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 장도리 11.16~20
헬조선’, 국가의 거짓말, 니힐리즘 1119 한겨레
백성들을 수탈하며 권세 불리기에만 골몰해 있는 지배자들로 망해가는 나라 걱정 때문에 밤낮으로 탄식하고 흐느꼈다는 남명 선생의 목소리는 지금도 절절하다. 왕조시대도 아닌 지금 남명 선생의 탄식과 절망에서 전혀 낯선 느낌이 들지 않는다.
나라 꼴이 돌아가는 것에 탄식을 하다 보면, 떠오르는 글귀가 있다. 그것은 500년 전 유학자 남명 조식 선생이 임금(명종)에게 올린 저 통렬한 ‘을묘상소’이다. “나라의 근본은 이미 망했습니다. 이미 하늘의 뜻도 떠나갔으며, 인심도 떠났습니다. 비유컨대, 이 나라는 백 년 동안 벌레가 속을 갉아먹어 진액이 말라버린 큰 나무와 같습니다. 언제 폭풍우가 닥쳐와 쓰러질지 모를 지경이 된 지 이미 오래입니다. 나라의 형세가 안으로 곪을 대로 곪았는데도 누구 하나 책임지려 하지 않습니다. 내직에 있는 자들은 자신들의 당파와 권세 불리기에 여념이 없고, 외직에 있는 벼슬아치들은 들판에서 이리가 날뛰듯 백성들을 수탈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가죽이 없어지면 털이 붙어 있을 곳이 없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신(臣)이 낮에는 자주 하늘을 우러러보며 깊이 탄식하고, 밤에는 천장을 바라보며 흐느끼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남명 선생은, 알다시피, 조선시대의 가장 기개 높은 선비 중 한 사람이었다. 이 글은 조정에서 내린 벼슬을 받지 않겠다면서 올린 상소문이다. 그는 조금도 에둘러 표현하지 않고 ‘나라의 근본’이 이미 망했다고 직설적으로 말하고, 궁극적인 책임은 임금에게 있다고 서슴없이 직언하고 있다. 아무리 세상에서 존경받는 선비가 쓴 것일지라도 이렇게 대놓고 임금을 비판하는 글을 읽은 어린 왕과 (수렴정치를 하던) 그 모후의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기록에 의하면, 격분한 왕이 남명을 죽이려 하자 “불쾌한 상소를 올렸다고 해서 선비를 죽이면 그것은 나라의 언로를 막는 행위”라는 사간원의 논리와 유생들의 반대 때문에 결국 임금은 자신의 분노를 속으로 삭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나중에 나라가 위난에 빠졌을 때 실제로 나라를 구하기 위해 일어난 것은 바로 그 남명의 정신을 이어받은 후학들이었다. 임진왜란 당시 백성들을 버리고 달아난 것은 임금과 조정의 고관들이었지만, 스스로 궐기하여 왜병과 맞서 피를 흘리며 싸우고 망해가는 나라를 건진 것은 의병들이었다. 그리고 의병들을 이끈 대부분의 지도자는 남명의 제자들이었다.
“가죽이 없으면 털이 붙어 있을 곳이 없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백성들을 끊임없이 수탈하며 자신들의 권세 불리기에만 골몰해 있는 지배자들로 망해가는 나라 걱정 때문에 밤낮으로 탄식하고 흐느꼈다는 남명 선생의 목소리는 지금도 절절하다. 그런데 왕조시대도 아닌 지금 이러한 남명 선생의 탄식과 절망이 우리에게 전혀 낯선 느낌이 들지 않는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솔직히 웃기는 말이지만, 지금 이 순간 이 어쭙잖은 글을 쓰는 내 기분도 저 상소문을 쓸 때의 남명 선생의 기분과 별로 다르지 않다. 아닌 게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말의 요지도 이미 남명 선생이 분명하게 말씀해놓았다. 즉, “전하께서는 온갖 천재(天災)와 억만 갈래의 인심을 어떻게 감당해내며 어떻게 수습하시겠습니까? (…) 전하께서는 누구를 좋아하십니까? 군자를 좋아하십니까? 소인을 좋아하십니까? 좋아하시는 것이 무엇이냐에 나라의 존망이 달려있습니다.”
통탄스러운 것은, 엄연히 ‘민주공화국’임을 명시한 헌법을 가진 나라에서 지금 우리가 500년 전 왕조시대와 별로 다르지 않은 정치상황에서 살고 있다는 기분을 느끼지 않고 사는 날이 거의 없는 오늘의 현실이다. 아니, 그때가 차라리 지금보다 나았던 게 아닐까? 최소한도 그때는 임금 맘대로 사람을 살리고 죽일 수는 없었다. 그러므로 (선거로 뽑혔음에도 불구하고) 최고 권력자의 자의적인 통치에 제동을 거는 장치가 아무것도 작동하지 않는 오늘의 대한민국에 비한다면 500년 전 조선왕조는 지금보다 훨씬 더 합리적이고 문명적인 원리로 돌아가는 사회였다고 할 수 있다.
‘헬조선’이라는 젊은이들 사이에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신조어 그대로 이 나라는 지금 절망적이다. 그런데 현재의 상황을 더 견딜 수 없는 ‘지옥’으로 만드는 가장 근원적인 요인은 이 상황에서 벗어날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과연 이 나라는 어디로 갈 것인가? 현재의 고통과 절망을 견뎌내기 위해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희망’이다. 그런데 나라 꼴을 이 지경으로 만든 장본인들인 이 나라의 지배층과 권력자들은 대체 어떤 현상 타개책을 갖고 있는지, 어떤 세상을 지향하는지 그 비전을 제시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다만 그들은 온갖 특권을 누리는 데 익숙한 나머지 영구집권의 욕망 속에서 정략적 술수와 책략만 능란하게 구사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기에 그들의 정치행위라는 것은 비판자와 반대자들을 ‘종북’이니 ‘좌파’니 딱지를 붙여 몰아세우는 상습적 모략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닌가? ‘종북’이라는 것은 상대를 조금이라도 인간으로 여긴다면 결코 쓸 수 없는 말이다. 그리고 ‘좌파’라는 것 자체가 왜 비난과 공격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지도 꼭 설명이 필요하다.
그러나 설명의 생략 혹은 회피는 이 나라 지배자들의 뿌리 깊은 생리이다. 예컨대, 그들은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국가라고 강조하지만,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원리는 사상과 표현과 결사와 시위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임을 외면한다. 그리하여 역사 교과서 국정화가 어떻게 자유민주주의 원리와 양립할 수 있는지 전혀 설명해주지도 않고 그냥 밀어붙이고 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소비에트사회주의 붕괴 이후에 이 세계에 가능한 정치체제는 자유민주주의 말고는 없다는 논리를 편 유명한 보수파 사상가이지만, 그가 근래의 저술 속에서 부쩍 강조하는 것이 국가의 ‘설명책임’이다. 그는 자유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집권자의 국민에 대한 ‘설명책임’이 불가결하다고 역설한다. 가령 덴마크가 좋은 나라인 것은 공공사업이나 새 정책을 펼 때 반드시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의 의무를 저버리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 한국 정부는 설명다운 설명은커녕 도리어 온갖 거짓말과 속임수로 일관하고 있다. 세월호 문제를 대하는 정부의 무책임하다기보다 철저히 부도덕한 자세는 여기서 새삼 길게 말할 것도 없다. 지금 몇몇 지방자치단체가 젊은이들의 사기를 조금이나마 살리기 위해 시작하려는 ‘청년배당’ 사업도 정부의 방해 때문에 좌절될 위기에 있다. 시민들의 환영을 받을 만한 복지시책은 오직 중앙정부만 시행할 수 있다면, 지방자치는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현장, 당사자, 지역민들의 의견을 무시하는 완강한 버릇은 완전히 고질이 되어 있다. 핵발전소 건설 문제로 작년에는 삼척, 최근에는 영덕에서 주민들이 어렵사리 성사시킨 자발적인 주민투표를 정부는 ‘국가사무’라는 이유로 불법시하고 있다. 대체 나라의 주권이 누구에게 있다는 것인가?
결국 이 정부의 갖가지 명분 없는 정책들은 동시에 헌법과 민주주의를 유린하는 것이기에 거기에 어떠한 합리적인 논거가 있을 수가 없다. 그 대신 들어서는 게 거짓말, 은폐, 속임수이다. 99.9%의 학자들을 ‘적’으로 돌리는 교과서 국정화를 뒷받침할 수 있는 합리적 논리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국가권력에 의한 이런 거짓말이 끝없이 되풀이되는 상황이다. 인간은 누구나 잘못을 범할 수 있다. 국가운영도 결국 사람의 일이기 때문에 잘못할 수 있고, 그런 경우 깨끗이 사과하면 된다. 지금처럼 거짓말을 반복한다면 재앙은 필연적이다. 거짓말이 일상화된 정치가 끝없이 계속되면 사람들은 아무것도 믿지 못하고, 결국 온 나라에 ‘니힐리즘’만 만연하게 될 것이다. 그런 무서운 상황으로 우리는 빠르게 들어가고 있다.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김제동 퇴출 시위 나선 '엄마부대'는 '욕설부대'? 1120 오마이뉴스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밝힌 김제동 퇴출 요구, 방송사 앞 한 달간 집회 신고
ⓒ 사진제공 미디어몽구
엄마부대봉사단, 탈북엄마회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20일 오전 서울 목동 SBS사옥 앞에서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힌 방송인 김제동씨 연예계 퇴출과 SBS '힐링캠프' 폐지를 촉구하며 상복 시위를 벌였다.
<오마이뉴스>에 사진을 제공한 1인 미디어 김정환(미디어몽구)씨에 따르면 "미친 놈아" "정신빠진 놈아" "사회주의 옹호하는 김제동" "허접 쓰레기" 등 욕설들이 적힌 피켓을 든 엄마부대 회원들은 "김제동 때문에 대한민국 정의가 죽었다"는 의미로 상복을 입었다고 밝혔다. 이들은 20일부터 한달간 집회신고를 냈다고 밝히며, 자신들의 요구사항이 관철될 때까지 시위를 이어갈 것이라고 했다.
김제동씨는 지난 11월 3일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글 '역사는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마음까지 국정화하시겠습니까? 쉽지 않으실겁니다. 김제동 두 손 모음'이 적힌 사진을 SNS에 공개해 화제가 됐다.
극단 보수우파 제어 고리가 없다 1124 주간경향
ㆍ보수행동대들이 조장하는 ‘공포’… 온건합리 보수 설 자리 잃어
박근혜 정부의 국정 교과서 추진 논란 과정을 지켜보면서 떠오르는 가장 큰 의문은 ‘한국 보수가 지향하는 이념적 좌표가 자유민주주의라면 왜 국정화 추진을 지지하느냐’는 것이다. 시장에서의 경쟁, 다원성에 대한 옹호는 차치하더라도 자유주의 신봉자는 홉스적 국가 개입의 불가피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사적 이익 추구행위가 충돌하는 경쟁의 과정에서 내적 규율 질서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밀턴 프리드먼은 “참을 수 있는 한에서는 사적 독점이 국가의 개입보다 차라리 낫다”고 주장한다.
한국의 보수우파가 국정화의 불가피성을 설명하는 논리는 둘로 요약된다. 첫 번째는 시장의 실패다. 현진권 자유경제원 원장 등이 언론기고를 통해 주장하는 내용이다. 검인정 교과서 시장이 좌편향된 기존의 국사학계에 의해 ‘독점’되었기 때문에 불가피한 임시조치로서 국정화가 불가피하다는 논리다. 그런데 이런 시각은 엄밀한 의미의 자유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나오는 것이 두 번째 논리다. 분단체제라는 특수성 때문에 발생한 민중사관과 자유사관의 투쟁이라는 인식이다.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지난 10월 21일 자유경제원 토론회에서 제기한 관점이다.
새누리당 의원들이 11월 3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새정치민주연합 국정 교과서 반대 농성장 옆을 지나 로텐더홀로 나오고 있다 / 권호욱 선임기자
왜 ‘자유주의’는 국정화에 침묵하는가
자유주의자이면서 국정 교과서 추진을 비판하는 사람은 없을까. 있다. 민경국 강원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10월 28일 <문화일보>에 기고한 ‘자유주의 입장에서 본 역사교과서 논쟁’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국정화의 논거로 이용한 시장 실패 개념부터 틀렸다”며 “검정제는 바른 교과서를 만들어 좌파와 경쟁할 가능성이라도 있지만 국가 독점은 그 가능성도 기대할 수 없게 된다”고 비판했다. 민 교수는 “단기적 이익을 위해 원칙을 버리면 기다리는 것은 자유의 상실, ‘노예의 길’”이라는 하이에크의 말을 인용한다. 민 교수의 기고는 기존의 보수우파 지식인 그룹에서 거의 유일한 국정 교과서 비판론이다. 자유기업원 원장을 역임한 공병호씨는 “민 교수의 주장은 한마디로 교조주의적 자유주의자의 주장 정도로밖에 해석할 수 없다”고 평가한다.
국회로 넘어가면 새누리당 내에서 소수이지만 있다. 이재오, 정두언 의원 등이 선봉에 서 있다. 국정화 확정고시가 있었던 11월 3일, 정두언 의원은 국회 출입기자들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자유민주주의에 역행한다는 이율배반적 자기모순에 빠지게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발언을 전하는 기사에는 “빨갱이 정두언을 쫓아내야 한다” 등의 원색적인 댓글로 도배되었다.
11월 5일 정두언 의원의 지역사무실에서는 ‘충돌’이 있었다. 이날 오후 2시부터 정두언 의원 사무실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열 계획이었던 장기정 자유청년연합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정 의원이 흥분해 ‘뭐 이런 새끼들이 다 있어’라고 발언했고, 그에 내가 가지고 있던 책을 던지자 보좌관인지 깡패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난입해 나와 동행한 인사를 바닥에 내동댕이쳤다”고 사태의 ‘전말’을 올렸다. 과거와는 다른 양상이다. 야권인사를 규탄하는 보수단체 행사가 야권 지역구 사무실 앞에서 열린 경우는 있지만, 이번처럼 여당의원 사무실에 난입한 보수단체가 ‘물리적 충돌’을 일으킨 사례는 없었다. 문제는 극단으로 치닫는 보수우익을 제어할 수 있는 고리가 없다는 점이다.
극단주의로 치닫는 보수우파 문제는 교과서 국정화 논란 이전부터 불거졌던 이슈다. 단적인 것이 박원순 서울시장 아들 주신씨의 병역 특혜의혹 제기다. 주목할 만한 점은 보수 내에서도 다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조갑제 <월간조선> 대표를 비롯해 몇 명의 인사들은 양승오 박사 등의 의혹제기 논리가 근거 없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하지만 보수우파 진영은 이 사안과 관련해 올인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추선희 어버이연합 사무총장는 <주간경향>과의 통화에서 “이회창 아들과 관련, 키 179㎝, 몸무게 48㎏의 미이라를 공개 수배한다고 했던 참여연대 사무처장 출신 박원순 시장이 이제 와서 가족의 일이니 공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의혹을 벗기 위해서라도 공개신검에 응하면 된다”고 말했다. 참여연대는 추 총장의 발언과 관련, 11월 18일 <주간경향>에 “당시 이회창 후보의 아들 병역 의혹과 관련해 문제제기했던 단체는 병역비리근절운동본부”라며 “1999년 고위직 병역비리 관련 내부제보를 받아 2001년까지 지원활동을 하고 비리 수사 자료를 은폐한 군 검찰단 대령을 고발한 사실은 있지만, 이후보 아들 병역 의혹 관련된 활동은 벌인 사실이 없다”고 밝혀 왔다.
“조갑제 대표도 ‘박주신의 병역의혹 제기가 근거 없다’는 결론에 대해 비난하는 보수우파들의 목소리에 충격을 받았다. 사실 나는 박주신씨에 대한 테러가 우려된다. 일베에 그 사람들이 올린 것을 보면 박주신씨의 동선까지 다 파악하고 있다. 참여연대에서 문제제기한 것에 박 시장이 개입한 것도 아니지만 근본적으로 다른 사안이다. 이것은 사실이자 인권의 문제다.” 황의원 전 연구진실성검증센터 센터장의 말이다. 박주신씨 병역 특혜의혹은 근거가 없다는 주장을 했다 그 역시 ‘배신자’, ‘사상이 의심스러운 X’ 식으로 뭇매를 맞았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내가 우파 활동에 본격적으로 결합한 계기가 2008년 광우병 논란에 대한 (좌파의) 근거 없는 문제제기였다. 그런데 과학에 대한 명분, 사이비과학으로 사람을 중상모략하는 것이 우파의 행태라면 내가 여기에 머물러 있어야 할 이유가 뭐냐.”
왜 박근혜 정권과 한국 보수우익은 ‘무리해 보이는’ 교과서 국정화를 밀어붙이는 걸까. 대선과정을 분석한 <하드볼게임>의 저자 김장수 제3정치연구소 소장은 ‘전형적인 대통령 2~3년차 증후군’으로 풀이했다. “참여정부 당시 국가보안법 폐지를 추진했을 때와 똑같다. 지금 상황이 절대로 불리하다고 보지 않는다. 오히려 이것이 최선이라고 본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여러 가지 이유로 자신감이 생길 이유가 있다. 크고 작은 선거에서 계속 이긴 것도 그 중 하나다.” 그는 “한국의 보수는 자유주의자인 적이 없고, 모두 국가주의자들뿐이었다”고 단언한다. “나는 ‘자유주의적 보수주의자’를 자처한다. 내 관점에서 한국의 진보좌파가 민족주의적 성향이 너무 강하다면, 보수우파는 국가주의자적 성향이 강하다. 둘 다 다르게 보면 전체주의다.”
극단주의 득세, 파시즘의 전주곡?
한 가지 우려. ‘전체주의화된 국가주의’가 맞다면 머지않아 파시즘으로 전환될 가능성도 있을까. 이를테면 많은 경제학자들이 예측하는 것처럼 내년 상반기 경제위기 국면이 닥친다면 소수자와 반대파를 상대로 배외주의적 힘의 논리를 강조하는 파시즘으로 전환하는 것은 아닐까.
“이 사람들이 완장질까지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파시스트적 운동으로 전환할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한국 보수우파 분석서 <우파의 불만>에 필자로 참여한 최태섭 문화비평가의 생각이다. “정권이 바뀔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해서가 아닐까. 무엇으로 하더라도 40%의 콘크리트 지지가 있으니 이 기회에 대못을 박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도 “박근혜와 한국의 보수우파가 파시즘 또는 유사 파시즘으로 나아갈 가능성은 거의 없다”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한국 보수는 뉴라이트, 즉 자유주의 또는 신자유주의를 표방하지만 반공주의적 권위주의를 동시에 갖고 있다. 그렇다면 이것을 펼쳐놓는다면 이런 극단주의가 보수 주류층의 다수를 차지할까. 아니라고 본다. 과거 2007년 당시 보수주의 내에서 왜 박근혜가 아니라 이명박(MB)이 먼저 선택을 받았는지를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그 이유는 박근혜와 같은 낡은 권위주의, 극단주의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들이 보수 내에도 많았기 때문이다.”
신 교수는 지금의 국정화-극단주의 국면을 끌고 나가는 힘은 동의나 지지가 아니라 ‘공포’라는 분석을 내놨다. “극단주의가 다수나 주류가 아님에도 두드러지는 스펙터클을 보여줄 수 있는 이유는 한국의 정치와 정부가 극도로 중앙집권화된 권력구조이기 때문이다. 보수의 다수는 국정화에 동의하지 않는데도 박근혜의 ‘한’이 중심에 있기 때문에 끌려가는 것이다. 공포가 주가 된 통치는 허약한 통치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소위 아스팔트 우파, 우익의 변두리에 있는 행동주의 우익이 동원되는 이유도 주류 보수단체나 이익단체들의 적극적 참여를 끌어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대안적 리더십의 부재다. “사실 온건우파, 합리적 보수를 지향하는 세력이 박근혜가 독주하는 권력구조를 흔들 만한 정치적 리더십을 갖지 못하고 있다. 새누리당도, 새정치민주연합도 대안이 없는 상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 너무 어울리지 않는 풍경이 오래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우울한 전망이지만, 곱씹어 볼 만한 주장이다.
‘뉴욕타임스’ 사설로 박 대통령 비판 1120 한겨레
메시징 앱(카카오톡)의 공동대표였던 이석우씨가 사임했다”며, 이씨의 사퇴와 관련해 “비판적인 사람들은 정부의 감시 시도에 저항하고, 정부에 비판적인 사용자들의 의견을 제한하기를 거부한 것에 대한 처벌이 (기소의) 진짜 목적이라고 주장한다”고 소개했다.
특히 신문은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에 대해 “박 대통령이 학생들에게 한국 역사, 특히 민주주의적 자유가 산업화에 방해물이 되는 것으로 간주되던 시기에 대해 미화된 버전을 가르치게 하려고 한다”며 “이러한 동기 중의 일부는 그의 아버지에 대한 이미지를 복원시키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이어 “한국 경제는 올해 메르스 호흡기 질환의 유행과 중국 및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수요 감소로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며 “그러나 해외에서 한국의 평판에 대한 가장 큰 위험은 경제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것으로, 주로 역사를 다시 쓰고 비판자들을 억압하는 박 대통령의 가혹한 조처들”이라고 비판했다.
아래는 <뉴욕 타임스> 사설 전문이다.
한국 정부, 비판자들을 겨냥하다 한국인들은 세계적인 산업 강국으로 일어선, 가난뱅이에서 부자가 된 경제발전 만큼이나 독재로부터 활력있는 민주주의를 일궈낸 것에 대해 자랑스러워할 만하다. 이런 이유로, 낮과 밤처럼 확연하게, 북한의 꼭두각시 체제와 한국을 구별해주던 민주주의적 자유를 박근혜 대통령이 퇴행시켜려고 골몰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우려스럽다.
지난주, 수만명의 한국인들이 두가지의 억압적인 정부 조처에 항의하기 위해 거리로 나왔다. 하나는 한국의 교육자들이 독립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역사 교과서를 정부가 발행하는 교과서로 대체하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한국의 족벌 대기업이 노동자들을 더 쉽게 해고할 수 있도록 노동법을 개정하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또한 소셜미디어와 인터넷에서의 비판이나 반대의견을 통제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지난 토요일에는 한국의 가장 인기있는 메시징 앱(카카오톡)의 공동대표였던 이석우씨가 사임했다. 그는 10대들의 음란물 사진 게시를 막지 못했다는 이유로 기소됐다. 그러나 비판적인 사람들은 정부의 감시 시도에 저항하고, 정부에 비판적인 사용자들의 의견을 제한하기를 거부한 것에 대한 처벌이 (기소의) 진짜 목적이라고 주장한다.
박 대통령은 식민지시대 일본 제국주의의 장교였으며, 1961년부터 1979년까지 군사독재자였던 박정희 장군의 딸이다. 박 대통령이 학생들에게 한국 역사, 특히 민주주의적 자유가 산업화에 방해물이 되는 것으로 간주되던 시기에 대해 미화된 버전을 가르치게 하려고 한다. 이러한 동기 중의 일부는 그의 아버지에 대한 이미지를 복원시키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 경제는 올해 메르스 호흡기 질환의 유행과 중국 및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수요 감소로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그러나 해외에서 한국의 평판에 대한 가장 큰 위험은 경제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것으로, 주로 역사를 다시 쓰고 비판자들을 억압하는 박 대통령의 가혹한 조처들이다. |
2년만에 뚫려버린 '노동계의 심장부'…공안몰이 신호탄? 1121 노컷뉴스
경찰이 지난 14일 '민중총궐기 대회‘에서 불법 폭력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민주노총 사무실 등 대해 압수수색을 실시한 21일 서울 정동 민주노총 사무실 앞에서 경찰병력이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경찰이 21일, 노동계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서울 정동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지난 2013년 12월 철도노조 파업을 주도한 지도부 검거를 위해 민주노총 사무실에 진입한 지 2년 만이다.
민주노총 등 53개 단체는 지난 14일 서울광장에서 '국정교과서 반대', '노동개악 저지', '쌀값대책 마련' 등 11개 요구사항을 정부에 전달하겠다며 시위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일부 시위대가 서울 광화문 광장으로 진출하려다 '차벽'을 세우고 이를 저지하는 경찰과 거세게 충돌하며 쇠파이프 등을 휘두르기도 했다.
경찰이 지난 14일 '민중총궐기 대회'에서 불법 폭력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민주노총 사무실 등 대해 압수수색을 실시한 21일 서울 정동 민주노총 사무실 앞에서 집행부 등이 압수수색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강신명 경찰청장은 이들의 행위를 놓고 "불법 시위 가담자를 끝까지 추적해 사법처리하겠다"고 선언했고, 참여 단체에 대한 압수수색을 예고한 지 사흘 만에 행동으로 옮긴 것이다.이날 민주노총에 대한 압수수색은 '공안정국'으로 전환되는 신호탄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민주노총은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의 결과물로 노동계의 성역으로까지 일컬어졌는데, 경찰이 대대적인 압수수색에 나섬으로써 공안정국의 분위기가 우리 사회 전반으로 확산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영상] 민주노총 "경찰 압수수색은 민심 전환용 공안몰이"
경찰 '민주노총 압수수색'…노동법 밀어부치기 신호탄?
민노총 압수수색…한상균 위원장 '은신' 조계사도 긴장감
'압수수색' 기습당한 민주노총…당혹 속 대책 마련에 고심
민주노총 "경찰 '압색', 민심 돌리려는 기획된 공안 탄압"
전국교수노동조합 노중기(한신대 교수) 위원장은 이날 오후 민주노총 사무실 앞 기자회견에서 "오늘은 민주주의가 독재와 전체주의, 파시즘으로 넘어가는 전야와 같다"며 "민주노총이 무너지면 우리사회의 시민적 자유와 기본권·생존권이 짓밟힐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경찰이 '불법 폭력 집회'로 규정한 민중총궐기 대회뿐만 아니라 세월호 범국민추모 집회와 세계노동절집회 등 올해 민주노총에서 진행한 각종 집회를 포괄적인 압수수색 대상으로 삼은 것도 도마에 올랐다.
민주노총 최종진 수석부위원장도 기자회견문에서 "이번 압수수색을 계기로 박근혜 정권은 사회운동 전반에 대한 싹쓸이 공안탄압을 기획할 것"이라며 "앞으로 공안몰이에 나서려는 정권의 파렴치함을 결코 묵과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한국노총의 뒤늦은 탄식…'이럴 줄 몰랐다
김동만 위원장 "정부·여당의 입법 강행, 도저히 인내할 수 없는 상황"
20일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 대회의실에서 김동만 위원장이 '정부여당 노동개악안 폐기촉구 한국노총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김 위원장은 기자회견에서 "9.15 노사정 대타협에서 합의되지 않은 기간제법과 파견법 개정안 등을 포함한 정부.여당의 노동법 개악안 입법 추진 시 노사정에서 탈퇴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윤성호 기자)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이 정부·여당에 '9.15 노사정 대타협' 합의 사안의 이행을 촉구했다. 한국노총은 20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노총회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합의되지 않은 내용이 대거 담겨 있는 노동개혁(개악)안을 폐기하라"고 밝혔다.이날 김동만 위원장은 "한국노총은 도저히 인내할 수 없는 상황에 와있다"며 "합의사항이 지켜지지 않은 채 입법을 강행할 경우 노사정위원회에 결코 남아있지 않겠다"고 반발했다.
김 위원장은 특히 "공공·금융부문에서 강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성과연봉제 도입시도를 즉각 중지해야 한다"며 "일반해고와 취업규칙 변경에 대한 정부의 지침 강행 방침을 포기해야 한다"고도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지난 9월 13일 정부와 한국노총, 경총 등으로 구성된 노사정위원회는 '쉬운 해고' 등이 포함된 대타협안에 합의했다. 당시 임금 피크제 도입 등을 위한 '취업규칙 변경'은 악용되지 않도록 요건과 절차를 행정 지침을 통해 명확히 하기로 했다.
노사정 대타협이 합의되자마자 새누리당은 16일 당론으로 근로기준법, 고용보험법,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기간제근로자법, 파견근로자법 등 5개 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기간제근로자법과 파견근로자법 개정안에는 합의안과는 다른 내용이 포함돼 국회 논의 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됐다. 이후 노사정 노동시장구조개선특별위원회는 지난 16일까지 이같은 비정규직 관련 쟁점 사안에 대해 논의했으나 현격한 견해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결국 지난 16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상정된 법안에도 문제의 내용이 담기면서 이때부터 크게 반발하던 한국노총의 불만이 이날 터져나온 것. 이에 따라 한국노총은 정부·여당의 입법 강행시 노사정위원회 탈퇴를 불사하고 투쟁을 전개할 방침이다.
수치 여사에 대한 비판, 왜? 1118 시사인
25년 만에 치러진 미얀마 자유 총선에서 수치 여사의 NLD가 압승을 거둘 것이 확실하다. 새로운 미얀마의 정치 주역으로 급부상했는데, 군부·헌법 조항 등 장애물이 만만치 않다. 수치 여사에 대한 비판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민주화의 꽃.”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미얀마(버마)의 NLD(민주주의민족동맹) 당수, 아웅산 수치 여사(70)를 일컫는 말이다. 군부의 폭정에 맞서 머리에 꽃을 꽂고 당차게 연설하는 그녀에게 붙여진 찬사다.
수치 여사의 NLD는 25년 만에 치러진 지난 11월8일의 미얀마 자유 총선에서 압승을 거둘 것이 확실하다. 미얀마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11월12일 밤 9시 현재까지 NLD는 상원 110석, 하원 217석 등 모두 327석을 확보했다. 2석만 더 얻으면 전체 657석의 과반인 329석을 확보해 내년 초 실시되는 대통령 선거에서 단독 집권이 가능해진다. 미얀마를 53년간 지배해온 군부에게 탄압받던 야당 NLD가 새로운 미얀마의 정치 주역으로 급부상한 것이다. 수치 여사 역시 양곤 주 코무 선거구에서 하원의원에 당선되었다.
하지만 수치 여사가 대통령에 출마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미얀마의 헌법 규정 때문이다. 외국 국적자를 배우자나 자녀로 둔 사람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수 없다. 수치 여사의 남편은 영국인 학자이며, 2명의 아들 역시 영국 국적이다. 수치 여사가 대통령 선거에 나가려면 이런 조항이 개정되어야 하나, 군부는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이 헌법 조항 또한 2008년 오직 수치 여사를 겨냥해 만들어진 것이다.
ⓒAP Photo11월9일(현지 시각) 미얀마 양곤의 NLD 본부 건물 발코니에서 연설하는 아웅산 수치 여사.
총선 압승이 예상되는 가운데 수치 여사는 외신들과의 인터뷰에서 “차기 대통령은 아무런 권한이 없다. 내가 모든 것을 결정하겠다”라고 밝혔다. NLD의 다른 인물이 대통령이 되더라도 자신이 권력을 장악하겠다는 의미다. 마치 조선시대의 수렴청정과 비슷하다. 이런 아웅산 수치 여사의 태도는 ‘권위주의’와 ‘헌법 위반’이라는 비판을 부를 우려가 크다. <미얀마 타임스>의 한 기자는 “NLD 내부에서도 이 발언을 두고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국정을 대통령이 아닌 다른 사람이 지시한다면 진정한 민주주의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또 다른 독재의 시작이 아닌가 걱정된다”라고 말했다.
수치 여사는 1988년 8월8일 시작된 이른바 8888 민주화 항쟁의 주역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미얀마 독립의 영웅인 아웅산 장군으로 국민들의 전폭적인 신망을 받던 인물이다. 아웅산 장군이 정적에 의해 암살되자 수치 여사는 영국으로 건너갔다. 영국인 학자와 결혼한 뒤에는 1988년 이전까지 아이들 양육에만 힘쓰던 평범한 가정주부였다. 그러다 위독해진 모친을 간호하러 귀국했을 때 8888 항쟁이 벌어졌다. 수치 여사는 자의 반 타의 반 ‘아웅산의 딸’로 대중 앞에 서게 되었다. 미얀마 최고 독립 영웅의 딸이라는 후광에다 뛰어난 연설 실력으로 국민들을 사로잡았다.
이후 수치 여사는 민주화운동 세력을 규합해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을 결성한 뒤 1990년 총선에서 압승을 거뒀다. 하지만 군부는 이에 승복하지 않고 수치 여사를 가택연금 조치했으며 모든 정치 활동을 금지했다. 그렇게 수치 여사는 반복적인 가택연금을 당하며 꼬박 15년을 집에 갇혀 있어야 했다. 1991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지만 가택연금 상태인 그녀를 대신해 남편과 두 아들이 시상식에 참석할 수밖에 없었다. 1998년에는 생이별했던 남편 마이클 아리스가 암으로 사망했다. 그러나 미얀마 땅을 떠나면 다시는 귀국할 수 없다는 군부의 으름장 때문에 남편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로힝야족 난민 문제에는 침묵
수치 여사의 가택연금이 풀린 것은 2010년이다. 2012년 보궐 선거에서 당선되며 본격적인 정치 활동을 시작한다. 이후 그녀의 행보는 점점 ‘현실 정치인’으로 변해갔다. 대표적인 사례가 로힝야족 사건이다. 2012년, 군부는 미얀마 소수민족인 로힝야족을 탄압했다.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을 로힝야족 쪽으로 돌린 것이다. 미얀마는 인구의 90%가 불교도인데, 로힝야족은 이슬람교도라는 이유로 엄청난 박해를 감수해야 했다. 결국 로힝야족은 미얀마 군부의 폭정을 피해 바다를 표류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나 미얀마 민주화의 상징인 수치 여사는 명확한 견해를 밝히지 않은 채 침묵으로 일관했다. NLD 내부에서조차 ‘수치가 군부와 타협한 것 아니냐’며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Reuters 11월9일(현지 시각) 미얀마 양곤의 NLD 본부 밖에서 야당 지지자들이 비를 맞으면서도 선거 결과에 환호성을 지르고 있다.
오랜 가택연금과 불우한 가족사 때문에 군부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겼을 수도 있다. 미얀마 군부는 비록 이번 선거에서 패배했지만 앞으로도 건재할 것이다. 상·하원 의석의 25%를 지명할 수 있고, 내무부와 국방부 등 핵심 부처의 장관 임면권을 쥐고 있다. 이 상황에서 수치 여사가 헌법을 개정해 대통령에 오르고 싶다면 전체 의석 가운데 75%를 확보해야 한다. 군부의 협력 없이 이뤄질 수 없는 꿈이다. 그래서 이번 압승에도 불구하고 수치 여사는 당분간 군부와의 적대적 공생관계를 이어갈 전망이다(미얀마 정계는 ‘적과의 동침’ 중? 기사 참조). 미얀마의 칼럼니스트 우시투 아웅민 씨는 올해 8월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수치 여사의 독선적인 정치 스타일을 혹독하게 비판했다. “수치는 자신에게 필요한 많은 사람들을 적으로 돌리고 있다. 더욱이 수치는 전략적 사고가 부족해 똑똑한 정치인 축에는 들지 못한다.”
