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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사는 이야기

천성산 얼레지가 보고 싶어서

by 이성근 2013. 6. 8.

 


사실 이런 글은 예전에는 일기에 남겨질 내용인데,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가끔  그 느낌이나 넋두리를 깔기도 합니다.  덕분에  수십년간 써 왔던 일기는  휴면상태가 계속중입니다.  어쨌든   19일 밤늦도록 밤안개처럼 시야를 가리던 황사로  주말 일정을 포기하다 시피 했는데 아침에 본 하늘이  예상외로 맑았습니다.  그리고 어떤 블로거가 전한 천성산 얼레지 소식을 접하고  나도 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그 생각 끝에 점심 이후 천성산으로 향했습니다.  두시 무렵이었는데 두 아들이 따라 붙었습니다.  애들 나름대로 꿍꿍이가 있었지만 그런 바램들을 수용하고 즐거이 집을 나섰습니다.  내원사까지 두시간이 소요되는 거리입니다.  지하철( 도시철도) 2호선 종점인  양산까지 가서 버스로 갈아탈 예정이었습니다.  무엇보다 햇살이 얼마나 버터 줄 것인가가 관건이었는데,  조바심이나서 버스를 포기하고 택시를 이용했습니다.  안그래도 지겨워할 아이들을 위한 배려이기도 했습니다. 내원사 입구까지 16,000원이 나왔더군요. 그때가 오후 4시 무렵이었습니다 .  

 내원사 입구 가계에서 주전부리를 사고 입장권(?)을 구매한 다음 성불암 방면으로 이동했습니다.  눈에 익은 길이었습니다.

 성불암과 노전암  갈림길에서 산하동 계곡으로 이동하다  그루터기만 남은 굴참나무를 보고 아이들과 나이 맞추기를 했습니다.  저 보다는 작은 나이였습니다.  그렇지만 한참 멋부릴(나무로서는) 때인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베어졌습니다.  심재와 변재의 상태를 봐선 병이 든 흔적은 보이지 않았는데, 코르크(껍질)도 건강한 상태인데, 왜 라는 물음이 생겼습니다.     

 양산천의 지류인 용연천의 또 다른 지류인  산하동 계곡 초입입니다.   

 집북재 너머 내원사가 있습니다.  오래 전 내원사에 적을 두고 있던 어떤 스님과 천성산 일원에 무분별 하게 개설되던 임도며 고속철도 관통에 따른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활동을 벌이느라 천성산과 정족산을  적잖이 돌아다닌 적이 있습니다.   그때의 활동으로 천성산  화엄벌 등 일부 습지가 자연생태계 보전지구로 지정되기도 했지만 이후 고속철도문제를 풀어 내는 과정에서  마찰과 갈등이 생긴 이후 발길을 끊어 버렸습니다.       

 노전암쪽에서 스님 두 분이 내려 오고 있습니다.

 신록이 들때면 이 계곡은 전국 어느명산에 견주어도 부족함이 없는 곳입니다. 

 대성암과 안적암 방향으로 가는 길입니다.  곧장 가면 정족산을 만날 수 있습니다.

 계곡의 물소리는  그때나 지금이나 비숫한 것 같습니다만 길은 넓혀 졌고 일부 구간에서는 데크가 놓였습니다.  거기서  작은 군락을 이루고 있는  현호색 을 만났습니다.  꽃받침이 갈퀴 모양을 하고  있으면 갈퀴현호색입니다.

 낙엽이 수북히 쌓여 있어 들추어 보니 지렁이들이 기어 다녔습니다.  숲이 살아있게 하는 공신들입니다

 생강나무 한 그루 계곡을 밝힙니다.  기억을 더듬었습니다.  이 근처일텐테 하며 주변을 배회하다 신발 끈을 고쳐 묶다  

 마침내 얼레지를 만났습니다.  눈을 들어 참나무 숲 아래 펼쳐진 얼레지들을 열심히 담았습니다.  나물 바구니로 친다면  한 광주리 가득입니다. 그때도 일대가 얼레지 밭이었습니다. 

