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새벽 두시 반 사무실을 나설 때 진눈깨비가 퍼붓고 있었습니다.
아침 이런 광경이 만들어 질 줄은 몰랐습니다. 우리집 작은 애가 "와, 눈이다" 라고 환호하지 않았다면 조금 늦게 출근할 거라고 말해 두었기 때문에 부족한 수면을 보충할 요량이었는데, 창문 넘어 펼쳐진 세상은 간만에 하얀세상이었습니다.
이 도시에서 눈이 온다는 것도 드문 일이고 더욱이 쌓인다는 것은 더더욱 가망없는 일이라 여겼기 때문에, 반가움은 더 했습니다. 건너편 빌라 복도창이며 안테나 그리고 이 도시의 상징인 물통들 위에 눈이 쌓이고 있었습니다.
작은애는 언제 옷을 입었는지, 그새 완전무장을 하고 밖으로 횡하니 나갔습니다. 그리고 또 무엇이 부족했는지 상기된 얼굴로 와서는 장갑이며 모자를 쓰고는 나갔습니다. 평소때는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아 아예 옷을 입힌 다음 깨워서 겨우 밥 한숟가락 먹이고 학교를 보내는데 , 눈은 꿈지락이던 일상을 확 바꾸어 버렸습니다.
저도 일정을 바꾸어 동네를 한바퀴 돌고 집뒤 언덕으로 향했습니다.
개나리가 꽃을 피웠다가 눈에 묻혀버렸습니다. 그 사이 초중등 학교에 임시휴교령이 내려졌습니다. 우리집 아이들 큰놈 작은 놈 신이 났습니다. 아마도 눈이 더 많이 왔다면 어른들도 하루 쉴 수있었을 텐테, 그럼 아이들과 간만에 눈사람도 만들고 눈싸움도 하고 그러다 손이 시리면 이불 속에 손을 녹히며, 마눌이 만들어 주는 떡복기 먹으며 놀 텐데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
출근길 차 지붕을 덮은 눈들, 영업용 택시며 자가용 할 것 없이 눈을 맞고 멈추어 서 있습니다.
집뒤 언덕과 황령산에 제법 눈이 쌓였습니다. 설경이 괞찮았습니다. 눈 싸인 텃밭에는 고양이 발자국이 먼저 찍혀 있었고 딱새들이 날았습니다.
석유로 움직이는 탈 것들이 죄다 멈춘 아침, 비싼차, 보통차, 외제차 구별이 없습니다. 식구들과 같이 어딜 갈려면 애들이 차종을 들먹이며 우리는 언제 차를 바꿀 거냐며, 투덜투덜 원망을 쏟아 놓기가 한 두번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하긴 아이들이 커 가는 상황에서 마티즈는 조금 좁긴 합니다. 어쨌든
골목길에 주차해 둔 봉고 위에 눈이 곱게 실려 있습니다 마치 백설기 같습니다.
담벼락 담쟁이 덩쿨에도 눈은 쌓여 그림을 그렸습니다.
이날 처음이자 미지막으로 본 눈사람입니다. 그것도 이것도 눈사람이가 ? 할 정도로 작은 눈사람이었습니다. 아마 병원 간호사가 그랬음직해 보였습니다. 왜 눈사람을 민들지 않을까. 혹시 눈사람을 잊어 버린 건 안닌지
간선도로며 중앙로의 눈은 제설 작업과 차량들의 바퀴에 의해 그 흔적이 금방 지워졌습니다. 버스를 타고 가다 부전시장에서 내려 부전역으로 이동합니다. 아직 녹지않은 곳 설경이 보고 싶어서 였습니다.
눈이 와도 시장은 장사를 합니다.
전천후 시장과 노점시장의 환경적 조건을 확인합니다. 어물전 귀퉁이에 눈이 쌓여 있습니다.
부전역에서 09:15분 포항행 열차를 탔습니다.
사무실 앞을 지남니다. 신호대기 중인 차량들이 평소보다 훨씬 작습니다. 고지대에는 새벽부터 난리였다고 합니다.
눈 내린 온천천
해운대 역사입니다.
중동 근처 아파트 뒷편의 철길 옆 그림입니다. 언제고 한번은 이 장면을 담아두려고 했는데 그날입니다.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만해도 양지였을 저 집들은 이제 일년 내 그늘 속에 있게 되었습니다. 야박스런 세상입니다 .
