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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새역사 운동’ 뿌리는 1970년대 ‘새마음 운동’ 11. 5 한겨레21
한겨레21] ‘박정희 체제’ 관 주도 국가관 주입 프로젝트 첫 분석
아버지의 새마을 운동에 보조 맞춰 새마음 운동 전개
20대 퍼스트레이디 “우리의 마음을 깨끗이 청소해야”
새마음봉사단 재건한 ‘근화 봉사단’ 1988년 출범
“우리 사회가 개판이 아니면 무엇이 개판이겠는가 박정희 대통령이 세종대왕과 같은 위치로 부각돼야”
박근혜 대통령이 24살이던 1977년 3월25일 인천에서 열린 새마음갖기 국민운동 궐기대회에서 격려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은 ‘역사 국정교과서를 집필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왜곡할 것이라며 국론을 분열시키느냐’는 논리를 펼친다. 대통령은 지난 10월27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역사 국정교과서가 역사 왜곡과 미화를 시도한다면 “저부터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이 특정 교과서 내용을 두고 “좌시”하지 않겠다는 것 자체가 정부의 통제 의도를 드러낸다는 얘기가 나오지만, 대통령은 역사학계의 논란이 거의 없는 국정교과서를 만들면 되지 않겠느냐고 항변한다. 그러면 되는 걸까? 유엔은 2013년 총회에서 “하나의 역사 교과서만을 승인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교사들이 다양한 교과서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권고했다. “국가가 역사 교과서를 하나로 줄이는 것은 퇴보적”이라고 유엔은 우려했다.
왜곡하지 않은 하나의 올바른 역사 교과서를 만들겠다는 방침(박근혜 대통령)과 왜곡 여부와 상관없이 하나의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것은 퇴행이라는 권고(유엔)가 충돌한다. 우리나라는 1991년 유엔에 가입했다. 박 대통령은 왜 국제 기준에서 멀어지는 길을 택했을까?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에서 눈여겨볼 대목이 있다. “우리가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역사를 바로 알지 못하면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을 수도 있다”며 “대한민국의 미래 세대가 확고한 국가관을 가지고 주도적 역할을 하기 위해서 역사교육을 정상화하는 것이 우리 세대의 사명”이라고 말한 부분이다.
국가가 주도한 역사 교과서를 통해 가치관·국가관을 올바르게 심어야만 “민족정신의 잠식”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 대통령의 확고한 생각으로 읽힌다. 정부가 가치관·국가관을 이식하고 역사관을 개조할 수 있다는 대통령의 확신이 엿보인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박 대통령이 이미 1970년대 후반 ‘새마음갖기 운동’(이하 새마음운동)이라는 정신개혁운동을 전국적으로 벌여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경험이 있다는 점이다. 당시 박 대통령은 불과 20대 중반이었다. 이제 박 대통령은 그때보다 정치적으로 한층 원숙한 위치로 올라섰다.
<한겨레21>은 새마음운동의 경험이 국정교과서를 통해 역사관을 바꿀 수 있다는 그의 자신감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등을 처음으로 살펴봤다. 1977~78년 새마음운동 궐기대회와 발대식에서 했던 그의 격려사를 수록한 단행본 <새마음의 길>(1979년 발행·저자 박근혜), 새마음운동의 주축이 된 구국여성봉사단(총재 박근혜)이 1978~80년 발행한 기관지 <새마음>, 그리고 당시 관련 기사 등을 분석했다.
“새마음이 가는 길에 사회정화 이어진다”
1977년 8월 당시 부친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서예 연습을 받고 있는 24살 박근혜의 모습. 대한민국 정부 기록사진집
어머니가 1974년 세상을 떠난 뒤 박 대통령은 청와대 퍼스트레이디가 됐다. 그해 9월16일 일기에 젊은 박근혜는 “책임, 너무나도 무거운 책임”이라고 적었다. “지금 나의 가장 큰 의무… 국민으로 하여금 아버지는 외롭지 않으시다는 것을 보여드리는 것이다”(1974년 11월10일)라고 일기에 쓴 그는 아버지의 새마을운동에 보조를 맞춘 ‘새마음운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했다. 만 24살인 1977년 3월부터 시작한 일이다. 전국에 ‘곳곳마다 새마을 사람마다 새마음’ ‘새마음이 가는 길에 사회정화 이어진다’와 같은 표어가 나붙었다.
그는 새마음운동이 “물질적인 발전과 정신 개발이 병행되도록 하려는 정신혁명운동”이라고 주한미군방송 (1977년 5월30일)에 출연해 정의했다. 그는 “충·효·예를 바탕으로 한 새마음은 ‘밝은 마음, 맑은 마음, 고운 마음, 깨끗한 마음’”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새마음운동의 구체적 실천 내용 자체는 사회적으로 필요한 것이기도 했다. 자연보호운동, 의료봉사사업, 불우노인돕기, 불우청소년 선도사업, 불량식품 줄이기 등 여러 형태로 나타났다. 하지만 관의 주도로 국민의 정신을 개조한다는 것이 이 운동의 핵심이었다. 그리고 20대 중반의 퍼스트레이디가 국민의 정신을 바꾸는 이 운동을 지휘했다.
당시 박근혜 총재가 이끄는 구국여성봉사단의 기관지 <새마음>은 신문의 사설 격인 ‘우리의 주장’에서 “우리는 역사적 기로에 서 있다”며 ‘정신 혁명’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새 역사를 창조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역사 속에 소멸되어버리느냐 하는 지대한 시대적 기점에 서 있습니다. 우리는 민족 생존을 위한 새 각오를 다져야 할 때가 왔습니다. 이제는 우리도 정신과 마음을 새것으로 개조하고 회복해야 할 시대입니다. 이것만이 국가가 요구하고 민족이 희망하는 생명이요 광명인 것입니다. 새마음갖기 국민운동은 바로 국민 총화와 국가 안보를 굳건히 다지는 길입니다.”
같은 사설에서 <새마음>은 정신개조를 통한 민족운동을 강조했다.
“이 운동은 정신계발운동이요, 정신혁명운동이며, 역사적 민족운동인 것입니다. 우리 민족 고유한 정신문화를 되찾아 충·효·예를 바탕으로 한 새마음갖기 국민운동을 일으켜야 합니다. 민족의 전통문화를 이어받아 오늘에 되살려 새마음의 밭을 갈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뭉치자, 아끼자, 돌보자’는 단훈의 기치 아래 모여 국가 목표에 도움과 초석이 되는 역군이 될 것을 주장하는 바입니다.”
이러한 정신개조 운동을 박정희 대통령도 지원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1977년 새해 기자회견에서 “새마음으로 자기 혁명을 이룩해야 한다”고 독려했고, 젊은 박근혜는 1978년을 새마음운동 결의·실천의 해로 정해 이 운동의 전국 확산을 꾀했다. 지역별 새마음갖기 궐기대회가 전국에서 열렸고, 20대의 박근혜는 머리카락이 희끗한 어른들과 종교 지도자들 앞에서 충·효·예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격려사를 읽었다.
예를 들어, 1977년 5월11일 새마음갖기 경북도민 궐기대회에서 그는 “새마음운동은 사회 전체가 하나의 가정과 같은 풍토를 조성하는 데 기여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해 6월3일 열린 부산시민 궐기대회에선 “하늘의 뜻을 우리 마음 안에 모시려면 우리 마음을 깨끗이 청소해야 한다”면서, 충·효·예를 실천하지 않으면 “한국인조차 될 자격이 없을 것”이라며 부단한 실행을 주문했다
최태민 목사의 딸 최순실씨와 손잡고
1977년 3월 서울에서 열린 새마음운동 궐기대회(가운데). 구국봉사단 명예총재를 맡던 시절인 그해 같은 달 최태민(오른쪽 사진 왼쪽)과 함께 경로병원 개원식에서 테이프를 끊는 사진이 보도된 당시 신문. 연합뉴스, 한겨레
아이들에게 새마음을 이식하는 전국대회도 확대됐다. 시·도별 중·고등학생 새마음갖기 결의 실천대회와 초등학생 웅변대회가 진행됐고, 학생들은 “밝은 마음, 맑은 마음, 고운 마음, 깨끗한 마음”이 적힌 어깨띠를 두르고 이 운동의 총책임자(박근혜)의 격려사를 들었다. 그는 이런 발대식에서 녹색 ‘새마음기’를 전달했고, 학생들은 새마음기를 들고 연단에 선 그의 앞을 지나는 의식을 진행했다. 학생들은 결의대회에서 “새마음”을 연호했다.
그는 부산시 새마음 중·고등학생 연합회 발대식(1978년 6월19일)에서 “우리가 새마음의 실천을 다짐하고 또 다짐하면서 우리 생활 곳곳에서 실천해나가고자 하는 노력은 우리 사회 안에 새마음이라는 새 도덕관과 윤리를 정착시키는 오직 유일한 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을 통한 ‘단일 가치관의 정착’을 강조하기도 했다. 같은 연설에서 “한번 정착된 가치관이 세대가 바뀌고 세월이 흘러도 계속 튼튼하게 자리잡고 발전해나가려면 우리는 교육을 통한 새마음갖기 운동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라고 학생들에게 주지시켰다.
그해 6월21일 열린 서울시 새마음 중·고등학생 연합회 발대식에선 “가뭄에 물 한 방울 아끼는 마음으로 나라를 사랑하고 아낄 때 우리의 정신운동은 알찬 결실을 맺었다고 할 것”이라고 확고한 국가관을 강조했다. 1978년 6월22일 열린 서울시 중·고등학교 새마음 결의·실천대회엔 1만여 명의 학생이 참여 또는 동원됐다.
대학생 모임도 결성됐다. 1977년 2월 결성된 새마음 전국대학생연합회는 창단 목적을 “올바른 민족관과 확고한 국가관, 주체성 있는 가치관을 정립시키는 데 있다”고 정했다. 2015년 박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에서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는 이유로 밝힌 내용과도 연결된다. 당시 새마음 전국대학생연합회 회장이 지난해 국정 개입 의혹의 논란에 섰던 정윤회씨의 부인이자 구국봉사단 활동의 핵심 인사였던 최태민 목사의 딸 최순실(최서원으로 개명)씨였다.
중·고·대학생들을 한데 뭉친 전국 새마음 중·고·대학생 총연합회도 발족됐다. 정부는 이 총연합회의 지도위원장으로 문화교육부 차관을 임명하고, 시·도교육감들을 지도위원으로 위촉해 학생들의 정신 개혁을 전담시켰다.
대한노인회도 이 운동에 화답해 1978년 6월14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1350명이 모여 전국노인지도자 새마음갖기 결의 실천대회를 열었다. “전국의 300만 명 노인이 나라를 구하기 위한 새마음운동에 솔선 참여하겠다”는 결의가 이뤄졌다.
성균관 유림회도 1978년 새마음운동 총궐기대회에 참가해 전국의 직장과 학교에서 “충·효의 이념과 새마음 실천 방안을 강연하고 매월 2만5천 부씩 발행하는 유림월보와 기타 출판물을 통해 꾸준히 충·효 정신을 계몽할 것”이란 계획을 발표했다. 직장별로 새마음직장봉사단이 결성됐고, 동아건설 중동지역 새마음갖기 전진대회 등 국외에서도 이 운동이 전개됐다.
근화봉사단의 유신 역사 왜곡 주장
1978년 6월, 한국수출산업공단에서 열린 새마음 직장 봉사대 발대식에서 단기가 입장하는 모습. 한겨레
새마음운동에 대해, 경제 발전의 속도에 맞춰 국민의 의식을 끌어올리려는 시도였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이 운동이 유신헌법으로 장기 집권을 이어간 ‘박정희 체제’에서 정부가 단일한 국가관을 주입하려 한 정신개조운동이었다는 비판적 의견도 있다.
구국여성봉사단의 기관지 <새마음> 7월호에 실린 좌담 기사를 보면, “유신 이후 한국적 민주주의가 정착 단계에 들어섰다. 새마음운동은 정신문화를 근대화시키자는 것이며, 이 운동은 정신혁명·정신계발 운동이다”(한 신문사 편집국장), “새마음운동은 자주적이고 자립적인 우리나라의 위치를 세우는 유신운동과 직결된다”(한 서울대 교수), “이 운동으로 영혼을 흔들어놓아야 한다”(한 극작가)는 좌담 참가자들의 찬사가 기록돼 있다. 한국수출산업공단은 새마음직장봉사단 결단대회를 연 뒤 “새마음 정신으로 총력을 경주하여 유신 과업 실천에 최선봉이 된다”는 다짐을 언론에 밝히기도 했다.
젊은 박근혜는 1978년 11월 전북 새마음 중·고등학생 연합회 발대식에서 “이 운동이 범국민 운동이 되었다”고 평가했다. 그가 24살부터 26살까지 전개한 범국민 정신 개조·혁명 운동을 통해 “확고한 국가관과 충·효·예의 가치관”을 심었다고 자평할 만한 경험이 축적된 것이다.
새마을운동을 전문적으로 연구한 어느 역사학자는 이름을 밝히지 말 것을 요구하며 “1970년대 중반 이후 새마을운동의 동력이 이전보다 떨어지면서 정신 혁명, 정신 개조 쪽으로 정권 차원의 강조점이 옮겨간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1979년 10월 부친이 사망한 뒤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면서 이 운동을 이끈 새마음봉사단(전신 구국여성봉사단)이 1980년 11월 해체됐다. 그는 이후 인터뷰에서 “(전두환 정권에 의한) 강제 해체”라며 불편한 심경을 내비쳤다.
그러나 새마음운동 조직은 87년 민주화 이후 부활했다. 1988년 ‘박정희 대통령·육영수 여사 기념사업회’가 발족하고, 이듬해 근화봉사단이 출범했다. 무궁화꽃을 일컫는 ‘근화’를 이름으로 내세운 봉사단으로, 1990년에는 회원이 40만 명으로 불었다. 국민의 정신 개혁을 목적으로 했던 새마음봉사단을 재건한 조직이다.
이 봉사단의 회장을 맡은 그가 1979년 이후 처음으로 언론과 인터뷰하며 공개 활동을 재개한 1989년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이 무렵 그는 “역사 왜곡”이란 말을 언론에 공개적으로 처음 거론했다. 그는 부친이 세상을 떠난 지 10주기를 맞은 1989년 한 해 동안 1960~70년대 역사를 바로잡는 일에 매진했다.
예를 들어 1989년 10월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아버지가 하신 일에 대한 왜곡과 잘못된 인식을 바로 하는 일을 할 수 없다면 아무런 보람도, 의미도, 기쁨도 있을 수 없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는 그해 7월 발행인·편집인을 맡은 <근화보>를 한 달에 한 번씩 발간했다. 총 15회가 나왔고, 사설을 직접 썼다. 매체를 창간해 부친의 역사를 바로잡고 이를 확산하는 일에 나선 것이다. 새마음봉사단을 계승한 근화봉사단이 이런 그의 활동과 <근화보> 배포를 적극적으로 도왔다.
“근대사 가장 위대한 인물은 박정희”
<근화보>엔 “박정희 대통령이 근대사에서 국민을 구한 가장 위대한 인물이어야 한다. 조선시대 세종대왕과 같은 위치로 부각돼야 한다”는 글이 실렸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업적을 5개 분야(자주국방·자립경제 등)로 나눠 긍정적으로 평가한 시리즈가 5개월 넘게 실렸다.
<근화보> 1~15호에 실린 사설이나 1989년에 여성 월간지·신문·방송과 집중적으로 진행한 인터뷰를 보면 당시 역사를 바라보는 그의 인식을 읽을 수 있다. ‘현 사회는 병에 걸렸으며, 이는 박정희 시대에 대한 부정과 역사 왜곡에서 비롯됐고, 이것이 사회질서를 뿌리째 흔들고 있으며, 이렇게 되면 어린 세대들에게 국가에 대한 긍지를 심어줄 수 없다’는 논리로 흐른다. 역사 왜곡을 다시 언급하며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진행하는 2015년과의 상관성을 엿볼 수 있다.
그는 <근화보> 3호에 쓴 ‘역사에 대한 인식’이란 제목의 사설에서 “오늘날 우리 사회 양상이 개판이 아니면 무엇이 개판이겠는가. 이러한 우리 사회의 현실은 그동안 우리 스스로가 만든 결과일 뿐이다. 병도 제대로 치료하려면 우선 그 원인을 바르게 알아야 한다. 그 근본 원인은 (박정희 시대에 대한) 역사의 왜곡에 있었다”고 적었다.
이어 그는 “그 결과 역사에 긍지를 가질 수 없고 선배에 대해 존경심을 가질 수 없게 된 젊은 세대들은 정신적 공허함 속에서 북한을 찬양하는 데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역사에 대한 바른 인식을 정립하고 뿌리내리는 일은 이 사회를 다시 복되게 살리는 활력소이다”라고 주장했다.
그해 10월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선 “유신이 무슨 커다란 범죄처럼 됐다. 장기 집권을 위한 음모라는 등 나쁘게만 묘사됐다. 어느 한 시대 전부를 없애고, 모조리 잘못된 것으로 치부한다면 결국 이 땅에서 자라나는 세대들이 누려야 할 정신적 자산은 다 파괴되는 것 아니냐”며 유신 시대를 엄호했다.
1990년 <근화보> 15호에는 그가 <코리아 투데이>와 가진 인터뷰 전문이 실렸다. 이 인터뷰에서 그는 “지난 1960~70년대는 외국으로부터 한강의 기적이라든가, 새마을운동은 세계 개발도상국의 모범이라는 말들로 칭찬하는 평가를 들어왔다. 하지만 (이 역사에 대한) 왜곡은 단순히 역사의 왜곡이라는 데 그치지 않고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 아직까지도 나쁜 영향을 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또한 그는 아버지의 성과를 집대성한 <겨레의 지도자>란 책을 1990년에 내면서 1960~70년대를 독재로 바라보는 시선을 비판하는 서문을 실었다.
“‘만약에 모세가 위원회를 통해서 정치를 했다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끝내 홍해를 건너가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구세군 창설자 윌리엄 부스는 말했다. 겨울에는 두꺼운 옷을 입고, 여름에는 얇은 옷을 걸치듯 국가의 위기시에는 그 위기를 감당하여 헤쳐나갈 수 있는 방도를 택함이 마땅한 일인데, 국난을 맞아 태평 시절의 방법으로 위기를 극복해야만 한다고 우긴다면 그것이 억지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 서문은 1990년 5월22일 일기에서 그가 “한 달 이상 걸려” 썼다고 할 만큼 심혈을 기울인 글이다. 그는 이 서문에서 “뿌리·줄기·가지·잎 등이 없는 나무란 상상할 수도 없듯이 이런 것들이 없는 열매는 존재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적었다. 박정희 시대를 폄훼하는 것은 “열매는 열매이고, 뿌리는 뿌리일 뿐이라고 우기는 것”과 같다고 그는 반박했다.
유엔, 역사교육으로 젊은이 길들이지 말아야
그가 대통령이 된 뒤 부친의 명예 회복을 위해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시도하겠다고 명시적으로 밝힌 적은 없다. 하지만 국정화를 반대하는 이들은 아버지 시대와 긴밀히 연결된 그가 직접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면서 우리 사회를 이념적으로 양분시키고 있다고 우려한다.
특히 20대 중반에 새마음운동으로 정신 혁명에 나섰던 그가 다시 하나의 역사 교과서로 ‘올바른 국가관·가치관’을 심어주겠다고 나선 데 대해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다. 1970년대 그가 펼친 새마음운동이 2015년에 ‘새역사 새마음운동’으로 복원된 듯한 양상이 전개되고 있다.
2013년 9월 유엔은 “역사교육은 애국심 강화, 국가적 정체성 강화, (그 정부의) 공식적 이념이나 (그 사회의) 지배적인 종교가 이끄는 가이드라인에 맞춰 젊은이들을 길들이려는 목적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고 각국에 권고했다.
국민 정신개조운동과 역사에 관한 박근혜 대통령의 과거 발언
1977년 6월 3일 “마음을 깨끗이 청소해야”
하늘의 뜻이 우리와 함께 하시도록 하려면, 또한 그 뜻을 우리 마음 안에 모시려고 한다면 우선 마음을 깨끗이 청소하고 아름답게 가꾸어 모실 준비를 해야 합니다.
-새마음갖기 부산시민 궐기대회 격려사
1978년 6월 19일 “새마음, 새 인간”
우리가 새마음의 실천을 다짐하고 또 다짐하면서 우리 생활 곳곳에서 실천해나가고자 하는 노력은 우리 사회 안에 새마음이라는 새 도덕관과 윤리를 정착시키는 오직 유일한 길이 될 것이며, 한번 정착된 가치관이 세대가 바뀌고 세월이 흘러도 계속 튼튼하게 자리잡고 발전해나가려면 우리는 교육을 통한 새마음갖기 운동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새마음은 매일매일 새로이 가져야 하고, 그러한 생활습관이 굳어질 때 비로소 새 인간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부산시 새마음 중·고등학생 연합회 발대식 격려사
1978년 6월 21일 “가뭄의 비처럼 나라 사랑해야”
우리 모두가 한참 가뭄이 심할 때 비를 기다리는 간절하고 절박한 마음으로 나라의 소중함을 느끼며, 가뭄에 물 한 방울 아끼는 마음으로 나라를 사랑하고 아낄 때 우리의 정신 운동은 알찬 결실을 맺었다고 할 것이며 희망찬 조국의 장래는 보장된다고 하겠습니다.
