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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칼럼 기고

낙동강하구 명지대교, 우회화를 말한다

by 이성근 2013. 6. 17.

 

월간 함께 사는 길 [2001/04]

낙동강하구 명지대교, 우회화를 말한다

 

 

최근 낙동강하구 명지대교와 관련하여 인터넷을 통해 부산환경운동연합을 악의적으로 매도하고 음해하는 문건이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글을 올린 사람은 우회화에 대한 결정이 도출된 회의 자체를 밀실로 단정했을 뿐 아니라 회의 참여 관계자를 원칙도 철학도 없는 불순한 패거리로 몰아 부침으로써 개인과 단체의 명예를 훼손시키고 있다. 더하여 『시민의 신문』이 인터넷에 오른 글을 사실 여부의 확인도 없이 게재함으로써 회원의 분노를 야기시켰다. 물론 내부적으로 폭넓은 논의가 부족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하구보전의 차원이 우회화보다 지하터널화 하고 ‘ㄷ자형’ 교량을 주장함이 더 옳다고 인식하게 만드는 오류는 없어야 한다. 다리가 안 놓이면 그보다 좋을 순 없다. 그렇지만 ‘주변의 조건을 다 충족시켜 놓은 상태에서 원칙만을 고집한다는 것은 바람직한 것인가’ 라는 물음 앞에 우리는 어떤 답을 선택해야 하는가. 부산환경연합의 고민은 여기에 있었다.

 

 

명지대교는 을숙도를 관통하는 다리로서 지난 93년 부산시에서 계획했다. 그리고 1995년 문정수 전 부산시장 당시 처음으로 공론화되었다. 부산환경연합은 당시 시장이 참석한 시민단체간담회를 통해 직선건설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천명한 바 있고, 이후로도 이러한 입장을 계속 견지해왔다. 이러한 명지대교 건설이 본격적으로 여론의 도마에 오른 것은 지난해 가을께부터였다. 물론 그전에도 지상을 통해 언급되기도 했고, 그때마다 반대의견이 꼬리표처럼 붙기는 했지만 노선의 문제를 두고 시와 환경단체, 주민간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구조로 진입하기 시작한 것은 가을을 넘기면서부터였다. 여기에 불을 지른 것이 1차 민관 하구관리협의회(11월24일) 내용을 토대로 부산일보가 명지대교 우회화 기사를 시와 환경단체가 합의한 사실처럼 보도함으로써 촉발됐다.

 

일부단체가 이에 대해 부산일보와 시에 대해 항의하고 대책을 논의하는 가운데 <녹색도시부산21>이 시 관계자와 전문가 및 환경단체 간의 간담회를 제안했다. 회의에서는 낙동강 하구의 개발과 보전에 대한 원칙이 제시됐고 이에 대한 합의가 도출됐으며 다리건설에 대한 방법론이 토의됐다. 총 3회의 간담회를 통해 결론에 도달한 것이 우회화였다. 현재 돌출된 입장의 차이는 다리 자체를 반대하기보다는 어떤 식으로 건설되는가에 있다. 이와 관련해 올해 2월21일 부산시청에서 공청회가 열렸다. 한 번이라도 입장을 표명했거나 이해를 가진 집단은 다 모인 자리였다. 일부 반대단체는 찬성론자 위주로 편성된 일방적 공청회라고 주장했지만 그것은 또 다른 문제의식의 결여라고 본다. 그것은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적인 문제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태도에 다름 아니다.

 

시민의 신문에 의하면 이들은 시의 급조된 공청회에 불참하는 대신 따로 서울에서 ‘하구보전 토론회’를 개최하기로 했다고 한다. 이들은 부산시가 주최한 공청회가 일방적이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다른 입장을 가진 환경단체에 대해서는 자신들의 토론회에서 배제시킨 채 그들만의 토론회로 국한시켜버렸다. 앞서 부산환경연합은 습지의 날을 기념하여 명지대교에 대한 입장이 다르다고 하더라도 하구문제를 같이 풀어나가는 차원에서 공동토론회를 개최하자고 제안했지만 일정상 어렵다는 답을 듣고 포기해야 했다.

 

주지하다시피 명지대교는 부산시가 오래 전부터 도시계획의 한 부분으로 배치한 것이다. 가덕도를 포함한 강서구의 편입이나, 환경단체나 학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행했던 가덕신항만 국책사업이라든지 신호·녹산국가공단 건설, 심지어 삼성자동차 유치는 명지대교를 기정사실화하고 진행했던 사업이다. 부산환경연합은 이들 사업에 대해 분명한 반대운동을 펼쳐왔다. 그동안 부산환경연합은 낙동강하구의 중요성과 문제점을 사회화시키고 국제적으로 알려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이를 위해 6∼7차 람사회의 참가와 국제 세미나의 개최와 연대, 각종의 개발에 대한 직접적인 반대운동 등의 이력을 가진 환경단체는 지역 내에서는 부산환경연합만이 유일하다. 이점 분명히 밝히고 싶다. 실제 그러한 활동에 의해 하구의 많은 부분이 복원과 보전의 대상(2000년 발표 부산시 하구관리 기본계획)으로 반영되었고, 추가적 매립은 취소(녹산, 가덕도, 다대포 등)됐다.

