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불평등기원론/사회계약론 장 자크 루소 저 | 동서문화사 | 2007년
Jean-Jacques Rousseau: 18세기 프랑스의 사상가이자 소설가. 1712년 '유럽의 가장 작은 공화국’ 제네바의 시계 수리공 집안에서 태어난 루소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 손에서 자랐다. 10살이 되던 해 아버지가 칼부림 사건으로 도피한 후부터는 외숙부 밑에서 자랐다. 그는 외사촌과 함께 한 목사의 집에서 라틴어를 비롯한 여러 교육을 받았으나 엄격하고 인위적인 교육 방법은 그에게 맞지 않았다. 그 후 법원 서기의 필사 수습 사환, 동판 조각사의 견습공 등으로 일했으나 독서열과 상상력을 펼칠 수 없는 나날은 그에게 크나큰 짐이 되었다.
열여섯에 제네바를 떠난 루소는 바랑 부인을 만나게 된다. 바랑 남작부인과 루소의 관계는 마치 모자간의 사랑과 이성간의 사랑이 기묘하게 뒤섞인 것 같았다고 한다. 바랑 부인은 그에게 지적 성장의 기회를 제공했고, 루소는 이때 철학과 문학에 대한 소양을 풍부히 갖추게 된다. 불우한 소년기를 보낸 그는 스물여덟에 가정교사로 일하는 등 사회 활동을 하다가 파리에 정착하게 되었다.
1742년 파리로 나온 그는 디드로가 공동 편집을 진행하던『백과전서』의 여러 항목을 집필하면서 본격적인 저술가로 활동하게 된다. 선되었고 이것이 『학문과 예술론』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어 사상가로서의 출발점에 서게 되었다. 그 후 저작에만 몰두하여 『불평등기원론』, 『정치 경제론』, 『신 엘로이즈』등 많은 저술활동을 하였다. 마흔이 되던 1762년 4월에 자유 실현에 관한『사회계약론』을, 5월에 인간 교육에 관한 사상을 담은『에밀』을 출간했으나, 파리 의회는『에밀』을 압수하는 한편 루소를 체포하라고 명령한다. 그는 스위스로 도피했지만 제네바 당국도『사회계약론』과『에밀』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리고 책을 불태우는 등 적대 분위기는 고조되었다.
1768년에는 1745년 이래 지내온 테레즈 르바쇠르와 정식으로 이혼한 루소는 피해망상에 괴로워하기도 하였다. 1770년 파리로 돌아와 자기 변호를 위한 작품 『루소, 장 자크를 재판하다』를 쓰기도 했다. 주변의 박해로 여러 곳을 떠돌던 그는 지라르댕 후작의 배려로 그의 영지에서 집필 활동을 하다가 집필 중이던 『고독한 산책가의 몽상』을 완성하지 못하고 1788년 생을 마쳤다.
그는 이성 중심의 사상을 허물고 낭만주의의 탄생에 공헌했으며, 자유가 보편적인 동경의 대상이라고 역설하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찬미했다. 그의 개혁 사상은 당시 예술에 혁신을 가져왔고 사람들의 생활 방식과 교육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프랑스 혁명에서 그의 자유민권사상은 혁명지도자들의 사상적 지주가 되었으며 19세기 프랑스 낭만주의 문학의 선구자 역할을 하였다. 주요 저작으로『학예론』,『인간 불평등 기원론』,『신 엘로이즈』,『음악 사전』,『고백록』,『고독한 산책자의 몽상』등이 있다
들어가는 말
제네바 공화국에 바치는 글
머리말
인간 사이의 불평등의 기원과 근거들에 대한 논문
제1부
제2부
해제 -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으나 도처에서 불평등에 시달리고 있다
1. 루소의 삶
2. 통념에 대한 도전, <학예론>과 <인간 불평등 기원론>
3. 인류의 역사에 대한 가설적 추론
4. 원초적 자연 상태의 인간
5. 인간 불평등의 원시적 기원들
6. 불행한 문명을 치유할 방법은?
주
더 읽어야 할 자료들
옮긴이에 대하여
목차
루소
차례
인간불평등기원론
주네브 공화국에 바친다
서문
본론
제1부
제2부
부록
볼테르가 루소에게 보내는 편지·루소가 볼테르에게 보내는 편지/필로폴리스의 편지·루소가 필로폴리스에게 보내는 편지
사회계약론
머리말
제1편
제1장 제편의 주제
제2장 첫번째 사회에 대하여
제3장 가장 강한 자의 권리에 대하여
제4장 노예 상태에 대하여
제5장 항상 처음 맺은 약속으로 돌아가야 한다
제6장 사회 개약에 대하여
제7장 주권자에 대하여
제8장 사회 상태에 대하여
제9장 토지 지배권에 대하여
제2편
제1장 주권은 양도할 수 없다
제2장 주권은 분할할 수 없다
제3장 일반 의지는 오류를 범할 수 있는가
제4장 주권의 한계에 대하여
제5장 삶과 죽음의 권리에 대하여
제6장 법에 대하여
제7장 입법자에 대하여
제8장 인민에 대하여(Ⅰ)
제9장 인민에 대하여(Ⅱ)
제10장 인민에 대하여(Ⅲ)
제11장 입법의 갖가지 체계에 대하여
제12장 법의 분류
제3편
제1장 정부 일반에 대하여
제2장 여러 정부의 형태를 만드는 원인에 대하여
제3장 정부의 분류
제4장 민주 정치에 대하여
제5장 귀족 정치에 대하여
제6장 군주 정치에 대하여
제7장 혼합 정부에 대하여
제8장 모든 통치 형태는 모든 국가에 적합한 것이 아니다
제9장 좋은 정부의 특징에 대하여
제10장 정부의 폐단과 타락 경향에 대하여
제11장 정치체의 멸망에 대하여
제12장 주권은 어떻게 유지되는가
제13장 주권은 어떻게 유지되는가(이어서)
제14장 주권은 어떻게 유지되는가(이어서)
제15장 대의원 또는 대표자
제16장 정부의 설립은 계약이 아니다
제17장 정부의 설립에 대하여
제18장 정부의 월권을 막는 방법
제4편
제1장 일반 의지는 파괴될 수 없다
제2장 투표에 대하여
제3장 선거에 대하여
제4장 로마 민회에 대하여
제5장 호민관에 대하여
제6장 독재에 대하여
제7장 감찰관에 대하여
제8장 시민의 종교에 대하여
제9장 결론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첫 번째 산책
두 번째 산책
세 번째 산책
네 번째 산책
다섯 번째 산책
여섯 번째 산책
일곱 번째 산책
여덟 번째 산책
아홉 번째 산책
열 번째 산책
루소의 생애 사상 저작
루소의 생애
방랑시대·자아형성기·파리시대/저작생활·도피시대·만년의 루소
루소의 사상
루소의 시대·시대와 사상·루소와 그의 영향·루소의 사상
루소의 저작
인간의 불평등은 어떻게 생겨나는가―《인간불평등기원론》
자연인의 형성―《에밀》
이상국가―《사회계약론》
고독에서 시작된 자기 탐구의 길―《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영원한 정치 사상의 걸작
“인간들 사이 불평등의 기원은 무엇이며, 불평등은 자연법에 의해 허용되는가”(1753년 프랑스 디종 아카데미 학술논문 현상공모)라는 주제에 대한 답변으로, 프랑스의 정치철학자 장 자크 루소가 쓴 《인간 불평등 기원론》은 문명의 진보가 부와 권력, 그리고 사회적 특권의 인위적인 불평등을 초래함으로써 어떻게 인간의 본원적 행복과 자유를 타락시켰는가를 증명하고, 이를 바로잡기 위한 법과 제도 또한 이러한 불평등을 영속화할 뿐이라고 주장한, 18세기의 가장 혁명적인 저작 중 하나다.
