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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부산작가회의 여름회의 특강하러 가서 -옥계마을 서어나무 군락을 보고

by 이성근 2024. 9. 1.

생태적 감수성 회복을 위한 몇 가지 제언 이성근(그린트러스트 상임이사)

우리나라 인구의 90%가 도시에 거주한다. 한때 3천만 명이 농부였지만 시나브로 이 땅의 남쪽 사람 대부분이 도시민이 되었다. 더 나은 삶을 위해, 출세를 위해 다양한 동기와 목적으로 도시로 와서 기꺼이 도시민으로 살아간다. 살다보니 누구는 아파트에 살고 또 누구는 단독주택, 누구는 빌라나 맨션에 적을 두고 있다. 나 역시 그때 이촌 대열 중의 한 사람으로 도시민이 된 지 50년이 넘었다. 그 세월 속에 생명의 터전인 흙과 녹은 눈 녹듯 사라졌다.

한 평 맨흙조차 밟을 수 없는 빌어먹을 이 도시

새벽 4시 반쯤이면 직박구리를 비롯하여 딱새가 번갈아 가며 집 앞 빌라 옥상 피뢰침에서 존재감을 알린다. 잠결에도 직박구리는 시끄럽고 그나마 박새는 듣기 수월하다. 7시 반쯤 눈을 뜨고 베란다에 선다. 거기 펼쳐진 경관을 오래전부터 기록해 왔다. 근경은 문현교차로 주변과 수정산 자락이고 그 너머 북항과 서구의 중앙공원, 그리고 영도 일부가 원경으로 보이는 풍경이었다. 1997년부터 찍기 시작한 한 컷의 동일한 장면은 맑고 흐리거나 비 오고 눈 올 때며 낮과 밤을 가리지 않았다.

변화는 200125층 문현삼성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부터 본격화되었다. 아침저녁으로 마주하던 일상의 풍경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원래 작은 언덕이 하나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대공포대가 있었던 자리라고 했다. 주로 인근 주민들이 텃밭으로 이용했던 땅이다. 봄이면 일제히 꽃을 피워 올린 아카시로 하여 달착지근한 꽃내음이 바람에 실려 오곤 했다. 그리고 뒷배경으로 수정산이 병풍처럼 드리워져 있었는데 이제는 아파트 동 사이로 얼핏 보일 뿐이다.

문현교차로의 옛 지명은 연동개(蓮東開)라 불렀다. 황령산 남사면의 고동골이며 지게골 골짜기에서 흘러내린 물들이 합류하여 동천으로 유입되는 집수역으로 큰 연못이 있었다고 한다. 늘 연꽃이 피었던 연동개 뒤편 우암동 쪽 언덕에는 신선이 와서 머무는 넓은 터라는 뜻의 광선대(廣仙臺)가 있었다. 부질없는 상상이지만 그 시절이 담고 있던 일대의 풍광은 참으로 뛰어났을 듯하다. 그 터가 지금의 문현동 교차로이며 교차로 주변은 평균 35층에서 40층 최대 49층의 마천루로 변해버린 것이다. 한마디로 창()이 없어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 변화를 발전이라 했다. 그러나 나는 승자독식의 이런 발전이 달갑지 않다.

2024년 현재 문현동 주변은 일변했다. 여기에 재개발이 골짝골짝 이루어지고 있다. 집 뒤 묘산으로 지명이 변경된 옛 통일동산 자락도 마찬가지다. 봄밤이면 들리던 호랑쥐빠귀와 솔부엉이의 울음소리는 경동건설이 만든 아파트가 들어선 뒤 다시는 들리지 않았다. 철새들의 경유지 또는 서식지가 사라진 것이다. 대신 전에 보이지 않던 외래침입 생태교란종 양미역취가 터 잡기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이런 현상은 묘산의 뒤쪽 지개골에 들어선 롯데캐슬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사라진 바람길

비단 문현동만의 일일까. 눈뜨고 제일 먼저 마주하는 풍경이 콘크리트 덩어리로 가득 찬 고층 고밀의 아파트라는 사실은 이 도시에서의 삶이 매력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단지 안에 조경을 잘했다 한들 그것은 생태적으로 고립된세계의 치장이자 몸부림일 뿐이다. 거기다 각 단지마다 출입이 자유롭냐면 그도 아니다. 그들만의 성으로 전락했다. 마을과 골목, 사람살이의 통로가 사라졌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런 세계를 갈망해 왔고 기꺼이 동참하고자 줄을 서고 있다. 돈이 되기 때문이다. 후세가 어떻고 미래가 어떻게 될지에 대해선 관심이 없다. 시세차익으로 공돈을 바라는 바가 크기 때문에, 낡고 오래된 집을 붙들고 있느니 이참에 한몫 노려보자는 심리가 팽배해 있다. 그것이 너무도 천연스레 노골화된 현장이 우리들의 주거 현장이다. 하긴 이 꼴이 부산만의 것도 아닌 나라 전체가 부동산에 휘둘리다 보니 불가역적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원주민의 재입주율이 높은가 하면 그도 아니다. 재개발, 재건축의 명분으로 변화를 강제하는 과정에서 합법적 폭력이 자행된다. 예컨대 조합이 만들어지고 시행사가 선정되는 과정에서 원래의 집값으로는 입주가 어려워 웃돈이 들어가게 되는데 지불 능력이 있는 세대주만 조합에 동참하게 되고, 동참 여력이 안 되는 세대주는 새로운 거처를 찾아 떠날 수밖에 없다. 버티면 강제수용이 이루어진다. 그들은 어디로 깄을까.

떠나간 것들은 사람만이 아니다. 거점 산지를 중심으로 펼쳐진 생태축은 단절과 고립을 강제당했다. 도심 내부의 산지를 보면 온전한 곳이 없다. 부산의 정중앙에 위치한 황령산을 예로 든다, 정상에서 부산 시역을 조망한다면 이 도시가 걸어온 길이 훤히 보인다. 한마디로 계획 없음이다. 원래 부산이란 곳의 도시형성 자체가 자생적이기 보다 근대현대사의 굴곡과 부침(浮沈) 속에 기형적으로 거대해진 도시이다 보니 심한 불균형과 불평등을 나타내고 있다

최근 황령산(427m)은 전에 없이 대규모 개발에 노출되어 있다. 시민공원 17개 면적의 황령산은 4개 지자체가 황령산과 금련산을 경계로 행정구역을 나누고 있다. 주로 문제가 되는 곳은 남구와 진구 쪽 정상부와 사면이다. 개발업자는 산 정상부에 125m 높이의 전망 타워를 세우는 한편 전포동을 연결하는 케이블카를 설치하고 스키돔 부지에 500실 이상의 대규모 호텔을 만들려고 한다. 이 모든 것을 한 업체가 통으로 건드리는 것이다. 그런데 명분이 가소롭기 짝이 없다. 스키돔을 흉물이라고 했다.