NLD 내부에서는 수치 여사의 독선적 기질을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최근 그녀가 직접 “집권당의 지도자로서 내리는 결정들을 막으려 들지 마라” 하고 선언했는데, 일부 당원들은 당내 독재를 실현하기 위한 압박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NLD 내부의 한 인사는 “측근 사이에서도 불만이 새어나오고 있다. 모든 의사 결정을 단독으로 처리해버리는 그녀의 태도 때문이다. 더욱이 NLD가 이번 선거로 권력을 장악하면서 당내 파워게임도 진행 중이다. 이제 수치의 정적은 군부가 아니라 내부의 측근이 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검증되지 않은 국정 수행 능력
수치 여사의 국정 수행 능력도 미지수다. 미얀마 민주화와 함께 국민이 가장 기대하는 것은 경제성장이다. 그러나 NLD는 특별한 경제 노선을 밝힌 적이 없다. 당내에 존재감 있는 경제 전문가도 없다. 국민이 가장 관심 있는 분야에 수치 여사와 NLD가 문외한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미얀마의 한 경제전문가는 그녀의 경제 현실 감각을 걱정하기도 했다. “수치 여사는 평민 출신이 아니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영국 유학과 외국 생활을 하며 중년까지 보낸 상류층이다. 그런 그녀가 하루 1달러도 안 되는 돈으로 생활하는 양곤 시내의 대다수 빈민들 생활을 알겠는가.”
게다가 그녀가 부패한 미얀마 경찰과 행정 조직을 장악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 <뉴욕 타임스>는 “군부조차 제어하기 힘들었던 조직들을 집권 경험이 없는 수치와 NLD가 제어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2013년 한국을 방문한 수치 여사는 아침마다 싱싱한 장미 열 송이를 주문했고, 그 장미로 뒷머리를 단정하게 장식했다. 수치 여사의 트레이드마크다. 일흔이 넘은 이 ‘민주화의 꽃’은 이제 실전에 들어섰다. 전 세계가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볼 것이다.
새누리당, 민중총궐기 참여 시민 ‘폭도’ 규정 1116 한겨레
새누리 초·재선 모임 ‘아침소리’, 주말집회 십자포화
이완영 “폴리스라인 넘으면 막 패는 게 선진국 공권력”
물대포 조준발사로 의식 잃은 농민 정당방위 주장 의도
새누리당이 지난 14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민중총궐기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을 ‘폭도’로 규정하고 경찰에 더 강한 공권력 행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일부 의원은 총기 남용으로 자국 내에서도 거센 비판을 받는 미국 경찰을 ‘선진 공권력’으로 치켜세우며 ‘시민 사살’을 거론하기도 했다. 반면 경찰이 쏜 물대포를 맞고 중태에 빠진 68살 농민은 애써 외면했다.
16일 오전 새누리당 초·재선 모임 ‘아침소리’는 회의 시작부터 주말 집회를 향해 십자포화를 퍼부었다. 이완영 의원(경북 고령·성주·칠곡)은 “(선진국에선) 폴리스라인을 넘으면 경찰이 그냥 (시민을) 패버린다. 최근에 미국 경찰들이 총을 쏴서 시민들이 죽는데 10건 중 80~90%는 정당하다고 한다. 범인들이 (손을) 뒷주머니에 넣는데 총을 꺼내는 것 같아서 (경찰이) 죽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런 것들이 선진국의 공권력 아닌가. 기자들이 (경찰의) 과잉진압을 부각하는데 선진국은 그런 게 아니다”라고 했다. 농촌을 지역구로 둔 이 의원의 발언은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뒤에도 경찰의 의도적 조준발사로 결국 의식을 잃고 중태에 빠진 백남기(68)씨 역시 경찰의 정당방위로 볼 수 있다는 식의 주장인 셈이다.
그러나 이는 백악관 근처에서도 경찰차벽 없이 집회·시위가 가능한 미국의 현실, 일반인 총기 소지가 자유로운 탓에 그에 대응한 경찰의 총기 사용 역시 비교적 폭넓게 허용되는 미국의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발언이다.
하태경 의원(부산 해운대·기장을)은 “폭력 시위에 부서지고 불탄 차량이 50대가 있는데 원형을 보존해서 광화문 광장에 전시하자. 폭도들의 만행이 어땠는지 직접 국민들이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고 핏대를 세웠다. 박근혜 정부가 밀어붙이는 노동시장 개편과 역사교과서 국정화, 청년실업과 쌀값 폭락 등을 비판하기 위해 거리로 나선 시민·청년·학생·농민들을 폭동을 일으킨 ‘폭도’로 폄하한 것이다.
이노근 의원(서울 노원갑)은 “차량, 사다리, 각목, 쇠파이프, 밧줄까지 준비해서 과격한 난동을 부린 것을 보면 소위 말하는 유사범죄단체로 보인다”며 집회 참가자들을 싸잡아 범죄자로 몰아붙이기도 했다. 2008년 한-미 쇠고기 협상 당시 통상교섭본부장이었던 김종훈 의원(서울 강남갑)은 “2008년 광우병 시위가 다시 등장했다. 그 사람이 그 사람이다. 몇 명은 알아보겠더라”고 비꼬았다.
김무성 “공권력이 불법무도 세력에게 유린돼선 안돼”
막말에는 지도부도 따로 없었다. 김무성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언제든지 노동자, 민중이 분노하면 서울이 아니라 나라 전체를 마비시킬 수 있다는 걸 똑똑히 보여주자’고 말함으로써 이들의 의도가 나라를 마비시키겠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국민들은 공권력이 불법무도한 세력들에게 유린되는 무능하고 나약한 모습을 더 이상 보고 있을 수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치안을 책임지는 경찰청장은 이런 사태가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엄격한 법집행을 하는데 그 직을 걸어야 한다”며 경찰에 더 강한 대응을 주문했다.
박근혜 정부의 각종 실정에 분노해 거리로 나온 시민들을, 지난 13일 밤 프랑스 파리에서 동시다발 테러를 일으킨 이슬람국가(IS)에 견주는 듯한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서청원 최고위원은 “이런 기회에 공권력을 무력화시키고 기물파손하고 쇠파이프, 횃불을 동원하는 불법 시위는 박근혜 정부에서 뿌리뽑지 않으면 안 된다. 사법당국이 이런 기본질서를 해치는 일부터 해결하지 못하면 전세계로 번지는 이슬람국가의 테러에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김정훈 정책위의장만 “불법 시위 진압과정에서 부상자가 발생해 안타깝지만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살인행위 운운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며 지도부 중에서 유일하게 경찰 공권력으로 부상자가 발생한 사실을 언급했다.
"인민 아니고 빈민 맞다" <조선>, 전교조에 사과 11.21 오마이뉴스
인터넷 기사 삭제하고 정정보도문 게재, 전교조는 "법적 대응
▲ 21일 자 <조선일보>에 실린 정정보도문. ⓒ 조선일보 갈무리
"변 위원장이 '빈민'이라고 말한 것이 맞는 것으로 확인돼 바로 잡습니다. 변성호 위원장과 전교조 관계자들, 독자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
지난 20일 기사에서 "변성호 전교조 위원장이 연설에서 '인민'이란 단어를 쓴 것을 결코 묵과할 수 없다"고 주장했던 <조선일보>(아래 <조선>)가 돌연 변 위원장과 전교조에 사과했다. 21일 자 A2면 '바로잡습니다' 지면에서다.
"녹음 파일 분석하니..." 정정보도문 게재한 <조선>
<조선>은 해당 지면에서 "본지는 당시 녹음 파일을 바탕으로 기사와 사설을 작성했다"면서도 "그러나 20일 '인민'이 아니라 '빈민'이라고 했다는 전교조 지적을 받고 녹음 파일을 다시 면밀히 분석했다"며 자신의 잘못을 시인했다.
앞서 <조선>은 지난 19일 자 A1면 기사에 이어 20일 자 사설에서도 "전교조 위원장이 지난 14일 불법 시위 직전 열린 전국교사결의대회에서 '오늘 우리의 투쟁은 15만 노동자, 민중, 인민, 시민, 청년 학도들이 함께하고 있다'고 말했다"면서 "그중 '인민'이라는 단어에 눈길을 멈춘 사람들이 적지 않았을 것"이라고 추측한 바 있다(관련 기사 : '빈민'과 '인민', 단어 놓고 전교조-조선일보 충돌).
당시 기사에서 <조선>은 "('인민'이란 말을 쓴) 그 사람이 이미 망해버린 엉터리 이념을 남의 집 자식들에게 심어 놓으려는 교사라면 결코 묵과할 수 없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이 사설의 제목은 "전교조 위원장 입에서 튀어나온 '인민'"이었다.
<조선일보>는 해당 사설을 쓴 뒤 하루 만에 전교조에 고개를 숙였다. 지난 20일 오후 전교조가 오보에 대해 지적하고 관련 보도가 나오자 태도를 바꾼 것이다. <조선>은 지난 20일 오후에 19일 자 기사와 20일 자 사설을 자사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지우기도 했다.
비록 정정보도가 게재됐지만 <조선>이 "녹취록까지 확보했다"고 보도하며 사실을 왜곡한 점과 보도 전 전교조에 사실 여부에 대한 일체의 반론 취재를 하지 않은 점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조선일보>는 20일 자로 보도한 자사 사설을 인터넷에서 삭제했다. ⓒ 조선닷컴 갈무리
전교조 "<조선>과 <동아><문화> 등도 법적 대응"
해당 사설을 쓴 김아무개 논설위원은 '보도 전에 전교조에 반론 또는 해명을 왜 듣지 않았느냐?'는 물음에 "오늘(21일) 나온 정정보도에 저희 말씀을 충분히 한 것 같아 더 이상 할 말이 없다"고 답했다.
이에 대해 송재혁 전교조 대변인은 "색깔론을 펼치기 위해 '인민'이란 말을 허위로 끄집어내는 등 <조선일보>의 거짓 보도 관행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면서 "이 신문은 자그마한 정정보도로 상황을 무마하려 하지만, 전교조는 <조선일보>는 물론 해당 내용을 베낀 <동아일보><문화일보> 등에 대해서도 법적 대응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조선일보>가 정정보도에 나선 비슷한 시각에 나온 21일 자 <동아일보>는 사설 '전교조의 불법투쟁 키우는 교육부의 무른 대응'에서 "변성호 위원장 등 일부 전교조 인사는 북한에서나 쓰는 '인민'이란 단어를 스스럼없이 사용한다"고 단정적으로 보도했다.
이에 앞서 <문화일보>도 지난 19일 자, 20일 자 사설에서 각각 "변성호 위원장은 '오늘 우리의 투쟁은 15만 노동자·민중·인민·시민·청년학도들이 함께하고 있다' 운운까지 했다", "변성호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도 '인민'까지 들먹이며 '청와대 진격'을 외쳤다"고 보도했다.
이들 신문은 <조선일보>를 인용했다고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조선일보>의 보도 내용을 별다른 확인 없이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전교조는 해당 언론사에 대해 법적 대응 방침을 밝혔다.
“청와대로 가자” 구호로는 안 된다 1116 미디어오늘
[기자수첩] 10만명 모였지만 예견된 충돌… 경찰의 고립 작전에 동력 상실, 국민적 관심 환기에도 실패
“친구가 나보고 파리에서 테러 났다는 데 괜찮냐고 카톡 하길래 난 괜찮은데 한국도 광화문 시위 때문에 난리던데 어떻냐고 물어보니까 ‘지금 광화문에서 시위해?’ 이런다. 그게 너무 소름 돋았다”
파리에 있는 한 누리꾼이 민중총궐기 집회가 있던 지난 14일 밤에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14일 민중총궐기에 참여했던 참가자들은 그 날의 참혹했던 순간을 기억하고 있다. 기자 입장에서도 요 근래 취재한 집회 중에 가장 참혹했던 집회였다. 경찰의 강경 진압으로 팔이 부러지고 머리가 찢어지는 집회 참가자들이 속출했다. 칠순 농민 백모씨는 직사로 물대포를 맞아 생명이 위독한 상태까지 내몰렸다. 캡사이신이 섞인 물대포를 맞지도 않았는데 근처만 가도 기침이 나올 정도로 경찰은 최루액을 독하게 살포했다.
▲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청입구 사거리에서 경찰이 물대포를 맞고 실신한 보성지역 농민 백아무개씨와 그를 구조하려는 참가자들에게 계속해서 물대포를 쏘고 있다. ⓒ민중의소리
집회가 시작도 되기 전부터 차벽으로 광화문 일대를 둘러싸고 쓰러진 시민들을 향해 확인사살이라도 하듯 물대포를 쏘는 공권력의 행태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이와는 별개로 집회 전략에 대해서도 고민해야한다. 파리에서 일어난 테러 소식까지 알았던 친구는 왜 광화문에서 벌어진 시위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을까. 시위대의 요구, 주장은 보도하지 않은 채 불법시위만 부각시키는 언론의 책임이 크지만, 집회의 전개양상에서 기인하는 측면도 크다.
경찰의 진압이 특히 더 심각했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민중총궐기 집회는 이전 집회와 비슷한 양상을 띠었다. 첫째, 시위대가 광장에서 집회를 한 뒤 행진을 시작한다. 둘째, 경찰은 차벽을 겹겹이 쳐서 광화문 일대를 에워싸고 경찰 병력을 동원해 시위대의 행진을 막는다. 셋째,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을 이어간다. 마지막으로 몇몇 사람이 연행되거나 해산하는 방식으로 집회가 끝난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보니 1만 명이 모이건 10만 명이 모이건 집회의 전개양상은 비슷하다. 선두에 있는 몇몇 사람들이 경찰 버스를 끌어내려고 밧줄을 당기고, 경찰과 몸싸움을 벌인다. 그리고 그 뒤의 사람들은 앞의 사람을 응원하거나 ‘길을 열어라’는 구호를 외치다가 집회는 끝난다. 그러다 경찰들의 방어선이 뚫리면 시위대는 앞으로 조금 더 나아가고 경찰들은 그 다음 방어선에서 시위대를 저지하고, 또 같은 충돌이 반복된다.
14일 민중총궐기 집회의 모습도 비슷했다. 경찰과의 대치 상황에서 몇몇 선봉대가 앞장서서 경찰버스를 밀거나 경찰을 끌어내려 했고, 뒤에 있던 대다수의 시위대는 버스가 움직이면 박수를 치면서 응원을 하고 구호를 외쳤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 대다수의 시위대는 경찰과 대치상황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경찰 차벽을 뚫고 광화문광장, 혹은 청와대로 행진하는 것이 목표가 되다보니 앞의 선봉대가 차벽을 뚫을 때까지 뒤의 시위대는 딱히 할 일이 없어지는 상황이 발생한다. 경찰은 대규모 시위대가 행진할 수 있는 길에 방어선을 치면 행진이라는 시위대의 목표를 저지할 수 있다.
경찰의 진압방식은 시위 문화의 변화에 발 맞춰 변화했다. 과거 경찰은 곤봉이나 방패를 들고 시위대를 강제 진압하거나 해산시켰다. 경찰과 시위대가 직접 충돌했고 그 과정에서 경찰의 잔인한 진압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과잉 진압’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2002년, 나아가 2008년 촛불집회 이후 많은 집회가 문화제 형식을 띠게 됐다. 특정 공간을 점유한 채 공연을 즐기는 방식이다. 그러자 경찰은 곤봉이나 방패로 시위대를 진압하는 것보다 더 효율적인 진압방식을 발견한다. 공간을 점유하고 문화제를 즐기는 시위대에 맞서 그 공간을 먼저 점유해버리는 것이다.
2008년 촛불집회에서 등장한 명박산성이 대표사례다. 집회가 예정된 지역 주변에 컨테이너박스나 차벽을 세우고 일대를 봉쇄해 시위대를 고립시킨다. 이 지점에서 물대포가 등장한다. 경찰들이 곤봉과 방패를 들고 시위대를 진압하는 대신 물대포를 쏴서 시위대가 거리로 나오는 것을 차단한다. 물대포에 캡사이신을 섞어 시위대의 결집력을 흐트러트리면서 차벽에 접근하지 못하게 한다. 21세기 경찰의 시위 진압방식은 이처럼 ‘고립시키기’다.
▲ 14일 민중총궐기 집회에서 경찰이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을 향해 물대포를 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집회 참가 인원이 지닌 중요성도 줄어들었다. 경찰이 시위대를 직접 곤봉과 방패로 진압해 해산시키는 상황에서는 집회 인원이 중요하다. 비유하자면 평야에서 벌어지는 전투다. 하지만 진압의 목표가 고립시키는 것이라면 시위대가 1만 명이든 10만 명이든 특정 공간만 사수하면 된다. 경찰은 평야의 전투에서 성을 지키는 공성전으로 전략을 바꾼 셈이다.
시위, 데모의 목적은 ‘보여주기’다. 하지만 집회가 고립된 광화문에서 벌어지면, 제3자가 보기에 집회는 ‘남 일’이 될 가능성이 높다.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이곳에서 누군가 목소리를 내는 행위가 아니라, 광화문에서 벌어지는 경찰과 시위대의 전투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언론은 시위대와 경찰의 몸싸움만 보여주며 이러한 시각을 더욱 강화한다.
경찰의 진압방식에 발 맞춰 시위대의 시위 전략도 다변화해야 하는 이유다. 10만 명을 한 자리에 모아 많은 사람들이 노동개악과 국정화에 반대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에 한계점이 있다면 10만 명의 사람들이 지역 각지와 도심 곳곳에서 여론전을 펼치고 더 많은 사람들의 동참을 끌어내는 게릴라전이 필요하지 않을까. 물론 이 경우에도 경찰은 도심 곳곳에 경찰을 풀어 시위를 막으려 할 것이다. 14일 민중총궐기는 공권력의 과잉 진압과 함께 집회 전략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고민거리를 던졌다.
고대영 KBS 사장 후보, 서약했나 김무성에 충성 1116 미디어 오늘
언론노조 KBS본부 폭로… 청와대 낙점, 김성우 수석-김인규 전 사장 작품
KBS 이사회 여당 추천 이사들이 고대영 KBS 사장을 낙점한 청와대의 뜻을 실현시키기 위해 다양하게 노력했다는 폭로가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는 16일 노보 특보를 통해 “고대영 사장 선임은 김성우-김인규 작품”이라며 강동순 전 KBS 감사를 인용해 폭로했다.
이번 KBS 사장 후보에 공모해 1차 서류 심사에서 5표로 고대영 후보와 같은 표를 받았던 강동순 후보는 2차 면접 후 최종투표에서 한 표도 받지 못했다. 여권 추천 이사 7인 전원이 고대영 후보에게 몰아준 것이다.
강동순 전 감사는 KBS 노보에서 “추석 연휴 때 김성우 홍보수석이 이인호 이사장하고 A 이사에게 개별적으로 전화했다”며 “두 사람만 알고 있으라는 게 아니라 다른 이사들한테 공감대를 사전에 넓혀달라는 뜻으로 다른 이사들도 두 사람을 통해서 다 알게 됐다”고 폭로했다.
▲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노보 특보.
심지어 이들은 추석 연휴 이후에 만나 ‘청와대 낙점설’에 대해서 모르는 척하기로 입을 맞추기로 했다는 정황도 드러났다. 강동순 전 감사는 “여권 추천 이사 7명 중 6명이 참석한 모임에서 ‘이번 추석 연휴에 홍보수석실에서 내려온 얘기는 없었던 걸로 하자’고 했다”고 전했다.
강동순 전 감사는 이런 분위기를 직접 만났던 B이사를 통해서도 느꼈다고 폭로했다. 강동순 전 감사는 “내가 추석 연휴 지나서 며칠 후 B 이사를 만났다. 청와대에서 특정인을 검토해달라고 말이 내려오는 게 있을 수 있는 얘기냐 하고 따졌더니 B 이사는 부인도 시인도 안하고 그냥 알고 있는 것 같은 반응을 보였다”고 말했다.
이런 과정은 강동순 전 감사 지인을 통해 알게됐다. 이인호 이사장은 청와대에서 전화를 받은 후 강동순 전 감사 지인인 D씨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가 이런 사람을 받기 위해서 여덟 달 동안 고생을 했습니까, 참 답답합니다’고 속내를 털어 놨다”고 말했다.
강동순 전 감사에 따르면 D씨는 KBS와 인연이 있고 박근혜 정권과도 친밀해 상당한 영향력이 있다. 이인호 이사장은 D씨와 수개월 동안 차기 KBS 사장에 대해 논의를 해왔기 때문에 이인호 이사장이 전화를 한 것으로 보인다.
KBS본부는 “강 전 감사가 KBS 사장이 되기 위해 많은 유력 인사들을 만났고 이 과정에서 여러 경로를 통해 ‘청와대 개입설’의 구체적인 정황을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이라며 강동순 전 감사의 폭로 내용이 상당한 신빙성이 있다고 봤다.
▲ 고대영 KBS 사장 후보자가 16일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이사회 구성부터 청와대와 논의… 고대영 뒤에는 친이계 각본 따른 김무성
강동순 전 감사는 이번 KBS 사장 후보 선임을 위해 청와대가 이사회 구성부터 철저하게 준비했다고 폭로했다. 지난해 여당 추천 이사들의 반란표로 야당 추천 이사가 밀었던 조대현 사장이 당선되는 사례를 재연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가 엿보인다는 분석이다.
강동순 전 감사는 “KBS 이사회를 새로 구성하기 전에 거의 매일 이인호 이사장과 김성우 홍보수석이 전화 통화를 해서 이사회를 새로 구성했다”며 “그래서 이번 이사들을 뽑을 때 각서 비슷하게 개별적으로 김성우 홍보수석한테 다짐을 하다시피 했고 무슨 체크리스트 같이 각서에 버금가는 다짐을 하고 (이사회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앞서 김주언 전 KBS 이사가 ‘김용민·민동기의 관훈나이트클럽’ 팟캐스트에서 ‘청와대가 9기 이사회 여당 추천 이사 면접을 봤다’고 폭로한 것과도 같은 맥락이다.
강동순 전 감사는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여권 추천 이사가 사장 선임 과정에서 지지를 해줬는데 결과적으로 청와대 지시를 받고 고대영 후보에게 표를 줬다”며 추측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강동순 전 감사는 이 모든 기획의 연출자로 김인규 전 KBS 사장을 지목했다. 강동순 전 감사는 “김인규는 자기 임기 3년에 길환영-조대현까지 해서 6년을 해먹은 거다. (김인규는 기자 출신이고) PD지만 길환영이나 조대현도 김인규 사람이다. 그리고 이제는 고대영을 사장으로 만들어서 또 6년을 해먹으려고 하는 거”라고 주장했다.
강동순 전 감사에 따르면 “김인규 전 사장이 고대영 후보를 2년 전부터 데리고 다니면서 서청원 새누리당 최고위원도 만나고 대통령한테도 인사시키고 준비를 했다”며 “우리 쪽 사람이 서청원한테 ‘다음 사장이 누가될 것 같으냐’고 물었더니 ‘고대영 아닌가. 준비 많이 했던데’라는 반응이 나올 정도였다”고 말했다.
이 기획의 끝에는 친이계의 지지를 받게 될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있다는 주장도 했다. 강동순 전 감사는 “김무성 대표와 친분이 있는 김인규 전 사장이 친이계와 함께 고대영 후보를 KBS 사장으로 만들려고 하고 있다”며 “친이계는 내년 총선이 끝나자마자 미래 권력인 김무성 대표에게 힘을 실어주게 돼 있다”고 분석했다.
▲ 김인규 전 KBS 사장. 사진=이치열 기자
KBS본부는 성명을 통해 “강동순 전 감사의 폭로가 사실이라면 이번 사장선임은 출발부터 특정 후보를 염두에 둔 공정성을 상실한 불공정한 게임이었음을 반증하는 것”이라며 “불공정한 선임과정으로 임명 제청된 고대영 후보의 정당성도 잃게 되는 중차대한 사안”이라고 진단했다. KBS본부는 “이인호 이사장은 청와대 인사로부터 추석연휴 기간에 ‘사장 낙점’ 전화를 받았는지, 또 여당추천 이사들 7명 전원이 고대영 후보에게 몰표를 행사한 배경에 청와대 오더가 작용했는지도 소상히 답해야 한다”며 “청와대 홍보수석의 연락을 받고 특정후보를 선출하는데 총대를 멨다면 당장 그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고 사퇴를 촉구했다.
또 청와대에 대해 KBS본부는 “ 고대영씨를 청와대 낙하산으로 내려 보내기 위한 과정에 팔을 걷어 부쳤다면 김성우 수석의 개인 판단이라고 보긴 힘들다”며 “청와대 입맛에 맞는 고대영씨를 낙점한 몸통의 실체가 있음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이인호 이사장은 미디어오늘 기자가 청와대 낙점설에 대해 질문하자 “그런 일은 없다”고 답한 이후 손병두 전 KBS 이사장과의 통화에서 “미디어오늘 여자가 전화했는데 (청와대 낙점설을 묻기에) ‘딱잡아 뗐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고대영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야당 의원들은 이같은 의혹을 제기하며 이인호 이사장을 증인·참고인으로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여당과 합의가 되지 않고 있다.
수출 ‘죽 쑤고’ 내수도 ‘죽 쑤고’···한국경제 ‘불안한 그림자’1115 경향
경기는 순환합니다. 경기 침체기에서 저점을 지나면 반등해 상승국면으로 진입합니다. 현재 한국 경제는 침체기일까요. 상승기일까요. 통계청, 한국은행, 금융연구소 등에 따르면, 한국 경제는 2013년 4월 이후 경기상승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계·기업 등 경제 주체들은 ‘경기상승기’에 가계부채, 워크아웃, 법정관리 등의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한국경제가 본격적인 경기회복을 경험하지 못한 상황에서 대외 충격에 의해 상승기를 마치고 침체기에 들어갈 경우, 심각한 경기침체가 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한국금융연구원이 15일 발표한 ‘현 경기국면의 특징과 시사점’에 따르면, 우리 경제는 경기변동 주기상 제11순환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1970년 이후 10번의 경기 상승, 침체를 거친 후 11번째 맞는 경기 상승기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경제주체들은 아무도 지금이 경기 상승기라고 느끼지 못하지요.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이번 11순환기는 독특한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과거처럼 확장국면 초기 강한 경기반등이 없고, 미적지근한 확장국면이 너무 오래 지속되고 있습니다.
아래 표를 보시지요. 통계청과 금융연구원, 한국은행 자료를 종합한 그래프입니다. 금융연구원에 따르면, 한국경제는 1970년 이후 10개의 경기순환기 모두에서 확장국면 초기에 강한 반등을 경험했습니다. 대체로 경기 저점을 지나면 6분기 연속으로 지속적으로 강한 경기상승이 이뤄집니다. 아래 그래프에서는 V자 모양으로 나타나지요. 이런 강한 경기 회복은 경제 주체들이 경기가 확장 국면에 진입했다는 점을 체감케해 가계나 기업들이 소비나 투자에 적극 나설수 있는 환경을 조성합니다. 즉 경기회복이 가계의 소비심리와 기업의 투자심리를 개선시키고, 이로 인해 또다시 소비와 투자가 늘어나 경기회복이 더 강화되는 선순환이 일어나지요.
한국경제 11순환기(파란색은 하강기). 자료: 통계청·금융연구원·한국은행
하지만 현재 11순환기에서는 경기저점 통과이후 V자가 아닌 L자형의 밋밋한 경기회복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금융연구원에 따르면, 한국경제는 1990년 이후 6개의 경기순환기 확장국면에서 전분기 대비 평균 1.9%의 실질 GDP성장률을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11순환기 확장국면에서는 전분기대비 평균 0.8%성장률에 그치고 있습니다. 경기가 크게 반등하지 않아 경제주체들도 이를 체감하지 못했고, 이들이 소비와 투자를 늘리지 않으면서 성장률이 0%대에 머무른 것이지요.
‘V자 반등’은 왜 사라졌을까요. 금융연구원은 한국경제의 ‘수출주도형 성장’이 더이상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합니다. 한국의 수출부문은 내수 부문에 비해 대체로 고부가가치 산업인데 경기 확장 국면 초기에 수출이 크게 확대되면서 경기회복을 이끈 것이지요. 1989년 7월 시작된 5순환기에 건설경기가 경기반등을 주도한 경우를 제외하면, 1990년 이후 다른 경기순환기에서 수출에 의해 경기반등이 주도됐습니다. 1990년 이후 6개의 확장국면에서 수출의 성장기여도는 평균 3.7%포인트였습니다. 하지만 11순환기 확장국면에서는 수출이 평균 1.4%포인트 기여하는데 그치고 있지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교역이 위축되면서 한국의 수출을 통한 강한 경기회복이 어려워진 것입니다. 수출이 ‘죽을 쑤면’ 내수부문이라도 살아야 경기가 살아날텐데 인구고령화, 가계·기업부채 등 구조적 문제로 민간소비 증가율도 1%대에 그치고 있습니다.
또 하나의 특징은 경기회복기가 너무 오래 지속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제 곧 경기침체기에 접어들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뜻이지요. 그동안의 경기순환기 확장국면은 평균 31개월동안 지속됐습니다. 이번 11순환기는 밋밋한 확장국면이 너무 길게 이어지고 있지요. 11월까지 약 32개월째입니다. 가계나 기업은 경기회복기와 호황기에 소득과 이윤을 축적해 재무상황을 개선시키고 이를 토대로 경기후퇴기와 불황기에 어려움을 이겨냅니다. 하지만 지금의 경기회복기는 그럴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합니다. 가계는 가계부채에 시달리고, 기업은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철강, 건설, 조선, 해운산업에서는 구조조정이 한창입니다.
임진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본격적인 경기회복을 경험하지 못한 상태에서 경기수축 충격이 발생하면 우리 경제는 심각한 경기침체에 진입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며 “11 순환기에서는 장기간의 경기확장에도 불구하고 가계와 기업의 재무상황이 크게 호전되지 못한 상태가 지속돼, 대내외 경제적인 충격이 발생할 경우 경제주체들의 위기 대응능력이 크게 떨어질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일단 한국경제는 32개월째 이어진 경기회복기가 계속 유지되도록 노력하면서 세계 경제가 회복되기만을 바라는 처지가 됐습니다. 본격적인 경기 상승이 이뤄지지 못한채 경기회복기가 끝나고, 대외 충격이 발생할 경우 심각한 경기침체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게 금융연구원의 전망입니다.
금융연구원은 “정부가 경기회복 모멘텀 유지와 성장잠재력 확충이라는 두 개의 정책목표를 동시에 달성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며 “이 둘 사이의 절묘한 균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돈을 풀어 단기적으로 경기를 부양시키는 일이 불가피하지만, 단기적인 경기대응책만 내놓다보면 장기성장기반 조성을 위한 구조개선에 대해서는 손을 놓는 일이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빚내서 집 사라’더니… 라고?어쩌 1117 시사인
아파트 분양 물량이 평균의 2배에 이르는 등 주택시장 활황이 절정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빚내서 집 사라’ 정책은 가계부채 폭탄의 덩치를 더 키우고 말았다. 내년 초부터 주택시장에 대한 규제가 강화될 전망이다.
ⓒ대림산업 제공 10월23일 경기도 용인에 있는 한 견본주택 앞에 방문객들이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이는 무서운 독을 더 무서운 독으로 제압하는 정책이었다. 국가경제 차원에서 집값 하락이 무서운 현상인 이유는 가계부채라는 폭탄을 터뜨릴 뇌관 노릇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는 ‘빚내서 집 사라’ 정책으로 집값 하락이라는 뇌관의 불을 잠시 끄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가계부채 폭탄의 덩치는 더 키우고 말았다.
11월3일 한국은행이 발간한 <통화신용정책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1년간(2014년 10월~2015년 9월 기준) 은행의 월평균 가계대출 증가액이 6조3000억원에 달했다. 2012년 1월에서 2014년 8월(DTI·LTV 규제 완화) 사이 월평균 증가액은 1조8000억원에 불과했다. 가계대출의 월 단위 증가 속도가 무려 3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이를 주도한 것이 가계대출의 70% 이상으로 추정되는 주택담보대출이다. 지난해 164%로 집계된 가계부채 비율은 이미 주요국(2013년 기준으로 영국 154%, 일본 129%, 미국 114%)보다 높은 수준이었는데 더욱 나빠졌으리라 보인다.
지난 9월6일 새정치민주연합 홍종학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아 분석한 수도권 주택담보대출 실태(2015년 6월 말 기준)를 보면, 유사시 사고를 내기 쉬운 ‘위험 대출’의 비중이 매우 큰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에 따르면, 수도권의 주택담보대출 잔액 100조원 가운데 집값의 60% 이상을 빌린(LTV 60%) 가구의 대출 규모가 42조5000억원이다. 또한 빌린 돈의 원금과 이자 상환으로 소득의 절반 이상을 내야 하는(DTI 50%) 대출 규모도 19조7000억원에 달했다. 특히 LTV 60%와 DTI 50%를 동시에 초과해 위험이 중첩되어 있는 대출도 9조7000억원 규모다. 지난 7월 박근혜 정부가 ‘가계부채 종합 관리방안’을 내놓은 이유는 주택담보대출의 증가에 따른 위험성을 스스로도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내년 초부터 ‘스트레스 금리’ 제도 실시될 계획
‘가계부채 종합 관리방안’ 가운데 내년 초부터 신규 대출에 대해 실시될 계획으로 주목되는 것이 바로 ‘스트레스 금리’ 제도다. 변동금리 대출의 경우, 이후 금리 인상을 가정해서 상환 능력을 따져보고 대출 규모를 조정하겠다는 취지다. 예컨대 연소득 3000만원의 직장인이 ‘현재 4%’의 변동금리로 2억원을 빌리러 은행에 갔다고 가정하자. 그는 매년, 원금 중 1000만원씩과 함께 이자 800만원(2억원의 4%)을 상환하기로 했다. 이 경우, 그의 DTI(연간 상환금인 1800만원÷연 소득 3000만원)는 60%다. 가까스로 대출받을 수 있는 수치다. 그러나 은행 측은 앞으로 이자가 오를 경우에 대비해서, 현재 금리(4%)에 ‘스트레스 금리’ 3%를 합친 7%로 상환 능력을 다시 따져보자고 한다. 금리 7%면, 매년 분할 상환키로 한 원금 1000만원과 이자 1400만원(2억원의 7%)을 합쳐서 그의 연간 원금 및 이자 상환금은 모두 2400만원에 달하게 된다. 이렇게 계산한 ‘스트레스 DTI’는 80%(2400만원÷3000만원)까지 치솟는다. 결국 이 직장인은 대출 규모를 줄여야 할 가능성이 크다. 박근혜 정부는 ‘스트레스 금리’와 ‘스트레스 DTI’ 등에 대한 세부 규정을 연말까지 결정해서 발표할 계획이다.
한편 금융 당국은 지난달부터 은행들의 ‘아파트 집단대출’에 대해서도 부실 대출 여부를 검사하고 있다. 아파트 분양은 발주에서 입주까지 큰돈과 오랜 기간이 필요한 사업이다. 원칙적으로 건설사 측은 공사에 필요한 자금 중 상당 부분을 입주 예정자들로부터 ‘중도금’ 형식으로 받아야 한다.
그러나 입주 예정자들은 새 아파트에 들어가기 위해 현재 소유한 주택을 팔거나 전세금을 찾기 전까지는 목돈을 마련할 수 없다. 그래서 건설사 측이 분양 계약자들을 대신해서 은행으로부터 ‘입주자 집단’의 중도금을 대출받는(집단대출) 것이 보통이다. 분양 계약자들은 입주할 때 비로소 중도금을 낸다. 현재 규모가 100조원에 달하는 집단대출에서는, 은행이 계약자들의 신용을 각각 심사하지 않기 때문에 부실 대출이 발생할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금융 당국의 규제로, 은행들이 일부 사업장에 집단대출을 꺼리거나 금리를 올리면, 전체 주택 분양시장이 받을 타격 역시 만만치 않을 것이다.
