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단체장을 가장 많이 배출한 대학은?
[학부모님께 보내는 편지] <1> 연재를 시작하며 -권승호 전주영생고 교사 /프레시안 19.4.8~
행복한 미소를 띠는 사람들을 만나거나 성공했다고 평가받는 사람들을 만나면 질문하고 싶어졌다.
"공부 잘하였습니까?"
"명문대 졸업하였습니까?"
다행스럽게도 나에게는 3,000여명의 표본이 있는데 고등학생 시절에 공부 못하였고 명문대학교에 진학하지도 못하였었음에도 밝은 웃음꽃 피워내며 즐겁게 생활하는 제자들 적지 않고 공부 잘하였고, 명문대 졸업하였음에도 이런 저런 이유로 부끄럽고 초라하게 생활하는 제자들도 많다.
정답률이 1% 정도일 것 같은 문제 하나.
"민선 6기 시장 군수 구청장 등 기초지방자치단체장을 가장 많이 배출한 대학은?"
서울대? 아니었다. 고려대 연세대도 아니었다.
그럼, 어디?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진짜냐고? 전혀 예상치 못하였다고?
좋다. 두 번째 문제.
"전국 17개 시·도 중, 최근 10여 년간
대학수학능력시험 점수가 가장 높은 시·도는?
서울? 아니다. 부산도 광주도 대구도 아니다.
정답은? 제주도.
1년이 아니고 최근 9년 연속, 그것도 전 과목에서. 서울은 2등도 3등도 4등도 아니고 중간 정도. 팩트도 중요하지만 이유가 더 중요하겠지?
그렇다. 팩트도 이야기하고 싶었고 이유도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래서 지금보다 행복한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 연재를 시작하게 된 이유다.
왜 제주도 학생들의 성적이 가장 좋을까?
지극히 당연하게도 공부하는 시간이 많기 때문이다.
공부하는 시간은 전국 고등학생이 거의 같지 않느냐고?
오히려 서울 학생이 더 많지 않느냐고?
중요한 것은 진짜 공부 시간, 그러니까 자기주도학습 시간이다.
책상 앞에 앉아 강의 듣는 시간의 양이 중요한 것 아니라 스스로 공부하는 시간의 양
그렇다. 자기주도학습 시간이 적으면 절대 공부 잘할 수 없다.
공부는 선생이 시켜줄 수 없고 학생이 하고 싶은 마응 가지고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주도학습을 한 아이들은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지만 사교육이나 인강만 의지하는 아이는 좋지 않은 결과 얻게 됨을 오랜 시간 학교 현장에서 너무 많이 확인하였다.
사교육 받아서 성적 올린 아이가 있지 않느냐고 반발하는 사람 있을 것 같은데
그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이야기해주고 싶다.
사교육을 받은 아이가 좋은 결과를 내는 경우 많은 것 사실이지만
사교육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 알아야 한다고.
공부 재주를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이고
공부에 시간을 많이 투자하였기 때문이라고.
사교육을 받지 않고 자기주도학습을 하였더라면 더 좋은 결과 있었을 것 확실하다고.
찌든 때처럼 씻기지 않는 단단해진 생각들이 안타까웠고
남들 다 시키는데 나만 시키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이 슬펐다.
자기주도학습이 최고의 공부법이라는 외침에 고개 끄덕이면서도
불안하다면서 변화를 거부하는 학부모들이 불쌍하기까지 하였다.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는 것은 죄가 된다는 생각 때문에
여러 번 듣고 또 들어야 생각이 바뀔 수 있다는 생각에
내가 이 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이 일이라는 생각에 용기를 내었다.
나의 작은 외침들이 변화의 불쏘시개 역할을 하고
행복의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참 좋겠다는 마음으로.
사교육에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아내 사교육 없이 행복하게 공부하여
그 누구보다 멋지게 성장한 아들 딸 사교육 그만 두고 자기주도학습으로 성공한 후
선생님 감사합니다. 선생님이 옳았습니다." 라고 말해준 제자들이 많이 고맙다.
지면으로나마 학부모님들을 만날 수 있게 되어 많이 기쁘고
연재를 허락해준 프레시안에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2019년 4월 8일
1. 명문대여야 한다고? (1)
"명문대를 졸업해야만
행복한 삶, 남에게 뒤처지지 않는 삶 가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너나없이
대학입시에 목숨을 걸다시피 하는 것이지요.
명문대 입학을 위하여
모든 것을 던져버리는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누가 감히 돌을 던질 수 있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고
상당 수 사람들은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나 역시 한 때 이 말을 진리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이제는 이 말에 절대 동의할 수 없다.
명문대 입학하였지만
손가락질 받으며 불행하게 사는 사람들 적잖게 만났기 때문이고
명문 대학은커녕 중학교조차 다니지 못하였음에도
멋지고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억지 공부로, 보장되지 않는 미래를 담보로
오늘의 행복 내팽개치는 것은 어리석음 중의 어리석음이다.
공부 잘하는 것이 행복 만드는 일이라고 누가 말하는가?
주변을 반 바퀴만 둘러보아도 사실 아님이 분명한데
사람들은 왜 이 말을 사실이라 받아들여 불행의 길로 나아가는가?
봉건시대도 아니고 21세기에,
무슨 근거로 이런 황당한 거짓말을 하는가? 그리고 왜
이런 분명한 거짓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부화뇌동하는가?
생각해보지도 않고, 엉터리 사람들 의견에 맞장구치면서
힘들고 괴로운 삶 살아가고 있는가?
왜 자기 생각 없이 남의 생각에 고개 끄덕이는가?
왜 자기 생각 죽이고 남의 생각 따라 나서는가?
왜 가짜 뉴스에 속아 넘어가는가?
세상에는 가짜 뉴스가 참으로 많다.
주요 신문 방송의 뉴스나 정보에도 가짜 뉴스가 있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정보에는 더더욱 많다.
세상에 떠돌아다니는 말 무조건 믿지 말고
깊이 생각하여 자신이 스스로 판단해야 하는 이유이다.
공자께서
중호지필찰언(衆好之必察焉) 중오지필찰언(衆惡之必察焉)이라고
이야기한 이유가,
많은 사람이 좋아하더라도 반드시 살펴야 하고
많은 사람이 싫어하더라도 반드시 살펴야 한다고 말씀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렇다. 생각 없이 대중에 휩쓸리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부화뇌동(附和雷同)하지 않음이 현명함이다.
서울대생 절반 정도가 우울 증세를 보인다 하고
47%가 우울증 진단을 받았고 2%는 심각하다고 한다.
51% 학생이 심리상담을 받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 있다고 한다.
과열된 학점 경쟁으로 스트레스가 심각하다고 한다.
서울대생인데, 부족함 하나 없을 것 같은 서울대학교 학생인데.
너무 슬픈 이야기 아닌가?
서울대 입학을 위해 중고등학교 시절 엄청 힘들었을 터인데.
1, 2등을 지켜내기 위해 오랜 시간 아등바등하였을 것 분명한데.
삶의 목표를 자유 평화 행복이 아닌 명문대 입학에 두는 것이
어리석음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남들 생각대로 명문대 입학을 삶의 목표로 삼아버린다.
옳은 것과 옳지 않은 것을 구분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좌도 우도 보지 않고 앞도 뒤도 살피지 아니하고
다른 사람과 생각을 다르게 하면 큰일 날 것이라 생각하면서.
더 안타까운 것은
자신의 명문대 입학을 위한 시간과 에너지 바친 것으로 끝내지 않고
자녀의 명문대 입학을 위해서 또 다시 안타까운 경주를 시작한다는 점이다.
명문대 입학을 위한 사명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기나 한 것처럼.
인생의 목표가 명문대 입학이기나 한 것처럼.
왜인가?
