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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 직접 쓴 '회의록 의견'…삭제 경위 드러나나 11.15 한국
盧, 조명균 결재 올린 회의록에 수정·보완 지시…해석 논란 여지
검찰은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폐기 의혹과 관련,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수정·보완 지시'를 내렸고 이것이 결국 회의록 삭제로 이어졌다고 15일 밝혔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이 비서진으로부터 회의록 녹취 내용을 중간 보고받은 뒤 수정·보완 지시를 내렸으며, 이 같은 지시를 내리면서 비서진이 올린 녹취록 내용에 대해 상세한 검토 의견을 달았던 사실을 확인했다.
조명균 전 안보정책비서관은 회담 내용을 녹음한 국정원이 전송한 회의록 내용을 2007년 10월 6일 다듬어 9일 청와대 이지원에 '문서관리카드' 자료로 작성, 결재를 올렸다. 백종천 전 안보정책실장은 이 카드를 열람해 중간 결재를 했다. 이어 노 전 대통령은 10월 19일 문서관리카드를 열어 내용을 확인한 다음 21일 관리카드의 '처리의견'란에 '수고 많았습니다. 다만 내용을 한 번 더 다듬어 놓자는 뜻으로 재검토로 합니다'라고 적고 결재를 끝냈다.
이 과정에서 별도로 '회의록을 수정·보완하라'는 취지가 기재된 '보고서 의견-남북정상녹취록.hwp' 파일을 첨부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이 파일에서 녹취록 내용을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특정 페이지를 언급하는 등 '디테일'에 각별히 신경쓰는 모습을 보였다.
검찰은 이 같은 과정을 거쳐 수정본이 만들어졌고 이후 이지원 결재를 받았던 초본은 삭제됐다는 입장이다. 검찰 수사에도 불구하고 노 전 대통령이 왜 수정·보완을 지시했는지, 왜 삭제하도록 했는지를 둘러싼 '동기'는 확실히 해소되지 않았다. 관련 조사를 받은 참여정부 측 인사들도 구체적인 진술을 내놓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노 전 대통령의 육성이 담긴 '보고서 의견'을 어떤 방향으로 해석해야 할지를 놓고 향후 재판에서 검찰과 참여정부 측 사이에 논란이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
다음은 노 전 대통령이 남긴 '보고서 의견-남북정상녹취록.hwp' 전문.
「수고 많았습니다.
읽어보니 내가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일이 생각보다 많다는 느낌입니다.
그리고 NLL 문제는 김정일 위원장도 추후 다루는 것을 동의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확실하지 않고 오히려 내가 임기 내에 NLL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앞으로 이 문제를 다룰 때 지혜롭게 다루어 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밖의 문제는 다 공개된 대로입니다만 앞으로 해당 분야를 다룰 책임자들은 대화 내용과 분위기를 잘 아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회담을 책임질 총리, 경제부총리, 국방장관 등이 공유해야 할 내용이 많은 것 같습니다 통일부 장관, 국정원장 등은 동석한 사람들이고 이미 가지고 있겠지요? 아니라면 역시 공유해야 할 것입니다.
필요한 내용들을 대화록 그대로 나누어 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내용뿐만 아니라 분위기도 이해할 필요가 있을 것이니까요. 제공할 사람의 범위, 대화록 전체를 줄 것인지 필요한 부분을 잘라서 줄 것인지, 보안을 어떻게 할 것인지는 안보실이 책임을 지고 판단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녹취록은 누가 책임지고 한 자, 한 자 정확하게 다듬고, 녹취록만으로 이해하기 어렵거나 오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부분은 각주를 달아서 정확성, 완성도가 높은 대화록으로 정리하여 이지원에 올려 두시기 바랍니다.
62페이지 '자위력으로'는 '자의적으로'의 오기입니다. 63페이지 상단,'남측의 지도자께서도'라는 표현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그밖에도 정확하지 않거나 모호한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시간도 없고 이 부분만큼 중요하지 않아서 이 부분만 지적해 둡니다. 이 작업에는 수석, 실장 모두 꼼꼼하게 검증과정을 그쳐주시기 바랍니다.
071020 대통령」
메아리/11월 14일] 눈 감은 자들의 나라 한국
2000년 2월9일 오후 청와대 기자실. 김대중 당시 대통령의 도쿄방송(TBS) 인터뷰 자료가 전달됐다. 한 기자가 "시끄럽겠구먼"이라고 했다. 다들 자료를 들여다봤다. 술렁거렸다. 김 대통령이 "김정일 총비서는 지도자로서 판단력과 식견을 갖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한 대목이 있었다. 평생 색깔론 시비에 시달린 DJ가 김정일을 호평하다니!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난리가 났다. "그릇된 안보의식으로 국민을 혼란케 한다"(이회창 한나라당 총재) "군 통수권자가 주적으로까지 규정되는 김정일을 고무 찬양했다"(하순봉 한나라당 사무총장) 등 정치권과 보수언론의 비난이 폭풍처럼 쏟아졌다.
그로부터 4개월여가 지나 6ㆍ15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다. '식견 있는 지도자'라는 평가는 '김정일, 당신을 신뢰하니 직접 만나서 문제를 풀자'는 메시지였던 것이다. 당시 막후 협상이 진행되고 있었지만, 북측 창구가 김정일에 가감 없이 보고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DJ가 직접 '고공(高空)의 대화'를 시도한 것이다.
고공의 대화는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때도 있었다. 핵 전쟁의 목전까지 간 상황에서 존 F 케네디 미 대통령과 니키타 흐루시초프 소련 서기장에게 가장 중시한 것은 정확한 메시지였다. 흐루시초프가 강경파에 의해 실각했다는 소문이 나돌고 케네디도 군부의 쿠바 폭격 주장에 시달리고 있는 불확실한 긴장국면에서 잘못 전달된 정보 하나가 곧바로 전쟁을 촉발시킬 수 있었다. 다행히 케네디와 흐루시초프는 상호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을 내세워 정확한 메시지를 주고 받아 타협을 이뤄냈다.
이 두 사례는 북한이나 소련처럼 폐쇄적 독재체제를 움직이려면 최고지도자를 설득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그 설득의 화법이 보편적 정서에 어긋나거나 과하더라도, 나라와 국민의 미래를 위한 것이라면 굳이 통치행위를 들먹이지 않고서도 받아들일 수 있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 고(故) 노무현 대통령이 던졌던 NLL(서해북방한계선) 발언도 그랬다.
2007년 10월3일의 평양으로 가보자. 유시민 전 의원의 저서 <노무현 김정일의 246분> 등 증언과 보도를 종합해보면, 회담의 시작은 어두웠다. 노 대통령은 전날 오후 5시 김영남 상임위원장과의 회담에서 김영남으로부터 우리 정부의 자주성 부족을 힐난하는 45분의 장광설을 듣고 무척 불쾌했다. 노 대통령은 "내일도 이런 식이면 보따리를 싸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할 정도였다.
이 우울한 분위기는 3일 오전의 노무현ㆍ김정일 회담에 그대로 이어졌다. 오후 회담도 예정돼 있지 않았고, 노 대통령의 제안에 김정일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반전은 북한의 절대적 가치인 자주에 대한 토론에서 이루어졌다. 먼저 김정일이 남측의 자주성 결여를 지적하자 노 대통령이 자주의 상대성, 점진적 자주 등 온갖 논리를 내세워 설명하고 "자주를 너무 세게 하면 고립이 된다"고 반박했다. 이 논쟁 후 오후 회담이 잡혔고 그 자리에서 문제의 NLL 발언이 있었다. 대화록에는 거두절미하면 오해를 초래할 대목도 있지만, 그가 추구했던 바가 NLL 포기가 아니라 남북을 아우르는 서해평화지대 구축이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김정일도 북측 요충인 해주를 내주겠다는 표현까지 써가며 화답했다. 10ㆍ4 공동선언은 서방 정상회담처럼 사전 실무접촉으로 마련된 게 아니라 두 지도자간 난상토론과 힘겨루기를 통해 나온 것이다.
대화록을 보면서 노무현 화법에 문제를 제기할 수는 있다. 그러나 NLL을 팔아먹으려 했다는 식의 해석은 난독증(難讀症)에 다름 아니다. 야당 시절 빌리 브란트의 동방정책을 그토록 비난했지만 집권 후 계승, 발전시켜 결국 통일을 이룬 헬무트 콜 독일 총리의 지혜를 따르지는 못할지언정 본질에 눈을 감아서야 되겠는가. 눈 감으면 보기 싫은 것을 안 볼 수는 있지만 결국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다. 눈 감은 자들의 나라는 앞으로 가지 못한다.
