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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서평

쇼핑은 투표보다 중요하다

by 이성근 2020. 4. 17.

https://www.youtube.com/watch?v=jwjT5pquT0Y




쇼핑은 투표보다 중요하다 정치적 소비자 운동을 위하여 저자 강준만|인물과사상사 |2020.04

 

저자 : 강준만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강준만은 탁월한 인물 비평과 정교한 한국학 연구로 우리 사회에 의미 있는 반향을 일으켜온 대한민국 대표 지식인이다. 전공인 커뮤니케이션학을 토대로 정치, 사회, 언론, 역사, 문화 등 분야와 경계를 뛰어넘는 전방위적인 저술 활동을 해왔으며, 사회를 꿰뚫어보는 안목과 통찰을 바탕으로 숱한 의제를 공론화해왔다.

 

2005년에 제4회 송건호언론상을 수상하고, 2011년에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국의 저자 300’, 2014년에 경향신문올해의 저자에 선정되었다. 저널룩 인물과사상(33)2007한국일보우리 시대의 명저 50에 선정되었고, 미국사 산책(17)2012년 한국출판인회의 백책백강(百冊百講)’ 도서에 선정되었다. 2013년에 증오 상업주의갑과 을의 나라를 화두로 던졌고, 2014년에 싸가지 없는 진보논쟁을 촉발시켰으며, 2015년에 청년들에게 정당으로 쳐들어가라는 청년 정치론을 역설했고, 2016년에 정쟁(政爭)종교전쟁으로 몰고 가는 진보주의자들에게 일침을 가했고, 2017년에 신뢰받는 언론인인 손석희의 저널리즘을 분석했고, 2018년에 나를 위한 삶에 몰두하는 평온의 기술을 역설하며 한국 사회의 이슈를 예리한 시각으로 분석했다.

 

그동안 쓴 책으로는 당신의 영혼에게 물어라, 강남 좌파 2, 습관의 문법, 한국 언론사, 바벨탑 공화국, 글쓰기가 뭐라고, 교양 브런치,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 평온의 기술, 넛지 사용법, 감정 동물, 소통의 무기, 손석희 현상, 박근혜의 권력 중독, 힐러리 클린턴, 생각과 착각, 도널드 트럼프, 전쟁이 만든 나라, 미국, 정치를 종교로 만든 사람들, 지방 식민지 독립선언, 청년이여, 정당으로 쳐들어가라!, 독선 사회, 개천에서 용 나면 안 된다, 생각의 문법, 인문학은 언어에서 태어났다, 싸가지 없는 진보, 감정 독재, 미국은 세계를 어떻게 훔쳤는가, 갑과 을의 나라, 증오 상업주의, 강남 좌파, 교양영어사전(2), 한국 현대사 산책(23), 한국 근대사 산책(10), 미국사 산책(17) 외 다수가 있다.

 

목차

머리말 : “소비를 이념적으로 하나?” 5

 

1: 1,528명이 죽는 동안 정부와 언론은 방관했는가?

사립유치원 비리 사건정치하는 엄마들’ 17 | ‘한유총을 두려워한 정치인들과 진보 교육감들 19 | 정부의 어쩌다 공공기관정책의 한계 22 | ‘잔인한 국가의 근본을 바꿀 때까지 24 | ‘세월호보다 훨씬 더 중요한 사건이었음에도 25 | “가습기 살균제가 죽인 딸저는 ‘4등급아버지입니다” 28 |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재난이 아니라 악행이다” 30 | 왜 언론은 가습기 살인을 외면했는가? 33 | ‘하루살이 저널리즘먹튀 저널리즘을 넘어서 35 | 1,528명을 통계로만 여기는 냉담과 결별해야 한다 37

 

2: 왜 게임업계는 페미니즘을 탄압하는가?

소녀들은 왕자님이 필요 없다가 그렇게 큰 죄인가? 41 | “게임계에 만연한 여성 혐오 문화인가? 44 | “게임업계가 남초 시장이라는 건 착시 현상” 46 | “매출 떨어지면 네가 책임질래” 49 | 정치적 소비자 운동이 약자를 탄압해도 되는가? 51 | ‘영혼 보내기라는 페미니즘 바이콧 운동 55 | “광고는 페미니즘을 싣고 달린다” 57 | 1990년대생들의 ()페미니즘을 위한 변명 60

 

3: 왜 진보 언론은 자주 불매 위협에 시달리는가?

