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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길에서

큐슈올레 3 -구마모토현(熊本縣) 아마쿠사(川草).이와지마(維和島) 코스 :순교의 섬

by 이성근 2013. 6. 10.

 

 

눈을 뜨니 비에 젖은 바다가 몰려 왔다.

어디가 어딘지 감잡을 수 없다. 짐작컨테 오야노(大失野)섬과  가미시마섬 사이 떠 있는 섬들의 조합같다. 출국 전 사전에 지도를 들여다 보며 감을 잡았지만 막상 현장에 서니 까마득해졌다.  몇 번 오가던 큐슈내 다른 지역들은  눈에 익어 기억이 새롭지만 이곳은 초행이다.   하지만 가고자 하는 곳에 대해 사전에 지도를 보는 일은 바람직하고도  유효한  일이다.

번식기에 든 솔개들의 짝짓기 시절 노래가 틈틈히 들린다.  일본에서 부러웠던 것 중에 하나가 이 솔개들의 울음과 어디서나 볼 수있는 그들의 비행이었다.

차려진 음식의 이름은 ?  

어쨌거나 여기서도 밥 두공기를 비우고 속을 든든히 챙겼다.  목간은 새벽에 눈뜨자 말자 다녀온 후라 간밤의 피곤은 씻어냈다.

날이 밝으면서 빗줄기는  점차 굵어졌다.  누군가 우스개 소리로 '놀멍쉬멍 비맞어멍' 이라고 했지만, 그래서 빗속에서 걷는 맛도 있다 했지만,  걷는 사람에게 비는 별로 반갑지 않는 친구다.  집을 나설때 마지막까지 가져 갈까 말까 망설였던 비옷이 그토록 절실하게 느껴진 적도 없다.  한가지 주목할 점은 이 곳 역시 전보다  비내리는 횟수가 많아 졌다는 것이다.  묵었던 호텔은 쇼센가쿠 로만칸으로 1박2식에 10,500엔이다.    

대정 6년에 그려진 구모모토 현의 지도,  그러니까 한 백년 쯤 되려나 . 일본의 연호는   B.C 8000 죠몬 >  B.C 3000 야요이 >  A.D300 야마토 >  593 아스카  > 710 나라 > 794 헤이안> 1192 가마쿠라 > 1338 무로마치 > 1573 아즈치 모모야마 > 1603 에도  >1868 메이지 > 1912 다이쇼 > 1926 쇼와 > 1989 헤이세이 로 이어진다.

 

코스안내

센자키 버스정류장 (千崎バス停)센자키고분군 (千崎古墳群 0.1km)→조조어항 (蔵々漁港 2.5km)→감귤밭이와 사쿠라 꽃공원(維和桜・花公園 5.5km)→다카야마 (高山 6.4km)→소또우라자연해안(外浦自然海岸 9.1km)→해안코스산길(9.7km)→시모야마(下山)시모야마 마을(下山地区)센조쿠 버스정류장(千束バス12.2km)→센조쿠 천만궁(千束天12.3km)

치자키 고분군으로 오르는 길목, 야트막한 언덕을 이루고 있다.

아마쿠사는 제주와 많이 닮았다.

방치된 것인지 그냥 자연스럽게 보라는 것인지   아무튼 이런 식의 고대 돌무덤은 일대에 많이 있다. 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흥분됐다.  치자키 고분에 대한 정보를 찾았으나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보니  찾기가 쉽지 않았다.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이미 발굴조사는 끝난 상태라고 하는데...

 

매화꽃 넘어 낮으막한 산이 첩첩인데 이름을 알 수 없다.   모르면 그냥 넘어가면 되겠지만 궁금한 것은 어쩔 수 없다.  기상관계로 아마쿠사 제도가 보여주는 해안풍광은 볼 수 없다. 

조조어항으로 내려 와 마을 길을 걷는다.

올레 표시가 모퉁이 마다  있어 일행과 떨어지더라도  수월하게 이동한다.

해안선 둑길 넘어수로변 그림이 좋다. 

전면에 불쑥 솟아 있느 봉우리는 도바세 섬인듯 하다.  조조항에서 서북쪽에 위한 섬은 그 섬이 유일하니 어쨌든 이 그림도 좋다.  

석방렴( 石防簾 ) 원시적 어로의 한 형태로 일명 독살도 보인다.  우리나라의 경우 경상,충청, 전라도 연안 만입(灣入)한 간석지나 갯벌 등에서 반원형으로 돌담을 쌓아 멸치나 고등어 , 새우, 전어 등을 잡기 위해 설치했는데 대부분 사라졌는데, 여기서 독살을 보게 되었다.

해안은 들고 남이 많다.

