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니 점심 무렵, 100인 토론 사후 정리를 하고 일요일 새벽 먼동이 틀 무렵 귀가했다. 토요일 오후서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멈출 기새를 보이지 않는다.
간밤에 지인이 야근하는 내 꼴이 못마땅했는지 전화를 통해 한소리 했다." 야이 바보야 니는 그렇게 아파 보고도 그 시간에 뭣하는 짓이고, 그러다 또 쓸어지면 어떻할 거냐고 " 그랬다. 지난 99년 과로와 스트레스로 몸져 누웠고 병가를 낸 적이 있었다. 아직도 그때의 내 몰골을 기억하는 이들은, 특히 자주 만나지 못하고 어쩌다 소식 나누는 사람들은 '몸은 괜찮냐'고 물을 때가 많다. 그때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몸을 기적적으로 회복시켰다. 두번 다시 되풀이 하고 싶지 않은 시간이다. 하기사 누구도 내 몸을 지켜줄 수 없다. 가끔 그 사실을 잊는다. 일 하다 보면 그렇다. 가차없이 충고해 준 그 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집착을 버려야 한다. 사실 올해들어 다짐한 것이 있다면 내 몸을 혹사시키지 말자 그리고 가능하면 가족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자는 것이었다.
아침나절 눈을 붙였다 점심나절 깨어 산책에 나섰다.
옥수수가 하마 익어 수확이 가까왔다.
이 비 후면
박꽃도 조만간 꽃을 피우리라
이렇게 어린 싹이 넝쿨을 뻗어 낸다는 것이 새삼 놀라울 따름이다
왠지 이 언덕 텃밭이 풍성하다는 느낌이다.
비 오니 무당개구리도 작은 웅덩이에 모습을 드러냈다.
질경이를 유심히 보았다. 과연 그 이름대로 짓밟혀도 언제 그랬냐는 듯 한결같은 모습이다, 사람도 저럴 수 있을까
잠시 비 내리다 말고 안개가 산을 휘감는다. 가끔 저렇듯 피고 지는 비구름 마주하고 싶다.
옹벽을 따라 왕벚나무를 식재했는데 시나브로 숲길이 되었다. 주로 이길은 버스 세 정거장 거리에 있는 본가로 갈때 이용하는 길이다. 이런 날 두분은 또 뭣하며 지내실까.
망초 한 포기 맘컷 키를 세웠다. 원래 저럴 것이다.
우리집 큰놈 작은 놈 어릴적 놀이터인 사방오리나무, 큰아들은 대학생이 되었고 오늘은 알바 나갔다,
그 나무 아래 평상이 있어 도시를 본다. 늘 보던 풍경이지만 수시로 변하고 있다. 전형적 주거지역에서 요즘은 원룸이나 빌라로 개축되고 있다.
흙과 씨를 생각한다. 흙이 있어 씨가 뿌리를 내라는 것일까 씨가 있어 흙이 받아들이는 것일까
밭둑에는 애기땅빈대 같은 귀화 식물이 많다. 어떻게 유입되었는지 자세히는 알수 없지만 이제 전국적 분포를 보인다. 어떻게 전국화되었을까 새삼 궁금했다.
자연이란 것 그냥 두면 스스로 번성한다,
어느 주택 담벼락을 타고 오르는 마 줄기, 지난해 가을 이 마 줄기에서 한 봉지가 넘는 주아(珠芽)를 얻었다, 엄지손톱만큼 씨알이 굵었다. 안동지방에서는 장조림하여 찬으로도 이용한다. 나도 그렇게 해 볼 요량으로 욕심을 내었다, 아니 실은 당뇨에 좋다하여 장모에게 드릴려고 틈틈히 모았던 이유도 있다. 하지만 봉지에 넣어둔 주아는 하마 잊고 있다 얼마전 꺼내어보니 촉이 나 있어 어머니 밭에 심게 했다.
다시 빗줄기 긋는다
금새 물이 불어났다. 그 물들 죄다 하수구로 흘러 둘었다, 물이 머물 공간이 없다. 비는 내리되 마주하고 머물 곳이 없다는 것은 슬픈일이다.
