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남해바래길 문찬일
근 4년 만에 해외 나들이를 했다. 사)제주 올레가 수출한 큐슈올레 개장에 따른 탐방이었다. KBS, 중앙일보, 조선일보, 오마이뉴스, 시사인, 월간 사람과 산, 제주방송 등 언론사와 함께 한국 길모임 소속 사)걷고싶은부산(갈맷길), 사)숲길(지리산둘레길), 군산 사)구불길, 사)길과 문화, 사)강릉 바우길, 대구올레, 남해 바래길, 전주 사)우리땅걷기 등 전체 30여 명 이었다. 고백하건데 그들의 이런 진출이 내내 부러웠고, 한편으론 부산의 갈맷길과 걷고싶은부산을 다시금 고민하게 했다. 그런데 귀국후 출근을 하니 진짜 심각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관광천국' 규슈는 왜 제주 올레를 수입했나
지난달 29일 일본 규슈에 있는 인구 5만4000명의 소도시 다케오에 '올레'가 탄생했다. 규슈관광추진기구가 한국에 걷기 열풍을 일으킨 '제주올레'를 수입해 가장 먼저 선보인 길이 14.5㎞의 '걷는 길'이다. 다케오에 이어 3월 1일엔 오쿠분고 올레(오이타현)가 열렸고, 2일엔 아마쿠사 이와지마 올레(구마모토현), 3일엔 이브스키 올레(가고시마현)가 차례로 개장했다.
규슈는 '올레'라는 이름 사용과 코스 개발 등을 지원받는 조건으로 제주올레에 100만엔(약 1400만원)을 지급했다. 일종의 로열티인 이 업무제휴비는 1년 단위로 갱신한다. 제주올레 사무국은 규슈섬 7개 현이 제출한 24개의 올레 설계안을 심사하고 답사한 뒤 4개 코스를 최종 확정했다
제주와 규슈가 올레로 '通'한 이유?
벳푸·유후인 등 최고의 관광지를 품고 있는 규슈는 왜 제주 올레를 그대로 본뜬 관광상품을 만들었을까. 제주 올레는 왜 100만엔이라는 '푼돈'을 받고 경쟁국 일본에 천금 같은 노하우를 전수했을까.
규슈관광추진기구 오오에 히데오 본부장은 "일본 대지진 이후 급감한 한국 관광객을 다시 불러들이기 위한 제1 전략으로 규슈 올레가 탄생했다"고 말했다. 대지진 이전인 2010년 규슈의 외국인 관광객 100만명 중 한국인이 65만명. 참사가 난 지 1년이 지나도록 관광객 숫자가 회복되지 않자 한 해 200만명 가까운 여행자를 불러들이는 제주 올레 열풍에 착안한 것이다.
해외유치추진부 모치마스 차장은 "한국인 여행자들이 '규슈에도 올레가 있네?' 하고 반가워할 수 있도록 표지판과 이름을 그대로 썼다"면서 "제주 올레가 제주의 숨은 풍경과 토속문화를 보여줬듯이 규슈 올레 또한 대규모 관광지에 가려져 있던 규슈의 비경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토착민들의 이야기를 선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 올레 안은주 사무국장은 "규슈 올레의 탄생은 제주와 규슈 모두에 윈·윈(win·win)전략이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규슈 올레는 일본에 올레꾼을 양성할 수 있는 전진기지가 될 겁니다. 규슈 올레가 성공하면 그 원조인 제주 올레를 찾게 될 테니까요." 제주 올레는 이미 2010년부터 해외에 올레길을 알리는 사업에 주력해왔다. 스위스 레만 호수 와인길(11㎞), 영국 내셔널 트레일 '코츠월드웨이∼더슬리 스틴치콤 언덕길'(5.5㎞)과 '우정의 길' 협약을 맺었고, 작년 캐나다 브루스트레일 구간에 제주올레 길을 냈다.
