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은 파리협정 시행 원년
한국 ‘에너지 건전성’, OECD 37개국 중 30위…지속가능성도 ‘C’
지구상에서 사라지던 '악마'들의 부활... 신기한 변화
부산항 美 세균 실험실 폐쇄 서명, 온라인 가세로 ‘고고싱’
변종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 발생 국가
화마·홍수·메뚜기떼…코로나에 가려진 2020 기상이변
온실가스 배출비용 반영한 ‘환경급전’, 2022년 본격 적용
완전봉쇄하고도 무너졌다···코로나19의 '반면교사'들
짝 잃은 고니의 ‘애도’에 독일 고속열차가 멈춰섰다
전기 자동차의 '더러운' 비밀
부산국가지질공원 태종대 등 20곳,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후보 선정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설치 사업, 다시 추진된다
기후변화에 ‘나중에’란 가능한 답인가 : 이상기후와 역대 최장 장마
코로나 경기부양책, 잘못쓰면 CO₂ 16%까지 늘어난다
기후가 가장 불안정했던 축의 시대와 소빙기
환경부 장관 발탁 '한정애'
북항 레지던스 비율 44 → 80%”…동원개발컨소시엄 사업안 수정
청사포 해상풍력발전, 지역 주민들까지 반발
부산대 부설 특수학교 설계 당선작 ‘숲의 가치’ 살렸다
10년 동안 7500만마리 떼죽음…예방할 대안은 없나
생지옥’ 살처분… “밤마다 닭이 달려드는 악몽에 시달려”
2021년은 파리협정 시행 원년
2015년 12월 12일 프랑스 파리에서는 유엔 기후변화협약 제21차 당사국총회(COP21)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195개 협약 당사국 대표들은 2100년까지 지구 평균기온 상승 폭이 산업화 이전에 비해 2℃를 넘지 않도록 하고, 더 나아가 1.5℃까지 제한하도록 노력하기로 합의했다.
파리협정 타결에 환호하는 협상 주역들 코스타리카 출신의 크리스티나 피게레스 유엔 기후변화협약 사무총장,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기후변화협약 제21차 당사국총회 의장인 로랑 파비위스 프랑스 외무장관,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상 왼쪽부터) 등이 2015년 12월 12일 파리협정이 타결되자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2016년 11월 공식 발효된 파리협정은 202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 등에 관한 국제 약속으로 활용돼온 교토(京都)의정서를 대체한다. 교토의정서는 1997년 12월 일본 교토에서 열린 기후변화협약 제3차 당사국 총회에서 채택됐다. 이제 사흘 뒤에는 교토의정서 시대가 막을 내리고 이튿날 파리협정 시행 원년이 시작된다.
파리협정은 교토의정서와 달리 지구 평균기온 목표치를 처음으로 명문화했고, 선진국(37개국) 위주로 부과하던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모든 당사국으로 넓혔다. 당사국들이 정한 목표의 이행 정도를 점검하기로 한 것과 종료 시점 없이 지속적인 기후변화 대응 체제를 구축한 것도 진전된 성과였다.
지구의 평균기온이 높아지는 것은 이른바 온실 효과 때문이다. 지구는 태양으로부터 받은 복사열을 다시 방출해 평형을 이루는데, 이산화탄소·메탄·아산화질소 등 온실가스가 방출을 차단해 온도가 올라가는 것이다. 주원인으로는 석탄·석유 등 화석연료의 과다한 사용이 첫손에 꼽히며 인구 증가, 숲 훼손, 육류 소비 증가 등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1.5℃ 이내로 낮춰요" 서울그린캠퍼스 대학생 홍보대사 등이 2019년 6월 4일 서울광장에서 '온실가스 감축, Go! 그린 캠퍼스'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1.5℃'는 2100년까지 지구 평균기온 상승 폭을 그 이내로 막자는 목표 수치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온실 효과에 따른 지구 온난화 현상을 가장 먼저 일깨운 인물은 스웨덴의 화학자 스반테 아레니우스다. 그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2배로 증가하면 지구 평균기온이 5∼6도 상승한다는 내용의 논문을 1896년 발표했다. 그러나 학계는 이 주장을 외면했다. 이산화탄소 대부분을 바다가 흡수할 것으로 생각한 데다 당시 화석연료 사용량도 많지 않아 이산화탄소 농도가 갑절이 되려면 1천 년은 걸릴 것으로 예측했기 때문이다.
1938년 영국의 증기기관 기술자 가이 스튜어트 캘린더가 영국 기상학회에서 지구 온난화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그러나 그때도 인류는 기술 발달에 따른 산업화를 축복이라고만 여겼을 뿐, 지구에 저주가 될지도 모른다는 상상은 꿈에도 하지 않았다.
줄어드는 남극 대륙 2018년 인공위성에서 촬영한 남극 대륙. 이전 사진과 비교하면 지구 온난화로 빙하가 급속히 줄어드는 모습이 뚜렷하다. [미국항공우주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학자들이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걱정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들어서였다. 서유럽의 과학자·경제학자·교육자 등의 모임인 로마클럽은 1972년 발표한 보고서 '성장의 한계'에서 지구 온난화 해결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같은 해 유엔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인간·환경 선언'(스톡홀름 선언)을 채택했다. 가이아 이론을 창안한 영국의 제임스 러브록, '위험사회'의 저자 독일 울리히 벡 등 석학들과 정치인·문화예술인·시민운동가들도 동참하고 나섰다.
녹색으로 물든 서울시 청사 서울시는 파리협정 5주년을 맞아 'C40 도시 기후리더십'에서 주관하는 시(市)청사 녹색 점등 행사에 동참해 12일 오후 6시부터 1시간 동안 본관 건물을 녹색 불빛으로 밝혔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반면 지구 온난화가 허구, 혹은 과장이라는 반론도 꾸준히 제기돼왔다. 일각에서는 기후변화에 대응하려는 국제적 노력을 두고 유럽 선진국들이 후진국들의 발전을 가로막으려고 꾸민 음모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지구 온난화로 빙하가 녹는 현상을 반기는 지역도 있고, 화석연료 소비 억제 탓에 손해를 보는 나라도 있다.
20세기 이후 지구 평균기온이 상승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 원인이 인간의 활동으로 증가한 온실가스 때문이라는 것도 학계 통설이다. 남극과 북극의 빙산이 녹으면서 해수면이 상승해 섬나라나 저지대가 수몰 위기에 놓이는가 하면 태풍, 해일, 산불, 폭염 등 이상기후로 인한 천재지변도 빈번해지고 있다.
국제사회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공동 노력을 기울이자고 합의한 기후변화협약은 1992년 6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처음 체결됐다. 그러나 구체적인 시기와 감축량 등을 명시하지 않아 한계가 있었다. 이때 1972년 스톡홀름 선언의 정신을 재확인한 '환경·개발 선언'(리우 선언)도 함께 채택했으나 말 그대로 선언에 그쳤다.
"미국은 파리협정 탈퇴 결정을 철회하라" 시민단체 기후위기비상행동 회원들이 2019년 11월 7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미국 트럼프 정부의 파리협정 탈퇴 항의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를 대체한 교토의정서는 1990년과 비교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2년까지 EU 8%, 미국 7%, 일본 6% 등 선진국 평균 5.2% 줄이기로 했다. 중국·인도·한국 등 개발도상국은 의무 대상에서 제외됐다. 다른 나라에서 이뤄낸 온실가스 감축분도 인정해주는 공동이행제도와 청정개발체제, 배출 한도를 사고팔 수 있는 배출권 거래제도 등도 도입했다. 하지만 미국은 의정서가 발효도 되기 전인 2001년에 탈퇴를 선언했으며, 일본도 2011년 후쿠시마(福島) 원전 사고 이후 온실가스 감축 반대로 돌아섰다.
교토의정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파리협정이 체결된 지도 5년이 지났다. 지구 평균기온 상승 폭을 최소화하지 않으면 물 부족 현상, 해수면 상승, 생태계 파괴, 이상기후 빈발 등을 막을 수 없다는 절박함 속에서 각국은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10년 대비 45% 감축하기로 약속했으나 이행 정도는 지지부진한 형편이다.
'2050 탄소 중립' 선언하는 문재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12월 10일 청와대 집무실에서 '더 늦기 전에 2050'이란 제목의 연설을 통해 탄소 중립 목표를 재천명하고 있다. 탄소 저감에 대한 경각심을 환기하고자 컬러 영상의 1/4 수준 데이터를 소모하는 흑백 화면을 통해 전국에 생중계됐다.
[KBS 화면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이 과정에서 글로벌 이슈로 등장한 개념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고 흡수량을 늘려 순 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탄소 중립'(넷제로·net zero)이다. 핀란드는 2035년, 스웨덴은 2045년, 영국·프랑스·덴마크·뉴질랜드·캐나다·일본 등은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이루겠다고 법제화하거나 공언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10월 28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2050 탄소 중립'을 약속했다. 이산화탄소 배출량 세계 1위인 중국은 목표를 2060년으로 잡았다.
배출량 2위인 미국은 오바마 대통령 재임 당시 파리협정 탄생의 일등 공신이었다가 2017년 트럼프가 집권하자마자 탈퇴해 국제 공인 '기후 악당'으로 전락했다.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에 따라 파리협정 복귀가 예상되지만, 교토의정서 경험을 떠올리면 언제 또 마음을 바꿀지 모른다.
연설하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2015년 12월 7일 프랑스 파리에서 개막한 기후변화협약 제21차 당사국총회(COP21)에서 반기문 당시 유엔 사무총장이 연설하고 있다.
화석연료 의존 비율이 높은 우리나라도 요주의 국가로 꼽힌다. '2050 넷제로' 목표를 달성하는 데 큰 부담이 따르는 건 사실이나 이는 국제적 약속이자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다. 파리협정의 숨은 일등 공신은 수많은 나라의 복잡다기한 입장을 조율해 대타협을 끌어낸 반기문 당시 유엔 사무총장(현 국가기후환경 회의 위원장)이었다. 한국인 국제지도자가 이뤄낸 성과를 출신국이 앞장서서 실천하지 않는다면 다른 나라가 우리를 어떻게 보겠는가.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한국 ‘에너지 건전성’, OECD 37개국 중 30위…지속가능성도 ‘C’
ㆍ가격·접근성 평가 ‘형평성’은 A
한국이 각국의 에너지 접근성과 지속가능성 등을 종합해 순위를 매기는 ‘에너지 건전성’ 평가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내 하위권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5일 세계에너지총회(WEC)가 최근 발표한 ‘에너지 트릴레마 지수’ 순위에 따르면 한국은 조사 대상 128개국 가운데 31위를 기록했다. 지난해 37위에 비해 6계단 상승했지만, OECD 회원국 37개국 가운데에서는 30위에 그쳤다. 한국은 종합점수 73.4점(100점 만점)으로, 이보다 점수가 낮은 OECD 국가는 콜롬비아, 칠레, 이스라엘, 그리스, 폴란드, 멕시코 등 7개국뿐이었다.
‘에너지 트릴레마 지수’는 WEC가 매년 각국 에너지 시스템의 건전성을 평가해 지수화한 지표로, 에너지 안보(30%)·에너지 형평성(30%)·환경 지속가능성(30%)·국가 고유 특성(10%) 등 4개 지표로 구성된다. 한국은 에너지 가격·접근성 측면을 평가하는 ‘형평성’ 부문에서는 97.1점을 받아 A등급으로 분류됐다. 하지만 안정적 공급 가능성을 평가하는 ‘에너지 안보’ 부문에서는 64.3점(B등급)을 받았다.
특히 환경 지속가능성은 60.5점에 그치면서 C등급으로 분류됐다. 지난해 59점에 비해서는 소폭 상승했지만, 등급은 C등급 그대로였다.
종합점수 최상위권에는 80점 이상을 받은 스위스,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 오스트리아가 각각 1~5위에 올랐다. 지수 상위 국가들은 대부분 오랜 기간에 걸쳐 에너지 정책을 꾸준하고 활발하게 실행해온 국가들이라고 WEC는 설명했다.
WEC는 보고서에서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80%를 배출하는 주요 20개국(G20) 중 ‘환경 지속가능성’ 부문에서 낮은 성과를 보이는 국가로 한국과 일본, 러시아 등 3개국을 꼽았다. 한국과 러시아는 “최근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 비용이 현저히 낮아지고 있음에도, 지난 10년간 화석연료의 재생에너지 전환에 거의 진전이 없었다”는 지적을 받았다.
정환보 기자 botox@kyunghyang.com
지구상에서 사라지던 '악마'들의 부활... 신기한 변화
태즈메이니아 데블은 어떻게 몹쓸 전염병에서 벗어나게 됐나
2020년 한 해는 코로나19로 시작해 코로나19로 저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코로나19 원인 바이러스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어떻게 이런 바이러스가 있나 싶다. 전염성이 높은데 사망률까지 비교적 높은 편인 이 질환으로 아무 증상 없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중증으로 발전해 몇 달씩 앓는 사람들이 있다.
증상을 자각하기 전이나 가볍게 앓을 무렵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전염을 시키기 때문에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마스크를 쓰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라는 캠페인이 이어져 왔다.
▲ 미니어처 반달곰 같기도 한 호주의 태즈메이니아데블 ⓒ 픽사베이
주머니곰에게 퍼진 괴상한 종양
동물에게 전염성과 치사율이 모두 높은 전염병이 유행하면 무슨 일이 생길까?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자면 이것은 자연선택의 압력이 되는 일이다. 질병은 빠르게 집단 내로 퍼져나가 대부분의 개체를 감염시키고 그 과정에서 이 질병을 견뎌낼 수 있는 유전인자나 돌연변이를 가진 개체들만이 생존해 자손을 이어가게 된다. 그렇지 못한 개체들은 사라진다. 감염성과 치사율, 초기 집단의 크기 등 여러 요소에 따라 종 자체가 절멸할 수도 있다.
실제로 호주의 태즈메이니아 섬에 사는 주머니곰들 사이에서 지난 수십 년간 전염병이 돌아 전체 개체 수의 80% 이상이 죽었다. 이 때문에 멸종하게 될 거라는 말까지 나왔는데 최근 이들이 이 전염병을 이겨내고 살아남을지 모른다는 연구 결과들이 보고되었다.
