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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시사만평-주간 쟁점

5.22~28 노무현 대통령 7주기에 보는 세상 -그가 보고 싶다

by 이성근 2016. 5. 28.

 

527 경향-531 주간경향

 

박근혜 정부 3···우리 삶은 나아졌나(업데이트) 522경향

7년 전 노무현을 죽음으로 몰아갔던 사람들

이제는 돌아와 후배칼날 앞에 선 정치 검사’ 527 한겨레

폐족에서 패권주의까지, ‘친노’ 15년 굴곡의 역사 524 미디어오늘

'우남찬가'·'니가 가라 하와이' 이승만 풍자시, 수천만원 고소 524 노컷뉴스

삼성 백혈병 8, 언론은 어떻게 보도했나 521 미디어오늘

'흙수저 학생들, 이정도 일줄이야' 섬뜩한 현실 다큐 영상524 국민

KBS 북풍보도 얼마나 했을까 522 미디어오늘

막말탱크논란 TV조선 시사탱크’ 4년 만에 폐지 523 미디어오늘

'진짜 남자' 꿈꾸던 그, 왜 살인범이 됐나 523 오마이뉴스

이유있는 언니들의 분노통계로 짚어봤습니다 524 한겨레

사건의 본질에 침묵한 채 가해자의 특징만 부각하는 언론 524 오마이뉴스

한국인 최초 맨부커상 수상 한강은 누구인가 517 오마이뉴스

아버지와 대화하기, 직장상사보다 어렵다 524 오마이뉴스

찬사와 폄하, 우리가 몰랐던 반기문의 민낯’525 한겨레

언론 "반기문, 역대 최악의 유엔 사무총장" 523 프레시안

재벌 사내유보금 ‘754조원환수라는 해법 524 경향

원폭 투하 진짜 이유 "일본인은 짐승" 프레시안 525

오키나와-히로시마, 오바마 두 발 채운 족쇄

러시앤캐시는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 524 프레시안

한국일보 사설] 영남권 신공항 이번엔 정치권 간섭 없어야 527

오바마, 한국인 희생 언급했지만 위령비 지척서 귀로’ 527한국

경상도 보수성 헤치고 지역 `NGO` 살아나라 527 경북매일

신인령 전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 이사장 “MB정부로부터 여러 차례 시달렸다” 5.3 주간경향

부탄이 WTO에 가입 않은 이유는? 518 한겨레21

 

 

 527한국-한겨레

 

 

   527중앙-내일

 

 

     526한국-한겨레

 

 

    526 중앙-민중의 소리

 

 

   대구매일-526 내일

 

 

    526 국민-경향

 

 

  525 한국-한겨레

 

 

 525중앙-민중의 소리

 

 

    525 대구매일-내일

 

 

   525 기호-국민

 

 

   525경향-524한국

 

 

이창우 -5.24 금강

 

 

 524한겨레-중앙

 

 

   524민중의 소리-대구매일

 

 

    524 내일-미디어오늘

 

 

   524 국민-경향

 

 

   523한국-한겨레

 

 

   중앙-523 시사인

 

 

 523민중의 시대-대구매일

 

 

   내일-523-국민

 

 

 523 경향 -522 민중의  소리

 

 

 522 대구매일-국민

 

 

 5.23-27 경향 장도리

 

 

 

 

 

박근혜 정부 3···우리 삶은 나아졌나(업데이트) 522경향

박근혜 정부가 지난 225일 출범 3년을 맞았습니다. 청와대는 이를 기념해 같은달 23일 낸 정책 모음집에서 평화통일 기반 구축, 역사교과서 국정화, 일본군 위안부 협상 타결, 전작권 전환 연기 등을 그간의 업적으로 꼽았습니다.. 경제 분야에서는 경제민주화 실천, 국내총생산(GDP) 및 고용률 증가, 소득 분배 수준 향상 등을 내세웠습니다. 박 대통령은 욕을 먹어도 좋다는 각오로, 오로지 대한민국 정상화를 위해 비정상적인 요인을 바로잡았다고 밝혔습니다. 한마디로 정치·외교·안보 분야는 물론이고 경제·사회 분야에서도 못한 게 없다는 얘기입니다.

 

위안부 협상·역사 국정화·개성공단비판 여론 무시한 채 치적으로 포장

 

[사설]박근혜 정부 3년 치적 자랑 부끄럽지 않나

지난 3년의 평가는 시각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집권자 입장에서는 지나온 길에 대해 나름 평가를 받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의 자화자찬은 듣기 거북하기만 합니다. 과연 지난 3년간 한국인들의 삶은 나아졌을까요. 지난 3년을 평가해 볼 수 있는 구체적인 수치가 담긴 기사들을 모아봤습니다. *지난 31일 전송한 기사를 311(‘청년 소득 감소내용 추가)에 이어 2번째 업데이트 했습니다.

 

40대 일자리, 25년만에 최대폭 감소

2016440대 취업자가 52000명 줄어들면서 월별기준 감소폭이 1991년 이후 25년만에 최대를 기록했습니다. 수출이 줄어들고 금융산업 부진이 계속되면서 제조업과 금융업에서 잇달아 명예퇴직과 정리해고를 한 것이 주요 원인입니다. 청년실업률도 10.9%를 기록, 4월 기준 역대 최고를 기록했습니다. 20대 취업자수는 늘었지만 취업을 원하는 청년들의 수요를 도저히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달 이후 조선·해운업 등에 대한 구조조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고용 사정은 더 악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40대 일자리, 25년만에 최대폭 감소

청년 소득 감소

지난해 20~30대 청년가구의 소득 증가율이 사상 처음으로 감소했습니다. 청년 실업률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데다 비정규직 비중이 늘면서 소득이 줄어든 것으로 보입니다. ·월세 급등으로 주거비 부담이 커지면서 청년층 소비도 줄었습니다. “단군 이래 부모보다 못사는 세대의 첫 출현이라는 청년들의 자조(自嘲)가 현실로 증명되고 있는 셈입니다.

 

2030 소득·지출 사상 처음 감소

청년들, 지갑 얇아지자 허리띠 더 졸라맸다

 

노인빈곤

지난해 65세 이상 노인 비경제활동인구 증가율은 2005년 이후 1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대졸 이상 비경제활동인구는 15년 전보다 2배 이상 늘었습니다. 청년과 노인층이 동시에 소득 절벽에 직면하면서 쌍봉형 빈곤’(쌍봉낙타처럼 부모와 청년 세대가 동시에 빈곤해지는 현상)이 점차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청년·노인 쌍봉형 빈곤고착화

새로 노인 된 10명 중 8비경제활동인구

 

사교육비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사교육비가 3년 연속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지난해 1인당 사교육비는 월평균 244000원으로 2007년 사교육비 조사 이후 최고치를 다시 경신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사교육비 경감을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지난 정부에서 줄여놓은 사교육비를 현 정부에서 다시 조금씩 올리고 있는 것입니다.

 

244000사교육비, 박근혜 정부 3년째 늘어

 

주거비

주택 시장에 전세 물량이 부족한 전세난이 심각했던 지난해 각 가구별 월평균 주거비가 20%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아파트 매매가 상승률에 비해 전국 평균 가구 소득은 또다시 작은 폭으로 올라 아파트 매매에 필요한 시간은 더욱 길어졌습니다. 지난달 28일 나온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자료를 보면, 지난해 전국 2인 이상 가구의 월평균 실제주거비는 74227원을 기록했습니다. 이는 2014년의 61423원보다 20.8% 증가한 수치입니다. 자가나 전셋집에서 사는 가구는 매월 주거비 명목으로 내는 비용이 없어 자가·전세가 많을 수록 주거비는 적게 잡힙니다. 전세 물량이 부족해 세입자들이 울며 겨자먹기로 월세를 선택하는 경우가 늘면서 월평균 주거비액수도 늘어난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해 전·월세 거래량 중 월세의 비중은 44.2%를 기록해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2011(33%) 이후 최대치를 경신했습니다.

 

'전세난'에 월평균 주거비 사상 처음 7만원대서울 아파트는 '숨만 쉬고' 13년 모아야

 

노동시간 및 근속시간

통계청이 지난해 발표한 조사를 보면 한국 전체 임금노동자의 평균 근속기간은 6.1년입니다. 노동시간은 세계 최장 수준이지만 줄어들고 있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2014년 통계에서 한국인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2057시간을 기록했습니다. 물론 OECD 평균(1796시간)보다는 여전히 훨씬 많습니다. 멕시코(2327시간), 칠레(2067시간)에 이어 세 번째로 깁니다. 그나마 2013년의 2163시간보다는 감소했습니다.

근속시간을 다시 볼까요. 통계청이 발표한 ‘2015 한국의 사회동향에서 국내 임금노동자의 평균 근속기간은 6.1시간으로 집계됐습니다. 임금근로자의 52.8%3년 미만 단기 근속자였습니다. 10년 이상 근속자는 20.6%에 그쳤습니다. 절반이 한 직장에서 3년도 일하지 않으며, ‘노동개혁에서 강조하는 장기근속자는 5분의 1에 불과했습니다. 지난해 하반기만 해도 매달 1600만명 이상이 이직했습니다. OECD 국가의 5년 이상 근속자 비중은 평균 53.4%입니다.

 

노동시간은 길고 근속기간은 짧다

가계빚

지난해 말 기준으로 가계부채가 1200조원을 넘어서며 사상 최대치를 또 경신했습니다. 박근혜 정부 들어 3년간 늘어난 가계빚은 243조원이 넘습니다. 금리를 낮춰 돈을 풀어 소비와 투자를 자극하겠다던 기대효과는 사라지고 부동산시장의 거품을 키우고 빚만 늘린 셈입니다. 오히려 빚에 짓눌려 소비 여력이 줄어든 가계가 지갑을 열지 못하면서 내수가 더 위축되고 경기 부진이 장기화하는 악순환이 우려되고 있습니다.

 

1207조원가계빚 사상 최대

 

저출산

이렇게 삶이 팍팍하니 젊은이들은 결혼을 할 수도, 또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를 낳을 수도 없습니다. 지난해 출생아 수에서 사망자 수를 뺀 자연증가 인구는 163000명으로 역대 최소였습니다. 1000명당 자연증가 인구수를 의미하는 자연증가율도 3.2명으로 역대 최저였습니다. 저출산 초기에는 아이가 적게 태어나도 수명이 늘어나면서 전체 인구가 줄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출산이 심해지고, 고령인구가 본격 사망하기 시작하면 인구는 줄어들고, 한번 인구가 줄어들면 흐름을 바꾸기 어려워집니다. 현 상태로 가면 2028년에 자연증가율이 0명이 되고, 2030년부터는 한국 인구가 감소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3.2자연증가율 역대 최저

박근혜 대통령이 공약했던 잠재성장률 4%, 고용률 70%, 국민소득 4만달러’, 이른바 ‘4·7·4공약은 애초부터 쉽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그 정도는 눈감아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수출·내수 침체, 청년 실업, 전셋값 폭등, 가계부채 급증은 뭐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또 지난 3년간 대한민국이 정의롭고 공평한 사회가 되고, 삶의 질이 나아졌다고 여기는 시민은 얼마나 될까요. 박 대통령에게 남은 시간은 이제 2년이 채 되지 않습니다.

 

7년 전 노무현을 죽음으로 몰아갔던 사람들

한상률, 이인규, 홍만표, 우병우, 그리고 이명박, 여전히 잘 나가는 그들

 

홍만표 당시 대검찰청 수사기획관 노무현 망신주기 검찰 소환쇼 진두지휘; 최근 정운호 게이트에 연루-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 노전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에게 3억을 빌려줬다고 증언 : 박회장은 노전대통령과는 무관한 세금포탈과 뇌물공여 등의 혐의로 징역 26개월을 채우고 만기 출소

이인규 노전 대통령의 수사를 진두지휘 했던 대검중수부장 : 2015년 박연차 회장이 1악짜리 시계를 줬다는 언론보도는 국가정보원의 공작이었다고 밝힘

박회장으 세금포탈 혐의를 조사했던 한상율 국세청장 413 총선 새누리공천신청을 냈다가 탈 락 후 무소속 출마 낙선

한상율 청장이 이명박 전대통령에게 태광실업 세무조사 내용을 독대보고 했다던 안우너구 전 국세청장도 6개월 실형을 살고 나왔음

노 전대통령 수사의 주임검사였던 우병우 당시 중수1과장-검사장 승진에서 물먹과 나와 변호사업을 개업했다가 2014년 청와대 민정수석 : 정윤회게이트 때 해결사 역할

 

노 전대통령의 수사는 한상률이 안원구에게 박연차의 태광실업에 대한 세무조사를 지시하거 이인규와 홍만표, 우병우등이 노 전대통령을 집요하게 공격함으로서 자살로 몰아감.

 

 

 

이제는 돌아와 후배칼날 앞에 선 정치 검사 527 한겨레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전관 로비 의혹에 연루된 홍만표 변호사가 27일 오전 소환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들어서면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홍 변호사는 탈세와 변호사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2009년 봄 홍만표는 새 정권(이명박 정권)의 입맛을 맞추려다 무리수를 두고 말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불러온 박연차 게이트 수사는 홍 변호사에게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검사라는 주홍글씨를 남겼다.

 

홍 변호사는 당시 대검 수사기획관으로 수사에 참여했다. 수사기획관은 피의자를 직접 조사하지는 않지만 대검 중수부장의 참모 구실을 하면서 수사 상황을 보고받고 언론에 그 내용을 적절한 수준에서 브리핑한다. 특히 언론 브리핑은 수사기획관의 가장 중요한 임무다. 수사기획관이 언론 보도를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하면 검찰 수사가 본궤도에 진입할 수 없다. 언론이 제기한 의혹을 따라가다가 볼일 다 보거나, 언론에 수사 기밀이 미리 보도돼 수사를 망치기도 한다. 대형 수사의 성공에는 언론의 우호적인 보도도 한몫을 한다.

 

검찰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소환을 일주일가량 앞두고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노 전 대통령의 생일 선물로 스위스 명품 브랜드 시계 2개를 선물했다는 진술을 언론에 슬쩍 흘렸다. 노 전 대통령 쪽을 압박하려는 명백한 언론 플레이였다. 당시 일부 언론들은 이를 경쟁적으로 보도하기에 바빴다. <한겨레> 자료사진

 

‘1억원짜리 노무현 시계언론 흘려

당시 수사팀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 내용을 실시간으로 언론에 흘렸다. 이 수사는 정치적 의도가 너무나 노골적으로 드러났기 때문에 수사 초기 여론은 매우 부정적이었다. 노 전 대통령 지지 세력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따라서 정권의 의도대로 노 전 대통령을 형사처벌하기 위해서는 여론을 검찰 수사에 우호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었다.

 

당시 검찰은 무죄추정 원칙이나 피의사실 공표 논란 등은 전혀 관심 없다는 듯 박연차씨를 비롯한 사건 관계자들의 진술을 언론에 마구 흘렸다. 노 전 대통령 쪽의 반론권은 전혀 보장되지 않았다. 검찰의 고삐 풀린 언론 플레이는 검찰 안팎에서 크게 논란이 됐는데, 그 중심에 홍만표 수사기획관이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된 것은 노 전 대통령 부부의 1억원짜리 피아제 시계 관련 보도였다. 노 전 대통령의 소환을 일주일여 앞둔 2009422일 검찰은 박연차씨가 노 전 대통령의 생일 선물로 스위스 명품 브랜드인 피아제 시계 2개를 선물했다는 진술을 언론에 슬쩍 흘렸다. 시가 1억원짜리 시계라는 설명도 곁들였다. 소환 조사를 앞두고 노 전 대통령 쪽을 압박하기 위한 의도가 명백한 언론 플레이였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의 변호인단을 이끌었던 문재인 전 비서실장은 강하게 반발했다. 사실로 확인되지 않은 일방적 진술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검찰이 지금 그런 말을 흘리는 의도가 뭔가? 노무현 대통령 망신 주자는 거 아닌가? 내 말을 (기사에) 꼭 넣어 달라. 검찰 참 나쁜 사람들이다. 내 이름으로 꼭 이 말을 써달라. 참 나쁘다며 격한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홍만표 수사기획관은 부랴부랴 불끄기에 나섰다. 이튿날 대검 별관 2층 식당에 마련된 임시 브리핑룸을 찾은 그는 어두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오늘 아침 시계 보도 건 때문에 많이 시달렸다. 이 건은 확인해줄 수 없다는 게 공식 입장이다. 오늘 아침 신문을 통해서 문재인 변호사가 검찰이 노 전 대통령 망신 주기 위해 흘렸다면 나쁜 행위, 나쁜 검찰이라고 한 거 이해가 가고 기분이 엄청 나빴을 거라 생각한다.” 그는 기사에 인용된 검찰 관계자를 나쁜 빨대(언론에 수사 내용을 비공식적으로 흘리는 소식통)’라고 불렀다.

 

홍 기획관은 검찰이 만일 그런 내용을 흘렸다면 해당자는 진짜 인간적으로 형편없는 빨대다. 우리 내부에 형편없는 빨대가 있다면 상당히 실망스럽다. 빨대를 색출하도록 하겠다. 비장하게 말하는 거다. 노 전 대통령이 수사 이외에 다른 것으로 고통받지 않도록 신중하게 하겠다고 말했다. 자신은 이 보도와 전혀 관계가 없음을 강조하려는 듯 빨대 색출에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빨대 색출은 이뤄지지 않았고 검찰의 언론 플레이는 계속됐다. 그 농도는 오히려 더 짙어졌다. 노 전 대통령을 소환조사한 뒤 당시 임채진 검찰총장을 비롯한 검찰 수뇌부가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자 2주 뒤인 513더 나쁜빨대가 등장했다. 그날 저녁 한 방송사는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씨가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선물받은 피아제 시계들을 논두렁에 버렸다고 보도했다. 선물로 받은 시계가 법적으로 문제가 될 것 같다고 판단한 노 전 대통령 부부가 증거인멸에 나섰음을 주장하는 기사였다.

 

이 보도로 노 전 대통령은 큰 타격을 받았다. 여전히 사실로 확인되지 않은 일방적인 보도였으나, 세상은 그를 몰염치한 인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인터넷에는 시계 찾으러 봉하마을로 떠나자는 등 그를 조롱하는 각종 패러디가 난무했다. 그로부터 10일 뒤인 523일 노 전 대통령은 세상을 떠났다.

 

홍 변호사는 논두렁 시계보도의 출처로 의심받아 당시 우병우(현 청와대 민정수석) 대검 중수1과장과 함께 피의사실 공표 혐의로 고발당했다. 임채진 검찰총장과 이인규 중수부장이 사표를 낸 뒤였다. ‘논두렁 시계보도 직후 홍 변호사는 당시 몇몇 방송 기자들한테 노 전 대통령 부부의 정원 산책 장면이 담긴 동영상이 한 신문사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있음을 알려줬다는 말이 기자실에 퍼졌다. 그의 행동은 이 동영상이 노 전 대통령 부부의 시계 증거인멸과 관련이 있다고 암시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홍 변호사는 20099월 무사히 검사장으로 승진했고 피의사실 공표 혐의도 20101월 불기소 처분을 받으면서 흐지부지됐다. 그는 20107월 대검 요직인 기획조정부장으로 발탁됐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몰고 온 수사에 참여한 것이 검찰 안에서는 훈장으로 작용한 셈이다.

홍 변호사는 20118월 검경 수사권 조정에 반발해 사표를 냈다. 검찰의 뜻에 반해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검찰 쪽 협상 창구로 나섰던 그가 책임을 지고 옷을 벗은 것이다. 검찰 수사권 사수라는 명분으로 검찰을 떠난 모양새였기 때문에 그는 후배 검사들의 존경을 받았다. 그가 변호사 개업 후 서울중앙지검의 주요 사건을 싹쓸이하다시피 수임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배경도 작용했다.

 

하지만 그의 사퇴를 비즈니스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일반적으로 검찰 고위 간부가 사표를 내는 시점은 정기 인사 직후인데, 이때는 옷을 벗는 검사장들이 많기 때문에 전관의 이점을 충분히 누리지 못한다. 홍 변호사가 검찰 인사와 무관한 때에 개업했기 때문에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가 개업 후 왕성한 영업력을 보인 걸 보면 이런 분석에 좀더 무게가 실린다.

 

변호사 홍만표검사 홍만표와 전혀 달랐다. 검사 시절 수사 대상자를 확실한 증거로 제압하던 무사의 기질은 옅어지고, 검찰 내 인맥을 활용해 로비에 가까운 영업을 한다는 소문이 변호사업계에 돌기 시작했다. 그는 특히 검찰 출신 변호사들에게 공공의 적이 돼버렸다. 돈 되는 형사 사건들을 독식하는 바람에 다른 전관들의 수입이 상대적으로 줄었기 때문이다. 한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개업 후 1~2년 정도 빡세게 해서 어느 정도 돈을 벌었으면 후배 전관들을 위해 비켜줘야 하는데, 홍 변호사는 5년 내내 시장을 독식해 원성이 자자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후배 검사들도 그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그가 수사 검사의 재량을 넘어서는 수준까지 무리하게 부탁한다는 말이 돌았다. 한 검찰 관계자는 홍 변호사가 현 정부 실세인 황교안 총리, 우병우 민정수석과 각별한 사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검사들이 그가 선임한 사건을 처리하는 데 엄청난 부담을 느꼈다. 검찰 인사에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실세들이라서 홍 변호사의 부탁을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황 총리는 홍 변호사의 대학 선배이자, 검찰 내 개신교 신자 모임인 신우회 회원으로 친분이 각별하다. 우병우 민정수석은 노 전 대통령 수사팀에서 동고동락한 사이다. 하지만 홍 변호사는 이런 말들이 모두 근거 없는 음해라고 항변했다

 

그는 개업 이후 4년여 동안 해마다 80~90억원의 수임료 수입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부부가 함께 수도권에 50여채의 오피스텔을 비롯해 150억원 상당의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음이 언론 보도로 확인됐다.

 

일부 검사들은 언론에 대한 불만도 나타내고 있다. 검사들은 홍 변호사로부터 자유로운 기자들이 과연 몇이나 되느냐고 되묻고 있다. 그가 법무부 대변인과 수사기획관을 지내면서 이런저런 인연을 맺은 기자만 해도 수십명에 이른다. 변호사 개업 이후 그와 정기적으로 골프를 즐기는 기자들도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홍 변호사의 고교 후배로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를 그에게 소개해준 브로커 이민희(구속)씨의 녹취록에는 한 중앙일간지 기자 이름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런 기자들이 지금은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홍 변호사에게 달려들고 있다.

 

폐족에서 패권주의까지, ‘친노’ 15년 굴곡의 역사 524 미디어오늘

 

2010년 지방선거에서 주류로, 2012년 총대선 이후 패권주의논란 시달려2017년 친노는 뭐라고 불릴까

 

7년 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친노(친노무현)폐족이라 불렸다. 폐족에게 패권주의라는 수식어가 붙는 데는 채 7년이 걸리지 않았다. 패권에 당하던 친노는 패권을 부릴 힘도 없는 폐족에서, 보수언론은 물론 당내에서도 패권주의라는 비판에 시달리는 처지가 됐다.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이던 안희정 참여정부포럼 상임위원장은 2007326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친노라고 표현되어 온 우리는 폐족(廢族)입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상황을 표현한 단어였다. 야당 대선후보들은 하나같이 노무현 정부와 거리두기를 했다.

 

폐족의 처지는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 수사를 받으며 절정에 달한다. 보수언론은 물론 한겨레와 경향신문 등 진보언론까지 노무현을 버리자고 말하던 시기였다. 20095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검찰의 강압 수사에 죽음을 선택했다. 전국적으로 추모 열기가 일어났고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 여론이 급등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으로 폐족이던 친노는 가까스로 정치적인 공멸을 피할 수 있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약 1년만에 치러진 20106.2 지방선거에서 친노는 폐족 딱지를 완전히 떼어버렸다. “친노는 폐족이라던 안희정은 이번 선거는 억울하게 돌아가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복권이며 위로라는 말을 남기며 충남도지사가 됐다. 원조 친노라 불리는 이광재 강원지사, 김두관 경남지사도 등장했다. 선거에서 패배하긴 했지만 한명숙 서울시장 후보, 유시민 경기도지사 후보도 두각을 드러냈다.

 

2012년은 친노에게 또 다른 운명의 해였다. 4월 총선은 친노 한명숙 대표의 지휘 아래 치러졌다. ‘친노 패권주의라는 비판이 등장하던 시기였다. 친노가 당권을 장악하며 공천을 했고, 이런 공천으로 이겼어야 할 선거에서 졌다는 것이 친노 패권주의론자들의 주장이다.

 

더민주의 한 관계자는 친노 패권주의의 실체가 있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 논란은 2012년 총선 공천과정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봐야 한다총선과 대선에서 패배한 이후에 무슨 친노 패권주의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총선 이후 원내대표, 당 대표 선거를 두고는 이해찬 의원과 박지원 의원 간의 이박 담합논란이 불거졌다. 두 의원이 당대표, 원내대표를 나눠먹기 했다는 의혹이었다. 선거 결과 이 의원이 비노 김한길 의원을 따돌리면서 모바일 부정 투표 의혹까지 제기됐다. 담합과 부정 투표 의혹 등 비노 진영의 친노 패권주의공세가 본격화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7주기인 23일 오후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추모의 집'에 노란 꽃으로 수놓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모습이 보이고 있다. 포커스뉴스

 

친노의 실체가 있느냐는 지적은 항상 제기됐다. 3김이나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의 측근을 친김’ ‘친박이라 부르진 않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신의 성 앞에 을 붙인 세력을 만들어낸 최초의 대중 정치인이었다. 이유는 노 전 대통령에게 정치권 내의 세력이나 계파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노무현을 돕는 사람들, 노무현과 친한 사람들 정도로 노무현의 사람들을 이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2001~2002년 노무현 열풍이 불 당시 친노는 노무현에게는 세력이 없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었다. 민주당 주류는 당내 경선을 거친 후보에게 후보직 사퇴를 거듭 요구했다. 요즘 말로 하면 노무현 후보와 친노는 당내 주류 패권주의의 피해자였다.

 

패권주의와 가장 안 어울리던 친노라는 단어는 그로부터 10여년 뒤 패권주의라는 단어와 결합한다. 친노라는 애매한 범주의 표현은 허수아비 때리기에 활용됐다. 단어의 결합을 넘어 언론이 친노패권주의와 동일어로 사용하면서 친노의 범위는 끝도 없이 확장되기 시작했다.

 

패권주의외에 친노와 함께 쓰이는 단어는 ‘486(혹은 86그룹)’, ‘강경파’ ‘운동권등이 있다. ‘친노 종북이라는 말도 있다. ‘노무현을 따르는 사람들이라는 중립적인 단어에 강경파, 운동권, 종북 등 온갖 부정적 발언이 붙었다. 언론은 김현 더민주 의원이 세월호 유가족의 대리기사 폭행에 연루된 사건을 보도할 때도 친노486’이라는 표현을 쓰고, 정청래, 유인태 의원 등 친노라 부를 수 없는 이들은 친노 강경파라고 부른다.

 

더민주의 한 당직자는 물론 친노에 속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학생운동을 했던 사람이긴 하지만 친노라고 곧 운동권이거나 친노라고 곧 강경파는 아니고, 또 친노라고 386 또는 486 운동권이 아닌데도, 어느 새 동의어가 되어버렸다고 지적했다.

 

김종인 더민주 비대위 대표가 등장하면서 친노의 범주는 끝도 없이 확장하고 있다. 보수언론은 김 대표를 친노 패권주의에 맞선 투사로 만들었는데, 김 대표가 조중동이 친노라고 찍었던 정청래, 이해찬 의원 등을 컷오프 시켜버렸기 때문이다. 더 이상 친노 패권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보수언론은 친노의 범주를 확장시키는 방법을 택한다.

 

관련 기사 : 조선일보, 김종인 투사로 만들기 스텝이 꼬였다

 

조선일보는 315일 사설에서 더민주가 운동권당이었던 탓은 밖에서 민노총, 전교조, 민변과 같은 세력들이 당을 에워싸고 꼼짝달싹 못 하게 해온 탓도 있다. 이들 외곽 세력의 생각과 체질이 바뀌고 있다는 조짐은 어디에도 없다고 밝혔다. 더민주가 친노 운동권 정당인 이유를 급기야 정당 밖에서 찾는다.

 

중앙일보도 같은 날 사설에서 “(더민주는) 친노의 몰락을 반면교사 삼아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천을 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또 다른 친노 세력으로 낙인찍혀 심판 당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친노부패세력’ ‘패권세력과 동의어로 쓰고 있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20159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는 모습 뒤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진이 보이고 있다. 포커스뉴스

 

급기야 친박이 잘못을 해도 그 잣대는 친노 패권주의. 세계일보는 427일 사설에서 총선 패배의 책임을 회피하는 친박에 대해 “2004년 총선 압승으로 기세등등해진 친노는 민심 역주행으로 일관했다. 무능하고 일방적인 국정운영과 패권주의가 판쳤다재보선 연전연패와 2006년 지방선거 참패에도 정신 못 차리다 정권까지 내준 뒤 폐족을 선언했다. 친박이 친노를 반면교사로 삼지 않는다면 앞날은 뻔하다고 경고했다.