나무는 김점순
나뭇잎이 흔들릴 때
가만히 그 속으로 따라가 본다
이파리가 흔들리기까지
먼저 가지가, 줄기가
뿌리를 묻고 있는 저 땅이
얼마나 많은 날을 삭아내려야 했는지
가볍게 흔들리는 것 뒤에는 언제나
아프게 견딘 세월이 감춰져 있는 것을
푸르게 날을 세우고 있다고
외로움이 없었겠는가
허풍으로 길 하나 내기 위해
초승달 돌은 하늘에 가슴을 풀어놓고
얼마나 몸서리를 쳤는지
돌아앉아 숨 고르는 소리에
발 아래가 술렁거리고, 서쪽 하늘로
수만 마리의 새가 한꺼번에 날아오른다
그러면 나무는
제 한숨을
나이테 속에 꼭꼭 태워 넣고 섰을 뿐
(『제10회 신인지용문학상 당선작』.2004)
낙법落法/ 권순진
유도에서 맨 먼저 익혀야할 게 넘어지는 기술이다
자빠지되 물론 상하지 말아야 한다
메칠 생각에 앞서 패배를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훈련
거듭해서 내동댕이쳐지다 보면 바닥과의 화친이 이루어진다
몸의 접점이 많을수록 몸은 안전해지고
나아가 기분 더럽지 않고 안락하기까지 하다
탁탁 손바닥으로 큰소리 장단 맞춰 바닥에 드러눕는 것이
더러는 보는 이에게도 참 흐뭇하다
머리를 우선 낮추고 몸을 둥글게 말아 구르니
넘어진들 몸과 마음이 상할 리 없다
어깨에 얹힌 힘을, 발목에 달린 힘을, 모가지에 붙은 힘을
죄다 빼고 헐거워져서야 마음도 둥글어진다
그때서야 엉덩살은 왜 그렇게 두껍게 붙어 있는지
넘어지고서도 다시 일어서야할 생각은 왜 솟아나는지
누운 자세에서 깨달으며 무릎 세운다
- 시집 낙법 (문학공원, 2011)
비에 젖어있는 세상, 젖을 수 있다는 것 ,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는 것 또한 흐름이요 과정이다.
나 어떻게 / 이상례
지나간 사랑에 너무 속 끓이지 마라
죽을 만치 괴롭거든
땅이 꺼져라
한숨 한 번 크게 내 쉬어 보거라
세상 천지에
꽃 같은 사랑도 별 같은 사랑도
세월이 흐르고 나면
강물이 흘러 바다로 가듯
다 지나가게 마련이다
지금 이 순간
내 앞에 있는 그대가 최고요
술 한잔 나눌 수 있는
그대가 최고 아니겠는가
도저히 너 아니면 않 될 것 같은
사랑도
봄이 가면 겨울이 오고
겨울이 가면 또 봄은 오듯이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지 않더냐
이 빗속 말나리들이 꽃을 피웠다. 산에 다니며 주아를 가져와 심었던 것이 아파트 곳곳에 자란다. 비슷한 종으로 줄기와 잎에 털이 많고 마주나기로 피는 털중나리가 있다.
오후들면서 바람도 제법 불었다. 귀가하면 늘 말붙이는 목련이 바람에 몸살이다.
집에 오니 알바 갔던 아들이 돌아와 짬뽕을 대접하겠다며 부엌에서 수선이다. 동생은 훈수하고 ...
아들이 처음으로 해 준 요리, 작은 아들은 동참하기를 피했고 결국 둘이서 짬뽕이라고 이름 붙이기에는 뭣한 이 면을 다 먹어야 했다. 그래도 고마운 일 아닌가
7월12일 일요일은 이렇게 보냈다. 나름 괜찮은 날이었다. 저녁에는 간만에 식구들과 삼겹살을 구워 밥을 먹었다. 心安茅屋穩 性定菜羹香
揭諦 揭諦 波羅 揭諦 波羅僧揭諦 菩提 娑婆詞
Gate Gate Para-gate Para-samgate Bodhi Svaha"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출처: 다음 블로그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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