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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쉬운 詩 좋은 詩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 권정생

by 이성근 2019. 8. 8.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 권정생

 

 

세상의 어머니는 모두가 그렇게 살다 가시는 걸까.

한평생

기다리시며

외로우시며

안타깝게...


배고프셨던 어머니

추우셨던 어머니

고되게 일만 하신 어머니

진눈깨비 내리던 들판 산고갯길

바람도 드세게 휘몰아치던 한평생

그렇게 어머니는 영원히 가셨다.

먼 곳 이승에다

아들 딸 모두 흩어 두고 가셨다.

버들고리짝에

하얀 은비녀 든 무명 주머니도 그냥 두시고

기워서 접어 두신 버선도 신지 않으시고

어머니는 혼자 훌훌 가셨다.


어머니 가실 때

은하수 강물은 얼지 않았을까

차가워서 어떻게

어머니는 강물을 건너셨을까

어머니 가신 거기엔 눈이 내리지 않는 걸까

찬바람도 씽씽 불지 않는 걸까

어머니는 강 건너 어디쯤에 사실까

거기서도 봄이면 진달래꽃 필까

 

앞산 가득 뒤산 가득

빨갛게 빨갛게 진달래꽃 필까

 

어머니 사시는 집은 초가집일까

흙담으로 지은 삼 간 짜리 초가집일까

봄이면 추녀 끝에 제비가 집 지을까

봉당엔 삽살이도 앉았을까

등우리엔 암탉이 병아리도 깔까

 

어머니는 누구랑 살까

이승에 있을 때

먼 나라로 먼저 갔다고

언제고 언제고 눈물지으시던

둘째 아들 목생이 형이랑 같이 살까

아침이면 무슨 밥 잡수실까

거기서는 보리밥에 산나물 잡수실까

거기서도 밥이 모자라

어머니는 아주 조금밖에 못 잡수실까


어머니네 집 앞으로 골목길도 있을까

대추나무 섰는 우물이 있을까

바가지로 만든 새끼끈 달린

두레박으로 물을 길으실까

물동이도 고만큼 예쁜 것으로 길으실까

왕골 껍질로 만든 또아리를 받치실까

어머니는 거기서도 팔이 여위셨을까

물동이 내리실 때 부들부들 떨지 않으실까

 

디딜방아는 누구랑 찧으실까

목생이 형이 찧고

어머니는 확 앞에 앉아서 쓸어넣으실까

수수가루 빻아

오늘 저녁엔 수수팥단지 만드실까

이남박에 꼭꼭 떡 담으시고

모락모락 김나는 수수떡 담아 놓으시고

저 아래 먼 먼 이승에 두고 온 일준이랑

또분이랑 생각하실까

수수팥단지 잡수시다 목이 메어 우실까

호롱불빛을 비껴나

어머니는 돌아앉아 눈물 닦으실까

참나무 떡갈나무 잎이 피면

꾀꼬리가 자랑자랑 숲속에서 울까

어머니는 꾀꼬리 소리 들으며

산나물 뜯으실까

췻동아리 뜯으시고

바디취나물 뜯으시고

뚝갈이, 미역취 뜯으시며

거기서도 어머니는 타령을 부르실까

꾀꼬리 우는 소리보다 더 구슬픈

타령을 길게 길게 부르실까

어머니 사시는 거기엔

전쟁이 없을까

무서운 포탄이 없을까

총칼을 든 군대들이 없을까

모든 걸 빼앗기만 하는 임금도 없을까

무서워서 하루도 한 시도

마음 못 놓는 날이 정말 없는 것일까

그래서 헤어지는 슬픔도 없는 것일까

정말 울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여름 뙤약볕이 쬐면

고추밭에 고추가 빨갛게 익을까

어머니는 목화밭 김도 매고

서속밭 김도 매며 바쁘실까

거기서도 어머니는 쉬지 않고

쉬지 않고 일만 하실까

어머니 얼굴은 거기서도 까맣게 그으르셨을까

주름살이 깊게 깊게 패이셨을까

 

