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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길에서

큐슈올레 2- 오이타현 오코분고(奧豊後) 코스 :오카 산성(岡城)에 젖다

by 이성근 2013. 6. 10.

 

오이타현 분고오노(豊後大野)시 마스노이 호텔에서 나와 주변 거리를 배회하다.  우리처럼 일본의 학생들도 이른 아침 학교가느라 총총걸음으로 스쳐 지나갔다. 인근 역에서 타고온 자전거를 주차시켜 놓거나 기차를 이용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이날 아침도  스미마생 이었다.  분고오노시는 인구 4만의 농업도시로 전체 면적의 75%가 산림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기후는 제주와 비슷하다. 

코스안내

JR아사지역(JR朝地駅) 유자쿠공원(用作公園)(1.8km)  후코지(普光寺)(4.0km)  묘센지 절 밑 갈림길(明下分かれ道)(5.7km)  소가와 주상절리(十川節理)(6.9km)→ 오카 산성터 후문(岡城下原門)(8.1km)  혼마루(타키 렌타로 동상)本丸瀧廉太銅像(8.6km) 치카도구치(口)(9.1km) 오카성주차장(요금소)岡城駐車場(料金所)(10.6km)→ 타키 렌타로 기념관(瀧廉太記念館) (11.1km)  16개의 나한상 (十六羅漢)(11.3km)   JR분고다케타역 (Jr豊後竹田駅)(11.8km)

아담한 무인역 JR아사지역 ... 경북 봉화의 승부역이 떠 올랐다.

오코분고 코스는 오이타현에서도 오지에 속하는 전형적인 산간마을이다.  아쉽게도 비가  내린 이날 원경들을 안개가 시야를 가렸다.

 

 

살판난 것은 이끼류였다. 수분을 잔뜩 머금었다. 

길은 이렇게 축축하니 비에 젖어 색다른 풍경을 연출했다.

유자쿠 공원길을 돌아서고 있다. 에도시대 오카번의 우두머리 신하의 별장지로 만들어져 영빈관으로사용되었는데 현재 건물은 남아있지 않다. 정원의 잔재로서 心자와 丹자 모양의 연못이 있고 500 그루의 단풍이 있어 가을이 유명하다고 한다. 그리고 봄이면 벚꽃이 풍광을 돕는다.  

토노마치 마을로 향하는 길. 이렇게 아스팔트 도로가 나 있어도 차량은 거의 다니지 않는다.  일본은 그런 곳이다.  '잃어버린 일본'으로 외국인 작가에게 주는 신조(新潮) 국제문학상을 받은 Alex Kerr의 Dogs and Demons(국내에서는 홍익출판사-'치명적인 일본'으로 번역출판) 에는 일본의 산과 강, 해안이 어떻게 망가졌는지를 그 근원에서부터 구조적 차원에서의 접근을 기술해 놓고 있다.  이 아스팔트는 그 작은 흔적일 수도 있다.

우리로 치면 임도인 길의 사면은 칼로 베어낸듯 말끔했다.  다행히 세월이 흘러 풀과 나무들이 피복중이었다.  그나마 사람의 간섭이 적은 곳이기에 그 회복은 빠른 듯 했다.  

 

올레 관계자들이 전원 풍경이 좋다며 선전하던 다랭이 논이 많다.

가능한 흙길을 고집했던 올레의 철학이 여기서도 확인된다.

이런 길은 일본이고 한국을 떠나  사람을 편하게 한다.

삼나무와 대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큐슈는 삼나무가 특히 많다. 그리고 대부분 조림된 것이다.

콩짜개덩굴은 지천에 널렸다. 고란초며 양치류가 숲 바닥에 군락을 이루고 있다.

토노마치 마을주민들이 만두와 잡채같은  뽁음 국수를 간식으로 준비했다.

제주 올레 송수호 탐사팀장이 만두 맛을 보고 있다.  만두에 발린 소스는 겨자다. 생각없이 뭉턱 발라 먹다 톡 쏘는 맛이 코 끝을 아리게 한다.

 

 

마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후코지절(普光寺) 큐슈 최대의 마애석불 있다.  크기를 말함인지 갯수를 말함인지는 잘 모르겠다.

 

약20m 암벽에 새겨진 부동명왕

확실히 우리 보다 봄이 일찍 왔다.  흰털이나 고깔 제비꽃 같은데 제대로 동정을 못했다. 비에 흠뻑 젖어있는데다  길이 좁아 뒷사람에게 방해를 주지 않기 위해 얼른 한 컷했다.  고깔제비꽃은 부산에서도 흔히 보이는 종이다. 반면 흰털제비꽃은 제비꽃 중에 가장 크고 아름다워 제비꽃의 여왕이라 부른다.

 

차내에서 사전 설명으로 이 절의 피아노 이야기를 들었다. 주지가 예불을 피아노를 연주하라는 안내문이 있기도한데, 마침 일행 중에 잘 치는 사람이 있어  그의 연주를 석굴에서 들을 수 있었다.  