금융 당국이 뒤늦게나마 주택시장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기로 한 것은 다행스럽고 불가피한 일이다. 그러나 이미 시장 상황은 만만치 않다. 올해 분양 물량이 과거 10년치 평균(25만~27만 호)의 2배에 달할 정도로, 주택시장이 공급과잉 상태다. 그만큼 집값의 하방 압력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다. 내년엔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국내 금리까지 오를 가능성이 큰데, 가계부채 규모는 부풀대로 부풀어오른 상태다. 더욱이 중국 등 이머징마켓의 경기 침체가 본격화되고 있어서 이로 인한 국내 가계의 소득 불안정성 역시 심화될 전망이다. 지난해 8월 이후 열심히 ‘집값 올리기’에 나섰다가 고작 17개월 만에 ‘건설사와 수요자 동시 압박’으로 조변석개한 박근혜 정부의 ‘빚내서 집 사라’ 정책이 어떤 결말에 이를지 조심스럽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
강남 101 대 1· 동탄2 326 대 1…뜨거운 1순위 청약 한국경제 1120
몇 주 지켜보니…지금은 청약할 때?
송파 헬리오시티, 1순위 4만명 몰려 평균 34 대 1
'고속도로 호재' 다산신도시·용인 성복도 10 대 1 육박
이달 초 중도금 대출심사 강화 등의 영향으로 주춤했던 주택 분양시장이 다시 활기를 찾고 있다. 이번주 수도권 주요 택지지구와 지방 대도시를 중심으로 분양 ‘완판(완전판매)’이 잇따랐다. 건설회사들은 청약일로부터 한 달가량 걸리는 분양계약을 연내 마무리 짓기 위해 가능한 한 다음주까지 모델하우스를 연다는 계획이다.
○1순위 마감 단지 잇따라
금융결제원에 따르면 이번주 서울에선 가락동 ‘송파 헬리오시티’와 ‘삼성동 센트럴 아이파크’가 청약 1순위에서 높은 경쟁률로 마감됐다. 가락시영 아파트를 재건축하는 송파 헬리오시티는 1216가구 모집(특별공급 제외)에 4만1908명이 지원해 평균 34 대 1을 나타냈다. 서울에서 4만명이 넘는 청약자가 나온 건 2003년 5월 ‘도곡렉슬’(9만7279명) 이후 처음이다. 분양을 맡고 있는 에스앤비의 김승석 대표는 “현대산업개발 현대건설 삼성물산이 짓는 9510가구 대단지인 데다 위례신도시와 문정지구 등 주변 개발 재료도 많아 강남권 수요자들이 대거 청약에 나섰다”고 말했다.
삼성동 센트럴 아이파크도 평균 31.57 대 1, 최고 101 대 1의 경쟁률로 1순위 마감됐다. 걸어서 5분 거리에 지하철 9호선 삼성중앙역과 7호선 청담역이 있고 코엑스와 아셈타워도 가까운 게 장점으로 꼽힌다.
경기에선 용인 ‘성복역 롯데캐슬 골드타운’이 1918가구 모집에 2만96명이 청약해 평균 10 대 1을 기록했다. 단지 내에 롯데쇼핑몰(연면적 16만615㎡)이 들어서는 데다 내년 2월 개통 예정인 신분당선 성복역이 연결된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경쟁률이 높아졌다는 분석이다. 반도건설이 화성시 동탄2신도시에서 공급한 ‘동탄역 반도유보라 아이비파크 7.0’도 평균 경쟁률 27 대 1을 기록했다.
지방에선 포스코건설이 울산 남구 대현동에 선보인 ‘대현더샵 1·2단지’가 1순위에서 10만명이 넘는 청약자들이 몰렸다. 단지별로는 1단지가 223가구 모집에 5만6769명(평균 254 대 1)이 몰렸고 2단지는 727가구 모집에 5만8574명(평균 80 대 1)이 접수했다.
○“관망하던 실수요 다시 청약”
건설회사들은 이달 초 청약시장에 나타난 변화 기류에 대한 걱정을 일단 덜었다는 반응이다. 노규현 롯데건설 분양팀장은 “중도금 대출심사 강화 등의 문제가 불거지면서 관망하던 수요자들이 청약시장에 다시 돌아오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분양마케팅업체 삼일산업의 김선관 대표도 “이번주 들어 모델하우스로 청약 상담과 문의가 다시 늘어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제대로 바람난 제주…땅 매물이 사라졌다 1119 이데일리
△새 공항 청사 건물이 들어설 예정인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 혼인지 일대 [사진=박종오 기자]
제주 新공항 건설…현지 부동산시장 둘러보니
토지수용 문의전화 5분에 한 통꼴
개발 기대감에 매물 자취 감춰
"공항 건설지 인근 온평리 3.3㎡당
10만원 수준서 이젠 부르는 게 값"
지난 13일 오후 제주도 동쪽 서귀포시 성산읍 고성리에 있는 성산읍사무소. 시간당 최대 10㎜ 넘게 쏟아진 장대비를 뚫고 온평리 주민 50여 명이 몰려들었다. 이곳에서 제2 제주공항 건설 예정지가 공개됐기 때문이다. 제주 2공항은 2025년까지 성산읍 고성·난산·수산·신산·온평리 일대 495만 8000㎡ 부지에 짓는다. 이 중 온평리 땅이 70% 이상이다.
“내 땅이 들어갔네.” “우리 집은 피했구먼.” 공항 예정지 지도를 바라보는 온평리 주민 입에서 탄식과 탄성이 오갔다. 공항이 들어설 자리에 있는 땅은 정부가 시세 수준인 감정가에 수용하지만, 공항 예정지 외곽 토지는 개발로 인한 가치 상승효과를 톡톡히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읍사무소 관계자는 “문의 전화도 5분에 한 통꼴로 쇄도했다”며 “자기 땅이 공항 건설 부지에 포함됐는지 확인해 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비가 갠 이튿날부터 부동산시장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정보가 퍼진 것이다. 고성리 고성교차로 일대 부동산 중개업소에는 이날 매물을 찾는 투자 문의가 몰렸다. 이 지역은 새 공항 상업시설 용지와 가깝고 교통망도 좋아 공항 개발의 최대 수혜지 중 하나로 꼽힌다. 성산읍 전체(107.8㎢)가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이는 15일 이전에 서둘러 매매 계약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거래는 성사되지 않았다. S공인 관계자는 “매물이 자취를 감췄다”고 말했다. 개발 기대감에 부푼 지주들이 매물을 일제히 들여놓아서다. 한전호 토생금부동산 소장은 “온평리만 해도 집을 지을 수 없어 평소엔 쳐다보지도 않던 땅들이 적지 않았다”며 “땅값도 3.3㎡당 10만원 선에 불과했지만, 이제는 부르는 게 값”이라고 말했다.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고성리 고성교차로 일대 [사진=박종오 기자]
개발 바람은 성산읍에서 자동차로 20~30분 거리에 있는 남서쪽 표선면과 남원읍, 북쪽 구좌읍까지 불어닥쳤다. 표선면 표선리 학사부동산 관계자는 찢긴 부동산 매매 계약서 뭉치를 꺼냈다. 그는 “1000만원씩 위약금을 물고도 계약을 취소하겠다는 사람들 때문에 파기된 거래 물건이 대충 이 정도”라고 말했다. 남원읍에 있는 제주한라공인 노시풍 대표는 “땅 주인들이 일제히 관망에 들어가 완전히 휴업 상태”라고 전했다.
제주도가 요즘 바람이 들어도 단단히 들었다. 섬 역사상 최대 규모인 사업비 4조 1000억원 규모의 제2 제주공항 건설이 확정돼서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들어 10월까지 제주도에서는 건물에 딸린 땅을 제외한 순수 토지 3만 8471필지가 거래됐다. 2010년 1만 8835필지에서 5년 새 두 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제주 서귀포시의 경우 올해 토지 거래량이 1만 8033필지로 벌써 작년 전체 실적(1만 7346필지)을 뛰어넘었다. 바다 건너 육지 투자 수요가 몰린 영향이다.
제주 2공항 개발은 이런 ‘제주 부동산 앓이’에 또 한 번 불 지필 대형 땔감이다. 성산읍 땅값은 올해 1~9월 사이 3.8% 올라 제주도 전체에서 지가 상승률이 가장 높았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새 공항이 들어서는 서귀포 일대는 기존 제주공항이 있는 중심지와 거리가 멀어 발전이 더뎠던 곳”이라며 “부동산 투자 수요가 제주 전역으로 확대하는 물꼬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島 농가주택도 2억원 '훌쩍'…작은 땅은 품귀
△제주도 서귀포시 표선면에 있는 한 부동산 중개업소 벽면에 매물 시세표가 빼곡하게 붙어 있다. [사진=박종오 기자]
495㎡ 농가 2억+리모델링 하는데 1억
3300㎡ 안 넘는 작은 땅, 눈 씻고 찾아봐도 없어
3.3㎡당 공사비 500만원
개발제한 묶인 땅 확인을
‘도시를 벗어나 전원의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 마당과 텃밭이 딸린 집’
도시의 팍팍한 일상에 지친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꿈꿀 법한 로망이다. ‘힐링 도시’ 제주도에서 이런 전원주택 마련의 꿈을 이루려고 하는 은퇴자와 30·40대 청년층 실수요가 크게 늘고 있다. 하지만 섣불리 발을 담갔다가 시간과 비용만 허비할 수도 있는 만큼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가장 손쉽게 접근하는 방법은 기존 농가주택을 매입해 리모델링하는 것이다. 까다로운 토지·건축 규제를 피하면서도 주택 새 단장 후 가치 상승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게 최대 장점이다. 문제는 만만찮은 가격이다. 현지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제주도 내 대지 면적이 495㎡(150평) 안팎인 옛 가옥 매매 시세가 최근 2억원을 웃돌고 있다. 불과 4~5년 전만 해도 1억원을 밑도는 집이 많았지만, 요즘은 찾기 어렵다는 것이 현지 전문가들의 이야기다. 슬레이트 지붕 철거, 증·개축비를 더하면 최고 3억원 가량의 비용이 들 수 있다.
직접 땅을 사서 집 짓는 방법도 있다. 좋은 토지를 시세보다 저렴하게 살 수 있다는 게 매력이다. 그러나 매물 상당수가 3300㎡(1000평)가 넘는 큰 땅인 데다, 제주도의 경우 토지 이용 제한이 많고 건축비도 비싸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예컨대 제주에서는 국토계획법 외에 별도의 ‘제주특별법’을 근거로 보전지역을 지정해 토지를 관리한다. 도시지역이 아닌 대부분 지역은 경관·생태계·지하수자원보전지구 등급에 따라 개발이 아예 불가능하거나 강화한 용적률·건폐율 규제를 받을 수 있다.
제주도 현지 부동산개발·컨설팅회사인 초아D&C 차경아 이사는 “상수도가 설치되지 않았거나 중산간의 경우 ‘임목도(숲을 이룬 나무의 밀도)’가 30%를 넘는 등 애초에 건축 허가를 받을 수 없는 땅들도 잘 걸러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원주택 분양업체인 해비치개발 송수남 대표는 “공사비도 3.3㎡당 500만원 정도로 육지보다 3.3㎡당 100만~150만원 정도 비싼 편”이라고 말했다.
아파트도 고려할 만한 대상이다. 바다가 지척인 휴양도시의 여유와 주거 편의성을 동시에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역시 껑충 뛰어오른 가격이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우철 한국공인중개사협회 제주도 지부장은 “제주공항 근처 신제주 지역에 지은 지 3~4년 된 전용면적 85㎡ 아파트값이 4억원을 넘은 상황”이라며 “수요는 많은데 아파트 지을 곳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보니 3년 전부터 가격이 계속 오르고 있다”고 전했다.
재벌에겐 침묵하는 자유경제원 1119 시사인
헤겔이 나폴레옹으로부터 시대정신을 봤다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지난 10월28일의 새누리당 포럼에서 “시대의 영웅을 발견했다”. 그 영웅은 전희경 자유경제원 사무총장이다. 이 자리에서 그녀는 “한국사 교과서뿐 아니라 다른 과목 교과서들 역시 좌편향·왜곡됐다”라고 주장했다. 단일 국정교과서를 역사 부문은 물론 다른 과목으로까지 확대하라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자유경제원은 “자유주의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현진권 원장, 홈페이지 인사말). ‘시장 자유’와 ‘소비자 선택권’을 전투적으로 옹호해왔다. 그런데 자유주의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어떤 자유주의는 특정 기업이 지나치게 비대해지는 것을 반대한다(질서 자유주의). 독점으로 시장경쟁이 저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자유주의는 지나친 빈부격차에 비판적이다(자유민주주의의 일부 경향). 가난한 자가 부유한 자에게 종속되어 자유를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자유경제원의 자유주의에서는 시장경쟁의 결과라면 독점과 빈부 격차는 당연한 일이다. 재벌그룹의 골목시장 진출이나 하청기업과의 계약에 국가가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 이른바 자유지상주의(libertarianism)로 불리는 경향이다. 자유경제원의 시각으로 보면, 새누리당도 좌파 정당이다. 지난해 9월 이 단체가 발표한 <제19대 국회 시장친화성 평가>는 산출 대상 새누리당 의원 136명 중 33명(24.3%)을 좌파, 99명(72.8%)을 중도좌파로 분류했다. 대한민국은 사회주의로 넘어가기 직전인 것일까? 그래서 지난 10월26일에는 ‘2016 총선, 이런 사람은 절대 안 된다’ 토론회를 열고 ‘친북 성향 및 반시장주의’ 후보들에 대한 낙선운동을 사실상 선언했다.
이런 전투적 자유지상주의자들이 ‘국가의 사상 시장에 대한 독점’인 교과서 국정화를 강력히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성역’이 하나 더 있다. ‘대기업 경영권 시장’이다.
ⓒ자유경제원 홈페이지 11월12일 자유경제원은 박정희 탄생 98주년 기념 북콘서트를 열었다.
경영권은 자본시장에서 사고판다. 다른 투자자보다 더 많은 주식을 사들이면 해당 기업의 경영권을 획득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그렇지 않다. 재벌 가문이 복잡한 계열사 구조를 통해 적은 돈으로 많은 기업의 경영권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벌 가문 소유의 100억원 상당 주식은 다른 투자자들의 1000억원 규모 주식과 비슷한 정도의 지배력을 행사한다. 재벌 가문들이 4~5% 정도의 소유 지분으로 전체 계열사를 좌지우지하는 이유다. 소매점(주식회사)이 어떤 소비자(재벌 가문)에게는 1000원에 파는 물건을 다른 소비자(재벌 이외의 투자자)에게는 1만원에 파는 격이니 터무니없는 ‘시장경쟁 저해 행위’다.
자본시장에 대한 국가 개입 요구했던 자유경제원
그러나 자유경제원은 재벌에 대해서는 전투성을 발휘하지 않는다. 지난 7월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삼성그룹을 공격할 당시에도 삼성 가문 편이었다. 최승노 부원장이 좌담회에 나서서 “엘리엇이 경영권 공격에 성공할 경우 삼성전자의 경영권까지 노릴 수 있다. (…) 엘리엇은 정치·사법 수단까지 동원해 기업을 압박하는 투기자본이다”라고 말했다. 평소 그토록 증오하던 민족주의와 공공성을 옹호했다. 이 좌담회에서는 ‘경영권 보호장치’를 만들자는 발언도 나왔다. 자본시장에 대한 국가 개입을 요구한 것이다.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자유경제원은, 재벌 대기업들의 이익단체인 전경련(전국경제인연합)이 설립한 단체다. 법률적으로 독립한 현재도 대다수의 이사진을 전경련과 대기업 관계자들로 채우고 있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재벌기업의 폐해가 큰데도 국민경제적 특수성을 인정해서 반시장적인 기업 지배구조를 용인해왔다. 그러나 재벌들이 자유경제원을 내세워 민주주의까지 공격한다는 의혹이 언론과 야권에서 제기되고 있다.
"헉, 이겼어?"... 오프라인 스포츠신문의 굴욕 1120 오마이뉴스
야구 한일전 역전 드라마 결과 뒤바뀐 채 1면 올려... 20일 공식 사과 "지방판 제작에서 일어나"
▲ 20일자 <스포츠서울>의 1면 사진. ⓒ 온라인 커뮤니티
이기긴 했지만 너무 늦게 이겼던 걸까? '2015 WBSC 프리미어12' 한일전에서 한국 대표팀은 9회 극적인 역전 드라마를 썼지만, 한 스포츠신문은 그로 인해 굴욕을 당했다. 지방판 마감시간에 맞춰 신문을 제작하다가 결과가 뒤바뀐 오보를 전한 것. 이 신문사는 다음날 사과문을 올려야 했다.
스포츠 전문지인 <스포츠서울>은 20일 오전 1면에 커다란 사진과 함께 '삼중고에 무너진 대한민국'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19일 오후 7시부터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준결승전에서 한국이 일본을 4대 3으로 이겼음에도 한국이 패배한 것처럼 보도한 것이다. 해당 면이 찍힌 사진은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를 통해 퍼져나갔다.
<스포츠서울>은 다음날 사과문을 올렸다. <스포츠서울>은 20일 홈페이지를 통해 "지방판 신문 제작 시스템 상 경기가 끝나지 않은 시점에 제작을 끝내야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실수"라며 "최종판에는 삼중고를 뚫고 기적의 9회를 만든 대한민국 대표팀의 쾌거를 정상적으로 보도했다"고 밝혔다.
<스포츠서울>은 "독자 여러분께 사죄 말씀을 올리고, 추후 제작 시스템 정비 등을 통해 재발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오류가 난 신문은 일부 지역에 배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한국은 0:3으로 패색이 짙던 9회 초 오재원의 안타를 시작으로 연이어 타석이 폭발하면서 내리 4점을 내 난적 일본에게 역전승을 거뒀다. 한국 대표팀이 역전을 한 시점은 오후 10시30분경이다.
다음은 <스포츠서울>의 사과문 전문이다.
"일부 지역에 배달된 스포츠서울 20일자 주말판 1면에 '삼중고에 무너진 대한민국'이라는 제목으로 프리미어12 한일전 관련 기사가 나갔습니다. 마치 한국이 패배한 것처럼 보도해 독자 여러분께 혼선을 드린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립니다. 지방판 신문 제작 시스템 상 경기가 끝나지 않은 시점에 제작을 완료해야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실수였습니다. 최종판에는 삼중고를 뚫고 기적의 9회를 만든 대한민국 야구대표팀의 쾌거를 정상적으로 보도했습니다.독자 여러분께 다시 한번 사죄의 말씀을 올리고, 추후 제작 시스템 정비 등을 통해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환호하는 韓-망연자실 日벤치 사진, 주요 스포츠신문들 1면에 함께 실어 1121 동아
감독의 투수 교체 실수 집중 조명
고쿠보 히로키 일본 야구대표팀 감독이 투수 교체를 잘못해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12 준결승에서 한국에 역전패를 당했다는 비난을 쏟아낸 20일 자일본 신문들. ‘굴욕-한국에 역전패’ ‘미스’ ‘계투 실패’ 등의 제목이 보인다. 도쿄=뉴시스
일본 언론은 20일 전날 자국 야구 대표팀 ‘사무라이 저팬’이 한국 대표팀에 9회에 충격적인 역전패를 당한 것을 두고 ‘악몽’이라는 표현을 쓰며 대서특필했다. 주요 스포츠지는 1면에 환호하는 한국 선수들과 이를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일본 벤치의 사진을 대조해 실으며 ‘굴욕적 패배’라는 제목을 뽑았다.
비난은 7회까지 무실점 호투하던 오타니 쇼헤이(21·니혼햄)를 교체한 고쿠보 히로키 감독에게 집중됐다. 산케이스포츠는 고개 숙인 고쿠보 감독의 사진을 1면에 싣고 ‘저의 실수’라는 그의 발언을 제목으로 뽑았다. 기사에 따르면 고쿠보 감독은 경기 후 선수들 앞에서 충혈된 눈으로 “나에게 모든 책임이 있다”라며 고개를 숙였다. 스포츠 호치도 고쿠보 감독의 고개 숙인 사진을 싣고 ‘계투 미스’라는 제목을 달았다. 또 “고쿠보 감독이 한 일(一)자로 입을 다문 채 환호하는 한국 대표팀을 지켜봤다”고 썼다.
주요 일간지들도 스포츠면에서 관련 소식을 비중 있게 다뤘다. 아사히신문은 “신설 대회에서 초대 챔피언 등극을 맹세한 ‘사무라이 저팬’이 숙적 한국을 상대로 ‘너무도 잔혹한 역전패’를 당했다”며 안타까워했다. 요미우리신문은 ‘경이로운 끈기’라는 중간 제목을 달고 한국 팀의 선전을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이 신문은 “한국이 투수 7명의 계투로 끈기 있게 싸웠다”며 한국 팀의 승리 요인을 분석했다.
이날 도쿄돔에는 4만238명의 관중이 경기를 지켜봤다. 가득 찼을 경우 4만3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것을 감안하면 거의 빈자리가 없었던 셈이다. TBS가 중계한 경기 시청률은 간토(關東) 기준으로 25.2%에 달해 프리미어12 경기 중 가장 높았다. 올해 일본시리즈 시청률(10% 안팎)은 물론이고 일본에서 절정의 인기를 누리는 피겨스케이팅 선수 아사다 마오(25) 복귀전(23.2%)보다 높은 시청률이었다. 순간 최고 시청률은 일본이 리드하고 있던 8회말 상황에서 기록한 32.2%였다.
한국에서도 비슷했다. SBS가 방영한 준결승전 중계 시청률은 평균 13.1%(닐슨코리아 전국 기준)를 기록했다. 이대호가 역전 2타점 적시타를 때린 9회초 최고 시청률은 23.2%까지 올랐다. 앞서 8일 한국이 일본에 5-0으로 패했던 개막전 시청률은 8.8%였다.
한편 아사히신문은 프랑스 파리 테러의 영향으로 준결승 경기가 경찰 당국의 엄중한 경계 속에서 치러졌다고 보도했다. 폭발물 설치를 우려해 구장 내의 코인로커를 봉쇄했고, 주변의 일부 휴지통도 사용할 수 없게 했다. 소지품 및 신체검사도 평소 이상으로 엄격하게 실시했다.
반기문 대통령·친박 총리’의 나라 1116 경향
이병기 대통령 비서실장이 지난 14일 서울공항에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회동했다. 출국하는 박근혜 대통령을 배웅하고 나서다. 이 실장은 김 대표에게 ‘홍문종 의원의 개헌론은 청와대와 무관하다’는 취지로 설명했다고 한다.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 했던가. 이미 청와대 대변인 등 여러 참모들이 선을 그은 터에 비서실장까지 말을 보태고 나서니 더 수상하다.
친박근혜(친박)계 핵심인 홍 의원은 최근 “5년 단임 대통령제는 이미 죽은 제도가 된 것 아니냐”는 발언으로 파란을 일으켰다. 그는 “외치를 하는 대통령과 내치를 하는 총리를 두는 것이 5년 단임제보다 정책 일관성이 있다”며 이원집정부제 개헌을 주장했다. ‘반기문 대통령, 친박 총리’ 구상에 대해서도 “가능성 있는 얘기”라고 말했다. 앞서 진박(眞朴·진실한 친박)의 좌장급이라는 최경환 경제부총리도 개헌론을 우회적으로 언급했다. “5년 단임 정부에선 정책의 지속성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했다. 최 부총리와 홍 의원은 대통령 의중에 어긋나는 말을 할 사람들이 아니다. 내가 김 대표라면 이 실장이 뭐라고 하든 두 사람의 ‘천기누설’을 믿겠다.
김 대표는 지난해 10월 중국 상하이에서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 개헌을 거론했다가 된서리를 맞았다. 하루 만에 “대통령께 죄송하다”고 사과하며 체면만 구겼다. 청와대의 개헌 불가론은 그만큼 깊고 강했다. 상황은 13개월 만에 반전됐다. 친박계가 개헌론에 군불을 때고 김 대표는 “개헌 얘기는 안 하겠다”며 입을 닫았다. “누구는 (개헌론 제기)하는데 누구는 하면 안되느냐”는 측근 김성태 의원의 발언이 김 대표 심중을 대변한다. 억울해할 건 없다. 권력의 본질이 그렇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싶은 때, 하고 싶은 맥락에서 할 수 있는 힘, 심지어 해석까지 뜻대로 할 수 있는 힘이 권력이다. 박 대통령은 다른 어떤 권력자보다 그 권력을 전유하려는 의지가 강하다.
박 대통령은 63세다. 66세에 ‘전직’이 된다. ‘문고리 3인방’(이재만·정호성·안봉근 비서관)은 퇴임해도 40대 후반~50대 초반이다. 전직 대통령도 젊고, 측근도 젊다. 친박계는 ‘무늬만 계파’일 뿐 매우 취약하다. 새누리당 내 소수파인 데다 유력한 차기 주자도 없다. 대통령과 측근과 친박세력의 이해가 일치하는 지점이 박 대통령의 집권 연장이다. 단임이 굴레다. 개헌을 통한 ‘사실상 연임’은 매력적 대안이 될 수 있다. 충청 출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대통령, 대구·경북(TK) 출신 ‘진실한 사람’을 총리로 내세운다면? 선거공학 측면에서 봐도 유혹적인 조합이다. 대통령은 내치를 맡는 총리 뒤편에서 수렴청정을 할 수 있다.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내년 4월 총선의 목표를 “180석”이라 공언한다. 역시 개헌론과 떼어 생각하기 어렵다. 새누리당이 이 정도 의석을 얻는다면 분권형 개헌을 외쳐온 일부 야당 의원까지 끌어들여 개헌 의결 정족수(200석)를 채우는 일이 가능하다. ‘친박의, 친박에 의한, 친박을 위한’ 개헌 실현 여부는 총선 결과에 달린 셈이다. 자기들끼리 치고받느라 정신없는 새정치민주연합이 과연 정권 연장용 개헌을 저지할 수 있을까.
헌법 제128조 2항은 ‘대통령의 임기연장 또는 중임변경을 위한 헌법개정은 그 헌법개정 제안 당시의 대통령에 대하여는 효력이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헌정사에 다시는 장기집권이란 오점이 없도록 삽입한 조항이다. 10월 유신 같은 상황이 아닌 한 박 대통령은 개헌이 이뤄져도 연임할 수 없다. 우회하는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정가에선 박 대통령이 차기에 ‘바지 대통령’을 내세워 중임제 개헌을 하도록 하고, 차차기에 재출마한다는 시나리오가 떠돌았다. 민주주의 체제의 상식을 뛰어넘는, 공상 중의 공상이다.
이원집정부제 개헌을 통한 ‘사실상 연임’은 어떤가. 1987년 6월항쟁의 결과로 공동체가 합의한 장기집권 불가 원칙에 위배되기는 마찬가지다. ‘막장드라마계의 대모’로 불린 작가 임성한씨는 드라마 제목에 ‘아현동 마님’ ‘압구정 백야’ 식으로 동네 이름을 붙이는 걸 즐겼다. 임성한식 작명을 빌리면 이원집정부제 개헌은 청와대 밖에 ‘삼성동 폐하’를 모시겠다는 얘기다. 대통령 본인 뜻이든, 친박의 호가호위(狐假虎威)에 불과하든 주권자를 졸(卒)로 보는 발상이다.
지난해 10월 ‘개헌은 싫다’는 칼럼을 썼다. 국회의원들이 기본권 강화에는 관심 없이 권력을 어떻게 나눌 것이냐에만 집중하는 게 싫어서였다. 다시 말하건대, 개헌은 싫다. ‘친박 개헌’은 더더구나 싫다. 6월항쟁 때 서울시청 앞에 모인 시위대는 “호헌 철폐, 독재 타도”를 외쳤다. 바로 그 자리, 지금의 서울광장에서 “개헌 반대, 독재 타도” 구호가 울려퍼지는 날이 오지 않기를 바란다.-김민아 논설위원
“선진국이 더 슬퍼!” 파리테러 비교사진 시끌시끌1116 국민
파리테러 이전의 테러에서도 많은 무고한 시민들이 희생됐지만 네티즌들은 시큰둥했다는 것을 비꼬는 비교 사진. 인터넷 커뮤니티 캡처
“선진국이 더 슬퍼!” 파리테러 비교사진 시끌시끌 기사의 사진
“선진국 테러에만 유독 더 슬퍼하는 건 아닌가요?”
테러로 인한 민간인 사망을 두고 선진국과 후진국에 따른 슬픔의 크기가 다르다는 주장을 담은 비교 사진이 인터넷으로 퍼지며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에는 시리아, 이라크에서도 테러로도 많은 시민이 죽었을 때 무심하던 네티즌들이 프랑스 파리에서 일어난 테러에만 더 크게 슬퍼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일침이 담겼다.
16일 국내외 각종 커뮤니티에는 이라크와 시리아, 프랑스 테러를 비교한 사진이 퍼지고 있다. 앞선 두 나라의 무고한 생명이 희생된 데는 정작 무관심했던 네티즌들은 파리 테러에는 페이스북 프로필 사진에 프랑스 삼색국기 이미지를 덧입히며 애도를 표한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자행된 끔찍한 테러 사진 옆에는 시큰둥한 표정을 지은 얼굴이, 파리 테러 사진 옆에는 오열하는 얼굴을 그렸다.
네티즌들은 “솔직히 조금 찔렸다” “인정하기 싫지만 인정한다” “할말이 없다” 등의 반응으로 씁쓸해했다. 페북은 파리 테러 이후 프로필 사진에 프랑스 국기를 의미하는 파란색과 흰색 붉은색 이미지를 덧입힐 수 있는 기능을 추가했고 많은 이들이 추모의 의미를 담아 프로필 사진을 변경했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에 벌어져 40여명이 사망한 레바논 테러를 추모하기 위해 레바논 국기를 페북 프로필 사진에 적용한 이는 거의 없었다.
이 비교 사진을 페북에 처음 올린 것으로 알려진 네티즌 sho**은 “우습지만 우리는 이런 세상에 살고 있다. 이건 농담이 아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그는 ‘프랑스를 위해 기도해달라(#prayforparis) 대신 ‘인류를 위해 기도해달라(#?prayforhumanity)’는 태그를 달았다. 그가 올린 비교 합성 사진은 16일 오후 현재 4만4000회 공유됐다.
프랑스 공군 전투기가 15일(현지시간) 걸프 해역에 위치한 공군기지에서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를 응징하기 위해 이륙하고 있다. 프랑스는 이날 모두 12대의 전투기를 동원해 IS가 수도로 선포한 시리아 북부 라카를 폭격했다. IS는 지난 13일 파리 테러를 저지른 배후로 지목됐으며 프랑스는 이 테러를 ‘전쟁행위’로 규정하고 대대적인 보복을 천명했었다. EPA연합뉴스
"시위대 두들겨 패야" TV조선의 막말 1117 오마이뉴스
'민중 총궐기 대회' 관련 방송 보도 모니터 보고서
▲ '민중 총궐기 대회' 관련 방송 보도 모니터 보고서 개요 ⓒ 민주언론시민연합
지난 14일, 주최 측 추산 총 10만 명이 모인 '민중 총궐기 대회'가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열렸다. 서울역, 대학로, 서울시청 등지에 모인 각계 시민들은 세대갈등을 부추겨 비정규직 확대를 꾀하는 노동개혁,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교과서 국정화, 국민의 입과 귀를 막으려는 언론 장악, 소수자에 대한 탄압 등 박근혜 정부의 실정에 대해 성토한 후 광화문으로 집결하려고 했다.
하지만 경찰은 광화문으로의 행진과 집회가 신고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차벽과 물대포를 동원한 진압에 나섰다. 진압 과정에서 살인적인 기압으로 물대포를 직사해 곳곳에서 시민들이 경찰의 물줄기에 맞아 고꾸라졌다. 가톨릭 농민회 소속 농민 1명이 뇌진탕으로 중태에 빠지는 등 시민 30여 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물리적 충돌 속에서 경찰도 113명이 다치고 50여 대의 경찰 버스가 파손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폭력 시위에 대한 정당한 진압'을 주장했지만, 평화 행진을 원천 차단하는 차벽의 위헌성과 쓰러진 농민을 집요하게 조준 직사한 경찰의 물대포 진압은 '군부독재의 탄압'을 연상케 했다.
이에 대한 주요 방송사들의 보도를 검토한 결과, 종편채널인 TV조선과 채널A는 10만 국민을 폭력 반체제 집단으로 매도했고 공영방송인 KBS와 MBC까지 이에 동조하고 있었다. 민언련은 이렇게 왜곡된 방송사의 보도 실태를 고발한다.
14일 TV조선·채널A, "강경 진압 왜 안 하나" 부추겨
지난 14일 오후 7시경, 집회에 참석한 농민 백아무개씨가 직사 물대포에 맞아 실신해 병원에 옮겨졌으나 아직도 중태다. 당시 경찰은 10m도 채 안 된 곳에 서 있는 백씨를 향해 직사 물대포를 쐈으며, 백씨가 땅에 쓰러진 후에도 얼굴을 향해 15초 이상 물을 쐈다. 이후 백씨를 구하려고 나선 시민들에게 또다시 물대포를 쐈다.
현장 촬영 영상에서는 쓰러진 시민을 구하려는 시민들, 심지어 구급차에도 물대포를 직사하는 모습이 담겨있다. 마치 해산의 목적이 아닌, 살인진압처럼 보였다. 이날 TV조선과 채널A에서는 시위 현장 화면을 내보면서 '살인진압'을 지시하고 있었다. 이들은 거의 생중계처럼 시위를 보여주며 "시위대, 사다리로 경찰 공격…밧줄로 차벽 흔들어", "시위대, 쇠파이프로 경찰차 파손 중"이라는 자막을 내보냈다. 그러면서 집회참가자의 폭력성을 강조하고 문제의 책임을 그들에게 돌렸다.
채널A <쾌도난마>(11/14)는 방송 제목부터 "도심 '폭력' 시위 특집/시위대 경찰 공격, 무법천지"로 뽑았다. 출연자들을 집회 참가자들을 '전문 시위꾼', '일반 시민은 보이지 않는다'며 비난하는 한편, 경찰을 향해서는 "소극적 대응을 이해할 수 없다"면서 체포와 진압 등 강경 대응을 주문했다. 또 직사로 사람들에게 물대포를 쏘는 장면을 보면서도 "물대포를 쏘는 거 외엔 특별히 하는 게 없다"며 오히려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한편 장시간 방송하면서도 집회에 모인 사람들의 요구는 제대로 전달하지 않았다. 이들의 요구안을 잠시 화면에 비춘 후 "백화점 식이다", "무슨 저런 요구를 하느냐"고 비난했다. 결국 방송 시간 대부분을 집회 참가자들에 대한 비난과 폭력성을 부각하는 데만 사용한 것이다.
TV조선 "두들겨 패야" 채널A "위수령 발동" 주장
TV조선 <뉴스토요특급>(11/14)은 오후 4시 30분부터 출연진(정군기, 고영신, 양욱, 홍현익)과 도심 집회를 주제로 2시간 넘게 방송했다. 이날 출연한 정군기씨는 "우리나라가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시위 문화에 대해서는 굉장히 관용적"이라고 발언했다. 또 경찰을 향해 "소극적인 대응, 차단벽 설치 이런 걸로 만족하"지 말라며 "특단의 대책"을 요구했다.