이 저작은 “사유재산제도가 인간들 사이에 불평등을 초래했으며, 기존의 법과 정치제도는 모두 그 사유재산을 보호하도록 만들어진 것이기에 변혁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논리를 전개함으로써 지나치게 급진적인 데다 절대왕정을 턱밑에서 비판”하고 있어, 루소의 주저인 《사회계약론》의 싹을 품고 있을 뿐 아니라, 가장 영향력 있는 ‘투쟁서’가 되었다.
“현재 인간들 사이에 만연해 있는 불평등은 루소보다 더 나은 후원자를 발견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그는 어디서나 용감한 철학자로서, 아무리 널리 용인되고 있는 편견이라고 해도 그 어떤 편견도 따르지 않고 진리를 향해 똑바로 나아가며, 한 걸음 떼어놓을 때마다 전혀 개의치 않고 진리를 위해 거짓 진리들을 희생시킨다.” - 고트홀트 에프라임 에싱
인류학, 인간학, 그리고 정치사상사로서 《인간 불평등 기원론》
루소는 인간 불평등의 기원을 규명하기 위해, 인류의 선역사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루소가 보기에 ‘타락’ 이전의 낙원에서의 인간, 즉 원시적인 자연 상태의 인간(‘미개인’)은 선악과 자기 보존의 불안 의식을 알게 되면서 문명의 상태에 들어서게 된다. 그리하여, ‘타자’를 의식하고 ‘타자’와 함께하는 삶에 종속된다. 또한, 타자와의 비교와 소유욕이 결합함으로써, ‘평등’이 사라지고 ‘소유’와 ‘노동’이 도입되었으며, ‘예속’과 ‘비참’이 증가하게 되었다. 루소는 자연 상태의 종말과 소유 관념의 형성, 그로 인한 지속적인 인류의 파멸에 안타까워한다. 토머스 홉스의 말처럼 인류 사회는 이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장으로 변화했으며,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강자와 약자 간의 불평등은 갈수록 심화되어 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러한 불균형을 바로잡도록 제정된 법과 정치제도가 가진 자와 강자들을 위해 불평등을 영속화하는 데에 쓰인다.
“나는 불평등의 기원과 진전, 정치적인 사회의 확립과 그 폐해를, 인간의 본성에서 연역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오로지 이성의 빛에 따라 (...)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 당연히 불평등은 자연 상태에서는 거의 없으나 우리의 능력의 발달과 (...) 소유권과 법의 제정에 의해 항구적이 되고 합법화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본문 132쪽)
루소에 따르면, 인간은 천성적으로는 선하지만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즉 사회의 문화적/문명적 관계 속에서 필연적으로 타락할 수밖에 없으며, 순수하고 행복했던 ‘미개인의 신화적인 이미지’를 되찾지 못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약자가 강자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는 방안은 없는 것인가? 이에 루소는 《에밀》과 《사회계약론》에서 답변들을 제시한다. 《에밀》에서 루소는 자연 상태의 인간이 지녔던 선, 자유, 천복을 되찾기 위한 교육론을, 《사회계약론》에서는 “자신의 힘과 자유를 타인의 유용을 위해 완전히 양도해야 한다”는 사회계약에 바탕을 둔 이상적인 사회를 제안하는 것이다.
당시 사회 조건과 문명화 과정에 대한 영향력 있는 비판서 《인간 불평등 기원론》은 루소 정치사상의 핵심적인 저작 《사회계약론》의 단초를 마련하는 동시에 1789년 자유, 평등, 박애의 기치를 내건 프랑스 대혁명의 중요한 사상적 기반이 되었다
인간의 불평등은 어떻게 생겨나는가 《인간불평등기원론》
인간은 평등한가.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게 태어났다. 그러나 사회라는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부와 학벌, 권력 따위가 개인을 평가하는 잣대가 되고 있다. 프랑스 혁명의 아버지라 불리는 장 자크 루소는 이미 200여 년 전에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평등과 불평등이라는 문제를 원점에서부터 재검토했다. 그는 원시적 자연 상태의 인간의 삶을 가장 이상적인 삶으로 제시한다. 이는 당시 학문과 예술을 바탕으로 진보적 역사관을 추종했던 계몽주의자들의 사상에 정면으로 대립하는 것이었다.
《인간불평등기원론》에서 루소는 처음으로 정치적 악과 부정을 명확히 논했다. 루소는 인간의 역사를 진보가 아니라 타락과 퇴보의 과정으로 보았다. 원시적 자연 상태에서 평등하고 행복한 삶을 누렸던 인간이 어떻게 해서 불평등하게 되었는지를 가족, 사회, 국가, 계급의 형성 과정을 통해 면밀히 분석한다. 아울러 불평등의 근원이 무엇이며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이 무엇인지 성찰한다.
