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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서평

나무를 대신해 말하기

by 이성근 2024. 1. 28.

나무를 대신해 말하기 다이애나 베리스퍼드-크로거 지음 | 장상미 옮김 갈라파고스 23. 11

(Diana Beresford-Kroeger) 세계적인 식물학자이자 의학생화학자로, 서양의 과학적 지식과 고대 세계의 전통적 개념을 결합하는 독특한 작업을 하고 있다. 저서로 단순한 삶의 감미로움(The Sweetness of a Simple Life), 지구의 숲(The Global Forest), 아한대 수목원(Arboretum Borealis), 나무와 숲에 관한 모범적인 교육 자료로서 전미식목일재단상을 수상한 아메리카 수목원(Arboretum America), 시간이 말해주리라(Time Will Tell), 생명의 정원(A Garden for Life)등이 있다.

베리스퍼드-크로거는 2010년에는 윙스월드퀘스트(Wings WorldQuest) 연구원으로 선정되고 2011년에는 캐나다왕립지리학회 연구원으로 선출되는 등 수많은 영예를 누렸다. 더 최근인 2016년에는 학회에서 선정한 캐나다 여성 탐험가 25명 중 한 명으로 지목되었다. 베리스퍼드-크로거의 작업은 예술가와 작가들 그리고 우수한 다른 학자들에게도 영감을 주었다. 특집 다큐멘터리 숲의 목소리(Call of the Forest)의 작가이자 진행자이며, 미국공영방송 PBS의 연속 기획 프로그램 나무에 관한 진실(The Truth about Trees)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현재는 평범한 사람들이 자연과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고 전 지구의 숲을 복원하는 일에 동참하도록 장려하는 생물학적 설계(bioplan)’라는 야심 찬 활동을 널리 알리고 있다.

브레혼

서문

1

돌의 위로

노란 물감 상자

계곡으로

여자가 교육받는 건 잘못된 일이 아니야

후견 과정의 의미

현장학습

나무는 다 어디로?

돌봄의 의무

고대 지식의 과학

붉나무꽃

나만의 연구를, 나만의 방식으로

나무 쪼개기

어머니나무

행동하는 마음

 

2

켈트 문자에 담긴 나무들/A 소나무, 알름/B 자작나무, 베허/C 개암D 참나무, 다알/E 사시나무, 에바/F 오리나무, 페른/G 아이비, 고르트/H 산사나무, 우흐/I 주목, 우르/ Ng 골풀, 브로브/L 마가목, 리스/M 블랙베리, 뮌/ N 물푸레나무, 니온/ O 가시금작화, 아튼/ Q 사과나무, 울/ R 딱총나무, 리스/ S 버드나무, 사일/ T 호랑가시나무, 틴녜 /U 황야, 우어르/ Z 가시자두나무, 스트라프

감사의 말

참고 문헌

찾아보기

나무,

 

출판사 서평

옛 지혜에 실린 나무의 목소리를 따라 있는 그대로의 나를 찾아가는 찬란한 발걸음

퓰리처상 수상 소설의 모티프가 된 세계적인 여성 식물학자의 일대기

2019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소설 오버스토리에는 나무들의 의사소통에 관해 연구하는 여성 식물학자가 등장한다. 이 등장인물은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는데, 그 모델이 바로 나무를 대신해 말하기의 저자 다이애나 베리스퍼드-크로거이다. 1944년생인 저자는 연구에 몰두해온 지난 50여 년 동안 연구 대상을 정복해야 할 객체로 다루는 과학계의 전통적인 접근 방식을 거부하고 숲의 일부가 되어 나무가 품고 있는 이야기에 조심스럽게 귀 기울여왔다. 생명을 지닌 존재를 위계 없이 존중하는 태도는 기댈 곳 없이 홀로 남겨진 채 자기 비하에 빠져 있던 어린 시절, 자신을 돌봐준 켈트 문화를 통해 배운 것이었다.

햇빛이 비치는 곳에 서서 나무처럼 되어보라는 가르침은 내가 어린 시절 리쉰스에서 받은 것이다. 한번 해보면, 태양의 단파장 에너지가 피부 위에서 춤추는 듯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고대 켈트 세계에는 이 춤을 부르는 이름이 있다. 우주의 노래, 쿄얼터 너 크뤼녜(Ceolta na Cruinne)이다. 이것은 실재한다. 몸으로 직접 느낄 수 있다.” -213, 켈트 문자에 담긴 나무들