미포를 지날 즈음 동백섬과 이기대 장자산이 스칩니다.
송정 바닷가 입니다. 역시 일대의 풍광이 시원합니다. 아마도 해운대를 막 벗어나면서 만나는 탁 트인 공간이다 보니 그 느낌은 배가 되는 것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송정천을 가로 질러 사람의 간섭이 적은 산과 들을 향합니다. 사람의 간섭이 적다는 것은 오늘 하루만 국한되는 제한적 표현입니다. 이곳 역시 적찮은 개발로 인해 원형이 사라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설경이 보고 싶었습니다.
생각보다 기장에는 적설량이 적었습니다. 그렇지만 눈은 바라보아 눈길 아픈데를 이렇듯 감추어 주고 있습니다.
이런 자연스러운 풍경이 사람을 편하게 해주고 긴장을 완화시켜 줍니다.
기장역에서 내린 다음 여기관사에게 손을 흔들어 줍니다. 남녀 취업에 업종의 구별이 없어지고 있음을 실감합니다.
철길에 내린 눈
전국적으로 눈이 내린 이날 무인역은 어떤 모습을 보여 줄까 궁금했습니다.
홍매가 눈 속에 피었습니다.
만개했습니다.
역사 밖, 양배추가 흡사 여름 팥빙수처럼 보입니다.
기장시내를 돌아다녔자만 눈의 흔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반송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다 철마쪽의 설경을 감상합니다 버스 승객 4명, 중년의 아짐들차창 넘어 보이는 이 설경을 핸드폰으로 자랑하기 빠쁨니다. 누군가에게 눈 소식을 전한다는 게 참 허뭇해 보였습니다. 어느 시인은 '잊혀진 얼굴들처럼 모르고 살아가는 남이 되기 싫은 까닭'이라고 했던가
129번 반송 차고지 입니다.
석대마을입니다. 도시화지수 또는 정도에 따라 눈내린 풍경이 달라집니다.
동래지하철 역 삼거리입니다. 눈은 이제 사라졌습니다. 간간이 버스 지붕위에 녹지 않고 쌓인 눈을 보고 눈이 왓다는 것을 알 정도입니다.
정오를 조금 지난 시각 사무실에서 본 풍경입니다. 지붕과 옥상 가장자리에 겨우 남아있는 눈의 흔적입니다. 물론 해가 나면서 눈은 급속히 녹기 시작하지만, 거기에는 이 도시가 뿜어내는 열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신문과 방송은 3월 최대 적설량을 기록했다고 눈온 세상의 이모저모를 보도하고 있었습니다. 반나절의 이벤트는 끝이 났습니다. 문득 최소 50cm 이상 적설량을 보인 산간오지며 북쪽지역은 어떤 상황일까 굼긍합니다. 하루 걸러 눈이 내리는 북쪽 지역은 지긋지긋 할 것입니다 . 눈 속에 파묻혀 오도가도 못하고 속절없이 시간만 보내던 무료함의 극치 속에서 사람들은 뭘 했을까
간밤 심야 귀기길 택시 차장에 와락 몰려들던 진눈깨비가 하마 그리워 졌습니다.
늦은 귀가 길, 눈은 후미진 곳이나 인적 뜸한 인도 가장자리에 흔적만 남았습니다. 눈의 비애입니다. 눈은 이 도시에서 제거되어야 할 장애입니다. 다만 어린이들만 눈의 가치를 알 뿐입니다. 눈이 내려서 가장 행복한 순간입니다. 아이들 손끝에서 뭉쳐지고 날아갈 때 눈은 행복합니다. 유년시절 온통 새하얀 세상, 가슴 높이로 내린 눈속을 헤엄치듯 헤쳐나가던 때가 생각났습니다.
10.3.11
출처: 다음블로그 사진속 세상구경
Uskudar - Eartha Kitt
'사는 이야기 > 사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천성산 얼레지가 보고 싶어서 (0) | 2013.06.08 |
---|---|
산책(통일동산 10.3.15) (0) | 2013.06.08 |
봄빛10.3.2 (0) | 2013.06.08 |
유금선 선생의 구음을 듣고 09.12.13 (0) | 2013.06.08 |
신종 풀루 이야기 2 (0) | 2013.06.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