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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시사만평-주간 쟁점

11.23~11.28 닭 모가지를 비틀어

by 이성근 2015. 11. 27.

 

   11.23 경향-11.22국민

 

 

  11.23 내일-한국

 

 

  11.23 한겨레-11.23국민

 

 

 

 

   11.24 경향-국민

 

 

  기호일보-중부일보

 

 

  11.24 내일-민중의 소리

 

 

   11.24한겨레-한국

 

 

    11.25경향-국민

 

 

   11.25 국민-민중의 소리

 

 

   11.25 한겨레-한국

 

 

    11.26 한겨레 조남준-민중의 소리

 

 

   11.26 한겨레-한국

 

 

  11.26 내일-국민

 

 

   11.26경향-11.27 경향

 

  11.27 내일-한국

 

   11.25 중앙-11.27한겨레

 

 11.26 중앙-12.1 주간경향 이판사판

 

  11.27~11.23 경향 장도리

 

 

 

 

 

 

 

 

황진하 "시위대 인권? 복면 뒤 난동자 색출해야" 1127 프레시안

"야당의 인권 운운, 개탄할 일복면 금지법 협조해야"

 

새누리당 황진하 사무총장은 27"공권력을 비웃으며 복면 뒤에서 난동을 일삼는 자들을 색출하지 못하면 폭력 시위 예방이나 근절은 불가능하다"면서 야당에 복면금지법 처리 협조를 요구했다. 황 사무총장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불법 폭력 시위자를 가려내기 위한 불가피한 대책인 복면 금지법안을 인권 침해 운운하면서 반대하는 야당의 모습은 참으로 개탄할 일"이라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평화로운 삶을 침해 당하는 시민의 인권보다 폭력 시위대의 인권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그들의 인권 때문에 폭력 시위를 용인할 수 있다는 것인지 모르겠다"면서 "복면 착용 금지법을 이미 시행 중인 독일, 프랑스, 미국, 오스트리아가 인권 후진국이라는 이야기인가"라고도 했다.

 

황 사무총장은 "지난 14일 시위에서 폭력 행사 증거가 확보된 594명 중 무려 4분의 3441명이 복면과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어 신원 파악과 수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면서 "이번에야말로 폭력 시위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도록 야당의 분명한 입장 정리를 촉구한다"고 말했다.

 

역사를 조작하려는 이들은 영구 집권을 꿈꾸는 사람들 1123 한겨레21

친일 청산 앞장서는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인터뷰. 사죄와 반성이 표백된 정부시민을 향한 폭력과 언론 장악은 일제강점기 수준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21세기의 히틀러다. 박근혜 대통령의 가치관도 아베의 것과 똑같다.”

1119일 서울 종로구 ()한국산문·한국산문작가협회 사무실에서 임헌영(74·사진) 민족문제연구소장을 만났다. 한국 현대문학을 전공한 문학평론가로서 그는 박정희 군사독재 정권에 맞서 민주화운동을 하다 두 차례 투옥되기도 한 실천적 지식인이다. 2003년부터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으며 <친일인명사전>(2009) 편찬 작업을 이끌었다.

 

임 소장은 박근혜 정권의 몰염치와 부정의, 부도덕을 인터뷰 내내 질타했다. 친일·독재를 미화하는 국정 역사 교과서를 강행하다 못해 농민을 물대포로 직사해 사경에 빠뜨린 정권을 보면서 참담하다고도 했다. 그는 야당과 진보세력, 시민사회단체가 역사의 큰 흐름을 보면서 힘을 모아야 하고, 젊은이들은 정치가 자신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점을 깨닫고 현실에 참여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1114일 민중총궐기 대회에서 정권의 폭력성이 다시금 드러났는데.

독재정권들이 해왔던 국가폭력이 드디어 노골화·양성화되기 시작하는구나 하고 참담함을 느꼈다. 박근혜 정권은 뭐든지 자신들이 판단해서 합법과 불법을 정한다. 세계사에서 이런 일은 없었다. 자기들 의사에 안 맞는 모든 행위를 불법으로 내몰고, 자신들이 하는 것은 다 합법이라는 게 공식화돼버렸다. (백남기씨가 경찰의 물대포를 맞는) 동영상을 보면 명백한 상해 행위다. 살인 의사까지는 모르지만 직사 살수를 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다. 사람이 쓰러졌는데 또 물대포를 쏘았다. 시민의식이 있는 나라라면 정권의 위기까지 올 수 있는 반인륜적인 행위다.

 

동영상을 보고 19876월 경찰의 최루탄을 맞고 쓰러진 이한열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서울대병원에 가서 백남기씨 가족을 만나고 쾌유를 빌고 왔다. 그런데 지금까지 정부에서 아무도 사과를 한 적이 없다. 정부 어느 기관에서도 일절 연락이 없었다고 한다. 과연 국민을 무엇으로 생각하는 것인가. 이미 모든 것을 장악했기 때문에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집권층에서는 생각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때도 100% 언론을 장악하고 감독·검열했다. 그래도 독립운동가들이 계속 나왔다. 봄이 오면 꽃이 피듯이 어떤 악조건에서도, 아무리 겨울이 추워도 정의감은 항상 솟게 돼 있다. 어떤 독재하에서도 저항세력이 없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정부 손아귀에 들어간 언론이 강하다고 해도, 손아귀에 들어 있지 않은 언론 또한 강하다.

 

경찰이 집회·시위 진압을 넘어 탄압했다는 지적도 많다.

이미 이명박 때부터 이골이 났다. 정권 비판하는 이들을 탄압하기 위한 국가기구로서는 세계 어느 나라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 정권 비판자들을 탄압·조작하는 데에는 세계에서 금메달을 줘도 될 정도다. 세금 잘 걷어가고 부정선거 잘하는 면에서는 완벽한 국가기구다. 어떤 부당한 권력에도 충성하겠다는 사람들이 어느 분야든 줄을 서 있다. 그러나 역사는 정의와 부정의의 길항 관계다. 집권세력은 국민을 탄압하면 다 되는 줄 알지만, 세계 역사에서 탄압만으로 성공한 예는 없다. 탄압이 세지면 저항도 세진다.

 

현 정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더욱 커지고 있다.

이승만·박정희 독재세력조차 국민에게 미안함이라는 것을 느꼈다. 지식인·언론인·예술가들을 만나면 일말의 미안함 같은 것을 내보였다. 이것이 없어지기 시작한 게 이명박 정부 때부터다. 박 대통령한테서는 아예 표백돼 없어져버렸다. 오히려 올바른 일을 한 사람들이 악이고, 나쁜 짓 한 사람들이 옳다는 것을 심자는 게 역사 교과서 국정화로 나타난 것이다. 그 뿌리는 친일·반민족 행위다. 일말의 양심적 가치도 없다. 무엇을 잘못했느냐에 대한 생각이 없다.

 

현 정부의 폭력성에 맞서 시민들은 무엇을 해야 하나.

시민들은 이제라도 빨리 한국 근현대사 공부를 해야 한다. 왜 집을 사기 어렵고 취직 걱정을 해야 하는지, 가난한 사람은 어떻게 가난하며, 과연 일한 만큼 대가를 받고 있는지, 이런 질문들을 해야 한다. 왜 먹고살기 힘든지 시민들이 생각을 해봐야 한다. 여기서 역사를 생각해야 한다. 역사는 멀리 떨어진 것이 아니라 내 생각과 현실이 왜 이런지에 연관돼 있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는 세력은 친일파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늘의 불행과 내일의 재앙을 가져오는 것은 과거가 청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은 취직 공부 전에 역사 공부를 먼저 해야 한다. 우리나라 정치의 뿌리가 무엇인지, 역사의식이 무엇인지 빨리 깨달아야 한다.

 

젊은 층의 투표율은 여전히 낮다. 참여하지 않는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하나.

정치가 자기 생활에 별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살다보면 정치가 바로 내 삶이라는 걸 뼈저리게 느낄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는 왕조시대보다 우리의 운명을 훨씬 더 깊게 좌우한다. 병원에 가서 돈을 얼마 내는가부터 직장에서 얼마나 돈을 받고 세금을 얼마 내는지를 정치가 결정한다. 결혼해서 자녀 학교 보내는 문제, 취직하는 문제, 직장에서 상해를 당했을 때 보상받는 문제, 다 정치권력이 결정한다. ‘나는 정치와 상관없다고 하는 젊은이들은 무지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현대인은 모두 정치의 지배를 받고 있다. 정치가 내 운명을 좌우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역사는 정의와 부정의의 길항 관계다. 집권세력은 국민을 탄압하면 다 되는 줄 알지만, 세계 역사에서 탄압만으로 성공한 예는 없다. 탄압이 세지면 저항도 세진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어떤 관점에서 보아야 하나.

국정화의 본질은 역사의 날강도 작업이다. 21세기형 친일파 양성 선언이다. 21세기형 친일파란 외세 의존, 민족 분열 영구화, 민주주의와 국민복지 반대, 평화 대신 전쟁을 지지하는 자들이다. 역사를 조작하려는 이들은 영구 집권을 꿈꾸는 사람들이다. 영구 집권을 꿈꾸지 않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임기가 2년밖에 안 남았는데 역사 교과서를 1년 안에 써서 보급하겠다고 한다. 정권이 바뀌면 국정 역사 교과서를 쓰지 않을 텐데 왜 계속 국정화를 진행하는지에 대해 질문해봐야 한다. 그 저의가 무엇일까, 이것을 빨리 파악해야 한다. 설령 박근혜가 각성해서 국정교과서를 포기하더라도, 그런 생각을 했던 정치인이 박근혜였다고 영원히 심판해야 한다. 역사를 날조하려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집권층에서 대통령중임제, 이원집정부제 개헌 얘기가 나오고 있다.

정권 교체를 전혀 염두에 두고 있지 않은 것이다. 다음 대통령 선거에서도 아무 문제 없이 그대로 이긴다는 게 전제다. 옳고 그름의 문제를 이미 떠난 사람들이다. 국민을 실험실 속에 집어넣는, 그런 만화 같은 발상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국정교과서를 만드는 것 아닌가. 국정교과서 논쟁은 인간의 상식을 가졌느냐 안 가졌느냐 하는 차원에서 근본적으로 생각하면서 다뤄야 한다.

 

혼의 비정상과 같은 박 대통령의 언어는 어떻게 보나.

박 대통령이 국민에게 국가관을 가지라고 말한다. 오히려 대통령에게 국가관을 가지라고 얘기하고 싶다. 국가관은 헌법이 정하는 것이다. 외세에 저항한 3·1운동, 불의에 항거한 4·19혁명, 남북 평화통일과 국민복지, 모두 헌법 전문에 나와 있다. 우리나라 국가관은 헌법이 말하는 것이지 그때그때 집권하는 대통령이 말하는 게 아니다. 유신독재 체제가 국가관이 돼야 한다는 박 대통령 내면의 소망이 간접적으로 드러난 것으로 본다.

 

무기력한 야당에 대한 책임론도 만만치 않다.

4·19혁명 뒤에 5·16 군사쿠데타를 허용한 것은 민주당의 잘못이다. 집권당이 그 엉성한 쿠데타 하나를 분쇄 못했다. 그것이 야당의 한심한 뿌리다. 1963년 대선에서 박정희와 윤보선의 득표 차이가 156천 표밖에 되지 않았다. 나머지 3명의 야권 후보가 얻은 표를 합치면 70만 표가 넘는다. 국민은 5·16을 지지하지 않은 것이다. 야당이 정치공학에서 실패한 것일 뿐, 국민은 실패하지 않았다. 1987년 대선에서도 노태우가 얻은 게 36%에 불과하다. 김대중·김영삼이 분리돼서 얻은 표가 55%. 전두환 군부독재 세력 또한 국민이 지지하지 않은 것이다. 실패는 야당의 무능 때문이었다. 이 점을 반성하지 않으면 내년 총선, 내후년 대선도 똑같을 거다.

 

진보세력이나 시민사회단체는 어떤가.

진보세력은 4·19혁명 이후 올바른 민주주의를 위해 항상 앞장서왔다. 훌륭한 일을 해왔지만 분열하는 데 일조한 것도 진보세력이다. 말을 들어보면 다 옳다. 그런데, 그래서 실패하는 것이다. 모두가 옳기 때문에 분열하고 패배했다. 그 옳음이 오류였던 것이다. 제발 더 크게 역사를 봐달라고 말하고 싶다. 분열했던 사람들은 무조건 반성해야 한다. 하나로 뭉쳤으면 집권을 앞당길 수 있었다. 집권할 수 있는 조건을 스스로 다 배제한 것이다. 시민사회단체들도 읍참마속과 석고대죄를 해야 한다. 자기 단체가 맡은 분야에만 열중하다보니 종횡적인 연대나 현대사를 크게 보고 큰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 자기 분야만 잘하다보니 전체를 아우르고 크게 보는 게 결여돼 있다. 이대로 가면 내년 총선도 필패다.

 

아베의 속내, 박근혜의 속내

큰 틀에서 볼 때 한국 사회는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나.

정치세력이 우를 한 번 더 범하면 민족사를 그르칠 수 있는 재앙을 가져올 수 있다. 박근혜의 통일 대박은 구호에 불과하다. 남북 문제와 대일 문제를 보면 동아시아의 운명이 달려 있다. 북한이 가지고 있는 문제는 민주화를 열망하는 사람들에게 대단히 곤혹스럽다. 한국 정치인이 할 수 있는 건 남북 화해와 공존뿐이다. 하지만 부당한 집권세력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오로지 북한에서만 찾고 있다. 북한이 계속 저렇게 해줘야 지금 집권세력에게 유리한 거다. 미국에는 또 얼마나 좋은가. 무기 팔아먹고 무역에도 좋다. 부당한 세력이 영구 집권하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처럼 되는 것이다. 아베는 21세기의 히틀러다. 한국전쟁이 일본의 경제 부흥을 가져왔던 것처럼 한반도의 재앙이 일본에는 제2의 경제부흥기다. 이것을 노리는 게 일본과 아베의 속내다. 박근혜의 가치관도 아베의 것과 똑같다. 내부적으로는 너무나 궁합이 잘 맞지만 겉으로는 그렇지 않은 척 쇼를 하는 거다. 내년 총선, 내후년 대선이 고비, 갈림길이 아닐까. 역사 교과서 국정화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의 생명, 우리의 삶, 우리의 팔자가 걸린 문제다.

인터뷰 막바지, 임 소장은 집권세력을 욕하고 규탄만 해서는 대책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뭉쳐야 한다고 했다. “나 자신부터 석고대죄를 한다. 다 우리 잘못이다. 이제라도 뭉치면 된다. 모래알로는 안 뭉쳐지지만 콘크리트를 만들어 철근에 넣으면 백년을 가는 튼튼한 집이 된다.”

 

 

종편의 수준 친일 어쩌라고, 식민기간 태어나지 말아야지1127 미디어오늘

시사토크 진행자 막말 출연자보다 심각대통령 치켜세우고 집회는 테러 취급

종편 시사토크 프로그램 진행자들의 발언이 또 도마에 올랐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모니터링 해 미디어오늘에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이들 진행자들은 역사 교과서 국정화와 민중총궐기 집회와 관련해 진행자로서 적절하지 않은 수위의 발언을 쏟아냈다. 지난 1020일 방송된 TV조선 이하원의 뉴스Q’에서 이하원 TV조선 정치부장은 “8종의 고등학생 교과서를 보면서 너무나 균형적으로 대한민국 이승만 독재와 김일성 전체주의 체제하고 똑같이 비슷하게 한 걸 보고 화가 났다고 말했다.

 

지난 1020일 방송된 TV조선 이하원의 뉴스Q. 오른쪽이 이하원 정치부장. 사진=TV조선 방송 화면

 

국정교과서는 옹호하고 친일에는 어쩌라고

이어 이 정치부장은 국정화에 반대 분위기에 대해 국정교과서에 반대를 해야지만 대한민국의 지식인들이고 조금이라도 찬성하거나 어쩔 수 없지 않느냐고 하면 너는 어용이지, 너는 독재를 찬성하는거지, 너는 친일파하고 친한거지?’라는 분위기가 대한민국 사회에 형성되고 있는 것 아닙니까라고 말했다. 채널A ‘쾌도난마이은우 경제부장도 지난 108일 방송에서 어떤 소수의 열성적이고 목소리가 큰 일부에 대해서 자유로운 선택, 다양성이라고 했는데 다양성이 오히려 해쳐진 꼴이 되고 말았다고 말했다.

 

친일과 독재를 옹호하는 듯한 발언도 나왔다. TV조선 장성민의 시사탱크의 장성민 앵커는 지난 1014일 방송에서 이승만 대통령의 독립운동, 항일운동, 건국, 한미동맹, 그리고 토지개혁까지 수없는 그의 장점들도 있고. 물론 그의 약점들도 있었겠죠. 지도자로서라고 말했다. 채널A ‘뉴스 TOP10’의 박정훈 앵커는 이 짧은 시간에 이렇게 살만한 나라, 또 민주화된 나라, 또 산업화로 성공한 나라 이런 나라가 세상에 있는지라고 지난 1015일 방송에서 말했다.

 

TV조선 엄성섭 정혜진의 뉴스를 쏘다의 엄성섭 앵커는 지난 1030일 방송에서 아버지가 친일행적을 했든 안했든, 그럼 친일 행적 했으면 뭘 어떻게 하라고요? 아버지가 친일적인 행적을 한 적이 있어. 그럼 어떻게 해요. 뭘 뭘 어떻게 해요?”라며 그럼 우리나라 36년 동안, 식민지 기간 동안 전국민 다 태어나지 말았어야, 우리는 뭐 다 귀태인가?”라고 말했다.

 

지난 14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민중총궐기대회에서 경찰이 캡사이신이 들어간 물대포를 쏘자 시위대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박근혜 대통령 엄청났습니다극찬

역사 교과서 국정화와 관련한 박근혜 대통령의 시정 연설에 대해서는 극찬이 쏟아졌다. 엄성섭 앵커는 지난 1027일 같은 프로그램에서 대통령이 오늘 시정연설을 하시면서 아주 강하고 단호하고 어조도 그렇고 눈빛도 그렇고 행동, 표현 다 그렇습니다. 엄청났습니다라고 말했다. 같은 날 TV조선 김광일의 신통방통의 김광일 앵커도 정말 단호한 어조와 표정과제스처로 그 대목을 짚어주셨습니다라고 말했다.

 

TV조선 장성민 앵커는 전날인 1026현 정부에서는 권력투쟁이 안 보입니다라며 철저하게 분규의 씨앗을 차단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굉장히 중요한 국정운영의 지혜로 볼 수 있을 거 같습니다라며 박 대통령을 극찬했다. 그러면서 장 앵커는 권력 암투를 퍼스트레이디 시절 경험하고 목격한 대통령이 그래서 2인자를 두지 않는다는 인사철학은 상당한 역사적 시련과 고난 속에서 터득한 게 아닌가라고 분석했다.

 

민중총궐기 두고 지금 테러 당하고 있는거죠

그러나 집회참가자들에 대해서는 정반대의 태도를 보였다. 장성민 앵커는 지난 16일 방송에서 민중총궐기 참가자들에 대해 지금 테러 당하고 있는거죠. 대한민국이 저런 폭력배들의 것입니까? 어떻게 보십니까?”라고 말했다. 장성민 앵커는 앞서 지난 1028일에도 대한민국에는 정의가 사라졌다. 이런 나라에는 충성할 필요가 없다는 한 교사의 수업 내용을 두고 테러에 대한 학습효과를 시키는 것이라며 “IS 단체 같다고 말했다.

 

이하원 TV조선 경제부장도 지난 16일 방송에서 농민 1명이 물대포에 맞아서 쓰러진 것 말고는 경찰이 강력하게 진압을 한다라든가, 또 맞서는 장면은 전혀 어디에서도 나오지 않았거든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발언은 사실 관계조차 틀렸다. 당시 집회 참가자들 가운데는 팔이 부러지거나, 쇠뭉치에 맞아 허벅지가 찢어지는 등의 부상을 당해 응급실로 후송되는 부상자가 속출했다.