진보 언론을 위협한 ‘[시사IN] 구독 해지 사태’ 65 | ‘어용 지식인어용 시민의 탄생 68 | 순식간에 2,000명의 독자를 잃은 [한겨레21] 71 | 걸핏하면 ‘[한겨레] 절독을 부르짖는 어용 시민’ 74 | [뉴스타파] 후원자 3,000명이 사라진 조국 코미디’ 76 | “한경오는 오히려 지나치게 친()민주당이어서 문제다” 78 | ‘매개 조직의 허약이 키운 정치 팬덤’ 81 | “진보 신문은 보는 것이 아니고 봐주는 것이다” 84 | ‘역사의 소급희생양 만들기’ 87 | ‘어용 저널리즘은 어용 세력에도 독이다 90 | 유시민은 19849월의 세상에 갇혀 있다 92 | ‘문빠는 민주주의와 진보적 개혁의 소중한 자산이다 95

 

4: 왜 정치인들이 시민들보다 흥분하는가?

프란츠 파농과 아이리스 매리언 영 101 | 일본 정부가 촉발시킨 일본 상품 불매 운동 104 | ‘민주연구원 보고서 파동과 정치권의 친일파 논쟁’ 106 | ‘냉정이라는 말이 보수 용어인가? 109 | ‘경제판 임진왜란론에 대한 시민들의 반발 111 | 일본 상품 불매운동의 그늘 115 | “한일 관계는 국내 정치로 환원되고 만다” 118 | 보수-진보 편 가르기를 해야 하는가? 120 | ‘지피지기하는 평소 실력을 키우자 122

 

5: 왜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시민단체와 언론개혁 후원이 줄어들었을까?

그 많던 시민은 다 어디로 갔을까?” 127 | “1% 99%가 아니라 50%50%를 착취하는 사회” 129 | 지긋지긋한 이분법 구도를 넘어서 131 | “‘박근혜 퇴진목표를 제외하면 모두 달랐다” 134 | “신성한 촛불집회를 감히 소비자 운동으로 보다니!” 136 | ‘정치의 시장화시민의 소비자화’ 139 | ‘홀로 함께방식의 대규모 집단행동도 가능하다 141 | 문재인은 최소한의 상도덕이나마 지켰는가? 143

 

6: 슈퍼마켓에서의 정치가 유행인가?

폐병이라는 낙인을 넘어선 소비의 진화 과정 147 | “미국은 소비자 불매운동으로 태어난 나라” 150 | 미국 민권법을 만든 버스 보이콧 운동’ 152 | 나이키의 착취 공장 사건’ 154 | ‘월마트 민주주의딜레마 156 | 소비자의 사랑을 받는 맥도날드 포퓰리즘’ 158 | ‘시민 소비자의 권리와 책임 160 | ‘자기이익 추구를 부정하는 정치인들의 거짓말 163 | ‘개인화된 정치라이프스타일 정치의 등장 165 | ‘탈물질주의 가치의 확산 167 | ‘적이 사라진 민주주의시대의 하부 정치’ 170

 

7: 시민 소비자를 불편하게 생각하는가?

탈물질주의는 가난을 비껴간 시민들의 신념” 173 | “소비자 행동주의는 미디어 이벤트에 불과하다” 176 | “소비자의 자유는 동물원의 하마와 같은 자유” 178 | ‘구별 짓기과시적 환경보호’ 181 | 행동의 도덕적 가치는 결과가 아니라 동기에 있는가? 183 | 소비문화에 반대하는 문화 방해’ 186 | 왜 비쩍 마른 모델 사진 위에 해골을 그려넣는가? 188 | “국가는 몰락했고 기업이 새로운 정부가 되었다” 191

 

8: 왜 소비자의 이미지는 윤리보다는 갑질인가?

내 살림 내 것으로’, ‘조선 사람 조선 것’ 193 | 실패로 돌아간 조선물산장려운동 195 | 민족주의 열기에 편승한 애국 마케팅’ 197 | 노무현,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 200 | 기회만 있으면 갑질하려는 사람들 203 | “커피 나오셨습니다가 말해주는 감정노동의 극단화 206 | 일상화된 약자의 약자 괴롭히기’ 208 | 한국 소비자 운동의 현실과 한계 210 | ‘정치적 소비자 운동지평의 확대를 위하여 213

 

맺는말 : “끈적이는 관계는 싫어요!”

자본주의 진화론정치적 소비자 운동’ 217 | 왜 연구자들은 선거에만 집중하는가? 219 | “최선은 차선의 적이 될 수 있다” 221 | 기존 공동체를 대체하는 소비 공동체’ 223 | ‘따로 그러나 같이가자 225 | ‘코로나19 사태재난의 축복’ 228 | ‘분열과 증오의 정치를 넘어서 230

 

234

참고 논문 281

 

출판사 서평

유권자는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 소비자로 거듭날 수 있는가?”