함께 출연한 양욱씨는 "저쯤 되면 폭동 수준"이라면서 "인원이 부족하면 북유럽식으로 해야" 한다며 "(북유럽은) 거의 사람을 잔인하게 두들겨 팹니다. 정말 아주 기가 막힐 정도"라면서 시위대를 '두들겨 패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또 고영신씨는 "공권력을 무력화시키고 일종의 체제전복 내지는 타도 식의 인상을 주는 저런 과격, 폭력 시위에 대해서는 경찰도 제대로 한번 대응을 하는 것이 좋다"며 강경 진압을 부추겼다.
채널A <뉴스 스테이션>(11/14)에 출연한 황태순씨는 "위수령을 발동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내놨다. 황씨는 "1차 2차 3차 저지선이 뚫리고 통의동 쪽으로 확 뚫려서 (시위대가) 청와대까지 갔다고 생각해 보자"면서 "그러면 대통령이 취할 수 있는 건 딱 한 가지밖에 없다. 위수령 발동"이라 언급했다.
그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를 언급하며 "사회에 어떤 불안한 요소가 있을 때는, 늘 전투경찰이 장갑차에다가 기관총을 걸고 그러고 항상 경비를 선다"면서 "버스로 차벽 친다고 될 일이겠냐"고 한탄했다. 과거 군사독재 시절을 추억하는 발언에 섬뜩할 정도다.
시민이 경찰에 맞아 죽어 가는데도 '더 강경하게'를 외치는 TV조선과 채널A에는 더는 왜곡이니 편파니 따위의 표현이 어울리지 않는다. TV조선과 채널A는 진압에 쓰러진 시민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반성은 고사하고 시민들을 협박하고 나선 정권의 선전 도구일 뿐이었다.
배경 설명 없이 불법·폭력시위만 9건 보도한 TV조선
▲ '민중 총궐기 대회' 관련 6개 방송사 보도량 상세 비교(11/13~15) ⓒ 민주언론시민연합
6개 방송사의 '민중 총궐기' 관련 총 보도를 보면 그 편파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TV조선과 채널A는 불법·폭력 프레임과 종북 프레임 등 고질적인 보도를 또 반복했다. TV조선은 총 23건에 달하는 총 보도에서 구체적인 집회의 배경이나 진행 상황 설명도 없이 불법·폭력 프레임 등 선동적인 보도에만 골몰했다. 채널A도 보도량만 적을 뿐 내용은 마찬가지이다. 지상파 3사는 14일 당일은 1~2건만 보도했고, 모니터 기간 중 총 보도량도 3~4건뿐이다. 보도 자체에 무관심했을 뿐 아니라, 그나마 보도한 내용도 편향적이다.
MBC는 아예 정부 기관방송을 자처했다. <내일 10만 명 집회…불법 행위 엄단>(11/13, 10번째, 육덕수 기자)에서 정부 각처의 민중 총궐기에 대한 경계 입장을 일일이 받아 적었다. "민주노총이 청년 일자리를 만드는 데 귀를 기울여야", "정부의 쌀 수습안정대책을 믿어 달라", "교사들의 정치적 활동을 우려한다며 내일 10여 개 대학의 대입 논술시험이 열린다고 설명", "위법 행위는 사소한 것이라도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 MBC 보도를 가득 채운 정부 각 부처의 입장이다.
KBS는 <교통마비에 논술 수험생 발 '동동'>(11/14, 15번째, 천효정 기자)에서 집회가 민폐라는 TV조선 프레임에 힘을 보탰다. KBS는 집회로 인해 한 학생이 대학 논술 고사를 치르지 못했다면서 "못 보고 돌아온 건 당연히 억울"하다는 학부모 인터뷰를 실었다.
하지만 보도는 화면도 없이 해당 학생의 부모인지 확인도 할 수 없는 음성 변조 녹취만 제시하고 있다. 과연 실제 존재하는 학부모인지조차 의심스러울 정도로 부실한 보도다. 반면 SBS는 대학별 논술 고사와 관련, <도심 수만 명 집회…'차벽' 저지 충돌>(11/14, 9번째, 류란 기자)에서 "대입 논술과 면접 시험은 집회에 큰 영향을 받지 않고 진행"되었다고 보도했다.
집회 하루 전부터 불법·폭력으로 규정한 TV조선
'민중 총궐기 대회' 관련 단연 눈에 띄는 언론은 TV조선이다. 민중 총궐기 대회 하루 전인 11월 13일부터 방송사의 태도는 확연히 갈렸다. JTBC만이 민주노총의 집회 및 행진 계획과 경찰의 대응 방침을 균형 있게 전하며 "경찰이 무리하게 막지 않는다면 인도로 평화행진을 하겠다"는 민주노총의 입장도 빼놓지 않았다.
반면 TV조선은 하루 전부터 집회를 '불법 폭력 집회'로 규정했고 정부 각 부처의 강경대응 입장만을 읊어대기에 바빴다. TV조선은 <종일 집회·행진…서울 올스톱 되나>(11/13, 5번째, 정세영 기자)에서 민중 총궐기 대회가 "불법 과격 시위로 변질될 가능성도 높아 보입니다"라고 강조했고 "53개 단체 중 19개가 통합진보당 해산에 앞장서 반대했던 '강성단체'"라는 경찰 발표를 인용했다. TV조선의 어떤 보도에서도 10만 대중이 거리로 나선 구체적인 배경은 찾을 수 없다.
TV조선 보도는 균형과 객관성을 잃고 각종 선동에만 혈안이 되어 있어 가히 충격적인 수준이다. TV조선의 프레임은 ▲ 불법·폭력 집회 ▲ 집회는 민폐 ▲ 집회 참여 세력은 종북 ▲ 야당도 집회 세력과 한패 등 크게 4가지이다. 일차적으로 TV조선은 신고 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10만 시민 모두를 불법·폭력 시위대로 매도한다.
<불법 과격 시위…도심 '무법천지'>(11/14, 1번째, 이상배 기자) 등 9건의 보도는 제목에서부터 불법 또는 폭력 낙인을 찍으며 "자유민주주의라는 가면을 쓴 불법 과격 시위대", "폭력 시위로 얼룩진 광화문 일대" "불법 점거", "경찰에게 쇠파이프를 휘두르는가 하면 경찰버스를 밧줄로 묶어 끌어내기도" 등 시위대 일부의 과격 행위를 집회의 전체 성격으로 규정했다. 23건에 달하는 보도들의 화면 구성 역시 대부분 시위대의 폭력 장면으로만 이뤄져 있어 불법·폭력 프레임은 사실상 전체 보도에 걸쳐 있다고 볼 수 있다.
▲ 폭력 시위대 부각시키는 TV조선 보도 화면 갈무리 ⓒ TV조선
종북몰이도 여전히 반복
TV조선의 종북몰이도 반복됐다. <'통진당 해산 반대' 단체도 참여>(11/14, 6번째, 이상준 기자)는 "19개 단체는 통합진보당 해산 반대 범국민운동본부에 소속됐던 단체", "내란선동 혐의로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이석기 전 의원 석방 요구도 터져 나왔습니다"라며 노동개악 철폐, 교과서 국정화 저지 등 '민중 총궐기'의 핵심 목표를 은폐했다. 이러한 TV조선 보도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평화 집회 신고를 원천적으로 불허하면서 차벽까지 설치한 경찰의 책임을 무시하며 집회를 무조건 폭력 시위, 종북 시위로 모는 마녀사냥이라는 점이다.
불법·폭력과 종북 프레임을 앞세운 TV조선의 궁극적인 메시지는 결국 10만에 달하는 집회 참가 시민과 이에 동조하는 셀 수 없이 많은 국민들을 강경하게 진압하거나 구속시켜야 한다는 '엄단론'으로 귀결된다. '엄단론'에서 생명이 위중한 농민은 국민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TV조선은 경찰의 위법적, 살인적 물대포로 생명이 위독한 가톨릭 농민회 소속 백씨 관련 보도에서 주요 내용을 모두 누락했다. <"과잉 진압에 부상자 속출" 반발>(11/15, 6번째, 김승돈 기자)는 백씨가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아 넘어져 머리를 다쳤다"고 전했지만 경찰이 백씨의 머리를 조준 직사한 사실, 백씨가 쓰러진 후에도 물대포를 계속 쐈다는 사실, 백씨를 부축해 끌고 나가는 시민들까지 조준하여 물대포를 쏜 사실 등은 말하지 않았다.
더 황당한 것은 공권력 행사로 시민의 목숨이 경각에 달했는데도 이를 부수적 피해로 여기며 오히려 경찰과 정치권에 더 강경한 진압과 법적 제재를 요구하는 보도들이다. 이런 보도는 총 6건에 이른다.
특히 <폭력 '난무'…무너진 공권력>(11/14, 11번째, 최병묵 편집장)와 <불법시위 vs 과잉진압 어떻게 볼 것인가>(11/15, 11번째, 최병묵 편집장·정태원 변호사)는 노골적이다. 최병묵씨는 "일부 10만 명이 나와서 불법적인 요구사항을 얘기했다고 해서 그걸 귀를 기울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어안이 벙벙하다"면서 "공권력이 그 동안 용산참사나 여러 가지 과정을 겪으면서 굉장히 위축돼 있다"고 말했다. 또 "그 위축된 장면을 오늘 광화문에서 여실히 목격했다"면서 "겨우 캡사이신포나 물대포 정도에 그쳤다"며 경찰의 진압 수준을 아쉬워했다.
"공권력과 경찰권이 무너지는 선에서 끝나지 않고 체제 자체의 위기가 올 것", "국민의 생명과 신체 안전을 보호하고 불법 집회를 진압할 의무가 있기 때문에 과잉진압이 아니다. 다만 농민 백씨가 다친 것은 별도의 문제다" 등 강경 발언도 이어졌다. 하지만 국민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해야 하는 경찰이 국민의 일원인 농민을 중태에 빠뜨렸는데 이것이 어째서 별도의 문제인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이는 현 정권에 반대하면 국민이 아니라는 TV조선의 관점을 고스란히 드러낸 것이다.
▲ 집회 엄벌을 촉구하는 채널A 보도 화면 갈무리 ⓒ 채널A
TV조선보다 보도량은 적지만 그 내용에서는 채널A도 다를 바가 없다. 역시 '민중 총궐기'를 불법·폭력으로 몰기에 바빴고 중태에 빠진 백씨가 쓰러진 후에도 물대포를 쏴대는 경찰의 행태에는 침묵했다. 무엇보다 '엄단론'에서는 TV조선보다 더 강경했다.
채널A <'민중총궐기 대회' 7만명…서울 도심 '아수라장'>(11/14, 3번째)은 전원책 변호사와 황성준 문화일보 논설위원의 입을 빌려 도를 넘어선 주장을 쏟아냈다. 전 변호사는 "이번 기회로 법을 더 엄하게 한다든지 다른 카리스마를 발동해서 엄히 다스려야 한다"며 엄포를 놓았고 황씨는 "혼자 나가서 쇠파이프를 휘두르면 유죄고 머리띠 두르고 나가면 무죄인가"라며 근거도, 논리도 없는 주장을 했다.
집회 참가 시민 전체를 폭력범으로 몰면서 평화적 행진을 원천적으로 차단해 충돌을 야기한 경찰의 책임에는 침묵하는 것이다. 심지어 "국민들이 너무 관대하다"며 물리적 갈등 사태의 책임을 또 다른 국민에게 돌리는 발언까지 서슴지 않고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있다"며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10만 국민의 열망을 모독했다.
합법 집회 기준 검토한 방송은 JTBC뿐
TV조선과 채널A가 과도하고 왜곡된 보도를 쏟아내는 사이, JTBC가 고군분투했으나 턱없이 역부족이었다. JTBC는 <위헌 결정 '경찰 차벽' 또 다시 등장>(11/14, 12번째, 김지아 기자) 등 3건의 보도에서 경찰의 과잉진압을 비판했다. 특히 2011년 경찰 차벽에 내려진 위헌 결정을 조명하고 차벽을 만드는 데 "지방에서 올라온 관광버스도 동원" 됐음을 지적했다.
농민 백씨 관련 보도에서도 백씨를 포함 물대포 직사에 쓰러진 또 한 명의 시민 사례를 소개하며 "쓰러진 뒤에도, 다른 사람들이 옮길 때도 물대포는 계속 날아옵니다"라며 경찰의 행태를 구체적으로 전했다. 더불어 그 화면까지 보여주면서 TV조선과 채널A와 차별화 된 보도를 했다.
▲ JTBC, 경찰의 물대포 조준사로 쓰러지는 시위참가자 보도 화면 (TV조선과 채널A는 누락) ⓒ JTBC
JTBC는 "영상을 보면 규정 위반이 의심되는 부분"이 있다며 거리에 따라 수압을 조절해야 하는 살수차 운영 지침을 경찰이 위반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여러 가지 근거를 대서 (민중 총궐기 집회를) 허용하지 않으면서 광화문 쪽으로 이동하다 충돌"한 것인데 지난 7일에는 "보수단체 모임인 '애국단체총연합회' 등이 교과서 국정화를 지지하는 모임"이 광화문에서 허용되었다면서 "집회 허용 기준이 애매하다는 지적"을 언급한 것도 JTBC뿐이다. 신고되지 않은 집회는 무조건 불법·폭력이라며 열을 올린 TV조선과 대조되는 대목이다.
하지만 8건에 그친 JTBC 보도만으로 비정규직의 나락으로 떨어진 노동자들과 쌀값 폭락에 주저앉은 농민들, 교과서 국정화로 퇴보하는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등 '민중 총궐기'에 담긴 국민적 열망을 다 전할 수가 없었다. 또한 총 32건에 달하는 TV조선과 채널A의 왜곡·편향·선동 보도에 반박하기에도 턱없이 역부족이었다. 이 와중에 KBS와 MBC는 각각 민폐 프레임 1건과 불법·폭력 프레임 1건으로 TV조선과 채널A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민중 총궐기'는 노동자, 농민, 성소수자, 청년, 빈민, 언론인, 교사 등 사회 각계의 시민들이 불통과 역사의 역행을 일삼는 정부에 저항의 목소리를 전하는 집회였다. 10만 대중이 모여 정부의 반민주적 행태에 대항했으나 돌아온 것은 경찰의 과격 진압과 언론의 불법·폭력 낙인이었다. 이렇게 10만 국민의 민주적 열망이 쏟아진 '민중 총궐기'의 진실은 우리 방송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왜 박정희 세력이 한반도 패권세력이 되었나? 1117 오마이뉴스
[인터뷰] <박정희 김대중 김일성의 한반도 삼국지> 펴낸 이충렬씨①
▲ 이충렬씨가 펴낸 <박정희 김대중 김일성의 한반도 삼국지>의 부제는 '세 개의 혁명과 세 개의 유훈 통치'다. ⓒ 유성호 / 레디앙
이충렬(58)씨는 고등학교 졸업 이후 학생운동과 민주화운동, 노동운동, 야당정치권 등에 몸담았다. 스스로 "남한테 내세울 만한 경력이 없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전국노동조합협의회 조직부장, 민주개혁정치모임 사무차장, 노사정위원회 책임전문위원, 노무현 대선후보의 정책특보를 지냈으니 '내세울 경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노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에는 당선자 특사로 백악관을 방문해 주목받았다.
이씨는 야당정치권에 몸담고 있었지만 공천권을 쥔 권력자들에게 접근한 적이 없을 정도로 '아웃사이더'였다. 그리고 지난 2012년 대선이 야당의 패배로 끝나자 강화도로 귀촌했다. "당대에 내 역할은 없다"라는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인 선택이었다. 그렇게 욕심을 내려놓으니 '진짜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지난해 야당의 약한 고리인 '정당 국고보조금 문제'를 과감하게 제기한 것이나 최근 <박정희 김대중 김일성의 한반도 삼국지>(이하 <한반도 삼국지>, 레디앙)를 펴낸 것은 그런 용기의 결과물이었다.
<한반도 삼국지>에는 '세 개의 혁명과 세 개의 유훈통치'라는 인상적인 부제가 달려 있다. 이씨는 자신이 직접 경험한 40여년간의 현대사를 통해 '한반도 정치'의 실체에 접근했다. 한반도를 움직이는 세 개의 힘은 박정희(근대화 혁명), 김대중(민주주의 혁명), 김일성(공산주의 혁명)이고, 이들은 '유훈통치'를 통해 여전히 한반도를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남북 분단시대'가 아니라 '삼국시대'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세 개의 혁명' 가운데 가장 성공한 혁명은 역시 근대화 혁명이다. 이는 '박정희-전두환-노태우-이명박-박근혜'로 이어진 박정희 세력이 한반도의 패권세력으로 확고하게 자리잡은 배경이다. 여기에는 1980년과 1987년(대선), 1990년(3당 합당)에 일어난 양김(김영삼-김대중)의 분열도 중요하게 작용했다. 양김이 이끌었던 민주주의 혁명의 빛이 바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박정희 세력의 패권세력화, 민주세력의 분열과 탐욕으로 잊혀진 것은 '자유, 평등, 평화'라는 6월항쟁의 가치와 정신이다. 그는 '세 개의 유훈통치'를 끝장내기 위해서는 이 6월항쟁의 가치와 정신을 부흥시킬 수 있도록 영감을 주는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신자유주의의 일방적 주도권에 도전하고 있는 미국의 샌더스나 영국의 코빈, 캐나다의 트뤼도 같은 지도자가 야권에서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대중 정신'이나 '노무현 정신'만을 외치는 야권에서 그런 희망을 찾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이씨는 지난 12일 여의도에서 만나 "3당 합당과 DJP 연합을 통해 박정희 세력이 청산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정받게 됐다"라고 꼬집었다. 그는 "김영삼 정권을 '문민권력', 김대중 정부를 '국민의 정부'라고 부르는 것은 이 권력들의 본질을 오해시킨다"라며 "김영삼 권력은 '3당 합당 권력'이고, 김대중 권력은 'DJP 연합 권력'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씨는 "이번 책을 통해 우리가 살던 시대를 객관화하고, 미움과 증오보다는 긍정적으로 경쟁할 수 있기를 바란다"라며 "민주세력이야말로 남북한의 군국주의 사상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다음은 이씨와 2시간 동안 나눈 인터뷰 전문이다.
"남북분단시대가 아니라 삼국지시대"
- 이 책은 40년간의 '한국현대사'라고 해야 하나, '한국정치사'라고 해야 하나?
"당대사라고 이름붙어야 한다고 본다. 상고사도 있고, 중세사, 근대사, 현대사도 있다. 이 책은 해방 이후사를 서술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얘기한 '역사전쟁'이라는 것도 해방 이후사가 핵심이다. 하지만 해방 이후사는 아직 역사학의 공인된 역사로 끝난 게 아니고 현재의 일부다. 해방 이후사는 정치학이나 사회학에서 다루지 역사학에서는 잘 안다룬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당대사로 봐야 한다. 한 시대가 마무리되지 않아 쓰기가 어렵다. 지금도 사회 제세력들이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 이 책을 쓰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
"내가 굉장히 마음 속으로는 진보적 가치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평생 보수 야당에서 생활했다. 보수야당의 대선후보로 거론되는 김부겸, 행장부 장관을 지내고 총선에 출마하는 정종섭, 지금은 쉬고 있지만 차세대에서 중요한 사람인 김성식, 원내대표를 지낸 야당 중진의원 전병헌, 이명박 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을 지낸 임태희 등이 다 내 친구들이다. 이 사람들은 대부분 기억한다. 그런데 이충렬? 남한테 내세울 만한 경력이 하나도 없다.
2012년 대선에서 민주당 등 야권세력이 완패하고, 나이도 60세 가까이 되면서 당대에는 내 역할이 없는 것이 내 운명이라고 체념하게 됐다. 당대에 내가 할 일이 없다는 것들 운명으로 받아들이니 국회의원 등으로 출세할 생각도 없어졌다. 그렇게 맘을 비우니까 작년에 정당 국고보조금 같은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할 수 있었다(관련기사 : "정당 국고보조금은 당권파의 쌈짓돈"). <오마이뉴스>에서 나를 인터뷰해서 내 뜻이 많이 알려졌고, 야당에서는 약간의 제도개선도 있었다.
연초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정치권에서 자리를 못잡은 것이 내가 무능해서냐? 내 성격에 결함이 있어서냐, 처세술을 잘 못해서 그러냐? 내 잘못이냐, 시대를 잘못 타고난 거냐를 고민했다. 주변에서는 내가 성격적으로 심각하게 문제가 있거나 운이 없다고 생각한다. 2002년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당선자 특사로 백악관에 방문했는데, 주간 <오마이뉴스> 창간호에서 이것을 터뜨렸다. 제목도 '미국은 한국 대선에서 손 떼라'였다. <조선일보> 등이 나를 노무현의 반미성향을 잘 나타내는 사람으로 찍으면서 나는 날아갔다. 그때 내가 45세였는데 정치적으로 도약할 시기에 정치적으로 몰락해 버렸다.
내가 출세하지 못한 것은 운이 나빠서거나 성격적으로 적응을 못해서라기보다 내 마음 속에 생각하는 가치가 있었는데 그것이 당대에 실현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럼 내가 마음 속에 생각하는 가치가 뭘까? 60세가 다 되니까 우리가 살았던 시대를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정리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좀더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보수정당에 몸담는다는 것은 국회의원을 목표로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김영삼, 김대중 등 공천권을 쥔 권력자들에게 필사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국회의원이 되는 길은 그것밖에 없다.
내가 80년대부터 정치권을 왔다갔다 했는데 단 한번도 공천권을 쥔 권력자들에게 찾아간 적이 없었다. 보수정당에 몸담고 있으면서 왜 권력자들 안찾아가? 물론 거기에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뭔가 생각하는 게 있었을테니까. 그래서 1월 초부터 페북과 카톡, 밴드 등에 연재를 시작했다. 원래 제목은 '한반도 삼국지연의'였다. 정치평론가 등 전문가를 위한 서적이 아니고, 한반도에 사는 한민족 전부가 당대사를 같이 한번 이해해보자는 시각에서 소설적 상상력을 가미해서 약간 자유롭게 쓰고 싶었다.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의 삶에 영향력을 미치는 세 개의 힘이 있다. 김일성, 박정희, 김대중으로 각각 이어지는 흐름이 그것이다. 이 세력들이 한반도를 움직이는 가장 큰 힘이다. 후대 역사가들은 우리가 해방 이후부터 지금까지 살았던 시대를 어떤 역사시기라고 규정할까? 나는 백낙청의 말대로 '분단시대'라고 받아들였고 이제껏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되돌아보니 '삼국시대'였다. 남북분단시대가 아니라 삼국시대라고 느꼈다. 이 세 세력의 움직임 속에서 내가 살았던 시대를 설명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상대를 악마화하면 한반도 정치 못봐"
- 어떤 점에서 '한반도 삼국지'인가?
"한반도는 하나라고 생각하면서도 남북한이 따로 놀고 있다. 민주화운동을 서술할 때도 남한만 서술한다. 그래서 독재세력과 민주세력의 대립구도로 설명했다. 남북관계는 외교와 통일의 영역일 뿐이다. 이렇게 남북관계는 외교, 통일의 영역이어서 그것이 남한의 정치발전이나 남북한의 상호쟁투과는 분리돼 따로 놀게 됐다. 그렇게 통합돼 있지 않고, 북은 북대로 남은 남대로 상대방을 악마화해서 한반도 전체 역학관계, 한반도 정치를 못본다.
박정희, 김대중·김영삼, 김일성 중에서 김일성 그룹은 그 이전 조선공산주의 운동사와는 별개의 세력이다. 김일성 그룹이 독립운동 했지만 '김일성의 독립운동'만 있다. '박헌영의 독립운동'은 없다. 그러니까 김일성은 고구려의 주몽처럼 북한체제의 시조다.
김영삼·김대중 등 민주화세력은 임시정부와 김구 정신을 이어받는다고 한다. 그런데 이들 사이에는 정치적 유전관계가 없다. 김대중의 대부는 장면이었고, 김영삼의 대부는 장택상이었다. 이들은 김구하고 전혀 연결되지 않는다. 이들이 장구한 기간 동안 민주화운동하면서 김구와 연결돼 있다고 주장해왔을 뿐이다. 김구는 단정(단독정부수립)에 참가하지 않아서 대한민국에 '김구세력'은 없다.
박정희 세력은 족보상으로 보면 친일파가 그 밑바닥에 깔려 있다. 이승만, 박정희를 하나의 세력으로 생각할 수 있고, 같은 흐름처럼 보이겠지만 전혀 다르다. 박정희는 이승만의 양자도 아니고 정치적 후계자나 계승자도 아니다. 박정희는 독자적으로 권력을 쟁취했고, 현재 존재하는 보수세력의 아버지다.
그런데 여기서 김영삼이라는 사람이 묘한 사람이다. 김영삼의 역할은 삼국지의 주유와 같다. 주유는 적벽대전에서 최대의 승리를 가져온 주역이다. 하지만 주유가 삼국시대의 주인공은 아니다. 김영삼이 그렇다. 민주화세력의 헤게모니 싸움에서 김영삼이 패배해 박정희 세력에 투항하지만('1990년 3당합당'), 김영삼을 빼고는 민주화운동을 설명할 수 없다.
한국 당대사 세 개 세력의 시조가 박정희, 김대중, 김일성이다. 박정희가 천왕봉이라면 이승만은 조그만한 봉우리에 불과하다. 김대중의 경우에도 신익희 등이 있었지만 그도 조그마한 봉우리다. 김일성은 이후 김정일, 김정은으로 가고 있다. 박정희도 이후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로 가고 있고, 김대중도 이후 노무현으로 갔다. 이것이 직접적으로, 정치적으로 유전되는 흐름이다. 당대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세력들의 실체를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그것이 올바른 역사인식이다."
- 그런데 이런 삼국지는 결국 영웅 중심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책은 지도자 중심으로 서술했지만, 그 밑바닥에서 일어난 민중들의 움직임이나 역할은 그 의미를 굉장히 중요하게 부여했다. 그래서 '지도자의 통찰력과 민중의 열망이 결합되면 거대한 혁명의 소요돌이가 일어난다'고 표현했다. 박정희, 김대중, 김일성 이 세 사람은 이승만, 김구, 박헌영과는 좀 다르게 민중과 결합해 거대한 혁명의 소용돌이를 일으킨 사람들이다.
김일성은 사회주의 어젠다를 북한 민중과 함께 이루어냈고, 그 결과 수령으로 군림했다. 박정희는 굶주림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민중의 열망을 채워주었다. 김대중은 유학도 가지 않고 선진문물을 배운 적도 없었지만 가혹한 탄압 속에서 민주주의를 신념화해서 민주주의를 바라는 민중들과 함께 민주주의혁명을 성공시켰다. 이 세 사람을 영웅적으로 본 것은 아니고, 세 개 혁명의 소용돌이의 중심이자 표상이라는 것이다."
"박정희=친일파는 사소한 일"
▲ 가을 일본육사 본과 시절 가나가와현 소재 상무대(일본육사의 이름)에서 동기생들과 함께 한 박정희(앞줄 왼쪽에서 세번째). 사범학교를 하위권으로 졸업했던 박정희는 44년 4월 일본육사를 3등으로 졸업했다. 박정희의 일본육사 동기생인 다니지와 지오 제공. ⓒ 박정희대통령인터넷기념관
- '세 개의 혁명과 세 개의 유훈통치'라는 책의 부제가 의미심장하고 흥미롭다. 먼저 세 개의 혁명은 무엇인가?
"시간 순으로 보자. 김일성이 주도한 혁명은 두 단계를 거쳤다. 사회주의 혁명 초기에는 맑스-레닌주의에 입각해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했고, 1960년대 후반에는 주체사상으로 이행했다. 더 이상 맑스-레닌주의가 아니라 주체사상 왕조로 이행한 것이다. 이것이 김일성의 공산주의혁명의 실체다.
박정희의 근대화 혁명은 굉장히 중요한 논점을 가지고 있다. 박정희를 친일파로 보는 것은 사소한 일이다. 박정희를 '다가키 마사오'라는 일본 이름(창씨개명)으로 많이 부른다. 그런데 김일성은 원래 일본의 영향력 밖에 있어서 일본 이름이 없고, 김대중·김영삼은 창씨개명해서 일본 이름을 가지고 있다. 20대 초반 만주군관학교에 간 것을 두고 친일파라고 볼 수도 없다. 박정희는 어릴 적부터 굉장히 군인이 되고 싶었다. 당시 그가 되고 싶은 군인은 독립군인이 아니라 일본군인이었다. 그래서 만주군관학교에 갔는데, 이것이 그의 인생을 바꾸었다.
만주군관학교를 1등으로 졸업하는 바람에 일본 육사에 편입한 것이다. 일본 육사 편입은 당시 조선인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게다가 일본 육사도 3등으로 졸업했다. 그래서 박정희가 조선인이냐, 일본인이냐, 친일파냐 하는 것은 다 엉터리다. 박정희는 제대로 교육받은 최고의 사무라이였다. 이것이 박정희의 정체성이다. 조선 후기 노론의 거두인 송시열은 주자학자이지 그를 두고 조선사람이냐, 중국사람이냐 분류하는 것은 의미없다.
세계관의 뿌리가 어디냐가 중요하다. 메이지유신을 성공시킨 사무라이가 박정희 세계관의 뿌리다. 메이지유신을 일으킨 일본 군인정신이 박정희의 정체성이다. 박정희는 만주군관학교와 일본 육사를 다니면서 인생 최대의 재산을 얻게 됐다. 첫번째는 만주군관학교와 일본 육사라는 인맥 확보다. 이 인맥은 대한민국 최상층부를 형성했다. 박정희가 몇 번에 걸쳐 죽을 고비가 있었지만 이 인맥 덕분에 살아났다. 두 번째는 일본의 문물을 제대로 배운 것이다. 최강대국과 전쟁(태평양전쟁)을 벌였던 일본의 문물과 제도를 그 한복판에서 배웠다. 한마디로 메이지 유신을 성공시킨 사무라이 정신을 배운 것이다. 메이지유신의 사무라이는 군국주의다.
박정희는 해방 이후 잠깐 공산주의 활동에 참여했다. 하지만 그의 일념은 오직 '한국판 메이지유신'을 하겠다는 것뿐이었다. 이것을 무서운 일념으로 밀어부쳤다. 여기서 알아두어야 할 사실은 그 당시에만 해도 서구사회 밖에서 근대화를 성공시킨 유일한 모델은 메이지 유신뿐이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운명적인 것인데, 그 메이지유신을 가장 정확하게 알고 훈련받은 사람이 박정희였다. 그래서 1961년에 권력을 장악하고 나서 군부의 힘으로 한국판 메이지 유신을 추진한 것이다. 그로부터 10년 뒤에는 이름도 비슷한 '10월 유신'을 단행했다. 재벌 탄생 과정도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에서 재벌이 탄생하는 과정과 흡사하다.
1970년대에는 굴욕적인 한일회담, 도덕성없는 베트남 전쟁 참여 등이 최고의 쟁점이었다. 그런데 1960년대만 해도 경제적으로는 북한의 3분의 1 정도로 밀리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경공업 수입대체가 아니라 석유화학, 제철, 조선, 고속도로 등 인프라를 구축하게 되는데 이것이 모두 미국와 일본의 방해를 뚫고 한 것이다. 이것을 잘 알아야 한다. 미국은 한국이 석유화학공업을 하려고 할 때 '경공업 수입대체만 해라'고 굉장히 방해했다. 그것을 뚫고 개척한 것이다. 조선, 제철 등은 예산도 확보하지 않은 상태에서 기공식을 올린 것은 유명한 얘기다.
결국 박정희는 메이지 유신적인 방법, 즉 군국주의적 개발독재로 한국을 공업화시켰다. 그 과정은 일본과 똑같다. 그런데 북한에 비해 3분의 1에 불과했는데 15년 만에 북한의 김일성을 이기게 됐다. 이것이 박정희 근대화 혁명, 박정희 신화의 근거다. 진보진영은 1960-70년대에 박정희가 아니었더라도 박정희보다 더 좋은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고 주장하는데 이것은 무책임한 얘기다.
김대중·김영삼 얘기로 넘어가자. 6.25 전쟁 이후 남한에서는 이승만을 반대하는 세력은 있었지만, 민주주의 가치를 가진 사람이 없었다. 묘하게도 1954년과 1955년에 각각 김대중과 김영삼이 정치권에 진출한다. 두 사람은 김일성이나 박정희와 다른 부류다. 김일성은 어릴 때부터 만주벌판을 누비고 맑스-레닌주의를 배웠다. 당시 세계화의 최첨단(맑스-레닌주의)을 접한 것이다. 박정희는 1940년대 만주군관학교와 일본 육사를 거치면서 당시 최고의 사조를 흡수했다. 하지만 김대중·김영삼은 제대로 공부한 적이 없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두 사람은 민주주의를 확실한 신념으로 가지고 있었다. 그것이 그들의 첫 번째 정체성이다.
두 번째 정체성은 그들이 반드시 최고 권력자가 되겠다는 강력한 권력의지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승만과 박정희 시대를 거치면서 야권은 지금보다 더 지리멸렬해졌다. 그런 야권에서 1969년 김영삼이 '40대 기수론'으로 반독재투쟁의 선봉에 섰고, 이에 김대중·이철승이 동참했다. '40대가 한번 뒤집자.' 40대 기수론으로 (합법적인) 쿠데타를 하자는 것이다. 이것이 현재 민주주의세력의 기원이다.
삼국지에서는 유비팀에 제갈공명이 합류하고 적벽대전을 치르고, 관우가 죽는 것까지가 하이라이트다. 한반도에서 일어난 이런 클라이막스는 1969년 40대 기수론부터 2002년 김대중 퇴임 때까지다. 삼국지의 적벽대전은 6월항쟁이다. 6월항쟁까지 가는 과정에서 양김동주(兩金同舟)가 거듭된다. 4번에 걸쳐 합작과 분열이 거듭되면서 6월항쟁까지 오게 된다. 1987년 6월항쟁 이후부터 2002년까지 15년 동안은 양김의 대결사다."
"한반도 패권세력은 박정희 세력"
- 근대화 혁명, 민주주의 혁명, 공산주의 혁명 가운데 가장 성공한 혁명은 무엇인가?
"현재 한반도에서 패권을 발휘하고 있는 세력은 박정희 세력이다. 한마디로 한반도의 패권세력이 박정희 세력이라는 얘기다. 박정희 세력이 한반도의 패권세력이 된 근본 이유는 양김 등 민주세력의 취약점이다. 민주세력은 두 번에 걸쳐 박정희 세력을 이길 수 있었다. 1980년 10·26 이후와 1987년 대선이다. 1980년을 서울의 봄이라고 명명하는데 이것은 역사의 왜곡이다. 1980년대는 처음부터 끝까지 전두환의 난이었다. '서울의 봄'은 없었다. 전두환, 노태우는 박정희 세력을 반석 위에 올려놨다.
1980년 10.26 사건으로 박정희 세력이 해방 직후와 같은 혼란기에 빠졌다. 그때 양김이 분열했다. 양김의 분열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1980년 10.26부터 다음해(1981년) 8월 30일 전두환이 취임하기 전까지 과도기에 움직인 전두환과 그의 그룹도 중요하다. 양김의 분열은 스스로 분열한 것이기도 하지만 전두환의 계획에 놀아난 꼴이기도 했다. 이것을 입증하기 위해 책에서 강원룡 목사의 회고록을 길게 인용했다.