 

일본의  잔다르크 '아마쿠사시로 토키사다'가 태어났을 때 씻겼던 우물이 있는 집을 찾았다.  그는 크리스챤이었다. 일본에 크리스트교가 전해진 것은 16기 중엽 쯤이라고 한다. 당시 일본은 많은 영웅들이 세력다툼을 한 전국시대였고, 패권을 다투는 대명과 영주들은 무역의 이익과 새로운 무기인 대포를 얻기위해 상인과 선교사를 받아들였다고 한다. 아마쿠사에서는 1566년 폴투갈 선교사 루이스 데 알메이다가 일본에 들어온 후 많은 이들이 세례를 받고 열성적인 크리스찬 영주인 고니시 유키나가의 치하에서 기리시찬의 황금기를 맞이하였다. 당시 아마쿠사의 인구는 약 2만5천이었고 그 중 신자 수는2만명에 30여개의 성당이 있었다. 또한 대신학교가 설립되어 서양의 문화와 학문이 이곳에서부터 널리 퍼지게 되었다.

 

 

 

 

하지만 에도시대가 되자 막부에 의해 금교령(크리스트교의 금지령)이 내려져 아마쿠사지역에서는  탄압이 시작되었다 고 한다. 여기에 영주의 가혹한 소작료 징수와 기아는 사람들을 곤경에 빠지게 했다. 더는 참을 수 없을 즈음  1637년 시마바라에서 크리스찬들이 봉기를 시작했고, 이것이 확산이되어 후에 "아마쿠사 시마바라의 난"으로 불리는 큰난이 일어났다.

당시 3만7천명의 크리스찬군은 불과 15세밖에 되지 않은 소년 아마쿠사시로 토키사다를 총대장으로 결속을 다지며 선전을 하였지만 12만의 대군을 거느린 막부군에 의해모두 참수 당하는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이후 에도 막부는 크리스찬을 더욱더 엄격히 단속하지만 간신히 살아남은 크리스찬들은 카쿠레크리스찬(숨겨진 크리스찬)으로서 굳건히 그 신앙을 지켜나갔다.  그 숨겨진 신앙이 있는 곳이바로 아마쿠사다. 

카톨릭이 금지되어 있던 에도 시대에 지하 카톨릭 신도가 많이 살고 있던 아마쿠사에는 지금도 카톨릭 신도가 많다. 사키쓰 텐슈도(천주당)는 아마쿠사 시모지마(섬).사키쓰 교쿄(어항)에는 1934년에 건립된 아름다운 고딕양식의 건물로 교회 건물로서는 드물게 성당내에 다다미가 깔려 있다고 한다. 어쨌든 그 피흘림의 과정을 통해 일본 카톨릭이 이곳에 뿌리내렸다. 

 

 

 

우물집 마당에 핀 색색의 매화들

마을골목 올레를 빠져나와 쥬쿠사쿠신사를 스친다.

 

 

감귤이 탐스럽게 열였다.  제 풀에  떨어진 감귤 하나 주워 '힘들게' 까서 입에 넣는 순간 왕창 몰려온 신맛에 다시 뱉어내고 말았다.  시방도 그맛이 생각나 침이 고인다.

이와 사쿠라 꽃 공원 입구에서 지역민들이 간식을 준비했다.  구모모토현 관광연맹의 이리유미코씨를 모델로 세워 수제 덴뿌라 시식장면을 연출해 보았다. 갯가 주변이라는 것을 실감한다. 2~3개 먹으면 요기가 될 만큼 근기가 있다.

이 안내판을 보고 의견이 분분했다.  여기 멧돼지가 출몰하느냐, 그런데 왜 꼬리에 불이 붙어 있는 둥, 알고보니 산불조심이었다.  쉽게 연상이 안되는 그림이었다만  

아마쿠사의 첫 번째 뷰 포인트 전망대 가는 길  

이 비안개 속

예상했던 대로 전망은 시계 제로였다.  멀리 야츠시로카이(八代海) 위에 떠 있는 섬들과 날씨만 좋다면 운젠의 후겐다케(普賢岳), 저멀리 아소산(阿蘇山)도 보인다고 ...

그나마 잠깐 안개가 걷힌 상황에서 조망중인 일행들

전망대 가는 길 주변에 많이 보였던 노란색의 액이 나오는 황칠나무와 참나무과의 가시나무류들, 간간이 녹나무도 보였다.

전망대 중턱 쯤 내려서자 희끄무리하게 보이는 해안들, 작은 평지가 있는 곳에 한 100년 이상 되보임직한 졸가시 한그루 서 있다. 여름 이 나무 그늘이 만들어 낼 풍경을 상상한다.