이 주머니곰들은 호주의 태즈메이니아 섬에 사는 유대류로 '태즈메이니아 데블'(이하 데블)이라 불리며, 검은색 털에 앞가슴에만 흰색의 반달무늬가 있어 마치 반달곰의 미니어처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사납고 공격적이며 밤이 되면 으스스하게 울어댄다는 이유로 데블(악마)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하이에나와 마찬가지로 죽은 동물을 먹이로 삼는데 동물의 사체를 서로 차지하려고 물고 물리는 싸움을 한다. 특히 짝짓기 시기에 그 공격성이 극에 달하는데 짝짓는 과정에서도 암컷과 수컷이 서로 물어뜯고 상처를 낸다.
지난 1996년 이 데블 사이에 괴상한 종양이 번지고 있다는 보고가 있었다. 데블 안면 종양(Devil facial tumour disease)이라고 불리는 이 종양에 걸리면 얼굴에 암 조직이 자라 1년 이내에 죽게 된다. 암 조직이 온몸에 퍼지고 종양이 커지면서 이빨의 위치를 엉망으로 만들거나 입천장과 목구멍을 막아 점차 먹이를 먹지 못하고 경쟁에서 밀려 죽어간다고 알려졌다. 문제는 이 종양에 걸린 개체가 다른 개체들을 무는 과정에서 전염이 된다는 것인데 공격성이 강한 종의 특성 때문에 지난 20여 년간 빠르게 번져갔다.
1990년대에 약 14만 마리 정도로 추정되던 야생 데블 개체 수는 현재 1만 5000여 마리 수준으로 급감했다. 그만큼 이 종양의 파괴력은 컸다. 마땅한 치료제도 없어 10년 전에는 일부 학자들이 이 종양으로 데블이 멸종하게 되리라 예측하기도 했다. 이에 동물보호 운동가들은 멸종에 대비해 시설에서 데블들을 키워 차후에 야생으로 내보내려는 목적으로 보호 프로그램들을 시작했다.
그런데 최근의 연구에서 데블들이 이 질병을 이겨내고 있고 점차 이 암이 사라질지 모르겠다는 소식을 전한 것이다.
"질병에 보인 반응 경이로운 수준"
최근 <사이언스>지에 발표된 연구는, 현재 코로나19의 원인 바이러스인 SARS-CoV-2의 유전체를 분석해 전파를 추적하는 방식과 유사하게, 2003년과 2018년 사이 감염된 여러 데블에서 채취한 종양의 유전체를 분석했다.
종양 유전체의 분석은 바이러스 분석보다 더 복잡하다. 연구진은 일정한 속도로 진화하는 것으로 보이는 28개 유전자에 집중해 어떻게 특정 돌연변이들이 종양 샘플들 사이에 퍼져나갔는지를 추적했다.
이를 바탕으로 암 자체가 데블들 사이에서 퍼져나가는 비율을 계산해 이 질병이 절정에 달했던 2000년 초에 감염 재생산지수가 3.5였다가 최근 1 미만으로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보고했다. 감염된 데블 한 개체당 적어도 3.5마리의 다른 개체들을 감염시켰던 것에서 최근에는 개체당 다른 한 마리를 감염시키거나 아예 감염시키지 않는 수준이 되었다는 의미다.
코로나19 팬데믹에서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할 때 감염 재생산지수가 1 미만으로 떨어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자주 한다. 물론 이는 질병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행동을 통제할 수 있는 인간에 관한 이야기로 야생에서는 이렇게 빠르게 감염 재생산지수를 떨어뜨리기가 쉽지 않다.
▲ "태즈메이니아데블이 파괴적인 안면 종양과의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라는 <가디언> 기사. 트위터 캡처 ⓒ Twitter
연구에 참여했던 태즈메이니아 대학의 로드리고 하메데 박사는 데블들이 이 질병에 보인 반응 속도가 경이로운 수준이라고 말한다.
"보통 이런 일은 네댓 세대 만에 일어나지 않죠. 그보다 훨씬 오래 걸립니다. 이번 연구는 이 전염병이 한참 전에 그 절정에 달했다는 증거를 보여주는 것이죠. 앞으로 데블들은 다시 개체 수가 늘어나게 될 겁니다."
이 말은 살아남은 데블들에게 면역체계가 발달해 있어 감염이 더 번지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집단 면역 상태에 도달해 가고 있는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으로 그간 데블들의 개체 수가 크게 낮아진 만큼 밀도가 낮아져 서로 접촉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느 경우이건 연구진은 이 연구 결과가 차후 야생으로 보내려고 시설에서 데블들을 키우는 프로그램들이 위험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이 질병에 저항성을 갖게 된 야생의 개체들과 시설에서 자라 아무런 저항성이 없는 개체들 사이에 자손이 생겨나 퍼지면 이 암에 대한 야생 개체들의 저항성이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또 지금 상태에서 야생으로 데블들을 풀어줘 갑자기 개체 수가 늘어나 버리면 접촉이 늘어 감염 재생산지수도 다시 올라가게 될 가능성이 있다.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을 돕기 위해서는 상황에 따라 자연선택을 거쳐 스스로 개체 수를 회복하도록 기다려주는 것이 적극적인 개입보다 더 필요한 일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동물들도 사회적 거리두기?
또 다른 연구는 이 전이성 암에 걸린 데블들이 보인 행동상의 변화에 관해 보고했다. 12월 9일 <미국 국립과학원회보>에 발표된 결과에 따르면 종양에 걸린 데블들과 다른 개체들의 접촉이 줄었다.
연구진은 22마리의 데블에게 추적 장치를 달아 6개월간 관찰했다. 이 장치는 개체들끼리 서로 30cm 이내로 가까워지는 것을 기록했다. 매달 이 데블들의 종양 감염 여부와 그 크기가 어떻게 발전하는지도 기록했다. 이를 추적 장치 데이터와 함께 분석해 각 개체의 감염 여부와 증상의 진행 상황에 따라 다른 데블들과의 밀접 접촉하는 양상이 달라지는지를 본 것이다.
결과에 따르면 감염된 개체는 병증이 심해짐에 따라 다른 개체들과의 접촉을 줄였다. 평소 지배적이고 공격적인 성격을 가진 개체였더라도 마찬가지였다. 건강한 개체들이 감염을 피하려고 접촉을 안 한다고도 볼 수 있는 결과였다.
이를 바탕으로 연구진은 이 질병을 활발히 퍼뜨리는 개체들은 감염 초기 단계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감염 초기 단계일 때 다른 개체들과 싸우고 물면서 그사이 질병을 전염시킬 기운이 있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마치 코로나19 팬데믹에서 대부분의 전파가 미처 증상을 자각하기도 전 건강한 시점인 것과 비슷하다.
연구진은 암이 점점 커지는 과정에서 얼굴에 변형이 오고 이빨이 제 위치에서 밀려나는가 하면 입천장과 목구멍이 막히기도 해 먹이 섭취가 어려워질 가능성이 큰 만큼 아픈 데블들이 에너지를 아끼고 회복하려고 공격성이 높아지는 시기에 다른 개체들로부터 자신을 격리하는 것일 수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연구진은 암덩어리가 가장 커 가장 활발히 전이할 시기에 사회성이 떨어지는 것이 질병 전파 속도를 떨어뜨릴지도 모른다고도 말한다.
이 연구 결과에 대해 외신들은 종양에 걸린 데블들이 "반사회적"으로 변하는지도 모르겠다거나 이들이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는 것이냐고 말하고 있다.
어째서 아픈 데블들이 증상이 심해짐에 따라 사회성이 줄어드는지 그리고 이것이 질병의 전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후속 연구에서 더 밝혀질 필요가 있겠지만, 어쨌거나 멸종 위기에 처했던 태즈메이니아 데블들이 다시 돌아오게 될 거라는 소식은 참 반갑다. / 오마이뉴스 한소정
부산항 美 세균 실험실 폐쇄 서명, 온라인 가세로 ‘고고싱’
부산항 미군 세균 실험실 폐쇄를 위해 부산 시민단체들이 추진하는 주민투표 요구 서명이 대면 방식에서 온라인 방식으로 확대한 후 서명 자가 크게 늘었다. 접근성이 높은 온라인 방식으로 주민 여론 수렴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부산항 미군 세균 실험실 폐쇄 주민 투표 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는 27일 오후 기준 약 4만 8000명이 서명했다고 이날 밝혔다. 추진위는 올 10월 17일부터 대면으로 진행 중이던 주민투표 요구 서명을 이번 달 17일부터 온라인으로 확대 진행하고 있다. 서면으로 서명이 진행되던 지난 15일 오후 기준 약 2만 명이 서명했지만, 온라인으로 방식을 전환한 후 약 열흘만 인 27일 오후까지 무려 약 4만 8000명이 서명해 속도가 붙고 있다.
시민단체 내년 1월 말까지 진행
17일부터 온라인 병행 ‘속도전’
시장 보궐선거 전까지 여론 수렴
주민투표 거부 市 상대 소송도
추진위 전위봉 상황실장은 “코로나19 확산 우려 탓에 대면 서명을 받을 시 속도가 더디다는 추진위 판단에 따라 부산시민을 대상으로 온라인으로 서명(사진)을 받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추진위는 부산시 주민 투표 조례에 따라 부산 전체 유권자의 20분의 1에 해당하는 15만 명의 서명을 받을 계획이다. 서명은 다음 해 1월 27일 마감이다.
추진위는 주민투표를 수용하지 않는 부산시를 상대로 소송도 진행한다. 앞서 추진위는 ‘부산항 미군 세균 실험실‘ 폐쇄 찬반을 묻는 주민 투표를 진행하기 위해 10월 13일 부산시에 청구인 대표자 증명서 교부를 신청했지만, 부산시는 이를 거부했다. 해당 사안이 자치단체 사무가 아닌 국가 사무라서 주민 투표 추진 요건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다. 추진위는 이에 반발해 오는 28일 부산시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다.
부산 남구 감만동 부산항 8부두에는 기존에 알려졌던 ‘주피터 프로그램’을 계승한 프로그램인 주한미군의 생화학 프로그램인 ‘센토’와 관련한 시설이 있다. 이번 국정감사에서 ‘주한미군의 생화학공격 방어체계’ 구축을 위한 시료 반입이 2016년부터 세 차례에 걸쳐 부산 등 주요 미군 기지에 반입됐다는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일었다.
부산항 8부두 미군 세균 실험실의 경우 2017년에 10병, 18년에 26병, 19년에 56병의 세균무기 실험 샘플이 반입된 사실이 올해 국정감사에서 확인됐다. 추진위 측은 “매년 샘플 수량이 확대된 것은 미군의 세균무기 실험이 확대 강화된 정황”이라고 주장했다.
추진위가 시민 서명에 본격적으로 나서는 것은 부산시의 주민투표 수용 여부와는 별개로 내년 4월 부산 시장 보궐 선거 전까지 부산시민의 여론을 수렴하기 위해서다.
현행 부산시 주민투표 조례에 따르면 주민투표 청구권자 총수의 20분의 1이 청구하면 주민투표가 가능하다. 추진위는 부산시와의 행정소송에서 승소하지 못하더라도, 조례 기준을 충족해 즉각적인 주민투표를 시도한다는 계획이다.
박혜랑 기자 rang@busan.com
변종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 발생 국가
화마·홍수·메뚜기떼…코로나에 가려진 2020 기상이변
지난 2월1일(현지시간) 호주 캔버라에서 산불이 번지고 있다. 캔버라|AFP연합뉴스
기후변화로 인해 2020년 지구는 최소 3471명의 목숨을 잃고, 1454억달러(약 159조원)의 재산피해를 입은 것으로 조사됐다. 중국, 인도, 방글라데시 등에는 홍수가 났고, 동아프리카 지역에는 메뚜기떼가 나타나 농작물을 갉아먹었다. 미국과 호주에서는 넓은 면적의 산림이 불에 탔다. 국제시민단체 크리스천에이드는 “2021년에는 기후변화의 흐름을 바꾸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크리스천에이드는 28일(현지시간) 기후변화로 인해 올해 일어난 자연재해 중 가장 파괴적이었던 15건을 소개하고, 재해로 인한 인명·재산 피해를 집계했다. 이들 조사에 따르면 15건의 재해로 인해 최소 3471명이 숨지고, 1454억달러의 재산피해가 났다. 15건 중 절반에 가까운 7건은 아시아 지역에서 일어났으며, 재해 유형 중에는 홍수가 6건으로 가장 많았다.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자연재해는 지난 5월부터 10월까지 지속된 인도 지역의 홍수다. 홍수로 2067명이 사망하고 100억달러(약 11조원)의 재산피해가 난 것으로 집계됐다. 남부 지역인 하이데라바드시에서는 10월 24일 시간당 강우량이 29.8cm를 기록했다. 크리스천에이드는 과학학술지 <웨더클라이메이트익스트림>에 실린 논문을 인용해 “탄소 배출량이 많을수록 인도에 홍수가 일어날 확률이 더 크다”고 보고서에 밝혔다. 논문에는 탄소 배출량을 3배가량 차이나게 한 뒤 기후변화 시뮬레이션을 돌렸을 때, 탄소배출량이 많을수록 인도에 홍수가 쏟아지는 빈도가 두배 많아진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가장 막대한 재산피해를 불러일으킨 자연재해는 5월부터 11월까지 30여차례 아메리카대륙에 불어닥친 허리케인이었다. 미국, 중남미 곳곳을 강타한 허리케인은 410억달러(약 45조원)의 재산피해와 400명 이상의 죽음을 초래했다. 특히 지난 11월 과테말라와 온두라스에 몰아친 허리케인 ‘에타’는 153명의 목숨을 앗아갔으며 허리케인 ‘로라’와 ‘샐리’는 미국 루이지애나주에 큰 타격을 입혔다. 크리스천에이드 보고서에 따르면 기후변화가 태풍의 바람을 더 세게 만든다.
