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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11.13 경향 장도리
국정화 여론 조작 의혹]
대필 서명·명의 도용·무더기 복사해놓고…“찬성 의견 수렴” 1114 경향
ㆍ국정화 행정예고 여론 수렴 마지막 밤 무슨 일이
역사교과서 국정화 행정예고가 마감된 지난 2일 밤부터 3일 새벽 사이 교육부는 급박하게 움직였다. 2일 오후 11시쯤 ‘올바른 역사교과서 국민운동본부’ 스티커가 붙여진 50여개 상자를 실은 트럭이 세종시 교육부 청사에 도착하기 전 교육부 상당수 직원이 ‘집합’ 문자메시지를 받았고, 퇴근한 직원들까지 다시 출근해 분류 작업에 동원됐다. 그러나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 야당 의원 보좌관들이 11일 교육부 창고에 있는 국민의견서와 서명지를 확인한 결과, 2일 밤의 작업은 정부의 국정화 추진과는 거꾸로 밀려가는 여론을 억지로 메우려 찬성 의견을 조작·동원한 흔적이 역력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야당 의원 보좌관들이 지난 11일 교육부의 ‘국정화 행정예고 의견수렴 자료’를 열람해 문제가 있다고 제기한 찬성 의견·서명지. 서명자가 쓰지 않고 컴퓨터에 이름·주소·전화번호를 입력해 만든 찬성 서명지(1)와 한 필체로 같은 주소에 여러 명의 서명자를 기재한 찬성 서명지(2), 똑같이 복사돼 함께 제출된 찬성 서명지(3). 새정치민주연합 유은혜 의원실 제공
■의견서 분량·형식·이유 판박이
창고에 들어간 보좌관들은 일반인·단체가 제출한 62개 상자 중에 10~62번에 담겨 있는 의견·서명지가 한눈에 띌 정도로 너무 비슷했다고 전했다. 한 보좌관은 “찬성 의견서 대부분은 한 사람당 A4용지 9~10장 정도로 분량이 동일했고, 이름·신상명세·찬성이유 등을 쓴 동일한 양식에 인용한 사진까지 비슷했다”며 “10장짜리 개인의견서를 내면서 묶지도 않고 낱장으로 컴퓨터에서 출력한 채로 새 종이처럼 깨끗하게 박스에 들어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반대 의견서들은 손으로 쓰거나 팩스로 보내는 등 양식도 다양하고, 편지글·영어의견서 등 형식·분량도 제각각이며, 전달 과정에서 종이가 손상된 것도 많았다고 했다. 보좌진은 “찬성 의견서들이 담긴 53개 박스가 2일 밤 트럭에 실려온 것들”로 추정하고 있다. 누군가 공통양식을 만들고 이름만 바꿔 출력했을 가능성을 주목하는 것이다. 특히 62번 박스에는 국정화 지지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사람들의 의견서도 동일한 분량·형식으로 들어 있었으나, 김태년 의원 측이 곽병선 한국장학재단 이사장에게 공개질의한 결과 “의견서를 낸 적 없다”는 회신을 받았다.
무더기 대필 서명 의혹도 제기된다. 2~3장짜리 수십명의 이름과 주소, 연락처가 한 사람의 필체로 깨끗하게 정리된 서명지는 이례적이다. 한 사람 필체인 찬성 서명지가 많았고, ‘박○○로 시작되는’ 수십명의 명단은 복사돼 서류 뭉치 사이사이에 끼워져 있었다. 같은 아파트에서 동별로 보낸 서명지나 “방범대원님 부탁드립니다”라고 써 있는 표지도 보였다. 서명지를 촬영해 출력해서 보냈거나, 엑셀명단을 보내온 것도 있다. 다른 데 사용됐던 명단을 ‘재사용’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부분이다. 일부 서명용지는 한 사람의 필체로 이름·전화번호는 다르지만 주소는 ‘〃’ 표시로 동일하게 적은 것도 있었다. 한 주소는 민간기관 건물로 확인됐다. 행정예고 마감 후 서울 여의도의 한 인쇄소에서 찬성 의견을 무더기로 출력해 박스째 실어 날랐다는 소문도 돌고 있다.
■찬반 의견수렴 발표 자의적
교육부 측은 내용·분량이 판박이식으로 비슷한 의견서, 같은 필체 서명지 등의 조작·동원 의혹을 제기하는 보좌진에게 “시간이 없어서 내용은 제대로 못 봤다” “필적검증을 하지 않아서 모르겠다” 등의 답변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문제가 제기된 의견서·서명지들은 모두 집계에 포함됐다. 무효를 가르는 유일한 기준은 서명지에 이름이 명확히 기재되고, 전화번호나 번지까지 들어간 전체 주소가 있는지 여부였다. 야당 보좌관들은 “지역별로 광범위한 서명운동을 전개한 야당이나 시민단체 서명용지엔 아예 전화번호란을 만들지 않은 것도 많고, 주소도 동까지만 적은 게 많아 모두 신원불명 처리됐다”며 “새누리당에서 제출한 의심스러운 명단 서명지는 대부분 집계에 포함됐다”고 지적했다.
지난 3일 교육부는 홈페이지에 행정예고 의견 취합 결과를 찬성 15만2805명, 반대 32만1075명으로 발표했다. 당시 교육부가 e메일로 의견 접수를 하지 않은 데다 단 한 대인 접수 팩스마저 먹통이고 전화조차 받지 않아, 폭주하는 반대 의견을 듣지 않으려는 속셈이라는 비판이 거셌다. 당시 새누리당은 국정화 찬성 의견을 늘리기 위해 막판에 당력을 총동원한 사실도 드러났다.교육부는 자신들이 가른 10여가지의 국정화 찬반 유형 외에 제출된 의견에 대해서는 요구가 있으면 검토하겠지만 현재로선 답변을 따로 보내지 않을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멍청한 야당, 이대로라면 내년 총선도 뻔하다 1110 미디어오늘
[박동천 칼럼] 다시 연대를 이야기해야 할 때… 분열해서 지는 것보단 야합이라 욕먹고 이기는 게 낫다
대한민국의 역대 총선거에서 원내 제일당이 의석 과반수를 차지하지 못한 경우는 드물지 않다. 박정희가 유신이라는 궁정 쿠데타를 통해 의석 가운데 3분의 1을 임명하기로 작정한 까닭의 일부도 그 때문이었다. 게다가 제일당이 원내 과반수를 차지하지 못한 경우는 물론이고 과반수를 차지한 경우조차, 유권자의 과반수로부터 지지를 받은 경우는 거의 없었다. 다시 말해, 대한민국 국회의 역사에서 원내 제일당은 40%에도 미치지 못하는 득표율을 가지고 과반수 또는 과반수에 근접한 의석을 장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왜 그랬을까 묻는다면 답은 하나다. 나머지 정당들이 연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연대하지 못했을까? 정당의 존재 이유를 정권의 획득이라는 목표에 맞추지 못하고, “소의 꼬리보다는 닭의 대가리”가 되는 데 뒀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독립운동 단체들이 서로 작은 차이를 극복하지 못해서 소 한 마리의 형상을 그려내지 못하고 고만고만한 닭들이 서로 다투는 형국에 머물렀다. 이승만 정권, 박정희 정권, 전두환 정권 등을 지날 때에도 “민주”와 “진보”를 표어로 내건 정당들은 난립이 보통이었고 연대는 아주 희귀한 예외였다.
그나마 대통령 선거에서는 두 차례 연대를 통해 승리한 경험이 있었다. 김대중은 김종필과 연대함으로써 4전5기의 신화를 일궈냈고, 노무현은 정몽준과 연대를 통해 (그리고 정몽준의 배신에 따른 역풍 덕택에) 당선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연대는 늘 내부에서 강력한 비판에 시달려야만 했다. 원칙을 포기하고 오직 선거 승리만을 노린 야합이라는 도덕주의적 비판이었다. 노무현이 대연정을 통해 리더십의 위기를 타개하려고 했을 때도 똑같은 도덕주의가 기승을 부렸다. 민주-진보-개혁 세력의 내부에서 이와 같은 반발이 일어나면, 기득권 세력의 나팔수들은 “내홍”, “분열”, “분당”, “이전투구” 등의 상투어를 즐겁게 동원해 가면서 연대 자체를 폄하하는 왜곡된 정치의식을 확대재생산했다.
▲ 지난 8월25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새누리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2015 새누리당 국회의원 연찬회'에 참여했다. 사진=새누리당 홈페이지
오늘날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기득권 동맹은 새누리당-관료-군부-재벌-법조-언론기관에 걸쳐 대단히 강고한 연대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이 세력은 국회의원 선거에서 기껏해야 40% 정도의 득표밖에 하지 못한다. 다만 정당 득표율과 의석 분포 사이의 비례성을 원천적으로 왜곡하도록 설계된 소선거구 일등당선제에 기대서 가까스로 원내 과반수 또는 제일당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소선거구 일등당선제라고 해도, 만약 반대파가 모두 연대해서 선거에 임한다면 과거의 한나라당이든 현재의 새누리당이든 과반수 의석은 꿈도 꿀 수 없다. 그만큼 이들에게 민주-진보-개혁 세력의 연대는 무엇보다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2010년 지방선거에서, 그리고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민주-진보-개혁 세력의 연대는 기득권 동맹의 기세를 꺾는 데 성공했다. 그 흐름이 2012년에 이어졌더라면 총선과 대선에서 이길 수 있는 확률도 높았다. 하지만 연대의 절차에 미리 합의하지 못했던 단견 때문에, 그리고 “이길 수밖에 없는 선거”라는 따위 어리석기 짝이 없는 오만 때문에, 박근혜 정권의 등장을 막아내지 못했다.
원래 민주-진보-개혁이라는 대의는 각론으로 들어가면 중구난방으로 갈라지기 마련이다. 일본 제국주의의 억압에 반대한다는 부정문으로 쓰여진 목표에 뜻을 같이 하면서도, 해방된 조국을 누가 어떻게 주도할 것이냐고 하는 긍정문으로 써야 할 목표에는 이전투구를 벌였던 독립운동의 역사가 그랬다. 군부 독재에 반대할 때는 목숨을 아끼지 않을 것 같았던 동지들이 민주화된 정부의 구체적인 형상에 관해서는 끝내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한 민주화의 역사도 그랬다. 지배자의 편에서 볼 때 잠재적 경쟁 세력이 서로 싸우도록 만드는 것만큼 효과적인 전략은 따로 없다. 그래서 동양말로는 이이제이(以夷制夷), 서양말로는 분할통치(divide and rule)라는 것이 아주 오랜 옛날부터 있었던 것이다.
통진당 해산을 위한 예비공작으로 시작된 “종북” 매카시즘은 전형적인 이이제이 전략이었다. 한국 정치사에서 해방 직후부터 수도 없이 반복되었기 때문에, 7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후까지도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로 너무나 뻔한 이이제이의 전략이었다. 그럼에도 일부 당원들의 “정신 나간” 발언 몇 마디를 덩달아 성토했던 자칭 진보 지식인들과, 통진당 편만 들지 않으면 “종북”이라는 낙인에서 면제될 줄 알았던 민주당(또는 새정치민주연합)의 순진하고 유치한 어리석음 덕택에 그처럼 낡아빠진 전략이 통했다. 그 결과 세월호 참사의 진상조사를 요구해도, 교학사 교과서를 반대해도, 마냥 “종북”이라는 딱지만 붙이면 마구 짓밟을 수 있기에 이르렀다.
▲ 지난해 12월19일 통합진보당 정당해산 판결후 이정희 대표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이 사회에 진실과 정의가 작동하는 폭이 더 넓어지고, 사회적 약자의 생존권과 생활권과 발전권이 보호를 받고, 인류만이 아니라 지구라는 생태계 전체가 건강한 균형을 찾아 공존할 수 있는 방향으로 우리 사회가 내부적으로 개조되어야 한다는 명분에 민주-진보-개혁 세력은 모두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각론으로 들어가면 이견과 논란이 불가피하다. 이러한 이견과 논란은 노선 투쟁과 자리다툼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가 없다. 이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고, 모든 집단의 내부에서 항상 벌어지는 일이다. 이런 문제들을 미리 다 해결한 다음에나 연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래서 말이 안 된다. 이명박이나 박근혜만이 유체이탈화법을 구사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식의 말버릇 역시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를 모르는 증좌에 해당한다.
대한민국 국회의원의 임기는 4년이다. 연대는 일차적으로 4년 동안 무슨 일을 할 것인지를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하는 연대가 아니라, 당장 4년 동안 중점적으로 할 일 몇 가지를 유권자에게 호소할 수 있는 정도에서 이뤄져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물론 그 정도로 소박한 단기적인 목표에서도 민주-진보-개혁 세력을 망라한 합의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이 문제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본질주의적 자세로 합의가 안 될 때, 절차주의에 따르는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심상정 정의당 당대표, 천정배 국회의원이 지난 10월 21일 신촌 유플렉스 앞에서 열린 ‘국정교과서 반대 대국민 서명운동’에 참석해 시민들의 서명 동참을 호소하고 있다. 사진=새정치민주연합
이제 총선은 6개월 앞으로 다가 왔다. 정의당이 연합정부를 고리로 삼아 선거연대를 제안한 것은 자체로 많이 늦었지만 그래도 아무 생각 없이 시간만 허비하는 것보다는 백배 낫다. 그런데 왜 새정치민주연합은 반응이 없는 것일까? 정의당이 나름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여론전을 벌이는 데 장단 맞춰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그러는 것이라면 참으로 무능한 정당이다. 정의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 서로 주도권 다툼이나 벌이는 수준에 머무르는 한, 180석 이상을 은근히 엿보는 새누리당의 호언장담이 현실로 나타날 것이다. 그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예상하기도 어렵거니와 (도대체 누가 2012년에 국사교과서 국정화를 예상할 수 있었단 말인가!), 예상하기도 싫을 뿐이다.
선거연대는 승리의 보증수표가 아니라 승리의 실낱같은 가능성을 열기 위한 유일한 좁은 문이다. 단순한 선거연대보다는 정책연대가 물론 바람직하지만, 정책연대가 안 된다고 해서 선거연대까지 걷어차는 짓은 제 발등을 스스로 찍는 셈과 같다. 정책연대든 선거연대든 어려운 대목을 일단 접어두고 합의가 가능한 대목부터, 합의가 가능한 만큼씩 공통분모를 축적해 나가는 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간이 아주 소중하면서도 희소한 자원이다. 절차적 합의가 빨리 이뤄져야 연대의 효과도 커진다. 절차적 합의가 빨리 이뤄져야 절차에서 패배한 측이 불복할 수 있는 여지가 줄어든다.
따지고 보면, 바로 이와 같은 형태의 연대야말로 다름 아닌 민주주의의 본모습이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이명박, 박근혜가 민주주의에 어긋난다고 성토하기는 쉽지만, 김대중이나 노무현이나 문재인이나 안철수나 심상정의 지지 세력이 내부에서 얼마나 민주적이었느냐는 질문에 답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므로 현재 민주-진보-개혁 세력이 얼마나 자체적인 동력에 따라서 연대를 이룰 수 있는지는 정확히 장차 대한민국이라는 정치사회가 얼마나 민주적으로 흘러갈 수 있을지를 가늠하는 지표와 같은 것이다
국정교과서 집필진 공모 마감, 25명 이상 지원 1109 미디어오늘
13일 개별 통보 이후 20일 확정 예정, 공개는 미지수… 국책 연구원 물밑 접촉 정황도
국정교과서 집필진 공모가 9일 마무리됐다. 국사편찬위원회는 공모를 통해 25명의 집필진을 공모하기로 했는데 공모에 응한 인원은 25명을 넘어섰다.
진재관 국사편찬위 부장은 9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공모) 인원은 충분히 들어왔다. 구체적으로 숫자를 말씀드리는 것은 어렵다”면서도 공모 숫자가 25명 이상이라고 전했다. 진 부장은 "13일까지 공모한 분에 대해서 합격 여부에 대해 통보하게 돼있고 최종적으로 초빙하는 분들까지 포함해서 20일까지 명단을 확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최종 집필진 명단을 공개할지를 놓고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집필진이 확정되면 공개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정부는 명단 공개를 꺼리고 있다. 인신공격을 당할 수 있는 우려 때문이라는 이유를 대고 있지만 국정교과서 반대 여론이 높은 상황에서 집필진 공개로 인한 논란을 최소화시키기 위한 고욕책으로 분석된다. 국사편찬위원회는 집필진이 확정되면 집필진들과 함께 공개 여부와 공개 방법, 시기 등을 논의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낙관적 편견 강요 ‘긍정 이데올로기’ 1117 주간경향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통치에 자신 없는 집권세력의 불안감 때문”
“얼마나 통치에 자신이 없었으면, 교과서 국정화를 한답니까. 동아시아에서는 북한만 하고 있는 것을.” 한국의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중국까지 알려지면서 중국의 한 역사교육자는 이렇게 말했다.
집권 4년차를 향해 가는 지금, 자신감을 갖기에는 박근혜 정부의 성적표가 초라하다. 체감경기는 고사하고 자신하던 각종 경제지표마저 바닥이다.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1인당 국민소득은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LG경제연구원은 1인당 국민소득이 올해 2만7100 달러, 내년 2만7000 달러로 2년 연속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박 대통령은 임기 내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를 열고 4만 달러 시대를 위한 기반을 다지겠다고 했다. 올해 경제성장률도 3%를 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 초, 한국은행은 경제성장률을 3.4%로 전망했다. 그러나 현재 한국은행은 올해 경제성장률을 2.7%로 전망한다. 수출도 부진하다. 지난 7월 정부는 ‘수출 경쟁력 강화’ 대책을 처방전으로 내놓았지만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지난 8월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14.9%로 떨어졌다.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8월 이후 가장 큰 폭의 감소였다. 10월 수출 실적은 더 떨어져 -15.8%를 기록했다. 서민들의 체감경기와 직결되는 가계부채는 위험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다. 가계와 기업 간의 소득불균형 확대는 심각하다. 양극화는 인내 수준을 넘어 헬조선의 ‘수저 계급론’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10월 21일 ‘역사학자에게만 역사를 맡길 수 없는 이유’라는 세미나가 자유경제원에서 열리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긍정적 사고’ 강조하는 국정화 논리들
김영삼 정권 말기 때와 비슷한 분위기라는 암울한 진단마저 나온다. 민주정책연구원은 지난 11월 4일 발표한 <프레임과 내년 총선, 그리고 대응전략> 보고서에서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이번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과 그에 따른 논란도 집권 4년차를 앞두었지만 가시적인 성과가 부족한 박근혜 정부의 경제실정과 민생파탄을 은폐하는 수단이 될 것으로 보임.”
“통치에 자신이 없어서” 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는 것처럼 보이는 정부·여당의 국정화 강행 논리는 역설적으로 역사에 대한 ‘자신감 고취’다. 정부·여당 및 보수단체들은 현행 교과서가 ‘패배주의’를 가르치고 있다며 ‘우리 역사에 대한 자신감을 갖자’고 강조하고 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10월 26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현 역사교과서가 청소년에게 패배의식을 가르치고 있다. 개발도상국이 한국의 성장과 발전을 부러워하는데, 한국에선 ‘헬조선’이나 ‘망할 대한민국’이라는 단어가 군림하고 있다.” 교과서 국정화 ‘전도사’로 알려진 전희경 자유경제원 사무총장도 새누리당 중앙위원회 ‘역사 바로 세우기’ 포럼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다른 교과서들 역시 대한민국이 일으켜 세운 기적의 힘에 대한 내용은 없고, 학생들에게 불평과 남 탓, 패배감을 심고 있다. 그 결과 우리 아이들이 대한민국을 헬조선, 희망이 없는 나라, 특권층만 잘사는 나라로 인식하고 있다.” 보수 시민단체인 블루유니온 권유미 대표도 ‘패배주의’를 우려하고 ‘긍정적 사고’를 강조했다. “아직 성숙하지 못한 학생들에게 일부 교사들이 정치투쟁을 가르치면 안 된다. 학생들은 전 세계를 바라보며 긍정적 사고를 가져야 하는데, 사회를 어둡게 바라보고 불만을 갖게 되는 것이 안타깝다.”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가리키는 교과서 국정화의 목표는 ‘대한민국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국민 만들기’이다. 교과서를 통해 국민을 만들려는 프로젝트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성공한’ 국가인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국민 만들기’는 2008년 뉴라이트의 ‘대안 교과서’와 2013년 ‘교학사 교과서’ 논쟁 때도 있었다. 대표적인 뉴라이트 학자인 이영훈 서울대 교수는 <한국 근·현대사>에서 몇몇 잘 알려진 역사서들을 보면 모두 너무 심하게 대한민국의 역사를 비판하고 있어서 자라나는 세대에게 권장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한국의 청소년들이 애국적이지 않은 이유는 중·고등학교의 교사, 그리고 교육정책을 맡은 정부 당국이 국민의 의무를 가르치는 부분에 소홀했기 때문이라는 비판이 핵심이다. 이러한 이영훈 교수의 주장이 2015년 국정화 논쟁에서는 ‘자유경제원’에 의해 고스란히 반복되고 있다.
보수세력인 정부·여당이 ‘긍정적인 국가관’ ‘긍정 이데올로기’를 강조하는 것을 넘어 자유주의와 시장경제를 주장하는 경제학 교수와 전경련의 싱크탱크 자유경제원까지 이에 앞장서는 이유는 뭘까. 긍정적인 국가관과 긍정 이데올로기는 시장경제의 폐해를 감추고 변호해 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전희경 사무총장과 김무성 대표가 ‘패배의식’과 ‘남 탓’을 비판한 것처럼 ‘긍정 이데올로기’는 문제를 국가의 탓이나 체제의 탓이 아니라 개인의 탓으로 돌리게 만든다. ‘긍정 이데올로기’가 시장경제의 변호인 역할을 한 사례는 미국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1994년 AT&T는 1만5000명의 정리해고 계획을 발표하고 바로 그날 직원들을 동기유발 행사에 불러 모아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해고된다면 그것은 당신의 잘못입니다. 체제를 탓하지 마십시오. 상사를 비난하지 마십시오. 더 열심히 일하고 더 열심히 기도하세요.” 이는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주창하며 친기업 정책을 노골적으로 추진한 이명박 정부 때도 비슷하게 변주된다. 청년 실업난이 갈수록 악화되던 2011년 이명박 대통령은 라디오 연설에서 “G20 세대는 긍정의 힘으로 도전한다. 세계무대에 도전하는 것을 결코 두려워하거나 주저하지 않는다. 지금 당장 처지가 어려워도 인내하고 먼 미래를 내다보며 극복해낸다”고 말했다. 청년세대의 실업난을 청년 개인의 의지로 극복하라는 ‘긍정적인’ 메시지다.
10월 15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의원들이 현행 검정교과서를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 권호욱 기자
시장경제 폐해 감추고 변호 역할 가능
교과서 국정화로 ‘대한민국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국민’이 만들어진다면 기업에 더 없이 편리하다.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긍정의 배신>에서 국가주의와 자본주의의 결합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긍정적 사고는 미국의 국가적 자부심을 강화해 나가는 과정에서 자본주의와 일종의 상징적 관계를 맺게 되었다.… 한 기업이든 경제 전체든 영원한 성장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긍정적 사고는 영원한 성장이 숙명인 것처럼 꾸미거나 그것이 실제로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당신이 일자리를 잃게 된 것은 당신이 최선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성공 필요성을 굳게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자리는 줄고, 직업의 안정성은 보장 받을 수 없고, 노동시간은 늘어난 오늘날의 노동현실에 노동자들에게 ‘긍정적 사고’를 주입하는 것은 기업에 반드시 필요한 사고방식인 것이다.