저자는 열두 살 무렵 부모를 잃고 어머니의 고향인 아일랜드 리쉰스로 보내졌다. 리쉰스 계곡은 폐쇄적인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500년에 걸친 영국 점령기에도 전통인 켈트 문화를 비교적 잘 간직하고 있는 곳이었다. 켈트 세계의 브레혼법에 따르면 고아는 모두의 아이이다. 리쉰스 사람들은 허기와 보호시설로 보내지는 것에 대한 공포,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숨어 있어야 한다는 강박, 상실의 슬픔으로 가득 찬 어린 여자아이를 다정히 맞아주며 아이가 무사히 성인으로 자랄 수 있도록 고대 켈트 문화의 유산을 선물하기로 한다. 계곡의 모든 어른들이 브레혼 후견 과정의 선생님을 자처해 마음이 어지러울 때 도움이 되는 명상법이나 약 성분이 있는 식물을 식별하는 법 같이 스스로를 잘 돌보기 위해 필요한 여러 실용적인 지혜, 삶이 주는 고통을 받아들이고 일상의 단단함에 기댈 줄 아는 특유의 생활 방식, 숲을 지향하는 켈트 철학과 나무에서 비롯한 오검문자를 가르쳐준다. 처음 받아보는 환대와 살뜰한 손길, 사과 한 알이라도 나눠주고파 하는 환한 마음들 속에서 저자는 땅에 단단하게 뿌리내리고 스스로를 온전하게 느끼며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살아나갈 힘을 얻게 된다. 도저히 나아질 것 같지 않은 막막한 상황 앞에서도 비관하지 않고 기꺼이 첫걸음을 떼는 일이 지닌 가치 또한 배우게 된다. 그 회복의 과정을 느긋하게 지켜보다 보면 독자 또한 마음을 데우는 온기와 기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나무는 저자의 삶에 아주 깊숙이 자리했다. 나무와 자신을 나란히 놓고 나무의 존재를 더 가까이 느끼며 나무가 내는 소리를 듣는 것이 켈트 세계에서 자란 그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저자는 이후 대학에서 식물학과 의학생화학을 복수 전공하며 자연계와 나무에 대한 켈트족의 지식을 과학적으로 풀어내는 연구에 매진해왔다. 과학계의 여성 차별과 과학과 신성함을 섞지 말라는 비난 속에서도 세포 조직의 이상을 판별하는 데 활용할 수 있는 생물 발광 현상DNA 배열을 더 잘 살펴볼 수 있게 해주는 유전자 스미어링 기법을 발견하고, 혈액형에 상관없이 사용할 수 있는 인공 혈액인 무기질혈색소를 개발하는 등 여러 업적을 이루었다. 이 책은 상실과 트라우마, 과학계의 편협한 시각과 차별을 넘어 자신만의 길을 걸어온 여성 식물학자의 발걸음을 한 발 한 발 따라간다. 세상에 홀로 남겨진 것만 같은 기분이 들거나 눈앞에 놓인 문제가 너무 커서 막막하다고 느껴질 때 그럼에도 그다음을 상상해볼 수 있는 용기를 주는 책이다.

나무를 대신해 말하기:

우리와 나무, 세계의 지속을 연결 짓는 가장 특별한 방식

나는 나무에 트립토판-트립타민 경로가 있음을 증명함으로써, 나무도 우리 뇌에 있는 것과 똑같은 화합물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나무에는 생각이나 의식을 갖는 데 필요한 모든 구성 요소가 담겨 있다. , 나무도 듣고 생각할 수 있는 신경 능력을 갖고 있다. 내가 증명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숲이 생각할 수 있고, 꿈도 꿀 수 있을지 모른다는 것. 과학계에서는 새로운 지식이었다. 이런 연결고리가 당시에는 밝혀지거나 알려지지 않았다.”-141, 붉나무꽃

저자가 숲속에서 나무가 내는 기척에 귀 기울이며 발견한 것은 다름 아닌 연결고리이다. 저자는 멋진 나무를 찾고 보면 언제나 주변 환경이 건강하고 그 건강한 지대에 속한 모든 것이 그 나무와 연결되어 서로 호혜를 베푸는, 일종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고 말한다. 심지어 나무에 해를 끼치는 것으로 여겨지는 생물들 또한 득이 되는 면이 있다. 예를 들어 노란배수액빨이딱따구리는 수액을 빨아먹기 위해 살아 있는 나무의 몸통에 구멍을 뚫는 해를 입히지만, 이 새가 뚫어놓은 구멍에 집을 짓고 살아가는 맵시벌은 나무를 온갖 끔찍한 병원균으로부터 지켜주는 역할을 한다. 이처럼 나무에서 수액빨이, 맵시벌로 이어지는 것과 같은 연결고리를 통해 숲은 계속해서 유지된다. 그리고 우리 또한 숲 공동체의 연결고리를 이루는 일부로서 존재한다. 나무의 광합성 반응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하는 호흡의 반대 방향으로 진행되는데, 이는 인간과 식물이 화학으로, 산소와 이산화탄소로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 우리가 내쉬고 들이쉬는 숨 한 모금 한 모금이 나무와 보이지 않는 선으로 이어져 있다. 저자는 어린 시절 자신을 구해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대를, 나무와 나무 사이, 나무와 다른 생물 사이, 더 나아가 나무와 인간 사이에서도 발견한다. 결국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연대의 감각임을 이야기한다.

저자가 제안하는 생물학적 설계는 이러한 연대의 감각을 일깨워 우리 개개인과 나무, 세계의 연결성을 강화하는 구체적인 실천 방안이다. 진행 중인 기후 위기를 막고 우리의 공동체가 사라지지 않고 계속될 수 있게 해주는 작은 행동들을 이야기한다. “도시의 고층 건물 발코니에 화분 하나를 내놓는 것”, 한 사람이 “6년 동안 해마다 나무 한 그루를 심는, 나무를 함부로 베지 않도록 지역 의회에 그 나무를 소중히 여기는 주민이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는 것 등 세계를 이루는 연결고리의 일부로서 우리 각자가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일을 일러준다. 도토리처럼 조그맣고 하찮아 보이는 일일지라도 이것이 연쇄적으로 연결된다면 세상이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믿음은 자칫 허황된 희망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지구는 하나뿐이고 다른 대안은 없는 지금, 세상은 어차피 망하고 말 거라는 비관주의가 팽배한 이때에 그럼에도 희망을 노래하는 목소리는 소중하다. 이 책 나무를 대신해 말하기비인간 세계의 이야기를 인간 세계로 옮기는 이 복잡하고 어려워 보이는 일을 해냄으로써 우리와 나무, 세계의 지속과 안녕을 말하는 가장 특별한 방식을 보여준다.