-서울시 새마음 중·고등학생 연합회 발대식 격려사
1978년 7월 15일 “정신과 마음을 새것으로 개조해야 할 때”
우리는 역사적 기로에 서 있습니다. 새 역사를 창조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역사 속에 소멸되어버리느냐 하는 지대한 시대적 기점에 서 있습니다. 우리는 민족 생존을 위한 새 각오를 다져야 할 때가 왔습니다. 이제는 우리도 정신과 마음을 새것으로 개조하고 회복해야 할 시대입니다. 이것만이 국가가 요구하고 민족이 희망하는 생명이요 광명인 것입니다. 새마음갖기 국민운동은 바로 국민 총화와 국가 안보를 굳건히 다지는 길입니다. 이 운동은 정신계발운동이요, 정신혁명운동이며, 역사적 민족운동인 것입니다. 우리 민족 고유한 정신문화를 되찾아 충·효·예를 바탕으로 한 새마음갖기 국민운동을 일으켜야 합니다. 민족의 전통문화를 이어받아 오늘에 되살려 새마음의 밭을 갈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뭉치자, 아끼자, 돌보자”는 단훈의 기치 아래 모여 국가 목표에 도움과 초석이 되는 역군이 될 것을 주장하는 바입니다.-근화여성봉사단(총재 박근혜) 기관지 <새마음> 창간호에 실린 ‘우리의 주장’
1989년 8월 15일 “역사 바로잡아 민족의 얼 되살려야”
병도 제대로 고치려면 근원을 치료해야 하듯이 오늘날 우리 사회의 기강을 바로 세우는 데에는 법과 경찰만으로 될 리가 없습니다. 실제로 우리 사회의 법 또는 질서의 경시풍조는 위험수위에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우리 민족의 얼이 깨끗이 되살아나야 하고, 그렇게 되려면 무엇보다도 역사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바로 잡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국민이, 특히 자라나는 세대가 자기나라 역사에 대해 애정과 긍지를 갖게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마땅히 그럴 만한 역사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근화봉사단(회장 박근혜) 결속대회 격려사
1989년 9월 15일 “북한을 찬양하는 젊은 세대들”
박정희 대통령·육영수 여사 기념사업회가 중점적으로 힘써온 것은 바로 지나온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 우리 사회 안에 바른 인식이 정립되어 뿌리내려지도록 함에 있었다. (중략) 오늘날 우리 사회 양상이 개판이 아니면 무엇이 개판이겠는가. 이러한 우리 사회의 현실은 그동안 우리 스스로가 만든 결과일 뿐이다. 병도 제대로 치료하려면 우선 그 원인을 바르게 알아야 한다. 그 근본 원인은 (박정희 시대에 대한) 역사의 왜곡에 있었다. 더구나 오랜 전통과 유교 문화를 바탕으로 한 우리 사회에 있어 앞서 말한 선후배의 깊은 유대는 사회 기강과 질서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다. 이 근간을 지난 10년간 온갖 힘을 다해 뒤흔들고 파괴해왔으니 어찌 오늘의 사회 질서가 뿌리째 흔들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 결과 역사에 긍지를 가질 수 없고 선배에 대해 존경심을 가질 수 없게 된 젊은 세대들은 정신적 공허함 속에서 엉뚱하게 김일성 주체사상을 쫓아다니고, 북한을 찬양하는 데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역사에 대한 바른 인식을 정립하고 뿌리내리는 일은 기념사업회의 일이면서 동시에 이 사회를 다시 복되게 살리는 활력소이다.
-박정희·육영수기념사업회가 발간한 월간 <근화보> 3호 사설(박근혜 근화봉사단 회장이 직접 집필)
1989년 10월 22일 “아버지 하신 일에 대한 왜곡 바로잡아야”
유신이 무슨 커다란 범죄처럼 돼버렸어요. 유신 하면 마치 아버지의 장기 집권을 위한 음모라는 등 나쁘게만 묘사되었던 거지요. 그런 것을 역사 속으로 집어넣고 바로잡아야 할 때라고 생각됩니다.저는 아버지가 하신 일에 대한 왜곡과 잘못된 인식을 바로 하는 일을 할 수 없다면 저한테는 아무런 보람도 없고 의미도 없고 기쁨도 있을 수 없어요. 어느 한 시대 전부를 없애고, 모조리 잘못된 것으로 치부해버린다면 결국 이 땅에서 자라나는 세대들이 누려야 할 정신적 자산은 다 파괴되는 것 아니에요?
-<국민일보>와의 인터뷰 ㅔ1990년 9월 25일
“1960~70년 역사 왜곡이 한국 사회에 나쁜 영향을 주고 있어”
지난 1960~70년대는 외국으로부터 한강의 기적이라든가, 새마을운동은 세계개발도상국의 모범이라는 말들로 칭찬하는 평가를 들어왔다. 하지만 (이 역사에 대한) 왜곡은 단순히 역사의 왜곡이라는 데 그치지 않고 오늘날의 한국사회에 아직까지도 나쁜 영향을 주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도덕이 무너졌다, 폭력이 난무한다, 노소의 질서가 없어진 세상이 되었다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이런 것들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견고한 국민 정신의 기반을 필요로 하는데 그 바탕은 과거의 민족 역사에 대한 국민의 올바른 인식에 있다. 그렇지 않으면 나라의 기반이 흔들리는 것은 물론 그 위의 줄기와 잎도 모두 흔들리게 되며 결국 오늘날과 같은 사회를 만들게 된 큰 원인이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국방부 "역사 교과서 집필 참여" 입장 파문 115 프레시안
"박정희·전두환 때나 있던 일"…군 동원한 '역사 쿠데타'?
한민구 국방부장관이 "군(軍)에서 교과서 집필에 참여할 수 있도록 협조하고 있다"고 밝혀 논란이 일 전망이다. '군대를 동원해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한 장관은 5일 국회 예산결산위원회에 출석해 "일본 지배 하에 있던 시절에 독립군의 활동, 이것도 교과서에 잘못된 부분이 상당 부분이고 4. 3사건에 대해서도 실제로 우리 군이 아주 폄하되어 있고, 6. 25전쟁에 대해서도 실질적으로 일부 잘못 기술돼 있고 월남전에 대해서도 그렇다. 이번에 교과서 작업을 하는데 어떻게 할 것이냐"는 새누리당 한기호 의원의 질문에 이같이 말했다. 앞서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은 "검정교과서에서 문제 됐던 근현대사 부문에는 역사학자만이 아니라 정치·경제·사회 전공자를 필진으로 포함시키겠다"며 "현대사의 큰 아픔인 6·25전쟁과 관련해서는 군사 전공자도 참여해 입체적이고 정확한 역사가 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한 장관의 발언으로 미뤄보면, 민간 군사학 전문가가 아니라 국방부가 직접 교과서 집필에 참여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지난 8월 북한의 서부전선 포격도발과 관련, 경기도 용인의 제3 야전군 사령부를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 ⓒ청와대
민간 군사학 전문가가 참여하는 것도 전례가 없는 일이고 논란의 소지가 강한데, 국방부가 직접 교과서 집필에 관여하겠다는 것은 국정 교과서가 정권의 입맛에 맞게 쓰여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전례가 없다는 점에서 논란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국방부가 교과서 집필에 참여한다면 한기호 의원이 지적한대로 제주 4.3사건이나 베트남 전쟁에 대한 군의 시각이 교과서에 반영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최근 새누리당 일각에서는 역사적으로 이미 전반적 평가가 이뤄진 제주 4.3사건의 성격을 '공산주의자들의 폭동'으로 왜곡하려 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이에 대한 왜곡이 진행될 경우 관련 제주도 뿐 아니라 시민사회가 강하게 반발할 가능성도 있다.
한국역사연구회 회장인 하일식 연세대학교 교수는 "국방부가 국정교과서에 집필에 참여한다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국정교과서 체제였던) 김영삼 정부만 해도 정부가 교과서 집필에 참여한 게 아니라 제작 관리를 했을 뿐이었다. 군인, 혹은 공무원들이 교과서 집필에 직접 참여하는 것은 박정희, 전두환 정권 이후 없었던 일"이라고 지적했다.
하 교수는 "현 정부가 국정교과서를 추진하는 모습이 점입가경"이라며 "국정교과서를 마치 '군 정훈 교재'처럼 만들려고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다"고 비판했다.
국정화 이어 유치원 안보교육 내년 예산 100억! 115 프레시안
[2015, 이제는 평화] 삼둥이 병영체험, 웃을 일이 아니다
"모든 아이는 예술가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우리가 어른이 된 후에도 예술가로 남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파블로 피카소는 이런 말을 남겼다. 어떤 연구자들은 모든 아이들이 평등한 지능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부모의 양육방식과 환경에 따라서 그 지능에 굉장한 편차가 발생한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상상해보자, 아이들 모두가 높은 지능을 가진 예술가로 태어났으나 어른들처럼 살아야 한다는 사회의 목소리와 더불어 어른들의 세계를 흉내 내기 시작하고 서서히 이 특별한 능력들을 잃어버리는 상황을. 이거 너무 끔찍한 비극 아닌가?
최근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송일국 씨의 아들, '삼둥이' 형제가 병영체험을 다녀오는 과정이 한 TV 프로그램을 통해 방송됐다. 군복을 입고 줄을 맞추어 연병장에 도착하는 아이들을 맞이하며 교관이 묻는다. "반갑습니까?" 교관의 각 잡힌 질문에 민국이는 수줍은 미소로 대답했다. "반가워요"
교관은 경례를 외치며 오른손으로 거수경례할 것을 가르쳤지만 아이들은 왼손, 오른손 가릴 것 없이 이마에 갖다 붙이기 시작했다. 이후 '무릎앉아' 자세를 배우는 동안 흙을 만졌더니 이내 불호령이 떨어졌다.
"지금 흙장난하면 됩니까, 안 됩니까?" 움찔하며 울먹이는 네 살 송만세에게 교관은 다시 물었다. "지금 울면 됩니까, 안 됩니까?" 만세는 울음을 꾹 참으면서 대답했다. "안 됩니다" 울고 싶으면 울어도 괜찮고 아프면 아프다고 말해도 괜찮은데 네 살의 아이가 위압적인 교관의 태도에 놀라 울고 싶을 때 울지도 못했다. 아이들의 자연스러운 욕구가 무참히 짓밟히는 참담한 순간이었다.
▲ KBS 2TV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제식훈련을 하던 도중 울음을 터뜨린 송만세 ⓒKBS
제작진은 '군인이라면 기본이 되는 제식훈련'이 아이들에게 규칙과 질서를 가르쳐 주기 위한 관문이라고 소개했는데 정색하고 좀 물어보자. 네 살짜리 아이들에게 규칙과 질서를 알려주기 위해서 군인들을 위한 제식훈련이 필요하다는 건 무엇에 근거한 이론인가?
군대를 진짜 보낸 것도 아니고 병영체험일 뿐인데 왜 유난이냐고? 이건 한 번의 병영체험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라사랑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전쟁을 정당화하는 교육이 전국적으로 진행 중이며 내년 정부예산 중 약 100억 원이 유치원생을 위한 안보교육 예산으로 편성되어 있다. 군사교육을 일상화할 준비가 이미 끝났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예술가'들을 또 잃어버리게 될까. 자유롭고 천진난만한 아이들에게 군복을 입히고 거수경례를 시키고 군가를 가르치면서 누구의 어떤 욕망이 충족되고 있는 것인가.
아이들을 향한 어른들의 욕망은 뒤틀려 있다. 어른들의 말을 잘 들어야 하지만 생각은 창의적으로 할 수 있어야 하며, 다양성을 키우는 교육이 국가경쟁력에 도움이 된다면서도 역사교과서는 국정화를 통해 단일화해야 한다. 청소년들의 비판적 사고를 장려한다면서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청소년들의 의견을 묵살하기 일쑤이며, 인류의 비극이었던 전쟁을 다시 겪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하면서 전쟁을 항시 준비하고 아이들에게 전쟁을 준비할 것을 지속적으로 가르치는 아이러니 역시 마찬가지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평화를 위해 전쟁을 준비하라는 불안의 상상력은 한국사회를 갈가리 찢어놓았다. 끊임없이 적을 필요로 하는 전쟁의 성질을 생각했을 때 지금 한국사회의 분열은 충분히 예측 가능한 결과이다.
국정화되지 않은 다른 목소리는 불온한 것으로 몰아가며 연예인들의 모습을 빌린 매력적인 군사주의가 미디어를 통해 일상으로 촘촘하게 스며들고 있는 2015년 11월. 삼둥이의 병영체험은 한국사회가 군사주의 문화에 얼마나 무감각해졌는지를 보여주는 가슴 아픈 사례이다. 따라서 이 병영체험 방송은 전혀 괜찮지 않다. 1989년 유엔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된 아동권리협약을 근거로 한다면 이 병영체험은 심각한 아동권리침해이자 학대이다.
어른들이 전쟁을 경험했다고 해서 아이들에게도 전쟁을 경험하게 할 것인가? 어른이 가진 책임이자 의무는 이전 세대의 고통스러운 경험을 전달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분열과 파괴의 언어를 넘겨주지 말자. 전쟁을 팔고 죽음의 공포를 팔아 사회를 유지하는 일은 그만할 때가 지나도 한참 지났다.
전쟁의 신에게 영혼을 내어주지 말자. 불안에 잠식당해 죽어버린 영혼이 아니라 생생하게 살아있는 따뜻한 사람들을 매일 매일 새롭게 발견하고 살아있음을 고마워하는 그 기적을 우리의 일상에서 경험하자. 그 일상의 경험들이 이 세상을 하루하루 더 평화로운 곳으로 바꾸어 나갈 것이라 믿는다.
"폭격은 밤에야 끝났어.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에 눈이 내렸지. 우리 병사들 주검 위로 하얗게 ... 많은 시신들이 팔을 위로 뻗고 있었어. 하늘을 향해. 행복이 뭐냐고 물어봐 주겠어? 그건 죽은 사람들 사이에서 기적처럼 산 사람을 발견하는 일이야" -2015년 노벨문학상 수상작, 스베틀라나 알렉세이비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문아영 평화교육프로젝트 '모모' 대표
‘역사교과서 국정화 안되면 북한이 사상 지배?’115경향
박근혜 대통령은 5일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통한 올바른 역사관이 정립되지 않으면, 통일 후 자라나는 미래세대들이 북한 사회주의나 주체사상 등에 사상적으로 지배당할 수 있다고 밝혔다. 통일 문제를 거론하며 역사교과서 국정화 당위성을 강변한 것이다.
정부가 국정화 고시를 강행했음에도 반대 여론이 가라앉지 않자 청와대가 해묵은 색깔론을 꺼내들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박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제6차 통일준비위원회 회의를 주재하면서 “통일을 앞두고 있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에 대한 강한 자긍심과 역사에 대한 뚜렷한 가치관”이라며 “이것이 선행되지 않으면 통일이 되기도 어렵고 통일이 되어도 우리 정신은 큰 혼란을 겪게 되고 중심을 잡지 못하는, 그래서 결국 사상적으로 지배를 받게 되는 그런 기막힌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5일 오전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통일준비위원회 제6차 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이어 “앞으로 통준위에서도 이런 것을 잘 이해하시고, 우리나라에 대한 자긍심과 확고한 국가관을 갖도록 하는 것이, 통일의 시작이라고 생각해주시고 노력해주시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이날 언급은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라는 특수성을 감안할 때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필요하다는 주장과 맞닿아 있다.
하지만 여론이 악화되자 박 대통령이 국정화 관철을 위해 색깔론을 꺼내들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앞서 친박계 핵심인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은 지난달 28일 국회 예결특위에서 “왜 이렇게 좌편향 교육을 기어코 시키려고 우기느냐. 언젠가는 적화통일이 될 것이고, 북한 체제로 통일이 될 것이고, 그들의 세상이 되게 됐을 때 남한 내에서 어린이들에게 미리 교육을 시키겠다는…(취지로 국정교과서에 반대하는 것 아니겠느냐)”이라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켰다. 이 의원은 결국 이 같은 자신의 발언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박 대통령은 또 이날 “8·25 합의에서 밝힌 대로 남과 북의 상호 관심사와 한반도의 미래를 위한 논의들을 하루속히 시작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국정화 강행을 위해 북한을 자극할 발언을 내놓으면서, 남북 당국회담을 촉구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는 지적도 나왔다.
과거 체제경쟁에서 한참 뒤처졌다며 ‘붕괴론’까지 거론한 북한을 두고 사상적으로 지배당할 수 있다는 식의 논리는 국민을 미개인 취급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따갑다. 한신대 윤평중 교수(정치철학)는 “시대착오적이고 퇴행적이며 거의 반동적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냉전반공주의적 발언이다. (교과서 국정화는) 한국 사회 진화역사를 명명백백하게 퇴행시키는 것”이라며 “(정부가) 되어서도 안되고, 될 수도 없는 일에 국가에너지를 탕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자들 질문 시작되자 일제히 방송 중단 왜?115 미디어오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담화, 질의응답 사라져… 키사 KTV 끊기 전에 지상파 자체적으로 송출 중단
지난 3일 정부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방침을 확정 고시하고 황교안 국무총리와 황우여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했다. 당초 고시 예정일보다 이틀이나 앞당겨 발표한 만큼 정부의 담화 내용에 대한 의문, 집필진 구성과 교육부 지침 등 전 국민의 궁금증이 증폭된 상황이었다.
하지만 정부의 대국민 담화를 생중계한 KBS·MBC·SBS 지상파 3사 모두 담화에 이어진 기자들의 질의응답이 시작되자 방송을 중단했다. 생중계를 특정 시점에 끊는 건 각 방송사의 판단이지만, 대통령 신년기자회견 등 중요한 국가행사나 청와대 발표가 있을 때 기자들의 질의응답도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보도했던 것에 비춰보면 지상파 3사 모두 같은 판단을 했다는 것은 의아한 부분이다.
심지어 보도전문채널인 YTN과 연합뉴스TV도 첫 번째 한국일보 기자의 질문과 황 장관의 답변 도중 생중계를 끊었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기자들에 따르면 정부의 대국민 담화문에 대한 기자들의 날 선 질문들이 이어졌음에도 이를 중계한 방송사 모두 기자들의 질문 내용과 정부의 입장은 보도 가치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지난 3일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담화문 발표 KTV 생중계 화면 갈무리
이번의 경우 효율적인 중계와 비용 절감 등을 위해 여러 방송사를 대표해 생중계 영상을 각 사에 송출하는 키(Key)사 역할은 한국정책방송원 KTV가 맡았지만, MBC는 KTV 영상을 받지 않고 독자 생중계했다. KTV 측의 설명에 따르면 총리실 풀(pool)기자단에 속해있는 KTV는 자체적으로 담화 생중계 방침을 정했고, 이에 MBC를 제외한 다른 방송사들도 KTV 중계 영상을 받아 방송을 내보내기로 했다.
어쨌든 대다수 방송사를 대신해 담화를 생중계한 KTV는 실질적인 키사 역할을 담당했음에도 황 장관 등과 기자들의 질의응답 장면을 끝까지 내보내지 않았다.
이에 대해 KTV 관계자는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지상파 등 다른 방송사는 기자들이 질문을 하기 전에 생중계를 끝냈고 YTN과 연합뉴스TV도 황 장관과 질의응답 중간에 끊었다”며 “그나마 우리는 첫 번째 답변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끊었고, 이후 영상은 없지만 ENG카메라 풀단에서 찍은 자료화면은 남아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일각에선 KTV가 단독 중계 배정을 맡지 않았더라고 기자단의 협의 또는 편의에 따라 키사 역할을 하게 됐다면 온 국민의 관심이 쏠려있는 상황에서 영상을 끝까지 보내줬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 지상파 방송 관계자는 “각 방송사가 중간에 끊는 건 각사의 판단이지만 키사는 각 방송사가 언제 끊을지 모르므로 영상을 끝까지 보내주는 게 맞다”며 “설령 기자가 영양가 없는 질문을 하더라도 다른 방송사에선 중요도가 다를 수 있고 키사가 촬영을 멈추면 항의가 들어올 수 있으므로 키사는 끝까지 촬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3일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담화문 발표 KTV 생중계 화면 갈무리
결국 대표중계를 맡은 KTV마저도 담화 전체를 촬영하지 않았기 때문에 국민들은 어느 방송에서도 정부의 국정화 고시 담화 이후 장장 30여 분간 이어진 기자들과 질의응답 내용을 볼 수 없게 됐다. 현재 해당 영상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공무원과 기자들만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e-브리핑(http://ebrief.korea.kr) 사이트에서만 확인할 수 있다.
이날 기자들은 5일로 예고됐던 확정고시가 3일 발표된 이유와 집필진 구성, 국정화 반대 의견 수렴 방법 등을 물었고, 황 장관과 교육부 관계자들은 행정예고 기간 들어온 찬반 의견을 12~13개 유형으로 분류했다거나 집필진은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전적으로 구성한다는 등 국민이 궁금해하고 논란이 될 만한 답변이 오갔다.
아울러 이날 황교안 총리가 대국민 담화를 통해 현행 한국사 검정 교과서의 문제를 조목조목 지적하는 장면에서 방송된 프레젠테이션 화면은 정부 측에서 KTV에 미리 제공한 것으로 확인됐다. 교육부와 총리실에서 대국민 담화 자료화면을 직접 제작한 후 황 총리의 담화 도중 효과적으로 노출되도록 미리 기획한 것이다.