‘반노동’ ‘친시장’으로 향하는 ‘지식의 표준’
‘긍정적인 국가관’ ‘긍정 이데올로기’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만들어진 교과서는 학생들을 어떤 인간으로 만들까. 김육훈 역사교육연구소 소장은 아직 국정 교과서가 만들어지지는 않았지만, 교학사 교과서를 근거로 추정해 볼 때, 국정 교과서는 “국가가 지향하는 가치를 몸으로 받아들이고, 국가가 동원할 때 언제든지 자기 것을 내던지고 참가할 수 있는 인간상을 지향할 것”이라고 말했다. 99%가 반대하는 교과서이지만 교과서가 만들어진다면 곧 ‘지식의 표준’으로 자리매김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학생들의 사고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지식의 표준’은‘반노동’‘친시장’으로 향하고 있다. 김육훈 소장은 “기업인의 입장에서 역사를 바라보자는 것이다. 이 땅에 살았던 민중들의 입장에서 어려움 속에서 문제를 해결하면서 민주화를 이루고 산업화를 이뤘던 정당한 기여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2013년 발행된 교학사 교과서의 탐구문제는 교과서가 학생들의 사고과정을 어떻게 교묘하게 규정했는지를 보여준다. 윤세병 대덕교 교사의 말이다. “가장 심했던 게 을미사변에 대한 탐구문제였다. ‘당시 일본은 왜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과격한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학생들로 하여금 일본인의 입장에서 ‘감정이입’을 하도록 유도했다. 실제로 학생들에게 과제를 제시해 보니 ‘명성황후는 눈엣가시였으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시해할 수밖에 없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윤 교사는 “대개의 교과서에서 탐구과제는 보통 2개로 구성돼 있는데, 하나는 교과내용을 확인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를 바탕으로 생각을 확산할 수 있도록 학생들이 다양하게 사고할 수 있게 하는 ‘확산형 질문’이다. 그러나 교학사 탐구과제는 노골적으로 유도질문을 하고 그것이 부족해 힌트를 주면서 그들이 의도한 대로 학생들이 답을 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식이었다”고 말했다. 집필될 국정 교과서 또한 이러한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윤 교사는 우려했다. “대안교과서나 교학사 교과서를 지지했던 이영훈 교수나 안병직 교수 등이 이야기하는 게 경제적 인간형이다. 호모이코노미쿠스. 경제학은 이기적 인간을 전제로 한다. 이런 전제로 교과서를 집필하면 필연적으로 친일도 미화될 수밖에 없다. 일제가 식민지를 어떻게 했던간에 근대 자본주의의 시대물을 심어놓은 것 아닌가라는 식이다. 이것이 현대사에서는 신자유주의와 연결되어서 완전히 기업논리로 갈 것이다. 현재 국정화 필진 중에 경제학을 전공했다는 사람이 들어가는 것도 이러한 맥락과 가깝다는 짐작이다.” 김육훈 교사는 “지금 국정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역사교육론은 시장경제에 대한 신념만 갖고 북한이 남한보다 낫다는 식으로 자긍심을 강조한다. 결과적으로 인권이나 사회의 다원적 가치 이런 것들은 억압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낙관적 편견은 자신들이 부정적인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낮다고 인식하는 경향을 말한다. 사회학자 캐런 세룰로는 ‘낙관적 편견’이라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버릇이 준비태세를 와해시키고 재앙을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정부·여당과 보수단체는 ‘패배주의’ ‘남 탓’ ‘자학사관’이라고 지칭하면서 한국 사회에 ‘낙관적 편견’을 강요하고 있다. “불쾌한 가능성과 부정적인 생각을 억누르고 차단하려는 쉼없는 노력, 곧 고의적인 자기기만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긍정적 사고는 개인 및 국가 차원의 성공과 결부된 행동양식의 정수이지만 그 근원에 놓인 것은 무시무시한 불안감이다.”(<긍정의 배신>, 바버라 에런라이크> 정부·여당은 헬조선 등 현재 한국 사회의 위기를 보여주는 ‘불편한 단서’들을 ‘교과서 때문’으로 몰아가며 ‘긍정적인 국가관’을 설파하고 있지만, 그 근원에는 “통치에 자신이 없는” 집권세력의 ‘불안감’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승만의 '정읍 발언' 누락·미화 가능성 높다" 119 한국
'역사 국정 교과서, 어떻게 쓰여질까' (2)광복 이후 정부 수립 과정
연설 하고 있는 이승만 대통령.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달 말 편찬기준이 제시되는 한국사 국정 교과서에서 남북한 단독정부 수립을 어떻게 다룰지도 쟁점이다. 해방 이후 미ㆍ소 군정을 거쳐 남북한 정권 수립에 이르는 3년 여의 시기다. 남북한 중 누가 먼저 단독정부를 수립했느냐가 관심사다. 특히 1946년 6월“남쪽 만이라도 먼저 정부를 수립하자”는 이승만의 이른바‘정읍 발언’에 대한 서술이 주목된다. 진보학계는 이 발언이 분단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한시준 단국대 사학과 교수는 “좌우합작 노력이 수반되던 중 38선 이남에 단독 정부를 수립해야 된다는 주장을 이승만이 처음으로 공론화했다”며 “(이승만은) 분단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했다.
반면 보수 진영은 1946년 2월 이미 북한 지역에 정부에 해당하는 북조선 임시 인민위원회가 성립됐기 때문에 정읍 발언은 분단과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이 문제가 보수세력에게 얼마나 민감한지는 2013년 교육부가 이 시기를 다룬 검인정 교과서의 서술 순서를 수정하라고 명령한 점이 증명한다. 기존 검인정 교과서에는 남한에서 벌어졌던 미ㆍ소 공동위원회 개최, 정읍발언, 5ㆍ10총선거를 서술한 뒤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출범 등 북한에서 벌어진 사건을 다뤘다.
저자들은 관례에 따른 서술이라고 주장했지만, 교육부는 북한정권 수립이 정읍발언보다 명백히 선행(先行)했음을 보여주도록 시간 순으로 사건을 서술하도록 명령했다. 한철호 동국대 역사교육학과 교수는 “국정 교과서에는 정읍발언이 아예 누락되거나 공산주의 정권 수립을 막기 위한 불가피했다는 식으로 발언을 미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통일 후 북한에 대한 남한의 주권행사 여부와 관련 있는 1948년 12월‘유엔총회 결의문’관련 서술도 주목된다. 현행 검인정 교과서에는 1948년 유엔총회에서 “대한민국을 한반도 내 유일한 합법 정부로 승인했다”는 내용이 서술돼 있다. 기존에는 역사학계의 통설대로 “유엔 감독 하에 선거가 치러진 지역에서 유일한 합법 정부’라고 기술돼 있었지만 2013년 교육부가‘한반도 내 유일한 합법 정부’로 수정 권고를 내렸기 때문이다. 대신 결의문 세부 내용을 사료로 게재, 다른 해석의 여지를 뒀다.
그러나 국정교과서에는 이 같은 사료를 싣는 것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황교안 국무총리가 3일“유엔도 대한민국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임을 승인했다”고 공식 언급했기 때문이다. 왕현종 연세대 역사문화학과 교수는 “1965년 한일 기본조약을 맺을 때도 일제 식민지 피해 보상 문제에 대해 한국 정부가 한반도를 대표하는지 문제에 대해 논란이 있었는데 명확하게 매듭지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국제법적으로 논쟁적인 사안을‘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해 국내정치에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제주도민의 단정반대운동이었던 제주 4ㆍ3 사건의 의미를 축소하고 국가의 민간인 학살책임을 은폐할 가능성도 높다. 현행 검정 교과서에는 국가가 이 사건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무고한 주민 수만 명을 희생시켰다는 내용이 서술 돼 있다. 하지만 최근 군이 교과서 서술에 참여할 가능성을 비치면서 축소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국방부는 앞서 2008년 교육과학기술부에 “4ㆍ3 사건을 대규모 좌익 세력의 반란 진압 과정에서 주동 세력의 선동에 속은 양민들도 희생된 사건으로 서술해야 된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낸 바 있다.
나라사랑 예산’ 234배나 올려달라고? 1117 주간경향
ㆍ보훈처, 올해 26억원서 6087억원으로 증액 요구… 기재부서 100억원으로 삭감
“이 예산만큼은 절대로 안 돼!”
국회에서 매년 예산안이 통과될 때마다 야당 측에서 벼르는 예산이 있다. 그래서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예결위)의 여야 합의를 어렵게 만드는 이 예산은 여야 간에 ‘지뢰’로 여겨진다. 올해 국회 예산안 통과의 최대 지뢰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예산이다. 하지만 여야가 교과서 국정화 예산에서만 전선을 형성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예산 외에도 여야가 첨예하게 맞서고 있는 쟁점예산이 각 상임위에서 등장하고 있다. 이런 쟁점예산은 예결위에 넘어가기 전 이미 상임위에서 한바탕 일전을 치렀다.
가장 대표적인 예산은 국회 정무위에서 보류된 채 그냥 예결위로 넘겨버린 국가보훈처의 ‘나라사랑정신 계승발전’ 예산이다. 정부 예산안으로는 100억원이 배정돼 있다. 이 예산은 올해 26억원에서 73억원(282.7%)이 증액됐다. 강기정 의원 등 야당 의원들은 전액 삭감 또는 올해 예산 수준이 적정하다고 주장했다. 여당 의원들은 정부안대로 100억원 예산을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이 사업은 나라사랑교육 및 선양사업을 통해 건전한 안보의식과 국가관 확립, 올바른 역사의식 함양을 꾀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국가보훈처는 5·18 기념식 때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이 아닌 합창방식으로 부르기로 결정하면서 박근혜 정부 들어 야당의 거센 비판을 받아 왔다. 야당 의원들은 이 사업이 이념적 편향성과 함께 사실상의 선거개입이 있었다는 지적을 받았다며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다. 게다가 다가오는 내년 총선에 이 논란을 증폭시킬 우려가 있으므로 삭감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11월 4일 국회 예산결산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한 국무위원들이 김재경 예산결산위원장의 발언을 듣고 있다. / 연합뉴스
야당 의원 “총선 앞두고 무지막지한 요구”
국회 정무위 예산결산소위 자료에 따르면 이 나라사랑 예산은 국가보훈처에서 정부에 요구한 1차 요구안에서는 무려 6087억원이었던 것으로 나타나 있다. 1차 요구안(6087억원)과 정부안(100억원)에서 가장 차이가 많이 나는 세부 항목은 ‘호국보훈 전담교사 운영’이다. 올해 예산에는 없던 새로운 항목이었다. 1차 요구안에 3422억원을 요구했으나 정부안에서는 한 푼도 반영되지 않았다. 이밖에도 크게 삭감된 예산으로는 ‘청소년 보훈캠프’ 예산이 있다. 1차 요구안의 360억원에서 정부안에는 5억원으로 대폭 감액됐다. ‘태극기와 함께 하는 나라사랑 캠페인’ 예산은 1차 요구안이 164억원이었으나 4억원으로 감액됐다. 감액 수준을 보면 정부에서조차 이 예산이 터무니없다고 평가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국회 정무위 강기정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은 “정부 재정상태가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올해 26억원에서 6087억원으로 증액을 요구했다는 자체가 이례적이고 비정상적”이라고 주장했다. 강 의원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이런 이념 편향적 예산을 대폭 증액해달라고 요구한 것은 예산 심의권을 가진 국회를 욕보이는 행위”라고 말했다. 국회 정무위의 한 야당 관계자는 “일부 여당 의원은 정부안이 1차 요구안에서 대폭 깎였으므로 국회가 (정부 원안에서) 한 푼도 깎아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며 “나라를 사랑하자는 명분을 내세워 6000여억원이라는 무지막지한 예산을 요구했다는 사실 자체가 기가 막힐 뿐”이라고 말했다. 정무위는 여야가 팽팽히 맞선 나라사랑 예산 때문에 국가보훈처 예산안은 따로 떼어서 심의한다는 결정을 내린 채 나머지 예산만 예결위로 넘겼다. 강 의원은 “국회가 정상화되더라도 정무위에서 여야가 나라사랑 예산을 합의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면서 “예결위에서 우리 당(새정치민주연합)의 입장을 정해 올해 증액분이 반드시 삭감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형 전투기 사업(KF-X) 예산 역시 상임위에서부터 논란이 된 쟁점예산이다. 정부 원안으로 670억원의 예산이 국회로 넘어왔다. 당초 방위사업청은 정부에 1618억원을 요구했으나 정부 원안에는 670억원으로 조정됐다. 이 사업은 개발비가 8조원대에 달하는 사업이다. 국방위 한 야당 관계자는 “(정상적으로 사업이 진행되면) 국가 예산으로는 개발비로 약 5조4000억원이 들어갈 것”이라고 추산했다.
이 예산은 사업 자체에 의문부호가 붙었다. 원래 방사청은 미국이 록히드마틴사로부터 전투기 도입을 계약하면서 KF-X 사업에 필요한 핵심 기술을 이전받는다고 밝혔으나 미 정부의 반대로 핵심 기술은 이전이 불가능하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자체 기술만으로 차세대 전투기 개발이 가능할 것인지가 논란거리로 등장했다. 야당 의원들뿐만 아니라 여당 의원인 정두언 위원장과 유승민 의원도 이 사업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국방위는 10월 30일 정부 원안을 통과시키되 국방위가 추가적으로 논의한 후 예결위에 반영한다는 부대조건을 달았다. 11월 17일에 공청회를 연 후 국방위는 이 사업 예산에 대한 최종 입장을 밝힐 계획이다. 김재경 국회 예결위원장이 11월 1일 기자 간담회에서 670억원보다 증액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또다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국방위 야당 관계자는 “이 사업의 예산은 증액과 감액의 문제가 아니라 이 사업 자체가 타당하냐는 것을 밝히는 것이 우선”이라면서 “결국 공청회를 통해 국방위의 결론을 예결위에 통보하는 과정을 밟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여야, 교과서 국정화·KF-X 예산도 논란
보건복지위에서는 여야 간에 ‘TK 예산’ 논란 등이 벌어져 11월 6일 현재 예산안을 예결위에 넘기지 못한 상태다. 논란이 된 내년 예산은 의료기술시험훈련원 구축에 드는 20억원(총사업비 989억원)과 K-메디컬(외국의료인력통합연수센터) 건립에 들어가는 20억원(총사업비 323억원)이다. 여기에 대구임상시험센터 건축비로 들어가는 8억3000만원이 여야간에 공방을 벌이는 예산이 됐다. 이 대구 관련 예산은 ‘최경환 예산’ ‘대통령 예산’으로 불리면서 쟁점예산으로 대두됐다. 야당 관계자는 “이 시설들이 굳이 대구에 들어서야 하는지 충분한 설명이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복지위 대구지역 의원인 이종진 의원(새누리당) 측은 억울하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이 의원 측은 “신규사업이지만 오래전부터 대구시에서 추진해 왔고, 대구경북첨단의료복합단지에 적합한 사업을 신청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오송첨단의료복합단지에서도 신청한 사업이 있지만 정부가 사업 적정규모와 환경을 고려한 끝에 대구지역에 예산을 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농해수위에서는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활동기간 연장을 놓고 예산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특조위에서는 내년 12월까지 활동 예산을 요구했으나 정부에서는 내년 6월까지를 활동기한으로 보고 예산을 축소 편성했다. 농해수위의 한 야당 관계자는 “논란이 있지만 법안소위에서 활동기간을 연장하는 법안이 통과되면 예산에 반영한다는 부대의견을 달아 농해수위에서 예결위에 넘기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누리과정(만 3~5세 무상보육) 예산과 정부기관의 특수활동비 예산도 예결위에서 여야간 혈전을 벌이는 쟁점예산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예결위의 한 야당 관계자는 “현재 (각 상임위의 야당 의원실로부터) 감액 의견을 받고 있다”면서 “이 감액 의견을 반영해 문제가 되는 예산은 철저히 감액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예결위 이철우 의원(새누리당)은 “상임위 자체에서 감액된 예산은 예결위에서 다시 증액할 수는 없는 게 원칙”이라면서 “정부 원안대로 통과시키려면 상임위에서 감액되지 않고 예결위로 올라와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조선 사람, 언젠가 다시 북으로 돌아갈거다” 1110 미디어오늘
[인터뷰] 탈북에서 탈남으로, 최승철씨 “남한은 또 다른 형태의 독재국가… 탈북자는 전쟁포로”
최승철(45)씨는 지난 1999년 함경북도 청진의과대학을 졸업했다. 2년 동안 북한에서 소화기 내과 의사로 일하다 2002년 5월 탈북했다. 중국과 베트남, 캄보디아를 거쳐 한국으로 왔다. 한국에서는 5년간 머물렀고 2008년 영국으로 넘어갔다. 지금은 영국에 있는 양대 탈북 주민 협회 중 하나인 '재영한민족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런던 남서쪽에 위치한 뉴몰든은 영국의 대표적인 한인 타운이다. 1000여명의 탈북 주민도 뉴몰든에 살고 있다. 지난 1일 오후 최씨를 뉴몰든의 한 가게에서 만났다. 큰 키에 마른 몸을 가진 그가 웃으면서 손을 내밀었다. 검정색 정장 차림이었다. 북한 말씨보다는 서울 말씨에 가까웠고 대화 중간 중간 영어단어를 자연스럽게 사용했다. 그는 ‘스텔라’ 맥주를 주문했다. 탈북자라는 인상은 전혀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인터뷰 내내 그는 자신이 ‘북한 사람’ 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는 한국 사람이 아니다. 우리는 북한 사람이다. 그걸 부끄러워하거나 감추려고 하면 안된다. 저는 북한이라는 표현보다는 조선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건 저의 정체성”이라고 말했다. 약 2시간 30분 남짓한 시간 동안 탈북의 이유, 그가 본 한국사회, 그리고 ‘탈남’하기까지의 이야기를 들었다.
“엘리트 집안, 나는 자유주의자였다”
“그럼 왜 탈북했나?” 과거 한국에서나 지금 영국에서나 많이 받는 질문이다. 그는 자신을 '자유주의자'라고 표현했다. “저는 북측에서 괜찮게 살았다. 형제들은 지금도 잘 살고 있다. 북측에서는 매주 생활총화랑 간부회의를 해야 했다. 구속되는 게 굉장히 싫었다. 제 생각을 바꿔놓으려고 아내와 어머니가 엄청나게 노력했다.”
하지만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1999년 그는 첫 번째 탈북을 한다. 당시 목적지는 한국이 아니었다. 중국이었다. 탈북이라기보다는 말로만 듣던 세상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었다고 했다. “북에 있다가 중국에 가니 이렇게 황홀한 동네가 어디있나. 내가 사는 삶과 비교해보니 우리가 사는 삶은 삶이 아니구나. 우리 삶은 짐승의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석 달 후에 그는 북한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2002년 5월 진짜 탈북을 한다.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를 거쳐 1년만인 2003년 5월 한국에 들어왔다. 이후 북에 있던 아내도 데려왔다. 부부는 어렵지 않게 한국 사회에 정착했다. 그는 외환 중개사무소를 설립해 해외 투자 상담과 외환 중개 관련 일을 했다. 돈 버는 게 체질에 맞았다. 최씨는 “아마 탈북자 중에 저만큼 돈을 많이 번 사람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언론에는 ‘성공한 탈북자’로 보도됐다.
한국사회의 탈북자는 ‘전쟁포로’
하지만 그 뿐이었다. 그는 정체성을 잃어갔다. 남한에서 허용하는 탈북자 유형은 하나뿐이다. 북한 자체를 부정하고 남한 사회를 찬양하는 것. 그래야 정부도, 언론도, 탈북자 인권단체도 좋아했다. 하지만 그는 이 기준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대입될 수 없다고 말했다. “김정은 정권을 옹호하는 게 아니라 그 자체가 우리다. 우리는 한국 사람이 아니고 한국 사람이 될 수도 없다. 그런데 한국에서 ‘저는 조선사람입니다’ 라고 말하면 어떻게 될까? 인공기를 들면 어떻게 될까. 잡혀간다.”
그가 남한에서 체감한 탈북자의 위치는 ‘전쟁포로’였다. “한국에서 탈북자는 체제 경쟁의 승전물이다. 그러니까 사회에 속할 수도 없고 인권 개념이 작용하지도 않는다. 우리가 큰 거 바라는 거 아니다. 남한 국민과 똑같이 대해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늘 색안경을 끼고 보고 우리는 늘 영세민일 수밖에 없다. 남한은 통일은 물론이고 아직 탈북자를 받아들일 준비도 되지 않았다.”
실제 지난 달 심재권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통일부와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탈북자 73.2%가 자신이 ‘하류층’라 답했다. 북한에서의 생활에 대해서는 50.5%이 하류층이라 답했다. 남한에서의 생활을 더 나쁘게 느끼고 있다는 이야기다. 또 남북하나재단 조사에 따르면 탈북자 20.5%가 ‘최근 1년간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다’고 답했다. 이는 일반 국민(6.8%)의 3배가 넘는 수준이다. 한국에는 3만명의 탈북자가 살고 있다.
▲ 영국에 있는 양대 탈북자 협회 중 하나인 '재영한민족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최승철씨를 지난 1일 런던 뉴몰든에서 만났다. 사진=금준경 기자
“한국언론, 뭘 알고나 쓰나”
한국은 그가 기대했던 사회가 아니었다. 탈북자로서 받는 차별이 힘들었던 것도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최씨는 “한국은 도덕, 윤리, 국가, 민족 등 아무것도 없는 나라”라며 “자본이 모든 걸 좌우하고 있으며 개인의 이익과 권력을 위해서라면 모든 수단, 방법을 취하는 사회다. 나쁜 자본주의의 극단에 있다. 탈북자들은 남한에서 자본주의의 황홀함만 보는데 전혀 황홀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까지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친일파 논란에 대해 “어떻게 친일파의 후손같은 사람들이 뻔뻔하게도 사회 기득권을 잡나. 그런 시스템이 유지되고 있는 게 너무나도 신기하다”며 “물론 남한이 북한보다 경제적, 정치적으로 앞선 것은 맞지만 우리는 최소한 저 정도는 아니지. 어디서 저런 되먹지 못한 사람들이 인민들을 괴롭히고…”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가 맥주를 들이켰다.
언론도 그의 눈에는 다를 바 없었다. 특히 북한과 관련해 한국 언론에는 잘못된 정보가 넘쳐났다고 그는 지적했다. 탈북자가 생기면 일가족이 처형을 당한다는 등의 이야기가 하나의 사례다. 그의 가족은 그가 탈북한 이후에도 북한에서 잘 지내고 있다. 영국에 온 이후에도 누나와 통화를 했다. 누나는 “어떻게 영국까지 갔냐”며 “너 참 대단하다”고 말했다. 중국에서 ‘합법적으로’ 가족을 만나기도 했다.
그는 한국이 북한의 미래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최씨는 “북한의 현재 정권이 오래 갈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이후가 남한이라면 나는 달려가서 막을 거다. 북한 사회가 잘못하는 것도 많지만 잘하고 있는 것도 많다. 보건이나 교육, 사회공동체의 이익을 추구한다. 그런 점에서는 자부심을 가진다. 그런 점에서 볼 때 한국은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다. 한국에는 권리가 없다. 정권과 자본 입맛에 맞는 인권과 권리다. 어떻게 보면 북과 비슷하다.”
“영국정부, 알면서도 다 속아준다”
정체성 혼란과 남한에 대한 실망, 2등 국민으로 취급받는 현실 등은 그의 등을 떠밀었다. 그는 지난 2008년 영국으로 갔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난민 신청을 한 다음 비자를 받기까지 5년이 걸렸다. 그 기간 동안은 일을 할 수 없다. 북한 혹은 남한으로 돌아갈까 라는 생각을 수없이 했다. 그럼에도 영국에 남을 수 있었던 건 난민 심사 과정 중에도 주택을 제공받고 아이들 교육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영국은 매년 2만명 가량의 난민을 받아들인다.
최씨는 “영국 정부가 바보라서 2만명이나 되는 난민을 받아들일까?”라며 “사실은 다 알고 있다. 하지만 속아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너(난민 신청자)한테서 내가 사기 당하는 거 같아도 너희 자식들에게 다 받아낸다는 거다. 영국은 세율이 아주 높다. 영국은 최소한 10년, 20년, 100년을 내다본다. 한국은 지금 당장 이익을 바란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생각하면 훨씬 이익이다. 아주 우수한 장사꾼이다.” 한국은 자본주의를 좋아하면서도 장사를 못한다는 이야기다.
그런 식으로 정착한 탈북자들은 영국 사회 구성원으로 일하고 세금도 낸다. 영국에서도 사업을 하는 최씨도 한 달에 400파운드가 넘는 세금을 낸다고 했다. 한화로 계산하면 70만원 수준이다. 그는 “탈북자들이 한국을 떠나는 건 경제적인 측면으로만 따져도 한국이 손해”라며 “사람들이 한국을 떠나는 걸 막고 싶다면 복지 정책을 빨리 시행해야 한다. 복지는 장기적으로 봤을 때 가장 저렴하고도 효과적인 정책”이라고 덧붙였다.
▲ 영국에 있는 양대 탈북자 협회 중 하나인 '재영한민족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최승철씨를 지난 1일 런던 뉴몰든에서 만났다. 사진=금준경 기자
“영국? 남한? 언젠가 북으로 돌아갈 것”
“그러면 계속 영국에 사실건가요?” 영국 사회의 복지제도와 시민의식에 대한 이야기가 한참 오간 다음 최씨에게 물었다. 그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나는 지금 여행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행의 마지막은 집에 돌아가는 것이다. 북한 정권과는 별개로 우리는 북한 사람이다. 그걸 부끄러워 하거나 감추려고 하면 안된다. 그래야 나중에 통일이 되거나 북한 사회에 변화가 생겼을 때 우리 힘으로 개혁할 수 있다.”
그래서 그가 탈북자 협회에서 하는 주된 일도 정체성에 관한 것이다. 자신이 어디에서 온 줄 알아야 제대로 설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남한에서 태어나 영국에 살고 있는 자신의 아이들에게도 “너는 북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나중에 북한에 가서 무엇을 하고 싶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말하면 자만일 수 있지만, 우리는 우리 힘으로 북을 변화시켜야 한다. 북이 정치 시스템만 바꾸면 잘 발전할 수 있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남한은 어떨까? 마지막으로 남한의 탈북자 정책에 대해 물었다. 그는 “아무런 기대가 없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의 탈북자 정책이라는 건 이용해 먹으려고 하는 것 밖에 없다. 실질적인 삶을 이어갈 수 있게 초점이 맞춰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솔직히 말하면 기대도 없고 요구하고 싶은 것도 없다. 한국은 지금 자기 국민들 인권도 못 챙기는데 어떻게 우리한테 해주겠나. 기대도 안한다.”