어머니는 열무랑 나박배추 가꾸실까

고추따서 다래끼에 담고

열무랑 나박배추 솎아 담고

어머니는 언덕길로 걸어서 집으로 가실까

고무신 아끼시느라 벗어 들고 걸어가실까

다래끼 무거우면 한 번 추슬렀다가

- 휴유우 하시며, 잠깐 섰다가 또 걸으실까

 

소낙비 내린 다음 날

말똥버섯 돋아나면 따다가 잡수실까

쪽으로 짜개시고 끓는 물에 데쳐

국을 끓여 잡수실까

말똥버섯 국 끓여 놓고 앉아

- 일준아..

- 또분아..

그렇게 또 생각하실까

밤이면 달도 뜰까

둥글게 훤하게 달도 뜰까

앞마당 귀리집으로 엮은 거적을 깔아 놓고

어머니는 삼바람 이으시며 밤을 지샐까

누구랑 앉아서 삼 삼으실까

거기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도

진갑이네 어머니 같은 착한 이웃이 있을까

감자떡 나눠 잡수시며 걱정들을 나누며

함께 앉아 삼 삼으시며 밤을 지샐까

 

하얀 달빛에 실바람이 일고

초가지붕 위엔 박꽃도 필까

누나 얼굴 같은 하얀 박꽃이 필까

조롱조롱 애기박이 열리고

그렇게 또 가을이 찾아오는 걸까

바가지가 둥글둥글 굵어지는 가을이 오는 걸까

어머니는 사기요강에 오줌 받아

박넝쿨 구덩이에 부어 넣으실까

바가지 딴딴하게 영글라고

오줌 받아 부으실까

바가지 타서 말리시며

어머니는 시집간 귀분이 생각하실까

친정나들이 오면 제일 이쁜 것 주고 싶어

거기서도 어머니는 딸 생각하실까

거기서도 추석은 있을까

설날이 있을까

어머니는 추석에도 외로우시겠지

어머니는 설날도 외로우시겠지

아직도 아들딸 이승에 두고 가셔

어머니는 문구멍까지 귀 기울이시며

눈물지으실까


어머니는 거기서도

바람 머리 앓으실까

이앓이도 하실까

머리도 수건 두르시고

아픈 것도 애써 참으실까

겨울밤 어머니 방엔 군불 많이 지피실까

솜이불 두꺼운 걸로 덮고 주무실까

방바닥엔 삭자리 깔았을까

짚자리 가지런히 깔았을까

윗목에 물레실 자으시다가

어머니는 밤 늦게 잠자리 드시는 걸까


어머니 사시는 나라에도

그리움이 있을까

애달픔이 있을까

개똥벌레 날아가는 밤

귀뚜라미 우는 밤도 있을까

정지 부뚜막에 생쥐가 찍찍 울며 다닐까

뒷산에 부엉이가 와서 울까


장날이면 장보러 가실까

말린 고추 팔러 가실까

울양대 차좁쌀도 고만큼씩

올망졸망 가지고 가실까

동구 밖까지 삽살이가 따라오면

어머니는 주먹을 들어 으르시고

발로 탕탕 구르시고

그래도 안 되면

- 삽살아, 집에 가 있거라

- 집 잘 보고 있으면 착하지

삽살이는 알아듣고 못 이긴 척

서운하게 돌아서 텁썩텁썩 갈까

 