규슈 올레와의 업무제휴비를 100만엔으로 책정한 이유는 제주올레의 목표가 '돈'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생태 친화적인 걷기 여행이 세계 여행업계의 트렌드를 바꿔가고 있어요. 게다가 걷기 여행은 지역의 밑바닥 경제를 살리는 '착한 자본주의' 모델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제주 올레가 그 실례다. 2010년 문화체육관광부 보고서에 따르면 제주 올레를 찾은 도보 여행자들이 지역 경제에 미친 파급 효과는 2011년 3800억원에 이른다. 2015년에는 95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해 제주를 찾은 관광객 800만명 중 200만명이 올레를 찾았어요. 체류기간이 길고 재방문율이 높은 올레꾼들로 인해 제주의 재래시장과 대중교통이 되살아나고 있지요." (조선일보 3.3.)
위의 글은 이번 큐슈올레 개장식에 참여해서 4박5일을 같이 했던 김윤덕 기자가 쓴 기사중의 앞 부분이다. 전달하고자 했던 부분이 크게 다르지 않아 옮겨 실었다. 4박5일의 일정이 만만치 않아 먼저 사진부터 올린 다음 글을 입혀 볼 작정이다.
이날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은 이런 말을 했다. 아니 4개의 큐슈 올레 각 구간 만찬회를 통해 일관되게 이야기 한 것은 예컨데 한국관광객을 불러 들이는 또 다른 이벤트가 아닌 '성장과 경쟁에 지친 일본인들이 위로 받는 길'이기를 희망한다는 표현이 그것이다.
기자회견에 이어 서 이사장의 강연이 있었다. 23년의 기자생활을 하다 지난 2007년 제주 올레를 열었다. 일본에서는 첫 강연이라 했다. 서울 생할 30년, 그녀는 어떻게 하면 유명한 사람이 돨 수 있을까 하며 하루 하루를 전쟁처럼 살았다고 했다. 관광하고는 아무 관련 없는 사람으로 굳이 끈을 찾는다면 태어난 고향 제주 서귀포가 관광지였다는 것 말고는 아무런 연관도 없었다.
40대 중반 이후 그런 삶에 대헤 심각한 고민을 하던 중 스페인 산티아고를 다녀오면서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고 했다. 전세계 여행자들이 36일동안 800km를 걷는 그 길에 주 이용국가는 일본인이었다고 했다. 아무런 시설도없는, 대형자본이 개입되지 않은 길이 사람을 감동시키고 열광하게 만들었다. 거기서 제주를 생각했다. 많아봐야 2~3일 제주 관광 패턴에 대해 고민하다 왜 제주는 산티아고 같은 관광을 할 수 없는가. 하강국면에 들었던 당시 제주에 산티아고 같은 길을 낸다면 ...
사실 서 이사장의 올레이야기는 듣고 들어 어느 대목까지가면 그 다음 대목까지 선히 떠오르는 것임에도 귀를 열어 두고 열심히 경청했다. 그리고 큐슈 관광관계자들과 언론둘의 반응을 살피자니 아주 열심으로 듣고 있었다. 아마도 서이사장이 전덜하는 바가 옳은 것이기에 그들이 마음의 귀를 열어 두고 듣는 것이리라
그녀는 지금까지 5차례 큐슈를 방문했고 그 중에는 5일을 머문 적도 있었지만 큐슈 올레길 하루 걷고 지금까지 본 큐슈를 넘어섰다고 했다. 아무튼 산티아고 순례 이후 31년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제주로 내려와 길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성공 따윈 생각지도 않았고 그저 친구들만이라도 같이 걷게 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했다. 그런데 3년만에 빛이 나기 시작했다. 관의 지원도 없었다. 지쳐 있는 한국인들에게 제주의 자연을 보여주며 걷을 수 있는 갈을 찾았다. 길을 찾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중장비를 사용하지 않고 그 정소에 있는 소재를 이용하여 길을 조성했다.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달려들었다.