내일시론] 중국몽(中國夢)은 꿈인가(임춘웅) 11.13
세계의 관심 속에 열렸던 중국의 제18기 3중전회가 12일 막을 내렸다. 이번 3중전회가 특별히 관심을 모았던 것은 중국의 제5세대 지도부인 시진핑체제가 들어선 이후 중국이 어디로 갈 것인가를 가늠할 수 있는 큰 틀의 국가정책 방향이 제시될 것으로 기대됐기 때문이었다. 1978년 11기 3중전회에서의 '덩샤오핑혁명' 같은 것은 아닐지라도 무엇인가 대담하고 구체적인 내용이 담길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결과는 다소 지엽적이고 모호한 수사로 일관되고 말았다.
전회 폐막 후 신화통신이 전한 것을 보면 △토지개혁을 통해 농민들에 보다 많은 재산권 부여 △국가안전위원회(중국판 안보회의)설립 △인권사법보장제도 개선 △자원배분에 시장의 역할 강화등을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정치개혁, 시진핑주석이 그토록 강조해왔던 부패척결 문제 등에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따라서 3중전회가 끝났음에도 시진핑중국의 향방은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뿌리깊은 부패 문제 해결할 수 있을까
시진핑체제 이후 중국에는 '중국몽'이란 말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중국몽이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 중국을 세계의 중심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시진핑은 중국몽을 위해서는 만연된 부패 문제부터 먼저 잡지 않고서는 실현이 불가능하다는 인식을 갖고있는 것 같다. 그래서 그는 지난해 11월 당 총서기에 처음 취임하면서 일성으로 "큰 힘을 기울여 부패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겠다"고 선언했다.
시진핑체제에서 부패 문제를 담당하고 있는 왕치산은 연초 "관리들이 부패를 생각하지도 못하게 하고, 감히 부패할 수도 없게 하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진핑의 정풍운동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 의문을 갖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다.
중국지도부는 정치는 공산당 일당 지배체제를 굳건히 유지하고 경제는 시장주의에 입각해 개방을 더욱 넓히겠다(政左經右)는 중국식 대원칙을 대전제로 삼고 있다. 다시말하면 공산당 일당지배체제를 계속하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시진핑의 개혁은 어차피 처음부터 한계가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중국공산당은 중국이 서방과는 다른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서방의 민주주의는 정책결정자를 선거를 통해 결정하고 있으나 중국은 정책결정 과정에서 인민의 뜻을 반영하는 정책민주주의를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중국지도부가 이런 인식을 갖게 된 것은 중국이 그동안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성공적이었기 때문이다. 마오쩌둥 시절 서방의 많은 전문가들은 중국에서 어떻게 권력교체가 이루어질지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4인방'추방 같은 정변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서방의 예상과는 달리 중국의 정권교체는 평화적으로, 또 민주적으로(중국의 관점에서)이루어져 왔다. 중국지도부는 5번에 걸친 권력교체가 미국의 대통령 선거보다 훨씬 효과적으로, 또 생산적인 절차를 통해 성공적으로 이루어져 왔다고 확실하게 믿고 있다.
중국의 함정은 너무 지금까지 너무 잘했다는 것
경제적으로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불과 30여년의 세월에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이 되었다. 이처럼 성공적인 성과를 거둔 중국에 서방의 관점에서 어떤 개혁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한 주문인지도 모른다. 이런 성공을 성취해낸 중국 공산당지도부가 기득권을 스스로 포기하길 기대하는 것 또한 서방몽(西方夢)인지 모른다.
앞서도 지적했듯이 시진핑 주석을 비롯한 상당수 중국지도부가 개혁하지 않으면 중국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믿고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진핑의 개혁이 과연 성공할수 있을지에 회의적인 시각을 갖게 되는 것은 현지도부가 기득권세력의 저항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느냐에 의문이 있기 때문이다.
절대권력은 절대로 부패한다는 말은 영원한 진리다. 중국개혁의 핵심은 공산당의 절대권력을 분산시키는 것이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이 부패하는 것은 필연이다. 이번 3중전회는 부패문제 해결의 첫걸음으로 제기됐던 지도부의 재산등록문제 하나도 해결하지 못했다. G2의 한 축이 된 중국의 함정(역설)은 중국이 지금까지 너무 잘해왔다는 것인지도 모른다.그러나 지금까지 잘됐다고 해서 앞으로도 잘될 것이란 보장은 없다. 중국몽은 앞으로 중국이 얼마나 잘해내느냐, 중국지도부가 가진 것을 얼마나 포기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각하 심기 경호' 위해 헌법 짓밟는 나라 부활하나11.12 프레시안
[편집국에서]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의 위험한 국민-비국민 가르기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이 또 말썽이다. 김 의원은 그간 채동욱 전 검찰총장과 모 여성 정치인이 부적절한 관계라는 확인되지 않은 주장을 하고, 국정원의 정치 개입 의혹을 수사한 검사에 대한 사상 검증을 시도하는 등의 극우 행보로 논란을 자초했다. 그 결과 '일베 의원'이란 조롱을 훈장처럼 달게 됐다.
그런 김 의원이 이번엔 해외에서 논란을 일으켰다. 박근혜 대통령의 유럽 순방을 수행하던 중, 국정원을 비롯한 국가 기관의 대선 개입에 항의하는 집회를 연 유럽 거주 한인들을 겁박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린 것이다. 3일과 8일 두 차례에 걸쳐 올린 내용은 이렇다. "여기에서도 촛불 시위를 하는 사람들이 있군요. 통진당 파리 지부 수십 명이 모여서 했다네요. (극소수의 산발적인 시위라 실제로 보진 못했습니다.) 과연 이들을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3일) "이번에 파리에서 시위한 사람들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도록 하겠습니다. (…) 채증 사진 등 관련 증거를 법무부를 시켜 헌재에 제출하겠습니다. 그걸 보고 피가 끓지 않으면 대한민국 국민 아닐 걸요." (8일)
피가 끓지 않으면 국민이 아니다?
한마디로 어처구니없다. 아니 할 말로 유럽 거주 한인들이 박 대통령에게 테러 시도라도 했나? 그런 게 전혀 아니지 않은가. 명백한 사실로 드러난 국정원 등의 정치 개입을 규탄하기 위해 모였을 뿐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규정한 헌법이 짓밟힌 막중한 상황임에도 박 대통령이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해왔음을 규탄하는 시위를 했을 뿐이다.
이들은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시위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에 따라 행동했을 뿐이다. 그런데 김 의원은 그에 대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도록 하겠"다고 선언했다. 협박이자, 헌법을 짓밟은 행위라는 비판을 면할 길이 없다. "법무부를 시켜"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는 대목은 삼권분립에도 어긋난다. 통진당 파리 지부" 사람들이어서 그랬다고 변명할지 모르겠지만, 그 또한 말이 안 되기는 마찬가지다. 시위 참여자들이 통합진보당과는 무관하다고 밝히기도 했지만, 중요한 건 이들이 통합진보당원인지 여부는 문제의 핵심이 아니라는 것이다. '통합진보당원=비(非)국민'이고 따라서 통합진보당원은 헌법이 보장한 권리를 행사할 수도, 대한민국의 보호를 받을 수도 없는 존재라는 식의 주장은 강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수십 년간 검사 생활을 한 김 의원이 헌법 조문을 모를 리 없다. 그렇다면 다른 깊은 뜻이 있는 걸까? 한국인이 외국에서 시위를 하면 안 된다는 뜻일까? 그 또한 말이 안 된다. 헌법이 보장한 국민의 권리가 국경을 넘는다고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유럽에서 그런 시위가 불법인 것도 아니다.
외국인들 앞에서 한국의 부끄러운 모습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는 뜻일까? 이것도 말이 안 된다. 부끄러운 건 정당한 시위가 아니라 국가 기관들의 선거 개입이다. 그리고 그 진실을 어떻게든 감춰보려는 안쓰러운 노력을 하는 일부 세력의 존재다.
그럼에도 어쨌건 외국인들이 한국의 치부를 알게 하는 건 곤란하다는 건가? 그렇다면 한국에 있는 수많은 외국인들의 입은 어떻게 막을 건가? 국내 언론은 둘째 치더라도, 외신들의 눈은 어떻게 피할 셈인가? 방법이 있긴 하다. 외신 기자를 비롯한 모든 외국인을 내보내고, 한국인의 해외 출입을 철저히 통제하면 된다. 마치 북한처럼. 모든 외국인을 내보낸 건 아니지만, 북한이 이와 비슷한 모습 아닌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은 일임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터.
