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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쉬운 詩 좋은 詩

쌀 외

by 이성근 2019. 8. 8.

-정일근

무식한 놈 -안도현

이 바쁜데 웬 설사 -김용택

꽃무릇 -조동하

-유승도

-유승섬

섬주막 -전윤호

사막- 오르텅스 블루(Hortense Vlou)

아버지 -고은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 -정채봉

 





   정일근

 

서울은 나에게 쌀을 발음해 보세요,

하고 까르르 웃는다

또 살을 발음해 보세요,

하고 까르르 까르르 웃는다

나에게는 쌀이 살이고 살이 쌀인데 서울은 웃는다

쌀이 열리는 쌀 나무가 있는 줄만 알고 자란 그 서울이

농사 짓는 일을 하늘의 일로 알고 살아온 우리의 농사가

쌀 한 톨 제 살점 같이 귀중히 여겨 온 줄 알지 못하고

제 몸의 살이 그 쌀로 만들어지는 줄도 모르고

그래서 쌀과 살이 동음동의어라는 비밀을

까마득히 모른 채 서울은 웃는다

 

무식한 놈 안도현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별하지 못하는 너하고

이 들길 여태 걸어왔다니

 

나여, 나는 지금부터 너하고 絶交!

 

 

 

이 바쁜데 웬 설사 김용택

 

소낙비는 오지요

소는 뛰지요

바작에 풀은 허물어지지요

설사는 났지요

허리끈은 안 풀어지지요

들판에 사람들은 많지요

 

- 시집강 같은 세월(창작과 비평사, 1995)

 

 

꽃무릇 조동하

 

나 하나 물 들어

산이 달라지겠느냐고도

말하지 말아라

내가 물들고 너도 물 들면 결국 온 산이

활활 타 오르는것

아니겠느냐





  유승도

 

나는 둥그런 산에 산다

나무와 밭으로 뒤덮인 산,

숲에서 나온 물줄기는 밭을 가로질러 산 아래 들판으로 흐른다

가끔은 구름이 내 오두막을 감싸기도 한다

내 산엔 산 같은 무덤들이 있다

아버지 어머니도 산에 묻혔다

아버진 말이 없는 분이셨다

얼굴을 본 기억이 없는 어머닌 노래를 잘 부르셨다고 한다

이제 출산 날이 다가온 아내의 배를 보니

무덤을 참 많이도 닮았다

 

 

  유승도

 

내 집 속의 땅바닥 틈새엔 쥐며느리의 집이 있고

천장엔 쥐들의 집이 있다 문밖을 나서면 집 앞의

나무 위에 까치의 집이 있고 문 앞의 바위 밑엔

개미들의 집이 있고 텃밭엔 굼벵이들의 집이 있다

산은 나무들의 집이다 나무 사이엔 새들과 숱한

곤충들의 집이 있다 들판은 풀들의 집이요 시내는

물고기의 집이다 하늘은 구름의 집이요 우주는

별들의 집이다 그리고 나는 내 마음의 집이다



섬 주막 / 전윤호

 

종일 비 오는 오후

불도 안 켜고

텅 빈 술집 골방에 퍼질러 앉아

볼이 꽉 차도록 입에 넣고도

손은 자꾸 꼬막을 깐다

꽉 닫힌 껍질도

기어코 손톱으로 벌린다

눅눅한 식욕

소주는 손도 안 대고

중얼거린다

어휴 죽일 년

어휴 죽일 년


사막- 오르텅스 블루(Hortense Vlou)

 

그 사막에서 그는

너무도 외로워

때로는 뒷걸음질로 걸었다

자기 앞에 찍힌

발자국을 보려고

 

 

아버지 -고은

 

아이들 입에

밥 들어가는 것

극락이구나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 -정채봉

 

 

하늘나라에 가 계시는

엄마가

하루 휴가를 얻어 오신다면

아니 아니 아니 아니

반나절 반시간도 안 된다면

5

그래, 5분만 온대도 나는

원이 없겠다

 

얼른 엄마 품속에 들어가

엄마와 눈맞춤을 하고

젖가슴을 만지고

그리고 한 번만이라도

엄마! 하고 소리내어 불러보고

숨겨놓은 세상사 중

딱 한 가지 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바치고

엉엉 울겠다

 

 

비와 어울리는 음악

음악출처: http://blog.daum.net/jhoneli/16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