는 걸 듣게 됐다. 그는 에티오피아의 극단적인 영아·소아 사망률을 이야기하며 눈물을 흘렸다.

 

에티오피아에서는 매년 5세 이하의 아이들을 태운 2대의 세월호가 침몰하고 있습니다.”

수학여행을 갈 수 있는 나이가 되기도 전에 에티오피아에서는 수많은 아이가 병마로 죽어가지만 그들의 죽음을 기억하는 이들은 없다고 했다.

 

외과 레지던트를 하던 2000년대 후반에는 암수술을 하는 70대 환자들이 별로 없었다. 일흔이 넘도록 충분히 살았으니 수술을 받으면서 더 사는 게 염치없다고 느낀 탓인지, 아니면 암수술 같은 큰 수술을 견디기 힘들 것 같다고 생각해 그랬는지 모르지만 대체로 수술을 꺼리는 분위기였다. 외과의사들도 암 주변의 모든 림프절을 교과서에서 지시하는 것처럼 절제하기보다는 암조직만 확실히 제거한 후 회복이 잘되도록 하는 방향에 초점을 맞춰 수술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최근에는 여든이 넘어도 수술 후 환자분의 여명을 충분히 기대할 수 있다면 적극적으로 수술을 한다. 얼마 전에는 필자도 십이지장암을 앓고 있으며, 그것 때문에 자주 발생하는 장내 출혈로 힘들어하는 89세 어르신에게 ·십이지장 절제술이라는 외과 수술 중 가장 큰 수술의 하나를 시행한 적이 있다. 어르신이 평소에 워낙 건강해 그런지 수술 후 젊은 사람보다 입원 기간이 약간 길었지만, 잘 회복해 일상생활을 잘하고 있다.

 

어르신들의 암수술

수술이 충분히 가능한데도 아내와 상의해보겠습니다라고 말하며 수술을 받지 않겠다는 70대 초반의 어르신도 있었다. 다음 외래진료에 아내와 함께 왔는데, 아내분이 말하기를 남편이 대장암 수술을 받고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집안 형편이 너무 어려워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췌장에 새로 생긴 암수술은 하기 어렵겠다고 했다. 병원 사회사업실도 있으니 거기에 도움을 받아서라도 완치 가능성을 노리고 수술을 하는 게 어떻겠냐고 설득했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내가 나가고 환자분이 다시 진료실에 들어와 아내가 뭐라고 하던가요?”라고 묻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아른거린다.

 

얼마 전에 뉴스를 보니, 서울의 한 대형병원에서 유명한 로펌 변호사의 폐 절제 생검 수술을 하기로 한 모양이었다. 당시 흉부외과의사는 절제 생검을 하는 것보다 쐐기 절제술을 하는 것이 환자에게 더 낫겠다고 판단하고는 그렇게 했는데 수술 전 동의를 받지 않아 11억원 손해 배상 판결을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2개의 폐 중 한쪽 전체를 없앤 것도 아니고, 또 쐐기 절제술과 절제 생검의 차이가 실질적으로는 크지 않을 텐데 배상금 액수가 너무 커 놀랐다. 한쪽 폐의 일부를 절제했더라도 변호사 생업을 이어가는 데는 별문제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의료사고로 환자가 사망하더라도 1억원 이상의 배상금이 나오는 사례는 경험상 드물다. 3000만원을 버는 유명 법무법인의 변호사라는 점이 배상금 액수 산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였다.

 

목숨의 가치와 효율성

사람 목숨의 가치는 모두 똑같다고들 하지만, 실제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은 결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나라가 가난하면 그 나라 국민 생명의 가치도 낮고, 나라가 더 잘살게 되면 그 가치도 올라가는 것 같다. 선진국이 되면 될수록 한 사람의 생명 가치가 더 올라가고, 또 그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부가적인 비용 지출도 당연히 늘어난다. 그 선진국에서도 빈부격차와 지위고하에 따라 목숨의 가치가 다르게 나타나는 것 또한 현실이다.

 

202213일 한전 하청업체 직원이던 38세 예비신랑 김다운씨가 전신주에서 작업하다가 22900v의 전기에 감전된 상태로 몇십분이나 공중에 매달려 있다가 구조됐다. 사고 19일 만에 안타깝게도 사망하고 말았다. 당시 작업장은 대부분의 안전규정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하청업체로 내려가면서 이익을 낼 수 있는 비용의 폭이 줄어든 것이 안전규정 무시의 가장 큰 원인이었으리라.

