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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서평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

by 이성근 2024. 2. 18.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토머스 프랭크 지음·김병순 옮김, 갈라파고스, 2012

What’s The Matter With Kansas? (캔자스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가?).

부제- ‘보수주의자들은 어떻게 미국의 심장부를 장악했는가?

토마스 프랭크 (Frank, Thomas) 미국 정치분석가, 역사가, 저널리스트. 잡지The Baffler공동 창간자 겸 편집자. 문화와 이념의 역사가로서 미국 선거 정치와 선동, 대중 문화, 주류 저널리즘, 경제 등에서의 경향을 분석한다. 그의 집필 분야는 미국 정치에 있어서 문화 전쟁의 수사학과 영향, 미국내 정치와 문화 사이의 관계를 포함한다. 저서에 The People, No : A brief History of Anti-Populism(Metropolitain Books, New York, 2020), Listen, Liberal(2016), The Wrecking Crew: How Conservatives Rule(2008) 등이 있다.

목차

서문: 미국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

1부 대초원의 수수께끼

1장 두 개의 나라, 도대체 이해 못할 그들의 선택

2장 캔자스는 어쩌다 보수의 중심이 되었나?

3장 하느님과 돈을 동시에 섬기다

4장 두 명의 버넌, 자꾸만 오른쪽으로 가다

5장 공화당이 왜 민주당을 도왔을까?

 

2부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분노

6장 박해받고, 힘없고, 눈먼

7장 망할 놈의 러시아 이란 디스코

8장 행복한(?) 공화당의 포로들

9장 캔자스가 당신의 죄를 대속하다

10장 반지성주의의 물결

11장 엉뚱한 곳에 분노하는 사람들

 

에필로그: 세상의 정원에서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추천사: 왜 가난한 사람들은 자해선거를 하는가·장행훈(전 동아일보 편집국장)

인터뷰한 사람 /

책 소개

왜 가난한 사람이 부자 증세를 반대하고 기업인들의 이익을 늘리는 정책에 몰두하는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걸까?

애국심에 불타는 건장한 공장노동자들이 국가에 대한 충성의 맹세를 암송하면서 스스로 자기 목을 조른다. 가난한 소농들은 자신들을 땅에서 내쫓는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표를 던진다. 가정에 헌신적인 가장은 자기 아이들이 대학교육이나 적절한 의료혜택을 결코 받을 수 없는 일에 조심스레 동조한다. 중서부 도시의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생활방식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자기가 사는 지역을 몰락한 공업도시로 만들며 그들과 같은 사람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치명타를 날릴 정책들을 남발하는 후보자에게 압승을 안겨주며 갈채를 보낸다. 그곳이 바로 캔자스다.”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미국에서 노동자와 가난한 사람들, 사회적 약자와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한 정당은 민주당이다. 그러나 캔자스를 비롯한 낙후된 지역이 자신의 이익과 상관없는 부자들의 정당 공화당을 지지했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했는가?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는 이런 문제의식에서 시작하여 우파의 장기간에 걸쳐 진행되어온 정치조작에 초점을 맞춘다. 저자는 자신의 고향이기도 한 캔자스 주를 중심으로 정치가와 풀뿌리 운동가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하면서 그 이유를 하나하나 밝혀 나간다. 토마스 프랭크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어처구니없는 여러 풍경들을 면밀하게 파헤친다. 그리고 민중의 착란현상을 조장하는 보수 우파의 교묘하고 은밀한 집권 전략을 적나라하게 폭로한다. 이 책은 2004년 미 대선을 앞두고 발간되었는데, 당시 토마스 프랭크가 걱정스럽게 짐작했던 부시의 승리도 적중했다. 이 책은 발간된 후 장기간 뉴욕타임스베스트셀러였으며 지금까지 미국과 유럽에서 가장 효과적이고 획기적으로 선거를 대비하기 위해 가장 많이 읽히는 책이기도 하다.