이상국가를 위하여 《사회계약론》
루소는 국가가 존재하기 이전의 상태, 다시 말해 자연 상태에서는 모든 인간이 자유롭고 평등했다고 보았다. 그런데 사회가 형성되면서 불평등과 부자유가 생겨난 것이다. 루소는 이런 폐해를 없애기 위해선 인민이 사회계약을 맺어 인민주권의 정치체계를 형성하여,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를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 이 사회에서의 자유와 평등이란 무엇일까. 여기에서 말하는 자유란 무엇이든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사회구성원은 일반의지에 자신의 권력을 양도하고 있으므로, 자유란 곧 계약된 자유다. 따라서 일반의지에는 개인 자신도 포함되어 있다. 그 자유의 본질은 자발적으로 행동하는 도덕적인 자유라 볼 수 있다. 개인이 일반의지와 맺는 사회계약은 사실 자기 계약이다. 일반의지에 양도한 것은 자기 자신이 공평하게 돌려받는다. 이것이 사회적 평등이다. 이처럼 사회계약을 통해 우리는 자유와 평등을 얻을 수 있다. 그래서 그는 모든 인민의 합의를 통해 형성되는 민주적 공화제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루소의 《사회계약론》은 그의 생존 중에는 널리 읽히지 않았지만, 그가 죽은 뒤 혁명가들의 복음서가 되어 민주주의 정신을 발달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루소의 자유, 평등, 박애사상은 프랑스혁명 인권선언으로 계승되었으며 1793년, 로베스피에르와 생 쥐스트가 국민공회 헌법을 만들 때 바탕이 되었던 것도 이 《사회계약론》이었다.
체념과 격정과의 교감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은 이상한 흥분 속에 닥친 체념과 또다시 타오르는 격정과의 교감으로 탄생했다. 이 책의 집필 동기는 제1장에 상세히 적혀 있다. 사회에서 완전히 따돌림을 당하고 지상에서 오로지 혼자라고 느꼈던 루소는 《참회록》에서 시작한 자기 탐구의 길을 더 멀리 가려고 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연대적인 서술과 일정한 구상에 근거한 기술은 그만 두고, 매일매일 산책하면서 저절로 떠오르는 개념을 그대로 기록함으로써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게 된다. 루소 자신이 말하듯이,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은 세계문학의 기념비적 작품 《참회록》의 부록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폭풍 뒤의 고요함을 생각나게 하는 내면적인 작품으로, 본문과는 별개의 흥미롭고도 아름다운 부록이라고 할 수 있다. 낭만파 이후 현대에 이르는 많은 시인, 작가에게 영감을 주고 프랑스 산문 역사상 가장 드문 아름다운 문장으로 알려져 있다.
1765년 가을 머물렀던 생피에르 섬의 추억과 함께 자연 관조 속에 경험한 깊은 황홀함을 전하고 있는 제5장은 문학적 사상적으로 더욱 흥미롭다. 또 몽마르트 언덕과 브로뉴 숲 주변 혹은 세느 강에서의 어린아이나 소녀들, 노병과의 잠깐의 우연한 만남, 기뻐서 눈물을 흘리는 노인 루소의 모습이 떠오르는 제9장 등도 독자에게 잊기 어려운 감명을 남긴다. 인간에 대한 막을 수 없는 애착, 운명에 의한 어쩔 수 없는 절망적 고독감, 이 모순되는 감정이 루소의 자전적 작품의 기초이다.
정규 교육을 한 번도 받지 않고 오직 독학으로 지식을 흡수하여 위대한 사상과 문학의 독창적 업적을 이룩한 루소, 그의 영향은 오늘날까지 철학·교육·문학·정치·종교의 광범위한 문제에 미치고 있다. 우리는 파란이 겹치고 모순에 찬 루소라는 인간의 솔직성을 통하여 그의 사상과 문학을 다시 음미해야 할 것이다
책속으로
만일 자연이 우리를 운명적으로 건강하도록 정했다면, 나는 감히 사색은 자연에 위배되는 상태이며 명상하는 인간은 타락한 동물이라고 주저 없이 확실하게 말하고자 한다. -56쪽- luiya
나는 문명의 삶과 자연의 삶 중에서 어느 것이 그것을 향유하는 사람들에게 더욱 견딜 수 없는 것이 되는지를 묻고 있다. 주위를 둘러보면 자기 삶을 한탄하는 사람들밖에 찾아볼 수 없으며, 몇몇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 범위 안에서 자기 삶을 포기하려고까지 한다. -77쪽- luiya
어떤 땅에 울타리를 두르고 “이 땅은 내 것이다”라고 말하리라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이 그런 말을 믿을 만큼 단순하다는 사실을 발견한 최초의 인간이 문명사회의 실질적인 창시자이다. 말뚝을 뽑아버리고 토지의 경계로 파놓은 도랑을 메우면서 동류의 인간들을 향해 “저런 사기꾼의 말을 듣지 마시오. 과일은 모두의 소유이고 땅은 그 누구의 소유도 아니라는 사실을 잊는다면 당신들은 파멸할 것이오”라고 외친 사람이 있었다면, 그는 얼마나 많은 죄악과 싸움과 살인, 얼마나 많은 비참과 공포에서 인류를 구제해주었을 것인가? -95쪽- luiya
이전에는 자유롭고 독립적이었던 인간이 이제는 무수한 새로운 욕구로 인해, 이를테면 자연 전체에, 특히 자기 동족에게 복종하게 되어, 결국 그는 그 동족의 주인이면서도 어떤 의미에서는 노예가 되었다. -111쪽- luiya
미개인은 자기 자신 속에서 살고 있는데, 사회인은 언제나 자기 밖에 존재하며 타인의 의견 속에서만 살아간다. -139쪽- luiya
문명인은 항상 활동하면서 땀을 흘리고 불안해하며 더욱더 힘든일을 찾아 끊임없이 번민한다. 그는 죽을때까지 일하고 때때로 살아있는 상태에 놓이기 위해 죽음으로 내달리며, 불멸을 찾아 생을 포기하기도 한다.-138쪽- 꾸냥
미개인은 자기 자신속에 살고 있는데, 사회인은 언제나 자기 밖에 존재하며 타인의 의견 속에서만 살아간다. 말하자면 자기가 존재하고 있다는 느낌을 타인의 판단에 의거하고 있는 것이다.-139쪽- 꾸냥
나는 감히 사색은 자연에 위배되는 상태이며 명상하는 인간은 타락한 동물이라고 주저없이 확실하게 말하고자 한다.-56쪽- 꾸냥
어린애가 노인에게 명령하고 바보가 현명한 사람을 이끌며 대다수의 사람이 굶주리고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최소한의 것마저 갖추지 못하는 판국인데 대다수의 한줌의 사람들에게서는 사치품이 넘쳐난다는 것은 명백히 자연의 법칙에 위배되기 때문이다.-140쪽- 꾸냥
인간에게 이성보다 앞선 두 개의 원리가 있다. 하나는 우리의 안락과 자기 보존에 대해 스스로 큰 관심을 갖는다는 원리이며, 다른 하나는 모든 감성적 존재, 주로 우리 동포가 죽거나 고통을 당하는 것을 보면 자연스럽게 혐오감을 느낀다는 원리이다. -
인간 불평등의 기원을 찾아서 [인문견문록] 장 자크 루소의 <인간 불평등 기원론>
소득격차가 더욱 확대되었다는 통계청 뉴스로 온 나라가 들끓었다. 진보를 표방하는 정치세력이 정권을 잡았는데, 오히려 불평등이 더 커지다니…. 불평등해소에 관심도 없던 보수세력이 앞장 서 문재인 정부 탓을 한다. 불평등한 한국사회를 개혁하자는 목소리는 크다. 하지만 '불평등' 그 자체를 사유하는 이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기득권들은 돈, 권력만이 아니라 지식으로도 자신들을 보호한다. 경제적 불평등이 경제성장을 촉발한다는 '유인(incentive)이론'이 대표적이다. 자본주의가 발달해 빈부격차가 고착화된 21세기도 이럴진대, 하물며 18세기 중엽은 어떠했을지 짐작이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시대에나 용기 있는 소수의 지식인들이 있었다. 그들 중심에 장 자크 루소가 있었다.