명문대가 행복을 만들어주지 못하는 것이 분명한 사실임에도
명문대가 행복을 만들어 줄 것이라 왜 착각하는가?
명문대 아니어도 행복이 가능하다는 사실,
명문대는커녕 대학에 입학하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도대체 왜 알지 못하는가?
눈도 있고 귀도 있고 머리도 있는데. 거기에다가
배울 만큼 배웠는데도.
'서울엔 뭔가가 있다'는 환상
1. 명문대여야 한다고? (2)
성공이 곧 행복인 것도 아니지만
명문대 입학이 성공의 발판인 것은 더더욱 아니다.
고급 공무원들, 국회의원들, 의료인들, 법조인들, 교수님들, 대기업 임원들
명문대에 입학하였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자질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이고 노력하였기 때문이다.
명문대가 능력을 키워준 것 아니라
공부능력, 인내심, 리더십, 판단력, 추진력 등이 키워준 것이고
강한 정신력의 DNA가 키워준 것이다.
지방대에서 공부하였을지라도, 아니 대학을 다니지 않았을지라도
그 자리에 올랐을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다.
서울대에 다니면서 5급 고시에 합격했다면
서울대에 입학했기 때문이 아니라
서울대에 입학할 능력을 가지고 노력하였기 때문이라고 말해야 옳다.
지방대에서 공부했어도, 아니, 대학을 다니지 않았을지라도
그 재주 가지고 태어났고 그 노력 하였다면
5급 고시에 합격했을 것이라고 말해야 옳다.
차범근 씨가 고려대 갔기 때문에 축구 잘했던 것 아니라
축구 잘했기 때문에 고려대 갔고 성공했다고 말해야 하는 것처럼.
그래도 이왕이면 명문 대학교가 좋지 않겠느냐고,
환경이 인간을 한 단계 성숙시켜주는 것 아니냐는 반론 있을 수 있다.
인정한다. 어찌 좋지 않겠는가?
어찌 좀 더 성숙시켜주지 않겠는가? 하지만
명문대 출신이라고 무조건 성공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과
지방대 출신이나 고졸은 성공할 수 없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특목고 자사고 다녔다고 모두 명문대 가는 것이 아닌 것처럼
일반고 다녔다고 모두 명문대 가지 못하는 게 아닌 것처럼.
소의 꼬리보다 닭의 머리가 낫다는 사실 알아야 한다.
명문대에 가서도 상위권에 진입할 수 있다면
명문대에 가는 것이 나을 수도 있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비명문대에 가서 상위권에 드는 것이 낫지 않을까?
인간은 칭찬과 관심과 격려에 힘입어 성장하는데
명문대에 입학하기는 하였는데, 상위권에 들지 못하여
관심 받지 못하여 의욕 상실로 이어질 수 있음까지
생각할 수 있어야 현명함 아닌가?
자사고 특목고에 간 학생들 중 최소 30%, 많게는 50%가
일반고에 진학하지 않았음을 후회할 것 같은데......
명문대 의대에서 공부해야 훌륭한 의사되는 것 아니고
명문대 법학전문대학원 졸업해야 훌륭한 법조인 되는 것 아니며
명문대 경영학과 졸업해야 훌륭한 경영인 되는 것도 아니다.
존경받는 의사 중에 명문대 의대 졸업하지 않는 분 많고
훌륭한 법조인 중 SKY 법대 나오지 않은 분도 많으며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존경받는 사람 중에
명문대 안 나온 사람이 훨씬 더 많다.
대한민국을 감싸고 있는 학벌 중시의 못난 생각들은
생각 없이 따라하는 습관에서 왔고
엉터리 소문을 진실로 믿어버리는 어리석음에서 왔으며
바보 같은 욕심에서 왔다.
"명문대 나온 교사이기에 역시 훌륭하고 존경할 만 해."
라는 이야기 들어본 적 없고
"지방대 나온 선생님이기에 역시 부족해."
라는 이야기 역시 들어보지 못하였다.
좋은 교사와 명문대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명문대 졸업하면 교사 임용이 쉽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 역시 잘못된 판단이다.
공립학교 임용고시 합격률, 명문대가 높긴 하지만
유의미한 차이로 높은 것 결코 아니고, 그 차이 역시
명문대여서가 아니라 원래 개개인이 가진 공부 능력과 노력 때문이다.
명문대보다 더 커다란 슬픔을 주는 것은 '인(in)서울'이다.
언제부터인가 학생도 학부모도 '인서울'을 외치고 있는데
국가적인 문제이기도 하고 가정의 문제이기도 하다.
명문대를 고집하는 것도 잘못인데 명문대도 아닌
서울에 있는 대학, 그것도 모자라 경기도에 있는 대학,
도대체 서울이 인간의 능력을 향상시키는데
어떤 도움을 어떻게 준다는 것인지?
이해되지 않음을 넘어 답답하고 울화통까지 터진다.
왜 사람들은 가짜뉴스에 속아 넘어가고
가짜뉴스의 희생양이 되지 못해 안달하는가?
대학수학능력시험 평균 점수가 가장 높은 지역은 어느 곳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침없이 서울을 이야기하지만
너무 쉬운 문제 아니냐고, 질문답지 않은 질문이라 비웃겠지만
서울 아니다.
17개 시·도 중에서 서울은 7, 8등이다.
믿지 못하겠거든 지금 당장 인터넷에
'시도별 수능 평균 점수'를 입력하면 확인 가능하다.
어느 지역이 1등이냐고? 제주도다.
제주도가 전 과목에서 해마다 1등인 이유는
자기주도학습을 많이 하였기 때문,
사교육에 자기 공부 시간을 빼앗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간곡하게 부탁하고 싶다.
'서울에는 뭔가가 있다'
'서울에서 공부하면 엄청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
'서울엔 정보가 많아 뭔가 많이 얻어낼 수 있다'는 생각들
미련 없이 버려주시라고.
서울엔 특별한 무언가가 있으리라는 환상 버려야 한다.
서울이 실력을 향상시켜주지 못하고,
서울이 사람을 성숙하게 만들어주지 못하며,
서울이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사실 분명히 알아야 한다.
서울에 있는 대학 나와야 취업이 잘 되고
승진도 잘 된다고 믿는 사람이 많은데
말하는 사람도 믿는 사람도 어리석기 때문이다.
공부는 학생이 하는 것이고 책으로 하는 것이고
교수님 실력이 학생 실력으로 연결되는 것 아니다.
실력은 스스로 탐구하고 노력함으로 키워가는 것이지
선생님이 키워줄 수 있는 것 결코 아니다.
명문대여야 할 이유, 서울이어야 할 이유
정말로, 진짜로
없다.
대학 입학 전에는 놀아야 하는데
2. 대학입시까지만 공부하면 된다고? (1)
마라톤에서 5㎞에서의 기록과 순위보다
결승선인 42.195㎞에서의 기록과 순위가 중요한 것처럼
우리 삶에서도 중·고등학생 때의 성적보다
대학 성적, 직장에서의 업무 능력과 성실함이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사람들은
중·고등학교 성적만 중요하게 생각한다.
대학에서 얼마만큼 실력을 쌓을 수 있느냐
직장에서 일할 능력 얼마만큼 가지고 있느냐를 따지지 않고
중·고등학생 때 공부를 얼마만큼 잘하였느냐,
어느 대학 나왔느냐 만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또, 중·고등학생 때 억지 공부함으로써 공부에 염증을 느껴
대학에서의 공부를 망칠 가능성은 생각하지 못하고
중·고등학교, 심지어 초등학교 때부터 공부를 지나치게 강요한다.
엄청난 어리석음인 줄 모른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운동하고 독서하고 토론하면서
여유 가지고 공부해야 한다.
중·고등학교 공부는 기초 지식을 쌓는 것으로 충분하고
대학 공부하는데 지장 없을 만큼으로 충분하다.
