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자정을 막 앞 두고 귀가 했다. 1년의 절반 이상을 자정 넘어 또는 자정 무렵 귀가했다. 어처구니 없다. 어쩌디 이 지경이 되었는지..귀가 후 씻고 시계을 보니 2016년이 시작되었다. 베란다 너머 어디선가 불꽃을 쏘아 올리는지 연신 포 소리 들렸다. 참 허겁지급 왔다. 차분히 한해를 뒤돌아보고 정라하면서 새로운 해를 맞이해야 함에도 그런 여유는 없었다. 고작 안방에 있던 막내 아들과 아내에게 새해 축하한다 말 건내고 이틀간의 밤샘의 끝을 지워다. 그렇지만 연휴는 없다.
새해 아침 베란다 너머 펼쳐진 장면이다. 아파트 옆 단독주택 옹벽이 무너졌고 그걸 공사한다 했다. 참허술하게 쌓았다. 블록을 쌓고는 미장처리 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물도 스며들고 답압이 지속되면서 벽에 균열이 생겼다. 하마 오래전이었다. 벽의 한면이 불룩하니 투;어 나왔고 그게 급기야 무너져 내린 것이다. 무너진 흙더미 속에 해당화와 제주 조릿개, 원추리 등이 자라고 있었다. 해당화는 진우도에서 씨를 받아와서 심었던 것이 싹이 나고 줄기가 퍼진 것이다. 건물주는 화분값을 보상하겠다고 했는데, 화분이 문제가 아니라 식물 그 자체였다. 그리고 씨앗에서 꽃을 피우기까지 걸렸던 시간과 거기 식물들과 나와의 교감이었다. 어처구니 없다.
막내 여동생이 이제 돌을 맞이하는 조카의 사진에 덧붙여 새해 인사를 건내왔고, 나는 아래 굴참나무 어린싹을 찍어 보내 주었다. 지난해 집뒤 통일동산에서 주워 왔던 도토리 몇 개를 화분에 심었는데 그 중 세개의 도토리에서 지난 12월 어느날 이렇게 싹을 올렸다
어머니의 호출이 있어 본가로 갔다. 차원 삼촌이 생대구를 사와서 탕를 만들거니 같이 밥먹자는 부름이었다. 집에 도착하니 부모님이 옻닭을 끓였다며 한 그릇 주셨다.
형제들도 다 모였다.
잠시 짬을 내어 숲으로 가 보았다.
골목에 선 오동나무로 가서 씨앗을 챙겼다. 오동꽃이 피는 날이면 봄이 한참 왔을 때다. 2016년의 봄은 어떤 모습일까
곳곳에 고양이들이 양지바른 곳에 볕을 쬐고 있었다. 털 가진 동물들도 겨울은 추운 가 보다
숲을 보기 위해 아버지 텃밭을 지나간다. 가는 길 성암사의 대밭도 지난다. 그 대밭 안에 벚나무 한그루 가까스로 버티고 있다. 어디에서나 뿌리내린다고 능사는 아니다.
이 계절에 푸른 빛의 식물은 소나무들과 사철나무 그리고 인동덩굴을 비롯하여 양치류 몇 종류 뿐이다. 그리고 로제트로 겨울을 나는 다년생 풀들
아버지 텃밭옆을 흐르는 연동천(가)과 그 가장자리 사면에 자리 잡은 팔손이들
이 겨울 초록 머금은 곳은 주로 무덤가다. 상대적으로 일조량이 많은 것이다 보니 초본류와 사초과며 벼과 식물들이 어린 싹들을 피워 푸른빛이 감돈다. 무덤 자리로서는 좋다. 사철 햇빛 내려 앉아 뎊혀주니
늘 그렇듯이 이쯤에서 뒤돌아 본다 멀리 영도 봉래산을 배경으로 섬처럼 앉아 있는 황령산의 잘려나간 줄기산들
여름에는 다가서기 부담스럽던 칡넝쿨 울 가까이 가 보았다.
