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재앙’ 600배 증가 속 “여성에게 더 가혹한 기후위기
영국 기후단체 ‘카본 브리프’, 세계 논문 130건 분석
여성 사상자, 남성보다 많다는 연구결과가 2배 넘어
올해 태풍, 홍수 등 촉발 ‘대서양 열파’ 600배 증가
“여성 꽁꽁 싸맨 옷, 남성 보호자 없이 외출 불가능 등
전통적 관습 때문에 물살 탈출 어려운 경우 많아” 지적
말레이시아에서 한 임신부가 구조대원들 도움으로 홍수로 물에 잠긴 집에서 탈출하고 있다. 카본 브리프 제공
세계의 기후위기 관련 연구 논문들은 기상 이변과 감염병 확산 등 기후변화 영향에서 남녀가 평등하지 않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기후환경 관련 비영리단체인 ‘카본 브리프’는 1일 세계 기후위기 관련 논문 130건을 분석한 결과, 여성과 소녀들은 기후변화의 영향에서 남성이나 소년들에 비해 훨씬 더 높은 위험에 놓이는 것으로 분석됐다고 밝혔다.
카본 브리프는 2007년 발리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회의에서 구성된 ‘국제성·기후연합’(GGCA)이 2016년에 발표한 보고서를 기초로 최근까지 진행된 관련 연구들을 총망라해 분석했다.(참고 : 130건 논문의 주제 및 지역별 분포도)
카본 브리프 분석 결과, 130건의 연구 논문 가운데 89건(68%)이 여성이 기후변화와 관련한 건강 영향에서 남성에 비해 많은 피해를 받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예를 들어 프랑스와 중국, 인도의 폭염 때와 방글라데시, 필리핀의 태풍 때 더 많은 여성과 소녀가 목숨을 잃었다. 또 세계 많은 지역에서 여성은 남성에 비해 극한 기상 후유증으로 정신적 건강과 배우자의 폭행, 식량 부족으로 고통받는다. 반면 남성에게 영향을 더 미치는 경우가 나타난 논문은 30건(23%)이었다. 나머지 11개 논문(8%)에서는 성별 차이가 없었다.
130건 가운데 한국 연구도 한 편 들어 있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김호 교수 연구팀이 과학저널 <정신의학연구> 2011년 4월30일치에 발표한 것으로, 2001~2005년까지 일일 기온과 자살률의 상관관계를 연구한 논문이다.
연구팀은 봄철과 여름철의 고온 환경이 자살률을 높이는 경향이 있으며, 일 평균기온이 1도 증가할 때마다 자살률이 1.4% 높아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특히 자살 위험은 여성, 젊은이, 고학력자보다 남성, 노인, 저학력자에서 높았다.
극한 기상에 따른 여성 사상자 많다는 논문이 남성의 2배
기후변화는 극한 기상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올해 대서양 열파는 기후변화에 의해 600배가 증가한 것으로 보고됐다. 2018년 북반구의 폭염은 기후변화가 아니면 설명이 되지 않는다. 기후변화는 태풍과 가뭄, 산불 등 다양한 기상 이변으로 표출되고 있다.
방글라데시 보구라에서 여성들이 홍수로 잠긴 도로에서 전통의상인 사리를 입고 어렵게 물살을 헤쳐나가고 있다. 카본 브리프 제공
분석 대상 가운데 53건의 논문은 극한 기상 이변에서 남녀 사상자 비율을 분석했다. 이 가운데 34건(64%)은 여성이 극한 기상에서 사망하거나 부상할 확률이 남성보다 높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반면 13건(25%)은 남성이 여성보다 피해가 큰 것으로 분석했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나 관습이 위험을 키우기도 한다. 지난 2월 의학저널 <랜싯>에 관련 논문을 발표한 킴 반 다알렌 영국 캠브리지대 연구원은 “여성들이 맞닥뜨리는 위험은 남녀의 신체적인 차이뿐만 아니라 사회적 지위에 의해서도 증폭된다”고 밝혔다. 한 연구 논문에서는 방글라데시에서 태풍이나 홍수가 닥쳤을 때 움직이기 힘들게 만드는 전통 옷(사리)을 입은 여성들은 물살을 헤치고 탈출하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다른 연구에서는 1998년 방글라데시 수도인 다카에서 홍수가 발생했을 때 여성들이 남성에 비해 병원 치료를 적게 받은 원인을 분석했다. 여성들은 전통적 관습 때문에 남성 보호자가 있어야만 외출을 할 수 있었다.
85개의 중저소득 국가를 대상으로 20여년 동안 진행된 2016년 발표 논문에서는 남성에 비해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낮은 국가들에서 극한 기상 이변에 의한 여성 사망률이 훨씬 높았다. 하지만 다른 연구들에서는 고소득 국가에서도 여성이 남성에 비해 극한 기상 이변 때 사망할 확률이 더 높았다. 한 연구에서 프랑스에서 폭염 사망률이 여성이 더 높았고, 런던, 파리, 로마 등 유럽 9개 도시를 대상으로 조사한 2012년 논문에서도 여성의 사망이 더 많았다. 유럽 여성의 폭염 사망률이 높은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일부 논문들은 기저질환이 있는 여성 노인들이 폭염에 특히 취약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일부 논문들은 남성 사망률이 높다고 밝혀
반면 미국과 호주의 일부 연구들은 남성의 폭염 사망률이 여성보다 높다고 보고했다. 미국 국민건강보고서는 2006~2010년에 극한 고온에 따른 남성의 사망률이 여성에 비해 2.6배 높다고 보고했다. 국제성·기후연합(GGCA)의 2016년 보고서를 작성한 샘 셀러스 미국 워싱턴주립대 연구원은 “미국의 폭염에 의한 남성 사망률이 높은 것은 사회적으로 고립된 남성 노인이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크리스티 에비 워싱턴주립대 교수도 “미국 등 고소득 국가에서는 남성들이 야외에서 노동을 하거나 여가를 보내는 일이 더 많기에 폭염에 노출될 확률이 높아서”라고 풀이했다. 2018년에 발표된 논문에서는 미국 50개 도시에서 남성들이 여성에 비해 실외에서 폭염에 더 많이 노출된다는 분석이 담겼다. 또 미국과 호주에서는 남성들이 여성에 비해 홍수로 인한 사망이 많았으며, 이유는 남성들이 구조 활동에 더 많이 투입되기 때문이라고 관련 논문들은 밝혔다.
미국에서 2005년 카트리나 허리케인이 기습한 뉴올리언스에서 배우자 폭력과 성폭력이 증가했다는 연구도 있으며, 2004년 뉴질랜들에서 홍수 피해 뒤 가정폭력이 늘어나고, 방글라데시에서 2007년 홍수 뒤 여성에 대한 폭력이 증가했다는 연구도 있다.
식량 불안정 피해도 여성이 더 커
기후변화는 여러 형태로 ‘식량 불안정’(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식품을 구매하거나 섭취할 수 없는 상태)을 야기한다. 기온 상승과 강수량 변화는 식량 수확량에 영향을 끼치고, 가뭄같은 극한 기상 이변은 예상 못한 식량 감소를 낳는다. 중저소득 국가에서는 식량 불안정은 국민 건강과 직결된다. 논문들은 중저소득 국가에서 기후에서 유발된 식량 불안정이 여성의 건강에 더 큰 영향을 끼친다고 밝히고 있다.
14건의 관련 논문에서 11건(79%)은 여성들이 남성에 비해 더 큰 영향을 받는다고 분석했다. 라만 프리트 스웨덴 우메오대 교수는 “기후변화가 유발한 식량 불안정이 여성에 더욱 심한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중저소득 국가의 역사적인 사회적 지위체계를 이해해야 한다”며 “먹을 식량이 적을 때 누가 더 많이 가져가겠는가? 많은 경우 남성이다. 새로운 것도 아니다. 이런 성 역할은 수천년 동안 내려온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연구 논문들은 인도, 이란, 남아프리카공화국, 가나, 니카라과 등에서 기후변화로 인한 식량 불안정 시기에 여성들이 남성에 비해 더 쉽게 음식을 포기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많은 지역에서 남자 아이에 비해 여자 아이들이 음식에서 배제되기 쉽다. 예를 들어 필리핀에서 진행된 한 연구는 태풍이 닥친 뒤 몇달 동안 여자 아이들의 영아 사망률이 남자 아이들보다 높았다. 이는 음식이 부족할 때 여자 아이보다 남자 아이한테 우선적으로 제공했기 때문이라고 연구자들은 분석했다.
그린란드에서의 한 연구는 기후변화로 북극 사냥감들이 줄어들어 남성들이 사냥이 어려워지자 여성 배우자한테 경제적 의존도가 높아졌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하지만 이 연구에서는 사냥의 실패가 가정 폭력을 증가시켰다는 점도 드러났다.
130건의 기후변화 관련 논문을 주제와 지역별로 배치한 지도. 한국에서는 기온 변화에 따른 자살률 분석 논문이 인용됐다. 카본 브리프 제공
남성이 감염병에는 잘 걸려
기온 상승으로 야생동물과 그들이 전파하는 감염병이 새로운 지역으로 퍼져나가 사람들이 매개 질병과 전염병에 잘 걸리게 된다. 지난해 발표된 한 논문은 기온 상승 결과로 2080년까지 10억명 이상의 인구가 모기 매개 질병에 노출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지난 5월 카본 브리프는 기온 상승은 코로나19 같은 수많은 동물 매개 질병(인수공통감염병)에 노출될 확률을 높일 것이라는 보고서를 냈다. 여기에 더해 해수면 상승도 감염병 노출을 강화하는 구실을 한다. 일부 감염병원균은 저염수에서도 생존하는데, 해수면 상승은 저염수를 사람들이 사는 지역까지 가까이 접근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또한 연구 논문들은 해양 온난화가 해양 박테리아의 확산을 돕는다고 분석하고 있다.
기후변화 유발 감염병 관련 논문 14건 가운데 9건(64%)은 남성이 여성에 비해 감염병에 노출될 위험이 큰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여성이 더 높다는 논문은 4건(29%)에 그쳤다.
이유는 남성들이 야외 노동이나 여가 활동을 많이 하기 때문이다. ‘빌하르츠 주혈 흡충증’(아프리카와 남미 일부 지역에서 흔한, 작은 기생충이 혈관 속으로 파고드는 질병)은 오염된 물에서 사람간에 전파되는 기생충에 의해 전염되는, 신체를 쇠약하게 만드는 질병으로, 열대 아프리카에서 가장 창궐하는데 몇몇 연구들은 기온 상승이 이 질환의 발생을 높인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북미에서 진행된 연구들은 남성들이 라임병(진드기가 옮기는 세균에 의한 전염병)에 더 잘 걸린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유는 남성들이 야외 노동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 진드기에 노출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연구 논문들은 라임병 노출 지역이 지구온난화에 의해 미국과 캐나다에서 점점 더 북상하고 있다는 것으로 보여주고 있다.
반면 여성들은 집 안에서 질병에 노출되기 쉽다. 일부 연구는 여성들이 남성에 비해 말라리아 위험이 크다고 밝혔다. 중저소득 국가에서 여성들은 집 안이나 주변에서 오염된 물과 접촉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기후변화에 따른 정신 질환은 여성이 더 심해
기후변화와 정신건강의 관계는 복잡하다. 연구 논문들은 기상 이변이 가족과의 사별, 부상, 경제적 손실 등으로 인한 정신 질환 위험성을 증폭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헬렌 베리 호주 시드니대 교수는 “기후변화는 많은 사람들한테 영향을 미치지만 일부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부상이나 주택 훼손, 일자리 상실, 심지어 생명의 박탈까지 피해를 더욱 자주 받는다”며 “이런 일들이 장기적으로 정신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데 이와 관련한 연구는 미미하다”고 말했다.
기후변화와 관련한 정신 질환과 성별 차이를 연구한 논문 28건 가운데 19건(68%)은 여성이 남성에 비해 더 큰 영향을 받는다고 밝혔다. 미국과 호주, 미얀마에서의 연구는 여성들이 태풍 이후 심리적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끔찍한 경험을 한 뒤 나타나는 우울증·초조감·죄의식·공포감·성격 변화 따위)를 더 겪는다는 것을 보여줬다. 영국과 중국에서의 연구는 홍수 뒤에 같은 현상을 분석했다. 논문들은 그 이유를 밝혀내지는 못했다.
다만 세계보건기구(WHO)는 여성을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로 영향을 받는 가장 큰 단일집단으로 분류하고 있으며, 이는 성적 학대와 높은 상관성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일부 연구는 성폭력 위험이 극한 기상 이변 기간이나 이후에 상승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에 더해 여성들은 극한 기상 이변에 따른 우울증과 정신적 고통을 겪을 확률이 높다.
반면 일부 연구들은 남성이 여성에 비해 극한 기상 이변에 따른 자살률이 높다고 밝혔다. 인도와 호주에서의 연구는 남성 농장주들이 가뭄 등으로 피해를 입은 뒤 자살 위험이 극히 높아졌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호주에서는 성 역할에 대한 불균등한 의식과 역경에 맞서 싸워내야 한다는 남성주의 등이 원인으로 분석됐으며, 인도에서는 불공정한 곡물 가격과 부채가 원인이었다. 한국의 연구도 여기에 포함된다. 전 세계에 걸쳐 극한 기상 이변에 따른 남성의 자살률이 여성보다 2배 많았다.
임신과 모성건강에 대한 영향
기후변화는 임산부에게 영향을 끼친다. 기후변화는 한편으로는 산모와 태아의 잠재 위험을 키우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임신을 기피하거나 모성건강 보호 서비스 접근을 어렵게 한다. 논문 21건이 이 문제를 다뤘는데, 미국 텍사스와 플로리다에서 허리케인에 노출됐을 때와 아프리가 19개국과 이탈리아, 스페인에서 폭염에 노출됐을 때 산모와 영아에게 건강 문제가 발생했다. 특히 산모가 폭염에 노출될 경우 저체중 출산 등 태아에도 영향을 미쳤다.
아이티와 태국에서의 연구는 임신부가 말라리아 등 감염병에 노출될 경우 유산을 하거나 임신부 건강에 심각한 영향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2007년 연구에서는 젊은 여성들이 미국 뉴올리언스에서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지나간 뒤 출산 서비스를 이용하기 어려웠다는 점을 밝혀냈다.
이근영 기자 kylee@hani.co.kr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바다 방류’ 기우는 일본…‘돈 때문이야’
처리비용에 370억원…곧 결정
재정화 한계…효과 신뢰 못해
대기 방출, 10배 넘는 3770억원
방류 땐 반년 만에 제주 바다로
1년 반 뒤에는 동해까지 퍼져
“일본, 돈 들여 다른 안 찾아야”
. 자료 출처 : 독일 헬름홀츠 해양연구소
일본 정부가 조만간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오는 방사능 오염수 처리 방향을 결정한다. 당초 지난달 27일 결정하려던 일정이 이달 이후로 미뤄졌지만 결국 ‘바다 방류’로 가닥이 잡힐 거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부족한 정화 기술과 오염수를 낮은 비용으로 처리하려는 의도가 겹쳐진 결과다. 일본이 방사능 재앙을 유발한 국가로서 제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오염수 27%만 기준치 충족
후쿠시마 원전에선 핵연료를 식히기 위한 냉각수와 주변에서 흘러든 빗물·지하수가 합쳐지면서 하루 160~170t의 방사능 오염수가 생긴다. 일본은 오염수를 정화해 원전 주변의 탱크에 담아 놓는다. 현재 총저장량은 123만t이다. 오염수는 62종의 방사성물질을 정화하도록 설계된 ‘다핵종제거설비(ALPS)’를 거치며 독성을 떨어뜨린다. 문제는 ALPS의 부족한 능력이다. 도쿄전력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으로 ALPS를 거친 오염수의 27%만 방사능 기준을 충족했다. 전체 오염수의 34%가 기준치의 1~5배이고, 5~10배(19%), 10~100배(15%) 수준도 많았다. 기준치의 100~1만9900배에 달하는 초고농도 오염수 비율도 6%에 달했다.
오염수에 섞인 물질 가운데 특히 위험한 것이 있다. ‘스트론튬’이 대표적이다. 뼈에 축적되며 백혈병을 유발하는 독성 방사성물질이다. 최인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원자력안전위원회로부터 받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후쿠시만 원전 오염수에 든 스트론튬의 평균 농도는 기준치의 111배, 최댓값은 1만4433배였다.
재정화한다지만 ‘허점’
일본 정부는 오염수를 ALPS에 두 번 이상 통과시키는 ‘재정화’를 해 오염 농도를 낮추겠다는 구상이다. 지난달 시범적으로 진행한 재정화에서 도쿄전력이 방사능 기준치의 2200배에 달하는 오염수 1000t을 기준치 이하로 떨어뜨리는 데 성공했다고 지지통신 등 일본 언론은 전했다.
하지만 이 발표를 신뢰한다 해도 재정화에는 본질적인 구멍이 있다. 지난 8월 방사성물질인 ‘탄소14’가 오염수에 섞여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는데, ALPS는 애초 탄소14를 거르도록 설계되지 않았다. 재정화를 아무리 해도 탄소14는 전부 바다로 흘러 들어간다. 지난달 발간된 그린피스 보고서에서 프랑스 원자력안전방사선방호연구소(IRSN)는 탄소14에 대해 “DNA에 유입돼 유전적 돌연변이를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 다른 방사성물질인 ‘삼중수소’는 아예 정화 대상도 아니다. 물과 결합돼 기술적으로 제거가 어렵다는 게 이유다. 일본의 삼중수소 배출 기준치는 ℓ당 6만㏃(베크렐)인데,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는 10배에 가까운 평균 58만㏃이다. 일본은 삼중수소를 물에 희석해 버리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희석해도 배출 총량은 변함없다는 반론이 나온다.