 

엄성섭 TV조선 앵커는 지난 2월 방송에서 '공정한 방송 하겠다'고 사과했다. 사진=TV조선 방송 화면

 

정중한 방송 하겠다는 사과는 어디로

이에 대해 김언경 민언련 사무처장은 사실 진행자가 출연자보다 더 문제라며 진행자는 출연자가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거나, 편파적인 발언을 할 경우에 발언을 수습하고 정정하는 역할을 해야하는데, 지금 진행자들은 막말을 부추기고 센말이 나올 때까지 분위기를 이끌어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 사무처장은 방송사가 진행자를 징계해야 하는 게 맞지만 지금은 다른 프로그램으로 재배치 되는 식으로 끝나버린다고 말했다.

 

시사 프로그램의 대표 진행자인 손석희 JTBC 보도담당사장은 지난 2006‘100분 토론’ 300회를 맞이해 진행된 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진행자의 역할에 대해 토론 프로그램은 물흐르듯 패널들만으로 진행되어지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사회자는 제작진과 함께 이야기를 나눌수 있는 장과 틀을 만들어 주는 역할을 충실히 하고 균형 감각을 가져야 합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종편 시사토크 진행자들도 이같은 지적을 모르지 않는다. TV조선 간판 앵커 엄성섭 앵커는 올해 초 막말에 대한 공개 사과까지 한 바 있다. 당시 엄 앵커는 부적절한 표현을 사용한 점 사과드린다한국일보 기자께도 사과드린다. 정중한 방송을 하겠다고 말했다. 전날 엄 앵커는 한국일보 기자에 대해 이게 기자입니까? 쓰레기지라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정중한 방송을 하겠다는 사과로부터 10개월이 지났다. 하지만 막말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천상 좌담회 복면이라니1127 미디어오늘

[김종철 칼럼] ‘박근혜, 복면 쓰고 시위하면 IS 같은 테러분자로 보겠다니

 

노무현: 어제 김영삼 선배님의 국가장이 거행되었습니다. 기온이 갑자기 영하로 떨어진 탓인지 국회의사당 광장의 영결식장에는 예상보다 훨씬 적은 7천여명이 참석했다고 합니다. 특히 외교사절들이 보기에 국가장이 썰렁해 보였을 것입니다. 전직 대통령들의 영결식에는 어김없이 현직 대통령이 참석했는데 이번에 박근혜 대통령은 서울대병원의 장례식장에서 유족을 위로한 뒤 운구행렬을 지켜보고는 영결식장에 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감기 증상이 심해서 그랬다는 것이 청와대의 해명이었습니다. 김영삼 선배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영삼: 곧 해외순방을 떠날 예정이라서 그랬다니 뭐라고 탓하겠습니까? 특히 영결식의 당사자인 제가 말입니다. 그러나 이번 일 말고도 박 대통령이 속이 좁다는 비평을 받을 만한 사례들이 많았지요. ‘배신자라는 낙인을 찍어 새누리당 원내대표 자리에서 쫓아낸 유승민 의원이 얼마 전 부친상을 당했을 때는 아예 조화도 보내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11월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의 모친상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2012년 대선 때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으로 박근혜 후보를 위해 열심히 일했지만 대통령 취임 뒤에 날카로운 비판자로 변했기 때문일까요? 옛적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리 척을 진 사람이라도 고인이 되면 문상을 하는 것이 인간에 대한 예의라고 여겨왔습니다. 이런 점에서 박 대통령의 처신이 몹시 눈에 거슬리는군요.

 

김대중: 201312월 남아프리카공화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자 흑인인권운동가이던 넬슨 만델라의 영결식에는 세계 여러 나라의 지도자들이 거의 다 참석했는데 박근혜 대통령은 불참했지요. 그런데 지난 3월 싱가포르 전 총리 리콴유의 장례식에는 참석해서 리콴유 전 총리는 우리 시대의 기념비적인 지도자로서 그의 이름은 세계사 페이지에 영원히 각인될 것이고, 한국인은 리 전 총리를 잃은 슬픔을 싱가포르의 모든 국민과 함께 할 것이라고 조문록에 적었습니다. 백인 정권의 야만적 탄압에 신음하던 흑인들을 위해 싸우다 무기형을 받고 27년이 넘게 복역한 세계 인권운동의 상징적 존재인 만델라의 죽음은 외면하고 박정희와 함께 아시아의 냉혈적 독재자라고 불리던 리콴유의 장례식에 가서는 한국인의 이름으로 애도의 뜻을 전한 것입니다.

 

노무현: 지난 1122일 김영삼 선배님께서 작고하신 바로 이튿날 저희가 천상 좌담회를 가졌습니다. 돌아가신 다음날 선배님을 갑자기 모신 것이 결례였다고 생각했습니다만, 그로부터 닷새 뒤에 다시 이런 자리를 마련한 까닭은 지금 한국사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벌이고 있는 주권자들과의 전쟁이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박 대통령은 김영삼 선배님에 대한 국가장 기간인 지난 24일 국무회의에서 그야말로 등골이 오싹해지는 폭탄 발언을 했습니다. 지난 1114일 노동자, 농민, 빈민, 청년학생 등 13만여명이 참여한 민중총궐기 대회는 이슬람국가(IS)가 저지른 테러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125일로 예정된 2차 대회도 법치를 부정하고 정부를 무력화하는 행위라고 단정하면서 복면금지법과 테러 관련 법안을 국회가 조속히 통과시키라고 요구한 것입니다. 박 대통령은 경찰의 물대포 조준 발사로 사경을 헤매고 있는 백남기 농민과 가족에 대한 사과는 단 한 마디도 않은 채 13분에 걸쳐 테러단체들이 불법시위에 섞여 국민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고 주장했지요. 그는 국회에 대해 한중 FTA를 조속히 처리하라고 촉구하면서 맨날 앉아서 립서비스만 하고, 경제 걱정만 하고, 민생이 어렵다고 하고, 자기 할 일은 안 하고, 이건 말이 안 된다, 위선이라고 생각한다고 거칠게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그 말이 고스란히 박 대통령에게 되돌아야 할 것 같은데요. 김영삼 선배님은 국가장의 실질적 상주가 되어야 할 박 대통령이 이런 언행을 보인 것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왼쪽부터) 김영삼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 연합뉴스

 

김영삼: 제가 지난번 좌담회에서 “2012년 대선 기간에 박근혜 후보를 칠푼이라고 부른 것은 이제 생각하니 좀 심했다고 반성했는데 그 말을 취소해야겠습니다. 국가원수이자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어떻게 평화적 집회를 열고 시위를 벌인 13만여명의 주권자들을 IS 같은 테러분자들이라고 몰아붙일 수 있습니까? 그들 가운데 극소수가 경찰에 위해를 끼칠 수 있는 행위를 저질렀다면 그 사람들만을 사법처리하면 됩니다. 소수의 일탈을 구실로 절대 다수를 반국가행위자로 매도하는 것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자주 쓰던 수법입니다.

 

김대중: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복면금지법제정을 촉구한 바로 이튿날 새누리당 의원 32명이 잽싸게 복면 착용 금지를 뼈대로 하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더군요. 이것이야말로 헌법이 보장한 집회와 표현의 자유를 유린하겠다는 기도입니다. 헌법재판소는 200310주최자는 집회의 대상, 목적, 장소 및 시간에 관하여, 참가자는 참가의 형태와 정도, 복장을 자유로이 결정할 수 있다고 구체화했는데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그것을 휴지조각으로 만들려 들고 있습니다. 저는 복면을 어떻게 규정할지조차 전혀 짐작할 수 없습니다. 머리끝부터 목까지 가린 것일까요, 아니면 이마 아래 눈부터 턱까지를 가린 것일까요? 추운 날씨에 목도리로 얼굴을 감싸면 그것도 복면이 될까요? 평화적인 시위대의 앞장에 서서 탈춤을 추는 춤패들이 쓴 탈도 복면일까요? 군대에서 위장을 할 때처럼 얼굴에 숯검정을 바르는 것도 복면을 쓰는 행위가 될까요? ‘복면금지법이 국회를 통과한다면 판사들이 복면의 법적 규정을 둘러싸고 골머리를 앓게 될 것입니다. 박 대통령이 왜 이렇게 몰지각한 입법을 강요하려 드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 헌법을 유린한 채 대통령 특별선언이라는 것을 근거로 ‘10월 유신이라는 헌정쿠데타를 일으켜 국회를 해산하고 종신집권의 길을 트려고 한 선례를 모방하는 것일까요?

 

노무현: 화제를 바꾸어 보겠습니다. 1114일의 민중총궐기 대회에서 물대포를 맞고 지금 뇌사 직전에 이른 백남기 농민의 사돈, 곧 둘째 딸 백민주화 씨의 시아버지인 네덜란드인 해롤드 모넌 씨가 지난 25<한겨레>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약 사람들이 경찰에게 총을 겨눴거나, 벽돌을 던지거나, 때리거나 하는 위험한 상황에서는 경찰의 생명을 방어하기 위해 물대포를 쏠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경찰이 위험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쏘는 것이지, 상대를 죽이기 위해 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광장 한가운데 혼자 서 있었다. 경찰의 생명을 위협할 만한 그 어떤 것도 들고 있지 않았는데, 그 사람을 향해서 직격으로 물대포를 쐈다. 그것은 범죄행위이고 살인이다.” 그분은 박근혜 대통령이 시위대를 IS에 비유한 말에 대해서는 유럽에서는 탄핵까지 가능한 발언이라고 단정했지요. <한겨레>의 허재현 기자는 트위터에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대통령을 비판하려고 집회에 나온 국민을 테러리스트로 여긴다면 더 이상 국민도 당신을 대통령이 아닌 맞서 싸워야 할 적으로 여길 겁니다. 대통령은 국민 모두를 품고 가려 노력해야 하는 자리입니다. 당신은 대통령 자격이 없습니다.”

 

김영삼: 1979년의 부마항쟁때가 생각납니다. 그 항쟁이 일어나기 직전인 104일 박정희 대통령의 거수기이던 공화당과 유정회 의원들은 제가 반국가적 행위를 했다는 트집을 잡아 국회의원직을 박탈했습니다. 그것이 1015일 저의 정치적 고향인 부산에서 터진 항쟁의 한 동인이 되었지요. 18일과 19일에는 마산과 창원으로 항쟁이 확산되었습니다. 부산 시위 현장에서 반유신독재를 외치는 민중의 열기를 확인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대통령에게 사태의 심각성을 보고하자 차지철 경호실장은 캄보디아처럼 1백만이나 2백만 명을 죽여 버리면 소요가 가라앉을 것이라고 주장했지요. 박 대통령은 머리를 끄덕였다고 합니다. 결국 김 부장은 박 대통령을 제거하지 않으면 대학살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판단했고, 그것이 1026일의 청와대 안가 대통령 살해 사건으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모든 독재자는 결국 비참한 파국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입니다. 박근혜 대통령도 이 점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김대중: 그렇습니다. 김영삼 동지는 박정희 정권 시기에 초산 테러를 당했고, 전두환 군사정권 때인 1983년에는 민주화를 외치며 23일 동안 목숨을 걸고 단식을 하셨습니다. 저는 19738월 박 정권의 중앙정보부 요원들에게 납치를 당해 죽음 직전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났고, 전두환 정권이 조작한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으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가 극적으로 석방되어 미국으로 망명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박 정권도 전 정권도 민주화를 열망하는 국민의 항쟁에 밀려 파탄을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그런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할 텐데 지금의 언동을 보면 불안하기 짝이 없군요. 침묵하는 듯이 보이는 주권자들이 분노해서 대대적 항쟁을 일으킬 때 무력으로 제압할 수 없다는 사실은 부마항쟁과 6월항쟁이 여실히 보여준 바 있습니다.

 

노무현: 제동장치도 없는 자전거를 타고 비탈길을 내려가는 것이나 다름없는 박근혜 정권의 폭주를 저지해야 할 야권, 특히 새정치민주연합이 보이고 있는 무기력함이 심히 걱정스럽습니다. 저의 법조계 후배이자 동지인 문재인 대표는 정직하고 성실한 인물이지만 당내에서 확고한 지도력을 확보하지 못한 처지이고 국민들에 대해서도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어려운 조건에 놓여 있습니다. 2야당인 정의당은 최근 몇 개 정파와 합세해서 새 출발을 했지만 지지율 5% 남짓으로 강력한 정치력을 발휘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그밖에 천정배 의원 중심의 신당추진세력까지 독자적으로 움직인다면 내년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압승을 거두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라는 역사쿠데타가 진보는 물론이고 보수 진영 다수의 반대에 부닥쳐 있다는 현실을 무릅쓰고 극우적 프레임으로 콘크리트 지지층을 결합시키면서 내년 총선 압승을 통한 장기집권을 꾀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그것을 막고 총선 승리와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룰 수 있겠습니까?

 

김대중: 지난 1114일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 범시민대회에서 민주주의국민행동 상임대표 함세웅 신부가 “19876월항쟁 시기의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같은 범국민운동본부를 결성해서 시민단체들과 야권의 대연합을 이루자고 제안하셨다고 합니다. 범국민운동의 구심점이 없는 상태에서 시민단체들이 결합해서 야권의 정당들과 제휴하는 조직을 만든다면 총선 승리와 정권교체의 전망이 밝아질 것입니다. 그러나 특히 새정치민주연합 안에서 공천권을 둘러싸고 잡음을 일으키는 의원들이나 문재인 대표에 대해 무조건 부정적 태도로 일관하는 정치인의 끈질긴 반대를 어떻게 극복하는지가 가장 큰 과제가 되겠지요. 저 자신은 이제 호남이나 김대중을 파는 정치적 광고문안은 확실히 배격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제가 생시에 한결같이 주장했듯이 지역 간의 화합, 나아가서 국민 통합 없이는 민주화와 통일이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김영삼: 이번에 저의 죽음을 계기로 민주화투쟁의 중요성과 독재정권의 문제가 새삼스럽게 부각된 것 같습니다. 언론은 박근혜 대통령의 비민주적 행태, 유신독재로의 회귀와 저의 정치적 행적을 비교하는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제가 한 점 부끄럼 없이 정치를 해온 것은 아니지만 지금처럼 파괴적이고 편집증적인 정권의 행태는 결코 용납할 수 없습니다. 대통령도 한 사람의 주권자에 불과합니다. 부디 다수 국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옳은 일이면 실천하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정치적, 인간적 파멸을 피해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노무현: 저도 두 선배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이승을 떠나고 보니 인생이 얼마나 짧고 욕망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를 절실히 깨닫게 됩니다. 정의로운 권력이 평화와 통일로 가는 정치를 하면서 자유와 평등을 보장하는 체제를 이룩하면 좋겠지만 특정 개인의 권력욕이나 탐욕을 충족시키려는 책동은 반드시 파탄에 빠진다는 것을 박근혜 대통령이 명심하라고 권고하겠습니다. 김영삼, 김대중 두 분 선배님과 저는 여기서 언제나 조국을 지켜보며 진정한 민주화와 통일의 날이 오기를 기원하고 있겠습니다.

 

대통령 능지처참 발언에 박수? MBC 악마의 편집1124미디어오늘

[인터뷰] 박종운 세월호특조위 안전사회소위원장정부대응 조사하는데 대통령 빠진다는 게 말이 되나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특조위가 청와대 등의 참사대응을 조사대상으로 삼기로 하자 정부여당이 위헌’ ‘해체이야기까지 하며 특조위를 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타겟도 정해졌다. 박종운 특조위 상임위원(안전사회소위원장)이다.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은 박종운 소위원장이 한 포럼에 참석해 박근혜 대통령을 능지처참하고 박정희 대통령을 부관참시 해야 한다는 유가족 발언에 박수를 쳤다고 비난했고, 종편과 MBC 등 몇몇 언론도 이러한 사실을 보도했다.

 

이러한 공세의 효과는 명백하다. ‘대통령 행적이나 조사하며 정치 공세한다는 비난과 대통령에 대한 모욕적 발언에 박수 친 박종운 소위원장을 연결시키는 것이다. 박종운 위원장은 24일 미디어오늘과 전화 인터뷰에서 정치공세는 여당 추천위원들과 여당이 하고 있다사안을 침소봉대해 공격하는 행위로, 악의적이다라고 반박했다.

 

문제가 된 발언은 116일 대한민국 정책컨벤션&페스티발 행사에서 나왔다. 안산시에서 주관하는 세월호 진상규명 관련 섹션이 있었고, 그 자리에 특조위 이석태 위원장이 초대받았으나 일이 있어 박종운 소위원장이 참석했다. 세월호 유가족도 참석했고, 사회자가 유가족이 왔으니 한 말씀을 듣자고 했다. 문제가 된 유가족의 발언은 이 자리에서 나왔다.

 

박종운 소위원장은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유가족이 4~5분 발언하는 동안, 후반부에 대통령 관련 발언을 했다. 최근 국정교과서가 이슈가 되면서 유가족들 중에 세월호 참사가 역사에 제대로 기록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가지신 분들이 있다이런 생각을 그 분이 과도하게 표현했다. 저도 말을 듣고 움찔했다고 밝혔다.

 

 

1123MBC 뉴스투데이 갈무리. 박종운 위원장이 박수를 치는 모습.

박 위원장은 작년에 대한변협에서 활동할 때부터 유가족들에게 분노는 이해하지만 여러 대중 앞에서 이야기할 때는 최대한 정제해서 말씀해야 한다고 했다. 사람들이 오해할 수 있고 우리에게서 멀어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박 위원장은 또한 유가족이 그 발언 이후 희생된 자녀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 장내 분위기가 숙연해졌고, 그 발언을 마치자 박수를 친 것이라며 저만 친 것도 아니다. 대상이 대통령이든 아니든 그런 식의 발언에는 동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발언이 끝나서 의례적으로 박수를 친 것이고, 자녀 이야기에 가슴이 아파 위로하는 마음으로 친 것이다. 그런데 MBC를 보면 마치 그 유가족이 논란이 된 발언을 한 직후 바로 내가 박수를 친 것처럼 나온다악마의 편집이다. 동조해서 박수친 게 절대 아니고, 이후 유가족을 만났을 때도 그런 표현을 쓰는 건 옳지 못하다는 말까지 했다고 강조했다.

 

여당은 세월호 특조위가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 소위 대통령 7시간을 조사하는 것을 문제 삼고 있다.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2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침몰 원인과 전혀 상관없는 대통령 행적 조사에만 열을 올려 개탄을 금할 수 없다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 농림축산해양수산위원회 여당 간사인 안효대 의원(새누리당)특조위가 특별법 취지를 훼손하고 위법사항을 계속하면 특조위 해체까지 검토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관련 기사 : <세월호 특조위, 박근혜 잃어버린 7시간조사한다>

 

박 위원장은 “7시간을 조사한다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실제 23일 특조위가 조사개시를 결정한 사안은 청와대 등의 참사대응 관련 업무적정성 등에 관한 건이며, ‘관련성이 있는 경우 대통령에 대한 조사를 배제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들어갔을 뿐이다.

 

박 위원장은 청와대의 대응사항을 조사하는데, 청와대 대응의 주체가 대통령 아닌가. 그러면 대통령을 조사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며 우리가 대통령 7시간 당일행적에 대한 조사를 해서 사적 프라이버시를 침해한다고 비난하는데 그 날 의결은 이런 사안과 전혀 상관없는 것이다. 다만 대통령이 조사대상이 될 여지가 생긴 것뿐이다라고 말했다.