KTV는 황 총리의 담화 내용에 맞춰 정부에서 만든 “지금 역사교육을 받고 있는 우리 학생들에게 미안합니다.”, “천안함 사건? 배운 적 없는데요.”, “현 교과서 집필진 정부 상대 소송 남발”, “문제집과 지도서에는 편향된 역사관을 더욱 강조” 등의 내용을 담은 자료화면을 내보냈다. (관련 기사 : 황교안 총리의 PPT, 이렇게 반박해 봤습니다)
박근혜가 부풀린 집값 거품, 곧 터진다 116 프레시안
임박한 위기
"서프라이즈?"
러시아를 방문한 최경환 부총리가 3분기 경제 성장률 1.2%가 "서프라이즈하다"고 말했답니다. 지난 2분기의 성장률이 0.3%에 비하면 네 배나 증가한 수치니까요. 한 발 더 나가서, "추경과 정부 소비 진작책 등의 효과가 '상당히' 반영된 것"이라고 은근히 자화자찬까지 했습니다.
곧 총선에 나설 정치인의 자기 광고를 탓할 수야 없겠지요. 언론들 역시 메르스 이후 민간 소비가 살아나면서 경제 성장률이 높아졌다고 평했고 진보 언론들은 빚에 의한 소비 증가이니 자랑거리가 못 된다고 비판했습니다. (☞관련 기사 : 3분기 1.2% 성장이 서프라이즈 아닌 '빚 성장'인 걸 모르나)
정말 그런지 아래 표를 보실까요?
매 분기 보여드리는 표니 프레시안 조합원도 이젠 읽을 수 있을 겁니다. 이 표 안의 숫자는 직전 분기 대비 성장률입니다. 즉, 3분기(7, 8, 9월) 성장률이란 2분기(4, 5, 6월)에 비해서 얼마나 GDP(국내총생산)가 증가했는지 보여주는 수치지요. 괄호 안의 수치는 전년 동기에 비한 성장률, 즉 맨 오른쪽 사각형 괄호 안의 수치는 2014년 3분기에 비교한 성장률(연률)입니다.
▲ [표 1] 국내총생산에 대한 지출. 한국은행 '3/4분기 국민 총생산(속보)' 1쪽. ⓒ한국은행
3/4분기의 성장률은 지난 2/4분기에 비해선 1.2%이고,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서는 2.6%(괄호 안의 수치)입니다. 2분기가 워낙 나빴기 때문에 꽤 높은 수치가 나온 거지 1년 전에 비교하면 고만고만한 성장입니다(1분기에는 2.5%, 2분기에는 2.2%니까요). 4분기에 획기적인 사건이 벌어지지 않는 한, 금년의 연간 성장률도 2.5% 부근일 거라고 짐작할 수 있겠죠.
다음으로 모든 언론이 받아 쓴 것처럼 소비가 성장을 주도했는지 보겠습니다.
분기별로 보면 –0.2%에서 1.1%로 증가했으니 과연 소비가 대폭 늘어난 것으로 보입니다. 분명히 메르스로 인해, 2분기에 마이너스를 기록했던 소비가 회복된 건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작년 3분기에 비해서는 2.0% 증가한 데 불과합니다. 전체 성장률 2.6%에도 미치지 못한 거니까 소비는 오히려 성장률을 깎아 먹었다고 해야 옳습니다.
그럼 어느 분야의 지출이 증가한 걸까요? [표 1]을 보면 건설 투자와 설비 투자가 각각 4.5%(전년 동기비 5.2%)와 2.0%(6.8%)로 성장을 주도했습니다. 건설은 최 부총리가 자랑한 정책 덕에 늘어났을 테고, 설비 투자는 한국은행의 설명으론 기계류 중심으로 증가했습니다. 만일 건설과 설비 투자의 증가가 계속되지 않는다면 앞으로 경제 성장률은 2.5%를 달성하기도 어려울 겁니다.
"소비 절벽"과 가계 부채 대책
이렇듯 한국은행의 GDP 통계를 근거로 소비가 성장을 주도한 회복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다 알다시피 지금 보통 사람들의 소비는 가계 부채에 짓눌려 있습니다. 한 민간 금융 기관에선 "소비 절벽"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관련 기사 : 내년도 '소비 절벽' 오나…관건은 경제 심리 회복)
▲ [그림 1] 소비자 심리 지수 추이. ⓒ한국은행
[그림 1]에서 보듯이 소비자 심리 지수는 추세적으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으로 주거비가 상승하는 동시에 가계 부채가 급증했다는 점을 고려해 보면 앞으로 소비가 절벽에 부딪힐 것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더구나 집값과 전셋값을 올려줬다는 건 소득이 하층에서 상층으로 이전됐다는 걸 의미합니다. 부자들의 소비 성향이 더 낮으니까 앞으로 소비 증가율은 더 떨어질 겁니다. 즉, 정부의 공휴일 지정이나 개별 소비세 인하와 같은 정책이 계속되지 않는다면 소비가 마이너스 증가율을 보일 수도 있습니다.
정부도 가계 부채의 심각성을 알고 있습니다. 지난 7월 22일 정부는 '가계 부채 종합 관리 방안'을 발표했죠. 핵심은 주택 가격이나 소득 대비 대출 금액이 큰 경우 원칙적으로 분할 상환을 적용한다는 겁니다.
10월 28일 은행연합회와 시중 은행들은 "내년부터 LTV가 60%를 넘는 신규 대출은 (…) 애초 검토했던 60% 초과분뿐 아니라, 전체 원금을 나눠서 갚도록 하는 방안도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관련 기사 : 담보 대출 집값 60% 넘으면 대출 전액 분할 상환 검토)
예를 들어, 3억 원짜리 집을 담보로 2억1000만 원을 대출받은 경우(즉, LTV가 70%인 거죠), 7월 구상이라면 60% 초과분인 3000만 원(2억1000만 원-1억8000만 원(3억 원☓60%))만 대출 약정 기간에 분할 상환하는 거지만 이제 전체 대출 2억1000만 원에 대해서 매년 원리금을 나눠 갚아야 하는 겁니다.
즉, 빚을 낸 다음 해부터 원금도 일부 갚도록 해서 대출 증가를 억제하고, 은행도 가계 빚을 빨리 돌려받으려는 겁니다. 금융 기관의 문제는 그 동안 남아도는 돈을 빌려 줄 곳이 없다는 거였는데 이젠 더 이상 위험한 대출을 늘리지 않고, 오히려 부실 채권이 되지 않도록 빨리 돈을 돌려받아야겠다는 겁니다. 그만큼 금융 위기의 위험성이 높아졌다는 얘깁니다.
"좀비 기업"과 구조 조정
경제가 수렁에 빠져들면서 정부가 기업 구조 조정에 나섰다는 얘기는 지난 번에 이미 전해 드렸습니다. 이번 주에는 정부의 발걸음이 더욱 빨라졌고 그 방법도 채권단에 맡기는 게 아니라 구조 조정 회사인 유암코에 맡기는 것으로 변경됐습니다. 그만큼 시간이 없다는 얘깁니다. (☞관련 기사 : 유암코, 11월부터 본격 부실 기업 구조 조정 착수)
금융위원회는 22일, '기업 구조 조정 전문 회사 설립 운영 방안'을 발표했는데요. 시중 은행의 부실 채권 관리 전문 회사 유암코(연합자산관리)의 재원을 늘려, 11월부터 최대 28조 원 규모의 기업 구조 조정에 착수하겠다는 겁니다.
유암코는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급증한 은행권 부실 채권을 처리하기 위해 2009년 농협중앙회 신한은행 우리은행 하나은행 기업은행 국민은행 등 6개 은행이 출자해 설립한 민간 중심의 부실 채권 전문 회사로 자산 유동화와 기업 구조 조정 업무 등을 맡아왔습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전체 외부 감사 대상 기업 중 한계 기업(영업 이익으로 이자도 내지 못하는 기업=이자 보상 배율이 1을 밑도는 기업) 비중은 2009년 12.8%에서 지난해 15.2%(3295개)로 증가했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대 중국 수출이 급감하면 한계 기업의 숫자는 더 늘어날 겁니다. 금융 시장은 빡빡해질 텐데, 이런 상황에서 기업의 투자가 계속 증가할 수는 없겠죠. 즉, 이번 분기의 성장을 주도한 설비 투자는 앞으로 급감할 것으로 보입니다.
부동산 부양책은 계속 유지될 수 있을까?
건설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에서 본 가계 부채 대책은 그 자체로 주택 수요를 줄이는 역할을 합니다. 돈 빌려 집을 사도 집값이 오르기 전에 원금까지 갚아 나가야 하니까요. 몇 번 말씀드린 대로 건설 경기를 일으키기 위해 주택 공급을 늘리면서, 동시에 집값을 올리려면 가계가 빚을 늘려서 집을 사 줘야 합니다. 즉, 현재 상황에서 부동산 경기 부양과 가계 부채 증가는 한 몸으로 묶여 있습니다. 이런 부동산 부양책은 이미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여기에 더해서 주택 공급이 이미 과잉 상태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15일 국토교통부 통계를 보면 올해 들어 8월 말까지 주택 인·허가 물량은 총 45만2185가구로 지난 해 같은 기간에 비해 44.2%나 급증했습니다. 건설사들이 하반기 들어 아파트 분양 등을 더욱 늘리고 있어 올 한 해 전체 인·허가 물량이 70만 가구에 육박하거나 넘어설 가능성도 있다고 합니다.
국토교통부와 국토연구원이 2013년 장기 주택 종합 계획에서 추산한 연평균 주택 수요는 39만 가구인 데, 작년에 50만 가구가 이미 공급됐고 금년에 70만 가구가 더 증가한다면 이제 집값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관련 기사 : 주택 인·허가 폭증, 공급 과잉 우려)
이런 상황에서 건설 투자가 더 증가할 거라고 믿을 수는 없겠죠. 아마 정부는 공공 쪽의 건설을 늘리려고 하겠지만 정부 빚 역시 GDP의 40%를 넘어섰습니다.
1997년 외환 위기 때는 기업 부채가 문제였지만, 가계와 정부는 여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기업, 가계, 정부가 동시에 문제입니다. 지난번 말씀드린 도화선 가운데 하나만 불이 붙어도 경제위기는 현실이 되고 말 겁니다. 물론 정부는 다음 대선까지 어떻게 해서라도 폭발을 막으려고 할 겁니다. 정부가 부산하게 움직이는 이유가 거기에 있겠죠.
자신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판인데 국정 국사 교과서를 만들겠다는 박근혜 대통령, 그 효심 하나는 칭찬 받을 만합니다.
그래선지 역사 해석을 획일화하겠다는 발상에 환호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분위기가 경제 위기와 결합되면 파시즘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런 파국을 막을 수 있을까요? ㅡ정태인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소장
제자들 만류 뿌리친 최교수…‘성추문’ 오점만 남기고 퇴진 116 한겨레
박근혜 정부의 중·고등학교 국정 역사교과서 대표 집필진으로 선정됐다가 6일 자진사퇴한 최몽룡 서울대 명예교수가 임명 당일인 4일 오후 서울 영등포 여의도동 자택 거실에서 기자들과 마주 앉아 인터뷰를 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최 교수가 4일 오후 자택으로 취재하러 온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는 과정에서 여기자들이 성적 수치심을 느낄 수 있는 발언과 행동을 했다”고 6일 보도했다. 현소은 기자 soni@hani.co.kr
최몽룡, 대표필진 이틀만에 자진사퇴
국정 역사교과서 대표 집필진에서 6일 사퇴한 최몽룡(69) 서울대 명예교수는 지난 4일 집필진에 선정된 뒤 “산골 도사가 개울 있는 속세 나온 기분”이라며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은퇴한 지 8년 만에 세상에 다시 나온 ‘노학자’는 성추문으로 물의를 일으키면서 세상에 나온 지 이틀 만에 ‘산골’로 돌아가게 됐다.
“나라에서 하는 건 믿어야 된다.” 국사편찬위원회(국편)가 중·고등학교 국정 역사교과서 대표 집필자로 최 교수를 선정한 4일 오후, 최 교수는 서울 여의도 자택에서 기자들을 만나 “정부 쪽에 맡기면 (교과서가) 참 잘 나온다. 총리까지 나와서 국정 교과서가 문제없다고 얘기했으면 국가를 믿어야 한다”며 국정 교과서 편찬 작업에 대한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이날 <한겨레>가 자택을 찾아갔을 때, 최 교수는 편안한 복장을 한 채로 제자들과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맥주 세 병이 놓여 있는 탁자에 앉아 취재진을 맞은 최 교수는 “오늘 아침에 (국편 기자회견에) 나가려고 양복까지 다 갖춰 입었는데 아침 8시께부터 제자들이 또 와서 만류했다”고 했다. 그는 “어젯밤 12시께부터 40여명의 전국에 있는 역사학 교수들이 (기자회견에) 나가지 말라고 연락이 왔다. (연락 온 사람들 가운데) 국정화를 반대하는 이도 있는데 죄다 나가지 말라고 하더라”고 밝히며 제자·동료들의 만류에 못 이겨 자신을 데리러 온 국편 직원을 되돌려 보낸 사실도 전했다. 그 대신 기자들과 마주 앉아 그동안 자신이 집필에 참여했던 역사교과서를 보여주며 앞으로 어떻게 집필할지에 대한 계획을 펼쳐 보였다.
자택서 기자들과 인터뷰 맥주·포도주 비우며 식사도
여기자 2명 마지막까지 남아 성추행 의혹 불거지자 ‘사의’
최 “외모 칭찬…성희롱 의도 없어”해당기자·신문사 찾아가 사과
최 교수는 이날 자택에서 <한겨레>를 포함해 일간지·방송 등 10여개 매체 취재진과 거실에 앉아 인터뷰를 했다. 맥주를 마시던 최 교수는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포도주 한 병을 비웠다. 인터뷰 중간에 식사도 하면서 그는 저녁 늦게까지 인터뷰를 이어갔다. 최 교수는 6일 그날 상황을 묻는 <한겨레>와의 전화통화에서 “보드카(도) 나만 조금 먹었다. 우리 다 나누니까 넉 잔 됐잖아”라고 했다. 최 교수의 말을 종합하면 이날 여러 매체 기자들이 자택을 드나들며 인터뷰가 이어졌으며 <조선일보> <중앙일보> 여기자가 마지막으로 자택에 남았다.
그러나 6일 <조선일보>를 통해 성추문 의혹이 불거지자 최 교수는 직접적인 답변은 피한 채 대표 집필진에서 사퇴했다. 보도가 전해진 이날 오전 자택을 나선 최 교수는 국편을 찾아가 김정배 위원장에게 사퇴 의사를 밝히고 <조선일보> 편집국을 찾아가 해당 기자와 편집국장에게 사과의 뜻을 전한 뒤 다시 자택으로 돌아왔다. 앞서 국편 쪽의 사퇴 압박이나 종용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대해 “난 뭐 그렇게 별로 잘못했다고 생각진 않는데 여하튼 상황이 그렇게 돼 미안하다”고 말했다. 이날 사퇴 의사를 밝힌 뒤 자택으로 들어가던 최 교수는 사퇴 이유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여러 군데를 보고 돌다가 생각을 해보니 내가 걸림돌이 될 것 같았다”고 밝혔다.
최 교수는 노태우 정부 때 처음 고등학교 국정 교과서 집필에 참여했으며, 이후 2011년까지 사용된 마지막 국정 교과서까지 고대사 집필을 맡았다. 7차 교육과정에 따라 2007년 편찬한 고교 역사 교과서에선 상고사(삼국시대 이전) 집필을 맡았다. 국편이 최 교수의 사퇴를 밝힌 이날 오후 그는 “(대표 집필진으로 선정된) 이틀 동안 고군분투하면서 나도 고민이 있었다. 대체 누굴 위해서 하는 건지, 어떻게 끌고 가야 하는 건지 (큰 고민 없이) 선뜻 주저 없이 허락한 거고, 그것도 제자들이 다 말린 것”이라며 집필진으로 선정된 뒤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후회도 내비쳤다. “그 친구들(제자) 생각이 옳았다. 큰 왕조가 오래 지속될 때는 충신이 많았다. 제자들 말을 더 잘 들을걸…. 지금 좀 아쉽지만 후회는 없다. 최선을 다했으니까 ‘사필귀정’이지.”
최몽룡 교수 “청와대 수석이 국정화 회견에 참여 종용” 115 한겨레
국정 역사교과서 대표 필진으로 초빙된 최몽룡(고고미술사학과) 서울대 명예교수가 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자택에서 교과서 집필 문제와 관련해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현정택 수석이 ‘술 마셨어도 나오는 게 좋다’ 전화”
“나는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의 ‘방패막이’라고 생각”
한국사 국정교과서 대표집필진으로 초빙된 최몽룡 서울대 명예교수가 4일 교육부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방침에 청와대가 직접 관여했다고 밝혔다고 가 5일 보도했다.
<노컷뉴스> 보도를 보면, 최 교수는 4일 오후 자신의 자택에서 현정택 청와대 정책조정 수석이 친구라면서 “청와대에서 (오전에) 전화가 왔다, (현 수석이 전화로) ‘기자들이 불만이 많아 몰려갈지 모른다’고 나한테 경고했다”며 “청와대에서 관여해…”라고 말끝을 흐렸다. 당시 최 교수는 국사편찬위원회 기자회견에 배석하기로 했지만, 제자들의 만류로 참석하지 못한 채 함께 술을 마시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는 현 수석과의 통화에서 제자들과 술을 많이 마셔 참석이 어렵다고 말했지만, 현 수석은 “술을 마셨어도 나와줬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고 전했다. 청와대가 사실상 최 교수에게 직접 국정화 추진 기자회견에 나서줄 것을 요청한 셈이다. 하루 전날인 3일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는 야당의 ‘국정화 반대’를 비판하며 “제대로 된 역사교과서를 만들기 위해선 독립성 보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이를 위해선 정치권이 ‘불간섭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최 교수는 또 본인이 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는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의 ‘방패막이’로 이용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대표집필진으로 초빙된 경위를 묻는 <노컷뉴스> 취재진의 질문에 “말이 대표지, 진짜는 근현대사를 다루는 사람들이 대표 집필진”이라며 “나를 끌어들여야 김 위원장이 산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어제(3일) (자신이 집필진으로 참여한다는 내용의) 기사가 나가서, 오늘(4일) 아침 김 위원장을 만나면 ‘물의를 일으켜 미안하다, 사표를 내겠다’고 말하려 했다”고 밝히고, “그런데 김 위원장이 ‘선생님, 아주 잘하셨다’면서 ‘위쪽 평가가 좋다’고 했다”고 전했다. 이어 “그 얘기를 듣는데 황당했다”며 “그냥 (난) ‘방패막이’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최 교수는 또 “나는 국사편찬위원회를 도와주려 한다”면서 “내가 어제와 오늘 모두 훌륭하게 다 막아줬으니 그 사람들이 고마워 해야지…”라고 언급했다.
최 교수가 자신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지목한 현정택 수석비서관은 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최 교수와) 아는 사이지만, 통화한 사실이 없다”며 청와대의 개입을 부인했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기자들의 질문에 "제가 알고 있는 바가 없다"고 말했다.
아래 내용은 5일 ‘김현정의 뉴스쇼’의 최몽룡 교수 인터뷰 내용 일부다.
◇ 김현정> (어제) 기자회견장에는 어떻게 안 나오셨습니까?
◆ 최몽룡> 저는 원래 가려고 했는데 제가 낄 자리가 아니라고 자꾸만 제자들이 만류해서 못 갔어요.
◇ 김현정> 제자들이 왜 막은 겁니까? 집까지 찾아가서.
◆ 최몽룡> 제가 좀 다칠까봐 ‘지금 가시면 안 된다’고 걱정을 많이 했어요. 난 제자들을 믿어요, 자식 같으니까. 다른 사람이 얘기하는 것보다는 제자들이 하는 얘기를 가만히 들어뒀다가 믿지요.
◇ 김현정> 아마 제자들은 ‘지금 국정화에 대한 반대여론이 이렇게 높고..’
◆ 최몽룡> 나는 이제 국정교과서 편이니까 국정교과서를 반대하는 검인정 교과서 쪽에서는 당연히 저를 욕할 수밖에 없죠. 사실 나는 그 얘기를 들을 때 학자들도 소신을 가져야 되겠다고 생각을 했었죠. 나중에 정권 바뀐다고 빼고 뭐하면 안 되잖아요. 소신껏 해야지, 자기가 원하는대로.
◇ 김현정> 교수님께서 가시고 계신 소신은 ‘지금의 검인정 교과서가 문제가 있다, 좌편향됐다’는 데 공감하시는 건가요?
◆ 최몽룡> 그렇게 따지지 말고 다 얘기가 다르고 그래. 그러니까 너무 한 사람의 말에 너무 국한시키지 말고….
◇ 김현정> 그러니까 한 사람의 의견에 매달리지 말아야 하는데, 지금 국정화는 한 가지로만 가자는 거 아닙니까?
◆ 최몽룡> 국정화라는 게 정부, 나라마다 다 생각들이 있으니까. 이제 황교안 총리식으로 하자면 검인정 교과서가 실패했다고 하니까 그걸 우리가 따지고 들 얘기는 아니잖아요.
