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막내와 하루를 보내던 중 뜬금없이 기차를 타고 싶다기에 즉흥적으로 부전역으로 갔습니다
17:32 대구행 무궁화 열차였습니다. 왕복으로 끊었습니다. (편도 어른 2,500원 / 어린이 1,200원)
시발역이라서 그런지 객실 안은 거의 빈자리가 많았습니다.
아이들 외가집이 김해 한림이라서 예전에는 경전선을 제법 이용했는데
큰 아이가(중학생) 초등학교 들어가고서부터 경차를 구입한 뒤로는 거의 탈 일이 없었습니다
출장 갈 때 빼고는 말이죠
어쨌든 막내는 또래의 아이들의 그렇듯 차창에서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문득 생떽지베리의 어린왕자가 연상되더군요
아담한 간이역들이 스치고 지납니다
경부선 고속열차를 타고 다니다 보니 간이역은 우리 기억에서 사라져 버린지 오래인듯 합니다
기장 나들이는 그런 세월을 더듬어 주는 기회가 된듯 합니다
간이역
무궁화 열차 타고
부산을 출발하여 서울에 닿는 동안
나는 보지 못한다
새마을 열차 타고
서울을 출발하여 부산에 닿을 동안
나는 보지 못한다
세상 뭐래도 한발짝 움직이지 않고
세월 정정히 서 있는 정자나무처럼
떠나버린 자식 기다리는 노인네 같은 간이역을
나는 보지 못한다
좀더 빠르고 편한 것 타고 잠들어 있느라
이땅의 역사 시작되는 가장 소중한 마을들
일테면 원동이나 낙동강, 석수, 미륵의 마을을
내 모른다 무심히 흘려 보내고
부산이나 서울에서 산 눈요기 신문 뒤적이며
세상 읽다 잠들면 어느새 종착역
아 낯설음이여
스쳐 지나온 간이역이여
(1996)
막내가 제 엄마에게 자랑을 합니다
기차를 탔노라고
이윽고 해운대 역을 지나자 수영만 넘어 이기대와 오륙도가 보입니다
바다는 푸른 치마에 끝단을 흰 레이스로 치장하고서는 우리 부자를 유혹합니다.
반응은 즉각적입니다. 막내가 바닷가에서 놀자고 제안합니다.
허, 거참
잠시 목적지를 송정으로 할 것을 하는 안타까움이 스칩니다
기차는 송정을 향합니다
송정은 아이들과 가끔씩 왔던 바다입니다
막내는 이 바다가에서 놀던 때를 기억해내었습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기장의 들녁을 지납니다
하지만 예전같지가 않습니다
포크레인을 앞세운 개발바람이 기장 또한 가만두지 않습니다
겹겹의 도로가 경쟁하듯 뚧리고, 그 곁에는 도회의 아파트들이 병풍처럼 들어서고 있습니다
눈이 아픕니다
막내도 외면하는 풍경입니다
더 머물고 싶었지만 다시 돌아올 기차표를(16:35 부산행 무궁화) 미리 끊어 논 상황이기에 어쩔 수 없이
기장역사 주변에서 놀이를 합니다. 광대나물의 이름이 코딱지꽃이라는 것도 가르쳐주면서 봄꽃 찾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막내는 즐겁습니다.저도 간만에 행복했습니다.
노래출처: 다음블록 제주 사랑채
'사는 이야기 > 사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계에서 하나 뿐인 UN묘지 (0) | 2013.06.08 |
---|---|
등꽃 피는 날 감지해변을 찾다 (0) | 2013.06.08 |
사라진 황령산 연리목 09.3.30 (0) | 2013.06.08 |
질주하는 고속도로에서 (0) | 2013.06.08 |
황령산 공동묘지에서 (0) | 2013.06.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