A부터 Z까지 켈트 문자의 기원이 된 20가지 나무 백과사전

그렇게 숲의 글자가 탄생했다. 이 새로운 글자에는 숲과 수천 년간 이어져온 구전 문화의 철학이 담겼다. 글로 쓰인 말은 사소하지 않다. 그 안에 사상이 보존된다.” -216, A 소나무, 알름

켈트 세계에는 나무에서 비롯해 자모 하나하나에 나무 이름이 붙어 있는 오검문자라는 글자가 있다. 이 책의 2부에는 오검 자모들과 각 자모의 기원이 된 나무 이야기들에 저자가 과학자로서 얻게 된 정보를 더해 A에 해당하는 소나무부터 Z에 해당하는 가시자두나무까지 20개의 나무(글자)들을 백과사전식으로 정리해두었다. 과거 켈트 세계에서의 쓰임새, 얽혀 있는 전설이나 설화, 특징, 약 성분, 비교적 최근에 새롭게 밝혀진 과학적 사실과 저자가 겪은 사소하지만 인상적인 에피소드를 망라해 각 나무가 지닌 의미를 다양한 각도에서 살폈다. 낯선 켈트 문화가 주는 이국적인 정취와 함께 흥미와 읽는 재미를 더했다.

 

책속으로

숲은 단지 목재를 공급하는 곳이 아니라 훨씬 더 귀중한 존재임을 일깨우고 싶다. 숲은 우리 모두를 위한 약품 상자이다. 우리의 허파이다. 기후와 대양을 조절하는 체계다. 지구의 덮개다.

뒤에 올 세대의 건강과 행복이다. 신성한 집이자 구원이다. 약물 내성을 막는 데에서 지구 온도 상승을 멈추는 데까지, 나무는 인류가 직면한 거의 모든 문제에 대한 해법을 일러준다. 한때 우리는 나무의 소리를 들을 줄 알았다. 그 기술을 반드시 기억해 내야 한다.-나무를 대신해 말하기 서문

또 다른 날에는 월계수 주변을 빙빙 돌다가 작고 까만 씨앗 하나를 밟았다. 씨앗의 겉껍질, 즉 외종피가 내 발아래서 살짝 갈라지더니 굉장한 향이 풍겼다. 씨앗을 주워 손톱으로 종피를 벗겨내니 하얗고 반짝이는 속살이 드러났다. 향이 폭발했다. 나무 자체에서 나는 것과 같은 향이 응축되어 있었다. 씨앗 안에 그렇게 강렬한 나무 냄새가 담겨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그 순간 연쇄적으로 일어난 놀라운 감정, 씨앗과 부모나무 사이의 연결고리를 발견하는 놀라움과 그 연결고리 자체에 대한 경외감이 지금도 내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p.29, 돌의 위로

처음 갔을 때부터 계곡에는 내가 좋아할만한 것이 많았다. 리쉰스는 지금까지도 내 마음속에서 특별한 자리를 차지한다. 피부로 느껴질 만큼 너그러운 분위기가 감도는 곳이었다. 운 좋게도 나는 넬리 할머니, 팻 아저씨와 함께 지내며 그런 너그러움을 맛볼 수 있었다. 그곳에서는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브레혼법에 담긴 환대의 정신이 여전히 강하게 작동했는데, 그 법에 따르면 고아인 나는 모두의 자녀였다. 심지어 제일 가난한 사람조차도 하다못해 브램리사과 한 알, 현관 앞 구스베리 덤불에 맺힌 열매나 그 계절에 처음 익은 딸기 몇 알이라도 내게 건네주는 것이 자기의 특권인 양 했다.-p.42, 계곡으로

할머니가 말했다. “이건 페니로열(pennyroyal) 박하란다. 이 냄새를 잊으면 안 된다.” 그러면서 같은 잎을 하나 더 따서 내게 건네주었다. “어떻게 생겼는지도 기억해두렴.” 할머니의 말에 나는 그 잎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냄새와 길쭉 동글한 모양을 머리에 담았다. 그런 다음 짙은 초록색으로 뒤덮인 잎의 색조, 연보라색과 파란색이 감도는 꽃, 주맥에서 뻗어나가는 섬세한 잎맥의 결을 마음속으로 되새겼다.

잠시 후 할머니가 수업을 이어나갔다. "페니로열은 굉장히 쓸모가 많은 중요한 약이란다. 태우기도 하고 생으로도 쓰지, 겨울에는 감기에 걸렸을 때 쓰고, 여름에는 벌레를 쫗고 물린 곳을 치료할 때도 써. 옛날부터 예식에 사용되던 아주 오랜된 약초란다. 약효가 강하고 혹 생김새를 잊어도 냄새를 맡으면 바로 알아볼 수 있지." -p.50, 계곡으로

저녁을 차려 먹은 다음 팻 삼촌과 안락의자를 하나씩 차지하고 앉아서 자기 전까지 책을 읽었다. 삼촌은 늘 벽난로 왼편을 선호했고, 나는 오른편에 있는 조지 왕조풍의 기다란 창 근처를 좋아했다. 가끔 나는 빨간색 카펫 위에서 기분 좋은 고양이처럼 기지개를 켰다. 삼촌은 어쩌다 감동적인 시를 읽거나 재미난 정보를 발견하면 소릴 내 읽어주었다. 그러다가 목이 쉴 것 같으면 나에게 차례를 넘겼다. 그러면 나는 뭐가 되었든 읽고 있던 책에서 눈에 띄는 구절을 찾아서 큰소리로 낭독했다. 우리는 거의 매일 저녁 이런 식으로 마음에 드는 구절을 주고 받았다. 지식을 향한 강렬한 갈증을 느꼈던 나는 때로 그 많은 책에 둘러싸여 있는 것만으로도 마치 삼투현상처럼 지식이 내 피부를 통해 스며드는 느낌이 들었다. (p.67)

그림을 그리면서 나는 세상을, 특히 자연을 바라보는 법을 배웠다. 나를 둘러싼 아름다움에 푹 잠기는 법, 가장 세밀한 부분을 잡아내는 법을 배웠다. 여러 가지 잎을 종이에 그려넣으며 각각의 구조가 어떻게 다른지 많이 배울 수 있었다. 나무 전체와 풀, 그 밖에 나의 눈길이 닿는 모든 것, 이를테면 넬리 할머니의 식탁 위 그릇에 담긴 사과 줄기처럼 단순한 물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p.109, 고대 지식의 과학

