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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화 특별기고] 불륜의 시대 -정치의 소멸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맺는 관계에 대해 10.31 한겨레
‘너를 사랑한다’는 맹세는 예기치 않은 위험을 감수하겠다는 약속이다.
이런 점에서, 박근혜 정권은 사랑부재, 정치 부재 시대의 표상이다.
얼마 전 ‘새로운 공산주의 이념’을 주제로 한 콘퍼런스를 위해 한국을 방문한 프랑스 철학자 알랭 바디우의 책 <사랑예찬>의 첫 장에는 우리 시대 사랑에 관한 한 풍속도가 소개되고 있다. “사랑에 빠지지 않고서도 우리는 사랑할 수 있다.” “위험 없는 사랑을 당신에게!” 이것은 한때 파리 시내를 뒤덮은 만남 알선 사이트 미티크(Meetic)의 광고 문구들이다. 물론 ‘안전한 사랑’을 소유하는 방법을 코치하는 전문회사 이야기는 새롭지도 신기하지도 않다. 어느 때부턴가, 우리는 위험을 감수하는 사랑을 추구해서는 안 되며, 위태롭고 불안한 삶에 대한 보험으로 사랑(결혼)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이미 시대의 처세술로 체득하고 있으니까. 그래서 우리가 얻었다고 믿는 사랑을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이 문득 고개를 들기도 하지만 그때마다 주머니 속의 담배꽁초처럼 내던져버려 왔다는 사실과 더불어 말이다.
사랑은 우연의 형식을 통해서만 나타나는 사건이며, ‘성차’(性差)에 대한 진리를 생산하는, 곧 유아론적 주체에서 벗어나 ‘둘’이라는 최초의 다수를 만들어내는 절차라는 바디우식 사랑론을 여기서 길게 소개할 생각은 없다. 달라진 시대의 반영일까, 아니면 내 나이의 변화 탓일까, 바디우의 <사랑예찬>은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에 비해 좀 지루하게 읽혔다. 바디우는 위험 없는 사랑이라는 환상은 ‘전사자 제로 전쟁’이라는 미군의 프로파간다처럼 ‘사랑의 시체’를 숨기고 있으며 진정한 사랑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말한다. 그는 진정한 사랑은 ‘셋’을 모르기 때문에 셈하여지지 않는 둘이 만들어내는 사건이라고 말하는데, 그렇다면 셈법으로서의 ‘사랑-보험’은 무엇을 만들어내는가에 대해서까진 차마 말하지 않는다.
사랑이 가슴 설레는 사건이기를 멈추었을 때, 셈법 속의 둘은 다른 대상인 ‘셋’을 욕망한다. 이 셋에 대한 욕망을 쉽게 ‘불륜’(不倫)이라 부르는 것은 퍽 고루하다. 그것은 사랑-보험으로서의 결혼 밖의 사랑(의 가능성)을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에서 벗어난’ 것으로 단숨에 배제해버린다. 문제는 그러한 간단한 치부가 지금 이 시대의 사랑이 처한 근원적 위기를 감추는 장막에 불과한 것이라는 데 있을 터다. 우연히 보게 된 영화 <불륜의 시대>는 그러한 거추장스런 윤리적 장막조차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된 이 시대의 사랑(혹은 불륜)의 풍속도이다. 영화는 불륜이 형식만 남은 결혼의 단순 보완재를 넘어 처음부터 위험을 제거한 사랑을 선택한 현대인의 필연적 운명의 형식이 되었음을 리얼하게 보여준다. 잘나가는 문학출판사 사장은 자신의 섹스 상대인 작가에게 성애 도중 아내의 생일 선물로 무엇이 좋을지 묻는다. 사랑은 선언도 맹세도 약속도 강요도 그 어느 것도 아님을 암시하듯 영화 속의 인물 누구도 사랑이란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는다. 불륜은 사랑의 배신이 아니라, 사랑이 부재한 현실을 지배하는 공기일 뿐이다. 그래서 아내와의 형식적인 성애도, 정부(情婦)와의 격렬한 성애도 하나같이 건조하기만 하다.
이러한 사랑의 부재를 메우거나 공허가 게워내는 것은 맥락을 잃은 말들이다. 좌익서적이든 삼류 멜로든 잘 팔리던 옛날이 좋았다며 쓰레기 문화만 남은 현실을 개탄하던 출판사 사장은, 하지만 자신이 방금 욕하던, 책 안 보는 맹탕들과 쉬운 걸 어렵게 써서 ‘출판사 말아먹는’ 필자들을 가리켜 “귀엽다”고 말한다. 바로 이 대목이다. 영화가 보여주는 불륜이 말과 지시 대상(사물이나 사태), 인간의 행위를 이어주는 연관과 맥락이 상실된 시대의 은유로 읽히는 것은. 사랑이 무엇인지를 규정할 수 없는 상황에서 불륜은 어떤 죄의식도 동반하지 않는다. 사랑이 부재한 자리를 대체하는 것은 결혼이라는 형식과 사랑이 떠난 공허한 성애와 화폐순환과 상품의 교환양식을 닮은 이해관계이다. 출판사 사장과 작가 사이의 불안한 관계를 이어주는 것이 그 둘 사이의 대화에 끼어드는 ‘인세’ 이야기인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사랑을 믿지 않으므로, 사랑에 대해 어떤 기대도 하지 않으므로, 우리는 사랑을 두고 선언하거나 맹세하지 않는다. 사랑(이라고 믿는 것)이 위험이 제거된 안전장치에 해당하는 교환양식이라는 것은 그것이 얼마든지 대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의 수명이 100살로 연장된 시대이므로 결혼도 20년마다 갱신해야 한다는 영화 속 작가의 말이 내 귀에는 4, 5년마다 국회의원과 대통령을 바꾸면 우리의 민주주의가 별 탈 없이 유지될 거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리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우리가 사랑을 믿었던 때가 있었듯이, 민주주의를 믿었던 때가 있었다. 이제 사랑이라는 말이 누구의 마음도 흔들지 못하고 인간 존재들에게 어떤 생명력도 불어넣지 못하는 무료한 것으로 전락했듯이, 민주주의 역시 어떤 위험한 모험도 아니며 투표장에서의 선거행위로 축소되고 말았다. 격렬하고 난폭한 섹스에 매달리고 그것을 사랑이라 믿을수록 결합이 아닌 분리를 경험하게 되듯이, 민주주의를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대의제라는 제도와 일치시킬수록 그것은 사회적 실재를 설명하지도, 주어진 현실을 변화시키지도 못하는 형해화된 껍데기로서만 존재하게 된다.
사랑에 대해 더는 새로운 말을 할 수 없을 듯 보이는 것처럼, 우리는 민주주의에 대해 어떤 새로운 언어도 필요치 않다고 간주되는 그런 시대를 살고 있다. 박근혜 정권을 ‘반동의 시대’로 비판하기 전에, 나는 우리가 민주주의라 부르는 것이 광범위한 합의에 이르렀다는 시대에 민주주의의 공동화(空洞化)라는 역설이 어떻게 발생했는지를 먼저 숙고해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한마디로, 헌정이나 통치체제의 한 형태로 이해하고 그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유일하게 좋은 제도로 합의했다는 데서 생겨난 역설이다. 이 합의가 민주주의를 고사시키고 우리가 현실을 변화시키는 가능성으로서의 정치를 소멸시켰다고 주장하는 것은, 마치 위험하지 않은 사랑에 대한 추구와 그 결론으로서의 안전한 결혼이 사랑을 텅 빈 집에 갇히게 하고 불륜을 창궐케 한 것이라는 주장만큼이나 받아들이기 힘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마르크스의 말을 빌리자면, 대의제 아래에서 대표하는 것은 대표되는 것보다 언제나 과잉된다. 그리고 항상 이 사실은 숨겨진다. 이 과잉은 결코 통치될 수 있거나 합의에 의해 해소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인민의 지배’라는 의미에서의 민주주의 본래의 의미는, 통치할 자격을 가지지 못한 자들이 스스로에 대해 갖는 권력으로 민주주의를 새롭게 조직하는 것이 가능할 때, 단지 상징이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실재와 관련을 갖게 되는 어떤 미지의(미완성의) 삶의 양식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인가’ 하는 정치인의 항변을 들을 때마다 실소가 아니라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것은 정치라는 공간에서 그 둘 사이의 경계가 존재하는가라는 의문 때문이었다. 조르조 아감벤에 따르면, 우리의 민주주의를 하나로 묶어주는 힘은 ‘맹세’이다. 말한다는 것은 곧 맹세를 내포한다. 이는 이 둘 사이에 끊임없는 어긋남, 메울 수 없는 틈이 있음을 역설적으로 증언한다. 말하는 동물인 인간은 언어에 자신의 본성을 걸고 말과 사물과 행위를 윤리적이고 정치적인 차원에서 하나로 묶어야만 하는 절박한 요구를 지닌다. 그리고 ‘너를 사랑한다’는 맹세는 메울 수 없는 공백을 호출하며, 예기치 않은 위험을 감수하겠다는 약속이다. 이런 점에서 박근혜 정권은 사랑 부재, 정치 부재 시대의 표상이다.
<불륜의 시대>에는 또 한 사람의 주인공이 있다. 출판사 사장의 아내는 서울에서 추방당한 이슬람 원리주의자 청년과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 인도의 성지 바라나시로 향한다. 거기서 청년은 테러를 거행하고, 그녀는 이슬람 교리를 위반한 사랑을 꿈꾼 대가로 죽임을 당한다. 불륜의 시대, 사랑이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함께, 민주주의가 다시 우리의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를 묻게 되는 요즘이다.
일왕에게 편지 건넨 초선의원…日 정치권 발칵 11.1 sbs
'일왕 권위에 불경 저질렀다' 비난…사퇴 요구
일왕이 주최하는 가을 가든 파티장에 문화·체육계 인사와 정치인 등 1천 800여 명이 모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한 무소속 초선의원이 일왕에게 편지를 건넵니다 편지에는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실상을 알리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야마모토/참의원, 무소속 : 어린이들의 건강 피해가 늘어나고 있는 것과 원전 노동자들의 힘든 근로환경에 관해 말하고 싶었습니다.]
일본 언론은 전대미문의 일이라고 보도했고, 정치권은 발칵 뒤집혔습니다.
[후루야/국가공안위원장 : 국회의원으로서 상식에 어긋나는 행동입니다.]
야당 역시 일왕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행위라며 의원직 사퇴를 요구했습니다.
TV 탤런트 출신인 야마모토 의원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직후 원전 반대 운동가로 변신했으며, 지난 7월 선거에서 참의원으로 당선됐습니다. 일왕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는 건 표면적인 이유이고, 야마모토 의원이 사퇴 요구를 받는 진짜 이유는 일왕의 권위에 불경을 저질렀다는 겁니다. 일본 사회에서 일왕이 어떤 존재인지를 이번 사건은 새삼 보여주고 있습니다.
식량자급률 23% ‘날개 없는 추락’ 10.30 한겨레
30년만에 절반으로 뚝…옥수수·밀은 99% 수입
쇠고기 우유 생선도 비상…선진국 비해 바닥권
한국의 식량 자급률이 날로 떨어지고 있다. 쌀을 뺀 곡물 자급률이 형편 없다는 건 익히 알려져 있지만, 최근에는 쇠고기, 우유, 생선 등도 자급률이 빠르게 떨어지고 있다. 식량 자급은 농업이나 농민 문제와 연결짓지 않더라도 심각한 문제다. 식량을 자급하지 못한다는 건, 삶의 기반을 외국에 의존한다는 얘기다. 국제 식량 위기가 닥치거나 식량 무기화 현상이 나타나면, 나라가 뿌리부터 흔들릴 수도 있다. ▶ 관련 기사: '잊혀진 존재, 농민' 시리즈(하) 농가 80%, 농사로 입에 풀칠만 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매년 발표하는 ‘식품수급표’ 2011년도 자료를 바탕으로 한 아래 그래프에서 보듯, 곡물 자급률은 1980년대 초반 50% 안팎에서 약 30년만에 절반 이하인 23.1%까지 떨어졌다. 그리고 요즘들어서는 과실과 육류의 자급률 하락세도 만만치 않다. (아래 그래프는 세로축을 보통의 그래프와 달리 '로그 스케일'로 그림으로써, 각 항목의 변동폭 곧 선의 기울기를 같은 기준으로 나타냈다. 두 선의 기울기가 똑같으면 자급률의 변동 비율도 같다고 보면 된다.)
곡물류를 항목별로 보면 감자와 고구마, 쌀만 양호한 상황이다. 보리는 2010년부터 25% 아래로 떨어졌고 콩은 2011년 6.4%를 기록했다. 1984년 이후 최저치다. 옥수수와 밀은 거의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한다. 밀 자급률이 2000년대에 들어 조금씩이나마 높아지면서 2011년 1.1%를 기록한 게 위안거리라면 위안거리다.
더 큰 문제는 낮은 자급률이 곡물에만 국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쇠고기의 자급률(2011년 42.8%)은 이미 50% 아래로 떨어진 지 오래고, 우유류(2011년 53.4%), 어패류(2011년 70.5%)마저 자급률이 눈에 띄게 떨어지고 있다. 돼지고기조차 낙관할 상황이 못된다.
아래는 국가별 비교다. 한국의 식량 자급률이 주요 선진 공업국에 비해서도 한참 떨어지는 걸 보여준다.
잊혀진 존재, 농민 <하> 농가 80%, 농사로 입에 풀칠만 하고 산다
한 해 판매액 0원이 10.6%…42.5%는 500만원 미만
26.7%는 500만~2000만원…도시 최저 생계비 이하
농민 실상을 들여다보는 이 기획 첫회 ▶ 1. 한 세대만에 급격히 준 농민 비중 에서는 농민의 비중이 급격하게 줄고 동시에 중간 규모 농가가 몰락하면서 소규모 농가는 급증한 양상을 들여다봤다. 또 두번째 ▶ 2. 고령화, 고립화로 위축되는 농민에서는 이렇게 줄어든 농민들의 구성을 더 세밀하게 봤다. 마지막으로 이번에는 농가의 농산물 생산과 판매에 초점을 맞춰 살핀다. 이와 함께 식량 자급의 악화 현상도 뒷부분에서 다룬다.
먼저 볼 것은, 전체 농가가 어떤 생산물을 주로 생산하는지다. 전체 농가의 44.4%는 쌀(논벼)을 주로 생산하고 있으며, 쌀을 비롯해 잡곡, 감자, 고구마 등 식량작물을 주로 기르는 농가는 전체의 9.9%였다. 채소와 과일 중심으로 농사를 짓는 농가는 33.5%, 특용작물 등 기타 농산물을 주로 기르는 농가는 5.3%다. 또 농가의 6.9%는 축산물을 주로 생산한다.
아래 지도는 주요 생산물 기준으로 시군구별 현황을 표시한 것인데, 지역별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전체 농가 숫자가 적은 서울과 5대 광역시는 제외했다. 지도에서 회색으로 표시된 곳이다.) 축산물과 특용작물 같은 기타 작물은 지역별로 큰 차이가 없다. (대부분의 지역에서 축산물이나 기타 작물을 주로 기르는 농가는 10% 이내다. 기타 작물 지도의 중간 부분에 유독 녹색이 짙은 지역은 인삼으로 유명한 충남 금산군이다.) 하지만 쌀, 식량작물, 채소 또는 과일은 지역별로 확연히 나뉜다. 경기 남부, 충청도, 전라도, 경상남도 서부에서는 주민들 가운데 쌀 농사를 짓는 이들이 유독 많다. 감자로 유명한 강원도는 역시 식량작물을 주로 기르는 농가의 비중이 다른 지역을 월등히 앞선다. 경상북도와 경남 동부지역에서는 농민들이 채소나 과일을 많이 재배하는 것도 알 수 있다.