물론, 공부가 재미있고, 하고 싶어서 한다면 이야기는 다르겠지만.
중·고등학교 때 죽기 살기로 공부하라 강요하는 것은 범죄다.
공부하기 위해서 태어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진짜 공부는 대학에 가서 할 수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오해 없기 바란다. 무조건 놀라는 말 아니니까.
하루 8시간 공부는 선택 아닌 의무이지만
대학입시가 중요하다는 이유로, 명문대를 가야한다는 이유로
독서나 운동 등을 포기한 채, 하루 15~16 시간씩,
주말도 방학도 반납한 채
공부에만 에너지 쏟는 것이 잘못이라는 이야기이니까.
친구들과 어울려 즐겁게 놀고
책 많이 읽고, 운동 많이 하고, 체험활동 봉사활동 많이 하고
여행 다니고, 이 사람 저 사람과 만나 대화 많이 나누면서
어떻게 사는 것이 아름다운 삶이 될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하고 고민할 수 있어야 한다.
대학입시를 위한 준비가 아닌
건강한 시민이 되기 위한 준비여야 하고
영어 수학 중심이 아닌
문학 철학 종교 과학 기술 역사 심리학 사회 음악 미술 등
삶의 질을 높이는 공부이어야 한다.
수준 높은 공부는 대학 진학 후에 해도 결코 늦지 않다.
공부 시킨다는 말,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고
시킨다고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람은 저마다 각기 다른 소질과 능력이 있는데
공부에 소질과 능력이 없는 아이에게까지
억지로 공부를 시키는 것은 인격을 무시하는 어리석음이기 때문이다.
학교와 학원과 독서실을 오가면서 공부만 하는 아이들.
책상 앞에 14시간 이상 앉아있는 아이들.
이런 현실이 안타까워,
자녀들을 이런 환경에서 살게 하고 싶지 않아서
이민을 계획하겠노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면서도
자신의 자녀들을 이 학원 저 학원으로 뺑뺑이 돌린다.
이 얼마나 엄청난 모순인가?
그리고 겸연쩍어 하지도 않고 이렇게 말한다.
“남들이 안 시키면 저도 안 시키겠어요.”
“남들 다 시키는데 저만 안 시킬 수 없잖아요.”
말이 되는가? 부끄럽지 않은가? 이 말은
“남들이 도둑질하니까 저도 도둑질했어요.
남들 도둑질 하지 않았다면 저도 하지 않았을 거예요.”
라는 말과 무엇이 다른가?
소신 가지고 아이들 사교육 시키지 않고
자유롭고 행복하게 아이들을 교육하는
부모들이 있다는 사실은
왜 애써 외면하는가?
왜 자신의 소신 없음은 인정하지 않고 남 탓만 하는가?
공부는 학생이 해야 하는 것이라는 사실
배운다고 알 수 있는 것 아니라 익혀야 알 수 있게 된다는 사실
스스로 하는 공부가 진짜 공부라는 사실,
자기주도학습이 가장 효율적인 공부라는 사실
반복 없이는 절대 실력을 쌓을 수 없다는 사실
반복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
사교육은 익힐 시간을 빼앗는다는 사실
결국 사교육은 공부에 독이 된다는 사실.
이렇게 중요하고도 중요한 사실을
왜 모르는가?
왜 귀담아 듣지 않고
왜 생각하지 못하는가?
커서 공부하고 어릴 땐 놀아야 한다
2. 대학입시까지만 공부하면 된다고? (2)
놀게 해야 한다.
잘 놀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아이들은 놀 권리를 지닌 존재이기 때문이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대학에서 공부할 에너지를 쌓아놓아야 하기 때문이고
직장에서 즐겁게 일할 힘을 비축해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초중고등학생 때에 공부하라 강요하고
대학생 되어서도 공부하라 이야기하는 것은
염치없고 미안한 행동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음식 충분하게 먹어야 하는 것처럼, 잠 충분히 자야 하는 것처럼
어렸을 때는 충분히 놀아야 한다.
어른 되면 공부해야 하고 일해야 하니까
어렸을 때라도 많이많이 놀도록 하여야 한다.
노는 일은 시간 낭비 아닌 성숙의 자양분이기 때문이고
공부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어른들에게도 놀이와 쉼이 중요한데
아이들에게는 말해 무엇 하겠는가?
'놀이는 우리 뇌가 가장 좋아하는 배움의 방식이다'라는 말
'노는 방법을 아는 것은 행복한 재능이다'라는 말
음미하고 또 음미할 수 있어야 한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여유 가지고 놀아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인간 이해 능력은 노는 과정에서 길러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기초 지식만 공부하고
대학에 가서 본격적으로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학습의 효율성 때문이기도 하다.
공부 역시 세상의 이치를 배우는 일이기 때문에
어른들은 쉽고 빠르게 이해할 수 있는 내용도
중고등학생 때에는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중학교 때에는 10시간 낑낑대도 알아내기 힘든 내용을
대학생이 되면 1시간에 알아낼 수 있다면
중고생 때에는 놀고 대학생 되어 공부해야 옳은 것 아닌가?
10㎞ 지점, 20㎞ 지점에서의 순위가 중요한 게 아니라
결승선인 42.195㎞에서의 순위가 중요한 것처럼
대학 입시를 위한 중고등학생 때의 공부보다
대학에서의 공부가 더 중요하고
대학 졸업 이후의 공부가 더 중요한 것 아닌가?
대학 간판, 생각만큼 중요하지 않다.
어느 별나라에서 왔느냐고 할 수 있지만 분명한 사실이다.
공무원 공채 시험에 학력 학벌 요구하지 않고
의사 변호사 되는데 대학 간판 영향 미치지 않는다.
취업준비생들이 가장 가고 싶은 직장인 각종 공기업 역시
명문대 졸업증명서 요구하지 않는다.
대기업? 이건 잘 모르겠지만
과거에도 실력 있으면 다 입사가 가능했고
미래에는 블라인드 면접을 실시하는 회사가 더 많아질 것이기에
실력이 학벌을 뛰어넘게 될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한 사실이다.
아무개는 중고등학교 때 공부 잘해서 명문대 들어갔고
그래서 어느 회사에 들어갈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고등학교 때 공부 잘해서 명문대 들어갔고'는 옳은 말이지만
'명문대 다녔기에 좋은 회사 들어갔다'는 말은 결코 옳지 않다.
명문대 아닌 지방 대학에서 공부했을지라도
'좋은 회사'에 들어가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대기업에 명문대 출신은 많고 지방대 출신은 적은 게 사실 아니냐고?
맞다. 사실이다. 그런데 고등학교 실력으로만 뽑는다면
98%가 명문대 출신이어야 하는 것 아닌가?
또, 지역할당제 덕분에 지방대 졸업생이 '인서울' 졸업생보다
유리하게 되었다는 사실도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그래도 고등학교 때 공부가 가장 중요하잖아요,
인생이 결정되는 시기이니까요.
3년 고생하면 40년을 편하게 살 수 있는데 어떻게
자식들이 공부 안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있어요?"
라고 말하는 학부모님들에게
"고등학교 실력이 인생을 결정짓는다는 사람이 많은데
명문대 졸업하고도 초라하고 부끄럽게 사는 사람 많고,
지방대 졸업하고도 성공한 사람 이곳저곳에 많습니다.
대학 간판이 삶을 결정짓는다고 이야기는
세상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이야기이고
누군가 만들어낸 가짜 뉴스입니다.
명문대 졸업생들이 성공할 확률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고등학교 졸업 이후에 노력하여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명문대 입학이 중요한 것 아니라
대학 입학 이후에 노력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아이들은 예쁘다. 이런 예쁜 아이들을 하루 종일,
억지로 책상 앞에 앉혀두려 하는 것은 죄악이다.