바다 방류가 현실화하면 한국은 영향을 피할 수 없다. 독일 헬름홀츠 해양연구소가 방사성물질인 ‘세슘137’을 기준으로 오염수 방류 시 확산 상황을 예상해 만든 시뮬레이션을 보면 방류가 시작되고 7개월 뒤엔 오염수가 제주도 근해, 1년 반 뒤엔 동해 대부분에 파고든다. 해류 영향으로 태평양 다른 구역보다 비교적 낮았던 오염 농도도 시간이 갈수록 높아진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이 지난달 국감에서 김상희 국회부의장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방류 조건에 따라 한 달 안에도 방사성물질이 제주도와 서해에 도달할 가능성이 있었다.
이유는 ‘비용 절감’
일본이 바다 방류로 기우는 건 처리 비용이 낮기 때문이라는 게 과학계와 환경단체의 시각이다. 일본 ALPS소위원회에 따르면 바다 방류에는 34억엔(370억원)이 들어간다. 하지만 ‘대기 방출’에는 10배가 넘는 349억엔(3770억원)이 필요하다. ‘지층 주입’ 등 다른 모든 방식과 비교해도 바다 방류가 싸다.
일본 정부가 정화 기술이 없다며 희석해 버리겠다고 한 삼중수소도 돈 쓰려는 의지가 있다면 방법을 찾아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후쿠시마 사고 뒤 미국 기업 큐리온은 삼중수소를 대부분 제거하는 기술을 만들겠다고 제안했다. 장비 설치에 10억달러(1조1300억원), 연간 운영비로 1억달러(1130억원)가 예상됐다. 이에 대해 2016년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원전에 적용할 만한 삼중수소 제거 기술은 없다고 결론 내렸다. 환경단체에선 이 결정이 기술적인 관점보다는 비용 절감 차원에서 내려진 것은 아닌지 의심한다. 그린피스는 지난달 발간한 보고서에서 “비용이 높은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이것이 원전 운영으로 인한 위험”이라고 지적했다.
믿을 만한 삼중수소 정화 기술이 정말 없더라도 길은 있었다. 삼중수소는 방사능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반감기’가 12.5년으로 비교적 짧다. 별 처리 없이 탱크에 오래 보관만 해도 독성이 줄어든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오염수 저장량을 137만t 이상 늘리지 않을 방침이기 때문에 2022년 여름이면 모든 탱크가 꽉 찬다. 탱크를 더 지을 공간이 없다는 게 이유다.
지난해 일본경제연구센터 보고서에 따르면 오염수 저장에는 연간 1000억엔(1조800억원) 이상이 들어간다.
한병섭 한국원자력안전방재연구소 이사는 “돈을 들이면 대응을 모색할 수 있는데, 방류로 해결하려는 건 문제가 크다”며 “일본은 도덕적 책무를 져야 한다”고 말했다. 탱크를 더 설치하지 않는 이유가 ‘원전 관리 실패’라는 후쿠시마의 상징성이 강화되는 걸 막으려는 것이라는 시각도 나온다.
장마리 그린피스 캠페이너는 “원전 주변에 탱크를 지을 땅이 있는 데다 공학적으로 오염수 저장에 문제가 있는 상황도 아니다”라며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결정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린피스 “한국, 일본에 협조 구할 게 아니라 국제법으로 대응해야”
수산물 수입 금지 WTO서 승소
국제해양재판소 가면 힘 실릴 것
한·일 시민사회 연대 필요성도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의 바다 방류를 밀어붙일 것으로 보이면서 한국도 적극적으로 대응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환경단체는 한국이 일본에 ‘협조’를 구할 게 아니라 국제해양재판소를 통해 강력한 국제법적 대응을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어업단체 등을 중심으로 양국 시민사회가 연대해 방사성 물질 방류로 인한 수산물 오염을 공론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는 바다 방류를 향한 일본의 완강한 태도를 감안하면 이번 문제를 국제해양재판소로 가져가야 한다고 보고 있다.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를 상대로 국제해양재판소에 ‘잠정조치’, 즉 가처분을 신청하자는 것이다. 국제해양재판소는 선박 압류나 배타적경제수역(EEZ) 분규 등 해양 문제와 관련한 법적 사건에서 판결을 내린다.
그린피스는 오염수 방류를 막아달라는 잠정조치가 받아들여질 유리한 정황이 한국에 있다고 보고 있다. 한국이 2013년부터 후쿠시마 주변 8개현에서 생산되는 수산물을 수입 금지한 조치가 정당하다며 지난해 4월 세계무역기구(WTO)에서 승소 결정이 났기 때문이다. 승소 결정이 후쿠시마 원전에서 비롯된 오염 사태에 뿌리를 두는 만큼 국제해양재판소에서 한국의 목소리에 힘이 실릴 거라는 전망이다.
지난달 국회 국정감사에서 외교부는 오염수 방류 계획은 일본의 주권적 결정사항이라는 입장을 보이면서 투명한 정보 공개 요구에 집중하겠다는 쪽에 무게를 실었다. 오염수 방류를 막을 실질적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 감안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국제해양재판소를 활용하면 적극적으로 쓸 만한 카드가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장마리 그린피스 캠페이너는 “국제해양재판소에 제기할 잠정조치 안에 ‘환경영향평가가 이뤄질 때까지 한국이 어떤 식으로든 피해를 받지 않도록 해 달라’는 요구를 해야 한다”며 “이 과정을 통해 원전 오염수 안의 방사성 물질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파악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과 일본의 시민사회가 연대해야 한다는 견해도 나온다. 이정윤 원자력안전과미래 대표는 “예를 들어 양국 어업단체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압박을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본산 수산물 수입을 지렛대 삼아 대응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최경숙 시민방사능감시센터 활동가는 “일본 정부는 자국산 수산물 수입금지에 대해 매우 예민한 태도를 보인다”며 “일본이 원전 오염수를 버린다면 일본산 수산물 수입 전면금지와 같은 조치를 시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의 수산물 수입금지 범위를 확대하면 오염수 방류 문제를 국제적으로 환기하는 효과도 높일 수 있다.
일본의 태도는 아직도 ‘무엇이 문제냐’는 식이다. 지난달 21일 노가미 고타로 일본 농림수산상은 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과 한·중·일 농업장관 회의에서 일본산 식품에 대한 수입규제 철회를 주장했다. 후쿠시마 주변 수산물 수입을 금지하는 한국을 사실상 겨냥한 것이다. 바다 방류 결정을 전후한 한·일 간의 대립 수위는 앞으로도 계속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잠자는 거인’ 북극 메탄이 방출되기 시작
북극 탐험대가 동시베리아 해안에서 새로운 온실가스 공급원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최근 가디언의 보도에 따르면 과학자들은 ‘탄소 순환의 잠자는 거인’으로 알려진 북극해의 냉동 메탄이 동시베리아 해안의 대륙 경사면의 광대한 지역에서 방출되기 시작했다는 증거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러시아 인근 라프테프해에서 350미터 깊이까지 매장된 강력한 온실가스가 발견돼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지구온난화를 가속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촉발된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북극의 경사면 퇴적물에도 엄청난 양의 냉동 메탄과 다른 가스들이 묻혀 있는데 이는 '하이드레이트'로 알려져 있다. 메탄은 20년 동안 이산화탄소보다 80배나 강력한 온난화 효과를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지질조사국에 따르면 이전에 급격한 기후변화에 대한 네가지 최악의 시나리오 중 하나로 북극 하이드레이트의 불안정성을 언급했다.
러시아 연구선 R/V 아카데믹 켈디쉬호에 탑승한 국제팀은 현재 대부분의 기포가 물속에서 용해되고 있지만 표면의 메탄 농도는 보통 예상치의 4~8배에 달하며 이는 대기 중으로 방출되고 있다고 말했다.
다년간의 국제 지층 연구 탐험대(Shelf Study Expedition)의 일원인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발견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메탄 방출의 규모는 아직 정확하게 확인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잠재적으로 불안정한 경사로 냉동 메탄의 발견은 지구 난방 속도를 증가시킬 수 있는 새로운 임계점에 도달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북극은 해양에 얼어붙은 메탄 매장량의 취약성에 대한 논쟁에서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로 간주된다.
현재 북극 기온이 지구 평균보다 두 배 이상 빠르게 상승하고 있는 가운데, 언제 대기 중으로 방출될 것인가 하는 문제는 기후 컴퓨터 모델에서 상당한 불확실성의 문제로 남았다. 불안정성의 가장 큰 원인은 따뜻한 대서양 해류가 동쪽 북극으로 유입됐기 때문이다.
한편 올해 1~6월 시베리아의 기온은 평균보다 5도나 높았는데, 이는 인간이 초래한 이산화탄소와 메탄 배출이 최소 600배 이상 높아져 생긴 이상 현상이다. 지난 겨울 해빙 용해 현상이 유난히 일찍 찾아왔다. 또한 올 겨울의 동결도 아직 시작되지 않았는데, 이미 기록상 어느 때보다도 늦게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환경미디어 황원희 기자
풍산 이전부지 확정 ‘센텀 2지구’ 2022년 착공 급물살
올 3월 중앙도시계획위원회의 그린벨트 해제 결정에 이어, 사업지의 53%를 차지하는 (주)풍산의 이전 부지가 결정되면서 센텀2지구 사업이 급물살을 탄다. 센텀2지구가 들어설 해운대구 반여·반송·석대동. 부산일보DB
부산 해운대구 센텀2지구 도시첨단산업단지(이하 센텀2지구) 사업을 위해 이전해야 하는 방산업체 (주)풍산의 대체 부지가 결정됐다. 이로써 올 3월 그린벨트 해제 결정 이후 잠잠하던 이 사업이 급물살을 탄다. 부산시는 2022년 착공을 목표로 관련 절차에 속도를 낸다. 센텀2지구 사업지의 53%가 풍산 터다.
1일 부산시와 풍산, 부산도시공사에 따르면 풍산은 센텀2지구 사업지에서 옮겨 갈 부지를 잠정 확정하고 산업단지조성계획 수립 작업을 시작했다.
부산 시내 후보지 중 1곳 압축
보안·민원 우려에 공개엔 난색
‘부산 대개조’ 프로젝트 중 하나
4차 산업혁명 선도 시설 예정
8만 4000개 일자리 창출 등 효과
그동안 풍산 측은 부산 시내 후보지 3곳을 놓고 국방부, 부산시와 협의를 진행했다. 구체적인 이전 지역은 민원 등의 우려로 아직 공개하기 어렵다는 게 관계 기관들 입장이다. 풍산 오문길 홍보부장은 지난달 31일 “공장 이전 부지를 1곳으로 압축했는데, 보안 사항이라 승인 전에 어디인지는 공개할 수 없다”며 “산업단지조성계획 수립 작업에 착수했고, 1년 남짓 걸릴 것”이라고 밝혔다. 부산시 김재학 산업입지과장은 “풍산에서 이 부지를 놓고 산업단지조성계획을 그린 뒤 적합하다고 결정되면 내년 3~4월쯤 투자의향서를 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부산시는 대체 부지(필요면적 25만 평)가 최종 확정되는 대로 절차를 밟아 풍산 이전부지와 센텀2지구의 산업단지조성계획을 내년 연말까지 승인받겠다는 목표다. 이 작업이 순조롭게 되면 보상을 거쳐 2022년 착공할 수 있을 것으로 부산시는 기대한다. 풍산 이전까지는 시간이 더 걸리는 만큼 해당 부지는 가장 늦게 착공될 것으로 예상된다. 센텀2지구 사업지의 53%(102만㎡·31만 평)가 풍산 터다. 사업지에 편입되지 않는 풍산 공장 터도 일부 있다. 또 다른 부산시 관계자는 “센텀2지구 사업을 위해 옮겨야 하는 곳이 크게 풍산, 반여농산물시장, 석대화훼단지”라며 “반송로와 석대천 사이 컨테이너 야적장 등에 대해 먼저 착공하고, 이후 시설 이전 상황을 봐 가며 공사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해운대구 반여·반송·석대동 일원에 들어서는 센텀2지구는 지난해 부산시가 정한 10대 부산대개조 프로젝트 중 하나다.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할 정보통신기술, 첨단신해양산업, 융합부품 소재, 영상·콘텐츠 시설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근로자를 위한 주거시설은 6%, 3000세대 정도다. 부산시는 이 사업으로 8만 4000개의 일자리가 생길 것으로 기대한다. 시행자는 부산도시공사이고, 사업비는 1조 3551억 원이다.
부산시는 당초 내년 상반기에 산업단지조성계획을 승인받고, 내년 하반기에 착공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현재 일정대로라면 계획보다 6개월 정도 늦어지는 셈이다. 이에 따라 2024년 풍산 이전 완료, 2027년 완공 목표도 그만큼 순연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중앙도시계획위원회는 올 3월 센텀2지구 사업지 중 162만 1000㎡(49만 평)의 그린벨트를 조건부로 해제하기로 결정했다. 전체 사업부지(191만 2000㎡·58만 평)의 84.8%에 해당한다. 2017년 9월 해제를 신청한 지 2년 6개월 만에, 5차례 심의 끝에 내려진 결정이다./김마선 기자 msk@busan.com
멸종한 줄 알았는데 살아있었네... 민통선 생태보고 '둠벙'을 아시나요
긴다리소똥구리, 점박이물범, 수원청개구리, 초원수리, 두루미, 물방개, 수달, 참수리······
모두 멸종위기종, 또는 천연기념물로서 법정보호종으로 지정돼 있는 생물들입니다. 이 동물들을 포함해 50여종의 법정보호종이 서식하고 있음이 확인된 지역이 있다면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요. 상식적인 답변은 ‘보호구역으로 지정하고 개발행위를 엄격하게 제한하며 환경오염이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한다’일 것입니다.
민간인출입통제구역 서부권의 경기 파주에서 확인된 긴다리소똥구리의 모습. DMZ생태연구소 제공.
그러나 초등학생에게 물어도 이견이 없을 이런 답변내용과 달리 실제로는 무리한 개발행위가 진행되면서 심각한 환경 훼손이 발생한 지역이 너무나 많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현재 한반도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미래 세대로부터 삶의 터전을 빼앗는 개발행위가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거나 추진되고 있는 것입니다. 현 정부 내에 착공을 해야 한다며 국토교통부와 한국도로공사가 무리하게 고속도로 건설을 추진하고 있는 임진강 하구 장단반도 일대가 바로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최근에는 이 지역의 숲이 생물다양성, 특히 조류의 다양성 유지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국내 연구진의 연구결과가 국제학술지에 게재되기도 했습니다. 서울대와 DMZ생태연구소 등 연구진은 지난 12일 학술지 ‘생태와 진화(Ecology and Evolution)’에 이 같은 내용을 담은 ‘한국 비무장지대 주변 조류의 기능적 다양성에 대한 전통 농업 경관의 구조적 함의’라는 제목의 논문을 게재했습니다.
DMZ생태연구소, 서울대 등 연구진이 ‘한국 비무장지대 주변 조류의 기능적 다양성에 대한 전통 농업 경관의 구조적 함의’ 논문에서 연구 대상으로 삼은 지역.
논문의 주된 내용은 동북아시아의 전통적인 농업 환경에서 조류의 다양성을 보존하고,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산림의 적극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특히 연구대상이 된 민간인통제구역의 숲은 가뭄이 들었을 때 새들의 생존을 보장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연구진은 논문에서 전통적인 농업 경관에서 산림의 유지가 조류 종 다양성 유지의 관건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장단반도 일대가 포함된 서부 민통선 지역은 멸종위기 조류 12종이 상시적으로 관찰되고, 멸종위기종이자 천연기념물 203호인 재두루미의 주요 서식지역과도 중첩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이 지역에 많이 남아있는 둠벙들은 국내의 주요 보호지역 못지 않는 생물다양성을 간직하고 있는 습지로서 보호 가치가 매우 높은 곳이기도 합니다.
이 같은 내용은 DMZ생태연구소가 국내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DMZ생태연구소는 지난 8월 학술지 ‘환경과 생태’에 서부 민통선 북쪽 지역의 둠벙 가운데 경기 파주에 있는 둠벙 143곳을 선정해 생물상을 조사한 결과 총 59과 192종의 저서무척추동물을 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 연구진은 2018년 8월 15일부터 9월 22일까지 둠벙의 생물상 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저서무척추동물이란 곤충, 조개류 등 가운데 물속 바닥이나 수초 주변에 사는 척추가 없는 동물을 말합니다. 둠벙은 전통적인 농법에서 논에 물을 대기 위해 지하수를 가두어 만든 인공습지를 말합니다. 민간인통제구역인 데다 곳곳에 지뢰가 매설돼 있어 극히 제한적인 조사만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많은 법정보호종이 발견된 것입니다.
서부 민간인출입통제구역 둠벙에서 확인된 물방개의 모습. DMZ생태연구소 제공.
연구진은 논문에서 서부 민통선 둠벙들에서는 연천 물거미서식지(26과 60종), 강화 매화마름군락지(29과 48종), 대암산 용늪(36과 61종), 울주 무제치늪(23과 64종), 창녕 우포늪(59과 135종) 등 정부·지자체가 보호구역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는 습지들보다 더 많은 생물이 확인됐다고 밝혔습니다. 역시 보호대상인 제주 동백동산습지(22과 60종), 제주 물영아리습지(26과 58종) 역시 서부 민통선 둠벙들보다 적은 수의 저서무척추동물이 확인된 바 있습니다다. 조사 면적, 시기 및 반복 횟수가 다르기 때문에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서부 민간인출입통제구역 일대 둠벙이 국내 주요 보호습지에 준하거나 더 높은 저서성대형무척추동물 종 다양성을 보유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로 보입니다.
연구진에 따르면 192종은 국내 논 생태계에 서식하는 저서무척추동물 중 물벼룩류와 선충류를 제외한 200종의 96%에 달하는 수치이기도 합니다. 국내 습지에 서식하는 저서무척동물의 대부분이 이 지역에서 확인된 것입니다.