장에는 어떤 장수들이 있을까

개구리참외도 팔까

콧등에 하얀 테 두른

알룩고무신도 팔까

타래엿도 팔고 갱엿도 팔까

소금 장수도 저런 고등어 장수도 있을까

때깔이 예쁜 주발 장수도

항아리랑 단지랑 놓고 파는

옹기장수 할아버지도 있을까


어머니는 뚝배기 하나 사고

소금 조금 사고

개구리참외도 사실까

참외 사시면서도 이승에 두고 온

아들딸 생각 또 하시겠지

돌아오는 길에 소낙비도 내릴까

소낙비 내리면 무지개도 뜰까

청산 위에 색동빛 예쁜 무지개처럼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도

청산처럼 아름다운 산이 있고

중들 강물처럼 맑은 강물이 흐를까

거기 그렇게 예쁜 무지개 뜨면

어머니도 어린애처럼 즐거우실까

소낙비 맞고 옷이 젖어도

어머니는 무지개 쳐다보면 또 쳐다보며

비탈길을 동동걸음 걸어오실까


개구리참외는

목생이 형이랑 둘이서만 먹을까

거기서도 어머니는 찔름 들어간

못생긴 참외를 잡수시고

예쁘고 만난 건 아들 주실까

참외꼭지만 남기고 알뜰히 잡수실까


어머니는 자주자주 하늘 보실까

어머니는 자주자주 달 쳐다보실까

거기엔 정말 전쟁이 없었으면

빼앗아만 가는 임금도 없었으면

전쟁에 쫓겨 쫓겨 가지 않았으면

모구가 자유롭고 사랑이었으면

톳제비나 물레귀신 말고는

무서운 것들이 없었으면

거기에도 봄이면 진달래꽃 폈으면

꾀고리가 울었으면

골목길에 엄마닭이 병아리 데리고 다니고

감나무에 족두리 같은 꽃이 폈으면

창포꽃이 피고

그네 뛰는 단오날이 있었으면

 

응숙이네 머슴, 장수 아저씨랑

군마 할아버지 같은

마음씨 착한 사람들이 살았으면

송아지도 있고 망아지도 있었으면

실개울엔 가재도 살고 우렁이도 살고

버들가지도 흔들리고 물총새도 날고

흰구름 동동 뜨고 제비가 날고

뻐꾸기가 자꾸자꾸 울었으면

아아, 거기엔 배고프지 않았으면

너무 많이 배고프지 않았으면

너무 많이 슬프지 않았으면


부자가 없어, 그래서 가난도 없었으면

사람이 사람을 죽이지 않았으면

으르지도 않고 겁주지도 않고

목을 조르고 주리를 틀지 않았으면

소한테 코뚜레도 없고 멍에도 없고

쥐덫도 없고 작살도 없었으면


보리밥 먹어도 맛이 있고

나물 반찬 먹어도 배가 부르고

어머니는 거기서 많이 쉬셨으면

주름살도 펴지시고

어지러워 쓰러지지 말으셨으면

손목에 살이 좀 오르시고

허리도 안 아프셨으면

그리고 이담에 함께 만나

함께 만나 오래 오래 살았으면


어머니랑 함께 외갓집도 가고

남사당놀이에 함께 구경도 가고

어머니 함께 그 나라에서 오래 오래 살았으면

오래 오래 살았으면……


- 동시집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지식산업사, 1988)

................................................................

권정생 본명은 권경수. 1937(9.10)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으며, 해방 직후 1946년 경북 청송으로 돌아왔다. 권정생은 가난으로 인하여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점원 일을 하거나 전국을 돌며 걸식을 하다가, 1967년에 경북 안동의 조탑동 마을의 교회 종지기로 정착하게 되었다.

 

1969년 월간 기독교 교육에 동화 강아지 똥이 당선되었고, 1971대구매일신춘문예에 동화 아기 양의 그림자 딸랑이가 입선, 1973조선일보신춘문예에 동화 무명저고리와 엄마가 당선되었다. 그 뒤 작고 보잘것 없는 것들에 대한 따뜻한 애정과 굴곡 많은 역사를 살아왔던 사람들의 삶을 보듬는 진솔한 글로 어린이는 물론 부모님들의 많은 사랑을 받아 왔다.