리쉰스에서 내가 물려받은 지식은 브레혼법 자체를 제외하면 구두 형태로 전해졌을 뿐 다른 형태로는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의학도서관에서 나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즉 책에 기록된 형태로 옛 지식과 정확히 똑같은 지식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 순간 내가 고대 세계와 과학계라는 이 두 세계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p.113, 고대 지식의 과학

게일어로 시얼셰(saoirse)는 특정한 형태의 자유를 의미한다. 시얼셰란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고 자기를 표현할 자유, 원하는 대로 생각하고 믿을 자유이다. 즉 영혼과 상상력의 자유이다. 나는 시얼셰 그리고 시간을 뜻하는 아임시르(aimsir), 이 두 가지야말로 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소중한 것이라고 믿는다.-p.134, 붉나무꽃

생물학적으로 설계하기(bioplanning)’가 바로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내가 만든 말이다. 자연에 존재하는 수많은 것들이 따르고 있는 이 무한한 복잡성을 받아들인다는 단순한 개념이다. 이미 썼듯이 생물학적 설계란 자연에 담긴 생명의 연결성을 전부 그려내는 청사진이다. 버드나무에서 수액빨이와 나비, 맵시벌로 이어지는, 그리고 그 모두와 우리를 연결하는, 눈에 보이고 또 보이지 않는 그물망이다. 진화의 틀이자 균형이며 서로 베푸는 관계이자 이 지구에 우리가 존재하고 번성할 수 있게 해주는 바탕이다. ‘생물학적으로 설계하기는 이러한 생물학적 설계를 지원하고 장려하는 행동이다.

-p.177, 나무 쪼개기

자연에는 우리 모두가 다 아는 신이 있다. 큰 숲이든 작은 숲이든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간 사람은 들어갈 때보다 더 차분해진 상태로 나오게 된다. 그 위엄을 경험하고 나면 절대 예전의 상태로 돌아가지 않는다. 거기서 나오면 자기에게 무언가 대단한 일이 일어났음을 깨닫게 된다. 그 신성한 경험을 과학으로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다. 숲에서는 실제로 행복한 기분을 느끼게 하고 면역 체계를 통해 뇌에 영향을 미치는 알파 및 베타 피넨pinene이라는 성분이 생성된다. 그 피넨이 나무에서 빠져나와 공기 중에 떠돌다 우리 몸에 흡수된다. 우리를 전체에 속하는 일부로서 단단히 결합시키고, 경건한 태도로 주위를 바라보게 해준다. 가볍게 숲을 거닐면 마음이 평온해지고 상상력과 창의력이 피어오른다. 나는 이것이 기적이며 자연계에는 우리가 발견할 또 다른 기적이 무수히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p.208, 행동하는 마음

두루이드 의사들이 주목의 겉껍질과 뿌리껍질, 가종피, 목질, 잎 등을 활용해 조제하던 더 중요한 약들이 많이 유실되었다. 이런 비밀스러운 조제법을 이어나갈 소임은 명예율(hanor system- 특정 집단의 구성원이 그 집단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반드시 따라야 하는 규율을 뜻한다)의 일부로서 권위 있는 가문들이 맡았다. 이 비법들은 형벌법하에서 500년 동안 비밀리에 전수되다 1900년대 말에 이르러 다시 빛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현대식 약에 비해 쓸모없는 민간의학으로 취급받으며 버려졌다. 이런 약 중에는 암 치료제가 많았다. 통증 관리에 쓰는 약도 그에 못지않게 많았다.(p.252)

알파/베타 피넨(pinene) : 숲에서 행복한 기분을 느끼게하고 면역 체계를 통해 뇌에 영향을 미치는 물질

나무는 다 어디로

켈트족은 밤에 혹은 폭우가 내린 후에 나무의 존재를 더 가까이 느낄 수 있으며, 나무와 더 깊이 호흡하고 더 잘 받아들이는 사람이 따로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감각인지 능력을 가리켜 모히허흐트라고 한다. 어떤 기운이나 소리를 몸을 통과해나갈 때 가슴 위쪽에서 느껴지는 감각을 가리키는 말이다.

모히허흐트는 과학적으로는 비교적 새로운 개념인 초저주파음 즉 소리없는 소리의 고대식 표현일 수 있다. 인간의 가청 범위보다 낮은 이 소리는 파장이 길게 휘어지며 대단히 멀리 퍼져나간다. 코끼리처럼 덩치 큰 동물들 그리고 화산에서 나오는 소리다. 커다란 나무에서도 이러한 파장의 확산이 측정된 바 있다. 아이들은 이런 소리를 듣기도 하는데, 나는 넬리 할머니가 그 소리를 감지하고 심지어는 그 의미도 어느 정도는 해석할 수 있었다고 믿는다.

고대 지식의 과학

그 여행에서 나는 강과 바다가 만나고 민물이 짠물과 섞이는 지역에서 희귀종을 발견하기 쉽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홍조식물 Rhodophyta 과 같이 아름답게 얽혀 자라는 붉은 해조류가 보이는 그런 곳에는 물고기와 고래도 모여들었다. 생명이 넘쳐나는 장소였 다. 나는 한 가지 가설을 세웠다. 희귀 생물이 번성하는 이런 장을 마련하는 데 필수적인 광물질이 민물 물줄기를 타고 육지에서 바다 로 흘러오는 것이 틀림없다고 말이다.