그때 양김이 손잡았더라도 전두환을 못이길 가능성이 높았긴 하지만, 전두환 그룹의 계획에 전혀 위기의식이 없이 '상대방만 이기면 된다며 양김이 분열했다. 양김은 그것에 책임이 있다. 군부는 '양김을 이간질하는 것, 이들을 경쟁관계로 이용하면 안되는 게 없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됐다. 다만 1985년 2.12 총선에서는 양김이 연합해 전두환의 영구집권구도를 깼다. 군부가 양김을 상대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었다. 그때부터 비로소 남한에 '양김'보다 폭이 넓어진 민주주의 동맹이 모양새를 갖추기 시작했다. 김대중은 동교동이라는 파벌의 대표가 아니라 호남 민중의 대표자로, 김영삼은 가야지역, 즉 부산·경남의 정치적 맹주로 떠올랐다.
1987년 6월 항쟁을 '독재 타도, 호헌 철폐'라는 단순한 이벤트로 볼 수 있는데 이것은 한반도에 수천년 내려온 왕정체제를 무너뜨린 대사건이다. 6월항쟁은 프랑스 대혁명이나 영국 대혁명 등과 똑같다. 민중에게 독재타도는 정치적 자유의 보장이다. 수십년간 억압되다가 자유를 얻으니까 평등의 외침이 터져나왔다. 그것이 노동자 대투쟁이었다. 거기에다 전쟁의 트라우마로 인해 평화를 바랐다. 그래서 6월항쟁의 정신(가치)는 자유, 평등, 평화다.
그런데 이 정신이 6.29 선언 이후 사라졌다. 정치적 상층부였던 양김은 당장 차기 대권구도로 넘어갔다. 자유, 평등, 평화에는 관심없고, 연말 대선에서 이기는 것밖에 없었다. 결국 양김이 분열했고, 대선에서 패배했다. 1987년 대선 패배는 적벽대전에서 조조가 패한 것과 같다. 역사의 변곡점이 된 것이다. 이쪽이 이기느냐, 저쪽이 이기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다. 민주세력이 이겼으면 올림픽도 직접 치렀을 것이고, 힘의 우위를 통해 남북한 평화통일도 진전시켰을 것이다. 친일세력, 박정희 세력, 기득권 세력을 해체하거나 역관계를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을 것이다.
1987년 대선에서 양김이 분열함으로써 박정희 세력은 민주공화정 아래에서 시민권을 획득했다. 그에 반해 민주진영의 독자적 집권은 불가능해졌다. 그래서 양김은 박정희 세력과 손잡거나('3당 합당'), 박정희 세력에서 떨어져 나온 비주류와 연합해('DJP연합') 한번씩 정권을 잡게 됐다. 박정희 세력과 전면적으로 합작하면서 (정치적) 유전자 변형이 일어났다. 김무성도 민추협(민주화운동추진협의회)에서 민주화운동하면서 DNA가 얽기고 설켰다.
3당 합당과 DJP연합을 통해 박정희 세력이 청산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인정받게 됐다. 김영삼 정권을 '문민권력', 김대중 정부를 '국민의 정부'라고 부르는 것은 이 권력들의 본질을 오해시킨다. 김영삼 권력은 '3당 합당 권력'이고, 김대중 권력은 'DJP연합 권력'이었다. 이렇게 불러야 역관계가 다 드러난다. 앞으로 시간이 남아 있어 반전이 있을 수 있겠지만 현재까지는 박정희 세력이 한반도에서 패권적 지위를 점하고 있다."
"6월항쟁은 조선 역사 1천년 동안 제1대사건"
- 박정희 세력이 한반도에서 패권적 지위를 점하게 된 역사적 계기는 양김 분열이라고 보나?
"양김 분열과 민주세력의 지역적 고립 때문이다. 민주세력이 호남이지 않나. 김영삼은 이미 3당 합당을 통해 민주세력에서 떨어져 나갔고. 박정희 세력을 청산할 기회가 왔지만 양김이 분열함으로써 청산하지 못한 것이다."
- 수십년간 정치적, 물적 토대를 쌓아오면서 박정희 세력이 강해진 측면도 있지 않나?
"전두환의 집권을 저지하고, 노태우의 당선을 저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지만 민주세력이 무능해 그렇게 하지 못했다. 역사의 변곡점이 되는 중요한 싸움에서 모두 졌지 않나? 결국 박정희 세력이 이겼다. 역사적 변곡점에서 박정희 세력이 승리함으로써 자기 체제를 온전히 지키고 패권세력이 될 수 있었다.
다만 1987년 패배에도 불구하고 그 이후 민주당 출신(김영삼)이 3당 합당을 통해 권력을 잡고 군부를 해체시키고, 금융실명제를 실시하는 등 중요한 개혁을 단행했다. 그 다음에 김대중이 민주세력과 군벌세력 일부의 연합을 통해 정권을 잡았다. 그 변화는 6월항쟁의 민중적 에너지가 가능했다고 본다. 동학혁명의 전봉준이 참수당하고, 안중근이 사형당하고, 김구가 암살당한 나라에서 김영삼과 김대중이 차례로 대통령이 된 것은 6월항쟁이 성공한 혁명이었기 때문이다.
5000년 역사에서 김영삼과 김대중이 희한하긴 하지만 죽지 않고 살아서 대통령까지 된 것은 대사변이다. 그런 의미에서 단재 신채호의 표현을 빌리자면 6월항쟁은 '조선 역사상 1천년 내 제1대 사건'이다."
▲ 김대중 전 대통령은 말을 가려서 신중히 하는 반면, 노무현 대통령은 달변에 토론을 즐긴다. ⓒ 주·월간 사진공동취재단
"지금 민주세력은 방황하고 있어"
- 보수진영에서는 근대화(산업화)와 민주화를 모두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말로만 그렇다. 민주화를 인정하지 않는다. 지금은 그 논쟁에 뛰어들 생각은 없지만 이런 정도로 생각한다. 저쪽(보수진영, 박정희 세력)은 기본적으로 군국주의 사상에 바탕을 두고 있다. 민주주의자들이 아니다. 그러나 이들이 민주공화정 안에서 적응하고 있다. 놀라운 적응력을 보이고 있다. 3당 합당을 달리 해석하면 군국주의에 기반 둔 박정희 세력이 민주화세력의 일부를 충원함으로써 자신들의 경쟁력을 강화시켰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정치적 유전자의 변형이 일어난 것이다.
다음은 민주세력이다. 오늘날 민주세력은 방황하고 있다. 지금 민주당 안에서 정치하는 사람에게 '당신 이념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으면 절반은 '김대중 정신', 나머지 절반은 '노무현 정신'이라고 답할 것이다. 다 엉터리다. 김대중 정신이든 노무현 정신이든 계승과 극복의 관점이 있을 수 있다.
노무현의 머리를 지배한 화두는 지역주의 극복이었다. 지역주의 극복을 목숨걸고 추진했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영남 민주세력의 복원을 의미했다. 노무현은 1987년 분열구조를 명료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1987년 6월항쟁의 가치가 자유, 평등, 평화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 호남과 가야(부산.경남)의 연합을 통해 6월항쟁의 가치를 민주기지화하고 지역주의를 극복했어야 했다. 하지만 노무현은 그런 전략을 선택하지 않았다. 오히려 호남을 때리면서 영남의 한나라당 세력과 연합함으로써 지역주의를 극복하려고 했다. 그게 노무현의 한계다.
김대중 정신의 한계는 뭐냐? 지금 야당은 그 역사를 60년이라고 하는데 이는 법률적으로 틀렸다. 양김이 만든 통일민주당에서 김대중이 탈당했다. 그 당은 김영삼이 3당 합당함으로써 그 당의 법적 정통성은 현재의 새누리당이 가지고 있다. 평화민주당의 김대중과 이기택이 합당해 통합민주당을 만들었다. 그런데 김대중은 1995년 이 당을 탈당했다. 1997년 대선에서 조순, 이기택이 이회창과 합당했다. 만약 평민당에서 근무한 당직자가 근무 경력을 떼야 한다면 새정치민주연합이 아니라 새누리당으로 가야 한다. 현재 야당의 뿌리는 1995년 김대중이 창당한 새정치국민회의다. 그러니 야당의 역사가 60년은 아니다. 김대중 정신은 1987년 분열 구조 위에 선 호남세력의 집권전략이었다. 지역등권론이 그것이다.
프랑스 대혁명의 정신이 자유, 평등, 박애로 알려졌지만 원래는 자유, 평등, 소유권이었다고 한다. 100년 동안 왕정과 공화정을 왔다갔다 하다가 제헌의회를 만들었는데 그때 비로소 헌법에다 프랑스 대혁명의 가치를 자유, 평등, 박애로 정의했다. 나는 앞으로 대한민국 민주공화정 제대로 뿌리내리려면 대한민국의 가치는 6월항쟁의 가치인 자유, 평등, 평화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이 가치를 찾으려는 노력은 1987년 대선 패배 이후 중단됐다. 민주세력 안에서 '김영삼 대통령 만들기', '김대중 대통령 만들기'가 기고의 선으로 자라집았다. '김영삼이냐 김대중이냐'는 집권전략으로 그 이후 10년 동안 갔다.
그래서 6월항쟁의 주도세력들은 철저히 개인으로 해체되면서 다양한 진로를 걸어갔다. 극단적으로는 김영환('강철서신'의 저자)이 조선노동당에 투항했고, 맑스-레닌주의자들이 김영삼이나 새누리당에 투항했다. 또한 운동권의 다수를 차지한 재야와 학생운동세력은 대체로 김대중당에 투항했다. '투항'이라는 단어가 중요하다. 김대중의 집권을 위해 수혈된 것이지 6월항쟁 정신을 가지고 정치권을 바꾸기 위한 세력으로 들어간 게 아니었다. 그냥 '젊은 피 수혈'이다. 민주진영은 어디서 출발했고,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감각도 없이 방황하고 있다. 선거전술만 난무하고 있다. 정신과 자치가 사라진 자리에 합종연횡론과 정치공학이 들어서게 되었다. 그리하여 집권의 길만 논하는 유세객들의 시대가 열리게 됐다."
"박근혜 집권은 유훈통치의 극명한 증거"
- 세 개의 혁명에 이은 '세 개의 유훈통치'는 무엇인가?
"우선 지금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것은 박근혜의 육신인가 박정희의 정신인가? (기자가 '박정희의 정신이다'고 대답하자) 지금 여기가 유훈통치인 것이다. 박정희는 1979년, 김일성은 1994년 죽었다. 내용적으로 보면 1979년 박정희가 죽을 때부터 유훈통치가 시작됐다. 김일성의 유훈통치는 달리 얘기할 필요가 없다. 민주세력조차도 유훈통치다. 김대중 정신, 노무현 정신을 극복하려면 6월혁명의 가치를 발전시켜야 한다. 죽은 사람 이름 가지고 표만 얻으려고 한다. 그런 점에서 여기(민주진영)도 유훈통치다.
김대중이 처음 국회에 등원한 것이 1963년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야당 정치인은 소리지르며 박정희와 싸우는 것이 정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김대중이 국회에 들어오면서 어젠다(의제)나 비전이 도입됐다. 김대중은 민주주의와 대중경제, 평화통일를 새로운 어젠다와 비전으로 제시했다. 국회의원만 할 사람이라면 이런 어젠다나 비전을 제시할 필요는 없다. 게가다 당시 얼마나 엄혹한 세상이었나? 그런데 김대중은 이 세 가지를 보수야당의 어젠다로, 국가비전으로 통합시켰다. 이것이 지도자의 자세다. 지금 야당 지도자 가운데 한국사회, 한반도가 나아가야 할 어젠다를 제시하고, 김대중처럼 공부하는 사람이 있나?"
- 유훈통치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퇴행이다. 한반도 정치가 퇴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퇴행의 정점은 새누리당이 패권세력이 된 것이다. 남북통합, 역사 바로잡기, 재벌체제 탈피 등이 다 뒤집어지고 있지 않나?"
- 한반도는 여전히 '박정희-김대중-김일성'이 경합하는 체제인가?
"그런 느낌이 들지 않나? 유훈통치인데. 그걸 뚫고 나가야 한다. 이 유훈통치를 깰 사람이 민주진영에서 나오기 바란다."
- 박근혜의 집권도 그런 한반도 삼국지 체제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인가?
"극명한 증거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 것은 박정희의 환생으로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박근혜가 선거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 것도 있지만."
- 책에 표현된 것을 빌리자면 '박정희-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지는 군벌세력'이 박근혜 대통령에 의해 계승됐다고 볼 수 있는 것 아닌가?
"계승된 것이 아니라 그 자체다. 전두환, 노태우는 박정희가 정성들여 키운 사무라이들이다. 이명박은 박정희가 정서들여 키운 재벌의 총아다. 박근혜는 박정희 그 자체다."
- 그렇다면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도 한반도 삼국지 체제의 필연적 결과라고 생각하나?
"그걸 알 수 있는 단서가 나왔다. 그저께 박근혜가 '이 상태로 통일되면 사상적 노예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올바른 역사관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내 짐작이긴 하지만, 그 발언은 박근혜와 그 주위 사람들이 예상보다 빨리 북한이 붕괴해 통일될 수 있음을 우려한 것이다. 북한 난민을 우려한 것이 아니다. 아버지(박정희)가 힘들여 이룬 이 나라가 무너질 것 같다고 걱정한 것이다. 남한의 좌파와 종북세력, 북한의 공산당세력이 합치면 대한민국을 만든 세력이 포위되거나 고립될 것 같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니까 대한민국의 중심이 박정희와 산업화세력이었음을 확실하게 해야만 하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사상적으로 올바른 역사관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산 것 아니겠나?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한다고 했을 때) 처음에는 박근혜가 지나치게 복고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버지를 좋게 평가하려고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한 것이 아니다. (예상보다 빠른) 통일을 대비하기 위한 사전정지작업으로서 국정화를 추진하고 있다고 본다."
"정치권 386세대 정말 각성해주길..."
- 노무현 시대는 한반도 삼국지 체제의 예외인가?
"아니다. 김대중 산맥 중 큰 산 정도다. 민주주의 산맥의 한 봉우리 정도. 노무현은 자신이 김대중의 자산과 부채를 다 인수하겠다고 했다. 노무현은 김대중 계열이다. 나중에 2권을 쓰게 될 텐데 그것은 '노무현-박근혜-김정일'의 한반도 삼국지가 될 것이다."
- 재야나 진보정당은 한반도 삼국지 체제에서 어떤 역할을 했다고 평가할 수 있나?
"최소한 2002년까지 제도정치권에 영향을 줄 만큼 성장하지 못했다. 그래서 책 속에서는 크게 다루지 않았다. 진보정당은 2004년에서야 10명이 당선되면서 정치적 실체로 등장했다. 재야는 무장해제돼 개인적으로 (제도정치권에) 수혈됐다. 특별히 1980년대 민주화를 위해 치열하게 고민했던 386세대, 전대협세대가 다시 한번 가치의 부흥을 이루어내길 바란다. 정치권에 있는 386세대가 정말 각성해주길 바란다."
- 박정희, 김대중, 김일성 모두 죽었다. 한반도 삼국지 체제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유훈통치를 어떻게 뚫고 나가느냐에 달렸다. 6월항쟁의 가치인 자유, 평등, 평화가 한국사회 민중들이 합의할 수 있는 정신이다. 이것이 헌법 전문의 대한민국 정신으로 가야 한다. 그것이 야권 혁신의 출발점이다. 나는 역사의 진로나 방향을 결정하는 테제를 발표한 것은 아니다. 그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책을 쓴 것이어서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 그 방안 가운데 하나로 지금 대통령중심제를 바꾸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나?
"그것은 내가 답변할 범위를 넘어선 질문이다. 100년, 200년 후에 역사가가 오늘의 시대를 어떤 관점에서 서술할까, 이런 시각에서 박정희-김대중-김일성 세 사람의 역할, 공과 과를 균형있게 쓰려고 했을 뿐이다. 악마화하려는 모습을 피하려고 많이 노력했다."
- 그것을 바꿀 사람이나 세력이 안보이나?
"그래도 미약하나마 기대는 있다. 그것은 6월항쟁 세대라고 본다. 그 세대의 열정을 불러일으킬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 캐나다에서는 44살의 젊은 지도자인 저스틴 트뤼도가 총리가 됐고, 영국에서는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제러미 코빈이 총리가 됐다. 미국에서도 사회주의자 버니 샌더스가 대중들에게 열렬하게 지지받고 있다. 이는 신자유주의의 일방적 주도권이 도전받고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한국에서는? 한국에서는 6월항쟁이라는 민중적 변혁이 있었지만, 그 이후에 국회의원 배지와 바꾸어 먹었다. 그렇다면 보수야당이든 진보정당이든 초심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다. 6월항쟁의 정신인 자유, 평등, 평화는 민주당(새정치민주연합) 사람도 받아들일 수 있고, 진보정당 사람들도 받아들일 수 있다. 그렇다면 굳이 따로 있을 필요가 없다. 새누리당에서도 중도세력, 운동권적 사고에서 벗어난 테크노크라트 출신들이 중심이 되어 야권을 재편하려는 움직임이 있는데 그런 거에 신경쓸 필요 없다."
보수정치세력인 민주당에서 '평등'이라는 개념을 아예 생각해본 적이 없다. 신자유주의적 경쟁을 다 받아들였다. 그런데 자유, 평등, 평화를 다 받아들이는 순간 지금 야당은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 코빈이나 샌더스 같은 사람이 나와야 한다. 민주당에서 그런 사람이 나오면 정당을 같이 해도 된다."
"6월항쟁의 부흥은 자유, 평등, 평화의 완성"
▲ 6월항쟁 당시 고 이한열 추모식 때 서울시청 앞 광장에 모인 군중들. 6월항쟁 당시 고 이한열 추모식 때 서울시청 앞 광장에 모인 군중들.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 6월 민주항쟁은 한국 민주화의 출발점으로 평가되고 있다. 사진은 87년 6월항쟁의 도화선이 됐던 이한열 열사의 죽음에 항의하는 학생 시위대. 6월 민주항쟁은 한국 민주화의 출발점으로 평가되고 있다. 사진은 87년 6월항쟁의 도화선이 됐던 이한열 열사의 죽음에 항의하는 학생 시위대. ⓒ 이인영 홈페이지
- 1987년 6월 민주주의 혁명에 큰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면서 그것을 다시 되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이 이 책의 주제다. 박정희나 김일성을 키우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6월항쟁이라는 역사상 그렇게 중요한 혁명이 잊혀지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고 얘기하고 싶었다."
- 왜 6월항쟁이 잊혀지고 있다고 보나?
"민주세력 내부의 분열과 탐욕 아니겠나? 1960년대 지리멸렬한 야권에서 목숨걸고 대통령이 되고, 우리 사회를 민주화 화겠다고 하는 지도자가 2명 나왔다. 그래서 한국사회가 이런 정도로 바뀌었다. 지금 범민주진영에 내 목숨을 바쳐서라도 민주주의를 완성시키겠다고 하는 사람이 단 한명이라도 있긴 있는 것인가?"
- 그렇다면 '6월항쟁의 부흥'이 민주주의의 완성인가?
"자유, 평등, 평화의 완성이다. 자유의 완성은 퇴행하는 민주주의를 복원시키는 것이고, 평등의 완성은 신자유주의로 쓰러진 한국사회를 인간공동체로 복원하는 것이고, 평화의 완성은 남북관계를 미래지향적이고 민족적인 이익으로 키워 나가는 것이다. 지금 퇴행하는 민주주의를 바로잡고, 6월항쟁의 부흥에 영감을 줄 수 있는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 말만 바꾼다고 따라오는 것은 아니다."
- 6월항쟁의 부흥을 얘기하는 것은 한물 간 프레임으로 평가받는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로 복원해야 한다는 뜻으로 비친다.
"나는 현실정치 차원에서 어젠다를 제시한 것은 아니다. 꼭 자유, 평등, 평화라는 말을 쓰지 않더라고 그 개념을 현대화해서 민중의 열망을 받으면 그것이 6월항쟁의 정신을 되살리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 나타나야 한다. 조성주(정의당 미래정치센터 소장) 같은 사람은 이 책에서 상당히 영감을 받을 것이다."
- 책에서 "민주주의 대 독재라는 가치의 전선이 사리진 시대에서 이제는 권력투쟁에서 이기는 싸움의 기술을 설파하는 정치공학자들의 시대가 활짝 열렸다"고 지적했는데 이것은 지금도 유효한 것 같다.
"지금이 그렇다. 솔직히 문재인도 부산 친노의 정치공학 하나로 가고 있다. 얄팍한 지역연합구도말이다. 전부 일시적으로 표받기 위한 작전만 펴고 있다. 누가 김대중 정신 외치는 사람에게서 김대중 정신을 보나? 누가 노무현 정신을 외치는 사람에게 노무현 정신이 있다고 보나?"
- 양김이 차례로 정권을 잡은 것을 '민주주의의 우회적 진전'이라고 평가했는데.
"박정희 세력을 완전히 청산하지 못해 군벌세력을 완전히 해체하지는 못했지만 문민통치가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김대중이 집권함으로써 민주화세력도 사회적 세력으로 자리잡았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 때문에 진보정당도 자리잡았다."
- 하지만 양김은 정권을 잡기 위해 3당합당, DJP(혹은 DJT)연합을 하지 않았나? 즉 군벌세력과 합치거나 군벌세력에서 이탈한 세력과 연합했다. 그렇다면 이것은 '군벌정권'을 연장시킨 것인가, 아니면 끝낸 것인가?
"민주진영쪽에서 보는 것과 군벌세력 내부에서 보는 것이 각각 다를 수 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민주세력이 조금씩 영역을 넓혀 나갔다고 할 수 있지만 6월항쟁을 계기로 멸망의 위기에 몰렸던 군벌세력이 민주세력의 분열로 살아남았고, 결국 패권세력으로 복귀했다고 볼 수도 있다. 이렇게 각도가 어디냐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다."
"민주세력, 남북한 군국주의 사상 극복 유일한 대안"
- 여전히 '친일'과 '종북'으로 대립하고 갈등하는 한국사회가 여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퇴행의 슬픈 모습이다. 21세기로 가야 하는데 20세기 중반, 해방 직후에 논쟁하던 것을 지금까지 하고 있는 셈이다. 슬픈 모습이다. 안타깝다. 유훈통치의 범위에서 못벗어나고 있는 것이다."
- '친일'이든 '종북'이든 그런 프레임에 참여하지 않으면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분위기다.
"그래서 70년째 계속 써먹는 것이다. 한국사회를 광기의 사회로 만들었던 밑바탕인 6.25 전쟁은 보수의 출발점이고, 5.18 민중학살은 진보의 출발점이다. 이번 책을 통해 우리가 살던 시대를 객관화하고, 미움과 증오보다는 긍정적으로 경쟁하는 것을 바란다. 그동안 군국주의 세력은 민주세력을 김일성에 종속된 세력이라는 관점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이 아니고 민주세력이야말로 남북한의 군국주의사상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다."
- '친일', '종북' 프레임에 가장 민감한 반응하는 쪽이 민주화 세대, 1980년대 세대다.
"우리(민주세력)는 박근혜 역사전쟁에 대항할 수 있는 완벽한 근거를 갖추고 있다. 남북한 세력 가운데 (남한의) 민주세력만이 유일하게 민주공화정을 이룬 세력이다. 그런 점에서 불충분한 점이 있더라도 더 노력해서 이땅에서 군국주의 사상을 추방하고, 민주주의가 꽃피고, 평화로운 한반도를 만들어야 한다."
- 한국 현대사에 등장하는 대통령 가운데 노태우 전 대통령(혹은 노태우 정부)이 가장 저평가된 것 아닌가 싶다.
"내가 특별하게 노태우와 관련해 두 개의 장을 할애했다. 노태우는 군벌 출신이었지만 오히려 그 사람들을 다독이면서 남북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꾸려고 했다. 이것이 그가 첫 번째로 뛰어난 점이다. 두 번째로 뛰어남 점은 군벌통치로 복귀하기보다 민주헌정 질서 안에서 통치했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을 직선제 대통령으로서의 정통성을 가졌다고 생각해 헌정 질서 안에서 통치해야 한다고 확고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김영삼이 집권할 수 있었다."
“전 의경 출신입니다” 광화문 집회 페이스북에 남긴 글… 페북지기 초이스 1118 국민
의경 출신 남성이 광화문 집회를 접한 뒤 남긴 페이스북글이 공감을 얻고 있습니다. 일부 시위대가 폭력적인 행동을 한 잘못은 있겠지만 10만명 이상이나 되는 시민들이 왜 거리로 나섰는지부터 따져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내용입니다. 18일 페북지기 초이스입니다.
글은 이모씨가 광화문 집회가 일어난 다음날인 지난 15일 오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것입니다. 그는 여러 시위 현장을 다니면서 느낀 점을 토대로 이번 광화문 집회를 바라봤습니다.
이 글은 인터넷에서 큰 공감을 얻었습니다. 게시 만 이틀만에 3750여건의 좋아요와 1006건의 공유를 얻었습니다. 댓글도 360여개나 되네요.
네티즌들은 대체로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사고가 경직된 우리 정치인들이 꼭 읽었으면 좋겠네요”라며 호응했습니다. 물론 반대 의견도 꽤 있습니다. 아무리 자유가 좋다지만 폭력까지 미화해선 안 된다는 비판도 적지 않았습니다.
'수저 계급론' 점점 더 설득력 얻는다 11.17 한국
'수저계급론'은 부모의 재산 정도에 따라 계급을 나누는 것으로, 인터넷 상에서 놀이처럼 퍼지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부모의 재산에 따라 금·은·동수저에서 흙수저까지 자식의 경제적 지위가 결정된다는 이른바 '수저 계급론'이 화제다.한국에선 아직 민간이 축적한 부(富)에서 상속·증여 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선진국들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저성장·고령화가 진행되면서 '개인의 노력으로 번 소득'보다 '상속받은 자산'의 중요성이 우리나라에서도 점점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됐다. 금수저보다 더 누리고 산다는 다이아몬드수저, 플래티늄(백금)수저로 수저 계급론이 진화할 수밖에 없는 미래가 한국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내용은 김낙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가 17일 낙성대경제연구소 홈페이지(naksung.re.kr)에 공개한 '한국에서의 부와 상속, 1970∼2013' 논문에 담겼다. 김 교수는 불평등 문제를 전 세계적으로 공론화한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가 제안한 방법을 이용해 한국인의 자산에서 상속 자산의 기여도가 얼마나 높아지고 있는지를 추정했다.
그 결과 상속·증여가 전체 자산 형성에 기여한 비중은 1980년대 연평균 27.0%에 불과했지만 1990년대 29.0%가 됐고 2000년대에는 42.0%까지 올라간 것으로 나타났다. 민간이 쌓은 자산이 모두 100만원이라고 치면 1980년대에는 27만원이 부모에게 상속받은 것이고 나머지 73만원은 저축 등으로 모은 것이었지만 상속으로 쌓인 자산이 20년 만에 42만원으로 불어난 것이다.
국민소득 대비 연간 상속액의 비율은 1980년대 연평균 5.0%에서 1990년대 5.5%, 2000년대 6.5%로 높아졌다. 2010∼2013년 평균은 8.2%로 뛰었다. 김 교수는 "어느 지표로 봐도 우리나라에서 상속의 중요성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상속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해도 다른 선진국보다는 아직 낮은 수준이다.
전체 자산에서 상속 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대 기준으로 독일(42.5%), 스웨덴(47.0%), 프랑스(47.0%), 영국(56.5%)이 한국보다 높았다.
국민소득 대비 연간 상속액이 차지하는 비율은 2010년대 연평균을 따졌을 때 스웨덴이 8.2%, 영국은 8.2%로 우리나라와 비슷했고 독일(10.7%), 프랑스(14.5%)는 더 높았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상속 자산의 기여도가 가파르게 높아져 머지 않은 미래에 서구 국가들을 따라잡거나 넘어설 가능성이 상당히 큰 것으로 분석됐다. 고령화·저성장의 여파다. 한국에서 1980∼1990년대 상속·증여가 자산 형성에 기여한 비중이 작았던 것은 무엇보다도 서구 사회보다 상대적으로 고령화가 덜 진행돼 사망률이 낮았기 때문이다.
고령 인구가 늘어 사망률(인구 100명당 사망자 숫자)이 높아지면 상속이 주요한 부의 축적 경로로 등장할 수 있게 된다. 한국 경제가 1980년대 연평균 8.8%, 1990년대 7.1%의 고성장을 구가한 것도 상속 자산 기여도가 다른 나라보다 낮았던 이유로 꼽힌다.
경제 규모가 쑥쑥 커지는 상황에선 부모로부터 자산을 물려받지 못해도 개인이 부를 축적할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얻을 수 있다. 저축률이 30%대로 높았던 것도 상속 자산의 기여도를 낮추는 원인이 됐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그동안 낮은 사망률과 높은 경제성장률·저축률은 한 개인이 상속 자산 없이도 스스로 딛고 일어날 수 있는 토대가 됐지만 지금은 세 가지 지표의 방향이 모두 이전과는 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특히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한국의 20세 이상 사망률(100명 당 사망자 숫자)은 2013년 현재 0.67%지만 2040년에는 프랑스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상속이 소득이나 저축보다 더 중요한 부의 축적 경로가 된 상황에선 부의 불평등도 커지게 될 우려가 있다.
김 교수는 "고령화의 급속한 진전은 투자, 저축, 경제성장률을 낮추고 사망률을 높인다"며 "그 결과 고도성장기와 거꾸로 스스로 번 소득에 의한 저축보다 상속이나 증여에 의한 자산이 더 중요해지는 시기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최근 인구에 부쩍 많이 회자되는 '수저 계급론'은 벌써 이런 우려를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 김 교수는 이 논문을 오는 20일 동국대에서 열리는 경제사학회 심포지엄에서 발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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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경향
부를 축적하는 데 있어 스스로의 노력보다 부모로부터 상속받는 재산이 갈수록 중요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젊은이들이 ‘자수성가’할 기회는 점점 줄고, 부모의 재산에 따라 자식의 경제적 지위가 결정된다는 이른바 ‘수저계급론’이 더 확연해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분석 결과 부의 축적에서 상속·증여가 기여하는 비중은 1970년대 37.3%에서 1980~1990년대 27~29%로 떨어졌다가 2000년대에는 42%로 빠르게 상승했다. 총자산이 100만원이라면 1980년대에는 27만원이 부모에게 상속받은 것이고 나머지 73만원은 저축 등으로 모은 것이었지만, 2000년대에는 상속으로 쌓인 자산이 42만원으로 늘어나고 스스로 모은 자산은 58만원으로 쪼그라든 것이다. 국민소득에서 연간 상속액이 차지하는 비중도 1970년대 5.7%에서 1980년대 5.0%로 저점을 통과한 뒤 계속 높아져 1990년대 5.5%, 2000년대 6.5%, 2010~2013년에는 평균 8.2%로 뛰었다. 어떤 지표로 봐도 상속의 중요성이 빠르게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외국과 비교할 때 한국에서 상속의 중요성은 아직은 낮은 편이다. 전체 자산에서 상속 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대 기준으로 독일 42.5%, 스웨덴·프랑스 47.0%, 영국 56.5% 등으로 한국보다 높다. 국민소득 대비 연간 상속액 비중도 2010년대 연평균 기준으로 스웨덴과 영국은 8.2%로 한국과 같고 독일(10.7%), 프랑스(14.5%)는 한국보다 높았다.
문제는 한국에서 상속 재산의 비중이 빠른 속도로 높아져 조만간 다른 나라를 추월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1960년대 이후 한국의 인구구성 추이를 보면 생산가능인구(15~64세)는 급속히 늘어난 반면 노년인구(65세 이상)의 증가는 아직 본격화하지 않은 상태였다. 이러한 인구구조와 고도성장이 결합되면서 1980~1990년대에는 상속의 비중이 상당히 낮은 수준에 그쳤다. 고도성장기에는 저축률이 빠르게 늘어났고, 젊은층이 자산을 축적할 기회가 많았다. 자수성가할 기회가 더 많았던 것이다. 그러나 생산가능인구는 2015년을 정점으로 감소세로 돌아섰고 노년인구는 늘어 2060년에는 40%를 넘어선다.
국민소득 대비 연간 상속액의 비율은 1980년대 연평균 5.0%에서 1990년대 5.5%, 2000년대 6.5%로 높아졌다. 2010∼2013년 평균은 8.2%로 뛰었으나 여전히 선진국에 비해서는 낮은 수준이다. 부의 축적에서 상속이 기여한 비중은 1970년대에 37%에서 1980~90년대에 27~29%로 떨어졌지만 2000년대에 42%로 상승하는 추이를 보였다. 출처:김낙년 교수 ‘한국에서의 부와 상속, 1970∼2013’
한국의 사망률은 2050년대엔 1.75%로 프랑스(1.45%)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급속한 고령화는 투자와 저축, 경제성장을 낮추는 반면 사망률을 높여 상속이나 증여에 의한 이전 자산이 더욱 중요해지는 사회로 접어들게 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성장률이 미미해지면 자신의 노력으로 부를 축적할 기회는 줄고 상속받은 부가 더 중요해진다”며 “상속이 저축보다 훨씬 더 중요한 부의 축적 경로가 되고, 그렇게 축적된 부의 불평등이 높다면 그 사회는 능력주의 사회라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래서, 당신은 무슨 수저입니까?”1111 시사저널
수저 계급론에 담긴 서늘한 현실을 ‘기회균등지수연구’ 보고서로 풀어보다
“결국엔 지원받으며 인내하는 자가 승리해”
원래 밥을 먹는 데 쓰는 수저는 계급의 표식이기도 했다. ‘은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났다’(Born with a silver spoon in one’s mouth)는 표현이 등장한 배경이다. 은수저는 다루기 어렵다. 조금만 신경을 쓰지 않아도 색이 바랜다. 이런 귀찮음마저 즐길 여유가 있어야 비로소 귀족이다. 그래서 은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나는 건 부유한 귀족 출신을 뜻했다. 세례를 받는 아이를 위해 대부는 은수저를 선물했다. 신의 은총을 받은 날, 은수저로 세속의 은총을 줬다. 평민은 나무수저를 쓰던 시대의 얘기다.
역사책에서나 볼 법한 수저는 지금 한국에서 더욱 정교하게 등장했다. 은수저 위에는 ‘금수저’가 생겼고 은수저 아래에는 ‘동수저’가 있다. 대다수의 나무수저는 ‘흙수저’가 대신한다. 이렇게 사람들은 수저에 따라 네 가지 계급으로 나뉘어 있다. 세간에 떠도는 수저 계급론 얘기다. 원래 수저론의 시작점은 균등하지 못한 기회, 그리고 부당한 경쟁을 비판하는 세태를 비꼬기 위해서였다. 21세기에 등장한 때아닌 계급론은 우리네 청년의 자조적(自嘲的) 모습이다. 내 노력과 능력이 아니라 부모의 경제적 수준이 자녀의 삶을 결정짓고, 이것을 뒤집기는 불가능에 가깝다는 슬픈 담론이다.
불평등한 기회를 노력으로 이겨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과거에도 이런 불공평은 존재했다며 나약함을 탓하는 사람도 있다. 이성권씨(60·가명)는 과거 금융사의 사장까지 지냈다. 그는 “우리 때는 일하는 게 즐겁고 감사했다”며 “요즘 친구들은 의지가 약한 것 같다. 적게 일하고 돈은 많이 받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30세가 넘었는데도 직업을 갖지 않은 채 사업만 하려는 아들이 대표적인 사례다. ‘내 덕을 보려 한다’고 생각하는 중이다. 부모가 여유가 있으니 시도하다 안되면 바로 포기해버리는 아들의 모습에서 요즘의 젊은이들을 본다.
