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지구온난화·기후위기…무엇이 맞을까
지중해의 기후변화 증거…토착 조개류 95% 멸종하고 열대종 번성
환경부, 대서양연어 '생태계위해우려 생물' 지정 추진
월성원전 '사용후핵연료 저장 수조', 새고 있나?
"월성원전 방사능 피폭? 멸치 1g 정도" 카이스트 교수 일침
문재인 정부 태양광의 치명적인 결함
기후위기가 인류를 할퀴는 순서…‘안전한 집 없는’ 이부터
겨울밤, 화장실 가기 겁나”…기후민감계층의 집은 어디인가
개발 가능’ 용도 변경… 다대포해수욕장 관광화 ‘시동’
코로나 백신은 있지만, 기후위기 백신은 없다
한 잔의 커피에 든 기후 비용은?
부산국제아트센터 15일 시민공원에 착공
"내 몸이 증거다"…12년째 호흡기 단 피해자의 오열
제비, 이제 강남 안 가요!
여기는 남극,1940억톤 빙하가 또 사라졌어요
탄소중립 하려면 스위스를 보라
이쯤되면 ‘묘기’…이 뱀이 괌 토종새 멸종시킬 만했네
가덕신공항 "찬성" vs "반대"…부산 시청 앞서 동시 집회
민주당 환경특위 “월성원전 수조 손상 의심···안전 관리에 심각한 문제”
사설]환경부의 공식 피해 인정과 상반된 가습기메이트 무죄 판결
곤충 종말’ 막기 위한 8가지 실천
4년전 프랑스 실사단장 “가덕도는 난센스, 정치적 고려 우선 말라”
플라스틱 중독사회①]당신은 오늘 ‘몇 플라스틱’ 하셨습니까?
대한민국이라는 숲, 푸르름을 잃은 아이들
올해도 ‘가장 뜨거운 해’ 행렬은 계속된다
1초에 원자폭탄 4개’ 폭발열 수준…바닷물 온도 사상 최고
온난화 스피드’ 도시>시골인데…30년 후, 인구 70% 도시인
2021 신기후체제, 탄소문명을 감속하고 대안을 가속하자
세계 코로나19 사망자 200만 명 넘고 총 감염자 수 1억 근접했다
기후변화·지구온난화·기후위기…무엇이 맞을까
지난해 여름 방글라데시는 10년 만의 최악의 홍수로 국토의 3분의 1이 물에 잠겼다. 지난해 7월 중순 브라마푸트라강 인근. 로이터 연합뉴스
새해다. 처음부터 다시 차근차근 시작하자. 최근 미국 <뉴욕 타임스>가 기후변화에 새로 관심 갖게 된 독자들이 제기하는 주요 질문과 답을 정리해 누리집에 게시했다. 그 가운데 몇 가지를 설명을 보충해 소개한다.
―‘기후변화’가 맞나, ‘지구온난화’가 맞나, 아니면 ‘기후위기’가 맞나?
“기후변화가 지구온난화보다 더 상위 개념이다. 온난화는 기후변화의 한 유형이다. 기후변화는 기온의 상승만이 아니라, 강우 유형의 변화 같은 것을 포함한다. 지난해 한국에선 54일간의 최장 장마가 있었고, 한 해 전과 달리 올겨울은 한파가 매섭다. 모두 기후변화에 따른 현상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추운 겨울을 겪고 난 뒤 과학자들이 지구온난화가 아닌 기후변화로 말을 바꿔 쓴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지만, 사실 과학자들은 이미 수십년 전부터 이 두 가지 용어를 함께 써왔다. 최근엔 기후위기란 말을 더 많이 쓴다. ‘변화’가 단지 상황을 설명할 뿐, 그 정도나 심각성을 전달하지 못한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했다. 최근의 기후변화가 인류가 초래한 것으로 확인됐으니, 그 이전 기후변화들과 구분하자는 의도도 있다.”
―그래서 지구 기온은 얼마나 상승했나?
“지구 기온 상승폭은 1.5도 이내로 제한해야 한다. 과학자들의 결론이며, 파리기후협정에 따른 국제적 합의다. 2017년을 기준으로 지구의 평균기온은 지구 전체 규모의 측정이 시작된 1880년 이후 섭씨 1도 이상 올랐다. 이 때문에 0.5도가 더 오르면 문제가 생긴다. 1.5라는 숫자가 작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미 오른 1도로 인해 전세계 많은 육지 빙하가 녹아 사라졌고 해수면도 빠르게 상승 중이다. 1.5도를 넘으면 인류의 힘으로는 변화를 돌이킬 수 없게 된다.”
―최근의 이상 기상 현상들이 기후변화와 관련돼 있나?
“기상이 매일의 날씨라면, 기후는 더 크고 긴 시간 동안 일어나는 기상 현상을 이른다. ‘기상이 기분이면 기후는 성격’으로 흔히 비유한다. 기후가 변하면 기상도 달라진다. 기후변화는 폭염을 빈번하고 격렬하게 만든다. 폭풍우나 해안 홍수도 심해졌다. 중동 등에선 가뭄이 심화했고 가뭄으로 화재도 빈번해졌다. 지난해 오스트레일리아와 미국 캘리포니아 산불이 그런 사례다.”
―인류가 정말 온실가스를 증가시켰나?
“이미 십수년 전 과학적 결론이 난 문제다. 산업 배출과 자연 배출을 구별하는, 방사능을 이용한 각종 연구에서 확실한 증거들이 나와 있다. 지구상 이산화탄소의 양은 자연적으로 늘고 줄지만, 인류의 산업혁명 이전엔 이 변화가 수천년에 걸쳐 일어났다. 지금은 이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다.”
―우리는 어느 정도로 곤경에 처해 있나?
“한마디로 큰일이 났다. 앞으로 25~30년 사이 지구는 더 따뜻해지고 날씨는 더 극한으로 치달을 것이다. 산호초 같은 지구 생명체들의 주요 서식지는 이미 죽어간다. 과학자들은 기후변화가 이대로 방치될 경우 지구 역사상 여섯번째 대규모 동식물 멸종이 촉진될 것으로 본다. 식량난이 일어나고 난민이 대규모로 발생한다. 정치는 불안정해지고 종국엔 극지방의 만년설이 녹아 세계 대부분의 해안 도시가 물에 잠긴다. 현재 생존 인류는 손자녀 세대를 보지 못할 거라는 끔찍한 예언도 있다. 문제는 이런 변화에 따른 피해를 부자들보다 가난한 이들이 먼저 겪는다는 것이다. 부자들이 더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했는데도 말이다.”
―해수면은 얼마나 상승할까?
“지금은 100년에 30㎝ 정도로 상승 중이다. 전문가들은 이 정도 수준이면 감당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문제는 시간이 갈수록 속도가 빨라진다는 것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온실가스 배출을 내일 당장 멈추어도 이미 배출된 온실가스로 인해 장기적으로 4.5~6m가량의 해수면 상승이 불가피하다고 본다. 지금처럼 온실가스 배출이 계속되면 해수면 상승 높이는 궁극적으로 24~30m가 될 수 있다.”
―현실적 해결책이 있나?
“있지만, 인류가 너무 오랫동안 행동을 미뤄와 지금과 같은 위기상황으로 치달았다. 기후변화를 막으려면 지구 대기 내 탄소량을 더는 늘리지 않는 ‘중립’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 다행히 자동차 연료 기준이나 강화된 건축 규제, 발전소 배출 제한 같은 정책 효과로 유럽 등지에선 배출량이 줄고 있다. 최악을 피하려면 전지구적으로 화석연료가 아닌 재생에너지로의 전환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여야 한다. 이러한 전환은 경제에도 도움이 된다. 미국의 태양광 산업은 이미 석탄 채굴보다 2배 이상의 인력을 고용한다. 중요한 것은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각자가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행사하고 목소리를 높여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다. 파리협정에 따른 신기후체제가 시작되는 올해, 기후변화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과 목소리가 무엇보다 절실하다.”
박기용 기후변화팀장 xeno@hani.co.kr
지중해의 기후변화 증거…토착 조개류 95% 멸종하고 열대종 번성
이스라엘 해안 토종 연체동물 60% 번식력 상실
오스트리아 빈대 연구팀이 이스라엘 남부 해안에서 채취한 연체동물 표본. 빨간색은 홍해에서 기원한 열대종들이고 파란색은 지중해 토착 고유종이다. 토착종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오스트리아 빈대 제공
지구온난화 영향으로 지중해 동부 지역의 토착 생물종 95%가 사라지고 대신 열대종이 번성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기후변화가 생태계에 영향을 끼친 증거로 제시된다. 오스트리아 빈대 연구팀은 10일 “지중해 동부에 있는 이스라엘 해안의 연체동물 현황을 조사한 결과, 토착 고유종 5∼12%가 멸종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는 해수온이 상승해 이들 토종이 견딜 수 있는 고온의 한계점을 넘어섰기 때문으로 분석된다”고 밝혔다. 이스라엘, 오스트레일리아, 크로아티아, 미국 등 연구팀이 함께 진행한 연구 논문은 영국 <왕립학회보 B : 생물학> 6일(현지시각)치에 실렸다.(DOI : 10.1098/rspb.2020.2469)
지중해는 지형적으로 대륙에 막혀 거의 고립된 폐쇄 해양이다. 지중해 가운데서도 이스라엘 해안은 가장 따뜻한 지역에 속한다. 이곳 해양생물종들이 견디기 힘든 고온 환경에 놓인 지는 오래됐다. 지구온난화는 지중해의 해수 온도를 생물들이 적응해 계속 살아가기 힘든 한계까지 상승시켰다. 그 결과 수많은 생물종이 사라졌다.
오스트리아 빈대 고생물학부 연구원인 파올로 알바노가 이끈 연구팀은 달팽이, 조개, 홍합 등 무척추동물인 해양 연체동물의 멸종 현황을 조사했다. 연구팀은 이스라엘 해안 전역을 대상으로 조사 활동을 벌여 바다 밑에서 수집한 껍질로 과거 생태계 다양성을 복원했다. 스쿠버다이빙을 할 수 있는 정도의 얕은 서식지 대부분은 기후변화 영향을 받았다.
“멸종은 지난 수십년 동안 일어났을 것”
연구팀은 바다 밑 침전물에서 발견된 껍질들에서 파악한 과거 생물종의 80∼90%를 찾을 수 없었다. 모래 같은 연질 조수대에는 토종 연체동물이 12%, 바위 같은 경질 조수대에서는 5%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연구팀은 이런 멸종이 최근에 일어났으며, 짐작건대 수십년 안에 일어났다고 추정했다.
알바노는 “아직 생존하고 있는 대다수 종들도 충분히 성장하지 못해 번식 능력이 없다”며 “생물다양성 파괴는 계속 진행될 것임을 알려주는 신호”라고 말했다. 조사 결과 저조수대의 토종 가운데 약 60%는 번식할 수 있는 몸체 크기에 도달하지 못했다.
반면 수에즈운하가 연결된 홍해에서 유입된 인도양-서태평양 열대종들은 번성하고 있었다. 지중해 동부의 따뜻한 바닷물이 열대종들한테 적합한 서식지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열대종들은 우점종이 되고 있으며 개체들은 충분히 적응해 잘 번식하고 있었다.
연구팀은 “과거 지중해에서 스노클링이나 다이빙을 해본 사람이라면 현재의 이스라엘 바닷속은 낯설 것”이라며 “거의 모든 토착 생물종들이 사라진 반면, 열대종들은 온갖 곳을 돌아다닌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온실가스 배출을 지금 당장 중단한다 하더라도 바다는 계속 따뜻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알바노는 “지구 시스템이 관성에 따르기 때문에. 말하자면, 제동 거리가 길어서”라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아직 조사하지 않은 지중해 동부의 나머지 지역에서도 같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지중해 서부까지도 이 현상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한다. 다만 극한 기온에 적응성을 갖춘 간조대 해안에 서식하는 생물종들이나 온도가 낮은 심해 중광대 서식지에 사는 생물들은 적어도 상당 기간 생존할 것으로 연구팀은 추정했다. 이번 조사에서 간조대와 중광대에서는 토종의 50%가 생존해 있었다.
이근영 기자 kylee@hani.co.kr
환경부, 대서양연어 '생태계위해우려 생물' 지정 추진
환경부는 최근 대서양연어(Salmo salar)의 생태계위해성 평가 결과에 따라 '생태계위해우려 생물’로 지정하는 절차를 진행 중이라고 10일 밝혔다. 생태계위해우려 생물은 생태계위해성 평가결과 생태계 등에 유출될 경우 위해를 미칠 우려가 있어 관리가 필요하다고 판단돼 환경부 장관이 지정·고시하는 생물종이다.
환경부는 외래생물 사전 관리체계를 강화하기 위해 지난 2019년 ’생물다양성법‘을 개정한 바 있다. 이에 따라 국내 유입 시 위해가 우려되는 외래생물을 ‘유입주의 생물‘로 우선 지정하고, 추후 해당종의 최초 수입 요청 시 위해성평가 결과에 따라 ’생태계교란 생물‘, ’생태계위해우려 생물‘, ’관리 비대상‘으로 분류해 관리한다.
환경부 산하 국립생태원은 지난해 7월 강원도가 원주지방환경청에 요청한 대서양연어 수입 승인 건의 대서양연어에 대한 생태계위해성 평가를 5개월간 실시했다.
국립생태원은 북대서양에서 서식하는 대서양연어가 국내에 유입될 경우 토착종과의 먹이경쟁, 타 어종과의 교잡으로 인한 유전자 변질 등의 문제를 일으킬 우려가 있어 생태계위해성 2등급으로 판정했다. 환경부는 국립생태원의 생태계위해성 평가결과를 반영해 올해 상반기 안으로 대서양연어를 ’생태계위해우려 생물‘로 지정할 예정이다.
’생태계위해우려 생물‘로 지정되면 상업적인 판매 목적으로 수입 또는 반입할 경우 유역(지방)환경청장의 허가를 받아야 하며, 상업적인 판매 외의 목적으로 수입하거나 수입량 등 주요사항을 변경하려는 경우에는 이를 신고해야 한다.
또 ‘생태계교란 생물’의 관리 기준에 준해 생태계로 방출·유기 등도 제한된다. 수입허가 이후에는 해당 사업장 관리와 함께 해당 종이 국내 생태계에 미치는 위해를 줄이기 위한 지속적인 감시(모니터링)와 방제 등의 조치가 이뤄진다.
박연재 환경부 자연보전정책관은 "대서양연어로 인한 생태계 피해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 ‘생태계위해우려 생물’ 지정을 추진하고 있으며, 지정 이후 철저한 사전 검토를 거쳐 수입을 결정하고 사후 감시도 꼼꼼히 진행하겠다"면서 "앞으로도 국내 생태계 보호를 위해 지속적으로 제도를 강화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뉴스1
월성원전 '사용후핵연료 저장 수조', 새고 있나?
월성원전 부지내 삼중 수소 검출 보도가 전국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관리 기준을 최대 18배나 초과한 삼중수소가 검출됐는데요, 더 주목할 사실은 원전 주요 설비인 사용후 핵연료 저장수조의 집수정 지하수에서도 관리 기준을 13배나 초과한 삼중수소가 검출됐다는 겁니다. 사용후 핵연료 저장 수조에 문제가 있다는건데 한수원도 정밀 조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VCR▶
월성원전 지하수 관측정에서 삼중수소가 높게 검출되자, 지난해 한수원이 수립한
'지하수 삼중수소 조치' 계획서. 사용후 핵연료 저장 수조 인근의 집수정에서 지하수 방사능 수치를 조사한 결과치입니다. CG)원자로별 삼중수소 최대 검출치는 관리 기준의 8.8배에서 13.2배로 높게 나왔고, 월성 4호기에서는 감마 핵종까지 검출됐습니다. 한수원도 사용후 핵연료 저장 수조를 점검하고 주변 토양 오염 조사도 실시했지만, 삼중수소가 높게 나온 원인은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INT▶이상홍/경주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
"사용후 핵연료 저장조에 문제가 있다고 봐야 되겠죠. (저장조가) 부식이 많이 되었든 어떻든 문제가 있는 걸로 보여져요.수치로 봐서는"사용후 핵연료 저장수조는 3백도의 고온 상태인 핵연료봉을 장기간 물에 담가 방사선을 낮추고, 잔열을 식히는 원전의 핵심 설비입니다. 전문가들은 사용후 핵연료 저장 수조 내벽에 바른 에폭시라이너가 손상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습니다.
◀INT▶이정윤/원자력 안전과 미래 대표
"콘크리트 수조 안이 에폭시 라이너로 페인팅 돼 있어요. 시간이 오래되면 (에폭시라이너가)깨져요. 깨지고 누설되고. 그래서 그걸 보수를 하거든요. 그런데 조금 있다가 또 깨지죠 다른 데서."한수원 내부 자료에도 2천 10년부터 에폭시라이너 보수 공사를 14차례나 실시한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또 에폭시 라이너뿐 아니라 저장 수조 콘크리트 구조물이 손상됐거나 미세 균열이 발생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INT▶한병섭 원자력안전연구소장
"구조물이 오래되면 오래될수록 균열이나 이런 것들이 더 많아진다는게 통상적인 정설입니다. 지하에 건설된 사용후 핵연료 이런 구조물도.." 한수원은 사용후 핵연료 저장 수조는 누수가 발생한 적은 없고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해명했습니다.
◀INT▶백승우 한수원 홍보팀 차장
"저장조는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분기별로 점검을 수행하여 정부등에 보고하고 있습니다." 사용후 핵연료 저장 수조는 원전 안전과 직결된 핵심 시설인만큼, 월성원전에 대한 정부 차원의 전면적인 조사와 대책이 시급합니다.
MBC 뉴스 장미쁨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keiy8mKrl6w
월성원전 누출, 처음부터 샜다! 원자로 설계자 충격증언(열린공감 TV)
"월성원전 방사능 피폭? 멸치 1g 정도" 카이스트 교수 일침
국내 원자력·양자공학 권위자인 정용훈 KAIST 교수가 경북 경주 월성원전 인근 삼중수소 검출 의혹에 "당연한 것들을 이상한 것으로, 음모로 몰아가면서 월성과 경주 주민의 건강문제로 확대시킨다"고 8일 지적했다.
정용훈 교수 "수사 물타기 하기위한 것"
앞서 지역 시민단체 등은 한국수력원자력 자체 조사 결과 지난해 월성원전 부지 내 10여곳의 지하수에서 방사성 물질인 삼중수소가 검출됐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에 더불어민주당도 가세했다. 신영대 민주당 대변인은 9일 오후 현안 브리핑을 통해 "월성 1호기 주변 지역 주민들의 몸속에서 방사성 물질인 삼중수소가 끊임없이 검출되고 있는데도, 국민의힘은 월성 1호기 조기폐쇄 결정을 내린 정부 결정을 정쟁화하며 노후화된 월성원전 가동을 연장해야 한다고 우기고 있다"고 했다.
정용훈 카이스트 교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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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월성 원전에서 삼중수소가 많이 발생하는 것, 월성원전 경계가 주변 마을보다 삼중수소 농도가 높은 것, 원전 내부에는 경계보다 높은 곳이 있을 수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며 우리 주변과 몸에도 삼중수소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월성 주변 지역 주민의 삼중수소로 인한 1년간 피폭량은 바나나 6개(섭취), 멸치 1g(건멸치 0.25g 정도 섭취), 내 몸이 자가 피폭하는 것의 500분의 1(하루 치에도 미달), 흉부 엑스레이 1회 촬영의 100분의 1 정도"라며 "지금 (학계에서) 논의되는 수준에선 피폭이 있는 것과 암은 관련이 없다. 월성 방사능 이야기는 월성 수사 물타기 하기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 교수는 뒤 이은 글을 통해 "월성 1호기 조기폐쇄 시켜서 얻은 이득은 주민 최대 피폭이 연간 바나나 6개 피폭에서 3.4개 피폭으로 줄어든 것"이라며 "이 또한 평소 변동 폭이 있어 월성1호기가 없어진 영향인지는 판단 불가하다"고 적었다.
이어 "(하지만 이로 인해) 향후 30년 정도는 너끈히 쓸 700MW 발전소가 없어졌다"며 "월성을 LNG로 대체하려면 한국전력은 9조원이 더 들며, 결국 그 돈은 전기요금 인상요인"이라고 자료를 인용해 덧붙였다.
[정 교수 페이스북 캡처]
한편 지난해 감사원은 산업자원부의 개입으로 경제성 평가 용역보고서에서 월성 1호기 계속 가동의 경제성이 불합리하게 낮게 평가됐다는 감사결과를 냈다.
검찰은 지난달 23일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와 관련된 감사원 감사 과정에서 관련 자료를 무더기로 삭제한 혐의 등으로 산자부 국장 등 3명을 재판에 넘긴 바 있다.
고석현 기자 ko.sukhyun@joongang.co.kr
문재인 정부 태양광의 치명적인 결함
[최병성 리포트] 산림 파괴하는 그린 뉴딜, 수정이 필요하다
▲ 숲속의 이 건축물들이 아름다운 진짜 이유는... ⓒ Hanergy Thin Film
깊은 산과 어울린 평화로운 풍경이다. 그러나 이 풍경이 아름다운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저 모든 건축물의 기와지붕이 태양 빛으로 전기를 생산하기 때문이다.
지붕에 철골 기둥을 높이 세운 태양광 패널만 보아 온 우리에겐 낯선 풍경이다. 그러나 중국은 이미 기와형 태양광을 개발해 곳곳의 건축물 지붕에 기와형 태양광 발전 시설을 설치하고 있다.
▲ 중국은 기와형 태양광을 이미 많은 건축물에 설치해 전기를 생산하고 있다. ⓒ Hanergy Thin Film
전 세계적으로 환경재앙 국가로 알려진 중국이지만 태양광 발전 분야는 앞서 있다. 전기 생산 효율이 높은 박막형 모듈 기술을 활용해 태양이 없는 흐린 날에도 전기를 생산한다. 실내 어두운 형광등 불빛에도 전기 생산이 가능할 만큼 효율이 높다.
▲ 얇고 가벼운 박막형 모듈은 기와형 지붕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태양광 전기를 생산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 최병성
이 외에도 중국은 대형 빌딩 벽면 전체에서 전기를 생산하는 태양광 기술도 선보이고 있다. 이처럼 태양광 모듈을 지붕과 벽면 등의 건축물 외장재로 사용하는 태양광 발전시스템을 건축물 일체형 태양광(BIPV, Building Integrated Photovoltaic System)이라고 한다.