 

517일 친박은 조직적으로 새누리당의 상임전국위원회에 불참해 혁신위 구성을 무산시켰다. 동아일보는 다음날 사설에서 이런 새누리당의 모습은 20065·31 지방선거에서 참패 하고도 패배의 의미조차 모르던 열린우리당과 너무나 흡사하다. 당이야 어찌 되든 당권만 잡으면 된다는 친박 패권주의는 오만과 독선에 빠졌던 친노 패권주의와 오십보백보라고 비판했다.

 

친노가 부정적인 단어와 결합하는 상황에서 친노로 분류된 이들의 태도도 두 가지로 나뉘었다. 한 가지는 나 친노 아닌데이다. 더불어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 측은 총선을 앞두고 어떤 기사에서 자신이 친노 86그룹으로 분류되자 해당 기사를 쓴 언론에 전화를 걸어 수정을 요청했다. “86그룹은 맞지만 친노는 아니다는 것이 이유였다.

 

또 다른 한 가지는 나 친노 맞다. 그런데 어쩌라고이다. 413 총선에서 노원병에 출마한 황창화 더민주 후보는 314일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황창화는 운동권이고, 이해찬 총리의 정무비서관이고, 한명숙 총리의 정무수석이고, 그리고 친노다라며 이것이 저의 삶이고, 저의 긍지이고, 자부심이라고 밝혔다.

 

더민주의 한 관계자는 현재 친노로 분류된 사람들 다수가 친문이라 볼 수 있다. 문재인과 친한 사람들, 친문은 있다그런데도 노무현 대통령과 관계도 없는 사람들까지 친노라 부르는 것은 친노가 가진 부정적 인식을 활용하려는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2017년 대선은 친노의 정치적 운명이 결정되는 또 한 번의 순간이다. 친노의 적자라 할 수 있는 문재인 전 대표가 가장 유력한 야권의 대권 후보다. 한편에는 친노 패권주의때문에 당을 떠났다고 주장하는 안철수 대표와 국민의당이 있다.

 

손혜원 더민주 당선인은 2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 사람들이 친노라고 부르는 단어의 또 다른 의미는 아마 메인 스트림’(main stream) 인 것 같다이제 정치권 사람들은 친노라 읽고 대세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친노는 폐족에서 주류로 부활했고 2012년 총선, 대선을 거치면서 친노는 패권주의와 동일어가 됐다. 2017, 노 전 대통령 서거 8주기에 친노의 수식어는 무엇일까.

 

'우남찬가'·'니가 가라 하와이' 이승만 풍자시, 수천만원 고소 524 노컷뉴스

자유경제원, 최우수상 선정해놓고 업무방해-명예훼손 고소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화면 캡처)

자유경제원이 '이승만 시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작품과 입선한 작품 두 편이 이승만을 비판했다며 뒤늦게 업무 방해 등의 혐의로 고소해 논란이 예상된다.

 

23일 오후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우남찬가 저자입니다. 근황 업데이트 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게재됐다. 저자 장민호 씨는 지난 11, 서울마포경찰서로부터 '우남찬가' 관련 고소장이 접수됐다는 문자를 받았으며 17일에는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소장이 도착했다고 밝혔다.

고소장에 따르면, 장 씨의 혐의는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 및 정통망법 위반(명예훼손), 사기'. 공모전을 여는 데 들어간 비용 등 손해배상금 56996090원을 요구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자유경제원 측은 "장 씨가 쓴 시는 이승만 대통령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공모전 취지에 정면으로 위배됐다""장 씨의 공모전 이후 행적을 살펴보면 의도적으로 행사를 방해하기 위해 시를 짓고 응모한 것이 명백하다"고 고소 이유를 설명했다. 이에 대해 장 씨는 "올해 3월에 자유경제원이 개최한 '이승만 시 공모전''우남찬가'로 입선했다""가로로 읽으면 이승만이라는 인물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세로로 읽으면 그의 과오를 강하게 비판하는 '세로드립' 문학적 장치를 살린 예술작품"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양극적 평가를 받는 이승만 선생의 명암을 한 작품에 오롯이 드러내는 다각적인 구성을 통해, 합당한 칭송과 건전한 비판을 동시에 담아낸 시를 응모했다"고 부연했다.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화면 캡처)

장 씨는 "시를 공모전에 응모한 것은 그 어떤 법에도 저촉되지 않는 행위"라며 "헌법에 명시된 표현의 자유에 의거, 공모전의 의도에 합당한 작품을 출품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작품의 문학적 장치를 발견하지 못한 심사위원의 판단 미숙으로 발생한 사태의 책임은 공모전 측에 있다""세로획에서 드러나는 단어만 집착하지 말고 가로획도 읽어보라"고 덧붙였다.

 

장 씨는 현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에 변호를 요청한 상태다. 자유경제원은 '우남찬가'를 쓴 장 씨 이외에도 'To the Promised Land'를 쓴 이 모 씨도 같은 명목으로 고소했다.

 

두 시는 지난 324일 자유경제원이 개최한 '이승만 시 공모전'서 각각 입선,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문구 그대로 읽으면 이 전 대통령을 긍정적으로 표현한다. 그러나 행 첫 글자만 세로로 읽으면(일명 '세로드립') 각각 '국민 버린 도망자 망명 정부 건국', 'NiGA GARA WAWAII(니가 가라 하와이)' 등으로 읽힌다. 자유경제원 측은 지난 4월 언론 보도를 통해 이를 파악한 후 입상을 취소한 바 있다.

 

삼성 백혈병 8, 언론은 어떻게 보도했나 521 미디어오늘

2007~2013침묵하다가 2014년 삼성 입장 홍보에 급급

지난 8년 동안 언론이 삼성전자 백혈병 문제를 어떻게 다루었는지를 분석한 논문이 나왔다. 친기업적인 언론들이 사건 초기에는 침묵함으로써 사건을 축소시켰고 이후에는 삼성을 대변하는 기사를 쏟아내 유사 공론장을 형성했다는 것이다.

 

이는 방희경 서강대 언론문화연구소 선임연구원과 원용진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가 21일 언론학회 정기학술대회에서 발표한 언론이 삼성 백혈병 사태를 대하는 방식 : 침묵하거나 왜곡하거나연구 결과로 대상은 2007년부터 2015년까지 삼성 직업병 관련 보도다.

 

대상이 된 매체는 지상파 3사와 5대 일간지(경향, 동아, 조선, 중앙, 한겨레), 인터넷 진보언론(오마이뉴스, 프레시안), 언론비평지(미디어스, 미디어오늘), 인터넷 보수언론(미디어펜, 디지털데일리, 뉴데일리, 데일리안), 경제지(아시아경제, 헤럴드경제, 한국경제, 매일경제, 머니투데이, 파이낸셜뉴스, ZDNet) 등이다.

 

5대 일간지의 2007~2015 삼성 백혈병 관련 보도 건수. 사진= ‘삼성 백혈병 사태를 대하는 방식 : 침묵하거나 왜곡하거나발췌

 

해당 연구는 삼성전자 백혈병 사태를 기사 건수가 가장 많았던 2014년을 전후로 1차 국면과 2차 국면으로 나눴다. 1차 국면은 고 황유미씨의 죽음을 시작으로 해서 질병과 업무와의 연관성을 논쟁한 시기다. 반올림과 피해자들은 직업병이라 주장했지만 삼성은 개인 질병이라는 입장을 유지할 때다.

 

해당 연구는 1차 국면을 침묵으로 규정했다. 특히 SBS와 보수언론, 경제지에서 보도 건수가 낮았다. 가령 SBS2007년부터 2009년까지 3년간 1건만 보도했는데 산업안전공단이 반도체 공장이 백혈병과 무관하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는 내용이다. 20109건의 보도 중에는 삼성의 입장을 대변한 보도도 있다.

 

조선일보의 경우 2007년부터 2009년까지 5건의 기사를 통해 사태를 기계적인 방식으로 보도했고 2010년에는 삼성의 입장을 대변했다. 조수인 삼성전자 사장과의 인터뷰가 대표적이다. 당시 서울대가 삼성 반도체 공장의 화학 물질 전반에 문제가 있다는 보고서를 냈으나 보도하지 않았다. 당시 KBS에는 해당 소식이 보도됐다.

 

중앙일보는 4년 만인 2010년에 처음 관련보도를 시작했다. 기사 내용은 삼성의 공장라인 소개와 삼성이 세계적인 안전보건 컨설팅 회사에 역학조사를 의뢰해 관련 의혹을 해결할 것이라는 것이다. 문화일보나 뉴데일리 등 다른 보수 언론도 2014년 이전에는 보도 자체가 드물었다.

 

경제지의 2007~2015년 삼성 백혈병 관련 보도 건수. 사진 삼성 백혈병 사태를 대하는 방식 : 침묵하거나 왜곡하거나발췌

 

반면 같은 시기(2007~2013) 한겨레는 1, 10, 16, 46, 51, 51, 24건을 보도했다. 경향신문도 2, 3, 0, 17, 24, 29, 16건을 보도했다. 프레시안은 2010102, 201179, 201269, 201350건을 보도했다. 따라서 이 시기 보수언론은 직업병 문제를 마치 없는 일처럼 여긴 것이다.

 

2차 국면은 20145월 권오현 삼성전자 대표의 공개 사과 이후다. 당시 삼성은 사과와 보상을 통해 사태를 해결하겠다고 약속했고 이 과정에서 조정위원회가 꾸려진다. 하지만 조정위원회에서 내놓은 안을 두고 삼성, 가족대책위, 반올림의 입장이 갈리자, 삼성은 사내 보상위원회를 발족한다.

 

1차 국면에서 침묵하고 있던 SBS와 보수언론, 경제지 등은 삼성이 사과한 2014년부터 갑자기 보도하기 시작했다. 가령 SBS 2007년부터 2013년까지 37건을 보도했으나 2014년과 2015년에는 77건을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20132건을 보도했지만 201426건을 보도했고 아시아경제도 20138건을 보도했지만 2014년에는 96건을 보도했다.

 

급증한 보도를 살펴보면 삼성 측에 치우친 것이 많았다. 가령 2015년 조선일보는 요구 액수로 보면 삼성전자 백혈병 문제를 세월호 참사와 같은 국가적인 참사로 규정한 셈이라며 기업에 대해 마치 호구를 만난 듯 천문학적인 금액을 요구한다면 이런 환경에서 누가 기업을 하려고 하겠는가라고 보도했다.

 

사진=반올림 제공

노골적인 삼성 편들기는 조정위원회의 권고안이 발표된 2015년 더욱 심해졌다. 언론은 권고안에 대해 가족대책위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않은 채 졸속으로 만들어졌다” “바람직한 기업환경을 저해한다” “삼성의 경영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 “산재법의 근간을 흔들고 법질서를 위협한다고 보도했다.

 

그러다 삼성이 사내에 보상위원회를 설치하겠다는 내용을 발표하자 언론은 삼성의 통 큰 결단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이데일리는 조정위가 권고한 대부분의 제안을 수용했다고 보도했고 헤럴드경제는 직업병 피해보상이 급물살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해당 발표는 사실상 조정위 권고안을 거부하고 알아서하겠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연구자들은 언론은 삼성의 방식을 옹호했으며 그 뜻을 실현하는데 방해가 되는 요소들을 제거해줬다“1차 국면에서 언론은 침묵함으로써 소극적인 태도로 사건을 축소시키는 데 일정 부분을 담당했다면 2차 국면에서는 삼성의 입장을 대변하는 유사 공론장을 형성해 보상을 중심으로 사건을 확대하는 역할을 맡았다고 분석했다.

 

'흙수저 학생들, 이정도 일줄이야' 섬뜩한 현실 다큐 영상524 국민

'공부해도 소용없다는 건가' EBS 공부의 배신 와글와글

최근 3부작으로 방영된 EBS다큐멘터리 '공부의 배신''소름 돋는 다큐'라는 네티즌 평가를 받고 있다. 금수저 집안의 아이를 아무리 해도 이길 수 없다는 흙수저 학생의 막막하고도 갑갑한 입시 이야기를 담았다. 현실을 과장했다는 비판도 있지만, 현실을 제대로 담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특히 학생과 학부모 사이에서 공감 목소리가 크다.

 

'공부의 배신' 1부에서 지방에서, 사교육 없이, 부모의 지원 없이 혼자만의 노력으로 입시의 벽을 뛰어넘으려는 평범한 학생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그러나 결론은 예상대로 씁쓸했다.

 

지방 소도시에서 늘 1등만 하는 중학생 소녀는, 손가락에 물집이 잡히도록 독학해 원하던 명문 자사고에 갔다. 그러나 첫시험에서 395등 중 300등을 했다. 소녀는 '(금수저 친구들과) 출발선과 엔진이 다르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다며 늘 불안해했다.

 

2부는 명문대 안에서도 출신고등학교와 입시전형에 따라 차별과 서열이 존재한다는 걸 조명했다. 일부 학생은 과잠(학교 또는 학과 점퍼를 이르는 말)에 출신고교를 새겨 출신을 과시했고, 기회균등전형 등과 같이 사회적 약자 배려 전형으로 대학에 들어온 친구를 무시했다.

 

3부는 집안에 따라 학생이 꾸는 꿈이 다르다는 걸, 꿈에도 빈부격차가 존재한다는 걸 얘기했다.

 

다음은 EBS 다큐 '공부의 배신'에 대한 네티즌 반응들.

'공부를 하라는 다큐인지, 공부를 하지 말라는 다큐인지 모르겠다.

'IMF 세대 학번이라고 힘든 학번인줄 알고 살았는데, 공부의 배신을 보고 있자니 그것도 호강이었다는 생각이 드네.'

'나도 꿈을 꿔도 될까요? 라는 말이 너무 슬프다. 공부의 배신 보는데 씁쓸하다.'

'지방의 평범한 가정 출신인 나로서는 가슴이 먹먹한 이야기들이다.'

일부 네티즌은 공부의 배신 다큐에서 조명한 입시 현실이 강남 신조어 '테북·테남'과 비슷하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21'대를 이은 부자가 많은 테북과 전문직 부자가 많은 테남이라는 은어가 부동산업계와 학원가에 통용된다'고 보도했다. 여기서 테는 테헤란로의 약자로 테북은 테헤란로 북쪽인 청담동과 압구정동 등을, 테남은 테헤란로 남쪽인 대치동 역삼동 등을 지칭한다. 누구에게는 똑같은 강남 학생으로 보이겠지만, 테남 학생과 테북 학생은 출발선이 다르다는 얘기다.

 

1부 공부의 배신-명문대는 누가 가는가

 

제작기간 10개월, 전국의 10대들이 쏟아낸 입시전쟁 최전선의 이야기

- 지방에서, 부모 도움 없이, 사교육 없이 준비하는 3입시의 고단함

 

EBS 다큐프라임 <공부의 배신>은 냉정한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 공부에 목숨 건 10, 20대의 전쟁 같은 일상을 보여준다.

1명문대는 누가 가는가는 지방에서 사교육과 부모의 지원 없이 혼자만의 노력으로 입시의 벽을 뛰어넘으려고 하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그동안 방송에서 만나볼 수 없었던 자사고 입시생, 특목고의 사회배려자 입학생, 일반고의 독학생을 10개월간 밀착 취재한 내용을 담고 있다.

 

지방 중소도시에 살고 있는 중3 예원이는 자사고 입시를 준비중이다.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기에는 일반고보다 자사고가 유리하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예원이는 매일 초시계로 하루 공부시간을 확인한다. 사람들은 전교 1등 예원이가 평균 4시간만 자면서 공부하는 것을 의아하게 여긴다. 하지만 예원이는 불안하다. 고등학생이 되기도 전에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올 전국의 괴물들과의 경쟁이 두렵기 때문이다. 예원이는 꿈꾸던 자사고에 입학하게 될까? 그곳에서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예비고3인 민기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특목고에 다닌다. 하지만 민기에게는 속사정이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성적이 오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선행학습을 해온 특목고 친구들과, 사회배려자 전형으로 입학한 민기는 출발선이 달랐다. 중학교 때 공부 잘하는 아이였던 민기는 특목고에서 중하위권을 벗어날 수가 없다. 입시까지 남은 시간은 1. 민기에게 의지가 되는 건 한 살 터울의 누나 진영이다. 일반고에 진학해 혼자만의 힘으로 수시 전형을 돌파 중인 진영이가 민기는 존경스러우면서 한편으로 안쓰럽다. 남매의 늦어버린 노력과 혼자만의 분투는 어떤 결과를 낳게 될까?

 

 

일반고에 재학 중인 정민이의 지난 1년은 인간 승리의 시간이었다. 사교육 없이 혼자만의 노력으로 전교 등수를 100등 가까이 올린 것이다. 한창 잠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을 열여덟이지만, 정민이는 매일 잠들기 전까지 교복을 입고 책상 앞에 앉아 공부를 한다. 교복을 입으면 집에서도 긴장감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노력이라면, 정민이도 원하던 대학을 꿈꿀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달라진 입시, 챙겨야하는 것은 내신만이 아니다. 3 진학을 앞두고 생활기록부를 받아든 정민이는 눈물을 터트리고 마는데 정민이의 피나는 노력은 정민이를 배신하지 않을까?

<공부의 배신> 시리즈를 연출한 EBS 김지원 PD현 교육제도를 만들어낸 어른들이 아닌, 실제 교육 주체인 학생들의 시각으로 입시 현실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싶었다대입 수시전형만 2천 가지가 넘어 사교육 전문가들의 도움 없이는 자신에게 맞는 전형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조차 버거운 현실에서, 아이들이 체념과 포기가 아닌 성실과 노력의 가치를 체득하는 사회를 위해 <공부의 배신>가 경종을 울려주길 바란다고 기획의도를 밝혔다.

 

<공부의 배신> 2부 나는 왜 너를 미워하는가

솔직히 억울하죠, 내가 더 노력했는데

 

 

- 대학생 취재단과 함께 들여다 본 명문대생들의 솔직한 이야기

- 같은 대학 안에서도 출신고와 전형, 학과별로 구분되는 너와 나

나는 왜 너를 미워하는가는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명문대생들의 이야기다. 학창 시절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공부해서 대학 입시에 성공한 이들에게, 명문대라는 타이틀이란 그동안의 노력에 대한 꿀맛 같은 보상이다. 하지만 막상 맞닥뜨린 대학생으로서의 삶은 기대와는 달랐다. 더 치열해진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여전히 아등바등할 수밖에 없는 생활. 그런데 바로 옆에는 더 적은 노력으로 나와 같은 대접을 바라는 그들이 있다. 이러면 안 된다는 건 알고 있지만, 평가를 한다면 결코 그들과 내가 같다고 할 수 없다. 이전 방송에서는 말한 적이 없던 명문대생들의 솔직한 속마음이 낱낱이 공개되는 순간이다.

 

지방 일반고에서 최상위 내신 등급을 받고 명문대에 진학한 대현이는 외톨이다. 명문대는 이미 유명한 특목고나 자사고(자율형 사립고)로 알려진 명문 고등학교들의 장이다. 그 속에서 동문 한 명 없이 홀로 진학한 대현이는 왠지 모르게 작아지는 느낌을 받는다. 특히 장난삼아 고등학교 때의 교복을 꺼내 입는 만우절만 되면 캠퍼스는 온통 명문고 교복들의 축제가 된다. 심지어 누군가의 과잠바에는 고등학교 이름이 새겨져 있다. 출신 고등학교의 이름, 지금 대학생들에게는 어떤 의미일까?

수시가 70%를 차지하게 된 현재의 입시 지형에서 입학 전형이란 나와 너를 구분하는 또 다른 잣대가 된다. 수능 점수로 칼같이 판가름 나는 정시에 비해 수시는 왠지 더 쉽게, 본래 능력보다 더 좋은학교를 갈 수 있는 편법 같은 느낌이다. ‘정시로 들어왔다고 하면 모두의 반응이 똑같다. “오 공부 잘했나 보다.”

 

그 와중에 지역균형이나 기회균등과 같은 특별전형 출신들은 쥐 죽은 듯 조용하다. 아무도 그들을 차별한 적이 없다고 말하지만, 그들이 침묵할 수밖에 없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이제야 하나둘 꺼내는 조그마한 하소연들, 이래도 차별이 없다고 말할 것인가?

수강신청 기간이면 더욱 치열해지는 눈치싸움. 마우스를 클릭하는 한 순간에 한 학기 생활과 졸업이 좌우된다. 경영·경제 복수전공은 취업을 위한 필수 코스다. 주전공생인데도 수업을 듣지 못해 억울한 경영대생과, 일방적으로 고사 위기에 처한 인문대생들이 부딪힌다. 학교는 취업률이 높은 특정 학과에 지원을 대폭 몰아주고 노골적인 차별 대우를 하지만 의외로 학생들의 반응은 담담하다. 이미 너무 당연한 듯 일상화된 차별,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3부 꿈의 자격

 

 

꿈을 꾸는 것도 사치인가요

- 초등학교 때부터 나타나고 있는 꿈의 빈부 격차

- 눈앞의 생계 때문에 미래를 준비하는 것조차 버거운 저소득층 명문대생들의 현실

3꿈의 자격은 부모의 배경과 집안 환경에 따라 꿈이 달라지는 냉정한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담는다. 단순히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다면 돈을 걱정해야 하고, 아니면 차라리 처음부터 현실을 직시하고 안정적인 소득을 얻는 일을 목표로 삼는 이 두 가지 선택지 앞에서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공부의 배신> 제작진은 지난 수개월 간 서울대학교 박현정 교수 연구팀과 공동으로 서울 지역 초··고생 약 1,000여 명을 대상으로 꿈을 주제로 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다수의 아이들은 부모의 직업과 비슷한 장래를 꿈꾸고 있었으며, 부유한 지역에 사는 아이들이 그렇지 않은 지역에 사는 아이들보다 소득이 높은 전문직이나 경영관리직을 희망하는 비율이 더 높았다. 그리고 이 격차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더 커졌다.

 

아이들은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이 필요한지도 잘 알고 있었다. 성공하려면 누구나 알아주는 명문대에 가는 것이 중요하고, 명문대에 진학하려면 특목고나 자사고(자율형 사립고)에 가는 것이 유리하다고 말하는 초등학생들. 한편,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열린 공무원 설명회에서는 공무원이 되기 위하여 대학 진학은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비싼 학비를 들여 대학에 가기 보다는 안정적인 직업을 찾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학은 성공을 보장하는 열쇠일까? 많은 사람들이 선망해 마지않는 명문대 학생이더라도, 저소득층인 경우 다른 학생들과의 경제적 격차로 인해 알게 모르게 소외된다.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바쁘게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공부를 하거나 스펙을 쌓는 것도 힘들기 때문이다. 당장 돈 한 푼이 아쉬운 처지에 남들 다 간다는 그 흔한 교환학생은 그림의 떡이다.

 

선혜는 지난 해에 성균관대학교 국문과에 입학했다. 대구에서 올라와 2평 남짓한 고시원에서 생활하는 선혜가 하루 최대 쓸 수 있는 돈은 만 원이다. 친구들과 맛있는 것도 먹고 싶고, 옷과 화장품에도 관심이 갈 법한 스물 한 살. 하지만 고시원비와 생활비를 혼자 힘으로 고스란히 벌어야 하는 선혜에겐 사치일 뿐이다. 선혜의 꿈은 대학원에 진학하여 사회학을 공부하는 것. 약자의 편에 서서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선혜의 꿈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이제 막 서강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한 만길이는 방송 PD를 꿈꾼다. 하지만 화려한 알바 경력에 비해 보잘 것 없는 스펙은 입사지원서를 쓸 때마다 자괴감이 들게 만든다. 분명 열심히 살아왔는데, 인생이 모두 부정당한 느낌이다. 토익 시험 한번 볼 때마다 통장 잔액을 확인해야 하는 만길이에게는 취업 준비만 할 수 있는 학생들도 부러움의 대상이다. 가난한 형편 때문에 한참이나 뒤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현실이 답답한 만길이. 입사 지원을 한 회사의 서류 합격 발표날, 만길이는 초조함에 안절부절 못하는데...

 

KBS 북풍보도 얼마나 했을까 522 미디어오늘

[시시비비] 미주알고주알 북한 보도하던 KBS, 민감한 사안엔 모르쇠

13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이하 민변)은 국가정보원에 국내에 입국한 북한 해외식당 종업원 12명에 대한 변호사 접견을 신청했다. 민변의 접견 요청 사유는 북한이 국정원에 의한 유인납치라고 강력하게 주장하면서 국제 여론에 호소하고 있는 만큼, 국제인권 기준에 맞게 이들이 변호인의 조력을 받아야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이 이를 거부했다. 국정원이 공문을 통해 밝힌 접견 거부사유는 해당 종업원들이 변호인 접견 대상이 아니다였다고 한다. 민변은 16일 기자회견을 열고, 국정원의 변호사 접견 거부는 국내법과 국제법을 모두 위반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신문 중 조중동은 관련 내용을 전혀 보도하지 않았고, 경향신문과 한겨레, 한국일보가 민변 기자회견을 보도했다.

 

그렇다면 북한 관련 보도라면 거의 모든 내용을 미주알고주알 보도하던 북한 보도의 메카’ KBS는 이 사안을 어떻게 보도했을까. KBS는 이 내용을 저녁종합뉴스에서 전혀 보도하지 않았다. KBS가 어쩌다 보도하지 않을 수도 있지 뭘 그런가 여길 수 있다. 그러나 그동안 KBS가 얼마나 북한 보도를 쏟아냈었는지부터 살펴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북한보도의 메카’ KBS의 북풍관련 보도 실태, 1일 평균 6.4

16일 북한의 수소탄 핵실험 발표와 27일 장거리 로켓 발사로 대한민국은 거센 북풍에 휘말렸다. 특히 공영방송인 KBS와 일부 종합편성채널은 북한의 로켓발사를 비롯한 핵실험, 군사훈련, 군사도발 가능성, 테러 가능성 관련 보도에 많은 양을 할애했다. 여기에 개성공단 폐쇄와 한미군사훈련, 사드배치, 정부의 대북성명이나 대통령 발언과 국정원이 발표한 다양한 북한 동향 보고 및 탈북자 소식 등 20161월부터 4월까지는 북한 관련 소식의 뉴스의 큰 비중을 차지했다. 201616일부터 총선 전날인 412일까지 KBS<뉴스9>, MBC<뉴스데스크>, SBS<8뉴스>의 북한 관련 보도를 수집 분석해보았다. 로켓발사와 테러 가능성 등 북한의 도발 행태와 북한 동정 보도 일체와 이에 대응하는 우리 측 대응과 외교행위, 국제사회 반응 등을 모두 포함한 북한 관련 보도량을 비교한 결과는 아래 표와 같다.

 

지상파 방송3사 북한 관련 보도량 비교(1/64/12 : 98) 민언련

 

KBS624건을 보도해서 기간 중 총 보도량 대비 31.3%가 선거 관련 보도였다. MBC19%374, SBS17%377건이 북한 관련 보도였다. KBS98일간 하루 평균 북한 관련 보도를 6.4건씩 보도한 것이다. MBC3.8, SBS3.5건을 전했다. 선거보도와 비교해보면 북한관련 보도가 얼마나 많은 보도량인지 짐작할 수 있다. 분석 기간은 정확하게 총선 D-98일부터 D-1일이었다. 선거 관련 보도가 많이 나올 수밖에 없는 시기였다. 게다가 총선보도감시연대의 선거보도 체크는 직접적 선거 관련 보도뿐 아니라, 앵커나 기자가 총선이나 선거라는 언급하면서 사안을 선거와 연결지은 보도를 포함했다. 이처럼 직접 선거보도가 아니라 간접 선거보도 사안까지 포함했음에도 KBS의 선거관련보도량은 290건으로, 북한보도(624)에 비해 절반도 안 된다. 지상파 3사 모두 북한관련 보도가 더 많았지만, MBC는 선거 250북한 374, SBS는 선거 302북한 344건으로 KBS에 비해 간극이 그리 크지 않다.

 

직접적 북한 관련 보도 KBS 302vs MBC 157vs SBS 136

 

이처럼 압도적으로 타 방송사들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북한 위협 보도 쏟아낸 KBS는 어떤 보도를 했을까. 북한 관련 보도의 소재를 분석해보았다.

 

지상파 방송3사 북한 관련 보도 소재 비교(1/64/12 98) 민언련

 

보도량은 KBS가 가장 많지만, 전체 북한관련 보도 대비 비율로 봤을 때는 지상파 3사가 대체로 비슷한 소재에 대해서 비슷한 비율로 보도했다. 3사 종합해서 높은 보도비율로 드러난 소재는 북한의 군사도발 관련 보도(328), 우리 정부의 외교노력(대통령 해외 순방 포함)과 국제사회 대응 관련 보도(282), 우리(한미연합 포함)측 군사대응 관련 보도(189)였다.