홍수로 물에 잠긴 온두라스 팔레모 지역의 거리에서 한 아이가 지난 11월5일(현지시간) 물에 떠내려온 집기 잔해 위에 올라타있다. 팔레르모|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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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 케냐, 소말리아, 우간다 등의 나라가 있는 아프리가 동부에는 상시적으로 메뚜기떼가 나타났고, 메뚜기는 올해 85억달러(약 9조원)에 달하는 농작물을 집어삼켰다. 메뚜기는 습한 기후에서 잘 번식하는데, 기후변화로 인해 지난해 동아프리카에는 홍수와 사이클론이 자주 찾아왔다. 메뚜기떼가 한번 몰려들면 1㎢ 면적에 약 8000만마리가 날아다닌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지난해 메뚜기떼가 전세계 인구의 10분의1에 식량위기를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난 1월22일 케냐 삼부루 지역의 들판에 메뚜기떼가 날아들고 있다. 삼부루|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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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시작돼 지난 2월 완진된 호주 산불로 인해 34명이 목숨을 잃고 180만ha 면적의 숲이 불에 탄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서부 지역의 산불로 42명이 목숨을 잃었고, 200억달러(약 22조원)의 재산피해가 나기도 했다. 북극에 가까운 러시아 시베리아지역에서는 지난 6월20일 기온이 섭씨 38도까지 올라 역대 최고 기온을 기록하기도 했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즈 대학 기후변화 연구센터의 사라 패트릭 박사는 “지구의 평균 온도가 상승함에 따라 다음 몇년의 상황은 올해와 비슷하거나 더 심각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크리스천에이드는 보고서에 “더이상의 재해를 막기 위해 국가들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여야 하며 고소득국가는 기후변화로 인해 피해를 본 저소득국가를 위한 자금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BBC는 “전 세계가 코로나19 바이러스로 고군분투하는 동안 수백만 명이 극심한 기상이후에 대처해야 했다”고 전했다.
윤기은 기자 energyeun@kyunghyang.com
온실가스 배출비용 반영한 ‘환경급전’, 2022년 본격 적용
산업부,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 확정
탄소 배출비용 고려한 ‘환경급전’ 도입
신재생에너지 비중 6.5% → 20.8%
석탄발전 비중은 40.4% → 29.9%로
“2050 탄소중립 반영은 차기 계획에서”
발전 부문의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해 배출권의 거래 비용을 반영하는 ‘환경급전’이 내년부터 도입돼 2022년 본격 적용된다. 연도별 배출량 목표에 맞춰 석탄발전량을 제한하는 석탄발전량 상한제, 기후·환경 대응 비용을 적기에 반영해 발전사들 사이의 경쟁을 촉진하는 가격입찰제 도입도 추진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8일 이런 내용이 포함된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전력정책심의회에서 확정해 공고했다. 전력수급기본계획은 정부가 전력수급 안정을 위해 2년마다 15년 기간 단위로 수립하는 행정계획이다. 이번 계획엔 2020년부터 2034년까지의 전력 수급 전망과 수요 관리, 전력설비 계획, 전력시장 제도 개선 방안, 온실가스 감축 방안 등을 담았다. 산업부는 지난 5월 공개한 초안을 바탕으로 환경부의 전략환경영향평가와 관계부처 협의, 공청회 등의 과정을 거쳐 이날 최종 계획을 확정했다. 구체적인 발전 설비 계획은 앞서 발표했던 초안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9차 계획은 2030년 발전 부문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7년 2억5200만t에서 23.6% 줄어든 1억9200만t으로 낮추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정부가 곧 유엔에 제출할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에 맞춘 것이다. 이를 위해 온실가스 배출 비중이 높은 기존 석탄발전소 60기 중 30기를 폐쇄하고, 이 가운데 24기를 천연가스 발전소로 대체한다.
이와 함께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 비용을 발전 순서에 반영하는 환경급전 시행안도 포함됐다. 현재 전국의 20MW 이상 중앙급전 발전기의 가동 순서는 연료비에 기준한 경제급전으로 정해진다. 전력거래소 중앙전력관제센터가 전력 수요에 맞춰 연료비가 싼 발전기부터 발전하도록 지시하는 방식이다. 연료비에 배출권 거래 비용까지 포함해 발전 순서를 정하는 환경급전은 내년부터 시행해 2022년 본격적으로 적용된다. 아울러 석탄발전기 연간 발전량을 제한하는 상한제, 가격입찰제도 단계적으로 도입된다.
산업부 관계자는 “온실가스 배출량은 연 단위로 할당되고 보고된다. 때문에 환경급전을 실제 급전 순서에 적용하는 것은 발생한 비용이 파악된 이후인 내후년부터가 될 것”이라며 “석탄발전량 상한제 역시 내년부터 발전공기업부터 시범 적용하고, 관련법 개정을 거쳐 2022년이나 2023년에 시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환경급전이 시행되면 한국전력의 전력구입 비용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에 대해 산업부 관계자는 “환경급전에 따른 추가 비용은 배출권 가격에 좌우되기 때문에 예측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발전용 천연가스 공급 제도 변경에 따라 천연가스 발전 비용이 떨어져 상쇄될 수 있고, 원전과 신재생에너지 쪽은 8차 계획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아서 (환경급전 추가 비용은) 8차 계획 때 제시했던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8차 계획에서 산업부는 2030년까지 2017년 대비 10.9%의 전기요금 인상 요인이 있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9차 계획은 2034년까지 목표 발전 설비용량을 125.1GW로 잡았다. 목표 수요인 102.5GW에 설비 예비율 22%를 반영한 결과다. 발전원별 설비 계획을 보면, 석탄은 현재 60기 가운데 30기가 폐지되는 대신 7기가 추가돼, 올해 35.8GW에서 2034년 29.0GW로 6.8GW 줄어들게 된다. 반면 신재생발전 설비는 올해 20.1GW에서 2034년 77.8GW로 57.7GW가 는다. 천연가스도 석탄발전소 대체를 위한 추가 건설 등에 힘입어 올해 41.3GW에서 2034년 59.1GW로 늘어난다. 반면 원자력 발전 설비는 2034년까지 신규 발전소 4기가 준공되지만, 노후발전소 11기가 수명연장 금지 조처로 폐기되면서 23.3GW에서 19.4GW로 줄어든다.
이에 따라 석탄과 원전 설비 비중은 2020 각각 28.1%와 18.2%에서 2034년 15.0%와 10.1%로 줄고, 신재생에너지 설비 비중은 15.8%에서 40.3%로 늘어나게 된다. 천연가스 설비는 올해 32.3%에서 2034년 30.6%로 크게 변화하지 않는다.
2019년 실적과 2030년 전망치를 기준으로 한 실제 발전량 비중을 보면, 석탄이 40.4%에서 29.9%로 줄어드는 반면 신재생에너지는 6.5%에서 20.8%로 크게 늘어난다. 원자력은 25.9%에서 25.0%로 비슷하고, 천연가스 발전량 비중은 25.6%에서 23.3%로 소폭 줄어들 것으로 전망됐다.
산업부의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2019년 확정된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 정부가 곧 유엔에 제출할 온실가스 감축목표인 국가결정기여(NDC), 지난 7월 확정된 한국형뉴딜종합계획까지는 고려됐으나 최근 발표된 정부의 ‘2050 탄소중립’ 목표는 반영되지 않았다. 산업부는 “2050 탄소중립 목표로 나가기 위한 전력 수요 전망과 중장기 전원믹스 등은 관련 법제화와 상위 계획과의 정합성 확보를 토대로 차기 계획에서 순차적으로 검토·제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완전봉쇄하고도 무너졌다···코로나19의 '반면교사'들
2차 대유행까지 한국의 코로나19 방역은 나름 성공적이었습니다. 세계를 휩쓰는 코로나 대유행도 ‘남의 나라 일’처럼 느꼈습니다. 하지만 요즘엔 상황이 좀 다릅니다. 연일 신규 확진자가 1000명대를 넘나들고 있습니다. 여러 노력에도 규모가 좀체 줄지 않습니다.
더 이상 ‘강건너 불구경’ 할 때가 아닌 듯 합니다. 우리보다 먼저 위기를 맞았던 이웃들을 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생겼습니다. 롤모델을 찾기는 어려울지 몰라도 반면교사 사례는 있을 것입니다.
미국과 브라질의 지도자들처럼 코로나19를 우습게 보거나, 미국인과 유럽인들처럼 마스크와 거리두기의 필요성을 과소평가하거나 스웨덴처럼 집단면역이라는 무모한 실험을 감행했다가 실패한 경우를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력을 다했음에도 방역에 실패한 나라도 상당수입니다. 과하다 싶을 정도의 봉쇄조치를 취하고도 한 지역 주민의 절반 이상이 감염되고, 영안실이 꽉 차 아이스링크에 시신을 보관하고, 요양원에서 집단사망한 채 버려진 노인들이 발견되는 참상이 벌어졌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우리에게도 교훈이 될 만한 몇 장면을 모았습니다.
■인도, 제방은 가장 약한 곳에서부터 무너졌다
인도 이주 노동자들이 지난 3월28일 뉴델리에서 고향으로 가기 위해 정부가 제공하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AP연합뉴스
인도는 대유행 초반 가장 강력한 봉쇄조치와 거리두기를 시행했던 나라입니다. 지난 3월부터 68일 동안 전 세계 인구 20%의 발을 묶었습니다. 그럼에도 지난 24일 기준 인도의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1012만3544명으로 미국에 이어 두번째 규모입니다. 인구가 13억이 넘는다는 점을 감안해도 엄청난 수입니다. 9월에는 실제 확진자 수가 공식 집계된 것보다 10배 가까이 많을 것이라는 연구 결과도 나왔습니다. 왜 봉쇄조치가 제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을까요?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지난 3월 초 확진자가 급증하자 그달 23일 저녁 전국에 강력한 봉쇄령을 내렸습니다. 24일 자정을 기해 모든 항공편과 철도가 멈췄고, 식료품점, 은행 ATM, 주유소 등 필수 서비스 시설을 제외한 대부분의 상점이 문을 닫았습니다. 식당은 배달만 가능했습니다. 통행 금지령을 따르지 않는 시민들에겐 구타 등의 물리력이 가해졌습니다.
덕분에 초기 확산세를 어느 정도 억누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발효 시점을 4시간 앞두고 갑작스럽게 내려진 봉쇄령에 국민들은 준비할 틈도 없이 집 안에 갇히게 됐습니다. 이들 중엔 빈곤선 아래의 빈민 3억명과 노숙자 180만명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또 인도 전체 고용의 85% 가량을 차지하는 인력거 운전 기사, 행상인, 가사도우미 등 일용직 노동자들도 대면 접촉 금지로 대거 일자리를 잃게 됐습니다. 하루 4달러 정도의 수입으로 6인 가족이 생활했던 터라 저축해 놓은 돈도 없었습니다. 당장 굶어죽을 판이었습니다. 1평도 안되는 방에 5~6명이 모여살았고, 공중 화장실을 이용했습니다. 거리두기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했습니다.
의료 서비스를 받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공공병원에서 무료 검사를 실시했지만 몇 시간 이상 줄을 서야했습니다. 공공병원 또한 의료 장비는 물론 보호 장비조차 부족해 한 병원에서만 600명의 직원이 감염되기도 했습니다. 사립병원에는 인공호흡기가 있는 중증병상이 있었지만 이용하려면 960달러를 내야 합니다. 호텔을 개조한 임시 치료 시설은 하루에 132달러고요. 하루 1.90달러 정도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시설은 아니었습니다.
인도 이주 노동자들이 지난 3월29일 뭄바이 인근 고속도로에서 자녀를 안고 짐을 진 채 고향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AP연합뉴스
결국 도시 빈민촌의 이주 노동자들은 살기 위해 고향길에 나섭니다. 3월 한 달 동안에만 50만~60만명이 도시를 떠났습니다. 역과 터미널은 귀향객으로 북새통을 이뤘고, 대부분은 교통편을 구하지 못했습니다. 냄비, 프라이팬, 담요 등을 짊어진 채 고속도로를 따라 걸었습니다. 어떤 소녀는 아버지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열흘 동안 1000㎞를 달렸습니다. AP통신은 이를 ‘인도 현대사에서 가장 큰 이주 중 하나’라고 표현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교통사고나 열사병으로 숨진 사람만 100명이 넘었습니다.
대이동은 코로나 바이러스를 내륙 지역 곳곳에 퍼뜨렸습니다. 68일간 지속됐던 봉쇄조치도 경제상황 때문에 더 지속하기 어려웠습니다. 7월 신규 확진자 수는 하루 9만명을 넘어섰습니다. 뉴델리 시민 5명 중 1명이 코로나에 감염됐을 가능성이 제기됐고, 뭄바이 빈민가의 항체보유율이 57%에 이르러 세계 최초로 집단면역에 성공한 것 아니냐는 웃지 못할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습니다. 유례 없이 강력했던 봉쇄조치는 그렇게 가장 약한 곳에서부터 허물어져 갔습니다.
■케냐, 코로나는 막았을지 몰라도...
지난 4월10일 케냐 나이로비의 한 빈민가에서 사람들이 경찰이 쏜 최루탄을 피해 달아나고 있다. AP연합뉴스
세계 최강의 봉쇄 조치를 꼽자면 이 나라도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규모는 인도에 비할 바가 아니지만 강도는 더합니다. 올 초 케냐의 경찰관이 사람들이 모인 곳에 최루탄을 던지거나 심지어 총을 쏘는 장면이 국내 인터넷 사이트에 돌기도 했는데요. 실제 케냐에서는 통금 조치나 거리두기를 위반하는 사람들에게 총격도 불사했습니다. 인권 관련단체 ‘워치독’에 따르면 지난 10월까지 케냐에서 봉쇄조치와 관련해 최소 24명을 살해한 혐의로 경찰이 기소됐고, 이에 대한 항의 시위로 경찰서 3곳이 불탔습니다. 희생자 중에는 13살 소년도 있었습니다.
이런 지독한 거리두기 덕분인지 케냐는 남미나 다른 아프리카 대륙 국가들과 비교해 코로나19로 인한 피해 규모는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지난 24일 기준 케냐의 인구 10만명 당 감염자수는 177명 정도이고 인구 10만명 당 사망자 수도 3.1명 정도입니다.
그러나 국민들이 겪는 고통은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 심각합니다. 케냐는 3월12일 첫 확진자가 발생한 이래 야간통행금지와 국경 봉쇄 등의 초강경 거리두기 조치를 시행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보다 무서운 봉쇄조치로 사실상 정상적인 경제활동이 불가능해졌습니다. 케냐의 벽화 예술가 엘레그와 위클리프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친구들은 여러 일을 하고 있었지만 통금 시간 때문에 소득이 줄거나 완전히 사라졌다”며 “최후의 수단으로 도둑질에 나서고 있다”고 말합니다.