루소가 <인간 불평등 기원론>(주경복 옮김, 책세상 펴냄)을 쓴 계기는 디종 아카데미의 논문 현상 공모전이었다. 디종 아카데미가 낸 주제는 '인간들 사이 불평등의 기원은 무엇이며, 불평등은 자연법에 의해 정당화될 수 있는가'였다. '자연상태의 인간은 선했지만 문명의 발전과 함께 타락했다'는 과격한 주장의 논문을 디종 아카데미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수상에 실패하자 루소는 제네바공화국에 대한 헌사를 논문에 덧붙여 1755년 암스테르담에서 출간한다.
<인간 불평등 기원론>은 불평등의 기원을 탐색하기 위해 태곳적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루소는 왜 불평등한 상황을 해명하기 위해 태고의 시대로 되돌아가는 모험을 하는 것일까? 루소가 머나먼 과거로 돌아가서 확인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제도와 사회로 어지럽혀지지 않은 인간이 원래 품고 있던 본성을 찾는 것이 루소의 목표였다. 왜냐하면 현재 인간의 본성이라고 생각되는 많은 것들이 사회적 관계가 만들어진 후 사후적으로 형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인은 경쟁·시기·폭력·사치와 같은 정념을 인간의 본성이라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루소에 의하면 그렇지 않다. 이런 정념들을 한 꺼풀씩 벗겨 가면 결국 이런 정념을 유도한 사회적 관계가 나온다. 이런 사회적 관계 이전으로 돌아가서야 진정한 인간의 본성과 맞닥뜨리게 된다. 태고의 역사로 올라가서 발견한 인간의 모습을 루소는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나는 거기서 어떤 동물보다도 약하고 민첩하지 못하지만 결국 그 어떤 동물보다도 유리하게 조직된 한 동물을 떠올리게 된다. 그는 떡갈나무 아래에서 배불리 먹고 시냇물을 찾아 목을 축이며, 자기에게 먹을거리를 제공해준 바로 그 나무 발치에서 잠자리를 발견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의 욕구는 충족될 수 있었다."
루소가 그리는 태곳적 원시인은 무척 목가적이다. 장자가 말하는 절대 자유 '소요유(逍遥游)'의 경지에 있는 존재인 듯도 하다. 루소의 이런 주장에 당장 '원시인의 삶이 얼마나 고달팠는데 무슨 황당한 소리냐?'라는 반대의 목소리가 나올 것 같다. 역사를 연구하려면 자료나 유물에 의존해야 한다. 루소는 독특한 방법을 취한다. 루소는 이렇게 적고 있다. "우리가 이 문제에 대해 추구할 수 있는 연구는 역사적인 진실이 아니라 다만 가설적이고 조건적인 추론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렇게 루소는 자신의 탐구를 가상적 추론이라고 적시한 후 글을 전개해 나간다.
'가상적 추론'이기에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토머스 홉스가 설정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역시 홉스만의 가상 상황 설정인 것이다. 20세기 정치철학계의 슈퍼스타 존 롤스는 '정의론'에서 '무지의 베일'이라는 개념을 제시하는데, 이 역시 가상이다. 가상임에도 그들의 주장은 한 시대를 흔들 정도의 파급력을 가졌다. 가상은 허구와 다르다. 가상은 주어진 조건을 고려할 때 가장 개연성 높은 상황을 추론하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것이다. 루소가 사용한 방법이 '가상적 추론'이었다. 또한 정승옥 강원대 명예교수는 논문 '루소에 있어서의 자연과 역사의 문제'에서 가상적 추론이 단순 상상이 아님을 밝힌다. 정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루소가 가상적 추론으로 보아달라고 부탁한 것은 세력이 막강하던 기독교로부터의 공격을 피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루소는 인간에게는 두 가지 종류의 불평등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하나는 자연적·신체적 불평등으로 선천적인 불평등이다. 다른 하나는 사회 안에서의 상호 간의 약속으로 성립하는 도덕적·정치적 불평등이다. 두 가지 불평등 중에 정치적 불평등만이 인간 자신이 만든 인위적인 산물이기에 진짜 불평등이라고 루소는 말한다. 이런 종류의 불평등은 자연상태의 인간에게는 없었다.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한 삶을 살아가는 미개인은 우리의 생각과 달리 행복하다. 루소는 미개인의 적은 연약함, 노화를 포함한 병뿐이었다고 주장하면서 병을 예로 든다. 현대인이 태곳적 인간보다 더 건강한가? 루소의 긴 항변을 인용해 본다.
"나는 의술을 정성 들여 연마하고 있는 지역보다 그것을 소홀히 다루고 있는 지역에서 인간의 평균수명이 짧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 확실한 견해가 있는가 묻고 싶다. 의술이 우리에게 제공할 수 있는 치료법보다 우리가 더 많은 병에 걸려 있다면 그것은 무엇 때문일까? 생활에서의 극심한 불평등, 어떤 사람에게는 지루한 여가가 주어지는가 하면 어떤 사람에게는 과중한 노동이 강요되는 것, (중략) 우리가 당하는 불행의 대부분이 우리 자신의 탓이며 따라서 우리가 자연이 명령한 소박하고 일정하며 고독한 생활양식을 간직했더라면 피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되는 고약한 증거들이다."
루소의 주장이 황당한가? 세계적 석학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이런 주장은 어떠한가? 그는 농경을 '인류 역사상 최악의 실수'라고 주장한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구석기 시대에 사람의 수는 더 적었어도 신석기 시대의 사람보다 신장이 평균 15센티미터 정도 더 컸고 뼈도 더 두꺼우며 골밀도 또한 높았다. 재레드는 생리학적으로 인류는 농경을 시작하면서 진화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퇴화했다고 본다. 그뿐만이 아니다. 인류학자 마샬 살린스도 오랜 현장 연구를 통해 수렵채취 경제에서 살던 초기 인류가 못 살았으리라는 것은 오해라고 말하고 있다. 사람이 늘어난 것과 삶의 질은 정확히 비례하지 않는다. '고난의 행군' 20년간 북한의 인구는 약 200만 명이 늘어났다. 북한이 살기 좋았던 것인가?