 

그는 자연과 생명, 어린이, 이웃, 북녘 형제에 대한 사랑을 주된 주제로 하여 깜둥바가지, 벙어리, 바보, 거지, 장애인, 외로운 노인, 시궁창에 떨어져 썩어가는 똘배, 강아지 똥 등 힘이 없고 약한 주인공들이 자신을 희생하여 타인에게 기여하는 기독교의 예수 그리스도적인 삶을 주로 표현하고자 하였다.

 

특히 처마 밑의 강아지 똥을 보고 썼다는 강아지똥과 절름발이 소녀의 꿋꿋한 이야기를 담은 몽실언니는 무시당하고 상처받으며 소외된 주인공들의 모습을 잘 그려내고 있어 작가의 작품 세계를 잘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작품 속에는 한국인 노동자의 아들로 일본에서 겪었던 식민지 시대의 체험과 이방인의 체험이 스며있다.

 

그는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성장 뒤에 가려진 보통 사람들의 어두운 삶과 그 고통과 슬픔을 새롭게 음미하면서도 거기서 희망을 발견하는 힘을 놓치지 않는다. 그가 작품에서 주력해서 표현하고자 한 것은 인간에 대한 편견 없는 시선과 살아있는 것들에 대한 애정, 어려운 상황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라고 할 수 있다.

 

2006'랑랑별 때때롱'을 집필할 때의 권정생 선생 모습.[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 제공]

그러한 애정이 어린이의 눈을 통해 드러남으로써 이념이나 계층 등에 구애받지 않는 순수하고도 진실한 삶의 실체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지은 책으로는 첫 동화집 강아지똥에 이어 사과나무밭 달님(1978), 하느님의 눈물등과 소년 소설 몽실언니(1984), 무명저고리와 엄마(1984), 점득이네(1990), 한티재 하늘(1998), 도토리 예배당 종지기 아저씨등이 있다.

 

그리고 시집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1988), 산문집 오물덩이처럼 뒹굴면서, 우리들의 하느님등이 있다. 그밖에도 남북 어린이가 함께 보는 전래동화를 엮었다. 2007517일 세상을 떠났으며, 고인의 뜻에 따라 권정생어린문화재단이 설립되어 불우 어린이를 위한 여러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수상내역

1969년 작품명 '강아지 똥' - 월간 기독교 교육에 동화 강아지 똥이 당선

1969년 제1회 아동문학상

1971년 작품명 '아기 양의 그림자 딸랑이' - 대구매일 신춘문예에 동화 아기 양의 그림자 딸랑이가 입선

1973년 작품명 '무명저고리와 엄마' -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동화 무명저고리와 엄마가 당선

1975년 한국아동문학상

 

 

작품목록

강아지 똥

강아지 똥

또야 너구리가 기운 바지를 입었어요

먹구렁이 기차

몽실언니

사과나무밭 달님

오물덩이처럼 뒹굴면서

우리들의 하느님

짱구네 고추밭 소동

청춘나그네를 위하여

하느님의 눈물

한티재 하늘

점득이네

 



1973년 도쿄 빈민가에서 태어나

가난으로 학교 대신
골목길에서 보낸 어린 시절

 

나무장수
고구마장수
담배장수
재봉틀가게 점원으로 전전..

하고 싶은 일보다
할 수밖에 없는 일이 더 많았던 시절

 

19세의 나이에
늑막염가 폐결핵에 걸렸다

 

"돈을 벌려고 집을 나간 동생..
 부모님께 도저히 그 이상 고생을 시켜드릴 수 없어
 차라리 죽길 바라며
 밤마다 교회당에 가서 하나님께 기도했다."

 

1965년
병든 몸으로 홀로 집은 나온 후
걸식과 떠돌이 생활

 

그러나
깡통에 밥을 꾹꾹 눌러 담아주던 식당 아주머니
길에 쓰러져 있을 때 물을 길어다 준 할머니
공짜로 강을 건너주던 뱃사공 할아버지
자신보다 하등 나을 것 없던 가난한 사람들...
오로지 죽을 생각만 하던 그를
살라며 살라며
다독여주던 그들...
그보다 나을 것 없는 가난한 이웃들 이었다.