이 지역에서 발견된 동물들 중에서도 특히 긴다리소똥구리는 1990년 국내에서 자취를 감춘 뒤 두번째로 발견된 것이기에 더욱 주목을 받고 있는 곤충입니다. DMZ생태연구소는 지난해부터 서부 민간인통제구역 내 경기 파주에서 실시한 생물상 조사에서 소똥구리류 2종을 발견했습니다. DMZ생태연구소는 홍석영 연구원이 해당 지역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긴다리소똥구리와 애기뿔소똥구리를 멧돼지, 고라니 등 포유동물의 배설물에서 발견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들은 동물 배설물로 경단 모양을 만드는 습성을 가진 것으로 유명한 곤충이기도 합니다. 연구소 측은 소똥구리류 보호를 위해 구체적인 발견 일시와 장소는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두 소똥구리류 곤충 가운데 긴다리소똥구리는 1990년 강원도 철원과 양구에서 확인된 것을 마지막으로 분포가 확인되지 않다가 23년 뒤인 2013년에야 다시 발견된 종입니다. 국내에선 사실상 멸종된 종으로 여겨지고 있는 곤충이기도 합니다. 또 애기뿔쇠똥구리는 과거 한반도 전역의 목초지에서 볼 수 있는 곤충이었지만 현재는 극히 일부 지역에서만 확인되고 있는 멸종위기 곤충입니다. 이처럼 국내에서 거의 찾아보기 힘든 소똥구리가 민통선 이북 DMZ(비무장지대) 서부에서 발견된 것에 대해 DMZ생태연구소 측은 그만큼 DMZ의 생태계가 인위적인 요인으로 인한 교란을 덜 받아 과거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특히 소똥구리는 정부가 멸종위기종 복원 사업의 일환으로 해외에서 수입해와 증식시키려는 곤충이기도 합니다. 환경부는 앞서 2019년 소똥구리 200마리를 몽골에서 수입해 증식 연구에 착수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처럼 정부 한쪽에서는 예산을 들여 복원하려는 곤충의 서식지를 또 다른 정부 부처에선 필요하지도 않은 고속도로를 건설해 훼손하려 하고 있는 것입니다.
DMZ생태연구소 등이 생물상을 조사한 서부 민간인출입통제구역 내 경기 파주의 둠벙 위치. DMZ생태연구소 제공.
장단반도 일대에 국토부가 설치하려는 문산-도라산 고속도로는 문산읍에서 장단면 도라산역까지 11.8㎞ 구간입니다. 국토부가 왕복 4차로의 고속도로를 설치하려 하는 이 구간은 통일이 되거나, 남북 간 교류, 협력이 활성화되기 전까진 교통량이 전무할 수밖에 없는 지역입니다. 남북 관계가 극도로 경색돼 있는 현재로선 검토할 필요조차 없는 노선인 것이지요. 하지만 파주지역 환경단체들에 따르면 국토부는 “현 정부 임기 내에 착공해야 한다”는 정치적인 이유로 이 도로의 건설을 막무가내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국토부와 한국도로공사가 “현 정부 임기 내 반드시 착공이 필요하다”면서 ‘문산-도라산 고속도로 건설사업 전략환경영향평가서 협의내용’에 대한 환경부의 조건부 동의 조치를 수용하지 못하겠다는 의견서를 환경부에 보냈다는 것입니다.
앞서 지난 5월 환경부는 한국도로공사가 제출한 ‘문산-도라산 고속도로 전략환경영향평가 보완서’에 대해 환경 훼손 우려가 적은 노선을 택하는 등 내용으로 조건부 동의를 한 바 있습니다. 이에 대해 파주 주민들과 환경단체들은 환경부가 비무장지대(DMZ) 인근 생태계 파괴를 용인한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당시 임진강~DMZ 생태보전 시민대책위원회와 파주·북파주 어촌계는 성명을 내고 “정부는 DMZ 일원의 생태를 망가뜨리고 농어민 생존의 터전을 빼앗는 고속도로 추진을 당장 중단하라”고 촉구했습니다.
게다가 이 고속도로 건설사업은 예비타당성 조사조차 면제 받은 채 추진되는 ‘묻지마’ 개발사업 중 하나입니다. 필요하지도 않은데 생태계를 파괴하면서 막대한 예산을 낭비한다는 점에서 육지의 4대강사업 중 하나라는 비판을 받는 사업이기도 합니다. 기획재정부는 2018년 국토교통부가 남북철도경협사업의 일환으로 추진 중인 문산~도라산 고속도로 건설사업에 대한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신청을 받아들인 바 있습니다.
서부 민간인출입통제구역 둠벙에서 확인된 물장군의 모습. DMZ생태연구소 제공.
그러나 국토교통부는 이 같은 우려를 낳고 있는 조건부 동의 처리에 대해 수용 수 없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지난 7월 환경부에 보냈습니다. 환경부의 환경영향평가 처리를 개발주체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일각에서는 같은 정부 부처인 국토부가 환경부를 무시하고 사업을 강행하려는 것 아니냐는 반응도 나오고 있습니다. 환경부에 따르면 “전략환경영향평가의 조건부 동의, 부동의 처리 등에 대해 개발주체가 수용하지 않는 것이 법적으로 가능한 일이긴 하다”거 합니다. 하지만 환경부로서는 자존심을 구기는 일인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이처럼 장단반도 일대의 개발이 상식적으로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는 증거들이 속속 공개되고, 불필요한 고속도로 건설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지자 한국도로공사는 환경단체들에 공동조사단을 제안하는 등 어떻게든 개발사업을 정당화하려는 명분 쌓기에 나선 상태입니다. 환경부가 지난 8월 전문가, 환경단체와 생태계 공동조사, 상생협의체 구성 등의 조건을 달자 이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한 공동조사를 제안하고 있는 것입니다.
서부 민통선 내에서 확인된 흰꼬리수리의 모습. DMZ생태연구소 제공.
하지만 환경단체들은 도로공사의 제안을 일축하고, 고속도로 건설 계획을 백지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파주환경운동연합과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파주지회는 지난 17일 성명을 통해 “우리는 문산-도라산 고속도로에 대한 ‘공동조사’에 참여할 수 없음을 밝힌다”며 “문산-도라산 고속도로 노선은 전 구간 지뢰지역으로 조사를 할 수 없는 곳인데 공동조사를 한다는 것은 기만적”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들 단체는 “(생태적으로) 소중한 곳에 대해 고속도로 건설을 강행하기 위한 공동조사에 참여할 의사가 전혀 없음을 분명히 한다”며 “지역주민과 전국의 환경단체, DMZ와 민간인통제구역을 소중히 여기는 국제사회와 협력헤 이 지역 농어민의 생존과 생태환경을 지켜낼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들의 지적처럼 한국 사회는 현재 ‘필요하지도 않은 고속도로’와 ‘다양한 멸종위기 생물의 보고’ 중 어느쪽을 택하겠느냐는 질문에 답을 해야 하는 처지입니다. 물어볼 필요도 없는 어리석은 질문 앞에 놓이게 된 것이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그 부끄러움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선택되는 답변은 상식적인 쪽이길 기대해 봅니다. 고속도로 건설 백지화라는 선택이 내려져야만 한국 사회는 4대강사업을 비롯한 온갖 인위적 환경재앙으로부터 조금이나마 교훈을 얻었음을 증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서울, ‘도시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다... 2000년 이후 건조화 경향 심화
기후변화로 인한 기온 상승으로 서울 대기가 점점 건조해지면서 사막화가 같은 대기 반응이 나타나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특히 이 같은 현상은 2000년대 이후 더욱 심화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정수종 교수 연구팀은 기상청에서 관측한 서울과 주변 지역의 지난 50년간(1970~2019)의 각종 기상 자료를 이용해 건조지수를 만들어 추이를 분석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27일 밝혔다. 연구결과는 오는 28일부터 29일까지 온라인으로 개최되는 2020년 한국기상학회 가을학술대회에서 발표될 예정이다.
연구팀의 분석 결과 1970년부터 2019년까지 전 기간에 대해 서울시의 대기 건조화 경향이 뚜렷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증발산량에 대한 강수량의 비로 정의되는 건조지수의 뚜렷한 감소 추세를 통해, 2000년 이후에 지표면 건조화가 더 심화되는 경향을 확인했다. 강수량은 감소한 반면 잠재 증발산량이 증가한 것이다.
연구팀은 서울의 지표면 온도 상승, 상대습도의 감소 그리고 일사량의 증가가 잠재 증발산량의 증가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분석했다. 서울과 주변 지역을 비교했을 때, 2000년대 이후 서울 지역의 건조화 경향이 주변 지역보다 강하게 나타난 것은 서울 지역의 상대습도가 주변 지역에 비해 급격히 감소하면서 잠재 증발산량이 상승했고, 이로 인해 서울과 주변 지역의 건조지수 차이가 커진 것으로 연구팀은 분석했다.
정수종 교수는 “2000년 이후 서울의 도시 건조화가 주변 도시에 비해 급격하게 진행돼 사막화와 같은 대기 반응이 나타나났다”면서 “본 연구 결과는 서울의 도시열섬 현상과 같은 온도 증가로 인한 문제를 넘어서 기후변화 및 도시화에 따라 도시의 기후 자체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며 향후 기후변화 대응 및 적응 계획을 위한 정책 수립에 기초 자료로 활용돼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환경미디어 김한결 기자
생물다양성이 무너진 나라 상위 5개국은?
생물다양성이 무너지면서 현재 전 세계 국가중 1/5이 생태계 붕괴의 위협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험회사 스위스 리가 보고서에서 밝혔다.세계 GDP의 절반 이상이 수질안보에서 대기질 규제에 이르기까지 생물다양성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에서 세계가 직면하게 될 엄청난 손실을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이 보고서는 전 세계 10대 생태계 현황을 1평방 킬로미터의 해상도로 지도화한 지표 기반의 과학 데이터를 취합하고 있다. 이 지수에 포함된 서비스로는 깨끗한 물과 공기, 수분 공급, 식량 공급, 목재, 경작 가능한 토양, 해안 보호, 침식 통제, 서식지의 온전한 상태 등이 있다. 이 서비스는 모두 지역사회의 건강과 안정을 보장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또한 세계 GDP의 절반 이상(55%)이 생물다양성과 생태계 서비스에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동남아시아, 미국, 유럽 등 전 세계 주요 국가들이 생물다양성과 생태계 붕괴에 모두 노출돼 있는 가운데 39개국이 이미 국토의 3분의 1 이상이 침식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지수에서 가장 낮은 순위는 몰타, 이스라엘, 키프로스, 바레인, 카자흐스탄으로 나타났다.
주요 20개국(G20) 경제권 가운데 남아공과 호주는 특히 물 부족, 연안 보호 부족, 벌 수분 부족 등의 측면에서 취약한 생태계를 갖고 있어 1위를 보였다. 이 그룹 내에서, 브라질과 인도네시아는 가장 온전한 생태계를 가지고 있지만, 분석가들은 천연자원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가 장기적으로 보면 위협적이라고 강조한다.
또한 취약한 생태계와 천연자원에 대해 높은 경제의존도를 가진 나라로는 농업 부문에서 큰 자원부국인 나라들이 생태계 붕괴에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 가운데는 케냐, 베트남,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나이지리아 등이 선두에 올랐다.
이 보고서의 통찰력은 자연보존을 목표로 하는 정책을 알리고 생물다양성 손실을 예방하는 경제적 절약을 뒷받침하기 위해 증거 기반 데이터를 제공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미국 루이지애나 해안을 따라 생태계를 복원하는 일은 연간 53억 달러의 비용 절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 세계적으로, 산호초의 기능을 보장하기 위해 더 큰 조치를 취한다면, 향후 91%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홍수 피해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특히 전 세계가 COVID-19 펜데믹의 타격을 받고 있기에, 생물다양성에 대한 초점은 큰 관련이 있다. 과학자들은 인류의 자연 파괴가 치명적인 신종 질병의 주요 원인 중 하나라고 지속적으로 지적해 왔으며, 미래에 더 치명적인 동물성 전염병을 예방하려면 자연의 균형을 더 이상 무너뜨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 환경미디어황원희 기자
제주도 해안 절벽에 ‘멸종위기 1급’ 매…최소 18쌍 확인
수컷 매로부터 먹잇감을 전달받는 암컷 매.
제주도내 해안 절벽에 멸종위기 1급인 매가 18쌍이 서식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제주도 민속자연사박물관은 올해 조사연구 사업으로 제주도내 주요 해안 절벽 24곳을 대상으로 맹금류의 분포 실태를 현장조사한 결과 최소한 18쌍이 번식하는 것을 발견했다고 2일 밝혔다.
천연기념물이면서 멸종위기 1급인 매는 해안 절벽에서 번식하는 텃새이다. 제주도는 철새의 이동경로 상에 있기 때문에 맹금류의 이동경로, 번식 유무, 개체 수 변화 등을 파악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파랑새를 낚아챈 매.
매는 매년 2~3월에 짝짓기를 한다.
현장조사는 박물관 소속 학예사 김완병 박사와 사진작가 김기삼, 조영균씨가 함께 했다. 박물관 쪽은 이번 조사를 통해 수월봉을 비롯해 성산일출봉, 섭지코지 등 수성화산체와 갯깍, 돔베낭골, 형제섬 등 주상절리대가 발달한 곳이 매의 보금자리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박물관 쪽은 이런 조사 결과를 <제주 바다를 누비는 매>라는 책자로 펴냈다.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사진 제주도 민속자연사박물관 제공
“김해공항 소음 피해 배상하라” 법원 첫 판결
2018년 정부를 상대로 김해공항 소음피해 손해보상청구 소송을 제기한 부산 강서구 딴치마을(왼쪽 아래) 일대. 부산지법은 9월 열린 2심에서 “85웨클 넘는 지역 거주민에게 소음피해를 보상하라”며 정부 패소 판결을 내렸다. 정종회 기자 jjh@
정부의 김해공항 확장안 폐지를 향한 지역의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항공기 소음에 시달리는 김해공항 인근 주민에게 정부가 배상하라는 판결이 처음으로 나왔다. 소음 피해를 이유로 김해공항 인근 주민에게 배상하라는 판결은 처음으로, 다른 주민들의 줄소송이 예상된다. 특히 현재 정부의 방침대로 김해공항을 확장할 경우 소음 피해는 최대 6배까지 커지고 이에 따른 주민 소송이 줄 이을 것으로 보여 김해공항 확장안 폐지가 마땅하다는 지적이 인다.
부산지법 민사4부(부장판사 오영두)는 올 9월 23일 부산 딴치마을 주민 147명이 제기한 김해공항 소음피해 손해배상소송 항소심에서 1심을 뒤집고 “정부는 원고 중 85웨클(WECPNL) 이상 소음에 노출된 지역에 거주하는 66명에게 2014년 12월 23일부터 2017년 12월 22일까지 3년간 월 3만 원씩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재판부는 “85웨클이 넘는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항공기 운항으로 발생하는 소음으로 인해 참을 한도를 넘는 정신적인 고통을 입고 있다”며 “하지만 정부가 각종 소음 대책을 마련하고 주민 지원 사업을 시행하면서 야간운행 제한 등 소음 피해를 줄이고자 노력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어 손해 배상금을 월 3만 원으로 책정했다”고 설명했다.
‘웨클’은 국제민간항공기구(ICAO)가 항공기 소음을 평가하는 데 권장하는 단위다. 이착륙 때 발생하는 최고 소음과 운항 횟수, 시간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정한다. 현행 ‘공항소음 방지 및 소음대책지역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국토교통부 장관은 공항 인근 75~90웨클인 지역을 ‘제3종’, 90~95웨클은 ‘제2종’, 95웨클 이상은 ‘제1종’으로 지정·고시한다. 또 지역 형편에 맞는 지원 사업을 시행하고 소음 관련 저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딴치마을은 ‘제3종 소음대책지역’에 해당한다. 공항소음포털에 따르면 딴치마을 측정지점의 연간 평균 소음도는 2014년 93.12웨클, 2015년 84.3웨클, 2016년 85.9웨클이었다.
한편, 2018년 8월 딴치마을 주민 147명은 “김해공항 소음에 대해 배상하라”며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2018년 9월 주민의 청구를 기각했다.
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
딱정벌레부터 공룡까지, 익룡의 식성 밝혀졌다
이에 남은 미세 마모흔적 분석해…초기엔 무척추동물 후기엔 척추동물이 주식
1억5000만년 전 중생대 습지에서 다양한 먹이를 찾아 여러 종의 익룡이 모여든 모습을 그린 상상도. 마크 위튼 제공
공룡시대 하늘을 지배한 파충류인 익룡이 무얼 먹고 살았는지 등 생활사를 밝혀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익룡은 2억1천만년 전 출현해 중생대가 끝나기까지 살았던 파충류로 우리나라를 포함해 세계 전역에 분포했고 육지, 해안, 바다 환경에서 두루 살았다(▶경북 군위는 ‘하늘의 제왕’ 세계 최대 익룡들의 사냥터). 이빨이 달린 부리와 긴 꼬리가 새와 다르지만 날개를 치며 비행한 최초의 척추동물이었고 비둘기만 한 크기부터 날개폭 11m의 경항공기 크기까지 다양하게 진화했다
조던 베스트위크 영국 버밍햄대 고생물학자 등은 익룡 화석의 부리에 난 수천분의 1㎜ 크기의 미세한 마모흔적을 입체적으로 분석하는 새로운 분석방법으로 익룡이 무얼 먹었는지 알아냈다고 과학저널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밝혔다.