하태경 의원 거짓말, 첨삭지도 들어갑니다 1110 미디어오늘
[기고] 친일 이야기하면 빨갱이 취급… 이승만이 대한민국입니까? 박정희는 친일파가 맞습니다-심용환 깊은계단 대표
지난 9일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과 박인숙 의원이 초재선모임인 ‘아침소리’에서 서울시교육청이 서울의 모든 중·고교에 ‘친일인명사전’을 비치하도록 한 것과 관련해 친일인명사전과 민족문제연구소를 두고 “통합진보당과 아주 흡사한 패러다임을 가진 단체”라고 색깔공세를 펼쳤다. 이어 10일에도 새누리당 황진하 사무총장 역시 비슷한 주장을 펼쳤다. 이에 대해 반박한 역사강사 심용환 깊은계단 대표의 기고문이다.
1. 통합진보당과 흡사하다?
답변> 무슨 의미입니까? 전교조면 빨갱이, 통합진보당이면 빨갱이. 이런 식으로 프레임을 짜서 접근하겠다는 주장 밖에 더 되나요? 뭐 신선한 건 없나요? 이제 ‘친일’을 이야기하면 빨갱이입니까? 그랬던 적이 있었죠. 언제? 반민특위 당시 수많은 친일파가 끌려와서 자신들은 반공투사인데 억울하게 친일파로 몰았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민특위를 무력화시킨 이승만 역시 반공이라는 이유로 친일 문제를 덮어버리고 말았죠. 역사를 반복하고 싶은 건가요?
2. 장면정부까지 친일파 정부로 규정하고 있다?
답변> 새정치민주연합을 끌어들이고 싶은 논리로 보이네요. 언제 친일인명사전에 장면정부를 친일파 정부로 규정했죠? 하지만 분명히 얘기할 것은 얘기하죠. 장면의 민주당 정부의 전신은 한국민주당(한민당)이었습니다. 초기 김병로나 원세훈 같은 뛰어난 인물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주로 지주, 산업가들이 많이 참여했으며, 김성수-송진우 등 친일이력을 가졌던 인물들이 참여했기 때문에 이미지가 좋지 못했고 하부 조직도 없다시피 했죠.
더구나 한민당은 초기에는 임시정부 추대론을 외치며 여운형, 안재홍 등과 다투었으나 이 후 미군정이 들어오자 적극적으로 미군정에 붙었고 이승만이 세력을 강화시켜나가자 이승만과의 유착관계를 통해 권력을 유지하려 했습니다. 결국 자유당 창당 전후로 이승만에 의해 제거 되면서 민주당이라는 이름의 정통 야당이 된 것 아닌가요?
민주당의 혼란한 당정체성, 민주당 안에 상존했던 친일 문제 이런 것들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역사적 사실을 사실이라고 말하고, 친일을 친일이라고 말하면 죄가 됩니까? 해방 공간에서 끈임 없는 기회주의적 행동으로 김병로 등의 초기 거두들이 탈당했던 정당을 비판한 것이 왜 문제가 되는 거죠?
3. 백년전쟁이 대한민국 정통성을 공격한 거다?
답변> 백년전쟁의 핵심 내용은 딱 한 가지입니다. 이승만과 박정희 ‘신화’가 올바른가 틀린가를 건드렸을 뿐이죠. 서중석, 주진오 등 학계의 명망 있는 교수들이 직접 자문했고 인터뷰까지 했습니다. 그들의 연구 성과가 마음에 안 들면 연구 성과로 상대해야 하는데 연구 성과도 없으면서 정통성 운운하는 저의는 대체 무엇입니까.
영화의 주요 내용은 이렇습니다. 이승만은 하와이 망명 시절 박용만 등과 갈등하며 하와이 사회를 분란에 빠뜨렸습니다. 이승만은 초대 대통령으로 성실하게 활동하지 않았고 국민대표회의의 갈등을 방치했고 주로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임시정부 운영에 큰 곤란을 일으켰죠. 결국 임시정부가 국무총리령으로라도 사무를 처리하려하자 아무 도움도 안주던 이승만은 미국에서 들어오던 독립운동 자금줄을 끊었습니다. 그밖에 독립운동사에서 이승만 신화의 허실을 폭로하고 있습니다.
▲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 사진=하태경 의원 페이스북
이것이 대한민국 정통성과 무슨 상관입니까? 이승만이 곧 대한민국입니까? 여기가 북한인가요? 북한이 김일성주의로 무장했다고 우리도 ‘이승만주의’로 무장해야 한단 말입니까?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런 우상숭배가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4. 백선엽, 김성수, 백낙준, 박정희 대통령을 민족반역자라고 부르면 역사를 어떻게 가르치고, 6.25전쟁은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 것이냐?
답변> 친일인명사전 한번이라도 읽어봤나요? 친일파 규정은 엄격합니다. 친일의 정도와 등급을 구분하며 친일행위를 분명히 명시하여 그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죠. 아무나 싸잡아서 빨갱이다 식으로, 아무나 싸잡아서 나쁜 놈들, 친일파 이런 식으로 서술하고 있지 않답니다.
백선엽의 경우 본인 스스로 인정했고 일본판 자서전에 보다 구체적으로 서술되어 있듯 해방 전에 간도특설대 등에서 친일 군사 활동을 하였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적극 사죄한 적도 없지만 적극 부정한 적도 없죠. 박정희 역시 대구 사범학교에서 고도의 교사 훈련을 받았고 펑텐-신장으로 이름을 바꾼 만주군관학교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였고 이 후 중일전쟁기 동안 만주국 장교로 활동하였습니다.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죠. 이 내용은 조갑제의 저서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를 봐도 알 수 있는 내용입니다.
김성수나 백낙준 같은 교육계 인사들이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기간 동안 적극적인 부일협력을 한 것 또한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고 이를 확인시켜주듯 김성수 관련 건은 재판을 통해 판결까지 받은 상태입니다. 또 다른 친일파이자 한국 여성 교육의 상징인 김활란 역시 개인적으로 자신의 죄를 통탄한 적이 있다는 간접 진술 말고 무엇이 남아 있나요? 아니라면 증거를 대보세요.
그리고 친일 행위를 정확하게 기술하면 그것이 민족 반역이 되는 건가요? 민족정기를 되살릴 수 있는 귀한 노력 아닌가요?
▲ 새누리당 황진하 사무총장이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서 연한 발언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제공
더구나 6.25전쟁은 대체 왜 나옵니까? 이광수가 문학가로 훌륭한 것과 친일파인 것을 왜 별개로 나눠 생각하지 못하나요? 백선엽이 친일파라는 것과 6.25전쟁 당시 국군 사령관이었다는 사실에 대해 왜 구분해서 사고를 못하는 거죠?
더구나 전쟁영웅이라는 이미지가 가득하고 실제 중요한 전과도 있었지만 당시 국군의 무능력함, 부정부패에 대해서는 맥아더나 리지웨이 같은 미국 사령관들이 통탄하지 않았던가요? 대체 뭘 어떻게 가르치란 말입니까?
5. 누가 편향 세력인가. 하태경 본인이 편향세력 아닌가?
답변> 대체 누가 편향 세력입니까? 역사 연구하고, 친일 문제 고발하며, 제대로 된 역사박물관 만들고 싶어 하고, 위안부들을 위해 싸우고, 야스쿠니 신사 문제 두고 다투고 하면 그게 편향 세력입니까?
과거 극좌파에 있었다가 전향했고, 이런 식으로 모든 것을 편향적으로 다루는 본인이 편향 세력 아닌가요? 왜 사람을 근거 없이 함부로 몹니까? 남을 몰기 전에 본인의 생각부터 정확하게 세상에 드러내어주세요. 검토 좀 해봅시다.
6. 나라 사랑?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답변> 나라를 사랑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잘못을 고발하고, 문제점을 고치고, 민족정기를 세우는 것이 왜 나라 사랑이 아닌가요?
그러면 죄를 은폐하고, 잘못을 덮고, 기득권을 유지시키고, 민족정기를 흐트러뜨리고, 자녀들에게 기회주의가 성공하는 것이고, 나만 위해 잘 살고, 가능하면 권력자에게 붙어먹어 살라고 가르치는 게 나라 사랑입니까? 무엇이 나라 사랑이란 말입니까?
7. 을사조약을 비판한 시일야방성대곡 장지연 선생은 친일파로 규정하고 일제 침략 선봉장에 선 김일정 동생 김영주의 이름은 사전에서 빠졌다?
답변> 장지연은 일제 말기 친일논설 중 두 편정도 문제가 됐죠. 논란이 있었지만 일단 친일명단에 들어가 있고요. 장지연의 인생 전체를 다 친일로 규정한 게 아니라 일제 말 언론인으로 부일협력에 대한 명백한 증거가 있기 때문에 사전에 들어간 것이고,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학계에서 여전히 논쟁적인 측면이 있기 때문에 학계에서 논의해야 할 문제죠.
그리고 누락된 사람은 많아요. 인명사전이 국가의 지원이 아닌 상태에서 민간의 자발적 지원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여전히 탐구하고 연구해야 할 대상들이 많죠. 여러 명이 빠졌다면 김무성 아버지 김용주부터 시작해서 더 많은 사람들에 대해 연구할 수 있게 국가가 지원해 줬으면 좋겠네요.
2009년 국가 주도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서 친일반민족행위관계사료집 발간할 때도 가장 반발했던 정당이 새누리당입니다. 박정희를 비롯해 다양한 인물에 대한 심화연구가 새누리당이 사사건건 방해해 제대로 하지 못한 부분이 많았는데 이제 와서 친일인명사전의 한계를 운운하는 거 자체가 너무 웃기네요.
추가로 새누리당이 친일문제에 대해 회피하는 주요 논지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일제시대 때 일제와 협력하지 않고 살았던 사람이 어디 있었겠느냐 - 일명 물타기론. 둘째는 군대 소위 정도 수준의 하급 관료들이 어떻게 친일파라고 말 할 수 있느냐 - 논지 왜곡입니다. 새누리당은 이런 논리로 친일인명사전 제작과정을 방해했습니다.
실제로 친일인명사전은 5000명 미만의 사람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친일의 범주와 내용을 정확히 규정한 상태에서 진행된 프로젝트거든요. 그리고 군대 말단의 소좌, 학교의 교사, 면사무소 서기, 경찰 등은 일제의 하부 구조로 실제로 독립군토벌, 위안부, 징용 수집 등 적극적인 부일협력을 죄를 면피할 수 없죠. 물론 이들을 다 단죄하지는 않지만 최소한의 도덕적 책임이라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새누리당의 논조는 완전 흑색선전이에요.
"북한놈들" "야당 필요없다", 이게 여당 대표의 말 1110 오마이뉴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강남율곡포럼 참석... 국정교과서 반대 여론 비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잘못된 역사 교과서를 바꿔야 한다는 것은 압도적 다수가 지지하는데, 방법론에서 국정화에 대한 반대가 좀 있다"며 "이건 우리 정부가 시작할 때 홍보를 잘못해 오는 문제다. 솔직히 고백하면 정부가 무능해 가지고 홍보가 부족해서 국정교과서로 가는 것에 대해서 좀 반대가 높게 나타나지만 이제 점점 더 내려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무성 대표는 지난 9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 강남구민회관 2층에서 열린 제39차 강남율곡포럼에 강연자로 참석해 "우리나라 역사학자 중에 현대사를 전공하는 학자 중에 거의 90% 좌경화 되어 있다보니 우리 아이들까지 삐뚤어지고 있다"며 "가장 좋은 방법은 현재 8개 검인정 교과서의 검증을 강화해 잘못된 것을 고쳐 새롭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교육부에서 829개를 고치라 공문 내려보냈지만 안 고치고 있다"며 "박 대통령이 임기 중에 꼭 하려고 하는데 검인정교과서 수정하는데 얼마 걸릴지 모르니까 국정교과서로 할 수 밖에 없어 결정한 것"이라고 국정교과서 채택 이유를 설명했다.
김 대표는 "좌파 정권에서 우리 학생들에게 그러한 사상을 교육시키기 위해서 거대한 음모에 의해 만들어진 것을 국정교과서가 이제 깨어버리는 것"이라며 "여러분의 적극적인 관심으로 국정교과서 전환을 꼭 해야 한다는 홍보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대표는 "2년 전 뜻있는 학교에서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하려고 했지만 좌파들이 사실을 왜곡하고 교학사를 찾아가 공갈 협박 등으로 인해 1곳만 채택했다"며 "말하자면 대한민국에서 좌파의 테러에 우리 우파가 졌다는 사실에 부끄럽다. 이제 이런 싸움에서 지면 우리나라는 망한다"고 말했다.
또한 "이제는 이런 싸움에 절대 피하지 말고 싸워 이겨 우리 스스로 우리나라를 지키자. 국내에 있는 좌파들 싸움에서 넘 점잖게 하고 피하면 북한 놈들이 어떻게 보겠느냐"며 "남한 허접하다. 몇 명 안되는 좌파에도 지는데 우리도 밀어붙이면 밀린다 생각하고 내려올 수 있다. 이것은 절대 우리가 양보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국정교과서 채택과 관련해 미국은 잘못된 역사를 바꾸기 위해 상원 의원 100명이 투표를 해 99대 1로 교과서를 바꾸었고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도 총리 되기 전 교육부 장관일 때 역사 교과서 나쁘게 되어 있어 7년 만에 영국의 역사 교과서를 바꾸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1년에 역사 교과서를 바꾸는 박근혜 대통령이 대처보다 더 한 수 위 아니냐"고 말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독일 통일을 언급하며 "통일은 언제 어떻게 올지 모르기 때문에 이제부터 준비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경제를 더 발전시켜야 하고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노동개혁을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하지만 야당에서 노동개혁에 반대하고 있다. 이런 야당은 필요없다"고 지적하자 청중들이 박수갈채가 이어졌다. 이에 김 대표는 "전국이 강남처럼 수준이 높으면 선거할 필요없다"고 말했다.
한편 김무성 대표는 말미에 노동ㆍ공공ㆍ금융ㆍ교육 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4대 개혁을 하지 못하면 잃어버린 20년의 일본꼴이 난다"고 지적하면서 "이것도 야당이 협조하지 않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이에 한 청중이 그냥 밀어붙여야 한다고 말하자 김 대표는 "국회 선진화법 때문에 못 밀어붙인다"고 답답함을 하소연했다. 이어 "국회 선진화법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내년 총선에서 우리가 180석 이상 얻으면 국회 선진화법 무력화할 수 있다"며 "이렇게 할 수 있게 도와 달라"고 말하자 청중석에서는 '김무성'을 연호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우리가 단결하고 야당이 분열하는 선거에서 우린 무조건 이긴다. 우리가 분열하지 않고 단결할 수 있는 방법은 공천 억울하지 않게 하는 것"이라며 "옛날처럼 낙하선 공천하면 분열되고 하니까 공천을 지역주민에게 물어보는 것이 분열되지 않는 최고의 방법이고 그게 바로 상향식 공천"이라고 강조했다. 또 "비례대표 단 한 석도 추천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꼭 지키겠다"며 "안 지키면 사람도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강남율곡포럼에는 6ㆍ25참전용사와 강남구재향군인회 회원 등을 비롯해 강남주민 400여 명이 참석해 김무성 대표의 강연을 청취했다.
<타임>이 ‘투사’와 ‘독재자 딸’로 다룬 두 인물의 ‘오늘’ 1110 한겨레
박근혜 대통령과 수치 여사
[곽병찬 대기자의 현장칼럼 창] 자유의 횃불과 독재자의 딸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민족민주동맹의 총선 압승이 구체화되면서 미얀마의 선거혁명이 가시화되고 있다. 비록 미얀마 헌법상 군부가 의회 권력과 무관하게 막강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지만, 국민 70% 이상이 지지하는 민주화의 열망을 또다시 파괴하기는 힘들어 보인다.미얀마 민중의 환호 앞에서 정작 드는 것은 박근혜 정부와 관변 학자들은 미얀마의 오늘을 어떻게 기록할까라는 의문이었다. 53년 전 민주정부를 전복한 네윈과 군부세력은 1988년 시민들의 민주혁명이 일어나자, 신군부가 다시 쿠데타를 일으켜 지금까지 군부독재를 계속해오고 있다. 이 정권의 사관은 이 사태를 군부독재의 종식이라고 기록할 것인가 아니면 군사혁명에 대한 반란이라고 기록할 것인가. 그들의 시각대로라면, 무지몽매한 군중이 건국세력을 배반한 것이요, 자랑스러운 조국 미얀마에 대한 자학이자 자해행위라고 기록해야 한다. 이 땅의 쿠데타 세력과 독재자들에 대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미얀마 군부는 5·16쿠데타 세력에게 배운 바 컸다. 그들은 한국에서의 군사쿠데타 이듬해 조국에서 민주정부를 전복했다. 1988년 등장한 신군부는 시민의 분노에 놀라 물러선다고 했지만, 역시 박정희 유신의 변종체제를 이식시켜 지금까지 군사정권을 유지했다. 유신헌법에서 대통령이 국회 의석 3분의 1을 임명했던 것처럼, 미얀마 군부는 의석 4분의 1을 지명한다. 군부는 또 3인의 대통령후보 가운데 1인을 추천하고, 대통령이 누가 되든 권력의 핵심인 국방장관과 내무장관 그리고 국경관리 장관을 지명한다. 이 더러운 헌법을 개정하기 위해선 재석 75% 이상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사실상 개정이 불가능하다. 유신헌법에서 헌법 개정 최종 결재권자는 대통령이었다.
박근혜 대통령과 관변 학자들은 미얀마의 오늘 어떻게 기록할까
수치와 같은 반열에 오르고 싶었지만 2012년 <타임> ‘독재자 딸’ 표제처럼 아버지 남긴 과거에서 한 발도 못 나가
아웅산 수치는 2010년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군사정권의 통치를 겪은 한국이 버마(수치는 미얀마가 아니라 버마라고 부른다) 민주화 투쟁에 대해 더 잘 이해하고 도울 수 있을 것”이라며 “버마 상황이 나아질 수 있도록 한국이 도움을 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오늘날 이 나라는 그럴 염치가 없다. 물론 한국의 민주시민은 짧은 현대사 속에서 4·19혁명과 광주민주화운동 그리고 6월항쟁 등 민주화의 금자탑을 쌓았다. 그러나 민주시민만큼이나 많은 수구세력들은 전제왕조나 독재체제의 복원을 꿈꾸고 그렇게 추진해왔다. 이씨 왕조를 다시 부활하려던 이승만을 건국의 대통령으로 추앙하는가 하면, 4·19 시민혁명을 전복시킨 5·16쿠데타를 군사혁명으로 칭송하고, 쿠데타에 이어 북한체제에 버금가는 유신체제로 영구집권을 도모한 박정희를 신격화하려고까지 한다. 나아가 식민지 근대화론이란 이름 아래 일제의 강점을 미화하려 한다. 일제는 36년간 이 땅에서 자원을 수탈하고 정신을 말살시키려 한 것은 물론이고, 어린 소녀 수십만명을 일본군 성노리개로 끌고 갔고, 남정네는 총알받이나 강제노역장으로 끌고 갔다. 그런 일제에 부역했던 자들을 건국세력으로 포장하려는 것이다.
수치의 아버지 아웅산 장군은 조국 버마를 집어삼킨 영국, 그리고 영국에 이어 조국을 병탄하려던 일제와 맞서 조국 독립에 평생을 바쳤다. 그는 한국의 독립운동 지도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해방을 앞두고 암살당했다. 그런 아웅산의 딸이 군부독재의 매국의 망령을 불러들이려는 이 나라에서 도대체 무엇을 배우고 무슨 도움을 받을 수 있겠는가. 박근혜 정부의 한국은 모범이 아니라 반면교사일 뿐이다.
박 대통령은 한때 수치와 같은 반열에 서고 싶어했다. 2012년 대선에서 당선되자 수치를 초청했고, 이듬해 1월29일 서울 통의동 당선자 집무실을 방문한 수치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오랜 세월 동안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희생을 감내하며 헌신한 것에 대해 경의를 표합니다. … 나는 내 개인의 행복을 포기하고 국민을 가족 삼아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역시 수치처럼 그렇게 살아왔다는 뜻이었다! 과연 그럴까? 소도 하품할 자랑이지만, 그것이 앞으로의 희망이라면 다행이었다.
<타임>이 표지로 다뤘던 수치와 박근혜 대통령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두 사람을 한 번씩 표지에 실었다. 2011년 1월10일치엔 수치를 ‘투사’라는 표제 아래 ‘자유 없는 나라를 비추는 자유의 횃불’이라는 부제와 함께 실었다. 18대 대통령선거를 열흘가량 앞둔 2012년 12월7일치엔 박 대통령을 ‘독재자의 딸’이란 표제(▶바로가기) 아래 ‘아버지가 남긴 스캔들과 과거를 넘어설 수 있을까?’라는 의문과 함께 실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 몹시 씁쓸한 대조였다.
그러나 더 씁쓸한 것은 <타임>의 의문이 지금 현실로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그는 많은 물의와 변칙 속에서 당선됐고, 지금까지 아버지의 과거를 넘어서는 게 아니라 반대로 36년 전 폐기된 과거를 되살리는 데 전념했다. 산다르 윈은 미얀마 군부독재의 원조 네윈의 딸이다. 그는 1988년 시민혁명이 일어나기까지 아버지 밑에서 26년간 권력을 행사했다. 혁명이 일어나고, 네윈이 “군은 국민에게 총구를 겨누어라”라는 저주를 남기고 은퇴하자, 산다르는 신군부와 손을 잡고 수치를 포함한 민주세력을 탄압했다. 신군부는 네윈의 말대로 그해 시민 6000여명을 죽였다. 산다르는 ‘세계 최악의 독재자의 딸’로 불렸다. 박 대통령은 누구를 닮았을까.
환단고기 인용했던 박 대통령, 고대사 건드리는 이유는 11.3 미디오오늘
친일 왜곡 프레임에 '뒷통수'… 국수주의적 역사 기술로 지지층 결집 의도
황우여 교육부 장관이 3일 국정교과서 확정 고시를 발표하면서 상고사 및 고대사 부분을 보강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정교과서의 친일독재 미화 우려를 일축하며 민족의식을 강화시키는 역사 기술을 하겠다고 한 것이다.
황 장관은 "고대 동북아역사 왜곡을 바로잡고 우리 민족의 기원과 발전에 대해 학생들이 올바르게 인식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교육부도 '역사 교과서 국정화로 친일과 독재를 미화할 우려가 있다'는 의견에 대한 검토 답변으로 "동북공정 및 일본의 역사 왜곡 등에 대응하기 위해 상고사 및 고대사 서술을 강화하고 일제의 수탈에 항거한 독립운동사에 대해 충실하게 기술할 것임"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야권과 시민사회에서 국정교과서 반대 전략으로 친일 독재 프레임을 내걸었는데 오히려 중국과 일본의 역사 왜곡 문제를 제기하면서 민족주의를 반영하는 상고사 및 고대사 서술을 강화하겠다고 '반격'에 나선 것이다.
정부와 새누리당이 뻔히 여론이 악화되고 있는데도 국정교과서를 밑어붙일 수 있었던 이유가 상고사-고대사 보강을 통해 국정교과서의 전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야권과 시민사회는 국정교과서가 친일 문제를 교묘히 가려 왜곡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국정교과서가 근현대사 부분이 아닌 상고사와 고대사에 집중해 민족주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기술될 경우 지금까지 주장했던 국정교과서 반대 목소리는 급격히 탄력을 잃을 수 있다.
국정교과서 반대 여론이 높았던 것도 사실 국정교과서가 친일과 독재를 미화할 수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기 때문이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발간되지도 않은 국정교과서를 두고 친일과 독재를 미화할 것이라는 공세를 펼치고 박 대통령도 이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지만 곧이 곧대로 믿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상고사와 고대사 부분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은 친일과 독재 미화 우려에 대한 정면 반박이 될 수 있는 내용이다.
민족주의가 강화된 교과서를 선보이면 '올바른' 교과서라고 포장시킬 수 있는 명분도 커질 수 있다. 정부와 새누리당이 국정교과서 문제가 내년 총선에 결코 불리하지 않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던 것도 애초 논란이 일 수밖에 없는 근현대사 부분에 대한 수정은 최대한 축소하고, 상고사-고대사에 민족주의를 과도하게 반영하는 쪽으로 국정교과서에 대한 이미지를 개선시키는 전략을 짰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국정화 교과서가 곧 친일 독재를 미화한 교과서가 될 것이라는 말은 창을 가지고 허공에 찌른 꼴이 돼버렸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상고사와 고대사를 강화하겠다는 의도를 지난 2013년부터 드러내기 시작했다. 국회 동북아역사왜곡특별위원회에서 왜곡된 상고사를 다시 써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고 교육부는 고대사 연구 사업 기획으로 10억원을 증액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과 한국학진흥사업단에 상고사 관련 사업 예산을 편성한 바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013년 광복절 축사에서 환단고기의 한 구절인 '나라는 인간에 있어 몸과 같고 역사는 혼과 같다'는 구절을 인용하기도 했다. 환단고기는 학계에서 위서로 평가받는 상고사 역사서다. 민족 시작 시점인 '환단'에 대한 이야기책인데 ‘세계만방(世界萬方)’ ‘남녀평권(男女平權)’ 등의 근대적 표현이 나온다.