그런데 노력하는데도 위로 올라가기 위해 탔던 사다리는 이제 끊어져버렸고 올라갈 길이 더 이상 없다고 생각하는 청년이 많다. 이들은 이씨의 주장이 먹히기엔 사회가 너무 바뀌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여전히 일자리를 구하고 있는 이준건씨(28·가명)가 판단하는 한국 사회는 ‘더 이상 계급이 바뀔 수 없는 사회’다. 인턴 생활을 여러 번 했지만 매번 정규직 문턱에서 떨어졌다. 현재도 계속 취업 준비 중이다.
“우리 사회 기회 보장? 불공평하다”
“여건이 되는 사람이 결국 기회를 얻는다.” 부모님이 보태주는 소액의 생활비 지원마저 없었다면 그의 인내는 이미 바닥났을 것이다. 인내하지 못하면 기회도 못 잡는 게 요즘이다. 누가 더 오래 취업 시장에서 버티느냐에 달렸다. “주변 지인 중에 부동산 자산이 많은 사람이 있다. 이들을 보면 취업 준비를 하더라도 든든한 안전망이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들이 구직 활동을 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혹시나 도전에 실패했을 때 쉼터가 마련돼 있는 그런 사람들이 금수저 같다.”
과거라고 기회가 다 공평하게 제공됐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청춘들은 그걸 더 체감하고 있다. ‘동그라미재단’이 발표한 기회균등지수 보고서는 그걸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권혁용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팀은 지난 4월 동그라미재단에서 행한 ‘한국 사회 기회 불평등에 대한 국민인식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기회 불균등 인식을 분석했다.
한국 사회의 기회 보장을 묻는 문항에서 전체 응답자 1000명 중 62.6%가 ‘불공평하다’고 답했다. 주목해야 할 점은 20대다. 평균보다 약 10%가 높은 72.1%가 불공평하다고 답했다. 다른 연령층과 비교해 매우 높았다. 능력과 노력보다 더한 무언가가 성공을 결정한다는 인식의 기울기는 그 어느 때보다 가파르다.
소득의 최하층을 제외하면 소득 수준별로 대다수 계층에서 한국 사회가 공평한 기회를 보장하지 않는다고 보고 있었다. 소득이 높을수록 한국 사회에서 공평한 기회가 보장되지 않는다고 응답한 비율이 높아진다. “그만큼 위로 올라갈수록 본인의 노력 외적인 힘(학벌, 인맥, 집안 등)이 작동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는 게 권 교수팀의 설명이다.
김장연씨(31·가명)는 그런 걸 경험으로 느낀다. 강남에 땅이 있는 외가 덕에 경제적 어려움 없이 컸다. 집안이 강남 땅부자다. 과거 부의 상징으로 불렸던 빌딩 ‘타워팰리스’에 산다. 자신은 은수저라고 평가한다. “아무것도 안 하는 내 주변 금수저들에 비하면 난 초라하다. 그래서 사시도 준비했던 것이고, 지금은 로스쿨을 다닌다. 난 내 자식에게 뭐라도 물려주려면 내가 일해야 된다.”
공슬기씨(29·가명)는 강남 8학군 출신에 서울대를 졸업했고 취직에도 성공했다. 기업에 다녔지만 과감하게 접었다. 그리고 세무사 시험을 준비했다. “어릴 때는 내가 스스로 무언가를 막 해보려고 했는데 나이를 먹으니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부모님이 가신 길을 따라가는 게 나도 편하고.” 공씨의 아버지는 세무법인의 대표다. “만약 아버지가 세무사가 아니었다면 계속 회사를 열심히 다녔을 것이다. 더 높은 연봉을 받기 위해 이직을 고민하고 그랬을 것 같다.”
같은 나이, 같은 서울대 출신, 지방 중소도시에서 올라온 김주영씨(29·가명). 하지만 공씨와는 고민의 지점이 다르다. 직장을 과감하게 때려치우고 또 다른 길을 열 고민조차 하기 어렵다. “난 흙수저다. 어머니는 파출부 일을 하셨다. 대학을 다닐 때도 전액장학금이 반드시 필요했다.” 대학에 들어오자마자 1학년 때부터 일주일에 3개씩 과외를 했다. 1학년이 끝나기도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빨리 고시에 붙는 게 살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외무고시에 뛰어들었지만 거듭 낙방했고 결국 대학원을 선택했다. 어느 대학원을 갈까, 선택의 이유는 간단했다. 무조건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곳, 그리고 취업이 보장되는 곳. 김주영씨는 대학원을 다니며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해 돈을 번다. 석·박사 학위를 빨리 취득하고 싶다. 교수? 그런 건 꿈도 안 꾼다. 박사 학위를 따야 취업을 하더라도 연봉이 높아진다. “내가 그래도 제일 잘하는 게 공부니까. 공부로 돈을 벌어야 하니까.”
“해외 인턴 나가고 싶었던 아들이 생각 접어”
같은 나이, 같은 학교, 그러나 다른 두 사람의 고민과 행보. 출발점은 그들이 물고 나온 배경이었고 그것이 20대 이후의 갈림길에서 서로 다른 선택을 낳게 한다. 사회·경제적 배경이 중요하다는 사람이 절대적으로 많다. 권 교수팀의 연구에서도 60대이상의 연령층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연령층은 “사회·경제적 배경이 중요하다”는 데 깊이 공감했다. 전체 평균(65.7%)보다 모두 높은 수치였다.
흥미로운 점은 40대(73.5%)와 50대(73.7%)층에서도 사회·경제적 배경이 개인의 노력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불균등한 기회에 분노한 연령이 20대라면 40~50대는 사회·경제적 배경을 사무치게 몸소 느낀 세대다.
경남 김해의 박광진씨(57·가명)는 지난해부터 택시 운전대를 잡았다. 이 시점에서 할 수 있는 게 운전이었다. 중소기업에서 20년을 일했지만 지금 손에 쥔 건 그다지 많지 않다. 오래된 아파트 하나와 중형차 하나가 자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2011년 회사를 퇴직한 후 몸이 안 좋아 3년 정도를 쉬었다. 그사이 집 근처 대형마트 계산대에서 일하는 아내의 월급 100만원 정도가 유일한 수입원이었다.
하나 있는 아들은 공부를 썩 잘했다. “나름 괜찮은 대학을 나왔는데….” 그 괜찮은 아들은 지금 집에 함께 있다. 졸업을 했는데 취업 준비생으로 있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기숙사를 빠져나오자 당장 생활비와 주거비가 문제였다. 그래서 고향으로 내려왔다. 여기에서 취업 준비도 하고 동시에 공무원시험 준비도 한단다.
“애가 옛날부터 해외에서 일해보고 싶다고 했다. 해외에서 무급으로 경험하는 자리가 있었나 본데 지원도 안 하고 포기했다고 했다. 무급으로는 버틸 수가 없으니까. ‘지원이라도 해보지’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지만 집어넣었다. 책임 못 질 말이니까.”
지금의 40~50대들은 고용 불안정에 가장 많이 시달리고 있는 세대다. 동시에 자녀 부양에도 시달린다. 수저론이 나오는 ‘웃픈’ 현실 속에서 아등바등하는 캥거루같은 세대를 책임져야 한다. “이들은 한창 일하던 나이에 IMF 구제금융 사태를 겪었고, 그 탓에 실직도 많았고 이직도 많았다. 그리고 지금은 조기은퇴의 위험을 겪고 있는 세대”(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들은 중산층의 몰락이라는 주제에서 자주 등장하는 세대다.
자료: 동그라미 재단, <기회균등지수연구> 보고서 © 시사저널 임준선
“아버지 거래 회사 인사팀장이 하라는 대로”
그런 시간적 흐름 속에서 사회·경제적 배경이 중요하다는 인식은 점점 이들에게 체화(體化)된다. “내 처지가 이러다 보니 자식에게 도전할 기회조차 뺏는 죄인인 것 같다.” 박씨의 이야기는 비단 그만의 이야기로만 들리지 않는다.
부모의 경제력, 부모의 학력 등은 사회·경제적 배경에 넣을 수 있다. 부모의 경제수준과 학력 수준이 개인의 성공에 중요한 지를 묻는 질문에서 40대와 50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비율이 높았던 것은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경제 수준이 중요한지 묻는 질문에 40대는 88.6%, 50대는 89.4%가 ‘그렇다’고 답했다. 평균값인 84.3%보다 높았다. 학력 수준이 중요한지를 묻는 질문에는 40대가 72.5%, 50대는 71.2%가 동의했다. 평균값은 62.9%였다. 기회 획득의 불공평함에는 20대가 가장 많이 동의했고, 사회·경제적 배경의 중요도에는 40~50대가 수긍하는 비율이 높았다. 결국 우리 사회가 처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현실을 대부분의 연령대가 공감하고 있는 셈이다.
불평등이 가장 날카롭게 대립하는 지점은 교육이다. 변유정씨(52·가명)는 그런 불평등의 이야기가 싫다. 딸과 아들을 모두 서울 소재 유명 사립대에 입학시킨 자신의 노력을 몰라서 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매년 변하는 수시 전형, 선발 요강과 씨름했다. 연년생 자식의 성공을 위해 5~6년을 오롯이 여기에만 투자했다.
변씨의 큰딸 박보경씨(23·가명)는 지방의 자립형 사립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성균관대에 들어갔다. “내 주변 애들은 다들 나처럼 했고 그래서 난 다른 사람도 다들 이러는 줄 알았다.” 개인 과외에 그룹 과외까지 했고 수시를 앞두고는 컨설팅도 받았다. 보경씨의 아버지는 경기도 신도시 여러 곳에서 프랜차이즈 피자집을 운영하고 있다. 아버지의 연소득은 2억원이 좀 넘는다. 2014년 기준 소득 10분위의 월평균 소득은 962만원이었으니 그는 여기에 해당한다.
교육은 사회 계층 이동의 핵심 제도다. 기회 균등 담론에서 교육이 가장 피부에 와 닿는 까닭이다. 동그라미재단 보고서에서 구교준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팀은 소득별로 기회 균등의 격차가 어떻게 나는지 연구했다. 특히 현실적인 목표라 볼 수 있는 ‘명문대 진학’으로 한정할 경우 소득별 교육격차는 매우 크게 나타났다. 서울대·고려대·연세대, 이른바 ‘스카이(SKY)’에 들어갈 예상 확률을 계산해보니 상위 10%인 10분위의 경우 1.25%인 반면, 하위 10%인 1분위는 0.26%로 나타났다. 4.8배의 차이다.구교준 교수는 “2014년 기준 소득 10분위와 1분위 간 사교육비 지출 격차가 16.6배까지 벌어진 상황에서 실질적 의미의 교육기회 균등을 논하기는 이제 거의 불가능한 상황에 도달했다”고 지적했다.
“서울대에 강남 애들이 부쩍 늘어났다”는 증언들은 그동안 꽤 있어왔다. 그리고 앞선 확률은 이미 현실이다. 2015학년도 서울대 신입생은 모두 2064명인데 이 중 서울 고교 출신 신입생이 1306명으로 40%에 달한다. 그 가운데 강남 3구(서초·강남·송파) 소재 고교 출신자들은 432명이다. 전체 신입생의 13%, 10명 중 1명 이상이 강남 3구 출신이란 뜻이다.
부모 소득에 따른 교육 기회의 불평등은 결국 자녀의 소득으로 연결된다. 사회·경제적 배경이 결합되면 취업 교육에서도 한발짝 앞설 수 있다. 졸업 전에 이미 대기업 입사를 확정지은 김지영씨(24·가명)는 “부모님이 부자라고 내가 취업을 하지 않는 건 문제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중견 건설회사의 오너인 아버지를 둔 덕에 취업 때도 도움을 받았다. 대학을 다닐 때부터 아버지 회사와 오래 거래한 건설 대기업 인사팀장이 직접 취업 컨설팅을 해줬다. 팀장이 하라는 대로 해당 대기업에서 진행하는 대학생 홍보대사 활동에 지원해 합격했고, 이를 스펙으로 해당 기업에 지원했다. 그리고 채용이 확정됐다. 졸업한 이후에도 짧게는 1년, 길게는 여러 해를 취업에 힘을 쏟아야 하는 다른 취업 준비생들에 비해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학사모를 쓸 수 있다.
7월8일 서울 서대문구 유플렉스 앞에서 ‘청년전략스페이스 대학생 기획단’이 금수저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헬조선’은 벨에포크 시대와 닮았다
최필선 교수(건국대학교 국제무역학과)와 민인식 교수(경희대학교 경제학과)가 지난 2월 한국교육고용패널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한국의 세대 간 사회 계층 이동성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에서도 같은 지적을 하고 있다. 부모의 소득이 높으면 자녀들은 더 좋은 교육을 받게 되고, 이는 자녀의 소득 하락을 방지하게 된다. 실제로 논문에 등장하는 소득 1분위 그룹의 자녀 임금은 162만원이지만 소득 5분위에 속한 자녀 임금은 193만원으로 19.1%나 높았다.
기회가 균등하게 주어지지 않고 성장의 사다리도 끊어졌으며 노력에 따라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이 희박해진 사회. 토마 피케티는 19세기 말부터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직전, 파리가 번성했던 벨에포크 시대를 그의 저서 <21세기 자본>에서 인용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많은 재산을 상속받는 금수저를 이길 수 없다며 소설 <고리오 영감>(발자크, 1835년)의 대목들을 빌려 썼다. 가장 불평등했던 세습자본주의의 시대를 생생히 보여주며 우리가 그때 그 시절로 유턴하고 있다는 게 그의 진단이었다. 겉은 화려했지만 속은 곪았던 벨에포크 시대, 어찌 보면 지금 우리와 닮았을지도 모르겠다.
돈 없으면 취업 준비도 못한다 1119 시사저널
취준생 100만명 시대 슬픈 자화상…“취업 준비비용 때문에 알바 뛴다
제 요즘 최대 고민은… 글쎄요, 돈?” 의외의 대답이었다. 군 제대 후 몇 년간 취업 준비에 매달려 온 그에게 고민거리를 물었을 때, 당연히 ‘취업’ 혹은 ‘진로’라는 답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취업준비생(취준생) 4년 차 박진영씨(30)는 05학번이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대학 졸업학기를 다니고 있다. “졸업학기만 10학기째”라고 말하는 그의 입가에 씁쓸함이 묻어났다.
그는 학과에서 유명한 ‘화석선배’다. 화석선배는 취업 전까지 졸업을 미루고 학생 신분을 유지하는 고학번 선배들을 화석으로 비유한 표현이다. 극심한 취업난을 반영하는 신조어다.
최근 그는 대출을 알아봐야 했다. 그의 어머니가 충치 치료를 받는 데 200만원 정도 필요했기 때문이다. 20여 년 전 남편과 사별하고 홀로 두 남매를 키운 어머니였다. 무직자이기 때문에 박씨가 의지할 수 있는 건 제2금융권 대출뿐이었다. 그마저도 과거 두 차례 신용카드 대금 연체 이력 탓에 높은 이율을 감당해야 하는 불리한 조건들뿐이었다. “200만원이면 남들에게는 한 달 월급인데, 내게는 마련하기 쉽지 않은 목돈이다. 이번에 대출을 알아보면서 자존감이 바닥을 쳤다. 지금까지는 언론사와 공기업 취직만 고집했었는데, 이번 일을 겪으면서 일단 아무 데나 계약직이라도 취업해야겠다는 생각이 커졌다.”
취업준비생들은 공휴일이나 방학에도 쉴 수 없다. ⓒ 시사저널 구윤성
그는 잠자는 시간, 밥 먹는 시간, 이동하는 시간 말고는 단 1분도 허투루 쓰지 않는다. 하루 중 오전 시간은 오롯이 취업 준비를 위한 시간이다. 일어나자마자 학교 도서관으로 향한다. 도서관에 도착한 그는 학교 컴퓨터로 인터넷 토익 강의를 듣고, 국가직무능력표준(NCS) 문제집을 푼다. 올해부터 130여 공기업·공공기관이 채용 전형으로 채택한 NCS는 산업 현장에서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요구되는 능력을 산업 부문별, 수준별로 체계화한 것이다. 정부가 개발한 NCS 모듈을 바탕으로 2017년까지 전체 302개 공공기관이 채용 과정에 NCS를 도입할 예정이다. 박씨처럼 공공기관 취업을 희망하는 취준생들이 반드시 공부해야 하는 시험 과목이다.
점심은 가장 저렴한 1700원짜리 ‘학식(학생식당)’ 음식으로 해결한다. 점심을 먹고 졸음이 쏟아지는 낮 시간 동안 그는 아르바이트를 한다. 인문계열 적성을 살린 논술학원 답안지 채점 아르바이트다. 건당 6000원. 대면 첨삭 지도까지 하면 두 배를 받는다. 논술학원 강사로 뛰는 학교 선배들의 도움을 받아 그의 손에 들어오는 논술 답안지는 한 달에 200건 정도다. 생활비를 스스로 마련해야 하는 박씨는 이렇게 매달 150만~200만원 정도를 번다. 이 중 매달 50만원을 어머니께 보내드리고 나머지를 기본적 생활비와 취업 준비비용으로 사용한다.
그가 10월에 사용한 비용은 123만3000원. 대학가의 원룸 월세 비용과 식비·교통비 등으로 나가는 기본적인 생활비 69만7000원을 제한 53만6000원이 취업 준비에 들어가는 비용이다. 전체 지출금액의 43.5%에 해당한다. 그의 10월 수입은 140만원. 수입의 38% 가까이를 취업 준비비용으로 사용한 셈이다.
그의 지출 내역 가운데 특히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게 수험료다. 토익, 토익스피킹, NCS, 한국사 등 그가 지불한 시험 수험료만 합쳐 16만9000원이다. 한 권에 2만원 안팎 하는 교재들은 중고로 구입해도 1만원 이상이다. 영어 강의나 취업 컨설팅 강의라도 들으면 20만~30만원이 추가된다. 한 달간 교육비 명목으로 지출되는 금액이 50만원을 넘는 건 예사라고 한다.
“돈 없으면 취업은커녕 취업 준비도 힘든 세상이다. 한 달 지출의 절반이 교재비·수험료 등 취업 준비비용으로 나간다. 20대 초반에도 돈이 없어서 남들 다 가는 어학연수 한 번 못 갔다. 요즘 면접에서 외모도 스펙이라는데 면접용 성형·화장은 꿈도 못 꿀 사치다.”
취준 1년 차, 취업 준비로 한 달 120만원
한동안 연락이 끊겼던 최재연씨(28)의 모바일메신저 프로필에 새로운 사진이 떴다. 그는 국내 대기업 계열사 기획 부서에 다니다 연봉과 적성 문제로 지난해 퇴사했다. 퇴사 직후 퇴직금으로 잠시 동안 해외여행을 다녀온 후 다른 대기업의 인사 부서에 재취업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취업재수생이다. 그는 일주일에 두 개의 취업 준비 스터디를 하고, 한 개의 취업 과외를 받는다. 최씨가 입사를 희망하는 회사 선배가 제공하는 원포인트 과외다. 주 2회씩 총 8회에 1인당 30만원이다.
최씨가 지난 한 달간 취업 준비 명목으로 지출한 비용은 119만7000원. 앞서 본 박씨가 한 달간 쓴 비용의 두 배가 넘는다. 회사별 인·적성 검사 교재와 기출문제 모음집, 면접 컨설팅비까지 포함된 비용이다. “취업 준비에는 아낌없이 지출하는 편이다. 지금 아끼기보다는 돈과 시간을 팍팍 투자해 빨리 취업하는 게 결국 돈 굳는 거라고 생각한다.”
최씨는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는다. 모아둔 월급을 쓰고 목돈이 필요할 때면 부모님께 손을 벌린다. 대학교수인 아버지가 여전히 현직에 있고 몇 년 전까지 어머니가 맞벌이를 해서 경제적으로 넉넉한 편이다. 최씨는 “내가 모아둔 월급을 다 쓰더라도 부모님이 1~2년 정도는 (내 재취업을) 기다려주실 수 있다고 하셨다”며 “가계 부양의 부담이 없어 내 시간을 온전히 취업 준비에 쏟을 수 있다”고 말했다.
88%가 “취업 사교육비용 부담 된다”
취준생 100만명 시대다. 11월11일 통계청이 발표한 ‘10월 고용 동향’에 따르면, 취준생은 63만7000명으로 전년 동월에 비해 8만2000명(14.7%) 늘어났다. 이 통계는 실제로 학원 수강 등을 통해 취업 준비를 하는 사람만 집계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실질적으로 취준생 숫자가 이미 100만명을 넘어섰을 것으로 본다. 알바나 단기 인턴을 하면서 다른 직장을 구하는 실질적 취준생의 수와 일단 대학원에 진학한 후 취업 준비를 하거나 입사 후 1년 안에 이직을 꿈꾸는 잠재적 취준생을 포함하면 그 수는 대폭 증가할 것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통계청 결과에 따르면 10월 취업자 수가 2629만8000명으로 5개월 만에 최고 수치를 기록했다. 여기에 청년층(15~29세) 고용률 증가(41.7%)와 청년 실업률 감소(7.4%)라는 통계적 결과에도 불구하고 취준생들의 취업시장 체감온도가 낮은 이유다. 박윤수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청년 실업률 하락이 반드시 고용 상황 호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많은 취준생은 외부의 시선과 불확실한 미래 속에 불안함을 느끼고 있다. 격화되는 취업 경쟁 속에 취준생들은 더 높은 취업 성공률을 위해 많은 비용을 투자할 수밖에 없다. 취업 준비 과정에서 들어가는 비용은 결코 만만한 수준이 아니다.
“돈이 없으면 취업은커녕 취업 준비도 힘들다”는 한 취준생의 말은 오늘날 취준생들이 놓인 현실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아르바이트 전문 포털 ‘알바천국’이 취준생 810명에게 ‘취업 사교육비용 현황’을 물은 결과, 월평균 26만8600원을 취업 사교육에 쏟는 것으로 나타났다. 1년간 발생하는 취업 사교육비용만 322만3200원에 달하는 셈이다. 취업 준비 기간이 길게는 수년까지 이어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매년 사회적으로 발생하는 이 금액은 어마어마하게 커진다.
실제 취업 사교육비용에 대한 경제적 부담감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88.4%가 ‘부담 된다’고 답했다. 각종 자격증 취득과 언어능력시험 응시에 드는 수험료는 수만원을 호가한다. 취업 스펙의 기본이라고 불리는 영어능력시험 토익의 경우 한 번 응시에 4만2000원이며 회화능력시험인 토익스피킹은 7만7000원이다. 한 번 만에 원하는 성적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기업별 인·적성 모의고사를 치기 위해서도 응시료를 낸다.
경제적으로 부담스럽다고 지불하지 않을 수 있는 비용도 아니다. 공기업에 들어가려면 NCS를 반드시 봐야 한다. 대다수 기업에서는 지원 시 영어 성적 제출이 기본항목이다. 여기에 다른 지원자들과 차별화하기 위해 제2외국어 시험 성적, 컴퓨터 활용 능력 자격증, 여타 자격증까지 채워넣기 바쁘다.
“자격증, 시험 성적 기재란이 버젓이 있는데 아무리 필수항목이 아니라도 빈칸으로 낼 순 없지 않나. 취업 선배들도 ‘한 줄이라도 채워넣어라’고 조언한다. 기본 중의 기본만 한다 해도 한 달에 10만원은 우습게 깨진다.”
대기업 입사를 희망하는 취준생 박정열씨(27)는 “기업 공채를 앞두고 있거나 어학능력시험이 몰린 시기에는 수험료와 교재비 명목으로만 한 달에 20만원도 쓴다”며 “뭔가 하나라도 새로운 시험을 보려면 교재부터 새로 사야 하기 때문에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고 하소연했다. “이제는 대학 졸업만 하면 취업이 되는 게 아니다. 갈수록 취업 경쟁이 격화되면서 별도로 취업 준비를 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취업 준비 과정에서도 적지 않은 비용이 발생함에 따라 취준생들 사이에서도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7월1일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회가 발표한 ‘청년 구직자 취업 준비 실태’에 따르면, 청년 구직자들의 44.3%가 가족의 지원을 받아 취업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족 지원’에 이어 ‘스스로 취업 준비비용을 마련한다’(27.4%)와 ‘스스로 마련한다’(27.2%)가 그 뒤를 이었다. 청년 구직자의 일부는 대출을 받기(0.6%)도 했다.
“주변 사람들 시선이 불편해 혼자 먹고, 연락도 끊고 지내지만 나처럼 돈이랑 시간 아끼려고 혼자 움직이는 경우도 많다. 아무래도 여럿이 함께 공부하면 같이 밥도 먹고, 커피도 사먹게 된다. 돈 아끼려고 밥도 혼자 먹고 공부도 혼자 하고 있다.”
취준생 1년 차 송지혜씨(31)는 “버는 것도 없는데 쓸 일은 많다”며 “조금이라도 다른 지출을 아끼려다 보니 자연스레 혼자 움직이는 일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친구들과 멀어졌다. 일주일에 두 번 나가는 스터디 멤버들과 사적인 교류는 하지 않는다. 일주일 내내 그가 연락하고 지내는 사람은 엄마뿐이다. 그는 “외로움도 사치”라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다음 말로 넘어갔다. “돈 없는 것도 서럽지만 스터디 멤버를 구할 때 경력직만 찾는 것도 서럽다.”
송씨는 최근 한 취업 준비 스터디에서 탈락 통보를 받았다. 스터디 멤버 자격 사항에 기업 경력자를 우대한다고 돼 있었다. 송씨는 기업 실무 경험이 없었지만 대학 시절 교환학생 경력과 출판사 아르바이트 경력이 있었기 때문에 해당 스터디에 지원했다. 스터디 지원서에 “빡센 스터디 커리큘럼을 잘 따라갈 자신이 있다”는 각오까지 써넣었다. 하지만 결과는 탈락. ‘저희 스터디는 ALL(모두) 경력자 출신 취준생으로 구성하고 있다’는 답변이었다.
스터디 멤버 충원에 경력직 선
경력직 선호 현상은 취업 시장에서뿐만 아니라 취준생 시장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실제로 많은 스터디에서 기업에 근무한 경력이 있는 취준생이 우대받고 있었다. 취준생들이 스터디 멤버로 경력자를 선호하는 것은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기업이 원하는 것을 잘 알고 실무 노하우를 공유할 수 있다는 이점 때문이다. 송씨는 “나 역시도 경력자가 있는 스터디에서 취업 준비를 하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지원한 것”이라며 아쉬움을 달래면서도 “스터디란 게 취업을 하기 위해 하는 건데 여기에서도 경력을 원한다. 경력직 중에서도 대기업일수록 더 높이 평가해주는 분위기다. 나 같은 초보는 취업 준비 시장에서부터 설 자리가 없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취준생 시장에서의 경력직 선호 현상은 어려워진 취업 시장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반영하는 것이다. 취업 준비 스터디에 들어가기 위해 서류전형은 물론 면접까지 보는 건 이제 비일비재하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취업 준비라는 것도 비용이 드는 행위다. 지난 10여 년간 일자리 수요에 비해 공급이 과잉되면서 취업 경쟁이 심해졌고 취업 준비비용의 발생은 자연스럽게 취업 준비 양극화로 이어졌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취준생들은 “이런 일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며 “오죽하면 취준생의 적(敵)은 취준생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라고 말한다. 이래저래 웃을 일보다 서러울 일이 더 많은 대한민국 취준생들이다.
테러에도 면역됐나…하루 만에 안정된 금융시장 1117 한국
17일 서울 을지로 KEB하나은행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주말 파리 테러 이후 첫 개장일에 불안한 모습을 보였던 아시아 각국 증시가 17일 하루 만에 전날의 낙폭을 대부분 회복하면서 안정세를 되찾았다.
이번 테러가 금융시장에 미칠 악영향이 그다지 크지 않을 거란 자신감도 확산되는 분위기다.
이날 코스피지수는 전날보다 20.56포인트(1.06%) 오른 1,963.58으로 장을 마감, 파리 테러의 여파로 30포인트(1.53%)나 내줬던 전날의 낙폭을 3분의2 가량 회복했다. 코스닥지수도 12.97포인트(1.97%) 오른 672.17로 장을 마쳤다.
하루 만의 반등을 이끈 주역은 전날 미국과 유럽 시장의 ‘의연한’ 반응이었다. 테러 여파의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예상됐던 16일 유럽 증시는 프랑스만 약보합세(-0.08%)로 마감했을 뿐, 영국(+0.46%)과 독일(+0.05%)에선 오히려 상승세로 마감됐다. IS의 테러가 더 이상 확산되지 않는다면 금융시장 충격이 크지 않을 거란 분석 때문이었다. 유럽 주요국 증시는 17일에도 1% 안팎의 상승세로 출발했다.
16일 미국 뉴욕증시 역시 장 초반 혼조세로 출발했으나 서방의 중동지역 보복 공격 우려에 따른 국제유가 상승이 에너지 관련주들의 급등을 이끌어 내면서 다우지수가 1.4%나 뛰는 등 오히려 상승세로 마감됐다.
서구 증시의 차분한 반응에 17일 아시아 각국 증시는 일제히 상승 반전했다. 전날 1.04% 하락했던 일본 닛케이지수는 1.22% 오르며 전날의 낙폭을 모두 만회했다. 호주 증시는 호주중앙은행이 추가 금리인하 가능성을 언급했다는 호재에 2.29%나 뛰어오르며 역시 전날 낙폭(0.93%)을 모두 되돌렸다. 다만 전날 파리 테러 여파에도 0.73% 상승했던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만 차익실현 매물에 소폭 하락세(-0.06%)를 보였다.
전날 파리테러 영향으로 달러당 10.3원이나 급등했던 원ㆍ달러 환율도 하루 만에 하락세로 전환했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ㆍ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3.7원 내린 1,170.4원에 장을 마쳤다.
이종우 아이엠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돌이켜보면 16일 아시아 증시가 지나치게 호들갑을 떨었던 셈”이라며 “9ㆍ11사태와 금융위기 같은 대형 악재들을 겪으며 글로벌 시장 참가자들이 위기에 과도하게 반응하지 않는 일종의 학습효과를 익힌 결과”라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도 파리 테러의 충격은 그다지 없을 걸로 본다”며 “미국의 금리인상에도 별다른 변수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파리 테러' 후 가장 많이 읽힌 기사는 '케냐 테러'? 1117 프레시앙
테러도 금수저, 흙수저 갈리나 ..서방언론 이중잣대 비판
'11.13 파리 사태'에 대해 서방언론들이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심각한 테러 공격으로 9.11 사태처럼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전세계 곳곳에서 파리 테러 사건 못지 않게 충격적인 사건은 그동안 빈번했다. 지난 해에만 테러 공격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전년 대비 80%나 증가하며 3만 명이 넘을 정도였으며, 바로 전날 레바논에서도 대형 테러 사건이 발생했으나 서방언론은 흔한 사건 중의 하나로 취급했다.
이에 대해 16일 BBC는 "서방언론 보도의 이중잣대를 비판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지난 13일 파리 테러 공격으로 130여 명이 사망했다는 보도 이후 이틀 동안 BBC 뉴스 웹사이트에서 '가장 많이 읽힌 기사'는 테러 사건이었다. 하지만 정작 가장 많이읽힌 기사는 파리 테러 사건이 아니라, 지난 4월 케냐의 한 대학에서 147명이 테러로 살해된 사건 기사였다.
BBC에 따르면, 케냐 동북부에 있는 가리사 대학교에서 소말리아 무장단체 알샤하브가 저지른 테러 사건을 다룬 기사를 클릭한 방문자 수는 파리 테러 사건 직후 700만 명에 육박했다.
흥미로운 점은 클릭한 방문자 4분의 3 가량은 BBC 뉴스 웹사이트에서 직접 한 것이 아니라, 소셜미디어를 통해 들어왔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BBC는 "어떤 이들은 날짜를 살피지 않고, 지인들이 올려놓은 링크를 눌렀을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날짜가 지난 기사는 빨간 원으로 감싸 지난 기사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SNS에서 케냐 테러 사건 기사를 클릭했다는 것은 어떤 메시지를 보내려는 의도가 있다"고 분석했다.
BBC는 "그들은 서방언론이 파리 테러 사건을 다루듯 케냐 학살을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고 비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클릭을 많이 한 독자들의 지역 분포도 흥미롭다. 케냐 시민들이 주로 클릭한 것이 아니라, 클릭의 절반 정도는 북미, 그리고 4분의 1은 영국인 것으로 나타났다. BBC는 "이틀에 걸쳐 케냐 테러 사건 페이지뷰는 1000만 건이 넘었는데, 지난 4월 이 사건이 일어났을 때보다 4배나 많은 것"이라고 전했다.
트위터에서도 지난 13일 이후 'Pray For the World'라는 해시태그가 40만 번이나 등장했다. 이에 대해 BBC는 "이들 일부는 파리 테러 사건을 넘어 논의의 지평을 넓이려고 하며, 많은 희생자를 낸 멕시코와 바그다드 사건을 상기시키려는 의도가 있다"고 분석했다.
▲ 파리 테러 사건 하루 전인 12일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40명이 넘게 살해된 테러 사건이 발생해 레바논 군인들이 경계를 서고 있다. ⓒAP=연합뉴스
테러 사건, 파리에서 일어나야 세계 평화 위협?
'Pray for Lebanon'이라는 해시태그는 파리 테러 사건 바로 전날 베이루트에서 IS의 자살폭탄테러로 최소 41명이 살해된 사건을 상기시키는 것으로, 트위터에 80만 번 이상 등장했다.이 해시태그도 사건 당시에 등장한 것이 아니라, 파리 공격 이후에 달린 것이다('Pray for Paris'라는 해시태그는 1000만 번 넘게 쓰였다).
'Pray for..'로 시작하는 해시태그는 파리 테러 사건과 관계가 없는 사건들로도 확장됐다. 'Pray for Japan'이라는 해시태그는 지난 14일 일본 해저에서 강진이 발생했다는 보도 이후 160만 번 넘게 등장했다. 2011년 후쿠시마 대지진 때와는 달리 사상자가 없는 지진이었는데도 해시태그가 이렇게 많이 달렸다.
페이스북의 이중잣대도 비판을 받고 있다. 페이스북은 파리 사건 직후 페이스북을 통해 자신이 무사하다는 것을 알리는 '세이프티 체크' 서비스를 제공했다. 바로 전날 베이루트 테러 사건과는 다른 대응이다. 페이스북의 이중잣대적인 대응은 또 있다. 파리 사건 이후 가입자의 프로필 사진에 프랑스 국기를 상징하는 색깔을 입힐 수 있는 필터를 제공했다.
페이스북은 "왜 다른 나라, 다른 사건의 경우에는 비슷한 서비스를 하지 않느냐"는 BBC 측의 질문에 대해 답변을 거부했다.
16일 국제 싱크탱크인 경제평화연구소(IEP)가 세계 162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세계테러리즘지수(GTI)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14년 세계에서 테러로 숨진 사망자수는 전년도의 1만8011명에서 80% 늘어난 3만2658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테러 사망자는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나이지리아, 파키스탄, 시리아 등 5개국에 78%가 집중됐다. 이라크에서 9929명이 숨져 테러 희생자가 가장 많았다. 테러 사망자 수가 가장 많이 늘어난 곳은 나이지리아로 전년보다 300% 증가한 7512명이 숨졌다.