1장 두 개의 나라, 도대체 이해 못할 그들의 선택에서 2000년 대선 결과로 나타난 공화당을 상징하는 빨간색, 민주당을 상징하는 파란색으로 분열된 두 개의 미국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이 두 개의 미국담론을 통해 공화당으로 상징되는 빨간색 미국의 특성이 어떻게 조작되었고 그것이 결국 어떻게 부시의 손을 들어주었는지를 이야기한다.2장 캔자스는 어쩌다 보수의 중심이 되었나?에서는 캔자스 지역의 정치적 성향의 변화를 다룬다. 본래 캔자스는 미국 내에서 가장 급진적이고 진보적인 지역이었다.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도시가 있었고 미국에서 가장 큰 좌파 운동이었던 민중주의가 전역을 휩쓴 곳이기도 하다. 이런 지역이 보수의 중심으로 돌변한 과정을 돌아봄으로써 보수화로 치닫는 미국 정치의 단면을 짚어준다.3장 하느님과 돈을 동시에 섬기다는 기독교적 가치가 강조되면서 현실의 경제적 문제가 은폐되는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보수 정치가와 자본가는 기독교적 가치를 역설하면서 당면한 현안에 빗겨가는 전략을 취하는데, 이것이 민중들에게 그대로 먹혀들여간다는 것이다. 결국 민중들은 자신들의 삶을 피폐하게 하는 규제 철폐와 민영화를 비롯한 여러 자유방임 정책에 속수무책이 되고 그로 인해 고통을 겪는다.4장 두 명의 버넌, 자꾸만 오른쪽으로 가다에서는 두 명의 버넌을 통해 캔자스의 지식인들이 어떠한 모습으로 우경화되었는지를 보여준다. 또 과거에는 자신들이 직면한 현안에 적극적으로 저항했지만, 이제는 친기업적으로 변해 기업의 편의를 온전하게 제공해주었고 막심한 피해를 입는 캔자스의 모습을 대비한다.5장 공화당이 왜 민주당을 도왔을까?에서는 캔자스의 공화당 내부에서 벌어진 복잡한 정치상황을 이야기한다. 캔자스 내 공화당은 공화당 안에서 진보계열이거나 중도계열이었는데, 격렬한 낙태 반대 운동을 기점으로 기독교 우파가 공화당의 강력한 세력으로 부상한다. 공화당 중도파가 기독교 우파의 거센 도전에 맞서다가 민주당 후보가 주지사에 당선되는 일까지 발생한다. 그렇지만 대부분 기업가들로 구성된 공화당 중도파는 기독교 우파의 적극적 활동특히 친기업적 정책의지지으로 인한 최대의 수혜자다. 그리고 이런 역설적 상황은 보편화되었다는 것이다.6장 박해받고, 힘없고, 눈먼에서는 보수 반동의 어떤 계급적 분노도 계급의식도 없는계급투쟁을 비판한다. 보수 반동 세력은 스스로 박해받는다는 주장을 끊임없이 심화시키는 문화전쟁을 수행한다. 앨라배마의 십계명 비석 사건 등을 비롯한 그들의 문화전쟁은 성공할 가능성은 적은데, 그들은 이기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보다 눈에 띄게, 시끄럽게, 심지어 현란하게 화를 낸다. 그것은 선거의 승리를 위한 행위일 뿐이다.7장 망할 놈의 러시아 이란 디스코는 저자 토마스 프랭크의 자기고백적 이야기다. 저자는 보수주의에 심취했던 청소년 시절을 보냈으며 대학까지 열성 공화당원이었다. 여기서는 자신이 경험한 보수 반동 시대에 대한 회상을 담았으며 자신이 어떻게 좌파가 되었는지를 이야기한다.8장 행복한(?) 공화당의 포로들에서 저자는 맹렬하게 활동하는 풀뿌리 우파들을 만난다. 팀 골바와 케이 오코너와 같은 열성 공화당원들의 적극적 활동은 결국 자신들의 이익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들의 행동으로 인해 세금이 줄고 규제가 철폐되고 골치 아픈 노동조합을 다루기 수월해지는 등 결과적으로 기업가가 주류를 이루는 공화당 중도파에게 유익을 준다는 점을 저자는 통렬하게 지적한다.9장 캔자스가 당신의 죄를 대속하다에서는 인종차별의 전통이 약했던 캔자스를 이야기한다. 캔자스의 인종적 관대함은 피 흘리며 대속하는 캔자스라는 신화적 이미지를 창출하기도 했다. 캔자스의 노예제 폐지운동은 교묘하게 낙태 반대 운동과 겹쳐지고 오늘날 낙태 반대의 전사들이 과거 노예제 폐지론자들의 역할을 그대로 수행한다는 식의 유추가 반복된다. 도저히 비교될 수 없는 상황이 유추되는 이런 현상도 문화전쟁의 한 단면이다.10장 반지성주의의 물결에서는 변종된 계급투쟁의 양상을 보여준다. 반지성주의는 보수 반동 세력을 거대하게 묶는 주제 중 하나로 우파의 문화전쟁에서 매우 강력하게 작동한다. 좌파와 관련된 전문지식에 대한 강한 의심에서 비롯되기도 하는 보수 반동의 반지성주의 전통은 역전된 계급투쟁의 양상으로 발전한다. 특히 진화론에 반대했던 문화전쟁은 지식인 세계에 대한 분노를 교묘하게 자극함으로써 민중들에게 사회계급에 대한 왜곡된 이해를 심어주고 그것을 강화하는 반지성주의의 훈련과정이기도 했다. 저자는 이런 활동의 내면을 보면 종교적이라기보다 선거에서 이기기 위한 정치적 목적이 더 크다는 점을 지적한다.11장 엉뚱한 곳에 분노하는 사람들에서 토마스 프랭크는 보수 우파를 진정으로 신앙심 깊은 보통 민중과 기회주의자로 나눈다. 보수 우파에게 순교는 애국심과 동일 선상으로 이어졌다는 점을 지적한다. 아울러 보수 우파 지도자들의 명백한 위선적 언행에 대한 일반 보수주의자들의 무관심은 보수대반동이 보여주는 놀라운 문화적 현상이라는 점을 비판한다.

책 내용

가난한 사람들의 선택, 미국은 붉게 물들었다

보통 생각할 때 노동자와 가난한 사람들, 사회적 약자와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한 정당은 민주당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상식이다. 정상적인 성인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내가 대초원의 서부 고지대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이 부시 대통령을 열렬히 지지했다고 한 친구에게 말했더니 그녀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여태껏 남들을 위해 일했던 사람들이 어떻게 공화당 후보를 찍을 수 있지?’라고 말했다. 어떻게 그 많은 사람이 하나같이 그런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단 말인가?”

2000년 대선에서 부시가 승리함으로써 미국은 공화당을 상징하는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미국에 몰아친 보수 반동의 광풍은 부시의 승리로 귀결되었는데, 저자 토마스 프랭크가 초점을 맞춘 것은 단순히 부시와 공화당의 승리가 아니라 당시 공화당에 승리를 안겨준 빨간색 미국이다. 빨간색 미국은 특히 가난한 주가 많은 내륙 지역으로 민주당을 지지한 해안의 파란 미국과 대비된다. 어떻게 가난한 지역의 사람들이 부자들에 유리한 정책을 펼치고 자신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공화당에 표를 던졌을까? 바로 이 지점이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의식이다

저자 토마스 프랭크는 이 문제를 풀어가기 위해 2000년 선거결과를 분석하지 않고 자신의 고향이자 빨간색 미국을 대표하는 캔자스로 들어가 지역 정치인, 풀뿌리 시민단체, 주민들을 만나 보수 반동의 근원을 하나씩 찾아간다. 캔자스는 본래 미국에서 가장 급진적이고 진보적인 지역이었다. 사회주의자가 시장이 되기도 했고, 미국에서 가장 활기찬 좌파운동인 민중주의 열기가 전역을 휩쓸었던 지역이다. 토마스 프랭크는 그런 지역이 지금 현재 급격하게 우경화되었다는 점을 세세하게 파헤쳐들어가는 것이다. 저자는 과거와 현재의 캔자스를 보여주는 자료와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미국이 당면한 보수대반동의 실체를 생생하게 드러내는데, 캔자스라는 특정 지역의 풍경들은 결국 미국 전체의 풍경을 고스란히 반영해준다. 이 책은 2004년 대선 이전에 출간되었는데, 토마스 프랭크는 이 책이 만들어지는 시점에서 조심스럽게 부시의 승리를 예측했고 그것은 그대로 적중되었다고 한다. 도대체 캔자스에서는 어떠한 일들이 벌어졌을까?