▲ 대형 고층 빌딩의 벽면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여 전기를 생산하고 있다. ⓒ Hanergy Thin Film
후진국형 그린뉴딜
그런데 한국은 여전히 울창한 산림과 동네 과수원의 나무를 베어내며 환경을 파괴하는 후진국형 태양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명칭만 '그린 뉴딜'일 뿐이다.
▲ 중국은 건축물 일체형 태양광을 이미 보급하고 있는데, 우리는 여전히 숲의 나무를 베어내며 환경을 파괴하는 후진국형 태양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 최병성
2018년 기준 국내 총 발전설비 119 기가와트(GW) 중 태양광과 풍력은 8.6GW로 약 7.2%를 차지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20%까지 확대한다는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을 지난 2017년 12월 발표했다.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에 따라 태양광을 현재 7.13GW에서 36.5GW로, 풍력은 현재 1.42GW에서 17.7GW로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문제는 태양광과 풍력의 급속한 확산으로 발생하는 환경 파괴다. 국무총리실 산하 환경분야 국책연구기관인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이 2019년 8월 발표한 '육상 태양광 발전사업의 환경영향평가 현황과 환경적 수용성'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2017년부터 2018년까지 태양광 발전시설이 급속도로 증가한 것을 알 수 있다.
▲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2017년부터 2018년에 태양광 설치가 급격히 증가했음을 보여준다. ⓒ KEI
보고서는 '태양광 발전은 임야가 60.9%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농지(전·답·과·목) 20%, 기타 11.8%, 염전 7.2% 순으로 분포하고 있다'며 태양광 발전으로 인한 심각한 산림 훼손을 지적한다.
현재 7.2%에 불과한 태양광과 풍력 발전으로도 산림 훼손이 큰 문제가 되는데, 앞으로 20%까지 늘어날 경우 얼마나 많은 산림이 훼손될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 이런데도 문재인 정부의 그린 뉴딜엔 환경 훼손을 줄이는 태양광 발전의 구체적인 이행 방안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저 20% 목표 달성이 최고의 목표로 설정되어 있을 뿐이다.
탈원전·탈석탄 사회로 나아가야 하는 건 맞다. 그러나 지금처럼 태양광과 풍력 발전으로 산림을 마구 훼손한다면 강을 파괴한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처럼 국토를 파괴한 사업으로 전락할 수 있다.
▲ 언제까지 숲을 파괴하는 태양광을 설치할 것인가. ⓒ 최병성
KEI는 산림을 훼손하는 태양광은 지속가능한 재생에너지 발전 사업이 될 수 없다며 도시형 건축물 등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태양광 발전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산지 태양광의 경우 벌목과 대규모 토목공사가 불가피하며 이로 인해 경관훼손은 물론 산림의 기능이 상실되면서 집중호우 등에 의해 지반 안정성이 낮아지고 산사태에 취약한 구조를 갖게 되는 환경훼손이 크다. 이 때문에 산림을 훼손하는 태양광이 지속가능한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의 모델이 될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보급 목표 설정에 따른 개발 당위성을 강조하기보다는 환경보존과 태양광 에너지 확대가 공존할 수 있는 다양한 해법과 대안에 대해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산림 최소화 등 환경보전적 측면과 토지이용의 효율성 측면에서 도시형(주택, 건물), 농지, 염전, 수상 등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태양광 발전사업의 입지 유형에 대한 다각적 검토가 필요하다.
- '육상 태양광 발전사업의 환경영향평가 현황과 환경적 수용성' 중에서
'태양광(PV)분야 글로벌 혁신과 동향'(태양광기술정책연구원. 2017.9)은 '태양광 발전시설의 보급이 증가하고 있지만 현재 태양광 수준으로는 신재생 3020 이행계획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며 '건물일체형 태양광 모듈을 건축물 외장재로 사용하는 BIPV가 입지가 부족한 우리나라에 활용도가 높기에 BIPV와 같은 고부가가치 기술개발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중국은 건축물 지붕과 벽에 다양한 BIPV를 설치하고 이런 태양광 발전 기술을 미국과 이탈리아 등에 수출하고 있다.
▲ BIPV가 설치된 기차역 지붕(이탈리아 ) ⓒ Hanergy Thin Film
스페인을 비롯 유럽의 선진국 역시 환경을 파괴하지 않고, 전기 생산효율이 높으며, 국토의 효율적 이용이 가능한 BIPV 설치가 늘어나는 추세다.
▲ 건축물 벽면 전체를 BIPV로 덮었다. ⓒ SPAIN solarinnova
그런데 한국은 여전히 전기 생산 효율이 낮은 태양광 발전 시설로 전 국토를 뒤덮으며 소중한 산림을 훼손하는 환경 재앙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한국에도 BIPV 기술 있지만
국내에도 BIPV 기술이 개발되어 이미 상용화되고 있긴 하다. 다만 정부의 정책 지원이 없어 널리 보급되지 못했을 뿐이다.
지난해 11월 28일 아민 M. 달하투(Amin M. Dalhatu) 나이지리아 대사가 국내 한 중소기업과 한국산 BIPV의 나이지리아 현지화 사업 추진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맺었다는 뉴스가 나왔다. 나이지리아 주택의 특성상 무게가 가볍고 전기 생산 효율이 높은 BIPV를 찾았는데 가격이 더 저렴한 중국산보다 안정성과 품질이 더 나은 국내 기업 S사를 선택했다는 것이었다.
▲ 국내 기업 S사 개발한 CIGS Flexible Module. 건축물 일체형 태양광은 이미 국내에 개발되어 있다. ⓒ 최병성
청주에 있는 S사를 찾아가 그들이 개발한 건축물 일체형 태양광 패널(CIGS Flexible Module)을 들어 보았다. 무게감을 느끼지 못할 만큼 가벼웠다. 1㎡의 무게가 2.4kg로 우리가 익숙하게 보아 온 결정질 모듈의 무게 23~26kg의 약 1/10에 불과했다.
또한 부드럽기 때문에 평면뿐 아니라 곡면으로 된 어떤 장소도 시공이 가능하다. 태양광 패널을 붙이기 위한 부가적인 철골 시설이 필요 없어 기존의 지붕에 바로 붙일 수도 있으니 경제성도 높아 보였다. 가볍고 전기 생산 효율이 높으니 지붕뿐 아니라 건축물의 벽면 등 태양빛이 들어오는 곳이면 어디든 시공이 가능하다.
국내 많은 공장 창고들이 태양광 발전 시설을 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태양광 패널의 무게 때문에 따로 건축물의 구조 진단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위와 같이 무게를 줄인다면, 태양광 패널 설치를 위한 건축물 구조 진단을 받아야 하는 번거로움이나 안전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되고 시공 또한 간편해진다.
건축물 일체형 태양광이 우리에게도 대중화 될 수 있다면 태양광과 풍력 발전이라는 이름 아래 무참히 잘려나갈 숲을 지켜낼 수 있다.
▲ 가볍고 부드러운 건축물 일체형 태양광을 지붕에 시공하는 현장(왼쪽). 작업이 완료된 모습(오른쪽). 구멍을 뚫을 필요도 없고 바람에 무너질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 최병성
공장의 넓은 지붕이 놀고 있다
대한민국 전국 곳곳에 공장이 밀집된 산업단지들이 많다. 최근엔 물류 증가로 거대한 창고들도 곳곳에 들어서고 있다. 그러나 그 넓은 지붕에 태양광 발전시설을 한 곳을 찾아보기 어렵다. 지붕에 무한정 쏟아지는 태양빛이 그냥 사라지고 있다.
▲ 공장 지붕 위에 햇빛이 쏟아지고 있는데도 태양광을 설치한 곳이 단 한 곳도 보이지 않는다. 이런 현실인데도 산을 깎는 태양광만 추진하고 있다. ⓒ 최병성
문재인 정부의 그린 뉴딜이 성공하려면 전기가 필요한 도심 건축물에 먼저 태양광 발전시설을 설치해야 한다. 도시에서 멀리 있는 산과 바다에 설치하는 태양광과 풍력의 경우, 전기를 도심으로 끌어올 송배전 시설이 필요하다. 송배전 시설을 위해 막대한 국가 예산을 퍼부어야 한다.
그러나 전기가 필요한 도심 건축물과 도로 등에서 전기를 생산하면 송전망 시설을 위한 예산 낭비를 절감할 수 있고 환경을 보전하는 효과가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태양광 발전시설이 급격히 증가했지만 송배전 시스템이 따라가지 못해 생산한 전력이 제대로 공급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전기를 소비하는 장소에서 직접 전기를 생산하는 '분산형 발전소'가 문재인 정부의 3020 이행 계획을 성공시키는 핵심이어야 한다. 지금처럼 도심에서 먼 곳에 있는 산을 깎는 태양광과 해상 풍력으로 대규모 전력을 소비지역으로 보내는 것은 탄소 제로 사회에 역행한다.
▲ 넓은 창고 위에 설치된 BIPV(독일, 사진 위). 한국은 공장과 창고의 드넓은 지붕을 그대로 놀리며(사진 아래) 산을 깎는 후진국형 그린 뉴딜을 추진중이다. ⓒ Hanergy, 최병성
정부는 지난 2018년 9월 발표한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을 위한 기본 로드맵 수정안'에 '산림 흡수원(산림을 통해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여 제거)'을 추가했다. 파리협정에 의한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 달성이 불가능하자 산림을 통한 이산화탄소 저감을 포함하는 꼼수를 쓴 것이다.
이에 대해 국제기후변화 싱크탱크인 클라이밋 애널리틱스(Climate Analytics)는 '탈탄소 사회로의 전환: 파리협정에 따른 한국의 과학기반 배출 감축 경로(Transitioning towards a zero-carbon society: science-based emissions reduction pathways for South Korea under the Paris Agreement.)에서 '기존의 산림의 관리를 계상하는 방식은 실질적인 배출 감축을 위해 필요한 전환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고 비판했다.
문재인 정부는 이산화탄소 저감을 위해 산림 흡수원을 국제 사회에 제시하고도 다른 한편으로는 태양광과 풍력 발전 건설을 위해 무분별한 산림 훼손을 추진하는 이율배반적인 정책을 펴고 있는 것이다.
▲ 숲의 온실가스 흡수 효과를 잘 알면서도 태양광과 풍력 건설을 위해 숲을 마구 훼손하는 이율배반적인 정책을 펴고 있다. ⓒ 대한민국 정부
정부가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을 위한 기본 로드맵 수정안'에 밝힌 바와 같이 숲은 온실가스를 흡수할 뿐 아니라 생태계 다양성 보존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문재인 정부 그린 뉴딜의 재검토가 필요하다. 숲을 파괴하는 태양광 발전과 풍력 발전을 멈추고 중국과 유럽처럼 BIPV의 현실화 방안부터 찾아야 한다. 햇빛이 쏟아지는 도심의 그 많은 건축물들을 방치해 놓고, 숲을 파괴하는 태양광과 풍력을 추진하는 문재인 정부의 3020 이행 계획은 환경을 파괴하는 재앙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 스페인의 낡은 건물이 건축물 일체형 태양광으로 변신했다. 이처럼 우리나라 도심의 건축물에 태양광을 설치한다면 지금처럼 숲을 파괴하는 환경 파괴 재앙이 줄어들 것이다. 이게 진짜 그린 뉴딜이다. ⓒ SPAIN solarinnova
기후위기가 인류를 할퀴는 순서…‘안전한 집 없는’ 이부터
기후위기와 인권 ②
집보다 부동산의 의미가 큰 시대다. 하지만 혹한, 폭염, 태풍 등 이상기후가 심해지면 추위와 열기, 비바람을 피하는 집의 본래 기능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기후위기는 안전한 집이 없는 이들부터 집어삼킬 것이다.
지난 12월16일 찾은 제주시 외도2동 월대마을 앞 바다. 해수면 높이가 도로와 10~20㎝ 차이밖에 나지 않았다. 기상청 시나리오를 보면, 온실가스 감축 노력을 해도 21세기 후반 제주시 해수면 높이는 최대 80㎝까지 오른다. 주민들은 이미 만조 때와 태풍, 비가 겹치면 한라산에서 쏟아져 내려온 많은 양의 물이 바다로 잘 빠져나가지 않아 하천이 범람한다고 입을 모았다. 제주/최우리 기자
#3. 물 잘 빠진다는 제주, 하천이 범람하다
제주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비가 내린다. 기상청 통계를 보면 제주 북쪽(제주시)은 최근 10년 동안 연평균 1520㎜의 비가 내렸다. 1393㎜(1970년대)→1506㎜(1980년대)→1469㎜(1990년대)→1515㎜(2000년대)→1520㎜(2010년대)로 느는 추세다. 중앙에 솟은 한라산에는 연안 지역보다 4배 가까이 많은 비가 내린다. 게다가 한라산 중산간 막개발 등으로 저지대로 쏟아져 내려오는 빗물의 양은 더 늘었다. 기상청 기후변화 시나리오를 보면, 온실가스 감축 노력을 해도 제주시 쪽 해수면은 2050년엔 지금보다 20㎝, 2100년에는 80㎝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해수면 상승, 강수량 증가, 초강력 태풍, 저지대 하천 범람이 맞물리면 재난이 된다.
제주공항에서 차로 15분 떨어진 제주시 외도2동 월대 주변은 제주 연안 지역 중 대표적인 저지대다. 지난해 9월 태풍 마이삭의 영향으로 바다와 맞닿아 있는 월대천이 범람했다.
월대천 옆 단층 건물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김정경(45)씨의 가게에 물이 들이쳤다. 2016년 태풍 차바가 가게 지하실 전체를 물속에 가두었던 기억이 떠올라 아찔했지만, 마이삭은 그나마 순한 태풍으로 그쳤다.
지난해 8월26일 태풍 바비 당시 제주시 외도동 주민 김정경(45)씨가 자신의 가게에서 바라본 월대천의 모습. 지난해 태풍 때도 월대천의 물이 넘쳐 산책로가 잠겼다. 김정경씨 제공 사진
지난해 12월16일 가게에서 김씨를 만났다. 그는 차바 때 침수돼 뜯긴 지하실 천장을 가리키며 “장사를 접을까 고민했는데 다시 몇년 동안 여름철 장사가 잘돼 그런 걱정을 잊었다. 그리고 다시 마이삭이 와서 또 침수됐다. 여름마다 불안하다”고 했다.
박지홍(36)씨도 바닷가에 바로 붙은 곳에서 횟집을 운영한다. “물이 차면 가게 3층으로 올라가서 가만히 있어요. 며칠이 지나야 물이 빠져요.”
제주시 통계를 보면, 외도2동은 2012년 이후 태풍으로 6차례 침수 피해를 봤다. 2012년 두차례 발생 뒤 뜸하던 침수 피해는 2016년, 2018년, 2019년, 2020년 한차례씩 발생했다. 침수 피해 빈도가 잦아진 것이다.
신민식(83)씨는 이곳 토박이다. 살아온 세월만큼 태풍 사라(1959년), 나리(2007년), 차바(2016년) 등 기억하는 비바람도 많다. 신씨는 “점점 바다 수위가 올라가고 있고 태풍도 자주 오는 것 같다. 만조에 태풍이 겹치면 물이 못 빠져 난리 난다”고 했다. 이곳이 고향인 김봉준(90)씨도 “세계적으로 태풍이 더 늘어난다고 하니 물이 (더 자주) 범람할까 걱정된다”고 했다.
지난 2016년 태풍 차바로 피해를 입은 제주시 외도2동 모습 모습. 허호준 기자
2016년 태풍 차바 피해 당시 제주시 외도동. 외도동 주민센터 제공
그런 월대 주민들에게 잊을 수 없는 사건이 있다. 지영수(72)·장숙이(61)씨 부부, 강연백(60) 월대마을회장은 2007년 9월 태풍 나리를 선명하게 기억한다. 그날 오전 지씨 부부 집으로 물이 밀려들어왔다. 키 163㎝인 장씨의 턱밑까지 물이 들어찼다고 한다. 지씨가 뒷문 유리창을 깨고 먼저 나왔고 얼굴만 물 위에 떠 있는 장씨의 머리를 잡고 건져 올렸다. 동사무소 직원들이 던져주는 줄을 가슴에 매서 몸만 대피했다. 숟가락 하나까지 지씨 부부가 일군 모든 것이 그날 다 사라졌다고 했다.
태풍은 지씨 소유 땅에 설치한 컨테이너에서 살던 40대 부부를 바다로 끌고 가버렸다. “회오리바람이 불더니 파도가 홱 동그랗게 해가지고….” 장씨가 그때를 떠올렸다. 부부의 주검은 보름 뒤쯤 외도 앞바다에서 찾았다고 한다. 강 회장은 “마을 사람들은 다 아는 이야기”라고 거들었다. 올해 제주시는 하천 범람을 막기 위해 제방을 더 쌓기로 했다.
박창열 제주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기후변화로 제주 연안 지역 소형 주거지들이 피해에 노출될 위험이 있다고 했다. 박 연구원은 “현재 거주하는 주민들에게는 이주 권고를 하고 풍수해보험제도를 적극적으로 소개할 필요가 있다. 미래 위험도가 높은 지역만이라도 주거·상업공간으로의 개발 행위를 제한해야 한다”고 했다.
지닌달 7일 찾은 대구 쪽방촌 주민 김만호(가명·55)씨의 방 내부. 보일러나 연탄 대신 전기장판으로 난방을 한다. 대구/김민제 기자
#4. 창문도 없는 쪽방을 덮치는 54도 폭염
질병관리청 자료를 보면, 2016~2020년 5년간 온열질환으로 인한 사망자는 96명이다. 기후변화로 이상기후가 계속되면 2050년 서울 폭염일수는 연간 44.3일(2018~2020년 평균 14.3일)까지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전북 군산에서 선원으로 고기를 잡던 김만호(가명·55)씨는 2016년 대구 중구 서성로의 한 여관에 거처를 마련하고 6년째 살고 있다. 외부인이 보기에는 다 같은 쪽방이지만 1.5평짜리 그의 방은 이 여관에서는 특실로 통한다. 다른 방들과 달리 방에 세탁실이 따로 있고 침대도 있다. 창문이 있는 것이 특히 만족스럽다. 김씨는 사비를 들여 창틀에 방충망을 설치하고 창문에는 외풍을 막을 ‘뽁뽁이’도 붙였다. 그는 자신의 방에 만족하는 듯했지만 좋은 환경은 아니었다. 쪽방 식구들이 사용하는 씻는 물을 데우기 위해서는 연탄을 때고 남은 잔열을 이용해야 했다.
김씨는 침대 위에 얹은 작은 전기장판에 의지해 겨울을 난다. “쪽방에선 연탄을 때는 방과 아닌 방으로 나뉘는데, 연탄 때는 방이 월세가 좀 더 비싸요. 전기요금이 많이 나오면 여관 주인이 부담을 주긴 해도 전기장판을 많이 사용한다고 입주자가 내야 하는 전기요금이 느는 것은 아니에요. 눈치껏 쓰는 거죠. 어떤 집은 주인이 밤에만 전기를 쓸 수 있도록 하는 곳도 있어요.”
지난달 7일 찾은 대구 쪽방촌 복도. 복도 한편으로 좁은 쪽방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대구/김민제 기자
대구 쪽방은 당장의 추위가 힘겨워도 해가 갈수록 맹렬해지는 폭염에 비하면 견딜 만하다. ‘대프리카’(대구+아프리카)의 열기는 김씨가 사는 쪽방을 금세 뜨겁게 달구곤 했다. 이 지역 골목에는 여인숙 등 숙박시설이 늘어서 있다. 대부분 좁은 나무 복도 한편에 1~1.5평짜리 방을 일렬로 들였다. 방과 방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창문이 없기도 하다. 벽엔 옷가지가 빼곡하고 냉방기구는 선풍기뿐이다. 더운 날이면 공용 수돗가에서 열 받은 몸을 잠시 식힌다. 열대야가 이어지면 밤거리를 서성이며 잠 못 이룬다.
주민들은 해가 바뀔 때마다 “올해가 가장 더운 것 같다”고 말한다. 대구 쪽방상담소 행복나눔의집 정현우 상담사는 “2016년 대구 중구의 한 여관 실내온도가 54도까지 올라갔다”고 말했다. 그해 대구 최고기온은 38.1도였다. 근처 여관에 사는 장철수(가명·43)씨는 “여름에는 방이 거의 찜질방이라 땀띠를 달고 산다”고 말했다. 쪽방을 벗어나는 것도 여의치 않을 땐 보통 방바닥에 누워 움직임을 최소화한 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더위가 가시길 기다리는 것이 전부다.
유럽연합은 주거공간에 대한 공공책임을 강조한다. 영국의 경우 저소득층이 사용하는 노후 보일러 교체를 유도해 겨울철 난방 효과를 높이는 동시에 탄소 배출을 줄였다. 또 임대사업자가 건물에 냉난방 등 에너지 절약 시설을 설치하면 그 비용에 대해서는 소득공제 혜택을 준다.
이명주 명지대 건축대학 교수는 취약계층 주거권 보장이 다른 시민들에게도 결과적으로 이익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한다. “다른 사람의 열악한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데 왜 내가 낸 세금을 투자해야 하냐고 물을 수 있다. 에너지 비효율 주택을 공공에서 앞장서 개선을 유도하고 지원하면 그런 건물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이 줄어든다. 결과적으로 나와 내 자식 세대가 기후위기에 대응할 여유가 생긴다.”
대구/김민제 기자, 제주/최우리 기자 summer@hani.co.kr
겨울밤, 화장실 가기 겁나”…기후민감계층의 집은 어디인가
지난달 16일 경기도 외곽 공장단지 인근의 가정집을 열화상 카메라로 찍어보았다. 단열재가 제대로 설치되지 않아 외풍이 심하다. 안방으로 통하는 문에서는 단열이 되지 않아 방안의 열기가 문을 통해서 밖으로 나오고 있다. 문 밖 찬장의 온도는 영하 4.8도, 방문의 최대온도는 13.2도를 가리키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경기도 외곽 공장단지 근처에 사는 박영미(69·가명)씨 집은 이웃들에게 ‘고양이집’으로 불린다. 함석과 스티로폼, 시멘트, 벽돌, 비닐을 얼기설기 덧대 만든 작은 집은 꼭 고양이가 드나드는 움막처럼 보인다. 임시거처 같지만 박씨와 남편 이영식(77·가명)씨는 이곳에서 30년을 지냈다. 유치원 다닐 때부터 이 집에 살았던 손녀가 어느새 고등학교 졸업반이 됐다.
