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는 이야기/사는 이야기

황령산 공동묘지에서

by 이성근 2013. 6. 8.

 

막내와 황령산에 올랐습니다.  아즘 먹고 오른 산행이라 해는 이미 중천에 걸렸고, 혹시니 싶어 걸치고 간 외투가 귀찮아질 정도였습니다.  그래도 봄빛이 좋아 참을 수 있었습니다.  황령산의 봄빛은 사방오리나무가 피운 꽃으로 연녹색이 제일 먼저 드리웁니다. 그 다음 벚나무의 새순이 움을 틔우며 발그레 하다가 꽃망울을 터뜨리며 연분홍 빛이 되었다 사오월 신록에  묻혀 버립니다.

 

아직 초본류들의 적극적인 신호는 보이지 않습니다. 세잎양지꽃의 어린 잎이며, 머위,벼룩나물, 잔디. 개부랄꽃이 먼저 핀 매화에 이어 고개를 내밀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한 두 주 정도를 지나면  더 많은 꽃들과 만날 수 있지 않겠나 여겨집니다.

 

 

 

 

어쨌든, 황령산 중턱 공동묘지터에서 한동안 놀았습니다. 숨박꼭질도 하고, 누런 풀밭에 초록풀 찾기도 하고, 준비해 간 과자도 먹으며...

 

 

 

사실 공동묘지(전포동과 문현동 경계부)는 제가 청년시절부터 즐겨 찾았던 사색(?)의 공간입니다.  80년대 중후반이었지요. 낮에 빵 몇 쪽하고 우유 따위를 사서 소풍처럼 갈 때도 있었고, 또 아니면 소주 몇 병에 쥐포 몇 마리 사서 갈 때도 있었습니다.  소주와 우유의 차이는 뭔가 억늘린 것을 고함쳐, 소리쳐 내뱉고 싶을 때라는 것입니다.

 

야심한 밤에 허연 런닝구 차림으로 무덤위에서 고함지르거나 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좀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하겠죠. 실제 그랬답니다. 아니면  밤 이슥토록 무덤가에 앉아 있다가 오곤했습니다.  때로 저물녘 무덤가에 앉아 시내를 바라보고 있는  저를 이웃 사람들이 보고는 이상하게 여기기도 하였습니다.

 

 

 

 

 

 

 

 망 자 촌


詩가 안되는 밤이면

머리카락 쥐어뜯다 말고 산에 올라

불빛 휘황한 도시를 본다

내 아무래도 조금은 비켜선 듯한

詩와 非詩의 공존선상

살아있음의 막막한 바람결


산허리 쑥꾹새 울어

무덤가 풀잎속에 누웠더니

자정 넘어 기지개 펴는 귀신귀신

하나 둘 일어서 묘지터 학교로 가고

어둠이 짙을수록 무리짓는

불빛의 마야는

뱀처럼 기어와 목을 감는데


씻지 못한 번뇌의 순간은

불꼬리 금져 내리는 유성

가유(假有)하는 인간세상

어디서 두런두런 흰 옷자락 서너명

생로병사가 무든하고

희노애락이 무심타는 말


아, 산다는 것

어째 생이란  말없이 타는 촛불에

저 홀로 춤추는 들 뜬 그림자

캄캄하여라

캄캄하여라

도무지 일 수 없는 길

몸부림 치는 골똘한 침묵의 등성이


운동장 그네 위

애장터 아기귀신 끼득끼득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분다

 

 

그런데 듣자하니 이 일대를 개발한다고 하더라고요

개발이라 ?  무덤을 옆에 두고 좋아할 사람들이 많지는 않으리라 생각합니다만  생각에 변화를 주면 어떨까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예컨데 삶을 생각하고 죽음, 그 다음의 미래를 생각하는 사색의 공원으로 하면 어떨까 싶은 가죠

 

물론 워낙에 다양한 죽음과 접하기 때문에, 예컨대 추모공원이며, 화장장에 가면 조성해놔서 일부러 챙길 것 까지 있는가 라고 한다면 할말이 없습니다만

 

 

 

 

황령산 공동묘지에서 세상을 바라보면 참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도시의 변화 발전상을 비롯하여 그 도시 세계와 자연계의 경계부, 생성과 소멸, 완충지 등등 ....왠지 서운하네요.   09.3.13

 

 

노래출처: 다음 블로그 제주 사랑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