김 의원을 비롯한 극우 세력은 북한을 뼛속까지 혐오하겠지만, 이처럼 행태와 논리가 닮았다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1970년대 박정희의 유신 체제와 김일성의 유일 체제는 여러모로 닮았다고 여러 학자가 지적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닮은 점은 또 있다. 이른바 '최고 존엄에 대한 모독'을 금기시하는 저들처럼, 정당한 비판을 대통령에 대한 불경으로 받아들이는 것 아닌가 하는 대목이다.
기자의 눈에 비친 김 의원의 인식은 이렇다. '대통령께서 그 먼 곳까지 가서 국익을 위해 불철주야 애쓰시는데, 돕지는 못할망정 감히 시위를 해? 그것도 정권의 정통성 문제와 관련된 사안에 대해? 그건 국민이 취할 도리가 아니다. 따라서 국내에 있었으면 촛불깨나 들었을 당신들은 국민이 아니다. 그걸 보고 피가 끓기는커녕 먼 산 보듯 하는 사람들도 한패다.' 오독일까? 진심으로 아니길 바라지만, 그렇게 읽히는 게 사실이다. 기자만이 아니라, "피가 끓지 않"는다는 이유로 졸지에 비국민으로 몰린 수많은 사람들도 그렇게 느낄 것이다. '대통령님'이 다시 '각하'로 퇴행하는 건 아닌가, 헌법보다 '각하의 심기 경호'가 우선하던 시대의 망령이 되살아나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이 지나치지 않은 이유다.
소름 돋는 국민-비국민 가르기
김 의원의 행위는 어이없기만 한 게 아니다. 그 속에는 무서운 칼날이 숨어 있다. 그 칼날은 바로 국민과 비국민을 자의적으로 가르는 것이다. 비국민, 이건 정말 소름 돋는 규정이다. 이른바 불순분자로부터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는 마녀사냥을 정당화하는 논리이자 그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빨갱이 사냥이 난무하며 수십 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당시 학살자들의 기본 논리도 '저자들은 국민 자격이 없는 비국민'이라는 것이었다. 한국만이 아니다. 다른 나라의 역사에서도 이런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그렇게 하고 싶은 세력이 설령 있더라도, 학살이 자행되던 시기로 당장 돌아갈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자의적인 국민-비국민 가르기가 지옥문을 열 수 있다는 점만은 분명히 해두고 싶다. 합법 노조를 순식간에 '노조 아님'으로 바꿔버리는 박근혜 정권이기에, 그 아래서는 누구라도 한순간에 '국민 아님'으로 바뀔 수 있기에 더욱 그렇다. 그 어렵다는 사법 고시를 통과해 수십 년간 법을 다루며 사회적 지위를 쌓아온 이에게 국민들이 헌법의 기본을 이야기해야 하는 사회 아닌가. 유럽 거주 한인들의 시위가 부당하다고 느끼면, 국가 기관들의 정치 개입 의혹을 명명백백하게 밝히고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면 된다. 사실을 다 규명한 후에도 의견이 다른 부분은 토론하면 된다. 그게 민주주의다.
“기후변화 부정하려면 필리핀 가 보라” 유엔기후협약총회서 필리핀 대표 눈물의 호소 11. 12 경향
슈퍼태풍 하이옌이 필리핀을 할퀴고 간 직후인 지난 11일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제19차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당사국 총회가 개막됐다. 하이옌이 초래한 대재앙이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는 만큼 기후변화에 대한 논의가 진전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필리핀 수석대표는 개막식에서 국제사회의 행동을 촉구하며 단식에 돌입했다.
나데레브 사노 필리핀 기후변화담당관은 “먹을 것을 찾으러 분투하는 동포들에 대한 연대의 의미로 이제부터 자발적으로 단식을 시작한다”며 “협상에서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단식을 멈추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기후변화의 현실을 계속해서 부정하는 사람들에게 감히 말하건대, 태평양과 카리브해, 인도양의 섬들을 찾아 해수면 상승의 영향을 보라. 그래도 부족하면, 지금 당장 필리핀을 방문해도 된다”며 “조국이 극심한 기후변화로 겪는 정신 나간 상황을 지금 여기 바르샤바에서 멈출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내 형제도 지난 이틀간 자신의 손으로 시신을 수습했다”며 눈물을 글썽이면서 필리핀의 피해 상황을 알렸다. 194개국 대표단은 그의 연설이 끝나자 일제히 기립 박수를 보냈고 일부는 눈시울을 붉혔다.
하이옌이 총회의 관심사로 떠오르면서 협상 진전의 촉매로 작용할지 관심이 쏠린다. 크리스티아나 피게레스 유엔기후변화협약 사무총장은 개막 연설에서 하이옌은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현실’이라며 “기후변화는 게임이 아니며, 승자도 패자도 없고 모두 이기거나 질 뿐”이라고 말했다.
르몽드는 기후변화 취약국들이 필리핀 참사를 극단적 자연재앙과 영토 상실에 따른 피해를 보전할 ‘손실 및 손해 보상 체제’를 만드는 계기로 활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무릎 꿇고 20분간 학생들에게 사죄한 교장 선생님11.12 YTN
울산의 한 사립 고등학교에서 교사가 딸의 성적을 조작했다는 소식 전해드렸는데요. 이 학교 교장이 학교를 대표해 사죄하는 뜻으로 학생들 앞에서 108배를 했습니다.
오늘 오전 학교 강당 모습입니다. 전교생이 모인 가운데 교장이 무릎을 꿇고 사죄하고 있습니다. 교장 선생님이 무릎을 꿇고 20여 분간 절을 하는 동안 뒤에 있는 선생님들은 물론이고 학생들 모두 고개를 숙이고 있습니다.
사진에서도 숙연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최근 이 학교에서는 소속 교사가 성적 처리 업무 담당 교사와 짜고 같은 학교에 다니는 딸의 성적을 조작했다가 적발됐습니다. 이 사건으로 두 교사는 면직 처리와 함께 성적 조작 혐의로 경찰에 입건됐고 학교 측은 교사 자녀의 성적을 모두 0점 처리한 뒤 다른 학교로 전학 보냈습니다. 울산시 교육청은 내년부터 교직원이 근무하는 학교에 자녀를 배정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일본 기자의 질문, "한국 사회는 왜 전교조 탄압에 관심없나" 11.12 미디어오늘
외신기자들 기자회견 “전교조 해체 믿을 수 없는 일…해외에선 상상할 수 없는 정치적탄압”
필리핀 태풍 피해지역, 시신 공동매장으로 복구 시작 11.13 월스트리트저널
무역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필리핀 중부의 거점 도시 타클로반에 기상관측을 시작한 이래 가장 강력한 태풍이 강타해 며칠 동안 도시 기능이 마비됐었다. 이제야 사람들은 시신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슈퍼 태풍 ‘하이옌’이 휩쓸고 지나간 혼돈 속에서 시당국과 필리핀 정부는 피해 정도를 겨우 파악하기 시작했으며, 완전히 파괴된 도시를 서서히 복구할 준비에 착수했다.
정부 엔지니어들과 통신회사들은 타클로반 일부 지역에 전화선과 인터넷을 연결했다. 타클로반은 하이옌의 피해가 가장 심한 지역 중 한 곳이다.
미국 해병대와 필리핀 공군은 C-130 수송기에 식량과 깨끗한 식수를 실어날랐다. 민간 구호단체들은 타클로반에서 유일하게 운영되는 임시 병원에 필수 비상약품을 채워넣었다.
한편 유엔은 태풍 피해 지역(특히 타격이 컸던 필리핀 중부 사마르섬과 레이테섬)을 복구하려면6개월 안에 3억 100만 달러의 재원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피해 복구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하이옌은 필리핀에 상륙한 태풍 가운데20년 만에 가장 강력한 태풍으로, 허리케인 ‘카트리나’보다 강도가 3배는 세서 기본적인 물류・수송 기능을 마비시켰다. 식량과 식수 공급은 구호단체를 통해서만 공급되고 있다. 도로가 폐쇄되고 다리가 무너져 당국은 필리핀 중부 오지 지역 상황을 지금에서야 겨우 파악하기 시작했다.