가장 큰 익룡의 하나인 하체곱테릭스가 공룡 이구아노돈을 잡아먹는 상상도.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베스트위크 박사는 “이제까지는 화석 이의 형태와 현생 동물의 이를 비교해 무얼 먹었는지 추정했을 뿐”이라며 “이를테면 악어 이처럼 원뿔꼴이면 물고기를 먹었다고 가정하는데, 식성이 전혀 다른 판다와 북극곰의 이 형태가 같은 데서 보듯 이런 방식은 한계가 분명했다”고 레스터대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음식을 씹으면 음식에 이 자국이 남지만 동시에 이에도 음식의 흔적이 생긴다. 먹이의 재질에 따라 미세한 흔적의 유형이 달라진다. 연구자들이 현생 파충류의 이를 분석했더니 딱정벌레나 게 같은 딱딱한 껍데기로 싸인 무척추동물을 많이 먹을수록 이에 거친 마모흔적이 남았다. 물고기처럼 부드러운 먹이를 먹는 이는 표면이 매끈했다.
연구자들이 익룡 17개 속의 이를 분석한 결과 매우 다양한 먹이를 먹은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적으로 초기에는 곤충 등 무척추동물을 많이 먹다가 차츰 고기나 물고기 중심의 먹이로 바뀌어 나갔다. 연구자들은 “중생대 말이 되면서 새들이 다양하게 진화해 퍼졌는데 이들과 경쟁하면서 작은 익룡이 차츰 사라지고 척추동물이 주요 먹이가 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논문에 적었다.
람포린쿠스 익룡이 바다에서 오징어의 조상을 잡아먹는 상상도. 이번에 새끼와 성체의 먹이가 다르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긴 꼬리가 특이한 쥐라기 람포린쿠스 속 익룡의 식성은 눈길을 끌었다. 이 익룡은 어릴 때는 곤충을 먹었지만 성체가 되면서 물고기를 먹었다. 연구자들은 “새들은 어미가 먹는 먹이를 새끼에게 가져다주는데 이 익룡은 다른 파충류처럼 새끼를 돌보지 않았음을 가리킨다”고 설명했다.
익룡 가운데 가장 큰 종류인 하체곱테릭스는 폭이 10m가 넘는 거대한 날개를 지녔지만 육상 생활을 하며 중형 공룡까지 잡아먹었을 것으로 다른 연구에서 추정됐다.
중생대 1억5000만년 동안 다양한 종으로 진화하던 익룡은 6600만년 전 소행성 충돌과 함께 찾아온 대멸종 사태 때 공룡과 함께 지구 위에서 사라졌다.
인용 논문: Nature Communications, DOI: 10.1038/s41467-020-19022-2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우린, 지금처럼 고기를 먹을 수 있을까?[기후위기와 농업: 먹거리 전환 ⑦]
ⓒ전주MBC 다큐멘터리 육식의 반란
하늘에서 내려다본 미국의 사육장 모습... 곡물의 블랙홀
지난 2012년 ‘다큐 마블링의 음모’ 촬영을 위해 방문한 미국 텍사스 러벅이라는 곳의 한 사육장의 모습이다. 40미터 높이의 사료 타워 위에 올라가 사육장을 내려다본 나와 카메라 기자는 입을 떡하니 벌릴 수밖에 없었다. 대기업 공장 부지에 맞먹는 크기의 사육장 안에서 소들이 연신 사료를 집어 삼키고 있었다. 이들을 먹이기 위해 트럭이 끝도 없이 건초더미와 옥수수 알갱이를 실어 나르고 있었다. 미국 내수뿐 아니라 한국을 비롯한 제법 잘 사는 나라에 수출하기 위한 가축들이라고 한다. 믿기지 않지만 미국 내에만 이런 사육장이 70만 개를 웃돌고 1억 마리 이상 소가 키워지고 있다.
지구촌에는 과연 얼마나 많은 가축이 키워지고 있을까? 이스라엘 연구소에 따르면 지구상의 포유동물 가운데 야생동물은 불과 4%밖에 남지 않았다고 한다. 인간과 인간이 먹기 위한 가축이 96%로 지구를 온통 뒤덮고 있다는 뜻, 고기 또는 우유를 목적으로 키워지는 소는 15억 마리에 달하고 돼지는 10억 마리로 집계된다. 우리나라에는 흔하지 않지만 양 역시 10억 마리로 돼지에 맞먹는다. 조류인 닭은 또 어떨까? 상시로 190억 마리가 키워지고 있어 지구상에 존재하는 조류의 약 70%가 닭인 것으로 집계된다. 지구는 77억 인간과 가축 300억 마리가 지배하는 인간과 가축의 세상이다.
연간 도축되는 가축의 수는 그런데 이를 훨씬 상회한다. 소의 목숨은 18개월로 그나마 긴 편에 속하는데 돼지는 6개월에 불과하고 불행히도 닭은 성장촉진 육종의 결과 가장 빨리 도계장으로 끌려가는데, 한국에서는 부화된 지 31일 만에 출하돼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로 빠르다. 육계와 양돈의 빠른 회전으로 해마다 도축되는 가축의 수는 700억 마리가 넘는다. 지구촌 77억 인구가 연간 열 마리 가까이를 식용으로 사용하는 것, 지구는 한 달 또는 반년, 1년 반이라는 짧은 시간에 가축을 키워내고 도축하고 고기를 유통하는 고기 공장과 다름이 없다. 700억 마리의 고기를 생산하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지구의 자원을 소비하고 있을까?
ⓒ전주MBC 다큐멘터리 육식의 반란
지구상에서 연간 도축되는 가축 700억 마리...무얼 얼마나 먹나?
미국의 네브래스카 주에서 텍사스 주까지 10개 주에 걸쳐 곡창지대인 대평원(Great Plains)이 펼쳐진다. 미시시피 강은 대평원의 한 가운데를 3,767km나 굽이쳐 흐르며 풍부한 농업용수를 제공한다. 수천만 년 동안 땅 밑에 스며든 지하수 역시 곡식을 길러내는 보물 같은 존재, 농부들은 지하수를 양껏 퍼 올려 연간 3억3천만 톤의 옥수수를 생산한다. 한국의 쌀 생산량의 100배에 달하는 분량이라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전 세계 생산량의 40%에 달하는 이들 옥수수는 누가 먹어치울까? 4분의 3이 바로 가축 사료용이다.
미국뿐 아니라 지구촌 곳곳으로 뿌려져 축산업의 원동력이 되는 옥수수!!! 미시시피 강 연안에는 곡물을 저장하는 사일로가 우뚝우뚝 줄지어 서 있다. 연일 대형 수송선이 사일로에서 내려 받은 곡물을 잔뜩 싣고 대서양과 태평양으로 항하는 장관이 펼쳐진다. 한국의 하림도 2015년 1조를 들여 팬 오션이라는 해운 회사를 매입해 해외 사료 운반에 뛰어들었다. 팬 오션은 인수 2년 만에 부채를 모두 털어내고 하림의 알짜 계열사로 자리를 굳혔다. 옥수수를 국내로 들여오는 길을 확보한 하림은 한국판 ‘카길’의 꿈을 거의 이룬 듯 보인다.
가축이 먹어치우는 사료의 양은 상상 그 이상이다. 대표적인 축종은 젖소이다. 치즈로 유명한 네덜란드는 하루 최대 80kg의 우유를 짜내기도 하는데 건초와 곡물 사료를 25kg 이상 먹이고 100리터가 훨씬 넘는 물 또한 제공한다. 많이 먹는 만큼 많은 우유가 나오는 법, 고기 소 역시 하루 10kg 이상 건초와 곡물을 씹어 넘긴다. 덩치가 작은 가축들은 조금 덜 먹겠지만 지구상에 연간 10억 톤 이상의 사료가 공급돼 고기로 전환된다. 지구에서 생산되는 곡물의 40%에 달하는 양이 가축에게 주어진다. 건초는 말할 필요도 없이 사료용이다.
하림과 같은 축산기업이 완성해낸 수직계열화는 가장 빠르게 가장 많은 사료를 농가에 공급하고 고기를 확보해 돈으로 바꿔낸다. 과거처럼 단순히 축산업자로부터 가축을 매입해 도축, 유통하는데 그치지 않고 해외에서 들여온 사료를 위탁 계약을 맺은 농가에 직접 공급하고 병아리나 새끼 돼지도 직접 공급한다. 계약 농가는 계열화 사업자가 보낸 어린 가축에게 사료를 먹이는 작은 공장과 다름없다. 농촌을 장악한 계열화 사업자는 도축과 유통뿐 아니라 치킨이나 삼겹살 프랜차이즈까지 계열사로 거느리면서 우리의 식생활을 지배한다. 고기는 결코 부족할 틈이 없다. 소비자는 수시로 고기의 유혹에 노출된다. 시간이 흐를수록 수직 계열화는 공공해지고 지구는 더 고기 생산에 최적화된 공장이 되어간다.
ⓒ전주MBC 다큐멘터리 육식의 반란
고기는 어떻게 지구의 위기... 기후 변화를 재촉하는가?
2013년 제작된 다큐 ‘육식의 반란2-분뇨사슬’이 촬영된 전북 완주의 한 축산 농가이다. 발목까지 똥과 오줌이 그득하다. 악취가 코를 찌른다. 엉덩이와 배에는 똥이 덕지덕지 붙어있다. 소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질척질척하는 소리가 귀에 심하게 거슬린다. 소 주인은 똥 때문에 소가 앉아서 잠을 청하지 못한다고 한다. 서서 잠을 자다보니 스트레스가 심하다고 한다. 그러나 도축장에 보내기 전까지는 똥을 치워줄 생각이 없다. 고기를 생산하고 돈을 버는 데에만 열중할 뿐 그 이면에 감추어진 분뇨사슬은 애써 외면하는 것이다.
고기는 기후 위기에 앞서 악취와 미세먼지, 지하수 오염 등 우리가 숨 쉬고 목을 축이는 삶의 기본을 위협한다. 앞서 언급한 젖소가 우유를 힘겹게 짜내면서 하루 동안 뿜어내는 분뇨의 양은 50kg이다. 청소년의 몸무게만큼이나 많은 양의 똥과 오줌이 배출되는 것, 사람 200명의 분뇨 양과 맞먹는다. 돼지는 하루 동안 2.63kg의 분뇨를 내놓는다. 사람 10명의 분뇨 양에 해당한다. 암모니아 가스 등 각종 오염물질이 포함된 분뇨는 어디에 버려질까? 불행히도 우리나라의 경우 몇 년 전까지는 대부분 서해와 동해 바다에 뿌리곤 했다. 조기와 꽃게가 분뇨를 먹고 자란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이다.
2016년 1월 1일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늦게 해양투기를 중단한 뒤 일부는 농경지에 퇴비나 액비라는 이름으로 뿌려지고 일부는 액비 저장조라며 논밭 가운데 둥그렇게 지어놓은 지붕도 없는 탱크에 몇 년이고 저장해두다 장마 때 어쩌다 넘쳤다며 농경지와 주변 하천에 은근슬쩍 버려지는 것이 현실이다. 넘치는 소똥을 버리기 위해 급한 마음에 분뇨를 자신이 경작하던 밭에 잔뜩 뿌리고 양분이 많이 필요한 인삼을 키울 거라고 둘러대는 농민이 하나 둘이 아니다. 양분을 잘 빨아들인다는 양파와 마늘도 농가들이 선호하는 밭작물이다. 한국의 지하수는 이미 절반 이상이 먹지 못할 수준으로 오염됐다.
돼지고기 수출로 유명한 네덜란드는 지난 2,000년에 돼지 사육두수를 2,000만 두에서 1,000만 두로 감축하는 고통스러운 결정을 했다. 농경지에 비료라며 뿌린 가축분뇨에서 질소가 침전돼 질산염으로 변하고 질산염이 녹아든 물을 마신 결과 태아가 죽는 청색증이 발병했기 때문, 미래 세대가 단절될 것이라는 두려움에 네덜란드는 충격에 빠졌다. 축산의 위험성에 눈을 뜬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어떠한가? 2011년 700만 마리였던 돼지는 2020년 1,200만 마리로 두 배 가까이 성장 중이다. 2004년 농촌경제연구원이 국토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 가축을 키우고 분뇨를 관리하자는 양분 총량제(사육 두수 총량제)를 제안했지만 16년 째 도입이 미뤄지고 있다. 우리는 미래에 눈을 감고 있다.
ⓒ전주MBC 다큐멘터리 육식의 반란
기후변화를 재촉하는 숨겨진 위험... 가축과 가축분뇨
지난 2012년 겨울 촬영된 익산시 왕궁면의 한 저수지 모습이다. 가운데 검게 그을린 듯 보이는 것이 주변 양돈장에서 흘러나온 ‘돈분’이다. 10여 년 만에 저수지 하나를 가득 메운 것이다. 가축이 배출한다는 메탄가스를 비롯한 온실가스를 우리는 눈으로 볼 수 없다. 하지만 가축 분뇨에 뒤덮인 저수지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지구를 이불처럼 뒤덮고 있는 메탄가스의 위험성을 조금이나마 상상해볼 수 있다.
기후변화를 가속화하는 메탄가스는 가축의 사료 소화과정에서 발생한다. 위에 존재하는 메탄 생성 미생물이 풀의 섬유질을 분해할 때 가스가 발생하는데 반추동물인 소와 양이 심각하다. 메탄가스는 이산화탄소보다 21배나 더 큰 온실효과를 유발한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가축들이 배출하는 메탄가스를 이산화탄소로 환산하면 매년 31억 톤이 배출되는 것과 같다고 한다. 지구촌 전체 이산화탄소 배출량 361억 톤의 10%에 상응하는 양. 소 4마리가 자동차 1대와 맞먹는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것이다.
돼지 분뇨 역시 기후변화의 적이다. 퇴비나 액비라는 이름으로 토양에 많이 유입되는 질소 성분은 암모니아나 일산화질소, 이산화질소 등의 대기오염물질로 바뀌어 이산화탄소보다 100배 이상 강력한 온실효과를 야기한다. 분뇨가 오존이나 2차 미세먼지의 농도를 높인다는 사실이 미국이나 유럽 등에서 이미 연구된 지 오래이다. 하지만 우리는 애써 귀를 막고 있다. 분뇨를 멋대로 뿌릴 수 없도록 관리하는 양분 총량제는 그저 토양과 수질 오염을 예방하는 제도가 아니라 기후변화를 지연시키기 위한 매우 중요한 제도이다. 하지만 우리는 시급성을 모른다.
인간은 먹이사슬의 최상위에 위치할 뿐 아니라 분뇨사슬의 꼭대기, 기후위기 사슬의 최정상에 위치하고 있다. 고기를 얻기 위해 전 세계 토지의 65%가 개간돼 숲이 사라졌다. 축산업으로 아마존 삼림의 90%가 사라진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축산 진흥이라는 이름으로 지구는 이미 회복되기 어려운 수준으로 망가졌다. 고기를 먹고 남은 분뇨더미는 지구를 더욱 수렁에 빠뜨리고 있다. 우리가 많이 먹고 많이 마실수록 온실가스는 더 지구를 뒤덮을 것이다. 그런데도 한국의 가축 사육 두수는 해마다 증가추세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더욱 뾰족이 솟아나고 있는 기후위기라는 가파른 피라미드 위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옳을까? 당장 식탁에 앉아 나와 우리 자녀의 현재와 미래를 위한 진지한 질문을 던져보자. 지금처럼 고기를 먹어도 되는 것인가!!!
유룡 전주MBC 보도국 부장·다큐멘터리 육식의 반란 5부작 연출 |프레시안
미국인 기후변화 인식 바이든 vs 트럼프 지지자 ‘극과 극’
기후변화 ‘우려’ 58% vs ‘우려 안해’ 39%인데
바이든 지지자는 90% ‘우려’, 트럼프 쪽은 23%
애리조나 폭염·온난화, 플로리다는 해수면 상승
지역별 조사에서도 지지 후보 따라 상반된 의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8년 11월26일 백악관 잔디밭에서 기자들한테 “나는 기후변화를 믿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왼쪽)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이 2015년 10월19일 백악관에서 기후변화 관련 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와 조 바이든 민주당 대통령 후보 지자자는 기후변화에 대한 태도에서도 극명하게 갈리는 것으로 조사됐다.
기후변화는 올해 대통령 선거에서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뉴욕타임스>와 미국 뉴욕 시에나대가 지난달 15∼18일 전국 유권자 98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미국민 58%는 기후변화로 지역사회가 위협받는 데 대해 “매우 우려”하거나 “어느 정도 우려”한다고 답변했다. “크게 우려하지 않거나” “전혀 우려하지 않는다”고 답한 경우는 39%였다.
하지만 대통령 후보 지지 여부에 따라 답변은 극명하게 갈렸다. 조 바이든 민주당 대통령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은 90%가 우려를 표시한 데 비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지층은 23%만이 기후변화를 우려한다고 답변했다.
트럼프는 지구온난화를 거짓말이라며 묵살하고, 기후와 환경 관련 법규들을 후퇴시켰다. 바이든은 기후변화가 ‘위기’라며 국가 에너지체계를 개선하고 온실가스 배출을 감축하는 데 2조달러(2300조원) 이상을 투여할 것을 공약하고 있다.
여론조사팀은 주요 경합주에서 유권자들한테 기후변화 관련 주제의 질문을 던졌다. 플로리다에서는 해수면 상승에 대해, 애리조나에서는 폭염에 대한 의견을 조사하고, 펜실베니아에서는 셰일가스 시추에 대한 찬반을 물었다.
애리조나 ‘온난화 우려’ 바이든 지지 90% vs 트럼프 지지 22%
지난 7월과 8월 역대급의 살인적인 폭염이 닥쳤던 애리조나에서 유권자의 57%가 지구온난화에 의한 기온 상승을 우려한다고 답했다. 애리조나 조사는 10월26∼31일 1252명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애리조나 유권자들도 누구를 지지하는지에 따라 뚜렷하게 의견이 갈렸다. 바이든 지지자 90%는 기후변화를 우려한다고 표시한 데 비해 트럼프 지지자는 22%만이 같은 의견을 보였다. 이번 조사에서 바이든과 트럼프 지지율은 각각 49%, 43%였다.