 

장기이식을 하는 의사로서, 뇌사자의 장기 적출을 위해 사설 구급차를 타는 일이 잦다. 그날도 우리 병원에서 계약한 사설 구급차 회사의 구급차를 타고 장기 적출을 위해 출동했다. 필자는 회사 사장인 운전자 옆좌석에 앉고 도와주는 선생님들은 장기를 담을 아이스박스를 들고 뒤에 탔다. 구급차는 구급차답게 신호를 무시하고는 엄청난 속도로 달렸다. 고속도로에 설치한 속도 측정 카메라가 보이면 속도를 줄였다.

 

구급차인데 그냥 가도 되지 않나요?”

운전자가 대답했다.

어휴. 우선 걸리고 나서 이의제기를 해야 하는데, 그 절차가 너무 복잡해요. 사무실 직원도 한명밖에 없는데 그것까지 처리하라고는 못 하죠. 그냥 요령껏 안 걸리게 조심해서 가는 게 제일 낫습니다.”

 

대답하면서도, 한 손으로는 응급환자의 전원 문의를 받고 이내 또 다른 기사들에게 전화를 건다.

. 알겠습니다. 곧 기사를 보내겠습니다.”

, OO! A병원 로비에서 기다리라고 했으니까, 그분 B병원까지 모셔다드려라. 갈 때 응급구조사님 모시고 가야 할 것 같아. 그래 수고해라.”

 

옆자리에 앉아 이를 지켜보며 적잖이 겁이 났지만 이젠 익숙해졌다.

극한의 효율을 추구하는 우리 사회에서 의료 분야라고 예외는 아니다. 어쩌면 의료현장은 그나마 사정이 더 나은 건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은 명실상부한 선진국 반열에 올랐지만 한사람의 생명 가치가 효율보다 더 중요하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1인당 국민소득이 지금보다 훨씬 증가하면 우리의 인식도 바뀔 수 있을까?

<최병현 양산부산대병원 간담췌외과 교수> 주간경향 2022.1

 

 

대선을 멀리서 지켜보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대통령선거에 나의 귀중한 한 표를 행사했던 때는 박정희와 윤보선이 출마했던 196310월의 5대 대통령선거였다. 당시 나는 혁명 주체세력으로서 국가재건최고회의최고위원의 한 사람이던 예비역 장성의 처남 가정교사를 했다. 그는 선거전에서 박정희 후보의 남로당 전력을 문제 삼아 총공세를 폈던 윤보선 후보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나에게 물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근소한 표차로 결국 박 후보가 승리했다.

 

대선과 관련해서 가장 어이없고 실망스럽던 경험은 너무나 많은 희생을 치르고 쟁취한 1987년 말 직접선거로 치러진 대선에 김영삼과 김대중이 함께 뛰어들면서 노태우가 당선된 일이다. 무슨 셈법으로 김영삼과 김대중이 후보 단일화를 끝까지 거부하고 고집을 부렸는지 지금도 나에게는 수수께끼다. 김영삼 후보로 우선 단일화하고 차기에 김대중 후보가 나서면 민주화의 기틀이 더욱 공고하게 될 것이라고 나는 당시 확신했다.

 

그 후로 2002년 노무현 후보가 예상을 뒤집고 승리한 기억을 빼놓고는 별다른 감흥을 주는 대선은 없었다. 그런데 40여일 뒤에 치러질 이번 대선을 관심 속에서 지켜보게 된다. 여야 두 후보를 둘러싼 거의 관음증 수준에 머물고 있는 언론매체의 보도나 논평에는 곧 물리게 된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민주적인 공론장의 형성에서 대선의 의미를 확인할 기회가 앞으로 별로 많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정치적 소통행위의 마지막 단계라고 볼 수 있는 선거전은 서로 경쟁 관계에 있는 당이나 후보자가 유권자들에게 정책과 인물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이들로부터 권력의 위임을 받아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행사다. 그러나 선거전이 종종 잠재적인 사회적 갈등을 일거에 분출시켜 경쟁자를 음해하거나 협박하고 심지어는 테러나 암살로 제거하기도 한다. 이런 현상이 주로 민주주의가 성숙하지 못한 사회에서는 수시로 발생하지만, 1년 전에 발생한 워싱턴의 의사당 점령사태처럼 민주주의가 성숙한 사회라고 할지라도 예외는 아니다.