 

29살
경북 안동에 정착
마을교회 종지기로 일하며

외풍이 심해 한번 걸리면 봄이 돼야
나았던 동상

문간방에서 홀로 생활하던 시절
그 춥고 외딴방에 놀러온
작은 친구들...

 

뚫린 창호지 구멍으로
폴짝 뛰어들어온
개구리...

겨울이면 따뜻한 아랫목에 들어와
같이 잠들던 생쥐...

 

"자다보면 발가락을 깨물기도 하고
 옷 속을 비집고 겨드랑이까지 파고 들어오기도 했다.
 처음 몇 번은 놀라기도 하고 귀찮기도 했지만
 지내다보니 정이 들어
 아예 발치에다 먹을 것을 놓고 기다렸다."

 

"개구리든 생쥐든 메뚜기든 굼벵이든
 같은 햇빛 아래 같은 공기와 물을 마시며
 고통도 슬픔도 겪으면서
 살다 죽는 게 아닌가."

 

극심한 고통과 고독 속에서
작은 친구들을 벗삼아 글을 쓰기 시작했다.

 

1969년 그의 첫 동화 주인공은
흰둥이가 싸놓고 간

 

제1회 기독교 아동문학상
제1회 한국아동문학상
제22회 새싹문화상

 

동화작가로 유명해지고
이제 돈도 제법 벌었지만
그의 평생 생활공간이 된
조그만 흙집에서
계속 태어나던 또다른 주인공들

 

 

깜둥 바가지
벙어리
전쟁고아
바보
늙은 소
거지
장애인
외로운 노인
시궁창에 떨어져 썩어가는 똘배

 

"동화가 왜 그렇게 어둡냐고요?
 그게 진실이기에
 아이들에게 감추는 것만이 대수는 아니지요.
 좋은 글은
 읽고나면 불편한 느낌이 드는 글입니다."

 

2007년 5월 17일
조용하고 한적한 마을에 난데없이 자동차들이 줄을 이었다

 

"우리는 한 동네에 있어도 그 사람이 그리 유명한 줄 몰랐는데...
 돈도 많이 벌었다고요?
 참 가난했어요.
 평생을 옷 한 벌로 지냈싱께.."


 

그의 마지막 글..
(유언장 전문)

내가 죽은 뒤에 다음 세 사람에게 부탁하노라.
1. 최완택 목사 민들레교회
이 사람은 술을 마시고 돼지 죽통에 오줌을 눈 적은 있지만   심성이 착한 사람이다.
2. 정호경 신부 봉화군 명호면 비나리
 이 사람은 잔소리가 심하지만 신부이고  정식하기 때문에 믿을만하다.
3. 박연철 변호사
 이 사람은 민주변호사로 알려졌지만 어려운 사람과 함께 살려고 애쓰는 보통 사람이다.
 우리 집에도 두세 번 쯤 다녀갔다. 나는 대접 한 번 못했다.
 
 위 세 사람은 내가 쓴 모든 저작물을 함께 잘 관리해 주기를 바란다. 내가 쓴 모든 책은 주로 어린이들이 사서읽는 것이니 여기서 나오는 인세를 어린이에게 되돌려 주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만약에 관리하기 귀찮으면 한겨레 신문사에서 하고 있는 남북 어린이 어깨 동무에 맡기면 된다. 맡겨놓고 뒤에서 보살피면 될 것이다.
 
 유언장이란 것은 아주 훌륭한 사람만 쓰는 줄 알았는데 나 같은 사람도 이렇게  유언을 한다는게 쑥스럽다.
 앞으로 언제 죽을지는 모르지만 좀 낭만적으로 죽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도 전에 우리 집 개가 죽었을 때처럼 헐떡 헐떡 거리다가 숨을 꼴깍 넘어가겠지. 눈은 감은 듯, 뜬 듯 하고 입은 멍청하게 반쯤 벌리고 바보 같이 죽을 것이다.
 