30년을 함께했지만 집은 추위로부터 가족들을 지켜준 적이 없다.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 9도까지 떨어진 지난해 12월9일, 박씨는 실내에서도 점퍼와 패딩을 겹쳐 입고 있었다. “옛날 집이라 항상 추워요. 웃풍도 세고.” 옷깃을 여미며 박씨가 말했다.
일주일 뒤인 12월16일 경기북부 지역에 한파경보가 발효됐다. <한겨레>가 열화상 카메라로 이 집의 온도를 측정했을 때 방바닥 온도 21.4도, 벽면 온도 9.2도, 이불 온도 5.5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연탄보일러와 전기난로는 싸늘하게 식어 있는 집 안을 데우는 데 한계가 있었다.
다채롭던 한국의 사계절은 어느새 여름과 겨울의 힘이 커지며 봄과 가을은 짧아지고 있다. ‘봄, 여어어름, 가을, 겨어어울’로 바뀐 셈이다. 길어지고 혹독해지는 이상기후는 박씨 같은 이들을 가장 먼저 덮친다.
한국 2천만가구 중 37만가구는 집이 아닌 곳에서 산다. 2018년 국토교통부 주거실태조사 결과다. 고시원·고시텔에 15만1천, 일터 기숙사 또는 노래방·피시방 등 다중이용업소에 14만4천, 숙박업소 객실에 3만, 판잣집·비닐하우스에 6600여가구가 산다. ‘안전가옥’이 없다는 것은 늘어난 한파와 폭염, 강도 높은 태풍 등 극한의 기상현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보금자리가 없다는 의미다.
기후변화로 인한 질병을 연구해온 채수미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미래질병연구센터장은 “한국 사회는 전반적으로 기후변화 현상이 자신에게 어떤 위협을 가하는지 낮게 인식하고 있다. 특히 일상이 재난인 이들일수록 이런 피해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사치로 느껴서 적극 대응하지 못할 수 있다”고 했다.
지난달 9일 오후 경기도 외곽 공장단지 인근의 한 움막. 박영미(69·가명)씨 부부가 20여년 동안 단열과 난방이 제대로 되지 않은 집에서 생활하고 있다. 난방비를 아끼기 위해 연탄을 때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1. 점점 사나워지는 날씨, 기후피난을 떠난다
기후변화는 보통 지구 평균기온이 올라가는 지구온난화를 의미한다. 문제는 지구온난화가 극심한 한파도 몰고 온다는 것이다. 온난화로 극지방 온도가 오르면 한반도로 출렁이는 북극진동(찬 공기 소용돌이가 강약을 되풀이하는 현상) 변동성을 예측하기 어려워지고, 적도와의 열에너지 격차가 줄어 대기정체 현상이 늘어난다. 여름 폭염뿐 아니라 겨울 한파의 강도는 세지고 기간도 늘어난다.
경기도 외곽 판잣집에 사는 박영미씨 가정은 여전히 연탄 난방을 하는 국내 15만여가구 중 한 집이다. 연탄을 때면 밤에 여러번 깨야 한다. 덧대고 덧댄 판잣집이라 수시로 환기를 해줘야 한다. 환기를 하면 집 안 온도가 빠르게 떨어진다. 연탄은 화력이 약하다. 냉기로부터 헤어날 수 없는 악순환이다.
기초생활 수급자인 박씨 부부에게 겨울은 난방비 부담으로 더욱 힘든 계절이다. 한 장에 750원 하는 연탄을 하루 12~15장씩, 한달에 많으면 400장 이상 쓴다. 정부가 연간 47만원가량의 연탄쿠폰을 주고, 지방자치단체에서 제공해주는 연탄이 있다. 비용 부담은 덜 수 있지만 공짜 연탄은 질이 나빠 사서 쓸 때가 많다. 연탄값은 오르고 코로나19로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진 탓에 난방비를 내는 게 갈수록 버겁다. 전기난로를 더 들여놓고 싶지만 전기요금이 걱정이다. 전기난로, 지하수를 퍼올리는 전기모터 전기요금으로 월 8만원을 낸다. 그래도 박씨는 새해가 되면 “수험생활을 시작하는 손녀가 공부 잘 할 수 있도록” 난로를 하나 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양이집은 박씨 가족의 소소한 행복을 품고 있었지만, 안심하고 살 수 있는 둥지가 되어주지는 못했다. 눈이 많이 쌓이면 지붕이 무너질까, 비바람이 불면 지붕이 날아갈까봐 걱정된다.
가족들은 매년 수시로 집을 탈출했다. “일기예보에서 비바람이 세게 분다고 하면” 집에서 걸어서 30분 거리의 교회로 대피한다. “살고 보자 하고 나가는 거죠. 피난 가서 하루 저녁 자고 잔잔해지면 돌아와요. 다음날 돌아와 지붕 무사히 붙어 있나 보는 거예요.” 그나마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야 했던 2020년에는 피난처도 문을 닫았다. 비바람이 불어도 꼼짝없이 집에서 견뎌야 했다.
지난달 9일 오후 경기도 외곽 공장단지 인근의 움막의 외관.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9년째 겨울철 에너지빈곤층 실태조사를 하고 있는 에너지시민연대는 지난해 11~12월 서울·부산·광주·대구·목포의 에너지빈곤 300가구를 대상으로 비대면 유선조사를 했다. 노인 가구가 247가구(82.3%)로 절대다수를 차지했다.
조사 대상의 절반 가까운 132가구(44%)가 한파로 인해 건강 이상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증상은 감기(29%), 신경통(22%), 관절염(18%), 두통(13%) 차례였다. 111가구(37%)는 한파를 겪은 뒤 약국 또는 병원을 이용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1980년도 이전에 지어진 40년 이상 된 주택 거주자가 189가구(63%)였다. 이들이 머무는 집은 에너지 효율을 결정하는 창호 기능 만족도(5점 기준)에서 통기성(2.9점), 채광(2.7점), 기밀성(2.8점), 결로(2.9점), 유리·창틀·벽체 균열(3.0점), 창틀 뒤틀림(3.0점), 개폐력 저하(2.9점) 등 모든 분야에서 점수가 낮았다.
실태조사를 맡은 김솔지 에너지시민연대 간사는 “2018년 100년 만의 폭염이 온 뒤 여름철 바우처 지원이 신설되고, 2020년에는 겨울철 지원 대상을 한부모가족·소년소녀가정 등으로 확대했다. 이상기후가 나타난 다음에 추가 지원, 제도 개선이 이뤄지는 식이다. 기후변화에 대비한다면 단기적으로는 에너지 지원이, 장기적으로는 주거환경 개선이 필수적”이라고 했다.
#2. 강해지는 태풍, 날아가는 비닐하우스
지난해 8~9월 태풍 장미와 바비, 마이삭, 하이선이 연달아 한반도를 훑고 갔다. 마이삭이 한반도를 관통했을 때 경남에서만 비닐하우스 5.1㏊가 부서졌다. 세계기상기구 등은 기후변화로 태풍의 강도가 갈수록 강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달 9일 오후 경기도 북부 농촌에 위치한 네팔 이주노동자의 숙소. 조립식 건축자재를 비닐하우스로 덮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경기도 북부의 한 채소농장에서 일하는 네팔 이주노동자 케시(28·가명)에게도 집은 안식처도, 피난처도 아니다. 한국에 온 지 약 4년째인 지난해 여름, 거센 바람을 동반한 태풍이 그가 일하는 농장을 덮쳤다. 케시는 비닐하우스로 된 숙소가 날아갈지 모른다는 공포를 느꼈다. “스트롱 윈드가 왔을 때 잠 못 잤어요. 무서워서. 방 앞에 나무가 있는데 떨어질까 봐.”
케시가 사는 비닐하우스에는 창고를 짓는 데 쓰는 샌드위치 패널이 붙어 있긴 했다. 하지만 2.5평짜리 방 두 칸과 샤워 공간, 부엌을 분리하는 역할만 한다. 화장실은 비닐하우스 밖 간이화장실을 쓴다. 포천 이주노동자상담센터 대표인 김달성 목사는 “추운 겨울철엔 화장실 한번 가려면 옷을 여러 겹 껴입어야 한다. 한밤중에 범죄에 노출될 위험이 있어 방범 문제로 두려움을 호소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냉난방 장치나 수도시설은 농장주 재량으로 설치된 곳도 있지만 고장이 나기 십상이다. 12월9일 케시의 숙소를 찾았을 때도 지하수를 퍼 올리기 위해 설치한 전기모터가 한파에 얼어붙은 탓에 비닐하우스 숙소에는 물이 나오지 않았다.
그를 포함한 이주노동자 3명이 이런 비닐하우스에 살며 월 20만원을 농장주에게 내고 있다. 고향 네팔로 돌아가지 않는 한 농장과 이 숙소가 그가 한국에서 돈을 벌며 머물 유일한 거처다. “전 돈 많이 안 벌었어요. 조금 더 일해야 해요.” 견디기를 택한 케시가 말했다. 그로부터 11일 뒤 경기도 포천의 한 농장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여성 이주노동자가 숨진 채 발견됐다. 사인은 간경화에 의한 간 손상이었다. 보건전문가들은 간 건강이 나쁜 노동자에게 추위와 난방시설 고장이 잦은 열악한 주거환경이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지난달 9일 오후 경기도 북부 농촌에 위치한 네팔 이주노동자의 숙소 내부의 부엌.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은 “주택 가격은 높아지는데 저렴한 주택은 사라지면서 가난한 사람들의 탈출구가 집으로는 볼 수 없는 고시원, 비닐하우스 같은 곳이 됐다. 기후위기 상황에서 취약한 이들을 위해 공공임대주택 등 저렴한 주택을 더 많이 공급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최 소장은 “특히 비닐하우스처럼 극심하게 낮은 수준의 거처는 없애고 이주하는 것 말고는 답이 없다. 다만 고시원의 경우, 노후 건물을 반쯤 새로 짓는다는 개념으로 단열재를 새로 붙이고, 냉난방 설비를 갖추는 등 에너지 효율을 높인 공유 공간으로 개선할 수 있다. 서울시의 리모델링형 사회주택 사업처럼 지자체의 시도도 진행 중”이라고 했다.
김민제 최우리 기자 summer@hani.co.kr
‘개발 가능’ 용도 변경… 다대포해수욕장 관광화 ‘시동’
금빛 갈대밭과 수려한 해안에도 기반시설이 열악해 옛 명성을 잃을 위기에 처했던 다대포해수욕장(부산일보 2019년 5월 13일 자 10면 보도)이 관광 명소로 거듭나기 위한 첫발을 뗐다.
부산 사하구청은 ‘다대포일원 마스터플랜 및 동측배후지 지구단위계획 수립 용역’ 최종보고회를 지난달 개최했다고 10일 밝혔다. 사하구청은 이 자리에서 나온 보충 의견을 반영해 이달 중 계획안을 확정 지을 계획이다.
구청, 배후부지 ‘지구단위’ 용역
준주거지 변경해 상업시설 유도
한 곳뿐인 숙박시설 확충 기대
쇠락 관광명소 명성 찾기 시동
경관 훼손·난개발 초래 우려도
사하구청이 해당 지역의 지구단위계획을 세우는 건 이곳을 개발이 가능한 ‘준주거지역’으로 용도 변경하기 위해서다. 현재 다대포 동측배후지는 해수욕장 인근 유일한 유휴 부지임에도 개발이 제한된다. 몰운대와 성창기업 부지와 가까워 자연녹지지역, 준공업지역으로 지정돼있기 때문이다. 준주거지역은 자연녹지·준공업지역보다 용적률·건폐율 제한이 낮고 상업 시설도 들어설 수 있다.
다대포해수욕장은 천혜의 관광 자원을 가진 부산의 대표 명소로 꼽히지만 기반시설이 열악해 관광지로써 매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았다. 실제로 해운대, 송도 등 부산의 다른 해수욕장과 달리 다대포해수욕장 인근 숙박시설은 단 한 곳뿐이다. 또한 해수욕장 주변은 상업 시설 대신 노후한 횟집에 둘러싸여있다.
이처럼 기반시설이 부족한 탓에 다대포해수욕장을 찾는 관광객들의 발길은 끊어지고 있다. 부산시 관광산업 동향분석에 따르면 2018년 다대포해수욕장을 찾은 내국인 수는 50만 명이었지만 2019년에는 42만 5000명으로 15% 줄었다. 지난해는 코로나 영향으로 상반기 기준 방문객 수가 17만 9000명에 그쳤다. 2017년 부산도시철도 1호선 신평역부터 다대포해수욕장을 잇는 다대선이 개통했지만 관광객 수는 좀처럼 늘지 않고 있다.
이에 사하구청은 다대포해수욕장 동측배후지를 정비하기 위해 부산시와 용도 변경을 협의할 예정이다. 사하구청 김병식 도시계획계장은 “해당 지역의 용도를 변경하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개발 구상안이 먼저 필요하다는 게 부산시 측 입장이었다”면서 “‘밑그림’ 격인 지구단위계획안을 시에 제출한 뒤 용도 변경을 본격적으로 논의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다대포해수욕장 정비 사업이 자칫 난개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사하구 다대동에 거주하는 김 모(41) 씨는 “다대포해수욕장에 숙박·상업 시설이 갖춰져서 더 많은 관광객이 찾길 바란다”면서도 “다대포해수욕장 인근의 뛰어난 자연경관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기반시설이 생길 수 있도록 부산시와 구청이 계획을 잘 세웠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
코로나 백신은 있지만, 기후위기 백신은 없다
신기후체제 출범하는 2021년, 탄소 중독 치료의 첫해 되려면
2019년 12월 31일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서 원인불명의 질병이 발생했다고 세계보건기구(WHO) 중국 사무소에 보고되었다. 이후 2020년 1월 11일에 61세 남성이 폐렴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세계보건기구가 2월 11일 명명한 '코로나 바이러스 질병-2019'의 준말인 '코비드(COVID)-19'의 시작이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현재(2021년 1월 9일 0시 기준) 전 세계 누적 확진자는 8848만5055명이 되었고, 사망자는 190만5697명에 이르렀다.
코로나19는 기후변화와 깊이 연결된 현상이다. 세계보건기구는 지구온난화로 사람이 병원균에 감염될 민감성이 높아졌다고 분석한다. '스톡홀름 패러다임'이라는 이론에 따르면, 기후환경이 급격히 바뀔 때 바이러스가 새로운 숙주를 찾아 쉽게 공략할 수 있는 '병원체의 기회 공간'이 열린다. 지구온난화로 병원균들이 따뜻한 온도에 적응하면 인간 체온 37도의 장벽을 넘기가 수월해진다. 기후변화로 인간의 면역체계가 약해지고 식량 수급에 차질이 빚어지면 사람들이 감염병에 걸릴 확률이 커진다.
2020년 4월 국회입법조사처는 코로나19와 같은 신종 전염병이 야생동물 불법 밀수 관리의 미비, 공장식 축산정책의 문제점, 기후변화 정책의 미비 등 환경정책의 사각지대에서 발생한 사태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2020년 7월 유엔환경계획(UNEP)과 국제축산연구소(ILRI)가 발표한 ‘다음에 닥칠 팬데믹 예방하기(Preventing the Next Pandemic)’ 보고서는 팬데믹을 초래하는 원인과 기후변화 및 생물다양성 상실을 초래하는 원인은 동일하다고 진단한다. 질병관리본부(현 질병관리청)는 2019년 '미래감염병에 대한 세계 동향 분석' 보고서에서 미래감염병은 주로 인간과 환경 간 상호작용의 변화, 기후변화 등에 의해 발생하고 신종감염병은 지속적으로 출현할 것이며 미래에 국가적인 부담이 될 것으로 예측했다.
2020년은 지구온난화가 이어지면서 전 지구적으로 역대 세 번째로 따뜻한 해로 기록되었다. 2020년 지구 평균 기온은 1850~1900년 산업화 이전 수준보다 약 1.2도 높았으며, 오는 2024년까지 최소한 한 해는 지구 평균 기온이 산업화 이전보다 1.5도 더 높아질 것이라고 세계기상기구(WMO)는 예측했다. 페테리 탈라스 세계기상기구 사무총장은 "2020년은 불행하게도 기후 역사에서 최악으로 기록될 또 다른 특별한 해였다"고 회고했다.
2020년 전 세계는 또다시 기후변화로 인한 이상기후로 큰 피해를 입었다. 호주에서는 2019년 9월부터 2020년 2월까지 전역에 걸쳐 1만5000건의 산불이 발생해 남한 면적의 약 2배에 근접한 19만㎢를 태웠다. 최소 33명이 목숨을 잃었고, 건물 3000채 이상이 재로 변했으며, 약 30억 마리의 야생동물이 피해를 입었다. 캘리포니아·오리건·워싱턴주 등 미국 서부 지역에선 100건이 넘는 대형 산불로 남한 면적의 20% 이상이 불에 타면서 30여 명이 숨지고 50만 명이 대피했다.
2020년 1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는 도심이 물에 잠겨 67명이 목숨을 잃었고, 9만2000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2050년이면 자카르타 절반이 물에 잠길 것으로 예상된다. 6월 하순부터 이어진 폭우로 방글라데시, 인도 동북부, 네팔에서 약 400만 명이 피해를 겪었다. 방글라데시 국토 3분의 1이 물에 잠겼고, 한 달 동안 119명이 사망했다. 중국 남부지방에서는 홍수로 158명이 사망·실종했고, 5000만 명이 넘는 이재민이 발생했다. 한국에서도 6월 말 시작한 장마가 8월까지 이어져 역대 최장 장마 기간(54일)을 기록했다.
중남미에선 6~11월 대서양 열대성 폭풍인 허리케인이 역대 최다인 30개나 발생했다. 특히 11월 허리케인 '에타'와 '요타'로 인한 홍수와 산사태로 과테말라, 온두라스, 니카라과, 엘살바도르 등 중미 전역에서 200명 넘게 숨지고, 5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케냐와 에티오피아, 수단, 예멘, 소말리아 등 아프리카 동부 지역에 메뚜기 떼가 급증하면서 농경지를 초토화했고, 소말리아는 식량안보를 위협받는다며 비상사태를 선언했다. 루마니아와 폴란드, 체코 등 동유럽 지역에는 100년 만에 최악의 가뭄이 발생했다. 유럽의 최대 밀·옥수수 재배지가 타격을 받았다.
6월 20일 러시아 시베리아 베르호얀스크의 기온이 38도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5월 말 시베리아 노릴스크에서는 영구 동토층이 녹아 지반이 침하되면서 열병합발전소 연료탱크가 파손돼 2만여 톤의 기름이 유출됐다. 7월 이탈리아 북부 알프스산맥과 연결된 프레세나 빙하에서 분홍색 조류 현상에 발생했는데, 이는 알프스산맥의 빙하가 녹고 있다는 증거로 분석되었다. 10월 시베리아 북극해에서 평소보다 400배 높은 농도의 메탄가스가 방출되고 있음이 보고되었다. 메탄가스는 이산화탄소보다 80배 강한 온난화 효과를 일으키며,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따뜻해진 대서양 해류가 메탄가스 방출의 원인으로 보도되었다.
최근 영국 및 미국 정부가 화이자-바이오엔테크사의 코로나19 백신을 긴급사용승인(영국 12/2, 미국 12/11) 후 접종을 시작하면서 백신의 상용화 시기가 예상보다 빠르게 시작되었다. 모더나사의 백신 역시 12월 18일 긴급사용승인을 받아 12월 21일부터 미국 내 접종을 시작했다. 그 외 17개 백신이 현재 임상 3상 단계에 있으며 2021년 중에 상당수가 상용화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백신 공급계획, 코로나 바이러스의 재생산지수 등을 감안할 때 선진국을 중심으로 상당수 국가에서 2021년 하반기 중 집단면역 임계치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초기 계약물량의 선진국 위주 확보, 보건의료 인프라 격차 등을 감안하면 집단면역 시점은 선진국-신흥국 간에 차이가 발생할 것으로 예측된다.
2021년은 신기후체제가 공식 출범하는 해이다. 신기후체제 출범을 앞두고 유럽연합과 미국, 일본, 한국이 2050년 탄소중립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 1위 국가인 중국도 206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선언과는 달리 주요 국가와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대처와 공조는 미흡한 상황이다. 최근 유엔환경계획의 보고서에 따르면,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겠다고 약속한 G20(주요 20개국) 정부는 청정에너지보다 화석연료에 더 많은 자금을 투여했다. 또 코로나19로 2020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2019년보다 약 7%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2030년 예상 배출량에는 큰 변동이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 1년의 고통을 앞으로 1년 더 겪어야 하는 상황이지만 코로나19는 결국 백신으로 종식될 것이다. 하지만 기후위기는 계속될 것이다. 새해 시작부터 기후변화로 인한 '최강 한파'를 겪어내고 있다. 기후위기를 종식하는 길은 매년 더욱더 심각해지는 기상이변을 견뎌내면서 화석연료와 탄소 중독 사회에서 벗어나기 위한 고통스럽고 기나긴 치료의 과정일 것이다. 기후위기에 백신은 없다
권승문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부소장/프레시안
한 잔의 커피에 든 기후 비용은?
커피 재배-수출-가공 전단계 분석 결과
커피콩 1kg당 탄소배출량 15.3kg 추정
치즈와 비슷한 ‘고고밀도’ 탄소배출산업
커피 재배에서 운송, 최종 소비단계까지 전 과정에서 배출되는 탄소량을 분석한 연구 결과가 나왔다. 픽사베이
커피는 동서양을 통틀어 세계인이 공통적으로 가장 즐겨먹는 기호식품이다. 많은 현대인들이 커피와 함께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기호식품이면서도 필수 영양식품 못잖은 반열에 올라 있다. 세계화와 함께 서구의 식문화와 식품 대기업 네트워크가 세계로 확산되면서 수요가 갈수록 늘고 있다.