일부 유권자는 후보 선택에 기온 상승이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밝혔다. 애리조나 유마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마르코 미란다(27)는 2016년에 트럼프를 찍었지만 이번에는 바이든에게 사전 투표했다. 그는 “기후변화가 중요한 요인이었다. 지난 선거에서는 이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미란다는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나는 민주당원이 아니다. 하지만 공화당은 과학과 기후변화를 믿지 않고 기후환경 정책들을 후퇴시키고 있다. 탈규제를 해야 하는 것도 있지만 이 정책들은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기후변화는 애리조나에서 앞으로도 계속 주요한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애리조나주의 젊은층은 상대적으로 기온 상승에 민감해 18~29살 응답자의 75%가 기후변화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 반면 65살 이상은 51%에 그쳤다. 또 애리조나에서 인구가 크게 늘어나고 있는 히스패닉계 유권자들이 백인 유권자에 비해 ‘우려’ 표명 비율이 높았다.
플로리다 ‘해수면 상승 우려’ 바이든 지지 82% vs 트럼프 지지 26%
여론조사팀은 홍수 범람에 취약한 플로리다에서는 해수면 상승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10월27∼31일 1451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54%가 우려를 표시했지만 역시 대통령 후보 지지층별로 응답률이 크게 갈렸다. 민주당 지지층 82%와 무당층 58%가 기후변화에 우려를 나타낸 반면 공화당 지지층은 26%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이번 조사에서 플로리다 유권자의 47%가 바이든을 지지한 반면 트럼프 지지는 44%에 그쳤다.
무당층인 플로리다 브래든턴의 실내장식업자 켈리 카이저(47)는 “내 집과 직장이 모두 해변에 있어 수위가 15㎝ 상승하면 심각해진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트럼프에 사전 투표했다. 그는 “내가 환경에 대해 걱정을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코로나19가 창궐하는 이 시기에 트럼프가 경제를 더 잘 다룰 것 같아서”라고 말했다.
플로리다 더니든에 사는 은퇴자 비키 캠벨(66)은 2016년에는 트럼프에게 투표했지만 이번에는 바이든에게 사전 투표했다. 그는 “지난번에 기후 문제는 염두에도 없었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트럼프가 파리기후변화협약을 탈퇴한 것은 잘못한 것이고, 청정공기와 수자원 정책을 후퇴시킨 것은 매우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펜실베니아에서는 매장된 석유와 천연가스 개발 곧 셰일 시추에 대한 찬반을 물었다. 트럼프는 바이든의 기후 정책이 펜실베니아 화석연료 산업에 위협이 된다고 주장하며 무당층을 끌어들이려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전략은 크게 먹히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펜실베니아에서 10월26∼31일 186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 셰일 시추를 찬성하는 비율은 52%에 불과했다. 셰일 시추는 펜실베이나에서 가스 생산산업을 부흥시키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반면 대기오염 문제를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셰일 시추를 반대하는 의견은 27%였다. 하지만 대통령 선거 사전 여론조사에서 바이든은 트럼프를 49% 대 43%로 앞서고 있다.
“기후변화 이슈 대중 급증 이례적인 일”
최근 몇십년 동안의 여론조사는 미국인 대다수는 지구온난화가 사실이며 화석연료 연소 등 인간 활동에서 비롯한 것이라는 과학적 증거를 받아들인다는 것을 일관되게 보여준다. 하지만 유권자들이 기후변화에 대해 폭발적으로 관심을 보인 것은 최근 몇년 사이라고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말한다. 스탠포드대의 최신 연구는 기후변화 ‘이슈 대중’(어떤 이슈가 개인적으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올해 역대 가장 높은 25%(5천여만명)에 이르렀음을 밝혀냈다.
20여년 동안 기후변화 여론조사를 해온 존 크로스니크 스탠포드대 교수(커뮤니케이션·정치학·심리학)는 “‘이슈 대중’은 입법자들한테 편지를 쓰고 로비단체에 기부를 하며 이슈를 기반으로 투표를 하기 때문에 이런 증가는 대단한 일이다. 지난 몇년 동안의 기후변화 ‘이슈 대중’ 증가는 어떤 다른 이슈에서 볼 수 없었던 현상”이라고 말했다. 크로스니크는 언론이 지구온난화에 대해 크게 다루고 있는 것도 주요한 요소로 꼽았다. 그는 “우리는 올해가 역대 가장 뜨겁다고 밝히는 머릿기사를 해마다 보고 있다”고 했다./이근영 기자 kylee@hani.co.kr
올빼미가 뱁새보다 눈이 큰 이유
어둑한 숲 속 살거나 먼 곳 먹이 사냥하는 새 큰 눈 지녀
눈이 작은 뱁새(왼쪽)는 밝은 개활지에 살고 눈이 큰 긴꼬리딱새는 깊은 숲 속에 산다. 클립아트코리아(왼쪽), 윤순영 제공.
깊은 숲 속에 사는 팔색조와 긴꼬리딱새는 특이한 색깔·모습과 함께 큰 눈이 아름다움을 더한다. 반면 도시에서 흔히 만나는 박새와 붉은머리오목눈이(뱁새)는 눈이 작다. 새들의 눈 크기와 서식지, 먹이 사이엔 무슨 관계가 있을까.
이언 오스프리 미국 플로리다 자연사박물관 박사과정생 등 연구자들은 과학저널 ‘생태학’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어두침침한 숲 속에 사는 새일수록 눈이 컸고 개발된 곳의 새는 상대적으로 눈이 작았다”고 밝혔다. 또 “가까운 나뭇가지의 열매를 따 먹는 새보다 날아다니는 곤충 등 먼 곳의 먹이를 잡는 새의 눈이 컸다”고 덧붙였다.
새들은 짝을 찾고 먹이를 확보하는 데 주로 시각에 의존한다. 밤에 활동하는 올빼미나 먼 곳의 동물을 포착해 사냥하는 맹금류의 눈이 크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어둑한 곳에서 먹이를 찾는 올빼미는 눈이 크다. 마틴 멕내로우스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그러나 이번 연구는 새들의 상대적인 눈의 크기(몸집 대비 눈의 크기)를 알면 어디에 살고 어떤 먹이를 먹는지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상관관계가 뚜렷하다는 것을 밝혔다는 의미가 있다.
연구자들은 페루 북부의 안데스 열대림에서 4년 동안 현장 조사를 했다. 세계적인 생물다양성 보고인 이곳의 운무림에서 연구자들은 240종의 새를 대상으로 눈과 몸의 크기 등을 측정했다.
또 새들이 얼마나 많은 빛에 노출되는지 측정하기 위해 15종 71마리의 새 등에 초소형 빛 감지기를 부착하고 며칠 뒤 저절로 떨어져 나온 감지기를 수거해 분석했다. 그 결과 숲의 밝은 곳에 사는 새는 눈이 크고 어두운 곳 새는 작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연구가 이뤄진 페루 북부의 안데스 운무림. 이언 오스프리 제공.
열대림의 숲 지붕에는 빛이 쨍쨍 내리쬐지만 숲 바닥에는 햇빛의 1%만이 도달해 어두컴컴하다. 가장 어두운 환경에 사는 것으로 밝혀진 땅개미새의 일종은 대부분 숲 바닥에서 큰 눈으로 먹이를 찾았다. 마치 어두운 곳에서 카메라로 촬영할 때 밝고 큰 렌즈가 필요한 것과 같다.
어디에 사는지 뿐 아니라 무얼 먹느냐도 눈 크기를 좌우했다. 새들은 앉은 나뭇가지 주변에서 열매나 씨앗을 따먹어 가까운 곳을 잘 보는(근시) 새와 날아다니는 곤충 등을 사냥하는 먼 곳을 잘 보는(원시) 새로 나뉜다.
연구자들은 딱새 무리처럼 날면서 곤충을 사냥하는 원시를 가진 새들이 가장 눈이 크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반면 어둑한 숲에서 열매 등을 따 먹는 근시의 새들은 눈이 상대적으로 작았다.
쥐처럼 컴컴한 열대림 숲 바닥을 다니며 사냥하는 긴꼬리타파쿨로. 이언 오스프리 제공.
그러나 숲 바닥에서 사냥하는 새들은 눈이 컸다. 예를 들어 페루 고유종인 긴꼬리타파쿨로는 마치 쥐처럼 숲 바닥을 돌아다니며 곤충을 사냥하는 새인데 커다란 눈을 지녔다. 이번 연구는 왜 숲이 사라지고 농경지가 들어서면 많은 새가 자취를 감추는지에 관한 새로운 설명을 제공한다. 연구자들은 “어두운 숲에 익숙한 눈이 큰 새에게 농경지는 빛의 과잉노출로 눈부심 현상이 나타난다”며 “사람이 목초지나 경작지를 만드느라 바꾼 경관은 눈 큰 새들에게는 일종의 장벽으로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인용 논문: Ecology, DOI: 10.1038/s41559-020-01322-x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대통령의 탄소중립 선언, 재벌 눈치만 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회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목표로 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탄소중립을 위해 그린뉴딜로 8조 원의 예산을 배정했다며 석탄화력발전을 재생에너지로 대체하고 노후 시설을 친환경 녹색시설로 교체 전환하는데 2.4조원, 전기수소차 충전소, 급속 충전기 증설에 4.3조원 등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의 탄소중립 선언은 늦었지만,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이미 70개국에서 탄소중립 선언이 이어졌고 독일, 영국 등 14개국은 세부적인 감축계획서까지 제출한 상황이다. 파리기후협약 당사국으로서 한국도 2050년까지 탄소배출 제로(0)를 위한 구체적인 감축계획서를 올해 말까지 UN에 제출해야 한다. 이번 대통령의 탄소중립선언은 이 계획서 제출에 앞서 이뤄진 것으로 우선 감축목표에 대한 선언이지만 조만간 세부계획을 통해 실행방안을 밝혀야 한다. 그런데, 현재까지 알려진 정부 계획으로는 2050년 탄소배출 제로를 이루지 못해 말뿐인 선언으로 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이루려면 먼저 2030년까지 탄소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여야 한다. 정부는 2015년 파리기후협약을 맺으면서 유엔에 제출한 자발적 국가 감축 목표(INDC)로 ‘2030년 배출전망치(BAU, 8억5,080만 톤) 대비 37%를 감축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 이 감축목표로는 목표치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독일의 기후‧과학 정책 연구기관 ‘클라이밋 애널리틱스’는 지난 5월 보고서에서 “한국의 현재 (자발적인) 탄소 감축 목표는 파리협정에서 정한 목표치의 절반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2030년까지 BAU의 37% 감축이란 한국 정부의 목표를 74%로 강화해야 국제 기준에 겨우 부합한다”고 밝혔다. 최소 2030년 BAU 대비 60%를 감축해야 2050년 탄소배출 제로를 달성할 수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현재까지 정부의 탄소배출 감축계획은 2015년 유엔에 제출한 자발적 국가감축목표(INDC)에서 전혀 바뀌지 않았다. 지난 국정감사에서 강은미 정의당 의원은 환경부가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를 근거로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달라지지 않고 계산방식만 달라졌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정부가 감축 목표치를 ‘2030년 배출전망치(8억5,080만 톤) 대비 37% 감축’ 대신 ‘2017년 배출량(7억910만 톤)보다 24.4% 감축’으로 바꾸겠다고 밝혔는데 이것은 계산 방식만 다를 뿐 2030년 배출량은 5억3600만 톤으로 같다. 감축 목표치가 같다는 것은 박근혜 정부 당시 설정한 감축 방식과 현 정부의 방식이 서로 다르지 않다는 점을 시사한다.
▲ 문재인 대통령이 10월28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2021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지난 정부 탓하는 정부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서는 수치상 목표만이 아니라 탄소배출이 가장 많은 석탄화력발전소와 내연기관차 폐지에 대한 세부적인 로드맵이 필요하다. 벨기에의 경우 석탄발전 종식 연도를 2016년으로 잡아 이미 없어졌고 유럽연합 대부분의 국가가 2025년을 전후로 석탄발전을 종료한다. 미국도 주별로 2025년 내외에 석탄화력발전을 종식하기로 했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이에 대해서는 논의조차 없다.
지난 5월 정부가 발표한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초안에서는 2030년까지 석탄발전 비중을 31.4%로 잡고 있다. 2050년 탄소중립을 위해서는 2030년까지 석탄발전 비중을 최소 30% 미만으로 줄어야 하는데 현재 계획으로는 답이 없는 상황이다. 더구나 현재 공사 중인 7기의 신규 석탄 발전소 건설을 중단하지 않는 한 석탄발전이 계속될 예정이라 더욱 문제가 심각하다. 석탄화력발전소에 대한 신규 건설승인은 중단됐지만, 건설 중인 7기의 석탄발전소는 중단 없이 그대로 사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이 때문에 2030년까지 석탄발전 비중이 작아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탄소중립 달성 시기인 2050년에도 여전히 우리나라에선 석탄화력발전소가 돌아간다. 석탄발전 종식 시점을 못 잡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정승일 산업통상자원부 차관은 국회 대정부질의에서 “새로 발전소 설립 허가를 해주지는 않았지만, 신규 건설 중인 석탄화력발전소 7기는 모두 박근혜 정부 시절 허가를 받았다며” 그래서 계속 건설하고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또한, 10월5일에는 한국전력이 베트남 석탄발전 사업을 계속하기로 결정했다. 국내외에서 기후악당이라는 거센 비판을 받던 한전은 10월28일 대통령의 탄소중립 선언 다음 날 신규 해외석탄발전은 중단한다면서도 베트남 석탄발전 사업은 이어가기로 했다.
내연기관 자동차 폐지 문제도 마찬가지다. 노르웨이는 2025년부터, 독일,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등 유럽국가와 일부 미국의 주 정부에서는 2030년을 전후로 내연기관 자동차 판매금지 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서울과 제주도를 제외하면 국가 차원의 논의를 시작하지도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 수소·전기 자동차 인프라 투자만 밝히고 있어 현대기아차 등 완성차 업체의 내연기관차 시장 유지와 내수전환 속도에만 맞추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일어나고 있다.
2050년 탄소중립 의지가 의심스럽기는 여당인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지난 9월24일 국회가 먼저 기후위기 대응 비상결의를 진행하고 2050년 탄소중립을 촉구하고 나섰다. 그런데 이 결의안에서 “정부가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이에 부합하도록 적극적으로 상향”이라고만 표현하고 구체적인 감축목표치를 제시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200여 개 사회단체의 연대기구인 기후위기비상행동은 “(이 결의안에서)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심의에서 가장 큰 쟁점이 됐었다”며 “여당은 2030년 감축 목표의 세부 수치를 명시하는 데에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비판했다. 지난 4월 총선 직전에도 기후위기비상행동은 각 정당의 기후위기 대응 관련 총선 정책 질의 결과를 발표했는데,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의지박약”, 현재 국민의힘의 전신인 미래통합당에 대해서는 “기승전핵”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 경남 고성군 삼천포화력발전소 1·2호(맨 왼쪽). ⓒ 연합뉴스
재계 “원전건설, 규제완화, 기업부담 축소”
한편, 탄소중립이 세계적인 대세가 되면서 재계 및 보수진영도 탄소배출 감축에 무조건 저항하며 탄소배출 대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던 것에서 입장이 바뀌고 있다. 파리기후협약을 탈퇴할 것이 아니라면 모든 당사국은 2050년까지의 장기 저탄소 발전전략을 올해 말까지 수립해 유엔(UN)에 제출해야 한다.
#01 '원전 없는' 탄소중립 선언한 정부 "LNG 사용 증가·전기료 인상 불가피” (조선비즈 11월2일)
#02 원전·석탄기업서 매년 수천억 걷어 태양광에 쓰겠다는 민주당 (한국경제 10월28일)
탄소중립을 반대하지 않지만 어떻게 진행해야 하는가 하는 방법론으로 대응이 전환됐다. 우선, 탈탄소의 대안으로 원자력 핵발전소 확대하라는 오랜 주장을 되뇌고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 녹색성장을 핵발전 확대로 등치시켰던 것처럼 원자력을 친환경 청정에너지로 부르며 탈원전 정책의 폐지와 원전 확대를 주장하고 있다.
또한, 에너지 전환은 기업에 또 다른 환경규제로 작용하기 때문에 다른 규제라도 완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종의 규제총량제처럼 탄소규제 강화의 반대급부로 다른 규제를 풀어 주던가 아니면 노동법 제한을 완화하라고 주장한다. 공정경제 3법에 대해 해고의 자유 확대 등 노동법 개악을 조건으로 교환하자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03 “철강·석화·시멘트 업종, 저탄소 전환비용 400조원 달해” (연합뉴스 11월2일)
#04 산업 맞춤형 규제 완화로 ‘코로나 경제위기’ 넘자 (한국일보 5월9일)
그리고 수백 조 원에 달하는 전환비용을 기업부담을 적게 하기 위한 방안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어차피 탈탄소 전환이 불가피하다면 여기에 드는 전환비용이 기업에 부담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정부가 협조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정부가 세금으로 전환비용을 마련하되 환경부담금 등 기업에 부담 가지 않는 방식으로 진행하라는 것이다
사실상 재계가 요구하는 방식으로 정부가 탈탄소 대책으로 내놓은 것이 바로 그린뉴딜 사업이다. 정부의 그린뉴딜은 산업전환에 따른 기업비용 축소와 이를 대신하는 정부 인프라 투자의 확대 그리고 전환비용을 보전하기 위한 시장 독점과 보조금 확대 조치들로 채워져 있다. 탄소배출 감축, 석탄발전 중단 기한도 없고 내연기관차 폐지는 업계 이해에 따라 논의조차 붙이지 못하고 있다. 탈탄소로의 에너지 전환은 당근과 채찍이 다 필요한데, 정부 대책은 당근만 있다. 채찍도 강력한 채찍이 있어야 하는데, 탄소배출 기업이 힘들다는 이유로 채찍 대신 뿅망치 같은 장난감만 휘두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탄소세 도입 같은 것은 입 밖으로 꺼내지도 못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탈탄소 전환의 주요 정책으로 탄소세 부과를 정식 권고했고, 유럽연합(EU)은 2023년 탄소세 부과를 예고한 상태다. 물론 탄소세가 얼마만큼의 탄소저감 효과가 있을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탄소세라는 단어조차 입에 올리기가 쉽지 않다. 지난 4월 총선 공약으로 잠깐 등장한 이후 정부나 여당에서는 입도 뻥긋하지 않고 있다. 정부 정책효과에 대한 관심도 ‘탄소발생 축소’가 아니라 ‘기업부담 축소’에 있기 때문에 기업부담을 가중할 수 있는 조치들은 논의 대상으로도 올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에너지 전환비용은 녹색금융, 그린뉴딜펀드와 같은 금융시장과 정부 투자 중심으로 마련하고, 탄소규제도 정부의 직접규제가 아닌 자본시장을 경유한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투자와 같은 간접규제 방식으로 돌아섰다.