정확한 사망자수도 집계하기 힘들다. 관계자들은 약 1,800명이 사망했다고 공식 확인했다. 하지만 사망자수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베니그노 아키노 3세 필리핀 대통령은 12일(화) CNN과 가진 인터뷰에서 지방정부가 사망자수를 1만 명이라고 추산한 것과 달리 희생자수는 2,000명에서 2,500명에 가까운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타클로반에서 군 수송기를 타고 빠져나온 생존자들은 가까스로 목숨을 구한 당시 상황을 묘사했다. 위니 빌라마르가(32)는 폭풍해일이 집을 덮쳤지만 가족들이 끈으로 서로를 한데 묶어 살아남았다고 전했다.
쌍둥이 조카 한 명과 자신을 끈으로 연결했다는 그녀는 “태풍이 워낙 자주 발생하는 지역인데도 이렇게 무시무시한 태풍은 처음 봤다”며 “비상식량을 미리 준비해놨지만 어제 다 동이 나서 어떻게 버텨야 하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타클로반에서 왜 이렇게 많은 희생자가 났는지에 관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물론 있었다. 엘머 푸엔테스(47)는 “태풍을 한두 번 겪은 것이 아니지만 이번에 폭풍해일까지 불어닥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많은 주민들은 타클로반을 휩쓴 해일이 양 방향에서 몰아쳤으며 파고가 상상을 초월하게 높았다고 입을 모았다. 현재까지 시체 40구에 대해 부검을 실시한 결과 90%가 익사한 것으로 밝혀졌다고 존 일로 경찰 법의학 전문가는 전했다.
타클로반 주민들과 시당국은 피하고 싶지만 피할 수 없는 시신 처리 작업에도 착수했다.12일(화) 관계자들은 시청 옆 풀이 우거진 언덕에서 시신 부검을 실시하고 시신을 검정색 시체 운반용 부대 안에 넣어 한꺼번에 매장할 준비를 했다. 에마뉴엘 아라나스 총경은 시신 140구를 수습했으며 이 가운데에는 바다에서 인양한 시신들도 있다고 밝혔다. 아직도 길거리 잔해 더미 속에 수습되지 않은 시신들이 여러 구 나뒹굴고 있어, 피해 복구 활동의 손길이 속속들이 미치지 못했음을 짐작케 한다. 앞으로도 시체 운반용 부대 수천 개를 더 날라야 한다고 아라나스 총경은 말했다.
필리핀 정부는 이번 태풍으로 41개주에 거주하는 약 700만 명이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농업 부문 공식 재산피해 규모만 8,700만 달러에 달한다. 특히 쌀과 옥수수 피해가 컸다. 농지 17만 5,400에이커(약 709km²)가 소실됐다. 필리핀 정부는 사마르섬 해안도시 기완(Guiuan)에 간이 활주로를 열었다. 기완은 하이옌이 8일(금) 새벽 상륙했을 때 제일 먼저 태풍의 위력을 실감한 도시다. 누엘 록사스 내무장관은 기완 간이 활주로는 사마르 지역 구조활동과 구호물품 배급의 허브로 사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구호물자를 실어나르고 생존자를 탈출시키는 C-130 군 수송기 몇 대도 기완 간이 활주로를 이용하게 될 것이다.
필리핀 정부가 육로를 오픈한 레이테에는 더 많은 물품이 답지하고 있다. 세사르 푸리시마 재무장관은 태풍 피해로 내년 경제성장률이 1%포인트 깎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필리핀 정부는 내년 경제성장률 목표치를 최소 6.5%로 설정했었다. 푸리시마 장관은 피해 복구를 위한 예산을 집행할 경우 경제성장률에 미칠 역효과를 완전히 상쇄하기까지는 못하더라도 완화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재정적인 관점에서 피해복구 긴급 예산을 집행할 여력이 있다. 물론 이는 잠정적인 추산에 불과하다. 인프라 재건을 위해 상당한 투자가 필요가 있다.” 군경찰력을 타클로반에 증강 배치하는 것은 치안을 유지하고 약탈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타클로반 이재민 수용시설은 붐비고 있으며 깨끗한 식수도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13일(수) 타클로반에서 공동 묘지에 시신 수백 구를 한꺼번에 매장하려고 준비하는 동안에도 기적적인 스토리가 들려왔다. 태풍 하이옌(필리핀에서는 ‘욜란다’라고 부른다)이 타클로반을 덮쳤을 때 바닷가 근처에 있는 시청 직원들은 전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됐다. WSJ
하이옌 피해가 극심했던 지역과 현재 진행 중인 구조활동 현황: 크게 보기메리루 나실라(56, 사회복지사)도 실종자로 간주됐었다. 그런데 실종된 줄로만 알았던 그녀는 12일(화) 타클로반 시청 맞은편 임시 사무실에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 명단을 작성하고 있었다. 피해 지역에 접근하기도 힘들고 날씨도 도와주지 않는 와중에도 그녀는 한가닥 희망을 버리지 않고 구조활동에 동참하고 있었다.
“자녀 4명 모두 내가 죽은 줄 알았다. 아이들은 내가 태풍을 잘 이겨내고 임시 수용시설로 거처를 옮긴 줄 몰랐다. 토요일쯤 가족들에게 내가 무사하다는 사실을 알리는 게 좋겠다는 직감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살던 동네로 가는 남자에게 내가 머물고 있는 수용시설을 가족들에게 알려달라고 전했다. 그랬더니 가족들은 내가 이미 죽은 줄 알고 있었다. 충격적이었다.”
그녀는 지금도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구조활동을 벌이고 있다. 다른 시청 관계자들도 목숨을 잃은 동료들의 몫까지 다해, 열심히 일하고 있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메리루 나실라는 “이 재앙에서 나와 내 가족이 살아남는다면 하느님을 섬기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지금 내가 하는 구조활동은 내 방식대로 그 약속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필리핀 ‘슈퍼 태풍’은 지형과 기후변화 등 악재 겹친 탓 11.13 월스트리트저널
.여러 자연환경적 요인들이 예기치 않게 한데 뭉치면서 하이옌은 관측 이래 사상 최고로 흉포한 열대성 태풍으로 둔갑했다. 하이옌은 2005년 미국에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상륙한 이래 가장 규모가 큰 폭풍우였다. 레이싱카의 속도에 맞먹는 돌풍을 동반한 강풍과 폭우, 깔때기처럼 좁은 공간으로 바닷물을 이동시켜 폭풍해일의 위력을 강화시키는 지형 등 여러 요인들이 합쳐지면서 하이옌은 가공할 위력을 지니게 됐다.
줄리안 헤밍 영국 기상청 소속 열대성 태풍 전문가는 “이처럼 강한 바람을 동반한 폭풍우는 처음이다”라고 말했다. 미국 과학자들이 계측한 하이옌의 최고 풍속은 시속 313km였으며 돌풍은 그보다 훨씬 더 강했다. 이전 최고 기록은 1969년 미국을 덮친 허리케인 ‘카밀’로 최고 풍속은 시속 305km였다. 케리 에마뉴엘 MIT 대기과학 교수는 “이 정도 강도의 태풍은 태평양에 10년에 한 번 꼴로 찾아오는 경향이 있지만, 태풍의 강도가 가장 셀 때 육지에 상륙한 이번과 같은 경우는 100년에 한 번 발생할까 말까 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하이옌은 각국 대표들이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를 열고 있는 시각에 발생했다. 필리핀 대표는 기후변화의 ‘산 증인’이나 다름없는 하이옌의 피해를 복구하는 데 국제사회가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달라고 요청했다. 헤밍 박사는 “21세기 말까지 열대저기압(사이클론)의 강도가 2~3% 높아질 조짐이 보이나, 태풍과 같은 하나의 사건을 기후변화와 직접적으로 연관시키기는 힘들다”고 지적했다.
폭풍 주기는 20~30년 사이에도 상당히 많은 자연적인 변수에 영향을 받는다. 과학자들은 정확한 결과를 산출하기 위해 100년도 더 전의 데이터까지 꼼꼼하게 확인해야 는데, 데이터가 빈약할 때가 종종 있다. 일례로 2005년 카트리나가 미국을 강타했을 때 전 세계적 열대저기압 강도는 고점에 있었다. 그로부터 불과 5년이 지나자 열대저기압 강도는 30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올해 현재까지 대서양은 약 20년 만에 가장 고요한 허리케인 시즌을 맞고 있다. 태풍 하이옌이 발생한 태평양 서부의 태풍 활동은 평년 수준이다. 태풍과 사이클론, 허리케인은 모두 열대성저기압으로 발생 지역에 따라 이름만 다르게 불린다. 열대성저기압은 태양의 열에너지를 흡수해 강풍의 형태로 분산시키는 일종의 엔진이라고 할 수 있다. 해수 온도가 올라가면 폭풍은 더 세질 수 있다고 기후학자들은 설명했다.