루소가 미개인의 건강함과 문명인의 비참함을 비교한 것 자체가 철학·사상적 도발이다. 루소는 왜 이렇게 인간의 본성에 관심이 많은 것일까? 이유는 단 하나, "불평등은 인간의 본성과 모순된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다. 불평등을 구체적 사례 하나하나에 개입해 개선하고자 하는 것이 루소의 목표가 아니다.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을 때 누군가 '그것은 인간의 본성과 맞지 않는다'라고 하면 논쟁은 끝난다. 루소가 의도하는 바는 이것이다. 루소의 작업이 300년 전이나 통할 이야기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다. 현시대의 탁월한 사상가 가라타니 고진의 이론적 작업도 루소의 것과 거의 동일하다. 루소는 인간의 본성에 기대어 평등할 것을 주장하고 고진은 인간의 내면에 잠자고 있는 평등 본능인 '억압된 것의 회귀'에 기대어 평등을 말하고 있는 점이 다를 뿐이다.
태초의 인간은 '고립된 인간'이었다. 이 시기 인간의 유일한 관심은 생존본능인 자기애였다. 이 시기를 거쳐 인간은 야만인의 단계로 들어선다. 낚싯줄을 만들어 고기를 낚고 활로 동물을 사냥한다. 관계에 대한 욕구도 커졌다. 일시적으로 자유로운 방식의 협동이 행해졌다. 야만인은 문명적 진화를 거듭해 미개인으로 진입한다. 돌도끼와 움집을 만들며 가부장적인 가족을 형성한다. 생존을 유지하기에 충분한 문명이었고 삶은 순탄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정신과 마음이 훈련됨에 따라 인류는 점차 순해지고 관계가 확대되고 유대가 강화되었다"라고 루소는 말한다.
도구는 삶을 풍요롭게 했고 인간 사이의 유대도 꽃피던 시기였다. 미개인 시대 전기의 모습이었다. 이때를 루소는 "원시상태의 무위와 우리 이기심의 극성스러운 활동 사이의 중간에 위치한 인간 기능 발달의 이 시기가 가장 행복하고 안정된 시기"라고 말한다. 태초의 고립된 인간이 살아가던 자연상태 이후 다시 좋았던 제2의 자연상태였다. 공동생활은 이루어지지만, 사람 사이의 위계질서가 엄격하진 않았던 이 시대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평화롭고 목가적인 미개인'을 말하는 루소의 주장에 강력히 반박하는 학자들도 있다. '원시전쟁' 저자 로렌스 H. 킬리는 현장에서 얻은 연구를 토대로 원시시대는 잔혹한 전쟁의 시대였다고 주장한다. 멀리 갈 것도 없이 현대에 남아 있는 원시 부족의 사례를 찾아보면 될 것이다. 뉴기니의 두굼 다니(Dugum Dani) 부족은 약 5개월 보름에 걸쳐 일곱 번의 전면전과 아홉 번의 습격을 감행한 것이 관찰되었다. 남아메리카의 야노마뫼 부족의 어느 마을은 15개월 동안 무려 스물다섯 차례의 습격을 받았다. 이들의 전쟁을 관찰한 후 그가 내린 결론은 전쟁은, 결국 자원 확보 때문이라는 것이다. 킬리만이 아니라 비슷한 주장을 하는 또 다른 학자도 있다. <고결한 야만인>(강주헌 옮김, 생각의힘 펴냄)을 쓴 나폴리언 섀그넌도 유사한 주장을 펼치고 있다.
미개사회는 평화롭지 않았다는 킬리와 섀그넌의 연구 때문에 루소의 이론은 폐기되어야 하는 것일까? 문제는 간단치 않다. 고봉만 충북대 교수의 논문 '레비스트로스의 루소 읽기'는 다른 이야기를 전한다. 인류학자들이 찾았다고 생각한 남미지역 밀림의 미개인들은 실제적인 미개인들이 아니었다. 고 교수는 논문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그 지역에 대한 관찰과 항공사진들을 통해 사람들은 예전에 개간되고 경작됐던 공간들을 숲이 차지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레비스트로스가 1950년대에 이야기했던 당시의 남비콰라 부족은 원시인들이 아니라 퇴화된 인간들이었던 것이다." 루소에 반박하는 주장들의 증거로 제시되는 많은 사례가 루소가 말한 시대 이후의 것이다. 평화로운 시대를 지나 폭력적인 시대의 사회의 유산을 보고 원시사회가 폭력적이라는 것은 정확하지 않은 판단이다.
갈등과 폭력은 도대체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인간은 고립된 자연인에서 출발해 야만시대, 미개인시대로 진입한다. 미개인시대 전기를 지나 후기에 들어서면서 인간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인 야금술과 농업을 발견한다. 생산성의 발달을 가져온 두 발명으로 인해 인간 사이의 평등한 관계는 결정적으로 변화되었다. 루소는 야금술과 농업이 몰고 온 변화를 이렇게 말한다. "인간이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 한 순간부터 그리고 혼자서 두 사람 몫의 양식을 차지하는 것이 유리함을 알아차리게 되자마자 평등은 사라지고 소유가 도입되고 노동이 필요하게 되었다." 반복되는 토지의 점유는 곧 토지의 소유권으로 변한다. 또한 야금술은 인간사회에서 분업을 더욱 심화시킨다. 경작 대신 철을 만드는 대장장이의 몫까지 밀을 생산해야 했다.
농업이 도입되면서 불평등이 증가한다. 루소는 이런 상태를 세밀히 묘사하고 있다. "힘이 센 사람은 더 많은 일을 했고 손재주가 있는 사람은 자기의 노동을 더 교묘히 이용했으며 재간이 있는 사람은 노동을 절감시키는 방법을 더 많이 고안해냈다. 어떤 사람은 많이 벌었고 어떤 사람은 간신히 먹고살았다. 이리하여 자연적 불평등이 새로운 원인의 결합에 따른 불평등과 더불어 조금씩 전개되었다."
소유권의 도입으로 인간의 이기심이 깨어나기 시작한다. 루소는 소유권의 등장에 대해 혹독히 비난한다. "경쟁과 대항이 다른 한편으로는 이해의 대립이 있게 되는데 이 모두가 남을 희생시켜 자기의 이익을 도모하려는 숨겨진 욕망일 뿐이다. 이 모든 악은 소유가 낳은 최초의 결과이며 이제 자라나기 시작한 불평등과는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는 동반자이다." 소유권의 등장으로 인류는 드디어 갈등과 폭력의 악순환에 빠져들게 된다.