‘정의로운 전환’은 어디로?
이제 ‘정의로운 전환’은 허울 좋은 개살구처럼 곁다리로 언급되던 것에서조차 사라졌다.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이란 노동자 및 지역 공동체의 이익과 노동 기간의 손실 없이 고용이 유지되도록 하고 기후위기를 초래한 대기업과 부자들에게 더 많은 책임을 지게 한다는 것이다. 미국과 유럽에서 시작된 이런 ‘정의로운 전환’은 이제 세계적으로 기후 위기 대응 원칙으로 사고하게 되었다.
하지만 정부는 기후 위기를 초래한 기업에 오히려 보조금을 주고 있다. 이 보조금은 유류지원금이나 석탄 보조금처럼 탄소유발 제품에 주어지는 (특정 계층에 대한) 직접적인 보조금도 해당하지만, 전기차 등 친환경 차를 샀을 때 주어지는 보조금도 마찬가지다. 자동차나 석탄산업 기업에 주어지는 이 같은 보조금은 모두 마찬가지로 전환비용을 국가 세금으로 대신하는 것이다.
시장주도의 에너지 전환은 특정 민간 기업에 대한 보조금, 독점보장 등으로 독점기업에 대한 특혜적 지원 성격을 갖는다. 가령 수소경제 전환과 관련해서도 정부는 2030년까지 460억 달러(약 54조 원)를 수소 등 재생에너지에 투자해 인프라를 구축한다. 이 사업이 민간자본에 의해서만 진행되면 당연히 자본이 부담해야 할 비용이지만 정부가 세금으로 이를 대신하는 것이다. 그 결과 수소경제로 전환해도 전환비용은 대부분 국가가 부담하고 자동차 관련 현대차의 독점체제는 그대로 유지될 뿐 아니라 오히려 강화된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다른 무엇보다 에너지 전환에 따른 피해가 노동자와 시민 등 사회공동체로 전가되지 않고 기후위기를 유발한 주체들이 전환비용을 책임지는 ‘대원칙’을 다시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래야 정부가 기업에 휘둘리지 않고 2030년을 전후로 석탄발전 중단 및 내연기관차 폐지를 전망할 수 있고 목표로 한 탄소배출량 감축을 현실적인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여기에 노동자와 시민들은 ‘탄소세’나 여타의 환경부담금이 기업에 부과되면 그 제품을 사는 것으로 비용을 부담한다. 탄소세나 환경부담금 등이 부과되면 기업은 제품 가격에 이를 반영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용을 제외하고 남은 이윤, 이익잉여금 또는 사내유보금에 대해서 직접 부과되어야 한다. 이는 엄밀히 말해 기업에 부담이 가는 것이 아니라 ‘주주’에 부담이 가는 것이다. 이윤이나 유보금 등에 부과하는 세금은 기업의 정상적인 영업활동과 생산활동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고 다만 주주들의 배당금을 줄일 뿐이다.
그동안 ‘기업 부담’이라는 말로 주주들이 져야 할 책임을 회피해 왔다. 실제 탄소발생 산업을 유지해 이득을 본 것은 ‘기업’이라는 포괄적인 주체라기보다 일차적으로 ‘주주’다. 탄소발생 기업 주주들에게 책임을 묻고 전환비용 의무를 지게 하는 것이 최소한의 ‘정의’이고 ‘공정’일 것이다.
홍석만 참세상연구소 media@mediatoday.co.kr
지구 지배하던 침엽수는 왜 활엽수에 밀려났나
수백만년 동안 꽃식물과 경쟁서 밀려…현재도 참나무에 밀리는 소나무
뉴칼레도니아의 ‘화석 침엽수’ 아라우카리아. 중생대 때부터 화석으로 나오던 오랜 나무이다. 중생대 때 지구 대부분을 덮던 침엽수는 현재 전체 종의 3분의 1이 멸종위기에 놓였다. 파비앙 콘다민 제공.
소나무나 전나무 같은 침엽수(바늘잎나무)와 참나무와 단풍나무 같은 활엽수(넓은잎나무)는 숲에 사이좋게 서 있지만 둘은 지구 육지의 지배권을 둘러싸고 수백만년 동안 장대한 투쟁을 벌인 당사자다. 둘 가운데 지구에서 침엽수는 밀려나는, 활엽수는 득세하는 식물을 대표한다.
침엽수를 포함해 소철과 은행나무로 이뤄지는 겉씨식물은 씨가 겉으로 드러나며 꽃을 피우지 않고 꽃가루를 바람에 날려 수정한다. 활엽수가 포함된 속씨식물은 꽃을 피워 번식하며 씨가 씨방에 둘러싸여 있다.
겉씨식물이 왜, 어떻게 속씨식물에 육상 생태계 주인의 자리를 내줬는지는 식물학계의 오랜 논란거리다. 광범한 화석기록과 식물 유전자의 분자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침엽수의 쇠퇴는 꽃 피우는 식물과의 직접적인 경쟁에서 밀렸기 때문이란 주장이 나왔다.
꽃가루를 바람에 날리는 침엽수와 달리 꽃을 피우는 속씨식물은 곤충과 공생을 통해 효과적으로 번식한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파비앙 콘다민 프랑스 몽펠리에대 진화생물학자 등 국제 연구진은 과학저널 ‘미 국립학술원 회보(PNAS)’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기후변화나 대멸종이 아닌 주요 생물 집단 사이의 장기간에 걸친 경쟁 끝에 흥망이 결정될 수 있음을 이번 연구에서 알 수 있었다”고 밝혔다.
겉씨식물이 지구에 출현한 것은 3억8000만년 전 고생대 데본기였다. 겉씨식물은 이어 공룡시대인 중생대에 전성기를 맞아 육지를 뒤덮었다. 그러나 중생대 말 백악기에 등장한 꽃 피는 새로운 식물이 강력한 경쟁자로 등장했다.
꽃식물은 백악기 초인 1억4500만년 전 등장한 뒤 급속하게 종을 늘리며 각 대륙으로 퍼져나갔다. 연구자들은 “화석과 계통 유전학 증거로 볼 때 속씨식물의 이런 팽창세는 현재도 이어진다”며 “한정된 자원을 둘러싸고 경쟁한 끝에 한 무리의 생물 집단이 번성하자 다른 집단이 쇠퇴한 것”이라고 밝혔다.
지질시대별 침엽수의 다양성 감소를 부른 요인. 오른쪽 위 그래프는 속씨식물이 등장하면서 급속히 다양성을 늘려 식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가운데 그래프는 지질시대별 온도, 해수위,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변화를 나타낸다. 붉은 선은 대멸종 사태를 가리킨다. 속씨식물의 번성이 대멸종 사태나 기후변화와 무관하고 한랭기에도 다양성이 줄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파비앙 콘다민 외 (2020) ‘PNAS’ 제공.
연구자들은 침엽수의 멸종률은 백악기 동안 높게 유지됐고 현재도 증가세를 보인다고 밝혔다. 침엽수의 생물다양성 감소는 현재 속씨식물이 30만 종에 이르러 전체 식물 종의 90%를 차지하는 데 견줘 침엽수가 대부분인 겉씨식물은 1000종에 그치며 세계 침엽수의 3분의 1이 멸종위기에 몰려 있는 데서도 알 수 있다.
침엽수는 활엽수에 따뜻하고 살기 좋은 열대지역을 넘기고 활엽수가 살기 힘든 추운 고위도나 고산지대, 척박한 토양에서 근근이 살아남았다. 연구자들은 “온대 북부 산림에서 광범하게 나타나고 있는 침엽수인 소나무과 식물이 활엽수인 참나무과 식물로 대체되고 있는 것은 그 사례”라고 밝혔다.
지리산 천왕봉 동쪽 능선에서 칠선계곡으로 이어지는 지능선 일대를 항공촬영한 모습. 가문비나무와 구상나무 등 고산 침엽수가 집단 고사해 숲이 회색으로 얼룩져 있다. 서재철 제공
우리나라에서도 햇볕이 잘 드는 척박한 땅에 자리 잡지만 숲이 우거지고 땅이 기름져지면 참나무류에 자리를 내준다. 또 구상나무를 비롯해 분비나무, 가문비나무, 눈잣나무 등 북방계 침엽수가 고산지대에 희귀하게 살아남았다.
속씨식물이 겉씨식물을 압도한 경쟁력은 어디서 왔을까. 연구자들은 속씨식물의 빠른 성장 전략, 꽃을 통해 곤충과 공생을 통한 효과적인 가루받이, 새로운 화학적 방어 전략 도입, 기후 스트레스에 잘 견디는 능력 등을 꼽았다.
인용 논문: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PNAS), DOI: 10.1073/pnas.2005571117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마생 나는 매일 태어나고 매일 버려진다
한국에 코로나19가 창궐한지 어언 1년이 다 되어간다. 그동안 마스크는 생활필수품으로 자리잡았다. 식약처에 따르면 지난 2월부터 9월 셋째 주까지 국내에서 생산된 마스크는 40억 개를 넘었다. 올해 말까지 50억 개를 돌파할 전망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수많은 마스크는 사람들에게 이용된 후 곧바로 버려진다. 국제신문은 부산에서 마스크 하나가 생산되고 없어지기까지의 과정을 따라가봤다. 그의 짧고도 기구한 ‘마’생(生)을 간단히 소개해본다.
지속가능한 ESG 투자 '대세'로 떠오른다
코로나19 이후 각국 정부 친환경정책 발표 잇따라
그린뉴딜·신재생에너지투자에 기업·금융 '주목'
지속가능한 ESG 투자가 대세로 부상하고 있다. 최근 들어 환경·사회·지배구조에 대한 인식과 실천이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한다며 ESG에서 투자 기회를 찾으려는 기업과 금융기관들이 증가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각국 정부의 친환경 신재생에너지 관련 투자 지원책이 발표되면서 환경(E) 관련 투자가 높아지는 추세다. 국내 금융시장에서도 환경·사회·지배구조 개선 등 사회적 책임투자를 목적으로 발행되는 ESG 채권·펀드 발행이 늘고 있다.
◆ESG 채권·펀드 발행 증가 = 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주요 국가들의 친환경 관련 장기 정책 로드맵이 발표되면서 환경 영역을 중심으로 한 ESG에 대한 투자가 증가하고 있다. ESG 자금의 견조한 증가세가 예상되면서 연기금, 금융투자업계, 일반기업, 개인투자자 들의 관심은 더욱 높아지는 상황이다. 특히 그린 뉴딜과 친환경 에너지 사업 등으로 ESG 채권을 통한 자금조달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송승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주식에서 채권까지 책임투자가 확대되고 있다"며 "ESG채권 발행자 측면에선 환경적, 사회적 가치를 높인다는 기업 이미지 제고 및 안정적인 투자수효 확보가 ESG 채권 발행을 유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채권발행으로 정부의 사회정책에 동참하는 효과 및 자금조달처 확대를 통한 자금조달 금리 인하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투자자입장에선 지금까지 ESG채권 금리는 일반채권 금리와 비슷한 수준이기 때문에 금리매력은 크지 않은 편이지만, 인증을 포함한 사후보고 등을 통해 비재무적 리스크 및 투자자와 발행자간의 정보비대칭 문제 등을 완화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한국판 뉴딜정책으로 ESG채권을 통한 자금조달은 더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금융기관들이 정부의 '한국판 뉴딜'에 참여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ESG채권을 통한 자금조달은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재생에너지, 전기차 배터리 사업 등 향후 먹거리 사업으로 각광받는 친환경 사업투자와 연계된 채권발행도 확대될 전망이다.
◆ESG 우수등급 기업 증가 = ESG를 중요한 투자 기준으로 삼는 연기금, 증권, 자산운용사 등 기관투자자들이 늘어나면서 기업들도 ESG 에 주목하고 있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이 지난달 발표한 국내 상장 기업들에 대한 2020년도 ESG 등급에 따르면 A 이상의 등급에 속한 기업 수가 108개사로 전년도 58개사에 비해 크게 증가했다. 항목별로 보더라도 전반적으로 상위권 랭크 기업이 늘어났다. 사회 부문에서 A+ 등급 증가 사례가 전년 대비 가장 많았으며(+33개) 지배구조 부문에서는 A 등급을 총 94개 기업이 부여받아 전년 비 +55개나 급증한 것으로 나타난다. 다만 환경 부문은 전년 비 개선된 것은 사실이나 B+(양호) 이상 등급 비율이 22%로 40%대를 기록하고 있는 두 부문에 비해 부진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전반적인 ESG 수준이 제고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ESG에 대해 높은 인식을 지니고 실천하는 기업들이 소비자들로부터의 우수한 평판과 함께 실질적으로 높은 재무적 성과를 거두면서 기업들의 참여가 날로 증가하는 모습이다.
김후정 유안타 증권 연구원은 "ESG에 대한 고려 강도가 높은 기업들은 지속가능한 제품군을 통해 중장기적인 거래 노선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안정적 성장을 기대해 볼 수 있다"며 "공해 물질 처리 비용이나 에너지 조달 비용의 절감(불법을 자행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효과 더해질 수 있어 수익성이 개선될 여지가 크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법적 규제(범칙금 등)에서 자유로워 질 수 있으며, 근무환경, 노동인권 등에 대한 고려는 생산성과 평판(기업브랜드 가치) 측면에서의 편익을 유발할 수 있다. 이처럼 ESG에 대한 정착도, 진행도가 높은 기업들이 경영상 혹은 경영 외적으로 편익을 기대해 볼 수 있다고 한다면, 이 같은 기업들에 대한 선별 투자 역시 장기적 으로 안정적인 초과 수익 기대를 가져볼 수 있을 듯하다.
◆한국거래소 'ESG 자문위원회' = 한편 한국거래소는 13일 ESG 투자확대 및 정보공개 환경 조성 관련 자본시장 선도기관 역할수행을 위해 'ESG 자문위원회'를 구성하고 1차 회의를 개최했다. 'ESG 자문위원회'는 환경·사회·지배구조 관련 투자환경 조성을 위한 정책수립 및 제도 마련 등에 관한 자문을 구하기 위해 새롭게 발족한 거래소 공식 자문회의체다. 위원회는 유가증권시장본부 부이사장을 위원장으로 ESG 관련 외부전문가(학계 등 공익대표, 상장회사, 정보이용·평가기관) 8인으로 구성됐다.
임재준 거래소 부이사장(사진 왼쪽 여섯번째)은 "ESG 분야 최고전문가로 위원회가 구성되어 ESG 관련 사업이 체계적으로 추진될 것"이라며 "논의 결과가 ESG 정책수립에 적극 반영되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날 회의에서 참가자들은 거래소의 주제발표 '글로벌 ESG 정보공개 동향, KRX 추진과제'에 대한 다양한 의견 교환과 향후 자문위원회 운영방안 등을 중점적으로 논의했다. /김영숙기자 kys@naeil.com
동물원이 ‘희망’이기도 한 이유
구조된 동물들의 안식처·멸종위기종의 보존
‘폐지론’보다 역할을 따져묻는 게 필요하다
터전을 빼앗긴 동물이 멸종위기에 처했고 야생에서 멸종된 종도 한둘이 아니다. 동물원에는 멸종위기종이 수두룩하고, 외국동물원에는 야생에서 멸종한 종도 있다. 이놈들을 번식시켜 복원하면 멸종을 막을 수 있다. 클립아트코리아
모든 동물의 고향은 자연이다. 가축도 원래는 자연에서 살았었다. 사냥에서 허탕 칠 때가 많아 아예 잡아 와 뒤뜰에 가둬 기르기 시작한 게 가축의 시작이다. 가축은 수렵 생활을 하던 사람들이 최고로 꼽는 사냥감이기도 했다. 수천 년 동안 사람 손에 커서 고향인 자연으로 돌아가도 스스로 살기 어렵다.
가축과 달리 야생동물은 야생에서 환경을 극복하면서 산다. 조상 대대로 그렇게 살아와서 이미 적응돼 있다. 적응하지 못한 개체의 가문은 대가 끊겼다. 적응한 개체의 후손이 현재 살고 있고, 자연이 선택한 결과다. 사람이 돌보지 않아도 혹독한 추위나 더위에도 종마다 나름대로 생존비법이 있어 까딱없다.
조류는 좋아하는 환경을 찾아다니며 산다. 그게 철새다. 우리나라 여름 철새로 제비, 백로와 물총새가 대표적이다. 겨울 철새로 독수리, 두루미, 청둥오리 등이 있다. 봄에 독수리는 몽골에서, 두루미는 러시아에서 번식한 후에 추워지면 남쪽으로 내려온다. 추위를 피했다가 다시 번식지로 돌아가는 생활 방식이다.