 

KBS는 타사에 비해 북한의 군사도발이외의 정치권 동향이나 북한 동정을 다룬 보도를 유난히 많이 내놨다. KBS는 북한 동정을 143(10.7%)이나 다룬 데 비해, 같은 시기 MBC25, SBS22건이었다. 실제 직접적 북한 보도라 할 수 있는 북한 도발+북한 정치권 동정+북한의 테러 암살 가능성+탈북자 관련 보도를 합하면 KBS 302(48.%), MBC157(42%), SBS136(40%)이다. KBS가 김정은 국방위원장의 일거수일투족과 북한 내부 정보 관련해 지나치게 많은 내용을 전했음을 알 수 있다.

 

지난 1일 방송된 KBS 뉴스9 ‘SLBM 발사 실패대성공허위 보고?’ 리포트

이밖에 개성공단 이외의 북한의 해외 자금줄을 추적하는 보도들도 KBS에서만 많았다. SBS는 관련 내용이 2(0.6%)뿐이었고, MBC4(1.1%)이었지만, KBS22(3.5)이나 할애했다. 이들 보도는 주로 해외 북한식당이나 북한의 노동자가 파견된 곳의 상황을 전하는 내용이였는데, KBS는 자신들의 이런 보도로 인해 4월 북한식당 종업원의 대량 탈북이 이뤄졌다고 자화자찬하기도 했다. 48일 탈북 당시 보도량도 MBC2, SBS3건인데, KBS7건이었다. 그런데 정작 이 식당 종업원 탈북에 대한 논란이 일자 한마디도 하지 않는 것을 어떻게 봐야할까.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같이 국민의 안보 불감증 자초할 우려 있어

KBS가 국가기간방송사로서 국민의 안전과 한반도 평화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정작 국민이 알아야 할 주요한 내용은 보도하지 않은 채, 국민의 안보의식을 키운답시고 위기의식만 부풀린다면 이는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평화통일을 지향해야 하며 국민의 안전을 위하여 최대한 이성적인 보도를 해야 할 공영방송이 감정적으로 북한의 위협을 한껏 과장하는 보도를 앞세우고, 객관적 검증이나 진위 파악을 위한 정보는 슬쩍 뒷전으로 미루는 식의 보도행태를 일삼는 것은 문제이다. 예컨대 관련 정보가 북한의 일방적 주장이라 사실 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일단 북한에서 제공한 선전물을 그대로 이용하여 화면을 구성하며 대단한 일이 벌어진 양 위협을 부풀려 보도한다. 그리곤 관련된 국방부나 통일부의 입장은 언급하지 않거나 축소하는 식이다.

 

이처럼 치밀한 검증 없이 전쟁 불안감을 자극하는 것은 선동에 불과하며 남북관계에 결코 바람직한 보도태도가 아니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선거를 앞둔 시기에 지독한 북풍몰이라고 비판한 것이 무색하게, KBS는 선거 이후에도 꾸준하게 북한 관련 보도를 내고 계속 내놓고 있다는 것이다. 특별할 것도 없는 북한 내부 소식을 스토킹 수준으로 전하는 것도 여전하다. 딱 하나만 분명히 짚고 싶다. KBS의 북한관련 과잉보도는 그 자체로도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같이 작용해 국민의 안보의식을 오히려 떨어뜨릴 수 있다. 또한 이처럼 미주알고주알 북한 동정을 전하면서 정작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한다면, 이는 국민 겁박용 보도일 뿐이다. KBS, 기왕 열심히 보도하기로 했다면 진정한 북한통으로 제대로 된 정확한 정보를 제대로 제공하기 바란다.

 

막말탱크논란 TV조선 시사탱크’ 4년 만에 폐지 523 미디어오늘

편파·왜곡 종편의 상징, 결국 종방총선 이후 채널 전략 바뀌었나, 빈 자리 정두언·김유정이 채운다

 

끝없는 심의제재로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TV조선 시사프로그램 시사탱크가 지난 20일 폐지됐다. TV조선 개국 이후 TV조선의 낮 시간대 편성을 주도했던 장성민의 시사탱크는 지난 318일 각종 논란 속에 979회를 끝으로 종영했다. 뒤이은 시사탱크 김광일입니다44회를 끝으로 지난 20일 종영했다. TV조선 편파·왜곡의 상징이었던 프로그램이 총선 이후 폐지된 사실은 여러모로 상징적이다.

 

장성민의 시사탱크20135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주장을 여과 없이 내보내며 악명을 높였으며,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역사상 단일프로그램으로는 가장 많은 심의 제재를 받는 진기록을 세웠다. 20126월 방송을 시작한 이 프로그램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총 41건의 제재를 받았다. ‘시사탱크는 각종 제재에도 편파·왜곡을 멈추지 않는 종편 편향보도의 상징과 같았다.

 

장성민의 시사탱크는 지난해 TV조선이 받은 제재 중 3분의1을 차지했으며, 정부여당 추천 심의위원들조차 시사탱크는 도를 넘었다는 지적을 수차례 했다. 이 같은 맥락 때문에 시사탱크의 폐지는 상징적이다. TV조선은 지난 3월 프로그램 폐지 대신 진행자를 교체하며 프로그램에 대한 편성의지를 보였으나 총선이후 프로그램 폐지를 결정했다. 이는 TV조선이 총선을 기점으로 채널 전략에 변화를 주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TV조선 '장성민의 시사탱크'.

 

TV조선 '정두언-김유정의 이것이 정치다'.

평일 오후 4시 편성됐던 시사탱크의 빈자리는 신규시사프로그램 정두언-김유정의 이것이 정치다로 채워진다. 정두언 새누리당 의원은 20대 총선에서 낙선했다. 김유정 국민의당 전 의원은 민주통합당 대변인 출신으로 역시 20대 총선에서 낙선했다. ‘시사탱크에 쏟아졌던 편향비판을 피하기 위해 여야 정치인을 공동 MC로 세운 것으로 비춰진다. 두 사람 모두 박근혜정부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MC로 평가받고 있다.

 

해당 프로그램에선 진성준 더민주 의원과 이준석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도 고정출연할 예정이다. 첫 방송 게스트는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다. TV조선은 지난 4강적들에서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당선자가 출연하기도 했다. TV조선이 총선 이후 상대적으로 논란이 되는 프로그램은 줄이고 야당 쪽 게스트를 늘리는 모양새다. TV조선은 6월 중 개편을 예고했다. 개편에서 TV조선의 변화가 감지될지 주목된다.

 

 

'진짜 남자' 꿈꾸던 그, 왜 살인범이 됐나 523 오마이뉴스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 "여자들이 무시해서"라는 말에 녹아 있는 성차별의 그림자

 

지난 17일 새벽 서울 서초구 강남역 인근의 노래방 화장실에서 여성을 흉기로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용의자 김아무개(34)씨가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지난 19일 오후 서울 서초경찰서를 나와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향하기 직전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최윤석

 

강남역에서 발생한, 말할 수 없이 참혹하고 안타깝고, 믿기조차 힘든 그 사건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와 우려가 그 어느 때보다 무겁고 깊다. 강남역 10번 출구에 모여 함께 애도하고 슬퍼하는 것을 넘어 보다 냉철하게 이 사건을 진단하고자 하는 움직임은 이 사건에 대한 충격과 공포, 그리고 분노를 통해 일구어내고 깨달아야 할, 더는 미룰 수 없는 우리 사회의 과제를 향한 의미 있는 발걸음이다.

 

절대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그러나 어느 정도 예견되었고, 결국 막지 못했던 이 참담한 사건을 둘러싸고 이 사건이 대체 무엇에 관한 사건인지에 관한 여러 의견이 뜨겁다. 이러한 현상은 나쁘지 않다. 우리가 목격하게 된 이 사건이 대체 무슨 일인지에 대한 프레이밍(framing)은 사회구성원들이 어떤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가해자의 입에서 나온 '여자들이 무시해서'라는 범행 동기를 두고 이것을 '여성혐오 범죄'라 명명한 것이 오히려 논란의 중심이 되었다. 살인범의 정신 병력을 들먹이며, 이것이 여성혐오 범죄라기보다는 정신질환자의 난동에 우연히 저질러진 '묻지마 살인'이라는 주장이 등장했다.

 

자신보다 약한 상대를 범행 대상으로 고르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이기 때문에 굳이 '여성이기 때문에 죽게 된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한 비약이라는 냉소도 이어졌다. 비교적 힘이 약한 아동이나 노인이 우연히 이번 사건의 희생자가 되었다면 그것은 '아동혐오' 혹은 '노인혐오'로 불려도 좋은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었다.

 

여성혐오 범죄임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여성'이라는 조건이 흔들리지 않는 살해 피해의 원인임을 밝힐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어느 개인의 우연한 생물학적 조건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여성'에게 요구되고 암묵적으로 강요되는 사회적 지위와 역할에 관한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번 사건에서 집중해야 하는 곳은 바로 이 지점이다. 이제는 너무 자주 듣게 되어 익숙해져 버린 '여자들이 무시해서'란 범행 동기가 담고 있는 깊고도 음울한 성차별의 그림자를 분명히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룹 지위 박탈당한 이들의 분노, 왜 여성을 향하는가

 

가해자의 입에서 나온 '여자들이 무시해서'라는 범행 동기를 두고 이것을 '여성혐오 범죄'라 명명한 것이 오히려 논란의 중심이 되었다. 살인범의 정신 병력을 들먹이며, 이것이 여성혐오 범죄라기보다는 정신질환자의 난동에 우연히 저질러진 '묻지마 살인'이라는 주장이 등장했다. 김예지

 

사회에는 '그룹 지위'라는 게 있다. 한 사회 내에서 같은 범주로 묶이는 사람들 간의 지위의 격차가 존재하는 것을 말한다. 백인 중심사회에서는 백인들의 그룹 지위가 높고, 남성 중심사회에서는 남성들의 그룹 지위가 높다. 그룹 지위가 높은 곳에 속하게 된 개인들은 자기 자신을 평가할 때, 자신이 속한 그룹에 비추어 자신을 평가한다.

 

, 자신은 하등 별 볼일이 없을지라도, 백인이거나 남성이면, 백인이 아니거나 남성이 아닌 사람들보다 자신이 더 많은 가치와 자격이 있다고 판단하게 된다는 것이다. , 자신이 '누구'라는 이유로 더 많은 것에 대한 자격과 권한이 있다고 믿는 것을 말한다.

 

자기가 속한 그룹의 사람들이 응당 누려야 할 것, 즉 지위가 높은 남성이 마땅히 누리는 것을 같은 남성인 자신도 당연히 받아야 한다는 생각은 이러한 사회적 배경에 의해 만들어지게 된다. 남성의 그룹 지위가 높은 사회일수록, 남성이 아닌 집단, 여성에 대한 폄하와 무시는 흔해지기 쉽고, 개인 남성이 가지는 권한과 자격에 대한 믿음은 견고해지며, 이를 여성에 대한 소유와 통제, 순종과 존경을 통해 확인하려는 경향도 강해진다.

 

이런 사고체계에서 여성들의 거절과 무관심은 분노와 격분을 자아낸다. 자신에게 예정되어 있어야 하는 것, 당연히 받아야 할 것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한 울분인 것이다. 전혀 일면식도 없는 여성을 무참히 살해한 남성들이 말하는 '여자들이 무시해서'라는 살해 동기는 특정 여성이 아닌, 자신을 제대로 대접해 주지 않는 '전체 여성'에 대한 경멸과 분노의 표현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이 사건이 왜 여성혐오를 배경으로 발생한 사건인지에 대한 단초를 짚어 나가야 한다. 여성이 남성에 비해 선천적으로 열등하다고 여기는 성차별주의, 여성을 단지 성적 대상으로서만 여기고 남성의 삶을 편리하게 하거나 보조하기 위해 존재하는 자들로 인식하는 여성혐오 없이 이런 범행 동기와 행동의 정당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남성의 그룹 지위가 높은 사회의 남성들은 모두 행복을 누리는 걸까?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지위가 높은 그룹에 속해 있지만, 자신의 현실이 그러한 지위와 걸맞지 않을 때 자기혐오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사회의 과장된 남성성에 대한 압박을 토로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기 보단, 자신보다 마땅히 낮은 지위에 속해 있어야 할 여성들의 도약을 비난하며, 그들을 공격하는 것으로 그 분노를 해소하려는 시도는 따라서 개인의 질병이기보다는 사회구조적 원인을 내포한다.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가는 여성들, 이를 막는 건 사회적 논의

엘리엇 라저. 2014년 자신의 아파트에서 흉기로 3명을 살해한 후, 미국 산타바바라 캘리포니아 대학 캠퍼스 근처 도로에서의 무차별 총격으로 3명을 살해하고 14명에게 중상을 입힌 22살의 살인범은 '여성들이 자신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고 부르짖으며 이에 분노했다.

 

141페이지의 매니페스토(성명서)에서 그는 자신이 "진정한 알파 남성(the true Alpha Male)"이 되어 진정으로 우월한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겠노라고 울부짖기도 했다. "알파 남성"이란 미국의 남성권리운동(men's rights movement) 회원들 스스로가 자신들을 일컫는 용어다.

살인범 라저의 공격으로 2명의 백인 여성과 4명의 아시안 남성이 사망했다.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다. 소위 메노스피어(남성권리를 지향하는 인터넷 블로그와 웹사이트)의 유저였던 그가 남성도 같이 공격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우월감과 자신감이 넘치는 백인이었기에, 자신보다 못하다고 여겨지는 여성과 유색인종 남성을 살해한 걸까?

 

아니 현실은 정반대였다. 엘리엇 라저는 외견상 백인으로 보이지만, 아시아계 미국인을 부모로 둔 소위 혼혈이었으며, 백인 남성과 데이트를 즐기는 여성을 원망하고 증오했다. 그러면서도 백인 여성들과 마음껏 즐기는, 자신은 범접하기 어려운 백인 남성을 시기하고 질투하기보다는 백인 남성을 동경했고 숭상했다.

 

자신은 결코 부유하고 남성다운 "진짜 백인"이 될 수 없음을 한탄하던 그는 백인 남성을 처단하는 대신 자신과 비슷한 아시아계 남성을 살해한다. 백인 중심사회에서 반쪽 백인이던 그는 정확히 자신과 동일한 아시아계 남성을 살해하고, 자신에게 백인 남성에 대한 열등감을 불러일으키는 백인 여성을 살해했으며, 곧 자신을 살해함으로써 자기혐오와 여성혐오가 맞닿아 있음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불행한 일이지만, 유사한 일들은 어느 사회에서나 일어나고 있다.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여성의 지위가 한국보다는 조금 낫다는 미국 사회에서도 이유도 영문도 모른 채 삶을 마감해야 했던 젊은 여성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차이가 있었다. 사건을 보도하고 분석하는 데 있어, 미국 사회는 여성에 대한 권리가 남성에게 있다고 가르친 성차별적 사회가 문제의 원인이라는 점을 깊이 있게 분석했다.

 

남성들의 사회화 과정에서 여성들을 단지 욕망의 대상, 무엇이든 요구해도 되는 대상으로 여기게 한다면 이러한 범죄는 결코 중단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분석을 진지하게 경청하였다. '어느 미친 남성이 저지른 실수''개인적 질병'이 원인이 아니라 전체 사회의 책임이라는 결론 하에 어떠한 사회적 노력이 필요한지에 대한 논의를 열어나갔다.

 

모두가 아픈 우리, 성찰하는 용기가 상처를 보듬을 수 있다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추모행진 지난 17일 새벽 서울 강남역 부근 남녀공용화장실에서 30대 남성이 20대 여성을 살해한 사건과 관련, 21일 오후 강남역과 사건 현장을 오가는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추모행진'이 수백명의 시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열렸다.

 

권우성

 

여성이 피해자가 되는 사건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분노조절 장애'를 가졌다고 하는 가해 남성들이 얼마나 침착하고 냉철하게 피해자를 '정확하게 선별하고 고르는지를' 알 수 있다. 자신의 범행 동기가 충분히 이해받고 참작될 수 있는 대상, 오히려 공감을 이끌어 내거나 피해자를 비난하는 분위기를 쉽게 조성할 수 있는 대상을 목표물로 정확히 조준한다는 점에서 이들을 '분노조절의 대가'로 부르는 것이 오히려 타당할 수도 있다. 남성, 아동, 노인이 피해자일 때 대중의 공감과 피해자 비난을 재빠르게 동원할 수 없다는 것을 상기한다면, 왜 이 범죄를 여성혐오 범죄로 명명할 수 있는지는 보다 명확해진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너무도 아프다. 모두가 당사자인 여성들은 말할 것도 없고, 아버지로서 딸아이 같은 피해자를 추모하고, 청년으로서 누이 혹은 애인을 떠올리며 마음 아프게 피해자를 애도하기도 한다. 이러한 남성들의 공감과 지지를 모른 채 하는 것이 '여성혐오'를 거론하는 이유가 아니다. 성차별적인 사회, 불평등한 사회, 구조적인 차별의 개선 없이 이러한 사건은 중단되지 않을 것이란 걸 말하기 위함이다.

 

'여성혐오'라는 인정하기엔 불편하기 짝이 없는, 그러나 이미 사회 곳곳 깊숙이, 그리고 우리의 삶에 침투된 이 현상을 차분히 들여다보고 성찰해 나가려는 용기를 통해서만이 참으로 원통하기 한이 없는 젊은 여성의 넋을, 그녀를 아끼고 사랑했던, 함께 삶을 나누던 가족과 지인들의 상처를 조금이라도 위로하고 보듬을 수 있다./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허민숙 연구교수

 

 

이유있는 언니들의 분노통계로 짚어봤습니다 524 한겨레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시작된 살인피해 여성 추모 물결과 더불어 여성혐오를 둘러싼 논쟁이 뜨겁습니다. 김치녀 등 여혐꼬리표에 넌덜머리가 난 여성들은 포스트잇을 붙이고 자신의 공포담을 털어놓으며 여성이라서 겪는 편견과 폭력에 맞서 일어서고 있습니다. 반면 여혐의 진원지로 일컬어지는 온라인 커뮤니티 일간베스트남자라서 죽은 천안함 용사들을 잊지 말자” “남혐 반대등의 대응 논리를 내놨습니다.

 

지켜보는 이들 중에는 혼란스럽다는 반응이 적지 않습니다. 수많은 여성들이 모르는 남성에 의해 살해됐습니다. 성차별 문제도 한국사회의 오랜 화두입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강남역 살인사건이 폭발력을 지닌 이유가 대체 뭐냐고 묻습니다. <한겨레>는 언니들의 분노의 발화점을 살펴보기 위해 한국사회에서 여성들이 처한 상황과 지위를 통계로 짚어봤습니다. 자료는 2월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발표한 ‘2015 한국의 성인지 통계를 비롯해 유엔과 세계경제포럼이 낸 통계를 인용했습니다.

 

1. 흉악 강력범죄 피해자 중 84% 이상은 여성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강력범죄(흉악) 피해자 현황

 

대검찰청이 해마다 내는 <범죄분석> 자료를 바탕으로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발표한 2013년 범죄 피해자 항목을 보면, 살인, 강도, 강간, 방화, 폭력 등 강력범죄 가운데 폭력을 뺀 흉악한 강력범죄 피해자 34126명 가운데 28920(84.7%)이 여성이었습니다. 남성 피해자는 전체의 3552(10.4%)으로 나타났습니다. 나머지 피해자 4.9%의 성별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반면 강력범죄 가운데 흉악범죄로 분류되지 않은 폭력사건의 경우엔 남성 피해자가 많았습니다. 전체 피해자 233655명 중 여성이 29%(67935), 남성은 57%(133222)를 기록했습니다. 일부에서는 강력범죄에 노출되는 여성의 비율이 전체의 80% 이상이라는 통계에서 여성가족부 등이 여성의 피해를 과장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고 지적합니다.

하지만 경찰청에서 발표한 경찰범죄통계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옵니다. 살인, 강도, 강간, 방화를 포함한 2013년 강력범죄 피해자 26962명 가운데 남성은 13.2%(3568), 여성은 85.8%(23150)로 집계됐습니다. 별도의 폭력범죄 항목에서는 피해자 294188명 중 남성 피해자가 60%(178669), 여성이 28.9%(85205)입니다. 일반적인 폭력사건의 경우 술자리나 거리에서 남성끼리 드잡이를 하다 벌어진 단순 사건이 많은 것으로 보입니다.

 

2. 강력범죄를 흉악범죄와 폭력범죄로 나눈 게 문제인가?

위 통계에 대한 의심의 저변에는 강력범죄를 흉악범죄와 폭력범죄로 나눠 여성의 피해치를 부풀렸다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자료를 펴낸 주재선 성별영향평가 통계센터장에게 물어봤습니다.

한겨레: 강력범죄를 흉악범죄와 폭력범죄로 나눈 이유는 무엇입니까? 특별히 의도한 바가 있는 게 아닙니까?

주재선 센터장: 일반적으로 강력범죄를 분석할 때는 흉악범죄와 폭력을 나눠서 봅니다. 살인, 강도, 강간, 방화가 포함된 흉악범죄는 일반 폭행사건에 비해 체감되는 두려움과 사회적 파급력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여성가족부가 매해 산출하는 국가상품성지수도 강력범죄 가운데 흉악범죄만 떼어서 봅니다.

물론 통상적인 폭행은 여성보다 남성이 많이 노출된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흉악범죄를 떼어서 분석하는 것은 폭력범죄는 남성에 의한 남성의 피해가 큰 반면, 흉악범죄는 남성에 의한 여성의 피해가 크기 때문입니다. 둘은 전혀 성격이 다릅니다. 이 통계가 여성 피해 비율을 현실보다 높게 보이게 한다는 지적을 부정할 생각은 없지만, 특정한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위와 같은 분류를 하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국가승인통계인 국민생활안전실태조사를 기반으로 작성한 범죄피해 통계시스템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운영하는 범죄통계포털 범죄와 형사사법 통계정보’(CCJS)의 범죄피해 통계시스템은 범죄를 흉악범죄와 일반적인 폭력범죄로 분류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범죄와 폭행에 대한 2013년 범죄유형별 두려움을 살펴봤습니다. “누군가 나를 성추행하거나 성폭행할까봐 두렵다는 제시문에 전체 답변자 13317명 중 남성의 47%(3004)전혀 두렵지 않다’, 38%(2411)두렵지 않은 편이라고 답했습니다. ‘두려운 편’(205)이라거나 매우 두렵다’(42)고 대답한 남성은 4%에 불과했습니다.

 

반면 여성은 19%(1326)전혀 두렵지 않다’, 35%(2408)두렵지 않은 편이라고 했습니다. ‘매우 두렵다고 답한 여성은 4%(277), ‘두려운 편이라고 답한 여성은 18%(1257)로 나타났습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과 여성가족부뿐 아니라 경찰청과 검찰청도 통계를 낼 때 폭력과 살인, 강도, 강간(성폭력), 방화를 구분해 집계하고 있습니다.

 

3. 흉악 강력범죄, 여성의 성폭력 피해가 전부라고?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발표한 2014년 흉악 강력범죄 피해자 34126명 가운데 성폭력 범죄 피해자가 87.5%(29863)를 차지합니다. 이 가운데 여성이 27129(90%), 남성 피해자가 1375(4.6%)으로 나타났습니다. 일부에서 흉악 강력범죄로 분류된 통계는 사실상 성폭력 피해에 국한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이 통계의 이면에는 또다른 위험도 포착됩니다. 대검찰청의 2015 범죄분석의 피해결과를 보면 흉악 강력범죄로 인해 목숨을 잃은 피해자 중 여성의 비율이 높다는 점입니다. 2014년 살인사건으로 분류돼 숨진 357명 가운데 여성(187) 사망자가 남성(170)보다 많았습니다. 강도사건으로 분류돼 희생된 여성은 12, 남성은 8명이며 방화사건으로 숨진 여성은 8, 남성은 6명이었습니다. 성폭력사건으로 2014년 숨진 여성은 6명이고 남성 사망자는 없었습니다. 성폭력범죄뿐 아니라 다른 흉악 강력범죄의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은 여성이었습니다.

 

흉악 강력범죄에 노출되는 남성 피해자는 줄어드는 반면 여성은 되레 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1995년 살인, 강도, 강간, 방화 등 흉악 강력범죄에 노출된 여성 피해자는 전체 7947명 중 29.9%2377명이었으나 남성은 5570명에 달했습니다. 5년 뒤인 2000년엔 전체 피해자가 8765명으로 늘지만 남성 피해자는 2520명으로 뚝 떨어지고 여성 피해자는 6245명으로 뜁니다. 이후 여성 피해자는 꾸준히 늘어 201434126명을 기록했습니다. 남성 피해자는 20095649명까지 증가했다가 이후 꾸준히 줄어 2014년엔 3552명이었습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보고서에서 이러한 강력범죄의 성별 피해자 현황은 강력범죄가 여성을 대상으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라고 규정합니다.

 

4. 폭행을 포함하면 여성의 강력범죄 피해는 뚝 떨어지나?

 

대검찰청 2015 범죄분석 중 2014폭행·상해범죄 피해자의 성별 연령 분포

1번에서 인용한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2013년 통계 속 흉악 강력범죄와 폭력 강력범죄를 기계적으로 더해보겠습니다. 전체 강력범죄 피해자는 267781명으로 여성이 96855(36.1%), 남성이 136774(51%)로 나타납니다. 확실히 흉악범죄만 나온 통계보다 남성의 비율이 높아졌습니다.

 

대검찰청 2015 범죄분석 중 2014폭행·상해범죄 피해자의 성별 연령 분포

 

5. 한국의 성폭력 발생률은 높은가

 

한국 성범죄 통계

유엔 회원국들의 국가승인통계를 바탕으로 각국의 범죄를 국제적 통계로 제공하는 유엔 마약범죄퇴치국(UNDOC)이 최근 발표한 123개국의 2014년 성범죄 통계를 보겠습니다. 한국의 인구 10만명당 성범죄 피해자는 42명으로, 같은 해 수치가 확인된 77개 회원국 가운데 25위를 기록했습니다. 조금 더 많은 회원국의 인구 10만명당 성범죄 발생 자료가 확인된 2010년에는 100개국 가운데 32(10만명당 37)로 나타났습니다. 대검찰청의 <범죄분석>을 보면 유엔 통계와 조금 차이가 납니다. 2014년 인구 10만명당 성폭력범죄는 58.2건으로 나옵니다. 200511551건이던 강간·강제추행 등 성폭력범죄 발생 건수가 2010년에는 2584, 2014년에는 29863건으로 크게 뛰었습니다. 여기에는 강제추행과 카메라 촬영 등 범죄가 3배 이상씩 늘어난 탓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암수범죄’(실제로는 발생했으나 신고되지 않아 공식 통계에는 잡히지 않는 범죄)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피해 신고율이 낮기 때문입니다.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13년 성폭력 실태조사를 보면 성폭력 피해를 경험한 조사대상자 중 1.1%가 경찰에 직접 신고하였고, 강제추행의 경우는 5.3%, 강간·강간미수는 6.6%만 신고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국내 성폭력범죄 신고율이 10% 안팎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성폭력범죄 신고율은 40~50%대로 알려져 있습니다.

 

6. 한국의 젠더갭은 크다

 

세계경제포럼이 매해 발표하는 글로벌 젠더갭 리포트’ 2015년 자료를 보면 한국의 젠더갭(성평등)145개국 가운데 115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양성평등 수준이 굉장히 낮습니다. 분야별로는 경제활동 참여와 기회 순위가 125위로 가장 낮게 나왔습니다. 교육 102, 정치 참여 및 권한에서도 101위로 하위권을 기록했습니다. 이 자료가 발표됐을 당시 세계경제포럼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한국 순위가 지나치게 낮다는 지적도 일부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2014년 통계를 보면 한국은 15년째 남녀임금 격차가 가장 큰 나라로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오이시디 회원국 평균의 2배가 넘는 수치입니다. 각국의 의회 내 여성 의원의 비율을 비교해도 한국은 16.3%45개국 가운데 38위로 하위권에 속합니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올 3월 발표한 유리천장 지수(Glass-ceiling index)를 봐도 한국은 29개국 가운데 가장 낮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국제적 기준에서 한국사회의 양성평등 수준은 각 분야에서 굉장히 낮게 평가되는 게 현실입니다.

 

<한겨레>가 통계로 살펴본 한국 사회 여성이 겪고 있는 현실은 여기까지입니다. 강남역 살인사건의 규정이 어떻게 되든 한국사회에서 여성들이 차별과 폭력에 노출돼 왔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우리 사회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현실을 조금이라도 바꿔낼 수 있을까요?

 

사건의 본질에 침묵한 채 가해자의 특징만 부각하는 언론 524 오마이뉴스

이 사건은 낯설지 않다. 여성만을 범행 대상으로 삼은 사건들은 최근까지 빈번하게 발생해왔기 때문이다.

 

2주 전인 지난 2일 대전에서는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서 10대 청소년이 20대 여자의 머리를 벽돌로 내려친 사건이 발생했다. 이유는 '화가 나서'. 지난 43일에는 키 185cm, 몸무게 130kg20대 남자가 여성을 상대로 폭행·절도를 하다 3개월 만에 붙잡혔다. 그 역시 "여자만 보면 때리고 싶다"라는 말을 남겼다.