보수 반동의 문화전쟁, 본질을 빗겨간 고도의 물타기 전략

민중들을 착란 현상에 빠져들게 하다

보수 반동의 지도자들이 말로는 그리스도를 이야기할지 모르지만 행동은 기업을 위할 뿐이다. 가치는 유권자들에게 가장 중요한요소일 수 있지만 보수파가 선거에서 이기는 순간 전통적 가치들보다 돈이 더 중요해진다. 이것은 수십 년 동안 지속된 현상의 기본적 특징이다. 레이건은 자신을 전통 가치의 수호자라고 자처했지만 그가 정말로 주목한 것은 20세기의 규제 받지 않는 자본주의의 부활, 뉴딜정책의 폐기였다.’”

2000년 미국에서 보수대반동을 일으켰던 공화당의 주도 세력은 과거 전통적인 미국의 보수 중도파와 달리 네오콘이라 부르는 기독교 우파였다. 이들은 중도파와 자유주의 성향의 보수파조차 민주당의 하수인으로 매도할 정도로 극우적 성향을 띤다. 보수대반동은 이런 기독교 우파들의 문화전쟁을 바탕으로 격렬하게 진행되는데, 그들의 문화전쟁은 낙태와 동성애, 진화론, 총기 소지 문제와 같은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문화현상에 민중의 분노를 집중시킨다. 떠들썩한 그들의 주장 속에서 민중들의 삶과 지역의 피폐함이 경제구조와 그에 따른 계급문제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은폐하게 만든다. 가치를 내세우면서도 수많은 사람의 목을 조르는 규제 철폐와 노동 유연화를 비롯한 자유방임 정책에 대해서는 수수방관하는 것이다.

기독교 우파의 문화전쟁은 격렬하게 진행되지만 현실적으로 큰 효과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연방대법원에 십계명 비석을 세운다거나 학교에서 진화론을 가르치지 못하게 한다거나 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사실 여기에 그들이 주도하는 문화전쟁의 핵심이 담겨 있다. 그건 가치의 실현이라기보다 민중의 도덕적, 종교적 감정을 정치적 분노로 만들어 선거에서 자유주의 세력을 공격하는 용도로 활용된다. 문화전쟁으로 얻은 것은 단지 보수 우파의 정치적 승리일 뿐이며 그것은 부자들에게 정치적, 경제적 이득을 안겨줄 뿐이다.

캔자스의 문화전쟁에서 분수령을 이룬 것은 위치토에서 일어났던 낙태 반대 운동인 1991자비의 여름Summer of Mercy’이었다. 이 운동이 성공을 거두면서 캔자스는 급격하게 우경화되고 보수 반동의 기운이 맹렬하게 힘을 갖게 된다. 보수 반동의 문화전쟁은 미국 내에서 가장 민감한 문제인 낙태 문제에 집중되었음을 알 수 있다. 낙태 반대를 제기하면서 벌어지는 여러 헤프닝들은 광기를 동반하기도 하면서 시끌법썩하게 진행되며 기독교 우파의 인상을 강하게 남긴다.

이런 운동을 주도하는 세력들이 반드시 부자들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렇게 부유하지 않지만 자신들의 많은 것을 내놓고 자발적으로 활동하는 풀뿌리들이 많다. 이들의 적극적 활동은 결국 공화당의 승리로 귀결되지만 자신들이 비판했던 대부분 기업가인 공화당 중도파에게 실질적 이익을 안겨준다. 그리고 자신들에게는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정책들이 만들어지는 역설적 상황을 토마스 프랭크는 통렬하게 지적한다.

토마스 프랭크는 문화전쟁의 또 다른 양상으로 반지성주의를 거론한다. 보수 반동 세력을 거대하게 하나로 묶는 주제들 가운데 하나인 반지성주의는 사실 1930년대로 거슬러올라간다. 그것은 루스벨트 대통령 재임기에 지식인들이 뉴딜정책을 설계하고 사회보장제도를 입안하는 많은 연구서를 만들어낼 때 기업가들이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생겨난 측면이 있다. 보수주의자들의 반지성주의는 모든 개혁 노력을 인간이 자유시장의 또 다른 이름인 하느님이 부여한 불변의 질서를 억누르고 자기 멋대로 바꾸려는 강제적 행위에 불과하다는 논리를 펴기도 한다. 또 자신들이 신앙이 빈약하고 오만한 전문가 집단의 공격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반지성주의는 캔자스에서 밖으로 드러나는 수많은 불만들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계급투쟁의 변종이다. 즉 뒤집어진 계급투쟁을 수행하게 한다. 이것은 가난한 사람들이 전통적으로 지지해왔던 민주당이 부자들의 정당이고 오히려 공화당이 자신들을 위한 당이라는 착란 현상을 초래한다.

토마스 프랭크가 보수의 교묘한 집권전략을 파헤치다

우파는 장기간에 걸친 정치조작에 성공했고, 민주당은 실패했다

좌파들이 하는 일 없이 빈둥빈둥 놀며 자신들이 잘났다고 만족해하는 동안 우파는 운동을 조직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것을 알고 매우 부지런히 그 일에 몰두했다. 보수주의 운동문화의 거대하고 복잡한 구조를 주목하라.위치토의 코크 일가가 운영하는 것과 같은 재단들이 많이 있다. 그들의 돈은 최고 수준의 정치 투쟁에 흘러들어가고 자유시장 경제학을 가르치는 대학과 잡지, 그리고 버넌 L. 스미스와 같은 사상가들을 매수한다. 그리고 후버 연구소나 미국기업연구소 같은 싱크탱크들은 앤 쿨터나 디네시 드소우자 같은 우파 전문가 집단에게 자금을 지원하고 그들이 계속해서 책을 쓰고 언론과 한판 승부를 벌이는 데 필요한 것들을 제공한다. 또 그들을 지원하는 전문 로비스트 집단과 몇몇 잡지와 신문들, 그리고 출판사 한두 곳도 있다. 그리고 밑으로는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이웃들을 조직하고 심지어 보수 반동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자기 집까지 저당 잡히는 마크 기첸과 팀 골바, 케이 오코너와 같은 헌신적인 풀뿌리 조직가들도 있다.”