농가의 특성을 1년 판매액을 기준으로 나눠보면, 농사로 돈벌이를 거의 못하는 농가가 절반을 넘는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난다. 농사는 짓지만 판매를 하지 않는 농가가 전체의 10.6%다. 또 판매액이 500만원 미만, 곧 한달 평균 40만원정도에 불과한 농가가 전체의 42.5%에 달한다. 한달 평균 40만원어치를 팔아서는 비용을 빼고 손에 쥘 수 있는 돈이 그야말로 푼돈에 불과하니, 전체 117만 농가의 절반은 자급자족용 농사에 만족하고 있다고 봐도 지나치지 않다. 판매액이 이보다 많은 농가 대부분도 형편은 크게 다르지 않다. 전체 농가의 26.7%는 1년 판매액이 500만원에서 2000만원 곧 한달 평균 40만원에서 166만원 수준이다. 순수익도 아닌 판매액이 도시 최저생계비 정도에 미달하니, 이들 또한 농사로 돈을 버는 이들로 보기 민망하다.
결국 농사를 통해 돈을 좀 쥐는 농가라고 해봐야 나머지인 20.2%, 가구수로는 23만7775가구다. 18%는 판매액이 2000만원에서 1억원이었으며 1억원 이상을 판매하는 농가는 전체의 2.2%로 집계됐다. (판매액은 순수익과 무관하기 때문에, 이들이 모두 여유 있게 사는 농민이라고 볼 근거도 없다.) 농가 80%에게 농업은 소일거리거나 포기하지 못해 근근이 이어가는 일, 이것이 오늘날 한국 농촌의 냉정한 현실이다.
농가 80%의 판매액이 2000만원에도 못미치는 현실이 농사에 전념하지 않는 겸업 농가의 증가 때문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전체 117만 농가 가운데 농사만 짓는 농가는 모두 62만7460가구인데 이 가운데 77.3%가 판매액 2000만원 미만이다. 전업농보다는 1종 겸업 농가(농업 비중이 큰 농가)의 상황이 도리어 낫다. 2000만원 미만 가구가 58.5%다. 반면 2종 겸업 농가(농업 비중이 작은 농가)는 95.8%가 판매액 2000만원 미만이다.
아래 그림은 농축산물 판매액별 농가 분포를 시군구별로 나눠 그린 것이다. (역시 서울과 5대 광역시는 제외했다.) 농축산물 판매를 하지 않는 농가는 예상대로 수도권에 좀더 많다. 500만원 미만 농가가 다수를 차지하는 건 지역별 차이가 거의 없지만, 상대적으로 전남 동부지역과 경남 서부지역, 강원 영동 지역에 더 몰려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경상북도와 전남 서부 지역, 강원 산간 지역에 판매액이 많은 농가 비중이 높은 편이다.
지금까지 세번에 나눠 봤듯이, 한국의 농민들은 점점 주변으로 밀려나면서 존재감을 잃고 있다. 자연히 농업도 함께 위축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농민들의 소득 또한 좋을리가 없다. 아래 도표는 통계청이 전국 농가 2800곳을 표본으로 조사한 농가 소득과 소비 구조다.(지금까지 인용한 모든 통계는 전체 농가를 조사한 것인 반면 소득 조사는 전체 농가의 0.24% 정도를 골라 조사한 것이다.) 농업을 통해 번 소득이 전체 소득의 31%인 1010만원밖에 안된다. 농민에게조차 농업은 보조 수단에 불과함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는 통계다.
농민이 위축되고 농업이 극소수의 일이 된 현실에서 식량 자급률이 높을리 없다. 아래 그래프에서 보듯, 한국이 자급하고 있는 건 쌀뿐이다. 농촌경제연구원이 매년 발표하는 식품수급표 통계를 보면, 2011년 곡물 자급률은 쌀 83%, 보리 22.5%, 콩 6.4%, 밀 1.1%, 옥수수 0.8%다. 곡류 전체로는 23.1%다. 다른 식량의 자급률도 별로 높지 못해서 채소류 90.4%, 과실류 78.5%, 육류 68.8%다. 게다가 그래프에서 보듯 자급률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 식량 자급은 단지 농민들만의 관심사가 아니다. 이는 국민 전체의 생명이 걸린 중대 사안이다. 농민과 농업을 살리는 건 국가의 운명이 달린 문제라는 인식이 시급하다. (시리즈 끝)
한겨레 조한혜정 칼럼] 자녀를 평생 데리고 살 것인가? 10.29
언제부턴가 대학생들이 매우 온순해졌다. 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다수가 그렇다. 사춘기를 거치지 않은 것 같아서 물어보면 초등학교 5학년 때 “잠시 거쳤다”고 한다. 중3 아들을 둔 제자가 “요즘 애들은 사춘기도 안 거치나요?”라고 물어온 적이 있다. 그는 성공적인 비즈니스맨이다. 그때 나는 답했다. “부잣집 아이들은 안 해. 강아지처럼 잘 따르지.” 또 다른 제자는 자기만 아는 남편에 질려서 이혼을 하려고 아이에게 의논을 했더니, 놀란 기색도 없이 아이가 곧바로 지금 사는 집에 누가 살 것인지만 알고 싶어 하더라고 했다. 자기만 아는 아이를 보고 기가 막혀버린 그는 지금 남편과 계속 살고 있다. 누군가의 표적이 될까 봐 조신하고, 적의 없음을 드러내기 위해 늘 유순한 표정을 짓는 아이들. ‘생존’과 ‘안전’에 대한 강박을 가진 아이들이 자라고 있다. “누가 날 낳으랬어요?”라며 부모에게 대들던 90년대 학번 형이나 언니들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최근 <속물과 잉여>라는 제목의 책이 나왔는데 그 책에서 백욱인 교수는 “애비는 속물이 됐고 그 자식들은 잉여의 나락에” 빠졌다고 말했다.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들은 노크도 없이 방문을 덜컥덜컥 여는 부모가 참을 수 없어 부모에게 반항하고 또래만의 문화를 만들어가고자 했다. 그러나 지금 아이들은 부모의 속물성에 편승한다. 운동은 자기들이 대학 때 다 했으니 너희는 공부만 하라는 아버지의 이중성에 놀라지만 그에게 순종하기로 했고, 중학교 때 록 공연에 데려가 준 ‘쿨’한 부모의 ‘관리’가 고맙다며 그들의 기에 눌려 산다. 이들의 삶의 목표는 안정된 직장을 얻고, 제때에 결혼하고 탈 없이 사는 것이다. 그러나 경제 구조로 보면 그들은 잉여적 존재가 될 확률이 아주 높다.
얼마 전 일본 도쿄에서 열린 ‘니트의 날’ 행사에서, 서른살이 가까워진 은둔형 외톨이는 대학 졸업 뒤 겨우 직장을 얻었지만 힘들어 퇴사한 뒤에는 집에 틀어박혀 산다고 했다. 아버지가 자신을 쫓아내려 했지만 잘 버텨내서 지금은 꽤 편하게 지낼 수 있다고 했다. 부모의 연금에 빌붙어 사는 이 친구에게 짓궂은 평론가가 물었다. “부모가 돌아가시면 어떻게 하려고? 자살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네.” 그는 그렇게 되면 자살을 해야 할 것 같아서, 사실 어떻게 자살할 것인지 진지하게 연구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 청년의 모습은 일본에서나 가능한 것일까? ‘핫’한 운동권 부모와 ‘쿨’한 신세대 부모들은 자기 방식의 사랑과 투자로 자녀들을 열심히 키웠다. 그리고 앞으로는 그들을 평생 먹여 살려야 할 것 같다. 당신은 그럴 만한 경제력과 널브러져 있는 성인 자녀를 보아낼 충분한 덕성을 쌓아놓았는가? 아니라면 지금부터 그들의 자활을 위해 뭔가를 해야 하지 않을까?
지난 주말 서울의 한 청소년 센터에서는 ‘지속가능한 삶을 위한 전환과 연대’라는 주제로 청소년 축제가 열렸다. 그 행사에서 청소년들은 폐자전거로 멋진 자전거를 조립하고, 버려진 목재로 의자를 만들며, 태양광 음식물쓰레기 건조기를 제작했다. 퇴비 만드는 법을 배우고 손작업 워크숍에서 소품들을 만들고 요리를 해서 임시 장터에서 팔기도 했다. 노동하는 몸을 발견하고 또한 자신이 쓸모 있는 존재임을 확인하는 자리, 그리고 함께하는 즐거움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아이를 평생 먹여 살릴 자신이 없는 부모들은 슬슬 동네에 작업장을 만들고 작업을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동네 빈터에 펼쳐둘 평상을 만드는 목공방이나 자전거 공방을 협동조합으로 차려도 좋을 것이다. 청소년들이 자신이 만든 자전거로 동네 심부름도 다니고, 직접 만든 소품을 구청 열린 장터에서 팔고, 동네 어른들과 친해진다면 이들도 자신감 있는 어른으로 성장하지 않을까? 이를 위해 어른들은 아이를 좀비로 만드는 제도 교육을 바꾸어내면서 동시에 새 일거리들을 만들어내는 일도 해야 할 것이다. 새 일거리란 실종된 ‘상호 돌봄의 사회’를 찾아내는 일, 그리고 지속가능한 삶을 가능케 할 산업, 곧 에너지와 물, 농사와 집짓기 등과 관련된 적정기술 분야가 아닐까 싶다. 조한혜정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거침없는 ‘기황후’…재밌다면 역사왜곡 눈감아도 될까 10.30 한겨레
화려한 볼거리·빠른 전개 눈길 1·2회 두자릿수 시청률 몰이
“정보 부족해 왜곡 문제 심각” 평론가들 우려의 소리 높아
방영 전부터 역사 왜곡 논란이 제기된 <기황후>(사진·문화방송)가 실체를 드러냈다. 화려한 볼거리와 빠른 전개로 몰입감을 증폭시키며 1회(28일) 11.1%, 2회(29일) 13.6%의 시청률(닐슨코리아 집계)을 기록했다. <장옥정, 사랑에 살다>(에스비에스), <칼과 꽃>(한국방송), <불의 여신 정이>(문화방송)의 거듭된 부진으로 침체의 늪에 빠진 사극이 모처럼 시청자들 눈길을 잡고 있다. 하지만 대중문화평론가들은 더욱 우려 섞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왜일까?
1·2회만 놓고 보면 <기황후>는 흥행 사극의 공식을 충실히 따른다. <선덕여왕>과 <바람의 화원> 등에서 나온 남장 여인이나 여주인공의 고난, 신분을 초월한 사랑까지 등장한다. ‘공녀였다가 황후가 된 여인’이라는 고려판 신데렐라 스토리(원 황제와 고려 왕의 사랑을 동시에 받기까지 한다)는 충분히 매력적인 소재일 수 있다.
문제는 기황후가 가상 인물이 아닌 실존 인물이며 부정적인 평가를 피할 수 없다는 데 있다. 14세기에 고려에서 ‘공물’로 보내진 기황후는 원의 마지막 황제 순제의 황후 자리에까지 올라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고려 입장에서 보면 부정적인 면이 컸다. 그 오빠인 기철 등이 기황후의 위세를 등에 업고 실권을 행사하며 부정부패를 일삼았다. 개혁을 추진하던 공민왕이 기씨 세력을 제거하자, 기황후는 고려에 대한 공격을 지시하기도 한다. 따라서 역사적 인물에 작가의 상상력이 덧대어져 탄생한 다른 팩션(사실에 기반한 창작) 사극인 <선덕여왕>, <뿌리깊은 나무> 등보다 태생적으로 논란이 클 수밖에 없다.
대중문화평론가인 윤석진 충남대 교수(국어국문학)는 “1·2부를 보면 기황후를 여전사로 만들고 있는데, 회가 거듭될수록 이야기가 내적인 설득력을 얻어 결국 역사적으로 나쁜 평가를 받는 기황후에 시청자가 공감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이어 “역사적 배경과 인물을 드라마 소재로 가져올 때는 작가 의식과 역사 의식이 필요할 텐데, 그런 부분이 전제되지 않은 게 심각해 보인다. 시청자가 드라마에 몰입하면서 역사 왜곡이 희석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우려했다. 김선영 대중문화평론가 또한 “1·2부만 보면 판타지 시대극을 보는 느낌인데, 실존 인물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 논란은 감춰지고 있어 ‘역사가 이렇게 탈색돼도 될까’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기황후>에 앞서 <장옥정, 사랑에 살다>도 통상 부정적인 평가를 받아온 인물에 대한 긍정적 해석으로 논란이 있었다. ‘착한 인현왕후-악한 장희빈’이라는 기존 공식을 뒤엎고, 극 중반까지 ‘착한 장희빈-악한 인현왕후’라는 설정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황후>는 <장옥정, 사랑에 살다>와는 또 다른 측면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석진 교수는 “장희빈은 사극에서 악인으로 많이 다뤄진 인물이라서 판단이 곡해될 여지가 많지 않다. 하지만 기황후는 <신돈> 등에서만 조금 다뤄졌을 뿐 그 실체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장희빈보다 더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에 왜곡의 문제가 더 심각하다”고 말했다.
<기황후> 제작 발표회에서 장영철 작가는 “2008년 즈음 다큐멘터리를 보고, 한 여인이 쇠락해가는 나라에서 공녀로 끌려가 가장 높은 위치에 오른 게 흥미로웠다. 기황후의 이름·나이 등 사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아 드라마의 70% 이상은 허구의 인물들로 구성했다”고 밝혔다. 문화방송 또한 드라마 방영 직전 ‘이 드라마는 고려 말, 공녀로 끌려가 원나라 황후가 된 기황후의 이야기를 모티프로 했으며, 일부 가상의 인물과 허구의 사건을 다루었습니다. 실제 역사와 다름을 밝혀드립니다’라는 자막을 내보내고 있다. 방영 전에는 방탕한 패륜아였던 고려 충혜왕에 대한 미화로 비판이 일자, 충혜왕 캐릭터를 허구의 ‘왕유’, ‘고려왕’으로 바꾸며 역사 왜곡이라는 비판을 누그러뜨리려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기황후라는 실존 인물이 주인공인 이상 드라마 속 왕유는 충혜왕일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결국 실존 인물 설정 때문에 <기황후>는 50부작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전망이다. “드라마를 보고도 역사 운운하면 귀를 열고 듣겠다”던 장 작가나 제작진도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스케일도 괜찮고 이야기 전개도 속도감이 있어 ‘기황후’라는 소재만 아니었다면 좋은 사극이 됐을 것도 같다. 하지만 역사 왜곡은 시청률이 잘 나오고 작품이 좋다고 해서 이해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금융업 종사자 30%, 월 급여 400만 원 이상 10.20 kbs
금융·보험업과 전문, 과학 및 기술 서비스업종 근로자 10명 중 3명꼴로 월 임금이 400만원 이상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농림어업 부문은 월 급여 100만원 이하인 종사자가 절반을 넘었다. 통계청은 30일 취업자의 산업 및 직업별 특성을 주제로 이런 내용의 2013년 상반기 지역별 고용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월 100∼200만원 급여생활자 가장 많아
올해 4월 기준 근로자의 임금 수준은 산업에 따라 큰 차이를 보였다.
산업 전체의 임금수준 분포는 월 100∼200만원 미만이 38.3%로 가장 많고 200∼300만원 미만이 24.1%로 뒤를 이어 전체 임금 근로자의 62.4%가 100∼300만원 미만의 급여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월 100만원 미만의 임금근로자도 13.5%를 차지했다. 월 300∼400만원 미만은 12.3%, 월 400만원 이상은 11.8%였다. 월 400만원 이상 고임금 근로자가 가장 많은 산업 분야는 금융·보험업으로 30.2%를 차지했다. 전문, 과학 및 기술서비스업이 29.5%로 근소한 차이를 보였고, 출판, 영상, 방송통신 및 정보서비스업(24.2%), 공공행정, 국방 및 사회보장행정(19.5%) 등도 비교적 고임금 근로자 비중이 다른 분야보다 컸다.