대관절 그 흉물 덩어리를 만들 수 있도록 누가 승인해 주었단 말인가. 또 흉물은 어떤 경위로 들어섰던가. 엉터리 온천수에 의거해 온천지구로 지정하고 대규모 온천위락단지로 만들려다 시민환경단체의 반대로 백지화되면서 절개된 땅을 복원한답시고 들어선 것이 스키돔이었지만 1년 만에 망했다. 시민이 지역의 자연 자산을 지켜냈다는 자긍심이 서린 산이지만 늘 개발에 노출되어 있었다. 접근성 양호하고 도심 내부라는 조건은 개발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호조건이다.

송도 케이블카 사업으로 재미를 본 적이 있는 개발업자는 집요했고 2021년 때가 되었다 싶었는지 개발을 공식적으로 천명했다. 환경단체가 즉각적으로 반발했다. 어처구니없게도 최소한 중립을 표명하며 보전을 우선해야 할 부산시는 업자의 편에 섰다. 박형준시장은 지역관광 활성화를 명분으로 대원플러스와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노골적인 업자 편들기였다. 이후 절차와 과정에 동원된 도시계획위며 건축경관위의 조건부 승인은 시민의 분노를 가중시켰다. 암담한 사실은 신임 환경부 장관이 케이블카 옹호론자란 것이다. 설악산, 지리산, 남산, 신불산, 황령산이 바짝 긴장하기 시작했다.

도심 중앙의 산지 하나를 개발업자의 사적 이윤추구의 장으로 만드는데 앞장서는 부산시를 잘하고 있다고 박수 쳐 주어야 할까. 수만 수천 년 변함없던 고유의 경관은 거대 인공구조물에 의해 원형을 상실하게 된다. 또한 낮과 밤의 구분없이 산 정상부는 불야성을 이루게 됨으로써 소음과 빛공해에 시달리게 된다. 가장 최악은 그나마 보이던 별도 지워지게 된다. 거기다 1365일 탄소와 쓰레기를 배출하게 된다. 주변 식생과 동물군은 엄청난 스트레스에 피폭당한다. 상상해보라 그 고통을,

한편 정상부의 조망과 이용은 누구에게나 차별이 없이 원할 때 볼 수 있었고 즐길 수 있었다. 그런데 이후는 돈을 내야만 이용 가능한 장소로 전락한다면 우리는 뭘 해야 할까. 침묵하고 개발업자와 부산시의 명분을 환영하며 동참해야 할까.

황령산은 달음산과 장산에서 영도 봉래산까지 이어지는 금련산맥의 중간 거점이다. 1960년대까지만 여러 갈래의 능선과 구릉이 이기대까지 연결된 생태통로였다. 그 생태 통로라는 것은 해양과 육상의 전이지대를 포함하여 낙동정맥과 백두대간으로 이어진다. 포유류를 비롯하여 야생 동물의 이동통로지만 생태축으로서 생물의 다양성이 유지되던 맥이라 할 수 있다.

창원이나 세종시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지형을 고려하고 터잡고 살아온 생명과 사람을 배려하는 정책이어야 했다. 그러나 이 도시의 어떤 시장도 그런 친절을 베풀지 않았고 오히려 토건자본과의 유착을 은밀히 또는 노골적으로 진행해왔다. 예컨대 다대만덕 택지개발 특혜 의혹사건이나 해운대 미포 LCT 특혜 의혹사건은 대표적 사건이다. 시정의 최고 책임자며 국회의원을 비롯하여 지역에서 행세한다는 자들 상당수가 연류되었고 일부는 실형을 살았다. 사회적 지탄은 한때 지나가는 소나기였을 뿐 그들은 지금도 건재하다.

그래서일까. 지금 이 순간에도 부산시와 남구청은 이기대 섶자리에 대형건설사의 아파트 건설을 밀고 있다. 어떻게 저 자리에 허가가 날 수 있단 말인가. 아무래도 수상쩍다는 의심이 생기지 않는다면 더 이상한 일이다.

괘씸하기 짝이 없는 것은 아파트가 입지 할 장소가 적지가 아니란 것을 알면서도 계획을 추진한 저의다. 다시 말해 시민 반발이 대두될 것을 알고도 벌인 짓이란 것이다. 개발업자 동서 아이에서는 동백섬과 이기대를 연결하는 해상 케이블카 사업을 추진하다 가로막히자 매입해 두었던 섶자리에 아파트사업 계획을 신청했다. 여기에 부산시와 남구청은 거쳐야 할 심의 과정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생략하거나 절차적 고민 없이 진행 시키다 발목이 잡힌 상태다.

시민사회 환경단체와 지역민의 반발은 이기대 생태경관의 사유화이자 미래 및 공유자산의 침훼라 여긴다. 안타까운 사실은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는 사실이다. 아파트 건설 예정지역은 지구단위 2종 주거지역이라는 도시계획에 근거하고 있다. 현재 남구청의 건축 승인만 남은 상태지만 행정은 진퇴양난이다. 그럼에도 행정은 처음 시도했던 대로 업자의 손을 들어 줄 가능성이 짙다. 시민사회와 개발 반대를 외치는 지역주민의 주장대로 할 경우 개발업자가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고, 감사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당신이라면 어떤 판단을 할 것인가.

특히 해안가에 입지한 고층아파트의 존재는 부산의 기후 특성을 무시했을 뿐 아니라 도시민 사이의 위화감을 조성하고 있다. 부산 전체 고층건축물군은 42곳에 있고 이중 순수 업무용은 문현동 동천변 63층 국제금융센터뿐이다. 1990년대 초만 하더라도 도시 고속도로를 타고 오다 석대동이나 금사동에서 수영강 하구 쪽을 보면 수평선을 물고 있는 바다가 보였다. 지금은 키재기하듯 들어선 고층아파트들로 인해 바다 조망 자체가 사라졌다.