미국사회는 단시간에 지금처럼 보수화되지 않았다. 원래 뉴딜 정책 이후 미국에서 보수 우파의 입지는 좁아졌는데 대중의 지지를 잃고 언론의 비판 대상이 된 보수 우파가 다시 권력을 되찾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해왔기 때문이다. 뉴딜 이후 잃어버린 대중의 지지를 되찾기 위해 그들은 1960년대부터 막대한 돈을 쏟아붓고 치밀하게 계획을 짰다. 영향력 있는 언론매체를 장악하고 보수 기독교와 가치의 연합을 구축하는 데 적어도 한 세대의 시간을 보냈다. 공화당은 보수 교회의 가치에 편승해 기독교 신자를 공화당 유권자로 편입시키는 데 성공했다. 기독교 보수세력을 끌어들인 것은 보수의 큰 소득이었다. 최근 보수대반동 상황의 문화전쟁이 효과적으로 수행되어 구호만 난무한 가치의 문제가 전면으로 이슈화되고 현안이 되어야 할 보다 실질적인 경제 문제가 뒤로 처지게 되어 보수에게 승리를 안겨주는 선거결과가 발생했다. 2000년 대선의 승리는 실로 그들이 갈망했던 뉴딜의 완전한 폐기가 가까워지고, 장기간에 걸친 노력이 제대로 성과를 맺는 사건이었다.

토마스 프랭크는 이러한 보수 우파의 집요한 노력에 비해 민주당은 여러 면에서 안이했고 실책을 범했다는 점을 비판한다. 토마스 프랭크는 특히 1996년 중간선거 패배 이후 클린턴이 선택한 삼각화 전략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이 전략은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 기반인 노동자, 농민, 서민층을 버리고 일부 중도 성향의 보수파와 지식인들을 포섭하려고 했다. 삼각화 전략은 오히려 민주당이 스스로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자신들의 가장 든든한 지지층은 어디로 가야 할지 헤매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이 부자들에게 유리한 경제노선으로 돌아서고 자신들조차 경제 문제를 정치 의제화하지 못한 것은 크나큰 오류였다. 토마스 프랭크는 민주당이 비록 재집권에 성공했지만 그것은 미봉책에 지나지 않았으며 어리석은 결정이었다고 지적한다. 토마스 프랭크의 지적대로 민주당의 오판은 2000, 2004년 대선의 패배로 이어졌다.

캔자스와 빨간 미국, 한국의 정치를 돌아보게 한다

토마스 프랭크는 캔자스의 구석구석을 다니면서 어떻게 보수 우파가 민심을 장악해갔는지를 잘 그려냈다. 공화당의 기독교 우파는 갈 길 잃은 민중들의 분노를 문화 영역으로 돌리며 자신들이 바로 노동자, 농민을 위한 정당이라며 그들 나름의 새로운 이미지 창출에 성공하였고 선거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다. 토마스 프랭크는 보수 세력의 정치 조작 능력이 얼마나 탁월한지를 잘 보여주면서 동시에 민주당 선거전략의 실패를 잘 지적했다.

이 책은 우리나라의 2012411일 국회의원 총선거의 결과와 관련해서도 많은 점을 시사한다. 이번 총선거는 2008년 행정부와 의회를 모두 장악한 현 집권 여당인 보수의 경제 정책 실패와 각종 비리 때문에 야당의 승리를 점쳤다. 게다가 야당은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재야 시민운동 세력과 통합도 하고 일부 진보정당과 연대하여 후보 단일화도 이루어냈다. 그러나 결과는 야당의 참패였고 올 12월 대선에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

2012년 한국의 총선 지도는 2000년 미국의 대선지도처럼 붉게 변해버렸다. 토마스 프랭크가 분석한 미국적 상황과 온전한 비교가 가능할 수 없을 테지만 보수의 교묘하고 집요한 정치 조작술이라는 측면에서 여러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핵심적 현안은 뒤로 물러나고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지엽적 문제가 전면으로 부상하여 유권자들을 헷갈리게 한다거나, 삽시간에 당명까지 바꾸어 탈바꿈하는 보수의 놀라운 힘에서 동일한 메커니즘이 작용한다. 또 미국의 낙후된 지역에서 보수정당인 공화당에 더 많은 표를 던지듯 한국사회의 저소득층이 보수정당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는 점을 잘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저자의 탁월한 분석력 때문에 이 책은 출간된 후 지난 8년간 미국과 유럽에서 큰 선거가 있을 때마다 올바른 선거를 치르는 데 정치인과 언론이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지, 유권자는 어떻게 정당과 정치인을 평가해야 하는지 각성하는 데 참고서 역할을 해왔다. 토마스 프랭크는 정치란 결국 민심의 마음을 어떻게 얻는가가 관건이라는 점을 냉정하게 보여준 것이다. 아울러 이 책은 보수정당의 뛰어난 정치 조작술과 자기 계급적 이해와 상관없는 투표행위와 관련해서 우리의 정치적 현상을 분석하는 데 유용한 틀을 제시해준다.

민주주의 기관차 역할을 해야 할 선거가 +가치(종교)+언론의 복합 세력에 의해 조작되는 단계에 와 있다는 경종의 소리를 듣게 됐다. 민주주의라는 이름 아래 민주주의가 파괴될 위험을 맞고 있다는 경종이다. 그렇다면 1퍼센트의 지배자들이 99퍼센트 인간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는 마지막 정치제도인 민주주의를 위해 우리 모두가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 (315)

토마스 프랭크는 가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가치를 강조하는 +가치(종교)+언론복합체가 선거 때는 성경 말씀을 인용하지만, 선거만 끝나면 가면을 벗고 기업인으로 돌아가 그들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노동자와 서민의 이익을 돌보지 않는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충고한다. (316)

책속에서보통 생각할 때 노동자와 가난한 사람들, 사회적 약자와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한 정당은 민주당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상식이다. 정상적인 성인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내가 대초원의 서부 고지대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이 부시 대통령을 열렬히 지지했다고 한 친구에게 말했더니 그녀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여태껏 남들을 위해 일했던 사람들이 어떻게 공화당 후보를 찍을 수 있지?”라고 말했다. 어떻게 그 많은 사람이 하나같이 그런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단 말인가? P. 9