반면 농림어업 분야는 월 100만원 미만 임금 근로자가 58.0%로 절반을 넘었다. 농림어업 종사자 가운데 월 400만원 이상 급여 생활자는 3.5%에 불과했다. 숙박 및 음식점업 분야도 월 100만원 미만 임금근로자가 33.3%로 다른 분야보다 비중이 컸다.
◇건설업 92% 남성 고용…여성은 보건·사회복지 많아
4월 기준 전체 취업자 2천510만3천명을 산업 대분류별로 살펴보면 제조업(16.7%), 도매 및 소매업(14.3%), 숙박 및 음식점업(7.7%) 순으로 큰 비중을 차지했다.
성별 취업자 비율을 보면 남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건설업은 92.2%에 달했고 운수업(90.6%), 출판, 영상, 방송통신 및 정보서비스업(73.0%) 등도 남성 비율이 높았다.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보건업 및 사회복지서비스업이 81.4%로 가장 높고 교육서비스업(66.4%), 숙박 및 음식점업(65.4%) 등도 여성이 다수를 차지했다.
76개 산업 중분류별 취업자 규모를 살펴보면 소매업(자동차 제외)이 217만1천명(8.6%)으로 임금근로자가 가장 많고, 이어 음식점 및 주점업(180만명, 7.2%), 교육서비스업(172만7천명, 6.9%) 등의 인원도 많았다.
전문가 및 관련 종사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가장 높은 산업은 교육서비스업으로 76.4%였고, 보건업 및 사회복지서비스업(62.6%), 전문, 과학 및 기술서비스업(60.1%)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사무종사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금융 및 보험업(52.2%), 공공행정, 국방 및 사회보장행정(46.1%) 부문이 높게 나타났다.
단순노무종사자는 사업시설관리 및 사업지원서비스업(49.0%)이 가장 많았다.
◇관리자 69% 월 400만원 이상…단순노무 91% 월 200만원 미만
산업이 아닌 직업(대분류)에 따라 남성과 여성의 취업자 비율을 비교해 보면 관리자 중에서 남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88.9%로 여성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장치·기계조작 및 조립 종사자(87.0%)와 기능원 및 관련 기능 종사자(85.9%) 등 기술 관련 분야도 남성 비중이 컸다. 서비스 종사자 가운데서는 여성이 66.2%로 남성보다 많았다.
직업 대분류별로 임금 수준을 살펴보면 관리자가 월 400만원 이상 임금을 받는 비율이 68.6%로 가장 높고, 그 외 직업에서는 월 100∼200만원 미만 비율이 높았다.
전문가 및 관련 종사자와 사무종사자는 월 300만원 이상 근로자의 비율이 각각 39.7%, 36.2%였다. 반면 단순노무종사자는 월 200만원 미만 임금근로자가 91.2%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경찰 제대로 수사발표했으면 문재인이 당선됐을 것” 10.30 미디어오늘
[여론조사] 박 지지자 8.3% "문재인 찍었을 것"…대통령 지지율 46.6%, 윤창중 이후 최저
지난해 대선을 앞둔 12월 16일 경찰은 중간수사결과 발표를 통해 민주당이 제기한 국정원 여직원의 대선개입 의혹에 대해 “댓글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검찰은 해당 직원 뿐 아니라 국정원 직원들이 5만여건이 넘는 댓글과 트위터를 통해 국정원이 조직적인 대선개입을 했다며 공소장을 변경했다.
만약 경찰이 16일 중간결과발표를 ‘제대로’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여론조사 기관인 리서치뷰가 27일 전국 만 19세 이상 유권자 10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벌인 결과 박근혜 후보를 찍었던 투표층 중 8.3%는 경찰이 사실대로 발표했을 경우 문재인 후보를 찍었을 것이라는 조사 결과를 28일 발표했다.
리서치뷰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에 투표했다는 응답자를 대상으로 ‘만약 대선 당시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에 대해 경찰이 사실대로 수사결과를 발표했을 경우 누구에게 투표했을 것이라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471명 중 39명이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를 찍었을 것”이라고 답했다. 반면 나머지 86.8%는 그럼에도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찍었을 것”이라고 답했다.
리서치뷰 측은 “경우에 따라선 대선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어 상당한 정치적 파문이 예상된다”며 “‘문재인 후보에게 투표했을 것’이라고 응답한 8.3%를 박근혜 후보 투표율 51.55%에 대입하면 4.28%에 해당하는 수치로 이 값을 두 후보의 최종득표율에 반영할 경우 박근혜 후보는 51.55→47.27%, 문재인 후보는 48.02%→52.3%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경향 단독]작년 대선 앞둔 재향군인회, 직제도 없이 ‘청년국’ 급조 10.30
ㆍ국가기관 이어 관변단체까지 대선개입 의혹
재향군인회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대선에 개입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국가기관과 관변단체의 ‘불법’ 의혹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재향군인회가 국가기관은 아니지만 국가 예산이 지원되고, 법적으로 정치 중립을 요구받는 단체인 만큼 선거 관여는 불법이다. 국가정보원과 국군 사이버사령부, 국가보훈처 등 국가기관에 이어 산하의 관변단체들로까지 불법 개입의 폭과 양이 나날이 커지고 있다.
재향군인회 청년국은 지난해 11월6일 SNS를 통해 새누리당 선대위 청년본부인 ‘빨간 운동화’ 청년 서포터스를 모집하는 공고를 게시했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박 후보 대선캠프인 국민행복캠프 서포터스 블로그에도 ‘빨간 운동화’ 서포터스 모집 공고가 똑같이 게시됐다. 두 곳 모두 “신나는 빨간 운동화(2030 청년 서포터스)를 모집합니다”라는 내용의 글이 올라 있다.
청년국이 단순히 대선캠프 공고를 퍼날랐거나, 사전에 이를 공유하고 함께 공고를 올렸을 가능성이 있다고 김 의원은 의심했다. ‘빨간 운동화’는 지난해 10월25일 출범식 당시 박 후보가 직접 임원들의 임명장을 수여할 정도로 의미를 갖는 조직이다. 또 재향군인회 청년국 공식 트위터에는 대선 직전까지 박 후보 홈페이지 주소가 링크돼 있었다. 이 과정에서 재향군인회 청년국 내 SNS 담당 과장들이 박 후보 선대위 조직인 ‘빨간 운동화’와 새누리당의 SNS 서포터스 조직인 ‘빨간 마우스’에서 활동한 사실도 확인됐다. 트위터의 공고, 박 후보 홈페이지 링크 등과 같은 소극적인 수준을 넘어 청년국과 새누리당이 직접 연계, 적극적으로 활동했을 가능성도 제기되는 대목이다. 29일 현재 ‘빨간 운동화’와 ‘빨간 마우스’의 회원 수는 각각 918명, 9898명이다.
근로자 80%는 대체휴일제 못 쓴다? 10.30 아시아경제
정부가 내년부터 설ㆍ추석ㆍ어린이날이 공휴일 또는 토요일과 겹치면 하루 더 쉬는 '대체휴일제' 도입을 확정했다. 그러나 정작 내년부터 이 제도를 적용받는 것은 전체 근로자 중 공무원을 포함해 약 17%에 그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소득 양극화 시대에 휴일까지 양극화된다는 불만과 함께 보완책 마련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29일 국무회의에서 대체휴일제 도입을 위한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 개정안을 심의ㆍ의결했다. 설이나 추석 연휴가 다른 공휴일과 겹치거나 어린이날이 토요일 또는 다른 공휴일과 겹치면 정부나 공공기관들이 공휴일 아닌 첫날을 대체공휴일로 지정해 쉰다는 내용이다. 일요일이 겹치는 내년 추석 연휴에 대체휴일제가 처음 시행된다. 직장인들은 벌서부터 3일간의 짧은 연휴로 교통 체증에 시달리던 기존 명절과 달리 좀 더 여유 있게 보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문제는 이 제도를 적용받아 내년부터 대체휴일을 쉴 수 있는 이들이 생각보다 매우 적다는 것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한정애 의원실(민주당ㆍ비례대표)에 따르면, 전체 1700여만명의 근로자 중 공무원 100만명 외에 대기업 또는 노조가 있는 사업장 근로자 등 300만명 안팎 정도만 내년 대체휴일제 도입의 대상이 될 전망이다. 우리나라 근로자 중 노조에 가입한 이들은 약 10.8% 정도로 약 170만명가량이다. 이들은 노조가 사측과 체결한 단체협약을 통해 관공서 공휴일 규정을 준용하도록 돼 있어 내년부터 대체휴일을 즐길 수 있다. 여기에 대기업 등 일부 근로 조건이 좋은 사업장들은 노조가 없더라도 취업규칙상 관공서 공휴일 규정을 준용하도록 돼 있어 역시 같은 혜택을 받게 된다.
이처럼 적용 폭이 좁은 것은 정부가 대체휴일제를 도입하면서 전체 근로자의 휴일을 결정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이 아니라 공무원들에게만 직접 적용되는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을 개정했기 때문이다. 지난 5월까지만 해도 여야가 근로기준법을 개정해 모든 공휴일이 토ㆍ일요일과 겹칠 경우 하루 더 쉬도록 하자는 취지의 합의를 했지만 "비용이 늘어난다"는 재계의 강력한 반발에 정부가 적용 범위가 매우 제한된 쪽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이로 인해 소득 양극화 사회 속에서 앞으로 직업에 따라 휴일도 차별받는 '휴일 양극화 시대'가 왔다는 불만이 높다. 또 중소ㆍ영세 기업까지 신속히 제도가 확산되도록 장려하는 한편 근본적으로 근로기준법 개정을 통해 적용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 의원실 관계자는 "현재 근로기준법 개정을 통해 대체휴일제를 도입하자는 안을 국회에 발의한 상태"라며 "그 이전에라도 정부가 근로감독 등을 통해 '휴일양극화'를 막기 위해 대체휴일제 실시를 적극적으로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육, 한국처럼 돼서는 안 돼""주당 60시간 공부… 학생들 억눌려 있어" 10.30 연합
한국의 교육 수준이 높지만, 그 성과의 이면에는 부작용이 크다는 지적이 스웨덴 언론으로부터 나왔다. 스웨덴 일간지 아프톤블라뎃은 스테판 로벤 사민당 대표의 최근 방한 관련 특집 기사를 통해 한국교육의 명암을 해부했다. 아프톤블라뎃은 `지식이 전부, 그러나 대가가 있다'는 제목의 28일(현지시간) 기사에서 한국은 대학 진학률이 2000년 24%에서 2010년 40%로 상승해 진학률 목표를 80%로 새로 설정했다고 소개했다.
한국 15세 청소년의 수학, 과학, 읽기이해 능력이 2009년 65개 조사 국가 중 핀란드 다음으로 우수하다는 점도 거론했다. 스웨덴 학생은 28위라고 비교했다. 이 신문은 한국 학생들이 우수한 이유로 교육을 중시하는 유교사상이 지배적인 사회 분위기, 특히 부모의 높은 교육열을 꼽았다. 학생들은 하루 최대 17시간을 공부하며 대다수는 방과 후 사설학원까지 다닌다고 신문은 설명했다. 이밖에 교사의 처우가 좋은 것도 이 같은 배경으로 분석했다.
신문은 그러나 한국 교육이 거둔 성과의 이면에 있는 부정적인 면들을 지적하며 한국을 벤치마킹하는 것에 경계감을 드러냈다. 스웨덴 국영 방송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인 `한국의 교육 기적'을 인용, 한국의 우수한 학생들의 뒷모습에는 한 달에 6천 크로나(한화 100만원)의 사교육비와 산업화한 학원가가 있다고 지적했다. 학생들이 방과 후에도 학원에서 밤늦게까지 공부해야 하는 현실 탓에 하루에 4시간밖에 못 자며 혹사당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최근 한국 학교 4곳의 수업을 참관한 스웨덴 교육 전문가 안나-마리아 마틴손은 "한국의 교육시스템은 너무 교과서와 시험 위주다. 학생들이 그룹활동을 통해 서로 교류하거나 자율로 할 수 있는 여지가 극히 적다"고 말했다.
이어 "학생이 억눌려 있다"며 스웨덴 교육개혁에 한국을 참고하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라쉬 다니엘손 주한 스웨덴 대사는 "청소년에 대한 압박이 심한 것을 주의해야 한다. 장기적인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사민당의 로벤 대표는 "스웨덴은 교육 수준을 올려야 하지만 학생들이 주당 60시간 이상 공부해야 하는 이곳처럼 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 더 추락출범 후 첫 50% 아래로 10.30한국
고공행진을 이어오던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이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50% 대 아래로 떨어져 빨간 불이 켜졌다. 한 때 60%를 상회하던 지지율은 하락세를 이어오다 대선 당시 얻은 득표율(51.6%)보다 더 내려간 것이다. 국가기관 선거개입 의혹과 기초연금 공약후퇴 논란으로 촉발된 국정 난맥상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29일 여론조사기관 리서치뷰가 27일 전국 성인남녀 1,000여명을 대상으로 박 대통령의 직무 수행 평가를 조사한 결과, 긍정적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46.6%인 반면 부정적이라는 의견은 43.3%였다. 이는 같은 기관이 9월 28일에 실시한 결과에 견줘 잘했다는 의견은 지난달(54%)에 비해 7.4%포인트 떨어진 반면, 부정평가(38.4%)는 4.9%포인트 상승했다.
박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세는 10월 들어 두드러지는 양상이다. 국정원과 군 사이버사령부까지 가세한 조직적 선거개입 의혹과 검찰 국정원 수사팀의 외압 논란, 문재인 의원의 대선 불공정 발언 등이 쏟아진 시기와 맞물린다. 한국갤럽이 25일 발표한 10월 넷째 주 주간 정례조사 결과를 보면 국정운영을 잘하고 있다는 응답은 53%로 10월 초ㆍ중반 56%로 정체 행보를 보여왔던 것에 비해 3%포인트 떨어졌다. 리얼미터의 주간 정례 조사 결과에서도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10월 3, 4째주 들어 이례적으로 2주 연속 떨어지는 추세를 보였다.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분석실장은 "이제 박 대통령과 국민과의 허니문 기간은 끝났다고 보면 된다"며 "박 대통령이 지금껏 고수해온 일방통행식 국정운영 스타일을 버리지 않으면 지지율 상승 반전의 계기를 마련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아침을 열며] 정권 1년차 징크스와 정치선전 이종혁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1년차에 힘이 빠지면 적어도 향후 2년은 여론의 지지를 얻기 힘들고 그렇게 3년이 지나면 그 때부터 레임덕이다? 국민에게는 불행한 이러한 공식이 과거부터 어김없이 반복돼 왔다. 지난 10년만 돌이켜 봐도 진보, 보수 어느 정권 가릴 것 없이 집권 초기 최소 40%에서 많게는 60%에 이르던 지지율이 단 1년 만에 약속이나 한 듯 20% 대로 급락했다. 지지율 급락과 함께 정치권발 사과와 사퇴의 반복적 구호는 정권 1년차에 가장 빈번히 등장했던 어휘였다. 참여정부 1년차였던 2003년은 대통령 선거중립의무 위반과 측근비리 쟁점, 그에 대한 대통령의 사과 요구로 정치권이 요동쳤다. 결국 갓 1년을 넘긴 2004년 3월 야당에 의해 가결된 대통령 탄핵은 국력낭비와 국정공백만을 초래했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3개월만인 2008년 5월 대통령이 국민에게 세 번이나 머리를 숙였지만 미국산 수입 쇠고기로 촉발된 촛불 집회는 사실상 1년차 정부의 국정공황 상태를 초래하고 대통령 퇴진 요구로까지 확대됐다.
2013년 박근혜 정부의 1년차도 국정원 댓글사건 정국 속에 60%를 상회하던 지지율이 급격히 하향세로 접어드는 양상이다. 인터넷 여론을 들여다보면 공공연히 농을 섞은 비아냥거림 소재로 대통령 사퇴라는 어휘가 빈번하게 등장하고 있다. 이 정도면 대한민국 정부가 매번 직면해야 할 1년차 징크스라 해도 무리가 없는 듯 하다.