서방언론은 IS 등이 일으키는 테러에 희생되는 사람들이 어느 나라 소속이냐, 발생 장소가 어디냐에 따라 '세계 평화에 대한 위협' 정도가 달리 판단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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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대통령이 찍으라카면 다 찍을낀'가? 1116 프레시안
[민교협의 정치시평] 여당이 불 붙인 '역사 전쟁'…우리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과정에서 여당과 관료들이 뱉은 말은 너무도 선동적이고 반민주적이라 과연 국가 운영의 책임을 맡은 사람들이라고는 믿기지가 않는다. 반대 여론이 증가하자 일간지를 통해 이런 기사를 내보낸다. 정통한 대북소식통을 인용했다는 이 기사는 북한이 국정화 반대 지령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졸지에 국정화를 반대하는 수많은 시민들과 학생, 역사학 교수들과 지식인들이 북한의 지령을 받은 간첩으로 내몰리게 된 셈이다.
여당 최고의원이란 사람은 이에 맞장구를 치듯이 "지령을 받은 단체와 개인이 누구인지 철저히 밝혀야 한다"고 말한다. 아무런 근거 없는 일간지의 보도를 근거로 '이념몰이'를 하겠다고 작정하고 있다. 여당 원내 대표란 사람은 아예 북한이 국내 종북 세력에 지령문을 보낸 것은 남남갈등을 유도하려는 전형적인 통일전선 전술이라고 말한다. 여당의 최고의원은 국정화 반대가 "언젠가 북한체제로 적화통일 됐을 때를 대비해 남한 어린이들에게 미리 교육시키겠다는 의도"라고 극언을 태연하게 내뱉는다. 그런데도 이들에 대한 언론과 여론의 반응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태연하다. 심지어 이런 반헌법적인 발언에 대해 법과 정치는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는다. 이는 명백히 이 나라의 민주주의 원칙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행태일 뿐 아니라, 국가를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극도로 분열시키는 행위이다. 그럼에도 이 사회의 공공 영역은 너무도 조용하다.
이런 상황에서도 가장 한심한 것은 언론이 아닌가. 이 나라의 언론과 기자는 일부 의식있는 이들을 제외한다면 모두 죽었거나 언론이 아니거나, 언론이 아닌 그 무엇이다. 참담하기 그지없다. 그러고도 언론이라고 말할텐가?
이런 야만스러운 발언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반응은 더 어처구니가 없다. "당 보고 찍지 사람보고 찍나. 대통령이 찍으라카면 다 찍을끼다." 이 말은 지난 10일자 국내 발행 부수 1~2위를 다투는 신문에 실린 자극적 기사였다.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하는 과정에서 여론의 흐름을 살펴보기 위해 대구 지역을 인터뷰한 기사 가운데 한 대목이다. 시장에서 장사를 한다는 이 할머니는 인물이나 정책과는 무관하게 그들 지역에서 배출된 대통령이 찍으라는 데로 투표하겠다는 의지를 이렇게 간명하게 표현했다. 전후 맥락을 살펴보면서 알아 들어야 할 기사지만 우리 사회의 정치 의식이 어느 수준인지를 너무도 잘 보여주는 말이 아닌가.
그나마 민주주의 사회에서 교육받고 자란 젊은이들은 다를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런 것도 아니다. 대구의 23살짜리 민주 청년은 "저나 친구들이나 대통령이 하려는 데는 다 이유가 있겠지 생각"한다고 말했단다. 그밖에도 "나라가 안되는 건 대통령 탓이 아니고 국회의원 탓이죠. 그 양반(대통령) 안타깝잖아요"라는 말에서 이들이 지닌 정치의식과 정서를 남김없이 볼 수 있다. 이것이 한 두 사람의 주장에 그치지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다.
새누리당은 "올바른 교과서(를) 반대(하는) 국민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라고 하거나, 이 땅의 국사학자 90%를 좌파로 몰아가고 있다. 그래도 국민들은 이들을 지지한다. 대선, 총선 공약이 거짓말 잔치가 되었을 뿐 아니라, 여당 대표가 공공연히 '대선에서는 무슨 공약인들 못하냐'라고 해도 그들에 대한 지지율은 고공행진이다.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하나? 이 정도면 어떠한 생각도 하지 않는 '무뇌아'이거나 거의 노예 수준의 정신상태가 아닌가. 뭐 맛있는 것 먹을지, 뭐가 재미있는지 생각하는 것은 생각이 아니라 욕망이다. 욕망으로 생각을 대신하지 말라. 그건 짐승이나 하는 짓이다.
정치권이 정권재창출과 통치를 위해 왜곡과 거짓 선동을 일삼는다 하더라도 시민들이 그 진위 여부를 가리고, 민주 사회에 필요한 판단으로 적절히 대응한다면 이런 원색적 선동이 자리할 곳이 없을 것이다. 거짓과 불의를 일삼고, 공직을 이용해 사익만을 추구하는 부패한 정치인과 관료들을 몰아내지 않으면 그들이 우리 사회를 부패시키고 우리 삶을 왜곡시켜 결국 야만스럽기 그지없는 상태로 몰아갈 것이란 사실은 자명하다. 그런데 그런 삶으로 내몰릴 이들이 다만 그들의 진영 논리에 따라 모든 정상적 판단과 정치적 선택을 포기하는 행동을 너무도 태연히 자행하는 사회가 어찌 민주 사회라고 말할 수 있는가. 어떠한 합리적인 말도 정치적 편 나누기에 따라 의미가 결정되는 사회, 진영 논리에 갖혀 우리 편이라 믿어지는 사람의 어리석고 선동적인 발언도 아무런 비판 없이 무조건 수용하는 사회가 올바른 혼을 갖춘 사회인가.
국민을 '호갱님'으로 알고 자신들을 무조건 추종하리라 생각하기에 온갖 거짓말과 현혹시키는 행동으로 자신들의 권력과 사익을 추구한다. 공약 이행률은 바닥 수준이고, 주요한 공약은 거의 전부를 파기해도 막무가내로 지지하는 국민을 누가 무서워하랴. 지난 시대와 지난 정권의 구역질나는 부패, 치를 떨 수밖에 없는 폭력과 불의에 책임을 묻지 않았기에 그 일은 똑같이 되풀이되고 있다. 이젠 아예 그게 올바른 역사였다고 말하려 한다.
말이 제대로 된 길을 잃고, 제 뜻을 상실한 사회, 말이 가리키는 바가 아니라 말한 사람에 따라 진위가 결정되고 수용되는 사회, 아무런 내용 없는 말, 자신을 스스로 뒤엎는 말이, 문장도 성립되지 않는 말이 자신을 통치하는 최고 지도자 입에서 나와도 "그 분이 하는 데는 다 뜻이 있겠지"하는 사회는 절대로 민주주의 사회가 아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자율적으로 살아가기를 포기한 삶은 식민시대의 야만과 독재정치의 폭력을 되풀이할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다시 그 불의와 폭력의 야만으로 회귀한다. 이 시대의 정치와 사회는 남김없이 그 길로 나아가고 있다.
그래서 아마도 여당 대표가 이런 말을 했나보다. 이 과정은 "역사 전쟁"이며 그 전쟁은 "절대 물러설 수 없는, 꼭 이겨야할 전쟁"이라고. 참으로 근래 보기 드문 올바른 혼을 갖춘 발언이다. 이 과정은 민주와 독선, 올바른 정신과 전체주의 정신, 생각하는 사람과 맹목적으로 "대통령이 찍으라카는 사람 찍는" 사람과의 전쟁이다. 이 전쟁에 따라 우리 삶은 극명하게 갈라질 것이다.
‘댓글부대’ 의심 KTL 용역업체 PM 민진규씨 ‘1인당 5억씩 주겠다’ 1124 주간경향
<주간경향> 지난해 8월 워크숍 녹취록 단독 입수
전 세계 268개국 수출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해 연간 1000억원이 넘는 수익을 창출할 것으로 믿었던 한국산업기술시험원(KTL)의 글로벌기술정보사업은 ‘한여름 밤의 꿈’으로 끝났다. 무리한 사업을 벌이며 유사 용역실적이 전무한 그린미디어라는 신생 매체에 15억원의 용역 예산을 배정한 ‘간 큰 직원’들은 사기와 횡령으로 석 달 가까이 경찰 조사를 받고 있고, 조직 전체가 범죄집단처럼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 최근에는 해당 용역업체 회장으로 영입됐던 국정원 출신의 김흥기 카이스트 겸직교수가 중국과학원(CAS) 명의를 도용한 ‘가짜 수료증’ 사건에 휘말려 기관 이미지는 더 악화됐다. 그렇다면 최초 이 사업을 추진했던 KTL 직원들은 과연 무슨 생각으로 ‘신기루’를 쫓았던 것일까.
KTL 직원 몫으로 6명에 30억 제안
<주간경향>은 지난해 8월 KTL이 그린미디어를 글로벌정보용역 사업자로 선정하고 개최한 워크숍 녹취록을 단독 입수했다. 당시 워크숍에는 KTL 측에서 용역 발주를 주도한 경영지원본부장 출신의 정완수 수석행정원(직위해제)과 박모 본부장(보직해임), 최모 센터장 등 8명이 참석했다. 그린미디어 측에서는 재정고문 이모씨, 프로젝트 매니저인 민진규 국가정보전략연구소장 등이 참석했다. 경기 일산의 한 펜션에서 야유회 겸 열린 워크숍에서 술자리가 시작되기 전 참석자들의 대화 주제는 향후 수익배분 방법이었다.
‘댓글부대’로 의심받고 있는 한국산업기술시험원(KTL) 글로벌기술정보 용역팀원들이 지난해 8월 경기 일산의 한 유원지에서 연 워크숍 장면. 이 자리에서 민진규 프로젝트 매니저는 KTL 직원 6명에게 1인당 5억원씩 주겠다고 했다. 테이블 오른쪽 편 고개를 돌리고 쳐다보는 까만옷 입은 사람이 민진규씨. 테이블 왼쪽 끝 파란색 옷을 입은 이는 KTL 정완수 수석행정연구원. / 내부고발자 제공
정완수 - (민진규를 보며) 그래서 그 많은 돈을 어디다 쓰실 거예요. 저하고 술 좀 먹어야 되는 거 아니에요.
민진규 - 아이고. 가서 막걸리나 사 오세요. (일행 중 ‘우 박사’라는 사람이 막걸리를 사러 가기 위해 일어서려 하자)
정완수 - 가만 있어봐. 우 박사한테 할 얘기가 있어. 돈 오해하고 있다니까. 자 1000억 벌었어. (50대 50으로 수익을 나누면) KTL은 다 못 받아. 그런데 그린미디어는 500억 가지고 나눠 먹을 수 있잖아.
민진규 - 내가 5억씩 줄게.
재정고문 이○○ - 본부장님이 (직접 주신다고요)
정완수 - 박수! 와아! (KTL 직원들 일동 박수)
민진규 - 50억밖에 안 되잖아.
정완수 - (KTL 소속 직원 수를 세며) 30억밖에 안 되잖아. 소장님 30억밖에 안 되네.
이들의 대화를 종합해 보면 기업이나 공공기관들로부터 거둬들인 연간 1000억원의 정보서비스료 배분방법과 관련해 민 소장이 그린미디어 수익금에서 KTL 직원 몫으로 1인당 5억원씩 6명에게 30억원을 떼주겠다고 제안한 것이다. 수익금 1000억원이 다소 허황된 금액으로 생각될 수 있다. 하지만 KTL은 지난해 글로벌기술정보사업 발주 당시 3년간에 걸쳐 61억원의 예산을 투입, 서비스가 유료로 전환되면 최소한 1000억원이 넘는 수익이 창출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었다.
1만2000개 중소기업들로부터 연간 이용료로 10만~100만원씩, 그보다 큰 대기업과 공공기관들로부터 더 큰 수수료를 받아낸다는 계획이었다. 이들은 구체적인 정보서비스 대상자로 삼성, LG, KT 등 재벌 및 대기업들과 KAIST 산하기구, 생명공학연구원 등 산업기술연구회 산하 16개 기관들을 거론했다.
정 수석행정원은 “연구소에서 시시하게 뭐 몇 천, 몇 억 가지고 하겠어”라며 공공기관과 대기업 연구소를 상대로는 거액의 수수료를 받을 계획을 갖고 있음도 내비쳤다. 당시 워크숍에 참석했던 KTL 최모 센터장은 “새로운 수익사업이 창출되면 기관에 좋은 일이 될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지, 우리가 돈을 나눠 먹으려 했던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녹취록에 보면 좀 더 노골적인 표현도 나온다. 용역팀 명단에 빠져 있는 우 박사 등을 가리키며 정 본부장이 “아까 사람 수를 셀 때 다섯 명(자신 포함 6명)만 세었지 두 사람은 안 세었다”고 하자 우 박사는 “아 상관없어요. 어차피 5억씩 다섯 명 주시고 우리는 나중에”라고 했다. 우 박사라는 사람은 최모 센터장이 2004년 민주노총 과기노조 산하 KTL 지부장을 할 때 사무국장을 했다. 이들은 2004년 산업자원부의 보조금 축소 압박카드에 밀려 상급단체의 동의 없이 사측과 단협을 체결한 후 과기노조 탈퇴를 주도하기도 했다. 민주노총과 가까운 현 KTL 노조와는 거리가 멀지만 경영지원본부장을 지낸 정 수석행정원과는 유착된 관계다.
갑을관계 역전, ‘병’을 상전처럼 모셔
이들의 대화에서 특이한 점은 발주자인 KTL, 용역사업자인 그린미디어, 프로젝트 매니저 민진규 소장 간에 갑을관계가 역전이 돼 있다는 것이다. 민 소장은 용역사업자인 그린미디어에 고용돼 갑도 을도 아닌 ‘병’의 위치에 불과한 사람인데도, KTL 정 수석행정원은 ‘소장님’, 현대건설 임원 출신의 그린미디어 재정고문 이모씨는 ‘본부장님’이라고 깍듯하게 호칭했다. 나이도 민 소장이 40대 중반으로 정 본부장이나 이 고문에 비해 한참 연하인데도 ‘상전’처럼 행세했다.
민 소장은 국정원 입사를 준비하는 수험생들을 상대로 오랫동안 강의를 했고, 실제로 용역 수행기간 중에도 제자들이 많이 다녀가는 등 해당 용역과 국정원의 연결고리로 주목을 받아왔던 인물이다.
그는 워크숍에서 “KTL이 적대시하기 때문에 그것도 문제고. 괜히 깐죽대면 다른 데서(는) 출연금 받으면 (더) 열심히 일한다”고 했다. 어차피 기재부에서 내려온 출연금으로 일을 하는 건데 KTL에서 반대하면 사업을 다른 기관으로 옮길 수도 있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사업의 타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다가 석연치 않은 이유로 면직된 남궁민 전 KTL 원장 추종세력과 KTL 노조를 겨냥한 경고성 발언이었던 셈이다. 민 소장의 발언에는 기재부에서 예산을 따온 것은 KTL이 아니라 자신의 힘 때문이라는 뉘앙스가 담겨 있었다. 민 소장이 KTL 반대파에 대해 역정을 내자 정 수석행정원은 “우리는 동물 부리듯이 하면 된다”고 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이건) 노예계약이야”라는 말까지 했다.
그렇다면 KTL 직원이 스스로를 ‘동물’ ‘노예’로까지 표현하며 상전처럼 모신 민 소장의 힘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지난해 인턴사원으로 용역팀에서 일하다 나온 내부고발자 최모(35)·김모(36)씨는 민 소장이 일이 잘 안 풀리면 항상 외부의 누군가를 거론했다고 기억했다. 그린미디어가 KTL에 지난해 7월 초 제출한 회사 조직도에도 사장 위에 당시까지 회사 내부에서 아무도 몰랐던 ‘회장’이라는 직함이 등장하기도 했다. 그린미디어에 실제 회장이 모습을 드러낸 것은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난 지난해 12월이었다. 행정고시를 거쳐 국정원에서 근무했던 김흥기씨가 국회에서 이인제 최고위원과 이재오 의원, 목요상 헌정회장의 축하를 받으며 회장으로 취임한 것이다. 그는 회장으로 취임하기 전 10개월 사이에 그린미디어에서 발행하는 신문에 50여편의 칼럼과 인터뷰를 게재했다. 칼럼과 인터뷰에 등장한 그의 직함은 박근혜 정부 실세들이 대거 참여한 미래부 글로벌창업정책포럼 상임의장이었다.
당시 그린미디어는 일주일에 두 번씩 2개면에 걸쳐서 김씨의 칼럼과 인터뷰를 실었다. 그를 지면에 자주 노출시킨 의도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KTL도 자신의 사무실에 입주해 있는 그린미디어의 간판스타 격인 김씨의 존재를 몰랐을 리 없다. 창간한 지 채 2년도 안되고, 기자 수도 10여명이 안 된 그린미디어가 전 세계 267개국에 3000여명의 정보원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KTL이 믿었던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봐야 한다. 이 점에서 그린미디어와 KTL이 상전처럼 모신 민 소장 뒤에는 국정원 출신의 김씨가, 김씨 뒤에는 또 다른 현 정권 실세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김씨는 과연 2012년 새누리당 대선캠프에서 무슨 역할을 했길래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급부상했으며, 2단계 용역을 앞두고 그린미디어 회장에 취임했을까. KTL 용역팀이 국정원과 민주평통, 자유총연맹까지 끌어들여 구축하려 했던 종합정보처리상황실 ‘K룸’의 정체는 무엇일까. 용역팀의 속살을 보여준 ‘녹취록’이 꼬리를 물고 던지는 또 다른 의문들이다.
'표현의 자유'는 이제 돈과 싸운다 1117 시사저널
아이유의 ‘제제’를 둘러싼 논란은 대중문화와 그를 둘러싼 ‘표현의 자유’를 논하는 단계로 확대됐다. 대중문화산업과 표현의 자유 사이의 충돌은 오래된 이슈다. 일단 대중문화산업이 가장 번성한 미국에서부터 오랫동안 논란이 되어왔다. 1960~70년대에 미국의 대중문화는 일종의 해방 국면을 맞았다. 젊은이들의 자유분방한 욕구가 일제히 분출되는 히피 전성시대가 있었던 것이다. 당연히 보수 세력은 질색했고, 1980년대 레이건 대통령의 공화당 정부가 들어서면서 보수의 반격이 거셌다. 마돈나 등으로 대표되는 대중문화에는 퇴폐 딱지가 붙었고, 당대 여러 가지 사회문제들, 예를 들어 청소년 문제, 마약 문제, 폭력 문제, 성범죄 문제 등 각종 사회 일탈행위의 원인으로 대중문화가 지목됐다.
마이클 무어의 2002년작 <볼링 포 콜럼바인>은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이 영화는 나오자마자 국제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감독은 미국 진보 세력에겐 영웅으로, 보수 세력에겐 ‘정신나간 선동꾼’으로 자리매김했다. 이 작품은 미국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을 이야기한다. 당시 보수 세력은 대중문화의 폭력적 표현이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강렬한 헤비메탈의 ‘마릴린 맨슨’이 원흉으로 지목됐다. 마릴린 맨슨은 마릴린 먼로와 연쇄살인범 찰스 맨슨을 합성한 것으로 이름부터가 금기를 넘어선 표현이었다. 마릴린 맨슨 유의 하드록은 흔히 폭력과 성적 욕망, 악마주의적 표현을 내세운다. 한국에서 만약 정윤희와 유영철을 합성한 이름의 가수가 등장해 악마적 퍼포먼스를 한다면 엄청난 질타 속에 곧바로 매장될 것이다. 마릴린 맨슨이 라는 팝스타의 존재만 봐도 미국이 한국보다는 표현의 자유가 훨씬 폭넓게 보장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폭력과 성적 욕망, 악마주의적 표현을 내세우는 마릴린 맨슨은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는 미국에서도 매번 도마 위에 오르는 뮤지션이다. ⓒ EPA연합
욕망의 표현은 정치적 억압에 대한 저항
이렇듯 표현의 자유를 놓고 한쪽에선 사회적 악영향을 우려하며 통제를 주장하고, 다른 쪽에선 자유를 주장하는 것이 고전적인 논쟁의 양상이다. 보통 종교계나 소비자·학부모단체 등이 전자이고, 문화예술계 인사들이나 인문·사회 지식인들은 후자 쪽에 가깝다. 흔히 지식인들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이 결국 정치적 억압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문제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1990년대 이후 성적(性的) 표현이 지식인들의 지원 아래 만개한것도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지배 질서가 억압하는 욕망을 해방시키는 것이 진정한 변혁이라는 관점에서 ‘윤리를 폐(廢)하고 음란을 허(許)하라’가 지상과제가 됐으며, 동성애 표현이 찬미되기도 했다.
한국에서 표현의 자유는 미국보다 지난한 과정을 거쳐 자리잡았다. 미국은 국가 역사의 기원부터 시민의 자유를 최고 가치로 여기는 공화국 체제였지만, 우리는 사상 통제와 엄숙·도덕주의의 조선을 거쳐 일왕을 최고 존엄으로 섬긴 일제 강점기, 그리고 대통령을 최고 존엄으로 섬기는 독재 시기까지 겪은 후에야 여기까지 왔다. 분단국가이기 때문에 서구 시민 대다수가 누리는 사상의 자유가 제한된 처지이기도 했다. 방송 출연자들이 국민 앞에서 대통령을 가리킬 때 존대를 해야 하는 상황인 것을 보면 아직도 완전히 시민적 자유가 정착됐다고 하기는 어렵다.
독재 시기 표현의 자유 논란과 관련해서는 황당한 사례가 많았다. 신성일의 <맨발의 청춘> 마지막 장면은 너무 음울하다는 이유로 삭제당할 뻔했는데, 대통령의 특별 지시로 되살아났다고 한다. 한국 영화 불멸의 명작으로 꼽히는 1961년작 <오발탄>은 우울한 한국 사회 묘사와 극중 노모(老母)의 “가자, 가자”라는 대사가 문제가 됐다. “북한으로 가자는 거냐?”라는 우문이 나왔다. 이후 한국 영화에서는 현실과 아무 상관없이 아름답기만 한 문예영화가 제작될 수밖에 없었다. ‘높으신 분’들이 가질 수 있는 폭력물의 해악성을 염려해 액션영화도 우리의 시공간과 상관없는 만주를 배경으로 찍었다. <놈놈놈>의 원조가 되는 만주웨스턴 장르의 탄생이다.
가요계에는 검열 트라우마가 특히 깊다. 사회성이나 선정성의 문제가 없는 노래들까지도 마구잡이로 금지됐기 때문이다. <고래사냥> <왜 불러> <아름다운 강산> <미인> 등이 그 예다. <행복의 나라>는 “그럼, 지금은 불행하냐?”며 금지됐다고 한다. 그 시절에 국민의 치마와 머리 길이를 경찰이 재는 모습은 두고두고 남는 웃음거리다. 이런 역사가 있기 때문에 문화계와 지식인들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일체의 시도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지금 아이유의 ‘제제’에 대한 공격에도 그러한 반응이 나타났다. 그런데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논란의 전개 양상이 최근들어서는 달라졌다.
‘표현의 자유 논란 2.0’의 한 장을 차지할 것
상업주의가 극성하면서 상업적 목적으로 자극적인 표현을 일삼는 것, 성을 상품화하는 것이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걸그룹의 성적 상품화는 국민의 정신건강을 위협할 정도가 되었다. ‘일베’(인터넷 사이트 ‘일간 베스트’의 줄임말)에선 혐오 표현이 줄을 잇는다. 이런 표현들까지 공화국의 이름으로 보호해야 하는지가 논쟁거리가 됐다. 최근 범죄에 대한 공포가 실질적 위협으로 다가오면서 범죄적 표현, 특히 미성년자를 성적인 대상으로 표현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은 극에 달했다. 따지고 보면 대중문화의 잘못된 표현이 사람들의 의식이나 사회 현상에 악영향을 미치는 측면도 일정 부분 있다. 이런 점에서 표현의 자유가 규제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오히려 민간 영역에서 커져간다. 얼마 전 여성 납치 범죄를 연상하게 한 맥심 화보도 그런 맥락에서 철퇴를 맞았다.
그러나 한편으론 과거처럼 권력의 억압에 표현의 자유가 맞서는 구도도 여전히 작동한다. 개그맨들이 풍자 개그를 자유롭게 못하는 것이나, 얼마 전 있었던 웹툰 음란물 딱지 논란이 그것을 말해준다. 한국작가회의는 2013년에 표현의 자유를 위해 ‘투쟁’할 것을 선언하기도 했다. 아이유는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이렇듯 복잡한 표현의 자유 논란의 한복판에 서게 됐다. 이번 아이유 논란은 창작자의 자유와 범죄에 대한 공포, 선정성, 상업주의, 윤리 등이 복잡하게 충돌하는 ‘표현의 자유 논란 2.0’의 한 장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다만 집단 공격과 조롱이 아닌 좀 더 차분한 논의가 있어야 우리 사회의 문화적 성숙으로 이어질 수 있다.
“디스패치가 국정원과 관련 있나”라고 물으신다면…미디어오늘 11.6
[뉴스 파파라치①] 뉴스 불신에 기초한 음모론 전성시대… 유병언이 배용준 결혼을 덮었다
유병언 창조경제’가 ‘배용준-박수진 결혼’을 덮다
지난 5월 미디어오늘 기자들을 매우 당혹스럽게 만든 사건이 하나 발생했다.
발단은 5월 14일자 미디어오늘 단독기사 <유병언 계열사에 ‘창조경제’ 지원금 67억 들어갔다>였다. 기사의 ‘야마’(핵심)는 간단하다. 세월호 참사의 주범으로 꼽혀온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계열사와 세월호 참사 당시 민간구조업체인 언딘에게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자금이 100억 원 이상 지원됐다는 거다.
이 기사는 중요한 소식이긴 했으나 미디어오늘 온라인 홈페이지의 ‘탑’을 차지하지는 못했다. 실제로 현금이 지원됐다기 보다는 대출 지원 성격이고 워낙 창조경제 지원금이 여기저기 뿌려진 탓에 유병언에게 특별히 특혜가 집중됐다고 보기는 다소 애매한 측면도 있었다. 그런데 누리꾼들이 이 기사를 엄청난 뉴스로 만들어줬다.
이 과정에서 ‘음모론’이 있었다. 유병언 계열사와 언딘에 창조경제 자금을 지원했다는 이 기사를 덮기 위해 굵직한 연예뉴스들이 쏟아져 나왔다는 음모론이다. 마침 이날 배우 배용준과 박수진의 결혼 사실이 보도됐다. 많은 누리꾼들은 이 소식이 미디어오늘 기사를 덮기 위한 기획성 기사라 주장했다. “묻혀선 안 되는 뉴스”라며 미디어오늘 기사를 퍼날랐다.
“배용준으로 별로 효과가 없었나. 엉뚱하게 연인 사이였다는 황정음, 김용준이 결별했다는 소식도 연합뉴스가 단독으로 열심히 타전 중! 계속 덮어봐. 사람들은 연예인 이불이 덮은 게 뭔지 더 열심히 볼 테니”
“이젠 다들 알죠. 연예인 특종이 뜨면 뭔가 있다는 것을!”
“이 나라, 연예인을 너무 마구잡이로 갖다 쓴다. 애네들이 감추고 싶은 게 배용준급 사건이란 것에 대한 힌트까지 준 셈이다”
급기야 유병언, 창조경제, 언딘이라는 검색어가 배용준, 박수진을 이기고 네이버와 다음 모두에서 실시간 검색어 1위, 2위를 차지했다. 실시간 검색어에 민감한 우리 언론은 수백 건의 인용보도와 어뷰징(동일 검색어 기사 반복전송) 기사를 쏟아냈다. 5월 18일 오전 기준으로 구글에서 유병언 창조경제를 검색하면 관련 뉴스가 106건인데. 배용준, 박수진의 결혼과 유병언 창조경제 자금 지원을 엮은 기사는 560여건에 달했다.
▲ 디스패치 기사 갈무리.
연애매체들이 이런 정치사회 기사를 받아쓰는 건 매우 드문 일이다. 기사를 쓴 기자는 농반진반으로 “배용준, 박수진씨에게 미안할 정도”라는 말을 남겼다. 결과적으로는 ‘유병언 창조경제’ 기사가 배용준과 박수진의 결혼 소식을 덮어버렸기 때문이다.
이런 열띤 반응을 보면서 매우 당혹스러웠다. 뉴스에 대한 거대한 불신감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더 이상 뉴스를 뉴스 그 자체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특히 연예인 열애설이나 결혼설이 터질 때마다 사람들은 자동적으로 ‘뭘 덮으려고 터트렸나’라는 반응을 보인다.
올해 3월 연예매체 디스패치가 수지와 이민호의 열애사실을 보도했을 때도 비슷한 반응이 많았다. 같은 날 이명박 정부 때 한국광물자원공사가 해외자원개발 29곳에 일반융자 형식으로 2822억 원을 빌려줬다는 소식이 알려졌는데, 사람들은 수지와 이민호의 열애설 기사로 ‘이명박의 2000억 횡령’을 덮으려 했다고 주장했다. 엄밀히 말해 ‘횡령’도 아니었고 수지와 이민호 열애설로 덮을 만한 큰 뉴스도 아니었지만 이런 음모론은 실시간 검색어를 차지할 정도로 퍼져나갔다.
관련 기사 : <이명박 비리 덮으려 수지·이민호 열애 기사 터뜨렸다고?>
이런 음모론은 매우 보편적으로 퍼져 있다. 내가 기자라는 것을 아는 지인들은 만날 때마다 각종 ‘음모론’에 대해 묻는다. (기자가 일반인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알고 있을 거라는 생각도 음모론의 일종이다.) 한 지인이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디스패치가 국정원이랑 관련이 있나요?” 나는 “국정원은 디스패치처럼 유능하지 않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연예뉴스를 둘러싼 음모론은 인터넷 시대에 나타난 새로운 유형의 음모론이라 볼 수 있다. 원래 음모론은 폐쇄적인 사회에서 발생한다. 누가 죽었는데 원인을 전혀 알 수 없거나, 갑자기 사람들이 실종됐는데 아무도 이를 모를 때 음모론이 돈다. 흔히 이를 ‘유언비어’라 부른다.
하지만 요 근래 인터넷상에서 떠도는 음모론은 ‘개방된’ 인터넷 공간이라는 환경 덕택에 빠르게 확산된다는 특징을 지닌다. 중국의 프리랜서 작가 테거는 저서 '대중은 왜 음모론에 끌리는가'에서 “(중국이) 1990년대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동서양의 문화와 이해관계, 가치관이 충돌하고 인터넷의 빠른 보급으로 음모론이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유행하기 시작했다. 음모론이 네티즌은 물론 전체 여론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심지어 음모론의 사유방식이 주류가 되는 양상”이라고 지적했다.
유병언 창조경제 지원금 기사가 ‘이 기사가 묻히고 있다’고 믿는 누리꾼들에 의해 배용준, 박수진을 제치고 검색어 1위를 차지한 것과 유사한 현상이다.
사람들은 왜 이런 음모론을 믿을까?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음모론의 시대'에서 음모론을 믿는 이유로 “영화에서나 나올 듯한 음모론이 사실로 밝혀지고 있다”는 이유를 제시한다. 미국이 권력 유지를 위해 전 세계인을 상대로 도청을 실시하고 있다는 의혹은 할리우드 영화의 단골 시나리오였으나 스노든의 폭로로 사실이 됐다.
굳이 미국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 많은 이들이 민주화 이후 그래도 정부기관이 선거에 조직적으로 개입하거나 민간인을 사찰하진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두 가지 사건 모두 이명박 정부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이다.
2011년 재보선 선거를 앞두고 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가 장애를 일으켰는데,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가 ‘바뀐 투표소 검색을 못하도록 홈페이지를 마비시킨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나 이 의혹은 현실이 됐다. 디도스 공격이 사실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2012년 대선을 몇 달 앞두고, 한 SNS 분석 전문가로부터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현상이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트위터에 문재인 후보나 민주당을 비난하는 글들이 엄청나게 쏟아지고 있는데, 신기하게도 주말이 되면 모두 사라진다는 거다. 그래서 우스갯소리로 “주말에 쉬는 걸 보니 공무원들인가요?”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 음모론이 현실이 되는 세상이다.
▲ 웹툰작가 이말년 만화.
그리고 많은 언론이 이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을 설명하지 못한다. 음모론이 현실인지 아닌지 밝히지 못한다. 그저 이런 의혹이 떠돌고 있다며 어뷰징을 하고, 정부가 ‘아니다’고 다그치면 이를 받아쓸 뿐이다. 꼰대선생처럼 인터넷에 괴담이 많아서 문제라고 다그치는 언론도 있다.
음모론을 믿을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는 세상은 엿 같은 데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의 책임은 누가 졌나? 국책사업 한답시고 수십조를 땅에 버려도 책임지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음모론은 명쾌한 해답을 제공한다. “사실 세상은 이런 음모를 추구하는 특정 집단 때문에 이렇게 엿 같아진 거야. 책임은 악마 같은 그들에게 있어” 사실 문제는 특정 개인이나 사람이 아니라 어떤 구조일 수도 있고, 나 자신도 공범일지 모른다. 하지만 음모론은 누군가가 음모를 꾸몄기 때문에 세상에 이렇게 됐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언론은 다시 한 번 무능을 드러낸다. 누가 잘못했는지, 누가 책임져야 하는지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A가 진실을 숨기고, B가 파헤치려 하는데 이 소식을 다루며 A와 B의 공방으로 처리한다. 진실은 사라지고 공방만 남는다. 세월호 참사의 구조적 원인을 파헤쳐 대안을 모색하기보다 세월호의 실소유주인 유병언 일가의 일거수일투족을 쫓아다니기 바쁘다.
사실과 진실의 오묘한 조화, 찌라시
사람들이 음모론을 믿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 ‘찌라시’에 대한 호기심이다. 어디 가서 기자라고 신분을 밝히면 ‘내가 무슨 찌라시를 읽었는데 진짜냐’고 묻는 일반인(기자가 아닌 사람들)을 참 많이 봤다.
사람들이 찌라시를 궁금해 하는 이유는 기사에 나오지 않는, ‘비공식’화된 정보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찌라시가 무서운 이유는 찌라시에 거짓이 담겨 있기 때문이 아니라 사실과 거짓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 진짜라고 믿을 만한 디테일한 정보가 담겨있기에 사람들이 찌라시를 사실이라 믿지만, 거짓이 섞여 있기에 잘못된 정보가 유포될 가능성이 높다.
하루는 모 언론의 부장급 기자가 술자리에서 넋두리를 했다. 해당 언론사에서 기사를 두고 후배와 선배 간 다툼이 벌어져 고성과 욕설이 오갔고 선배기자가 핸드폰을 집어던졌다는 찌라시가 돌았는데, 찌라시에 자신이 악랄한 기자로 묘사가 됐다는 거다. 기사에 대한 가치판단이 달라 그냥 말다툼을 좀 했을 뿐 핸드폰을 집어던진 일은 없다고 했다.
억울해하는 기자의 설명이 사실이라고 가정하면, 이 찌라시를 본 사람들은 몇 월 며칠 무슨 기사를 두고 다퉜다는 디테일한 정보를 보고 찌라시가 사실이라고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아마 ‘핸드폰을 집어던졌다’는 정보가 아니었다면 “싸울 수도 있지”라고 그냥 넘겨버렸을 것이다. ‘핸드폰을 집어던졌다’는 정보는 ‘다퉜다’는 팩트에 기반한 사소한 거짓일 수 있지만, 해당 찌라시를 읽는 사람의 뇌리에 박힌다는 점에서 결코 사소하지 않다.