아이린 완질라(10)가 지난 9월29일 케냐 나이로비의 한 채석장에서 망치로 바위를 부수고 있다. AP연합뉴스
특히 아이들의 상황은 훨씬 심각합니다. 케냐는 봉쇄조치의 일환으로 올 초부터 모든 학교에 전면 휴교령을 내렸습니다. 학교 급식으로 배고픔을 해결했던 아이들은 부모들의 소득까지 사라지면서 심각한 굶주림에 노출됐습니다. 학교 대신 채석장이나 쓰레기장에서 단돈 몇 실링을 받고 중노동을 합니다.
부모와 아이가 함께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아동 학대도 늘었습니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케냐 사무소가 올 초 10~17세 사이의 케냐 아동 16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아동 중 44%가 “아동 폭력을 경험하거나 목격했다”고 답했습니다. 소녀들은 매춘에 내몰렸고, 조혼의 악습도 다시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입을 하나라도 줄이려는 절박함에 사춘기도 안된 딸을 시집보내는 경우가 다시 늘고 있습니다.
엄마의 뱃속에 있는 아이 역시 안전하지 않았습니다. 가혹한 야간 통행 금지에 출산이 임박한 산모를 병원까지 데려다 주는 택시 기사를 찾기 어렵습니다. 결국 집 또는 길 위에서 위험천만한 출산을 감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코로나19는 케냐의 강력한 봉쇄조치에 감염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방식으로 치명타를 가했습니다. 위클리프는 “빈민가의 청년들은 코로나19 대유행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범죄라고 믿기 시작했다”며 “이런 사고 방식을 없애려면 몇 세대가 걸릴 것”이라고 했습니다.
■스페인, 노인을 위한 나라가 아니었다?
돌로레스 레예스 페르난데스(61)가 지난 6월22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한 요양원에서 비닐 방역 커튼을 사이에 두고 아버지(87)와 포옹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스페인은 세계에서 기대 수명이 가장 긴 나라 중 하나입니다. 그만큼 노인 복지 제도가 잘 돼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하지만 이번 코로나 대유행에서는 가장 끔직한 ‘노인 잔혹사’가 벌어졌습니다.
지난 2월25일 본토에서 처음 확진자가 나온 스페인에서는 3월8일 ‘세계여성의날’ 행사에 10만명이 넘는 군중이 몰리면서 나흘 동안 확진자 수가 4배 폭증했습니다. 이탈리아와 더불어 유럽 최대의 감염국이 됐고, 감염병 대응 준비가 안돼 있던 의료시스템에 과부하가 걸리면서 사망자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었습니다. 이 때문에 수도 마드리드에서는 아이스링크를 임시영안실로 개조하기까지 했습니다.
특히 고령층에서 사망자가 많이 나왔는데요. 대유행 초기 3개월 동안 발생한 사망자 2만7000여명 가운데 1만9000명 이상이 노인들이었습니다. 이는 공식 집계일 뿐 실제로는 4만3000명 이상의 노인이 첫 3개월 동안 사망했을 것이라는 추정도 있습니다.
이런 참상은 스페인 노인 복지 시스템의 상징인 요양원과 관계가 깊습니다. 인구의 약 19%가 65세 이상인 이 나라에서는 지난 20년 동안 요양원 사업이 전국적으로 성장해왔습니다. 2019년 기준 사업 규모가 49억 달러에 달하며 전국 5400여개 이상의 요양원에서 37만3000명의 고령자가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 중 70% 정도는 개인이 운영하는 민간 요양원입니다. 또 공공 요양원 역시 45%가량(약 4만5000개 병상)이 민간이나 해외자본에 의해 위탁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 자본들 중 상당수는 사모펀드로, 단기 투자 수익을 노리고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수익 확대를 위해 인력이 감축되고, 시설 투자가 중단됐습니다. 야간 당직 의사를 없애고, 간병인 수를 줄였습니다. 간병인 한 명이 10명이 넘는 노인을 돌봐야했습니다. 노인들은 화장실조차 제 때 갈 수 없었고 이 때문에 기저귀를 차고 생활하는 경우도 보도됐습니다. 화장실이나 엘리베이터가 고장이 나면 몇 주간 그대로 방치됐습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한 요양원에서 코로나19로 사망한 노인의 시신이 지난 11월13일 침대 위에 놓인 채 시트에 덮여져 있다. AP연합뉴스
이런 상황에서 대유행이 닥쳤고, 치료는커녕 최소한의 방역조치조차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노약자들이 모여있는 탓에 단 한 명만 감염돼도 순식간에 온 시설이 중증환자로 가득 찼습니다. 공포에 사로잡힌 간병인들이 노인들을 방치한 채 달아나면서 요양원에서 노인들의 시신이 무더기로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AP통신은 ‘프란시스코 프랑코 정권의 군사독재를 이겨내고 지금의 복지 국가를 일궈낸 주역들이 그렇게 떠나갔다’고 애도했습니다.
결국 스페인 정부는 특단의 조치를 내립니다. 3월16일 모든 의료서비스 제공시설을 일시적으로 국유화한다고 발표합니다. 민간 요양원과 양로원의 통제권도 인수하고 사회 복지사 및 간병인을 보충하기 위해 3억3300만 달러를 투입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이 재정부담은 미래세대가 지게 될 것이라고 AP통신은 전했습니다. 스페인은 기업과 일자리 보호를 위해서도 이미 수십억 달러를 퍼붓고 있으며 이 때문에 올해 GDP는 11.3%, 내년 GDP는 7.7% 각각 마이너스 성장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현재 세대가 부린 욕심의 대가를 후손들이 져야 할 판입니다.
■이탈리아, 생각보다 약했던 공공의료…생각보다 강했던 지역 감정
한 간호사가 지난 4월10일 이탈리아 밀란의 한 병원에서 방역 마스크 대신 치과용 마스크 두장을 겹쳐 쓰고 코로나19 환자를 돌보러 가고 있다. AP연합뉴스
이탈리아는 ‘공무원 의사’들이 존재하는 나라입니다. 공공의료체계가 일찍부터 확립돼 응급 진료 등도 무료로 받을 수 있습니다. 노인이 많은 나라답게 ‘주치의’가 담당 가정을 방문하는 가정 방문 진료도 활성화돼 있습니다. 그러나 공공의료체계가 확고할수록 감염병에 잘 대응할 거란 예상을 깨고 이탈리아는 대유행 초반부터 ‘유럽 코로나의 진원지’, ‘유럽의 우한’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썼습니다. 특히 의료 체계가 대유행 몇 주 만에 붕괴되면서 노인들에 대한 치료는 사실상 포기했습니다. 세계는 의아해 했습니다.
‘주치의’들이 가정을 방문하는 진료 방식은 대유행 초반 매뉴얼 부재와 장비 부족 등으로 환자는 물론 의료진에게도 큰 피해를 안겼습니다. ‘주치의’들은 자신의 감염 여부도 알지 못한 채 방역 장비도 없이 이집 저집을 돌아다녔고, 코로나 바이러스를 퍼뜨렸습니다. 4월 초까지 2만명의 의료진이 감염됐고 150명의 의사가 사망했습니다. 12월이 되자 감염된 의료진이 8만명에 달했습니다. 공포와 피로 등으로 현장을 이탈하는 의료진도 나왔습니다. 집중치료실(ICU) 부족은 사망자를 대거 발생시켰습니다. 이탈리아의 ICU 확보율은 인구 10만명 당 8.6개로 OECD 평균(15.9개)의 절반, 독일(33.9개)의 4분 1 수준이었습니다. 반면 노인 인구가 많은 이탈리아에선 중증환자가 속출했습니다. 대유행 초기 확진자가 집중된 롬바르디아 지역의 ICU는 일찌감치 포화됐고, 환자들은 집에서 죽어갔습니다.
이탈리아 북부 베르가모의 지역지 ‘에코 디 베르가모’의 지난 3월17일자 지면들에 부고 기사가 가득 차 있다. AP연합뉴스
WHO 보고서에 따르면 이탈리아는 2006년 이후 인플루엔자 대유행 대비 계획을 개선하지 않았습니다. 전염병 등에 대한 대응 능력을 평가한 글로벌보건보안지수(Global Health Security Index)의 2019년 조사에서 이탈리아는 인도네시아 다음으로 31위에 그쳤습니다. 위기 상황에서 응급 대응, 대비 및 의료 종사자와의 의사 소통에서 특히 낮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공공의료체계의 민낯이 드러났다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의료 서비스를 국가가 관장하면서 의료인들이 관료화됐고, 재정부담 때문에 처우 개선이나 장비 확충이 뒷전으로 밀렸으며, 이 때문에 스위스 등 주변국에 고급 인력들을 빼앗긴 게 전반적인 질적 저하를 초래했다는 겁니다. 반면 나빠진 경제상황 때문에 공공 의료에 대한 투자가 지속되지 못한 게 문제이며, 최근 커지는 민간 의료 시장이 공공 부문의 인력을 대거 흡수하면서 오히려 의료진 부족이 심해졌다는 반론도 나옵니다. 다만 확실한 건 이탈리아의 공공의료는 코로나19를 막을 만큼 단단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국민들끼리의 유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역사적 배경과 빈부 격차 때문에 오랜 시간 반목했던 북부와 남부는 이번 대유행으로 인해 사이가 더욱 멀어졌습니다. 대유행 초기 롬바르디아를 비롯한 북부 지역이 의료진과 장비부족으로 몸살을 앓았지만 남부는 어떤 지원도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피난 온 북부인들에 ‘병을 퍼뜨리러 왔냐’며 야유를 퍼부었습니다. 그리고 4월부터 남부 쪽 확진자가 늘기 시작하자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한국에서처럼 대구에서 확진자가 급증하자 호남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서 의료진과 장비를 보내던 모습을 이탈리아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페루, 16세기 피사로의 악몽이 재현되다
영안실이 꽉 찬 페루 리마의 한 병원 직원들이 지난 5월15일 병원 옆 공터에 마련된 냉동 컨테이너로 시신 가방을 옮기고 있다. AP연합뉴스
그러나 공공의료 자체를 우습게 봐서는 안 됩니다. 공공의료체계가 열악한 곳에서 감염병이 돌면 어떤 사태가 벌어지는지, 페루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EFE통신에 따르면 페루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공 의료 지출 비중은 2.2%로, WHO의 권고 수준인 6%에 한참 못 미칩니다. 그나마도 부패스캔들 떄문에 신축 중이던 병원의 공사가 중단되거나 공무원들에게 엉터리 방역 장비가 지급되곤 합니다. 의사 수는 인구 1만명 당 13명으로 중남미에서도 최저 수준입니다. 대유행이 닥친 지난 3월에도 페루 보건부는 가용 ICU가 100개 밖에 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이런 현실은 높은 빈곤율과 고용인의 70%가량이 비공식 노동자일 정도로 비대한 지하경제 등과 맞물려 모든 노력을 무위로 돌렸습니다. 페루는 중남미 국가 중 가장 먼저 지난 3월16일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해 전국민에 자택 격리령을 내리고 국경을 봉쇄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먹고 살기 위해 무엇이든 해야했고, 첫 두 달 동안에만 5만명 이상이 통행 금지 위반으로 체포됐습니다.
초기 확진자를 가려내야 했지만 PCR(분자 진단)검사를 수행할 실험실이 나라에 단 한 곳밖에 없었습니다. 바로 옆 콜롬비아도 22곳이 있었는데 말이죠. 어쩔 수 없이 별도의 실험실이 필요 없고 더 저렴한 중국산 항체검사 키트를 도입했습니다. 그러나 이 키트는 경증이나 무증상 감염자를 제대로 가려내지 못했고, 음성 판정을 받은 감염자들이 거리를 활보하게 만들면서 오히려 초기 코로나19 대확산의 촉매제가 돼버립니다.
각급 병원에선 중증환자를 위한 의료용 산소가 동이 났습니다. 예산 부족과 업체 간의 담합, 공급 체계 마비 등이 겹쳤습니다. 환자의 가족들은 암시장에서 직접 산소를 구해야 했고, 산소 가격은 1000% 이상 치솟아 한 통당 한화 160만원 가량을 줘야했습니다. 사람들은 돈을 빌리러 다니기 바빴습니다.
초기 확진자들은 해외여행객이 많은 부유한 지역에서 주로 나왔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저소득층들이 사는 밀집 지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아마존 열대 우림의 원주민 거주지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선 의사를 아예 찾아볼 수조차 없었습니다.
2020년 9월 페루 우카얄리 지역의 한 주택에서 코로나19로 사망한 거주민의 시신이 검은 비닐과 테이프로 꽁꽁 묶인 채 침대 위에 놓여있다. AP
지난 9월 페루는 전 세계에서 인구수 대비 코로나19 사망자가 가장 많은 나라가 됐습니다. 하루 수백 명의 페루인들이 집에서 죽어갔습니다. 병원에 가지 못한 채 병사하거나 생활고·공포감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AP통신에 따르면 페루인 10명 중 7명은 코로나19로 죽은 지인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그리고 이 시신들을 거두고 집을 청소하는 일은 그들보다 더 열악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맡았습니다. 경제난 때문에 고국을 떠나온 베네수엘라 이민자들이었죠.
잉카의 후예인 페루인들은 매장의 전통을 더 이상 지키기 어려웠습니다. 방역 때문이 아니라 묘지 공간이 부족해 화장을 해야했습니다. 16세기 곤살로 피사로가 이끄는 스페인인들이 천연두를 퍼뜨려 조상들의 왕국을 멸망시킨지 약 500년이 지난 지금, 그 후손들은 다시 그에 비견될 만한 비극에 직면했다고 외신들은 평했습니다.
■“위기가 준 유일한 선물”
코로나19는 가장 약한 곳부터 무너뜨렸습니다. 가장 약한 사람들, 시스템의 가장 취약한 부분, 느슨한 유대와 반목으로 벌어진 틈을 먼저 파고들었습니다. 그 틈은 점점 커져 방역망 전체를 무너뜨렸습니다. 방역 준비와 의료체계, 봉쇄조치에 만전을 기해도 사회의 취약한 부분을 보완하지 않는다면 코로나19 같은 재앙은 언제까지나 불가항력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습니다.