2018년 기준으로 한 해 생산되는 커피는 950만톤, 국제 교역 규모는 309억달러에 이른다. 금액 기준으로 121번째로 많이 거래되는 교역 품목이자, 70번째로 많이 거래되는 농산물이다. 수요가 계속 늘어 2050년에는 커피 수요가 지금의 3배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이는 세계의 허파 노릇을 하는 열대지역의 숲이 그만큼 파괴돼야 한다는 걸 뜻한다. 이 수요에 맞추려면 코스타리카의 4배나 되는 땅을 커피 농장으로 개발해야 한다. 하지만 지구 온난화로 오히려 열대 지역의 커피 농장들은 위기에 처해 있다. 30년 후에는 커피 농장의 절반이 재배 부적합지로 변할 것이라는 경고까지 나왔다. 아라비카종의 경우 연간 강우량 1200~1800mm, 온도 15~25도라는 까다로운 조건을 유지해줘야 하는데, 지구 온난화가 현재 재배지의 기후를 이 범위 밖으로 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커피에서도 지속가능한 방식의 생산과 소비가 절박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 연구진이 커피 생산에서 소비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발자국을 계산한 결과를 12월30일 지리환경분야 국제 공개학술지 `지오'(GEO) 온라인판에 발표했다. 세계 1~2위 커피 생산국인 브라질의 사웅파울루와 베트남 중부의 부온마투옷 농장에서 재배한 아라비카종 커피 생두가 영국으로 수출돼 소비되는 과정을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그동안 커피 생산의 환경 영향에 대한 연구는 주로 생산 단계에 초점을 맞춘 반면, 이번엔 생산국에서 소비국으로의 운송과 커피 가공 소비 단계까지 모든 과정을 분석 대상으로 삼은 연구 결과라는 점에 의미가 있다.
필리핀과 비슷한 배출량…대부분 항공 운송 과정에서 발생
연구진의 분석 결과 아라비카종 1kg을 재배해 이를 영국에 수출할 경우, 평균 15.33kg의 탄소를 배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품의 탄소 배출량 규격인 ‘파스 2050’(PAS 2050)을 적용하면 ‘고고밀도’(very high intensity) 탄소배출산업으로 분류되는 수준이다. 원산지별로는 베트남 커피가 16.04kg, 브라질 커피가 14.61kg으로 계산됐는데, 이 차이는 운송거리에 기인한 것이다. 단위 중량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치즈(1kg당 13.5kg)와 비슷하다. 최고의 탄소배출 식품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소고기(1kg당 27kg)의 절반을 약간 웃도는 수준이다.
커피 생산량을 고려하면 한 해 1억4천만톤의 탄소를 배출하는 셈이다. 이는 필리핀의 배출량과 비슷한 양이다.
커피가 이처럼 많은 탄소를 배출하는 식품이 된 가장 큰 요인은 신선한 커피를 향한 욕구다. 애초 선박으로 운송되던 커피는 좀 더 신선한 커피를 찾는 사람들이 늘면서 요즘엔 항공기를 주로 이용한다. 항공 운송은 선박 운송보다 단위거리당 100배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한다. 이는 가격을 높이는 요인이기도 하다.
연구진은 그러나 커피 생산-소비의 각 단계를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바꿀 경우 커피 1kg당 탄소배출량을 3.51kg으로, 최대 77%까지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지속가능한 커피의 핵심은 화학 비료를 덜 사용하고 가공과정에서 물과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비행기가 아닌 선박으로 운송하는 것이다.
에스프레소 1잔에 0.28kg…라떼 0.55kg으로 가장 많아
한 잔의 커피를 기준으로 계산해 보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한 잔의 커피 음료에는 평균 18g(스타벅스 레시피 기준)의 커피 생두가 들어간다. 커피 생두 1kg이면 56잔의 에스프레소를 만들 수 있다. 따라서 에스프레소 1잔의 탄소발자국은 약 0.28kg이 된다. 그러나 지속가능한 재배 방식으로 바꾸면 0.06kg으로 줄일 수 있다.
커피에 우유를 타면 탄소발자국이 추가된다. 얼마나 늘어날까? 연구진이 계산한 결과 라떼가 약 0.55kg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카푸치노가 0.41kg, 플랫화이트(에스프레소에 스팀우유를 섞어 만든 커피)가 0.34kg이다. 여기서도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전환할 경우엔 탄소발자국이 각각 0.33kg, 0.2kg, 0.13kg으로 줄어든다.
지속가능한 커피를 만드는 네 가지 방법
연구진은 지속가능한 커피를 구현하는 방법으로 크게 네 가지를 제안했다.
첫째는 비행기 대신 선박으로 운송하는 것이다. 배를 이용하면 커피 1kg당 배출량을 10.3~11.3kg 줄일 수 있다. 선박 운송은 저렴한 대신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게 단점이다. 예컨대 브라질 커피를 영국까지 운송할 경우 비행기는 12시간이면 되지만, 배를 이용하면 2주가 걸린다. 베트남 커피는 14시간에서 3주로 운송 기간이 48배 더 길어진다. 대신 배를 이용하면 한 번에 훨씬 많은 양을 수송할 수 있다.
둘째는 화학비료를 유기성 퇴비로 대체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커피 1kg당 탄소 배출량을 0.95kg 줄일 수 있다. 농민들은 비료를 많이 줄수록 생산량이 늘어날 것이라는 생각에 비료를 과다 투입하는 경우가 많다. 베트남 사례 연구를 보면 적정량의 약 2.5배를 뿌린다. 그러나 넘치는 비료는 커피나무에 흡수되지 못하고 토양에 남아 물을 오염시키고, 오존층을 파괴하는 아산화질소를 배출한다고 연구진은 지적했다.
셋째는 에너지 효율이 높은 커피머신을 개발해 쓰는 것이다. 가공 단계 탄소배출량의 70%는 최종 소비 단계에서 발생하는데 이는 주로 자동 커피머신에 쓰이는 에너지에 기인한다. 커피머신을 쓸 경우 커피 1잔당 탄소배출량은 60.27g이다. 드립 필터 커피나 프렌치 프레스 커피(10.04g)의 6배다.
커피를 볶으면 부피는 그대로지만 무게는 약 절반으로 줄어든다.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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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탄소 커피를 위해 입맛을 자제할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아예 원산지에서 로스팅해 수출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원산지에서 커피 원두를 로스팅하면 커피 무게가 더 가벼워져 운송과정에서 화석연료 소비량을 줄일 수 있다. 로스팅된 커피는 무게는 절반 이상 줄어들지만 부피는 거의 같다. 커피 생두는 로스팅된 원두보다 유통 기한이 더 길다는 장점이 있지만, 로스팅된 원두도 밀폐된 용기와 10도 이하 온도에서 보관하면 최대 6개월까지 신선한 맛을 유지할 수 있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하지만 이는 다양한 방식의 로스팅으로 차별화한 맛을 추구하려는 커피 시장의 흐름과는 배치되는 것이 약점이다.
연구진은 위에서 제안한 지속가능 커피로 전환할 경우 커피산업의 탄소배출량을 덴마크(3330만톤) 수준으로 떨어뜨릴 수 있다고 밝혔다.
커피에 포함된 문제는 탄소 배출만은 아니다. 수질 오염, 동물들의 서식지 파괴 같은 환경 문제도 있고 저개발국의 저임금 노동 착취 문제도 있다. 연구진은 "커피 산업이 성장하면서 이런 문제를 개선하는 노력이 계속돼야 한다"며 "매일 섭취하는 기호품이 지구에 부담을 주지 않는다는 믿음을 갖고 커피를 즐길 수 있도록 하려면 우리가 제안한 기후친화적인 재배, 운송, 가공법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부산국제아트센터 15일 시민공원에 착공
경제성·예산 등 우여곡절 딛고 10년 만에 … 2023년 개관 목표
- 클래식 전용 콘서트홀 등 갖춰
부산국제아트센터가 2010년 8월 부산시가 설립을 발표한 지 10년 만에 첫 삽을 뜬다.
부산국제아트센터 외관. 부산시 제공
부산시는 오는 15일 부산시민공원 내 부산국제아트센터 착공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11일 밝혔다.
2023년 개관을 목표로 하는 부산국제아트센터는 사업비 974억 원(국비 459억, 시비 458억, 부지 57억 원)을 투입해 시민공원 내 2만9408㎡ 부지에 지하 1층, 지상 3층으로 건립된다. 2000석 규모의 클래식 전용 콘서트홀과 400석의 챔버홀, 휴게공간을 갖춘다.
시는 애초 2011년 시민공원에 1700억 원을 들여 대극장(2000석), 중극장(600석), 스튜디오극장(300석)을 지을 계획이었다. 하지만 2013년 3월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경제성(BC)이 낮게 나오자 시는 두 차례에 걸쳐 전체 면적을 절반 가까이 줄였다. 이후 2014년 11월 KDI의 예비타당성 조사는 통과했지만, 국비사업이 아닌 국비 매칭사업(국·시비 50%)으로 변경되면서 부산국제아트센터를 건립하는 쪽으로 선회했다.
내부 조감도. 부산시 제공
2019년에는 시민공원 내 시민의 휴식공간이 줄어든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강서구 에코델타시티, 부산진구 차량기치장, 사상구의 중학교 등 7곳을 대체 부지로 검토했지만 3만 ㎡ 이상 되는 공유지가 없어 애초 계획대로 시민공원에 건립하기로 했다. 하지만 지난해까지 예산 부족으로 사업자 선정이 2차례 유찰되자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3월 예산을 925억 원에서 977억 원으로 증액하고, 사업기간도 2022년에서 2023년으로 연장했다. 부산도시공사는 지난해 9월 시공사로 ㈜태영건설컨소시엄(태영건설 삼미건설 뉴월드건설산업 경동건설)을 선정했다.
시 관계자는 “부산국제아트센터를 부산을 대표하는 문화기반시설로 조성할 것”이라며 “2023년에 준공한 뒤 곧바로 개관까지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제신문 유정환 기자 defiant@kookje.co.kr
"내 몸이 증거다"…12년째 호흡기 단 피해자의 오열
오늘 재판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이 지켜 봤습니다.
살균제가 피해를 일으켰다고 입증하기 어려우니 무죄라는 판결에 그럼, 멀쩡했던 내 가족은 왜 죽었는지 나는 지금 왜 산소통을 달고 사는지 법원은 그걸 설명해 보라면서 오열 했습니다.
리포트 한 명 한 명 세상을 떠나거나 심한 후유증으로 10년 넘게 고통받고 있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 옥시·롯데마트·홈플러스에 이어 또 다시 유죄 판결이 나오거라 믿었지만 결과는 기대와 달랐습니다. 옥시, 이마트 제품과 함께 애경에서 만든 가습기 살균제를 썼다가 12년째 산소 공급 장치를 달고 있는 조순미 씨는 살균제를 손에 쥐고 오열했습니다.
[조순미/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내 몸에서 일어나는 일, 그것이 다 증거인데 그 증거조차 인정하지 못하는 사법부나 가해 기업이나 정부나 다 받아들이지 못하고 용서할 수 없습니다."
SK케미칼과 애경이 만든 제품을 쓴 뒤 폐병과 싸우다 지난해 8월 숨진 박영숙 씨.
유족은 미진했던 사회적 참사 위원회 조사에 이어 법원에서마저 외면당했다는 생각에 울분을 토합니다.
[김태종/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남편]
"(아내가) 열여섯 번째 중환자실에 있다가 이번에 중환자실 나오지 못하고 사망을 했어요. SK·애경 경영진들, 6개월만 한번 쐬어 보라 이거예요. 당신들 몸에 이상이 없나."
피해자들은 단지 성분이 다르다는 건 무죄의 이유가 되기 부족하다고 주장합니다.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결과일 뿐이라는 겁니다.
[장동엽/참여연대 선임 간사]
"의학적으로 충분히 검증하면, 유죄 입증 충분히 가능했습니다. 이것은 정말 사법부의 기만이라고 생각합니다."
환경부 조사에 따르면 SK케미칼과 애경 제품을 사용했다고 신고한 사람 중 사망자는 지금까지 10명이 넘습니다. 일부 유가족들은 판결대로라면 "죽인 사람 없이 죽은 사람만 있는 자연사냐"고 호소했습니다. /MBC뉴스 이재민입니다.
제비, 이제 강남 안 가요!
지난해 12월 낙동강 하구 둔치도에서 먹이활동을 하는 제비. 사진=김시환
대표적인 여름철새인 제비 무리가 강남으로 가지 않고 한겨울 낙동강 하구에서 서식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과연 월동할지 주목된다.
지난해 12월 20일 부산 낙동강 하구는 며칠 동안 매우 추웠다. 추위에도 몇 마리가 옹기종기 열심히 먹이 활동하고 있었다. 여름보다 몇 배 어려울 것이다. 춥고 배고프다는 말이 제비들에게 해당된다.
2차 한파 때 황조롱이, 큰부리까마귀 습격으로 서너 마리 외 무리가 보이지 않았다. 한 마리는 황조롱이 먹이 감으로 사냥 당했는지 보이지 않는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다시 나가봤다. 그 아래 지역으로 서너 마리가 이동하여 여전히 생활하고 있었다.
새해 첫 주 그 자리에 가봤더니 제비는 보이지 않았다. 걱정의 마음으로 한 주 더 확인하려고 한다. 기후변화가 있다 해도 아직 추운 시기, 점차 제비도 멀리 강남으로 가지 않고 텃새가 될 모양이다.
지난해 12월 9일 부산 사상구 엄궁동 부산화훼단지 외벽 간판에 옹기종기 앉아 있는 제비들. 사진=김시환
지켜는 보지만 인간의 파괴로 재앙은 시작된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기온이 예전보다 따뜻해졌다는 사실 새들을 통해 알 수 있다.
통과 새가 눌러 앉아 번식하고 텃새가 되었고, 나그네새도, 길 잃은 새도 기후변화로 사계절을 만날 수 있는 새들이 늘었다. 그 중 제비도 한 두 마리, 서너 마리 정도 간간히 월동 소식을 접하여왔다. 소규모 무리가 12월 중순까지 머물고 있다는 것은 월동개체로 볼 수 있다.
기후변화 시대의 제비
어미가 날아오자 먹이를 달라고 일제히 입을 벌리는 어린 제비들. 사진=김시환
봄의 전령사라 할 수 있는 제비. 우리의 삶 속에 깊이 들어와 있는 제비. 이런 제비가 세계자연보전연맹(ICUN)의 ‘관심 필요 종’으로 분류되어 보호를 받고 있다.
러시아 하바로브스크에서 내몽골 아래로는 일본, 북한, 남한 등지에서 번식을 하고 베트남, 미얀마, 동남아시아로 이동하여 월동한다. 번식지이자 중간기착지로 각 지역에서 모여 체력을 강화시켜 단체 이동한다.
예전엔 제비들이 낙동강 하구나 제주도 무리에 합류하여 강남으로 이동했을 것이다. 낙동강 하구는 9, 10월께 모여 1, 2차 나누어 이동하는 것을 보았다.
요즘 하바로브스크와 내몽골에서 내려와 경북 영주에 약 20만 마리가 모여 새벽에 먹이 활동 나가는 모습과 해질녘에 잠자리로 들어온 모습이 장관이다. 낙동강 하구에서는 이젠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가 없다.
제비가 번식하고 또한 모여 이동할 장소들을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 사라졌다. 남아 있는 곳도 곧 사라진다. 기후변화 시대, 제비에겐 큰 위기가 찾아오는 것 같다.
◇김시환 습지보전활동가/ 인저리타임(http://www.injurytime.kr)
여기는 남극,1940억톤 빙하가 또 사라졌어요
1988년 처음 이곳 왔을 때
남극 대륙을 덮은 빙벽이
2.8㎞ 정도 떨어져 있었는데,
2019년 월동대장으로 와보니
기지서 4.3㎞까지 밀려 있어
1940억t.
매년 남극 대륙에서 사라지는 빙하의 양이다. 과연 어느 정도의 양인지 가늠조차 어렵다. 애써 비유를 해보자면 물과 얼음의 밀도가 같고 올림픽 규격 수영장 한 곳에 2500t의 물이 들어간다고 가정했을 때, 해마다 남극에서만 수영장 7760만개를 가득 채운 물이 바다로 흘러 들어가고 있는 셈이다. 수도권 시민의 상수원 역할인 팔당호의 저수량(2억4000만㎥)과 비교하면 808배 수준이다. 빙하가 녹아 바다로 가면서 해수면은 전 세계적으로 매년 3.0㎜씩 상승하고 있다. 100년이 지나면 바다의 높이가 30㎝ 정도 올라간다는 의미다.
홍종국 남극 세종과학기지 월동연구대장(57)은 이 같은 기후위기를 최전선에서 관찰하고 연구하는 일을 맡고 있다. 지난 11일 화상 인터뷰에서 홍 대장은 “남극 대륙은 평균 두께 2100m 이상의 얼음으로 덮여 있는데, 단순 수치상으로 이 얼음이 모두 녹아 바다로 흘러 들어간다면 지구 전체의 해수면 높이는 60m 올라가게 된다”며 “단기간 내 이런 일이 벌어지진 않겠지만 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가 지속적으로 배출돼 남극 빙하가 줄어든다면 결코 상상으로만 그칠 일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남극 장보고과학기지 인근 난센 빙붕. 기후변화 영향으로 갈라진 빙붕의 표면에 쌓인 눈과 얼음이 녹으면서 바다로 흘러들어가고 있다. 위의 큰 사진은 남극 세종과학기지 전경. 극지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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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난화로 심층수 온도 상승
어는점보다 3.5도가량 높아
빙붕 하부 녹여 해수면 상승
전체 면적 1400만㎢(남한의 140배)의 남극 대륙은 98%가 눈과 얼음으로 뒤덮여 있다. 이 빙하는 통상 두께 200~900m의 빙붕(육상 경계면을 기점으로 바다 위에 떠 있는 거대한 얼음덩어리)에 가로막혀 바다로 유입되는 것이 차단되지만, 지구온난화 영향으로 내륙과 해수 온도가 올라 빙붕에 균열이 생기거나 붕괴되면서 지속적으로 바다로 유입되고 있다. 남극 내륙지역 기온은 1989년부터 2018년까지 30년간 1.8도 올라 세계 평균 상승 속도보다 3배나 가팔랐다. 홍 대장은 “남극에서는 해수 온도가 무엇보다 중요한데, 심층수 온도가 해수의 어는점(-1.9도)보다 약 3.5도 높아 얼음 하부를 녹이고 있다”고 말했다.
전 세계 과학계는 특히 세종과학기지와 장보고기지 사이에 위치한 서남극 스웨이트 빙하에 주목하고 있다. 한반도 전체 면적과 비슷한 스웨이트 빙하는 최근 남극에서 가장 빠르게 얼음이 녹고 있는 곳이다. 해류는 통상 북극에서 내려와 남극을 거쳐 다시 위로 간다.
이 과정에서 따뜻해진 남극 순환 심층수가 서남극 지반선(육상과 바다의 경계)까지 침투하면서 서남극 전체 빙붕 두께가 20년 전에 비해 약 7% 감소했다. 빙하도 급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2100년에는 이 지역 빙하가 줄어든 영향으로 해수면이 1m가량 상승할 수 있다는 예측도 나왔다.
해수면이 높아지면 지대가 낮은 해안도시들과 섬은 침수 위협을 받게 된다. 홍 대장은 “평균 해발고도가 약 4m이면서 약 1만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남태평양 9개 산호섬으로 이뤄진 투발루의 경우 머지않아 26만㎢ 전 면적이 물에 잠길 수 있다”며 “그뿐만 아니라 뉴욕, 런던, 도쿄 등 해안가 대도시들도 머지않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처럼 댐이나 방조제를 건설해야 하는 날이 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미 지구촌 곳곳에서 기후위기를 알리는 경고음은 거세지고 있다. 지난해 극심한 폭염과 가뭄으로 미국 서부지역에서는 사상 최대 규모의 산불이 났고, 북극권 시베리아 지역은 기온이 38도까지 올라 135년 만에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한국에서는 54일간의 최장 장마가 있었고, 최근엔 온난화 영향으로 제트기류가 약화하면서 북극한파가 한반도를 매섭게 휘몰아치기도 했다. 한반도의 해수면도 연평균 3.68㎜씩 오르고 있다.
18명의 월동대원이 생활하는 세종과학기지 주변에서도 이러한 기후변화는 쉽게 감지된다. 이곳은 1988년 남셰틀랜드군도 킹조지섬에 세워진 한국 최초의 남극 과학기지다. 홍 대장은 “1988년 처음 세종과학기지에 왔을 당시엔 대륙을 덮고 있는 빙벽이 기지에서 2.8㎞ 정도 떨어져 있었는데, 2019년 월동대장으로 다시 와서 보니 내륙 빙벽이 기지에서 4.3㎞까지 안쪽으로 밀려나 있었다”고 말했다.
남극의 동식물 생태계 파괴 현상도 심각해지고 있다. 홍 대장은 “온난화 영향으로 단기간 내 급속하게 번성한 이끼 등 녹색 조류들이 햇빛을 흡수하면서 눈과 빙하의 녹는 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해양산성화에 대한 우려가 컸다. 해양산성화는 인간이 배출한 이산화탄소의 25%가량을 바다가 흡수하면서 수소이온농도(PH)값이 8 이하로 산성화되는 것을 말한다. 그는 “바닷물의 산성화로 산호초와 식물성 플랑크톤 등 해양생물의 생식과 성장 기능이 저하되면서 이를 먹고 사는 크릴과 그 상위 포식자들까지 영향을 받고 있다”며 “바닷속 환경 변화에 따라 남극에 사는 펭귄 등 서식 동물의 운명도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2019년 9월부터 세종과학기지 33차 월동대장을 맡고 있는 그는 오는 3월 쇄빙선 아라온호를 타고 국내로 복귀한다. 통상 비행기를 타고 칠레 등을 거쳐 복귀하지만 코로나19 사태로 각국의 하늘길이 막히면서 불가피하게 배를 타고 들어오는 것이다. 홍 대장은 “북극의 기후변화도 심각해지고 있다”며 “국내에 복귀한 이후 전공 분야인 지질학과 관련한 연구과제를 맡아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탄소중립 하려면 스위스를 보라
전국적 기본소득인 스위스 탄소배당 사례
지난 1월 7일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이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꼭 필요한 대책으로 '탄소세법안'과 '탄소세의 배당에 관한 법률안' 발의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온실가스 배출 톤당 8만 원의 탄소세를 부과하여 그 세입을 전 국민에게 월 10만 원씩의 탄소세배당으로 균등하게 배분하겠다는 방안이다. 말하자면, 탄소세를 재원으로 하는 기본소득을 도입하겠다는 것이다('탄소세배당'이라는 용어가 좀 생소한데, 국제적으로는 '탄소배당'(CO2-Dividend)으로 통용되므로 아래에서는 '탄소배당'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자 한다.).