누군가 누가 비행기 타고 와서 올레를 걷겠냐고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어떤일이 벌어졌나? 올레 1코스 말미오름과 알오름의 경우 한 번도 외지인이 머문적이 없는 천 명 미만의 작은 마을이 사람이 머물다 가는 마을이 되어ㅆ다. 전통시장이 살아 났다. 서 이사장의 어머나가 장사를 하는 재래시장이 올레시장이 되었고 전국 1515개의 재래시장 중 1등을 했다. 뿐 아니다. 지역의 운수업계가 살고 식당 숙박업소가 되살아 났다. 길은 지역을 관통한다. 무엇보다 모든 사람들이 길에서 즐길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축구가 골프가 등산이 모두가 어울릴 수 있었든가. 날씨에 구애받지 않고 오히려 그로 인해 볼 수 없었던 것을 보게 됨으로 인해 걷었던 사람들은 평생 잊지 못하는 추억을 담아 갔거나 쇄진된 정서적 황량감을 재충젅해서 돌아 갔다. 어느 때 한 부자가 걸었다. 17년간 나눈 이야기 보다 훨씬 많은 대화를 나누고 난 다음 고맙다는 말을 들었더고 했다. 이혼 지경의 부부가 걷고난 이후 다시 가까워지는 길이 올레였다며 큐슈가 65만명의 한국인 관광객과 그 파이만 생각하지 말고 일본인에게 치유의 길로 작용하기를 거듭 바란다고 했다. 식상한 것을 넘어 더 본질적인 욕망을 자극하라는 주문도 있지 않았다.
한국 참가자들이야 귀에 익은 이야기지만 적어도 일본 사람들은 매우 감동받은 듯 고무된 표정이 역력했다.
기자회견이 끝난 뒤 허기진 배는 스파게티 한 그릇으로 만족해야 했다.
후쿠오카에서 사가현 다케오로 가는 차내, 통역 가이드 이권숙씨가 전반적인 일정과 방문항 지역에 대한 개략적 소개를 곁드린 일본의 문화와 역사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대단히 재치있고 유머도 풍부해 늘 귀를 즐겁게 했다. 권숙씨는 대구 출신으로 같은 영남권 이란 묘한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 아쨌거나 한마디로 매력적인 가이드였다.
큐슈는 일본을 구성하고 있는 4개의 큰 섬 중에서 한국과 가장 가까운 곳으로 부산에서 남쪽으로 200km 떨어진 곳에 있다. 면적은 남한의 절반이고 인구는 1300만 정도이다. 후쿠오카 현(福岡県), 사가 현(佐賀県), 나가사키 현(長崎県), 구마모토 현(熊本県), 오이타 현(大分県), 미야자키 현(宮崎県), 가고시마 현(鹿児島県)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케오(武雄)는 후쿠오카에서 차로 1시간 정도 걸린다. JR다케오 온천역 근처 교토야(京都屋: 1박2식 11,700엔 0594-23-2171)를 숙소로 했다. 온천이 유명하다. 지진의 영향 때문인지 차창 넘어 들과 마을은 낮으막하니 차분했다. 높아봐야 7층이 최고층인 건물 2~3동이 전부였다. 그 또한 매력이었다. 우리네 중소도시와 비교되는 대목이다.
교토야 입구 태산목 한 그루 반갑게 맞이 한다. 쥔장 前田明子씨가 일본인 특유의 애교스런(?) 몸짓과 억양으로 길손들을 맞이 했다. 헌데 그 말과 태도가 오래전서부터 몸에 벤 것이라는데 신기함 마저 있었다.
※ 3월6일 EBS '직업 세계의 일인자' 라는 다큐에서 온천 료칸(旅館)의 안주인 오카미(女將)를 소개했다. 일주일 전 교토야 오카미가 떠올라 관심있게 본뒤 미리보기를 통해 료칸과 오카미의 세계를 덧붙여 보았다. 그러고 보니 이튿날 우리가 떠날 때 배웅하던 모습도 다시 떠올랐다.
1. 일본의 전통 숙박시설 온천 료칸!