정부의 국정교과서 상고사-고대사 강화는 민족을 구심점으로 내세워 고대의 영광을 보여주면서 지지층을 끌어모으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하지만 지나친 국수주의로 역사를 왜곡시킬 수 있는 여지가 크다. 국정교과서를 반대하는 이유가 하나 더 늘어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민족주의를 반영하다는 점에서 ‘올바른’ 국정교과서라는 정부의 주장에 국정교과서의 폐해가 가려질 수 있다.
하일식 교수(연세대 역사학과)는 "대통령 참모 중에 연설문을 써준 참모가 있을 건데 광복절 축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환단고기를 인용한 건 놀라운 일이다. 재작년부터 계속해서 교육부를 통해 상고사를 정립하는 거액의 연구비가 지출되는 등 프로젝트가 진행돼 왔다"며 "동북공정과 일본의 왜곡에 대항한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지만 학문적으로 황당무계한 국수주의적 주장을 교과서에 자리잡게 하려고 한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고 지적했다.
하 교수는 "정부가 오히려 국정교과서를 민족주의 프레임으로 옮겨가면 오히려 고대사 왜곡 문제를 지적하는 학계 대다수를 친일로 매도하면서 국민 정서에 호응하고 친일 독재 미화 우려를 되받아칠 수 있다. 이대로 가면 대중적인 파급력이 워낙 크다. 과도하게 해석하는 것도 문제지만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의 결핍을 메울 무언가를 지닌 그해 119 시사저널
<응답하라>는 왜 ‘1988년’을 택했을까
tvN <응답하라 1997>이 방영됐을 때 그 1997년의 의미는 명확했다. 1990년대를 관통하는 음악과 팬덤 문화가 있고, 인터넷 문화가 태동하던 시기로서의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공존점을 지녔다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큰 의미는 1997년 터진 IMF 외환위기라는 사건이었다. 복고가 현재의 어려움을 살짝 벗어나 과거 좋았던 시절을 돌아보는 것이라면, 외환위기가 터지기 직전 상황은 정확히 지금 현재의 대중이 바라보고 싶은 시점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응답하라>는 1997년을 소환했다.
경제적 팽창, 도시화의 기점이 된 1988년
그렇다면 이번에 새롭게 방영되는 <응답하라 1988>에서 그 1988년의 의미는 어떤 것일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88서울올림픽일 것이다. 커다란 종합운동장 잔디밭 위로 굴렁쇠를 밀며 뛰어가는 한 아이가 떠오를 것이고, 마스코트였던 호돌이도 기억에 삼삼할 것이다. 최근 JTBC <비정상회담>에서 종종 흘러나오는 <손에 손잡고>라는 노래가 귓가에 여전히 쟁쟁한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올림픽 풍경만 있는 게 아니다. 1987년 상황을 떠올려보라. 당시 거리에서는 민주화운동이 절정을 향해 가고 있었다. 6월10일을 기점으로 민주화운동은 새로운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고 그 결과는 6·29 선언으로 이어졌다. 대통령 직선제가 통과되었고, 국민의 투표에 의한 대통령 선거가 그해 12월16일에 치러지게 되었다. 하지만 군부 체제를 뒤집고 정권 교체를 하려 했던 선거는 당시 김대중과 김영삼의 단일화가 결렬되면서 실패하게 되었고, 결국 집권 여당인 민정당 후보였던 노태우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즉 1987년은 그해까지 치열했던 정치적인 이슈들이 한순간에 소멸되고 점차적으로 1990년대 경제적 이슈가 전면으로 나서게 되는 기점이었다. 1987년 상황이 사라지고 이제는 경제라는 틀 속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손에 손잡고>가 이어지던 당대를 표상하는 사건이 88올림픽이었다. 1988년은 바로 전해와 완전히 대비되는 새로운 시대의 서막이었다.
1988년부터 1997년까지 10년간 기업들은 줄기차게 몸을 키웠고, ‘세계 경영’을 부르짖었다. ‘대마불사(大馬不死)’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으니 내실보다 팽창을 추구했던 당대의 사회적 분위기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고 나면 도처에 아파트들이 세워지던 그 시작점으로서의 1988년을 굳이 <응답하라>가 선택한 것은 당대의 경제적 팽창이나 도시화의 문제, 나아가 아날로그가 점점 사라지고 디지털로 나아가는 그 흐름에서 우리가 서서히 잃어가게 된 것들을 반추하기 위함이다.
신원호 PD는 이미 <응답하라 1988>을 기획하는 단계에서부터 ‘가족’의 이야기를 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이 드라마의 소개란에는 ‘쌍팔년도 쌍문동, 한 골목 다섯 가족의 왁자지껄 코믹 가족극’이라고 적혀 있다. 한 골목 다섯 가족. 지금은 발견하기 힘든 풍경이 되어버렸지만, 당시만 해도 이런 풍경은 그리 낯선 게 아니었다. 다닥다닥 붙은 집들 사이에 놓인 골목은 좀 더 확장된 개념의 가족을 가능하게 했던 공간이었다. 아이들은 그곳에서 함께 놀며 자라고 부모들도 ‘이웃사촌’이라는 표현 그대로 고향을 떠나 새로 정착한 그곳에서 또 하나의 가족을 꾸리며 살아갔다.
1986년부터 1994년까지 방영됐던 MBC <한 지붕 세 가족>은 그런 당대의 분위기를 잘 보여줬던 드라마다. 일요일 아침이면 어김없이 방영되던 그 드라마 속에서 우리가 발견했던건 이웃이지만 가족 같은 그들의 소박하고 정이 넘치는 삶이다. 순돌이 아빠(임현식)와 만수 아버지(최주봉)는 지금도 이 배우들의 캐릭터로 불릴 정도로 우리네 기억에 강하게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88올림픽이라는 국제적인 행사가 치러지면서 이런 다세대주택이나 서울의 언덕배기를 가득 메우고 있던 달동네의 주택들은 서서히 사라지게 된다. 도시 외관상 좋지 않다는 논리로 철거되고 그 자리에 아파트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응답하라 1988>은 그래도 아직은 남아 있던 이웃사촌의 마지막 세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셈이다. 현재 도시화의 끝단을 살아가는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이웃과 가족의 모습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것들이 그나마 남아 있는 지점
1988년은 음악적으로도 의미 있는 해다. 1990년대 대형 기획사들에 의해 ‘만들어진 음악’들과는 사뭇 다른 싱어송라이터들의 음악이 점령했던 때다. <응답하라 1997> <응답하라 1994>가 1990년대 음악을 향수했다면, <응답하라 1988>은 1980년대의 음악을 현재로 다시 끌어낸다. 거기에는 1988년 <대학가요제> 대상을 받았던 무한궤도의 신해철이 있고, 1984년 배창호 감독의 <고래사냥>으로 연기는 물론이고 음악까지 선보였던 김수철이 있다. <강변가요제>를 통해 ‘담다디’ 열풍을 만들었던 이상은이나 역시 같은 가요제에서 혜성처럼 등장했던 이선희, <첫눈이 온다구요>로 그해 겨울을 뜨겁게 했던 이정석도 있다. 또 고(故) 이영훈을 만나 자신의 음악적 색깔을 완성시켰던 이문세와, 아까운 나이에 타계했던 김현식같은 가객은 물론이고, 천재 아티스트 유재하, 김광석을 배출했던 동물원 같은 싱어송라이터들이 무수히 많다. 스스로 작사·작곡·노래를 하는 것이 당연해 보였던 싱어송라이터들의 르네상스는 1980년대였다.
복고의 지점들은 현재의 결핍을 드러낸다. 즉 복고가 과거를 들여다보는 건 현재 비어 있는 무언가가 그 욕망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힘겨울 때 잠시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며 “그때가 참 좋았는데…”라고 말하는 건 아마도 인간의 본성에 가까운 일일 것이다. 따라서 신원호 PD의 <응답하라> 시리즈가 지금껏 대중들에게 어떤 호응을 얻어온 건 과거의 그 지점만큼 현재의 결핍을 잘 읽어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1988년에는 2015년을 사는 우리에게는 없는 무언가가 있다. 그것은 막연했지만 그래도 희망에 부풀었던 경제적 성장에 대한 대책 없는 낙관론이기도 하고, 아파트가 사람들을 나눠놓고 구획하기 전의 가족 같은 관계를 꾸려나갔던 삶이기도 하며, 모든 것이 대자본에 의해 기획되고 심지어 예술조차 상업적 기반 위에 올라가게 된 현실이 잃어버린 진정한 예술혼에 대한 그리움이기도 하다.
1987년의 민주화운동 이후, 1988년부터 1997년까지 한껏 부풀었던 그 팽창의 과정들은 사실 우리가 갖고 있던 많은 것을 잃어가는 과정이었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1988년은 그 잃어버린 것들이 그나마 남아 있던 지점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정덕현 | 대중문화 평론가
야쿠자 폭풍전야 전운 감도는 일본 열도 115 시사저널
일본 최대 폭력조직 ‘야마구치파’ 이탈한 ‘고베야마구치파’ 보복 살해 당해
일본 열도는 지금 폭풍전야다. 특히 고베(神戶) 지역이 그렇다. 일본 언론은 10월28일, 일본의 최대 폭력조직인 야마구치파(山口組)의 분열로 최근 2개월 동안 적어도 4건의 사건이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구미(組)는 우리말로 파(派)에 해당한다. 특히 10월6일에는 나가노(長野) 현 이다(飯田) 시의 한 온천 부설 주차장에서 야쿠자 조직원 한 명이 권총 총탄을 맞고 사망했다. 범인은 야마구치 조직의 산하 단체 간부.
나가노 현 경찰청 발표에 따르면, 범행 이유는 살해된 조직원이 야마구치파로부터 이탈해 새롭게 결성된 조직으로 옮기려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렇듯 일본 열도는 야마구치파의 분열로 인한 파벌 싸움으로 언제 어디서 대규모 총격전이 벌어질지 모르는 극도의 긴장감 속에 전운(戰雲)마저 감돌고 있다. 일본 경시청은 이미 두 달 전부터 비상사태에 돌입하고 연일 갖가지 명분을 내세워 이들 조직원을 체포하고 있다.
ⓒ 일러스트 유환영
정식으로 ‘공인’된 야쿠자 조직 21개
일본의 야쿠자는 역사가 꽤 깊다. 뿐만 아니라 일본 정치와 연예, 스포츠, 사회 분야까지 깊숙하게 연결돼 있다. 그런 만큼 일본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 또한 막강하다. 원래 야쿠자는 우리나라의 조직폭력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지만, 그 규모나 역사, 성격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다르다.
야쿠자에 대해 일본대사전은 이렇게 풀이하고 있다. ‘야쿠자는 조직을 형성해 폭력을 배경으로 직업적으로 범죄활동에 종사하며 수입을 얻는 사람을 일컫는다. 또한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 가치가 없는 사람, 직업을 가지지 않고 법에 어긋나는 일을 하며 사는 사람들의 총칭’이라고 설명돼 있다.
일본의 야쿠자는 일본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일정 부분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역사적인 사실에서 볼 때도 정치권과 문화계에까지 수맥(水脈)처럼 인맥이 촘촘히 연결돼 있고,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그 영향력이 지대하다.
그래서 일본 정부도 함부로 야쿠자 조직을 건드리지 못한다. 상가(商街)마다 ‘폭력단 퇴출’ 혹은 ‘폭력단 출입금지’라는 푯말을 걸어놓고 ‘야쿠자 추방’ 운동을 하고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전시행정적인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이 같은 요식 행위에 대해 일반 국민들도 다 간파하고 있다. 다만 모른 척하고 있을 뿐이다. 그만큼 야쿠자는 일본 사회에 그 뿌리를 깊숙이 내리고 있다.
일본에는 정식으로 공인된 야쿠자 조직이 총 21개 있다. 가장 큰 조직은 최근 분열 파동으로 폭풍전야에 휩싸여 있는 야마구치파. 야마구치구미는 역사도 깊어 올해로 창립 100년을 맞이한다. 야마구치파는 1915년 야마구치 하루키치(山口春吉)가 고베 주변의 노무자들을 모아 일본 최초로 결성한 야쿠자 조직이다. 이렇게 결성된 야마구치는 그 후 1945년을 전후해 전국구로 진출, 일본 최대 규모의 야쿠자 조직으로 급성장했다.
대규모 총격전 벌어질 수 있는 초비상 사태
조직원은 일본 전국 1도(都) 1도(道) 2부(府) 40개 현(縣)에 약 2만3400명(정조직원 1만300명·준조직원 1만3100명)을 두고 있다. 이 중 중간 보스라고 할 수 있는 야마구치파의 직계 조장(각 지역 ‘오야붕’)은 모두 72명. 즉 야마구치파 산하에 있는 계열 조직이 72개라는 뜻이다.이 72개 조직은 야마구치파에 속하지만 조직 이름은 다르다. 그런 만큼 각 계열 조장은 그 지역에서 절대적인 힘과 막강한 영향력을 지니게 되며, 그 지역 조직원을 지배하는 최고 우두머리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야마구치파의 최고 오야붕(총조장)은 6대(2005년~현재)째인 쓰카사 시노부(司忍, 72세)로, 그가 직접 나고야(名古屋)에서 설립한 ‘고도카이(弘道會)’의 지역 조장이기도 하다. 현재 야마구치파 분열 파동의 기폭제가 된 고베 ‘야마켄파(山健組)’와의 갈등의 장본인이 그다.
지난 9월 초, 야마구치파 산하의 ‘야마켄파’를 중심으로 13개 조직이 야마구치파를 이탈해 새로운 조직 ‘고베야마구치파(神戶山口組)’를 결성했다. 후에 또 다른 1개 단체가 가입해 고베야마구치파는 모두 14개 조직이 됐다.
1985년께부터 이 두 조직은 매사에 갈등을 빚어왔다. 그러다 이번에 마침내 야마켄파가 대거 조직을 이끌고 야마구치파를 이탈한 것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보복 살해가 일어났다는 점이다. 물론 예상했던 일이기는 했지만, 만약의 사태에 대처하기 위해 일본 경찰이 삼엄한 경비를 펴고 있는 상황에서 보란 듯이 보복 살인을 했다는 것은, 향후 어떤 큰일이 벌어질지를 암시하는 것이어서 충격이 더욱 컸다. 그런 탓에 일본 경찰과 언론은 발칵 뒤집혔다. 당장이라도 대규모 총격전이 벌어지기라도 할 것처럼 초비상 사태에 들어갔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10월6일 고베야마구치파로 이적하려던 한 조직원이 권총으로 보복 살해를 당했다. 10월17일에는 나고야 시내에 있는 ‘고베 야마구치파’ 산하 ‘야마켄파’의 사무실에 고도카이계 조직원 9명이 쳐들어가 인터폰을 부수는 등 기물을 파손했다. 이 같은 행위로 이들 9명은 아이치(愛知) 현 경찰에 의해 폭력행위법 위반 혐의로 현장에서 체포됐다.
또한 도야마(富山) 시와 아키타(秋田) 시에서도 기존의 야마구치파와 고베야마구치파 산하 조직원들이 서로 충돌하는 등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초긴장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일본 경찰은 이들이 집단 총격전을 벌이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만약 그런 사태가 벌어진다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악화될 가능성이 아주 농후하기 때문이다.
일본 야쿠자들은 싸울 때 과거에는 일본도를 휘둘렀으나 요즘에는 모두 권총을 사용하고 있다. 때문에 종종 적대적 야쿠자들 사이에서 총격전이 벌어지기도 한다. 바로 이 같은 상황을 일본 경찰은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번 경우는 같은 파에 속해 있던 조직원들이 배신에 해당하는 이탈 행위를 한 것이어서 적대감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하다. 때문에 긴장감 또한 클 수밖에 없다.
아버지의 역사 한겨레21 1111
돌아가신 아버지는 정치적으로 보수적 성향을 지니고 계셨다. 아버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미국에서 유학 중인 나에게 전화로 말씀하셨다. “한국에 돌아오지 마라. 여기에는 이제 희망이 없다.”
그렇다면 보수적인 아버지의 전쟁관은 어땠는가? 대학에 막 입학한 어느 날 나는 미군의 양민 학살을 다룬 역사적 자료를 접한 뒤 충격을 받고 아버지에게 그런 일을 아시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미군은 그런 적이 없다고 거의 확언을 하셨다. 나는 아버지에게 자료를 보여드렸다. 아버지는 그것은 날조된 것이라며 격분하셨고 나는 분명한 사실이라고 반발했다. 그날의 언쟁이 둘 사이에 남긴 감정적 골은 꽤 심각해서 한동안 쉽게 가시지 않았다.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그의 서재에 왜 ‘좌파’ 역사책이…
그런데 앞의 이야기가 다가 아니다. 아버지는 언제부턴가 한국전쟁이라는 역사 속으로 파고드셨다. 아버지는 독학으로 한국전쟁에 대한 지식을 쌓아나갔다. 늘 보수정당에 투표를 했지만 한국전쟁에 관한 아버지의 입장은 단순치 않았다. 아버지는 한국전쟁은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됐지만 당시의 국내외 정세를 언급하시며 폭넓은 맥락에서 전쟁의 원인을 따져봐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나는 머리를 긁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버지가 지닌 전쟁에 관한 지식이 나보다 훨씬 해박했을뿐더러 아버지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사람의 입에서 나올 법한 이야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돌아가실 때까지 보수파였지만 내가 신입생 때 언쟁을 벌였던 분과는 사뭇 거리가 있었다. 아버지는 역사책들을 두루 읽으며 어린 시절 겪은 전쟁을 역사로, 개인의 비극을 포함하면서 넘어서는 큰 이야기로 다시 이해하셨다. 사실 지금 내 방의 책장에 있는 한국전쟁과 근현대 한국사에 대한 책은 전부 아버지의 것들이다.
그중에 책 제목 하나가 눈에 띄어 꺼내보았다. 정병준이라는 역사학자가 저술한 <한국전쟁: 38선 충돌과 전쟁의 형성>이라는 책이다. 지금껏 한 번도 들춰보지 않은 책이라 내용을 훑어보니 38선에서의 잦은 남북 간 군사적 충돌이 남침의 도화선이 됐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저자는 김대중 정부 시절 국사편찬위원회에 몸을 담았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지지하는 이들이 타깃으로 삼을 표본이라 해도 무방해 보였다.
나는 궁금해졌다. 노무현 정부에 치를 떨었던 아버지의 서재에 왜 ‘좌파’로 낙인찍힐 법한 역사학자의 책이 꽂혀 있는가? 머리말을 읽어보니 마치 하나의 힌트처럼 이런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마지막 장들을 완성하던 지난 몇 달간… 한국인들이 겪었던 역사적 상황 속에서 덧없이 스러져간, 수많은 사람들의 꿈과 열정이 생각나 불면의 밤을 지새워야 했다. 1950년에 형상화된 한국이라는 국가, 사회, 사람들의 비극을 통해 이 책이 21세기 우리들에게 이야기하는 바가 있으리라고 기대한다.”
우린 모두 전쟁 비극의 생존자
좌파이건 우파이건, 보수 아버지건 진보 자식이건, 전쟁에 관해서는 하나의 공통분모가 있다. 그것은 모두 전쟁이라는 비극의 생존자라는 사실이다. 아버지가 가까스로 살아남았으니 자식도 가까스로 태어난 셈이다. 이 비극을 일으킨 원인은 무엇인가? 타도해야 할 원수인가? 아니면 과거 속의 진실인가? 역사란 무엇인가? 원수에 대한 승리욕을 고취하고 승리의 전리품을 과시하는 것인가? 아니면 과거 속의 진실이 무엇인지, 나의 현존이 과거의 비극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성찰하는 것인가?
보수적인 아버지조차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알고 계셨으리라. 그래서 나는 애틋하게 상상해본다. 아버지가 살아 계셨더라면 작금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사태에 대해서 나와 아버지는 어쩌면 꽤 근사한 토론을 해볼 수 있었을 터이다.- 심보선 시인·사회학자
“인신매매 당한 뒤 매일 밤 울면서 미군을 받았다” 14. 7.4 한겨레
미군 기지촌에는 인신매매되어 오게 된 미성년 여성들도 다수 있었다. 하지만 국가는 이런 상황에 눈을 감았다. ‘미군에게 접대 잘해달라’는 교육만 진행했다. 교육에 나선 공무원들은 기지촌 여성들을 ‘달러를 벌어들이는 산업역군’이라 치켜세웠다. 1970년대 동두천의 기지촌 풍경. 구와바라 시세이(눈빛 아카이브) 제공
기지촌 여성 김정자의 증언
▶ ‘우리가 괜히 나섰다가 일본 우익들만 좋은 일 시키는 거 아닐까?’ 미군 기지촌 여성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준비할 때 가장 큰 고민이 이거였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정부가 미군을 위한 위안시설과 여성들을 관리했다고 폭로하고 나섰습니다. 국가의 사과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역사적 진실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잘 몰랐던 미군 기지촌의 불편한 비밀들. 김정자씨의 증언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저는 김정자(가명)입니다. 올해 예순넷입니다. 큰 지병은 없지만 요즘 무릎관절이 좀 아픕니다. 적지 않은 나이지만 오늘 꼭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 이렇게 인터뷰에 나섰습니다. 저는 미군 위안부였습니다. 기지촌으로 인신매매되어 평생을 미군한테 당하면서 억울하게 살아왔지만 아무도 저와 제 동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자발적으로 일한 거 아니냐는 색안경만 끼었어요. 우리가 미군한테서 벌어들인 달러로 나라를 이렇게 일으켜 세웠는데, 그때는 우리더러 ‘애국자’라 그러더니 국가는 우리의 존재를 모른 척하고 있어요. 우리는 늙고 병들어가고 있습니다. 저의 언니들(기지촌 동료)이 죽어가고 있는 것을 더는 못 보겠습니다. 그래서 용기를 냈습니다. 우리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왜 국가에 이런 싸움을 시작하는지 저의 인생을 통해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소송에 참여한 여성 122명이 다 김정자씨와 같은 경험을 한 것은 아니다. 다만, 그 피해의 구조가 비슷한 여성들이 상당하다. 김정자씨의 증언을 대표적으로 살펴보되, 기지촌에서의 경험은 여성마다 다르다는 점을 밝힌다.
미군 기지촌에서 미군과 성매매를 하는 여성들은 미군 위안부, 기지촌 여성, 특수업태부, 양공주 등으로 불려왔다. 정부는 위안부와 특수업태부를 혼용해 사용해왔다. 1957년 제정된 ‘전염병 예방법 시행령’ 제4조에서 규정한 ‘위안부’는 1969년의 개정 법률에서 그대로 사용되다가 1977년 개정 시 삭제된다. 그러나 1990년대 초반까지도 시·군 공무원들은 미군 기지촌 여성들을 한국 남성과 성매매를 하는 윤락여성과 구분해 위안부라고 불렀다.(<미군 위안부 기지촌의 숨겨진 진실> 39쪽)
스무살로 위장시키는 포주…하루 서너명씩 받아
“저는 1950년 1월에 태어났습니다. 어디서 태어났는지는 모르지만 어렸을 때 천안에서 살았어요. 친아버지는 군인이었는데 전쟁통에 저를 보러 왔다가 탈영병이 되어서 헌병한테 잡혀갔어요. 그냥 맞아서 죽었다는 얘기만 들었습니다. 어머니는 나중에 재혼했어요. 제가 열두살 때쯤부터인가 제 의붓아버지는 어머니만 없으면 저를 겁탈했어요. 의붓오빠들도 저를 건드렸어요. 그걸 어머니께 말도 못 하고 꾹 참다가 열여섯살 때(1965년께) 집을 나와버렸어요. 제 초등학교 친구가 있었어요. 돈을 벌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거예요. 방직공장이라고 했어요. 걔를 따라 서울역까지 기차 타고 왔어요.
서울역에서 친구 따라 또 어딘가로 갔는데 뭔가 이상한 거예요. 방직공장은 안 보이고 미군들만 길에서 ‘쌀라쌀라’ 거리면서 돌아다니더라고요. 어떤 집으로 들어갔는데 집에 ‘남바’가 붙어 있었어요. 1호실, 2호실, 3호실 이렇게. 저는 여관인 줄 알고 잤어요. 제 친구는 다음날 잠깐 어디 좀 다녀오겠다고 하더니 안 왔어요.
(50대로 보이는) 어떤 아줌마가 나타났어요. 나보고 따라오래요. 공장에 데려다 주려나 보다 싶어 따라갔어요. 그런데 저더러 하는 얘기가 ‘네 친구가 빚을 안 갚고 도망갔으니 네가 갚아라’고 하는 거예요. 얼마인지는 얘기도 안 해주고, 친구 대신 돈을 갚아야 제가 나갈 수 있다고 했어요. 어떻게 돈을 버냐고 물었어요. 밤에 언니들 따라가 보면 안다고 했어요.나중에 알고 봤더니 제가 간 곳은 파주 용주골(연풍리)이라는 데였어요. 미군기지 주변에서 여자들이 몸 파는 곳이었어요. 제 친구가 빚을 갚지 못해 저를 팔아넘긴 거였어요.”
