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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사는 이야기

사라진 황령산 연리목 09.3.30

by 이성근 2013. 6. 8.

1월의 황령산 입니다.

이산 자락에 아주 오래전, 신라,고구려,백제, 가야 힘 겨루기 하던 시절, 

거칠산국(居漆山國) 의 터 입니다. 

정상에 서면 부산의 웬만한 시가지가 다 보이는 곳이기도 하여 시민이 즐겨찾는 도심의 산입니다

황령산이 잿빛 갈색에서 연녹색으로 옷을 강 갈아 입고 봄단장 중입니다.

 

 

하지만 실증이 났는지 4월을 전후하여 화려하게 변신을 시도합니다

 

그 변신을 보러 찾아갔습니다.

 

 진달래가 한창입니다.  주로 소나무 숲 아래 많습니다. 산성토가 많은 곳이도 합니다.

시방은 산림이 예전처럼 그다지 헐벗지 않습니다.  숲의 천이가 진행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황령산도 소나무 숲이 많기는 하나 산허리께부터 참나무류들이 들어서고 있습니다.  

 

숲의 변화를 살피던 중 어처구니 없는 현장을 목도 했습니다.

베어서는 안돨 나무들이 졸지에 전기톱날에 희생당한 것입니다.

간벌치고는 무식한 간벌이기에 화가 났습니다.

특히

 

 

연리목 한 그루(?) 때문입니다  

산을 이잡듯 뒤져도 연리목을 발견하기란 쉽지가 않은데,

그것도 임도 옆 등산객들 다리쉼하라고 배려해준 벤치가 있는 곳에서

무참히 잘려나간 연리목의 버려진 몸뚱이들을 보자니

개탄과 산림행정의 한심을 씹을수 밖에 없었습니다. 

 

잘려진 연리목은 아카시나무와 굴참나무 같습니다.  

금정산 계명암 가는 길에 발견한 노각나무 연리목 만큼 반가웠던 황령산 연리목이 무식한 간벌작업에 희생된 것입니다. 

 

연리목(連理木)이란 이을연(連) 다스릴리(理) 나무 목(木),또는 사랑할연(戀) 다스릴리(理) 나무목(木)이 합쳐진 단어입니다.말 그대로 뿌리가 다른 나무와 나무가 맞닿아 한 나무가 되는 현상입니다. 

흔히들 '연리지' 라고  합니다만,  연리지는 서로 다른 두 나무가 가지만 이어져 한 나무인 양 큰 것을 말한다. 뿌리가 다르고 몸통도 다르지만 가지가 붙어 자라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 예컨데 " 소나무와 참나무처럼 종류가 다른 나무는 수 십 년이 아니라 수 백 년을 같이 붙어 있어도 그냥 맞대고 있을 따름이지 결코 연리가 되지 않는다. 세포의 종류나 배열이 서로 달라 부름켜가 연결될 수 없으며 양분 교환은 어림없는 일이다. 이런 나무는 엄밀히 말하여 ‘연리’가 아니다. 완전한 연리란 같은 종(種)의 나무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다" 라는

어쨌든 옛부터 연리목은 서로 다른 두 그루의 나무줄기가 사이좋게 합쳐진 것으로

부부의 금실을 상징하고 마을의 화합과 평화를 가져다 주는 길하고 상스러운  존재로 여겨왔습니다. 

그만큼 귀한 대접을 받았던 것이지요.

 

졸지에 짝을 잃은 굴참나무가 안쓰러웠습니다.

추측컨테 작업자들은 사방오리나무며, 아카시나무, 병든 소나무 등을 제거하라는 지침에 의거하여 베어냈을  것이란 생각입니다

 

떨어져나간, 강제로 뜯겨져 나간 흔적입니다.  

그리고 베어진채 동강나 방치된 아카시나무의 몸통들입니다.

 

내친김에 어떤 식으로 간벌을 했나  돌아 보았습니다.

숲 사이 길 주변이 특히 심했습니다.

 

간벌 (伐)  나무들이 적당한 간격유지하여 자라도록 불필요한 나무솎아 베어 <국어사전>

 

간벌에 대해 완전히 배격하지는  않지만,  황령산의 간벌은  눈과 가슴을 아프게 했습니다.

다시말해 사전답사를 통해, 지역의 숲 상태에 대한 판단이 종합적으로 검토된 다음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렇게 신중하게 이루어 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 산림의 생태계 기능과 가치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 때문인듯 합니다.  

 

 

도시림의 경우,  광릉수목원이나 국립공원의 잣대로 숲을 판단해서는 곤란합니다.

따라서 사방오리나무며 아카시나무가 많다고 해서 함부로 베어내어서는 숲을 망치는 일입니다.

효용가치가 없는 나무, 언제든 베어내어도 문제가 없는 잡목이란 인식 때문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쓸어진 나무들은 말도 못합니다. 왜 내가 죽어야하지 ?  

 

 

그루터기들이 '이건 아니다' 라고 항변합니다.

 

한마디로 황령산에서 시방 벌어지고 있는 간벌은  

간벌의  목적인  나무의 간격을 인위적으로 조절함으로써 수목의 성장을 빠르게 돕기(?) 위해 행해지는 처방치고는  

돌팔이 의사가  멀쩡한 사람한테 '병' 있다고  함부로 칼질하고 약을 먹이는 것에 다름아니다 라고 봅니다.

 

 

며칠내 베어져 나뒹굴 나무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씁쓸한 하산입니다.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간벌인지 되묻습니다.

 

 

노래출처: 다음 블로그 제주 사랑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