빙하가 녹아 해수면이 올라가면 가공할 위력의 폭풍해일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도 또다른 걱정거리다. 1992년 위성을 관측했더니 필리핀 근해 해수면은 지구상 어느 곳보다도 높은 속도로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적으로 해수면은 평균 3mm씩 올라가는 반면, 필리핀 주변 해수면은 9mm씩 상승했다. 하이옌이 휩쓴 세부 지역의 조수를 측정했더니 1935년에서 2011년 사이에 해수면이 무려 20cm나 높아진 것을 알 수 있었다.
오즈락 그린슈테트 코펜하겐대학교 기후물리학 교수는 “(해수면 상승이 발생한 이유는) 자연적인 변수 때문인 경우가 많지만, 기후변화가 원인이 된 경우도 더러 있다”고 말했다. 지구온난화가 일어나면 해수면이 고르게 올라가지 않는다. 북극의 거대한 빙하가 사라지면서 녹은 바닷물이 남쪽으로 흐르면, 극지방에서 적도 방향으로 지구 중력장에 경미한 변화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빙하가 녹은 곳과 가까운 지역(가령 북유럽)의 해수면은 낮아지고, 적도 근처 해수면은 올라간다.
열대성저기압이 상륙할 때 매우 강한 돌풍을 동반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필리핀은 태풍 피해에 특히 취약하다. 게다가 필리핀에는 작은 만(灣)이 많은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폭우가 넓은 지역으로 퍼지는 대신 좁은 해협을 통해 몰리는 경향이 있어 파고가 매우 높은 폭풍해일로 이어진다. 하이옌의 직격탄을 맞은 타클로반도 만(灣) 어구에 세워진 도시다. 헤밍 박사는 태풍과 함께 바닷물이 만으로 밀려들면서 폭풍해일이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동아시아에서 제일 파고가 높았던 폭풍해일이 발생한 지역도 필리핀이었다. 1897년 하이옌이 발생한 지역에서 불과 64km 떨어진 곳에서 높이 7.3m의 폭풍해일이 일었다. 루이지애나주립대학교에서 허리케인을 연구하는 할 니드햄 박사는 “8.5m 높이의 폭풍해일이 발생한 카트리나 이후 최고 높이의 폭풍해일이 하이옌 때문에 일어났다”고 말했다. 극심한 폭풍해일은 주로 인도 벵골만에서 일어나는 경향이 있다. 세계 폭풍해일 데이터베이스를 관리하는 니드햄 박사는 1700년 이후 높이 12m가 넘는 폭풍해일이 벵골만에서만 세 차례 발생했다고 전했다. 최악의 폭풍해일은 1876년에 일어났으며 높이는 13.7m였다.
박근혜, 복고풍 화법으로 박정희 향수 불러일으키다 11.12 코리아헤럴드
박근혜 대통령이 꿈꾸는 한국의 비전은 70년대에 이룩한 경제발전에 이어 “제2의 새마을 운동”을 통해 국민행복시대를 여는 것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박 대통령은 작년년 대선 때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경제 민주화를 약속하면서 소위 말하는 “진정성 있는 정치”를 강조했다.
집권 1년이 되어가는 현재, 박근혜정부는 사실상 경제 부흥과 문화 융성에 눈을 돌린 상태이다. 이에 따라 박 대통령은 제2의 새마을 운동이 국민들로부터 적극수용되어 범국민 운동으로 승화시키길 기대하고 있다.
이러한 박 대통령의 성향은 그의 말투에서 엿볼 수 있다. 박 대통령이 비전을 설명할 때 ‘부흥,’ ‘융성,’ ‘부강’ 등과 같은 성장을 지향하는 단어와 회고적인 말투를 쓰는 성향이 있는데, 이러한 화법은 중장년층에게는 향수를 불러일으키지만 젊은 세대로부터는 반발을 살 수 있다.이러한 박 대통령 화법을 두고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상당한 영향을 받은 그의 “정치적 본색”이 드러나고 있다고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은 이를 두고 “아버지의 대한 상처가 지울 수 없이 박혀있어, 그게 통치스타일에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최 소장은 “박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격동기를 아버지와 보내며 겪은 경험들이 정치에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영향을 주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박 대통령은 1990년대 경제 위기 당시 ‘아버지가 이룩해 놓은 기반이 경제 위기에 흔들리는 것을 보고 정치판에 뛰어들게 되었다’ 수차례에 걸쳐 강조한 바 있다. 박 대통령은 아버지가 암살당한 1979년 이후 20년 가까이 “칩거생활”을 하다가 1998년에 대구 달성 15회 국회의원 보궐선거를 통해 정계에 입문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사살 당한 1979년 박대통령은 잠적했고 이후 아버지가 이룩해 놓은 기반이 경제 위기에 흔들리는 것을 보고 1998년에 정치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박 대통령은 “신비주의”라는 전략과 보수주의자들의 동정어린 시각으로 인해 떠들썩한 정치계에서 독특한 위치를 선점하였고, 파란만장한 개인사로 인해 국내외에서 이례적으로 주목 받는 데에도 성공했다. 하지만 취임 후 9개월간 박대통령은 반대파들로부터 16년간 독재자로 군림했던 아버지의 발자취를 따라간다고 비난 받아왔다.
또한 대선 국정원 개입 논란을 비롯하여 “대화록 실종사건” 관련해 편향성 의혹과, 검찰 주요 인사들의 연이은 사임과 관련해 외압 의혹, 또한 정부가 진보 단체들을 탄압하고 있다는 의심의 눈치리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은 동요하지 않고 ‘원칙’과 ‘신뢰’를 고수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박 대통령의 자신감은 북한의 연이은 도발로 강화된 반(反)북 정서에 의해 한층 더 강화되었는데, 이러한 반북 정세는 경제 성장 위주와 지역주위, 권위주의적인 사고방식과 더불어 박정희 전 대통령과 빼닮은 부분 중 하나이다. 박대통령은 특이한 배경뿐만 아니라 구어적인 표현의 사용으로 진실되고 지조 있는 이미지를 강화하고 전통적인 양복을 입은 남자들의 이미지로부터 탈피할 수 있었다.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통령 임기제를 4년 임기제로 바꾸는 개헌을 제안했을 때 당시 박 대통령은 “참 나쁜 대통령이다. 대통령 눈에는 선거밖에 안 보이느냐. 국민이 불행하다”고 촌평을 냄으로써 노 전 대통령의 제안을 일축한 바 있으며, 2008년 총선 당시 한나라당 (현재 새누리당) 내의 친박근혜계 (친박) 의원들이 공천에서 대거 탈락하자 박 대통령이 “국민도 속고 나도 속았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상대 후보를 공격하는 위주의 운동을 벌였다는 의혹을 받고 잇는 국정원의 대선 개입에 관해서 박 대통령의 유일한 반응은 그저 ‘정말 자신이 인터넷을 통해 당선되었다고 생각하는지’ 되물은 것 뿐이었다. 경희사이버대학교 안병진 교수는 이에 대해 박근혜의 말투가 간결하고 파워가 있어 대중의 갈망을 대신 표현해 줌으로써 진정성 있는 정치를 전달한다고 말했다. 그가 쓴 저서 “박근혜 현상”에서 이러한 말들이 정말 진정성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안 교수는 노무현 대통령이 진정성을 보여주기 위해 열정적으로 미사여구를 사용했다면 박대통령은 신중함과 무관심을 통해 적당한 거리를 둠으로서 대중으로부터 존경심을 유발한다고 귀족적인 포퓰리즘과 더욱 관련이 있다고 설명했다. 작년 대선 당시 박대통령의 전략은 5년 전 한나라당 경선 당시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패배하면서 저지른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데에 초점이 맞추어 있었다. 박대통령은 신자유주의 작은 정부를 추구하며 경제 발전을 중시하는 기존의 입장을 과감히 버리고 박 전 대통령의 또 다른 철학인 복지를 강조했다.