보수 반동의 지도자들이 말로는 그리스도를 이야기할지 모르지만 행동은 기업을 위할 뿐이다. 가치는 유권자들에게 가장 중요한요소일 수 있지만 보수파가 선거에서 이기는 순간 전통적 가치들보다 돈이 더 중요해진다. 이것은 수십 년 동안 지속된 현상의 기본적 특징이다. 레이건은 자신을 전통 가치의 수호자라고 자처했지만 그가 정말로 주목한 것은 20세기의 규제 받지 않는 자본주의의 부활, 뉴딜정책의 폐기였다.” P. 16

서문

오늘날 보수파들은 보수 반동의 가장 큰 수혜자가 부자들이라는 사실도 전혀 꺼리지 않는다. 보수 대반동의 지도자들은 경제 문제를 정치에 연계시키는 일을 철저히 무시한다. 이 운동의 기본 전제는 일반 대중이 경제보다 문화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가치다는 한 보수주의 학자(벤자민 와텐버그)가 쓴 제목이기도 하다. (15~16)

본문

민중주의자들은 공화당이 집권하든 민주당이 집권하든 주류 정치는 진짜 문제-기업 자본주의-로부터 국민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게 하는 가짜 전투를 하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52)

캔자스는 매우 비통하게도 나머지 우리 미국인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캔자스가 바로 미국이 추구하는 민족적 정기가 서린 곳이라면, 우리는 여기서 그러한 정기가 반동이라는 가장 원초적인 분노로 서서히 달아오른 뒤 완전히 못쓰게 되고 길을 잃었음을 알 수 있다. 캔자스가 가장 정상적인 미국의 모습이 무엇인지 그 본질을 보여주는 곳이라면 우리는 여기서 아직 정상으로 돌아오지 못한 광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P. 54

위험은 사회가 떠안고 이익은 개인이 가져간다. (56)

경제 논리가 언제나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단 하나의 요구조건은 값싼 노동력이다. (72)

가난은 주가를 올리고 임금을 내리게 한다. (76)

농업은 제멋대로 돌아가는 일반 시장에는 적합하지 않은 독특한 분야다. (86)

짐 룬(캔자스 주)은 부동산세가 가난한 사람들을 더 어렵게 한다는 거짓 이유를 구실로 부동산세를 폐지하자고 주장했다. 공화당의 부동산세 폐지 추진은 대개 불경기에 소농을 돕기 위한 정책으로 제시되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러한 세금 폐지의 최대 수혜자는 바로 부자들이었다. (97)

미국인들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대중을 선동해서 공격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이익만 주는 반란을 경험했다. 우리가 캔자스에서 본 것은 이런 수수게끼 같은 현상의 극단적인 모습이다. 오늘날도 엄청나게 많은 성난 노동자들이 오만한 자들을 심판하기 위해 거리에서 행진하고 있다. 그들은 특권층의 후손들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고 있다. 그들은 리우드에 사는 상류층들이 보내는 작은 호의를 비웃고 있다. 그들은 미션힐스의 대저택들 앞을 지나면서 조기를 게양한다. 그들은 백만장자들이 떠는 동안 자신들의 끔찍한 요구 사항을 부르짖는다. 하지만 그들이 외치는 구호는 결국 우리는 당신들의 세금을 깎아주기 위해 여기에 있다라는 말이다. P. 142

보수 우파와 그의 친구 노동자 계급이 서로 맥주를 마시면서 문화적 유대를 공고히 하는 동안 노동자 계급이 보수 우파에게서 받은 것은 경기침체뿐이다. (151)

문화전쟁으로서 보수 반동은 실패할 운명을 타고 났다. 그것의 목적은 이기는 것이 아니라 눈에 띄게, 시끄럽게, 심지어 현란하게 화를 내는 것이다. 분노는 보수 반동 문화의 가장 위대한 미학적 원칙이다. 분노는 면책특권의 감정이며 정의감과 저항의 결단력을 불러일으키는 신비스러운 순간이다. 보수주의자들은 대개 자신들이 최초로 분노하는 순간을 마치 신의 계시를 받아 개종을 결심한 때인 것처럼 말한다. (155)

보수주의자들의 이야기에는 경제와 관련된 내용이 철저하게 배제돼 있다는 사실을 사전에 인지해야 한다. 보수 반동의 정신세계에서 기업은 본디부터 당연히 존재하는 것이다. 보수 반동의 큰 목적이 문화적 계급투쟁을 조장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되새길 때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 (162~163)

보수 반동의 세계관은 경제를 뺀 옛날 좌파의 세계관과 다름없다. 옛날에는 추문을 폭로하는 좌파들이 자본주의의 잘못된 제도들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비난했지만, 오늘날 보수 반동 사상가들은 대본을 싹 바꿔서 자유주의를 비판한다. (165)

보수 반동 사상가들은 오늘날 매우 두드러진 정치적 분노를 유발하고 이러한 분노를 자연스럽게 다른 대상에게 전가하기 위한 정교한 논리체계를 개발했다. 그들은 경제를 계급 문제에서 분리함으로써 성난 블루칼라 미국인들이 공화당을 좋아하게 만드는 대안을 제시했다. (175)

보수주의 세계관이 보여주는 놀랄 만한 미학 그 자체에서 그 대답의 일부를 찾을 수 있겠다. 거기서는 모든 것이 다 잘 들어맞는다. 시장이라는 신이 사람들에게 개별적으로 많은 것을 주지 못할지는 모른다. 그렇다고 그것이 시장의 신성을 바꾸거나 보수주의의 명쾌한 통찰력에 흠을 내지는 않는다.P. 217~218

클린턴의 전략은 월스트리트에서 잘 먹혀들어갔는지 몰라도 마크기첸이나 전국에 있는 그와 같은 수백 명의 기독교 보수 조직 활동가들에게 이로운 결과를 낳았다. 기첸은 선거 쟁점에서 중요한 경제 문제들이 사라지면 민주당과 공화당을 구별하기 위해 남는 것은 사회적 문제뿐이라고 말했다. 그런 분위기에서 변변찮은 재산을 가진 사람들에게 민주당은 별로 매력이 없어 보이기 쉽다. 기첸은 ˝몇 년 전만 해도 공화당은 부자들의 정당 이고 민주당은 노동자를 대변한다고 생각했다˝ 고 쓴다. P. 222