정부는 작년 10월 말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에서 '2050 탄소중립 계획'을 처음 천명하고, 12월에는 '2050 탄소중립 추진전략’, '2050 장기저탄소 발전전략(LEDS)’,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등을 확정하였다. 목표나 구체적인 방안이 미흡다는 지적들도 있으나, 그동안 국제사회에서 기후악당으로 지탄받던 한국이 이제나마 본격적으로 탄소중립을 추진한다는 점에서 매우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런데 정부의 여러 추진전략을 보면, '세제·부담금·배출권거래제 등 탄소가격 체계 재구축' 방안이 포함되어 있어 향후 탄소세의 도입이 추진될 여지는 있는 것 같은데, 용혜인 의원이 추진하는 탄소배당은 없다.
탄소세는 탄소배당과 연동될 때 가장 효과적으로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탄소세 부과로 인한 에너지 가격 상승 부담을 탄소배당이 완화해 줌으로써 탄소세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해주기 때문이다. 좀 더 부연하면, 탄소세의 목표는 탄소세 부과로 화석연료 가격을 인상시킴으로써 화석연료 사용을 억제하고 대신 에너지 절감이나 친환경에너지로의 전환을 촉진하는 것인데, 이 경우 에너지 가격 상승에 따라 특히 저소득층의 연료비 부담이 커져 정치적 저항이 발생하게 된다.
이때 탄소세 수입을 탄소배당으로 국민에게 균등하게 배분하면, 에너지 다소비층인 고소득층은 납부하는 탄소세보다 적은 탄소배당을 환급받아 연료비 부담이 가중되지만, 에너지 저소비계층인 저소득층은 납부하는 탄소세보다 많은 탄소배당을 환급받아 연료비 부담이 완화된다. 어느 사회나 소득불평등으로 인해 저소득층이 고소득층보다 많기 때문에, 탄소배당을 도입하면 탄소세의 유지 또는 인상에 다수의 정치적 호응을 얻을 수 있다.
사실 탄소세, 특히 탄소배당은 매우 생소한 제도이다. 그나마 탄소세는 2019년 기준으로 유럽 16개국이 도입하고 있어서 우리에게도 좀 알려져 있지만, 탄소배당을 전국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나라는 스위스가 유일하다(캐나다도 2018년에 탄소부담금을 탄소배당(기후인센티브)으로 환급하는 제도를 도입하였으나, 이 제도 참여는 주별로 자율적이다.). 스위스는 2008년부터 (탄소세가 아니라) 탄소부담금을 부과하고 그 수입의 3분의 2를 국민에게 탄소배당으로 환급하고 있다. 이 제도의 운용실태를 살펴보면 앞으로 용혜인 의원이 발의할 ‘탄소세-탄소세배당’ 법률안을 논의하는 데 참고가 될 것이기에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스위스 탄소부담금-탄소배당 도입의 배경
1997년 채택된 교토의정서에 따르면, 스위스는 2008년부터 2012년까지 1990년에 비해 탄소 배출을 평균 8% 감축하도록 의무화되었다. 이에 따라 스위스는 1999년에 '탄소법'을 제정하여(2000.5.1. 발효) 에너지 종류별 탄소 배출 목표를 정하고, 이 목표 달성이 불가능할 것으로 예견될 경우 연방내각이 탄소부담금(CO2-Abgabe)을 도입하고 이 부담금 수입을 모든 국민과 기업에게 균등하게 배분하는 방안(탄소배당)을 강구하도록 규정하였다. 이런 가운데 스위스 정부가 2006년에 감축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자, 연방내각은 2007년 6월에 ‘탄소시행령’을 제정하여(2007.7.1. 발효) 2008년 1월 1일부터 탄소부담금을 도입하고 이를 전 국민과 기업에 환급하는 방안을 구체화하였고, 이는 2012년 개정되어 지금까지 적용되고 있다.
이러한 부담금 징수와 그 수입의 환급 방안은 탄소부담금이 처음이 아니다. 스위스는 ‘환경보호법’에 의거하여 이미 2000년 1월부터 활성유기화합물(volatile organic compounds: VOC) 배출을 감축하기 위하여 VOC 부담금(VOC-Abgabe)을 징수하고, 이 가운데 일부를 균등하게 국민에게 환급해주고 있다. 탄소부담금과 탄소배당도 이러한 사례에 의거하여 시행된 것이다.
탄소부담금
부담금은 국가가 강제적으로 징수한다는 점에서는 조세와 같지만, 조세와 달리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행위를 유도하기 위한 교정적 목적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런 점에서 스위스의 탄소부담금은 유도부담금의 일종으로서 가격 상승을 통해 탄소 사용을 줄이도록 하고, 법정 기후보호를 달성하기 위한 핵심적 정책수단이다.
탄소부담금의 부과대상은 난방유, 천연가스, 석탄 등 건물난방용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개인과 기업이다. 단, 연료가격 인상에 따르는 정치적 부담으로 인해 수송용 연료인 휘발유와 경유는 부과대상에서 제외되었다. 또한 탄소법에 의하면, 온실가스 집약적인 시설 운영자는 온실가스 배출 감축에 관한 의무를 지는 대신 탄소부담금을 면제받을 수 있으며, 화석연료 구입 시 자동으로 부과되는 탄소부담금을 신청에 의해 환급받을 수 있다.
탄소부담금 액수는 2008년 도입 당시 톤당 12프랑(약 1만4800원)이었는데, 2010년 36프랑, 2014년 60프랑, 2016년 84프랑으로 인상되었고, 2018년에 96프랑(약 11만8400원)까지 올라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부담금 액수의 인상은 탄소 시행령에 미리 규정되어 있다. 즉, 탄소 감축의 중간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목표 미달성 정도에 따라 인상될 부담금 액수가 정해져 있는데, 구체적으로는 다음과 같다.
먼저, 2007년 시행령에 따른 부담금 액수의 인상방식은 다음과 같다.
ⓒ정원호
2012년 시행령에 따른 부담금 액수의 인상방식은 다음과 같다.
ⓒ정원호
그동안 탄소부담금의 인상 경과와 이 시행령 규정들을 비교해 보면, 스위스는 계속해서 탄소배출량을 감축하기는 했지만 시행령에 규정된 탄소감축 중간목표 달성에는 실패하여 탄소부담금이 계속 인상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뒤에서 보겠지만, 이것은 탄소부담금 자체의 효과가 없었다기보다는 탄소부담금 부과에서 제외된 휘발유와 경유 소비 증가로 인한 것이었다.). 그 인상폭은 매우 커서 10년 만에 12프랑에서 96프랑으로 8배나 인상되었는데, 이러한 급격한 인상이 가능했던 것은 바로 탄소배당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시행령은 일단 2021년 말까지 연장되었고, 2020년의 탄소 배출량이 1990년도 배출의 67%보다 많을 경우 2022년부터는 탄소부담금이 120프랑으로 인상될 예정이다.
탄소배당
탄소부담금 수입 가운데 3분의 1은 건물과 주택의 에너지 절감 개량사업과 신재생 에너지 사업에 사용되고(최고 한도 4억5000만 프랑), 추가 2500만 프랑은 환경부가 관리하는 친환경 기술보증기금에 출연한다. 그리고 나머지 약 3분의 2는 전체 국민과 기업에게 배분한다(탄소배당). 배당금액은 탄소 배출량에 따라 매년 변동한다.
먼저, 개인의 경우 지급대상은 국적과 나이에 상관없이 스위스 기초건강보험 가입자 전체다. 스위스 3개월 이상 거주자는 의무적으로 이 건강보험에 가입해야 하기 때문에, 결국 스위스에 3개월 이상 거주한 사람은 모두 대상이 된다. 개인에 대한 배당은 개인으로부터 징수한 부담금으로 이루어지는데, 탄소 배출량과 무관하게 균등하게 배분된다. 그리고 개인에게는 앞에서 언급한 VOC 배당금도 함께 배분되는데, 2019년의 경우 개인 배당금은 76.8프랑(약 9만4750원)이었다.
이 배분은 부담금이 발생한 동일 연도에 실시된다. 정확한 부담금 총액은 연말에나 확정되기 때문에 일단 환경부의 추정에 의거하여 배분하고, 배당액과 실제 부담금과의 차액은 차차년도 배분 시에 정산한다. 배분은 건강보험료 정산을 통해, 즉 건강보험료 납부 시 배당금액을 차감하고 납부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보험사들이 스위스 거주자 모두의 건강보험계좌를 갖고 있기에 이를 통하는 것이 가장 간단하고 행정비용을 줄이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건강보험료 통지 시에 배당금액이 고지된다.
다음으로 기업에 대해서는 정부가 기업으로부터 징수한 탄소부담금을 고용주에게 배분하는데, 배당금액은 모든 기업에 균등한 것이 아니라 피고용자의 노령연금 납부를 위한 임금총액에 비례한다. 이 배당은 환경부의 위탁을 받아 지역의 노령연금 담당기관이 실시하는데, 고용주의 노령연금 보험료를 정산하거나 배당금액이 많을 경우 차액을 지급한다.
이렇게 하여 개인과 기업에 배분된 탄소배당금 추이는 다음과 같다.
ⓒ정원호
탄소부담금-탄소배당의 효과
언급하였듯이, 위와 같은 탄소부담금과 탄소배당의 목표는 일차적으로 탄소배출 감축이다. 따라서 이 제도의 도입으로 인한 탄소 배출량 감축의 정도가 이 제도의 효과를 보여줄 것이다. 이를 파악하기 위해 1990년부터 2019년까지 20년간 스위스의 탄소 배출량 추이를 보면, 다음 그림과 같다.
ⓒ정원호
위 그림에서 보면, 탄소부담금을 적용하지 않는 수송용 연료의 탄소 배출량은 1990년 1546만 톤 배출 이후 약간의 등락은 있었지만, 2019년에도 1591만 톤을 기록하여 여전히 1990년 배출량보다 많다(1990년 대비 102.9%). 이에 반해 탄소부담금-탄소배당을 적용받는 난방연료의 탄소 배출량은 1990년 2341만 톤에서 2019년 1640만 톤(1990년 대비 70.1%)으로 30%나 감축되었다. 특히 2007년 배출이 1990년 대비 91.7%로 17년 동안 약 9% 정도밖에 감축되지 않은 데 반해, 탄소부담금-탄소배당이 도입된 2008년 이후 2019년까지 12년 동안 추가로 약 21% 정도나 감축되어 감축의 정도가 두 배 이상 커졌다. 이러한 사실은 탄소부담금-탄소배당의 효과가 매우 컸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 효과는 탄소부담금을 도입한 2008년부터 2015년까지의 탄소배출 감축에 관한 실증연구에서 더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Müller and Schoch(2017)에 따르면, 첫째, 탄소부담금은 도입 이래 경제(제조업 및 서비스업)와 가계의 탄소배출 감축을 유도하였는데, 2015년에 연료에서의 탄소배출을 4,3%에서 7.1%까지 감축하였다.
둘째, 2008~2015년 동안 탄소부담금 외에도 탄소배출 감축을 위한 여러 가지 정책수단들이 도입되었고, 그것들도 나름대로 효과가 있었지만, 2015년에 탄소부담금이 다른 수단(예컨대 건물개량 프로그램)보다 2~3배 더 큰 효과를 보였다.
셋째, 이러한 감축효과는 연료대체 효과에 기인한다. 가계와 기업이 탄소부담금으로 인한 가격상승으로 화석에너지(예컨대 난방유)를 저탄소·무탄소 에너지(예컨대 천연가스)로 전환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기업보다 가계에서 두드러졌는데, 왜냐하면 기업의 경우 탄소부담금 도입 이전부터 이미 천연가스로의 대체가 많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넷째, 탄소부담금 예고는 즉각 효과를 가져왔다. 즉, 탄소부담금 도입이 예고만 되어 있던 2006년과 2007년에 이미 탄소배출 감축효과가 나타났다. 이를 볼 때 탄소시행령을 통해 미리 탄소부담금의 단계적 인상을 규정하여 탄소부담금 액수의 장기적 추이를 예상하도록 한 것은 예방적 효과를 초래하였고, 기업과 가계가 선제적으로 효율적인 투자를 하도록 하는 유인을 제공하였다.
다섯째, 분석 기간 중 2010년과 2014년에 두 번의 탄소부담금 인상이 있었는데, 이때 탄소 배출량 감축 효과가 더욱 두드러졌다. 이를 볼 때, 앞으로도 탄소부담금을 인상할 때마다 탄소 배출량 감축이 더욱 커질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실증연구 결과 아직 탄소배출 잠재력이 소진되지는 않았다.
이상으로 스위스의 탄소부담금-탄소배당 정책을 살펴보았다. 간단히 요약하면, 스위스는 탄소부담금의 도입과 급격한 인상으로 탄소배출 감축에 큰 성과를 보이고 있으며, 그러한 좋은 성과는 탄소배당으로 인해 가능했다. 물론 수송용 연료에 탄소부담금이 적용되지 않는 점이나 개인과 기업의 탄소부담금-탄소배당이 구분된 점 등은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의 실증연구에서 나타나듯이, 이 정책은 탄소배출 감축을 위한 다른 정책수단들보다 효과가 2~3배나 컸다. 그런 만큼, 한국도 2050 탄소중립을 위해서는 용혜인 의원의 관련 법안 발의를 계기로 탄소세와 탄소배당을 진지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
※ 사족 : 현재 국내의 거의 모든 언론이나 심지어 연구자들까지 국가적 차원에서 기본소득을 실시하고 있는 사례는 없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데, 이 스위스의 탄소배당이 바로 국가적 차원의 기본소득이다.
정원호 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프레시안
이쯤되면 ‘묘기’…이 뱀이 괌 토종새 멸종시킬 만했네
몸으로 감아 올가미 만든 뒤 꿈틀거리며 위로 이동
매끄러운 금속 원통을 기어오르는 갈색나무뱀. 몸을 한 바퀴 감아 올가미를 만든 뒤 그 마찰력과 몸의 꿈틀거림으로 기어오른다. 줄리 새비지 외 (2021) ‘커런트 바이올로지’ 제공
뱀은 사막 모래 위를 헤엄치듯 옆걸음으로 이동하기도 하고 나무에서 나무로 활공하듯 건너뛰기도 한다. 이제까지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뱀의 이동법이 발견됐다.
몸을 한 바퀴 돌려 올가미를 만든 뒤 그 마찰력을 이용해 매끄러운 수직 원통을 타고 오르는 ‘올가미 이동’이 그것이다. 새로운 이동법의 주인공은 갈색나무뱀으로 괌에 침입해 토종 새를 대부분 사라지게 하고 주민들에 큰 피해를 주는 악명 높은 외래종이다.
갈색나무뱀은 괌에 유입된 뒤 토종 새 10종을 멸종으로 몰아넣었다. 나머지 2종의 보전대책을 세우는 과정에서 이 뱀의 색다른 이동 방식이 발견됐다. 비외른 라르드너, 미국 지질조사국 제공.
호주와 파푸아뉴기니 등에 서식하던 이 뱀은 1940년대 말∼1950년대 초 미군 화물 비행기를 타고 괌에 유입된 것으로 알려진다. 1960년대 급증한 이 뱀은 괌에만 살던 토종 조류 10종을 멸종으로 몰아넣는가 하면 길이 2.3m 무게 2㎏에 이르는 몸집으로 집에 침투해 강아지와 새장 속 새를 노리기도 해 큰 사회문제가 됐다.
무엇보다 전선을 타고 이동하다가 종종 정전을 일으켜 재산피해가 커지자 당국은 전용 탐색견을 동원하는가 하면 독약을 넣은 쥐를 숲에 살포하는 등 퇴치에 나서기도 했다(▶뱀과의 전쟁, 공군까지 동원해 ‘쥐 폭탄’ 투하).
전봇대에 오른 괌의 갈색나무뱀. 전선을 따라 이동하다 수시로 정전사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줄리 새비지 미국 콜로라도 주립대 명예교수는 극소수가 살아남은 괌 고유종인 미크로네시아 찌르레기를 갈색나무뱀으로부터 지키기 위한 연구를 하던 과정에서 예상치 않게 이 뱀의 독특한 이동 방식을 발견했다.
새 둥지를 뱀이 오르지 못하도록 매끈한 금속 원통 막대 위에 설치했는데 갈색나무뱀은 이를 너끈히 타고 올랐다. 비디오 영상을 정밀 분석한 결과 이제까지 뱀에게서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이동 방식임이 드러났다
새비지 교수 등 연구자들은 12일 과학저널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원통을 타고 오르는 뱀의 새로운 이동을 보고하고 이를 ‘올가미 이동’이라 이름 지었다. 연구자들은 “이런 새로운 이동 방법이 침입종의 번성과 피해에 기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갈색나무뱀은 나무 타는 선수이다. 작은 돌기라도 있으면 기어오르고 매끈한 수직 줄기도 타고 오른다. 비외른 라르드너, 미국 지질조사국 제공.
뱀이 나무를 타는 방법은 2가지이다. 보통은 줄기의 옹이나 돌출한 부위를 강한 배 근육으로 타고 오른다. 매끈한 나무라면 나무를 위와 아래 두 곳에서 감은 뒤 차례로 풀면서 위로 이동한다. 이 방법의 한계는 나무를 2번 감기 위해서는 나무가 가늘거나 몸이 충분히 길어야 한다는 점이다. 너무 큰 매끈한 나무라면 그 위에 아무리 새 둥지가 있어도 접근이 불가능하다.
연구자들은 “이번에 발견된 올가미 이동은 나무를 한 번만 감고 위로 오르는 방식으로 기존에 알려진 나무 오르기의 변형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밝혔다. 갈색나무뱀이 금속으로 만든 원통을 기어오르는 방법은 원통을 한 바퀴 감아 꼬리로 올가미를 만든 뒤 올가미 안에서 파동처럼 몸을 구부리면서 꿈틀거리며 오르는 것이다.
올가미 이동 방식은 쉽지 않다. 연구자들은 “오르는 속도가 1초에 4㎜로 아주 느렸고 수시로 미끄러져 내렸으며 자주 쉬었고 호흡도 가빴다”고 금속 원통을 오르는 뱀을 묘사했다. 공동 저자인 브루스 제인 콜로라도 주립대 교수는 “이런 방식으로 오를 수는 있었지만 뱀은 한계까지 몰아붙이고 있었다”고 말했다.
갈색나무뱀이 세계적인 침입종으로 유명해진 데는 못 가는 곳이 없는 탁월한 이동 능력 덕분이다. 제인 교수는 “이 뱀은 표면에 아무리 작은 돌기가 있어도 수직으로 타고오르며, 숲지붕 사이의 거리가 멀어도 뛰어 넘고, 몸 길이의 3분의 2 이상을 꼿꼿이 세울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인용 논문: Current Biology, DOI: 10.1016/j.cub.2020.11.050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가덕신공항 "찬성" vs "반대"…부산 시청 앞서 동시 집회
반대 단체 "기후변화 시대 신공항 안 맞아…토건 세력 욕망"
찬성 단체 "균형 발전 출발점…수도권 일극 주의 안 돼"
가덕도 신공항 반대 기자회견
반대 단체 기자회견 뒤로 찬성 집회가 열리고 있다. [차근호 기자]
"가덕 신공항 환경파괴, 토건 세력들의 욕망이다"
"가덕 신공항은 국가 균형 발전의 새로운 출발점이다"
부산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단체들이 12일 같은 장소에서 동시에 기자회견과 집회를 열고 논쟁을 벌여 눈길을 끌었다. 12일 오후 2시 신공항 건설을 반대하는 21개 단체 회원 20여명은 '가덕 신공항은 누구의 미래도 될 수 없다'며 부산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21개 단체에는 부산에너지정의행동, 부산환경회의, 습지와새들의친구, 정의당 부산시당, 노동당 부산시당, 정의당 부산시당 등 환경 단체와 소수 정당 등이 참석했다. 이들은 부산시와 여야 거대 정당이 가덕도 신공항 홍보에 열을 올려 '신공항 반대'를 부산 발전에 반대하는 것처럼 몰아세워 다른 목소리를 봉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코로나19로 공항 수요가 감소했고, 탈 탄소 시대에 신공항은 어울리지 않는다"면서 "전 세계를 오가는 사람과 과도한 물류 이동은 기후 위기와 코로나 확산의 주요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세계 최고 허브공항이라는 싱가포르 창이공항은 터미널 증축 계획을 보류했고, 영국 히스로공항의 활주로 건설 계획도 파리협약의 온실가스 감축 책무를 위반한다고 해 위반 판결을 받았다"면서 "신공항 계획은 시대 흐름에 역행하고 성공하더라도 세계적 비난을 자초할 것"이라고 밝혔다.
신공항 특별법 조속히 제정하라
이들은 수조원의 혈세 투입이 예상되는 대규모 토건 사업에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하자는 주장에 대해서도 반대 목소리를 분명히 했다. 반대 단체 기자회견 장소와 10여m 떨어진 곳에서는 동남권관문공항추진 부·울·경 범시민운동본부 등 5개 단체의 찬성 집회도 열렸다.
이들은 "망국적인 수도권 집중을 해소하고 국가균형발전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구현할 수 있는 새로운 출점이 될 것"이라면서 "총리를 위시한 정부와 여·야 정치권에서도 당리당략을 떠나 중차대한 국가과제의 해결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 협력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찬성단체는 신속한 추진을 위해 가덕도 신공항 건설 특별법 제정을 촉구했다.
이들은 "역대 정부의 신공항 입지 선정과정에서 시행착오가 계속돼 더 지체할 시간이 없다"면서 "특히 부산시는 국가적 과제로 2030 세계등록엑스포 유치를 추진하고 있어 2029년까지 신공항 준공 목표를 완료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특별법이 올해 2월까지 제정돼야 하는 이유로 "4월에 부산시장 보선을 앞둔 상황에서 선거와 정치적 소용돌이에서 벗어나기 위해 최소한의 여유 기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대구 경북, 인천(인천공항)의 여론과 수도권 중심 언론의 논조에도 반박했다.
이들은 "수도권 일극 주의에 경도된 일부 전문가와 인천의 일부 주민단체는 비수도권 주민들의 희생으로 인천국제공항이 세계 속에 우뚝 서게 되었다는 사실을 직시하라"면서 "더는 무자비한 희생을 강요하는 억지 주장을 중단하라"고 밝혔다. ready@yna.co.kr
민주당 환경특위 “월성원전 수조 손상 의심···안전 관리에 심각한 문제”
더불어민주당 양이원영, 우원식, 김성환 의원 등이 13일 국회 소통관에서 월성원전의 방사성 물질 누출 사건과 관련해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하수에서 방사성 물질이 검출돼 논란이 되고 있는 월성원전의 방사성 물질 보관 시설에 손상이 갔을 수 있다는 주장이 정치권에서 제기됐다. 방사성 물질 유출을 막는 월성원전 내부 시설도 취약한 구조로 만들어져 있어 안전성 문제가 심각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당 차원에서 대대적인 진상 조사에 착수한다는 방침이다.