◇ 김현정> 알겠습니다. 2017년까지 이 교과서를 쓰게 한다라는 게 정부의 계획인데.
◆ 최몽룡> 교과서를 쓰기 시작하면 한 2년은 걸리게 되어 있어요.
◇ 김현정> 그 물리적 시간은 가능하겠습니까?
◆ 최몽룡> 그거야 내가 아니라, 정부가 이제 다 알아서 하는 거지.
◇ 김현정> 아니, 교수님께서 쓰시는 거니까요.
◆ 최몽룡> 정부를 믿어야지. 정부를 믿고 국사편찬위원회를 믿으셔야지.
◇ 김현정> 믿으면 됩니까?
◆ 최몽룡> 이제까지 사립 쪽에만 계셔서 잘 일이 안 된 모양인데 정부 쪽을 믿으면 (교과서가) 잘 나와요.
◇ 김현정> 정부쪽을 믿으면 잘 나옵니까? 알겠습니다. 여기까지 말씀 듣겠습니다.
‘올바른 역사 교과서’, 성우회 작품이었나 116미디어오늘
퇴직 장성들 모임, 2013년 보고서에 첫 등장… 건국절 논리, 전교조 타깃 등 청와대 주장 판박이
퇴직 장성들의 모임 ‘성우회’는 2013년 2월26일 24주년 기념식 중 2013년 주요업무를 보고하는 자리에서 ‘범국민 국가정체성 및 안보교육 필요성’을 주장했다. 호국정신과 애국심을 고취하는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취지로, 이들은 2013년 1월 이 내용을 담은 친서를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에게 직접 보냈고 대통령 인수위에도 협조를 요청했다. 박 대통령이 교육부에 ‘역사교과서 제도 개선’을 지시한 것은 이로부터 1년 뒤인 2014년 2월이었다.
정부가 시민사회의 거센 저항에도 불구하고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하는 가운데, 국방부와 성우회 등 군 외곽단체들이 대국민 안보교육 강화 차원에서 이 흐름에 개입해 온 것으로 보인다.
‘올바른 역사교과서’, 국방부 용역보고서에 처음 등장
‘올바른 역사교과서’라는 프레임이 체계화되어 등장한 것은, ‘청소년 나라사랑 정신 함양을 위한 군의 협력방안 연구’라는 보고서에서다. 이 보고서는 국방부 정신전력과가 2013년 4월 성우안보전략연구원에 연구를 위탁한 것으로, 성우안보전략연구원은 성우회의 부설 연구기관이다. 성우회는 군의 최고위 계급 출신인 퇴직장성들의 모임으로 그 원형은 1965년 창립되었다가 80년에 해체된 ‘성우구락부’이며 1989년부터 성우회로 재건됐다. 89년 재건 당시 초대 회장은 백선엽이며, 현재 13대 회장인 김홍래(공군대장)가 이끌고 있다.
국방부와 성우회가 발간한 이 보고서의 연구목적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다양한 나라사랑교육 프로그램을 보다 효과적이고 체계적으로 진행하기 위해서 군이 협력해야할 방향을 제시”하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연구보고서의 내용 대부분은 현행 역사교과서의 문제점 및 개선방향에 대한 것이다. 즉 ‘6.25에 대한 편향 서술’ ‘건국 누락’ ‘천안함 46용사 누락’ 등 현재 정부가 주장하는 것과 거의 동일한 내용들이 제시되고 있다.
▲ 2013년 국방부가 성우회에 의뢰한 '청소년 나라사랑 정신 함양을 위한 군의 협력방안 연구'의 내용 일부
▲ '청소년 나라사랑 정신 함양을 위한 군의 협력방안 연구' 내용 일부
▲ '청소년 나라사랑 정신 함양을 위한 군의 협력방안 연구' 내용 일부
이 연구보고서를 국방부가 위탁하기 한달 전인 2013년 2월 26일에 열린 성우회 창립 24주년 기념식에선, 이 모임의 회원들인 퇴직 장성들에게 중요한 보고가 이뤄졌다. 성우회가 제시한 여러 추진과제들 중엔 ‘범국민 국가정체성 및 안보교육 필요성’과 ‘전교조 합법화한 통일교육지원법 즉각 폐지’가 들어있다. ‘안보정책자문위원회’부분에선 ‘국민 안보관 형성 위한 학교 및 사회교육체제 연구’가 과제로 제기됐다. 성우회는 앞선 두 과제를 포함해 6가지 주제와 관련해 당시 당선자 신분인 박근혜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낸 것으로 기념식장에서 밝히기도 했다.
고명승 당시 성우회장은 “한미연합사 해체와 전작권 환수의 전면 백지화를 포함하여 한미 핵 및 미사일 핵연료 재협상, 비상기획위원회의 부활, 청와대 안보실의 승격 및 보강, 전교조를 합법화한 통일 교육 지원법의 즉각 폐지, 사병 복무기간 단축의 오판, 국민 안보 통합 교육 시스템 개발 등 우리 성우회의 7대 핵심 안보정책 요구를 그동안 4차에 걸쳐서 박근혜 대통령님에게 진언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성우회가 전교조를 타겟으로 하는 이유 역시 교육 및 교과서 문제와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성우회가 2007년 발표한 ‘전교조 계기교육이 안보인식에 미친 영향과 대책’ 논문은 전교조의 성향과 관련해 “그들의 사회적 가치관은 전교조라는 안경을 끼고 보면 모든 것이 부정적이며, 안보교육은 반통일교육으로, 충효교육은 정권안보교육으로, 국정교과서는 지배계층의 체제순응교육으로, 경제는 분배 중심의 교육으로 보고 있다.”는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 전교조는 이로부터 여덟달 뒤인 10월 24일 법외노조 통보를 받았다.
이들 성우회의 추진과제들은 상당부분 ‘관철’됐는데, 정부 정책의 결정 과정에 성우회의 입김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는 정황이 최근 확인되고 있다. 지난달 8일 권은희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이 공개한, 원전반대그룹의 국방부 해킹 문건엔 성우회 관련 내용들이 포함돼 있다. 이 문건엔 2014년 초 성우회가 김관진 국방장관에게 전달한 ‘바라는 사항 몇가지’가 적시되어 있는데 ‘전작권 전환/연합사 해체 연기 재협상의 차질 없는 추진’ 항목에선 “이번 재협상 시는 전환시기를 못 박지 말고 북핵과 연계한 상황 조건에 의한 전환으로 협의해 주실 것으로 기대”한다는 내용이 있다. 실제 박근혜 정부는 그해 10월 미국과‘조건에 기초한 전작권 전환’에 합의했다. ‘조건에 기초한 전작권 전환’은 미국과의 합의 이전엔 명시적으로 드러난 바 없는 용어다.
청와대와 정권 핵심에 포진한 성우회
‘올바른 역사 교과서’ 등 성우회가 수행했던 용역 보고서의 내용이 고스란히 사용되고 있는 것은 청와대 요직들을 성우회 인사들이 차지한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 올해 2월 개최된 성우회 창립 26주년 기념행사. 사진=성우회 홈페이지.
성우회가 초중등 교과서에 대한 연구용역을 시작하기 직전인 2013년 3월 국정원장에 취임한 남재준은 육군 대장과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 육군참모총장을 거친 군 출신으로 성우회 멤버다. 비슷한 시기에 청와대 국가안보실장(2013.03 ~ 2014.05)과 NSC 상임위원장을 지낸 김장수는 육사 생도대장, 육군 참모총장, 국방부장관 을 거친 역시 성우회 멤버다. 세월호 참사로 물러난 김장수에 이어 국가안보실 실장직을 이어받은 김관진도 육국 출신으로 국방부장관을 지냈다. 박흥렬 대통령 경호실장은 육참 총장 출신이다.
이들 가운데 육사 25기(김장수 27기, 박흥렬 28기)인 남재준은 박근혜 대통령의 측근으로, 한나라당 당내 경선 이전부터 박 대통령의 자문역할을 했고 대선캠프에선 국방안보 분야 특보를 지냈다. 육군 출신인 남재준 씨의 국정원장 임명은 2001년 이후 처음으로 문민 임명 관행을 깬 것이며 당시 정치권에선 여당 의원에게조차 군사정권 시절로 돌아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또한 청와대 외교안보라인을 군 출신이 장악하면서 정보독점과 인사 개입에 대한 불만도 빈번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비서급에서도 서용석 정보융합비서관(육사 37기), 김희철 위기관리비서관(육사 37기), 연제욱 국방비서관(육사 38기)이 자리를 잡았다.
박 대통령과 성우회의 인연은 그 뿌리가 깊다. 박근혜 대통령이 1974년 이후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면서 군 고위 장성들과 교류가 있었고 이는 현재 성우회와의 각별한 관계로 이어진다.
성우회 고문인 강영훈은 5.16 쿠데타 당시 육군사관학교 교장을 역임하고 있었는데, 당시 육사 생도들의 군사반란 참여에 반대했으며 예편 후엔 연구를 위해 미국으로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러나 최근 기밀해제된 미국 프레이저 청문회 보고서에 따르면, 강영훈은 박동선이 지휘하는 미국내 ‘민간로비단체’ 일원이었고 연구소 설립에도 박정희의 자금이 들어간 것으로 기록돼 있다. 성우회 회장을 지낸 백선엽은 일제의 만주국 군관학교 출신으로 박정희의 선배이며 박정희가 여순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을 때 그를 석방시키는 데 혁혁한 기여를 한 인물이기도 하다. 2대 회장 유재흥은 일본 육사 출신으로 4.19를 전후해 퇴역했다가 1970년 박정희의 특별안보보좌관직으로 발탁되었고 이듬해 국방장관이 되었다. 1974년엔 당시 국내 대기업 외형순위 1위였던 유공 사장에 임명되는 등 박정희와 인연이 깊다.
성우회 12대 회장 고명승과 10대 부회장 나중배는 박정희가 아꼈던 하나회의 15기 멤버들이며, 4대 회장 민기식은 민주의 학도군사훈련단 장교였고 516 쿠데타 최고회의의 최고위원으로 박정희와 인연이 깊다. 2대 감사를 지낸 최세인은 1970년부터 육사교장을 거쳐 1야전군사령관으로 있으면서 박정희와 수시로 소통을 한 인물이다. 4대 감사 박세환은 베트남전 당시 ROTC 장학금을 모금하며 박정희로부터 300만원을 기증받았고, 15대 16대 국회의원을 거치며‘원조 친박’으로 통한다. 고문인 조남풍(현 재향군인회장)도 하나회 소속이며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캠프의 '안보전략부장'을 맡았다. 역시 하나회 멤버인 10대 회장 이종구를 비롯해 이 외에도 성우회 멤버들 중엔 박근혜 대통령과 직간접적으로 얽혀있는 인물들이 많다.
2008년 대선 이전의 박근혜 후보 지지모임인 ‘한강포럼’엔 성우회 출신 장성들이 부문 대표로 포진해 있었고, 박 대통령은 2012년말 대통령 당선 이전엔 성우회 창립 기념식에 직접 참석했고 당선 이후에도 매년 축전을 보내며 성우회를 챙겨왔다.
국방부, 교과서에 공공연하게 개입해 와
▲ 지난달 8일 권은희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이 공개한, 원전반대그룹의 국방부 해킹 문건엔 성우회 관련 내용들이 포함돼 있다.
성우회 만이 아니라, 국방부 역시 여러 물의를 빚으면서도 역사교과서에 개입해왔다.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인 2008년 6월 국방부는 교과부에 ‘고교 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개선 요구’라는 문건을 전달해 현행 교과서 중 25개 항목에 대해 수정을 요구했다. 전두환 정권(5공화국)이 ‘권력을 동원한 강압정치를 했다’는 부분을 ‘친북적 좌파의 활동을 차단하는 여러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로, 제주 4.3 항쟁과 관련한 ‘1947년 3·1절 기념식 뒤 시가행진을 하던 군중에게 경찰이 발포한 사건이 4·3 사건에 큰 영향을 주었다’라는 부분을 ‘공산당 조직이 배후에 있고 경찰 발포는 군중 투석에 따라 시작됐다’는 등으로, 박정희 정권에 대한 ‘헌법 위에 존재한 대통령’이라는 부분을 ‘민족의 근대화에 기여’등으로 바꾸라는 내용이었다. 당시 군의 교과서 개정 요구는 군사정권 이후 초유의 일로 물의를 빚었는데, 국방부의 개입은 2011년 8월에도 한차례 더 반복됐다.
2011년 국방부는 교육과학기술부에 ‘한국사 교과서 집필기준 개정에 대한 제안서’를 공식적으로 보냈는데 “‘대한민국 정통성’이라는 용어를 적시하지 않은 교과서가 6종 중 4종에 달하고, 우리 정부를 독재 정부로 비판하면서 북한 정권에 대해선 미화하고 있다” “‘지켜야 할 대상’인 대한민국과 ‘싸워야 할 대상’인 북한의 실체에 대한 인식의 혼란을 야기해 군의 정신전력을 이완시키고 군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저하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조갑제 전 월간조선 편집장에 의하면, 국방부는 당시 '고교 韓國史 교과서(현대사 분야) 왜곡·편향 기술 문제 바로잡기 제안 배경(全文)'이란 문서에서 “왜곡된 역사 교과서를 시정하기 위해서는 軍뿐만 아니라 국민 모두의 관심과 동참이 요구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같은 국방부의 요구는, 87년 6월 항쟁 이후 민군 분리와 문민우위의 원칙에 서 있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군이 초중등학교 학생들의 교육에 관여하는 것으로, 군의 정치적 중립을 명시한 헌법과 군인복무규율을 위반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성우회 뿐 아니라 국내최대의 군 외곽단체라는 재향군인회, 육사총동창회, ROTC중앙회 등이 공공연하게 교과서 국정화 문제에 개입하고 있는데, 이는 박근혜 정부의 방조에 의한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박 대통령은 지난 8월 7일 대한민국 ROTC 대표단을 청와대에 초청해 “지금 우리나라는 남과 북이 분단된 상태에서 혼재된 이념과 생각들이 부딪치고 있다”며 “이런 혼재된 생각들을 바로잡는 일은 바로 여기 계신 여러분께서 해주셔야 하는 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전쟁유공자와 제대군인 등에 대한 보상, 보훈선양 업무 등을 관장하는 국가보훈처도 올해 1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업무보고에서 ‘학교교육’과 관련해 “교육부의 통일교육 강화에 협업하여 초·중·고 교과서에 올바른 안보통일 교육내용 반영을 협조”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박근혜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강행은, 국정제 혹은 검정제와 같은 단순한 제도 문제로 바라볼 수 없는 깊은 뿌리를 갖고 있다. 국방부의 교과서 개입 논란은 2011년 이후 물밑으로 가라앉았으나, 국방부와 군 유관기관들의 움직임은 계속됐고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국정교과서 프레임들도 이들로부터 나온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긴급 담화, 지상파 3사 모두 거부했다 114 미디어오늘
“국정화 추진 강행, 정당한 반론권 거부… 방송이길 포기한 정권 나팔수
정부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방침을 확정 고시한 지난 3일 새정치민주연합이 KBS·MBC·SBS 지상파 3사에 ‘반론권’을 요청했지만 모두 거부당한 것으로 밝혀졌다. 오영식 새정치연합 언론홍보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은 4일 지상파 3사의 국정교과서 반론권 거부 관련 브리핑을 통해 “KBS·MBC·SBS 지상파 3사가 오늘 문재인 대표의 대국민담화를 생방송하지 않는다고 한다”며 “청와대 눈치 보기에 급급해 공영방송 운운하며 정당한 반론권 요구마저 거부한다면 앞으로 3사는 정권의 나팔수이지 방송이길 포기한 것으로 간주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오 위원장에 따르면 새정치연합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박근혜 정부가 강행한 역사교과서 국정화 관련 문재인 대표의 대국민 담화 발표를 앞두고 지상파 등 방송사에 생방송 요청 공문을 보냈지만 지상파 3사 모두가 이를 거절했다. 3사 모두 생중계 불가 이유에 대해 명확한 이유를 밝히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3일 MBC 뉴스데스크 갈무리
오 위원장은 “방송법 제6조 9항엔 ‘방송은 정부 또는 특정 집단의 정책 등을 공표함에 있어 의견이 다른 집단에게 균등한 기회가 제공되도록 노력해 하고, 또한 각 정치적 이해 당사자에 관한 프로그램을 편성함에 있어서도 균형성이 유지되도록 하여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며 정부·여당의 입장만을 방송하는 행위가 부당함을 주장했다.
오 위원장은 “2012년 대선 때 문재인·안철수 후보 단일화 토론회에 대해서 당시 박근혜 후보가 반론권을 요청해 똑같은 시간에 반론의 기회를 줬고, 2011년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에서도 반론권 차원에서 나경원 후보 단독방송이 1시간 확보됐다”면서 문재인 대표에게도 정부 발표에 상응하는 분량의 방송시간과 방송횟수를 보장해 달라고 거듭 요청했다. 하지만 이날 일부 종합편성·보도전문채널을 제외하곤 지상파 3사에선 문 대표의 담화를 생중계하지 않았다.
아울러 지난 3일 지상파 3사 모두 메인뉴스에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확정 고시에 대한 황교안 국무총리의 대국민 담화문을 보도하면서도 리포트 분량 대부분을 정부 일방의 발표를 전달하는 데에만 그쳤다.
그나마 SBS는 정부 담화와 함께, KBS는 별도 꼭지를 통해 국정화에 반대하는 시도 교육감 등의 입장을 전하긴 했지만 MBC는 야당의 국회 보이콧 소식을 전하면서도 “민생 발목 잡기로 비칠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고 지적했다. 3사 모두 황 총리 담화 내용에 대한 분석과 검증 보도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에 대해 오 위원장은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정부의 국정화 확정 고시 담화를 내보낸 뒤에 해설이나 논평을 통해 이 사안에 대한 반대 입장을 공정하게 다뤄야 하는데 지상파 3사는 대부분 정부 일방의 입장만을 내보냈다”며 “국정화 반대 여론이 국민 과반수인 상황에서 공영방송으로서 균형 있는 방송이라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오키나와의 ‘자기결정권’11.5 한겨레21
오나가 다케시
미군기지 이전을 둘러싼 아베 정권과 오키나와현의 싸움이 뜨겁다. 지난 10월26일,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미군 후텐마 비행장(현재 오키나와현 기노완시 소재)의 이전 대상지인 헤노코 주변 3구 대표를 총리 관저로 불러, 중앙정부 차원의 이전 지원금을 직접 전달한다고 통보했다. 또 이시이 게이치 국토교통상은 오키나와현의 오나가 다케시(翁長雄志) 지사(사진)가 내린 헤노코 매립 승인 취소 결정을 효력 정지했다고 밝혔다.
일련의 사태는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 중앙정부가 추진해온 후텐마 비행장 이전을 2013년 오키나와현이 승인했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오키나와현 지사에 새로 당선된 오나가는 전 지사의 승인 판단을 검증하는 전문가 위원회를 새로 열고, “매립법의 요건을 충족하지 않아 승인 절차의 하자가 인정된다”며 승인을 취소했다.
오나가 지사는 1950년 오키나와현 나하시에서 출생한 오키나와 토박이다. 아버지는 전 오키나와현 마와시촌(현재 마와시시) 촌장이고, 형은 오키나와현 부지사와 오키나와현 의원을 지냈다. 그 영향으로 자연스레 정치에 입문했으며, 1985년 나하시 의회 의원에 당선됐다. 이후 승승가도를 달려 1992년 오키나와현 의원으로 당선됐고, 2000년부터 2014년까지 무려 4차례에 걸쳐 나하시 시장을 역임했으며, 지난해 6월 오키나와현 지사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시장직에서 물러났다.
선거에서 오나가는 현민들의 명확한 의사를 확인했다. 여론조사에서 현민 7할이 미군기지 이전을 반대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를 대변한 오나가는 현민들의 지지는 물론, 자유민주당 소속 정치인임에도, 오키나와 미군 기지 철거를 주장하는 일본 공산당의 지지까지 등에 업었다.
지사 당선 즉시, 미군기지 이전 승인을 취소하라는 요청이 강했지만, 실제로는 약 1년이 걸렸다. 대화로 먼저 해결하고자 했던 오나가 지사가 지난여름 한 달간 진행된 정부와의 집중 협의에 응했기 때문이다. 그는 오키나와가 미군 통치하에서 겪은 고통의 역사를 호소했지만, 스가 관방장관은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혀 대화는 결렬됐다.
결국 오나가 지사는 지난 9월13일 후텐마 비행장 이전을 위한 매립 승인을 정식으로 취소했고, 기자회견을 통해 “앞으로도 헤노코에 새 기지를 만들지 않겠다는 공약을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 분명히 했다. 그 직후인 9월21일 오나가 지사는 일본 광역자치단체장으로서는 처음으로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연설했다. 그 자리에서 미-일 양국 정부가 현민 대부분의 반대를 무릅쓰고 강제 이전을 진행한 것에 대해 “오키나와 현민들의 자기결정권이 외면받는 현상에 전세계가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달라”고 호소했다.
오키나와현의 투쟁은 해군기지 설립을 반대하는 제주 강정마을의 그것과 닮아 있다. 다만 오나가 지사처럼 오키나와 현민들의 자기결정권을 지키려는 정치인이 제주에 있는지는 의문이다.