정치적 소비자 운동을 위해

정치와 무관한 것으로 간주되어온 쇼핑 행위가 정치적 행동주의의 유력한 수단으로 떠오르고 있다. , 유권자가 투표하듯 소비자가 시장에서 특정한 목적을 갖고 구매력으로 투표한다고 보는 것인데, 시장을 정치적 표현의 장()으로 간주해 정치인에게 투표하는 대신 기업에 투표한다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쇼핑은 투표보다 중요하다는 말은 정치가 불신과 혐오의 대상이 된 가운데 정치적 소비자 운동이 세상을 바꾸는 데에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투표가 요식행위일 뿐 선거한다고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는 냉소로 무장하고 있다. 오히려 일상적 삶에서는 유권자가 아닌 소비자로서 그 힘이 더 크다는 것을 절감하면서 살아간다. 소셜미디어 혁명과 참여의 문제는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다. 소셜미디어가 여론을 지배하는 세상에서 소셜미디어의 속성과 부합되는 따로 그러나 같이라는 슬로건이야말로 쇼핑투표를 화해시키는 길이 아닐까? ‘정치 정상화의 길이 도무지 보이지 않는 현실에서 쇼핑은 투표보다 중요하다는 말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이념적·정치적 가치를 중시하는 소비

지난 2010년 이마트 등 일부 대형마트에서 판매하는 즉석 피자가 소비자들의 큰 인기를 얻자 신세계 부회장 정용진과 네티즌 사이의 설전이 주목을 받은 적이 있다. 한 네티즌이 신세계는 소상점들 죽이는 소형 상점 공략을 포기해주시기 바랍니다. 자영업자들 피 말리는 치졸한 짓입니다라는 글을 쓰자 이에 정용진이 소비자의 선택을 강조하면서 소비를 이념적으로 하나?”라고 대꾸한 것이다.

 

정용진의 반론은 그간 오래된 상식이었다. 소비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하는 것이지 소비를 이념적으로 한다는 건 낯선 일이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이념적정치적윤리적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소비를 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그간 소비자시민에 비해 비교적 이기적이고 열등한 존재로 간주되어왔지만, 그런 구분은 사라져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소비 행위를 통해 시민으로서 자각성을 갖는 사람도 늘고 있다.

 

어쩌면 지금 우리는 기존 정치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격변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성급한 질문일망정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는 변화의 한복판에 정치적 소비자 운동이 자리 잡고 있다는 건 분명하다. 정치적 소비자 운동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거나 운동으로까지 부를 정도의 규모는 아니어서 그렇지 정치적 소비자 운동은 이미 우리의 일상적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소셜미디어 혁명으로 인해 우리는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특정 상품기업업소에 관한 평판 위주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살아가고 있다. 기업들이 거의 예외 없이 스스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외치고 나선 것이야말로 정치적 소비자 운동의 영향력을 말해주는 좋은 방증이라고 할 수 있다.

 

정치의 몰락과 정치적 소비자 운동

정치적 소비자 운동은 소비 행위를 상품 자체의 문제를 떠나 소비자의 이념적정치적윤리적 신념과 결부시켜 특정 상품의 소비를 거부하는 보이콧팅, 지지하는 바이콧팅 등의 정치적 행위를 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소비자 운동과 구별된다. 일반적 소비자 운동은 상품과 서비스에 초점을 두고 소비자들의 피해를 알리고 해결하는 데 주력하는 반면, 정치적 소비자 운동은 상품의 생산 과정에서부터 기업경영자의 행태에 이르기까지 매우 포괄적인 범주에 걸쳐 이념적정치적윤리적 문제를 제기하고, 이를 정치화한다.

 

협의의 정치적 소비자 운동은 보이콧팅이나 바이콧팅이 시장에 미칠 영향을 중시하지만, 광의의 정치적 소비자 운동은 그런 고려 없이 개인적인 신념을 우선시하는 윤리적 소비, 국제관계에서 제3세계 생산자에게 정당한 이득을 주어야 한다는 공정 무역’, 3세계 공장에서 저질러지는 노동 착취에 반대하는 운동, 관광지의 주민들과 생태계에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한다는 책임 관광까지 포함한다.

 

정치적 소비자 운동은 우리의 일상적 삶에 들어와 있지만 우파와 좌파 모두에게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우파는 시장질서의 교란과 시장에 대한 정치적 규제의 가능성을 이유로 비판하고, 좌파는 신자유주의적 발상으로 정치를 약화시키는 반()정치 행위라는 이유로 비판한다. 기존 이분법에 익숙한 사람들은 이 운동이 좌에 속하는지 우에 속하는지 궁금해하지만, 이 운동은 반자본주의 운동도 아니고 신자유주의 운동도 아니다. 현 시장자본주의에 대해 비판적이긴 하지만, 자본주의를 다른 걸로 대체하는 혁명보다는 개혁을 원하는 쪽이다.

 

시장이나 정치를 중히 여기는 사람들은 정치적 소비자 운동을 곱게 보지 않지만, 오늘날 시장이나 정치를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시장과 정치를 정상화화는 데에나 힘을 쓸 것이지, 시장과 정치의 실패로 인해 나타난 운동에 시비를 걸 일은 아니라는 게 정치적 소비자 운동가들의 생각이다. 시장정치와 정치적 소비자 운동의 상호 보완도 가능하니, 비판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크게 우려할 일은 아니다.