김정자씨는 인신매매를 당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을 이해하기에는 김정자씨의 당시 나이가 너무 어렸다. 친구의 행동이 원망스러웠지만 김씨는 하는 수 없이 친구의 빚을 갚기로 결심했다.
“아줌마(포주)는 저더러 클럽 나가서 손님(미군) 데려오라고 했어요. 저는 3일인가 있다가 그 포주집에서 도망갔어요. 근데 골목에서 잡혀버렸어요. ‘뒤지게’ 맞았어요. 한번만 더 도망가면 섬으로 끌고 가서 죽여버린다고 했어요.
(포주가) 파스 갖다 붙여주고 세코날(진정제)을 줬어요. 기분 좋게 해주는 거라면서 줬어요. 하나 먹으면 (중독되어서) 두개 먹어야 하고, 세개 먹으면 네개 먹게 돼요. 손님 데리고 오라고 내보내면 제가 무서워서 말을 못 붙였어요. 맨정신으로는 창피해서 손님 못 끌어요. 저는 그 약이 뭔지도 모르고 계속 먹었어요.”
김씨는 나중에 이것이 마약인 것을 알게 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약을 먹어야만 히파리(호객행위)를 하러 나갈 수 있었다. 김씨가 미군을 데리고 올 때까지 집(숙소)에는 들어갈 수 없었다고 한다. 한두달 일하면 빚을 갚을 줄 알고 김씨는 그냥 눈을 질끈 감고 기지촌에서 일하게 된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거기서 헤어나올 수가 없는 거예요. 빚은 계속 늘었어요. 방값이랑 화장품·미장원비랑 세코날비랑 내야 하는데 아무리 일해도 못 갚는 거예요. 이자는 계속 붙었어요.”
보통 기지촌에는 위안부 여성들의 자치조직이 있다. 자매회 등의 이름으로 불렸다. 기지촌에서 일을 하려면 이곳의 회원으로 등록해야 한다. 자매회에서는 뻔히 미성년자인 것을 알면서 회원증을 주고 검진증(성병에 걸리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증)을 발급해 주었다는 기지촌 여성들의 증언이 많다. 보통 포주들은 십대 아이들에게 스무살이라고 말하도록 강요했다고 한다.
김정자씨의 삶은 지옥과도 같았다. 보통 기지촌 여성들은 하룻밤에 미군을 서너명씩 받아야 하는 경우가 예사였다.
“그러면 거기(음부)가 얼마나 아픈지 몰라요. 긴밤·짧은밤(성매매 시간 단위) 아무리 해도 끝이 없었어요. 긴밤은 제 방에서 밤새 자고 아침에 일찍 가는 거고 10달러 받아요. 짧은밤은 제 방에서 30분에서 1시간 있다 가는 거예요. 돈은 모두 아줌마가 가져가 버려요. 제가 직접 못 받아요. 아줌마는 한달 계산해 준다면서 다 뺏었어요. 1~2개월이면 빚 다 갚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안 돼요.”
기지촌의 10대 아이들은 셈법에 밝지 못했다. 초등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한 이들이 태반이었다. 포주는 공포의 대상이라, 장부에 무엇이 어떻게 기록되는지 물어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렇게 여성들은, 아니 10대의 아이들은, 밤새 울고 밤새 미군의 노리개가 되어 고통의 몸부림을 쳤다.
“도망을 갈 수가 없었어요. 일하러 갈 때 늘 남자(포주집에서 일하는 건달)들을 붙여 감시해요. 목욕을 가면 자기네(포주집)에서 제일 오래 있는 년, 주인한테 아부하는 년이랑 같이 목욕을 보내요
경찰한테 신고할 수도 없어요. 주인집에 경찰이 낮에 놀러 와요. 주인아줌마한테 누나라 그러면서 들어와요. 그러면 아줌마는 담배도 싸서 주고 그래요. 처음에 저는 아줌마 남동생인 줄 알았는데 옆의 언니들이 형사라고 귓속말해주는 거예요. 주인이 다 돈 먹이는 거라고. ‘경찰에 신고해도 내가 못 나가는구나’ 그걸 알게 되는 거죠. 내가 죽어서야 이곳을 나갈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는 거죠.”
한국전쟁은 이 땅의 여성들에게도 아물 수 없는 상처를 주었다. 미군 기지촌 여성들 122명은 국가를 상대로 피해배상 소송을 하기로 했다.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대방동 서울여성플라자 건물 4층에서 열린 소송 기자회견 모습.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왜 그토록 미군과 결혼하려고 했는가
“한번은 그래도 용기를 내어서 도망갔어요. 용주골에 인신매매되고 몇개월 뒤였어요. 파출소로 들어갔어요. 40대쯤 되어 보이는 경찰이 ‘왜 남의 빚 져놓고 도망가냐. 안 갚으면 영창 간다’고 하는 거예요. 포주들이 경찰서에 다 돈을 집어주던 시대였어요. 하는 수 없이 다시 포주집으로 돌아갔지요. 골방에 갇혀 또 뒤지게 맞았어요.”
김정자씨는 죽어서 절대 산에 묻히고 싶지 않다. 그가 산에서 겪은 고통스런 경험 때문이다.
“산에 가서 미군을 받아야 할 때가 제일 무서웠어요. 부대에서 훈련을 나가면 저희도 따라가야 했어요. 밤에 컴컴해지면 담요 하나 들고 아줌마 따라서 가요. 아줌마가 보초 서는 미군이랑 솰라솰라 말해요. 그럼 훈련 장소로 들어갈 수 있었어요.
총 들고 서 있던 놈들이 막사에 가서 여자들하고 잘 사람 나오라고 말해요. 이식스, 세븐(E-6는 하사, E-7은 중사)들도 다 했어요. 장교들은 특별히 막사 안에서 해요. 일반 병사들은 훈련장 안에 나무 있는 데에 담요 깔아놓고 하거나 구덩이를 파놓고 해요. 미군들이 파놓은 구덩이지요.”
기지촌 여성들은 그렇게 훈련장에까지 불려 가 ‘하늘을 지붕 삼고, 땅을 담요로 삼고’ 미군을 받았다. 제대로 씻을 시간도 없었다. 돈을 벌어서 내려가야만 포주가 혼을 내지 않는다. 어떤 미군은 돈 대신 자신들이 먹는 말라붙은 밥을 던져주어 여성들을 애타게 했다. 여성들은 한번 훈련장에 가면 그곳에서 새벽까지 보내다 돌아왔다고 한다.
안전한 성관계는 기지촌 여성들에게 보장되기 어려웠다. “어떤 미군은 콘돔을 안 끼고 해요. 우리는 거절을 못 해요. 그래서 낙태도 참 많이 했어요. 뗀 애만 열일곱이에요.”
보건소는 포주들이 끌고 갔다. 강제로 낙태시키는 것이다. 창자까지 다 빠져나오는 고통을 견디며 여성들은 낙태 수술을 견뎠다. 낙태 이후에는 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파도 또 일하러 가야 했다. 포주들은 낙태 수술로 상한 몸을 보살필 시간도 주지 않았다. 약과 찬물 한컵 정도 들이켜고 다시 일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하루 그냥 쉬면 빚이 얼마나 늘어날지 알 수 없었다.
“이러고 살아야 하니 죽고 싶은 생각만 들지요. 기지촌에서는 한달이면 두세번은 장례를 치러야 했어요. 철길로도 뛰어들고 연탄불 피워놓고 그 가스도 먹고. 저도 세번 죽으려고 시도했어요. 그런데 무슨 놈의 팔자인지 다 깨어났어요.”
김정자씨는 죽으려 해도 죽지 못했다. 공동묘지에서 자살을 기도하면 묘지 관리인이 발견하고, 집에서 동맥을 끊으면 자신을 보러 온 미군이 발견하곤 했다. 속 모르는 사람들은 ‘젊은 사람이 왜 죽으려 하느냐’고 묻곤 했다. 김씨는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
“왜 우리들이 미군하고 그렇게 기를 쓰고 결혼하려 했는지 알아요? 그게 아니면 여기를 탈출할 방법이 없었어요. 빚을 갚을 방법이 없어요. 도망가려 해도 경찰 누구도 안 도와주고. 우리에겐 국가가 없었어요.”
아니, 국가는 있었다. 미군한테 성접대 잘하라고 교육하는 국가는 있었다. 자매회 회의가 한달에 한번씩 열리면 여성들은 참석해서 교육받아야 했다. 안 그러면 영업을 못 했다. 회의에 가면 헌병, 시아이디(C.I.D. 미군부대 범죄수사과), 보건소 직원, 경찰서장, 군청 공무원들이 모두 와 있있다. 미군은 슬라이드(필름)를 이용해 성병에 대해 설명했다. 여기까지는 그들의 할 일이라고 이해할 법하다.
‘토벌’당한 성병 의심자들, 언덕 위 하얀 집으로
하지만 공무원들은 이상한 교육을 더 했다.
“나와서 늘 하는 말이 이거예요. ‘아가씨들이 서비스 좀 많이 해주십시오. 미군한테 절대 욕하지 마십시오. 바이 미 드링크(Buy me drink. 술 사주세요) 하세요. 그래야 동두천에 미군들이 많이 옵니다. 우리나라도 부자로 한번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군수는 저희더러 달러 벌어들이는 애국자라고 치켜세웠어요. 그러면 저희는 그래야 되나 보다 하는 거예요.”
일종의 정신교육 같은 것이었다. 여성들은 왜 이런 교육을 받아야 되는가 싶었지만 국가가 노후를 책임져준다고 하니까 그런대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턱걸이(동두천시 광암동 일대)에다가 공장을 짓고 아래층에는 가발공장, 위에는 기숙사로 만든다고 공무원들이 설명했어요. 나이 먹으면 여기에 우리가 살 수 있다고 군수가 그랬어요. 땅을 다 사뒀다고. 그러니 열심히 달러 벌라고. 우리는 늙어도 갈 데가 있구나 하고 그렇게 믿었어요. 하지만 그 약속이 지켜진 건 하나도 없지요. 포주들은 저희가 벌어온 돈으로 집도 사고 땅도 샀는데. 어떤 악명 높은 포주는 나중에 경기도의원이 되더군요.”
경찰은 인신매매되어 팔려온 아이들을 구출하는 데는 관심이 없었다. 성병에 걸린 것으로 의심되는 사람들을 잡아가는 것에만 관심을 두었다. 잡아가는 것도 비인간적이었다.
“성병 걸린 미군이 찾아와 칸택(contact·미군 성병환자에게 성병을 감염시켰을 것으로 의심되는 여성을 찍는 것)을 하면 그냥 끌려가요. 찍히면 가는 거예요. 그 미군이 어디서 성병 옮아갖고 왔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우리는 그걸 토벌당한다고 불렀어요.”
‘토벌당해’ 파출소에 끌려가면 유치장에서 머문 뒤 곧바로 낙검자 수용소로 옮겨지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성병이 있거나 없거나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고 한다. 성병이 있다 하더라도 그냥 환자일 뿐인데 죄인처럼 다루어졌다.
“하얀 집(동두천시 소요산 아래 낙검자 수용소를 기지촌 여성들은 ‘언덕 위의 하얀 집’이라고 불렀다.) 가면 운동장이 크게 있는데 토벌당한 여자들 실려 오면 (건물 문을) 철커덕 잠그고 꼭 교도소 같았어요. 나갈 수 없어요. 화장실만 갈 수 있게 했어요. 유치장 같은 데서 다섯명씩 자야 해요. 바깥 창문은 쇠창살이 설치돼 있고 면회 와도 쇠창살 사이로 얼굴 보면서 얘기해야 했어요. 아니, 우리가 죄인이에요? 환자를 왜 죄인 취급했는지 이해가 안 돼요.”
성병에 걸린 미군에게 무슨 조처를 했는지는 여성들에게 통보되지 않는다. 오로지 국가는 미군을 상대하는 여성의 몸을 깨끗하게 만드는 데만 관심이 있는 것처럼 비쳤다.
“우리는 페니실린을 맞았어요. 그거 맞고 쇼크 때문에 죽은 사람도 있어요. 맞으면 걸음을 못 걸어요. 엉덩이 근육이 뭉치고 다리가 끊어져 나가는 거 같아요. 그걸 이틀에 한번 맞아요. 괴로운 언니들은 옥상에 올라가 떨어져 죽거나 반병신 되고 그랬어요. 저는 하얀 집에 (1982년께) 2주 동안 붙잡혀 있다 나왔어요.”
김정자씨는 (1965년께) 파주 용주골에 팔려 간 뒤 동두천, 용산, 군산, 평택과 이곳저곳을 전전하다가 40대 중반(1990년대 중반)에야 기지촌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스물다섯 때(1974년께) 기지촌에서 한번 도망 나왔지만 다시 동두천 기지촌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그때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어디를 도망가더라도 깡패를 보내 저를 잡으러 올 거라고 생각했어요. 또 어디 공장에 취직하려면 제 신분증을 제출해야 하는데 제가 동사무소 가서 주민등록증 발급받으면 포주집에 진 빚 때문에 경찰이 저를 잡으러 올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김씨는 ‘스스로 기지촌에서 살아온 여성들을 피해자라고 볼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니네들이 좋아서 (기지촌 생활) 했는데 뭐가 불만이냐는 그런 질문을 참 많이 들어요. 한국 정부가 미국 안 끌어들였으면 우리가 이렇게 되었겠어요? 알고 봤더니 그 시절에도 성매매 행위는 법으로 금지돼 있었더라고요. 미군 기지촌만 성매매가 합법이었어요. 박정희 정부가 왜 그런 법을 만든 걸까요. 저는 잘 모르지만 미군 붙잡아 두려고 그렇게 한 거 아니겠어요? 우리더러 달러 벌게 하려고.”
미군 기지촌의 형성 과정에 국가의 어떤 정책이 영향을 미쳤고 그것이 옳았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스무살도 안 된 소녀들이 기지촌에 팔려 오고, 그곳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국가가 계속 방치했다는 것은 논란의 여지 없이 국가의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을 듯하다. 김씨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고 믿는다.
‘식모 자리’ 알아봐준다고 따라가면 기지촌
“억울해 죽겠어요. 저같이 거기 인신매매되어 간 사람이 너무 많아요. 직업소개소에서 식모 자리 알아봐준다고 해 따라가고, 밥 준다고 따라가고 해서 가 보니 기지촌인 경우들이 너무 많았어요. 미군 위안부로 살 줄 알았다면 누가 거기 따라갔겠어요.
일본군 위안부도 인신매매되어 간 사람이 많다고 들었어요. 일본군 위안부는 피해자로 인정하는데 왜 미군 위안부 피해자들은 국가가 눈감고 있는 건가요. 당한 사람은 있는데 왜 책임지는 사람이 없냐고요. 당신 딸들이 붙잡혀 간 거라면 가만히 있겠어요? 언니들이 늙고 병들어 죽어가고 있어요.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준비하다가 벌써 세분이나 돌아가셨어요. 저는 사과를 원해요. 늙고 병든 우리 몸뚱어리를 국가에서 책임져주기를 바라요. 그게 국가가 해야 할 일이라고 믿어요.
하늘에 있는 우리 (기지촌) 언니들을 위해서 제가 이렇게 나섰어요. 누군가는 증언을 해야 할 것 같아서 이렇게 용기를 냈어요. 사람들이 우리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었으면 좋겠어요. 제발 잘 좀 보도해 주세요.”
김정자씨는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기까지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그의 어린 시절 기억을 떠올리는 것 자체가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이다. 지난달 20일 약 4시간에 걸쳐 인터뷰를 진행할 때 그는 계속 눈물을 흘렸다. 30분 증언하다 10분 울고, 30분 증언하다 다시 10분 우는 것이 반복됐다. 낙검자 수용소에서 겪었던 이야기를 고백할 때는 구토를 하기도 했다. 인생 전체가 국가가 간섭한 성폭력으로 얼룩져 있던 그에게 이번 인터뷰는 그렇게 힘든 과정이었다. 따라서 인터뷰 때 자세한 내용을 묻지 않고 최소한의 질문만 하려고 노력했다. 대신 김씨와 진행한 인터뷰와 그의 증언록 <미군 위안부 기지촌의 숨겨진 진실>(2013)의 내용을 종합해 이 글을 썼다.
김정자씨는 인터뷰 뒤 바닷가로 가 새움터(기지촌 여성 지원 운동을 벌이는 시민단체) 활동가들과 다음날까지 통곡했다고 한다. 힘든 인터뷰를 결심해준 김씨에게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김정자씨는 현재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최소한의 생활비를 번다. 그를 부양하는 가족은 없다. 대신 새움터의 도움을 받고 있다.
요즘 조폭이 사는 법… 소규모로 쪼개 속도전, 이권 있을 땐 이합집산 1113국민
쉽게 적발되지 않으려 변신… 유령법인 세워 사기 행각도
‘조폭’의 생존 방식이 바뀌고 있다. 정체가 가급적 드러나지 않도록 조직을 잘게 쪼개고 합법을 가장해 각종 이권에 손댄다. 돈을 좇아 경쟁 조직 간에 제휴하거나 이합집산한다. 기존 대형조직의 두목이 수감되거나 은퇴하고, 조직원이 고령화하면서 조폭 세계의 지각변동이 빨라지고 있다.
경찰청이 12일 발표한 특별단속 결과는 이런 실상을 보여준다. 경찰은 올해 들어 지난달까지 조폭 3024명을 검거해 568명을 구속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검거 인원이 77%(1311명) 늘어난 데 비해 검거 건수는 601건에서 1374건으로 128.6% 늘었다. 소규모 조직이 크게 늘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올해 검거 조직 중 10인 이하 비중은 55.8%로 절반을 넘었다. 이 비율은 2013년에 42.8%였다. 올해는 11명 이상∼20인 이하(27.9%)까지로 확대하면 소규모 조직 비율이 80%를 넘어선다.
왜 요즘 조폭은 ‘작은 조직’을 선호할까. 가장 큰 이유는 치안 당국의 감시망에 쉽게 걸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위세보다 실속을 우선시한다고 볼 수 있다. 덩치가 가벼워진 만큼 필요에 따라 헤쳐 모이는 속도도 빠르다. 활동 기간이 6개월도 안 되는 조폭이 46.5%였다. 6개월∼1년 미만도 27.9%로 많았다.
여기에다 범죄 유형도 변하고 있다. 전형적 조폭 범죄인 갈취·폭력이 67.8%로 아직 대다수지만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이 비율은 2013년 71.7%, 지난해 70.3%에 이어 올해 70% 밑으로 떨어졌다. 도박장·게임장 등 사행성 영업과 마약·성매매·사채 같은 범죄는 2013년 7.2%에서 6.6%로 줄었다가 올해 7.5%로 뛰었다.
경찰 관계자는 “과거 조폭은 대규모 조직원을 거느리며 유흥업소 보호비 따위를 뜯거나 세력 확장을 위해 집단폭력을 행사했다. 최근에는 이런 방식에서 벗어나 기업형, 지능형 범죄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경북 구미의 한 조폭 일당은 유령법인 13개를 세운 뒤 회사명의 통장 54개를 만들어 사기용 미끼로 사용했다. 통장을 국내외 도박 사이트 운영자들에게 개당 100만∼140만원에 팔아 6800만원을 챙겼지만 주목적은 이게 아니었다. 은행 자동응답서비스(ARS)로 자신들이 판 계좌의 잔액을 조회해 도박자금이 입금된 것으로 확인되면 계좌거래를 정지시키고 통장을 재발급받아 돈을 가로챘다.
이밖에도 불법 도박사이트 운영, 보험사기, 불법대부업, 대포물건 유통,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 등 돈 되는 범죄라면 끼지 않는 데가 없다. 경비업과 채권추심업도 한다. 조폭 중 무직자 비율은 눈에 띄게 줄고 있다
박정희대통령 학교가는길’ 현수막에 놀란 네티즌 1113국민
13~14일 경북 구미 등에서 열리는 박정희 전 대통령 탄신 98주년 행사와 관련한 인증 사진이 각종 커뮤니티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특히 젊은 네티즌들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태어난 날을 기념하는 행사가 있는 줄 몰랐다”며 신기해했다.
13일 각종 커뮤니티에는 구미초등학교 앞에 걸린 환영 현수막 사진이 퍼지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 학교 가는길 체험’이라고 적힌 환영 현수막이었다. 구미초등학교 총동창회에서 제작한 이 현수막에는 2015년 11월 13일 이같은 행사가 진행된다고 명시됐다.
‘박정희 대통령 학교 가는길 체험’은 말 그대로 박정희 대통령이 학교를 다녔을 당시 걸었던 길을 걷는 행사다. 구미 상모동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에서 모교인 구미초등학교까지 6.4㎞를 걸으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 통학길 발자취를 더듬어본다고 한다. 기관·단체장, 박정희대통령생가보존회 등 관련 단체 관계자, 구미·정수초등학생 등 260여명이 이 행사에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 날에는 구미시 공단동에 있는 ‘박정희 소나무’에 탄신 98주년 의미를 담아 막걸리 98ℓ를 주는 행사도 열린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어린 시절에 소를 데려와 풀을 뜯게 하고 자신은 이 소나무 밑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책을 읽었다고 한다.
땅 짚고 헤엄치는 ‘진실한 사람들’ 1112한겨레
20대 총선 노리는 ‘진실한 사람들’
“진실한 사람들만이 선택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0일 국무회의에서 했던 말 한마디에 정치권이 들썩였습니다. ‘야당과 비박에 대한 노골적인 낙선운동이자 선거 개입’이라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고 노무현 대통령 탄핵 과정을 들어 이번 발언을 강하게 문제 삼는 비판도 있습니다.
친박계 인사로 꼽히는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은 11일 JTBC 손석희 앵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진실한 사람’이 대통령 측근을 말하는 거냐”는 질문에 처음엔 “국민의 뜻을 받아들여서 민생에 전념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대답했다가, 끝내 “임기 말에 적극적으로 대통령을 뒷받침해줄 사람”이라고 털어놨습니다.
다섯달 뒤 치러질 4·13 총선에 청와대에서, 내각에서, 공기업에서 박 대통령의 눈도장을 받은 친박 인사들이 대거 출마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림에서 보듯 이른바 ‘진실한 사람들’은 대부분 영남과 서울 강남에 몰리고 있습니다. 그림에 있는 27명의 친박계 또는 청와대·내각 출신 인사들 가운데 야당 의원 지역구에 도전하는 이는 겨우 5명입니다. 이들은 ‘핵심 친박’이라고 부르기 힘듭니다.
‘핵심 친박’들은 “박근혜 정부의 국정안정을 위하여”라면서도 한사코 현재 새누리당 지역구로 몰립니다. 다른 친박 현역 의원과 맞붙어 ‘친박 대 친박’의 대결이 펼쳐지기도 합니다. 새누리당 서울시당 위원장인 김용태 의원은 12일 라디오에 나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운영 기반을 확충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끼리 싸우는 지역 가면 뭐하겠습니까. 야당 의원 지역 가서 한 석이라도 더 갖고 와야 국정운영 기반이 확대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박근혜 정부에서 장관이나 청와대 수석까지 지낸 분들이 그냥 자기 당선되기 좋은 지역에 찾아가서 하겠다는 것은 박근혜 정부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는 뜻이 아니라 박근혜 정부에서 고위직에 있었다는 프리미엄만 누리려고 한다라는 이런 비판에서 어떻게 자유로울 수가 있겠습니까.”
더는 ‘친박’이라는 두 글자만으로 미래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대세는 ‘친박연대’의 진화 버전, ‘진박’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친박’한 이유가 이것이었군요
“고달픈 국민의 아우성을 폭력시위로 매도말라”1113한겨레
▲집회 참가자들이 세월호 유가족에게 가려다 광화문광장 북단 경찰 차벽에 막혀 있다. 박승화 기자
민주노총, 민중총궐기 불법 규정한 정부 담화문 반박
“사회혼란때 내리는 갑호비상령과 차벽이 민주주의냐
청와대 밀실·불통정치가 초래한 현실 먼저 성찰하라”
전국 10만여 노동자, 농민, 학생들이 참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민중총궐기’를 하루 앞둔 13일, 정부와 민주노총의 ‘장외 기싸움’이 팽팽하게 벌어졌다. 민주노총은 성명서를 내, “민중총궐기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엄단하겠다”는 기조를 밝힌 관계부처 합동 담화문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전쟁터 같은 현실에 지친 민중들의 아우성을, 폭력시위로 매도하는 것은 누구를 위한 정부냐”는 것이다.