어느 정부든 1년차를 기점으로 민생을 챙기는 다양한 정책에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어야 하는데 매번 지독한 정치선전으로 만신창이가 된 정권의 모습만이 목격돼 왔다. 정권이 출범하면 여러 정치세력들은 민주주의, 헌법과 자유, 그리고 대한민국을 위한다는 거대한 명분으로 정부와 대통령을 평가해 왔다. 그런데 그 평가 논리의 중심에는 역설적이게도 극명한 편 가르기만 있었다. 가장 일반적인 정치선전기법이 이상적 가치를 내세워 현실을 비판하는 것이다. 현실에 불만족하고 이상만 좇을 때 대중의 조급함을 촉발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로 지금 1년이 대한민국의 국운을 좌우할 듯 국민을 압박해 왔는지 모른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나라의 위기라는 여론이 형성됐다. 지금도 국정원 댓글사건 정국에서 여야가 주고받은 대선불복과 헌법불복이란 분명한 선전 어휘는 우리 정치의 극단을 보여 준다. 프랑스 사회학자 자끄 엘륄은 선전이 대화를 없애고 대화가 사라지는 순간 상대는 적이 된다고 했다. 고집스런 자기 확신과 타인 비판의 반복이 보여주듯 한 사회에 편 가르기가 횡행한다는 것은 그 만큼 선전이 넘쳐난다는 지적이다. 진실을 검증하는데 절대적 시간을 요하는 난해한 의제를 두고 단기간에 정답의 모양을 갖춘 주장을 쏟아내는 것은 필연적으로 선전에 가까울 수밖에 없다.
1년차 징크스는 정부, 정치권, 그리고 국민 모두가 이러한 정치선전의 부작용을 인식할 때 깰 수 있다. 정권은 언제나 억울함과 답답함을 호소하지만 원칙과 정치적 명분을 따지기 이전에 좀 더 적극적인 대화의 자세를 지향해야 한다. 침묵과 무대응이 상대에게는 여론 잠재우기식 선전행위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이는 더 강력한 정치선전을 자극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런 악순환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대화와 정책 실천이라는 두 가지 요소 중 하나라도 기능해야 한다. 지난 일요일 야당의 헌법불복 규탄과 민주주의 수호 결의대회와 월요일 정부의 국무총리 대국민 담화를 보면서 또 한번의 1년차 정권 징크스에 대한 불안감을 감출 수 없다. 조금 늦었지만 정부는 담화에 담긴 몇 가지 약속에 대해 여론이 기대하는 평균 수준 이상의 실천을 보여줘야 한다. 야당은 경제 관련 법안 및 예산안에 대한 협력은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양측 모두 정치선전을 했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마지막으로 국민은 부화뇌동 없는 기다림의 엄중함을 보여 주어야 한다. 그리고 말에 미치지 못하는 실천이라면 그 때 한 정권을 비판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과거를 돌이켜 보면 말이다.
김진태 "20대 아들딸이 모은 1억은 세뱃돈과 용돈" 10.30 한국
해명소득원 없는 20대 자녀의 고액 예금에 증여세 탈루 의혹
아들 병역ㆍ부동산 투기 의혹도 반박… 청문회 통과 자신
김진태(61) 검찰총장 후보자가 20대 자녀들의 재산 형성 과정에 의문이 제기되자 "예금 1억원은 어릴 때부터 받은 세뱃돈과 용돈을 모아 마련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김 후보자는 대검 차장시절인 지난 3월 공직자 재산변동 사항에서 아들(27)과 딸(28)의 예금이 각각 7,100만원, 7,300만원이라고 신고했다. 김 후보자가 자녀에게 증여했다고 밝힌 재산은 2008년 신고한 4,000만원뿐이다.
별다른 소득원이 없는 자녀의 재산이 과도하게 많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면서, 나머지 1억원에 대한 증여세 탈루 의혹이 제기됐다. 실제로 김 후보자의 아들은 올해 대기업에 취업을 했고, 딸은 아직 직업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김 후보자 측은 "자녀들이 어릴 때부터 용돈, 세뱃돈 등으로 모아온 것"이라며 "목돈으로 준 부분에 대해서는 증여세를 완납했다"고 밝혔다. 목돈으로 넘겨준 4,000만원에 대해서는 증여세를 모두 납부해 문제될 것이 없다는 뜻이다. 김 후보자는 검찰총장 내정 이후 자신에게 제기된 의혹을 적극적으로 해명하며 청문회 통과를 자신하고 있다.
김 후보자의 아들은 '사구체신염'으로 제2국민역(면제) 판정을 받아 병역 비리 의혹을 샀다. 김 후보자 측은 "아들이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했다"면서 "군대에 4차례 지원했지만 불합격했고 현재도 치료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김 후보자 측은 "아들이 2005년 6월 첫 신체검사 때 현역으로 복무할 수 있는 3급 판정을 받았으나 2009년 2월 한국국제협력단(KOICA) 해외봉사단 지원 과정에서 사구체신염이 발견돼 면제 판정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김 후보자는 농지법 위반과 부동산 투기 의혹에 대해서도 적극 해명했다. 김 후보자는 본인 명의로 전남 여수시 율촌면 산수리 일대 밭 856㎡와 대지 129㎡를 갖고 있다. 부인 명의로는 광양시 황금동과 상황동에 총 1만3,000여㎡의 임야를 보유하고 있다. 연고가 없는 전남에 수천만원 상당의 땅을 사들였고, 매입 시기 역시 1988년 전남지역 부동산 투기 붐이 일어난 시점과 일치하면서 부동산 투기 의혹을 받고 있다. 김 후보자 측은 "여수 땅은 순천에서 초임 근무를 할 때 노후에 집을 지으면 좋겠다 싶어서 샀으며, 부인 명의 광양 땅은 장인께서 돌아가신 뒤 처남의 주도로 사들였다"고 말했다.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과의 관계에 대해선 직접 야당 의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몸을 낮추기도 했다. 김 후보자는 지명 당일인 지난 27일 야당 법사위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잘하겠다. 잘 부탁드린다"면서 "(김 실장은) 옛날에 법무부에 근무할 때 장관으로 모셨던 인연밖에 없다"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익중 교수 “국민안전 위해 최소한 일본산 수산물은 전면 수입금지해야” [인터뷰]“다음 원전사고 한국 특히 위험” 경고도 9.25 민중의 소리;
원자력안전위원이기도 한 김익중 동국대 의대 교수는 정부의 일본 8개 현 수산물 수입금지 조치에 대해 “상징적인 의미는 있으나 실효성은 적다”며 “최소한 일본산 수산물을 전면 수입금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6일 정부는 후쿠시마 현 등 일본 8개 현의 수산물을 수입금지하고 그 외 지역의 수산물에 대해서는 세슘이 미량이라도 검출되면 스트론튬 및 플루토늄 등 기타 핵종에 대한 비오염검사증명서를 추가로 요구하는 조치를 발표했다. 또 방사선 기준치를 당초 kg당 370베크렐(Bq)에서 100베크렐로 낮추기도 했다.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은 지난 17일 TV 뉴스에 출연해 “100베크렐은 국제적으로 굉장히 강한 기준”이라며 일본산 수산물 검역 안전을 자신했다. 그러나 김익중 교수는 <민중의소리>와의 인터뷰에서 “일본산 수산물 중 수입금지된 8개 현의 비중은 15%에 불과하고 나머지가 85%에 이른다”며 “특히 홋카이도 현과 도쿄도 현을 제외한 것은 제일 문제되는 부분을 비켜나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방사선 기준치와 관련해 그는 “방사선 기준치 이하라서 안전하다는 말은 틀렸다. 당장 우리 정부가 식품 허용 기준치를 370베크렐에서 갑자기 100베크렐로 낮췄다. 심지어 국가별로 10배 이상 차이가 난다. 방사선 기준치는 의학적으로 안전하다는 근거가 있는 것이 아니라 관리기준일 뿐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김 교수는 “정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년반 동안 오염된 일본산 수산물이 131회 적발됐는데 이중 10베크렐 넘은 게 7번이고 100베크렐 넘은 것은 한 번도 없다”고 지적하며 “100베크렐은 반만년 역사에서 한 번도 발견된 적이 없는 방사선 수치”라고 꼬집었다.
김 교수는 3.11 후쿠시마 원전사고 당시 재임하던 칸 나오토의 일본 총리의 퇴임 후 인터뷰 중 ‘원전 사고를 100% 예방하는 길은 모두 닫는 것 밖에 없다. 인간은 불안전하기 때문이다’라는 구절을 인용하며 “원전을 계속 짓고 있는 우리나라가 특히 다음 사고가 일어날 위험이 높다”고 여러 차례 경고했다.
-일본이 한국 정부의 8개 현 수산물 수입 금지 조치에 WTO 제소 운운하며 항의했다. 어떻게 보나?
: 부적절하다. 다른 나라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세게 하고 있는데 그쪽에는 항의도 안하면서, 제일 약하게 하고 있는 한국을 만만하게 보고 있다. 오히려 사고 뒤 2년 반이나 수산물을 사줬는데 고마워해야 하지 않나. 중국, 대만, 홍콩 등은 사고 직후부터 한국보다 심하게 규제를 하고 있다. 양국 정부가 ‘쇼’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이번 일본 수산물 제한 조치를 어떻게 평가하나
: 일본은 항의하지만 오히려 이번 조치는 굉장히 부족하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이번 8개 현에서 들어오는 물량이 전체 일본 수산물의 15%다. 85%는 그냥 들어오는 거다. 또 일본에서 들어온 생선 중 냉장명태, 냉장대구, 냉동고등어가 제일 많다. 대구와 명태는 홋카이도에서 가장 많이 들어온다. 냉동고등어는 도쿄도 현에서 주로 수입된다. 그런데 그 두 곳이 빠졌다.
-어떤 조치가 더 필요한가?
:적어도 일본산 수산물 수입은 전면 금지하는 게 맞다.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도 그렇게 얘기했다. 농축산물과 사료도 위험하다. 오염된 사료 먹으면 돼지와 소도 오염되고, 먹이사슬 따라서 국민들 뱃속에 들어온다. 중국은 처음부터 사료, 미끼 등을 금지했다.
-특히 수산물에 대한 우려가 크다. 정부의 말처럼 기준치 이하면 안전한가?
: 기준치 이하라서 안전하다는 새빨간 거짓말이다. 이번에 방사선 기준치를 370베크렐에서 갑자기 100베크렐로 낮췄다. 이런 게 기준치다. 국가별로 기준치가 10배 이상 차이가 난다. 의학적으로 안전하다는 기준치가 아니다. 안전기준치라고 이야기 하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고 오역이다.
또 100베크렐은 반만년 역사에서 한 번도 발견된 적이 없는 수치다. 후쿠시마 원전 바로 앞 항구의 바닷물이 20~80베크렐을 나타냈다. 여기서 고기 잡아도 기준치 이하다. 모두 합격되는 기준치, 한 번도 오염된 수산물을 반송하지 못하는 기준치가 무슨 의미가 있냐. 일본산 방사능 오염 건수 데이터를 보면 131건 적발됐는데 그 중 7건만 10베크렐 이상이고 나머지는 124건은 10베크렐 이하다.
-일본산만 아니면 안전한가?
: 복잡하다. 태평양은 오염됐고 우리 근해는 아직 오염 안됐다. 러시아산, 미국산, 피지산, 캐나다산 등 태평양에서 잡은 물고기에서 방사능이 발견된 기록이 있다. 그러나 일본산 제외하고는 거의 검사를 안하고 있다. 태평양에서 잡은 것은 일본산처럼 모두 측정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식약처 인력과 장비를 무한대로 늘릴 수는 없으니까 일본산은 금지시키고 그 인력, 장비로 다른 나라 식품을 측정해야 한다. 또 근해에서 잡힌 것은 안전하다고 표시를 해주거나 수산물에 선박 국적이나 항구인 원산지가 아니라 조업한 바다를 표시하는 것도 방법이다.
-정부는 시민단체와 일부 전문가들의 주장을 괴담이라고 했다.
: 방사능 괴담이라고 하더니 수입금지하는 것은 괴담이라는 말 안 한다. 총리가 얼마나 욕 먹었나. 국민들이 방사능에 대해 걱정하는데 이를 괴담이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간 정부는 국민의 피폭량을 줄이기 위한 노력조치도 하지 않았다. 이번에 아주 미흡하지만 처음으로 조치한 것이다.
-일본 원전 현재 문제점은 오염수 방류와 지하수 오염인가?
: 그렇다. 일본은 2년 반 동안 세계인에게 거짓말을 하다 한 달쯤 전에 들켰다. 일본 정부나 도쿄원전, 아무도 안 믿는다. 하루 300톤 오염수 방류도 거짓말일 것이다. 원자로 세 개는 아래가 뚫려서 붓는 물이 전부 회수되지 않는다. 지하수는 고농도로 오염돼 수십만 베크렐까지 올라간다. 그러나 300톤으로는 원자로 한번 식히기도 힘들다. 최소 하루 1000톤 이상오염수가 될 것이다.
-사용 후 핵연료가 저장된 수조가 다시 지진이나 쓰나미로 훼손될 경우 걷잡을 수 없는 피해가 날 것이라는 말도 있던데 사실인가?
: 그 걱정을 전 세계가 하고 있다. 4호기의 경우 풀 안에 원자로의 새 배 정도 되는 사용 후 핵연료를 보관하고 있다. 즉 자칫하면 원자로 세 개 터지는 효과다. 5층 높이에 매달려 있는데 그 풀 옆 벽에 물을 곽 채운 수조가 있다. 핵연료 자체도 굉장히 무거운데 건물 사진을 보면 거의 무너질 지경이어서 다들 우려하고 있다.
-태풍도 사태를 악화시킬 수 있나?
;이번에 태풍 때문에 하루 500mm의 비가 와서 오염수가 탱크 주변 방벽을 넘어 방류됐다. 벽이 무너질까봐 오염수를 방류한 것이다. 버리면서 세슘 농도를 측정 하지도 않다.
-후쿠시마 원전 해결 대안은 무엇인가?
;솔직히 방법이 없다는 게 대세다. 이미 나가버린 방사능을 회수할 수도 없고, 나가는 것을 막을 방법도 없다.
-원자력계는 우리나라는 지진이 없어 일본보다 안전하다고 주장하는데?
;미국 스리마일, 러시아 체르노빌, 일본 후쿠시마 사고 원인 모두 달랐다. 스리마일은 노무자 한 명의 실수, 체르노빌은 과학자의 실험 사고가 발단이었다. 원인이 너무 많아 예측 못 한다. 100가지 원인이 있다면 인류는 카드 세 장만 본 것이다. 다음 원전사고는 상상하지 못한 원인으로 일어날 것이다.
-우리나라가 사고 위험이 높다고 하셨던데?
;일본 칸 나오토 총리는 퇴임 후 인터뷰에서 “원전 사고를 100% 예방하는 방법은 없다. 사고를 막는 길은 모두 닫는 것 밖에 없다. 인간은 불안전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간 사고의 공통점은 원전 개수가 많은 1, 2, 3등 국가에서 터졌다는 점이다. 다 기술 좋은 선진국이다. 자동차 많으면 사고확률 높아지는 것과 같다. 나는 한국에서 다음 원전사고 일어난다고 말한다. 우리나라 원전 숫자가 지금 세계 4등인데 10년 후면 러시아를 제치고 3위가 된다.
또 다른 나라에는 없는 불량부품과 조직적인 원전비리가 있다. 한수원 사장과 지경부 장·차관이 돈 먹는다니 말이 되나? 전 세계 원자력계에서 가장 불량한 부품이 들어간다. 그러니 다음 사고는 한국이라고 찍어서 말하는 것이다. 다음 원전사고는 최초로 부정부패 때문에 일어날 것이다.
‘박정희 추모예배’ 주최 교회들 “참여 동의한 적 없어… 황당”10.29 경향
지난 25일 열린 ‘제 1회 박정희 대통령 추모예배’에 ‘주최 교회’로 이름을 올린 대형교회 10곳 중 4곳이 행사 참여에 동의하지 않았던 것으로 29일 확인됐다.