 

여당 추천 위원들도 처음에는 청와대의 참사대응에 대해 조사하는 것에 동의했다. 9월 말 청와대 등의 참사대응 관련 업무적정성 등에 관한 건이 특조위에 접수된 후 1020일 세월호 특조위 제4차 진상규명소위는 이를 소위 전원 찬성으로 전원회의 조사개시 안건에 상정하기로 했다. 그러나 일주일 뒤인 1027일 제5차 진상규명소위원회에서 여당 추천 위원들이 특조위에서 대통령 행적 조사를 하는 것이 말이 안 된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여당 위원들이 갑자기 입장을 뒤집은 것을 두고 정부 개입설이 나왔다. 지난 19일 머니투데이 the300은 해양수산부의 세월호 특조위 관련 현안 대응방안문서를 공개했는데 이 문서에는 특조위 관련 주요 현안 중 BH 조사 관련 사항은 적극 대응하며, “여당추천위원들이 소위 의결과정상 문제를 지속 제기하고, 필요시 여당추천위원 전원 사퇴의사 표명하라는 내용이 있다.

 

관련 기사 : <“잃어버린 7시간 조사하면 사퇴특조위 정부지침 문건 논란>

 

머니투데이 '300'(the300)이 단독입수한 해수부의 '세월호 특조위 관련 현안 대응방안' 1페이지. 사진=300

 

박종운 위원장은 이미 여당 위원들까지 동의해 의결해놓고 난 뒤 딴 소리로 몰아붙이고, 다시 보수언론이 이를 따라가고 보수단체들이 와서 시위를 한다거의 짜고 공격한다고 밖에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박 위원장은 또한 그 문건은 우리도 누가 만들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내용을 보면 특조위의 전체상황을 모르면 쓸 수 없는 문건이고, 문건에 나와 있는 대로 진행되고 있지 않나. 해수부나 정부에서 만들었다고 추정된다고 밝혔다.

 

박 위원장은 대통령 행적을 조사하는 것이 권한 남용이라거나 불법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박 위원장은 세월호특별법 5(위원회의 업무) 3호에도 정부대응의 적정성을 조사하라고 나온다. 정부의 수반은 대통령 아닌가라며 정부대응의 적정성을 조사하는데 대통령이 빠진다는 게 말이 되나라고 지적했다.

 

위헌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청와대는 출입기자들에게 위헌적 발상에서 벗어나 특조위 본연의 입무에 충실해 주실 바란다고 밝혔다. ‘내란 또는 외환의 죄가 아니면 재임 중 형사소추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헌법 제48조가 근거다.

 

박 위원장은 세월호 특조위에는 기소권도 수사권도 없고 형사소추할 권한도 없다. 조사만 하는 것이라며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은 참사 당시 대통령이 형사소추 당할 만한 범죄를 저질렀다고 보는 건가? 그런 일은 없었던 걸로 아는데라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또한 미국에서 9.11 테러 이후 위원회 구성됐을 때도 전현직 클린턴, 부시 대통령 다 조사받았다고 지적했다.

 

박 위원장은 세월호 특조위의 대통령 행적조사가 정치적 중립성 위반이라는 여당의 주장에 대해서도 정치공세는 그 쪽에서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박 위원장은 우리가 대통령 조사하는 데 사생활 조사하자는 게 아니지 않나. 사고 관련된 지시대응에 대해 조사하는 것이라며 우리가 이걸 정치적인 문제로 만들어서 얻을 이익이 뭐가 있나. 여당 추천위원들과 여당이 사안을 침소봉대해 정치적인 문제로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여당이 당장 꺼내들 수 있는 카드는 보복성 예산삭감이다. 박 위원장은 정부여당은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시행령도 그렇게(특별법에 안 맞게) 만들고 예산도 깎았다. 출범부터 늦어지게 하더니 조사 좀 하려니까 이런 일로 제동을 건다고 비판했다.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여당 추천위원들이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특조위가 청와대와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을 조사할 경우 전원 사퇴를 할 것이라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황전원, 석동현, 고영주. 민중의소리

 

박 위원장은 또한 현 정부 하에서 벌어진 일이라 부담스러운 건 알겠지만 이건 정치적 문제가 아니다세월호 특조위는 법에 의해 만들어진 기구이고 참사가 반복되선 안 된다는 말라는 뜻에서 만들어졌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관련 기사 : <대통령 7시간 조사 착수하니 특조위 해체?>

 

 

경향사설] 김무성 대표, 민주화 투사 YS정치적 아들자격 없다 11.23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서거한 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줄곧 고인의 빈소를 지키고 있다고 한다. 김 대표는 스스로를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아들로 일컬으며 상주역할을 자청했다. 김 대표의 정치인생이 김 전 대통령의 상도동계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김 대표는 김 전 대통령이 통일민주당을 창당할 때 발기인으로 참여했고, 대통령 재임 시절엔 청와대 민정·사정비서관과 내무부 차관 등을 지냈다. 한 언론과의 통화에서 김 대표는 같이 모시고 민주화 투쟁을 하던 시절이 생생한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고 한다.

 

김 대표가 고인과의 개인적 인연을 회고하며 애도하는 일이야 이해 못할 바 아니다. 그러나 정치적 아들을 참칭하는 모습은 참으로 불편하다. 김 전 대통령은 한국의 민주화에 온 생애를 바친 불굴의 투사였다. 서슬 퍼런 박정희 독재에 온몸으로 저항하다 국회에서 제명당했고, 전두환 군사정권에 맞서 23일간 단식투쟁을 벌였다. 고인에게 민주주의는 가치와 신념을 넘어 목숨과도 같은 의미였다. 누군가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아들을 자임하고자 한다면, 그 또한 민주주의를 목숨처럼 여겨야 마땅하다.

   

지금 김 대표는 어떠한가. 민주주의를 목숨처럼 여기기는커녕 민주주의 퇴행에 선봉대 노릇을 하고 있다. 거짓과 왜곡, 억지와 불통으로 점철된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앞장선 게 대표적 사례다. 한국사 교과서는 해방 이후 줄곧 검정제로 발행되다 유신체제에서 국정으로 전환됐다. 박근혜 정권의 국정화 강행은 유신의 유물을 되살려낸 것이나 매한가지다. 김 전 대통령이 목숨 걸고 이뤄낸 민주화의 성과를 무()로 돌리는 최일선에 김 대표가 있는 것이다.

김 대표가 고인을 진정한 의회주의자로 상찬하며 야당을 향해 민생 최우선운운한 대목에선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숙청당할 때 김 대표는 기회주의적 처신을 거듭했다. 대통령이 삼권분립 원리를 훼손하고 의회민주주의를 모독하는데도 저항하기는커녕 하수인 노릇에 충실했다. 이래놓고도 의회주의를 거론하다니 염치가 없다.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유산을 겨냥해 스스로를 후계자로 포장하려는 모양이나, 국민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김 대표는 결코 민주화 투사 김영삼의 정치적 아들이 될 수 없다. 고인을 모독하지 말라.

 

'YS 상주' 손학규, 생전에는 생일 때마다 식사 대접 1125 노컷뉴스

YS 생면부지의 발탁 초선 장관"YS는 정치적 아버지"

 

 

손학규 전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이 24일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빈소를 방문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새삼스럽지 않고 당연하다."

야권 인사로는 유일하게 매일 김영삼 전 대통령(YS) 빈소에 머물며 사실상 '상주' 역할을 하고 있는 새정치민주연합 손학규 전 상임고문에 대해 한 측근은 이렇게 말했다. 손 전 고문은 26일 영결식때까지 계속 빈소를 지킬 예정이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서청원 최고위원이 '상주'를 자임하고 있는 상황에서 손 전 고문이 이렇게 정성을 쏟는 것은 두 사람의 남다른 인연 때문이다. 손 전 고문은 지난 1993YS의 발탁으로 경기 광명 보궐선거에 출마해 국회에 입성했다. 당시 YS는 개혁과 변화에 적합한 인물을 찾다가 주변의 권유를 받고 손 전 고문을 낙점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두 사람은 일면식도 없었다. 손 전 고문은 공천장을 받으러 가서야 YS와 첫 대면을 했다고 한다. 손 전 고문 측 관계자는 "손 전 고문은 서강대 교수시절 김대중 전 대통령을 초청해 강의를 부탁하기도 했지만 YS는 전혀 알지 못했다"고 전했다. YS는 손 전 고문을 영입한 후 각별하게 챙겼다. 당시 재선급 이상이 대변인을 맡았던 관례를 깨고 초선인 손 전 고문을 대변인으로 임명했다.

 

더군다나 초선인 손 전 고문은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발탁되기도 했다. YS는 손 전 고문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장관직을 제안했지만 손 전 고문은 부담스러운 자리라고 여겨 두차례나 고사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YS"당신 밖에 할 사람이 없다"고 전화를 끊은 후 이를 공식 발표해 버렸다. 손 전 고문 측은 "어쩔수 없이 장관을 맡게 됐다"고 전했다. 손 전 고문은 당시 한나라당 제2정조실장을 맡았을 때도 YS와도 일대일 면담을 어렵지 않게 했다. 이런 이유때문에 손 전 고문은 "YS를 정치적 아버지로 여겼다"고 손 전 고문의 측근인 김병욱 동아시아미래재단 사무총장(새정치민주연합 분당을 지역위원장)은 말했다.손 전 고문도 YS를 특별히 가까이서 챙기려고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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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사태와 차남 현철씨의 비리 문제로 YS의 인기가 크게 떨어졌을 때도 YS 생일때마다 식사 대접을 하곤 했다. 김 사무총장은 "YS 최측근인 최형우 전 장관까지 같이 부부 동반으로 식사를 하기도 했다""야당으로 넘어와서도 지난 대선을 준비하기 전까지 만남은 계속됐다"고 말했다.

손 전 고문은 두달 전에도 YS의 건강 악화 소식을 듣고 주변에 알리지 않고 병문안을 다녀왔다. YS의 건강이 상태가 악화된 터라 두 사람은 말없이 손을 맞잡고 눈만 마주쳤다고 한다. 손 전 고문은 60여명으로 구성된 장례위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박찬종 김무성·서청원 온실에 앉아 챙겨만 먹고 있다 1124 한겨레

   

 

왼쪽부터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서청원 최고의원. 한겨레 자료사진

<평화방송> 인터뷰에서

“YS 아들 제자라면서 이 정도 밖에 못 하나

친박 비박 나눠가지고 공천 싸움, 이게 할 짓이냐

회초리 들고 정리하고 떠났어야...”

 

박찬종 아시아경제연구원 이사장이 24지금은 닭 모가지를 비틀 일도, 피의 강을 건널 일도 없는데 후배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느냐. 온실에 앉아서 챙겨()먹고 있다고 여·야를 비판했다.

 

박 이사장은 이날 <평화방송>(PBC) ‘열린세상 오늘! 윤재선입니다에 나와 만일 (YS, DJ) 두 분이 아니었다면 88, 89년 상당히 늦게 6.29가 왔을 것이다. 그만큼 두 분의 공은 절대적이다라고 말한 뒤, 새누리당 지도부에 대해 김무성 대표는 김영삼 대통령의 정치적 아들이라 하고, 서청원 최고의원은 제자라고 하던데 아들과 제자가 어른과 스승의 뜻을 이런 정도로밖에 못 이어받느냐. 아들이라면 아버지 뜻이 어떻다는 것을 제대로 이어받아야한다. 본인이 희생할 각오를 해야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두 정당은 국가로부터 엄청난 국가보조금을 받고 개인 후원회도 있다. 그런데 친노·비노, 친박·비박 이렇게 나눠가지고 공천 싸움, 이게 할 짓이냐면서 두 분이 돌아가시기 전에 회초리를 들고 정리를 하고 떠났어야 했는데, 지금 (정치인들 잘못을) 말릴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박 이사장의 인터뷰 중 관련 내용이다.

 

김 전 대통령의 유언이 통합과 화합이었던 것으로 전해지면서 여야 정치권 내부의 계파갈등, 공천싸움에 대한 비판이 드셉니다. 여당은 친박, 비박으로, 야당은 친노, 비노로 각각 대립하고 있는 현 정치권 상황, 어떻게 지켜보고 계십니까? 무슨 말을 정치권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습니까?

예를 들면 김영삼 대통령은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이것만 알려져 있는데 그 당시 연설하실 때마다 민주주의는 피의 강을 건너 죽음의 산을 넘어 쟁취된다. 그 연설 듣고 있으면 몸이 으스스해져요. 저 양반만이 군부정권의 저 얘기를 할 수 있다. 이래가지고 목숨을 걸었고 김대중 대통령도 모든 희생을 각오해서 민주화 틀을 만들어놨잖아요.

 

지금은 닭 모가지 비틀 일도, 피의 강을 건널 일도 없는데 후배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느냐, 온실에 앉아서 챙겨먹고 있어. 두 정당은 국가로부터 엄청난 국가보조금을 정당이 받고 개인 후원회 만들고 제가 국회의원할 때는 보좌진이 5명 밖에 안됐는데 지금은 12명이나 되고 모두 다 잘먹고 잘살고 그런데 앉아서 말씀하신 것처럼 친노, 비노, 친박, 비박 이래가지고 공천 싸움.. 이게 할 짓입니까?

 

저는 김영삼 대통령이 그저께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듣고 6년 전에 김대중 대통령이 돌아가셨거든요. 7년 전쯤 두 의원이 건강하실 때 (두 분이 후배들에게) 앉아서 우리가 이렇게 했고 우리가 실패한 것은 이것이다, 너희들은 이렇게 이렇게 하라하고 회초리를 들고 이걸 정리를 하고 떠났어야지, 지금 말릴 사람이 없어. 김 추기경도 돌아가셨고.

방송국 에서 매일 같이 이들을. 놈자 쓸뻔 했는데 아니 두 분 입장에서 놈들이지, 이 놈들하고. 김무성 대표는 김영삼 대통령의 아들이라고, 정치적 아들이라고, 서청원 최고위원은 제자라고 그러더라고. 아들과 제자가 어른과 스승의 뜻을 이런 정도로 밖에 못 이어받습니까? 말이 되느냐 이거야.

 

김무성 대표는 정치적 아들이라고 표현했는데 정치적 아들답게 정치하고 있는 것 같습니까?

아들이라면 아버지 뜻이 어떻다는 것을 제대로 이어받아야죠. 어떻게 이렇게 싸우고 합니까? 본인이 희생할 각오를 해야죠.

 

 

 

YS, 철학 부재로 정치-경제 망친 지도자" 1123 프레시안

안병욱 "박정희 정권과 싸운 공은 크지만 냉정한 평가 필요"

지난 22일 서거한 고()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군부 독재 정권을 상대로 했던 민주화 운동에 기여했다는 한 측면만 두드러지는 분위기다. 이와 관련해 역사학계 일각에선 김 전 대통령의 1990년 삼당합당과 대통령 재임 시절 외환위기를 막지 못했던 한계 등에 대한 냉철한 평가가 필요하다는 지적을 조심스레 제기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과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위원장이기도 했던 안병욱 가톨릭대 명예교수는 23"김영삼 전 대통령은 현재 한국의 정치와 삶을 틀지운 사람"이라고 평가하며 "삼당합당은 지역주의에 기반을 둔 정치를,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로의 편승은 방향을 잡지 못하고 위태로운 오늘날 한국 경제의 위기를 불렀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날 팟캐스트 <시사통 김종배입니다>와 한 인터뷰에서 "마침 최근 박근혜 정권이 반민주적이고 시대 역행적인 행보를 하는 중에 고인이 서거해 과거 박정희 군사 정권과 대립한 점을 더욱 높이 평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 같다"면서도 김 전 대통령은 "해방 후 현대 정치사에서 주요 역할을 했던 지도자인 만큼 냉혹하게 평가해야 할 것 같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한국 정치가 형식은 민주적일지 모르나 선거를 보면 철저하게 지역 정서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다"면서 "이를 결정적으로 정착, 고착시킨 것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삼당합당"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삼당합당은 전두환 신군부 세력의 후신인 민주정의당(민정당)과 제2야당이었던 김영삼 총재의 통일민주당(민주당), 3야당이었던 김종필 총재의 신민주공화당(공화당)19901월 전격 합당한 사건을 말한다.

 

민정당의 노태우 대통령은 1988년 총선에서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 여소야대 국면이 되자 이를 타개하기 위해 민주당, 공화당과의 합당을 추진했고 이로써 현재 새누리당의 전신인 민주자유당(민자당)이 출범하게 됐다. 1야당인 김대중 전 대통령의 평화민주당 등 민주화 세력에서 보면, 김영삼 총재의 당시 합당 선택은 대권 후보가 되고자 한 '야합'일 수밖에 없었다.

 

안병욱 가톨릭대 명예교수. 프레시안(최형락)

무엇보다 삼당합당은 안 교수의 설명처럼 한국 정치의 고질적인 병폐인 '지역주의'를 뿌리내리게 한 결정적인 사건으로 평가된다. 민주당과 민정당의 합당은 곧 부산·경남(PK)과 대구·경북(TK)의 연합, 그리고 그에 따른 호남의 고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는 현재까지도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 양당 구조와 영호남 갈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안 교수는 삼당합당 때까지만 해도 "지역감정이 잘못됐다는 것을 사람들의 의식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그런데 삼당합당으로 "20~30년간 구축되어 온 모순 구조(지역주의)가 아주 고질적인 병폐가 됐다"고 평가했다.

 

그런 면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생전 마지막 붓글씨로 남긴 '통합과 화합' 정신이, 민주 정부 수립의 열기가 분출하던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에 그 힘을 발휘하지 못했던 점에 안 교수는 아쉬움을 표했다. 안 교수는 "엄청난 공작이 있긴 했겠으나 두 분(김영삼·김대중)(198713대 대선에) 각기 출마함으로써 군사정권(노태우 정부)의 연장을 가져왔다"면서 "박정희 정권에 맞섰던 투쟁의 의지, 전두환 전 대통령과 대립하며 23일간 단식 투쟁을 했던 그 의지를 조금이라도 당시 내보였다면, 정말로 위대한 정치가 한 분을 우리 역사가 모실 수 있는 기회였다"고 말했다.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 누적된 사회 모순이 김영삼 전 대통령을 거치며 외려 심각해진 것은 정치 영역뿐이 아니다. 한국 사회 거의 모든 영역을 뒤흔들고 그 체질을 바꿔놓은 1997년 외환위기도 마찬가지 관점에서 평가할 수 있다. 안 교수는 "외환위기 가능성은 박정희 정부 때 이미 만들어진 것으로, 전두환·노태우 정부 때는 3저 호황으로 어물쩍 넘어가다 곪았던 상처가 터진 게 김영삼 정부 시절"이라면서 따라서 그런 면에서 "김 전 대통령이 억울한 측면이 있다고는 생각되지만, YS의 역량으로 이를 예상하고 막을 수는 없었다"고 혹평했다.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죽기 전 내내 걱정했던 것이 한국이 세계 4위의 외채국이란 것이었다. 그래서 '외채 망국론'이란 것도 있었다"면서 그럼에도 김영삼 정부가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앞세운 것은 "우리가 국제 자본의 노리갯감으로 전락하게 될 상황을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 있는데도 파악 못 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어떤 식으로건 군사정권 시절의 쇄국 정책에서 벗어나 국제 사회와 흐름을 같이 해야 한다는 면에선 세계화 자체는 옳은 방향"이었으나, 그 내용이 '신자유주의로의 편승'이었던 것은 잘못이라는 설명이다.

 

이 같은 문제들은 곧 김영삼 전 대통령의 '정치 철학의 부재'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민주화 운동이나 대통령 재임 시절 한 금융실명제 도입·하나회 척결처럼 "목전에 놓인 일에 대한 즉자적 대응들은 적절했다고 평가할 수 있"지만 정치 발전과 경제 모순 해결 등에 필요했던 정치 철학은 부족했다는 평가다. 안 교수는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 나라를 끌고 가려면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이 있어야 한다. 미래 사회를 어떻게 끌고 나가겠다는 게 있어야 했는데 김영삼 전 대통령에겐 그런 것이 부족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부모 모시면 5억 상속세 면제? 상위 2%의 잔치! 1124프레시안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가업 상속 공제도 500억으로 늘어나

며칠 전 포털 사이트에서 "부모 모시면 5억 주택 상속세 면제" 제목의 기사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자녀가 10년간 한 집에서 부모를 모시고 산 경우, 5억 원 한도로 주택 가격의 상속 공제율을 현행 40%에서 100%로 올리기로 여야 간에 합의하였다는 내용이다.