책상 앞에 앉아있을 뿐 공부하지 않는 아이들을 보면
옛날엔 밉고 안타까웠는데 요즘은 미안하고 안쓰러운데
어른들의 잘못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책상 앞에 있는 시간은 많지만 실력은 초라한 아이들
공부에 흥미도 없고 의욕도 없는 아이들,
실력 쌓지 못하면서 고생만 하는 아이들,
아예 책을 쳐다보기 싫은 아이들,
수업 시간에 졸거나 자는 아이들,
공부가 아닌 출석을 위해서 책상 앞에 앉아있는 아이들,
남들이 가니까, 또 부모님이 가라 하시니까,
공부하겠다는 의지도 없이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아이들,
아침부터 엎드려 자면서도 교실을 떠나지 못하는 아이들,
수업 시간에 계속해서 시계만 쳐다보는 아이들
이런 아이들의 아픔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
공부공화국이다. 동서남북 24시간이 몽땅 공부인 나라다.
꿈속에서까지도 오직 공부 공부, 또 공부다.
요람(搖籃)에서 환갑까지 오직 공부뿐인 대한민국이다.
정말로 공부만이 최선의 방법인지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
모든 아이들이 다 공부 잘해야만 하는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행복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 보면서 이런 생각 해 보았다.
중고등학생 시절에 공부 잘하였을까?
명문대 입학하였을까?
3. 영어 조기교육이 중요하다고?
초등학교 1, 2학년 학교 방과 후 영어수업 실시가 어렵게 되자
학부모들이 부랴부랴 사교육 시장을 알아보느라 분주하고
또 사교육비를 걱정한다는 뉴스를 만났다.
영어 조기교육, 왜 하지 못해 안달인가?
정말 필요한가?
하지 않아야 옳다고 생각하는데.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
영어가 중요한 공부라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영어 조기교육은 절대 필요하지 않다는 결론을 먼저 밝힌다.
영어 조기교육에 절대 동의할 수 없는 이유는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얻을 것만 생각하고 잃는 것을 생각하지 못함은
인간들이 저지르기 쉬운 가장 흔한 어리석음인데
영어 조기교육은,
천원 싸게 살 수 있다는 이유로 2천원이라는 버스 요금과
2시간이라는 소중한 시간을 소비해버리는 어리석음이다.
모든 선수가 공격에 나서서 3골을 넣긴 하였지만
30골을 잃어버린 축구경기와 같은 어리석음이다.
영어 조금 배우겠다고 놀지 못하고 쉬지 못하고 스트레스 받고,
돈 낭비하고, 사고력 창의력 추리상상력 기를 시간 갖지 못하고
감정싸움 벌이고, 책 읽지 못하고, 가족사랑 나누지 못하는 것은
소탐대실(小貪大失)인 것 분명하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가짜 뉴스가 많은데
외국어 공부는 빠를수록 좋다는 말 역시 확실한 가짜 뉴스다.
현재 5, 60대의 영문학자들 외교관들 영어선생님들 대부분
중학생이 되어 a,b,c 배우기 시작하였음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고
손흥민 정현 박지성 박찬호 선수 등이
운동 실력 쌓은 다음, 해외에 진출하여 영어 배웠겠지만
영어 인터뷰 유창하게 잘한다는 사실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외국어 공부는 빠를수록 좋다는 말은 확실한 가짜 뉴스다.
다른 공부나 기술도 마찬가지이지만 영어 공부 역시
세상 이치를 알고 필요성을 느낀 다음에 배워야 효율이 높다.
이해력 갖추어지고 필요성 느꼈을 때에
쉽고 빠르고 즐겁게 배울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영어 잘해서 나쁠 리 없다는 것 분명하다.
문제는, 영어 공부 때문에,
영어 공부에 시간과 에너지를 빼앗겨서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한다는 점,
잃지 말아야 할 것을 잃게 된다는 점이다.
영어만 잘해서는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고
삶의 질이 높아지거나 더 많이 행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반드시 알아야 한다.
어떤 분야에서든 영어 실력 부족할지라도
자신이 일하는 분야에서 최고의 실력 갖추면 박수 받을 수 있지만
영어 실력만으로 박수 받는 경우는 드물다는 사실까지 알아야 한다.
영어만 잘하는 것은 의미 없다는 말이다.
영어 조기교육을 반대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사고력 저하다.
영어 단어를 암기하고 문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시간 투자가 필요한데, 그러다 보면
독서를 못하게 되고, 혼자서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없게 되며,
친구 선배 부모들과 대화하는 시간 가질 수 없게 되어
사고력을 향상시킬 기회를 갖지 못하게 된다.
시간은 무한 자원이 아닌 한정된 자원인데
영어 실력 조금 키우겠다는 욕심으로 영어 공부에 시간을 쏟아버리면
사고력 창의력 키울 시간 갖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얻는 것만 보지 말고 잃는 것도 볼 수 있어야 현명함이다.
옛 어른들은 문리(文理)가 터져야 공부 잘할 수 있다 하였는데
문리는 글의 뜻이나 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아는 힘이다.
문리(文理) 터짐은 나이에 비례한다.
초등학생의 영어 공부를 손으로 땅파기라 하면
중학생 때의 공부는 삽으로 땅파기이고
대학생 때의 공부는 굴삭기로 땅파기라 할 수 있다.
대학 입학 후에 배우기 시작한 독일어 중국어를
2, 3년 만에 잘 구사하는 독일어과 중국어과에 대학생들을 보거나
한국에 온 지 2, 3년인데 한국말 유창하게 하는 외국인들을 보면
확인 가능하지 아니한가?
스페인 여행 중 만난 가이드는
스페인어 실력 쌓은 후 스페인에 와서 여행가이드 한 것 아니라,
26살 때에 스페인어 한 마디도 못하는 상태로 스페인에 와서
스페인어 3, 4개월 배우고 여행가이드 하기 시작했다 하였다.
필요가 발명의 어머니인 것처럼 필요가 공부의 어머니이다.
우리말도 제대로 못하는 아이들이
영어를 배운답시고 책상 앞에 앉아있다.
얼마나 고통스럽고 얼마나 공부가 밉겠는가?
부모는 부모대로 사교육비 때문에 또 얼마나 괴로운가?
또, 전국 학원에 있는 원어민들에게 지급되는 돈은
국가 경제에 얼마나 큰 부담인가?
하지 않아도 되는 일 아니, 해서는 안 되는 일,
이익보다 손해가 훨씬 큰일을 하느라 힘들어하는 아이들, 학부모들이
많이 안쓰럽다.
남들이 장에 간다고 지게 지고 따라가지 말아야 하고
모두가 '예'한다 할지라도, 아니라고 생각되면 과감하게
'아니오'를 외칠 수 있어야 한다.
영어 조기교육,
알고 보면 참으로 소가 웃을 일이다.
수학 못해도 대학 수업 지장 없는데...
4. 수학이 중요하다고? (1)
수학을 놀이만큼 좋아하는 학생도 있지만
상당 수 학생들은 수학 때문에 삶이 힘들다고 이야기한다.
공부를 재미없는 일이라 착각하도록 만들고
자신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주범이 수학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100분이 주어진 고3 모의고사 수학시간.
30% 학생은 20분 지나면 엎드려버리고
50% 학생은 45분도 지나지 않아 엎드려버린다.
그리고 60분 정도 지나면 70% 이상의 학생이 펜을 놓아버린다.
자기 공부 시간의 7, 80%를 할애하는 과목이 수학이고
사교육비 지출이 가장 많은 과목이 수학임에도.
진즉부터 대한민국은 수학공화국이 되어버렸다.
묻고 싶다.
대한민국 학생들 모두가 고난도 수학을 공부해야하는지?
수학을 잘해야만 사회가 발전하고 삶이 풍요로워지는지?
대학에 가야 하니까 어쩔 수 없다고 이야기하지 말자.