세상에 길들여지지 않으면서 세상에 깊숙하게 들어가기
'찰떡궁합' 새누리-보수 단체 "국정화 사생결단" 11.2 프레시안
확정 고시 하루 앞두고 회동…"애국 단체 희생으로 식민 시절 딛고 발전
역사 교과서 국정화 확정 고시를 하루 앞둔 2일, 새누리당은 보수 단체 모임인 '애국단체총연합회' 인사들과 연석회의를 열고 국정화 추진에 대한 양측의 의지를 모으며 든든한 동지애를 과시했다.
이 자리에서 김무성 대표는 "존경하는 이상훈 애국단체총연합회 상임대표 등 여러분 국회를 찾아주셔서 대단히 감사하다"면서 먼저 인사를 건넸다. 김 대표는 이어 "이게 일이 너무 늦은 것 같다"면서 "사실 저희한테 책임이 있다. 지난 12년 동안 (좌편향 검·인정 교과서를 그냥 두며) 과연 우리나라 교육부는 뭘 하고 있었는지 또 우리 정치권은 뭘 하고 있었는지 통탄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현재 좌파의 사슬을 우리가 도저히 깰 수 없기 때문에 검·인정 강화는 실현 불가능하다"면서 "우리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는 이것(국정화)을 제2의 건국 운동이란 이야기까지 나왔다"는 말도 했다.
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부정 여론의 점진 상승에도, 국정화 추진을 끝까지 진행할 것이란 강한 의지를 보수 단체들에 확인시킨 모습이다.
새누리당 역사 교과서 개선 특별위원장인 김을동 의원은 이 자리에 참석한 보수 단체들을 한국의 고도성장을 끌어낸 주역으로 추켜세웠다. 김 위원장은 "우리나라가 일제 강점기를 딛고 전 세계에 유례없는 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 경제를 뿌리내리고자 희생하셨던 애국단체총연합회 여러분의 애국 애족 정신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교육만큼 중요한 민생은 없다"고 강조한 후 "교과서 특위는 어떻게 대한민국 정통성과 가치를 바로잡을 수 있을지 애국단체총연합회 지혜를 모으고자 한다"고 이날 회의 배경을 설명했다. 두 새누리당 지도부의 이 같은 '환영' 일성에 이상훈 애국단체총연합회 상임대표는 '사생결단'을 소리 높여 외치며 교과서 국정화 측면 지원을 약속했다.
이 상임대표는 "저희는 오래전부터 '역사 교과서 바로 세우기 국민운동본부'를 발족해 활동해 왔다"면서 "그런데 이번에 정부-여당이 앞장서 이렇게 우리를 이끌어주시니 저희가 정말로 힘이 난다"고 말했다. 이 상임대표는 이어서 "앞으로 우리 단체는 사생결단"이라고 힘주어 말한 후 "반드시 이것(국정화)이 정부 원안대로, 또 우리 여당이 생각하는 대로 대한민국 정체성을 지키는 하나의 디딤돌로 생각해서 사생결단할 것을 여러분 앞에 맹세한다"고 말했다.
애국단체총연합회 소속으로 이날 김 대표와의 회동에 참석한 인사들의 소속 단체들은 세계한인기독교총연합회, 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합, 재향군인회, 무공수훈자회, 차세대바로세우기학부모연합, 청년대학생연합, 고엽제전우회, 대한민국사랑회, 대한민국애국시민연합, 대한민국불교도총연합, 역사바로알기국민운동, 자유총연맹 등이다.
새누리당의 이런 보수단체와의 '스킨십' 강화 일정은 이뿐이 아니었다.
이에 앞서 김무성 대표는 이날 오전 서울 서초구 고엽제회관 개관식을 방문해 "고엽제 전우 여러분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지 않을 수 없다"면서 "고엽제 전우회가 합당한 사회적 예우를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피해자 본인뿐만 아니라 이혼으로 가정이 풍비박산 나거나 2~3세까지 피해가 이어진 사례가 있으면 국가보훈처가 각별히 관심을 두고 다 책임져주겠다는 약속을 이 자리에서 해야 한다"고 해 청중들로부터 박수를 받기도 했다.
삶과 문화] 평가 권하는 사회 11,2 한국
내 인생에서 오디션 프로그램을 가장 열렬히 시청한 시기는 2010년 여름이 아닐까 싶다. 저 유명한 Mnet의 ‘슈퍼스타K 시즌 2’가 그것이다. 나는 원래 텔레비전은 거의 시청하지 않고 K팝에도 별 관심이 없는 인간이었다. 처음엔 우연이었다.
당시 나는 생후 50여일 쯤 된, 유난히 밤잠 없는 아기를 키우고 있었는데 밤 열한 시가 다 되어서야 간신히 아기를 재웠다. 한숨 돌리며 무의식적으로 리모컨을 눌렀을 때 마침 1회가 방송되고 있었다. 그 뒤로 나는 화요일부터 금요일 밤을 기다리는 사람이 됐다. 한번은, 요일을 착각하고는 목요일 밤에 설레는 마음으로 텔레비전 앞에 앉았다가 크게 실망한 적도 있었다. 그 무렵, 그 프로그램은 세상과 나를 연결시켜주는 생생하고 유일한 창구였는지도 모른다.
슈스케 시즌 2는 가요 오디션 프로그램의 붐을 주도했다고 할 만큼 화제를 끌었다. 실력이 뛰어난 참가자들이 유난히 많았다. 나 역시 출연자 한 명을 마음 속으로 정해두고 열심히 응원했다. 그가 생방송 무대에 진출하고 나서는 난생 처음 문자 투표라는 것도 해 보았다. 응원하던 출연자가 탈락한 후에도 금요일 밤을 기다리는 열망은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제는 더 객관적이고 차가운 시각으로 후보자들을 평가할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TV 앞에서 나는 가차 없이 품평했다. 일관성은 없었다. 저 참가자의 창법은 너무 대중적이며, 또 다른 참가자의 창법은 너무 비대중적이라는 식이었다. 전문심사위원들이 내가 옹호하는 참가자의 손을 들어주었을 땐 괜히 으쓱해졌고, 그와 반대일 땐 심사위원을 어떻게 뽑은 거냐며 화를 내기도 했다. 그러니까 오디션 프로그램 시청은 나에게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었던 게 분명하다.
TV 앞에서 내가 혼자 떠들어대는 소리를 아무도 듣지 않았지만 그런 것은 개의치 않았다. 애초부터 내 목적은 거기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다만 합법적으로, 내 마음 내키는 대로, 평가를 내릴 수 있는 어떤 대상을 찾고 있었던 것 같다. 현실에서의 내가 늘 타인의 평가를 받는 사람인 것과는 반대로 말이다. 작가로서 작품에 대해 받는 평가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슈스케1, 보이스코리아2' 등에 출연했다가 얼마전 생을 마감한 가수 김현지.
아기가 덜 먹고 덜 자는 게 모두 내 탓인 것만 같은 초보엄마의 정체성부터 이러다 영원히 일의 세계에 복귀하지 못할지 몰라 두려워하는 여성 직업인의 정체성까지 내 안에는 ‘내가 너무도 많았고’ 그 많은 ‘나들’은 언제나 타인의 시선 앞에 민감하게 솜털을 곤두세운 채 살아왔던 것이다. 혹시 그 피곤했던 자아들이 나만의 주관적인 잣대로 남을 평가하는 유사 심사위원 혹은 유사 면접관 노릇을 하면서 위안을 얻었던 게 아닌지, 지금에서야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어릴 때부터 사사건건 평가 받는 곳, 무수한 이력서를 내고서도 다만 심사자가 선택해주기만을 묵묵히 기다려야만 하는 수백 만 구직자 시대의 한국에서 각종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이 난립하는 건 기묘한 우연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 이유가 시청자들이 참가자에게 감정이입 해서라는 분석은 어쩌면 절반만 옳다. 꽤 많은 시청자들은 천신만고 끝에 생존하거나 아쉽게 탈락하는 참가자와 자신을 동일시하기보다 칼자루를 쥐고 있는 심사위원 쪽에 이입하는 편을 택한다. 실제로 개인이 던지는 한 표의 지지나 반대는 오디션 결과에 아무 영향도 끼치지 않음을 알면서도 말이다. 남을 마음껏 평가할 수 있는 그 드문 기회가 어떤 판타지와 닿아있음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말이다.
얼마 전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가했던 젊은 가수가 자살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그가 노래하던 모습을 스치듯 봤던 게 떠올랐다. 그때 내가 뭐라고 했던가?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이 평가 권하는 시대, 가슴 속에 박힌 미묘한 죄책감은 쉽게 사라질 것 같지 않다.-정이현 소설가
김무성 거짓말이 국정교과서 발목 잡는다 11.2 미디어오늘
해명할수록 더 부각되는 부친의 친일 행적… ‘국정교과서=친일미화’ 프레임에 힘실어, 지지율도 ‘출렁’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부친 친일 의혹’의 늪에 빠졌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부친의 친일 의혹에 대해 적극적인 반박과 해명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김 대표가 해명을 할수록 추가적인 증거들이 제시되면서 친일 의혹이 더 거세지는, 늪에 빠지는 모양새다. 김 대표의 부친인 김용주 전 전남방직 회장의 친일 논란은 예전부터 있었다. 지난 8월 김용주 평전이 출간된 이후 9월 민족문제연구소가 김 전 회장을 친일 인사로 지목했고, 당시 김 대표는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최근 김 대표는 적극적으로 부친의 친일 의혹을 돌파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경북 포항의 영흥초등학교를 방문한 것이 대표 사례다. 영흥초등학교는 김용주 전 회장이 1936년 포항영흥학교를 인수해 신축한 학교다. 김 대표는 영흥초를 찾아 “요새 좌파에게 아버지가 친일파로 매도당하는데 내가 정치를 안 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이다. 자식된 도리로 마음이 아프다”며 “족의 비극을 정쟁으로 과장·왜곡해 비판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말했다. 부친에 대한 친일 의혹을 정쟁으로 규정한 것이다.
영흥초 방문이 급작스럽게 정해진 것으로 알려지면서 김 대표가 부친의 친일 의혹에 적극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김 대표는 영흥초에 도착해 부친 김용주전 회장의 흉상 앞에서 헌화했다.
김 대표는 이날 김용주 흉상 밑에 김용주 평전 ‘강을 건너는 산’과 부친의 친일 의혹을 해명하는 자료집을 올려뒀다. 이는 김 대표는 지난 26일 같은 책과 자료를 국회 출입기자들에게 배포했다. 이 자료에는 김용주 전 회장의 애국 활동 사례가 첨부돼 있다. 김 대표는 전날인 25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선친에게 왜 안중근 윤봉길 의사처럼 하지 않았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지만 친일을 한 건 아니다”며 부친이 몰래 독립군에 활동자금을 줬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 대표의 적극적인 해명은 오히려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우선 김 대표 측이 제공한 자료에는 민족문제연구소 등이 제기한 친일 관련 자료들은 쏙 빼놓은 채 유리한 자료만 골라 제시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예컨대 민족문제연구소는 지난 9월 17일 김용주 전 회장이 “자식이 야스쿠니 신사에 신으로 받들어 모셔질 영광을 인식하자”며 일제의 징병제에 찬동하는 발언을 했다고 폭로했으나 김 대표 측은 이에 대해 해명하지 않았다.
관련 기사 : <“아버지 친일 안 했다” 김무성 해명 자료보니…>
추가적인 친일 발언도 공개됐다. CBS 노컷뉴스는 1일 단독보도를 통해 김 전 회장이 1961년 의회에서 일본을 두둔하는 발언을 해 친일 비판을 받았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당시 참의원의 민주당 소속 초선 의원이었던 김 전 회장은 일본경제시찰단의 환영회장을 맡았었고, 반일 감정이 거센 상황에서 왜 일본 경제인을 초청했는지 의혹을 사 이를 해명키 위해 신상 발언을 했다.
관련기사 : <김무성 아버지 김용주, 국회에서 노골적인 친일발언>
이 자리에서 김 전 회장은 재일 교포에 대해 “일본에 가 있는 사람들이 (한국에서) 생활을 못해서 일본으로 건너가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당시는 일본이 재일교포의 국적을 박탈하고 강제퇴거를 추진해 한일회담이 공전을 거듭 중이었고 한국 정부는 “강제로 일본에 끌려간 특수성을 인정받아야한다”며 일본을 압박하던 상황이었다.
김 전 회장의 발언은 재일교포가 ‘자발적 이민자’라는 뜻으로, 일본 정부의 입장에 선 발언이라는 비판이 일었다. 김 전 회장은 또한 1959년부터 진행된 재일한인의 북한 송환에 대해서도 “이것도 일본 국민의 감정을 악화시킨 그 결과로서 이러한 사태가 진전된 것”이라며 원인을 한인들에게 돌렸다.
김 의원의 발언은 많은 공분을 샀고, 조선일보는 1961년 1월 25일자 조간1면 기사 <해명은 안 하고 친일설교>에서 “김 의원이 신상발언에서 극히 친일적인 언사를 했기 때문에 야단법석이 일어났다”고 밝혔다.
▲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포커스뉴스
이처럼 김무성 대표가 부친의 친일 의혹을 적극적으로 반박하고 해명하면서 언론과 학계에서 거듭 추가적인 근거를 제공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벌어질 ‘거짓말 해명’도 논란을 가중시킬 것이다. 김 대표는 “부친이 비밀리에 독립군 자금을 댔다”고 주장했으나 그 근거는 “어릴 적 아버지에게 들었다”는 것뿐이다. 반면 김 전 회장이 친일 인사라는 근거는 여기저기서 쏟아지고 있다.
더욱이 김 대표의 이런 행보는 국정화 여론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다. 야당과 시민사회단체들은 국정교과서가 친일‧독재 미화 교과서가 될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김무성 대표의 부친이 친일 행위를 했다는 논란에 휩싸일수록 정부여당이 친일‧독재를 미화하기 위해 교과서 국정화를 밀어붙인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꼴이 되는 셈이다.
이는 대선주자인 김 대표의 지지율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인이다. 리얼미터의 10월 5주차 주간집계에 따르면 김 대표의 지지율은 1주일 전 대비 1.6%p 오른 22.5%로 3주 연속 상승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행보를 공세적으로 이어나간 결과 보수층이 결집한 효과다. 하지만 리얼미터는 “선친의 친일행적 논란에 전면적으로 반박에 나섰던 주 중후반부터는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김영록 새정치민주연합 수석대변인은 2일 오전 현안 브리핑에서 “김무성 대표가 1961년 의회에서 버젓이 친일 발언을 한 부친을 이번에는 또 어떤 변명으로 궤변을 늘어놓을지 궁금하다”며 “김무성 대표는 부친의 친일 반민족 행위에 대해 더 이상 억지 변명하지 말고 역사와 국민 앞에 진심으로 사과하고 반성하기 바란다”고 지적했다. 김 대표가 대선주자로서 해명해야할 의혹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한편 보수진영에서는 야권의 공세에 ‘친일 물타기’로 대응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29일 오후부터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의 부친과 주요 야권 인사들의 부친이 친일 전력자라는 내용의 카카오톡 메시지가 유포되고 있다. 새정치연합은 “허위사실 유포의 배후를 찾아내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은 10월 28일 오전 SNS에 남긴 글에서 “문재인 대표가 김무성 대표 부친인 김용주 선생을 친일로 모는 건 전형적인 제 얼굴에 침뱉기”라며 “김용주 선생은 현 새정련의 뿌리인 민주당(1960년 장면 민주당 시절) 원내총무(현 원내대표) 출신이다. 김용주 선생이 친일파이면 새정련은 친일파 정당의 후예가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향사설] 박근혜·김무성·황우여·황교안·김정배, 똑똑히 기억하겠다 11.3
박근혜 정권이 기어코 역사교과서 국정화 방침을 확정했다. 민주주의와 헌법을 상대로 테러하는 격이다. 박 정권은 헌법도 민주주의도, 다수 국민의 반대도 다 외면했다. 유엔과 국제교사단체 등 국제사회의 충고도 묵살했다. ‘북한과 나치 독일, 일본 군국주의 따라 하기’란 비판이 나와도 들은 체하지 않는다. 이로써 한국의 역사와 역사 교육은 1973년 유신 체제로 회귀하게 됐다. 유신 당시 박정희 정권은 국회를 해산하고 계엄령을 선포해 국민을 찍어눌렀다. 이번에 박 정권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정권의 망동을 막을 장치가 없는 국가를 민주주의라 부를 순 없다. 박 정권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 과정은 거짓과 왜곡, 날조와 억지, 그리고 불통으로 점철돼 있다.
황교안 총리가 어제 발표한 대국민담화문도 이를 말해준다. 그는 담화에서 현행 교과서가 6·25에 대해 남북의 공동 책임을 묻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나 이는 완전한 날조다. 모든 검정교과서가 북한이 침략해 내려왔다고 기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 정부가 국가 정통성이 있는 것처럼 왜곡했다는 주장도 심각한 왜곡이다. 8종 검정교과서 모두 북한의 1인 독재 및 3대 세습 체제를 비판하고 존중받아야 할 인민들이 굶고 있다고 쓴 것을 언급하지 않았다.
또한 검인정교과서들이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의 의미를 깎아내리고 있다는 그의 지적은 정부 수립을 건국으로 바꿔야 한다는 뉴라이트의 주장과 맥이 닿아 있다. 이는 3·1운동과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위험한 얘기가 된다. 그렇다면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외면하는 북한을 따라가겠다는 말인가.
황 총리가 지적한 역사 편향 사례들이 교과서에 없다는 점은 언론과 학계가 이미 수없이 확인한 바 있다. 판단이 아니라 사실에 관한 문제인 것이다. 그럼에도 사실을 날조하면서 이를 국정화의 명분으로 삼고 있으니 황당하다. 미래의 기둥인 학생들을 획일적이고 무비판적인 로봇으로 만들려고 작정하지 않은 바에야 이럴 수 없다. 황 총리 지적대로 천안함 사건을 다루지 않은 교과서도 있다. 그러나 교육부는 집필 기준에서 이 사건을 다루라고 명시하지 않았다. 또 검정 심사 때도 지적하지 않고 통과시켜놓고 지금 와서 안 다뤘다고 비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황 총리는 뉴라이트가 만든 교학사 교과서를 소위 ‘올바른 교과서’로 지목했다. 일제의 쌀 수탈을 쌀 수출로 미화하고 친일기업가의 활동을 독립운동으로 덧칠한 교과서를 올바르다고 한다면 향후 국정교과서의 방향과 내용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황 총리는 국정교과서의 친일·독재 미화 우려에 대해 “성숙한 우리 사회가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둘러댔다. 하지만 ‘성숙한 시민사회’의 강력 반대 의견을 묵살하고 국정화를 강행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다. 시민사회가 필요로 할 때는 외면하면서 자신들이 필요할 때만 ‘시민사회 팔이’를 하는 자가당착적 행태이다. 황 총리는 담화에서 국정화를 역사교육정상화로 표현했다. 역사교육은커녕 온 나라를 비정상적 갈등과 분열로 몰고 가면서 할 말이 아니다.
정부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정치 공작하듯이 밀실에 숨어서 진행해왔다. 비밀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하다 발각되자 “정상적인 업무”라고 억지를 부리고, “아이들이 주체사상을 배운다” “유관순 누나가 교과서에 없다”는 거짓 주장을 태연히 광고로 내보냈다. 사실이 아니라고 아무리 얘기해도 귀 막고 눈감은 채 역사 역주행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이 모든 사태의 책임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있다. 우리는 민주주의와 헌법을 부정하는 박 대통령의 행각을 똑똑히 기록하고 기억할 것이다. 대통령의 심각한 일탈을 지적하지 않고 일신의 영달을 위해 호위무사를 자처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지록위마(指鹿爲馬)로 시민을 속이는 데 앞장선 황교안 국무총리, 황우여 교육부총리,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은 역사를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
30만명 의견 반나절 만에 정리 헌재결정문마저 입맛대로 해석 114 오마이뉴스
[분석] 교육부, 행정예고 기간 수렴 의견 반대 많아도 '찬성' 수용
▲ 황우여 "사회적 혼란 막기 위해 역사교과서 발행 결정"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역사 교과서 국정 전환 확정을 발표하고 있다. 현행 역사교과서의 검정 발행 제도로는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다"며 "더 이상 역사교과서로 인한 사회적 혼란을 막고 역사교육을 정상화하여 국민통합을 이루기 위해 국가의 책임으로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발행하기로 결정했다"고 입장을 밝혔다. ⓒ 유성호
중·고등학교 교과용도서 국검인정 구분(안)의 취지와 내용을 국민에게 미리 알려 의견을 듣고자 행정절차법 제46조에 따라 붙임과 같이 공고합니다. - 교육부 공고 제2015-216호
지난 10월 12일 교육부 홈페이지에 올라온 중·고등학교 교과용도서 국검인정 구분(안) 행정예고 공고 내용 중 일부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전환 계획을 '국민에게 미리 알려 의견을 듣고자' 진행한 이 행정 예고는 2일 자정 마감됐다. 그리고 11시간 뒤, 교육부는 반나절이 채 지나지 않은 3일 오전 11시 국정화로 전환된 역사교과서 발행 체제 확정 고시를 발표했다. 5일 예정으로 알려진 것보다 이틀 앞선 시점이다.