인간의 본성을 악한 것으로 보고 무질서가 초래할 위험에 대해 경고한 홉스는 사회발달단계에서 바로 이 지점을 보았던 것이다. 여기서는 루소 역시 홉스와 같은 의견을 갖고 있다. 루소는 이런 사회를 "부득이 먹고살 것을 부자에게서 얻거나 빼앗아야만 했다. 이렇게 되자 사람들 각자의 다양한 성격에 따라 지배와 굴종 또는 폭력과 약탈이 발생하기 시작했다"고 묘사한다. 루소는 홉스적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발생하는 사회가 원초적 공간이 아니라 잘못된 방향으로 많이 진행된 사회라고 홉스의 오류를 지적한다.
불평등에 이어 무질서가 뒤따라온다. "이렇게 해서 가장 강한 자 또는 가장 궁핍한 자가 그의 힘이나 욕구를 타인의 재산에 대한 일종의 권리-그들이 볼 때 소유의 권리와 동등한 권리-로 생각함에 따라 평등은 깨지고 뒤이어 가장 끔찍한 무질서가 초래되었다."
무질서가 일으키는 공포감조차 부자들은 이용했다. 무질서에 대한 두려움은 부자와 지배계급에 의해 증폭된다. "부자들은 절박한 필요에 따라 가장 교묘한 계획을 생각해냈다." 부자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하지만 민중에게는 불리한 제도를 도입하자고 백성들을 꼬드긴다. 불평등 사회에서 안전을 확보하지 못한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약자를 억압에서 보호하고 야심가를 제지하며 각자에게 소유를 보장해주기 위해 단결하자. 정의와 평화를 위해 단결하자. 우리의 힘을 하나의 최고 권력에 집중하자.' 이렇게 부자들에게 권력이 넘어간다. 인민은 권력의 노예가 된다.
자연상태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본래 모습과 본성을 제시함으로써 현재의 불평등을 완화시키려는 루소의 의도는 오해를 사기도 했다. 어떤 이들은 루소가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황당한 주장을 한 것으로 안다. 루소는 그의 글 어디에서도 원시적 자연상태로 돌아가자고 말한 적이 없다. 또한 과거의 인간성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도 보지 않았다. 루소의 본심에 대해 칸트는 "루소가 원한 것은, 인간이 다시 자연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현재 처한 단계에서 자연상태를 되돌아보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헤겔 연구의 대표적 연구자 나종석 연세대 교수는 "근대의 정치이론은 근본적으로 계약이론적"이라며 사회계약론의 창시자는 홉스라고 말한다. 그런데 또 다른 사회계약론자인 루소는 홉스적 인간이해는 그릇된 것이라며 딴지를 건다. 성악설과 무질서가 결합된 홉스의 생각은 결국 질서 유지를 위해 강력한 리바이어던만이 해결책이 된다. '본원적 인간'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구성되어야 할 인간 사회의 청사진을 그려내기가 어렵다. 사회계약론의 주창자인 두 사람은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에서는 확연히 갈린다.
루소는 홉스에 대해 예리하게 비판한다. "그(홉스)는 미개인의 자기보존을 위한 노력 속에, 그 자체가 사회의 산물이며 법률 제정을 필요하게 만든 수많은 정념을 만족시키고 싶다는 욕구를 까닭 없이 넣었기 때문에 오히려 그 반대가 되는 말을 하고 있다." 루소가 지적하는 홉스의 오류는 사람들을 갈등으로 몰아넣는 과도한 욕망은 자연적 욕구가 아니라 사회가 구성된 후 새롭게 증폭된 욕망이라는 것이다. 루소는 홉스가 말하는 인간의 '강렬한' 욕망은 미개인의 욕구가 아니라 근대인의 욕망을 투영한 것에 지나지 않은 것이라 본다. 욕망이 강렬하기에 갈등도 처절해진다. 욕망이 아닌 욕구가 되면 갈등은 낮은 수위로 완화된다.
필자의 개인적인 경험을 토로하자면, 욕망은 분명히 한 사회의 성격을 그대로 반영한다. 젊은 시절 뉴질랜드와 한국을 오가면서 살았는데 그때 무척 특이한 경험을 했다. 뉴질랜드에 살다 한국에 돌아오는 즉시 정념들이 꿈틀대며 활동하기 시작했다. 뉴질랜드로 가면 정념은 다시 잠잠해졌다. 필자 몸 안의 정념은 같건만, 필자가 느끼는 강도는 확실히 달랐다. 사회에 따라 정념을 증폭시키기도 하고, 누그러뜨리기도 한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루소가 정확했던 것이다.
루소의 주장은 매력적이다. 지금 비록 이렇게 살지만 원래의 우리는 다른 모습이었다. 솔깃해지고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울림이 있다. 루소적 영향은 2011년 출간되어 학계에 작지 않은 파장을 일으킨 김유동 경상대 교수의 <충적세문명>(길 펴냄)까지 연결된다. 지난 1만 년 역사를 천착한 보기 드문 역저이지만, 산업사회의 도래를 문명적 퇴보로 평가하면서 김 교수는 루소와 마찬가지로 고대로 향한다. 학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책의 기저에 루소주의가 스며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루소는 지금도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그의 '천재다움'에 참으로 감탄했다. 루소의 책에는 에리히 프롬의 사회적 성격, 르네 지라르의 모방 욕망, 애담 스미스의 연민, 지배계급의 거짓 선전인 이데올로기, 언어 발달 기원, 정치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기제로서의 종교 등 후대에 중요하게 된 많은 개념들이 맹아적 형태로 제시되고 있다. 특히 '제네바공화국에 바치는 헌사'에 나오는 지정학적 통찰은 해퍼드 매킨더도 울고 갈 수준이다.
루소의 주장에 대해 이런 의문이 들기도 한다. 루소 본인은 역사의 진행이 '우연'이라고 주장하지만 책 속에서 역사를 움직이는 근원적 힘을 이미 밝히고 있다. 루소는 "인간은 안락의 추구가 인간행동의 유일한 동력임을 경험으로 배웠다"고 적고 있다. 인간의 '안락 추구'가 가장 중요한 역사의 추동력인 것이다. 역사의 전개는 결국 선택압이 작용한 결과다. 대부분의 사회가 원시시대로부터 출발해 비슷한 단계에 도달했다면 이 역시 '안락'이 역사의 최종 심급에서 선택압으로 작용한 덕분은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안락 추구'를 가장 중요시하는 인간이 노력한 결과, 인간의 '안락'과는 가장 거리가 먼 사회를 만들게 되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전제와 결과가 전도되는 지점이다. 루소를 읽으면서 이 점이 매우 아쉬웠다.