산양은 몇 마리씩 가족을 이뤄 무리로 산다. 여럿이 함께 살면 누가 습격하려는지 망볼 때 좋고 얕잡아 볼 만한 놈이 쳐들어오면 떼뭉쳐 몰아낼 수 있어서 좋다. 발굽이 덧버선을 신은 것처럼 도톰해서 바위 절벽에 버티고 서 있기에 안성맞춤이다. 절벽 난간에 서 있는 걸 보면 간당간당 떨어질 것 같아도 꿈쩍 않고 밤을 새운다. 바위 절벽 끝에서 잠을 자야 편히 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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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벌이’ 안 되는 동물원
동물은 먹이를 찾거나 짝을 찾아 헤맨다. 예를 들면 수달은 하루에 3.5㎞를 이동할 정도다. 동물마다 활동반경이 있다. 활동반경이란 자기 영역이기도 하고 평소에 쉬고, 먹이를 구하거나 짝을 찾으려고 들락날락하는 곳이다. 먹이와 천적에 따라 다르나 보통 얼룩말은 평균 9.4㎢, 하마는 0.4~0.6㎢, 흰코뿔소 암컷은 2~20㎢로 넓다.
야생동물을 서식지에 자유롭게 살게 두면 될 텐데 왜 동물원에 가둬 놓고 기를까? 동물원에서 야생동물이 맘 편하게 살게 제대로 갖춰 줄 수 있을까? 이런 논리를 들어 동물원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도 모든 나라에 동물원과 수족관이 있다. 미국은 230여 개, 일본은 170여 개 있다. 긍정적인 측면보다 부정적인 측면이 많았다면 이미 없앴을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오스트리아의 쉔브룬 동물원도 1752년 이래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다. 경제적인 측면으로 보면 솔직히 동물원은 돈벌이가 안 된다. 먹이값과 잡다한 관리비용을 대려면 만만치 않다. 적자를 보면서까지 운영하는 걸 보면 존재 할 이유가 분명히 있다.
동물원이 없다면 서식지에 가야 볼 수 있다. 수많은 사람이 찾아갈 테니 서식지가 지금보다 더 망가질 것은 뻔하다. 클립아트코리아
야생동물이 동물원에 살려면 온갖 것이 불편할 것이다. 야생과 비교하면 턱없이 좁은 곳에 산다. 변명할 여지가 없다. 매일 마주치는 관람객 시선도 괴로울 것이다. 이런 걸 동물원에서도 알고 있어 불편하지 않게 하려고 늘 노력하고 있다. 동물원에 사는 놈들이 야생보다 약15~20% 오래 사는 걸 보면 동물원이 형편없이 나쁘진 않다는 증거다. 예로서 야생에서 얼룩말은 20살 하마는 40살까지 산다. 동물원에서는 얼룩말이 최고 28살까지 하마는 최고 50살까지 산다. 자유롭지 못해 매우 안타깝지만 수명만 보면 그렇단 얘기다.
서식지에서 야생동물을 잡아 동물원으로 데려오지 않은 지 오래됐다. 다쳐서 구조된 야생동물이 완치 후 서식지로 돌려보낼 수 없을 땐 동물원으로 보내는 경우는 있다. 동물원에 있는 동물은 자기 동물원 또는 국내·외 다른 동물원에서 태어난 놈들로 넓은 세계를 경험하지 못했다. 그럴지라도 야생처럼 해 주려고 은신처, 그늘, 언제든지 마실 수 있는 물과 추위나 더위를 피하는 시설을 해 놨다. 산양이 사는 곳엔 바위를 넣어 놨고, 늑대나 오소리에게는 굴을 팔 수 있게, 물놀이를 즐기는 코끼리나 하마네 집엔 수영장이 있다. 이런 게 동물행동풍부화 프로그램(Animal Behavioral Enrichment Program)이다.
동물원마다 생태교육을 한다. 훗날 사회를 이끌어 갈 어린 학생이 주 대상이다. 서식지에서 어떻게 살고 있고, 왜 멸종위기에 처했고, 어떻게 해야 멸종위기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을지 질문과 답을 준다. 전국적으로 치면 일 년에 수 천 명씩 교육 받는다. 동물원에 와서 휴식하면서 자연스럽게 공부한다. 동물원 곳곳에 있는 설명판도 한 몫 한다. 자연과 동물을 보호하려는 마음이 싹트게 해서 실천가로 만드는 게 궁극적인 목적이다. 교육으로 동물원에서 현재 떠안고 있는 적자보다 훗날 더 많은 이득이 생기게 한다. 동물원은 국가적 차원에서 거시적인 투자인 셈이다.
때론 마지막 희망
동물원이 없다면 서식지에 가야 볼 수 있다. 고릴라나 기린은 아프리카에, 오랑우탄은 인도네시아나 말레이시아에 가야 한다. 갈 때마다 볼 순 없고 운이 좋아야 볼까 말까 한다. 수많은 사람이 찾아갈 테니 서식지가 지금보다 더 망가질 것은 뻔하다. 개인이 서식지를 찾아가는 비용과 사회적 비용도 엄청나게 많이 든다.
동물원에는 멸종위기종이 수두룩하고, 외국동물원에는 야생에서 멸종한 종도 있다. 이놈들을 번식시켜 복원하면 멸종을 막을 수 있다. 동물원이 존재해야 할 이유 중 하나다. 클립아트코리아
인구 증가로 동물의 서식지가 택지와 경작지로 바뀌고 있다. 터전을 빼앗긴 동물이 멸종위기에 처했고 야생에서 멸종된 종도 한둘이 아니다. 동물원에는 멸종위기종이 수두룩하고, 외국동물원에는 야생에서 멸종한 종도 있다. 이놈들을 번식시켜 복원하면 멸종을 막을 수 있다. 멸종위기에서 벗어나게 한 대표적인 사례가 몽고야생말과 아라비아오릭스다. 동물원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다. 동물원이 존재해야 할 이유 중 하나다. 동물원을 폐지하자는 카드를 꺼내는 것보다 동물원이 제대로 역할을 하고 있는지 따져 묻는 게 자연과 동물을 보호하는 지름길이다. 동물원도 단순 전시에서 벗어나 기능과 역할을 제대로 해야 존립할 명분을 얻을 것이다. 멸종위기에 처한 종을 살리는 마지막 희망이 동물원이다./ 노정래 전 서울동물원장/ 한겨레
문재인정부의 4대강- 세계적 모래강 내성천,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서다
세계적인 모래강 내성천의 숨을 끊고 있는 영주댐
내성천은 경북 봉화에서 발원해 영주시와 예천군을 휘감아돌다 문경시에서 낙동강과 합류하는 강이다. 소백산에서 사시사철 내려오는 맑은 물이 봉화의 사질풍화토가 공급하는 모래와 더불어 흐르는 모래강이다. 화강암 지층이 발달한 우리나라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모래강들이 발달했는데 내성천은 그 중에서도 백미다. 한국 모래강의 아름다움에 대해 일찍부터 연구해온 오경섭 교원대 명예교수(지형학)에 의하면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해도 손색이 없는 강이다.
그런데 내성천이 시름시름 죽어가고 있다. 4대강사업으로 강을 가로질러 영주댐을 설치했기 때문이다. 영주댐은 낙동강에 맑은 물을 공급해 수질을 개선하겠다는 발상에서 건설된 우리나라 최초의 ‘수질개선용' 댐이다. 농업용수공급이나 홍수예방, 전력생산 등의 기타 기능을 다 합쳐도 전체 댐 효용의 10% 정도에 불과하고 90% 효용은 수질개선으로 얻게 되어 있는 댐이다. 그러나 영주댐은 수질개선은 커녕 녹조로 낙동강을 더럽히는 존재가 됐다. 또한 물과 모래의 이동을 막아 내성천을 심각하게 파괴하고 있다. 내성천 제1의 명승지인 회룡포는 영주댐 건설 뒤 망가진 가장 대표적인 곳이다
내성천 회룡포의 2011년 모습(위)와 2020년 모습(아래). 영주댐 건설 후 아름다운 옛모습을 잃었다. (사진:박용훈 생태 사진작가)
‘영주댐 정상가동하라’는 영주시와 주민
문재인 정부 들어 환경부는 애초의 목적은 달성하지 못한 채 부작용이 심각한 영주댐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논의하기 위해 ‘영주댐 처리방안 마련을 위한 협의체'(이하 영주댐협의체)를 구성했다. 또 환경부는 2019년 9월 일단 영주댐 물을 방류해서 자연상태의 하천으로 되돌린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런데 막상 10월 15일 영주댐 방류를 시작하려 하자 영주시와 일부 주민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주민들은 댐 바로 밑에 텐트를 치고 방류를 막고 있고 영주시도 이를 지원하고 있다. 영주시와 주민들은 댐 방류 결정이 사실상 영주댐 철거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면서 댐을 정상가동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영주시가 방류를 반대하는 이유는 댐과 연계한 관광, 스포츠 사업이 댐 물을 방류할 경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장욱현 영주시장은 그동안 관광,스포츠사업에 약 1700억의 예산이 투입되거나 계획되어 있다고 밝혔다. 물론 이 액수 안에는 국비와 도비, 수자원공사의 지원이 들어가 있고 아직 계획단계인 것도 있어 시가 이미 지출한 규모가 얼마인지는 불분명하다.
1년 전에 보도된 영주댐 방류계획도 모른 영주시, 예산낭비 논란
그런데 영주시는 그동안 환경부의 댐 방류계획도 모른채 대규모 투자를 지속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장욱현 영주시장은 ‘환경부의 방류계획을 몰랐느냐’는 뉴스타파의 질문에 “몰랐다. 지역민과 협의 없이 방류하는 법이 어디 있느냐"고 했다. 그러나 환경부는 이미 2019년 9월 방류계획을 보도자료로 밝힌 바 있고 영주댐협의체에 지역주민들도 참여해왔다. 국정감사에서도 영주댐에 대한 존폐 문제가 강하게 거론돼서 영주시의 시의원이 질의를 통해 사업의 속도를 조절해달라는 요구를 한 바도 있었다. 이처럼 문재인 정부 들어 영주댐 문제를 근본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도 아랑곳없이 영주시는 댐이 존속할 것이라는 자신들의 희망을 전제로 투자를 계속한 것이다. 이서윤 영주시의원(더불어민주당)은 ‘한 쪽만 바라보고 관광사업을 위해 토지를 매입하는 등 달려온 부분들은 예산낭비다. 책임을 물어야 할 사안이다'고 지적했다.
영주시는 또한 방류를 하면 내년 봄에 쓸 농업용수가 없어서 안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백경오 한경대 토목안전공학과 교수는 ‘농업용수 때문에 댐이 있어야 한다면 우리나라에 있는 모든 논에다 물을 대기 위해서는 다 댐이 필요하다 라는 논리가 된다. 댐 없이도 그냥 하천에 물만 흘러가면 거기다 양수시설만 하게 되면 농업용수 양수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김상화 영주댐협의체 공동대표는 “영주시가 방류를 하면 농업용수에 문제가 생긴다는 정보를 사전에 협의체에 전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영주시는 이처럼 문재인정부 들어 영주댐 문제가 근본적으로 검토되는 상황을 감안하지 않은 채 각종 사업을 밀어붙이다 막상 댐 방류가 되는 상황을 맞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영주시의 반발에는 경상북도(도지사 이철우)까지 가세해 자칫 정치적인 갈등으로 번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내성천 대신 영주댐을 선택한 영주시,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죽이나
영주시는 영주댐 건설과정에서 230만톤의 모래를 채취해 170억 원의 수익을 올렸다. 영주댐 건설 당시 1년 동안의 모래 유입량을 15만 톤으로 계산한 것을 감안하면 약 20년 동안 상류에서 내려올 모래를 한꺼번에 판 것이다. 김양호 수자원공사 영주댐사업부장은 ‘댐 상류에서 모래가 많이 내려오지 않고 있다. 골재채취로 모래가 없어진 공간을 메우면서 내려오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당시 영주시의 골재채취는 내성천에 결정적인 내상을 입혔다는 것이 여러 전문가의 지적이다.
영주시는 또한 방류를 하면 내년 봄에 쓸 농업용수가 없어서 안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백경오 한경대 토목안전공학과 교수는 ‘농업용수 때문에 댐이 있어야 한다면 우리나라에 있는 모든 논에다 물을 대기 위해서는 다 댐이 필요하다 라는 논리가 된다. 댐 없이도 그냥 하천에 물만 흘러가면 거기다 양수시설만 하게 되면 농업용수 양수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김상화 영주댐협의체 공동대표는 “영주시가 방류를 하면 농업용수에 문제가 생긴다는 정보를 사전에 협의체에 전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영주시는 이처럼 문재인정부 들어 영주댐 문제가 근본적으로 검토되는 상황을 감안하지 않은 채 각종 사업을 밀어붙이다 막상 댐 방류가 되는 상황을 맞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영주시의 반발에는 경상북도(도지사 이철우)까지 가세해 자칫 정치적인 갈등으로 번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내성천 대신 영주댐을 선택한 영주시,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죽이나
영주시는 영주댐 건설과정에서 230만톤의 모래를 채취해 170억 원의 수익을 올렸다. 영주댐 건설 당시 1년 동안의 모래 유입량을 15만 톤으로 계산한 것을 감안하면 약 20년 동안 상류에서 내려올 모래를 한꺼번에 판 것이다. 김양호 수자원공사 영주댐사업부장은 ‘댐 상류에서 모래가 많이 내려오지 않고 있다. 골재채취로 모래가 없어진 공간을 메우면서 내려오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당시 영주시의 골재채취는 내성천에 결정적인 내상을 입혔다는 것이 여러 전문가의 지적이다.
이번 논란의 와중에서 영주시는 영주댐이 내성천의 수질이나 생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에 대해서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댐을 유지해야 한다는 태도만 보이고 있다. 그러나 댐에 물을 가득 채워 관광객을 유치하려는 영주시의 전략이 과연 코로나 19 이후의 새로운 시대에 맞는 것인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있다. 정란수 한양대 관광학부 겸임교수는 ‘내성천은 우리나라에서 드물게 장거리 구간을 모래를 걸으며, 물을 밟으며 갈 수 있는 곳이다. 코로나 19시대 이후 자연을 사색하고 힐링하는 관광 트렌드에 맞는 매우 큰 관광적 가치가 있는 곳이다. 다른 데 없는 것을 관광자원화해야 하는데 어디서나 다 하는 댐관광 때문에 내성천의 생태를 희생시키는 것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죽이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2011년 내성천을 걷는 사람들. 영주댐이 생기기 전 내성천은 약 80킬로미터를 모래를 밟으며 걸을 수 있는 강이었다.(사진:박용훈 생태 사진작가)
녹조독성 전문가 ‘영주댐은 낙동강의 녹조 공급처가 될 것이다.’
영주댐의 존치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녹조를 제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10월 15일 영주댐 방류반대집회에서 “물에 녹조가 생기고 해로우면 우리한테 해롭지, 서울에 있는 사람에게 해롭지 않습니다. 우리가 관리할 겁니다.”라고 역설했다. 강성국 영주댐 수호추진위원장은 “수자원공사는 녹조를 제거하는 약품을 갖고 있다. 인체에 해롭지도 않다” 말했다.
그러나 환경독성 전문가로 한국의 녹조에 대한 연구를 해온 박호동 일본 신슈대 교수는 ‘영주댐을 그대로 두면 낙동강에 녹조를 공급하는 공급원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녹조를 제거하는 약품에 대해서도 그는 ‘녹조 제거제는 저수지처럼 수심이 얕은 곳에서는 효과를 볼 수도 있으나 영주댐같이 깊은 곳은 효과가 적다. 또 제거제를 농도가 높게 투여해야 하는데 부작용이 상당하다'고 했다. 박호동교수는 ‘오랫동안 연구해온 일본의 한 호수 녹조를 정화하는데 40년이 걸렸고 비용도 2천억엔(한화 2조원 가량)이 들었다'고 했다.
2021년까지 영주댐 존폐 결정할 예정
영주댐 방류를 둘러싼 이번 논란은 영주댐 존폐를 두고 벌어질 갈등의 전초전이다. 그것은 세계적인 모래강 내성천을 다시 살릴 것인가, 녹조제조공장 영주댐을 끌어안고 살 것인가의 문제다. 만약 후자를 선택한다면 내성천의 죽음을 감당해야 하는 것은 물론 천문학적인 비용을 끝도 없이 지출해야 할 것이다. 내성천의 죽음은 낙동강에 모래를 공급할 공급원의 상실을 초래할 것이다. 낙동강의 보를 해체하고 생태를 복원하려 한다면 더욱 내성천의 복원이 필수적이다.
영주댐의 존폐는 영주댐협의체에서 2021년 초까지 댐 처리 대안들을 마련해 올리면 낙동강유역물관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결국 국가물관리위원회에서 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최승호 / 뉴스타파
도시의 동물들이 변호사를 선임했다
〈이너 시티 이야기〉 숀 탠 지음, 김경언 옮김 풀빛 펴냄
상아 없는 코끼리가 늘고 있다. 말레이시아에서, 스리랑카에서, 남아프리카에서 점점 더 많은 코끼리가 상아를 포기한 채로 태어난다. 인간의 밀렵으로 인한 고통스러운 죽음이 반복되는 동안 코끼리들은 차라리 퇴화하는 쪽을 선택했다. 이런 식이라면 상어는 지느러미를, 밍크는 털가죽을, 거위는 간을, 곰은 담낭을 포기할지도 모른다. 그나마 몸의 일부를 잃더라도 살아남을 수 있다면 다행일까. 잃어야 하는 것이 자신의 전부인 동물들이 세상에는 적지 않다.
