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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사는 이야기

비오는 날 (10.4.4.)

by 이성근 2013. 6. 8.

 

일기예보가 정확히 맞아 떨어진 날입니다.  아침 출근길에는 구름만 낀 하늘이라 우산을 챙기지 않고 집을 나섰는데, 왠걸 사무실 도착하자 말자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전화를 돌리고 받고, 그런데 오늘 강의 있습니다 란 이야기를 전해듣고 난감해집니다.   일정을 급히 조정합니다. 한달 전 부산환경교육센터에서 부탁할 때 쉽게 그러마 하고 답했던 것이 4월1일이었던 것입니다.  급히 PPT를 준비하여 동구노인복지관으로 향했습니다.  

 프레젠테이션의 주제는 '산복도로와 부산, 시민의 삶'이었습니다.  노인네 십수명이 이야기를 들어 주었습니다.  산복도로에 대한 재해석과 의미 찾기라고 할까?  일제가 인구 40만을 목표로 계획한 도시 부산이 걸어 온 길은 한국 근현대사의 압축입니다.  1945년, 1950년 그리고 성장가도를 달리던 시절을 통해 부산은 원형을 상실한 도시였습니다. 특히나,  전쟁으로 몰려던 피난민들은 부산의 산자락 구석구석 거처를 마련할 수 밖에 없었고, 그 삶은 몹시나 곤궁하고 고통스러운 생활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정치 경제적 혼돈과 무질서 앞에 실향민과 이향민들은 몸으로 감내할 수 밖에 없었던 시절, 어느새 그들은 세월은 흰머리 만큼이나 쇠잔해 있었습니다.  꿈을 이야기하고 어줍잖은 산복도로 원도심의 비젼을 이야기 했습니다만  사실 가소로운 이야기 입니다.  무엇이 먼저인지 진정으로 고민해야 합니다.  주어진 시간을 넘어 들었던 그분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숙제입니다.  "당장 먹고 사는 문제가 우선의 발등의 불이다.  시내서 택시라도 한번 타고 오려면, 기사들이 어찌나  지랄인지, 선샘은 우리 사는 골목이 지켜져야 어짠다 하지만, 그건 여기 안살아  봐서 모른다"  그랬던 것 같습니다. 어찌보면 뜬구름 잡는 이야기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강의를 들었던 분들 중에 관심이 있었던 분도 계셨겠지만,  사실은 복지관에서 포인트 제도라 하여 복지관에서 준비한 프로그램에 참가할 경우 프로그램당 1000점(1000원에 해당) 씩 지급하나 봅니다.  그분들은 그 포인트를 모아 한끼 식사도 하고 다른 필요한 것을 구하는 방편으로 이용한다고 했습니다.  돈이 없어 멀리 가지도 못하고, 동네  언저리를 맴돌며 하루를 살고 계셨습니다.  복지관은 그런 노인분들로 만원이었습니다. 특히 비가 오면 더 더욱 갈 곳이 마땅찮기에 ...   

 미쳐 챙기지 못한 복지관 강의 때문에 사람 만나는 동선을 복지관 중심으로 연결합니다.  민주공원, 부마기념사업회로 가는 길입니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요상한 일이 벌어 졌습니다.  민주공원에서 중앙공원으로 이름이 바뀐 것입니다.   원래 대청공원이었습니다. 6.25때 피난민들의 판자집들이 있었던 터를 공원으로  만들었고 1986년 중앙공원으로 이름을 변경했다 김대중 정권 이후 1999년  민주공원이란 이름을 가진 곳입니다.    그랬던 것이 2009년 6월  대한민국전몰군경유족회 부산지부 등의 요구에 의해 중앙공원으로  되돌려 졌습니다. 

  민주공원의 조성 배경과 목적은 "한국 근현대사의 발전에 결정적 기여를 해 온 4.19 민주 혁명과 부마 민주항쟁 및 6월항쟁으로 이어져 부산 시민의 숭고한 민주 희생 정신을 기리고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민주공원]을 조성하고, 이를 역사의 산교육장으로 활용하여 시민의 자부심을 고취시키고 아울러 민주화의 산실인 부산의 역사적 위상을 높이고자  한다."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민주횃불입니다.  민주화를 위해 노력한 이름 없는 별들을 형상화 하고 있습니다. 외부와 내부의 희생자와 산 자, 이상과 현실, 안팎이 일체가 되어 '민주'라는 하나의 공간에서 승화하는 것을 보여주며 부산의 힘이 무한의 시공간으로 끝없이 비상하는 것을 상징하지만 비에 젖고 있는 횃불은 여전히 이념적 공세로 피곤합니다. 