 

정책보단 정치상표유통에 초점

또 선거전의 내용이 빈약하고 비정치적이어서 지루해진 유권자들의 적극적인 관심이나 참여를 끌어내지 못한다. 이번 대선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후보자에 대한 높은 비호감도 이런 현상에 속한다. 이는 단순히 후보의 도덕성과 관련된 문제만은 아니다. 빠른 속도로 진행된 압축적 근대화에 따른 사회 구성원의 다양한 정치적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는 정당 구조와 정치인의 수준과 능력 때문이기도 하다.

 

페미니즘과 세대 문제와 같은 중요한 문제도 이것이 득표에 유리한가 아니면 불리한가를 두고 표 계산부터 먼저 해야 하는 것이 선거전이다. 예를 들면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단지 일곱 글자로 압축된 문자메시지로 전달되는 정책을 어떻게 유권자들이 이해할 수 있겠는가. 페미니즘을 거부하는 20~30대를 중심으로 한 사회적 분위기를 고려한 표 계산이기에 해당 부처를 폐지하는 이유와 함께 정책대안을 주제로 장황하게 설명할 필요도 없다. 바로 여기에 선거전의 핵심이 놓여 있다.

 

정책적 내용보다는 우선 메시지가 유권자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 주어야 하는 선거전이라는 특별한 정치적 소통행위가 빚어내는 이러한 현상은 어디서나 볼 수 있다. 유럽에서는 전통적인 대중정당의 이른바 콘크리트지지층의 비율이 계속 낮아지고 부동층은 반대로 높아지고 있다. 이런 속에서 치러지는 선거전에서는 외국인 혐오나 페미니즘 반대와 같은 사회적으로 아주 민감한 주제에 주저함 없이 자극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대중영합주의적인 극우정당이 대체로 약진하게 된다.

 

대충 유권자의 10% 정도가 강성 지지층인 독일 선거에서는 이른바 산토끼를 잡기 위해 정당과 후보들이 열심히 뛰어야 한다. 그러나 지역과 세대에 기반을 둔 강성 지지층의 비율이 이보다는 훨씬 높을 것으로 추정되는 한국에서는 반대로 집토끼를 먼저 단속하는 데 더 신경을 써야 하는 선거전이 될 수밖에 없다.

 

19세기 중반에 들어서야 대부분 선거와 관련된 공화제가 논의되기 시작했던 동양과 달리 공화정 로마에서는, 비록 시민권을 가진 성인 남성만 참여할 수 있었지만, 선거를 전제한 전략에 대한 깊은 논의들이 있었다. 로마의 집정관을 지낸 정치인이자 당대 최고의 사상가였던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BC 106~43)의 동생이자 그의 강력한 조력자였던 퀸투스 툴리우스 키케로(BC 102~43)가 형에게 보낸 서한 성공적인 선거전이 이의 대표적인 예다.

 

대중적인 지지를 먼저 확보하기 위해서 상대방의 약점을 집중적으로 공략하고, 유명 인사를 선거전에 동원해야 하고, 정치적 내용보다는 아름다운 언어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는 선거전의 구체적인 전략들을 쭉 열거하고 있다. 오늘날의 선거전에서도 강조되고 있는 여론의 총동원, 탈객관화, 연출, 감정에 호소, 후보에 초점 두기, 정치적 어젠다의 관리, 상대방 흠집 내기 등 선거전략의 거의 모든 내용을 담고 있어 선거전의 교과서라고도 불린다.

 

여론은 이름과 얼굴을 사는 것이지 당의 정책을 사는 것이 아니다. 공직에 도전하는 후보는 상품처럼 거래되어야 한다고 리처드 닉슨은 이미 1950년대 중반에 주장했다. 이는 정치 마케팅으로서 선거전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핵심적인 과제를 지적한 것이다. 정치를 상품처럼 이해하고 자신만의 고유한 정치상표를 만들고 이를 광고하고 유통해 많은 소비자가 이 상품을 구매하게 하는 기업 경영전략에 기반을 둔 정치적 소통이론이었다.