수학 못해도 대학에 합격할 수 있고
공과대와 자연과학대와 몇 개 학과 제외하곤
대학 공부하는 데에 지장 없으며
또 필요하면 대학에서 배워도 늦지 않기 때문이다.
수학 못해도 사회생활 잘할 수 있음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명문대에 가야 하니까 어쩔 수 없다는 말도 하지 않으면 좋겠다.
명문대 아니어도 멋지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 분명하니까. 또
멋지고 행복하게 사는 것은 수학 잘했기 때문이 아니라
지식과 능력이 있기 때문이고 성실하고 정직하기 때문일 테니까.
중·고등학생이 선호하는 직업 중 하나는 교사다.
교직을 그만두고 다른 직업 찾아가는 선생님 거의 없는 것 보아도
교사는 괜찮은 직업인 것 분명하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교원임용시험에 영어 수학 지식이 필요 없다는 사실이다.
영어선생님이 되고자 하는 사람 아니면 영어 실력 필요 없고
수학선생님이 되고자 하는 사람 아니면 수학 실력 필요 없다.
그럼에도 국어교사 되고 싶다면서 영어 수학 공부에 매진하고
사회 교사가 꿈이라면서 영어 수학 공부에 목매는 것은
훌륭한 가수 되겠다면서 축구 연습 열심히 하는 일이고
남의 다리 긁는 일 아닌가?
명문대를 가야 하니까 영어 수학을 공부하는 것이라고?
거듭 말한다. 교사 되겠다면서 왜 명문대를 고집하는가?
명문대 졸업이 교사 임용에 조금도 도움 되지 못하고
좋은 교사되는 것과도 전혀 관계가 없다는 사실 알아야 한다.
교원임용시험에 수학은 필요 없지만
사범대나 교육대에 진학하려면 수학이 중요한 것 아니냐고
반문하는 사람 있을 것 같은데,
그래, 교육대는 인정한다. 그러나 사범대는 아니다.
교육대학교는 수학 실력 부족하면 입학하는 일 쉽지 않지만,
사범대는 수학 5등급 6등급일지라도 다른 과목 성적이 우수하다면
입학 가능한 대학교 분명히 많다. 그리고
대학에서 열심히 공부하면 교사 될 수 있고, 훌륭한 교사 되어
아이들과 호흡하면서 큰 행복 만들어 갈 수 있다.
수학에 쏟는 에너지와 시간을 다른 공부나 일에 쏟는 것도
지혜이고
수학 못해도 행복할 수 있음을 텔레비전 보면서 확인할 수 있음도
지혜이다.
4. 수학이 중요하다고? (2)
"선생님! 수학은 과학기술 발전에 절대 필요한 학문이고
사고력, 논리력, 추리상상력 키워주는 중요한 역할까지 하잖아요.
대학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공무원이나 교사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훌륭한 과학자 공학자가 되기 위해서도,
또 사고력, 추리상상력, 논리력을 기르기 위해서도
수학 공부 열심히 해야 하잖아요?”
라는 반론이 여기저기서 천둥번개처럼 쏟아질 것 같다.
맞다. 인정한다.
그런데 꼭 고등학교에서일 필요 없지 않은가?
대학에 가서 수학 공부하면 안 될 이유 없지 않은가?
대학 공부에 필요한 수학, 대학에 가서 해도 늦지 않은 것 아닌가?
그리고 사고력 추리상상력 논리력은 수학으로 기를 수도 있지만
문학 철학 역사학 심리학 논리학 등을 통해 기르는 것이
보다 효율적이고 바람직한 것 아닌가?
수학을 공부하지 말자는 이야기가 절대 아님을 분명히 밝혀둔다.
중·고등학교 수학 수준을 낮추어서
즐거운 마음으로 수학을 공부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이고
수학에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지 말자는 이야기이며
고난도 수학은 대학에 가서 하도록 하자는 이야기임을 밝힌다.
정말이다.
수학 때문에 수학보다 더 중요한 것을 놓쳐서 안 되고
공부 자체를 싫어하도록 만들어서도 안 된다.
학과 공부가 교육의 전부여서 안 되는데 진즉부터
학과 공부가 교육의 전부가 되어버렸고,
영어 수학이 학과 공부의 핵심이 아니어야 함에도 진즉부터
영어 수학이, 고등학생에게는 특히 수학이
공부의 거의 전부가 되어버렸다.
분명히 알아야 한다.
수학이 대학입시를 결정한다는 이야기는
상위권 학생에게만 해당되는 말이라는 사실을.
수학 5, 6등급이어도 다른 과목의 성적이 좋으면
의학계열 제외한 원하는 학과에 합격할 수 있다는 사실 알아야 하고
국어 3, 영어 3, 수학 3, 탐구 3등급보다
국어 2, 영어 2, 수학 5, 탐구 2등급이 낫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수학 때문에 더 중요한 것 놓치는 현실이 안타깝다.
독서할 시간과 여유 가지지 못하고
국어 사회 과학 등을 공부할 시간조차 갖지 못하며,
음악 미술 체육을 즐기지 못하는 아이들이 안쓰럽고 불쌍하다.
아이들을 무기력하게 만들지 말아야 하고,
고통에 빠뜨리지 말아야 하며,
놀면서 행복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하는데.
입시 위주의 교육이 문제의 원천이지만
수학이 대학입시를 좌우한다는 잘못된 인식 또한 이유의 하나다.
영어 수학에만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 현실, 깨부수어야 한다.
신체적 정신적 성숙이 빠른 시기,
배우고 익히고 키워야 할 것이 많은 시기에
영어 수학에 갇혀 꼼짝 못하는 현실, 가슴 아파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떻게 살아야 할 지를 고민하고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를 토론하며
문학 철학 사회 과학 음악 미술 등을 탐구하고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고 용서하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방법 등 삶의 지혜도 공부해야 하는데
영어 수학만 공부하도록 강요하는 현실, 정말 눈물 난다.
너나없이 독서교육의 중요성을 이야기하지만
중·고등학생 대부분은 독서를 하지 못하고 있다.
입시 위주 교육 때문이고, 수학 공부 때문이다.
수학이 대학입시에서 차지하는 비중 줄여야 하고
수학이 대학입시를 좌우한다는 잘못된 인식도 바로잡아야 한다.
수학 못해도 대학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수학 못해도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어야 한다.
이렇게 해야만 대한민국 교육 살아날 수 있다.
어른들에게 주어진 책무이고
미루지 말고 지금 해결해야 할 역사적 사명이다.
5. 비교과 영역, 큰 의미 없는데
"이 활동 하게 되면 생기부에 기록해주나요?"
"이 내용 생기부에 적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선생님! 생기부 잘 좀 부탁드립니다."
"선생님 오늘 배우는 내용 시험에 나오나요?"라면서 분주하다.
실력 향상에 힘쓰고 학교생활 즐기려 하기보다
성적에만 신경 쓰고 생활기록부만 엄청 챙기는 아이들을 보면
씁쓸함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학교생활기록부가 자신의 인생을 좌우하는
요술방망이나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아이들이 불쌍하다.
안쓰럽기도 하고 얄밉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다.
생기부를 위해 학교에 다니는 것 같아 답답하고
모든 활동이 생기부를 위함인 것 같아서 많이 씁쓸하다.
아이들은 힘들다. 학부모들도 선생님들도 힘들지만
아이들은 힘들다는 표정을 지을 여유조차 없을 정도로 더 많이 힘들다.
중간고사, 기말고사, 비교과영역, 수행평가, 모의고사,
봉사활동, 경시대회, 진로활동.
해야 할 일 너무 많아 고달프기 그지없고,
너무 많아서 아예 포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런데, 학교생활기록부 비교과영역은 절대 중요하지 않다.