 

기존 공동체를 대체한 소비 공동체

사람은 공동체 문화에 치이는 것을 싫어하면서도 공동체적 가치와 의미 없이는 세상을 살아갈 수 없는 묘한 동물이다. 이른바 소비 공동체브랜드 공동체도 그런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기존 공동체가 무너지면서 나타난 새롭고도 강력한 공동체다.

 

공동체 문화의 이런 변화는 새로운 업종을 낳게 했는데, 그 대표적 사례가 바로 커피 전문점 스타벅스의 성공이다. 공동체 생활에 굶주린 미국인들이 친구와의 약속 장소, 가벼운 회의 장소 등 제3의 장소에 대한 강렬한 수요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했기에 성공한 것이다. 한국에 커피 전문점이 과잉일 정도로 많이 늘어난 것은 여러 경제적 이유가 있겠지만, 그런 공동체적 소통의 필요성과 맞아 떨어졌다는 점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브랜드 공동체로 대변되는 소비 공동체의 힘은 이미 현실임에도, 우리는 이런 현실을 외면한 채 소비진보의 적으로만 간주해온 과거에만 머물러 있다. 10대 팬덤에 대해 눈을 흘기면서, 그런 팬덤의 사회적 잠재력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처럼 말이다.

 

정치적 소비자 운동의 동력은 개인주의적이면서도 연대를 배척하지는 않는 이른바 포용적 개인주의약한 연결의 힘이다. ‘약한 연결의 힘으로는 세상을 바꾸기 어렵다는 비판도 적지 않지만 냉정한 시선으로 우리의 주변을 돌아보자. ‘디지털 혁명으로 세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기성세대는 관계를 소중히 해왔다지만, ‘디지털 혁명의 세례를 받고 자라난 젊은 세대는 그런 관계를 중시하는 생존술에 의문을 품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끈적이는 관계를 맺기를 싫어한다. 입 밖으로 꺼내진 않을망정 모두 다 눈으로 끈적이는 관계는 싫어요!”라고 외치고 있다. 그들은 부담 없는 약한 연결을 원한다. ‘약한 연결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주어진 조건인 셈이다.

 

유권자의 소비자화

정치적 소비자 운동의 발전을 위해선 넘어야 할 큰 벽이 있다. 그건 바로 소비자는 왕이다는 근거 없는 미신이다. “소비자는 왕이 아니라 봉이다는 반론도 있지만, 소비자를 정말 왕으로 대접하는 기업들이 얼마나 될까? 그런 의문이 강하게 들긴 하지만, 중요한 건 널리 외쳐지는 이 미신적 슬로건이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강한사람들이 약자를 대상으로 갑질을 하는 심리적 근거로 활용되어왔다는 점이다.

 

일부 기업들은 이 미신을 노동자와 하청업체들에 온갖 횡포, 아니 사실상의 착취를 일삼는 면죄부로 활용해왔다. ‘소비자=왕 모델갑질 모델이자 착취 모델이다. 소비자에겐 권리만 있는 게 아니라 의무도 있다는 의식이 널리 확산될 때에 비로소 정치적 소비자 운동은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소비자는 왕이다는 근거 없는 미신에서 벗어나 시민 소비자로서 권리와 책임에 투철해야만 갑질착취를 없앨 수 있다.

 

이 책은 그 어떤 문제와 한계에도 한국에서 정치적 소비자 운동이 활성화되기를 바라는 문제의식이 낳은 산물이다. 많은 지식인이 시민의 소비자화를 개탄하지만, 일부일망정 명분을 내세운 시민이 명분을 내세우지 않는 소비자보다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현실을 외면한 채 다분히 허구적인 시민 우위론을 내세운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질 수 있을까? 오히려 많은 진보주의자가 시민을 앞세워 진보 행세를 하지만 개인적인 삶은 철저히 소비자그것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비윤리적인 소비자로 살고 있는 이중성과 위선을 깨는 풍토를 조성하는 게 더 시급한 일이 아닐까?

 

책속으로

누가 누구를 향해 손가락질하기 어려울 정도로 한국 사회 전체가 사일로(silo)’의 수렁에 빠져 의도하지 않은 불감사회로 나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전 국민적 성찰이 요구된다고 하겠다. 기업, 정부, 정치권, 언론이 악행을 저지르거나 방관하는 상황에서 정치적 소비자 운동은 마지막 자구책일 수밖에 없다. “쇼핑은 투표보다 중요하다는 행동 강령을 철저히 실천하되, “나도 피해자가 될 수 있었다는 역지사지의 수준까지 나아가야 한다. 우리 모두 사망한 1,528명을 통계로만 여기는 냉담과 결별해야 한다.