 

부모 모시면 상속세 5억 원 면제해 준다고?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홍종학 의원은 "부모를 모시고 사는 효를 장려하기 위해 야당도 법안 처리에 동의했다"고 전한다. 얼핏 "부모 모시면 5억 주택 상속세 면제"를 보고 "아 이제 부모님을 10년간 모시고 살게 되면 5억 원까지는 상속세를 면제해 주나 보다" 하고 생각할 것이다. 사실 몇몇 신문은 그렇게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현행 상속세법에서 일괄 공제 및 배우자 공제를 통해 10억 원까지는 상속세를 전혀 내지 않는다. 즉 이번에 개정안에 포함된 5억은 기존의 공제에 덧붙여진다. 따라서 일정 요건을 갖출 때에는 상속세 공제 한도가 10억 원이 아닌 15억 원까지 늘어나는 효과가 발생한다.

<조선일보> 20151120일자 보도에 따르면, 야당 관계자는 "야당 의원들이 잠정 합의를 할 때 일괄 공제가 함께 들어간다는 부분을 잘 파악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한다. 이와 같은 보도가 사실이라면 이 사안을 다루는 의원이 상속세법의 기본도 모른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피상속인 중 상위 2%를 위한 개정안

이번 세법 개정안은 이 글을 읽는 당신을 위한 것은 아니다. 이 제도의 혜택을 받는 사람은 기존의 상속세법에 따라 상속세를 내는 과세 대상인 사람이다. 현행 세법에서 상속세 신고 대상은 과연 얼마나 될까?

 

다음 표를 보자. 피상속인 은 특정 해의 사망자 수이다. 피상속인 는 면세점을 넘어선, 즉 상속세 과세 대상이 되는 인원을 말한다. 이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상속세를 내는 사람, 그러니까 이번 개정안의 적용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전체 피상속인의 2%가 안 된다.

 

국세청

 

여기에 상속인과 함께 사는 피상속인은 얼마나 될까? 기획재정부는 작년 기준 동거 주택 상속 공제를 받은 인원은 508명으로 극히 일부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상속세 과세 대상 인원이 매년 5000명에 못 미치는 것을 감안하면 이 역시 작은 수치는 아니다. 또한 이번 개정안이 확정되면, 앞으로 피상속인들이 세금을 줄이는 방향으로 움직일 것으로 예상돼 인원은 늘어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5억 원 동거 주택 상속 공제 개정안을 보고 화가 났다고 해야 할까, 무기력감을 느꼈다고 해야 할까, 또는 그 중간의 감정을 가졌다. 또 조용히 이렇게 세법이 바뀌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다행히 '효도법' 동거 주택 상속 공제 시행 재검토라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장담컨대 여야가 합의 후 조용히 처리했으면 됐을 일을, 본능(?)에 따라 5억 원 이하 주택을 가지고 있는 서민들에게도 혜택이 가는 것을 알려야겠다는 충심으로부터 일이 어긋났으리라 본다. 아마도 일부 언론과 시민 단체들의 반발이 없었다면 "우리 당이 해 냈습니다. 5억 원 주택 상속세 면제"라는 현수막이 걸리지 않았을까?

 

가업 상속 공제, 1억 원에서 500억 원으로 늘어나

상속세에 대한 특혜 감세 추진이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지금 조용히(?) 진행되고 있는 또 다른 제도가 있다. 바로 가업 상속 공제이다. 가업 상속 공제는 중소기업 경영자의 상속세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아래 그림을 보자. 1997년 가업 상속 공제가 만들어졌을 때 공제 한도는 1억 원이었다. 2008년 이 공제액이 30억 원으로 늘어나더니 2009100억 원, 2012300억 원, 2014500억 원으로 급상승했다. 기존의 상속 공제 10억 원일 경우에도 상속세 과세 대상이 약 1.7%에 불과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 제도는 실로 상속세의 근간을 무너뜨리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뉴스타파> 화면 갈무리.

 

상속 공제 대상 기업 범위를 넓히려는 시도도 계속 되고 있다. 작년에는 대상 기업을 매출액 3000억 이하에서 5000억 이하로 상향 조정하려 했으나 국회 본회의에서 무산되었다. 대상 업종을 늘리려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수백억 원대의 부자들이 이 법을 적용 받기 위해 자신들이 영위하고 있는 사업을 어떻게 대상 업종에 잘 구겨 넣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한 부자들, 그들을 위한 세무전문가들의 뛰는 모습들이 눈에 선하다.

 

세법 개정, 부자들의 잔치여야 하는가?

2008년 이후 세법 개정안을 볼 때마다 드는 의문이 있다. 200쪽에 달하는 세법 개정안의 한쪽, 한쪽에 과연 누구의 요구가 반영돼 있는 것일까? 이 작업을 만들어낸 사람들은 누구일까? 한쪽에선 민초들이 민생 해결을 요구해도 어느 하나 들어주지 않는 정부가 부자들의 마음은 이리도 잘 챙긴다. 세법 개정, 더 이상 부자들의 잔치를 중단하라. (김경율 참여연대 부집행위원장)

 

집회참가 국민을 ‘IS 테러분자취급하는 대통령 1124 한겨레

복면시위 안돼, IS도 얼굴가려테러범이 시위대 섞일수도

예정에 없던 국무회의 주재, 강경발언 쏟아내며 공안몰이

 

박근혜 대통령이 24일 오전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4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민중총궐기 투쟁대회와 다음달 5일로 예정된 2차 대회를 법치를 부정하고 정부를 무력화하는 행위로 규정하며 강력한 대책 마련과 대응을 공언했다. 박 대통령은 특히 이슬람국가(IS)를 거론하며 집회·시위 참가자를 이슬람 테러분자와 연관짓고 이른바 복면금지법과 테러 관련 법안의 국회 통과를 요구했다. 투쟁대회를 주최한 민주노총과 시민사회단체는 독재의 산성을 더욱 높이겠다는 것이고, 이에 반대하는 국민들은 이슬람국가 세력을 대하듯 소탕하겠다는 것이라며 반발했다.

 

박 대통령은 24일 국무회의에서 전세계가 테러로 많은 사상자를 내는 이때에 테러단체들이 불법 시위에 섞여 들어와서 국민의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다불법 폭력행위는 대한민국의 법치를 부정하고 정부를 무력화시키려는 의도다. 이를 뿌리뽑기 위해 강력한 대책을 마련해서 대응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13분간에 걸친 머리발언에서 테러 대책 마련 불법·폭력시위 엄단 자유무역협정(FTA) 국회 비준 촉구 등을 조목조목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특히 지난 14일 집회에 대해 이번 폭력사태는 상습적인 불법 폭력 시위단체들이 사전에 조직적으로 치밀하게 주도하였다불법 폭력 집회 종료 후에도 수배중인 민노총 위원장은 경찰의 추적을 피해 종교단체에 은신한 채 2차 불법 집회를 준비하면서 공권력을 우롱하고 있다. 정부로서 결코 묵과할 수 없는 일이라고 강력히 비난했다. 박 대통령은 이어 남과 북이 대치하는 상황인 우리나라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은 묵과할 수 없는 일이고, 전세계가 테러로 많은 사상자를 내고 있는 때에 테러단체들이 불법 시위에 섞여 들어와서 국민의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는 것이다. 특히 복면시위는 못하도록 해야 한다. 이슬람국가도 지금 그렇게 하고 있다. 얼굴을 감추고서라고 말했다. 집회·시위를 테러와 연결시키고 남북 특수관계를 명분 삼아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시위의 자유를 억압하는 공안몰이를 전면화하고 인권침해 등 논란이 일고 있는 쟁점 법안을 밀어붙이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실제 각국은 테러를 방지하기 위한 선제적 대책들을 세우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테러 관련 입법이 14년간이나 지연되고 있다. 빅데이터를 비롯해 세계 최고 수준의 아이티(IT) 기술을 갖고 있음에도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국민들의 선택을 받은 정치권 전체가 국민들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인권침해, 국가정보원 비대화 등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테러방지법과 통신비밀보호법, 사이버테러방지법 등 국회에 계류된 테러 관련 법안 처리를 요구한 것이다.

 

이에 민주노총은 논평을 내어 민중이 (14일 총궐기 때) 외친 것은 체제 전복이슬람국가의 성전도 아니라 왜 노동자만 희생돼야 하는가, 왜 농민은 버림받았는가인데 대통령은 고뇌는커녕 (폭력진압이라는) 몽둥이로 대답했다대통령에게 13만 민중의 숲을 보라 했더니 나무는커녕 극우언론의 입만 쳐다보고 있다고 비판했다

 

‘YS 재조명에 더 도드라지는 불통 박근혜1125 경향

교과서 국정화강행, YS역사 바로 세우기와 뚜렷한 대비

조문 정국에 부각된 통합 정신아랑곳없고 대결·분열 정치

김영삼 전 대통령(YS) 서거를 계기로 진행되고 있는 YS 공과(功過)에 대한 재조명작업 귀착점이 박근혜 대통령으로 향하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의 민주화 투쟁과 역사 바로 세우기, 통합의 마지막 메시지, 이념·계파를 뛰어넘는 인사 스타일 등이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이나 리더십과 뚜렷한 대비를 이루면서다. 김 전 대통령의 공과를 이야기할수록 박 대통령의 과()가 도드라지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김 전 대통령 빈소를 찾은 이들은 고인의 반독재·민주화 투쟁을 가장 많이 입에 올리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이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군부독재에 맞서 민주주의 발전과 자유·인권 신장에 크게 기여했다는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의 역사 바로 세우기도 주목받고 있다. 친일잔재 청산, 5·16 군사쿠데타에 대한 성격 규정, 전두환·노태우 신군부세력 처벌 등 일련의 역사 바로 세우기 작업이 재임 중 최고 치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평가는 박근혜 정부 들어 민주주의와 인권 가치가 훼손되고, 역사교과서 국정화로 역사 후퇴우려가 나오고 있는 상황을 역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의 리더십과 인사 스타일도 재조명되고 있다. 고인은 다른 사람 의견에 귀를 기울였고, 반대 의견도 수용하는 유연성을 지녔던 것으로 평가된다. 야당 대표와 10차례 단독회담을 갖기도 했고, 공약 파기나 대형 참사 등에 대해 국민에게 고개를 숙였다. ‘인사가 만사라는 신조 아래 폭넓게 인재를 발탁했다.

반면 박근혜 정부는 아예 불통 정부라는 낙인이 찍힌 상황이다. 반대 의견을 설득하고 대화하기보다 국정과제라는 명목으로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가 하면, 반대 의견을 아예 비애국으로 몰아치는 편 가르기 경향까지 나타나고 있다. 인사의 경우도 집권 후반부로 갈수록 코드나 충성심을 중시하고, 특정 지역 편향이 도드라지고 있다.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지난 24TBS라디오에서 박 대통령께서도 (김 전 대통령처럼) 좀 그렇게 개방된 자세라고 할까, 마음을 열어놓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주시면 훨씬 국정을 수행하시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소통 없는 독단리더십은 갈수록 심화하는 상황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 24일 예정에 없던 국무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노동구조 개편 등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대를 비난하면서 테러집단인 이슬람국가(IS)’에 비유했다. 국회를 향해서도 위선’ ‘립서비스등 날선 비난 발언을 쏟아냈다. 국민·국회를 향해 대결정치를 선언한 것이다. 이 때문에 양김이후 우리 사회가 그들의 리더십을 비판적으로 계승·발전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국가·정치 리더십은 후퇴해온 단면을 확인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는 국정 난맥상, 대통령이 국민 분열에 앞장서는 모습 등 박근혜 정부의 퇴행적 측면에 국민들이 시달리다보니 개혁·소통 등 YS 리더십이 재조명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 9들이 세상과 작별하는 방법 1125한겨레

양김사이엔 정말 뭔가 특별한 게 있는 모양이다. 디제이가 서거한 2009년 하반기엔 이명박 정권의 민주주의 역주행에 분노가 쌓여가고 있었다. ‘민주주의, 서민경제, 남북관계 3대 위기라고 디제이가 시국을 압축해 정리한 게 그즈음이었다. 요즘도 민주주의 후퇴에 울분을 토해내는 이들이 많다. 민주화를 필생의 과업으로 삼았던 두 사람 모두 민주주의 위기가 한창 논의되는 시점에 세상을 떴으니 참으로 공교롭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상중임에도 국민과 국회에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내며 민주주의에 대한 기본 개념이 있는지 의심을 자아내는 발언을 쏟아냈다. 와이에스의 민주화 투쟁이 재평가되는 분위기 속에 독재자 박정희의 면모가 부각되자 박 대통령이 효심을 발휘해 국면전환을 시도했다는 세간의 수군거림도 나오는 판이다. 어쨌거나 박 대통령의 이런 발언들이 와이에스의 민주화 공로를 더욱 빛나게 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불경스런 표현일지 모르지만 역시 정치 9으로 불리던 양김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 세상과 작별하는 그 순간까지 고도의 정치력을 발휘하고 있으니 말이다.

 

양김의 진가를 더욱 도드라지게 하고 두 사람의 부재를 더욱 아쉬워하게 하는 이들은 박 대통령 말고도 많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상주를 자처하고 있는 김무성과 김대중 정치의 승계자를 자임하는 박지원이 대표적 인물이다.

 

박지원은 얼마 전에 호남의 배신감운운하며 문재인, 안철수, 박원순이 손잡으려는 움직임을 영남연대라고 표현했다. 안철수, 박원순은 지금도 호남에서 인기가 높다. 문재인도 지금이야 호남 지지율이 형편없지만 대선 때엔 호남에서 90%대 지지율을 올렸다. 박지원의 발언은 대다수 호남인의 뜻과 무관한 지역감정 부추기기다. 박지원, 아무리 다급한 처지라고 하지만 너무 나갔다. 평생 호남의 굴레에서 고달파했던 디제이가 박지원의 이런 발언을 들었다면 당장 동교동 문중을 떠나라고 호통치며 파문 선고를 내렸을 게 분명하다.

 

양김의 얼굴에 먹칠하기는 김무성도 마찬가지다. 다친 농민이 사경을 헤매고 있는데 시위에 나선 시민들을 이슬람국가(IS) 테러집단에 비유하며 척결을 외쳐댔다. 역사교과서 국정화의 돌격대장으로 나서 질식해가는 민주주의의 숨통을 조이는 박 대통령의 충실한 조수 노릇이나 하고 있다. 대통령에게 할 말은 하겠다며 대표가 되더니 요즘엔 대통령 발언과 싱크로율 100%. 와이에스가 이런 모습을 봤다면 아마 칠푼이라고 힐난할지도 모르니, 김무성, 차라리 와이에스 문하생이란 말이라도 안 해주길 부탁한다.

 

양김에게 사욕에 가득 찬 표리부동한 정치인이란 낙인을 찍으며 부정적 이미지를 덧씌운 것은 군사정권이었다. 군사정권은 양김의 야욕에 의한 지역감정 악화로 사회분열, 정치혼란이 우려되니 나라 망하지 않게 하려면 특단의 조처가 필요했다는 논리로 군부집권을 합리화하려 했다. 이후 양김정치는 청산과 극복의 대상으로 꼽히며 한국 정치의 후진성과 부실함을 변명하는 알리바이로 작동했다. 온갖 정치병폐의 원흉이요, 정치 관련 만악의 근원으로 지목됐다. 마치 양김정치만 사라지면 정치의 질곡이 해소되고 엄청난 정치발전이 이뤄지기라도 할 것처럼 난타당했다.

 

26일 치러지는 김영삼 전 대통령 영결식과 함께 양김정치도 종언을 고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양김이 떠났으니, 이제 선진 정치가 펼쳐질 것으로 기대해도 되는 걸까. 청와대를 봐도, 여의도를 봐도 그저 답답하기만 하다. 양김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점점 늘어날 것 같다.

 

이승만부터 김대중까지···사진으로 보는 역대 대통령 영결식 1125경향

전직 대통령은 공과를 떠나 당시를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그렇기에 언론은 전직 대통령의 죽음을 계기로 그 시대를 돌아보는 기획기사를 내보내곤 합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을 포함해 총 7명의 전직 대통령이 영면에 들어갔습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1965719일 하와이에서 세상을 떠난 뒤 같은달 23일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영결식은 727일 서울 정동교회에서 열렸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9, 윤보선 전 대통령이 1990, 최규하 전 대통령이 2006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2009년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석달 간격으로 세상을 등졌습니다.

   

경향신문 데이터베이스에 있는 전직 대통령들의 영결식 사진을 모아봤습니다. 며칠전 세상을 떠난 김영삼 전 대통령이 먼저 서거한 다른 대통령을 조문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을 떠나보내는 장면도 있습니다.

 

이승만(1965727)

 

 

김포공항에 도착한 이승만 전 대통령의 유해를 운구하는 육해공군 의장대 /경향신문 자료사진

 

1965727일 이승만 전 대통령의 운구행렬을 지켜보는 시민들 /경향신문 자료사진

 

1965727일 서울시청 앞 광장을 지나 국립묘지로 향하고 있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운구행렬 /경향신문 자료사진

 

 

박정희(1979113)

 

 

박정희 대통령 영정을 앞세운 채 영결식장이 있는 중앙청으로 들어서는 운구 행렬 /경향신문 자료사진

 

박정희 대통령 영정을 앞세운 채 영결식장이 있는 중앙청으로 들어서는 운구 행렬 /경향신문 자료사진

 

고 박정희 대통령 영결식장에 참석한 내외빈들 /경향신문 자료사진

 

박정희 대통령 영결식을 지켜보고 있는 박근혜와 박지만 /경향신문 자료사진

 

박정희 대통령 영결식에 참석 중인 카터 미 대통령의 아들 칩 카터와 밴스 국무장관 내외 /경향신문 자료사진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 후 오열하는 영결식장 근처 연도의 시민들 /경향신문 자료사진

 

윤보선(1990723)

 

 

윤보선 전 대통령 영결예배를 마치고 영결식을 하는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최규하(20061026)

 

 

최규하 전 대통령 유족들이 26일 오전 운구차를 따라 서울 경복궁 앞뜰에서 열린 영결식장으로 들어서고 있다./경향신문 자료사진

 

26일 오전 서울 경복궁 앞뜰에서 열린 최규하 전 대통령 국민장 영결식장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유족들과 인사하고 있다./경향신문 자료사진

 

전두환,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들이 26일 오전 서울 경복궁 앞뜰에서 열린 최규하 전 대통령 국민장 영결식장에서 각자 생각에 잠겨 있다./경향신문 자료사진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이 26일 오전 서울 경복궁 앞뜰에서 열린 최규하 전 대통령 국민장 영결식장에서 서로 엇갈리며 헌화하고 있다./경향신문 자료사진

 

노무현(2009529)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 영결식이 열린 29일 추모 시민들이 시청 부근에서 노란 풍선을 날리며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애도하고 있다./경향신문 자료사진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 영결식이 열린 29일 추모 시민들이 시청 앞 서울 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경향신문 자료사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열린 29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인파들이 운구행렬을 따라서 태평로를 가득 메우고 있다./경향신문 자료사진

 

이명박 대통령 부부가 29일 낮 서울 경복궁 앞 뜰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영결식에서 헌화한 뒤 자리로 돌아오고 있다./경향신문 자료사진

 

29일 경복궁에서 열린 노무현 전대통령의 영결식 후 운구행렬이 세종로를 지나고 있다./경향신문 자료사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열린 29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고인의 유해가 운구되고 있다./경향신문 자료사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열린 29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유족들이 운구차를 바라보고 있다./경향신문 자료사진

 

김대중(2009823)

 

 

23일 국회에서 열린 김대중 전대통령 국장 영결식에서 이명박 대통령 내외가 헌화후 자리로 돌아가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전두환 전 대통령,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 김영삼 전 대통령(왼쪽부터)23일 국회에서 열린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결식에서 헌화한 뒤 자리로 돌아가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김대중 전 대통령 영결식이 열린 23일 영구차가 서울 시청앞 광장에서 남대문 방향으로 가고 있다./경향신문 자료사진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국 국무장관(앞줄 오른쪽)이 김대중 전 대통령 영결식에서 고노 요헤이 전 일본 중의원 의장(앞줄 왼쪽), 탕자쉬안 전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뒷줄 왼쪽) 11개국 조문사절과 함께 헌화를 마친 뒤 두 손을 모아 유족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경향신문 자료사진

 

동교동계인 김옥두 전 의원(왼쪽에서 두번째)이 국회에서 열린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끝난 뒤 운구행렬을 뒤따라가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한화갑·한광옥 전 의원(오른쪽부터) 등도 침통한 표정이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광복 70년 역사르포] 주간경향

(35)봉하마을 부엉이 바위부정과 불의의 구체제에 스스로 몸을 내던지다

1117일 오후, 늦가을 가랑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평일인데도 사람들은 많았다. 관광버스도 몇 대 들어왔다. 사람들은 뒷짐을 지고 말 없이 묘역을 이리저리 걸었다. 1960년대 베스트셀러였던 <하늘을 보고 땅을 보고>라는 책이 생각났다. <민족일보> 사건으로 구속된 양수정 편집국장은 서대문형무소 사형집행장으로 가는 조용수 사장을 비롯한 사형수의 마지막 모습을 관찰했다. 삶의 마지막 순간을 앞둔 인간의 참담한 심경, 뭐라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순간에 인간은 하늘과 땅을 번갈아 쳐다보는 행태를 보인다는 것이다. 그런 모습이었다. 간혹 ~~하고 혀를 차는 사람이 있긴 했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멍하니 하늘 혹은 뒷산 바위를 쳐다보다 천천히 땅에 박힌 박돌에 쓰인 글을 읽었다. 땅에 박힌 박돌에는 당신이 그립습니다’ ‘당신을 알게 돼 행복했습니다혹은 그냥 고맙습니다등 이런저런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경남 진영 봉하마을. 고 노무현 대통령의 생가가 있고, 바로 뒤 양옥집은 퇴임 후 살던 사저이다. 그 뒤로 멀리 그가 투신한 부엉이바위가 보인다.