스스로 기획하고 탐구한 활동이라면 평가받을 수 있지만
일반적인 활동이나 학교에서 기획하여 다 같이 한 활동은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교과 전형은 성적만으로 사정하니까 말할 필요 없고
종합 전형에서도 중요한 것은 학과 성적과 면접 점수이지
비교과영역 아니다.
천편일률적이고 대동소이한 특기 사항을 눈여겨볼 대학은 없다.
학교생활소설부라는 말까지 공공연하게 떠도는 상황인데
어떻게 점수화하여 당락을 결정하는데 사용한단 말인가?
자기소개서 또한 대학입시 전형에 그다지 영향 미치지 못한다.
몇 백만 원을 주고 대필한다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쏟아지는데
수험생이 썼다는 확신 전혀 없이
어느 대학이 어떻게 자소서 내용을 참고하겠는가?
상황이 이러함에도
1학기 기말고사가 끝난 후 시작된 자기소개서 작성은
수시원서접수가 마감되는 9월 중순까지 두 달 이상 계속된다.
수학능력시험을 준비해야 하는 중요한 시간에
수능 공부 밀쳐놓고 자소서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 붓는 모습은
코미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자소서 작성에 엄청난 에너지를 쏟는 모습도 안쓰럽지만
더 큰 안쓰러움은 쓸거리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상당 수 아이들은 쓸거리가 없다.
'고등학교 재학기간 중 학업에 기울인 노력과 학습 경험'
을 쓰라 하는데
고등학교 재학기간 중 학업에 기울인 노력과 학습 경험이 없고,
'재학 기간 중 본인이 의미를 두고 노력했던 교내 활동'
을 3개 이내로 쓰라 하는데
의미를 두고 노력했던 교내 활동이 없으며,
'배려 나눔 협력 갈등관리 등을 실천한 사례'를 쓰라 하는데
배려, 나눔, 협력, 갈등관리 등을 실천한 사례가 없다.
쓸 내용이 없음에도 잘 쓰겠노라 낑낑대는 모습은
물고기 없는 웅덩이에서 고기 잡겠다고 뛰어다니는 어리석음이고
음식 재료도 없이 맛있는 음식 만들겠다고 큰소리치는 바보짓이며
맨손으로 그림 같은 예쁜 집 짓겠다고 덤비는 돈키호테이다.
대학입시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함이 분명한 자기소개서임에도
대학입시에 엄청난 역할을 한다는 이웃집 아주머니의 호들갑에 현혹되어
수능을 준비하는 대신 자기소개서에 매달리는 모습이 안타깝다.
쓸거리 없이 학창생활을 보내도록 만든 교사인 나 자신이 밉다.
이래저래 많이 안쓰럽고 많이 화가 나는 우리나라 교육 현실이다.
6. 통제 받아야 공부 잘할 수 있다고? (1)
고등학교 시절, 일본어 수업 시간
선생님께서는 수업 시간 중간 중간에 읽기나 해석을 시키셨는데,
소심하고 못난 나였기에
긴장 불안 공포의 심정으로 내가 지목되지 않기만 기도하였다.
그렇기 때문일 것이다.
일주일에 두 시간씩 2년 동안이나 배웠지만
그때도 지금도 나는 일본어를 조금도 할 줄 모른다.
스파르타식으로
억압과 통제로 교육하는 것이 효율적이라 생각하는 사람 많지만
퇴직 교사나 교직 경력 25년 이상의 교사들 대부분은
부드러움과 감싸안음과 관심, 그리고
사랑과 용서와 기다림이 최고의 교육이라고 이야기한다.
힘들고 시간이 걸리고 우선 당장은 불편할지라도
따뜻하게 설명해주고 행동으로 모범 보이고, 용서하고
대화와 설득으로 인도하는 것이 올바른 교육이라고 이야기한다.
어린아이 때나 청소년기에는
너나없이 철부지고 버릇없고 이기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서
버릇없는 행동이나 말에도 감정적으로 대응하거나 야단치지 말고
대화로써 깨우쳐주고 믿어주고 기다려주는 것이
진정한 교육이라고 이야기한다.
폭언이나 체벌로 아이들을 꼼짝 못하게 통제해서는
아이들을 올바르게 성장시킬 수 없고
교육자로서 능력 없음을 인정하는 행위일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인성 교육도 중요하지만 학과 공부가 더 중요하고 급하니까
통제와 억압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이야기하는 사람 많지만
학과 공부를 잘하도록 하기 위해서도
통제하고 억압함으로 긴장된 상태 만들기보다
용서하고 부드러움으로 마음의 편안함 줄 수 있어야 한다.
마음 편안하고 즐거운 상태에서는 효율성 높일 수 있지만
불안 공포 긴장 상태에서는 뇌가 경직되어
공부 효율성 가져올 수 없다는 사실 알아야 한다.
할머니가 엄마보다 아이들을 더 따뜻하게 보듬는 이유는
중·고등학생 때엔 철들지 않아 어리석게 행동한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잘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두 살 아이가 대소변 가리지 못함이 당연한 것처럼
중·고등학생들은 아직 철들지 않아 놀기 좋아하고 버릇없고
자기중심적이라는 사실을 할머닌 경험으로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야단친다 해서 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 알기 때문이고,
모든 것은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사실까지도 그동안
자녀나 주변 아이들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확인하셨기 때문이다.
스포츠에서도
억압과 통제로 지도받은 경우보다
부드러움과 자율로 지도받아 좋은 결과를 내는 경우가 훨씬 많다.
신나고 즐거운 마음으로 하면 좋은 결과 낼 수 있지만
억압하고 통제하면 주눅 들고 긴장되고 자신감 상실하여
제대로 된 실력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 많다.
편안한 마음이 공부 효율성 높여준다는 사실 알면 좋겠고
즐거운 마음이 실력을 향상시킨다는 사실 인정해주면 좋겠으며
즐거운 마음이어야 공부 잘할 수 있다는 사실 이해해주면 좋겠고
체벌과 얼차려는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생각 버려주면 좋겠다.
자율과 부드러움이 우리가 가야할 길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율과 부드러움이 공부의 효율성을 높여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해님과 바람의 내기'라는 우화를 생각해 본다.
바람이 이길 것이라고 생각하였지만 결과는
해님의 승리였다는 사실,
음미하고 또 음미해 본다.
6. 통제 받아야 공부 잘할 수 있다고? 2
철부지 교사 시절엔 생각 없이 열심히(?) 지도하였다.
인간은 자극을 받아야 발전할 수 있고
그 자극으로 회초리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공부를 소홀히 함을 죄라 생각하여
손바닥 아프게 만들었고 종아리에 생채기 내기도 했다.
언어 폭력은 폭력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학생들의 작은 잘못이나 실수에 폭언을 서슴지 않아
마음에 상처 주는 것도 일상이었다.
회초리를 맞고 욕을 먹은 아이들이
조용해지고 다소곳하게 책상 앞에 앉아있는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 능력 있는 교사라 생각하며 대견해하기도 하였다.
책상 앞에 조용히 앉아있기만 하면
지식은 저절로 전해지는 것이라 굳게 믿었다.
지금은 부끄럽기 그지없는데
그때는 왜 뿌듯함이고 자랑스러움이었는지.
교단을 떠날 나이가 되어서야
바람직한 교육은 어떠해야하는지를 생각해 본다.
국어사전은 '교육'을
"인간 심신의 모든 능력을 발육시켜 인간으로서 가치를
높이기 위하여 지속적으로 가르치고 지도하는 일'
이라 적어 놓고 있었는데
그렇다면 나는 아직 교육의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것이 된다.
아이들의 심신 발달을 위해 노력하지 않았고
인간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노력도 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오직 공부였고, 오직 성적이었으며, 오직 명문대 합격이었다.
교육은 믿음과 기다림과 용서와 솔선수범이라는 생각조차
5년 전에야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안타깝게도. 부끄럽게도.