‘박정희 대통령 추모예배’ 주최측으로 보도자료와 행사 현수막에 이름을 올린 인천순복음교회와 구미상모교회, 수지영락교회, 전하리교회는 이날 경향신문에 “추모예배 참석 의사를 밝힌 적이 없으며 우리 교회와 관련없는 행사”라고 밝혔다. 일부 교회는 “동의 없이 명의를 도용했다”며 당황해했다.
구미 상모교회는 홈페이지에 성명을 내고 “우리 교회는 추모예배와 무관하다”고 밝혔다. 이 교회는 성명에서 “본 교회 담임목사님께서는 어떤 정치적인 목적이 있는 자리에도 함께 한 적이 없다”며 “주최측에서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구미 상모교회 주일학교에 출석했었다는 이유만으로 의견을 묻지 않고 현수막에 이름을 기재해 물의가 있었다”고 밝혔다.
인천 순복음교회 관계자는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이름이 도용된 걸로 판단된다”며 “우리가 주최를 했다면 공문을 받았든지 했을 텐데 그런 게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우리 교회 측에서는 당일에 행사 사실을 알았고 스케줄 문제로 목사님이 참석도 하지 않았다”며 “(행사를 주도한) 나들목교회 측과 통화를 해 볼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동탄 전하리교회 관계자는 “담임목사님이 주최측과 친분이 있어 개인적으로 연락을 받았고, 정치적 행사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정중히 거절했는데 이름이 올라가 황당했다”며 “교회 입장에서 강하게 대응할 수도 없어서 (추모예배에) 가지 않았다는 사실만 알리는 선에서 정리하려 한다”고 말했다. 용인 수지 영락교회 관계자도 “(목사님은) 가정추모예배 정도인 줄 아셨다는데 뭐가 잘못됐다”며 “우리랑 상관없는 행사고, 우리도 당황스러운 입장”이이라고 말했다.
구미 상모교회 담임목사인 김승동 목사가 대표로 있는 한국교회언론회는 논평을 내고 “주최 측이 기독교계 유명 인사들로부터 동참을 거부당하자 임의로 명의를 도용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번 일은 몇 명의 치기어린 목사들의 일탈적 행동으로 빚어졌다”고 밝혔다. 한국교회언론회는 또 “현장에서의 일부 발언을 심히 유감으로 생각하며 한국교회의 이름으로 경계한다”고도 밝혔다.
지난 25일 저녁 서울 나들목교회에서 열린 제 1회 박정희 대통령 추모예배에서는 일부 참석자들이 “가끔 가다가 독재니 어쩌니 그런 얘기를 많이 하는데, 한국은 독재를 해야 돼. 하나님이 독재하셨어. 무조건 하나님께 순종하라고 하셨어” 등 부적절한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추모예배 현수막에 이름을 올린 서울 나들목교회, 잠실동교회, 성광침례교회, 인천 만민교회, 광은교회, 신월중앙감리교회 등 나머지 6곳 교회에서는 이날 추모예배에 실제로 참석한 것으로 확인됐다. 행사를 주최한 서울 나들목교회 측은 “박정희 전 대통령 추모예배에 대해 취재 중이다”라는 말을 듣자마자 전화를 끊은 뒤 하루종일 전화를 받지 않았다.
새마을운동은 곰탕? 대를 이어 우려내네 10.29 한겨레21
복지공약 어디 가고 새마을 타령인가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0월20일 전국새마을지도자대회 축사에서 “새마을운동의 내용과 실천 방식을 시대에 맞게 변화시켜서 미래지향적인 시민의식 개혁운동으로 발전시켜나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과거’로부터 끌어낸 ‘미래’에 대한 화두는, 다시 ‘과거’로 돌아가 그 실체를 되짚어볼 필요성을 제기한다. 과거와 미래의 새마을운동에 대한 5가지 질문을 정리해본다.
질문1. 박근혜의 새마을운동은 신선하다?
신선하지도, 갑작스럽지도 않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새마을운동의 ‘부활’을 예고한 바 있다. 지난해 선거 하루 전인 12월18일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의 기자회견문을 보자. “다시 한번 ‘잘 살아보세’의 신화를 이루겠다. 그동안 어렵고 힘든 삶, 이제 저 박근혜가 국민 여러분의 삶과 동행하면서 지켜드리겠다.” 새마을운동을 상징하는 노래이자 핵심 구호로 여겨지는 ‘잘 살아보세’가, 선거전 마지막 투표 호소 메시지로 선택된 셈이다.
그럼 왜 새마을운동일까? 새마을운동 40주년을 맞아 실시된 2010년 4월 <조선일보> 여론조사에선 ‘국가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친 정책’으로 새마을운동이 1위(59.1%)에 꼽혔다. 경제개발5개년계획(46.8%)보다 높았다. 2008년 7월 <서울신문> 여론조사에서 새마을운동은 ‘한국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건’ 3위(14.7%)로 나타나, 한국전쟁(31.7%)과 5·18 민주화운동(31.7%)의 뒤를 이었다. 새마을운동 하면 무엇이 떠오르느냐는 질문엔, 1위가 박정희 전 대통령(37.8%, <조선일보>)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가장 중요한 정치적 자산은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박 대통령이 새마을운동 카드를 꺼내는 것은, 그 시기가 언제가 됐건 갑작스러울 게 없다. 박 대통령의 ‘정치 데뷔전’이었던 1998년 대구 달성군 국회의원 보궐선거 땐 유세장에서 <새마을 노래>가 울려퍼졌다. 그가 이사장이었던 영남대에는 ‘박정희정책새마을대학원’이 있고, 그의 비선 측근으로 꾸준히 거론되는 최외출 영남대 교수는 이곳에서 새마을운동 이론을 가르친다.
재미있는 건 극작가 한운사가 작사하고 김희조 경희대 교수가 곡을 붙인 <잘 살아보세>라는 노래는, 1970년대 새마을운동 때가 아니라 1962년 5·16 1주년을 기념해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탄생 배경만 보면 새마을운동보다는 5·16 군사 쿠데타의 향기가 훨씬 짙지만, “잘 살아보세,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라는 구호는 새마을운동과도 꽤 잘 어울렸다. 결국 이 노래는 5·16부터 10·26까지 박정희 전 대통령 집권 시기 전체를 상징적으로 풍미한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제2의 5·16을 하거나 제2의 유신을 하겠다고 말할 수 없는 박근혜 대통령이 내세울 수 있는 박정희표 정치는 ‘제2의 새마을운동’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질문2. 새마을운동은 성공한 운동이다?
새마을운동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성패에 대한 평가도 달라지겠지만, 기본적으로 새마을운동은 공업화로 소외되고 있던 농촌을 겨냥한 운동이었다. 쿠데타 직후인 1960년대 전반만 해도 농가 소득이 도시근로자 소득보다 높았다. 그러나 1965년을 기점으로 도농 간 소득이 역전됐고, 1970년에 이르러서는 농가 소득이 도시근로자 소득의 70%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촌향도’(농촌을 떠나 도시를 향함) 행렬에 몸을 싣는 농촌 젊은이들은 해마다 늘어났다. 1960년대 전반에 연 19만 명 수준이던 순수 ‘이농’ 인구가, 1960년대 후반엔 연 50만 명 수준으로 늘었다. 박탈감에 서러워하던 농촌 사람들에게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라는 노래가 얼마나 와닿았을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새마을운동의 결과 농민들은 소득이 좀 올랐을까? 실제 농가 소득에 큰 도움을 주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1970~80년에 농가 1가구당 소득은 26만원에서 270만원으로 10.5배 증가했지만, 같은 기간 부채는 1만6천원에서 34만원으로 21배가 됐다. 수치만 따지는 명목소득이 아닌, 물가상승분 등을 감안한 실질소득으로는 나아지긴커녕 더 나빠졌다. 그 배경을 이용기 한국교원대 교수(역사교육)는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새마을운동에서 소득증대사업은 대부분 영농의 집단화를 통해 단위생산성을 높이고자 한 것인데, 이는 소유와 경영이 개별 농가 단위로 분산돼 있는 조건에서 효과를 거두기 힘든 방식이었다. 이 때문에 소득증대사업은 오랜 기간 유지되지 못했고 농민들에게는 대부분 실패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일부에선 당시 생산 증대의 신화였던 ‘통일벼’를 새마을운동의 성과로도 꼽지만, 박정희 정부는 통일벼 개발·보급을 새마을사업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새마을운동이 성공했다면 농촌 인구의 이탈도 어느 정도 막아낼 수 있었겠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1968년 전체 인구의 51.6%로 절반 이상이던 농촌인구 비율은 1979년 31.1%까지 떨어졌다. 새마을운동 직후 여론조사를 봐도, 새마을운동이 실생활에 도움이 됐다는 응답은 전체의 4분의 1에도 못 미친다(표 참조). 도시 지역을 빼고 농촌 지역으로 한정시킨다 해도, 그 비율은 절반을 약간 넘기는 데 그쳤다.
질문3. 새마을운동에 긍정적인 평가가 많은 이유는?
유신 이후 박정희 정부는 도시새마을운동, 공장새마을운동, 학교새마을운동처럼 거의 모든 곳에 ‘새마을’을 붙이며 긍정적 이미지를 꾀했다. 사회적으로는 ‘새마을=좋은 것’이란 여론도 부지불식간에 일정 정도 생겼을 것이다.
당시 새마을운동을 주도하고 참가했던 20~40대 젊은 층이 오늘날 우리 사회의 장·노년층을 이루고 있는 현실도 무관치 않다. 나이로만 따지면야 그들이 돌아가고픈 청춘은 새마을운동 시기다. 아무리 역사적 재평가가 필요한 사건이라 해도, 누군가에겐 함부로 다룰 수 없는 추억일 수 있다. 게다가 해체된 농촌의 폐허 같은 현실을 마주하고 있는 지금의 농민들로선, 그래도 주인공 대접을 받던 그때를 호시절로 기억하는 게 당연하다.
새마을운동에 가시적인 성과가 아주 없었던 것도 아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작사·작곡한 <새마을 노래> 2절은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히고”라고 시작한다. 아주 상징적이다. 초가지붕 교체, 마을안길 확장, 농로 개설, 소교량 가설, 마을회관 건설 등 분야에선 애초 목표를 초과달성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일견 마을이 훨씬 개선된 것처럼 생각하는 게 당연하다. 새마을운동이 철저히 관 주도의 상명하복식 구조를 띠었음에도, 이처럼 이른바 ‘숙원사업’을 추진하면서 농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기 쉬워진 것도 사실이다.
질문4. 도로·교량 등 사회간접자본 확충에 주민들이 동원되는 게 옳은가?
그 부분에 대한 반성은 절실해 보인다. 심지어 정부에서 받아야 할 이익금을 다시 새마을운동에 투입하면서, 마을이 실질적 보상을 거의 받지 못하는 일도 있었다. 1973년 9월 대통령 비서실 문서를 보면, 한국도로공사는 대통령 지시에 따라 ‘고속도로 시설개량 및 조경공사’에 인근 마을들을 참여시켰다. 마을들은 도로공사로부터 받은 이익금을 각 마을에서 진행한 마을회관 건립과 교량 건설 등 ‘새마을공동사업’에 쓰기로 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이 사실을 보고받고 아주 흡족해했다.
마을 단위 새마을운동을 주도한 새마을지도자들조차도 정규 급여를 받지 못했다. 다만 전국새마을지도자대회 같은 곳에는 대통령과 총리 및 장관들이 와서
일일이 악수하며 인사를 나눴다. 농민들로서는 아주 영광스런 자리였을 것이다. 지도자들이 새마을복 차림으로 정부 부처로 가서 “장관을 만나고 싶다”고 해서 만난 경우도 있었다 한다. 우수지도자에겐 훈장과 포상, 특별지원금도 있었다. 하지만 지도자 출신의 한 농민은 “우리나라는 훈장, 상장으로다 새마을(운동) 했어”라고 자조적으로 토로한다.
김보현 성공회대 연구교수의 지적은 이렇다. “근대 국민국가(민족국가)에서라면 관련 국가기구가 조세를 재원으로 수행하리라 기대되는 각종 사업을, 일반 주민들이 거의 무상으로 자신들의 노동력을 제공하고 자금을 염출해 자조적으로 해결해내는 상황을 규범화하고 있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노골적으로 농민들에게 ‘정부에 바라지 말라’고 요구한다. 새마을운동 초기인 1970년 6월10일 ‘권농일 치사’를 보자. “한번 잘 살펴보십시오! 우리 농민들이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써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는가 안 했는가? 자기 스스로가 할 수 있는 일도 하지 않고 모든 것을 정부가 도와달라 하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정부가 농촌에 투자를 적게 한다, 곡가를 더 올려줘야 되겠다 등등 요청이 많지만, 그런 것만 해준다고 농민이 잘사는 건 아닙니다. 보다 더 부지런하게, 보다 더 열심히 우리 스스로의 운명을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써 개척해나가는 강인한 자조정신과 자주·자립의 정신을 가지자….”
사회구조나 국가정책을 신경 쓰지 말고 자기 자신만 개조하면 된다, 곧 ‘하면 된다’는 태도, 이게 바로 새마을정신(근면·자조·협동)의 으뜸 덕목인 ‘자조’(스스로 도움)의 실체라 할 수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장애인 시설을 운영하는 한 목사에게 “노력만 하면 성한 사람보다 더 잘살 수 있을 것입니다”라는 말도 했다고 한다.
질문5. ‘박근혜표 새마을운동’은 구체적으로 뭘까?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0월20일 축사에서 △나눔·배려·봉사를 통해 대한민국 공동체 정신의 복원 △문화적 역량을 키워내는 운동 △지구촌 행복에 기여하는 운동 등의 항목을 언급했다. 내용은 아직 자세히 알려진 바 없다. 오히려 “새마을운동은 우리 현대사를 바꿔놓은 정신혁명이었다. 그 국민운동은 우리 국민의식을 변화시키며 나라를 새롭게 일으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역사적 규정이 눈길을 끈다.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은 “찌그러진 초가집에서 천년의 가난에 찌든” 원인이 “농민들이 자포자기와 체념에 빠져… 스스로 잘살려는 의욕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농민들이 자체적으로 정신 개조를 해야 한다, 하면 된다는 논리가 성립했다. 이는 공적·사회적 노력이 필요한 일에서조차 개인에게 ‘정신머리를 뜯어고치라’고 윽박지를 수 있었던 근거였다. 그러다보니 ‘박근혜표 새마을운동’이 차라리 자세히 알려지지 않는 게 낫겠다는 이들도 있다. 한때 복지와 경제민주화의 목소리를 높이던 박 대통령마저 아버지와 같은 태도를 답습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다.
사설] 지금이 어느 때인데 새마을운동 타령인가 10.21 한겨레
박근혜 대통령이 새마을운동을 본격적인 범국민운동으로 발전시키겠다고 천명했다. 박 대통령은 20일 “제2의 한강의 기적을 위해 새마을운동 정신을 살려 국민의 힘을 하나로 모으는 계기를 마련할 때”라며 “새마을운동을 시대에 맞게 변화시켜 미래지향적인 시민의식 개혁운동으로 발전시켜 나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 시대의 유물인 새마을운동을 들고나오는 것을 보니 착잡하기 짝이 없다. 새마을운동이 농촌 근대화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10월 유신 이후 박정희 독재 체제를 떠받치는 구실을 한 것 역시 분명하다. 유신 시대 서슬 퍼렇던 국가정보원이 다시 활개치는 마당에 새마을운동까지 부활하겠다니 시계를 거꾸로 돌려도 너무 심하게 거꾸로 돌리려 한다.