▶정부, 협박 담화문…교사·공무원·농민에 “사소한 위반도 엄중 조처”
민주노총은 먼저 박근혜 정권에 대한 분노가 ‘민중총궐기’의 동력이라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성명서에서 “청와대 밀실에서만 이뤄지는 불통정치가 초래한 현실은 해고와 과로, 불안과 자살, 포기와 증오가 난무한 ‘헬조선’”이라며 “그 책임을 정부와 재벌은 성찰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민중들이 스스로 일어나 말하지 않는다면 변화와 희망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민주노총은 이어 “국민의 기억을 지배하겠다며 국정교과서 역사 쿠데타를 감행하고 해고를 더 쉽게 하고 비정규직을 더 늘리는 노동개악까지 밀어붙이고 있다”며 “대통령이 지구 반대편까지 걸핏하면 해외순방에 나서는 정성의 백만분의 일이라도 국민들의 호소에 귀 기울였다면 요란스레 관련부처 담화를 발표할 일도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청와대 방향으로 차벽을 설치하겠다는 경찰 입장에 대해서도 민주노총은 항의했다. 민주노총은 “경찰은 극심한 사회혼란 상태에서나 내리는 갑호 비상령을 내려 민중총궐기를 폭력으로 취급하고 있다”며 “맨손 시민들의 평화 행진을 청와대 인근이라며 무조건 막아서는 대응은 선진사회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또 합법적인 인도 행진을 경찰이 막지 않는다면 평화로운 행진을 할 예정이라며, “민생과 노동기본권 보호, 역사의 정의를 외치는 시민들의 목소리와 평화로운 발걸음으로부터 청와대를 경호하는 것이 민주주의냐”고 되물었다.
주요 대학 논술시험 등과 연관해 ‘교통지옥’을 강조한 보수언론의 보도에 대해서도 민주노총은 쓴소리를 냈다. 수험생의 불편만 부풀리는 보도 태도는 매우 악의적이라는 것이다. 민주노총은 “공교롭게 학생들의 논술시험과 날짜가 겹치게 됐지만, 다행히 논술시험을 치르는 12개 대학 중 11개 대학은 집회장소와 상당히 멀어 집회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며 “또 숙명여대 등 다수의 학교는 오전에 시험을 치러 오후에 열리는 민중총궐기와는 큰 관련이 없다”고 했다. 이날 민중총궐기는 오후 2시께부터 서울광장·서울역·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등 서울 각지에서 시작될 예정이다.
민주노총은 또 수험생 이동에 지장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민주노총은 집회 참여 시민들한테 “혹시라도 주변에 불편을 겪는 수험생이 없는지 살펴주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어서 “무엇보다 경찰은 평화로운 집회를 위헌 차벽과 병력으로 차단하는데 역량을 집중할 게 아니라 수험생 이동 지원에 집중하길 바란다”며 “진정 학생들을 위한 이동대책을 걱정하는 것이 경찰다운 책무”라고 강조했다.
민주노총은 무엇보다 민중총궐기를 보며 반성하지 않는 정부와 여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세월호 참사와 역사 교과서 국정화, 언론장악, 철도·의료·교육 민영화, 그리고 노동개악까지, 박근혜 정권의 실정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며 “10만여명에 달하는 민중들이 서울로 집결하는 민중총궐기를 보며 반성해야 할 것은 정부 여당”이라는 것이다. 민주노총은 특히 “기업에게는 온갖 지원책을 주면서 노동자에겐 쉬운 해고와 취업규칙 개악을 강요하는 것이 노동개혁이냐”며 “정부가 노동개악 강행을 중단하지 않는다면, 이번 총궐기는 12월 총파업의 전초전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14일 민중총궐기는 오후 2시30분 서울광장에서 열리는 ‘2015 전국노동자대회’, 오후 2시 중구 태평로에서 열리는 ‘농민대회’, 오후 1시 서울역 광장에서 열리는 ‘생존권 쟁취 빈민-장애인 대회’, 오후 1시30분 대학로 방송통신대학교 앞 ‘역사쿠데타 저지! 세월호 진상규명! 시민대회’, 오후 2시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헬조선 뒤집는 청년총궐기’ 등으로 서울 각지에서 시작된다. 이들은 오후 4시께 광화문 네거리로 모여 ‘박근혜 정권 퇴진! 뒤집자 재벌세상! 민중총궐기’를 진행할 예정이다.
▲6.10항쟁 21주년인 2008년 6월 10일 저녁 광우병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100만인 촛불시위에 참가한 시민들이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서 시청 앞 까지 태평로 전체를 가득 메운 채 쇠고기 재협상을 촉구하고 있다. 박서강기자 pindropper@hk.co.kr
▲ 민중총궐기를 하루 앞두고 신촌, 홍익대학교 주변, 대학로 등 서울 도심 곳곳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풍자한 그라피티(스프레이로 그린 낙서 같은 문자나 그림) 수십 개가 목격됐다. ⓒ 오마이뉴스 제보사진
▲ 김현웅 법무부 장관,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 등 관련부처 장·차관들이 13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14일 민중총궐기 투쟁대회’ 불법행위 엄정 대응 공동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여인홍 농림축산식품부 차관, 정재근 행정자치부 차관, 김현웅 법무부 장관,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 이영 교육부 차관. 연합뉴스.
▲14일 오후 6시30분 경찰 버
스 등 차벽으로 둘러싸인 서울 광화문 광장 안에는 현장에 근무 중인 경찰관들을 제외하고 다른 시민들은 보이지 않고 있다 경향
▲14일 오후 서울에서 열리는 민중총궐기대회에 참석하는 전국금속노동조합 경남지부 조합원들이 이날 새벽 창원 만남의광장 앞에 모여 버스에 오르고 있다. ⓒ 윤성효 오마이뉴스
'10만 민중총궐기' 시위대, 경찰과 '격렬 충돌' 10-14 노컷뉴스
14일 10만 명에 이르는 참가자들이 모인 민중총궐기 대회에 참가한 시민들과 경찰이 서울 광화문 광장 곳곳에서 격렬히 대치중이다. 250개 부대, 2만여명의 인력을 투입한 경찰은 캡사이신 물대포, 소화기 등을 동원해 시위대의 청와대 방면 행진을 막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 '민중총궐기 대회', 분노한 민중 14일 오후 서울 서울시청 광장과 남대문 앞에서 열린 전국노동자대회 및 농민대회에 참석한 노동자와 농민들이 박근혜 정권을 규탄하고 있다. ⓒ 이정민
◇ 광화문 광장 곳곳에서 캡사이신 물대포, 소화기 발사
이날 오후 서울시청 광장에서 집회를 마친 4만여 명(경찰 추산) 시위대는 오후 5시쯤부터 광화문을 향해 진출을 시도했다. 시위대는 경찰의 차벽을 예상한 듯 차벽을 걷어내기 위해 밧줄까지 준비했다. 경찰버스 바퀴에 밧줄을 묶은 시위대는 줄다리기 하듯 차벽을 하나씩 걷어내기 시작했고 이에 맞선 경찰은 캡사이신 물대포를 쏟아부었다.
▲ '민중총궐기 대회' 민중들의 분노 14일 오후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민중총궐기 대회에 참석한 참가자들이 차벽을 세워진 경찰버스를 당기고 있다. 경찰은 물대포를 쏘며 이를 저지하고 있다. ⓒ 이정민
▲ 경찰, 민중총궐기 대회 참가자향 캡사이신 난사 14일 오후 서울 중구 청계광장 앞에서 경찰이 '민중총궐기 대회' 참가자들을 향해 캡사이신 물대포를 난사하자, 한 시민이 박근혜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피켓을 들어보고 있다. ⓒ 유성호
교보문고 인근에서는 소화기도 등장했다. 경찰의 차벽에 막힌 일부 시위대는 차벽에 향해 보도블럭을 던졌으며, 경찰은 물포와 소화기 등을 살포했다. 격한 몸싸움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일부 참가자들은 미리 준비해둔 쇠파이프를 경찰관들을 상대로 휘둘렀다. 경찰이 진압과정에서 사용한 캡사이신은 인체에 크게 유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화학물질의 특성과 위험에 관한 정보를 알려주는 국제기구인 물질안전자료(MSDS)는 캡사이신을 ‘인체에 사용해서는 안되는 물질’로 규정하고 있다. 많은 양의 캡사이신에 노출되면 생체징후의 장애를 초래할 수 있다는 의학보고도 있다.
14일 하루 서울 광화문 일대에 10만여명이 집결한 ‘민중총궐기 투쟁대회’에서 경찰이 쏜 캡사이신 분사액은 최종적으로 얼마나 될까. 올해 초 1만여명이 모인 세월초참사 범국민대회 때 보다 현장에 나온 참석인원이 거의 10배 가까이 된다는 점에서 그 사용액이 최고치를 경신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경찰 등에 따르면 세월호참사 범국민대회 집회가 열린 지난 4월18일 하루 동안 사용한 캡사이신 분사액은 465.75ℓ으로 지난해 사용된 193.7ℓ의 약 2.4배에 달했다.
이날 쓰인 캡사이신 분사액은 2010년 42.54ℓ, 2011년 219.69ℓ, 2012년 63.82ℓ 등 3년 사용량을 합친 것보다도 많았다. 이는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 의혹이 일어 촛불집회가 빈번하게 열렸던 2013년 사용양인 484.79ℓ와 비슷한 규모였다.
광화문 경찰 버스에 ‘콩식용유’가 발라진 까닭은
경찰이 53개 노동·농민·시민사회단체가 참가하는 ‘민중총궐기 투쟁대회’의 중간 집결지인 광화문 통행을 막기 위해 일부 경찰 버스에 콩식용유를 바른 것으로 알려졌다.
집회 참가자들과 경찰관들 사이에 물리적 충돌이 예상되는 가운데 경찰 버스를 타고 오르거나 밀어서 넘어뜨리는 것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풀이된다.◇ 10만 여명 참여…광우병 이후 7년만에 최대 규모
53개 시민사회단체와 333개 지역단체로 구성된 '민중총궐기 투쟁본부'는 이날 오후 1시부터 서울 도심 각지에서 부문별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개혁과 역사 교과서 국정화 정책을 규탄하고 청년실업, 쌀값 폭락, 빈민 문제 등의 해결책 마련을 촉구했다.
한편 이날 차질이 우려됐던 각 대학 논술고사는 이상 없이 진행됐다. 대규모 집회였지만 논술고사에는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수험생 11만 4000명이 성균관대와 고려대 등 서울 시내 12개 대학에서 진행하는 수시모집 논술고사에 응시했다.
가두시위 벌인게 교과서 때문? 거리로 나온 보수단체 1114미디어오늘
민중총궐기 한켠에서 맞불집회…국정교과서 비판하는 청소년들에 접근하다 경찰에 제지
“현재 2030 세대는 왜곡된 역사교육을 받으며 세계관을 형성했다. 청소년 시기에 반(反) 시장경제 의식과 반 대한민국 의식이 형성돼 작은 음모론에도 무분별하게 거리로 쏟아져 나와 가두시위를 벌이며 반정부구호를 외치는 이유다.”
14일 오후 서울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린 ‘올바른 역사교과서 국정화지지 제 3차 국민대회’에서 여명 대학생포럼 회장(25세)가 한 말이다. 국정교과서를 반대하는 ‘민중총궐기’로 5만명 이상 모일 것이라 예상되는 상황을 두고 “무분별하게 거리로 쏟아져나왔다”고 발언한 것이다. 이날 동화면세점 앞에서 오후 3시부터 2시간 여 동안 열린 국정교과서 지지 집회에서, 참가자들은 국정교과서를 지지하는 발언을 이어갔다.
이 과정에서 작은 충돌이 이는 등 소란이 빚어졌다. 동화면세점 앞과 게이트웨이타워 앞에서 열린 이 집회에는 고엽제 전우회, 대한민국 재향군인회, 대한민국 재향군인회 여성회, 대한민국 재향경우회, 어버이연합, 엄마부대, 정의사회실천 연합 등 25개 단체의 회원들이 참여했다.
국정교과서지지 집회현장에는 “대한민국의 유구하고 찬란한 역사가 어떻게 왜곡, 미화될 수 있겠습니까?”,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를 전폭 지지한다”라는 문구가 쓰여진 현수막이 걸렸다. 참석자들이 들고 있는 손피켓에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즉각 동참하라!”, “대한민국이 하나이듯 역사도 하나입니다”라는 문구가 쓰여있었다.
한 집회참가자는 발언대에 올라 “좌편향된 교과서 때문에 온 나라가 지금 혼란에 빠져있다”며 “역사 교육 90%가 좌편향이라고 한다. 국정교과서만이 역사를 바로잡을 수 있다는 신념으로 여기 나왔다”고 말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옳소”하고 동의했다.
맞불집회에서 국정교과서를 반대하는 시민들과의 작은 충돌도 있었다. 이들은 시민들에게 국정화 지지 홍보 전단을 나눠주고 피케팅을 하며 국정화 지지를 홍보했다. 이에 한 시민이 집회현장을 향해 “지금 문제가 뭔지 알고 계십니까, 부끄럽지도 않으십니까”라고 외치고 집회참가자들과 실랑이가 벌어졌다.
또한 집회 현장 뒷켠에서 중학교 3학년 학생 5명이 “학생들이 원하는 교과서는 국정교과서가 아니다”, “우리까지 친일파로 만들 셈이냐”라고 적힌 손피켓을 들고 서있자 집회 현장 한켠이 소란스러워졌다. 국정교과서지지 집회 참가자들이 “어느 단체에서 나왔냐”, “집회 신고를 했냐”고 소리를 질렀다.
피켓시위에 나선 한 학생은 “박정희 대통령이 잘한 일도 있고 잘못한 일도 있는 걸로 안다”며 “박정희 대통령의 공과가 모두 실린 교과서로 배우고 싶고 다양한 관점으로 역사를 보고싶다”고 말했다. 소란이 커지자 경찰 20여명이 출동해 20분 정도 학생들과 집회참가자들의 충돌을 막았다.
국정교과서 지지 2차 대회부터 집회를 참가했다는 한 집회 참가자는 “한국의 99%가 빨갱이라는데 어린학생들까지 이렇게 된 것이 안타깝다”며 “내가 저 학생들에게 물어봐야겠다”며 학생들에게 다가가다 시민들에게 저지당하기도 했다.
하루 종일 비가 내린 날에도 국정교과서지지 참가자들은 우비를 입고 손팻말을 들고 “국정교과서 관철하자”는 구호를 외쳤다. 동화면세점 일대를 채운 국정교과서지지 집회 참가자들은 집회 측 추산으로 5000명이었다. 집회가 시작된 오후 3시부터 약 2시간여 동안 이들은 “대한민국”, “종북세력 물러가라”를 외치며 시청 편에서 열린 ‘민중총궐기’집회에 맞불을 놓았다.
경찰 물대포 맞고 쓰러진 농민 생명 위독
무리한 물대포 조준 사격 경찰력 남용 도마 위에
서울대 병원 후송, 의식 잃은 상태에서 의료진 '가족 부르라'
민중총궐기 대회 참가자 한명이 경찰과 대치 중에 부상을 입어 생명이 위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병옥 전국농민회총연맹 사무총장은 "보성농민회 백아무개씨(70)가 7시 20분경 종각 근방에서 물대포 맞아서 서울대 병원 응급실로 후송됐다"고 말했다. 민주노총에 따르면 백씨의 상태를 본 의료진은 백씨가 속한 보성군 농민회 권용식 회장에게 생명이 위독한 상태로 심각한 상황이라며 가족을 부르라고 말했다
집회 현장에서 이 농민이 쓰러졌는데도 경찰이 계속해서 물대포를 쏜 것으로 알려지면서 경찰력을 남용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경찰은 “정확한 사고경위를 파악 중”이라고 밝혔다.
세월호 아이들 ‘슬픈 수능’…광화문광장에 추모의 책가방 1113한겨레
풀뿌리시민네트워크와 4·16연대가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인 12일 오후 4시16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2015년 수능일 세월호 기억행동, 아이들의 책가방’ 행사에서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학생들을 추모하는 가방을 놓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우리 아이도 오늘 수능시험장으로 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 12일 오전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학생들의 체취가 그대로 남아 있는 경기도 안산 단원고 ‘명예 3학년’ 교실.
시험장으로 가지 못한 엄마는 딸이 앉아 있던 책상에 엎드려 굵은 눈물을 쏟아냈다. 또 다른 교실에서는 덥수룩한 수염이 얼굴을 뒤덮은 초췌한 모습의 아버지가 아들이 쓰던 교과서를 어루만지며 깊은 한숨만 내쉬었다. 아이를 시험장으로 보내는 대신, 이들은 이날 오후 수원지법 안산지원 410호 법정에 설치된 ‘세월호 중계법정’에서 이준석 선장 등에 대한 대법원 선고 재판을 지켜봐야 했다.
같은 시각, 세월호 참사 당시 극적으로 탈출해 구조됐던 단원고 3학년 학생 72명은 ‘고통의 시간’을 뒤로한 채 수능을 치렀다.
'어뷰징' 퇴출밖에 답이 없다1113한국
어뷰징은 인터넷에 쓰레기를 쌓는 행위다. 게티이미지뱅크
“IS 코엑스 폭파시도 첩보 입수, 코엑스에서 콘서트 여는 ‘소녀시대 유리의 치명적 볼륨감&아찔한 검은색 스타킹’” 지난달 말 한 인터넷 매체 사이트에 올라온 정체 모를 기사의 제목이다. 뭘까. 코엑스 폭파 시도와 소녀시대 유리, 치명적 볼륨감은 도대체 무슨 연관이 있을까.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가면 사과…’ 식으로 이어지는 21세기판 의식의 흐름 기법인가.
뉴스를 포털사이트에서 자주 보는 사람이라면 감이 올 것이다. 지난달 25일 코엑스에 폭탄 테러가 있을지 모른다는 첩보가 접수돼 ‘코엑스 폭파’ 등이 포털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오르자 등장한 ‘어뷰징’ 기사다. 어뷰징(abusing)이란 사용자들이 포털사이트에서 실시간 인기 검색어를 눌러 검색하면 자사의 기사가 상위에 노출되도록 검색 알고리즘을 속이는 편법 행위를 말한다.
초창기 어뷰징은 똑 같은 내용의 기사를 ‘복사+붙여넣기’ 기법으로 수십, 수백 건씩 작성해 끊임없이 반복해 내보내는 방식이었다. 검색화면에서 기사가 최근 시간 순으로 노출되는 것을 노린 것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말부터 네이버가 이른바 ‘뉴스 클러스터링’을 시작하자 이런 단순작업이 무의미해졌다. 클러스터링이란 뉴스 검색화면에서 비슷한 내용의 기사를 일일이 다 보여주지 않고 묶음으로 보여주는 것을 말한다. 같은 기사를 수백 건씩 보내봤자 하나로 묶여버리니 소용이 없다.
그러자 일부 언론사들은 좌절하지 않고 좀더 교묘하고 복잡한 어뷰징 기법을 고안하기 시작했다. 처음 나타난 것은 검색 키워드 반복 삽입이었다. 글의 시작에 반드시 키워드를 넣고 가급적 모든 문장에 키워드를 넣어 쓰며, 글 마지막에도 키워드를 여러 개 붙인다. 검색 알고리즘이 관련성이 높은 기사라고 판단하고 묶음 기사의 상단에 배치하도록 하기 위한 전략이다. 최근에는 아예 이런 키워드는 흰 글자로, 나머지 본문은 검은 글자로 입력해 겉으로는 키워드가 안 보이지만 알고리즘에는 노출되도록 하는 수법까지 나왔다. 과거 기사의 제목과 본문을 지우고 새 키워드를 넣은 기사로 바꾸어 재송신하는 이른바 ‘엎어치기’ 기법도 개발됐다. 같은 내용의 기사라 하더라도 가급적 처음 단독보도한 매체에 가중치를 부여하는 알고리즘을 공략한 것이다.
검색 알고리즘이 비슷한 내용의 기사를 한데 묶는다는 점에 착안, 같은 키워드를 사용하되 아예 새로운 내용을 넣어 새로운 묶음이 만들어지도록 하는 기법도 활용되고 있다. 키워드가 연예인일 경우 이 연예인의 과거사를 이유 없이 다시 쓰는 식이다.
12일 인터넷에서는 불안장애를 겪어 온 개그맨 정형돈의 방송활동 중단 소식이 큰 화제였다. 역시 어뷰징 기사가 속속 등장했고 곧 정형돈의 과거를 소재로 한 기사도 쏟아졌다. 이 중에는 심지어 ‘불안장애 정형돈 향한 안정환 건강 일침 “애는 어떻게 낳았냐”’라는 황당한 제목까지 있었다. 연초에 정형돈과 안정환이 주고받은 농담을 ‘불안장애 정형돈’이란 키워드에 연결시켜, 마치 안정환이 불안장애를 겪는 정형돈에게 면박을 주기라도 한 것처럼 낚시 제목을 만든 것이다.
반대로 키워드가 연예인과 관련 없다면 사건과 무관한 연예인 이름을 넣어 엉터리 기사를 만든다. 맨 처음 소개한 코엑스 폭파-소녀시대 유리 기사 역시 그런 식으로 만들어진 프랑켄슈타인 같은 기사다.
어뷰징을 막기 위해 포털이 검색 알고리즘을 아무리 바꿔도 어뷰징 매체들은 무한 변신하며 쓰레기 기사를 내보낸다. 이를 막는 답은 확실한 처벌밖에 없다. 그렇지 않다면 한국의 인터넷 뉴스는 99%가 쓰레기로 채워지고 양질의 기사는 묻힐 수밖에 없다.
그 동안 유력 중앙 일간지와 경제지마저 어뷰징을 서슴없이 해 와 포털들이 적극적으로 제재를 하지 못했다. 그런데 최근 언론사의 포털사이트 진입과 퇴출을 심사하는 포털제휴평가위원회가 발족해 관심을 받고 있다. 어뷰징 행위를 지속하는 언론사에 대해 퇴출까지 포함한 확실한 징계를 하지 않는다면 지금 같은 상황은 개선되기 어려울 것이다. 위원회의 칼이 어디를 향할지, 얼마나 날카로울지 모두 주시하고 있다.
박근혜정부가 자꾸 1948년을 '건국'으로 보려는 이유 1113오마이뉴스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 '국정화 저지 시국기도회'에서 뉴라이트 반박
"현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단순히 국정화의 문제가 아니다. 국정화는 민주주의를 사수할 것이냐 독재로 회귀할 것이냐의 싸움이고 민주와 반민주의 투쟁이다."
지난 12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 향린교회에서 한국기독교장로회(아래 기장, 총회장 최부옥 목사) 주최로 열린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저지를 위한 시국기도회'에서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전 국사편찬위원장)가 한 말이다. 이 명예교수는 시국기도회에 증언자로 나서 국정화 반대 이유 및 국정화 찬성론자들의 논리적 결함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이 명예교수는 먼저 역사 교과서의 성격부터 정의했다.
"역사 교과서는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그 시대 역사학계의 공통된 업적이 있다. 이를 간추려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게 바로 역사교과서라고 생각한다. 역사교과서를 만들고자 하면 근현대사를 망라해 오늘날 국사학계의 공통적인, 역사적 업적을 정리해서 내면 된다. 국정화는 정부가 역사학자로부터 이런 일을 할 권리를 빼앗아 국가가 의도하는 대로 하겠다는 것이다. 역사학자들이 국정제를 찬성할 수 없는 중요한 이유다."
근현대사의 최대 쟁점은 1948년 8월 15일이 대한민국 건국이냐, 정부 수립이냐의 논란이다. 이에 대해 이 명예교수는 "이 논란이 역사학자들에게는 아주 중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1948년 8월 15일에 들어선 건 '대한민국 정부'라고 분명히 못 박았다.
"1948년 8월 15일이 정부수립이냐 대한민국 수립이냐는 논란은 역사학자들에게는 아주 중요하고 민감한 쟁점이다. 그해 5월 10일 선거가 치러졌고, 5월 31일엔 국회가 열렸다. 국회의장은 이승만이었다. 이승만은 '우리는 기미 혁명 3.1운동으로 세운 대한민국 임시정부'라는 말을 했다.
그가 말한 임시정부는 크게 한성, 상해, 블라디보스톡 대한국민의회 임시정부 등 세 개다. 안창호 선생은 셋을 합치면서 '한성 정부의 정통을 잇도록 한다'고 했다. 상해 임시정부의 경우 각도 대표 29명이 모인 데 대해 한성 정부에 참여자가 훨씬 많았기에 정통성이 있다고 본 것이다. 이승만은 한성 정부에서 집정관 총재직을 맡았다. 이에 비해 상해에서는 국무총리직이었다. 이승만은 집정관 총재가 훨씬 낫다고 봤다.
이승만의 발언은 큰 틀에서 보면 임시정부의 정통을 잇는다는 말이다. 제헌 헌법 서문에도 '대한민국은 3.1혁명으로 대한민국을 건국하고 이러이러한 정부를 둔다'는 취지의 문구가 있으니 확인해 보라."
'대한민국은 일제 강점 이겨내며 세워진 나라'
▲ 지난 12일 서울 중구 명동 향린교회에 열린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저지 시국기도회'에 증언자로 참석한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 ⓒ 지유석
이 명예교수의 지적대로라면 결국 대한민국 건국 시점은 1948년이 아닌 1919년인 셈이다. 그렇다면 1948년을 대한민국 건국 시점으로 보는 쪽의 근거는 무엇일까? 이 명예교수의 말이다.