---1장 왜 1,528명이 죽는 동안 정부와 언론은 방관했는가?중에서

 

현실적인 문제는 게임업계가 남초 시장이라는 착시 현상이다. 문제는 여성 이용자들이 있지만 없는존재라는 것인데, 이 벽을 넘어서기 위해선 6년 전 미국에서도 있었던 게임업계 메갈 사냥에 미국 여성과 일부 남성들이 적극 저항해 게임업체의 사과까지 받아낸 성공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겠다. 한국에서도 20187반페미니즘공격으로 피해를 입은 작가 14명이 직접 참여한 내일을 위한 일러스트레이션전시회가 목표 금액의 1,000퍼센트가 넘는 약 9,400만 원의 후원을 받은 것은 그런 희망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는 올바르지 않은 정치적 소비자 운동을 올바른 정치적 소비자 운동으로 깨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2장 왜 게임업계는 페미니즘을 탄압하는가?중에서

 

승자독식을 기반으로 하는 이 모델에서 유권자들은 상대적으로 더 반감을 느끼거나 더 증오하는 최악(最惡)’의 정당을 응징하기 위해 차악(次惡)’의 정당을 선택하는 투표를 한다. 이런 투표 행태를 잘 아는 정당들은 뭔가 일을 잘해서 유권자의 표를 얻을 생각은 하지 않고 상대 정당을 공격해 유권자들의 반감이나 증오를 키우기 위한 증오 마케팅에만 몰두하면서 이걸 정치의 본령으로 삼는다. 지지자들 역시 같은 행태를 보이기 때문에 정치 참여를 닥치고 공격으로만 이해하며, ‘내부 비판은 금기시한다. ‘어용 저널리즘요구는 바로 이런 의식의 산물이기도 하다. ---3장 왜 진보 언론은 자주 불매 위협에 시달리는가?중에서

 

무엇보다도 언론의 성찰이 필요하다. 보도 내용과 방향에서 보수 언론과 진보 언론 사이의 간극이 너무 컸다. 일본의 경제 보복에 대해 진보는 비교적 낙관론을 펴는 반면 보수는 비교적 비관론을 폈다. 동일한 문제를 두고서도 그랬다. 예컨대, ‘반도체 소재 국산화의 경우 그 가능성에 대해 전혀 다른 두 의견이 평행선을 달릴 뿐, 어느 쪽이건 반대편의 주장을 검증해보면서 보도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온갖 수사(修辭)의 향연이 팩트를 압도했다. 자신의 이념이나 감성에 따라 독자들이 각자 알아서 판단하라는 식이었다.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교수 이준웅의 표현에 따르자면, “논변이 귀하고 비유가 헐한 나라였다.

---4장 왜 정치인들이 시민들보다 흥분하는가?중에서

 

사태 초기에 조국 법무장관 임명 반대 의견이 찬성보다 2배 이상 많았다는 건 반대에 문재인 지지자들의 상당수도 가담했다는 걸 의미했다. 하지만 문재인이 생각을 바꾸지 않자 지지자들은 조국 사태문재인 사태로 인식하고 문재인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으로 이 희대의 국론 분열 전쟁에 참전한 것이다. 결국 여론의 뭇매를 견디지 못해 조국이 사퇴했지만, 문재인은 아무런 사과도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조국에 대한 애틋한 심정을 드러냄으로써 제2국론 분열 전쟁의 불씨를 던졌다.

---5장 왜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시민단체와 언론개혁 후원이 줄어들었을까?중에서

 

월마트 모델은 월마트 민주주의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우리 시대의 전 사회적 국면을 휩쓸고 있다는 걸 부인하기 어렵다. 한국의 대형 유통업체들도 기본적으론 월마트 모델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데, 이는 한국 사회에 엄청난 갈등을 초래했다. 무엇보다도 영세 자영업자들의 생존권 문제 때문이었다. 이젠 대형마트마저 온라인 쇼핑과 모바일 쇼핑의 공세로 생존이 위협받고 있기는 하지만, 소비자들은 아직까지는 대체적으로 대형마트의 편이다. 그래서 딜레마다. 현 방식의 소비자 지상주의가 과연 궁극적으로 소비자의 이익으로 귀결되는 것인지, 정치적 소비자 운동은 어떻게 대처해나갈 것인지 등 앞으로 답해야 할 질문이 많다.

---6장 왜 슈퍼마켓에서의 정치가 유행인가?중에서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프리우스 효과는 정치적 소비자 운동에 다소 복잡한 문제를 제기한다. 2007년 봄 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에서 프리우스 구입자의 절반 이상이 프리우스의 구입 동기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준다(it makes a statement about me)”는 걸 들었다. 환경보호 그 자체보다는 , 이런 사람이야라는 걸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거나 남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 하는 환경 친화적 소비 행위는 그런 과시 효과가 없을 땐 나타나지 않았다. ‘과시적 환경보호는 자신의 지위와 평판을 돋보이게 만들기 위해 남들에게 보내는 신호인 셈인데, 그 신호의 비용이 크기 때문에 값비싼 신호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설명 방식을 값비싼 신호 이론(costly signaling theory)’이라고 한다.

