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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칼럼 기고

제주 올레의 성공과 행정의 역할

by 이성근 2013. 6. 17.

 

본시 사람은 걷지 않기 위해 이동수단을 발달시켜 왔다. 아이러니하게도 21세기 대한민국은 바야흐로 걷기의 왕국으로 진화 중이다. 그 계기는 제주의 올레길과 지리산 둘레길이 열었다. 그 중에서도 올레길의 등장은 가장 주목되는 현상이며 제주도의 얼굴 자체를 바꾸고 있다. 그 여파는 전국적이다. 이른바 명품길 조성에 대한 각 지자체의 노력과 경쟁이 뜨겁다. 허나 길을 낸다고 모두 올레길처럼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이 아니다. 올레가 대접받는 이유에 대해 벤치마킹을 제대로 해야 한다. 벤치마킹은 운영 프로세스에 대한 철학과 기본이 얼마나 충실한가에 따라 결과를 달리한다.

일테면 강원도가 정선아리랑을 두고 밀양아리랑을 부른다면 번지수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처럼 각 지자체들이 추구하는 명품길은 가장 지역적이고 자기다운 모습을 담아낼 때 빛난다. 하물며 자연환경과 사람살이의 터가 다르고, 시스템이 다른데도 불구하고 마냥 올레 따라잡기를 한다면 애시당초 잘못 설정된 컨셉이다.

숙성되지 못한 길은 순간 반짝임이 있을 뿐이다. 올레가 주목받는 길이 되기까지에는 나름의 원칙이 있었고, 누군가의 헌신이 있었다. 그리고 그에 동조한 수많은 사람들의 동참이 있었다. 한편 올레의 성공에는 서귀포시라는 행정단위와의 만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민관 협치의 시대에 행정과 민간의 역할이 명료했다. 해당 단체장이 치적 쌓기나 성과주의에 욕심을 부리지 않고 더 큰 그림을 보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다시 말해 관이 주도하기보다 오히려 지원하고 도와주는 방식을 택함으로써 민간전문성의 재고와 서귀포의 이미지를 더 한층 승격시킬 수 있었다. 나아가 지역경제에 까지 크나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물론 올레 성공의 이면에는 아직은 손때가 덜 묻은 제주의 수려한 자연이 일조했다. 한편으론 올레는 제주도가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카드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제주도는 산업시설이 거의 없는 큰 섬이다. 바다와 감귤농장 외에 순전히 관광으로 전도민이 먹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땅이다. 그 관광의 도시 제주가 좀은 시들하다 싶을 때 올레가 등장하면서 기존의 제주 관광패턴을 바꾸어 버렸다. 어떤 교통수단을 이용하더라도 원하는 곳의 올레길로 찾아 갈 수 있는 곳 또한 제주도이다. 전도민이 올레 홍보대사다. 한마디로 시스템화 되어 있다. 하지만 후발 주자가 그 명성을 따라 잡기에는 무리가 많다. 그럴수록 천천히 제대로 기본을 쌓아야 하는데, 길 바람은 그런 기본과 여유를 도외시 한 채 열매부터 따먹으려는 기이한 모양새를 양산했다. 관심을 가지고 천착하지 않으면 예산만 낭비하고 모두를 피곤하게 할 뿐이다.

마지막으로 행정은 전담조직을 두어 전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멀리 보지 않으면 임시방편적 길 사업이 될 수밖에 없다. 전담조직의 여부는 길 관련사업의 명암을 가른다. 부산 역시 마찬가지다. 산과 강, 바다와 호수에 이르는 21개의 빼어난 갈맷길이 16개 구·군에 하나씩 존재하지만 광역행정인 시 본청을 제외하고, 기초단체장이 특별히 신경 쓰는 곳이 아닌 구·군의 경우 전담 공무원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기반시설이며 그 길이 내장한 무궁한 기회요인은 생각 밖의 일이다. 어찌하여 길은 열었어도 지속적 관리가 부재한 것이다.

 

어쨌든 올레도 처음부터 명성을 달지 않았다. ‘걸어보니 참 좋더라’가 바다 건너 뭍으로 물결처럼 번져왔다. 이 같은 상황에서 본다면 제주의 올레는 더 많이 조명을 받고 성공해야 하며 국제적 명성을 가진 길로 자리 잡아야 한다. 이를 기회 삼아 올레 말고 다른 길 역시 기본을 충실히 하고 종합적인 계획을 바탕으로 차근차근 준비한다면 제주 올레를 통해 도보여행의 묘미를 알게 된 많은 사람들이 준비된 곳을 찾을 것이다. 지역의 길은 지역에서 가꾸고 만들어가기 나름이다. (11.3  강원도민일보)

 

음악출처: 다음 블로그 홍이 아뜨리에

When A Child Is Born - Paul Mauri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