한국길모임 대표이자 바우길 이사장인 소설가 이순원씨는 마애석불(磨崖石佛)이란 표현에 대해 의견을 달았다.  마애 라는 것이 석벽을 쪼아 갈아서 글자나 그림을 새긴 것을 말함인데, 그의 주장인즉 "이게 사실 참 어려운 한자이고 일상생활에서도 잘 쓰지 않는 말이라 고전과 문화재에 대해 제법 아는 사람들도 다들 마애불상, 혹은 마애석불을 '마애'라는 이름의 부처를 새긴 불상이거나 석불인 줄 알아요.

 

예전에 양귀비를 어려운 한자로 앵속이라고 불렀던 것과 비슷한 건데,, 그래서 <양귀미를 몰래 재배하는 농지 단속>을 <앵속밀경단속>하고 쓴  공문이 1960년대 후반과 70년대 초반 면사무소만이 아니라 관내 초등학교 교무실에도 내려오니 띨빵한 선생들조차도 이게 뭔말인지 몰라 고개를 갸웃거렸던 거지요.

 

마애석불, 마애불상 역시 석불이나 불상의 종류로 알지 그 말이 조각 기법을 분류해서 붙인 말이라는 걸 아는 사람이 아주 드뭅니다.

그래서 저는 마애석불을 <절벽불상>하고 부르고 있고,이렇게 부르는 게 시대적으로도 맞다는 거지요.

 

절벽에 무얼 새기는 걸 <마애>라고 하고, 마애라는 건 돌절벽에 말고는 그 기법을 발휘할 데도 없는데, 그러면 그걸 보다 쉬운말로 <절벽불상> 혹은 <석벽불상>이라고 부르는 게 맞지않나" 라는 것이다.

그 아래서 기념 사진을 차례로 박았다.

지리산 숲길의 박정은간사,          제주 올레지기 서순애씨의 딸 이윤아 통역,               길과 문화 최해선 팀장,              대구 올레 오병헌 센터장  

다시 토노마치 마을로  오니 어묵을 준비했다. 여기서도 꽃들이 일찍 피었다.    

소가와 주상절리를 보기 위해 주민들의 배웅을 뒤로 하고 마저 걷는다.

 

씩씩하게 걸음을 내딛는 우리의 통역

일본 농촌 역시 젊은이들이 없다. 산비탈 이나 골짜기 묵정밭은 더 이상 농사지을 청년층이 없다는 반증이다.  

마을 사이 강이 흐른다.

제주 올레 정지혜 팀장과 론니플래닛 여행사진 작가 이한구씨

일본의 하천 환경은 거의 몇 군데를 제외하고 토목사업이 이루어 졌다.  침식방지, 홍수억제라는 명분 아래 댐 건설이 이루어 져 왔다. 1997년 기준 일본의 주요 하천 97%가 대규모 댐으로 막혀 버렸다. 나아가 지류 하천 제방은 콘크리트로 발라졌다. 그 거침없는 행진은 일본 관료주의 시스템 속성이기도 하다. 예컨데 한때 구상했던 것은 언제나 유효한 구상이라는 것 때문이다. 물론 이에 대한 반성으로 다자연형 하천살리기 등의 운동도 있다. 반딧불이 복원 운동 등도 이 범주에 든다.  하지만 유심히 살펴 본 바 그 흔적은 곳곳에 있었다.  

여기서 생각해 볼 것이 기레이(奇麗) 라는 표현이다.  일본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는 말로 아름답다거나 깔끔하다는 뜻인데 그 깔끔 속에는 불도저로 확 밀어버린 산등성이나 콘크리트로 말끔하게 단장된 강둑을 묘사할 때 쓴다.  관념화 된 이 표현은 일본이 개도극 시기 대부분의 시골길이 비포장에서 막 아스팔트로 딱힌 직후 사람들을 사로잡은 생각이었다.

모퉁이를 돌아서자 소가와 주상절리의 현장이다.

 

오소산의 분화 때 분출한 화쇄류가 굳어진 암반을 강이지나면서 형성된 곳으로  사라타키가와 이바나가와 두 강이 만나는 소가와(十川)에 육각형의 기둥모양의 주상절리가 풍경을 이룬다.   예전에 바다에서 이곳까지 배가 들어와 물건을 내렸다고 한다.

 

제주 올레 김민정 홍보팀장

 

오카산성터로 가는 길 

오카산성은 깍아지른듯한 절벽 위에 축조된 산성으로   일본의 유명한 작곡가 였던 타키 렌타로(1879-1903)의 명곡인 '황성의 달(荒城の月)'을 이 성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했다고 한다,  23세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한 일본의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로서 그의 사후 이 곡은  도이 반스이(土井晩翠)의 가사가 입혀져  일본 중학교 음악책에까지 실려 있다.  구슬픈 곡이면서도 일본을 대표하는 곡으로 오이타케의 타케타역에서는 열차가 도착할 때 마다 이 곡을 둘려 준다고 한다

성벽에 엉켜붙어 있는 벚나무들

비가 원망스러웠다.