중앙대로와 수영대로 구간, 다시 말해 충무동에서 자성대를 거쳐 수영에 이르는 얼추 14km 구간 또한 바다를 잃어버렸다. 블록과 블록사이 유일하게 바다가 보이는 곳은 금련산역 4번 출구 성분도 병원이 있는 교차로 뿐이다. 바다의 도시가 일상에서 마주할 수 있는 바다라는 자원을 지웠다. 얼마나 끔찍한 노릇인가.

부산은 동해와 남해를 끼고 있는 전형적 해양성 기후의 지배를 받는 곳이다. 그리고 산이 많은 도시다. 국지적으로는 산바람이 불고 도시 전체로 보면 갯바람이 수시로 불어 왔었다. 그런데 그 바람이 길을 잃어버렸다.

부산의 내륙이라 할 수 있는 금정, 동래. 연산 부산진구의 여름 날씨가 예전 같지 않다. 예전에는 선풍기 한 대로 족했던 여름나기가 에어컨 없이는 고통스럽다. 8월 초 부산의 기온은 32~34도 수준이다. 그렇지만 도심 도로의 표면온도는 평균 52도이며 가로수가 잘 식재된 보행로는 평균 32도를 나타낸다. 엊그제 온도측정기로 촬영한 값이다. 여기에 2~3도 오르게 되면 폭염경보가 내려진다. 체감온도 35도가 되면 바깥출입을 자제하고 물을 많이 마시라는 둥 예방 조치 문자가 수시로 뜬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해안가에 난립한 고층아파트는 어떤 삶을 누리는가. 경관을 독점하고 높은 지대로 풍요롭게 산다. 이 건물군으로 인해 도시의 대기가 교란되고 그로 인한 비용 지불이 엉뚱한 곳에서 증가한다면 안 그래도 더운데 염장 지를 일 있냐며 분노할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이 같은 불평등한 시스템을 그다지 문제 삼지 않는다.

해마다 태풍이 부산을 관통한다. 그때마다 이 나라의 언론이 예의주시하는 곳이 있으니 마린시티다. 특히 만조와 겹칠 때면 아예 카메라를 고정시켜 놓고 혹시 모를 월파로 인한 피해를 담고자 한다. 원래 이곳은 해운대구 우1동으로 운촌이라 불리웠던 갯가마을이었다. 어족자원이 풍부하여 해운팔경 중 오륙귀범(五六歸帆)으로 회자되던 곳이다.

1982년부터 매립이 시작되었고 88서울올림픽 요트경기장 조성으로 대부분의 매립이 완료되었다. 초기에는 대우매립지 혹은 수영만 매립지로 불리다 1995년 이후 땅들이 불하되고 아파트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문제는 지구단위 계획을 세우며 주거지역 경계선을 해안선 코 앞까지 설정하면서 자연재해를 예방하는 완충공간을 등한시했다. 그 결과 태풍이 올 때마다. 침수되거나 월파 위험에 노출되었고 그때마다 여러 방비책을 세웠는데 그 돈은 시민 세금으로 나갔다. 여기에는 입주민의 이기심도 크게 작용했다. 1~2층 상가주들이 뷰를 가린다는 이유로 항의해 5m 이상 설치될 방파제를 1.5m만 설치했다. 800억 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잠재 설치사업 역시 그 연장선이다. 이런 아파트를 얼마나 더 지어야 할까.

2022년 기준 부산광역시의 전체 인구 대비 주택보급율은 102%. 인구는 해를 더할수록 줄어들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부산에서 분양한 아파트들은 모두 미분양 상태로, 준공 후 악성 미분양 물량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거기다 원도심을 중심으로 한 빈집은 16개 구군 11천 호에 달한다.

그런데도 신규 아파트 건설은 도처에서 진행되고 있다. 부산스러운 도시가 아니랄까 봐 시내 도처에 서 있는 기중기들은 이 도시가 어떤 수준의 도시인가를 웅변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정작 지금 이 도시에 필요한 것은 무엇이며 대관절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시정인가.

공존의 현장

원고를 쓰는 중에 소나기 한줄기 시원하게 내렸다. 도무지 감당이 안 되는 이 더위 속 퍼붓는 빗줄기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렇게 내린 빗물은 어디로 가는가. 마땅히 스며들 곳이 없다. 죄다 하수구로 몰려가서는 복개된 하천을 따라 바다로 가버린다. 오래전 복개된 동천의 전 구간을 답사한 적이 있다. 생명체라곤 쥐 몇 마리와 저질층의 실지렁이와 깔다구가 전부였다. 서면 광무교에서 초읍동 어린이대공원까지의 약4.1km 어둡고 역한 냄새로 가득한 지하 물길을 걸었다. 때로는 방독면을 쓰기도 했다. 중간중간 맨홀 구멍을 통과한 빛의 존재가 그렇게 반갑고 고마울 수 없었다.

복개 구간은 어린이 대공원 입구 성도암이란 사찰 뒤편에서 끝났다. 물은 맑았다. 계류에는 갈겨니가 몰려 다녔고 다슬기가 바닥을 기고 있었다. 그리고 낙엽이 쌓인 고인 물에서는 잠자리 유충과 도룡뇽의 유생이 쉽게 관찰되었다. 댐의 물이 넘칠 때 우회시켜 흘려보내는 여수로 쪽을 살필 때는 북방산개구리를 비롯 보다 많은 수서곤층류를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계곡 양안에 서 있는 졸참나무를 비롯하여 숲이 주는 안정감이 살아 있는 생명의 세계가 어떤 것임을 새삼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성지곡 수원지 숲은 인공 숲이다. 나는 이 숲을 소개할 때 100년 숲이라 한다. 댐은 1907년 착공하여 1909년 준공하였고 1915년 기념식수가 있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일대는 민둥산이었다. 122만 그루가 식재되었는데 소나무 93만 본, 상수리 4만 본, 아카시(그때 표기로는 아카시아) 9만 본이었다. 그때 심었던 나무들은 거목이 되어 숲의 어머니로서 살고 있다. 가끔씩 그들을 만나러 가기도 한다. 모두의 관심과 보호를 위해 터줏대감 나무라는 지위를 부여하여 명패를 붙여 놓았다. 오래된 미래이기도 하다.