"1948년에 대한민국 건국이 이뤄졌다는 소위 '건국절론자'들은 '국가는 영토, 국민, 주권 등 세 가지가 있어야 하는데 1919년엔 없었다. 따라서 1919년 건설은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얼핏 논리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제헌 헌법을 논의했던 사람들은 이를 몰랐을까? 알았다. 국토, 국민, 주권을 갖춰야 나라임을 알았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헌법에 넣은 이유가 있다.
제헌 헌법을 기초했던 의원들과 지성인들은 '대한민국은 1919년 건립됐지만 그동안 일제가 강점했기에 정부를 강토 안에 세우지 못했다. 그래서 대한민국을 운영하기 위해 해외 정부를 세울 수밖에 없었는데 그게 임시정부다'라고 정리했다. 그렇다면 현 정부는 왜 1948년을 대한민국 건국으로 보려 하는가? 바로 뉴라이트 계열의 식민지 근대화론 때문이다. 이건 역사를 보는 큰 흐름과 관점의 차이다. 식민지 근대화론은 '식민지하에서 근대화 되어서, 그 힘으로 1948년 대한민국을 건국하게 됐다'는 주장이다. 그러니 이승만은 국부로 치켜세워야 하고, 한일 회담 통해 받은 자금으로 제철소 만들고 고속도로 닦은 박정희를 치켜세워야 했다.
그런데 이승만은 '1945년 연합국에 의해 해방되고 그 덕에 1948년 대한민국을 건국했다고 말하면 역사에 창피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일제의 강포한 지배하에 있을 적에 그걸 뚫고 삼일 민주혁명 일으켜 대한민국을 건국했다. 이게 자랑스럽지 않느냐?'고 말한 적이 있었다. 이승만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이 정도 역사의식 가졌으면 좋겠는데 이를 전혀 말하지 않는다."
이 명예교수는 현 국정화 시국이 단순히 국가가 역사교과서를 발행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고 경고했다. 국정화는 대한민국의 수립과 발전, 그리고 나아가야 할 방향을 두고 벌어지는 민주세력과 독재세력 사이의 투쟁이라는 것이다.
"지금 국정화의 싸움은 우리나라가 대한민국 독립운동의 전통 위에서 세워졌느냐, 아니면 친일·식민지 근대화론에 입각해 세워졌느냐 하는 싸움에 서 있다. 1987년 헌법은 4.19민주혁명 이념 강조하고 민주국가를 이뤄간 데 대한 신념을 강조한다. 특히 대한민국은 독립운동 전통 위에서, 민주화 전통을 가지고 궁극적으로 평화통일로 이끌어가야 한다고 명시했다.
대한민국을 어떻게 이끌어 갈 것인가? 4.19혁명으로 시작돼 광주 민주항쟁, 1987년 6월 혁명에 이르는 민주혁명의 전통 위에서 한국을 이끌어가야 할 것인가? 아니면 박정희-전두환 독재와 부패세력에 의해 발전된 것으로 대한민국을 이해할 것인가? 국사학자들은 첫째, 독립운동 전통에서 대한민국이 이뤄졌고 둘째 대한민국의 발전은 민주세력에 의해 이뤄졌으며, 지향점은 평화 통일이라고 본다. 이제 아이들에게 평화 통일을 지향하는 역사 가르쳐야 할 것이다."
문재인 “말 잘 듣는 언론만 살려 놓겠단 건가” 1113 미디어오늘
[토론회] “신문법 개정, 다가올 총선·대선 언론 재갈 물리기”… “소규모 언론사는 광고주 협박할 힘도 없다
평화뉴스는 보수색이 강한 대구 지역에서 정부와 기업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몇 안되는 언론이다. 후원을 중심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구성원은 취재기자 두 명과 편집국장 뿐이다. 편집국장은 대표이사이면서 회사의 경리 업무와 청소까지 한다. 이 언론사는 이렇게 12년째 운영되고 있다. 그런데 어쩌면 내년에 평화뉴스는 사라질지 모른다. 신문법 시행령 개정 때문이다.
신문 등의 진흥에 관한 법률시행령 일부개정안이 지난 3일 국무회의를 통과해 박근혜 대통령의 재가만 남겨둔 상황이다. 개정안은 취재 및 편집인력을 기존 3인 이상에서 5인 이상으로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따라서 5명 이상의 정규직을 고용하지 못하면 언론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이미 등록된 인터넷신문은 1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시행령 적용대상이 된다.
13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신문법 시행령의 문제점과 해결방안’ 토론회에서는 정부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내용들이 오갔다. 정부는 시행령 개정으로 사이비 언론을 막고 저널리즘의 질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기업이나 정부를 상대로 광고영업을 하고 어뷰징 기사를 생산해 저널리즘의 질을 떨어뜨리는 것은 오히려 규모가 큰 매체라는 지적이 나왔다. 5인 이하 언론사는 그럴 여력이 안된다는 것이다.
▲ 일러스트=권범철 화백
발제를 맡은 박상호 공공미디어연구소 연구팀장은 “소규모 언론은 대부분 포털에 검색도 안되기 때문에 선정적 보도나 어뷰징을 할 이유도 없다”며 “중대형 언론은 ‘인터넷팀’ ‘온라인 뉴스팀’ 등의 이름으로 선정적인 기사를 전송하고 있어 문제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유사언론행위 역시 소규모 언론은 광고주를 협박할 힘도 없다고 박 팀장은 지적했다.
실제 한국광고주협회의 ‘2015년 유사언론 행위 피해 실태 조사’에서도 5인 이하 소규모 언론의 피해 사례는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 한국광고주협회가 발표한 나쁜 언론 108곳을 보면 종합일간지에는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경향신문, 아시아투데이 등이 포함됐고 인터넷매체에서도 데일리안, 연합인포맥스, 뉴데일리, 쿠키뉴스(국민일보), 아이뉴스24, 뉴시스, 뉴스 등 중대형 언론사들이 대부분이다.
토론자로 참석한 김학웅 변호사는 설사 소규모 언론사들이 이같은 행위를 한다 해도 이미 법적인 제도 장치가 마련돼 있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언론사가 심각하게 선정적인 기사를 쓰거나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일이 벌어지면 과징금을 때릴 수 있다”며 “그런 제도가 있음에도 언론사 설립 자체를 막는 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표현의 자유에는 언론사 설립의 자유도 포함된다.
그럼에도 정부가 신문법 시행령 개정안을 밀어붙이는 이유에 대해 토론회 참석자들은 “여론 통제”라고 입을 모았다. 박 팀장은 “인터넷 신문 등록기준 강화에 따른 직접적인 효과는 지역의 중소언론, 그리고 대안언론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은 줄어드는 반면 정부, 언론, 광고주의 여론 지배력은 확대되고 유착관계가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지난해 인터넷 언론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4인 미만 인터넷 언론은 38.6%에 달한다. 따라서 이 법이 시행되면 인터넷 언론 중 최소 3분의 1이 등록 해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도형래 인터넷기자협회 사무총장은 “85% 이상의 인터넷 매체가 사라질 수도 있다”고 밝혔다. 연매출 1억원 미만 사업자가 5명의 상시 인력을 두기 어렵다는 이유다. 연매출 1억원 미만의 인터넷 신문은 85%다.
이에 대해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토론회 축사에서 “이는 다가올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정부여당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낼 것으로 예상되는 포털과 언론에 재갈을 물리고 길들이기가 끝난 말 잘 듣는 언론만 살려놓겠다는 의도”라며 “이제 지상파, 종편에 이어 포털, 인터넷 언론이 모두 평정되지 않을까 매우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기울어진 언론 운동장, 국민의 눈과 귀 막는다 1113미디어오늘
[분석] 이명박근혜 정권 8년, 손발 묶인 방송과 눈치 보는 신문… 포털은 기계적 중립
언론은 편향됐다. 새로울 것 없는 첫 문장이 무겁게 다가오는 이유는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을 앞둔 오늘날 한국 언론지형의 ‘기울기’ 때문이다. 신문‧방송 프레임은 민주화 이후 최악의 보수편향으로 기울고 있다. 언론의 의제설정이 갖는 영향력은 여전히 강력하다. 미디어플랫폼이 다양화되고 대안언론이 등장했으나 체감하는 이들은 대부분 40대 이하 젊은 층이다. 중장년층은 여전히 종이신문과 방송뉴스로 세상을 본다. 미디어오늘이 한국 언론지형의 기울기를 도식적으로 들여다봤다.
한국ABC협회가 2014년 발표한 2013년도 주요 일간지 발행부수에 따르면 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 등 보수성향 신문의 강세가 여전히 뚜렷하다. 조선일보 176만부, 중앙일보 126만부, 동아일보 91만부, 3사 합계 393만부다. 발행부수 중 무료부수가 많고 발행부수 일부는 폐지공장으로 직행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다른 종이신문과 비교했을 때 여전히 압도적 부수를 찍고 있다. 정도는 덜하지만 역시 보수성향의 국민일보‧문화일보‧서울신문‧세계일보도 각각 20만부, 17만부, 16만부, 9만부를 찍고 있다.
여기에 경제일간지 매일경제‧한국경제‧서울경제‧머니투데이도 각각 77만부, 51만부, 8만부, 8만부를 발행하며 친 기업 정서를 대변하고 있다. 중도를 표방한 한국일보는 23만부, 진보성향의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각각 26만부와 22만부다. 조중동+국‧문‧서‧세+매경‧한경‧서경‧머투=599만부, 한겨레+경향=48만부다. 독자들은 ‘편승효과(밴드웨건)’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우세해 보이는 사람을 지지하듯, 우세해 보이는 여론을 지지하기 마련이다.
▲ 2014년 주요 신문사 발행부수(한국ABC협회).
▲ 2014년 주요 신문사 매출액(금융감독원, 한국언론진흥재단).
1990년대 조중동 기자들은 언론노련(현 언론노조) 조합원으로서 자사보도를 비평하고 사주의 편집권 남용을 견제했으나 김대중정부가 출범하고 언론노련이 산별노조로 전환(2000년)하면서 기업별 노조로 흩어졌다. 이후 안티조선 운동이 시작되고 ‘조중동’ 프레임이 등장하며 언론사 세무조사가 이어지자 조중동의 보수편향 보도가 급격히 늘어났다. 이후 종합편성채널 사업을 앞둔 2009년 미디어법 국면과 2012년 대선 국면에서 정권편향 보도가 극에 달했다.
기울어진 운동장은 매출액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금융감독원과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내놓은 2014년 신문사 매출액에 따르면 조중동 매출액은 각각 3393억, 2936억, 2857억원을 기록했다. 반면 한겨레와 경향의 매출액은 각각 812억, 807억이었다. 조중동 매출은 9186억원, 한겨레 경향 매출은 1619억이다. 여기에 매경 2197억, 한경 1478억을 더하면 발행부수 1위~5위까지 신문의 매출액은 약 1조2861억 원으로, 진보성향 신문의 8배에 육박한다.
기울어진 방송은 시청률로 도식화해볼 수 있다. 11월2일부터 8일까지 7일간 지상파 3사와 종합편성채널4사의 메인뉴스 시청률(동일 표본에 근접한 수도권 유료방송가구 기준, 닐슨코리아)을 확인했다. KBS 14.51%, MBC 8.34%, SBS 7.02%로 지상파 3사 메인뉴스 시청률은 평균 29.87%였다. 종합편성채널 메인뉴스의 경우 JTBC 2.14%, 채널A 1.99%, MBN 1.98%, TV조선 1.46%를 기록했다. 그나마 할 말을 한다는 평가를 받는 JTBC 시청률(2.14%)과 지상파3사+종편3사 시청률(35.3%)은 약 17대 1이다.
▲ 2015년 11월2일~11월8일 지상파3사, 종편4사 메인뉴스 시청률(동일 표본에 근접한 수도권 유료방송가구 기준, 닐슨코리아).
방송은 김대중정부 이후 KBS와 MBC가 공영방송으로 국민의 신뢰를 받으며 그나마 신문에 비해 공정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2008년 이명박정부의 공영방송 장악과 종합편성채널 출범으로 방송의 공정성도 무너졌다. YTN을 시작으로 KBS와 MBC에 정부·여당을 대변하는 사장이 내려와 제작 자율성을 침해했다. 정부비판 성격이 강한 시사교양 프로그램은 불방되거나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공정성’ 심의로 제재를 받았다. 대부분의 뉴스가 사회갈등 현안을 축소‧왜곡하거나 정부 입장만 반복하고 있다.
2012년 전국언론노조 MBC본부와 KBS본부는 공정방송 쟁취를 위한 총파업을 진행했다. MBC는 170일 파업 이후 사내 갈등이 격화되며 파업참여 언론인에 대한 배제와 부당징계가 이어졌다. KBS는 2014년 세월호 참사국면에서 공정보도를 열망하는 국민여론을 바탕으로 KBS 양대 노조가 파업에 돌입, 길환영 사장을 몰아내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최근 정부여당 편향인사로 평가받는 고대영 전 KBS 보도본부장이 신임 KBS 사장에 내정되며 다시 KBS의 암흑기가 예상된다.
종합편성채널은 출범 취지에 맞게 이명박정부의 이해관계에 충실했다. 2011년 12월1일 개국 첫날, TV조선 ‘뉴스쇼 판’에는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의원이 출연해 그 유명한 ‘형광등 100개를 켜놓은 듯한 아우라’를 시전했다. 종편은 2012년 박근혜 대통령 당선에 기여했다. 이후에는 ‘5.18 북한군 개입설’과 같은 근거 없는 오보와 야당 폄훼, 막말, 단독 남발 보도로 저널리즘의 전반적 질을 떨어뜨리고 있다. 손석희 사장이 이끄는 JTBC만이 방송뉴스 중 유일하게 공정보도의 기준을 지키고 있다.
▲ 2014년 방송사 매출액(방송통신위원회, MBC와 SBS는 각각 지역MBC와 지역민방 매출액 포함).
방송사에서 지상파 3사의 영향력은 여전히 절대적이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올해 6월 발표한 2014년 방송사 매출액에 따르면 KBS는 1조4833억, MBC는 1조1274억(지역MBC 3308억 포함), SBS는 1조173억(지역민방 2398억 포함), 종편4사는 4046억 수준이다. 이 중 JTBC의 매출액은 1309억이다. 매출액은 방송사의 영향력을 드러내는 지표다. JTBC가 손석희 영입 이후 뉴스 영향력과 신뢰도 면에서 KBS와 비슷한 위치에 올라섰지만 여전히 방송 뉴스는 정부여당 편향에 기울어있다.
지난 3일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강행 발표 이후,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4일 반론성격의 기자회견을 열었으나 지상파 3사 모두 생중계를 외면했다. 종편은 기자회견 내용보다 문재인 대표의 리더십 흠집 내기에 유리한 야당 내 계파갈등보도에 집중했다. 이날 문 대표를 인터뷰한 곳은 JTBC가 유일했다. ‘방송 운동장’을 드러내는 상징적 장면이다. 최근 방통위는 공정성·객관성 심의 조항을 위반했을 때 감점을 두 배로 강화하는 방송평가규칙 개정안을 내놨다. 또 하나의 채찍이다.
포털 사이트 언론지형은 신문‧방송과 다르다. 그러나 정부여당 편향이긴 마찬가지다. 미디어오늘과 소셜임팩트 개발 업체 UFO팩토리가 네이버가 공개하고 있는 편집 이력을 웹 스크랩퍼를 활용해 누적 집계 분석한 결과 2014년 11월1일부터 2015년 4월30일까지 6개월간 네이버 뉴스섹션에 게재된 기사 가운데 연합뉴스가 6243건으로 압도적 1위였다. 이어 뉴스1(2183건), 뉴시스(1948건) 순이었다. 뉴스 통신사의 비중이 압도적이다. 통신사 보도는 기계적인 사실전달 보도가 대부분이다.
▲ 2014년 11월1일~2015년 4월30일 6개월간 네이버 뉴스섹션 기사 노출건수(미디어오늘, UFO팩토리).
▲ 2014년 11월1일~2015년 4월30일 6개월간 다음 뉴스섹션 기사 노출건수(미디어오늘, UFO팩토리).
연합뉴스는 2012년 공정보도 쟁취를 위해 유례없는 100일 파업에 나서며 저력을 보였으나 박노황 사장이 취임하며 사내 분위기가 전과 같지 않다. 연합뉴스는 객관을 가장한 편파보도로 박근혜정부의 국정 교과서 정책을 옹호하고 홍보하는 식의 보도를 내보내고 있다. 연합뉴스는 국가기간통신사 지위를 통해 매년 정부로부터 받는 350억원 수준의 지원금을 받고 있어 정부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통신사 보도가 포털을 뒤덮은 상황에서 독자들은 사건의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조중동은 올해 일제히 네이버 모바일뉴스 서비스에 진입하며 온라인에서의 영향력을 키우려 하고 있다. 새누리당의 포털 때리기로 포털사들은 뉴스편집 과정에서 정부비판 기사의 노출에 더욱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게 됐다. 좋은 기사는 실시간 검색어에 파묻히고, 정부의 인터넷 등록조건 강화 방침으로 소규모 인터넷 언론사를 중심으로 한 여론 다양성도 위기에 놓였다. 소수의 진보성향 인터넷언론이 설 자리는 좁다. 기울어진 운동장의 ‘종착점’은 언론의 국정화, ‘국정미디어’다.
“동아·문화는 영덕 핵발전소 주민투표 손 떼라” 1113 미디어오늘
녹색당 논평… 기업 논리 대변하며 '외부세력' 탓, 핵발전소 반대 여론 무시하며 갈등만 부각
지난달 28일 녹색당은 “동아일보와 문화일보는 영덕 주민투표에서 손 떼시라”는 제목의 논평을 발표했다. 정부가 경북 영덕군에 신규 핵발전소(천지원전)를 추진하는 가운데 이 두 신문이 나서 정부의 입장을 옹호하고 다수 반대 주민들의 의견을 왜곡·축소하는 보도를 쏟아내고 있어서다. 지난 11일~12일 영덕주민과 시민단체가 참여해 만든 ‘영덕 핵발전소 유치 찬반 주민투표관리위원회’는 주민투표를 실시했다.
주민투표 실시 전부터 ‘흠집내기’
동아일보는 10월29일 ‘외부세력이 주도하는 영덕 원전 주민투표 두고 볼 건가’라는 사설을 통해 “현행 주민투표법은 국책사업인 원전 건설을 대상에서 제외해놓고 있다”며 “더 심각한 문제는 주민투표 추진 배후에 원전반대그룹 등 외부세력이 있다는 점”이라고 보도했다. 지난해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주요 문건을 해킹했던 ‘원전반대그룹’이라는 해커를 연상케 하지만 동아일보가 지칭한 ‘외부세력’인 ‘원전반대그룹’은 녹색당과 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이다.
▲ 10월29일자 동아일보 사설
문화일보는 지난달 22일 “법에도 없는 투표 강행…영덕원전 ‘반대 여론몰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절차상 공정성 논란은 물론 인위적 반대여론을 조성했다”고 보도했고, 지난 2일 이희진 영덕군수 인터뷰 기사 제목을 “원전 찬반투표는 불법…시설·인력 등 제공할 수 없다”로 뽑아 “원전사업은 국가사무이기 때문에 군에서 관여할 사안이 아니”라고 전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행정자치부 등 정부부처와 한수원 등 공기업 역시 핵발전소 건설이 국가사무라서 주민투표의 대상이 아니라고 밝혔다. 주민투표법 제7조 ‘국가의 권한 또는 사무에 속하는 사항은 주민투표의 대상이 아니다’라는 조항을 근거로 한 주장이다.
▲ 지난 2일 문화일보는 이희진 영덕군수 인터뷰 기사를 실었다.
시민들은 주민투표를 자발적으로 진행하고자 했지만 영덕군에서 행정지원을 거부해 선거인 명부조차 확보하지 못해 반대 서명명부로 대신했고, 주민투표 날짜가 가까워지면서 유권자 인원이 늘어난 것에 대해서도 신문들은 문제제기 했다. 문화일보는 투표추진위원회 구성에 “전교조 영덕지부 등 원전건설을 반대했던 인물이 대부분”이라고 보도했다. 또한 “투표를 이틀 간 진행하는 것은 저조한 투표율로 반대의견을 이끌어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라며 11~12일 이틀간 투표하는 것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런 주장들은 핵발전소를 짓게 되면 이익을 보게 되는 기업들의 논리와 맞닿아있다. 실제 영덕군 곳곳에 설치된 핵발전소 건설 찬성 주장을 담은 현수막의 내용은 이렇다.
“천지원전, ‘안전 최우선’으로 건설하겠습니다” 현대건설
“영덕 주민의 신뢰, 철저한 원전 안전으로 보답하겠습니다” 두산중공업
“천지원전 건설, 영덕군의 희망찬 미래를 함께 열어가겠습니다” 한화건설
“안전한 천지원전 건설, 한전KPS도 함께 하겠습니다” 한전KPS 주식회사
“천지원전 건설, 영덕군의 희망찬 미래를 함께 열어가겠습니다” 한국원자력연료
“영덕의 미래를 여는 천지 원전, 안전하게 설계하겠습니다” 한국전력기술주식회사
누가 외부세력인가? 투표 무효?
녹색당은 “동아일보는 녹색당에게 외인부대라는 딱지를 붙였는데 동아일보는 핵발전소 사고가 나도, 방사능에 오염된 먹거리를 섭취해도 피폭당하지 않느냐”고 비판했다.
주민투표결과 유효투표수(1만1139표) 중 ‘핵발전소 유치 반대’가 91.7%(1만274표)로 집계됐고 ‘유치 찬성’은 7.7%(865표)에 그쳤으며 무효표는 0.6%(70표)였다. 주민투표위원회가 영덕군에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받은 유권자 수는 모두 3만4432명이다. 10명 중 9명이 핵발전소 건설을 반대하는 것으로 밝혀지자 문화일보는 13일 주민투표법상 ‘3분의 1 유권자 참여’라는 기본요건조차 충족하지 못해 원천 무효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 영덕 핵발전소 건립 추진을 놓고 갈등하고 있는 영덕군 모습. 사진=녹색당 제공
문화일보 등 핵발전소 추진 찬성 입장에서는 전체 유권자 3만4432명 중에서 32.5%(1만1139명)만이 참여했다고 투표의 의미를 퇴색시켰다. 정부·공기업·건설사·지자체·언론이 모두 나서 핵발전소 유치에 대해 주민투표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하다가 결과가 나오자 주민투표법을 들이댄 것이다.
핵발전소 유치여부는 국가사무일까? 전문가들은 ‘발전소 건설’은 국가 사무일 수 있지만 해당 지역에서 이를 유치할지 여부는 지자체 사무라고 주장했다. 지난 4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주주의법학연구회, 탈핵법률가모임 해바라기는 “영덕 주민투표는 지방자치법과 주민투표법에 의한 주민투표 대상인데도, 정부·지자체가 주민들과 지방의회의 정당한 주민투표 실시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아 부득이 민간 주도로 실시되는 것”이라며 “정부는 헌법과 지방자치법, 주민투표법에 의하여 보장되는 ‘지방자치’ 정신에 따라 주민의 생존과 안전에 직결되는 중대한 사안에 대한 영덕 주민들의 주민투표 요구를 수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하승수 변호사 역시 13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지난 2012년 경남 남해에서 화력발전소 유치에 대해 주민투표법에 따라 주민투표를 했고, 선관위에서 선거관리도 해줬다”며 “핵발전소 유치 여부를 국가사무로 해석한 산자부(산업통상자원부)의 주장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찬성 측과 동아일보·문화일보는 투표 절차에도 문제제기를 했지만 문제의 원인은 애초 영덕군이 행정지원을 하지 않아서 선관위가 선거관리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진 문제다. 또한 주민들이 구성한 투표추진위원회는 핵발전소 찬성하는 주민들에게 내용증명을 보내 추진위원회에 참여할 것을 요청했지만 답변이 없었다.
90%가 반대, 갈등 더 키웠다?
13일 동아일보는 주민투표 결과를 보도하면서 ‘갈등’에 초점을 뒀다. “갈등 더 키운 영덕원전 주민투표”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찬반 양측이 서로를 비난하고 있어 투표 결과와 상관없이 지역 갈등이 더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를 낳는다”고 보도했다. 같은날 한국일보도 “영덕 원전 찬반 투표 투표율 못 미쳐 무효” 기사에 부제를 “반대 주민들 입지 약화”로 달아 보도했다. 강원도 삼척에서 주민투표 결과 85%가 핵발전소 반대하는 것으로 나온 뒤 유치에 어려움을 겪자 영덕에서는 91.7%가 반대했지만 투표자체를 무효라고 보도해 반대의견을 축소하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 13일자 동아일보 6면 기사.
유치 강행하는 정부 “투표 인정 못해”
하승수 변호사는 “환경영향평가도 해야 하고, 아직 핵발전소 유치가 확정된 것이 아니고 언론에서 유치를 기정사실화해 보도하고 있는데 이는 왜곡 보도”라며 “전북 부안에서도 핵폐기장을 지으려고 했다가 백지화된 사례가 있듯이 철회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영덕은 지난 2010년 영덕군민 4만여명 중 1%에 해당하는 주민 399명의 찬성 서명을 받아 핵발전소 유치를 신청했고, 지난 2012년 9월14일 신규 핵발전소 4기를 건설하기 위한 예정 구역으로 지정 고시됐다. 1998년과 2003년 두 차례 주민들의 반발로 핵발전소 유치가 무산된 적이 있다. 이후 2015년 11월까지 공청회 한번 없었다.