 

강남역 10번 출구에는 "주세요, 살아았다", "여자라서 죽었다" 등 추모객들의 소리 없는 절규가 벽면을 가득 채웠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저런 문구들이 '남성혐오적'이라며 볼멘소리를 하거나, 몇몇 '이상한' 사람들이 저지른 잘못 때문에 전체 남성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매도하지 말라며 억울해한다.

강력범죄 피해자 중 대다수가 여성이라는 사실(전체 강력범죄 피해자 26962명 중 23150, 85.86%, 경찰청, 2013)을 그들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왜, 어째서 그들은 여성이 죽었다는 사실보다 '애먼 남성이 범죄자로 모욕 당하는 것'에 더욱 열을 내는 것일까?

 

이러한 대응을 하는 이유는 그들이 '여성혐오(misogyny)'에 대한 문제를 깊이 인식하지 못해서일 수도 있겠으나, 무엇보다도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에 마음 깊이 공감하지 못해서일 것이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남성들은 밤길을, 공중화장실을, 집에 가는 골목길을, 엘리베이터 안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일상적 공간임에도 혹시 모를 누군가 때문에 겪을지도 모를 죽음의 공포를, 강박적으로 느껴지는 그 감정을 경험하지 않아도 된다. 너무 단순한 이유 아니냐고? 그렇다면 그들에게 한 가지 사건을 상기해보라고 제안하고 싶다. 지난 20145월에서 일어났던 '파주 모텔 살인사건'을 기억해보자.

 

똑같이 잔혹한 범죄, 왜 언론의 태도는 다른가

 

<그것이 알고싶다 : 검정 미니스커트 여인의 비밀>. SBS

 

이 사건은 그해 6<그것이 알고싶다 : 검정 미니스커트 여인의 비밀> 편으로 방영되어 유명해졌다. 30대 여자가 채팅으로 만난 50대 남자를 경기도의 한 모텔에서 잔인하게 살해하여 시체를 유기했다. 그들이 만난 이유는 성매매를 하기 위해서였다. 파주 모텔 살인 사건은 평범한 가부장·중년 남성이 성노동자 여성에게 별다른 이유 없이 살해당한 사건이다. 가해자는 경제적 지원을 해주던 남성이 일방적으로 관계를 정리하자 다른 남성(피해자)에게 분풀이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재판 과정에서는 인격장애를 주장해 정신감정을 받기도 했다.

 

사건을 접한 남성들이 얼마나 황당하고 무서웠을까. 나는 감히 가부장-중년 남성들의 충격과 공포를 짐작하지 못하겠다. 대신 한 페이스북 페이지의 남성으로 추정되는 네티즌들의 반응을 보며 남성들이 느꼈을 당혹감과 두려움을 헤아려볼 뿐이다. 댓글은 "하다하다 성매매하는 창녀가 살인까지 하는 세상", "무섭다", "조심해라"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여성에게, 그것도 최하위 계층인 성노동자 여성에게 죽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남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일이 발생했다.

 

한 페이스북 페이지의 <그것이 알고싶다-검정미니스커트 여인의 비밀>편에 대한 네티즌들의 반응. 인터넷 갈무리

우에노 치즈코의 책 <여성혐오를 혐오한다>에 따르면, 근대는 일부일처의 단혼 가족과 매매춘이 동시에 확립된 시대다. 때문에 남성은 여성을 이중으로 구분할 필요가 생겼다. 아내·어머니와 매춘부, 연애하기 좋은 여성과 결혼하기 좋은 여성, 요부와 숙녀 등. 여성은 성녀와 창녀라는 프레임에 갇혔고 그러한 이분법은 여성을 억압하고 성적으로 착취했다. 남성들의 필요에 의해 생겨난 성매매 문화에 남성 자신이 희생된 사건이 파주 모텔 살인 사건이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이 편리하도록 만들어놓은 제도가 부메랑이 되어 그 해악이 남성에게로 돌아온 것이다.

 

가해자가 철저히 남성만을 노리고 범행을 저질렀다는 점에서 이 사건은 위의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과 닮아 있다. 가해자들은 계획적으로 '성별 선택적' 살인을 저질렀다. 두 사건은 모두 젠더 불평등적인 사회구조의 문제로 접근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두 사건을 다루는 언론의 온도는 너무나 다르다. <조선일보><아시아경제>는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에 각각 <"여자가 무시" 목사 꿈꾸던 신학생 묻지마 살인>, <강남역 묻지마 살인범, 목사 준비하던 신학생 노숙하며 아르바이트>라는 제목을 달았다. 해당 기사의 제목은 현재 수정된 상태다. 이러한 제목들은 '착하고 선량한 남학생이 오죽이나 화가 났으면 여자를 해쳤을까' 싶은 느낌을 자아낸다. 그에 비해 파주 모텔 살인 사건의 경우, 가해자의 입장에 편향된 제목은 눈에 띄지 않는다. 또한 피해자의 성구매에 대해 비난이나 책망하는 내용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에서는 '여성이 늦게까지 귀가하지 않았다'며 피해자 탓을 하거나, '남성을 무시한 여성은 죽어도 마땅하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기사 제목이나 댓글이 넘쳐난다.

 

'미모의 전기톱 살인녀'... 본질은 이게 아니다

 

조선일보와 아시아경제 기사 제목. 해당 기사들의 제목은 현재 수정된 상태이다. 인터넷 갈무리

 

강남 화장실 살인 사건 가해자의 정신병력을 강조한 기사들의 제목이다. 인터넷 갈무리

 

또한 언론이 두 가해자를 대하는 방식은 사뭇 다르다.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의 경우, 언론은 유독 가해자의 정신 병력을 강조한다. 언론은 경찰 발표를 토대로, 가해자가 심각한 조현병 증상을 보이고 있으며 치료약 복용을 중단한 것이 살해의 원인이 되었다고 보도했다.

 

파주 살인 사건의 경우 가해자의 외모와 여성이라는 섹슈얼리티를 부각시키는 기사들이 많다. 제목에는 '범상치 않은 외모', '미모의 용의자'란 표현이 등장한다. '팜므파탈', '꽃뱀', '마녀' 등 성적으로 남성을 타락시키는 '악녀'의 이미지가 덧씌워져 하나의 가십거리로 소비된다. 사건의 사회적 맥락은 축소되고 피해자는 '여자 하나 잘못 만나 신세를 망친 운 없는 남자'가 되어 버렸다. 피해자들은 그저 이상한 사람들을 만나서 재수 없게 죽은 게 아니다. 그들의 죽음을 그렇게 헛되게 할 수는 없다. '?'라는 물음과 사건의 본질이 사라진 자리에 '정신질환자의 묻지마 살인''미모의 전기톱 토막살인녀'만 남게 해서는 안 된다.

 

파주 살인 사건 가해자의 외모를 부각시켜 보도하는 언론들. 인터넷 갈무리

 

여성이 살해당하는 사회는 남성에게도 안전하지 않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성별이 뒤바뀌었을 뿐이지만, 사건마다 언론은 전혀 다른 태도를 보인다. 범죄의 피해자가 남성일 때, 언론은 당연하게도 가해 여성의 잘못을 지적한다. 심지어 가해 여성에 대한 인신공격도 서슴지 않는다(이투데이, 2014630일 보도, <파주 토막살인 사건, 유력 용의자 몇 달전까지 성매매시민들 "쉽게 살았네">). 그러나 피해자가 여성인 대다수의 사건을 다룰 때는 다르다. 초점은 항상 피해자에게 맞춰지며, 그 원인 또한 피해자에게서 찾아내려 한다.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도 이슈화되지 않았더라면 남성을 무시한 여자가 화장실에서 살해당한 '강남 화장실녀 사건'으로 기억되었을 것이다. 이렇듯 남성 중심적 사고방식에 익숙한 사회에서 사건 자체뿐 아니라 사건을 보도하는 언론의 작태 또한 여성혐오적이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생존 자체를 '구걸'해야 하는 지경까지 사태가 악화된 것에는 언론의 책임이 크다.

마지막으로, 우리 사회가 젠더 불평등 사회라는 것은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의 남녀 출생 성비 불균형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1980년대 이후에 태어난 남녀가 결혼 적령기를 맞이한 현재 남성 6명 중 1명은 짝이 없을 정도로 남성이 많다는 보도가 심심찮게 들려온다.

 

<남성과잉사회>의 저자 마라 비슨달은 잉여 남성이 증가할수록 불안정하고 폭력적인 사회가 된다고 경고한다. 남성과잉사회란 남성의 숫자뿐 아니라 남성성 또한 과시적이고 과열된 양상을 보인다는 뜻이다. 많은 남성들이 더욱 '남자다운' 남자가 되기 위해 폭력과 위험에 노출될 것이다. 그리고 더 많은 남성들이 남성과잉사회의 약자로 전락할 것이다. 대로변의 화장실에서 죽는 사람이 이제는 여자가 아니라 서열싸움에서 패배한 남자가 될 수도 있다.

 

약자에 대한 혐오가 극에 달한 지금의 상황은 앞으로 벌어질 일들의 예고편이 아닐까. 여성은 이미 너무나 많이 살해당했다. 어떤 남성들은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을 위시한 많은 증오범죄가 내 얘기가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여성이 살해당하는 사회는 남성에게도 더 이상 안전한 사회가 아니다.

 

 

한국인 최초 맨부커상 수상 한강은 누구인가 517 오마이뉴스

등단부터 주목받아온 '차세대 한국문학 기수

 

 

소설가 한강(46)이 한국인 최초로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Man Booker International Prize) 수상자로 결정되면서 작가의 이력과 작품 세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노벨문학상, 프랑스 공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불리는 맨부커상은 영어권에서 최고 권위를 자랑한다. 특히 한강은 비()영연방 작가들이 경쟁하는 인터내셔널 부문에서 터키의 노벨상 수상자 오르한 파묵, 중국의 유명 작가 옌렌커 등을 제치고 수상의 영예를 차지했다.

 

대 이은 소설가'차세대 한국 문학의 기수'

한강은 197011월 전라남도 광주에서 소설가 한승원의 딸로 태어났다. 이후 서울로 올라온 그는 풍문여고를 거쳐 연세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한강은 소설가로 데뷔하기 전 시로 먼저 등단한 특이한 이력을 지녔다. 그는 1993년 계간 '문학과사회' 겨울호에 시가 당선됐고, 이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문단에 공식 데뷔했다. 수상작은 단편 '붉은 닻'.

 

한강은 이후 '여수의 사랑', '내 여자의 열매', '그대의 차가운 손', '검은 사슴', '바람이 분다 가라', '희랍어 시간' 등 다양한 소설을 발표하며 활발하게 활동했다. 그는 소설 외에도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와 동화 '내 이름은 태양꽃', '눈물상자' 등을 펴내기도 했다.

 

맨부커상을 수상한 작품 '채식주의자'(The Vegetarian)2004년 계간 '창작과비평'에 처음 연재된 연작소설로, 2007년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한강이 마지막으로 발표한 소설은 '채식주의자'와 함께 해외에서 호평을 받고 있는 '소년이 온다'.

 

한강은 시심(詩心) 어린 문체와 독특하면서도 비극성을 띤 작품 세계로 일찌감치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대부분의 작품에서 폭력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아름답고, 서정적인 문장으로 풀어낸다. 문학평론가들은 그의 작품을 "상처를 응시하는 담담한 시선과 탄탄한 서사, 삶의 비극성에 대한 집요한 탐문"이라고 정리한다.

 

문단은 이런 한강에게 한국소설문학상, 이상문학상, 동리문학상과 함께 '차세대 한국문학의 기수'라는 수식어를 안겼다. 그는 2007년부터 서울예대 미디어창작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서울예대 학생들은 한강에 대해 "섬세함과 카리스마로 학생들을 사로잡는 교수"로 표현한다.

 

또 한강은 '문인가족'으로도 유명하다.

아버지는 소설 '아제아제 바라아제', '추사', '다산의 삶' 등을 펴낸 한국 문단의 거장 소설가 한승원이다. 한승원과 한강은 국내 최고 소설문학상으로 꼽히는 이상문학상을 부녀 2대가 수상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한강의 남편은 김달진문학상, 유심문학상 등을 수상한 문학평론가 홍용희 경희사이버대 교수다. 오빠 한동림 역시 소설가로 활동 중이다. 한승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딸 한강은 전통사상에 바탕을 깔고 요즘 감각을 발산해 나는 작가"라며 "어떤 때 한강이 쓴 문장을 보며 깜짝 놀라서 질투심이 동하기도 한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그는 딸과 아들의 작품활동은 자신을 게으름에 빠져 있지 않도록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작가 한강에게 소설쓰기란

"어떻게 보면 소설 쓰는 일은 서성거리는 것과 비슷합니다. 뜨겁거나 서늘한 질문들을 품은 채 앞으로 나아가거나 뒤로 돌아가기도 하지요. 하지만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는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야 되짚어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질문들을 품은 채 저에게 주어진 삶 위에서 끈질기게 서성일 것입니다."

 

한강은 지난 2월 열린 한 문학회에서 자신의 소설 쓰기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소설을 통해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매번 던져본다고 말한다. 이 질문은 인간의 폭력성과 결백성에 대한 탐구로 확장된다. 즉 소설 쓰기란 한강이 이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한강은 오랜 기간 이 문제에 천착했지만 아직 답을 찾지는 못했다며 그 질문의 완성에 근접하기 위해 글을 쓴다고 한다. 그래서 "그냥 조용히, 진지하게, 앞으로도 지금처럼, 천천히 계속 글을 쓰려고 한다"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한강이 이러한 질문에 천착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계기는 바로 1980년에 일어난 광주민주화운동이다. 1970년 광주에서 태어난 한강은 서울로 올라온 뒤 아버지가 보여준 사진첩 하나가 자신의 인생을 바꿔놓았다고 토로한다. 아버지 한승원이 보여준 것은 바로 광주민주화운동에서 학살된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첩이었다.

 

한강은 "열세 살 때 본 그 사진첩은 제가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하게 된 비밀스런 계기가 됐다""이때부터 간직해온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세 번째 장편소설 '채식주의자'부터 탐구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한강의 문학성과 더불어 질문에 대한 탐구가 최고조에 이른 것은 2014년 출간된 '소년이 온다'(창비)에서다. 그는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중학생 동호와 그를 중심으로 한 인물들의 아픔을 섬세하게 풀어낸다. 한강이 "우리가 폭력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세계를 견뎌낼 수 있는가에 대해 질문했던 작품"이라고 설명한 이 소설은 해외에서 "역사와 인간의 본질을 다뤘다"라는 대대적인 호평을 받았다.

 

계속해서 폭력을 탐구하는 한 인간의 선함을 다룰 수 없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한강은 이에 대해 아래와 같이 설명했다.

 

"저는 인간의 선함을 간절하게 믿고자 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인간의 존엄성을 굳게 믿고, 인간을 사랑하기 때문에 아름다움과 폭력이 공존하는 세계에 고통과 슬픔을 느낍니다. 그래서 작품들을 쓰며 힘들고, 고통스러웠지요. 하지만 그 고통 안에서 하나의 열쇠,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받은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는 채식을 하려는 주인공 영혜와 그를 둘러싼 가족들 간의 갈등을 섬세한 필체로 그린 소설이다. 그는 이 소설이 '폭력과 아름다움이 뒤섞인 세계를 우리가 견딜 수 있을까'란 질문을 던진다고 말했다.

 

그 질문은 소설 속에서 분명한 답으로 돌아오지는 않는다. 그는 답을 내지 않고 계속 다음 소설을 통해 질문을 던진다. 그 다음에 한강이 쓴 소설 <바람이 분다, 가라>(2010)'그렇다면 우리는 폭력적인 삶을 살아내야 하는가'라는 또 다른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다음 소설 <희랍어 시간>(2011)은 다시 '정말 살아내야 한다면, 인간의 어떤 지점을 바라보면서 살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2년 전 소설 <소년이 온다>에서는 폭력적인 상황에서 존엄을 지키고 나아가는 사람들의 질문을 담았다고 한다.

 

아버지와 대화하기, 직장상사보다 어렵다 524 오마이뉴스

한국언론학회서 경청대화지수 최초 공개

저마다 한국사회를 '불통 사회'라 일컫지만, 무엇을 근거로 판단할 수 있을까. 개인과 집단의 소통 역량에 대한 진단과 측정이 과연 가능할까?

이범준 박사는 논문 서두에서 오늘날 한국 사회는 "'충동적·분출적 말문 트임''상실된 말귀 열림'이 결합된 '군론(群論)'형 소통" 체계라는 박승관 교수(서울대 언론정보학과)의 글을 인용하며 한국사회 소통문화의 특징을 짚었다. 이 박사는 최근 한국사회에서 '경청 역량'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이유에 대해 "직장, 가정, 학교와 같은 개인의 일상 영역에서도 권위주의적 상명하달식의 의사소통 방식이 그 정당성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라며, "지도자와 가장의 덕목으로 경청, 대화, 관용 등을 높이 평가하는 가치의 전환이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사회에 올바른 경청과 대화 문화가 절실하다는 것은 2015년에 '함께하는경청'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전국 만19세 이상 성인남녀 1006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우리사회에 경청문화 확산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91%에 달했다.

 

한국사회에 소통과 경청이 필요한 지점이 공적인 영역뿐일까. 조사 결과를 보면 일상생활의 사적 영역에서도 소통의 어려움과 경청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의견이 많았다. 조사 참여자의 대다수인 62%"나는 경청을 잘한다"고 평가한 반면, '상대방도 경청을 잘한다'고 대답한 경우는 7%에 불과했다. 45%의 응답자가 "상대방이 경청을 못한다"고 답한 반면, '자신이 경청을 못한다'는 대답은 '4%'에 불과했다. 대다수의 응답자가 불통의 원인이 주로 상대방에 있다고 평가한 셈이다.

 

직장상사보다 어려운 아버지와의 대화

경청이 잘되는 대상이나 집단에 대한 분류를 살펴보면, 친구 간 경청이 가장 잘 되는 것으로 집계됐고, 아버지와 자녀는 직장상사와 부하직원 간 대화보다 더 소통이 힘든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여야 정치인 간이나 진보와 보수로 이념이 다른 사람들끼리도 소통이 힘들다고 평가했다. 앞선 여론조사 결과를 종합하자면, 불통사회라는 진단은 공적 영역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개인적, 조직적 차원의 사적 영역 역시 경청과 대화 역량이 요구되고 있다는 현실을 우회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경청이 잘되는 대상이나 집단에 대한 분류에 대해서 살펴보면, 친구 간 경청이 가장 잘 되는 것으로 집계됐고, 아버지와 자녀는 직장상사와 부하직원 간 대화보다 더 소통이 힘든 것으로 조사됐다.함께하는경청 제공

 

경청대화의 범위는? 동의하지 못해도 이해하는 데까지

이런 사회적 맥락 속에서 경청대화 모형은 '자가진단''조직진단'2가지 형태로 개발되었고, 각각의 상황에 맞게 '듣기''말하기'2개 영역으로 구성했다.

 

우선 듣기 관련 항목을 보면 단순히 다른 사람의 말을 수동적으로 듣는 차원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말로 표현"하거나 "다른 사람이 말한 내용을 정리하거나 확인"하는 것까지 포함되어 있다.

 

함께하는경청과 함께 경청대화 모형을 개발한 이범준 박사는 경청대화의 범위를 "나와 상대방이, 듣고 말하는 상호작용 행위를 통해,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는 것까지로 설정했다"면서, 대화를 통한 설득이나 합의 도달 여부와는 무관하게, 대화 상대방의 입장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정도를 측정하는 항목을 경청대화 모형에 포함했다고 설명했다.

 

듣기 관련 항목을 보면 단순히 다른 사람의 말을 수동적으로 듣는 차원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말로 표현하거나 다른 사람이 말한 내용을 정리하거나 확인하는 것까지 듣기의 관련 항목도 지표 구성에 포함되어 있다. 함께하는경청 제공

 

대화의 기술만? 경청의 관점과 태도까지!

함께하는경청의 경청대화 모형은 경청대화 수준을 개인뿐만 아니라 집단(, 부서, 기관 등) 단위에서도 측정할 수 있도록 개발됐다. 이를 통해 공공기관, 민간회사, 정치권 등의 조직 내 경청대화 수준 및 개선방안 도출을 위한 진단지표로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함께하는경청의 경청대화 모형은 대화의 행태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경청의 관점이나 태도와 관련이 있는 인식적인 부문도 지표로 구성하였다. 이를 통해 특정 대상 조직이 이견이나 다름이 허용되고 더 나아가서 환영되는 조직 문화인지 그렇지 않은지를 측정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런 경청대화 모형은 2가지 유형의 조사를 통한 검증 과정을 거쳤다. 1차 조사는 일반국민 대상 온라인 조사로 실시되었으며, 응답자는 전국 만 19세 이상~60세 미만 성인 남녀 515명을 지역별, 성별, 연령별 인구구성비에 맞게 무작위 추출했다.

 

가장 최근에 기억에 남는 대화나 회의 상황을 떠올려, 대화나 회의를 주도한 2명의 경청대화 수준을 평가하도록 했다. 2차 조사는 서울의 한 기업 사무직 직원 100명에 대해 온라인조사 방식으로 실시되었는데, 조사대상을 평직원 26, 대리급 29, 과장급 25, 차장급 20명 등으로 구성했다.

 

2차 조사는 응답자에게 자기 부서장이 평소 대화나 회의를 어떻게 하는지 평가하도록 했다.

 

 

경청대화 지수에는 대화의 기술적인 부분뿐 아니라, 경청의 관점과 태도에 대한 부분도 지표로 구성됐다. 함께하는경청 제공

 

화려한 말발보다 잘 듣는 게 경쟁력

조사결과를 요인분석한 결과 23개 항목으로 측정된 경청대화 모형은 '경청하기(듣기)', '이해돕는 말하기', '대화 예의 지키기'등의 3개 차원으로 구성됐다. 또한, 경청대화 행위와 대화 참여자를 매력있게 느끼는 정도 간의 관계를 회귀분석을 통해 살펴본 결과 대화 참여자를 매력있게 느끼는 정도는 '경청하기(듣기)'의 영향이 가장 컸고, 그 다음이 '대화 예의 지키기'로 나타났다.

 

화자가 얼마나 편하고 다정하게 교류할 수 있는 사람인가는 그가 상대 말을 얼마나 잘 듣고, 상대가 편하게 말할 수 있게 배려하는지에 따라 좌우된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는 미국의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Sherwyn Morreale 교수 등의 2015년 논문에 따르면 조사에 참여한 대학생 62.3%가 능력 있는 소통행위자의 요건으로 "잘 듣는 사람"을 꼽았고, 이는 전체 21개 항목 응답결과 중 가장 높았다.

 

화자의 사교적 매력에 대한 평가에 대해서는 '경청하기'의 영향이 가장 컸고, 그 다음이 '예의 지키기'로 나타났다. 화자가 얼마나 편하고 다정하게 교류할 수 있는 사람인가에 대한 판단에는 그가 얼마나 상대 말을 잘 듣고, 상대가 편하게 말할 수 있게 하는지가 중요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는 미국의 대학생을 대상으로 조사한 한 설문조사 결과와도 자연스럽게 중첩된다. 조사에 따르면 능력 있는 소통행위자의 속성에 대한 질문에 대해 전체의 62.3%"잘 듣는 사람"이라는 항목을 선택했고, 이는 전체(21개 항목) 중 가장 높은 비율이었다는 것이다.

 

한편, 민간기업 내 경청대화 수준을 측정한 이번 결과에 따르면, 부서장 평가 기준으로 소통의 내용적 측면보다 소통의 관계적 측면(대화 예의 지키기)을 더 많이 고려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같이 일하기 좋은 사람'을 평가함에 있어 '이해를 돕는 말하기'보다 '경청하기(듣기)'의 영향이 더욱 컸다 즉, 대화 상대에게 매력을 느끼는 정도는 그 사람의 '말하기' 능력보다는 '듣기' 능력 및 '듣는 태도'의 영향이 더 크다는 것이 복수의 조사결과를 통해 입증된 것이다.

최명원 교수는 "대화를 한다는 것은 주로 '내 말 좀 들어달라'는 의미로 여겨지는 경우가 더 많다. 하지만 '네 말도 들어줄게"라는 열린 마음이 균형을 이룰 때 의미 있는 대화가 가능하다"며 이를 위해 경청대화 모형에 기반한 경청대화 진단이 개인 또는 집단의 경청대화 수준을 제고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평가했다.

 

언론 "반기문, 역대 최악의 유엔 사무총장" 523 프레시안

9년이나 했는데 아직도 실수절차에만 집착, 실패한 행정"

 

영국 주간 <이코노미스트>가 차기 유엔 사무총장 하마평 기사에서 현직인 반기문 총장에 대해 "역대 최악"이라는 혹평을 했다. 잡지는 21일자 기사에서 "지금까지 유엔 사무총장직을 수행한 8명 중 유일하게 널리 존경받는 이는 콩고 독립 후의 혼란상을 수습하려 노력하던 중 비행기 사고로 사망한 스웨덴 출신의 대그 하마슐드"라며 "가나 출신의 코피 아난이 그 다음 정도일 것"이라고 평했다.

 

찬사와 폄하, 우리가 몰랐던 반기문의 민낯’525 한겨레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지난 201514일 유엔 비공식회의에서 포스트 2015’ 의제에 대한 종합보고서 ‘2030년까지 존엄으로 가는 길의 발간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위인으로 떠올랐다.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의 반열에 오를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남정호 중앙일보 기자의 책 <반기문, 나는 일하는 사무총장입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너무도 무능한,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한국인이다.” (미국 외교전문 격월간지 <포린 폴리시>)

 

 한 사람을 두고 나라 안팎의 평가가 완전히 다르다. 이런 극단의 상황에서 반기문 사무총장의 진짜 얼굴을 알기란 쉽지 않다. 그래도 그의 민낯을 들여다보고자 미국 뉴욕 외교가의 소식통들과 언론인들로부터 얘기를 들어봤다.

 

# 대권 도전 할까 말까?

최대의 관심사다. 25일 한국을 찾은 반기문 총장에게 쏟아질 질문도 여기에 집중될 것이다. 그는 지금껏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주변의 정황들은 그가 꽤 오래전부터 마음의 준비를 해오고 있음을 보여준다. 유엔 사무총장 관사는 뉴욕 이스트리버 강변에 있다. 유엔 본부까지는 1km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반 총장은 새벽 430분이면 어김없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장욱진 비서가 가져다주는 언론 보도 스크랩을 들춰보는 일이다. 장욱진 비서는 반 총장이 외교부 차관과 장관일 때부터 비서로 일했던 외교관으로 반 총장의 심중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가 준비한 스크랩 맨 위의 기사들은 CNNAP도 뉴욕타임스도 아니다. 반 총장을 다룬 우리나라 언론의 보도다. 세계 각국의 분쟁보다는 한국의 정치 현실이 우선인 셈이다.

 

 반기문은 유엔의 사무총장이다. 유엔의 공보실은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행한 업무에만 관심이 있다. 한국 정치와 관련된 반기문의 동향은 김원수 유엔 사무차장이 따로 챙긴다. 우리나라 외교관 출신인 김원수 사무차장은 유엔 군축고위대표도 맡고 있다. 무기거래·핵무기·대량살상무기 등 유엔의 군축·무기 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최고 책임자다. 그가 가욋일로 반기문 총장의 정무를 담당하는 것이다. 한국 언론 동향은 군축 부서에서 일하는 유엔 직원이 일상적으로 점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유엔 직원 역시 한국인 출신으로 그의 아버지가 반 총장의 외교부 선배다. 외신들이 반기문 사무총장이 한국인들에 둘러싸여 있다고 비판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유엔의 사무총장은 늘 감시받는 대상이다. 5개의 상임이사국뿐만 아니라 193개 회원국들이 사무총장의 동선에 관심이 있다. 자신의 국익과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반 총장이 공개적으로 한국인들을 만나기 어려운 이유다. 그런데도 한국의 정치인이 뉴욕에 오면 반 총장은 잠시라도 시간을 내 만난다. 물론 비공개다. 그 만남은 주 유엔 한국대표부나 뉴욕의 총영사관이 주로 주선하고 있다.

 

# 대통령으로서 능력을 갖추었나?

반기문 총장은 별명이 많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반반(半半)이다. 뭔가 애매한 어법 때문이기도 하고 누구에게도 욕먹지 않는 적당한 처신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를 반반(潘半)으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기문의 반()만 해도 성공한다는 뜻이란다. 그만큼 반기문 총장의 실력이 출중하다는 거다.

 

 반 총장의 부지런함에 대해 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다. 그는 1년 가운데 3분의 1 이상은 객지에서 보낸다. 한 해 평균 45개국, 43만여km를 돌아다녔다. 지구 둘레가 4km이니 1년에 지구를 10 바퀴 이상을 돌아다닌 셈이다. 올 연말 10년 임기를 마치면 지구 100 바퀴를 돌게 된다. 기네스북에 오를 수도 있다. 코피 아난 전임 사무총장의 해외 일정은 헐렁했다. 공식 일정 하루 전에 출장지에 도착해 쉬고, 뉴욕에 돌아와서도 하루 정도는 휴가였다. 그러나 반 총장은 출장을 가도 새벽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한시도 멈추지 않고 일하는 일벌레다. 가나의 귀족 출신과 한국의 빈농 출신의 차이점으로 해석하는 이가 있을 정도다.