박 대통령은 새마을운동의 새로운 성격으로 시민의식 개혁운동, 공동체운동, 창조운동, 문화운동, 글로벌운동 등을 제시했다. 시대 변화에 맞춘다고는 했지만 21세기에 관 주도 시민운동이라는 발상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다. 시민의식 개혁운동만 해도 그렇다. 새마을운동을 통해 현장 중심의 창조경제를 구현한다는 것인데, 차라리 말이라도 갖다 붙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박 대통령 발언을 20일 밤 지상파 방송 3사가 일제히 머리기사로 보도한 것도 걱정스럽다. 방송 3사는 국가정보원의 트위터 여론조작 실상 등 국기를 흔드는 문제는 뒤로 제쳐놓은 채 앞다퉈 이른바 ‘땡박 뉴스’를 전했다. 안전행정부가 박 대통령 발언을 계기로 새마을운동중앙회 등의 주도로 각종 운동을 벌이겠다고 나선 것도 불필요한 호들갑이다. 무슨 사회운동이건 관이 나서면 권력을 이용해 이권을 챙기려는 부나비들이 꼬이고 잡음이 생기기 마련이다.
박 대통령이 새마을운동까지 들고나오는 걸 보면서 우리 사회를 유신 시절로 되돌리려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박 대통령이 아버지 시대에 갇혀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듯해 답답할 뿐이다. 박 대통령이 새마을운동을 높이 평가한다면 과거의 일로 잘 간직해 두는 편이 낫다. 새마을운동은 그 시대의 소명을 다했고, 지금은 21세기다. 흘러간 물로 물레방아를 돌릴 수는 없다.
한겨레 정훈이 만화 1972 응답하라
내일경제시평] 적자라면서 증축하는 대형병원의 비밀 김기호 성신여대 강의교수 10-29
요즘 대형병원이 병원진료로는 적자인데 장례식장과 주차장으로 수익을 낼 정도로 어렵다는 말이 시민들 사이에 많이 퍼져있다. 의료계의 경영상황에 대한 사회의 만연된 상식(?)도 자세히 살펴보면 잘못된 경우가 많다.
우리사회에 의료인이 소득 상위 직군이라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형병원들이 경영이 어려워 빚을 내서 의사들에게 연봉을 주고 있는 것일까? 더 이상한 것은 매년 적자라 법인세도 내지 않는 세브란스병원이나 성모병원 같은 대형병원들이 어디서 돈이 나서 엄청나게 큰 병원 건물을 신축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진짜 빚내서 병원을 운영했다면 이미 병원이 망했거나, 최소한 병원의 규모를 줄여야 한다.
이런 착시가 일어나는 원인은 법인병원들에게 부여된 '고유목적사업준비금'이라는 아주 특수한 회계항목 때문이다. 이 항목은 병원이 돈을 벌어 고유한 목적(병원증축이나 의료장비 구입 등)에 쓰기위해 적립해둔 준비금을 말한다. 그런데 이 준비금은 신기하게도 현금이 '비용'으로 처리되어 대형병원의 순이익이 줄어드는 효과를 만든다. 일반적인 경우는 회사가 돈을 벌어서 통장에 예금하면 현금이 되는데, 병원이 벌어 적립한 현금은 부채로 처리되어 부채가 늘어나는 황당한 결과가 된다.
대형병원 순이익 줄이는 편법
실제로 감사원이 지난 2010년 감사에서 295개 종합병원들의 2006년부터 2008년까지 재무제표를 분석한 결과 연평균 5494억원의 '고유목적사업준비금'을 적립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러한 사실이 감사원에 의해 구체적으로 밝혀짐에 따라 그해 연말에 건강보험이 도입된 이후 최초로 의료수가를 줄이기 위한 재협상이 이루어져 연간 1000억원 가량의 건보재정을 절감하기도 했다. 이처럼 법인병원에서 재무제표 작성에 사용하는 '고유목적사업준비금' 항목에 의해 비용은 늘리고, 수익은 줄여주는 효과 때문에 국민들은 대형병원들이 적자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이 마술같은 회계항목이 생명을 다하게 되었다. 보건복지부가 법인병원들이 이 항목을 사용할 수 없게 할 것이라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이 항목으로 인해 대형병원의 수익이 왜곡됨으로써 이들과 관련한 정부의 정책결정은 물론 의료체계와 관련한 정책수립에도 혼란을 초래할 수 있어서다. 또한 건강보험의 의료수가 조정에도 영향을 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2009년에 병원협회는 적자를 이유로 11%의 수가인상을 요구했다. 당시 대형병원의 경영상황을 알지 못하던 건강보험공단은 수가인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왜곡된 대형병원의 재무정보는 국가재정에도 많은 문제를 파생시킬 수 있다.
건강보험 재정 건전화에도 도움
보건복지부는 지난 9월 17일 의료기관의'재무제표 세부작성 방법'고시 개정안을 행정 예고했다. 따라서 조만간 시행될 새로운 '의료기관 회계기준 규칙'이 왜곡된 대형 법인병원의 재무상황을 바로잡아 정부와 국민들이 대형 의료법인의 경영상황을 올바로 이해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여기에 더해 2010년 감사원의 감사보고서 조치사항에도 있듯이 건강보험수가 협상에 대형병원의 경영현황이 반드시 활용될 수 있도록 법인병원들의 재무정보가 건강보험공단에 공유되어 건강보험재정의 건전화에도 기여하길 바란다.
동아시아 세 섬 /한겨레 10.26
류큐의 바다는 열아홉이다. 물결도, 사탕수수밭도, 하물며 포구가 열아홉인 채로 섬은 죽고, 섬은 산다. 열아홉은 열여덟이 아니다. 스물은 더 아니다. 그저 미숙한 것도, 뼈가 다 굵은 것도 아닌 채 류큐 사람들은 자신들의 노래 ‘19살’처럼 고향 바다를 떠나 일본으로, 만주, 말레이반도로, 무엇보다 제 섬 안에서 죽어서 떠돌고 있다. 1945년 류큐 사람들은 오키나와 사람으로 20만명 가까이 죽어야 했다. 하늘에서는 쇠비(미군 폭격)가 퍼부었고 땅에서는 인류사에 없던 일제군인들의 집단자살 강요가 그들의 목숨을 사냥해 갔다.
타이완(대만)은 28일을 살아왔다. 여적지 날마다 28일인 섬이 타이완이다. 28일은 한 해 중 가장 짧은 달 2월 끝 날이다. 그들은 그날 일어섰다. 아시아에서 가장 긴 식민지(1895)에서 해방되었지만 해방이 된 건 아니었다. 외성인이라 부르는 장개석(장제스)을 따라온 군인, 관료, 장사치들은 타이완 본성인들이 일제강점기 동안 그나마 가까스로 유지하고 있던 일터마저 앗아갔다. ‘개가 나가더니 돼지가 들어왔다.’ 일제는 개처럼 시끄럽게 짖기는 했지만 집은 지켰는데 외성인들은 돼지처럼 나머지마저 닥치는 대로 다 먹어치웠다는 뜻이다. 47년 2월 마지막 날이었고, 적어도 3만에서 10만여에 이르는 사람들이 죽거나 사라져 갔다.
제주는, 제주는 그냥 강정이다. 그리하여 강정으로서 제주는 나머지 두 섬과 더불어 미 해군의 태평양 기동선상에서 가라앉지 않는 동아시아의 항공모함이 되어가고 있다.
류큐, 타이완, 제주에는 45년, 47년, 48년(4.3) 순차적으로 거대한 죽음이 몰아쳤다. 한·중·일 동아시아 삼국에서 세 섬은 내부 식민지적 운명을 지닌 채 유사한 궤적을 그려왔다. 약속이나 한 듯 세 섬 사람들 사이에 공통으로 형성된 ‘외지사람, 본토사람, 대륙사람은 믿을 수 없다’는 말은 이들의 팔자를 비극적으로 압축한다.
동아시아 근대의 원초적 비극은 그 출발이 유신이라는 데 있다. 메이지유신은 전제왕조도 공화정도 못 된 기형의 정치체였다. 이들은 맨 막차로 서구 제국주의 흉내를 내면서 동아시아의 검은 태양으로 떠올랐다, 그들이 국경 밖에서 맨 먼저 한 일은 류큐처분(1872)이라는 표현으로 기만해온 강제합병이었다. 한 해 앞서 타이완 남부에 표착했던 류큐 어부 57명이 살해되거나 익사했다. 이를 청나라 정부에 항의하기 위해서는 우선 류큐가 일본 영토여야 했다. 이를 근거로 메이지 정부는 마침내 대만출병(1874)을 단행했고 청을 무릎 꿇렸다. ‘출병’ 군함 중 하나인 운요호는 이듬해 한반도로 향했다. 정박지는 강화도였다.
류큐, 타이완, 제주로 응축할 수 있는 동아시아 운명이 결정적으로 격랑에 휩쓸리기 시작한 건 갑오년이었다. 그해 가을 비안개 자욱한 공주 우금티 능선에서 일본군 회전포(기관총)에 농민군은 패퇴했다. 동학군은 단지 서울로 향하던 진격을 멈춘 것만은 아니었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전개된 청일전쟁과 그 결과 체결된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타이완은 일제 식민지로 전락했다. 아직 온전히 오키나와가 된 것은 아니었던 류큐 또한 독립 의지를 접어 들여야 했다. 류큐, 타이완, 제주 세 섬 사이를 죽은 동학군들이 아직 떠다니고 있는 셈이다.
일본 헌법 제9조는 일본만이 아니라 동아시아 평화의 안전핀과도 같다. 제9조가 뒤틀리거나 관습적으로 왜곡될 때 동아시아 바다는 격동할 것이고 세 섬은 격류에 쓸려 떠돌게 될 것이다. 일본 극우세력은 미국을 등에 업고 저 군국주의의 그림자를 잇고자 기도하고 있다. 그 뿌리인 유신을 한국 땅에 끌어들인 사람은 서른네 해 전 오늘 세상을 떠났다. 장기유신은 6월항쟁으로 끝났지만 그 세력이 다시 권력을 쥐었듯 검은 태양은 동아시아 세 섬 사이로 떠오르려 하고 있는 참이다.
-남중국해를 지나고 있는 피스앤그린보트 선상에서 -서해성 소설가
한국 기자의 눈] 김무성 "불법·부정 없었다" 귀가 간지러운 성명서10.26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 캠프는 어떠한 불법선거도, 특히 국가조직을 이용한 선거운동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고 실제로도 그랬습니다."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문재인 의원의 "대선 불공정" 성명서 발표 다음날인 24일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이 발표한 성명서 내용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박근혜 후보 캠프 총괄 선대본부장을 맡았던 그가 결백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어서 가볍게 넘기기 어렵다. 김 의원은 국정원과 군 사이버사령부의 댓글, 트위터 대선 개입 의혹을 모두 개인이나 개별 기관의 문제라고 주장하고 싶은 모양이다. 과연 그렇게 장담할 수 있는 것인가.
대선 당시 캠프의 SNS 미디어본부장을 맡았던 윤정훈 목사의 트위터 계정과 국정원 직원 계정 10개가 서로 대선 관련 내용을 전송, 재전송한 사실이 검찰수사에서 드러났고, 군 사이버사령부 530단 요원도 윤 목사 글을 리트윗한 사실도 확인됐다. 3자의 공조 의혹이 언론에 보도되는 동안 선대위 본부장인 김 의원의 책임 있는 해명은 어디서도 들을 수 없었다.
더욱이 김 의원은 대선 당시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국정원으로부터 빼내 부산 유세에서 활용한 당사자로 지목 받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새누리당이 기밀 문서로 분류된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열람을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요청했지만 거부당하자 고발까지 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새누리당이 대화록 확보에 얼마나 열을 올렸는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김 의원이 합법적으로 얻은 정보라면 민주당의 국정조사 증인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드러난 사실만 보더라도 대선 개입 의혹을 받고 있는 국가기관과 새누리당 대선 캠프의 연계 여부는 검찰이나 군 검찰의 수사 중에 있거나 수사가 예정돼 있다고 봐야 한다. 집권당의 차기 당권주자이자 친박계 핵심인 김 의원이 "그런 일은 없다"고 선을 긋고 나서면 수사기관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고 보지 않겠는가. "국민들의 의혹이 불식될 수 있도록 철저한 조사"를 촉구했지만 솔직히 사족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김 의원은 성명서에서 "당시 박근혜 후보는 불법이나 부정에 의해 선거를 치르려는 생각은 목숨을 내놓더라도 안 하는 후보였다"고 했다. '대통령의 호위무사'를 자처하는 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선거 책임자로서 숱한 의혹에 대해 제대로 된 답을 내놓든지 아니면 수사결과가 나올 때까지 조용히 지켜봐야 하는 것 아닌가.
2004년 원내진입 10인 어디서 무슨 생각을 할까] 눈길 끌다 눈총받는 진보의 활로 찾기 10.26 한국
2004년 5월 31일은 한국 진보정치 역사에서 가장 화창한 날이었다. 한 달여 전 치러진 17대 총선에서 당선한 민주노동당 소속 의원 10명은 이날 국회에 첫 출근을 했다. 평생을 노동운동 현장에서 활동하며 다섯 차례 구속되기도 했던 단병호 전의원은 국회 계단 앞에서 "고통 받던 현장의 노동자들이 그 동안 우리를 대변할 의원이 한두 명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고 말하다 목이 메었다. 지역구 2명, 비례대표 8명. 이들 10명의 이력만으로도 한국 진보운동사를 쓸 수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진보정당의 밝은 날은 계속되지 않았다. 지난 10년간 잇단 분당과 합당 속에서 진보정당은 조금씩 가라앉아 왔다. 지난해 통합진보당 경선부정 논란과 폭력사태는 많은 이들을 등 돌리게 했고, 지난달 내란음모 혐의로 기소된 이석기 의원 사태는 진보진영에 '종북'낙인을 찍었다. 진보정당 스스로 간판에서 '진보'를 지워 진보정의당은 정의당, 진보신당은 노동당이 됐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의 지난주 정당지지율 조사에서 통진당은 2.2%, 정의당은 1.5%를 기록했다. 2004년 한때 민노당의 지지율은 20%가 넘었다.
어느 때보다 진보정당의 앞날이 캄캄한 요즘, 2004년의 저 10명은 어디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10명 중 절반은 당적이 없었다. 정당정치를 떠난 이들은 현장으로 돌아가 있었다. 권영길 전 의원은 보편적 복지를 외치며 다시 길 위에 섰고, 단병호 전 의원은 노조 활동가를 기르고 있고, 강기갑 전 의원은 고향에서 밭을 일구고 있다. 유일한 현역 국회의원인 심상정 의원 등은 새 정당에서 진보정당의 활로를 찾고 있다. 이들은 진보정치의 위기에 반성과 비판이 뒤섞인 분석을 내놓았다. "낡은 이념 갈등을 넘어서지 못하고 결국 분당의 길로 갔다" "내부의 이견을 조율할 수 있는 정치력과 리더십이 부족했다" "북한에 대해 국민이 납득할 수 없는 주장을 반복했다" 하지만 아무도 이제 무엇을 해야 한다고 명확하게 말하지는 못했다. 이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그 답을 찾기 위해 암중모색 중인 듯 보였다.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그 말이 딱 들어맞았다"
■ 9월 정계 은퇴 선언한, 진보정치의 얼굴 권영길
지지율 20% 넘던 민노당 NL-PD 정파 패권주의에 갇혀 2008년 분당되며 국민 마음 떠나
통진당의 절대 다수는 평등·자주국가 위해 함께했던 동지
지금도 손잡고 가야 할 사람들
박근혜정부서 복지의 틀 갖추면 진보정권에서보다 반대 강도 약해
지금이라도 공약 실천 하기를…
권영길(72) 전 의원은 한국 진보정치의 얼굴이다. 그는 1995년 민주노총 초대 위원장을 지냈고 2000년 민주노동당 첫 대표가 됐다. 1997년부터 세 차례 연속 진보진영 대선후보로 나섰고, 민노당 최초로 지역구 국회의원 재선 기록을 세웠다. 지난달 그는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사단법인 '권영길과 나아지는 살림살이(나살림)' 창립식에서 그는 "나는 정당 정치를 마감했다. 이제는 그 길에 들어서지 않겠다"고 말했다. 또 "지금 진보정당은 사실상 사망선고를 받은 것과 다름없다"고도 했다. 지난주 서울 종로구에 있는 '나살림'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정계 은퇴를 선언했는데.