 덤으로 생강나무도 가까이서 담았습니다. 제 블로거에 가끔 방문하시는 산야초님이 이 꽃으로 차를 만든다고 합니다.  그 향이 어떨지, 그 맛은 또 어떨지  입맛을 다셔 봅니다.  

 민둥뫼제비꽃입니다.  이땅에 자생하는 많고 많은 제비꽃들 동정하기가 싶지 않습니다. 흰색의 꽃잎을 가진 제비꽃은 흰제비꽃을 비롯하여 잔털제비꽃,졸방제비꽃,콩제비꽃,흰젖제비꽃, 남산제비꽃 등 많이 있습니다만  올들어 꽃을 피운 제비꽃은 처음이기에 반가워습니다.  

 얼레지 소식을 전했던 불로거는 노루귀며 바람꽃을 보았다 하여 아이들이 기다리는데도 시간을 지체하며 주변을 배회합니다 .   길이 소담합니다.  이런 길이 보물처럼 보입니다.  바람도 쉬는 날,  자동차 구르는 소리도 안 들리고 계곡에 물소리만 살아있습니다.

 이 물이 양산천을 지나 낙동강에 이르면 어떤 말을 할까 궁금합니다.  역류하여 돌아가고 싶다고 하지는 않을까? 이날 낙동강 하류 염막둔치 일원에서는 낙동강 살리기 시민길걷기가 있었습니다.   이 정부 들어 낙동강은 한이 맺히고 있습니다.  오는 4월2일 4대강 정비와 관련하여 소송을 제기한 운동본부 측에 의하여  부산지법에서 '하천공사 시행계획 취소' 첫 변론이 있는 날입니다.  개발에 반대하는 1,819명의 이름으로 제기된 이번 소송은 공익소송의 형태로  고속철도와 관련한 천성산 싸움때도 '도룡뇽소송'이 제기 되었지만 원고 적격의 문제로부터 시작하여, 이미 전개된 사업으로 중단할 경우 더 큰 손실이 생긴다는 이유로  법은 정부측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그래서 이상한 논리가 만들어 졌습니다.  어떤 개발사업이 영향평가의 부실함이 존재하더라도, 또 개발 과정이나 개발 후의 휴유증이 생긴다 손 치더라도  공사가 진행중인 상태에서는  절대 환경단체의 바램은 먹혀 들지 않는다는 것이고, 이런 판례를 악용하여 개발추진 쪽은 초장부터 밀어붙이는 경향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4대강 정비는 그 대표적 현장입니다.  아예 눈과 귀를 막고 삽질에 들어 가버린 것입니다.     

 저녁햇살이 숲머리에 잠시 걸립니다.  겨울 가지들이 햇빛을 붙잡아 뿌리로 내려 보냄니다. 

 비 내리고 빗물에 쓸려 내려온 낙엽이 길다랗게 누웠습니다. 마치 승천하지 못한 이무기같습니다.

 이런 장면들이 사람의 마음을 풀어 줍니다.  도시의 인공폭포가 아무리 폼나게 조성한 들 이맛을 따라 잡을 수는 없기에 계곡은 사람의 발길을 멈추게 합니다.

 아이들의 호출이 거듭됩니다.  언제올거냐는 물음에 뻔한 거짓말로 거의 다왔다는 답을 되풀이 하다 원래 방문 목적이었던 얼레지를 봤으면 됐지 하는 마음 정리를 하고 빠른 걸음으로 계곡물을 따라 하산(?)을 합니다.  그런데 애기괭이눈이 또 발길을 붙잡았습니다. 

 아이들이 기다리다 못해 저 아버지가 간 길을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미안했습니다.  재미있게 잘놀았다니 더 좋았습니다. 물수제비도 뜨고,  물무늬 만들기도 했다는 막내를 번쩍 들어 올려 목마를 해서 걸었습니다. 

 큰애는 이곳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작은애 만한 나이 때 내원사를  꺼리낌 없이 드나들었기 때문입니다. 

 노전암 입구에 있는 민가 몇 채들 중 길가 담벼락에서 매화를 보았습니다.  원동이나 광양 매화밭과는 또다른 맛입니다. 