이 가설은 50 년이 지난 후인 2015 11 , 내가 출연한 다큐멘터리 < 숲의 목소리 : 사라진 나무의 지혜 Call of the Forest : The Forgotten Wisdom of Trees > 촬영 중에 마쓰나가 가쓰 히코 박사에 의해 확증되었다. 나는 마쓰나가와 함께 일본 나고야 인근 이세만 끄트머리에 있는 해변에 앉아서, 그러한 현상이 물속에서 필수 광물질이 킬레이 트화 chelated 한 결과라는 나의 초기 가설을 그에게 들려주었다. 마쓰나가가 놀란 얼굴로 내 말이 맞다고 했다. 마쓰나가와 그의 연구진은 홋카이도대학교에서 수십 년 동안 실험을 거듭한 끝에 실제로 이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을 증명해냈다. 숲 바닥에 떨어진 나뭇잎은 썩어가면서 땅속의 철분과 결합할수 있는 풀브산 fulvic acid 이라는 부식산 humic acid 을 방출한다. 이렇게 산화한 철이 숲에서 강으로 홀러들어 철분이 부족한 바다와 만나면 식물성 플랑크톤의 성장이 촉진되어 먹이가 풍성해진다.

마쓰나가가 이 현상을 발견하기 전에 일본에는 이를 결정적으로 암시하는 속담이 있었다. " 물고기를 잡고 싶거든 나무를 심어라." 리쉰스에서 내가 얻었던 것과 동일한 단서였다. 반백 년이나 품고 지낸 가설을 확증하는 것은 물론 기쁜 일이다. 그러나 마쓰나가가 연구에 매진한 이유가 그저 속담을 시험하려는 욕구에만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그 만족감이 다소 수그러들었다.

연구진의 바람은 일본 해안의 해양생태계가 크게 망가지는 현상에 관한 수수께끼를 푸는 것이었다. 그들은 섬나라에 그런 재앙이 닥친 것이 개별 때문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나무를 너무 많이 베어내는 바람에 숲에 떨어지는 나뭇잎이 줄어들었고, 나뭇잎의 부식을 통해 방출되어 지하수로 스며든 후 바다로 홀러 들어가는 풀브산의 총량 또한 감소했다. 결과적으로 섬 주변 해수 속 철분량도 줄어들었다. 철분이 부족해지자 해양 미생물의 분열과 증식이 멎어 그 미생물을 먹고 사는 바다 생물들이 굶주리게 되었다. 그렇다면, 나무를 베어내는 것은 그저 자살 행위에 그치지 않는 다. 살생 행위이기도 한 것이다.

어느 식물에나 생사 여부를 가르는 지점, 즉 위조점 wilting point 이 있는데, 예를 들어 완두는 내가 알기로 섭씨 영하 9 도에서는 살 수 있지만 영하 10 도에서는 견디지 못할 것이다. 위조점 개념은 알려져 있었지만, 내가 조사해 보니 상당수의 식물종, 특히 곡물의 정확한 위조점은 밝혀지지 않은 상태였다.

나는 가뭄과 서리에 대한 저항성이 높은 종에서는 대략 인간의 안드로겐 androgen 호르몬에 해당하는 식물 성장호르몬인 지베렐린 gibberdlin 이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지베렐린을 함유한 식물은 내한성을 띠며, 교배 과정에서 이 내한성을 더 취약한 종으로 넘겨줄 수 있다는 것, 즉 이종교배를 통해 가뭄과 서리에 대한 저항성을 강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또 한 나무의 활엽이나 침엽이 청록색을 띤다는 것은 나무가 극한의 기후에 저항하고 있다는 표시임을 알아냈다. 이 색은 피부와 같이 나뭇잎을 감싸고 있는 표피층에 햇빛이 반사되면서 나타나며, 추위를 좋아하는 종은 표피층이 훨씬 두껍다. 표피층은 나무의 수분 유지에도 도움을 준다.

나는 또한 고대 곡물종들은 중심 줄기의 밑동에 곁눈이라고 알려진 곁가지가 많이 나는 경향이 있음을 알아냈 다. 이렇게 곁눈을 내면 강풍에도 곡물이 잘 자랄 수 있는데, 기후변화로 인해 극단적인 기상 체계와 자연재해의 빈도와 강도가 높아짐 에 따라 뿌리와 줄기의 이러한 적응력이 갖는 중요성이 더욱더 입증될 것이다. 세포의 색도 더위와 추위에 대한 적응을 드러내는 중요한 요소이다. 만약 하얀 당근이 나온다면 그 당근은 주홍색 당근에 비해 더위와 추위를 견디는 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

소나무, 알름

켈트족 의사들은 건강을 유지하는 데에 늘푸른나무인 소나무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호흡을 원활히 하고 폐에서 감기와 독감의 독성을 제거하려면 소나무 숲을 산책하도록 했다. 감기나 독감에 걸린 사람에게는 우선 우유에 양파를, 가능하면 야생 양파를 넣어서 끓여 마시고 리넨 이불을 덮은 채 만 하루 동안 땀을 내도록 했다. 그런 다음 기운이 돌아오면 소나무 슾을 걷도록 했다. 이러한 산림욕의 유용성이 최근 임상 실험을 통해 입증되었다.

소나무의 수관은 바늘잎으로 뒤덮여 있는데, 기온이 오르면 여기서 피넨이라는 생화학물질이 담긴 대기 중 미세 입자 복합체가 생성된다. 공중으로 떠오른 피넨은 좌선성 회전을 한다. 이런 형태의 분자는 피부와 폐 표면에서 쉽게 흡수되며 인간의 면역 체계를 향상한다는 사실이 최근 확인되었다. 20분 동안의 소나무 숲 산책으로 얻는 이로운 효과가 면역 체계의 기억속에 30일 정도 보존된다.

자연의 결실을 거둬들일 때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인 규칙이 "항상 7대손까지 먹을 만큼 충분히 남겨두는 것"이라 했다.