민주당과 공화당이 모두 자유무역과 관련해서 한통속이 되자 이제 남는 문제는낙태와 총기 소유 문제였다. 물론 정부 자체에 대한 문제는 당연히 남아있었다. 글릭먼은 열렬한 낙태 찬성론자였고 살상용 무기의 소유를 제한하는 정부의 조치를 지지했다. 게다가 그는 국민들이 직업 정치가들을극도로 의심하게 만든 하원의 부도수표 추문에 연루되었다. 그는 이 세가지 문제 때문에 위치토에서 점증하는 보수 반동의 물결 속에 거꾸로처박히는 신세가 되었다. P. 223

에필로그

연설을 하면서 강조하는 것들은 분노를 야기하는 문화전쟁 사례들이다. 이것들은 지지자들을 결집하고 보수 반동 세력의 주목을 끊임없이 이끌어낸다. (281)

보수 반동은 하나의 사회체제로서 작동한다. 두 적수는 서로를 공격하면서 공생한다. 하나가 다른 하나를 조롱하면 조롱을 받은 다른 하나는 더 강력해진다. 이것은 세상의 모든 지배계급이 바라는 것이다. 지배계급은 점점 더 거세게 공격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틀림없이 그렇게 공격받을 것이다. 따라서 지배계급은 점점 더 강력해질 것이다. 아직 검증된바 없지만 오늘날 자본주의 문화가 하는 역할이 바로 이런 공생 관계를강화하는 일이다. 문화가 타락할수록 문화를 타락시킨 사람들이 점점 더부자가 되는데 어떻게 우리 문화가 점점 더 타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P. 298

옮긴이의 말

한때 미국 진보 세력의 산실이었던 캔자스가 이렇게 극우 지역으로 바뀐 것은 단순히 공화당 보수 우파의 치밀한 음모와 기만전술이 통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레이건과 아버지 부시로 이어지는 신자유주의 경제 물결로 피폐해진 미국 민중들의 삶이 클린턴 8년 집권 기간에도 크게 나아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305)

왜 가난한 사람이 부자 증세를 반대하고 사회복지 예산을 줄이고 기업인들의 이익을 늘리는 정책에 몰두하며 서민층 이익을 빼앗는 보수 정당을 앞장서서 지지하는 걸까? 어김없이 등장하는 해묵은 이념 논쟁, 세대 갈등과 성차별을 부추기는 막말 논란은 정작 중요한 정책 논쟁을 뒷전으로 내몰았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의제인 경제 정책에 대한 논의는 어느새 선거판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정권 편향적인 공영방송과 강력한 주요 보수 언론, 매우 정치적인 보수 기독교계가 힘을 모아 이런 분위기로 몰아가는 행태는 프랭크가 책에서 묘사한 미국 기독교 우파의 모습과 흡사하다. (306)

흔히 보수 세력 하면 돈과 권력이 있는 사람들이라고만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투철한 사명감으로 보수 이념을 전파하고 조직하며 선거에 참여하는 민중들이 있다는 점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이 물론 보수 정치 권력자들의 감언이설에 설득된 측면도 있지만 그들의 자발적 의지도 무시할 수 없다. 극우 성향 보수 우파와 기독교, 수구 언론이 결탁할 때 그리고 진보 세력이 경제 문제를 기반으로 하는 계급 문제를 도외시하고 정치적 이해득실을 따지느라 계산기만 두드릴 때, 민중들은 경제 상황이 악화될수록 점점 더 냉소적으로 되고 훨씬 더 보수적으로 바뀔 수 있다. (307)

서민층이 가난한 사람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는 부자 정당에게 투표하게 된 동기를 이해하려면 경제적 타산을 압도하는 가치가 존재하거나 그런 가치를 생각하게 하는 언론의 역할이 있었다고 봐야 한다. (311)

가난한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부자를 위해 투표하게 만든 것도 보수의 돈과 머리가 합작한 고도의 여론 조작술이다. 이제는 그것이 민주주의를 위협할 수준이다. 보수의 사기술은 나이를 먹지도 않는다. 오히려 더 정교해지고 강력해진다. 자본과 종교, 언론의 복합체가 눈에 보이지 않게 세계 여론을 조작하게 되면 민주주의는 그들의 손안에서 놀아나게 된다. (314)

왜 가난한 2030이 보수정당에 투표하는가?

서민 코스프레 정부와 정당, 서민의 탈을 쓴 늑대보수 경계해야

지난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부동산과 연관되어 증세정책을 고집한 것과 전통적으로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며 진보성향을 띄던 2030이 보수로 돌아선 것이 민주당의 대선 패배에 큰 빌미가 되었다. 국민의힘(이하 국힘)20대 선거를 치름에 있어서 민주당의 친서민적 부동산 정책과 차별성을 두며 양도세, 종부세, 취득세 등의 세금을 내리고 주식 양도세의 폐지를 공약했다. 이러한 기조는 대선 승리 후에도 지속되어 부자감세등과 같이 재산이 없는 서민적 정책보다는 부자들을 위한 정책을 펴 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20대 대선의 결과를 보면서, 이해하기 힘들었던 것이 있다. 그것은 2030의 표심에 대한 것이다. 다수의 2030의 경우 소유한 집이 없거나, 심지어 월세나 전세 집을 구할 경제적 여유조차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기에, 청년들을 위한 공공임대주택이나 금융지원 등의 정책을 폈던 문재인 정부의 뒤를 이은 이재명 후보에게 투표를 할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현 2030은 전통적 2030과는 달리 일반적인 선택을 하지 않았다. 이와 같은 2030의 변화를 느낀 국힘과 당시 윤석열 후보는 이들의 표심을 얻고자 병사월급 200만원등과 같은 포퓰리즘적인 공약을 남발하였다. 누가보아도 지켜지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곧 폐기될 공약임을 알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2030, 특히 이대남으로부터 많은 공감을 이끌어 내었다.

다른 어떤 요소들과 사실보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힘든 현실을 살아가는 2030이 진보정당을 외면하고 철저히 부자들을 위한 정책들을 펼쳐가는 보수정당에게 지지를 보내는 이유가 무엇인가? 전통적 2030과 달리 현 2030에게 어떠한 변화가 일어난 것인가?