이어 오후 3시께 올라온 행정예고 의견 검토 결과와 의견 수합 내용에는 다소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찬성 의견 제출자에 비해 반대 의견 제출자가 약 3만6000명(익명의 의견 수 제외) 더 많았지만, 교육부는 찬성 의견만 수용했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의 판례를 해석한 부분도 기존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해온 측의 주장과 사뭇 달랐다.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 10월 12일 역사교과서 발행 체제 행정예고 발표 당시 "각계 각층의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교육부의 행정 예고 과정과 관련 발표 자료를 통해 교육부가 국민의 의견 가운데 언제, 무엇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짚어 본다.
[시간] 국민 전체 의견 분석·정리에 반나절도 안 쓴 교육부
"관보 문제를 해결했고, 행정 예고 기간 충분히 의견 검토해 왔다."
"늦게 들어온 건 새벽까지 직원들이 맞추면 조속히 매듭을 짓는 게 옳다는 판단을 했다."
황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갑자기 확정 고시를 발표하게 된 이유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교육부가 밝힌 전체 의견 제출자 수가 총 33만5670명(익명 또는 주소가 불명확한 이 제외)이다. 33만여 명의 국민 전체 의견을 수렴하고 정리하는 데 반나절이 채 걸리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이날 김동원 교육부 학교정책실장은 "전날뿐 아니라 그 전부터 상당히 많은 양의 의견서가 들어왔다"고 밝혔다. 이준식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저지 네트워크 위원장은 "관보 규정을 무리하게 어기면서 일을 추진한 이유는 반대 여론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일단 추진하고 보자는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수용] 반대가 3만6000건 더 많지만, 찬성만 '오케이'
▲ 중등 역사(한국사) 구분 고시 행정예고 의견 수합 현황. 찬성, 반대 총 제출 인원. ⓒ 교육부 자료 갈무리
교육부가 행정예고를 통해 접수한 국정 교과서 찬반 의견은 찬성 14만9816명, 반대 18만5854명으로 반대가 3만6천명 이상 많았다. 익명의 의견 또는 주소 및 전화 번호가 불명확한 의견을 포함할 경우 찬성과 반대의 격차는 16만8270명으로 더 벌어진다. 하지만 교육부는 찬성의 의견만 수용했다. 그 이유를 밝힌 검토 결과서에서는 그간 교육부가 국정 교과서를 추진하며 주장해온 바와 계획이 반복 제시돼 있었다.
김동원 교육부 학교정책실장은 질의 응답을 통해 "반대 의견이 있는 부분 중 정당한 부분은 반영했다"고 밝혔지만, 실제 제시된 교육부의 의견 검토 내용에는 반대 의견을 반영한 부분이 제대로 제시돼 있지 않았다.
교육부가 밝힌 의견 검토서는 찬성 의견 수용 이유에 대해 "올바른 국가관과 균형 잡힌 역사 인식을 키울 수 있도록 중등 역사교과서를 국정 도서로 전환한다"며 이유라기보다는 기존에 밝혀왔던 교육부의 주장을 반복 제시했다.
반대로 반대 의견에 대해선 "친일 미화, 역사 왜곡은 있을 수 없는 일", "학계의 통설과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다양성을 보장하겠다"는 등 역시 이유 대신 교육부의 계획과 반박을 적었다.
이에 대해 이 위원장은 "행정절차법을 보면 행정예고 후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의견을 존중해서 처리해야 한다고 돼 있다"면서 "반대 의견이 더 많다면 교육부가 반대 의견을 반영해 정책을 수정하든 폐기하든 해야 하는 건데, 교육부가 행정절차법을 무시했다는 이야기다"라고 지적했다.
▲ 중·고등학교 교과용도서 국검인정 구분(안) 행정예고 의견 검토결과. ⓒ 교육부
[해석] 헌법재판소 결정을 바라보는 두 개의 눈
한편, 교육부는 의견 검토서에서 반대 의견이 제시한 '국정 교과서가 헌법적 가치를 훼손할 우려가 있다'는 주장에 헌법재판소 결정 '89헌마88'을 근거로 들어 반박했다. 황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도 3일 국정화 전환 브리핑에서 "헌법 가치 기준에 합당한, 나라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부여하는 교과서로 현재 (교과서는) 미흡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교육의 헌법적 가치를 강조한 바 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이 '89헌마88'는 그간 국정 교과서를 반대한 이들이 '국정 교과서는 헌법 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제시한 결정문과 동일한 것이라는 점이다. 교육부와 반대 의견을 낸 시민들의 헌법적 해석 차는 왜 발생했을까. 실제 교육부가 의견 검토서에서 제시한 결정문 내용을 옮겨와 본다.
'국정 제도가 바람직한지 여부는 헌법이 지향하고 있는 교육이념과 국내외의 제반 교육여건, 특히 남북 긴장관계가 아직도 지속되고 있는 현실 여건 등에 비추어 교과서 종류에 따라 구체적·개별적으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실제 헌법재판소 결정문을 보면 교육부가 발췌한 내용에 추가 설명이 뒤따른다. 아래는 교육부가 발췌 과정에서 생략한 내용이다.
'예컨대 특정과목 교과서의 저작·발행에 비용은 많이 드는 반면 수요는 적어 어느 누구도 그러한 교과서를 집필·발행하려고 하지 않는 경우라든지 사인에게 맡기는 경우 그에 관한 연구가 충실하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높은 경우(예컨대, 현재 중학교 1종 교과서로 되어 있는 가정, 농업, 공업, 상업, 수산업, 가사)가 그에 해당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정이 인정되는 경우 이외에는 국정제도 보다는 검·인정제도를, 검·인정제도 보다는 자유발행제를 채택하는 것이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고 있는 헌법의 이념을 고양하고 아울러 교육의 질을 제고할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국정제도를 채택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교과내용의 다양성과 학생들의 지식습득의 폭을 넓혀주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의 교과서만 고집할 필요는 없을 것이고, 교과서의 내용에도 학설의 대립이 있고, 어느 한쪽의 학설을 택하는 데 문제점이 있는 경우, 예컨대 국사의 경우 어떤 학설이 옳다고 확정할 수 없고 다양한 견해가 나름대로 설득력을 지니고 있는 경우에는 다양한 견해를 소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할 것이다.'
똑같은 헌재 결정문을 두고 교육부와 국정화 반대 시민들의 의견이 분분한 것에 대해 이준식 위원장은 "(관련 결정문에 대해) 여러 법률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했는데, 헌재 결정문 핵심 내용은 국정제가 헌법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면서 "정부가 헌법재판소 결정마저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듯하다"고 말했다.
역사는 권력의 전리품이 아닙니다
정부가 교과서 국정화 확정 고시를 발표한 3일 오후 서울 강동구 선사고등학교 2학년 4반 학생들이 제86회 ‘학생의 날’ 기념행사로 열린 ‘학급별 학생선언문 쓰기 행사’에서 손도장을 찍어 태극기를 그리고, 그 위에 ‘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을 담은 선언문을 쓰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박근혜는 역사의 죄인” 구호에 “영장없이 체포하겠다” 113 미
정부청사 앞 국정 교과서 반대 밤샘 농성, “역사교육 죽었다… 대통령이 교육 개입, 위헌적”
3일 오전 11시 황교안 국무총리가 역사교과서 국정화 확정고시를 발표한 서울정부종합청사 앞에는 국정화 고시에 찬성, 반대하는 시민들이 각각 모였다.
국정화를 강행에 항의하는 시민들은 전날인 2일 오후 9시경부터 정부종합청사 앞에 모여 ‘국정화 반대 밤샘 시위’를 진행했고, 이날 오전 국정화 반대 기자회견은 노동당·퇴직교원·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국정화저지네트워크) 순으로 진행됐다. 한쪽에서는 국정화를 찬성하는 단체들이 기자회견을 진행해 국정화 고시에 대해 환영하는 뜻을 밝혔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 이후 ‘가만히 있으라’ 침묵시위를 제안했던 대학생 용혜인씨는 지난 2일 오후 국정화 확정고시를 하루 앞두고 자신의 SNS와 문자메시지를 통해 “정부종합청사 앞으로 모여달라”며 “밤샘시위를 벌이자”고 제안했다. 3일 오전 용씨는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9시30분에 15명이 모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80여명이 함께 밤을 샜다”고 말했다.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 소속 회원들이 3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앞에서 정부의 국정화 강행을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용씨는 “박근혜정부는 출범한 이후 단 한번도 물러선 적이 없다. 304명을 구할 수 있었음에도 구하지 못했을 때, 그래서 유가족들이 1년이 넘도록 길바닥을 전전하고 있을 때도 양보하지 않았다”며 “역사를 관리하겠다는 정부에 반대했다는 사람들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역사에 남기기 위해서라도 무언가를 해야한다”고 밝혔다.
밤을 샌 시민들 중에는 노동당원들도 있었다. 이들은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수십만건의 국정화 반대 서명이 진행되고 청계광장에 반대 목소리가 가득 차 있는데 박근혜 정부는 여론 수렴기간이 끝난다며 확정고시만을 들먹이고 있다”며 “불통 정부는 다음표적으로 노동개혁을 지목했다”고 비판했다. 국정화저지네트워크에 따르면 반대서명한 시민은 교사 2만7000여명, 교수 3000여명 등 약 50만 명에 이른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아랍 카타르 민영방송사인 알자지라가 취재하는 등 외신도 큰 관심을 보였다.
아랍권의 대표 방송사 알자지라 취재진(서울특파원 Harry Fawcett)이 3일 오전 11시경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규탄하는 시민사회단체의 기자회견을 취재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노동당은 기자회견을 마치고 정부종합청사를 향해 “국정화 강행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리겠다”며 ‘박근혜 퇴진하라’, ‘역사의 죄인이다’ 등의 구호를 외쳤고, 수십명에 경찰에 둘러싸이기도 했다. 종로경찰서 경비과장은 구호를 외치는 것에 대해 “불법시위”라며 해산명령을 내렸고, “해산하지 않을 경우 영장없이 체포하겠다”고 경고했다.
황 총리가 국정화 확정고시를 발표한 오전 11시 초·중·고 퇴직교원 656명이 국정화의 뜻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지난 1998년 서울 상계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은퇴한 윤한탁씨는 “1970년대 유신독재 교육 당시 내가 교지를 만들었는데 ‘박근혜 영애’라고 쓰지 않고 ‘박근혜’라고 썼다고 교장이 교지를 폐기했던 무서운 시기였다”며 “교과서 국정화는 학교현장에서 ‘교장독재’를 가능하게 하려는 시도”라고 비판했다. 이어 “은퇴하고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우리가 바라던 민주사회가 오지 않고 있어서 답답한 마음에 이 자리에 섰다”고 덧붙였다.
지난 1999년 서울 중화고등학교에서 국어교사로 은퇴한 김귀식씨는 “4·19 의거를 계승한 것이 헌법정신인데, 이런 4·19를 박정희가 군대 몰고 와 뒤엎었다”며 “오늘날 이 현실은 일제의 재탕이요, 유신의 재탕”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독립·민주화운동 단체, 교육·학술단체, 학부모·청년·여성단체 등 전국 470여개 단체가 모인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가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 박석운 공동대표는 “지난해 (보건복지부) 의료 영리화 입법예고때 이메일, 팩스, 우편 접수를 다 열어놔 200만명의 국민이 반대 의견을 보냈는데 이번에 교육부는 이메일 접수를 닫아놓고 지난 2일에는 팩스도 꺼놨다”며 “국민들의 반대의견이 객관화되는 것을 막기 위한 꼼수”라고 비판했다.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 소속 회원들이 3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앞에서 정부의 국정화 강행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헌법 가치에 어긋난다는 의견도 나왔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사무처장인 송상규 변호사는 “지난 2일 변호사들과 법학교수 605명이 국정교과서가 위헌적이라는 취지의 반대의견을 제출했는데 하루 만에 확정고시를 발표했는데 우리 의견을 검토했는지 의문”이라며 “헌법 제31조에 따르면 교육제도는 국회에서 법률로 정하도록 돼 있는데 대통령과 교육부 장관이 진행하고 있어 위헌적”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송 변호사는 “특히 헌법 제31조 4항에서는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며 교육이 특정한 정치적 세력 즉 대통령이나 행정관료들에 의해 좌지우지되면 안 된다고 했다”며 “법률가들도 TF를 만들어서 헌법소원 등 법적으로 가능한 조치들로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이외에도 녹색당, 참여연대,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대한의사학회, 다양한 단체도 성명을 통해 국정화 반대의 뜻을 알렸다. 성신여대 학생회는 서울 파이낸스빌딩 앞에서 박근혜 정부의 국정화 강행과 노동개혁에 반대하는 집회를 이어갈 예정이고, 3일 오후 같은 곳에서 시민들이 모여 국정교과서 추진 저지 결의대회를 진행할 예정이다.
한편 국정화 반대 기자회견 진행 공간 옆에서 아스팔트네트워크, 종북좌익척결단 등이 기자회견을 열어 “친북좌편향적 국사교과서를 정상화하기 위한 국정화 행정고시를 환영한다”며 “미래세대의 두뇌에 독극물을 심어준다는 평가까지 나오는 현행 교과서는 역사교육계에서 자율적으로 교정할 능력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찬성하는 보수단체들도 3일 오전 정부 세종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다른 한쪽에서는 자유청년연합 등 보수성향의 단체가 기자회견을 열어 국정화 반대집회를 중심으로 양쪽에서 국정화에 대해 찬성하는 목소리를 냈다. 이들 역시 “교육부의 역사교과서 확정고사가 올바른 역사교육의 시작”이라고 밝혔다. 입장이 다른 이들이 한 곳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했지만 미리 배치된 경찰로 인해 큰 충돌 없이 양측의 기자회견이 마무리됐다.
연합 이어 KBS도 ‘시국선언 땐 불이익’ 경고113 미디어오늘
"공영방송 직원 정치적 중립 지켜야" 통보… KBS새노조, 1400여명 시국선언 동참 선언
KBS가 전국언론노조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시국선언을 ‘정치적 의사표시’로 낙인찍고 동참할 경우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압박하고 나섰다. 하지만 KBS가 주장한 ‘정치 활동’의 범위가 자의적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KBS는 직원들의 언론노조 시국선언 참여는 집단적인 정치적 의사표시에 해당돼 취업규칙 제7조에 위반된다는 내용을 담은 ‘전국언론노조 시국선언 참여 관련 복무지침 시행’ 제목의 시행문을 지난 2일 코비스에 업데이트 했다.
KBS는 금동수 부사장 명의의 공문에서 “공영방송 직원은 누구나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며 “공영방송 직원으로서 한국사 국정 교과서 반대 시국선언에 연명 형식으로 참여하는 것은 취업규칙에 위배돼 사규에 따라 인사상 불이익 처분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 전국언론노동조합이 지난달 22일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현업 언론인 시국선언'을 결정한 이후 시국선언 동참 서명 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전국언론노동조합
그러나 KBS가 민경욱 전 청와대 대변인의 이직 당시와 비교하면 ‘정치 활동’ 범위를 폭넓게 해석하고 있어 고무줄 잣대를 들이댄다는 지적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해 2월 문화부장에서 곧바로 청와대 대변인으로 자리를 옮긴 민경욱 전 대변인에 대해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는 ‘KBS 윤리강령 위반’ 문제를 제기했다. 윤리강령 1조3항은 ‘TV와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진행자는 해당 직무가 끝난 후 6개월 이내 정치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당시 민경욱 전 대변인은 KBS 메인 뉴스인 ‘뉴스9’ 앵커를 그만둔지 4개월에 불과했다. KBS는 “윤리강령 1조3항에서 규정하는 정치활동이란 국회의원 등 선출직이나 당적을 가지고 정당 활동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며 “청와대 대변인은 선출직이 아닌 공직으로 ‘정치활동’ 대상에 포함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번 노동조합 활동에는 취업규칙 상의 ‘정치적 의사표시’를 근거로 노동조합 활동을 옥죄고 있다는 것이다.
KBS본부는 조합원 전체에 참여 여부를 물어 1400여명의 참여를 이끌어 냈으며 3일 비대위 회의에서 시국선언 동참을 확정했다.
언론노조는 지난달 22일 긴급 대표자 회의에서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현업 언론인 시국선언’을 결의하고 시국선언 참여 및 신문광고를 위한 모금을 시작했다. 신문 광고는 이번주 중 진행될 예정이다.
KBS는 “윤리강령의 경우 ‘KBS 이미지를 사적으로 활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라는 전제 조건이 있고 ‘몇몇 직무가 끝난 후 6개월 내 정치활동을 하지 않는다’고 해 비교적 규정이 명확한 데 반해 취업규칙의 경우 포괄적인 ‘정치활동’을 규정하고 있다”며 “두 규정이 분명히 차이가 있는 만큼 비교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KBS는 또 “시국선언 참여가 취업규칙 7조에 있는 ‘정치활동’에 해당되기 때문에 사규에 따라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게 회사 입장”이라며 “이 같은 내용을 KBS본부 쪽에 전달했고 직원에게도 알리기 위해서 내부 게시판에 다시 한 번 게시한 것”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보수 개신교가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앞장서는 까닭은? 114 민중의 소리
박근혜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둘러싼 논란이 거세게 일고 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일반 국민 여론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지만 박근혜 정부는 물러서지 않고 있다. 어버이연합 등 일부 수구단체들만이 찬성 목소리를 내고 있는 가운데 보수 계신교계가 역사교과서 국정화의 선봉대를 자처하고 나섰다. 이들은 역사교과서 국정화 찬성 성명을 연이어 발표하고 있다. 아울러 보수교회 신도들을 중심으로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주장하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유포하는 등 찬성 여론 확산에 적극적이다. 보수 개신교가 여러 비판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정부와 발맞춰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앞장서는 까닭은 무엇일까?
1943년 일본 나라(奈良)신궁 참배 후 한국 목회자들이 신궁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CBS-TV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친일과 독재에 협력한 보수 개신교의 과거사 은폐
한국기독교총연합회와 한국교회연합이 주축이 돼 만든 ‘한국기독교역사교과서 공동대책위원회’는 지난 10월13일 성명을 통해 “한국 기독교는 한국사 교과서의 이 같은 실태를 목도하면서 더 이상 한국사 교육을 진보좌파 역사학자와 교사들에게 맡겨 놓을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통합교과서 정책을 지지하며, 이 교과서에는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발전과정을 바로 기술해서 역사문제로 인한 한국사회의 혼란을 종식시키고, 국론을 하나로 모아야합니다”라고 밝혔다. 이들은 이어 “한국 기독교는 오늘의 대한민국이 형성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개항 이후 기독교는 서구문명이 이 땅에 전달되는 통로였고, 일제의 암흑기에는 독립운동을 위한 기지가 되었으며, 해방 후에는 이 땅에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세우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습니다”라고 밝혔다.
보수 개신교의 주장은 크게 2가지다. 우선 우리나라 교과서가 북한을 찬양하고 대한민국을 비하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대한민국 건국에 기여한 기독교 관련 서술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교과서가 북한을 찬양하고 대한민국을 비하하고 있다는 식의 주장은 정부의 일방적인 설명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을 뿐 근거는 없다. 아울러 개신교 관련 서술이 부족하다는 주장도 개신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역사를 감안하면 다른 종교에 비해 부족하다고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근거는 부족하다.
보수 개신교가 발표한 성명서에서 개신교에 대해 “일제의 암흑기에는 독립운동을 위한 기지가 되었으며, 해방 후에는 이 땅에 자유 민주주의 국가를 세우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고 말한 대목도 사실과 다르다. 우리나라 개신교 가운데 일부가 ‘일제의 암흑기에는 독립운동을 위한 기지가’ 된 것은 사실이지만 보수 개신교를 비롯한 상당수 교회들은 조선총독부의 신사참배 압력에 무릎을 꿇었다. 단순히 압력에 굴복하는 차원을 넘어 일제의 내선일체 정책과 이에 따른 전쟁 수행에 앞장섰다.
1930년대 후반부터 일제는 일반 개신교인들에게까지 경찰력을 동원해 신사 참배와 국가의식 참여를 강요했다. 그리고 개별 교회는 물론 교단 총회에도 신사참배 결의를 요구했다. 각 노회와 교단들의 신사참배 결의가 이어졌다. 1938년 9월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는 선언문을 통해 “우리들에게 신사는 종교가 아니다. 또 그리스도교의 교리에 반대되지 않는 본의를 이해하여 신사참배는 애국적 국가의식인 것을 자각한다. 그리하여 여기서 신사참배를 솔선여행하고 나아가 국민정신 총동원에 참가함으로써 시국 하에 있어서 후방황국신민으로 하여금 정성을 다할 것을 기함”이라고 밝혔다.
결의에 이어 부회장과 각 노회장들이 총회를 대표하여 즉시 평양신사에 직접 참배했다. 또 “후방황국신민으로 하여금 정성을 다할 것”이라는 결의를 바탕으로 일제의 전쟁에 적극 협력했다. 신도대회를 개최해 소속 신도들과 학생 등 3천여 명이 모여 조선총독부 광장에서 미나미 총독의 격려사를 듣고, 조선신궁을 참배한 뒤에 ‘황군의 무운장구’를 빌기도 했다. 1940년대엔 성금을 모금해 일제에 비행기를 헌납하기도 했다. 장로교는 물론 감리교 등 당시 대부분의 개신교회가 일제에 굴복했다. 주기철 목사 등 일부 개신교인들이 신사참배에 저항했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묻히고 말았다.