 

평화체제정치상품 왜 안 보일까

그렇다면 유권자는 정말 선거전이라는 시장에서 정치라는 물건을 구매하는 단순한 소비자에 지나지 않느냐는 질문이 나오게 된다. 복잡다단한 현대사회에서 원자화된 생활세계에 갇힌 개인이 정치적인 것의 내용을 능동적으로, 또 전체적으로 이해하기는 점점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엄청난 양의 정보를 어떤 식으로든 선택적으로 대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때 각종의 여론 매체는 현대인이 갖는 정보 선택의 어려움을 덜어주는 기능을 한다. 신문이나 방송과 같은 전통 매체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현대인들에게 수동적인 정보 소비자의 위치에서 벗어날 길을 열어준 것이 바로 디지털 미디어다. 물론 디지털 미디어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소셜미디어에 참여한다고 해서 모두가 곧 적극 정치적 행위나 행동까지 나서지 않기 때문에 이른바 슬렉티비스트’(게으름뱅이)라는 속어도 생겼다.

 

전통적인 매체보다 소셜미디어의 플랫폼이 정치적인 의사소통에서 유권자에게 더 넓은 운동장을 제공하지만 이의 한계 역시 분명하다. 가령 페이스북이나 유튜브에 올리는 정치적인 정보의 내용이 다양하고 이에 따라 토론이나 논쟁이 활성화되기보다는 똑같은 내용을 수없이 반복하는 확증편향과 자기만족의 장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전통적인 매체는 가령 가짜뉴스에 법적 책임을 지지만 소셜미디어의 플랫폼에 실린 가짜뉴스의 법적 책임소재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대선전에 빈번히 등장하는 극렬한 혐오발언이나 가짜뉴스를 단순히 선거전에 있는 필요악 정도로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는 민주주의의 앞날을 어둡게 할 뿐이다.

 

코로나19로 말미암은 사회 전반에 걸친 충격과 이에 따른 고통으로 사회적 갈등과 분열이 심화하고 있는 현상은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어느 사회에도 지금 나타나고 있다. 포르투갈에서도 이번 토요일에 총선을 치른다. 그동안 사회당이 이끈 소수당 정부를 용인했던 좌파연합과 공산당이 금년도 예산안 통과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긴축재정 기조를 유지하려는 사회당과 코로나 재난 극복을 위해서 재정지출을 더 늘려야 한다는 이들의 주장이 접점을 찾지 못해 결국 의회를 해산하고 총선의 길을 택했다.

지구상의 다른 국가와 달리 한반도가 지금 숙명적으로 안고 갈 수밖에 없는 특이한 과제가 있다. 바로 한반도 평화체제의 수립 문제다. ·중 간의 격돌이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이 과제는 한반도를 더욱더 무겁게 짓누를 수 있기 때문이다.

 

평화체제! 이는 부동산정책은 말할 것도 없지만, 모발이식 건강보험 적용 문제만큼도 관심을 끌지 못하는 정치적 상품일 수도 있다. 서캐 잡듯이 뒤진 100여개의 대선 정책 공약 대신에 이 네 글자의 무게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것이 부질없는 일이 아니길 바라며, 멀리서 대선을 지켜본다.

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 사회학 교수 경향 : 2022.01.26.

 

 

인류세(人類世) 문명의 대전환은 가능한가

현재는 인류세(Anthropocene). 인류세란 말은 노벨화학상 수상자이자 대기화학자인 파울 크뤼첸(Paul Crutzen)이 제안한 용어로 인간이 지구의 환경에 악영향을 끼치기 시작한 산업혁명 시대부터 현재까지를 말한다. 크뤼첸뿐 아니라 한동안 인문학계 안팎에서 주목을 받았던 포스트휴먼 담론들도 지구환경과 체계에 균열을 가한 인류의 문명, 특히 데카르트 이래 인간중심주의의 폐해에 대한 새로운 성찰과 사고의 대전환을 촉구하고 있다.