 

 그런데 정작 유엔 내부에서는 불만이 많다고 한다. “해야 할 일은 놔두고 생색나는 곳만 돌아다닌다는 비판이다. 유엔 사무총장은 세계의 대통령이라기 보다는 유엔 사무조직을 이끄는 조직의 수장성격이 강하다. 세계 각국에서 모인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을 조율하는 능력이 핵심적으로 요구된다. 그런데 그가 바쁜 해외 일정 때문에 협의하고 결정을 내리는 일이 지체되고 있다는 것이다. 외신이 그는 인권 보호를 위해 용감하고 단호한 목소리를 내는 대신 명예 박사 학위나 챙기기 위해 세상을 돌아다니고 있다고 비판하는 게 아주 근거없는 말은 아닌 것이다.

 

반기문 사무총장 취임 이후 유엔 역사상 처음으로 연거푸 4년 동안 임금이 동결됐다. 반 총장의 책임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유엔 직원들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그런데 반 총장이 불난 데 기름을 부었다. 이른바 열린 공간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유엔은 본부 건물이 비좁아 뉴욕 맨해튼 여기저기에 사무실을 빌려 쓰고 있었다. 짐작하듯이 맨해튼 임대료는 살인적이다. 그래서 반기문 총장이 내린 결정이 앞으로는 먼저 출근한 순서대로 아무 자리에나 먼저 앉는다이다. 값비싼 외부 사무실을 줄이고 직원들을 본부로 불러들여 비용을 줄여보자는 취지다. 이에 따라 유엔본부에서 일하는 6600명 가량의 직원들 가운데 국장 이상의 간부를 빼고는 모든 직원들이 자기 책상이 없어졌다. 당연히 직원들이 반발했다. “우리가 영업사원이냐는 불만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그래도 반 총장은 이를 개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반기문 식 효율성이다. 지난해 여름 일이다. 내년에 반기문 대통령이 탄생한다면 우리나라 공무원들도 자기 책상이 없어질지 모른다.

 

 물론 반기문 총장의 유엔 개혁이 긍정적 효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세계적 철밥통인 유엔에서 인사 교류의 칸막이를 없앤 게 대표적이다. 유엔 직원은 대부분 뉴욕 제네바 빈 등 선진국 대도시에서 일하기를 원하고, 험한 분쟁 지역 근무는 기피해서 이들 두 지역 간의 교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험지에서 본부로 들어오는 건 하늘의 별따기이고 본부에서 험지로 나가려는 사람은 눈을 씻고 봐도 없다. 반 총장은 고인 물을 흔들었다. 뉴욕 제네바 빈에서의 근무 연한을 최장 7년으로 제한하고 분쟁 지역은 3년으로 정해 근무 연한이 차면 반드시 다른 근무지로 이동하도록 한 것이다.(<반기문, 나는 일하는 사무총장입니다>) 하지만 이 제도가 본격 시행되는 건 몇 년 뒤의 일이다. 반면 책상이 없어진 허전한 현실은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다. 반기문 총장에 대한 유엔 내부 평가가 박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01356일 뉴욕 유엔본부를 방문해 반기문 총장과 만나고 있다. 뉴욕/청와대사진기자단

 

# 뼛속까지 친미인가?

변방의 나라 한국의 외교부장관이 유엔 사무총장이 된 데는 미국의 힘이 절대적이었다. 게다가 반 총장은 미주국장을 거치는 등 외교부에서 미국통으로 성장했다. 자연스레 미국의 논리에 익숙할 수밖에 없다. 그 때문에 유럽과 비동맹세력들은 반 총장이 지나치게 친미적이라고 평하고 있다. 특히 러시아는 외교적 무례에 가까운 대접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반 총장도 가까운 사람들과의 사석에서는 미국의 갑질에 대해 분노를 토로하기도 한다.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반 총장이 했다는 말을 전한다. 때는 20138, 시리아에 대한 미국의 폭격이 초읽기에 들어갔을 무렵이다.

 서맨서 파워 유엔주재 미국 대사한테서 전화가 왔어. 미국이 공습을 할 수 있도록 시리아에 들어가 있는 유엔 현장 조사단을 빼달라는 거야. 그 여자 말이 얼마나 빨라. 대충 듣고 알았다고 했는데, 좀 있다가 존 케리 국무장관한테서 전화가 오는 거야. 그 친구하고 알고지낸 지 하루 이틀도 아닌데 무례하다 싶을 정도로 독촉을 하는 거야. 빨리 조사단 철수시키라고. 기분이 좀 상해 있는데 이번엔 오바마 대통령한테서까지 전화가 오는 거야. 차 타고 이동 중이었는데 차를 세우라고 했지. 오바마가 ‘Pack and leave!’를 세 번이나 외치는 거야. 우리말로 하면 뭐야. 당장 짐싸서 떠나라는 거 아냐. 그래서 나도 맞받아쳤지. ‘뭐가 그리 급하시오! 화학무기 조사단의 보고나 들어보고 얘기합시다.’ 결국 내가 이겼지. 오바마가 폭격 명령을 거둬들인 건 나 때문이야.”

 

# 친박의 지원은 독일까 약일까?

친박이 반기문 총장을 대통령 후보로 민다는 건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뉴욕 외교가에서도 이런 조짐은 이곳저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대표적인 게 반 총장의 대외 활동비다. 유엔 사무총장은 미국 대통령 수준의 연봉을 받도록 규정돼 있다. 그러니 40만달러(48천만원) 정도를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유엔 사무총장은 판공비가 하나도 없다. 그래서 전직 사무총장들은 직원들하고 밥을 먹어도 제 밥값을 각자 내는 더치 페이를 했다. ‘동양의 예법으로는 너무 어색하다. 그래서 반 총장은 사재를 털어 밥을 사고 와인을 대접했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그래서 뉴욕 외교가는 주 유엔 한국대표부가 반기문 총장을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을 하고 있다. 반 총장이 주재하는 자리에는 대개 주 유엔 한국대표부의 오준 대사나 직원들이 나오기 때문이다.

 

 반기문 사무총장의 최측근인 윤여철 외교관이 지난 2월 청와대 의전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긴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 윤 비서관은 200611월 반 총장이 선출된 뒤 그를 보좌하기 위해 외교부에서 유엔으로 파견됐던 반기문 사람이다. 그는 반 총장을 위해 일하다 지난해 10월에야 귀국했다. 꼬박 9년 동안 반기문 총장을 모셨으니 반 총장의 가족과도 막역한 사이다. 그런 윤 비서관이 이번엔 청와대로 들어가 박근혜 대통령을 지근 거리에서 보좌하니 박근혜 대통령과 반기문 사무총장 사이의 연락책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9월 유엔 총회 방문 기간 동안 반 총장과 일곱 차례나 만나는 등 각별한 애정을 표현했다.

 

 그런데 반 총장에게 박 대통령의 지원이 도움이 되는 걸까? 상황은 안 좋은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박 대통령과 친박에 대한 국민적 시선은 더 싸늘해지고 있다. 그럴수록 친박으로서는 반기문에 대한 필요성이 더 커지고 있다. 반기문 총장으로서는 친박이 주도하는 새누리당의 후보가 되기는 더 쉬어진 셈이다. 하지만 정작 본선에서의 경쟁력은 그만큼 떨어진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친박에 의존하지 않고 본인의 색체를 분명히 하면서 상황을 돌파해야 한다. 과감하게 발언하고 머뭇거리지 말고 뛰어들어야 한다.

 

 반기문 총장의 또다른 별명은 기름바른 장어. 아무리 곤란한 질문을 해도 쏙쏙 잘도 빠져나가서 기자들이 붙여준 것이다. 이 별명은 어느새 한자어로 변형돼 기름 유()에 뱀장어 만()을 쓰는 유만이 되었다. 반 총장은 이 별명이 마음에 안 들었다. 그래서 어느 한학자를 찾아가 유만을 다른 뜻으로 바꿔달라고 요청했다. 그래서 움직일 유()에 일만 만()을 쓰는 유만 즉 세상 사람들을 움직인다는 뜻으로 바꿨다. 반 총장은 가끔씩 사석에서 내가 별명을 바꿔서 세계의 대통령이 됐다는 농담을 했다. 한국의 대통령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더 이상 유만(油鰻)이어서는 곤란하다. 진정 유만()하고자 한다면 유만(油鰻)을 버려야 한다.

 

재벌 사내유보금 ‘754조원환수라는 해법 524 경향

지난주 4학년 수업. ‘졸업과 나를 주제로 학생들이 발표하던 중 한 여학생의 이야기에 교실 안은 한동안 숙연해졌다. 자신은 아버지의 해고와 가출, 빚더미 등 갑작스러운 집안 사정으로 인턴사원으로 입사, 일과 공부를 병행하다 보니 대학입시에 비하면 참으로 단출해 보였던 졸업요건을 충족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니는 섬유무역회사는 아침 9시부터 밤 10시까지 주 6일 근무, 유일한 영어능통자로 해외현지 근무시간에 맞춘 업무 등 주말에도 불려 나가니 중국어시험도 졸업논문도 거의 할 수가 없는 상태이지만, 좀 더 정진하여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하는 자신이 한심한 생각이 든다며 자신이 세운 목표를 4가지로 제시한 것이다..

HSK 5급 합격, 다이어트, TOEIC 900점 이상, 컴퓨터 활용능력 자격증. 그런데 그 살인노동으로 받는 한달 임금은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150만원이라니 다른 학생들은 분노를 금치 못하고 자신의 경험들을 토로하는데 취업준비 중에도 시간을 쪼개 알바를 하지만 시급과 일당을 떼이기 일쑤고 온갖 갑질까지 감당해야 하는 안타까운 교감이 이어졌다.

 

그 오늘날 청년들이 맞고 있는 문제의 보편성, 그것은 비정규 불안정노동의 무차별 양산, 턱없이 낮은 임금, 살인적 노동시간으로 집약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64월 현재 청년실업률이 10.9%로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으며, 작년 청년취업 중 비정규직 비율이 64%, 6년 만에 10% 증가라는 사실만으로도 취업 자체가 어려운 청년실업의 현실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대체 왜 이 지경에 이른 것인가. 사실 그 원인은 너무도 자명하다. 독점재벌 위주의 경제구조, 고용 없는 성장, 노동의 유연화 전략이 그것이다. 재벌 위주의 축적 구조를 통해 30대 재벌은 지난 10년간 여의도의 34배에 달하는 땅을 사들였다.

 

30대 재벌 269개사의 사내유보금은 7536004억원(2015 회계연도 개별재무제표 기준 분석)에 달한다. 사내유보금은 자본잉여금과 이익잉여금으로 구성되는데 그것은 지난 9개월 동안 6.1%의 성장을 이루었다. 문제는 사내유보금 축적 방식으로, GDP34%459조원을 현금으로 들고 있는데도 2008년 이후 연평균 재투자율은 1%에도 못 미치는 한국기업의 현금보유에 대해서는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걱정할 정도이다.

 

그렇다면 재벌 곳간에 막대한 사내유보금의 축적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그것은 그들의 경영능력 때문이 아니라 사회자원을 모조리 빨아들였고, 국가가 그것을 보장해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노동자 서민이 자본의 손실, 막대한 이윤축적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아오는 동안 말이다. 그런데도 재벌기업들은 이윤의 사회적 환원은커녕 원청 재벌의 안정적 이윤축적을 위해 하청기업의 노조까지 모조리 파괴하는 등 이윤독점을 위해 생산현장을 죽음의 일터로 만들고 있다.

정부는 이를 위해 총선 전에도 일반해고와 취업규칙변경 완화를 골자로 하는 기업활력제고특별법과 파견업 확대가 가능한 노동 4법까지 강행하고 있다. 이제 우리 사회는 다른 전환의 기회를 갖지 않으면 안된다. 이제껏 재벌의 이윤축적에 사회자원이 총동원된 만큼 그로부터 창출되는 부가 사회로 환원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재벌 독점이윤의 환수를 통해 한국사회를 구조 재편해 나가는 아래로부터의 경로를 열어가야 하는 것이다.

 

30대 재벌들의 사내유보금 754조원 중 아주 일부 1743700억원만 있어도 시급한 5대 민생·공공 과제는 해결될 수 있다(참세상연구소 2016). 최저임금 1만원 1348100억원, 300인 이상 대기업 비정규직 노동자 182만명 정규직화 218400억원, 56만 청년실업 해소 67200억원, 의료공공성 강화를 위한 기반 확충 95000억원, 장애인 의무고용제 현실화 15000억원 등. 사내유보금환수특별법 제정 등 재벌의 사회화 운동을 통해 새로운 사회적 부를 창출해내는 다른 세상은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다./ 백원담 | 성공회대 중어중국학과 교수

 

원폭 투하 진짜 이유 "일본인은 짐승" 프레시안 525

오바마의 히로시마 방문에 부쳐] 원폭에 대한 재반성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오는 527일 일본 히로시마(廣島)를 방문해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 함께 원폭 희생자 위령비에 헌화하고 제2차 세계 대전 때 숨진 모든 희생자를 위해 묵념할 계획이다. 오바마가 위령비에 헌화하는 자리 피폭 피해자를 초청하는 것도 검토 중이다. 우리는 이런 오바마의 태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지금까지 우리는 제2차 세계 대전 때 미국이 히로시마(199586)와 나가사키(9)에 원자 폭탄을 투하한 일에 이중적인 마음을 가져왔다. 절대 다수는 제2차 세계 대전의 전범국인 일본에 대한 원폭 투하는 전쟁을 일찍 끝내기 위한 마땅한 조치였다고 믿어 왔다. 일부 소수가 지속적으로 인류 절멸의 가능성을 열어젖힌 원폭 사용의 정당성을 따져 물었을 뿐이다.

 

지금 원폭 투하가 더 굳건한 미-일 동맹을 완성하는 수단으로 쓰이는 역설을 염두에 둔다면, 다시 한 번 이 끔찍한 전쟁 중의 행위가 갖는 의미를 세심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황희경 영산대학교 교수가 중국의 지식인 간양(甘陽)이 중국 잡지 <독서>20008월에 발표한 글을 번역해서 소개한다.

간양은 일반적으로 중국 학계에서 신좌파의 한 사람으로 거론되는 학자로 지금은 광둥 성 광저우 중산대학교 인문고등연구원 원장으로 중국 사상계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지식인이다. 황 교수는 "간양이 원폭 50주년이 되는 1995년에 이 글을 쓴 지 21, 발표한 지는 16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현재적 의미가 있어서 번역, 소개한다"고 밝혔다.

 

199586일 미국이 인류 최초의 원자 폭탄을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한 지 50주년(3일 후에 미국의 두 번째 원자 폭탄을 나가사키에 투하한다)이 되는 날이다. 미국 연방 우정총국은 원래 버섯 모양의 원폭 경관이 인쇄된 우표를 발행해서 이른바 "핵 승리" 50주년을 기념하기로 결정했으나 사회 각계의 강한 반대에 부딪혀 결국 철회하고 말았다. 왜냐하면 저명한 미국의 정치철학자이자 <정의론>의 저자 존 롤스가 히로시마 원폭 50주년을 맞이하여 쓴 글(Fifty Years after Hiroshima)에서 지적한 것처럼 이 날 정작 필요한 것은 엄숙한 반성이며 또한 당시 미국이 원자 폭탄을 사용하기로 한 결정은 도대체 변호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진지한 대답이다. 롤스 본인의 대답은 단호하다. 히로시마에 대한 원폭은 거대한 죄악이다.

 

현재 관방의 통계에 근거하면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 폭탄은 186940명의 사망을 초래했는데 대부분 시민이었다. 동시에 미국의 권위 있는 잡지 <포린 어페어스>(19951)에 실린 "원자 폭탄 공습에 대한 재검토"라는 글이 밝힌 숫자에 따르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두 곳에서 원자 폭탄 폭발로 사망한 총 인원수는 25만 명에 달하고, 여기에 더해 적어도 10만 명 이상이 부상을 당했다(참고로 조선인도 4만 명이 죽었다.)

 

이 글의 저자인 스탠포드 대학교 국제 관계와 외교 정책 연구 센터 주임 바톤 번스타인(Barton Bernstein)은 그 글에서 이런 놀랄 만한 사망 인원수에 직면해서 어떠한 사람이라도 이런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한다. '왜 이렇게 많은 시민이 죽지 않으면 안 되었는가?' '당시 미국은 원자 폭탄을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되었는가?' '원자 폭탄을 사용하기로 한 결정은 도대체 어떻게 내려진 것이었는가?' '이러한 결정의 정당성(legitimacy)은 또한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번스타인이 보기에 현재 이미 공포된 각종의 문서 자료나 다양한 연구에 의하면 당시 미국이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되는 필요는 완전히 없었다. 다시 말하면 수십만 명의 비참한 운명은 본래 완전히 피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더욱이 이런 점을 지적한다. 가장 놀라운 사실은 원자 폭탄을 사용하느냐 하는 중대한 결정이 당시 사려 깊거나 여러 가지를 곰곰이 따져 본 후에 내려진 결정이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원자 폭탄을 사용하지 않을 가능성은 애초 토론조차 되지 않았고, 전체 결정 과정은 국회의 토론을 거친 것도 아니었다. 따라서 그의 결론은 롤스와 상당히 일치한다. 즉 히로시마 원폭은 정당성이 결핍된 것이었다고.

히로시마 원폭에 대한 반성과 검토는 당연히 오늘날 시작된 것이 아니다. 허나 1995년이 50주년이라는 점은 반성과 검토로 하여금 아주 자연스럽게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게 만든다. 2차 세계 대전 시기에 일본에 대한 미국의 전쟁 자체는 절대적으로 정의로운 것이지만 미국이 마지막 순간에당시 유럽의 전장은 이미 승리로 끝났고, 일본의 패배는 이미 거의 정해진 상황에서시민이 거주하는 중심을 향해 원자 폭탄을 투하해서 수많은 생명이 왜 이처럼 비참하게 죽어야만 했는지 오늘날에도 납득할 수 없다.

 

필경 히로시마 원폭은 인류가 원자 폭탄이라는 무기를 사용해서 인류 자신을 살육한 위험한 선례를 열어젖힌 것이다. 따라서 50년 동안 미국 자신을 포함한 전 인류는 핵전쟁의 그늘 속에서 생활해야만 했다. 오늘날 냉전은 이미 끝났지만 인류에 대한 핵무기의 치명적 위협은 없어지기는커녕 도리어 핵무기의 부단한 확산을 통해 더욱 제어하기 어렵게 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히로시마 원폭을 어떻게 인식하고 평가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인류가 핵무기를 다시 사용하는 것을 효과적으로 저지할 수 있는지의 여부와 직접적으로 관계되는 일이다. 다시 말하면 만약 히로시마 원폭이 변호할 수 있는 것이라면 이러한 변호의 이유와 근거는 도대체 무엇인가가 먼저 반드시 추궁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후 어떠한 사람도 핵무기를 사용할 핑계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롤스가 히로시마 원폭 50주년을 기념해 쓴 글은 바로 이러한 각도에서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그가 보기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두 곳에 대한 원폭뿐만이 아니라, 그 전에 미군이 1945년 봄부터 도쿄 등의 도시에 무차별적으로 가한 폭격은 모두 거대한 죄악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하나의 민주 국가가 전쟁 중에 준수해야할 정의 원칙과 도덕적 약속을 뛰어 넘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전쟁 문제에서 두 가지 허무주의 논점을 특별히 비판한다. 하나는 전쟁은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기에 어떠한 일도 할 수 있다는 관점이다. 다른 하나는 전쟁 중에 모든 사람은 모두 죄가 있으므로 다른 사람을 질책할 권리를 가진 사람은 없다는 관점이다. 이 두 종류의 허무주의 논점은 문명 사회의 기초 전부를 와해시키기에 충분하다.

왜냐하면 롤스가 보기에 이른바 "정의와 품위 있는 문명 사회(just and decent societies)"의 근거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반드시 도덕과 정치의 균형을, 즉 어떤 것은 할 수 있고, 어떤 것은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따져보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교 능력을 말살하는 것은 하고자 하는 일을 멋대로 하고 책임은 지지 않는 것을 조장하는 것이다. 따라서 롤스가 제기하고자 하는 중심 문제는 민주 국가가 전쟁 중에 반드시 준수해야 하는 정의 원칙과 도덕 약속은 무엇인가이다. 그는 여기서 민주 국가와 비민주 국가가 전쟁 중의 구별을 특별히 강조한다. 비민주 국가는 그 정의에 따르면 바로 모든 결정을 소수의 사람에 의해 조종되는 나라다. 따라서 비민주 국가에서 전쟁 중에 행한 무책임한 행동과 범죄 행위를 민중이 책임질 수 없다.

 

그러나 민주 국가는, 만약 진정한 민주 국가라면, 이러한 사실은 전체의 국민이 자국이 한 행위에 대해 도덕적과 정치적 책임을 지며, 무책임한 행위와 범죄 행위가 발생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바로 이렇기 때문에 민주 국가는 전쟁 중의 정의 원칙과 도덕적 약속을 특히 명확히 해야 한다.

롤스는 우선 민주 국가가 전쟁을 진행하는 목표가 적대국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정의와 지속적 평화를 달성하는데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런데 이른바 "평화"는 현재의 적대국과 나중에 평화에 도달하는 것을 우선 가리킨다. 따라서 "현재의 적은 반드시 이후의 정의와 평화를 함께 누릴 동반자로 여겨져야 한다."

민주 국가가 전쟁을 수행하는 목적이 최종적으로 교전국의 인민과 지속적 평화를 달성하는 것을 찾는 것이기 때문에 민주 국가는 "전면 전쟁(total war)"을 진행할 권리가 없다. 즉 적대 국가의 전체 주민을 전쟁의 대상으로 대할 수 없다. 이는 우선 민주 국가가 전쟁 중에도 적대국 인민의 기본적 인권을 반드시 존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민주 국가가 우선 솔선수범하여 상대방 인민의 기본적 인권을 존중해야만 적대국의 인민도 자기 인민의 기본적 인권을 존중하는 것을 배울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장 기본적인 인권에 대한 보편적 존중이 바로 금후의 전쟁을 구속하고 지속적 평화의 가장 중요한 조건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롤스는 특별히 강조한다. 전쟁을 어떤 방식으로 진행하느냐, 다시 말하면 전쟁을 어떤 방식으로 종결하느냐가 교전국 쌍방의 인민들에게 장구한 심리적 영향을 남기기 때문에 이후 발생할 수 있는 전쟁에 모델을 수립한다. 따라서 민주 국가, 그 중에서도 전쟁 시기의 지도자에게 가장 큰 시련은 그들이 전쟁의 방식과 전쟁을 종결하는 방식을 결정할 때 우선 민주 국가가 전쟁을 수행하는 최종적 정의 원칙과 도덕적 약속에서 출발할 수 있느냐에 있다.

금후의 지속적 평화를 착안할 수 있느냐, 적대하는 쌍방의 인민들에 전쟁 중에서도 기본적 인권을 존중하는 것을 교육하는 것을 착안할 수 있느냐. 롤스의 견해에 따르면 아주 극단적으로 위험한 상황 하에서만, 즉 본국의 인민의 전체 생존이 근본적 위협을 받는 상황 하에서만 민주 국가의 전시 지도자들이 극단적 수단, 예를 들어 핵무기를 쓸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여기서 이른바 극단적 위기 상황이란 만약 극단적 수단을 채택하지 않으면 본국의 인민이 장차 멸망할 그런 상황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엄격히 정의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이후 평화의 문제는 이미 배제되고, 마주친 것은 바로 본국 인민이 생존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에 극단적 수단을 채택하는 것은 변호할 수 있다.

그러나 롤스는 곧바로 지적한다. 히로시마에 대한 원폭을 변호할 수 없는 점은 바로 당시 어떠한 이유도 없었고, 사실상 미국이 이런 극단적 위기 상황에 처했다고 생각한 어떤 사람도 없었다. 도리어 당시 모든 사람들은 독일이 이미 패한 이후에 일본의 패전은 이미 단지 시간의 문제이며 또한 주로 어떤 방식으로 투항하느냐(무조건적이냐 아니면 천황제를 보전하는 것과 같은 일정한 조건이냐)의 문제일 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핵 폭격뿐만 아니라 그 전의 도쿄 등의 도시에 대한 미국의 밀집 폭격은 롤스가 보기에 매우 커다란 잘못이며 죄악이었다. 왜냐하면 모든 이런 행위는 미국이 민주 국가가 전쟁 중의 정의 원칙과 도덕 약속을 위배했음을 표명하기 때문이다.

이는 우선 도쿄 폭격으로부터 히로시마 폭격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미 시민을 직접적 공격 목표로 삼았기 때문이며, 그 다음으로 원자 폭탄을 투하하는 방식을 선택해서 전쟁을 종결하는 것은 향후 지속적 평화에 엄중한 그늘을 드리우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렇게 함으로써 향후 인류의 어떠한 전쟁도 최후에 핵전쟁으로 전화될 위험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롤스는 이로 말미암아 민주 국가의 전시 지도자로서 해리 트루먼은 함량 미달이라고 여겼다.

롤스의 논술은 얼핏 보기에 평범해서 참신하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그는 원자 폭탄이 왜 사용되었는가 하는 문제의 핵심을 틀어쥐고 있다. 이 핵심은 바로 이른바 "전면 전쟁"이라고 하는 현상이 왜 출현하게 되었는가 하는 문제다.

 

핵전쟁과 이전의 인류가 벌인 전쟁의 근본적 차이는 일단 발동하면 사병과 시민, 군사 목표와 비군사 목표를 구분할 수 없다는 점에 있다. 다시 말하면 핵전쟁은 불가피하게 적대국의 전체 주민의 생존이 공격 목표가 되어 버린다. 즉 이른바 "전면 전쟁"을 된다. 그러나 원자 폭탄은 "전면 전쟁"을 초래한 원인이 아니라 그 결과였다.

왜냐하면 원자 폭탄이 사려 깊은 고려 없이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인은 그 이전에 시민과 중심 도시에 폭격을 가하는 것이 이미 늘 있어 왔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히로시마에 대한 핵 폭격은 사실상 단지 이전의 일련의 "전면 전쟁"의 자연적 확대일 뿐이었다.

롤스가 도쿄 대폭격의 비정의성을 특별히 지적한 이유는 바로 도쿄와 기타 시민이 거주하는 중심 도시에 대한 비핵 폭격이 사실상 이미 히로시마 핵폭격을 위한 길을 전면적으로 닦아 놓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일찍이 히로시마 이전에 전쟁 중의 정의 원칙과 도덕적 약속은 이미 거들떠보지 않았다. 오직 이와 같았기 때문에 히로시마의 원폭이 있게 된 것이다.

 

여기서 당연히 이른바 "전면 전쟁"은 의심할 나위 없이 독일과 일본 파시스트들이 먼저 발동한 것임을 지적해야 할 것이다. 일본군의 남경(난징) 대학살(19371213일 남경 함락 이후 40 여일에 걸친)은 바로 제2차 세계 대전 중 가장 이르면서 동시에 가장 분노스러운 "전면 전쟁"의 행동이었다.

그러나 롤스 등이 강조하려는 것은 독재 국가가 할 수 있는 일을 민주 국가가 할 수 없고, 민주 국가는 "전면 전쟁"을 진행할 수 없다, 즉 적대국 전체 주민을 공격 대상으로 할 권리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일본군이 남경에서 천인공노할 만행을 벌였다고 해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원자 폭탄 폭격으로 죽은 사람은 모두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마치 영국의 저명한 군사 이론가 하트(Sir Basil Henry Liddell Hart, 1895~1970)가 당시 영국 공군이 독일의 시민이 거주하는 도시를 폭격했을 때 일찍이 지적한 것처럼 "만약 문명의 수호자들이 단지 자신의 승리를 가장 야만적이고 가장 원시적인 방식으로 건축해서 전쟁에 승리할 뿐이라면 그건 문명 자체에 대한 거대한 풍자가 아니겠는가?"

 

롤스와 다른 많은 학자들은 모두 1939년 미국이 아직 정식으로 참전하기 이전에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일찍이 유럽 각국이 시민의 거주지를 폭격하는 야만적인 행위를 피할 것을 호소하였음을 특별히 지적한다.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 말기가 되면 미국을 포함한 연합군 측에서 이미 전쟁은 시민을 목표로 해서는 안 된다는 가장 기본적 도덕 약속을 완전히 뛰어 넘어, 조금도 거리낌이 없이 인구가 고도로 밀집된 도시를 대규모 공습하는 일이 날로 증가하여 "전면 전쟁"이라는 현상이 날로 도를 더해 갔다. 그리하여 최후에는 전쟁의 일상적 상태라고 여겨지게 되었다. 그 중에서 특별히 연합군 측의 세 번의 대규모 도시 폭격은 히로시마 핵폭격으로 향하는 길을 튼 것으로 현재 보편적으로 여겨지고 있다.