---7장 왜 시민 소비자를 불편하게 생각하는가?중에서

 

’, ‘’, ‘실게요등이 전성시대를 누리고 있는 걸까? 갑을 관계의 실행이 일상적 삶의 기본 문법이 되었기 때문이다. 언어 왜곡을 수반하는 이런 과잉 서비스는 이미 조직 내에서 을인 노동자에게 고객을 대상으로 또 다른 을의 실천을 강요하는 것이지만, 그 이면엔 을의 신분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절대다수의 대중에게 소비자일 때만큼은 갑의 지위를 누림으로써 소비를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해보라는 마케팅 전략이 자리 잡고 있다. 따라서 세상살이가 어렵고 팍팍할수록 소비 서비스의 과공(過恭)은 극단을 치닫는 기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8장 왜 소비자의 이미지는 윤리보다 갑질인가?중에서

 

 

진보 지식인 강준만 "문 대통령, 최소한의 상도덕 안지켰다"

문 대통령, 조국사태 사과 없어 국론 분열"

"유시민은 프락치사건 있었던 1984년에 갇혀있어"

문재인은 최소한의 상도덕마저 지키지 않았다” “유시민은 (서울대 프락치 사건이 있었던) 19849월의 세상에 갇혀 있다” “‘어용 시민으로 칭하는 이들은 진보언론마저 어용이 될 것을 요구했다.

 

보수가 비판하는 진보의 행태가 아니다. 진보 성향 지식인 강준만(64) 전북대 교수는 7일 출간한 책 쇼핑은 투표보다 중요하다’(인물과사상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등을 실명 비판하고 이른바 문빠지지층이 가져온 폐해를 지적하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조국 사태이후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진보 진영의 위선을 강하게 질타하는 등 진보 지식인의 진영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약속한 내용을 지키지 않았다. 최소한의 상도덕을 지키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인물과사상사 제공

강준만 교수는 문재인 대통령이 정치 소비자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대통령)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분열과 갈등의 정치’ ‘분열과 증오의 정치를 끝장내겠다고 했지만, 그는 오히려 정반대의 방향으로 나아갔다. ‘조국 사태가 대표적인 증거다.” 강 교수는 여론의 뭇매를 견디지 못해 조국이 사퇴했지만, 문재인은 아무런 사과도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조국에 대한 애틋한 심정을 드러냄으로써 제2국론 분열 전쟁의 불씨를 던졌다면서 이는 문재인이 취임사에서 약속한 내용과 상반된 것이다. 어렵고 고상한 이야기할 필요 없다. 그는 최소한의 상도덕을 지키지 않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유시민 노무현 재단 이사장. 강준만 교수는 그에 대해 "서울대 프락치 사건이 일어난 19849월에 갇혀있다"고 했다.

 

유시민 이사장에 대한 비판은 더 신랄하다. 강 교수는 유 이사장이 주창한 어용 지식인론문재인 지지자들에게 하나의 절대적 좌표가 되었다고 지적했다. 유 이사장은 20175월 대통령 선거 직전 진보 정부에 대해 어용 지식인이 되려 한다고 주장했다. 강준만 교수는 맹목적인 당파성을 진보의 자리에 올려놓고 어용이라는 말 안에 녹아 있어야 할 수치심을 지워버렸다면서 수치심을 지워버린 효과 때문이었을까? 인터넷엔 자신을 어용 시민으로 칭하는 이들이 대거 등장했으며, 이들은 진보 언론마저 어용이 될 것을 요구했다고 비판했다.

 

강 교수는 유시민은 아직도 서울대학교 프락치 사건이 일어났던 19849월의 세상에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면서 민주화가 이루어질 대로 이루어진 오늘날에도 유시민은 그 시절의 선명한 선악 이분법의 사고틀에 갇혀 있다고 비판했다. 서울대 프락치 사건이란 전두환 정권 때인 19849월 서울대 학생들이 학교 내에 있던 타 학교 학생 및 민간인 4명을 정보기관 프락치(첩자)로 오인해 감금하고 물고문·폭행 등을 가한 사건이다. 유시민 이사장은 당시 사건에 연루돼 징역형을 받았고, 이때 쓴 항소이유서가 명성을 얻었다.

 

강 교수는 “1980년대의 운동권을 지배했던 사고 가운데 조직 보위론이란 게 있다. 운동 조직을 적의 공격에서 보위하기 위해 내부에서 성폭력 사건이 일어났다 하더라도 조직 밖에 알려서는 안 된다는 논리라며 유시민은 민주화가 된 세상에서 그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조직 보위론을 다시 꺼내든 것이라고 했다.