 

인류역사는 자연의 한계와 제약을 넘어서기 위한 과학기술 개발의 역사였으며, 동시에 인간 자신이 인간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위한 기나긴 투쟁의 역사이기도 했다.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homo, imago Dei)'이라는 헤브라이즘이나 인간을 세상의 중심으로 보는 '인간은 만물의 척도(anthropos metron panton)'라는 프로타고라스 언명, 즉 헬레니즘의 인간관이 그러하다. 이것이 중세 신본주의(神本主義), 그리스·로마시대의 인문적 가치에 대한 주목과 재생을 외친 르네상스시대의 휴머니즘으로, 그리고 자연법사상과 계몽주의 등을 기반으로 발전해온 휴머니즘이 오늘날 인권·자유·평등 같은 근대적 인간관과 이념으로 완성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인간 자신의 인간에 대한 인식 하나를 바꾸는 데도 수천 년의 세월과 수많은 역사적 전환과 새로운 사상가들의 출현과 엄청난 이들의 피와 희생이 뒤따랐다. 이 같은 개념의 휴머니즘은 1800년 무렵 독일의 교육학자인 니트함머(F. J. Niethammer)가 처음으로 제시,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현재의 자유와 평등과 인권은 불완전하다. 자유민주주의가 그렇다. 자유민주주의는 과거 시대에 비하면 비교의 대상이 없을 만큼의 눈부신 진보를 이룩한 것이나 근대 부르주아의 이해에 바탕을 둔 개념이다.

 

가령 정치적 평등만을 일반 시민과 대중들에게 허용하고, 경제적 평등이나 권리는 도외시하는 시스템으로 기득권 계급과 소외 계층 사이의 넘을 수 없는 아득한 장벽을 만들어 놓고 있기 때문이다. 근대자본주의의 대안이 아닌 또 다른 억압적 근대인 사회주의는 이런 정치적 평등과 경제적 불평등 사이의 간극을 비집고 들어온 이념이었다.

 

그러면 동아시아의 인권 사상은 어떨까. 도덕성과 예의를 갖춘 인간을 참다운 인간으로 보는 유교의 군자·소인론, 마음공부와 수행을 통해 모든 고통에서 해방되고 모두가 대자유인이 되자는 불교의 가르침, 인간이 하늘의 모상이 아니라 하늘 그 자체라는 동학의 인내천(人乃天) 같은 '동아시아적 휴머니즘'도 있었다.

 

서구 휴머니즘의 한계를 보완하는 장점은 있지만 이것만으로 충분치 않다. 인간의 자연에 대한 인식과 태도, 인간의 인간에 대한 인식과 태도를 바꾸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또 인류세 문명의 폐해와 문제점을 해결하는데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인류의 역사를 신본주의와 인본주의(人本主義)의 역사로 해석하면서 지금의 환경문제를 야기한 인간중심주의의 폐단을 막기 위해 모든 것을 은혜의 관계로 보자는 관점, '신에서 인간, 인간에서 우주·만물 위주의 대전환', 요컨대 '사람이 하늘'이라는 시각에서 '모든 만물이 하늘'이라는 은본주의(恩本主義)로 전환하자는 교산 이성택 교무의 제안을 특별하게 주목해보고 싶다.

 

사물인터넷·인공지능·메타버스 등으로 대변되는 4차 산업혁명은 생활의 편리와 경제적 가치에 중점을 둔 것이지 인류세를 넘어설 새로운 대안이 아니다. 대안은 제도를 바꾸고 과학기술을 혁신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바꾸는 마음의 대전환에서 찾아야 한다. 인간의 마음과 생각을 배제한 문명론과 과학기술론은 모두 공염불이 될 가능성이 높다. 문명전환에 앞서 생각의 대전환이 종요롭다.

조성면 객원논설위원·문학평론가 경인일보 2022-01-26

 

 

악의 시대를 읽다

1999, 영웅파라 불리는 범죄조직이 동료조직원을 살해한 사건이 일어난다. 살해 뒤 시신을 훼손한 방식이 너무도 처참했던 이 사건은 전 국민을 충격에 빠뜨린다. SBS 드라마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은 주인공인 송하영(김남길) 형사가 임무를 위해 이동하는 과정에서 이 사건에 대한 보도를 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드라마 자체는 가공된 이야기이나, 그 토대는 현실임을 알려주는 장면이다. 실제로 이 작품은 대한민국 첫 프로파일러 팀의 탄생기를 담은 동명의 논픽션 원작을 바탕으로 한다.

