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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쉬운 詩 좋은 詩

지문을 수배하다 - 조재형

by 이성근 2013. 7. 20.

 

                                                                                                                                                출처: 한국전 참전 어느 미군의 사진첩에서

 

지문을 수배하다

                                   조재형

 

 

글구멍이 막혀 살아온 농투성이, 말년에 인감을 내러 면

사무소를 찾았다. 직장에서 말소된 자식의 생계를 복원해

주려 남은 천수답을 내놓은 것,

 

맨몸으로 황무지를 개간하랴 중노동이 열손가락을 갉아

먹었다. 십지문이 실종되었다고 민원은 반려되었다. 고추

먹은 소리로 삿대질 해본들 소용이 없다.

 

몰락한 가문의 정본으로 태어난 노인, 가난을 대대로 복

사한 탓에 사본 취급을 받으며 살았다. 이면지처럼 남의 집

헛간을 전전하며

 

노인을 진본으로 탁본한 곳은 땅이다. 논배미 밭고랑 갈

피마다 삽과 괭이로 밑줄을 그었다. 땀방울로 간인한 흔적

들이 그를 소명한다.

 

팔순 고개 완등하고 유효기한이 다해가는 상노인. 올봄

도 황소가 끄는 쟁기에 첨부되어 논두렁으로 출석했다. 부

록으로 어깨에 멘 삽날이 지문처럼 문드러져 있다.

 

 

 

 

조재형 시집『지문을 수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