부산에는 오래된 나무가 많다. 처음에는 마을의 노거수를 조사했고 두 번째는 개교 연도가 1950년을 전후한 학교 내 학교짱나무, 세 번째가 산지 노거수 조사를 하여 부산 전지역을 전수조사했다. 얼추 10년의 시간이 걸렸다. 그들을 만날 때면 설레고 힘이 난다. 가끔씩 시민들과 노거수 기행을 떠나기도 한다. 기회가 된다면 작가들과 현장을 공유해보는 것도 좋으리라.

헌데 너무 덥다. 매년 선풍기만으로 여름을 났지만 올해는 참을 수 없다. 업무능력이 많이 떨어진다. 에어컨에 대한 유혹이 드세다. 사실 사무실 앞에 15층 신축건물이 들어서지 않았다면 창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만으로도 이럭저럭 견딜 수 있었을 것이다. 힘든 것은 사무실 안에 더불어 살고 있는 약 90종의 식물 또한 생육상태가 좋지 못하다. 바람과 빛의 공급이 원활하지 못하자 고사체도 생겨났다. 배치를 새롭게 하여 반그늘과 양지 선호 식물들을 분리했다. 물론 물은 주기적으로 주어야 한다. 출장 갔다 와서 가장 먼저 하는 일 중 하나가 이 친구들의 갈증해소다. 그러면서 늘 말을 건다. 그러면 그들도 답한다.

요즘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다. 폭염과 열대야를 번갈아 가며 당하다 보니 이래가 살겠냐는 하소연이다. 축 처진 이파리는 가장 명확한 의사전달이다. 왜 이래 더워졌나? 해를 더할수록 견딜 수 없을 지경이라 한다. 이 모든 것이 인간종의 과도한 욕망이 야기한 결과 아니겠는가.

특히나 지구 평균기온의 상승은 폭염을 가속화시키고 생물 다양성에 큰 구멍을 내고 있다, 지구 평균기온을 관측한 이래 2024년 들어 연거푸 기록이 갱신되었다. 미국 국립환경예측센터(NCEP)에 따르면 1979년 관측 이래 가장 무더운 날로 기록된 7년 전 16.92를 넘어 17.18를 기록하며 새롭게 경신됐다. 이 수치는 평균 32~35를 오가는 대한민국의 7월 말 평균 온도에 비하면 절반에 불과하여 오해의 여지가 있겠지만 실상 밤 동안의 기온과 세상 모든 극지의 기온을 평균 낸 값이다.

이로 인해 지구촌 곳곳에서 폭염과 폭우, 태풍과 물난리 등 기상재해가 끊이지 않고 있다. 해수면 온도 또한 15개월 연속 최고 기록을 갱신했다. 이렇듯 폭염은 지구 가열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음을 증빙하는 것이다.

지구 평균기온 0.5또는 1상승이 의미하는 바는 실로 엄청나다. 다시 말해 세상이 죽어난다는 것이다. 경고는 오래전부터 있었고 이제는 티핑포인트(임계점)를 넘어섰다는 보고도 곧잘 들린다. 뜨거워진다는 것이 야기하는 바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함에도 그다지 놀라워하지 않는 것이 더 놀랍다. 충격이 반감되는 것은 역설적으로 자주 접하다 보니 무감각해져 그렇구나의 인지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어쩌면 본질적인 위기는 이런 위기와 경고에 대한 수용 태도 자체에 있다.

지구 평균기온 1.5상승은 해수면 상승을 가속화시켜 부산의 상당수 저지대를 바닷물 속에 가라앉게 한다. New Climate Central 시나리오에 따르면 수영강 하류 양안을 비롯하여 동천지역 등이 침수된다. 심지어 강서지역은 거의 대부분 잠겨버려 김수로왕과 허황후가 만나던 시대로 되돌아간다. 이뿐인가. 폭염 발생 빈도는 8.6, 가뭄 발생 빈도 2.4, 태풍 강도 10% 증가, 토지 6.5% 사막화, 곤충 6%, 척추동물 4% 멸종, 식물 8% 멸종, 산호초 70% 파괴 나아가 밀 생산 12% 감소, 쌀 생산 6% 감소된다. 불과 1.5상승이 가져올 결과다. 하물며 3상승이며 5상승은 상상을 불허할 끔찍한 디스토피아를 예고한다. 전 세계 탄소 배출 10위 대한민국은 여기에 상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 나아가 한국 제2의 도시라는 부산시 또한 자유로울 수 없다.

2030년에는 지구 평균 온도가 1.5도 상승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남은 시간은 54개월. 그럼에도 우리는 전혀 다른 행성에서 사는 것처럼 무심하다. 대관절 이 정체는 무엇인가. 뼈저리게 느끼고 체감했어도 코로나 팬데믹 3년의 악몽을 고스란히 망각하는 현상을 보자면 인간이란 존재는 어쩔 수 없는 것인가라는 체념까지 따라온다. 그렇지 아니한가. 7억 명이 감염되고 15백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 누구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다. 이 과정에서 나타난 불평등은 기후재앙 앞에서 더 심해질 뿐이다. 더욱이 본격적 기후재앙에 비하면 코로나는 전초전에 불과할 뿐이다.

15분 도시

바람이 길을 잃어버리자 바람길 조성사업이 등장했다. 숲을 이용한 대기 순환응용이다. 도시 외곽이나 산지에서 발생한 공기를 내부까지 이어지도록 바람의 생성, 이동, 확산을 위해 도시 내부에 숲을 조성하는 사업이다. 지자체와 산림청이 전국적으로 벌이고 있다. 도시 쾌적성 유지와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기 위함이다. 나아가 생물다양성에도 기여하고 함이다.

바람이 통하지 않는 도시는 미래가 없다. 좀 더 편한 세상을 위한다지만 인간의 행위는 에너지를 소비하고 태우는 것밖에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발생한 열기는 고스란히 도시 내부를 데운다. 콘크리트 철골구조로 이루어진 도시의 거대한 구조물은 바람막이가 되어 바람이 길을 잃게 만들었다. 배출된 오염물질은 외부 유출이 차단됨으로써 고스란히 도시 내부에 쌓이게 되었다. 그 현상은 도로변에 서 있는 가로수들의 수피를 보면 금세 확인된다. 매연과 검뎅, 오염물질에 찌든 가로수는 고유의 빛깔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거기다 대부분의 가로수는 상가 간판을 가린다는 이유로 과도하게 전정을 당해 닭발로 서 있다. 여과 장치나 방어막이 부실한 관계로 도시의 기온은 상승할 수밖에 없다. 이른바 열섬현상이다. 데워진 도시의 열기는 밤에도 유지된다. 열대야의 등장이다.