칡의 생존전략을 다시금 생각한다.
머귀나무가 이 산자락에 몇 그루 있다. 그중 제일 큰 나무다. 꽃 피는 시기를 맞추어 와보고자 했지만 번번이 놓쳤다. 그리고 집 뒤 통일동산에도 한 주가 있지만 키가 커서 늘 올려다 보기만 하고 왔다. 올해는 제대로 만나보리라
대신 까만 열매만 몇 개 담아 왔다.
숲 휘젓고 다니기 제일 수월한 때가 겨울이다.
뎅강뎅강 잘라낸 아카시의 누운 잔해도 이 숲의 자원이다. 뿌리 뽑혀 넘어져 버림 받기는 해도 맹아들이 다시 자라고 있다. 그 생명력 질기다.
바스락그리는 소리 가만히 보니 장끼와 까투리가 나처럼 숲을 배회하고 있었다. 봄이오면 저들 몸에서 난 꺼병이들이 카투리를 따라 일열종대로 이 숲 바닥을 뒤질 것이다.
비록 한해가 오가는 줄 모르고 살았지만 이렇듯 홀로 숲을 배회하는 맛과 그 안온한 느낌속에 내 안에 있던 스트레스가 사라진다.
마치 숲 속에 들어 앉아 조용히 일광욕을 즐기고 있는 무덤속의 주인처럼
용설란을 누군가 식재했다. 생뚱맞다. 이 낯설음이란
귀가길 만난 상수리 노거수, 몇 해 전 막내를 데리고 이 숲에 왔을 때 저 나무에 올려주고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노거수를 떠 올리지 않았다. 관심사가 아니었기에
이제는 좀 크다 싶으면 무조건 흉고부터 재어 본다. 마침 2m 줄자가 있어 가능했다. 보는 각도에 따라 나무의 크기가 달라보인다. 근원부 둘레 3.5,m
이 숲에 나뒹구는 나무 대부분이 사람에 의해 잘려 졌다 잡목이라 취급했기 때문이다. 과연 잡목일까
이 상수리나무는 어떤 환난을 격었을까
40년생 아카시, 병든 흔적이 없는데 잘려져 넘어졌고 베어진 시기가 얼마되지 않는다. 그 옆에 센달나무로 추정되는 어린 상록나무가 있다. 전에 보이지 않던 종이다. 둘러보니 몇 개체가 주변에 있었다. 처음엔 얼핏 후박이나 가시나무류로 보았는데 잎의 폭과 길이며 거치 등이 아니었다. 잎은 호생하고 피침혀이며 잎꼬리가 길었다. 잎맥은 다소 흐리고 어디서 온 것일까. 이 숲에 올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주 등산로와 만나는 초입에 굴참나무 두 그루 서 있다. 추석 때나 아버지 생신을 전후한 시점에 여기 오면 늘 씨알 굵은 꿀밤을 한 줌씩 얻을 수 있었다.
나무들의 하늘을 본다. 수많은 잔가지들이 하늘 향해 팔이며 손가락을 펼치고 있다. 그 많던 여름 잎 들과 결별하고 새 잎들로 채우는 중이다. .
벚나무의 맹아가 엄청나다.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혈기가 왕성하다고나 해야 할까 아님 위기의식의 발로일까. 맹아는 보통 비상수단인데 ... 상층부 까지의 신진대사가 잘 안되는 것일까
그 아래 팽나무 두 그루 보인다. 답압에 의해 드러난 뿌리가 가지의 넓이 만큼 넓다. 누군가 뿌리끝가 가지 끝이 직각으로 맞아 떨어진다고 했던 말이 떠 올랐다. 뿌리의 건강성이 나무의 수명을 좌우 한다. 물론 뿌리자체가 얕은 식물도 많다.