이런 측면에서 찌라시와 음모론은 동전의 양면이다. 전상진 교수는 “진실과 거짓이 뒤섞여 해석 장애가 일어나는 상황에서 음모론은 공식적 설명과 동등한 지위를 누린다”고 지적한다. 찌라시가 만연해 무엇이 진실인지 모를 때 음모론이 힘을 발휘한다는 뜻이다. 찌라시에 나오는 미확인정보들은 ‘내가 모르는 진짜 무언가가 있다’는 음모론을 확인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 영화 ‘찌라시 : 위험한 소문'의 한 장면.
음모론과 찌라시 그리고 뉴스 읽기
세상이 말세라 사람들이 음모론과 찌라시에 빠져 있다고 한탄할 생각은 없다. 뉴스를 비판적으로 읽어야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음모론과 찌라시를 좋아하는 이들은 적어도 뉴스를 의심하는 독자들이기 때문이다.
뉴스를 비판적으로 읽으려면 뉴스 그 자체보다 뉴스가 나온 맥락, 시기를 잘 살펴야 한다. 무엇보다도 의심해야 한다. 음모론과 찌라시를 소비하는 대중은 일단 뉴스를 의심한다. 그리고 그 뉴스가 어떻게 나오게 됐는지, 배후는 없는지 의심한다. 뉴스를 비판적으로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이다.
2011년 4월 21일 서태지와 이지아가 결혼했다 이혼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다. 55억 원의 위자료 및 재산분할 소송을 하고 있다는 핵폭탄급 보도였다. 대중은 이 뉴스를 뉴스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법원이 중요한 판결을 했기 때문이다. 법원은 2007년 대선 무렵 이명박 대통령 후보의 약점이던 ‘BBK 사건’을 수사한 검사들이 이명박 후보의 동업자였던 김경준을 회유 협박했다는 내용의 시사인 보도가 허위가 아니라고 판결했다.
사람들은 이 판결을 덮기 위해 누군가 갑작스레 서태지-이지아건을 터트렸다고 의심했다. 이 음모론의 근거는 두 사건의 연결고리라 할 수 있는 ‘법무법인 바른’이었다. BBK사건을 맡은 법무법인 바른이 서태지-이지아 소송에서 이지아 측 변호도 맡았다는 점에서 이 사건의 기획성을 의심한 것이다.
대중은 서태지-이지아 결혼설이라는 초대형 이슈에 휩쓸리지 않고 이 보도가 왜 하필 지금 나왔을지에 대해, 그리고 보도의 의도에 대해 의심했다. 그리고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BBK사건에서 그 연결고리를 찾아냈다. 뉴스를 비판적으로 읽는 기본이다.
하지만 뉴스를 의심하는 시선이 음모론과 찌라시에 그쳐서는 안 된다. 이 두 가지는 권력층의 여론 통제 수단으로도 활용되기 때문이다. 영화 '찌라시'에는 권력층의 부패를 숨기기 위해 일부러 찌라시에 여배우의 사생활에 대해 흘리는 청와대의 모습이 등장한다. 우리가 소비하는 음모는 누군가 의도를 가지고 만들어낸 음모일 수 있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음모론과 찌라시가 아닌, 뉴스를 분석적으로 읽을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뉴스가 넘쳐나는데도 사람들이 뉴스 대신 음모론과 찌라시를 믿는 지금, 뉴스를 비판적으로 읽는 방법이 점점 더 중요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노무현 비판기사 쓰면 후원회원 떨어진다고? 1111
[뉴스 파파라치②] 정파 저널리즘의 함정, 조선일보와 한겨레가 만든 두 명의 박근혜
“자네, 한겨레21 읽지마. 너무 편향적이야”
대학을 다니던 시절 일이 있어 한 교수의 사무실을 찾은 적이 있다. 내 손에는 읽다 만 ‘한겨레21’이 들려있었다. 그걸 본 교수가 나에게 “자네, 한겨레21 읽나?”라고 물었다. 그렇다고 답하자 교수는 “그거 읽지 마, 너무 편향적이야”라고 말했다. 교수의 책상 위에는 조선일보가 펼쳐져 있었다.
정치적인 편향성과 편파성은 언론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매우 큰 요인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발표한 ‘2014년 언론수용자 의식조사’ 결과, 신문사의 정치적 편파성에 대해 71.5%의 응답자가 ‘편파적이다’고 답했고 방송사의 정치적 편파성에 대해 66.7%의 응답자가 ‘편파적이다’고 답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어떤 언론을 좋아하냐’는 질문은 ‘어떤 정당을 지지하냐’와 비슷한 표현이다. 서울의 한 대학교 생활도서관은 몇몇 학생들로부터 정치적으로 편향됐다는 비판을 받았는데, 그 이유는 “왜 시사IN, 경향만 구독하고 조선일보는 구독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진보지(紙)’ ‘보수지’를 넘어 ‘여당지’ ‘야당지’라는 말이 통용된다.
▲ 미디어오늘 2012년 12월 12일자 기사.
조선·중앙·동아와 종편 방송사 등 보수언론의 지지자들은 한겨레·경향·오마이뉴스를 신뢰하지 않는다. 반대로 한겨레·경향·오마이뉴스의 지지자들은 조선·중앙·동아를 신뢰하지 않는다. 조선일보는 반대편에 의해 X선일보라 불리고, 한겨레는 반대편에 의해 ‘한걸레’라 불린다.
각자의 진영을 배신하면 후폭풍을 감당해야 한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보도를 했던 TV조선의 간판 프로그램 <장성민의 시사탱크>는 한 때 보수진영 일각의 강한 비토를 받은 적이 있다. 2012년 9월 7일 ‘추적, 남한 종북 계보’편에서 진행자 장성민은 김성욱 자유연합대표와 토론하면서 “대한민국이 주도하는 연방제는 아무런 문제(위험)가 없다” “남북교류협력으로 인하여, 북한 주민들이 변해 탈북자가 많이 생겼다”고 주장했다. 북한에 아사자가 300만 명이라는 김 대표의 말에 팩트를 대라고 반박했다.
김 대표가 화를 내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고, 방송 후 TV조선의 시청자들은 장성민을 비난했다. 우익단체들은 성명을 냈다. “장성민씨는 전 민주당 의원이었으며, 현재 김대중 재단의 이사로 있는 인물이다. 대북 퍼주기 종북 정책을 실행하던 주인공인 것이다. 이런 인물에게 TV조선의 시사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긴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것”이라는 주장까지 나왔다.
진보언론도 자유롭지 않다. 한겨레는 지난해 2010년 지방선거 국면에서 “DJ 유훈통치와 ‘놈현’관 장사를 넘어라”는 기사 때문에 절독운동에 직면했다. 한겨레는 소설가 서해성씨가 천정배 당시 민주당 의원과 대담 중에 선거 때 노무현 정부 인사들이 ‘관 장사’를 그만해야한다고 말한 것을 제목으로 뽑았다. 경기도지사 후보로 출마한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에 반발해 절독을 선언했고 한겨레는 결국 사과문을 실었다.
한 진보성향 언론사 기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친노 정치인들을 비판하는 기사를 실으면 돈을 내는 후원회원이 눈에 보일 정도로 줄어든다. 그러다 노무현과 친노 정치인들에게 긍정적인 기사를 쓰면 후원회원들이 돌아온다”고 토로했다.
조선일보와 한겨레가 민주화 이후 특정 후보를 대변하는 정파적 보도 비율을 늘려왔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가 18대 대선보도가 한창이던 2012년 11월 30일과 12월 4일 대선 관련 기사 199건을 분석한 결과 조선일보는 박근혜 후보가 34.2%의 수혜율을 기록한 반면, 한겨레는 문재인 후보가 31.6%의 수혜율을 나타냈다.
관련기사 : <조선일보·한겨레, 20년간 보수·진보 정파보도 늘었다>
조선일보는 ‘인간 박근혜’ 한겨레는 ‘정치인 박근혜’
대한민국 보수의 아이콘인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시각을 통해 조선일보와 한겨레의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중요한 연설을 하거나 기자회견을 한 뒤, 두 신문의 1면을 보면 두 신문은 제목부터 큰 차이를 보인다. 2015년 10월 28일 주요 신문의 1면 헤드라인은 박 대통령의 전날(10월 27일) 국회 예산안 연설이 차지했다. 박 대통령은 연설을 통해 역사교과서 국정화 정면 돌파를 선언했다. 조선일보의 1면 제목은 <역사 미화, 저부터 좌시 않겠다>였다. 국정교과서가 친일독재를 미화할 것이라는 우려에 대한 박 대통령의 반박을 제목으로 뽑았다.
반면 한겨레의 같은 날 1면 헤드라인은 <극우단체 불러놓고 “국론 통합” 외친 박대통령>이었다. 한겨레는 “교육계, 학계의 거센 반발이나 야당의 강력한 반대, 높아지는 부정적 여론에 개의치 않고 밀어붙이겠다는 뜻을 거듭 밝힌 것”이라고 해석했다. 조선일보가 박 대통령의 반론을 중점에 뒀지만 한겨레는 박 대통령의 고집에 초점을 맞췄다.
▲ 10월 28일자 조선일보 1면(위쪽)과 한겨레 1면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조선일보와 한겨레의 박근혜 의원에 대한 시선은 완전히 엇갈렸다. 단순히 긍정적으로, 혹은 부정적으로 보도한다는 뜻이 아니다. 접근법 자체가 다르다. 중앙대학교 신문방송학부 연구팀이 2004년부터 2010년까지 조선일보와 한겨레의 박근혜 관련 기사를 분석한 결과 가장 많이 차이가 나는 대목은 ‘인간적 흥미’를 강조하는 기사의 비율이었다.
조선일보에는 전체 기사 207건 중 박근혜 의원의 ‘인간적 흥미’를 강조하는 부각시키는 기사가 53건으로 25.6%를 차지한 반면 한겨레는 160건 중 12건인 7.5%에 불과했다. 조선일보는 박 의원의 일상적인 근황, 공식적 일정 중심의 에피소드나, 홈페이지 내용 등을 기사화한 경우가 많았다, “하루 평균 4~5시간의 수면과 하루 평균 5~6개의 행사에 참석하는 고단한 일정이지만 피곤한 기색은 없었다” “비행기 안에서도 보고서와 스크랩 자료를 읽었다” 해외순방 때 박근혜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을 전하는 보수언론의 보도가 이전부터 이어져왔음을 알 수 있다.
박근혜 의원이 정치인으로서 자질이 부족하다는 기사의 비중도 한겨레와 조선일보에서 차이를 보인다. 한겨레는 전체 기사 중 16건인 10%가 자질이 부족하다는 기사인데, 조선일보에는 관련 기사가 4건 1.9% 밖에 되지 않는다.
같은 사건을 다룰 때도 조선일보와 한겨레의 기사의 야마(핵심)은 완전히 다르다. 2006년 9월 5일 박근혜가 대구를 방문했을 때 조선일보의 기사 제목은 <나라가 정상적인 게 없다>, 부제는 ‘박근혜 前대표 대구 방문…거침없는 정치발언’이었다. 박근혜 의원이 “비정상적인 상태인 국가를 정상화하고 정권을 재창출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는 내용이다.
반면 한겨레의 기사 제목은 <지방 의회도 박근혜 영향권?>, 부제는 ‘대구시의회 본회의 시간 갑작스런 변경 놓고 뒷말’이다. 박근혜 의원이 갑작스럽게 대구를 방문해 지방회의 시간이 바뀌었다는 점에 집중했다.
조선일보의 ‘복지포퓰리즘’ vs 한겨레의 ‘풀뿌리 민주주의’
사회적인 쟁점을 두고도 조선일보와 한겨레는 서로 다른 프레임을 형성한다. 지금도 논란이 되는 무상급식에 대한 조선과 한겨레의 시선을 살펴보자. 2010년 6월 지방선거에서 야권을 중심으로 무상급식 공약이 등장하고, 지방선거 이후 오세훈 서울시장이 무상급식을 주민투표에 붙이자고 주장하다 ‘셀프탄핵’ 당하는 일이 있었다.
조선일보와 한겨레의 시각은 완전히 달랐다. 박성희씨의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 석사논문에 따르면 2010년 2월 2일부터 2011년 3월 2일까지 조선일보는 169건의 무상급식 관련 기사 혹은 칼럼을 실었는데, 이 중 27.2%에 달하는 46건이 무상급식은 ‘복지 포퓰리즘’이라는 내용의 기사였다.
“포퓰리즘은 '정치적 선동가'가 등장하여 다수 국민의 정서에 영합하거나 그 감성을 자극하여 사익을 추구하고 공익을 파괴하는 정치 행태이다. 국정이 이렇게 인기 영합적으로 운영되면 법과 원칙은 무시되고 국가 이익은 훼손된다. 수도(首都) 분할, 혁신 도시 건설, '부자 감세(減稅)'란 용어, 무상(無償) 급식 주장 등이 전형적 포퓰리즘이다. 국민을 우민화(愚民化)하는 이러한 포퓰리즘이 무성하면 자유화 즉 자유민주주의는 서서히 실패하게 된다”(2010년 3월 8일자 조선일보 박세일 칼럼)
반면 한겨레는 가장 많은 유형의 기사가 ‘풀뿌리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무상급식을 보는 기사다. 2010년 6.4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을 내건 야당이 이겼고 지역주민들이 연대해 무상급식을 요구하고 있으니 이에 따라야한다는 시각이다. 전체 169건의 기사 중 42.6%인 72건이 ‘풀뿌리 민주주의’ 프레임에 따른 기사였다.
“국민의 삶과 직결된 생활의제를 쟁점화하기 위해 이렇게 많은 시민단체들이 연대한 일은 일찍이 없었다.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 민주주의를 한 단계 진전시키는 지렛대 구실을 할 것이다. (중략) 친환경 무상급식 운동이 성공해 생활정치가 뿌리내리는 정치·사회의 일대 혁신을 기대한다.”(2010년 3월 17일자 한겨레 사설)
이렇게 시각이 엇갈리다보니 논쟁이 되는 사안을 두고 보수언론이 ‘큰 건’을 터트리면, 진보언론이 이에 반격하거나 그 반대되는 현상이 종종 발생한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 사건이 대표적이다. 조선일보는 국정원 대선개입이 한창이던 2013년 국정원 대선개입을 지휘하던 채동욱 전 검찰총장에게 혼외자가 있다고 단독 보도했다. 한겨레는 아이의 어머니라고 밝힌 임모씨의 편지를 공개했다. “제 아이는 채동욱 총장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내용이다. 임모씨가 하필 편지를 한겨레에 보낸 이유는 한겨레가 조선일보의 반대진영에 서 있는 대표언론이라 인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정파성을 유지하되 신뢰는 높여라
‘한국의 정파 저널리즘이 언론의 신뢰를 떨어뜨린다’는 지적은 한 가지 한계에 직면한다. 한국의 언론지형을 고려할 때 조선일보가 대표하는 보수언론과 한겨레가 대표하는 진보언론을 동급으로 취급하기는 어렵다. 보수신문이 시장의 70%를 점유하고 보수성향의 방송이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학자 손석춘 건국대 교수는 미디어오늘 칼럼에서 “‘조중동’과 ‘한경’을 동일 선에 놓고 ‘정파주의 언론’으로 싸잡아 비난하는 ‘중립’적 양비론은 너무나 안일하다”고 밝혔다.
▲ TV조선이 지난 2011년 12월 1일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의원의 출연 방송분에서 "형광등 100개의 아우라"라는 자막을 내보냈다. TV조선 화면 갈무리.
손석춘 교수는 또한 지난 5월 미디어오늘 컨퍼런스에서 “한국 언론의 문제는 보수와 진보의 문제로 볼 일이 아닌 것 같다”며 “조중동의 성완종 리스트 물 타기 보도와 국정원 대선개입사건 축소·은폐 보도 등, 이것을 보수언론, 보수적인 보도라고 봐야할지 의문스럽다. 이런 보도태도를 보수라고 하면 조중동을 지나치게 미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의 보수언론은 ‘보수’의 가치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권력화 됐고, 진보언론은 상대적으로 권력을 비판하는 역할을 하고 있을 뿐 보수-진보로 구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진보언론은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해결해야한다. 권력을 비판하면서 자신의 정파성과 영향력을 유지하되 ‘정파 언론’이라는 인식으로 언론의 신뢰가 전반적으로 하락하는 것을 막아야한다.
최근 개봉한 영화 <특종: 량첸살인기>에는 매우 상징적인 장면이 등장한다. <특종>은 기자인 주인공이 우연히 연쇄살인범과 관련된 희대의 특종을 보도해 스타가 되지만, 이것이 오보로 밝혀지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리고 있다. 이 <특종>에는 한겨레와 조선일보가 등장한다.
한겨레는 주인공 기자가 터트린 특종을 1면에 ‘받는’ 언론사로 등장한다. 주인공은 자신의 기사를 받아쓴 한겨레를 들고 만삭의 아내를 찾아가 자랑한다. <특종>은 언론의 행태를 런닝타임 내내 비판한 뒤 마지막으로 광화문에 있는 조선일보의 전광판을 비춘다. 이 영화 속에서 한겨레는 주인공이 ‘한겨레가 받아썼다’고 자랑할 정도로 어느 정도 신뢰를 갖춘 매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다른 언론과 마찬가지로 오보를 받아썼다는 오명을 벗어나진 못한다. 진보언론으로서 열심히 성과를 보여준다 해도 언론의 전반적인 신뢰하락에선 자유로울 수 없다는 뜻이다. 조선일보는 잘못된 언론의 ‘끝판왕’으로 등장한다.
▲ 영화 <특종 : 량첸 살인기>의 한 장면.
결국 중요한 건 저널리즘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결국 저널리즘의 본연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언론이 정파성을 갖는 게 큰 문제일까? 정파성이 가리고 있는 것은 ‘저널리즘의 가치’다. 정파 저널리즘의 온갖 폐해는 특정 정치세력을 지지하거나 보수적 가치, 진보적 가치를 지향하는 데서 발생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문제는 원칙 없음이다. 의도적으로 사실을 누락하거나 축소하고, 왜곡하는 등 언론의 기본을 지키지 않은 채 특정 정치세력을 옹호하는 것이 ‘정파 저널리즘’이 언론의 신뢰 하락으로 이어진 원인이다. 그리고 이는 언론사의 자정 노력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뉴스 수용자가 언론이 무엇을 누락하거나 숨기고 왜곡했는지 밝혀낼 눈을 가질 때만 해결될 수 있다.
안정환이 정형돈 악담을? 클릭하면 '또 낚였네' 1117
[뉴스파파라치 ③] ‘기레기’ 양산하는 어뷰징 장사…망각에 맞서 기억에 남는 뉴스를 만들어야
정형돈의 불안장애와 안정환은 무슨 관계?
지난 11월 12일 개그맨 정형돈이 불안장애가 심각해져 진행하던 프로그램에서 모두 하차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비중 있는 진행자였던 만큼 많은 매체들이 소식을 다뤘는데, 유독 눈에 띠는 기사가 하나 있었다. <불안장애 정형돈, 안정환 “애는 어떻게 낳았냐” 일침 날려>라는 기사였다. 정형돈이 불안장애가 있다는 소식에 안정환이 악담을 했다는 뜻일까? 궁금해서 기사를 읽어봤다.
기사를 읽고 나니 어이가 없었다. 전형적인 ‘낚시’ 기사였다. 기사의 내용은 “개그맨 정형돈의 소식이 전해진 가운데 과거 그를 향한 안정환의 일침이 새삼 눈길을 끈다”는 것으로 지난 1월 KBS 예능프로그램 ‘우리 동네 예체능’에서 정형돈이 안정환에게 발씨름을 지자 안정환이 “힘 진짜 없네. 아기는 어떻게 낳았대”라고 말했다는 내용이다. 서로 아무런 관련이 없는 안정환의 과거 발언과 정형돈의 불안장애를 엮은 것이다. 눈길을 보낼 사람은 기자 본인 말고 아무도 없을 것 같은 기사다.
▲ 11월 12일자 한강타임즈 기사 갈무리.
포털에는 이런 말도 안 되는 기사들이 즐비하다. 연예인 한 명의 이름이 검색어에 오르면, 이 연예인이 예전에 했던 온갖 발언을 다 끄집어내 기사로 만든다. 제목만 살짝 바꾼, 내용은 똑같은 기사들이 수십 개씩 올라온다. 2013년 11월 13일 동아닷컴에는 모델 미란다 커의 근황과 몸매에 대한 기사가 27개 올라왔다. 미란다 커의 벗은 몸매에 네티즌이 감탄했다는 내용이 전부다.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볼펜으로 탑을 쌓아올렸다는 소식도 제목만 바뀐 채 22개가 올라왔다.
이러한 행위를 ‘어뷰징’이라고 부른다. 메이저, 마이너 가리지 않고 수많은 매체들이 네이버나 다음 등 포탈 인기검색어를 가지고 기사를 만든다. 검색어로 유입되는 누리꾼들을 자사 홈페이지로 끌어들이고 이런 트래픽을 바탕으로 광고수익을 창출하기 위해서다.
이런 어뷰징은 오늘날 기사와 기자, 나아가 언론에 대한 신뢰를 바닥으로 추락시키는 주된 요인 중 하나다. 이런 기사 밑에는 “이런 것도 기사라고 쓰냐”는 댓글이 달리고, 기자는 기레기(기자+쓰레기)라 불린다. 이런 낚시기사에는 ‘진전된 정보’가 없다. 새롭게 알아야 될 정보 대신 낚시성 짜깁기가 가득하다. 누리꾼들이 이런 기사를 기사로 보지 않는 이유다.
예컨대 토익 성적이 발표되는 날이면 포털에 ‘토익’이 인기검색어로 오르기 마련이다. 성적을 확인하기 위해 응시생들이 ‘토익’이라는 단어를 검색하기 때문이다. 그러자 몇몇 매체에서는 “오늘이 토익 성적 나오는 날”이라는 내용의 기사를 만들어냈다. 이 기사를 보고 “아 오늘 토익성적이 나오는구나”라고 생각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미디어오늘이 보도했던, 조선닷컴 검색 아르바이트(어뷰징) 매뉴얼은 어뷰징 기사를 만드는 원칙을 “‘클릭을 유발하는 제목+눈길 끄는 사진+간단명료한 내용’의 기사를 제목과 내용을 조금씩 바꿔 자주, 많이 내는 것”이라 규정하고 있다. 네이버와 다음의 검색어를 크로스 체크하라는 내용도 나온다. 네이버에 ‘김희애 눈물’이 인기검색어로 오르고, 다음에는 ‘김희애 폭풍오열’이 오르면 기사제목은 ‘김희애 폭풍오열 눈물’이라고 달아야한다는 것이다.
누리꾼 반응도 필수다. 앞서 소개한 ‘정형돈 불안장애 안정환 일침’ 기사는 “누리꾼들은 ‘불안장애 정형돈 힘내세요’ ‘불안장애 정형돈 화이팅’ ‘불안장애 정형돈 어쩌다가’ 등의 반응을 보였다”는 말로 마무리된다. 다수의 어뷰징 기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이런 누리꾼 반응은 그냥 기자가 만들어낸 말이다. 모 닷컴사에서 한 달간 어뷰징 일을 했던 A씨는 “그냥 검색어에 자주 올라가는 단어를 조합해 아무 말이나 지어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어뷰징 알바의 조건 “착하고 체력이 좋아야”
이런 기사에는 기자가 가져야 할 기본적인 윤리가 상실돼 있다. 따라서 어뷰징이 일반화될수록 기자와 기사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가 사라질 수밖에 없다. 어뷰징 기사에는 취재가 없다. 어뷰징 업체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블로거 도도는 뉴스타파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내 자리에는 전화도 없었다. 다시 말해 취재를 하지 말라는 뜻”이라고 밝혔다.
▲ 조선닷컴의 검색 아르바이트(어뷰징) 매뉴얼.
예컨대 정형돈의 불안장애 소식을 들은 기자는 정형돈의 불안장애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정형돈의 영향력을 바탕으로 앞으로 방송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등등을 분석할 수 있다. 그간 불안장애를 견디고 방송을 할 이유가 있었다거나, 아니면 방송계 사람들은 이 소식을 알고 있었는지에 대해 취재한다. 취재를 통해 ‘진전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어뷰징 기사는 취재 대신에 ‘짜깁기’ 수법을 쓴다. 정형돈이 과거에 했던 온갖 발언들을 다 엮어서 기사로 만든다. 안정환이 과거에 했던 전혀 무관한 발언도 기사가 된다. 예전에 불안장애를 겪었던 연예인들을 다 끄집어내 ‘새삼 눈길을 끈다’고 쓰는 것도 또 다른 방법이다.
이런 기사들은 데스킹이 없는 경우가 다반사다. 일반적인 경우 기자가 기사를 쓰면 차장->부장->국장 등이 검토하는 데스킹을 거친다. 팩트를 정확히 확인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어뷰징 기사들은 데스킹을 거칠 시간도 필요도 없다. 트래픽을 늘려 광고수익을 얻는 게 목적이기에 팩트가 틀리든 말든 상관이 없다. 누가 뭐라고 하면 그냥 기사를 슬쩍 삭제해버리면 끝이다.
이 바닥의 유일한 준칙은 ‘경쟁’ 뿐이다. 남들보다 더 자극적인 제목을 달아 다른 회사로 갈 누리꾼들을 자사 페이지로 끌어들이면 된다. 베끼기도 용인된다. 키보드 타이핑보다 복사 붙여넣기 기능이 더 중요하다. 조선닷컴 어뷰징 매뉴얼에는 방송사 기사나 스포츠연예매체, 동아, 중앙, 매경의 검색 기사를 참고하라며 사실상 베끼기를 지시하는 내용이 나온다. “타사 기사를 참고할 경우 반드시 자기문장으로 고칠 것. 일부 단어와 문구, 문장 순서 등을 손봐 저작권 시비에 걸리지 않아야 함”
정형돈을 향해 안정환이 “아기는 어떻게 낳았대”라고 말했다는 내용의 기사는 ‘이투데이’ ‘한강타임즈’ ‘스타뉴스’ 등 세 개 매체에 등장한다. 같은 내용이지만 일부 단어와 문구, 문장 순서 등에 차이가 있다. 어뷰징 매뉴얼에 따른 기사인 걸까?
한 외신기자는 “인터넷 매체에 북한 관련 기사가 올라 왔기에 출처를 알고 싶어서 전화를 걸었다. 근데 기사 쓴 기자도 ‘내용을 모른다’면서 ‘우리만 쓴 건 아니지 않아요?’라고 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고 말했다. 자기가 써놓고도 뭘 보고 썼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기사에 기자 이름이라도 박혀 있으면 다행이다. 이런 어뷰징 기사 중에는 기자 이름, 즉 바이라인이 없는 기사가 대부분이다. 기자 이름 대신 ‘ㅇㅇ닷컴’ ‘온라인뉴스팀’ ‘디지털뉴스팀’ 등의 바이라인이 달린다. 기사를 보고 피해를 입은 사람이 문제를 제기하기도 어렵고, 표절 등의 시비가 일었을 경우 책임소재도 불분명해진다.
▲ 권범철 화백 만평.
잘못된 정보가 한 매체를 통해 알려지면 모든 매체들이 이를 다 받아쓰니 피해가 확산된다. 한 의원실 관계자는 “의원에 대해 잘못된 소식이 전해지면 수십 군데서 다 받아쓴다. 해명하려고 한 마디만 하면 어떤 매체에서 자극적이고 악의적으로 붙여 기사를 쓰고, 또 다른 매체들이 그걸 다 받아 쓴다”며 “논란을 잠재우려고 해명을 해도 계속 검색어 상위권을 차지해서 골치가 아프다”고 토로했다.
메이저 언론의 경우 이런 기사들을 생산하는 팀을 따로 운영하고 있다. 이런 팀에는 기자와 알바생이 섞여 있는 경우도 있다. 조선닷컴의 경우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분야가 정해진 기사들은 기자들이 쓰지만 그 외 기사들은 외부 알바를 쓴다.
조선닷컴에서 근무했던 한 기자는 “정식 기자들은 거의 데스킹을 거치지 않지만 알바들은 데스킹을 거친다. 저작권 있는 사진을 갖다 써서 문제가 될 뻔한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기자들은 5일 중 3일은 이름 없는 어뷰징 기사를 쓰고 2일은 바이라인이 달리는 취재가 필요한 기사를 쓴다. 이 2일을 손꼽아 기다린다”고 밝혔다.
어뷰징 기자에게 참신한 아이디어는 불필요하다. 한 어뷰징 매체 기자는 “어뷰징 알바는 착하고 체력이 좋아야한다”고 말했다. ‘왜 이런 일을 해야 하지’라는 의문을 품지 않고 시키는 대로 할 정도로 착해야하고, 가만히 앉아서 하루에 기사 수십 개를 써도 피곤하지 않을 정도로 체력이 좋아야한다는 뜻이다.
블로거 도도 역시 “학력과 경력이 없는 사람이 필요했다. 내가 배운 것은 이런 게 아니라며 제 목소리를 내려는 사람, 타 언론사에서의 경험을 내세워 입바른 소리를 하는 사람은 이들에게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입을 다물고 시키는 대로 일할 사람이 필요했다”고 밝혔다.
세월호 참사와 기레기의 탄생
이런 낚시기사들의 존재가 사회적 문제로까지 대두된 것은 2014년 세월호 참사 때였다. 세월호 참사로 사람들이 구조 소식을 기다리던 4월 16일 몇몇 매체에서 어뷰징 기사가 등장했다. 세월호 참사로 음악방송 결방이 됐다는 연애매체 OSEN의 기사 <음악방송, 여객선 참사로 결방될 듯…엑소 못 보나>, 세월호의 침몰을 언급하며 재난영화를 소개한 이투데이의 <타이타닉·포세이돈 등 선박사고 다룬 영화는?>이 대표적이다.
이투데이는 또한 <[진도 여객선 침몰] SKT, 긴급 구호품 제공·임시 기지국 증설 “잘생겼다~잘 생겼다”>는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잘생겼다~잘생겼다’는 SKT 홍보문구가 논란이 됐다. 해당 기사들은 누리꾼들의 엄청난 비난을 받아 삭제되거나 제목을 수정해야 했다.
관련 기사 : <네이버마저…세월호 침몰보도에 “자극적 편집 자제” 요청>
기자와 쓰레기를 합성한 단어 ‘기레기’는 세월호 참사를 거치며 일상어가 됐다. 누리꾼들은 이런 기사들을 모아 SNS나 커뮤니티로 퍼나르며 ‘대한민국 언론 누가 누가 미쳤나’ 등의 제목을 달았다. 자극적인 제목의 어뷰징 기사들이 누리꾼들의 모니터링 대상이 된 셈이다.
이런 어뷰징 기사를 쓴 기자들은 신원이 털릴 정도로 강한 비난을 받았다. 당시 나도 해당 기사를 비판하는 기사를 썼는데, 기사를 쓴 기자가 직접 나에게 메일을 보냈다. 그는 “충격을 많이 받아 반쯤 정신이 나가 있는 상태”라며 “제목은 내가 달지 않았다. 조회 수를 의식해 온라인 뉴스팀과 부장이 붙인 것”이라고 토로했다.
이 기자는 나아가 “온라인뉴스팀이 잘못했다고만 말할 수도 없다. 회사, 아니 전체 언론사들의 온라인 담당이 그런 압박을 받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들 기자들을 ‘기레기’라고 윤리적으로 비난하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의미한다. 기본적인 윤리조차 지키지 못하게 만드는 물질적 조건이 있기 때문이다.
▲ 2014년 4월 16일자 이투데이 기사 갈무리.
뉴스 소비자 대다수가 포털 검색어를 통해 유입되는 현실에서 광고로 생존하는 인터넷 매체들은 어뷰징을 안할 수가 없는 처지다. 그리고 이런 매체의 언론사 데스크는 이러한 현실에 너무 철저히 적응해버렸다. 조중동 같은 주류 매체들의 온라인 뉴스팀도 검색어 장사를 한다.
한 인터넷 매체는 세월호 참사 이후 ‘진도 세월호’가 검색어 상위권에 랭크되자 부서 기자들을 모두 동원해 어뷰징 기사를 쓰라고 지시했다. 이 매체의 한 기자는 “기자들이 원해서 하는 건 절대 아니다. 나름 어려운 시험 봐서 들어왔는데 이런 거 하고 싶겠나. 회의 때마다 기자들이 검색어 장사 할 필요가 있냐, 방식을 바꾸자고 해도 말해봤자 소용이 없다”며 “어뷰징을 하겠다는 데스크 의지가 너무 강하다. 미디어오늘에 우리만 따로 취재해달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라고 토로했다.
악화는 양화를 구축한다. 언론사가 어뷰징에 집중하고 PV를 강조할수록 멀쩡한 기사를 쓰던 기자들도 클릭 수에 얽매이게 된다. 열심히 취재해서 쓴 심층취재기사는 클릭 수가 별로 안 나오고 대충 베껴 쓴 기사는 조회 수가 폭발하면 허무해진다.
한 경제지 기자는 “심층리포트 형식의 기사는 같은 기자들은 많이 봐도 조회 수가 잘 안 나온다. 그런데 YTN 속보를 인용해서 쓴 기사는 조회 수가 몇 백만씩 나온다”며 “그럴 때는 허무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인터넷 매체 기자는 “열심히 인터뷰해 만든 기사는 SNS에 공유도 별로 안 되는데, KBS 기사를 베낀 시덥지 않은 기사는 엄청 많이 읽힌다. 그럴 때면 힘이 빠진다”고 밝혔다.
불신이라는 이름의 망각에 맞서 기억하기
언론사에 대한 불신은 ‘망각’으로 나타난다. 제목만 눌러 들어갔다가 욕하고 백스페이스(back space) 버튼을 누르게 되는 낚시성 기사들은 그 기사의 제목 외에 아무것도 기억에 남지 않는다. 조금만 지나면 그 기억은 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다른 기사의 제목으로 대체된다. 예컨대 이런 기사들은 특정 부분만 돌려보는 야한 영화와 같다. 제목도 감독 이름도 기억나지 않은 채 특정 장면만 뇌리에 남는다. 더 야한 장면으로 언제든지 대체 가능하다.
반대로 신뢰의 또 다른 이름은 기억이다. 믿고 보는 영화감독, 믿고 보는 배우들. 그래서 그들이 만들면 찾아서 소비하는 영화들. 기자 이름과 언론사 이름이 기억에 남는 기사가 신뢰받는 기사다. 어뷰징 기사의 범람 시대에 좋은 언론이란 기억에 남는 기사를 만들고 네이버나 다음이 아닌 언론사 이름을 뉴스 소비자의 뇌리에 남기는 것이다. 그리고 좋은 뉴스 소비자란 이런 좋은 기사를 찾아내 읽고 신뢰할 만한 언론사를 찾아다니는 소비자이다.
국악 대금 ◈
01. 산 맥 - (경음악)
02. 물같이 바람같이 - (가야금.대금.얼후)
03. 쇼스타코비치 왈츠 - (해금 / 김애라)
04. 그리움 - (대금 / 김영동)
05.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 (가야금.대금.얼후)
06. 산사의 뜰 - (가야금.대금.얼후)
07. 타이타닉 - (대금)
08. 하늘소리 - (가야금.대금.얼후)
09. 청빈의 향기 - (가야금.대금.얼후)
10. 바람을 그리며 - (가야금.대금.얼후)
11. 길(道) - (가야금.대금.얼후)
12. 엘콘도 파사 - (대금 / 장사익)
13. 가야금 삼중주를 위한 캐논 - (황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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