 

대통령 퇴임 후 불과 13개월 만에

야트막한 뒷산 봉화산 언저리 바위까지 오르는 데 채 30분이 걸리지 않았다. 흐린 날씨 탓에 시야는 좋지 않았지만 생가 자리, 친환경 농법을 위해 오리를 풀어놓던 논도 보였다. 쓰레기를 치우러 자주 갔던 화포천에는 여전히 개울물이 흘렀다. 지금 시야는 아마 2009523일 오전 640분 새벽안개가 끼었을 때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20095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곳 경남 진영 봉하마을 봉화산 언저리에 있는 부엉이바위에서 몸을 던졌다. 대통령직에서 퇴임한 후 불과 13개월 만이다. 물론 파란의 우리 현대사에서 전직 대통령의 운명은 순탄치 않았다. 우리의 전직 대통령은 쫓기듯 해외 망명 길에 오르거나, 최측근의 총격에 의해 죽거나, 깊은 산사에 유폐되고 교도소에 수감됐다. 한 나라의 정치 발전 수준을 다양하게 평가하지만 전직 대통령의 정상적인 활동역시 중요한 척도이다. 나름 정상적으로 활동하는 전직 대통령을 가진 것도 문민정부 이후다.

 

하지만 전직 대통령이 투신 자살한 사례는 처음이다. 그는 밝게 웃는 모습으로 청와대를 나왔다. 그리고 낙향해 봉하마을의 촌부로 아름다운 전직 대통령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줬다. 자전거 뒤에 손녀를 태우고 달리는 모습, 친환경 오리 농법으로 농사를 짓는 모습, 찾아온 사람들에게 웃으며 얘기하는 모습 등등 이따금 봉하마을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아름다웠다. 그러나 얼마 안 돼 그는 자신을 잊어 달라는 처절한 절규를 하다 끝내 뒷산 부엉이바위에서 몸을 던졌다. 도대체 그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기에 극단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그를 자살로 내몬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지금 반성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의 자살은 옳았는가.

 

 

철조망이 쳐진 부엉이바위.

 

20082월 노무현이 청와대를 나온 지 6개월도 안 돼 그의 정치 후원자였던 박연차의 정·관계 로비 의혹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검찰이 그의 주변을 털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124일 친형 노건평이 세종증권 매각과정에서 인수 청탁과 함께 29억여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언론은 노무현의 사과를 요구했으나 그는 사과하면 형님의 죄를 인정하는 것이라며 대국민 사과를 거부했다.

 

검찰의 노무현 털기는 더욱 노골화됐다. 2009326일 한 신문은 이호철 전 민정수석과 정윤재 전 비서관이 금품을 수수했다며 노무현 게이트라고 명명했다. 이호철과 정윤재는 해당 신문을 고소했고, 결국 이 보도는 오보로 드러났다. 그러나 검찰의 노무현 털기는 전방위적으로 집요했다. 검찰은 정상문 전 총무비서관이 박연차로부터 돈을 받았고, 이 가운데 일부가 부인 권양숙 여사에게 들어간 정황을 포착했다. 돈은 빌린 것이라는 주장과 받은 것이라는 주장이 맞섰다. 또 이 돈의 일부가 딸에게 송금됐는데 이 과정에서 불법 혐의가 드러났다.

 

결국 47일 노무현은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사과했다. 그는 송구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더욱이 지금껏 저를 신뢰하고 지지를 표해주신 분들께는 더욱 면목이 없습니다라고 솔직히 사과했다. 그다운 솔직한 사과였다.(하지만 정 전 총무비서관이 해운회사 세무조사 무마와 관련해 돈을 받은 혐의는 재판에서 무죄로 드러났다.)

2009529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식(노제)이 열린 서울 시청앞 광장(서울광장)에는 수십만명의 추모객이 몰려 그의 마지막 길을 애도했다.

 

마침내 피의자의 신분으로 검찰 출두

412일 부인 권 여사와 아들 노건호가 검찰에 소환됐다. 검찰과 언론은 노 전 대통령에게 포괄적 뇌물수수죄의 공범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고, 언론은 이를 대서특필했다. 미국에서 공부하는 자식을 위해 부인 권 여사가 오랜 후원자로부터 돈을 빌리고’ ‘받고하는 과정에서 일부 법을 어기고 송금된 것이었다. 언론은 더 집요했다. 언론은 봉하마을 그의 집 주변에 고성능 카메라를 설치하고 거의 24시간 가족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도했다. 노무현은 421저의 집 안뜰을 돌려주세요라며 언론에 사정했다. 그는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간곡히 호소한다면서 먼 산이라도 바라볼 수 있는 자유, 최소한의 사생활이라도 돌려달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언론은 그의 애절한 호소를 외면했다. 422일 그는 사람세상홈페이지에 다음과 같은 마지막 글을 올렸다.

 

처음 형님 이야기가 나올 때에는 설마했습니다. 그러나 500만불, 100만불, 이야기가 나왔을 때는 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됐습니다.아내가 한 일이다, 나는 몰랐다이 말은 저를 더욱 초라하게 만들 뿐입니다. 이상 더 노무현은 여러분이 추구하는 가치의 상징이 될 수가 없습니다. 자격을 상실한 것입니다. 저는 이미 헤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져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수렁에 함께 빠져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저를 버리셔야 합니다.”

 

이것이 국민들에게 한 그의 마지막 말이다. 430일 노 전 대통령은 포괄적 뇌물수수죄피의자로 검찰청으로 향했다. 언론은 그가 봉하마을에서 검찰까지 가는 길을 헬기까지 동원해 생중계했다. 그리고 그는 검찰청사 앞에서 사진기자들의 포토라인에 서는 수모를 당했다. 검찰 소환 후 잠시 잠잠하던 노무현은 523일 오전 640분쯤 수행 경호원과 함께 사저 뒷산인 봉화산을 올랐다. 늘 가던 산책길이었다. 노무현은 봉화산 중턱에 있는 부엉이바위에 이르러 경호원을 바로 옆에 있는 정토사에 심부름 보냈다. 그리고 부엉이바위에서 몸을 던졌다. 부엉이바위는 그리 높지 않은 산 중턱에 있는 나지막한 바위이다. 그래서 뛰어내려 자살하기에 너무 낮다는 지적이 있을 정도다. 하지만 부엉이바위는 날카롭고 아래쪽까지 이어져 있다. 아마 노무현은 이곳에서 몸을 허공에 날린 것이 아니라, 바위를 향해 자신의 몸을 던졌을 것이다. 그것은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을 내던지는 처절한 시도였을 것이다. 경호원이 그를 찾아 병원에 옮겼지만 이미 숨진 상태였다. 그러니까 그의 최후 모습을 본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는 투신 1시간19분 전인 521분 유서를 남긴 것으로 드러났다. 그의 유서는 간명하면서도 솔직했다.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밖에 없다./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너무 슬퍼하지 마라./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미안해하지 마라./누구도 원망하지 마라./운명이다./화장해라./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오래된 생각이다.”

 

 

그의 죽음은 국민에게 충격을 줬다. 500(장례위원회 추산)이 넘는 인파가 전국에 마련된 분향소에 조문했다. 집요하게 그를 추적하던 방송도 오락 프로그램을 방영하지 않았다. 529일 시청앞에서 열린 노제에는 서울광장과 대한문 앞, 남대문까지 인파로 가득찼다. 하지만 이 모두 덧없는 일이었다. 그는 수원의 한 화장장에서 화장돼 봉화산 정토원에 머물렀다가 그 아래 조성된 묘역에 안장됐다.

 

 

지난 1117, 궂은 날씨였지만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를 찾고 있다.

 

500만의 인파가 전국 분양소에 조문

누가 노무현을 죽였는가. 법무부 장관을 지낸 천정배 의원은 권력기관의 사유화와 보수언론의 탐욕이 만들어낸 재앙이다라고 규정했다. 한 언론은 여론조사에서 그의 자살 책임으로 “56.3%는 검찰, 49.1%는 언론을 꼽았다고 보도했다. 수사에 대한 책임을 지고 검찰 수뇌부가 사퇴했지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검찰도 스스로만의 판단에서 전직 대통령 털기에 나섰을까.

 

그를 죽음으로 내몬 언론도 서로 책임 미루기로 바빴다. 진보신문은 비판 대신 증오, 죽은 권력 물어뜯기라며 보수언론에 책임을 돌렸다. 보수언론은 진보언론 역시 노무현을 희화화했고, 사망 후 다른 보도행태를 보였다고 주장했다. 그랬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보수언론이나 진보언론이나 마찬가지였다. 나중에 드러났지만 그가 회갑선물로 받은 시계 처리도 국가정보원이 왜곡해 언론에 흘린 것으로 드러났다. 게다가 경찰청장이라는 사람은 자살한 이유는 전날 거액의 차명계좌가 발견됐기 때문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이렇게 허위발언한 전 경찰청장은 징역 10월을 선고 받고 법정구속됐다. 이런 정황은 노무현 털기에 검찰과 경찰, 국정원 등 사정기관이 총동원됐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노무현이 세상을 떠난 지 벌써 6년이 넘었다. 그래도 묘소에는 꾸준히 사람들이 찾는다. 주말에 60명 예약을 받았다는 인근 식당 주인은 찾아온 그들은 가슴이 허()해서 왔다고 한다고 전했다. 이곳을 경비하는 한 전경은 묘 앞에서 엉엉 우는 사람도 꽤 있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무엇이 하길래 여기를 찾고, 무엇이 억울하길래 묘 앞에서 통곡을 하는가.

 

이날 전남 고흥에서 묘소를 찾은 박채주씨(77)평소 노무현을 좋아했느냐는 질문에 그러죠, 민주주의를 갈망했던 우리에게 권위를 버린 진정한 민주주의 모습을 보여준 분이지요라고 말했다. 박씨 자신은 4·19 학생혁명에 가담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박씨는 묘역을 나서며 여기에 안 오는 것이 나았다면서 안 왔으면 이렇게 가슴이 아프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침통해 했다.

 

노무현은 대통령은 가진 절대 권위를 스스로 허물었다. 연줄과 빽으로 자리를 나눠먹던 관행에 익숙한 사람들, 정치자금과 특혜를 나눠 갖던 기업가, 공론을 조성하기보다 특정 이득을 추구하는 언론, 남북 긴장으로 이득을 보던 군인이나 군수업자들에게 그는 분명 별종이자 위협적 존재였다.

수백·수십 년 우리 정치·경제·사회 체제를 장악했던 이런 구체제가 합세해 노무현을 죽음으로 몰았다. 그는 이 구체제와 싸우다 싸우다 마지막 순간, 그 체제에 남은 몸뚱이를 내던지며 항거한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많은 사람을 가슴 아프게 한 그의 마지막 선택은 분명 잘못이었다.

 

 

대통령 노무현은 왜 실패했는가  이갑윤·이지호 지음/에이도스·

책의 제목부터 다소 논쟁적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재임 2003~2008)의 성공과 실패와 관련해선 지금도 평가가 엇갈린다. 책의 지은이들도 정치인 노무현은 여전히 인기가 높고, 각종 조사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과 함께 항상 1, 2위를 다투고 있음을 지적한다. 하지만, ‘대통령 노무현은 재임기간 지지도 평균이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낮았고, 재임하면서 뚜렷한 업적을 남기지 못했다는 점에 근거해 실패했다고 진단한다. 여기가 책의 출발점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비극적인 죽음(2009) 이후 6년이 흐른 만큼 새로운 자리매김을 시작할 때가 된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 다음 2017년 대선이 2년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이를 더는 늦출 순 없다. 야권이 다음 대선에서 이기더라도 성공한 대통령이 되는 일은 별개인 것이 확실하고, 대통령 노무현에 대한 심층적, 입체적, 객관적 평가는 성공한 대통령이 되는 데 많은 교훈을 줄 게 분명하다. 이는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흥미조차 끌지 못하는 상황과 뚜렷하게 비교된다.

 

책은 분량이 170쪽에 그친 데다, 분석의 깊이에 있어 큰 성취를 이뤘다고 보기는 어렵다. 노무현 대통령 임기 5년을 지지율 변화와 정치적 상황 변화를 통해 와해-기회-악순환-불능의 네 단계로 나눠 살피는 부분이 100쪽 가까이 차지한다. 당시 정치 상황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별로 새로울 게 없다. 책의 성취이자 독자들의 성찰, 토론을 촉발하는 대목은 책 뒤에 나오는 6왜 실패했을까?’7실패는 피할 수 있었는가?’이다.

 

각각 서강대 명예교수와 대우교수로 있는 지은이들은 먼저 진보와 보수 진영이 각자 내세우고 있는 평가의 근거를 살폈다. 진보 쪽은 실패의 원인으로 보수언론의 여론몰이와 진보의 분열을 내세우지만, 이는 원인과 결과를 혼동한 것이라 지적한다. 보수 쪽은 품격 없는 언행, 비전문성이 낳은 무능 등을 꼽지만, 이 또한 과장됐다고 본다.

 

지은이들이 주목한 지점은 노 대통령이 집권 중반 추진했던 정치개혁 문제다. “(당시) 주도세력은 1980년대 운동권의 이념을 시대에 맞게 변화시키지 않고 그대로 고수하려 했다. 국민의 기대와 달리 정치개혁을 정부의 최우선 과제로 설정했다고 지적했다. 2004년 제17대 총선 승리로 기회가 다시 찾아왔지만 국민의 삶과 직접 연관되지 않은 4대 개혁입법(보안법, 사학법 등)에 진력함으로써 지지율이 다시 급락했다고 했다.

 

반면, 지은이들은 노무현 정부가 민생과 경기회복에 소홀했다고 진단한다. “국민에게 각인될 만한 뚜렷한 경제정책이 없었다고 하고, “국민들에게 경제를 외면하는 대통령으로 비치게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음 대통령은 경제를 중시해야 한다는 교훈을 이끌어낸다. 실제 당시 노 대통령은 경포대’(경제를 포기한 대통령)라는 말을 들었다. 보수언론의 프레임에 불과했다 하더라도, 이런 말이 나온 것 자체는 미숙함이나 잘못된 선택의 결과일 것이다.

 

이런 지적들은 새겨들을 대목이지만, 토론의 여지를 남긴다. 지은이들은 경제를 이념적 입장에서 다뤄선 안 된다고 하고, “성장을 위한 자유주의적 정책은 더 이상 이념적 선택이 아니다고 했다. “파이를 키우지 않고 어떻게 복지가 가능할까라고 묻기도 했다. 그러나, 과연 경제는 이념과 무관한 중립적 사안일까. 미국에서 신자유주의는 실질적으로 파산 선고를 받았다. 이념을 버릴 게 아니라, ‘이념의 현대화가 필요한 게 아닐까. 지금 야권은 집권을 위해 이를테면 노무현 정부가 추진했지만 가시적 성과를 내지 못했던 동반성장전략의 현대화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닐까.

 

, 지은이들은 노무현 정부 실패의 원인을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들의 이념만을 실현하고자 하는 이념적 경직성때문이라고 정리했는데, 지금의 박근혜 정부는 어떤가.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 등 그보다 심한 이념적 경직성을 보임에도 지지율이 40%대를 기록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한테도 또렷한 경제정책이 없다.

 

한편, 노 대통령에 대한 평가와 더불어 야당 쪽을 함께 점검하는 것도 필요한 작업이다. 현대 민주정치에서 대통령과 당은 별개가 아니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 야당 비판에 초점을 맞춘 책들이 잇달아 나왔다. <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문학동네)에서 지은이 다니엘 튜더는 책의 절반 가까이를 새정치민주연합에 대한 비판에 할애했다. 자신이 외신 특파원으로서 한국 정치를 취재하면서 겪었던 일을 바탕으로 해 설득력을 갖는다. <잡놈들의 전성시대>(새로운현재)에서 우석훈은 박근혜를 미워하기 보다, 야당이 제대로 서야 한다. 그래야 대선 가능성 있다고 주장한다. 이밖에 <알린스키, 변화의 정치학>(조성주 지음·후마니타스)은 진보정당 내부에서 반성과 변화를 모색한다는 점에서 주목에 값한다

 

 

천안함 함미 절단면 녹색페인트 추정물질 사라졌다 1126 미디어오늘

[검증] 신상철 충돌흔적 의심함안정기 가스터빈 녹 모두 사라져 증거훼손” “알수없어

천안함 함미 인양 직후 촬영된 사진에 보이는 녹색페인트 물질 흔적이 5년이 지난 최근에는 모두 사라진 것으로 확인됐다. 폭발인지 물리적 접촉인지를 파악할 수 있는 주요 흔적이 없어진데 대한 의혹이 제기됐다. 이밖에도 천안함 선체 전반에 걸쳐 국방부가 붉은 녹을 제거한 것 아니냐는 의문이 나온다.

 

이 같은 의문은 5년 넘게 1심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신상철 전 민군합조단 민간위원(서프라이즈 대표)의 최종 피고인신문 자리에서 판사에 의해 제기됐다. 지난 23일 열린 서울중앙지법 형사36부 주재 공판에서 이흥권 재판장이 잠수함의 힘이 작용한 방향은 어디로 보느냐고 묻자 신 대표는 짙은 녹색 페인트가 나타나는데, 천안함에는 이것이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재판부의 주심판사(재판장의 우배석)녹색페인트가 묻어있다는 것을 안 것은 언제인가”, “보고서에는 묻어있지 않다고 나와있다고 신문했다. 신 대표는 거짓말이라며 페인트에 녹색이 있을 수 없는 곳에 있다자료를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26일 미디어오늘이 과거 촬영된 사진들을 분석한 결과 실제 함미 절단면 좌현 손상부위의 흘수선 아래쪽에 희미한 녹색페인트 물질이 묻어있던 것으로 관찰됐으며, 최근 촬영된 사진엔 모두 사라진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416일 미디어오늘과 통일뉴스, 천안함 전문가(신상철, 김경석) 등 검증팀이 촬영한 함미 절단면 사진과 재판부가 지난달 26일 검증한 함미 절단면에는 녹색페인트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로버트 윌러드 미국 태평양군사령관이 지난 2010721일 경기도 평택의 해군 2함대사령부를 찾아 김성찬 해군참모총장, 정승조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등과 천안함을 둘러볼 때 촬영된 사진을 보면, 함미 절단면 좌현 손상부위의 흘수선 쪽에 녹색 페인트 추정 물질이 묻어있는 것으로 뚜렷이 나타난다.