 

주목할 것은 극의 시기적 배경이다. 이야기의 본격적인 출발점이 1990년대인 데에는 이유가 있다. 범죄의 양상이 과거와 달라졌기 때문이다. 과거의 범죄 대부분은 동기가 뚜렷했지만, 이 시기부터는 범죄의 반사회성, 반인간성이 두드러지는 양상을 보인다. 충동적이고 무차별적이고 더 흉포화된 범죄들이 늘어나던 시기였다. 드라마에 언급된 영웅파 살인사건을 비롯해 지존파 사건, 막가파 사건 등 이 시기의 강력범죄들은 하나같이 반인간성의 극치를 보여주는 참혹한 시신 훼손을 동반했다. 인간의 상식으로는 설명할 길이 없는 잔혹성에 사람들은 엽기라는 수식어를 붙이기도 했다. 극 중에 삽입된 영웅파 사건 뉴스에서도 엽기적인 살인사건이라는 표현이 사용된다.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은 이처럼 불가해할 정도로 인간성 말살의 극치를 보이는 사건이 급증하던 시절, 그 악의 실체를 들여다보는 자들의 이야기다. 범행 동기가 명확했던 시절에는 범인을 잡는 데 초점을 맞췄지만, 달라진 악의 시대는 새로운 질문을 요구했다. 단지 범인이 누구인가를 넘어서, 어떻게 이런 범죄가 일어났는지 총체적으로 살펴야 한다. 기존의 전통적 수사방식으로 해결하기 힘든 유형의 범죄를 파헤치기 위해 프로파일링 수사 기법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드라마는 실존 인물인 대한민국 1호 프로파일러 권일용 교수를 모델로 한 송하영 형사를 중심으로 새로운 수사방식이 도입되는 과정과 달라진 접근법을 통한 악의 통찰을 그린다.

 

극 중 송하영과 범죄행동분석팀이 해결한 첫 사건이 그러한 접근법을 잘 보여준다. 때는 2000, “새 천년이 열렸다는 뉴스와 함께 시작된 화면은 가족 나들이 중이던 5세 여아가 유괴당하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아이스크림을 사준다는 중년 남자의 말에 해맑게 일어선 아이는 며칠 뒤 처참하게 훼손된 시신으로, 그것도 일부만 발견되었다. 어린아이에게 저지른 짓이라고 도저히 믿기 어려운 잔혹한 사건에 경찰도 충격을 받는다. 드라마는 이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에서 범죄행동분석팀의 활약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한 생명의 안타까운 상실을 대하는 사회를 들여다본다.

 

성과 먼저 생각하는 경찰, 자극적 보도로 판매 부수 늘리기에 열심인 기자, 장사가 더 급한 여관 주인 등 비극적 죽음에 대한 애도보다는 자기 이익을 우선시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흉악한 범죄보다 더 절망적이다. 말하자면 5세 아동 살인사건은 공감능력을 상실하기 시작한 시대를 관통하는 사건이다. 그 악의 정점에 아동 살인사건의 진범 조현길, 그리고 앞으로 등장할 유영철 같은 사이코패스 범죄자들이 있다.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은 진정한 기자정신을 보여주는 유일한 인물인 최윤지(공성하) 기자의 글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다시 한번 강조한다. “어쩜 우리가 잃은 것은 천사 같은 한 명의 아이만이 아니라 인간은 선해야 한다는 말과 인간성일지도 모른다.”

 

범인을 잡고 하나의 사건을 일단락하는 기존 수사물과 다르게 피해자 유족의 아픔을 잊지 않는 묘사도 주제를 완성한다. 진범이 검거된 뒤 송하영은 유족의 집 앞에 국화와 피해 아동의 사진을 두고 애도를 표한다. 이는 송하영의 프로파일링 수사가, 인간성을 상실한 악인들의 정반대편에서 우리 사회가 복원해야 할 공감의 가치를 포함한 행위임을 말해준다.

 

좋은 수사물은 범죄를 통해 시대에 대한 성찰을 제공한다. 그런 면에서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은 더 주목해야 할 작품이다/김선영 TV평론가 경향 : 2022.01.2.