이러한 선거전략은 사실상 진보파들의 복지정책과 겹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일각에서는 기존의 입장과 모순이 되는 것은 아닌지 이의를 제기하며 이 또한 하나의 정치적 전략이라고 말한 바 있다. 사람들은 박 대통령에게 정치적으로 힘을 주는 그의 “진정성”이 반대급부로 위험부담을 가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조성대 한신대 교수는 박 대통령이 경제 양극화로 인해 생긴 불안을 해소할 것이란 기대로 지지를 보냈던 사람들은 경제민주화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면 떠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까지
박 대통령의 측근들은 관료들과 군 출신 인사들, 그리고 아버지와 함께 일했던 김기춘 비서실장과 같은 군사 정권 시절의 과거의 인물들로 이루워져있다. 또한 반대파들과 타협하지 않는 박 대통령의 확고함은 보수파들 사이에서 정직함으로 칭찬받았으나 온건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한편 진보 진영에서는 박대통령이 실행한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정책에 대해 보수주의적인 정책의 기초를 다지기 위함이라고 주장해왔다.
이들은 경제민주화를 “공정한 시장질서의 확립”으로 대체한 것은 대기업에게 더 관대한 방향으로 가는 것이며, 복지공약을 철회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으며 또한 전교조가 법외노조화 된 것과 국사편찬위원장에 우편향 인사가 임명된 것 역시 같은 맥락이라고 보고 있다. 김한길 민주당 대표는 지난주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의원 총회에서 “어느 역사 학자는 지금 정부는 집권 초기인데도 ‘박정희 정권’의 말기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비판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박 대통령이 과거와 현재 사이의 균형을 잡고, 지금까지 그의 방어 기제를 작용했던 ‘한 마디 정치’를 넘어서는 것은 그의 몫이라고 보고 있다. 현재까지 박 대통령은 최소 절반이상의 지지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본인의 확고한 신념을 바탕으로 한 정치는 잘되어 가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안교수는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박대통령과 보수파들은 외교를 통해 곧 온건파의 지지를 다시 되찾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고 말하며 “다음 대선에 본인이 아닌 본래 보수파들의 위치를 굳건히 지킬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초점을 두고 있다”고 전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또한 젊은 세대와 소통하기 위해 공식 석상에서 비록 시대에 뒤떨어지지만 농담을 나누려는 노력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5월 박대통령은 기자들과 함께한 오찬에서 “돼지를 한 번에 굽는 방법이 뭔지 아느냐. 간단하다. 코에다 플러그를 꼽으면” 라고 말하여 유머를 시도하기도 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은 이러한 노력이 박 대통령에게는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복고적이고 권위적인 이미지가 보수파들에게 안정성을 의미하지만 젊은 세대에게는 권위주의적인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다고 말했다. 최 소장은 이러한 권위주의적 이미지가 박 대통령 본인에게 내재되어 있는 만큼, 박 대통령 본인이 개혁적인 면을 보여주는 것이 다른 전 대통령들보다도 더욱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최 소장은 이어 박 대통령이 이러한 점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안 교수는 이에 “박대통령이 본인도 모르는 새에 자신의 가장 큰 자산인 진정성을 잃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뚱뚱하면 입지마"…'외모 차별' 브랜드 한국 상륙 1112 sbs
외모와 인종차별 주의를 브랜드 철학으로 내걸어온 미국의 한 캐주얼 의류 브랜드가 있습니다. 이 마케팅이 국제적으로 물의를 빚고 있는데, 이달 초 우리나라에 첫 매장을 열었습니다. 빨래판 복근을 드러낸 모델들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몰립니다. 버스를 탄 모델들이 펼치는 깜짝 이벤트도 이 브랜드, 아베크롬비 앤 피치의 마케팅 전통입니다. 지난 1일, 이 브랜드가 청담동에 첫 매장을 열었습니다. 어두운 조명과 음악으로 클럽 같은 분위기 속에 옷 사이즈는 날씬한 여성들을 위한 것밖에 없습니다.
[김유진/성남시 분당 : 모든 사람을 위해서 만드는 건데 꼭 그렇게 자기들이 입히고 싶은 사람만 입으라는 것 같잖아요.]
그런데, 이런 사이즈 정책과 모델 선보이기 등은 이 브랜드의 철학과 같은 겁니다. 최고경영자인 마이크 제프리스는, 지난 5월 "뚱뚱한 사람들은 옷을 사지 않았으면 좋겠다." "매장 직원은 잘생긴 백인만 해야 한다."고 발언합니다.
미국에서도, 인종과 외모에 대한 차별이라며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습니다. 아베크롬비 사지 마세요. 이게 바로 그들이 권하는 크기의 옷입니다.]
세계적인 불매 운동이 벌어지고 3분기 매출이 14%나 떨어지자, 아시아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기 위해 한국 등에 진출한 겁니다.내년부터 큰 옷을 만들겠다고 밝혔지만 소비자들의 반응이 아직은 곱지 않습니다.
[김정민/경기도 용인 : 그런 점을 제대로 인식하지 않은 채 그냥 인기에 따라서 구매한다는 게 조금….] [김지훈/서울 석관동 : 잘생기고 몸이 엄청 좋은 백인 모델들을 전면에 내세워서 좀 거부감이 들고 반발감이 들 것이라는…]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은 마케팅에 대한 진지한 반성 없이 슬며시 들어온 국내시장, 소비자들이 어떤 평가를 내릴지 주목됩니다
고이즈미 전 총리, 기자회견서 지금 당장 원전 제로 주장 11.12 한국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정치적 스승인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가 2006년 퇴임한 이후 12일 처음으로 공식 기자회견을 갖고 아베 총리에게 즉시 '원전 제로'를 선언하라고 촉구했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 전 총리와 손잡고 원전 반대를 위한 국민운동을 주도할 뜻을 비쳐 아베 총리를 곤경에 빠뜨렸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이날 내외신 기자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일본기자클럽 회견에서 "즉시 원전 제로로 가는 것이 좋다"며 "(탈원전은) 판단력과 통찰력의 문제로, 총리가 결단하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야당은 모두 원전 제로에 찬성하고 있으며 반대는 자민당뿐"이라면서 자민당의 변화를 촉구했다. 탈원전 시기와 관련해서는 "원전을 재가동하면 핵쓰레기가 또 늘어난다"며 "즉시 원전 제로를 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총리 재직 시절 원전 추진 정책을 폈던 고이즈미 전 총리는 8월 핀란드의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최종처분장을 견학한 뒤 탈원전 전도사로 변신했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원전 추진에서 갑자기 탈원전으로 돌아선 것은 무책임하다"는 비판에 대해 "일본에서 향후 핵폐기물 처분장을 건설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더 무책임하다"며 "정치인이 원전 제로 정책을 제기하면 지혜로운 전문가가 좋은 안을 내기 마련"이라고 주장했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그러면서도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의지를 지속적으로 비치는 것에 대해서는 "총리가 잘 대응하고 있다"며 뚜렷한 우익 역사 인식을 드러냈다. 그는 역대 총리들이 야스쿠니 참배를 보류한 것과 관련해 "그래서 중일관계가 좋아졌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문제를 두고 중일정상회담을 거부하는 중국에 대해 "때가 되면 중국은 어른스럽지 못한 대응에 부끄러워할 것"이라고 말했다.
1993년 8월 비 자민당 출신으로는 처음 총리가 된 호소카와 전 총리도 12일자 도쿄신문 인터뷰에서 아베 총리의 원전 재가동 정책을 "범죄 행위"라고 비판했다. 그는 "핵 폐기물 최종 처분장이 없는 상태에서 원전 재가동을 추진하는데 반대하는 입장은 고이즈미씨와 같다"며 향후 탈원전 활동을 국민운동으로 전개할 의사를 밝혔다. 호소카와 전 총리는 아베 총리가 9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후쿠시마 제1원전 오염수 문제가 통제되고 있다고 한 발언을 두고 "총리의 말을 얼마나 많은 사람이 믿을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한 달 전 고이즈미 전 총리와 회동한 사실을 공개하면서도 "정국 레벨의 논의는 아니다"라며 두 사람의 동반 정계 복귀설 및 탈원전 신당 결성설 등을 부인했다.