회초리 내던져버린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소리 지르지 않고 화내지 않은 지도 3, 4년 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이들은
굳이 회초리 들지 않고 야단치지 않고 화내지 않아도
스스로 잘못을 깨닫고 멋쩍어 하며 마음 바로 잡아 나갔다.
이제야 깨달음이 왔다.
체벌과 화냄은 아이들 마음을 변화시키기는커녕
오히려 분노를 가져와 교육 효과가 떨어진다는 깨달음.
기다림, 용서, 관심, 부드러움이 아이들의 마음을 바꾸고
결국은 행동까지 바꾼다는 깨달음.
그래서일까? 방송인 유병재 씨가 쓴 다음과 같은 글에
크게 그리고 여러 번 고개 끄덕일 수 있었다.
"사람들이 당신을 겁내는 건,
당신에게 대단한 카리스마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당신이 그냥 쉽게 상처를 주는 사람이기 때문에
상처를 받게 될 나를 겁내는 것이지,
당신을 겁내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에게 대단한 카리스마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5년 전부터 시험 보는 날에는 내가 청소를 한다.
3년 전부터는 매일, 아이들이 교실에 들어오기 전
창문을 열고 청소를 하고 책상을 정돈한 다음
조용히 책상에 앉아 책을 읽으며 아이들을 맞이한다.
교실을 청소하는 이유는 지식을 가르치는 것보다
봉사 배려 기다림 등의 지혜를 가르치는 것이,
그리고 말이 아닌 행동으로 가르치는 것이,
더 중요하고 효과적이라는 깨달음이 왔기 때문이다.
교단을 떠날 나이가 되어서야 찾아온 깨달음.
많이 부끄럽고 많이 안타깝다.
요리 좋아하는 학생에겐 국영수보다 요리를
7. 너도 나도 공부 잘해야 한다고?
아침 자율학습 시간,
교실이 더럽다는 생각에 걸레질을 하고 있었는데
한 아이가 조용히 다가와서는 자기도 걸레질하고 싶다며
걸레 빨아오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그냥 책 읽으라 말하였지만
자신은 책상 앞에 앉아있는 것보다 움직이는 일이 좋다면서
애절한 눈빛을 보냈다.
선생님 도와주고 싶은 맘 아니고 예쁨 받기 위함도 아니며
책 읽는 것보다 청소하는 일이 재미있기 때문이라 하였다.
책상 앞에서의 생기 잃은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마냥 행복한 표정으로 콧노래까지 부르면서
신나게 걸레질 하는 모습에서
인간은 제각각의 방법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과거엔 흡연을 하거나 교칙을 위반하여 징계를 받은 학생들이
벌칙으로 청소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슬픈 표정, 못마땅한 표정으로 청소하는 아이들보다
밝고 행복한 표정으로 청소하는 아이들이 훨씬 많았다.
책상 앞에 앉아있는 것보다 청소하는 일이 훨씬 좋다고 하면서.
기획하고 문서 작성하는 일에서 행복 찾는 사람 있고
몸 움직이는 일에서 행복 찾는 사람 있으며
음식 만들면서 행복 느끼는 사람 있고
농산물 재배하면서 자신의 존재 가치 확인하는 사람 있다.
삶의 목적이 행복이고,
좋아하는 일 하는 것이 행복이라면
머리로 하는 일보다 몸으로 하는 일에서 행복 느끼는 사람에게는
몸으로 하는 일 하라고 권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취향 다르고 성격 다른 것처럼
사람 역시 제각각 재능이 다르다는 사실,
행복 찾는 방법도 모두 다르다는 사실,
인정할 수 있어야 현명한 것 아닌가?
농사짓는 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농사일 하도록 하고,
공부하기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학문하도록 하며,
운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운전하도록 하는 것이 옳다.
사회를 위하는 일이고 누군가 해야 할 일이며
그 일을 통해 행복 느낄 수 있다면
어떤 일일지라도 모두모두 소중한 가치 지니기 때문이다.
판사, 검사, 변호사. 사람들이 선호하는 직업이지만 나는 싫다.
인간이 저지른 죄의 유무를 판단하고 정죄하는 일은
잘할 자신 없는 일이고 내게 어울리는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의사 역시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지만
나는 싫다. 아니 잘할 자신이 없다.
그 많은 의학 지식들을 암기해낼 능력도 없거니와
피 쳐다보거나 만질 자신도 없으며
주사 바늘을 꽂을 자신조차 없기 때문이다.
환자 치료를 위해서는 체력도 인내심도 있어야 하는데
나에게는 그럴 능력 또한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농촌이 붕괴되어가고 있다. 농사지을 사람이 부족하다.
기계화되었다고 하지만
사람이 직접 흙을 만지고 땀 흘리지 않으면 열매 거둘 수 없는데
농사 짓겠다는 젊은이가 적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농촌 붕괴, 생각만으로도 아찔하다. 어촌 역시 마찬가지다.
어찌할 것인가? 어찌하면 좋은가?
누군가는 농사지어야 하고 누군가는 고기 잡아야 하는데.
생산 현장 역시 상황이 녹록치 않다.
매스컴은 날마다 구직난을 이야기하고
정치인들도 매일 일자리 창출을 이야기하는데
실상 농촌에도 어촌에도 공장에도
구인난은 생각 이상으로 심각하다. 어디에서부터 잘못 되었는가?
3D 업종에서는 사람을 구할 수 없는 현실을
애써 외면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대로 괜찮은가?
대학을 졸업했다는 이유로
생산 현장을 외면하는 오늘 우리 대한민국의 현실.
이대로 정말 아무렇지 아니한가?
3D 업종 종사자에게 충분한 수입 보장해주는 일 정말 어려운가?
모든 학생이 공부 잘할 수도 없지만
모든 학생이 공부 잘해서도 안 되는데, 이유 중 하나는
사회는 다양한 사람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농부도, 어부도, 트럭기사도, 요양사도, 환경미화원도 필요하고
요리사도 미용사도 청소원도 공장 노동자도 필요하다.
수요공급의 법칙이 직업에도 적용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너도나도 블루칼라 일 싫어하게 되면 블루칼라 숫자가 적게 되고
그렇게 되면 블루칼라가 대접받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
농부 어부 노동자들이 대접받는 시대
머지않아 다가올 것이라는 희망.
정치인이나 고위공직자나 판검사나 의사가
돈과 권력과 명예를 함께 가지지 않는 세상,
농사짓고 청소하고 운전하는 사람도
경제적 시간적 풍요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세상,
내일은 아닐지 몰라도
모레는 분명한 것 아닌가?
"소는 누가 키우나?"라는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면서
웃고 지나쳤는데 요즘 되새김질해보고 있다.
그렇다. 누군가는 반드시 소를 키워야 한다.
권승호 전주영생고 교사
대입 교육보다 인성 교육이 중요하다
8. 공부만 잘하면 된다고?
공부 잘하면서 인성 좋은 아이 있고
공부는 잘하지만 인성은 나쁜 아이 있으며,
공부 못하지만 인성 좋은 아이 있고
공부도 못하고 인성도 나쁜 아이까지 있다.
공부와 인성 간 상관관계는 없다고 보는 게 옳다.
분명한 것은
공부 잘하는 아이는 반드시 인성이 좋아야한다는 사실.
아니, 인성 좋지 못한 아이는 공부 못하도록 하여야 한다는 사실.
공부 잘하면 권력을 쥐게 될 것인데
그 권력이 우리 사회에 잘못된 영향력을 미치는 일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수업 시간 절반 이상을 인성 교육에 쏟아야
우리 사회가 건강하고 아름답고 풍요로울 수 있다.
인성 나쁜 지식인과 권력자들 몰아내는 일도 중요하지만
인성 나쁜 아이는 공부 못하도록 하는 것이 근본 처방 아닐까?
