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을 만나러 가는 길, 늘 지나치던 유엔묘지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뭐 특별히 추모의 뜻이 있어 간 것도 아니고 그냥 요즘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다보니 한번 둘러보자는 차원이었습니다. 어쨌든 매번 가지는 생각이었는데 이곳의 정문이 눈길을 끌게 합니다.
건축에 대해 잘 모르지만 이 정문을 김중업선생이 설계한 것이라고 합니다 . 선생은 전통적인 형태에서 모티브를 가져와 설계에 적용했다고 하는데 그가 생전에 설계했던 주한프랑스대사관,제주대학본관,진주문화회관,평화의 문 등도 그런 모티브를 적용한 사례들입니다.
그의 건축방식은 첫째, 건축몸체와 곡선의 지붕을 분리한다.
둘째, 전통목조건축의 구축성을 강조한다(기둥,곤포,서까래와 같은 구조체를 강조)
세째, 기둥은 보를 떠받이고 바닥은 기둥에 매달다 로 집약됩니다.
정문 현장은 그 말을 확인시켜 줍니다. 김중업선생의 건축적인 가장큰 특성은 바로 살아움직이는 선(곡선)의 표현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선은 가우디의 영향을 의미한다고도 합니다. 시대와 건축가의 적절한 만남이지 않나 싶습니다.
주지하다시피 이곳은 남구 대연동에 위치한 UN기념공원입니다.
한국전쟁 당시 참전했던 21개국(전투지원 16개국, 의료지원 5개국) 2,300명의 봉안되어 있습니다.
유엔공원은 한국전쟁 당시 개성,인천,대전,대구,밀양,마산의 가매장지에 있던 유해를 1951년 1월18일 이곳으로 이장을 시작하여 1951년 4월5일에 봉납되었습니다. 1955년 대한민국 국회에서 결의하여 묘지가 자리잡고 있는 토지는 무상으로 UN에 영구 기증되었습니다. 우리 영토가 아니면서 비자없이 들어갈 수 있는 외국영토입니다.
애초 UN군 전사자 약 11,000명의 유해가 안장되어 있었으나 벨기에,콜롬비아,이디오피아, 그리스. 필리핀, 태국 및 미국인 유해가 그들의 조국으로 이장되었습니다. 현재 관리는 1974년 이래 현재 전사자의 유해가 안장된 11개국으로 구성되는 재한 UN기념묘지관리위원회에 관리하고 있으며, 관리비는 각국에서 분담하는데 우리나라가 전체의 45%를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추모관과 기념관입니다. 이 건물 역시 건축가 김중업씨의 설계로 1964년 건립되어 있으며, 전몰장병의 영령을 추모하기 위해 추상성, 영원성을 강조하는 기하힉적인 삼각형태가 특징이라 볼 수 있습니다.
기념관에는 전쟁 당시 유엔군사령부가 최초로 사용했던 유엔기를 비롯히여 조성 당시의 사진과 기념물 각국에 세워진 위령탑 사진 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너무 익숙한 것들이라 눈여겨 보지 않았습니다. 지겹도록 주입된 반공교육의 덕택이지 않나 여겨집니다.
하지만 참전국들이 자기나라에다 세운 참전비며 추모비에 대해서는 좀 묘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기념관에 대해 안내하고 있는 친절한 아저씨입니다.
기념관을 나와 주묘역으로 가는 길
엄숙한 분위기와 정숙이란 단어를 절로 연상시킴니다.
도열한 가이즈까 향나무들이 이런 묘역에 어울리는 나무란 사실이 새삼스럽습니다.
현재 묻혀 있는 참전국 전사자들의 현황입니다.
터기 여단의 묘역입니다.
이념을 떠나 유엔의 기치 아래 최초로 결의된 구제 전쟁이라는 측면에서 이 공간이 오늘 존재합니다만
머나먼 이국땅에서 죽는다는 것이 어떤 마음인지 솔직히 잘모르겠습니다.
가족과 살던 사회를 떠나, 비록 전우가 있기는 하지만
유엔묘지
배해수
- 님이시여
가을 하늘은 이렇게도 맑고 고운데
왜 누워만 있나요
님이시여
이념이 무엇이고 사상이 무엇이길래
무참히 피 흘리며
돌아가셨나요.
님이시여
꽃봉오리 같은 젊음을 불살라
보지도 못한채
서럽게 서럽게 떨어졌네요
님이시여
고향의 부모 형제가
애타게 기다립니다
어서 일어 나소서
참전국의 깃발이 나부끼고 있습니다.