 

지난 2010721일 로버트 윌러드 미 태평양군사령관의 천안함 방문시 함미 절단면. 좌현(사진 오른쪽위)흘수선에 녹색 흔적이 보인다. @연합뉴스

천안함 침몰 5년 뒤인 지난 416일 경기도 평택 2함대 사령부의 함미 절단면. 좌현(오른쪽위) 흘수선쪽 녹색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사진=조현호 기자

 

더구나 이 사진에는 손상부위와 긁힌 부위가 모두 붉게 부식돼 있었지만, 최근 사진엔 깨끗한 회갈색으로 바뀌어있으며, 표면이 매끈하다.

 

이를 두고 신상철 대표는 26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선박의 철제에 바르는 페인트는 첫째로 철판과 접착력을 높여주기 위해 프라이머(primer) 코팅액을 바른 뒤 그 위에 붉은 색과 검은 색(흘수선·파이널 코팅)을 바르게 돼 있다그런데 천안함 함미 절단면 좌현의 흘수선은 붉은색(분홍빛)이 드러나고 검은색 아래에 녹색계통의 페인트 추정 물질이 보인다가로방향으로 (이 같은 물질과) 압착된 느낌이 있다고 평가했다.

 

신 대표는 자동차 사고에서 무슨 차가 들이받았는지 검사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차량의 페인트 색깔이 묻어있는지 여부인 것처럼 이 녹색 페인트 추정 물질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찾는 것이야말로 침몰원인을 찾는데 중요한 단서라며 인양하자마자 이 물질의 실체가 무엇인지 물성분석부터 해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것은 증거인멸(훼손)이 아니냐는 의심이 든다고 비판했다.

 

이밖에도 천안함 함수 절단면의 함안정기 상태도 육안으로만 봐도 녹슨 흔적이 크게 달라져있다. 함안정기의 손상 상태의 경우 폭발로 인한 디싱현상(dishig·프레임과 프레임사이에 움푹 들어간 현상)이 발생했다는 합조단 주장과, 바닥에 긁혀서 생긴 좌초의 증거라는 신 대표 등의 반박이 맞서고 있다. 특히 신 대표는 폭발로 인한 충격이 작용한 것이라면 철판의 모든 부위가 손상돼야 하는데, 왜 프레임쪽만 유독 손상되고 집중적으로 부식됐느냐고 법정에서 반박했다. 그런데 5년 뒤 천안함 함안정기의 상태는 부식상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닦여져있다.

 

함미 선저와 좌현쪽 스크래치도 녹이 상당히 옅어져 있다.

 

5년전 촬영된 천안함 함수의 좌현 함안정기. 사진=신상철 서프라이즈 대표

 

천안함 침몰 5년 뒤인 지난 416일 촬영한 천안함 함수 좌현 함안정기. 사진=조현호 기자

 

이와 관련해 민군합조단 과학수사분과장 겸 군측단장을 맡았던 윤종성 성신여대 교수는 28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녹색 묻은 것은 잘 모르겠다면서도 어뢰에 의한 비접촉 폭발이라는 잠정결론이 나와 우리 요원들이 절단면 부위를 닦았더니 일부 화약이 나왔다는 것은 보고서에도 기재했다. 하지만 녹색페인트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페인트가 충돌과 관련성이 있느냐에 대해 윤 전 단장은 자꾸 스크래치 있는 것 등을 갖고 충돌을 얘기하는데, 난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충돌이라면 대상물이 있을 것 아니냐. 어뢰추진체에 폭약성분까지 건져올렸으면 됐지, 자꾸 지엽적인 것으로 얘기하니 이해가 안단다고 말했다. 또한 녹을 지우는 과정에서 수년 뒤 사라진 이유에 대해 윤 전 단장은 녹이 지워진 것은 관리차원에서 (제거)했겠지, 내가 잘 알지는 못한다고 전했다.

 

장욱 해군본부 공보실 장교(중령)28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일부러 그것을 지울 이유가 전혀 없다. 누가 일부러 지우겠느냐시간이 많이 지났기 때문에 자연발생적으로 지워졌을 수 있으므로 단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인양직후 촬영된 천안함 가스터빈 과거 사진. 블로기 김경석씨 제공

 

지난 416일 촬영된 평택 해군 2함대 천안함 가스터빈. 사진=조현호 기자

 

 

저녁이 있는 삶’ 100년 만에 사라진다 1111 시사저널

프랑스 정부, 야간 및 일요일 근무 추진파리 대형 매장들 노사 협상 중

세계 1위의 관광대국 프랑스. 지난해 파리를 찾은 관광객만 4700만명에 이른다. 파리 지역 관광위원회의 발표다. 이웃 경쟁 도시인 영국 런던을 앞지른 것에 한껏 고무된 모습이었다. 이렇게 세계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는 도시 파리, 그런 파리에 없는 것이 있다. 바로 편의점이다.

 

24시간 문화에 익숙한 한국에서 건물에 하나꼴로 있는 편의점이 파리엔 단 하나도 없다. 대개의 프랑스 슈퍼마켓들은 오후 7시에서 오후 9시 사이에 문을 닫는다.

 

피리에서 정규 체인으로 가장 늦게까지 문을 여는 슈퍼마켓은 샹젤리제의 모노프리로 유일하게 24시까지 영업을 한다. 골목 곳곳에 아랍 상인들이 하는 작은 슈퍼마켓들이 있지만 구색만 갖춘 구멍가게 수준이다.

 

야간 근무 연장안을 놓고 노사 협상 중인 프랑스 파리의 프렝탕 백화점. 연합뉴스

 

야간 영업뿐만이 아니다. 프랑스에선 일요일에 문을 여는 상점 역시 많지 않다. 파리의 경우, 관광객이 붐비는 샹젤리제 같은 시내 중심가에나 나가야 문을 연 몇몇 매장들을 볼 수 있다. 영미권이나 한국에선 자연스러운, 야간 및 일요일 영업을 두고 프랑스에선 아직까지 갑론을박이 계속된다. 야간과 휴일 근무를 줄기차게 주장해온 단체의 구호는 예스 위크엔드!(Yes Week-end)”.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대선 구호였던 예스 위 캔!(Yes We Can)”을 패러디한 것이다.

 

프랑스 우파 더 일하고 더 벌자

프랑스가 야간 및 일요일 업무를 금지한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노동법 3132조의 근로자의 휴식 보장조항 때문이다. 이 조항은 일주일에 6일 이상 일할 수 없으며’ ‘최소 24시간을 휴식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법이 만들어진 시기는 1906년이다. 당시 노동자 중 45%의 평균수명이 40대 미만이었다고 한다. 열악한 노동 환경이 이 법안을 만들게 된 배경이었던 것이다. 일요일이 휴일로 지정된 것은 프랑스가 가톨릭 문화권이었기 때문이다. 이미 중세 때부터 주일의 개념이 있었다. 1806년 그레고리력()이 안착하고, 100년 만이었던 19067, ‘노동자의 휴식을 위한 법령이 제정됐다. 일요일이 공식적인 휴일로 지정됐고, 야간 근무도 제한됐다. 지난 한국 대선에서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켰던 저녁이 있는 삶을 프랑스에선 100년 전부터 보장해 놓았던 셈이다.

 

금기와도 같았던 휴일 근무와 야간 근무에 대한 이의제기가 시작된 것은 경제 위기를 겪으며 주당 35시간에 대한 개정 요구와 맞물리면서였다. 프랑스 우파의 더 일하고 더 벌자는 슬로건과 함께 추가 근무를 원하는 노동자의 목소리도 나오기 시작했다. 재계의 입장은 말할 것도 없다. 프랑스 지방관광 연합의 보고에 따르면, 2014년의 경우 문화의 수도 파리를 찾은 관광객들이 박물관과 미술관을 관람하는 데 쓴 돈은 전체 소비액의 7%밖에 되지 않는다. 반면 관광객들의 소비 중 가장 많은 37%는 모두 쇼핑에서 이뤄진 지출이었다. 관광객들에게는 평균 2.99일의 체류 기간 동안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일이 쇼핑이라고 한다. 일요일에 상점이 문을 닫아 돈 쓸 곳이 없다는 것이 파리를 찾는 중국 관광객들의 푸념이었다.

 

발스 총리, ‘일요일 상점 영업법시행안 공포

이러한 상황을 재계는 물론 정부까지 인지하고 있었다. 마뉘엘 발스 총리는 의회 연설에서 수많은 관광객이, 특히 중국인들이 일요일에 런던으로 쇼핑하러 가는 것을 원하느냐고 일갈하기도 했다. 파리 중심부 오페라가()에 위치한 대형 백화점의 경영진은 일요일 영업을 재개할 경우 1500개 정도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내다봤으며, 영업이익 면에서는 5%에서 8%까지 증가하리라고 기대했다.

 

논란을 거듭하던 일요일 근무와 야간 근무에 파란불이 켜진 것은 지난 2월이다. 마뉘엘 발스 총리는 일요일 상점 영업법시행안을 의회 투표 없이 공포했다. 하원에서의 부결 위험 부담을 의식해, 표결 없이 시행할 수 있는 특별법을 적용한 것이었다. 발스 총리의 시행령 제정으로 휴일 근무 시행의 첫발은 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곧바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노사 간에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전제가 있었다.

 

지난 108일 샹젤리제의 향수 매장 세포라24시까지 야간 근무를 연장하는 안()에 대해 노조 투표를 실시했다. 96%라는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과됐다. 노조원인 기욤 마프탕은 프랑스 일간 르 피가로와의 인터뷰에서 만족스러운 합의였다고 평가하며 숙원 사업이 이뤄졌다고 기뻐했다. 노조원들이 투표에 부친 협상 조건은, 오후 9시 이후의 근무는 지원자에 한해 실시하며, 100%의 추가 수당을 지급해야 하고 아이를 돌보는 보모 수당으로 시간당 12유로(14904, 2015116일 환율 1242원 기준)를 추가 지급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오후 11시 이후 퇴근할 경우 택시비까지 지급된다.

 

현재 파리 중심의 대형 매장들은 한창 노사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파리 시내 오페라가의 갤러리 라파이예트 백화점과 프렝탕 백화점, 그리고 파리 남쪽의 봉 마르세와 BHV 등 주요 대형 매장들은 오는 1124일 최종 담판을 할 예정이다. 프랑스 시사주간 렉스프레스는 지난 113일 최종 합의 직전의 원탁회의를 전제로, 추가 수당이 책정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현재 주요 관광 지역의 경우 1년 중 52번의 일요일을 모두 영업할 수 있다. 그럴 경우 다섯 번째 일요일까지는 100% 추가 수당을 지급하지만, 여섯 번째 일요일에서 열 다섯 번째 일요일까지는 80%, 그리고 그 이상은 50%만을 지급하는 방안을 협상 중이라고 한다.

 

렉스프레스에 따르면, 이러한 협상 방향에 대해 상징적인 두 백화점의 경영진들이 이견을 보이고 있다고 전한다. 갤러리 라파이예트의 경우 100% 전액 지불을 모든 일요일에 적용할 용의가 있다고 한 반면, 프렝탕 그룹의 경우 소극적인 입장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문제인 만큼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발스 총리가 시행령이라는 꼼수까지 쓰면서 밀어붙이고 있지만, 따지기 좋아하는 프랑스인답게, 노사 간의 줄다리기가 한창인 것이다. 휴일 근무 시 육아 보모 수당에 대해서도 세포라의 경우처럼 단순히 12유로만을 추가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아동의 경우 그 대상 연령을 16세까지로 확대하는 방안을 아울러 협상 중이라고 한다.

 

역설적인 것은 프랑스 자국 내에서는 이러한 노동 환경의 보호가 철저하지만 해외에서 운영하는 현지 공장에선 이러한 혜택이 전혀 제공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유럽 뉴스 채널인 유로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방글라데시나 캄보디아의 프랑스 하청 업체의 경우 하루 평균 노동 시간이 15시간에 이르며 휴일 없이 7일을 근무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임금의 경우, 방글라데시는 월 최저임금인 60유로에도 못 미치는 50유로이며, 캄보디아의 경우 59유로다.

 

잿빛 청춘은 한·일 동색 1125 한겨레21

일본을 보면 한국이 보인다한국 청년들도 머지않아 마음의 병앓게 될 것

일본은 나이 많은 형, 한국은 그 뒤를 쫓아가는 동생이란 느낌이 든다. 약간의 시차가 있지만 한·일 젊은이들의 상황은 상당히 닮아 있다.”

청년 니트(NEET·Not in Education, Employment, Training)와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문제 등을 연구해온 야마모토 고헤이 리쓰메이칸대학 교수(산업사회학)5년 뒤쯤엔 한국에서도 청년들이 앓는 마음의 병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과 일본의 청년 문제는 무엇이 비슷하고, 또 무엇이 다를까?

   

 

여러 객관적 지표에서 보이는 상황은 한국이 더 좋지 않다. 2014년 공식 실업률을 보면, 25~29살 남성(10.1%), 여성(6.3%) 모두 한국이 일본 남성(5.6%), 여성(4.6%)2배 가까이 높다. 청년 빈곤율은 한·일 모두 심각하다. 한국 만 18~24살 청년의 빈곤율(가처분소득이 중위소득 50% 미만인 사람의 비율)19.7%60대에 이어 가장 높았는데(1075호 표지이야기 청년, 빈곤의 미로에 갇히다참조), 일본에서도 20대 청년 빈곤율이 22.3%60대 이상을 제외하고 가장 높다. 취업을 못하거나 포기한 실업자와 니트족, 취업했다 하더라도 워킹푸어’(근로빈곤층)를 벗어날 수 없는 비정규직이나 프리터(‘프리랜서+아르바이터의 약자) 청년이 많기 때문이다.

 

다만 일본은 대학진학률이 한국보다 낮은 50%대라서 일자리 미스매치와 같은 문제가 심각하진 않다. 경기가 호조되면서 최근 대졸 취업률은 90%를 웃돈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이후 계속된 취업 빙하기가 다소 녹아내렸다고는 해도, 비정규직 비율이 38%에 이르는 등 한국과 마찬가지로 고용 전망이 밝진 않다.

청년 빈곤은 일본에서는 10년 이상 된 고민거리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일본에서 유행한 프리터, 파라사이트 싱글(부모에게 의존해서 사는 청년), ·카페 난민(인터넷 카페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노숙자), 걸스푸어(빈곤한 젊은 여성) 등은 모두 청년 빈곤과 연결돼 있는 신조어다. 히키코모리나 일에서 도피하는 청년을 설명하는 하류지향등의 용어 역시 청년의 심리 상태와 맞닿아 있다. 한국의 5년 후, 10년 후 모습일지도 모른다.

 

한국의 ‘N포세대’ 20대는 일본의 30대와 비슷하게 포개어진다. 일본의 30대는 고도성장기인 1970년대에 태어났지만, 장기 불황에 진입한 1990년대 후반 이후 사회에 첫발을 디뎠다. 윗세대와 달리 취업난을 겪으며 사다리를 걷어차인세대라는 뜻으로 로스트 제너레이션’(잃어버린 세대)으로 불린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한국 N포세대와 비슷한 우울증과 고립감, 분노 등이 켜켜이 쌓여 있다. <로스트 제너레이션 심리학>(·2014)을 쓴 구마시로 도루(정신과 의사)기성세대한테 풍요로운 삶을 빼앗겼다는 분노, 사회적 관계가 허물어져 고립된 개인이 느끼는 심리적 괴로움 등 일본에서 1990년대 고민했던 상황이 지금 한국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반면 청년들의 정치적 각성은 한국이 한 발짝 앞서 있다. ·일 청년 담론을 교차 연구해온 후쿠시마 미노리 도코하대학 교수는 <조용한 전환: 3·11이 열어준 가능성의 공간들>(교육공동체 벗·2015)에서 데모 등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에 대해 발언하기를 멈추지 않는 한국 청년 세대를 보면서 항상 일본 청년들에 대해 뭔가 부족함을 느끼고 있었다고 고백했다. 야마모토 교수는 “2008년 한국에서 우연히 대규모 촛불집회를 봤다. 청년들이 손잡고 거리에서 무언가를 호소하는 모습에 놀랐다. 거리에 나서기보다 혼자 자기만의 일에 몰두하는 일본 청년과 비교됐다. 최근 활발하게 거리시위를 벌인 실즈’(SEALDs) 젊은이들은 꼭 한국 청년을 보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청년들, 무기력과 냉소를 넘어섰다

젊은이들과 함께 거리에서 안보법 반대 투쟁 벌인 우에노 치즈코 도쿄대 명예교수와 한·일 청년을 이야기하다

 

우에노 치즈코 도쿄대 명예교수(사진)는 젊은이들과 아스팔트 거리 위에서 올여름을 보냈다. 예순일곱이라는 나이는 문제되지 않았다. 아베 정부가 집단자위권을 허용하는 안전보장법(안보법)을 강행 처리하는 것에 반대하는 학자들의 모임을 주도했고 학생이 싸우는데 교수가 침묵할 수 없다며 청년단체 실즈’(SEALDs) 집회에서 마이크를 들고 연설했다.

 

사회학자이자 여성학 연구자로 유명한 그는 2011년 정년퇴임 이후 뜻을 함께하는 이들과 비영리법인(NPO)‘WAN’을 설립해 이사장직을 맡고 있다. 국내에도 <내셔널리즘과 젠더> <경계에서 말한다>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 등 그의 저작이 번역돼 있다. 지난 1022일 일본 도쿄도 미타카시에 있는 우에노 교수의 연구실을 방문해 한·일 청년 문제 등에 대해 2시간여 이야기를 나눴다.

 

일본 청년들 사토리 세대아니다

요즘 한국 청년들은 ‘N포세대’ ‘금수저·흙수저등 절망적인 담론에 둘러싸여 있다. 일본 청년들이 처한 현실은 어떤가.

-일본의 경제 상황은 한국과 비슷하다. 비정규직이 많고 불황이 계속되고 있다. 올해는 경기가 호전되어 대졸자보다 기업의 구인 수요가 더 많긴 했지만, 기업이 모셔가는 건 어디까지나 여성이 아닌 남성 대졸자에 한한다. 여성의 취업은 비정규직이 많다. 미래가 안 보이는 젊은이들의 상황이 비슷하다. 만약 올봄에 인터뷰를 했다면 한국과 일본 똑같이 절망적인 상황이라고 말했을 거다. 그런데 이제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2015년 여름, 안보법안 반대 투쟁이 있었기 때문이다.

 

안보법안 투쟁 이후, 일본 청년들이 삶이나 사회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고 느끼나.

-지금까지 일본 청년들은 정치적으로 무관심했다. 분노나 불평은 무기력이나 무관심으로 표현되거나, 인터넷상 우익으로 나타났을 뿐이다. 청년들이 거리에서 시위하는 건 헤이트 스피치’(인종혐오 발언)와 같은 혐한 시위 정도였다. 1970년대 전공투 등 학생운동이 패배한 뒤, 그 이후 세대는 냉소주의에 빠졌다. 민주화 시위를 통해 정권을 바꾼 경험이 있는 한국과 달리, 일본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40년 동안 실질적인 데모가 없었다. 그런 흐름이 쭉 이어져왔다.

 

그런데 최근 달라졌다. 젊은이들이 거리로 나왔다. 더 이상 냉소하지 않게 된 것이다. 3·11 대지진과 원전 사고 이후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분위기가 퍼졌기 때문이다. 지진 이후 4년 동안 매주 금요일 총리 관저 앞에서 조용히 시위를 벌였다. 각 지역에서도 원전 반대 시위 움직임이 일었다. 그러다가 올여름, 분노한 사람들이 국회 앞으로 쏟아져나왔고 60~70대 노인과 20~30대 청년들이 함께 모여서 데모하는 문화가 생겨났다.