 

강 교수는 소위 문빠가 진보 언론을 어용 언론으로 만들려는 행태도 강하게 비판했다. 진보 독립언론을 표방하는 뉴스타파는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 캠프 검증 보도를 했다는 이유로 2000여명 후원자가 이탈했다. 뉴스타파는 문 대통령이 윤석열 검찰총장을 임명한 직후 문재인-윤석열이 같은 편으로 보였을 때 윤 총장에 대해 비판적 보도를 했다가 3000여명 후원자가 이탈했다. 그러나 조국 사태 후 문 대통령과 윤 총장 입장이 다른 것으로 나타나자 이번에는 뉴스타파에 사과하는 댓글이 줄을 이었다.

 

문빠는 경향신문·한겨레 등 이른바 진보 언론에도 절독하겠다고 위협하며 어용 언론이 될 것을 요구했다. 강 교수는 정부 여당에 종속된 기관 보도원노릇이나 하라는 요구가 도대체 그 어떤 명분으로 정당화될 수 있단 말인가? ‘어용을 철저히 실천하는 북한이나 중국의 언론 모델이 바람직하다는 것이었을까?”라고 비판했다.

 

강 교수는 책 출간 이유에 대해 왜 우리는 일반 소비자의 갑질에 분노하면서도 약자를 상대로 한 정치적 소비자의 갑질엔 침묵하는가. 왜 우리는 민생이야말로 소비의 영역임에도 소비를 자본주의의 죄악과 연결시켜 백안시하는 위선과 오만의 수렁에 빠져 있는가라며 나는 이 책을 통해 그런 문제 제기를 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했다.

chosun. 이한수 기자

 

강준만 교수 책 낸 편집장 조선일보, 정치적 목적 침소봉대비판

조선일보, 강 교수가 문재인 정부 강도 높게 비판했다고 기사 쓰자

인물과사상 편집장 서평 기사에 단독 단건 전무후무한 일성토

 

<조선일보>가 강준만 전북대 교수의 새 책 <쇼핑은 투표보다 중요하다>가 문재인 정부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고 기사를 쓰자, 이 책을 낸 출판사 편집장이 정치적 목적으로 편협하게 책 내용을 해석해 보도했다고 반발하고 나섰다. 서평 기사를 1면에 쓴 <조선일보>의 보도 행태도 이례적이지만, 해당 출판사가 이를 정면 반박한 것도 매우 드문 일이다.

박상문 인물과사상사 편집장은 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강준만 교수 신간 보도자료와 저서를 7일 오후 총 70여군데 언론사에 동시 배포했는데, 조선일보가 마치 단독기사인 것처럼 보도했다도서 서평 기사에 단독이라는 말을 단 사례는 세계 언론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며, 1면에 강준만 교수의 책을 실어준 것 역시 조선일보 100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분히 정치적 의도가 명명백백하다고 비판했다. <조선일보>8일치 신문 1면과 2면에 걸쳐 강준만, “문 대통령, 최소한 상도덕도 안 지켰다”’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박 편집장은 <조선일보> 기사가 나간 뒤 <중앙일보><동아일보> 등이 <조선일보>와 대동소이한 내용의 기사를 썼다며, 시간대별로 해당 신문사 기자들과 연락을 주고받은 사실을 전했다. 그는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 보수신문이 이렇게 이 책을 앞다퉈 보도한 이유는, 그것도 진보진영을 비판한 한 대목만 편의적이고 자의적으로 발췌해 보도한 이유는 결국 4·15 총선 때문이다. 진보 인사가 진보진영을 비판한 책을 냈다는 것을 기사로 내보내 보수세력을 규합하고 중도세력을 보수 쪽으로 끌어들이려는 전략이라고 말했다. 책 내용 가운데 문재인 정부와 유시민씨를 비판하는 내용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일부 열성 지지자들의 과도한 행태를 비판하는 과정에서 거론한 것인데, 보수언론이 마치 현 정부 비판이 책의 전부인 것처럼 침소봉대해서 기사를 썼다는 비판이다.

 

강 교수의 새 책은 유권자를 정치적 소비자로 명명하면서, 소비자의 이념적·정치적·윤리적 철학에 따라 정치를 소비하는 정치적 소비자 운동의 가능성을 말한다. 문 대통령 열성 지지자들에 대한 언급은 정치적 소비자 운동의 의미를 소개하는 대목에서 진보언론 불매운동을 비판하다가 등장한다. 8장과 맺음말로 이뤄진 책은 가습기살균제의 재난과 언론윤리, 페미니즘을 탄압하는 게임업계, 진보언론과 독자의 관계 등을 다뤘다.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쇼핑이 투표보다 더 중요하다

 

본인과 두 아들 모두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인 박수신씨가 지난 5월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청와대에 공개서한을 전달하기 전 삭발식을 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2010년 이마트를 비롯한 일부 대형마트에서 판매하는 즉석 피자가 소비자들에게 큰 인기를 얻자,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과 네티즌 사이의 설전이 주목을 받은 적이 있다. 한 네티즌이 신세계는 소상점들 죽이는 소형 상점 공략을 포기해주시기 바랍니다. 자영업자들 피 말리는 치졸한 짓입니다라는 글을 썼고, 이에 정 부회장은 소비자의 선택을 강조하면서 소비를 이념적으로 하나?”라고 대꾸했다.