나는 고전의 식물학과 인간의 생화학 사이에, 자연계와 우리의 건강 사이에 연결고리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식물계는 우리 몸에 필요한 이 모든 성분을 제공하며, 이러한 관계를 처음 알았을 때부터 5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는 여전히 그 매력에 빠져 있다.

나는 전 세계를 하나의 단위로 바라보고 지구의 정원이 온전히하나이며 살아 있는 생물은 모두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이해할 만큼 성장했고, 이에 더해 기후변화가 가져올 파멸적인 결과를 읽어내기에 이르렀다.

나무는 인간과 지구상의 거의 모든 동물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조건을 그저 유지만 하는 게 아니라 숲 공동체를 통해 그러한 조건을 만들어 냈다. 인류가 출현할 수 있도록 길을 닦은 것이다. 우리는 나무에 갚기 어려울 만큼 큰 빚을 졌다. 나무는 우리가 숨 쉬는 공기, 즉 생명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을 책임지고 있었다. 지구상의 나무가 숨 막힐 정도로, 정말이지 말 그대로 숨이 막히도록 빠르게 베어져 나가고 있었다. 나무를 망가뜨리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생명 유지 체계를 망가뜨리고 있었다. 나무를 베어내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인체 내에서는 트립토판-트립타민 경로가 뇌 속의 모든 신경세포를 생성한다. 이런 생화학물질 중 일부가 인체에서 작용하는 것은 확인되었지만 식물에도 존재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3년 반 넘게 걸린 논문 작업을 통해 나는 식물에 그러한 경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식물에도 세로토닌에 해당하는 자당이 작용 분자로서 존재한다. 자당은 나무에 들어있는 수용성 화합물로 세로토닌처럼 신경을 자극해 세포가 원활히 작동하게 한다. 나는 나무도 트립토판-트립타민 경로가 있음을 증명함으로써, 우리 뇌에 있는 것과 똑같은 화합물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나무에는 생각이나 의식을 갖는 데 필요한 모든 구성요소가 담겨있다. 즉 나무도 듣고 생각할 수 있는 신경 능력을 갖고 있다.

기후변화는 인류가 맞닥뜨린 가장 큰 도전이다. 모든 생명체가 그 영향을 받는다. 전체를 바라보는 것조차 벅찬 과제다. 해법을 찾으려 하면 누구라도 금세 불가능하다는 느낌부터 받을 것이다. 문제가 너무 크다 보니 그저 고개를 돌리고 그 자체를 부정하려는 사람이 많다.

외면하거나 포기하려는 사람들에게 쓸 시간이 나에게는 없다. 머리와 가슴으로 느끼기에 능력 밖의 일로 보이는 문제가 있을 때, 그 종착지가 얼마나 멀리 있느냐는 중요치 않다.

전 지구적인 생물학적 설계의 핵심 개념은 간단하다. 한 사람이 6년 동안 해마다 나무 한 그루를 심는다면 기후변화를 멈출 수 있다. 대기 중의 탄소를 목질에 끌어다 고정하고 반대로 산소 방울을 배출하는 그 멋진 분자 기계를 늘여서 지구의 온도 상승을 멈추고 감당할 만한 수준으로 되돌리는 것이다. 나무들은 3억 년 전에도 이산화탄소 농도가 유독할 정도로 높은 환경을 인류가 살 수 있는 수준으로 바꾸어 놓았다. 또 한 번 그 역할을 할 수 있.

각자 할 수 있고 믿는 바에 따라 첫걸음을 내디디면 된다. 도시의 고층 건물 발코니에 화분 하나를 내놓은 것처럼 소박한 행위에도 개인 차원의 생물학적 설계일 수 있다. 모든 사람이 가능한 한 자기 자신과 가족에게, 새와 곤충에게 야생생물에게 가장 이로운 환경을 조성하고 보호하도록 이끄는 것이다. 이 개인 차원의 생물학적 설계가 이웃과 연결되면 기하급수적으로 확장된다. 우리가 그런 생각을 아주 거대한 규모로 한다면, 지구는 더 이상 우리의 탐욕 때문에 위태로워지지 않을 것이다.물론, 이미 있는 숲도 모두 다 보호해야 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지구상에 존재하는 80억 인구 중에서 우리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나무로 하여금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충분히 흡수케 해 기후변화를 멈추려면 이미 지켜낸 숲에 더해 1인당 6그루라는 내 계산에 따라 대략 480억 그루의 나무를 더 심어야 한다.480억 그루는 달성하기에 너무나 크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이 일을 해내는 방법은 간단하다.

그저 첫걸음을 떼고 계속해나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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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굴하지 않았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신의 연구에 더욱 몰입했다. 북미 약용 식물 탐방로를 만들고 치유적 특성을 연구했다. 초콜릿 행이 나는작약종인 페오니아 오피시날스라는 학명의 작약은 전 세계에 딱 하나 남아 있었다. 그 작약은 중국 전통 의학에서 중요한 식물이었으며 강력한 혈관수축제로 사용되었다. 그 종의 개체를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보관하고 있었고 어렵게 구하여 시험관 배양에 성공한다. 세계 곳곳의 식물원에 글을 써서 보내고 연구에 필요한 씨앗과 꺾꽂이용 가지를 얻어 연구에 했으며 선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필요한 식물을 찾아냈다. 그렇게 찾아낸 식물이 프텔레아 트리폴리아타이다. 500제곱킬로미터가 넘는 목장을 나흘 꼬박 헬리콥터에 매달린 끝에 이슬에 프텔레아 씨앗 꼬투리의 둥근 그물맥에 맺혀 햇빛을 반사한 것이 눈에 띄었고, 그곳에 당도해보니 분명 프텔레아였다. 케나다에서 멸종될 줄로 알았던 나무를 발견한 것이다. 프텔레아 성체는 딱 한 그루뿐이긴 했지만, 참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 나무에 대한 가치를 그녀가 농장주에게 알리지 않았다면 세상에 한 그루밖에 없었던 중요한 생태자원은 멸종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녀는 기적같은 일을 해냈다.