 

우선 19437월 영국 왕립 공군의 함부르크 대폭격이다. 함부르크는 당시 독일의 두 번째 도시였는데 인구는 대략 150만 명에 달했다. 함부르크는 엘베 강의 경계로 강의 남쪽은 독일군이 주둔하는 곳이었고, 북쪽은 주로 일반 시민이 거주하는 곳이었다. 나중에 "폭격기(bomber) 해리스"라고 불린 영국 공군 사령관 아서 해리스(Arthur Harris)는 강북, 즉 시민들이 집중한 거주지를 선택해 유명한 폭격 대실험을 지행했다.

이른바 새로운 실험은 폭탄과 연소탄을 서로 혼합한 대규모 투척이었고, 목적은 전 도시를 불바다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 해 725일 한밤중에 영국 왕립 공군은 728대의 비행기를 출동시켜 이런 방식으로 함부르크 북부를 폭격했고, 전 도시는 순식간에 연옥으로 변해버렸다. 이틀 후 영국은 다시 787기의 비행기를 동원하여 같은 방식으로 같은 지역을 폭격했다. 목적은 순전히 불바다가 지속되게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이러한 불바다 폭격 하에서 그 지역에 사는 사람은 아무도 살아서 도망칠 수 없었다. 이는 실로 전 도시를 도륙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동시에 불바다로 말미암아 일산화탄소 유독 가스가 전 도시에 가득차서 한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이는 원자 폭탄 폭격으로 나아가는 큰 걸음을 내딛는 것이었고 차이란 단지 핵 방사능의 살상력을 아직 구비하지 못했을 뿐이다.

 

두 번째는 19452월 영국과 미국 공군이 연합해서 드레스덴을 폭격한 일이다. 함부르크 폭격 이후 영국 공군은 1943년 말과 1944년 초에 베를린을 집중적으로 폭격했다. 그러나 베를린이 방어 설비가 삼엄했기 때문에 영국 공군은 중대한 손실을 입었다(1047기의 폭격기를 상실했다).

그리하여 영국은 베를린 폭격을 포기하고 방비하지 않은 비군사 도시 드레스덴-유럽 바로크와 로코코 예술과 건축으로 유명한 도시-로 방향을 돌렸다. 그 해 213일 먼저 영국 공군 796기의 비행기가 연속해서 드레스덴에 두 번에 걸쳐 "불바다" 폭격을 가했고, 그 다음날 미국 공군 311기에 달하는 B-17 폭격기가 다시 폭격했다. 드레스덴은 일순간에 폐허로 변했다. 사망 인원수는 최저 35천명, 최고 10만 이상에 달할 것으로 추측된다.

 

히로시마 이전에 원자 폭탄의 아버지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추측한 원자 폭탄의 살상력은 단지 2만 명이었다! 드레스덴 대공급의 참상은 사실상 윈스턴 처칠 본인조차 몸서리치게 만들어서 "우리들은 야수가 되었는가? 우리들은 너무 지나치게 폭격한 것은 아닌가?(Are we beasts? Are we taking this too far?)"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게 했다. 그러나 드레스덴 폭격은 실제로 전면 전쟁이 이미 합리화, 합법화 심지어 전쟁의 정상 상태로 여겨졌고, 따라서 시민과 군인, 도시와 전장의 구분이 이미 존재하지 않음을 표명하는 것이다. 따라서 드레스덴 폭격 후 한 달이 지나지 않아 194539일 한밤에서 다음날 새벽까지 미국이 규모가 더 크고, 참상이 더욱 공포스러운 도쿄 대공습을 감행한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공습의 목표는 인구가 가장 밀집해 있는 도쿄 시 중심으로 명확히 했다. 그 결과 한 번의 폭격에 83783(이는 일본 측의 통계다)이 터지고 불타고 숨 막혀 죽였다. 이어 일본의 모든 대도시 중도시는 모두 미국의 불바다 폭격의 목표가 되었으며, 절대 다수는 모두 평지가 되었다. 1945년 여름까지 인구가 25만 이상의 도시 중에서 단지 두 도시-교토와 히로시마-만이 불바다 폭격을 당하지 않았다.

 

그러나 의미심장한 것은 교토와 히로시마가 줄곧 폭격을 당하지 않은 이유는 두 도시가 미군에 의해 원자 폭탄을 쏠 곳으로 이미 내정되었기 때문이었다. 사실상 시민과 중심 도시를 폭격하는 것이 이미 전면적으로 합리화, 심지어 전쟁의 주요 방식이 된 이후에 원자 폭탄은 톤수가 더 크고 위력이 더 강하며, 좀 더 공포스러운 커다란 폭탄을 의미하는 것일 뿐이었다!

 

폭격하는 자에게 원자 폭탄을 사용해서 히로시마를 폭격하는 것과 일반적 폭탄을 사용해서 도쿄를 폭격하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 아니었다. 함부르크로부터 드레스덴, 도쿄, 다시 히로시마에 이르기까지 사실상 일맥상통하게 새로운 전쟁관이 관철되었다. 즉 전쟁은 곧 전면 전쟁이다!

이로부터 우리들은 왜 오늘날 사람들이 모골송연하게 생각하는 히로시마 원자 폭탄 폭격이 당시의 정책 결정자들에게는 실제 근본적으로 그다지 대단한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1993년에 은퇴한 경륜이 풍부한 미국 상원의원 앨런 크랜스톤(Alan Cranston, 1914~2000)은 히로시마 50주년에 쓴 글에서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오늘날 미국의 대중들은 원자 폭탄 폭격이라는 그런 중대한 일이 도대체 어떻게 결정된 것인지를 묻지만 이 일이 사실 애초에 결정된 적이 없다(there was never any decision)는 답안을 모르는 것이다. 왜냐하면 도쿄 대공습 등은 사실 일찍이 그것을 위해 결정된 것이다. 그것은 바로 원자 폭탄이 만들어지면 당연히 곧 사용한다는 것이다."

크래스톤 상원의원이 지적하는 것처럼 트루먼 내각은 원자 폭탄이 만들어지면 마땅히 최대한 빨리 사용해야 한다고 이미 아주 분명하게 결정했다. 트루먼 대통령과 그 참모들이 토론한 문제는 바로 어느 곳에, 언제, 구체적으로 어떻게 원자 폭탄을 투하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오늘날 학자와 정치가들이 가장 골치 아프게 생각하는 문제-공포스럽기 그지없는 신무기가 가져올 심각한 도덕과 윤리적 함의에 관해서는 당시엔 전혀 자세히 살펴보지 않았다.

 

트루먼 본인은 나중에 그가 최후의 결정을 내기기 전에 고급 참모를 소집, 전문가 회의를 열어 이미 성공적으로 제조한 원자 폭탄을 도대체 어떻게 할지를 연구했다고 공표했다. 그러나 크래스톤 상원의원은 역사학자들이 오늘날 모든 문서와 관련된 자료를 살펴보았지만 트루먼이 이런 회의를 소집해서 열었음을 표명하는 어떠한 기록도 발견하지 못했음을 지적했다.

 

번스타인은 "원자 폭탄 폭격 재검토"라는 글에서 똑같이 지적하기를, 현재 이미 공포된 문서 자료를 통해 모든 원자 폭탄을 거론한 기록 중에 사람들이 사용한 말은 모두 "원자 폭탄을 사용한 후", 혹은 "원자 폭탄을 사용할 때"였지, "만약 원자 폭탄이 사용된다면"이라는 말을 한 사람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고 하였다. 다시 말하면 원자 폭탄이 일단 성공적으로 제조되면 바로 사용할 것이라는 점은 처음부터 자명한 사실이었고, 유일한 문제는 단지 시간, 지점 및 기타 기술 문제였지, 원자 폭탄을 사용하지 않는 문제는 애초에 진지하게 고려된 적이 없었다.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A. H 콤프턴(A. H. Compton)은 일찍이 1945528일에 최고 정책 결정조에게 원자 폭탄의 사용이 인류 역사상 전례가 없는 대학살(mass slaughter)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주의하라고 요청했고, 529일 마샬 장군은 원자 폭탄은 시민이 아니라 군대에만 응당 사용되어야 하며, 시민에 관계된다면 먼저 일본 측에 충분히 경고해서 시민을 철수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번스타인이 지적하는 것처럼 이런 목소리 자체도 상당히 미약했을 뿐만이 아니라 전혀 중요하지 여겨지지 않았다. 더 중요한 것은 당시 주요 결정자들은 사실상 기만적인 태도로 그들이 본래 반드시 정시해야 할 중대한 윤리적 문제를 회피했다. , 한편으로 그들은 원자 폭탄이 시민에 대한 대학살을 초래하리라는 점을 매우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 그들은 자신들이 결코 원자 폭탄을 사용해서 시민을 대하는 것이 아님을 스스로 믿을 수 있도록 노력했다. 트루먼 자신이 이 방면의 바로 가장 좋은 예이다. 1945716일 원자 폭탄 첫 폭발 실험을 성공한 후 트루먼은 원자 폭탄의 공포를 이미 완전히 잘 알았다. 그는 자신의 일기에서 원자 폭탄의 성능과 관련한 세세한 점을 기록하고, 원자 폭탄이 인류 유사 이래 가장 공포스러운 무기여서 세계를 멸망시킬 수 있음을 경탄했다.

 

그러나 단 며칠 후에 그는 원자 폭탄을 히로시마에 사용하는 군 계획을 비준한 이후에 일기에서 "나는 원자 폭탄 사용을 군사 목표를 파괴하는데 사용하지 부녀와 어린이를 상대로 사용해서는 안 됨을 비준했다"고 기록했다. 번스타인 교수는 트루먼이 여기서 완전히 자아기만에 빠졌다고 평론했다.

왜냐하면 트루먼은 히로시마 폭격이 대량의 부녀자와 아동의 죽음을 초래할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이 점을 그는 의식상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따라서 그는 반드시 자신의 내린 명령이 부녀자와 아동에 대한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군사 목표를 대상으로 한 것으로 스스로 믿어야 했다. 이렇게 해서 부녀자와 아동이 원자 폭탄의 폭발로 대량사하는 점은 그에게 접수될 수 있는 것으로 변하게 된 것 같다.

 

롤스는 그 글의 마지막에서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자 폭탄 폭격의 비극이 발생하게 된 이유는 결국 트루먼 등이 인권, 더욱이 적대국 시민의 인권에 대한 충분한 존중이 결핍된 점에 있음을 지적하였다. 그는 트루먼이 히로시마 나가사키 폭격 후에 자신을 변호할 때 일본인은 짐승이며 당신이 짐승과 상대할 때 그것을 짐승으로 여겨야 한다고 여러 차례 말한 점을 특별히 지적했다.

 

여기서 극히 민감한 하나의 문제가 도출되어 나온다. 즉 원자 폭탄 폭격과 인종 차별의 문제이다. 만약 원자 폭탄이 독일이 패전하기 이전에 성공적으로 완성되었다면 연합군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바로 독일을 폭격하는데 사용했을까를 많은 사람들이 줄곧 의심하였다. 이 문제는 단지 추측일 수 있기에 사실의 답을 얻을 수 없다.

그러나 근래 많은 연구자들은 모두 원자 폭탄이 유럽의 전장에 사용되었더라면 연합군 측의 결정은 반드시 훨씬 신중했을 것이라고 여긴다. <뉴요커>는 이번에 히로시마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발행한 특집호에 머레이 세일(Murray Sayle)의 장문의 글을 실었다. 그는 글에서 많은 사람들이 나치를 증오하지만 영미 사람들은 여전히 독일인 중에 품위 있고 존중받을 만한 사람이 많이 있다는 점을 결코 의심하지 않음을 지적했다. 일본인은 다르다. 당시 영미인에게 좋은 일본인이라는 말은 근본적으로 존재할 수 없었다. 세일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저명한 종군 기자 어니 파일(Ernie Pyle)이 당시에 한 말을 인용해서 이 점을 설명했다.

 

유럽에서 우리들은 적군이 아무리 모골이 송연하게 공포스러워도 그들도 여전히 사람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아시아 전장에서 나는 우리들에게 일본인은 사람이 아니라 극도로 증오스러운 어떤 물건, 다시 말하면 많은 사람이 일본인을 사마귀나 쥐로 보는 느낌을 즉각 발견했다.

오늘날 이 문제에 대해 가장 상세한 연구는 아마도 버클리 대학교 교수 로널드 타카키의 책, < 로시마, 왜 미국은 원자 폭탄을 떨어뜨렸는가?(iroshima : Why America Dropped the Bomb?) (1995)를 먼저 거론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그는 일본인과 더 일반적으로 아시아인에 대한 미국인의 증오는 결코 진주만 사건 이후에 생긴 것이 아니라 유래가 깊은 것임을 지적했다. 예를 들어 일찍이 1911612일의 한 통의 편지에서 젊은 트루먼은 훗날의 자신의 아내에게 이렇게 쓰고 있다.

나는 어떤 사람이 흑인이나 중국인(China man)이 아니라면 그는 다른 사람처럼 충분히 선량하고, 성실하며 품위가 있다고 여긴다. 윌리엄 아저씨는 일찍이 하느님은 먼지로 백인을 만들고, 진흙으로 흑인을 만든 연후에 남은 것은 버렸는데, 이 남은 것이 나중에 중국인으로 변했다고 말씀하셨다. 그는 확실히 중국인과 일본인을 미워했고 나도 그렇다. 나는 이것을 인종 편견이라고 하리라고 짐작한다. 그러나 나는 확실히 흑인은 아프리카에 있어야 하고, 황인종은 아시아에 있어야 하며, 백인은 유럽과 미국에 있어야 한다고 강렬하게 생각한다.

 

청년 트루먼이 여기서 드러내는 이른바 "중국인" 즉 아시아인에 대한 극단적 멸시는 히로시마 폭격 후에 그의 이른바 "일본인은 짐승"이라는 논조와 의심할 나위 없이 일맥 상관한다. 이러한 인종적 편견은 그와 동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음은 의심할 나위 없이 사실이다. <타임>은 히로시마 50주년 특별호에서 아시아 전장에서 미군이 투항한 일본 병사를 임의로 죽이고 병원을 마구 불태우는 등등의 폭행을 상세하게 보도하였다.

 

그러나 이 글의 마지막에서 내가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여기는 것은 미국이 원자 폭탄을 사용한 것이 아무리 정당성을 결여하였고, 당시의 인종적 편견이 설령 대단했다고 하더라도 모든 이러한 것들은 일본이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에 벌인 하늘에 가닿은 죄행을 결코 감소시킬 수 없다는 점이다. 도리어 우리들은 이안 버라마(Ian Burama)가 자신의 저작에서 지적한 하나의 사실을 더욱 지적할 필요가 있다. 히로시마 폭격으로 죽은 사람 중에서 상당히 많은 수의 조선인이 있다. 이 참사자는 지금까지 일본 관방에 의해 사망자의 명단에 포함되지 않고 있다. 미국의 학계와 미디어로부터 일반 대중에 이르기까지 히로시마 폭격에 대한 보편적 반성 태도와 비교할 때 일본은 지금까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의 천인공노할 죄행에 대해 조금의 반성도 없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랍고도 분노스럽다!

 

이 점에 대해 말한다면 우리들은 반드시 명확히 해야 할 것이다. 히로시마 핵 폭격에 대해 검토할 점이 있다는 것이 결코 일본을 용서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1995813일 시카고에서) / 간양 중산대학교 인문고등연구원 원장

 

오키나와-히로시마, 오바마 두 발 채운 족쇄

역사적 화해로 치장한 미일 군사 동맹

 

 

오키나와의 면적은 일본 전체 면적의 0.6%에 불과하다. 여기에 주일미군의 75%가 몰려있다. 아시아태평양 전역으로 확장해보면 약 10만 명의 미군이 포진해있다. 그 중 4분의 1에 해당하는 25000명이 오키나와에 몰려있다. 세계에서 이렇게 미군에 의해 군사화된 곳은 없다. 미군 주둔의 명분은 자국의 이익과 동맹국의 안보 보호다.

 

오키나와에서 지난 1920세 여성이 성폭행 당한 뒤 살해된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 용의자는 미국 해병대 출신인 케네스 프랭클린 신자토. 그는 주일미군 가데나 공군기지에서 근무하고 있다. 동맹국의 안보 보호를 위해 주둔한다는 미군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벌인 일이다.

 

지난 1995년에도 오키나와 미군 병사가 소녀를 성폭행한 사건이 벌어졌다. 이로 인해 미군기지 반대운동이 벌어졌다. 성난 민심을 달래려 미-일 정부는 미 해병대 후텐마 비행장 등의 기지를 반환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도심에 있는 후텐마 기지의 대체 기지를 섬의 북동쪽 외곽인 헤노코에 만든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지리적으로, 역사적으로 일본 본토에서 '고립된 섬' 오키나와 주민들은 11년째 미군기지 반대 싸움을 벌이고 있다.

 

아베 총리는 입만 열면 "일본을 둘러싼 안보 환경이 어려워지고 있다"며 주민들의 미군기지 반대 요구를 모른 척 했다. 미국은 아시아의 군사적 요충지로 선택한 오키나와에서 발을 뺄 생각이 전혀 없다. 오바마 대통령의 '역사적인 히로시마 방문'을 코앞에 두고 발생한 미군 관계자의 범죄와 이로 인한 반미 감정에 미일 당국이 긴장하고 있는 이유다.

 

양국은 당초 26일 오전으로 예정됐던 미일 정상회담 일정을 25일 밤으로 앞당겼다. 미군 기지에 대한 반감이 높아지자 이에 신속히 대응하기 위한 일정 조정이라는 설명이다. 정상회담에서 아베 총리는 오키나와 사건과 관련해 '강한 분노'와 재발 방지대책을 요구할 방침이다. 사건 발생 직후 애슈턴 카터 미 국방장관이 사과 의사를 일본 정부에 밝힌 만큼, 오바마 대통령도 정상회담에서 이에 관한 언급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군대를 움직이는 건 정치다. 오바마 대통령의 방일 목적은 미일 군사동맹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맞춰져 있다. 미국이 중국 견제를 위해 베트남에 무기 금수조치를 전면 해제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역사적 화해'로 포장한 남중국해 싸움이다. 군사 대국화를 지향하는 아베 총리도 미군과 일본 자위대의 일체화를 모색하고 있다.

 

미일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도 중국이 인공섬을 건설하고 있는 남중국해 문제를 포함한 대중 견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군속의 범죄에 대한 아베 총리의 분노와 미국 정부의 사과는 양국이 군사적으로 지향하는 방향과 모순된다.

 

이 사건이 없었다면, 오바마 대통령의 일본 방문 일정의 하이라이트는 27일 히로시마 방문으로 예정돼 있었다. 자신이 주창한 '핵무기 없는 세계' 드라이브에 화룡점정을 찍는 상징적 행보다. 전범국 일본은 피해자로 변신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하지만 오바마의 히로시마 방문과 관련해 미 군사전문매체 <디펜스원>"히로시마를 찾는 오바마 대통령과 함께 핵가방이 처음으로 히로시마에 간다"고 지적했다. 핵가방은 핵무기 통제시스템이 담긴 가방이다. 비상사태에 대비해 군 통수권자인 미국 대통령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가는 핵가방을 들고 핵무기 피해지를 방문하는 오바마 대통령의 모순을 꼬집은 것이다.

 

이 매체는 "71년 전 미군 B-29 폭격기가 히로시마로 날아가 원자폭탄을 투하하기까지 5시간 30분이 걸렸다""이번 히로시마 방문에선 불과 30분 안에 '22000개의 히로시마 비극'을 만들 수 있는 통제권이 오바마 대통령의 손끝에 걸려있다"고 했다.

 

비핵화를 주장하며 이에 역행하는 오바마 대통령의 이중 잣대는 여러 번 도마에 올랐다. 오바마 행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 핵무기 현대화에 돈을 썼기 때문이다. 이에 그치지 않고 향후 30년간 약 1조 달러를 핵무기 현대화에 투입하기로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히로시마에서 장황한 연설보다 짧은 개인적 소회를 밝힐 것으로 전망된다. 벤 로즈 백악관 안보부보좌관은 지난 19"오바마 대통령은 헌화 후 짧은 투어를 하고 자신이 받은 인상에 관해 짧은 언급을 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핵무기 현대화 계획 철회 등 '핵 없는 세상'에 부합할만한 굵직한 언급은 없을 거란 전망이다. 이런 식으로는 오키나와와 히로시마의 모순이 해결될 리 없다.

 

러시앤캐시는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 524 프레시안

행동 경제학으로 본 약탈적 대출

초고금리 단기 대출 서비스를 받는 것은 합리적인 의사 결정일까? 약탈적 대출에 대한 논쟁은 이 질문의 답변에 달려 있다. 약탈의 가능성 및 심각성을 어느 정도 인정할 것인지, 약탈적 대출에 대한 규제를 어떤 방식으로 할지가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최근 행동 경제학의 진보는 약탈적 대출에 대한 논쟁에서 새로운 시사점을 제시하고 있다.

 

소비자들이 지닌 현재 중시 편향과 자기 통제력에 대한 과대평가, 그리고 결핍 상황이 가져오는 인지 능력의 변화는 약탈적 대출이 왜 이루어지는지를 설명한다. 최근의 연구들은 경쟁 정책만으로는 약탈적 대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밝히고, 소비자 보호 정책의 필요성을 제시하고 있다. 미국의 고금리 단기 사채인 페이데이론의 규제 현황을 간단하게 살펴보고, 몇 가지 정책을 제안한다. (필자)

 

(원문 보기 : 행동 경제학으로 본 약탈적 대출)

 

왜 약탈적 대출이라 부르지 않는가

구글 검색창에 "predatory lending"을 검색하면 448000건 정도의 문서가 검색된다. "약탈적 대출"을 검색하면 81300건 정도의 문서가 검색된다. 반면 경제학의 주요 학술지에서 검색을 하면, 한 편의 논문을 찾을 수 없다. 경제학자들이 이 문제에 관심이 적어서일까?

 

그렇지는 않다. 초고금리 단기 소액 대출에 대한 연구들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다만 학계의 경제학자들은 "약탈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 약탈적 대출의 경제학적 정의가 쉽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불공평하고 가혹한 대출 조건 정도로 흔히 표현되지만, 어느 정도의 불공평과 가혹이 과연 약탈적인 것인지 답하기 어렵다. 가장 엄격한 형태로 약탈적 대출을 정의해 보면, 대출 서비스를 받는 것이 결국 소비자들에게 손해가 되는 것 정도로 생각할 수 있다.

 

약탈적 대출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 근본적 이유는 경제학자들이 대출을 이해하는 방식에서 비롯된다. 대출 서비스를 받고 이자를 지불하는 것은 여타 상품 및 서비스를 구매하고 가격을 지불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대출을 통한 혜택이 이자보다 크기 때문에 대출 서비스를 받는다. , 대출이 없었다면, 더 큰 비용을 지불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어느 대부 업체 대표의 말처럼, "우리는 죽어가는 사람의 마지막 순간에 물을 먹여 살리고 있습니다"와 맥을 같이 한다.

 

실제로 여러 논문들은 소비자들이 합리적 의사 결정을 바탕으로 고금리 대출을 받고 있고, 궁극적으로 소비자들이 혜택을 받고 있다는 결론을 제시한다. 켄사스 대학교의 밥 드영 교수 연구 팀은 돈을 빌리는 이들이 대출에 따른 이자 비용을 잘 이해하고 있고, 자신이 처한 재정적 상황에서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의 연구에 따르면, 60% 정도의 사람들은 자신이 예상한 기간에 빌린 돈을 갚고, 오직 10~15% 정도의 소수만 대출 연장을 신청한다.

 

약탈적 대출을 논의하는데 있어서, 피할 수 없는 논쟁은 대출 서비스를 받는 소비자들의 합리성 여부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경제학은 전통적으로 경제 참가자들을 합리적인 존재로 바라보고 있다. 전통적 경제학에서는 약탈이라는 개념이 성립되기 쉽지 않고, 정책 대안도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행동 경제학이 설명하는 약탈적 대출의 문제

최근 경제학의 가장 큰 변화는 주류 경제학이 행동 경제학의 연구 성과를 받아들인 것이다. 행동 경제학은 인간의 합리성이 완벽하지 않고, 의사 결정 및 행동이 심리적, 사회적, 인지적, 감정적 요소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행동 경제학은 다양한 방식의 행동 편향이 의사 결정 및 행동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하고 있다.

 

대출에 대한 행동 경제학적 이해는 약탈적 대출의 가능성과 심각성을 설명한다. 정책 대안을 제시하는데 있어서도 새로운 접근 방식을 가능하게 한다. 다음 두 가지 행동 편향이 대출 시장에서 소비자들의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첫째, 사람들은 먼 미래보다 현재를 중시하는 현재 중시 편향(present bias)을 가지고 있고, 자신이 가진 편향을 과소평가하여 자기 통제(self-control)의 실패를 경험한다. 둘째, 결핍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인지 능력이 떨어진다.

 

현재 중시 편향과 자기 통제의 실패

심리학자 조지 에인슬리는 실험 대상자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였다. 오늘 100달러를 받는 것과 3년 후 200달러를 받는 것 사이에서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대다수의 사람들은 오늘 100달러를 받는 것을 선택한다. 사람들은 미래보다 지금 더 행복하기를 원한다. 그렇다면 6년 후 100달러를 받는 것과 9년 후 200달러를 받는 것 사이에서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이번에는 많은 사람들이 9년 후 200달러를 받는 것을 선택한다. 이미 6년이나 기다렸기 때문에 3년 정도는 더 기다릴 수 있다는 심리이다.

 

만약 6년이 지난 시점에서 사람들에게 다시 질문을 하면 어떻게 답할까? , 6년 후의 100달러보다 9년 후의 200달러를 받겠다고 답한 이들에게, 지금 100달러를 받겠는가, 아니면 6년 전의 결정대로 3년을 더 기다리고 200달러를 받겠는가라고 질문을 하는 것이다. 이제 의사 결정자는 첫 번째 질문과 같은 상황에 놓인다. 따라서 다수의 이들은 100달러를 받겠다고 답을 한다.

 

사람들은 당장의 만족을 중시하는 현재 중시 편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미래의 나는 현재의 내가 원하는 결정을 따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는 자기 통제의 실패를 의미한다. 많은 이들이 왜 새해 결심을 성취하지 못하는지를 설명한다. "다음 달부터 담배를 끊겠다", "다음 주부터 다이어트를 시작하겠다", "내년부터 노후 대책을 위한 저축을 시작하겠다"같은 표현을 자주 듣는 이유이기도 하다.

 

여기서 미묘하지만 중요한 점 하나는 과연 사람들이 자기 통제의 실패를 합리적으로 예상하고 있는가이다. 비록 인간이 자기 통제를 완벽하게 할 수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해도, 자신의 한계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면, 미래의 나로 하여금 현재의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할 수 있도록 만드는 장치를 마련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실증적, 실험적 증거들에 따르면, 사람들은 스스로의 현재 중시 편향을 과소평가한다. , 자기 통제력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고금리 대부와 카드론 등이 약탈적인 성격을 가질 수 있다. 소비자들은 연체를 하거나 다른 추가 비용을 지불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스스로 합리적인 대출 결정을 내리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실상 자신의 현재 중시 편향에 대한 과소평가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대출 업체들은 소비자들이 지닌 이런 식의 편향을 잘 이해하고 있다. 사후적으로 소비자 스스로에게 손해를 야기할 대출이지만, 대출 업체는 소비자의 편향을 통해 더 큰 이윤을 얻는다.

 

컬럼비아 대학교의 스티븐 마이어와 캘리포니아 대학교의 찰스 스프렌저 교수는 간단한 실험을 통해 중·저소득층 사람들의 현재 중시 편향을 측정하고, 카드빚과의 상관관계를 살펴보았다. 둘 사이에서 양의 상관관계를 발견했는데, 이는 자기 통제에 대한 과대평가로 인해 약탈적 대출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증거라 할 수 있다. 밴더빌트 대학교의 스키바와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와튼 스쿨의 토바크만 교수의 논문 역시 비슷한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대출을 상환하지 못한 사람들의 대다수는 이미 연체로 인한 상당한 비용을 지불한 후에야 파산 절차를 밟았다.

 

결핍과 인지 능력

하버드 대학교 경제학과 뮬라이나탄 교수 연구 팀은 결핍 상황이 사람들의 인지 능력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했다. 뉴저지의 쇼핑몰을 찾은 사람들에게 가족 소득을 묻고,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으로 구분하였다. 이들에게 간단한 IQ 테스트를 하고, 결과의 차이를 살펴보았는데, 테스트를 하기 직전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고장 난 차를 수리하기 위해 300달러를 지불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차량 보험은 비용의 절반만 해결해 줄 수 있습니다. 당신은 차를 수리하겠습니까? 아니면, 당분간 수리하지 않고 그냥 타겠습니까?"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의 IQ 테스트 결과는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이번에는 앞서 던진 질문을 조금 바꾸어서, 차량 수리비를 3000달러라고 상정했다. 고소득층의 IQ 테스트 결과는 앞서와 차이가 없다. 그러나 저소득층의 IQ 점수는 약 14점정도 떨어졌다. 3000달러라는 수리비는 저소득층 사람들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왔고, 결핍 상황을 상상하는 것은 저소득층의 인지 능력을 떨어뜨린 것이다.