자연상태를 동경한 루소의 <인간 불평등 기원론>을 한가한 지식인의 몽상으로 치부할 사람도 많을 것이다. 사회계약론까지 포함한 루소로부터 비(非)마르크스적 혁명의 전망을 읽어내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필자로서는 '루소는 몽상이기에는 너무나 정치(精緻)하고, 혁명적 설계이기에는 너무나 몽상적이다'라고 말하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소는 18세기가 허용할 수 있는 마지막 경계까지 자신의 사고를 밀고 나갔다. 역사의 동인은 '안락'이지만, 루소의 동인은 인간에 대한 '연민'이었다. 책의 마지막 문장은 루소가 이 책을 왜 썼는지, 루소가 어째서 위험스러운 인물이 되었는지 잘 보여준다. 책은 이렇게 끝난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굶주리고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최소한의 것마저 갖추지 못하는 판국인데 한줌의 사람들에게서는 사치품이 넘쳐난다는 것은 명백히 자연의 법칙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김창훈 민족미래연구소 연구실장 18. 9.8 프레시안
지주의 나라]③‘헬조선’ 만든 미친 집값, 혼인·출산율도 낮춰
ㆍ불평등의 기원 ‘땅’
서울 서초구에 사는 초등생 ㄱ군(10)은 영어·수학 학원도 다니지만 틈틈이 ‘소프트웨어(SW) 코딩’을 배워두고 있다. 강남의 학원 가운데는 수백만원짜리 해외 코딩캠프 상품도 운영한다. 어지간한 수도권 도시에서는 코딩 학원조차 보기 어려운데 서울 학생들은 미래 사회에 대비해 한발 앞서나가려 한다. 단지 유명 외국어고나 과학고, 자립형 사립고를 나와 내로라하는 대학 학벌을 따는 차원을 넘어서려는 것이다. 이런 학벌 계층화를 향한 정지작업은 적어도 초·중교부터 착착 진행된다.
이를 가능케 하는 조건은 단지 부모의 월급이 아니다. 대개는 강남을 비롯한 핵심지역에 위치한 거주지와 연관돼 있다. 바로 땅, 집 문제다. 현대판 신분사회를 굳히는 작용기제의 바탕에 부동산이 자리 잡고 있다.
고전 <인간불평등 기원론>(1755년)을 쓴 계몽사상가 장 자크 루소(1712~1778)는 일찍이 빈 땅에 울타리를 치면서 ‘소유’ 개념이 불거지고 불평등이 커졌다고 설파했다. 여기엔 ‘땅은 누군가의 전유물이 돼선 안된다’는 철학이 깔려 있다. 현대 자본주의 세상에 땅, 건물 소유 자체를 악으로 치부하거나 막을 순 없다. 다만 루소가 지적했듯 토지가 태생적으로 지닌 공개념을 재해석하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무엇보다 땅은 유한하기 때문이다. 인구 대비 비좁은 한국 사회라면 더 그렇다.
이른바 ‘헬조선’의 근저에도 일자리 문제와 함께 땅값, 집값 부담이 깔려있다. 결혼기피, 저출산 현상이 심화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지난해 말 ‘결혼·출산 행태 변화와 저출산 대책의 패러다임 전환’ 보고서에서 주택매매 가격과 전셋값이 오르면 혼인율과 출산율이 낮아진다고 분석했다. 지역 주택매매 가격과 주택매매 가격 대비 전세가 비율은 조혼인율(인구 1000명당 혼인비)과 합계출산율에 음(-)의 영향을 미쳤다. 특히 전셋값 상승이 합계출산율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주거환경이 신혼부부의 출산행태에 미치는 영향을 봤더니, 주거비가 부담되거나 주택 규모가 작으면 자녀 유무와 관계없이 추가 출산을 연기하지만, 자가 가구일 때는 추가 출산을 미루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자가인 경우 현재 자녀 수와 계획 자녀 수의 평균이 각각 1.20명, 1.86명으로 비자가에 비해 각각 0.17명, 0.06명 많았다. 국토연구원은 최근 국내 1인 가구 평균 주거 사용 면적은 48.6㎡로 영국(72.1㎡)의 67%, 미국(141.3㎡)의 35% 수준이라고 밝혔다. 특히 만 29세 이하 청년층 1인 가구 주거면적은 평균 30.4㎡이다. 9평을 겨우 넘는 공간이다. 사실상 통계에서 빠진 옥탑방과 고시원 같은 ‘비주택’에 사는 39만가구를 더하면 1인 가구 주거면적은 더 줄어든다.
또 청년층 1인 가구의 소득 대비 주택임대료 비율(RIR)은 2014년 기준 31%다. 전체 가구 평균(20.3%)보다 10.7%포인트 높은데, 100만원 벌어 31만원은 집세로 내야 한다. 평균 거주기간은 0.77년으로 9개월 남짓 살고 옮겨다녔다는 뜻이다.
한쪽은 수억원대 부동산을 물려받아 ‘땅 짚고 헤엄치기 식’으로 수십억~수백억원대 불로소득을 챙기는 반면 다른 쪽은 땅 한 뼘 없어서 임대료 내기도 빠듯한 게 ‘지주의 나라’로 전락해가는 이 땅의 현실이다. 김성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부동산감시팀장은 “시간이 흐를수록 양쪽 자산 격차는 더 벌어지고, 이는 다시 학벌, 추가 투자 기회 차이로 이어져 간극을 더욱 키운다”고 말했다. 이는 물려받은 부자 ‘그들만의 리그’를 굳혀 아랫물과 윗물을 섞는 건전한 순환구조를 막고 사회 자체를 고인 물로 썩게 할 위험을 키운다.