민주당 국회의원 34명은 13일 당 환경특별위원회 주관으로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한치의 소홀함도 허용될 수 없는 원전안전 관리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 사건”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국수력원자력 보고를 토대로 월성원전의 방사성 물질 관리 구조에 문제가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월성 4호기 사용후핵연료 집수정에서 감마핵종 방사성 물질이 발견된 것을 두고 “가장 심각한 것”이라고 이들은 지적했다. 감마핵종 방사성 물질은 삼중수소와 달리 방사성 물질을 보관하는 수조의 콘크리트 구조물을 투과할 수 없다. 이들은 “사용후핵연료 수조 손상이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2010년과 2014년, 2018년, 2019년 지속적으로 보수 작업이 시행된 것으로 밝혀져 누출이 언제부터 얼마나 있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월성원전 사용후핵연료 수조의 방수시설도 취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월성원전 사용후핵연료 수조 방수는 고작 1㎜ 두께의 에폭시라이너를 칠한 것이 전부”라며 “다른 모든 원전의 사용후핵연료 수조는 6㎜ 두께의 스테인레스 철판으로 방수공사가 이뤄져있다”고 지적했다. 한수원 점검 결과 최근 3년간 에폭시라이너에서 균열·부풀음 등 총 525건의 문제가 발생했다며 “근본적으로 취약한 구조”라고 밝혔다.
월성 1호기는 방사성 물질 유출을 막는 최후 시설인 ‘차수벽’ 구조도 문제라는 지적이 나왔다. 이들은 “사용후핵연료 수조에서 유출된 오염수의 외부 확산을 막는 최후 방벽인 차수벽의 경우 월성 2~4호기는 콘크리트로 만들어져있지만 1호기는 점토(흙)으로 만들어져있음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수원은 월성 1호기 차수벽의 건전성을 확인한 적도 없고,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한다”고 설명했다.
추가적인 삼중수소 유출도 확인됐다. 이들은 “월성 2호기 뒷편에 설치된 관측정에서는 다른 관측정보다 10~100배 높은 리터당 최대 2만8200Bq(베크럴)의 삼중수소가 검출됐다”며 “한수원은 아직 그 원인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민주당 의원들은 이번 방사성 물질 유출을 두고 “20~30년 동안 가동해 온 노후 원전의 총체적 문제가 드러난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오는 18일에 월성원자력본부를 방문해 현장 조사를 진행하고 투명한 정보공개를 요구할 것”이라며 “주민들이 요구하는 민관합동조사위원회 구성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은 국회 차원에서 진상조사를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최인호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최고위원회의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월성원전과 관련해 전면적인 활동을 준비하고 대책을 세워야한다는 것이 최고위에서 강조됐다”고 말했다. 지난 12일 김태년 원내대표는 원내대책회의에서 “노후한 월성원전의 방사능 오염 규모와 원인, 관리부실 여부를 전면조사할 것을 정부에 주문한다”며 “국회 차원의 조사 필요성도 면밀하게 검토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민주당은 방사능 물질 누출 논란을 두고 “과학적 사실이 아니”라는 국민의힘 주장을 정치 공세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월성원전과 관련된 감사원 감사 결과와 검찰 수사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최 수석대변인은 “멸치 1g을 먹는 수준이라는 국민의힘의 표현은 국민 안전을 완전히 무시하는 무책임한 발언”이라며 “경제성만 보고 안전성을 도외시한 감사원의 편향적 감사와 검찰의 정치적 수사와 같은 맥락이라는 데에 (최고위원들 간) 공감대를 이뤘다”고 말했다.
박광연 기자 lightyear@kyunghyang.com
사설]환경부의 공식 피해 인정과 상반된 가습기메이트 무죄 판결
서울중앙지법이 12일 가습기 살균제 SK케미칼과 애경산업 전 대표에 대해 1심 무죄 선고를 한 직후 가습기살균제피해자 조순미씨가 재판 결과에 대해 발언하던 중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강윤중 기자
가습기살균제를 제조·판매한 대기업 임원들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유영근 부장판사)는 12일 업무상 과실치사 등의 혐의로 기소된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와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 등에게 “공소사실이 충분히 증명되지 않았다”면서 무죄를 선고했다.
SK케미칼은 독성 물질인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과 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으로 가습기살균제 ‘가습기메이트’를 만들었고, 애경산업 등은 이를 판매했다. 검찰은 그 결과 12명이 죽고 87명이 다쳤다고 판단하고 이들 기업의 임원들을 재판에 넘겼다. 다른 독성 물질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 성분이 들어간 가습기살균제 ‘옥시싹싹 가습기당번’ 관련 업체 임원들은 이미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재판부는 “CMIT·MIT 성분 가습기살균제가 폐질환이나 천식을 유발한다는 사실이 입증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무죄 이유를 설명했다. 가습기살균제의 위험성을 확인하기 위해 동물 실험과 역학 조사 등이 이뤄졌으나 폐질환과 천식에 영향을 줬다고 결론을 내린 보고서는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이 사건을 바라보는 심정이 안타깝고 착잡하기 그지없다. 향후 추가 연구결과가 나오면 역사적으로 어떤 평가를 받을지 모르겠지만 재판부 입장에서는 현재까지 나온 증거를 바탕으로 형사 사법의 근본 원칙 범위 내에서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증거를 엄격하게 해석하는 형사 재판의 특성과 재판부의 고뇌를 이해한다. 그러나 재판부 판단은 그동안 환경부가 CMIT·MIT 함유 제품을 사용한 피해자들에게 공식적으로 피해를 인정해온 것과 상반되는 것이어서 혼란스럽다. 법원 판결대로라면 검찰은 무고한 기업인을 기소한 셈이다.
가습기살균제 사태는 2011년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폐질환으로 사망하면서 표면화했다. 가습기살균제 흡입이 원인으로 드러나 ‘사회적 참사’로 규정됐다. 그러나 아직까지 정확한 피해 인원이나 제품 개발 및 판매 과정, 정부의 허술한 보건 시스템 등에 관한 기초적인 사실조차 제대로 정리되지 않았다. 가해자 처벌은커녕 가습기살균제 성분의 위해성도 법원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문제는 앞으로도 진상규명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지난해 말 국회는 사회적참사특별법을 개정하면서 활동기간이 1년6개월 연장된 사회적참사특별위원회 업무에서 가습기살균제 진상조사를 제외했다. 그동안 정부에 접수된 피해신고가 6817명, 사망 1553명이다. 국회와 정부, 수사당국은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뭐라고 답할 것인가./ 경향
곤충 종말’ 막기 위한 8가지 실천
곤충학자들 “정원 10%에 잔디를 심지 말자” “등을 어둡게” 등 제안
곤충의 종류와 양 자체가 줄어든다는 경고가 세계 곳곳에서 나온다. 지구 생태계의 기반인 곤충이 흔들리는 셈이다. 꿀을 빨러 온 박각시나방. 제프 게이지, 플로리다 자연사박물관 제공.
“꿀벌이 지상에서 사라지면 인류는 4년 안에 멸망할 것이다.” 흔히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한 말로 알려지지만 그런 말을 했다는 증거는 없다. 꿀벌 군집붕괴 현상(CCD)을 그럴듯하게 경고하느라 누군가 꾸민 말일 것이다.
그러나 요즘 ‘곤충 종말’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과학계에서 나온다. 곤충의 종 다양성은 물론 집단과 양 자체가 급격하게 줄고 있어 인류의 생존 기반이 위험하다는 것이다(▶“30년 동안 육상 곤충 4분의 1이 사라졌다”).
곤충은 새, 박쥐, 물고기의 빼놓을 수 없는 먹이일 뿐 아니라 꽃 피는 식물의 번식 파트너이고 폐기물의 분해자이다. 농업과 의약품 재료 등 곤충이 사람에게 제공하는 생태계 서비스는 미국에서만 연간 700억 달러에 이른다.
미 국립학술원회보(PNAS) 12일 치는 ‘인류세와 지구 차원의 곤충 감소’를 특집 주제로 12편의 논문을 실었다. 데이비드 와그너 미국 코네티컷대 곤충학자 등은 인류세의 곤충 감소를 ‘능지처참’이라고 표현한 논문에서 “많은 곤충 집단이 기후변화, 농약 살포, 빛 공해, 외래종 유입, 서식지 파괴 등으로 해마다 1∼2%씩 줄어들고 있다”며 “이런 감소가 누적돼 어떤 사태가 빚어질지 아무도 모른다”고 지적했다.
곤충 감소를 초래한 원인. 연구자들은 이를 곤충의 수족을 자르는 능지처참에 비유했다. 데이비드 와그너 외 (2021) ‘PNAS’ 제공.
곤충 없이 살 수 없는데 곤충 감소가 심각하다면 이를 막기 위해 우리는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아키토 가와하라 미국 플로리다 자연사박물관 학예사 등 곤충학자들은 이 학술지에 기고한 의견 논문을 통해 곤충이 살기 좋은 서식지를 조성하기 위한 방안 5개와 곤충에 대한 태도를 바꿀 방안 3가지 등 8가지 실천방안을 제시했다.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1. 정원의 10%를 곤충 몫으로 돌리자
도시의 잔디밭은 생물에게 사막과 같다. 잔디밭의 일부 만이라도 잔디 대신 자생식물을 심고 농약과 비료를 주지 말고 자연스러운 땅으로 만들면 곤충에게는 소규모 보호구역 구실을 한다. 나라 전체로는 엄청난 면적의 곤충 서식지가 생기는 셈이다. 이런 작은 공간은 곤충이 이동하는 징검다리 노릇도 한다. 마당이 없어도 창문이나 발코니 등에 화분을 이용해 자연 서식지를 조성할 수 있다.
다양한 곤충. 현재 약 100만 종이 밝혀졌지만 적어도 400만 종은 더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데이비드 와그너 외 (2021) ‘PNAS’ 제공.
2. 원예종 대신 자생식물을 심자
그 지역의 자생식물과 곤충은 수백만 년 동안 긴밀한 생태적 관계를 맺고 있다. 많은 종류의 곤충이 자생식물을 먹이와 서식지, 번식지로 이용한다. 다른 환경에서 자란 원예종과 비교할 바 아니다. 원예종을 심더라도 여러 종을 다양하게 심는 게 좋다. 자생식물을 심어 곤충이 자라 애벌레가 생기면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 새들도 찾아온다.
3. 농약과 제조체 사용을 줄이자
농약은 종종 표적이 아닌 곤충을 해친다. 또 농약 사용을 줄이면 유익한 절지동물이 늘어난다. 농약은 도시에서 잔디밭, 정원, 공원의 녹지가 보기 좋으라고 쓰는 경우가 많다. 꼭 필요한 용도가 아니란 얘기다. 해충을 막을 때도 살충제를 쓰는 대신 긴소매 옷을 입고 방충망을 제대로 설치하며 고인물을 없애는 것이 효과적이기도 하다.
4. 등불을 어둡게 하자
1990년대 이후 많은 대도시에서 빛 공해가 심각해졌다. 대부분의 야행성 곤충이 야외의 불빛에 이끌려 죽임을 당한다. 불빛 근처에서 기다리는 포식자에게 더 많이 잡아먹히고 반딧불이는 번식 성공률이 떨어진다. 자외선 등으로 벌레를 유인해 죽이는 장치에 이끌려 죽는 곤충은 대부분 무해한 종류이다. 외부의 불을 끄거나 어둡게 하면 곤충에 좋고 에너지 사용량도 줄인다. 곤충이 덜 이끌리는 호박색이나 붉은색 등으로 바꾸는 것도 방법이다.
5. 세차 세제와 염화칼슘 사용을 줄이자
자동차나 자전거, 건물 벽을 세척할 때 쓰는 세제에는 암모니아, 중금속 등 여러 오염물질이 들어있어 하천에 흘러들어 물에 사는 곤충을 해친다. 빙판을 막으려고 치는 화학물질도 가축의 발바닥에 상처를 내고 식물 성장과 곤충의 발달에 피해를 끼친다. 눈을 불어내거나 모래를 뿌리고 염분이 없는 대체 물질을 쓸 수 있다.
6. 곤충에 대한 편견을 버리자
모기 하면 물것이라는 생각이 먼저 떠오르지만 실제로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종은 극소수이고 대부분은 유익하다. 이 모기는 식물의 가루받이를 해 준다. 로런스 리브스 제공.
많은 나라에서 대중은 곤충이 제공하는 혜택이나 생태계 서비스를 잘 알지 못하는 대신 병을 옮기고 귀찮고 더럽다는 편견을 주입받는다. 실제로 전 세계 모기 3000여 종 가운데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종은 손에 꼽을 정도다. 언론에서 ‘살인 개미’ ‘살인 말벌’ 등 과장해서 공포를 일으키기도 한다.
7. 곤충 보전을 위한 대변자가 되자
아이가 태어나 처음 만나는 야생동물은 집 근처의 곤충일 가능성이 크다. 동물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가장 높은 6∼12살 때 자연사 교육을 하는 것이 좋다.
8. 올바른 투표를 하자
도시 경관을 설계하고 계획할 때 참여한다. 또 지역의 각종 개발사업과 중앙 정부의 정책을 눈여겨 보고 올바른 투표를 한다.
인용 논문: PNAS, DOI: 10.1073/pnas.2002547117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4년전 프랑스 실사단장 “가덕도는 난센스, 정치적 고려 우선 말라”
김해공항 확장은 4조3000억, 가덕도는 10조2000억
"김해가 가덕도보다 우수한데 왜 굳이 절벽 깎고 인공매립 하나"
"해외에 맡겨 선택한 결과 뒤집는다면 韓 국제 신인도 손상될 것"
장 마리 슈발리에씨. /조선DB
2016년 동남권 신공항 사업 타당성을 평가했던 연구 용역 책임자가 "만약 김해공항 확장안을 보류하고 가덕도 공항을 추진한다면 난센스라고 생각한다"며 "한국 정부가 공항 건설을 둘러싸고 기술적인 합리성보다 정치적인 고려를 우선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고 18일 조선일보가 보도했다.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김해공항 확장안이 최적이라는 결론을 제시했던 공항 설계 전문가 장 마리 슈발리에(75)씨는 전화 인터뷰에서 "4년 전 제가 내린 결론이 여전히 최선이며 바뀔 이유가 없다고 확신한다"고 했다. 그는 "4년 전 다른 요소는 일절 배제한 채 수많은 답사를 거쳐 기술적 차원의 객관성만 따져 결론을 내렸다"며 "해외에 맡겨 선택한 용역 결과를 뒤집는다면 한국의 국제적인 신인도가 손상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슈발리에씨는 국토부 의뢰로 동남권 신공항 사업 타당성 검토 용역을 맡은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의 수석 엔지니어로서 당시 용역 총책임자였다. 일본 간사이공항, 아랍에미리트 두바이공항을 비롯해 세계 주요 공항 프로젝트를 50여건 수행한 공항 설계·디자인 분야 권위자다. ADPi는 세계 3대 공항 설계회사다.
슈발리에씨는 "만약 가덕도 신공항을 건설한다면 바다 위 태풍이 몰아치는 곳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항공기 이착륙 시 위험이 가중된다는 문제부터 부각될 것"이라면서 건설 비용에도 큰 차이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4년 전 김해공항 확장에 4조3000억원, 가덕도 공항을 짓는 데 10조2000억원이 들 것으로 추산했다. 슈발리에씨는 "가덕도에 공항을 만들려면 전체의 80%를 인공 매립 해야 한다"며 "주변 바다 수심이 깊은 데다 가파른 산을 깎아야 하기 때문에 (같은 해수면 매립 방식인) 홍콩 첵랍콕공항을 건설했을 때보다 어려운 공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슈발리에씨는 "홍콩이나 싱가포르 같은 비좁은 도시국가라면 바다 위에 매립해서 공항을 만들 수도 있겠지만 한국이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있느냐"고 했다. 그러면서 "철도와 고속도로를 통한 공항의 접근성도 공항 입지 선정을 위한 중요한 고려 요소"라며 "이런 관점에서도 김해신공항이 가덕도 공항보다는 우월하다. 4년 전 가덕도 공항 건설안이 밀양에 공항을 만드는 것보다도 낮은 점수를 받은 걸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국무총리실 검증위원회가 김해 신공항 완공(2026년) 이후 30년 뒤인 2056년 기준 여객 수요와 관련해 "변화를 수용하기에 입지가 제한적"이라고 한 것도 슈발리에씨는 반박했다.
그는 "어떤 공항이든 30년 후 수요를 정확하게 예측하기 어려운 건 똑같다"며 "김해공항을 확장하고 나면 연간 이용객을 4000만명 가까이 수용할 수 있기 때문에 상당 기간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또 "추가 확장이 필요하더라도 김해신공항이 가덕도 공항을 늘리는 것보다 기술적으로 더 쉽다"고 했다. 그는 "미래 수요가 걱정되면 동남권 신공항 계획을 바꿔 시간을 끌 것이 아니라 하루 빨리 김해신공항 확장 공사에 착수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조선 /박현익 기자 2020.11.18
플라스틱 중독사회①]당신은 오늘 ‘몇 플라스틱’ 하셨습니까?
먼 훗날 우리의 후손은 현재를 어떤 시대라고 부를까. 아마도 ‘플라스틱시대’일 것이다. 플라스틱은 뛰어난 내구성과 무엇으로도 변할 수 있는 가변성으로 발명 즉시 ‘기적의 소재’가 됐다. 오늘날 우리가 쓰는 식기, 가전제품, 의류, 화장품까지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물건에 플라스틱이 들어간다.
하지만 플라스틱의 쉽게 썩지 않는 성질은 독이 되기도 한다. 1950년부터 2015년까지 인류는 63억t의 플라스틱을 버렸다. 그 대부분은 지금도 ‘살아 있다’. 세계에서 가장 깊은 마리아나 해구에 비닐봉지가 떠다니고, 북극에서 미세플라스틱이 발견된다. 하와이에서는 플라스틱이 암석에 붙어 생성된 ‘플라스틱 암석’도 나타났다. 지구를 병들게 한 플라스틱은 잘게 부서져 우리의 식탁에까지 오르고 있다.
경향신문은 현재 인류가 번영을 누리기 위해 선택한 플라스틱 중독에 대해 질문을 던져보고자 한다. 우리는 플라스틱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플라스틱은 인간과 생태계를 어떻게 죽이고 있을까. 플라스틱 중독 탈출이 불가능하다면 인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이제 인간도 조금은 플라스틱이다.”
1972년 1월18일 미국 워싱턴포스트(WP)에 실린 “플라스틱 잔여물이 혈액에서 발견됐다”는 기사의 첫 문장이다. 이 기사는 미 국립심장폐연구소가 평범한 미국인 100명의 혈액을 분석한 결과, 플라스틱에 첨가제로 포함되는 프탈레이트가 86명에게서 검출됐다는 내용이었다. 플라스틱을 구성하는 물질이 체내에서 확인된다는 것은 당시 상당히 큰 충격을 주는 내용이었다.
워싱턴포스트가 이 기사를 게재한 지 반세기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이제 인간은 조금 더 플라스틱이 되었다. 49년 전 기사에 등장했던 프탈레이트는 이제 체내에서 검출되지 않는 사람을 찾기 어려울 정도가 됐다. 프탈레이트나 비스페놀 등 플라스틱에서 나온 내분비계교란물질(환경호르몬)은 대부분의 사람 몸 속에 상존하고 있다. 내분비계교란물질(환경호르몬)은 체내에서 호르몬을 대체해 기능하면서 다양한 악영향을 미치는 물질이다.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미세플라스틱 역시 인간을 조금 더 플라스틱으로 만들고 있다. 우리는 매일 미세플라스틱으로 만든 식품과 물과 공기를 먹고 마신다. 세계자연기금(WWF)은 지난해 한 사람이 일주일간 섭취하는 미세플라스틱이 신용카드 한 장 정도 무게인 5g가량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미세플라스틱이 인체에 주는 영향은 아직 과학적으로 규명조차 되지 않았다.
인류가 ‘플라스틱화’한 것은 플라스틱이 주는 달콤한 편리함에 빠져든 탓이다. 플라스틱이 등장하기 전까지 고쳐 쓰고, 아껴 썼던 인류의 소비 문화는 플라스틱이 나타난 뒤 쉽게 사고, 쉽게 버리는 것으로 바뀌었다.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를 미덕으로 삼는 자본주의와 개발지상주의가 지구를 집어삼키는 과정에서도 플라스틱이 매우 큰 역할을 했다.
권혜원씨(31)가 사용 중인 제품들. 게임 컨트롤러와 분무기는 물론, 물티슈와 모자에도 플라스틱 소재가 들어간다. 조해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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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지배하는 플라스틱
쉽게 만들고 쉽게 버리는 편리함
의식주 전반 쓰이지 않는 곳 없어
인체에 침투하고 지질까지 변화
플라스틱은 쉽게 만들고, 쉽게 버릴 수 있기에 우리 생활에 안착했다. 일상에 필요한 제품을 더 많이, 더 빨리 생산하는 대량생산체제와 플라스틱은 가장 완벽한 궁합을 이뤘다. 1955년 미국 라이프지는 표지에 접시, 포크, 나이프 등 다양한 1회용품들이 하늘에서 우수수 떨어지는 모습을 젊은 부부와 아이가 두 팔을 들어 환호하는 사진을 게재했다. 미국의 과학저널리스트 수전 프라인켈의 저서 <플라스틱 사회>에 따르면 라이프지는 당시 “1회용품이 아닌 제품들을 설거지하고 닦는 데는 40시간이 들 것이지만 이제는 어떤 주부도 그런 성가신 일을 할 필요가 없다”고 언급했다. 프라인켈은 이 책에서 “플라스틱 덕분에 사람들이 버리는 습관을 배우게 된 것”이라며 “오늘날 생산된 플라스틱의 절반은 1회용품에 사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플라스틱 1회용품들이 등장하기 전 사람들은 대부분 물건들을 고쳐쓰곤 했지만 1회용품에 맛을 들인 이후에는 쓰고 버리는 문화에 익숙해졌다는 것이다. 실제 가벼운 데다 내구성이 높은 플라스틱의 성질 덕분에 주부들뿐 아니라 많은 이들의 생활이 편리해진 것은 사실이다. 일상생활뿐 아니라 산업현장에서도 플라스틱 없이는 작업 자체가 불가능한 곳이 많다.