 쇠뜨기도 봄을 맞아  포자낭을 올리고 있습니다.  땅이 기름지다는 증거입니다.

 참  그림이 좋습니다.  산세가 그다지 높지 않은 정족산, 천성산 일원의 내원 계곡을 소금강이라 부르는데,  그런 찬사를 확인합니다.

 이곳은 오후 여섯시면 통행 제한 하기에 서둘러 걸었습니다.  성불암 임구에 해당하는 길목에 철문을 달아 관리인이 문을 잠구기도 합니다.  애들만 아니라면 어둠이 내린  이 계곡길을 아주 천천히 걸어보고 싶었습니다. 지난해 초파일때 내건 등이 여직 남아  이정표를 대신합니다.

 작은애가 걷다가 넘어졌습니다. 하여 큰애가 작은애를 업어주고 작은애는 형의 가방을 대신지고 걷기를 반복합니다.  저는 그 모습을 바라다 보기만 했습니다.  형제간의 우의를 심어주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연출도 해 보았습니다.  수북히 쌓인 낙엽을 이불처럼 덮어보기. 막내가 재미있어 했습니다.

 드문드문 진달래가 잎을 열고 있었습니다.  제대로 빛깔을 담아내기에는 역시 빛이 부족한 시간이었습니다.  사진기라는 기계와 사람의 차이 입니다.    

 매표소가 얼마 남지 않았고

 매표소 조금 위에 설치된 에어?  입니다.  산행 후 등산화에 묻은 흙을 털어내고 가라는 배려에서 마련된 시설인데,  요즘 산지 관리의 한면을 보는 듯 했습니다.  아이들은 좁은 구멍에서 용수철처럼 뛰어 나오는 뿜어져 나오는 순간의 바람 조차도 놀이로 전환시킴니다.

 내원사 입구 정문입니다.  내걸린 구호가 최근의 절집 사정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양산시가 보행로도 만들었습니다.  진일보 했습니다.  전에 내원사로 가려면 성이 날때가 많았습니다. 특히 여름이면 주변 계곡에  물놀이 온 사란들이 몰고 온 사람들의 차량주차가 짜증나게 할 뿐 아니라,  차를 가지고 이곳을 방문할 때면  아예 차가 들어 갈 수 없을 정도로 혼잡이 극에 달했습니다.   

 예전에 내원사에서 마련해준 토굴이 있던 곳입니다.  그런데 왼쪽 저 터가 조만간 아파트 단지로 변할 것 같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하고 많은(?) 아파트 부지를 놔두고 하필이면 내원사 초입에 아파트 단지라니, 허가를 내 준 양산시의 건축행정이  수준 이하처럼 보입니다.  보행로의 가로수 한 그루 조차 신경을 스면서 또 다른 한쪽에서는 경관과 대규모 환경의 문제를 일으키는 개발에는 관대한 이중성 때문입니다.   

 어느듯 어둠이 내렸습니다.  정족산이 어둠 속에 선명합니다.

 내원사  입구로 부터 걸어 내려온 길이 약 1.9km, 신하동  계곡 초입까지 2.2km를  왕복하여  4.4km  6km를  조금 더 걸었나  두 아들은 큰놈이고 작은 놈, 둘다  피곤한 기색을 보임니다.  운동부족입니다.  거기다 양산지하철 역까지 가는 순환버스는 배차 시간이 30분 가량 되다보니 배도 고프고...   

 아들은 그 순간에도 핸드폰으로 게임에 열중입니다.   저런 손장난으로부터 조금이라도 벗어나게 하려고 데리고 간 나들인데,  아들 말마따나 산속에서 놀때는 몰랐는데,  도시로 나오니 자연스럽게 핸드폰으로 손이 간다고

 아무튼 저는 원없이 얼레지를 만났습니다만  아이들는 피곤했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거기다  사준다던 외식도 집에서 먹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다 보니, 막내는  차를 타자마자 잠들어 버렸습니다. 

 

Rivers Of Babyl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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