"나만 안 하면 바보되나"…재테크하다 피 본 사람들 11.12프레시안
[재테크 신화 ①] 외환위기가 낳은 신흥종교, 재테크
'재테크'라는 신흥종교다. 이 '재테크'라는 신흥종교는 온 국민을 충격으로 빠뜨렸던 IMF 사태를 계기로 우리 사회에 발호하기 시작했다. '평생직장' 신화가 사라지면서 노후가 불안해진 사람들이 언제 끊길지 모르는 월급만으로는 불안에 사로잡힌 것이 배경이다. "당신도 짭짤하니 수익을 거둘 수 있다"는 재테크라는 신흥종교의 유혹 앞에 많은 이들이 빨려 들어갔다가 빈털터리, 아니 빚만 진 채 거덜 나는 일이 10여 년간 계속됐다. 1999년 대우사태의 재판이라는 '동양 사태'는 저축은행 사태에 이어 '재테크'라는 사이비 신흥종교가 초래한 최근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재테크 신화]는 지금 대한민국의 경제체제가 금융자본주의에 지배되고 있는 사회라는 인식에서, 특히 '금융 재테크'라는 말은 개인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판단에서 출발한 기획이다. '동양 사태'는 정부의 금융당국까지 사이비 신흥종교에 놀아났거나 수수방관한 책임이 있는 사건이다. 그러나 우리가 '재테크'에 미련을 가지는 한, '재테크'라는 사이비 신흥종교는 또 다른 형태로 우리를 유혹할 것이다
불안을 대체한 또 다른 불안, '재테크'
'동양 사태' 피해자 김은혜(59·가명) 씨는 '불안'했다. 정년 은퇴를 코앞에 둔 남편과 여생을 버틸 돈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외동딸에게 손을 벌리고 싶지는 않았고, 직장인 남편이 벌어 오는 돈을 불릴 생각을 못한 자신이 부끄럽기도 했다. 자주 연락하던 중학교 동창이 '단기금융펀드'라는 생소한 단어를 설명해주자 호기심이 생겼다.
지인의 소개로 처음 한 '소액 투자'에서 김 씨는 "쏠쏠한 재미를 봤다"고 했다. '나도 재테크가 되는구나'란 생각이 들자, 불안은 감쪽같이 씻겨져 나갔다. 그렇게 동양과 튼 두 번째 거래에 김 씨는 노후 자금으로 모아 둔 3억 원을 쏟아 부었다. '대마불사'라 믿었던 동양은 그러나 무너졌고, 김 씨 부부의 노후는 몇 곱절 더 불안해졌다. 불안. 외환위기 이후 한국 사회를 설명하는 대표 키워드다. 노동과 저축을 통해 얻는 소득만으로는 영 아쉽고 불안한 시대.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중세인들이 '종교'를 믿었다면 현대인들은 불안을 다른 불안, 즉 재테크로 대체한다. 재무와 테크놀로지(과학기술·Technology)의 합성어인 재테크가, 아이러니하게도 '종교'의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대기업 9곳이 모두 부도나야 손실인데, 그럴 리가 있겠느냐"
'믿으라.' 앞날이 불안한 사람들에게 금융 기관들은 '안전'이란 단어를 앞세우며 일장 설파를 한다. 한국 사회는 KIKO 사태, 저축은행 사태, LIG 건설 사태 등을 잇달아 목격했고, 이제는 많은 사람이 '고위험·고수익(high risk·high return)이란 공식을 상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럼에도 금융 기관의 '믿어 보라'는 끈질긴 설파 앞에 피해자는 계속해서 속출하고 있는 상황이다.
2007년 우리은행 특정금전신탁에 평생 모은 큰돈을 내던진 박종구(64·가명) 씨는 지금도 그 설파를 기억한다. "파이시티 사업에 투자한 건설 대기업 9곳이 모두 부도가 나야 원금 손실이 있을 텐데, 그럴 리가 있겠냐", "정기 예금은 금리도 낮고 물가가 오르면 사실상 마이너스지만 이 신탁은 8퍼센트대 고수익을 보장한다", "우리은행이 대지 담보권을 가지고 있는 안전한 사업이라, 절대 손해 보지 않는다" 등.
박 씨는 20년 가까이 거래한 은행의 부지점장이 나서 이렇게 설파하자 "큰 문제야 있겠나"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파이시티가 뭔지도, PF(프로젝트 파이낸싱)가 뭔지도 몰랐지만, 그는 본인 명의로 1억 원, 아내 명의로 2억 원짜리 신탁 계약서를 썼다. 파이시티 사업은 금융위기에 따른 자금난과 정관계 인허가 비리가 터지며 사실상 좌초됐고, 우리은행 특정금전신탁으로 이 사업에 투자한 개인 1400여 명의 손실은 원금의 70%를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오늘이 마감하는 날이에요. 고객님"
이에 더해, 사람들의 불안 심리를 더 키우는 미끼는 '시한'이다. 고수익과 안전성을 모두 담보하는 좋은 상품의 마감이 임박했단 소식을 들으면, '긴가민가'하던 사람도 어느새 금융 기관 창구 앞에 앉아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좋은 때를 놓쳐버리면 어쩌나"하는 불안이 성큼 다가오기 때문이다. 박 씨와 마찬가지로 우리은행을 통해 파이시티에 투자했던 김종휘(51·가명) 씨가 딱 그랬다. 김 씨는 2007년 8월, 정기예금에 넣어두었던 전 재산 1억 원을 신탁 상품에 넣어 두라는 권유를 받았다. 걸려오는 전화가 "귀찮고 탐탁지 않아" 외면하고 있었지만, "오늘이 신탁상품 판매가 마감하는 날이니 오후 4시 전까지 은행에 오셔야 한다"는 세 번째 전화를 받자 "귀가 솔깃했다"고 했다.
급하게 결정한 터라, 자신이 체결한 신탁 계약의 위험성을 제대로 알아볼 여유가 없었다. 박 씨는 "무식하게도 신탁 상품이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며 "최근에야 이 상품이 펀드(UBS클래스원특별자산투자신탁 제3호) 상품이란 걸 알았다"고 했다. 해당 상품은 그러나 박 씨가 투자를 결정하고 며칠이 지난 후에야 마감됐다. 이처럼 '나만 안 하면 바보'란 투자 강박에 고수익과 안전성, 마감 임박 등을 내세우는 금융 기관들의 사기성 영업이 더해져 금융 피해자는 계속해서 속출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특히 외환위기 이후 평생직장과 안정된 노후를 잃어버린 중산층 피해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경제의 '허리'와도 같은 중산층의 몰락은 국가 경제에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동양 사태를 계기로 다시 한 번 근본적인 금융 개혁이 도마에 올랐다. 금융 정책과 분리된 금융 감독의 독립성 확보와 별도의 금융 소비자 보호 기구 설치도 재차 논의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근본적인 대안은, 높은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는 재테크가 애초에 필요하지 않은, 열심히 일해 번 돈만으로도 인간다운 노후를 보낼 수 있는 '불안' 없는 사회를 만드는 일일 테다.
특정금전신탁 선호하는 금융 기관, "규제 회피 꼼수"
금융기관이 고객으로부터 예탁받은 자금을 고객이 지정한 운용방법·조건에 따라 운용한 후 운용 수익을 배당하는 '특정금전신탁'. 동양 사태와 파이시티 사태 피해를 키운 '주범'으로 꼽힌다. 최근 이 제도를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시민단체 참여연대가 지난 5일 발표한 '특정금전신탁, 문제점과 개선 과제'란 보고서를 보면, 최근 금융기관들은 특정금전신탁을 당국의 규제를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
특정금전신탁은 본래 투자처를 위탁자의 의사에 따라 운용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우리은행 특정금전신탁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실제로는 금융 기관이 기획한 위험한 투자처에 직원 권유에 따라 위탁자가 '형식적'으로 동의하는 방식으로 운용되고 있다.
금융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2012년 말 기준으로 특정금전신탁에서 가장 비중이 큰 운용 상품이 바로 기업어음(CP) 등 채권형이다. 각종 규제로 인해 개인에게 판매하기 어려운 채권형 상품도 이 제도를 이용하면 '쪼개 팔기' 형식으로 쉽게 판매할 수 있기 때문에 금융 기관들은 특정금융신탁제도를 매우 선호하고 있다 특정금전신탁 제도는 집합투자상품(펀드)에 적용되는 소비자 보호 규제를 회피할 수 있다는 문제점도 가지고 있다. 명목상으로는 고객이 투자처를 '지정'하는 형식이다 보니, 금융 기관의 '투자 권유'를 전제로 성립하는 자본시장통합법상의 설명 의무나 적합성의 원칙이 적용될 여지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참여연대는 해당 보고서에서 △집합투자상품에 관한 규제를 회피하려 신탁계약을 체결한 경우 이를 무효로 하는 규정을 신설할 것 △적정성 원칙을 강화하고 특정금전신탁의 투자 대상을 제한할 것 △다수의 개인 투자자를 대상으로 하는 특정금전신탁을 집합투자상품으로 간주해 소비자 보호 장치를 작동할 것 등을 제안하고 있다.