"지금 내 입장에서 정계은퇴다 뭐다 얘기하는 것 자체가 주제 넘고 외람된 얘기다. 이미 2011년 6월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사실상 정계를 떠났다. 그때 '진보 대통합을 이루고 단일 진보정당을 건설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어떤 공직이나 당직도 맡지 않고 평당원으로 활동하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당적도 정리했다"(그는 선진보통합 후야권연대를 주장하며 국민참여당이 포함된 통합진보당 창당에 반대했다.)
-지난해 경남도지사 보궐선거에 나왔는데.
"경남도지사 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가 아니면 당선되기 어려운 구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정권교체를 위해 출마했다. 정권교체 승부처가 경남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도지사를 찍으러 와서 대통령을 찍을 수도 있기 때문에 내가 출마하면 정권교체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봤다. 나는 정치활동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지난해 12월 대선과 함께 치러진 경남도지사 보궐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37.08% 득표, 62.91%을 얻은 새누리당 홍준표 후보에게 패했다.)
-나살림은 어떤 단체인가.
"나살림은 정치 단체가 아니고 보편적 복지를 위한 사회운동체 성격의 단체다. 이름처럼 교육비 병원비 걱정 없는 나라를 만들기 위한 운동체다. 전문가들이 하는 심포지엄이 아니고 거리 캠페인 위주다. 10일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서 첫 발을 뗐다. 내가 마이크를 잡고 얘기를 하면 '요즘 잘 안 보이던데 뭐하시냐'고 와서 묻는 사람들도 있고 반응이 아주 좋다. 아파트에서 주부들이랑 대화도 하고 공장 들판 재래시장도 찾아 다니며 전국을 돌 생각이다. 10년을 목표로 잡고 있다."
-10년이면 길지 않나
"따지고 보면 길지 않다. 1997년 대선에서 보편적 복지를 얘기하고 무상교육 무상의료를 주장했다. 그때는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2002년 대선 TV토론에서는 '국민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살림살이 나아지셨습니까' 물어봤다. 그 말이 국민 마음 속에 파고 들어 복지 의제가 설정됐다. 10년이 지나 2012년 대선 때는 모든 정당이 복지를 내걸었다. 하지만 다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살림살이가 나아진 게 아니라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대로 가면 10년, 20년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는다. 국회의원 8년 하고 정당정치를 하면서 느낀 게 있다. 정당 활동으로는 국민을 설득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복지의 우선 대상이 돼야 할 사람들이 재원은 어디서 마련하냐고 걱정한다. 이런 말을 계속 들으면서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국민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10년을 잡은 것은 정말 끊임없고 광범위한 캠페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라도, 한 시간을 들여서라도 설득을 하면 국민 인식이 변하고 복지 붐이 일어나지 않겠나."
-박근혜정부도 복지를 내세우고 있는데.
"실제로는 복지 공약을 파기하고 있다. 무상보육 기초노령연금 등 약속을 안 지키고 있다. 지금이라도 공약을 실천하기를 바란다. 나는 박근혜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를 바란다. 복지 문제는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닌데 국민은 진보의 목소리로 인식하고 있다. 박근혜정부가 복지의 틀을 갖추면 반대의 강도가 훨씬 약해지고 반발도 줄일 수 있다. 실제로 김대중 노무현 정권 때는 제대로 복지를 하지도 못했는데 비판을 많이 받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복지를 공약에 끌어안음으로써 비판이 많이 완화됐다."
-진보정당은 사망선고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는데.
"노동 중심의 진보정당을 새롭게 건설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반어적 표현이었다. 현재 통합진보당 정의당 노동당 등 진보정당이 여러 개 있지만 어느 정당도 국민의 사랑을 받는 정당이 아니다. 물고기는 물이 없으면 죽는다. 모든 정당이 그렇지만 특히 진보정당은 국민의 사랑이 물이다. 지난해 총선에서 통진당 의석 수가 13석이 됐을 때 진보의 성과라거나 야권연대의 성과라고 얘기를 했는데 나는 의미를 두지 않는다. 국민들이 흔쾌히 진보정당을 희망의 정당이라고 보고 만들어진 의석 수가 아니다."
-왜 진보정당이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고 생각하나.
"안타깝게도,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이 딱 들어맞았다. 2008년 민노당이 분당됐을 때부터다. 한때 민노당 지지율이 20%를 넘었다. 신생 진보정당이 이 정도 지지를 받는 것은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국민들이 희망이라고 본 것이다. 그런데 분당이 되니까 국민들의 반응은 '콩알이 하나밖에 없는데 심어서 수확할 생각은 안하고 서로 먹겠다고 하면 싹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우리 국민들은 진보정당에 대해서는 엄격하다. 왜냐, 진보정당은 대안이고 희망이기 때문이다. 분당 후에도 민생정당의 모습을 보여줬다면 상황이 달라졌겠지만 정파 패권주의로 흘러갔다."
-NL(민족해방계열)과 PD(민중민주계열)의 정파 문제 때문이라는 말인가.
"정파가 나쁜 것은 아니다. NL이 갖고 있는 가치, 즉 통일을 위해 평생을 바쳤다면 자랑스러운 것이다. 또 노동계급을 위해 평생을 바쳤다면 그것도 자랑스러운 것이다. 2000년 민노당 창당할 때도 NL과 PD는 물과 기름이다, 함께하지 못한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창당이 됐지 않나. 민노당의 큰 공로는 도저히 화합이 불가능하다고 여긴 이 두 노선을 하나로 결합한 것이다. 문제가 생기면 때로는 얼굴 붉히고 때로는 삿대질 하고 욕설에 가까운 말을 하고 때로는 열 몇 시간씩 토론을 해서 끝내는 합의점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화학적 결합을 이루기 위해 부단한 노력과 뼈아픈 성찰이 있었고 결합이 눈 앞에 있었다. 그런데 정파 패권주의에 갇혀 마지막 단계에서 넘어서지를 못하고 다시 쪼개진 것이다. 이것이 가장 가슴 아프다. 진보 정치의 손실일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치의 엄청난 손실이었다."
-스스로는 NL도 PD도 아니라고 했는데.
"권영길은 때로는 자주파(NL)로, 때로는 평등파(PD)로 분류된다. 민노당 대표를 맡으면서 외톨이가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쪽에 몸을 담으면 중재자가 아니니까."
-중재를 해보니 뭐가 문제였나.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잘 됐으면 분당이 안 됐지."
정파갈등에 대한 질문이 계속되자 권영길 전 의원은 "정치 얘기는 안 하겠다고 미리 말하지 않았냐"며 언성을 높였다. "할 얘기는 다 했다"고 말한 그는 이석기 사태로 이어진 질문에 대답하고 싶지 않은 이유를 말했다.
"다른 사람도 그렇지만 나는 통진당뿐만 아니라 진보정당의 분열이나 위기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다. 민노당 창당 주역인 내게 진보정당은 생명 같은 것이고 지금도 애정이 있다. 내게 이석기 사태를 물어보는 이유는 뻔하다. 나도 기자를 해서 잘 안다. 이석기를 비판하고 통진당을 비판해야 기사거리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진보정당을 그렇게 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그럼 당신은 뭐냐고 하겠지만,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그런 얘기를 안 하겠다는 것이다. 일부 문제점은 잘 알고 있지만, 내가 통진당 창당을 반대한 사람이지만, 거기 있는 절대 다수는 이 땅에 평등과 자주의 나라를 만들자고 나와 함께 손잡고 눈물 흘린 사람들이다. 지금도 손 잡고 가야 할 사람들이다."
-진보정당 위기 해결을 위해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새로운 진보정당의 구성과 경로는 정치를 떠난 내가 할 몫이 아니다. 하지만 조언을 하거나 조그만 보탬이 될 수 있다면 돕고 싶다."
-조언을 한다면.
"정말 자기의 모든 것을 버리고 마음을 비워야 한다. 처음으로 돌아가자는 말을 많이 하는데 말로만 할 게 아니라 정말 그렇게 해야 한다. 그렇게 안 되는 데는 여전히 패권적 생각이 자리를 잡고 있는 것 아닌가. 그래서 패권주의 청산이 중요하다고 거듭거듭 얘기하는 것이다."
올해 3월부터 창원대 사회학과 초빙교수로 강의를 하고 있는 권영길 전 의원은 "학생들을 만나보면 너무 가슴이 아프다. 그야말로 자나깨나 취업 생각뿐이고 주눅이 들어 가슴을 제대로 펴지도 못한다. 이것은 사회구조적 문제다. 이런 문제를 파헤치는 것이 진보정당이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그때 그 민노당의원들
농촌에서… 협동조합에서… 새 정당에서… '진보 재건' 모색
강기갑, 매실농사 지으며 은거… 단병호는 노조활동가 양성 매진
통진당에 남은 이는 이영순뿐
정의당 노회찬·조승수·심상정 "이석기사태, 부정적 영향 불구
진보정치의 범위를 분명히 정리 국민 속에서 가치 실현 고민해야"
2004년 민주노동당 소속으로 진보정당 최초의 원내진출을 이룩했던 국회의원 10명은 지금은 한 둥지에 있지 않다. 두 차례 분당(分黨) 사태를 겪으며 흩어졌다. 대선 참패에 이은 당내 '종북(從北)주의' 청산 논란 끝에 2008년 노회찬 단병호 조승수 전 의원과 심상정 의원은 당을 떠났다. 이 중 단병호 전 의원을 제외한 3명은 2011년 12월 민노당과 함께 통합진보당을 창당해 9명이 다시 한 울타리에 모였다. 하지만 지난해 통진당 비례대표 부정경선 논란과 당 중앙위원회 폭력사태 후 차례로 당적을 정리했다. 2004년 그 10명 중 현재 통진당에 남아 있는 사람은 이영순 전 의원 한 명뿐이다. 하지만 당적이 있든 없든 이들은 모두 자신의 자리에서 진보의 재건을 모색하고 있었다.
현장에서 "초심으로 진보 토대 구축"
탈당과 함께 일선 정치를 떠난 이들은 자신이 진보활동을 시작한 뿌리로 돌아가 있었다. "초심으로 돌아가 힘을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들은 분당과 정파논란 등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농민운동가 출신인 강기갑 전 의원과 현애자 전 의원은 다시 흙을 만지며 살고 있다. 지난주 전화에서 강기갑 전 의원은 "지금은 밭에서 일하고 있어서 통화가 어렵다"고 말했다. 이튿날 다시 연락을 하자 그는 농사 얘기에 열을 올렸다. "다양한 매실 가공식품을 생산한다. 매실잼 매실고추장 매실청…. 매실이 소화에도 좋고 건강에 좋다. 제초제나 농약을 일절 하지 않고 유기농으로 농사를 짓고 있다."지난해 9월 통진당 분당 등에 책임을 지고 당대표에서 물러나면서 탈당한 그는 고향인 경남 사천으로 돌아가 매실농장을 일구고 있다. 대외활동을 자제하고 있지만 7월 충북 음성에서 열린 한우인총궐기대회에는 '정치인이 아닌 농사꾼 자격으로'참석하기도 했다. 그는 이석기 의원 사태와 진보의 위기에 대해 "원대 복귀 해서 농사짓고 있는 입장에서 정치에 대해 왈가왈부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지역에서 활동하는 통진당 당원들을 보면 정말 훌륭하고 헌신적인 사람이 많은데 이런 당원들까지 싸잡아 비난을 당하는 것은 안타깝다"고 말했다.
현애자 전 의원도 "지난해 5월 통진당 중앙위 폭력사태가 나던 날 탈당 입장을 정했다. 도민들 볼 면목이 없어 1년 가까이 활동을 중단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3월 고향 제주에서 '언니네텃밭'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협동조합을 설립하면서 길게 내다봐야겠다고 나름 반성을 했다. 대형유통 시스템에서 벗어나 소비자에게 직접 제철채소를 공급하는 대안농업이 풀뿌리 진보정치의 토대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앞으로 진보정당은 이런 활동을 많이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동안 당적 없이 지내다 8월 정의당에 가입한 그는 "아직 제주도당도 없고 정치활동은 안 한다. 진보정당에 실망한 사람들에게 다시 다가가려면 삼고초려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단병호 전 의원은 10명 중 가장 먼저 정당 정치를 떠났다. 2008년 2월 민노당 분당 사태 때 탈당한 그는 진보신당에 합류할 것이라는 예측을 깨고 정당에 가입하지 않았다.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과 민주노총 위원장을 지내며 '노동운동의 대부'로 불렸던 그는 노동운동으로 돌아갔다. "탈당 후 각 지역을 돌며 동지들과 의견을 나눴다. 노동 쪽이 튼튼했으면 분열도 안 됐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적은 정리했고 민주노총에서 일하는 시기도 지난 것 같고…. 내 역할은 아래로부터 노동운동의 역량을 재구축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2011년 평등사회노동교육원을 창립해 노동조합 활동가 양성에 매진하고 있다. 3, 6개월 과정으로 나뉜 교육프로그램은'저비용 고효율'을 위해 토론식으로 운영되는데, 지금까지 500여명의 수료생을 배출했다. 지난해 9월 권영길 전 의원과 통진당을 떠난 천영세 전 의원이 현재 갖고 있는 유일한 직함은 민주노총 지도위원이다. 1990년 전노협 출범 때부터 민주노총까지 줄곧 지도위원을 맡아온 그의 별칭은 '천지도'다. 그는 "지방에서 요양 중이다. TV도 없고 신문도 없다. 살면서 이렇게 쉴 계제가 없었다. 지도위원은 상근도 아니고 계속 해오던 거라 내놓기도 그렇고…. 민주노총도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서울에 갈 때 회의에 참석하고 의견을 나누는 기회를 더러 갖는다"고 말했다.
최순영 전 의원도 지역기반인 부천에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지금은 부천시친환경무상급식센터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고 대안에너지 운동인 부천햇빛발전소 협동조합에 동참하고 있다. 진보정당 내 정파를 거론할 때 권영길 전 의원과 함께 중도파로 분류되는 그?008년 분당 때도 비상대책위 집행위원장을 했고 중간 조정이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계속 남아 있었지만 결국 역부족이었다. 지난해 경선부정 사태 때는 너무 화가 났고 이런저런 일을 겪으면서 더 이상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통진당을 떠난 그는 "다 내 탓이오라는 생각도 들고 점점 지역에서 힘을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진보가 노동자 농민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더 다양한 곳에서 함께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새 정당에서 "진보 정체성 재구성"
새 정당을 만들어 현실 정치에서 진보의 재구성을 도모하는 이들은 초심의 열정만큼이나 정치적 능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또 친북정파와 이석기 사태에 대해서도 또렷한 비판 입장을 보이며 진보정치를 재정의해야 한다고 했다.
심상정 의원과 노회찬 조승수 전 의원은 줄곧 정치행보를 함께했다. 이들은 2008년 민노당 분당사태 때 진보신당을 건설했고, 지난해에도 통진당을 떠나 진보정의당(현 정의당)을 주도적으로 창당했다. 2004년 민노당 국회의원 10명 중 유일한 현역 의원인 심상정 의원은 분당을 반복한 것에 대해 "결국은 판단착오로 끝났다. 노선에 대한 철저한 성찰이 없었다는 점에서 실패에 대한 지적은 달게 받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진보의 이합집산에 대한 지적을 많이 하는데 분열이 진보의 운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부의 문제를 다룰 수 있는 정치적 능력과 리더십이 대단히 미숙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흔히 PD(민중민주계열)로 평가되는 이들은 이제 진보세력이 시대착오적인 이념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해 총선에서 서울 노원병에서 당선됐지만 '삼성 떡값 검사' 명단 공개에 대한 대법원의 유죄 판결로 의원직을 상실한 노회찬 전 의원은 "운동권이 군사독재 시절 민주화에 역할을 했지만 변화한 상황에 맞게 새롭게 거듭나야 했는데 아직도 1980년대 식으로 NL(민족해방계열)이니 PD니 하며 낡은 이념 틀에 갇혀 분열적인 정파투쟁에 매몰돼 있는 것이 문제다. 일부 정파는 대중의 요구보다 자신들의 이념을 우선시하며 북한에 대해 국민들이 납득할 수 없는 편향된 태도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은 진보가 친북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몸집불리기 식으로 더 많은 세력이 함께하면 더 힘이 생긴다는 방식의 접근은 경계해야 한다. 그보다 어떤 진보냐는 정체성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의당 울산시당 창당을 준비하고 있는 조승수 전 의원은 이석기 사태에 대해 "낡은 운동권이 보여줄 수 있는 최악의 모습을 보여줬다.