사람들은 더위를 피해 탈출을 시도한다. 조금이라도 벗어나 자연과 접하고자 함이다. 적지 않은 비용과 시간을 아낌없이 지불한다. 유감스럽게도 그 지불의사는 도시 내부의 변화에는 인색하다. 반전이 필요하다. 휴식을 위해 떠났던 행위가 실제 생활과 현장에서 재현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살고 있는 곳과 일터에서 일상의 휴식과 충전을 갈망하는 욕구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2년 전 한 달 정도 유럽의 공원녹지를 충실히 탐방할 기회가 있었다. 주로 많은 시간을 독일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누비고 다녔다. 바람길의 선구 도시 슈투트가르트를 비롯하여 쇼몽 정원박람회 등이었다. 그중 파리는 20년 만의 재방문인지라 변화를 확인하고 비교함을 통해 격차를 실감할 수 있었다. 말로만 듣던 파리 재녹화 프로젝트는 놀라웠다. 계기는 파리 올림픽이었고 안 이달고 파리시장은 그 중심에 있었다. 이달고 시장은 15분 도시의 신봉자이기도 했다.

15분 도시는 보행과 자전거를 비롯한 대중교통 중심의 이동 수단이 지배하는 도시를 말한다. 15분 도시 개념의 창시자 카를로스 모레노(Carlos Moreno) 소르본대 교수는 도시의 스피드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자동차 중심이 아닌 보행자 중심의 도로, 특정 거점이 아닌 시민 개개인이 중심이 되는 도시, 새로운 인프라 건설이 아니라 기존 인프라를 바탕으로 한 공간의 재분배가 바로 ‘15분 도시의 원칙이다. 여기에 5분 거리마다 공원이 있다면 어떤 세상이 되겠는가. ‘15분 도시로의 변모는 인류가 직면한 기후재앙 시대를 극복하는 탄소중립과도 직결된다. 화석연료 사용에 대한 지양성, 이동 근접성, 자원의 순환성, 녹의 확대는 효율성과 승자와 강자 중심의 세상에 대한 일대 변화를 촉진한다. 15분 도시로의 변화는 생활과 일터의 분리를 최소화하고 공동체적 삶으로의 회복을 돕는다. 이러한 변화 가능성과 비전은 많은 도시를 움직이고 있다.

현재 파리, 멜버른, 발렌시아, 상하이 등 세계 여러 도시가 15분 도시계획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고 심지어 부산조차도 시책의 핵심사업으로 설정하고 있다.

2년 전 파리는 대수술 중이었다. 명소를 비롯하여 중심가 심지어 변두리 뒷골목 같은 2차선 이면도로 대부분이 다이어트 중이었다. 차선 하나를 지우면서 대신 정원을 조성하거나 교관목과 초화류의 식재를 통해 녹지로 전환 중이었다.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더 많은 자연을 도시에 입히고 있었고 그러한 정책에 상당수 파리시민의 공감이 있었다. 폐선 부지를 세계적 명소로 만든 뉴욕 하이라인의 원조인 쁘롬나드 쁠랑떼는 철거 예정인 부산 동서고가를 새롭게 해석하는 계기를 주기도 했다.

우리는 어떤가. 선거철 단골 메뉴는 여전히 도로개설이며 주차장 건립이다. 나아가 대규모 개발프로젝트는 지금 같은 저성장과 지역침체라는 막다른 골목을 월담하는 호재로 받아들인다. 그러하기에 검증되지 못한 자연개조 개발사업은 큰 저항 없이 시민찬성으로 덧씌워져 읽힌다. 언론은 충실한 나팔수 역할을 자청한다. 그리고는 가덕신공항 건설 같은 사업이 안 되면 지역이 폭삭 망할 것처럼 위기를 조장하고 프레임을 가동 중이다. 과연 그런가.

부산 유일의 천연의 숲 가덕도 100년 숲

부산에서 제일 큰 섬, 영도 보다 1.5배 큰 섬 하나가 7000년 역사의 종지부를 앞두고 있다. 난데없는 비행장 건설로 내장된 역사와 문화, 사람살이의 터, 뛰어난 생태경관 자산이 제대로 부각되지도 못한 채 사라질 예정이다. 억하심정의 가덕도는 살려달라고 외쳤지만 섬 밖을 벗어나지 못했다. 국토수호의 명을 받들고 가덕수로를 오가는 군함과 잠수함이 있지만 우리 땅이 아닌 듯 본체만체 지나칠 뿐이다. 400명 좀 넘는 주민들은 끝난 게임이라 판단하고 보상 투쟁에 들었다.

가덕신공항 특별법이 제정 공포된 2021316일로부터 보름째 되던 날, 문재인정권은 국무회의를 통해 가덕도 신공항의 안정성을 검증하는 사전 타당성 조사를 1년 만에 완료하겠다며 속도전을 예고했고 그대로 됐다.

관련하여 반대 의사를 가장 적극적으로 피력했던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네 번 국회의원을 하면서 낯부끄러운 법안이 통과되는 것을 자주 봤고, 선심성 공약이 난무하는 것도 봤지만 이번처럼 기막힌 법은 처음 본다.”“10조 원이 넘는 대형 국책사업을 예타도 면제하고 각종 특혜를 몰아서, 그것도 패스트트랙으로 추진하는 걸 어느 국민이 이해하겠나.”고 법안 통과의 부당성과 문제점을 성토했다.