 

청년들이 거리로 나온 배경에 안보법 반대라는 표면적 이유 외에 무엇이 있었다고 보는가.

-안보법만 해도 다양한 의견이 있다. ‘안보법에 찬성하지 못한다, 안보법은 헌법 위반이다, 정부가 법안 심리를 이렇게 대충해도 되느냐, 표결 강행 처리는 용서할 수 없다등등 분노의 지점은 각기 다르다. 법안 심리 기간이 길어지면서, 국민이 법을 많이 공부하는 기회가 됐다. 교과서에나 나오던 입헌주의같은 말이 지금은 모든 국민이 아는 말이 되었다. 분노의 크기는 국민의 주권의식이 그만큼 성장했다는 증거다.

 

일본 청년들은 체제 순응적이거나 소극적이라고 여겨져왔다. 한국 보수언론은 일본의 사토리 세대를 빗대 한국 청년들도 절망적 현실을 달관해서 살라고 했다가 반발을 사기도 했다. 일본 청년들은 사토리 세대가 아니다. 이번 안보법 반대 움직임에서 알 수 있듯이, (달관이나 체념보다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 더 크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부모 세대의 경제 여건이 굉장히 나빠졌고, 부모는 물론이고 자신의 노후도 불안한 상태다. 물론 무력감은 계속 있어왔다. 하지만 무력감은 달관과 다르다. 무력감이 무관심으로 이어지지 않고, 관심으로 변했다는 게 이번 안보법 투쟁의 중요한 대목이다.

 

그래도 어쨌든 안보법이 통과됐다. 이후에도 희망이 있나.

-안보법 통과는 예상하고 있던 일이었다. 하지만 패배감을 느끼진 않는다. 지난 1, 여성 45천여 명이 모여 국회를 세 바퀴 감싸는 인간사슬시위를 벌였다. 각 지역에서 젊은 여성을 중심으로 분노하고 싶은 여성들의 모임도 열리고 있다. 이제 내년 참의원 선거에서 표로 보여줄 차례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선거에는 경제 상황, 야당의 구심력 등이 작용한다. 선거에 모든 것을 걸면, 선거에서 패배하면 끝이다.

 

한국에서는 청년들의 절망감이 헬조선’ ‘탈조선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거나 인터넷 공간에서 여성 혐오양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에서 아키하바라 사건’(2008년에 일어난 무차별 살인사건) 가해자인 비정규직 청년의 심리를 사회경제적인 자원을 갖고 있지 않은 남성의 공포로 해석했다. 한국이나 일본의 청년 세대가 겪는 어려움이 청년들의 우경화나 과격화에 얼마큼 영향을 끼치고 있을까.

-남성 내부의 패자 그룹은 남성 승자 그룹이 아니라 여성한테 분노의 화살을 돌린다. 왜냐하면 여성은 공격하기 쉬운 표적이고, 남성 그룹을 결속시킬 수도 있으니까. 일본에선 경제 상황이 나빠진 2000년대에 반페미니즘의 흐름이 커졌다. 혐한이나 헤이트 스피치도 그렇다. 개인은 좀더 약한 대상한테 분노를 표출하고, 국가는 국민을 일체화하기 위해 북한이나 중국을 가상의 적으로 만드는 거다. 양극화가 심해질수록 약자에 대한 혐오나 우익화도 더 심해질 것이다. 그러나 헤이트 스피치를 하는 집단의 폭이 넓진 않다.

 

한국에서는 청년들이 탈조선하겠다고 아우성이다. 절망적인 사회를 치유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 한국은 잘 모르겠지만, 일본은 쇠퇴를 향해 달려가는 사회다. 그 배를 이끌고 있는 선장(아베 신조 총리)은 침몰하는 배와 운명을 같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미래가 창창한 젊은이들이 국가와 운명을 같이하지 않고 배에서 탈출하려는 건 훌륭한 생각이다. 일본 사회의 답은 분명하다. 지금과 다른 시나리오를 따르면 된다. 재분배 정책을 펴고 유럽식 사회민주주의 시스템을 가져오는 정권이 되면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연대가 필요하다.

 

·일 뒤덮은 절망감은 인재’(人災)

인터뷰가 끝날 즈음, 우에노 교수는 동일본 대지진 피해 지역에 남아 있는 젊은이들 이야기를 꺼냈다.

-“(대지진이 일어난) 이 땅에서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다른 땅으로 떠나버린 젊은이들에게 고향을 버린다고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고향에 남아서 재해 현장을 복구하고 희망을 만들려는 젊은이들을 응원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우에노 교수는 3·11 대지진은 자연재해였지만, 정치는 인재’(人災)라고 설명했다. 한국과 일본 사회를 뒤덮고 있는 절망감도 결국은 사람 탓이다. 하지만 ’(hell·지옥)이라고 마냥 절망하고 주저앉을 수만도 없다. “절망이나 희망 모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희망은 지금 자기가 서 있는 자리에서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념전쟁은 허상이다 1125 한겨레21

한국사회 이념 지형 분석진보·중도·보수의 단순한 구분법으로는 다양한 여론 흐름을 이해할 수 없어

 

보수단체 회원들이 지난 1030일 서울대에서 열린 전국역사학대회에서 좌편향 교수들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한겨레 김명진 기자

 

역사 교과서 국정화 정국에서 확인되듯 이념 논쟁은 국내 정치에서 되풀이되는 현상이다. 그간 이념 논쟁엔 북한 변수가 언제나 똬리를 틀고 있었다. 2000년대 초반부터 북한의 국지적 도발로 만들어진 차가운 북서풍과 대북 인도적 지원으로 만들어진 따뜻한 남동풍은 이념적 접점 지역에 강한 비를 뿌렸다. 지금은 어떨까. 예전과 같은 단일한 이념 전선으로 설명하기엔 지금의 이념 지형은 좀더 복잡해졌다. 이념 지형은 자유화, 세계화, 지식정보화 시대를 맞으며 탈이념으로 분화되고 진화했다.

 

분화하는 중도지대 

어떻게 분화하고 진화했을까. 눈에 띄는 현상은 기존 진보와 보수의 강점은 취하고 약점은 버린 소극 진보소극 보수가 분화돼 나타났다는 점이다. ‘중도는 현대화된 소극 진보와 소극 보수의 장점을 취하며 전혀 다른 종으로 진화했다. 더 이상 중도는 모호한 입장과 태도를 보이는 이념적 중간 지대가 아니다. 내년 20대 총선을 앞둔 정당들은 저마다 중도화 전략을 펼칠 것이다. 하지만 기존 잣대를 갖고 중도로 달려가면 그곳엔 아무도 없을 공산이 크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는 두 번에 걸쳐 이념 지형에 관한 흥미로운 여론조사(각각 전국 성인남녀 1천 명 유·무선 전화조사)를 실시했다. 먼저 올해 6월 조사에선 이념 지형을 적극 진보·소극 진보·소극 보수·적극 보수로 나눠 물었고, 11월 조사에선 진보·중도·보수로 나눠 물었다.(그림1 참조)

 

첫 번째 조사에선 적극 진보 15%, 소극 진보 41%, 소극 보수 31%, 적극 보수 13%의 비율로 나타났다. 소극 진보가 가장 많았고 적극 보수가 가장 적었다. 두 번째 조사에선 진보 25%, 중도 44%, 보수 31%의 비율로 나타났다. 중도가 가장 많았고 진보가 가장 적었다.

 

이념 지형의 분화를 알아보기 위해 두 조사를 종합해 분석했다. 진보와 보수 두 갈래로만 보면, 진보가 56%, 보수가 44%(6월 조사)였다. 이와는 별도로 중도’(44%)는 중도 진보 32%, 중도 보수 12%(11월 조사)로 나뉘었다.

 

이 결과가 현실에서 무엇을 의미할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정당들이 각자 유리한 고지에 오르기 위해 이념을 동원하는 전략은 더 이상 유의미하지 않을 수 있다. 다시 말해 개별 유권자들이 가진 고유한 성향보다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이 정치적 의사 결정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치는 현상이 짙어졌기 때문이다. 정치적인 것보다 경제·사회적 상황이 개별 유권자들에게 끼치는 영향이 확대되고 있다. 그렇다면 누가 진보이고, 중도이며, 보수일까?

 

소극 진보소극 보수와 더 가까워 

두 조사를 종합해보면, 진보에선 여성(55%), 보수에선 남성(54%)의 비율이 높았다. 중도에선 남녀 각각 50%로 비율이 비슷했다. 20대에선 진보, 30~50대에선 중도, 60살 이상에선 보수 성향이 각각 높게 나타났다.

 

월평균 가구소득의 규모가 이념 지형에 미치는 영향도 살펴보았다. 150만원 미만에서 보수(37%)가 중도(34%)나 진보(29%)보다 조금 높았을 뿐, 그 이상의 소득 규모에선 모두 중도가 가장 높았다. 이념과 계층은 관계가 있다는 것이 통념인데, 이번 조사에선 사회경제적 계층을 나눌 수 있는 소득 규모와 이념 성향 사이의 상관관계가 별로 보이지 않았다.

 

직업군에선 어떨까. 전문직(29%)과 화이트칼라(27%)는 진보가, 자영업(34%)과 전업주부(39%) 및 블루칼라(33%)는 보수가 상대적으로 많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이 모든 층에서 중도가 가장 높게 나타났다.

 

그럼 중도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언제 진보적인 색채로, 또 어떤 경우에 보수적 색채로 변신할까. 중도는 중도 진보’(소극 진보)중도 보수’(소극 보수)의 상당 부분을 포괄하는데, 이들의 성향을 파악하다보면 중도의 실체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림2>복지와 경제 중 무엇을 더 중시하며, 공공과 개인 중 무엇을 더 중시하는지에 대한 적극 진보, 소극 진보, 소극 보수, 적극 보수층의 응답(6월 조사)4개의 면(4분면 분석 방식)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소극 진보와 소극 보수는 기존의 적극 보수와 적극 진보보다 공공의식이 높았다. 또 적극 보수보다 소극 보수가 경제를 더 중시했고, 적극 진보보다 소극 진보가 복지를 더 중시하는 경향을 보였다. 공공 영역에서 ‘V자형으로 대형을 맞추듯 나타났다.

 

한국 사회가 다원화되면서 보수와 진보는 각각 세 갈래로 나뉘는 특성을 보인다. 보수는 이념 보수(적극 보수도덕 보수·경제 보수로 나뉘고, 진보는 이념 진보(적극 진보자유 진보·복지 진보로 나뉜다. 적극 진보와 적극 보수는 이념 성향이 강해 상호 대립 관계에 놓이지만, 소극 보수와 소극 진보는 특정 사안에 따라 유사 관계를 보인다.

 

소극 보수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동의 못할 것

예를 들어 소극 보수 가운데 가족과 공동체, 전통과 법을 중시하는 도덕 보수층은 소극 진보 중 복지를 지향하는 층공평과 공동체라는 이슈에서 통합적 관계를 맺는 성향을 나타낸다. 또 소극 보수 중 경제 보수는 소극 진보 중 개인과 자유, 창의와 개성을 중시하는 자유 진보층과 공정과 자율경쟁이라는 이슈로 통합적 관계를 맺기도 한다.

 

특정 현안에 대해 소극 진보와 소극 보수가 나타내는 의견(그림3 참조)을 보면 이들의 특징을 좀더 이해할 수 있다. 지난 6월 조사에서 각 이슈에 대한 진보·보수층의 입장을 물은 결과를 보면, ‘친일-종북 논쟁을 그만해야 한다는 문항에 대해 소극 진보(43%)와 소극 보수(32%)가 적극 진보(15%)와 적극 보수(10%)보다 더 높게 동의했다.

   

 

한국 사회에서 대기업의 역할이 긍정적이라는 부분에서도 소극 진보(40%)와 소극 보수(36%)가 적극 진보(9%)와 적극 보수(15%)보다 더 높은 비율로 동의했다. ‘사형제도 폐지 반대에 대한 응답에서도 소극 진보(39%)와 소극 보수(32%)가 적극 진보(14%)와 적극 보수(15%)보다 더 높게 나타났다.

 

기회 평등의 중요성을 물은 항목에서도 소극 진보(39%)와 소극 보수(33%)가 적극 진보(14%)와 적극 보수(14%)보다 더 높게 응답했다. 진보층에서 더 많이 응답할 것으로 보았던 가치(기회 평등)에 대해서도 적극 진보층보다 소극 보수층이 더 많이 동의하는 경향을 보였다. ‘대북 지원에 다소 부정적이다라는 항목에선 소극 진보(19%)와 소극 보수(20%)가 적극 진보(7%)와 적극 보수(8%)보다 높은 응답을 보였다.

 

흥미로운 조사 결과도 있었다. 상대평가가 아니라 호오도(절대평가)박정희 전 대통령 호감도를 묻는 질문에 적극 보수(10%)나 소극 진보(29%)보다 소극 진보의 평가(51%)가 더 긍정적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호감도에서는 이와 반대로 적극 진보(8%)보다 소극 보수(33%)의 평가가 더 높았다. 기업의 경쟁력보다 환경보호가 더 중요하다는 문항에서 적극 진보(9%)보다 소극 보수(15%)가 더 많이 동의했다. 기존 관념을 벗어나는 결과들이었다.

 

최근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둘러싼 논란이 거세다. 보수는 이 문제가 역사 바로 세우기의 보수적 해법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하지만 이념 지형이 다분화하는 상황에서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통해 보수가 결집할 것이라는 판단은 오판이 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개혁에 대한 반대를 통해 진보층이 노동으로 결집할 것이란 판단도 오판일 수 있다.

 

좋은 정치란 과학에 기초한 예술

진보와 보수는 다원화됐다. 단순히 이념 전선 하나로 세상을 가를 수 있는 시대는 오래전에 끝났다. 그럼에도 정치권이 과거에 이미 묻힌 이념 지형을 끄집어내는 것은 대한민국의 미래보다는 당리당략적 접근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소극 보수층에 있는 경제 보수는 새누리당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소극 진보층에 있는 자유 진보는 노동개혁 반대에 동의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좋은 정치란 무엇일까. 갈등 구조를 만들기보다 사회 통합으로 이끄는 정치일 것이다. 사회 통합은 과학적 기초, 즉 과거와 현재 데이터가 진단한 현실에서 시작되지만 결국엔 예술적 판단, 즉 인간의 창조적 입장과 태도를 통해 미래를 만들어가게 된다.

 

이 과정은 세밀하고 정밀하게 이뤄져야 한다. 마치 작곡가가 한 음도 버리지 않으려는 노력, 한 음도 허투로 버리지 않겠다는 마음처럼. 건축사가 1mm 폭 안에 10개의 선을 그리는 정교함처럼. 천체 물리학자가 관측 가능한 우주에서 상상할 수 없이 넓은 공간을 보며, 작디작은 인간의 존재를 통해 신을 만나듯. 정치도 다분화된 이념 지형을 정확히 이해하고 각종 사안에 구체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면, 국민을 위해 필요한 정책을 이전보다 더 잘 추진하는 통찰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최정묵 한국사회여론연구소 부소장

 

이름만 빌렸거나, 숨겼거나국정교과서 집필진 미스터리 1127한국

   

 

사진은 지난 1011일 국회에서 열린 역사교과서 정상화 추진을 위한 당정협의 모습. 오대근기자 inliner@hankookilbo.com

 

정부의 일방통행식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에 대한 비판여론이 거센 가운데, 지난 23일 국사편찬위원회가 발표한 집필진 구성 결과를 놓고 또 한번 논란이 커지고 있습니다. 2페이지 분량의 보도자료에는 총원 47, 공모와 초빙자수 중학교와 고등학교 담당자수 이외에 집필진과 관련한 어떤 정보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밀실 편찬우려가 현실화된 것입니다.

 

최몽룡 서울대 명예교수의 사퇴로 공석이 된 상고사 대표집필 후임자, 각 시대별 집필자수, 정치경제헌법 등 인접 분야 학자 포함여부 등 여론의 관심이 집중된 사안에 대해서는 집필에 전념할 환경 조성을 이유로 비공개를 입장을 밝혔습니다. 오히려 예정에도 없던 현행 검정교과서별 집필진 수를 자료에 담고 기존보다 2배 이상 많은 인력을 투입해 역사적 통설을 충분히 검토반영 할 수 있게 됐다는 자화자찬도 덧붙였습니다.

 

그러나 그간 국정화 추진 과정에서 모든 절차를 투명하게 하겠다던 당초 입장을 불과한 달여 만에 뒤집고 깜깜이 방침을 고수하고 있는 정부의 태도를 감안하면 과연 집필진 구성이 제대로 된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떠나질 않습니다.

 

석연찮은 2시간

먼저 발표 당일 국편이 보도자료를 예정보다 2시간이나 늦게 기자단에 배포한 정황에 눈이 갑니다. 당초 자료는 오후 2시에 배포하기로 예정돼 있었습니다. 하지만 납득할 만한 설명 없이 배포가 미뤄졌고 오후 4시가 넘어서야 겨우 받아볼 수 있었는데요. ‘왜 늦어졌는지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박덕호 국편 역사교과서편수실장은 자료에 통계 수치 확인이 늦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보도자료를 받아본 결과 통계수치라고 볼만한 것은 국정교과서 전체 집필진 및 구성 현 검정교과서별 집필진 숫자 이외에는 없었습니다. 이 중 현 검정교과서별 집필진 수가 교과서가 나온 2013년부터 이미 공개됐던 점을 감안하면, 국편이 마지막까지 고심했던 것은 전체 집필진 및 구성이라고 보는 게 합리적 추론일 겁니다. 이를 두고 한 역사학계 관계자는 정부가 20일까지 구성을 완료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발표 직전까지 확정되지 않아 애를 먹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초빙이 공모의 두 배김정배 인맥?

국편은 전체 집필진 47명 중 공모로 뽑힌 사람은 17, 초빙으로 앉힌 사람은 30명이라고 밝혔습니다. 당초 공모로 25명을 뽑겠다고 예고 했지만 결국 최종 선발인원이 그에 못 미치자 남은 인력을 초빙으로 채운 것입니다. 역사학자와 현장 교사, 학생, 시민사회단체에 이르는 광범위한 반대 움직임에 집필진 구성이 난항을 겪을 거란 우려가 컸던 만큼, 이 같은 결과는 어느 정도 예견됐던 게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전체 집필진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초빙은 어떻게 이뤄졌을까요. 국편 고위관계자에 따르면 대표집필자를 포함한 대부분의 중견 필자는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이 직접 발로 뛰어 섭외했다고 합니다. 여기자 성추행 논란 끝에 자진 사퇴한 최몽룡 서울대 명예교수와 고대사 대표집필자인 신형식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대표적인데요. 이들 모두 김정배 위원장과 동시대에 고대사 연구를 함께 했던 원로학자 입니다.

 

이와 함께 김 위원장과 개인적으로 인연이 깊은 학자들이 적지 않게 포진돼 있다는 게 국편 관계자의 전언입니다. 진재관 국사편찬위원회 편사부장은 집필진 확정을 하루 앞둔 지난 19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김 위원장이 직접 필진을 꾸리고 있어 내가 정확히 알 수도 없고 모르는 사람도 많다고 말했습니다. 심지어 국편 내에서 김 위원장 이외에 집필진 면면을 파악하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 입니다.

