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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칼럼 기고

천혜절경 다대포를 메워야 하나

by 이성근 2013. 6. 17.

 

월간 함께사는 길  [2001/12]

천혜절경 다대포를 메워야 하나 

 

 

살을 에는 추위의 한겨울이면 핏빛보다 진하고 농염한 빛깔의 동백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이곳 다대포. 발에 밟힐 정도로 동백이 많았다던 이곳은 참으로 수려한 자연경관을 간직한 부산의 몇 안 되게 남은 절경이자 생태자원의 보고다.

 

 

한반도 육상생태계의 시작이자 끝인 다대포

그러나 예로부터 다대팔경으로 널리 칭송되던 다대포도 옛날 같지는 않다. 애석하게도 무분별한 연안개발로 인하여 팔경의 대부분이 흔적 없이 사라졌다. 다대포는 그나마 간신히 근간은유지하고 있어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을 머물게 하고 있다. 다대포의 생태지리적 특성을 살펴 보자.

 

우선 다대포는 백두산에서 시작된 백두대간의 산맥이 낙동정맥을 따라 신불, 영취 천성산 등의 가지산도립공원을 타고 내리다 금정산맥을 통해 몰운대를 끝으로 한반도 육상생태계의 시작과 끝이 되는 지점이다. 다시 말해 해양의 시작이자 끝이다. 둘째, 다대포는 남녘 최대의 장강인 낙동강이 1천3백리(524킬로미터)를 흘러 비로소 바다와 해후하는 공간이자 짠물과 민물이 만나 기수해역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공간이다. 셋째, 남해와 동해의 서로 다른 성질이 교차하는 공간이다. 넷째, 이 일대는 하루 두 번의 조수간만에 의해 광할한 갯벌이 생성되고 있는 공간이다.

 

이러한 공간적 특성과 배경으로 낙동강 하구와 연결된 이 일대는 생산성이 높아 동양 최대의 철새도래지로 유명하고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공간이 되었다. 실제 다대포 아미산에서 바라보는 낙동강 하구 갯벌 전경과 다대포 해수욕장 그리고 몰운대의 뛰어난 풍광은 방문자들로 하여금 절로 감탄사를 발하게 만든다. 특히 겨울철 아침저녁으로 수천마리의 민물가마우지떼가 몰운대를 지나 낙동강 하구 일원으로 이동하는 모습은 국내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장관이다. 여기에 가덕도 방향으로 지는 해가 곁들여 질 때는 황홀경에 빠질 수밖에 없다.

 

계절을 바꾸어 봄이 무르익는 오월이 오면 다대포는 또 한번 변신을 한다. 낙동강 하구 둑의 영향으로 수질과 모래사장이 갯벌로 바뀌는 다대포해수욕장이 그것이다. 수심이 얕아 간조가 되면 몰운대 쪽 갯벌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염낭게가 부지런히 모래를 주워 먹고 있다. 일반적으로 마른 모래 쪽에는 집게발의 크기가 다르면서 매우 민첩하게 움직이는 달랑게가 있고 물가 쪽 젖은 모래에는 염낭게와 넓적콩게가 살고 있다. 그리고 발목에 찰랑거릴 정도의 수심이 되는 벌에서는 길게와 칠게가 떼지어 일제히 집게발을 들었다 내려다 하는 집단 군무를 볼 수 있다. 이밖에도 흔치는 않지만 밤처럼 생긴 밤게와 그물무늬금게, 쏙 등이 가끔씩 모습을 보인다. 이렇게 다대포의 갯벌에 서식하는 갑각류나 패류들로 인해 다대포는 살아있음의 극치를 이룬다. 지금도 다대포해수욕장 갯벌에는 유치원생들이 한나절 갯벌에서 게들을 채취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다대포는 살아있는 자연학습장으로 널리 이용되고 있다.

 

 

무분별한 도시계획과 일관성 없는 항만정책

이러한 내력을 지닌 다대포도 근년의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날로 훼손지경에 이르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제2의 수서사건이라 불린 다대6지구(아미산 자락)의 택지개발특혜의혹사건과 작금의 다대포항 개발이 그것이다. 다대택지개발특혜의혹사건<본지 65호 및 67호 보도>은 대통령선거와 총선, 지방선거, 두 번의 국정감사를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명확한 책임규명 없이 유야무야되고 있다.