취약점을 알고도 방치한 경우도 있었고, 그간 간과했던 부분이 이번 대유행으로 드러난 경우도 있었습니다. 코로나19는 우리를 돌아보게 했습니다. 고쳐야할 것들을 보여줬습니다. 스페인의 사설 요양원에서 아버지를 잃고 요양원을 고소한 엘레나 발레로는 “위기(코로나19 대유행)가 우리에게 준 유일한 선물은 노인 돌봄 시스템을 전면 개편할 수 있는 기회를 줬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선물(?)을 외면하면 어떤 결과가 올지 안다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박용필 기자 phil@kyunghyang.com
짝 잃은 고니의 ‘애도’에 독일 고속열차가 멈춰섰다
50분간 열차 23편 지연 사태…강한 부부애로 유명
짝이 고속철 고압선에 걸려 죽자 그 아래 철길을 지키며 ‘애도’하는 혹고니. 카셀 연방 경찰 제공.
고속철도 고압선에 짝을 잃은 고니가 철길을 가로막는 바람에 독일 고속열차 수십 편의 운행이 한때 중지되는 일이 벌어졌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 등 외신을 보면 명백히 ‘애도’로 보이는 고니의 행동이 벌어진 곳은 23일 카셀∼괴팅겐 고속철도 구간인 풀다탈로, 소방대원이 죽은 고니와 함께 그 밑에서 떠나지 않으려는 고니를 데리고 가기까지 50분 동안 23편의 열차가 지연 사태를 빚었다.
‘가디언’은 현지 매체를 인용해 “소방대원들이 특수 장비를 동원해 죽은 고니를 고압선에서 제거하는 한편 철길에 있던 다른 고니를 풀다 강으로 데려가 놓아 주었다”고 29일 보도했다.
철길에서 애도한 고니와 같은 종인 혹고니 부부의 모습.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고니는 한 번 짝을 맺으면 평생 함께하며 짝이나 새끼를 잃으면 애도하는 행동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부부 사이의 강한 유대는 연중 유지돼 번식기뿐 아니라 큰 무리를 지어 이동할 때도 부부가 붙어 다닌다.
그러나 번식에 실패하는 등의 이유로 ‘이혼’하는 일도 벌어져, 혹고니의 경우 번식 성공 때 그 비율이 3%이지만 번식이 실패하면 9%로 높아진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짝이 죽은 고니는 새로운 짝을 찾아 떠난다.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전기 자동차의 '더러운' 비밀
탄소 중립으로 가는 길은 열려 있는가? ③ 자동차 중독에서 탈출하라
프란시스 후쿠야마가 사회주의 몰락으로 역사의 종말을 이야기한 뒤로 자본주의는 진격의 거인이 되어 거침없이 달렸다. 체제경쟁의 승리자는 올림픽 구호처럼 더 멀리, 더 많이, 더 빠르게 생산하고 부를 축적했다. 최후의 역사 단계인 자본주의 유토피아는 성장의 거대 용광로가 되어 뜨겁게 달아올랐다.
경제학자들은 사회주의가 실패한 원인은 인간의 본성인 욕망을 억제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끊임없이 부를 축적하고 싶은 인간의 욕망은 자유주의 시장경제체제와 딱 들어맞았기에 자본주의의 승리는 필연적이라는 것이다.
기업가 정신은 혁신을 통해 인간의 욕망을 지속적으로 충족시킨다. 무한생산, 무한소비라는 한 쌍의 바퀴는 늘 전년 회계연도보다 많은 부가가치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승자의 저주라는 그림자가 질주하는 자본주의 위에 덮였다. 자본주의 체제를 공격한 것은 무너진 사회주의가 아니라 지구였다.
현재와 같은 시스템이 변화하거나 최소한 견제되지 않으면 인류의 미래가 없다는 경고를 지구는 계속해서 인간에게 보내고 있다. 무한 생산, 무한 소비라는 무한궤도는 유한한 지구 생태 자원을 바탕으로 한다. 또 이 무한궤도 속에 은폐된 축이 하나 더 있다. 바로 무한 폐기이다. 무한 폐기야 말로 인간 욕망의 결정체다.
새로운 기능과 사양이 매력적으로 보여서, 디자인이 죽여줘서, 멀쩡한 차나 스마트 폰을 바꾼다. 이런 행위는 지구 자원 낭비가 아니라 현대인의 미덕이다. 지적인 이미지의, 딱 봐도 성공한 주인공이 새 상품에 만족하는 이미지가 넘쳐나는 광고 스크린의 뒤에는 폐기물의 거대한 산이 있다.
전기자동차가 친환경 대안 모빌리티로 떠올랐다. 내연기관 자동차가 만들어 내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는 찬사 속에 매끈한 전기자동차가 도로를 질주한다. 전기자동차 덕분에 온난화의 파국으로 달려가는 지구에 브레이크가 걸릴 것인가? 출퇴근 길 도로를 가득 메우는 내연 자동차들을 전기자동차로 대체하면 친환경 녹색혁명이 완수되는 것일까?
이미 한국의 많은 도시들은 특정 지역에서 소화 가능한 차량 대수가 한계에 이르렀음을 말하는 피크 카(Peak Car)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TV 프로그램의 황금시간대 광고는 자동차 소개로 이어지고 있다. 거대 자동차 산업과 도로 인프라 숭배가 결합 된 세계적 현상의 한 단면이다. 인류가 지구를 위하는 길은 내연차로부터 전기차로의 이행이 아니라 자동차 숭배 사회로부터의 탈출이다.
물론 화석연료를 태우는 내연 자동차를 전기자동차로 대체하는 것은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자동차의 총 통행량을 줄이는 것이다. 일부 사람들은 전기자동차를 환경개선의 절대 반지로 여기기도 하는데 드러나지 않은 문제들이 적지 않다. 2020년 12월 8일자 가디언엔 "하얀 기름의 저주; 전기자동자의 더러운 비밀"이란 제목의 글이 실렸다. 기사는 전기자동차의 배터리로 쓰이는 리튬을 채취하기 위해 파괴되는 환경을 고발하고 있다. 전기자동차를 구동하는 이차전지의 핵심 활성 물질인 리튬은 밀도가 낮은 금속이면서 무게 대비 많은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어 전기자동차 산업에 없어서는 안 될 광물이다. 은백색 알칼리 금속으로 하얀 기름이란 별명이 붙은 리튬을 둘러싸고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칠레의 리튬 채굴 광산 ⓒ가디언 홈페이지 갈무리
2019년 전 세계 리튬 생산량의 절반 이상(55%)이 호주에서 채굴되었다. 칠레(23%), 중국 (10%), 아르헨티나 (8%)가 뒤를 잇고 있다. 모든 생산 국가들이 리튬배터리의 주 수요처인 유럽으로부터 떨어져 있어 이동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이 만만치 않다. 리튬배터리가 각광 받자 유럽에서는 가까운 공급처를 확보하기 위한 리튬 광산 개발이 시작되었다. 포르투갈은 중북부에 향후 10년 동안 채굴 가능한 매장량이 존재한다는 이유로 대표적 개발지가 되었다. 그러나 리튬 채굴 과정에서 발생하는 대규모 환경파괴는 내연차 대체라는 더 큰 환경적 목적으로 무시되고 있다.
리튬 채굴 문제를 제기하는 미국 로드 아일랜드 프로비던스 대학 리오프란코스((Riofrancos) 박사는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소비 및 생산 모델이 지속 가능하지 않으며 전기 자동차는 엄청난 양의 채굴, 정제 및 그와 함께 제공되는 모든 오염 활동과 관련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인류의 새로운 도약을 약속하는 4차 산업혁명이나 내연 자동차 생산의 중단 같은 아젠다가 지금까지 세계체제를 유지해온 성장 일변도의 자본주의적 생산을 기반으로 한다면 인류는 불꽃을 향해 돌진하는 거대 나방 무리와 다를 바 없는 운명을 마주할 것이다.
모빌리티 연구분야의 대표적 학자인 미미 셸러(Mimi Sheller)는 현대 인류는 일상생활과 상식에 자동차화된 자아에 단단하게 연결된 자동차 감성이 깊게 침투해 있다고 말한다. 거대 자동차 산업, 인프라를 끊임없이 공급함은 물론 각종 제도로 이를 뒷받침 하는 행정부, 광고, 스포츠, 할부금융까지 자동차를 위해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협업체계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인간이 자동차를 떠나서 존재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만큼 인간이 자동차에 중독된 사회를 탈피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때문에 보통의 노력으로는 탈 자동차 사회로 나아 갈 수 없다.
모빌리티 차원에서 본다면 인간의 이동을 사회 유지에 필요한 필수 이동이나 사회적 이동과 사적 필요에 의한 개별 이동으로 나눌 수 있다. 가능하다면 개별 이동 분야는 자원 소비나 온실가스 배출을 최소화 할 수 있는 교통수단이 주가 되어야 한다. 또한 집단적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공공교통이 개별 이동 수요의 상당수를 흡수해야 한다. 이를 위한 사회적 설계는 위기가 눈 앞에 펼쳐질 미래가 아니라 지금 당장 필요하다.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모빌리티는 무한정 확대될 수 없다. 도로 공간, 혼잡, 에너지 비용 같은 교통자원의 제약과 서로 다른 모빌리티가 같는 특성의 충돌로 인해 모빌리티를 최대한 확장하는 길로 내달리면 거대한 낭비의 늪에 빠지게 된다. 또 그 대가로 교통혼잡과 온실가스, 환경파괴라는 달갑지 않은 선물을 받게 된다.
한국 사회는 자동차 운행 감축을 위한 계획이 보이지 않는다. 그린뉴딜이 선포되었지만 방점은 온실가스 감축이 아니라 경제성장에 찍혔다. 정치인들은 다가오는 선거를 위해서도 그래프 오른쪽 위로 올라가는 화살표야 말로 확실한 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 하다. 그러나 그동안 한국 사회는 보아왔다. 성장의 단 열매는 소수에게만 전유 됐다. 대다수 민중들의 삶은 더 팍팍해졌다. 이제는 성장의 떡고물조차 서민들의 몸에는 달라붙지 않는다. 노동을 비웃는 불로소득이 성능 좋은 진공청소기처럼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주머니를 깨끗이 털어낸다.
성장 이데올로기의 쳇바퀴에서 빠져나올 때 비로소 희망은 보일지 모른다. 자본의 큰 그림을 해체하고 그 계획 속에 줄 섰던 사회적 자본과 사람들을 재 구성 할 때 비로소 21세기의 공리주의가 뿌리 내릴 수 있다. 모빌리티 부분에서의 과제는 분명하다. 자동차 중독에서 탈출하라!
박흥수 사회공공연구원 철도정책객원연구위원/ 프레시안
부산국가지질공원 태종대 등 20곳,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후보 선정
환경부 후보지 포함 시에 알려와…내년 9월까지 신청서 제출 예정
2023년 정식 인증땐 국내 5번째
부산 국가지질공원이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국내 후보지로 선정됐다.
부산시는 부산 국가지질공원이 환경부로부터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인증 신청을 위한 국내 후보지로 선정됐다고 통보받았다고 29일 밝혔다. 시는 내년 9월까지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인증 신청서를 제출하고, 2022년 7월 유네스코 검증위원의 현장실사 후 2023년 4월 정식 인증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은 세계적으로 지질학적 가치를 지닌 명소와 경관을 보호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개념으로 관리하는 곳이다. 국내에는 ▷제주도 ▷경북 청송 ▷광주 무등산권 ▷한탄강(강원 철원군~경기 연천군) 등 4곳이 있으며, 세계적으로는 44개국에서 161곳을 운영하고 있다.
이번에 후보지로 선정된 부산의 지질명소는 낙동강 하구, 금정산, 태종대, 오륙도 등 20곳이다. 기존 12곳 중 2곳인 낙동강 하구와 송도 반도가 다대포 해변, 암남공원으로 분리돼 2곳이 늘었다. 눌차도, 조도, 해운대, 송정 슈도타킬라이트, 용궁사, 오랑대 등 6곳이 신규로 추가됐다.
시는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인증을 통해 2024년 개최하는 ‘세계지질과학총회(IGC)’ 성공 개최의 기틀을 마련하고, 세계적 관광자원으로서의 국제적 위상을 확립하겠다는 계획이다.
세계지질과학총회는 국제지질과학연맹(IUGS) 주최로 1878년에 첫 총회가 개최된 이래 4년마다 열리는 지질학 분야의 가장 큰 국제학술행사다. 120여 개국에서 지질학 전문가, 정부 인사, NGO 관계자 등 6000명이 참가한다. IGC 부산은 시, 대한지질학회,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등이 공동으로 주관해 2024년 8월 25일부터 31일까지 열린다.
시 관계자는 “부산은 대도시임에도 불구하고 강과 산, 바다를 아우르는 도시 전역에 지질명소가 분포해 지질다양성(geodiversity)에서 우위를 점한다”며 “IGC의 성공적인 개최와 지속가능한 활용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전했다.
국제신문 유정환 기자 defiant@kookje.co.kr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설치 사업, 다시 추진된다
중앙행정심판위 “원주환경청 ‘부동의’ 처분은 부당” 결정
지난해 7월31일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설치를 반대하며 설악산에서부터 도보순례를 한 시민·환경단체가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설악산 케이블카 백지화를 촉구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환경부의 환경영향평가 부동의 처리로 멈춰섰던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설치 사업이 다시 추진된다.
29일 국민권익위원회 소속 중앙행정심판위원회는 세종청사 심판정에서 환경영향평가 협의내용 통보 취소 청구 사건에 대해 심리한 결과, 원주지방환경청의 환경영향평가 부동의 처분이 부당하다며 낸 양양군의 청구를 인용했다. 양양군의 청구가 인용됨에 따라, 양양군은 설악산 오색약수터에서 끝청 구간 3.5㎞를 연결하는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설치 사업을 기존 계획대로 시행할 수 있게 됐다.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은 1982년 강원도가 설악산에 제2의 케이블카를 설치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하면서 논의가 시작됐다. 선거 때마다 단골 공약에 오르내렸고, 주민들은 침체한 설악권 지역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는 대안으로 꼽았다.