그 문제점은 당시 주무부처였던 국토교통위가 주최한 입법 공청회, 그리고 전문위원 검토보고서 등에서 제기한 것인바, 가덕도 신공항 건설에 당초 부산시가 추산한 75000억 원의 4배에 달하는 286,000억 원이 소요될 수 있고, 안정성 · 경제성 · 환경성 등 7개 영역에서 문제가 있다는 보고서는 근거 없는 것이 아니었다. 건설 과정의 로드맵 또한 정상적 절차라면 총 16(192개월)이 공사 기간으로 2036년이 돼야 사업이 종료된다는 것이 국토부의 의견이었다. 작게 잡아도 항공 수요 조사에는 12개월이, 사전타당성과 예비타당성 조사, 기본계획 수립까지는 36개월이, 실시계획 승인과 공사발주까지는 12개월이, 착공과 준공까지는 2028년부터 2036년까지 96개월이 소요될 것으로 국토부는 전망했다. 이것은 공항시설법과 국가재정법, 건설기술진흥법 등 현행법을 근거로 삼고 있다. 그런데 특별법은 이 과정과 절차들을 무시(간소화 내지 생략)하고 2029년 완공을 목표로 했다. 부산시가 2030년 월드 엑스포 개최를 깔았기 때문이다.

가덕도 신공항 개발사업은 언제 시작된 걸까? 이 사업의 기원은 2006년 중국 민항기가 김해 돗대산에서 추락하자 발표된 노무현 대통령의 동남권 신공항 건설 타당성 검토 지시다. 이후 거의 18년간 동남권 신공항 건설사업은 입지와 공항의 명칭을 둘러싼 지역 간의 첨예한 대립과 갈등으로 점철되었고 주요 선거, 특히 대통령 선거 시기마다 명암을 달리했다.

현재의 가덕신공항 이슈는 2018년 제76 ·13 지방선거 당시 오거돈 민주당 부산시장 후보가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재점화됐다. 김해신공항을 고수하던 국토부는 불변의 입장이었지만, 부산 경남의 가덕신공항 추진론자들은 김해공항 확장안이 안전, 소음 유발, 경제성과 확장성 부족 등으로 관문 공항 역할을 하지 못한다며 시종일관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국토부는 부울경 단체장 합의로 김해신공항 검증작업을 국무총리실에 맡기기로 했고, 결과는 근본적 검토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근본적 재검토의 결과는 영남권 신공항 후보지 세 곳 중 가장 낮은 점수를 받았던 가덕도에 신공항 건설을 추진한다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시부저기였다.

부산시와 추진론자들은 가덕신공항 건설이 지역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의 마중물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다. 생산 유발액은 889,420억 원, 취업 유발인원은 536,453명에 이른다고 했다. 풀어보자면 공항 건설에는 75,445억 원이, 공항으로 들고 나기 위한 도로와 철도, 고속철도 등 공항접근 교통망의 구축 사업에는 179,478억 원이, 배후도시 개발사업에는 333,159억 원 등이 투입된다는 것이다. 이로 인한 파급 효과는 공항건설, 운영, 항공운송, 여객여행 지출액, 가덕신공항 접근 교통망 구축, 배후도시 개발 등 6가지 요인에 대한 효과를 합산한 결과라고 했다.

과연 이러한 기대치는 합당한 걸까? 최근 가덕신공항 부지조성공사 입찰이 연거푸 유찰되었다. 급기야 이대로는 공기를 채울 수 없어 입찰 조건을 대폭 완화하고 공사기간도 1년 연장되었다. 부산시가 예측하듯 기대효과를 충족하는 조건은 아무것도 준비된 것이 없다. 철도, 항만, 공항 트라이포트와 물류의 연결과 확장성이 가져올 장밋빛 미래를 철석같이 믿고 있을 뿐이다. 그 사이 어떤 일들이 일어났던가.

남부권 유일 관문공항으로 자리매김하려던 가덕신공항 건설에 더하여 2025년 착공, 2030년 개항을 목표로 하는 대구신공항 건설이 가시화되고 있다. 개발 배경과 논리, 기대효과가 오십보백보다. 수요와 예측에 큰 구멍이 생긴 것 아닌가. 둘째, 월드엑스포의 참패다. 가당찮은 일이라고 일찌감치 기대를 저버리고 관망하던 소수의 사람들을 빼고는 시민의 기대는 믿었던 만큼 오지게 박살났다. 박형준 시장의 시정 1순위 였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엑스포 유치는 가덕신공항 건설의 명분이었기 때문이다.

국토부는 유일한 대안이라던 기본계획()을 바꾸면서 전략환경영향평가의 수행목적과 정의를 스스로가 파기해버렸다. 참고로 전략환경영향평가란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계획을 수립할 때 환경보전계획과의 부합 여부 확인 및 대안의 설정, 분석 등을 통하여 환경적 측면에서 해당 계획의 적정성 및 입지의 타당성을 검토하여 국토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도모함을 말한다. 그런데 가덕신공항 건설 계획의 목적이 세계박람회 유치 등을 적기에 지원하기 위한 시설이란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가덕도를 신공항으로 점찍어 놓고 사활적으로 밀어붙인 집단과 그에 동조하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은 수도권 일극주의 극복과 국토균형발전, 남부권 관문공항, 심지어 전쟁 대비를 위해 가덕도 신공항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물론, 수도권 일극주의는 경계하고 극복해야 마땅하지만, 그 극복 방안이 반드시 가덕도 신공항만이 유일한 답이란 이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아가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개발에 따른 리스크, 중장기 문제, 우수 생태자산, 지역 역사 문화 등에 대한 의견 청취와 해소 과정을 위한 숙의가 있어야 함에도 그런 절차는 부재했다. 혹이나 우려하던 대로 신공항 건설이 삐꺽거리다 못해 이도 저도 쓸모없는 지경이 되었을 때, 그 책임은 어디에 누구를 지목해야 할까. 더하여 헤아릴 수 없는 숱한 생명의 몰살에 침묵했던 우리는 자유로울 수 있을까.

현장을 본 사람 열에 아홉은 입장을 바꾸었다. 환경단체가 절차와 과정의 비민주성, 뻥튀기된 기대효과를 내세운 천문학적 혈세의 낭비, 그리고 부동침하나 조류충돌에 따른 안전성의 문제를 차치하고서라도 용납할 수 없었던 문제는 가덕 그 자체의 자연성이다.