 

정 부회장의 반론은 그동안 오래된 상식이었다. 소비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하는 것이지 소비를 이념적으로 한다는 건 낯선 일이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이념적·정치적·윤리적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소비를 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그동안 소비자시민에 비해 이기적이고 열등한 존재로 여겨져왔지만, 그런 구분은 사라져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소비 행위를 통해 시민으로서의 자각성을 갖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지금 우리는 기존 정치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격변의 시대에 살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새로운 소비 행위를 집단적으로 하는 걸 정치적 소비자운동이라고 한다. 영국의 정치적 소비자운동가들은 쇼핑이 투표보다 더 중요하다는 슬로건을 들고나왔다. 정치가 불신과 혐오의 대상이 된 가운데 특정 제품의 소비를 거부하거나 지지하는, 보이코팅(boycotting)이나 바이코팅(buycotting)이 세상을 바꾸는 데에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반론도 있다. 우파는 시장 질서를 교란한다는 이유로 비판하고, 좌파는 정치를 약화시키는 반정치 행위라는 이유로 비판한다. 하지만 오늘날 시장과 정치를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시장과 정치를 정상화시키는 데에나 힘을 쓸 것이지, 시장과 정치의 실패로 인해 나타난 운동에 시비를 걸 일은 아니라는 게 정치적 소비자운동가들의 생각이다. 시장·정치와 정치적 소비자운동의 상호보완도 가능하니, 비판자들이 우려할 일은 아닌 것 같다.

 

한국은 정치적 소비자운동이 발달돼 있는 나라가 아니다. 최근 일본 제품 불매가 범국민적 운동으로 전개되고 있지만, 비상한 시기에 발동되는 민족주의·애국주의 운동의 성격이 두드러진다. 평소 일상적 삶에서 이루어지는 정치적 소비자운동은 아직 미약한 편이지만, 젊은층과 여성을 중심으로 이전에 비해 크게 늘고 있으며 앞으로 급격한 성장세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

 

국내에도 정치적 소비자운동의 성공 사례가 꽤 있지만, 범국민적 차원의 정치적 소비자운동이 벌어졌어야 마땅함에도 그러지 못한 비극적인 사건도 있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바로 그런 경우다. “세상에 어떤 참사에서 사망자가 1300명을 넘을 수 있을까요. 전쟁 말고 비교할 수 있는 게 있습니까.”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이 올해 초에 한 말이다. 이젠 가습기 살균제 피해로 숨진 사람이 1400명을 넘어섰다. 가습기 살균제 문제가 드러난 건 2011년이었는데 그동안 가해 기업, 정부, 정치권은 무엇을 한 걸까? 구연상 숙명여대 교수는 관련 논문에서 이 사건은 재난이나 참사가 아니라 악행으로 규정해야 한다고 했다. 이런 악행을 방관한 언론과 시민사회는 면책될 수 있을까?

최승운 유가족연대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언론이 처음부터 추적보도를 해줬으면 (상황이) 이렇게까진 오지 않았을 것이다. 어느 누구도 관심을 가지고 보도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몇몇 언론인이 고뇌 어린 반성 칼럼을 쓴 건 경의를 표할 일이지만, 언론의 기존 시스템과 관행은 그대로다. 그래서 이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도 지난 7월에 나온 검찰의 3차 수사결과 발표를 보도한 것으로 끝내려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래선 안 된다. 피해 신청자는 6400명이지만, 피해를 인정받은 사람은 460여명으로 인정률이 7.5%에 불과하다. 살아남은 피해자 66.6%만성 울분으로 고통받고 있다. 이걸 외면하는 또 한번의 악행을 방관해선 안 된다.

 

기업, 정부, 정치권, 언론이 악행을 저지르거나 방관하는 상황에서 정치적 소비자운동은 마지막 자구책일 수밖에 없다. “쇼핑은 투표보다 더 중요하다는 행동강령을 철저히 실천하되, “나도 피해자가 될 수 있었다는 역지사지의 수준까지 나아가야 한다. 의사이자 의료인류학자인 김관욱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라는 책에서 그런 역지사지 후 온몸의 장기가 다 끊어지는 단장지애의 고통이 눈앞까지 밀려왔다고 했다. 우리 모두 숨진 1400명을 통계로만 여기는 냉담과 결별해야 한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한겨레 2019-08-18

 

Dio come ti amo Domenico Modugno(1966)