일본의 아름다움과 독특한 생활문화를 접할 수 있는 곳 료칸! 료칸은 일본 고유의 숙박시설로, 세계 어느 곳에도 없는 일본식 여관이다. 이러한 료칸의 매력을 얘기하자면 단연 온천을 꼽을 수 있는데, 온천 료칸은 온천을 좋아하는 DNA가 흐르는 일본인들에게는 온천욕과 편안한 휴식을 즐기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다. 삶 그 자체를 문화로 만들어가는 일본인들. 그들이 사랑하고 즐기는 온천 료칸에 담긴 일본만의 특별한 전통과 문화를 오카미를 통해 살펴 본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프로그램
2. 료칸의 안주인 오카미
일본 전통 료칸의 여주인 오카미(女將)! 오카미는 료칸을 찾는 고객들의 환영부터 음식을 준비하는 일, 이부자리를 준비하는 일 등 료칸 운영에 있어 손님들이 100% 만족할 수 있도록 접객 업무를 진두지휘하는 현장 책임자이다. 이러한 오카미들은 단순히 서비스적인 차원으로 손님을 접대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널리 퍼뜨린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다. 또한, 오카미는 방문하는 모든 손님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이들은 항상 평생에 단 한 번의 만남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바탕으로 손님을 대접하기 때문이다.
3. 서비스의 달인으로 선정된 사에키 마유미씨
군마 현에 위치한 마츠노이료칸의 오카미인 ‘사에키 마유미’ 씨. 그녀는 일본여행신문사에서 주최한, 여행업자들이 선정한 '서비스의 달인' 59인 중 오카미로는 유일하게 이름을 올리는 영광을 누렸다. 평소 그녀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정성으로 손님을 대하면서도 자신이 할 일은 척척 해내는 야무지고 능력 있는 오카미로 정평이 나 있다.
4. 전업주부에서 최고의 오카미가 되기까지
사에키 마유미. 그녀의 오카미 경력은 고작 3년밖에 되지 않는다. 그녀는 30년 가까이 되는 시간을 한 남자의 아내, 아이들의 엄마로만 살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가능성을 알아본, 료칸을 운영하는 남편 친구의 부탁으로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료칸의 안주인을 맡게 됐다. 늦은 나이에 시작한 만큼 선배 오카미 들에게 서비스 정신을 본받으면서도, 다른 특정 오카미를 목표로 두지 않고 자신만의 서비스를 베풀기 위해서 무던히도 노력했다. 그 결과 주위 사람들에게 최고의오카미로 인정받는 자리에까지 오르게 됐다. 또한, 사에키 마유미씨는 단순히 제공만 하는 일차원적인 수준의 서비스가 아닌 마음에서 진정으로 우러나오는 정성으로 손님들을대해, 손님들에게 하여금 오카미를 기억하고 료칸을 찾아오게 하기도 한다.
5. 자신의 직업을 사랑하는 사에키 마유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쉴 새 없이 움직이며 하루 수 백 명에 이르는 손님들을 상대해야 하는 직업 오카미. 하지만 사에키 마유미씨는 단 한 번도 인상을 찡그리거나
하는 법이 없다. 료칸을 찾는 손님들에게 편안함과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절대 허점을 보이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기계적이고 계산적인 서비스가 아닌
마음을 다하는 서비스인 것을 손님들도 알기에, 손님들 역시 마유미씨를 대하는 태도에 정중과 감사를 아끼지 않는다. 편안한 휴식을 즐기고 돌아가는 손님들이 편지를
보내올 때면 오카미인 것이 행복하고 다행이라고 느낀다는 그녀
다케오 올레 개장기념 만찬이 있었다, 축사, 답사, 참가자 소개, 길 소개 및 지역 특산품 소개 등이 있었고, 사람들은 쉽게 잔을 나누어 마셨다.
한마디로 잘해보자 였다. 어디서나 같은 느낌이었는데 길을 만듦에 있어 올레측의 수고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지역 담당 공무원들의 헌신과 노력이 돋보였다. 빈면 민간인의 참여는 업소나 광광 종사자 등으로 구분이 되었다. 물론 현장에서는 지역민을 만나기도 했다.
남해바래길 문찬일 국장과 제주 게스트하우스 민중각 백해진 대표, 대구 올레 오병헌 센터장 등이 보인다.
첫날 밤이 그렇게 지나갔다. 그리고 밤새 비가 내렸다. 교토야 거실에 내걸린 나락다발처럼
La Comparsa 外
출처ㅣ 다음 블로그 홍이 아뜨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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