 

그런데 명지대교에 대한 노선의 선택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반환경적인 단체로 매도된다는 일은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더욱이 인터넷에 오른 일방적 주장을 시민단체의 이해를 대변하는 신문이 대서특필했다는 것은 문제라 아니 할 수 없다(이점에 대해서는 해당 신문사에서도 인정하고 사과문을 실었다. 시민의 신문 2001년 3월5일-11일 381호 참조).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명지대교에 대한 부산환경연합의 선택과 이유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명지대교에 대한 입장은 크게 세 부류로 나누어진다. 부산환경연합은 반원형(우회화)을 선택하였다. 이같은 결정이 내려지기까지 부산환경연합은 동원할 수 있는 최대한의 조직역량을 투입해 판단의 근거를 확보했다. 해외의 사례를 수집하는 한편 국내의 유사사례를 통해 다리가 놓임으로 인해 야기되는 문제를 명지대교와 비교분석했다. 지난 2월 낙동강하구를 방문한 영국습지전문가와의 현장답사 및 간담회는 그 계기가 되었다. 당시 동참했던 WWT(야생동물 및 습지연대)의 폴 호세느 박사(39)는 명지대교 건설이 습지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부산지역 환경단체 회원들의 질문에 “명지대교 건설예정지는 철새들에게 매우 민감한 지역인데 개발계획이 너무 많이 진행된 것 같다”며 “좀더 일찍 부산을 보았으면 좋았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한편 국내의 사례로서 서울 밤섬을 관통하는 서강대교 건설 전후 생태변화에 주목했다. 그러나 자문을 의뢰했던 한국조류보호협회(회장 김성만)측이나 서울시, 환경부 등에서도 기대할 수 있는 답은 얻어내지 못했다. 이같은 작업은 11월 말까지 계속됐지만 그 어디서도 다리 건설 자체를 반대할 수 있는 답을 찾지 못했다.

 

한편 2000년 8월27일 부산시는 환경단체의 반대에 대한 대안으로 세 가지 안을 제시했고, 부산환경연합은 하구둑에 근접한 안과 반원형안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언론을 통해 밝힌 바 있었지만 확정안은 아니었다. 대신 각종의 하구 관련 토론회를 통해 원칙적인 입장을 되풀이하는 수준의 대응이 연속됐다. 더욱 거시적인 접근과 구체적인 내용의 부재는 명지대교 건설에 대한 현실적인 요구와 교통·물류수송에 대한 수요에 답할 대안의 부재로 연결됐다. 당시 주1회에서 격주로 모임을 가지던 <하구연대> 내에서도 이 부분에 대한 논의는 겉돌 수밖에 없었다.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언덕은 문화재청이 시의 직선화에 대해 반대를 분명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부산환경연합으로서는 처음부터 직선화를 반대했지만 우회안에 대해서는 일정 정도 하구연대 내에서 개진하고 공유하고 있었다. 때문에 엄밀히 말한다면 <녹색도시 부산21>이 주관하여 논의했던 간담회의 결과가 아니더라도 이미 하구연대 내 실무단위에서는 부산환경연합의 입장에 대해 이해가 있었다는 셈이다. 다만 그것을 공식적으로 채택하게 되는 과정이나 결과가 비공식적인 자리로 매도되어 비춰지게 되는 일이 발생함에 따라 어느 날 돌연히 우회화로 결정한 것처럼 오도되게 됐던 것이다.

 

<녹색도시 부산21>의 주관에 의해 진행된 간담회에서 동의하고 합의한 사실은 현재의 상황으로서는 다리 건설이 기정사실이란 점이었다. 그런 전제를 놓고 어떤 방식이 가장 환경적이면서도 합리적인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각자의 입장을 밝히면서 진행되었는데 논의의 결과가 대다수 성원들이 ‘반원형’으로 의견을 모으고 이를 결정하려는 시기에 <습지와 새>나 <부산녹색연합>(마지막 회의는 불참)이 합의 및 동의·결정사항을 수용할 수 없다고 밝히고 회의구조에서 빠진 것이다.