 요즘 와서 화를 잘 내는 걸 보니 천사처럼 죽는 것을 글렀다고 본다.
 그러니 숨이 지는대로 화장을 해서 여기 저기 부려 주기 바란다.
 
 유언장치고는 형식도 제대로 못 갖추고 횡설수설 했지만 이건 나 권정생이 쓴 것이 분명하다.

 죽으면 아픈 것도 슬픈것도 외로운 것도 끝이다. 웃는 것도 화내는 것도. 그래서 용감하게 죽겠다.
 
 만약에 죽은 뒤 다시 환생을 할 수 있다면 건강한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
 태어나서 25살 때 22살이나 23살쯤 되는 아가씨와 연애를 하고 싶다.  벌벌 떨지 않고 잘 할 것이다.
 하지만 다시 환생했을 때도 세상엔 얼간이 같은 폭군 지도자가 있을테고 여전히 전생을 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환생은 생각해 봐서 그만 둘 수도  있다.


                             2005년 5월 10일
                             쓴 사람 권정생
                        주소 경북 안동시 일직면 조탑리 7

 

정호경 신부님
 마지막 글입니다. 제가 숨이 지거든 각각 적어 놓은대로부탁 드립니다.
 제 시체는 아랫마을 이태희군에게 맡겨 주십시오. 화장해서 해찬이와 한께 뒷산에 뿌려 달라고 해 주십시오.
 지금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3월 12일 부터 갑자기 콩팥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뭉퉁한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계속 되었습니다.
 지난 날에도 가끔 피고물이 쏟아지고 늘 고통스러웠지만 이번에는 아주 다름니다.

 1초도 참기 힘들어 끝이 났으면 싶은데 그것도 마음대로 안됩니다.
모두한테 미안하고 죄송합니다.
 하느님께 기도해 주세요. 제발 이 세상  너무도 아름다운 세상에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은 없게 해 달라고요.  제작년 어린이 날 몇자 적어놓은 글이
 있으니 참고해 주세요.
 
 제 예금통장 다 정리되면 나머지는 북쪽 굶주리는 아이들에게 보내 주세요.
제발 그만 싸우고, 그만 미워하고 따뜻하게 통일이 되어 함께 살도록 해 주십시오.
 중동, 아프리카, 그리고 티벳 아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하지요.
 기도 많이 해 주세요.
 안녕히 계십시오.

 

           2007년 3월 31일 오후
                    6시 10분
                    권 정 생

 



사진 출처: 네이브 블로그 김찬곤의 차근차근 한국미술사





 아동문학가 故권정생
(1937.9.10~2007.5.17)

 

 권정생은 1937년 일본 도쿄의 빈민가에서 태어났다. 광복 직후인 1946년 가족과 함께 귀국하여 나무장수, 고구마장수, 담배팔이 등을 하며 가난과 싸우다 결핵에 걸렸다. 가족의 부담을 염려한 그는, 함병증까지 얻어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 대구, 김점, 상주, 문경을 홀로 떠돌며 걸식을 하는 등 어려운 삶을 이어갔다. 1967년, 우연히 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한 교회의 종지기가 되면서 그곳에 정착한다.

 여전히 가난했지만 정착생활을 시작한 그는 단편동화 [강아지 똥]의 발표를 시작으로 동화작가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이 작품으로 월간 [기독교교육]의 제1회 아동문학상을 받으면서 '권정생'이란 이름이 세인의 주목을 끌기 시작했다. 197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화부분에 [무명저고리와 엄마]가 당선되었고, 1975년 '제1회 한국아동문학상'을 받았다.
 
 1980년대 이래 조탑리 언덕 밑의 작은 흙집에 의지한 채 홀로 살며 어린이들을 위한 작품들을 써오다가, 지난 2007년 5월 17일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권정생의 장례식을 끝까지 지켰던 시인 도종환은 며칠 후 경향신문에 이렇게 썼다.