2012년에 번역 출판된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토마스 프랭크 저)라는 책이 있다. 미국 캔사스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치적 상황에 대해 쓴 책이다. 그 책에서도 서민의 이익을 대변할 생각이 없는 보수(공화당)를 지지하고, 오히려 진보(민주당)에 대해 배타적인 입장을 가지는 상황에 관해 질문을 하며, 그 원인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핵심만을 말하면, 보수당의 장기적인 교묘한 정치공학적 전략을 통해 시민들에게 착란상태를 조장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치적 문화전쟁에 기독교 보수도 한 몫을 하여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을 더 보수적 성향을 띄게 만든다는 것이다.

미국의 정치적 상황에 대한 것이지만, 데칼코마니처럼 한국에도 동일하게 벌어지고 있는 일이어서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한국의 경우 설상가상 다수의 보수언론이 앞장서서 국민들의 보수화를 유도하는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어떤 나라든 보수와 진보가 균형을 이루어갈 때 나라의 발전과 바른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어느 한 쪽으로 편향성을 띄게 되면 문제가 발생하고 어려움이 생기게 된다.

한국은 보수가 강세일 수밖에 없었던 일련의 역사적·정치적 상황을 겪었다. 6·25전쟁은 나라와 민족을 위해 보수가 집권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명분을 심어 주었다. 특히, “잘살아 보세라는 구호를 외치며 시작된 고 박정희 대통령의 개발독재 성공은 보수가 추구하는 기득권 중심의 개발에 당위성을 부여하였다. 이런 당위성은 한강의 기적을 맛보게 된 국민의 마음과 생각 속에 깊게 각인이 되었다.

그러나 그 이면에 있던 어두움에 대해서는 인식하기 힘들었다. 지독한 가난에서 벗어난 국민들은 자신들이 누린 기쁨이 기득권의 호사스러움에 비하면 아주 작은 것임을 인식하지 못하였다. 그러다 점차 눈이 열린 국민의 일부 소수가 그들만이 가진 호사에 대한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면, 기득권들은 언제나 이념의 정점에 있던 빨갱이 반공분자를 외치며 자신들이 가진아니 가져야 하는권리와 이익을 당당히 지켜내었다. 이러한 가운데 언론은 보수 기득권의 아성에 스스로 무릎을 꿇고 그들의 대변인이 되었다. 그리고 세대에 걸쳐 서민의보수, ‘서민에 의한보수, ‘서민을 위한보수를 외치며 국민의 착란상태 조장을 위해 언제나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착란상태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기성세대의 변화를 기대하긴 힘들다. 우리 2030들은 정신을 차리고 그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야 한다. 현 보수에서 표방하는 감세정책, 부자친화적 정책들은 대다수 서민들, 특히 이제 막 사회에 뛰어들어 경제 활동을 시작한 우리 2030의 희생을 더욱 강요할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가뜩이나 물가 급등으로 경제 위기를 몸소 체험하고 있는 요즘, 경제적 여유가 매우 부족한 2030이 이를 견딜 수 있을 것인가? 그나마 진보 정부에서 실시했던 서민 정책도 보수 정부에서는 점차 사라질 것이므로 정말 어려운 현실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보수정권을 강력히 지지하는 기성세대의 경우 과거 보릿고개부터 쭉 힘들고 어려웠던 시기를 견디면서 한국의 발전과 기적을 목도했기에 경제가 어려울지언정 보수가 정권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한강의 기적을 경험한 것을 토대로 보수만 믿고 응원해주면 이들과 함께 경제 위기를 잘 극복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인내할 것이다.

이제 2030은 보수가 교묘하게 주입했던 보수편향적 시각에서 벗어나 국민을 중심으로 한 정치·경제체제를 요구해야 한다. 특히 미래를 살아갈 우리 2030은 이에 대해 더더욱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 진보가 벤치마킹하며 롤 모델로 삼고 있는, 서유럽식 사회민주주의에 대해서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과거 미국의 경제 질서 하에 있을 때에도 독일을 위시한 서유럽국가들은 미국과는 다른 자신들만의 경제·정치 시스템을 고수하였다. 2008년 금융위기는 미국식 경제체제의 모순과 연약함을 드러나게 하였고, 한 수 아래로 취급하던 독일을 중심으로 한 서유럽의 경제체제의 우월성과 단단함이 마침내 증명되었다. 다시 말해 소위 미국식 신자유주의로 대표되는 기업과 기득권 중심적 정치·경제체제는 심각한 빈부격차를 야기하면서 궁극적으로는 나라의 위기를 조장하고, 그로 인한 사회적 비용증가를 자초한다는 결론을 얻게 된 것이다. 반면에 서유럽식 사회민주주의의 국민(서민) 중심의 정치·경제구조는 균형적 성장을 유도하고, 어떠한 경제적 사회적 위기에도 대처가 용이하며, 사회적 비용과 위기를 줄일 수 있음을 세계가 알게 된 것이다.

앞으로는 미국식 정치·경제체제를 벗어나 독일식 정치·경제모델을 벤치마킹하면서 우리 실정에 맞는 복지정책, 소득주도성장, 사회민주주의 등을 추구해야 할 필요가 있다. 특히 한국은 복지를 통한 재분배와 기회균등을 부여하는 기능이 약해 양극화가 심한 부분이 있기에 알맞게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보수화 되어 있는 2030들 중에 이 글이 진보적 가치만 우월하다고 주장한다는 생각이 든다면,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 매도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미 세뇌된 착란현상으로 객관적인 시각을 잃어버렸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을 통해 모든 진보적 가치만 맞다함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보수가 착란을 조장하는 부분만을 짚고 있음을 직시해 다시 글을 읽어보기를 간절히 권유드린다. 현재의 한국 2030들을 위한 정치계몽이 절실히 요구되는 이유를 공감할 수 있길 소망하고 기대해 본다./이인애 통일비내리는날 대표 /뉴스프리존 2022.06.26

 

가난한 유권자는 언론과 그루밍의 피해자였나?

"고학력, 고소득자 등 소위 부자라고 하는 분들은 우리(민주당) 지지자가 더 많다. 저학력에 저소득층이 국힘(국민의힘) 지지가 많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언론 환경 때문이다." 지난 729일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후보였던 이재명이 지지자들과의 유튜브 라이브 방송에서 한 말이다.

이에 같은 당 경쟁 후보인 박용진은 "오만함마저 느껴진다"고 비판했다. 그는 "저학력, 저소득층은 언론환경 때문에 국민의힘을 지지한다는 말은 너무나 노골적인 선민의식이고, 정치 성향에 따른 국민 갈라치기"라며 "국민 분열의 정치는 우리가 가야할 길이 아니다. 우리가 지향할 길은 국민통합의 길"이라고 반박했다.