고양이들이 곳곳에 있다. 사람 발길 뜸한 양지에 볕을 쪼고 있는 저 고양이, 혹시 나 때문에 오던 걸음 멈추고 주저앉아 나 가길 기다리고있는 것은 아닌지
황령산에서 대연동 방향으로 산세가 흐르면서 남긴 갈미봉. 80년대 중반 어느 여름 저 봉에 올라 떡갈나무의 잎에다 지도교수에게 안부 편지를 썻던 적이 있다. 그분은 아직도 가끔씩 만나 술잔을 나눈다. 오랜 인연이다. 올해 스승의 날때 작은 선물 하나라도 준비해보리라. 늘 얻어먹기만 했다. 그 시절에도 그랬고... 그나저나 이 골짝의 물들은 이제 여름 우기가 아니면 보기 힘들어 졌다. 이렇게까지 메마르진 않았다. 누군가의 말마따나 황령산터널 공사 이후 대수층의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 다시 회복할 길은 달리 없다. 숲이 깊어지는 날 떠났던 이 골짝의 가재며 민물고기들 포함한 여러 생명들이 귀환활 것이다.
그 즈음 본가에서 전화가 왔다. 저녁먹자고
이날 삼촌이 가져 온 생대구로 아버지가 손질하여 만든 대구탕
덤으로 동태가 분배되었다. 삼촌은 아버지에게 설 차례비용과 용돈을 주고 갔다. 나도 아내 몰래 준비한 얼마간의 돈을 어머니께 드리고 왔다. 마침 세밑에 회의수당이 통장으로 입금되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사실 어머니 병원비가 만만치 않게 나와 적지않게 부담이 되었던 터다. 하지만 그에 비례하여 처가에도 준비해야 한다. 가능한 이 또한 아내 모르게 ...다 같은 부모 아니든가.
귀가하는 차내에서 아이들의 요청으로 밤바다 드라이브가 있었고 송도로 향했다. 가는 차안에서 큰놈이나 작은 놈 대놓고 돈이 최고란 이야기에 버럭 화를 내기도 하였지만 밤바다를 보며 지웠다. 어차피 건너야 할 다리라면 ... 느그럽지 못하고 한순간 좀스러운 아비가 되었다. 아이들이 물질적으로 부족함이 많은 성장이었지만 너무 대 놓고 물신주의에 빠짐을 경게하고 이른 다는 것이 짜증을 넘어 순간 화가 났던 것이다. 대관절 그러면 아버지는 헛 살았단 말이냐 자문해보지만 이 현실의 각박함과 풍요와 동떨어진 생활을 강요함에는 미안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간만에 큰아들과 아내의 모습을 담앗다. 저 어린 것이 벌써 성인이 되었고 조만간 군대를 갈 것이다. 올해는 어짜든 둥 많이 챙겨줄려고 다짐해 본다. 늘 생활의 압박을 감내하고 있는 아내에게도 마찮가지다.
지난해 적잖히 시간을 투여했던 영도와 흰여울마을 쪽을 보았다. 저 마을에 연차적으로 녹색을 입히겠다고 했는데 예산분배가 쉽지않을 듯하다, 주민들과 나누었던 약속을 지켜야 할 텐데 ... 한시가 급한 것은 추진실적 보고서의 작성이다. 발버둥 쳤지만 한해가 끝나는 시간까지도 완성하지 못했고 그 작업을 위해 새해 연후까지 반납해야 한다. 그렇다 어차피 건너야 할 다리라면 즐거운 마음으로 임하자.
진짜 귀가를 앞두고 아이들의 요청으로 밤 늦은 외식이 사무실 근처에서 있었다. 그래 문제될 일 없다. 그 뭐라고 기꺼이 한턱 쏘는 것이지...부족하지만 아비는 너희들의 삶에 등대가 되어주리라.
웃네
'사는 이야기 > 사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동해(凍害) 앞에서 (0) | 2016.01.23 |
---|---|
간만의 통일동산 산책 (0) | 2016.01.09 |
마음 언짢았던 크리스마스에 (0) | 2015.12.26 |
2015년 12월19일 흰여울에서 (0) | 2015.12.19 |
밴드 -행복한 가족 이야기를 보며 (0) | 2015.12.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