지금도 작가는 숲을 지키고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숲을 보전하려는 사람들과 연대하여, 숲을 파괴하려는 정부인사, 다국적 기업, 국제기구와 열심히 싸우고 있으며, 환경단체에서 과학자문을 맡아 인류의 훌륭한 생태자원을 지켜내는 일에 힘쓰고 있다.(빨간머리 앤)_

 

가슴 뛰는 삶을 살고 싶다면 나무를 심자

새해 첫날이면 일기장 맨 앞에 다짐 혹은 소망을 한 줄로 적는다. 나만의 새해맞이 의식인데 그것도 언젠가부터 시들해졌다. 해마다 실천하지 못한 전년의 다짐을 되풀이하자니 맥빠질 수밖에. 한데 세밑에 만난 책 나무를 대신해 말하기덕분에 새해 새 소망이 생겼다. 가슴이 뛴다.

나무를 대신해 말하기는 아일랜드 출신의 식물학자이며 의학생화학자인 다이애나 베리스퍼드-크로거가 자신의 삶과 자신을 키운 켈트 문화, 그리고 50여 년간 연구해온 나무에 대해 이야기한 자전적 에세이다. 저자는 열두 살에 부모를 모두 잃고 고아가 된 사연부터 나무의 비밀스러운 작용과 효능, 이제는 사라진 고대 켈트 문자(오검문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담백하고 유려하게 풀어낸다.

하지만 내가 처음부터 책에 매료된 건 아니다. 오히려 몇 번이나 책을 덮으려 했다. 글이 재미없어서가 아니라 저자의 삶이 너무 낯설어서였다. 영국 귀족 가문의 아버지와 아일랜드 왕가의 후손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저자는 여덟 살에 이미 나무들의 라틴어 학명을 줄줄 외울 정도로 탁월한 지능의 소유자였으니, 여러모로 나 같은 범인은 공감하기 힘들다. 게다가 그가 겪은 불행도 상상 이상이다. 일곱 살 무렵 부모가 이혼하고, 몇 년 뒤 아버지가 갑자기 죽고, 그 소식에 나쁜 새끼가 죽었군!” 하고 웃었던 어머니마저 얼마 안 돼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고아가 돼 악명 높은 막달레나 수용소에 갇힐 뻔하다 간신히 삼촌과 살게 되지만 지독한 무관심으로 밥도 못 얻어먹고 쓰러진다.

소설이 아니고 실제 겪은 일이란 게 의심스러울 정도인데, 뜨악했던 마음이 바뀐 건 저자가 어머니의 고향 리쉰스 계곡에서 만난 친척과 마을 사람들에 대해 얘기하면서부터다. 세상에 홀로 남겨진 소녀를 보듬고 가르침을 베푼 어른들을 보면서 어느새 나도 순한 마음이 되어 낯선 삶을 받아들이게 됐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일단 마음을 열자 눈부신 신세계가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첫 번째 신세계는 소박하면서도 심오한 아일랜드 고유의 켈트 문화다. 리쉰스의 늙은 여성들은 고아는 모두의 자녀라는 고대 법에 따라, 어린 다이애나를 자기를 돌보는 데 필요한 지식을 갖춘 성인 여성으로 자랄 수 있도록모두가 선생님이 되어 가르친다. 저자는 수십 명의 할머니 선생님들에게서 식물에 관한 방대한 지식과 활용법을 배우고, 게일어와 버터 제조법은 물론 삶의 고통을 견디고 자기 몸과 마음을 돌보는 방법을 배운다. 그렇게 계곡에서 부엌에서 들에서 시도 때도 없이 이루어진 교육, 머리만이 아닌 몸으로 배운 가르침은 평생의 자산이 된다. 어느 날 늘 유쾌하던 친척 아저씨가 트랙터가 없어서 곤란해하는 것을 본 저자는 함께 보리 베기에 나서는데, 도저히 해낼 수 없을 것 같던 밭일을 마침내 끝낸 그날의 현장학습에 관해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모든 아이가 자기 자신과 타인 그리고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절대 끝까지 도달할 수 없을 것 같은 길로 자기를 내던지는 경험을 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 신세계는 그가 평생 연구한 나무의 세계다. 식물학과 의학생화학을 전공한 저자는 켈트족의 지식을 과학적으로 풀어내는 독창적 연구를 통해, 세포조직의 이상을 판별하는 데 활용하는 생물 발광 현상을 발견하고 유전자 스미어링 기법과 인공 혈액 무기질 혈색소를 개발하는 성과를 거둔다. 식물이 번성하면 바다 생물도 풍부해진다는 그의 가설은 훗날 일본 연구진에 의해 사실로 입증되는데, 이 모든 것은 나무와 나무, 나무와 사람, 나무와 모든 생물이 연결되어 있다는 오랜 믿음의 소산이자 증거다.

배웠으면 나눠야 한다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는 고대의 믿음을 그가 증명할 수 있었던 것은 학계의 성차별과 편견에 맞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연구를 계속했기 때문이다. 그는 연구실이 아닌 숲에서 직접 나무를 심고 생태를 관찰함으로써, 죽은 나무에 깃든 정교한 균류를 발견하고, 버드나무를 죽인다고 알려진 수액빨이 딱따구리가 사실은 병원체로부터 정원을 지키는 맵시벌을 키운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나아가 나무도 인간의 뇌와 똑같은 화합물을 갖고 있다는 걸 밝혀내고, “나무도 듣고 생각할 수 있는 신경 능력을 갖고 있다라고 확언한다.