 

연구 팀은 인도의 사탕수수 농부들을 대상으로도 실험하였다. 이들은 실제로 결핍 상황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사탕수수 농부들은 1년에 한 차례만 수확을 거두고, 목돈을 손에 쥘 수 있다. 수확 직전에는 보릿고개와 같은 상황을 겪는다. 농부들을 대상으로, 수확 전후로 IQ 테스트를 실시했다. 물론 농부들의 영양 상태, 스트레스 정도, 노동 강도 등이 IQ에 동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연구자들은 통계적 방법을 통해서 결핍 상황이 야기하는 효과만을 구분하였다. 결과는 쇼핑몰 실험과 마찬가지이다. 농부들의 IQ 점수는 수확 후보다, 수확 전에 더 낮았다. 이를 두고, 연구자들은 결핍 상황이 마치 인간의 정신 능력에 세금을 매기고 있다고 표현한다.

 

뮬라이나탄 교수는 다음과 같은 실험도 하였다. 프린스턴 대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주어진 시간 내에 일련의 문제를 풀게 하였다. 참가자들을 둘로 나누어, 한 그룹에게는 50초의 시간을, 다른 그룹에게는 15초의 시간을 준다. 이들은 같은 방식의 게임을 반복할 예정이다. 참가자들은 다음 라운드의 시간을 빌려 올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이자를 지불해야 한다. 지금 1초를 더 쓰기 위해서는 다음 라운드에서 2초의 시간이 단축된다.

 

50초가 주어진 부자 그룹 사람들은 미래의 시간을 빌려올 것인지를 신중하게 판단한다. 대다수는 빌려오지 않는 결정을 내린다. 15초가 주어진 가난한 그룹 사람들의 다수는 미래의 시간을 빌려오는 결정을 한다. 결핍 상황에 놓인 이들은 더욱 긴장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들은 더욱 집중력을 발휘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처음에는 높은 성과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게임이 반복될수록 이들의 성과는 급격하게 떨어진다

 

이들 연구 결과가 시사하는 바는 분명하다. 결핍 상황은 사람들로 하여금 돈을 갚을 수 있는지 없는지를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없게 만든다. 빈곤 상황에 처한 이들이 약탈적 결과를 야기할 대출 계약에 서명을 하는 이유이다.

 

경쟁 정책과 소비자 보호 정책

행동 경제학의 연구들을 통해서 고금리 소액 대출을 이해하는 것은 정책적 접근에도 큰 차이를 낳는다. 전통적 경제학처럼 합리적 소비를 상정한다면, 대출 업체의 경쟁을 촉진하는 것을 주요 대안으로 생각할 수 있다. 경쟁이 치열하면, 대출 업체들은 이자율을 낮추고,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숨겨진 비용을 공개하고, 약탈의 가능성마저 미리 친절하게 설명해야 한다.

 

반면 대출 업체들이 소비자들의 행동 편향을 통해 이윤을 얻고 있다면, 경쟁의 힘이 작동할 수 있을까? 하이듀와 코제기 교수의 이론적 연구에 따르면, 완전 경쟁적인 대출 시장이라 하여도 소비자들의 과다한 대출을 막을 수 없다. 소비자들이 연체 없이 갚을 수 있다고 순진하게 믿는 한, 경쟁은 해결책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다수의 논문들이 비슷한 연구 결과를 소개하고 있다. 행동 경제학이 제시하는 가장 중요한 함의점은 경쟁 정책이 아닌, 소비자 보호 정책으로 약탈적 대출의 문제를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식의 규제 정책도 시장을 왜곡할 것이라는 시장주의자들의 비판을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행동 경제학적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면, 소비자 보호 정책은 시장에 대한 개입이라기보다 소비자들에게 자기 통제를 위한 행동 장치(commitment device)를 제공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미국의 페이데이론 규제 현황과 정책 제안

미국의 고금리 단기 사채는 페이데이론(payday loan)이라 불린다. 이는 통상 100~500달러 정도의 소액을 빌려주고 2주 내의 월급일에 맞추어 상환하게 하는 급전 대출이다. 급전을 빌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은행 계좌와 최소 월소득 100달러를 얻고 있는 직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퓨리서치의 서베이 조사에 따르면, 1200만 명 정도의 미국인들이 사채를 쓴 적이 있고, 이들은 대체로 저소득층의 젊은 사람들이며, 4년제 대학의 학위를 갖고 있지 않다.

 

미국 전역에 걸쳐서 대략 2200개 정도의 페이데이론 상점이 있는데, 이는 맥도널드, 버거킹의 매장을 합친 것보다 많다. 연이자율로 환산하면 300~400%로 이르고, 전체 대출액은 400억 달러이다. 80%의 소비자들은 대출을 제 때 갚지 못해서 대출을 연장하였다. 이 중 절반인 40%의 소비자들은 1년에 5번 이상 대출을 연장하였고, 10%의 소비자들은 14번 이상 연장하였다. 소비자들의 평균 대출금은 $350 정도였다. 반면 지불한 평균 이자는 458달러였다.

 

페이데이론에 대한 규제 정책은 주마다 상이하다. 가장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규제 방식을 다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20개 주는 대출 횟수를 직접 제한하고, 31개 주는 대출 연장 횟수를 제한하고 있으며, 7개의 주는 대출을 연이어 받을 때 일정 기간 동안 추가 대출을 못 받게 하는 쿨링오프(cooling-off) 기간을 설정하고 있다. 연방정부 차원에서는 최근 소비자금융보호국(Consumer Financial Protection Bureau)이 몇 가지 규제 방안을 제안하고 있다. 주목할 만한 두 가지 방안으로는, 대출 시 고객의 재정 상황을 사전에 검증하도록 하는 것과 상환기간의 연장 가능 횟수를 제한하는 것이다.

 

이들은 소비자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정책이고, 얼마든지 우리 상황에 맞게 적용할 수 있다. 첫째, 대출 횟수, 상환 기간 연장 가능 횟수 제한, 추가 대출을 위한 쿨링오프 기간 설정이 우선적으로 도입되어야 한다. 행동 편향이 커서 가장 큰 피해를 입고 있는 소비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이다. 둘째, 고객의 직업, 소득, 부채 현황과 같은 기본적인 재정적 상황을 사전에 검증토록 해야 한다. 이는 대출 업체들의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방법이다. 현재처럼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대출 방식은 약탈적 대출과 시장 실패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증거일 뿐이다. 셋째, 최근 영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논의처럼, 대출의 TV 광고 제한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가장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정책은 역시 대출 이자율 규제이다. 가장 손쉽게 제시되는 대안이지만, 가격 통제 방식은 예상하지 못한 문제들을 낳기 마련이다. 이자율 규제는 대출시장의 축소를 급격하게 낳을 것이다. 그렇다면 합리적인 결정을 통해 대출 서비스를 받는 소비자들의 혜택이 줄 수밖에 없다. 앞서 제안한 세 가지 정책만 우선적으로 실행하여도 약탈적 대출의 문제가 상당히 개선될 것이다. 이후 시장의 변화를 살피며, 이자율 규제 여부를 논의할 것을 제안한다.

 

산와머니 : 산와대부는 2002년에 설립되었으며, 일본 SF코퍼레이션(SFコーポレーション, 구 명칭은 산와파이낸스(三和ファイナンス))의 한국법인이다. 일본 산와그룹이 100% 출자한 페이퍼컴퍼니 '유나이티드'가 지분 약 94%를 보유하여 최대주주로 있고, 야마다 쿠이치로라는 일본인이 4.8%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 법인은 20118월 파산하고, 대한민국에서는 2위 업체로 성업중이다.

 

리드코프: 김철우 (대표이사) 본래 석유사업을 영위할 목적으로 1977년 세워진 회사이며, 현재는 크게 석유사업부문, 휴게소사업부문, 소비자금융(대부업)사업부문 3가지 사업을 하고 있다.

 

한국일보 사설] 영남권 신공항 이번엔 정치권 간섭 없어야 527

다음달로 예정된 영남권 신공항 입지 선정을 앞두고 지역갈등이 커지고 있다. 가덕도에 지어야 한다는 부산과 경남 밀양을 주장하는 대구울산경북경남 간의 유치경쟁이 과열양상이다.

 

영남권 시도단체장은 최근 모임을 갖고 부산이 정치권을 동원해 조직적 유치경쟁을 벌이고 있다며 비난했다. 부산은 이에 맞서 영남지역 단체장이 밀양에 모여 공동입장을 발표한 것 자체가 정치적이라며 반발했다. 서병수 부산시장은 가덕도가 탈락하면 아예 시장직에서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2006년 노무현 정부 시절 공론화된 영남권 신공항 건설은 이듬해 이명박 전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내놓으면서 논란이 본격화했다. 이후 부산 가덕도와 경남 밀양으로 압축됐으나 극심한 지역갈등이 빚어지자 정부는 계획을 백지화했다. 그러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공약으로 되살려내 논란이 다시 불붙었다. 영남권에 신공항이 필요하다는 데는 별 이견이 없다. 국토교통부는 영남권 항공 수요가 매년 크게 늘어나 김해공항이 2023년 사실상 포화 상태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신공항 입지 결정에서 완공까지 10년 정도 기간이 소요되는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

전문가들은 후보지인 가덕도와 밀양의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고 보고 있다. 가덕도는 해상공항으로 장애물이 없고 24시간 운항이 가능하다는 점이, 밀양은 영남권 주요 도시에서 1시간 내에 접근할 수 있는데다 태풍 등 자연재해 가능성이 적다는 점이 각각 우위에 있다. 두 곳 모두 신공항 입지로 손색이 없는 셈이다. 그런 만큼 경제성과 발전성 등 객관적 기준이 선정의 유일한 잣대가 돼야 한다.

문제는 정치권과 지자체의 비이성적 행태다. 지난해 1월 관련 광역지자체장 5명은 과도한 유치 경쟁을 자제하겠다는 신사협정을 체결했다. 하지만 413 총선에서 일부 정치인들이 경쟁적으로 신공항 유치를 떠벌리면서 휴지조각이 됐다. 용역 결과 발표에 앞서 상대 후보지를 깎아 내리고 비난하는 일이 잇따르고 있다. 정치권까지 가세해 지역 갈등의 화약고에 불을 붙이는 것은 포퓰리즘의 극치라고밖에 볼 수 없다. 영남권 신공항 건설은 10조원 넘는 예산이 소요되는 초대형 국책사업이다. 정치적 고려나 지역이기주의가 끼여 들면 국가경쟁력이 떨어지고 갈등만 커진다. 정부는 공정성과 객관성 확보를 위해 용역을 맡긴 외국 전문기관에 권한을 일임했으며 결과도 연구팀이 직접 발표하도록 했다. 후유증을 최소화하려면 발표에 앞서 양쪽으로부터 결과에 승복한다는 다짐부터 받아야 한다.

 

오바마, 한국인 희생 언급했지만 위령비 지척서 귀로 527한국

대통령, 히로시마 첫 방문

 

심진태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합천지부장(앞줄 왼쪽)과 한정순 한국원폭2세환우회 회장(앞줄 오른쪽)27일 오전 일본 히로시마시 히로시마평화공원내 한국인위령비 앞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인 위령비에도 헌화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히로시마=박석원특파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전후 71년 만에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피폭지인 일본 히로시마(廣島)를 찾아 고개를 숙였다.

 

일장기와 성조기의 물결 속에 미국과 일본이 역대 최고의 동맹관계를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위령비 앞에서 한국인 희생자까지 언급했다. 그러나 한국인 원폭희생자위령탑은 끝내 찾지 않았다.

 

오바마 대통령은 27일 이세시마(伊勢志摩) 주요7개국(G7)정상회의 폐막 직후 야마구치(山口)현 이와쿠니 미군기지를 거쳐 평화공원에 도착했다. 그는 이와쿠니 미군기지를 방문한 자리에서 "(이번 일본 방문을 통해) 미일 동맹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동맹 중의 하나임을 재확인했다"면서 미일 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NHK를 통해 중계된 연설에서 그는 또 피폭지 히로시마 방문과 관련해 "2차 대전에서 희생된 모든 분을 기리는 기회"라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평화공원 방문에는 아베 신조(安倍晉三)일본 총리가 처음부터 끝까지 동행했다. 아베 총리는 G7 정상회의를 마치고 히로시마로 가기 직전 "희생된 모든 사람을 추도하기 위해 히로시마를 방문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히로시마에서 피폭의 실상을 세계에 알릴 것이라며 이는 핵 없는 세계를 위한 큰 힘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덧붙였다.

 

오바마 대통령 일행은 삼엄한 경비 속에 원폭의 참상을 담은 사진과 유품이 전시된 원폭자료관부터 참관했다. 원폭피해의 구체적 실태가 응축된 원폭자료관을 거치는 일정은 당초 제외됐지만 백악관과 일본 총리관저 측의 막판 조율로 성사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은 원자폭탄을 투하한 당사국의 현직 대통령으로 민감한 행보라는 판단 때문에 주저했지만 오키나와 미군무원의 일본여성 살해사건으로 악화한 일본 여론을 감안해 결단을 내렸다는 관측이 나왔다.

이어 오바마 대통령은 희생자위령탑 앞으로 이동해 헌화한 뒤 비핵화평화 메시지를 발표했다. 준비된 100석의 의자에는 일본 원수폭피해자단체협의회 대표인 쓰보이 스나오(坪井直91)씨와 이와사 미키소(岩佐幹三87), 다나카 데루미(田中熙巳84)씨 등 원폭피해자와 학생, 정치인 등이 앉아 역사적인 현장을 지켜봤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어 원폭돔으로 바로 발길을 돌렸다. 한국인 희생자위령비는 희생자위령탑에서 원폭돔으로 가는 3분 거리 길목에 위치해 있었지만 끝내 외면해 버렸다.

때문에 오바마가 찾은 히로시마평화기념공원에선 미국과 일본은 한국인 위령비 앞에도 사과해야 한다는 주장만 허공에 흩어졌다. 한국에서 건너온 한국인원폭피해자 방일대표단 10명은 행사장에 진입도 못한 채 울분의 눈물을 흘려야 했다. 한국인위령비에선 이날 오전 930분부터 특별한 추모행사가 열렸다. 심진태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합천지부장은 원폭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세계 평화는 없다. 오바마 대통령은 한국인피해자들에게도 사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오바마의 일본 방문이 일본의 피해만 부각시키고 식민지억압과 피폭이란 이중의 희생을 당한 한국인 피폭자들에게는 이중의 상처를 입혔다고 주장했다.

 

한국인피해자들은 특히 원폭 피해의 대물림을 호소했다. 한정순 한국원폭2세환우회 회장은 뇌성마비를 가진 아들(34)과 찍은 사진을 보여 주며 전쟁은 그때(19458) 끝나지 않았고 우리는 태어나는 날로부터 전쟁이 시작됐다대물림되는 이 잔인한 모습을 기억해 달라. 오바마 대통령도 이 모습을 보고 사죄와 배상을 해 달라고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에게 보내는 서한문을 직접 전달하겠다는 뜻은 이루지 못했다. 서한문은 귀하는 아무런 죄도 없이 일본의 침략과 식민지배로 인한 강제징용과 피폭으로 죽어간 한국인 원폭 피해자 위령비를 찾아 사죄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피해자로서의 일본을 부각시키고 침략전쟁과 식민지배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아베 정권의 의도에 이용되지 않아야 한다고도 했다. 히로시마 방문단은 전날 간사이(關西)공항에 도착한 뒤 오사카(大阪)입국관리국으로부터 2시간 동안 입국목적 등 상세 조사를 받는 등 일본 당국으로부터 입국지연 및 방해를 당했다고 강력히 성토했다.

 

경상도 보수성 헤치고 지역 `NGO` 살아나라 527 경북매일

대구경북 폐쇄적 성격 한몫 시민운동 갈수록 활력 잃어

경제 불황에 후원마저 감소 정치권·언론 시각도 변해야

대구와 경북지역이 지닌 보수성이 시민운동의 활성화를 막고 있는 요인 중의 하나라고 봅니다.”

 

오는 30일 경주에서 막을 올리는`66UN NGO 콘퍼런스`는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개최된다.

 

<관련기사 2> 하지만, 정작 NGO 관련 대규모 행사가 열리는 경북과 대구지역의 시민운동은 침체일로를 걷고 있어, 활력을 되살릴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시민단체 활동가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박경태 교수(NGO·소수자인권 전공)한국의 시민운동이 서울에 집중돼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유명 NGO나 시민활동가들은 대다수가 중앙에 있다. 서울과 타 지역에 비해 대구경북의 시민운동 역량이 다소 부족한 것은 그 지역 활동가의 능력이나 의지 문제는 아니다. 대구경북의 특색이라 할 수 있는 보수적 분위기와 연결된 문제인 듯하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사실 시민운동은 `활동 공간의 확보`가 그 출발점이다. 몇몇의 시민운동 관계자들은 보수성과 함께 대구경북의 폐쇄성 역시 시민운동의 성장을 막고 있다고 진단한다. 또한, 갈수록 어려워지는 경제상황이 시민단체 후원가들의 주머니를 닫게 만든 것도 시민운동의 위기를 초래한 한 요인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것을 극복할 방안은 없는 걸까. 박 교수는 시민운동에 관한 일반인의 인식전환과 함께 정치권(정당)이 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당이 자신의 역할을 하지 못해 성장한 것이 1980~90년대의 시민운동이다. 이제는 정치권도 시민사회의 요구를 현실에서 실현시킬 방법을 고민할 시점이 됐다. NGO와 정당의 역할을 구분해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이와 함께 전문가들은 언론의 관심과 적극적인 보도도 시민운동의 성장과 활력 되찾기에 적지 않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는 시민운동가 출신의 김기식 씨, 송호창 씨 등이 국회에 들어가 시민운동 활성화를 위해 적지 않은 역할을 했지만, 그것이 언론에는 제대로 알려지지 못했다는 지적인 것으로 보인다. “언론이 시민운동의 긍정적 역할을 격려하고, 잘못 가는 방향에 관해서는 비판도 해야 한다는 게 시민운동가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검증되지 않았거나 시민운동을 빙자해 사익을 취하는 인사들이 전체 시민사회계의 침체를 부추겼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포항의 경우 수년 전 명망이 높았던 시민단체 간부가 부정에 개입했다가 검찰에 구속돼 파문이 일기도 했다. 또 한 인사는 부적절한 언행과 임차 국유재산 무단 용도변경 등 끊임 없이 물의를 일으켜 포항지역 시민단체의 위상을 크게 떨어뜨렸다.

 

이에 대해 최광열 포항KYC(한국청년연합) 전 대표는 한국사회의 전반적인 활력 저하에다 시민운동에 그리 호의적이지 않은 지역 특성이 대구경북의 시민단체를 더 위기로 몰고 있다면서 하지만 지역불균형 등 시민사회 차원에서 대응해야 할 현안이 산적한 현실에서 활동가들의 자성과 함께 시민들도 더 많은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경유차 대책 시간만 끌건가 527 시사저널

미세먼지로 인한 국민 건강위협 조속히 제거해야

미세먼지로 인한 국민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하도 기승을 부리다보니 일기예보에서 비 소식 만큼이나 주의깊게 챙겨보는 대목이 된지 오래다. 화창한 날도 제대로 창문을 열지 못하고, 야외 활동 계획마저 취소할 정도로 걱정거리가 됐다.

 

그럼에도 정부 대책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최근 국무조정실장 주재로 환경부,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국토교통부 등 관계부처가 참여해 열릴 예정이던 미세먼지 종합대책 모색을 위한 차관회의도 돌연 연기됐다. 경유차에 대한 규제 강화 등 민감한 내용이 일으킬 파장을 염려한 탓이라고 한다.

 

미세먼지를 발생시키는 원흉으로 지목되는 경유차는 빠르게 늘고 있다. 지난해말까지 등록된 차량을 유종별로 보면 경유차는7939000대에서 8622000대로 8.6%가 증가했다. 같은 기간동안 휘발유 차량이 전년말 9706000대에서 9965000대로 2.7%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증가속도가 3배이상 빠르다.

 

화물차는 경유차가 대세가 된지 오래지만 승용차와 버스도 경유차가 차량 증가를 주도하고 있음은 결코 예사롭게 볼 일이 아니다. 승용차는 신규 판매에서 지난해 처음으로 경유차가 휘발유차를 앞질렀다.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포함해 지난해 신규 등록된 승용차 1532054대중 경유차는 684383대로 휘발유 차량 681462대보다 2921대가 많았다. 정부가 2001년부터 대기질 개선 정책으로 CNG 버스 보급사업을 펴면서 거리에서 눈에 뛰게 줄었던 경유버스도 지난해에는 15년만에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경유차가 이렇게 큰 인기를 누리는데는 엔진의 특성상 휘발유차에 비해 힘이 좋고 연비가 높다는 장점이 매력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연료비가 덜 든다는 경제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요인임을 부인할 수 없다. 정부는 지난 2007년 세금 조정을 통해 휘발유와 경유 가격을 10085 수준으로 책정했다. 이런 이유로 휘발유에는 경유보다 리터당 200원 이상 많은 세금이 부과되고 있다. 한국석유공사가 집계한 5월 셋째주 석유제품 소비자가격을 보면 휘발유가 리터당 평균 1387원인 반면 경유는 1154원으로 230원정도가 저렴하다. 버스도 경유를 쓰는 것이 CNG보다 훨씬 이익이다. 경유버스의 연료비는 연간 2290만원으로 CNG 버스 3361만원보다 1000만원 이상 적게 든다고 한다.

 

환경부 국립환경원 조사(2012)에 따르면 미세먼지를 유발하는 유독물질인 질소산화물(NOx) 배출량 기여율에서 자동차 등 도로이동 오염원이 32.1%로 가장 높게 나왔다. 건설차량(굴착기) 등 비도로이동 오염원(21%),제조업(16.1%)와 발전소 등 에너지산업(15.8%)은 상대적으로 낮다. 휘발유와 가스차량은 질소산화물을 거의 배출하지 않기 때문에 자동차 관련 질소산화물 대부분은 경유 차량이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경유차가 경제성이 있는 것은 이런 사회적 비용을 감안하지 않은 탓이다. 국민건강에 미치는 심각한 악영향과 이로 인해 사회가 감당해야할 의료비 등 유,무형의 비용을 온전히 고려하면 경유차가 과연 경제성이 있다고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더구나 이런 비용을 경유차 소유자가 사회에 전가하지 못하고 스스로 부담케 한다면 결코 경제성 있다는 말을 하지 못할 것이다.

 

굳이 경제학자 그레고리 맨큐 하바드대 교수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경제적 유인에 반응한다는 것은 상식처럼 통한다. 경유차가 늘어나는 것이야말로 바로 경유차를 선호할 수 밖에 없도록 경제적 유인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경유차를 많이 사도록 제도를 만들다보니 경유차가 늘어났다는 뜻이다. 따라서 미세먼지를 발생시키는 주범으로서 경유차를 줄이는 것이 마땅하다면 이런 경제적 유인부터 제거하는 것이 순서다. 경유차가 사회에 전가하는 은닉된 비용을 철저히 찾아내 경유차에 온전히 물린다면 이런 경제적 유인은 사라지고 경유차는 지금보다 훨씬 줄어들게 뻔하다. 결국 경유가 초래하는 사회적 비용을 온전히 반영할 수 있도록 유류세를 인상하거나 환경개선부담금을 부과하는 방법을 찾아야할 것이다.

 

사실 오락가락하는 정부 정책은 비난 받아 마땅하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지난 2009년에는 경유차가 온실가스를 덜 배출한다는 이유로 클린 디젤차를 전기자동차, 천연가스자동차와 함께 친환경차 반열에 포함시켰다. 지금은 애물단지 취급을 하고 있으니 경유차 소유자들도 분통이 터질 것이다.

 

그러나 경유차가 미세먼지 배출 주범이라는 사실이 달라지지 않는한 경유차에 대한 규제는 불가피하다. 시간을 끌지 말고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 과단성있게 실행해야 할 것이다. 가습기 살균제처럼 정부가 조치에 뜸을 들이는 사이 피해를 키우는 우()를 또다시 범해서는 안된다.

 

화물차를 운영하는 영세 자영업자나 서민들의 부담을 키울 수 있다는 점이 결코 경유차에 대한 규제를 회피하는 핑계가 될 수는 없다. 경유차에 대한 규제 강화로 서민들의 부담이 커진다면 그 부담을 경감시켜줄 수 있는 세제 해택이나 재정지원 방안을 동시에 강구하면 될 일이다.

 

경유차를 줄이는 것에 우선 순위를 두고 파생되는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찾는 발상의 전환이 절실하다

 

신인령 전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 이사장 “MB정부로부터 여러 차례 시달렸다5.3 주간경향

삼성이 사회에 환원한 장학재단의 운영에는 삼성도 정부도 배제하고 출발했다. 그러나 신인령 제1대 이사장의 회고는 그와 달랐다. 그는 전방위 퇴진 압력을 받고 결국 물러났다. 삼성과 정부로부터 독립했던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은 10년이 지난 지금 어떻게 됐을까.

10년 전이다. 200627일 이학수 당시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장이 취재진 앞에 섰다. 이 본부장은 준비해 온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을 읽었다. “이건희 회장과 삼성의 경영진은 지난날의 잘못된 관행에 대한 반성과 함께 그동안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 단체와 국민들께서 지적해 왔던 삼성의 여러 현안에 대한 국민의 뜻을 받들어 이와 같은 방안들을 마련했습니다.”

 

20057, ‘삼성 엑스파일이라고 불리는 녹취록이 공개됐다. 1997년 대선을 앞두고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과 이학수 삼성그룹 부회장이 만나 특정 후보에 대한 자금 제공을 공모한 내용이었다. 참여연대를 비롯한 108개 시민단체는 삼성 불법 뇌물공여사건 공동대책위원회를 만들었다. 상속세를 회피하기 위해 에버랜드 전환사채를 헐값에 발행했다는 의혹으로 가뜩이나 불신을 샀던 삼성이었다. 여기에 삼성 엑스파일사건이 더해지자 삼성에 대한 사회적 반감은 치솟았다. 삼성은 이듬해 200627일 이건희 회장 일가의 사재 8000억원을 사회에 환원한다고 발표했다. 에버랜드 주식 209129(8.4%)도 내놓았다. 사죄의 뜻이었다. 20068, 삼성은 이건희 회장의 사재와 이 회장 자녀들의 주식을 출연해 기존에 있던 삼성이건희장학재단의 보유재산을 8000억원으로 늘려 사회에 환원했다. 이 기금으로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이 만들어졌다.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현 삼성꿈장학재단)은 사회환원이라는 기금 성격에 맞게 삼성은 물론 정부도 재단 운영에서 배제했다. ‘삼성 엑스파일의 파동을 매듭짓는 대사회적 약속이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났다. 정부와 삼성으로부터 독립돼 운영된다는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의 원칙은 잘 지켜졌을까. 지난 3월 신인령 전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 이사장은 <나의 인연이야기>(지식공작소)를 출간했다. 신 전 이사장은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의 1대 이사장이었다. 책에는 MB정부 2년차였던 2009년의 이야기가 간략하게 서술돼 있다. 2009년은 신 전 이사장이 정부 측으로부터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 이사장직에서 물러나라는 퇴진 압박을 받다 결국 물러났던 해였다. 당시 신 전 이사장에게 가해졌던 외압은 전방위적이었다. 교육청, 교육부는 물론 청와대, 국무총리실, 국가정보원까지 개입돼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당시 MB정부가 신 전 이사장을 밀어내려고 한 것은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이 갖고 있는 돈 때문이었다. 2009년 이와 관련해 국정감사를 진행했던 당시 민주통합당 안민석 의원실 관계자의 말이다. “그때 MB정부가 내걸었던 공약이 반값등록금이다. 그러나 당선되고 나서 이 공약을 이행하지 않았다. 야당에서 압박을 했다. 압박이 심해지자 MB정부는 공약 이행의 일환으로 장학재단을 만들어 맞춤형 장학제도를 도입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게 한국장학재단이다. 그런데 장학사업을 하려면 종잣돈이 필요했다. 수천억원의 돈을 마련하기 어렵다 보니 MB정부가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을 집어삼키려고 한 것이다.”

 

 

20132월 마지막 공식외부행사 갖는 이명박 전 대통령 / 김기남 기자

 

신 전 이사장에게 가해진 전방위적 압력

신인령 전 이사장은 당시의 외압들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임기 초부터 정부가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을 흡수하려 한다는 소문은 돌았다. 본격적인 외압의 시작은 임기 2년차인 20095월 느닷없이 이루어진 표적감사였다. 감사 대상이 아님에도 서울시교육청은 감사 기준까지 바꿔가며 표적감사를 실시했다. 그러나 감사 결과 꼬투리를 잡을 게 없었다. 많은 체크리스트를 받아가지고 나온 교육청 감사위원들이 치밀한 감사를 끝내고 내린 결론은 다른 장학재단의 모범이 되는 사례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장학사업과 전혀 무관한 직함을 가진 사람이 재단을 찾아왔다. 이갑수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이었다. 이 지원관은 자신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소속이라고 밝히며,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의 장학사업이 모범적이어서 관련 자료를 얻으러 왔다는 석연치 않은 방문 이유를 밝혔다. 공무원의 비리를 감찰하는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에서 민간 장학재단의 장학사업 자료를 받겠다고 찾아온 것이다. 명함도 제시하지 않고 신원과 소속을 수기로 써주었기 때문에 청와대에 전화하여 그 직원이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에 근무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MB정부에서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은 민간인 사찰로 큰 논란을 빚었었다. 2012년 공개된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사찰 파일 목록에는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도 포함돼 있었다.