 

 

이 시대 법 감정에 반하는위자료는 대체 얼마인가

그는 공작원으로 북파되었다. 마흔이 넘은 나이였다. 유학을 다녀온 지식인이고 대학교수였다.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다. 정부에 비판적인 사회대중당 후보였다. 그러다 반국가단체 활동을 했다는 혐의로 지명수배되었다. 수배 중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19625월 갑자기 북파공작원이 되었다. 그해 7월쯤까지 육군첩보부대에서 교육을 받고, 그달 12일 새벽에 북파되었다.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국정원 과거사위)’ 보고서에 따르면, 좌익 활동을 하여 북한에서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대상으로 물색됐다. 수배로 도피 중인 약점을 잡아 월북시키면, 공작 성과가 크리라 기대됐다. 가족들은 아무것도 몰랐다. 장남에게 남긴 편지뿐이었다. 돌아올 때까지 어머니와 동생들을 부탁한다는 당부였다. 가장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가족들은 생사조차 알 수 없었다.

 

1975224일 인혁당 재건위 수사 결과가 발표됐다. 뜻밖에 거기에 그가 있었다. 공산주의자들을 규합해 지하당을 조직하고 사업 보고를 위해 월북한 간첩으로 대서특필되었다. 그와 함께 언급된 주모자 8인은 사형선고를 받았다. 같은 해 48일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됐다. 다음 날 집행됐다. 그의 가족들은 숨을 죽였다. 간첩의 가족이라는 낙인은 가난과 소외를 넘어 언제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는 굴레였다.

 

대법원 판결에 따라 위자료는 다시 산정됐다

세월이 흘렀다. 진상조사가 진행됐다. 2007123일 사형 집행된 8인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인혁당이 실체가 없다면, 그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 2008215, 그의 가족은 믿기 어려운 이야기를 들었다. 그가 북파공작원이었다는 통지, 특수임무 수행 도중 전사하였다는 확인서를 받았다.

 

46년간 울음을 삼켜온 가족들은 진실을 알고자 소송을 제기했다. 누가 어떤 연유로 북파했는지,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 왜 가족에게도 숨겼는지, 간첩으로까지 둔갑시킨 이유는 무엇인지 재판 내내 물었다. 피고 대한민국은 답하지 않았다. 2010527일 제1심 법원은 위자료로 그의 아내에게 7억원, 자식들에게는 35000만원씩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국가권력을 이용해 가족에게도 북파 사실을 은폐하였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간첩이라는 허위 사실을 언론에 발표함으로써 가족들이 당한 극심한 고통에 금전으로나마 위로할 의무가 있다고 인정했다. 2심 법원의 판단도 같았다.

 

그러나 대법원은 2014127일 원심을 파기했다. 위자료가 너무 과다하다는 이유를 들었다. 이 시대 법 감정에 반하는 금액이라고 했다. 손해를 공평하게 분담한다는 이념에 어긋나고 형평의 원칙에 현저히 반하는 금액이라고 판단했다.

 

위자료는 정신적 고통에 대한 배상이다. 고통을 돈으로 치유할 수는 없지만, 손해를 가능한 한 메우려는 취지다. 가해자가 경제적 불이익을 받음으로써 피해자가 다소 만족하게 되는 작용도 한다. 피해자가 수치화되는 증거로 고통을 증명하기 어려운 불이익을 해소하는 역할도 한다. 제재 내지 예방 기능도 강조된다. 불법행위가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효과다. 위자료의 본질과 기능에 비춰볼 때, 하급심 법원이 인정한 위자료는 현저히 부당한 금액이었을까.

 

대법원 판결에 따라 위자료는 다시 산정됐다. 그의 아내에게는 3750만원, 자녀들에게는 각 1875만원으로 확정됐다.

박성철 (변호사) 시사인 2022.01.28

 

 

홀로코스트와 기억의 냉전체제

127일은 유엔이 정한 홀로코스트 기억의날이다. 1945년 이날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나치 강제수용소가 소련 적군에게 해방되었고, 아우슈비츠 해방 60주년인 2005년 유엔 총회는 매년 127일을 홀로코스트 추모일로 정했다. 유엔 헌장이나 인권선언, 제노사이드 협약 등에서 보듯이 제2, 3의 홀로코스트를 방지하자는 국제적 공감대가 유엔 설립에 미친 영향을 생각하면, 이 추모일이 2005년에야 정해진 것은 생각보다 많이 늦었다.