과학이 다 밝혀내지 못한 나무의 무궁한 능력을 확신하는 저자는, 무차별한 벌목과 지구 환경 변화로 고통받는 나무를 보전하기 위해 북미 약용식물 탐방로를 만들고, 사라져가는 희귀종 나무를 자신의 농장에서 키우고, 지구 곳곳을 탐색하며 숲을 지키고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노력한다. 그 모습이 어찌나 진지하고 절박한지, 전 세계에 단 한 그루만 남은 프텔레아를 수년간 찾아 헤매다 마주한 그가 나무를 감싸안고 울음을 터뜨렸을 때 나도 함께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리하여 내가 마주한 세 번째 신세계는 놀라운 희망의 세계다. 어린 시절 엄청난 정신적 외상을 입었음에도 저자는 자신에게 상처를 준 부모와 후견인을 원망하기보다 자신을 보듬은 어른들의 가르침에 감사하고, “배웠으면 나눠야 한다라며 지식에 따른 책임을 기꺼이 짊어진다. 그는 당면한 기후위기 앞에서 자포자기하는 대신 우리가 할 수 있는 구체적 실천 방안을 제시하며 맞서 싸우자고 독려한다. 방법은 나무를 심는 것이다. 3억 년 전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은 환경을 인류가 살 수 있게 바꿔놓은 존재가 나무였으니 한 사람이 해마다 한 그루씩 6년 동안 나무를 심으면 기후변화를 멈출 수 있다고, 한 뙈기의 땅도 없다면 화분에라도 나무를 심어 밖에 내놓자고 그는 말한다.

어떤 고난에도 굽힐 줄 모르는 씩씩한 스승 덕에 새해 소망이 생겼다. 나무를 심겠다, 나도 나무처럼 푸르게 살겠다!

시사인 /김이경 (작가)

 

나무는 내 말을 듣고 있었다

정원의 나무가 갑자기 죽었다. 나이는 35살 정도이며, 우리와 한 뜰에서 산 지가 29년이 된 만리향이었다. 빌라 사람들은 이 나무가 더 이상 싹을 내지 않는 이유를 알 수 없다고 혀를 찼다. 만약, 그 옆의 나무도 같이 시들었거나 죽었다면 토양이나 배수에 문제가 생겼을 것이라고 진단했을 것이지만, 그 옆의 키 작은 나무는 올해도 멀쩡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짐작을 말하기 시작했다. “102호네 대신 죽은 것일 거야!”. 그러자 이 만리향이 죽은 이유를 추론할 수 없었던 사람들은 다 같이 그래 맞아! 102호네 대신 죽은 걸 거야!”라고 속삭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빌라에서는 이 멀쩡하던 만리향이 죽은 이유가, 이 나무가 서 있는 화단 청소를 가장 열심히 했고, 그래서 얼굴을 가장 자주 대했던 102호네가 중병에 걸려 병원에 입원하게 되자, 나무가 그 대신 죽은 것이므로, 이제 102호네는 살아서 돌아올 것이라고 예감했다.

102호 안주인은 이 만리향 나무를 가꾸었고, 항상 그 앞에서 사람들과 담소했으므로, 사람들은 ‘102호네와 만리향을 같이 연상했을 것이다, 그래서 건강하던 102호네가 갑자기 병에 걸려 입원한 일과, 만리향이 갑자기 죽은 것을 연관 지어 생각했다. 만리향의 까닭 모를 죽음에 대한 마땅한 해석이 필요했고, 사람 좋은 102호네의 생환을 바라는 마음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생각이 달랐다. 우선 빌라 사람들이 이 만리향을 과연 정말 좋아했느냐는 것이었다. 우선 고백하지만, 나부터 이 만리향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다. 의아해할 일이지만, 우선 만리향에는 미약한 분뇨 냄새 같은 것이 섞여 있었고, 너무 짙어서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그래서 만리향이 피는 계절이면 나는 창문을 닫고 지냈고, 나중에는 이 지독한 냄새에 독성은 없을까 하는 걱정을 하기도 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이 나무가 성장함에 따라 창 앞을 점점 많이 가리게 되고, 따라서 창으로 투사되는 햇살이 점점 적어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전지 작업를 할 때마다, 나는 빌라 사람들 몰래 전지 작업자에게 부탁을 하곤 했다. “정원 나무가 너무 크면 문을 가려 안 좋지요! 만리향 가지를 좀 더 낮게 치세요.” 그러나 한 해가 지나면 나무는 더 크게 자라있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재촉했다. “작년보다 더 낮게 치세요!” 나의 닦달에 작업자는 사다리 위에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느 날 만리향 잎이 시들어 떨어졌고, 봄이 되어도 나무는 싹을 내지 않았다. 우리는 비로소 만리향이 죽었다는 것을 알았다.

사람들은 102호네 대신에 만리향이 죽었다고 했지만, 나는 그 나무가 죽은 진짜 이유를 안다. 사실은 아무도 그 존재를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선 내가, 그 존재가 창문 앞 공간과 햇살을 가린다는 이유로 반기지 않았고, 심지어 그 나무가 일 년간 이슬과 햇살을 모은 힘으로 피워 올린, 그 존재의 빛인 꽃조차도 냄새가 심하다고 얼굴을 찌푸렸다. 그래서 나무는 아름다운 존재로 인정받지 못해서 창피함을 느꼈을 것이다. 내가 더 낮게 자르라고 주문하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존재를 부정당하는 부끄러움을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나무는 나를 보고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미안해요! 다른 곳으로 옮겨가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네요, 새처럼 날 수도 없고 지렁이처럼 기어 다닐 수도 없으니...,”

만리향이 더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는 유일한 길은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 죽은 나무를 베는 것에 반대했다. 그 이유는 내가 너무 미안했기 때문이다. 나는 나무가 죽고 난 뒤에야 비로소 알았다. 나무는 내가 평소 그에게 하는 말을 전부 듣고 있었다는 것을. /부산일보/ 문계성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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