동양 3국 한.중.일의 성(城) 문화와 관련  일본의 성은 한국과 중국의 성과는 확연한 차이를 가진다.  한국과 중국의 성이  해자와 성벽 백성과 군사시설을 한 울타리에 넣고 있는 공동체적 성격을 견지한다면  일본의 성은 성주를 중심으로 오야봉의 공간을 집중적으로 보호하는 형태로 해자도 2중3중으로 겹겹 둘러쳐진 상태일 뿐아니라   성 내부 통로는 미로처럼 만들어져 있다. 

건축물은 성벽마루 위에 세운다. 때문에 성주의 거처인 천수각은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함으로 인해 적에 대한 방비는 물론 그 자체가 권위를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전쟁을 통해 성의 주인이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났다고 믿는다.  

성 아래  도로에서 들려오는 노래소리에 귀 기울리이는 참가자들  일정구간 차량속도가 60km 로 달릴 때면  노래가 정상적으로 들리는데 반해 속도가 빨라지거나 느리면 그 노래도 우습게 들린다고 한다. 이 또한 빗소리에 묻혀 버렸다.

성벽위로 난 길이 운무 더불어 한 점 수묵화로 다가선다.

 

이곳 전망대에 서면 구쥬연산(久注連山1,786m)과 소보산(祖母山1,756m) 아소산(阿蘇山 1592m)등 1,000m이상의 산이 40여개나 되는 산군을 조망하는데 지난 2006년부터  한국인이 많이 찾는다

 

황성의 달(荒城の月) 을 작곡한  타키 렌타로  

 

1979년 발행된 우표 일본의 노래 시리즈 제1집에 그 정황이 포착된다.  


봄의 높은 누각에 꽃놀이 잔치 열려 술잔 주고 받으며 웃음소리 들리네

천년 소나무 가지에 달빛 어지러 지나간 그림자어디서 찾을까


가을 군영에 서리발 기ㅏ운 감돌고 맑은 하늘 먼곳에는 기러기 그림자

갑옷과 이론도가 숲처럼 빛나던 그 옛날 그 모습 어디에


오늘 밤 황성위에 달이 뜨고 달빛은 예전과 다름 없고

성벽에는 넝쿨에는 우겨져 있고 외로운 바란 소나무 가지에 스치고


대자연은 사철 변함없이 세상은 흥망성쇠가 무상하네

인생의 아침 이슬에 달빛이 비추니 아아 황성의 달이여

성을 내려오는 길은 지그재그로 이어진다.  성주야 말타고 다녔겠지만 졸병이며 짐을 날랐던 백성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언덕 하나를 넘으면 작은교토라는 마을과 함께 JR분고다케타 역이다. 

성을 돌아서 내려와야 하는데 그래서 16나한상은 보지 못했다. 다 비 때문이다.

주차장에서 지역 올레 관계자들의 배웅을 받으며 점심 먹으러 간다.

 

술 파는 밥집이라는 뜻을 가진 밥집에서 간만에 도시락밥을 먹었다.  

조금 늦게 들어 갔더니 졸지에 오야봉이 됐다. 왼쪽부터 우리땅 걷기 신정일 이사장, KCTV 현승현PD와 한경업 촬영감독, 바우길 이순원 이사장과 우상렬 간사, 중앙일보  손민호기자  그리고 오른쪽 남해바래길 문찬일 국장, 한국등산트레킹지원센타 구경모 국장, 이한구 사진작가, 이유미 큐슈관광기구, 조선일보 김윤덕 기자, 오마이뉴스 이한기 편집국장  등이 보인다. 이렇게 한 줄에 밥 먹기는 이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입가심으로 나왔던 말차와 다과....사람이 제법 많았는지  더디나오자 일부는 기다리다 일어섰고 또 그 바람에 남아 있던 몇 사람 은 두 잔 씩 마셨다.  

백량금 열매가 유난히 희게 보인다,   

다시 떠날 시간  사)오이타 투어리즘의 김하나씨가 눈물을 보였다.  그녀는 제일교포 3세다. 

큐슈올레 3코스인 구마모토현 이와지마까지는 3 시간 반 정도 걸린다. 차를 타고 가면서 김하나씨의 눈물을 생각했다.  그녀는 왜 눈물을 보였던 것일까.  고작해야 하루 남짓한 시간,  어떤 마음의 교감의 있었던 것일까.   자다말다 차창 넘어 어둑살 낀 이와지마가 성큼 다가선다.

이와지마 센조쿠 천만궁 (天草 ) 환녕 만찬

도미 통사시미에 지역 툭산품인 보리새우를 비롯 한 상 가득 요리가 준비되었다

kamiamakusa (上天草) 유키 카와바타 시장의 환영사가 있었다.  일본 내 최 연소 시장이라고 했든가.   

대북공연

 

큐슈올레 3코스를 만드는데 애쓴 사람들

 

3일 째 밤이 그렇게 깊어가고 있었다. 

 

 그대 먼 곳에 - 마음과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