플라스틱은 처음 등장한 때로부터 약 1세기, 인류 사회 전반에 사용되기 시작한 때로부터는 반 세기 정도 만에 인류 전체를 중독시키는 데 성공했다. 우리는 매일 폴리에스터(PEs), 나일론 등 합성섬유가 들어 있는 침구류에서 몸을 일으키고, 폴리에스터와 폴리부틸렌테레프탈레이트(PBT), 나일론으로 만든 칫솔과 폴리프로필렌(PP), 폴리스티렌(PS)으로 만든 양치컵으로 이를 닦는다. 플라스틱에서 나온 환경호르몬과 미세플라스틱이 포함된 식재료로 아침을 먹는다. 코로나19 시대의 필수품인 마스크는 폴리프로필렌, 폴리우레탄(PU), 나일론 등으로 만든다. 버스나 지하철, 자가용 같은 교통수단에도 플라스틱 소재가 다량 포함돼 있다.
현대인의 필수품이 된 스마트폰에는 폴리카보네이트(PC), 폴리이미드(PI), 폴리아미드(PA) 등이 들어 있고, 액정 보호필름은 폴리에틸렌테레프탈레이트(PET), 휴대폰 케이스는 폴리카보네이트와 폴리우레탄 등으로 만든다. 신용카드는 폴리염화비닐(PVC)로 이뤄져 있고, 화장품에도 다양한 미세플라스틱이 들어 있다. 비닐봉지는 대부분 폴리에틸렌(PE)이며 운동화, 안경 렌즈, 식기, 각종 가전제품, 장판, 단열재, 생활화학제품, 타이어 등에도 플라스틱이 들어간다.
■‘상아’ 대체품이 지구를 정복한 비결
플라스틱의 원형은 1856년 영국 화학자 알렉산더 파크스가 발명한 ‘파크신’이다. 값도 비싸고 구하기 어려운 상아를 대체할 파크신이 발명된 이후 미국 발명가 존 웨슬리 하이엇이 셀룰로이드를 개발하는 등 개량이 이어졌다. 본격적인 ‘플라스틱 시대’는 1907년 미국 발명가 리오 베이클랜드가 최초의 합성수지 플라스틱인 ‘베이클라이트’를 개발하면서 시작됐다. 베이클라이트는 대량 생산이 훨씬 수월했고, 기존의 플라스틱보다 내구성과 가변성이 뛰어났다. 절연성이 뛰어나 당시 활발히 보급되던 전선의 재료로도 인기를 끌었다. 무엇보다 여러 가지 첨가물을 이용해 다양한 복합재료를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이후 폴리에틸렌, 나일론 등 다양한 플라스틱 소재가 개발됐다. 내구성이 좋고, 오래 지속되며, 어떤 형태로도 가공하기 쉬운 다른 소재들을 손쉽게 대체했다.
플라스틱의 가장 큰 특징은 어떤 형태로도 쉽게 변하는 ‘가변성’이다. 플라스틱(plastic)이라는 명칭 자체가 ‘생각한 그대로 만들다’라는 그리스어 플라스티코(plastikos)에서 유래했다. 표준국어대사전은 플라스틱을 “열이나 압력으로 소성 변형을 시켜 성형할 수 있는 고분자 화합물”로 정의하고 있다. 플라스틱은 열을 가하면 형태가 변하고, 식으면 굳는다(열가소성). 한 번 열을 가해 형태를 굳히면 웬만한 열기는 쉽게 견디기도 한다(열경화성). 플라스틱 제품 제조과정을 보면 이런 특징이 더 잘 드러난다. 플라스틱 원료는 먼저 쌀알만한 작은 알갱이인 ‘펠렛’으로 가공된다. 공장에서는 이 펠렛들을 녹인 다음 형태에 맞게 굳혀 제품을 만든다.
플라스틱의 다른 특징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제조 과정에서 가소제(부드럽게 하는 첨가제), 향료 등 여러 첨가제를 넣어 성질의 변형도 쉽다. 변형하기 쉽기 때문에 종류도 다양하다. 쉽게 변형시킬 수 있지만, 한 번 만들어지면 쉽게 변하지 않기에 사라지지도 않는다.
변형이 쉽기 때문에 종류도 다양하다. 우리가 가장 자주 접하는 플라스틱은 폴리에틸렌이다. 물병, 장난감, 비닐 등에 주로 활용된다. 밀도에 따라 HDPE, LDPE 등으로 분류된다. 폴리에틸렌에 테레프탈산 등 화학 물질을 첨가해 투명성을 높인 폴리에틸렌테레프탈레이트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페트병’이다.
광택이 있는 폴리프로필렌은 밀폐용기 등에 사용된다. 컵라면 용기와 가전제품 등은 주로 폴리스티렌으로 만든다. 필름, 장판 등 가볍고 부드러운 제품에는 평소엔 안정적이지만 가열하면 독성을 뿜는 폴리염화비닐(PVC)이 쓰인다. 우리 생활 속 어디에서나 플라스틱을 찾을 수 있는 셈이다.
이틀 동안 기자가 사용한 플라스틱 쓰레기를 모아 봤다. 투명 페트병부터 테이크아웃 커피잔의 뚜껑, 비닐까지 다양하다. 조해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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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플라스틱 생산량
플라스틱은 사용되는 범위가 넓다 보니 생산량이 꾸준히, 그리고 빠르게 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전 세계의 플라스틱 생산량은 1950년 150만t에서 2019년 3억6800만t으로 245배가량 증가했다. 이 가운데 플라스틱 폐기물이 되는 양은 2016년 기준으로 약 72% 정도인 2억4200만t에 달한다.
전 세계 플라스틱 생산량은 꾸준히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1950~2015년 누적 생산량은 83억t에 달한다. 미 산타바버라 캘리포니아대(UCSB) 연구진에 따르면 이 가운데 78%가량인 63억t이 플라스틱 폐기물이 되었고, 재활용된 것은 9%가량인 6억t에 불과하다. 약 12%인 8억t가량은 소각되었고, 49억t은 매립되거나 자연으로 배출됐다. 세계경제포럼(WEF)‘신 플라스틱 경제: 플라스틱의 미래에 대한 고찰’ 보고서에 따르면 2050년 전 세계의 플라스틱 생산량은 약 11억2400만t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때가 되면 바다로 배출된 플라스틱의 양이 바다에 서식하는 물고기들의 전체 무게를 넘어설 것으로 WEF는 보고 있다.
한국 사회의 플라스틱 중독은 특히 더 심각한 수준이다. 유럽 플라스틱 및 고무 기계협회(EUROMAP)가 2016년 펴낸 ‘세계 63개국의 플라스틱 수지 생산량 및 소비량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의 1인당 플라스틱 사용량은 2015년 기준으로 132.7㎏에 달한다. 이는 170.9㎏인 벨기에, 141.9㎏인 대만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로 많은 양이다. 1회용품 대량 소비가 시작된 나라인 미국의 1.4배에 달하는 수치다. 미국의 1인당 플라스틱 사용량은 같은 해 기준 93.8㎏으로 세계에서 6번째로 많다.
국내 연구진이 지난해 추산한 국민 1인당 플라스틱 사용량은 EUROMAP이 추산한 것보다는 다소 적은 113.3㎏이다. 이 수치를 적용해도 한국은 세계에서 5번째로 1인당 플라스틱 사용량이 많은 나라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은 이 수치를 기반으로 2030년 한국인의 1인당 플라스틱 사용량이 154.2㎏으로 증가할 것이라는 예상치를 내놓았다. 국내플라스틱 생산량은 2011부터 2018년까지 지속적으로 연평균 2.2%씩 증가했다. 2030년 국내 플라스틱 생산량은 1740만t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플라스틱 중독의 그늘과 인류세
중독은 필연적으로 부작용을 부른다. 플라스틱 중독의 부작용은 환경호르몬에 의한 체내 악영향과 쓰레기 대란으로 대변되는 일상의 위협을 넘어, 미세플라스틱으로 인한 전 지구적 환경재난으로 이어지고 있다. 플라스틱으로 인한 건강 악영향은 대체로 플라스틱 자체보다는 플라스틱에 여러 특성을 부여하기 위한 첨가되는 항상화제, 난연제, 가소제 등에서 비롯된다. 이들 첨가제가 얼마나 많이 쓰이고 있는지는 2009년 현재 플라스틱 성분 전체가 아닌 첨가제만으로 추산한 세계시장 규모가 370억달러(약 40조5000억원)에 달한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만큼 많은 환경호르몬이 플라스틱에서 유출돼 인류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플라스틱 식기에 주로 사용되는 비스페놀A는 매우 낮은 용량에서도 생식기 기형, 비만 등을 일으킬 수 있으며 유방암과 전립선암과도 연관이 있다는 보고들이 나와 있다. 또 플라스틱을 태울 때는 다이옥신, 퓨란 등 매우 독성이 높은 물질들이 발생한다. 플라스틱 쓰레기를 소각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연으로 배출된 플라스틱 쓰레기는 생태계에 복잡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폐그물은 해양포유류와 바다거북, 바닷새들의 목숨을 위협한다. 그물에 걸려 질식한 고래나 바다표범 등 해양포유류, 비닐봉지를 먹이로 착각해 먹은 바람에 죽은 바다거북 등의 모습은 심심치 않게 포털 첫 화면을 장식하고 있다. 또 미세플라스틱은 바다에서 플랑크톤과 소형 어류의 먹이가 되면서 체내에 축적돼 먹이사슬의 상위 단계인 어류와 해양포유류를 통해 인간의 식탁에 올라온다.
서울 용산구 한 아파트의 재활용 쓰레기 버리는 날이었던 지난 12일 이 아파트 입주민들이 모아놓은 플라스틱 쓰레기들의 모습. 김기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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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이 바꾼 지질시대
인류의 플라스틱 중독이 심해지자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진다. 인류가 만들어낸 플라스틱이 지질시대를 구분하는 지표가 될 정도로 전 지구를 뒤덮고 있다는 과학자들의 주장이 그런 목소리 중 하나다. 인류가 지배적인 종으로서 지구에서 번영을 구가하고 있는 현재는 지질시대상 신생대 제4기 현세(現世) 또는 홀로세(Holocene)에 해당한다. 그러나 일부 과학자들은 인류가 만들어낸 플라스틱, 온실가스, 방사성물질 등이 지구 전체 지질을 변화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지질시대가 인류세(Anthropocene)로 접어들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플라스틱과 닭뼈 등을 인류세의 대표적인 지표로 꼽고 있다.
2014년 과학자들이 발견한 플라스틱 기반의 새로운 암석 플라스티글로머리트. 캐나다웨스턴대학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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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에는 지질학계에서 플라스틱을 기반으로 한 암석이 등장했다는 보고가 나오기도 했다. 캐나다 웨스턴대 등의 연구진은 미국지질학회 학술지 ‘지에스에이 투데이’에 게재한 논문에서 미국 하와이 남동 해변에서 수집한 플라스틱이 섞인 돌덩어리들에 대해 발표했다. 이들은 플라스틱이 소각되면서 녹아 다른 암석이나 모래 등과 엉켜 생성된 이 플라스틱 암석에 ‘플라스티글로머리트’라고 이름 붙였다. 지구상 곳곳에 흔하게 존재하는 플라스티글로머리트 역시 인류세의 지표라 할 수 있다.
■플라스틱 중독, 벗어날 수 있을까
생존 위협하는 플라스틱 중독에서당장 벗어나는 건 불가능하지만
시민들 ‘할 수 있는 일’ 찾기 시작
한 달간 자신이 남용한 일기 쓰며덜 쓰고 덜 버리는 방법을 고민
소비주의 반성으로 이어지기도
인류는 자신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플라스틱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당장은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플라스틱으로 이뤄진 사물들을 모두 버린다는 것은 21세기를 사는 인류에게 현대 문명의 편리함을 대부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두 손 놓고, 플라스틱 첨가제가 건강을 위협하고, 플라스틱 쓰레기가 산을 이루고, 바다가 플라스틱 수프가 되어가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 할까.
이 질문의 답을 찾아내는 작은 움직임들이 지금 우리 주변 곳곳에서 시작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서울환경운동연합이 벌인 ‘플라스틱 일기’ 캠페인도 그 중 하나다. 캠페인에 참여한 시민들은 한 달간 자신이 사용하고, 버린 플라스틱 쓰레기의 사진을 찍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렸다. 한 달 동안 플라스틱 일기를 쓴 시민들은 플라스틱을 덜 쓰고, 덜 버리는 것은 물론 안 쓰고, 안 버리기 위한 생활 속의 ‘작은 지혜’들을 찾아냈다.
인스타그램 사용자 @elly_storys는 “텀블러 꼭 들고 다니기, 배달 음식 시킬 때 ‘1회용 용기는 빼주세요’ 선택하기, 가방에 집에 굴러다니는 비닐봉지 하나 넣어다니다가 무언가 살 때 담아오기” 등 어렵지 않게 실천할 수 있는 방법들을 공유했다. 플라스틱이 주는 편리함 중 일부부터 포기하자는 것이다. 특히 플라스틱이 인류 사회를 중독시키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웠던 1회용품이야말로 가장 쉽게 우리 삶에서 ‘내다버릴 수 있는’ 대상이다.
‘플라스틱 일기’ 참여자들의 후기는 개인의 반성을 넘어 인류 사회 전체가 자성해야 하는 내용으로도 연결됐다. @myongkyong는 “이 모든 것이 소비주의와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 나는 무언가를 사고, 쓰고, 버리는 것에 익숙하다. 그리고 그 사이클에 가성비 넘치는 플라스틱은 참 잘 어울린다. 새어나가는 돈은 정신차리고 계산하는데 새어나가는 환경오염과 그 결과는 무신경한 건 아닐까”라고 적었다. 그 반성은 “온라인보다는 오프라인 쇼핑을 지향할 것, 온라인 소비는 적어도 3번 이상 고민하고 살 것”이라는 각오로 이어졌다.
■‘플라스틱 일기 캠페인’ 참여 시민들의 인스타그램 게시글
@narasha2day 30일 동안 플라스틱 일기를 쓰며 느낀 점은…음…한국에서는 플라스틱 없이 살 수가 없구나.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삶의 작은 한구석까지도 플라스틱이 점령하고 있었다.
@greenray1428 챌린지 한달 동안 하면서 모은 플라스틱 뚜껑들이에요!! 남편이 매일 아침에 마시는 야채음료. 남편이 좋아하는 탄산음료. 제가 마시는 커피와 술. 아기가 먹는 주스.
@myongkyong 정확한 분리배출은 죄책감을 덜 수 없다는 걸 이미 알아버렸다. 그래서 이번에는 소형 플라스틱을 엄청나게 수집했다. 그렇게 눈에 불을 켜고 찾았는데도 작은 택배상자 하나를 가득 채우지 못했다.
김기범·조해람 기자 holjjak@kyunghyang.com
대한민국이라는 숲, 푸르름을 잃은 아이들
⑨공동체의 미래 -김지은(아동청소년문학평론가·서울예대 교수)
권범철 kartoon@hani.co.kr
“시간이 있으시면 잠깐만 제 이야기를 들어주실 수 있을까요?”
2년 전 북유럽의 낯선 도시에서 친숙한 얼굴을 만났다. 국제도서전을 취재하러 온 현지 기자 엘(L)은 인터뷰를 마치고 가방에서 두툼한 봉투를 꺼냈다. 그 안에는 어림잡아 수십년은 된 것 같은 손때 묻은 서류가 들어 있었다. L은 자신을 한국에서 온 입양인이라고 소개했다. 한글을 읽지 못하는 그는 자신과 함께 이국으로 온 이 서류 안에 어떤 말들이 있는지 알고 싶어서 한국의 그림책 작가들을 만나는 자리에 봉투째 들고나온 것이다.
서류철을 열자마자 눈에 들어온 것은 획이 흔들리는 볼펜을 눌러쓴 아기의 이름이었다. 이점순. 나는 이런 글씨들을 자주 보았다. 부추 한 단, 배추 한 포기 등을 적어두는 할머니들의 글씨체로 된 세 글자는 한국을 떠날 때까지 L이 이점순으로 불렸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돌도 지나지 않았던 그는 1981년 어느 병원에 이름이 적힌 쪽지와 함께 맡겨졌다고 했다.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80년대에 태어난 아기에게 ‘이점순’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일은 흔하지 않다. 어떤 할머니가 아기를 맡기면서 자신의 이름을 대신 적었을 가능성을 떠올렸다. 쪽지를 품에 넣어주고 아기를 내려놓는 할머니의 모습을 상상하자 먹먹했다. 그사이에 L은 읽는 법을 단단히 기억하겠다는 듯 ‘이, 점, 순’을 소리 내어 반복했다.
출생지는 ‘충금동’이라고 적혀 있었다. 검색해보니 광주시 충장로와 금남로를 합해 부르는 지명이라고 나왔다. 그러니까 이점순-L이 태어난 해는 1980년이고 장소는 광주다. 아득한 기분을 느끼면서 서류에 쓰인 글을 이어 읽었다. 기록에 따르면 이 아기의 엄마는 정신적으로 갑작스러운 어려움을 겪어서 양육이 불가능한 상태이며 아버지는 신원불명이라고 적혀 있었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태어난 한 아기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모르나 그는 그렇게 북쪽 나라까지 왔다. 이점순-L은 충금동은 어떤 동네냐고, 아기를 못 키울 정도로 먹고살기가 몹시 어려운 곳이냐고 물었다. 당신이 태어났던 무렵에 광주는 참혹한 시간을 겪고 있었다고 했더니 그는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광주라는 도시의 아픔을 안다고,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 영문판을 읽었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나는 곧 이점순-L에게 대한민국이 어린 당신을 타국으로 보낸 이유에 대해서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한참 동안 침묵하던 그는 왜 아무도 나를 함께 길러줄 수 없었냐고 되물어왔다. 어린 이점순-L은 텔레비전으로 88올림픽을 보면서 저렇게 화려한 축제를 여는 나라가 한 사람의 아기를 키울 수 없어서 자신을 여기까지 보내버렸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우리에게 양육의 공동체는 없었냐고 물었다. 양육의 공동체는커녕 양육 포기를 부추긴 것이 그때의 국가가 한 일이다. 비극 속에서 가장 먼저 희생되는 것은 어린이들이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1980년대 한국의 해외입양은 최고조에 달했다. 정부가 출생 아동의 1%가 넘는, 연간 8천명 이상의 아동을 남의 나라로 보내면서 내세운 명분은 ‘이민 활성화와 민간 외교’였다. 걸음도 떼기 전의 어린이들이 ‘민간 외교’의 명목으로 외화를 챙기는 수단이 되었다. 당시 입양기관들은 입양 부모로부터 아동 1명당 5천달러를 받았는데 8837명이 국외 입양된 1985년에만 연간 4418만달러 정도가 국내에 들어온 것으로 추산한다.
김지은(아동청소년문학평론가. 서울예대 교수)
새해 첫 주부터 우리 사회는 살리지 못한 한 어린이를 추모하며 슬픔에 잠겼다. 죽음의 실체를 밝히는 일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사각지대의 어린이를 구조하는 것이다. 코로나19로 가정보육이 늘어나면서 어린이가 학대에 방치될 가능성은 더 높아졌다. 어린이의 불행만큼 공동체의 미래를 절망에 빠뜨리는 것은 없다. 콜더컷이 1879년에 펴낸 그림책 <숲속의 두 아이>는 1560년 영국의 노퍽주 그리스턴홀에서 토머스 디 그레이라는 어린이를 둘러싸고 일어났던 실화를 다룬 작품이다. 일곱살 토머스와 여동생은 부모를 잃고 삼촌에게 입양되지만 몇년 뒤 원인을 알 수 없는 질병과 굶주림으로 숲에 버려져 목숨을 잃는다. 두 아이는 자신들이 버려지는 줄도 모르고 숲에 가는 길에 곧 자신의 목숨을 빼앗을 사람들과 웃고 재잘거린다. 토머스의 삼촌이 남매를 죽인 것은 아이들이 물려받은 유산을 독차지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남매가 죽은 장소인 웨일랜드우드는 그 후로 ‘슬프게 우는 숲’(wailing wood)이라고 불린다. 사건 이후 그리스턴홀의 사람들은 숲속의 두 아이를 나무판에 새겨 걸어두고 교훈으로 삼았다고 한다. 이웃집 아이를 지키지 못한 어른들의 과오를 잊지 않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하려고 책에 기록했다.
어떻게 하면 어린이를 불행하지 않게 할 수 있을까. 어린이는 인간이며, 인간은 자신을 도구로 쓰고 버리는 사회에서 결코 행복할 수 없다. 작년만 해도 엔(n)번방, 박사방과 같은 디지털 성착취 범죄자들은 유아방을 개설하여 수익을 올렸고 채팅앱 사용자들은 여자 어린이의 몸과 인격을 사고팔았다. 출생 정책은 아이 한명당 지원금 액수나 아파트 청약 점수를 기계적으로 환산하여 선심 쓰듯 포상으로 내건다. 얼마 전 다자녀 남성과 다자녀 여성이 위장 결혼을 해서 가점을 올리고 아파트 당첨을 받았다가 적발된 사건은 어린이가 어떻게 환금성 아이템이 되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비대면 시대 미디어 속 어린이는 어른에게 즐거움을 주는 모습으로 전시될 때만 ‘조회수’와 ‘좋아요’를 통해서 반짝 사랑을 받는다. 사람들은 가까운 어린이는 귀찮아하고 멀리 있는 어린이의 이미지만 좋아한다. 어른들의 욕망을 채우는 방향으로 가공된 어린이 이미지가 불티나게 팔린다. 그리고 코로나19로 집에만 머무는 어린이는 그런 도구화된 이미지를 롤 모델로 생각하면서 자라나고 도구로 이용당한다. 양육의 공동체는 없고 ‘슬프게 우는 숲’은 도처에 있다.