세 번 망하고서야 재테크가 무섭단 걸 깨달았어요" 프레시안 11.13
[재테크 신화 ②] 방송인 오영실 씨 인터뷰
40대를 불혹(不惑)의 나이라 한다. 공자가 40대가 되자 어떤 것에도 현혹되지 않았다는 데서 유래된 말이다. 하지만 현재 한국의 40대는 온갖 유혹들에 시달린다. 자녀가 성장함에 따라 집 규모를 늘려야 하고, 본인의 노후도 준비해야 한다. '돈 되는 것'이라면 뭐든 눈이 돌아갈 때다.
방송인 오영실 씨의 40대도 미혹(迷惑)의 시간이었다. 방송을 꾸준히 해왔지만 언제까지 이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최대한 젊을 때 자산을 불려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혔다. 마침 연예계엔 "좋은 게 있다"며 유혹의 손길을 보내는 이들이 많았다. 다들 당장에라도 일확천금의 주인공이 될 것 같은 사탕발림 같은 말들을 속삭였다. 부족한 형편에 융자를 받아 주식 투자를 하고, 땅을 샀다. 그러나 빚으로 시작한 재테크의 최후는 결국 빚이었다.
오 씨는 "많은 걸 잃고 나서야 재테크란 게 얼마나 물거품 같은 것인지를 알게 됐다"고 말했다. 쉽지 않은 고백임에도 그는 돈을 욕망했던 경험들을 꾸밈없이 풀어놓았다. 간간이 자신을 책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과거에 대한 반성은 결국 더 나은 지금을 만드는 법이다. 욕심을 버리니 마음이 평온하다는 그의 말엔 현재 생활에 대한 만족감이 섞여 있었다. 그는 "제 이야기가 재테크로 인한 또 다른 피해를 막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빚으로 얻은 한 번의 '대박'과 세 번의 '쪽박'
"언제까지 방송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오 씨가 방송 일을 하며 수도 없이 들은 말이다.
"이런 질문 받을 때마다 미래가 불안한 거죠. 특히 방송 일이라는 게 더욱 그렇고요. 빨리 준비를 해놓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항상 쫓기면서 사는 기분이었어요."
재테크의 시작은 집이었다. 서울에 거주하는 많은 사람이 그렇듯 대출을 받아 첫 집을 장만했다. 집값 9000만 원 중 절반이 대출금이었다. 남편은 '모은 다음에 장만하자'고 했지만, '돈을 마련한 다음에 집을 사면 이미 늦는다'는 친정어머니의 충고를 받아들였다. 집값이 언제 뛸지 모르니 재빨리 사두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집값만 오르기를 기다리는 신혼 시절의 생활은 가혹했다. 매달 대출금을 갚느라 고기 한 번 먹지 않고 허리띠를 졸라맸다.
"집들이할 때 제가 친구들한테 소고기를 사오라고 했는데 친구들은 제 얘기가 장난인 줄 알고 케이크를 사 온 거에요. 너무 속상해서 친구들 몰래 혼자 부엌에 가서 울었어요." 기다리던 '대박'은 그다음 집에서 터졌다. 아이들이 크면서 애들 키우기 편한 곳을 찾다가 눈에 들어온 곳이 서울 강남 반포 아파트였다. 그 당시엔 집 주변에 예정된 재개발의 효과를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어느새 시세가 급격히 뛰었다. 예전 집을 팔고 다시 무리하다 싶을 만큼 융자를 받아서 얻은 집이 순식간에 복덩이가 됐다. 한국 '부동산 재테크 신화'를 제대로 경험한 셈이다.
일단 한 번 재테크의 맛을 보고 나니 욕심이 커졌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투자'를 시작했다. 10년 넘게 아는 분이 괜찮은 반찬 가게를 할 예정이라며 창업 투자 제의를 해왔다. 제대로 된 계약서도 없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사이인 만큼 믿고 맡겼다. 집을 담보로 1억 넘게 은행에서 융자를 받아 고스란히 동업자에게 건넸다. "잘 될 거라고 하니 믿었어요. 주변 사람들 열 명이면 열 명 모두 말렸어요. 다들 계약서 꼭 작성하라고 하는데도 저는 '왜 사람을 못 믿고 부정적으로 생각하느냐'고 했어요." 결국 그 동업자가 도망가는 바람에 오 씨는 투자금의 반의반도 건지지 못했다.
투자를 권유하는 달콤한 유혹은 끊이지 않았다. 아는 사람이 '노른자 땅'이 있다며 '땅 테크'를 추천했다. 일단 10배 수익을 보장하고, 5년 뒤 10배 보장이 안 될 경우 최소 2배라도 보장하겠다고 했다. 주변에선 '기획부동산 사기' 느낌이 난다며 말렸지만, 어마어마한 수익률을 듣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역시나 빚을 내 땅을 매입했다. 하지만 5년 뒤, 최소 2배 수익은 보장해주겠다며 달콤한 말을 속삭이던 이들은 종적을 감췄다.
"빚쟁이처럼 그 사람들을 쫓아다녔어요. 결국 어느 정도 손실을 보고 나머지 돈은 되돌려 받았지만, 5년을 불안감 속에서 살아야만 했어요."이게 끝이 아니었다. 다음은 '주식'이었다. 방송에서 만난 주식 전문가 도움을 받아 처음엔 개인적으로 주식 투자를 했다. 그러나 번번이 실패했다. 그러다가 '대박의 손'이라 불리는 사람을 만났다. 모 증권회사 이사라는 사람이었다. '적어도 원금은 보장해준다'는 말을 듣고 역시나 빚을 냈다. "석 달만 꼬박꼬박 돈을 받으면 사돈의 팔촌까지 끌어오게 되거든요. 원금 대비 10분의 1만 줘도 넘어가게 돼 있어요." 그래서 초반엔 5000만 원만 투자하다가 빚을 내 5000만 원을 더 보탰다. 이사라던 그 사람은 현직이 아닌 전임이사로, 일반 사이버 투자자였다. 결국 투자금 1억 원 중 2000~3000만 원만 겨우 회수했다.
"그때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눈과 귀가 먹었어요. 주변에서 경고했지만 들리지 않았어요. 그저 어떻게든 돈을 더 모아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그러니 그들의 속임수를 눈치챌 기회가 몇 번이나 있었는데도 당시엔 알 수 없었던 거죠." 세 번의 투자 실패로 어마어마한 돈을 날리고, 오 씨는 극심한 심적 고통을 겪었다. 모두 빚을 내면서까지 무리하게 했던 투자였다. 그렇지만 연이은 투자 실패와 사기의 교훈에도 재테크의 유혹은 강렬했다. 오 씨는 얼마 전 하마터면 또 '좋은 제안'에 넘어갈 뻔했다.
"아는 분이 펀드를 하는데, 1억 원을 넣으면 350만 원이 매달 들어온다는 거예요. 은행에 맡기면 이자가 100만 원도 안 나오거든요. 그럼 혹하게 되죠. 그렇게 당했는데도 솔깃한 거 보면 재테크의 유혹이란 게 무시무시한 것 같아요."
돌이켜 생각하면 어처구니없지만, 투자 제안하는 이들의 교묘한 수법을 피하기란 어렵다. 그는 피해자가 5만 명에 육박한 동양 사태를 들었다. "동양 사태도 마찬가지에요. 개인이건 금융기관이건 투자 상품을 홍보하는 사람들은 자기들한테 불리한 부분은 철저히 숨기고 이자율이 높다는 얘기부터 꺼내요. 돈을 불리고 싶어하는 사람의 심리를 잘 이용하는 거죠." 예전보다 마음의 평정심은 찾았지만 여전히 미래는 불안하다. 오 씨는 그렇게 불안함을 느낄 때마다 들여다보는 통장이 있다. 예전 반찬 가게 동업했을 당시 썼던 통장이다.
"그럴 형편도 아니면서 매달 1000만 원이 나갔어요. 대출금에 매달 가게 운영비까지 감당하면서 '다시는 사업 안 해야지' 생각했어요. 지금도 주변에서 '아울렛 매장 운영해보지 않을래', '언제까지 연예인 생활 하겠니' 하고 유혹을 할 때마다 그 통장을 봐요."
지금 오 씨에게는 아직도 상환해야 할 대출금이 5년이나 남아있다.
"신혼집 장만한 이후로 단 한 번도 빚 없는 생활을 해본 적이 없어요. 제발 좀 빚이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여기저기 투자한다고 일만 안 벌였어도 좀 나았을 것을…. 이런 저의 '실패 경험담'이 다른 분들이 실패를 겪지 않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어요
노래출처: 다음 블로그 아름다운 음악여행
We will be one by two today / Lo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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