맑은날이었다면 이곳에서의 조망이 흔히 하는 말로 끝내주는 곳이라. 하여 그 감흥을 詩로 적어내면 주민들이잘 된 것을 뽑아서 선물로 준다고 한다.  그 참 괜찮은 발상이다. 여유롭게 완상하면서 걷는다면 시상이 떠오를 법 하다.

대숲 사이 임도인듯한 콘크리트 포장길을 따라 내려 가면

이런 풍경도 만난다.  

일행들이 두이서이 아바구를 하며

우리나라 도감에는 황칠나무의 나무껍질 수피가 회색이라 기술하고 있는데 이곳의 황칠나무 수피는 누렇다.

하산길은 조금의 비탈이 있다.

그리고 마주한 해안

소또우라 자연해안이다.

길을 낸 사람들이 이름 부친 빨래판 암석해안은 미야자키현 아오시마의 ‘도깨비 빨래판’을 흉내낸 듯 하다.

 

한 1km 정도 해안을 따라 걷다 다시 샛길로 접어든다. 여기도 석관묘가 있다. 살펴보니 담벼락이 군데군데 있어 예전에는 사람이 머문 흔적이 보인다. 

한 사람이면 족한 오솔길을 지나면

시모야마(下山)가 내려다 보인다.

보리새우 양식장을 지나

 

이와지마를 마지막으로 담는다.

새우튀김 덥밥을 점심으로 먹고 가고시마로 향하는 길

아마쿠사의 상징인 천주교당은 순교의 역사 만큼이나 일본 어느 곳보다 쉽게 눈에 뛴다.   동상으로 세운 저 친구가 15세 소년 아마쿠사시로 토키사다 이다.  나이많은 지혜로운 사람도 있을 법 하지만 15세 소년이 무리를 이끈 대장이라는 사실이 여러 생각을 불러 일어킨다.

한국 천주교도 이땅에 피를 적시며 그 역사를 열었다. 일본 보다는 한 두 세기 뒤에 들어오긴 하였지만 순탄치 않았던 행보였다.  1784년 이 땅에 천주교가 전래된지 얼마 안 되어 1791년 신해교란이 일어 났고 그 후 신유박해(1801), 기해박해(1839-43), 병인박해(1866-69) 등이 일어 났다. 특히 병인박해 때 양화진에서만 목을 벤 순교자가 1만이 넘는다. 그래서  용두(龍頭)라고 불리던 봉우리가 절두산으로 불리워 졌다.  아무튼  순교(殉敎)란 것에  잠시 숙연해진다.  그리고 지킨다는 것을 다시 생각한다.  

큐슈 및 구마모토와 이어주는 5개의 다리를 일러 '아마쿠사 파루라인'이라 한다. 이와지마 에서 야주지마(野牛島) 간에 놓인 다리를 건너 아마쿠사 파루라인으로 연결된다.   그 다리를 다시 건너면서 더 남쪽 가고시마로 향하면서 본 섬들

 

자다말다 차창으로 건너다 본 산야들

 백수관으로 가기 전 해안을 따라 빼곡히 설치된 이안제( 離岸堤 ). 해안선과 떨어진 해면측에 해안선과 평행으로 설치하는 것으로 해변에 작용하는 파력(波力)을 감세(減勢)하여 해변을 안정화시킬 목적으로 설치하지만  보기가 딱하다.  일본의 해안개발과 침식, 그리고 이를 방지하기 위한 콘크리트 구조물들이 되풀이 악순환되고 있는 현장이다.   

얼마나 아름다웠을 해안선이었을까 .

날이 저물어 갈 즈음 이브스키 백수관에 도착했다.

프론토에 해당하는  건물

 

건물과 건물 사이를 연결한 회랑이 매우 인상적이다 .  백수관은 2004년  4월17일 고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가  정상회담을 했던 곳이다.  

당시 노대통령은 모두발언을 통해 “이부스키까지 오는 동안에 일본의 이 지역이 아름답다는 느낌을 받았다. 공항에서 내려서 이쪽으로 오는 동안에 아주 아름답게 생긴 만을 보고, 거기도 아름답다고 느꼈지만 특히 이부스키는 아름답다. 그리고 백수관도 특별히 아름답다고 느꼈다. 이런 지방도시에 이만한 설비를 갖추고 오늘 이같은 행사를 할 수 있게 된 것은 매우 놀랍게 생각하고, 참 부럽다는 느낌도 함께 받았다”고 했다.  왼쪽 건물이 노대통령과 수행원이 묶었던  리큐(離宮)인데 우리 일행도 저 건물2~4층을 2인1조로 하여 투숙했다.  

넓직한 복도며 역시 넓고 전망 좋은 방이 하루 쯤 무물다 가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했다. 