이때부터 보수개신교는 친일과 함께 반공의 길을 걸었다. 반공이 자신들의 신념에 맞았기 때문이 아니라 반공이 일본제국주의에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하나의 방식이기 때문이었다. 일제로부터 비롯된 반공은 이후 해방 공간으로 그대로 이어졌다. 해방이후 권력을 장악한 친일파들이 그러했듯이 보수개신교도 반공을 기치로 내걸고 권력에 협조하며 신분 변신에 나섰다. 일제 강점기엔 일제에 협력했고, 뒤이어 독재정권이 들어선 뒤에는 독재 정권에 협조를 아끼지 않았다. 지금도 악명 높은 우익단체인 서북청년단의 핵심은 대부분 보수 개신교인들이었다. 서북청년단을 비롯한 극우세력에 의해 수많은 국민이 ‘빨갱이’로 몰려 죽임을 당해야만 했다.
1980년 전두환을 위해 개신교계가 연 조찬기도회 모습ⓒ기타
그들이 섬기는 신은 하나님이 아니라 권력이다
보수 개신교에게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일제에 부역하고, 독재에 협력한 과거에 대한 신분세탁이다. 이는 친일의 후예들인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등 현 지배세력의 이익과도 맞물리는 대목이다. 현재의 역사교과서에서도 개신교의 친일은 거의 기록돼있지 않다. 하지만 역사교과서가 국정화되면 친일의 과거는 지워지고 앞서 보수개신교가 성명에서 밝혔듯 자신들이 “일제의 암흑기에는 독립운동을 위한 기지”가 되었다고 역사는 왜곡될 것이다. 독재 정권에 부역하고, 해방 공간에서 극우적 행태를 보인 과거는 “특별히 해방 후 많은 사람들이 이념의 혼란 가운데서 우왕좌왕할 때, 기독교인들은 이 땅에 신앙의 자유가 보장되는 민주주의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분명한 신념을 가지고 대한민국의 건국을 위해서 노력했다”고 미화될 것이다.
잘못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관건은 그 잘못을 얼마나 반성하느냐, 그러한 과거를 미화하지 않고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느냐다. 독일 개신교의 사례는 이런 면에서 우리나라 보수 개신교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과거 독일의 개신교도 우리 개신교와 비슷한 길을 걸었다. 히틀러에 의해 통합된 독일교회는 1933년 8월 “그리스도는 히틀러를 통해 우리에게 오셨다”는 굴욕적인 성명을 발표했다. 뒤이어 “독일민족을 위한 시대는 히틀러 안에서 성취되었다. 왜냐하면 히틀러를 통해 참 도움이며 구원자이신 하나님 곧 그리스도께서 우리 가운데 그의 능력을 나타내셨기 때문”이라는 말하는 등 독일 개신교는 히틀러를 구원자의 위치로까지 올려 세웠다. 디트리히 본회퍼 등은 이런 독일 개신교의 모습을 비판하며 고백교회 운동을 일으켰다. 바르멘 신학선언을 발표해 당시 독일 교회의 주장을 반박하고 반성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뒤 1945년 독일 복음교회 지도자들이 모여서 슈투트가르트 참회 선언을 했다. 1947년에는 독일 교회지도자들이 슈투트가르트 참회 선언에 부족했던 면을 보충하면서 공개적으로 다시 한 번 참회했다.
하지만 보수 개신교를 비롯한 한국의 개신교는 아직 과거에 대해 제대로 된 참회를 하지 못했다. 이번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에서 알 수 있듯이 반성은 커녕 자신들의 과거를 미화하려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 당시 신사참배를 주도했던 목사 중에선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인민군 환영대회’에 참석한 이들도 있었다. 이후 독재 정권이 들어선 이후엔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을 위해 조찬기도회를 열었다. 그들이 과거를 참회하지 않고 여전히 오늘도 권력의 입맛에 맞게 역사교과서 국정화의 첨병으로 나서는 까닭은 무엇일까? 결국 그들에게 신은 하나님이 아니라, 권력이기 때문이다.
국정화, 국민은 1/3만 찬성…신문은 1/3만 반대 114미디어오늘
[아침신문솎아보기] 조선일보는 교과서 대신 개콘 걱정… 내년 3월, 하루가 급한 박근혜 정부
역사교과서 국정화 행정예고 기간 동안 의견을 낸 국민 3명 중 1명만이 국정화를 찬성했다. 전체 47만3880명 중 반대의견을 낸 인원은 32만1075명(67.75%)이었다. 하지만 정부는 ‘찬성 우세’로 집계한 뒤 국정화를 강행했다. 정부의 의중이 4일자 아침종합신문에 반영된 듯 신문 9개 중 3개(1/3)만이 국정화에 반대했다.
다음은 4일자 아침종합신문 1면 머리기사 제목이다.
경향신문 <42년전 유신독재 시절로 ‘국정화 역주행’>
국민일보 <‘국정화’ 속도전…최몽룡 등 대표 집필>
동아일보 <쐐기박은 국정화…정부 속도전>
서울신문 <최몽룡 등 원로학자 6~7명 대표 집필>
세계일보 <“민주화·산업화 왜곡 없이 서술”>
조선일보 <國史교과서, 주사위는 던져졌다>
중앙일보 <역사교과서, 상고사·고대사 늘린다>
한겨레 <역사는 권력의 전리품이 아닙니다>
한국일보 <국정화 반대의견 68%는 묻혔다>
국정화 고시당일, 조선일보는 교과서보다 개콘 걱정
지난 3일 오전 11시 서울정부종합청사에서 황교안 국무총리가 국정화를 확정 발표 전후로 청사 인근에는 반대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날 오후 온라인에는 국정교과서 관련 기사가 쏟아졌다. ‘국정화는 역사 쿠데타’라는 비판까지 등장하며 전 국민적 관심이 쏠린 가운데 조선일보 홈페이지 톱기사는 3일 오후 내내 전혀 다른 주제의 기사였다.
조선일보 <15년간 정상 달리던 ‘개그콘서트’가 추락한 까닭>(3일자 오프라인 기사제목은 “열정 잃고 추락한 ‘개콘’…못 웃겨서 죄송합니다”)이라는 제목의 기사는 두 배가 넘는 반대 여론을 무시한 채 정부가 강행한 국정교과서 관련 기사 대신 톱기사 자리를 4일 오전 6시 현재까지 지켰다.
▲ 정부가 국정화 고시를 강행한 3일 오후 4시경 조선일보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해당 기사는 최근 KBS 개그콘서트 프로그램 출연진이 ‘공무원화’ 돼 경쟁이 사라졌고, 그 결과 시청률이 떨어지고 있다는 비판이 담긴 내용이었다. 이미 국민들이 정치·사회적으로 중요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함께 터지는 연예 관련 소식에 대해 ‘사건을 덮으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상황이다. 역사교과서보다 개콘은 중요했을까?
2017년 3월 배포, 시간이 없다
4일자 조선일보를 보면 국정화 관련 기사는 정부의 입장을 잘 정리했다고 요약할 수 있다. 총리까지 직접 나서 현행 검정 교과서의 집필진이 특정 단체(전교조, 민족문제연구소 등) 소속이며, 북한을 적대시 하는 내용이 부족하며, 교학사 교과서를 선택하지 않아 99.9%가 편향됐다는 주장을 그대로 전하고 있다. 정부와 다른 목소리를 외면한 이날 보도는 고시 당일 개콘 톱기사만큼이나 정부친화적이다.
황교안 총리의 업적도 짚고 갔다. 조선일보 "황우여 대신 나선 황교안"에서는 “정부가 ‘황교안’이란 브랜드를 내세워 국가 정체성을 바로 세우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고 전했다. 여기서 국가 정체성이란 ‘색깔론’공세를 의미하며 황교안 총리가 법무부 장관 시절 통합진보당 해산 헌법재판소 결정을 이끌어 낸 사건도 소개했다.
정부는 최몽룡 서울대 명예교수 등 6~7명이 대표집필에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이달 중순까지 약 서른 명의 집필진을 모아 내년 이맘때까지 집필을 완성하고 3개월 간 감수해 2017년 3월에는 학교 현장에 주입하려면 시간이 촉박하다. 조선일보 등은 “독립운동사와 민주화 등의 역사를 왜곡없이 서술하겠다”는 국민 대다수가 신뢰하지 않는 말도 비판없이 그대로 전달했다.
최몽룡 명예교수는 1987년 상고사학회를 창설해 회장을 역임한 인물로 정부가 상고사·고대사를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중앙일보에 따르면 수능 근현대사 문항은 교과서 비중이 줄어든 만큼 함께 줄어들 예정이다. 친일과 독재의 역사 비중을 줄이겠다는 작정이다.
▲ 4일자 조선일보 1면
확정했으니 잘 만들어보자?
정부가 국정화를 검토하고 행정예고하는 동안 다수 역사학자들이 국정교과서 집필을 거부했다. 집필진 30여명을 구성하는 것도 어렵지 않겠냐는 분석까지 나오면서 참가자들의 신상털이를 우려한 정부는 6~7명의 대표집필진만 공개한 뒤 나머지 집필진 명단은 비공개하겠다고 밝혔다. 비공개 인사에 대해서는 교과서 완성본이 나온 뒤 공개하겠다는 게 국사편찬위원회의 방침이다.
정부가 '불도저식'으로 국정화를 강행하는 것에 대해서는 다수 언론이 비판했지만 국정화를 확정했으니 이제부터 발목잡지 말자는 식이다. 중앙일보는 사설 "교과서 국정화가 국정 블랙홀이 돼선 안 된다"에서 “대한민국은 정치권이 ‘교과서 블랙홀’에 빠져 예산과 법안 처리를 미뤄도 될 만큼 한가하지 않다”며 국정화 비판을 접자는 목소리를 냈다.
야당에 대해서도 비판을 멈출 것을 요구했다. 중앙일보는 위 사설에서 “야당은 얼마든지 국정화 강행을 반대할 수 있다. 하지만 국가적 현안들을 전부 제쳐놓고 올인 할 사안은 아니”라며 “장외투쟁 대신 국회 상임위에서 따지고 공청회나 토론회에서 반대여론을 수렴해 정부를 압박하는 것이 순리”라고 주장했다.
▲ 4일자 중앙일보 사설
반대여론을 수렴해 정부를 압박하는 것은 순리일까?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정부는 국정화 방침을 이틀 앞당겨 고시하면서 법으로 정한 행정절차마저 졸속으로 처리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의견제출 기간이 종료된 지 불과 11시간 만에 고시를 강행했고, 통상적인 3일정도 걸리는 ‘종이관보’가 아닌 즉각 할 수 있는 ‘전자관보’로 게시해 시간을 단축했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의견제출 마지막 날인 지난 2일 거의 유일한 창구인 교육부 역사교육팀 팩스를 꺼뒀으며, 정진후 정의당 의원은 “올해 들어 국정화 관련 단 한차례의 공청회나 토론회도 없었다”고 비판했다. 또한 반대 의견이 찬성 의견의 두 배가 넘었지만 교육부는 연서명한 반대 의견의 경우는 1건으로 처리해 찬성 여론을 비중 있게 받아들였다.
▲ 4일자 경향신문 만평
국정화 강행 주역 6인
박근혜·김무성·황우여·황교안·김정배·전희경
한겨레는 2면에서는 박근혜·김무성·황우여·황교안·김정배, 경향신문은 6면에서 김무성·황우여·황교안·김정배·전희경를 각각 국정화 강행 5인의 주역으로 꼽아 사진과 주요 발언을 정리했다. 다음은 이 신문들이 꼽은 국정화 강행 주역들의 주요 발언이다.
박근혜 대통령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통해 분열된 국론을 통합하고 우리 아이들에게 대한민국의 자부심과 정통성을 심어줄 수 있도록 각고의 노력을 다해 나갈 것” (10월27일 시정연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올바른 역사교과서는 우리 아이들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이번 역사전쟁에서 우리 보수 우파가 반드시 이겨야 한다.” (10월31일 새누리당 경기도당 등반대회)
황교안 국무총리 “고등학교의 99.9%가 편향성 논란이 있는 교과서를 선택했다. 현행 검정 발행제도는 실패했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다.” (11월3일 국정화 확정고시 기자회견)
황우여 교육부 장관 “과거 학생시위 때문에 역사학 제대로 되지 않았다.” (10월20일 대교협 간담회)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 “교과서에 다양성을 어떻게 집어넣나. 그건 안된다.” (10월15일 KBS 인터뷰)
전희경 자유경제원 사무총장 “경제·문학·윤리·사회교과서도 불평과 남 탓, 패배감 심어”(10월24일)
'친박 실세' 최경환, TK예산 7천억원 증액 114 노컷뉴스
기재부, 국토부 요구안보다 SOC 예산 7800억원 증액…"혈세가 쌈짓돈"
친박계(친박근혜) 실세인 최경환 장관(경제부총리 겸)이 수장으로 있는 기획재정부가 도로, 철도 등 대구·경북(TK) 지역 사회기반시설(SOC)예산을 국토부 요구액보다 7000억원 이상 늘려 잡은 것으로 확인됐다.
기획재정부가 다른 부처에서 요구한 예산안을 검증하고 삭감해야 할 판에 오히려 특정 지역 예산을 증액시켜 논란이 일 전망이다. TK가 지역구인 최경환 장관이 내년 총선을 겨냥한 선심성 예산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3일 CBS노컷뉴스가 국토부 요구안과 정부 예산안을 검토한 결과, 대구선 복선전철에 대한 국토부 요구안은 700억원이었지만 기획재정부는 이를 2251억원으로 늘려잡았다. 애초 요구안보다 3배이상 부풀린 것이다.
부산-울산 복선전철 예산도 애초 2300억원이었지만, 기획재정부는 이를 3685억원으로 1385억원 늘려 책정했다. 대구순환고속도로 예산도 756억원에서 1834억원으로 41.2%나 급증했고, 포항-삼척철도건설도 4600억원에서 5669억원으로 1000억원 이상 늘었다. 100억원 이상 예상이 늘어난 사업도 영천-언양고속도로, 기흥-상망지역간선 6차 건설 등 10여개에 달한다. 이렇게 기획재정부에서 선심 쓰듯 증액시킨 예산은 총 7874억원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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野 "정부 추경안, 총선용 선심 예산"
이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당 심장부인 TK에 '예산 폭탄'을 투하하려는 포석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최경환 장관의 지역구(경북 경산·청도)도 역시 TK다. TK는 유승민 의원이 청와대와 각을 세우며 원내대표 직에서 쫓겨난 후 박근혜 대통령 측근들의 출마가 점쳐지는 곳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참여연대 안진걸 사무처장은 "박 대통령 대선 공약인 누리과정에 대해선 지방 교육청에 예산을 떠넘기면서 특정지역에 대해 예산을 7000억원이나 더 퍼붓는 것은 특혜 중의 특혜가 아닐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혈세를 쌈짓돈 쓰듯이 함부로 쓸게 아니라 보육·교육 등에 쓰일수 있도록 배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민종·손지창, 칠성파 결혼식 참석 "지인 부탁 때문" 114
가수 겸 배우 김민종과 손지창이 부산 최대 폭력조직 '칠성파' 간부의 결혼식에 연예인 하객으로 참석한 사실이 알려지며 관심을 모았다. 김민종과 손지창은 지난 2일 오후 5시 서울 송파구 잠실 롯데호텔에서 열린 칠성파 행동대장 권모(56)씨의 결혼식에서 각각 축가를 부르고 사회를 맡았다.
김민종과 손지창의 한 측근은 3일 통화에서 "칠성파와의 개인적인 친분이 아니라 지인의 부탁으로 두 사람이 축가를 부르고 사회를 맡은 것"이라며 "둘이 동료 배우이자 듀오 '더 블루'로 활동하며 친분이 두터워 함께 참석했다"고 확대 해석에 선을 그었다.
이날 결혼한 권씨는 영화 '친구'의 실제 모델인 동료 조직원과 함께 곽경택 감독을 협박해 2005년 징역 3년을 선고받은 인물이다. 이날 결혼식에는 폭력 조직원을 비롯해 250여 명의 하객이 참석했다.
김민종과 손지창은 지인의 부탁으로 참석한 만큼 괜한 오해가 생기는 것을 우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국내 연예 활동을 중단한 손지창은 부인인 배우 오연수와 함께 미국에 거주 중인 상태. 그는 결혼식 사회를 맡고 4일 미국으로 출국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원칙과 신뢰’요? 그때그때 달라요 113 시사인
‘역사는 역사학자와 국민의 몫’(2004년)이라던 박근혜 대통령이 말을 180° 바꾸었다. 언론에 의해 ‘원칙과 신뢰’ 이미지를 얻었지만 대통령이 된 후 박 대통령의 말 바꾸기는 되풀이되었다.
“역사는 정말 역사학자들과 국민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인들이 역사를 재단하려고 하면 다 정치적인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하기 때문에 제대로 될 리도 없고 나중에 항상 문제가 될 것이다.”(2004년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역사에 관한 일은 역사학자가 판단해야 한다. 어떠한 경우든 역사에 관한 것은 정권이 재단해서는 안 된다.”(2005년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이랬던 그녀가 180° 바뀌었다.
“역사 교육을 정상화시키는 것은 당연한 과제이자 우리 세대의 사명이다. 역사를 바로잡는 것은 정쟁의 대상이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되는 것이다.”(2015년 10월27일 박근혜 대통령)
‘원칙과 신뢰’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표적인 브랜드다. 박근혜 대통령은 약속을 지킨다는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힘을 쏟아왔다. “저는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않았고, 한번 한 약속은 하늘이 무너져도 지켰다”(2007년 6월28일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신뢰와 약속을 지키고, 말보다 행동으로, 생각보다 실천하는 게 중요하다”(2007년 6월 전북대 강연에서), “국민 여러분, 저 박근혜는 약속 대통령이 되겠다. 국민과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키겠다”(2012년 12월20일 대통령 당선 확정 후).
원칙과 신뢰라는 이미지를 만들어준 것은 언론이었다. 2012년 12월20일 <연합뉴스>가 박근혜 리더십을 분석한, ‘원칙과 신뢰’라는 제목의 기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정치철학을 한마디로 표현하라면 ‘원칙과 신뢰’이다. 박 당선인이 지난 1998년 대구 달성군 보궐선거로 정치권에 입문한 후 수없이 강조해오면서 그의 정치적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2004∼2006년 한나라당 대표, 그리고 2011∼2012 비대위원장으로 활동했던 과정에서 시스템이나 기준에 따라 당을 운영하고 이러한 기조를 유지한 것에서 ‘원칙과 신뢰’의 이미지가 싹텄다는 평가다. ‘국민과의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것이 그의 정치적 소신이며 이에 따라 2004년 17대 총선과 2012년 19대 총선이 끝난 뒤 공약 이행을 챙김으로써 이러한 이미지를 업그레이드했다.”
2012년 11월27일 <조선일보>는 “‘박, 약속은 지키는 준비된 후보’ 대 ‘문, 일자리 만들 소통하는 후보’”라고 썼다. 방송과 신문의 노력으로 박근혜 대통령은 신뢰받는 정치인으로서 위상을 심었다. 이는 대통령에 오르는 데 엄청난 자산이 됐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는 지역균형발전, 일자리, 4대 중증질환, 대학 등록금 등 교육비 경감, 무상보육 등을 약속했다. 그러나 대통령이 된 후 박근혜 대통령이 ‘원칙과 신뢰’를 저버린 일들이 다반사다. 역사 문제에 관해 주장이 180° 바뀐 것처럼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말 바꾸기는 되풀이되었다.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 뒤집는 경우도 셀 수 없이 많다.
대선 전, 박 대통령은 ‘일생 동안 우리나라의 경제 발전에 애쓰신 어르신의 경제적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 대선에 나섰다’는 말을 달고 다녔다. 대선 후, 당선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는 노인들을 위한 공약은 폐기하다시피 했다. 나라가 역사 교과서 국정화라는 소용돌이에 빠져 있는 동안, 박근혜 정부는 경로당 냉난방비 예산 310억원과 양곡비 예산 47억원을 전액 삭감했다. 대선 공약의 히트 상품 ‘모든 노인한테 월 20만원의 기초연금을 지급하겠다’는 약속도 철회했다. 모든 노인은 소득 하위 70%로, 20만원 일괄 지급은 ‘국민연금 가입 기간에 따라 월 10만~20만원 차등지급’으로 바뀌었다. 또한 소득 하위 70% 노인에게 지급되는 기초연금의 혜택을 형편이 어려운 기초생활수급 노인은 사실상 누리지 못한다. 정부는 기초생활수급 노인들에게 기초연금 20만원을 주는 대신 기초생활 생계급여에서 20만원을 삭감했다.
국회 공청회에 나온 강세훈 대한노인회 행정부총장은 “노인한테 지급하는 장수수당·축하금, 효행장려금, 기초생활 노인가구 월동난방비 지원 등 현금성 급여가 사실상 전부 중단되고 있다. 장수수당의 경우 기초연금 수급자를 제외하면서 소득 상위 30%인 ‘부자 노인’만 장수수당을 받게 된다”라고 말했다. 서울역에서 만난 김광수씨(73)는 “박 대통령이 기초연금과 일자리 수당을 두 배 올려준다고 해서 찍었는데 담뱃값만 2배 올렸다”라고 말했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 행복 10대 공약’은 선포했다. ‘세상을 바꾸는 약속’이라고 제목을 달았다. 박 대통령은 의욕을 보였다. “정책이 없어서 국민이 불행했던 것이 아니라 약속이 실천되지 않아서 문제였다”(2012년 7월10일 대선 출사표).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면 공약도 안 했을 것이다”(2013년 1월25일 대통령직 인수위). 그러나 10대 공약 가운데 지켜지고 있는 약속은 거의 없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당시 후보가 선포한 ‘ 국민 행복 10대 공약’집. 10대 공약 가운데 지켜지고 있는 약속은 거의 없다.