2022년 가덕도 국수봉 100년 숲은 제20회 내셔널트러스트 이곳만은 지키자대상을 수상했다. 유감스럽게도 이 소식은 단 한 차례도 지역 언론에 소개되지 못했다. 나아가 가덕의 생태적 가치를 조명한 언론은 어디에도 없었다. 한 번이라도 제대로 조명되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아무튼 100년 숲은 동백나무와 후박나무 등이 자생하는 상록난대림과 굴참나무-느티나무 군락, 졸참나무-고로쇠나무 군락 등으로 이루어진 낙엽활엽수림으로 구성되어 있다. 숲은 안정화되어 있으며 극상의 단계로 진행 중이다. 가파른 지형인데다 군 작전지역으로 인해 일반인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됨으로써 가능했던 천이(遷移). 이 사실을 알고 있는 부산시민은 극히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부산의 경우 산과 바다가 만나는 천혜의 환경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독특한 자연을 투영하는 식물군락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1910년 조선 임야 분포도는 가덕의 변화를 읽는 열쇠라 할 수 있다. 특히 동백군락지의 경우 남해안의 이름난 그 어떤 동백숲보다 뛰어나다. 더욱이 동백은 부산광역시의 시목이기도 하다. 부산시는 여기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다.

한편 가덕도 전체 노거수는 111그루이며 이중 공항 건설 예정지인 국수봉을 중심으로 대항과 외양포 주변에서 모두 50그루가 조사되었다. 대부분 초병 순찰로며 등산로 주변 반경 5m에 자라는 거목(최소 흉고 2.5m)을 기준 했을 뿐이다. 다시 말해 그 기준을 적용하지 않는다면 수백 그루가 된다는 것이다.

이 땅에 100년 된 숲이 많을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그럼에도 사전 타당성 조사며 전략환경영향평가에서 이들의 존재는 거론되지 않았으며 누락되었다. 심지어 기존 1등급에서 2등급으로 등급 하락까지 서슴지 않았다. 누락된 것은 부지기수다. 그 결과 멸종위기 2급 대흥란이며 흰산철쭉 같은 한국 특산종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결과치는 포유류며, 조류, 양서파충류 등 분류군 전체에 적용되는 바, 한마디로 누락과 부실로 점철된 엉터리에 다름 아니다. 그럼에도 환경부는 놀랍게도 조건부 동의로 존재 이유를 부정했고, 국토부는 기존에 발표했던 인공섬 형태의 기본계획()을 돌연 변경하면서 섬과 해양을 잇는 계획안으로 수정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문제는 신공항 건설에 필요로 하는 골재 수급이 자체 조달이다. 곧 가덕 100년 숲을 비롯한 일대의 산지 4개를 밀어서 매립토며 기반재로 쓴다는 것이다. 남아나는 것이 있을 수 없음이다.

남아나는 것이 없다는 것은 생태적 전멸에 다름 아니다. 생태적 감수성은 그 아픔과 고통에 동참할 때 살아난다. 시방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살아 있는 존재들이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기후재앙과 파괴적 개발 앞에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부디 외면하지 마시라, 가덕 동백의 눈물을.

[] 11-박정애

 

990214, 61밖 우주공간에서

슬쩍 한 번 뒤돌아본 보이저의 눈에

눈물겹게 아름다운 청보석 초록별 하나가

수십억 년 전 티끌로 응축된 유기물인

녹두알만한 그것이 지구였다면

우리 영혼이 기거한 육신을 빈 가옥처럼 두고

천국으로 가는 사람이 뒤돌아보듯

지극한 거리에서 어느 한 경계를 건너가는

그의 눈에는 가슴 시리도록 애잔했겠다

끝이 없는 어둠으로 채워진 우주공간

홀로 떠도는 별들도 외로워 집단을 이룬

그런 은하가 대략 천억 개나 있고

노염에 불타는 용광로를 가진 태양계와

이 무한 연령의 광대무변한 우주공간에서

푸른 바다 푸른 하늘 흰 구름 양떼를 몬

생명 가득한 지구별에 살면서

특별히 우리만 존재의 행운을 누린다면

이 얼마나 염치없는 일인가

그럼에도 은밀하게 지구 동식물이

선악이 없는 화려하고 장엄한 자연계가

나의 이익과 나의 즐거움에 예외적 멸사봉공

헌신하기를 강요하는 지상낙원 지구에서

설계도면 없는 천국건설 현장은

이판사판 공사판

*1993«국제신문» , 1997«경향신문» 시조 당선. 시집 바다악사

릴리트-정익진

릴리트*, 수컷 없이 새끼를 낳는다는 암컷 상어의 이름이다.

부조리한 섭생으로 몸의 생리가 뒤바뀐 일종의 돌연변이,

 

물의 온도를 맞춰가며

그 집에서 키웠던 악어 새끼의 이름은 무엇이었을까.

 

연어가 강물을 거슬러 올라 부화하듯

릴리트는 파리의 센강 아래까지

유유히 숨어들어 이미 둥지를 틀었다. 위험 수위 최상이다.

 

유람선과 보트가 떠다니는 한강 아래에 거대 식인 상어가

나타났다면

낙동강과 다대포가 만나는 그 지점에 상어 떼가 출몰한다면

우린 강의 낭만과 서정을 노래한다거나 추억을 되새김하지

못하리

 

독일의 사회학자 아도르노, 그가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를

쓴다는 일이

야만이라고 말한 것은 한반도의 일곱 배 이상, 무게 약

팔만 톤의

쓰레기 섬들이 둥둥 떠다니는 이 사태를 예견한 것이리라

 

쓰레기 더미에 뒤섞여 살과 뼈를 가진 동물들의 사체가

부유하고

그것을 파먹고, 뜯어먹는 피라니아와 같은 물고기 떼와

청상아리들,

 

핏물이 먹구름처럼 퍼져가는 바다,

 

인어와 세이렌의 노래도 더 이상 들려오지 않는다.

 

릴리트는 바다의 여신, 그녀가 대자연의 질서를 거역하지

않는

모계母系라면 달무리를 향해 꼬리를 칠 때마다

방울지는 물방울에서 생명체 하나씩 탄생할 것이다.

 

릴리트, 릴리트, 부디 너의 바다로 무사히 되돌아갈 수

있기를

*영화 <센강 아래(Under Paris, 2024)>에 등장하는 상어의 이름.   *1997«시와사상» 등단. 시집 스캣.