백수관은  킨코만 (錦江灣)을 바라보는 5만 평이 넘는 대지에 일본 전통 건물과 서양식 건물 여러채가 연결된  대규모 료칸이다.  일본 전국 250여 개 료칸 중에 최고 으뜸의 명성과 지위를 가진 료칸이다.  이런 성적은 일본 최고 여행사인 JTB가 매년 5개 부문(시설,요리,온천,서비스,분위기)의 평가 합산하여 선정한 것이다.  다른 데는 안가봐서 잘 모르겠지만 이 정도면 좋은 것 아닌가   

정원 또한 잘 꾸며져 있다.

 규모도 클 뿐아니라 볼 거리도 많다. 목욕하러 가다 말고 내부 기념품 점을 돌아 보고 정원으로 나서니 어둠이 내렸다.   긴코만(錦江灣)에 연해있는 해안선 멀리 불빛이 아련하다.  안따깝게도 날이 밝으면 떠나야 한다. 하단부 작은 사진은 밝을 때 모습이다.  

정원 내 수영장에서 바라 본 숙소

가고시마에서의 환영 만찬 이브즈키시 시장이며, 백수관 사장, 큐슈관광협회 회장 등이 한마디씩 했다.  식사는 공식 행사가 끝난 다음부터 였는데 

가이세키요리(會席料理)로   양식 코스요리처럼 정해진 순서에 따라 하나씩 나왔다. 잠두콩, 낑깡, 새우, 죽순, 유채, 우엉, 피망, 광어, 잿방어, 다랑어, 고구마, 흑돼지에 딸기까지 거의 모든 재료가 가고시마의 땅과 바다에서 생산된 것들이다.

이브즈키 시장과 서명숙 제주 올레 이시장, 백수관 사장이 주고 받고식으로 인사말을 했다.

식전에 먼저 매실주를 한잔 한다.  흰 두부는 복어알로 만든 것이다.   우측 뭔 도시락같은 것은 용궁과 관련 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뚜껑을 열면 김이 피어 오른다. 김이라고 표현해도 맞는지는 모르겠다만 그 내용물은 왼쪽하다누 구석에 노란기 청어알이고 중간이 강새우 졸임에 생강순 초밥, 새파란기 완두콩 그리고 가운데 작은종지에 들어 있는 것이 산처어 알

순무 덕잎에 계란두부 국                                                                                노란 꽃이 장식된 회는 갯방어와 참치

흑돼지 졸임은 토란과 강남콩이 조합되어 있고                                                    소라 

흑돼지 샤브샤브

뭘 먹는지 최소한 이름이라도 알아야 겠다 싶어 메뉴판을 구해 번역까지 요청했지만 뭐라 써 놨는지 못알아 본다.

그리고 후식이다.  

이곳에 와서 이벤트 하나가 급조되었다. 이와지마에서 1박 할 때 어울려 술 마시다 제주 올레 정지혜 팀장과 바우길 우강열 간사가 술김에 장난삼아 약혼을 했고,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두 트레일 이사장들이 만찬식을 빌어 공식?으로 내빈에게 인사드리는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그런데 이 커플들은 귀국 하자마자 각자 고향으로 가버렸다. 이어 제주 올레팀들이 제주민요 이어도사나를 축가로 불렀다.  

 남해 바래길 문찬일국장이 그 현장을 기록하여 전국에 돌렸다. 

그렇게 시간을 보낸뒤

백수관 사장이 직접 안내를 하며 설명을 해줬던 사츠마 전승관. 지난 2008년 개관한 10엔짜리 동전에까지 새겨져있는 쿄토의 뵤도인(平等院)을 모델로 건축된 것이다.

 

백수관 사장이 직접 안내를 하며 설명을 해줬던 사츠마 전승관. 지난 2008년 개관한 10엔짜리 동전에까지 새겨져있는 쿄토의 뵤도인(平等院)을 모델로 건축된 것이다.

 450억 원인지 엔인지 정도 들었다고 했다. 헌데 이 건물  값보다 몇 배 비싼 도자기도 전시되어 있다.  한편 이곳에는  정유재란 당시 일본으로 끌려가 일본의 화려한 도자기문화를 꽃피운 심수관家가의 종가가 있는 곳으로 그의 작품도 다수 전시되어 있다. 

밤이 깊었다.  1박을  50만원 이상을 주고 그냥  잘려니 아깝은 생각에

사람들을 불러 모아 이 일본 홍시를 안주 삼아 한잔 하고 잠이 들었다.  다시 밤바다가 창 넘어 몰려 왔다.

 

96 Tears - Question Mark and The Mysterians 올드 팝 매니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