단기적으로는 진보 세력 모두에게 부정적 영향을 끼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진보의 정체성을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심상정 의원도 "이석기 사태는 진보정치가 수용할 수 있는 범위를 분명하게 정리했다는 면에서 중요한 전기가 될 수 있다. 이제 진보는 민주주의의 틀 안에서 국민과 더불어 진보적 가치를 어떻게 실현할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아서 "마녀사냥식 비판 안돼"
2008년 민노당 분당 사태 때도 지난해 통진당 탈당 사태 때도 이영순 전 의원은 당적을 유지했다. 정파적으로는 NL 계열인 울산연합으로 분류되는 그는 지난해 5월 통진당의 비례대표 부정경선 논란 때 당권파인 경기동부연합 소속 이석기 의원 등의 사퇴에 동의했지만 당을 떠나지는 않았다. 몇 차례 거부 끝에 말문을 연 그는 "힘들게 만든 당이기 때문에 나가는 게 쉽지 않고 남은 사람이라도 더 좋은 진보정당을 만들 수 있는 길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 남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석기 의원 사태에 대해 "대중의 요구가 무엇인지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점에서 부족한 면이 있었다. 하지만 진보를 비난하려고 침소봉대하고 마녀사냥 식으로 달려드는 것도 사실이다. 어떻게 당을 없애야 한다는 말까지 할 수 있나"라고 말했다. 그는 당을 떠난 동료들에 대해 "남든 나가든 진보에 대한 희망을 갖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고 말했다.
사람 잡은 다이어트 잔혹사 11.1서울신문
[세계는 지금, 살과의 전쟁중] 체중 줄여준다고 비소 먹고 양파 700번 씹다가 뱉기도 최근엔 인육 든 약까지 유통
날씬해지고 싶은 인간의 욕망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기록에 따르면 2000년 전 고대 로마·그리스인들도 건강을 위해 다이어트를 했다고 한다. ‘다이어트’(Diet)의 어원이 그리스어 ‘디아이타’(Diaita)에서 유래한 것도 이런 이유다.
물론 지금처럼 날씬해지기 위한 다이어트가 시작된 것은 19세기부터다. 산업혁명이 만든 풍요는 인간의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를 자극했고, 다이어트를 하나의 ‘산업’으로 탈바꿈시키는 계기가 됐다. 당시에도 속성 다이어트나 체중감량 비법(秘法), 연예인 다이어트 같은 ‘독특한 살빼기 방법’들이 유행했다.
영국 BBC에 따르면 1930년대 미국에서는 일명 ‘기생충 다이어트’가 유행했다. 소고기에 기생하는 ‘촌충’(인체의 장내에 기생하는 곤충)을 먹어 살을 빼는 방법이다. 원리는 알약에 담겨 장까지 도달한 기생충이 소화가 덜 된 음식물을 흡수하는 것으로 실제 체중 감소 효과도 있었다고 한다. 일단 원하는 체중에 도달하면 기생충 약을 복용해 촌충을 몸 밖으로 배설하면 된다. 문제는 촌충이 장기 속에서 최대 9m까지 자라는 탓에 두통이나 시력 감퇴 같은 부작용부터 척수염, 간질, 치매 같은 심각한 질병을 유발한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기생충 다이어트 붐이 일면서 연예인을 등장시킨 광고(그림1)까지 신문에 나올 정도로 기생충 약은 불티나게 팔렸다.
약물 다이어트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독성물질까지 ‘신비의 묘약’으로 둔갑해 팔리는 일도 벌어졌다. 사약(死藥) 재료로 주로 쓰이는 비소가 대표적이다. 비소는 중추신경계를 흥분시켜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하는 암페타민의 효과를 가져 몸무게를 줄여 준다. 물론 다이어트 약에는 소량의 비소 성분만 들어 있지만 때때로 살을 많이 빼려고 약을 과다 복용해 비소 중독으로 목숨을 잃는 일도 흔했다.
역사상 최초로 유명인의 이름을 타고 대중적인 인기를 끈 다이어트 약물은 식초다. 영국의 낭만파 시인 바이런(1788~18242)은 지금의 가수나 배우처럼 꽃미남 외모로 유명했다. 바이런은 평소에도 날씬한 외모를 유지하려고 식초를 통째로 마시거나 식초에 절인 감자를 먹었다. 구토 증세와 설사 탓에 웬만큼 먹어도 살이 찌지 않았다. 바이런을 너무나 사모했던 영국의 젊은이들은 창백하고 마른 그의 외모를 따라 하기 위해 앞다퉈 식초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심지어 빅토리아 여왕도 따라 했다고 하니 식초 열풍이 얼마나 컸는지 짐작해 볼 수 있다.
단순히 음식을 오랫동안 씹어서 살을 빼는 다이어트도 있었다. 미국의 운동선수 호레이스 플래처(1849~1919)는 영양분을 모두 흡수할 만큼 충분히 음식을 씹고 나서 남은 찌꺼기를 뱉어 내면 살이 찌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자신의 이름을 따라 ‘플래처리즘’이라는 단어도 만들어 냈다. 음식에 따라 씹는 횟수는 다르지만 양파(샬럿)의 경우 최소 700번은 씹어야 효과를 볼 수 있다. 단순하면서도 살 빼기에도 유리한 이 다이어트법은 당시에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 체코의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 등 유명인들도 따라 했다고 전한다. 남은 섬유질을 모두 뱉어 내기 때문에 화장실은 2주일에 한 번만 가도 된다. 심지어 변은 냄새도 거의 나지 않았다. 플래처는 이 방법을 알리기 위해 직접 변을 들고 다니며 주위에 홍보하기도 했다.
산업혁명에 따른 대량생산 체제로 새롭게 주목받은 다이어트법 중에는 고무 속옷(사진3)을 입는 것도 있었다. 미국 남북전쟁(1861~1865)을 배경으로 한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스칼렛 오하라 역을 맡은 비비언 리가 잘록한 허리를 만들기 위해 착용하는 코르셋도 이 고무 속옷의 일종이다. 탄력이 있으면서도 단단한 고무 속옷을 착용함으로써 지방을 줄이는 효과가 있었다. 육중한 무게 탓에 가만히 있어도 땀을 쉽게 흘려 살을 뺄 수 있었다. 이 때문에 남녀를 가리지 않고 골고루 유행했지만, 과하게 몸을 조이다 뼈가 으스러지거나 장시간 착용해 피부가 괴사하는 경우도 있었다.
한편 지난달 27일 허핑턴포스트 등 외신들은 한국에서 일어난 사건을 사회면 주요 기사로 실었다. 약물 다이어트 유행을 틈타 중국에서 인육(人肉)이 든 약을 운반해 온 중국 유학생 2명이 한국 경찰에 적발됐다는 보도였다. 엽기적이기로는 이전의 사례에 뒤지지 않는다. 효과만 있다면 물불 가리지 않고 약이 팔리는 탓에 이 촌극은 세계의 웃음거리가 됐다.
美, 사회 문제 인식…국민 전체 계도
오래전부터 비만이 사회문제화한 미국은 국민 개개인이 각자 알아서 자신의 다이어트를 하는 단계를 넘어 유력 인사들이 공권력을 활용해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다이어트를 계도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 시장은 지난 3월 대용량(473㎖ 이상) 탄산음료의 판매를 금지하는 정책을 시행하겠다고 밝혀 논란을 일으켰다. 음료협회가 “뉴욕시의 정책은 법의 권한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반발하며 소송을 제기해 시행은 보류되고 있다. 하지만 블룸버그 시장은 “비만의 원인인 설탕이 들어가는 탄산음료의 소비를 줄여 의료비를 억제해야 한다”는 소신을 굽히지 않고 있다. 앞서 그는 뉴욕 식당들이 트랜스 지방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고 칼로리 함량 표기를 의무화한 바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2월 어린이 비만 문제 연구를 위한 관계부처 합동 테스크포스를 만들도록 지시했다. 이 테스크포스는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담뱃세 인상으로 담배 소비가 줄어든 사례처럼 단 음식과 음료수에도 높은 세금을 부과하면 판매량이 대폭 감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의 부인 미셸은 아동 비만 퇴치 캠페인인 ‘레츠 무브’ 운동을 시작하는 등 어린이 건강에 각별한 관심을 쏟고 있다. 미셸의 노력으로 학교 급식에서 패스트푸드가 추방되는 추세가 확대되자 일부 학생들이 “급식이 맛없어 못먹겠다”는 불만을 학교 당국에 단체로 제기하기도 했다. 미셸은 또 백악관 텃밭에 직접 유기농 채소를 재배함으로써 미국 내 도심 텃밭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미셸은 아동 비만 퇴치 캠페인 홍보를 위해 지난 2월 TV 토크쇼에 출연해 막춤을 추기도 했다.
하버드대 등 미국 유명 대학들은 최근 인근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구내식당 재료로 사용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농장에서 대학으로’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이 운동에 동참한 대학만 400여개에 이른다. 이 프로그램으로 학교당 평균 16만 달러어치의 지역 먹거리를 구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캠페인이 성과를 거두자 ‘농장에서 학교로’라는 운동도 시작됐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인근 지역에서 생산되는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공급하는 한편 건강한 먹거리에 대한 올바른 소비태도를 아이들에게 교육하는 것이다. 미국의 다이어트 시장 규모는 600억 달러가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TV 홈쇼핑 등에서 살빼기 운동기구나 식·약품 판매 광고를 흔히 볼 수 있다
日, 몸매보다 건강…즐기면서 살 빼
1970년대 붐이 시작된 이후 일본에서 다이어트는 확실한 사회 현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닛케이소비인사이트가 지난 5월 전국의 20~60대 남녀 1030명에게 인터넷으로 여론조사를 한 결과 남성의 54.4%, 여성의 64.5%가 다이어트를 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남녀 모두 절반 이상이 다이어트를 하고 있는 셈이다. 다이어트를 가장 많이 하는 계층은 20대 여성으로, 응답자의 75.8%가 체중 관리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눈에 띄는 것은 40대 남성의 다이어트 비율이 63.1%라는 점과 50대 여성 응답자의 66%가 다이어트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단순히 몸매 관리 때문이 아니라 건강을 위해 다이어트를 하는 일본 사회의 특성을 보여 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일본인들은 어떤 방식으로 다이어트하는 것을 선호할까. 시술, 운동 등 돈이나 시간을 많이 들여 하는 방법보다는 일상생활 속에서 간단히 실천할 수 있는 ‘내추럴 다이어트’가 일반적인 트렌드다. 여론조사를 봐도 이런 추세를 확인할 수 있다. 다이어트를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에 대해 묻자 전체 응답자의 39.2%가 ‘무리하지 않고 지속해서 할 수 있는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답했다. 다음으로 ‘건강에 좋은지’, ‘간단히 할 수 있는지’, ‘재미있는지’를 따져 다이어트 방법을 고른다는 응답자들이 뒤를 이었다.
이런 경향 때문에 일본에서는 간편하면서도 기발한 운동 기구들이 유행을 타고 있다. 전자제품 판매업체 빅카메라 관계자는 닛케이소비인사이트에 “근육에 미세하게 전기로 자극을 줌으로써 몸에 감고 있는 것만으로도 복부지방을 태우는 EMS(Electrical Muscle Stimulus)라는 기구의 매출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피트니스 기기 판매기업인 알인코(Alinco) 관계자는 “무리하지 않고 즐길 수 있는 기구가 최근의 트렌드”라면서 “좁은 장소에도 설치가 가능하고 TV를 보면서 사용할 수 있는 피트니스 자전거 판매가 탄력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식음료 시장에서도 이런 분위기가 반영돼 ‘먹으면서 살을 뺄 수 있는’ 제품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본에서는 과학적 근거를 표기해 정부의 허가를 받은 건강기능식품을 ‘토크호’라고 부르며 따로 분류한다. 최근에는 폴리페놀이 다량 함유돼 지방을 태워 준다는 ‘헬시아(Healthier) 커피’를 마시는 것이 유행이다. 일본의 대형 음료업체 기린은 난소화성 말토덱스트린을 함유해 식사할 때 함께 먹으면 지방 흡수를 억제해 준다는 ‘메츠 콜라’를 지난해 4월 출시해 대히트를 치기도 했다.
中, 부작용 걱정에 한방 다이어트
몸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 살을 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지난여름 마흔을 훌쩍 넘긴 중화권의 유명 여가수 장후이메이(張惠美)가 한방 다이어트로 10㎏을 넘게 감량하고 복귀했다는 소식이 중국 여성들 사이에 크게 화제가 됐다. 중년 여성의 경우 자칫 다이어트로 탈모, 피부탄력 저하 등의 부작용을 겪을 수 있다. 하지만 장후이메이는 건강하게 체중 감량에 성공한 경우로 회자되면서 한방 다이어트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중국에서는 지방흡입술도 보편화되어 있지만 한방 다이어트가 각광받는 분위기다. 웬만한 대형 병원의 ‘중의(한의)과’나 ‘침구(針灸, 침과 뜸)과’는 다이어트 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다. 비만 환자들뿐만 아니라 날씬한 각선미를 원하는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다. 중국의 다이어트 시장은 2006년 110억 위안에서 2012년 700억 위안(약 1조 2000억원) 규모로 커진 것으로 추산된다.
한방 다이어트를 선호하는 것은 양생(養生·보양 혹은 건강 유지)을 중시하는 중국인들의 사고방식과 관련이 있다. 침, 뜸, 경락, 한약, 차 등이 결합된 한방 다이어트는 특정 혈 부위를 자극해 식욕을 억제하고 내분비 계통의 순환을 개선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침이나 뜸을 이용한 식욕억제는 부작용이 없고 잉여 수분을 배출하고 신진대사 속도를 증가시키기 때문에 시간이 비교적 오래 걸리지만 건강한 살 빼기가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이처럼 중국에서는 다이어트의 초점을 일상적인 건강관리에 두는 경우가 많다. 젊은 여성들은 구기자차, 메밀차 등 각종 한방차를 달고 다닌다. 중년 여성들이 아침과 저녁마다 아파트 및 동네 공원에서 떼로 모여 일명 ‘광장춤’을 추는 풍경도 중국의 건강 다이어트 법으로 꼽힌다. TV는 물론 인터넷 포털사이트들은 빠짐없이 양생 다이어트 소개 코너를 운영한다.
경제력 향상으로 중국 다이어트 시장의 성장 잠재력이 주목을 받고 있는 만큼 불량 감량제나 다이어트 업체의 허위 광고 등으로 인한 소비자 피해 문제도 적지 않다. 심장질환 등을 유발하거나 극단적 설사약을 대거 혼합한 감량제와 관련된 피해 사례가 가끔 언론에 보도된다. 베이징 충원먼(崇文門) 인근 퉁런(同仁)의원 침구과 왕훙(王虹) 부주임은 서울신문에 “비만이나 갱년기 등으로 신체에 이상이 생겨 몸무게가 증가한 게 아니라면 음주와 과식을 삼가고 푸얼 등 발효차를 매일 진하게 우려 마시기만 해도 건강하게 살을 뺄 수 있다”고 소개했다.
노래출처: 다음블로그 아름다운 음악여행
Blowin' In The Wind / Janie Frick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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