 

올해 초만 하더라도 전 노무현 해양수산부 장관은 “다대포항 개발은 부산항 장기개발 계획을 위해 꼭 필요하지만 지역 주민들의 반대를 무릅쓰면서까지 강행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후 공동대책위가 이 문제를 부산지역 전체의 문제로 부각시키면서 54개 시민사회단체가 동참하여 매립을 반대하는 입장을 밝히자 해양수산부는 7월14일 기존의 부산시가 주장했던 9선석 38만평에서 5선석 10만평으로 축소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더하여 9월26일에는 다대포항 개발 자체를 유보하고 대체항을 찾는 동시에 2002년 예산까지 반영시키지 않겠다고 발표함으로써 주민들은 매립반대운동이 큰 성과를 거두었다고 낙관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지난 10월 19일 해수부는 돌연 입장을 바꾸어 ‘전국 무역항 항만기본계획 보고회’를 통해 다대포항 기본계획을 원안대로 한다는 발표를 해 공대위의 심경은 참담하기 이를 데 없다. 그리고 그 최종 결정은 오는 12월에 한다고 밝히고 있다.

 

사실 해수부는 이번 계획만 반영시킨다면 개발의 시기는 구태여 내년일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어차피 주민들이 극도로 반대하는 상황이니 개발기간인 2011년 안에만 하면 된다고 보고 내년 양대 선거를 앞두고 주민을 자극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민감히 시기를 앞두고 정치적 부담을 지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뜻대로 되지 않을 경우 유치를 절대적으로 희망하는 광양항으로 결정하면 된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다대포항이 아니면 부산시는 망하나

다대포가 개발되지 않으면 넘쳐나는 물동량을 처리하지 못해 결국에는 망한다는 것이 부산시의 논리다. 부산항과 경쟁항인 일본의 고베나 오사까, 중국의 상하이항으로 컨테이너 물량을 빼앗긴다는 것이다. 부산신항 자체가 경남과 같이 얽혀 있어 2006년 개장이 되더라도 이익의 절반은 경남으로 가는 상황이므로 이에 대처하기 위해서도 다대포항이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설령 환경단체와 공대위의 반대를 극복하고 다대포항을 개발했다고 하더라도 부산시의 예측대로 이후 넘쳐나는 물동량은 또 어쩔 것인가. 이제는 개발할 곳이 없다고 순순히 광양이나 외국의 항만으로 물류를 양보할 것인가. 세계 해도를 보면 부산과 광양의 거리는 그야말로 지척이다. 더 이상 부수지 않고 개발의 부하가 적은 공간을 택해 국가적 이익을 모색할 방법이 있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한국의 경제가 어떻게 되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고 다만 들어오는 물동량만을 말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들어오고 나가는 것이 있어야 항만은 발전한다. 부산시가 항만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점은 여기에서 비롯되지만 항만은 서비스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생태의 보고를 파괴하면서 부두를 개발하는 원시적인 방법보다는 고도화, 자동화의 방식을 추구해 항만의 효율을 극대화시키기에 노력해야 한다. 오로지 시의 모든 재원이 신항만건설에만 있는 양 목을 매고 있다. 무엇보다 문제가 되는 것은 다대포가 가진 다양한 기회요인을 무시하고 항만개발이라는 단일한 기능에만 초점을 맞춤으로써 다대포가 지닌 총체적 가치의 상실을 간과하고 있다는 데 있다.

 

 

다대포는 다대포다와야 한다

향후 다대포의 바람직한 미래를 전망하자면 첫째, 다대포가 가진 다른 지역과의 차별성, 예컨대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낙동강 하구 생태계와의 연관성, 둘째, 낙동강 하구와 이어진 몰운대와 화손대 그리고 다대포해수욕장의 뛰어난 자연경관, 셋째, 다대포가 가진 각종 유무형 유산의 역사문화, 넷째, 이 일대 해역이 가진 자연의 생산성, 다섯째, 이미 주거단지로서 전환된 이 일대 주민에 대한 거주성을 고려해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이럼에도 일방적으로 단순히 21세기 해양도시로서 부두가 부족하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개발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논리는 후진적이고 천박한 개발만능주의의 전형일 따름이다.

 

부산은 바다의 도시이자 항구도시다. 부산이 대외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선택할 수밖에 없는 항만의 개발과 확충은 부산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러한 개발이 당대의 피해와 고통을 강요하면서 또 미래세대가 누려야 할 최소한의 환경적 권리마저 박탈하면서까지 이루어진다는 것은 장기적 안목 없이 자기 발등에 도끼를 찍는 일이다. 매립의 시대는 지나갔다. 다대포는 다대포다워야 한다. 다대포가 가진 가치는 그 가치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접근하고 현명하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명암이 달라진다. 그러한 전제는 다대포가 가진 자연적·사회적 체계가 온전히 유지됨으로써만 가능한 일이다. 다대포의 매립계획은 백지화되어야 한다. 시민의 반대는 추상적 반대가 아니며 구체적이며 사실적이라는 데 관계당국은 주목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다대포가 원형을 상실하지 않으면서 시민의 휴식공간으로서 보호받아야 할 생태계의 일부로서 지켜져야 한다는 시민적 합의다.

 

Peace Afterwards - Shannon Janss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