한수원은 영덕 지역에 ‘사회공헌 사업’으로 쌀과 기부금 총 4억2000여만원을 지원했고, 오마이뉴스 보도에 따르면 한수원 직원이 영덕읍 영덕조각공원 앞 오리전문점에서 70,80대로 보이는 40여명의 주민들에게 식사를 접대한 사실도 확인됐다. 주민투표를 못하도록 회유했던 정황이다. 주민투표가 진행된 날에는 투표소 인근에서 한수원 측이 투표소로 들어가는 주민들을 블랙박스를 이용하여 촬영하고 있는 것이 확인됐다. 핵발전소유치찬반주민투표관리위원회에 따르면 한수원 직원들이 투표소마다 배치되어 투표소에 출입하는 주민의 숫자를 헤아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13일 오전 윤상직 산자부 장관은 담화를 통해 “이번 투표는 법적 근거와 효력이 없으며 따라서 정부는 투표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며 “지난달 20일 산자부와 한수원이 제안한 대규모 열복합단지조성 등 10대 지역발전 사업을 신속하게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산자부, 한수원, 주민대표 등이 참여하는 원전소통위원회를 구성해 운영하겠다”고 덧붙였다.
▲ 영덕 핵발전소 건립 찬반 주민투표를 지지하는 영덕군 주민들. 사진=민중의 소리
접대 관광·금품 살포’에도 영덕군민 10명 중 9명 ‘원전 건설 반대’1113 민중의 소리
‘원전 안 된다’는 군민 vs ‘짓겠다’는 정부… 갈등 이어질 듯
경북 영덕 핵발전소 유치의 찬반을 묻는 주민투표가 개표를 앞둔 12일 오후 경상북도 영덕군 영덕농업협동조합에 마련된 개표소에서 개표사무원들이 개표를 하고 있다.ⓒ뉴시스
경북 영덕 원자력발전소 유치를 둘러싼 주민투표가 끝났다. 투표인명부 기준 1만8581명 대비 60.3%의 투표율을 보였고, 91.7% 주민들이 ‘원전 유치 반대’에 표를 던졌다. 투표 한 주민 10명 중 9명이 원전 유치에 반대한다는 여론이 이번 투표를 통해 드러났다.
주민투표법(제24조)상 주민투표 결과가 효력을 가지려면 총 유권자의 3분의 1인 1만1478명 이상이 투표해야 한다. 이번 영덕 주민투표에 중앙선관위 유권자 3만4432명 기준 32.53%인 1만1201명이 투표에 참여해 주민투표법상 유효기준에는 277명 미달했다.
하지만 주민투표관리위원회 측은 “투표인명부에 등재된 1만8581명으로 유권자를 산정할 경우 1만1201명이 투표해 투표율이 60.3%이며, 부재자 7000여명을 고려하면 총 선관위 유권자 대비 투표율이 41%”라면서 주민투표 성사를 주장했다.
정부·한수원 주민투표 방해공작… 금품 살포, 관광 접대, 투표자 채증까지
일각에서는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등의 투표방해 행위에도 높은 투표율과 반대율을 기록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주민투표 전부터 원전 사업자인 한수원이 주민들을 상대로 금품을 제공하면서 투표를 방해했다는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13일 ‘영덕핵발전소 유치찬반 주민투표관리위원회’ 등에 따르면 한수원은 주민투표를 앞둔 지난 추석을 전후해 영덕주민을 상대로 쌀 6000포대를 나눠줬다. 또 주민투표가 시작되기 전날인 10일에는 주민들을 불러 온천관광을 시켜주고, 식사를 대접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영덕 마을 중 한수원이 보내 준 관광을 안 간 마을이 없을 정도”라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주민투표를 앞두고 영덕 군민들에게 쌀 6000포대를 배포했다.ⓒ영덕 주민투표 관리위원회 제공
주민투표법 제 28조에 따르면 투표 결과에 영향을 미치게 할 목적으로 투표인에게 금전·물품·향응 등의 재산상의 이익을 제공한다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또 주민투표소 인근에서 한수원 관계자가 차량용 블랙박스를 이용해 투표소에 들어가는 주민들을 촬영하다가 투표관리위 직원들과 승강이를 벌이는 일도 발생했다. 다른 투표소에서는 한수원 관계자가 카메라를 들고 촬영을 하다가 항의를 받고 돌아가기도 했다.
당시 현장을 지켜본 김자연 변호사(법률사무소 늘품)는 “블랙박스를 통한 채증뿐만 아니라 투표소 곳곳에서 한수원 관계자 차량이 돌아다녔다”면서 “이는 주민들이 투표에 참여하는 것을 위축시키기 위한 것으로 주민투표법 위반 행위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비롯한 정부 측도 투표 이전부터 “영덕 원전 주민투표가 법적 근거와 효력이 없다”는 입장을 밝혀왔고, 투표 직후 담화문 발표를 통해 “투표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
“투표 방해에도 10명 중 9명 ‘원전 반대’, 군민 의견 수용해야”
영덕 원전 건설에 반대하는 시민단체들은 “정부의 방해공작에도 이번 주민투표를 통해 군민의 핵발전소 유치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를 확인할 수 있었다”는 입장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신규원전 건설 과정에서 주민수용성을 최우선으로 검토하겠다고 약속한 만큼 정부가 이번 주민투표 결과를 반영해 신규 원전 건설계획을 백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민투표관리위원회는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영덕군민들의 민의를 확인한 성공적인 주민투표로 평가한다”면서 “투표를 통해 확인된 영덕 군민들의 원전 반대 의지를 정부와 국회에 전달하고 영덕지도자들이 이러한 뜻을 수용할 것을 촉구하겠다”고 밝혔다.
영덕군민들이 핵반전소 건설 철회를 촉구하며 가두행진을 벌이고 있다.(자료사진)ⓒ구자환 기자
환경운동연합도 이날 성명을 내고 “정부와 한수원이 주민투표를 무산시키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는데도 30%가 넘는 영덕군민들이 궂은 날씨 속에서 투표장을 찾아 91.7%라는 핵발전소 반대 의지를 분명히 했다”면서 “주민투표를 준비했던 사람들도 높은 투표율과 반대율에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났다고 평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민간이 주도하는 주민투표라서 법적 효력이 없다고 선을 그으면서 비공식적인 투표율을 내세워 ‘효력을 잃었다’며 흠짓을 내는 행위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면서 정부는 “주민투표를 통해 확인된 군민들의 민주주의적인 요구를 수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전 반대 단체들은 개표 결과 영덕군민의 원전 반대 의지가 확인된 만큼, 원전건설 백지화 행동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정부와 한수원은 주민투표 결과와 상관없이 원전 건설을 추진할 계획이라는 입장을 밝혀 향후 영덕에 원전 건설을 둘러싼 논란이 지속될 전망이다.
앞서, 정부는 2012년 9월 영덕지역을 신규 원전 2기 건설지역으로 지정·고시했으며 지난 7월 발표한 7차 전력수급계획을 통해 원전2기(신고리 7·8호기)를 영덕 천지 1·2호기로 건설하는 내용을 확정했다. 이에 더해 향후 원전 2기를 신규로 건설하기로 하고 영덕(천지 3·4호기) 또는 삼척(1·2호기)에 원전을 건설하겠다는 방침도 정한 상태다.
박근혜정부, 건보료부과체계 불공평 방치 1111 내일
현행 건강보험료 부과체계는 직장, 지역가입자의 소득 재산 자동차 성 연령 등에 따라 보험료가 적용되고 있다. 이런 다원화 된 부과체계로 인해 퇴직이후 소득없는데도 보험료가 더 많아지거나, 보험료를 납부하지 않기 위해 피부양자로 무임승차하려는 등 많은 불공평한 사례들이 많다. 하지만 박근혜정부는 개선 논의를 시작한지 2년4개월이 되도록 개선 시늉만 내고 있다. 그 결과 한해 6000만건 정도의 관련 민원이 빗발치고 있다
저소득층 고통 커진다] 건보료 개선안 2년2개월 동안 '검토 만'
1월 발표 중지 후 9월까지 관련 민원 4500만건 발생 … 후퇴한 안조차 발표 않고 미적미적
2013년 7월 불공평한 건강보험료 부과체계를 개선하겠다며 논의를 시작했지만 2년2개월이 지나도록 '검토 중'이다.
올해 1월말 보건복지부가 예정했던 개선안 발표도 돌연 연기한 후 지지부진한 상태다. 더 합리적인 개선안을 내놓겠다며 당정협의까지 열었지만 아직 답이 없다. 그로부터 9월말까지 건보료 부과 관련 민원은 4500만건 넘게 발생했다. 박근혜정부의 방치속에 저소득층의 고통은 가중되고 있다. 내일신문은 주 1회 부가체계의 불합리한 사례를 소개할 예정이다.
◆소득 외 다양한 기준, 가입자 불만 키워 = 불공평한 건보료 부과체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요구는 오래됐다. 비슷한 소득에도 자격에 따라 보험료를 덜 내고 많이 내거나 금융 이자 소득이 많은 사람이 피부양자이라는 이유로 한푼도 내지 않는 등 불합리한 점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이는 불합리한 건보료부과체계 때문이다.
현행 건보료 부과체계는 우선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로 크게 나뉜다. 직장가입자는 다시 근로외 소득이 연 7200만원 초과자와 이하자로, 지역가입자는 연간소득 500만원기준으로 초과세대와 이하세대로 나뉜다. 이런 직장 지역자격에 따라 다시 7개 그룹으로 나눠져 각각 다른 기준으로 건보료를 정하고 있다. 그 결과 건보료부과 불공평성에 대해 민원이 빗발쳐 왔다. 지난 한해만 해도 관련 민원이 6039만 여건에 이른다.
◆고소득층 지지층 의식해 개선 논의 중지 = 출범 직후 박근혜정부는 이런 개선 요구를 받아 들여 건강보험 학계 연구기관 등 전문가로 구성된 '건강보험료부과체계개선기획단을 운영했다. 개선기획단은 2013년 7월부터 2014년 9월까지 11차례 전체회의를 통해 △보수 이외에 종합과세소득을 보유한 직장가입자에 대한 보험료 부과방안 △부담능력이 있는 소득있는 피부양자에 대한 피부양자 제외 및 보험료 부과방안 △지역가입자의 소득 이외의 보험료 부과 기준 합리화 추진(최저보험료 부과 방안 포함) △7개 부과방식별 재정 추계 및 보험료 변동 비교분석 등을 논의했다.
이 논의를 통해 직장가입자의 보수 외의 소득에 건보료 부과 확대, 지역가입자 건보료 산정 기준에서 성 연령 자동차 등을 제외, 소득있는 피부양자에도 건보료 부과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하지만 올해 1월 28일 문형표 전 복지부장관은 돌연 "올해 안에 건보료부과체계 개선안을 만들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개선기획단이 준비한 개선안도 없는 것으로 됐다. 이에 대해 야당 시민단체 등 은 "고소득층의 이익을 위한 논의 중지"라며 비난했다. 개선안 발표에 제동을 건 것은 청와대로 알려졌다. 당시 청와대 문건파동과 연말정산 환급문제로 민심이 흉흉해지자, 위기를 느낀 청와대가 '집토끼(지지층)을 자극하면 안된다'며 제동을 걸었다는 것. 당시 기획단에 참여했던 김진현 서울대 교수는 "건보료가 오를 일부의 반발을 피하고자 부과체계 개선 논의를 중단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연간 6000만건 넘는 민원, 정부 불신으로 확산 = 이런 비난에 직면하자 2월 새누리당과 정부는 합리적인 대안을 찾겠다며 몇 차례당정협의체를 열었다. 하지만 당정협의체는 개선기획단에서 진행했던 사안을 반복 논의하면서 '시간 벌기'라는 또 다른 비난을 받았다. 이목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역가입자 602만가구가 건보료 인하 혜택을 보는 개선안이 중지됐고, 생활이 어려운 서민들은 개선될 날을 기다리고 있다. 몇가지 되지 않는 분명한 사안이 이미 나와 있는데 (개선안 시행을) 언제까지 미룰 것이냐"고 추궁했다.
9∼10월 국감에서 야당의원들의 개선안 촉구가 이어지자 정진엽 복지부 장관은 "연말 안에는 발표를 하겠다"고 답변하고서, 10월 7일 국회 복지위에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 방향과 방안'을 제출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아직 확정된 방안이 아니다"고 밝혔지만, 복지부의 방안을 가름 할 수 있다.
이 자료를 보면, "형평성을 고려하고 국민이 받아들일 수 있게 '단계적'으로 검토하고, 취약계층 부담이 가장 큰 항목부터 우선 개편하되 새로운 부담자 등을 고려해 '단계적' 개편안 마련한다"는 방향을 세웠다.
구체적인 방안으로는 "우선 생계 수단의 자동차부터 보험료 부과 대상에서 제외하고 중장기적으로 자동차 보험료 폐지, 무임승차자 보험료 부담은 고소득자부터 단계적으로 부과 등"을 잡고 있다. 우선적으로 시급히 개선되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던 부분들이 개선시점이 미뤄지는 형국이다.
이에 대해 개선기획단의 안보다 크게 후퇴했다는 전문가들의 평가가 지배적이다. 건보 가입자포럼의 김경자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퇴직 후 소득이 없는데 사는 집이 있다는 이유로 보험료를 더 내는 경우가 있는 등 비합리적인 사례를 일으키는 기준들을 시급히 개선해야하며 미룰 사안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이마저도 정부안으로 발표되지 않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부과기준 일부 수정이 아니라 부과체계 기본틀을 바꾸는 작업으로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재정이 줄어 들 수 있는 경우도 막아야 하는 등 신중하게 추진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건강보험 관계자는 "1년에 6000만건이 넘는 민원이 쏟아진다는 것 자체가 정부의 건강보험정책에 대한 문제제기"라며 "개선안 발표를 계속 미룬다면 정부에 대한 불신 뿐 아니라 제도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
서민아파트 1채가 전부인 노부부에게 건보료 폭탄 11만원
현행 건강보험료 부과체계는 직장, 지역가입자의 소득 재산 자동차 성 연령 등에 따라 보험료가 적용되고 있다. 이런 다원화 된 부과체계로 인해 퇴직이후 소득없는데도 보험료가 더 많아지거나, 보험료를 납부하지 않기 위해 피부양자로 무임승차하려는 등 많은 불공평한 사례들이 많다.
하지만 박근혜정부는 개선 논의를 시작한지 2년3개월이 되도록 개선 시늉만 내고 있다. 그 결과 한해 6000만건 정도의 관련 민원이 빗발치고 있다.여기 건보료부과체계 불공평 사례를 살펴보면서 제도개선의 필요성을 확인해 본다.
2013년 11월 말쯤 건강보험 대구북부지사 관내 산격동 한 서민아파트에 거주하는 입주자대표 김 할아버지 등 주민 3명이 민원실을 방문했다. 이들은 당시 신규부과자료(2013년 재산세 부과자료 등) 적용에 보험료 부과 안내문과 고지서를 들고 항의했다.
"어떤 놈이냐? 우리집 보험료를 5만원이나 올린 자가! 지사장 나와라! 소득도 없고 나이 70이 넘은 내가 무슨 능력이 있어 이 보험료를 감당하겠느냐?"라며 고성을 질렀다. 온갖 욕설을 하면서 소란을 부려 담당차장과 부장이 가까스로 진정시킨 후, 부과자료를 살폈다.
확인 결과, 70세 이상의 노부부세대인 민원인들은 소득은 없고 주거용 서민아파트 한 채만 소유하고 있었는데, 2013년 10월 7만320원이었던 보험료가 11월에는 3만9530원이 인상된 10만9850원의 보험료가 부과됐다. 그 원인은 재산과표가 1억1000만원에서 1억3510만원으로 올랐기 때문이고, 재산과표 인상에 따라 경감요건인 '소득360만원 재산 1억3500만 원 이하' 기준에 충족되지 않은 탓이었다. 과표 10만원 차이로 4만원 정도의 보험료를 더 내게 된 것이다.
이런 이유로 보험료가 변동됐다고 설명하자, 김 할아버지 일행은 더욱 격앙되어 "노부부가 경우 아파트 한 채에 살면서 뚜렷한 수입원도 없이 폐지수집하고 봉사단체 후원물품으로 경우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무슨 돈으로 거액의 보험료를 낸단 말이냐! 나이들고 돈 없는 것도 서러운데 이제 아파도 병원조차 갈 수 없게 하느냐! 누구를 위한 제도냐"고 호통을 치며 손으로 책상을 내리치는 등 분을 삭이지 못하고 "이웃주민들을 모두 데려오겠다"며 엄포를 놓고는 돌아갔다.
지사 담당차장과 부장은 인근 서민아파트 등으로 민원이 확산될 것을 우려해, 아파트 관리사무소를 방문해 김 할아버지 등 입주자 대표를 면담하고 '소득중심의 보험료 부과체계 단일화 방안'을 마련해 정부와 국회에 건의하는 등 공단의 활동을 설명하면서 설득했다.
이들은 "대가리 좋은 놈들이 여태까지 뭘 하다가 이제야 바꾼다카노, 우리 다 죽고 나면 바꿀란가"라며 항의하다가 체념한 듯 "하루빨리 소득중심으로 보험료가 부과되길 바란다. 만약 빠른 시일 내 개선되지 않으면 집단행동도 불사하겠다"며 적극적인 추진을 희망했다.
유일한 재산 집 팔았더니, 건보료 더 올라
현행 건강보험료 부과체계는 직장, 지역가입자의 소득 재산 자동차 성 연령 등에 따라 보험료가 적용되고 있다. 이런 다원화 된 부과체계로 인해 퇴직이후 소득없는데도 보험료가 더 많아지거나, 보험료를 납부하지 않기 위해 피부양자로 무임승차하려는 등 많은 불공평한 사례들이 많다. 하지만 박근혜정부는 개선 논의를 시작한지 2년4개월이 되도록 개선 시늉만 내고 있다. 그 결과 한해 6000만건 정도의 관련 민원이 빗발치고 있다.
여기 건보료부과체계 불공평 사례를 살펴보면서 제도개선의 필요성을 확인해 본다.
#1. 2013년 5월 초 대구시 침산동 소형아파트를 1억3000만원에 전세로 살고 있던 강 모씨는 유일한 재산인 경북 봉화군에 있던 고향 집과 밭 200평을 팔았다. 이후 국민건강보험공단 대구북부지사를 찾아 건강보험료 조정 신청을 했다. 강 씨의 발걸음은 당연히 건보료가 내려 갈 것으로 생각해서인지 가벼웠다.
하지만 보험료를 3배 더 내라는 조정결과를 받았다. 유일한 재산인 집을 팔았더니 되레 건보료를 더 내게 됐다. 강 씨는 재산과표 310만원인 고향집과 밭을 팔아 보험료 산정대상에서 제외됐지만 대신 전세금 1억3000만원에 대한 재산 보험료가 새로 부과된 탓이다. 이는 국민건강보험법 시행령 제42조 보험료부과점수의 산정기준에 따라 '전세금 1억3000만원에서 기본공제액 300만원을 빼고, 여기에 소득환산율 30%를 적용해 3810만원 상당의 소득이 있다'고 본 결과이다.
실제 재산은 감소되었지만 2013년 4월 2만9990원이었던 보험료가 다음 달인 5월에는 7만9660만원을 납부하게 된 것이다. 이에 강씨는 분을 참지 못하고 '부과체계가 엉터리'라면서 1시간 넘게 욕설을 퍼붓고 '억울하다'는 주장을 되풀이 했다. 이를 이해시키느라 지사장까지 나서서 진땀을 흘렸다.
#2. 서울에 거주하고 있는 송 모씨는 2013년 12월 경북 경산시에 있는 주택을 매각하고 건강보험료 정산신청을 했다. 등기상 소유권 이전이 확인돼 건보지사 담당은 2014년 1월부터 재산과표 3480만원을 조정했다. 그런데 송 씨는 조정 5개월 후 전월세 무자료(거주형태 미신고)세대로 확인되어 건보지사에서는 2014년 1월부터 전월세금에 대한 보험료를 직권으로 부과했다. 송 씨는 매각한 주택 과표보다 전월세금이 높게 부과되어 생활수준 점수가 28.3점에서 30.2점으로 올랐으며, 과표재산이 3480만원에서 1억2480만원으로 올랐다. 그 결과 주택 매각 전에는 보험료 9만7330원을 냈으나, 매각 후에는 15만8650원을 납부하게 되었다. 더욱이 송씨는 5개월치를 소급적용 받아 정산보험료와 6월 고지금액인 73만9300원이 송씨 계좌에서 자동으로 이체되었다.
송씨는 고지서를 받아보지도 못한 채 고액이 출금된 사실을 알게 된 후 건보지사에 민원을 제기했다. 송씨는 "가지고 있던 재산을 매각했는데 오히려 보험료가 오르는 법이 어디 있느냐. 입장 바꿔 당신이 나라면 이해를 하겠느냐"며 민원담당자에게 불만을 쏟아냈다. 일반가입자들이 이해하기도, 건보 담당자가 설명하기도 힘든 복잡한 부과체계 탓에 민원실에서의 고성은 끊이지 않고 있다.
노숙자 건보료는 3만6150원 … 재력자는 3만2940원
현행 건강보험료 부과체계는 직장, 지역가입자의 소득 재산 자동차 성 연령 등에 따라 보험료가 적용되고 있다. 이런 다원화 된 부과체계로 인해 퇴직이후 소득없는데도 보험료가 더 많아지거나, 보험료를 납부하지 않기 위해 피부양자로 무임승차하려는 등 많은 불공평한 사례들이 많다. 하지만 박근혜정부는 개선 논의를 시작한지 2년4개월이 되도록 개선 시늉만 내고 있다. 그 결과 한해 6000만건 정도의 관련 민원이 빗발치고 있다. 여기 건보료부과체계 불공평 사례를 살펴보면서 제도개선의 필요성을 확인해 본다.
#1. 충북 충주 연수동에 사는 최 모(84)씨. 최 할아버지는 지역가입자로 월 3만6150원이 부과되고 있었다. 부과내역에서 재산비중이 92.7% 차지하는데, 폐허가 된 상가건물(과표1167만원), 부모 산소가 있는 토지(과표 1924만원)가 그 대상이다. 자녀도 없고 이혼 후 혼자 살고 있었다.
최 할아버지는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했으나 상가와 토지 때문에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소득도 전혀 없고 거주할 집조차 없어 노숙자로 지내면서 노인복지회관 등에서 제공하는 무료급식으로 어렵게 생활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재산은 세금 체납으로 압류와 경매가 진행되어 재산권을 행사하기도 어렵다. 이에 매월 부과되는 건보료는 계속 체납됐다. 2013년부터 11개월 45만원이 체납되어 있었다. 충주지사는 수 차례 걸쳐 독촉과 독려 후에도 납부하지 않아 2014년 5월 8일 부동산을 압류하고 그 결과를 통보했다.
최 할아버지는 지사를 방문해 다짜고짜 담당자에게 욕을 하며 압류통지서를 찢어 던지고 "당신들은 3만6150원이 아무것도 아닌 돈일지 몰라도 소득이 전혀 없는 나는 며칠 살 수 있는 돈"이라며 "매월 나오는 건보료를 납부 할 수 없고 밀린 보험료도 낼 수 없다"고 1시간 넘게 큰 소리 치다가 돌아갔다.
재산활용 가치가 거의 없고 소득도 없는 노인에게 보험료를 무리하게 부과한 사례로, 부담능력을 반영하지 못하는 현행 부과제도의 문제를 보여 준다.
#2. 충북 충주시 목행동에서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한 회사의 대표이사인 조 모(61)씨. 조 씨는 서울에 9층짜리 빌딩(과표 53억원)을 소유하고 있고(2006년 자녀에게 증여), 서울 소재 아파트(과표3억5000만원), 이자소득만 2억1000만원(자녀의 이자소득은 9000만원)을 받는 재력가이다.
대표로 있는 사업장은 종업원 70여명, 매출액 380억원 규모이다. 하지만 조 씨는 회사 대표이사로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월보수 10만원을 신고해 보험료 8380원을 내고 있었다. 또 자녀에게 증여한 빌딩의 근로자로 취업한 것으로 하여 보수월액 110만원을 신고해 매월 3만2940원을 납부하고 있었다.
이에 충주지사는 조 대표이사가 건강보험료를 8380원 내고 있는데, 보수 10만원이 맞느냐고 묻자, 실제 보수를 10만원 수령하고 있고, 자녀 사업장의 근로자로 110만원 월급을 받고 있다며 떳떳하다는 듯 큰 소리쳤다. 건보공단은 조 씨는 사업장 규모에 비해 턱없이 낮은 보수를 신고해 보험료를 적게 내려 하고 있고, 자녀가 82만원 상당의 지역보험료를 회피하려고 빌딩의 근로자로 위장취업하고 있는 것으로 봤다. 부과제도의 부실한 점을 악용한 사례이다.
최도은1' 전곡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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