번번이 무산됐던 사업은 박근혜 정부 당시인 2015년 8월 국립공원위원회가 조건부 승인하면서 급물살을 탔으나, 이듬해 12월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가 문화재 형상변경안을 부결하면서 또다시 사업에 제동이 걸렸다. 천연보호구역에 설치되는 케이블카가 환경과 동식물 서식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결과에 승복하지 못한 양양군은 2017년 3월 문화재청의 부결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행정심판을 청구했고, 중앙행정심판위원회가 그해 6월 양양군의 손을 들어주면서 무산되는 듯했던 케이블카를 다시 설치할 길이 열렸다. 결국 문화재청은 2017년 1월 사업을 조건부 허가했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회생한 케이블카 사업은 환경부에서 또다시 제동이 걸렸다. 지난해 9월 환경부는 “설악산의 자연환경과 생태경관, 생물 다양성 등에 미치는 영향과 함께 설악산 국립공원계획 변경을 위한 부대조건 이행방안 등을 검토한 결과, 사업을 시행하는 경우 부정적 영향이 우려되고 환경적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이유를 들어 양양군이 낸 환경영향평가 보완서에 부동의 결정을 내렸다. 이에 양양군은 같은 해 12월 또다시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행정심판을 청구했다.
행정심판위원회의 재결은 ‘행정심판법 49조’에 따라 기속력이 발생하며, 행정소송과 달리 단심제로 운용된다. 따라서 이번 인용 결정으로 원주지방환경청은 행정심판위원회의 결정 취지에 맞도록 동의 또는 조건부 동의 처분을 해야 한다. 재결 취지에 맞는 처분을 하지 않으면 ‘행정심판법 50조’에 따라 중앙행정심판위원회가 직접 처리할 수 있다. / 김민제 박수혁 기자 summer@hani.co.kr
기후변화에 ‘나중에’란 가능한 답인가 : 이상기후와 역대 최장 장마
코로나19 팬데믹과 함께 유독 이상기후가 기승을 부린 한 해였다.
중부지방에선 6월24일부터 8월16일까지 무려 54일 동안 장마가 이어졌다. 이 기간 비가 내린 강수일수도 34.7일에 이른다. 중부지방 평년(1981~2010년) 장마 기간은 31.3일, 강수일수는 17.2일이었다. 올해 장마는 이보다 20일 이상 길고, 강수일수는 두 배 많았다. 1973년 기상청의 전국 관측 체계가 마련된 이래 사상 최장 장마였다. 직전 기록은 2013년의 49일로, 7년 만에 경신된 기록은 앞으로도 계속 새로 쓰일 가능성이 크다.
여름철 이상기후는 한반도만의 현상이 아니었다. ‘지구에서 가장 추운 마을’ 시베리아 베르호얀스크의 6월 기온은 평균 20도가량이다. 올해에는 1885년 관측 이래 가장 높은 38도까지 치솟았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모하비사막 북쪽 ‘데스밸리’의 경우 7월에 54.4도까지 뜨거워졌다. 1913년 56.6도를 찍은 이래 가장 높았다. 전문가들은 20세기 초 부정확한 관측기술을 고려하면 사실상 역대 최고기록으로 본다.
인류가 배출한 이산화탄소로 북극 기온이 높아지면서 장기 장마와 이상고온이 나타났다는 게 기상학자들의 설명이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코로나 경기부양책, 잘못쓰면 CO₂ 16%까지 늘어난다
코로나19 봉쇄 정책으로 온실가스 줄었지만
이후 장려금 잘못 쓰면 기후위기 증폭할 수도
코로나 이후 경기부양의 향방에 따라 온실가스 배출은 크게 줄 수도, 대폭 늘어날 수도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올해는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온실가스 배출이 줄었지만 향후 경기부양책의 향방에 따라 대유행이 없었을 때보다 온실가스가 외려 더 늘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 때문에 경기부양을 위한 자금 투자는 항공산업 같은 고탄소 부문이 아닌, 재생에너지 같은 저탄소 대체부문에 집중돼야 한다고 지적됐다.
네덜란드 흐로닝언대 연구팀은 여러 경기 회복 경로들이 온실가스 배출과 기술변화에 끼칠 영향을 정량화한 논문(DOI : 10.1038/s41558-020-00977-5)을 <네이처 기후변화> 22일(현지시각)치에 게재했다.
논문 제1저자인 율리 샌 흐로닝언대 에너지환경사회통합연구소 연구교원은 “코로나19로 인한 세계 경기침체가 온실가스 배출에 끼친 영향은 매우 커서 향후 몇 년 동안 지속할 것”이라며 “올해 감소만으로도 온실가스 농도를 2006~2007년 수준으로 되돌려놓았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2020년부터 2024년까지 5년 동안 산업부문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는 코로나19 대유행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발생했을 배출량보다 57억t(이산화탄소톤, 3.9%)에서 83억t(5.6%)이 줄 것으로 추산했다. 샌은 “이 정도 감소 폭이면 파리기후협정이 설정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세계 각국은 코로나19로 침체한 경기를 부흥시키기 위해 여러 경기부양책을 내놓고 있는데, 이것이 향후 온실가스 배출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연구팀은 밝혔다.
‘TS1S2 시나리오’에 따른 2020년 온실가스 배출 감소. TS1S2 시나리오에서 T는 봉쇄기간의 길이로, 미국 하버드의대 연구팀이 <사이언스> 논문에 사용한 시나리오를 적용한 것이고, S1은 첫 번째 봉쇄 시기의 강도로, 구글의 이동추이 분석 데이터를 적용한 것이다. S2는 미래 봉쇄 시기의 강도(점진적으로 강도가 줄어듦)이다. a는 국가별, b는 부문별, c는 5개 주요국(지역)의 부문별 온실가스 배출 감소. ‘네이처 기후변화’ 제공
네덜란드 연구팀은 영국·중국 연구팀과 함께 최신 ‘전 지구 다지역투입산출모형’이라는 경제 모델을 사용해 코로나19 봉쇄로 인한 직간접 영향뿐 아니라 여러 경로의 경기부양책 영향을 분석했다. 세계 경제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41개 국가를 대상으로, 공급망을 통한 세계 경제 상호 의존성을 분석했다. 상호 의존성이란 한 국가의 경제 활동을 봉쇄하면 봉쇄 정책 없이도 다른 국가의 배출량이 감소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령 공급망은 2020년 발전부문에서 이산화탄소 배출을 90.1% 감소시킨 반면 수송부문에서는 감소 폭이 13.6%에 불과했다.
분석 작업은 경기부양 투자의 건설, 제조, 서비스, 보건, 가정 등 다섯개 부문별 할당과 정책 목표에 따라 진행됐다. 경로별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매우 다양했으며, 연구팀은 시나리오별로 온실가스 배출량을 정량화했다.
논문 교신저자인 클라우스 후버세크 흐로닝언대 교수는 “모델들은 구조적 변화가 없다면 브이(V)자 형태의 회복이 될 것으로 예측했다”며 “이 경우 온실가스 배출은 위기 이전 수준으로 빠르게 회복하거나 어쩌면 이를 뛰어넘어 상회할 수 있다”고 했다. 연구팀이 설정한 여러 시나리오는 다양한 경로가 펼쳐질 수 있음을 보여줬다. 온실가스 배출량은 66억t(4.7%) 감소할 수도 있고, 232억t(16.4%) 늘어날 수도 있다. 후버세크 교수는 “잘못된 길로 향할 여지가 적지 않다”며 “경기부양은 혁신을 목표로 해야 하며 에너지 전환을 촉진하고 가정들이 재생에너지 수용에 투자하도록 도와야 한다”고 지적했다. 항공산업 같은 고탄소 부문을 구제하는 데 자금을 낭비해서는 안 되며 대중수송과 철도를 개선하는 데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넘어야 할 장벽이 있다. 정부는 경기부양을 위해 막대한 빚을 내야 한다. 국가 채무의 증가는 향후 수십 년 동안 추가 투자 여력을 줄일 것이다. 후버세크 교수는 “지금 저탄소 대체부문에 투자하지 않으면 오랫동안 그럴 기회가 없을 것”이라며 “(기회를 잃으면) 온실가스 배출이 대유행 이전에 예측한 것 이상으로 증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이근영 기자 kylee@hani.co.kr
기후가 가장 불안정했던 축의 시대와 소빙기
혹독한 기후재해 ‘축의 시대’에 종교 등장
소빙기 때 종교·농업·사회·과학혁명 일어나
기후위기 맞은 인류는 새 세상 이뤄낼까?
기원전 8∼3세기 기후재해가 닥친 ‘축의 시대’에 세계 각지에서 종교가 등장했다. 왼쪽부터 공자, 부처, 소크라테스, 예레미야. <한겨레> 자료사진
1만년 전 농업이 시작됐던 이후 가장 극심했던 기후로 인류가 고통받았던 시기는 기원전 8세기에서 기원전 3세기까지 ‘축의 시대’(Axial age)와 14세기에서 19세기까지 ‘소빙기’였다. 이때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큰 도약의 발판을 닦은 시기이기도 했다.
산업혁명 이전, 문명의 성쇠는 농작물의 성장 조건을 결정하는 기후에 크게 영향받았다. 홀로세에서 기원전 4천년을 전후한 2천년 동안을 ‘기후 최적기’라 부른다. 농업 생산력이 좋아 고대 문명이 탄생했고 도시가 건설돼 인간과 인간 사이의 물리적 거리가 좁아졌다. 문명은 풍요와 안전을 가져다줬지만 계급의 출현으로 대부분 사람들의 삶은 고달팠다.
기원전 2천년께부터 거대한 화산 폭발이 심해지고 한랭 건조해졌다. 식량이 부족해지자 문명화된 세상이 오히려 정치, 경제,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켰다. 결국 고대 문명이 무너졌다. 다른 문명에 비해 오랫동안 유지되던 이집트 왕국도 기원전 1070년에 막을 내렸다. 중국에서는 태평성세였던 요순시대가 끝나고 하나라, 은나라, 주나라가 차례로 등장했다. 중앙아시아에서 유목을 하던 아리안족이 인도를 침입했다. 이들은 기존 인더스 문명을 일으켰던 민족을 몰아내고 인도의 주인이 됐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저서 <기상학>에서 “앞서 좋은 기후를 향유하던 장소들이 퇴락하고 말라갔다. 이러한 일이 그리스의 미케네에서 벌어졌다.(중략) 미케네는 산출이 적은 완전히 마른 땅이 되었고…”라고 언급했다. 그리스에서 미노스 문명에 이어 미케네 문명이 발생했지만, 기원전 13세기에서 12세기 사이에 붕괴한 것이다. 지중해 동쪽 지역은 바다 쪽에서 정체불명의 민족이 기존 왕국을 지속해서 침공했다. 철기 문명을 일으켰던 소아시아 히타이트 왕국도 오래가지 못하고 기원전 1160년에 멸망했다.
히타이트 왕국이 쇠락하자 철기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철기는 청동기보다 더 단단하고 대량으로 만들 수 있어 일반인도 사용하게 됐다. 이로 인해 토지개간이 좀더 쉬워져 줄어드는 곡물 수확량에 어느 정도 대처할 수 있었다. 기근을 몰고 온 기후가 철기 시대를 연 것이다. 불리한 기후 조건이 오히려 기술혁신을 촉발했다.
지난 1만년 동안 북반구 평균 기온의 변화. 출처 The Holocene Climates of South Africa, Fitchett, 2018
기원전 8세기부터 기원전 3세기까지 그 전보다 혹독한 재해성 기후로 인해 농업 생산량이 크게 떨어졌다. 식량 부족으로 절망적인 상황에 부닥친 사람들은 새로운 삶을 찾아 나섰다. 민족의 이동이 심해져 민족간 충돌이 많아진 것이다. 철기 무기는 대규모 무장을 가능하게 했고 말이 끄는 전차로 인해 전쟁이 참혹해졌다.
당시 민족 이동은 정치·경제·사회뿐만이 아니라 정신세계에도 영향을 끼쳤다. 민족들이 뒤섞이는 상황에서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만나게 되고, 이로부터 새로운 사상이 싹틀 환경이 조성됐다. 이때 생겨난 종교와 철학은 당시 배고픔, 사회불안과 전쟁으로 고통을 받는 사람들에게 지지를 받았다.
‘축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독일 철학자 카를 야스퍼스다. 그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의 모든 정신적 기원이 축의 시대에 생겨났다고 했다. 종교적 사고와 의식은 선사시대부터 인류의 정신을 지배해왔지만 체계적으로 사상, 의식과 경전 등을 갖춘 근대종교가 탄생한 것은 이 무렵이었다.
인도에서는 힌두교가 등장했고 가뭄이 빈발하고 굶주림이 만연하는 가운데 기원전 566년 석가가 탄생해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깨달음으로 불교를 열었다. 중국에서는 주왕조 멸망 뒤 춘추전국의 혼란 시대에 제자백가들이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사상을 전파했다. 유교를 확립시킨 공자(기원전 551-479)와 도교를 일으킨 노자도 이 시기에 활동했다. 유대교는 기원전 7세기 바빌론 포로 시기에 종교적으로 뚜렷한 특징을 가지게 됐다. 그리스 아테네에서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패전 이후 소크라테스(기원전 469-399), 플라톤 (기원전 427-347),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322)가 활동했다.
영국의 종교학자 카렌 암스트롱은 축의 시대 당시 종교적 ‘믿음’이란 단어의 원래 의미는 특정한 신념을 따른다는 것처럼 좁은 의미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각기 독립된 지역에서 발생한 종교는 “다른 사람이 너에게 했을 때 네가 싫어할 행동을 다른 사람에게 하지 말아라”라는 동일한 가르침을 줬다는 것이다. 삶의 피할 수 없는 진실인 고통에 직면해야 하고, 타인을 불쌍히 여기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을 가지라고 했다. 그리스에서도 연극 무대에서 비극을 공연해 그곳에 참여한 모든 사람이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려 했다. 이렇듯 종교는 신을 믿거나 믿지 않는다고 결정하기보다는 ‘무엇을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 세상 중심에서 자신을 비워야 비로소 완전한 상태에 도달하거나 신을 만날 수 있다고 했다. 이 위대한 스승들의 가르침은 지금까지도 인류의 종교적 철학적 성찰의 근본을 이루고 있다.
중세 온난기였던 9세기에서 13세기까지 기후 조건이 좋았다. 농업생산량이 늘어 전 세계 인구가 9세기 초 2억명에서 13세기 말에는 4억명으로 2배 늘었다. 하지만 이때를 중세 암흑기라고 한다. 사상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큰 변화가 없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위키미디어 코먼스
14세기 이후 400년에 걸쳐 북반구 평균 기온이 0.6도 떨어져 소빙기에 진입했다. 날씨 변동이 심해 가뭄과 폭풍우가 자주 일어났는데, 이는 기온 하강보다 농작물에 극심한 피해를 줬다. 소빙기 기근은 중세 온난기에 늘어난 인구로 더 큰 고통을 안겼다.
