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부 기제사가 있었다. 집안 다수의 구성원이 제사를 없애자는 의견이 있음에도 완고한 아버지의 고집(?)에 의해 이어지고 있는 여름 복더워 속의 기제사. 아버지 주장이 백해 무익한 것은 아니다. 나름 일리가 있다. 예컨데 제사를 없애고 나면 이렇게 모일 것 같으냐 인 바... 한동안 지속되겠지만 강제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없고는 나중에는 각자의 사정에 따라 편의따라 움직이다 보면 ....
통상 조부 기제사의 경우 아버지 형제들을 비롯 사촌 오촌까지 참석하는 명절보다 큰 제사다. 그런데 그 암묵적 룰이 코로나 펜데믹을 경계로 허물어 지기 시작했고 집안 내 갈등 인자가 발생하면서 시나브로 발이 끊겨 버린 것이다. 안 보면 그만이지가 된 것이다.
그동안 사촌들의 아버지 기제사는 이유불문하고 품앗이 하듯 참석을 했지만 그것이 사라진 것이다. 심지어 명절 차례까지 ... 여기에 나는 갔는데 너거는 안왔다 이거지 그러면서 참석 명분도 사라지고 ... 그 보다는 이제는 다들 고령화 되다보니 인제는 안가도 안되겠나 도 작용한 것이다. 문제는 아버지 삼촌 세대 다음에는 그러한 연결고리가 부재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묘사 참석이나 벌초 참석 나아가 종중 회비까지 내어야 할 의무감도 회석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참에 기록하나 하자면 종중 회비와 관련 작년 묘사를 통해 문제가 발생했다. 총무로서 전총무와 인수인계 받은지가 십년이 넘은 상태에서 전 총무가 정기적금통장을 나에게 인수했느냐 안했느냐 에서 시작해 그 정기적금을 유용했니 마니 하면서 의심가 항변이 고착화 된 상태에서 여름 집안 정례행사인 벌초가 오리무종이 된 것이다.
사실 나도 정확한 기억이 없다. 3자 인수인수 인계를 받을 당시 그 문제를 짚었는지 아닌지, 통장을 받았는지 안받았는지 그냥 수월하게 판단했다. 기존 자유통장은 건네받아 내 명의로 새 통장을 만들어 지난 10년을 운용했다. 그리고 묘사 때마다 재정보고를 했는데 ... 지난해 묘사에서 그 부분이 제기된채 지금에 이르고 있다.
공교롭게도 서로 힐난하고 항변하는 가운데 정리해보겠다고 마음 먹었지만 내 개인의 일정이들이 자유롭지 못했다. 다시 못해 살아남기 위해 용을 써고 있고 지금도 그러한 상태다. 예컨데 지금까지 종자돈 구실을 하던 사업비가 100%로 삭감된데다 후원 조차도 후퇴했고, 사무처는 사무처대로 어려움에 직면했던 것이다. 이사장 교체와 실무자의 사고 , 사업 정리의 지난함과 새로운 사업게획 수립과 현안 대처 속에 그 정리는 후순위로 밀려나버렸다. 그것을 여름 휴가 기간 처리할려고 한다. 내 과오도 없지 않아 있기 때문에 자초지종을 밟아 규명할 것은 하고 사표를 제출한다는 것이다.
기제사 전날은 집사람으로부터 맹폭을 당했다. 많지도 읺은 월급 제때 가져오지 읺는 것부터 시작해서, 돈이 부족해 끝단위가 잘려 나간채 갔다주다 보니 이떻게 살란 것이냐에서 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감내했던 온갖 어려움에 대한 불만과 비난을 고스란히 들어야 했다.
그런 것도 모르는 무책임한 인간으로 규정하고 퍼붓는 것이다. 무책임하지 않기 위해 나름 용을 써고 있다는 항변은 먹히지 읺는다. 그러다보니 어쨌든 집에 돈만 들여다 보내면 된다는 생각이 자리잡힌지 오래고 몸과 마음이 멀어진지 오래다. 그러다 보니 집사람이 몸이 아파 병원 가는 일, 영양제며 각종 보조약품을 쌓아 두고 챙겨두고 먹는 일도 그러나 보다 미루어 짐작했을 뿐인데 이명증까지 앓았다는 이야기는 어제 숙모와 집사람이 나누는 이야기를 통해 알았다. 그것도 원인 중의 하나가 스트레스라는 것이고... 아 이렇게 서로 아픈데도 남처럼 지내왔던 것이다. 스트레스 제공자 였다.
집사람 말마따나 이럴려고 결혼했느냐 는물음에 달리 답을 찾지 못했다. 미안했다. 마음이 멀어진 순간은 언제부터였을까. 좁히기 위해 노력은 귀울였던가.
각자의 생각만으로 너무 멀리 왔다. 그러는 당신은 날 배려 한 적이 있느냐 묻고도 싶다만 제사를 마치고 귀가하는 차안에서 집사람이 던진 한마디에 수고했다는 말만하고 입을 닫았다.
제사후 음복시간 다들 음식을 나누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 아버지를 비롯하여 여러 사람이 같이 밥먹고 하자는 권유에도 불구하고 집사람은 어울리지 않았고 제기를 치우거나 정리하기에 바빴다. 그 순간에 내 역할을 안도와주고 뭐했냐기에 따지지 않았다. 그리고선 각자의 방에서 자고 나는 일어나 시방 사무실로 와서 강의 원고 작성중에 있는 것이다. 한푼이라도 벌어 생활에 도움을 주고자 ...
올해는 전을 거의 붙이지 않았다. 음식장만은 아버지가 주로 하였고 기본 바탕은 숙모를 중심으로 마련하여 두었기에 나물 데치고 탕국을 끓이는 일만 집사람이 하였다. 가만 있을 수 없어 두부라도 구우며 일을 즐이고자 했다.
그리고선 본가 집뒤 황령산 가장자리 산책에 들었다. 지난 10여년 위성지도에서 보는 바처럼 일대는 엄청 변했다. 주로 고층아파트단지의 등장이 경관변화를 주도했고 그러면서 작은 구릉지나 산의 사면이 잠식 당했다.
2009
부산광역시 전도 1980년 중반 기준 ... 지금의 문현동 현대아파트 자리며 문현 교차로 삼성아파트 단지 등에 있던 구릉지들은 사라진지 오래다.
2023
문현동 과수원 부지 안에 있는 상수리나무 노거수 마침 연결통로가 있어 최근들아 가장 가까이서 그 모습 담을 수 있었다.
2011
2017
2023
반바지 차림이라 수풀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도깨비 가지가 곳곳에 자라고 있음을 확인했다.
아버지와 내게 시집와서 힘겹게 살고 있는 두 사람 미안하고 죄송스러울 따름이다.
그나저나 아머니 안색이 예전같지 않다. 금방금방 까먹는 일이 일상화 되었다. 자주 찾아 뵙지 못한 죄송스러움에 마음이 울컥했다. 그런 어머니와 늘 다투며 챙기는 아버지의 모습 또한 안스러웠다. 아 어디 복권 당첨같은 그런 행운은 없을까
그리만 된다면 집안의 평화로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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