 "... 권정생 선생이 돌아가시고 난 뒤 조탐리 노인들은 많이 놀랐다고 한다. 혼자 사는 외로운 노인으로 생각했는데 전국에서 수많은 조문객이 몰려와 눈물을 펑펑 쏟으며 우는 걸 보고 놀랐고, 병으로 고생하며 겨우겨우 하루를 살아가는 불쌍한 노인인 줄 알았는데 연간 수천만 원 이상의 인세수입이 있는 분이란 걸 알고 놀랐다고 한다. 이렇게 모인 10억 원이 넘는 재산과 앞으로 생길 인세수입 모두를 굶주리는 북한 어린이들을 위해 써달라고 조목조목 유언장에 밝혀 놓으신 걸 보고 또 놀랐다고 한다..."

 기독교에 대한 독실한 믿을 바탕으로 쓰여진 그의 작품들은 자연과 생명, 어린아, 가난한 이웃, 북녁형제들에 대한 사랑을 주제로 하고 있다. 그가 드려내는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힘없고 약한 존재들이지만, 그들은 모두 자신을 죽여 남을 살려냄으로써 결국은 아름다운 영생을 얻게 된다. 저간의 동화작품들이 대개 현실과 동떨어진 환상의 세계만을 보여주었던 데 비해, 권정생은 주변의 어둡고 추운 곳에도 왕자나 공주 못지 않게 멋지고 따뜨한 영혼을 간직한 수많은 존재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어린이들에게 보여주었다.


 

막 도착한 ‘창작과비평’ 여름호를 읽고 있었다. 김용락 시인이 쓴 ‘시 같지 않은 시’를 보다가 빙긋 웃었다. 도법 스님이 이끄는 생명평화 탁발순례단이 경북 안동 조탑리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의 댓 평 오두막에 들렀을 때의 얘기를 시인은 전하고 있었다.


“권 선생님 왈/ ‘사진 찍고 이칼라면 오지 마라 안 카디껴!/ 젊은 사람들이 이렇게 몰려다니면 농사는 누가 짓니껴?/ 이 많은 사람들이 산이나 들을 마구 짓밟고 다니면/ 작은 생명들이 발에 밟혀 죽니더/ 인간들에게 생명평화인지 몰라도/ 미물에게는 뭐가 될리껴?/ 차라리 집 안에 그냥 가만히 있는 게/ 되레 생명평화 위하는 길 아이니껴?’/ 스님, 순례단원, 지역 시인, 카메라를 맨 기자는/ 묵묵부답 잠시 말을 잃었다.”


시는 또 새싹문학상 수상을 거절하셨던 권 선생 사연도 적었다. “우리 어른들이 어린이들을 위해 한 게/ 뭐 있다고 이런 상을 만들어/ 어른들끼리 주고받니껴?” 갑자기 그 작은 방이 떠올랐다. 어른 서넛이 어깨를 대고 앉으면 꽉 차던 1평 남짓한 방에서 선생은 10년 전에도 사진은 안 찍겠다고 하셨다. 난감해진 사진기자는 땀을 흘리며 사정을 말씀드렸고 겨우 허락을 얻어 몇 컷 누른 뒤 잠자코 선생 말씀을 들었다.


“‘강아지똥’을 쓰던 1969년은 일직교회 문간방 한 칸에 겨우 몸을 부리고 종지기를 하며 겨울을 나던 때였습니다. 불을 못 때 귀에 동상이 걸렸고, 아침에 보리쌀 두 홉을 냄비에 끓여 숟가락으로 세 등분 금 그어 놓고 저녁까지 나눠 먹던 시절입니다. 그래서 내 동화는 슬픈지 모릅니다. 그러나 절망적인 건 아닙니다. 서러운 얘기를 함께 나누면서 그 설움을 푸는 거지요. 요즘은 동화를 머리로들 쓰는데 글이란 머리로 쓰는 게 아닙니다. 우리 옛날 얘기를 보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사랑방에 모인 민중들이 서로의 마음을 보태 한풀이를 했거든요.”