영양실조에 걸린 몸은 면역도 약하기 때문에 감염병 피해도 컸다. 특히 1347년 이후 유럽을 휩쓴 흑사병으로 인한 사망자는 당시 유럽 인구의 3분의 1 이상으로 추산된다. 유럽에서는 왕국 간 다툼과 종교 갈등이 고조돼 폭동과 전쟁이 자주 발생했다.
한편 소빙기에 각종 자연재난이 닥치고 수확량이 떨어지자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합리적인 방법을 찾는 움직임도 일어났다. 영농 혁신의 선두 주자는 네덜란드였다. 휴경지 농법을 고안하고 농작물 재배를 다양화했으며 기상 이변에 대비해 댐을 쌓아 간척지를 개척했다.
기상 이변, 흉작과 감염병의 원인을 신의 분노나 마녀의 저주에서 찾지 않고 그 사회 체제의 문제로 보기 시작했다. 프랑스 시민은 기근으로 인한 불행이 불평등한 사회체제 때문이라고 여겼다. 자연 재난의 위기가 사회·경제적 위기를 넘어 종교·정치적 위기로 치달았다. 결국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 봉건제가 무너졌고 이것이 오늘날 민주주의의 기반이 됐다.
천동설이 무너지고 지동설이 확립됐다. 과학자들은 더는 정통적인 권위에 따르지 않고 관찰과 실험으로 물질세계를 해석하려 했다. 이 근대과학을 기반으로 산업혁명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리스의 학문을 부활시켜 합리적 사유의 길을 열어준 르네상스가 일어났다.
자연적인 재앙을 합리적으로 극복하는 과정에서 과학, 농업과 산업에서 혁명적인 변화를 이뤘다. 이와 함께 정치·사회적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사상이 출현하여 정의, 자유, 평등에 좀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근대로 이행할 수 있었다. 소빙기는 당시 사람들에게는 고통스러운 시기였지만 오늘날 문명의 싹을 틔운 시기이기도 했다.
기후 조건이 좋았던 고대 문명 시기와 중세 온난기에 쌓여 가던 문제점들이 기후 조건이 안 좋았던 축의 시대와 소빙기에 각각 폭발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인구가 가장 잘 먹고 누리고 있는 찬란한 문명의 시대에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유한한 지구에서 무한한 욕망을 향해 내달려 기후위기가 일어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위기에서 벗어날 것인가? 축의 시대와 소빙기를 되돌아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과거는 미래라는 어둠 속으로 들고 갈 횃불이 될 수 있다. 인류는 끊임없이 넘어지고 그러다가도 폭삭 무너져 소멸 직전에 용케 추스르기를 반복하면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온 존재다. 언제나 인류의 희망은 내달려 온 큰 길이 아니라 그 언저리 어둠 속에 있었다. 레베카 솔릿은 <어둠 속의 희망>에서 “진정한 희망은 이 세계가 처한 곤경을 이해하는 힘과 어쩌면 불가피하지도 불변적이지도 않은 이런 상황 너머 무엇이 가능한가를 내다보는 상상력을 요구한다”고 했다. 세상을 바꿀 힘을 우리가 지니고 있다는 희망과 이 세상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으로 변할 것이라는 희망이 새 세상을 열게 한다고 과거는 우리에게 이야기해준다.
지금까지 인류는 가장 혹독한 기후에서 그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세상을 이뤄냈다. 다가오고 있는 기후위기에서 우리는 어떤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낼 것인가?
경희사이버대학 기후변화 특임교수/ 한겨레
환경부 장관 발탁 '한정애'
"중대재해법 시간·노력 들인 만큼 성과낼 것"
"그린뉴딜·2050탄소중립 이행 방안 만들 것"
환경부 장관에 발탁된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이 31일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가 끝난 뒤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환경부 장관으로 내정된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이 31일 “엄중한 시기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며 문재인 정부가 가시적인 성과를 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그린뉴딜, 2050 탄소중립 관련 우리 사회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명확한 이행 방안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후보자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정책조정회의가 끝난 후 기자들과 만나 “문재인 정부 5년 차 접어드는데 지금까지 추진한 여러 정책에 대해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하고 당면한 여러 현안 과제에 대해 명확한 실행, 이행 방안을 만들어야하는 과제가 있다”며 “그중 하나가 그린뉴딜, 2050 탄소중립 관련한 우리사회공감대 형성하고 명확한 이행방안 만들어내야 한다”며 이 같이 말했다. 그러면서 “물 관리 일원화, 탈(脫) 플라스틱 사회로 가기 위한 기본적 방향 제시와 목표 설정, 미세먼지 저감대책 등 국민생활과 밀접한 관계이기 때문에 굉장히 많은 숙제 과제 안고 있다는 생각 든다”면서 “남은 1년차 동안 실질적이고 가시적 성과를 내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서울경제
북항 레지던스 비율 44 → 80%”…동원개발컨소시엄 사업안 수정
74→77층, 관광숙박시설 제외
- 시에 교통영향평가 심의 신청
- 시민 친수공간 의미 퇴색 지적
부산 북항재개발 상업업무지구 D-2 블록에 복합건물을 추진하는 동원개발 컨소시엄이 애초 사업계획과는 달리 생활형 숙박시설(레지던스) 비율을 대폭 상향한 수정 사업안을 부산시에 제출해 논란에 다시 불을 지폈다.
북항재개발이 시민 친화적 친수공간이라는 취지에서 후퇴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동원개발 컨소가 지난 15일 사업지의 교통영향평가 심의를 요청했다고 30일 밝혔다. 사실상 D-2 블록 건축계획서가 제출된 셈이다. 동원개발은 2018년 11월 토지 매수자 입찰을 진행할 당시 8400억 원을 들여 지상 74층 규모의 복합 건물을 짓겠다는 사업안을 제출했다. 레지던스(34%)와 호텔 등 관광숙박시설(11%), 쇼핑몰 등이 들어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최근 제출한 사업안에서는 레지던스 비율이 크게 높아졌다. 먼저 층수를 지상 77층으로 3개 층 올렸다. 관광숙박시설로 계획한 건물은 모두 레지던스 용도로 바뀌었고, 업무·판매시설도 일부 줄었다. 그 결과 레지던스 비중은 61%로 크게 늘었다. 레지던스에 딸린 주차장 면적까지 더하면 전체의 80%가량에 이른다는 게 시의 설명이다. 애초 사업안은 주차장 면적을 포함해도 레지던스 비율이 44% 정도였다.
동원개발이 레지던스 비율을 높인 데에는 ‘본전 심리’가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부지 입찰 당시 D-2 블록의 낙찰가는 예상가(819억 원)보다 500억 원가량 높은 1321억 원이었다. D-3 블록도 예상가(700억 원)를 웃도는 832억5000만 원에 낙찰됐는데, 레지던스 비율이 91%에 달한다. 더 많은 비용을 낸 D-2 블록인 만큼, D-3 블록에 준하는 ‘개발 이익’을 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시는 해양수산부, 부산항만공사(BPA)와 협의에 나섰다. 하지만 해수부는 ‘해당 사안은 BPA와 논의해야 하지만 논란이 많으니 계획 변경은 되도록 자제돼야 한다’며 BPA에 책임을 넘겼다. BPA는 ‘논란을 감안해 재개발 방향에 적합하게 인허가가 이뤄지길 바란다’고 회신했다. 인허가권을 쥔 시가 알아서 하라는 말이다.
시는 비판 여론을 우려해 골머리를 앓는 분위기다. 심의를 여는데 필요한 서류 등 객관적 요건만 갖춰진다면 평가 요청을 반려할 명분이 없기 때문이다. 예정대로 교통영향평가가 열린다면 심의는 내년 2월 진행된다.
국제신문 신심범 기자 mets@kookje.co.kr
해상풍력발전, 지역 주민들까지 반발
‘해운대-청사포 대책위’ 항의 시위
30일 해운대문화회관 앞에서 지역 주민들이 청사포 앞 해상풍력발전 설치를 두고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장병진 기자
그린뉴딜사업의 대표적인 분야인 해상풍력발전에 대한 반발이 거세다. 기존에는 조업에 영향을 받는 수산업계가 중심이 된 반발이었다면 최근에는 지역 주민들까지 가세하고 있다.
30일 오후 2시 부산 해운대구 해운대문화회관에서는 '제14회 부산에너지전환포럼'이 '부산의 에너지전환과 해운대 해상풍력 추진의 과제'라는 주제로 열렸다. 시민단체 부산에너지시민연대에서 정기적으로 진행하는 행사였지만 이날 포럼에는 이례적으로 해운대 중동, 좌동, 송정동 지역 주민들 10여 명이 항의 방문했다. 이날 포럼은 코로나19로 인해 인원 제한이 30명으로 제한됐다.
지역 주민들은 '해운대-청사포 해상풍력발전대책위'를 꾸려 조직적인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다. 참여인원은 30일까지 100여 명이다. 대책위 관계자는 "청사포는 난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는 해운대의 마지막 자연 촌락이며 생태, 힐링 관광지로서 발전가능성이 높다"며 "청사포의 자연 풍광을 지킬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말했다.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해운대구 역시 지난 28일 이례적으로 '주민 동의 없는 청사포 해상풍력 설치 불가'라는 자료를 냈다. 홍순헌 해운대구청장은 "사업이 추진될 부지는 어업 보호 구역으로 사업 규모가 큰 만큼 구민들의 의견수렴이 중요하다"며 "국가정책인 그린뉴딜에는 동의하나 해양생태계파괴, 어업권 침해, 경관 저해가 우려되기에 주민 수용성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해상풍력발전단지 추진은 반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업이 하나둘 진행됨에 따라 지역 어업인들의 반발도 거세지고 있다. 전국연안어업인연합회 소속 어업인들은 29일 회의를 열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이들은 부산, 경남, 울산 지역 연대를 통해 해상풍력발전사업에 대한 문제점을 강력하게 주장할 계획이다. 청사포 해상풍력발전 예정지는 자망, 근해통발의 주요 조업지다. 또 인근에 계획된 기장 앞바다인 93해구, 94해구에 해상풍력이 들어선다면 대형선망, 근해통발, 저인망 어선의 조업이 방해를 받을 수밖에 없다.
전국연안어업인연합회 김대성 회장(경남정치망수협 조합장)은 "풍속 6m, 수심 50m 미만 등 해상풍력의 최적지는 한류·난류 교차해역의 얕은 수심을 조건으로 하는 연안어업의 최적지와 중복될 수밖에 없다"며 "가장 중요한 조업지를 가져간다는데 찬성한다는 어민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향후 해상시위, 서명 운동 등으로 반대 운동을 본격화한다는 계획이다./장병진 기자 joyful@busan.com
부산대 부설 특수학교 설계 당선작 ‘숲의 가치’ 살렸다
부산대학교 부설 예술중고등 특수학교 설계 당선작. (주)가가 건축사사무소 제공
포르투갈 작은 도시 가판하의 ‘보아 호라 스쿨 센터’는 숲과 일체화된 학교 건축 설계로 유명하다. 하지만 우리의 학교 건축은 대부분 학생들을 통제하고 관리해 이른 시간에 적정 수준의 일꾼을 기르기 위한 획일적 구조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건축가 유현준은 “우리의 학교 건물이 교도소와 비슷하다며 아이들의 성장을 위해 당장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그의 주장에 최근 우리나라 학교 공간도 하나둘 획일성에서 탈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발맞추듯 부산시교육청도 3년여 전부터 신·개축되는 학교를 학생들의 눈높이와 학교 특성에 맞춰 새롭고 다양한 형태로 건축키로 한 바 있다.
지역 내 이런 움직임을 보여주는 게 최근 ‘부산대학교 부설 예술중고등 특수학교 신축공사 설계공모(발주처 부산대)’ 당선작이다. (주)가가 건축사사무소(대표 안용대)에서 설계한 당선작은 연면적 1만 4936㎡에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의 특수학교 건물을 부산 금정구 부산대 대운동장 인근에 짓는 것으로 돼 있다. 당선작의 가장 큰 특징은 숲과 운동장을 연계한 건축이라는 점, 건물을 짓기 위해 오래된 울창한 숲을 없애지 않았다는 점이다.
“금정산 자연 숲 훼손한다”
환경단체 부지 선정 반발
‘가가 건축사사무소’ 설계 보니
‘숲과 일체화된 학교’ 눈길
반대했던 환경단체도 호평
부산대학교 부설 예술중고등 특수학교 설계 당선작(투시도). (주)가가 건축사사무소 제공 부산대학교 부설 예술중고등 특수학교 설계 당선작(투시도). (주)가가 건축사사무소 제공
학교가 들어설 자리는 앞서 환경단체들이 “학교가 들어서면 자연 숲을 훼손한다”며 반대가 있었던 곳이다. 하지만 (주)가가 건축에서 설계한 당선작은 기존 학교 건축의 획일성에서 탈피해 ‘숲과 함께하는 학교 건축’을 구현해 눈길을 끌고 있다. 더욱이 학교가 자연스럽게 숲의 가치를 배우는 장소가 됐다는 점에서 좋은 사례로 평가된다.