이곳을 조성할 엄동설한이라 황량한 상태에서 당시 현대그릅 고 정주영회장이 보리를 이식해서 한겨울에도 푸른 묘역으로 단장할 수 있었던 일화도 유명합니다.
무명용사의 길입니다.
일대를 둘러보고 나오며 유엔의자유와 평화를 위한 참전이라는 표현을 존중하고 싶었습니다.
예전에, 하마 80녀대 초니까 . 20 수년 전이겠습니다,
이 버들 아래서 친구와 사진을 찍었는데, 그 친구는 지금 어디서 무엇하는지 ? 장소라는 것이 이렇듯 한시절을 기억하게 만드는 창구인듯 합니다 .
매력적인 건축입니다. (역부러 시간을 내어 다시한번 찾아볼 생각입니다)
5월4일 근처를 지나다 다시 한번 둘러 보았습니다. 시립박물관 앞 교차로에 있는 기념탑입니다.
유엔기념공원 정문 지붕의 선을 유심히 보았습니다.
기둥이 마치 사람이 지붕을 들고 서 있는 듯한 모습입니다.
머리와 두 팔을 이용해 지붕을 받치고 있는 듯...
천장으로부터 자연광이 들 수 있도록 한 것은 참 좋았습니다.
추녀끝과 빗물받이(?)도 ...
추모관에는 홍보비디오가 돌고 있었습니다. 외국인들이 더러 보였습니다. 그리고 나(연세) 많은 단체 관광객도 가끔 보였습니다.
멀리 황령산 능선이 보입니다. 여기서 보니 새롭습니다. 산을 에워 싼 아파트며 치솟아 오른 빌딩이 없는 경관입니다.
이 묘지가 이곳을 지킴니다. 어떤 개발도 불가능한 곳으로 지키고 있다는 사실이 묘합니다.
영연방 위령탑 뒷쪽 (영연방<Commounwealth df nations>: 영국,캐나다, 호주,뉴질랜드,남아프리카공화국 )
묘역 전체를 통틀어 영국군 전사자가 가장 많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해외에서 싸우다 전사한 사람은 그곳에 매장한다는 이 나라의 관습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위령탑이 별도로 조성되어 있습니다.
이날 외국인 참배객들이 제법 보였습니다. 유족인지 단순 관광객인지는 모르겠지만 ...
유엔군 전몰장병 추모명비
총전사자 40,895명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있습니다.
그중 미국이 36,492명입니다. 하도 많아 주 별로 전사자를 새겨놓았습니다. 그들의 죽음과 한.미 관계를 되짚어 봅니다.
그리고 우리가 참전했던 베트남전(1965~1972: 총 4만5천 명 중 전사 5천 부상 1만9천 여명 )도 떠올려 봅니다.
문득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National Mall 한국전 위령탑과 거기 대리석에 새겨진 전사자들의 이름을 보았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1995년 12월에 방문했던 것 같습니다. 유엔군 전몰장병 추모비는 거기 것과 유사하다는 느낌입니다.
21개 참전국 국기들이 분수와 함께 펄럭이거나 솟구쳐 오르고 있습니다.
그 시절의 유엔군과 요즘의 중동지역에 투입된 유엔군의 정의가 궁금해집니다.
유엔군 위령탑입니다.
비록 묘지공원이지만 부산에 이런데가 있을까 싶습니다.
참 쉴 곳 없는 부산입니다.
1인당 공원면적이 형편없습니다. 광역시 중에 꼴지 입니다. 공원녹지 관련 예산이 쮜꼬리같아 부끄럽습니다.
시민의 삶의 질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문득 문현동 금융단지며 부산의 군부대터를 떠올립니다. 비싼 땅값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런 부지들은 이제 또다른 용도로서 빌딩군이 가득한 답답한 터가 될 것입니다. 공원으로 전환하자던 저의 주장은 '웃기는' 일이 된지 오래입니다.
여유가 없는 도시의 한 단면을 여기서 확인합니다.
노래출처: 다음 블로그 제주 사랑채
이종환의 추억의 팝송
'사는 이야기 > 사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근황 (0) | 2013.06.08 |
---|---|
이기대에서 월척을 낚다 (0) | 2013.06.08 |
등꽃 피는 날 감지해변을 찾다 (0) | 2013.06.08 |
사라진 황령산 연리목 09.3.30 (0) | 2013.06.08 |
주말 기장 나들이 09.3.23 (0) | 2013.06.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