코끼리가 엄니를 포기하는 슬픈 현실을 숀 탠의 〈이너 시티 이야기〉는 기묘한 판타지로 비튼다. 가상의 도시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스물다섯 종류의 동물 이야기들은 현실이 아니지만 하나같이 진실에 가깝다. 이곳에서는 인간의 세계와 동물의 세계가 조각난 꿈처럼 뒤섞여 있다. 빌딩 꼭대기에 사슴이 사는 숲이 있는가 하면, 80층 빌딩 전체가 악어들이 사는 늪지다. 낮에는 나비 수억 마리가 빛의 파도처럼 무리 지어 도시에 날아들고, 밤에는 텅 빈 도로 위로 죽은 말의 영혼들이 질주한다. 하늘에서는 새끼 범고래가 어미의 목소리를 들으며 외로이 헤엄치고, 고속도로 위에서는 이 세상에 마지막 남은 코뿔소가 인간의 총에 맞아 죽어간다. 누군가의 방에서는 햄이 저며지듯 돼지가 조금씩 몸을 잃어가고, 또 누군가의 거실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큰 고양이에게 지친 삶을 위로받는 엄마와 딸이 있다. 이 모든 일들이 ‘이너 시티’에서 일어난다.
곰들은 담낭을 포기하는 대신 인간의 말을 배운다. 발언권을 얻은 곰들이 제일 먼저 한 일은 무엇일까. 그렇다. 곰들은 변호사를 선임했다. 자신의 고통과 인간의 탐욕에 대해 곰들은 할 말이 많다. 당연히 소송은 인간에게 불리하다. 그간 쌓은 업보가 좀 많은가. 손해와 채무도 막대하다. 고발당하고 보상하고 종내는 공평하게 나눠야 할 테니 누군가는 뒤늦은 후회를 할 테지만 또 누군가는 약이 오르고 속이 쓰릴 것이다. 다행히 이런 식의 문제를 해결할 아주 쉽고 익숙한 방법이 있다. 인간은 영리하니까.
그렇게 가장 인간적인 방식으로, 곰들을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양심의 가책은 없다. 때마침 밀실에서 졸속 처리된 ‘정의’에 관한 법안 덕분이다. 다시 세상은 질서를 유지하고 평화를 되찾는다. 인간들은 안도한다. 물론 오래가지는 않았다. 곧 소들이 변호사와 함께 법원으로 들이닥쳤기 때문이다. 이거다. 바로 이런 결말 때문에 내가
숀 탠을 좋아한다. 그림책과 시와 소설을 넘나드는 이 이야기들 속에서 숀 탠은 이런 식의 짜릿한 결말을 하나의 문장이나 그림으로 보여준다.
스물다섯 번째 동물은 인간
‘이너 시티’는 행정학 용어로, 낮에는 밀집되었던 인구가 밤이면 썰물처럼 빠져나가면서 거주 기능을 상실한 도시를 뜻한다. 온전한 삶의 장소로서 존재할 수 없게 된 도시는 관계가 조각나버린 지금 이 세계의 은유이기도 하다. 도시의 황량하고 어두운 그림자를 배경으로 한 이 기묘한 동물들의 이야기는 마치 다정한 악몽 같다. 깰 수 없거나, 깨고 싶지 않은. 스물다섯 번째 동물은 인간이다. 마지막 동물의 이야기까지 읽고 나서야 비로소 책의 첫 문장이 선명해진다.
‘세상의 동물들은 고유한 이유로 존재한다.’ - 엘리스 워커
시사인/ 무루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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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롭고 무서운 곤충?…말벌의 숨겨진 공로를 아시나요
말벌은 포식자로서 꿀벌뿐 아니라 해충을 포함한 다양한 곤충을 잡아먹는다. 말벌의 일종인 코벌이 파리를 사냥한 모습.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아직 몇 조각의 나뭇잎이 달려있어 바람에 흔들리지만 오늘, 내일이 지나면 더는 이런 풍경은 없다. 절기로 때를 알기도 어렵지만 단어 하나만으로 계절을 가늠하기는 더욱 힘든 일. 내일(7일)은 입동. 겨울을 피부로 느낄 만큼 춥진 않지만 물이 얼고 땅이 얼어붙는 본격적인 겨울을 알린다.
강원도 산골엔 벌써 겨울이 왔다.
올해는 코로나 19로 시작해 지루하고 긴 장마와 태풍 재난까지 3박자가 아주 난리를 쳤다. 시름과 불안으로 세월을 놓쳐 예쁜 꽃, 아름다운 나비를 즐기지도 못하고 잎 다 떨어뜨리고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와 숲만 바라본다. 마르고 찬바람 불어 스산하지만 손녀와 함께 바스락거리는 낙엽 소리를 들으며 코끝을 스치는 상큼한 공기를 마시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랜다.
살과 근육을 키워 통통해진 멸종위기종 금개구리가 땅을 파고 낮게 숨을 쉬며 겨울 날 준비를 한다. 포근하게 감싼 알집 속에 사마귀가 월동을 시작했고, 유리산누에나방도 알 상태로 겨울을 맞아 이미 휴면에 들어갔다. 비록 철저하게 준비를 하지만 겨울은 예상 밖의 변수가 많아 많은 개체가 겨울을 나지 못하고 죽는다. 온대지역에서 살아가는 생물들이 겪는 가장 가혹한 시련, 겨울이다.
겨울잠을 자기 위해 땅속을 파고든 금개구리.
알 상태로 휴면에 접어든 유리산누에.
인간도 마찬가지여서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이즈음 환절기에는 면역력이 떨어진 사람들의 사망률이 가장 높다. 그래도 작년까지만 해도 밀려오는 한파만 준비하면 됐는데 올해부터는 사뭇 다르다. 겨울 저온에서 생존력·전파력이 강한 무서운 놈들, 코로나바이러스를 대비해야 한다는 심란한 기사가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앗, 아직도 말벌이
한창 곤충들의 월동 준비로 바쁜데 ‘아얏’ 하며 아내가 소스라치게 놀라 소리를 지른다. 호랑이도 늑대도 사라진 산속이라 특별히 무서워하며 피할 것은 말벌밖에 없는데 이미 겨울이라 그냥 무심히 일하다가 말벌에 쏘였다.
“계절을 모르는 철없는 놈의 소행이겠거니.” 그래서 별 독이 없을 것이라며 보건소도 안 가고 하루 지냈다가 큰 봉변을 당했다. 딱 한 방 쏘였는데 다리 전체가 퉁퉁 부어 움직이지 못할 정도였다. 계절은 이미 겨울로 가고 있는데 더디 세월을 먹는 ‘벌’이라니. 서둘러 겨울 준비를 하던 모든 일이 머쓱해진다. 그냥 무심히 보다가 적막하고 황량한 줄로만 알았던 겨울 숲은 아직 생명 활동이 진행 중이었다.
말벌은 아직 활동 중이다. 좀말벌의 침 모습.
‘킬러 말벌’이라는 무시무시한 별명으로 미국을 발칵 뒤집은 장수말벌부터 도심 속 말벌 피해까지 많은 사람이 말벌에 대해 궁금하다. 진짜 위험한지, 어떻게 하면 안 만날 수 있는지 혹여 맞닥뜨리면 어떻게 처신할지, 정말 해만 끼치는 나쁜 놈들인지? 얼마 전 ‘한국방송(KBS)’의 생생정보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충분히 설명했지만 몇몇 중요한 대목이 빠져 말벌에 대해 집중적으로 살펴보려 한다.
육상 포유류의 호랑이, 물속 생태계의 물장군 그리고 육상 곤충 생태계의 말벌은 모두 그 분야에선 가장 힘센 놈들, 최상위 포식자이다. 말매미, 말벌의 ‘말’은 크다는 뜻으로 말매미는 매미 중 덩치가 제일 크고 소리 역시 가장 시끄러워 한여름 밤 도심 속 사람들을 잠 못 들게 하는 소음의 주범이다. 말벌도 이름값 하며 벌 종류 중 가장 크고 맹독성 독침을 가진 놈들이다.
말매미란 이름은 큰 매미라는 뜻이다.
말벌과의 벌들. 장수말벌이 가장 크다.
검은 몸빛에 샛노란 줄무늬를 가진 말벌의 선명한 색채 패턴을 이르는 ‘옐로 재킷’이라는 단어는 공포의 대상이다. 겉모습뿐만 아니라 공격성이 높은 날카로운 턱과 독침을 보면 무시무시하며 큰 무리를 지어 사니 더욱 무섭다.
대표적인 경계색과 강력한 독성 무기를 갖고 있고 무리 지어 살면서 엄청난 힘을 갖고 있으므로 말벌은 모든 종류의 곤충이 열심히 닮으려는 의태의 모델이다. 하늘소도, 파리, 나방까지도 모두 닮고 싶어 한다.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못할 것이라는 가능성을 믿고 있으며 실제로 의태 패턴이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 같다.
말벌을 흉내 내는 호랑하늘소.
스즈키긴꽃등에도 얼핏 말벌 같아 보인다.
장수유리나방은 포식자가 말벌로 오인해 주길 기대한다.
20여 년 전 연구소 주변에서 말벌 집을 잘못 건드려 머리 뒤에 열 군데 이상을 쏘였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과 몸에 열이 올라 시뻘겋게 달아올랐고 속이 메슥거리고 거대한 혹이 생겨 머리가 꽉 조여드는 느낌과 기도가 막혀 숨을 쉬지 못했다. 병원에서 해독 주사를 3대나 맞고 겨우 살아난 기억이 있다. 그 이후에도 오랫동안 후유증으로 고통스러웠다. 말벌은 곤충학자인 필자도 굉장히 무서워하는 정말 위험한 곤충이 맞다.
검은 옷을 피하라
말벌은 피하는 게 상책이므로 그놈들의 시선을 끌지 않는 게 좋다. 말벌의 대표적인 천적은 담비나 곰 같은 동물이다. 보통 동물은 천적을 만나면 피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워낙 공격적인 말벌이다 보니 오히려 천적의 색깔인 검은색이나 갈색 옷을 입으면 달려든다. 검은 계통의 옷보다는 밝은색 옷을 입는 편이 유리하다.
말벌은 굉장히 텃세가 강하고 자기 집 주변에 얼씬거리면 무엇이든 공격하므로 말벌을 만났을 때는 빨리 도망가야 한다. 텃세 영역이 보통 20m~30m라고 하니까 최소한 그 정도 거리까지는 벗어나야 하며 할 수 있는 한 말벌들이 쫓아오지 못하도록 멀리 도망간다.
말벌 둥지를 공격하는 천적 담비. 최태영 국립생태원 박사 제공.
인명에 위협이 될 만큼 치명적인 독성을 지닌 사회성 곤충인 말벌이 도시로 내려오면서 많은 사람이 쏘일까 봐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사람들이 산속으로 들어와 말벌들이 살던 숲 속 서식지에 길을 내고 펜션도 짓고 가로등도 만들면서 말벌의 서식지를 다 파괴했다. 할 수 없이 서식지를 도시로 옮기고 있는데, 서식지를 이동하게 되면 식량 자원이 가장 큰 어려움이다. 그러나 가로수나 도심지 자투리땅에 생태 공원들이 들어서면서 먹이인 파리, 메뚜기, 나방 같은 많은 곤충이 유입이 됐고, 음식물 찌꺼기로 산속보다 먹이가 풍부해 더 좋은 서식지가 되었다. 쫓겨나왔지만 도시는 말벌에게 살만한 서식지가 됐다.
처마 밑에 말벌이 둥지를 틀었다.
요즘 가장 문제가 되고 있고 경계해야 하는 말벌은 외래종인 등검은말벌이다. 미국은 지금 ‘아시아의 거대 말벌’이라고 이름 붙인 장수말벌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대규모 인력과 첨단 장비를 동원해 장수말벌 퇴치 작전을 벌이는데, 장수말벌이 무섭긴 무섭다.
비록 크기는 작지만 등검은말벌도 우리나라에 유입된 외래종으로 특별한 천적이 없고, 세력도 말벌 중 가장 커서 전국적으로 확대되어 대발생 중이다. 봉군(벌 떼)이 크므로 공격성이 강하고 도심에서도 왕성하게 활동한다. 게다가 온난화로 인한 기후 변화의 덕으로, 봄에 일찍 나오고 가을 늦게까지 활동을 하면서 활동 시간도 다른 말벌에 비해 길어, 양봉 산업에 해를 끼치거나 사람을 쏘아 위험에 빠트릴 빈도가 가장 잦다.
등검은말벌의 집. 최문보 경북대 교수 제공.
등검은말벌. 정철의 안동대 교수 제공.
생태계 조절자 구실
사람을 공격하는 살인 말벌의 공격성과 양봉 농가의 꿀벌을 몰살할 수 있는 해충으로 지탄받지만 생태계 조절 기능자로서의 말벌의 역할이 간과되는 경우가 많다. 몇몇 꿀벌만 먹어서는 양이 적어 생존과 번식이 힘들고, 사람 쏘는 행위는 자기를 지키고자 함이니 사실 우리가 걱정하는 엄청난 해충은 아니다.
말벌은 잡식성으로 다른 벌뿐 아니라 우리를 귀찮게 하는 파리, 모기나 농작물에 해를 끼치는 꽃매미를 비롯한 외래해충 등 거의 모든 곤충을 잡아먹으며 밀도를 조절해준다. 사체를 분해하는 청소동물 노릇도 하며 꿀벌처럼 꽃에서 꿀을 섭취하며 꽃가루받이도 해 준다.
해충 포식자로, 정화 곤충으로 또 수분 매개 곤충으로 생태적으로 다양한 기능을 하는 멀티 플레이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훌륭한 일을 하는 유용한 곤충임을 알면 공포감이 좀 줄어들까?
그래도 말벌은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글·사진 이강운/ 홀로세 생태보존연구소 소장/ 한겨레
덴마크 밍크 1700만 마리 살처분…모피축산·코로나의 비극
덴마크 총리 “밍크농장 5곳에서 변종 코로나 12명 감염”
세계 최대 밍크모피 생산국인 덴마크가 변종 코로나바이러스 위험을 막기 위해 최대 1700만 마리에 이르는 자국 내 밍크들을 모두 살처분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은 지난달 밍크농장 전면 폐쇄를 발표한 프랑스 밍크농장. 원보이스 제공
인간의 옷이 되기 위해 좁은 철창에서 고통받던 밍크가 이번엔 코로나19로 인해 대규모 살처분 될 운영에 처했다. 세계 최대 밍크모피 생산국인 덴마크가 변종 코로나바이러스 위험을 막기 위해 최대 1700만 마리에 이르는 자국 내 밍크들을 모두 살처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가디언과 CNN 등에 따르면, 4일(현지시각) 덴마크 메떼 프레데릭센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덴마크의 밍크농장 5곳에서 12명이 변종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을 확인했다”며 “밍크는 이제 공중보건의 위험으로 간주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밍크의 변종 바이러스는 미래에 보급될 백신의 효과도 제한할 수 있다”며 덴마크 전역의 밍크를 살처분할 계획이며, 이를 돕기 위해 군대, 경찰, 국가비상 인력이 동원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덴마크는 세계에서 가장 큰 밍크모피 생산국으로 1100여개 농장에서 1500~1700만 마리 밍크가 사육되고 있다. 덴마크 당국에 따르면, 최근 200여개의 밍크 농장에서 코로나19 감염이 확인됐다. 밍크 사육농가가 다수 위치한 덴마크 북부에서는 738명 감염자 가운데 절반 가량이 농장에서 비롯된 감염인 것으로 나타났다.
덴마크는 이미 몇 주전부터 밍크들을 살처분 해왔다. 지난 10월에는 코로나 감염이 의심되거나 확진 농장의 반경 8.4㎞ 내에 있는 밍크 100만 마리 이상이 살처분됐다. 밍크는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대한 감수성이 높은 동물로 대규모 밀집 사육이 ‘바이러스의 저수지’가 될 수 있다는 경고가 있어왔다.
지난 4월 첫 발병이 확인된 네덜란드는 이후 56개 농장에서 집단 감염이 발생해 밍크 수십만 마리가 살처분 됐고, 농장 100여 곳은 내년 3월까지 폐쇄됐다. 7월에는 스페인 밍크농장에서 농장 밍크의 87%가 감염된 것이 확인돼 9만 마리 이상이 살처분됐다. 지난달 미국 유타주에서도 밍크농장 발병이 확인됐고, 1만 마리 이상이 폐사했다.
덴마크의 과감한 조치에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핀란드에 본사를 둔 모피회사 ‘사가 퍼스’의 매그너스 뤼중 사장은 “코로나19에 대한 우려로 덴마크의 모든 밍크를 죽이겠다는 건 충격적”이라며 “네덜란드와 스페인, 스웨덴에서도 몇 가지 사례가 있었지만 그들은 코로나19 감염을 잘 통제했다”고 말했다. 그의 추정에 따르면, 올해 기준 덴마크 내 사육되는 밍크의 가치는 약 3억5천~4억 유로(약 4600~5500억원)이다.
동물권활동가들은 농장폐쇄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덴마크 동물보호단체(Animal Protection Denmark) 정책 고문이자 수의사인 비르짓트 댐은 “우리가 정말 해야 할 일은 밍크 농장을 완전히 끝내고, 운영자들을 재교육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제동물보호단체 휴메인소사이어티 인터내셔널(HSI)의 조안나 스와베 유럽 홍보담당 선임이사는 “세계 최대 모피 생산국에서 밍크 농장을 전면 폐쇄하는 것은 상당한 발전이다. 모피농장의 금지는 아니지만, 이번 조치가 모피농장의 작은 철장안에 갇힌 수백만 마리의 동물들에게 고통의 종말을 예고하고 있다”며 “이런 필수적이고 과학적인 조치를 내린 덴마크 총리에게 찬사를 보낸다”고 말했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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