 

참여 권유 받은 학자들 접촉해보니

이렇게 군사작전 하듯 국정화를 추진하면서 졸속제작과 편향성에 대한 우려도 점차 커지고 있습니다. 때문에 본보는 지난달 국정화 고시 행정예고 이후 한달 넘게 나머지 필진을 찾기 위해 시대별 주요 학자 20여 명을 상대로 취재에 나섰습니다. 물론 아직 집필진이 추가로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김정배 위원장과 직간접적인 인연을 이유로 참여 권유를 받은 학자 몇 사람과 접촉해 관련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국사편찬위원회 비상임위원을 지낸 고대사 전공자 A 교수입니다. 그는 지난 9월 김정배 위원장으로부터 권유를 받았지만, 개인적인 일로 불참의사를 밝혔다하지만 일이 마무리 되면 또 모르겠다고 여운을 남겼습니다. 김 위원장과 ROTC선후배 관계이자 고려대에서 함께 강단에 섰던 고려사 전공자 B교수의 경우 몇 달 전 권유를 받았고 당시 생각해보겠다고 말했다“(집필 참여 여부에 대해선) 잘 모르겠다고 답했습니다. 근대사를 전공한 원로학자 C교수 역시 지금 건강이 좋지 않다면서도 참여여부는 잘 모르겠다고 언급했습니다. 또 한 학회를 이끌고 있는 D교수는 대표 자리에서 물러나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며 여지를 두기도 했습니다. 이들의 대답은 집필 또는 이후 심의검토 작업에 참여할 가능성을 어느 정도 열어두고 있다는 짐작을 가능케 합니다.

 

이름만 빌렸거나, 숨겼거나

그러나 이들 대부분 원로학자인 만큼, 설사 참여한다 해도 실제 집필에 나설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또 일부 중견학자들의 경우 참여의사가 없다또는 거절했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있어 학계에선 실제 교과서 집필에 참여하는 명망 있는교수들이 얼마 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국편이 동북아역사재단,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등 국책연구기관 소속 연구원들도 집필진에서 배제하지 않는다는 방침(본보 18일자 10면 보도)을 밝힌 만큼 사실상 관변학자들이 다수일 거란 관측도 나옵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집필진 구성과 관련해 두 가지 가설을 제기하는데요. 첫 번째는 집필진에 이름만 빌려준 학자들이 존재할 가능성입니다. 일부 교수들이 김정배 위원장과의 관계나 집필 거부 시 불이익 등을 고려해 이름만 올려놓는 경우입니다. 한 역사학자는 저자 명단에는 이름을 올렸지만, 실제 집필엔 참여하지 않고 국책연구원 소속 연구원 10여 명 정도가 책을 쓸 가능성도 있다고 말합니다. 두 번째는 전체 집필진이 꾸려졌지만 저명한 역사학자가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가설입니다. 명단 및 구성원 비율을 공개하면 전문성 논란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어 비공개를 유지하고 있다는 해석입니다.

 

물론 국편이 밝힌대로 명망 있는 학계인사들이 집필진에 다수 포함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국정 교과서의 내용오류 및 편향성에 대한 우려가 점차 커지고 있는 점, 정부의 당초 투명공개 원칙이 훼손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집필진 면면을 밝히는 것이 불필요한 오해를 불식시킬 유일한 방법이란 점은 모두가 아는 사실입니다.

 

역사는 역사학자의 몫이라던 대통령

정부의 방침이 유지된다면 결국 교과서는 내년 말쯤 공개될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그 무렵에는 사실상 완성단계인 만큼 큰 폭의 내용 수정은 불가능할 겁니다.

 

정부는 국정교과서를 가리켜 올바른 교과서라고 칭합니다. 현재 ‘90%가 좌파인 역사학계가 내놓은 검정교과서이므로 올바르지 않다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그러나 국정이든 검정이든 올바르게 만들기 위해선 어떤 식으로든 검증절차를 거칠 필요가 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지금처럼 극소수 정부 인사들만 정보를 공유하고 국민들에게 등을 돌린 채 집필심의검토가 이뤄진다면 최소한의 개선 기회조차 갖지 못한 교과서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11년 전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역사는 심판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말에 이 같이 답했습니다. “역사는 정말 역사학자들과 국민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치인들이 역사를 재단하려고 하면 다 정치적인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하기 때문에 될 리가 없습니다. 나중에 항상 문제가 될 거거든요, 그게 정권 바뀌면 또 새로 해야 하고요.”

 

지금 박근혜 대통령은 당시 자신의 발언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진정 역사를 역사학자와 국민의 몫이라고 생각한다면 지금의 국정화는 시작부터 치명적인 문제를 안고 시작하는 셈입니다. 아마 현재 집필진 공개 논란은 다소 부차적인 문제일지 모릅니다.

 

 

노력해도 지위 상승 어려워” 10명 중 62년 새 늘었다 1126 경향

통계청 사회조사 발표

국민 10명 중 6명은 평생 노력해도 자신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가능성이 낮다고 여기고 있다. 취업자 10명 중 6명은 실직이나 이직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통계청은 26일 이 같은 내용의 ‘2015년 사회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노인 자녀와 동거 원치 않아

19세 이상 가구주 중 72.6%가 노후준비를 하고 있다고 답했고, 주된 노후준비 방법은 국민연금(55.1%)으로 나타났다. 남자는 78.7%가 노후를 준비하는 반면 여자는 55.1%만 준비한다고 답해 남녀 간 격차가 20%포인트 이상 벌어졌다. 30대와 40대의 노후 준비율은 각각 86.0%, 83.8%로 높았지만 60세 이상은 56.1%에 그쳤다.

60세 이상 고령층에서는 노후를 자녀에게 의탁하려는 비율(27.0%)2년 전(31.7%)보다 감소했다. 고령자 4명 중 3(75.1%)은 향후에도 자녀와 같이 살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성인 절반 내 소득에 불만

노력을 통해 본인세대에서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21.8%2013년보다 6.4%포인트 줄었다. 62.2%는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가능성이 낮다고 생각했다. 자식세대의 계층이동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는 비율은 31.0%로 본인세대보다 높지만, 2013년보다는 8.9%포인트가 줄어 감소폭은 더 컸다.

자신의 소득에 불만족한다는 응답자 비율은 46.3%였고, 만족한다는 답변은 11.4%에 그쳤다. 실직 등 고용불안을 느낀다는 취업자의 비율은 61.0%2013(59.8%)보다 높아졌다. 직업 선택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요인은 수입(38.8%), 안정성(28.0%), 적성·흥미(16.7%) 순으로 나타났다. 13~29세 청년들이 가장 근무하고 싶은 직장은 국가기관(23.7%)이며 공기업(19.5%), 대기업(18.7%)이 뒤를 이었다.

 

책 안 읽고, 여가활동은 TV

경기 침체 여파로 기부나 자원봉사는 계속 줄고 있다. 지난 1년간 기부를 한 사람은 29.9%2011(36.4%), 2013(34.6%)에 이어 감소세를 이어갔다. 1년 동안 자원봉사 활동 경험이 있다는 비중도 18.2%, 2년 전보다 1.7%포인트 감소했다. 신문을 보는 비율은 72.5%로 나타났다. 종이신문(43.1%)을 읽는 비중이 인터넷(86.0%)으로 본다는 응답자의 절반에 불과했다. 지난 1년간 책을 읽었다는 응답자는 56.2%2년 전보다 6.2%포인트 감소했다. 하고 싶은 여가활동으로는 여행·관광(59.4%), 문화예술 관람(34.2%) 등이 많았지만 실제로는 주로 TV시청(69.9%)으로 여가를 보내고 있다.

 

 

부동산 전문가들 “2~3년 후 집값 하락1126 경향

 

내년엔 수도권 상승세 이어가겠지만 지방은 33%가 하락 예상

경기 중개업자 60% “1년 내 상승세 둔화대구 경북도 진정세

부동산시장 전문가와 전국 부동산중개업소의 과반수는 2~3년 후 주택가격이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전문가들은 내년에 수도권은 주택가격 상승세가 이어질 것으로 봤지만, 지방의 경우는 33%가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응답했다.

 

정부의 부동산 경기부양 정책으로 지난해부터 부동산시장이 호조를 보였지만, 공급과잉과 생산가능인구의 감소 등으로 주택가격이 떨어질 것이라는 공감대가 전문가와 업계에서도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은행이 26일 발표한 지역경제보고서중 최근 주택시장 상황 및 모니터링 내용을 보면 2~3년 후 주택가격이 조정될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공감한다는 응답이 공감하지 않는다는 응답을 크게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설문조사는 지난달 23일부터 이달 12일까지 주택산업연구원, 건설산업연구원, 한국감정원, 국민은행, 부동산114, 대학교수 등 시장전문가 25명과 전국 307개 부동산중개업소를 대상으로 진행됐다. 전문가들 중에서는 수도권 지역의 경우 58%, 지방은 83.3%2~3년 후 주택가격이 조정받을 가능성에 공감하고 있다고 답했다.

 

수도권, 부산·경남권, 충청권, 호남권, 대구·경북권 지역 중개업소들의 70~80%도 모두 2~3년 후에 주택가격 조정이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특히 대전, 충남은 미분양주택이 지난해 말 대비 각각 82.1%, 95.1% 증가하면서 이미 주택가격 상승세가 크게 둔화하고 있다. 경기도의 경우 중개업소 40곳 중 60%가 현재의 매매가격 상승세가 1년 이내에 그칠 것이라고 답했다. 내년부터 정부의 가계대출 관리 대책이 시행되면서 금융기관의 주택담보대출 태도가 깐깐해지고, 주택 공급물량 증가 등으로 주택가격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판교, 광교 등 수도권 신도시는 현재의 오름세가 지속될 것으로 조사됐다. 올해 1~10월에만 주택매매가격이 9.8%나 오른 대구·경북권도 향후 조정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됐다.

 

지역 중개업소의 64%가 내년도 주택매매가격이 0~5%가량 떨어질 것으로 봤고, 5~10% 하락할 것이라는 응답도 12%였다. 대구·경북 지역은 최근 부동산을 투자상품으로 인식하는 분위기가 높아지고 도시철도 개통, 공공기관 이전 등의 호재가 작용하면서 분양시장 과열현상을 보여왔다. 그러나 앞으로 주택 공급물량이 2017년까지 계속 늘고, 금리 인상 가능성과 가계부채 부담 등으로 이 지역의 주택가격도 떨어질 것으로 예상됐다.

 

제주와 강원권만 유일하게 집값 오름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됐다. 제주도는 관광산업 호조, 혁신도시 조성에 따른 기업 유치로 인구가 꾸준히 유입되고 투자 수요가 이어지면서 내년 이후에도 집값 오름세가 나타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강원권도 향후 2~3년간 집값 오름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됐다.

 

반면 전세가격은 오름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 수도권, 부산·경남권, 강원권은 내년에도 전세가격이 5% 이상 상승할 것이라는 응답 비중이 69%를 넘었다. 수도권도 전세가격 상승 지속기간이 3년 이상일 것이라는 시장전문가의 응답이 42%에 달했다

 

금리 폭탄기업 도산가계 폭발한국 경제 붕괴! 1127 프레시안

위기의 시나리오

지난 1년여 경제가 나쁘다는 얘기, 박근혜 정부의 역주행 때문에 우리 삶이 위험해지고 있다는 얘기를 줄곧 했습니다.

지난달부터는 "위기"라는 낱말을 쓰기 시작했죠. 저는 지금 이런 제 판단, 또는 선입견에 맞는 사실만 끌어 모아서 오히려 현실을 왜곡하고 있는 건 아닌지 경계하고 있습니다. 상황을 급반전시킬 만한 요소는 없는지도 점검하고 있죠. 하지만 경제가 수렁으로 빠지고 있다는 증거는 계속 쏟아지고 있습니다.

 

현재 가장 그럴듯한 시나리오는 이렇습니다.

1) 중국 정부가 발표하는 공식 경제 성장률이 2년여에 걸쳐 5%까지 떨어지고 이미 위기에 빠진 러시아(-3.8% 전망)나 브라질 경제(-3.5% 전망)가 세계 금융 위기를 촉발하지 않는 경우라면 한국 경제는 내년(2016)에 잘 해야 1%대의 성장을 하게 될 겁니다.

그러나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12월에 금리를 올리고, 이어서 신흥 경제가 금융 혼란에 빠질 경우(브라질, 러시아, 동남아 국가들이 동시에 위기를 맞는다는 얘기죠) 한국 경제도 마이너스 성장, 나아가서 공황 상태로 빠져들 수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재닛 옐런 의장이 주도하는 연준이 0.25% 이상 급격하게 금리를 올릴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입니다만.

 

2) 한국 기업의 수출은 계속 마이너스를 기록할 겁니다. 중국이 서비스업 중심, 소비 중심 성장으로 경제 기조를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만 오랫동안 한 자녀 정책을 썼고 복지 시스템도 미비하기 때문에 기성세대의 보험성 저축은 계속될 것이기 때문에 이런 전환이 단 기간에 순조롭게 이뤄질 수는 없습니다.

당연히 수출 중화학 대기업을 중심으로 파산, 또는 대규모 구조 조정이 이어질 겁니다. 내수를 확대하는 "사회적 대타협", 즉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노동자 위주의 임금 인상과 고용 유지를 생산성 향상과 교환하는 대타협이 일어나지 않는 한, 이런 상황은 곧바로 소비 위축으로 귀결됩니다. 자신을 따르지 않는 모든 사람들을 테러 세력이나 위선자로 모는 대통령이 있는 한, 물론 이런 타협은 불가능합니다.

3) 기업의 위기로 신용 경색이 일어나고, 실물 경제는 투자 위축과 소비 위축에 허덕이게 되면 가계 부채가 터질 수 있습니다. 최악은 이 상황이 자산 시장 붕괴로 이어지는 겁니다. 결국 하층 위주로 빚을 탕감해 주고, 정부가 주택을 매입해서 안정적인 가격 하락을 유도하지 못 하면 국내 실물 위기가 금융 위기로 발전하게 됩니다.

4) 이 시나리오도 세계 경제 상황이 급격한 위기로 발전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서 그린 겁니다. 만일 1997년 외환 위기 때처럼 외부 쇼크가 내부의 폭탄에 불을 붙이게 된다면 1), 2), 3) 어느 단계에서도 금융 위기가 발발할 수 있습니다.

 

쏟아지는 위기의 징후들

통계청은 24'2014년 기준 기업 활동 조사 잠정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이 보고서는 "국내 회사 법인 중 '상용 근로자 50인 이상이면서 자본금 3억 원 이상'인 회사 법인을 대상으로 올해 6월 실시한 조사를 잠정 집계한 결과"입니다. 즉 영세 기업들은 빠진 통계죠. (관련 자료 : 2014년 기준 기업 활동 조사 잠정 결과)

 

 

[그림 1] 기업 매출액 추이. 통계청

 

언론에 보도된 대로 작년 기업 매출액은 이 조사가 시작된 2006년 이후 처음으로(아마도 한국 경제 사상 최초로) 마이너스를 기록했습니다. [그림 1]은 매출액 하락이 어떤 우연적인 요소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제조업의 매출액이 3.5% 감소한 것이 이런 움직임을 이끌었습니다. 즉 수출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는 얘깁니다.

지난 25일 한국은행은 '20153/4분기 중 가계 신용(잠정)'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그림 2]에서 보듯이 가계 대출이 또 다시 30조 원 이상 증가해서 전체 가계 부채는 1160조 원이 됐습니다. 이 속도라면 연말에는 1200조 원에 이르겠죠.

 

 

 

 

[그림 2] 가계 신용의 추이. 한국은행

 

우리는 박근혜 정부의 정책, "빚내서 집 사고, 전세금 올려 줘라"가 이 상황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정부가 주택담보인정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완화하고 한국은행도 기준금리를 연 2.5%에서 연 1.5%까지 내리면서 지난 1년 동안 가계 부채가 1096000억 원이나 늘어났으니까요. 특히 상호저축은행, 신용협동조합, 상호금융, 새마을금고 등 비은행 예금 취급 기관의 가계 대출이 3분기에 63000억 원 늘었다는 것도 심각하게 봐야 할 현상입니다. 앞으로 정부의 가계 부채 대책으로 은행권이 대출을 죄면 이 쪽의 빚이 늘어날 거라는 얘기니까요.

 

그림의 막대 그래프의 파란 부분(판매 신용)이 급증한 것도 "그랜드 코리아 세일"이라는 정부의 소비 진작책 때문입니다. 3분기 중 판매 신용은 전 분기보다 39000억 원 늘어 2분기 증가폭인 5000억 원의 8배나 됐습니다. 과연 이제 어떤 방법으로 소비를 더 늘릴 수 있을까요소득이 늘지 않으면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습니다. 통계청이 20일 발표한 '20153분기 가계 동향'을 보면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4416000원으로 지난해에 비해 0.7% 늘어났습니다. 그 중 근로 소득은 0.1% 증가했으니까 물가 상승률을 고려하면 실질 근로 소득은 마이너스라는 얘깁니다. 사업 소득 역시 4분기 연속 감소했고 그나마 전체 소득이 미미하게 증가한 건 자산 소득의 증가에 기인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국민의 절반이 가진 자산은 전체의 1.7%에 불과하니까 지금 미미하게 증가한 소득도 전부 상층이 거뒀다는 얘깁니다.

 

이에 따라 가구당 월평균 지출액은 339만여 원으로 지난해보다 0.5% 감소했습니다. 20131분기(-0.4%) 이후 처음 있는 일이죠. (관련 자료 : 20153분기 가계 동향)

 

 

[그림 3] 가구당 소득과 가계 지출 증가율. 통계청

 

[그림 3]을 보면 소비 지출 증가율이 2010년부터 추세적으로 감소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소득(푸른 선)과 소비(붉은 선) 간의 간격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소득도 떨어지지만, 빚 때문에 소비를 그 이상으로 줄이고 있다는 얘깁니다.

한편, 전체 지출은 줄었지만 실제 주거비는 23.5% 급증했습니다. 주류, 담배 지출도 월 37000원으로 지난해보다 23%나 증가했죠. 통계청은 "월세 가구의 증가 등으로 주거비가 크게 늘었고, 담뱃값 인상의 영향으로 담배 지출도 증가했다"고 밝혔습니다. 대충 그림이 그려지시나요? 전체적인 경기 둔화로 가구 소득이 줄어들었고 오로지 자산 소득이 증가했는데, 그건 임차 가구에서 임대 가구로 소득이 이전된 결과라는 겁니다.

 

가계 부채와 기업 부채가 모두 위험하다

11월 언론에서 가장 화제가 된 건 국제금융협회(IIF)의 보고서였을 겁니다. 새로운 사실은 없습니다만 우리의 가계 부채와 기업 부채가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어느 정도인지를 간명하게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주로 보도가 된 보고서는 11-12월 보고서이고, 기업의 부채를 다룬 건 10월 보고서입니다.) (관련 자료 : Capital Markets Monitor Key Issues(NOVEMBER/DECEMBER 2015), Capital Markets Monitor Key Issues(OCTOBER 2015))

 

20151분기 기준으로 1분기 기준으로 한국의 GDP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은 84%에 달해서 선진국 평균 74%를 훨씬 웃돌았고, 신흥 아시아 평균인 40%에 비해서도 두 배를 넘었습니다. 이 보고서의 말을 빌지 않아도 심각하게 위험한 상태입니다기업 부채 역시 GDP 대비 비금융 기업 부채 비율은 106%를 기록해서 선진국의 90%는 물론 18개 신흥국 중 홍콩(226%), 중국(161%), 싱가포르(142%) 다음으로 4위를 기록했습니다. 가계 부채 못지않게 기업 부채도 문제가 되고 있는 거죠.

 

한편, 한국의 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은 41%로 그리 높지 않지만, 2009년 이전의 24%에서 매우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가계, 기업, 정부 부채(총부채)는 올해 1분기 기준 317%GDP3배를 넘어섰습니다. , 정부 부채만 조금 여유가 있을 뿐 기업 부채와 가계 부채가 모두 급등해서 위험한 상태에 이르렀다는 얘깁니다. 그래도 이 정부가 내 놓는 정책이라곤 "부채 주도 성장" 밖에 없죠. 이런 상황에서는 조금만 삐끗해도 공황 상태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이 모든 상황이 야당과 국민들 때문이라고 강변하고 있습니다. 그의 뜻대로 될 경우 오히려 이 나라는 '대재앙(perfect storm)'을 맞을 게 뻔한 데도 말입니다. -정태인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소장

 

Heaven / Warra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