 2층 늘펼쳐보임방입니다.  모두 15개의 테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지난 시절을 기억합니다.  같이 했던 시간과 사람들을 불러오는 공간입니다.

 그때 그 거리의 함성이 새삼스럽습니다.   언론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방송 에 대한 시민의 저항과 직접적으로 표출되기도 하였습니다. 그 모든 부조리한 것에 대한 저항이  6월 항쟁이란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 냈습니다. 물론 어떤 일이든 물꼬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물꼬는 누군가의 희생을 수반했기에 아픔을 동반합니다.  역사는 그들의 죽음을 기록하고 전해야 합니다.  그런데 역사는 되풀이되는 것은 아니지만  왠지 닮은 꼴이 많은 세월입니다.

 하구둑으로 인한 지역민의 삶의 터전과 생물 서식공간이  일시에 짓밟힌 시절, 지역의 문화패들이 그 아픔을 극으로 전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4대강 정비가  하구둑이 불러 왔던  재앙을 다시 예고하고 있습니다 

 6월 항쟁의 결과가 무엇인지 , 결코 오늘과 같은 날은 아니리라 ?   다음 장소로 가기 위해  1층 소극장 로비를 지나다  지율스님이  지역 단체들과 마련한  '낙동강 사진전시회-before and after'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뉴스가 제대로 현장의 소식을 전하지 않는 한, 강이 찢겨지고 박살나도 사람들은 모릅니다.  오히려 교묘한 속임을 전할 뿐입니다. 지금 제대로 된 언론은 손가락을 꼽을 정도 입니다. 

 빗방울이 제법 굵습니다.  비가 잦은 봄입니다.  억수같이 내려 확 쓸고 갔으면 해봅니다.  저들이 4대강 정비를 위한답시고 밀어 넣은 포크레인, 불도저, 덤퍼, 기중기, 진행중인 보만 몽창 쓸어내려 갔으면 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말하는 200년 빈도며 500년 빈도 홍수가 실제 하기를 갈망해보기도 합니다.  달리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퀴 막고 눈 가리고 한 방향으로만 가는 저들입니다.    

영락공원으로 문상을 갔다 금정산 줄기를 바라다 봅니다.   망자는 숙환으로 돌아가셨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호상이라 말합니다.  ?  복을 누리고 오래 산 사람의 죽음입니다.  그렇게 불려지는 죽음 자체가 호상입니다.  산자도 망자도 그리 애닮아 하지 않는 죽음, 망자의 화창한 봄날을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범어사 역까지 빗길을 걸으며, 영락공원 묘지에 들어선  2만9천 여기 무덤들의 땅을 구경합니다.   평당 1,5평  죽음 앞에 공평하듯 그들이 누운 자리도 차이가 없습니다.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천상병 시인의 귀천 처럼 살다가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그 소풍이 즐급지 못했던 사람 또한 많은 게 세상입니다.  또 이제는 다리를 펴고 누울 땅도 없습니다.  불길 속 한 줌 재로 사라질 뿐입니다.  그게 허망하다면, 허망할 수도 있겠지요.  그래서 귀천같은 삶을 살다 가기 위해서는, 베풀고, 남겨야 합니다.  자식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웃을 위해, 세상을 향해

 

 사무실에 들려 어긋난 일정으로 처리하지 못한 일들 마무리하고 , 책상 유리판에 깔아 둔 후배의 메모를 눈여겨 봅니다.  살기위해 기업에 취직하여 돈을 벌고 있지만 도리에 어긋난 일을 하며 사는 일이 답답했던 지 술마시는 자리에서 제게 건내주었던 메모입니다.    

막차를 타고 귀가하는 길, 비 때문인지  차는 한동안 저 혼자만 태우고 달렸습니다.  흔치 안은 일이라 한장 담아 보있습니다.

 비는 그치고 안개가 지욱한 밤입니다.  놀라운 사실은 그 안개가 베란다 넘어 언제나 성처럼 우뚝 솓아 있던 고층 아파트들을 지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날도 있습니다.  무법자처럼 들어섰던 고층아파트가 사라진  도시의 풍경을 상상해봅니다.  골목이 살아나고  영도 봉래산과 수정산 엄광산이 예전처럼 훤히 보이겠지요.  다만 용두산 타워의 불빛만이  아련할 것입니다.   상상만으로도 즐겁습니다.   사람을 주눅들게 만들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멀어지게 하고, 세상의 풍경을 망치던 저 이기의 철골 콘크리트 덩어리가 홀연히 사라진  이밤,  안개가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지울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다시 꿈을 만들어 봅니다.    

 

  

 

There's a kind of hush
출처: 다음 블로그 홍이 아뜨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