또다른 당대표 후보인 강훈식도 "지난 대선 기간에도 우리 선거 캠프 인사가 윤석열 당시 대선 후보 지지자의 대부분이 저학력 빈곤층이라고 했다가 SNS 글을 지우고 사과한 적이 있다""당시에도 우리가 폐기해야 할 민주당의 선민 의식을 보여줬었기에 많이 부끄러웠다"고 했다. 그는 "저들의 갈라치기와 혐오를 비난만 하지 말고, 우리에게서도 문득문득 등장하는 이분법의 정치를 반성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자 전 법무부 장관 추미애가 81일 이재명의 발언을 옹호하고 나섰다. 그는 "부유한 사람들의 특권 유지 노력에 밀려 가난한 사람들은 정치에서 멀어져 가고, 사회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 자신들을 외면하는 세력을 지지하는 이율배반적 투표를 하고 있다""심지어 (이런) 투표조차도 피해를 보면서 사회문제의 원인을 제대로 인식할 수 없도록 그루밍(심리적으로 지배함) 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놀랍다. 유권자의 투표행태와 관련된 내로남불이 일부 민주당 지도자들의 마음 속에 여전히 건재하고 있다는 게 말이다. 우리편에게 표를 주는 유권자는 정의롭고 현명한 반면, 반대편에게 표를 주는 유권자는 '언론 환경'이나 '그루밍' 때문에 잘못된 판단을 내렸다고 보면 마음은 편해질지 몰라도 마음 편하자고 정치를 하는 건 아니잖은가.

저학력·저소득층이 보수정당을 지지한다는 이른바 '계급배반 투표' 현상은 이를 긍정하는 증거와 부정하는 증거가 병존하지만, 절반의 증거일망정 이색적인 뉴스가치로 인해 국내외 학계와 언론계 모두 이 현상에 주목해왔다. 그 이유를 두고 그간 많은 전문가들이 다양한 설명을 내놓았다. 이미 120여년 전 미국 경제학자 쏘스타인 베블렌은 [유한계급의 이론](1899)에서 가난한 사람에겐 생각할 여유가 없다는 이유를 제시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처절한 가난과, 자신의 에너지를 하루 하루의 생존 투쟁에 모조리 쏟아 붓는 사람들은 누구나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데, 이것은 그들이 내일 이후를 생각하는 데 드는 노력의 여유 조차도 없기 때문인 것이며, 이것은 가장 부유한 사람들이 현재의 상황에 만족스럽지 못한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과 동일한 맥락인 것이다."

오늘날엔 이런 주장에 동의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게다. 물론 한국의 민주당 일각엔 비교적 동의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말이다. 이후 세월이 흘러 '이익'보다는 '가치'를 중시하는 유권자들이 많다는, 훨씬 나은 설명이 제시되었다.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는 [코끼리는 생각하지마](2004, 국내 번역·출간 2006)에서 "사람들이 언제나 단순히 자기 이익에 따라서 투표한다는 가정은 심각한 오해"라며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가치관에 따라, 그리고 자기가 동일시하고 싶은 대상에게 투표한다"고 정리했다.

미국 언론인 토마스 프랭크의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 캔자스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2004, 국내 번역·출간 2012)를 비롯하여 그런 논지를 펴는 책과 논문들이 발표되었다. 2012년 한국 대선을 분석한 정치학자 강원택도 저소득층 유권자들은 개인의 경제적 이해관계보다 사회문화적 가치를 중시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가난한 사람들이 보수정당에 표를 주는 이유로 사회문화적 가치를 지적하긴 했지만, 사실 이건 하나마나한 이야기다. '이율배반'이니 '계급배반'이니 하는 지적도 번지수를 잘못 짚은 것이다. '이익' 중심의 투표를 하더라도 가난한 사람들이 자칭 진보 정당에 표를 줘야 할 이유가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컨대, 문재인 정권에서 일어난 부동산 가격의 폭등을 보라. 이는 집을 소유하지 못한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사실상의 약탈이었다! 사실 지난 대선에서 놀랍거나 이상하게 생각해야 할 일은 가난한 사람들 중에서 민주당에 표를 준 사람들도 많았다는 점일지도 모른다. 이게 연구 대상이 되어야지, 자기 이익과 가치에 따라 민주당에 표를 주지 않은 저소득층 유권자들을 향해 언론이나 그루밍에 놀아난 게 아니냐는 문제를 제기하는 건 넌센스다.

애초에 이 논쟁의 방향 설정이 잘못되었다. 한겨레 기자 엄지원이 그 점을 잘 지적하고 나섰다. 그는 "(이재명) 발언의 전체 맥락을 보면, 정작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대목은 따로 있다"며 이재명이 "고소득층에 우리의 지지층이 있으니 그들을 배제할 필요가 없다"고 결론을 맺는 것이 옳으냐는 문제를 제기했다. 사실상 '서민정당'으로 자리매김해온 민주당의 무게추를 옮겨야 한다는 메시지를 내놓은 것인데, 그래도 되는 건지에 대해 "더 날카로운 논쟁이 벌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는 것이다.

맞다. 바로 그게 쟁점이 되었어야 했다. 이와 관련, 나는 정당의 이념지향성을 '결과'가 아닌 '의도' 중심으로 평가하는 기존 관행을 의심해보자는 제안을 하고 싶다. '의도'를 앞세워 사회를 실험실로 여기는 무모한 '도그마 중독증'이나 아마추어 근성과 결별하기 위해서다. 이는 2200여년 전 한비자도 간파했던 '상식'이다. "군주가 나라를 망치는 건 악의가 아니라 물정 모르는 의욕만 넘치는 열정과 선의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우리 모두 좀더 정직해질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선거 결과에 대한 내로남불 해석은 이제 그만 두자. 우리편이 승리하면 유권자들의 위대한 저력을 과장하고 칭송하지만, 패배하면 우회적으로 온갖 악담과 저주를 퍼붓는 관행을 중단하자. 그런 문제의식의 연장선상에서 저소득층 유권자는 언론과 그루밍의 피해자였다는 주장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게 좋겠다./강준만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무등일보 2022.0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