첫 번째 약속, 가계 부담 덜기. 가계부채는 2010년 843조원에서 올해 6월 1130조원으로 급증했다. 올 2분기는 1분기보다 30조원 넘게 늘었다. 역대 최대 증가폭을 계속 경신 중이다. 가계부채는 한국 경제의 가장 큰 아킬레스건이 됐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금융국장은 “가계부채는 빚을 권하는 사회 탓이다. 정부가 부동산 규제를 완화한 것은 가계부채를 늘려서라도 부동산 경기를 부양하기 위한 조치인데, 결국 서민들에게 빚내서 집 사라고 한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만 5세까지 국가가 무상보육 및 무상 유아교육을 하겠다는 건 박 대통령의 두 번째 약속이다. 그런데 10월28일부터 30일까지 어린이집 교사들이 단체 행동에 나섰다. 정부의 보육 예산 삭감 때문이다. 지난 9월 정부가 발표한 2016년 예산안에 따르면, 누리과정(만 3~5세) 예산이 한 푼도 책정되지 않았다. 지난해에도 정부는 올해 누리과정 예산 2조2000억원을 전액 삭감했다가 반발이 일자, 일부를 예비비 명목으로 지원했다.
세 번째 약속은 교육비 덜기다. 고등학교 무상교육, 사교육비 부담 완화, 반값 등록금이 주요 골자다. 하지만 기획재정부가 책정한 고교 무상교육 예산은 2015년에서 2018년까지 0원이다. 전혀 생각이 없는 것이다. 반면 사교육비 부담은 늘고만 있다. 교육부는 올해를 ‘대학 반값 등록금’ 실현의 원년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대학생과 학부모들은 전혀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6월 말 기준 학자금 누적 대출자는 150만명이고, 1인당 평균 대출액은 640만원이다. 2011년보다 30만원 늘어난 액수다. 정부 정책이 학자금 대출조차 줄이지 못한 셈이다. 연 2.7%인 장학재단의 학자금 대출금리를 낮추라는 야당의 요구를 정부는 계속해서 피하고 있다.
네 번째 약속은 암·심혈관·뇌혈관·희귀난치성 질환 등 ‘4대 중증질환’을 정부가 100% 책임지겠다는 것이었다. 2012년 대선 후보 텔레비전 토론 때 문재인 후보가 ‘4대 중증질환 진료비 100% 국가 부담’ 공약에 대해 물었다. 박 후보는 “비급여 부분 커버(포함)해 100% 책임지겠다”라고 답했다. 환자들이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못한 부분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약속이었다. 하지만 당선 후 바로 없던 일로 돌렸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선택진료비(특진비)나 상급병실료·간병비 등은 국가 부담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5~7번째 약속은 일자리와 관련된 것이다. 우선 창조경제를 통해 새로운 시장과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공약은 아직 결과가 나온 게 없다. 오히려 실업률은 2012년 7.5%, 2013년 8.0%, 2014년 9.0%로 늘고 있다. 나쁜 일자리도 늘고 있다.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받는 노동자 비율은 2012년 9.6%, 2013년 11.4%, 2014년 12.1%(한국노동사회연구소 통계)로 조사됐다.
ⓒ연합뉴스 2013년 9월26일 대선 공약과 달리 기초연금을 축소한다는 뉴스를 한 노인이 시청하고 있다.
다음으로, 노동자들의 정년을 60세로 연장한다는 약속은 지켰다. 그러나 해고 요건을 강화하겠다는 약속은 버렸다. 10월28일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는 “우리나라의 노동시장은 근속연수 1년 미만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이고 비정규직 비율도 45.4%에 달한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쉬운 해고와 낮은 임금만 강요한다”라고 말했다.
이러니 장시간 노동 관행을 없애는 등 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올리겠다는 일곱 번째 약속이 잘 지켜질 리 만무하다. 지난해 한국 노동자들이 일한 시간은 평균 2163시간. OECD 34개 회원국 중 멕시코(2237시간)에 이어 2위다. OECD 평균 1770시간보다 22%나 많다. 한국의 노동자는 일본과 미국 노동자에 비해 연평균 약 400시간을 더 일한다. 하지만 임금은 훨씬 적게 받는다. 우리나라의 경우 OECD 국가 가운데 멕시코 다음으로 임금불평등이 심각한 것으로 조사됐다.
여덟 번째 약속은 성폭력·학교폭력·가정파괴범·불량식품 등으로부터 국민을 지키겠다는 국민 안심 프로젝트다. 경찰이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파는 불량식품 단속에 굉장한 열의를 보인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무엇이 더 나아졌는지 아직 알려진 바 없다.
이제는 단어조차 사라진 ‘경제민주화’ 공약
아홉 번째 약속은 경제민주화를 통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을 이루겠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하는 원동력이었다고 할 ‘경제민주화’ 공약 역시 일찌감치 폐기됐다. 박근혜 정부 절반을 지난 지금은 경제민주화라는 단어조차 사라졌다.
ⓒ연합뉴스 10월22일 어린이집 교사 등이 누리과정 지원 약속을 지키라고 정부세종청사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열 번째 약속은 지역균형 발전과 대탕평 인사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들어 요직에는 특정 지역, 특정 학교 출신만 등용되고 있다. 지난 3월2일자 <문화일보> 기사 제목은 “국가 의전 서열 10위 중 8명 ‘영남권 출신’”이었다. 호남은 아예 한 명도 포함되지 않았다. <전북일보>는 10월20일자 기사에 이렇게 썼다. “신임 장·차관급 10명 중 전북 출신은 한 명도 없고 경찰 경무관 이상 간부도 97명 중 1명뿐이다.”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의원은 “지난 9월 단행된 7명의 대장급 군 인사에서 호남 출신 인사가 전무한 데 이어 이번 개각에서도 호남 출신이 전무하다. 박 대통령이 ‘100% 국민통합의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약속했지만 역사관만 100% 통합하려 하고 있다”라고 비꼬았다.
10대 공약 이외에도 군복무 기간 단축, 전시작전권 이양, 검사의 청와대 파견 제한, 재벌·대기업 사면권 제한, 320만명 신용회복 지원, 목돈 안 드는 전세정책 추진, 철도민영화 반대, 장애인연금 확대 등 박 대통령이 힘주어 말했지만 지켜지지 않는 약속이 부지기수다.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약속한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받은 6억원에 대한 이야기도 자취를 감추었다. 새정치민주연합 홍종학 의원은 “박 대통령이 국민과 한 약속을 버릇처럼 잊어버린다. 문제는 파기한 약속들이 법치주의를 훼손하고 시장경제의 기본질서를 무너뜨린 일이어서 더 심각하다는 점이다”라고 말했다.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JTBC와의 인터뷰에서 “내 생각이 대통령과 거리가 있는 게 아니라, (대통령의) 국민에 대한 약속이 바뀌었다면 바뀐 게 문제다. 이 정부가 국민한테 약속한 그 기조 그대로 끌고 갔다면 지금보다 훨씬 국정 운영이 잘되고 있으리라 믿는다”라고 말했다.
2012년 총선을 두 달 앞두고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말 바꾸기를 서슴지 않는 사람들은 이번에 반드시 뿌리를 뽑아야 우리 정치를 쇄신할 수 있다.” 이 발언들에 대해 박 대통령의 지금 생각이 어떤지 정말로 궁금하다.
모래시계 중산층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아요” 1023 한겨레21
덴마크 중산층이 된 한인들 덴마크 복지 경험하고 “아침이면 행복하다”… 덴마크 사람 10명 중 7명 세금과 복지 서비스 균형에 만족, 해법은 고부담·고복지
이아나씨가 코펜하겐 중앙역 앞에 서 있다. 덴마크 내에서 세금을 많이 내는 가구에 속하는 그는 “세금으로 만든 덴마크의 복지 시스템에서 절대 부는 있어도 절대 빈곤은 없다”고 말했다.
코펜하겐의 유명한 카페 ‘로얄 코펜하겐’에서 오픈 샌드위치를 먹던 김이선(가명)씨는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서른을 앞둔 김씨는 올해 봄 덴마크로 왔다. 해가 짧고 추운 북유럽의 겨울이 기다리고 있지만 그는 덴마크 생활에 만족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행복하다는 생각을 해요. 한국에서는 출근하기 전에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죠.”
취업난·전세난… 한국은 버거웠다
김씨는 20대 초반 영국에서 어학연수를 한 뒤 한국으로 돌아왔다. 취업 뒤의 생활은 힘들었다. 퇴근시간은 항상 늦었지만 할 일은 항상 남아 있었다. 직장에서 인격적인 대우를 받는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전형적인 중산층의 삶을 위해 주변에선 결혼과 육아로 달음박질쳤지만 버거워 보일 때가 많았다. 취업난·전세난 등은 친구들의 어깨를 잡아내렸다. 김씨는 유럽을 다시 생각했다. 가족 등 주변의 만류에도 북유럽으로 넘어온 그는 운 좋게 빨리 코펜하겐에서 직장을 잡았다. “물가는 조금 비싸지만 살기에는 좋은 도시인 것 같아요. 주거비용 외에 큰돈 들어갈 것도 없고요.” 그는 오픈 샌드위치에 들어갈 재료 가운데 청어절임을 권했다. 새콤한 맛이 입안을 맴돌았다.
세금
북유럽 같은 사회를 꿈꾸기엔 우리에게 낯선 장벽이 있다. 복지천국은 재원을 필요로 한다. 덴마크의 조세부담률은 46.3%(2012년 기준)였다. 조세부담률이란 세금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으로 국민의 조세부담 정도를 측정하는 지표다. 한국은 이의 절반도 안 되는 18.7%다. 북유럽 같은 사회를 꿈꾸려면 지금보다 2배 이상 세금을 더 낼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연간 소득이 39만크로네(약 6700만원)를 넘는 이들은 덴마크에서 가장 높은 세율을 적용받는다. 올해 초 한국에서는 연봉 5600만원 정도를 받는 직장인에게 세금이 더 부과되자 거센 저항이 일었다.
지난 9월22일 코펜하겐 티볼리공원 앞 카페에서 만난 이아나(49)씨의 가정은 덴마크에서도 세금을 많이 내는 축에 속한다. 이씨 남편은 사업에 성공했고 이씨 역시 통역 등을 하며 수입을 얻는다. 이씨는 남편 수입의 60%를 세금으로 내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세금은 덴마크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근간이에요. 싫으면 떠나면 되죠.”
이씨가 한국을 떠난 것은 27년 전이다. 이씨는 덴마크인 남편과 결혼해 덴마크로 이주했다. 열심히 살았다. 코펜하겐에는 한국인이 적어 통역과 가이드 의뢰가 잇따랐다. “남편보다 물질에 대한 욕망이 강했어요. 잘살고 싶었죠. 들어오는 대로 일을 많이 했는데 덴마크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정도였죠. 남편은 내가 가족을 잘 챙기지 못한다고 생각해서 서운해했죠. 나는 오히려 한국적 사고로 ‘열심히 일해서 돈 버는 게 혼자 잘 먹고 잘살려는 것도 아닌데 왜 집에서 날 힘들게 하나’라고 생각했죠. 그만큼 열심히 했어요.”
수입 60% 세금 “싫으면 떠나겠죠”
남편도 열심히 일했다. 아버지가 사업을 하고 있어 그 밑에서만 일해도 남부러울 것이 없었지만, 남편은 독립을 택했다. 복지국가에서 살지만, 독립적 사업을 시작한 남편은 생활비 마련을 위해 애지중지하던 우표까지 팔아야 했다. 힘든 2년이 지나자 남편의 사업은 궤도에 올라섰다. 잘사는 부모의 재산을 상속받은 것 하나 없이 이뤄낸 성과였다.
부부가 열심히 일해 벌었으니 절반 이상을 세금으로 내는 게 아까울 만했다. 한국의 많은 자수성가한 기업가들은 세금 탈루와 절세를 구별하지 않는다. 불로소득인 부동산 투자 수익에 세금을 많이 부과하는 것도 ‘세금폭탄’이라 했다. 한국에서 성장한 이씨도 세금을 빠짐없이 내는 남편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세금을 많이 내야 한다는 남편의 생각이 전혀 이해되지 않았죠. 덴마크에 와서 산 27년의 절반인 15년 동안은 세금을 많이 내는 게 억울하다고 생각했어요. 생각이 달라진 것은 애를 낳고 나서였죠. 그 순간부터 나와 아이들이 의료 혜택을 받고 교육을 받으며 그동안 냈던 세금을 돌려받는 걸 보면서 ‘이래서 세금이 필요하구나’라는 생각을 했죠. 세금에 대해 거부감을 가진 제가 미련했다고 해야 하나. 언젠가 (혜택을 받은) 이 아이들도 (세금으로) 돌려줘야죠.”
혜택
이씨가 덴마크 사회의 높은 세금을 이해하기 시작한 것은 세금으로 만든 시스템이 자신을 보호하고 있음을 느꼈을 때부터다. 이씨는 아이들이 태어나자마자 아동수당이 나오는 것을 봤다. 국가는 1년에 6번 정도 아이들을 불러 치아를 잘 관리하는 것까지 정기적으로 살폈다. 교육비 부담도 없었다. 등록금뿐만 아니라 교재와 문구류까지 학교에서 나눠줬다. 공립학교 대신 사립학교를 선택하더라도 국가의 지원 덕에 학비 부담은 크지 않다.
코펜하겐에 사는 평범한 직장인인 멜라니 마리아 바우만(40·여)도 복지 혜택을 체감할 수 있는 기관으로 학교와 병원을 꼽는다. 덴마크는 가정 주치의가 정해져 있을 뿐만 아니라 병원비가 무료다. 의사를 만나는 시간이 1분도 안 되거나, 병원비 부담 때문에 진료를 꺼리는 곳이 아니다. 때때로 복지국가의 약점으로 병원 대기 기간이 긴 점이 지적되지만, 멜라니는 한 달 이상 대기 기간이 길어지면 민영병원으로 갈 수 있고 그때 병원비는 정부에서 지급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가족이 아프면 어떻게 해야 할까 걱정하지, 돈이 얼마나 많이 들까를 고민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무상교육·무상의료 등 평등에서 비롯한 행복
멜라니 마리아 바우만이 재택근무 중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일과 가정의 균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덴마크는 재택근무가 활성화돼 있다.
또 다른 혜택은 일자리에 대한 사회안전망이다. ‘유연안정성’의 나라 덴마크는 해고가 쉬운 나라로 알려졌지만 이에 대한 사회안전망도 튼튼하게 갖춰져 있다. 해고되더라도 2년 동안 월급의 80% 수준으로 실업급여가 나온다. 노동조합과 정부는 실업자 재교육을 통해 재취업을 적극적으로 알선한다.
보건 관련 연구 업무를 하는 멜라니는 1년6개월 전 정규직 일자리를 잡았다. 대학 졸업 뒤 계약직으로 일하며 중간에 일자리를 잃은 적이 두 차례 있었지만, 든든한 실업급여 덕에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덴마크에서는 직장이 없다고 삶이 없어지지 않는다. 당분간 수입이 줄어들 수 있지만 정부가 복지를 보장해주기 때문에 삶 전체가 흔들리지는 않는다”고 했다.
해고에 대한 불안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멜라니 역시 자녀가 다니는 학교의 학부모 가운데 일자리를 잃어 수입이 줄어든 사람이 있다고 말했다. 새로 들어선 우파 정부가 실업급여 기간과 수준을 축소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도 예전과는 다른 상황이다. 그러나 페테르 구넬라크 코펜하겐대 사회학 교수는 “덴마크는 우파도 기본적으로 사회민주주의 관점을 가지고 있어 복지를 쉽사리 후퇴시키지 않는다”고 했다.
변화
덴마크 사람들 10명 가운데 7명은 세금과 국가가 주는 서비스의 균형에 만족한다. 이들은 세금을 거둬 사회에서 나누는 복지 시스템을 따랐다. 높은 세금으로 계층 간 소득 격차를 줄이면서 불평등도 감소했다. 덴마크의 지니계수(소득불평등 지표로 0에 가까울수록 평등함)는 0.249(2012년 기준)로 한국(0.307)보다 훨씬 낮다. 미국은 0.39다.
세금을 많이 내고 복지로 많이 돌려받는 사회는 선순환을 만들었다. 복지사회는 개인이 가난과 질병 등으로 경제적 어려움에 빠지는 대신 다시 세금을 낼 수 있는 노동자로 돌아오도록 독려했다. 더 많이 벌어야 더 많은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무한경쟁’ 대신 중산층이 ‘이만하면 충분하다’는 평등을 선택한 결과다. 이런 정책을 가능케 한 덴마크만의 역사와 전통이 있음은 물론이다.
신뢰도 뒤따라야 한다. 덴마크 사회를 오랫동안 지켜본 이아나씨는 “높은 세금이 가능한 것은 정부가 그동안 보여준 도덕성과 투명성 덕분이다. 그래서 국가가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었다”고 했다. 덴마크는 국제투명성기구의 조사 결과 가장 청렴한 나라로 꼽힌 바 있다. 한국은 45위였다.
청렴한 정부 ‘높은 세금’ 가능케 해
오후 5시 코펜하겐 거리에 어스름이 깔리자 자전거가 줄을 이었다. 퇴근하는 이들이다. 덴마크는 총리나 국회의원도 자전거로 출퇴근을 한다고 했다.
코펜하겐의 자전거 행렬을 보며 중산층이 바뀌어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삶의 질을 유지하기 위해 서로가 서로를 잡는 경쟁을 펼치는 대신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 물론 자신의 호주머니도 털어야 한다. 세금을 더 낼 테니 기업과 정부에도 증세와 복지 협상장으로 나오라고 해야 하는 게 덴마크의 교훈이 아닐까. 행복한 중산층 사회는 다른 이의 돈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세금과 행복은 정비례
세계에서 국민행복도가 가장 높은 나라는 덴마크다. 이른바 ‘세금폭탄’이 사정없이 터지고, 의사·변호사가 되면 누려야 할 성취감 대신 목수·벽돌공과 큰 차이가 없는 연봉을 받는 사회인데 말이다. 이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덴마크 코펜하겐대학에서 행복과 유토피아를 연구하고 있는 페테르 구넬라크 사회학 교수를 찾아 물었다.
덴마크는 높은 복지 때문에 행복한가.
-앱설루틀리(의심할 여지 없이 확실하다). 사회안전성이 미래를 보장하고 불안을 덜어준다.
노후 준비나 의료비에 대한 불안도 없나.
-덴마크의 사회보장제도는 의료·교육·노후연금 등을 보장한다. 좀더 많이 보장받으려면 일을 더 해야 하지만 그게 한국만큼 짐이 될 정도는 아니다. 나도 수입의 15%를 은퇴 뒤를 위해 적립하고 있어서 불안하지 않다.
덴마크에서는 상류층으로 올라갈수록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은 없나.
- 행복과 임금수준을 연관시키는 것인데 행복은 돈도 중요하지만 매우 복합적이다. 돈이 없는 사람이 돈을 가지면 행복하겠지만 어느 정도 있으면 앞으로 더 가지는 게 그만큼 행복해지지는 않는다. 덴마크는 다른 나라와 견줘 저소득층도 적고 계층 간 소득수준 차이도 적어서 행복과 상류층 사이의 관련성이 작다.
덴마크에선 무상교육·무상의료 등 복지가 있어 가능한 생각이 아닌가.
-맞다. 동의한다. 대신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
세금 때문에 덴마크를 떠나는 사람은 없나.
-큰 부자나 연예인, 스포츠 스타는 세금에 불만을 품고 떠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높은 세율에 동의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가장 중산층이 두꺼운 곳이 덴마크다.
- 덴마크는 전통적으로 중소기업이 강했고 노동자와 소규모 농가가 사회를 이끄는 역할을 했다. 최근에는 새로운 중간계층도 생겼다. 간호사, 교사, 보육사 등 이전에는 전통적인 중산층이 아니었지만 지금은 무상교육·무상의료 등으로 중산층에 속하게 된 사람들이다. 요즘 덴마크에선 계급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누가 중산층이냐를 따지는 것은 철 지난 이슈다. 대신 불평등한 곳은 없는지 찾는다. 덴마크는 중산층이 두꺼운 게 아니라 불평등이 적은 나라다.
최근의 불평등 이슈는 뭔가.
덴마크 정부가 좌파에서 우파로 바뀌었다. 우파의 새로운 정책은 사회보장 혜택을 줄이는 것이다. 이미 실업급여 수급 기간은 7년에서 4년, 4년에서 2년으로 줄어든 상태다. 급여 수준과 기간을 축소하는 쪽으로 가고 있는데 이를 두고 열띤 논의가 진행 중이다. 두 번째는 이주민 문제다. 유럽에 많은 난민이 들어오고 있다. 이주민이 같은 복지 혜택을 받는 게 정당한가 하는 논란에 대해 우파 정부는 이주민의 혜택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Lisa Stansfield - Take My He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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