 

느닷없는 감사와 정부관료들의 방문

이갑수 지원관이 다녀간 후 외압과 퇴진 압박은 좀 더 노골적으로 이루어졌다. 20098월 김경회 서울시교육감 직무대리가 찾아왔다. 김 직무대리는 이사장님과 재단이 잘하고 있는 줄 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었으니 다른 사람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물러나야 한다고 전하라 해서 어려운 전달을 하러 왔다. 죄송하다라고 말했다. 신 전 이사장이 힘든 역할하러 온 것 이해한다. 그러나 이 재단은 민간 공익재단이기 때문에 부당한 관의 개입을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답하며 누가 전하라고 했는가?”라고 되물었다. 김경회 직무대리는 이에 대해 제가 공무원 아닙니까. 먼 훗날에나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먼 훗날 말할 수 있을 거라던 김경회 전 직무대리는 7년이 지난 지금, 그때 누가 전하라고 했는지 말할 수 있을까. 사립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라 이제는 공무원 신분이 아닌 김 전 직무대리는 잘 기억이 안 난다. 그것에 대해서는 특별히 할 말이 없다. 공직을 떠났기 때문에 공직에 있을 때 이야기를 안 하는 게 공무원의 불문율이다. 당시 상황을 자세히 이야기할 수 없다며 답변을 피했다. 이갑수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현 청와대 근무)에게도 비슷한 대답이 돌아왔다.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에 한 번 간 적이 있다. 기억이 잘 안 나고 특별히 상황 파악을 한 것은 없다. 팸플릿 보고 커피 한 잔 마시고 온 것이다. 누구의 지시를 받아서 간 것이 아니다.”

 

20062월 삼성그룹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왼쪽에서 세 번째)을 비롯한 그룹 수뇌부가 7일 서울 태평로 삼성 본관에서 '()삼성' 분위기 해소를 위한 종합대책을 발표하기에 앞서 머리 숙여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있다. / 연합뉴스

 

외압의 실무자들은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지만 신인령 전 이사장은 외압의 핵심에는 이명박 정부의 핵심인사들이 깊이 연계돼 있다고 생각했다. “여러 사람들에게서 그런 정황을 들었다. 국정원 직원이 우리 재단의 관련 있는 인사들을 만나 장학재단과 나에 대해 묻고 다녔다고 한다. 또한 당시 친정부 인사 중 우리 재단이 정말 장학사업을 잘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우리를 돕고 싶어하던 사람도 있었다. 무엇인가 오해에서 비롯된 사안으로 생각하여 정부와 이 문제를 조정해 보려고 노력했으나 청와대와 국정원이 완강하게 거부한 것으로 안다.”

 

국정원이 나에 대해 묻고 다녔다고 들었다

청와대와 국정원은 신 전 이사장뿐만 아니라 삼성 측도 압박했던 것으로 보인다. 2009년 안민석 의원의 국정감사 대외비 문건에는 다음의 정황이 나온다. 청와대가 삼성을 압박해 신인령 전 이사장을 퇴진시키라고 했다는 것이다. “삼성에서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은 정부와 삼성이 관여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것이므로) 우리는 이 문제에 관여할 수 없다고 하자 청와대 비서관이 삼성물산 사장을 청와대로 불러 이 문제를 다시 언급. 처음에 실무자를 보내겠다고 하니까 사장 들어오라고 호통을 침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당시 MB정부가 신인령 전 이사장을 압박했던 상황을 알고 있었던 친이계 핵심인사 정두언 새누리당 의원의 말이다. “당시 신인령 전 이사장이 좌파인사라고 MB정권에 완전히 찍혔었다. 찍어내려고 했다. 당시 민간인 사찰은 국무총리 공직윤리지원관실과 국정원이 같이했다.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은 직원이 얼마 안 된다. 원래 그런 거는 국정원과 같이한다.” 당시 국정감사 대외비 내용을 삼성 측에 확인한 결과 삼성 측은 재단은 사회에 헌납해서 삼성과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운영된 기관이고, 자체적으로 관여할 수 없으며 관여한 적도 없다. 정부 쪽에서 요청이나 연락받은 적은 없다고 답했다. <주간경향>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 측의 답변을 듣고자 변호사를 통해 연락을 했으나 듣지 못했다.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을 찍어내려는 것은 이미 정권 초기부터 계획된 일이었다. 20083MB정부가 출범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한 일간지에 새 정부의 교육부 고위 관계자가 저소득층 장학사업을 어떻게 실현할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의 돈을 가져다 쓸 수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한 것이 보도됐다. 재단 측에서는 완전히 잘못된 기사라고 생각하고 언론사에 확인을 요청했는데, 당시 담당기자는 세세하게 확인을 해줄 수는 없지만 그러한 움직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라고 전했다. 20092월에는 <한국일보>삼성 환원 8000, 한국장학재단에 편입 추진이라는 보도가 나온다. 민간 공익법인인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을 국가장학재단으로 흡수하려면 재단이사회의 의결이 필수적 절차다. 그러나 신인령 전 이사장이 강경하게 버티는 한 그러한 의결은 기대할 수 없었다. 한국장학재단이 출범하면서 이러한 움직임은 이사장 퇴진 압박으로 노골화됐다. MB정부가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을 국가장학재단으로 흡수하려던 정황은 외압을 했던 실무자의 발언에서도 드러난다. 김차동 교육부 인재실장은 당시 김경회 교육감 직무대리와 함께 신 전 이사장을 찾아가 이사진 교체 및 이사회 날짜 변경을 요구한 바 있다. 김차동 실장은 현재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의 이사장을 맡고 있다. 김 전 실장은 그 당시 MB정부의 모토가 어느 누구나 공부하고 싶은 열정이 있으면 대학에서 할 수 있게끔 하자여서 국가에서 장학금을 많이 주든지 등록금에 상응하는 대출제도를 만들든지 해야 했다. 저소득층 장학금,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ICL) 등을 개발하고 있을 때인데,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과 상호보완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다.” 2009년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안민석 의원은 다음과 같이 결론 내린다. “법인 해산 뒤 정부에 편입시키려는 의도가 이전 정황에 의해 충분히 예측 가능함. 한국장학재단 출범 뒤 교과부는 운용기금 마련에 고심하고 있으며, 내년부터 취업 후 학자금 대출을 시행하려면 막대한 기금을 채권을 발행해 마련해야 함. 따라서 삼성장학재단이 편입되면 일정 정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을 것.”

 

신인령 전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 이사장 / 연합뉴스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 강윤중 기자

 

 

외압은 시간이 지나면서 좌파 프레임공격으로 변했다. 언론에도 보도됐다. 20098<월간조선>에는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 친노·좌파 인사가 핵심 관계자로 참여라는 기사가 실렸다. 신 전 이사장은 당시 취재과정이 이상했다고 회고했다. “기사 마감 전날이라고 하면서 15개 정도의 질문이 왔다. 질문의 내용은 종북분자들에게 왜 돈 줬나’ ‘7000명 멘토들 중에 전교조 교사가 있지 않나’ ‘(신 전 이시장이 1970년대 활동했던) 크리스찬 아카데미의 하류가 아니냐는 등의 악질적인 질문이었다.” 신 전 이사장은 지인들에게 자문을 구했다. “내가 아는 언론계의 지인을 통해 알아 보니 이런 경우는 그 기자의 재량은 전혀 없고 어디서 작성된 것이라고 말했다. 누가 언제 어디에 무엇을 서명했고, 누구와 친하고는 본인도 기억 못하는 내용들인데, 기자가 자기 정보를 가지고 쓸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 기자는 다음날 사무실로 와서 우리 직원과 대화를 했고, 우리 장학재단에 관한 이해를 하고서는 자기는 도울 형편이 못 되어 미안하다고 했다. 기사의 끝에 우리 사무총장의 말을 조금 인용해줬다.” 결국 기사 작성자로 되어 있는 기자는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임을 확인한 셈이다.

 

 

국무총리실 민간인 사찰 목록에 기록된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

 

이사 선임에 노골적인 정부 개입

이후 정부의 외압은 더 거세졌다. 김차동 교육부 인재실장은 신인령 전 이사장을 찾아와 821일 열리는 이사회를 연기하라고 했다. 821일 이사회에서는 1차 임기가 끝나는 임원에 대한 유임 여부와 공석을 채우는 임원후보추천위원회를 열게 돼 있었다. 신인령 전 이사장은 김차동 실장의 요구에 규정대로 7일 전에 안건을 제시하고 소집된 이사회를 공무원의 요구에 연기하다니 말이 되느냐삼성은 기금을 사회에 헌납한 것이지 국가에 헌납한 것이 아니다라고 전했다. 김 실장은 사회 헌납이나 국가 헌납이나 다를 것이 없다. 다 국가를 위한 것이다라는 요지의 강요를 거듭했다. 결국 이사회 회의에서 교육부와 세게 부딪혀서 좋을 것 없다는 의견이 제시돼 이사회는 24일로 연기됐다. 연기된 이사회에 김경회 직무대리가 찾아와 2인의 이사 명단을 내밀었다. MB캠프에 있었던 손병두 전 서강대 총장과 신영무 변호사였다. 김경회 직무대리는 이력서를 내놓으면서 이것만 받아주면 이제 자기는 다시 여기 올 일은 없다고 말했다. 이사회에서는 격론 끝에 낙하산 이사 후보 2명을 받는 것으로 더 이상 휘둘리지 말자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외압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다시 올 일 없다던 김경회 직무대리가 다시 방문해 신 전 이사장 연임이 결정됐음에도 손병두 이사를 이사장으로 이사회에서 표결 없이 만장일치로 받으라고 강요했다. 결국 이사회에서 3명의 이사를 제외하고 정부 외압에 승복한 이사들이 손병두 이사를 이사장으로 선임했다. 신 전 이사장은 내가 시달린 만큼 각 이사들에게도 어떤 형태로든 정부에서 접근한 것으로 안다. 거절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을 것으로 이해한다. 그 이사들 중에는 회의 끝나고 조용히 내게 죄송하다고 말하고 얼른 사라진 분도 있었다. 지금도 생생하다고 회고했다.

 

에버랜드 주식 삼성에서 도로 사가

이사로라도 남아 재단을 지키려 했던 신 전 이사장은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이 부산저축은행 투자로 손실을 입자 사직을 했다. “손병두 이사장 때 부산저축은행 투자 손실 사건이 터졌다. 투자액이 500억원이었다. 손 이사장은 도의적 책임조차 지지 않았다. 하도 기가 막혀 기록이라도 남겨야겠다 싶어서 나라도 이사직을 사임한다고 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기 때문에 상징적으로 평이사 중의 하나인 나라도 책임진다고 사직원에 기록하고 물러났다. 사임한 후의 일은 잘 모른다.”

 

2006년 삼성과 정부로부터 독립했던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은 10년 후 어떻게 됐을까. 삼성꿈장학재단으로 이름을 바꾸고 보유했던 에버랜드 주식은 삼성이 다시 사갔다. 손병두 이사장은 호암재단 이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삼성으로부터 독립했다는 장학재단에 현재 삼성 출신 이사가 2명 있다. 40년 동안 삼성맨이었고 삼성생명 사장을 역임한 이수창 생명보험협회장이 기금위원회 위원이자 재단 이사다. 마찬가지로 40년 동안 삼성맨이었던 이우희 전 삼성 에스원 사장도 이사로 있다. 우진중 삼성꿈장학재단 사무총장은 삼성 측으로부터 독립한다는 기존의 취지가 훼손된 거 아니냐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했다. “사회 저명인사들이 이사에 참여하는 게 그게 뭐 문제가 되나. 이해가 안 간다여기 들어오신 두 분은 벌써 삼성에서 오래전 그만 두셨다. 이사회에서는 그게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2012년에는 에버랜드 주식도 에버랜드에 되팔았다. 우진중 사무총장은 에버랜드에서는 주식을 매입해 줬다. 우리뿐만이 아니고 한국장학재단에도 똑같은 기회를 제공한 걸로 알고 있다. 에버랜드 주식이 비상장 주식이어서 무수익 자산이었는데, 이를 장학사업에 활용하기 위해서 이사회에서 결정한 것이다. 세 배 이상 남기고 팔았다. 장부가가 70만원 정도 했던 걸로 알고 있는데, 200만원 정도에 팔았다.”

 

우 사무총장의 말대로 판 게 이익이었을까. 신인령 전 이사장의 말은 달랐다. “내가 재단 이사장을 맡은 초기에 삼성 임원에게 들었던 조언을 잊을 수가 없다. 재단 운영상 필요할 때 삼성전자 주식 등 다른 주식은 매각해서 현금화하더라도 에버랜드 주식만은 장차 상장되면 엄청나게 뛰어오를 것이니 그때까지는 절대로 팔지 말고 가지고 있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해 주었다. 그런데 바로 그 주식을 비상장 상태에서 팔았다니 재단의 기금운영 원칙이 무너진 것 같아 안타깝다. 만일 그것을 상장 때까지 가지고 있었더라면 지금은 조 단위의 재단이 되었을 텐데 말이다.” 에버랜드 주식은 2년 후인 2014년에 상장됐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팔지 말라는 게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로 상장 이후에 엄청난 가격이 된다는 게 눈앞에 보이기 때문이다. 에버랜드 주식이 지배구조나 승계구조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구조다. 삼성이 매각을 막은 것은 아무에게나 팔 수 없다는 우려 때문이기도 하다. 10년이 지난 지금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은 애초의 설립 취지를 달성하지 못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민간인 사찰 의혹 중심엔 원세훈 전 국정원장?

공직선거법 위반, 국정원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에서 민간인 불법사찰을 했다는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2013318일 민주당 진선미 의원은 국정원 인트라넷에 ‘(원세훈)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을 공개했다. 진 의원에 따르면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20095월부터 20131월까지 최소 25회 게시됐다. ‘원장님 말씀중에는 민간인 사찰로 볼 수 있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심리전단이 보고한 젊은층 우군화 심리전 강화방안은 내용 자체가 바로 우리 원이 해야 할 일이라는 점을 명심할 것.”(2010719) “북한과 싸우는 것보다 민노총·전교조 등 국내 내부의 적과 싸우는 것이 더욱 어려우므로, 확실한 징계를 위해 직원에게 말하기보다 지부장들이 유관기관장에게 직접 업무를 협조하기 바람.”(2011218)

 

이와 관련해 <신동아>20137월 보도에서 진선미 의원이 공개한 문건의 양식과 이명박 정부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사용한 문건의 양식이 유사하다는 점을 들어 국정원의 조직적인 민간인 사찰 의혹을 제기했다. 기사는 전직 지원관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과 국정원이 민간인 사찰에 공조했을 의혹을 제기하며 여러 기관이 서로 정보를 공유해가며 사찰과 감찰을 진행했다면, 당연히 그것을 조율한 곳도 있었을 것이다. 지원관실의 민간인 사찰을 주도한 박영준 전 차관과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 국정원 정치개입을 주도한 원 전 원장 모두 이명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다는 점은 이 문제와 관련해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고 말했다.

 

민간인 사찰이 국정원의 지시와 예산으로 이뤄졌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민주당 진선미 의원은 201311월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경찰청 소관 예산안 심의를 위한 전체회의에서 강원경찰청의 민간인 사찰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지시 후 실행됐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진 의원은 원 전 원장의 20092월 취임 이후 원장님 지시 강조말씀을 통해 살펴보면 20095~73개월간 시민단체들을 종북세력으로 규정하고 확실하게 대처하라는 지시를 반복적으로 내리고 있다. 강원경찰청의 민간인 사찰은 그 이후에 이뤄진 것이라며 보안수사대의 국가보안법 혐의 공작과 내사 첩보 건에 대해서는 경찰청 자체 수사 예산이 아니라 국정원에서 기획조정할 수 있는 특수활동비가 집행된 것이라고 말했다.

 

원 전 원장이 대학 총장 선거에 개입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20105월 이화여대 총장 선출을 앞두고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 국정원 고위 간부들이 이화여대 학교법인 이사들을 잇따라 접촉하는 등 총장 선거에 개입한 사실이 드러났다. 20114<주간조선> 기사에 따르면 국정원 고위 인사들이 총장 선거를 3개월 앞둔 20102월 이화여대 법인 이사들을 만났다고 전했다. 원세훈 국정원장과 국정원 2차장 등이 윤후정 전 이화여대 이사장 등을 만나고 싶다고 전해왔다는 것이다. 당시 이화여대 내에서는 한쪽에서는 좌파 후보는 안 된다는 말이 나왔고, 다른 쪽에선 국가 권력을 이용하는 후보가 있다는 식의 말이 회자됐다.

 

부탄이 WTO에 가입 않은 이유는? 518 한겨레21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부탄] 국내총생산보다 국민총행복을 국정지표로 채택복지 확대, 환경 보전, 정치 민주화 등 성공적 달성

 

부탄 청소년들이 행복과 관련한 경구가 쓰여 있는 표지판 뒤에서 활짝 웃고 있다. 부탄에서는 물질은 행복을 위한 수단이지 목표가 아니라는 기조를 지키고 있다. 박진도

 

부탄은 히말라야 산맥 동쪽 자락에 위치한 인구 75만 명 남짓한 작은 나라다. 부탄이 외부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히말라야 산속 은둔의 왕국혹은 마지막 샹그릴라로 불리던 부탄에 외국인 관광이 자유화된 것은 1991년부터다. 그렇지만 부탄의 독특한 관광 시스템 때문에 지금도 관광이 완전히 자유롭다고 할 수 없다. 부탄을 여행하기 위해서는 하루 250달러(성수기) 혹은 200달러(비수기)를 여행사에 미리 내야 비자를 받을 수 있다. 여행사는 이 돈 가운데 65달러를 관광세로 정부에 내고, 나머지 돈으로 관광객의 숙식·교통·가이드 등 일체의 비용을 부담하며 정해진 일정에 따라 관광객을 안내한다.

 

사람들이 적지 않은 돈을 내며 부탄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부탄관광위원회 국장은 부탄의 독특한 자연환경과 문화를 꼽는다. 히말라야 깊은 산속에서 가난하지만 그들만의 문화와 전통을 보전하면서 좋은 자연환경에서 공동체를 이루며 평화롭게 살고 있는 부탄 사람들의 모습은 물질 만능과 극심한 경쟁 그리고 개인주의적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경이와 선망의 대상인 동시에 위안을 준다. 그들의 눈에 비친 부탄의 이미지는 가난하지만 행복한 나라. 나의 첫인상도 역시 가난하지만 행복한 나라였다. 그러나 두세 번 부탄을 방문하고 외국인이 거의 가지 않는 동쪽 끝까지 여행하면서 부탄 사람들의 고달픈 삶을 보며 과연 부탄 사람이 행복한가 하는 의문을 갖기도 했다.

 

부탄이 국제적 관심을 끄는 이유는 가난하지만 행복한 나라이기 때문이 아니라, 가난한 백성을 행복하게 만들려는 국가의 독특한 정책(국민총행복정책)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내가 만난 부탄 관리가 부탄은 동남아 국가에 비해 특별히 행복하지는 않지만, 다른 나라보다 정책적으로 국민행복 증진을 위해 노력하는 나라라고 말한 것이 인상적이다. 201111월 유엔은 행복: 전체적 발전을 위하여라는 매우 중요한 결의안을 채택했다. 이 결의문은 행복은 인간의 근본적 목표이고 보편적인 열망이다. 그러나 국내총생산(GDP)은 성질상 그러한 목표를 반영하지 않는다고 선언하고 지속 가능성을 높이고, 빈곤을 감축하고, 웰빙과 행복을 증진하기 위해서는 더 포용적이고 공평하고 균형 잡힌 발전이 필요하다고 결의했다. 이 결의를 주도한 나라가 부탄이다.

 

경제성장과 국민행복 조화 노력 

부탄의 4대 왕 지그메 싱기에 왕추크는 197216살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지만, 자신의 국정 철학을 무엇으로 할지 고민했다. 영국과 인도 등에서 공부한 그는 모든 나라 정부와 국민이 경제적 부를 늘리기 위해 노력하는데, 그것을 성취한 사람들은 안락한 생활을 하지만, 많은 사람은 나라의 부가 늘어나도 빈곤하고 비참한 삶을 살고 심지어 사회적으로 소외당하고 있다. 또한 경제적 부를 증대하기 위해 환경을 파괴한다. 모든 사람은 행복을 열망한다. 따라서 한 나라의 발전 정도는 사람들의 행복에 따라 측정되어야 한다GDP 대신 국민총행복(GNH)을 국정지표로 제시했다.

 

1960년대 부탄 사람들의 일상생활은 1500년대의 생활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자동차 도로는 전혀 없었고, 경제는 생계 농업과 물물교환에 의존했다. 평균수명은 38살에 지나지 않았고, 1인당 소득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51달러에 불과했다. 의사는 두 명만 있고, 학교는 통틀어 11개 뿐이었다.

 

 

그러나 국민총행복을 국가발전 전략으로 채택한 이후 사회경제적으로 전혀 다른 나라로 변모했다. 부탄은 1990년대에 연평균 7.8%, 2005~2010년에는 연평균 8.7%의 성장률을 기록했고, 1인당 국민소득은 20142730달러(구매력 평가(PPP) 기준으로는 7560달러)로 늘었다. 유치원부터 10학년까지 의무교육을 실시하고 공립 고등학교와 대학교육이 무료다. 모든 의료 서비스 또한 무료고 필요하면 외국 병원까지 보내 무상으로 치료해준다. 사람들의 기대수명은 38살에서 69살로 증가하였다. 전 국토의 70% 이상이 숲으로 덮였고, 생태보호지역이 전 국토의 51%에 이른다. 동식물의 다양성이 잘 보전되고 있을 뿐 아니라, 전통문화가 잘 계승 발전되면서 정치적으로 민주화에 성공하였다.

 

GNH란 무엇이며 그것은 정책적으로 어떻게 기능하는가. 우선 행복에 대한 부탄의 인식(이해)이 서구 사회와 매우 다르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서구에서 행복은 사적이며 주관적인 것으로 즐거움 혹은 만족 성취도에 초점을 맞춘다. 반면에 부탄 정부는 행복을 주관적 웰빙만이 아니라 다차원적으로 인식한다. GNH를 총괄하는 GNH위원회는 “GNH는 개인과 사회의 물질적 웰빙과 정신적·정서적·문화적 필요 사이에 조화로운 균형을 달성하는 다차원적 발전전략이라고 정의한다. 또한 행복은 개개인이 느끼지만 집단적으로 실현된다고 이해한다. GNH에 개념화된 행복은 원자화된 개인 사이에 추구되는 경쟁적 선이 아니다. 개인과 집단의 행복은 깊이 연관되어 있다.

 

부탄은 20064대 왕이 스스로 왕위에서 물러나고 절대군주국에서 입헌군주국으로 이행했다. 2008년 제정된 민주헌법에는 국가는 GNH를 추구할 수 있는 조건을 증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이에 따라 GNH가 국가발전전략의 주류가 되고, 10차 발전계획(2008~2013)GNH에 기초해 작성되었다. 부탄의 GNH는 기본적으로 네 기둥으로 이루어졌다. 첫째 기둥은 지속 가능하고 공평한 사회경제적 발전이고, 둘째 기둥은 문화 보전과 증진, 셋째 기둥은 생태계 보전, 넷째 기둥은 굿 거버넌스, 즉 좋은 민주주의다. 이러한 네 기둥을 토대로 GNH9개 영역을 설정했다.

 

부탄 정부는 국민행복을 측정하고 그것을 정책에 반영하기 위해 국민총행복조사를 실시한다. 이 조사를 위해 9개 영역에 각각 2~4개씩 총 33개 지표를 설정했다. 각 지표에 하위 지표(변수) 124개를 설정했다. 이를 토대로 각 지표의 충족도를 평가한다.

 

이 조사 결과를 토대로 GNH 지수를 계산하기 위해 두 개의 문턱(threshold)을 사용한다. 우선 각 지표에 대해 충분 문턱을 정하고, 개개인이 각 지표에 대한 기준을 충족하고 있는지 조사한다. 여기에 각 지표의 가중치를 곱하고 그 값을 합계하여 각 개인이 충분 문턱을 어느 정도 충족하였는지 평가한다. 충족비율이 50% 이하인 사람은 불행’, 50~66%인 사람은 약간 행복’, 66~77%인 사람은 대체로 행복’, 77% 이상인 사람은 매우 행복으로 분류한다. 부탄 정부는 중간에 해당하는 66%를 행복 문턱으로 설정하였다. 66% 이상 충족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직 행복하지 않은사람으로 분류된다. 부탄에서 행복한 사람으로 분류되려면 9개 영역 가운데 적어도 32는 충족해야 한다는 의미다. 행복 문턱이 꽤 높은데, 이는 정책 목표임과 동시에 이것을 중심으로 토론을 유도하기 위함이다.

 

행복 잣대로 정책·프로젝트 선정

 

부탄 아파트 단지 풍경. 부탄에서는 건축물 높이를 3층 이내(수도 팀푸에서는 6)로 규제한다. 박진도

 

2015년 조사에 따르면, 부탄 국민의 43.4%(‘매우 행복’ 8.4%, ‘대체로 행복’ 35.0%)는 행복하고, 56.6%(‘약간 행복’ 47.8%, ‘불행’ 8.8%)아직 행복하지 않은것으로 나타났다. 행복한 사람의 비중은 2010년 조사(40.9%)에 비해 약간 증가했다. 부탄 정부는 GNH 지수를 전 국민에 대해서 측정할 뿐 아니라, 이것을 종카그(현에 해당하는 행정구역), 성별, 도시-농촌, 교육 수준별, 연령별, 혼인 여부, 직업별로 측정해 아직 행복하지 않은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추어 이들의 행복을 증진시키기 위한 맞춤형 정책 프로그램을 마련한다.

 

예를 들면, ‘아직 행복하지 않은부탄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교육, 생활수준, 그리고 시간 사용과 굿 거버넌스 등에서 행복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이것을 지역별로 보면, 도시에서는 공동체 활력, 거버넌스, 시간 사용, 문화에서 그리고 농촌에서는 교육과 생활수준 등에서 행복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수도 팀푸에서는 공동체 활력이 가장 부족하다. 팀푸에서는 사람들이 바빠서 가족이나 친구, 이웃과 시간을 보낼 여유가 없다. 아파트의 경우 옆집에 누가 사는지 잘 모른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탄 정부는 제115개년 계획부터 주택건설 정책을 바꾸었다. 과거에는 주로 주택 공급에만 치중했다면, 최근에는 어린이 공원, 노인 쉼터, 농구 시설 등 공동시설을 함께 지어 공동체 활성화를 위해 노력한다. 또한 농촌지역에서는 보건소와 학교가 매우 멀고 생산된 농산물을 판매할 수 없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육, 통신, 전기, 도로 등 인프라 정비에 노력한다.

 

부탄 GNH 정책의 중요 요소 중 하나가 정책심사도구. 부탄 정부는 이 심사도구를 통해 GNH라는 렌즈로 국가 정책과 프로젝트를 체계적으로 평가한다. 평가 결과에 따라 GNH를 향상시키는 정책과 프로젝트는 선정하고, 반대로 악영향을 미치는 정책 및 프로젝트는 거부한다. 부탄이 아직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지 않은 이유는 이 심사도구를 통해 보니 WTOGNH에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판명됐기 때문이다.

 

부탄은 더 이상 은둔의 나라가 아니다. 빠르게 성장하고 급속하게 변하고 있다. 개발을 재촉하는 포클레인 소리가 수도 팀푸를 거쳐 동쪽 끝까지 빠르게 퍼져가고 있다. 부탄은 지금 급속한 이농과 도시화, 개인주의 만연, 공동체 붕괴와 사회안전망 위축, 청년실업과 높은 자살률, 서구문화 유입과 전통문화 훼손, 환경 파괴 등 성장통을 앓고 있다. 부탄은 여전히 가난한 나라이기 때문에 더 많은 성장을 원한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이 국내총생산 증대만으로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부탄 정부는 이미 다른 나라의 경험을 통해서 잘 알고 있다.

 

부탄의 2만여 공무원의 인사를 책임지는 카르메 치팀 인사위원장(전 국민총행복위원회 차관)과의 대화를 통해 부탄이 GDP보다는 GNH를 더 중요하게 여기고, GNH를 국정지표로 삼는 이유를 들어보자. “부탄은 GDP 성장이 필요하다. 우리는 아직도 1인당 국민소득이 3천달러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난한 나라다. 부탄 사람들은 더 나은 생활을 원한다. 그러나 GDPGNH를 증진하기 위한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GDP와 건강, 여가, 교육, 문화, 환경, 공동체 활력 사이에 균형이 필요하다.”/ 박진도 지역재단 이사장·충남대 명예교수

 

Candan Ercetin -Olmaz

노래출처:  다음블로그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