시를 읽고 난 지 며칠 만이었을까. 선생의 부음을 들었다. 평생 그의 몸 구석구석을 갉아먹은 결핵균이 막 칠십 고개를 넘은 선생을 쓰러뜨렸다. 다시 그 오두막이 떠올랐다. 한 달에 5만원쯤으로 사는 검박한 생활, 해묵은 살림살이들이 청빈의 때를 입고 골동 같은 주인을 에워싸고 있던 그 방에서 선생은 나직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동화에 웬 똥이 나오고, 왜 그렇게 어둡냐고요? 그게 진실이기에 아이들에게 감추는 것만이 대수는 아니지요.”


그는 응달에 숨어 사는 목숨이 있다는 게 얼마나 기쁜 일이냐고 되물었다. 다들 돈에 물들고, 미국에 물들어 안타까운 참에 그렇게 큰길에서 비켜 사는 사람들을 만나면 참 좋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절대 훌륭해선 안 돼요. 훌륭한 사람들이 있으니까 하층민이 생기잖아요. 살아보니 다 허무한데. 잘난 놈들이 위에서, 옆에서 까분다고 이 세상이 좋아진 게 있습니까. 점점 나빠졌지. 훌륭한 사람이 있어선 안 돼요. 보통 사람들이 살다 가고, 살다 가고 해야지.”


일본 도쿄 변두리 시부야에서 태어난 선생은 거리 청소부였던 아버지가 쓰레기 더미에서 건져온 동화책을 읽으며 혼자 글을 깨쳤다고 했다. 해방 이듬해 한국에 돌아왔지만 어려운 살림에 뿔뿔이 흩어지게 됐고, 전쟁 통에 부산으로 흘러든 선생은 고아 아닌 고아로 폐결핵을 앓기 시작했다. 그러곤 평생 홀로 스스로를 그늘에 유폐시킨 성자처럼 살았다. 오죽했으면 자신의 삶을 ‘오물덩이처럼 뒹굴면서’라고 표현했을까.


그때 선생이 말씀하신 연애론이 찡했다. “내가 장가 안 간 노총각이지만 연애는 수없이 했어요. 할아버지·할머니하고도, 아이들하고도, 강아지하고도, 생쥐하고도, 개구리하고도, 개똥하고도 매일 연애하는데요. 개똥 사랑하면 가슴이 덜 떨리고 힘도 덜 소모돼요.”


선생이 남긴 일화가 한둘일까. 새마을운동이 극성이던 70년대, 종지기로 일하던 교회 앞 나무를 베어내고 시멘트 담을 세우려 하자 선생이 마지막 남은 대추나무 한 그루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는 바람에 그 대추나무는 살아남았다는 얘기는 한 예일 뿐이다. 그는 때로 성서에 나오는 거지 나사로 같았고, 때로 그가 쓴 동화 ‘강아지똥’ 같았다. 자디잘게 부서져 땅 속 민들레의 뿌리로 모여들어 한 송이 아름다운 꽃을 피운 강아지똥처럼, 그는 모두들 피해 가는 허물어진 육신을 부서뜨려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살찌우는 동화를 썼다.


검정 고무신을 신고 봉당에 내려서 손님을 배웅하던 그 곱고 슬픈 얼굴이 떠오른다. 이현주 목사에게 쓴 편지 구절처럼 “하늘나라 가면, 장가도 안 가고, 시집도 안 가고, 그래서 참 재미있다고 생각해”라고 하셨으니, 지금쯤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계실까. 부디 그러시길 빈다.

 

  정재숙<johanal@joongang.co.kr> | 제11호 | 20070526 입력 (중앙일보 중앙선데이 중에서..)



사랑의 Andante......모음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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