경향신문과 경실련이 집값, 땅값 격차와 특히 제대로, 충분히 과세되지 않는 불로소득에 주목하는 이유는 바로 이 부조리한 구조에 있다. 보유세를 늘릴지, 공급 제도를 손질해 거품 양산부터 막을지 차기 대선을 앞두고 고민이 깊어지는 시점이다/경향 17.3.30
인간 불평등 기원론
“신분과 재산의 극심한 불평등, 정념과 재능의 차이, 무익한 기술과 해로운 기술, 하찮은 학문에서 이성과 행복과 미덕에 위배되는 무수한 편견이 생겨날 것이다. 함께 모인 사람들을 갈라놓아 약하게 만들 수 있다면, 겉으로는 조화를 이루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분열의 씨가 뿌려질 수 있다면, 또한 권리나 이해의 대립을 통해 상호 간에 불신과 증오를 불어넣어 여러 계급을 억압하는 권력을 강화시킬 수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를 조장하는 통치자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 무질서와 변혁 속에서 전제군주제는 그 추악한 머리를 서서히 쳐들어, 국가의 어느 부문에서건 선량하고 건전한 것이 눈에 띄면 닥치는 대로 삼켜버려 마침내는 법률과 국민까지 짓밟고 국가의 폐허 위에 우뚝 서게 될 것이다. 이 최후의 변화가 일어나기 전의 시대는 혼란과 재난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마침내 전제군주제라는 괴물이 모든 것을 삼켜버려 인민은 이미 통치자도 법률도 갖지 못하게 되고 오직 폭군만을 갖게 된다. 이 순간부터는 풍습이나 미덕이 문제되지 않는다. ‘정직한 것에 대해 아무런 믿음도 가지고 있지 않은’ 전제군주제가 지배하는 곳에서는 전제군주 외의 다른 어떤 지배자도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전제군주제가 입을 열자마자 고려해야 할 올바름이나 의무는 사라지고 극도로 맹목적인 복종만이 노예들에게 남겨진 유일한 미덕이 된다.
이것이 바로 불평등의 마지막 도달점이며, 우리가 순환을 마감하면서 이르게 되는 출발점이자 종점이다.”
△ 위의 문장은 18세기에 쓰여졌다. 21세기 초입에 그 문장을 읽으면서 깨닫게 되는 것은 불평등의 ‘기원’이 끝없이 상기되지 않는다면, 그것의 ‘마지막 도달점’은 더 당겨진다는 점이다. 오늘날 지구상의 어느 국가도 스스로의 체제를 ‘전제군주제’라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힘 있고 부유한 국가일수록 전제군주제를 점점 닮아가고 있다. ‘민주공화국’이라고 쓰고 주권은 ‘통치자’에게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위헌적 형용모순이다.
그런데 이런 ‘지도자 숭배’가 민주국가에서 횡행하고 있다. 복종을 혐오하는 자유인들만이 민주주의뿐만 아니라 국가도 바로잡을 수 있다. / 이명원 | 문학평론가·경희대 교수/ 경향 13.10.24
인간불평등기원론
우리나라 가구의 40%와 서울시민의 절반은 자기집이 없다. 집값이 오를수록 이들의 계층적 지위는 떨어진다. 한국인 가구 자산의 핵심은 부동산이고, 부동산 값을 좌우하는 것은 아파트다. 한 부동산정보 업체 조사에, 지난 1년 사이 신축 아파트를 제외한 전국 아파트의 총액은 21.8% 올랐다. 오른 가격의 상당 부분은 전월세 인상으로 전가된다.
부동산 소유자 사이의 차이도 심각하다. 서울의 아파트 가구수는 전국의 6분의 1 남짓하지만, 가격으로는 40%가 넘는다. 또 서울 인구의 15%가 사는 강남 세 구의 아파트 가격이 서울 전체의 40%를 차지한다. 행정자치부가 지난해 말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집계한 자료를 보면, 국민의 0.3% 가량인 상위 5만 가구가 민간 소유 전국 땅의 22%를 갖고 있다. 가격으로는 전체의 15.5%(196조원)다. 3%인 50만 가구는 민유지 면적의 59.3%, 가격의 43.5%(549조원)를 차지한다. 상위 3%와 나머지 97%의 몫이 비슷한 구조다.
지구촌의 자산 격차는 이보다 더 심하다. 상위 1% 가구가 가진 자산은 전체의 39.9%에 이른다. 5%는 70.6%, 10%가 되면 85.1%로 늘어난다. 66억명의 세계 인구 가운데 90%인 59억4천만명의 자산을 다 합쳐봐야 상위 6억6천만명의 6분의 1에 불과하다. 특히 하위 50%인 33억명의 자산은 기껏 전체의 1%다. 최근 유엔대학 세계경제개발연구소가 처음으로 계산한 ‘세계 가구 부 분배’ 결과다.(2000년 기준) 그나마 우리나라가 고소득·고자산국에 속한 것을 위안으로 삼아야 할까.
불평등은 지난 10~20년 동안 나라별로도, 전지구적 규모로도 심각해지고 있다. 일본의 경영전문가 오마에 겐이치는 지금의 일본을 ‘엠(M)자 형 사회’로 표현한다. 가로축을 연간 가구 수입, 세로축을 가구수로 해서 그래프를 그리면 600만엔(4800만원)을 기준으로 좌우가 확연하게 갈라지는 구조가 드러난다. 왼쪽 봉우리에 국민의 80% 정도가 몰려 있는 중하류층 중심의 엠자다. 미국도 다르지 않다. 미국인의 90% 이상은 연 수입 4만달러(3800만원) 이하의 월급쟁이나 시간제 근무자라고 한다. 괜찮은 연봉의 중간 관리직이 사라진 모래시계형 일자리 구조가 정착한 것이다. 체감 불황에서 벗어나지 못한 우리나라에서 지난 3분기에 월소득 500만원이 넘는 도시 가구가 지난해보다 1.84%포인트 늘어난 14.56%를 기록한 것도 모래시계 현상의 하나다.
프랑스의 장 자크 루소는 18세기 중반에 ‘인간 불평등 기원론’을 썼다. 그는 이 논문을 ‘인간 사이 불평등의 기원은 무엇이며, 불평등은 자연법에 의해 정당화되는가’라는 주제의 현상 공모에 응모했으나 뽑히지 못했다. 주최자인 디종 아카데미는 이성이 득세하던 계몽의 시대에, 불평등 문제 역시 합리적으로 풀 수 있을 거라는 낙관을 가졌을 법하다. 하지만 루소가 생각한 불평등 원인은 문명 그 자체였고, 그것을 정당화할 자연법은 없었다. 이는 불평등을 해결하려면 당시 사회를 근본적으로 재편해야 함을 내포했다. 한 세대 뒤에 일어난 프랑스 혁명의 정신은 그 연장선에 있었다.
갈수록 심해지는 우리 시대의 불평등 또한 문명 자체, 범위를 좁히면 잘못된 체제와 제도에 주된 원인이 있다. 구조화한 불평등은 언젠가 폭발하기 마련이다. 우리는 모두 그 이전에 ‘지금의 체제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하는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시장경제의 미래를 믿는 사람일수록 체제의 취약성을 바로잡는 일에 더 고심해야 함은 물론이다. /한겨레 김지석 논설위원/06.12.12
Golden Autumn / Fariborz Lachini
음악출처: 다음 블로그 詩 하늘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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