바다 새-황길엽

하늘인지 바다인지

바다 새는 하늘을 헤엄치고 있다

 

숨이 차오른 왜가리, 고깃배 솟대 끝에

날개 한쪽 걸어두고 날아간 짝을 기다리다

깊게 내뿜은 하얀 물거품이 그의 눈물인가

 

갈매기 울음이 뱃고동소리를 지우는데

생선비늘 같은 윤슬에 수평선은 경계를 뭉개고

하늘은 거꾸로 매달려 온몸으로

서서히 바다를 점령해버린다

 

바다를 잃은 바다 새

해안으로 밀려드는 온갖 쓰레기에 밀려

무거운 날개 내리고 발목 잡힌 괭이갈매기

수평으로 나란히 파도를 탄다

*1991«한국시» 등단. 시집 무심한 바람이 붉다.

<소설 낭독>

-나여경

사냥개가 유리문을 차고 오르며 맹렬하게 짖기 시작한다. 당장 유리문을 뚫고 들어올 기세다. 불안한 새끼들은 다리를 구부리고 주저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한다. 쿵쾅쿵쾅 울리는 내 심장이 밖으로 터져 나올 것처럼 요동친다. 심장 소리가 너무 커 가족들의 귀에도 들릴 것 같아 일부러 발소리를 쾅쾅 울리며 좌우로 움직임을 멈추지 않는다. 조바심을 내던 새끼의 어미가 나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한다. 불안감이 극도로 높아진 새끼들의 속울음이 밖으로 터져 나온 것도 그때다.

경찰들과 사냥꾼들의 움직임이 분주해진다. 그들이 횡렬로 늘어서 문 앞을 막는 모습이 보인다. 나는 문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간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가족들의 방패막이가 되기 위해서이다. 경찰과 사냥꾼들이 일사불란하게 총부리를 이쪽으로 겨누고 있다. 터질 것 같던 심장이 어느 순간 멈추기라도 한 듯 고요해진다. 이상한 일이다.

새끼 중 하나가 내 앞을 가로질러 밖으로 뛰쳐나간 건 순식간이다.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고 유리문을 깰 듯 사냥개들이 높이 치솟은 모습을 본 직후다. 밖으로 급하게 뛰쳐나가던 새끼가 탕, 소리와 함께 하늘로 솟아오른다. 새끼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검붉은 피가 유리창 사방으로 튄다. 총에 맞은 새끼가 땅으로 내려앉은 것과 총을 겨눈 사냥꾼을 향해 우리 가족이 달려 나간 건 거의 동시다. 사람들의 비명과 함께 탕, 하는 한 발의 총성이 울린다.

유리 상자를 벗어나 밖으로 튀어나오는 우리 가족을 보자 순간적으로 횡렬로 늘어서 있던 인간들이 우르르 한쪽으로 몰려선다. 곧이어 누군가가 발사해, 라고 외치자 여기저기서 탕, , 탕 총성이 터진다. 총 든 경찰을 향해 돌진하던 내 가슴에 어느 순간 퍽하고 바위가 떨어지는 듯한 충격이 가해진다. 다리가 꺾이며 육중한 내 몸이 한쪽으로 휘청한다. 중심을 잡으려 몸을 일으키는 순간 탕, , 탕 터지는 여러 발의 총성이 울린다. 정신을 차리기 위해 머리를 부르르 떨던 내 귀에 사람들이 놀라 외치는 소리와 뒤섞여 다시 탕, 하는 한 발의 총성이 들린다.

, , 2동 반달 마트 앞입니다. 도로에서 발견된 새끼 한 마리까지 총 여덟 마립니다. , 네 모두 사살.”

지지직거리는 잡음 섞인 무전기의 신호음을 들으며 내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앉는다. 짙은 어둠이 깔린다. 간혹 괴괴한 기운을 내뿜는 밤의 정령이 보름달을 가리는 날이 있다고 들었다. 오늘이 그날일지도 모른다.

*2001년 경인일보 신춘문예 등단. 내 기타는 죄가 없어요

살아가는 일  정연홍

장생포

아무 모르는 곳에서 아무 일 없다는 듯

꽃들이 피고 떨어져 양식이 되고

잡목들이 자라 뿌리내리면 어떤

가지는 숲의 공간이 되고

어떤 나무는 이미 그곳에 없다

바다에서도 어떤 먼지는 아무 모르게 자라

고래가 되고 아무 일 없다는 듯

돌핀킥을 찬다

돌핀킥을 차본 지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차가운 북극의 해류와 지중 해류를 찾아

먼 길을 떠돌기만 했을 뿐

정연홍 115

그래도 어딘가에선 누군간 다시

발을 모으는 중이고 누군간

물살을 가르며 먼 바다로 나아가는 중이다

버드 스트라이크  장이소

이것은 초대의 방식

어떤 초대장은 거부할 수 없는 식탁에 있어

겨드랑이를 숨기고 손짓한다

우물이구나

접시에 담긴

부리가 병을 물었을까

지푸라기를 물어다

저녁을 게우는 새

그릇을 굽기 위해 노을이 된다

그러므로 붉은 것은

붉은 것을 알지 못하는 새에게 바쳐야 마땅하다

오래전부터 여우의 굴뚝을 닦았다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것은

아궁이가 되거나 아궁이를 태워야 하므로

막 이륙하려던 새가 블랙홀로 빨려든다

어떤 눈은 아무 말도 통과하지 못하는

비행이다

어디로 이어진 통로일까

지독한 밤은 고속도로를 달리고

빛을 좇아 몸을 던지는 날벌레들

점 속에서 시야를 잃으며

화면을 키운다

-

문자가 전송되고 있다

여름, 우포늪 신원희

너는 폭발하는 재즈 색스폰

뜨거운 음색으로

푸른 눈빛을 변주한다

 

물닭이 날갯짓하는

낮은 물살에 떠밀려

나도 늪에 젖고

내 몸 몇 개의 방도 비어져

노랑어리연꽃 가시연꽃으로 피어난다

 

여름 한철이 익어가는

오후 세 시가 재봉틀을 돌리고

부들의 젖은 발을 꺾은

바람이 휘파람을 불며

뚝방길을 달려간다

 

물이 차오르는 소리에

쓰린 허기가 지는 저녁

물새들이 다시 날아오르고

 

익사의 기억이 떠올라

수초를 목에 감은

묵언의 얼굴을 깨우는 동안

여름은 이미 어떤 생을 사랑하고 있다

 

삶을 여는 우포늪이

오늘의 바람과 꽃으로 살아나

생명의 탈춤을 함께 추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