"내 자식이지만 싸가지 없기에 공부 시키지 않으렵니다.
싸가지 없는 아이 공부 잘하면 우리 사회의 평화 깨지니까요."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많이 만나고 싶다.
형광등 켜있고 선풍기 돌아가고 에어컨도 바람을 내뿜는다.
우산이 뒹굴고 책도 필기구도 뒹굴뒹굴한다.
점심시간이나 체육시간, 아이들이 없는 빈 교실의 풍경이다.
식당 잔밥통에는 내버린 밥과 반찬 수북하고
종업식 마친 교실에는 내팽개친 물건들 엄청 나뒹군다.
엉터리 우리 교육의 자화상이고
입시 위주의 교육이 낳은 병폐다.
시험 끝나면 잊어버리게 되는 조그마한 지식 나부랭이만 가르쳤고
시험 점수 잘 받는 요령만 터득하도록 하였으며
명문대 입학만을 지고지선의 가치라 외쳤기 때문이다.
명문대학 입학이 삶의 목표가 되어버린 나라
성적표로 사람을 평가하는 나라
공부를 위해서라면 할머니 병문안 가지 않아도 되는 나라
고3이 벼슬인 나라
"공부하느라 땀 흘린 게 얼만데 그런 일을 해?"
"이래보아도 나, 명문 대학 나온 사람이야."
"이 정도 월급 받으려 초등학교 때부터 죽어라 공부한 것 아니야."
라는 투덜거림이 이상하지 않는 나라.
이런 나라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부끄러움으로 다가온다.
가르치지 않았다.
왜 환경을 보호해야 하는지,
왜 양보하고 용서해야 하는지,
왜 법과 질서를 지켜야 하는지,
왜 모르는 사람까지 사랑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공공장소에서 지켜야 할 예절 말해주지 않았고
에너지를 절약해야 하는 이유도 설명해주지 않았다.
대학입시만 중요하다 외쳤고 알량한 지식 전달에만 급급하였다.
어떠한 마음으로 어떻게 생활해야 민주 시민이 되고
어떻게 해야 평화가 지속되는 지에 대해서도 말해주지 못했다.
시험에 나올 확률이 있느냐 없느냐만 관심 쏟았고
공부만 잘하면 모든 것 용서받을 수 있다고 소리 질렀다.
명문대 합격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라 외쳤고
5지선다형 문제 정답 찾는 방법만 훈련시키고 또 훈련시켰다.
'만 들 공(工)'에 '대장부 부(夫)'를 쓴 '공부(工夫)'다.
대장부(멋진 사람) 만드는 일이 공부인 것이다.
그런데 지금 학교는 대장부 만드는 일에 관심 가지지 않는다.
사람다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고
대학 들어가는 일만 중요하다고 가르친다.
사람다운 사람 만들려 노력하지 않고
명문대 입학생 숫자 늘리는 일에만 심혈을 기울인다.
그저 줄 세우기의 도구일 뿐인 지식,
시험을 치르기 위한 방편 역할만 하는 지식,
시험 끝나면 사라져버리는 지식 전하는 일만 가치 있게 생각한다.
지식 전달이 교육의 전부가 아니라는,
인성교육이 지식교육보다 중요하다는 인식에 모두가 공감한다면
교육은 변할 것이고, 그 영향으로 사회 역시 변할 것이다.
사랑으로 다가가면 아이들은 순한 양이 되는 것을 자주 확인하였다.
처음에 도망치던 아이도 조용히 다가오고
반항하던 아이도 겸연쩍은 미소 지으며 조용히 다가와
바른 길 가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왜 정직해야 하고 왜 사랑해야 하는지,
왜 용서해야 하고 왜 겸손해야 하는지,
왜 양보해야 하고 왜 경청해야 하는지,
왜 부모님께 순종해야 하고 모든 사람들을 존중해야 하는지,
왜 독서가 중요한 지에 대해서 설명해주어야 한다.
왜 분리수거 해야 하는지,
왜 질서를 지켜야 하는지 이야기해주고 또 이야기해 주어야 한다.
권력형 비리 저지른 후, 법의 심판을 받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공부 잘하였다는 점이다.
공부 잘하지 않았다면
고생할 일도 창피 당할 일도 인생 망치는 일도 없었을 것인데.......
확실하다. 인성 올바르지 않은 아이 공부 못하도록 하여야 한다.
사회를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본인의 불행 막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권승호 전주영생고 교사
조기 유학 만능주의는 부모의 이기심일 뿐
12. 유학이 필요하다고?
유학을 보내는 마음은 무엇일까?
특별한 무엇인가가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 때문일 것이고
외국에 나가면 잘 될 것이라는 착각 때문 아닐까?
그런데, 전주월드컵 경기장에서는 축구 못하는 아이가
홋스퍼스타디움이라 해서 축구 잘할 리 절대 없고
집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샐 수밖에 없는 것 분명하지 아니한가?
한국에서 못하는 공부, 외국 가면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은
희망사항일 뿐 절대 현실이 될 수 없다.
해외 유학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 극히 드물다.
영어 실력 조금 쌓아가지고 오는 것이 대부분이고
그마저도 아닌 경우 많다.
영어 실력 조금 쌓겠다는 욕심으로
어마어마한 돈과 시간을 쏟아 붓고
어린 시절의 행복 내던지는 것은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일임이 분명하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의미로
환경이 달라지면 동일한 것이라도 그 성질이 달라진다는
귤화위지(橘化爲枳)라는 말을 신봉해서는 안 된다.
인간은 주위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달라지지 않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좋게 변할 가능성도 있지만 오히려
나쁘게 변할 가능성이 더 크다는 사실까지 알아야 한다.
전주에서 못하는 공부 서울에서 잘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나라에서 못하는 공부 외국이라 해서 잘 할 수 없다.
전주에서 공부하여 실력 쌓으면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나라에서 공부하여도 뭐든지 할 수 있다.
혹시나 하는 마음 모르는 바 아니나
해외 유학은 지극히 어리석은 선택이다.
친구가 좋은데, 친구와 함께하는 즐거움이 중요한데
언어가 통하지 않을 뿐 아니라 친구가 없다.
친구가 없어 즐거움 전혀 없는데,
강제로 유학을 떠나와 가슴에 원망 가득 차 있는데
어떻게 즐거울 수 있고 공부 잘할 수 있겠는가?
해외유학이 오히려 독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 알아야 하고,
내일의 행복도 중요하지만
오늘의 행복도 중요하다는 사실까지 알아야 한다.
미국에 있는 지식 우리나라에도 몽땅 있다.
중·고등학생이 배워야 할 지식이라면 말할 필요조차 없다.
미국의 선생님이라 해서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 아니고
공부는 선생이 시켜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영어만 익히고 와도 손해는 아니라고?
웃기는 말이다.
영어만 잘해서 할 수 있는 일 극히 적고
유학 아니어도 영어 실력 키우는데 전혀 지장 없다.
얻는 것만 보지 말고 잃은 것도 보아야 하고
교양이나 전공 지식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사실 알아야 한다.
그리고 미디어가 엄청 발달한 지금,
게으르고 의지가 없어서 실력을 키우지 못하는 것이지
환경 좋지 않아 실력 키우지 못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앞뒤를 살피고 좌우를 살펴보아도
중고생을 해외유학 보내는 것은 어리석음인데 이유는
얻음보다 잃음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굳이 필요하다면 박사과정, 빨라도 석사과정이어야 한다.
잘된 케이스만 보고서,
자신의 자녀도 잘 될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 가지고
유학을 선택하는 것은 어리석음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공부 못하였지만
유학 가게 되면 공부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은
욕망이 만들어낸 어리석음이고
자기 마음만 편하면 된다는 부모의 이기주의(利己主義)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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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 제5회 MBC 대학가요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