 

 

이스라엘에서 히브리 달력으로 니산’ 27일을 홀로코스트의날로 제정한 것은 1959년의 일이다. 제노사이드의 비극과 희생자들의 고통에 주목하는 유엔의 홀로코스트 추모일과는 달리, 이스라엘의 홀로코스트 기념일은 1943419니산달에 일어난 바르샤바 게토 봉기의 영웅적 민족 전사들을 기리는 데 방점이 있다. 유엔의 홀로코스트 추모가 보편적인 인권의 고양과 맞닿아있다면, 이스라엘의 홀로코스트 기억은 민족적 기억의 문제로 환원되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이제 홀로코스트는 <안네의 일기> <쉰들러 리스트> <피아니스트> 등 영화와 문학, 대중매체 등을 통해 비교적 널리 알려졌다. 나치라는 절대 악의 희생자들에 대한 공감과 연민이 증폭되면서, 홀로코스트 희생자들과 식민지, 분단, 한국전쟁, 개발독재로 점철된 한국 현대사의 희생자들을 병치하는 일이 잦아졌다.

 

한국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과 미국의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이 뉴욕 한복판의 홀로코스트센터에서 만나 서로의 아픔을 다독이고, 태평양을 건넌 일본군 위안부 기억활동가들이 미국 내의 크고 작은 유대문화센터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도 더는 낯설지 않다. 국경을 넘는 기억의 지구화라는 관점에서 보면, 홀로코스트는 이미 한국인의 기억처럼 토착화되고 있다.

 

특히 1987년 정치적 민주화 이후 홀로코스트는 빨갱이 사냥이라는 정치적 제노사이드의 희생자들에 대한 가슴을 울리는 기억을 끌어내는 장치로 자주 사용되었다. 5·18민주화운동의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주인공이 아우슈비츠를 찾아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 나오기도 하고, 제주 4·3 학살을 가스실 없는 한국판 홀로코스트라고 묘사한 서사시도 있다. 이 작가들은 모두 냉전의 장벽이 무너진 덕분에 폴란드의 아우슈비츠를 찾아 비극의 역사적 현장을 직접 목격했다.

 

제주와 광주, 아우슈비츠를 연결하는 이들의 기억정치는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홀로코스트를 빌려 남한 우익의 반공 제노사이드에 대한 비판을 시도한 것은 이 비극의 기억을 망각의 늪에서 건져 올려 억울하게 죽은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그들의 명예를 복권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그러나 문제도 적지 않다.

 

가장 큰 문제는 이들의 기억정치가 여전히 냉전에 가위눌려 있다는 점이다. 북한 정권의 국가폭력이나 인민의 적에 대한 좌익의 학살을 언급하면 마치 우익의 빨갱이학살에 대한 비판이 희석되거나 무뎌진다는 식의 제로섬게임이 기억의 냉전을 지배하고 있다. 동유럽 사회주의 진영은 종주국 소련의 스탈린주의 정치범 수용소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서방 진영은 동맹국 서독의 홀로코스트 대신 스탈린의 반유대주의를 강조했던 1950년대 냉전체제로 되돌아간 느낌이 들 때가 많다.

 

민간인 학살혹은 양민 학살로 표상되는 남한 우익의 정치적 제노사이드는 홀로코스트보다도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나 스탈린주의 강제수용소 굴락과 같이 배치될 때, 기억의 유비가 더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좌익의 민간인 학살이나 북한의 정치범죄에 대한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는 긴 침묵 속에 누워 있다.

 

이들이 펼치는 진실과 화해를 위한 제로섬게임의 반대편에는 북한 홀로코스트 기념관 추진위원회가 있다. 문재인 정권의 재야세력인 이들이 주최한 북한 홀로코스트 사진전은 아우슈비츠와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를 병렬·전시하여 북한의 인권에 대한 각성을 촉구한다.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가 아우슈비츠보다 더 끔찍하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그러면서도 남한의 민간인 학살이나 우익의 제노사이드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21세기 한반도의 기억문화는 여전히 1950년대의 진영론적 냉전체제에 갇혀있다.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를 향한 첫발은 기억의 냉전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죽은 자의 인권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빨갱이로 몰려 죽거나 인민의 적으로 몰려 죽거나 원통하기는 매한가지다. 지금 대선판에서 죽은 자에 대한 공약은 무엇인가?

임지현 서강대 교수 경향 : 202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