 

을숙도에 다리는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이 백번 옳다. 그러나 상황은 그렇지 못했다. 어차피 다리가 놓이게 될 국면이라면 그 피해를 최소화하고, 이를 계기로 하구보전의 새로운 축으로 삼는다는 것이 부산환경연합의 정책적 판단이었다. 그것은 부산녹색연합이 명지대교를 해저터널화하고 습지와 새가 하구둑 가까이 우회하거나 확장하는 안을 주장함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다만 부산환경연합으로서는 다른 단체의 주장이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다고 보고 우회안을 선택한 것이다. 대신 하구보전의 원칙과 보전 조례제정을 조건으로 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여기에는 환경보전을 위해 직선화 노선의 다리가 우회로를 택하게 됐다는 사실을 향후 다리를 이용하게 될 시민이 직접 경험하면서 인식하게 하는 효과도 생각되었다. 또한 우회화는 을숙도 하단부가 가지는 생태적 가치의 훼손을 최소화시킨다는 측면도 강조되었다. 실제 이곳은 겨울에 고니와 오리류의 휴식공간으로 이용되는 매우 민감한 지역일 뿐 아니라 부산시가 하구의 복원을 도모한다는 이유로 인공생태계를 조성한 곳이다.

 

달리 보면 부산시가 기존의 직선화에서 내부 또는 지역민이나 주변공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우회화로 선회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곧 부산시 스스로가 을숙도의 생태복원을 위해 조성한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다리의 효율성만을 고집하여 직선으로 건설한다면 자기모순에 빠져 비난을 면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부산환경연합은 부산시의 이 같은 방침이 시가 선택할 수밖에 없는 카드였다고 하더라도 우회화는 환경운동진영의 성과라고 보았다. 실제 개발 드라이브가 가장 강하게 적용되는 하구에서 명지대교 우회화는 그것이 가지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시하는 바가 적지 않은 것이다.

 

물론 이 자체를 형식적이라고 주장하는 단체도 없지 않다. 그러나 항상적 대립구조가 늘 옳을 수만은 없다. 잘못된 정책이 있다면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를 유도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협의를 통해 최선에 가까운 답을 구하는 일도 운동의 한 방법이다. 중요한 것은 하구보전의 원칙(하구 통합관리의 원칙, 미래세대를 고려한 현명한 이용의 원칙, 시민참여의 원칙)이 선언적 의미에서 머무는 수준이 아니라, 이를 토대로 보전의 내용을 구체화시키고 적용시키는 일이다. 더하여 「하구보전조례」의 제정은 민관이 협의선택한 2000년의 결정을 부산지역 시민사회를 통해 시험받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제정될 하구보전조례는 기존의 중앙정부가 하구를 보존하기 위해 천연기념물의 이름으로 혹은 생태보호의 이름으로 취한 각종의 보호장치가 가지는 문제점을 해소하고 극복하는 대안으로서 자리매김돼야 한다. 그것은 부산시와 환경단체, 관련 전문가들에게 던져진 숙제이자 책임이다. 덧붙여 명지대교 건설이 민자유치방식으로 재원을 조달해 시민부담을 강제하기보다 낙동강하구는 국가가 지정한 중요보호지역인 만큼 이곳을 보호하기 위해 행하는 우회화인 만큼 이에 소요되는 비용을 마땅히 국비로서 조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부산환경연합의 입장이다. 그것은 (부산환경연합으로서는 원치 않았지만) 이미 조성중에 있는 가덕신항만이며 녹산공단이 정부의 개입으로 시작된 국책사업인 만큼 이들의 수요수급을 연결하는 명지대교 역시 마땅히 국가적 사업으로 책정되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서 지방도로를 타고 1시간 30분쯤 달리면 ‘부코’라는 마을이 나온다.

 

1991년 유럽연맹에 의해 ‘주요조류지역’으로 선포된 곳이 있다. 이곳에는 1백30여 마리의 ‘능애’-Grosstrappe(獨), Great Bustard(英)-라는 새가 살고 있다. 몸길이가 70cm쯤 되는 이 새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이 희귀종이 사는 곳에 지난 92년 베를린-하노버(280km) 구간 ICE용 신설공사를 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노선이 능애가 사는 지역의 옆을 통과해야만 했다. 당연히 환경단체들이 일어났다. 일반 시민들도 가세했다. 그리고 독일 전역이 들끓기 시작했다. 총공사비 53억 마르크(한화 3조5천억원)의 대사업이 난관에 부딪힌 것이다. 웬만한 나라 같았으면 공사를 강행했을 것이다.

 

그러나 독일 국철(DB)은 노선계획을 전면수정했다. 뿐만 아니라 번식과 산란철에 접어들면 이 구간에서 만큼은 고속철의 속도를 떨어뜨려 소음발생을 최소화했다. 낙동강하구 명지대교의 건설도 이러한 사례를 충분히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시 한 번 지혜를 모을 필요가 있다. 이제 낙동강하구는 변화되어야 한다. 그 변화는 결코 일방적이어서도 안될 것이며, 또 급하게 되어서도 안 된다. 지난 1월 환경단체와 부산시장, 어민대표가 합의발표한 「하구보전시민선언」과 「어업인 선언」은 하구보전을 위한 각 주체의 각오나 의지를 반영한 노력의 시작으로 평가된다. 명지대교의 우회화는 낙동강하구를 살리고 현명한 이용을 도모하기 위한 선택이다.

 


North Country Blues - Joan Bae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