어떻게 하면 어린이를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 작가 마해송은 1956년 <여원> 5월호의 ‘한국아동들은 행복한가’라는 특집에 ‘아동들은 무엇을 요구하는가’라는 글을 실었다. 이 글에서 어린이들은 마음껏 놀 곳을 달라고 말한다. “우리들은 당초에 어디서 놀라는 말이에요. 방에서 놀면 어지른다고 나가 놀라고 야단이고 마루에서 놀면 뒤숭숭하다고 야단이고 마당에서 놀면 나가 놀라 하고 밖에 나가서 놀면 이누무 새끼 죽여버린다고 동넷집 어른들이 야단이고 큰길에 나가 놀면 아버지에게 붙들려 와서 어머니가 야단 만나지 않아요. 지붕 위에 올라가면 기왓장 깨진다고 벼락이고 땅광에 들어가 놀면 무어 습기가 어떠니 야단이고. 어떻게 좀 마음 놓고 놀아도 좋은 자리를 가르쳐 주세요”라고 따져 묻는다. 현장학습 한번 못 갔던 비대면 시대의 어린이들도 무엇이 가장 간절하냐고 물으면 아마도 뛰어놀 곳을 달라고 할 것이다. 놀 만한 곳은 닫혀 있거나 금지된 채로 그들의 소중한 성장기 일년이 흘렀다.
위의 특집은 “원체 어린이들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인습에 젖어 있기도 하지만 우리나라 어린이들처럼 행복을 구경 못 하는 데가 또 있을까”라고 말한다. 2021년 대한민국의 경제력은 그때보다 높아져서 주요 7개국(G7) 수준의 국민소득을 넘보고 있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우리 어린이의 행복지수는 최하위다. 더 늦기 전에 이 귀한 어린이들을 잘 자라게 하고 건강하게 살게 하려면 사회안전망과 양육의 공동체를 구축해야 한다. 단 한 사람도 남의 집 아기가 아니다. 모두 다 우리 아기들이다. ‘슬프게 우는 숲’이 아니라 ‘환하게 웃는 숲’을 만들어가야 한다.
올해도 ‘가장 뜨거운 해’ 행렬은 계속된다
세계기상기구 “2024년 이전 1.5도 도달확률 20%”
미국 해양대기청 “지난해 ‘따뜻한 해’ 역대 2위”
기상청, 우리나라 2020년 연평균기온 역대 5위
세계기상기구(WMO)는 2020년이 역대 ‘가장 따뜻한 해’ 3위 안에 들었다고 밝혔다. 미국 해양대기청(NOAA)는 역대 2위라는 분석을, 유럽중기예보센터(ECMWF)는 2016년과 나란히 역대 1위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NOAA 제공
강한 라니냐가 진행되고 있음에도 올해도 지난해에 이어 역대 ‘가장 따뜻한 해’ 반열에 오를 것으로 전망됐다. 또 2024년 이전에 파리기후협정이 제시한 목표 1.5도에 도달할 확률이 20%에 이르는 것으로 예측됐다.
세계기상기구(WMO)는 15일(한국시각) “2020년은 2016년, 2019년과 함께 역대 ‘가장 따뜻한 해’ 3개 해에 들었다”며 “전지구 연평균기온이 오는 2024년까지 파리기후협정에서 목표로 제시한 1.5도를 넘을 확률이 20%에 이른다”고 밝혔다. 세계기상기구는 또 영국 기상청의 전망을 인용해 지난해 하반기에 시작한 라니냐가 일시적인 기온 하강을 일으킴에도 올해에도 ‘가장 따뜻한 해’ 행렬이 계속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세계기상기구는 5개의 국제기후관측자료를 통합·분석해 2011∼2020년이 역사상 가장 뜨거운 10년이었으며, 특히 2015년 이후 6년은 역대 가장 ‘따뜻한 해’ 6위에 모두 들었다고 분석했다. 2020년 연평균기온은 산업화 이전(1850∼1900년) 대비 1.2도(±0.1도) 높아 2016년, 2019년과 함께 상위 3위를 기록했다고 세계기상기구는 밝혔다.
미국 해양대기청(NOAA)은 이날 “2020년 전지구 연평균기온은 2016년보다 0.98도 낮아 역대 ‘가장 따뜻한 해’ 2위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영국 기상청도 2020년이 2019년을 3위로 밀어내고 따뜻한 해 2위에 올랐다고 분석했다. 이는 지난 9일 “2020년이 2016년과 나란히 역대 가장 따뜻한 해”라고 밝힌 유럽중기예보센터(ECMWF) 분석과는 다른 것이다. 미 해양대기청은 대규모의 전지구 육상과 해양 관측자료를 토대로 분석하는 데 비해 유럽중기예보센터 산하 코페르니쿠스기후변화서비스(CCCS)는 일부 관측자료와 기타 기후요소들을 토대로 확률 계산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한편 한국 기상청은 “2020년 우리나라 연평균기온이 13.2도로, 1973년 이래 다섯번째로 높았다”고 밝혔다. 최근 2014·2015·2016·2019·2020년이 상위 5위로 기록되는 등 온난화 경향이 계속되고 있다.
이근영 기자 kylee@hani.co.kr
‘1초에 원자폭탄 4개’ 폭발열 수준…바닷물 온도 사상 최고
지난해 전세계 바닷물 흡수한 열 20제타줄
온실가스로 발생하는 열에너지, 결국 바다로
“뜨거운 바다가 폭풍·홍수·폭염·산불 일으켜”
게티이미지뱅크
지난해 전 세계 바닷물 온도가 관측 사상 가장 더운 수준에 도달했다고 영국 <가디언>이 보도했다.
13일(현지시각) <가디언>은 대기과학 분야 전문지인 ‘대기과학의 발전’(Advances in Atmospheric Sciences)에 실린 미국 세인트토머스대학 연구진의 분석을 인용해 “2020년 전 세계 바닷물 온도가 역사상 기록적으로 더운 수준에 도달했다”며 “과학자들은 바다가 지난 2000년 동안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가열되고 있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바닷물 온도는 앞서 2019년에도 관측 사상 최고치로 집계된 바 있다. 바닷물 온도가 가장 높았던 5년은 모두 2015년 이후 기간에 속한다.
이처럼 바닷물 온도가 계속 올라가는 것은 바다가 흡수하는 열에너지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온실가스로 인해 우리가 얻는 거의 모든 여분의 열은 결국 바다에 이르게 된다. 바다는 과잉된 열의 90% 이상을 흡수한다”며 “2020년 바다는 2019년보다 많은 약 20제타줄(Zetta Joule, 제타는 10의 21승이며 줄은 에너지 단위)에 해당하는 열을 흡수했다”고 설명했다. 이는 지구 상의 모든 사람이 매일 80개의 헤어드라이어를 가동하거나 1초에 약 4개의 원자폭탄이 폭발하는 것과 같은 수준의 열이다.
1940년부터 2020년까지 바다가 흡수한 열에너지 비교. 가디언 누리집 갈무리
바닷물 온도가 높아지면 기후는 더욱 극단적인 모습으로 변한다. 열은 바닷물을 팽창하게 하고 해수면을 상승하게 하며 따뜻한 바다는 폭풍에 더 많은 에너지를 공급해 폭풍을 더 심하게 한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연구에 참여한 세인트토머스대학의 존 아브라함 교수는 “바다가 열을 받으면 그들은 차례로 대기를 따뜻하게 한다. 따뜻해진 바다는 최근 발생한 사이클론 야사(YASA)와 같은 강력한 폭풍을 일으킨다. 일부 지역은 비가 많이 내리고 홍수가 나면서 더욱 습해진다. 동시에 다른 지역은 폭염과 가뭄, 산불로 더 건조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2020년은 2016년과 같은 수준으로 역사상 ‘가장 따뜻한 해’로 기록되기도 했다. 유럽중기예보센터(ECMWF) 산하 코페르니쿠스기후변화서비스(CCCS)는 지난 9일(한국시각) “지난해는 사실상 2016년과 똑같이 역대 ‘가장 따뜻한 해’로 기록됐다”며 “배출된 온실가스가 열을 가둬 지구온난화가 계속됐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시시시에스는 2020년 평균기온이 산업화로 온실가스 배출이 증가하기 이전인 1850~1900년 평균보다 1.25도 높았다고 분석했다.
김민제 기자 summer@hani.co.kr
온난화 스피드’ 도시>시골인데…30년 후, 인구 70% 도시인
콘크리트·아스팔트 열 더 흡수하고 잘 안 식어
온실가스 감축하지 않으면 2100년 4.4도 상승
겨울철 가장 심하고 밤에 낮보다 0.2도 더 올라
점점 더 과밀해지는 도시지역의 온난화가 더욱 심해 온실가스 감축 노력을 하지 않으면 2100년에 4.4도까지 온도가 상승할 것으로 전망됐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세계 도시는 지구 면적의 3%를 차지하고 있다. 이곳에 세계 인구의 절반이 살고 있다. 2050년이면 70%까지 늘어날 전망인데, 인구 다수가 거주하는 이들 도시 지역의 온도는 21세기 말께 산업화 이전보다 4도 이상 상승할 것으로 전망됐다.
미국 일리노이주립대 어바나샴페인캠퍼스 연구팀은 4일(현지시각) <네이처 기후변화>에 게재한 논문(DOI: 10.1038/s41558-020-00958-8)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전혀 하지 않으면 2100년께 세계의 도시지역 온도가 2006∼2015년 평균보다 4.4도 상승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상당히 기울였을 때보다 2.5도(130%)가 높은 것이다.
도시 지역은 보통 시골이나 교외보다 온도가 높은데, 콘크리트로 지어진 건물과 아스팔트가 열을 더 많이 흡수하고 잘 식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요소들을 고려한 기후변화 예측은 미래 도시기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하지만, 접합대순환모델(CMIP)에 포함된 기후모델들에는 도시 지역만을 특정한 모델이 없다.
레이 자우 일리노이대 토목환경공학과 교수 연구팀은 복합기후모델을 모방해 도시지역의 통계 모듈레이터(변조프로그램)를 만들었다. 연구팀은 온실가스 감축 노력을 상당히 기울였을 때(대표농도경로 RCP4.5)와 전혀 노력하지 않았을 때(RCP8.5)의 26개 기후모델 결괏값을 도시기후 모듈레이터에 적용했다. 이 과정을 통해 기후모델 결괏값으로 2100년까지 도시 차원의 온도와 상대습도 전망을 도출했다.
분석 결과 세계 도시의 온도는 온실가스 감축 노력을 상당히 기울였을 때 1.9도, 전혀 노력하지 않았을 때 4.4도가 상승하는 것으로 예측됐다. 지역별 분석에서 미국 중북부, 캐나다 남부, 중동, 중앙아시아 북부, 중국 북서부 등지의 도시는 낮이나 밤이나 가장 심각한 온난화를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미 내륙 도시들은 밤에 온난화를 심하게 겪을 것으로 예측됐다.
계절별 분석에서는 겨울철(12월~다음해 2월)의 도시 온난화가 가장 심했으며, 낮과 밤의 비교에서는 RCP8.5 조건 아래 밤의 온도 상승이 낮보다 0.2도 정도 높았다. 또 위도가 높을수록 온도 상승률이 높아, 북극 지역의 도시 온난화 속도가 가장 빨랐다. 알래스카 앵커리지의 온난화 속도는 중위도 지역보다 2배 빠를 것으로 예측됐다.
RCP4.5에서도 대부분의 도시가, 특히 밤에, 파리협정의 목표인 1.5도 이상의 온난화를 겪는 것으로 분석됐다. 상대습도의 경우 여름철(6~8월)에 세계 거의 모든 지역에서 감소할 것으로 나타났다. RCP4.5에서는 -6~3%, RCP8.5에서는 -13~6%의 분포를 보였다. 연구팀은 이런 상황에서 “도시 농업이 매우 효과적인 대응전략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근영 기자 kylee@hani.co.kr
2021 신기후체제, 탄소문명을 감속하고 대안을 가속하자
[초록發光] 탄소중립 시대, 감속과 가속의 속도 전환론
2021년, 그날이 왔다. 모두 힘을 합쳐 탄소중립을 달성하자는 신기후체제가 시작됐다. 지지부진한 포스트 교토체계 논의 끝에 골든타임을 허비하고 가까스로 합의한 파리협정에 거는 기대가 크다. 불충분하고 불완전한 국제규범일지라도, 국제기구, 국가, 정치권, 재계, 금융권, 학계, 언론, 광고, 시민사회 모두가 한 목소리로 과거는 묻지 않고 탄소중립을 외치고 있다.
우리나라도 뒤늦게, 대략 작년부터 기후위기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더는 일부 사회운동의 전유물이 아니게 되었다. 여전히 외신과 가십, 그리고 아전인수가 판을 치지만, 때로는 성장주 투자 목록으로, 때로는 환경이나 에너지 정책으로, 그리고 정치적 스펙터클에서는 ‘XX 대전환’의 배경으로 자리를 잡은 것 같다. 물론 배출 감축 흐름과 필수 도입 정책에 저항하거나 이를 지연시키려는 세력들이 곳곳에 존재한다. 단기 이익을 최대한 유지하려는 부류도 있는 한편, 다른 쪽에는 사회 안전망을 확보하려는 진영도 있다.
탄소버블 시대. 환경만이 아니라 경제, 정치, 사회, 이 모든 곳이 탄소로 넘쳐나는 세상에서 누군가는 희망을, 또 누군가는 절망을 말한다. 그 사이에서 분출하는 분노가 어디로 향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장기지속의 시간대를 넘어서는 인류세․자본세에서 우리는 파괴와 멸종의 거대한 가속화 시대(The Great Acceleration)를 끝내고, 공존과 평화의 거대한 전환(The Great Transformation)에 접어들 수 있을까. 다른 색깔을 띤 착취․채굴의 가속화가 새로운 극단의 시대를 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장기 비상사태(chronic emergency)는 한편으로는 비상정지(emergency brake), 다른 한편으로는 가속주의(accelerationism)라는 두 속도 전략으로 통과할 수밖에 없다. 얼핏 보면 이율배반으로 보이지만, 나쁜 것의 감속과 좋은 것의 가속이 필요하다.
질주학(dromology)을 창안한 폴 비릴리오는 속도와 시공간에 대해 독특한 관점을 취했는데, 테크놀로지 가속화의 한계를 사유하고 비판적으로 전망했다. 더 이른 시기에 발터 베냐민은 ‘비상정지’ 개념에서 진보와 혁명의 의미를 재전유했다. 기후위기에 어울리는 혁명적 사고를 이들에게서 얻을 수 있다. 이외에도 생태주의 대안은 다양하고, 우리에게 영감의 원천이 된다. 그렇다. 기후위기 대응 목표인 탈탄소는 현재 이 순간과 신속하고 철저한 단절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모든 것을 멈추자는 말이 아니다. 체제의 모순과 균열이 심화되는 과정에서 권력관계의 재편을 추동하는 새로운 긍정의 가속주의가 병행되어야 한다. 최근 안드레아스 말름의 다소 파격적인 주장도 경청할 만하다. 그는 자본주의적 점증주의나 평화 코뮤니즘(peace communsim)이 아니라, 생태적 전시 코뮤니즘(ecological war communism)을 통해서 기후․팬데믹 재난의 변증법적 동학을 헤쳐나갈 수 있다고 제안한다(<코로나, 기후, 장기 비상사태>(Corona, Climate, Chronic Emergency, Verso, 2020) 참조).
감속과 가속의 속도 전략은 지속가능성 전환이론의 ‘파괴’와 ‘창조’라는 이중 전략과 맞닿아 있다. 국가의 권한과 자원을 총동원해 기성 체제의 안정화가 아니라, 그 반대로 불안정화를 경험하도록 기획한다. 탄소집약적 산업, 금융, 기술, 문화 등의 축소와 중단을 직접적으로 의도하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자생적 혁신 실험들을 지원하고 다양한 사회세력이 전환의 능동적 주체로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다중 스케일의 여러 거점에서 생태적, 사회적 커먼즈를 개척하고 확산하는 노력들을 그 자체로 인정하고 보호하는 것이다.
물론 신기후체제에서 감속과 가속의 속도 전환이 말처럼 쉽지 않을 것이다. 인간의 역사는 가속화의 역사이기 때문에 정지와 감속을 단행하기란 매우 어렵다. 경제성장과 온실가스 배출의 탈동조화 견해가 주류를 이루는 상황에서 취해지는 온건한 개혁 조치는 탈탄소의 가능성을 더 낮춘다. 여기에 기술주의적 욕망이 더해지면 비상 브레이크에 접근할 방법은 거의 사라진다.
대안의 가속주의에 허용되는 범위도 제한적이다. 지배 레짐의 변혁 문턱을 넘을 수 있는 구역에 근접할 기회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불가능에 가깝다. 자율 관리, 창조 역량, 공동 생산 등의 커먼즈 권력은 대체로 지배 레짐을 일부 보완하는 역할로만 행사할 수 있다. 반면 자본의 포트폴리오 확대와 녹색 가치의 창출과 실현은 속도 무제한의 전용 고속도로로 실현된다.
코로나19 대응이 주로 긴급 지원과 백신 개발의 임시방편에, 그것도 빈자와 빈국에 더 큰 타격을 주는 방식에 초점을 맞추는 관성은 또 다른 팬데믹(Disease X)의 발생 가능성을 지우지 못할 것 같다. 2018년, 세계보건기구(WHO) 회의에서 Disease X 발발 경고가 있었듯이, 코로나19와 같은 사태는 블랙스완 사례가 아니라, 지속불가능한 생태계로 인해 예상 가능하게 경향적으로 나타나는 결과로 보는 게 맞다.
기후위기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각종 자연재난과 사회재난을 통해 더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지금까지 질주해온 관성까지 고려해 곧 도달할 금지선을 넘지 않으려면 가급적 서둘러 비상 브레이크를 잡아당겨야 한다. 따라서 온실가스 배출 자체를 전면적으로 제한하는 규제수단과 민주적․계획적 전환관리가 없다면, 투자와 생산, 그리고 노동과 소비 방식의 자발적 변화는 부정의 속도를 올릴 뿐이다.
기후위기의 원인과 책임 관계가 불공정하고 불평등하게 설정되고 있는 것처럼, 사건사고와 전환정책에 대처하는 적응력 또한 차별화된다. 엘리트 기득권이 사적 요새와 탈것으로 팬데믹과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있는 것과 반대로, 다수의 취약계층은 고립된 주거공간과 소외된 사회관계에서 그 피해와 손실을 온몸으로 떠안고 있다. 그렇다고 다음 20대 대선에서, 2025년과 2030년에, 기후부정의가 완화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설사 탄소회계상 온실가스 감축이 어느 정도 성공하더라도, 기후정의가 거기에 동조화되어 상황이 개선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희망과 의지에 충만해야 할 새해, 가망이 없어 보이지만 그래도 희망을 버리지 못한다. 실천을 자제할 때가 아니기 때문이다. 기후위기라는 복잡한 고르디우스의 매듭은 복잡한 방법으로 풀 수 없다. 간단하지만 대담한, 부정의 감속과 긍정의 가속을 동시에 조합하는 속도의 정치가 절실하다.
이정필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프레시안
세계 코로나19 사망자 200만 명 넘고 총 감염자 수 1억 근접했다
미국-인도-브라질 감염자 수, 전 세계 46%
전 세계 코로나19 사망자가 200만 명을 넘었다. 3차 대유행을 잡아가는 한국과 달리, 미국과 브라질 등 코로나19 타격을 크게 입은 국가에서는 아직 대유행의 정점을 확인하지 못했다.
15일 국제통계사이트 월도미터를 보면, 이날 기준 전 세계 코로나19 사망자는 200만883명으로 집계됐다.
공식적으로 코로나19로 인한 첫 사망자가 발표된 지난해 1월 10일 이후 약 1년 만에 사망자 수가 200만 배로 늘어났다.
코로나19 누적 확진자 수는 1억 명에 가까워지고 있다. 이날 현재 전 세계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9348만3581명이다. 베트남 인구(9600만 추계)와 비슷한 수의 사람이 코로나19에 한 번은 감염된 셈이다
이들 중 6676만 명은 감염 후 회복했으나, 2472만 명은 여전히 감염된 상태며, 그들 중 11만 명은 위중증 상태다.
전 세계 감염자의 25%가 넘는 2383만3754명이 미국의 감염자다. 미국에서는 지금도 하루 20만 명이 넘는 대규모 확진자가 쏟아지고 있다. 누적 사망자 수도 39만7767명으로 전 세계 사망자의 19.9%에 달한다.
인도의 감염자 수가 1052만8346명으로 미국의 뒤를 이었다. 인도의 누적 사망자는 15만1954명이며 하루 약 1만5000명 이상의 감염자가 추가되고 있다.
브라질에서는 832만6115명의 누적 감염자가 나왔다. 브라질의 유행 상황은 인도보다 나빠, 조만간 인도의 감염자 수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하루 6만~7만 명 수준의 신규 감염자가 나오고 있다. 누적 사망자는 20만7160명으로 이미 인도를 넘어섰다. 이들 3개 국가의 합계 감염자 수는 4268만 명을 넘는다. 전 세계 감염자의 45.7%가 이들 3개 국가에서 나왔다.
미국과 인도, 브라질을 이어 감염자 수가 많은 국가는 대부분 유럽에 몰려 있다.
러시아에서 349만6000여 명, 영국에서 326만여 명, 프랑스에서 285만여 명, 터키에서 236만여 명, 이탈리아에서 233만여 명, 스페인에서 221만여 명, 독일에서 200만여 명이 누적 감염됐다.
이들 국가에서 현재 상황이 가장 나쁜 나라는 영국으로 여전히 하루 5만 명에 가까운 신규 감염자가 나오고 있다. 스페인에서도 하루 3만 명이 넘는 신규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고, 러시아와 프랑스, 독일에서도 2만 명이 넘는 새 확진자가 보고되고 있다.
최근 수도 도쿄를 비롯한 중심 도시에 비상사태를 선포한 일본의 누적 감염자 수는 30만2623명이며, 하루 5000명이 넘는 신규 확진자가 매일 보고되고 있다. 누적 사망자 수는 4233명이다.
한국의 누적 확진자 수는 이날 0시 기준 7만1241명으로 우즈베키스탄(7만7000여 명) 다음이다. 이날 신규 확진자는 국내 발생 확진자 484명, 해외 유입 확진자 29명을 합쳐 총 513명이다. 3차 유행 정점을 지나며 1000명이 넘는 신규 확진자가 보고되다, 최근 들어 나흘 연속 하루 500명 대로 신규 확진자 수가 줄어들었다. 이날 한국의 위중증 환자는 전날보다 6명 감소한 374명으로 집계됐다. 사망자는 22명 늘어나 1217명으로 확인됐다.
우즈베키스탄은 한국과 총 감염자 수는 비슷하지만, 누적 사망자 수는 618명으로 한국의 절반 수준이다. 노르웨이 역시 누적 감염자 수는 5만8000여 명으로 한국에 비해 크게 작진 않지만, 사망자 수는 511명으로 한국의 절반이 되지 않는다.
이대희 기자/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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