가가 건축 안용대 건축가는 “부지 선정 문제로 사회적 갈등이 있었고, 민·관·학(부산시, 부산대, 관련 민관 단체) 합의로 사업이 진행된 만큼 부담감도 있었다. 그래서 오래된 숲을 보존해야겠다는 생각이 우선이었다. 또 숲을 살려 숲이 단순히 보는 공간이 아니라 아이들을 위한 놀이와 학습, 생태와 자연 탐구의 공간이 될 수 있도록 했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부산대가 금정산 자락에 특수학교를 설립하게 되면 금정산 숲 훼손이 불가피하다며 이를 반대해 왔던 환경단체조차 이번 설계안에 대해서만큼은 일단 긍정적으로 바라볼 정도다. 부산그린트러스트 이성근 상임이사는 “과거엔 숲을 훼손하고 건물을 세우는 경우가 허다했다. 하지만, 당선작은 숲 훼손을 최소화해 자연과 공존할 수 있는 방식을 제시했다. 이는 당초 우리가 요구했던 부분(대학교 대운동장 스탠드 부지 일부 특수학교 부지로 제공 등)을 충실하게 반영한 의미 있는 진전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장애인 학부모 입장을 대신해 건축 설계안 심사과정에 참관했던 (사)한국자폐인사랑협회 부산지부 김석주 부지부장은 “학교 중앙에 교장실을 배치하던 기존 방식에서 탈피해 학교 입구 쪽에 교장실을 배치한다든지, 숲을 울타리로 해 학교 정원처럼 활용할 수 있게 한 점, 기숙사 조도와 기숙사 배치 등에서 학생 입장을 고려해 신경 쓴 부분이 좋게 보였다”고 말했다. 덧붙여 김 부지부장은 “이게 끝이 아니라 건축이 완공될 때까지 내부 자재 사용하는 것, 표지판 하나 다는 것까지 서로 소통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학교 혁신, 교육 혁신이 이루어지려면 학교 공간이 먼저 변할 것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높다. 더불어 건축계와 교육계는 학교 공간을 탈바꿈하는 시도를 조금씩 하고 있다. <학교의 품격>의 저자 임정훈은 “학교 운동장이 나무가 울창하고 꽃이 아름다운 숲처럼 변하고, 운동장 주변으로 학생들과 교사들이 삼삼오오 거닐 수 있는 오솔길(둘레길)이라도 만들어 자연과 인간의 관계와 경험이 확장될 수 있다면 좋겠다”고 했다.
한편 부산대 부설 예술중고등 특수학교는 장애 학생에게 예술 교육을 체계적으로 제공하는 국내 최초이자 세계 2번째로 설립되는 전국 단위 특수학교로 부산대 대운동장 인근에 2022년 개교를 목표로 들어설 예정이다.
정달식 선임기자 dosol@busan.com
10년 동안 7500만마리 떼죽음…예방할 대안은 없나
10년 동안 닭·오리 7500만마리 살처분
“사후 수습보다 발생 예방 대안 찾아야”
방역당국이 지난 11일 전남 장성의 한 오리농장에서 예방적 살처분을 준비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10년 동안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발생으로 살처분당한 전국의 닭·오리 수는 7500만마리다. 살처분에 들어간 예산은 8619억원에 이른다. 올해도 전파력이 강한 H5N8형이 번지고 있어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전망이다. 방역당국이 ‘원인을 막는 처방’보다는 ‘발생 뒤 살처분’을 반복하면서 이제는 대안을 찾을 때가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금류의 살처분은 17년 전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가 국내에 처음 발생했을 때 도입됐다. 전염성과 폐사율이 높은 조류인플루엔자의 확산을 막기 위해 2003년 528만마리(874억원)가 희생됐다. 조류인플루엔자는 이후 2~3년을 주기로 반복되며 갈수록 피해 지역이 넓어지고 피해 규모가 불어났다. 애초 소극적이었던 방역당국의 살처분은 차츰 적극적·공격적 방향으로 강화됐다. 살처분 범위가 초기 발생농가의 반경 500m에서 3㎞로 확대된 것이 대표적이다. 이에 따라 H5N8형이 번진 2014년엔 2477만마리(3364억원), 2016년엔 3807만마리(3621억원)가 떼죽임을 당했다.
방역당국은 “오염된 닭똥 1g은 조류 100만마리까지 감염시킬 수 있다”며 감염원 차단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당국은 철새의 이동을 전파 경로로 보고 농장으로 바이러스가 유입되지 않도록 예방활동을 하지만, 일단 발생했을 때 농장과 시설 사이 수평전파를 막는 데 집중한다. 이를 위해 발생 농장의 반경 500m 안은 관리지역, 반경 3㎞ 안은 보호지역, 10㎞ 안은 예찰지역으로 설정해 원인 제거와 이동제한 등으로 대응한다.
지금 방역지침으로 보면, 발생 농장에서 H5형 항원이 검출되면 500m 안, 고병원성으로 판명되면 3㎞ 안의 닭·오리는 한 마리도 살아남지 못한다. 중국 등 일부 국가에서는 백신정책을 쓰고 있지만 방역당국이 이를 도입할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유형이 많기 때문에 접종 효과를 확신할 수 없고 바이러스의 변이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대응이 복잡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투여할 비용도 만만치 않다. 일부에선 백신을 접종한 식품을 소비자가 꺼려한다는 점을 들기도 한다.
수의사 김아무개씨는 “살처분은 발생 뒤 수습책이다. 발생하지 않도록 면역력을 높이는 백신 접종과 시설 개선도 고려해야 한다. 계열사에도 농장주한테도 책임을 묻기 어려운 생산유통체계도 바꾸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가금류 사육은 대부분 소수 기업에 계열화되어 있다. 오리의 경우 계열화한 농장주는 42일 동안 길러 마리당 1300~1400원에 출하하고 약품비·왕겨비를 뺀 400~500원을 남기기 때문에 수익이 낮은 만큼 책임감도 약할 수밖에 없다. 계열사도 방역의무 소홀(가축전염병예방법 위반)로 적발돼도 과태료 1천만원의 가벼운 제재만 받고 넘어가는 탓에 예방에 비용과 인력을 투입하도록 기대하기 어렵다.
이 밖에도 방역의 효율을 위해 발생지 주변에서 판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재 검사는 이원화되어 있어 신속성이 떨어진다. 조류인플루엔자 의심 사례가 발생하면 1차로 시도 동물위생시험소에서 H5 항원인지를 검사하고, 2차로 경북 김천의 농림축산검역본부에서 고병원성인지를 판단한다. 고병원성 판별까지 1~3일이 걸린다.
이 때문에 시도 동물위생시험소나 용인·천안·광주·제주 등 10곳의 검역본부 방역센터를 활용해 대응 속도를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한 공무원은 “검역본부에는 시험소에서 H5 항원을 검출한 검체와 다시 농장에 가서 채취한 새로운 검체 등 두 종류를 보내야 한다. 시험소의 기술력이 충분한데도 판정에 하루 이상 시간을 끌고, 똑같은 과정을 두 차례 반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검역본부는 “전염병 진단은 속도보다 정확성이 더 중요하다. 고병원성 판정이 대개 하루 안에 이뤄지고, 항원 검출 뒤 즉각 이동제한을 걸기 때문에 대응이 더뎌지지 않는다”고 밝혔다.
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생지옥’ 살처분… “밤마다 닭이 달려드는 악몽에 시달려”
조류인플루엔자로 겪는 ‘생지옥’ 살처분
농장주 “밤마다 닭이 달려드는 악몽 시달려”
야생조류가 하늘에서 던지는 ‘폭탄’ 어찌 막나
“획일적인 예방적 살처분 3㎞ 실효성 검토해야”
트집 잡아 쥐꼬리만큼 주는 보상금도 불만
지난 17일 조류인플루엔자(AI) 항원이 검출된 경기도 화성시의 한 산란계 농장에서 방역 관계자들이 살처분 준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날벼락이나 참담하다는 말로는 부족해요. 그저 대역죄인이 된 느낌이라고밖에는….”
전국에서 발생하는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피해를 겪은 농민들은 이런 말을 서로 짠 듯이 토해냈다.
4년 전 산란계 16만8천마리를 살처분했다가 이번에 또다시 19만3천마리를 ‘가슴에 묻은’ 경기도 여주시 한 농장주는 “이제 손들었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지난 6일 닭 천마리가 폐사해 신고한 뒤 이틀 만에 일사천리로 진행된 살처분 현장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올해만 그렇다면 어찌 버텨 보겠는데, 내년이라고 또 안 터지겠느냐. 이제 사료회사에서 압류 들어오고 농장이 경매처분되는 절차밖엔 남지 않았다”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 농장은 올해 경기도 지역에서 처음으로 조류인플루엔자가 발생했다. 1천여마리의 닭이 폐사해 간이검사 결과에서 ‘양성’ 판정을 받았을 때만 해도 ‘설마’와 ‘제발’을 되뇌며 정밀검사에서 판정이 뒤집히길 바랐다. 하지만, 허사였다. 농장주는 “폐사 직전, 닭 8만여마리를 새로 들여와 소득을 기대했는데 알 한번 낳지 못하고 모두 살처분됐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지난달 중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 소식을 듣고 광역이동초소와 마을 입구 방역초소, 농장 입구 자체초소 등에서 3중 방역을 했지만, 재앙을 막지 못했다. 이 추운 겨울을 어떻게 나야 할지…”라며 망연자실했다.
날마다 사료와 물을 챙겨 주며 온갖 정성을 쏟아부었지만, ‘하늘에서 마구 던지는 폭탄’에 비유되는 조류인플루엔자 때문에 모조리 살처분해야만 하는 농민들의 정신적 상처도 심각하다. 당국은 혹시 모를 인체 감염 우려를 차단하기 위해 의심축(감염 의심 가축) 발생 즉시, 해당 농장의 닭과 오리를 살처분한다. 고병원성으로 확진될 경우 발생 농장 3㎞ 이내 가금농장에 대해서도 가차 없이 ‘예방적 살처분’을 진행한다.
농장주는 살처분 진행 과정에 직접 참여한다. 방역 관계자들과 함께 분주히 개체 수를 헤아리면, 살처분법 사전 교육을 마친 수십명의 방역요원이 보호복과 고글 등을 갖춰 입고 농장에 들어선다. 방역요원들은 살처분 과정에 쓰일 이산화탄소 가스 용기를 각 사육동 앞에 두고, 아무런 영문도 모르고 죽음을 준비해야 하는 닭과 오리들을 한곳으로 내몬다. 대형 비닐과 마대자루에 이들을 마구 잡아 쓸어 담은 뒤, 가스를 주입한다. 말은 ‘안락사’지만, 죽어가는 닭과 오리는 물론 이를 지켜보는 이들에게도 ‘생지옥’이다.
충남 천안시에서 12만마리 규모의 산란계 농장을 운영하다 2016년과 2017년 두 차례 피해를 겪은 ㅂ씨는 “칠순이 넘은 아버지는 이를 지켜보시다 병석에 누우셨고, 나도 꿈속에서 닭이 달려들어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며 “결국 다 때려치우고 잠시 다른 일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배운 게 도둑질이라 다시 농장을 시작했지만, 지금은 또다시 그 공포와 두려움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털어놨다. ㅂ씨는 “내가 키우던 살아 있는 닭을 내 앞마당에 묻고 그곳에서 다시 생계를 이어나가는 농민들의 고통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며 “죄를 지은 것 같은 부담감 때문에 상담치료는커녕 밥도 못 먹고 시름시름 앓다 양계를 포기하는 사람도 한둘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살처분된 닭과 오리는 농장 인근 구덩이로 옮겨지며, 온도조절·공기공급 장치를 통해 자연 퇴비(호열호기성 미생물 처리)로 처리된다. 또는 가금류의 사체를 고온멸균처리한 뒤 기름 성분을 짜내 재활용하고 잔존물을 퇴비나 사료 원료로 활용하는 렌더링 방식을 쓰기도 한다.
지난 11일 전남 장성의 한 오리농장 주변에서 방역당국 관계자들이 살처분 뒤 사체를 처리할 방식인 ‘렌더링’을 준비하고 있다. 이는 사체를 고온멸균처리한 뒤 기름 성분을 짜내 재활용하고 잔존물을 퇴비나 사료 원료로 활용하는 것을 말한다. 연합뉴스
모두에게 아픔일 수밖에 없는 이런 살처분을 놓고 논란은 여전하다. 과연 이 방법밖에 없느냐는 것이다. 동물친화적인 방식으로 닭을 사육하는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의 산안마을농장은 지난 27일 성명을 내어 “예방적 살처분 행정명령 집행을 중지해달라”라고 정부에 요구했다. 이들은 중국이나 일본, 미국 등은 살처분을 제한적으로 하고 있다”며 “우리 정부는 (조류인플루엔자 발생지로부터) 거리만 따져 일괄적으로 살처분하는 무자비한 행정을 펴고 있다”고 말했다.
양계업계의 한 전문가는 “올해 유럽 등지에서 대규모 살처분이 있었다. 하지만 반경 3㎞ 전체를 살처분하는 나라는 많지 않다”고 전했다. 그는 “예방적 살처분이 방역에 도움을 주는 것은 맞지만, 일률적 적용으로 인한 부작용과 불만도 없지 않은 게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최근 충남 천안에서 40여마리의 관상용 거위를 키우는 농원에서 집단 폐사가 일어났는데, 반경 3㎞ 안에 있는 닭과 오리 60만마리를 살처분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전해 들었다. 관상용이라 출하할 일도 없을 터인데, 엄청난 피해가 뒤따르는 획일적 살처분을 할 필요가 있는가”라고 되물었다.
살처분에 따른 보상에도 불만이 많다. 역학조사 과정에서 농장 쪽의 과실이 없을 경우 시가의 80%를 보상하지만, 농가 피해 복구에는 어림없는 수준이다. 살처분과 매몰, 소독 등 방역 작업을 마치고 상황이 잠잠해질 때까지 최소 3~6개월간 새끼 닭·오리를 들이는 것도 불가능하다.
천안의 산란계 농장주는 “달걀은 매일 생산되는 것이기 때문에 6개월 정도 지나면 거래처가 없어진다. 자체적 판매능력이 없고 자체 브랜드도 없기 때문에 재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양계업은 완전 자동화 설비를 갖춰야 하는 고비용 장치산업이다. 본인 인건비와 농장 유지비를 생각하면 보상받는 비용은 최소 생계유지에도 힘든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살처분에 따른 보상체계는 발생 농장은 무조건 20%를 깎고, 두번 발생하면 다시 20% 깎고, 소독 준수 여부 따져 5% 또 깎아버린다. 10만마리를 살처분하고 8억원을 받았다고 보면, 6개월 후에 다시 닭을 들여와야 하는데 10만마리가 알을 낳을 때까지 8억원이 그대로 들어가야 한다. 나머지는 모두 다시 빚덩어리가 되는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환경운동가 출신인 이항진 여주시장은 “조류인플루엔자는 국제사회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풀어야 할 ‘또 다른 코로나19’라고 본다. 야생 조류가 물어다 던지는 폭탄 세례의 책임을 개별 농가의 방역 문제인 것처럼 바라보면 지금 같은 악몽은 되풀이하게 된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국제사회와 공조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기성 이정하 기자 player0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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